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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민족문화 33, , 39~73쪽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1)변 광 석* 1. 머리말 2. 16세기 전후 기장현의 상황 3. 기장의 陶 瓷 와 沙 器 匠 4. 被 虜 人 사기장과 기장지역 1) 경상도 일원 주민의 납치 2) 주요 피로인 사기장들의 출신지역 문제 3) 回 答 兼 刷 還 使 의 피로인 송환시도와 현지의 인식 5. 맺음말 <국문초록> 기장은 인근 동래 김해 양산과 함께 일본군의 초기 진격로였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일본군은 동남해안에 왜성을 축조하여 후방기지 로 삼고, 병력과 물자의 공급기지로 활용하였다. 그 중 기장현에는 죽성 왜성과 임랑포 왜성이 있었는데, 다른 주요 왜성근거지와 마찬 가지로 이곳에서도 많은 민간인과 각종 기술자들을 납치해 나가는 창구역할을 하였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기장에서 조사한 가마터(도요지) 중에서 70% 가 장안( 長 安 )에 분포하고 있었다. 시기는 15세기 초~19세기에 걸쳐 고루 분포하고 있다. 특히 도자기의 제조시설과 파편의 유약이나 무 늬는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전임연구원(ksbyun@pusan.ac.kr)

2 2 / 한국민족문화 33 전쟁으로 인해 납치되어간 수많은 피로인 가운데 사기장 야장들 도 있었다. 그 중에 사기장들은 일본에 연행되어 가서 주로 큐슈지 역 정착지에서 평생 도자기를 만들며 살아갔다. 당시 이삼평을 비롯 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납치된 사기장들의 대다수는 이름을 알 수 없다. 다만 전쟁 때 납치를 주도했던 주요 번주의 가문서( 家 文 書 )에 서는 도자기를 굽도록 피로인을 정착시켰다는 단편적인 기록만 있 을 정도이다. 즉 피로인들을 자신들의 고향에 강제 이주시켜 사역노 동이나 도자기업을 영위하게 했던 사실만 기록한 것이다. 피로인 사기장 중에서 경상도 출신지역으로는 부산, 김해, 사천 등이 주로 많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장과 양산 일원에서 도 납치되어간 피로인들이 있었다. 임란 당시 끌려갔던 많은 피로인 중에서 기장왜성을 축조한 구로다( 黑 田 ) 장수에 의해 납치되었던 핫 산( 八 山 )이라는 사람은 기장 출신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는 일본 후 쿠오카에서 다카도리 가마( 高 取 燒 )를 창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아가 노 도자기( 上 野 燒 )의 대표 사기장이었던 손카이( 尊 楷 )라는 사람도 추 론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정확한 성명과 그들의 출신지를 알 수 없는 피로인 사기장들이 부지기수였다. * 주요어: 임진왜란, 기장, 피로인, 핫산( 八 山 ), 사기장 1. 머리말 16세기 말 임진 정유왜란은 조선중기 사회에 막대한 전쟁의 상 흔을 남긴 대사건이었다. 대체로 전쟁의 목적이나 성격을 일본 도요 토미 정권이 자국내 무력세력을 발산하여 정치적 안정을 기하려는 의도로 해석하지만, 전쟁 후의 결과를 놓고서 흔히 도자기 전쟁이라 고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전쟁 중에 다이묘들이 많은 피로인 사기 장들을 납치해 가서 강제 이주시켜 도자기 제조에 몰입시킴으로써,

3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3 당시 陶 器 의 생산수준에 머물러 있던 일본이 자국의 磁 器 제작기술 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7년간을 통하여 수많은 민간 피로인들이 일본군에게 잡 혀갔고 또는 노예상인들에 의해 타국에 팔려 나가기도 하였다. 이렇 게 전쟁으로 약탈의 대상이 된 임란 피로인에 대한 본격적 연구는, 1960년대부터 일본학계에서 시작되어 다양한 자료수집과 고증작업 을 전개하였고, 한국측 연구는 주로 義 兵 과 軍 制 에 치중하다가 1980 년대부터 도자기문화와 실기문학적 측면에서 시도되기 시작하여 최 근에 조금씩 활기를 띄고 있다. 1) 그리하여 피로인을 바라보는 일본 측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피로인의 규모와 일본군의 납치목 적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이 나오게 되었다. 이와 같은 임란 피로인을 소재로 하여 본고는 전쟁 전후 기장의 사회경제 상황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내용은 기장지역 도자 생산의 가마터와 사기장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경상도 일원 주민의 납치실태와 기장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어서 일부 피로인 사기장의 문제를 제기해 보려는 것이다. 대상 범위는 기장지역을 중 심으로 하되, 다만 사료상의 한계로 인해 논지의 필요에 따라 경상 도 여타 지역이나 지역명이 명확하지 않은 관련사료의 기록도 활용 하면서 서술하기로 한다 세기 전후 기장현의 상황 조선의 지방제도는 전국을 8도로 편제하고 그 하부에 군현제를 두었다. 즉 개국 직후 1393년(태조 2) 11월 양계를 제외한 각 도에 界 首 官 을 정하였고, 2) 이듬해에 전국을 8도로 편성하면서 그 아래에 4 府 4 大 都 護 府 30 牧 44 都 護 府 82 郡 175 縣 을 두었는데, 경상도 기장 1) 閔 德 基, 임진왜란 중의 납치된 조선인 문제- 被 虜 人 규모와 기존연구의 검토를 중심 으로-, 한일관계사연구논집 편찬위원회,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景 仁 文 化 社, ) 太 祖 實 錄 권4, 태조 2년 11월 계축(12일)

4 4 / 한국민족문화 33 현은 이러한 군현체제 하에서 하나의 단위로 존속하게 되었다. 이어 1413년(태종 13)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강원도에 이 어 평안도 영길(함경)도가 개정되었고, 3) 이듬해에 경기좌 우도를 고쳐서 경기도로 호칭하면서 8도제가 완성되었다. 4) 8도제가 완비되면서 기장현에는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으로 縣 監 을 두게 되었다. 아울러 동래군과 양산군의 領 縣 으로서 행정상 존재 했지만 그것은 상하관계는 아니었기 때문에 간섭이나 명령체계는 없었으며 독자적으로 군현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다만 군사상 국방 상으로는 상급 군현의 명령하에 놓여 있었다. 조선후기로 내려 오면서 각 군현 내에 面 의 개편이 여러차례 이 루어졌다. 18세기 기장현은 邑 內 面, 東 面, 上 西 面, 下 西 面, 南 面, 中 北 面 의 6개로 편제되어 있다가, 5) 19세기에 오면 邑 內 面, 東 面, 南 面, 上 西 面, 下 西 面, 下 味 面 으로 중북면 대신 하미면의 6개 면으로 편제 되었다. 6) 기장 내의 面 制 가운데 下 味 面 의 경우 원래 울산부에 편제 되어 있다가 기장현에 割 給 되기도 하였고, 또다시 울산부로 환속되 기도 하였다. 또 동래부에 동합되었다가 다시 기장에 소속되는 경우 도 있었다. 이처럼 기장 내에는 관할 면의 변화가 몇차례 진행되어 왔다. 7) 기장현은 국방 군사적인 측면에서 경상도 동남부 연해지역을 방 어하는 중요한 거점 지역이었다. 이는 세종대에 기장읍성을 축조하 고 이어 15세기 말까지 성곽 일부와 해자 등을 개축한 사실에서 말 해주고 있다. 그리고 조선 초부터 豆 毛 浦 鎭 을 두고 수군만호를 배치 하여 이 연해 지역을 지키도록 하였다. 1510년(중종 5)에 처음으로 두모포에 石 城 을 축조하면서 기장의 해안방어 역할을 중시하였으나, 3) 太 宗 實 錄 권26, 태종 13년 10월 신유(15일). 4) 太 宗 實 錄 권27, 태종 14년 정월 계사(18일). 5) 輿 地 圖 書 하권, 慶 尙 道 機 張. 6) 機 張 縣 邑 誌 (1832년) 坊 里. 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韓 國 民 族 文 化 8의 기장관련 논고, 1996; 기장 군지편찬위원회, 機 張 郡 誌 上,

5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5 임란 직전인 1592년(선조 25)에 두모포 진영의 본부를 동래부로 이 전해 가버렸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부터 기장지역은 일본군의 주요 진격로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당초 적은 동래에서 세 길로 나 누어 진격하였다. 하나는 中 路 로서 양산 밀양 청도 대구를 거쳐 인동을 경유하여 상주로 이르는 루트이고, 하나는 左 路 로서 기장 울산 경주 영천 의흥 비안을 지나 문경으로 진출하여 中 路 의 군사와 합류, 조령을 넘어 충주로 침입하였다. 또 하나의 길은 김해 를 경유하여 右 道 로 진출, 성주 금산을 거쳐 추풍령을 넘어 충청도 영동으로 침입하였다. 8) 전쟁 초기부터 경상도 남부지역의 군현은 전면적으로 점령되었고, 동시에 일본군의 북상침략 거점지가 되었다. 따라서 개전 초기부터 기장의 경우도 해안포구로서 일본군의 장기적인 주둔지가 되었고 동시에 병참기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런 상황은 일본군이 한반 도 북쪽으로 전선을 확대시키면서 일본 본국으로부터 군량의 운반 과 병력 조달을 위한 필요성과 비상시의 후퇴를 위한 근거를 마련 해 두고 있었던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9) 1593년부터 기장지역에서 는 구로다( 黑 田 長 政 )와 모리( 毛 利 吉 成 ) 휘하의 군대가 각각 읍성으로 부터 떨어진 외곽의 해안 일대에 죽성리왜성과 임랑포왜성을 축조 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그 후 전세가 역전되면서 일본군이 경상도 남해안 일대로 후퇴하 고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강화회담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렇지만 일본군 진영에서는 군사를 본국으로 철수시키지는 않았다. 강화회담 시기에는 기장지역이 가토( 加 藤 淸 正 )의 휘하에 놓여 있었 으며, 전쟁이 종료할 때까지 이곳에는 일본군의 해안거점 주둔지의 하나였다. 당시 점령지 하의 지역민들은 주로 농업에 사역되거나 축 8) 宣 祖 修 正 實 錄 권26, 선조 25년 5월 경신(1일). 9) 金 康 植, 임진왜란 시기 機 張 지역의 전황과 위치, 지역과 역사 19, 부경역사 연구소,

