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51 한국개혁신학 41 (2014): 151-77. facere quod in se est 를 둘러싼논의 정원래 ( 총신대, 역사신학 ) < 한글초록 > 본논문은스콜라주의로부터종교개혁에이르는동안 facere quod in se est 의이해에관하여살핀다. 이를위해토마스아퀴나스, 가브리엘비엘그리고마틴루터에게서상기개념을살펴보았다. 아퀴나스에게이 본성에따라행함 은하나님의은혜로존재를부여받은인간의자연스러운행위로설명된다. 비엘은 최선을다하는것 으로이해하며, 유명론적신학이가져온회의주의를극복하기위한중요한단초가된다. 그러나그가말하는 최선을다하는것 은전통적교회와성례에대한최선을의미한다. 결국비엘에게최선을다하는것은당시의교회에서제시하는실천적삶을옹호하는성격을지닌다. 반면루터에게는 자기자신안에있는것을행함 으로이해되며, 주로구원론과관계하여설명하고있다. 즉구원론에서루터에게유일한행위자는그리스도인까닭에 자기자신안에있는것을행하는것 은펠라기우스적으로이해된다. 이세신학자들은동일한 facere quod in se est를서로다른지평에서논하며, 서로다른견해를드러내고있다. 따라서이개념을평면적으로이해하기보다는각각의논의를주목하며고찰할필요성이있다. 투고일 : 2013. 10. 30. 수정투고일 : 2014. 2. 7. 게재확정일 : 2014. 02. 11.
152 한국개혁신학 41 (2014) 주제어 : 본성에따라행함, 최선을다하는것, 자연과은총, 구원의확신, 유명 론적신학, 신적수용 I. 서론 스콜라주의에서종교개혁에이르는동안매우중요한논의의하나였던, facere quod in se est 1 의해석에는다양한신학주제가내포되어있다. 우선적으로는은총과자연의관계를드러내는문제로서로마가톨릭교회와종교개혁진영이가장첨예하게대립한주제이기도하고, 2 인간의지식 과 신지식, 즉계시 (revelation) 와이성 (reason) 의관계성을설명하는물음으로서이해되기도하며, 3 예정과은총의교리와밀접하게연관되었을뿐만아니라, 4 자유의지와은총상관성에서논의되기도하였다. 5 스콜라주의자였던토마스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45-1274) 에게 본성에따라행함 (facere quod in se est) 은주로인간의본성에관한존재론적고찰에서논의된다. 본성에따른행위란인간의자연스러운행위로서이해되며, 창조주하나님으로부터존재를부여받은인간의행위이다. 따라서본성에따라행함 1 이재하, 한성진등은 최선을다하는것 으로번역하고 [ 이재하, 루터의시편주석에나타난진정한겸손. 1 (http://www.cwmpcts.org/195; Alister E. McGrath, IUSTITIA DEI: A HIstor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한성진역, 하나님의칭의론 - 기독교칭의론의역사 ( 서울 : CLC, 2008), 127)]. 정병식, 홍지훈등은이를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하는사람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정병식, 홍지훈역, 종교개혁과반종교개혁 (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12), 3, 52, 198] 으로번역한다. 여기서필자는 최선을다하는삶 이나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이라는표현이문자적의미에더충실한듯보이나, 논지의필요성을위해일차적으로 본성에따라행함 으로번역하고논리의전개에서위의표현들을모두사용하고자한다. 2 J. Aertsen, Nature and Creature. Thomas Aquinas's Way of Thought (Leiden, New York: E. J. Brill, 1988), 384ff. 3 Heiko A.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2), 96. 4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89-92. 오버만은 facere quod in se est 의논의는 하나님의초월적주권 과 인간자신의구원에관한책임성 사이의다리를형성하며, 또한철학적불확실성에사로잡힌신앙적회의주의를극복하는역할도지니고있다고주장한다. 5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65.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53 의논의는자연스럽게자연과은총의문제로연결된다. 6 이러한견해와는달리 14 세기에들어와서유명론의영향을받은신학은 본성에따라행함 을다른관점에서논의하기시작했다. 예를들면유명론적신학을대변하는한사람가브리엘비엘 (Gabriel Biel) 자기의최선의다하는자에게하나님께서은혜주시기를거부하지않으신다 (facienti, quod in se est, Deus non denegat gratiam) 고주장한다. 7 이러한주장은종교개혁자들과반 (semi)-펠라기우스주의로부터강력한비판을받았다. 특히종교개혁자루터는비엘이 최선을다하는것 에관하여자신의주장을뒷받침하기위해토마스의권위에의존하자 현재의박사 (doctores moderni, Biel) 나 과거의박사 (doctores antiqui, Aquinas) 모두펠라기우스주의자라고비판했다. 8 하이코오버만을비롯한신학자들은비엘의주장을루터와동일선상에서이해한다. 9 그러나최근의몇몇연구자들은비엘이펠라기우스주의적신학자라는평가는정당하지못하다고주장한다. 10 특히앨리스터맥그래스는비엘이 최선을다하 dub. 4. 6 ST (=Summa Theologiae), I-II, q. 109. a. 2. 7 Gabriel Biel, Collectorium ex occamo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I, dist. 27. q. 1. a. 3. 8 Heiko A.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3ff.; 이재하, 루터의시편주석에나타난진정한겸손, 9;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기독교사상사 II, 이은재외 (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7), 54. 9 Obermann, Havest of Medieval Theology, 132. 10 Dettloff, Werner, Biel, Gabriel, TRE Bd. 6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80), 488; McGrath, Iustatia Dei, 146ff. 한논평자는요셉로츠 (Joseph Lortz), 오토페쉬 (Otto Pesch), 그리고데이비드스타인메츠 (David Steinmetz) 등의일련의연구들이스콜라신학과개신교신학의연속성에보다주목하려는최근의연구동향을소개하고있다. 이와관련하여필자의연구를덧붙이면페쉬 (O. H. Pesch) 는루터와아퀴나스사이의칭의론에서공통점을드러내려고노력하였다. 페쉬에게있어교리적차이는같은내용적측면에서가아니라오히려이둘의기독교신학을구분되는혹은정당화하는방법의표현에기인하는것같다고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지혜론적인 (sapientialen, Thomas), 다른편에서는 실존적인 (existentiellen, Luther) 표현이다 [O. H. Pesch, Theologie der Rechtfertigung bei Martin und Thomas von Aquin (Mainz: Mattias- Gruenewald, 1985), 935-48]. 페쉬의이러한주장에대하여에벨링 (E. Ebeling) 은강력하게비판을하고있다. 이러한논거는루터의언어사용이나내용이해에서어떠한일치점도갖지못한다. 루터에게있어서도신학은 지혜 (sapientia) 이다. 단지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인개념에서가아니라바울적인지혜개념이근저에놓여있다 (G. Ebeling, Lutherstudien II/3. s. 66 mit Anm. 227). 이러한논쟁점들에반대하여쿤 (U. Kühn) 과포스터 (H. Vorster) 의매우통합적인 (ökumenisch) 관점을지향한다 [U. Kühn, Thomas von Aquin und die evangelische Theologie, in Ludger Oeing-Hanhoff (Hrsg.), Thomas von Aquin 1274/1974 (Muechen: Koesel- Verlag, 1974). 13-31; Via Caritatis. Theologie des Gesetzes bei Thomas von Aquin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5); H. Vorster, Das Freiheitsverständnis bei Thomas von Aquin und Martin Luth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5)]. 쿤은신앙에있어서교부들의신학으로서중세신학과의만남을시도한다. 포스터는그의저서 토마스아퀴나스와마틴루터에있어서자유의이해 (Das Freiheitsverständnis bei Thomas von Aquin und Martin Luther) 에서가톨릭과종교개혁이신학사이의논쟁을넘어아퀴나스를다룰것을요구한다. 중세신학과의대화의시도에는그것이복음주의신학에게매우유익할것이라고하는바람 ( 희
