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논집제 42 집 2015 년 8 월 Sogang Journal of Philosophy Vol.42, Aug. 2015, pp. 325-363 10.17325/sgjp.2015.42..325 325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 53) - 니체의기억개념연구 - 홍사현 ( 연세대 ) 주제분류 서양근현대철학, 문화철학, 인식론 주제어 니체, 기억, 망각, 발생학, 역사주의비판, 도덕비판, 인식비판, 삶, 조형력, 힘에의의지, 디오니소스적인것 요약문 니체는 망각 을기억의상실혹은부재가아니라기억활동과기억발생의토대가되는생산적인과정이자역사나문화에서삶이라는자연적토대를유지해주는힘으로보기시작했다. 기억이망각과맺고있는전통적이분법적관계를무화시키는기억의계보학적생성의구조를통해니체는망각의의미만을절대적으로강조하는것이아니다. 기억의과정과망각의과정을 하나 의자기조절과정으로통찰함으로써, 기억개념자체에대한가치전도역시일어난다. 망각의과정과기억의과정은하나이다. 이것은망각이스스로부터자신의형식으로서기억을만들어내는자기생산적인 하나 의과정인것이다. 기억이, 혹은문화가하나의현상으로계속생성되기위해서는끊임없이망각이작동해야한다. 그럼으로써기억을위한공간과가능성이마련될수있고, 그럼으로써삶은자신의자연성에따라현재를다층적인통일체로항상새로구성하는 조형력 으로서, 삶의과정자체를존속하게하는원리로서작용할수있기때문이다. 망각의기능은삶을위한것이고, 이기능은삶을위해 기억 을발생시키는것이다. 그자체로유기체인모든세계에, 즉생성으로서의삶에속해있는기억과망각의모순적상호관계성을통해각각새로운형식으로의변화가일어나는과정이반복된다는점에서, 망각으로부터발생하는기억의구조는인간인식뿐아니라역사와문화와가치등존재전반의존속자체를보장한다. 이점에서니체의 기억 개념역시힘에의의지와영원회귀를설명하는또하나의표본적이고도본질적인구조에대해말하고있다. 본논문은이러한논의를위해전통적기억개념에대한니체의비판을출발점으로삼아, 기억의문제를다루고있는니체의저작들을중심으로각각역사비판, 도덕비판, 인식비판의영역으로나누어그중요한내용을발생학적측면에서서술하였다. 투고일 : 7월 29일, 심사완료일 : 8월 14일, 게재확정일 : 8월 20일 * 이논문은 2012년정부 ( 교육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NRF- 2012S1A5 A2A0303 4068)
326 철학논집 ( 제 42 집 ) I. 글을시작하며 : 기억과망각 기억의문제를모든길을잇는로마에비유한알레이다아스만의말처럼, 기억은신학적, 철학적, 의학적, 심리학적, 역사적, 사회적영역뿐아니라문학과예술, 매체등모든길을통해도달할수있는매우광범위하고도본질적인현상이다. 1) 따라서이주제는고대그리스까지, 신화와호메로스까지거슬러갈것이며, 사실더이전, 인류의역사와함께등장한것이라할수있다. 하지만바로이러한사실로부터우리는학문영역에서오랫동안기억이라는현상이집중적인연구대상이되지못한이유를설명할수있을것이다. 기억의문제는 1980년대이후에야문화이론및문화사적, 역사적맥락에서알레이다아스만, 얀아스만, 피에르노라등에의해본격적으로재조명되기시작했다. 2) 이글의목적은프리드리히니체의사유에서기억의문제가차지하고있는의미와기능을통해기억현상에대한철학적설명을시도하고자하는것이다. 따라서기억연구의기원이나다양한경향에대한논의를구체적으로전개하지는않을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현대적기억이론의접근방식과내용들이많은경우니체를일종의보증인으로내세우고있는데, 그이유는니체의가치전도적사유가기억개념에있어서도근본적인통찰과새로운관점들을제시하고있기때문이라는사실은적어도미리언급해둘필요가있다. 물론경험이나이를통해습득한것을인간의의식이라는창고에보관하고추후에불러내는기술로서의기억술ars memoria에기억개념을제한하거나, 지나간과거의보존으로서, 즉문서보관소나박물관등에저장되어있는역사로기억을이해하는전통적인태도는최근들어기억의일상적의미에서뿐아니라관련된여러학문영역에서도다양한방식으로 1)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München, 1999, 27 참조. 2) J. Assmann, Das kulturelle Gedächtnis, München 1999;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P. Nora, Zwischen Geschichte und Gedächtnis, Berlin, 1990(1984, 1986 Paris) 등의연구서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27 문제시되었다. 이때단순히쌓여있던과거를상기하는기술 (ars) 이아니라기억자체를추동하는역동적힘 (vis) 이나살아있는운동으로서기억을설명하는연구자들의입장이기억이론의역사에서특히중요한전환을이루고있는데, 이경우니체가그 후원자 로거론되고있는것이다. 3) 더이상이성의자명성을전제로하고있지않으며, 의식자체가끊임없이새로구성되는과정속에있는것으로보는니체의사유에서전통적으로이의식속에저장고로서위치했던기억은더이상확고한장소를보장받지못하기때문이다. 기억이라는개념은니체에서부터더이상저장기억 (Speichergedächtnis) 이아니라, 작용하는기억 (Funktionsgedächtnis) 으로, 즉활동하는힘자체로이해되기시작했다. 4) 이와같은맥락에서, 기억은 수동적저장고가아니라 [ 모든의미에서의현상, 즉 ] 텍스트를생산하는복합적메카니즘 이며, 문화개념과분리될수없이모든문화론적의미영역에서 어떤한문화의자기기술의모델 이된다고라흐만이말하고있다면 5), 이러한입장은 19세기말니체의문화비판적, 인식비판적사유속에서이미분명히제시되고전개되고있다. 그리고우리는니체의사유를통해기억담론에있어망각의개념이기억보다더욱중요한문제로서본격적으로출현하고강조되기시작하는것을관찰할수있다. 전통적으로기억과망각의관계는이성과비이성, 의식과무의식의이분법적관계와같은맥락에서이해되어왔지만, 이제기억은망각을조건으로상기와망각의관계를조절하는작용자체로새롭게이해되기시작한다. 앞으로드러나게되겠지만, 기억과망각사이의가치전도적관계의구조와성격은물론기억의내용에만 3)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27~32 참조.( 또튀링은니체가처음으로기억의문제를 현재 의문제, 시대의문제로인식했다고강조한다.) H. Thüring, Geschichte des Gedächtnisses. Friedrich Nietzsche und das 19. Jahrhundert, München, 2001, 14/29 참조. 4)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27~32/130~145 참조. 5) A. Haverkamp/R. Lachmann, Hrsg. Memoria. Vergessen und Erinnern, München, 1993, XVIII 참조.
328 철학논집 ( 제 42 집 ) 국한되는것이아니다. 더근본적으로는니체의사유에서기억과망각의관계는니체의사유자체에대한하나의모델이될수있다. 니체의사유에서도기억의문제는, 글머리에언급된 A. 아스만의비유처럼, 니체안에서엮여있는여러길들이통해있는하나의로마이다. 기억의문제는니체에게서특히매우니체적으로나타난다. 그렇다면기억에대한니체적가치전도는왜망각을통해일어나며, 왜문화의구조와불가분의관계에있다고할수있는가? 전통적으로 망각 은부정적인개념이었다. 전통적인의미에서의기억은형이상학적이분법의영향아래과거의것, 존재했던것에대한보존이나 상기 라는좁은의미로이해되어왔고, 그에따라상기와망각의관계는철저히대립적인구도를이루고있었다. 6) 즉기억이저장되어있지않은상태로서의망각은정신적능력의결함을의미했고, 의식이부재하거나진리인식의활동이일어나지않는죽은장소로여겨졌다. 기억은이성적주체의능력에의해획득되는것이므로, 잘기억한다는것은사유와인식능력을보증하는것이며, 기억하지못한다는것은한번존재했던, 하지만더이상존재하지않는것을기억해야할의무를다하지못하는무능력으로여겨졌다. 동물과구별되는인간적삶과그문화적영위에있어앎이나지식의학습, 그리고이것을소유하는능력은무엇보다중요한도구이자자산이었고, 그에상응하여인간의세계는지식을최대한획득하고자하는욕구, 지식욕을끝없이발전시켜왔다. 분명이로부터우리의문화와학문과역사는귀중하고눈부신유산을남겨놓았고, 여기에가장중요한기여를한것은당연히기억이다. 사람들은오직어떻게하면잘기억할것인가를생각했고, 그결과로서의인간문화의모든수단과매체와언어는바로기억술이자기억의보존자체인것 6) 가령봐인리히와에스포지토는이런맥락에서망각과기억의전통적위상에대해고대그리스어 lethe( 망각, 감추어진것 ) 와 a-letheia( 진리, 드러난것 ) 의어원적관계를통해접근하고있다. 망각의강 레테 와연관시켜보면, 진리는동시에 잊혀지지않는것, 혹은 잊어서는안될것 을의미하기도한다. 망각은비진리이며진리는결코잊어서는안될것의가치를소유하고있었다 : H. Weinrich, Lethe. Kunst und Kritik des Vergessens, München 1997, 16; E. Esposito, Soziales Vergessen, Frankfurt a. M., 2002, 99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29 이다. 하지만 19세기말화려한문명과문화의절정에서 망각 이인간의삶자체를위한일종의능력으로서새로운의미를얻게되었다. 지금까지사람들은지적능력으로서, 문화의원동력이자근본적방법으로서기억술과역사개념을추구하고발전시켜왔지만, 과도한기억이오히려문화에해를끼칠수있으며, 또실제로인간의삶과문명과역사전반에대해오히려위협이되는상황을직시하게되었다. 이제망각할수있는능력이바로삶을위해필요한것이라는근본적인인식과함께시대비판적시대적요구에따라상기술대신망각의기술이필요하게되었다. 거의기억없이사는것, 심지어행복하게사는것은가능하다. 동물이그것을보여주고있다. 하지만망각없이는산다는것은그자체로전혀가능할수없다 7) 고니체는말한다. 물론인간으로서우리는기억이없이도망각이없이도살수없다. 니체의의도역시이러한인간존재의모순과딜레마를보여주고있으며, 결국삶을위해얼마만큼의기억을필요로하는지, 혹은어느정도망각을필요로하는가의문제를던져주고있다. 그런데니체가말한 망각없이살수없는불가능성 과 거의기억없이살수있는가능성 사이의관계에서우리는기억과망각의이중적이면서도비대칭적인관계의성격, 아폴론적-디오니소스적이중성의구조를확인하지않을수없다. 여기서망각은단순히기억과균등하고양립적으로그역할을분담하고있는것이아니라, 문화와역사를형성하는데있어오히려기억보다더욱근원적인필요성과기능을가진다. 기억없이는한편으로인간의문화와역사전체가가능하지않지만, 바로이형식으로서의기억은망각이라는발생조건을가지기때문이다. 더구나건강한삶과건강한문화가불가분의관계에있는한, 그리고기억이삶과문화에오히려위협이되어버린시대라면, 이제문화에끼치는망각의역할과의미를, 망각의문화적가치를이야기할수밖에없게되었다. 7) F. Nietzsche, Sämtliche Werke. Kritische Studienausgabe, hrsg. von Giorgio Colli und Mazzino Montinari, Berlin/New York, 1999(1980). 이하 KSA로약기하며, 본문에니체의저작을인용할때는약기표시없이권수와쪽수만표시한다. KSA 1, 250.( 방점은필자의것 )
