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Ⅰ 빈민운동의과거, 현재, 미래 최인기, 가난의시대 ( 동녘, 2012) 김두범 회원 2009 년 1월용산에서정권의철거민학살이있은지 3년이지났다. 도시개발계획에맞서최소한의생존권요구를내건철거민들의저항에정권은살인진압으로대응했고, 이후유가족들과철거민들의처절한투쟁이지속되었다. 지난 1월서울역에서는참사 3주기를맞이하여추모대회가열렸다. 이날용산참사유가족들의발언에는지난한생존권투쟁의회한과분노가서려있었다. 용산투쟁은현재한국사회에서벌어지고있는생존권투쟁과기본권투쟁의모습을동시에지니고있다. 또한한국사회전반에서진행되고있는빈곤에대한저항의단면이기도하다. 노동자, 농민투쟁과마찬가지로빈곤에맞선빈민들의투쟁역시생존권과기본권에기초한요구를제기한다. 그런데학생운동이나노동조합운동이자기만의영역과역할을가지고조직돼왔듯이, 도시빈민운동역시고유한영역과의제를가지고진행되어왔다. 민중운동의일부분이라는점에서빈민운 168
동을완전히독자적이라고할수는없으나, 현재벌어지고있는빈곤에저항하는사회전반의투쟁에서도시빈민운동이지니는나름의위치를평가하고조명하는작업은운동의전진을위한필수적인작업이라고할수있다. 가난의시대 ( 동녘, 2012) 는바로도시빈민운동의역사를기록하고평가하는책이다. 저자최인기는빈민해방실천연대와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서활동해온빈민운동가다. 이책은 2009 년용산참사직후 < 노동자역사한내 > 측의요청으로쓰기시작한글들을모은것이다. < 민중언론참세상 > 에서 도시빈민운동사 라는제목으로연재되었던글과빈민운동의평가와전망부분을포함해두꼭지로구성되어있다. 1부 도시빈민운동사 는일제강점기부터이명박정권까지의역사를, 2부 도시빈민운동, 어디로가야하는가 는도시빈민의현황부터주거정책, 철거민 노점상운동, 빈민운동조직의변화, 도시빈민활동가의설문까지를담고있다. 도시빈민의형성기, 그리고 1970 년대까지 일제강점기인 1920-30 년대에는토막민 ( 무허가정착지주민 ), 화전민, 도시노동자등이도시빈민층을형성했다. 1945 년해방이후도시인구가증가하면서판자촌과같은거주불안의의문제가발생하곤했다. 1948 년에최초로공적부조와관련된정책들이공포되었다. 한국전쟁이후도시빈민문제는이농민들이도시로이주하면서다변화하기시작한다. 1960 년대에서 1970 년대로넘어오는동안서울의인구는 245 만명에서 550 만명으로 2배나증가했다. 1960-1966 년사이, 서울은전체인구증가의 3분의 1, 도시인구증가의 80% 를흡수했다. 1) 1960 년당시의통계청자료를살펴보면, 서울의주택 7만 5804 동가운 1) 발레리줄레조, 길해연역, 아파트공화국, 후마니타스, 2007 년, 87 쪽 169
데 16.4% 가거주불안에시달렸고, 실업률도악화상태였다. 도시빈민운동의시발점이라고할수있는경기도광주대단지사건은, 1960 년대와 70 년대를거치면서총 2만세대 12 만명의이주과정에서발생한최초의도시빈민저항이다. 이는이후전개되는민주화운동에직간접적인영향을주었다. 1970 년대에는서울인구증가비율의 48% 가인구이입에의해이루어졌다 ( 전도시이입인구의 3분의 1이서울에집중됐다 ). 2) 인구증가로무허가거주형태가확산되었고, 이를양성화하려던정부당국과재개발방식에저항한철거민들의갈등이계속되었다. 도시빈민은박정희정부의경제발전정책의구조적모순의산물이었다. 1970 년 11 월 13 일전태일열사의분신을기점으로기독교선교회등을통해서노동자운동이형성되기시작되었으며, 이와비슷하게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등의조직을통해서빈민운동이태동하게되었다. 박정희정권시기조직적인빈민운동은 1977 년영동철거민투쟁, 1979 년해방촌주민농성등으로나타나며이후도시빈민들의저항의도화선이되었다. 이는노점상들의생존권투쟁으로, 그리고학생운동의결합으로도이어졌다. 전두환정부부터김영삼정부까지 전두환정권시기에는중동의건설사업에투자한인력과기술을바탕으로대대적인개발붐에편승해 재개발사업 이진행됐다. 재개발사업은정부가철거부터건설, 분양까지를관리해이윤을남기는공영재개발방식을취했다. 이는정부의이익을위해서아무런주거대책도없이철거민이일방적으로희생되는구조였다. 정부는이를은폐하기위해서합동재개발방식을취하기도했다. 2) 김형국, 불량촌과재개발, 나남, 1989 년, 202 쪽 170
