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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의 명칭은 주식회사 와이티엔이라고 표기합니다. 영문으로는 YTN이라 표기합니다. 나. 설립일자 및 존속기간 당사는 방송법에 근거하여 종합뉴스프로그램의 제작 및 공급 등을 영위하는 목적으로 1993년 9월 14일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2001년 8월 31일에 코스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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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예술 참여하고 개인전 3 회를 가졌다.충남도 초대작가,한국미협 회원,선율회,가람회,서부 전업작가 회원으로 수묵화와 산사( 山寺)풍경을 즐겨 그리는 작가이다.대천문화원 한 국화교실을 지도하고 있다. 김용( 金容):공주대학교 및 단국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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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사 1~2부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 강원도 시군별 투입산출표 작성 연구 / 김진기, 박봉원 [ 공저]. -- 춘천 : 강원발전연구원 (Research Institute for Gangwon) p. ; cm. -- ( 연구보고 ; 14-25) 참고문헌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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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식 순 사회 : 정봉주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제1부 어제를 이야기하고 개회선언 인사말 내외빈 축사 연구원 1년간의 활동보고 제2부 오늘을 나누며 초청강연 -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교수 (동경대학교 명예교수) - 한상진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제3부 내일을 생각하는 국민의 힘 정책공모전 시상 수상작 발표회 폐회선언

목 차 인사말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 / 7 축 사 정세균 (민주당 대표) / 9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 / 11 강 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東 北 アジアの 平 和 と 朝 鮮 半 島 )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교수 (동경대학교 명예교수) / 15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한상진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35

인사말 [ 인사말 ] 국민의 삶에 밀착하는 실천적인 연구와 대안제시를 통해 민주당의 현대화는 물론 한국사회의 미래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결의로 창립인사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민주정책연구원은 민주당의 비전과 가치를 재정립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뉴민주당 플랜 을 준비하는 작업과 병행해 우리 민주당이 그 동안 지켜왔던 전통적 가치를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고 현대화 시켜내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 온 것입니다. 연구원은 또 웹2.0 시대에 맞게 개방 공유 참여의 방식으로 진보개혁진영의 연구 성과와 지혜를 모아나가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편 연구원은 허브역할을 수행하는, 씽크탱크 보다는 씽크넷 을 지향하는 민주정책연구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연구원 창립 이후 1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우리는 모든 민주개혁세력과 연대해 치열하게 싸워 왔습니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민주, 평화, 민생 에 이르는 3대 위기는 민주당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의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민족의 지도자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두 분을 모두 잃었 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비극적 서거가 변화를 위한 투쟁의 절박성 을 각인시켰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서거를 통해 대한민국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 기회와 가능성 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절박성을 가슴에 새기고, 결정적 기회와 가능성을 활용해 3대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3대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발판삼아 민주당이 재집권하는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역사를 보면, 결국 국민의 마음을 잡고 국민을 따라 간 사람이 패배한 법이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방선거와 대선은 결국 국민의 마음을 잡고, 국민을 따라가는 과정입니다. 민주당이 정책정당 이미지를 구축하고 정부와 여당의 정책에 맞설 대안은 물론 국민이 원하는 맞춤형 정책개발을 통해 재집권의 길을 열 수 있도록 민주정책 연구원이 앞장서겠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민주정책연구원이 굳건히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민주정책연구원 모든 구성원들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완성하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혼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2009년 8월 27일 민주정책연구원장 김 효 석