6 6 / 한국민족문화 33 성과 해자 정비작업 및 기타 노역에 동원되는 등 생활 양상이 각기 다양하였다. 먼저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서 일본군의 군량으로 납부하는 경우 가 있었다. 10) 무엇보다도 일본군은 후방주둔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군량의 확보문제가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다. 1596년 兼 忠 淸 慶 尙 道 防 禦 使 權 應 銖 가 올린 장계에 의하면, (전략) 또 이곳에는 군량과 짐바리가 끊임없이 잇닿았을 뿐 아 니라, 釜 山 과 東 萊 를 왕래하면서 적에 빌붙는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적에게 쌀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말하기를 이 처럼 군량이 쌓이면 大 明 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 다 고 합니다. 적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 조선 사람들이 몹시도 밉습니다. 또 조선이 비록 화친을 한다 하더라도 적은 전연 철회 할 기세가 없으니, 추격하여 정벌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11) 라 하고 있다. 곧 이는 조선 민중을 회유한 일본의 술책 결과였다. 게다가 일본군 진영 인근에 거주하면서 왜성 축조에 강제 동원되 거나, 일본이 양곡과 각종 잡물을 본국에 운반하는데 부득이하게 사 역되는 민호도 있었다. 다음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司 贍 寺 正 黃 愼 이 치계하였다. (중략) 기장 일대는 청정의 소관인데 이곳의 백성들도 통행할 수 없으니, 그 사이 형편을 자 세히 알 수 없습니다. 기장 사람 朴 延 守 의 告 目 에 근일 청정( 淸 正 )의 진중에서 外 城 의 垓 子 의 목책을 파 가지고 가는 일로 밤낮 으로 검칙하였는데, 어떤 副 將 倭 하나가 청정에게 이처럼 두 나 라가 서로 강화하여 멀지 않아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는데 城 機 를 독촉하는 것은 불가한 듯하다 하자, 청정이 크게 노하여 좌우로 하여금 목베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왜장들이 중국 사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만일 중국 사신이 이 지역을 순시하면 도로를 수리하 10) 위의 논문, 146쪽. 11) 宣 祖 實 錄 권71, 선조 29년 정월 병신(29일)

7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7 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전 군사가 도로를 수리하였다 합니다. 12) 2 接 伴 使 司 贍 寺 正 黃 愼 이 치계하기를, 본월 10일에 신이 본 도 순찰사가 파견한 梁 山 品 官 崔 沂 를 장사꾼으로 꾸며서 豆 毛 浦 西 生 浦 林 浪 浦 등지에 가서 왜영의 형편을 탐지하게 하였더 니, 당일 돌아와서 말하기를 기장의 두모포에 도착하였더니, 진 중의 왜인들이 바야흐로 축성하는 役 事 를 일으켜서 나무를 끌어 오고 돌을 실어나르는 왜인이 도로를 메웠으며 옛 縣 城 에서 돌을 반수 이상이나 뽑아내고 또 근처의 암석을 채취하여 끊임없이 실 어날랐다. 성문을 들어가서 두루 살펴보니, 舊 鎭 의 房 屋 이 드문 곳에는 여기저기 더 만들었고, 서생포 논밭에서 수확한 곡식을 배로 실어다가 진영 안에 쌓아둔 것이 36개소나 되고 곡초를 남 쪽에 쌓아둔 것이 50여 개소나 되었으며 군병이 많기로는 부산의 버금이었으나 시장의 점포는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바다 어귀에 정박한 왜선이 매우 많았는데 우리나라의 큰 판옥선 2척 도 그 가운데 있었다. 거류민에게 물어보았더니, 머물러 있는 왜 인 의 수효가 거의 8천 명이나 되고 전일 일본으로 들어간 자도 많으며 양곡과 기계 및 잡물을 일찍이 나누어 운반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고 하였다. 왜적에 붙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왜의 진영 옆에 사는 자가 거의 2백여 호나 되었다. 13일에 서생포에 이르 니 진영 안의 城 柵 과 望 樓 가 이미 다 파괴되고 방옥도 이미 철거 되었으며 오직 大 倭 의 집 3채와 소왜의 집 6채가 있는데 목책을 둘러치고 머물러 있는 왜인이 겨우 50 60여 명 있을 뿐이었다. 왜인에게 물어보았더니, 사냥하러 나간 자가 30여 명이라 하였다. 같은 날 임랑포에 이르니, 파괴된 형상은 서생포와 같았고, 오직 왜인의 집 13개 처소가 있는데 3개 처소는 왜인이 있고 그 나머 지는 모두 텅 비어 문도 닫혀 있지 않았다. 머물러 있는 왜인들 이 혹 들에 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보이는 왜는 겨우 2천여 명이 었다 하였습니다. 13) 1595년 11~12월 사이에 기장의 두모포에서는 일본군들에 의한 왜 12) 宣 祖 實 錄 권68, 선조 28년 10월 갑자(25일). 13) 宣 祖 實 錄 권70, 선조 28년 12월 신축(3일)

8 8 / 한국민족문화 33 성 축성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음이 보인다. 옛 기장읍성의 성돌을 뽑아내고 근처의 암석을 채취 운반하는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편 전쟁의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전투 위험이 적은 지역을 왕래 하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과 같은 보고 기사에서 상 인의 활동모습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도원수 권율이 치계하기를, 우병사 金 應 瑞 가 치보하기를 이달 14일에 왜인 통사 요시라( 要 時 羅 )가 적장 조신( 調 信 )의 서신을 가 지고 와서 말하기를 소서비( 小 西 飛 )의 家 人 이 北 京 으로부터 돌아 와서 봉공을 이미 준허한 일을 갖추 말하고, 또 詔 使 가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이를 것이라고 하니, 대소 왜인이 각기 기뻐서 손 뼉을 치면서, 우리들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때는 이 때뿐이라 고 하였다. (중략) 병사가 답하기를 詔 使 의 행차는 반드시 3월 에 당도하지 않을 것이다. 군사를 데리고 돌아가는 일이야 본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진을 옮기는 일도 오히려 어렵게 여기는가. 너희들이 급히 좌도로 옮긴 연후에야 나는 마 땅히 너희를 믿을 것이다 하였더니, 요시라가 말하기를 이 일 은 마땅히 힘을 다해 보고할 것이다. 단 釜 山 東 萊 機 張 林 郞 西 生 浦 의 적진에는 좌도 사람이 물건 매매하는 일로 혹은 백 여 명, 혹은 50여 명이 연달아 드나들면서 서로들 말하기를, 강화 의 일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하므로, (중략) 행장은 자못 기분 이 언짢아서 나로 하여금 가서 사또에게 고하도록 하였다 하였 다. 14) 전쟁이 발발한 이래 격렬한 전투와 심각한 사회적 위기는 이듬해 까지 절정이었다. 그 후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이를 기화로 강화교섭 논의가 전개되었다. 이 사이에 전국의 농지는 황폐해지고 농민층이 감소하면서 군영에는 군량의 확보가 매우 중요한 문제였 다. 이를 위해서는 촌락의 농민을 安 集 시켜 농사에 투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柳 成 龍 은 일본군들이 포로로 잡아간 14) 宣 祖 實 錄 권60, 선조 28년 2월 계유(30일)

9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9 조선민인들을 농군으로 활용하는 문제를 강조하면서 적에게 붙잡혀 간 백성들을 免 死 帖 으로 불러내어 농사짓는 데 활용하자고 건의하 였다. 15) 강화교섭 시기 기장 일대 왜군의 주둔 상황에 의하면, 1595년 기 장의 두모포성에는 2만 4천명, 16) 임랑포성과 서생포성 일대에는 각 각 5~6천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17) 바로 직전인 1594년 구로다( 黑 田 甲 斐 守 長 政 )가 완성한 기장 본성에는 휘하에 5,082명의 주둔병력이 확인되고 있다. 18) 임란을 지나 17~18세기에도 기장 지역은 군사적 중요성이 항상 크게 내재하고 있었다. 실례로 영남위유사 李 益 運 이 올린 별단에 의 하면, 대마도와 가까워 표류한 왜인들이 와서 정박하지 않는 달이 없을 정도이며, 중앙아문에 문서로 보고하는 업무가 번다하여 고을 민들에 대한 차역과 그 경비가 과다할 수 밖에 없어서 왜선이 한 번 오면 온 고을이 소란스럽다고 하였다. 19) 이것뿐만이 아니라 보고 가 지연되어 각 영에서 추고할 경우에는 人 情 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적으로 일을 맡은 자가 부담하므로 패망하기 일쑤라고 하여 기장 현 백성들의 고질적인 폐단이 심각함을 지적하고 있다. 20) 이처럼 대마도의 왜인이 표류하다가 기장 해안에 정박하는 경우 가 많았으며, 21) 또 이는 대외정세에 관련된 중대 사안이므로 변방의 보고규례에 대한 정비문제를 처리해 주기를 중앙정부에 요청해왔다. 그만큼 조선후기에 오면 기장군은 동래부와 함께 지리적 위치와 군 15) 西 厓 先 生 文 集 권8, 啓 辭 ; 면사첩제도는 많은 백성들을 구제하는데 국가적으로 활용되었다. 제장명, 조선시대 주요 變 亂 과 免 死 帖 制 度, 韓 國 民 族 文 化 29,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宣 祖 實 錄 권64, 선조 28년 6월 기유(8일). 17) 宣 祖 實 錄 권70, 선조 28년 12월 경술(12일). 18) 佐 賀 縣 近 世 史 料 제1편 제1권, 鍋 島 直 茂 公 譜 考 補 8, 佐 賀 縣 立 圖 書 館, 1993, 696쪽. 19) 正 祖 實 錄 권41, 정조 18년 12월 계미(30일). 20) 正 祖 實 錄 권41, 정조 18년 12월 계미(30일). 21) 倭 人 求 請 謄 錄 庚 午 (1690) 10월 초9일; 增 正 交 隣 志 제4권 섬, 말, 되의 교정. 이와 같은 사례가 다수 보인다

