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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국립부산국악원총서 1 홍의 삶과 예술 발행일 발 행 국립부산국악원 ( 원장 박영도 ) 부산광역시 부산구 동평로 280 ( 연지동 219-2) 전화 / 051) 팩스 / 051) 기 획 이해로 ( 장악과장 ) 편 집 영희 ( 학예연구사 ) 인 쇄 동아TG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4가 25-4 동방빌딩 11층 전화 / 051) 발간등록번호 : ISSN : ISSN X Research Series by NCKTPAB No. 1 The Life and Art of Kim Jin-hong 2009 by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Busan Published by Park Young-Do Planned by Yi Hae-Ro Edited by Kim Young-Hee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in Busan 280, Dongpyeongro, Busanjin-gu, , Busan, Korea Phone/ Fax/ Printed by DongaTG Publication Date : December 2009

3 발 간 사 예로부터 호남 소리, 영남 춤 이라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령( ) 의 남쪽 끝에 위치한 이곳 부산은 영남 지역 중에서도 춤의 기운이 살아 숨쉬는 춤의 고장입니다. 동래학춤, 동래한량춤, 동래 고무( ) 그리고 수영야류, 동래야류 등 춤과 연희가 물의 도시 부산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립부산국악원에서 기획한 국립부산국악원총서 의 주제가 원로 춤꾼 의 삶과 예술 로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운 생동하는 영남지 역 춤결의 역사가 재평가되고 재조명되는 것은 시대의 소명입니다. 다양한 춤의 중심에는 춤꾼이 있습니다. 춤꾼들이 내젓는 손짓, 몸짓과 교 감되고, 춤사위로 거듭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은 무한한 예술적 감흥을 느끼고 이를 통해 건강한 영혼을 가꾸어 나가게 됩니다. 몸의 언어를 통하여 던져주는 예인들의 삶과 애환이 무대 위의 시간 속으로 사려져가는 안타까 운 현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 춤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치열한 춤꾼의 삶 을 걸어가고 있는 그분들에게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4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그들만의 목소리를 문자( ) 로 옮겨 적는 구술채 록 과정을 통하여 지난한 인고의 시간들이 살아 숨쉬고 생명력 있는 울림으 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국립부산국악원총서 제1집은 예인의 삶을 통 하여 사라져가는 무용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 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본 총서의 첫 번째 주인공은 부산지역의 원로 춤꾼 홍 명무입니다. 화려 한 무대조명 뒤에 감추어 인간 홍의 삶의 애환을 들어보고, 불꽃처럼 예술혼을 불살라온 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구술해 주신 홍 명무에 게 심으로 감사드리며, 선생님의 춤맥이 우리 지역에서 올곧게 전승되고 발전되길 기원합니다. 아울러 본 총서가 사라져가는 근 기초연구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대 무용역사의 2009 년 12월 국립부산국악원장 박 영 도

5 홍의 삶과 예술 목 차 발간사 Ⅰ.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 출생, 일본에서의 유년시절 귀국, 학창시절 음악과 영화에 빠지다 취직, 춤과 만나다 만남, 스승 이매방과의 만남으로 한국춤에 입문 배움, 무용이론 학습 연습, 절대적인 스승 38 Ⅱ. 춤을 익히다 / 남방춤이 유행하다 춤은 하나... 춤은 그리움 창작에서 전통춤으로 일본에서의 명무전 70 Ⅲ. 춤집을 만들어가다 / 전통예인들의 그늘 병마와 싸우며 춤의 길을 보다 열정, 춤에 미치다 사랑은 가고, 춤은 남고 102 4

6 목차 Ⅳ. 춤, 삶의 여정 /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 자홍 에서 홍 으로 부산의 한량무 131 Ⅴ. 춤꾼의 가족 / 고향, 하동에서의 유년시절 자홍의 누나 연홍 소년 자홍의 사춘기 그리운 어머니 떠나보낸 제자를 위한 제망제가 ( ) 중학생 시절, 누이와 자형 184 Ⅵ. 명무의 길을 가다 / 전주대사습 장원, 명무의 반열에 오르다 동래 한량춤, 홍류 한량춤 춤의 여백, 춤의 요소 제자, 또 하나의 스승 홍 춤의 맥을 잇는 사람들 못 다한 이야기 원로 춤꾼의 소망 245 5

7 홍의 삶과 예술 일러두기 1. 구술내용은 구술자의 발음을 그대로 표기하였다. 2. 구술내용 중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과 일부 방언 등에 대한 정확한 표기 및 의미 등은 주석으로 처리하였다. 3. 구술 전개과정에 발생한 불필요한 내용은 일부 생략하였다. 4. 기타기호 [ ] : 해독은 되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 ** : 해독이 안 되는 부분 ( ) : 행동 등의 지문 { } : 구술 중에 삽입된 구술자, 조사자 및 기타 참가자의 짧은 말 : 대화 중 타인의 말이나 과거 구술자가 했던 말 등의 인용 구술 : 인용 구절 속의 인용 구절이나 노래 가사, 생각, 강조해야 할 내용 등 < > : 작품명 : 공연명 : 홍 : 영희 ( 국립부산국악원 학예연구사 ) 문 : 문주석 ( 국립부산국악원 학예연구사 ) 갑 : 갑용 6

8 일러두기 / 행 행 조사기간: 2009 년 9 월 ~ 12월 조사장소:홍무용학원 ( 부산시 동구 범일동 ),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 분장실 기록내용:영상촬영, 녹음 구술조사 ㆍ채록 ㆍ 연구: 영희 ㆍ문주석 초벌채록:이지영, 신한나 사촬영:문주석, 신한나 사제공:홍 영상촬영:문주석, 신한나 기타 참가자 : 갑용 ( 홍 아들) 사용기기:캠코더(CANON DC50A) 보이스레코더(SONY ICD-SX700) 7

9 홍의 삶과 예술 홍 연보 [ 출생] [ 학력 및 사사] [ 수상경력] 8

10 일러두기 / 행 [ 공연 및 활동경력] 9

11 홍의 삶과 예술 [ 작품목록] [ 안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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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제1 차 구술 채록문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오늘은 국립부산국악원이 추하는 부산지역 명무 구술채록사업의 일환으 로 실시하는 홍 선생님의 제1 차 면담일입니다. 날짜는 2009 년 9월 17일 이구요, 지금 시간은 2시 15 분입니다. 장소는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홍 선생님 무용학원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1 차 면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년 자홍 13

15 홍의 삶과 예술 출생 일본에서의 유년시절 네. 저 제가 태어난 곳부터. 태어난 곳은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여의리 그 본적입니다이. 본적. 본적이고. 그 다음 제가 태어나서 조금 있 다가 저 일본으로 갔어요. 어릴 때. 일본으로 연락선 타고 갔겠죠. 일본에 가서 인제 자라면서 내가 조금 철이 들고 말하자면 살으면서 내가 보고 듣 고 하게 될 때부터 이제 그 아버지가 그 저녁만 되면은 극장에 많이 보러 갔어요. 그 당시만 해도 전쟁 터지기 직전이니까. 일본이 중국을 이자 그 정복했을 그 당시지 싶으네요. 중국으로 쳐들어갔을 때. 그니까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면서 전부 다 중국옷을 입고 중국 부채같은 거 들고, 이래 가지고 그런 노래들도 많이 했고요. 이런 것도 봤고, 그 다음에는 이제 시간 있으면 일본 온천이 유명하거든요. 온천장에 가면은 온천을 하면은 그 온천 장 안에 식사하는 데 그 넓은 방이 있는데, 그 다다미방. 거기에 인제 식사 하면서 있으면은 다다미방 안에 조그마한 무대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일본 그 연극, 말하자면 무사들. 칼싸움하는 그런 연극같은 거 간단한 이런 거 하 는데, 그 나오는 배우들이 이제 목욕탕에 들어왔는데 그 공연하기 전에. 목 욕을 하고 있는데, 목에 하얀 거 바른 사람들이, 남자들이 한 둘이 들어와서 들앉았다가 1)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뭐하는 사람인고 싶었는데, 그 목욕 마치고 나가면서 공연을 보니까 그 사람들이 역시 배우들이었던가 봐요. 그 래서 그 무사들이 나오는 것도 보고. 그 다음에 이제 동물원에 가면은 이제 동물원이 그 목욕탕이 목욕탕의 탕보다도 더 큰 그런 탕에 거북이가 할 튼 2)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가 떠 있는 것도 보고. 또 일본에 수족관이 있 습니다, 일본에는. 그 천장에도 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또 벽에도 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이런 수족관도 구경을 하고. 일본에 명물로 유명한 다카라주 1) 들어앉았다가. 2) 하여튼. 14

16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가 3) 라는 가극단이 있습니다. 그게는 4) 어 주로 명가집 규수들, 가문에 그 좋은 규수들, 학벌이 있고 하는, 그런 규수들만 뽑아가지고, 여자들만 뽑아 가지고 이제 그 뮤지칼 (musical), 좀 오페라 비슷한 뮤지칼식으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고 하는데 그게 구경을 갔는데, 그 보니까 어 발 레도 하고 하는데, 발레의 기초같은 거는 러시아 선생을 불러다가 훈련을 시키고 노래의 발성법 같은 거는, 것도 5) 역시 러시아의 선생을 모셔다가 발 성법을 시키는데, 겨울에 얼음물을 깨고 그 안에 이렇게 단원을 들어가게 소리를 연습시키고 혹독한 훈련을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리고 발레하 는 사람들도 아주 혹독하게 연습을 시키고. 이런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제가 보기로는 일본 그 아마 그 전설을 테마로 한 시대극이었지 싶은 데. 그 당시만 해도 내가 4 살 땐가 그렀는데, 하늘의 선녀가 방울을 흔들면 서 일본 선녀들은 방울을 들고 옆으로 누워가 이리 왔다가 갔다가 하는 걸 봤거든요. 참 신기하고. 그게 그 일본에서는 다카라주가가 상해( ) 에 도 가고 미국에도 가고 유명한 가극단입니다. 지금도 아직 하고 있는데. 그 가극단이 음 유키부미, 또 호시부미. 말하자면 별반, 무슨 반 무슨 반, 우리나라 같으면 개나리반 달래반 그런 반이 여러 개가 있어요. 동경에 있고 오사카에 있고. 이래가지고 몇 달에 한번씩 공연을 하게 되면은 한 20 일씩 이렇게 하거든요. 큰 그런 공연입니다. 그런 공연인데, 그런 공연도 자 3)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말함. 다카라즈카 가극단 ( ) 은 여성으로만 구성이 된 일본의 가 극단이다. 한큐 전철의 창시자인 고바야시 이치조 ( ) 가 1913 년에 만든 다카라즈카 창가 대 ( ) 를 시초로 하고 있으며, 1940 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 길 수 있는 건전한 국민적 가극을 목표로, 1914 년부터 현재까지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 운영은 창립 때부터 현재까지 한큐 전철이 운영하고 있고, 한큐 전철의 창작유희 사업본부 가극사업 부( ) 가 사업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극단 자체는 한큐전철의 직할 조직 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 이사장은 한큐한신홀딩즈의 이사이며 창립자의 증손자인 고바야시 고이치 [ ] 이다. 4) 거기에는. 5) 그것도. 15

17 홍의 삶과 예술 주 봤고. 그 다음에 인제 또 인제 그.. 머라 캐야 되겠노? 가설극장, 유랑극 장 비슷한 그런 게 있었어요. 천막 치놓고 하는 게. 그게서 6) 내 생각에는, 어느 선생님이지 몰라도 분명히 한영숙 7) 선생님인 것같은데, 밑에는 치마 를 입고 우에는 발레 할 때 입는 그 와 이렇게 딱 달라붙는 거, 레오타드! 그걸 입으시고 장삼을 입고 고깔을 쓰고 승무를 추드라꼬예. 그때 봤을 때 는 검은 장삼을 입으십디다. 입고 추고는 그 다음에 인자 북을 인자 치는데, 요즘은 저렇게 북 다이 8) 를 만들어 가지고 저 북을 달아놓고 치지만 그때만 해도 양쪽에 사람이 둘이 북을 들고 북을 치고 이랬습니다. 그런 것도 보고 하이튼 9) 수없이 수없이 거의 이틀에 한 번 격으로 구경을 다녔습니다. 구경 을 다니고 또 일본의 그 마쯔리 10) 해가지고 축제가 참 많아요. 많으면은 음 공연에 올라가면은 일본의 신사가 안 있습니까? 신사 앞에서 그 축제 를 하는데, 그게 보면은 그 요즘 같으면은 팥빙수 팥은 안 있고 빙수에 색 깔, 파란색 뿌리고 노란색 뿌리고, 또 저 빨간색 뿌리고 세 가지 색깔 뿌 리 11) 가지고, 꿀물로 이렇게 부아가지고 주는데, 그런 거 먹은 거 생각도 나고. 우리나라의 그 우묵. 우묵 같은 걸 갖다가 저 잘게 채를 써리 12) 가지 고 꿀물에다가 타 주는 것도 먹어봤고. 코오리사토우해가지고. 13) 사탕인데 얼음 같이 생겼어요. 그래서 얼음사탕 이라 해서 그런 것도 먹어보고. 낫또 요즘은 청국장을 나토 라 카는데 14), 일본에 가면은 아마나토 해가지고, 15) 6) 거기에서. 7) 한영숙 (, 1920~1989). 호는 벽사, 천안 태생, 큰할아버지 한성준에게 이어받은 춤은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학춤, 훈령무 등으로 이들 중 승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7 호로 지정되어 보존 전승되고 있다. ( 정범태, 한국춤백년 2, 서울: 눈빛출판사, 2008, 136 쪽.) 8) 일 틀, 대( ). 9) 하여튼. 10) 일 마츠리 [ ].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신령 등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 또는 축제를 말함. 11) 뿌려. 12) 썰어. 13) 코오리사토우라고. 14) 하는데. 16

18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달콤한 콩을 여러 가지를 설탕에 절여가지고 먹는 게 있습니다. 참 맛있습 니다. 또, 슈마이 16) 해가지고 중국에서 나온 그 만두 같은 건데, 슈마이도 먹어보고. 일본에는 시장에 가면 생선도 팔기도 하고, 회도 떠 주고, 생선 튀도 만들어 주고, 생선 졸인 것도 있고, 생선 가게에 가면 반찬까지 다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그냥 생선도 팔기도 하고 이렇습디다. 근데 어머니 따라다니면서 그런 것도 많이 먹어보고. 또 인제 그 시장 안에 그 한국 음 식 파는 데도 있으요. 17) 그서 18) 치니 콩나물 같은 그런 것도 이래 19) 사가 지고 오는 것도 보고. 하이튼 그 아버지, 어머니 덕택으로 해서 내가 영화 도 참 많이 봤습니다. 그때가 몇 살 무렵인가요, 선생님? 그때 해봤자, 세 살, 네 살. 아주 어릴 때네요. { 다섯 살} 유치원 다닐 나이? 3~4 년 동안에 어릴 때 그래가지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뭐 그때만 해도 클래식, 오페라 이런 것도 보고 또 영화에서도 오페라도 보고. 발레영화도 봤어요. 발레영화도 봤는데, < 백조의 죽음>. 제목이 그렇습니다. < 백조의 죽음 > 인데, 지금 보니까 그 안나 파블로바 20)? 예, 그 < 빈사의 백조 >? 그 걸 테마로 한 거든가 몰라도 마지막에 백조가 죽는 그런 그건데 그런 영 화를 봤는데, 그 영화를 국립무용단 그 발레단의 초창기에 임성남 21) 선생 15) 아마나토라고. 16) 중국요리 찐만두를 지칭하는 일본어. 17) 있어요. 18) 거기서. 19) 이렇게. 20) 안나 파블로바 (Anna Pavlovna Pavlova, 1881~1931) 는 러시아의 발레리나. 러시아 왕실 ( ) 발 레학교에서 공부한 후 마린스키극장에서 데뷔하였다 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공연하 였으며, 1907 년 파리에서 S.P.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에 참가하고, 1913 년 마린스키극장을 탈 퇴하였다. 이듬해 무용단을 조직, 영국을 본거지로 한 이래 17년 동안 세계 각국을 순연하였 다. 주요 출연작품으로 < 지젤 > < 백조의 호수 > 등이 있으며, 특히 < 빈사 ( ) 의 백조 > 는 대표 적인 무용이었다. 17

19 홍의 삶과 예술 님, 안무자로 있었던 임성남 선생님이 어느 잡지에 그 백조의 죽음을 봤다 고, 내22) 봐서 반갑데요. 그런 영화도 보고 하면서 그러니까 또 우리 누 님이 어린이 잡지를 사다 주는데, 거기 보면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도 그만큼 은 아름다운 책이 인자는 좀 그렇지만, 참 아름다웠어요. 그 회사가 유명 합니다. 지금도 일본에 가보니까 아직까지 그 회사가 있는데 전설적인 이야 기, 그런 거는 없어지고, 로보트같은 거, 그런 걸 주로 해가지고 하드마는. 그 보니까 그 로케트를 타고 달나라에 가면은 토끼가 인자 그 떡을 찧고 있고 하는데, 그런 어떤 그 이야기도 있었고 하는데 결국 어느 날 보니까 로케트가 나오데요. 나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 등, 일본에 그 전해 내려오 는 재밌는 전설이나 설화같은 거 그런 책들도 많이 읽고 그림도 보고 이렇 게 하니까 어릴 때부터 미적 감각에 대한 눈이 빨리 떠 것 같애요. 말자 하면 눈도 열리고 귀도 열리고 이래가지고 박자에 대한 그런 관념이라 하나 개념이 빨리 그 열린 셈이죠. 있다가 대동아전쟁이 난다 해가지고 어머니가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어야지 일본에는 못 있는다 해가지고 그 한국에 연락 선 타고 돌아왔어요. 그때가 몇 년인가요? 그때가 내가 일곱 살 때. { 아, 네.} 일곱 살 때니까 그때가 몇 년인고 모르겠 네. 내가 배멀미하고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21) 임성남 (, 1929~2002). 서울 출생. 전주 사범학교를 졸업했고, 니혼 [ ] 음악학교를 거쳐 오랫동안 일본에서 무용생활을 하다 1951 년 ' 도쿄청년발레단을 ' 창립, < 백조의 호수 > 에 왕자 역으로 주연했다 년도에 귀국, ' 임성남발레단을 ' 창단하여 12회에 걸친 개인 발표회를 개 최했고, 5 16 군사정변 이후 국립무용단 단장직을 맡은 후 국립무용단 정기 공연 제6회를 공연한 바 있다. < 살짜기 옵서예 > 에서 안무의 연출을 지도하여 절찬을 받았다 년 미( ) 국무성 초청으로 도미 ( ), 2 년 동안 모던발레를 연구했고, 그 후 서울예술고등학교 무용과 과장, 무용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작품으로는 < 예불 ( )> < 오줌싸개의 향연 > 등 이 있다. 22) 내가. 18

20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일본에서 아버지와 함께 귀국 학창시절 음악과 영화에 빠지다 그래 한국에 나와 가지고 1 년 있다가 부산국민학교에 입학했거든요? 입 학했는데, 그 학교에서 인제 그 학예회를 하는데 그 음악시간에 내가 노래 도 빨리 배우고 하니까 또 일본에 있다가 왔기 때문에 일본말도 잘 듣고 하 니까 인제 그 뽑혀가지고 학예회에서 그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노래를 많이 부르고, 그서 그때부터 그 어떤 막연하게 어 테너 가수? 테너 가수 19

21 홍의 삶과 예술 가 되고 싶다. 이는 23) 생각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게 그 세월이 흘러가면 서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부부간에 좀 싸움이 많았 많으니까. 참다가 참 다가 과음 24) 을 세게 질렀습니다. 변성기와 와서 그랬는지 몰라도 목이 가드 라고예. 갔는데, 그때가 그 변성기 때가 중학교 땐데, 중학교 선배들이 니 가 그 아까운 목이 가서 안 된다. 카믄서 25) 피아노라도 연습을 하라, 손가 락 보니까 피아노 치면 좋겠다 캐가지고 그래서 피아노를 연습을 하고 있었 는데, 6 25 사변이 터지고 그 음악선생, 그 피아노 음악선생님이 학교에서 가르쳐 줬는데 피아노 선생님이 어디로 갔는지도 없고 이래가지고는 학교 는 피난민들이 전부 차지하고 학교는 휴교가 돼버리고 그래서 손가락을 안 놀릴라면 어째야 되꼬 싶어서 타자를 배았습니다. 타자 학원에 가서 타자를 배웠는데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치는 솜씨가 되서 빨리 치게 되니까. 그때가 중학생 나이셨죠? 그렇지요, 중학교 2 학년 때. 중학교 2 학년 때. 네. 그랬는데, 그때 참 내가 어떤 면에서는 운이 없어서 그랬는지 1 학년, 2학년 때 다른 반은 음악시간이 있는데 우리 반은 음악선생이 없는 거라예. 시간 이. 그래서 내가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해도 그래도 중학교에 음악부가 있어서 그 음악부 선배하고 강당에서 연습도 많이 하고 또 그 영화도 많이 보러 갔어요. 그때 학생들이 영화 보러 가면 큰일 나거든요. 근데 < 캬라반 >, < 카르멘 > 이런 영화들을 그때 다 봤거든요. 보고 친구들한테 내가 자랑삼아 서 얘기했는데, 친구가 인제 선생님한테 고자질해가지고 내가 벌도 서고 ( 웃음) 내가 벌도 서가 26) 있기도 하고. 그런 일도 있었고 했는데, 그래 그 23) 이런. 24) 고함. 25) 하면서. 26) 서서. 20

22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소풍을 가든지 이렇게 학교에서 하면은 꼭 날 갖다가 노래를 시키고 또 음 악부 부장은 그때만 해도 그 생과자 귀할 땝니다. 그걸 손수건에 이렇게 다 섯 갠가 싸와가 한쪽에 조용한 데 가서 먹으라 카고. 그때는 참 내가 귀염 도 많이 받고 이래 그 학교생활도 참 그 상급생들한테 많이, 말하자면 학교 안에서 식당에서 팥빵도 사주고 뭐 우동도 사주고 또 선배들이 같이 탁구장 데려가서 탁구도 치고 내가 탁구도 참 잘 쳤습니다. 학창시절의 구술자 ( 왼쪽 아래: 홍 ) 21

23 홍의 삶과 예술 취직 춤과 만나다 매일 같이 탁구장도 가서 탁구도 치고 이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6 25 사변을 만나고 나서 타이프 배워가지고 인제 그 타이프를 잘 치니까 학원 원장이 나를 갖다가 취직을 시켜주 미군부대에 취직을 시켜줬는데, 거기 가 어딘고 하면, 목공부. 인자 그 목공부 카믄 27) 나무를 다루는 데라요. 건 설, 건물 짓고 하는 데. 부대를 새로 짓는 거 하는데, 근데 그 노동자들이 출퇴큰하는 것 전부 내가 체크하고 그 다음에 월급날 되면은 이자 그 계산 해가지고 월급 얼마라 카는 거 적어주고 월급봉투에 내가 또 적어주고 이라 면은 내가 부대 장교들이 돈을 넣어가지고 주면은 한 사람씩 내주고 이런 식으로 했는데, 그 타이프를 잘 치고 하니까, 그 같은 사무실에 있는 저 상사하고 나하고 시합을 붙였는데 내가 영어는 그 사람들보다 짧지만은 이 보면은 손이 먼저 가는 거라요, 알파벳을 보면은. 그래서 그 사람들하 고 대등하게 그 3분 동안에 적었는데 대등한 그 그걸로 돼 가지고 장교가 좋다꼬 28) 나를 클럽에 함 29) 데리고 갔어요. 가서 저녁을 사주고. 저녁을 사 주고 믄서 그 다음에 저녁 먹고 나니까 오늘 쇼가 있는데 쇼 구경하고 가라 카. 그래서 보니까 쇼가 들어왔는데, 내가 일본에서 그렇게 많은 영 화도 보고 쇼를 보고 춤도 많이 일본 오도리 30) 를 시작해서 한국 전통춤 까지 < 천안삼거리 > 31) 까지 다 봤는데도 최승희 32) 씨도 춤추는 것도 봤어요. 27) 하면. 28) 좋다고. 29) 한번. 30) 일. 춤, 무용. 31) 홍의 부연설명에 의하면 당시에 유행하던 일종의 허튼춤으로 경기민요 < 천안삼거리 > 음 악에 맞춰 추었다고 함 전쟁 당시, 그리고 전후에도 한동안 이 춤이 유행했으며, 민속음 악을 연주하는 주자가 드물어서 양악 밴드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추었다고 함. 32) 최승희 (, 1911~1969) 강원도 홍천, 또는 경성부 태생이라는 설이 있으며, 서울에서 자라 고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 사사받았다. 일본 유학 이후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일 22

24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어디에서 보셨어요? 일본에서. 일본에서요? 오사카에서 보신건가요? 예~ 예. { 네.} 딴 건 기억 안 나고, ( 갓 돌리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 갓을 돌 리면서. 초립동춤? 네, 네! 근데 이매방 선생님이 한동안 이거 했어요, 초창기에. 이래 33) 추대. ( 춤사위를 흉내 내면서 ) 최승희 씨 눈도 올 다 34) 내 다 35) 하면서 그라고 < 승무> 도 최승희 씨 포즈를 < 승무> 춤에 했습니다. 그래, 춤이 하는 것은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고 생각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위치에 따라서 또 아는 것처럼, 이렇게 되고 이렇습디다. 내가 참 좋아하는 것은 서구의 사람 들은 자기가, 예를 들면 엘비스 프레슬리 36)가 자동차 정비공으로 있었다든 가 이런 그 구두닦이라든가 접시닦이 하던 것을 거리낌 없이 그런 이야기 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숨깁디다. 그 이유가 뭔지 몰라도. 자격지심이지 기를 모으게 되었고 < 반도의 무희 >(1936) 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 (1936) 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년대 후반에는 수년 동안 해외순회공연을 벌이면서 세계 적인 명성을 얻었다. 광복 후 월북해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년 남편 안막이 숙청 되면서 연금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오랫 동안 돌았다. 그러나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라는 것이 2003 년 확인되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었다. 최승희는 신무용의 창시자로서 한국무용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 쳤다. 작품으로는 < 영산춤 >, < 에헤라 노아라 >, < 달밤의 곡>, < 반야월성곡 >, < 우조춤 >, < 칼춤 >, < 보살춤 >, < 초립동 >, < 고구려 무희 >, < 광상곡 >, < 가면의 춤>, < 승무 >, < 인도의 비애 > 등이 있 고,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 이 있다. 안막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안성희도 소련에서 발레 유학을 하고 돌아와 북한에서 무용가 및 안무가로 활동했다 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하는 20 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뽑혔다. 33) 이렇게. 34) 올렸다. 35) 내렸다. 36)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Aaron Presley, 1935~1977). 미국의 배우이자 팝가수로, 미국과 영국을 시 작으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로큰롤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3

25 홍의 삶과 예술 미군부대 목공부 시절의 홍 싶어요. 살기 위해서 구두닦이라든가 접시닦이라든가 하나의 체험이거든요. 예술가는, 예술은 바로 체험인데 그걸 왜 그래 덮어버리는지. 그거 그거는 그 사람들 일이지만서도 쇼를 보는데, 내가 처음 듣는 음악이 너 무나 신비스러운 음악인데 음악 제목이 < 타부 > 입디다. 영어로는 TABU, 그 게 그 금지, 금지라는 그런 뜻이랍니다. 남방음악인데 쇼시키 라 카믄서 마라카스, 삼바같은 거 할 때 그 착착착착 그게 들어가는데, 아주 조용한 음 악이 착착 들어가면서 하는데, 너무 좋고 또 가끔씩 딱딱딱 두드리는 거, 룸 24

26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바같은 거, 쇼시키 라고 하는 게 있어요. 맞춰서 들어가는데, 음악이 첫째 신비하고 환상적이었어요. 손가락도 이래가지고 목이 왔다 갔다 하고, 또 이 골반도 한번씩 왔다 갔다 하고, 앉아서 몸도 이래 왔다 갔다 하는데 너무 나 황홀한 거라예. 내가 저 춤을, 저런 춤이 있나 싶어가지고 지금 그 무 용가였을 겁니다. 한때 저 우리나라의 유명한 그 국립무용단의 초창기에 그 안무자 송범 37) 선생님이 < 타부라의 리듬> 해가지고 남방춤을 추었습니다. 그 양반이 원래 그 현대무용이었습니다. 뒤에 가서 한국무용으로 바꿨는데, 근데 그 < 타부라의 리듬> 을 해서도 그 양반이 남자가 춘 게 아니고 여자가 춥디다. 타라반 38)을 감아가지고 길게 늘어뜨리고 눈만 내놓고 추면 참 좋더 라구요.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내가 그걸 흉내를 낸 거라예. 흉내를 내고 있 는데 인제 그 콩쿨이 있었습니다, 삼일극장 39)에 범일동에. 콩쿨이 있었는데, 37) 송범 (1926~2008). 본명은 철교 ( ). 17 세 때 신무용의 대가인 조택원 ( ) 의 문하에 들어 갔으며 춤에 뜻을 두고 대학에 학하지 않고 한동인 ( ) 에게 1 년간 발레를 배웠다. 또 장추화 ( ) 무용연구소에서 거의 독학으로 인도춤과 마리비그만 등 표현주의 경향의 모던 댄스를 익혔다 년 현대춤 계열의 작품 습작 으로 첫 선을 보인 뒤 1949 년 출 인도의 연가, 1950 년 수련몽 을 내놓아 주목받았다 전쟁 때 피난 지에서도 망향 양자강 등을 발표했고, 1956 년에는 패배자 죽음의 승리 항거 등을 발표하여 현대인의 삶의 고뇌를 표현했다 년부터는 발레 계열 작품으로 환상교향곡 유쾌한 휴일 무도회의 권유 등을 해마다 발표하면서 방향전환을 시도했다 년 한국발레단을 창단하고 1962 년부터 13년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지내면 서 한국춤계를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등에서 후 양성에도 힘썼다. 그뒤에도 창작춤 강강술래 우물가에서 전원풍경 봄의 찬미 등으로 일본 방콕 유럽 등지로 순회공연을 하면서 우리나라 창작춤 활동의 토대를 세웠다 년 국립무용단 초대 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별의 전설 왕자 호동 사의 승무 춘향전 도미부인 등을 발표했다. 중앙대학교 무용과 교수, 예술원 회원 등을 지냈다.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다. 38) 터번. 39) 영화 < 친구 > 의 한 장면으로 1980 년대 삼거리극장의 대명사가 된 부산 동구 삼일극장이 62년의 역사를 접고 2006 년 철거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44 년 일본인에 의해 문을 연 삼일극장은 광복 후 조일극장, 제일극장 등으로 개명해 극장을 운영해 오다 1950 년대 다시 제 이름을 찾았다.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수용소로 쓰이면서 현대사 질곡의 현장이기도 했던 이곳은 1970 년대 극장 쇼가 유행하면서 부흥기를 맞았다.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 배삼룡, 가수 하춘화 등 당대 일류스타 들의 공연으로 부산 공연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 부산일보 > 2006 년 11월 8일 9 면 기사 내용 발췌 ) 25

27 홍의 삶과 예술 미군부대 목공부 시절 (미군들이 장난삼아 구술자에게 요리사 복장을 입혀서 찍은 사) 그 당시만 해도 콩쿨에 민요도 들어가고 가요도 들어가고 클래식 노래도 들 어가고 춤도 들어가고 발레도 들어가고 종합으로 들어갑디다. 내가 간도 크 게 배우지도 안한 40) 그 남방춤을 신청을 한 거라예. 그래가지고 그 음악 40) 않은. 26

28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은? 캐서 타부. 라고 하니까 날로 41) 이래 42) 함 쳐다보대요. 인자 그 신청해 놓고 의상이 없어가지고 초록색 인조 난닝구, 43) 광이 반짝반짝 나거든요. 입고 밑에 바지를 걱정하니까 누나가 그 일본 잡지 보고 인도식 바지, 밑이 넓은 거, 그 바지를 만들어 줍디다. 천을 끊어가지고. 그래 그걸 입고, 그 미 제 깡통 오려가지고 목걸이도 만들고 귀걸이도 깡통 오려가 실로 뀌어가지 고 귀에 달고. 타라반 쓰고 브로치 하나 달고. 이래가 나가서 그게 입상이 됐어요. 입상이 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악사들 그 입소문이 나버렸어요. 굉 장히 이쁘고 하니까 화장도 할 줄 몰랐는데, 대충하고 나갔는데 이뻤던 가 봐요. 그게 입소문이 나가지고 부녀대에 나가게 되었어요. 부녀대에 나가서 그 어 위에다가 저 남방춤을 이렇게 추면서 두 가지를 춰야 된다 캐서 그 남방춤 바지 신라시대 그 그걸 하나 맞춰가지고 화랑들 입는 그거. 그거 입으니까 바지저고리 같이 보이고 해가 그래가지고 < 천안삼거리 > 간단하게 하나 추고. 만남 스승 이매방과의 만남으로 한국춤에 입문 선생님, 그럼 그때까지 춤을 특별하게 배우신 게 아니라 독학으로 하신 거. 보고, 인자 내 느낌으로 춘거지요. 춤의 기본은 안 되가 있는데 느낌은 인자 괜찮은 편이었고. 군예대 44)에서 이매방 45) 선생님이 소식을 들은 거라예. 그 41) 나를. 42) 이렇게. 43) 러닝셔츠. 44) 군예대 ( ) 년 창설된 종군연예인 공연단. 45) 본명은 규태 ( ) 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하였다 년 집안 어른인 명무 ( ) 이대조 ( ) 의 문하에서 승무를 배웠으며 1939 년 화순 출신의 박영구에게 법고와 승무를 배웠다 년 목포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48 년 임방울명인명창대회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승무를 27

29 홍의 삶과 예술 악사들이 혹시 저 이규택 46)씨 알아요?, 모르겠는데요., 오~ 당신 닮았 는데? 카믄서 남자들 무용하는데. 이런 소문들이 자꾸 들리는 거라요. 내 47) 보고 보는 사람마다 닮았다 카고. 그라자 어느 날, 이매방 선생님이 초 량 48) 에 연구소에 연구소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한번 찾아갔어요. 그때 내가 찾아갔는데도 냉정하게 눈도 한번 안 맞춰 줍디다. 한 30분 앉아 있다가 왔 거든요. 와가지고 그 인자 그 열심히 춤추러 다니는데, 한번은 왔습디 다, 선생님. 와가지고는 그래 내보고는 손도 만지고는 나이가 어리니까 피 부도 이쁘고 손도 이쁘고 만져주고, 나하고 같이 춤추러 가자해서, 어딘 데요? 그러니 가보면 알아. 해서 갔더니, 다리미에 숯을 피워가지고, 분장 실입니다. 서면 49)의 극장에. 마당에 빈터입니다. 천을, 이만한 천을 20개가 됩디다. 이래 이래 잡아 놓고, 그걸 다리 50)가지고 나를 그걸 입히는 거라예. 남방춤을 니가 한 2 분 추고, 내가 한 3 분 추고, 둘이 같이 1분 추고 끝내 자. 그랬는데 이매방 선생님이 날로 51) 보고 초량에 가자 카믄서, 그때 갔는 데 초량에 장홍심 52) 씨라고, 그 최승희 선생의 딸 안승희 53) 씨라고 있습니 추었다 년과 1959 년 부산 대영극장과 원각사에서 무용발표회를 가졌으며, 1968~78 년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의 세계무용축제에 참가했다 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 호 승무 예 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의 승무는 힘이 있고 선이 굵어 시원스러운 느낌을 준다. 주요작 품으로는 삼현승무 보렴승무 살풀이 검무 산조 등이 있다 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46) 명무 이매방의 본명. 47) 나. 48)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49) 부산광역시 구 부전동 일대의 번화가. 50) 다려. 51) 나를. 52) 장홍심 (, 1914~1996). 본명은 월순, 함흥 출생. 함흥권번에서 배( ) 씨 할머니로부터 춤을 배웠다. 이후 스승 한성준을 만나 사춤, 검무, 태평무, 한량무, 포구락, 승무, 살풀이춤 등을 전수받았다. 온양 출신 이강선,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 천흥, 강선영 등과 함께 춤을 배웠다. 해방되던 해 4 월 함경도 고향에 갔다가 그대로 발이 묶여 북( ) 의 무용가 최승희 단체에도 불려 나가 최승희의 딸 안성희에게 승무 한바탕을 가르쳐주기도 했지만 지각과 결석이 잦아 쫓겨났다. 1 4후퇴 때 월남해서 부산 이매방무용연구소에서 일을 도왔으나 서울 무대로 복 귀하지는 못했다. 만년의 장홍심은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한 채 서울의 변두리에서 춤을 가르치 28

30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다. 안승희 씨 < 검무> 가르키는 유일한 무용갑니다. 장홍심. 서울에 있다가 별세했습니다. 근데 그 장홍심 선생님하고 이매방 선생님하고, 이매방 선생 님은 < 승무 > 를 가르쳐주고 또 장홍심 선생님은 이매방 선생님한테 < 검무 > 를 이래 해주고. 재주가 좋았아요. 부부는 아니라도 동거생활을 했는데, 원 채 그 장홍심 선생님은 손에 물을 안 넣는 거라요. 버선도 벗어가 구석에 처 박아 여놓는 54) 거라예. 이매방 선생님은 깨끗한 사람인 거라예. 그걸 못 봐 내는 거라예. 그래 그 흉을 보고 욕을 하면은 무용가는 손이 고와야 돼. 카 믄서 장홍심 선생님은 맨날 55) 그래 쌌고. 그래 맘에 안 든다고 헤어다고 날 보고 가자 카는 거라예. 짐 가지고 나와야 된다고. 이래 그 선생님이 족 두리도 만들어 놨고 우선에 짐 다 못 가져 왔고. 나올라 카는데 장옥심 56) 씨가 왜 가? 그러시는 거라예. 내가 소고기 미역국 끊여 놨는데. 하 시면서 이매방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그러더니 니나 많이 처먹어 라, 미역국. ( 웃음) 그래 인제 가자! 카믄서 이래가 온 거라예. 이래 차를 타고 오다가 저 매축지 57) 있는 데, 그58) 미군부대 있는데, 지금도 있습니다. 부산시장 옆에 있는데 가설극장에 천막을 치놨는데, 59) 임방울 60) 명창, 명 창대회 이래 써 놨는 거라예. 그래 선생님이 택시 세워가지고 둘이 들어갔 다 1996 년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 정범태, 한국춤백년 2, 서울 : 눈빛출판사, 2008, 129 쪽. 재인용.) 53) 최승희의 딸, 본명은 안승자이며, 북한에서 공훈배우가 되어 어머니의 명성을 이었다. 54) 넣어놓는. 55) 만날. 56) 장홍심. 57) 매립지. 58) 거기. 59) 쳐 놨는데. 60) 임방울 (, 1905~1961). 근대 판소리의 명창. 전남 광산군 ( ) 송정읍 ( ) 태생. 서 편제의 거목. 선천적으로 타고난 맑고 아름다운 성음에 성량이 풍부하여 막힌데가 없었다. 단가 호남가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며, 춘향가 중 옥중가의 쑥대머리는 그의 특장이다. ( 기수,, 서울 대한민국예술원, 1985, 318 쪽.) 29

31 홍의 삶과 예술 거든요. 나는 그분들 모르고 하니까 선생님이 분장실에 들어갔다 오드만, 얘, 가자. 우리 바쁘다. 그래 얼른 짐을 풀어놓고 승무 의상을 얼른 다려 가지고 가서 나는 객석 흙바닥에 가마니 깔아놓고 의자도 있고 하는데, 막 올리기 젤 처음에 < 승무 > 를 춥디다. 국악할 때는 막 올릴 때 < 검무 > 아니면 < 승무 > 를 춘다 카대요? 그래 < 승무 > 를 추는데, 선생님이 흰 장삼에 흰 바지 저고리에 흰 고깔에 흰 버선에 홍띠만 탁 매고 나와서 추는데 그 조명도 없 고 낮인데, 그 모습이 그 버선발 맵시하고, 그 나비 같기고 하고, 또 학 같기 도 하고 어떤 그 굉장히 환상적인 그런 내가 볼 때 되더라구요. 저렇게 좋은 춤이 있었구나! 그래가지고 나도 한국춤을 배워야 되겠다 싶었는데, 우리 그 당시에 동네 아줌마들이 내가 그 저 연회 대회에 나가서 춤추는 것을 소문을 듣고 또 어떤 때는 분장하고 차타고 나가고 하니까 그래 인제 스승 이매방과 함께 ( 왼쪽 첫 번째: 홍, 왼쪽 세 번째: 이매방 ) 30

32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그 춤을 가르쳐 달라고 온 거라예. 그래 마침 이매방 선생님이 한국춤을 하 니까예. 선생님한테 내가 소개해 주고. 그래 바로 인제 춤추면서 바로 발 띨 때부터 내가 조교역할을 한기라예. 난 빨리 아니까. 장구 쳐라. 하면, 나는 장구를 못 치는데도 박자 속은 아니까 리듬 맞춰 치주고 조교 노릇을 하면 서 시간이 흘러가면서 내가 많이 모집을 해 줬어요. 대신동에 또 선생님 제 자들이 있었는데, 판사댁, 검사댁, 전화국장댁 그런 사모님들이 좀 고급스럽 게 < 승무 > 를 배우겠다. 이래가지고 인자 < 승무 > 배우는데 같이 배우고. 내 가 또, 요 또 유치원 선생들 모집해가 또 인자 유치원에서도 교실이 비니 까 < 승무 > 배우고. 여기서도 하고 < 승무 > 를 하면서 열 번 정도 배웠습니다. 많이 모집도 해 주고 그래가지고 내가 한국춤을 추게 된 거라예. 내가 피아 노를 했을란지 또 하다못해 목소리가 안 좋으면 대중가요 가수가 됐을란지 또 몰르지예. 그래 처음에 입문하고 나니까 춤이 참 좋구나 싶으고, 그 당시 만 해도 춤이라고 하는 것은 보이기 위한 것이다, 화려해야 한다. 이뻐야 된다. 현란해야 된다. 이것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6 25사변 나 고 나서 언젠가 그 고등학교에 다시 입학을 해야 된다. 중학교는 졸업장이 나오니까 고등학교는 입학을 해야 된다. 해서 갔더니, 머리를 깎아라 하는 거라예. 내가 부대 다녀야 해서 머리를 못 깎는다 카니까 선생님이 참 아쉬 워했어요. 배움 무용이론 학습 그래서 그냥 고등학교에 그것만 저, 입학금 내놓고 학교에 못 갔어요. 못 갔 고. 그라고 어 학교 그 선배가 한 사람 있었는데 성승민 씨라고 무용협회 부지부장도 했고 그 분을 내가 이매방 선생님께 소개를 해서 내가 발 기본 이랑 장구 가르쳐줘서 보냈어요, 가서 선생님 도와드리라고. 나는 내대로 31

33 홍의 삶과 예술 인자 학원하고. 선생님 대신동에 연구소 채리61) 놓고 있고. 있었는데 6 25 사변 나고 나서 부산에 몇 사람 무용학원장들이 모아가지고 강이문 62) 선생 님한테, 강이문 씨라고 무용 평론가가 있었어요, 부산에. 그 분한데 우리 무 용이론을 공부하자, 이래가지고 무용이론을 공부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그 서점에 가서, 이번에 그 드라마로 했던 일지매. 그게 내 어릴 때 문예춘추인가? 우리나라에 잡지가 있었습니다. 그걸 내가 그 사 서 일지매 너무 이름이 좋아서 마음에 들어서 읽었었거든요. 읽다가 숯 불을 피웠는데 숯불에 중독되어서 쓰러져서 칫국 마시고 일어나기도 하 고 이런 기억도 나네요. 서점에는 우째서 63) 그런지 몰라도 자주 가게 됩 디다. 또 퍼플? 뭐라는 영화도 또 있었습니다. 흑인 영환데 자주색 피부에 말하자면 검은 피부에 인종들, 카는 그 영환데, 아주 히트 쳤습니다. 처음 소설로 나왔을 때 묶어가지고 정리하는 거 보고 하나 샀거든요. 사가 읽고 이래 쌌는데, 소설을 내가 좋아했는 거 같아요. 그런 거 하고 무용이론 공부 를 하니까 무대 공간구성, 배치 이런 거. 근데 내가 미군부대에서 밤마다 뮤 지컬 영화를 하도 많이 봤거든요. < 남태평양 > 도 유명합니다. < 남태평양 >, 그 다음에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도 좋지만은 < 분홍신 > 이라고 해가지 고 그 발레리나가 그 영화배우가 됐지만은 원래 발레리나였는데 그 여자가 만든 그 < 분홍신 > 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그 다음에 또 < 파리의 아메리카인 > 이라꼬 해가지고, < 비는 사랑을 싣고 > 에 나오는 짐캐리 64)라는 사람, 탭댄스 61) 차려. 62) 강이문 (, 1923~1992). 함경남도 단천군 단천면 단천리 출생. 아호 여천 ( ), 취운 ( ), 무용평론가. 부산무용가협회와 부산춤예술인협회를 결성하였다. 비전공자 출신으로 1960~70 년대 부산무용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년대 무용용어통일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80~90 년대 춤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우리춤의 전통성과 창조성 이 있다 년 20세기 부산을 빛낸 인물 26 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63) 어째서. 64) 켈리 (Gene Kelly, 1912~1996). 본명은 Eugene Curran Kelly. 미국의 무용수 배우안무가겸 영화감독. 고전 발레 기교와 결합된 강건한 스타일의 춤은 뮤지컬 영화를 일신했고 남성 무용 32

34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잘 추는 그 사람이 재즈 하는 사람인데, 레슬리 캬론 65)이라는 발레리나하고 < 파리의 아메리카인 > 66) 해가지고 뮤지칼 영화를 봤는데 그런 것들 보니까 그 아주 환상적이고 춤 짜임새 같은 게 너무나 그 다양하고 구성이, 이래서 학생들 춤 짤 때도 네 사람, 군대식으로 줄로 서가지고 춤을 안 만들고 자 연대형으로 만들어서 이쪽에 몇 사람 저쪽에 몇 사람, 강이문 선생님이 작 품이 뭐 그런 작품이 다 있냐고, 군대식으로 탁탁 이래야지. 예술은 이념이 요. 이러면서. 내가 듣기에는 이념이라는 말이 지금은 괜찮지만 이북쪽 사 상 같은 느낌이 자꾸 오는 거라예, 선입견이. 그랬는데 정막 67) 씨라는 무용 평론가가 있습니다. 경성대학교도 다니고, 정 뭐시라 카드라 정영희? 정 희영씨? 이름이 바뀌어 졌습니다. 대구에 있어요. 자기 부인이 기 68) 씨 라고 대구시립발레단 69) 에. 그 양반이 그 와서 인제 그 내가 그때 데레사여 고에 그 작품을 < 연봉> 해가지고 금강산이 일만 이천 봉인데 그 봉우리가 이래 이래 쭉 안 있습니까? 그지예? 그것을 스스로 상징해가지고 < 연봉> 이 라는 이름으로 해가지고 작품을 내가 만들었습니다. 음악은 산조음악을 가 지고. 춤 구성은, 동작은 한국적이지만 배치 같은 거는 그런 쪽으로 해가지 수에 대한 일반의 관념을 크게 바꾸었다.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 ) 에서 감독과 배우로 출연하여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짐. 65) 레슬리 캐론 (Lesly Caron). 프랑스 출신 여배우로 1951 년 < 파리의 아메리카인 > 으로 데뷔하여 스타덤 에 오름. 66) 켈리와 레슬리 캐론이 주연을 맡고 거쉬인 (George Gershwin) 이 작곡한 1951 년 MGM 사의 헐 리우드 뮤지컬 영화. 67) 본명은 정순영. 원로 무용인, 무용평론가. 현재 대구시민문화회관연구소를 운영중이다. 경성 대 교수 역임. 68) 기전 (. 1933~ ). 대구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자 (1981~ ) 년 대구공고에서 강의 하던 정막 선생과 결혼하면서 대구에 정착했고 1961 년 국도여관 목욕탕 자리 ( 현 제일은행 사 거리 ) 에 대구발레아카데미를 개설해 1972 년 문을 닫을 때까지 왕성한 발표무대를 가졌다. 또 1981년부터는 대구시립무용단 초대 안무자로 부임해 국내 유일의 공립 현대무용단으로서의 토대를 닦았다. ( 시사뉴스투데이, 2008년 12월 22 일자 기사에서 발췌). 69) 대구시립무용단 년 5월 1 일 창단. 매년 2회의 정기공연과 임시 및 특별공연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 공립 무용단체 중 국내유일의 현대무용단체이다. 33

35 홍의 삶과 예술 고 했는데 정막 씨가 와서 보고 어쩌면 저런 작품이 나왔노? 참 좋은 작품 이다. 아주 좋은 작품이다. 그 보통 작품이라면은 시메트리 (symmetry) 70) 해가지고. 그 뭐 네 사람 네 사람. 대칭구조로? 전기에서는 그게 참 좋지예. 근데 발레에서도 그렇지만. 근대 시메트리 (symmetry) 를 벗어난 그걸 아시메트리 (asymmetry) 71) 라고 하대예, 그거를? 그라고 콘스트라스트 (contrast) 72) 도 까지도 들어갔네. 이 어떤 사람이고? 이 런 작품을 만들었노? 참 좋은 작품이다. 강이문 선생님은 젤 안 좋게 자기 가 평을 했는데 놀랜 거라예. 그러자 송범 선생님이 부산에 또 내려올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작품을 보게 된 거라예. 보고는 참 좋은 작품이다. 공간 구성이 너무 너무 잘됐다. 이렇게 또 칭찬을 하고 가셨거든요. 그래서 내가 그 내 생각이 후 73) 거는 아니었구나. 어쩌면은 좀 앞섰던 것 같기도 하 다. 그게 영화를 많이 본 그런 거였고. 또 인제 그 서점에 가서는 내가 선미 라는 꽃꽂이 책을 하나 샀거든요. 꽃을 어떻게 배치를 해서 아름답게 하는고... 춤하고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래 인제 보니까 선미도 높고 낮 고 중간 포인트를 어떻게 준다. 그 다음에 뭐 아름다움 속에 오브제 74) 라고 해서 그 꽃꽂이 옆에 돌을 놓지 않습니까? 돌 자체를 봤을 때는 그렇게 예 쁘지 않은데 꽃하고의 조화를 봤을 때 아름다움 그런 거 그 다음에 인 제 춤 이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채희완 75) 교수의, 미학교수지요. 유명한 70) 영 대칭성. 71) 영 비대칭성. 72) 영 대비. 73) 뒤쳐. 수준이 떨어. 74) 불 object.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 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를 이르는 말. 꽃꽂이에서 꽃 이외의 재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임. 75) 채희완 (1948~ ). 경북 문경 출생. 서울대 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현재 부산대학교 예술문화 영상학과 교수이며, ( 사) 민족미학연구소 소장. 34

36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분인데, 그 양반이 오래 됐는데, 책에 그 아름다움에 우아미가 있고 골계미 가 있다. 골계미는 어떠 어떠한 것이다. 거칠고, 닭 뼈다귀처럼. 우아함 속 에 골계미가 있다. 내가 쇼크를 받은 거라예. 우아하고 곱고 예쁜 것만 춤 이 아니구나. 폭풍우가 치고 무섭고 겁이 나고 그것도 영화예술에서 아름다 움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갑다. 이런 생각을 하고는 다시 또 내가 알게 되었 고.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같은 것도 알게 되고. 또 어떤 그 모임이 있을 때 에 모임에서 여자 교수가 자기 작품 발표회를 앞두고 일이 바쁘고 또 인제 그 서류도 정리한다고 바쁘고 해서 밤잠도 올케 못자고 고민하는데 얼굴은 푸석하고 회의도 참석해야 하니까 화장도 한쪽은 연하고 한쪽은 하고 입 술도 이쁘게 안 발라졌는데, 그런데 미장원에 가서 공을 들여 화장도 이쁘 게 하고 아주 빈틈없이 하고. 그런데 이 쪽이 더 아름답게 보이더라구요. 밖으로 나타나는 내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되고. 나는 내 자신의 춤에 대해 격, 품위 이런 거 생각을 안 하고 춤을 추었었거든요. 어 떤 교수들도 그러는데 이매방 선생님에 비해서는 춤에 품위가 있다. 격이 있다. 하는데. 춤에 뭐 그런 걸 찾노? 하고 나는 있었는데 선생님이 들었 으면 아주 화가 나셨겠지요. 내 생각은 아니고 객관적인 이야기이고, 화를 내어도 그 사람들한테 화를 내야죠. 그렇죠? 광주에서 내가 춤을 추었었는 데, 나이 많은 분들이 찾아 왔더라구요. 자네 춤을 보니까 매방이 제자 같 은데. 라고 그라 카드라고요. 매방이 제자 맞제? 해서 네., 근데 매방이 하고 춤은 참 다르고, 참 좋네. 자네 춤이 참 무겁네. 매방이는 춤을 잘 춘 다. 기가 맥히는데 좀 가볍다. 춤에도 무겁고 가벼운 게 있는 갑다. 나는 무겁게 출려고 춘 것도 아닌데 그런 것도 인제 그 며 살며 사랑하며 배우 76) 라는 책을 읽어봤지만은 사람을 만나면서 어떤 이야기들 속에서 춤 하고 관련 없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도 춤하고 관련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린 76) 레오 버스카글리아 (Leo Buscaglia) 가 지은 책으로 1980 년 미국에서 첫 출판되었다. 전 세계 58 개국에 번역출판 되었으며, 5,000 만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이다. 35

37 홍의 삶과 예술 애들의 그 행동이나 이런 데서 또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고요. 그래서 예를 들어 아줌마들, 기가 센 아줌마들 싸우는 거 안 있습니까? 참 웃음도 나오고, 저렇게까지 안 지려고 하는 거 저런 것도 춤으로 하면 아주 코믹하 게 만들 수 있겠구나... 좀 탈춤형식 이런 것들로. 나이가 드니까 작년에 맞 이한 가을하고 한 살 더 먹어서 맞이한 가을하고 느낌이 다릅디다. 낙엽을 이렇게 떨어지는 거 보면 젊었을 때 하고 지금하고 휠 다르고 어떤 그 세월 의 그 의미라고 할까 삶에 우리는 자꾸 인자 그 로 가까워지고 가는 쪽으 가까워 지니까 더 아름답게 보이고 더 가치 있게 보이고, 모든 것이 보이는 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요. 내가 가장 고맙게 제일 처음 내가 해야 될 이야긴데 부모님이 날 낳아준 거에 대해서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서 내가 기형아거든요, 체질이. 골라야 되는데 안 고릅니다. 팔, 다리, 사지 가 멀쩡해야 하는데 몸에 비해서 다리가 너무 약하다든가 이렇다꼬예. 이런 겁니다. 발레를 못한 이유가 다리가 안 붙어요. 다리가 너무 가늘어서요. 기 형적이라고요. 뒷꼭지도 약간 둥그스름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납작합니다. 그런 쪽으로는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하고 서운하지만 그래도 허약체 질을 가지고 내가 무용을 안 했으면 드러누워서 식물인간처럼 지낼 겁니다. 춤이라는 것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나를 지탱하게 해주고 75, 76살이 되는 데도 아직까지 춤을 출 수 있게 해 주는구나. 참 감사하고. 부모님께 감사 하고 또 스승님들, 참 복이 많아서 좋은 스승님들을 만났는데, 첫째는 그 이 매방 선생님, 그 다음에 또 이춘우 77) 선생님 돌아가셨지만 참 춤 잘 춘다고 강이문 선생님도 참 아까워했거든요. 그 양반은 술로써 다 조졌어요. 현실 도피적인 자기는 현실이 무대였으면 좋겠는데 사변 78) 이 나니까 공연할 때는 없고 발산할 곳이 없으니까 술 마시고, 술 마시고 그래가 죽은 사람 77) 조용자와 함께 활동하던 무용가. 전통춤과 서양춤에 두루 능하였다. 특히 허튼춤을 잘 추었 다. 제자로 홍, 세란, 이도근 등이 있다. 78) 6 25 전쟁. 36

38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이고. 그 다음에 계향 79) 씨라고 동해안별신굿의 그 석출 80) 씨라고 문화재 아닙니까? 그 사촌 여동생입디다. 그 사촌 여동생이 부산민속예술보 존회의 그 동래학춤에 소리하는 구음 보유자였어요. 계향 선생을 모시다 굿을 공부를 좀 했었거든요. < 지전춤 > 하고 신을 부를 때 인자 < 꽃춤 >, 꽃맞 이. 영혼을 저승으로 그 마지막에 천도시킬 때 그 용선, 용선 해가지고 인자 배를 띄우고. 내가 배웠습니다. 제1 회 대한민국 무용제 81) 때 내가 사용을 했었습니다. 사용했던 게 지금까지 쭉 와가지고 < 지전춤 > 이 인자 내 가 나름대로 무대화도 시키고 이래가지고 음악은 생각해보니까 그 박병 천 82) 씨의 음악이 좋을 거 같아서, 동해안별신굿의 푸너리 83)에 맞춰서 추 어야 되는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 그 장단이 어려운 거라예. 그래서 좀 해놨는데 이 춤이 굉장히 그 학자들 그 학계에 있는 분이나 민속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한테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현대무용 하는 교수들도 < 지전 춤> 이나 용선배 띄우는 거 꽃맞이 참 좋아합디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고 토속적이고 좋다카고. 아! 이 춤이 좋은 춤인갑다. 생각하고. 인제 나이 가 드니까 온 미친개이가 제 집 자랑이고 반미친 개인가 자식자랑, 나도 주 79)계향 (, 1931~1991). 울산 출생. 동해안 세습단골 집안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굿 판에서 장단과 춤을 익혔으며, 포항권번, 동래권번, 경주권번 등에서도 소리와 춤을 학습하였 다. 80) 석출 (, 1922~2005). 경북 포항 출생. 전( ) 중요무형문화재 제82 호 동해안 별신굿 예능보유자. 태평소 명인. 81) 대한민국 무용제 : 대한민국 최대의 무용제, 창작무용을 통하여 무용예술 발전과 무용인들의 창작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년부터 매년 한국문화예술흥원과 한 국무용협회의 공동 주최로 개최되었다 년부터는 한국무용협회가 행사를 직접 주관, 시 행하게 되었다. 서울국제무용제의 명칭은 처음에는 대한민국 ( ) 로 사용하다가, 제12 회(1990 년) 부터 서울무용제로 개명되었으며, 제10 회 때는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행사 를 겸하여 서울국제무용제에서 임시 명칭으로 바뀌었다. 제14 회, 제17 회부터는 다시 서울국 제무용제로 바뀌어 국제적인 무용축제로의 전화 ( ) 와 국제적인 수준으로 무대 발전시킨다 는 취지로 명칭이 개명되었다. 82) 박병천 (, 1933~2008). 전남 도 출생. 대금 명인 박종기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음악을 배웠다. 씻굿을 최초로 무대에 올렸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72 호 씻굿의 기능보유자였음. 83) 푸너리장단. 동해안 무속 장단의 하나. 37

