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8 18 합의 - 비정규직이비정규직을배신하는사태는왜벌어졌을까? 쓰레기합의안, 절대로인정할수없다! 울산과아산의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이외쳤다. 9월 4일오후현대차울산공장정문앞에서열린류기혁열사 9주기추모제에서다. 8월 18일현대차지부와아산 전주사내하청지회가사측과이른바 사내하도급관련합의 를한뒤에처음열린대중집회였다. 8 18 합의 는말그대로쓰레기합의다. 우선그형식에서노동자민주주의를철저히위배했다. 핵심당사자인울산비정규지회가조합원일부배제가분명해지자교섭자체를거부했고, 이때문에금속노조중앙이교섭에불참했으나, 금속노조소속인정규직현대차지부주도로교섭이강행됐다. 교섭내용은조합원대중에게공유되지않았으며, 철저히비밀에붙여졌다. 교섭결과를놓고현대차지부의두사업부대표가서명을거부하자그들을제외한채합의가강행되었다. 합의안에대해아산과전주에서총회에붙였지만, 사실상찬반토론조차가로막힌요식행위일뿐이었다. 합의내용은더욱기가막힌다. 불법파견때문에시작된교섭인데도불법파견이라는단어자체를찾을수없는합의서는, 노동자에대한배신으로가득차있다. 그내용은크게세가지로요약할수있다. 첫째, 현대차가불법의굴레마저벗어던지고앞으로더욱자유롭게비정규직을사용할수있도록길을열어줬다. 합의서에따르면, 2015년까지사내하청 4,000명이정규직으로 특별고용 된다. 이미채용된 2,038명을포함해서다. 하지만놀랍게도전체비정규직숫자는줄어들지않는다. 정규직으로채용된사내하청노동자는정년퇴직등으로자리가빈정규직공정을채우고, 그사내하청노동자가일하던자리는새로운사내하청또는직영촉탁직이채우기때문이다. 지금까지 2천명넘게특별채용이이뤄졌지만, 생산직에만사내하청 5천과촉탁직 3천등약 8천명의비정규직이고스란히남아있다. 고용노동부가 7월 1일발표한 2014 고용형태공시결과 에따르면, 3월 1일기준으로현대차가신고한비정규직은계약직 3,238명, 간접고용 11,066 명등여전히 14,304 명에이른다. 이렇게비정규직을고스란히온존시킨가운데, 합의서는 전환배치 를명시함으로써사측이이른바 진성도급 을완성할수있게했다. 정규직과사내하청의공정을형식적으로분리하는진성도급은, 불법파견판정의주요요소인혼재작업을제거하는데목적이있다. 비정규직의본질은그대로둔채, 법률의허점을이용해합법성의포장만씌울수있게해준것이다. 게다가합의서는, 특별고용을원한다면 ( 불법파견에따른 ) 근로자지위확인및체불임금청구소송 취하서를제출하라고요구했다. 심지어합의직후채용신청자모집과정에서는현대차의불법파견을처벌하지말아달라는탄원서까지제출하도록요구했다. 불법파견에대한책임을묻기는커녕오히려사측에면죄부를주기위한합의서가된것이다. 둘째, 전체사내하청은물론이요심지어조합원들까지정규직과비정규직으로, 그것도사측의기준과입맛에 1
따라갈라질수밖에없게되었다. 4천명이 특별고용 된다면, 기존사내하청노동자들이대략반반씩정규직과비정규직으로갈라진다는것을뜻한다. 실무교섭시뮬레이션대로라면, 조합원또한대략반반씩갈라질것이다. 그러나사실아무것도확실하지않다. 채용의칼자루는사측이쥐었고, 철저히그들의입맛대로휘두를것이기때문이다. 이것이어떤결과를낳겠는가? 합의서대로라면, 3~400명단위의채용회차가거듭될때마다업체와사측의눈밖에나지않으려는눈치보기와줄서기가점점더현장을지배하게될것이다. 정규직채용을미끼로노동자들이극도의분열과굴종을강요당하게되는것이다. 셋째, 설령특별채용대상자가된다하더라도불법파견에따른정규직전환에비해, 체불임금미지급과근속삭감등상당한불이익을받게되었다. 13년근속한사내하청노동자라면, 불법파견이인정될경우법률이정한최소기준에따르더라도정규직 11년근속을인정받게된다. 