10 10 / 한국민족문화 33 사상의 중요성이 매우 큰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22) 3. 기장의 陶 瓷 와 沙 器 匠 기장지역에는 고려시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청자와 분청사기가 널 리 생산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백자의 생산이 전국의 일반적 사례 와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기장 일원의 가마터는 비교적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체로 장안읍 상장안 용소 리 일원이 중심이며 기타 기장읍 청강리와 정관면 두명리 병산리 일대에도 분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상장안 지역의 가마터에서는 蔚 山 長 興 庫 銘 이 새겨진 분청인화문 사기가 수습되었다. 울산 지 명이 새겨진 이유는 조선시기에 군현 간의 합속이 빈번하게 이루어 진 데에 그 배경이 있다. 23) 장안 일원은 동래와 울산에 각각 일시적으로 합속된 사실이 있었 다. 그 중에 기장현의 상북면 중북면 하북면이 울산부에 편입되어 있던 시기에 생산된 관요 자기로 볼 수 있다. 1599년(선조 32)에 동 래와 울산에 각각 분할 병합되었다가 1681년(숙종 7)에 울산 下 未 面 을 기장현에 還 屬 시켰다. 이유는 기장이 3개 면만 있어서 고을이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고, 언양과 함께 쇠잔한 고을이었기 때문이었 다. 24) 기장현의 영역이 다시 회복된 이후 한말 1895년(고종 32) 지방 제도 개편 때 기장군으로 변경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25) 노출된 기장지역의 가마터 중에서 무려 70%가 장안읍에 분포하고 있다. 장안읍의 도요지 현황에 의하면, 시기적으로는 15세기 초부터 22) 임진왜란 당시와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다음의 <특집> 일본 근세 문헌과 임 진왜란 이 참조된다. 韓 國 民 族 文 化 27,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기장의 도자기 생산과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는 본호에 수록되는 이종봉, 조선 시대 기장지역의 도자기 생산과 의미 가 참조된다. 24) 肅 宗 實 錄 권11, 숙종 7년 6월 갑진(23일). 25) 기장군지편찬위원회, 機 張 郡 誌 上,

11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11 19세기에 걸치고 있으며, 유물의 종류는 청자 분청사기 백자 흑 유자 및 옹기류 등이다. 장안 일원에 분포한 도기소와 자기소는 조 선 중후기 당시 울산의 공납용 자기를 생산한 가마로 판단된다. 26) 이 때의 장안 가마유적은 15세기 후반에 공납자기를 생산하던 도자 기소 기록과 어느 정도 부합된다고 할 수 있으며, 대체로 장안리 상 장안 분청사기 요지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27) 15~16세기 상장안과 하장안 일대의 도자기 가마에서는 분청사기 를 많이 번조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기장지역이 일본군 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도자의 생산활동이 크게 타격을 입게 되었고, 조선인들에 의한 정상적인 도자기의 제조가 축소 내지 왜곡되기 시 작하였다. 비록 타격은 있었지만 기장에서 살아 남았던 현지 도자장 들에 의해 분청의 제작이 일부 재개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것은 기장의 죽성리 왜성지에서도 최근에 분청사기 유물이 발굴된 사실 이 말해주고 있다. 28) 하지만 오랜 전란기에 기장왜성과 임랑포왜성 및 서생포왜성 등을 거점으로 지역 사기장과 기타 민간인 등 많은 피로인이 납치되었다. 따라서 전란 후에는 국내에서 부족한 도자장의 공백을 메꾸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는 왕실 수요의 도자를 생산하는 司 饔 院 의 형편에 서도 확인된다. 17세기 초 사옹원 분원에서는 외방의 사기장을 立 役 하여 충원하려 했으나, 매년 그 수가 감축되어 외방의 사기장이 남 은 수가 겨우 1/10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물력이 고 갈하여 진상사기의 조달이 힘들고 麤 陋 하여 과업을 널리 펼 수 없 26) 기장 도자기의 가마터와 제작기법에 대해서는 본호에 수록되는 성현주, 기장지 역 도자기의 제작기법과 도자사적 성격 이 참조된다. 27) 기장군 경남문화재연구원, 長 安 邑 一 圓 陶 窯 址 精 密 地 表 調 査 2007, 94~95쪽; 황구, 기장의 분청사기와 매장문화재 활용 방안, 機 張 文 化 제5호, 기장지역 문화원, ) 대표적으로 죽성의 지성에서 분청사기 인화문접시의 내저면에 長 銘 ( 長 興 庫 로 추정됨)이 있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기장 두모포진성 죽성리왜성-시온~죽 성간 도로 공사구간 내 발굴조사 보고-, 복천박물관,

12 12 / 한국민족문화 33 다고 보고하고 있다. 29) 하지만 많은 장인들이 납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부터 도 자장이 서서히 늘어나면서 전국 주요 지역 가마에 번조작업이 활기 를 찾기 시작하였다. 대체로 17세기 전반부터 전쟁으로 인해 심각하 게 위축되었던 도자제조의 맥이 점차 회복되면서 생활용의 막백자 를 비롯하여 회백색의 백자류가 주로 생산되었다. 조선후기 동래부 관내 倭 館 에서는 釜 山 窯 가 존재하였다. 이는 17 세기 전반( 寬 永 年 間 ; 일본의 연호)~18세기 전반( 寬 保 年 間 ) 사이에 대 략 100년 동안 대마번이 왜관이라는 특수 공간 내에서 경영하였다. 이처럼 왜관의 부산요는 조선-일본의 대외관계사 측면에서 볼 때 특 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17세기 이후 대마번과 부산의 왜관에서는 약재 서적 沙 器 및 기타 생활용품 등을 求 請 하고 있었다. 특히 사기를 구워 만들 때 工 匠 의 파견은 물론 沙 土, 燒 木 등의 물자를 부산의 인근 김해 양 산 기장 일원에서 공급하고 있었다. 이들이 파견되어 오는 지역을 近 邑 所 居 匠 人 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주로 왜관에서 가까운 군현이 었으므로, 당연히 기장고을에서도 많은 부분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 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이를테면 부산 인근 도자기 생산지로부터 沙 土 와 燒 木 등의 물자, 솜씨좋은 匠 人 을 왜관 에 차출하여 보내 주어서 감사하다는 대마도주의 서신을 수차 확인 할 수 있으며, 30) 또한 에도( 江 戶 )의 大 君 이하 제장수들이 찻잔을 만 들기 위하여 구울 흙과 땔깜 및 장인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31) 여러 기술자 중에서도 沙 器 匠 을 비롯하여 鍮 器 匠 甕 器 匠 등을 불 러 들여와 겨냥을 보여준 뒤 밖에서 만들어 주거나 왜관 안에서 구 워 만들기도 하였다. 32) 29) 承 政 院 日 記 1책, 인조 3년 6월 계사(17일). 30) 倭 人 求 請 謄 錄 庚 辰 (1640) 5월 19일, 辛 酉 (1681) 3월 2일 등. 이런 사례의 기록 을 많이 볼 수 있다. 31) 倭 人 求 請 謄 錄 庚 辰 (1640) 10월 18일

13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13 구체적인 사례로서 1687년 동래부사 李 沆 이 성첩한 장계의 내용 을 살펴보자. (전략) 도주가 대마도로 돌아올 때 에도의 여러 집정과 봉행 등이 구하는 茶 碗 과 器 皿 등의 물건이 이전보다 배로 많기로, 부 득이 기일에 앞서 내어 보내거니와, (중략) 양산의 沙 器 匠 1명과 기장의 沙 器 匠 1명을 우선 수일 내로 왜관으로 들여 보내어 상의 하여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경주의 白 土 45섬, (중략) 김해의 赤 紺 土 90섬, 울산의 藥 土 90섬도 전례대로 마련 분정하여, 지연되 어 급박한 폐단이 없게 해주면 매우 다행이겠다 고 하였으며 (후 략) 33) 위와 같이 왜관의 부산요에 기장 양산 일원 사기장이 차출되고 있으며, 경주 김해 일원의 백토 약토 등 陶 土 가 분정 징발되고 있 음을 볼 수 있다. 에도막부의 청구방식은 부산의 왜관을 통해 부산 진첨사영과 동래부에 보내는 서계를 가져와 사기장과 백토 등 도토 의 조달을 요청하였고, 동래부에서는 인근 군현에 분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기장은 사기장과 도토의 공급처로서 일정한 기능을 수행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마번주와 왜관의 관수에게는 이러한 求 請 交 涉 이 초미의 업무였고, 이에 관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대마도측 자료인 朝 鮮 方 每 日 記 館 每 日 記 등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34) 기장에서 부산 왜관으로의 사토나 땔감 등과 같이 화물이 많은 경우에 수송은 주로 연해의 수로를 이용하였다. 즉 기장의 日 光 에 소재한 海 倉 35)에서 출발하여 연안 해로를 따라 두모포 왜관(나중에 는 초량왜관)으로 운송하였다. 이는 경상도 군현에서 대일무역의 주 32) 倭 人 求 請 謄 錄 庚 子 (1660) 4월 20일. 33) 倭 人 求 請 謄 錄 丁 卯 (1687) 7월 초2일. 34) 泉 澄 一, 釜 山 窯 の 史 的 硏 究, 關 西 大 學 出 版 部, 이 때 차출된 기장 사기장 에 대해서는 3장 2절에서 서술한다. 35) 海 倉 在 縣 東 二 十 里 海 邊 機 張 縣 邑 誌 (1832년) 倉 庫