39 홍의 삶과 예술 책이 늘어서 자랑이 하고 싶어져요. 내가 원래 안 그랬는데. < 지전춤 > 이 내 가 볼 때에 예술적 가치가 있고 보존 될 가치도 있는 춤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을 들거든요. 예감이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또 마지막으로 또 한 분 스승님이 계시는데, 이 < 동래 한량춤 > 을 그래도 그 부산 민속, 시에다가 신 청을 해서 부산 문화제 제14 호로 지정받도록 문장원 84) 선생님이 지정하도 록 노력하셨습니다. 굉장히 깨끗한 선비정신이 있는 분이고, 저는 항상 그 분을 무선, 춤추는 선비, 춤 무( ) 자에 선비 선( ) 자를 써서 그렇게 붙 입니다. 그래서 그 스승님하고 그 참 좋은 인연으로 그런 스승님들하고 만 난 것이 너무나 고맙고요. 그 다음에 제자들은 나를 보고 춤을 가지고 참선 을 하는 것 같다고 무선( ) 이라고 불러줬거든요. 그것도 참 고맙고. 지 금은 나이가 드니까 젊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이 참 좋지만은 나이 드니까 자연, 자연 속에서 가르침을 많이 받게 되고, 일상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 고. 스승이 자연에서 얻는 위대함, 같은 것을 알게 되고. 사람들한테서 많은 그 보면서 느끼고 겪고 보고 배우고 그것도 참 고맙고. 오늘같이 가을인데 도 햇빛이 뜨거울 정도로 따듯합디다. 그런 날에는 한적한 어느 집에 싸리 문 열고 들어가서 장독대가 있고, 봉숭아나 맨드라미가 있고, 그런 나팔꽃 도 이렇게 올라가 있고, 흙바닥에 한번 그 빨가벗고 누워서 땅도 되어보 고 싶고 하늘도 되어 보고 싶고, 흘러가는 구름도 되어 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 눈시울이 붉어지시며 말을 잇지 못해 잠시 중단됨 )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으신. 주책스럽게. 아니. ( 미소 지음) 84) 문장원 (, 1917~ ). 무형문화재 제18 호 동래야류 예능보유자이며, 26대에 걸쳐 부산 동래에 거주해 온 토박이이다. 동래 풍류의 전통을 이어가는 한량으로 당대 최고의 즉흥춤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38

40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연습 절대적인 스승 그렇고 참 그 나이가 들면은 ( 눈물을 닦으시며 ) 그 친구들도 다 가고 없잖아요. 울산의 이척 85) 씨도 지난번에 갔고, 마산의 이필이 86) 씨도 갔고, 지금 전주에 최선 87) 씨가 동갑이고 서울에 정명숙 88) 씨가 동갑이거든요. 동갑내기가 공연을 또 한번 해야 합니다. 이번에 의 향기 홍이 펼치는 대물림 제가 안을 짰거든요. 서울에서도 공연을 해야 되고. 막상 하고 싶은데 돈이 들어가서 좀 그렇지만은 그래도 해야 되겠어요. 하기 위해서 내가 돈을 좀 벌어야 될 건데 시립무용단에 가서 어제하고 그제하고는 < 지전춤 > 을 연수인가 특강을 해주고 11 월 정기 공연에 출연해주기로 하고. 내일 모레는 인제 그 무용협회 행사인데 < 한량춤 > 을 출거고, 12월 25날에는 인제 그 문화회관 중강당에서 홍의 춤 해가지고 우리 가족들, 아 들하고 며느리하고 며느리의 올캐, 또 며느리의 올캐가 있어요. 네 사람이 지요. 최은희 89) 교수하고 < 한량춤 > 멤버들하고 제자들 하고 공연할 계획이 구요. 어 그래서 그 참 스승님들한테도 내가 춤을 이렇게 추게 된 것을 85) 이척 (1930~2009). 서울 출생. 박용호, 장추화에게 춤을 배웠으며, 이인범, 조광, 송범 등이 함께 춤을 추었다. 45 년 명동 시공관에서 < 초립동 > 으로 첫 공연무대를 가졌으며, 64 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울산에 정착하여 공연과 무용교육에 힘썼다. 대한민국무용공로상 ( 98 년), 예총문화상 ( 06 년) 등을 수상했다. 86) 이필이 (1935~2009). 호는 일란 ( ), 경남 마산 출생. 최승희의 제자 이미라를 통하여 춤에 입 문하였다. 천흥, 권여성, 이매방, 최현 등에게 춤을 배웠다. 마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무용가 로서 산조춤, 창작춤 등이 특장이다. 87) 최선 (, 1935~ ). 본명은 최정철 ( ) 이며, 전북 임실 출생이다 년 무용을 시작하였 다 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 호 동초수건춤 ( 호남살풀이춤 ) 예능보유자로 지정됨. 88) 정명숙 (, 1935~ ). 대구 출생, 중요무형문화재 제97 호 살풀이 보유자 후보. 건국대학교 영문학과 및 고려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걸, 한영숙, 이매방 등에게 가르침 을 받았다. ( 정범태, 한국춤백년 2, 서울: 눈빛출판사, 2008, 212 쪽 발췌.) 89) 경성대학교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 천흥, 한영숙, 병섭, 강선영, 이매방, 매자 선생 등에게 사사했다 년 창단된 울산광역시립무용단 초대안무자. 한국 춤패 배새 예술감독. 39

41 홍의 삶과 예술 갚아야,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마음으로 갚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잘 안 되네요. 안타깝고. 또 한 분 더, < 동래 한량춤 > 그 문화재로 되도록 애써주 신 문화재위원으로 계신 엄옥자, 90) 엄옥자 지금 무용감독님으로 계시지만 은 그분도 애를 많이 써 줬어요. 그 다음에 부산 민족예술회관에 있는 온 경 91) 이사장, 내 서류가지고 < 무고> 같은 거를 만들고 참 고마운 분이고,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다 은혜를 갚고 떠나야 편안하게 되돌아보지 않고 떠날텐데 언젤지는 몰라도. 또 하나의 스승, 절대적인 스승은 연습 입니다. 일상 때는 그 뭐 신문도 읽다가 뭐 내가 헤르만 헤세는 좋아하거든 요. 책을 읽다가 또 그 저 여러 가지 변신 카프카의 변신 같은 것도 읽어보고, 어린왕자 생택쥐페리 1 년에 한번씩은 읽습니다. 한국 예술소설 이문열 씨의 금시조, 예술이 돈이냐 법이냐 제자하고 스승하 고 갈등 같은 것도 읽어보고 이렇게 가만히 책만 읽고 싶고 연습하기 싫어 요. 공연이 있으면 연습을 해야 하는데 하기 힘듭니다. 느낌이 안 오니까 아무도 봐 주는 사람도 없고 밤에 억지고 억지로 합니다. 한번하고 두 번하 고 아프고 땡기고 척추가 안 좋아 가지고 몸이 이래. { 측만증 } 예? 척추측만증같은 거요? 네, 아마 오염된 물고기 보면 몸이 비틀어 졌지요? 한겨울 되게 추울 때 되 면 내가 몸이 그렇게 되요. 왼쪽으로 이래 됩니다. 이라면 편하고 ( 몸을 구 부정하게 보여주시면서 ) 안 볼 때는 이래 있고 사람들 볼 때는 걸어가고 억 90)엄옥자 (, 1943~ ). 경남 통영 출신으로,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 교수 역 임. 중요무형문화재 제21 호 승전무 예능보유자, 정수남의 선배였던 노기 ( ) 할머니로부터 춤을 처음 배웠다. 이후 정순남, 마산의 해랑, 하숙자 등으로부터 춤을 배웠다. 현재 국립부 산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91) 온경 (, 1925~ ). 부산 출생. 신라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역임, 부산시무형문화재 제 10 호 동래고무 예능보유자. 한국의 디아길레프로 불리는 부친 동민 ( ) 의 권유로 춤 에 입문하여 강태홍에게 한국춤을 무용을 전수받음. 전승이 끊긴 동래고무를 86년에 재현하 였으며, 동래고무총람, 부산 경남 향토무용론 을 집필하였다. 현재 ( 사) 부산민속예 술보존협회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40

42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지로 그렇게 아파요. 그게 골반으로 내려가고 골반이 아프고 주로 왼쪽 다리로 내려가 발 못 디딜 때도 있거든요. 그니까 점프가 참 하기 힘든데 그걸 인제 연습을 자꾸 안 합니까. 바에 가서 자꾸 뛰고 뛰고 또 뛰고 조금 이라도 뛰는 느낌이라도 내려고 하니까 되고. 이번에 그 화요상설에 < 지전 춤> 추고 나니까 몸이 좀 풀렸구요. 어제하고 그제하고 시립무용단에서 < 지 전춤> 가르치고 나니까 몸이 확 풀렸습디다. 오래간만에 < 동래 한량춤 > 을 모레 추니까 한번 춰 보니까, 춤이 저절로 되는 거 같아요. 춤은 그렇게 되 어야지 남 앞에 가서 추지 그냥 춤은 말도 아니고 입으로 하는 춤도 아니고 머리로 하면은 순서로 하는 거지 느낌이 안나옵니다. 머리로 느낌을 내 봤 자 공감이 안 갑니다. 그렇고 또 말로가 하는 춤은 아가리 공산당이고, 또 어떤 사람은 글이 우위고 춤은 하위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거든 요. 부처님 말씀을 들어보면 경전에 너무 얽매이지 마라. 그러면 짜 부처 님의 실된 속을 모른다. 그걸 니가 알아가지고 보고 배운 그대로 자꾸 인 제 시부리는 92) 게 무슨 전달이 되겠노? 그런데 경전만 읽고 한 사람은 도를 못 틔우고 부엌에서 열심히 열심히 그릇 씻는 할머니가 어느 순간에 깨달음 이 오는 수가 있다. 이라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어요. 물론 춤추는 사람이 무식한 것 보다는 유식한게 낳지요. 모르는 것 보다는 아는 게 낫지만 아는 데 의존해 가지고 그게 인제 그 유식한 사람이 추면 다 유식한 춤이고 그렇 다고 더러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춤 하고는 지식하고는 또 별개 예요. 춤에는 또 춤의 지식이 있습니다. 있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가게 되 면은 알게 모르게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배우는 이론은 어디까지나 안내지 일로 가면 어데고, 저기 화장실이 있고 또 저기 수도가 있고, 어, 뭐 전염병 에 신종플루에 안 걸릴라몬 손을 몇 번 씻고 안내지 그게 의술하고는 다르 거든요? 안 그래요? 근데 그런 사람을 볼 때면 내가 좀 답답하다 생각이 듭 92) 지껄이는. 41

43 홍의 삶과 예술 디다. 제 생각이지 공통된 생각은 아니겠지만, 춤추는 사람으로써 감히 그 래도 많이 앞세울 만한 것은 없지만 오래 세월을 보냈으니까 예술 가( ) 자를 붙이고 싶고요. 예술 가 자로써는 그 춤 손색이 없는 그런 어떤 그 춤을 추어야지 자꾸 예술가하고 학문가하고를 구분을 못하는 사람들 이 춤을 추려고 애를 쓸까. 물론 그런 사람들이 학교에서 학도들을 가 르치고 하는 것은 좋은데 그러면 그 학생들이 춤보다는 해석을 잘해요. 그 게 걱정이 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배운 사람들도 또 생각이 있으면은 전문 가가 어떤 사람이다라는 것을 생각을 해서 전문가한테 배워야 하는데 지금 형편으로서는 무조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 가야 된다. 질적 보다는 양 적인 것에 많이 치우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도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물론 시대에 맞게 살아야 되지 만은 그래도 너무 배금주의가 되거나 물신주의가 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마, 묵고 살만 하면은 그라고 자기가 발표 할 수 있 는 정도의 여건이 되면은 그걸로 만족하고 살아도 되지 싶은데도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춤에 욕심을 부렸으면 참 좋겠는데. 그 다음에는 인제, 엄마들이 좋은 현상이라고도 할 수도, 안 좋은 현상이라 고도 할 수 있는데, 어머니반이 너무 많아요, 문화교실이. 그 양반들이 이제 는 춤보다는 입심이 더 늘어가지고 어느 무용가는 어떻고 어떤 무용가는 어 떻고 평론가가 다 되어 버렸어요. 평론가 보다 더 많이 알아요. 그래서 그 런 게 감히 염려가 되고. 또 절에 가서도 엄마들이 다 날뛰고 춤을 추 니까 무용가들이 그 가서 춤을 춰주어야 하는데 엄마들이 춤 다 추고, 심지 어 엿장사들 그 약 팔고 하는데, 엄마들이 그 나와서 춤을 추더라꼬요. 참 보니까 참 그렀테예. 그 약장사는 약장사답게 그 또 하나의 프로거든 요. 저질이 됐든 고질이 됐든 바구니도 요만한 거 가 와가지고는 옷도 한 5 천 원짜리 저고리 천 뻣뻣한 거, 빨간 치마에 초록 저고리 입고 ( 입술을 가리키며 ) 요도 빨가이 바르고 비녀도 이제 이렇게 그거하게 찔러야 하는 데 옛날에 부엌데기 아줌마처럼 납딱하게 붙이가지고 이래가지고 그 춤 42

44 소년 자홍, 춤을 만나다 도 안 되는 춤을 요만한 무대에서 셋이서 나와서 추는 것을 보니 기가 막히 덥니다. 할머니들이 취미를 위해서 추고 건강을 위해서 추고 엄마들을 위한 발표회로서 춤을 추는 건 좋은데 이건 너무 춤이 난장판이 되 가지고. 이건 완전히 이건 마 노인학교의 놀이처럼 된 것 같아서 염려스러워요. 한 양 말씨에 풀잎에도 신이 든다는 말이 있던데, 그걸 두고 하는 소린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뭐 이렇게 신종플루 이것도 생태계가 파괴되고 인간이 지 어서 만든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인간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가 지고 빚어낸 결과의 하나, 인과응보. 이걸 타파해 나갈 수 있는 발전적인 뭐 시 안 나오면은 그야말로 안 그렇겠습니까? 내가 춤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엄뚱한 93) 얘기를 하고 있네. 오늘은 이만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길게 해서 미안합니다. 93) 엉뚱한.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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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춤을 익히다 제2 차 구술 채록문 춤을 익히다 자, 오늘은 국립부산국악원이 추하는 명무 구술채록 사업의 일환으로 홍 선생님의 제2 차 면담일입니다. 날짜는 2009년 9월 23 일이구요, 지금 시각은 오후 2시 36 분입니다. 장소는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는 홍 선 생님의 자택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2 차 면담을 시작하겠습니다. 네, 말씀을 듣겠습니다. 홍무용학원에서 구술하는 홍 47

49 홍의 삶과 예술 남방춤이 유행하다 지난 번에 말씀하신 것 중에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남방춤이라고 하신 거요, 남방춤이 인도계 무용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렇지요. 남방 쪽에, 남방 쪽에 오리엔탈 그 리듬이니 뭐, 타부라 94)의 리 듬, 요즘 그 밸리댄스 하는데 보면은 < 타부라의 리듬 > 95) 해가지고 그 음악 에 맞춰서 골반을 이렇게 흔드는 그런 춤도 춥디다만은, 고 당시로써는 춤 이 태국 쪽에도 가깝고, 또 인도에도 가깝고 손가락을 보면은 또 손가락 사 용을 많이 하고 목을 옆으로 왔다갔다 하고 그거는 뱀을 상징해가지고, 코 브라, 목을 이렇게 하는 그래 하십디다. 그때 6 25사변 때 장추화 96) 씨 라고 무용가가 있었는데 그 장추화 씨 밑에 송범 선생님하고 걸 97) 선 생님 하고, 정무연 98) 씨, 그 다음에 이춘우 선생이 이매방 선생님하고 친 구였습니다. 그런데 춤을 아주 잘 춰요. 맨손 춤을 강이문 선생님은 이춘 우 선생님 춤을 아주 좋아했었거든요. 여담이라 캐야 될까? 국장님, 판사댁 사모님이 취미가 고상해 가지고 그때가 다네모시계 99) 가 유행할 땐데 한국 춤을 기초적인 춤을 배우다가 이매방 선생님의 승무를 배우게 되었거든요. 승무를 어느 정도 다 띠고 나서 어머니들이 밥을 산다꼬 해가지고 이춘우 94) 따블라. 인도의 전통타악기. 95) < 따블라의 리듬> 무용가 장추화의 작품. 96) 장추화 ( ).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이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위적인 무용작품을 공연함. 97) 걸 (, 1926~2008). 서울 출생 년 최승희의 제자인 장추화의 무용연구소에서 현대 무용, 남방무용, 발레, 한국무용을 배웠으며, 1949 년 무용연구소를 만들어 독립하였다. 국립무 용단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걸류 산조춤을 창시하였다. 98) 정무연 (, 1927~ ). 본명은 정항섭, 경기도 용인 출생. 서울 배재고교를 졸업하고,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남방춤을 배웠다. 일본 도쿄 가와가미고로 무용연구소 입소하여, 라틴음악과 라틴무용을 배웠으며, 귀국하여 스페인춤, 라틴춤, 전통춤 등을 공연하였다. 75년 이후 부산에 서 정무연 무용학원 정무연 무용단 운영, 한국무용협회 부산지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99) 일종의 변형된 사금융 형태로 일반적인 계모임보다는 운영자금의 규모가 크다. 48

50 춤을 익히다 남방춤을 추던 구술자의 모습 선생하고 나하고 갔는데, 그 인자 그 송도의 부산의 송도에 횟집이 있는데 홀이 넓고 이렇는데 거기서 밥을 먹고 여흥으로 술 마시고 장구 치면 춤도 추고하는데 이춘우 선생님이 초대받아 와가지고 보니까 춤을 참 잘 추니까 어머니들이 호감을 가지고, 그 다음에 무슨 파티가 있을 때 초청을 했는데 이매방 선생님은 샘이 나가지고 춤 잘 춘다 하니까 술을 자꾸 권하는 거라 예, 이춘우 선생한테. 술이 떡이 되도록 만들어 놓고 춤을 추라 하는 거라 예. 춤을 추다가 이리이리 비실비실 하니까 때리 눕혀가지고 막 때리고 49

51 홍의 삶과 예술 그게 그만큼 춤에 대한 질투, 시기심, 이매방 선생님이 그런 게 참 강한 사 람이거든요. 고런 에피소드들도 있었고. 그때 그 고거는 잠깐 접어두고. 우리나라의 춤의 잡지가 처음 나온 게, 조동화 100) 씨가 발행한 춤 지입 니다. 우리나라에서 무용 잡지가 처음 나온 거거든요. 그랬는데 그 조동화 선생하고 또 그 정막 씨라고 있었어요. 나 요 봐야 알겠다. 잠깐만요.( 책 을 뒤적이며 그 잡지를 찾으심.) { 네.} 남방춤 추던 시절의 홍 100) 조동화 (, 1922~ ). 함경북도 회경 출생. 함귀봉무용연구소에서 현대춤을 배우고, 문철 민 문하에서 무용이론과 비평을 공부함 년 조선일보에 춤 평론을 기고한 이후부터 무용 평론가로 활동함. 춤 지 발행인. 50

52 춤을 익히다 정막 씨인데요? 지금 이름을 고쳐가지고 정순용 101) 씨인가? 나중에 찾아보 면 압니다. 정막 씨는 확실하고. 그 양반하고 그 양반도 무용평론가거든요? 그 양반이 지금 대구에 있습니다, 정막 씨가. 그기서 명무전 을 해가지 고 우리가 함 갔다가 왔거든요. 정막 씨하고 같이 무용을 공부를 했습니다. 지금은 조동화 씨는 무용이론이나 무용평론 쪽이지만은. 그때 장추하 선생 한테 공부를 배웠어요. 그때 장추화 선생이 남방춤을 추고 그라고 우리나라 의 < 꼭두각시춤 > 을 장추화 선생이 아마 안무를 했지 싶습니다, 최초로. < 초 립동춤 > 은 최승희 선생이 했겠지만 있었는데 그 그때 당시에 남방춤이 유행해가지고 내가 사도 없어졌어요. 장추화 씨가 치마 입고 손가락 이 렇게 해가지고 찍은 사이 있었는데 지금 없어졌지만은, 그 밑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 송범 씨라고 국립무용단에 제1회 때부터 안무자로 있었던 그 분 이 < 타부라의 리듬> 해가지고 그 남자 그 남방옷을 입고 춤을 많이 추었어 요.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부산에서는 정무연 선생이 일본에서 가서 캐스 터네츠를 배워가지고 스페인 춤을 추면서 남방춤도 추고 부산에서 처음 으로 이매방 선생님이 대영극장 102) 에서 발표회를 했습니다. 발표를 할 때에 정무연 선생을 불러다가 찬조출연을 부탁했는데 남방춤을 추는데, 그 남방 춤 춤출 때에 < 사사이 춤> 103) 해가지고, 코브라 인도사람 피리를 불면서 항 아리를 놔놓고 나더러 코브라의 춤을 추라고 하는 거라예. 장갑 끼고 손만 내가지고 추다가 그 다음에 같이 정무연 씨와 남방춤을 추고 그랬었거든요. 내가 춤을 추게 된 동기는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미군부대 장교 식당에 식 사 마치고 쇼를 봤을 때 그 음악하고 춤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신비스럽고. 내가 뭐 여러 춤을 추었지만 발레 현대무용 같은 것도 영화를 통해서 다 봤거든요, 그랬는데. 그 춤을 처음 보고 음악도 처음 들은 거라 101) 정순영. 102)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5 가에 위치. 103) 사사의 춤. 송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952 년에 발표됨. 51

53 홍의 삶과 예술 예. 너무 좋아서 춤을 흉내 내다가 그게 발단이 되어서 무용에 아마 예, 춤을 추게 되고 이매방 만나가지고 < 승무 > 추는 거 보고 거기서 또 한번 감 동을 받은 거라예. 너무나 그 모습이 나비 같기도 하고 학 같기도 하고 버 선발 맵시가 조명도 없지만 발 맵시하며 장삼 뿌렸을 때 그 또 어떤 고갯짓 같은 거 이매방 선생님 특유의 고갯짓이 있습니다. 이매방 선생님은 만주 에도 살아서 중국말도 하실 줄 알고 일본 문화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국의 뭐라 캅니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경극이요? 경극 스타일을 참 좋아하시거든요? 경극배우 뭐 매란방 104)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중 군예대에서 남방춤을 추는 모습 104) 매란방 중국 북경 출생 본명은 매란 자는 완화이며 경극의 황금시대를 (, 1894~1961).,,, 연 입지전적 인물. 52

54 춤을 익히다 춤은 하나 춤은 그리움 그 양반 그도 한국춤을 추어서 옛날에 < 양산춤 >, < 초립동 > 도 추고 어깻 짓을 하면서 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최승희 씨, 매란방 씨 중국 스타일 그게 들어간 것 같애요. 어떤 고갯짓 같은 거는 일본의 히메사마 공 주, 공주의 뒷모습, 일본사람들은 앞모습만 감상하는 게 아니라 뒷모습, 머 리 이렇게 쓰고 하는 듯 안하는 듯 하면서 이렇게 하는 게 있거든요. 그게 이매방 선생님 < 승무 > 춤에서 보여요. 송화영 105)이도 그랬어요. 선생님 춤 에 일본의 그 무용의 모습이 들어간 것 같다고. 송화영도 참 영리하거든요. 나는 알고는 있었지만은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은, 그게 흉은 아니고 그 게 춤은 결국 하납디다. 멋이라는 것이 어느 평론가가 와서 그것도 무용 평론가가 아니고 철학 전공을 하는 대학교수인데, 멋이 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멋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고 특히 사람마다의 나름대로의 특 징이 있는 내적 아름다움의 발산, 그렇게 말을 해야지 어떻게 말로써 표현 을 할까 아참, 멋있다 춤을 오래 춰가지고 춤을 잘 추는 것 같지도 않 은데 어딘가 멋이 있다. 또 사람도 짜 멋이라는 게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 도 이쁜 거지만은, 일하는 여성들 사무실에서 야간작업을 해가지고 밤새 미 106) 를 했는데 어떤 모임에 나가야 하는데 밤에 잠을 못자서 일에 매달려 그래도 참석은 해야 하고 분은 발라야 하고, 아이쉐도우도 한쪽은 옅고 한 쪽은 짙고 입술도 바른 다고 발랐는데 약간 삐뚤어졌고, 이랬는데 얼굴에 분이 떠서 퍼석하이 그랬는데, 어느날 그게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 안에서 이렇게 우러나오는 그게 아름다 움이지 겉으로 완전히 다듬어 그런 아름다움은 아니고, 근데 보는 사람들 105) 송화영 전북 부안 출생 이매방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배웠으며 국립국악 (, 1953~2006).., 원 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하였음. 106) 밤샘. 53

55 홍의 삶과 예술 은 그렇게 발라도 멋있게 보이는 거라예. 뭐 약간 입술이 번져도 멋있게 보 이고, 그렇게 멋을 말했는데 질문하는 사람은 엄뚱하게 107) 질문을 하고 나 중에 그 어떤 책에다가 써놨는데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내가 체계적으로 미학에 대해 공부한 것도 아니고 학벌도 안 되지만은 그래도 오래 살아오면 서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예술 쪽보다도 불교 서적을 읽으면서도 느끼고 마음을 비운다던가 그런 것을 내가 빨리 받아들이고 이래 했기 때문에 근데 너무 엄뚱한 질문을 해서.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이구나 어떻 게 저런 사람이 춤을 평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음악 귀가 뚫려야 되거든 요. 내 제자 중에 남자 제자가 있는데 가는 108) 팝송만 듣고 살은 애라요. 자 기 엄마 말도 잘 안 듣고 공부도 열심히 안하는 앤데, 춤을 배우러 왔는데 한국무용을 추는데 너무 너무 음악을 잘 타는 거라예. 그라고 춤을 잘 춥디 다. 꼭 한국무용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현대무용도 가르쳐 보니까 곧 잘 하고. 어째서 저렇게 잘 하는가 싶었더니 음반을 이만큼 들고 왔더라구요. 밤새도록 듣고 그렇게 음악 귀가 뚫리고 몸도 좀 놀리 보고 해야지 알건 데, 학교에서 철학과 공부시키다가 뭐 춤도 많이 보지도 안 했을 긴데, 기껏 해봐야 공연 하는 거는 안 봤겠습니까. 그래 보고 하는 거는 아니라고 생각 하거든요. 예를 들어 춤추는 어떤 직장에 있으면서 맨날 그 머 지나가면서 국악 악기 소리도 들리고 또 뭐 춤추는 것도 지나가면서 보며 팔 올리고 그 렇게 해서 젖어가지고 글 쓰는 거 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사 람들도 있고, 또 춤도 보면은 그 저번에 이야기 했는가 몰라도 입으로 춤추 는 사람, 마음으로 춤추는 사람, 또 머리로 춤추는 사람 이래 있습디다. 머 리로 춤추는 사람은 춤 동작은 확실하고 무난하고 잘 추게 보입니다. 감동 은 없어요. 좀 못 추는 듯한 춤이라도 마음으로 추는 춤은 시선 집중이 되 고 내가 그 107) 엉뚱하게. 108) 그 아이는. 문장원 선생님을 발표회에 모셔가지고 특별출연을 시켰는데 54

56 춤을 익히다 선생님이 안 출려고 하는 거를 내가 잠깐 나가서 팔만 올렸다가 내려오라고 했는데 그날도 선생님이 앵겨가지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그렇다고 젊은 사람처럼 씩씩하게 추는 것도 아닌데 관객들이 압도당하다시피 해가지고 박수를 치고 우는 사람도 있고 슬프게 추 않아도, 그게 마음으로 추는 춤 이고 혼이 영혼이 깃든 춤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기초를 닦아가 지고 날렵하게 추는 사람하고는 게임은 안 됩니다. 안되지만 그 사람이 살 아온 역사, 연륜, 그 예술은 체험이거든요. 쌓여온 체험, 이런 것이 발산이 될 때에 그때에 훌륭한 춤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봤을 때도 선생님이 참 부럽더라구요. 어쩌면 저렇게 출 수 있을까. 새로운 것도 없이 약간 약 간 요래 추는데. 아, 춤은 없는데 보고 난 뒤에 여운이 남는 그런 것 이 춤이구나! 현란하고 요란한 동작의 춤인데도 보고나면 안 남는 것 안 있 습니까? 박수치고 야~ 캐도 안 남으면은, 그런 춤보다는 여운이 남는 춤이 짜 춤이 아니겠나 예를 들어 글을 볼 때도 명필하고 달필하고 있는데 달필은 참 잘 쓰게 보이거든요. 말하자면 예쁘고 아름답고 이래 보이는데, 명필은 어떻게 보면 잘 쓴 것 같지 않은데 게도 109) 자꾸 이렇게 보면은 마 음에서 우러나와서 쓴 글, 정성을 다 쏟아서 쓴 글,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 지고 못 쓴 듯해도 그런 게 명필이고 잘 쓰고 이쁘고 눈에 쏙 들어오는 것 은 달필이고 이렇거든요. 그래서 나는 춤을 글로 치자면 나는 명필 쪽으로 하고 싶은 거라요. 춤을 잘 춰서 객석에 잘 보일려고 하면 손목을 한 번 돌 릴 걸 세 번 돌리고 테크닉을 많이 쓰게 되거든요. 발도 한 번 놀릴 걸 여섯 번 놀리고. 바이올린 하는 사람 그 누굽니까? 그 유박? 그 사람은 순간적 으로는 감탄을 하겠는데 감동은 안 받아집디다. 안 받아지는데 이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대중을 위한 그것도 좋지만, 역시 그 너무 쇼적 게가 있어야 좋은 건갑다. 특히 우리 같은 경우는 전통춤이니까 서양음악을 무 109) 그래도. 55

57 홍의 삶과 예술 말하자면은 지루박이나 뭐 자이브보다도 블루스 같은 음악, 탱고, 이런 음 악 쪽이 춤도 참 좋데요 보니까. 룸바 같은 것도 좋고. 자이브나 지루박 같은 것은 경쾌하기는 해도 춤의 맛이라는 것은 안 느껴지는 것 같애요. 이 렇는데 그라고 또 한 가지는 춤을 출 때는 제자들한테도 얘기해 주는데, 첫째는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둘째는 춤을 천천히 추거라. 그 다음에는 춤 을 천천히 추면서 공손하게 추거라. 손짓 발짓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좀 추는 사람들은 그런 면이 있거든요. 세 가지를 강조를 많이 합니다. 느 리게 겸손하게 편하게 편해야 됩니다. 고래야 되고. 내가 지금 이렇 게, 그 다음에 쭉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지만은 내가 살아있는 현실이라는 것은 나한테는 꿈같은 것이고, 현실이 꿈이고, 무대에 섰을 때 내가 현실감 을 비로소 느낍니다. 그러니까 항상 기다리며 사는 그런 삶이라요, 말하자 면 그리움을 기다리며 사는 삶, 춤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그리움 같은 것 이고, 그 그리움을 만났을 때에 비로소 춤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추는 춤이 나오고 출 때마다 그렇게 되면 참 좋을 텐데 소발에 쥐잡기로, 일년에 한 번 될 때도 있고, 일년에 서너 번 될 때도 있고 이래요. 지난번에 < 지전춤 > 췄을 때는 뭔가 이렇게 와가지고 이렇게 됐는데 그렇게 그것을 위해서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래서 일상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내가 또 그 자아노출과 그 커뮤니케이션이 잘 해야 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뭐라 카 노, 폐쇄증? 잘 안 나서거든요. 사람을 잘 안 만나고 집에 있을 때는 그냥 하루종일 있고 쇼핑하러 갈 때, 한바퀴 백화점, 마트 같은 데 돌고, 아이쇼 핑도 하고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시대 감각적으로 어떤 것을 더 많이 선호하는가. 이런 것도 아줌마들한테 어떤 게 잘 팔리는 가 물어보고. 신문 을 읽어도 문화면 쪽 같은데, 스타일 같은 거 중앙일보 스타일 해서 금요일 마다 나옵니다. 올 시즌 유행색상, 뭐 어 보라색이다, 보라색도 붉은 보라 색이 있고 푸른 보라색이 있는데 푸른 보라색 쪽이다. 눈에는 푸른 보라색 을 바라고 눈머리에는 황금색을 바라고 어떻게 하고 그렇게 눈을 강조했을 56

58 춤을 익히다 때는 입술은 연하게 베이지 핑크니 그 다음에 의상에 있어서도 20대 남자 들 입는 옷 보면은 스키니 (skinny jean) 해서, 검정 스키니, 셔츠도 어깨 도 잘록해서 좀 말라깽이같이 모자 하나 딱 쓰고 가방 쪼깨난 110) 거 매고 참 귀엽고 보기 좋아요. 그러고 여자들도 조금 다양합디다. 요기는 풍성한 듯 하면서도 허리는 조여주고 하는데 지금은 어깨가 커지는 시대인 거라요. 왜 어깨가 커지는고 하면은 경제 불황, 한파를 지금 맞고 있는데 여자들도 활동성이 있어야 된다해서 어깨를 자꾸자꾸 혜수 < 스타일 > 드라마 보 면은 어깨가 이렇게 크고 10 년 전에 유행했었거든요. 다시 돌아오는 것 같 애요. 그런 쪽으로는 보통 때는 얘기를 안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인제 스타 일이나 얼굴 색조 같은 거 중요하지만은 또 하나는 인제 테레비를 보면서 < 게이샤의 추억 > 해가지고 그, 혹시 봤습니까? 일본 영환데 헐리우드에서 만 들어졌어요. 유명한 감독이죠? 이름 자꾸 잊어버린다. 그 영화를 이래 보면 은 일본의 오도리( り) 111) 에서도 환상적인 자극을 주는 그런 어떤 춤들이 있습디다. 장쯔이 112)가 추는데 아주 그 좋테요. 나막신 신고 나와서 우산 쓰고 나와서 참 좋았고 그 다음에 그 용호 뭐시더라? < 용호쟁투 > 던가? 대 나무 위에서 칼싸움을 하는데 그런 것도 환상적이고 좋고, 중국 무술영화도 많이 보고 그런 데서도 얻는 것도 있지만은 춤은 일상이라서 살아보니까 그렇습디다. 예를 들어서 개미들이 물고 오고 가고 부지런히 하는데 거기다 가 음악을 넣으면 춤이 되겠는 거라요. 또 일반 사람들이 걷는 스타일 여러 가데 그런데도 음악을 맞추면은 춤이 되는 거라예. 걸어가는데도 꼬부랑 할머니처럼 이래 돼야 걷는 사람도 있고 나이 많아가지고 이래 뒤로 히 떡 113) 넘어져서 걷는 사람도 있거든요. 또 옆으로 되가 있는 사람도 있는데 110) 조그만. 111) 일 춤. 112) 장쯔이 (, 1979~ ). 중국의 영화배우. 113) 활짝. 완전히. 57

59 홍의 삶과 예술 음악을 맞춰서 세 가지를 합쳐 보면, 그것도 춤 동작으로 할 수 있도록 생 각하게 해 주거든요. 그런 쪽으로도 내가 많이 그 유심히 봅니다. 가을이 되니까 가끔씩 바람이 불면은 이캐 나무가 가지가 흔들리는 것도 바람에 따 라서 여러 가지로 다르고,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바람이 불면은 나뭇잎이 멀리서 보면 한쪽은 하얗게 보이고 한쪽은 파랗게 보이더라구요. 그런 것들 이 전부다 빛의 효과고 하니까 춤추는 사람은 조명도 기초 정도는 공부도 해야 되겠다 싶은데, 아직까 못하고 있고. 조명이 좋고 나쁘고는 분간은 할 수가 있어요. 그라고 인제 그 얘기 합디까? 아직 안하셨어요. 내가 살아오면서 용두산 공원에 갔던 거 용두산 공원에서 누가 발레를 연습시켜준다고 해서 내가 안 갔습디까? 용두 산 공원에. 가서 발레를 해보니까 도저히 안 되겠는 거라예, 다리가 벌어져 서. 그래서 마 포기해 버리고, 했는데 거게 다닐 때가 내가 조금 정신적인 성숙기였다고 할까? 그때가 몇 살 무렵이셨어요? 어 열여섯이나 다섯이나 근데, 용두산 공원에 갔다가 오면서 저기 길거 리 시장이 있어요, 요 앞에. 맛있는 음식들, 과일들 파는 거보면 먹고 싶고 하는데 용두산 공원까지 다녀올 차비만 가지고 다녔거든요. 그때는 내가 돈 을 안 벌일 때니까. 먹고 싶은 거 참고 했던 생각이 나요. 그 이후로 내가 군예대 가고 타이프 배워서 미군부대 취직하고 그럴 때는 내가 조금씩 벌이 니까 그런데는 구애는 안 받았고, 또 옛날 사 보면 알지만 내가 머리숱이 굉장히 많아 가지고 머리를 좀 길게 해가 있었는데, 부녀대에서도 그라고 몇 년 전에도 해랑 114) 선생님의, 우리나라 무용에 최승희, 조용자, 또 그 남자무용가 조택원 115) 씨, 그 다음이 해랑 선생님입니다. 부잣집 아 114) 해랑 (, 1915~1969). 마산 출신. 일본에서 이시이 바쿠, 다카타 세이코에게 현대무용을 사사. 최승희와 함께 한국 신무용을 개척한 거장으로 꼽힘. 58

60 춤을 익히다 들인데 일본에 유학을 보냈드만 공부는 안 하고 무용을 배웠어요. 춤이 좋 아가지고 ( 웃음) 동네 아가씨들, 조금 별난 아가씨들과 부잣집 아들이니까 옷 해 입혀 가지고 춤 가르쳐가 발표회하고 이랬던 분인데, 해랑 선생님 그 내가 무슨 얘기 하다가 이래 됐노? 용두산 공원에서. 그래했는데, 인제 그 해랑 선생님의 그 추모공연이 있었거든요? 그때 서울에서도 유명하지만 최현 116), 무용가 최현 남자 선생하고. 최연? 현? 최현입니다. 그 다음에 일본에 있는 정막 씨라고 해랑 선생님의 양아들이 었죠. 최현 씨하고는 형동생하는 사이고 그 다음에 그래가지고 추모공연 때 도 갔다 오고 했는데 해랑 선생님이 나를 양아들 삼겠다고 대학까지 공부 시켜 주겠다고 그랬습니다. 왜 그랬는고 하면은 마산에 있는 해랑 발표회 를 준비하는데 조금 오라 캐서 그래 갔더니만은 누가 그 당시만해도 남방춤 춰야하고 음악을 해야 하는데 한 가지 빠지는 게 있는데, 거문고 같은 건데 둥 땅 둥따둥따 ~ 만 하면 된다고 그거는 할 수 있으니까 나를 이래 보더만 자기 밑에 오면 대학공부까지 시켜주겠다고 그때만 해도 이매방 선생님 춤 이 좋았었거든요. 선생님, 그럼 그 자리에서 거문고 연주하셨던 거예요? 115) 조택원 (, 1907~1976).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28 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에 서 무용을 배웠다 년 귀국하여 국내 외에서 무용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의 현대무용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우리 춤의 흥과 아름다움을 담아 내고자하였다. 116) 최현 (, 1929~2002). 본명 최윤찬. 부산 출생. 17세에 해랑 무용연구소에 들어가 궁중무 용과 민속무용 등 전통춤을 두루 익혔고, 대다수 무용가들이 민속춤 계승에 주력하고 있던 시대에 드물게 선비춤의 맥을 이으며 전통무용에 기반한 창작무용을 선보임. 76년 최현무용 단 창단, 서울예전 ( 현 서울예대 ) 교수, 국립무용단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초대 회장 등 역임. 86 년 아시안게임 문화축전 식전행사에서 < 영고 >, 88 년 서울올림픽 폐회식에서 < 안녕 > 안무. 94 년 대한민국 화관 문화훈장 수상. 대표작으로 < 비상 >, < 시집가는 날>, < 허행초 >, < 초 라니 >, < 춘향전 >, < 심청> 등이 있음. 59

61 홍의 삶과 예술 거문고 칠 줄 모르는데, 그 두 줄만 가지고 왔다 갔다 하라는 거라예. { 네.} 그래서 시켰는데 그래 했지요. 그런 경험도 했었고, 그래서 그 이매방 선생 님의 춤이 또 좋았던 건, 어머니들, 춤을 좋아하는 어머님들이 배우는데 춤 을 이렇게 보니까 뭔지 모르겠는데 참 좋다, 지금 보니까 사선을 쓰더라꼬 예. 예들 들어서 ( 춤 동작을 하며) 이래 할 거를 이렇게 하든가 그걸 알더라 구요. 선생님이 스페인 춤을 춘다고 하시더만, 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이었구나.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국무용으로써는 사선 잘 쓰는 사람이 이매방 선생하고 서울에 가면은 예종 117) 의 현자 118) 교수가 잘 쓰고. 현 자 교수는 원래 발레로 기본을 닦는 사람이거든요. 나는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춤을 추다 보니까 사선을 많이 쓰게 되더라구요. 춤 이 론은 내가 한 3년인가 강이문 무용 평론가한테 공부했을 때 얘기하기를 맞 선 볼 때에 똑바로 보는 것보다는 사선으로 앉아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답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사선에 대한 아름다움 터득했고. 이런 경험도 했었고. 참 그 내가 춤을 추고 있으니까 집에서는 몹시 반대를 했 지요. 절대로 못하게 해서 비밀로 하고 있으면서 한번은 어느 극장에서 공 연을 하는데 아버지한데 초대권을 한 장 드린 거라예. 심심한데 구경하러 가십시오. 하고, 하고 나는 얼른 가서 분장해서 춤을 추고 다시 와서 시치 미 떼고 아버지한테 구경했습니까? 하니 그래, 했다., 괜찮습디까? 괜찮 더라. 젊은 아가 나왔는데 영국놈도 아니고 한국놈도 아니고 ( 웃음 ) 춤을 괜 찮게 추더라. 내가 남방춤 췄었는데 난줄 모르고. 예. 카믄서. 그랬는데 이매방 선생님 만나서 우리 집에서 춤도 가르치고 모집해주고. 아버지 좋아 했는데 고생한다고 못하게 하셨고. 이춘우 선생도 놀러오고, 이매방 선생도 놀러오고 술도 먹고. 이래 싸이, 니가 아직까지 장구가 약하다. 장구를 갔 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에 동네사람들이 욕할까봐. 피멍이 들고 새카맣 117) 한국예술종합학교. 118) 현자 (1947~ ).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60

62 춤을 익히다 게 될 정도로 연습도 하고. 참 많은 그 사람들 모임 있는데 가면은 내가 너 무 왜소한 데다가 머리는 또 베토벤 같이 해 있으니까 좀 이렇게 바라보 는 시선이 뭐라 할까 비웃는 시선들이 많았어요. 많았는데, 나는 그때 왜 그 런데 대해서는 의식을 하지 않고 굉장히 내가 춤을 춘다는 데에 대해서 오 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에 대해서 하이고. 119) 싶더라고요. 지금은 완전히 기도 다 죽어버리고 했는데, ( 웃음) 그때는 나도 대단한 것 같애요.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도 당당하게 가서 있었고, 이랬 는데도 다 쳐다보지요, 남자나 여자나 한번씩 한사람 처음에 쳐다보면 그 다음 몇 사람, 그 다음 몇 사람 그래 했고 하도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많이 보면서, 뭐라 카노 그 주인공들이 어떤 역경을 이겨나간 다든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그렇고. < 스타 탄생> 이란 영화를 내가 바바라 스트라이센더 120) 그 배우가 있습니다. 노래를 참 잘하죠. 그 배우가 출연한 < 스탄 탄생 > 하고, 또 주자 갈란드 121)라고 키가 자그마한 여잔데 노래를 참 잘 불렀습니다. 옛날 배운데. 그 여자의 딸이 배우가 되가지고 < 캬바레 > 라 는 영화에 출연해가지고 춤도 참 잘 췄는데 눈이 참 크고, 주자 갈란드라는 영화배우가 < 스타 탄생> 에 나오는 영화를 한 편을 봤고, 세 가지를 봤어요. 테레비에서도 보고 극장에서도 봤지만 그래 보면서 스타가 되기 위해서 그 노력, 피나는 노력을 하는 거 그런 어떤 그것을 보고는 나도 저렇게 노력을 해야 겠다. 처음에는 나는 노력파도 아니었어요. 무대 나가서 분바 르고 손들고 다리 들고 하면 되는 줄 알고 ( 웃음) 사람들이 이쁘다고 좋 다고 해 주니까 내가 잘하는 줄 알고, 개뿔도 모르고 그럴 때거든요. 그런 119) 아이구. 120) 바바라 스트라이젠드 (Barbra Streisand) 년 뉴욕 출신의 미국 팝 가수. 뮤지컬 배우, 영화 배우로도 활동함. 121) 주디 갈란드 (Judy Garland, 1922~1969). 미국 미네소타주 출생. 가수겸 영화배우로 < 오즈의 마 법사 > 에 아역으로 출연하여 육성으로 부른 주제곡 Over the rainbow' 가 1940 년 아카데미 작곡 상과 주제가상을 받음. 61

63 홍의 삶과 예술 것도 보고. 그 다음에 세익스피어의 그 줄리엣 역할을 인자 어떤 인자 아 카데미 시상식에 배우들이 파티에 왔는데 어떤 여자가 연기는 하고 싶은데 인정을 못 받고 하니까 계단 위에서 줄리엣의 대사를 읊는데, 수단? 수단 뭐였는데 내가 참 감동을 받았어요. 그 대사를 읊는데 처음에는 모두 얘기 하고 그래 쌌다가 한 사람이 그거 보고 두 사람이 그거 보고 하니까네 뭔고 싶어서 보드만은 전부 다 그 쏠려서 몰입해서 보는데, 그때 그 연기 같은 거. < 에쿠스 > 라는 연극을 봤는데 강대기 지금 가끔 테레비에 나옵디다, < 임꺽정 > 할 때도 나오고. { 네, 네.} 그때 젊었을 때 강대기 연기하는데 와~ 그때 그 눈! 그 눈의 연기! 그걸 내가 보고는 그라고 그걸 몇 번 보러 갔 거든요. 보러 가고 그때만 해도 < 에쿠스 > 의 작품 내용보다는 강대기의 연기 가 보고 싶어가지고. 그게 맨 처음에 보탬이 되었고 그라고 나서 문순태의 징소리 레비에서도 라는 소설이 나왔어요. 그 소설을 읽었는데 참 좋구나 했는데 테 < 징소리 > 를 하더라구요. 참 좋다. 혼자서 추는 춤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 어떤 옛날을 회상하면서 없어져 가는 것들, 마을이 없어지는데 그런 것들 향수를 느끼면서 춤을 한번 추어보자. 그래가지고 < 징소리 > 라는 춤을 한 번 추었는데, 그때 서울에 그 현대무용하는 이명숙이든가? 유명한 교수가 있었는데 근데 그 교수가 내보다 하루 앞이였습니다. 하고 내가 그 다음날 징소리를 했는데 안 가고 봤던 가봐요. 내가 발표를 하니까 모두 인 자 교수들하고 와서 봤던 가봐요. 제목이 < 징소리 > 니까 참 좋아가지고는 봤 는데, 너무 좋았다고 굉장히 그때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부산민속협회 그 할아버지가 날로 122) 찾아와 가지고 자네 춤추는 게 계룡산에 그런 춤 추는 사람이 있었네, 계룡산의 무당이 미쳐가지고 반미친 게이 무당춤인 데 그래 징을 들고 춤을 추쌌테. 자네하고 춤은 똑같 안 해도 그런 사람 이 있었다. 우째서 그렀는가 싶었는데 그 당시 내가 < 징소리 > 때문에 많은 122) 나를. 62

64 춤을 익히다 사랑을 받았습니다. 안무도 했고, 그라고 인제 그때 그 강대기 < 에쿠스 > 눈 연기와 민속예술협회의 어떤 느낌, 춤 호흡과 내 살풀이, 살풀이의 춤 호흡, 약간 탈춤형식에다가 살풀이 호흡에다가 강대기의 연기에다가 그때 참 많 이 호평 받고. 그 아들도 < 징소리 > 추었어요. 사 있을 겁니다. 내가 군무로, 남자들 군무로 만들어가 남자들 춤추게 했거든요. 네. ( 사을 보면서 ) 창작에서 전통춤으로 ( 함께 사을 보면서 ) 저 사을 갖다가 옛날에 지태 씨가 살아있을 때 부산일보사에 박숙자 여자 기자가 있었어요. 그 기자가 찍어준 사입니다. 그래가지고 저 사을 포토사에 내보라 해서 그래 냈었거든요. 그래서 뒤에 내가 작품을 < 장터 > 라는 작품을 내가 만들었었거든요? < 연>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 장터> 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장터의 엿장사, 새벽에 일어나 면은 그 두부장수의 그 흔드는 소리, 뭐 이런 거 해가지고 날이 밝아지면서 비단도 팔고 생선장수, 쭉~ 이래가지고 했는데 < 장터 > 하고, < 연> 이라는 작 품은 정월 보름날 되면 액땜으로 우리가 연을 띄우거든요. 액을 면하고. 연 을 날리다가 결국 끊어서 날려 보내버리거든요. 그걸 내가 옷을 사각으로 만들어가지고 돈 안 들게 구멍 뚫어서 이래 하면은 연처럼 보이게 너덜너덜 하게 천을 달아가 연꼬리처럼 보이거든요. 그래가 춤을 만들어가지고 이래 하면서 그 다음에 무당이 나와서 연이 날라가면은 < 지전춤 >, 그때 < 지전춤 > 도 굉장히 호평을 받았고. 박용구 씨라고 서울에 음악 평론가가 있습니다. 춤 지 조동화 씨하고 박용구 씨하고 다 살아계신가 모르겠다. 그 분이 좋게 평을 했습디다. 그런 것도 했었고 그 다음에 탈해가지고 괄로 123)해서 123) 괄호. 63

65 홍의 삶과 예술 마음의 신념, 념. 탈로 해서 작품을 만들었었거든예. 그것도 굉장히 호평을 받았어요. 동래 민속관에 탈 만드는 데가 있었거든요. 탈 만드는 거 이래 보다가 아~ 탈이라는 작품을 함 해봐야 싶으다 해서 인제 사람들 앉혀놓고 탈 만드는 장면, 서서 만드는 사람, 앉아서 만드는 사람, 만들다가 고민하는 사람, 이런 걸 무대 배치해 놓고 양조 음악에 고민하는 장면. 그 사람들 살 124) 돌아보면 검은 막을 쳐놓고 있는데 그 사람이 탈 만들다가 잠이 사르 르르 들면 불이 꺼지면서 이쪽에 검은 천이 이래 내려갑니다. 사람들이 천 을 들고 있다가 이래 내리면서 탈 하나씩 얼굴이 나오는 거라요. 그래 탈춤 을 한바탕 추고 다시 들어가면은 검은 천이 올라가면은 이 자던 사람들이 일어나서 다시 탈을 만드는 라요. 굉장히 그것도 호평을 받았고. 그 사람들이 말하자면 탈 춤추는 꿈을 꾼 거 젊은 시절 구술자의 춤추는 모습 124) 살짝. 64

66 춤을 익히다 무용극 형식이네요? 그 다음에 제1회 대한민국 무용제에 제가 그 각본을 써가지고 어디서 힌트 를 얻었는고 하면은 전국민속경연대회가 있는데 거기에 부산민속예술협회 에서 출전을 했는데 나도 따라갔었거든요. 보니까 동해안 별신굿에서 나와 가지고 하는데 배가 나오고 그 다음에 배에서 내려가지고 막 춤도 추고 굿 비슷하게 간단하게 하고 다시 배를 끌고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음 싶어서 서점에 갔더만 동해안 별신굿 이래 난 문고판이 있더라구요. 을유문고 애랑당 애화. 애랑이라는 여자가 남자를 애인이 있었는데 그 총각이 고 기 잡으러 갔다가 안 돌아온 거라예. 안 돌아와서 이 아가씨가 기다리다가 기다리다가 물에 빠져 죽어버렸는 기라예. 그 죽고 난 뒤부터는 고기가 안 잽히고 풍랑이 일고 해서 굿을 하면서 아가씨 원을 풀어줘야 한다고 해서 남자의 상징 남근을 크게 깎아 만들어서 당을 세워가지고 지금 강원도에 당 이 있답니다. 그걸 이렇게 모셔서 제를 지내고 나서는 고기도 잘 잽히고 사 람도 안 죽고 전설이 간단하게 돼 있습디다. 그걸 다시 내 나름대로 재밌게 얘기를 꾸며가 각본을 써 가지고 보냈더만 서울에서 각본심사에 통과 되었 다고 했는데, 출전한 작품 중에서 제일 좋았던 게 복희, 화숙의 현대무 용, < 창살에 비치는 세 개의 그림자 > 이래가지고 했는데 현대무용자, 외국 에서 갓 나와서 하니까 새로운 느낌이 있어서 좋아했고, 그 다음에 < 해랑당 애화 > 인거예요. 그때 백봉 125) 선생님도 안아주고, 조동화 선생님도 욕 봤 다고 안아주고, 하여튼 많이 찾아왔어요, 분장실에. 국립국장에서 했거든요. 그랬는데 상을 갖다가 강이문 선생님이 대통령상을 복희, 화숙 쪽으로 주려니까 홍 쪽으로 주면 좋겠다, 다시 투표를 하자 이래 놓으니 마 심 125) 백봉 (, 1927~ ). 본명 충실. 평양 출생. 최승희 무용연구소에 들어가 춤을 배우고 최승희무용단원으로 동남아시아 각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최승희의 시동생 안제승과 결혼 하여 최승희와 동서지간이 되었다. 53 년 백봉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경희 대 무용학과 교수, 서울시립무용단장도 역임하였다. < 화관무 >, < 부채춤 > 을 최초로 안무하였 으며, 1999 년 20 세기를 빛낸 예술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65

67 홍의 삶과 예술 사위원들이 심사가 틀어져가 마지막 것을 떠라버리고 다른 사람 것을 채워 가 최우수상 올리고 복희, 화숙을 대통령상 주고 이랬던 기라예. 근데 작품으로써는 굉장히 호평을 받았는데 그래가지고 그 외에 < 어느 광대의 이야기 > 해서 부산무대예술제에 작품을 냈고 그 다음에 < 승전무 > 해가지고 승무를 다룬 이야기를 무용을 했고요. 무용극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들고 창작무용을 좀 했어요, 젊을 때. 하다가 역시 창작무용은 1회용 인 거라예. 그렇게 공을 들여 가지고 왜 이럴까?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그렇 습디다. 한국은 왜 한 번만 보면은 두 번은 인정을 안 해주는가 모르겠다. < 로미오와 줄리엣 > 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하는데 좋은 작품은 나라에서 아니면은 예술가들이 자꾸 키워주어야 합니다. 한번 하고 나면은 싹 없애버리고 또 새로운 거 해야 하고 이래서 내가 짜증도 나고 전통춤 은 그 춤 하나로 10 년, 20 년 추면 춤은 늘거든요. 느니까 자연히 인정을 받 는다 말입니다. 창작무용은 한 번 하다가 열 번 하다가 한 번 못하면 확 평 에다가 내라버리고 나 인자 춤 출란다. 혼자 추니까 편합디다. 많은 사람 거느리고 가르칠라하면 시간 맞춰서 안 오지요. 그러면 또 막 애가 쓰이고, 밥 먹을 때나 세수할 때나 작품 생각하고 있으면은 어떤 때는 나 씻을 때 생각이 퍼뜩 떠오르면은 얼른 씻다가도 메모를 해야지 안 그러면 잊어버립 니다. 그래가지고 많이 했습니다, 작품을. 지금은 인자 참 춤추는 게 좋다 싶으고. 가끔씩 창작무용을 이렇게 보면은 좋기도 하면서 내가 또 생각을 많이 합니다. 창작무용도 인제는 한계에 왔구나 싶고 데 탈피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어떤 것들을 그걸 벗어나야 하는 모색을 해야 하는데 어떤 쪽으로 갈까 기대 반 또 뭐 불안 반, 이런 식으로 보고 있고. 춤에 대해서 내가 그 그렇다고 내가 춤에 왕자라든가 뭐 무슨 권위를 세울려든 가 그런 쪽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춤꾼으로서 춤에 대한 애착이 있고, 그 래서 춤에 대해 고민을 해보고 그런 거지, 통제를 하고 이런 그건 아니거든 요. 춤추는 예술가는 항상 열려 있어야지 어떤 것을 통제한다든가 대체적으 66