154 한국개혁신학 41 (2014) 는행위 를 은총은초래하는행위 로이해하기보다는오히려 하나님의결정과약속 에따른행위로이해하고있으며, 때문에비엘의주장을신적계약이라는상황 (context) 에서평가되어야한다고주장한다. 11 이것이의미하는바는, 비엘에게 최선을다하는삶 (facere quod in se est) 은구원의담보가아니라, 하나님의약속이기에붙들고나아가는신자들에겐하나님이은총을주신다는것이다. 12 하지만루터에게 인간이최선을다할수있다는생각이야말로더도덜도아닌펠라기우스주의자체다. 13 왜냐하면루터에게인간은스스로선한것을원할수도알지도못하는까닭에,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하는것 (facere quod in se est) 은죄를범하는것과다름없다. 14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facere quod in se est) 의논의와관련하여오버만은루터가 시편주석 을통해서비엘의 반-펠라기우스 (Semi-Pelagian) 적구원론을완전히포기하였다고평가한반면, 맥그래스는루터의 시편주석 에서는여전히비엘의견해를추종하고있다고엇갈린평가를내리기도한다. 15 이렇게세신학자의 facere quod in se est는서로다른지평에서주로논의된다. 이를조금더세밀하게살펴보면, 토마스에게있어서, facere quod in se est의문제는인간에대한존재론적관점에서자연과초자연의관계성의정립에주목적이있었다면, 비엘의관점은유명론적인신학의회의주의 16 혹은불확실성에마주하여, 하나님의약속의신실성을통해근대적경건운동이지향하던실천적신앙을지원하고있는것같다. 그반면에루터에게 facere quod in se est는주로구원론에서의 자유의지와은총 (will and grace) 의관계에서고찰된다. 17 이처럼 facere quod in se est에관한이해는실제로신학적관심과결론에서커다란변화속에자리한다. 이러한변화에영향을끼친것은무엇이며, 각자가이논의와관련하여주목하 망사항 ) 이자리하고있다 (U. Kühn, Via Caritatis, 13). 11 McGrath, Iustatia Dei, 146. 12 McGrath, Iustatia Dei, 146-47. 13 WA 56. 382. 26-7; 502. 32-503. 5. 14 WA 1.148: Homo quando facit quod in se est, peccat, cum nec welle aut cogitare ex seipso possit. 15 이재하, 루터의시편주석에나타난진정한겸손, 1-2; McGrath, Iustatia Dei, 129. 16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86. 14세기전체적인신학의특징을회의주의 (Scepticism) 로제시한다. 17 Seeberg, Christliche Dogmatik., Bd. I, 488-89.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55 고있는부분이무엇인지를검토하는것은스콜라신학과종교개혁신학을보다분명히하는데기여할것으로판단된다. 먼저토마스에게서 facere quod in se est에관한이해에서자연과은총의관계를설명하고, 이어서토마스적견해에커다란변화를초래한유명론적인전제들을제시한다. 그리고비엘에게서 facere quod in se est의해석을검토한다. 마지막으로루터에게서 facere quod in se est를고찰하고, 에라스무스와의 자유의지 에관한논의를살펴봄으로써, 스콜라주의에서종교개혁으로넘어가는시기에자연과은총을둘러싼논점의변화를드러내고자한다. 여기서필자가주목하는점은어느관점을변증하는작업이라기보다는그러한변화를초래한근거혹은결과들을보다선명하게함에있다. II. 토마스아퀴나스에게서의 본성에따른행함 (facere quod in se est) 전통적인아우구스티누스의자연에대한이해는자연을타락이전의상태와이후의상태로서로구분한뒤에, 은총을타락한상태의자연과대립시키고, 자연을회복하시는하나님의행위로이해하고있다. 18 이와는달리토마스는타락여부를떠나서자연 ( 존재 ) 은하나님의은총에의해주어진것으로파악한다. 존재를주심 (dare esse) 은신적은혜의시작이자근본이며, 오로지하나님만의행위이다. 19 또한하나님의은총이없다면인간의본성자체는존재하기를그만둔다. 존재는토마스에게선을의미한다. 20 따라서토마스에게자연은은총과대립적으로이해되지않는다. 오히려기독교신앙에따른 무로부터의창조 (creatio ex nihilo) 를믿는토마스에게하나님은자연에존재를부여하고 ( 원인인 ), 그자연을목적으로향해나 18 A. M. Fairweather(ed.), Aquinas on Nature and Grace: Selections from the Summa Theologica, 손은실 박형국역, 신학대전 : 자연과은총에관한주요문제들, 42. 손은실은아우구스티누스의자연과은총에관한태도를타락한자연과은총의대립에서설명한다. 19 I. Sent. 37. 1. 1. c. Creare est dare esse. 20 ST I. q. 5. a. 1 et 3; I. 16. 3; 17. 4 ad2; 48. 3 ad3; SCG I. 28.
156 한국개혁신학 41 (2014) 아가게하며 ( 능동인 ), 목적이된다 ( 목적인 ). 토마스의논리적전개는존재에서부터능력으로, 그리고능력으로부터행위로나아가고있다. 그의기본적인사유는 그것은존재하는가 (An sit) 에서, 그것은무엇인가 (Quod/quis sit) 로, 다시여기서그것은 어떤종류인가 (Qualis sit) 로전개되는특성을지닌다. 21 따라서토마스의자연과은총에관한이해에서도, 인간은그존재자체가이미하나님의은총이며, 궁극적인선인하나님을향한인간의행위역시하나님의은총에기인한다는전제에서출발한다. 이런점에서토마스의은혜론을 존재론적은혜론 (Ontologische Gnadenlehre) 22 이라고부르는것은정당한근거를지닌다. 토마스는인간을본성적으로하나님을알려고하며, 갈망하는존재로파악한다. 이러한관계성이깨어지도록한악은타락으로인해생겨나는것이지본성으로인해생겨난것이될수없다. 그러므로 본성에따른행위 는하나님의은총으로존재를부여받은인간의행위이다. 본성에따른행위 는은총을전제로한다. 토마스에게서 본성에따른행위 의문제는, 인간이본성적행위에의해초자연적인신을인식하는것이실제로가능한가라는질문과연결된다. 다르게말하면 본성에따른행위 와 하나님의은총으로서의구원 이어떠한관련성을갖느냐의질문이다. 이질문에대한토마스의대답은부정적이며그근거는두가지다. 이는본성에따른행위자체가가진내적인한계성과죄로인한인간본성의타락을말한다. 먼저첫번째상태의사람에의해서도인간은은총이없이는 본성에따른행위 의공로로영생을얻을수없다. 이는영생이본성을초월하는것이기때문이다. 23 두번째죄는하나님에대한거역이므로, 죄는우리를영생으로부터배제시킨다. 따라서죽을죄의상태로살아가는누구도먼저죄의용서를통해-이것은은총으로이루어진다 - 하나님과화해하지않으면영생을얻을수없다. 24 그러므로토마스는 본성에따라행함 은구원의은총에합당한공로를쌓 21 R. Muller, After Calvin: 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a Theological Tradition, 한병수역, 칼빈이후개혁신학 ( 서울 : 부흥과개혁사, 2011), 70. 특히신학대전에서인간에관한논의가바로이순서에따라진행되었다. 22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38; Otto Herman Pesch, Thomas von Aquino/Thomismus/Neotheomismus, RE Bd. 33, 455. 23 ST, I-II. q. 112. a. 1: nulla res agere potest ultra suam speciem: Donum autem gratiae excedit omnem facultatem naturae creatae: cum nihil aliud sit quam quaedam participatio divinae naturae, quae excedit omnem aliam naturam. 24 ST, I-II. q. 114. a. 2.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57 을수있다는자연적가능성자체를부인했다. 비록원죄이전의인간은그본성에적합한선을얻기에충분한힘을가지고있었다고하더라도, 그때에도초자연적인선은본성상불가능했다. 