이후정부의대대적인재개발사업에맞서철거민투쟁이대중적으로촉발된다. 1981 년사당동판자촌철거반대투쟁, 1983 년목동신시가지건설반대투쟁, 1985 년상계동재개발반대투쟁으로이어진다. 또한 1986 년아시안게임과 1988 년올림픽을거치면서자행된노점상단속에대한저항이분출된다. 1987 년 6월항쟁을거치며마침내 10 월에도시노점상연합회가결성된다. 1988 년올림픽을의식한대규모단속이전국적으로시작되자생계에위협을느낀노점상들은 6월 13 일성균관대학교금잔디광장에결집하여대규모의노점상결의대회를개최하고가두투쟁을전개한다. 이로써노점상운동은정권의반민중적정책에대한저항의성격을띠게된다. 1970 년대종교진영의연대와지원으로유지되던도시빈민운동은 1987 년항쟁을거치면서학생운동과노동운동과의상호작용속에서민중운동의한축으로성장하게된다. 1988 년에는연대투쟁체의필요성이제기되며노점상과철거민들의도시빈민공동투쟁위원회가결성되기도한다. 이러한공동투쟁의성과로 1989 년에는전국노점상연합회와서울철거민협의회가결성되었다. 이후연대체인전국빈민연합이결성되며빈민문제에대한총체적인투쟁을전개해나간다. 노태우정부는 1986-1988 년 3 저호황 으로인한부동산거품을해결하기위해 1988 년이후대책을마련하였으나별다른성과를거두지못한다. 이과정에서돈암동과신정동등다수의철거지역이발생하였다. 1988 년 범죄와의전쟁 을선포한정권은철거민과노동자들에대한강도높은탄압을벌인다. 1993 년김영삼정부의 신경제 5개년계획 등으로과열된부동산열풍속에서각종재개발사업들이진행된다. 이에저항하는철거민들의투쟁도지속되었다. 대표적으로 1994 년봉천 6동투쟁과행당동투쟁, 1995 년전농동투쟁이있었다. 노점상에대한단속도계속되었다. 문민정부 5년동안 5,039 개의노점상이강제철거되었고 5,662 개의손수레가파괴되었다. 단속에낭비된예산 171
만수백억원에육박하는것으로추정될정도였다. 1995 년한해동안살인적인폭력단속으로장애인노점상최정환씨의분신과철거민박균백씨의분신투신항거가있었다. 급기야인천앞바다에서의문의변사체로떠오른장애인노점상이덕인열사투쟁으로도시빈민의저항은대대적인반정권투쟁으로전개된다. 당시전국철거민연합은대부분의철거민이노동자라는인식에기초하여철거민을노동자계급의일부로, 따라서사회변혁을위한하나의주체로보고지역투쟁력및조직확대를통해사회운동진영과학생운동과의연대를강화해나갔다. 전국철거민협의회의경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가입하고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엽합등과함께토지정의실천시민연대에참여하는등다양한경로를취했으나, 실질적으로는철거민운동에있어서가장보수적인입장을취했다. 3) 김대중정부에서노무현정부까지 1998 년 국민의정부 를표방하며등장한김대중정부는 IMF 를겪으며확산된실업과빈곤문제에대처하기위해생활보호제도와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도입하였다. 그러나신자유주의노선에철저했던김대중정부의사회정책은빈곤문제에대한근본적인대책이라기보다는빈곤문제를관리하는차원을넘지못했다. 반면개발사업활성화를통한부동산경기부양정책은철거민들과강제이주민들을양산했다. 단적으로강북지역뉴타운개발에의해서만 10 만명이상의철거민과강제이주민이발생했다. 뿐만이아니었다. 대형유통시장의확산으로영세유통구조가몰락했고, 정리해고와실업으로잉여노동 3) 길윤형, 두개의길, 전철협과전철연, 한겨레 21, 제 558 호 172