그에따른정규직임금과지금껏받은임금과의격차가체불임금이다. 또한정규직전환과동시에 11년근속에준하는임금과처우를받을수있다. 그러나합의서대로라면, 13년근속은정규직 4년근속으로환산된다. 체불임금은전혀지급되지않는다. 소송취하대가로소송비용 200만원을지급하는게전부다. 이렇듯 8 18 합의 는처음부터끝까지노동자를배신했다. 비정규직의온존과합법화를용인함으로써전체비정규직을배신했다. 사내하청의갈라치기를인정함으로써현대차공장에서같이일해온동료비정규직을배신했다. 조합원의갈라치기를인정함으로써함께싸워온조합원을배신했다. 정규직전환관련최소한의법적권리마저포기함으로써자기자신마저배신했다. 정규직은그럴수있다치지만, 어떻게비정규직이이런짓을할수있는지모르겠다. 사측에게합법적인비정규직사용의길을열어준 8 18 합의 는, 과거현대차정규직의 16.9% 사내하청투입합의 를떠올리게한다. 널리알려진것처럼, 2000년 6월현대차노조는이른바 완전고용합의서 라는그럴싸한이름아래정규직대비 16.9% 한도안에서사내하청을투입하기로사측과합의했다. 정규직자리에투입된사내하청은최저임금과열악한근로조건그리고무엇보다파리목숨을강요받았다. 정규직이 고용안정 을얻은대신, 사내하청은 비정규직 이라는천형 ( 天刑 ) 을얻었다. 그숫자도정규직대비 30% 이상까지늘어났다. 그고통과울분을딛고 2003 년비정규직 / 사내하청노조가설립되었고, 2004 년이후 10년의불법파견철폐투쟁이있었다. 그런데그역사를송두리째뒤집으려는배신이바로 8 18 합의 다. 역사를거스르는 8 18 합의 의퇴행적성격을단적으로보여주는대목이바로비정규직이버젓이합의주체로들어갔다는점이다. 실제로 8 18 합의 이후여러활동가들에게서이런탄식이터져나왔다. 정규직은그럴수있다고본다. 게다가대표적인노사협조주의집행부아닌가! 하지만어떻게비정규직이그럴수있단말인가! 아무리생각을해봐도도저히이해가되지않는다. 그렇다. 그동안정규직이비정규직과노동자계급을배신한게한두번인가. 그러니정규직이그간의잘못을되풀이하며또다시배신을했다고새삼놀랄일은아니다. 하지만비정규직의고통과울분을몸소겪었던비정규직이어떻게또다른비정규직을온존하고양산하는이런배신적합의를할수있단말인가! 그러나이상할것하나없다. 노동자들의제살뜯는경쟁은, 다시말해자기만살겠다며다른노동자를배신하고그래서결국에는자기자신도배신하는비참한경쟁은, 해방과단결의전망을상실한노동자들이자본주의아래서숱하게거듭해온일상사이기때문이다. 개별노동자든노동조합이든, 정규직이든비정규직이든, 해방과단결의전망을놓아버린노동자는스스로를파괴하고배신하는결말을피할수없는것이다. 비정규직을양산하는비참한역사의물꼬를튼 2000 년의 16.9% 합의 또한노동자가전망을상실한결과였다. 2
그시절현대차정규직노동자들은 1998년의정리해고저지투쟁에서패배한이후, 패배의원인과교훈을올바로직시하지못했다. 1998년, 5천조합원의울산공장점거파업은아주강력했다. 그러나 나라가망하고회사가망한다 며정리해고를강행하는자본가계급에맞서, 정리해고절대불가의대중적요구를끝까지밀고나아갈전망과지도력을갖지못했다. 그래서경제위기책임을자본가에게물으며노동기본권을사수 쟁취하기위한전체노동자계급의총단결총투쟁을촉발시켜나가지못했다. 전망이가로막힌파업은내부에서정리해고희생양을만드는배신적합의와함께패배했다. 그렇게 1998년파업에서패배한현대차정규직은 노동조합은절대정리해고를막을수없다 는잘못된평가를대중적으로공유했다. 전망과지도력의부재때문에사후평가조차제대로할수없었던것이다. 정규직조합원대중은언젠가닥칠또다른정리해고에대한두려움에사로잡혔고, 결국사내하청을 고용범퍼 로사용하자는사측의마수에걸려들고말았다. 16.9% 합의 는단지집행부만의것이아니었다. 