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최근촛불시위를여러차례바라보면서지난 24호의권두언이기억에떠올랐다. 세월호침몰은마치도대한민국호라는거대한배의침몰을보는듯하였다 고기록한바있다. 세월호참사는단순히선원한두사람의실수가아니라국가체계의무능과무책임, 그리고이기주의의결과였다. 대통령은세월호가침몰하는순간에도현장의상황을파악하지못하였던것으로드러났다. 심지어그시간에자신이어디서무엇을했는지조차밝히지못하고있다. 국민의공복이어찌하여국민을위해일할시간에자신의행위를숨기고있는가? 대통령의이러한자세는스스로세간에많은추측을낳게하여분열을재촉하는원인을제공하고있다. 나아가서최근검찰은조사를통해서대통령이국정농단을저지른최순실과공범의관계에있다고보고대통령을입건처리하였다. 참으로대한민국정치역사상예를찾아볼수없는지경에이르렀다. 그런데도대통령은자신의잘못을이제더이상인정하지않는듯보인다. 최순실국정농단에관한두번의사과가무색해져버린것이다. 마치세월호선장과선원들이단원고학생및승객들을버리고탈출하여자신의목숨만을유지하려고했던것처럼국가와국민을위해있는대통령과그측근들도자신의책임을회피하고자기안위만을돌보는모습을보이고있다. 두차례의사과역시실상은진심어린것이아니라단지일종의면피용기획에지나지않은것처럼보인다. 이러한지도자가이끄는나라에는제대로된미래가없다. 무능과면피의선장을지도자로삼은대한민국호는망망대해에서방향을상실한채방황하고있고, 그미래는암울할뿐이다. 반면에촛불시위는그모임의성격이해학과익살그리고질서와평화유지라는면에서자랑스러운모습이었다고할수있다. 이제촛불시위는대한민국문화의일부로자리잡은듯하다. 문화로서의이시위는단순히어떤특정계층이나조직의기득권을위해서열린것이아니라오히려국가공동체의건강한미래를지향하고있음을보여주었다. 모든이들이함께행복해하는좋은세상말이다. 이러한이유로최근의촛불시위는매우긍정적이다. 어린자녀들의장래를항상염두에두었기에어린자녀들과함께시위에참여한젊은부부들의모습, 그리고초, 중, 고등학생들이자발적으로참여하여거 권두언 5
침없이의견을제시하고질서와청결을유지하려고노력하는모습은우리사회의미래가결코어둡지않음을보여준다. 국가의지도자를보면미래가암울해보이나, 광화문에모인국민을보면밝은미래가약속된것처럼대비되어비쳐진다. 촛불시위를탄압하는대통령과그측근들은마치기승전결이뻔한막장드라마의문화를기획하는자들처럼보인다. 일반적으로대부분의막장드라마는대반전이있지만그러한대반전도결국은시청률을볼모로한비윤리적반전에지나지않는다. 대한민국을볼모로삼은대통령의모습또한별반다르지않다. 비록좋은의도로국가사업을기획하였다고해서그과정과결과까지무조건좋게보고용서해줄수있는것은아니다. 좋은의도가좋은과정과결과를보증하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 모든사업추진과정은반드시윤리성이담보되어야한다. 대통령의역할은이러한사업추진이합법적이고윤리적이며정의로운지, 그리고법에합당한지재차확인하는것이다. 이러한확인작업이없는한공공의국가사업은단지대통령이라는직위를이용해서친인척의사업을도와준개인비리및범죄에지나지않는다. 이는당연히한국가의대통령이해서는안될일이라는것을삼척동자도아는사실인데, 본인과최측근들만자신들의범죄를인정하지않는다. 이드라마의기획자들은대한민국을볼모로비윤리적인막장의끝을향하여가고있는것이틀림없다. 그리스도교는억압받고있던히브리인들을이집트에서해방시킨출애굽사건을언제나기억하고있다. 하느님께서십계명을이스라엘백성에게내려줄때에도자신이그들을노예살이로부터해방시켜준하느님임을기억하라고하였다. 이러한이유로사무엘은이스라엘백성이타민족처럼왕을요구할때불편한마음을숨기지않았다. 왜냐하면왕은국가적체계와그권력으로하느님의백성을해방시키는것이아니라오히려억압할것이기때문이었다. 구약의예언자들이왕들의잘못을고발하고비판했던이유는왕들이하느님뜻에맞갖게이스라엘백성을더욱더자유롭게하기는커녕오히려억압했기때문이다. 그들은하느님의뜻에역행하여백성을제물로삼아자신의사리사욕을취하였다. 반면에예언자들은자신들에게쏟아지는불이익을감수하고서라도하느님의뜻을성취하고자하였다. 비록왕들의권력이막강했다하더라도예언자들은양심을통해서외치는하느님의말씀에거역할수는없었다. 해방되는이스라엘을위해서말이다. 6 신학과철학제 29 호