축 사 [축 사] 민주당은 작년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민주당, 강한 민주당, 국민과 함께 하 는 민주당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얻기 위해 민주당의 브레인 민주정책연구원 을 열어 국 민들과 소통해 왔습니다. 이명박 정권 출범 1년 반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나 위태롭습 니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을 잃은 커다란 슬픔 속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고, 온 국민이 함께 쌓은 남북 화해협력의 탑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서민경제는 지속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월 재 보궐 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노무현, 김대중 두 전 대통령 서거, 언론악법 날치기 등을 통해 정부여당이 민심 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지 실감할 수 있었 습니다. 서민, 민생을 얘기하며 속으로는 부자,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부 여당을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의 브레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간 민주정책연구원은 민주정책포럼 과 각종 토론회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남북평화협력, 서민경제를 살리는 대안과 정책으로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해왔습 니다. 또한 대학생 정책 자문단, 교육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치시민 교육의 장을 마련하여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여 왔습니다. 여기에 그쳐선 안 됩니다. 우리가 좀 더 노력해야합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아내고, 남북평화협력의 기틀을 마련하며, 서민경제를 살리는 것이 민주당의 책무요, 시대적 사명입니다. 더불어 민주당은 서거하신 두 전직 대통령님들의 뜻을 계승, 발전시켜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민주당의 희망을 비추는 등대로서, 국민의 꿈을 실현시키는 창구 역할을 해낼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국민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27일 민주당 대표

축 사 [축 사] 안녕하십니까? 민주당 원내대표 이강래입니다. 관심과 기대속에 문을 연 민주정책연구원이 어느덧 창립 1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성과를 거두고 의미있는 창립 1주년을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 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민주정책연구원이 당의 정책과 전략을 구축하는데 핵 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 개발에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김효석 원장님을 비 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 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고,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루어 온 남북 화해와 통일이 다시 냉전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서민경제는 도탄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정책정당으로서의 제1야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려면 국민들과 끊임없이 의사 소통을 하고, 국민 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민주당이 100년 가는 정당의 기틀을 다지는 중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민주정책연구원이 그 중심에 서서 큰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지난 8월 18일에 김대중 前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셨습니다. 평생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한 분이셨고, 불의에 굴하지 않는 의지와 희생으로 민주주의를 지키셨으며, 평화적인 남북관계에 큰 획을 그으셨습니다. 우리 민주당은 그분의 뜻을 지켜 3대 위기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민주당 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여 올바른 정책을 입안하는 책임 있는 정책정당의 길을 걷는 민주당으로 거듭날 것을 약속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8월 27일 민주당 원내대표 이 강 래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강 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와다 하루키( 和 田 春 樹 ) (동경대학교 명예교수) 1. 동북아시아 위기의 원천은 무엇인가? 냉전시대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에는 혁명과 전쟁이 있었다. 유럽의 전후사는 미소냉전, 오랜 평화, 동구의 소련화, 서방의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데, 여기 동 아시아는 공산주의자의 혁명과 공세, 미국의 반공전쟁에 의하여 제2차 세계대 전 이후 약 30년간 열전이 있었던 것이다. 냉전은 예전부터 이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지만, 냉전적인 존재는 일본 뿐이었다. 미국의 비호를 받으면서 헌법 제9조에 의하여 전쟁에 참가할 수 없 는 일본은 전쟁의 밖에 있으면서 냉전을 살아온 것이다. 동북아시아, 동아시아의 전쟁은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가 싸웠던 것으로, 미 국이 후자를 지지하며 전자와 싸우는 것이었다. 중국의 내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에는 한국이 참전하였고, 북한도 비행기 조종사를 파견하였다. 오키나와는 베트남 폭격의 기지가 되었고, 일본본토에는 미군 병사들의 휴양지와 병원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1975년 미국의 패배, 한국의 패배, 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서 기본적으로 30년간의 아시아 열전은 끝난 것이다. 