더욱이타락은인간은본성에따른선이나초자연적인선을모두불가능하게한다. 25 토마스에게서하나님의은총의필요성은 존재의구조 가낳은필연성에기인한다. 26 토마스에게하나님은총의선물은본성의모든능력을넘어선다. 왜냐하면은총은모든다른본성을넘어서는신의본성에참여하는것과다른것이아니기때문이다. 그러므로그에게피조물이은총의원인이되는것은불가능하다. 27 판넨베르크 (W. Pannenberg) 는이부분에서토마스가펠라기아누스주의에대하여명백히거부한다고해석한다. 28 그러나문제는여전히남아있다. 그것은인간의행위가가지는의미의문제이다. 앞에서의구원얻는은총에관한언급에서인간적행위들은전혀의미들을지니지못한다. 그렇다면운명론혹은결정론을피하기어렵다. 여기서판넨베르크는다음과같이질문한다. 토마스는아베로에스적인결정론을어떻게피해가는가? 판넨베르크는토마스가은총을두가지로분류할수밖에없었다고평가한다. 즉작용적은혜와습성적은혜 (habitual grace) 로서은혜를구분하는것이다. 29 먼저토마스는습성적은총을덕으로보는전통적견해에동의하지않는다. 30 토마스에게덕은은혜가아니라, 은혜의결과로서나타난것이덕이다. 영혼의본질이행위의원리가되는능력이듯이, 은총은영혼의능력에들어가서이것들을움직이는덕들의근원이다. 그러므로은총의의지에대한관계는움직이는자의움직여지는것의관계와같은데, 이는기수의말에대한관계와같은것이다. 31 이렇게은혜 25 ST, I-II. q. 109, a. 2. 26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46. 27 ST I-II. q. 112. a. 1 28 Pannenberg, Wolfhart, Thomas v. Aquino, Art., RGG 3 (1962), 860. 29 Pannenberg, Thomas v. Aquino, 860. 30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54. 공성철은습성적은총과덕을구분하는것이야말로아퀴나스를 아벨라르 (Abelard) 에게서출발하여롬바르두스와프란체스코파그리고새로운펠라기우스주의인빌 (Gabriel Biel) 과오캄 (William Okham) 과같은길을가지않을수있게하였다. ( 토마스에게 ) 하나님으로하여금은혜를주지않으면안되도록하는것은없으며, 혹시그렇게자유의지의노력이있었다면그것마저도하나님의은혜가일으켰다 고이해한다. 31 ST, I-II. q. 110. aa. 3-4: sicut ab essentia animae effluunt eius potentiae, quae sunt operum principia; ita etiam ab ipsa gratia efflunt virtutes in potentias animae, per quas potentiae moventur ad actus. Et secundum hoc gratia comparatur ad voluntatem ut movens ad mutum, (a. 4, ad. 1).
158 한국개혁신학 41 (2014) 와덕을구분하는것은인간에게서선을행하는주체가누구인지를분명히하는결과를낳는다. 습성적은혜가덕이라고할때에그주체는 ( 인간의 ) 영혼이된다. 하지만습성적은혜가덕의원리이자선행하는무엇이라고할때, 그주체는하나님이된다. 32 토마스에게서습성적은혜와작용적은혜를달리표현하면 작용하는은혜 (gratia operans) 와 협력하는은혜 (gratia cooperans) 라고할수있다. 33 즉죄인의칭의는작용 ( 역사 ) 하는은혜로서, 어떠한형태의인간적인기여도성립하지않는다. 따라서우리는하나님께서인간의마음을의지의변화를가져오는방식으로움직이기때문에 작용적은총 이라말할수있다. 34 이러한작용적은총의외적인결과가 협력적은총 이라할수있다. 35 작용적은총으로서는내적으로역사하시고, 협력적은총으로서는외적으로역사한다. 36 한편토마스에게 본성에따라행함 의논의에는내포된중요한또하나의명제가자리하고있다. 그것은바로 은총은자연을파괴하는것이아니라완성한다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37 는것이다. 이러한사고는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유래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은자유의지를폐지시키는것이아니라, 사실상자유의지를완성시킨다 38 고주장하였고, 그의주장을일반화시킨표현이앞선명제이다. 이러한아우구스티누스의사상은중세전체를걸쳐성경에버금가는권위를가지며스콜라주의신학자들의신학에서중요한전제로자리한 32 ST, I-II. q. 110. a. 4. 33 ST, I-II. q. 111. 34 ST, I-II. q. 111. a. 2. 하나님의작용적은혜는 의지의내적인작용으로의지가움직여지고하나님께서운동자가되시며, 특히이전에악을원하던의지가선을원하기시작할때일어난다 ( voluntas se habet ut mota, Deus autem ut movens). 35 ST, I-II. q. 111. a. 2. Lonergan 은아퀴나스에대한의지와은총의연구를통해, 의지가 움직이는자가아니라움직여지는자로서 역할을할때 (mota non movens) 는 작용적은총 (gratia operans) 를의미하며, 움직여지는자이며동시에움직이는자로서 (mota et movens) 설때 협력은총 (gratia cooperans) 에따른다고이해하였다 (Grace and Freedom, 147). 36 Hütter, Reinhard, St. Thomas on Grace and Free Will in the Initium Fidei: The Surpassing Augustinian Synthesis, 553. 37 참조. 토마스아퀴나스, II. Sent. d. 9, q 1. a. 8, arg. 3; ST I. q. 1. a. 8. ad. 2. Hütter, Reinhard, St. Thomas on Grace and Free Will in the Initium Fidei: The Surpassing Augustinian Synthesis, Nova et Vetra, English Edition, 5/3 (2007): 540. 38 Augustinus, De spiritu et littera 30. 52: Liberum ergo arbitrium evacuamus per gratiam? Absit; sed magis liberum arbitrium statuimus quia gratia sanat voluntatem, qui iustitia libere diligatur.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59 다. 39 따라서스콜라주의자였던토마스에게마찬가지로자연은하나님에의해주어진것으로이해하고, 은총은자연을완성하는것으로이해한다. 즉 본성에따라행함 이라고할때, 은총은자연을완성한다 는주장은상호긴밀한관계에서서는까닭에은총을자연과대립하고있지않다. 40 이러한자연과은총의이해가 작용적은총 과 협력적은총 의구분을보다용이하게하고있다. 앞에서언급한토마스의 본성에따라행함 의논의가자연과초자연의상호연관성에서파악되고하나님의은총과인간의노력과수고를모두긍정적활동영역을구축하는체계를확보하기위한중요한전제가있다. 그것은 토마스의은혜론은초자연과자연을연결해주는연속성과초월성을보장하는 존재적유비 가받아들여질때가능한체계이다. 41 즉토마스의자연과초자연의세계사이에는무한한심연이자리하지만, 유비적인관계에있다. 달리말하면이와같은존재론이창조론에근거를할때, 즉기독교창조론을수용할때설득력을지닌다. III. 본논의에끼친유명론 (Nominalism) 의영향 토마스가자연과초자연의세계가영원히넘을수없는차이가있다고주장한다면, 거기에는 존재론적유비 에따른두세계사이의관계가성립할수없다는주장이나올수있다. 아니면아예존재의세계가꼭둘로나눌필요성이없이동일한존재의체계로보아야한다고할수도있다. 전자는둔스스코투스 (Duns Scotus) 의입장이고, 후자는마이스터에크하르트 (Meister Eckhart) 의입장이다. 42 스코투스는존재의개념에대하여는동의하면서도, 존재에대한파악은 일의적 (univoque) 일수밖에없다고주장한다. 또한우연적존재에대해파악한개념을존재로서의존재에대한개념에적용할수없다고보았다. 따라서스코투스에게자연 39 참조. 토마스아퀴나스, II. Sent. d. 9. q 1. a. 8, arg. 3; ST I. q. 1. a. 8. ad. 2. Hütter, Reinhard, St. Thomas on Grace and Free Will in the Initium Fidei: The Surpassing Augustinian Synthesis, 540. 40 Fairweather, Aquinas on Nature and Grace: Selections from the Summa Theologica, 20. 이편집자는위와같이토마스에게서자연혹은본성을하나님과의대립적관계에세우지않는다. 41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59. 42 공성철, 토마스아퀴나스의은혜론 - 전통 (traditio) 과이성 (ratio) 의종합, 59.