촛불시위는그래서 해방의문화 그리고 자유의문화 와깊은연관이있다. 부정과압제에거슬러서모든민족들이해방되고자유롭게되는그미래를향해서말이다. 촛불시위의참가자들은참된미래를약속하는하느님의예언자들이었다. 그들이그리스도교신자든아니든말이다. 대한민국의미래는희망차다. 촛불시위는 막장드라마 에대항하는 구원의드라마 라고할수있다. 그리고우리는 4 19와 5 18을기억하는것처럼이 구원의드라마 를항상기억해야할것이다. 2017 년은루터가교회의개혁을시작한지 500년이되는해가된다. 교회의타락으로말미암아시도한개혁은아쉬운점도있지만그시도는오늘날긍정적으로평가된다. 서강대학교신학연구소는이에 종교개혁 500년, 그빛과어둠 이라는주제로지난 9월 23-24 일양일간국제학술대회를개최한바있다. 가톨릭과개신교의신학자 14명이모여서지난 500년간의교회개혁에대해서성찰하였다. 우선이학술대회의제목에대해서조심스러운제안이나왔다. 차라리 교회개혁 500 년, 그빛과그늘 이더적합한제목이었다는것이다. 주지하다시피루터가일으킨개혁은오늘날일반적인뜻을지닌종교들에대한개혁이아니라오히려그리스도교, 즉교회의개혁이라는것이다. 나아가서개혁은그자체가거룩한것인데여기에부정적인가치를표현하는 어둠 이라는단어는적절하지않다는것이다. 오히려빛이짙으면그그늘도강하다는의미에서 빛과그늘 이라는표현이더적합하다는의견이지배적이었다. 이러한의견을제안해주신분들께감사의말씀을올리는바이다. 본학술지 29호는지난국제학술대회에서제학자들이발표한논문중일부인여섯편의기획논문, 기조강연문, 기고문, 그리고두편의연구논문으로이루어졌다. 우선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인광주대교구교구장김희중대주교는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회위원장으로서 가톨릭교회입장에서본루터개혁운동의배경과 500 주년의교회사적의미 에대해서강연을하였다. 김대주교는루터가개혁을일으킬무렵의유럽의정치ㆍ경제ㆍ사회적상황및그지성적ㆍ신학적배경그리고교회내부의상황에대해설명하면서, 루터가시도한개혁이무엇을의미하며, 가톨릭교회안에서그개혁이어떠한영향을미쳤고그결과가어떠하였는지에대해서논하였다. 그리고한국 권두언 7
교회가갖고있는개혁의과제는서로에대한차이보다는신앙의공통유산을함께추구하고묵상하며구체적으로실천하는것이라고하였다. 기고문은프랑수아 -하비에르뒤모르티에르 (François-Xavier Dumortier S.J.), 로마교황청립그레고리안대학교 (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 전임총장이 2016년 4월서강대학교를방문, 그레고리안대학교한국인졸업생들에게한강연을수정하여본학술지편집위원회에보낸글이다. 이글은비록그대상이그레고리안대학교졸업생이기는하지만, 이대학에대한교황청 (AVEPRO) 의평가결과 (Part II), 그리고가톨릭교회가운영하는대학의방향에대한내용 (Part III) 은가톨릭교회를포함하여그리스도교가운영하는대학들에게시사하는바가매우크다. 특히지성적도전들에대한자세, 교회에대한감각과공동체성에대한강조, 학제간공동연구의촉진등은이들대학들을위한중요한방향제시가될것으로보인다. 