68 춤을 익히다 로 보면 남의 춤을 이렇다 저렇다 아이고 그것도 춤이라고 이렇게 하는 사 람들 보면은 자기 춤이 없는 거라예. 자기 춤추는 사람은 남의 춤을 말하는 게 겁이 나는 거라예. 왜냐하면 나도 아직까지는 아닌데 내가 괜히 이런 말 하면 이래 싶으고 그라고 또 뭐가 있냐면 못 추는 사람은 못 추는 사람한테서 내가 이렇게 보면은 뭔가 하나를 탁 이렇게 그게 하나가 참 중 요합니다. 5 분 동안 콩쿨을 추면은 그 순간, 2 초, 3 초. 앗 싶을 때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무조건 남을 배척하는 식으로 그런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합니다. 춤 쪽에 있어서는 권위의식을 가지고 하는 사람들 보니까 나는 좀 이렇게 춤이나 열심히 추지 왜 저렇게 하는고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 습니다. 그 또 행정하는 사람이 안 있습니까? 그런 거는 행정하는 사람한테 맡겨야지 편때 126) 잡는 사람은 그 쪽으로 일을 해야 하고 춤추는 사람은 춤 추는 쪽으로 해야 되고 춤추는 사람들이 편때 잡고 어중간하게 하는 그런 거는 싫대요. 그런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봐서는 이론이 무용이라고 생각한 단 말입니다. 이론이 예술이라고 이론이 결코 춤은 될 수 없습니다, 절대 로. 이론이. 이론이 예술도 아니고 이론은 마 춤이 어떻다, 춤 속에 어떤 생 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춤의 철학이다, 사상이다, 춤을 만든 의도가 어 떤 것이다, 춤을 오른팔이 나갈 때는 왼발이 나가고 왼팔이 나갈 때는 오른 발이 나가고 이런 것을 글로써 표현한다 뿐이지 춤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착각을 하니까 그런 것도 시정이 되었으면 좋겠고. 또 공존을 해야 된다는 그 말을 하고 싶은 게 어떤 특정한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자아노출을 많 이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무슨 행사 있을 때 많이 쓰는 거라요. 춤은 잘 추고 못 추고 상관없이. 그런 것도 없어졌으면 좋겠고. 인 제 내가 나이가 들고 원채 춤을 많이 추다 보니까 지금은 이제 행사가 있으 면 행사가 있으면 넣어 줍디다. 한 60 대 까지는 별로 안 그랬습니다. 춤만 126) 펜대. 67

69 홍의 삶과 예술 출 줄 알지 말로 올케 할 줄 아나 무슨 생각이 있나 머리에 든 것이 뭐가 있겠노 아주 그렇게 갖잖게 여기는 쪽으로 물론 나한테 책임이 있겠지 만서도. 또 뭐시고 하면은 예를 들어서 대학 교수들이 공연을 안 합니까? 하면 무용가들은 마 모든 것을 전패하고 가서 얼굴도장 찍고 봉투 내 놓고 왜냐면 자기 애들 입학시키려고. 그런 식으로 하는데 나는 그 시간에 춤을 한 번 더 추는 쪽이었거든요, 안가고. 손해는 많이 봤죠. 물질적인 손해는 많이 봤지만은 그래도 좋으나 나쁘나 홍류의 춤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나로써는 흡족할 수 있고. 그 참 누구 류의 춤이 쉽지가 않거든요. 그게 참 좋고. 춤의 호흡도 내 춤이 그랍디다. 광주에 갔더니만 광주에 있 는 제자가 선생님 춤은 특징이 있어요, 특이한 데가 있어요. 그러더라구요. 그게 뭔지 나는 모르겠는데 특이한 데가 있고 좋다하고 하는데 그런 건 난 모르겠지만. 자기 춤을 자기가 다 알고 내가 춤을 잘 춘다, 이라고 자신 있 게 떠벌리는 사람들을 봤는데 내 춤이 어떤 춤인데 그러면서 어떻게 그 춤 을 터득하고 경지에 올랐는가 알고 싶어요. 나는 그 아무리 생각해도 모 르겠는 게 그 춤을 가르킬 때 어떻게 해라 저떻게 해라 너무너무 자신 있게 가르치는 게 학생들한테 가르치는데 기초적인 것을 맞겠지만 춤으로써 볼 때는 그걸 벗어나야 인제 되는 건데, 그게만 127) 얽매여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식으로 춤추면 어른 춤이 아니거든요. 의욕만 충만한 아마츄어밖에 안 돼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내가 참 많이 혼자서 많이 그 들어앉아서 춤 추고 내가 또 술도 억수로 많이 먹었습니다. 그 보통 소주가 두 홉짜린가? 이럴 겁니다. 근데 소주 로가 반 되짜리가 나왔었어요. 큰 병 말고 중간 병이 나왔어요. 그 반 되짜리 고걸 한 병 마시면은 그때부터 술 맛이 술 마 시는 거고. 그래가지고 한참 호열자 병이 막 돌 때 소주 마시면 예방된다고 해서 그 핑계로 소주 사다놓고 고추장 마늘 가져다 놓고, 아침에 소주병만 127) 거기에만. 68

70 춤을 익히다 세면 마흔 세개! 제자가 맨날 그랬습니다. 술을 내가 막 묵다가 황달병에 걸 렸어요. 3 년 고생하고 재첩국을 내가, 그때만 해도 재첩이 하나가 손 마디 만 했어요. 컸습니다. 내가 재첩을 세 가마니 이상 먹었습니다. 소 쓸개도 쓴 것 묵고 여러 가지 먹어 겨우 회복이 되어가지고 나았는데 연구소를 하니까 그것도 모략을 해가지고 홍 선생은 아파서 다 죽어간다 이렇게 소문을 다 퍼뜨려 가지고 서울에서 이매방 선생님이 내려왔습디다. 너 어 떠냐? 그래서 와요? 했더니 너무 아파서 다 죽어 간다고 소문이 났더라. 하면서 그런 모략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학생들 보낼 것도 안 보 내고 왜 그런 것 안 있습니까? 그랬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지금 생 각해 보니까 고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고, 나는 어떤 자리에 내가 저 춤의 해 ( 벽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키며 ) 저기 92 춤의 해, 서울에서 만들어 온 거거든요? 그때 내가 부산의 지부장이었고, 춤의 해 운영위원이었고. 그 때 서울의 문예회관 대강당에 운영위원들 모이면은 그 카메라맨들이 나를 사을 많이 찍었어요. 그때만 해도 머리숱도 많고 이렇게 양복을 입고 나 가면 마 괜찮았던 가봐요. 사을 찍고 또, 일본의 공연을 안 갑니까? 내 가 검은 양복을 잘 입거든요. 모두 내가 단장인 줄 알고 마중 나온 사람들 이 시청에서 내가 참 민망스러울 때가 많았고. 광주에 심사 보러 갔는데 그 서도 또 나한테 또 먼저 인사를 하는 거라예. 한번은 광주에 다방에 갔 는데 남자가 서빙을 합디다. 그래서 우스개로 교수인데 여기 누가 교수겠 노? 이래 물으니까 그 총각이 날로 가리키면서 이분요. 이러더라구요. ( 웃 음) 짜 교수는 물어 본 사람이 교수였는데. 그런 에피소드들도 있고, 참 그랬었는데. 69

71 홍의 삶과 예술 일본에서의 명무전 일본에 가서 춤췄을 때 < 한량춤 > 을 췄었거든요. 보통 일본에서는 잘 추면은 스바라시이! 128) 되게 좋으니까 스고이! 129) 카던가? 짝짝짝하는 앵콜 박수 도 받아봤고 < 승무 > 를 한번 추었는데 < 승무 > 를 추고 나서 식당에 옮겨 가 지고 밥을 먹는데 서빙하는 아줌마들이 전부 나한테 한 가지씩 가져오는 거 라예, 음식을. 선생님 춤이 좋았다하면서. 일본의 유지들도 거기 앉아서 오 늘 소매 긴 소매 입고 춤 춘사람, < 승무> 인데, 제일 좋았다. 그때가 아마 명무전 이었습니다. 이생강 130) 씨하고 박동 131) 할아버지도 갔고, 소 희 132) 선생님도 있었고. 일본에서 명무전 하신 거예요? 예예. 또 수악 133) 선생님도 있었고 정경숙 씨도 있었고. 그랬는데 일본에 가가지고 음 내가 왜 이래 깜빡 잊어버리노? 시간 보니까. 음 일본에 가서 < 살풀이 > 를 한번 추었거든요. 그런데 장애인들 있는 데가 있습디다. 거기서 < 살풀이 > 추는데 어찌나 모두 조용하게 이래 해주던지 수악 선생 이 구음을 해주고 소희 선생이 구음을 해주고 둘이서 교대로 해줍디다. 해주는데 어찌나 조용하게 아구 마치고 나니까 그랍디다. 오늘의 그 뭐라 카노, 음. 영어로 뭐라 카든데 오늘의 히트는 홍 씨의 < 살풀이 > 였 128) 일 [ ] 매우 훌륭하다, 기막히게 좋다, 멋있다는 의미의 일본어. 129) 일. 일본 유행어로 대단하다. 라는 의미. 130) 이생강 (, 1942~ ). 호는 죽향 ( ) 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 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대금( ) 산조의 명인. 131) 박동(, ). 충남 공주 출신, 판소리 명창. 흥보가를 처음 완창하여, 판소리 완창의 시대를 개척하였다 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 호 적벽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132) 소희 (, 1917~1995). 본명 순옥 ( ), 호는 만정 ( ) 이다. 전라북도 고창 ( ) 출신. 판소리 여류 명창 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 호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133) 수악 (, 1926~2009). 본명은 순녀 ( ) 호는 춘당이다. 경남 함양 출신 년 중 요무형문화재 제12 호 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또한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 호 주교방굿거리춤 기예능보유자이다. 교방굿거리를 춤을 위한 평생을 바친 명무이다. 70

72 춤을 익히다 다. 이렇게 말을 해 줬고, 그 다음에 승무를 췄을 때도 내가 왜 이리 자 꾸 뭐시기 잊어버리노? ( 웃음 ) 사을 찍자고 모두 그러고 일본 교포가 파티를 한 번 열었는데 우리가 갔다고. 명무전 이게 몇 년 이었어요? 그러게요. 어 박동 선생님이 살아계셨을 때다. 돌아가시기 한 10년 전 쯤 됐습니다. { 음 } 그래가지고 내가 < 승무 > 도 추고 < 살풀이 > 도 추고 화전 춤도 추고 하니까 박동 선생님이 분장실에다가 모이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일본에 와서 참 좋은 것을 하나 발견했다. 정말 좋은 것을 발견했다. 홍 이가 국악인들이 좋으니까 욕을 섞어서 합디다. 홍이가 좆같이도 춤 을 ( 웃음 ) 잘 추었어. 삶아 놓은 씨래기 134)처럼 노리탱탱하이 135) 처음에 공 항에서 만났을 때는 노리탱탱하이 삶아 놓은 죽 같더만은. 춤추는 것 보니깐 딴 판이다. 카믄서 홍 씨 춤 잘 추는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 알고 보니 이매방이 제자인데, 참 잘 춘다, 과연 잘 춘다. 하고. 앞으로 누가 춤 배울 사람 있으면 홍이한테 배워라. 하고. 이렇게 세 번인가 해 줍디다. 내가 아직까지 스승한테도 그런 칭찬을 못 받아 봤는데. 그 분이 그렇게 해 주니 까 참 너무나 고맙고. 무용 생애, 내 생애 참 고맙고. 그 다음에 또 한 분이 있어요. 소희 선생님도 칭찬을 해 줍디다. 그렇게 칭찬을 해 주시고. 수 악 선생님도 잘 춘다고 칭찬을 해 주고. 이래 했는데 그라고 누구보다도 또 한영숙 선생님. 음 같이 가셨나 보네요? 한영숙 선생님이 내가 국립국악원에서 주최하는 무형문화재 공연 해가지고 극장 무료로 대관해 주고 팜플렛 만들어 주고 이랍디다, 옛날에. 고 내가 출 연하면서 한영숙 선생님을 특별출연으로 부탁을 했더만 그분이 리허설 할 때 모니터를 본 거라요. 모니터를 보고는 춤 들어가는데 보니까 올라와가 134) 시래기. 135) 노리탱탱하니. 노리탱탱은 핏기 없이 누런 뜻의 경남 방언. 71

73 홍의 삶과 예술 있더라구요. 그래놓고 춤 끝나니까 아 오더니만 자네가 이름이 뭔가? 예, 홍입니다. 선생님 저 모르겠습니까? 그러니 글쎄. 하시더라구요. 선생님 연수회 할 때 자네 어디 사람인가? 해서 부산사람입니다. 하니 아, 저기 부산의 고깃배 타는 것들 사는 데? 웃으면서 안 그랬습니까? 제가 제 자 되고 싶다고 하니까 나이가 많다고 하시고 그랬는데요?, 그랬던가? 근 데 자네 춤이 참 좋네. 카더만은 이매방 선생님이 그때 그 옆에 계셨거든요. 매방이, 자네 제자가 임이조 136)니 누구니 누구니 해도 자네 제자는 이 사 람이다. 부산에 있지만 이 사람이다, 이? 내 말 명심해라. 몇 번을 다짐을 하고 강이문 선생님이 그때 서울까지 구경을 오셨었어요. 강이문 선생님 보 고 홍 춤이 예사 춤이 아니니까 강 선생님 알아서 잘 좀 보살펴 줘라. 카면서 신신당부를 하고. 그래 했고 또 3년인가 있다가 이수자 발표 공연이 있었어요, 코리아하우스에서. 그때 한영숙 선생님이 늑막염이 걸렸을 땝니 다. 걸려가지고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가 오신 거라요. 와가지고 그때 매자 선생이 이수자 시험칠 때입니다. 나는 이수자가 되어 있는데 또 한 번 춤을 추라고 하더라구요. 그랬는데 내보고 분장실에서 니가 후계자가 되어 야지 만약 다른 사람이 후계자가 되면은 박살을 내 놓을 거야. 카고 그렇게 참 고마우신 참 한영숙 선생님 참 고마우신 분이고 그렇습니다. 오늘은 더 생각할려고 하니 또 5시에 공연이 있어 가지고 가야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구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너무 지루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136) 임이조 (, 1950~ ). 본명은 임규흥. 충남 대전 출생. 송범에게 발레를 배웠으며, 이매방, 숙자에게 전통춤을 배웠다. 현 서울시립무용단장, 중요무형문화제 제27 호 승무 전수교육 조교 및 중요무형문화제 제97 호 살풀이춤 이수자. 72

74 춤을 익히다 젊은 시절의 홍 ( 왼쪽 아래: 홍 ) 73

75 홍의 삶과 예술 젊은시절의 홍 (1952 년) 74

76 춤을 익히다 홍의 장구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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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춤집을 만들어가다 제3 차 구술 채록문 춤집을 만들어가다 오늘은 2009 년 10월 15 일이구요. 홍 선생님 구술채록 제3차 면담입니 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35 분입니다. 네, 이제부터 홍 선생님의 구술 을 듣겠습니다. 네, 선생님 오늘은 어떤 얘기 해주실 건가요? 홍무용학원 ( 구술자, 조사자 ) 79

81 홍의 삶과 예술 전통예인들의 그늘 오늘은 그 6 25사변 당시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사변 당시에 우리 전통 하 는 사람들이 매우 말하자면 겪었던 아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고, 내 가 또 아팠던 것도 이야기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6 25사변 나고 학교 갔다가 올 때에 거리에서 보면은 나이 많은 아주머리라기엔 그렇 고 초 할머니.. 문을 닫을까요? 갑용아! 문 좀 닫아라. ( 휴대전화 울림 ) 핸 드폰 좀 받아도 되겠습니까? ( 전화통화 후) 됐습니다. 어 해방되었을 땝 니다. 6 25사변이 나기 전이지만은 내가 학교 갔다가 이렇게 오면서 보면 은 거리에 그 나이 많은 아주머니라기보다는 할머니가 길거리에 자리를 깔 아놓고 가야금을 타면서 소리를 합디다. 그 하도 소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소리가 잘 안 나와요. 안 나오는데 그렇게 소리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푼 주면은 그걸 받지만은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거의 그냥 지나치더라꼬 예. 그렇게 하는데 그런 것을 봤을 때 아우, 그렇게 저런 우리나라 전통 음 악이나 머 이런 걸 하는 사람은 저렇게 고생을 하는 갑다. 저래 고생을 해 야 되는가 말로가 참 안 좋다. 참 이렇게 비참하다 싶은 게. 나도 그 전통까지는 생각 안 해도 예술 계통으로 그 꿈꾸던 사람이라서 생각을 많이 하고 마음이 참 아픕디다. 근데 그런 게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여러 군데에 서 봤습니다. 여러 군데서 봤는데 그 사람들이 밥도 제때 식사도 못하고, 그 참 생활을 하기 위해 나와서 할 줄 아는 게 그거뿐이니까 그렇겠지요. 그래 가지고 하는 그런 것들을 봤을 때 참 마음이 아팠고, 고 다음에 또 어 리나라 농악 안 있습니까? 그 정월달이나 추석이나 설에 되며는 풍악을 치 는데, 걸궁을 하면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치주고 이래 하는데 우 그걸 그 이 웃에서 모두 신고를 합니다. 하면은 파출소에서 나와 가지고 그 사물놀이 하는 장구, 징, 꽹과리를 전부 다 압수해버려예. 압수해버리고 그 사람보고 는 다시는 못 하게 하고 이런 예가 참 많았었거든예. 지금 오늘날은 그런 80

82 춤집을 만들어가다 것들이 전부 문화재가 되고 참 좋아졌지만, 그 당시에 그 정치를 한 사람들 이나 지식층에 있는 사람들이 제가 볼 때는 너무나도 큰 실수를 범한 것 같 아요. 예. 우리나라의 것을 문화에 대한 가치를 너무 업신여기고, 또 한동안 삼베나 모시 같은 거는 옷으로 취급을 안 했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미국에 서 그 나야가라 하면서 나일론 같은 게 들어왔거든 그 구겨지지도 안 하 고 다리미질도 안 하는 게 있어서 그걸 입고 하니까 그걸 최고로 잡고, 삼 베나 모시 값은 왕창 떨어져 가지고 그야말로 비참할 정도로 그랬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니까 이제 수공업도 알아주고, 이제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아 주기 시작하면서, 문화재도 생기고 하니까 삼베도 값이 올라가고, 모시도 엄청나게 값이 올라가고, 모시 두루마기 같은 거 하나 입으려면 엄청 값이 비싸죠,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네, 그렇고. 나일론보다 그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도 겪고 했을 때, 하여튼 어 젊은 대학생들도 제가 이야기를 들 어 보면은 패티의 노래는 굉장히 환영을 하면서 이미자의 노래는 말을 해서 좀 그렇지만은 괜찮습니까 말해도? 나쁘게 표현을 할 텐데 ( 웃으며 ) 말씀해 주세요. 이런 아주 그 거지 깽깽이 같은 소리다. 이런 식으로 하더라꼬예. 그런 말을 들 었을 때 대학생들의 그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당시만 해도 무조건 외제를 너무나 좋아했고, 지금도 좀 그렇죠? 예, 복부인들도 그렇지만 머 무 조건 다 그렇는데.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 먼 훗날을 봤을 때 그래도 지 금은 이미자 선생님은 그 문화훈장도 받았잖아요. 받았고, 어 그 세종문 화회관에서 그 리허설을 했을 때 패티이 하고 좀 있다가 이미자가 했는데 어 그러니까 어머니들, 춤추는 문화교실 어머니들이 이미자가 이겼다. 패 티은 저 너무 오바 137) 를 해가지고 잘 할려고 하니까 오바해 가지고 안 나 오는 소리를 억지로 내고 연습을 하니까 소리가 잘 안 됩디다 노래가. 나는 137) 과장. 지나침. 81

83 홍의 삶과 예술 텔레비로 봤지만. 근데 이미자는 평소 자기가 부르는 대로 평상심이죠, 평 상심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굉장히 수월하게 부르고, 이러니까 참 듣기도 좋 고, 그렇습디다. 그런데 어 문제는 패티은 외국에 있었으니까 세련되고, 좀 말하는 거나 매너 같은 것이 좀 제스쳐 138) 같은 것이 현대적 감각이고, 세련되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그쪽을 좀 선호하고, 이미자는 좀 세련되지 못 하게 보고, 이래서 무시했는 거 같은데, 그런 우리의 부끄러운 일들이 지 금 내가 이래 생각하니까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까 떠오릅니다. 떠오르고, 그라고 내가 춤을 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릎이 시큰시큰하면서 그 시큰하면 서 머라 카노 그 탁탁 울리는 거라. 이상하다 싶어서 일어날라니까 못 일어 나겠는 거라. 힘이 빠 거 같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래서 벽을 짚고 일어나고 앉을 때도 벽을 짚고 앉고, 갑자기 그래 됐는데 겁이 납디다. 겁이 났는데 그때 그 우리학원에 입시생들 많았거든요. 그래서 연습은 시킬 수 있으니까 시키고 인자 춤이 마지막이 될란가 싶어서 그 당시만 해도 옛날 속담에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헐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 는 속담이 있거든요. 그래서 옷이라도 좀 사놔야 되겠다, 내가 춤을 못 추게 됐을 때 친구들 찾아가더라도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을 제대로 받아 먹을려면 옷이 라도 잘 입어야 되겠지 싶어서 코트를 다섯 개 샀어예. 오바코트를 다섯 개 사고 양복 더 몇 벌 사고 이렇게 하면서 했는데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가 우연히 그 누구한테 듣고는 약국을 가니까 그 서울대 졸업한 약산데 그 신경통, 관절염 약만 지어주는 데가 있습디다. 근데 선생님, 이 약 먹으면 은 일주일만 먹고 나서 바로 연습하면 됩니다. 이라더라고예. 그래서 내가 집에 돌아 와가지고는 그 날로 139) 잡았어예, 그 국립국악원에. 그 그때 무형문화재 정기공연 해가지고 극장을 대관을 무료로 해줍디다. 그때는 그 생음악도 무료로 이렇게 해주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에는 138) 몸짓. 139) 날을. 그랬는데 그래 82

84 춤집을 만들어가다 서 극장 대관을 해놓고 내가 마지막으로 춤 한번 추고, 이제 그만둬야 되겠 다 싶어서 그래가지고 그 연습을 할 때마다 그 아스피린 그 두 알을 갖다가 우유 한 컵에다가 아스피린 깬 걸 타가지고 그래 마시고 춤추니까 통증이 덜하데요. 그래서 연습을 밤 1시 2시까지 수업 마치고 하니까 1시 2시까지 이래 하는데. 그때 내 혼자 하니까 너무 좀 어 긴장이 안 되는 거 같 아서 누굴 좀 불러다가 봐 달라고 했어예. 옛날에 이매방 선생님 밑에 내랑 같이 있던 제자가 여자 제자가 있었는데 강옥란이라고 있었습니다. 강옥란 이 하고, 또 내 제자 남자 제자 저 조문호. 조문호라고 있었는데 조문 호가 참 그 시도 잘 쓰고, 이렇게 문장력이 참 좋고, 또 이렇게 미적 감각이 뛰어난가봐요. 미술 전람회나 붓글씨 저 전람회 같은 데 가면 좋은 그림을 탁탁 집는 걸 보니까 놀랍더라고예. 나이는 어려도. 그래서 그 그 친구가 제자 조문호가 내보고 춤을 추면은 보고 하는 말이 선생님 춤이 너 무 감각적입니다. 이랍디다. 그래서 무슨 말인고 싶어가 처음에는 감각 적이라고? 예. 못 알아듣고는 그냥 자꾸 추면서 추니까 선생님, 춤을 너무 많이 춥니다. 춤을 좀 안 추는 것처럼 춰보세요. 이라더라고요. 그래 카고는 그 말은 알아듣겠는 거라요. 그래서 인제 그 춤을 하나, 둘, 셋, 4박 자에 춤을 8 박자로 늘리고, 그 다음에 될 수 있으면은 동작을 갖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춤을 안 추고 멈추면서 느낌으로, 느낌으로 이렇게 그러니까 그 게 느낌이 나와야 그게 아마 보는 사람한테 전달이 될 겁니다. 아마 그게 인제 그 내가 절에 다니다가 보니까 내재율. 내재율 이라는 그 말이 아마 그 말하고 통하는 거 같습디다. 그래가지고 그 훈련을 하고, 춤을 추고 또 연습을 하고 이래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감각적이다. 감각적이 다. 아! 우리 이매방 선생님 춤이 감각적이거든요? 어 오로지 그 우 리 선생님 춤은 스승이지만은 저 제가 인자 가장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 는 스승입니다. 스승이지만은 그래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 또 우리 스승님을 봤을 때 내가 또 느끼는 점입니다. 이런 거는 아무런 사적인 감정이나 머 83

85 홍의 삶과 예술 그런 걸 떠나서 하는 얘긴데, 우리 선생님은 인자 저 굉장히 낙천적이고, 낭 만적이고 하기 때문에 무대 나가면 굉장히 즐겁고, 또 그날 무대 나갈 때 기분이 좋으면은, 자기 기분이 살면은 추임을 많이 넣습니다. 많이 넣고 이 래하는데 춤을 추기 때문에 어. 그니까 참 오바할 때가 많죠. 많고 하니까 너무 감성적으로 매우 감각적인 춤이고, 또 그러니까 매우 감각적인 것을 대중들도 매우 좋아합니다. 예, 대중들이 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 래서 아, 그것이었구나! 싶어가지고, 내가 그때부터 인자 될 수 있으면은 이쁘게 안 보여야 되겠다. 어 춤 지에, 어느 잡지를 보니까 어 부산대 학에 미학 교수로 있는 그 ( 아들을 찾으시며 ) 갑용이 어디 갔노? 내가 이름을 잊어버려싸서. 그 교수가 인자 그 한 페이지 내놓은 걸 보니까 미에 대해서 미에 대해 내 놨는데 아름다움이란 것은 우아미도 있고 또 골 계미도 있다. 이래 놨더라꼬예. 그래 골계미 골계미 그래 또 사전을 찾아보고, 이라니까. 아, 그때 내가 그 꽃꽂이하는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가지고 춤을 함 춰달라고 그래서 꽃꽂이 전시회 하는 데 가서 춤을 춰줬 는데, 그 선생이 기념으로 내한테 책을 한 권 주는데, 그 선미로 된 꽃꽂 이. 그래 보니까, 꽃을 꽂아놨는데 그 옆에 이 돌을 이렇게 놨는데 그 돌만 따로 보니까 머 별 그렇게. 그런데 꽃하고 돌하고 같이 놓으니까 꽃이 아름다워 보이고 돌은 돌대로 참 좋아 보이고 이렇습디다. 그래서 아,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 꼭 우아한 것만이 아니구나! 머 이래가지고, 그 부산민속협회에 가 가지고 할아버지 추는 춤이나 탈춤 추는 춤, 그런 걸 보면은 춤이 좀 거칠거든요, 그런 거는. 나는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로 내가 봤을 때는 그 춤은 그대로 거친대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느꼈고, 그러니까 자연히 차츰차츰 생활하다 보니까 어느 날 인자 그 춤의 해 140) 에 제가 그 지부장을 했었거든요. 부산협회 했고, 서울에 머 운영위 140) 1992 년. 84

86 춤집을 만들어가다 원, 머 이래 돼 가지고, 서울도 왔다갔다 하고 할 땐데 그때 회의가 있을 때 인자 그 어느 여교수가 조금 늦게 왔습디다. 늦게 왔는데 보니까 그 여 교수가 자기도 공연을 앞두고 인자 머 여러 가지 작업을 하다가 밤샘으로 잠도 못자고, 또 연습하고 온다고 이래 오면서 그냥 분바르고 머 대충 바르 고 왔는데 아이세도우가 한쪽 눈은 좀 짙으고 한쪽 눈은 좀 옅으고, 입술도 약간 비뚤어지고 했는데 그런데 ( 뺨을 만지며 ) 요 피부가 이렇게 건조합디 다.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이렇게 해 놓으니까. 그랬는데 그 분을 바르니까 분이 이렇게 떠가 있는데도 그게 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더라고 예. 그래서 아, 아름다움이라는 게 꼭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아름다움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병마와 싸우며 춤의 길을 보다 인제 제가 그 춤을 추면서 그 신경통, 관절염 약을 먹으면서 2년만 먹으면 된다는 걸 제가 3 년을 약을 먹었거든요. 겁이 나서. 그래가지고 3년을 먹고 나니까 관절염이 나아서 모르고 있었는데 어 감기가 온다던지 독감 이 온다던지 아니면 내가 몸이 안 좋아 가지고 많이 아플려고 하면은 무릎 이 아픈 거라요. 그래서 이거 또 재발하는 건가 싶어서 걱정을 했는데 그 병이 나타나니까 무릎이 안 아픕디다. 그래서 인자 안심을 했는데 그라고 한 몇 년 가니까 한날은 송곳을 가지고 팍 찌르는 거같이 무릎 있는 데가 깜짝 놀라[ 거리는데 ], 알고 보니까 인제 그게 신경통인가 봐예. 그래가지고 또 신경통 약을 또 좀 먹으니까 이렇게 자꾸 얼굴이 붓습디다. 붓고. 가만히 있는데도 오줌이 누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오줌이 쌌는 거라 예, 조금. 그래서 약을 끊고, 견디기로 하고. 이래 했는데 옛날에 내가 그 해병대 위문단에 가서 일선지구에서 추운 겨울에 야외무대에서 춤을 추 85

87 홍의 삶과 예술 다 허리가 삔 것이 그게 원인이 돼서 지금 그 좌골 신경통이 굉장히 아파요. 아침에는 일어나면은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좀 이렇게 슥~ 일어나가지고 그래 화장실에 갔다오고 이라는데, 그래도 인자 자꾸 내가 몸을 풀고 해가 지고 지난번에 < 지전춤 > 출 때 국립국악원에서 출 때도 그런 식으로 해가 지고 추고 그러니까 춤 출 때는 아무도 내가 아픈 줄 모릅니다. 모르고 내 가 이렇게 어 알고 이렇습니다. 이렇는데 자랑을 안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그 많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아픔 을 동반하면서 춤을 춰 오니까 춤에 대해서 조심성이 저 춤에 접근할 때 에 좀 더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춤을 대하게 됩디다. 안 아플 때는 그저 막 까불고 싶고 그렇잖아예? 그게 없어지고 나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자세로 춤을 추게 되고. 그래, 그 춤의 아름다움도 여러 가지구나 꼭 겉으로 나타낸다고 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안으로 이렇게 발산되는 게, 이것이 참 아름다운 춤인갑다. 싶으고 그리고 어 밤에는 잠을 안 자고, 아파서 잠을 못 잡니다. 잠을 못 자면은 그 테레비를 틀어보면은 가끔씩 그 명화를 하거든요. 옛날에 봤던 영화지만은 그 뮤지컬 같은 거나 이런 거 어 우짜 다가 하면은 밤을 새더라도 그거를 봅니다. < 빠담빠담 > 하는 거, 그거 샹송 의 여왕 에디트 삐야프 141) 그 여자의 일생 같은 거는 제가 한 30여 년 전에 도 소설로 읽었고, 또 영화도 봤고 또 에디트 삐야프가 나오는 < 빠담빠담 > 하는 일생 그거, 인자 대역도 하고 또 에디트 삐야프가 나와서 이야기도 하 고 하는 그런 식으로도 봤고. 이번에 본 거는 또 다른 나라 여자던데 참 잘 합디다, 연기를. 그런 것을 보면서는 예술 혼 이라는 것이 어떤 것 인 가, 어 예술에 대한 열정, 모든 것을 그 거기에 다 바치는 그런 그 아름다 운 마음가짐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돈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 을 안 쓰는 쪽이고 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돈을 위해서 춤을 추고 돈을 141)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1915 프랑스의 대중적 국민가수 그녀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1963).. 영화와 드라마가 여러 편 제작되었음. 86

88 춤집을 만들어가다 위해서 뭐시 기획을 하고 홍보를 하고. 머 이래가 공연을 하고 이런 거보다는 돈에 구애를 안 받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예술가가 제일 행복하지 않겠나 싶어요. 싶은데 보니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막 이렇게 공연할 때 표 한 자리라도 더 팔려고 애를 쓰고 물론 표 파는 것도 좋지만은 표 팔아야지요. 그래야 춤에 또 그 위상도 높일 수 있지만은 나는 아예 미안해서 표를 못 팔겠고, 또 남한테 강요를 못하는 성품이라서 이번 에도 초대공연입니다. 지금 나는 여태까지 돈을 받고 공연을 해 본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 공연 신청해가지고 신청금 나오면은 거기다가 플러스 내 가 욕심이 많아서 내 돈이 들더라도 이렇게 의상 하는 데 보태고, 머 품 하는 데 더 보태더라도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공연을 하고 이렇게 하지 그래서 그 그런 예술가들의 그 일생이라던가 < 스타 탄생> 이런 걸 보면 은 스타가 되기 위해서 그 노래 연습을 하고 또 여러 가지 연습 고된 훈련 을 많이 합디다. 그런 것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또 연기자나 배우가 되기 위해서 세익스피어의 < 로미오와 줄리엣 > 을 대사를 다 외워가지고 그 배우 들의 아카데미상 시상식 끝나고 나서 모여서 파티할 때 그기에서 그 대사를 한 여배우가 읊어요. 한 이름 없는 여배우가 읊으면 처음에는 안 듣고 있다 가 한 사람 두 사람 보기 시작해 가지고 시선이 집중되고 심취하고 이러는 데. 그런 걸 봤을 때에 그 예술혼이 어떤 것인가 그 예술은 절대로 관객을, 무대를 의식 안 하고 관객을 의식 안 해야 되겠구나. 홍신자 씨의 춤을 내가 봤는데 그 사람도 춤 자체의 동작선이라던가 이런 것은, 방향감 각이라던가 이런 것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방향감각도 말하자면 우리나라 옛날 춤 보면은 자리 깔아놓고 앞에서도 뒤에서도 다 볼 수 있는 그런 춤을 췄듯이 그런 의식 안하고 추는 투고, 그리고 자기가 웃고 싶으면 객석을 보고 잘 보이기 위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그냥 땅을 보고 허허허허 웃는데 그래도 이렇게 강하게 이렇게 옵디다. 내가 테레비에서 봤는데 그게 밤 2 시에 하던가 하는데, 내가 두 번을 봤어요, 홍신자 씨 그 춤을. 그래서 소 87

89 홍의 삶과 예술 아, 저것이 예술 혼이로구나! 물론 춤을 동작을 이쁘게 하기 위해서 선을 이쁜 선을 위한 훈련도 중요하지만은 정신도 참 중요한갑다. 정신을, 중요 한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되니까 자 연히 그 법정스님의 무소유 라는 책을 제가 맨처음에 읽었을 때 오래 됐 습니다. 참 비운다는 거, 비운다는 거 그게 뭣인가 하고 생각을 하는데, 생 각만으로는 안 됩디다. 내가 춤을 연습을 저 입시생들 연습을 마쳐놓고 혼 자서 이래 하는데, 한 두 시간씩 이래 하니까 나중에는 온 만신이 막 뼈마 디가 아프고 막 꼼짝도 하기 싫은데 그래도 해야 되기 때문에 음악을 탁 트 니까 나는 춤을 안 추는데 몸이 지가 알아서 춤이 춰지더라고예. 그랬을 때 아, 이것도 마음을 비우는 하나가 되겠구나! 싶고 나는 의식을 안 하는데 그래서 그 거기에서 아, 연습을 많이 해야겠구나! 생각을 했고 어렸을 때는 춤 처음 배울 때는 스승한테서 하나 둘 발 띄는 법, 손 팔 올리는 법을 배 우지만은 그것을 넘어서 그 다음에는 테크닉을 배우면서 춤추는 사람이 그 래도 이렇게 생각을 사유를 한다할까 이렇게 해야 되지만, 예전에는 그런 걸 몰랐어요. 몰랐는데 살아가면서 또 법정스님의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자꾸 알게 되고 이래 됐는데, 그 사유한다는 것이 좀 책을 조금 이렇게 하 다못해 만화가 되든 잡지가 되든 읽어야 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신문에 문화 면도 읽고 또 인제 여러 가지 내한테 필요한 그런 책들 베토벤 일생도 영화 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뭐 이런 거 피카소 그 사람의 생애 영화도 보고 책 도 읽어 보고 했는데 예술은 결국 순수해야 되고 동심이어야 되고, 또 순수 한 동심의 장난 같은 그런 장난기. 왜 내가 그걸 느꼈냐면은 이름을 자꾸 잊어버리는데 그림에 보면은 바이올린을 이렇게 바이올리니스트가 있는데 지붕이 이래 있는데 지붕이 거꾸로 되가지고 이렇게 바이올린 켜고 있고 사 람이 거꾸로 이렇게 있는 게 있습니다. 그 사람 화가 이름을 잊어버렸어요. 그래 봤을 때 굉장히 그 아주 그 순하고 순수하고 그 동심의 장난, 아름 다운 장난기가 그림에 나타난 거 같았어요. 그걸 보고 내가 참 감동을 받았 88

90 춤집을 만들어가다 어요. 아, 역시 이것이구나. 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예술가는 고상해야 된 다. 우아해야 된다 하고는 그 어 춤도 우아하게 춰야 된다, 고상해야 된 다. 이래 하는데 우아하고 고상한 것이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흔히 많이 사 용하는데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형이상학은 결국 형이하학이 없으면은 형 이상학이 있을 수가 없거든요. 악이 없으면 선이 있을 수 없듯이 모든 것은 두 개구나 하는 것을 인제 또 법정스님 그런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어요.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구나 하고 우리 집에서 법회를 한 일년 동 안 했습니다. 일요일마다 스님이 오셔가 142) 하고 했는데 그래하고 하니까 춤에 참 많은 도움이 됩디다. 춤 정신에 많이 도움이 되고 그래서 우아하게 고상하게 추는 춤,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 논다. 는 말이 있거든요. 그 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맑은 물에도 약간의 어떤 그, 그러니까 미도 그 누 가 말해 줍디다. 쌤, 춤이 너무 깨끗해도 안 돼요. 취미를 알아야 돼요. 하며 미에도 치미가 있습니다. 아! 싶으대요. 약간은 유치한 듯한 그런 아 름다움이 그 속에 어 다 춤 속에 품고 있어야지, 그 춤으로 나타내는 거 는 아니라도 다 버리고 깨끗한 것만 딱 우아한 것만 가지고 춤을 추면은 아 닌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픔으로 인해서 고통 을 겪으면서 밤새 잠을 못 자면서 또 갈등을 많이 겪으면서 내 머리를 내 손으로 깎았어요. 잠깐만 (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참느라 잠시 머뭇거림 ) 머리를 깎고, 저 시민회관 옆에 개천이 있습니다. 있는데, 그 앉아서 비 오 는 날 밀짚모자 쓰고 다니거든요. 비 오는 날 벗고 비 맞고 앉아서 많이 많 이 울기도 하고, 춤이 무엇이며, 인생이, 산다는 게 무엇인가? 내가 왜 춤을 출까? 이런 것들을 또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인자 내가 우연히 들은 노래 가 하도 마음에 들어서 한 달을 밤을 안 자고 테이프를 넣어놓고 이거 뭡니 까? 귀에 하는 거 있지요? 142) 오셔서. 89

91 홍의 삶과 예술 헤드폰이요. 예. 헤드폰인가 그걸 끼고 밤을 새웠어예. 날이 하얗게 될 때까지 노래를 듣고 또 듣고 듣고 해서 한 달로 들으니까 그 가수의 노래 부르는 방법, 어 고저라든가 강약이라던가 장단이라던가 길고 짧은 거, 음. 또 머 여 러 가지 그런 것을 조금씩 알게 되겠습디다. 노래를 무조건 호흡을 길게 한 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길게 할 때는 한없이 길게 하다가 또 끊을 때는 또 완전히 탁 끊어주고. 아, 춤도 이와 같구나!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내가 참 춤을 추니까 춤이 많이 달라 거 같대예. 그때부터 사람들 입에 춤을 잘 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핸 거 같습디다. 내 가 춤을 추면은 어떻게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특히 인자 교수, 안 올 사람 인데도 왔습디다. 보러 오고, 이래서 내가 춤이 괜찮아 졌는갑다. 이런 생각 도 했고 그랬는데. 또 내가 자꾸 말을 잊어버리싸서 나이가 드니까 깜 박깜박 이렇게 끊어져요. 이렇게 그, 아 참! 그리고 어 또 나이트클럽 에도 한 일년을 다녔어요. 365 일을 안 쉬고. 열정 춤에 미치다 매일 매일을요? 네. 그니까 돈이 없으니까 일류 나이트클럽은 일주일에 한 번 가고 인자 엿 세는 그냥 대중들 가는 데, 중간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가기 전에 인자 울산 에 이척 씨라고 있었어예. 무용가. 이척 씨하고 내하고 또 딴 친구가 있었 어예. 셋이서 갔는데 가기 전에 소주 한 잔씩 마시고 가방에 소주 넣고, 그 래 가서 기본 부르고 이래 가지고 살짝 살짝 소주 내가지고 마시고 이래하 면서 인제 저 사람들 춤은 어떤 춤이 잘 추는 춤일까? 이래 봤는데, 보니까 짜 그 춤 잘 추는 질랑이 143) 라고 질랑이죠. 인제 남자가 아주 멋쟁이고 90

92 춤집을 만들어가다 여자도 아주 멋쟁입디다. 그 둘이 나와서 추는데, 막 섞여서 추는데도 두 사 람은 가만히 서가지고 있는 거 같애. 있는데도, 춤 추는 거 같은 거라요. 근 데 어느 장단에 땅땅~ 이럴 때는 어떻게 액션을 (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치 면서) 탁탁 이렇게 하는데 아! 싶으더라꼬예. 그래서 보니까 춤을 아끼는 거라. 마음속으로 느끼더라고예. 근데 느끼고 춤을 안 추는 게 보이더라고 밖으로 나오더라꼬예. 그래서 아, 저런 게 춤이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고상 하고 이런 그 어떤 그 유식하고 지식적인 그런 사람한테 배우는 춤보다는 실제로 가서 그 그 사람들이 고상한 사람들인지 무식한 사람들인지 빼 놓고 그냥 보기에는 멀쑥하니 멋쟁이들이지 멋쟁인데, 그 춤을 추는데 음악 하고 그 춤하고가 일치가 되었을 때 그게 바로 춤이구나 싶더라고예. 근데 춤을 안 추더라꼬예. 안 추고, 이래 폼만 살짝살짝 하는데 그게 참. 그 래서 춤도 역시 우리 춤도 저게 매력이다. 그랬는데 내가 그 춤을 자꾸 연 습하고 다리가 아파도 연습을 하고 연습을 하고 하니까 나중에는 천장에서 그 우는 소리가 들립디다. 이기 됐습니다. 그 소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참 이상하다 싶은데도 그래도 내가 음악을 한참 듣고 춤을 추고 이랬는데 그게 한 한달이 계속 됩디다. 계속이 되고 고 다음에는 안 들리는데, 어 그 래했을 때 내가 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추니까 내가 춤이 많이 안 춰지고 머라 카노 춤을 아낀다꼬 말해야 되나? 절제할 줄 알게 되겠습디다. 그래서 인제 고래 되었고. 또 하나 내가 그한거는 어떤 행사가 있어서 그 전국민속 경연대회가 있어서 영주에 갔었거든요. 영주에 갔었는데 내가 그때 < 한량 춤> 을 췄는데 사 저~ 쪽에 있을 겁니다. 영주에 갔었는데 내가 인제 할 차 례가 아니라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행사장이니까 머 엿장사도 오고, 머 장사들이 많이 왔데요. 많이 왔는데 그 엿 장사가 가위를 가지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데 그 마당에서 추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거칠고 143) 전문가. 91

93 홍의 삶과 예술 강하게 출 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또 내가 나이트클럽에서 본 그 사람처럼 그렇게 추더라고예. 가위를 들고 가만히 있으면서 어쩌다가 그 소리에 맞 춰 착착 가위질을 하다가 살짝살짝 하다가 또 멈춰서 이라는데 오히려 막 이래 이래 하는 사람보다 힘차게 하는 사람보다 그 쪽이 더 사람들이 시선 이 가더라고예. 그래서 아, 춤이 저기 저거구나! 그래서 춤은 머 이렇게 고 상하고 유식하고 머 이런 데 있는 게 아니고 그냥 우리 생활속에 춤이 그래서 우리 일상이라고 하는구나! 춤이 우리 생활속에 있어요. 생활속에 유치한 곳에도 있고, 참 이렇게 무식한 사람들 속에도 있고, 그 기쁨, 희열 같은 거 그 자갈치 아줌마들이 고래고기 장사를, 장사를 해가지고 장사를 끝마치고 난 뒤에 모두 다라이 144) 를 이고 몸빼 145) 를 입고 담배꽁초 요만한 거 피우면서 그 좋아하는 표정. 그라면서 그때 이은하의 < 멀리 기적이 우네 146) > 그 춤을 하더라고요 다리이 이고 담배피면서.. 하는데 그렇게 즐 겁게 보이고 행복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 순간만은. 그래서 아, 저런 어 떤 속에서도 저런 기쁨이나 희열 같은 게 춤으로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하나의 춤이 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내가 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고 나름대로 내 나름대로 인제 춤정신 이랄까 예술혼이랄까 인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부끄러운 말이지만은... 마지막에 인제 저 방구 질나자 보리 양석 떨어다. 147) 는 속담대로 조금 알게 되니까 눈뜨게 되고 춤도 인자 보면은, 그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 그런 책이 있습니다. 근데 춤을 이렇 게 보니까 춤을 내가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 춤을. 내가 그것만 해도 참 행복하고 무용가로서 춤 잘 춘다고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또 한번씩 무대 나가서 춤을 출 때 나도 모르게 처음에 음악이 내 귀에 삭 스 144) 대야. 145) 왜 바지, 일 바지. 146) 1977 년 발표한 가수 이은하의 히트곡 < 밤차> 의 첫 구절. 147) 무슨 일에 익숙해지려고 하자 그만 일거리가 떨어져서 할 일이 없어짐을 뜻하는 경상도 속담. 92

94 춤집을 만들어가다 며들 때가 있습니다. 일로 스며드는지 절로 스며드는지는 몰라도 삭 스며들 면은 그게 인제 나도 없어지고 무대도 없어지고 다 없어지는 거라예. 다 없 어지면서 아주 편한 그렇게까지 편한가 그렇게 되는 거라예. 그래서 그 음악에 맞춰서 내가 춤을 어떻게 추는지 추고 나서 내가 어떻게 췄을까 이 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춤을 출 때 약간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 니다. 요만해도 되겠지 하고 느낌이 살짝 퍼뜩 지나 갈 때가 있어요. 그래 서 그 이상은 안하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때의 그 그거는 음악만 내 귀에 들릴 뿐이지 아무것도 음악이 들리고 다만 조명의 파란 불빛이라 던가 빨간 불빛이라던가 조명밖에 깜깜한 공간 안 있습니까? 어두운 공 간, 그것만 보입니다. 그래 보이고, 그것이 기쁨이라기보다 희열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게 가끔 오거든요. 그래서 그것이 없어질까봐 그게 제일 두려워서 내가 지금 밤에 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이래 하는데, 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물론 있겠지만은 아마 나는 그렇게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 야 될껀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 25일 148) 날도 잘 돼 선생님 그게 선생님 춤 의식에 변화가 왔던 게 선생님 아프시면서 그렇다고 하셨잖아요. 그게 선생님 몇 세 때 신거예요? { 어 예?} 선생님 몇 세 때? 몇 살쯤? 나이가요? { 네.} 그때가 내가 늦게 그걸 했어예. 그때가 50대 초반이였을 겁 니다. 50 대 초반에. 예. 근데 어릴 때부터 내가 어느 책을 봤던가? 세계위인전인가 봤을 때 어떤 사 람이 그러던데, 내가 오래 돼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자기는 일찍 출세하 는 것보다 늦게 늦게 성공하고 싶었다. 이런 글을 내가 한번 읽은 적이 있 148) 2009 년 10월 25 일. 홍의 개인발표 무대가 있는 날. 93

95 홍의 삶과 예술 거든요. 근데 왠지 모르게 나도 젊어서 이래 성공하는 것보다 나이 들면서 자꾸자꾸 이렇게 성공하고 싶고, 그렇게 되고 싶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 다. 훌륭한 춤꾼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예, 어릴 때부터. 그랬 는데 50 대 넘어서 내가 그전에도 활동을 많이 했지만은 그렇습니다. 조금 쉬었다. 네, 네. 선생님 힘드신 거 같은데. ( 잠시 휴식) 문 문 선생님, 이제 해도 될까요? 이쪽 학원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으셨습니까? 여기 오기 전에 자유시장 옆에 있었거든요. 여기보다 두 배나 됐거든요. 있 다가 여기로 왔습니다. 주로 이 동네에서만 살았거든요. 여기 오셔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셨습니까? 예, 좋은 일도 많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고. 남향집이거든 요. 연료비도 절약되고. 전주대사습에 갔다가 와서 또 그게 소문이 나가지고 이생강 씨 동생 이승 이가 왔습디다. 이승이라고 상모 잘 돌리고 재주가 좋았어요. 이번에 명무전 한다고 가자 캐서 그리 갔는데, 그때 일본 동경에 갔어예. 파르 코 149) 라는 백화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 파르코 1, 파르코 2, 이래 있습디다. 있는데, 9 층인가, 8 층인가? 극장에 전단이 있어서 보니까 심우성 씨의 공연 이 9 월달인가 있는 걸로 전단이 있대예. 근데 그때 입장료가 4500 엔 합디다. 그때만 해도 오래 됐으니까. 그 때가 몇 년도 인데요? 그래 내가 숫자에 너무 관념이 없어가지고 149) 일본 동경 시부야에 위치한 백화점. 94

96 춤집을 만들어가다 문 전주대사습, 그 몇 회 째 전주 대사습인가요? 그 아마 감사장 있지 싶은대요? 있을 건데 나중에 내가 찾아볼게요. 문 네, 전주대사습에서 장원? 네, 장원하고 나섭니다. 동경에는 공연차 가신 건가요? 이생강 명무전, 소리하는 사람은 박동, 소희. 그 다음에 춤추는 사람은 수악, 덕명 150), 홍, 이승이도 농악 잘 하거든요? 농악팀도 가고. 기타 단원들도 많이 갔습니다. 그때 그 순자든가? 일본 무용가들이 참 많이 찾아왔어요, 분장실에. 며칠동안 찾아오고 잘해주고, 도시락도 싸다 주고 친절하게 잘 해줍디다. 그런 기억이 나고. 음 수악, 덕명 씨하고 춤 때문에 말다툼하는 것도 내가 보고. 니가 잘 추니 내가 잘 추니 서로 인 제 ( 웃음) 나는 열두 가지 레파토리가 있다. 열두 가지가 있으면 뭐해 한 가지보다 못하느니 그게 춤이요? 하면서 어찌나 웃었던지. 나이 드셔도 얼마나 동심 같은 싸움도 험악스럽지 않고 웃음도 나오고. 그래 안 했으 면 싶으다 했었어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일본에 가니까 한국에서는 귀한 바나나, 바나나가 흔하대요? 바나나를 많이 사서 갈라 묵고. 내가 먹는 거는 잘 사는 편이거든요? 잘 가서 갈라주고 하거든요. 내가 일본말을 약간 정도 아니까 나가서 뭐 잘 사가 오고 잘 갈라 묵고했었어요. 일본에 귤 말 고 맛있는 게 있습디다. 나츠미깡 이라고 있어요. 자몽 비슷한 거 그것도 갈라 묵고 비와 라고 있었는데 비와는 맛있어요. 포도도 우리나라의 큰 거 안 있습니까? 거봉보다 알이 더 커요. 일본 포도가 참 맛있습니다. 그거는 좀 비쌉니다. 나는 사서 매일 먹거든요. 사놓고 나이 많은 분들 좀 갈라주 고. 박동 선생님이 아침에 내가 일어나서, 일본에는 여관에 차 만들게 되 어 있거든요. 따라놓고 덕명 씨하고 서이서 이래 해 놓고 있으면 ( 웃음) 150) 덕명 (, 1924~ ). 경남 양산 출생.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 호 한량무 예능보유자. 95

97 홍의 삶과 예술 고놈 서비스 좋다. 자네 누구 제잔가? 매방이 제자제? 예. 그래, 매방이 도 서비스 좋니라. 어디 같이 가면은 우스개도 하시고 그래 인제 매방이가 춤추는데 어떤 점이 좋고 그러니까 너도 그런 것을 잘 알아서 해야 된다 하 면서 내 춤을 칭찬해 주시면서도 내한테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어요. 그거 는 잊을 수가 없는 분입니다. 전라도 사람은 되게 좋으면 욕들 한답디다. 우리 그 고장 사람들은 좋으면 욕을 하는데 예술하는 사람들, 국악인들 욕 더 잘해, 좋으면. 그냥 신사직으로 형식적으로 할 때는 그거는 마 별로고, 니처럼. 하면서 막 욕을 합디다. 뭐 같이 어쩌고 저쩌고 욕을 하는데 좌중에서 전부 다 웃지요. 그래 하는데 욕을 해줘도 너무 고마운 거 안 있 습니까? 우리 선생님한테는 짜 칭찬을 못 들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한영 숙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요. 니가 < 승무 > 보유자, 후계자가 되야 지 아니면 박살을 내놓을 거야. 하셨어요. 이수자 시험 칠 때입니다. 그때 오셔가지고 늑막염 앓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빠져 나왔어요. 자기 제자 이 수자 시험치는 거 보려고요. 대단하신 분이죠. 경우도 바르신 분이고. 박동 할아버니도 돌아가시고, 제 춤을 칭찬해주신 분들은 다 돌아가셨어요. 지금은 마, 그냥 선생님 춤 잘 춥니다. 해도 춤을 알고 칭찬하는지 모르고 칭찬하는지 그러니까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럽니다. 너무 저 아까도 이 야기 한 것도 하지만은 지식이 그 결코 부처님 말씀에도 있지만 성경을 지 가 아무리 죽자 살자 외워도 도에 이르지 못하듯이 춤추는 사람들도 지식이 무용 이론이라든가 이런 것이 자꾸 우위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그 걸 잘하는 사람들이 춤 잘 추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춤 못 추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남의 춤을 많이 씹씁니다 151). 춤이 어떻네 저떻네 아주 고상하 게 제자들 앉혀놓고 아주 뭐 고상한 문자를 써 가면서 은근히 씹거든요. 자 기 춤 잘 추는 사람들은 자기 춤 연습하기 바쁜데 남의 욕할 여가 있습니 151) 비난합니다. 96

98 춤집을 만들어가다 까? 없지요. 그래서 절대로 춤이라든가 뭐든지 부잣집에 태어나서 호강으로 커가지고 돈으로 가지고 출세를 해가지고 돈으로 가지고 성공해 가지고 얼 마만큼 할지도 몰라도 그 사람 타고난 어떤 재능과 노력이 뒷받침 안 하고 돈만 가지고 이렇게 해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고 또 보통 수준인 사람도 있 습니다. 그냥 마 춤 잘 춘다, 이런 수준의 사람도 노력을 하면은 가능성이 있는데 비즈니스가 너무 바빠요. 저기도 가서 얼굴도장 찍어야 되고 이기도 가서 얼굴도장 찍어야 되고 바빠요. 자기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니까 춤이 안 늘겠지요. 그러면 정한 춤꾼을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것도 생각을 해야 안 되겠습니까? 정한 춤꾼, 그야말로 춤만 아는 바보가 되어야 정한 춤꾼이 안 되겠습니까? 예. 요즘 그 젊은 세대들도 보면 비 즈니스, 로비 그쪽으로 너무 이렇게 많이 시간을 할애를 하고 기울어지고, 보여 지는 보이는 것에 너무 치우치고. 이러니까 앞으로 춤 잘 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몰라도 좀 힘이 들 것 같아요. 옛날에는 많았는데 그 런 것이 좀 안타깝습니다. 이런 소리 하면 그 할란가 몰라도 교수 밑에 이 래 붙어 있으면 출세할 것처럼 이래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많거든요. 많은 데, 그 벗어나서 자기 자신이 독립을 해서 연습을 많이 하고 또 자연 속에 서, 자연이 바로 예술인데 스승인데 자연에서 얼마든지 배울 것이 많은데 왜 그렇게 자꾸 글만 가지고 매달리는지 아닙니다. 네. 오늘은 더 이상 뭐시 이야기가.. 절대로 글이 나쁘다는 뜻은 선생님, 아까 그러면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스스로 머리를 깎으셨다고 그 랬잖아요. 그러시면서 좀 울먹이셨는데 그때 어떤 절박한 마음이 있으셨는 지,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머리 깎은 이유가 춤을 춰도 안 되고, 또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 데 그 사람도 없어져 버린 거라예. 돌아가셨어요? 그래가지고 음 그냥 의욕상실이라고 해야 될까? 97

