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대미정책과 한미관계 이대우(세종연구소 연구지원실장) I.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실용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세계화 시대 에서는 이념과 지역을 벽을 넘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의미한다.1)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는 서양의 실용주의 철학과 조선왕조의 실사구시를 강조 하는 실학사상을 합친 것으로 관념과 이념보다는 경험적 실증을 중시하는 것을 의 미한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창조적 실용주의는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실 행을 함에 있어 요구되는 행동규범으로, 성과 중시, 정책의 현실성, 검증 가능한 정 책, 정책의 적응성 및 수정보완 중시 등을 강조하고 있다.2)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 전략은 한반도 현상변경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 들의 이익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외교교섭을 통해 통일에 대한 지지와 지원, 및 협 력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의 방향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 력의 틀 속에서의 한미동맹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여 주변국에 대한 실리외교를 전 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신정부는 안보강화, 경제회복, 국제사회공헌이라는 세 분야에서의 외교를 강조하고 있다.3) 이중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한국안보확보와 관련된 한미동맹의 전략동맹화와 비핵 개방 3000 이라는 대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 하였다. 1) 일반적으로 국가이익에는 국가의 존립, 국가의 번영과 발전, 국민 보호 와 국위선양, 그리고 자국에 유리한 국 제질서 추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이 가장 우선적인 국가이익이라 할 수 있다. 2) 첫째, 모든 정책과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과 자료에 기초해야 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산출해야 한다. 둘째, 모든 정책과 주장은 논리적인 일관성과 함께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 적합성을 지녀야 한다. 셋째, 모든 정책과 주장은 여러 사람에 의해, 그리고 과학적인 실험이나 사유실험에 의해 검토되고 비판될 수 있어야 한 다. 넨째,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변화하는 현실의 맥락 속에서 계속해서 재조정하고 재설정하며, 목표에 이 르는 수단의 객관성과 효율성을 항상 새롭게 모색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섯째, 문제를 복합적인 체계 속에 서 입체적으로 보면서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추진 중에 있는 정책이라 할지라도 문제점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수정 보완하는 점진주의적 자세가 필요하다.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성공 그리고 나눔: 이명박 정 부의 국정철학과 핵심과제 백서 1 (2008. 3.), p. 37. 3) Myung-hwan Yu, "Foreign Policy Orientation of Lee Myung-bak Administration," IFANS Review Vol.16 No.1(July 2008), p. 7. - 1 -
II. 이명박 정부의 대미정책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서는 한미관계가 가장 중요 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 면서 우선적인 동맹복원 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고, 당선 후 가장 슬기로운 외교는 미국과 한국의 국익을 맞추는 것 이라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미정책 기조는 한미동맹의 전략동맹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한미동맹을 한반도, 아시아, 및 국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동맹으로의 진화시키 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미전략동맹의 핵심은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이 다. 가치동맹은 한미간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 이며,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비핵화, 인권, 경제지원 등에서 공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동맹은 양국의 협력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안보협력 강화는 물론 FTA비준을 통해 경제동맹으로 발전하고, 나아가 문화동맹으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구 축동맹은 한미동맹이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동북아는 물론 국제적인 평화 확보를 위한 동맹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평화구축동맹은 한국의 PKO 활동 강화, 대테러전 참여 등을 통해 국제적인 공헌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아야 한다. 신정부의 실용주의 외교가 초기부터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물론 우리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미외교 강화에 올인(All-In)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흐트러진 미국과 의 관계복원을 위해, 한국 정부는 성급하게 쇠고기 수입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였 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한미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시쳇말로 총대 를 메어줌으로 써 향후 미국의 쇠고기 수출에 활로를 열어준 것이지만, 그 대가가 매우 미미하였 다고 판단되며, 국내에서는 오히려 폐쇄적 민족주의의 부활과 함께 반미정서가 되 살아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이명박 정부의 지지층이라 할 수 있는 국내 보수그 룹은 전시작전통제권 시기조절과 같은 한국 안보와 직결된 문제들에 대한 미국 측 의 확고한 입장표명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 중단과 무기수 입에 있어 한국의 지위를 격상시킨다는 입장을 표명했을 뿐 한미간의 핵심 안보현 안이라 할 수 있는 전작권 이양 시기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10월 17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상기 문제가 다소 해결되었 다. - 2 -
III. 한미관계 : 우호적 관계로 복원 제1차 정상회담 (2008. 4)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표류하던 한미관계가 4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굳 건한 전략적 동맹관계 로 발전하는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 TV화면에 비추어진 정 상회담의 모습은 정상회담이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었 다. 물론 국가간의 신뢰가 하루아침에 증진되는 것은 아니나, 4월 정상회담은 양국 간의신뢰회복의 좋은 출발점이었다. 지난 8년 동안 한미간의 불협화음의 주원인이 었던 대북정책에서의 이견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정상들은 대북 적 대시 정책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으며, 북한이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 다. 즉 한미 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 한목소리를 내게 됨으로써 양국의 신 뢰증진에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신뢰회복의 증거로 부시 대통령은 비핵 개방 3000 으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및 남북 연락사무소 설치 제의에 지지를 보냈다. 과거 미국은 한국의 대북정책 및 남북대화에 의심의 눈초리 를 보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국 정상은 안보협력증진을 다짐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안보불안을 해소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현재 진행중인 주한미군 감축을 중단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한미안보 협력이 더 이상 약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고, 대한국 군사판매 지위와 군사기술접근에 있어 NATO를 비롯한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과 같은 수준으 로 격상시키라는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확인 시켰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양국은 군사협력에 있어 서로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꾸준히 협의하고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협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제2차 정상회담(2008. 7) 이어 한미 정상은 2008년 7월 일본 도야코와 8월 서울에서 만났다. 도야코 정상 회담에서는 제1차 정상회담에서의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에 초점이 맞추어졌 다. 한미 FTA의 연내 비준 노력, 쇠고기 시장개방 관련 추가합의사항 이행,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 진행 등이 논의되었으며, 21세기 전략동맹 강화를 위한 후속조치 와 북핵폐기를 위한 양국의 공조 강화 등이 합의되었다. 제3차 정상회담(2008. 8) 8월 6일 개최된 서울 정상회담은 앞서 지적한 쇠고기 문제, 독도문제 및 기타 한 미동맹 관련 현안(반환기지 오연문제, 방위비 분담문제) 등으로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는 상황이어서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우호적인 분 위기 속에서 한미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지난 1, 2차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 - 3 -