그에 앞서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여 중국에 접근하고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 다. 이것을 재빠르게 이용한 것이 다나카 내각으로 1972년 일중공동성명 을 통 해서 중국과의 국교를 수립했다. 역으로 베트남과 중국은 1978년 전쟁에 이르 게 되고 베트남은 소련에 가까워졌다. 중국은 같은 해인 1978년 개혁과 개방의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길에 들어서 미일과의 무역확대에 의한 경제성장의 극대화 노선을 추진했다. 중국과 대립하고 있던 베트남도 1980년대 말에는 베트남식 도이모이 (쇄신정 책) 정책을 시작으로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은 베트남전쟁의 특수로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베트남 전쟁에 서 패배함으로써 군사독재정권의 권위가 떨어지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나 1970~ 80년대를 통한 피땀어린 노력으로 공산주의혁명과는 다른 민주주의혁명을 1987년 에 이룩하였다. 1991년에는 냉전이 끝나고 소련사회주의가 종언을 고한다. 여기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일본과 북한이었다. 일본에서는 사회주의 조류, 마르크스 세력이 붕괴한 결과 대학, 미디어, 노동 운동에서 좌익이 영향력을 잃고, 일본사회당은 붕괴하였다. 자민당이 영구집권 당이고 사회당이 만년야당이었던 55년 체제가 끝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새로 운 모색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국 민주주의 혁명의 영향은 일본사회에 과거역 사에 대한 반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기본 이데올로기로 하여 자력갱생, 자주국방, 자주경제를 목표로 하여 왔지만, 소련과의 1961년 상호원조조약에 의하여 소련의 핵우산 아래 들어와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 소련과의 무역은 특혜로서 특히 원유의 수입은 중요한 것이었다. 북한은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의 발전에 완전히 압도 되어 있었다. 북한은 군사적 통일은 포기하고 있었지만, 북한 노선에 입각한 남 북평화통일을 목표로 하여 왔다. 그 때문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한국의 민주 화운동에 개입하여 북한에 대한 지지자를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랭군사건 과 같은 테러행위를 저질렀다. 한국에 공작원을 파견하기 위하여 일본으로부터 납 치사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서 소련사회주의의 종언은 소련으로부터의 특혜적인 무 역이 끝나게 되는 것이며, 핵우산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소련으로부터 중 유를 얻을 수 없게 됨으로써 북한의 경제는 붕괴되었다. 게다가 소련, 동구제 국, 그리고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위기적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이 위기로부터의 탈출구로 생각한 것이 미국을 염두 에 두고 핵무기를 보유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었으며,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진행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가지 방법이 서로 모순된다는 것이 었다. 한국이 소련,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 교섭을 1991년부터 시작하였지만, 미국과 한국의 견제로 교섭은 중단되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여 일본을 견제한 것이다. 이때부터 동북아시아에 있어서의 북한문제의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북한에 게 있어서 핵무기는 가장 값이 덜 드는 무기였으며, 또한 미국과의 교섭카드이 기도 했다. 일본과의 교섭에서는 납치문제가 불거져 교섭이 진행되지 못했다. 1993년 94년 위기에서는 전쟁의 가능성이 현실화되었는데, 카터의 북한 방문과 핵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지할 것을 표명하고, 경수 로 2기의 건설과 중유를 제공받게 되었다. 1997년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는 페 리 프로세스를 가동시켰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2002년의 고이즈미 수상의 방북에 의한 북일평양선언 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는 납치문제를 인정하고 사죄한 북 한의 결단이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2002년 미국의 부시정권은 우 라늄 농축계획이 있다고 하여 핵문제 해결에 대한 합의를 중지하기에 이른다. 또 다시 일본의 대북외교는 미국의 힘에 의하여 브레이크가 걸렸고, 일본 국내 에서는 납치문제를 이용한 반북한 캠페인이 일어나 북일교섭은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6자회담이 2004년에 개시되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혜를 짜내어 2005년 9월 17일 공동성명이 발표되어 최종목표를 확실하게 확정하였다. 북한은 핵계획을 포기하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국교를 수립하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들어 동북아시아 6 개국의 안보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부시정권은 뱅크델타 아시아(Bank Delta Asia)의 북한자금을 동결하면서 또다시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 와중에 북한은 2006년 핵실험을 실시한다. 이에 부시정권은 북미교섭에 의한 타개를 모색하여 6자 협의 재개를 이루었으며, 제2단계의 완성을 위해 움 직였다. 2008년 6월에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파괴하였지만, 그 후 북한 핵시 설의 보고를 점검하는 문제가 불거져 진척되지 못하였다. 이 시점에서 북한은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2. 오바마 시대의 위기의 고양 올 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와 협조의 의사를 표명하고 김 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동북아시아에서 도 또한 세계 각지에서도 동북아시아 사태가 외교적으로 타개된다고 하는 기대 감에 부풀었다. 