330 철학논집 ( 제 42 집 ) 본논문은 망각 을기억의상실혹은부재가아니라기억활동과기억발생의토대가되는생산적인과정이자역사나문화에서삶이라는자연적토대를유지해주는힘으로보기시작한니체의사유를발생학 ( 계보학 ) 적측면에서고찰하고자한다. 기억과망각의전통적인이분법적관계를무화시키는기억의계보학적생성 ( 역사 ) 구조를통해니체는망각의의미만을절대적으로강조하는것이아니다. 기억의과정과망각의과정을 하나 의자기조절과정으로통찰함으로써, 기억개념자체에대한가치전도역시일어난다. 망각의과정과기억의과정은하나이다. 망각이스스로부터자신의형식으로서기억을만들어내는자기생산적인 하나 의과정인것이다. 기억이, 혹은문화가하나의현상으로계속생성되기위해서는끊임없이망각이작동해야한다. 그럼으로써기억을위한공간과가능성이마련될수있고, 그럼으로써삶은자신의자연성에따라현재를 ( 즉삶자체를 ) 다층적인통일체로항상새로구성하는 조형력 ( 니체 ) 으로서, 삶의과정자체를존속하게하는원리로서작용할수있다. 물론기억에대한이러한내용이니체의저작속에서그자체로집중적이고체계적으로논의된다고는할수없다. 그럼에도특히 두번째반시대적고찰 (1874년 ) 과 도덕의계보 (1887년 ) 에서니체는각각역사와도덕의문제를중심으로전통적인기억과망각의의미를전도시키는새로운관점과사유를제시하고있으며, 이두텍스트는이후특히문화학적 ( 혹은니체의 ) 기억연구에있어빠지지않고다루어지거나 - 거의상투적으로 - 언급되는인용의출처가되었다. 8) 본논문에서도이두텍스트에서전개하고있는역사주의와도덕의발생에관한문화비판적기억담론의문제의식이먼저다루어질것이다. 이후글의후반부에서는상대적으로더많은지면을할애해, 니체의 1880년대유고텍스트를중심으로형이상학비판적기 8) 본논문에서는다루지않지만, 디오니소스찬가 < 태양이진다 >(Die Sonne sinkt) 도니체의기억개념과관련하여매우중요한텍스트라고할수있다. 특히튀링 (H. Thüring, Geschichte des Gedächtnisses. Friedrich Nietzsche und das 19. Jahrhundert, 211~220 참조 ) 과봐인리히 (H. Weinrich, Lethe. Kunst und Kritik des Vergessens, 160~168 참조 ) 는이시를모티브로니체의망각개념을설명하고있다.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31 억개념및그인식론적측면을살펴보고자한다. 기억발생의역동적구조에대한니체의인식론적접근은니체의사유에서 ( 삶과자연으로서의 ) 존재생성의구조라는문제와직접연결될수있을뿐아니라, 역사의의미혹은도덕적가치에대한니체의입장에있어그근본적인토대를이루고있음에도불구하고, 지금까지의문화학중심의연구에서는물론니체철학의맥락에서도본격적으로다루어지지않았기때문이다. II. 역사와기억 : 역사에대한반시대적고찰 앞에서언급한기억과망각의전통적관계에대한전도및구성적기억개념의내용은이미니체의초기저술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인 삶에끼치는역사의유용함과해로움 에서특히분명한주제로나타난다. 이글은 비극의탄생 등초기의다른저서들과마찬가지로문화비판적이고학문비판적인성격을강하게지니는가운데, 니체가후에더구체적으로전개하는중요한철학적사유의여러단초들이이미들어있는텍스트라할수있다. 여기서기억의문제는후기유고에나타나는기억에대한인식론적사유지평보다어떤의미에서는더평이하고도설득력있게읽힐수있다. 그이유는 역사를지나치게심각하게받아들이는병으로부터치유 하기위해 9) 역사로서의기억, 혹은기억으로서의역사개념을비판하고, 삶의관점에서 비판적역사 개념을새로이제시하고있기때문이다. 니체가이때인간과문화의조건이되는 건강한삶 과그자연성의회복을위해망각의능동적, 조형적힘이가진역할을 - 예찬에가까울정도로 - 강조한다면, 이것은보관되어있는기억혹은과거의것으로남겨진역사가아니라항상현재속으로진입해새로운현재를구성해내는힘으로서의그러한역사적기억개념을강조하기위한것이다. 니체의비판적역사관에는이런점에서이후본격적으로전개되는발생론적-계보학적역사개념및기억발생의구조에대한사유가이미배태되어있다. 9) F. Nietzsche, KSA 1, 254.
332 철학논집 ( 제 42 집 ) 기억의문제를일반적의미의 역사 와맺고있는관계로부터접근하는동시에, 이로부터전적으로새로운역사의의미를사유하는니체의시도는그의철학에서 시간 의차원이차지하고있는근본적인성격으로볼때당연한것이다. 10) 위에서언급되었듯이상기하는기술 (ars) 로서의기억과상기를추동하는힘 (vis) 으로서의기억은근본적으로구별되는것인데, 이전통적인기억개념, 상기술로서의기억개념에는역동적인 시간의차원 이제외되어있다. 동일성을저장하고재확인하는상기의구조와계속되는현재에서항상적으로작용하는힘으로서의기억의요구는서로다른차원에서일어나는것이다. A. 아스만이니체와연관하여말하고있듯이, 현재일어나는것, 그것은우리에게상기의대상이아니다. 우리는그것을표현하고형상화한다 (verkörpern). 11) 시간속에서, 현재의맥락속에서재구성되는 ( 힘으로서의 ) 기억은역동적이기때문에그자체로보존될수도없으며, 객관적이지않다. 일반적으로과거와현재의관계가대상적으로저장된기억의병렬내지연쇄로서, 즉외부로부터관찰된 하나의 보편적기억으로서의역사로설명되어왔다면,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에서의니체에게는이렇게보존되어있는과거로서의역사, 혹은 사건들의도표 로이루어진단선적역사관이바로문제가되는것이다. 역사에대한비판이지만, 어떤역사에대한비판을니체가의도하는지는분명하다. 삶에끼치는역사의유용함과해로움 이라는제목아래니체가역사를비판할때, 이것이동시에기억의문제일수밖에없음은당연한것이고, 그래서이때기억이비판되고망각의필요성이등장하는것도당연하다. 삶에기억 / 역사는어떤기능을하는가? 이질문에대한대답은기억 / 역사는객관적대상인가, 아니면복합적관계속에서주체적으로활동하고작용하는가운데자신의역사를새로만들어내는다양한힘인가에대한입장과불가분의관계에있기때문이다. 이러한니체의입장에서기억과역사의관계는본질적이고, ( 혹은본질적 10) 기억과망각의문제와연결된시간경험에대해고찰하고있는다음의연구에서도니체가자세히다루어지고있다. S. Grätzel, Organische Zeit: Zur Einheit von Erinnerung und Vergessen, München, 2009(1993) 참조. 11)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247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33 으로 ) 이중적이다. 기억과역사개념에있어이와유사한입장은가령니체이후알박스나피에르노라와같은학자들에게서도 - 접근은다르지만 - 읽을수있다. 역사 라고부르는것의변화가너무나빠른속도로진행되고있고, 점점더가속화되고있어쓰레기더미처럼쌓여가고있는반면, 기억은더이상남아있지않다는피에르노라의지적은역사와기억이맺고있는역설적관계를보여준다. 즉 오늘날우리가기억에대해그토록많이이야기하는이유는더이상기억이란것이없기때문 이다. 12) 그에따르면 기억과역사, 이것은결코동의어가아니다. 오늘날우리가의식하고있듯이, 모든측면에서오히려대립적이다. 기억은삶이다. 살아있는그룹들에의해끊임없이전해지고, 그때문에상기와망각의변증법적과정에계속해서열려있다. [ 중략 ] 반면역사는더이상존재하지않는것을의심스럽고불완전한방식으로재구성해놓은것이다. 기억은항상현재진행중인현상이며, 영원히현재속에서체험된결합이지만, 역사는과거의재현일뿐이다. 13) 또프랑스혁명이나신대륙의발견과같은객관적과거로서의역사와, 현재적으로계속생겨나며다양한기억연관의복수들로이루어져있는집단기억을구별하는알박스의기억이론의구조에서도분명히통찰할수있는것처럼, 역사와기억은서로일치하는개념이아니다. 14) 알박스와노라가이렇게역사와기억을대비시킬때, 우리는이들이사용하고있는기억개념에서앞에서언급된니체의확대된기억개념, 즉망각과기억의역동적이중구조로이루어진바로그기억개념, 살아움직이는기억개념, 즉 삶 의개념을확인할수있다. 풀을뜯어먹으며네옆을지나가는가축떼를보라. 그들은어제가무엇인지도모르고, 오늘이무엇인지도모른다. 그저이리저리뛰어다니며먹고쉬고소화하고다시뛰어다닌다. 그렇게아침부터저녁까지, 어제도오늘도, 좋으면좋은대로싫으면싫은대로잠시잠시순간의요구에매달려있으며, 그때문에우울도권태도알지못한다. 인간에게이광경을지켜보는것은가혹한일이다. 인간은동물앞에서자신이인간임을자랑스러워하 12) P. Nora, Zwischen Geschichte und Gedächtnis, Berlin, 1990(1984, 1986 Paris), 11. 13) P. Nora, Zwischen Geschichte und Gedächtnis, 12f. 14) M. Halbwachs, La mémoire collective, Paris, 1950.