160 한국개혁신학 41 (2014) 적질서와초자연적질서는하나의구조에서파악되는것이아니라철저하게단절될수밖에없다. 43 필자의다른연구, 스콜라주의의종말-하나님께로향하는새로운통로 : 의지 (voluntas) 에서고찰한바에따르면, 스코투스, 오캄등의유명론적인주장의출발은아리스토텔레스의영향을받은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영향에기인한다. 44 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은아리스토텔레스의사상인 논리적필연성 (rationes necessariae) 의문제를학문적신학적문제에투영하였다. 그결과신앙적모든결과들은논리적인과관계에따라야한다고주장하게된다. 논리적필연성 의문제를 본성에따라행함 의논리에적용한다면구원은철저하게인과적결과에종속하게되는극단적펠라기우스주의가될수밖에없다. 결국 1270년과 1277 년에걸친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대한정죄를통해서분명히한것은논리적인과관계를파악하는이성은한계가있으며하나님은 논리적필연성 에매이지않는절대적자유의지를지닌존재라는것이다. 이를잘드러내주고있는것이스코투스와오캄의신학이며, 그들의사유의핵심은 존재론적유비 에따른이해가아니라 존재의일의적개념 과 이것됨 (Haecceitas) 을통해서논리적필연성의극복과하나님의자유하심에대한논증이다. 그결과한편에서는이성의한계를또다른한편에서는하나님의절대주권을분명하게강조하였다. 이를통해이성적판단과신앙의다름에대한지적할수있는가능성을열었다. 스코투스는신학적논의에서 하나님의절대능력 (potentia Dei absoluta) 은모든것이가능하며, 하나님의행위는근본적으로어떠한인과관계 ( 혹은필연성 ) 에매이지않는다고적고있다. 이것이우리에게알려지는것은오직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규정된능력 (potentia Dei ordinata) 들이계시되기때문이다. 45 오캄도이러한경향은분명히나타난다. 오캄역시인간행위의의미에대한물음이제기하였다. 여기서오캄은인 43 정원래, 스콜라주의의종말 - 하나님께로향하는새로운통로 : 의지 (voluntas), 한국개혁신학 31 (2011): 218-51. 44 정원래, 스콜라주의의종말 - 하나님께로향하는새로운통로 : 의지 (voluntas), 226. 45 Sattler, Schneider, Handbuch der Dogmatik I. Hrsg. Theodor Schneider, 189; 둔스스코투스는 하나님의절대적인능력 (potentia Dei absoluta) 와 하나님의규정된능력 (potentia Dei ordinata) 의개념을명제집 1 권 d. 17 의주석에서칭의론의핵심으로제시하였다 (W. Dettloff, Duns Scotus/Scotismus, I, TRE Bd. 9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82), 227.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61 간의행위가신적인의미를지니는것은오로지 신적수용 에있다고주장한다. 46 오캄에게하나님의절대적인권능으로하나님은어떤습성이없더라도, 또는창조된습성을우회하고도영혼의영생을준비하거나영혼을받아들일수있다. 또한개인에대한하나님의영생수여와은총의비전은결코창조된습성의수용에따른결과가아니며독립적이다. 47 그러므로오캄에게은총이란본질적으로하나님께서그인간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토마스나다른신학자들의주장처럼은총이인간을진리와선을향해행동하게하는것이아니라모든것이하나님의의지적결정에달려있다. 오캄에게공로가될지공로가되지않을지의결정은전적으로신적의지의범주에속한것이므로, 도덕적행위는언급할가치를지니지못한다. 48 그입장은베른하르트로제 (B. Lohse) 가지적한것처럼오캄의신학은신의의지적결정이자의적으로보이게될위험성이있다. 49 맥그래스의표현을빌리면, 이는구원의질서가 급격한돌발성 을지니게한다. 50 또한앞서언급한 이것됨 (Haeceitas) 의논리는인간적행위와신적인행위사이의의미의연결고리를차단한다. 51 이제인간의행위는그자체로서의의미만지닐뿐이다. 이러한유명론적신학은회의주의적입장을낳게되며, 신앙적가르침에대한확실성에의문을제기하게만든다. 결국 14세기는전체적인 신학적회의주의 를낳기에이른다. 52 이러한회의주의에맞서유명론적신학은비록인간의 본성에따른행위 의가치는무시할만한것이지만, 하나님께서인간의행위를구원의가치가있는것으로수용한다는오캄의주장을발전시킨다. 즉하나님은스스로의제한 ( 혹은 46 W. Ockham, Opus Oxoniense III dist. xix q. 1. 7: Dico, quod sicut omne aliud a Deo, ideo est bonum, quia a Deo volitum, et non est converso: sic meritum illud tantum bonum erat, pro quanto acceptabatur. 47 W. Ockham, I. Sent. dist. xvii q. 1. 48 McGrath, Iustatia Dei, 203. 49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39. 50 AMcGrath, Iustatia Dei, 216. 51 Hütter, St. Thomas on Grace and Free Will in the Initium Fidei: The Surpassing Augustinian Synthesis, 524. 여기서 Hütter 는오캄과유명론의본질적특성은 철저한경험론 (radical empiricism) 으로요약한다. 52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86: 당시철학자회의론자들은, 중세의흄이라고불렸던오트레구르트의니콜라스 (Nicholas of Autrecourt), 장뷔리당 (John Buridan) 등을거론할수있다 (E. Gilson, History of Christian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김기찬역, 중세기독교철학사 ( 서울 :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691-704).