그런데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은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오바마 정권의 동북아시아 외교는 별 진전이 없었다. 보스워즈는 일찍부터 북한담당으로 지명되었지만 그는 현직 태프트 대학 총장으로 파트 타임으로서 의 역할에 불과했다. 오바마 정권의 정책순위로는 동북아시아의 위치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았다. 외교면에서는 명백하게 이라크, 이란 문제가 북한문제보 다 오바마 대통령의 리스트에는 우선순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쿠바 문제도 북한 문제보다 우선순위에 있었을 것이다. 4월 초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핵군축의 대담한 계획을 발 표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한 그 날(4월 5일) 아침 북 한은 일본의 상공을 가로지르는 로켓을 발사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빠르게 북한의 행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여 연설 중에 북한에 대한 논평을 덧붙였다. 그는 북한이 또 다시 규칙을 어기고 장거리 미사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로켓 발사 실험을 행한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위반은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단호한 대응할 할 때 입니다. 북한이 위협적이고 위법한 무기를 가지고 안전보장과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장거리, 중거리 핵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는 국가의 대통 령이 북한의 로켓을 위법적인 무기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 의 말투는 마치 자기 반 학생을 꾸짖는 고등학교의 선생님과도 같았다. 프라하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정부는 설득하려고 했지만, 북한 정부에 대 해서는 그러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단독행동주의에 입각한 부시 전 대통령은 때때로 일본의 입장은 고려하지도 않고 북한에 대한 대 테러국 지정을 해제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동맹국과의 협 조를 중시하며 등장한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의 의견, 한국의 의견을 잘 듣고 북 한의 로켓 발사에 대하여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였다. 일본과 한국은 그 당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에는 북한과는 어떠한 외교적 접촉도 갖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 일본, 한 국과 긴밀하게 협조한다면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 압력노선에 일방적으로 기울 어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개최에 맞추어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고 발표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은 병에서 회복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전 국민에게 과시하는 것을 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내정 상의 필요에서 온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일방적으로 비난 받음으로 해서 김정일 국방위원 장은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오바마 연설에 이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미일 협력에 의하여 이 발사를 비난하고, 기존제재의 강화를 요구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5월 25일 북한은 이 성명을 주권의 침해로 보고 핵실 험의 실시로 대응하였다. 물론 북한에서는 핵무기를 갖기 위해서는 실험이 필 요하다고 생각하여 왔기 때문에 준비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결 행한 것은 국방위원장의 체면이 손상된 이상 반격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6월 1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핵실험은 지금까지의 안보리 결의에 위반한 다고 하여 결의 1874를 채택하였다. 이 결의에 의하면 북한은 무기의 수출이 금지되고 북한의 선박은 임시검사의 위험에 노출되고 금지물품은 몰수당한다. 더욱 강화된 금융제재도 준비되었다. 미국, 한국, 일본에 의한 해상검사가 북한 선박에 대하여 실시된다고 하면 동북아시아의 긴장은 위기적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7월 2일과 4일 북한은 계속해서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하였다. 강경한 대응이 강경한 대응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이 나타난 것이다. 3. 닫힌 일본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아주 적극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리드하여 미국과 함께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계속해서 내놓았다. 그러면서 일본은 스 스로는 북한과 더욱 대립하고 더욱 강한 독자적인 제재를 더하여 어떠한 외교 도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자초한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대북한 외교는 2006년 가을 아베정권 아래에서 체계적으로 확립되었 다. 아베 수상은 납치문제의 해결을 일본의 최중요 문제 로 삼아 수상을 본부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장, 관방장관을 부본부장으로 하고 전 각료를 부원으로 하는 납치문제대책본부 를 설치하였다. 10월 16일에 열린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제1차 회합에서 납치문제에 있어서 금후의 대응방침 이 결정되었다. 납치문제의 해결 없이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정부가 일치단결하여 모든 납치 피해자의 생 환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이미 실행중인 경제제재조치에 더하여 금후 북한의 대응 등을 고려하면서 또 다른 대응조치에 대하여 검토 한다 고 하였다. 