내목에칼이들어와도반드시사내하청을들이겠다 며위원장이열변을토할때, 이를명시적으로반대한것은대자보한두장의소수목소리뿐이었다. 정리해고에맞설전망을상실한결과, 활동가와조합원대중다수가노동자를배신하는합의에사실상동의하고말았던것이다. 아산 전주사내하청지회가 8 18 합의 에참여한것역시전망을상실한노동조합의필연적인파국을다시한번보여주었을뿐이다. 모두가알고있듯이, 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들은비정규직의굴레를벗어나려는강력한열망을품고울산 아산 전주에서노동조합을건설해 10년의투쟁을이어왔다. 불법파견을인정한대법원판결이상징하듯이, 그들의열망은머지않아곧실현될것처럼보이기도했다. 그러나언젠가부터현실의난관을뚫고끈질기게전망을개척해나가는대신, 우리만이라도아니나만이라도정규직이되어야겠다는그릇된욕심이자라났다. 아산과전주에서조합원다수를장악한그배타적이기심은결국우리만의, 아니나만의정규직화를위해다른노동자를서슴없이배신하는파국으로귀결되었다. 비정규직이 8 18 합의 에참여한것은, 노동자의단결과투쟁을통해비정규직의굴레를벗어날전망을상실한, 아니정확히말하자면포기한결과였다. 전망을상실해간그과정을, 고통스럽지만냉철히돌아보자. 모든사내하청의정규직화 를내걸었던 2010년파업 2010년 11~12월울산 1공장 CTS공정을점거한현대차비정규직의 25일파업이있었다. 그파업을촉발한것은 7월의대법원판결이었다. 현대차사내하청은불법파견 이라는대법원판결은, 현대차사내하청은합법도급 이라는 1심과 2심의결과를뒤집은예상밖결과였다. 그런데그와같은대법원판결이갑자기튀어나온것은현대차의불법을입증할무슨새로운자료같은걸발견해서가아니었다. 그것은비정규직문제가너무나심각해져서그잠재적폭발성이위험수위에이르렀기에이제어느정도제약을가해야한다는자본가계급일부의판단을새롭게반영한결과였다. 그맥락은이런것이었다. IMF 이후노동자운동이끝없이침체와후퇴로내밀리는동안자본가계급은끝없이비정규직을늘리면서초과착취를강화했다. 그런데이것이너무심해지자사회적으로많은문제가발생했다. 젊은이들이연애와결혼과출산을포기당한 3포세대 가된다든지, 노동자대중의구매력취약에따른구조적인경기침체를벗어나지못한다든지등등자본주의의기반자체를뒤흔들지경이었다. 게다가그해 6월초에치러진지방선거에서무상급식과무상보육쟁점이천안함안보이슈를압도하며여당에게예상치못한참패를안겼다. 이대로계속가다가는비정규직의불만과분노가어느날갑자기한꺼번에터져버리면서사회전체를완전히뒤흔들게 3
될지도모를일이었다. 이런상황을놓고자본가계급일부는, 특히국가관료와정치인등사회적위기의예방 관리를담당하는부분은, 이제비정규직확산과초과착취에어느정도제약을가해야할때라는판단을내리게되었다. 비정규직에게조금이나마숨통을터줌으로써법과제도를아예완전히무시하는 반란 으로치닫지않도록예방조치를취해야할때라는판단이기도했다. 자본가계급일부의그러한전략적판단을반영한것이바로 7월의대법원판결이었다. ( 물론그러한전략적판단이특히현대차비정규직문제를통해표현되게한것은, 2003년이후 100명이상의해고자를내면서치열하게펼쳐졌던현대차비정규직의투쟁이었다.) 다시말해현대차사내하청을불법파견으로규정한대법원판결은무슨심오한이론적판단의결과가아니라사회전반에비정규직문제가너무나심각해진결과로서, 나아가그에대한자본가계급일부의깊은우려를반영한상징적조치로서내려진것이었다. 광범한노동자대중은이판결의사회적의미를본능적으로알아차렸다. 마침내 11~12 월현대차비정규직파업이터지자자기문제로여기며폭발적인관심을보냈다. 특히현대차비정규직과비슷한조건에있는제조업사내하청노동자들의관심은엄청났다. 울산에서멀리떨어진충청도의제철공장에서도전라도의조선소에서도평범한사내하청노동자들이파업뉴스에깊은관심을보이며승리를기원하는모습이목격되곤했다. 