162 한국개혁신학 41 (2014) 계약이나약속 ) 에서인간의행위에 가치를부여 한다. 결국이는 하나님은최선을다하는자에게결코은총을거절하시지않을것이다 라는주장의토대가된다. 유명론적신학은이러한신적수용과하나님의약속이야말로회의주의와펠라기우스적인주장을극복할수있는것으로여겼다. 53 결국 최선을다하는것 은유명론자들에게신앙과이성의불일치를인정하면서도하나님을추구함에있어서개인의도덕적지적책임을-최선을다하는삶을- 다하도록하는실마리가된다. 54 14세기중반에활동했던로버트홀코트 (R. Holcot) 의논리전개역시유명론적신학의전형적인모습이다. 홀코트는 본성에따라행하는자들 이구원에필수적인신앙의조항들에관한충분한지식을획득할수있고, 이러한삶이 최선을다하는삶 이라고주장한다. 그러나그에게구원의필수적인신앙은반이성적이아니라이성을초월하는지식이다. 55 따라서홀코트에게구원의계시는하나님을찾고이해하기위해자신의합리적이성을최대로사용하는자들에게인정된다고주장한다. 즉 최선을다하는삶 으로 인정되는 자들에게구원의계시 ( 은총 ) 가허락된다. 여기서홀코트의 최선을다하는삶 은오캄주의적은총의교리와연결된다. 56 따라서홀코트에게 최선을다하는삶 은초월적이성에대한회의에서하나님의약속에대한신뢰로나아가는핵심적역할을한다. 57 유명론적신학에서인간은계시없이는철학적불확실성에사로잡히게되는까닭에, 홀코트는하나님의약속에대한신뢰에의해서회의주의를극복해야한다고주장한다. 58 회의주의에대한유일한극복의수단이야말로경험 이라는질송의말처럼, 59 유명론이낳은 14세기의회의주의를극복하는 최선을다하는삶 은신앙의실천성을강조하는 근대적경건운동 (devotio moderna) 에서빛을발하였다. 이처럼유명론적인간의행위이해는토마스의존재론적인은총론에본질적인변화를가져오는계기가되었다. 53 McGrath, Iustatia Dei, 273-74. 54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6-97. 55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88. 56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89. 57 Holcot, Super libros Sapientiae III, 35. 58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2. 59 Gilson, History of Christian Philosophy in the Middle Ages, 중세기독교철학사, 697.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63 IV. 가브리엘비엘 (Gabriel Biel, 1410-1495) 에서의 최선을다하는행위 (facere quod in se est) 서론에서말한것처럼비엘에게서 최선은다하는행위 는거의 정형적 으로펠라기우스적사고로이해되었다. 최근의몇몇연구들이이러한견해가정당하지못한것으로평가되지만여전히비엘의 최선을다하는행위 는구원에있어인간의공로를강조하는중요한개념으로이해되고있다. 본장에서는전통적인비엘에대한평가와그에반하는현대적인연구의결과들을서로비교하면서, 비엘의논리적근거가무엇인지를드러내고자한다. 먼저비엘의삶과역사적배경에대한고찰을다룬다. 1484년부터튀빙겐대학에서활동했던비엘은스콜라후기신학자, 근대적경건운동그리고인문주의적인개혁신학을대표하는인물이다. 비엘의 롬바르두스명제집 주해가가장주목을받지만 최선을다하는이에게하나님은은혜주시기를거절하지않는다 60 는주장이들어있기때문에, 비엘의신학적사유의바탕이된역사적배경들을간과할수없다. 비엘은하이델베르크, 에어푸르트그리고튀빙겐에서공부한후 1457 년초마인츠성당의설교자가된다. 그는 60세가되어튀빙겐대학에서학생들을교수하기이전까지설교자였고, 대표적인 근대적경건운동 (devotio moderna) 의주동자였다. 비엘은 1463년대주교인아돌프나사우 (Adolf v. Nassau) 가마리엔탈 (Marienthal im Rheigau) 에공동체생활을하는형제들의집을세울때참여했다. 61 1468년이전에비엘은공동생활형제단의일원이되었다. 1468년 11월부츠바흐 (Butzbach) 에설립된형제회의하우스 (Hause) 교장 (rector) 이되어학교를설립하였다. 1471년경에는상부라인강유역의공동생활형제단은비엘의지도하에들어오게된다. 비엘은동료들과함께공동생활을하는공동체를지속적으로세웠으며- 우라하 (Urach, 1477), 헤렌베르크 (Herrenberg, 1480), 데팅엔 (Dettingen, 1482)-, 1484년튀빙겐대학의교수가된뒤에도근대적경건운동형제단의공동체를세웠다 ( 다헨하우젠, Dachenhausen, 1486). 62 dub. 4. 60 Gabriel Biel, Collectorium ex occamo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I, dist. 27. q. 1, a. 3. 61 Dettloff, Werner, Biel, Gabriel, TRE, Bd. 6 (Berlin, New York: de Gruyter, 1980), 488. 62 Werner, Biel, Gabriel, 488. 비엘과근대적경건운동과의관련성은이미란덴 (W.A. Landeen)
164 한국개혁신학 41 (2014) 비엘이처음근대적경건운동에참여하여나사우 (Nassau) 의후견인으로마리엔탈에공동생활형제들의집 (Hause) 을세우는동안 사도적순종에대한변론 (Defensorium oboediente apostolicae) 을저술하였다. 이저술은근대적경건운동의목적인 그리스도를따르면서하나님의뜻에부합한덕스러운삶을살도록인간의지를새롭게하는데그목적이있다 고할수있다. 63 이것이공동생활형제단의궁극적인목적이기때문이다. 이러한비엘의사고는 롬바르두스명제집 주해의서문에보다분명하게제시되었다. 비엘은신학자를여행중에있는나그네 (viator) 로파악한다. 64 신학자는아직여행의목적지에도달한것이아니라여행중에있고, 순례자의목적지는아직분명하지않다고말한다. 즉여행중에있는사람은누구든지아직축복받지도않았고, 최후로정죄받지도않은사람이다. 이는앞서언급한것처럼, 신앙에대한회의를낳을수있다. 비엘은 롬바르두스의명제집 을해설하는가운데이문제에관하여자신의견해를드러낸다. 즉 할수있는것을스스로행하는사람이나이성이파악한하나님의법에의지로동의하는사람에게하나님은은총을유보하지않는다 (facienti quod in se est, Deus non denegat gratiam) 고주장했다. 65 왜냐하면 하나님의결정과약속 이그러하기때문이며, 신적수용을객관화시키려한다. 그러므로인간은은총을얻기위해서는하나님의인정을받을만한공로를필요로할뿐만아니라하나님은 최선을다하는자 들에게은총을주신다는것을내포하고있다. 이와같은주장의바탕에는두가지핵심적요소들이담겨있다. 첫째는유명론적신학들이주장하는하나님의절대적인자유다. 비엘은하나님의의지는올바름이나잘못됨과는근본적으로독립적인것이라고선언함으로어떠한도덕적체계도초월하는신적의지의우월성을강조한다. 만일신적의지가단순히선이나올바름에대한승인정도라면하나님의의지는창조의도덕적인원리에종속될것 에의해서 1950 년대에많은연구가되었다. W. M. Landeen, Gabriel Biel and the Brethren of the Common Life in Germany (Church History 20, 1950); The Beginning of the Devotio moderna in Germany (Research Studies of the State College of Washington 19, 1951). damnatus. dub. 4. 63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29. 64 Gabriel Biel, IV. Sent. I, 8: Viator ergo est quisquis, qui neque beatus est neque finaliter 65 Gabriel Biel, Collectorium ex occamo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I, dist. 27. q. 1, a. 3.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65 이다. 그러나선이란하나님이그렇다고인정하실때에만선이된다. 66 이는앞에서오캄의신적자유와신적수용의주장을충실하게나타낸다. 둘째는하나님의약속혹은계약에대한신뢰이다. 비엘이이와같은 최선을다하는삶 은구원의담보가아니라하나님의약속이기에그약속을붙들고나아가는신자들에게는하나님이은총을베푸신다. 그러므로하나님에대한신뢰와하나님과인간의계약적관계는실천적경건이굳건한토대를가질수있게된다. 따라서비엘에게 최선을다하는삶 은단순히신적변덕혹은오캄주의적구원의돌발성에반대하고, 오히려정립된구원의질서를방어하려했을뿐아니라더욱든든하게자리할수있는굳건한신학적토대 ( 언약개념의 ) 를제공하려했다고할수있다. 67 그러나비엘이신앙의불확실성의극복하기위해, 하나님의언약과약속을붙들고, 최선을다하는자에게하나님은은혜주시기를거절하지않으신다 고주장할때, 과연 최선을다하는것은무엇을의미하는가? 비엘이의미하는 최선을다하는삶 이란무엇인가하는것은일반적인통념과는차이가있다. 그것은 각자의주어진삶의여건에서온힘을다하는것 (do one's best) 을의미하는것이아니라교회의전통과성례를통해제시되는가르침에대한충실한이행이다. 68 특히유아세례부터시작해서마지막순간종부성사에이르는전삶의과정에서교회가제시하는성례에충실한것이다. 이런점에서비엘이주장하는하나님의약속혹은계약의내용은성경적근거라고하기에는빈약하다. 토마스적인관점에따르면인간스스로하나님의약속과계명에따른행위가가능한가의문제가제기된다. 이와관련하여타락한인간의자유의지의능력에관한비엘의가르침은펠라기우스주의또는반 (semi) 펠라기우스주의라는혐의가빈번히제기된다. 그러나 비엘신학의계약적인기초에비추어주의깊게조사해볼때, 이러한혐의는근거가다소빈약한것으로보일수있다. 비엘자신이분명히했듯이, 자신의칭의에있어개인의역할에대한논의는반드시신적계약이 66 Gabriel Biel, Canonis missae exposiktio 23E. ed Oberman/Courtenzy, 1, 212; Nihil fieri dignum est nisi de tua benignitate et misercordia voluntate dignum iudicare volueris, neque enim quia bonum aut iustum. Voluntats nanque divina non ex hostra bonitate, sed ex divina voluntate bonitas nostra pendet, nec aliuqid bonum nisi quia a Deo sic acceptum, I Sent. dixt. 43. q. 1, a. 4. 67 McGrath, Iustatia Dei, 217. 68 McGrath, Iustatia Dei, 217.
