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교회의 의사소통: 종교와 미디어 김승호 - 2006년 10월호 미래를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점차 개인주의화, 파편화돼 가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들 에서 비롯되는 의사소통의 단절 현상을 미래 교회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의사소통의 문 제는 미래 교회의 사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종교와 미디어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뜻 생각하면, 종교의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 방송이나 출판 물 등이 떠오른다. 즉 종교의 영역이 미디어라는 영역을 도구로 사용해 종교 전파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특정 미디어가 종교를 대상으로 삼아 미디어 자체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해에서 볼 때, 종교와 미디어는 분리된 두 영역이며 필요하면 서로가 상대를 이용하 거나 이용되는 관계로 생각할 수 있다. 종교와 미디어의 상관 관계 이렇듯이 미디어와 종교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자율적이고 제한적이며 전달의 관계 로 여겨온 경향이 있 다. 우리 사회에서도 미디어와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이며 필요한 경우에 서로가 상대를 이용하는 도구주 의 에 기초한 인식이 보편적이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미디어와 종교 사이에 관한 질문은 주로 전자 교회(electronic church) 혹은 텔레반젤리즘(Televangelism) 같은 미디어의 종교적 사용 에 관한 질문이거나 종교 저널리즘 같은 종교의 미디어 사용 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에 후버(S. Hoover)라는 학자는 미디어와 종교 사이의 관계가 단지 단순한 메시지 전달 이나 도구주의 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TV 설교를 통한 복음 전파에 주력하는 텔레반젤리즘과 같은 것은 전통적 으로 생각해온 것보다 더욱 심오하고 미묘한 문화적 실재(cultural reality)라고 보며, 텔레반젤리스트들 사이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본다. 또한 종교가 TV라는 미디어에 의해 적응되는 과정을 통해 종교 본 래의 정체성보다 더욱 미디어적 정체성을 갖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TV라는 미디어가 종교에 의해 이용됨 으로써 미디어 본연의 정체성을 잃고 종교적 특징이나 스타일을 닮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TV를 보면, 교회라는 맥락에서 행해지는 신앙 프로그램들이 미디어 환경 특히 종교 방송이 아닌 일반 지상파 방송에서 전파를 타게 될 때 미디어 특유의 제한된 잣대에 의해 직 간접적으로 종교적 표현이 편집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그 결과로 종교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미디어적 정체성으로 덧칠되는 경우가 많다. 올해 4월 초 MBC TV 9시 뉴스에서 미국 풋볼 선수인 하인즈 워드의 한국 방문 뉴스를 방송하면서, 그가 혼혈인들을 대상으로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을 하는 가운데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새 힘을 얻습니다 라 는 내용을 음성으로 들려주면서도 화면 자막에 그 내용이 빠진 채 방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가 급적이면 종교적 색채를 지우려는 방송사의 의도가 하인즈 워드 개인의 종교적 신념마저 무신한 채 단지 혼혈 한국인 으로서 그의 성공 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필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몇 년 전에 교회 개척 정책에 관한 주제로 단독 대담을 하는 기독교 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사전에 해당 프로그램의 작가로부터 질문지를 받고 여러 가지 질문 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한 후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녹화가 시작되면서 남녀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 나름대 로 정성껏 대답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실제 방송 내용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대답한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소위 편집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필자가 준비한 신학적 콘텐츠가 해당 프로그 - 1 -
램 PD의 잣대로 요리(?)되는 현상을 보면서, 종교적 내용이 미디어에 의해 원래 내용과 다른 변형 이나 왜곡 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종교나 종교적 콘텐츠가 해당 미디어의 조건 및 의도에 적응해야 하는 경우를 미디어 환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언젠가 모 라디오 방송사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온 적이 있었다. 인터뷰의 내용은 미국 교회가 교회 시설 을 통한 이윤 증가를 추구하고 있는 현실 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묻는 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성심성의 껏 답변해서 대담을 잘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PD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 번 더 인터뷰하자는 것이었 다. 