파업에나선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도이런점들을십분느끼고있었다. 대법원판결부터가비정규직문제의사회적심각성에따른결과이고, 그래서자신들의파업에온사회의시선이쏠리고있음을충분히느낄수있었다. 또한스스로도전체비정규직을대표해투쟁하고있다고생각했다. 우리아이들한테는비정규직없는세상을물려주려고파업에참여했다, 우리는지금대한민국의모든비정규직을대표해서싸우고있다, 우리만잘되자는게아니라다른비정규직들을위해서도우리가정규직되는걸보여줘야한다 같은목소리들이평범한파업노동자들의입에서자연스럽게튀어나왔다. 2010 년 11~12 월파업때현대차비정규직이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를요구한것은그러한배경위에서였다.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는 법적으로정규직임을입증받은일부사내하청 의정규직화와는성격이다른요구였다. 그것은현대차사내하청스스로의단결을지켜내려는요구이면서동시에전체비정규직을대표한다는책임성을지켜내려는요구였다. 7월대법원판결이있었지만, 현대차사내하청조차도개개인이법적으로정규직임을입증받으려면아직산너머산이었다. 7월판결로파기환송된재판이최종승소를한다해도현대차사측이그효력을개인에게한정된것일뿐이라고우기면사내하청노동자개개인이다시기나긴소송을시작해야했다. 게다가불법파견확정판결이나더라도 2007년 7월 1일이전에만 2년이상근속을채워구파견법의직접고용간주조항을적용받아야만정규직으로인정받을수있었다. 소송결과가선별적으로나올가능성도배제할수없었다. 결국막강한힘을가진현대차자본을상대로기나긴소송을통해정규직이된다는것은, 언제흐름이뒤집힐지모르고또한소송자격부터재판결과까지노동자가계속해서갈라질수밖에없는위험성을갖고있었다. 그래서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요구는현대차의사내하청이갈라지지않고단결해서정규직화를투쟁으로쟁취하겠다는의지의표현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파업에큰관심을보내고있던다른사업장의사내하청노동자들은대부분불법파견판정을받아정규직지위를인정받을가능성자체가거의없었다. 불법파견판정을받으려면정규직과혼재된공정에서일한다는게결정적요소인데, 현장에정규직이아예없을정도로사내하청비율이높거나사회적으로불법파견공방이오간지난몇년동안이미공정분리가다되어버린경우가대부분인까닭이었다. 이와관련해서볼때,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요구는형식적인불법여부를떠나서본질적으로사내하청이란제도자체가너무나부당한초과착취이기때문에정규직으로전환하라는의미를담고있는것이었다. 그래서자신들의파업을성원하고 4
있는전국의사내하청노동자들을대표한다는책임성을지켜내겠다는의지의표현이기도했다. 이렇듯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요구는노동계급총단결의정신을훌륭하게표현하고있었다. 또한그만큼파업노동자들에게큰힘을실어주는아주날카로운창이었다. 정규직화를요구하는현대차비정규직의파업은, 현대차정규직의파업을귀족노동자의생떼로비난하던광범한노동자대중에게서사회적대의를앞장서실천하는정의로운행동으로인정받았다. 광범한노동자대중의지지와성원은불과수백명의농성대오가거대한울산 1공장을 25일이나마비시키는데도쉽사리물리적으로진압할수없도록지켜준든든한보호막이었다. 거꾸로비정규직의파업을진압해야할현대차사측에게광범한노동자대중의지지와성원은가장큰골칫덩어리였다. 그래서사측은현대차사내하청이연봉 4천만원을받는또다른귀족노동자라고사실을부풀려널리떠들었다. 