166 한국개혁신학 41 (2014) 라는정황 (context) 안에놓여야만한다. 69 비엘역시스스로이러한해석은펠라기우스의오류와는아주동떨어진것으로이해하였다. 70 비엘은카르타고공의회포고문결의안제5조를여러차례인용한다. 만일우리가은총없이자유의지로하나님의명령을충족시킬수있다고누군가만한다면, 그것은정죄받을짓이다. 71 비엘이신앙의불확실성을극복하기위해제시한바로그곳에 최선을다하는자에게하나님은은혜주시기를거절하지않으신다 는주장에도하나의약점이나타난다. 이는종교개혁자들이강력하게비판하는부분으로서비엘의주장은그신자들에게는자신의행위가하나님께인정받았는지에대하여끊임없는동요와불확실에사로잡히게했다는것이다. 72 왜냐하면인간의행위를수용하는것이하나님의전적인의지에있기때문이다. 결국비엘은또다시신앙의결정론과펠라기우스주의위험을변형된형태로드러내고말았다. 실상이부분에관하여비엘은 신앙의확실성을담보하는것 을교회의역할로서제시하고있음을인정하지않았기때문으로여겨진다. 앞서 최선의다하는삶 이교회의전통과성례를통해서제시되는것에대한충실이라면, 교회는전통과성례에충실한신자들이구원받은백성임을선포하는역할도한다. 이러한비엘의견해는가톨릭적교회론과성례론에이의를제기하는중교개혁자들에게 최선을다하는삶 과 구원의확실성에대한주장 은결코동의할수없는것으로여겨졌을것이다. 한예로토마스에게고해성사는세부분으로구성된다. 마음의뉘우침 (contritio cordis), 입으로고백함 (confessio oris), 그리고 회개에합당한행위 (actus poenitentis). 73 그러나비엘에게있어고해성사에서가장중요한요소는 사제의용서의선언 (die pristerlichen Absolutionsworte) 에둔다. 74 그러나마음의뉘우침이없이는하나님의 69 McGrath, Iustatia Dei, 146. 70 Gabriel Biel, Collectorium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 d. 17, q. 1 [M. Ritter 외편역, Kirchen-und Theologiegeschichte in Quellen vol. II: Mittelallter, 공성철역, 교회와신학의역사원전 - 중세교회 (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2010), 558 인용 ]. 71 McGrath, Iustatia Dei, 146. 따라서비엘의칭의신학에 펠라기우스적 이라는별명을붙이는것은, 역사적으로건전하지않은일로간주되어야한다 (147). 72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28 73 ST, III. q. 84. a. 3. 74 Biel, Collectorium ex occamo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V, d. 16 a. 3.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67 은혜가전달될수없으며, 사제의사면의선언이죄용서의원인 (Ursache)dm로설명하지는않는다. 75 이러한비엘의견해와달리루터는 참된참회는하나님의사랑으로시작한다 고선언하지만, 1517 년의 95개조논제에서참된회개는면죄부가없어도죄용서와형벌의사면을가져온다 ( 논제 36-40) 고주장한다. 나아가 참된참회가이루어졌다고느끼는모든그리스도인은예외없이면죄부없이도그에게부여되는형벌과죄책으로부터완전한용서를받는다 고선언함으로서비엘이보여주는교회론과성례론의명백한차이를드러낸다. 이는후일멜란히톤이아우구스부르크신조 2-15 항에서인간이 신앙을통해그리스도로말미암아 (propter Christum per fidem) 의롭게된다는표현은 그리스도의낯선의 (fremde Gerechtigkeit Christi) 와연결된다. 특히제3항멜란히톤의선언은비엘의유명론을겨냥하고있다고평가된다. 76 멜란히톤에게비엘은사람이 자기자신안에있는것을행할때 구원의은총을획득할수있다고믿는자였다. 이처럼비엘의은총이해는인간의행위를낙관적으로보며, 인간의내적인정의안에서종말적구원에합당하게만든다고이해되었다. 최선을다하는것 의본질과그가능성에관한근거에비엘과종교개혁자들의교회론적, 구원론적차이가드러난다. 우리는사제설교자이자실천적경건주의자인비엘에게앞서설명한것처럼하나님의 절대적권능 (potentia absoluta) 과 규정된능력 (potentia ordinata) 사이의변증법을도구로사용하여당시의교회의정립된구원의질서를방어하려했을뿐아니라더욱실천적인신학적토대를구축하려했다고할수있다. 맥그래스는비엘이칭의에있어서인간의 선행적행동 (initiative) 을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의언약 (pactum Dei) 을더강조한다고이해한것은설득력이있다. 즉칭의를위한인간의노력은인류구원을위한하나님의계획 (divine program of salvation) 의일부라는것이다. 75 Biel, Collectorium ex occamo circa quattuor libros Sententiarum. IV, d. 14. a. 2. 76 우리공로나행위나업적을통하여죄의용서나하나님앞에서의의를요구할수없으며, 우리는오히려신앙에의하여그리스도의은총으로말미암아죄의용서를받고하나님앞에서의롭다칭함을받을수있다고가르친다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196 에서재인용 ).