그 PD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회의 시설 사용을 통한 교회의 이윤 추구에 대해 비판적 입장 으 로 방송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대답한 내용이 그 PD가 생각했던 것보다 덜 비판적이 어서 더욱 확실한 비판을 필요로 하다는 주문을 받은 것이다. 즉 이슈 자체의 복잡한 상황과 배경에 대해 이해하기보다 미디어 특성상 이슈 자체를 양극단으로 대립시켜 해당 이슈를 단순화하려는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인터뷰에서 필자는 좀 더 직접적인 용어 사용을 통해 교회의 이윤 추구에 대한 비 판 수위를 상향 조정함으로써 무사히(?) 그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만약 그 사안에 대해 필자의 견해를 완전히 수정해야 했다면 그 인터뷰를 거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방송 인터뷰를 통해 확실히 느낀 점은 어느 정도 신학적 콘텐츠가 해당 프로그램의 방향과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면에 종교가 미디어를 사용하면서 미디어 자체의 고유 기능과 정체성은 사라지고 미디어가 하나의 종교 적 특징을 닮아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특정 종교나 종교 기관이 미디어 공급자일 경우, 그 미디어는 원래의 기능보다 하나의 종교 기관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어 결국 미디어 자체가 하나의 종교 기관의 형 태로 변질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종교 저널리즘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미디어 수용자들로 하여금 공급하는 미디어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도록 유도하는 점, 미디어가 보편성에 근거한 프로그램의 공급 보다 해당 종교의 이데올로기적 특징에 기초해 특정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으로 유도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과거에 종교와 미디어가 서로 다른 자율적 영역이라는 사고 속에선 제기될 수 없었던 질문들이 이제 새롭 게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종교와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더욱 복잡하게 연결된 상황으로 인해, 우리는 미 디어 시대에 종교의 위치 와 미디어 시대에 떠오르는 종교 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의 역할 변화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과거의 종교가 공적인 문제에 큰 영향 을 미쳤다면, 현대의 종교는 보다 사적인 문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제 종교는 공적인 영역에 서 그 기능이 제한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 이해에서 월(Wall)은 종교가 사적 믿음과 공적 행동 사이의 중개자로서 역할을 가지며, 교회 사역에서 미디어의 역할도 투사(projection)와 중개(media-tion)의 도구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현대적 시각에서 후버(S. Hoover) 는 이런 사 적인 영역의 종교와 공적인 영역의 종교 사이에 이원론적 분리를 부정한다. 후버에 의하면, 현대 종교와 미디어에선 둘 사이의 경계가 힘의 결과로 지워져 버렸고 그 둘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적 자율성의 증가 와 미디어 시장의 증가 라는 특징을 증거로 종교와 미디어 사 이가 연결 혹은 융합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후버에게 종교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 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후버에 따르면 종교는 점점 더 기관, 교파, 회중, 선교 단체들의 손에서 개개인의 손으로 이동되었고 이런 현상은 신앙 문제에서 개인적 자율성의 증가 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종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는 성( 聖 )과 속( 俗 )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기 힘든 시대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예배당이나 사찰과 같은 특정 지역을 종교적 장소로 여겼지만, 이제 예전에 세속적 공간이라 여겼던 인터넷이나 TV 스크린이 종교적 장소로 여 겨지고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배 행위도 과거에 특정한 공적 장소와 시간에 지배를 받았지만, 이제 수용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언제 든지 예배의 시간과 공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나 자신에게 편리한 시간대를 이용해 인터넷에 - 2 -
접속해 온라인 상에서 제공되는 예배에 참여하고 헌금을 드리는 이른 바 사이버 교회는 더 이상 서구의 이야기가 아니며,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다양한 직업들의 출현으로 인해 주 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교인들이 늘어나게 되어 앞으로 사이버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 들의 수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인은 개인적 자율성의 증가로 인해 종교와 미디어가 서로 연결되거나 융합되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 시장의 변화 미디어 시장의 증가도 종교와 미디어 사이의 연결을 가속화시켰다. 현대 사회의 파편화, 원자화, 다양화 및 재구조의 영향을 받아서 더 많은 채널과 자원과 상품 그리고 서비스들이 미디어 시장에 출현하고 있다. 