14 14 / 한국민족문화 33 요 품목인 公 木 公 作 米 를 수송하는 루트이기도 했는데, 기장현도 면포나 쌀의 주요 下 納 邑 의 하나였다. 36) 이 루트는 하단을 경유하여 김해 칠성포의 낙동강 수로로 연결되는 세곡과 공물의 조운로이기 도 하였다. 4. 被 虜 人 사기장과 기장지역 임진왜란은 국가적 대재난으로 당시 조선이 입은 인적(희생, 납치 등) 물적(문화재, 토지, 재산) 피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 였다. 인명의 살상은 물론이거니와 전쟁 과정에서 陶 瓷 匠 木 匠 活 字 匠 冶 匠 과 같은 많은 분야의 기술자와 男 丁 및 여인 아동 등이 부지기수로 납치되어 갔다. 일본군에 의해 자국의 각지에 매매되어 노역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심지어는 당시 일본과 무역하던 포르투 칼 스페인 등 유럽 상인들에게 노예로 매매되었던 사실도 잘 알려 져 있다. 당시의 정황을 정유재란 때 醫 僧 으로 종군했던 게이넨( 慶 念 )의 노래일기인 朝 鮮 日 日 記 기록에 의하면, 일본에서 온갖 상인들이 왔는데, 그 중에 사람을 사고파는 자 도 있어서 本 陣 의 뒤에 따라 다니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서 줄로 목을 묶어 모아서 앞으로 끌고 가는데, 잘 걸어가지 못하면 뒤에서 쫓아가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모습은 지옥의 阿 房 羅 刹 이 죄인을 잡들이 하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중략) 사람들을 사서 마치 원숭이의 목에 줄을 매어 걸리는 것처럼, 소나 말을 끌게 하고 짐을 들리는 등, 괴롭히는 모습이 보는 눈을 애처롭게 하는 구나. 37) 36) 金 東 哲, 世 紀 對 日 公 貿 易 에서의 公 作 米 문제, 港 都 釜 山 10, 부산시사 편찬위원회, ) 僧 慶 念, 朝 鮮 日 日 記 慶 長 2년(1597) 11월 19일. 內 藤 雋 輔, 文 祿 慶 長 役 における 被 虜 人 の 硏 究, 東 京 大 學 出 版 會, 원문이 p.601에 수록되어 있음

15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15 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부산포에는 왜군에게 납치된 조선인을 매수하여 일본에 데려가서 팔려는 賣 買 人 이 적지 않게 있었으며, 또는 여차하면 죽여버리는 잔인한 모습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38) 전쟁을 수행하면서 일본군이 수많은 조선인을 납치한 데에는 목 적이 있었다. 첫째는 엄청난 병력의 동원에 따른 일본 국내에서의 부족한 노동력 보충을 위한 것이었다. 둘째는 16세기에 일본 내에서 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유행하면서 다완을 제작할 수 있는 도자장 이 필요하였다. 특히 히데요시는 나고야( 名 護 屋 ) 陣 中 에서 茶 會 를 열 어 즐겼기 때문에 일반 무장들도 조선의 도자기에 대한 갈망이 아 주 강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사기장들을 무수히 데려갔고 이것이 전쟁 후 서부 일본에서 도예가 급격히 번성하게 되었던 이유이다. 셋째는 여자와 아동들 중에 미모나 재주가 있는 자들을 데려온 경 우가 상당하였다. 넷째는 왜란 중에 적군을 도운 협력자들을 회유하 여 데려갔으며, 다섯째는 戰 場 에서 아내를 가졌기 때문에 함께 데려 온 경우도 조금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39) 특히 도자장을 비롯한 각분야 장인의 납치는 다이묘들의 내밀한 계획에 따라 전개되었다. 이는 전쟁이 끝난 뒤 일본 사회에서 각 번주들의 업적과 실세에 크 게 작용하였다. 1) 경상도 일원 주민의 납치 임진 정유왜란 시기에 납치된 조선인의 수는 정확한 계량이 불 가능하다. 한국측에서는 10~20만 명 정도로 보고 있으며 일본측 연 구자는 대략 5~6만 명 정도로 추정해 왔다. 기술자와 민간인 피로인 뿐만 아니라 나가사키를 통해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에게 매각된 피 로인까지 합치면 상당한 수치에 이를 것이다. 38) 鄭 光, 壬 辰 倭 亂 에서 倭 軍 의 朝 鮮 人 拉 致, 壬 辰 亂 과 國 家 危 機 의 文 化 政 治 學, 규장각국제워크숍, ) 內 藤 雋 輔, 앞의 책, 220~222쪽

16 16 / 한국민족문화 33 일본은 납치한 조선인을 부족해진 군사력에 보강하려고 시도하였 다. 특히 조선 침략에 동원된 영주들이 그러했다. 사츠마( 薩 摩 ; 지금 의 가고시마)에만 3만여 명의 조선인들이 조총과 창검술을 익힌 정 예병으로 양성되고 있다는 피로인 全 以 生 의 보고나, 砲 術 과 劍 術 을 익힌 피로인을 일본 전역에서 모두 찾아보면 3~4만 명이 될 것이라 는 鄭 希 得 의 상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40) 도요토미는 솜씨좋은 細 工 者 나 손재주 있는 여자까지도 데려오도 록 장수들에게 직접 명령하였다. 41) 그리하여 함락시킨 성을 거점으 로 장수들이 지휘하여 전문적인 기술자를 포함하여 수많은 피로인 을 연행하였다. 나베시마 나오시게( 鍋 島 直 茂 ) 구로다 나가마사( 黑 田 長 政 ) 모리 요시나리( 毛 利 吉 成 ) 시마즈 요시히로( 島 津 義 弘 ) 등의 다이묘에 의해 사기장이 주로 납치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납치 한 피로인 중에도 磁 器 의 전문적 기술을 가진 사기장에 대해서는 우수한 도자기를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일본 현지에서의 정착과 거 주에 상당한 신경을 쏟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행되어 온 사기장집 단은 주로 서부 일본 큐슈지역에 강제 이주되었다. 특히 가고시마( 鹿 兒 島 )에도 많이 정착하였는데, 당시 도착한 많은 조선인 사기장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조선 인 사기장이 주로 南 原 에서 왔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시마즈 군대 에 의한 사기장 납치 사실만 거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타 선봉 장에 의한 사기장 납치사례가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시마즈 군대 도 남원성 전투에서만 사기장을 납치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42) 40) 鄭 希 得, 月 峰 海 上 錄 권1; 민덕기, 납치된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갔 을까,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2006, 256쪽; 內 藤 雋 輔, 앞의 책, 217쪽. 41) 1593년( 文 祿 2) 11월 29일 도요토미가 나베시마 장수에게 보낸 朱 印 狀 ( 佐 賀 縣 立 名 護 屋 城 博 物 館, 大 坂 城 博 物 館 소장). 42) 노성환, 나에시로가와의 조선도공 마을에 관한 일고찰, 日 語 日 文 學 35, 日 語 日 文 學 會, 2007; 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 문화 임진왜란 당시

17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17 사천-김해-양산-기장 지역으로 연결되는 경상도 남부지역에는 조 선 중기의 분청사기 가마유적이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당시 이 일원에서 수많은 사기장들이 납치되어 갔을 것이다. 즉 가 고시마현 히오키군( 日 置 郡 ) 이쥬인촌( 伊 集 院 村 ) 나에시로가와( 苗 代 川 ) 의 由 來 記 인 高 麗 傳 陶 器 起 原 製 造 書 의 冒 頭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文 祿 年 中 舊 主 人 朝 鮮 滯 陣 之 砌 陶 器 製 造 功 ( 巧 カ) 者 なるを 探 索 し, 慶 長 三 戊 年 歸 朝 之 節, 朝 鮮 人 數 多 携 來 り 本 府 鹿 兒 島 又 は 日 置 郡 串 木 野, 市 來 神 之 川 にも 置 く, 卽 着 船 之 所 なり. 분로쿠( 文 祿 )의 해에 옛주인이 조선의 진지에서 머물 때에 도 자기 제조에 재주가 있는 자들을 찾아서, 게이쵸( 慶 長 ) 3년(1598) 에 귀국할 때에 조선인 다수를 데리고 와서 본부 가고시마 또는 히오키군 쿠시기노, 이치쿠 카미노가와에도 두었는데, 즉 배가 닿 은 곳이다. 이들은 이치쿠( 市 來 ) 카미노가와( 神 之 川 )에 배가 도착한 뒤 10인의 3 姓 氏 가 모여 주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모리( 毛 利 吉 成 )나 시마즈 ( 島 津 義 弘 ) 군대들은 한반도 남부 각지에서 도자기 제조에 뛰어난 사기장들을 찾아서 모아 연행해갔다. 43) 바로 이 시기에 경상도 동남 부의 사천 웅천 김해 가덕도 기장 임랑포 등 각 왜성 근거지 에서도 피로인 중에 솜씨좋은 사기장들이 많이 납치되어 갔던 것으 로 보인다. 전쟁 중에 납치된 경상도 피로인 중에서도 관군의 반격으로 해방 된 경우도 있었다. 宣 祖 實 錄 에 의하면, 1594년 요동 도지휘사사가 납치된 조선인 도공 이야기, 역사비평 85, 역사문제연구소, 2008 겨울. 43) 內 藤 雋 輔, 앞의 책, 221쪽. 당시 사츠마번( 薩 摩 藩 )의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한 조선 인 사기장들의 유래를 적은 기록 가운데 苗 代 川 留 帳 이란 기록물이 전래되어 왔는데, 근래 이것이 발굴되어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鄭 光, 薩 摩 苗 代 川 傳 來 の 朝 鮮 歌 謠, 京 都, 1990; 鄭 光, 앞의 논문,