168 한국개혁신학 41 (2014) V. 루터에게있어서의 자신안에있는것을행함 (facere quod in se est) 루터에게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은두가지측면에서고찰되고있다. 하나는 계시와이성 의문제와관련해서이고다른하나는 자유의지와은총 의주제에서다. 77 초기루터는유명론적신학의영향하에있었음은논란의여지가없다. 에어푸르트수도원은루터에게성례전을통해매개된은총은공로가되는행위를통해보전할수있다고가르치며, 당시에어푸르트대학에서신학자들은은총의수용을의지 ( 자신에게있는것을행하는것 ) 의성향에매어놓았다. 78 이와관련하여오버만은 1509년말까지루터는신앙과이성에관한유명론적전통에대해서는어느정도독립적이되었지만, 최선을다하는행위 (facere quod in se est) 에관한교리는 1515-1516 년까지유지되고있다고주장한다. 79 앞서살펴본것처럼구원을전적으로하나님의의지에둠으로써오는구원의돌발성혹은불확실성을낳은회의주의를극복하기위해서오캄은 하나님의수용 을비엘과근대적경건운동의지도자들은 하나님의약속과계약 에따른 부여된가치 라는개념에서인간적행위의의미를찾으려하였다. 그러나에어푸르트에서오캄주의적교육을받은초기의루터는 최선을다하는삶 이하나님의은총의전제처럼받아들였다. 80 그리고수도원삶에서루터는은총을받기에적합한모든것을정말다했는지결코알수없어마음졸이며불안해했다. 최선을다하는삶 이무엇인가에대한회의라고할수있다. 결국유명론적이며오캄주의적인신학은루터의내적인영적시련을치료할수없었다. 81 이에루터는점차 최선을다하는행위 를둘러싼고찰을결국구원에있어서인간의자유와하나님의은총의문제로인식한다. 루터는 1515/16 년로마서강 Zusammenhang. 77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7. 78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h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79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6. 80 비엘의입장은팔츠 (Johannes von Palz) 와스타우피츠 (Johannes von Staupitz) 에게서해석의차이를낳았고, 이는서로다른입장의대변하기도했다. 종교개혁시기에이 최선을다하는행위 에대한서로다른견해들이존재했다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39). 81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49-50.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69 의에서오캄적인죄이해와특히인간이그의자연적인능력으로하나님의계명을성취할수있다는유명론적견해에반감을드러낸다. 만약인간이자신의능력으로모든다른것보다하나님을사랑할수있고, 제시된행위들을수행할수있다고주장한다면그것은정말정신나간것이다. 그행위의내용에는적합할지모르나, 하나님의뜻에따른것은아니다. 왜냐하면인간이그것을은혜의상태에서행하지않기때문이다. 오! 어리석은자들이여. 82 최선을다하는삶 에대한확실성이교회의권위의상실로인해무너진모습이기도하다. 결국루터는인간의본성은원죄의죄책을통해왜곡되어우리는하나님의은총에의하지않고서는결코하나님을찾을수없다고이해한다. 83 하나님의은총이인간으로하여금선을행하게하는것이지인간은결코스스로선을행할수없다. 그러므로루터에게있어서인간은스스로선한것을원할수도알지도못하는까닭에 자기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은죄를범하는것에다름아니라고주장한다. 84 한걸음더나아가루터는은총없는인간의의지는죄를지을능력밖에없다고선언한다. 85 루터는 1517 년 스콜라주의신학논박 (Disputiatio contra scholasticam theologiam) 에서분명하게 최선을다하는삶 에관한유명론적교리를인간의의지와은총의관계에서명백하게거부한다. 86 루터에게인간의의지의긍정적역할을주장하는아리스토텔레스의모든윤리야말로은총의최악의적이다 (Contra Scholarium, 41). ( 스콜라주의는 ) 인간의본질을아리스토텔레스적인영혼론의테두리에서설명한다. 하나님은자신의은총을인간의본질에상응하는존재질서인, 즉이성과자유의지의협력에개입시킴으로써인간을의롭게한다는것이다. 또한이것으로은총의존재방식도우리안에서윤리적인행동의실현이나공적을쌓는행위에의존하게된다. 87 존재의질서에따라은총이작용하고, 행위의양식 82 WA 56, 274, 11-14 83 WA 56, 304, 25-29;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107 84 WA 1, 148. Homo quando facit quod in se est, peccat, cum nec welle aut cogitare ex seipso possit. 85 WA 2, 647, 3. 86 Oberman, The Dawn of the Reformation, 97. 87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65.
170 한국개혁신학 41 (2014) 에따라은총의존재방식이결정되는것으로여겨토마스적인은총론의주장을논박하고있다. 이는루터에게서자연과초자연의관계성을부인하는오캄주의와유명론의영향이라고할수있다. 그러나은총이존재와행동을결정하는것이지그반대를말하고있지는않다고여겨진다. 오히려 스콜라주의에신학논박 에서루터의핵심은은총은인간이 자신안에있는것을행함 으로얻는것이아니라 하나님의선물 임을명확히한것이다. 이때루터가파악하는은총은구원얻는은총임을지적해야한다. 우리는결코우리가의롭게되었는지, 우리가믿음에있는지알수없다. 그때문에우리는우리의행위를마치그것이율법의행위인양여겨야만하고하나님의긍휼로만의롭게되고자갈망하는죄인일수록겸손해야한다. 88 루터에게은총은칭의의문제이며, 칭의의은총은하나님이그리스도의유일한보속에근거하여주시는은총으로나타난다. 루터는 1518년 4월 26일의하이델베르크논쟁에서보다진전된입장을드러난다. 여기서소위말하는 십자가신학 (theologia crucis) 과 영광의신학 (theologia gloriae) 를제시한다. 89 논제 13-18 이칭의의외적인조건들에관한언급인데논제 13에서루터는 자유의지는원죄이후에단지명목상의이름에불과한것이며- 은혜를얻기위해- 그가할수있다고생각하는것을행하는한죽음의죄를범할뿐이다 는유명한주장을한다. 90 이는스콜라주의자들처럼인간적행위에대한 하나님의앞서심과인간의뒤따름, 인간의행위에대한 수용 혹은 부가된가치 등을통한인간의행위의긍정적역할은그리스도의십자가앞에서는아무것도아니라는선언이다. 오히려십자가앞에인간의행위를내세우는것은 인간의영광 을추구하는것이며, 최선을다할수있다 는것은아무런의미없는구호에지나지않으며, 오히려죄의원인이된다. 그리스도의십자가에서드러나는은총만이구원을가져옴을분명히선언하고있다. 따라서루터에게인간의구원의은총과관련하여하나님은첫번째 88 WA 56,37, 26-28;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111. 89 Karl-Keinz zur Mühlen, Reformation und Gegenreformation, 71. 90 교황레오 10 세는 1520 년 6 월 15 일에크의평가서를토대로교서인 주여일어나소서 (Exurge Domine) 를공포한다. 여기서가장비판하는부분이바로루터의앞선하이델베르크논제 13 이다. liberum arbitrium post peccatum res est de solo titulo, et dum facit quod in se est, peccat mortaliter.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71 행위자나최종적행위자가아니라유일한행위자다. 그러므로루터에게분명한것은모든피조물은절대주권자인창조주앞에서자신들이 무 (Nichtigkeit) 임을자각해야하며, 창조주께찬양과감사로나아가계시된하나님의요구 ( 명령 ) 에따라응답하는삶을살아야한다는것이다. 이러한자유의지와은총의관계에대한이해는루터를신학적결정론자로비난받게하였다. 91 에라스무스가보기에루터의견해는숙명주의 (fatalism) 요, 결정론이며도덕폐기론을조장할위험성을내포하고있었다. 92 이신학적결정론이야말로에라스무스가 1524년자신의 자유의지론 (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 에서루터를공격하려는부분이었다. 에라스무스는하나님의 특별은총 없이인간은구원을향해한발자국도옮길수없다고주장한다. 그러나그가거부했던것은자신의구원을추구함에서인간은아무런적극적인역할도하지못한다는루터의 숙명론 같은입장이었다. 왜냐하면인문주의자에라스무스에게인간은최소한의 자유의지 를지닌존재이기때문이다. 93 에라스무스는자유의지를단지은총을통해자유하게된의지로이해한다. 그러나인간은은총과또그은총을통해자유롭게된의지와의협력으로구원을획득할수있다고확신하는노선이다. 에라스무스에게구원은하나님의선행적인은총과인간의협력적인노력을통해드러나는상호작용에서찾으려한것같다. 그런점에서에라스무스에게분명히반-펠라기우스적인관점이드러난다. 에라스무스에게 인간의의지는단순히은총의행위를받아들일수밖에없다 94 고말하는것-루터의주장-은 부적절한호기심 의일종에지나지않는다. 이러한루터의결정론은인간을모든수고와노력을무로만들뿐이다. 아마도에라스무스에게 윤리적덕스러운행위들 은하나님의은총아래있음을명시적으로나타내는반면, 루터의입장은은총에대한인간편에서의 비가시성 혹은 불확실성 을의미하는것으로여겨지는듯하다. 91 Hütter, St. Thomas on Grace and Free Will in the Initium Fidei: The Surpassing Augustinian Synthesis, 527; 로제는루터가철저히결정론과경계를맺고있다고제시한다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242). 92 Gordon Rupp and Philip S. Watson, ed., Luther and Erasmus: Free Will and Salvation, 이성덕, 김주환역, 루터와에라스무스 : 자유의지와구원 ( 서울 : 두란노아카데미, 2011), 66. 93 Rupp and Philip, Luther and Erasmus, 63. 94 Rupp and Philip, Luther and Erasmus, 75.