334 철학논집 ( 제 42 집 ) 면서도, 동물이누리는행복에대해질투로가득찬눈길을보내기때문이다. 인간은동물처럼권태도없이고통도없이사는것, 그것만을바라지만동물처럼되고싶지는않기때문에그가원하는것은헛된소망일뿐인것이다. 15) 이렇게시작하는 삶에끼치는역사의유용함과해로움 에서니체는한편으로인간의삶, 기억, 문화등의역사적성격을, 또다른한편으로동물의삶, 망각, 자연등의비역사적성격을서로대조시키고 비역사적으로느낄수있는능력, 즉자연성으로서의 망각할수있는능력 이사실역사성의모태임을강조한다. 언어적이고자기성찰적인존재로서, 그리고시간이나유한성에대한의식을가진존재로서인간은분명동물과구별된다. 하지만인간의이러한우월감이행복을가져다주는것은아니다. 아무것도기억하지못하고금방잊어버리며 매순간이실제로죽어버려안개와밤속으로사라지는동물 은오히려 현재에완전히몰입하는비역사적삶 을살기때문에아무것도감출필요가없다. 반면 망각을배우지도못하고항상과거에만매달려있는 인간에게 과거의무거운짐 은인간을 짓누르거나옆으로휘도록만들고, 이부담을거짓으로부인하기도한다. 그리고이것이또점점더무거워져가는짐이된다. 니체가말하고있듯이, 너무일찍부터 예전에는그랬다 라는말을배우는인간은 결코끝나지않고계속되는과거 로가득차있다. 16) 한번존재한것에대한기억이이상적이고모범적이며절대적인과거로서현재의실존에부담을요구하는경우, 이러한지나친역사주의는건강한삶과문화를방해한다. 즉역사와앎과지식을오히려삶에적대적인도구로전락하게만드는기억의과잉에대해경고하고, 망각이나자연을강조하는니체의의도가이텍스트에서분명히드러나고있다. 이 역사적인것 의과도함 ( 학문 ) 에대한비판과함께, 과거와현재의유기체적상호작용을통한창조적이고살아있는역사를형성하기위해니체는 비역사적인것 만이아니라 초역사적인것 도함께치료제로제시한다. 비역사적인것 은 망각할수있는, 그래서어떤한정된시야에머무를수 15) F. Nietzsche, KSA 1, 248. 16) F. Nietzsche, KSA 1, 248f./249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35 있는기술과힘 을말하고, 초역사적인것 은변화하는것으로부터시선을거두어예술과종교에몰입하도록하는힘을지칭한다. 17) 하지만 초역사적인것 으로서의레오파르디와쇼펜하우어의페시미즘적세계관을니체는삶에봉사하는역사로서의비역사적인힘과분명히구별하고있으며, 이때문에 초역사적인간의구토와지혜는그들에게맡겨두자 (KSA 1, 256) 라고말하는것이다. 그리고그근거는분명하다. 만약니체가존재하는그모든것에대해그어떤가치평가로구분한다면그유일한기준은 자연적삶 그자체이며, 이삶에있어 최소의행복에서나최대의행복에서나행복을행복으로만드는것은언제나단한가지이다. 그것은망각의능력, 행복이지속되는동안비역사적으로느낄수있는능력 이다.(KSA 1, 250) 물론이때간과하지않아야할것은, 망각의비역사성이전통적인의미에서의기억능력을배제하는것도아니며, 자신의절대적중요성을주장하는것도아니다. 비역사적인것과역사적인것은한개체와한민족과한문화의건강을위해똑같이필요하다. 18) 중요한것은적당한때잘기억할수있고, 적당한때에망각도잘할수있는것, 즉언제역사적으로느껴야하며언제비역사적으로느껴야할지아는균형적감각이다. 물론니체의사유에서 균형 개념이지니는근본적중요성을생각해볼때, 기억과망각의균형은우선위축과과도함사이의균형, 혹은영양섭취나소화의균형관계로설명할수있다. 19) 배설하지않고먹기만할수없으며, 삭제버튼없는컴퓨터는생각할수없다. 기억의과도함에대해 지나치지말라 는아폴론적경고를역설적이게도 [ 디오니소스적 ] 망각이수행하고있는것이다. 17) F. Nietzsche, KSA 1, 330. 18) F. Nietzsche, KSA 1, 252. 19) J. Le Rider, Nietzsche und die europäische Erinnerungs(un)kultur. Zur Aktualität der II. Unzeitgemässen Betrachtung, Hrsg. G. Goedert/U. Nussbaumer-Benz, Nietzsche und die Kultur - ein Beitrag zu Europa?, Hildesheim/Zürich/New York, 2002, 90. 기억에대한메타포로서의소화나 위 의운동이라는상징은여러기억연구자뿐아니라니체자신에게도유기체의조절작용으로서매우분명하고빈번히표현되고있다. 이에대해서는이후다시언급될것이다.
336 철학논집 ( 제 42 집 ) 그런데이니체적균형감각의측면에서볼때, 그래도비역사적인망각이 어느특정한정도에한해서는 더중요하고근원적인능력 으로간주될수있는데, 망각의필요성과기능은 건강하고위대한것, 진정으로인간적인어떤것자체가비로소성장할수있는토대 로작용하는데있기때문이다. 20) 역사에대한평가와구별의잣대는언제나인간의삶이나행위와맺는관계이며, 결국 삶에이로운가해로운가 의문제이다. 물론니체의사유에서 삶 이라는단어가지니고있는내포적및외연적의미로인해, 이이로움과해로움은결코이분법적으로나눌수있는것이아니며, 또대칭적이지도않다. 삶이작동하는방식자체에대한비유적모델이되는디오니소스적 / 아폴론적이중구조에서잘나타나듯이, 망각과기억역시절대적대립관계가아니라, ( 시간적 ) 상호작용속에서자기창조적이고자기생산적으로살아있는삶의 역사 를만들어내는내적이중적계기를이루고있다. 자기조절하는과정으로서의이러한살아있는삶이라는의미에서망각의비역사성에대한다음과같은표현을이해할수있다. 비역사적인것은삶을에워싸고있는분위기와비슷한것이다. 오직그안에서만삶은스스로를생산해내며이분위기가사라지면삶도다시사라지게된다. 21) 삶의조건이죽음인것처럼, 기억만이문화나역사자체를결정하는것도아니며, 망각이역사를구성하는데방해요소나결함이아니며, 오히려 망각의비역사성이야말로역사성의모태 이다. 앞에서이미언급했듯이, 기억과망각은하나이자동일한 시간적 과정속에있다. 이과정은곧생성의과정이고자연의과정이다. 비역사적 으로느끼는것이이런점에서는더욱근본적인 역사적 의미와기능을지닌다. 그렇다면, 니체의말대로 삶에봉사하는한, 역사는어떤비역사적인힘에봉사하는것 (1, 257) 이라면, 역사는어떻게 비역사적인삶 에봉사할수있는가의문제는일종의역사비판으로, 특히당시의과도한역사주의적경향에대한경고와경계로이어질수밖에없다. 니체는말한다. 삶이어느정도로역사의봉사라는것을필요로하는가의문제는한인간, 한민족, 20) F. Nietzsche, KSA 1, 252. 21) F. Nietzsche, KSA 1, 252.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37 한문화의건강성과관련하여가장중요한문제와걱정거리들중하나이다. 왜냐하면역사의과도함은삶을파괴하고변질시키며, 이러한변질을통해결국역사자체도파괴되고변질되기때문이다. 22) 이와같은맥락에서니체는 삶은역사의봉사를필요로한다 라는명제를주장하는동시에, 같은이유에서 역사의과잉은살아있는것에해를끼친다 는명제를주장할수있는것이다. 과거에대한지나친경도와집착, 과거에대한너무많은기억은인간의 ( 그리고민족과문화의 ) 창조적구성적힘 을말살해버리고삶을위한행위, 삶으로부터나온행위를방해하기때문이다. 문화와학문을포함한모든역사적기억의위험을지적하면서 역사의가치와무가치에관해고찰 하는니체가, 이글에서삶에기여하는내용에따라구분하는역사에대한 3가지유형의태도는상기의시대적관찰로부터나온것이다. 니체는이것을각각 1. 행동하는사람, 강한사람들의방식 ( 기념비적역사 ), 2. 보존하고존경하는사람의방식 ( 골동품적역사 ), 3. 고통과모순의삶을인식하고이로부터의해방을필요로하는자들의방식 ( 비판적역사 ) 로설명한다. 23) 첫번째, 기념비적방식 은위대한것을추구하며, 보고배울수있는모범이나위로를현재에서가아니라과거에서찾는유형이다. 니체는이방식에전제되어있는 위대한것은영원해야한다는요구 24) 가잘못된이상화를통해 다른것을유사하게만들고, 일반화하여결국동일시할 위험을안고있다고지적한다. 이를통해결과만을 기념비적으로, 모범으로, 모방할만한것으로 내세움으로써과거자체나과거의위대한부분은오히려잊혀지고무시되어버린채, 몇몇의치장된사실들만이섬으로떠오를뿐 이기때문이다. 25) 두번째, 골동품적방식은선조의가구와유물에서그들의영혼과정신을발견하고, 이로부터 나무가자신의뿌리에대해느끼는 즐거움과같은최고의존경의감정을느끼는것이다. 26) 하지만이감정은뿌리자체가아니라 드러나보이는가지의크 22) F. Nietzsche, KSA 1, 257. 23) F. Nietzsche, KSA 1, 258 참조. 24) F. Nietzsche, KSA 1, 259. 25) F. Nietzsche, KSA 1, 261/262. 26) F. Nietzsche, KSA 1, 267 참조.