일반적인 흥미를 끄는 기존의 네트워크들이 감소하는 반면, 특화된 채널들과 서비스들이 폭발적으로 증가 하고 있다. TV, 라디오, 케이블, 인터넷, 출판, 레코드, 영화 산업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종교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증가는 자연히 종교적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확대를 이끈다. 결 국 자율적 종교성을 추구하는 경향 이라는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자연히 미디어의 종교적 서비스 라는 공 급이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기 스타의 개인적 신앙 생활이 종교 방송이 아닌 일반 방송 에서도 자연스럽게 방영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공적 예배 같은 공식적 차원의 종교 프로그램이 아니 라 개인의 사적 신앙 성향 및 종교 생활이 인기 스타의 사생활 가운데 한 부분으로 여겨져 일반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방영되는 것이다. 또 영화, 연극, 소설, 코미디, TV 연속극, 서적 등 다양한 문화 영역을 통해 직 간접적으로 종교와 관련된 내용들이 개인적 삶의 가치와 연결돼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 교회의 경우, 복음주의 진영은 자율적 종교성의 증가에 따른 종교 미디어 시장의 확대를 이끄는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기독교 관련 레코드, 픽션 소설, 시, 성경 번역, 간증서, 경건 서적, 각종 매 거진, 팸플릿, 신문, 라디오 TV 방송 등을 통해 미디어 시장을 확대시켜 왔다. 이런 경향은 물질 문화에 기초하고 있는 현대 대중 문화를 선교적 과제 성취에로 연결시킨 탁월한 전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미디어 서비스의 증가는 자연히 미디어 시장에서 미디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야기한다. 과거 독점 적 지위를 누렸던 소수의 미디어 공급자들이 이제 다양한 미디어 공급자들과 경쟁하게 됨으로써 그 독점 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미디어 서비스의 다양성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목할 만한 사항은 과거에 소수의 미디어 공급자들에게서 미디어 수용자들에게로 그 힘이 이동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힘의 이동으로 인해, 미디어 공급자들은 날이 갈수록 미디어 수용자들의 눈치를 더욱 살피게 되었고, 소비자는 왕 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따라 각 분야별로 미디어 수용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미디어 공급자들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미디어 시장의 확대로 인해, 종교는 상징들이나 가치들의 시장 (marketplace)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는 전통적 의미의 구도적 차원 외에 새로운 의미의 상품 가치적 차원 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각종 종교 관련 행사나 콘퍼런스에 참석해 보면 행사에 관련된 서적, 비디오 프로그램, CD, 게임, 의류 등 다양한 상품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참가자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 상품들을 대하고 있 다. 이런 종교의 상품화 경향은 교회의 외부 행사뿐 아니라 내부 행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교회 마다 내부 시설을 이용해 복음 전파라는 근본 목적을 추구함과 동시에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런 사업의 규모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교회 시설을 이용하는 경향은 미국 의 윌로크릭교회를 비롯해 초대형 교회들에 사이에선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통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과거와 달리 메시지를 생산하는 성스러운 영역에 위치한 종교 기관들이 분리된 세속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더 이상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미디어 시대에 는 세속적인 것이 거룩한 것으로 되고 거룩한 것이 세속적인 것으로 되는 성과 속의 뒤바뀜 현상과 융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종교적 이해의 범위 내에서 종교 저널리즘이 그 역할을 수행해 옴으로써 사 회적 논쟁에 직접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시장에서 종교는 모든 곳에 있고, 종교 시장과 세속 시장의 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종교는 종교만의 고유 영역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세속 영역들에 침투해 있다. 이런 현상 자체가 바로 전통 교회와 전통 종교 저널리스트 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다. - 3 -
미디어의 기능에 대한 이해 종교의 역할과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변화하는 미디어의 기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미디어는 정보 제공의 기능이 있다.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하 나의 해석된 정보 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한 가지 사건을 보도함에서 각 언론사에 따라 다른 입장과 시 각으로 접근한다. 실제로 똑같은 사건에 관한 보도에서도 각 언론사의 입장에 따라 그 사건을 중요하게 다 룰 수도 있고 가볍게 다룰 수도 있다. 또한 같은 사건에 대한 해석도 해당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이 사실 (fact) 자체이라기보다 사실이나 사건을 해석 한 (interpreted) 정보임을 말해준다. 이런 사실은 미디어 수용자가 다시금 비판적 해석을 통해 미디어를 수용해야 함을 뜻한다. 