또 현행법제도 아래에서는 엄격한 법 집행을 계속하여 실시해 간다 고 하였는데, 이것은 조총련에 대한 억 압적인 조치를 계속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예산은 2006년 추가경정예산에서 2억 2,600만엔, 2007년 도는 4억 8,000만엔, 2008년도는 6억 7,700만엔 이었다. 큰 항목은 2008년도에 안부정보수집체제강화 경비 1억엔, 홍보경비 1억 1,000만엔, 외국방문경비 1억 1,000만엔, 대북한 방송경비 1억 4,600만엔 등이다. 각 성청으로부터 모인 대책 본부 직원은 현재 40명에 이르고 있다. 그 인건비를 1인당 연간 500만엔으로 하면 2억엔이므로 그것을 더한다면 대략 9억엔이 대책본부 유지에 사용되고 있 는 것이 된다. 활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납치사건이 얼마나 부당한 범죄인가, 북한이 얼마나 비도덕적인가를 내외에 선전하는 것이다. 포스터, 팜프렛, 비디오 납치-용서할 수 없는 행위 의 제작과 보급, 영화 메구미, 애니메이션 메구미 의 구입과 보 급, 대북방송 고향의 바람 의 실시, 북한인권침해문제계발주간(12월 10일부터 15일까지)의 실시, 기간 중의 국민집회, 국제심포지엄의 조직 등이 실제로 이루 어졌다. 문제는 이 대책본부가 납치문제를 전담하게 되었기 때문에 외무성의 대북한 외교가 방해를 받게 된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일종의 이원외교의 양상이 나 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납치문제대책본부의 활동은 2006년 10월부터 시작되어 이후 반년마다 연장 되어 온 경제제재와 동시에 이루어졌다. 내용은 북한의 대일 수출의 금지와 북 한선박의 일본 입항 금지다. 올 6월에는 이것에 수출 전면금지가 더해졌다. 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제제는 일본 독자적인 것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 효과는 없었다고 전문가는 보고 있다. 그러나 만경봉호는 재일 조선인의 가족방문에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 항로가 폐쇄된 것이 재일 조선인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은 법령의 엄격 한 실시라는 이름 아래 관방부장관 우루마가 경찰청장관 시절에 적극적으로 추 진한 재일조선인 개인 및 단체의 위법, 탈법행위의 적발, 가택수사, 신문에 의 도적인 정보누설, 더하여 재일조선인 단체의 학교나 회관에 대한 감세조치의 폐지와 과세 등이 북한에 대한 제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것 은 국내 소수자에 대한 억압일 뿐 아니라, 국내대립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행 위이다. 후쿠다 내각 때는 수상이 납치문제대책본부를 무시하는 듯한 자세를 보였지 만, 그들의 활동은 계속되었고 일본정부가 북한에 대하여 대화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방해해 왔다. 미디어와 일본 국민의식이 납치문제대책본부의 움직임에 부 화뇌동하였던 것도 큰 문제이다. 그러나 그래도 일본 안에서도 이대로는 어떠 한 진전도 없다고 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일례가 다하라 소이치로 캐스터의 발언문제이다. 4. 최근 변화의 움직임과 일본의 총선거, 민주당 승리의 전망 동북아시아에서의 중첩되는 위기는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평양방문, 이어 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 고 이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장이 동북아시아의 화해와 협 력을 요구하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조문단과 이명박 대 통령의 회담을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변화를 더욱 촉진시킨 것은 일본에서의 총선거와 정권교체이다. 8월 30일 의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고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 다. 일본의 3대 신문은 민주당이 300석 이상을 획득할 것이라고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매파도 속해있다. 마츠시타 정경숙을 나온 사 람들은 정치가로서의 훈련을 해온 깨끗한 매파이다. 도쿄 주변에 가나가와켄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지사 마츠자와 시게후미, 사이타마켄 지사 우에다 기요시, 요코하마 시장 다나 카 히로시, 스기나미 구청장 야마다 히로시 등 젊은 자치단체장이 민주당에서 나왔지만, 모두 일본 회복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우익적인 주장을 전개했다. 이러한 자치단체에서는 소위 새로운 역사교과서 가 채택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는 도쿄 3구의 마츠바라 히토시 납치의원연맹 부회장과 같은 납 치문제에 열심인 활동가도 있다. 마츠바라는 내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국회에 서 제재위반이 아닌가, 와다의 친북적 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라고 질문한 사람이다. 또한 헌법 제9조의 개정에 대해서 민주당의원의 상당수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를 실현한다는 것은 자민당 정권과는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이 다. 그러한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실행한다고 하면 보다 매파가 되든지 보다 비둘기파가 되든지 어느 쪽이다. 지금의 자민당 보다 매파적인 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정권교체선거의 총 지휘자인 오자와 는 보다 비둘기파적인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증거는 아사히 신문에 8월 19일 게재된 후보자 앙케이트다. 헌법개정에 대해서 자민당 후보는 찬성 95%, 민주당은 43%이다. 2005년 조사에서는 자민당은 97%로 변화가 없지만, 민주당 은 71%였던 것이 격감하였다. 방위력의 강화는 자민당이 찬성 76%로 2005년보 다 11% 증가하였지만, 민주당은 24%로 8% 줄었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도 자 민당이 찬성 76%인데 반해, 민주당은 17%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의 민주 당 후보는 비둘기파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오자와의 선택이다. 매니페스토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해 핵보유에 반대, 납치문제의 철저해결 이 외에는 거론하고 있지 않다. 