18 18 / 한국민족문화 33 일본의 정세에 관하여 보낸 자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중략) 4월 13일 배신( 陪 臣 ) 경상도 좌병마절도사( 慶 尙 道 左 兵 馬 節 度 使 ) 고언백( 高 彦 伯 )의 치계에는 해당 경주 부윤( 該 慶 州 府 尹 ) 박의장( 朴 毅 長 )이 3월 19일 신시( 申 時 )에 임랑포( 林 郞 浦 )에 주둔 하고 있는 왜적 약 1천여 명이 언양현( 彦 陽 縣 ) 으로부터 약탈을 시작하여 본부( 本 府 ) 남쪽 20리 되는 지점까지 진입하여 왔으므로 신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독전하여 달려나가 적을 격퇴하였다. 패퇴한 적들이 잡아간 남녀 도합 3백 70명과 마우( 馬 牛 ) 도합 32 필을 되돌려 보내왔다 고 비보하였다 하였습니다. 44) 그런가 하면 피랍되어간 후 일본 현지에서의 고통의 실태를 보여 주는 사례도 볼 수 있다. 겸 충청경상도 방어사( 兼 忠 淸 慶 尙 道 防 禦 使 ) 권응수( 權 應 銖 )가 장계를 올렸다. 밀양( 密 陽 ) 의 유학( 幼 學 ) 변사순( 卞 斯 循 ) 이 납치 되어 일본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기장( 機 張 ) 일광사( 日 光 寺 )의 중 경륜( 敬 倫 )이 나오는 편에 서찰을 붙여 보냈기에 이를 등서하여 올립니다. 서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 포로가 된 조선 사람이 이곳에 절반이나 있기 때문에 조선 사람이 어두운 밤이면 모여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화친하면 우리가 모두 돌아갈 수 있다 고 합니다. 이에 소생이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가 화친하 면 우리는 살아서 옛 집으로 돌아가고 거듭 고향 산천의 길을 밟 아 부모의 묘하에 통곡하게 되리라. 그러면 마음에는 만족하고 즐겁겠지만 국가의 의에 있어서는 불가하다. 우리가 비록 새외의 땅에 억류되어 막심한 고난을 겪으면서 끝내 길가의 백골이 되더 라도 혼신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고 운운하자, 모든 조선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45) 44) 宣 祖 實 錄 권56, 선조 27년 10월 갑인(10일). 45) 宣 祖 實 錄 권71, 선조 29년 정월 병신(29일)

19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19 앞의 기록은 기장의 임랑포에 주둔하던 일본군이 조선인민과 우 마를 약탈했다가 관군과 의병이 다시 격퇴하여 되돌려온 경우이고, 뒤의 기록은 기장출신의 승려 경륜이 일본에서 가져온 서찰을 통하 여 한창 전쟁 중에 납치된 피로인이 겪는 고난의 실태를 보여주는 내용이다. 어쨌든 일본군은 당초부터 민중의 약탈납치 목적이 내재 해 있었고, 또 납치되었던 민인 중에 사기장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2) 주요 피로인 사기장들의 출신지역 문제 전란의 와중에 일본군들은 사기장 야장 침장 세공장 등 기술 자를 비롯하여 남녀 민간인을 무수히 연행해 갔다. 그 중에 사기장 들은 각지에서 평생 도자기 제조업을 영위해 가며 대대로 전승해 갔다. 일부는 이른바 브랜드 도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기도 했던 반면 에 대부분은 이름모를 사기장으로 살며 평생 흙을 만지다가 흙속으 로 돌아갔다. 강제 이주된 사기장들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큐슈 지방 에 정착하였다. 하지만 끌려간 대부분의 사기장들은 그들의 이름이나 출신 지역 명을 알 수 없는 형편이며, 그나마 극소수의 경우가 해당 藩 主 의 家 文 書 등에 의해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이들 가운데 기왕에 알려 진 몇몇 인물의 출신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재검토의 여지를 제시 하고자 한다. 1 八 山 (핫산) 八 山 은 후쿠오카번( 福 岡 藩 )의 구로다 나가마사( 黑 田 長 政 )에 의해 연행되어 갔던 경상도 출신 사기장이었다. 기왕의 견해에 따르면 八 山 이 일본에 가서 가마를 열게된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 하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구로다가 韋 土 라고 하는 곳에 진 을 치고 있을 때 46), 그 마을에 八 山 이란 사기장이 있었다고 한다

20 20 / 한국민족문화 33 구로다는 八 山 을 주둔하는 진영에 불러서 作 陶 솜씨를 칭찬하였다. 구로다는 퇴진할 때 八 山 의 부부와 한 아들을 데리고 가서 정착시 키고는 八 山 에게 명령하여 본국의 후쿠오카 번에서 도자기를 제조 하게 하였다. 위치는 鞍 手 郡 鷹 取 山 의 기슭에 가마를 열었기 때문에 다카도리( 高 取 )의 姓 이 붙여져 다카도리 핫산이라 불렸다. 이것이 다 카도리 가마( 高 取 燒 )의 기원이 되었다. 47) 八 山 을 南 海 韋 登 人 으로 보는 추정이 있으며, 48) 또는 그가 陜 川 李 氏 라고 언급한 사례도 있다. 49) 정확한 근거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핫산 과 합천 의 발음의 유사성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 그 에 대한 출신 지역 추정은 당시의 상황적 근거가 다소 미약하며 쉽 게 납득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당시 납치를 주도한 장 수가 거점을 두고 있던 왜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구로다 부대가 바로 축성하여 주둔한 왜성이 機 張 城 이다. 전쟁 직 후 도읍 한양을 빼앗기고 전세가 불리하다가 明 軍 의 지원과 의병 및 관군의 반격으로 일본군의 전세가 밀리게 되자, 전선을 남하시키 고 후방 기지 및 퇴로의 목적으로 경남 해안 일대에 왜성을 축조하 기 시작하였다. 기장 왜성은 바로 이 무렵인 1593년(선조 26) 5월에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50) 1597년에 다시 전쟁이 가열되자 울산 도산성 서생포성 일원은 가토( 加 藤 淸 正 )의 거점이 되었고, 인 근 요새에 구로다 고니시 등이 기장성 부산성 등에 주둔하고 있 었다. 46) 小 川 七 郞, 根 性 の 窯, 22쪽.( 權 丙 卓, 傳 統 陶 磁 의 生 産 과 需 要, 영남대학교 민 족문화연구소, 1979, 193쪽에서 재인용) 47) 內 藤 雋 輔, 앞의 책, 727쪽. 48) 黑 田 長 政 의 밑에서 嶺 南 南 海 韋 登 人 八 山 의 翁 壻 손에서 비롯된 筑 前 의 高 取 燒 와 그 지류인 遠 州 高 取 와, 崔 南 善, 壬 辰 亂, 1931, 61~62쪽.( 權 丙 卓, 앞 의 책에서 재인용) 49) 李 慶 熙, 高 取 燒 始 祖, 대구실업전문대학, 1977.( 權 丙 卓, 앞의 책에서 재인용) 50) 1593년( 文 祿 2) 5월 1일자 도요토미의 朱 印 狀 에 명기되어 있다. クチヤン, 一 ヶ 所, 黑 田 甲 斐 守 일본군은 기장을 クチヤン으로 불렀다. 시마즈가( 島 津 家 ) 文 書 ; 김문길, 한일관계사, 부산외국어대출판부,

21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21 이 때 많은 사기장을 납치한 사실을 직접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1607년( 慶 長 12) 6월 20일 구로다 장수가 河 川 舟 運 의 관리 등을 맡은 인물인 우마스기( 馬 杉 一 正 )에게 서신을 보내어 연행한 사 기장들을 귀환시키라는 명령문서에서 볼 수 있다. 즉 사기장들을 배 에 태워서 이마즈( 今 津 ; 滋 賀 縣 소재)까지 수송하게 하고는, 書 狀 을 첨부하여 히젠( 肥 前 )의 나고야( 名 護 屋 : 사가( 佐 賀 )에서 도요토미가 지 휘하는 성이 있는 본부)까지 송부하기 위해 배의 관리를 확실히 하 도록 명령하고 있다. 51) 이와 같은 피로인의 정식 귀환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 납치되었던 피로인 가운데 일부가 1607년부터 3차에 걸 쳐 회답겸쇄환사에 의해 송환되고 있었던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 다. 52) 다만 사기장들이 정착한 지역은 쇄환사의 往 還 路 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피로인 사기장들이 전쟁 후 쇄환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16세기 당시 기장 일대에는 여러 개의 가마터가 있었고, 지금도 가마유적에서 보이는 도자기 파편들이 후쿠오카의 다카도리 도자기 ( 高 取 燒 )와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 53) 근래 발굴된 장안읍 신리나 오 리, 상장안 등의 가마터에서 보이는 가마벽체와 도지미( 陶 枕 ) 등의 생산관련 유물들과 수습된 자기편들의 施 釉 상태나 紋 樣 帶 등을 볼 때 그러한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54) 51) 馬 杉 一 正 あて 黑 田 長 政 書 狀 態 申 聞 候 やき 物 之 唐 人 高 麗 へ 戾 候 間 船 申 付 乘 せ 候 て 今 津 迄 差 越 し 此 方 へ 可 申 越 候 書 狀 想 添 名 護 屋 まて 送 候 間 得 其 意 急 度 舟 可 申 付 候 也 慶 長 十 二 年 六 月 卄 日 長 政 ( 花 押 ) 馬 杉 喜 右 衛 門 殿 馬 家 文 書 福 岡 縣 史, 近 世 史 料 編, 福 岡 藩 初 期 ( 下 ), 107쪽; 米 谷 均, 近 世 日 朝 關 係 における 戰 爭 捕 虜 の 送 還, 歷 史 評 論 595, 歷 史 科 學 協 議 會, 1999, 33쪽에서 재인용. 52) 慶 暹, 海 槎 錄 ; 吳 允 謙, 東 槎 上 日 錄 ; 姜 弘 重, 東 槎 錄 등 참조. 53) 金 文 吉, 釜 山 지역의 倭 城 과 日 本 으로 피랍된 陶 工 의 硏 究, 壬 辰 倭 亂 과 釜 山 機 張 의 義 兵 活 動 및 文 化 侵 奪 에 관한 學 術 硏 究 發 表 會, ) 三 島 曆 手 朝 鮮 陶 瓷 シリズ 15; 기장군, 長 安 邑 誌, 2008, 390~403쪽