던 사항들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냈다. 예들 들면, 한미동맹의 기본임무 발전, 새로 운 동북아 평화구조 창출, 북한인권, 우주항공 및 원자력 협력, 대학생 연구취업 프 로그램,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 남북대화 촉구 등이 한미 정상 회담 공동성명의 주요내용이다. 부시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에 무게를 실어주는 분위기를 조성해줌으로써 양국의 신뢰 및 우호를 보여주었음은 물론 대북정책에 대한 공조를 보여주었다. 부시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과 남북대화 촉구 등을 통해 한국 정부의 정책을 지지해주었다. 아울러 북한 핵문제, 인권문제 등과 관련하여 한미간의 공동의 입장과 긴밀한 공조를 재확인했다. 북한 핵폐기 검 증과 관련하여 철저한 감시체계 수립과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결 단을 촉구했다. 또한 남북대화를 촉구함으로써 당시 나돌고 있던 通美封南 논리를 약화시켰다. 한편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 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국의 대외정책에도 지지를 포명했다. 한국 안보와 관련해 서는 한미동맹의 변화은 지속될 것임을 강조하면서 양국군의 상호운용성 제고 및 한국군의 역할과대를 강조했다. 그리고 북한 핵폐기에 있어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 면서 북한의 행동에 때라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제40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 전략동맹 구체화작업을 위한 긴밀한 협의와 조율 - 대테러전 협력 : 아프간 문제 - 6자회담에서의 협력, 확산방지 노력, 남북대화 재개 - 대한 안보공약 재확인 : 주한미군 현수준 유지, 한반도 유사시 즉각 지원 - 역내 국가들과의 안보협의 : 중국의 중요성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공동의 작전계획 발전 북한 유사시를 상정한 개념계획(CONPLAN)5027을 작전계획(OPLAN)5027로 의 전환? /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IV. 한미동맹 현안 1. 한미간의 대북정책 공조. 지난 10월 12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물론 북핵폐기 가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북한을 포함시킬 것이라 는 미국의 발표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일단 6자회담 재개와 남북대화채널 가동이 라는 차원에서 미국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북한 핵위협 - 4 -
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한국으로서는 미국과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향후 진행될 6자회담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할지는 모르나, 북핵폐 기 및 비용분담에 관하여서는 지난 7월 12일 6자회담 언론 발표문에 따라 실행되 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즉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페기를 해야한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 철저한 이행을 위한 협력 과정에서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준을 미국에게 확실히 통보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미국의 독자적인 대북지원을 견제하기 위해 양 국의 대북지원 수위를 사전에 조율해야 한다. 2. 한미간 강력한 안보협력관계 유지. - 주한미군기지 이전 계획 성실 이행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공동지휘관계 정립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한 작전계획 수립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구체적 합의 : 투입지역 및 투입방법 -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들과의 안보관련 협의 - 방위비 분담 3. 국제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미간 안보협력 강화. - 아프간 재파병 : 한국은 아프간 경찰을 훈련시킬 우리의 경찰요원을 파견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경찰인력을 파견하는 것으 로 파병과는 전혀 다른 개념 임을 강조하면서 최소한 규모 로 결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미국이 요청하는 파견 경찰의 규모는 약 300명 정도로 우 리가 생각하고 있는 20-30명 수준을 훨씬 웃돈다. 게다가 300명의 경찰을 파견하면, 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전투부대의 파병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국 제사회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으나, 이 역시 국내적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신중한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 한국의 아프간 재파병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 쟁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전쟁은 대테러전이라 하기에는 다소 모호하 지만(미국의 전쟁), 아프간 전쟁은 대테러전이 분명하다. 대테러전에 동참하 는 차원에서 미국의 경찰병력 파견 요청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역 경찰이 아닌 민간 요원을 파견하여, 철전한 민사작전 수행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 확산방지안보구상(PSI) 참여 : 미국은 우리의 PSI 참여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북한의 핵확산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도 확인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에 의한 핵확산, 나아가 대량살상무기 확 - 5 -
산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해서는 PSI 강화가 최선책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확산방지안보구상(PSI) 조건부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은 안보리 결의 1695 채택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의 가입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 는 것은 PSI 회원국확대라고 판단된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등 11개국이 핵심구성원이며 현재 91개국이 가입한 상태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이 요청한 PSI 관련 8개 분야 참여 중 5개 분야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적 위상을 고려 국제사 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차원에서 조건부 참여를 고려할 필 요가 있다. 남북관계를 고려해 역내훈련 불참 및 물적 지원 불가를 조건으로 가입할 필요가 있다. 사실 회원국으로 가입해도 모든 훈련과 회의에 참가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동맹의 전략동맹화 차원 에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주장에도 부합되는 일이라 판단된다. - 미사일방어사업(MD) : 미국은 한국이 자국의 미사일방어사업에 참여할 것을 요청할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의 기존 입장은 불참 이다. 하지만 우리도 800 기가 넘는 북한의 중 단거리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 미사일방어사업 (KMD)을 진행중에 있다. 또한 한국이 미국의 MD사업에 참여할 경우, 중국 과 러시아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들과의 관계도 중요하기 때문에, 미국의 MD사업에는 무턱대고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사업에 한국이 불참한다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이미 일본에 X-BAND 레이더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에게 MD참여를 강력하게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요구가 있어도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대비해 불참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한국형 MD구 축을 위한 기술지원을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방어미사일을 구입해야 한다.4) 4. 주변국과의 안보협력 증진 : 다자안보협력 4) 외교안보연구원의 윤덕민 교수는 MD가 방어적 억제력의 핵심임을 강조하면서 한국의 MD사업 참여를 주장하 고 있다. 아울러 그는 주한미군의 주둔과 MD를 연계하여 한국의 MD사업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윤덕민, 21 세기 한미 전략동맹의 방향과 과제, 주요국제문제분석 (외교안보연구원, 2008. 9. 19), pp. 14-15. - 6 -