99 홍의 삶과 예술 문 몇 살 때쯤? 그게 삼십대 후반인가, 사십대 초반인가 그럴 겁니다. ( 웃음) 간이 느까 내가요. 네. 문 춤하고 또 사랑과 그런 것에 대해서 어려운 시기. 내가 저 초등학교 다닐 때 학예회 전에 그 왜 안 뽑습니까? 나도 뽑혔는 데 여학생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우리는 앉아서 보고 강단에 앉아 보는 데 치마 길이가 딱 무릎 위에거든요. 무릎이 보일 정도로. 거기 서서 울밑 에 귀뚜라미 ~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도 좋지만은 얼굴도 이쁘지만은 치마 밑으로 무릎하고 다리 보니까 그때 벌써 초등학교 4 학년 때인가 그렇는데, 힘이 쫙 빠져 버립디다, 이상하게. 그래서 그게 너무 내가 일찍 부모님 따라 서 영화도 보고 쇼도 보고 서커스도 보고 동물원, 식물원으로 구경 안 한 게 없거든요. 너무 일찍 눈을 떠서 그렇는지 백화점에 가서 레스토랑 있거 든요. 가면은 아주 큽니다. 전체보다 더 큽니다. 칼질하는 소리가 문을 열면 폭포소리 같이 들려요. 그 앉아 있으면은 아가씨들이 머리에 하얀 거 하고 흰 앞치마입고, 하늘색 원피스 짧은 거 입고 입술 핑크색 바르고 이래 와서 주문 받으러 오면, 가슴이 막 ( 가슴에 손을 대고) 이렇는 거라예. 그때는 학 교도 안 다닐 때고 어릴 때인데 그때부터 벌써 그렇게 뭐라 캅니까? 연 정 같은 비슷한 너무 일찍 그런 쪽으로 눈이 뜨인 것 같애요. 그래서 어 렸을 때도 여자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생각은 간절한데 어떻게 사귀자를, 표 현을 못하는 거라예. ( 웃음 ) 그렇게 지나고 저렇게 지나고 이래 살다가 보니 까 나중에는 좀 마비상태 비슷하게 오고. 또 내가 사춘기 좀 많이 너머 가 지고 무용연구소 할 때, 20 대 후반 이였나? 그 춤 배우러 오던 어머니가 말 하자면은 할머니인데, 사창가의 포졸이었던 가봐요. 근데 그 할머니들이 클 럽을 짜가지고 와서 춤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나는 어머니반을 잘 안 했는데 하도 이웃에 있으니까 가르켜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그런 줄도 모르고 가르 켜 줬더만은 생일파티 한다고 해서 놀러오라고 해서 간기라요. 그래서 갔더 98

100 춤집을 만들어가다 만은 그런 집이라요. 간에 상 채려줘서 먹고 노래 한 번씩 부르고 놀다가 보니 우리 일행이 아무도 없는 거라요. 그래 학원하고 그곳하고 거리는 별 로 안 멀었습니다. 그래 저 저 저 집에 갈라고 하니까 다 빠져 나가고 거기 있는 아가씨죠. 날로 붙들어 놓고 못 가게 잡아놓고 이라는 거로 가 그냥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 하고 바로 맨발로 학원에 돌아왔어요. 왠지 좀 첫째는 소문이 두렵고, 둘째는 혹시 또 몸도 약한데 만약 무슨 병 같 은 거 옮으면 우짜겠노 싶어서 내. 이래가지고 그냥 와 버렸는데 그런 일 이 가끔씩 있었어요. 카네기홀이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또 인제 놀러갔었더 만은 술 먹고 팁 주고 학원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알고는 그 다음 날 그 아 가씨가 떡 반디 152) 를 이고 완거라요. 치마저고리 입고 수건을 이렇게 쓰고 떡장수 아줌마 같이 깜짝 놀랬어요. 그래 떡을 내라놓고 내가 전부 샀지 요. 맘이 그해 가지고 그때 여고생들도 있어서 먹으라고 하고, 그라고 나 서 와, 일 안 하나? 카이까네 일 그만 뒀습니다. 카믄서, 이라는 거라예. 지 금 생각해 보니까 황이 생각이 나더라꼬예. 황이가 왜 그 저 수 벽계 치마저고리 입고 빨래터에서 빨래했듯이 일부러 떡 반디를 이고 왔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그렇고, 해운대에는 미군부대 장교하고 살던 여 자가 있었는데 그때는 군악대 시절입니다. 그때 또 인제 파티 한다고 왔는 데 그때는 미제로 양주에다가 뭐 햄에다가 소세지에 푸짐하게 나오니까 모 두 다 기분이 좋아가지고 악사들이 밴드를 불고 이랬는데, 그 서도 악사들 이 다 빠져 나가고 나 혼자 남게 되가지고 그때도 곤혹은 치뤘지요만은. 그 게 그렇게 있으니까 군악단에 있으니까 남자, 여자가 와 이렇게 뭡니까? 이런 말 요서 해도 됩니까? { 네.} 예를 들어서 가설무대를 안 짓습니까? 군 악대에서. 그럼 밤에 잘 때 무대 밑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는 그런 일도 있고, 하이튼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지요. 나이가 한창 때 152) 반 되. 99

101 홍의 삶과 예술 이고 하니까. 또 눈에 맞고 하니까 그렇게 하겠지만은. 그렇게 함으로써 해 서 좀 더 열린 어떤 마음으로 노래도 잘 부르고 어떻게 그래 되는 가는 몰 라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 많았습니다. 그런 생활들을 하고 나면은 인제 는 마 그 뭐라 카노? 도가 넘어가지고 마, 좀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 이 렇게 지내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혼이고 뭐고 안하고 그냥 그 사는 거지요. 그럼 선생님은 결혼은 안 하신거세요? 아 지금까지 싱글 153)로 사시는 거 네요? 네. 그래도 원채 만날 제자들이 요서 살고 하니까, 또 수발도 해주고 이러니 까. 결혼 안 해도 아쉬울 것도 없고. 아드님은 그서 뭐 딴 데서 나아 왔지요. ( 웃음) 아 낳아도 결혼 안 하는 수가 안 있 습니까? 그래 된 거라예. ( 웃음) 자유롭게 사셨네요, 선생님? 네,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내가 지금 별로 살아오면서 후회라든가 그런 거는 없습니다. 마음껏 영화도 보고 뭐 하이튼 쇼도 보고 서커스도 보고, 보고 싶은 건 다 봤으니까. 단 아 쉬운 게 뭔고 하면, 지금부터 여행을 하고 싶은데, 몸이 이래가지고 못 하는 거 살아오면서 후회한다든가 그런 거는 없어요. 없습니다. 내가 부자가 못 되었던가 그런 것도 없고 그냥 그냥 일류 호텔에서 잠도 많이 잤고 뭐 제주도로 어데로 어데로 가서 호텔에서 자기 때문에 춤 가르켜주러 가면. 또 공연하러 가면 하고. 심사도 보러 가면 호텔에서 자고 이래 했는데, 지금 은 심사를 안 보러 가는 게 의자 이렇게 앉자 보고 있으면 통증이 오는 거 153) 독신. 100

102 춤집을 만들어가다 라예. 심사는 안 보고 공연만 가고. 문 이쪽 지역에서만 생활하고 활동하시고 하는 거예요? 다른 지역에는 가시지 문 않습니까? 그렇지요. 다른 지역에는 춤 가르치러 방학 때 가서 춤 가르키러. 부산 말고 제일 오래 계셨던 지역 서울이지요? 서울에 3 일 있고, 부산에 3 일 있고. 하루는 기차, 하루는 비행 기. 문 거주하신 적은 없네요? 사신 지 한 몇 년간 다른 지역에서? 문 연습실은 얻어 놓고 했거든요. 아, 서울에서. 그래 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문 문 문 문 그때는 이동하시기도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릴텐데 그러면 서울로 올라오 라고 얘기도 많았을 텐데. 그때는 했습니다. 서울에서 겨울에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못 일 어 나겠는 거라예. 여기가 아파서 골반 밑으로 너무 아파서 너무 아픈 거라예, 통증이. 겁이 나대요? 겨우겨우 바지 입고 기어가다시피 해서 목욕 탕에 가서 들어 앉아 있다가 그래 나오니 좀 낫더라구요. 그래서 연습시키 고 안 되겠다 아파서 그랬지요. 신경통이나 관절염 말고 다른 병을 앓아보신 적은? 심장이 또 안 좋습니다. 시술을 받았어요. 시술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춤을 추죠. 팔만 이래 올려도 되게 아팠거든요, 숨을 못 쉴 정도로. 병명이? 심장 협심증 같은 그런 겁니다. 연세 언제쯤? 이게 심장 아픈지는 2 년 됐습니다. 문 지금부터 2 년 전에...? 101

103 홍의 삶과 예술 네. 2 년 됐는데, 이렇게 왜 칼로 가지고 송곳이 탁 찌르면은 요서 왜 어금니 문 해서 귀까지 아픔이 올라와요. 쫙 올라오는데 그거는 일본에 명무전 갈 때도 한 번씩 아픈데 그래도 그 구심을 먹고 나니까 가라앉고, 또 2년 있으 니까 올라오고, 또 가라앉고 이렇더만은 결국 그게 아프기 시작해가 손 이 렇게 올리고 숨을 이렇게 들이쉬면 팍 ( 옆구리를 가리키며 ) 요가 아프고 이 래가지고는 춤을, 가까스로 공연을 하고 이랬는데, 시술을 받고 나니까 뛰 도 괜찮고. 그래서 병을 이렇게 동반하고 그래 삽니다. 관절염이나 신경통 외에 특별히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구요? 그 외에는 아직까지. 예. 아침에 일어났을 때 화창한 날씨, 조용하거든 요? 철물상이라도. 아주 조용할 때가 그때가 제일 행복할 땝니다. 아주 화 창하고. 나가서 거닐고 싶고, 아무도 사람들이 안 다닌 곳에 가보고 싶고. 그러고 따뜻한 날씨에는 모래 바닥에 옷을 빨가벗고 이렇게 들어 누워 보고 싶어요. 날씨 좋은 날, 따뜻한 날. 좀 이상하죠? ( 웃음) 문 30 대 때 그... 사랑하시는 분과 이별하시고 그 이후에는 좋으신 분이 안 나 타 나셨는가요? 그 이후에는 그냥 마 혼자서 이렇게 바라보고... 사랑은 가고 춤은 남고 문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분은 안 계셨어요?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결혼까지 할려고 했는데 내가 마 그때는 귀찮아서. 문 저 외국에 호주 갔어요. 인물이 참 예쁘고, 남정임처럼 그렇게 생겼는데. 어떻게 만나시게 된 겁니까? 춤하고 연관이 되니까 춤 배우러 와가지고 만나게 되었죠. 그 이쁜 아가씨 들이 골드 미스지요. 나이가 들은 말하자면. 한 열댓 명 있었습니다. 요 102

104 춤집을 만들어가다 문 문 와서 뭐 이렇게 파티도 열고, 자주 그렇게 했어요. 춤도 연습하고 공연도 같 이 하고. 지금은 외국에 가고 시집가고 흩어지고 그렇지요. 인기가 많으셨겠어요? 젊었을 때는 참 많았습니다. 객식구도 많았고, 우리 집에서 밥 먹고 자는 사 람들이 많았어요. 무용가들, 춥고 배고픈 사람들. 또 와 묵고 가고 술까지 이래하고. 무용가들 왔다 가고 하지만은 술 먹고 노는 걸 보고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젓가락 장단 치는 거 그것도 듣고 공부가 됐고, 리듬에 대한 파악 같은 것도 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여자, 남자, 주에서 이름난 기생도 왔다 갔고, 또 많은 예인들도 왔다 가고 농악하는 사람들도 묵고 자고 가 고 옛날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은 조용하이 너무 조용합니다. 내가 밖으로 나가서 영화 보러 갑니다. CGV 영화 보러 가지요. ( 웃음) 팝콘 들고 콜라 들고 이래가지고 머리 허여이 154) 해가지고. 그 아까 주 기녀분들 오셨다 말씀 하셨는데, 부산 지역에도 옛날에 기녀 생활을 하셨던 권번 쪽에 계셨던 분들 춤 잘 추시는 분들도. 예, 있었어요. 근데 그걸 숨기지요. 숨기면서 내보고 하는 말이 인자 그 아 들 같으니까 니는 무대 나갈 때 눈썹을 일자 눈썹 그리래이. 일자 눈썹 그 리래이. 그래 쌌더라꼬요. 그래서 예. 카고 이래 쌌는데 춤은 이렇게 추는 거다 공설 운동장에 무슨 행사 있어가지고 나갔는데 어떻게 왔어요. 춤은 이렇게 주는 거디 하면서 이렇게 해가지고 사르르르 내려가는 거 올라갔다 가 내려가는 거 그게 그렇게 추는 거다 하고 보여주는데, 내가 파악을 못 하고 있었거든요. 있었는데 보니까 내가 일본에도 왔다 가고 심심할 때는 공연 아니라도 내 혼자 일본에 잘 갔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은 한 번씩 가다가 우째 이래가지고 쑥 내려갈 때 안 있습니까? 그런 거 하고, 또 이래 가다가 스르르르르 내려가다가 또 올라가는 거 그런 걸 자꾸 느끼면서 인제 154) 하얗게. 103

105 홍의 삶과 예술 문 문 문 나는 자꾸 춤하고 비교를 해 보거든요. 그래서 춤 출 때 올라갈 때도 팍 올 라가는 것보다는 서서히 이렇게 크게 올라갔다가 크게 내려오는 게 좋고 올 라갈 때 힘을 주면 내려갈 때 힘을 빼는 게 좋다, 그래야 강약이 나오겠구 나 생각을 하고 모든 일상생활에서 보면서 자꾸 춤을 생각하니까. 생활 자체가 춤이 시군요? 예. 그렇는데. 깨끗하게 해 놓고 청소도 해놓고 이래야 할 건데. 내가 그런 데 신경을 안 쓰니까 아구, 골치야 이런 게 아니고 내 혼자 이렇게 누워가 생각하면은 하늘나라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니까. 주변 사람들은 그런 선생님 보면은 좀 좋게 이야기 하시는 분도 있지만 순 해가 빠져 산다 그렇게도 이야기 할 것 같은데? 예,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마 인사말에 온경 민속협회 이사장이 인사 말 썼는데 그렇게 써놨습디다. 그 마, 그대로 냈으요. 그래서 그 마, 춤 만 추는 바보, 바보입니다. 그래도 난 괜찮아요. 실컷 추었고, 춤은 무엇인 가 하는 걸 갖다가 아직도 확실히 신이 아닌 이상은 확실한 건 없지만은, 우리 스승의 춤에 대해서는 알게 된 거라예. 춤은 어떻고 춤 정신이 어떻고 춤 세계가 어떤 사람이다 로써는 참 다행스러워. 이런 건 내가 알게 되고 하니까 그것만 해도 나 생활 속에서 많이 이렇게 발견하고 공부하고 느끼시고 해서 춤을 많이 발전 시키셨는데, 젊었을 때는 연애라든지 사람을 통해서 선생님 춤이 변화한 게 있습니까? 그 삭발까지 할 정도로 고뇌하고. 그렇지요. 문 그 가운데서도 춤에 대해 생각하시고. 춤은 그때는 그래도 철이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춤은 그 리움입니다. 알 수 없는 그리움 쉽게 말하면은 사랑이지예. 춤의 사랑 이 말하자면 내가 혼자 춤을 추어도 이럴 때는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 이 런 때는 상대가 뭐 귀찮다, 이럴 때는 뭐 어떻다, 생각을 가지고 상대가 있 104

106 춤집을 만들어가다 문 어야지 하늘이 있고 뭐 구름이 있고 이것도 다 상대가 될 수 있거든요. 그 래야 춤이 되지요. 어떻게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할머니들은 그냥 방 안에서 춤을 추기 때문에 공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냥 이거만 이쁘 게 하고 손님들한테 이쁘게만 보이면 되는 그런 춤이고, 지금 춤은 무대화 가 되어 있고 공간이 넓어지고 또 인자 무대가 액자, 액자나 마찬가집니다. 액자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공간구성도 필요하고 또 인자 족적이 라고 해서 이렇게 갔다가 이렇게 온다든가 앞으로 숙~ 밀고 나가면은 객석 에서 어떤 느낌을 받는가? 압박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렇게 한다든가, 돌 때는 어떤 느낌을 준다든가, 그 이론 공부를 강이문 선생님이 무용평론가로 있을 때 이론공부를 를 더 해야 되겠다 해서 저 3 년 했습니다. 그때 같이 하다가 온경 이사장은 공부 대학원에 가서 교수가 되고, 나는 그냥 그것 보다는 나도 공부를 했으면 또 공부를 했을텐데 춤이 좋아서 그때는 머리 깎았는데 젊었을 때 머리 깎기 싫어서 내가 고등학교 졸업장 못 받았잖아 요. 고등학교 졸업장을 왜 못 받으셨어요? 머리 깎은 사을 가지고 오라고 하니까. 문 아 머리 깎기 싫으셔서. ( 웃음) 근데 또 스스로 깎으시고. ( 웃음 ) 휠씬 뒤에는 내가 깎았지요. 이래 깎고는 목욕탕 애 불러다가 마, 자 니가 골라. 라 카고는 처음에는 내가 가위로 끊고, 면도질 좀 하다가. 내가 가장 존경하시는 분이 천흥 155) 선생님, 그 분의 그 미소만 봐도 너무나 155) 천흥 (, 1909~2009). 호는 심소 ( ), 서울 출생. 중요무형문화재 제1 호 종묘제례악 ( )- 해금 ( ) 일무 ( )- 기능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제39 호 처용무 보유자 년 이왕직아아부원양성소 제2 기생으로 입학하여 영제, 함화, 이수경 등으로부터 궁중음 악과 정재를 익혔다. 졸업 후 궁중악사로 활동하였으며, 한성준이 설립한 조선음악무용연구 소에서 민속춤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55년 천흥고전무용연구 소를 열고, 이듬해 궁중춤을 재현한 제1 회 한국무용발표회를 가졌다. 59년 처용의 설화를 극화한 < 처용랑 > 과 69 년 대금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을 극화한 < 만파식적 > 으로 서울시문화 상과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국립국악원에 남아 연주와 무 105

107 홍의 삶과 예술 그 참 티 없이 맑은 미소 보면은 참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고 순수해 지는 것 같고, 그런 어떤 느낌을 주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참 존경하고 내가 그 국립국악원 무형문화재 공연할 때 인사말도 써 줬는데 지금 내가 아무리 찾아도 팜플렛을 못 찾겠네예. 그랬던 분인데 참 고맙게 만나면은 반갑 게 인사하고. 처음에는 천흥 선생님이 그 정재를 하시는 분이니까 춤이 점잖고 고상하고 이런 쪽이거든요. 민속춤은 자연발생적인 춤이 되었기 때 문에 마, 어떤 거는 유치한 것도 있고 상스러운 것도 있고 안 그렇습니까? 그래 노니까 이수자 받으러 갔을 때 저, 시험 치러 갔을 때 코리아하우스에, 천흥 선생님이 웃더라구요. 아이고, 어, 이매방씨 닮아가지고 여자처럼 분장하고 춤도 여자처럼 추고 웃으시더라구요. 그라고 자주 자주 제 춤을 보시더만은 그때부터 달라지시고. 언젠가 문예흥원에서 고( ) 해 랑 씨라고 우리나라의 초창기 무용가 그 최승희 다음에 조택원 씨고, 고 다 음이 해랑 씨입니다. 해랑 씨가 마산 사람인데 일본에 유학간다 해서 부잣집 아들인데 일본에 유학 보냈더만 일본에서 공부 안 하고 무용을 배워 가지고 온 거라예. 그 동네 아가씨들 조금 별난 아가씨들, 끼 있는 아가씨들 불러다가 옷 해 입혀 가지고 무용공연을 해가지고 부모들이 난리가 나고 이 랬었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 하다가 그 해랑 선생님이 초대 아마 무용 협회 회장이었을 겁니다. 근데 그 천흥 선생님의 그 제가 해랑 선생 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추모공연을 하는데, 그때 서울의 최현 씨하고 최현 선생님하고 일본의 정막 씨라고 그 해랑 선생님의 양아들이 있었어요. 최 선생하고는 형, 동생 하면서 친했던 사인데 고래가지고 문예회관 대강당 에서 추모공연 할 때, 이매방 선생님도 출연하시고 그랬는데 마산의 이필이, 정양자하고 내가 < 한량춤 > 을 그날 추었거든요. 추었는데 해랑 선생님이 용지도에 힘쓰면서 한국무용의 기본무보, 정악 양금보, 정악 해금보 등을 저술하 는 등 국악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한국무용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06

108 춤집을 만들어가다 공연 보고 난 뒤에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오늘 공연 홍이 춤이 제일 좋았다. 이렇게 칭찬해 주시더라. 카니까 너무 고맙는 거라예. 그걸 또 국 립국악원에 있는 사람이 나한테 말을 전해 줍디다. 그래서 너무 고마버 서156) 인사를 드리려고 해도 잘 안 마주쳐져요. 어쨌든 무용계에서는 내가 늙으면은 천흥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는데, 그 렇게 안 되네요. (웃음) 그렇게 존경합니다. 존경하고 존중하고, 문 네, 선생님.. 오늘은 내가 너무 쓸데없는 말만 했나? 부산시 문화상 수상 (1987년). 온경(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156) 고마워서.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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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춤, 삶의 여정 제4 차 구술 채록문 춤, 삶의 여정 문 네, 2009 년 10월 29일 목요일 오후 2시 30분 홍 선생님 구술채록 시작 하겠습니다. 장소는 홍무용학원이 되겠습니다. 네 선생님, 오늘 그 춤과 관련해서 저번 시간에 이어서 여러 가지 말씀을 좀 듣겠습니다. 홍 111

113 홍의 삶과 예술 인생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 예, 예. 제가 살아오면서 음 충격을 받은 일들이 있거든요. 고 중에서 한 가지 6 25 사변 나고 그때가 내가 중학교 때였나? 그때 학교 친구들이 많이 왔다 가고 해서, 어떤 친구인지는 몰라도 내가 우연히 그 일기도 하고 뭐 낙서도 하는 노트가 있었는데, 그 노트를 스치다가 맨 뒷장을 보니까 그 인생은 아침이면 피었다 저녁이면 시드는 나팔꽃과 같다 이런 글을 써 놓 고 간 거라요. 어떤 친구가 썼는지 몰라도 글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 려앉는 것 같고. 어 그 마음이 안절부절하고 마음이 불안해지고 초초해지고 자꾸 생각이, 그 생각이 나고, 늙는다, 죽는다 뭐 이런 생각이 자꾸 들 면서 그때는 늙는다든가 죽는다든가 이런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루를 더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나 이런 나이였거든요. 꿈이 많은 시절 아 닙니까? 그렇는데 그래서 참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 당시에는 한 몇달 동안 그 밤만 되면 그 생각이 떠올라서 잠을 못 잘 정도로 그런 시대를 지냈는 데, 결국 저 살다보니까 지금 생각해보니까 역시 맞는 말은 맞는 말인데, 늙어서는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데 어릴 때는 어째서 그 말이 그렇게 불안하고 그게 그 초초하고 싫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일이 있었 고. 그 다음에 또 이제 하나 더 그 충격 받은 것은, 길을 걸을 때에, 세월 이 흘렀겠죠? 그니까 어떤 아주머니가 길 좀 묻겠습니다. 카믄서 아저씨, 길 좀 물어보입시다. 하는데 그때 얼굴이 화끈하더라구요. 나는 소년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때 참 너무너무 당황스러웠고, 아주 막 가슴이 철렁 내 려앉고 아, 내가 이렇게 됐나? 싶으고, 너무 실망스럽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겁도 나고 이랬습니다. 이랬었고, 또 인자 세월이 흘러가다보 니까 신문을 읽는데 글이 자꾸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그런 거라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안경점에 광복동에 안경점에 가서 눈 검사를 맡고 뭐 이렇게 하고 나서 그 안경집 사장님이 하는 말이 선생님, 노안이네요? 이 112

114 춤, 삶의 여정 문 럴 때 또 얼굴이 화끈하는 거라예. 당연한 건데 얼굴이 화끈하면서 내가 마 뒤도 안 돌아보고 왔는데, 결국 그 안경집에 안경을 맞춰서 찾아왔지 만. 그래 또 충격을 받았고. 또 한번 충격 받은 일은 길을 이렇게 가는데, 애가 자꾸 어머니한테 보채고 뭐 이렇게 하니까 그 아주머니가 니, 저 할아 버지한테 잡아가라 할꺼다. 할아버지요, 야 좀 뭐라 카이소. 이라는데 또 화끈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잊어버리고 살거든요, 나이를. 사는데 백화점이나 마트나 가면은 옷 파는 가게가 있고 하면은 지금도 옷을 보면 옷에 대한 호기심이 내가 많습니다. 어떤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가 젊은 사람들은 보니까 딱 붙는 스키니 청바지에다가 웃도리도 딱 붙는 티셔 츠 같은 거 입고 모자 쓰고 이래 가는 거 보니까 참 보기도 좋고, 이렇는데 나는 한번 그런 걸 못 입어 봤어요. 지금 나이는 입을 수 없겠지만. 젊었을 때부터 외소했기 때문에 그래도 굉장히 그런 의상, 옷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었고, 이랬었는데. 어 말을 하다 자꾸 잊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자 꾸 끊어집니다. 그러면은 내적으로 선생님이 친구의 그 적어준 문구, 또 호칭 상의 아저씨, 할아버지의 변화, 신체적으로 노안이 온다던지 대해서 내적으로 충격을 받 으신 거잖아요. 그 외에 외적으로 강하게 충격을 받으셨던 기억이나 또 있 으시면 말씀을 해 주세요. 네, 또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그 당시에 그 한참 모두 신발이 좀 폭신폭신 한 신이 있었어요, 밑바닥이. 그거를 모르고 신고 좋다고 돌아다녔는데, 내 가 걷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그라고 낯선 골목길 같은데, 호기심이 있어서 잘 가봅니다. 현철이든가? < 골목길 > 노래도 안 있습니까? 근데 그렇는데, 그래 돌아다니다 보니까, 어느 날 무릎이 자꾸 아픈거라요. 앉았다 일어나 려면 그 벽을 짚고 그렇게 일어나야 될 정도로 신욱신 알리고 이라는데 이게 아이고 큰일 났구나 싶어서 어 하다가 보니까 무릎이 욱 사람들한테 말을 하니까 관절염이라 카는 거라예. 그래서 매우 그때는 입시생들이 많았 113

115 홍의 삶과 예술 습니다, 대학원에. 제주도에서도 오고 더러는 저 광주에서도 오고 해가지고 여기에 담요를 가지고 와서 자면서 밤새미로 연습하면서 밥도 해묵고 이런 식으로 했었거든요. 많이 왔어요. 엄마들도 오고, 따라오고 이랬는데 내가 연습은 시킬 수 있는데, 내가 앞에서 시범 보여주려고 하면은 몹시 힘이 드 는 거라요. 그래서 아,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그 때만해도 옛날 사람들 소리로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 는 말 이 있었어요. 옷을 오버코트를 한 다섯 개를 세일 하는 거를 사고 이런 생 각도 나는데. 관절염 때문에 내가 몹시 고생을 하면서 그래도 내 제자 가 역기를 들다가 갑자기 이렇게 힘줄이 땡기고 근육이 이래 돼서 어느 병 원에 갔더만 그 집에 관절염하고 신경통 약을 주라 하는데 약이 효과가 있 더라 캐서 그래서 그 약국을 찾아갔더만 그 약국에서 서울대 의대 출신입디 다. 그 할아버지지요. 그 선생님이 이 약을 잡수시면은 5일만 잡수시면은 연습해도 됩니다. 이라더라꼬요. 그때 굉장히 아팠는데 그래서 그 약을 5 일을 먹고 그 대신 곰을 매일 잡솨야 되고 우유를 잡솨야 되고 그래서 내가 때마다 곰을 먹고 우유를 먹고 했는데, 연습하니까 연습도 되고 하는데 그 래도 좀 아파서 아스피린을 갔다가 두 알로 갖다가 이렇게 컵에 담아가지고 북채로 깨가지고 가루를 내 가지고 그게 우유를 부어 가지고 저어 가지고 마시고 그래하니까 통증이 많이 가라앉대요. 그래서 연습을 해 가지고 국립 국악원에서 제가 발표회를 한 번 했거든요. 그 때 그 특별출연으로 한영숙 선생님을 초빙을 했더니만, 한영숙 선생님이 그 분장실에서 모니터를 보시 다가 뛰어 올라온 거라요. 리허설 할 때, 그래 춤추다 보니까 옆에 서 계시 더라꼬요. 리허설 다 마치고 나니까 제보고 157) 하는 말이 자네 누구 제잔 가? 그래서 네, 이매방 제잡니다. 그래잉? 자네가 부산사람인가? 하니 네, 부산입니다. 선생님, 저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카니까 글쎄 해서 선 157) 저에게. 114

116 춤, 삶의 여정 생님, 그 연수회 할 때, < 승무 >, < 살풀이 > 할 때 제가 여러 번 갔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제보고 자네 고향이 어딘가? 해서 부산입니다. 하니 아, 갯가 에 부산의 고깃배 타는 것들 사는데? 카고 우스개로 말씀하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하니까 아, 그랬던가? 하면서 그게 문제가 아니고, 자네 춤을 보 니까 이매방 선생님 제자는 자네뿐이다. 하면서 임이조, 누구누구 있어도 다 아니다. 오리지날 제자는 자네다. 임이조는 다른 선생 거쳐서 왔지만은 자네는 처음부터 이매방 선생님한테 배웠다고 하니 보니까 자네 춤을 인정할 수가 있겠네. 카드만은. 그리고 자네 춤을 그래 이매방 선생님이 늦게 오셨어요. 한영숙 선생님이 야, 매방이! 하니 예, 누님, 이리 좀 와 봐. 그래 이매방 선생님이 오시니까 내 듣는 앞에서 이 사람이 자네 제자 네. 이 사람 춤을 보니까 자제 제자다. 임이조도 필요 없고 아무도 필요 없 다이. 꼭 챙겨야 한다. 이 사람 춤이 국이다, 자네한테는. 이렇게 신신당 부를 하고 가셨어요. 가시고 부산에서 그때 내 춤을 보러 오신 무용 평론가 강이문 선생님이 계십니다. 강이문 선생님이 제 춤을 일부러 보러 오셨는 데, 강이문 선생님보고도 홍 춤이 예사 춤이 아니니까 선생님 잘 부탁 드립니다. 잘 좀 춤을 많이 출 수 있도록 인도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이래 부탁을 해주고 참 고마우신 분이 내가 태어나서 스승한테는 아 직 칭찬을 못 받았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한테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영숙 선생님한테 칭찬을 받았고, 그 다음에 또 박동 할아버지, 그 욕 잘하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일본에 갈 때 공항에서 만났는데 자네, 결 혼 했는가?, 아니요, 우째, 우거지 삶아 놓은 것처럼 노랑탱탱 해가지고 그러냐? ( 웃음)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예 카고 이라고 비행기 타고 일본에 가서 인제 일본에는 여관이 있습디다. 여관에 내리는데 조금 인제 그 전원마을이라고 할까? 촌인데 완전 촌은 아니고 아주 넓은 그 벌 판이 있고 하는데 아침에 일본에는 보니까 대체적으로 아침에 비가 조금씩 올 때가 가끔 있어예. 아주 푸른 풀이 있는데 촉촉하게 비가 보일 듯 말 듯 115

117 홍의 삶과 예술 문 한 비가 내리는데 그 박동 선생님 하고 < 양산학춤 > 추는 덕명 선생님 하고 내하고 서이가 158) 한 방을 썼어요. 한 방을 썼는데 그 제일 먼저 덕 명 159) 선생님이 일어나서 목을 풉니다. 그날 공연의 소리를 하기 위해서 어~, 어~, 아~ 카믄서 목을 푸는데, 목을 풀고 하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 아가지고 어 그렇게 그 이것이 행복이구나. 여러 선생님한테 칭찬도 많이 들으시고 인정을 받으셨는데, 이매방 선생님 한테는 직접적으로 인정받는 기회가 드므셨나 봅니다. 드문게 아니고, 예. 문 그 얘길 좀 해주세요. 이매방 선생님하고 선생님하고 했던 어쨌거나 사제 지간으로 처음에 시작을 하신거죠? 우연히 그 이매방 선생님이 그 초량에 부산에, 초량에 양정화 160) 씨라고 무 용가가 있어요. 지금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용가 있습니다. 그 양 정화씨 무용학원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제가 한 번 찾아갔는데, 쳐다도 안 봅디다. 장구를 치면서 눈길도 안주고 1시간 있다가 나는 그냥 왔어 요. 나는 처음에 인사도 하고 문하생으로 배울려고 갔었는데 그냥 왔습니 다. 어떻게나 차갑던지 그라도 나서 인자 또 군예대 생활하고 뭐 이래 쌌 다가 보니까 어느 날 선생님이 찾아왔어요. 야, 내하고 좀 같이 가자. 해서 예. 카고 그래 갔는게 영주동의 2층의 방이 요만한 방이 있는데 그게 인제 선생님이 있더라구요. 있는데, 그서 161) 인제 아주머니들도 오니까 춤을 가르쳐주고 하는데 춤을 보니까 다른 춤들 보다가 이 춤을 보니까 웬지 모 르게 그 춤의 매력 어떤 그 섹시한 매력이 있더라구요, 춤 자체에. 이상하 158) 셋이서. 159) 박동 명인을 덕명으로 잘못 말한 것으로 보임. 160) 양정화 (1936~ ) 년 부산에서 양정화무용학원을 설립하였으며, 1965 년에는 한국무용협회 부산지부 초대 이사를 역임하였다. 이매방에게 승무와 살풀이를 전수받았다. 현재는 양정화 전통민속가무예술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61) 거기서. 116

118 춤, 삶의 여정 문 다, 참 좋다 싶으고 그 때에 장홍심 씨라고 최승희 알지요? 최승희의 딸, 안승희한테 < 검무> 를 가르킨 선생님이라요, 장홍심 씨가. 장홍심 씨가 초 량 못가서 고관입구의 동양 무용 연구소 간판을 걸어놓고 했는데, 선생님하 고 있으면서 말하자면 둘이 그렇게 살았지요. 있으면서 선생님은 부지런한 쪽이고 이 장홍심 씨는 무용가는 손이 고와야 되고 하는 쪽이고, 선생님은 청소를 딱고 쓸고 하는 쪽이고 이러니까 안맞아서 나보고 가자고 해서 영주 동 갔다가 장홍심씨 짐을 싸가지고 나왔어요, 나와가지고 우리 집에다 옮겨 놓고 부산 시장, 요 있습니다. 그게 가설극장이 하나 생겼는데, 임방울 명창 대회 라고 써 놨습디다. 임방울씨가 유명하잖아요. 그게 가가지고 선생 님이 분장실에 천막 쳐놓은 거 있지예. 갔다 오시드만 야, 빨리 갔다 와야 된다. 하면서 의상 챙겨 가지고 다려가지고 흰 옷을 입고 흰 바지저고리에 흰 장삼에, 흰 버선에 흰 고깔에 홍띠 두르고 춤을 추는데 조명도 없고 무대라고 해봤자 매끄러운 무대가 아니고 나무를 이은 울퉁불퉁한 무대인 데도 이렇게 보니까 땅에 앉아서 가마니 깔아 놓고 보는데 그 버선말 맵시 라든가 어떻게 보면 흰 나비 같기도 하고 학처럼 그런 느낌도 들고 조명도 없고 추는데도 굉장히 환상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저것이구나. 싶으더라 구요. 그래서 인제 춤을 배우게 된 동기가. 그라자 우리 이웃의 엄마들이 전 부 나한테 춤을 가르켜 달라고 온기라예. 그 때 나는 한국무용을 안했기 때 문에 이매방 선생님을 모셔다가 인제 그래가지고 우리 집에 인제 이 학원 반 만한 방이 있었습니다. 마루 깔아놓은 방이 있었는데, 내 연습하라고 우 리 아버지가 만들어줬는데, 그게서 인제 가르쳐주고 가르쳐주고 하면서 그 래가지고 내가 춤을 배우면서 바로 조교 노릇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같이 출연도 많이 하고, 출연도 많이 했습니다. 이랬었는데 이매방 선생님한테서 그러면 몇 년간 같이 이렇게 오래됐지요. < 승무> 를 한 열 번 정도는 배웠을 겁니다. 이렇게 학교 선생들 도 모집해가지고 한 팀 모집해가 배울 때 또 배우고, 또 뭐 무용가들 몇이 117

119 홍의 삶과 예술 모집해가 배울 때 나도 또 배우고 또 한 내 연구소 빌려주고 또 배우고 이런 식으로 오래됐어요. 문 < 승무> 말고는 다른 거 < 승무>, < 살풀이 >. 문 두 가지. 예, 그래했고, 그 다음에 6~7 명 모집했거든요. 그래가지고 문 그러면 선생님, 여러 명이서 같이 배우시고 그랬나봐요? 개인적으로 혼자 이렇게. 아니지요. 또 몇 년 짜주고 또 인자 배우고, 한 바탕 배운 것을 < 승무 > 가 길 문 문 거든요. 보통 배우면 한 15일 내지 20 일 순서만 띄 줍니다. 띄 주면 우리가 연습도 시켜주고. 할 때마다 작품 조금씩 다른가요, 똑같은가요? 조금씩 변할 때도 있고, 이기 더 좋다, 이거 넣자 이럴 때 있고. 지금은 또 변해가 있지예. 그라고 음. 그때 같이했던 분들이 임이조 선생님? 아니요. 그때는 임이조 선생은 없었고, 임이조가 누군지 모르고, 선생님도 누군지 모르고 문 선생님하고 같이 하실 때 다른 분은 아시는 분은? 문 내하고 같이 할 때는 서울의 한순서라고 있습니다. 한순서. 한순서가 같이 했었는데, 그 딸이 지금 저 중앙대학교에 무용과 교수로 나가지 싶어요, 구소지 그만 두고 난 뒤에 나가지 싶어요. 문 다른 분은 없었어요? 생각나시는 분 다른 사람들은 그때는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전부 다 나는 부산 있고 그 한순서가 부산에 있다가 서울로 가버렸어요. 부산에 있을 때 연구소를 채려놨는데, 미 공보원 있습니다. 대청동에. 미( ) 공보원 바로 옆에 2층을 118

120 춤, 삶의 여정 문 빌려가지고 한순서가 연구소를 빌려 놓고, 선생님을 모셔놓고 그래 있었는 데 그때는 또 사교춤도 가르쳤어요, 거기서. 사교춤 선생 따로 오고 또 한국 무용 시간에는 한국춤 이매방 선생님이 가르치고 그랬는데 출소에 신고를 했나봐요. 그래가지고 파출소에서 어 그게 누가 파 조사하러 나왔는데 실례합니다. 해서 어떻게 왔습니까? 하니 선생님 어디 갔습니까? 해서 그 래도 명색이 학원장이 한순서였기 때문에 선생님 어디 가고 안계십니다. 이매방 선생님은 살짝 숨어 버리시고. 그때, 남자 무용수들이 대부분이었습니까? 여자 무용수들은 없었구요? 같이 배우실 때. 아니죠. 여자 무용수들이 많았죠. 지금 이제 국립무용단에 있는 남자들, 시 립무용단 남자들이 이매방 선생님께 춤을 배웠지만, 그 당시에는 남자가 없 었습니다. 문 한순서하고 선생님하고 남자 무용수는 두 명? 아니요. 한순서는 이제 여잡니다. 한순서가 그러니까 이매방 선생님한테 말하자면 나보다 먼저 배운 것이 한순서 배우기로는 내가 오래됐으니까. 문 몇 년? 근데 이제 선생님한테 춤 오래 글쎄요. 몇 년이라고 캐야 될지. 하이튼 오래 됐습니다. 왜냐면은 한순 서 부산에 있을 때부터 시작해가지고 한순서가 부산에 오기 전에부터 인자 내가 이매방 선생님 만났었거든요. 그래가지고 한순서 서울 올라가고 나서 도 나는 쭉 계속 해가지고 전수자 되고 이수자 되고 할 때까지 그때 임이조 처음 봤어요. 임이조는 훨씬 후배입니다. 그라고 따지면 이매방 선생님한테 제1 호가 홍이가 되는 거지요. 이수자로써도 제1 호입니다. 왜냐면은 시 험을 쳤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됐었거든요. 문 안 힘드셨습니까? 춤 배우실 때 이매방 선생님이 가르칠 때 엄격하게 가르 치셨는지, 부드럽게 가르치셨는지? 119

121 홍의 삶과 예술 문 예, 예. 춤 가르칠 때 어떨 때는 아주 상세하게 참 상세하게 가르칩니다. 섬 세한 데가 있어요, 가르칠 때. 그렇기도 하고 또 아주 저 마마, 인정사정없이 너무 또 저 무서울 정도로. 막 화가 날 때는 선생님, 그럼 젊은 나이 때부터 이매방 선생님 모시고 배우시고 하셨는데 다른 춤은 뭐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까? 그때 이제 그 학원을 차렸는데, 어 그 초량에 채릴까, 범일동에 채릴까 해쌌다가 범일동에다가 채린 거라예, 선생님 오셔가지고. 근데 해필이면은 그래도 내가 연구소 하고 있는데 그 까운데 채린다는게 사제간의 그런 어떤 그 뭐라 캐야 되노? 쉽게 말해서 매너는 안 있어야 되겠습니까? 다니면서 그런 점도 있었어요, 있었고. 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만은, 그래도 나는 그 다음에 만난 선생들이 많아요. 나한테 이동안 162) 선생님이라고 돌아가셨습 니다. 나이 많은 분인데 그 분도 알아줍니다. 재인층의, 우리나라 재인층의 마지막 그 춤꾼이었거든요. 그 사람이 원래가 춤꾼이라기보다, 어름산이. 줄광대, 줄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 부산민속예술회관에 갔었다가 거기서 춤을 가르치기도 했었다가 나한테 인제 선물 들고 찾아온 거라예. 와서 여러 가지 얘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제자들 하고 같이 할아버지한테 < 태평무 > 하고 < 쇠춤 >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 이매방 선생 님이 인자 그 욕을 욕을 많이 했어요. 그 이동안이가 옳은 광대도 아니고 반광댄데, 그런 인간한테 그 춤을 배우는 텐데 카믄서. 사람을 확실히 알고 배워야 될 문 그러면 이매방 선생님한테 < 승무 >, < 살풀이 > 해서 민속춤을 배우고 이동안 선생님한테서 잠깐이지만 < 태평무 >, < 쇠춤 > 을 배우고. 162) 이동안 (, 1906~1995). 경기도 화성 출생. 재인청 출신인 가계의 영향으로 재인이 갖추어 야 할 기량과 재주를 한 몸에 지닌 재인 중의 재인으로 꼽혔다. 어름사니로 시작하여 태평무, 쇠춤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79 호 발탈 보유자가 되었다. ( 정범태, 한국춤 백년 1, 서울: 눈빛, 2006, 36 쪽 발췌) 120

122 춤, 삶의 여정 문 네, 배웠습니다. 그래했고. 그 당시에 또 그 이 동네에 이매방 선생님 오시 기 전에 이춘우 선생이라고 있었어요. 봄 춘( ) 자, 비 우( ) 잔데, 이 사 람은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조용자 씨라고 있습니다. 최승희 다음에는 조용 자씨거든요, 조택원 씨하고 남자는 조택원이 하고. 근데 이춘우 선생이 내 가 국민학교 4학년 때든가 그때 삼일극장에서 공연을 조용자 무용단 공연 을 하는데, 그때는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모두 학생들 데리고 극장으로 갑 디다, 학교에서. 그래 보니까 무용발표회를 하는데 그 이춘우 선생이 그 추 는 춤이 태극기 들고, 밑에는 판타롱 조용자도 판타롱, 이춘우 선생도 판타 롱. 인자 이춘우 선생은 반쪼끼, 어깨 나온 거 입고 하이칼라 머리에 풀고, 조용자 선생은 흰 걸로 머리 묶으고 해가 조용자 선생도 반 이렇게 된 거 입고 해가 백두산 거든하게 ~ ( 노래를 부름 ) 그 춥니다. 지금 치자면 [ 유기 ] 비슷한 그런 춤이죠. 판타롱 입고! 예. 그 당시 판타롱이 유행입니다, 의상이. 문 몸에 딱 달라붙는 거 말씀하시는 거. 문 문 아니, 나팔바지입니다. 그때가 유행이었습니다. 옛날에 판타롱 바지 입고 많이 추었어요. 남방춤도 판타롱 입고서 많이 추었습니다. 그럼 그건 신무용? 그렇죠. 예, 예. 이춘우 선생이 신무용을 잘 추셨네요? 예, 신무용을 잘 추셨지요. 그랬는데 그 나중에 여기에서 인자 그 연구소 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나 그 사람이 많던지 주로 인제 어머니들 그때 다 네모시 163) 가 유행할 때거든요? 어머니들이 너무나 많이 와가지고 마 100명 씩 이런 정도로 해가지고 돈을 갔다가 그 마다리 164) 알죠? 마다리에다가 넣 163) 다네모시계. 164) 마대. 121

123 홍의 삶과 예술 문 어가지고 그기 다섯 개, 여섯 개가 있을 정도였고. 그때 그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길거리 나가면은 무조건 강제 모병해가지고 군에 보내버립니다. 잡 아서. 순경들하고 헌병들이 이럴 땐데, 이만한데 돈 싸가지고 들고 나가 예. 잡으면 그거 주고 빠져 나가고 이런 식으로 했는데, 그 이춘우 선생이 돈을 갖다가 너무너무 그 양반은 또 현실도피적이고 우울증이라고 해야 될까? 염세주의적이고 이런 사람이 되가지고 매일 술을 마십디다. 술을 마 시면은 막 노래를 부르면은 밤새도록 부릅니다. 동네 사람들이 참 미안하지 도 안한지 165). 근데 목성이 참 좋아요. 그래서 노래도 참 잘 부르고, 일 본의 그 가수 유명한 미소라 히바리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그 가수의 그 일 본의 해이봉이라는 평범 이라는 잡지 내가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 많 이 하죠? 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해 주세요. 예, 평범 이라는 잡지를 광복동에 많이 가면 고서점도 있고 비밀리에 파 는 데가 있어요. 그서 달달이 166) 사다가 히바리에 사을 오리가지고 탁 벽 에 붙여놓고 이렇게 했던 사람이라예. 그 선생이 좋아했어요. 문 선생님, 혹시 그 옛날에 권번 쪽에 있는 기녀분들 하고 혹시 뭐. 자홍에서 홍으로 쫌만 있어 보세요. 그래가지고 했는데 그 선생이 나는 신무용 인줄 알았더 만 알고 보니까 장구도 잘치고 춤을 추는데요. 무용 평론가 선생은 보고 이 매방 선생님보다 더 잘 춘다 캤어요. 그래가지고 그 부산의 그 판사댁, 검사 댁 부인들이 < 승무> 도 배우고 이래 했는데, 그기에 초청받아 갔을 때 인제 165) 않은지. 166) 매달마다. 122

124 춤, 삶의 여정 이춘우 선생을 데꼬 167) 간 기라예, 이매방 선생이. 데꼬 갔는데, 그 이춘우 선생이 춤을 함 추니까 이매방 선생님하고 또 다르거든요? 참 좋아노니까 좋다 좋다 캐노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자 데꼬 가면은 초청받아 가면은 이춘 우 선생한테 이매방 선생이 술을 많이 맥였어요. 많이 먹어라, 마셔라. 맥 여 놓고 녹초가 되면은 춤을 추다가 정신이 안 잡히잖아요. 그라면 마, 확 밀어 엎어놓고 위에 올라다가 때리고 ( 웃음) 이매방 선생님이 춤에 대한 욕 심도 많고 시기심도 많고 그랬던 분이라예. 근데 그때에 또 불려온 기생들 도 있었거든요. 그래가지고 많은 기생들이 내보고 그때는 내 이름이 홍이 가 아니었습니다. 자홍이였거든요. 자홍을 했다가 홍으로 바꿨지요. 문 그럼 원래 본명이 자홍이십니까? { 예.} 아, 그럼 뒤에 홍으로 바꾸신 거네 요? 문 스스로 어떻게 바꾸신 겁니까? 계기가. 계기가 내 제자가 저 작명가를 데리고 왔습디다. 와가지고 지 이름 바꾸 고, ( 웃음) 마 이래 쌌트만은 그 작명가가 나를 보고 선생님 하나 바꿔줄까 요? 캐서 나는 그때는 돈도 없고 이래가지고 마 돈이 없는 거 보다는 돈 주 고 뭐 한다는 거 싫어가지고 그래가지고, 그 내보고 인자 이름이 뭐냐 고 물어서 자홍이라고 하니까 이래 생각을 하드만은 지어 주는 게 참 ( ) 자에, 클 홍( ). 홍. 지어줍디다. 이름을 지어서 그런지 좋더라구 요. 좋아서 내가 작명가를 찾아가지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아무리 수소문해 도 돌아가시고 안 계신거라요. 그 때 젊었었는데 그래 됐고, 내 데꼬 온 그 제자는 그냥 내보다 먼저 죽었고 춤도 잘 췄는데. 문 그 아까 그 이매방 선생님 이제 하면서 기녀들도. 네, 네. 그래가지고 기녀들 중에서 내보고 니는 만약에 무대 나가거든 일자 눈썹 그리면 어울리겠다.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인제 어떤 기녀는 공연하면 167) 데리고. 123

125 홍의 삶과 예술 찾아옵니다. 춤은 이렇게 추는 거야 하면서 이래 이래 추봅니다. 168)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까 춤 동작은 무용가들이 완벽하고 정형적인 춤이지만은 저 사람들은 자연적인 춤이거든요. 무엇을 나한테 알려주고 싶어 했는고 하 니까 그 고저( ).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거 호흡을 말해주고 싶 었던 가봐요. 쫓아갔다 사르르르 내려가고 쫓아갔다 사르르르 내려가고 이 래 말을 해주고. 이랬던 분도 있고 또 어 아이고, 동래 온천장에 유명 한 기생들 있는 데가 있습니다. 아구, 이름은 자꾸 안 떠오릅니다. 그기는 대통령도 한번씩 내려오면 가고, 기생들도 있지만 예쁜 아가씨들, 기생 말 고 이거 연주하고 소리하는 사람들이고, 말하자면 화초기생, 화초기생이 가 수로도 나오고 영화배우로도 나오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요. 가수로 나 온 사람은 배호 169) 노래를 한동안 부르고 요즘 안나옵디다. 그런 사람들도 있고. 그 기생들도 나한테 또 놀러 자주오고 하니까 자연히 그 놀게 되면은 장구도 치고 춤도 한번 추고 하니까 그런 사람들의 춤은 주로 맨손 춤으로 추니까 아주 단순하면서도 그 때 생각으로는 저것도 춤이라고 추나 싶었는 데 지금 생각하니까 짜 춤이었다 싶으고, 또 어떤 여자는 장구를 배우러 왔는데 장구를 가르쳐 주니까 너무 잘 배우는 거라예. 그랬는데 오히려 나 보다 더 잘 친다 싶어서 이상하다 싶어서 내가 물어봤거든요. 아주머니 나 한테 장구 배울 입장이 아니네요? 내가 배워야 되겠는데요. 혹시 이런 계통 에 안계십니까? 이라니 웃으면서 우리언니가 영주동에서 춤을 가르칩니다. 하는데 기생이였던 거라요. 그래가지고 내가 어떻게 춤을 가르치고 어떻게 장구를 가르치는가 그걸 알기 위해서 왔던 모양이라요. 그래가지고 친해져 가지고 인제 그 그때 < 허튼춤 > 해가지고 맨손으로 추는 춤도 좀 배우기 168) 추어봅니다. 169) 배호 (1942~1971). 본명은 배신웅. 구수하고 애절한 목소리와 시적인 노랫말로 1960 년대 가요 계를 풍미한 가수이다. 30 세를 못 채우고 요절한 비운의 가수이다. ' 마지막 잎새가 ' 대표곡이 다. 124

126 춤, 삶의 여정 도 하고 이랬는데 지금도 보니까 그 춤이 오른쪽 보고 왼쪽보고 하는 게 있 습디다. 우리는 그런 춤은 걸어갈 때 보통 왼발 나갈 때는 오른손이 안 나 갑니까, 그죠? 그렇는데 오른발에 오른손, 왼발에 왼손 무슨 독일 군대식도 아니고 이상하다 싶었는데 근데 그게 보기 좋습디다. 지금도 그런 춤을 추 는 데가 있어요. 온경 선생이 인자 그 자기 아버지 170)가 민속 연구소 171) 를 했거든요. 많은 남자들, 국악인들도 오고 이래 했었는데 그런 가락이 있 었던가 봐요. 그랬었고. 내가 가장 그래도 내 춤의 한 획을 그어주고 간 사람이 물론 이매방 씨는 내가 배운 사람이고, 이춘우 선생은 우리 집에 한 합치면은 몇 달씩 몇 달씩 먹고 자고 있었거든요. 한 2 년은 될 겁니다. 그게. 절대로 가 르쳐 주질 않아요. 절대로 안 가르쳐줍니다. 추기는 해도 에 오는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가지고 작품비를 갔다가 그래서 우리 집 2~3백만 원 받 아가지고 바로 주라 가코 이래 했는데, 3백만 원을 딱 받드만은 엿트만 은 172) 그 다음에 춤을 이렇게 쪼깨 가르쳐 주다가 내 화장실에 갔다 오겠 습니다. 연습하세요. 연습 좀 시켜라. 내보고 그래놓고는 화장실에 갔는 줄 알았는데, 화장실이 떨어져 있었거든요. 한 두어 시간 있으니까 중국집 그 총각들이 둘러매고 왔어요, 사람을. 네 사람이 이렇게 이래 되가 온 거라 예. 그서 다 마시고 마, 뿌리고 마 그런 사람이라예. 그 현실하고는 거리 가 먼 사람. 문 당시에 3 백만 원 중국집에서 다 뿌렸습니까? 네. 그라고 저게 그 지태라고 그 아마 부산일보 사장도 했고 이랬던 분 인데, 합판도 했습니다. 베니아 합판해서 그 부인하고 부산의 또 모 부인 이 연구소까지 지어 주었어요, 서면에. 지금 거가 전신전화국 자리가 됐을 170) 한국의 디아길레프로 불리는 전통예술 후원가이자 춤꾼이었던 동민. 171) 동민이 1952 년 부산 토성동 그의 자택에서 설립한 민속무용연구소. 172) 넣더니만. 125

127 홍의 삶과 예술 문 겁니다. 아주 요데 땅이. 그랬는데 그 것도 전부 다 (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이걸로 해가지고 이춘우 선생한테 지어 줬는데 그 이춘우라고 하는 분이, 굉장히 유명한 분인데, 잘 알려지지 참 잘 추는데 알려지지 않는 거라요. 맨날 들어앉아서 공연을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문 개인 발표회를 하신 적이? 개인 발표회를 안 했습니다. 안 하고 이 양반이 추력이 없어요. 와서 문 문 춤추라고 하면 그건 좋아하는데, 자기가 어떻게 해가 이런 그거는 없어요. 그래서 돈을 탕을 하고, 차라리 발표회, 공연을 해야 될 건데 그런 쪽으로 안하고 (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일로 다 해버리고. 아무런 자료가 안 남아 있겠네요. 그렇지요. 너무 안타까워요. 이매방 선생님보다 약간 연배가 높으신 분이신가요? 이매방 선생님보다 조금 낮지요. 장구도 잘 치고 이랬는데. 이매방 선생님 이 이래 보고 있으면 이매방, 매방 이라 카믄서 서로 친구끼리니까 내보고 하는 소리지만 매방이는 참 힘이 있어, 북치는 소리가 힘이 있어. 이래 샀 고 칭찬을 해줍디다. 그렇는데 매방 선생님은 절대로 칭찬을 안 하더라구 요. 그랬고, 그 다음에 외삼촌이 있었거든요. 외삼촌이 그 주 기생을 데리 고 왔어요. 우리 집에 한 두어 달 있었나? 여름을, 초여름에 와서 초가을에 갔으니까요. 이래 있었는데, 그래도 그 뭐 행수기생이랍디다. 나는 향수기 생 카는 줄 알고. ( 웃음) 보니까 역시 다른 게, 아침에 일어나서 그 절대로 딴 사람보다 늦잠 안 자고 일어나서 먼저 세수하고 얼굴 탁 이렇게 화장하 고 머리 빗고 옷 깨끗이 갈아입고 이래가지고 있지 그냥 자던 얼굴로 절대 로 남한테 안 보이는 그런 그 있고. 그 다음에 한 번씩 가다가 손수건을 들고 인제 외삼촌 앞에서 이렇게 춤을 ( 손짓을 하며 ) 이래 추거든요. 마루에 서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잠깐 시장 보러 가면 내가 이렇게 보고 쌌는데, 이 126

128 춤, 삶의 여정 렇게 손수건 돌리고 자기 입소리로 구음을 하면서 춤을 추고 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런 어떤 영향도 많이 받았고, 또 인제 그 이런 금강원에 금 강공원에 있습니다. 민속예술회관 173)이 있는데, 금강공원에 한때는 많은 사 람들이 그 놀러갔습니다. 놀러 가가지고 아줌마들이 계모임만하면 장구도 하나 들고 가서 꽹과리도 들고 가가 뚜드리고 묵고 놀고 마시고 이라던 데 라요, 거가. 그래가 그 한 놈은 금강원에 치마 주으러 가자. 이래 샀거든 요. 여자들이 치마허리가 내려가도 모르고 살짝 밟혀가 늘어져가지고 그냥 집에 가기도 하고 마, 이랬던 적이 있을 정도로 군데군데 한 군데는 아니고 한 백 군데는 될 겁니다. 산 안에 공원 안에 두드리고 노는 게. 그래서 그런 데 놀러가서 이렇게 보면은 그 중의 그래도 옛날에 좀 춤췄던 사람, 나이 많은 할머니 초할머니 정도 되는 사람이 자기도 놀러 와가지고 그 두드리쌌 는 소리에 흥에 못 이겨 가지고 이래이래 하는데 춤을 추는데 그 사람은 이 런 춤을 춥디다. 저게 무슨 춤인가 이래 이래 이래 추다가 또 이래 추다가 이래 올리다가 이래 추다가 한번 손을 이래 했다가 보니까 런 동작이 들어가고 < 검무> 할 때 이 < 승무> 할 때 보니까 이렇게 북채 감아올리는 거 하고 이랍디다. 그게 아마 맨손에도 그런 춤을 추었던가 본데, 그런 것들 해가 많 은 춤을 배웠구요. 그 다음에 저 민속관의 그 온경 교수가 내보고 민속 관에 입회를 해라 캐서 입회를 하니까 그기 인제 내가 볼 때 전부 다 할아 버지들인데 아이고 마, 무식한 할아버지 마, 뭐 뭐 저게 춤이라고 카믄서 껑충껑충 뛰고 이라는 거 신이 나가 탁 이래 쌌는데, 아이고 싶으고 마, 나 는 이래 생각했는데 아름다움이라는 게 참 우아미가 있고 또 골계미가 있고 이런 줄을 몰랐어요. 그 골계미란 것이 음 부산대학에 미학교수가 춤 지에 내놨습니다. 채희완 교수. 173) ( 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127