338 철학논집 ( 제 42 집 ) 기와힘으로측정 되는것이기때문에 한인간이나공동체, 전체민족의골동품적감각은항상제한된시야 에갇힐위험에처해있다. 골동품적역사는이때문에특히 맹목적인수집벽의역겨운모습, 즉이미한번존재했었던것을멈출줄모르고긁어모으는혐오스러운광경 이라고비판받는다. 27) 니체에따르면 생성중에있는새로운것이거부당하고적대시되고 역사적감각이삶자체를간직하지않고미이라로만든다면, 나무는위에서부터서서히말라들어가서결국뿌리자체가죽기 28) 때문이다. 역사적과거를고찰하는이두가지기억방식다음으로, 그리고이들과구별되어 비판적역사관 이세번째방식으로제시된다. 니체가이책전체에서강조하고있는삶의자연성회복을위한망각의역할과중요성, 그리고이를통한삶의 조형력 이라는내용은비판적역사관의내용과일치한다. 과거의것이오히려현재의것을묻어버리게되는일이일어나지않으려면과거의것은망각되어야하는데, 그정도와한계를정하는데있어우리는어떤한인간, 어떤한민족이나문화전체의조형력이얼마나중대한것인지정확히알아야한다. 내가말하는조형력이란자기스스로독자적으로성장하고, 과거의것과낯선것을변형하여자신의것으로만들고, 상처를치유하고상실한것을새로보충하고, 조각난형식들을그자체로부터원래대로복원하는힘을의미한다. 29) 지나친역사주의에대한경고로서, 망각의비역사성을역사성의모태로강조했던근거는바로이비판적역사관과직결된다. 그렇다면왜비판적역사인가? 이때 비판 의구조는어떻게골동품적역사나기념비적역사와구별되는가? 그것은니체가강조하듯이과거, 혹은역사가현재와맺고있는관계의방식에따라구별되는것이다. 즉지금현재존재하는것에따라, 즉죽은것이살아있는것과맺는관계, 혹은지나간것이그로부터변해서된지금과맺는관계속에서만일어나는것이기때문에, 니체의비판은, 즉 비판적역사 는 반시대적 27) F. Nietzsche, KSA 1, 268. 봐인리히는이런점에서니체가기념비적역사보다는골동품적역사에대해서더욱공격적인태도를보인다고주장한다. H. Weinrich, Lethe. Kunst und Kritik des Vergessens, 164 참조. 28) F. Nietzsche, KSA 1, 267/268. 29) F. Nietzsche, KSA 1, 251.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39 시대적 문화비판의의미를가진다. 30) 물론니체는비판적역사관의중요성을강조하는가운데서도, 앞에서언급된균형감각에따라이세유형이각각독립적으로주장되거나전개될수없으며, 역사와문화를형성하는과정에서항상다른유형들과서로상보적관계를맺고있다는점역시분명한조건으로전제하고있다. 즉이유형들은삶을위한조형력의도움과망각의역할을통해현재적삶의상황이나조건에따라끊임없이교정되고균형을맞추어야할관계를형성하고있는것이다. 니체에따르면 위대한것을이룰능력이없는위대한것의애호가들, 경건함이없는골동품수집가, 고통을모르는비판가는무성한잡초로자라나 자연의고향에서소외되고토양을황폐하게만들기때문이다. 31) III. 도덕과기억 : 도덕적기억의계보학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에서기억의문제가 역사 와연결되어다루어졌다면, 도덕의계보 에서니체는인간의문명화과정에내재하는이중성을기억과 도덕 의관계를통해접근하고있다. 문화적기억으로서의역사의문제가이글에서는좀더구체적으로도덕적기억, 혹은양심의가책의기원으로옮아감으로써, 문화비판적기억담론에서도덕발생사의구조가부각되고있다고할수있다. 니체의표현에따르면그내용은인간의도덕적책임에대한, 오랜동안에걸쳐이루어진역사이전의작업 에관한것이다. 물론두저서모두에서망각의능력과기능이기억 ( 역사 ) 의메커니즘, 혹은기억 ( 도덕 ) 의 계보학 ( 발생 ) 의메커니즘으로서전제되고있고, 이점에서 반시대적고찰 에서다루어지는역사적기억과망각의문제는 도덕의계보 에나타나는기억의발생문제와문화비판적연속성을형성하고있다. 32) 비판적역사관 의개념은도덕 계보학 이라는방법론 ( 이자내용 ) 을 30) K. Meyer, Ästhetik der Historie. Friedrich Nietzsches Vom Nutzen und Nacht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 5 참조. 31) F. Nietzsche, KSA 1, 265. 32) 니체사유에있어 역사 과 계보학Genealogie 사이의근본적인관계는발생이
340 철학논집 ( 제 42 집 ) 통해이루어지는도덕비판과동일한인식론적함의를형성하고있는데, 이것은바로기억과망각의관계구조를통해설명되는것이다.( 이에대한구체적인논의는기억개념의인식론적내용을설명하는다음장에서이루어질것이다. 33) ) 기억과망각의문제는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 삶에끼치는역사의유용함과해로움 에서와마찬가지로 도덕의계보 제2논문에서도역시인간과동물의차이에대한생각으로시작한다. 하지만니체가여기서인간과동물을비교하면서이야기하는 망각 의맥락은분명다른것이다. 그이유는전통적으로기억의문제가인간의고유한능력을드러내는것으로여겨져왔다면, 바로이고유한인간능력의의미에대한비판및반성이니체기억사유의출발점을이루고있기때문이라말할수있을것이다. 도덕은어떻게도덕이되었는가의문제를, 즉도덕의 이면 을다루는이책에서, 니체가도덕능력및그발생을기억능력이나그발생과연결시키는지점이바로여기이다. 분명동물만이망각하는것은아니다. 그렇다면망각능력에있어인간과동물의차이는무엇인가? 여기서니체가계속던지는물음은다음과같다. 어떻게인간-동물에게서기억을만들어내게되었는가? 34) 하지만도덕의발생에대한니체의사유는사실이물음을중심으로하여매우근본적이고복합적으로전개된다. 니체가취하는방식은봐인리히 나생성으로서의 힘에의의지 개념을통해서구체적으로해명될수있는데, 가령푸코의글 니체, 계보학, 역사 에서도본질과근원으로서의시작을부정하는반형이상학적인역사관으로서의계보학의성격을접할수있다. 33) 여기서결국은 힘에의의지 의구조와동일한철학적내용들이전제가되는데, 특히단선적시간론및인과론에따르는것이아니라복합적조건들의상황으로부터새로이구성되고형성되는순간들의내적관계에서니체적의미의망각 / 기억의개념은니체사유의하나의적확한모델이된다. 망각과기억의문제로부터도덕의발생조건을이끌어내는니체가 도덕의계보 제2논문 12장에서맥락으로부터잠시벗어나면서까지 힘에의의지 개념을설명하는이유는너무나분명하다. 34) F. Nietzsche, KSA 5, 295.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41 의말대로 미덕으로빛나고있는도덕의전면에서부터가아니라, 죄와속죄로이루어진어두운후면에서부터도덕의문제에접근하는것이다." 35) 우리는 죄, 양심의가책, 그리고그와관련된것 이라는이제2논문의제목에서도이러한상황을알수있을뿐아니라, 제목에등장하는이문제들의출발점을이루는니체의앞의물음, 즉망각하는동물인인간이약속을기억하는인간이되기위해어떠한대가를치러야했는가에대한내용에서도역시니체의사유가전통적인윤리학의문제와차원을떠나있음을말해주고있다. 우리가알고있는그도덕의가치적내용이아니라이것을가능하게하는, 혹은발생조건으로서그반대급부를요구하는도덕의이중성을드러내고자하는것이다. 모든문화에는반문화적요소가들어있으며, 따라서문화의발전과정은야만성의극복이아니라오히려극복대상인야만성이내면화되는과정 36) 이라는역설은모든가치나진리나이념등에서그발생조건을묻는니체의계보학적문화비판의핵심이다. 즉니체가 잔인함의본능 37) 이라고말하는인간의야만성은도덕이나기독교의본질에도동시에속해있는데, 이러한이중성과모순은 선악의저편 에서는다음과같이표현된다. 우리가 높은수준의문화 라고부르는거의모든것은잔인함이정신화되고, 그강도가심화된데따른것이다. - 이것이나의명제이다 38) 이런니체적맥락으로볼때, 인간이망각하고기억하는방식, 그리고기억의탄생이라는문제역시 - 일반적으로문화와역사, 그리고인식의문제와도함께맞물려 - 항상인간의이중성을보여주고있음은당연한것이다. 이미언급되었듯이, 니체의사유에서망각과기억의구조는자연과문화의이중적구조, 즉디오니소스적인것과아폴론적인것의이중적구조와동일하다. 인간은한편으로는 어쩔수없이잘잊어버리는동물 일뿐아니라, 인간에게있어무엇보다도망각은어떤자연성의힘, 어떤 강력한 35) H. Weinrich, Lethe. Kunst und Kritik des Vergessens, 166. 36) 홍사현, 니체의문화비판과고대그리스 - 문화의계보학적고찰, 니체연구, 제15집, 한국니체학회 2009, 14~20, 문화의이중성 부분참조. 37) F. Nietzsche, KSA 6(Ecce Homo), 352. 38) F. Nietzsche, KSA 5, 166(JGB 229).