7.27 (노동신문) 9.3 (조평통 대변인) 9.12 (노동신문) 9.21 (노동신문) 10.2 (남북군사실무회담 북측 대표단) 10.16 (노동신문 논평원) 중단 군사대결 격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민족적 참화 빚어 질 수 있다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해 모략극 주장 핵전쟁 위험 증대시키는 남측 패당 범죄행위 용납 않 을 것 전쟁으로 온 강토 폐허된 뒤에는 남측이 떠드는 상 생과 공영 도 없다 삐라 살포 중단 요구 남북관계 전면 차단 등 중대결단 내릴 수도 II.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여년간의 대북 포용정책이 일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 고 결국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기보다는 북한의 변화를 방해해 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참여정부까지 한국은 북측에게 상당한 지원(年10억 불 상당)을 제공했지만 한 국의 일방적 지원은 북한정권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초 래하였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과거 대북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판단하 에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는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신정부의 외교정책은 북핵 폐기를 우선적 외교 현안으로 설정하면서 국익을 외교 정책의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신정부 대북정책의 특징은 전략적 상호주의 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쟁불사 식의 수구론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햇볕 지원도 아닌, 조건부 대북 포용정책(conditional engagement policy) 이라 할 수 있 다. 1월 14일 신년회견에서 이 당선인은 남북관계도 이제 실질적으로 발전해야 한 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호 신뢰라고 강조했다. 그는 6자회담에서 합의된 것을 성실히 행동으로 지켜나간다면 남북협력의 시대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밝히면 서 특히 한미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북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서로 발전하면 북미관계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선순환적 인식을 드러냈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비핵 개방 3000 구상이다. 동 구상은 북한동포의 인간적인 삶, 평화통일의 토대 마련, 북한의 국제 개방질서 편입 등 대북정책의 3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이다. 고도성장을 이룩한 한 국의 경제발전 모델은 북한경제 재건에 많은 시사점을 갖고 있다. 비핵 개방 3000 구상 의 핵심은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북한에 접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 으로 북한경제를 10년 내에 3,000불 경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다음과 같은 5대 분야 포괄적 패키지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첫째, 수출주도형 산업전환 지원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년 300만 불 이상 수출 - 2 -
기업 100개를 육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 법률 금융 분야의 전문컨설팅 인력 파견(전직경제관료, 경영인), 북한지역 내 5대 자유무역지대 설치, KOTRA 등 한국 의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한다. 둘째, 경제 금융 기술 전문인력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30만 명의 경제 금융 기술 전문인력 육성을 위해 북한 주요도시 10곳에 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하고, 북한판 KDI 및 KAIST 설립 지원, 북한 대학의 경제 금융 통상 교육과정을 지원 한다. 셋째, 경제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위한 400억 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월드뱅크 및 ADB 국제차관 제공을 타진하고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확충 하며 해외직접투자 유치에 적극 협력한다. 넷째, 에너지, 교통, 통신 등 SOC 구축을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인프라 구축의 핵심은 신 경의고속도로(서울-신의주) 건설이다. 이와 함께 에너지난 해소를 위한 협력, 기간통신망 연결 및 항만 철도 도로 정비에 협력한다. 다섯째, 인간다운 삶을 위한 대규모 복지 지원을 실행한다. 식량난 해소를 통한 절대빈곤 해소, 의료진 파견과 병원설비 개선 등 의료 지원, 주택 및 상하수도 개선 사업 협력, 산림녹화를 위한 1억 그루 나무심기 등이 구체적 내용이다.1) 비핵 개방 3000 구상은 북한의 장기적인 생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비핵화 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점에서 근본적으로 옳은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하 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007 남북정상 공 동선언의 이행 여부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평화부문(평화체제, 서해협력)과 핵 심경제협력사업(해주, 철도 개보수, 조선협력) 이행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천명 하였고, 새 정부의 이러한 태세가 북한을 강경노선으로 내모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2) 또한 비핵 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개방 이나 3000 구상은 시도조차 못할 수도 있다는 비판론이 제기된다. 국외에서도 신정부의 강경 선회를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대북 상호주의와 압박 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논리에 따른 대북정책은 직접적인 압박에 굴복 한 적이 없는 북한의 일관된 행태로 미뤄 남북관계를 상호 비방과 일방적인 요구와 침체라는 과거시대로 돌릴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지금 은 참여정부와의 차별성 부각을 위해 노력하지만 통상 새 정부가 힘이 있는 기간인 2년이 지나면 국민여론의 변화에 따라 대북 포용정책으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이다.3) 이러한 국내외의 우려를 감안할 때 비핵 개방 3000 구상은 비록 비전으로 는 맞는 방향이지만 실행과정에서 유연성과 아울러 정교한 정책대안 구상으로 보완 될 필요가 있다. 지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비핵 개방 3000 계획의 구체화이 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개방을 하면 북한 주민 소득이 1) 윤덕민, 비핵 개방 3000 구상: 과제와 전망, 외교안보연구원 주요국제문제분석 (2008.4.29), pp. 5-6. 2) 김연철, 남북관계의 환경 변화와 민간진영의 활동방향, 2008년 제1차 민화협 정책포럼 발제문(2008.3.27). 3) Rudiger Frank, Pragmatism and North Korea Policy, Nautilus Institute, Policy Forum Online 08-028A, April 8, 2008. - 3 -