22 22 / 한국민족문화 33 2 경상도 사람 40여 명 저녁에 일행이 海 船 을 타고 돛을 내려 바다 안에 정박하였다. 그 리고 배를 사서 刷 還 人 을 나누어 실었다. 경상도 蔚 山 등지의 사람 40여 명이 저들대로 배 한 척을 사서 미곡을 가득 싣고 술을 동이 에 가득 채워, 돛을 달고 돛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며 따라왔다. 그 안에는 海 平 令 이란 자가 있었는데 宗 室 이다. 처음에는 오려고 하 다가 배를 탈 때에 와서는 도로 돌아가 버렸으니, 해괴한 일이다. 55) 이 기록은 1607년 1차 회답겸쇄환사가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겪은 내용이다. 위의 기사에서 울산과 인근 출신 40여 명이라 표현 되어 있다. 아마 울산의 서생포 왜성에서 연행되어 갔던 것으로 보 이며, 당시 상황으로 보아 서생포와 인접해 있는 임랑포 왜성에서도 아마 기장사람들이 피로인으로 끌려 갔을 수도 있다. 1597년 정유왜 란 이전까지의 林 浪 西 生 豆 毛 3진은 가토( 加 藤 淸 正 )가 관할하던 구역이라서 그 개연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56) 3 尊 楷 ( 尊 階 ; 손카이) 일본 가고시마( 鹿 兒 島 ) 지방의 아가노 도자기( 上 野 燒 )의 대표적 존 재가 尊 階 이다. 그는 경상도 泗 川 에서 피로인으로 끌려왔다고도 하 며, 한편으론 釜 山 浦 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57) 하지만 이들 주장에 대한 근거가 막연하다. 전란 당시 모리( 毛 利 吉 成 ) 군대에 의 해 연행되어 왔기 때문에, 이로 보면 임랑포 왜성 축조의 주인공인 모리에 의해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현지에 정착하여 그는 호소가와( 細 川 忠 興 )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며, 아가노 55) 慶 暹, 海 槎 錄 정미년(1607) 윤6월 11일. 56) 당시 훈련주부 김경상이 부산 기장 양산 일대의 적세를 탐심하여 올린 서계 에 의하면 일본군 가토 소속의 진의 설치상황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宣 祖 實 錄 권69, 선조 28년 11월 경오(2일). 57) 崔 南 善, 壬 辰 亂, 1931, 61~62쪽

23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23 지방에서 가마를 열면서부터 아가노 요시쿠라( 上 野 喜 藏 )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그의 11대손인 아가노 사이스케가 도예를 생산하고 있 으며 그의 아들(12대손)인 아가노 히로유키도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또 11대 외손인 와타리와 12대 히토시도 아가노 도예를 계승하고 있다. 4 又 七 (또칠) 일본 큐슈 가라츠( 唐 津 )에서 30여 년을 중학교 역사교사로 근무하 다가, 가라츠 역사민속연구소( 唐 津 歷 史 民 俗 硏 究 所 )를 열어 활동하면 서, 지금은 조선 사기장의 역사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나카사토 노리 모토( 中 里 紀 元 )라는 학자가 있다. 그가 쓴 秀 吉 の 朝 鮮 侵 攻 と 民 衆 文 祿 の 役 ( 文 獻 出 版, 1993) 속에서 자신이 정유왜란 때 일본으로 끌 려간 조선 사기장 또칠( 又 七 )의 13대손이라고 밝히고 있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또 이러한 사례는 일본 각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고 한다. 58) 나카사토에 의하면, 자신의 조부는 가라츠번( 唐 津 藩 ) 번주를 위한 가마의 최후의 御 茶 碗 師 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가라츠번 초대 번주 테라자와( 寺 澤 志 摩 守 )에 의해 연행되어 온 조선사기장 또칠( 又 七 )이 그의 조상이며 자신은 13대손이라 하고 있다. 그의 부친은 장 남으로서 나카사토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中 里 喜 平 次 口 上 覺 書 등 교호( 享 保 ) 5년(1720)에 가라츠번이 에도( 江 戶 )막부에 御 用 窯 에 대하여 보고했던 기록 등 일련 문서를 보관해 왔다. 그 중에 高 麗 人 又 七 이라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 조상이 조 선인이었다는 사실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같은 조선사기장이었던 大 島 彦 右 衛 門 ( 尹 角 淸 )과 福 本 弥 作 과 더불어 사기장의 마을인 椎 の 峯 ( 伊 万 里 市 府 招 )에 고국 조선 58) 정성일, 또칠이와 이삼평(이참평),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2006, 243쪽

24 24 / 한국민족문화 33 의 신위를 모신 高 麗 神 社 를 세워 조선식의 供 物 을 올리고, 고국의 춤을 추면서 그 자손들도 에도시대를 통하여 그것을 지켜 내려오면 서 조선인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59) 아리타에 거주하는 李 參 平 과 百 婆 仙 의 자손, 가네가에( 金 ケ 江 )와 후카우미( 深 海 )의 兩 家 의 사기장들도 觀 音 山 에 조상의 祖 靈 碑 를 세 워서 몰래 고국에 대한 제사를 매년 지속해 왔다. 그러다가 메이지 ( 明 治 ) 이후 征 韓 論 과 더불어 한국을 멸시하는 정책과 교육이 진행 되면서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나아가 근대 식민지 지배 를 합리화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결국 저자 나카사토씨는 임 진왜란은 히데요시가 조선의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고 민중에게 비 참한 상태를 가져왔으며, 또 자국민(일본민)도 고뇌에 빠지게 한 침 략전쟁으로서 그 이외의 역사적 사실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칠( 又 七 )의 경우 정확한 출신 지역을 알 수 없어 앞으로 검토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5 金 海 (긴카이) 1595년 金 海 는 시마즈 요시히로( 島 津 義 弘 )에 의해 연행되어 이치 쿠( 市 來 )의 가미노가와( 神 之 川 )에 왔다가 구리노( 栗 野 )에서 도자기업 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60) 이들 일행은 사츠마번( 薩 摩 藩 )에 강제 이주 되어 가마를 열어서 쵸사 도자기( 帖 佐 燒 )를 이루었다. 그는 사실상 사츠마지역 도자기의 창시자로 불려졌다. 61) 곧이어 藩 主 의 전용 가 59) 中 里 紀 元, 秀 吉 の 朝 鮮 侵 攻 と 民 衆 文 祿 の 役 ( 壬 辰 倭 亂 ) 下, 文 獻 出 版, 1993, 767~768 쪽. 참고로 큐슈지역에서 도자기의 사회경제적 중요성은 다음의 지적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사가( 佐 賀 ) 영내 마쓰우라( 松 浦 ) 지방의 경우 산림과 벌판은 많으나 농경지는 매우 적어서 농산물이 풍부하지 않았다. 1787년( 天 明 7) 기록에 의하 면, 아리타( 有 田 ), 이마리( 伊 萬 里 ), 야마시로( 山 代 ) 등지에서의 도자기 수출을 비 롯한 상공업의 수입이 번의 재정에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다. 松 浦 史 刊 行 會, 松 浦 史, ) 文 祿 四 年 に 陶 工 金 海 が 義 弘 に 伴 われ, 市 來 の 神 之 川 に 來 り, ついで 栗 野 で 燒 物 を 始 めた. 古 記 留 渡 海 以 來 事 件, 鹿 兒 島 縣 史 제2권 제4절, 陶 窯 の 條. 61) 강제 연행되어 이주한 조선인 피로인들에 의해 나에시로가와( 苗 代 川 ) 지역이

25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25 마로 발달했다가 얼마 후에 가고시마의 타테노( 竪 野 )에 이주하여 타 테노 가마( 竪 野 燒 )가 되었다. 62) 그는 나중에 호시야마( 星 山 仲 次 )라는 이름을 번주로부터 하사받았 고, 古 薩 摩 古 帖 佐 燒 의 원조로 기록되어 있다. 또 한갈래는 1598년 에 이치쿠( 市 來 )로 가서 나에시로가와 도자기( 苗 代 川 燒 )를 창시하였 다. 한편 1688년( 元 祿 원년)에는 가와하라( 川 原 芳 工 )가 타테노 가마 의 계통을 이어받아 일으킨 것이 지금의 료몬지 도자기( 龍 門 司 燒 )이 다. 오늘날의 사쓰마 도자기( 薩 摩 燒 )는 대체로 이렇게 세가지로 대별 된다. 63) 나에시로가와에 정착한 피로인 사기장과 함께 연행되어온 일부 사람들은 한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생활의 수단으로서 도자기 제조 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金 海 란 인명에 대한 정확한 실체는 아직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며, 출신 지역 또한 경상도란 사실만 추정할 뿐 자세히 알 수 없어 검토의 여지가 남아 있다. 6 スツテキ, サウメイ, ソンニビ 위의 3명은 임진왜란 당시의 피로인 사기장이 아니라 전쟁이 끝 나고 백여 년 후 초량 왜관에 출입하던 사기장들이었다. 이들은 동 래 인근에 거주하면서 1707년 무렵 왜관 관수의 요청으로 陶 土 의 세공과 도자기 제조에 기여했는데, 임란 당시 인물은 아니지만 기장 에 거주하던 사기장으로 판단되므로 언급하기로 한다. 館 每 日 記 (1707년( 寶 永 4) 2월 6일조)에 의하면 조선인 사기장에 관한 기록이 있다. 즉 スツテキ 라고 하는 자가 있는데 병이 매우 심하여 어제부터 만들어지고, 사회집단으로서의 나에시로가와 지역사회가 탄생하였다. 즉 조선 피로인의 마을의 하나였다. 德 永 和 喜, 苗 代 川 地 域 社 會 の 形 成 と 薩 摩 藩, 朝 鮮 史 硏 究 會 論 文 集 45, 朝 鮮 史 硏 究 會, 2007, 42~44쪽. 62) 국내의 연구자들이 타테노( 竪 野 )의 지명에 대하여 발음을 그대로 따르되 堅 野 로 잘못 쓰거나, 또는 카타노( 堅 野 )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 63) 內 藤 雋 輔, 앞의 책, 212쪽, 725쪽