342 철학논집 ( 제 42 집 ) 건강함의형식 을보여주고있다. 39) 그럼에도불구하고망각능력으로인해 비역사적 으로살며, 자신을변장할줄도모르고, 아무것도감추지않으며그래서정직할수밖에없는 40) 동물과는달리, 인간은다른한편으로아폴론적 변장 이, 즉기억이필요하다. 인간은현재의순간을붙들기위해무언가를형식으로서만들어내야하고, 그목적은또역시삶을위한것인데, 그럼으로써바로문화와역사, 인식등모든인간적영역이존재하게되기때문이다. 피갈도지적하듯이동물은변장verstellen할줄모르기때문에기억도알지못한다. 즉 망각에대한의식 이없기때문에, 망각을대가로생기는이중성, 인간의기억같은것은동물에게는없다. 생겨나는모든것들중에서특정한형태를선택하고, 그에따라그외의요소들은배제하고걸러내는해석행위에의한기억이라는현상자체는이런점에서인간고유의것이다. 41) 물론여기서이중적이고도문화적인동물로서의인간의기억은그형성과정에서망각이라는대가를요구하며, 또동시에기억을위한망각의억압이잔인함을요구하는것이라면, 이맥락에전제되어있는함의는당연히자연적본성으로서망각이수행하는역할이다. 니체가이 도덕의계보 제2논문앞부분에서 힘vis 로서의망각능력을특히소화기능으로비유하는것도같은이유에서이다. 소화 활동개념은단순히저장고, 즉공간적비유가아니라시간적비유, 즉과정으로서의기억을설명할때매우적확한메타포이다. 이를통해저장고로서의기억에보관되지못하는망각에서오히려적극적이고능동적인기능을말할수있다. 망각은균형을유지하기위해 저지하고제어하는힘entgegenwirkende Kraft, 즉저항력인것이다. 물론이망각이라는저항력은결코 단순한관성 (vis inertiae) 이아니라, 활동적이고가장엄격한의미에서적극적인제어능력 42) 이라고니체는말한다. 39) F. Nietzsche, KSA 5, 292. 40) F. Nietzsche, KSA 1, 249. 41) G. Figal, Nietzsche. Eine philosophische Einfüfrung, Stuttgart, 1999, 54 참조. 이에대한논의는이후인간기억에대한니체의인식론적인설명을통해, 즉 해석 개념혹은선택개념을통해더구체적으로언급될것이다. 42) F. Nietzsche, KSA 5, 291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43 제어능력으로서의 망각할수있는능력 (Fähigkeit zu vergessen) 은우리의식의지배나조종을따르지않은채몸에서일어나는영양섭취과정, 즉동화현상의복잡하고유기적인내적과정처럼삶을유지하는필수적기능을하고있다. 그래서니체는 망각이라는제어장치가고장이나서작동하지않는인간은소화불량자로비교 할수있다고말하는것이다. 43) 망각은분명 이성의결함이아니라삶에없어서는안될, 삶을가능하게하는힘 44) 이다. 하지만바로그렇기때문에, 니체가 도덕의계보 제2논문첫문장에서 인간의본래적문제 로서제시하는 역설적과제, 즉망각으로부터 의지의기억 45) 이라는대항능력을길러내는데는그만큼더강력한수단이필요하다. 여기서우리는니체가제시한본질적인물음으로다시되돌아가게된다. 망각의본능을가진 인간-동물 으로부터기억을하게함으로써 약속할수있는도덕적존재 를만들어내기위해서는인간은어떠한기억술을고안해냈는가? 삶을계속살도록하는이렇게강력하고원초적인힘인망각에거슬러기억하려고한다면, 그의지력은얼마나더강해야하는것인가? 이에대해니체는다음과같이대답한다. 무언가를기억속에남기기위해서불로달구어새겨넣는다. 끊임없이고통을주는것만이기억에남아있다. 이것이인간의기억술 (Mnemotechnik) 이다. 인간을 약속해도되는도덕적존재 로만드는과정에서 고통은기억술의가장강력한수단 이된다. 46) 43) 알레이다아스만이 문화적소화장애 kulturelle Verdauungsstörung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167) 라고표현하는이러한상황은특히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전반에서읽을수있는데, 니체는가령 근대적인간은소화하지도못하는엄청난양의학문을이리저리끌고매고다니고있다 고표현한다. KSA 1, 272. 44) W. Stegmaier, Nietzsches Genealogie der Moral, 135 참조. 45) F. Nietzsche, KSA 5, 292. 46) F. Nietzsche, KSA 5, 295. 기억의수단으로서의고통은기억이각인되어야할장소가영혼이아니라몸이라는문제와밀접한연관이있다. 따라서넓은의미에서사회화의매개장소, 혹은감시와처벌을행하는기관이자제도는문화적, 육체적인각인으로볼수있다 (A. Assmann, Erinnerungsräume. Formen
344 철학논집 ( 제 42 집 ) 망각이라는자연으로부터 잊어서는안된다 는문화적정언명법을통한기억의도덕, 기억의문화가성장하는데에는기억의반대급부로서본질적으로고통이라는동반현상이따르는것이다. 이러한분석은도덕의이면이나발생조건자체에관한내용을또한번넘어그이면에전제되어있는매우니체적인, 즉형이상학비판적인통찰을보여주는데, 그것은도덕적행위를할수있는조건으로서인간의이성이원래부터인간의본질로부여되어있는것이아니라는점이다. 잔인함을동반하여고통을각인시킴으로써생겨나는 그런식의기억의도움으로인간은마침내 이성적으로zur Vernunft 되었다." 47) 어떻게인간-동물에게서기억을만들어내게되었는가? 의문제는인간이어떻게우리의의식밖에있는어떤자연적본능적활동을훈련시켜우리의의지를통해통제할수있는의식의영역으로들어오게했는가의문제와동일한맥락에있다. 인간이기억능력을가진존재가된다는것은, 이를통해의식적행위를할수있다는것이고, 기억 과의지의밀접한관계속에서비로소 약속을해도되는 동물이된다는것이기때문이다. 물론니체가인간의이성이나의지가기억능력을통해비로소생겨나는것이라본다고해서, 그리고 인간- 동물 에게서기억능력을 이차적자연 48) 으로, 일종의 본능 으로만들기위해고통을동반하는훈련없이는, 즉 사육 (Züchtung) 없이는가능하지않다고말한다고해서, 이것이이성이나도덕자체에대한어떤전적으로부정적인평가로곧바로이끄는것은결코아니다. 문화에대한태도에서와유사하게, 니체가이러한내면화및의식화의결과로서양심 (das gute Gewissen) 과 양심의가책 (das schlechte Gewissen) 을구별하는지점이바로여기이다. 니체가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에서삶에이로운가해로운가의기준으로기억과역사의가치에접근했다면 도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 Gedächtnisses, 245; J. Assmann, Das kulturelle Gedächtnis, 231 참조 ) 47) F. Nietzsche, KSA 5, 297. 48) 도덕의계보 에나타나는 이차적본능 으로서의문화와도덕에대해서는 M. Saar, Genealogie als Kritik. Geschichte und Theorie des Subjekts nach nietzsche und Foucault, 89f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45 덕의계보 에서도덕적가치의발생을묻는니체의태도역시그와완전히동일하다. 49) 즉망각과기억이서로의관계를통해주권적개인의삶의 조형력 을형성하느냐, 아니면내면적으로강요된기억의심리적인형태가르쌍티망 ( 원한감정 ) 이나양심의가책과같이삶에적대적인도덕적가치로자리잡게되느냐에따라두가지상이한도덕적기억의유형을설명할수있기때문이다. 약속 할수있는 동물 이되고자하는과제를지닌인간이마침내기억을통해양심이라는도덕적본능을획득하게되었다면, 이기억은무엇에대한기억인가? 그것은 책임 에대한것이다. 인간이라는 오랫동안의고통스러운과정을거쳐자라난나무가맺어내는가장성숙한결실 은, 즉 주권적개인 의도덕은바로책임을기억하는것이다. 50) 그리고이러한주권적기억은책임을자기책임으로서기억하는것이며, 강제적으로강요된노예적기억이아니다. 그런데원한감정이나 가책받은양심 과분명히구별되는이본래적이고자연적인 양심 인주권적기억에서우리는니체사유전체를포괄하는책임개념의성격을설명할수있다. 가령슈텍마이어는다음과같이요약한다. 양심은책임에대한기억이다. 기억은훈육을바탕으로생겨난다. 우리의이성뿐아니라도덕과진리에대한우리의이성적관념들은모두이훈육의결과다. 51) 그래서 책임에대한기억 은내면화된것이지만동시에철저히사회적공동체의조건이다. 주권적개인, 즉자유롭고자율적인인간의이념을형성하는데있어서도오랜동안의교육과훈련이필요하기때 49) 봐인리히는 두니체, 즉 문헌학자니체 와 철학자니체 로구별요약한다. 이때전자의경우망각의기술을요청하고, 후자의경우이러한요청을도덕적이유로제한하고있다고설명하면서, 기억과망각의문제가결국은어쩔수없이도덕의문제로서제시되고있다는입장을전개한다.(H. Weinrich, Lethe. Kunst und Kritik des Vergessens, 168 참조 ) 이러한구분은기억에관한대표적인두저서의시기와성격에따른것으로보인다. 하지만이때봐인리히는 철학자로서의니체 가후기유고에서본격적으로사유하고있는인식론적문제로서의망각과기억의관계는간과하고있다. 50) F. Nietzsche, KSA 5, 293 참조. 51) W. Stegmaier, Nietzsches Genealogie der Moral, 138.
346 철학논집 ( 제 42 집 ) 문이다. 니체가말하는 개체 로서의인간은 그저충동과욕구의순간적노예 (KSA 5, 296), 혹은변장할줄모르는동물의상태를말하는것은아니다. 또, 책임이란단순히타율적이거나좁은의미의 이성 개념과일치하는것도아니다. 이런점에서니체가주권적개인의책임과양심을말하면서 공동체속의사회적인삶 을강조하는것은당연하다 52). 니체적개체는자유와책임의동시적주인으로서자율성을가지기때문에, 이러한자기입법적태도는 이성의자기목적 을넘어서는것이라할수있다. 53) 즉문화적동물이라는인간의이중적자연은공동체속의삶인동시에인간개체고유의삶이며, 개체와사회의관계를끊임없이조절하는과정중에있는것이다. 기억에대해능동적이고긍정적인제어능력을수행하는적극적망각으로부터창조적의미를형성하는주권적기억활동을니체는기억과약속의관계를통해드러나고자했다. 주권적개인에서는자유에대한의식도, 책임에대한기억도모두양심이라는본능이될수있기때문이다. 54) VI. 인식과기억 :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1. 인식비판과기억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과 도덕의계보 에서역사와도덕의차원에 52) F. Nietzsche, KSA 5, 293~296 참조. 53) W. Stegmaier, Nietzsches Genealogie der Moral, 138. 54) 물론니체가고통을동반한기억술의훈련과교육을통해인간-동물이그결과로전적으로이성적이고도덕적동물이되었다는결론을말하고자하는것은결코아니다. 오히려그반대로그럼에도기억훈련의메카니즘, 잊지말고기억하라는명령과기억하겠다는요구는결코주체가의지적으로완벽하게수행하거나충족시킬수있는것이아님을말하고있다. 나는그것을했다, 라고나의기억이말한다. - 내가그것을했을리가없다 라고나의자부심이말하고완강히버틴다. 마침내 - 기억은굴복한다. F. Nietzsche, KSA 5, 86.(JGB 68번 )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47 서제시되었던기억의문제가이미인식비판적입장을배태하고있음은분명하다. 하지만이두텍스트를다루고있는많은연구들은주로문화학적관점에치중하고있으며, 사유의대상으로서, 그리고사유작용자체로서니체의기억개념이지니고있는철학적측면에대해서는지금까지별로주목하지않았다. 물론그이유중하나는기억개념에대한니체의본격적이고비판적인생각들이수많은유고단상들에흩어져있기때문이라할수있을것이다. 55) 전통적으로이성적가치나의미에집중되었던철학적기억담론자체에대한니체의비판적재고찰은주로 1880년대중반의유고에서주로등장하고있는데, 여기서우리는니체가사용하는기억이라는개념이 -기존개념들을새롭게생각하는가치전환적니체철학의의도와특성상 - 여러맥락에서다르게사용되고있음을알수있다. 기억의개념자체가기억이나상기가종속되어있던형이상학적전제들을벗어나끊임없이새로상기시키는힘으로설명되고있으며, 이때우리는인간주체의이성을토대로의식적으로보존되고 상기된것 과 상기하는활동 자체를구별해야한다. 56) 왜냐하면이활동으로서의기억은오히려망각으로부터일어나는것으로설명되며, 따라서삶을위한필수적인행위로서유기체적으로작용하는망각의능동성과불가분의관계에있기때문이다. 니체는구성하고조직하는역동적 힘 으로서의망각의역할을강조하는가운데, 어떻게기억이발생하며 ( 즉망각하는가운데 ) 새로운현재를구성해나가는지, 그럼으로써미래를향해주권적기억의역사를형성해나가는지의문제를특히 힘에의의지 개념의인식론적내용과동일한맥락속에서전개하고있다. 니체의사유에서기억을가능하게하고, 그럼으로써삶을가능하게하는 55) 가령튀링은기억에관한니체의유고단상들에대한연구가드물다고지적하면서, 니체가왜 반시대적고찰 에서시도했던기억에관한사유를좀더폭넓은맥락에서본격적으로다룬저서를출간하지않았는지질문하고있다.(H. Thüring, Geschichte des Gedächtnisses. Friedrich Nietzsche und das 19. Jahrhundert, 21 참조 ) 56) H. Kerger, Wille als Sprechakt und Entscheidung. Die psycho-physischen Grundlagen des Handelns bei Nietzsche, 325 참조.