즉 아무것도 말하고 잇지 않은 것이다. 오자와가 당수였을 때, 당의 국제국 부국장에 가와가미 요시히로 참의원 의원이 임명되 었다. 그는 초당파의 북일국교정상화 의원연맹의 사무국장이다. 그는 민주당 내 의 납치문제 그룹이 추가제재안을 결정하려고 할 때, 정권을 잡으려는 당의 손 발을 묶는 행위를 해서 괜찮은가라면서 결정을 중지시킨 사람이다. 그 사람을 보면 오자와가 북일관계의 진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상이 될 하토야마는 역사문제와 전후보상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이다. 호소카와 내각에서 관방부장관을 했을 때, 전후보상을 위한 기금 구상을 생각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공산당, 사민당이 위안부 문제의 입법해결법안 을 내놓았을 때, 민주당 제안자의 중심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야스쿠니 신사 를 대체하는 무종교적 국립추도시설안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간사장 인 오카다는 재일 외국인의 선거권 문제에 적극적이고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 화 문제에도 적극적이어서 매니페스토에도 이 부분을 추가하였다. 민주당에는 어떻게 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문제, 북한과의 관계정상화 문제 를 해결할까라는 방안은 아직은 없다. 그러나 정권을 잡는다면 자민당 정권에 서 불가능했던 대화와 화해의 노선을 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일본에게 있어 서 마지막 찬스이며 이것을 놓친다면 일본은 희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한국 측으로부터의 지원을 요망한다. 和 田 春 樹 (와다하루키) 생년월일: 1938년 1월 13일 오사카 출생 현 직: 동경대 명예교수(역사학 전공) 전 공: 소련사, 한국현대사 한국관계: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 이후 진상규명운동을 활발히 전개, 교과서 왜곡문제, 한국전쟁 등에 대하여 연구, 대표적인 지한파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이 막역한 관계, 김대중 옥중서신을 일본에 번역소개 저 서: 한국전쟁 북일관계와 납치문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일본, 한국, 북한- 북동아시아에서 살다 한국민중을 보다 등 다수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 講 演 ] 東 北 アジアの 平 和 と 朝 鮮 半 島 和 田 春 樹 ( 東 京 大 學 校 名 譽 敎 授 ) 1. 東 北 アジアの 危 機 の 源 泉 は 何 か 冷 戦 の 時 代 に 東 北 アジア 東 アジアには 革 命 と 戦 争 があった ヨーロッパの 戦 後 史 は 米 ソ 冷 戦 長 い 平 和 東 欧 のソ 連 化 西 側 の 発 展 を 特 徴 とするが ここでは 共 産 主 義 者 の 革 命 と 攻 勢 アメリカの 反 共 戦 争 によって 第 二 次 大 戦 後 の30 年 間 熱 戦 が 存 在 したのである 冷 戦 はもとよりこの 地 域 に 影 を 落 としたが 冷 戦 的 な 存 在 は 日 本 のみであっ た アメリカの 庇 護 をうけ 憲 法 9 条 によって 戦 争 には 参 加 しない 日 本 は 戦 争 の 外 にいて 冷 戦 を 生 きたのである 東 北 アジア 東 アジアの 戦 争 は 共 産 主 義 者 と 反 共 主 義 者 が 戦 い アメリカが 後 者 を 支 えて 前 者 と 戦 うものだった 中 国 の 内 戦 朝 鮮 戦 争 ベトナム 戦 争 が 代 表 的 なものである ベトナム 戦 争 には 韓 国 が 参 戦 し 北 朝 鮮 も 飛 行 士 を 送 った 沖 縄 はベトナム 爆 撃 の 基 地 であり 日 本 本 土 には 米 軍 兵 士 の 休 養 地 病 院 があった ベトナム 戦 争 は1975 年 にアメリカの 敗 北 韓 国 の 敗 北 ベトナム の 勝 利 に 終 わった これをもって 基 本 的 に30 年 間 のアジアの 熱 戦 は 終 わったのである それに 先 だってアメリカはソ 連 に 対 抗 して 中 国 に 接 近 し ニクソンが 訪 中 した これをすばやく 利 用 したのが 田 中 内 閣 で あり 1972 年 に 日 中 共 同 声 明 で 日 中 国 交 樹 立 を 実 現 した 逆 にベ トナムと 中 国 は1978 年 に 戦 争 するにいたり ベトナムはソ 連 に 傾 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した 中 国 は 同 じ1978 年 改 革 開 放 をスタートさせ 米 日 との 貿 易 拡 大 による 経 済 成 長 の 極 大 化 に 進 んだ 中 国 と 対 立 していたベトナムも 1980 年 代 末 には ベトナム 式 の ドイモイ 政 策 をはじめ 経 済 成 長 政 策 に 進 んだ 韓 国 はベトナム 戦 争 での 特 需 で 経 済 発 展 を 推 進 して いたが ベトナム 戦 争 に 敗 北 したことによって 軍 事 独 裁 政 権 の 権 威 が 失 われ 民 主 化 運 動 が 起 こり 70 年 代 80 年 代 を 通 じた 血 のにじむ 努 力 で 共 産 主 義 革 命 とはちがう 民 主 主 義 革 命 を1987 年 になしとげ た つづいて1991 年 冷 戦 はおわり ソ 連 社 会 主 義 が 終 焉 する ここ で 大 きな 影 響 をうけたのは 日 本 と 北 朝 鮮 である 日 本 では 社 会 主 義 の 潮 流 マルクス 主 義 勢 力 が 崩 壊 した 結 果 大 学 メディア 労 働 運 動 から 左 翼 の 影 響 がうしなわれ 日 本 社 会 党 が 崩 壊 した 自 民 党 が 永 久 執 権 党 で 社 会 党 が 万 年 野 党 である55 年 体 制 が おわったのである 模 索 がはじまった その 中 で 韓 国 民 主 革 命 の 勝 利 の 影 響 は 日 本 社 会 の 中 に 過 去 の 歴 史 に 対 する 反 省 をつよめさせる 契 機 と なった 北 朝 鮮 はチュチェ 思 想 を 基 本 イデオロギーとして 自 力 更 正 自 主 国 防 自 主 経 済 をめざしてきたが ソ 連 との1961 年 の 相 互 援 助 条 約 に よってソ 連 の 核 の 傘 のもとに 入 っていた 経 済 の 面 ではソ 連 との 貿 易 は 特 恵 的 なもので とくに 原 油 の 輸 入 は 重 要 だった 経 済 の 面 で 韓 国 の 発 展 に 完 全 に 水 をあけられていた 北 朝 鮮 は 軍 事 的 統 一 は 放 棄 している が 北 朝 鮮 の 路 線 に 立 った 南 北 平 和 統 一 をめざしてきた そのために 工 作 員 を 浸 透 させ 韓 国 の 民 主 化 運 動 に 介 入 して 北 朝 鮮 の 支 持 者 をふ やすことをめざし 他 方 でラングーン 事 件 のようなテロ 行 為 をおこなっ た 韓 国 への 工 作 員 の 派 遣 と 関 連 して 日 本 からの 拉 致 事 件 をおこして いた このような 北 朝 鮮 にとって ソ 連 の 終 焉 はソ 連 からの 特 恵 的 な 貿 易 が ストップすることであり 核 の 傘 がなくなることを 意 味 した ソ 連 から 重 油 がえられないため 北 朝 鮮 は 経 済 の 崩 壊 を 経 験 した さらにソ 連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東 欧 諸 国 ついでは 中 国 が 韓 国 と 国 交 を 樹 立 する 方 向 に 進 むという 危 機 が 発 生 した そこで 北 朝 鮮 がこの 危 機 からの 脱 出 路 として 考 えたのが 米 国 を 念 頭 において 核 兵 器 をもつ 準 備 