26 26 / 한국민족문화 33 왜관에 일을 하러 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通 詞 를 시켜 그의 처소에서 요양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가 사는 곳이 양산 또 는 기장인데, 어느 쪽이든 왜관에서 25~30km 정도로서 거의 반나절 거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단 귀향시키면 다시 군수의 허가를 구하 는 절차가 필요했으므로 결국 그는 처소로 돌아가 이듬해에도 왜관 에 들어오지 않았다. 64) 아마 발음상으로 볼 때 그의 이름은 서택희, 서택이, 서태기 중의 하나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노인이었기 때문에 茶 碗 細 工 을 하는데 충분한 기능 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왜관측에서는 다른 사람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신할 자로서 또다른 사기장 サウメイ 가 지목되었는 데 마침 그는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다. 얼마 후 회복하게 되자 왜관 에 입관시키게 하였다. 다음 달에는 ソンニビ 가 뒤를 이어 입관하 여 자기 제조에 종사하였다. 65) 이상으로 보면 スツテキ 를 비롯하여 3명이 왜관의 부산요에서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외에 왜관 에 출입하던 기타 사기장들은 모두 소재지가 김해 또는 양산으로 거론된 점으로 볼 때, 위의 3명 사기장들은 기장 출신 인물로 판단 된다. 3) 回 答 兼 刷 還 使 의 피로인 송환시도와 현지의 인식 7년간 전쟁이 종식된 후 1603년 성립된 일본의 도쿠가와( 德 川 家 康 ) 막부는 조선에 끈질기게 화의 요청을 해왔고, 수차례의 요청이 지속되자 조선정부도 국제적 정세의 판단 결과 다시 국교를 재개하 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全 繼 信 孫 文 彧 등을 대마도에 파견하여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도록 추진한 바가 있었 다. 66) 그러나 점차 강화 요청이 높아짐에 따라 막부의 요청에 회답 64) 泉 澄 一, 釜 山 窯 の 史 的 硏 究, 關 西 大 學 出 版 部, 1986, 554쪽. 65) 위의 책, 553~566쪽

27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27 하면서 본질적 목적인 피로인을 찾아서 송환시킨다는 취지로 1607 년에 1차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즉 일본의 수교요청에 대한 정부측의 회답이라는 기본 성격을 지 니면서 왜란으로 납치된 피로인의 쇄환을 주요 목적으로 삼았던 것 이다. 그래서 일본막부의 오해를 사전에 불식하고 쇄환을 위한 그들 로부터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정식으로 回 答 兼 刷 還 使 로 부르게 되었다. 이어 2차(1617) 3차(1624)까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파견하였으며, 이 결과 일부 피로인이 송환되어 왔다. 67) 적어도 3차에 걸쳐 회답겸쇄환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3사신( 正 使 副 使 從 事 官 )들은 모두 피로인의 쇄환에 적극 노력하였다. 우선 왕 래하는 노정에서 분산되어 있는 피로인들이 현지에서 겪는 상황이 나 그들의 의식을 관찰하고 있었다. 당시 왕래했던 일행들이 일본 현지에서 견문한 내용들 가운데 피로인 쇄환건과 관련하여 일어났 던 일과 느낀 소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들은 行 中 에 가지고 있는 토산물을 義 成 調 興 宗 方 橘 智 正 平 行 長 등의 처소에 예물로 보내는데, 崔 義 吉 康 遇 聖 으 로 하여금 가지고 가게 하고, 겸하여 대마도에서 쇄환할 사람을 우선 開 錄 해서 보내주되 단 한명이라도 숨겨 두어서는 안된다는 뜻을 거듭 말하게 하였다. 그랬더니 義 成 調 興 이 다 사람을 보 내어 致 謝 하였고 智 正 이하도 역시 친히 와서 사례하였다. 義 成 調 興 은 대답하기를, 쇄환하는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힘을 다하겠습니다만 小 島 에 는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지 아니하며, 비록 사소한 사람이 있을 지라도, 만약 먼저 조사해 내서 開 錄 하게 한다면 이는 다 이미 토착민이 되어 자손을 낳은 처지라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자 66) 宣 祖 實 錄 권145, 선조 35년 정월 경술(17일). 67) 쇄환된 피로인의 수를 7,500명 이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內 藤 雋 輔, 앞의 책), 한편으로는 이 수치가 상당히 중복하여 계산되었을 우려를 지적하면서 대체로 6,100명 정도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米 谷 均, 앞의 논문; 六 反 田 豊 외, 文 祿 慶 長 の 役 ( 壬 辰 倭 亂 ), 40쪽

28 28 / 한국민족문화 33 들일 것이니 생각 밖의 일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신이 돌아가는 그 시기에 쇄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찌 추호인들 속이고 숨기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는, 서간 한 장을 보내어 불가불 쇄환에 힘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68) 2 포로당한 사람으로서, 晋 州 에 거주하던 河 魏 寶 의 아들 河 愃 이 중이 되어 本 官 앞에 와서 뵙는데, 이 사람이 바로 좌의정이 稱 念 하던 사람이므로 역관 등이 서로 만나게 됨을 기뻐하여, 그 부모의 소식을 자세히 전해주고, 이어서 관백이 이미 령을 내려 쇄환한다는 뜻을 말하며, 그가 거주하는 사찰을 물으니, 우물거리 며 말하지 않았다. 그 부모의 말을 듣고도 조금도 생각이 움직이 지 않았으며,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핑계하고는 한 번 간 후에는 형적도 없으니, 정황이 지극히 밉살스러웠다. 69) 3 쇄환하는 일 때문에 諭 示 文 및 집정의 문서를 들려 康 遇 聖 을 界 濱 에 보냈는데, 포로된 사람들이 혹 와서 나타나는 자가 있 기도 하나 머뭇거리고 결단하지 못하였다. 백방으로 開 諭 했으나 이미 왜인의 유인 공갈하는 말에 현혹되어 의혹이 풀리지 않았 으니, 왜인들 속셈이 극히 고약하였다. 70) 4 (도모노우라< 鞆 浦 >에서의 일). 포로된 昌 原 에 살던 金 開 今 이 라는 사람이 와서 뵙고 12~13세 적에 포로되어 왔다고 하는데, 한 마디 말도 통하지 못하니, 특히 하나의 왜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타이른즉, 답하기를, 왜 주인이 지금 江 戶 에 있으니 돌아오기를 기다려 고한 다음이라야 갈 수 있습니다. 20 여 년이나 은혜받은 사람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재삼 타이르기를, 은혜를 받은 것이 너의 부모와 어느 쪽이 더한가? 네가 포로되어 올 때에 너의 부모에게 고했던가? 네가 만약 고향에 돌아가서 부모 형제를 보게 된다면, 이것은 죽었다 68) 吳 允 謙, 東 槎 上 日 錄 정사(1617) 7월 13일. 69) 李 景 稷, 扶 桑 錄 정사(1617) 9월 2일. 70) 李 景 稷, 扶 桑 錄 정사(1617) 9월 12일

29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29 가 살아나는 즐거움이다. 禽 獸 는 지극히 무지한 것이지만, 새는 옛 둥우리로 돌아오고 말이나 소도 제 집을 아는데, 하물며 사람 으로서 금수만 같지 못하여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옆에 있는 왜인이 듣고는 혀를 껄껄 찼는데, 이 사람은 미련하게 움직이지 않아 죽이고 싶었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대개 돌아가기를 생각하는 자는 조금 식견이 있는 士 族 및 여기 에 있으면서 고생하는 사람이었고, 그 나머지 처자가 있거나 재 산이 있어서, 이 미 그 삶이 안정된 자는 돌아갈 뜻이 전연 없으 니, 가증스럽기 한이 없는 일이다. 71) 5 도로에는 우리의 일행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담처럼 둘렸는 데, 그 중에는 男 女 僧 尼 가 난잡하게 섞여 있었다. (중략) 그 중 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왕왕 손을 모아 축원하는 자가 있는가 하 면, 몸을 굽혀 경례를 하는 자도 있었으며 혹은 자꾸 눈물을 닦 으며 번거로이 절을 하는 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다 우리나라에 서 잡혀온 사람들이었다. 淀 浦 (요도우라)로부터 倭 京 에 있는 本 國 寺 까지 이르는 30리의 사이에서, 반드시 두루 보지는 못했지만, 170명 중에 남자는 다만 23인뿐이었으니, 어찌 그렇게도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을까? 임진 년과 정유년의 난리에 잡혀온 남자의 수가 원래 많지 않아서 그 런 것일까? 아니면 남녀의 多 寡 는 서로 비슷한데, 남자는 혹은 일 터에 나가고 혹은 병정에 나가서 마음대로 나오지 못한 탓일까? 어찌 고국을 그리는 정이 여자는 더 있고 남자는 덜 있어서 그런 것이랴! 참으로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72) 6 (아이노시마에 하륙한 뒤). 康 遇 聖 은 쇄환의 일로 파견됐으 니 지금 마땅히 小 倉 (오쿠라)으로 發 向 해야 할 터인데, 이 핑계 저 핑계를 하며 가지 않고 藍 島 (아이노시마)에 주저앉고 있으니, 이 무슨 까닭인고? 73) 71) 李 景 稷, 扶 桑 錄 정사(1617) 9월 20일. 72) 任 絖, 丙 子 日 本 日 記 병자(1636) 11월 16일. 73) 任 絖, 丙 子 日 本 日 記 정축(1637) 2월 11일

30 30 / 한국민족문화 33 대체로 위의 기록들에서 다음과 같은 현지의 상황과 이에 대한 피로인들의 인식을 정리할 수 있다. 우선 회답겸쇄환사의 파견에 대 한 대마도측의 공식적 입장은 조선 피로인의 쇄환에 상당히 협조적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이다(1). 도주 소오 요시나리( 宗 義 成 )를 비롯하여 야나가와 시게오키( 柳 川 調 興 ) 등 유력자들의 반응에서 알 수 있다. 피로인 가운데에는 승려가 되어서 곤란하거나(2), 藩 主 나 家 主 등 일본인들로부터 은혜입은 것을 저버릴 수 없다는 사유, 일 정한 생업을 가지게 된 경우(3, 4) 등으로 인해 귀국을 거부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특히 피로인 중에서 자유의지로 잔류를 선택한 경우는 2, 3세로서 조선말을 하지 못하거나 고향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 조선인으로서의 자아의식이 결여된 경우라 할 수 있다. 74) 하지만 여기에는 도쿠가와 막부는 쇄환에 동의하더라도 각 지방의 번주들 은 납치해온 피로인들을 쉽게 돌려보낼 의향이 없었던 근본적인 점 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런데 쇄환사가 목격한 조선인 가운데 납치된 남녀의 성별을 보 면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170명 중에서 남자는 23명에 불과하 다(5). 그 이유는 나가사키 지역에서 포르투칼 노예상인들에 의해 매매되었거나 집단 노동에 징발되었거나 내지 병사로서 군사시설에 수용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남자는 노비나 하인으로서 일본인에 게 예속된 경우였다. 결국 전쟁 과정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납치해간 목적은 농촌 노 동력의 보충, 영주 등 지배층의 가사에 사역하기 위한 노예의 취득, 도자장을 포함한 기술자 집단의 획득 및 포르투갈 노예상인에 대한 매각 등이었다. 그러나 납치되어간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이 귀 국하려는 상황의지가 점차 변하고 있었다. 1607년과 1617년에 회답겸쇄환사가 피로인 송환을 시도할 때는 74) 민덕기, 임진왜란에 납치된 조선인의 귀환과 잔류로의 길, 한일관계사연구 20, 한일관계사연구회,