미디어 수용자가 올바른 비판적 해석을 통해 미디어를 수용하려면, 각각의 미디어 공급자의 성향과 가치관 등을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 수용자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사실에 관한 해석 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재해석 하는 능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전달되는 미디어를 재해석할 능력이 부족할수록, 미디 어 수용자는 중대 사안에 대해 해당 미디어에 의해 의도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해 결국 미디어 공급자에 의해 의도된 정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슈퍼맨 프로그램을 본 어린이 가 실제로 옥상에서 슈퍼맨을 흉내내면서 뛰어내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전달되는 정보를 재해석할 능 력이 없는 관계로 나타나는 결과다. 이런 현상은 성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 을 테마로 하는 연속극에서 남녀가 사랑의 삼각 관계 에 빠지거나 혼전 동거를 미화하는 드라마를 통해, 비도덕적 사랑이 보편적 사랑의 방정식으로 여겨져 미 디어 수용자가 그런 가치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해석된 정보 를 재해석하는 능력은 미디어 수용자가 가져야 할 필수 조건이라 하겠다. 둘째, 문자 중심 의 미디어에서 영상 이미지 중심 의 미디어로 그 힘이 이동되고 있다. 문자 중심의 미디 어가 인식과 지성에 호소하는 것이라면 영상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는 더 이상 인식과 지성에 호소하지 않 고 시각과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빠른 영상과 이미지를 접하면서 미디어 수용자는 빠르게 지 나가는 이미지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판단하고 비평하며 해석할 여유가 없으며 단순히 시각과 감성을 자 극받으며 결국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이 영상 이미지 중심의 미디어는 사실 을 왜곡하거나 허구적일 가능성이 높고 반지성주의 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셋째, 미디어는 정체성과 친밀감을 제공하는 기능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방송 앵커 출신의 정치인 들이 많이 있다. 총선 때가 되면, 방송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이 각 정당으로부터 우선적인 러브 콜을 받 으며, 그들 중에 상당수가 국회로 진출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왜 유권자들은 그들을 선호하는가? 뉴스 앵커들은 브라운관을 통해 오랫동안 일반 대중과 접촉함으로써 친밀감이 이미 형성돼 있으며, 이런 방송인 으로서의 친밀감이 정치인의 신뢰감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서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 레이건 대통령이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고, 또 2003년 10월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명성을 얻고 있는 아널드 슈왈츠제네거도 성공적인 배우 출신 이다. 그는 여러 번의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비춰진 친밀감 특히 그의 근육질의 남성미를 무기로 악을 응징하는 영화 속의 캐릭터가 현실 문제에서도 악을 물리치는 정의 의 사도로서 유권자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켰음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미디어의 정체성과 친밀감을 제공하는 기능은 긍정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부정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 인기 연예인들에 대한 친밀감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연예인들의 사고와 가치관 등도 막연히 선하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그들의 사고와 가치관이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윤리적 기준 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배치되는 행동까지도 서슴없이 모방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 런 모습이 바로 무비판적, 무조건적 수용의 결과라 하겠다. 따라서 미디어 수용자는 정체성과 친밀감을 제 공하는 미디어 특유의 기능을 인식하고 그 기능이 잘못 해석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 4 -
넷째, 미디어는 이데올로기 주입에 수단이 된다. 다양한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정부는 영향력 있는 미디 어를 이데올로기 주입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과거 우리나라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상영하 기 전에 반드시 대한뉴스를 상영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한뉴스는 대부분의 내용이 당시의 정권을 미화하거 나 치적을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과거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일수록 언론 통제를 심하게 감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정권은 언론 통제를 통해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고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내용만을 보도케 함으로써 정권 유지 및 정당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미디어 수용자는 이렇게 미디어 가 진실과 사실의 전달이 아닌 하나의 이데올로기 주입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의 미디어 접근,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 시장과 세속 시장의 융합 및 연결은 종교(기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는 미디어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갖고 접근해야 하는가? 