をすることであり 日 本 との 国 交 正 常 化 をす すめることである 問 題 はこの 二 つの 方 策 は 矛 盾 するということであ る 韓 国 がソ 連 中 国 と 国 交 を 樹 立 するのをみつつ 北 朝 鮮 は 日 本 との 国 交 交 渉 を1991 年 に 開 始 したが アメリカと 韓 国 の 牽 制 で 交 渉 は 中 断 された アメリカは 北 朝 鮮 が 核 兵 器 をもつということにつよく 反 発 し 日 本 を 牽 制 したのである このときから 東 北 アジアにおける 北 朝 鮮 問 題 危 機 がはじまったので ある 北 朝 鮮 にとって 核 兵 器 は 安 上 がりの 兵 器 であり かつアメリカと の 交 渉 のカードである 日 本 との 交 渉 には 拉 致 問 題 があらわれ 交 渉 は 行 き 詰 まった 1993,94 年 の 危 機 のさいには 戦 争 の 可 能 性 が 現 実 化 するにいたり カーターの 訪 問 とつづく 枠 組 み 合 意 で 北 朝 鮮 は 核 兵 器 開 発 をやめることを 表 明 し 軽 水 炉 二 基 の 建 設 と 重 油 の 提 供 をえ た 97 年 のテポドン 発 射 はペリー プロセスの 開 始 となった 200 0 年 の 金 大 中 大 統 領 の 平 壌 訪 問 は 2002 年 の 小 泉 首 相 の 訪 朝 日 朝 平 壌 宣 言 を 呼 び 出 した これには 拉 致 問 題 を 認 めて 謝 罪 した 北 朝 鮮 の 決 断 が 大 きな 意 味 をもっている ところが2002 年 に 米 国 のブッシュ 政 権 はウラニウム 濃 縮 計 画 があるとして 枠 組 み 合 意 うち 切 りに 進 ん だ ふたたび 日 本 の 北 朝 鮮 外 交 はアメリカの 力 でブレーキをかけられ 国 内 では 拉 致 問 題 を 利 用 した 反 北 朝 鮮 キャンペーンが 起 こされ 日 朝 交 渉 は 完 全 にストップした 事 態 を 打 開 する 努 力 として 6 者 協 議 が2004 年 に 開 始 されたが なかなかうまく 進 まなかった しかし 智 恵 が 出 され 2005 年 9 月 17 日 共 同 声 明 がまとまり 最 終 目 標 がはっきりと 確 定 された 北 朝 鮮 は 核 計 画 を 放 棄 し 米 国 と 日 本 は 北 朝 鮮 と 国 交 を 樹 立 し 朝 鮮 半 島 の 平 和 体 制 がつくられ 東 北 アジア6ヶ 国 の 安 保 体 制 の 道 をめざすことがう たわれた しかし ブッシュ 政 権 はバンコ デルタ アジアにおける 北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朝 鮮 資 金 の 凍 結 をおこない また 行 き 詰 まる その 中 で 北 朝 鮮 は200 6 年 核 実 験 を 実 施 する ブッシュ 政 権 はついに 米 朝 交 渉 によって 打 開 を はかり 6 者 協 議 再 開 にこぎつけ 第 二 段 階 の 完 了 に 向 かった 200 8 年 6 月 には 寧 辺 の 核 施 設 の 冷 却 塔 が 破 壊 され 琉 迄 に 進 んだが そのあ と 北 朝 鮮 の 核 施 設 の 報 告 を 点 検 する 問 題 が 出 され 行 き 詰 まった こ の 時 点 で 北 朝 鮮 は 米 国 の 新 大 統 領 に 期 待 する 姿 勢 になったと 考 えられ る 2. オバマ 時 代 の 危 機 の 高 まり 本 年 初 め 米 国 オバマ 大 統 領 は 北 朝 鮮 との 対 話 と 協 調 の 意 思 を 示 し 金 正 日 国 防 委 員 長 と 会 見 する 用 意 があると 明 らかにした この 結 果 東 北 アジアでも また 世 界 各 地 でも 東 北 アジアの 事 態 が 外 交 的 に 打 開 さ れるという 期 待 が 高 まった ところが その 後 に 起 こったことはわれわ れの 期 待 を 裏 切 った オバマ 政 権 の 東 北 アジア 外 交 はなかなか 始 動 しなかった ボズワース 氏 は 早 く 北 朝 鮮 担 当 として 指 名 されたが 彼 はタフト 大 学 学 長 で パー トタイムの 役 割 にすぎない 政 権 の 政 策 順 位 としては 東 北 アジアの 位 置 はさほど 高 くないようであった 明 らかに 外 交 面 ではイラク イラン 問 題 がオバマ 大 統 領 のリストでは 高 いところに 来 ているのである おそ らくキューバ 問 題 も 北 朝 鮮 問 題 より 高 いランクにあるようだった 4 月 はじめ プラハ 訪 問 のさい オバマ 大 統 領 は 核 軍 縮 の 大 胆 な 計 画 を 発 表 することにした しかし 不 幸 なことにオバマ 大 統 領 が 演 説 をす るその 日 (4 月 5 日 )の 朝 北 朝 鮮 は 日 本 の 上 空 を 飛 び 越 えるロケット を 発 射 した 大 統 領 はおおわらわで 北 朝 鮮 の 行 為 に 対 する 態 度 を 決 め 演 説 の 中 に 北 朝 鮮 についての 論 評 を 加 えた 彼 は 北 朝 鮮 が 再 び 規 則 を 破 り 長 距 離 ミサイル 用 にも 使 うことが 可 能 なロケットの 発 射 実 験 を 行 ったのです と 述 べ 次 のように 続 けた 違 反 は 罰 せられなけれ ばなりません 今 こそ 国 際 社 会 が 断 固 とした 対 応 を 取 る 時 で す 北 朝 鮮 は 脅 威 と 違 法 な 兵 器 によって 安 全 保 障 と 尊 敬 を 勝 ち 取 る 道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を 切 り 開 くことは 決 してできない ということを 理 解 しなければなりま せん 途 方 もない 数 の 長 距 離 中 距 離 核 ミサイルで 武 装 している 国 の 大 統 領 は 北 朝 鮮 のロケットを 違 法 な 兵 器 だと 呼 ぶべきではない オバマ 大 統 領 の 口 調 はまるで 自 分 のクラスの 生 徒 を 叱 りつける 高 等 学 校 の 教 師 のよう である プラハ 演 説 の 中 で 大 統 領 はイラン 政 府 を 説 得 しようとしてい たが 北 朝 鮮 政 府 に 対 してはそのような 態 度 をとらなかった 単 独 行 動 主 義 に 立 っていたブッシュ 前 大 統 領 は ときには 日 本 の 立 場 を 省 みることなく 北 朝 鮮 へのテロ 国 家 指 定 の 解 除 をおこなった これ に 対 して 同 盟 国 との 協 調 を 重 視 するとして 登 場 したオバマ 大 統 領 は 日 本 の 意 見 韓 国 の 意 見 をよく 聞 いて 北 朝 鮮 のロケット 打 ち 上 げに 対 して 闘 おうとした 日 本 と 韓 国 はその 時 点 では 北 朝 鮮 とはいかなる 外 交 接 触 ももちえない 状 態 にある だから その 日 本 韓 国 と 緊 密 に 協 調 す るとすれば 北 朝 鮮 に 対 して 強 硬 路 線 圧 力 路 線 に 一 方 的 に 傾 斜 するこ とにしかならないのである 北 朝 鮮 は 最 高 人 民 会 議 の 開 催 に 合 わせて 人 工 衛 星 の 打 ち 上 げを 行 うと 発 表 して それを 実 行 した それは 病 気 から 回 復 して 権 力 を 掌 握 していることを 全 国 民 に 誇 示 することを 願 った 金 正 日 国 防 委 員 長 の 内 政 上 の 必 要 からきた 行 動 だったと 考 えられる それを 一 方 的 に 非 難 され たことで 国 防 委 員 長 の 体 面 が 傷 付 けられた オバマ 演 説 につづいて 国 連 安 全 保 障 理 事 会 は 日 米 協 力 により この 打 ち 上 げ を 非 難 し 既 存 の 制 裁 の 強 化 をもとめる 議 長 声 明 を 満 場 一 致 で 採 択 させた 5 月 25 日 北 朝 鮮 はこの 声 明 を 主 権 の 侵 害 とみて 核 実 験 の 実 施 によって 対 抗 し た もちろん 北 朝 鮮 では 核 兵 器 をもつには 実 験 が 必 要 だったと 考 え られてきて 準 備 もあったはずである しかし それが 決 行 されたの は 国 防 委 員 長 の 体 面 を 傷 付 けられた 以 上 反 撃 が 必 要 だという 意 見 に 基 づいていたのであろう 6 月 12 日 国 連 安 保 理 事 会 は 核 実 験 はこれまでの 安 保 理 決 議 に 違 反 するとして 決 議 1874を 採 択 した この 決 議 によれば 北 朝 鮮 は 武 器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の 輸 出 を 禁 止 され その 船 舶 は 臨 検 の 脅 威 にさらされ 禁 止 物 は 没 収 さ れる 一 層 の 金 融 的 制 裁 も 準 備 される アメリカ 韓 国 日 本 による 海 上 臨 検 が 北 朝 鮮 船 舶 に 対 して 実 施 されるなら 東 北 アジアの 緊 張 は 危 機 的 な 事 態 になるところにきた 7 月 2 日 と4 日 北 朝 鮮 はあい 次 いで 短 距 離 と 中 距 離 のミサイル 発 射 テストを 行 った 強 硬 な 対 応 が 強 硬 な 対 応 を 引 き 出 す 悪 循 環 が 生 じたのである 3. 