그러나그정도로는현대차비정규직파업과광범한노동자대중사이에엮인고리가끊어지지않았다. 25일만에가시적성과없이파업이마무리된그순간까지아니그이후에도얼마동안, 광범한노동자대중은현대차비정규직파업에성원을보내며, 자신들도투쟁과조직에나설꿈을꾸었다. 조급함과배타적이기심이부른전망의상실파업이끝난뒤 1년이상이어지던혼란을마무리하고, 현대차비정규직은 2012년에다시투쟁에나섰다.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를비롯해서 2010년파업때의요구를기본적으로계승했다. 그러나그위대한요구를흔들림없이견지해나가기에는많은허점이자라나있었다. 먼저광범한노동자대중과의고리가거의끊어져버렸다. 1년이상혼란을거듭하는동안현대차비정규직의파업은어느덧광범한노동자대중의관심과시야에서벗어나있었다. 물론그관심을되살리는것은아직얼마든지가능했다. 만일현대차비정규직이 2010년의파업을이어받고넘어서는힘찬투쟁으로강력한신호를내보낸다면, 광범한노동자대중이다시폭발적으로호응하고나올가능성이충분히열려있었다. 그래서더중요한것은현대차비정규직조합원대중에게서일어난변화였다. 현대차사측을한달가까이궁지에몰아넣을정도로 성공적인 파업을거치고난뒤, 많은현대차비정규직조합원은 정규직화 에대한나름의확신을얻게되었다. 그런데 정말로정규직이될수있다 는생각이들자, 적지않은이들이마음이조급해지고시야가좁아지는상태에빠져들기시작했다. 비정규직없는세상을물려주려고천만비정규직을대표해서투쟁한다 던생각을대신해서 우리는 ( 원래부터정규직임을대법원도인정해준 ) 좀특별한비정규직 이며따라서 누가뭐래도우리끼리똘똘뭉쳐반드시정규직을쟁취하자 는생각이들어섰다. 이와반대되는생각도널리퍼졌다. 그런데묘하게도결론은비슷했다. 25일이나파업을해봤지만힘의한계를절감했다는것이다. 게다가핵심조합원 100명이상이해고를당해현장에서밀려나있어서더더욱힘이없다는것이다. 그러므로 비정규직없는세상 이라든가 노동자계급 같은거창하고부담스런얘기는이제그만하고, 우리실정에맞는현실적인목표에집중해야한다는것이다. 정규직이되는것 말이다. 그렇게해서 투쟁을통한쟁취냐, 협상을통한해결이냐 의차이는있었지만, 현대차비정규직대다수조합원은 비정규직없는세상을향해전체비정규직을대표해투쟁한다 는생각으로부터멀어졌다. 의식의변화는투쟁과정에서뚜렷하게모습을드러냈다. 2012년여름현대차사측은불법파견문제에대한대응전략을가시화했다. 한마디로불법파견을인정하지않고약간의비용만치르는대신합법적인비정규직자유사용권을얻겠다는것이었다. 5년에걸쳐정년퇴직숫자를대체하는 ( 즉원래정규직으로신규채용해야할인원인 ) 3,000명정도를사내하청가운데서신규채용한다는것이, 사측이치르겠다는비용의전부였다. ( 사측이신규채용하겠다는인원은이후 3,500명으로, 다시최근 8 18 합의 에서 4,000명으로늘었다.) 대신생산직에만 7~8천명에이르는현비정규직규모를합법적인형태로고스란히 5
유지하겠다는것이었다. 몇개월단위의단기계약을반복해온한시하청은사내하청에서현대차직영촉탁직으로바꾸고, 사내하청주력은공정분리를통해합법도급으로전환해서유지하겠다는것이었다.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라는목표에서실질적으로후퇴한현대차비정규직은사측의전략에대응하는과정에서많은문제를드러냈다. 먼저 6~7월사측이한시하청을직영촉탁직으로전환하는과정에사실상전혀대응하지못했다. 한시하청또한정규직으로전환되어야할사내하청노동자임을주장하며노동조합으로조직하려는노력이사실상없었다. 몇달뒤, 촉탁직이계약해지로몽땅해고당하고새로운노동자들로대체되었다. 시키는대로하면정규직이될수있을거라는사측의꼬임에넘어갔다가해고당하면서절망한촉탁직이자살하는일까지벌어졌다. 