31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31 납치되었던 자들이 어느 정도 적극적 의지를 보였는데, 1624년 쇄환 사의 경로에서는 이미 2세대 내지 3세대의 가정이 형성되면서 귀국 의 의지가 희미해져 갔음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1636년 제4차 통 신사 왕래부터는 노령의 피로인 당사자나 제2 3세의 경우, 모두 이 미 귀국하려는 인식이 거의 사라져갔음을 볼 수 있다. 5. 맺음말 이상에서 임진왜란으로 인한 경상도 기장현의 사회적 상황과 주 민납치 및 피로인 사기장의 존재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경상도 기 장현은 대일 관문인 동래부와 인근 김해 양산과 함께 일본군의 진 격로에 그대로 노출된 지역이었다. 동남해안 일대에 왜성을 축조한 일본군은 이를 후방기지로 삼고 병력과 물자의 공급기지로 활용하 였다. 왜란 시기 기장의 죽성리 왜성과 임랑포 왜성은 사기장을 포함한 기술자나 민간인 등 피로인을 연행하거나 물자를 수탈해 나가는 창 구였고, 부산포와 울산 서생포의 중간 연결지점으로서 전쟁기간에 축성 농업노동 등 부역징발과 병력이동이 빈번하였다. 기장일원에서 조사된 가마터 중에서 무려 70%가 장안읍에 분포하 고 있었다. 장안읍의 도요지는 15세기 초~19세기에 걸쳐 고루 편년 되고 있으며, 청자 분청사기 흑유자 백자 등 다양한 분포를 보인 다. 16세기를 전후하여 울산의 공납용 자기를 생산하던 가마도 확인 되었다. 특히 가마벽체와 도지미 등의 생산관련 시설과 수습된 자기 편들의 施 釉 나 紋 樣 帶 등을 보아 타지역 요지와는 구분되는 특성을 볼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납치되어간 수많은 피로인 가운데 사기장 야장 침장 재봉장 등 기술집단이 꽤 많았다. 그 중에 사기장들은 일본에 연행되어 가서 각지에 분산되어 평생 도자 제조에 종사하며 살아갔

32 32 / 한국민족문화 33 다. 납치된 사기장들에 대하여 조선측의 기록에서는 아예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이를 주도했던 일본의 주요 藩 主 家 의 문서에는 약간 기 록이 남아 있다. 그나마 그것도 사기장들을 대상으로 번주들의 고향 과 근거지에 어떻게 이주시켜 가마업을 영위하게 했는지에 대한 기 록이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이 우수한 조선도자의 생산 을 항상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것이었다. 피로인 사기장 중에 구로다 장수에 의해 연행되었던 八 山 이라는 인물은 기장 출신 인물로 볼 수 있었다. 그는 다카도리 가마( 高 取 燒 ) 를 열었던 시조였다. 또한 경상도 출신이면서 기장 사람으로도 추정 해 볼 수 있는 사기장으로 尊 楷 를 들 수 있다. 반면에 정확한 출신 지를 알 수 없는 도자장들이 다수 있었는데, 又 七 의 경우 출신 지역 이 과연 어딘지 검토해 볼만한 흥미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왜란 이후 부산의 왜관이 재개되면서 동래부 인근 김해 양산 기장 일 원에서 왜관에 파견된 사기장들이 다수 있었다. 그 중에 기장인으로 서 초량왜관에 출입하면서 陶 土 의 細 工 과 도자기 제조에 종사한 인 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후기 대마번과 왜관에서는 약재 서 적 도자기 등을 구청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도자의 생산에 기 여함으로써 지역 사기장으로서의 또다른 역할을 수행하였다

33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33 참고문헌 1. 자료 朝 鮮 王 朝 實 錄, 承 政 院 日 記, 增 正 交 隣 志, 倭 人 求 請 謄 錄, 輿 地 圖 書, 機 張 縣 邑 誌, 月 峰 海 上 錄 ( 鄭 希 得 ), 海 槎 錄 ( 慶 暹 ), 東 槎 上 日 錄 ( 吳 允 謙 ), 扶 桑 錄 ( 李 景 稷 ), 丙 子 日 本 日 記 ( 任 絖 ) 機 張 郡 誌 (2001), 長 安 邑 誌 (2008), 長 安 邑 一 圓 陶 窯 址 精 密 地 表 調 査 (2007), 기장 두모포진성 죽성리왜성 시온~죽성간 도로 공사구 간 내 발굴조사 보고 (2008) 鹿 兒 島 縣 史, 佐 賀 縣 近 世 史 料, 松 浦 史 2. 논저 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 문화, 역사비평 85, 역사 문제연구소, 2008 겨울. 權 丙 卓, 傳 統 陶 磁 의 生 産 과 需 要,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기장군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機 張 陶 磁 史 硏 究, 金 康 植, 임진왜란 시기 機 張 지역의 전황과 위치, 지역과 역사 19, 부경역사연구소, 金 東 哲, 世 紀 對 日 公 貿 易 에서의 公 作 米 문제, 港 都 釜 山 10, 부산시사편찬위원회, 金 文 吉, 釜 山 지역의 倭 城 과 日 本 으로 피랍된 陶 工 의 硏 究, 壬 辰 倭 亂 과 釜 山 機 張 의 義 兵 活 動 및 文 化 侵 奪 에 관한 學 術 硏 究 發 表 會, 김문길, 한일관계사, 부산외국어대출판부, 노성환, 나에시로가와의 조선도공 마을에 관한 일고찰, 日 語 日 文 學 35, 日 語 日 文 學 會, 민덕기, 납치된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갔을까, 한일관 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2006., 임진왜란 중의 납치된 조선인 문제 - 被 虜 人 규모와 기존연

34 34 / 한국민족문화 33 구의 검토를 중심으로-, 임진왜란과 한일관계 (한일관계사연 구논집 편찬위원회), 景 仁 文 化 社, 尹 用 出, 조선후기 機 張 縣 의 三 政 운영, 韓 國 民 族 文 化 8, 한국민 족문화연구소, 鄭 光, 壬 辰 倭 亂 에서 倭 軍 의 朝 鮮 人 拉 致, 壬 辰 亂 과 國 家 危 機 의 文 化 政 治 學, 규장각국제워크숍, 정성일, 또칠이와 이삼평(이참평), 한일관계 2천년 -보이는 역사, 보이지 않는 역사, 경인문화사, 제장명, 조선시대 주요 變 亂 과 免 死 帖 制 度, 韓 國 民 族 文 化 29, 한 국민족문화연구소, 鄭 光, 薩 摩 苗 代 川 傳 來 の 朝 鮮 歌 謠, 京 都, 內 藤 雋 輔, 文 祿 慶 長 役 における 被 虜 人 の 硏 究, 東 京 大 學 出 版 會, 中 里 紀 元, 秀 吉 の 朝 鮮 侵 攻 と 民 衆 文 祿 の 役 ( 壬 辰 倭 亂 ) 下, 文 獻 出 版, 泉 澄 一, 釜 山 窯 の 史 的 硏 究, 關 西 大 學 出 版 部, 米 谷 均, 近 世 日 朝 關 係 における 戰 爭 捕 虜 送 還, 歷 史 評 論 595, 歷 史 科 學 協 議 會, 六 反 田 豊 외, 文 祿 慶 長 の 役 ( 壬 辰 倭 亂 ) 德 永 和 喜, 苗 代 川 地 域 社 會 の 形 成 と 薩 摩 藩, 朝 鮮 史 硏 究 會 論 文 集 45, 朝 鮮 史 硏 究 會,

35 임진왜란 직후 기장지역의 상황과 被 虜 人 沙 器 匠 / 35 <Abstract> The Circumstances in Gijang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the Masters of Ceramics as Civilian Prisoners Byun, Kwang-Seok Gijang( 機 張 ) was a route of attack along with neighboring Dongnae, Gimhae and Yangsan. Japanese army constructed castles on the southeast seashore and used them as rear bases for the supply of military force and goods. Jukseong's Japanese castle and Imrangpo's Japanese castle in Gijang functioned as passages for abducting the technicians and civilians including masters of ceramics and exploiting goods. Seventy percent of kiln sites investigated in Gijang was located on Jangan( 長 安 ) from the early 15th to 19th century. The manufacturing facilities of ceramics and the glaze and patterns of fragments differ from those of other regions. There were many masters of ceramics and blacksmiths among civilian prisoners. The masters of ceramics were pulled along to Japan. Few names of them are known. But a small minority was recorded in documents of lord's families that led the Japanese invasion. There is recorded the process of masters manufacturing ceramics after being pulled along to the home of lord's family. A certain Hatsan( 八 山 ) abducted by Kuroda( 黑 田 ), a Japanese general was considered to be from Gijang. He founded Takatori kiln( 高 取 燒 ). Sonkai( 尊 楷 ), a master of ceramics can be presumed to be from Gijang. However, we can not know where most of masters of ceramics came from. * Key Words: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Gijang, Civilian Prisoners, Hattsan, Masters of Ceramics ㆍ논문투고일: 2009년 2월 5일 ㆍ심사완료일: 2009년 3월 5일 ㆍ게재결정일: 2009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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