$3,000가 되도록 적극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지만, 북핵문제의 구조상 그렇게 순차적 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명박 정부도 비핵 을 엄격한 전제조건으로 삼 는 순차적 개념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핵에 중점을 두더라 도 비핵은 비핵대로 추구하고, 개방은 개방대로 유도를 하고, 3천은 3천대로 경협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4) 특히 비핵 개방 3000 이라는 정책 중 에서 비핵 이란 전제조건을 구체적으로 다듬고, 융통성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 러나 결국 비핵, 개방을 하지 않고서는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도 북한을 도울 방법 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구상이 국내외의 비판에 직면하고, 무엇보 다도 북한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최근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이라는 새로 운 버전을 내 놓았다.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은 본질상 비핵 개방 3000 구상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 은 3000 구상이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 상당부분이 빠졌다는 점에서 긍정적 변 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 내용 자체가 변했다기보다는 우선순위와 강조점의 변화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예를 들면 초기 3000 구상에서는 이것이 거의 최 상위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남북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3000 구상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생 공영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북한의 흡수통일의 우려를 불식하고, 남북이 공존 공영, 상생 공영한다는 의미이다. 비핵화 협상과정 을 통하여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안보불안과 경제난 해소를 지원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북한의 경제발전을 통하여 남한도 경제발전을 한 단 계 도약시키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상생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3대 정책수단과 목표로서 비핵 개방 3000 구상이 제시되었다. 북한 의 비핵화 유도, 북한의 개방, 상생의 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한반도의 경제 선진화 지향, 호혜적 인도협력을 추구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목표라 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비핵 개방 3000은 비핵 개방을 전제로 하는 정책이 아니라 비핵 개방을 추진하기 위한 정책이 되는 것이다.5) 통일부 홍보자료는 동 정책의 비전에서 정부는 실용과 생산성에 바탕을 둔 상생 과 공영의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통일의 실질적인 토대를 구축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 및 긴장완화를 실현하는 평화 공동체, 북한의 발전과 국제사회 참여 지지,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경제협력 추구 등의 경제 공동체, 인도적 문제 해결과 남북 주민 삶의 질 향 상으로 7000만 모두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 공동체 등 3가지 비전으로 제시했다. 4) 미래전략연구원 주최, 김근식 교수와의 대담, 급랭국면의 남북관계 전망 (http://www.kifs.org/contents/sub3/special.php?method=info&searchkey=&searchword=&offset=&sid=2086, 2008.4.11). 5) 서재진, 남북 상생 공영을 위한 비핵 개방 3000 정책의 이론적 체계 연구 (서울: 통일연구원, 2008), pp. 6-16. - 4 -
추진원칙으로는 실용과 생산성, 원칙에 철저하되 유연한 접근, 국민 합의, 국제 협력과 남북 협력의 조화를 내세웠다. 구체적인 내용은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바탕 으로 한 실용과 생산성 추구, 북핵 조속한 폐기와 내실 있는 대화 추진 원칙은 지 키되 유연하게 접근, 국민 합의에 기반한 투명한 정책 추진,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국제사회와 협력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등이다.6) 이와 함께 추진 과제에서는 진정성을 갖고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 며 뜻있는 협력을 위해서라면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대화의 중요성 을 강조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 6자회담뿐만 아니라 남북회담 등을 통해서도 평화 적 해결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7) 상생 공영 정책이 기존의 햇볕정책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도 목표와 수단의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지적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부 터 노무현 정부까지는 햇볕 혹은 포용이라는 정책수단, 특히 경제적 지원의 효과를 강조했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이라는 정책목표에 중 점을 두고 이의 실현을 위해 국내 국제적으로 가용한 수단을 쓰겠다는 점에서 좀 더 목표지향적이다.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남북관계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이다. 정치군사 분야에 서의 사건이 경제 분야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분리한 것이 소위 정 경분리 원칙으로, 이것이 대북포용정책과 햇볕정책의 핵심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 남북관계가 정치적 대립과 군사적 긴장에 의해 압도되었음을 감안하여 경제협 력을 정치군사적 갈등과 분리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동력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노무 현 정부도 가급적 이 원칙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정경 분리원칙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미흡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런 이유로 이명박 정부는 경제적 지원을 북한의 핵개발 중단 과 개방 유도와 연계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은 대북포용정책 및 평화번영정책에 비해 좀 더 엄격한 상호주의를 선호한다. 햇볕정책이 표방한 느슨한 상호주의는 남북관계에서 많이 주고, 적게 받고, 북한이 필요한 것을 주고,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을 받는다 는 것이 골자로, 신축적 상호주의이며 비동시적, 비대칭적 상호주의라 할 수 있다. 이 에 비해 엄격한 상호주의는 동시적이고 균등하며 대칭적인 상호관계를 전제한다.8)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다음과 같은 과제에 중점을 둔다. 첫째, 진정성 있는 남북대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남북대화를 추진하고, 상대 방을 존중하는 회담문화를 만들어 간다. 둘째,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 핵문제 해결, 남북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 6) 통일부 홈페이지(http://www.unikorea.go.kr/)의 각종 정책자료 참조. 7) 통일부 웹사이트(http://www.unikorea.go.kr)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 자료 참조. 8) 햇볕정책과 상생공영정책의 차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박종철, 대북포용정책과 상생공영정책의 비교: 도전과 전략적 선택, 통일연구원 편,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비전 및 추진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8), pp. 32-37 참조. - 5 -
구축,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정착을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평화구조를 창출한다. 셋째, 상생과 호혜의 남북경협을 추진한다. 기본적으로 남북간 서로 도움이 되고 생산적인 경제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남북 간에는 상호 보완적인 성격의 경협구조 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예를 들면 북한은 마그네사이트(40억톤, 세계 2위), 흑연(200만톤, 세계 3위), 200여종의 유용광물 매장량(약 3,719조원의 잠재가 치, 남한의 약 18배)을 갖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2007년 아연광 133만톤, 마그네 사이트광 27만톤 등 주요광물을 대부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 부는 향후 남북경협사업을 북핵 문제의 진전, 경제적 타당성, 재정부담 능 력, 국민 합의의 네 가지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핵 개 방 3000 구상 은 북한에게 핵 포기시 얻게 될 분명한 혜택을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선택을 유도하는 전략적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비핵개방 3000의 단계별 구상] 단계별 구상 1단계: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완료 주요 내용 -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협의에 착수 ( 비핵 개 방 3000 구상 실현 협의 ) - 남북경협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이것이 검증을 통해 확인되면 즉각 비핵 개방 3000 구상 의 가동준비에 착수. 이때 남 북한 사이에 남북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고위급 회의 등 을 설치하여 비핵 개방 3000 구상 의 구체화를 위한 사 전협의를 본격화. 그 일환으로 남북경협의 활성화, 투자 무 역의 편리화, 남북교역의 자유화 등을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 하도록 추진. - 6 -