그들역시정규직이되기를소망하지만, 파리목숨처럼몇개월시한부를되풀이하다가 2년을앞두고쫓겨나가는, 현대차안에서가장낮은위치의생산직노동자들. 하지만그촉탁직에대해서, 현대차정규직지부든, 비정규직지회든, 아무도조직하지않고책임지지않는말도안되는상황이펼쳐진것이다. 그리고지금껏계속되고있다. 8월사측의신규채용방침에대응하는과정에서현대차비정규직은마침내자신의목표를수정했다. 투쟁하는조합원우선 정규직화. 공식적으로는 모든사내하청 의정규직화를포기하지않은채양립하는목표라고했다. 그러니가장좋게해석하자면 단계적정규직화 를요구하고나선것이다. 그러나목표수정의실질적의미는사측이제시한 3,000 명안에 투쟁하는조합원 이가장먼저빠짐없이들어가야한다는것이었다. 사측이말하는신규채용이아니라정규직전환이어야한다는형식문제가남아있긴했지만, 대체로정규직만될수있다면큰문제는아닌것으로여겨졌다. 결국 조합원우선 정규직화는, 3,000 명신규채용이라는비용을치르는대신합법적인비정규직자유사용권을얻으려하는사측의전체적인의도에대해서는사실상침묵하는것이었다. 그렇다면비정규직없는공장을추구하는 모든사내하청 정규직화와는그정신에서결코양립할수없는요구였다. 또한 조합원우선 정규직화라는요구는, 사측이신규채용과정에서노동조합에가입하지않거나탈퇴한사내하청노동자들을유리하게대우할게분명한데그것만은용납할수없다는감정의표현이기도했다. 10년을투쟁하며고생한조합원들이무임승차한노동자들에게서운함을느끼는건어찌보면당연한것이었다. 하지만그렇다고조합원에게특혜를요구하는것으로대응할일은아니었다. 노동조합이단결을확대할가능성을스스로차단하고오히려분열을고착시키는행위였기때문이다. 아무리발버둥쳐도일정수준이상의파괴력이나올수없도록, 노동조합스스로자기힘을제한된범위로묶어버린셈이었다. 그래서 조합원우선 정규직화요구는조합원자신을위해서도심각한패착이었다. 노동조합은무임승차한잘못된행동에대해서는따끔하게비판하면서도끊임없이그노동자들을다시설득하고포용하기위해노력하는자세가필요했다. 그러려면어떤상황에서든 조합원우선 이라는패착에빠져들지않고기본을대범하게지켜내야했다. 그렇게노동자의더큰단결을끊임없이추구할때에만, 파괴력을높여갈수있기때문이다. 조합원우선 정규직화로목표를수정한뒤, 2년이흘렀다. 장기간의철탑농성이있었고, 몇차례희망버스도다녀갔다. 그러나수많은노동자들의헌신과노력이있었지만, 현대차비정규직투쟁은점점탄력을잃어갔다. 불법파견여부를떠나비정규직없는공장을만들어야한다는 모든사내하청 정규직화요구를사실상포기함으로써, 현대차비정규직은더이상광범한노동자대중속에서지지와성원을끌어낼수없었다. 게다가 조합원우선 정규직화라는목표를내걸면서, 현대차안에서도동력을확대할수가없었다. 사측은 조합원우선 을내건비정규직지회들의약점을효과적으로활용했다. 비정규직지회들이자신의정규직화를위해다른비정규직의정규직화권리를가로막고있다 고줄기차게떠들었다. 노조의이기적인요구를결코수용할수없다고도했다. 물론비정규직양산과불법파견의주범이면서도자신의잘못을전혀인정하지않는 6
사측이, 다른비정규직의정규직화권리 를운운하는것은 완전히적반하장이며가증스럽기짝이없는위선이었다. 그 러나 조합원우선 의약점을파고드는사측의이데올로기 공세는현대차현장에서비정규직지회의정당성과도덕적 권위에적지않은흠집을냈다. 비정규직조합원과비조합원 사이에, 그리고비정규직조합원과정규직조합원사이에불 신과분열을가중시키는데도상당한효과를봤다. 현대차비정규직이 모든사내하청 정규직화목표에서 사실상후퇴하면서, 광범한노동자대중은용기를얻고억눌 린열망을드러내며투쟁과조직으로일어설기회하나를잃 었다. 그런데뭔가를잃은것은광범한노동자대중만이아니 어떤전망과목표를내걸고싸웠을때가장강한파업의힘, 가장넓은연대의힘을끌어낼수있었는지돌아봐야한다. ( 사진 _ 연합뉴스 ) 었다. 현대차비정규직스스로도많은것을잃었다. 