129 홍의 삶과 예술 79 년 < 해랑당애화 > 공연 팜플렛 네, 채희완 교수, 참 내가 존경하는, 좋아하는 교수입니다. 그런 골계미라던 가 우아함 이라던가 머 여러 가지 치( ) 의 미, 아주 유치한 그런 그니까 공자님의 말씀에 맑은 물에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 논다. 왜? 고기가 와도 너무 맑으니까 먹을 게 없었겠지요. 그니까 그래서 어 강이문 선생 님이 내 춤을 보고 너무 깨끗하게만 추지 마소. 치미( ) 라는 아름다움도 있으니까. 그런 말도 해줬습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들 춤은 처음에는 그 128

130 춤, 삶의 여정 랬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속에 인생도 있고 삶도 있고 세월도 있구나! 이 래서 인제 그런 춤도 가까이 하게 됐고, 그래서 내가 그 동해안 별신굿을 보고 그 다음에 전국민속경연대회 나가니까 동해안 별신굿에서 나와 가지 고 뱃놀이를 하고 머 이래하는 게 있었어. 내가 가서 물었으예. 물으니까 이게 처녀가 애랑이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동해안에 총각이 애인이 고기 잡 으러 나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 바위 위에 서 있다가 그대로 죽었 다. 174) 죽었는데 그 처녀가 죽고 난 뒤에부터는 고기만 잡으 러 가면은 풍랑이 쳐서 배가 뒤집어 지고 사공들도 죽고 하니까 그래서 그 남근을 상징한 그걸 갖다 놓고 재를 올리니까 그 때부터는 고기도 잘 잡히 고 그래서 해마다 동해안 별신굿이라고 이래 하는데 저 애랑각이라는 그 각 이 강원도에 있다 캅디다. 나도 몰랐는데 우리 무용가가 선생님, 강원도 에 애랑각이 있습디다. 이카면서 그 내가 그때 을유문화사에 나오는 저 문 고판에서 애랑각 카는 걸 보니까 무속설화가 나와 있데요. 그래서 그걸 이제 작품화 해가지고 대한민국 무용제에 낼 때에 그때 그 계향 씨라꼬 동해안 별신굿에 석출 씨라꼬 그분도 돌아가셨습니다. 사촌 여동생 안 간에 사촌 여동생. 그, 그 무속인데 민속관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 학 춤> 할 때마다 구음을 해주고 하는데 그 문화재에 있었거든요. 그 사람을 모 시고 내가 그 < 지전춤 > 하고 꽃놀이 꽃을 가지고 신을 맞이하는 거 청배 머 이런 거 또 인제 그 극락으로 보낼 때 배를 태아 보내는 거 이런 것들 내가 춤을 문하생으로 배워가지고 작품 속에 그걸 요소요소에서 무대화시켜 가 지고 그렇게 해서 내가 대한민국 무용제 나가고 그랬었는데 집. 그때에 계향 씨가 우리 집에 와가지고 바라를 이래 보더만 바라를 가지고 스님들이 추는 바라하고는 또 다릅디다. 무속들이 추는 바라는 스님들은 손에 끼 가 175) 추는데 그래서 그런 것 등 우리는 갈매기 사위를 한다 하면서 팔을 174) 죽어버렸다. 175) 끼워. 129

131 홍의 삶과 예술 이래 벌리 가지고 이라는데, 보통 우리는 1 차 사위 라고 하는데 갈매기 사 위 라고 합디다. 그래서 아, 그렇구나! 싶어 하는데 그런 사람들한테도 많은 영향을 받고, 춤을 추는데 보면은 그 고갯짓을 물론 팔다리만 팔다리 로 춘다고 생각하지만은 저는 생각하기로 춤에 주가 되는 게 몸이고 또 종 이 팔 다리고 또 중요한 거는 멋이라는 게 들어가야 되는데 춤 출 때에 그 고개짓 다 일본에는 일본 특유의 고개짓이 있고, 중국에는 그 중국 특유의 그 그 창무극 이라카나? 그 보면은 특유의 고개짓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근데 일본 특유의 그 고개짓 그것도 앞으로 보고 말고, 그 일본 머리를 하 고 그 뒤로 돌아보고, 그 벚꽃이 이렇게 떨어질 때 그때 춤추다가 살짝 이 렇게 고개짓을 하는데 그거 하고 동해안 별신굿의 무녀들이 서서 돌아보고 부채를 들고 이렇게 하고는 고개짓 하는 거 하고, 그 그게 멋인데 너무 비 슷한 거 같아서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서 내가 그 어 아, 춤은 하나구 나! 이런 생각을 했었고, 또 영달 176) 씨라고 부산에 큰 무당이 있었습니 다. 이 사람은 운이 없어가지고 문화재가 못 됐어요. 못됐는데 애나 그 영달 씨의 부인이야말로 어 큰 무당이였어예. 시어머니한테 물려받은 큰 무 당이였어예. 영달 씨 부인이 큰 무당인데 그 영달 씨가 그 해운대 모래사장 에서 어 오귀굿을 합디다. 큰 굿을 하는데 보니까 그 영달 씨 부인이 큰 머리를 하고 요 앞에다가 뭣을 꽂고, 빚을 꽂고 해가지고 저 칼하고 명태 말린 고긴데, 명탠지 대군지 몰라도 양손에 들고 이래 춤을 춤을 추고, 놓고 그 다음에 치마를 들고, 발 놀음을 하는데 이래 발을 보니까 버선발 맵시가 참 이쁘기도 하지만은 < 아라비안나이트 > 에서 그 그런 스텝 비슷한 거 그런 거가 있는거라예. 그래서 내가 또 깜짝 놀랬고. 아, 춤은 하나구나! 아, 춤은 176) 영달 (, 1919~1984). 부산시 무형문화제 제4 호 동래지신밟기 풀이 보유자. 승려증을 보유하고 무속인으로 활동하였다. 무속지화장 ( ) 으로 당대 최고의 명인이었다. 민 속학자 심우성이 영달, 수재 부부의 ' 꽃일에 ' 관심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으나, 무 속지화에 대한 무관심으로 취소되었다. 130

132 춤, 삶의 여정 하나구나! 응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요 있는 사람들이 아 라비아 가서 춤을 배웠을 리가 만무하고, 전통춤인데 그래서 어 오면서 보니까 춤은 하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또 인자 장실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 네.} ( 화장실 다녀옴 ) 내가 살아 잠깐 제가 화 부산의 한량무 문 죄송합니다. 피곤하신데 자꾸 말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예. 한 가지만 더 이야기 하고. 예, 예. 그 다음에 어 이렇게 그 학원 하 고 있으니까 춤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 중에서 가끔은 쇼에 나오는 사람들 쇼에 나가는 아가씨들이 춤을 배우러 왔습디다. 장구춤을 배우러 왔는데, 나는 처음에 쇼에 나오는 아가씨들인지 몰랐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장구춤 을 가르치 177) 주고, 하면서 얘기도 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나도 그걸 알 겠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해 가지고 그 거기에 안무자가 남잔데 선생님 놀 러 왔어예. 놀러 와서 술도 같이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면서 하 는데, 그 선생은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음 굉장히 그 천재적인 거 같은 사람 인데 그 쇼에 나가도 세미클라식이라고 해야 될까? 완전 발레는 아니고, 막 흔들고 이런 쪽도 절대 아니고, 그런데 또 굉장히 춤을 대중들이 좋아합디 다. 내한테 쇼 구경시켜 준다꼬 해서 가서 구경도 하고 그랬는데. 근데 그 사람이 그 쇼 단체가 서울로 다 갔는데 안 가고 부산에 있고 싶어 가지 고 부산에 왔어예. 내보다 나이가 위라 내가 형, 형 캤던 사람인데 우는 거 177) 가르쳐. 131

133 홍의 삶과 예술 라예. 어린애처럼 울면서 내가 갈 때가 없다. 카면서 싶고, 나도 역시 그렇지만은 참 순수한 사람이다 그래가지고 우리 집에 같이 묵고 자고 있었 는데 그 사람이 우리가 공연할 때 왕관이나 또 머 이런 걸 예를 들어서 내가 < 장터 > 라는 작품을 했을 때 그 그물망에다가 조기 말린 거, 머 이 런 거 오징어, 머 이런 거, 도미 전부다 자기가 만들어 주는 거라예. 잘 만듭디다. 마 소주만 한 병 같다 놓으면 오케이 인기라. 그렇고 그다음에 인제 우리가 공연이 있어가지고 그 < 한량춤 > 이라는 게 있었는데, 저 각시가 나오고, 한량이 나오고, 스님이 나오고, 스님하고 한량이 각시를 서로 좋아 했다가 결국 한량이 하고 사랑이 이루어지고 스님은 인자 참회를 하고 떠나 는 그런 내용인데 그. < 한량무 > 예요 그게? < 한량춤 > 이라고, 그 우리가 지금 추는 < 한량춤 > 은 홀춤이고, 솔로춤이고, 문 그기서 나온 춤이고, 인자 그런데 어 하고 주모하고. 별감하고 이렇게 양반하고 또 인자 그 스님하고 각시 별감 나오는 것도 있는데 그 대신에 스님이 나오는 것도 내가 봤거든요? 그게 부산지역에 그게 있었어요? 그 당시에? 부산 지역이 아니고, 내가 봤어 그냥 봤어예. 부산에서 보신 거죠? 예, 예. 봤는데 고래 나옵디다. 그런데 덕명 씨는 보니까 별감이 나오데 예. 별감이 나오고 머슴도 나오고 하는데, 그래 스님하고 한량하고 인자 말 하자면 삼각관계였고, 주모가 또 나와서 참 많이 또 분위기를 살리고 이래 하는 춤이였는데. 그거 할 때 스님을 할 사람이 없어갖고, 부탁해서 추는데 민속관이라고 그때 극장이 있습니다, 조그만한 거. 조명도 있었고, 지금은 없지만은 그기서 췄는데 민속관에 그 할아버지들이 자네 저사람 어디서 데려온 사람이고?, 왜요? 하니까 예사 춤이 아닌데 해서 잘 춥니까? 하니 132

134 춤, 삶의 여정 까, 참 잘 추네. 하는데, 그 발레 같은 춤을 추던 사람이 그런 춤도 하여 튼 타고난 사람이라예. 근데 어찌나 열정적이던지 내가 그 니스키에 관한 책을 읽어봤는데 니스키처럼 그렇게 열정적인 데가 있는 거 같애, 이 사 람이. 아까운 사람이라요. 누가 참 그 디아길레프 같은 사람이 있어가 이끌 어 주면은 큰 물건을 만들 수 있겠더만은 싶으고. 근데 그 사람한테서 내가 배운 거는 열정적인 것과 그 머 이렇게 빨리 생각해가지고 뭘 만든다 는 거, 머 이런 것들 쇼 나간다고 해서 다 아이고 저속하다. 이런 게 아 니고 그런 게 배울 점이 있고, 그 다음에 별것도 아니지만은 겨울에 길거리 에 보면 양지바른 곳이나 시장 같은데 뭐 한쪽에서는 수선도 하는 할아버지 도 있고, 그 구루마 178) 같은 데 카세트 틀어 놓으면은 그서 머 < 태평가 > 나 장구나 얼씨구나 소리가 나오면은 한잔 먹은 할아버지가 흥에 겨워가지고 손을 하늘을 향해서 이래 찌르고 있습니다. 하늘 쪽으로 이래 서가지고 그 기 보니까 안 움직이도 그 하나만으로도 여러 가지의 그기 춤은 아니라도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그런 춤으로 그래서 우리가 춤을 춰도 무대위 에서 저 사람이 느끼고 있는 저런 느낌을 우리는 낼 수 있을까? 그렇게 생 각이 들어서 참 이것이 공부구나. 꼭 스승한테 배우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 라 그것도 중요하지만은 일상에서 우리가 춤을, 춤을 일상이라 안 캅니까? 근데 이런 것이 바로 공부다. 저 할아버지의 것.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것 들 또 그 참 이 서민층에서 그 어떤 생일파티 같은 데나 노는 거 보면은요 또 관광버스에서 또 이래 이래 아줌마들 하는 거 안 있습니까? 이래 이래 하는 거 보면은요 그기서 저 좋은 춤을 좋게 보면 뽑아낼 수 있는거라요. 그니까 항상 어 우아하고 높은 것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밑에 것을 모르 고 어떻게 우에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안 그래예? 머 형이상학이 뭔지 는 몰라도 형이상학, 형이하학적이다 해쌌지만은 결국은 형이상학이라는 것 178) 손수레. 133

135 홍의 삶과 예술 은 형이하학에서 태어나는 겁니다. 인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 좀 궁금해서 질문을 드리는데요. 아까 그 부산지역에 췄던 < 한량무 > 스님 나오고 하는 걸 보셨다고 하셨는데, 고 얘기를 조금 더 해 주실 수 있으면 은. 예. 그 얘기예. 그 얘기는 이매방 선생님이 그 부산에 오셔가지고 어떤 그 파티 말고 공연 나갈 때에 이런 춤이 있었다 카면서 그래 이렇게 시키는데, 내가 이래 봤거든요 보니까 재미가 있다 싶으데예. 그래서 내가 인제 이렇 게 보니까 우리 제자들한테 이래가지고 나도 추고 이래가지고 했습니다. 문 그게 < 한량무 > 입니까, 제목이? 예. 문 그게 < 부산 한량무 > 이런 게 아니고 그냥 < 한량무 > 예요? 예. 그냥 < 한량무 > 라 했어요. 문 그 < 한량무 > 에 그러면은 아까 별감이나 별장 이런. 각시. 문 문 예. 문 문 아니, 별감 아니고 스님. 아, 스님. 아들이 스님도 했다가 한량도 했다가. 각시 이렇게. 어떤 사람이 나오는 건가요? 아니예. 처음에 각시가 혼자 있고, 각시가? :예. 그러고 있으면은 인제 한량이 나오거든요. 나와서 보니까 각시가 혼자 서 있으니까 참 안됐다 싶어가 옆에 가서 수작도 걸고, 보니까 이제 저 각 시가 버선발로 그냥 있는 거라요. 그래서 발로 재가지고 내가 신을 사가 오 겄구나 하고 약속을 하고 나가면은 스님이 이렇게 오다가 보니까 각시가 있 134

136 춤, 삶의 여정 문 거든요. 그래서 은근히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이 동해가지고 프로포즈 하면 서 춤을 추다 보니까 맨발로 있어서 또 이렇게 발로 재는 거라요. 싸이즈를 재가 한량이 그 신발 사주겠다 카고 이래 했는데 스님이 이래 하고 퇴장했 다. 신발가지고 나와 보니까 한량이 이미 벌써 나와 가지고 각시한테 신을 벌써 신기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신발을 스님이 나와 가지고 화가 나서 각 시 신발을 벗기가 집어 던지고, 스님 신발을 신기는 거라요. 그러면 또 한량 은 또 그 반대로 벗겨갔고, 이래 해가지고 결국 한량하고 스님하고 엣으 로 해가지고 싸움하는 장면이 나와예. 그 인제 그 싸움하기 전에 인제 화풀 이로 인자 막 부채질 하고 있으면은 주모가 술 가지고 나와서 술 먹이면은 약간 그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만들어 주고 결국 한량이 승리를 하고 스님은 물러나고 그래 했거든예. 그래서 스님이 인자 그 부처님한테 그 머라 캅니까? 부처님한테 다시 돌아가는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그 무용극 으로써 < 승무 > 를 추었습니다. 모두 이 < 한량춤 > 을 많이 공연을 했어예. 문 화회관에 야외공연 같은 거 할 때도 하고, 자주 했습니다. 요즘은 안하죠? 그라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춤 추다 보니까 잊어버렸는데 이번에 중강당에서 할껀데 우리 식구들 춤만 해도 벌써 다섯 명인가 되다 보니까 안 되겠더라꼬예. 그래서 다음 공연 때 그래 할라꼬. 국립국악원 그래서 날 잡을려고 안 캅니까. 문 부산에서만 추는 < 한량무 > 인가요 이게? 다른 지역에선 전혀 안 추고? 다른 지역에서는 추는 걸 못 봤어요. 그걸 그냥 어 그거는 봤어요. 별감 문 나오는 거. 한량하고 별감 나오는 건 봤습니다. 그럼 선생님 이게 언제 적부터 추던 춤인지 혹시 아시나요? 그건 오래됐죠. 오~ 래됐죠. 예. 아이고 얼마나 오래 됐을까 모르겠다. 많이 오래됐는데 갑용아! { 네.} 우리가 < 한량춤 > 군무 춘 거 얼마나 됐노? 현 이 있을 때부터 췄으니까. 135

137 홍의 삶과 예술 갑 아, 그기 80. 니가 춤췄을 때는 < 한량춤 > 시작하고 10 년 넘어서 췄을 끼다. 갑 아, 70 년대 중반쯤 되겠는데요? 그렇나? 갑 제가 80 년대 중반에 왔으니까. 응, 응. 그래. 저희가 궁금한 거는 그런 < 한량무 > 가 이 지역의 춤인지 아닌지 아니면 누 문 문 군가에 의해서 창작된 춤인지 그게 궁금해요. 그게 글쎄 말입니다. 이 지역에 그런 춤을 춘 사람들은 없고, 난 이매방 선 생님이 그때 이런 춤이 있었다 하면서 추는 걸 그때 보고 내가 그걸 또 구 성해가지고 재구성해가지고 그래 낸 춤이라요, 이게. 그런데 이게 춤은 참 어 오히려 별감이 나오는 춤보다 이쪽이 더 재미는 있을 껍니다. 대중들에 게 보기도 춤도 더 전통적으로 되가 있고 그런데 그 이런 것도 훗날에는 다 좋은 빛을 봐야 될 그런 춤들이라예. 아까운 춤들이 많습니다. 그럼 무용극이네요, 극. 선생님? 그렇죠, 극. 그럼 신발을 신데렐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서 꽃신이죠. 허허 ( 웃음) 꽃신. 문 그럼 머 좀 창작 그 근현대적인 창작무 성격인가요? 아니요. 그게 저 옛날에 교방에서 여인들 기생들이 남자 역할도 하고 그래 서 노름 이라카나? 방놀음. 그래 했던 그런 게 인제 그래 됐어요. 문 주지역에도 요런 비슷한 < 한량무 > 같은 게 주가 내나 한량무가 덕명 씨, 덕명 씨가 < 양산 사찰학춤 > 을 안 춥니 까? 아마 주에 있는지 해에 있는지 몰라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문 예. 그럼 요. 한량무가 주에서 선생님이 지금 이야기하신 < 한량무 > 가 주에도 지금 추고 있다는 걸. 136

138 춤, 삶의 여정 예. 그쪽에 < 한량춤 > 이 인자 별감하고 한량하고 그래 나옵니다. 이쪽에는 문 내가 사는 곳은 한량하고 스님하고 나오고. 스님이 마지막에 회개하는 장 면. 그럼 어느 게 앞. 어느 게 먼저다, 혹시 그런 것이 기억이 나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문 잘 같은 내용인데, 스님이 등장하느냐 별감이 등장하느냐. 예. 문 따라가지고 좀. 그렇죠. 문 스님은 나중에 부처님한테 귀의하는데, 이 별감은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그냥 봤는데 아마 별감이 승려하고 한량이 돌아가던가 그럴 껍니다, 아마. 문 큰 내용은 이제 차이가 없는데. 예. 문 탈만 씌워놓으면 탈춤이네? 그렇네. 인물 구성상으로는. 문 구성상으로는 허허 ( 웃음). 근데 선생님이 말씀하신 옛날에 기녀들이 교 방에서도 췄다 이런 말씀이신지 건 제 개인적인 질문인데 선생님이 먼저 연구를 해봐야 되겠는데, 선생님 이 < 한량춤 > 도 잘 추시고 여러 가지 춤을 잘 추시는데,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본인이 제일 아끼는 춤이랄까, 제일 잘 추시는 춤은 뭐가 있는지? 글쎄요. < 승무 > 추면은 < 승무 > 가 제일 좋고, 또 < 한량춤 > 추면은 < 한량춤 > 문 이 좋고. ( 웃음) 만약에 제자한테 요고 요 춤사위만큼은 내가 대를 안 끊고 꼭 전해줘야 되 겠다는 춤이 뭐, 어떤 게 있을까요? 글쎄 말입니다. 이번에 < 지전춤 > 추니까 < 지전춤 > 이 모두 참 좋다카고. 또 137

139 138 이번에 < 무당춤 > 추니까 참 좋다고, 너무 좋다고 그래 주거든요. 그래 선생 님, 앞으로 좀 더 연구를 하셔 가지고 글로 하나 남겨놓고 하시면 참 좋겠 습니다. 문 그 중에 선생님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나는 다 좋아서 어느 걸 저기 뭡니까? 자식을 열로 키워도 열 손가락 다 아프다는데, 그렇습니다. 문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민속춤을 오랫동안 추셨잖아요? { 예.} 그러면 그 궁 중정재하고 좀 차이가 있을 텐데 선생님이 정재를 춰야겠다고는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했는데 기회가 안 돼 가지고. 원래 제가 생각하기에 는 저 저기 스타일이지 싶어요. 성격상이나 이런 걸 봐서 많이 움직이거 나 이런 쪽이 아니거든예. 절제하고 그다음에 어 불교에서 말하는 내재율 같은 거, 그런 거 하고 또 마음 비움 이라던가. 문 그런 걸 찾아서 공부하시고 춰 보신적은 없으세요? 정재? 문 정재는 춰 본 일이 없어예.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쪽에 지금 매달리 다 보니까. 근데 볼 때마다 내가 배워야 될낀데, < 무산향 > 도 추고 싶고 또 저 뭡니까? < 춘앵전 > 도 춰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잘 어울리실 꺼 같아요. 예. 굉장히 그 그냥하고 싶은 게 아니고 굉장히 해보고 싶어예. < 태평무 > 도 한번 춰보고 싶고. 문 고런 것들 민속춤에 쓰이는 작품으로 한번 도입해 볼만도 한데 어떻게 생 각하시는지? 정재를예? 정재는 정재 그대로 있어야지 민속춤으로 하면은 그 정재 하는 분들한테 내가 비난을 안 받겠습니까? 문 창작무용 쪽으로. 창작무용 쪽으로 글쎄 말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서 우리나라 전통

140 춤, 삶의 여정 문 춤이 시대에 맞는 전통춤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데이, 어쩔 수 없이. 그라고 지금 한국춤을 볼 때에 창작무용, 신무용 해쌌는데 너무 그 정체성이 의심 이 가는 왜 그 창작춤에 꼭 현대무용을 해야 되는가? 치마저고리만 입고 해도 현대무용이고 한데 음악도 그렇고 근데 그게 능숙하면 몰라도 현대 무용 전공하는 사람이 그걸 보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한국무용이 현대무 용 흉내 내는 것밖에 안 되거든요. 아니 그런 걸 우리가 좀 잘 알아야 되겠 고. 그라고 지금 춤이 좀 아무리 글로벌 시대, 잡종시대, 하이브리드 (hybrid) 시대 라 해가지고 차고 그렇게 나오고 하지만 춤도 그렇게 왜냐면은 오무라 이스 179) 도 먹고 그렇게 하니까 아무리 전통춤에 서구적이 면이 안 들어갈 래도 안 들어갈 수 없어요. 그렇지 싶습니다. 안 그래요? 그럼 선생님이 처음에 추시던 전통춤 스타일이나 지금 선생님이 보시기에 요즘 사람들이 추는 전통춤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 예. 많이 바뀌었죠. 많이 바뀌었고. 내가 한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데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매장이 될까 싶어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 어 } 왜냐면은 전통춤에 민속춤에 있어서 그 얼러준다 카나? 얼러주는 춤이 있거 든요. 문 그게 무슨 뜻이죠? 얼러준다? 예. 그기 들썩거린다 캐야 되나 이렇게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이 래 되가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이래 되가 있더라고예. 그러니까 그거 하고 그거 하고 차이가 얼마나 납니까? 우리나라 춤은 부드러움이거든 예. 부드러움 속에서 어떤 힘이 나는데, 그런데 그게 천지차이가 나죠. 그런 것도 있고, < 태평무 > 도 보면 너무 그러니까 이게 그 춤은 글이 아니거든요. 그라고 우리가 이론이나 춤에 대한 사상적인 글 같은 것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훌륭한 무용가는 절대 아닙니다. 그건 학생들한테 가르쳐 줄 수 있고, 179) 오믈렛. 139

141 140 문 문 춤이 있고 어떤 철학이나 사상이 있지 전에 먼저 그런 것이 없었는데 요즘 실례지만 죄송합니다. 나는 학벌 쪽은 먼 쪽이고 두 분은 그래도 높은 학벌 쪽이지만은 굉장히 그 개뿔도 모르는 게 저 기본도 안 돼있다. 춤 쪼깨 춘 다고 머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식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껀데, 그런 게 내가 가장 염려되는 겁니다. 염려되는 게 춤을 같다가 자기네들이 많이 배 웠으면은 좀 더 전통춤을 잘 배워가지고 고걸 고대로 갈려고 애를 안 쓰고 그냥 순서만 외워가지고 그걸 자기 나름대로 그니까 하나, 둘, 셋 할** 이래 가 하는 건 들어가면 안 된단 말입니다. 그렇지예? < 태평무 > 도 이래가 이래 이래 하는 걸 보면은 얼씨구나 이래 들어가야 될 껀데 그냥 예 근데 강선 영 180) 선생님이 추는 [ 춤] 하고 젊은 사람들이 추는 거하고 영 달라예. 느낌 이 벌써 다릅니다. 벌써 음악 이렇게 음악 들어가는 게 다르거든요. 그걸 알아야 되는데, 그걸 모르고 딴 걸 앞세우니 세상이 잘 못된 거라예. 어떤 면에서는. 근데 선생님들이 이런 걸 가지고 해주고 하는 건 참 고마운 일이 지만은 그 왜 그런 사람들 안 있습니까? 그 춤을 많이 많이 변질 변질을 많 이 시켰어요. 그러면 선생님 옛날에 했던 거는 기록이나 선생님이 춤사위를 무보처럼 만 드신 거는 없었어요? 만드신 거는 없고요. 내가 알기로는. 이매방 선생님 말고 선생님이요. 예, 내가 알기로는 국악하는 사람한테도 듣고 이랬는데 우리나라 춤이 제일 간단합디다. 한나앗, 두우울, 세에엣, 네엣, 다서엇, 여서엇, 일 겨드랑이 앞으로 내고 그 다음에 인자 손 이래 갈 때는 이래 이래 가고 이거라예, 주 로. 이거고 그 다음에 인자 이거고. 이거까지도 없어요. 이거까지도 안 썼습 180) 강선영 (, 1925~ ). 경기도 안성 출생, 중요무형문화재 제92 호 태평무 예능보유자, 무용 인 최초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 예총) 이사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한성준에게 춤 을 전승받음.

142 춤, 삶의 여정 문 니다. 옛날에 주로 이겁니다, 이거고. 그 다음에 주로 저 신무용하는 사람들 은 주로 이래가 많이 추대요, 손등에. 우리나라 춤은 손바닥에 추고 이렇게 보여주고. 이라고 요정도 요래 돌렸지 이래가 요까지 안갑니다. 이거는 최 승희 식이고 귀 뒤로 넘어가는 거는 없어요. 근데 이거는 이게 안 좋다 하 는 게 아니고, 그것도 마, 덩 따 더덩따 호흡만 자꾸 전통적으로 하면 되는 데 문제는 인자 이래 이래 해버리면 그거는 안 좋다 하는 거라예. 근데 그 런 식으로 더러 하나씩 하나씩 돼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이 대학에서 교육하는 사람들의 몫인데 근데 대학생들이 그걸 그대로 교수님 들이 가르치니까 그거 맞다고 생각 안하겠습니까, 그쵸? 예. 맞다고 생각하 고 오히려 이렇게 이렇게 추면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기 인제 큰 일인 거라예. 그래서 마, 이 세상이 모순이고, ( 웃음) 부조리하고 마 이렇다는 말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 똑같으지 싶어요. 오늘은 저 예. 여기까지 끊도록 하겠습니다. 문/ 고맙습니다. 141

143 142 제1 회 은방울무용연구소 발표회 전단지 (1962 년) 이 당시 은방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고 함.

144 춤, 삶의 여정 공연 전단지 (1968 년) 143

145 홍의 삶과 예술 제1회 홍무용학원 발표회 프로그램 (1962년) 제2회 창작무용합동공연 회원권 (1975년) 144

146 춤, 삶의 여정 홍무용학원 내부 145

147 146 홍무용학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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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춤꾼의 가족 제5차 구술 채록문 춤꾼의 가족 선생님, 안녕하세요? (미소 지음) 오랜만에 다시 뵙게 됐네요. 네, 반갑습니다. 네, 선생님 다시 뵙게 되서 반갑구요. 오늘은 11월 20일이구요, 지금 시간은 3시45분. 여기는 국립부산국악원 분장실입니다. 선생님, 그동안 제가 여쭙 지 못했던 것들을 오늘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네. 홍무용학원 (구술자의 아들, 조사자, 구술자) 149

151 고향 하동에서의 유년시절 150 선생님 유년시절 관련인데요. 우선, 아, 태어나신 것부터 생년월일이 어 떻게 되시나요? 생년월일이 1935 년 4월 5 일. 4월 5 일 생이요? 네. 4월 5 일 생이고, 또.. 본적. 본적은 말씀해주셨었어요. 네. 경상남도 하동군 횡천면 여의리 436. 네. 그러고 어머님 아버님 함자가? 아버지는 종명., 종 쇠북 종( ) 자에 울 명( ) 자. 쇠북 종( ) 자에 울 명( ). 네, 어머님은? 강매결. 매화 매( ) 자, 맺을 결( ). 누님이 인제 연홍. 연꽃 하는 연 ( ) 있죠? 연. 홍은 클 홍( ). 연홍, 홍. 남매를 두신 거네요? 네, 네. 근데 제 이름은 원래 자홍이었는데 본명이 자홍이었는데, 춤을 추다보니까 자꾸 무대 나가고 하니까 작명가가 이름을 바꿔줍디다. 홍 으로 그래가지고. 네. 네. 어린시절 그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어떠시나요? 어릴 때는 이틀 그리 181) 한 번씩 이틀에 한 번씩, 아주 어릴 때는, 하동 섬강에 친척 형 따라 맨 날 182) 갔었고. 그 형이 그때가 사춘기쯤 됐을 겁 니다. 그래노니까네 183)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도 많이 부르고 바람기가 181) 이틀 그리 이틀 걸러 :. 182) 매일. 183) 그래서.

152 춤꾼의 가족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가씨들을 참 큰아버지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들이었는데, 어떨 때는 맞고 이러는 것도 보고. 나가면은 이 틀 삼일 씩 있다가 들어오는 것도 보고. 나는 따라다니기만 하면서, 일러 주 지마라 하면서 과자도 사주고, 멋모르면서 따라다니고 이랬던 기억도 나고. 극장구경도 갔었고 했는데, 하도 여러 번 많이 가서 어떤 내용을 봤는지 어 려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선생님, 그때 당시에 선생님이 일본으로 건너가시기 전에 계신 곳이 하동이 잖아요. 그 하동에 당시에 극장이 있었어요? 직장요? 극장요? 극장은 주에 나가서. 아 주에 나가서. 큰아버지한테 식겁묵고 184) 했어요. 참 많이 식겁묵고 했는데 그라고. 극장은, 주 나가서 자고 올 때도 있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큰 아버지께 식겁 먹고, 그 담에 185) 그 누나가 그 뭐시고 찬장에서 뭘 내 가지고 탁 먹는데, 어떻게 먹고 싶던지 그 당시에 지금 생각하면 뭔지 모르겠 어요. 가지였지 싶어요. 그랬는데 그런 기억이 나고. 그 누나가 맨 날 그 어디 나가기 전에 맨 날 거울보고 이 ( 손짓을 하며) 옛날에는 분 바르고 나서 연지를 바릅디다. 그런 기억나고, 손가락에 바르고 그런 기억나고. 그 형은 인자 낙서를 하는데 낙서를 할 때마다 남자의 그, 여자의 그 어떤 그거 그리고, 맨 날 그런 것만 그리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래가 지고 또 식겁묵고 했는데, 그 위에 또 형이 있었습니다. 그 형은 일본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는 별로 그냥 잘사는 쪽도 아니고 그 뭐라 캐 야 되나 마, 겨우겨우 마 그렇게 세끼 밥만 먹고 살 정도였고. 일본에 는 모집해가지고, 인자 돈벌이한다니까 어머니는 초 만드는 공장에 다녔고, 또 인제 아버지는 일본에서 쫌 184) 식겁하고. 185) 다음에. 한국 사람이라도 정직하고, 그때 한국 사 151

153 홍의 삶과 예술 람들이 일본에 인식이 안 좋았어요. 속국 [ 이라노니까 ] 한국 사람들 가난 하고 무식한 사람이 많았거든요. 제주도 사람들 인식이 안 좋았는데, 아 버지는 그런 일이 없고 [ 해노니까 ] 조그마한 장소를 어떻게 빌려줘 가지고, 일본에서 고물상을 했어요. 사람들 모아놓고 고물상을 하고 하니까 이틀에 한번씩 극장가고 했는데, 그때 인제 하동에 큰 형이 오면은 엄마가 일본에 서 모르게 술을 담아 놓거든요 한국 술을. 동동주 비슷하게 그걸 담아 놓으면, 놀러 오면 밤에 자고 일어나면 한 방울도 없는 거에요. 단지 채로 ( 껄껄걸 웃으며 ), 그라고 그런 일이 많았고. 항상 자기가 장남노릇 해 야 된다 카믄서 186), 내가 약하다고 장남 노릇을. 마, 그렇게 안 되 고 어 이틀 만에, 삼일 만에 또 한 번씩 극장구경을 갔었고, 또 일본에 축제가 많으니까 축제 보러 갔고. 축제 갔을 때 누나하고 같이 가면 일본의 그 얼음 있는데, 아이스케키 187)처럼 이렇게 막대기 꼽아놓은 한쪽은 노란 색이고 그런 것도 사먹고, 거기다가 노란물, 파란물, 빨간물 이렇게 요즘처 럼 그런 식으로 했고. 팥을 팥하고 콩하고 설탕에 젤이가 188) 말라 준 189) 게 있습니더. 일본 사람들은 나또 라 캅디다. 그라는데 참 맛이 있었 습니다. 그 얼음사탕. 얼음 같이 생겼는데 깨가지고 파는데 입에 넣으 면 달아요. 단 것도 있었고 그라고 우리나라 같으면 우묵 있지요? 우묵을 갔다가 이런 저 통에 넣어가지고 미니까 국수처럼 빠져나옵디다. 설탕 간장 쳐가지고 그래 먹은 것도 기억나고, 밥 먹을 때는 간장에다가 그 본 다시 190) 넣고 그 저 가쯔오부시라 해갖고 우리나라 말로 다랑어 삐 지 놓은 거 있거든요. 가다랑어. 일 186) 하면서. 187) 아이스케이크 (ice-cake) 의 일본식 발음. 188) 절여서. 189) 말려준. 190) 맛국물. 152

154 춤꾼의 가족 네, 네. 맞아요. 다꽝 191)하고 먹기도 하고. 생선은 선술집이 있었는데 아침에 보니까 막 조그만한 접시에다가 생선을 지 것도 있고 구운 것도 있고 이런 것을 쫙. 그 담에 칠월칠석날은 대나무에다가 그 뭐 오색가 지 그 뭐 저, 색종이 가지고 배도 만들어 달고 달아가지고 강가에 가 가지고 그 강에다 띄워 보내고 그런 행사도 있었고. 일본에는 어린이날에 는 대나무에다가 남자는 잉어를 상징해가지고 저 태극기 달아논. 국기 달 아논 데다가 달아놓는데 잉어가 그렇게 헤엄쳐가지고. 또 설이 되 면, 또 신 앞에 모셨던 떡. 동그랗게 떡이 있어요. 집집마다 새끼줄에다가 소나무 자몽 같은 거 일본 저 자몽 같은 거 있어요. 노란 거. 그런 것도 보고. 탈춤도 일본의 탈춤도 보고, 일본춤의 여러 가지 춤 중에서 느린 춤 이 있습니다. 느린 춤인데, 그 춤은 아주 너무 마 지루하고 느립디더 동작 이. 어릴 때는 마 별 재미없이 멍하니 그냥.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춤 속에 참 동작이 없고 여기서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돌아가는 데 한 정도로 그렇게 느리게 돌아가는데. 2분 걸릴 선생님, 그 아주 어린 시절인데, 초등학교 입학하시기 전인데 선명하게 기 억이 나시나요? 원체 많이 많이 구경했거든요. 원체 많이 구경을 하고, 우리 집에 인자 아버 지가 고물상하고 어머니가 인자 촛불 만드는데도 다니다가, 그 담에는 그 집에다가 하숙을 쳤어요. 그니까 노무자들이, 하숙을 쳤는데, 그 노무자들 이 일마치고 나면 나를 데꼬 192) 가기도 하고, 뭐 사주기도 하고 참 많이 이뻐하고 그랬거든요. 그래나서 그때 그 당시만 해도 유행했던 게 롤러스케 이트 타는 게 유행이었고, 좀 멋쟁이 그 남자들, 머슴아들 인제 머슴 아들이 판타롱 바지, 나팔바지 예, 그거입고 롤러스케이트 타는 게, 흰 나 팔바지 입고, 롤러스케이트 타는 게 유행이었습니더. 191) 일본 단무지. 192) 데리고. 153

155 홍의 삶과 예술 홍의 구술 장면 그때가 1930 년대 인가요, 선생님? 내가 35년에 태어났으니까 30년대 후반에 네, 30 년에 후반이죠. 근데 롤러스케이트 타고 이랬는데, 그때 그 요즘 왜 그 한동안 행하지마는 여자들 머리 자존심카면서 앞에 요렇게 ( 머리를 만 지며) 세우는 머리 안 있습니까? 네네 네. 그거는 일본에서 많이 유행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그때 당시에? 네. 그때 그 그때는 어떻게 하노 하면은. 꼬마들을 갖다가 찍찍한 거 그걸 발라가. 유행이 돌고 돈다는 말이 맞네요, 선생님? 예, 예. 지금은 젤이 유행하고 하지마는 예예 돌고 돌아요. 유행이 돌고 154

156 춤꾼의 가족 돌고 그 담에 옷도 참 그때 그 저 버버리. 지금 버버리라는 게 옆무늬 가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 무늬가 일제시대에는 아주 공장에서 그렇게 짜 가지고 만들어내서 가난한집 아들 193), 없는 집 아들,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그런 무늬 옷을 입고 다녔어요. 그런데 인자 근대에 내가 그 무늬를 보고 깜짝 놀랬습니다. 요즘 또 새로 체크무늬가 유행하는데 그 체 크무늬, 잔잔한 체크무늬, 큰 체크무늬 이런 건 그때 참 못 사는 집 아들, 또 말하자면 식모들 그런 사람이 입었는데, 유행이 희한하게 돌고 < 꽃> 이 라는 영화를 내가 봤는데 그 이정현인가 가수. 나는 그때 첨보니까 머 리에 그 핀을 꼽았는데 194), 그 핀을 갔다가 요195) 꼽았더라고 { 네네.} 그 핀 음. 머리에 요 꼽는 게, 옛날에 식모들 무식한 여자들이 요 꼽았어요. 좀 유식한 여자들은 요기 안 꼽았습니다. 그럼 어디다 꽂아요? 흉을 봤습니다. 그럼 어디다 꽂아요? 머리를 이렇게 ( 앞머리를 가리키며 ) 넘가 196) 가지고 느슨하게 이쪽으로 이 래 꽂았죠. 아 요렇게. 네. 요, 이렇게 꼽고. 머리를 세아 197) 가지고 요 이래 꼽고 했지. 요래 안 꼽았 거든예. 그래했고. 요 동글동글하게 이래 연지 바르는 거 안 있습니꺼? 193) 아이들. 194) 꽂았는데. 195) 여기. 196) 넘겨. 197) 세워. 155

157 홍의 삶과 예술 네. 그게 요즘은 또 가끔 모델들도 또 그래 하는데 옛날에는 그 창녀들, 화장 할 줄 모르는 여자들 데려다가 그 인자 화장품 싸구려 화장품 사주면 하나 같이 뭡니까. 허애 198) 바르고 그냥 동글동글하게 바르고 요랬었어예. { 음 } 자홍의 누나 연홍 근데 그런 게 아주 촌스러웠던 게 지금 이렇게 다시 또 유행되는 게 세련 된 사람이 하니까 세련되게 보입디더. 그래서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서 사 람에 따라서 옷이나 머리나 그 당시에 같은 그 빨간색 루즈를 발라도 지 금 여성이 발란 199) 거 하고, 또 귀부인이 발란 거 하고, 또 그 야간업소에 나가는 아가씨 들이나 아주 천박한 여자들이 발란 거 하고, 같은 거라도 느 낌이 다르다고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그 미적 감각에 대한 생각이 조금 변 화가 됐었고. 그 담에 음 한동안 일본에 그 당시만 하더라도 피부가 우리 누나가 검으니까 음 보리색 ** 에다가 그 보리색 해가지고 조금 어두운 색이죠. 노란색하고 이래 섞어서 바르더라구요. 근데 요즘 보니까 무대화장 이 한참 또 검은 화장을 하더마는 요즘은 또 희어지고 유행이 또 그래 돌아 갑니더 돌아가고. 또 일본에서 그 종이로 가지고 그 활동사처럼 넣어 가지고 막 또 그림을 넣고. 손기정 선수 그때 당시만 해도 일본사람 으로 취급 해가지고, 인자 손기정 선수가 일등을 했다면서 어린 아들 200)이 모아가지고 돈 주고 또 그런 기억들도 나고. 198) 하얗게. 199) 바른. 200) 아이들. 156

158 춤꾼의 가족 그걸 일본사람들이 상연을 해요? 네, 네. 일본에서. 응, 일본에서 상연도 했고. 슈크림이라는 게 내가 그 때 먹어본 빵인데, 한국에 나와서 구경을 못했는데 언젠가 그 이생강 씨 하 고 같이 명인 명무전 에 그 동경에 파르코극장에 갔을 때, 파르코백화점 안에 극장이 있습디더. 근데 거기가 4,500 원 입장료 했는데, 음 그때 그 파르코극장. 내가 일본말을 쪼금 아니까 잠시밖에 건너보니까 빵집이 있어 예. 슈크림이 있더라고예. 그때가 내가 50 살 넘었을 땝니다. 거의 60살 다 됐을 때. 처음으로 먹어 봤어예. 그래서 아 참 감격스럽고. 어릴 때 드시던 맛. 네. 그 맛은 감격스럽고. 또 나또 도 설탕에 절여가 201) 또 사먹었고. { 음 } 또 그거는 인자 편의점 같은 데서도 파니까. { 음 } 지금 인자 슈크림 이 빵집에도 많이 나오대요. 많이 나오고. 그래 그 담에 인제 영화도. 그때 지나사변( 이 많이 불렀어요, 많이 부르고. 그 ) 202) 이 났을 당시라서 중국풍의 노래를 일본사람들 중국옷을 입고 여자들이 나와서 노래 부르고 중국부채 들고 흔들면서 귀고리 달고 나와서 요렇게 양쪽에 찢어 옷 원피스 같은 거 입고 나와서 노래 부르고 이런 것이 한참 유행을 하다가 대동아 전쟁 일어난다 해가지고 인제 우리가 한국에 나왔습니다. 나왔는 데 그때 그 내가 얘기했는가 몰라도 그 한영숙 선생님 같아예. 저게 말 시바이란 말을 많이 했거든요. 천막을 짓고, 음.. 말하자면 말뚝을 박아가 이래 천막을 치고 이래가 공연하는 거를 그 당시 사람들 말시바이라 했습니 더. 말씨바이요? 네. 말시바이. 말뚝 박아 가지고 시바이는 인자 그 굿한다 이런 뜻이 거든 예. 쑈한다 이런 뜻. 201) 절여서. 202) 일본에서 중일전쟁을 이르던 말. 157

159 홍의 삶과 예술 씨바이? 시바이, 예. 시바이? 시바이. 아 이게 굿한다는 뜻이에요? 예, 굿한다. 뭐 이렇게 구경거리 뭐 이런. 경상도 이 지역 말루요? 아닙니더. 일본말이 시바이인데. 아 일본말입니까? 예 근데 한국 사람들이 그걸 말 자는 한국말이고 시바이 는 일본말이고. { 아 } 이래 붙여가 말시바이 말시바이. 그러믄 이 말 이라는건 어 말뚝 할 때 말뚝 할 때. 말뚝을 쳐놓고 굿한다 이런 말이죠? 예예예 그런 ** { 아 } 말뚝 굿이라는 뜻이지예? { 음 } 말뚝 쇼. 말뚝 연극. 뭐 이런 거. 말뚝 쇼. 예, 그걸 말시바이. 그렇습니다. 이런 걸 일본에서 보신 거에요? 예, 일본에서도 봤었지예. 아 일본에서 보셨는데 일본에서 이런 걸 한국사람들이 말시바이라고 { 예, 예, 예.} 했다 이거죠? 또 한국에서도 봤고 그랬는데, 인제 그때 볼 때에 ( 침을 삼키며 ) 그 우 에는 새까만 거 발레 연습할 때 입는 거 있죠. { 레오타드.} 예. 그걸 입고 밑 에는 치마를 입었습디다. 입고 까만 장갑 검은 장갑 끼고, 꼬깔 쓰고, 이래 가 춤 좀 추다가 북도 쪼끔만 춥디다. 그런 걸 봤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한 158

160 춤꾼의 가족 영숙 선생님 같아예. { 음 } 키도 자그마한게. 어 선생님이 어릴 때 일본에서 보셨던 { 예, 예.} 그래했었고, 그 담에 인제 그 다까라주까 203) 하는 일본에 그것도 얘기 했지요? 예, 예, 예. 그리고 예. 일본에서는 그럼 오사카에 사셨던 건가요? 예. 오사카. { 오사카.} 오사카에, 오사카 저 덴뽀 쪽인가? { 덴뽀쪽 } 예, 덴뽀쪽. 그리고 누님은 인자 그 사쿠라노니아 여자 고등학교 다녔어요. 음. 사쿠라노니아 { 네. 여고.} 여고. 예. 그 당시 여성으로서 고등학교 졸업 일본에서도 우수 성적으로 했거든 예. { 음 } 그래서 인자 어 엄마가 한국사람인 거 표나면 부끄럽다고 누나 가 허허 ( 웃으며 ) 하이튼 오지 말고. 한국 아는 누나뿐이었거든예. 그래 오지마라 캐가 안 가고 이래해가지고 했는데 성적이 { 그러면 } 참 좋게 해가지고 { 예 } 일본에 저 그럼 졸업을 그 학교에서 졸업하신 거에요? 예, 예. { 아 } 일본에 그 하이쿠 204)라는 시가 있습니다. 네네. 하이쿠. 네. 하이쿠 그 시를 인자 나이 들어 가지고 일본에 보내면 그 잡지에 나 오기도 하고 그렇습디다. { 음 } 예. 그라고 그 결혼해가지고 자형 집에 인자 그 간판 같은 거 누나가 붓글씨 써가 달아 놓으면 오는 사람마다 보 고 달필이다 카고 으 *** 그럼 누나는 사쿠라노미아 여고를 졸업하시고. { 네.} 선생님 4 살 때, { 그렇 죠.} 다시 4 살 때 건너가셨다가 또 초등학교 입학하실 무렵에 { 예, 예.} 다 시 한국으로 누나도 같이 들어오신 거죠? { 예, 예.} 그럼 선생님이 들어오신 나이는 8 살? 203) 제1 차 구술채록문의 주석 다카라즈카 참조. 204) 의 3 구( ) 17 자( ) 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 ( ). 159

161 홍의 삶과 예술 누나는 좀 있다가 들어왔지예 졸업하고. 그때는 8 살 무렵에 들어오신 건가요? 내가요? { 네.} 내가 그때가 들어와서 한 1 년인가 있다가 입학했으니까. 음 7 살 무렵? 예, 7 살 쯤 됐겠네요. 8 살에 입학했지 싶어요. 지금 생각에. 그때 당시에도 8 살에 취학 연령이 지금하고 똑같나요? 예, 예. 8 살. 네. 아 그럼 누나는 그곳에서 졸업을 마치고, 학교를 마치고 들어오신 거 고 { 네, 네.} 오셔서 직장을 다니셨어요? 예예. 직장 다녔습니다. 어 부산에서 다니셨나요? { 예, 예.} 음 선생님이 { 부산에 } 가족들이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에는 부산에 정착하신 거죠? 예예. 부산에 정착했죠. 정착해가지고 부산에 범일동에 부산시장 옆에 자 성대 있습니다. 자성대라는 산이 자그마한 산이 있었는데, 옛날에 그 왜 적들이 침입했을 때 그 성에서 동래부사가 거기서 또 싸우고 뭐 이랬던 같 습디다. 그런데 그 자성대 바로 밑에 집을 짓고 있었거든요. 그 동네가 자 성대 밑에 아주 이렇게 원형으로 모두 다 집이 이렇게 둘러싸가 있었어요. 가운데 마당이 꼭 학교운동장보다 더 넓었습니다. { 음 } 소년 자홍의 사춘기 네. 그래가지고 거서 205) 그 뭐, 자치기? 예, 자치기도 하고 제기차기도 하고, 연날리기도 하고, 또 거기선 저 나이 많은 그 말하자면은 형뻘 되는 그런 사람들이 오면은 꼭 뭐 이렇게 여자들 얘기도 해주고, 또 여자들하고 데 205) 거기서. 160

162 춤꾼의 가족 이트 신청도 하고, 어린 그 허허허 ( 웃으며 ) 초등학교 아들 206) 보고 데이 트 시키준다카고, 그래싸면 아들 207)이 마 부풀어 밤에 잠도 못자고 마 그 괜히 거짓말이었는데두요. 그런 일도 있었고, 그라고 그때는 내가 저 학생들하고 많이 놀았어예. 초등학생 때? 네. 여학생들하고 많이 놀았는 게 고무줄뛰기 같은 거. 또 뭐 이거 이거 ( 공 기놀이 손짓을 하며) 이거 공놀이 있지요. { 공기놀이.} 응, 응. 내가 더 잘했 고, 고무줄뛰기도 다리가 ( 손을 높이 들며) 내가 더 많이 올라갔고. { 음 } 예, 이래가지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래 노니까는 이제 어떤 때는 학교가면 남학생들이 놀릴 때도 있고, 이래도 초등학교 때는 꼭 그 무슨 학 교행사가 있으면 학예회는 내가 꼭 뽑혀나가고 이랬었는데, 그 여 얘기했던 거 같다. 그 학교행사 때 여학생이 노래를 부르러 나왔는데 ( 노래를 부르며 ) 울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그거를 부르는데 그 짧은 치마를 입고, 이래 서서 노래를 부르는 그 무릎하고 다리가 너무 이쁜거라요. 남자하고 여자하 고 물론 피부가 다르겠지마는. 그걸 보고 벌써 ( 가슴을 만지며 ) 가슴이 울 렁울렁하고, 어지럽고, 그때 국민학교 208) 3 학년 땐가 그랬는데. 10 살 나이쯤 되셨나요? 예, 예. 울렁울렁 하고, 마 힘이 쫙 빠지는 것 같고 이렇더라고예. 이렇고. 그 다음에 또 그 일신병원이라고 있었습니다. 일신병원의 딸래미가 참 눈 이 새까맣고 크고 피부도 하얗고 좀 연악하게 생겼는데 공부는 마 그런대로 잘하고 했는데 내하고 같은 옆에 앉게 됐어요. 앉게 됐는데 그 학부형들이 오면은 다 남매간인줄 알고. 그때만 해도 내가 좀 이뻤던 모양이라예, 그때 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래 있었는데, 그 아도 인제 이렇게 노래 부르고 206) 아이들. 207) 아이들. 208) 초등학교. 161

163 홍의 삶과 예술 이래 하면은 막 이렇게 ( 가슴 쪽에 손을 대고 두드리며 ) 울렁울렁하고, 하이 튼 어릴 때 나는 마 벌써 그 우리 누님 친구가 오죠. 오면은 이래 얘기하 다가 살짝 일어나가 이래 가면은 어떤 향기가 살짝 나오면은 마 내가 또 ( 가슴 쪽에 손을 대고 두드리며 ) 울렁울렁하이 이렇고. 너무 어릴 때 내가 그런 어떤 그 사춘기가 온 거 같아예. 왜냐면은 영화나 이런 걸 너무 일찍 봐 버렸기 때문에 너무 그런 게 일찍 와버려 가지고 내가 그 옆집 필애라는 애가 있었어예. 필애라는 애가 있었는데, 자성대 밑에 { 필애?} ( 고개를 끄덕 끄덕하며 ) 필애. 참 이뻤습니다. 이뻤는지 우쨌는지 하이튼 가209) 참 좋아 했어예. 좋아해가지고 그래 내가 인제 그 아 보고 결혼하자 카고, 또 어린마 음에 이런 거는 말해도 되는가 몰라도 같이 자자 카고. 초등학생 때? 예. 같이 자자 카고. 섹스도 하자 카고. 이런 말까지 했어예 내가. 그래가지 고 야가 지네 엄마한테 일러주 가지고 { 어 } 엄마가 막 과음 210)을 지르 고 동네가 마 뒤집어지다시피 이런 일도 있었어예. ( 웃으며 ) 하하하. 선생님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 음 } 그랬는데 천지도 모르 면서도 어쩐지 끌리더라구요. 끌려가지고 그랬는데, 너무 일찍 그런 쪽으로 많이 끌리고 너무 많은 영화나 뭐 이런 거 보면서 이렇게 하니까 나이 들면 서는 자연히 그 사춘기가 없어지는 거 같이 그래 됩디다. 음 아예 일찍 사춘기를 겪으신 거네요? 그런가 봐요. 그라고 초등, 그라고 인제 해방되고 나서 성남국민학교로 옮 겼거든요. { 성남 } 네. 이룰 성( ) 자. { 네 } 남쪽나라 남( ) 자. { 음 네.} 성남초등학교, 예 몇 학년 전학가셨 {4 학년 때} 그럼 졸업은 성남국민학교에서 하신 거죠? 209) 그 아이. 210) 고함. 162

164 춤꾼의 가족 네, 네. 근데 성남국민학교 옮겼는데 거가 211) 바로 자성대 밑입니다. 예. 그 랬는데 성남국민학교 옮겼는데 거서도 또 마 내가 화젯거리가 됐어예. 선생님 이사도 안 가셨는데 학교만 옮기신 거에요? 예. 학교만 옮겼습니다. { 어 } 자성대 밑에 그대로. 어 학교는 좀 가까워 졌지예. 어 학교가 새로 생기면서 옮기신 건가요? 아닙니더. 성남국민학교는 일본 아들 212)만 다니던 학굔데. { 네.} 해방되고 나서 일본 아들이 전부다 { 아 } 가버렸거든요. { 아 네네.} 그 빈 학교에 인자 여러 학교에서 집 가까운 애들 요렇게 했나 봐요. { 아 네.} 그래 가 지고 성남국민학교로 가게 됐는데, 그 또 저 가자 말자 노래잘하고 해가, 소문 입소문이 나가, 마 학교에서 내가 또 인기가 있고 이랬는데, 그게 어 학교 마치고 나면은 내가 이렇게 교실에 잠깐 있으모 어떤 남자 선생인데 와가지고 이래 ( 피아노 치는 흉내를 내며) 오르간을 이리이리 치는데, 내가 아는 노래들이라요. 인자 동요 말고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 *** 으음. 가요 같은 거? { 예?} 가요. 대중가요. 그렇죠, 일본, 일본 일본 대중가요. 예. 일본 노래들. 일본 노래들인데, 그걸 하는데 나도 모르게 불러버린 거라 예. 그니까 그 선생이 깜짝 놀래더만은 나를 보더만은 이제는 수업만 끝 나면 꼭 오시는 거라예. 그 선생이 와서 있으면 내가 하는 거마다 노래 다 부르는 거라예. 어떻게 그 쇼도 많이 보고 일본에서 해나 노니까. 그러면 일본어로 부르셨나요, 그 노래를? 그쵸. 일본어로. 우리 누나가 인자 그거 또 저 타이프 ( 타이프 치는 시늉 을 내며) 찍어가지고, 타이프로 찍어가지고 나한테 가사집을 두툼 ( 손짓 211) 거기가. 212) 아이들. 163

165 홍의 삶과 예술 하며) 이만하게 주고 이랬어요. 그래서 그거 보고 누나하고 맨날 노래 부르 고 자성대 밑에 그 넓은 터가 있었는데 그 저 클로버가 막 피고 이랬습니다. 원래 바단데 땅으로 저 메웠거든요, 흙을. 그래서 그 매축지 라 카기도 하고 이라는데. 아 매축지 라는 말이 매립지 라는 뜻인가요? 예. 매립지 라는 말, 예. 아, 그때 당시에 매축지 라고 했었나봐요? 예. 그래가지고 그 축음기 들고 가서 그 인자 그 일본에서 그때 당시에 * 판 가지고 온 거 틀어놓고 누나하고 둘이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또 인자 도 시락도 까먹기도 하고, 이래 이랬었거든예. 놀 때는. 그리하고 네잎 클로 버가 있으면 따가 누나 주기도 하고. 누나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났어요 선생님? 나이 차이가 누나가 호랑이띠라서 우예 되는고 213) 모르겠네요. 선생님은 띠가 어떻게 되세요? 돼지띠요. { 음 } 나이차이 생각을 안 해봤어요. ( 웃으며 ) 허허. { 네.} 그래했 는데. 10 살도 넘게 차이 나네요? 예예. 그랬는데 누나하고 집에서 맨날 있으니까 그 인자, 그 하고 이랬는 데 그래서 인제 그 노래를 다 배우게 되고 일본 노래하는 선생님하고 또 인 자 이렇게 매일 만나게 되고 화배우 신 근데 참 잘생겼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영 신일용이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신성일이 말고, 신영일 말고, 신일용이라고 아주 남자답게 생긴 { 신일용.} 예. 잘생긴 남자다운 배우가 *** 스포츠맨 비슷하게 이리 잘생긴 이렇게 생긴 사람인데, 그래 그 쭉 한달 쯤 있으니까 인제 여자 선생님이 왔는데 그 여자선생님도 노래를 좀 부르는 213) 우예 되는고 : 어떻게 되는지. 164