- 5대 분야 중 교육 생활향상의 일부 프로젝트 가동 착수 (북 핵 폐기의 가시적 성과와 연계) 2단계: 북한의 핵폐기 이행 3단계: 북한의 핵폐기 완료 불능화 조치 이후 북한의 기존 핵무기 및 핵물질의 폐기 이행과정이 순조로울 경우 비핵 개방 3000 구상 의 5대 지원 분야 중에서 교육, 생활향상 등 우선 시행 가능한 내용 부터 시작. 아울러 6자회담 프로세스를 통해 관련국들과 긴 밀한 공조를 폄으로써 북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지속적으 로 도모 - 5대 분야(경제, 교육, 재정, 인프라, 생활향상) 본격 가동 - 400억 달러 국제협력자금 조성 비핵 개방 3000 구상 의 가동시점과 그 조건에 탄력성 을 부여한 것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이에 상응하여 적극적으로 대북경협을 가속화하겠다는 취지임. 이러한 구상 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면 남북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발판이 마련될 것이며, 이는 다시 남북한 간 정치통일로 이 어질 수 있을 것임. 넷째, 사회문화교류 활성화를 통해 남북간 교류와 접촉을 통해 민족공동체 의식 을 고양시킨다. 다섯째, 이산가족의 상시적 만남을 추진해 인도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이상의 중점 과제를 지니는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은 분명 비핵 개방 3000 구 상이 개선된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적 과제가 만만찮다. 특히 표현만 바뀌 었을뿐 북한 비핵화 달성 여부가 정책의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이하에서는 이명 박 정부가 상생과 공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과제를 간단히 검토하기로 한다. III.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과제 1. 북한의 개혁 개방 유도 남북 공영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 변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남북 체제의 이질화가 심화된 상태에서는 통일도 교류도 일정한 한계 내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남북 공영을 위해서는 북한의 연착륙 유도, 중국 혹은 베트남식 점진적 개방 개혁, 궁극적으로 정상국가화되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해야 문 제해결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경제교류 확대를 통해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실질적 레버리지로 활용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대북정책이 목표지 향적 대북지원정책이 되어야 한다. 핵문제를 경제지원과 어떻게 연결시키든 실질 적 연계, 혹은 민관분리 향후 북핵문제 진전과 남북경협의 연계를 통해 북한이 먼 - 7 -
저 움직이지 않으면 남북관계 진전도 어렵다는 인식을 분명히 줘야 한다. 남북관계 에서 1:1의 엄격한 상호주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의미 있는 상호작용으로 간주될 정도의 반응을 북한이 보여야 바람직한 남북관계가 가능하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 한을 지원하는 것은 북한을 변화시키는 전략적 수단인 동시에 같은 민족을 돕는다 는 동포애의 발로로서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남북경협인지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작정 경협만 계속한다고 북한이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경협의 대북 체제변환에 대한 파급효과(spill-over)를 극대화하 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지난 10년 이상 포용정책의 결과 북한주민 차원의 내적, 심리적 변화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런 변화를 어떻게 정권 차원의 변화로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3通(통행, 통신, 통관) 문제 해결을 통해 개성 공단의 활용도를 높이고 남북간 군사신뢰구축 진전을 이뤄 군사보장조치가 확실히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강압적 접근 (예를 들면 PSI 참가)과 협력적 접근(협력적위혐감축, CTR)의 배합을 통해 치밀한 접근을 해야 한다. 둘째, 이제는 김정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십 수 년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은 왜 경제 개혁의 길로 가지 못하 는 것일까 검토해보면 문제의 핵심을 지도자 자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신상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알려진 이상, 이제는 김정일 이후에 대비하여 총체적인 통일정책을 재검토할 시점에 이르렀다.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경제개혁 패턴과 비교해보면 김정일이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제개 혁은 처음부터 지도자 및 지배 엘리트의 행태와 밀접히 연관되고 있다. 소련과 중 국에서 개혁이 각각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와 덩샤오핑(鄧小平)같은 지도 자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경우 김정일은 쿠바의 카 스트로처럼 이미 권좌를 물려받은 기득권적 지도자로서 스스로 개혁을 주창할 인센 티브가 없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화 개혁을 도입한 제안자는 대부분 신참 권력 자로서 집권 초에 개혁을 제창함으로써 지배 엘리트 및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자신 의 통치 권위를 확립하기를 원했다. 예를 들면 고르바초프의 경우 당시 지배 엘리 트들로부터의 압력과 갓 권좌에 오른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강화할 필요 때문에 개 혁을 주창했고, 덩샤오핑도 마오쩌둥(毛澤東)이 후계자로 지목한 화궈펑(華國鋒)과 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장경제 개혁의 길을 택했다. 이들에 비해 김 정일은 기성 지도자로서 경제개혁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고양할 필요성이 신진 지 도자들에 비해 적을 것임이 분명하며, 이런 점에서 개혁은 김정일에게 있어 쓸데없 는 모험일 수 있다 는 지적마저 제기되고 있다.9) 따라서 김정일 이후에야말로 북한의 참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현재로서 그럴 가능성이 언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단언할 수는 없으나, 어느 경우에도 철저한 9) 정한구, 김정일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종정책연구, 제4권2호(2008), pp. 99-103. - 8 -
준비는 필요하다. 2. 국제금융기구의 활용 북한이 개혁 개방을 통해 붕괴된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은 국제금융기구의 개발원조를 받는 길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공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대북 경제지원 국제컨소시엄 결성을 주도하는 방안을 고 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 문제의 핵심 당사자로서 이미 KEDO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이 대북지원 컨소시엄 결성을 주도할 명분 과 이유가 충분하다. 상생공영 구상 중 북한의 경제회생과 직접 연관된 것은 경제개발과 인프라 구축 을 위한 400억 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을 조성한다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월드뱅 크 및 ADB 국제차관 제공을 타진하고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확충하며 해외직접투자 유치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와 결부되어 북한 경제회생에 국제기구의 역할을 연계시킬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고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비록 미국의 대북 적성국교역법 적용이 중단되더라도 실상 북한경제에 미치는 단기적인 효과는 크지 않다. 미국은 현재 모두 14개의 법률과 2 개의 시행령을 통해 북한을 제재하고 있기 때문이다.10) 또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는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북한 같은 저개발국가가 가입할 수 있는 IDA(국제개발협회)나 ADB(아시아개발은행)의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서 IMF(국제통화기금)에 가입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제한이 있다. 우선 브레튼우즈협정법은 테러지원국만이 아니라 공산주의국가 의 IMF 가입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본격적인 개 혁 개방에 나서지 않는 한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IMF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내제도의 개혁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할당받은 출자 금의 25%를 선납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북한이 이런 조건을 충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9 -