한편학술대회 종교개혁 500년, 그빛과어둠 에서신정훈은 가톨릭관점에서본루터와칼뱅의직무이해 라는논문을발표하면서제2차바티칸공의회를통한가톨릭교회의쇄신된관점에서루터와칼뱅의직무론을재평가하였다. 이논문은가톨릭교회의직무론과루터의직무론사이에는큰차이가없음을밝혔다. 논자는칼뱅의직무론은봉사의관점에서가톨릭교회의직무론에도움이된다고주장한다. 특히칼뱅의직무론은구체적으로성직자와평신도가협력할수있는모델을제공한다는것이다. 결국저자의주장에따르면루터와칼뱅의직무론은가톨릭교회의직무론과갈등하는것이아니라서로호응하며보완할수있다. 이규성은 개신교신학의가톨릭적수용가능성 칼바르트와한스우르스폰발타살의신학적대화를중심으로 라는논문에서개신교의칼바르트와가톨릭교회의한스우르스폰발타살사이에이루어지는신학적대화를소개한다. 특히한스우르스폰발타살이칼바르트의신학을어떻게비판적으로수용하고자신의신학으로발전시켜나아갔는지에대해중점을두었다. 발타살은바르트의 근본적그리스도중심주의 로부터영향을받았고, 나아가서신앙은드라마와같다는바르트의신학을수용하여신스콜라적신학을수정하려고시도하였다. 이러한신학적대화를통하여발타살은더욱심화된가톨릭적정체성을얻을수있었고, 거꾸로이대화를통해서바르트도역시 존재의유비 를인정했다. 이처럼바르트와발타살의신학적대화는비록그교파를달리하더 8 신학과철학제 29 호
라도서로에게그정체성을심화시킬수있는계기가되었다. 이는곧교회일치신학에서도좋은모델이될수있다고본다. 최형묵은 그리스도교와자본주의 - 인간의삶을위한교회의선택 이라는논문을통해서경제와관련된인간의욕구충족에관한신학적이해의변화에대해서설명하였다. 그에따르면토마스아퀴나스는충족을넘어선것은죄악이라고하지만, 프로테스탄트윤리관에서는욕구충족을위한부의축적은더이상악덕으로여기지않는다는것이다. 그는이러한가치관의변화가특히자본주의의형성과더불어이루어졌다고한다. 논자는자신의논문을통해서그리스도교의대안적경제윤리가능성을타진해보았다. 프랑스예수회원인미셸페두 (Michel Fédou S.J.) 는자신의논문 The Society of Jesus and Luther s Reformation 을통해서교회개혁당시초기예수회원들의신학적영성적태도에대하여고찰하였다. 그는특히교회의타락으로말미암아빚어진교회분열이라는심각한상황에서피에르파브르 (Pierre Favre) 의개방적이고영적인입장을소개하였다. 피에르파브르는초대예수회원으로서예수회원들사이에서는첫사제이기도하다. 다른회원, 예를들어나달과같은이는교회개혁자들에게공격적인입장을보이고있지만, 피에르파브르는개혁자들의입장을이해하고자하는가운데끊임없이그들과대화를시도한인물이라고본논문은밝히고있다. 논자는피에르파브르의이러한입장이근본적으로이냐시오의영성에기반하고있음을주장하고있다. 오늘날교회일치를위해서피에르파브르에관한연구는더욱절실히필요하고, 나아가그의신학사상과영성을바탕으로교회일치를추구해야한다고본논문은밝히고있다. 이러한차원에서교회일치는신학적작업인동시에영적인작업임을이논문은말한다. 프랑스여성신학자캐서린쉬르크루카스 (Katherine Shirk Lucas) 는동브공동체 (Groupe des Dombes) 가교회일치를위하여어떠한운동을펼치고있는지를설명하였다. 논자는특히교회일치를위하여수행하고있는동브공동체의고유한기능과그봉사가무엇인지를설명하고 교회들의회개를위하여 (Pour la vonversion des Eglises, 1991) 라는동브공동체의문헌이제시하는회개의뜻에따라신학적교회일치운동의틀과방향을제시하였다. 또한루카스는 2017 년종교개혁 500주년을맞이하여현재가톨릭신학을비판적으로분석하며교회일치의당면과제를제시한다. 권두언 9