166 춤꾼의 가족 데 일본 노래를 나만큼 몰라도 인제 또 한국노래도 한번씩 부르고 이라는데 둘이 좋아하는 사인 거 같습디다. 어. 그래가지고 인제 그 서이서 214) 맨 날 같이 노래 부르고 그래 샀다가 했는데 그 내가 그 복이 인연이 없을라 카 는지 내가 우리 담임선생 마다 내가 만나는 담임선생 마다 예술 쪽엔 젬병 이만 만나는 거라예. 우리 옆 반이 음악시간이 있으면 노래 소리가 크게 들 리는데 우리 반에는 음악시간이 없는 거라요. 그래서 참 그게 내가 참 한스 러웠는데, 그래서 그 학교서 남아 갖고 선생들하고 노래도 부르고 이랬는 데 그때도 인자 그 왜 이렇게 그 ( 노래 부르며 ) 우리 아빠 뭐 서울 가 시고 카는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대요 하는 { 오빠생각 } 예, 예. 그 노 래하는데 인자 춤 ( 팔을 위로 올리고 ) ( 노래 부르며 ) 뜸북뜸북 뜸북새 ( 함께 노래 부르며 ) 뜸북뜸북 예. 학예회할 때 노래 저 춤을 추는데 그 학교 선생이 가르켜 가지고 인자 이케 흰 공단으로 원피스 해 입고, 이래 팔을 내놓고 인제 우에 종이를 가지고 별로 만들어 가지고 쓱 ( 두 손으로 머리를 두르며 ) 관을 쓰고 하는데 이 ( 팔을 펴서 ) 이거보고 내가 또 막 울 렁거리고 성남국민학교 땝니다. 그래가지고 참 못 잊어 가지고 그래 참 아팠어예. 내가. 응 말은 못하고. 내성적이었거든예. 짝사랑 열병을 앓으신 거죠? 예, 예, 예. 그런가봐예. 아프고 이런 또 있었는데 그때 그 한참 뭐가 유 행하나 하모 다리 이렇게 쫙 펴는거 안 있습니꺼? ( 한쪽다리와 팔을 펴며) 발레하는 아들 215) { 네, 네.} 네. 그걸 내가 한 거라예. 그리하니까 상급생 여학생들이 막 와가지고 함 해보라 캐서 했더마는 하다가 쫙하면 쫙 ( 팔 다 리를 펴며) 펴지거든요. 그러니까 마 인제 스토커가 돼버린 거라예. 아니 선생님 그게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되신 건 아닐꺼 아니에요? 어릴 때 214) 셋이서. 215) 아이들. 165

167 홍의 삶과 예술 부터 집에서 막 스트레칭도 하고 흉내도 내고 하셨나요? 네. 어릴 때부터. 네네. 춤 흉내를 내고 해샀거든예. 그래서 인자 그 이렇게 해보이카네 되데요. 처음에는 안 붙는데 자꾸 연습하니까 되더라꼬예. 그 ( 흥얼거리며 ) 뜸북뜸북 뜸북이 하는 가가 하는 거 보고 내가 연습을 한 거 라예. 어 그리 하니까네 되니까 인제 그 막 초콜렛 뭐시고 하이튼 216) 과자같은 거 사가지고 따라오는데 성남국민학교에서 집까지 얼마 안 멀지 만은 그때 어린 맘에 겁이 나데요. 내가 좋아해서 이래 하는 건 몰라도 이 래 따라 오니까 상급생 여학생들이 따라오니까 겁이 납디다. 막 어쩔 줄을 모르겠고 이랬는데 그런 어떤 그걸 겪고. 그리운 어머니 그 다음에 이제 그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사이가 안 좋은 거라예. 안 좋 으니까 부부싸움이 자주 했어예. 학교 갔다가 오면은 벌써 이렇게 탕약냄새 가 나면은 아 예? 탄약? 탕약 탕약냄새. 탕약. 네. 나면은 싸워가지고. 싶으거든예. 들어 누워가 탕약 인자 지가지고 마시, 엄마가 맞아가지고 어. 그럼 탕약은 누가 다리시나요? 아버지께서 다리시나요? 탕약은 엄마가 다리지예. 누워 가지고. 싸웠는데 다려줍니까. 아버지는 아 버지대로 그렇는데. 한가지 이상한 게 아버지는 엄마하고 싸우고 나면은요. 216) 하여튼. 166

168 춤꾼의 가족 이 ( 두 팔을 올리며 ) 방문을 꼭 닫아놓고 그 학 있지요? 학을 갖다가 이렇게 접어가지고 천장에다가 줄을 이렇게 달면 거다가 학을 막 달아놓고. 종이학이요? { 예?} 종이학. ( 끄덕거리며 ) 종이학. 예. 만들어 달아놓고. { 예.} 두문불출이라예. 화장실갈 때만 가고. 식사를 안 해. 안 받아예. 식사를 안 받고 문 딱 잠궈 놓고. 모친 강매결과 어린시절의 구술자 167

169 홍의 삶과 예술 학만 접어서 이렇게 줄에 거신 건가요? 예. 그래서 누워가 그거만 이렇게 쳐다보고 이랬습디더. { 음 } 이랬는데 왜 싸웠나 카면 아버지가 내보고 은자 놀러나가자 캐서 나갔는데 어느 집에 그 인제 그 뭐 술집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하기도 하고 이런데, 그 들어가니까 아가씨가 있더라고예. 아가씨가 이쁜 아가씨가 빨가이 217) 요래 바르고 뽀야이 218) 바르고 나이가 어리니까 어 화장이 서툴러도 이쁘잖아 예. 그니까 아버지가 가를 좋아했던가봐예. 좋아해가 씨담아 219) 주고, 용돈 도 주고 이래가지고, 마 그쳐야 될 낀데 나는 그런 거 저런 것도 모르고 마 용돈 주는 건 못 봤고 해서 그래 따라왔는데, 그 뒤에 한번씩 내 모르 게 그 아가씨랑 만나는 그걸 엄마가 알아가지고 그래가 싸워가지고 이래 됐 는데, 그라고는 자주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싸움이 일어나고 이라는데, 인 제 내가 그 중학교 들어가 가지고 그 음악부에 있다가 아버지하고 어머니 하고 또 싸우길래 내가 과음 220) 을 되게 질러 버렸거든예 처음으로. 그라고 나서 목이 가버려 가지고 그때부터는 인자 변성기가 와서 그랬습니다. 그 랬고. 엄마도 참 음식도 잘 만들고 그 못 만드는 음식이 없어요. 메주도 하고 간장도 담고 이렇게 참 ** 하고 이랬는데 그 강씨가 되서 고집이 세 요. 좀 너무 강한거라요. 여자로서. 그래서 내 제자들이 그때 문호하고 홍재 하고 남자 제자들이 있었거든예. 있었는데 엄마 앞에서 내가 한번 너희들 절대로 장가가더라도 강씨 부인한테는 가지 마래이 ( 웃으며 ) 흐흐 그라모 지랄한다. 엄마가 ( 웃으며 ) 허허허 { 하하하 } 그래싸 생각도 나구요. 선생님, 그 저 늦둥이로 태어나신 건가요? 그렇죠. 예. 내가 삼대독자라 캅디다. 217) 빨갛게. 218) 뽀얗게. 219) 쓰다듬어. 220) 고함. 168

170 춤꾼의 가족 아 삼대독자세요? 응. 삼대독자. 아 그러면 누님 낳으시고 한 십 몇 년 만에, 예 그렇죠. 예 삼대독잔데 이 얘기를 인자 마 까놓고 다 해야겠다. 삼대독잔데 어머니가 날 키운 어머니라요. 근데 날 놓은 어머니보다 날 더 걱정해요. 참 잘 이렇게, 예, 예. 아 키운 어머니와 낳은 어머니가 다르신가요? 예. 인제 그럼 강매결 어머니는? 아, 키운 어머니. 키운 어머니 예. 낳은 어머니는 그 저게 어 말하자면은 일찍. 돌아가셨어요? 예. 돌아가셨어예. 아버지랑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아버지 하고는 낳은 어머니도 내나 221) 어떤 술집 계통의 안 있었나 싶은데 예. 아 그 생모의 { 예?} 어머니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어머니 이름도 안 가르키 주고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싸 움하면서 내 입 한마디만 하면 이놈의 속 디비다 222) 카는 게, 거기 인자 내한테 말하면 마 사단이 날꺼라 카는 ** 였던 모양인데, 끝까지 둘이다 말 을 안 하고 갔어요. 거기 원망스러운 게 내가 그 어머니한테도 참 잘해주고 어렴풋이 난 알고 있었거든예. 있었는데 그렇게 해도 말을 해주면 내가 더 내가 잘 해드릴 껀데. 으 왜 그렇게 안 해줬던고 이름 석자도 안 가르 221) 역시. 222) 뒤집어다. 169

171 홍의 삶과 예술 키 주고, 얼굴도 내가 몰라요. { 음 } 얼굴도 모르고, 우리 누나가 그러는데 그 엄마가 내 얼굴 보러 한 번 왔다갔다 카네예. { 음 } 응. 난 그때 벌 로 223) 봐버렸고. 봐버렸는데. 그 한국에 우리 나왔을 때, 그 일본까지 그 여자가 갔다가. 은자 224) 내 볼라꼬 225). 그 일본에 좀 살다가 한국에 오니까 또 한국에 따라 나와 가지고 보고. 은자 한 번만 보고 갔는 거라요. 그 뒤로 죽었다 캅디다. 죽었다 카는데. 음 그러면 선생님 그 태어나실 때, 나시자마자 그 갓난아이를 받아 서. 아마 그런 거 같아예. 그래 상세한 내막은 말을 안 해주니까 내가 모르는데 그거는 분명해예. 놓은 어머니가 따로 있어예. 있는데 내가 꿈을 꾸면은 여인이 나타나거든요. 나타나는데 아주 키가 크고 늘씬한 여인이 그 어떤 때는 드레스 입고 나오고 파마도 이렇게 해가지고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오고 나오는데, 또 치마저고리를 아주 색다르게 저고리는 아주 꽃무늬 있 는 잔잔한 꽃무늬 있는 저고리에다가 밑에 검은 치마** 이렇게 삭 되게 나 오고 그라는데, 그 꿈 얘기를 하니까 점쟁이가 엄마라 카데예. 근데 더 어릴 때는 내가 이래 보니까 어떤 여자가 옷을 벗고 이렇게 목욕통, 일본에 목욕 통이 안 있습니까? 그런 통 안에 앉아있는데 젖이 이렇게 있더라고예. 가위 를 가지고 젖을 이렇게 끊는 그런 꿈을 꿨어예. 근데 피가 안 납디다. 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거는 무슨 꿈인가 몰라도 그 꿈꾸고 나서 내가 아픈데 전에는 그 전기를 가따가 동그라만 이런 걸 안 달았습니까? 형광등이 아니 고 이런 거 ( 뒤에 전구를 가리키며 ) 천장에 달아놓고 있었거든예. 백열등이요? 예예. 집집마다. 줄 이래 돼 갖고 달았는데 누가 있으면 그 줄이 갑자기 이 223) 건성으로. 224) 이제. 225) 보려고. 170

172 춤꾼의 가족 게 점점점점 이만큼 굵어졌다가, 이래 있으모 또 이래 가지고 가늘어 가지 고 실처럼 보였다가, 이라면 마 요기가 이렇게 속이 미쓱하고, 또 인제 학교 서 이렇게 그 휴게시간에 아들 226) 이 작작 떠들죠. 떠들면 교실에서 이래 보 면 사람이 세 개로 보입니다. 한 사람이 세 개로 보였다가 또 이래 모였다 가 세 개로 보였다가 그러이까네, 마 어지럽고 이래가 빈혈도 심했고, 굉장 히 그 학교 가다가 갑자기 막 이래 근지러워서 보면은 막 두드러기가 두두 두두 튀나왔는데, 아침에 소고기하고 버섯하고 엄마가 반찬 그 귀한 거 해 줬는데 그 소고기 알레르기였는지 몰라도, 그래가 집에 가서 검은 옷 입고 또 인자 의사 불러가 주사 맞고 이래가지고는 또 하루 쉬었다가 학교가고. 또 학교 갔다가 또 내가 장이 약해가지고 보면은 막 그.. 나도 모르게 방구 끼는 것처럼 방구를 끼는 줄 알았는데 줄 나와 버려 가지고 그래가지고 또 집에 돌아와 가지고 이런 일도 있었고, 그래 굉장히 내가 말하자면 미숙아 비슷했고 그 기형적이었고, 또 어 뭐라카노 그 뭐라캅니꺼, 왜소 { 음 } 왜소한 애였어예. 음. 어릴 때 병약하셨던 모양이네요? 네. 말도 못합니다. { 어 } 말도 못하게 병약했고 그랬는데 그 어 음식도 가려 먹었거든요. 음식도, 절대로 호박하고 오이하고 가지는 쳐다만 봐도 마 ( 눈을 가리며 ) 이래되고, 냄새도 못 맡고 이래되고 그랬는데, 그래도 그 덕택으로 춤을 추게 되고 이래서 저 춤을 추면서 그 군예대 227) 에 가가 지고 단체생활 하니까 그 단체사람들이 모두 잘 먹대요. 그니까 아무 꺼리 낌 없이 같이 먹어지고 맛있고, 또 그 단체생활 하다가 어떤 때는 굶을 때 도 있거든예. 굶을 때도 있고 그랬는데 그 저게 군예대에서 한번 저 매 공연 안하고 한 한달인가 쉴 때가 있습니다. 한달인가 쉴 때 그때 인자 악 사들이 모아가지고 우리 한 바꾸 228) 지방공연을 하자 이래가지고 이래하는 226) 아이들. 227) 1950 년 처음으로 발족된 위문 부대. 171

173 홍의 삶과 예술 데, 그 공연이 손님이 많을 때는 괜찮은데 없을 때는 밥을 굶어요. 굶으면은 집이 요 부산이고 바로 요 구포에 차타고 가면은 한 면 가거든요. 삼십분 만에도 가고 하는 덴데, 그 빨리 가면 사십분이 이렇게 앉아 있으면 저녁 해가 질 무렵에 굴뚝에서 연기가, 밥하는 연기가 이렇게 올라가고 하는, 극장도 하꼬방 229) 극장. 예. 그렇게 참 허전할 수가 없어예. 엎어지면 코 데 일 230) 덴데. 그래도 그 군예대 그때는 못 빠져 나가는 거라예. 배는 고파죽 겠고. 그래가지고 극장 의자에서도 자봤습니다. 의자를 몇 개 놔놓고 자기 도 하고 이래가지고 인자 그 그렇게 군예대 생활을 하다가 여기서 함 자 다가 겨울이 되니까 난닝구 231) 를 이렇게 한번 벗으니까 마 옷이 전부가 마 흰데는 말고 이렇게 전부 인거라예. 이 알지요? { 네네.} 이가 마 골골한 거 라예. { 아 } 그래가지고 그 걸가지고 마 물에 담가뿌니깐예. 담가가 이래 해가 비누 갖고 씻으면서 그래가지고 널어 가지고 그래 입기도 하고 그랬습 니다. 그때만 해도 매일 목욕할 수도 없고 샤워는 꿈도 못 꾸는 기고. 선생님, 군예대 생활 그 시절 얘기를 다음번에 한번 좀 자세히 얘기해 주세 요. 군예대. 네. 그때 그 매방선생님하고 { 네네.} 같이 남방춤도 추고 { 네네.} 하고 했는 데 꼭 기억해 놨다가 저 { 네, 네.} 질문을 하세요. 네. 그러고 그 생모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으시고? 전혀 없습니다. 음 그 이후로도 보신 적이 없으시고. 네. 네, 네. 228) 바퀴. 229) 판잣집. 230) 닿을. 231) 러닝셔츠. 172

174 춤꾼의 가족 떠나보낸 제자를 위한 제망제가 그라고 인제 어 때가 되니까 그 저 뭐시고 내가 제자 중에서 인물이 참 좋은 애가 신 지금 그 박 누굽니꺼. 장동건이 눈, { 네.} 코, { 네.} 입은 장동건이보다 더 작아요. 근데 얼굴은 ( 주먹을 들며) 요만해요. 피부가 참 까무잡잡한 게 머슴아가 요 지미 옆에서 보면 지미가 이렇게 이쁠까 싶을 정도로 열 몇 살 땐가 이래 왔는데, 그래 내가 인자 그 청소도 시키 고 월급을 줬더만은 아가 안 보이는 거라예. 근데 그 옆방에 있던 아주머니 가 인자 나는 학원에 있고 집은 따로 있었거든예. 밥을 늘 갔다 줬거든예. 밥을 저녁을 가지고 오면서 보이까 선생님 그 쪼깨난게요 232), 술집에 다리 를 ( 다리를 꼬으며 ) 요래 꼬아 가지고요. 안경 그 선글라스 끼고요. 담배 요 래 물고 회 한사리를 놓고 저 소주 놓고 이래가 있습디다. 열 몇 살짜리 가. 배꼽을 잡고 웃었거든요. 그런데 가가 233) 참 사람도 좋고, 근데 그 성장 률이 좋아서 키가 내보다 컸어요. 커가지고 검은 양복을 이렇게 함234) 맞춰 입혔더만은 곱슬머리고 이래노니까 어디 나가면은 음악한 줄 알았대요. 한 번 옷을 입으면은 절대 안 벗는 거라요. 와이셔츠를 입으면 그대로 자고 그 대로 일나니까 양복이 빨리 질이 납디다. 새 옷은 이래 빳빳하이 살아있는 데. 그게 보기는 좋은 게 요기가 얼마나 새까맣습니까. 다방에 가모 235) 불 빛에 이게 잘 안 보이고 하니까 폼 잡고 이래가지고, 지금 그 [ 내원] 의상실 이라고, 요 이번에 한량춤 옷 맞췄어요 맞췄다 캅디다. 그 의상실의 주인이 내 제자였거든요 남자. 가가 홍재라고 있는데 근데 가가 참 그 노는 걸 좋 아해가지고 생일 아닌데도 생일이라 카고 놀러가고 이랬는데, 한번 내가 그 232) 몸집이 작은 사람을 일컫는 말. 233) 그 아이가. 234) 한번. 235) 가면. 173

175 홍의 삶과 예술 점치는 사람이 유명하다 캐서 [ 붓드리 ] 할매한테 점을 보러 갔는데 그 할매가 하는 말이 내꺼 보고나서 선생은 보이까네 나이 들수록 괜찮겠습니다. 지 금은 좀 어 별 이렇게 그하지마는 236)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그 하 는 일도 나이들 수록 좋아지겠고 그렇는데, 지금 먹고 사는 건 지금도 걱정 이 없네요. 이라면서 근데 그 아237) 보고 니는 절대로 이 선생님이 하지마 라는 짓은 하지 마래이 238). 하지마라 카는 짓 하다가 니 잘못하다가 죽는 다. 니 보이까네 교통사고 수가 들었다. 어 올해가 그런 기 아니고 이 평 생에, 교통사고 수가 한번 들은 긴데 언젠지 모르겠고 절대로 선생이 나가 지 마라 칼 239) 때는 나가지 마라. 차타고 갈 때도 선생님하고 같이 이래라 이. 이랬는데 마 놀러가고 싶으면 거짓말하고 생일이라고 캐서 나는 또 생 일 그 놀다가 오라꼬 돈 주고 아침에 머리감고 치장하고 그라는데 넥타이 그래도 빌려주고 이래가지고 인자 내보냈드만 안 들어왔는데 그 이튿날 아 침에 병원에 인자 응급실에 인자 있는 거라예. 그랬는데, 그 보이까네 이래 인자 완전 식물인간이지요. 오로지 하나, 둘, 셋, 넷 춤 가르킬 때 그걸 한 번씩 합디다. 그래가지고 그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의사한테 물어보니까 곰 을 좀 먹이면 좋겠다 캐서 또 곰집에 가서 곰을 먹이 사다 해다가 먹이 고 또 뭐 개소주가 좋다고 해서 또 개소주 해다가 먹이고 이래 했는데도 결 국 죽대요. 죽어가지고 내가 인자 그걸 뭐라 하노? 교통사고 배상청구, 그걸 하니까 많이 나와 봤자 700 만원? 이래밖에 안 나온다 이라는 거라예. 이거 안 된다 이래 갖고 변호사 찾아 갔자나예. 가서 이렇고 이렇고 이런 제잔데 사실 학교도 내 대신 이 아 240) 가 가서 가르키고 이름은 내를 올리놔도 241), 236) 그렇지만은. 237) 아이. 238) 마라. 239) 할. 240) 아이. 241) 올려놓아도. 174

176 춤꾼의 가족 학교 그때 내가 마스게임을 쭉 하고 다녔었거든예. 음악도 이 아가 전부 다 만든다. 만들고 하니까 야242)가 수입만 해도 야가 내 수입비 다 담당하고 있던 앤데 제자가 죽었는데 이래가지고 안 됩니다 카면서 이라자 그때 선생 님 무슨, 이번 공연 무슨 공연하겠습니까? 하고 부산일보산가 기자가 왔더 라고예. 그래서 제망제가로 하겠습니다. 제자가 죽었으니까 죽은 제자를 위한 제가로 하겠습니다. 카니까 신문에 이만큼 내주더라고예. 그걸 가지고 인제 재판하는데 갔더만은 저쪽에 또 변호사가 나오데요. 아 질문을 갔다가 참 마 겁나게 금새 이 말을 갔다가 되풀이 되풀이 해가면서 그기 인자 말 한마디 틀리면 인자 잽히는데 그런데 내가 긴장을 해서 그렇는지 되풀이 되 풀이 해 모두 한 번도 안 틀리고 그대로 대답을 핸 거라요. 하고나서 내가 한숨을 푹 쉬면서 인자 마치고 나오면서 내가 그 제자 이름 홍재야, 홍재 야, 오늘 내가 아이고 혼났데이. 변호사, 변호사 좀 바꿔줬으면 좋겠다. 인 자 또 그 변호사 나오면 내가 감당 못할 거 같다 이랬는데 아까 변호사가 바뀌어 버렸어예. 희한하게도. { 네.} 바뀌고 했는데, 이제 그 판결이 나가지 도 돈이 얼마 나왔는지 그 몰랐는데, 인자 그 집 식구들이 판결 받고 할 땐 다 가가지고 그기 7 천만원인가 나왔습디다. 그게 몇 년돈가요? { 네?} 몇 년도에? 그게 지금 한 십년? 십 년 전에? 네. 육십 내가 그 내가 삼재가 날 때였으니까, 오십 아홉이 삼재였나 그럴 껍니더. 아홉수에 육십, 육십 하나, 육십 둘이나 육십 서이나 되겠네예. 날삼재가 무섭다 카더만. { 음 } 그래가지고 그라자 내가 인자 그 아는 그 또 누 누님이 있었거든요. 누님뻘 되는 사람이 하도 계를 넣어라 캐서 계 를 두 개를 넣었는데예. 그기 빵꾸 243)가 나버렸어예. 빵꾸나고 이 제자 죽 242) 이 아이. 243) 펑크. 175

177 홍의 삶과 예술 고, 통장 보니까 통장이 탈탈 비고, 몇 천원이 남아 있더라고예. 그래가지고 다시 시작했는 거라 그라고 그 제자가 인자 죽었을 때. 선생님 그러면, 그 변호사 쓰고 하는 재판비용을 선생님이 다 부담하신 거 에요? 예예. 그런 거에요. 내가 다 해주고 이랬는데 7,000 만원이 나왔는데 그 7,000 만원 나왔다가 전화라도 한마디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래야 될 껀데. 나는 그 받은 줄도 몰랐어예. 그라고 한 일년인가 있다가 어데 갔다 오니까 쌀이 한 가마닌가 있더라고예. 그래 무슨 쌀인고 카이까네 그 집에서 보낸 쌀이라 이라면서, 그래 돈이나 받았는가? 했더니 7000 만원 받았다 캅디 다. 이라는 거라예. 근데 그 집 큰 아들이 그 7000 만원 가지고 은자 가게를 채릴 244) 꺼라고 해가지고 그 집이 주에 있거든요. 주에 그 자그마한 집이 있었는데 그 마당에 큰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를 끊어 버렸어예. 빚 을 내 가지고 거다가 집을 또 하나 지은 거라예. 자그마하이 짓는다고 집을 인자 지 245) 놓고 농사지으러 갔다 와서 낮잠 잤는데 그대로 일주일을 안 일 어나는 거라예. { 네?} 그 큰 아들이 인제 뭐 인자 나무를 베 버리고 그 다가 인자 이렇게 하꼬방 246) 같이 지가 247), 지어 놓고는 주니까 그 논이 있었거 든요. 논농사 지으러 갔다가 점심 먹고 잠시 와가지고 그 낮잠을 잤는데 그 나무 위에 있는데 그서 잤는데 그대로 일주일동안 못 일어나는 거라요. 그 대로 죽었어예. { 어머.} 그게 인자 나무 목신이 들어서 그렇다 이랍디다. 집 안에 있는 나무를 함부로 끊는 게 아닌데 끊어서 그렇다 이렇게 말을 합디 다. 그래 했고, 그래 하는데 그 제자가 죽었을 때, 내가 시장에 가서 저 죽 은 사람 입히는 수의 안 있습니까? 제일 비싼 거, 제일 고급스러운 거 사고 244) 차릴. 245) 지어. 246) 판잣집. 247) 지어서. 176

178 춤꾼의 가족 그 담 248) 에 가서 인제 그 영안실에 가가지고 그 옷 입히는 은자 249) 나 왔을 때, 그 관 냈을 때, 그 염주 안 있습니꺼? 염주를 넣어주고 그 담에 인 자 그 살풀이 수건, 하나 넣어주고 좋은데 가거래이. 카면서 저승에 가서 도 부처님 열심히 믿고 또 춤 어 잊지 말고 다시 환생하더라도 춤 추거 라. 니 춤 소질 있으니까 춤 추거래이. 카고. 좋은 데 태어나거라. 카고. 이 라고 은자 재가 나올 때, 그 화장터에 넣을 때, 그 배하고, 그 아 좋아하는 땅콩하고, 오징어하고, 술하고 소주하고 이런 거 전부 내가 또 뛰 가가지 고 땀 흘리면서 사가오고 그 집식구들은 손도 하나 까딱 안 해. 안했습니다. 내가 전부다 그래 해주고 이랬는데 지금 장동건이 보면 좀 그렇고, < 포청 천> 이라는 또 그 중국 드라마 보면은 그 전홍이라고 있습니다. 전홍이 나오 는데 그 눈 큰 전홍이가 있었어예. 영판 닮았어예. 그 죽은 제자가. 근데 그 래 됐었고.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셨던 모양이에요? 예예. 그래 제자를. 홍재? 홍재라는. 예. 가가 인자 결혼도 시켜야 되겠고. { 네.} 그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 제자가 가하고 둘이 있었거든요. { 음 } 어 있었고, 인자 요 갑용이하고 서이 250) 아닙니까 아들하고. 공연 있으면 서이서 남자가 있으니까 참 좋았 어예 그때는.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좋은데 가래이. 카고 보내주고 보내 고. 그렇게 무정하게도 그렇게 그거를 안 합디다. ( 휴대폰 울림) 그래가지 고, 잘가라 카고 이래 해가지고 내가 인제 그 < 지전춤 > 을 추기 시작했어요. 대한민국 무용제 때. 아 < 지전춤 > 이 그래서 추기 시작된 거에요? 248) 다음. 249) 이제. 250) 셋. 177

179 홍의 삶과 예술 홍의 지전춤 예? 아닙니더. 대한민국무용제 때 < 지전춤 > 을 췄었는데 홍재도 췄었거든요. { 아 } 178

180 춤꾼의 가족 그 죽은 제자도 췄었는데, 내가 인자 그 혼자서 인자 가를 위해서 인자 < 지 전춤> 을 추기 시작했지예. 그 제자를 생각하시면서 추신 거에요? 예예. 다시 인자 그걸 혼자 추는 춤으로. 옛날에는 예. *** 군무 위 주로 했는데. { 아 } 인자 내 춤으로 인자 독무로 가게됐. 그래 그래 해 주가 가한테 그래된겁니더. 그리고 아까 제자를 위해서 하셨다는게 제망제가? 제가. 그것도 했지예. 그것도 창작춤인가요? 예. 창작 공연 했습니다. { 음 } 예. ( 휴대폰 울림 ) 그래 해가지고 인자 그 그런 저 그것도 하고 지금 그 외에 어머니나 아버지나 돌아가시고 핸 거 [ 합 동 그 ] < 지전춤 > 을 추면서 그래 합니다. 음 선생님, < 지전춤 > 창작과 관련해서 제가 질문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요. { 네.} 계향 선생님을 모시고 굿 공부를 하셨다고 하셨잖아요. 몇 년부터 몇 년 까지 그게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하기 한 3 년 전에부터 했거든예. 3년 전에 민 속관에서 계향 선생님을 만났거든예. 내가 민속관 회원이 되면서. { 민속 관에.} 네. 부산민속예술협회. 지금 이사장에 온경 씨가 있고. { 네, 네.} 그 온경 씨가 나를 민속관에 입회를 시킨 거라요. 그 이 예술협회 251) 에 가입하신 게 선생님 몇 그 민속협회에 전화해보면 알 겁니다마는 오래됐습니다. 네. 그래서 계향 선생님을 만나신 거죠. 굿춤에 가신. 네. 죽은 홍재하고 모두다 같이 < 지전춤 > 을 배웠어예. 배워가지고 다같이 251) ( 사)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 179

181 홍의 삶과 예술 계향 선생한테 배워가지고 { 아 } 같이 대한민국무용제도 나가고. { 네.} 그래 했습니다. 네. 그래했던 춤입니다. 그래가 내가 인자 새로 인자 그 내 혼자 출 수 있는 춤으로 다듬은 거지예. 그니까 계향 선생님의 춤을 그대로 전수받아 추시는 게 아니고 거기에 같 이 선생님의 어떤 창작적인 요소가 들어간 거죠? { 네.} 선생님의 춤으로 승 화시킨. 네. 무대 구성상. 해가지고 그래도 될 수 있으면 < 지전춤 > 에 맞는 동 작들을 해야 되겠다고 고민을 많이 하고 한 겁니다. 무속들이 봐서 저거는 아니다 하는 것들은 될 수 있으면 안 넣었거든예. 왜냐면 < 지전춤 > 아니더 라도 무속들이 추는 춤 안 있습니까? { 네} 그 지전을 들고 또 그런 동작도 좀 어 넣고 이런 식을 했기 때문에, 예 그 래서 많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입니다. 그라고 그 < 지전춤 > 추니까 그 학자 들 이런 분들이 참 좋아하데요. 또 현대무용하는 교수도 참 좋아합디다. 좋 아하고 이번에 내가 시립무용단에서 그 < 지전춤 >, 몇 일전에 무용단 단원들 하고 췄는데 동아대학에 그 장정윤 교수한테 전화가 왔습디다. 선생님 지 전춤 공연 참 잘봤습니다 하면서 문자가 왔데예. 그래서 내가 전화해가 고 맙다하고 했는데 참 좋더라 카면서 그래 현대무용 하는 정귀인 교수라고 부 산대. { 네네} 선생님 나도 이래 종이를 들고 배도 내가 반야용선 배들고 했었거든예. 근데 그 배 같은 거 들고 종이 들고 하는 그런 춤 나도 참 좋아합니다 하 고, 또 그 남종순 박사. 그 사람은 내가 < 지전춤 > 추면 꼭 찍습니더. 찍고 저 이병옥 252) 박사도 사회 보면서 < 지전춤 > 추면 찍고. 그래서 참 고맙기도 하고. { 네.} 이 춤이 널리널리 많이 그 내 후배들 후대에 많이 추어줬으면 하는 그런 바램입니다. 252)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이며 한국무용사학회 회장 대한무용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80

182 춤꾼의 가족 구술자의 육필 대본집 < 해랑당애화 > 선생님 다시 중학교로 돌아가서요. 중학교 다니실 때 음악활동 하신 거 말 고 다른 학교생활 하신 거 기억나시는 거 있으세요? 중학교 다닐 때 인자 그 중학교 다닐 때는 내가 영화도 혼자서 많이 보러 다녔지마는 탁구도 많이 치러 다녔고 그 담에 만화방도 많이 다녔어예. 그때 당시에도 만화방이 있었나봐요? 만화방이 없었고 그냥 만화 파는 집이 있었어예. 181

183 홍의 삶과 예술 아 만화 파는 집. 뭐 골목 비슷하게 생긴데 막 만화 재놓고 있었는데 좀 헐코 253), 그래 새로 나온 것도 있고 좀 오래된 것도 있고 그 자리에서 빌려줍니다. 그때 내가 본 만화 중에 기억나는 게 저.. 제목은 그 꼬마공주 라고 해놨던데 그기 바리데기입디다. 내용이. 참 재밌다 싶어가 아이구 이런 걸 가254) 춤을 췄 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무용극을. 바리데깁디다. 그걸. 나중에 그게 그 < 해랑당애화 > 그걸로 선생님 작품을 표현하신 게 아닌가요? < 해랑당애화 > 는 전국 민속경연대회 갔을 때 내나 석출씨 그쪽에서 인자 나와서 애랑당 해가지고 배 이렇게 나가는 거 사공들 배타고 나가다가 풍랑 을 만나면 이런 것만 간단히 하데예. 그래서 이거 어떻게 된거냐 하니까 그래 애랑이라는 게 있었다 카면서 그래서 내가 인제 그 민음사. 민음사에 서 나오는 문고판이 있습니다. 그 문고판에 보이까네 애랑이라고 있습디다. 보이까네 애랑이는 여자고 또 그 여자 그 자기 남자가 고기 잡으러 나갔다 가 풍랑을 만나서 안 들어오니까 그거 기다리다가 그냥 미쳐서 거기서 죽어 버렸거든요. { 네, 네.} 그 뒤에로는 고기 잡으러 가면 자꾸 풍랑을 만나고 안되니까 이제 재를 올 려주는 게 인제 그 남자 상징을, 남근을 만들어가 { 네네.} 달아가지고 그래 재를 올려줬다. 그런 전설이 있어예. 그걸 내가 좀 더 무용극화 시켜가지고 조금 아기자기하게 사랑의 장면도 넣고 바다 속에 그 용왕도 있지만은 그 바다에 마녀도 안 있겠습니까? 마녀도 넣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또 연도, 연날리기 하면은 연날리기 했는데 연 뒤에 인자 그 마녀들이 숨어서 나오는 거라예. 그래가지고 인자 그 뭐 어떻게 하는 그런 아주 재미있는 걸로 갔다 가 셰익스피어의 4 대 비극 안 있습니까? 거 보면은 오딧세이도 있고 또 뭐 드라? { 햄릿.} 네? { 햄릿.} 햄릿 있고 또 뭡니꺼? 하이튼 네 가지 중에서 또 253) 헐다 값이 싸다 :. 254) 이런 것을 가지고. 182

184 춤꾼의 가족 있고, 거기서 얻은 게 인자 아 이건 마녀를 넣어야겠다 싶어가지고 거다 마 녀도 넣고 이랬는데, 그 당시로서는 그 그래가지고 가. 네 만화 꼬마공주. 참 중학교 얘기하다 네. 꼬마공주 도 보고 지금 봐서는 좋은 만화도 더러 있었습니다. 아주 저질 만화 말고. 근데 그런 만화는 잘 안 읽어주 아들 255)이 안 읽어줬을 겁니다. 이랬었고 그다음에는 그냥 영화구경 많이 간 거 서커스 많이 간 거 쇼구경 간 거 많이 있어가지고 그라고 그 또 공설운동장에 축구대회 그런 거 있으면은 학교에서 응원가를 불러줘야 되거든요. 그랬는데 인제 응원가 불러주러 가면은 갈 때는 버스타고 가고 올 때는 걸어옵니다. 걷는 걸 내가 좋아했고. 그래서 인자 그 여러 가지 길을 좋아했기 때문에 사방에 이렇 게 구경도 하면서 길을 익히고 이래오면, 차비가 남고 그런 식으로 돈도 모 으고 이래가지고 그 갔고, 또 빵도 사 묵고 여러 가지 사고 싶은 것도 사고 이랬는데, 그때는 그래도 돈을 헤프게 안 쓰고 아주 그 검소한 생활을 했는 데, 우리 반에 급장이 한번 저 면도칼을 가지고 왔어예. 외젠데 보니까 너 무 멋거라예. 그래 그 한통에 다섯 개씩 들은 거 그게 얼마씩 이었는가 몰라도 내가 스무 통 샀는데 왜 샀냐모 사가지고는 집에 갖다 놓고 수업만 마치면 급장이 내 이름부터 부르거든요. 수업마치면 얼른 마 빠져나가서 화 장실 갔다가 수업시작 할 때 들어오고 가슴이 막 이렇고. 집에 엄마한테 말 도 못하고 이래가지고 할 수 없이 ** 을 열어가지고 그 엄마 그 주머니 있는 거서 비상금 꺼내가지고 그래가 갚아주고 나중에 엄마가 알게 돼가지고. 그걸 왜 사셨을까요? 그 오래 쓸라고요. 면도칼. 연필 깎기도 좋기도 하니까. ( 네모를 그리며 ) 요 래 돼있는데, 요는 뚜껍고 밑에는 얇고 이러니까 연필 깎기 참 좋습디다. 근 255) 아이들. 183

185 홍의 삶과 예술 데 그걸 얼마나 오래 쓸 꺼라고 스무 개나 사가지고 그래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회초리를 맞은 적이 있고, 그 담에 그 외에는 그 외에는 그 작 문 선생이 있어가지고 작문선생이 한용운의 시를 읽어줍디다. 근데 어떻게 그렇게 한용운의 시중에 < 복종 > 이라는 시가 있습디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 하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하면서 쭉 있는데 그걸 해석을 쭉 해주면 서 그래 인제 그 나라에 대한 복종,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이 됐을 때 그 때 우리 맘속에 자유. 그런 것을 이 시로 나타내고 했는데 너무 시가 좋고 해가지고 내가 그 작문공부를 좀 해가지고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어예. 그 6.25 사변만 안 났으면 그쪽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6.25사변 나는 바 람에 그 선생님을 못 만나니까 그래서 마 그만두고 그래가지고 마 주 꼬마공 읽고 만화를 쭉 읽었더니 자꾸 작품이나 연극같은 거 그런 게 자꾸 떠 오르더라고예. 어떤 식으로 뭐 머리는 어떤 식으로, 의상은 어떤 식으로, 이런 게 떠오르고, 그람 256) 그려놓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주로 살았는데, 그 어 그라고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그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간 거 라예 바로. 같은 동아고등학교. { 동아?} 예. 동아중학교에 다니시다가요. 예, 예. ( 녹화테이프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중단) 중학생 시절 누이와 자형 선생님, 녹화테이프 교체하느라고 이야기가 좀 끊어졌는데요. { 네.} 중학교 시절과 학창시절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래 인자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서 맨 처음에는 그 마차를 타고 다녔어요. 256) 그러면. 184

186 춤꾼의 가족 학교에 마차를 타고 참 모두들 부잔 줄 알고 있었는데 부잔 줄 알고 있었 고, 그 학교 선생님들이 부잔 줄 알고 집에 가정방문을 왔어요. 저 등교하자 마자 며칠 안 있어가지고, 담임선생님이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그 선생이 국어문법 선생님 이었습니다. 인물도 참 잘생기고 키는 적은데, 인물이 참 잘 생겼어요. 잘생겼는데, 그 분이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이렇게 돌봐 주고, 수업도 해주고 마차를 타고 다녔는데, 중학교 가서 그때 무슨 기념으 로 내가 그때 학생들한테 최고로 인기 많던 파카 14K 만년필을 선물로 받았 어요. 선물로 받아서 좋아가지고 있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그냥 학교 옆에 극장이 있었거든요. 그 극장에서 < 카나발 > 이라는 영화를 보고, 걸어 나와 가지고는 바로 그 또 전차 종점이라요. 그래서 타고 오면서 전차 탄 사람을 보잖아요. 무심코 보다가 내려가지고 보니까 만년필이 안 꽂혀 있는 거예 요. 그래서 좀 야단도 좀 맞고, 나도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에 는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다니거나 하죠. 그래서 전차를 잘 안타고 다 녔습니다. 안 타고 공설운동장 갈 때는 버스 타고, 이래 다녔어요. 그런 일 들 그다음에 너무 그때부터 말 많은 사람들하고 그 잘. 잘 어울리셨어요? 네. 잘 어울리고, 아줌마들하고 잘 친해지고, 길가다가도 또 나한테 말을 잘 걸어요, 아줌마들이. 길에서 이야기도하고 만나기도 하고 만나면 또 빵 집 같은 거 단팥빵이 제일 맛있고 단팥죽이 제일 고급이고, 우동도 먹고 냄비우동 영화이야기도 하고, 그런 수준이 맞는 사람이랑 잘 맞아 지더라 고예.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그래 놀러 다니면서 사무실사람들이랑 탁구 치러 많이 다니고 그 외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없었고 추석되면 엄마가 시장을 가면 꼭 옷을 두벌 아니면 세벌을 사줘요. 엄마가 손이 커 가지고 항상 싸움하고 오면 아버지가 조그만 게 손뭉띠 257) 만 커가지고, 손이 크다 257) 손몽댕이. 185

187 홍의 삶과 예술 는 말을 부산사투리로 손뭉띠라고 하거든요. 조그만 기 손뭉띠만 커가지고 하면서 이래 쌌던 기억도 나고, 사주고 옷을 항상 칼라가 흰 걸 대줍니다. 중학생은 흰 거 안 되도 되는데 엄마가 딴 애들보다 옷을 좀 더 좋게 입히 고 하니까 그래서 학교서는 부잣집 아들인줄 알고 있었고, 또 학교 앞에 시 장이 있었는데 거기 머 빵도 팔고 단팥죽도 팔고 탁구장도 있고 그랬는데 고 시장이 길처럼 돼있어요. 그 길을 죽 따라가면 산이라고 하면 산이고 작 은 산, 동산같은 게 있었는데 그 올라가면 여름에 풀이 무성하게 있고, 풀 보면 참 뭐라 하나 고 풀 있는 자리가 그립고 그때만 봐도 내 눈엔 신비스럽게 보이고 누워보고 싶 학교 가면 음악선생님이 없으니까 음악책만 이 래 넘겨보고 명곡의 가사 몇 줄 읽으면은 그냥 뼛속 마디마디가 찌리하게 되더라고 그런 게 오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 니고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 그런데 빠져가지고, 그래서 또 어울려서 탁구장 가서 탁구 치면 잊어버리고 또 학교 와서 음악책을 이래 펴서 이래 가사를 읽으면 오페라에 나오는 창문을 열어다오. 사랑하는 나의 마리아 ~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런 걸 읽으면 막 그냥 이상해지고 또 사랑스런 미나 그것도 보면 자꾸 그 하여튼 그래서 뼛속이 아리하니 그게 옵디다. 그렇고 그래서 노래가사를 자꾸 보다가는 어찌 되겠다 싶어서 만화 쪽으로 돌렸는 데 만화도 보니까 뭐시 258) 막 떠오르고 떠오르고 해가지고 그렇고, 작문선 생님한테 작문공부도 하고 싶고 그랬는데 그런 식으로 3년이 빨리 흘러갑 디다. 극장구경가고 아줌마들 하고 놀러 가면 나를 많이 안아주고 그런 그 게 있고 그러고 남자 상고생들도 나한테 많이 맛있는 걸 사주고 식당에서 알밤도 사주고 그런 일이 참 많았어요, 어릴 때는 내가 사랑도 많이 받고 집에서 옷도 깨끗이 입혀서 부잣집아들처럼 보이고, 부자도 아닌데 그래 가지고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고등학교에서는 내 위에 위에 학년인데 저사 258) 무엇이. 186

188 춤꾼의 가족 람 왠지 춤추는데 소질이 있겠다 나도 모르게 왠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요. 근데 그 학생이 배구부 학생이더라고요. 배구부 학생이 내 노래 잘한다 고 시켜서 하는데 하면서 학생 하나랑 친해져서 여러 가지 이야기 하다가 나는 무용을 참 좋아하는데 하니까 나도 무용 좋아하는데 해서 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하다가 많이 친해 져가지고 그 다음에 내가 춤 아는 거 흉내내고 그러면 집에서 같이 흉내 내고 춤추고 놀고 하다가 단팥죽도 사먹 고 우리 집에서 밥도 먹고 하다가 그 사람이 그때 무슨 대학 서울에 대모하 는 대학 그 대학 서울대학 말고. 연세대 말고 { 고려대요?} 고려대 말고, 연세댄갑다. 연세대학 입학을 해놨다고. 그 6 25사변이 나가지고 분교를 영도에 옮겼습디다. 영도에 옮겨가지고 그래서 그259) 이름을 올렸어요. 고 등학교 졸업하고 그때까지 쭉 친했어요. 친해 있다가 6 25사변이 나서 나 는 고등학교 졸업을 못했습니다. 못하고 그래서 군대갔다가 그래도 연락을 꾸준히 하고 했는데 하다가 이매방 선생님도 같이 알게 되고 이매방 선생님 이랑 같이 춤도 추고 이랬는데 그 선생님 집에 소개를 해준 거라 내가 때 내가 기본동작도 가르쳐주고 장구춤도 가르쳐주고 그래갔고 보내준 거 라 내가 보내줬는데 보내주고 또 해에 이산균 씨라고 무용하는 분이 있는 데 그기도 내가 보내 갖고 소개시켜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무용협회에도 소 개해서 입회하고 협회 부지부장까지 하다가 단명했는데 그 그래 그래 죽었 습니다. 그랬는데 그런 일도 있었는데 참 머 기억력이 대단해서 좋고 소질 도 있고 이랬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춤을 안 추고 자꾸 말을 해요 군무들한 테 오른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춤을 안 추고 자꾸 말을 해요. 그런 결 점이 있었는데, 머리는 참 좋고 부산 무용계에 한 획을 그어놓고 갈 그런 사람이었는데 재주가 참 때에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누나들 그래 됐고, 그라고 내가 고등학교 때 국민학교 누나의 언니가 그 학교 선생님이었 259) 거기에. 187

189 홍의 삶과 예술 어요. 이의금이라고. { 이일금요?} 이의금, 이의금이라고 선화초등학교 선생 이었어요. 그 여동생들이 나를 참 좋다고 따라다니고 그랬는데 그 오빠들, 오빠들을 만났는데 오래 돼서 학원에 찾아왔는데 자기가 논문을 쓰는데 학 교무용에 관해 쓰는데 전문무용이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디스코와 일반 머 신체교육적으로 디스코가 어떤 것인가 그 논문을 써낼 껀데 선생님 디스코 출줄 압니까? 하면서 두 가락을 해보라 해서 내가 이래 이래 하고 발도 넣 고 이래 이래 해가지고 하니까 채록을 한다 캅디다. 그림을 그려가지고 논 문을 내 가지고 통과가 됐다 하데예. 통과가 되가지고 되게 기뻐하고 그래 하데예. 그 이후로는 못 만났지만은 고등학교 때 중학교 때 국민학교 때 그 래 만났던 게 인연이 돼서 돌아오고 살다보면 인연이라는 게 고등학교에서 도 또 이렇게 학교 갔다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그 시간만 되면 어떤 집 앞 에 한 사람이 나와 서있어요. 그 시간만 되면 나와 있는데 그 사람이 유난 히 잘생긴 인물도 아니고 보통 인물인데 이상하게 눈에 띕디다. 그러다 우 연히 길가다가 마주쳐서 내가 혹시 저 학교 다니면서 맨날 보니까 어떤 집 앞에 맨날 서있던데 맞습니까? 하니까 맞다하데. 그래서 나는 학교 다니는 데 무용 좋아하고 음악도 합니다. 혹시 그런 쪽으로 좋아합니까? 하니까 나 도 그런 거 좋아합니다. 춤은 못 추지만은 참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합니다. 해서 이야기도 하게 되고 그래서 자주 왔다갔다 만나게 되고 친해져 가지고 하루는 공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그 집 신문 배달하는 머슴아 가 있는데 그래 가가 호감을 가지고 오더라예. 그래서 니 지금 무용할래? 예. 무용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머하노? 한께 260), 미군부대 밴드하는 사 람이 있는데 색스폰 부는 사람인데 그 사람하고 같이 지내면서 심부름도 해 주고 아침에는 여 와서 일하고 저녁에는 거기 가서 청소도 해주고 이래 한 다 해서 그래 내가 춤 출수 있는 데로 소개해 줄게 해가지고 내가 이매방 260) 하니까. 188

190 춤꾼의 가족 선생님한테 소개해 줘가지고 그래 가가지고 배워가지고 무용학원 채리고 하다가 지금은 그만두고 없어요. 그 고등학교 때 또 머가 있더라 나서 6 25 사변이 나서 어느날 아침에 학교에 가니까. 그라고 선생님 그럼 동아고등학교에 학은 하셨던 거예요? { 예} 그럼 졸업만 못 했지예. { 아 } 그래가지고 가니까 사변 261)이 나가지고 가는 바람에 인 제 그 참 머시 희한하네. 전차 안에서 또 어떤 사람을 보게 됐는데 자주 보 니까 그 사람이 말을 걸어가지고 하니까 결국 내가 아는 사람이랑 아는 거 라요. 그래서 춤추고 연구소 차려가지고 음악도 가르치고 그러다가 지금 어 떻게 됐는지 머 그런 사람도 있고. 선생님 누님에 대한 이야기 여쭙고 싶은데요. 누님이 한국에 돌아오셔 서. 누님이 와가지고 이제 그 저 전기회사 한국전기회사, 지금은 한전으로 됐는 데 전기회사 사무원으로 있었는데 { 타이피스트로?} 타이피스트, 사무원으로 있었는데 있다가 6 25사변이 나자 인제 그 그만두고 다시 중국 통역하는 거기 영어 번역하는 덴가 영사관 비슷한데 누나가 일본어를 해서 거기 갔는 몰라도 아무튼 여자가 많이 있습니다. 중국영사관이었습니까? 중국영사관이었는지 하여튼 분위기가 좀 그렇습디다. 안 물어봤어요. 내 가 그때는 안 물어보고 하는데 동아중학교요? 그 옆에가 학교였고. 예. 그리고 그 옆에가 의성극장이었거든요. 그때 그 쇼팽의 이별의 곡 하는 영화를 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때만 해도 보헤미안 타이라 고 있었어요. 자주색 해가지고 이렇게 묶어 내리는 거 있었습니다. 서부영 화보면 나오는 거 있죠? 261) 6 25 전쟁. 189

191 홍의 삶과 예술 리본처럼 묶어져 내려오는 거요? 네. 그걸 보헤미안 타이 라고 합디다. 그렇는데 그걸 만들어 사줬어요. 그걸 사줬는데 그때 까만 양복이 있었어요. 그래서 갔드만은 그 누나 동료들이 있어요. 친구들이 와~ 하면서 쇼팽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참 좋다 카면서 그때 머리숱도 많았어요. 우글우글하고 참 좋다 카면서 그래 쌌더라고요. 그런 기억도 나고, 그 다음에 누나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자형이라는 사람 이 선을 보러 왔는데 엄마가 좋아합디다. 그 집에 아들이 3명인데 3명이 다 인물이 좋아요. 잘났습니다. 그야말로 덩치도 좋고 이랬는데 결혼을 하면 처가살이 하겠다 우리 집이 외로우니까 거기에 우리엄마가 홀딱 넘어간 거 라. 그래서 우리 자형이 대인관계가 기가 막힙니다. 기가 막히는데 거기 엄 마가 넘어가고 누나는 결혼 안할라하고, 엄마가 꼬시고 그래 자형이 나를 데려가서 저 시내가가 극장 구경도 시키고 그 미제캔디 이런 통에 든 것도 사주고 땅콩사주고 비스켓 사주고 하여튼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선생님 초등학교 다니실 때요? 중학교 때. 중학교 때요 예, 중학교 때 그래 사주고 하는데 그것도 하루만 그라는 것도 아니고 열흘 동안 눈이 휭휭 돌려질 정도로 하니까 너무 잘해주고 하니까 마음이 착 가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결혼을 하라 캐서 결혼은 했어예. 누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신 거세요? { 예.} 그 당시 나이로 는 좀 늦게 결혼하신 거네요? 예, 좀 그렇죠. 선생님이 중학생 나이일 때 시집을 가신 거예요? 예. 그래갖고 내가 결혼할 때 울고 내가 아팠어요 누나 결혼할 때 울고 그 그래도 당분간은 처가살이를 좀 했어요 자형이 한동안 누나가 핑크 색 뉴똥 치마 262) 에 { 뉴똥요?} 예. 뉴똥. 그때는 뉴똥이 제일 비쌌었어요. 190

192 춤꾼의 가족 주에서 나오는 비단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제일 유명한 비단입니다. 고 당 시로써는. 지금도 나옵니다. { 아 } 근데 그걸 핑크색 뉴똥 치마에다가 쑥 색 저고리를 입고 짙은 자주색 입술을 바르고 입술이 조금 두꺼워예. 그래 가 내랑 나가면 미군차가 큰 차가 지나가면 특히 흑인들이 보면 휘파람을 휙휙 붑니다. 누나가 이국적으로 생 거든예. 눈도 크고 피부도 검고 남쪽 나라 사람처럼 그래 휘파람을 불고 할 정도로, 그래가지고 그 같이 시장 도 가고 백화점도 없었으니까 그때 시대에 백화점이 저쪽에 있었는데 미나 카이 라고 있었는데 그냥 주로 가게 가지예. 쇼핑하고 그런 기억이 나고, 그 담에 결혼하고 나서 다시 취직을 했어예. 안 된다하는 걸. 자형이 질투 심이 많아가지고 얼마못가서 결국 그만두고 처가살이도 안하고 결국 나간 거라예. 그때 또 나가고 나서 내가 삼일 간 아팠어요. 결혼할 때 삼일 아프 고 나가고 나서 삼일 아프고 내가 무슨 슬퍼서 아픈 것도 아니고 괴로워서 아픈 것도 아닌데 희한합디다. 이게 무슨 징조였던가봐예. 근데 자형은 누 나를 참 좋아하고 누나는 자형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라예. 왜냐하면 누나 는 지적인 여성이었고 자형은 너무 형이하학적인 ( 웃으며 ) 흐흐 그런 쪽이 었고 이래노니까, 그런데 어디 나가면 인물을 보면 아무도 그래 안보죠. 명 패하나를 써도 누나가 써야 되고 또 자형이 옛날에 박통. 박정희 대통령 내 려오면 부산시 의원입니까? 시의원? 시 의회? 시의회? 그랬던가봐예. 그래가지고 인자 오토바이를 타고 동래 온천장에 유명한 요 릿집이 있는데 이쁜 아가씨들 많고 그 동래별장 맞습니까? 동래별장 이 지 싶습니다. 거기서 영화배우도 많이 나왔습니다. 가수도 많이 나오고 거 262) 유동 치마 견직물 가운데 하나인 유동으로 만든 치마. 191

193 홍의 삶과 예술 기서 자형이 가서 보고 마중도 하고. 이렇게 기억나고, 그라고 범일동에 삼 익극장 있었어예. 그걸 뜯어가지고 새로 인자 공사를 하는데 그걸 자형이 맡아가지고 큰 공사하고. 그럼 시의회에 있으시면서 건축, 건설업도 하신건가요? 예. 그리하고 그 다음에 인제 어느 때가 되서 시의회 그만두고 딸리니까 배우고 아무리 쓸라 해도 안 되잖아예. 어디 나가면요. 자형 보면 좋다합니 다. 그 정도로 인상도 좋고 잘 생 고. 그래가지고 그 삼일극장 263) 지어놓 고 그 담에 대연동에 집을 샀는데 너무 큰 걸 샀어예. 너무 커가지고 궁중 같은 걸 사가지고 청소하기도 힘들고 이래가지고, 그 인자 사람을 데리다가 청소 시키고 개를 갖다가 키우는데, 되게 큰 개 있지 않습니까? 도바르만이 라 카드나 264) 싸움하는 개. 우리 누나는 그거 싫어하거든요. 그래도 자형 이 그리하니까 할 수없이 개밥 만드는 것도 양 조절해주고 가 개가 한 마리뿐 아니고 세 마리나 키우니까 도우미 아줌마 이래 쌌는데, 우리 집에 있 던 제자로 있던 예원의상실 하는 애가 한번은 엄마 치 맛이 좋다고 치 를 보내줄라고 치 갖다 주고 나오는데 개가 뒤에서 달려 들어가 옷을 다 물어뜯어 난 265) 거라예. 사람 안 다쳐서 다행이지. 근데 내가 또 국제시장 에서 제일 최고로 비싼 거. 핑크색이라도 노골적인 핑크색이 아니고 벽돌색 도 아니고 핑크색도 아니고 아주 죽은 색깔인데 멋지고 좀 울룩불룩하이 덩 치 좋아 보이는 세탄데 266). 그걸 내가 애끼 267) 놓는 건데 특별히 가를 입혀 가 보냈더만 근데 지금 지나간 얘기라서 하지만 서운한 게 뭐냐하면 그럼 263)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었던 극장 년에 문을 연 삼일극장은 6 25 당시 피란민들의 수용소로, 70 년대에는 부산 공연문화의 메카로 각광받았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 친구> 의 촬영지였다 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64) 하든가. 265) 놓은. 266) 스웨터인데. 267) 아껴. 192