무엇보다광범한노동자대중의성원이라는, 든든한보호막이자 무한한파괴력의원천을잃었다. 현대차정규직노동자들에게계급적단결을호소할수있는권위와명분또한 상당부분잃었다. 끊임없이단결을확대하고강화함으로써공세를가한다는투쟁의방향을놓친것도큰타격이었 다. 현대차사내하청노동자들속에서조차단결을확대 강화하지못하고소수노조의한계속으로갇혀버림으로 써교착상태를타개할실마리를찾지못하는결과를낳았기때문이다. 비정규직없는세상 이라는부담스런구호를벗어던지고대신 우리만의정규직화 에집중하는순간, 오히려 그것을관철시킬힘이훨씬더약해지는역설적인상황에마주쳤다. 반대로 비정규직없는세상 을향한광범한 노동자대중의열망과함께할때가 정규직화 에가장가까이다가갔던시간이었다. 무엇이정말현실적인전망인가? 전세를뒤집을뾰족한방안은보이지않고지루한교착상태만계속되자, 조합원들속에서조급함과배타적이기심이더크게자라났다. 조합원우선 에담겨있던배타적이기심이이제노동조합의단결자체를무시할정도로까지마각을드러냈다. 마침내조합원의일부를버려서라도내가정규직이될길을열어달라고노동조합에요구하기시작했다. 치열한투쟁의역사가상대적으로적었던전주지회부터전반적인분위기가그렇게변해갔다. 아산지회에서는 모든사내하청 정규직화노선을고수했던집행부가고립끝에물러난뒤, 새집행부가전주지회와보조를같이했다. 교섭의전제조건을둘러싸고몇차례줄다리기를거듭한끝에, 아산 전주지회는 조합원우선 정규직화를고수하는울산지회를버리고현대차지부와함께 8 18 합의 를강행했다. 그동안 조합원우선 정규직화요구가비정규직지회의조직력을지켜내기위한 ( 불가피한또는최선의 ) 선택이라는주장도많았다. 그러나 조합원우선 요구는노조가더큰단결로발전할가능성을막아버렸다. 그에따른전망상실은추가적인후퇴를불러왔고노동조합에치명적타격을입혔다. 결국 조합원우선 과같은조합주의요구는조직력을지켜낸다는측면에서도결코도움이되지않는다는것을 8 18 합의 는여실히보여주었다. 8 18 합의 에동참한비정규직의심리는, 한마디로동료노동자를배신해서라도정규직의특권에합류하고싶다는것이다. 그런데그런배신조차폼나게할수없는것이비정규직의현실이다. 8 18 합의 에동참한비정규직이얻은성과는, 배신의대가치고는너무초라했다. 정규직이될수있다는확실한보증을, 어느누구도얻지못했다. 모든것은사측에게넘어갔다. 게다가어렵사리정규직으로채용되는경우조차근속과체불임금에서상당한불이익을감수해야한다. 2000년 16.9% 합의 로정규직이얻었던 고용안정 에비하자면확실히초라한성과다. 왜이런차이가나왔을까? 7
그역시간단한문제다. 2000 년의현대차정규직노조는언제든스스로공장을멈춰세울수있는힘을가졌지만, 2014년의비정규직지회들은전혀그렇지못하기때문이다. 게다가현대차공장안에서조직력이확대될가능성도없고, 광범한노동자대중의힘을끌어올가능성도없기때문이다. 이것은 모든사내하청 정규직화같은보편적인요구를내걸고광범한노동자대중속에서거대한운동을건설해나가는것만이비정규직에게주어진유일하게현실적인대안임을역설적으로말해준다. 한가지더중요한문제가있다. 정규직이된다는것, 그것은과연얼마나우리의삶을바꿔놓을수있는것일까? 많은비정규직은정규직화를노동해방이나다름없게생각한다. 정규직또한장시간노동과근골격계질환에시달리는착취당하는노동자로서크게다를게없다는얘기들이, 귀에들어오지않는다. 그래도비정규직인나보다는훨씬좋아보이기때문이다. 그리고그것은어느정도사실이다. 오늘날대기업정규직이 노동귀족 소리를들을만큼다른노동자들과달리일정한특권을누리는것은엄연한사실이다. 그러나착각하지말아야할것이있다. 노동귀족 이영원할수있다면, 그들은더이상노동자가아니다. 노동자에게그런신분상승의기회를제공할수있다면그건더이상자본주의가아니다. 실제로여러나라에서이러저런이유로 노동귀족 이등장했던역사가있지만, 길어야한세대를넘지못하고다시하향평준화했다. 