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라진 선봉특구를 시작으로 특구를 통해 외부자본을 유치 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북한의 특구정책은 내부경제와 차단된 이른 바 모기장식 개방이었기 때문에 투자유인이 발생하지 않아 실패를 거듭했다. 반면 북한당국으로서는 특구와 내부경제를 연계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 황색바람 이 스며들어 체제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용할 수가 없다. 요컨대 북한당국은 제한적 개혁 개방을 통해 중앙공급능력을 복원하고 이를 통해 고전적 계획체제로 회귀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시장화를 확산시키고 체제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본격적인 추진이 불가능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12) 따라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 노선으로의 전 환이 병렬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개혁 개방으로 나올 경우 어떤 혜택을 받게 될지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간 당국자 회담이나 민간 지원단체들의 활동을 통해 북한이 이러한 부 분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외교안보 라인업 개선 이명박 정부는 외교안보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내 적으로는 실용외교 대북정책의 철학을 먼저 정비하고,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구성을 쇄신하며, 시스템(NSC, 위기대응체제) 구축에 주력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조속한 시일 내에 6자회담 재가동을 실현하여 핵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동원할 수 있는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태세는 전략의 부재와 현안의 홍수에 함 몰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현안에 매몰되어 장기적인 비전 수립에 미흡한 반면 현안이 비전을 압도하는 양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정책적 고려 가 필요하다. 첫째, 외교안보의 전략과 철학, 방향성을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외교의 기조로서 실용외교 를 천명했지만 실용은 방법의 문제일 뿐 내용까지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 없는 실용은 종종 비전략적이고 즉흥적 외교행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자면, 미국과는 전략동맹을 합의하고, 동시에 중국과도 전략 적 협력동반자관계 를 선언하여 미, 중 모두로부터 불필요한 오해의 연쇄반응을 초 래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중국은 한미간 가치 신뢰 평화구축 동맹이 중국을 배제하고 포위하려는 전략이라고 의심하고 있어서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 과 가치 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한중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이라는 표현을 요구했고, 이번에는 미국측이 전략적 표현의 의미에 의구심을 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국정지표 중 하나인 글로벌 코리아 는 외교에 있어서 세계적 보 12) 임수호, 계획과 시장의 병존: 북한의 경제개혁과 체제변화 전망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08), p. 244. - 10 -
편가치 지향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국민국가로서의 문제가 압도 하고 20세기 안보문제가 지배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결국 성숙한 세계국가 는 현 실보다 너무 앞서간 비현실적 구호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 명박 정부가 외교안보의 철학과 가치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 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둘째, 사람의 문제, 즉 외교안보라인의 인적 구성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 범 첫 해를 넘기기도 전에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 초기구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거 의 다 정부를 떠나고, 현재는 초안 작성자와 집행자가 다르다는 현실에 처해 있다. 외교부, 통일부, 청와대 등 외교안보라인 모두가 동일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전략가와 실무자의 균형 결여이다. 현재의 외교안보 라인은 압도적으 로 실무관료(특히 외교부 출신들) 위주의 구성이다. 이럴 경우 정책의 안정성이나 연속성은 보장되겠지만 전략수립이나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셋째, 시스템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문제는 과거 NSC와 같은 역할이 실 종되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대통령의 경제 CEO식 발상이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위축을 초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정부 모든 부문의 slim화만이 능사가 아니다. 외형적 슬림화의 결과는 외교안보 분야 자문활동 미진, 담당 인력 축소의 나타나고 있다. 또한 외교부 출신 인사들이 주류를 형성함으로써 외교안보 부서간 견제와 균 형의 상실이 초래된 바, 집단사고(group think) 에 빠질 우려가 커졌다. 예를 들면 통일부장관에 외교부 출신이 임명됨으로써 통일부 자체의 색깔과 목소리가 없어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명박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외교안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이상의 문제들을 조기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 - 11 -
한일관계의 과제와 전망 진창수(세종연구소 부소장) 1. 4월 한일정상회담의 과제 4월 21일 한일 정상회담은 한일관계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고 과거사 갈등에서 실용적인 한일관계로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1). 그러 나 한일관계를 성숙한 동반자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 히 남아있다. 현재 한일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국제질서(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일의 국익 충돌 현상이다2). 첫째 북핵문제 해결을 포함한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 의 차이는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국내적인 상황에 따라 갈등 이 증폭되는 현상조차 나타났다. 예를 들어 아베정권시기에는 북핵문제 해결을 두 고 한일간에 정책의 조율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상반된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둘러싼 평화적인 해결에는 합의를 보았다고 하지만, 납치문제 등과 같이 아직 이견이 존재하는 부분도 많다. 일본의 신문에서는 이 대 통령의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했다 는 것을 북핵 연대 강화 라고 환영하고 있 지만, 실제 북핵문제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룩한 것에 불과하다. 앞으로 북핵 폐 기 과정에서 지원 시기, 납치문제의 해결 등을 둘러싸고 한일간의 인식 차이로 인 한 상호 불신의 씨앗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둘째 과거사 문제에서도 한국의 감정을 일본이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는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후쿠다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침묵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갈등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제로 일본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보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후쿠다 총리는 이웃이 싫어하는 걸 굳이 할 필요가 있겠느냐 라고 말 할 정도로 친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 가 후쿠다 총리의 전향적인 자세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거사 문제는 항상 일본의 망언이나 교과서 문제 등으로 인해 한국인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양국 정부 는 이를 관리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따라서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나 1) 4월 한일정상회담의 의의는 첫째 과거사 문제를 간과하였다기 보다는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해법을 모 색하는 자리로 셔틀외교를 복원하였다. 둘째 경제 분야의 협력을 강화시킴으로서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 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미온적이었던 일본 정부가 양국의 경제협력 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경제협력 체제를 형성시켰다는 점이 한일관계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한일협력이 한일양국의 현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환경, 에너지 분야의 협력을 통한 국제사회로의 협력 확대는 앞으로 한일협력의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한일관계의 역사에서 본다면 냉전기 한일관계에서 주요한 갈등은 역사 과거사 문제와 대일 적자를 둘러싼 한 국의 경제 협력 요구였다. 탈냉전이후 역사 과거사 문제와 경제협력은 갈등의 과정 속에서 이를 관리하는 제 도적인 장치 등이 마련되었다. - 1 -