194 춤꾼의 가족 옷이라도 하나 사 입어라 하던지 돈을 주던지 이래야하는데 아무소리 없는 거 있죠. 아, 부자가 더 무섭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자형이 너무 돈에 대한 돈 씀씀이 같은 걸 따지기 때문에 누나가 함부로 돈을 못 써서 그런 거 같 애예. 그래가지고 나중엔 누나가 많이 정신적으로 그 애들 서이를 268) 전부 키우고 학교 보내고 책을 사줘야 되고 예를 들어서 세계 명작 같은 게 나오 면 그걸 사서 줘야 되는데 그걸 갖다가 일일이 다 승낙 받아야 되고 이라니 까 힘이 들어가지고 나중에 신경성, 신경통 비슷하게 되가지고 그게 인제 류마티스. 신경성 류마티스 있는 갑습디다. 보통 류마티스 하고 달라예. 나 도 류마티스 걸려서 나았거든요. 누나는 안 나아요. 손이 이렇게 붓습디다. 신경 많이 쓰고 하면. 뼈 마디마디. 그래가지고 결국 마 음식도 누나가 잘 만들고 하니까. 자형이 좋아하는 음식 꼭꼭 만들어주고, 비지? 콩비지 치 넣고 뼈다귀 넣고 하는 거 좋아했고, 좋아하는 거 몇 가지 있었는데 특별히. 토속적인 거 잘 만들고 이랬는데, 그러면서 애들을 다 학교 보내고 했는데 애들도 학교에서 늦게 오는 때도 있었는 거라요. 여학생은 특히, 뭐하느라 늦었냐 하고 이렇게 키웠는데 애들도 인자 막 나중에 노이로제 걸릴 이런 정도로 하고 그 또 내가 또 무용은 그 당시에는 나이도 들고 하고 저그들한 테 용돈을 주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드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부잣집 아 들 269) 도 그렇게 좋아하나?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돈을 몰랐 던 거같애예. 지금 사람들 애들한테 돈 쓰는 거 보니까 나는 물정을 모르고 큰사람이구나. 사회적으로는 낙제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랬는데. 그래가지고 누나가 인제 결혼하겠다. 내가고 결혼하자 카는데 직장에 그 사람도 지적인 사람이었는데 결혼하자 하면은 동생이 그 무용한다 카는데 뭐하나 채리 270) 줄 게 이런 소리도 하고 그래서 우짜꼬 내가 결혼을 하면 니 뭐하나 채 268) 셋을. 269) 아이들. 270) 차려. 193

195 홍의 삶과 예술 려 준다는데 결혼을 할까? 이러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안 됩디다. 쉽게 안 되고 그래 있다가 결국 별거를 하게 됐어예. 별거하고 오랫동안 있었습니 더. 별거하고 있다가 다시 그 별거하는 동안에는 길에서 자형을 만나도 내 가 눈도 안 마주쳐 주고 막 고개 돌리삐고 하고 이랬었는데. 그랬는데 다시 또 합쳐지 가지고 또 동거를 하게 됐어요. 나는 별로 달갑지 않더만은 그래 도 할 수 없이 오면 자형 왔습니까? 카고, 가면 갔습니까? 카고 이래 쌌는 데. 두 분 다 아직 살아 계신가요? 아니 돌아가셨어예. 그렇는데. 돌아가셨어요? 예. 자형이 돌아가셨어요. 자형이 내가 젤 생각이 난 게 뭐신가 하면은 내 가 맨 처음에 춤을 추고 어디 가서 해병단 무용단 쉴 때에 악사들끼리 재미 로 한바퀴 돌자 하면서 돌았을 때 밥 굶고 할 때, 그때 속이 상해서 그때 처 음 핀 거라예. 담배를 한번 피아봤어요. 그때 배워가지고 인자 결국 집에 와 가지고 내가 그 곧 죽어도 인자 켄트 (Kent) 라는 담배를 피았어예. 양담 배 피우니까 자형이 니 담배 피우는 가베? 그래서 네. 어, 그래 피아라. 자형도 같이 피울랍니까? 어, 같이 피우자. 그래가 맞담배를 피았어예. 자형하고 나하고. 이랬는데 자형이 그 의회 의원되고 나니까 맞담배를 못 피우게 하드라고요. 그게 내가 지금도 제일 속상한 거라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담배를 무슨 맞담배를 애초에 안 피았으면 몰라도 이매방 선생하고 도 내가 맞담배를 피았거든요. 같이 담배피우고, 같이 마시고, 그야말로 나 이 많은 그 참 선생님 말마따나 애. 저 고향 벗은 10년이고 객지 벗은 5 년이야. 너하고 내하고는 그냥 친구나 마찬가지야. 객지 벗은 5년인데 뭐 그렇게 가릴게 뭐있어. 같이 피우고 하지하고 친구처럼 다녔어예. 그 어떻 게 자리를 되고 나니까 완전 이렇게 달라져야 되겠고 또 주위에서 주입을 시키고 하니까 그렇겠지만은 그 타고난 어떤 그 본성, 본성은 안 버려 194

196 춤꾼의 가족 지는 것, 물이 잘 안들 것 같은데요. 같은데 아 저렇구나 이래 싶더라고 예. 왜냐면 나도 내가 지금 나이가 들었으니까 나이가 들어서 많이 변했겠 지 변했지만은 아직도 그렇게 불쌍한 사람 보면은 뭐 하나 사주고 싶고 나 이 많은 할머니들이 그런 거 먹고 하면은 얼마라도 작은 돈이라도 할머니 사 잡수소 하면서 주고 싶고, 이런 맘이 그대로 있고, 내가 춤 좀 추고 뭐 이래 이름도 좀 날렸다 해가지고 사람을 갔다가 보니까 모두 일단은 눌립 디다. 단원들 중에서도 선배가 후배 콱 눌리고 우리 학원 애들은 오면은 나 한테 먼저 인사 안하고 선배한테 먼저 인사합니다. 그런 정도로 나는 그런 점에 신경을 안 쓰거든요. 안 쓰고 이렇는데 이고 이렇게 돼야 현실에 적응이 잘 될텐데 그래서 그런 걸 내가 받아들 그렇게 못 되도 나는 그렇게 그걸 후회하지는 안하고, 또 다시 자형이 동거하다가 왜 됐나 하면은 바람 을 피운거라예. 바람을 피웠는데 자형집에 가정부가 있었거든예. 가정부하 고 자형하고 어떻게 됐어. 그걸 누나가 알은거라예. 그런께 271) 너무 자존심 이 상한다. 나가서 모르게 하면 몰라도 한집에 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 나 카는거라요. 그래도 자형이 매질하고 때리고 하는 게 겁이 나도 죽어 ** 겠다 이라고는 헤어지 버린거라요. 헤어지가 집에도 왔는데 자형이 왔을 때 내가 인제는 자형 우리 남남 합시다. 남남 합시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인연 이 아니라카이. 그런 걸 어짜요. 그 가정부 그 사람하고 잘 살면 되겠네. 인 자 아들 272) 도 다 키아났고 대학교 졸업도 했고 더 오지 마이소. 내가 그랬 거든예. 그랬는데도 그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왔어예. 왔는데 자형이 상주 노릇을 다 하는거라예. 인물 좋고 해노이, 저 우리 어머니 친구들 오면은 오셨습니까. 하고 웃으면서 이리이리 잡고 이라니까 글로 273) 다 쏠리고 나 는 쳐다보지도 않고 ( 웃으며 ) 내가 상준데 그래서 또 짜증나데예. 그래서 271) 그러니까. 272) 아이들. 273) 그 쪽으로. 195

197 홍의 삶과 예술 그 마지막 날 상주가 난데 자형이 왜 자꾸 이래 나섭니까. 너무 그리하지 마이소. 여기 자형이 나선다고 해가지고 돈이 한 푼 생기겠습니까. 누가 돈 생길 일을 소개해주겠습니까. 다 할매들인데, 내일 모레 다 갈 할매들인데, 잘보이가 뭐할껍니까. 잘보이면 좋겠지만 내 생각은 안 해줍니까? 그랬더 만 그렇나? 예. 그라고 초상 마치고는 일년 반쯤 됐을 때 자형이 왔어예. 나는 몰랐습니다. 있나? 카고 학원에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예, 어떻게 오 셨는데예? 내 아이가? 예? 내다. 이상하다 모르는 사람인데 싶었는 데 그러고 보니까 자형인거라예. 영 딴 사람이었어예. 그래도 자형 어디 아 픕니까 물어보지는 못하고 자형 잘 삽니까? 어디서 삽니까? 어, 내 잘있 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쓸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돈 있으면 좀 줄래? 그래 서 내가 인자 그 오십만원 일단 주머니에 있는 돈 딸딸 긁어서 지금은 이거밖에 없습니다. 이라니까 어, 괜찮다. 좀 있다가 올게., 예 이랬더 만 석 달인가 있다가 또 왔어예. 또 보니까 더 모르겠더라고예. 그래가 좀 있어라 카고 은행가서 돈을 찾아 줬습니더. 그라고 나서 한 한 달 보름 있다가 전화가 왔어예 돌아가셨다고. 그 자살 농약. 그때 인제 자형하 고 이혼하고 나서는 누나는 어디로 들어갔나 하면 유료 양로원 있지요. 돈 은 좀 듭디다마는. 그기로 갔어예. 그니까 거기서 밥 나오고 뭐 이렇게 해 주니까 아프면 데려다 병원에 데려다 주고 하니까 그래 있고, 이라는데 그 양로원가서 하나하나 보니까 뭐가 필요하나 싶어서 그때만 해도 에이스 침 대가 이름났었습니다. ( 양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 사랑의 침대 라 카고 그 에이스 침대 하나 들라주고, 그 담에 또 뭐, 작은 냉장고 하고 또 뭐 겨울에는 온풍기 같은 거 그 삼성전자에서 난방기 이런 거 들라주고, 그라 고 지금도 내가 뭐 낯낼라고 274) 하는 소리는 아니고 한달에 꼬박꼬박 이렇 게 삼 십 만원 씩 보내거든예. 보내고 있고. 가끔씩 필요한 게 있으면은 반 274) 생색내려고. 196

198 춤꾼의 가족 찬 같은 거 어떨 때는 내가 만들어서 보낸 적도 있고, 또 사 놓으면은 저 아 들이 가서 부치고 이래하고, 또 뭐 이렇게 그 이불 같은 거나 그 이래하 고. 그럼, 지금 선생님 가족이 현재 그럼 누님들 살아계신가요? ( 고개를 끄덕 임) 네, 그럼 누님 살아계시고 그 밑에 조카들이? 조카들이 있고. 세 명? 예, 셋. 조카들 있고. 그라고 조카들 있어도 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안 만나 지예. 못 만나지예. 어짜다가 만나지고 { 네.} 누님하고는 전화연락 하고. 누 님 딸은 우짜다가 한번씩 옵니더. 올 때 반찬 같은 것도 가지오고 이라고, 인자 아들은 맨 날 이리 요 있으니까 이라고, 아들 마누라가 시립 무용단에 총무로 있고. 아들의 아들은 중학교 2 학년이제. 손자가. 손자 한 명? 이쁘요. 저거 아버지 닮아가지고. 딸은 더 예뻐예. 아 그니까 손자 하나, 손녀 하나 있으세요? 예, 예, 예. 초등학교 4 학년인데 더 예쁩니더. 인제 어버이날 되면은 그기 종이를 오리가지고 딸내미가 카네이션, 서툴지만 만들어 보낸 기 사다준 거 보다 더 그게 좋대요. 기분이. 얼마나 좋으셔요. 그렇고. 지금은 인자 그 내가 인제 그 우리 집에 인제 그 춤을 한창 가르킬 때에 말하자면 팬이죠. 팬. 팬인데 내가 한국춤도 췄지만은 그 스포츠 댄스 까 아니더라고 사교춤을 그때 췄어예, 내가. 음악을 하도 좋아해가지고. 사교춤 춰가지고 그 캬바레에 그 인자 그 동아중학교 선배하고 오라 캐가지 고 둘이서 같이 인제 캬바레는 비싼 데고, 그때 캬바레 말고 아르바이트 라 고 있었어예. 홀(hall) 인데. 첨에는 그걸, 난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해서, 아르바이트가 춤추는 데가 아르바이트라 싶은데 요즘 학생들 그 일하는 걸 197

199 홍의 삶과 예술 아르바이트라 카던데 그때 춤추는 홀인데 정식으로 인자 그 캬바레 허가 안 내고 사교춤 추는 그런 홀이 많았습니다. 그런 홀이 아르바이트 라구요? 아르바이트 라 캤어예. 아니, 그 홀만 이름이, 간판이 아르바이트 였나요? 그런 식으로 하는 데를 다 아르바이트 라 했어요. { 어 } 예. 여러 군데 있 었거든요. 요, 아르바이트하는데 없나? 춤추는데? 이라모 어디도 있고 어디 도 있고 이랬거든요. 가수 상국 275)이. 상국이가 그 집 친척 돼요. 그, 서면에 아르바이트가 있었는데 참 홀이 이뻤습니다. 아주 그 고급스러웠어 예. 그 집 조카뻘인가 친척 되고 그서 노래도 불렀습니다. 노래도 한번씩 부르고, 또 그, 그 또 친척빨, 친척빨 되지 싶어요. 지금 그 영철 276)이 던가? 그 사극에 그 궁예 로 나왔던 { 네, 네. 탤런트.} 영철이죠? 지금 < 아이리스 > 에도 첩보 그, 뭐 안경 끼고 이렇게 부산에 스케이트 타고 놀던 친굽니다. 아, 부산출신이세요? 네. 부산출신입니다. 부산출신인데 상국이도 끼가 많고 상국이 형은 인 자 그 ( 피아노치는 동작을 하며) 클래식하고, 또 ( 성악 하는 흉내를 내며) 아~, 명곡 하는 형도 있고 집안이 좋아요 그 집안이. 아. 피아노 전공하신 분도 있고 성악도 있고. 네, 피아노도 있고 성악도 있고. 좋은 집안입니다. 근데 상국이는 대중적 으로 풀 고. 근데 먼 친척 되지 싶어예. 영철 { 두 분이?} 영철이가 인자 그 한번 인자 그 우리가 그 미군부대에 인자 그 큰 연말 행사가 있 을 때 크리스마스 땝니다. 아, 망년회 쇼다! 있을 때 인자 집에 연락이 와서 한국무용이 한 명 필요한데 북도 치고 춤도 추고, 이래 해 줄 수 있나 해서 275) 상국 (1934~2006). 부산 출신 배우겸 가수 년 영화 < 쥐구명에도 볕들 날 있다 > 로 데뷔. 276) 영철 (. 1953~ ). 대구 출생. 배우. 198

200 춤꾼의 가족 그래 해주겠다 카고 갔는데, 그서 인자 첨으로 인자 양주를 먹어봤거든요. 그 춤추는 아가씨가 하나 왔는데, 오빠 술 무봐라 277). 해서 안 묵는다. 카 면서 한 번만 무봐라. 요마~ 이만 무봐라. 괜찮다. 카는 거라. 그래서 이래 묵고 좀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거라예. 괜찮네? [ 도] 또 묵고, 또 묵고, 묵다보니 얼마나 묵은 줄 모르죠. 해가 지고 그 탬버린을 추고 이래 이래 하는 게 있었어예. 하는데 춤은 많이 안 추고 어떻게 음악에 맞춰서 이래 이래 했더니 ( 한 손을 들고) 이래 이래 하다가 툭 널어찌는데 278) 그러더라 도 자연스럽게 탁 받아서 치고 이런 기억이 나고 그래가지고 인자 그 춤추 고 내가 북 치고 춤추고 나서 내가 인자 본격적으로 댄스파티라 캅디까. 댄 스파티 하다가 쉬는 시간 되니까네 영철이가 홀에 나오더라고예. 쉬는 시 간에는 은자 밴드는 쉬고 음악을 넣어 줍디다. 음악을 넣어주니까 그 음악 에 맞차서 279) 혼자서 막춤을 추는데,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신이 많던지 난 중에는 미군들이 막 ( 박수를 치며 ) 아~! 이래 이래 해줘요. 악사들도 나중 에는 마, 들고 불러주더라고예. 그니까네 ** 한 시간 삼십분을 췄어예. 땀을 뻘뻘. 나중엔 마, ( 양손으로 앞가슴의 셔츠를 털어 보이며 ) 물입디다. 그 정 도로 신명이 많았어예, 그 영철이가. 그랬는데 어느날 보니까 그 또 봉생 신경외과 라고 있습니다. 그 집이 작은아버지 집이라던가 이랍디다. 그래 인 자 그 지금 보이까네 탈랜트가 됐고. 상국은 인자 그래 됐는데. 옛날에 그 이상준 씨라는 무용가하고 내하고 둘이서 듀엣을 좀 추 280) 달라 카는데, 그때 특별히 황금심 281) 씨라고 있습니다. { 가수?} 예. 가수. 황금심 씨도 있 고 또 유명한 또 가수가 있었어예. 있고 이라는데 상국 씨도 나오고. 277) 먹어봐라. 278) 떨어지는데. 279) 맞추어서. 280) 추어. 281) 황금심 (, 1922~ 2001). 본명은 황금동 ( ), 부산 동래 출신의 가수이다. 일제 강점기 에 데뷔해 1960 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했다. 199

201 홍의 삶과 예술 상국 씨가 그래 욕을 잘해요. 보통 말할 때 [ 십전 ] 짜리가 안 들어가면 안 된 는거라. 그랬는데도 그 내가 들을 때는 젊은 사람이에요. 아직도 젊은데 내보다 우에 282) 지만 그 국악하는 할아버지 그 그 누굽니까 욕 잘하는 할아버지. { 박동.} 예. 예. 그 할아버지는 욕을 해도 얼마나 웃음이 나오고 참 재미가 있던데, 재담을 하는데. 이 사람은 아직 재담까지 못 간다 싶으데 예. 그런데도 그래 욕을 잘해요. 잘합디다. 하는데, 그랬는데 그 상국이가 내하고 상국 씨하고 듀엣을 어째 칫노 카면은 첨에 짚시 하고 ( 흥얼거리 며) 라라라 ~~ 짚시의 [ 달] 이라는 음악으로 맞차 가지고 인자 이렇게 발레 흉내 좀 내고 이래가 있으면은 인자 그 곱추가 나오는 거라요. 이렇게 이렇 게 곱추가 나오면 탈 쓰고 나오고 나서 내한테 애원을 하면 내가 도망을 가 버리면 곱추가 막 이렇게 이래 혼자 고뇌를 하다가 이래 하면은 인자 거서 인자 관세음보살이 나오면은 나와가지고 그 곱추가 막 기도를 관세음보살 한테 하고선 관세음보살이 나오면 그 탈을 벗고 인자 사람이 돼버리는 거라 요. 그러면은 난 관세음보살탈 벗고 나와 가지고 둘이서 인자 남방춤 이리 이리 추고 고개도 왔다갔다 흔들고 어깨도 한번씩 이리이리 흔들고 ( 웃음) 그래 추니까 그기 작품이 좋다고 그 사람들이 그리 상국이가 은자 동생 작품 그기 괜찮는데, 잘 다듬어 갖고 하면 참 예술작품이다, 좋은 작품이다 카면서, 참, 요 저 마, 쇼무대라서 그렇지 쇼무대 아닌 거 같으면 일반 순 수 무대에서 그리 해도 손색없겠네. 하면서 이런 칭찬도 받고 그했는데 그 황금심 씨는. 그래가지고 그때만 해도 춤추는 내 손을. 그때만 해도 내 가 손이 고왔어예. 참 이렇게 변할 줄 몰랐습니더. 하야이 283) 참 다 탐냈거든예, 손을. 나이에 비해서 손이 곱다 이래 쌌는데, 그래 그 손을 잡 고 이래 쓰담으면서 284) 눈물을 흘리고 이래 쌀 285) 때도 나는 와 우는고? 282) 위. 283) 하얗게. 284) 쓰다듬으면서. 200

202 춤꾼의 가족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그냥 슬픔이란 헤어질 때, 사랑했던 사람이 헤 어질 때, 부모가 죽을 때, 이럴 때 눈물이 나지, 그 외에는 눈물이 날 게 없 을 꺼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젊음, 자기가 지난 세월, 그런 것들 이 이렇게 생각이 나고 그런 가봐예. 그때에 내가 그림으로 된 시집을 하나 샀는데 그기 한용운 씨가 있어서 물론 < 님의 침묵> 도 있고 했지만 내가 참 좋았던 게 < 지는 해> 지는 해는 아침에 뜨는 해보다 더 찬란하고. 뭐 이렇게 쭉 써놨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라요. 나이가 들어서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근데 그 당시에는 읽고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기 벌써 한 20년인 가 25 년이 됐나. 지내는데 오늘 문득 이제 밥 먹다가 아! 왜 그 그게 지는 해가 아름답다하는 지, 마지막 촛불이 더 밝다 카드만 그걸 알겠고 또 영화 를 보고 책도 읽었지만은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그때는 왜 그 리고 또 봄일까? 이래 생각했는데 아! 그거는 다시 젊어지는 게 아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살면서 그 젊은 사람이 고생을 하고 형무소 갔다 오면서 다시 절로 돌아와 가지고 나이는 들었지만은 그때부터 다시 인생은 시작한 다. 그래서 봄이다. 새로운 모든 것이 새로 살아나듯이. 그래서 봄이고 카는 게 퍼뜩 느껴지더라고요. 예, 그래서 내가 형광등처럼 그때그때 빨리빨리 이렇게 재치 있게 안 오고 목욕탕 전기불보다 더 느려예. ( 웃으며 ) 허허 허. ( 같이 웃음 ) 그래서 인자 누님은 인자 글로 286) 가시고 나는 지금 이 래 혼자서 있으면은 식사는 식당에 불러가지고 한 끼 부르면은 인자 그 2만 원짜리 부르거든요. 2 인분을 부르면은 두 끼를 먹을 수 있는 거라 혼자서. 세 끼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밥을 반씩 반씩 갈라가 야채 사놓은 거 씻어가 지고, 참기름 넣고 초장 넣고, 밥 반 개 넣고 비비 가지고 그럼 반찬도 별 필요 없고. 그래가 먹고 인자 사과 반 쪼가리 287) 넣어가지고 먹고 그렇 285) 할 때도. 286) 거기로. 287) 쪽. 201

203 홍의 삶과 예술 게 하니까 내가 심장병 때문에 시술로 288) 받았거든예 고지혈이라예. 음, 고지혈증. ( 손목을 가르키며 ). 예. 주식이, 내가 돼지고기였습니다. 그래서 인제 채소만 먹고 하니까 머리 는 맑아지고. 그래서 그래하고 인제 또 아들이 와서, 또 인자 와서 만들어 줄 때도 있고. 아들 솜씨가 좋아요. 아. 그러면 그 무용학원에서 아드님하고 같이 사시는 게 아니고, 선생님만 계시는 거에요? 아, 맞다! 그 팬이, 팬이 있었는데. { 네} 그 팬이, 은자 289) 우리 집에 놀러왔 으예. 놀러왔는데 놀러와서 마 그렇나 했는데 고다음에 인자 내가 그 동아 선배하고 아르바이트 갔는데 상국 씨하는 아르바이트. 그기 그 팬들이 온 거라예. 자기네들도. 왔는데 내가 보이까네 그때만 해도 밤에는 메이컵 (make-up) 을 살짝 하고 나갔거든요. 하고 마스카라는 올리고. 눈썹은 마스 카라 솔가, 290) 지금 요즘 마스카라 솔 눈썹 해쌌고. 옛날에는 모두 연필가 그리 쌌던데, 나는 마스카라 솔가 그때만 해도 이리 이리 하고 그래가지 고 인제 고무신 신고 갔어예. 다 구두 신고 갔는데 내만. 가서 이렇게 춤을 추고했는데, 그 조명 빛에 보니 그렇게 좋았던가봐예, 내가. 그래가지 고 인자 나한테 한국춤 배우러 온 거라예. 그 춤, 댄스는 이미 자기네들 출 줄 알고 하니까. 내하고 [ 치치바 ] 도 추고 저 탱고도 추고 부르스도 추고 이래 쌌거든예. 그래가지고 인자 와가지고는 계란에다가 지단에다가 소고 기 다 거 넣어가 이렇게 계란말이 해가지고 밥 해가지고 막 해가지고 하 이튼 그 그럭저럭해가지고 우리 집에 엄마들이 부산시장에 내가 한번씩 가고 하니까 시장 엄마들하고 합쳐가지고 한 열다섯 명 정도 이래 됐는 288) 수술을. 289) 이제. 290) 솔로, 솔 가지고. 202

204 춤꾼의 가족 데, 그게 자꾸자꾸 불어가지고 또 한 구미 291) 열 명, 또 한 구미 열 명 해가 지고 한 백명 정도 됐습니다. 밥도 못 먹고 이랬는데 그래 할 때에 그 아주 머니들이 내한테 춤을 배우면서 이 엄마들을 전부 알아 가지고 그래가지고 는 한 아주머니는 신랑은 대위였고, 대위였는데 끼는 많아가지고 애를 못 놓는 거라요. 근데 끼는 많아가지고 아무 남자라도 잘생겼다 싶으면 꼭 어 떻게 저 썸씽 (something) 을 이루는 사람인 거라요. 이렇는데 그런데 인자 그 인자 이 우리 집에 있던 그 아주머니가 그 누나, 누님택 292)이지요. 그 누님은 아줌마하고 같이 따라 친구겸 해서 따라 댕긴거라요. 이 아줌마 는 또 그런 걸 못하는 거라요. 그런 걸 못하고 자기 남동생이 월견초 해가 지고 293) 그 가수, 그 작사, 작사. { 작사가?} 네. 작사가. 이름 있는 작사 가입니다. 월견초. 월견초? { 초. 네.} 견( ) 잡니까. 견. 네. 월견초. 네, 네. 그래가지고 그 달빛에 보는 뭐 풀? 하는. 그래 이제 했는데 그 저 뭐시고 버스 타고 가다가도 버스기사가 좋으면 어떻게 눈짓을 했는지 모르게 막 둘이 만나드라 카대요. 누님빨 되는 사람이 보이까네. 그니까 한 남자 두 남자 아니고 여럿이 이래 했는데 나한테는 첨에는 어떤 그런 생각 이 있어가지고 왔는데 내가 원체 춤 가르키고 시간이 없고 하니까 도저히 나는 그런 눈치를 못 채 고. 294) 그냥 마, 팬으로만 생각했었고. 이래가 지고는 그 사람이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을 했고 내하고 같이 있던 그 누님 은 우리 집에 오는 그 춤 배우러 오는 아주머니 중에서 한 사람이 여관을 291) 일, 반, 조( ). 292) 누님뻘. 293) 해가지고 : ~ 라고. 294) 챘고. 203

205 홍의 삶과 예술 하고 있었어예. 그 별명이 안경 낀 아줌만 데 그 아줌마가 참 이뻤습니다. 이뻤는데, 그 아줌마하고 친해져가지고 그 아줌마가 여관 하는 데에 그 게 295) 가서 인제 일본사람들이 오니까 우리 그 이 아줌마들도 희한하게 일본말을, 교환수로 있었답니다 일본말을 잘해가, 인자 일본 손님하면 가이 드하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나이가 늙고 인자 안경 낀 아줌마 는 위암에 걸리가 죽고 해서 그 그만두고 우리 집에 와서 인자 밥 먹고 있으면서 그냥 인자 막 같이 이렇게 있다가 그 누나가 그 자기 친구들이 안 있습니 까? 그 계 넣어라 해서 계를 두 번째 넣었는데 빵꾸 296)가 나버렸으예. 297) 그래 또 인자, 또 넣어라 캐가꼬 또 빵꾸가 났으예. 그때가 50. 마지막 빵 꾸날 때가 59 살. 날삼재 때, 그때 계 빵꾸나고, 제자가 교통사고 나고, 그기 같이 몰려옵디다. 그라고 통장에 이리 보니까 없는데, 그런데 인제 지금 급하게 벌인 298) 돈 뭐신가 하면, 나는 뭐 할 때 인자 의욕이 없어서 누워있 으니까 아들이 인자 녹음기 틀어가 연습시키고 이리가지고 은자 돈이 모인 거라예. 그래 모인 돈이 그라도 또 뭐신가 카모 밑에 있던 제자들. 나를 속인 제자들. 입학시키 주겠다카고 학부형들 찾아가서 ( 엄지와 검지로 동그 라미를 만들며 ) 이거 받고, 또 막 어떤 거는, 저 쌍십절 해가 중국에 아주 큰 명절이 있습니다. 중국집 아가 299) 우리 집에 다녔는데, 아 집에 식당해 가가지고 엄마 아버지가 성의껏 해가 [ 접시] 를 해가 넣어 놓으면은 일 분만 있으면 접시가 비고 또 여놓으면 일 분 있으면 비고 해가지고 열 한 사 리 300) 를 먹더랍니다. 그 조교가. 그래가 마 소문이 나버렸으예. 근데 그 조교가 부산에 심지영 씨라는 무용학원에 있었는데, 그 있을 때 심지영 씨 295) 거기에. 296) 펑크. 297) 빵꾸가 나버렸으예 : 깨져버렸어요. 298) 벌은. 299) 아이가. 300) 접시. 204

206 춤꾼의 가족 가 시집보내 줄라꼬 남자를 인자 불러가지고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송도에 서 그 회를 시켰는데 회를 갖다가 갖다놓으면 먹어버리고, 갖다놓으면 먹어 버리고 지 그 심지영 씨하고 그 남자하고 얘기하는 사이에 어떻게 잘 먹던. 회를 먹은 게 아홉 사리를 혼자서 다 먹더라데요. 그런 제자도 겪 었어예, 내가. 그래가지고 그 은행에 가서 내 모르게 가서 지가 원장이라 캤 는지 뭐라 갰는지 모르지만은 돈 융자받아가지고 집사는 데 보태고. 내 가 은행에 가서 융자받으러 가니까 그라고 한 두달 있다가 갔나? 안 주더라 고요. 예. 그런 꼴도 내가 당해봤어예. 그렇게 ** 도 모르게. ( 아들이 선생님을 모셔가기 위해 분장실로 들어옴 ) 아유, 선생님 긴 시간동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사자, 구술자 ( 홍 ), 구술자의 아들( 갑용 )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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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명무의 길을 가다 제6 차 구술 채록문 명무의 길을 가다 오늘 날짜는 2009 년 12월 2 일이구요. 여기는 부산시 범일동 소재 홍무 용학원입니다. 오늘 제6 차 홍 선생님 구술채록을 시작하겠습니다. 전주대사습 장원 명무의 반열에 오르다 예. 선생님, 오늘은 전주대사습에 나가셨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년에 제9 회 전주대사습에 나가셔서 장원을 차지하셨잖아요? { 예.} 그 이 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네. 전주대사습에 83 년이죠? 그때가 두 번째 나간 겁니다. 첫 번째는 79년 에 제가 전주대사습에 갔을 때, 그때는 광주에 가서 이매방 선생님께 가서 또 연습을 하고 전주에 갔었거든예. 그때 강이문 선생님도 같이 모시고 갔 습니다. 대사습이라는 데가 어떤 건지 모르고 처음 가는 거니까. 그래 갔었 는데 거기서 전주대사습에 도착해서 여관에 들어갔는데 보니까 학춤> 추는 덕명 선생님을 만났어요. 예. 덕명 선생님. < 양산사찰 가는 버스에서 만나서 같이 여관에 들어갔고. 그래서 여관에서 우리가 유명 209

211 홍의 삶과 예술 한 콩나물비빔밥을 사먹고 했는데 내가 배가 아팠습니다. 전주가 물이 세다 합디다. 그래서 처음 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배가 아프다 이럽디다. 배 가 아프고 했는데, 그 이튿날 전주대사습에 나가니까 숙자 선생이 심사를 보고 있더라구요. 물론 배도 아프고, 춤도 마 그때는 컨디션도 별로 안 좋았 고 이랬는데, 차상이든가 이래 받았습니다. 받은 그 상장을 어디다가 넣어 놨는지 모르겠네요. 그때는 어떤 작품으로? 그때도 < 승무 > 췄습니다. < 승무 > 추고 차상 받았는데. 돌아와 가지고 그 다 음에는 쭉 안 나가고 개인발표회도 하고 뭐 이래가지고 그럭저럭 입소문으 로, 입소문으로 나가지고 춤 지에 홍의 춤 해가지고. 한참 그때 모두 무슨 무슨 춤판, 누구 누구 춤판 이래가지고 많이 했는데, 나는 판 을 빼버리고 홍의 춤 해가지고 춤 지에 실었드만은 그게 효과가 있 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고. 그 다음에 카톨릭센터에서 ( 벽에 붙은 징소리 공연 포스터를 가리키며 ) 저기 징소리 할 때, 제 앞에 누가 했나하면 이정희 교수라고 서울에 유명한 현대무용 하는 교수가 제 앞날에 하고 그 다음날 제가 하는데 그 교수도 봤던 가봐요. 근데 그 징소리 가 너무 좋아가지고 굉장히 그 당시로서는 좀 화제 거리가 된 것이, 의상도 바 지저고리가 아니고 그냥 일상에 입는 바지, 헐렁한 바지에다가 말하자면 힙 합바지 비슷하게 만들어 가지고, 그때는 힙합바지가 어떤 건지도 모를 때지 만은. 그래 만들어 가지고 무릎 밑에다가 끈을 묶고, 우에는 와이셔츠인데 에리 301) 를 떼고 그래가지고 입고 이래가지고 추었었거든요. 그랬는데 굉장 히 널리 널리 입소문이 나고. 그 다음에 < 승무>, < 살풀이 > 췄었는데, < 승 무> 도 좋지만은 < 살풀이 > 가 참 그때는 또 많이 했습니다. 홍 선생 정 서에는 < 승무 > 보다 < 살풀이 > 가 맞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참 많았고 그 301) 옷깃. 210

212 명무의 길을 가다 랬는데, 어느 날 인자 < 한량춤 > 을 추니까 < 한량춤 > 이 참 좋다 이래됐는데. 그 < 한량춤 > 에... 이 전주대사습이야긴데 그리 해도 됩니까? 있다가 < 한량무 > 이야기는 제가 다시 여쭈고요. 전주대사습. 그래가지고 전주대사습에서 돌아와 가지고 한 몇 년 있는데, 어느 날 부산 에 강남기 302) 라고 있습니다. 무용가. 강남기가 전화가 왔어예. 와가지고 선 생님, 좀 만납시다. 카톨릭센터 다방에 있는데 거기서 만납시다. 해서 수업 하는데. 하니, 빨리 오이소. 해서 수업하다가 말고 갔더니만 선생님, 이번 에 전주대사습에 나갑니까?, 와? 이라니까, 한번 나가이소. 그래? 내가 나가가 되겠나? 아, 내가 다 알아서 로비도 다 해줄테니까 로비하는 거 내 한테 맡기고 나가도록 하이소. 이라더라고요. 그래. 하고, 그라고 한 9개월 인가 있어가지고 1 년 지나고 입니다. 1년 지나고 전주대사습 나갈려고 남기 한테 전화를 했더만, 강샘, 전주대사습 나갈라고 하는데 로비해준다 하드만 뭐 어떻게 하노? 이라니까. 그걸 뭐 로비한다고 되는 겁니까? 춤 잘 추면 걸리고, 못 추면 떨어지는 거지. 이라는 기라요. 하하. ( 웃음) 강남기가 나한테 춤을 배운 아거든요. 그 < 장구춤 > 도 배우고, 또 그 뭐시고 < 오북 > 도 배우고, < 승무 > 도 배우고 이랬습니다. 그라고 나서 이매방 선생님 한테 갔지만.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나보다 나이도 어린 기 말을! 지는 인자 전주대사습에 상을 받은 거라요. 받아놓으니까 숙자 씨한테 < 도살풀이 > 배워가지고. 그것이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 < 도살풀이 > 배운 거 같아요. 지 가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 몰라도 사실대로 내가 말하는 거고. 그래서 안 갈 려고 하고 있는데, 이부산 303)이라고 설장고 명인이 있습니다. 참 장구는 대 302) 강남기 (, 1942~ ). 본명은 강정웅 ( ). 경남 마산시 출생. 살풀이와 승무가 특기이 다. 모친이 경영하는 식당에 드나드는 기녀들을 통해 어깨너머로 각 지방의 춤들을 배웠다. 부산으로 이주하여 동래권번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였으며, 이매방으로부터 춤을 배웠다. 303) 이부산 (, 1954~ ). 전북 제 출생. 제 백구농악 상쇠였던 부친 이준용에게 6세 때부 211

213 홍의 삶과 예술 한민국에서 제일 잘 칩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로비도 안 하고 안 나서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실력은 인정해주는데 많이 두각이 안 나타납디다만 은. 그 부산이한테 우리가 설장고를 배웠거든예. 그 부산이가 어느 날 찾아 와서 선생님, 전주대사습 갑시다., 아이고, 강남기한테 전화하니까 막 그 래 쌌던데., 마, 가입시다. 이라는 거라. 그런데 이차 또 이매방 선생님한 테 전화가 왔어예. 얘, 너 전주대사습 가니? 해서 글쎄요. 내가 가가 되겠 습니까, 선생님? 로비해야 된다 하는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심사가 누군 지도 모르고., 야, 그냥 경험 삼아 신풀이 삼아 가서 니가 추면은 설마 장 려상은 안 주겠니? 아무리 안 줘도, 장려상 주면 왔다갔다 버스비는 되니까 가자. 이번엔 경험 삼아., 예. 그라고 가방을 쌌거든요. 준비를 해가지고 출발할라 하다가 왠지 마음이 또 좀 서먹서먹하고 이래가지고 가방을 풀어 놓은 거라예. 풀어놓고 누워있는데, 부산이라는 설장구 치는 사람이 왔어예. 갑시다. 하면서. 그래서 다시 또 가방 챙겨가지고. ( 웃으면서 ) 친구 재문 이라는 연산동에 있는 친구가 항상 내 공연하면 춤 보고 싶어가지고 같이 따라다니면서 가방도 들어주고 이라거든요. 그 친구가 같이 연락해가지고, 시민회관 바로 옆에가 터미널이었습니다. 버스터미널. 거기 가서 버스를 타 러 갔는데 암만해도 좀 꺼림칙해서. 터미널 가는 쪽에 보면 길거리에 쭉 멍 석 깔아놓고 점치는 아줌마들, 할머니들이 쭉 있습니다. 그 할머니들 있는 데 내가 가서 앉아가지고 내가 전주대사습 가는데요. 괜찮겠습니까? 물으 니까. 나이도 묻고, 이름도 묻고, 생년월일도 묻고, 엽전을 던지드만은 빨 리 가이소. 내가 이렇게 점체 304)를 내니까 돈을 안 받고, 돈 안 받습니다. 갔다 와서 파티나 근사하게 한번 여이소. 이라니까는 옆에 할머니들 우르르 터 설장구를 배웠다. 이후 병섭에게 설장구 개인놀이를 익히고 20세 이후에 문백윤에게 주삼천포 풍물을 사사하여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11- 가호 주삼천포농악 전수조교 및 풍물연주단 두레패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4) 복채. 212

214 명무의 길을 가다 몰리드만, 엽전 던지난 거 보드만은 아이고! 벼슬운이 들었네. 관운이 들었 네. 하면서 갔다 와서 파티하입시데이. 하고 이래 쌌더라고. 예. 갔다 올 게요. 하고 버스를 타니까, 버스를 타고 앉아있는데 마침, 이생강 씨 알죠? { 네.} 이생강 선생 동생이 또 타는 거라예. 아, 홍 선생님. 전주대사습 갑니까? 해서 그래. 해서 같이 가입시더. 해서 그래 인자 몇 사람이 됐어. 일행이. 전주대사습에 가서 여관을 잡았거든요. 연관을 잡고 내가 이제 전 주대사습에 간다 하고 내가 형님으로 모시는 무용가가 있었습니다. 이상준 씨라고. 광주에 있고 지부장도 했고 한데. 이상준 형한테 내가 형, 내가 전 주대사습에 가는데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일단 갑니다., 그래. 내 가께. 전주로 가께. 그래가지고 전주에 가서 여관을 잡아놓으니까 왔드라고예. 같이 식사를 하고, 내가 일단 전주에 갔으니까 전주에 무용가들한테 또 인 사전화는 해야 되겠다 싶어서, 가끔씩 얼굴만 봤다 뿐이지 별로 친한 사이 는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인사전화를 했드만 여관으로 찾아왔어요. 두 사람 이. 하나는 최선 씨라고 전주에 지금 지방문화재 < 살풀이 > 보유자가 되어가 있고, 금파 선생은 < 한량춤 > 으로 신청을 해가지고 보유자가 됐는데, 마 바 로 돌아가셨어요. 그래 둘이 왔더라고예. 와가지고 같이 저녁밥을 사더만, 전주에 음식이 참 좋습디더. 반찬이 으리으리하고 정식인데도 보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할 정도로 이렇데예. 그래서 맥주 한 잔씩 마시고 밥 먹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헤어지고. 그 이튿날 아침에 신청도 하고 예선하는 쪽으로 갔거든요. 아침 먹고. 가서 사무실에 신청을 해놓고 그 옆에 큰 강 당이 있습디다. 강당에서 예선대회를 한다는데, 그래서 시간도 좀 남았고 해서 강당 옆에 운동장이 이렇게 있드만. 그 서서 쉬고 있는데, 강선영 선생 님하고 전황 305) 선생님이 오셨어요. 그래서 내가 인사를 이래 했드만 강선 305) 전황 (, 1927~ ). 본명은 전두황. 서울 출생 년 최승희무용연구소 입소, 최승희무용단 일원으로 중국, 동유럽 등에서 공연. 동경올림픽 ( 64 년) 파견 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 연출,, 멕시코올림픽 ( 68 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국립무용단 지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시 213

215 홍의 삶과 예술 영 선생이 날로 이래 쳐다보드만, 누구한테 저 양반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때 작품 낸 사람인데, 그때 작품 좋다고 소문이 널리 나고 안무도 잘하고 한다고 이래가 이름이 벌써 그만큼 났으면 됐지, 또 뭐 하러 왔어? 이래 말 을 한다하는 거라예. 이선이가 그걸 전해 줍디다. 이생강 씨 동생. 그래? 하면서. 그라자 인자 전황 선생이 또 내한테 와가지고, 그때가 내가 53살이 었나? 56 살이었는갑다. 머리도 허여이 뭐할라고 이런데 나와요? 서울에서 아주 이쁜 아가씨들 < 승무> 기똥차게 잘 추는 아가씨들 둘이나 왔는데, 뭐 할라고 나왔냐? 고 이라는 거라요. 하지 마라는 식으로. 내가 오기가 좀 생기더라고예. 아, 그럼 그 아가씨들 선생님이 잘 아시는 가봐요. 그러 면 로비는 했는 갑구만. 나도 그럼 로비 하께요. 보골이 나서 306) 그랬거든 요. 아, 내가 집이 두 채나 있는 사람인데, 내가 돈 보고 이런 데 심사 보러 오는 줄 알어? 이라더라고예. 나는 일부러 오장 한 번 지를라고, 자기가 내 오장 지르는데 나도 오장 지를라고 한 소리지. 사실 나는 로비같은 거 하는 스타일도 원래가 아니고, 할 줄도 모르고. 또 거기서 갑자기 로비해가 됩니 까? 예를 들어서 사실 로비한다 해도 사전에 6개월 전이나 1년 전에 다 하 는 갑드만. 또 내가 안 봤으니까 로비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고. 소문만 들었지. 그래서 내가 기분이 나빠서 갈라고 가방 들고 나오는데 이선이가 자꾸 말리는 거라. 선생님 온 에 하고 가이소. 이래 쌌고. 또 이부산이 도 선생님 왔다가 한 번 추고 가세요. 하는데 마침 이매방 선생님이 오셨 는 거라예. 그쪽으로 오셨더라구요. 오셔가지고 얘, 신풀이나 하고 가. 아 무 욕심 부리지 말고, 신풀이나 하고 가. 그래서 인제 예. 하고 이랬는데. 그 참가하는 박은화라는 광주에 무용가, 강남기는 지 제자 데리고 오고, 뭐 이렇게 몇 사람이 왔습디다. 왔는데 그 사람들이 내하고 눈도 안 맞추는 거 집가는 날> 을 비롯하여 다수의 창극을 안무하였다. 306) 보골이 나서 : 부아가 나서. 214

216 명무의 길을 가다 라요. 즈그 307)끼리 딱 모여가지고. 그 강당 지하실에서 대기실이 되어가지 고 거기서 분장을 하게 돼가 있는데, 거울도 없고. 즈그는 저쪽 한쪽 구석에 가서 모두 앉아서 오순도순 이래쌌드만. 나는 마 너거야 그라든지 말았든 지 싶어서, 분장 내 혼자 하고 의상을 입고 연습 장삼을 입고 연습을 한 거 라예. 넓어서. 땀을 막 흘리고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 밑으로 지나가야 관 객들이 화장실도 갈 수가 있는 그런 길목이었어예, 거가. 그래가지고 할아 버지, 할머니들, 아줌마들 지나가면서 저 사람 춤 잘추는데. 잘춘다 그자? 속닥속닥 하고 자기네들끼리 보고 있드만 가면서 그런 소리도 하고. 이래 해싸니까 기분은 좀 좋데요. 좋는데, 어차피 상탈 거 아니니까 내가 맘 놓 고 춤춰야 되겠다. 거리낌 없이 춤이나 한 번 추자 싶어서 땀을 뻘뻘 흘려 가면서 췄습니다. 그래가지고 있는데, 마침 강남기 선생 제자가 출연한다고 누가 내한테 귀뜸을 해주는 거라예. 그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무대 옆에서 요렇게 보니까 춤추고 있고. 내가 내려가서 연습해야 되겠다 싶어서 이래 밑을 보니까 계단 난관을 붙들고 강남기가 펄떡펄떡 뛰고 있는 거라예. 긴 장이 되가지고. 자기 제자가 춤을 추니까 춤 볼 그것도 안 되는 거라요. 너 무 긴장이 되가지고 막 뛰고 있더라고예. 그래서 나는 내려와 가지고 내 혼 자 또 연습을 했거든예. 하고 있으니까 고 다음 선생님 차례입니다. 하면서 내 친구가 순서를 알아보고. 그래서 무대용 장삼 입고 무대 올라가 가지고 생음악이죠, 악사들이 한 쪽에 앉아있고 이렇는데. 그래가지고 춤을 시작을 하다가 처음에는 < 승무> 는 객석 반대쪽으로 엎드려 앉거든요. 추다가 일어 나가지고 이래가지고 하는데, 무대가 강당무대가 되어 놓으니까 낮아가지고 바로 그 앞에 두 사람이, 한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한복이 보이더라구예. 치마가. 그래서 올리면서 이래 보니까 숙자 선생하고 명화 선생, 대구 에 < 살풀이 > 보유자인데. 그 두 사람이 앉아 있더라구요. 그때는 그분이 보 307) 자기들. 215

217 홍의 삶과 예술 유자가 아닐 때입니다. 그래 하면서 얼씨구! 이래 주더라고예. 나는 그런 것도 저런 것도 모르고 얼씨구! 소리는 들리고, 그냥 마 기분 좋게. 희한하 게 그날은 기분이 좋은 거라예, 춤 추는데. 상 안 받는다 생각을 하니까. 그 라는데 중간 박수가 막 나오고. 춤을 추다가 우짜다가 이래 했는데, 무대 한 쪽에 심사를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안 보이고 강선영 선생이 이렇게 볼 펜을 들고 볼펜을 입가에 갖다 대놓고 지하게 약간 미소띤 얼굴로 보고 있더라고요. 춤추는 걸. 볼라고 본 게 아니고 그래서 얼른 또 시선을 돌려 가지고 갖춰가지고 춤추다가 또 돌다가 마주치게 되가지고, 또 그라고 있는 거라예. 그런데 이제 객석에서 잘 춘다. 어디서 저런 사람이 왔노? 어디서 온 사람이고? 하고. 전주에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다 전통에 대해서 잘 아 시는 분들이 되놓으니까. 속을, 말하자면 속을 아는 사람들이 돼서. 박수도 치주고 얼씨구! 해주고 난리가 났어요. 북 치니까 더더구나 더 환성, 환호 소리. 야~ 하고. 엇가락을 치고 하니까 얼씨구, 잘한다! 하고 이래 쌌고. 이 래가지고 무사히 끝내고 와서 옷 벗고 가방 챙겨서 부산 간다고 친구하고 여관으로 왔는데, 여관으로 전화가 왔어요. 이선이가 선생님, 예선에 됐 습니다. 이라는 거라. 나 부산 갈기다. 인자. 이라니까. 와예? 해서 보나 마나 안 될 건데 뭐할라고? 신풀이 했으니까 가야지. 이랬드만 그래도 선생 님 되든 안 되든 본선에는 한 번 추고 가야지. 하면서. 그러니까 부산이도 전화를 하면서 자꾸 췄으면 좋겠다 그라는 거라. 그래서 갈라하다가 또 멈 춰가지고 앉아가지고 있는데 이매방 선생님하고 이상준 씨하고 가지 말어. 그냥 온 에 한 번 더 추고 가. 신풀이. 본선이니까 신풀이 더 해라. 이래 쌌고. 그래 쌌는데, 아참! 그라고 예선이 끝나고 나자 소희 선생님이 그 308) 오셨더라고예. 아, 저 박귀희 309) 선생님. 국악계 거목이거든예. 박귀 308) 거기에. 309) 박귀희 (1921~1993). 호는 향사 ( ). 가야금병창의 명인이며, 1960 년 국악예술학교 ( 현재 국립 전통예술중고교 ) 를 설립하였다. 말년에는 운당여관과 전 재산을 학교에 기증하여, 국악인재 216

218 명무의 길을 가다 예. 희 선생님이 오셨는데, 방송차가 왔데요. 그래가지고 실례지만 어디서 오 신 분인가요? 해서 부산에서 왔습니다. 홍입니다. 하니까 홍 선 생 오늘 수고 많았네요. 객석에 반응이 좋다 하던데. 남자 선생이 이렇게 전통춤을 추어주시니까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데 누구 제자지요? 해서 이매방 선생님 제잡니다. 하니 참 좋은 선생님 만 났네요. 하면서 너무 좋게 인터뷰하면서 마이크에 대놓고 방송을 하더라구 요. 그 이튿날... 그라고 나서 저녁 먹을 때 되니까 최선 씨하고 금파 씨하 고 다 왔더라고예. 무용가들 와가지고 금파 선생은 하는 말이 우리 집사람 도 오늘 전주대사습에 나갔지만 오늘로 봐서는 홍 선생이 돼야 된다. 이번에는 다 봤지만 홍 선생이 꼭 돼야 돼. 홍 선생 안 되면 큰일 난다. 신문사에 가서 뒤집어 놓든지 할 거다. 하면서. ( 웃으면서 ) 그렇게 무 용가들이 좀 단순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순수한데도 있고 흥분도 잘하고. 그 래 쌌드만 여럿이 모여가지고 심사위원 찾아가자. 이번엔 어쨌든 홍 선생이 돼야 된다. 하면서 이래가지고 모두 간다고 갑디다. 나는 여관에 있 었고. 아이고, 안 될 걸로 가지고 뭐 할라고 저래 쌌는고? 내가 그라고. 아 침에 일어나서 본선 하는 데는 실내체육관에서 하는데 사람들 많이 왔더라 고예. 그래가 분장실이 딱딱 되어가 있는데, 국악은 어데, 판소리는 어데, 이렇는데. 이매방 선생님이 내 < 승무 > 의상을 입혀주고 홍띠를 이렇게 앉아 서 나는 서가 있고 뒤에서 이렇게 홍띠를 매주는 걸 보고 조상현 씨라고 우 리나라 국악에 남자분 있습니다. 판소리 하시는 분요? 조상현 선생님. 조상현 씨. 예. 그분이 있다가 그림이 참 좋습니다. 아름답습니다. 하면서, 육성에 기여한 국악계 큰 거목이었다. 217

219 홍의 삶과 예술 제자하고 스승이 그렇게 스승이 제자 옷을 입혀 주는 게 너무 보기가 좋다 고 하면서. 그런 말도 하고 하니까 다른 국악인들도 보고 참, 그래요. 하고 모두 그래 쌌더라고예. 그래 쌌다가 춤추러, 인자 무용할 차례가 되어가지 고 농악 다음에 무용이었던가 그럴 겁니다. 그래서 내가 내려가니까 본부석 에서 하는 말이 선생이 장구를 쳐야 된다. 심사위원석에서 그렇게 말한다 하는 거라예. 그런데 나는 이부산이가 뒷장단 칠라고 왔거든. 같이 갔거든 예. 그래도 심사석에서 선생이 쳐야 된다고 해서 선생님한테 부탁을 하고 했는데. 심사위원 뒤에 쭉 앉아있는 앞에 앉아서 장구를 치니까 선생님이 굳어가지고 ( 웃으면서 ) 그 양반이 좀처럼 긴장을 안 하는데 굳어가지고 장 구 치면서 ( 몸짓을 하면서 ) 이라더랍니다. 심사위원들 앞이 되놓으니. 제자가 출전하니까 긴장이 되셔가지고. 예. 긴장도 되고. 그러다가 장구를 한가락을 빠져 먹어 버렸어요. 그때 부산 이가 북 옆에 서 있다가 퐁 북을 쳐버린 거예요. 그래서 장단이 희한하게 매꿔지고 310) 했는데. 그때도 춤추는데 중간 박수도 많이 나오고. 또 춤추기 전에 박귀희 선생님이 마이크에 대놓고 나를 소개를 합디다. 참 내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와 그렇나 하면 특히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그렇게 소개를 해주고 이래하던데. 홍 씨가 부산에서 왔고, 나이가 몇 살인데 우리나라 전통춤을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훌 륭한 일이냐? 여러분. 하면서 내가 너무 고맙습디다. 눈물이 날 정도로. 그 래가지고 춤을 추는데 중간 박수도 나고 북칠 때는 고함소리도 나고. 나는 어째 췄는지 기분만 좋고. 어쨌든 나는 상을 안 받는다는 그걸 생각하고 있 으니까 편하더라고예. 그래가지고 잘 춰집디다, 춤이. 그라고 인제 마치고 옷 갈아입고 가방 들고 부산 갈 거라고 친구하고 둘이 오니까는 이선이가 쫓아오면서 실내체육관 밖에까지 선생님 ~ 부르는 거라예. 그래서 돌아보 310) 매워지고. 218

220 명무의 길을 가다 니까 왜 갑니까? 어데 갑니까? 부산 갈란다. 하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됐 습니다. 뭐가 돼? 됐거든 니가 받아 온나. 미안하지만 니가 받아다 도. 311) 나는 부산 먼저 가께. 하니까는 아닙니다. 좀 좋은 게 됐습니다. 이라는 거 라요. 가지 마이소. 하면서 자꾸 오라하면서 끄집어 댕기더라고 가방 뺏들 고. 312) 그래 가니까 다시 얼굴에 분만 좀 바르이소. 그래서 바르고 있으니 까. 뭣이고 장원들 입는 옷하고 이런 걸 가져 왔데예. 선생님, 이름이 본명 이 자홍인데 어떻게 할까요? 해서 홍으로 해주면 좋겠는데 이러니 까 예. 하면서 선이가 하더만. 그래가지고 발표를 하는데 < 승무> 장원 에 홍 이라더라고. 내가 아득하게 꿈인지 현실인지 자꾸 꿈같은 느낌 이 들고. 아이구, 살다가 이런 일이 다 있는 갑다! 이래 싶으더라구요. 그런 데 그 해부터 MBC 에서 전주대사습을 맡아서 했던 가봐요. 그래 놓으니까 장원한 사람들을 기다리라 하드만 차가 옵디다. 작은 트럭에 깃발 든 사람 이 있고, 장원 무용부 홍 해가 깃발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내 친구 타 고 내가 타고 이래가 시내를 행을 시키더라고요. 그거를 다 촬영을 하고 이라는데. 그래 시내 한바퀴 행하고 돌아와서 옷 벗어 놓고,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 갔드만. 식당에서 아구, 저 선생님이 장원한 선생님이네. < 승무 > 장원한 선생님이네. 우리 테레비 잘 봤어요. 하면서 반찬도 서비스로 막 내 주고, 술도 갖다 주고, 돈 안 받는다 하면서. 그래 하고 다방에 또 가니까 다방에서도 알고. 전주에서는 전주대사습을 하니까 테레비를 늘 틀어놓고 있는가 봐요. 가는 곳마다 다 압디다. 참 기분이 좋고. 이래가지고 프 라이 하는 잡지사에서 와가지고 인터뷰를 했는데, 이만한 잡지인데 크게 나 왔던데 그 잡지가 어디에 있는가 모르겠어예. 그래 하고 부산에 오니까 부 산에서도 방송을 봤다고. 본 사람들이 많습디다. 그 전주대사습에 가기 전 311) 줘. 312) 빼앗고. 219