172 한국개혁신학 41 (2014) 이러한에라스무스에대한논박에자유의지와은총의문제에서루터가보기에에라스무스의주장은중세스콜라주의의연장선상이며펠라기우스적인신인협동론 (Synergism) 의아류에지나지않았다. 루터는자신의주장이인간의행위를무로만들지않을뿐만아니라구원의확신역시불확실성으로이끌지않는다는점을항변한다. 루터는 노예의지론 (De servo arbitrio) 의서론부터 확고한주장 (assertio, die feste Behauptung) 또는고백 (Bekenntnis) 은신앙에속하는것이라고선언한다. 확고한주장을외치기를기뻐하지않는것은그리스도인의표지가아니다. 그리스도인은확고한주장을펼치기를즐거워해야한다. 그렇지않을경우그는그리스도인이아니다. 확고한주장은그러나미혹하기위한것은아니다. 내말이오해되지않기위하여덧붙이자면, 확고한주장이란항구적인확신, 긍정, 고백, 고수그리고불굴의인내이다. 95 그러므로루터는신앙과회의사이에서냉혹한선택을하도록에라스무스의회의주의를공격한다. 성령은회의주의자가아니다 96 라는말은이러한연관성속에나온다. 루터는 확고한주장 이기독교신앙의필수적인요소라고보았다. 97 루터에게이와같은 신앙적확신 은흔들리지않는하나님과동시에성경의권위에근거지우려한다. 98 로제는이신앙의확신을하나님께두는것으로서예정의문제와연결됨을지적한다. 99 그러나보다근본적으로에라스무스와루터의두논쟁에바탕이되는것은구원에대한확신을어디에기초할것인가의문제라고생각된다. 에라스무스에게구원의확신에대한최소한의경험적증명혹은설득력있는보장이필요했다면, 루터에게구원의확신은성경의권위와성경에서제시하는예수그리스도의사역과그에대한분명한신뢰에서드러내는것이다. 100 즉에라스무스는인간의경험에서구원의확신을구하고있는반면, 루터에게구원의확신은신적의지의속성에 95 WA 18, 605, 10-13. 96 WA 18, 605, 32. 97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238. 98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 238-39. 99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k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 240ff. 100 WA 3, 417, 11; 56, 281, 4f.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73 서찾는다. 그러므로 최선을다하는삶 은에라스무스에게는하나님의은총아래 있음의표지가될수있지만, 루터에게는펠라기우스적인주장이라고할수있다. VI. 나오는말 지금까지토마스로부터루터에이르기까지 facere quod in se est를둘러싼논의들을살펴보았다. 이해석은 본성에따른행함, 최선을다하는것 그리고 자기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으로이해되고있음을살펴보았다. 각각의번역이야말로그논의의핵심을잘드러내는표현이다. 토마스에게서 본성에따라행함 은하나님으로부터존재를부여받은인간의행위와하나님의행위 ( 은총 ) 를하나의체계로제시하고자시도한다. 그러나하나의체계가자연과초자연의경계를무너뜨리지는않는다. 오히려하나님의은총으로자연은 본성에따른행위 를통해인간의행위에대한신학적의미들을부여한다. 결국토마스에게신학은하나님과의관계성에서모든것은고찰하는것이며, 101 또한신앙적관점에서인간의행위에대한의미들을제시할수있는구도이다. 이와달리루터에게신학의고유한대상은죄책을지고소멸해가는인간, 그리고의롭게하며구원하시는하나님이다. 102 따라서루터에게구원론적관점에서행위를논할때, 오직예수그리스도만이의미있는행위자이다. 중세후기아리스토텔레스의철학은토마스적인하나의체계를무너뜨렸다. 오히려인간의행위와신적행위들을분리시키며신앙적회의와불확실을낳았다. 스코투스와오캄의과제는 논리적필연성 이지배하는하나의체계가불가능하며, 하나님의절대적능력에근거한신적의지에은총의근원을두는신앙의체계를지키는것이었다. 이를위해하나님의의지의절대성을강조하게되고, 인간의행위에대한의미를무로만들었다. 그러나여기서이들유명론적신학은다시금인간의행위의의미를재건하려고시도하며 신적수용 이나 부가적가치 의개 101 ST I. q. 1, a. 7: Omnia autem tractantur in sacra doctrina sub ratione Dei: vel quia sunt ipse Deus; vel quia habent ordinem ad Deum, ut ad principium et finem. 102 M. Luther, Ennarratio des 51. Psalms von 1532. WA 40, II, 327. 11-328. 2.
174 한국개혁신학 41 (2014) 념을사용한다. 신적수용 의법칙은 최선을다하는자들에게하나님께서은혜주시기를거절하지않는것 이다. 그약속을보증하는것이당시의교회의권위가내세우는구원의질서였다. 103 유명론적신학의뒤를이은비엘이신적약속에근거한 최선을다하는삶 을강조하지만, 지금까지고찰한바에의하면 최선을다하는삶 이무엇이며, 어떻게가능한가하는문제는결코쉽지않다. 비엘등이신앙의실천적강조를드러내기위한 하나님의약속 에대한신뢰를주장하고, 이약속의보장으로비엘이지나치게쉽게교회의전통과성례에의지하고있는모습이다. 하지만비엘식의신앙의확신과신앙적체계는교회의전통과성례에대한회의가나타나는종교개혁주의자들에게구원론적영역에서인간의행위를구축하려고시도하는전형적인펠라기우스주의로이해되었다. 이상에서 facere quod in se est에관한논의를정리하면다음과같다. 첫째로 facere quod in se est에관한논의는펠라기우스주의와신학적결정론사이에서있다. 구원론의관점에서인간의행위와역할을주장하면펠라기우스주의로, 전적인하나님의은총을주장하면신학적결정론의혐의를받는다. 이러한결과는자유의지와은총을대립적인관점으로파악함에주로기인한다. 둘째로 본성에따라행함, 최선을다하는삶 그리고 자기자신에게있는것을행함 은모두가종교개혁자들에게서처럼구원론적인배경에서논구되지는않는다. 중세의질문들이존재론에입각한인간의본성에따른행위들, 또는윤리적, 실천적행위들의의미에관한질문이었다면루터에게서는구원론적인유의미를질문한다. 셋째로 facere quod in se est는구원의확신과밀접하게연관된다. 즉토마스에게서는존재론적유비에따른확신을, 비엘에게서는실천적확신을, 루터에게서는이를포기함으로서그리스도의사역에대한절대적확신을주장한다. 103 오캄은하나님의존재, 영혼의불멸같은기본적인교의들을포함한기독교신앙의내용들은교회가가르치고있고, 또한그것들이성경안에담겨있기때문에받아들여야한다. 즉그교의들을증명할수는없지만오직믿음으로그것들을받아들여야한다고본다 ( 정원래, 스콜라주의의종말 - 하나님께로향하는새로운통로 : 의지 (voluntas), 234ff.).
facere quod in se est 를둘러싼논의 / 정원래 175 Abstract A Historical Research for Understanding of facere quod in se est Jeong, Won Rae (Chongshin University, Historical Theology) This Study is a historical research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theological phrase: facere quod in se est. This notion played a important role in theological discuss between Scholastic and die Reformation. It led to significant theological differences. Therefore, we research the understanding of the thee important theologians: Thomas Aquinas, Gabriel Biel, and Martin Luther. Thomas said this issue in relation to the Anthropology, specially, the nature of human. we examine from Gabriel Biel what facere quod in se est is: How and for what did he define it? Luther has understood it as Pelagianismus and rejected it. In this study was revealed that they were standing on different horizons and that this concept are intertwined with a wide variety of theological themes. Keywords: facere quod in se est, Grace and Nature, Assertion of Salvation, the nominalistic Theology, acceptio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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