타난 과거 보다 미래 중시의 다짐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 경제 협력 문제에 있어 양국의 미묘한 주장의 차이도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다. 이대통령과 후쿠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EPA(일본이 FTA보다 더 넓은 의미의 경제통합을 의미하는 용어)문제에 대해 다소 입장 차이를 보인 것으로 전해 진다. 이대통령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일 경제협력은 300억 달러 무역적자 해소에 있었기 때문에 EPA문제를 협상하기 전에 부품산업 등의 상호 협력 을 강조했다. 반면 후쿠다 총리는 FTA 6월 실무협의 개재합의를 상기하면서 한일 양국이 총력 을 다해 협의할 것 이라고 했다. 일본정부는 이대통령의 무역적자 해소 주장에 대해 일본이 무역역조를 축소할 수 있는 부품기업의 대한 투자와 기술 이전은 본질적으 로 민간기업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한국의 요구에 대해 한일 비즈니스 서미트 라운드테이블 로 받으면서 일본 정부가 추진하려는 EPA를 관철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경제협력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미묘한 전략의 차이는 국내정치에서 연유되는 부분이 많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에 모든 중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한 일 FTA의 교섭 재개에 대해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후쿠다 총리 또한 지지율 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게 많은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 었다. 2. 독도문제 7월 14일 일본 정부는 일본과의 신시대 한일관계의 발전을 기대하는 한국 정부 의 강력한 바람을 외면한 채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중학교 새 학습지도요령 사회과 해설서를 공표했다. 이번 일본 정부의 신지도요령 해설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5월 요미우리 신문에서 일본 정부가 신학습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명기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자민 당 우파 정치가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2012년부터 적용될 중학교 사회 새지도요 령에 독도에 대해 일본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넣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그러 나 올해 3월에 고시된 일본 정부의 개정지도요령에서는 독도에 대한 언급이 자제되 었다. 이는 2월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가 탄생하면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후쿠다 정부의 배려가 작용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4일 일본 정부는 지도요령 대신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보충하는 것으로 방침을 결정 하였다. 이는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지도요령 발표후 독도문제를 정면에서 제기해 야 한다는 자민당 우파 정치가들과 문부과학성 관료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20%대 중반에 머물고 있는 후쿠다 총리 내각은 결국 한일관계 의 악화를 무릅쓰고라도 해설서에 독도관련 조항을 집어넣는 선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앞으로도 올해 말로 예상되는 고교 사회과목 지도요령 및 - 2 -
해설서 개정, 2010년과 2011년 채택 예정인 초등 및 중학교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도 일본 우익 그룹은 한발 더 나아간 내용을 집어넣으려 할 가능성이 커졌다3). 이처럼 일본의 독도 도발이 계속되고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일본 정치가 와 국민들의 변화에 있다. 일본은 1952년 이후 매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였지만, 본격적으로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시도는 1990년대 후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1996년 일본 집 권 자민당이 총선 공약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한다 라는 것이 나타나면서부터 이 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도에서는 일본 외무성이 발행하는 외교청서에 독도 고유 영토설 을 명기했다. 그뒤에는 매년 독도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쟁을 본격적으로 일으켰다. 2004년 우리측의 독도 우 표발행에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나서 다케시마는 일본 땅 이라고 했고, 외무성 홈 페이지에 일본 영토임을 강하게 명기했다. 우익단체의 독도 상륙 기도도 있었으며, 특히 2005년 시마네현 고시 100주년을 기화로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 을 제정하면 서 외교적 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일본측의 독도 주변 수로 측량 시 도를 둘러싸고 한일간의 외교적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이번 해설서의 발단도 2005년 3월부터 정부 내에서 제기되었던 것이다. 나카야마 나리아키 당시 문부과 학상은 국회답변 과정에서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고 지도요령에 써야 한다 고 말했 다. 이 발언은 당시 후소샤 교과서 개정을 주도했던 우익단체 새 역사 교과서를 만 드는 모임 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이 문제는 이번 지도요령 개정 작업 때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이러한 일련의 독도 도발 시도는 일본 정치가들의 세대교체와도 관련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일본 정치권에서는 전후세대가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 전후 세대 는 일본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고,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다. 일본의 전 전 세대 들 중에서 극우 인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동아시아 관계의 특수한 측면을 이해하여 갈등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현재의 전후 세대 정치가들 은 일본이 언제까지 과거사 사과와 배상요구에 끌려 다녀야 하느냐는 주장을 공공 연히 하고 있어 일본 국민의 내셔널리즘적 정서에 부응하는 강경입장을 취하고 있 다. 영토문제에서도 전후세대는 전전세대와 달리 타협적인 정책보다는 우파적인 강 경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이들의 국익 계산은 동아시아 국가들과 장기적인 협조관 계에서 찾기 보다는 일본의 영향력 확대를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 세대 정치가는 지금까지 일본의 외교는 관용과 인내를 가지고 있어 잘못된 점이 많았다 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아베 전수상은 전후세대 정치가들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다. 아베와 마찬가지로 전후세대 정치가들은 외교에서 주장하는 외교 를 제창하며, 애 3)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몇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 초기에는 정부가 한일관계를 고려하여 냉정한 대응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결국 여론에 밀려 강경대응으로 나아갔다. 강경대응은 곧잘 여론 무마용으로 독도 영유권 의 공고화를 확고히 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독도에 접안시설을 만들든지, 독도의 유인도화를 만드는 것이 그 예이다. 둘째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대사를 소환한다든지, 셔틀외교를 중단하려는 조치를 취하였다. 셋째 국제여론정책의 강화이다. - 3 -