348 철학논집 ( 제 42 집 ) 망각의역할은무엇보다도기억비판으로부터출발하며, 이것이동시에새로운기억개념의내용을이룬다. 이성과의식이전에일어나는유기체적힘과활동으로서망각 / 기억을말하고있기때문에. 기억의문제는더이상좁은의미의기억, 혹은재상기의문제가아니다. 기억에대한니체의비판은일차적으로영원한진리와이에대한인간의사유능력및그원인으로서의주체에대한비판내용과동일하다. 57) 즉니체는기억에서도판단및인식작용이나개념화과정에서와같은것이일어난다고보았으며, 따라서기억이이성적활동에의한것인가에대해, 또이이성적능력은얼마나확고하고절대적인것인가에대해회의한다. 사람들이지금까지 나는생각한다 에직접적확실성같은것이있다고, 그리고이 나 라는것이사유를일으키도록주어져있는원인이라고믿었다고비판하는니체에게 나는기억한다 역시확실한것이아니다. 기억역시인과에대한믿음으로인한인과적허구, 익숙하고피할수없는허구 일뿐이다. 58) 니체의이러한비판에서기억은인식과마찬가지로분명허약한것이다. 기억은주체에부여된확고한의식능력을전제로하는자명성을지니는것도, 경험했던감정이나지각했던대상이어떤변형없이온전히보존되어있는고정된저장소 ( 실체적인장소 ) 도아니다. 그런데이러한허약함은우선기억이절대적진리를그대로재현하고상기하는인식능력이아니라, 구성된것이라는데있다. 니체는말한다. 우리의기억은같은것으로보고같은것으로받아들이는데기초한다. 즉대충보고기억하는것이다. 원래기억은가장조잡한것이며, 거의모든것을같은것으로간주한다. [ 중략 ]. [ 기억은 ] 같은것으로꾸며내는상상력 의활동으로인한것이다. 59) 같지않은것을같은것으로만들어내는동일화의과정이라는점에서상기된과거는과거자체가아니라 현재 에구성되는것이다. 우리는우리의기억으로부터 [ 무언가를 ] 선별해낸다. 기억의사실들은우리가연결하고조합한것이다. 60) 기억역시힘에의의지라는관점적, 해석적작용을통해 57) 니체가사유 (Denken) 혹은사유된것 (das Gedachtes, der Gedanke) 에대해말하고있는많은부분들은기억 (Gedächtnis) 에대한내용과동일하다. 58) F. Nietzsche, KSA 11, 526: 35[35] 참조. 59) F. Nietzsche, KSA 9, 493: 11[138].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49 익숙한것으로만들어낸것이며, 따라서허구이며조작가능한것이다. 그리고무엇이기억되고무엇이망각되어야하는지결정하는것은이성이아니다. 물론니체의이러한입장은한편으로는동일한원인의반복으로부터얻어진동일한결과로서의의식의불완전성과허약함에대해지적하는동시에, 다른한편으로경험을통해, 그리고동시에기억의산물로서구성되는무의식적습관의유용함을말하고있다. 즉참된인식, 완전한기억의불가능성을말하는동시에, 이러한사실과성격자체가인식과기억을가능하게하는조건이라는것이다. 61) 우리가보통역사라고부르는문화의발생과정전체에서, 모든문화적행위에서도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선별되고배제되는선택작용이일어난다. 62) 우리가본질이라고생각하는사유는물론이고, 본능 이라고믿는감정과마찬가지로, 63) 기억역시가치판단행위로써 해석 된것이다. 경험과생각과감정이함께작용한것이다. 본능속의기억 에는이때문에 개별적인사례들로부터 추상화하고단순화 하여 개념을형성 하는 논리적인과정 과유사한 내적과정 이있을수밖에없다 64). 즉기억은유기체적작용의관점에서보면추후적으로형성되어만들어진것이며, 따라서생각과마찬가지로가장마지막에나타나는표면적인것이다. 65) 기억은모든인식과마찬가지로의식내적현상의결과이며, 이런점에서이미몸을통해자발적으로일어나는유기체적작용에따르는것임을니체는다음과같이말하고 60) F. Nietzsche, KSA 11, 107: 25[362]. 61) 기억의이러한이중적조건에대해서는 K. Meyer, Ästhetik der Historie. Friedrich Nietzsches Vom Nutzen und Nacht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n, 47~52 참조. 62) 힘에의의지의 해석적 성격과선택작용에대해서는 : 홍사현, 니체와다윈 - 가치전환으로서의힘에의의지, 니체연구, 제24집, 특히 30~40쪽참조. 63) F. Nietzsche, KSA 11, 173f.: 26[92]; KSA 11, 595: 38[1] 참조. 생각은나의의지와상관없이, 보통감정들, 갈망들, 그리고또다른생각들이한데뒤섞인덩어리에의해둘러싸이고가려진채나타나며, 원한다 거나 느낀다 는것과거의구별이되지않는경우도충분히많다. 64) F. Nietzsche, KSA 11, 476: 34[167]. 65) F. Nietzsche, KSA 11, 175: 26[94]. 생각들은가장표면적인것이다.
350 철학논집 ( 제 42 집 ) 있다. 우리는기억에대해다시생각해야한다. 기억은모든유기체적인삶이겪는체험들의집합 [ 덩어리 ] 이다. 살아있고, 스스로질서지우며, 서로분투하고단순화시키고집결하여수많은단일체로변화한다. 여기에는내적인과정이있는것이다. 수많은개별사례로부터개념이형성되는것과같은방식으로, 즉기본적인틀을눈에뜨이게항상새롭게강조하고부수적특징들은생략해버리는방식으로말이다. 66) 2. 기억의발생과주체 니체가기억을이성적자아라는주체에의한지적활동이나인식활동이아니며, 의식이전의구성적작용을통해비로소나타나는것이라본다면, 이러한기억은분명재현되고모사되는것이아니라 발생 하는것이다. 그리고이때기억의발생은어떻게일어나는것인가의문제는힘에의의지라는생성의사유, 특히그이중적, 모순적구조로설명되는것이다. 이때문에니체의새로운기억개념은곧새로운 주체 개념자체의문제와불가분의관계를맺고있는동시에, 67) 전통형이상학의비판및가치전도의핵심적인문제가될수있는것이다. 니체는과거를끝없이재생하고환기해내는마치이데아같은어떤정신이있으며, 이것이이성의활동이라는전통적인믿음에대해의문을제기한다. 니체는 1885년의한유고에서는다음과같이말한다. 우리는기억에관한한다시생각해봐야한다. 여기에는무시간적으로 [ 영원히 ] 재생산해내고재인식하는 영혼 을상정하려는근본적인유혹이있다. / 그러나경험된것은 기억 속에계속살고있다. 그것 [ 경험한것의기억 ] 이 온다는것, 거기에대해난아무것도할수없다. 의지는이경우무기력하다 [ 작동하지않는다 ]. 마치생각이올때항상그 66) F. Nietzsche, KSA 11, 175: 26[94]. 67) 힘에의의지 사유를중심으로설명될수있는주체개념에대해서는 : 홍사현, 니체의인과비판과주체의문제 - 기연주의적요소를통한 힘에의의지 의비인과성고찰, 니체연구, 제17집, 한국니체학회, 2010, 특히 167~176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51 런것처럼. 무엇인가일어나고나는비로소그것을의식하게된다. - 누가그것을부르는가? 누가깨우는가? 68) 사유와마찬가지로기억이 나 의의도나의지와상관없이자발적으로, 그리고우발적으로나타나는하나의사건이며, 우리의의식은추후로그것을의식하게되는것이라면 69), 기억을망각과구별하여무엇이기억되어야할지결정하는것은무엇인가? 그것이 사유하는실체 로서의이성적자아의의식이아니라면, 자기의식적주체로서의기억의주체역시자신의기억의주체가아니며그래서기억이올때자아가무기력하다면, 기억은어디로부터어떻게오는것이며어디에살고있는것인가? 위에인용된니체의유고단편에서처럼분명기억의작동방식과의지의작동방식은같은것이아니다. 잊혀있던것의회귀는우리의의지에의해서가아니라, 오히려망각자체가주체가되어스스로원할때자신의모습을기억으로드러내는것처럼보인다. 재상기는우연적이고돌연한현상, 즉 즉흥적이고자발적으로떠오르는상들과기억들의형식 이다. 70) 우리의의식에나타나는기억의발생은 - 사유의발생과마찬가지로 - 우발적이며, 따라서기억의미래역시예측불가능한것이다. 우리는 생각이일어날지아닐지기다릴수밖에없다. 71) 이런점에서니체는우리에게더욱잘알려져있는마르셀프루스트의 비의지적기억 개념을선취하고있다. 72) 프루스트에서과거를회상하고현재속에서생생하게되살리는것은의지적주체가아니다. 물론프루스트가과거를네거티브필름과같은것으로비유한다는점에서, 그의기억개념은일종의 저장고 로이해할수도있을것이다. 하지만이 68) F. Nietzsche, KSA 11, 644: 40[29]. 69) F. Nietzsche, KSA 9, 273f.: 6[297] 참조. 70) S. Grätzel, Organische Zeit: zur Einheit von Erinnerung und Vergessen, 4. 71) F. Nietzsche, KSA 9, 273f.: 6[297] 참조. 72) 물론프루스트와니체의기억개념을단순히비교할수는없는데, 가령망각의역할이나의미에대한이들의상이한입장을강조하는연구도있다. E. Schürmann, Odyssee ohne Ankunft. Die Unabschließbarkeit affektiven Erinnerns bei Proust, Hrsg. C. Lotz/Th. R. Wolf/W. Ch. Zimmerli, Erinnerung. Philosophische Positionen und Perspektiven, 79~93 참조.