후버의 주장을 교회의 미디어 접근이 라는 측면에서 다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가 오늘날의 공공 문화와 연결되고 그 안에 존재하기 위해선 교회 자체가 미디어에 존재할 필요 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일반 사회에 널리 편재하는 미디어 영역의 장에서 전적으로 철회하는 것은 교회 의 변두리화를 자초하는 일이며 교회의 목소리를 상실하는 일이다. 교회가 현대 담론 안에서 존재할 때 비 로소 일반 대중이 교회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고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가시성 (visibility)이라는 특징은 정치 사회적 입장의 경향이며 동시에 미디어 노출의 기능이라 할 수 있 다. 이런 가시성을 통해 교회의 입장들이 일반 사회와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 회는 종교 미디어뿐 아니라 일반 미디어에 노출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교회의 상징들이 다른 세속적 상징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교회는 진지하게 인식해야 한다. 교 회의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상징들 중에 몇몇은 세속적, 상업적 목소리들에 의해 대치되거나 변경되었 다. 또 어떤 상징들은 그 진정성과 독특성을 잃어버렸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적극적으로 질 높은 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며, 보다 적극성을 갖고 미디어 수용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과거에 교회가 수동적 인 회중들을 위해 미디어 속으로 메시지를 투사할 수 있었지만, 그런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이제 청중들은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 디어 간의 치열한 경쟁이 있고, 교회는 수용자에 의해 선택되는 질 높은 미디어 콘텐츠 공급을 위해 애써 야 한다. 셋째, 교회는 교회와 미디어 사이를 분리된 영역들(한편으로 진정하고 성스러운 영역과 다른 한편으로 세 속적이고 부패한 영역)로 보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그런 이원론적 사고는 오늘날 사람들이 미디 어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이나 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의미와 문화적 상업에 주어진 당연시된 환경이며 교회와 미디어는 성과 속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는 영역임을 인식해야 한다. 넷째, 교회는 스스로 생산하는 이미지들 자체에서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출석하는 회중들에 게서 의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과제는 교회가 의도하는 의미들을 생산하도록 교회 의 메시지들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교인들이 일상에서 핵심 믿음과 가치들을 잘 표현할 수 있 도록 돕는 것이다. 즉 교인들의 마음속에 교회의 핵심 믿음과 가치들을 심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역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교회는 미디어 시대에 교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디어 영역의 출 현은 전적으로 목회를 위한 새로운 조건들을 창조했다.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교회는 그것의 진정성과 그 멤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사는 방식과의 관계라는 조건에서, 그 의사소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다른 활동들처럼 의사소통도 맥락적이어야 하며, 경험과 프락시스에 기초해야 한다는 뜻이 다. 즉 교회가 진리 전파라는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서 미디어는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적 맥락과 교인들의 삶의 경험 등에 기초해야 하며, 이것은 교회가 미디어 환경이라는 조건에서 변화하는 시 대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 - 5 -
미래를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점차 개인주의화, 파편화돼 가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들 에서 비롯되는 의사소통의 단절 현상을 미래 교회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의사소통의 문제는 미래 교회의 사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 래 교회의 미디어 접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미래 교회가 미래 미디어에 대한 접근에 실패한다면 소통의 장애로 말미암아 더욱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래 교회가 미래 미디어의 특성을 잘 이 해하고 맥락에 알맞은 미디어 접근을 실천 할 때, 비로소 미래 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장으로서 새로운 기회 가 주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미래는 미디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