221 홍의 삶과 예술 예. 에 꿈을 꿨는데, 자갈치 시장에 그 바닷가거든요. 자갈치 시장에 재문이 라는 친구하고 둘이서 타고 가는데, 타고 가면서 바다를 보니까 해가 이렇 게 솟아오르고, 그 햇빛을 받아가지고 바다의 파도가 호화찬란한 색깔로 눈 부신 색깔로 출렁거리더라고. 출렁거리고 내가 그 재문이 하고 둘이 악수 를 하고 이라는데, 차가 어떻게 빨리 달리든지 놀래가지고 꿈을 깼었거든 예. 그랬는데 그 꿈이 무슨 꿈이었던고? 했드만 그 꿈이었는가 봐요. 장원 될라고. 그래가지고 부산에 돌아오니까 내 제자가, 남자 제자가 조문호라고 또 남자 제자가 있었습니다. 조문호라는 제자가 국악협회에다가 연락하고 무용협회에 연락했는데, 국악협회에 송순섭 313) 씨라고 아마 < 적벽가 > 에 보 유자가 됐지 싶은데. 송순섭 씨가 지부장할 때입니다. 축 전주대사습 장원 홍 < 승무> 이래 가지고 깃발 두 개나 만들어 가지고 버스터미널에 꽃다발하고 화한하고 해 가지고 와있는 거라예. 어찌나 고맙던지. 그것도 내가 참 평생 안 잊혀질 겁니다. 그때 사을 많이 찍어놓은 게 내가 다시 복사를 하려고 사관에 맡겨놓고 마 잊어버리고 안 찾았드만 지금 후회가 되서 죽겠어요. 그 좋은 사들. 선생님, 그러면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하신 이후에 무용가로서 선생님의 삶에 어떤 큰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라고 나서 그때부터는 그 전에부터 명무다, 춤 잘춘다 이런 소문은 나가 있었는데. 전주대사습 장원하고 나서부터는 공연에 초청을 많이 받았습니 다. 광주는 거의 한달에 한 번 내지 두 번 이래 가고, 또 전주도 가고. 부산 지역 외에 다른 곳에서도 초청공연을 많이 받으셨다는 거죠? 313) 송순섭 (, 1936~ ). 전남 고흥 출생. 호는 운산 ( ). 중요무형문화재 제5 호 판소리 < 적 벽가> 예능보유자. 220

222 명무의 길을 가다 예. 부산은 말할 것도 없지만은 많이 받았어요, 다른 지역에. 저기 어데고? 저 거제도도 갔다 오고, 또 제주도도 갔다 오고. 제주도에 가서 춤도 가르치 고 공연도 하고 몇 번을 그랬습니다. 그래 하고 거제도에서도 그래 하고. 또 광주, 저 어뎁니까? 성균관대학에. 거도 춤 가르치러 와 달라 해가지고, 거긴 < 한량춤 > 을 해 달라 합디다. 그래서 하고 하여튼 그런 그 제주도립 무용단 거기도 또 와서 해 달라 해서 해주고 공연도 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거기서 < 승무 > 를 추는 사람이 있어가 내가 < 한량춤 > 을 췄드만은 제주도립 무용단에 그 문화회관에 담당자가 보고, < 한량춤 > 좋으니까 그거를 연수를 받아라. 단원들로 연수를 받아라 해가지고 그래 또 제주도 가서 또 연수를 해주고 이랬고. 부산시립무용단도 내하고 같이 남자들 군무도 추고 춤도 가 르쳐주고. 또 어디고? 빨리빨리 생각이 안 나네요. ( 웃음) 네. ( 웃음) 많이 그거를 하고, 매방 선생님 제자들 중에서 발표회하는 제자들 또 불러 가지고 가서 하고. 선생님 활동하시는 활동범위가 넓어지셨네요? 예. 많이 넓어졌죠. 많이 넓어지고 일본도 가게 됐고. 네. 명무전 에. 예. 일본 명무전 에도 가게 되고 그렇습니다. 221

223 홍의 삶과 예술 홍의 < 승무>. 222

224 명무의 길을 가다 홍의 < 승무>. 전주대사습에 < 승무> 로 출전하여 장원을 수상하였다. 223

225 홍의 삶과 예술 동래 한량춤 홍류 한량춤 선생님, < 동래 한량춤 > 을 하셨잖아요? { 예.} < 동래 한량춤 > 을, 내가 저 춤을 배워야 겠다 라고 마음을 먹으셨던 계기가 있으세요? 예. 그것도 얘기가 좀 긴데 괜찮죠? { 예.} 어릴 때 내가 서커스에서 춤을 추 는 걸 봤는데, 쾌자를 입고 갓을 쓰고 이렇는데, < 무당춤 > 도 비슷하고 또 < 한량춤 > 도 비슷하고. 한잔 묵고 약간 비틀비틀하면서 이래 추는데. 그런 어떤 춤보다도 그런 게 참 보기가 좋더라고예. 어린 마음에 그런데 보는 사람들 전부 박수를 많이 쳐줍디다. 앙콜하고 난리가 나고 이랬어. 한달 그 서커스 할 동안에 한달을 구경을 했었거든예. 하고 나도 춤추고 싶다 어릴 때지만은 이래하고 있었는데. 그라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춤 지든가 어 느 하여튼 춤에 대한 잡지에서 보니까, 사에서 전주에 최선 씨가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부채를 들고 부채를 탁 펴고 사을 찍었는데 그게 그렇게 내 눈에 쏙 들어오면서 마음에 와닿는 거라예. 아이구, 이렇게 좋은 옷을 입고 남자춤을 출 수가 있는데 싶어서 아, < 한량춤 > 을 추고 싶구나, 추고 싶구나 이래가지고 내 혼자서 좀 많이 생각을 했거든예. 하자 최현 선생님, 최현 선생님하고 또 같이 공연을 하게 돼가지고, 그래서 최현 선생님이 처 음에 흥이 나오도록 해가지고 부채 들고 추는 걸 봤고. 그때는 상투머리에 흰 바지저고리에 흰 쾌자를 입고 그렇게 춘 거 같아요. 그 다음에는 한 2~3 년 있다가 보니까 < 비상 > 해가지고 그때는 상투에다 관을 쓰고 의상이 아주 좀 화려하게, 약간 현대화된 의상에 이래가지고 < 동래학춤 > 의 어떤 느낌을 좀 넣어가지고 이래 했습디다. 참 좋더라고예. 그래서 그런 거 저런 걸 보 다가 그때 내가 우연한 기회에 박목월의 밤에 쓴 인생론 이라는 수필을 한 권 사봤는데 참 좋습디다. 그래서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양반이 시인이 라 해서 시를 하나 사 보니까 그 중에서도 < 나그네 > 라는 시가 너무 또 내 마음에 와닿고 해서 자꾸 생각하니까. 박목월 시인이 갓을 쓰고 도포를 입 224

226 명무의 길을 가다 고 뒤에 이렇게 뭡니까? 메는 거 안 있습니까? 메고 그래가지고 조지훈 시 인을 찾아가는, 친구를 찾아가면서 술 익는 마을에 타는 저녁노을 정이 솟아 잠시 말을 잇지 못함) 감정을 안 잡아야 되는데 (감 그게 자꾸 떠 오르더라구요. 그 장면이. 그래가지고 내가 <한량춤>을 밤에 밤늦게 음악을 틀어놓고 이렇게 구성을 해본 거라예. 했는데 그래가지고 선무회 라고 부산 에 모임이 있었습니다. 선무회 모임에서 내가 그거를 한번 췄어예. 추었는 데 난리가 났어요. 좋다고 난리가 나고. 그럼 선생님이 직접 구성을 하신 거죠? 위에서 사사받으신 게 아니고. 그 전에는 <한량춤>을 배우신 적은 없구요? <한량춤>을 추는 홍의 모습 225

227 홍의 삶과 예술 예. 없고예. 그냥 기본은 배웠고, < 승무 > 도 배웠고 좀 이렇지만은. 그래가지 고 난리가 났어요. 좋다고. 그래도 최현 선생님의 춤출 때 느낌 같은 거. 이 런 것도 생각 보고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최현 선생님이 대한민 국에 무용가들 중에서 가장 멋쟁이입니다. 일상 때 옷이라든가, 다방에서 차를 한 잔 마실 때 그 매너라든가 동작 같은 거 너무나 만들어 동작, 의 식적이지만 또 그게 몸에 배었어요. 그 양반은. 또 영화배우 출신 아닙니까? < 시집가는 날> 에 나왔었거든요. 최현 씨가. 나오고 해놓으니까 멋은 말할 것도 없지. 내가 그 양반한테 그 춤을 배우기 위해서 은행에서 돈을 찾아가 지고, 참 나도 촌스러웠지. 그걸 갖다가 이런 봉투에다가 넣어가지고 수표 로 안 찾고 현금으로 ( 웃으면서 ) 돌돌 말아가지고 신문지에 싸가지고 그래 선생님한테 갖다 준 거라예. 내가 < 비상> 그 춤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 갖다줘 놓고 집에 와가지고는 그 길로 못 갔습니다. 이매방 선생님도 걸리 고 이래가지고 마 못 가버린 거라예. 그러니까 먼 훗날부터 시작해가지고 내가 공연할 때마다 서울에서 공연하면 꼭 최현 선생님이 찾아오십니다. 국 립국악원이나 어디 공연하면. 내가 없으면 그냥 봉투에 일금 넣어놓고 가시 고 그랬어요. 내보다 선배님이고 스승같은 분이 어째서 이라는고? 하고 생 각을 자꾸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는데. 내가 < 승무 > 를 광주에서 췄을 때 또 최현 선생님이 와서 본 거라예. 보고는 한번 그랍디다. 홍 선생 춤 좋 았습니다. 아주 강약이 잘 되어 있고. 춤이나 북이나 강약이 잘 조절이 되 어가 있고. 춤이 이제는 익을 대로 익어서 참 좋더라. 하면서 이매방 선생 한테서 배웠지만 이매방 선생님하고 또 다른 어떤 느낌, 춤 동작은 그 동작 이겠지만은 다른 느낌을 받았고, 너무나 신선한, 새로운 것을, 감동을 받았 다. 하면서 그렇게 스승과 제자 사이라도 비슷하게 보이면서도 그렇게 다 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시고 이랬는데. 최현 선생님은 내가 아까 멋있다 했지만은, 결혼식 했을 때 제가 해운대 부 산에 조선비치호텔인가 그 호텔에 찾아갔어요.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했는 226

228 명무의 길을 가다 데, 그 다음에 누가 손님이 찾아왔다 이러니까 금새 가만있다가 머리를 막 흐트려 가지고 나는 갑니다. 하니까 그래요. 하면서 머리를 막 흐트려 가 지고, 좀 침대에서 신부하고 누워서 뽀뽀도 하고 애무를 하다가 머리가 이 래 된 것처럼 보이려고 분위기를. ( 웃음) 그래서 내가 놀랬습니다. 좀 굉장 히 그 양반은 멋은 있어도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쪽으로 더 많이 치우치 는 분이구나. 예술을 하는데 있어서 물론 보이기 위한 춤, 프로는 보이기 위 한 춤을 춰야 되지만. 그래도 보이기 위한 것에도 어떤 안에서 우러나오는 춤이라는 것은, 추는 춤 말고 저절로 춤을 추어지는 거. 음악에 맞춰서 추어 지는 춤, 그게 좋은 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춤을 많이 추고 연습을 많 이 하면 그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양반은. 그리고 또 우리 이매방 선생님은 참 타고난 천재입니다. 비상한 사람이라예. 춤 만드는 걸 보면 참 비상한데, 그 양반도 보이기를 좋아해요. 아주 천재지만 보이기 좋아해서 딴 사람 손 한 번 돌릴 것 같으면 자기는 두 번 돌려야 되고, 손가락을 이래 야 되고 이런 쪽이지. 그런 쪽이고 내하고 선생님하고 비교하자면 테크닉 쪽은 선생님이 훨씬. 내가 따라가겠습니까? 스승인데. 그렇지만 보는 사람 들이 나한테는 춤에 내적인 아름다움이, 정신세계가 있다 그런 말을. 나는 그렇게 할려고 애를 안 씁니다. 내가 원하는 춤은 모든 것은 지금부터는 홍의 한( ) 이다 그냥 춤추는 한( ), 어떤 몸뚱아리. 그리고 마음이 말하 자면 육체를 지배하는, 지배한다기보다 몸이 마음 따라서 움직여주는 그런 춤을 추는 쪽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흉을 보고, 아이고 연습도 많 이 한다. 무대공연하면 연습 많이 한다 고 흉을 봅니다. 봐도 나는 연습합니 다. 일류 대가들은 보니까 연습 안하고도 다 잘 추십디다만은 나는 연습 안 하면 자신이 없어요. 지금도. 그래가지고 결국 춤을 내가 만들어가지고 추 었는데, 그 춤이 널리 입소문이 나가지고 제주도립무용단, 성균관대학, 그래 가 추었는데. 민속협회에서 문장원 선생님이 보니까 안타깝거든요. 니가 이매방이 제자라 하면서 매방이가 와 닐로 아무 그것도 없이 그냥 집어던져 227

229 홍의 삶과 예술 놓고 있노? 안 되겠네. 니 부산에 동래 그거를 해라. < 한량춤 > 도 < 동래 한 량춤> 이래가지고 추거라. 이라시는 거라예. 그래서 내가 그때부터 < 동래 한량춤 > 이라 했지. 그 전에는 < 한량춤 > 으로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엄옥자 선생님도 문화재 위원 아닙니까. 선생님, 춤이 너무 좋은데 문화재가 되야 안 되겠습니까? 하면서 애를 써주시고 이래가지고 일단은 < 동래 한량춤 > 으 로 지정이 되니까. 내가 추던 춤을 그대로 < 동래 한량춤 > 에다가 못 추겠는 한량무 ( 홍 ) 228

230 명무의 길을 가다 거라예. 그래서 또 동래 문장원 선생님한테 < 입춤> 을 좀 해가지고, 거기서 문장원 선생님의 느낌을 좀 담고 해가지고, 새롭게 구성을 해가지고 < 동래 한량춤 > 이 되가지고. 사실은 < 동래 한량춤 > 하고 < 홍류 한량춤 > 하고 두 개가 되가 있어요. 시립무용단 단원들도 하는 얘기가 선생님, < 동래 한량 춤> 이 선생님이 전에 우리하고 추던 그 춤이 참 좋습니데이. 좋은 춤입니 더. 짜 < 한량춤 > 인데 왜 지금 그런 식으로 춤을 바꿔놓으니까 우리가 하 고 싶어도 별로. 이래 말을 하더라고예. 우리 아들도 아버지, < 동래 한량춤 > 을 아버지 그걸로 갖다가 해버리소. 하는 걸 아니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 동래 한량춤 > 물론 내 춤을 < 동래 한량춤 > 이라 해가 내 춤을 췄 지만은. 교수들이 온경 교수나 엄옥자 교수가 < 동래 한량춤 > 은 그대로 하 시고, 선생님 춤은 < 홍류 > 라 하시고 이렇게 말할 때는 뭔가 생각이 있 어서 안 그랬겠나. 그러니까 내가 구태여 내 춤을 가지고 억지로 < 동래 한 량춤> 을 만들 필요가 뭐가 있겠노, 인자. 그래 돼가 있는 거라요. 지금 상 황이. 춤의 여백 춤의 요소 나는 항상 < 동래 한량춤 > 연습하기 전에는 시조가 나올 때나 이럴 때 보면 박목월 선생님의 시가 떠오르고, 그 박목월 선생님이 조지훈 시인을 찾아가 는 강나루 언덕... 그게 자꾸 떠올라예. 그러니까 부채를 이렇게 하면 벌써 그림이 보인다고예. 아름다은 영상이 보이지예. 내가 아름답게 보일려고 하 는 게 아니고, 무대 위에서 내가 아름다운 자연이라든가 풍경을 봅니다. 보 입니다. 이렇게 느껴집니다. 어떤 때는 < 살풀이 > 같은 거 출 때는 보면 흘러 가는 구름, 세월, 이런 거. 흘러가는 물 이런 게 다 세월 아닙니까. 그런 게 이렇게 느껴지고. 그게 느껴지니까 춤이 그래 되지. 안 그러면 춤만 춘다면 229

231 홍의 삶과 예술 테크닉을 더 넣고 더 그래 하겠지만. 춤을 테크닉을 많이 넣으면 내한테 여 유가 없어지는 거라예. 그러니까 테크닉 많이 넣고 잔가락 많이 넣고 추는 춤은 그냥 춤이지. 예술성있는 그런 춤을 볼려면 동작이 많이 들어가는 춤 은 아니지 싶어예. 그라고 춤도 역시 혼자 추는 춤도 어떤 사람은 혼자 추 는 춤인데 뭘 그렇게 이렇게 보고 그러느냐 이러는 사람도 있어예. 그런데 그건 잘못이, 항상 어떤 상대가 있어야지. 춤을 출 때도 내가 사랑하는 사 람을 이렇게 본다, 어떤 그리움을 본다. 이런 게 있어야 춤에 감정이 잽히 지요. 맨맨하니 314) 그냥 이것만 이래 이래 하면 감정이 안 잡히잖아요? 그 러면 춤 보고 나면 볼 때는 아, 오른손 올렸다, 왼쪽 다리 올렸다, 웃었다 참 이쁘게 웃었다 이래 쌌지만 보고 나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춤은 길게 끝 보고 난 뒤에 여운이 남는 게 참 중요합니다. 예술은. 영화도 그렇고. 내가 영화를 많이 본 것이 내 춤에 보탬이 되는 게 여운이 남는 거. 또 그 다음에 는 춤이 약간은 드라마적 요소, 드라마틱하다 할까? 그런 요소가 들어가거 든요. 선생님 춤의 특징을 지금 선생님께서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는 거죠? { 예.} 선생님 춤은 일단 여백이 있는 춤 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예. 여백. 공간의 여백... 시간적 여백, 공간적 여백. 예. 그렇습니다. 네. 두 번째 요소는 선생님 춤이 가 특징, 드라마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춤에서 여백이라는 것과 드라마틱하다는 것이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요소인 것 같은데, 그것이 어떻게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지, 선생님 춤에서. 그니까 춤을 쥐고 있는 게 아니고 놔버리는 상태, 놔주는 상태, 놔줘야 뭐 뭐다 하는 정신의 움직임, 정신의 내재율 이 있어요. 움직임을 안으로 이렇 314) 밋밋하게. 230

232 명무의 길을 가다 명무전 포스터 게 표출이 될 수 있는 게. 이번에 내가 < 무당춤 > 출 때, 대를 들고 이래 서 있었는데, 그날 내가 순서를 잃어버렸어요. 그래 걱정하니까 모두가 하 는 말이 선생님은 가만히 서가 계서도 춤같이 보이는데 왜 걱정을 하십니 까. 순서 잊어버리면 가만히 서가 느낌만 내도 다 춤인 줄 압니다. 이래 말 하니까 아마 그거지 싶으고, 그 다음에는 절제, 절제와 겸손 그런 게 참 중요한 거고, 내재율도 참 중요합니다, 춤에 있어서. 그 보통 어떤 사람들 231

233 홍의 삶과 예술 이 정지해가 있을 때에, 그냥 정지를 위한 정지가 아니거든요. 정지해가 있 어도 움직인다 말입니다. 그렇게 움직임이 전달이 돼야 됩니다. 근데 가만 히 있는데 뻣뻣해 보이면 안 된다꼬. 그게 참 중요한데 그게 다 어떻게 이루어지냐 하면은 노력에 의해서, 연습에 의해서. 잘 추는 사람도 연 습 안 하면 그게 안 나옵니다. 몸이 굳어버리면 그게 안 나와요. 그러니까 연습을 자꾸 해야 하고, 연습 처음에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은 다리가 근 육이 아프고 좀 하기 싫고 그래요. 그런데도 참고, 참고 해가 1시간 30분을 연습을 하면 조금 기분이 좋아집니다. 발목이 없는 것 같애요. 유연해져 가 지고. 그 담에 2 시간 하고 나면 만족하고, 그때는 연습을 해도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움직이는 게 아니고 지가 움직여주니까. 네, 그렇게 되 니까, 그래서 그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결국 욕심이 없다는 뜻이거든요. 마 음을 비울 줄 알아야 되는데, 우리 일상에서 너무 모두, 내가 볼 때 춤추는 사람들이 욕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애요. 지위나 명예나 이런 쪽으로 너무 욕 심을 부리다가 보니까, 그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되 거든.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은 예술의 발전을 위한 것보다도 자기 자신 의 출세를 위한 것이니까, 그런 쪽이니까 자연이 로비가 돼버리는 거라예.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건전한 예술의 얘기가 나오면 참 얼마나 좋아요. 로비 쪽이 돼버리고 하니까, 그게 그런 쪽으로 시간을 다 뺏기니까 자기의 예술 은 성장이 안 되겠죠. 전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 무용가들 연습 을 많이 하는 사람 못 봤어요. 내 제자들도 요315) 춤 배우러 오지만은, 발표 회 한다는 제자가 일주일 후면 발표회할 건데, 요 와서 딱 < 승무> 두 번, < 살풀이 > 두 번, 예를 들어서 뭐 두 번, 이라모 마 안 할라 캅니다. 그라모 안 되거든. 그러니까 음악으로 치면 음정, 박자 제대로 악상기호 살려서 연주하면 된 315) 여기. 232

234 명무의 길을 가다 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이것을 얼마나 내 것으로 내면화시키고 할 것인가, 숙성시키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이거죠? 네네. 그렇죠. 그런데 그래 밖에 안 하는 거라요. 그래서 아이고 안 되겠구 나.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스승이 딴 게 아니고 연습이 바로 스승입니다. 연 습함으로 해서 또 새롭게 생각이 아, 이건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 다. 생각도 들고 이렇거든요. 예. 가장 중요한 게 연습이고. 그 다음에는 인 제 그 나는 영화를 참 좋아하거든요. 영화를 많이 보고, 시도 가끔씩 읽 고. 시 읽기같은 게 참 중요하고. 그런 것들이 이제 춤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이런 거죠? 네네. 시의 그 아름다움. 뭐랄까 그 시 안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내적인 거, 이런 걸 자꾸 생각하면은 그 내적인 춤에 대해서, 내적인 것이 자꾸 승 화가 돼 가지 않겠나 싶어요. 근데 춤출 때 내가 시를 읽었다, 소설을 읽었 다 이래 가지고 춤이 승화가 되는 게 아닐 겁니다. 평소 때 그런 걸 접하고 해가지고 그게 잠재된 것이. 그렇고. 그 다음에 정직하게 살고, 그 마음 씨를 깨끗하게 살면 춤에 그게 다 나올 겁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춤추니까 춤에 욕심이 나오고, 또 지배력이 많은 사람은 춤출 때 보면 내가 이래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춤 잘 추고 오얀데 316) 카고 이리할 때 보면은 무당 오야 안 있습니까? 큰 무당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걸 벗어날려고 해도 딱 벗어나지는 것 도 아니고. 예술은 생활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난하면 가 난한대로 만족하게 살아야지, 너무 그렇게 허욕을 부리니까 그렇게 되고. 그라고 너무 꽉 채우면 안돼. 춤을. 너무 꽉 채우면 안돼요. 아까 말씀 하셨던 여백을 두는 걸 말씀. 네, 네. 동작도 그래요. 손도 이렇게 뻗쳐가지고 힘을 넣어가지고 촥- 이래 316) 오야인데. 오야 일 우두머리. 233

235 홍의 삶과 예술 ( 오른팔을 옆으로 들면서 ), 그런 건 현대무용이나 발레같은 덴 몰라도 한국 무용은 그게 아니거든요. 힘을 안 주고 안 뻗치는 데도 팔이 길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연습이 중요한거죠. 중요 한 거고. 그 무대의 그 말하자면, 왜 뒷모습을 많이 보이느냐 이렇게 말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옛날 방식이고. 춤추는 사람이 앞을 보이든, 뒤를 보이든, 옆을 보이든 아름답게 그 어떤 동작이 나타나고 그 느낌이 나오면 은 그게 춤이지, 왜 자꾸 앞에만 보입니까? 그건 난 그렇다면은 그것도 하나의 억압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자유스럽게 춰야지. 옛날에 우리나라 춤이 이렇게 사방에서 봤잖아요. 그럼 이쪽에서는 앞을 볼끼고, 저쪽에서는 뒤를 볼낀데, 뒤를 보이는 것은 객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캐샀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 거의 다 빨가벗고 나오다시피 하는 것도 예술 영화라 카고 그런 것도 있는데, 그걸 명작 명화라 카고, 소설도 명작이라 카 고 하는데, 근데 예술에 있어서 뒷모습이 왜 나쁜지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거라요. 그래서 나는 뒤에도 강조하고 앞에도 강조하고. 원래 그 아름 다운 미는 앞에만 있는 게 아니고, 뒷모습도 아름다워야 됩니다. 그래야 완 전하지, 아름다움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일반사람들은 많이 웃고, 이 렇게 겉으로 나타내 가지고 많이 슬프게 보이고, 이렇게 춤을 추지만, 안 웃 는데도 이렇게 웃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내가 이렇게 슬픈 표정을 억지로 안 짓는데도 슬픈 그 느낌을 줄 수 있는 그게 바로 내면 연기 라고 생각하 거든요. 네. 선생님, 부산시립무용단 감독으로서도 계셨어요. 선생님의 어떤 그런 사회 활동하셨던 게 선생님의 성향으로 봐서 조금 매치가 안 되긴 하지만, 선생님 그때 시절 얘기 좀 해주세요. 그때 시절은 그냥 아침에 출근하고, 이렇게 내가 아는 전통춤 있으면 가르 켜 주고, 북도 가르켜 주고, 그 담에 인자 정기공연 있으면은 정기공연에 맞는 어떤 것을 했으면 좋겠다. 해가지고, 요즘 새로운 동작들은 너희들이 234

236 명무의 길을 가다 해봐라. 그런 식으로 하고 했는데, 그래도 가장 러시아 공연에 가서도 각광 을 받고 했던 게 < 천상의 길> 이라 캅디다. < 천상의 길>. 선생님 작품인가요? 네. < 천상의 길> 이 시립무용단 단원들도 선생님 작품 본 중에서 제일 남는 게 < 천상의 길> 입니다. 카는데, 다른 안무자들도 이래 있다 가도 뭤을 남겨 났는지는, 하기는 많이 했어도 그래도 선생님, < 천상의 길> 하나는 러 시아에서 봤을 때도 참 많이 각광을 받았고 좋았고,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그렇다. 카면서. 도의 그 뭡니까, < 씻굿 >? { 네.} 거기에서도 발췌하 고, < 동해안 별신굿 > 거기에서도 발췌하고, 그걸 좀 현대화하고, 음악같은 것도 현대화하고 이래가지고 스토리를 좀 만들어 가지고 이래 했거든요. 그 래 했는데 그게 그렇게 의외로 성과가 좋았어요. 그때 그 상여 그거 만드는 데도 제작비가 엄청 들고 그랬습니다. 그라고 그 이후부터 내가 < 지전춤 > 을 더 많이 추게 됐죠. 그 감수성이 러시아 사람들도, 러시아의 민요나 이런 걸 보면 굉장히 집시풍이고 좀 슬프고 이런 음악들이 많거든요. 내가 참 러 시아 음악 좋아합니다. { 네. 네.} 러시아 사람들이 그런 감성이라서 그런지, 이 상여도 나가고 좀 슬프고 이런 데다가, 흰 상여 나갈 때 모두 흰옷을 입고 나가고 그래하니까, 그 양반들이 아! 한국의 백조의 호수다카면서, 너 무 아름답다 카면서. 또, 러시아 사람들이 조금 우월한 그런 면도 있습 디다. 그 기후 때문에 그렇겠죠. 너무나 춥고 하고 이러니까. 예술적 감성은 매우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 의상같은 거 만들은 거 보면 아주 헐 헌 317) 천인데, 색상도 그 게 해내 놓는 걸 보면 놀랍습디다. 어 중간색으로 해가지고 조화를 아주 그렇게 멋지 시민회관에 공연 왔을 때 러시아 사람들 라면을 좋아한다 캐서 내가 라면을 좀 많이 사다가 분장실 뒤에, 공 연 내일할 거 같으면 오늘 가니까, 그 극장 뒤쪽에 거기서 트럼프하고 이라 317) 헐한. 값이 싼. 235

237 홍의 삶과 예술 는데, 내가 라면 갖다 주니까 좋아합디다. 내가 러시아말 못하고 영어로도 뭐 어중간하게 할로, 오케이 이 정도 밖에 모르는데도 좋아하고. 그 무대장치같은 거 보니까, 아주 그 참 비싼 게 아니고 너덜너덜하이 막 헤 이지고 318) 이렇던데, 조명 비차 319) 노니까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데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아, 뛰어난 감이 있구나! 이래 싶었어요. 선생님, 선생님 춤으로 다시 돌아가서요. 어느 일간지에 제가 보니까 선생 님 춤에 대해서 부운 춤의 키워드는 무심이다. 홍 춤의 격이 살아있다 라고 이렇게 평을 했더라구요. 그러면서 생각하는 춤이 아니고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고 추기 때문에 가능하다 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여기에 동의를 하시는지요? 네, 네. 아까 선생님 말씀하셨던 여백, 그 여백이 아마 이런 게 아닌가. 네, 맞습니다. 동양의 예술에, 철학에 여백이라는 것이 중요한거 아닙니까? 네, 그야말로 한 획이라 캐야 될까? 그럴 겁니다. 선생님, 미적 요소가 아닐까. 그림을 봐도 그렇고, 음악을 들어도 그렇 고. 네, 맞습니다. 근데 공간적인 면은 우리가 끊임없이 보는 데서 느끼지만, 시 간적인 여백, 춤의 그 움직임에 있어서 이렇게 해가지고 탁 놓고 있을 때 ( 오른팔을 들어 보이면서 ), 그때 또 시간적인 여백이 나오거든요. 춤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을 들어보니까, 선생님께서 민속춤 추시는데 꼭 정 재를 추고 계시는 듯한 이미지를 갖게 되요. 선생님 춤 안에 정중동 ( ), 네. 정중동이 깃들어져 있는 것 같아서 민속춤을 추시지만 정재의 요소 들이 있는 것 같아요. 318) 헤지고. 319) 비춰. 236

238 명무의 길을 가다 아 예. 감사합니다. 정재. 내가 춤에 입문하기 전에 그냥 막춤 출 때 어 릴 때 ( 웃음), 그냥 내 마음대로 출 때 그때 그 무대에서 춤을 안 춥니까? 그럴 때 춤을 추면은, < 천안삼거리 > 맞춰서 춘다든가 하면서 악사들이 있다 가 선생님 춤이 참 깨끗합니다. 이 말을 자꾸 하더라고예. 그래서 나는 그 때만 해도 깨끗한 게 뭔가 이래 생각을 했는데, 지금도 춤을 추면서 그 말 을 많이 합니다. 느끼하지 않다. 깨끗하다. 이런 식으로. 아, 그 선생님, 홍전통춤연구회, 아직 활동하고 계신가요? 네. 전통춤연구회가 춤의 해, 춤의 해 가 92 년도. 네 그러니까 89 년도엔 네. 가 지부장을 했고, 춤의 해 에 또 한번 연임을 했거든요. 그때 제가 안되겠다 싶어 전통춤연구회를 우리 제자들하고 만들어가지고 공연도 많이 했고, 춤의 해 에 서울에서 그 폐막식 때도 했고, < 징소리 > 춤도 했고, 여러 군데서 많이 했습니다. 또 각자 개인 활동하는 데도 우리가 가서 참여도 해주고, 제자들 할 때도. 앞으로도 전통춤연구회가 가지는 지향, 지향하는 지향점은? 그렇지예, 우리가 자꾸 연구를 해야지,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서 아는 것만 을 가지고 할 게 아니고, 뭔가를 자꾸 찾아야 안 되겠습니까? 찾고, 새로운 것이 있으면. < 살풀이 > 도 맨날 추던 그것만 살풀이가 아니거든요. 예. 그라고 이런 소리하면 욕할란가 몰라도, 예를 들어서 < 한량춤 > 이 지정을 받 았다고 해가지고, 그 지정 받은 < 한량춤 > 이 전부는 아닙니다. 문화재로 지 정 안 받은 춤도 더 좋은 < 한량춤 > 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기 춤인데 일 반 무용가들은 전부 이수자 되면 뭐가 있는 줄 알고, 지정받은 춤 추면은 그게 아주 행복한 걸로 생각하고, 자기가 무슨, 예를 들어서 누구한테 춤을 배우면은, 인제 누구한테 춤 배웠노 카면 숙자 선생한테 춤 배웠다 카면, 자기가 숙자 선생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더라고예. 예를 들어서 이 매방 선생님 춤을 배우면 자기가 이매방 선생님이 된 것처럼. 왜 그 저 237

239 홍의 삶과 예술 아파트에 들어가는 입구에 경비, 문화회관 가면은 경비, 처음에 그 시민 회관 지었을 때 그 경비가요 기고만장하던 거에요. 자기가 마 { 관장이요?} 네, 시민회관 관장이라. 그렇듯이 이매방 선생님 춤 배웠다고 해가지고 마 치 자기가 이매방 선생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디다. 그래서 그 런 것도 좀 그렇고. 배우면 좋지요. 좋는데 배워가지고 열심히 해가지 고, 그게 또 결국은 오래 추어 가지고 세월이 오래 되면은 자기화가 돼 나 와야지. 결국 그대로 추면 몇 십 년이 되도, 그건 노력을 안했기 때문에 그 래요. 나는 이매방 선생님 춤을 탈피하려고 계획적으로 뭘 했다던가 이런 건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이 나를 오지마라. 자꾸 나를 갖다가 견제를 하시더라고예. 견제를 하시고 오지마라 카고 이래서 안 가게 되니까, 결국 은 원래 내가 연습 좋아했는데, 내 혼자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 래 자꾸 추고 추고 또 추고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몸짓이나 호흡이 나온 거라예. 홍 특유의. 그래서 그 니다. 정귀인 교수님? 부산대학교 현대무용하는 교수가 있습 예예. 정귀인 선생님은 선생님은 호흡이 참 독특합니다. 특이합니다. 이라 고. 또 저기 서울에 내나 이매방 선생님한테 배운 은이라고 있어요, 무용 가. 선생님은 호흡이 통호흡이네요. 카는 사람도 있고. ( 웃음 ) 근데 나는 호 흡을 하라고 해가지고 일부러 막 숨을 들어마시고 내고, 그게 아니고 몸이 호흡을 제대로 춤에 맞춰서 해주는 건데, 그걸 갖다가 그렇게 말을 하는 데 그 음악에 뭐라고 케야 될까 하나 둘 셋 넷 ( 손으로 각 산의 형태 를 그려 올리고 ) 이리돼 가꼬는 안 되거든요. 한나~ ( 손으로 둥근 산의 형 태를 그리면서 ) 하나했는데 벌써 내려갈 준비가 돼 있어야 돼. 두~ 울 세~ 내려가야지. 하나 ( 손으로 각 산의 형태를 그려 올리고 ) 둘 ( 손을 힘없이 풀어서 내리고 ) 셋 ( 손으로 각 산의 형태를 그려 올리고 ) 넷( 손을 힘없이 풀어 내리고 ), 이거는. 우리 선생님은 그런 쪽입니다. 하나 를 많이 사 238

240 명무의 길을 가다 용해요. ( 양팔을 어깨 위로 높이 들었다 내리면서 ) 이라고 이라는데, 이리하 다가도 슬스르 ( 어깨위로 올려 든 양팔을 스르르 끌면서 ) 이라고 이리 해야 지 그하지 음. 너무 그렇게 올리니까 너무 꽉 차는 것 같아예. 그렇죠? 제자 또 하나의 스승 네. 나는 또 그것이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자꾸 추니깐 그리됩디 다. 그라고 또 하나는 내한테 춤을 배운 어머니가 있었는데, 나는 어머니가 왔는데 안 가르쳐 줬거든요. 근데 그 어머니가 딴 학원에서 배워가지고 왔 는데, 내 입춤이 좋다고 소문을 들었다 카면서 와서 입춤을 하도 가르쳐 달 라고 해서 가르켜 줬더만, 그 어머니 춤을 보니깐 내가 기가 확 죽어버리는 거라예. 이 동작 선은 하나도 없어예. 별로 아름답지는 않아예. 정확하지 도 않고. 그런데 그 음악에 맞춰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꿈틀꿈틀 하는 게, 와~ 참, 그 어느 무용가가 그렇게 출까예. 근데 그 사람이 무용을 했으면 아 마 참 일류가 됐을 겁니다. 근데 내가 그걸 보고 자꾸 생각을 하고 나는 안 놓칠려고 자꾸 생각하고 있었고 이랬는데, 어느 날 내가 춤을 추니까 그런 비슷한 게 돼버립디다. 되면서 내 것이 되던데, 그래서 참 그 스승이라는 게, 하나 둘 가르켜 주는 스승만 스승이 아니고, 내한테 배우는 제자가 스승 이 됩디다. 그래서 그 알고 볼 줄 알아야 짜 그 심미안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찮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고 귀중하게 생각할 줄. 미적 눈을 뜰라면 그런 게 참 중요 제자를 통해서도 또 배우시네요? 연습이 또 하나의 스승 이라고 말씀 하셨 었고, 제자도 또 하나의 스승이 될 수 있네요. 네, 스승이 아닌 게 없습디다. 239

241 홍의 삶과 예술 자연도 스승이고, 다른 예술작품도 스승이 될 수 있고. 네. 네. 그라고 또 내가 이렇게 가르쳐 줬는데, 제자가 실수를 하거든요. 이렇게 이렇게 할 거로 320) ( 동작을 하면서 ) 실수를 했는데, 그기 기가 맥힐 때가 있 는 거라요. 아이고, 저기다 321)! 싶어가지고 내가 또 얼른 따버린다 아입니 꺼. 그라면서 니, 와 내 시키는 대로 안 하노? 카면서 제가 했던 것을 다시 가르켜 줍니다. 다듬어 주고. 그런 수도 있고. 그러니까 춤을 가르키는 사람이 동시에 가르키면서 배울 줄도 알아야지 안 되겠습니까? 굉장히 이렇게 마음을 다 열어놓으시고 하시는 것 같아요. 네 경직되지 않고 열린 사고를 하시니까 자연도 내안에 다 들어 와서 스승이 되고, 제자 의 춤까지도 때로는 나에게 가르침이 되고 그런 것 같네요. 네. 그런데 가장 위험한 것이 그 경직된 관념. 나는 최고다., 내가 어떤 춤 인데. 카고 이런 사람들 많이 보거든요, 내 춤이 어떤 춤인데. 이게 함정입 니다. 그걸로써 끝인 거라예, 그 사람은. 내려가면 내려가지 올라가 못합 니다. 이 세상은 자꾸 변하고 있고, 자꾸 발전해 가고 있고, 어떤 쪽으로든 그라는데, 또 우리가 이래 하다못해 신문에 스타일 카고 나오는 거 보면은 요즘 젊은 사람들 스키니 바지, 우에를 어떤 식으로든 입고, 그러면은 인자 목에다가 뭣을 많이 감아가, 우에는 이래 보이고 ( 손을 크게 벌리면서 ) 밑에 는 이래 보이고 ( 손을 위에서 밑으로 길게 선을 그리면서 ) 하는 삼각 스타 일같은 거. 그런 게 요즘 유행이거든예. 여자들 어깨도 커지거든요. 그 정도 는 이렇게 감각을, 시대감각을 좀 알아야 되지 싶어요. { 네.} 전통 춤 추는 사람이, 남자가 뭐 귀고리를 하고 손톱을 이렇게 청소를 하고 이래 쌌느냐 고 카는데, 그거는 벌써 한 20년 전에 일본에서는 손톱 발톱 남자들 전부 다 하고, 남자들 전부 다 이래 [ 기] 놓고 있습니다. 그 지하상가 가면은 320) 할 것을. 321) 저거다. 240

242 명무의 길을 가다 다 하고 있고. 그런 거는 매트로섹슈얼 (metro-sexual) 322) 해가지고 남 자들도 요즘 많이 꾸며요. { 네.} 머리도 막 이렇게 여자보다 더 이래 합디 다. 심하게. 그래 내가 속으로 이래 웃으면서 또 귀엽기도 하고, 젊은 애들 이 그리 하는 거 보면 고. 그런 점도, 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해야 되. 옷도 남자는 바지만 입고 춤을 춘다 했는데, 지금은 현대무용도 보 면은 남자들 치마같은 거 입고 추거든요. 근데 원래 원시시대의 옷도 그렇 고 로마시대 옷도 그렇고 전부다 원피스 같고, 또 중국의 그 < 문성공주 > 323) 같은 거 그런 거 보면 남자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땋아 가지고 빨간 댕기같 은 걸 그 따은 324) 데다가 넣어가지고, 요래 ( 땋은 머리를 머리 위로 올리는 시늉을 하며) 올리가 있습디다. 그런 것들 하고, 밑에 이렇게 치마같이 됐는 데, 그 밑에 초록색 단 대고 또 빨간색 단 대고 이래가 두루막 325)도 아이 고 326) 치마도 아이고, 이런 걸 입고 있고 한 걸 보니까, 그러니까 언제부터 남자 여자의 옷이 구분 됐는가 몰라도, 원래는 옷은 걸치는 거라예. 그래서 지금 사극 보면은 우리나라 테레비 왕들 옷 보면은 길잖아예. 곤룡포 라고 땅에 질질 끄는 것, 치마같이. 그라고 유니섹스 (unisex) 327) 시대 해가지고 향수도 보면은 남자도 뿌리고 여자도 뿌리는. 예, 같이 쓰는 향수 많이 쓰죠. 예. 옷도 또 비슷하게, 그런 시대. 322) 매트로섹슈얼 (metrosexsual): 남성미와 여성 취향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의 도시 남성. 323) 중국의 드라마. 324) 땋은. 325) 두루마기. 326) 아니고. 327) 유니섹스 (unisex): 의상이나 머리 모양 따위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음. 또는 그런 것. 남녀 겸용으로 순화. 241

243 홍의 삶과 예술 홍 춤의 맥을 잇는 사람들 국립부산국악원에서 < 한량무 > 를 지도하는 홍의 모습 (2009 년)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의 춤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지금 누가 있을까요? 선생님 아드님? 어 제자들이 안 있겠습니까? 제자들이겠죠. 그 제자들이 지금 다 생각 안 나는 제자들도 있고 한데, 이름을 불러볼까요? 선생님 제자들요? 예, 예. 선생님의 춤의 맥을 잇는 제자들. 우선 남자 제자들, 인자 이 세상 떠난 제자는 들먹일 필요 없죠? 네, 전에 말씀하셨던 홍재. 그 다음에 인제 조문호도 떠났고, 예원의상실 하고. 그 다음에 그 이동재, 갑용, 그 다음에 인자 시립무용단에서 < 한량춤 > 추기 시작한 애들 중에서 뭐시고 이름 잊자 삣다. 있거든요. 있고, 또 저 < 한량춤 > 추는 제자 242

244 명무의 길을 가다 들, 그 아들 328)도 결국은 그리 될 겁니다. 어디 동래민속예술회관에서 선생님께 배우시는 분들요? 아, 잠깐만 있어 보이소. ( 프로그램을 펼쳐 들고는 ) 홍, 갑용, 이동재, 박성호, 전성환, 홍병규, 그 담에 ( 아들을 찾으며 ) 갑용아!, 병제. 그러면 선생님 춤 맥을 이어가는 이 분들 중에 선생님 아드님 있잖아요. 아 드님은 몇 살 때부터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한 거예요? 아들은 그러게요. 어릴 때부터 출연도 하고, 배운다 카면서 맨날 봐 싸니 까 뭐. 저절로 따라하게 된 거네요. 생활 속에서. ( 고개를 끄덕이며 ) 그리 됐고. 결국 대학교 와서 부산대학교 무용과 나왔고, 그라고 그 동안에 내 공연에 출연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했고. 이 동재도 오래된 제자고. 못 다한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 아드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신다고 하셨는데 짧았던 결 혼이야기, 그리고 아드님 이야기. 그래 말입니다. 짧았던 결혼 이야기는, 인제 내가 하고 싶은 결혼이 아니고 엄마가 자꾸 결혼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해가지고 억지로 핸 결혼인 거라요. 그래서 시골에서 온 처녀였지요. 예. 그랬는데, 내가 맨날 그때만 해도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고, 집 따로 있고 학원 따로 있었거든요. 그래 학원에서 살지요. 마치면 또 맨날 술 묵지요. 술 묵고 나면 마 또 집에 못가고 학원에 서 잘 때도 있고, 또 어울리가 329) 밤샘해서 술 물 330) 때도 있고 이라니까 328) 아이들. 329) 어울려서. 243

245 홍의 삶과 예술 도저히 안되겠데요. 안되겠어 마, 내가 그냥 가라 캤어요. { 음 } 그래 같 이 살으면 좋겠는데, 내가 직업이 이러니까, 좋은데 있으면은 가서 사는 게 나을 거다. 또 나는 생각이 어떻노 카면 아버지하고 어머니하고 사이 가 안 좋았어요. 하도 싸움을 많이 해가꼬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어요. 얽매이는 게 첫째 싫었고, 또 간섭받는 것도 싫고, 내가 또 남을 간섭하는 것도 싫어하고. 그래서 생각도 안 했고, 그냥 프리 (free) 로 331) 이래 살고 싶 어했는데. 어 그렇다고 해서, 결국 결혼은 안 했다 뿐이지만은 살 다가 보니까 이래도 어울리고 저래도 어울리고, 어떤 기회에 어떻게 해가지 고 그 알게 됐는데, 알게 돼 가지고 그냥 별 생각 없이 같이 자게 되는 바 람에 어떻게 돼 가지고 애기가 생겼는데, 그 애기를 가 맡겼는 거라예. 누가 맡기신 거예요? 그 여자가. 나는 몰랐죠. 왜 맡기신 거예요? 낳아 가지고 어디다 왜 맡겼나 카모 딴 사람한테 인제 시집을 가가 살아야 된답니다. 그니까 애를 맡겼는 거라요. 그것이 인제 소문으로 소문으로 해가지고 어찌 해가 지고 내 귀에 들어오게 돼가지고, 그래 왔습니다. 근데 인자 그때만 해도 나는 구찮고 해가지고, 마 양자 됐지만, 그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실 만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양잔 줄 알지예. 사실 속에 숨겨 실에는 사 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그래서 마 그대로 이래 놔두고 왔습니다. 그러면 인제 임신한 상태였는데 그걸 서로 몰랐고. 네, 그렇죠. 임신한 것도 몰랐습니다. 네. 그냥 이렇게 자고, 같이 놀다가 이 래 자고 그라고 나서는 마 헤어졌어예. 그냥 가버렸어예. 자기도 임신한 줄 330) 먹을. 331) 자유롭게. 244

246 명무의 길을 가다 을, 할 줄을 몰랐겠지예. 그냥 엔죠이로 생각했지예. 그리했고. 우리 성격을 아니까. 결혼해가지고 또 이혼해가 보낸 것도 알고 하니까. 그래 뭐 말 해봤자 뭐, 그것도 몇 달 뒤에 안 알았겠습니까? 예. 그래가지고 인자 연 락도 못하고 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어예.. 그래 마 이래 이래하다가 그리 됐어예. 근데 그도 죽었는 그래도 아드님은 직접 나서셔서 찾아오신 건가요? 수소문 하셔서? 예, 예. 근데 데꼬 332) 오기는 저 어느 무용선생이 데꼬 왔습니다. 내가 무 용선생을 시키 가지고 그래 데꼬 왔습니다. 원로 춤꾼의 소망 선생님,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으신 소망이나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들 있으 시면 말씀해 주세요. 지금은 이룰 수 없는 소망이지만, 내가 소망이 뭣이였노 카면 소극장, 아주 조그만 소극장같이, 마 이 정도만 돼도 ( 무용실을 가리키며 ), 그 일주일에 한 세 번 정도 공연을 하고, 또 그 공연 본 사람들하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춤에 대한 얘기도 하고, 요런 생활 하고 싶었어예, 이층에는 그리 하고, 밑 에는 인자 간단한 식생활 해결 될 정도의 장사같은 것, 사람 데리다가. 그게 소망이었는데, 그거는 안 되겠고. 여기서 하면 안 될까요, 선생님? 글쎄 말입니다. 네, 네. 옛날 사랑방처럼 앉아서, 같은 이 공간에서 보고,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 어서 좋네요. 332) 데리고. 245

247 홍의 삶과 예술 네, 네. 그거 좋지예. 그 다음에 소원은 인자 내가 어느 단체의 단원으로서 자주 춤추는 거, 그거는 뭐 감독이니, 뭐니, 지도자니 이런 것 보다 그게 참 하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인자 내가 공연을 많이 해야 되겠다 돈이 좀 들더라도. 그래 생각이 듭니다. 매일 무대 생활을 하 는 것이 내 꿈,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딴 거는 없고 그 듬어 놓고. 완성시키고 춤을 좀 더 다 네, 네. < 장고춤 > 도 있고. 또 < 무당춤 > 은 요번에 추었으니까 요거는 다 듬어 가면서 < 장고춤 > 끝나고 나면은, 인제 부처님 앞에서 추는 < 무애무 > 라는 춤이 있었던 같습디더. 근데 그 춤을 아는 사람이 없습디더. 글은 나 와가 있는데, 그래서 내가 목탁을 들고 춤을 추고 그런 식으로 한번 해보까, 아니면은 스님 옷을 입고 연꽃을 들고 부처님한테 받쳐 놓고, 그 다음에 목 탁을 들고 춤을 추까. 무애 라는 말은 선생님 이미지 하고도 아주 잘 맞네요. 어느 것에도 마음이 거리낌이 없다 는 그런 의미라고 하더라구요. 선생님하고 코드가 잘 맞 는. 네. 그래서 < 무애무 > 에 대한 글을 누가 좀 써주면, 그걸 읽어보고 내가 자 꾸 생각을 해가, 그 춤을 하나 이렇게 이뤘으면 싶으거든요. 큰 무슨 그런 건 없습니다. 돈이나 많은 것 같으면 장학재단같은 거 그런 걸 하나 했으면 좋겠고, 그런 거는 나한테는 안 맞을 것 같고. 네. 살아있는 동안에 공 연만 자주 하고. 네. 선생님 건강을 잘 챙기셔야 되겠네요. 남은 꿈을 이루시려면 건강관 리 잘 하세요 선생님. 그리고 지음( ) 을 만나는 것이 소원인데, 지금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 술 한잔 같이 묵고 내 춤을 알아주는 사람. 엄옥자 선생의 그 부군 되시는 분, 그 분이 내 춤을 참 좋아 합니다. 내하고 이렇게 얘기한 일도 없 246

248 명무의 길을 가다 고 한데, 내 춤을 참 좋아했어요. 그런 분하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 람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싶어예. 춤에는 그런 게 필요하거든예. 그 외는 뭐 그렇게. 보니까 모두 열심히 살기는 하는데, 춤에도 치열하게 열심히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예. 모두 출세하 고 싶고, 많은 사람을 알고 싶고, 여기 가서 정보, 저기 가서 정보, 어디 가 서 정보 그런 세상이거든요. 우리 아들도 그렇고. 시대가 그런 시대라 서. 앞으로 인제 그 춤을 그렇게 추는 정한 춤꾼이 몇이나 나올 지. 특히 남자들, 남자들이 춤추는 사람이 대체적으로 심약한 데가 있 거든요. 의지가 좀 강해야 되는데 안 그래예. 몸은 건강한데 마음은 약한 것 같아예. 나는 몸은 허약해도 의지는 있거든예. 부모들이 그렇게 반대를 하고 의상에 불까지 지르고 했는데, 결국 아버지 손으로 장구채까지 따듬어 주고 이랬거든예. 엄마도 그리 했고. 근데 요즘은 안 그래요. 시대가 너무 현실적이 돼나서. 또 무슨 얘기가 있죠? 아, 참 내가 전주대사습할 때 참 갈등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요즘 테레비에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뭐 쇼하고 쿡하고 ( 웃음) 갈등 끝에 나가신 거네요? 아니예. 그 가서도 예선 추고 올라 캤고, 본선 추고 올라 캤고, 마 이리. 인제 오늘은 뭐 다 됐습니까? 네. 거의 다 마무리가 된 것 같아요 선생님. 선생님 근데 박동 선생님, 소희 선생님한테 소리 배우신 적이 있으시다고. 아니예. 소리 배운 적은 없습니다. 박동 선생님은 내가 일본에 같이 공연 갔잖아요. 그럴 때 내가 일본에 있으면서 그분이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소희 선생님은 박동 선생님도 그렇지만 내가 처음에 깜짝 놀란 게 테레 비에서 봤을 때 인터뷰를 하는데, 그 흔히 제자들이 내 목소리를 따라서 노 래를 부르는데, 그거는 예술이 아니고 기술이고, 원숭이 흉내요. 카면서, 자 기 목소리를 가지고 내 소리를 해주야지. 내하고 똑같이 그렇게 복사판으로 247

249 홍의 삶과 예술 만들면 그건 예술이 아닙니다. 카는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내가 참 놀랬었거 든예. 그래서 내가 일본에서도 같이 있었는데, 소희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런 정신적인 것들을 나한테 그 혼이라 칼까, 그런 것을 심어 준 사람이 거든예. 또, 그 박동 선생님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 카는 책을 내가 한 권 사서 읽어봤습니다. 그 양반도 내한테 춤의 정신적인 한 획을 그어 준 사람이고. 네. 그래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내한테는 스승이 되는 분이다카는 것이고. 근데 소리는 안 배웠습니다. 선생님. 저 못 다하신 말씀이 있으신지. 지금은 생각이 안 나네예. 네. 외롭 않으셨어요 선생님? 결혼 안 하고 이렇게 사시는 게 자유롭긴 하시 지만, 그래도 가끔씩. 외로울 여가가 없었어예. 왜냐면은 술 묵고 떠들고, 어디 그때 세엣 무비 (Sad Movie) 카고. 셋 무비. 네. 셋 무비. 그런 노래도 부르고, 영어노래도 내가 좀 불렀어예. 그래 쌌 다가 보니까, 오면 바로 자고 또 아침에 눈 떠모 333) 세수하고, 또 인제 가르 켜야 되니까. 그때는 그 부산시장에서 나는 부인들 별로 안 좋아했는 데, 하도 부탁을 해가지고 한 사람 가리킨 게 마 두 사람, 세 사람 돼 가지 고, 열 사람, 열다섯 사람, 그래가 하루에 60명 70 명, 이래 하니까 밥도 못 묵고 토스트 꾸바 334) 가지고 무 335) 가면서 이래 가르키고 하니까 시간이 없 는거라. 저녁 되면은 전기불 딱 오면은 또 옵니다. 술 무로 336) 미리 와서 기 다리고, 그라모 또 술 묵고 이라니까. 근데 인제 내 친구 경록이는 그 333) 뜨면. 334) 구워. 335) 먹어. 336) 먹으러. 248

250 명무의 길을 가다 렇게 외로움을 타고 이라더만, 나는 고독을 타고났는 가봐요. 그래서 고독 하고 살았기 때문에. 이분이죠? 경록. ( 사첩을 펼쳐 보이며 ) 선생님 이분도 그러면 이경록이 라는 친구분 이신가요? 선생님 옛날 사 곳곳에 이분이 계셔요. 여기 장구 잡으신 분도 혹시 이 분 아니신가요? 함 봅시다. ( 사첩을 받아 들며) 장구 잡은 사람은 방초, 내 제잡니다. 죽 었어예. 이 아도 참 춤 잘 췄는데. 네~. 함께 춤을 추셨던 친구 분이시네요. 이경록. ( 일어서서 전등을 켜고는 ) 맞아요. 경록이. 굉장히 친하셨던 모양이에요 선생님하고. 예. 어릴 때는 친구였고, 내가 그 콩쿨 나갔을 때 이 친구가 찾아 왔어예. 와가지고 인사를 하고 이래가 같이 친구가 됐는데. 그래서 인자 같이 친구로 있다가 어느 날 보니까 해 가는 버스, 그때는 어서 오십시오. 카고 남자들이 억지로 이래 ( 양팔로 사람을 밀어 넣는 시늉을 하며). 그거 하고 있었어예. 차장, 버스 차장? 차장 말고 손님 태우는 거. 태우는 거. 요즘 말하면 전철에서 푸시맨 (pushman), 이렇게 사람 밀어 넣는 것. 예, 예, 예. 그걸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우리 집에 가자 캐가 데꼬 와 가지고, 그거 하지마라, 와 니 그거 하노? 카니, 엄마가 돈 벌이오라 캐 가지고 막 쫓아냈다 캅디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춤 가르키고 묵고 자고 장 고 가르키고 이래가지고, 조교 비슷하이 이래 같이 있었어예. 그랬는데, 그 어떤 미적 감각이나 이런 쪽이 너무 내하고 안 맞는 거라예. 친군데도 너무 상반되고. 이래서 마 안 만난다 아입니까. 선생님, 그리고 오늘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249

251 홍의 삶과 예술 그래요? 감사합니다. 홍의 < 살풀이 > (2009 년) 250

252 참고자료 경애 외, 방일영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총서 - 우리무용 100 년, 서울: 현암사, 엄옥자, 승전무의 실상, 인천: 한컴디자인, 유인화, 춤과 그들, 서울: 동아시아, 이규원,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서울: 현암사, 이은주, 춤33 인, 서울: 푸른미디어, 정범태, 한국춤 백년 1, 서울: 눈빛, 2006., 한국춤 백년 2, 서울: 눈빛, 정석호, 경북동남부지역 방언사전, 서울: 글누림, 참고사이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술로 만나는 한국예술사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네이버 백과사전( 네이트 백과사전(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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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rosoft Word - 青野論文_李_.doc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농촌진흥운동기의 경신숭조( 敬 神 崇 祖 ) -조선총독부의 신사정책과 관련하여- 아오노 마사아키( 青 野 正 明 ) 모모야마가쿠인대학( 桃 山 学 院 大 学 ) 번역:이화진 들어가는 말 본고에서는 주로 1930 년대 전반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실시된 농촌진흥운동 1 에 있어서, 신사정책( 神 社 政 策 )과 관계가 있다고 예상되는 농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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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B6BCADC7C1B7CEB1D7B7A52DC0DBBEF7C1DF313232332E687770> 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 2 - 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c o n t e n t s 5 22 44 58 84 108 126 146 168 186 206 220 231 268 296 316 꽃바위 작은 도서관 꿈이 자라는 책 마을 기적의 도서관 남부 도서관 농소 1동 도서관 농소 3동 도서관 동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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