로마그레고리안대학교의신학교수인인도출신의폴롤피핀토 (Paul Rolphy Pinto S.J.) 는 Core points of encounter in the spiritualties of Luther and Loyola 라는논문을통해교회의개혁을주장한두인물을비교하고교회가일치를이룰수있는가능성을고찰하였다. 일반적으로루터와이냐시오는전혀반대방향의개혁을부르짖은것으로이해되지만, 논자는오히려두인물에게서많은공통점이발견되며, 이를바탕으로해서서로교회간에일치를이룰수있는가능성이있다고주장한다. 본논문은특히이냐시오의저서들과루터의저서들을서로비교한다. 물론이들에게서많은차이점이보이긴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회심체험에있어서는서로유사한점이있으며나아가서기도와믿음, 영성그리고그행업에있어서도유사한의견이있다고본다. 송재민은 기후변화과학및정책에관한고찰 이라는논문발표를통해서프란치스코교종의회칙 찬미받으소서 는기후변화에대하여종교가역할을하여야함을강조한다고주장한다. 논자는기후변화와관련된주요과학적쟁점및국제적정책논의동향을소개한다. 논자는기후변화에대한과학적논의의중요성을언급하는가운데그한계를지적하고, 또한국제적인대응책을마련하기위해서국제적협력이중요함을언급하며시장경제에의해주도되는국제정책의한계도지적한다. 여기서더근본적인변화를이끌어내기위해서는종교적역할이중요하다. 그는기후변화와관련된종교의긍정적역할을위해과학, 정치, 경제, 그리고종교간의대화가필요하다고주장한다. 이논문은기후변화에대처하기위해서는생태적회개가필요하고나아가서통합생태론의입장에서생활방식을근본적으로변화시켜야한다는 찬미받으소서 의가르침을과학의입장에서지지하고있다는점에서종교인들에게큰힘이된다. 종교생활은단순하고영성적인삶을지향하는것에머물러서는안된다. 현대의기후변화를극복하기위해서는종교적가르침에따른구체적인실천이강조되어야한다. 최현순 박종구는 교회와세상의관계안에서본연대의신학적의미 : 사목헌장 의형성과정을중심으로 라는자신의논문을통해서현대세계에서중요한개념중의하나인연대 (Solidarity) 를신학적차원에서고찰하고자한다. 논자는단순하게연대가중요하다는것에그치지않고교회사적관점에서연대개념이어떻게교회의가르침안에자리잡게되는지를연구하고, 나아가서공의회문헌에서나타나는연대는어떻게이해되고있으며실천가능한지를제시하고있다. 현대신학은본성과초자연의이분법 10 신학과철학제 29 호
을극복하고자하면서현대세계를초자연과는동떨어진본성의세계로규정하는것이아니라, 오히려이세계에초자연적실재가함께있음을주장하고있다. 본논문의저자역시현대세계의신학적논지를잘따르는가운데그기초가교회의 사목헌장 에드러나고있음을보여주고자한다. 교회와세상은언제나개혁이요구된다. 개혁이멈추는순간, 그리고개혁을방해하기시작하는순간교회와세상은타락의길로가게된다. 우리는이를역사에서많이배울수있다. 촛불시위는단순히반정부시위가아니라반성과개혁을촉구한다. 루터와칼뱅그리고츠빙글리에의하여촉발된교회개혁도단순히교회의분열을유도하여자신의지분을차지하려는숨은정치적의도에따른기획이아니라, 참다운회개를통한개선이목적임을우리는믿고, 알고있다. 개혁은언제나참다운대화를요구한다. 비록때로는고통스러울지라도대화를중단해서는안된다. 대화가멈추는순간범죄와은폐가시작된다. 촛불시위는단순히대통령의하야를요구하기위함이아니다. 촛불시위는대통령의하야를통해 막장드라마 를종식시키고반성과개선을통해마침내하느님의정의와사랑이이땅위에실현된다는 구원의드라마 를만들기위함이다. 마찬가지로교회의개혁도언제나회개를전제로교회가하느님의새로운구원도구로다시태어나기위함이다. 교회와세상은언제나개혁되어야한다 (Et ecclesia et res publica semper reformandae). 편집자이규성 S.J. 권두언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