국주의 교육 강화를 모색하면서 전후 정치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또한 일본이 역 사인식이나 영토문제에서도 기존의 수동적인 자세와는 달리 적극적인 국익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우파 정치가들은 이번 해설서에 독 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하는 것은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전후 일본의 바로 잡기 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게 표명되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정치권은 점점 역 사 진보세력(예를 들면 사회당)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1994년 사회당의 무라야마 정권이후 사회당은 기존의 안보정책에서 큰 전환을 가져왔으며, 그 결과 사회당은 몰락하게 된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우파정치가들의 영향력을 확 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4). 이처럼 정치권내에서 우파 정치가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 사회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1990년대에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일본 사회의 변화는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리 자신감의 상실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본 사회내에서는 일본경제의 침체에 대한 패배감의 반작용으로 강한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내셔널리즘적인 열망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정치에 대한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국민의 열망과 희망은 일본의 자유화와 개 혁을 유도하는 긍정적인 방향과 일본의 정체성 확립을 주장하는 우익 세력의 새로 운 역사해석에 동조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일본 국민은 우익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주장을 감정적으로 인정하는 모 순된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 예로 이번의 해설서 문제에서도 일본의 영토를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 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3. 아소 정권과 한일관계 9월 후쿠다 총리의 사퇴에 이은 아소 총리의 등장은 민주당에 맞서 차기 중의원 선거를 진두지휘할 '자민당의 얼굴'의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자민당이 여당으로 계속 집권하고자하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소 총 리는 총리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내각 명단을 직접 발표하면서 "이 멤버로 싸워나갈 것이다"며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앞두고 국민들을 의식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로 인해 일본 정국은 자민당의 아소와 민주당의 오자와 이 치로(小澤一郞) 대표간에 차기 정권을 놓고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게 될 총선 정국 으로 돌입하게 됐다5). 4) 문제는 우파 성향의 전후 세대 정치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정당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통용된다 고 확신하고 있는데 있다. 예로 종군 위안부 문제에서 이들은 미국 의회에 몰려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 으 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다가 국제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이는 일본의 로비 실패로 치부하며 반성조차 하 지 않는 추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지도요령 및 해설서 뿐 아니라 교과서 검정 때도 독도문제를 확대시키 려는 일본 우익 그룹들의 작업이 치밀하게 전개되는데 문제가 있다. 5)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은 차기 총선을 겨냥하여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일본정치 사상 유례 없 - 4 -
한국에서 아소 총리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아소는 태생적으로 보수 우익 성향이 강한 만큼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반면에 일부에서는 아소총리가 개인적인 신념보다는 일본 국익을 위해 자중할 것으로 보는 측면에서 그다지 한일관계가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아소 총리에 대한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총리 개인의 신념이 한일관 계에 미칠 영향에 집중하기 보다는 독도문제의 추이와 일본 정국의 변화를 염두에 두는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한일관계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 는 독도문제는 아소 총리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악화될 수 있다. 올 7월 일본의 중 학교 해설서에 독도는 일본 땅 이라고 명기된 후 가을에 예정된 지도요령 개정에도 해설서와 같은 수준으로 독도문제가 취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한 분위기는 한국이 저지한다고 해서 또는 아소 총리가 자중하자고 해서 그 흐름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2005년 문부과학성 장관이 해설서보다 상 위 레벨인 지도요령에 독도가 일본 땅 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한다는 발언 이래 일 본 우파 정치가들의 교과서에 독도문제를 명기하고자 하는 공작은 더욱 더 거세졌 다. 이러한 흐름이 올 7월의 해설서 개정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제는 독도가 교과서 에 당연히 명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본 정치권내 상식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 예 로 최근에 한국에 온 일본 국회의원들은 하나같이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하는 것이 왜 나쁘냐 라고 당당하게 반문한 데에서 잘 나타난다. 즉 앞으 로 독도문제는 일본 총리의 이념적인 성향과는 관계없이 일본의 교과서 전체에 실 리게 되는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다. 둘째 아소 총리는 새 내각을 발족시키더라도 조만간에 있을 총선에서의 결과에 따라 장래가 매우 불투명하여 한일관계의 예측을 어렵게 한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정권을 유지한다고 해도 아소 총리는 자민당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 되어 퇴진할 가능성도 있다. 설사 아소 총리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참의원 의 여야 역전 현상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소 총리의 정치적인 한계는 뚜렷하 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지지율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지지 율은 48% 전후이지만, 총선거 후에는 더욱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아소의 자민당 의 장악력은 급속하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6). 그리고 당내에서 그와 대립했 던 '밀물파(구조개혁파)'의 존재도 그에게는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전 방위상이 자민당내 총재경선에서 예상보다 많은 46 명의 당내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7). 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고이케 전 방위상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차기'를 시 는 '세습 내각'으로 짜여졌다는 점이다. 총리를 포함해 4명의 각료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총리로 둔 명문 정 치가문 출신임은 물론 18명중 절반 이상이 세습의원이다. 둘째 아소내각이 문부족을 중심으로 한 우파적 인 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권내의 우파적 인사들의 등장은 선거를 의식하여 국민들에게 아소정권의 성향을 선명히 나타내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6)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나 후쿠다 총리의 경우 취임 초반 60%대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다. 7) 고이케 후보를 지지했던 나가카와 히데나오(中川秀直) 전 간사장은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 5 -
사했던 점은 총선 이후의 계파별 분화 가능성과 관련해서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따라서 총선거 후 아소 총리는 정치역학에 따라서는 식물 총리 가 될 가능성도 있 으며, 이 경우 자신의 이념적인 성향을 펼칠 기회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외교에서도 아소 총리는 이전의 정책을 소극적으로 유지하는 관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