352 철학논집 ( 제 42 집 ) 때내기억이라는저장고의열쇠는자아의이성과의지가소유하고있는것이아니다. 프루스트에서누가기억하는가의문제는사실이런점에서니체와그리크게다르지않다. 우리의현재의식에일어나는기억은감각을통해서, 몸을통해서, 즉우연적자극을통해서발생하는것이고, 분명현재의조건및환경에좌우되어촉발되어, 현재에구성되는것이다. 니체는 기억의발생은유기체적인것의문제이다. 기억은어떻게가능한가? 라고묻고, 이에대해몸을통해일어나는 정서적자극들은 (Affekte) 기억재료들이 [ 기억으로 ] 형성되고있음을나타내는징후이다 - 끊임없이계속살아나가고끊임없이공동작업을한다 73) 라고말하고있다. 니체의기억은몸의기억이다. 니체에게인식은이미몸에서일어난다. 이곳은모든유기체적존재들의이전역사가살아있는가능성의공간이다. 사유와마찬가지로예측불가능한기억의발생은 ( 하나의필연적인원인이아니라 ) 복합적인요소들이유기체적으로함께작용하여일어나는것이며, 이런점에서비의지적우연적현상이다. 그런데기억의발생이이렇게유기체적복합적작용으로설명된다면, 이와관련하여비의지적기억뿐아니라망각의비의지성역시언급될수있다. 도덕의계보 를통해이미살펴본내용과같이효과적인기억능력에필요한전술과같은것이결국완벽하게성공할수없는것은물론, 의식을통한망각술역시있을수없다. 일단망각속에떠돌던것을다시불러올수있는능력이원래자아에게는없는것은물론, 자아가기억을감당할능력이없어망각을원한다고해서망각할수있는것도아니다. 니체에따르면, 기억이스스로를더욱강력하게주장하고고집하는경우, 기억은주권적책임의식으로서의기억이아니라오히려원한감정이나양심의가책의형태로남아있는것처럼, 억지로, 즉의지적으로 잊어버리려하면오히려잊혀지지않는다. 74) 능동적인망각활동은의지적차원에서행해질수없다. 망각의주체는인간이, 나의이성이아니기때문이다. 기억도망각도인간의의식, 인간의능력밖의일이다. 물론우리의앎의관점에서보았을 73) F. Nietzsche, KSA 11, 148: 25[514]. 74) F. Nietzsche, KSA 3, 150.( 서광 167 번 )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53 때기억과망각의비의지성은동일한차원에서말해질수없다. 니체는말한다. 망각 - 망각이라는것이존재하는지는아직증명되지않았다. 우리가알고있는것은오직재상기가우리의능력안에있지않다는사실뿐이다. 우리는 망각 이라는말을우리의능력속빈틈에임시로넣어놓았다. 마치그것이목록상에기록된또하나의능력인듯이. 하지만최종적으로우리의지배하에있는것이무엇인가! - 망각 이라는저단어가우리의능력속빈틈에있다면, 다른단어들은우리의능력에대한우리의앎, 그것의빈틈에놓여있어야하지않는가? 75) 3. 기억의이중구조와망각의기능 여기서우리는기억의비의지성과우발성, 그리고기억의구성적성격과함께, 기억자체의삶을, 그리고이기억의삶이가능할수있는조건으로서망각 / 기억의이중구조및망각의기능을이야기할수있다. 왜냐하면니체는기억이라는현상을과정, 운동, 시간등의복합적작용으로이루어지는것으로, 그리고특히이하나의과정속에서매순간상보적차이에의해이루어지는것으로설명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런데이기억의발생과정이의식이나의지의활동이아니라몸의활동을통한것이라면, 이활동은바로 소화 라는유기체적내적과정으로설명된다. 76) 이런점에서체험되는것은사실기억되거나, 아니면 망각 되는것이아니라 소화 되는것이다. 즉보관되거나, 아니면망각되어사라지는것이아니라, 소화되어기억속에녹아들어있는것이다. 이런의미에서망각은기억의부재가아니다. 다시말해기억이라는지적작용이란의식이전의활동, 소화되고동화되는과정속에서이루어지는것이다. 니체는말한다. 모든감각-판단에서는모든유기체적인전사 ( 前史 ) 가활동하고있다. 가령 그것은초록색이다 라는판단에서처럼. 기억이본능속에들어있는것이다. 일종의추상이자 75) F. Nietzsche, KSA 3, 117( 서광 126번 ). 방점은필자의것임. 76) 도덕의계보 제2논문에서도망각능력은소화기능으로비유된다. 본논문 2 장참조.
354 철학논집 ( 제 42 집 ) 단순화로서, 논리적과정에비유할수있는것으로서. 즉중요한것이항상강조되지만, 또한가장약한특징들도남아있다. 유기체의영역에서 [ 전통적의미에서의 ] 망각이란없다. 그보다는체험한것의소화활동이일어난다고할수있다. 77) 경험한것을소화하는과정및힘으로서의 기억 은항상현재에서작동하여상기를구성하는작용이므로, 이때망각은기억의반대자가아니라기억의최대조력자이자기억의생산력이다. 기억은망각의적극적기능을통해서, 그리고이를토대로하여일어나는것이다. 이러한망각과의관계를통해기억은철저히디오니소스적 / 아폴론적이중구조를이루고있다. 즉이관계의구조는결코대립적이지않으며, 원인-결과의인과적구조도아니다. 또단순히공간적이고정체적인상으로서가아니라, 유기체적운동과생산력자체가시간속에서전개되는과정의내적구조로파악될수있다. 해석작용, 선택작용, 소화활동, 구성화등자기생산과정이그계기로포함되어있는망각 / 기억의이중적구조속에서일어나는것이다. 78) 기억은디오니소스적망각활동으로부터 형식 으로 형성 된것, 가장표면적인현상, 즉아폴론적인 형식 이며, 따라서내적과정이자그통합으로서의망각의필수적인작용과역할없이는기억은발생하지못한다. 디오니소스적인것없이는아폴론적형식이창조될수없다는니체적명제와같은맥락에서망각없이는기억이있을수없다고우리는말할수있는것이다. 망각으로부터구별됨으로써, 구별된것으로서기억은비로소형식을가지기때문이다. 그런데바로같은맥락에서, 망각되었던것이상기되기위해서는망각의상태가전제되어야하는동시에, 끊임없이발생하는 [ 아폴론적 ] 현상으로서의기억의회귀 ( 상기 ) 는역설적이게도 [ 디오니소스적 ] 망각의회귀 ( 상기 ) 를의미하기도한다. 우리는자신이망각하고있는것이무엇인지, 자신이기 77) F. Nietzsche, KSA 11, 476f.: 34[167]. 78) 니체에있어경험과그것의인식으로부터생겨난사유및감정을포함한모든활동, 즉유기체적-진화론적기억활동의이러한이중성을뮐러-라우터는 이차적으로일어나는왜곡 [ 위조 ] (Verfälschung zweiten Grades) 이라고부른다. W. Müller-Lauter, Über Werden und Wille zur Macht. Nietzsche-Interpretationen I, Berlin/New York, 1999, 217f. 참조.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55 억하고있다고생각하는것을어떻게기억하게되었는지알지못한다. 자발적기억의조건은 - 프루스트에서처럼 - 망각이며잊혀졌던과거의세계이다. 하지만동시에망각은이자발적기억을통해추후적으로확인된다. 그리고되찾은기억이란망각의귀환역시확인해준다. 기억이란항상망각과상기의합작품, 공동작품이다. 상기와기억을이런점에서구별한다면, 기억과망각은하나이다. 아폴론적인것과디오니소스적인것의관계가그렇듯이, 기억과망각은자신의삶을위해 기능적 으로나누어진것일뿐이다. 79) 이때문에니체의사유에서망각으로부터기억이라는현상이발생되는구조는끊임없는생성속에서과정자체를존속하게하는원리와같은것으로서고찰될수있다. 따라서진정한망각은좁은의미의이성이라는개념안에포함될수없는다른모든것과같은의미에서의비이성이아니다. 심지어가령프로이트적의미에서억압된것, 부정된것등과도구별되어야할것이다. 일시적으로억압되어있다가다시되찾아져자아에게되돌려지는의식으로서의기억이아니라결코사라지지않는것, 즉영원히망각인것이며, 그럼으로써생명의모태가되는죽음이나자연자체와같은것이다. 80) 망각은망각된적이없고, 망각은사라지지않는다. 아니, 더정확히말하면망각은오히려끊임없이망각됨으로써존재한다. 기억을배태하고생산하는 자연 으로서의망각은분명 힘들이모여있는공간 (Kraft-Magazin) 81) 이지만, 과거의소멸과현재의생성이라는운동속에서망각의공간은구체적인저장소 79) 가령니클라스루만역시 기억의주된기능은망각하는데있다 고자주언급한다. N. Luhmann,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579/581 등여러곳참조. 그리고에스포지토역시루만과같이체계이론의입장에서망각과기억의관계를진화이론적으로설명한다. E. Esposito, Soziales Vergessen, 27 참조. 80) 아도르노역시망각의의미를다음과같이표현한다. 삶의능력, 계속살아가기위한힘은망각과같은것이다. 오직망각을통해서만이그무엇이든지변화를겪는가운데계속살아남는다. [ 중략 ] 희망이라는것은고집스럽게붙들고있는기억이아니라망각의회귀이다. Th. A. Adorno, Zur Schlußszene des Faust, Noten zur Literatur, Frankfurt a. M., 1974, 137f. 81) F. Nietzsche, KSA 12, 317: 7[62].