한국의대기업정규직이 노동귀족 소리를들은것도기껏해야 2000년대초반부터다. 이제겨우 10년이조금넘었을뿐이다. 그직전까지그들또한대규모정리해고앞에목숨걸고저항해야했던가난한노동자들이었다. 2000년대초반이후한국의독점재벌은세계시장에서눈부신성장을했다. 비정규직과중소영세기업노동자들에게서거대한초과착취를할수있었기때문이다. 그과정에대기업정규직은 노동귀족 소리를듣게되었지만, 사회전반은비정규직과청년실업으로신음하게됐다. 정규직의자식들또한다른청년노동자들과마찬가지로비정규직과실업의어두운미래에갇혔다. 사측과결탁하여정규직일자리를대물림하겠다는정규직일부의희망은정말철없는망상이다. 자본이공허한약속은할수있지만, 효율적인력충원에전혀도움되지않는그런미친짓을왜진짜로하겠는가? 변변한직장이없고그래서경제적으로독립하지못하는자식때문에, 정규직의상당수는정년퇴직이후에도비정규직으로서노동을계속해야할형편이다. 게다가최근들어한국식초과착취가세계적으로보편화하면서, 삼성전자와현대차로대표되는한국독점재벌의지위가세계시장에서점점위협받고있다. 이제중국산스마트폰과유럽산외제차가국내시장까지위협하는형국이다. 몇년안으로, IMF사태를방불케하는, 대기업정규직에대한대대적인공세가단행될수도있다. 대기업정규직이지금처럼광범한노동자대중과진정으로함께하지않으면서과거보다훨씬허약해진자신의조직력만믿는다면, 하향평준화를강요하는자본의대공세에피눈물을흘릴것이다. 물론비정규직도공격받을것이다. 어쨌든자본의대공세앞에서의미를갖는것은정규직이냐비정규직이냐가아니라광범한노동자대중과함께하는노동조합의단결력과투쟁력일것이다. 자, 노동귀족 소리를듣는정규직의미래가이처럼위태롭게흔들리는데도, 여전히정규직화만이삶을바꿀희망이라고말할수있을까? 그것도광범한노동자의단결을포기하고기왕의작은단결마저깨뜨리는그런정규직화가말이다. 자본주의아래서노동자의삶을지켜줄수있는것은오로지노동자의단결이다. 나아가단결을지속적으로확대하는것이다. 지금당장정규직이되지못할지언정단결을지켜내고확대하는노동자에겐든든한미래가있다. 그러나단결을포기하고파괴하며구걸한정규직화는 패가망신으로귀결되는로또당첨 일뿐이다. 전열을정비하고다시일어서야한다 - 그러나무엇을위해? 9 주기추모제에서,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기필코정규직사원증을쟁취해서류기혁열사의영전에바치겠노 8
라고다시한번다짐했다. 이어렵고위태로운상황에서물러서지않겠다는그비장한다짐을존중한다. 박수를보낸다. 그러나좀더생각해보자. 생전의류기혁열사는자본주의가강요하는생존경쟁에남들처럼잘적응하지못했고그래서어리숙하다는취급도받았지만알고보면참으로진실하고순박한청년이었다고한다. 비정규직노조가 2005년불법파견철폐투쟁에서끝내대중적투쟁을끌어내지못하고패배하는것을너무나가슴아파했고그고통과울분을안고세상을떠났다고한다. 그런데그런류기혁열사가진정바란것이정말로단지 정규직사원증 이었을까? 정규직이되면, 순박한열사가잘적응하며행복하게살수있었을까? 열사가하나밖에없는자기목숨을바친것은, 더이상동료들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나아가이땅의모든노동자들이비참하게살지않기를바라는그마음아니었을까? 그렇다면열사의정신을기리는진정한길은무엇일까? 정규직사원증 을갖든못갖든동료애를바탕으로노동자계급전체를위해살아가고투쟁하는것이아닐까? 그런정신으로살아가고투쟁함으로써적어도 비정규직없는세상 은만들어낼때, 그래서 노동해방세상 으로힘차게달려갈때, 열사의한맺힌원혼을진정으로달랠수있는것아닐까? 우리모두의삶이또한진정으로원하는것처럼말이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