력들이대거노점상으로유입되었다. 이후 2002 년월드컵등으로단속과철거가지속적으로자행되었다. 1999 년장애인노점상윤창영열사의분신, 2001 년장애인노점상최옥란열사의음독등은 국민의정부 의허울을드러냈다. 신자유주의적인경제구조재편속에서도시빈민들에대한처우는근본적으로달라진게없었다. 이과정에서도시빈민운동과궤를같이하면서도빈곤관련의제를폭넓게제기하는사회운동의연대흐름이형성되었다. 빈민운동조직외에도다양한사회단체들이결합하여민중복지연대와빈곤사회연대를결성하였고, 이를계기로반 ( 反 ) 빈곤운동은기초생활보장제도를비롯한정부복지정책의문제점에대응하게되었다. 이후노무현참여정부는사회투자국가를사회정책방향으로제시했다. 그러나여전히도시빈민들의삶은크게달라지지않았다. 각종사회지표들은도시빈민문제의심각성을여실히보여주고있다. 경찰청보고에따르면서울지역단전대상가구수는 2002 년 22,617 에서 2003 년 32,676 으로증가했고, 건강보험료체납자의숫자도 2002-2003 년사이 8만명정도증가한것으로집계되었다. 4) 굵직굵직한부동산정책들이수없이쏟아져나왔지만, 치솟는집값을되돌리기에는역부족이었다. 이런상황에서도시철거민들의투쟁도지속될수밖에없었다. 2002 년서울상도동, 2003 년경기도수청동과풍동등곳곳에서철거에대항하는투쟁들이발생했다. 2003 년에는이명박서울시장의청계천복원공사에따른노점상강제철거문제도발생하였다. 이명박정부 4)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토론자료, 노무현정부보건복지정책어디로가고있는가?, 2003 년 11 월 25 일 173
이명박정부도애당초도시빈민에대한정책이전무했다. 경제대통령 이라는수식어속에는부동산경기부양최우선, 싹쓸이방식의노점상단속, 저항세력에대한과도한공권력사용등이함축되어있었다. 특히 2009 년용산에서벌어진학살사건의경우부동산경기부양과공권력의반민중적성격을여실히보여준사건이었다. 2006 년지방선거와 2008 년총선에서승리한한나라당으로서는거리낌없이뉴타운재개발정책을추진할수있었다. 하지만세계적인경제위기속에서부동산경기부양정책은그저가난한사람들을폭력적으로탄압하기위한근거로사용되었을뿐이다. 용산뿐만아니라포이동 266 번지의화재와철거, 가락시장현대화에따른노점상철거에이르기까지지속된폭력은쌍용차나한진중공업정리해고사태에서도그대로재현되고있다. 도시빈민운동, 어디로가야하는가 가난의시대 라는책의전반을아우르는중요한사고개념은 도시빈민과빈곤 에대한정의다. 이는도시빈민의역사를서술하는데있어서도매우중요한지점으로작용하는데, 저자는단지모든운동의역사를살펴보는방식이아니라빈민운동의영역을한정하고이를효과적으로분석, 기록하는방식을심도깊게사유하고있다. 저자는도시빈민을 노동할능력과노동할의사가있는 경제활동인구 임에도사회구조적으로근대적임금노동체계외곽에머물고있는집단 으로규정한다. 이들은열심히노동을해도가난한상태를벗어나지못한다. 또한최저생계비수준의소득으로살아가고있으며, 대개불안정한고용상태에있다. 이들은주로폐지수집을해서내다파는사람들, 파출부, 노점상, 가내하청부업, 경비원이나청소원등소규모영업체에서노동자로일하고있다. 뿐만아니라거리에서노숙하며하루하루근근이살아가는사람 174
들도빈민범주에포함된다. 이들대부분은가족모두가생계를위해돈벌이에매달리거나, 의식주와교육, 의료등의소비영역에서상대적으로소외되고있고, 불안정한주거상태에놓여있다. 저자는도시빈민계급에대한설명을위해서주변부자본주의론이나신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입장, 노동계급의일부로보는시각, 다계급연합으로보는시각을두루살핀다. 나아가상대적과잉인구론이나비공식부문론을통해이에대한논의들을풀어간다. 여기에더해서현재벌어지고있는최저생계비투쟁과비정규직투쟁, 복지정책과주거문제까지도시빈민운동의영역으로분류할수있는구조적인관계들을서술하고있다. 마지막으로빈민운동의조직변화와활동가들의이야기도다룬다. 반빈곤투쟁이란곧생존권 기본권투쟁의다른표현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빈민운동의영역이존재한다는사실도부정할수없다. 이는 가난 이라고말할때, 가난의최소규정들이존재한다는사실을의미한다. 가난의최소규정들은삶의최소규정들과맞닿아있다 가난의. 시대 는바로이러한생존권투쟁의역사에대한기록이자기본권투쟁의역사에대한기록이다. 대부분의투쟁이그러하듯이, 도시빈민운동은아직까지완결되지않은, 그리고결사적일수밖에없는투쟁의현장이다. 최소한의삶의영역을지켜나가는싸움, 그것의기록을통해빈민운동의역사와현재를조명하여미래를밝혀나가는것, 이것이바로이책을읽는이유가되지않을까싶다.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