356 철학논집 ( 제 42 집 ) 가아니다. 시공간적으로구체적인위치가없으며, 우리의의식이나의지로열수있는곳이아니다. 이런점에서망각은니체에게서 큰이성 이나 몸 의상징과함께등장하는 큰자연 이라부를수있는것이다. 그곳은표면현상으로서의의식과기억이현실로발생하기이전힘에의의지의내적세계, 유기체적삶의조절작용이이루어지는거대한왕국이다. 우리는이러한사유를니체의초기에서부터후기의유고에서까지일관적으로관찰할수있다. 비논리의거대한왕국으로부터논리가생겨나는것처럼 ( 즐거운학문 111), 망각의비역사성으로부터기억이나역사가발생한다. 기억은 밤과망각의죽은바다에하나의살아있는작은소용돌이 이며 (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 ) 82) 망각의바다속작은섬들 83) 에지나지않는것이다. 이러한내용으로부터아폴론적기억과문화의발생은망각이라는디오니소스적카오스와큰자연의끊임없는생성, 즉힘에의의지의영원회귀와불가분의관계에있음이설명될수있다. 망각의기능은전체로서의삶과자연이라는생성과정에있어서현재적순간을다층적인통일체로항상새로구성하는탁월한능력으로서, 니체적의미에서의 조형력 으로이해할수있다. 4. 기억의유전 지금까지설명된것처럼, 유기체적활동으로서의기억의삶이자아의의식적능력이나경험된대상의완벽한의식적재현과도관련이없으며, 오히려의식이전의자연상태로남아있는체험들과관련이있다고할때, 우리는여기서진화론적의미에서의기억의유전을말할수있다. 본논문에서자세히다루고있지않지만전제하고있는 힘에의의지 및 영원회귀 개념의반목적론적, 비인과론적, 반결정론적성격에따라기억발생의메커니즘역시진화의메커니즘과같다. 84) 기억의원리가의식적상기가아니라 82) F. Nietzsche, KSA 1, 253. 83) G. Smith, Arbeit am Vergessen, Hrsg. G. Smith/H. M. Emrich, Vom Nutzen des Vergessens, 20.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57 구조적, 기능적망각이며, 관계속에서선택적구성을통한자기발생적, 자기재생산적작동구조를가진다는점에서, 무엇보다 되돌릴수없는시간속에서의끝없는과정 을토대로하고있다는점에서, 기억에대한니체의인식 ( 비판 ) 적내용은분명진화론적인식론과밀접히연관되어있다. 니체는말한다. 우리의 기억 이라는것은, 그것이무엇이든지간에, 좀더중요한무엇인가를지칭하고자하는비유로서우리에게소용이되는것이다. 그내용은다음과같다. 모든유기체가자신의전사를가지고있는한, 기억역시자신의이전역사전체를자신안에지니고있다. 그리고이기억은물론, 가장최근에체험한형식들이아니라오히려가장오래되고또가장오랫동안취해왔던형식들에따라만들어지는것이다. 85) 기억속에는 경험된어떤것이계속해서살고 있으며, 우리가체험한모든것은계속적인활동중에, 생성속에, 삶의과정속에있는것이다. 가령 1883년의한유고에따르면 모든유기체적인것은경험들을축적한다는것, 그리고그과정속에서결코자신과같은것인적이없다 는데그특징이있다. 이어지는부분에서니체는 유기체적인것의본질을이해하기위해가장작은형태를가장단순한형태로간주해서는안된다. 아주경미한세포들이라해도그각각은현재유기체적전체과거의유산인것이다. 86) 라고말한다. 기억을통해나타나는상들은모두유기체적으로개체적단위에서다르게일어나는것이며, 고유한자기삶의역사를지니고있다. 그러므로이러한기억들은 비록아무리갑자기나타나는것이라해도, 과거의순간들에일어났던무수한경험과판단과오류, 그리고쾌와불쾌의산물이다. 87) 이렇게끊임없이새로운기억이생겨나기위해서는, 즉 [ 기억 ] 생성의항상성이보장되기위해서는망각이필수적으로작용해야한다. 그리고 기억은의식보 84) 자세한내용은홍사현, 니체와다윈 - 가치전환으로서의힘에의의지와진화, 니체연구, 제24집, 2013; 홍사현, 니체의인과비판과주체의문제 - 기연주의적요소를통한 힘에의의지 의비인과성고찰, 니체연구, 제17집, 2010 참조. 85) F. Nietzsche, KSA 11, 645: 40[34]. 86) F. Nietzsche, KSA 10, 406: 12[31]. 87) F. Nietzsche, KSA 9, 571: 11[333].
358 철학논집 ( 제 42 집 ) 다더오래된것이다 88) 라는니체의말역시망각을조건으로하는기억의근원적이고무의식적인, 유전적인성격을표현하고있다. V. 맺음말 니체에게창조하고생성하는가운데끊임없이활동하는원리자체에대한이름이삶이라면, 망각없이는이현재의삶도있을수없으며, 따라서미래를구성할수도없다. 모든행위에는망각도속해있다. 모든유기체의삶에는빛만이아니라어둠도속해있는것처럼말이다. 철저히역사적으로만느끼려는사람은잠을억지로억제하는사람이나, 계속반복해서되새김질만하면서살아야하는동물과비슷할것이다. 89) 니체가이미 반시대적고찰 두번째글에서이렇게말했을때, 그는모든현재적순간과모든인간적행위에있어망각이지니는유용함을삶을위해상기해내었다. 망각은분명무상성이다. 붙잡으려해도흘러가버리는시간의위력과같은것이다. 하지만역설적이게도이무상성없이는, 시간속에서작동하는망각없이는우리들의세계, 우리들의삶이존재할수없다. 망각에대한인식이곧삶의항상성의원리이다. 망각의기능은삶을위한것이고, 이기능은삶을위해 기억 을발생시키는것이다. 이런맥락에서니체가사유한기억과망각의관계전도의방식은망각의끊임없는활동을자연의자기조절적인생성원리그자체로강조하는데있다. 반복된것으로서의기억이아니라반복활동으로서의망각이존재를발생시키는항상적인힘이다. 니체는이때기억활동의원리를 ( 개인이든집단이든 ) 의식적주체성의형식으로보는전통적태도를벗어나관계구조의사회및세계내에서선택과배제의작동을통한망각의자기발생적과정으로해석하고있기때문에, 인간개체와인간문화의조건으로서기억과망각의모순적상호관계성이전제되는것이다. 그리고특히이이중성은그 88) F. Nietzsche, KSA 7, 19[161]. 89) F. Nietzsche, KSA 1, 250.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59 자체로유기체인모든세계속에서상호작용과교환을전제로하고있는구조이며, 이러한상호작용을통해각각새로운형식으로의변화가일어나는과정이반복된다는점에서인간의인식뿐아니라역사와문화와가치등존재전반의존속자체를보장한다. 니체에서 기억 의문제는니체의힘에의의지와영원회귀를설명하는또하나의표본적이고도본질적인구조에대해말하고있는것이다. 본논문에서나는상기의논의를바탕으로망각을기억발생의필연적인과정이자문화와역사를창조하는적극적힘으로부각시킨니체의사유를이분법적전통형이상학에대한비판의맥락에서고찰하고자하였다. 이를위해전통적기억개념에대한니체의비판을출발점으로삼아, 기억의문제를다루고있는니체의저작들을중심으로각각역사비판, 도덕비판, 인식비판의영역으로나누어그중요한내용을서술하였다. 하지만이러한본논문의의도와중심내용을벗어나기때문에여기에전제되어있으면서도구체적으로상술하지않은여러복합적인개념들이있다. 논문의첫머리에언급한대로, 니체의사유에서기억의문제는결코부분적인문제가아니라니체철학의성격및태도자체를드러내는근본적인것이며, 따라서니체의다른여러개념들과겹쳐지거나그모두를아우르는하나의사유모델이될수있다. 이런점에서니체의기억개념에대해서는 힘에의의지 와 영원회귀, 디오니소스적 / 아폴론적인것, 계보학 등과관련하여철학적으로훨씬더정치한논의가필요할것이다. 또동시에니체기억개념의현대적의미역시다른기억연구자들의입장, 특히푸코의 계보학적역사관 이나루만 체계이론 에서의진화이론적기억개념, 알박스의 집단기억 의개념, 그리고프루스트나들뢰즈에서의상기와반복의문제등과관련하여비교연구되어야할주제이다. 이러한작업은더욱확장된다른지면을통해, 혹은관심있는다른연구자들에의해심도있게수행되리라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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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 철학논집 ( 제 42 집 ) <Abstract> The Genealogy of Memory: Memory and Forgetting in Nietzsche s Thinking Hong Sa-Hyeon (Yonsei Univ.) Der Beitrag handelt von dem Gedächtnis-Problem bei Nietzsche, der als erster in der Geschichte der Gedächtnistheorie versuchte, die Erinnerung als Speicher bzw. Verfahren des Speicherns und den Prozess des Erinnerns selbst zu unterscheiden. Von seiner kritischen Grundhaltung gegen den traditionellen metaphysischen Dualismus ausgehend, vertritt er die Auffassung, dass das Gedächtnis kein stillstehendes, ewiges Bild ist, das das Vergangene ohne Änderung und Fälschung wiedergibt. Es geht dabei eher um einen Prozess in der Dimension der Zeit, in der das Leben das sich immer wieder neu schaffende Werden ist und ohne die unser Leben überhaupt nicht möglich ist. In diesem Zusammenhang hebt Nietzsche die für das Leben notwendige und wichtige Funktion des Vergessens hervor und beschreibt es nicht als Mangel oder Gegensatz des Gedächtnisses, sondern vielmehr als dieses stets ermöglichende aktive Kraft und somit als natürliche Grundlage für das geschichtliche und kulturelle Leben des Menschen. Er betont allerdings keinen absoluten Vorrang des Vergessens vor dem Gedächtnis. Denn, dadurch, dass er unter dem Gedächtnis den selbstregulierenden, einheitlichen Prozess von Gedächtnis und Vergessen versteht, erfolgt nun auch die Umwertung des Gedächtnisses selbst. In dieser doppelten Struktur von Gedächtnis/Vergessen, die mit der Doppelheit von Apollinisch/Dionysisch vergleichbar ist, besteht die Funktion des Vergessens gerade darin, die plastische Kraft des Lebens wiederherzustellen, und das Gedächtnis für das Leben hervorzubringen und erscheinen zu lassen. In der vorliegenden Arbeit gilt es, dieser Genealogie des
망각으로부터의기억의발생 363 Gedächtnisses nachzugehen, die sich in Nietzsches Historismus-Kritik, Moralkritik und Erkenntniskritik durchzieht. Key words: Nietzsche, Memory, Forgetting, Genealogy, Critique of Historicism, Critique of Morality, Critique of Knowledge, Life, Plastic Power, Will to Power, Dionys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