日 本 のゆきづまり このような 状 況 の 中 で 日 本 はきわめて 積 極 的 に 国 連 安 保 理 をリード し 米 国 とともに 北 朝 鮮 制 裁 の 措 置 をつぎつぎに 打 ち 出 したのである しかし 日 本 はまったく 自 らは 北 朝 鮮 ともっとも 対 立 し もっとも 強 い 独 自 制 裁 を 加 え いかなる 外 交 も 対 話 もできていない 状 態 に 陥 っている 国 家 なのである 日 本 の 対 北 朝 鮮 外 交 は2006 年 秋 安 倍 政 権 のもとで 体 系 的 な 確 立 を みた 安 倍 首 相 は 拉 致 問 題 の 解 決 を わが 国 の 最 重 要 課 題 として 掲 げ 首 相 を 本 部 長 官 房 長 官 を 副 本 部 長 とし 全 閣 僚 を 部 員 とする 拉 致 問 題 対 策 本 部 を 設 置 した 10 月 16 日 に 開 かれた 同 本 部 の 第 一 回 会 合 で 拉 致 問 題 における 今 後 の 対 応 方 針 が 決 定 された 拉 致 問 題 の 解 決 なくして 北 朝 鮮 との 国 交 正 常 化 はあり 得 ないということ を 再 確 認 し 政 府 一 体 となって すべての 拉 致 被 害 者 の 生 還 を 実 現 するこ とをめざすと 宣 言 した すでに 実 行 した 経 済 制 裁 措 置 に 加 えて 今 後 の 北 朝 鮮 側 の 対 応 等 を 考 慮 しつつ 更 なる 対 応 措 置 について 検 討 する とした また 現 行 法 制 度 の 下 での 厳 格 な 法 執 行 を 引 き 続 き 実 施 してい く としたが これは 朝 鮮 総 連 に 対 するしめつけ 措 置 を 継 続 するという ことである 拉 致 問 題 対 策 本 部 の 予 算 は2006 年 度 補 正 予 算 で2 億 2600 万 円 2007 年 度 は4 億 8 千 万 円 2008 年 度 は6 億 7700 万 円 で あった 大 きい 項 目 は2008 年 度 で 安 否 情 報 収 集 体 制 強 化 経 費 1 億 円 広 報 経 費 1 億 1000 万 円 外 国 訪 問 経 費 1 億 1000 万 円 北 朝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鮮 向 け 放 送 経 費 1 億 4600 万 円 などである 各 省 庁 から 集 められた 対 策 本 部 のスタッフは 現 在 は40 人 にふえている その 人 件 費 は 一 人 年 間 500 万 円 として 2 億 円 だから それを 加 えれば ざっと9 億 円 が 対 策 本 部 の 維 持 に 使 われていることになる 活 動 の 具 体 的 内 容 は 拉 致 事 件 がいかに 不 当 な 犯 罪 であるか 北 朝 鮮 がいかに 非 道 であるかということを 内 外 に 宣 伝 することである ポス ター パンフレット ビデオ 拉 致 許 されざる 行 為 の 製 作 その 普 及 映 画 めぐみ アニメ めぐみ の 買 い 上 げと 普 及 対 北 朝 鮮 放 送 ふるさとの 風 の 実 施 北 朝 鮮 人 権 侵 害 問 題 啓 発 週 間 (12 月 1 0 日 から15 日 まで)の 実 施 期 間 中 の 国 民 集 会 国 際 シンポジウムの 組 織 などが 実 際 におこなわれている 問 題 はこの 内 閣 本 部 が 拉 致 問 題 を 専 管 することになったため 外 務 省 の 対 北 朝 鮮 外 交 がさまたげられる 状 態 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 一 種 の 二 元 外 交 の 様 相 があらわれているとみることができる 拉 致 問 題 対 策 本 部 の 活 動 は 2006 年 10 月 に 打 ち 出 され 以 後 半 年 ごとに 延 長 されてきた 経 済 制 裁 とセットになっている 内 容 は 北 朝 鮮 の 対 日 輸 出 の 禁 止 と 北 朝 鮮 船 舶 の 日 本 入 港 禁 止 である 本 年 6 月 には これに 輸 出 の 全 面 禁 止 が 加 わった この 制 裁 は 日 本 独 自 のものであり 北 朝 鮮 に 対 する 経 済 封 鎖 の 一 部 を 構 成 することにはなっていないので 効 果 はあがっていないと 専 門 家 はみている しかし 万 景 峰 号 は 在 日 朝 鮮 人 の 家 族 訪 問 につかわれていたため この 航 路 が 閉 鎖 されたことが 在 日 朝 鮮 人 に 実 害 を 及 ぼしているのは 事 実 である この 点 は 法 令 の 厳 格 実 施 の 名 のもとに 官 房 副 長 官 漆 間 氏 が 警 察 庁 長 官 時 代 に 積 極 的 に 推 進 した 在 日 朝 鮮 人 個 人 および 団 体 の 違 法 脱 法 行 為 の 摘 発 家 宅 捜 査 新 聞 へ のリーク さらに 在 日 朝 鮮 人 団 体 の 学 校 や 会 館 に 対 する 税 の 減 免 措 置 の 見 直 し 課 税 などが 北 朝 鮮 への 制 裁 の 一 環 としておこなわれている しかし さしあたりはこれは 国 内 のマイノリティに 対 するハラスメント に 他 ならず むしろ 国 内 対 立 をつくりだしかねない 行 為 である 福 田 内 閣 時 代 には 首 相 が 拉 致 問 題 対 策 本 部 を 無 視 するような 姿 勢 を 見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せたが このような 活 動 はつづき 日 本 政 府 が 北 朝 鮮 に 対 して 対 話 の 政 策 をとることを 妨 げてきたのである メディアと 国 民 の 意 識 の 中 に 拉 致 問 題 対 策 本 部 の 動 きにこたえるものがあることも 大 きな 問 題 である しかし さすがに 日 本 の 中 でもこのままでは 何 の 進 展 もないとする 批 判 的 な 気 分 もあらわれてきている その 一 例 が 田 原 総 一 郎 キャスターの 発 言 問 題 である 4. 最 近 の 変 化 の 兆 しと 日 本 の 総 選 挙 と 民 主 党 勝 利 の 展 望 東 北 アジアの 危 機 の 重 苦 しい 雰 囲 気 は クリントン 米 国 前 大 統 領 の 平 壌 訪 問 つづく 玄 貞 恩 現 代 グループ 会 長 の 訪 問 でやぶられた そしてこ のたびの 金 大 中 前 大 統 領 の 逝 去 を 悼 む 行 事 と 国 葬 が 東 北 アジアの 和 解 と 協 力 をもとめる 意 思 の 巨 大 なデモンストレーションとなり その 中 で 北 側 弔 問 団 と 李 明 博 大 統 領 の 会 談 をも 導 いたのである この 変 化 をさらに 促 進 することになるのは 日 本 における 総 選 挙 と 政 権 交 代 である 8 月 30 日 の 総 選 挙 で 自 民 党 が 敗 北 し 民 主 党 が 勝 利 する ことはすでに 確 実 である 三 大 新 聞 は 民 主 党 が300 議 席 以 上 を 獲 得 す るだろうとみることで 一 致 している 民 主 党 は 周 知 のように タカ 派 をふくんでいる 松 下 政 経 塾 を 出 た 人 々は 政 治 家 として 訓 練 を 積 んできたクリーンなタカ 派 である 東 京 の まわりで 神 奈 川 県 知 事 松 沢 しげふみ 埼 玉 県 知 事 上 田 清 司 知 事 横 浜 市 長 中 田 宏 杉 並 区 長 山 田 宏 といった 若 手 の 自 治 体 首 長 が 民 主 党 から 出 たが みな 日 本 回 復 などのスローガンをかかげて 右 翼 的 な 主 張 を 展 開 した これらの 自 治 体 では いわゆる 新 しい 歴 史 教 科 書 が 採 択 さ れている 民 主 党 内 には 東 京 3 区 の 松 原 仁 氏 のような 拉 致 議 連 副 会 長 の ような 熱 心 は 活 動 家 もいる 松 原 氏 は 私 が 北 朝 鮮 を 訪 問 したとき 国 会 で 制 裁 違 反 ではないか 和 田 の 親 北 的 言 動 をどうみるかと 質 問 した 人 で ある それで 憲 法 9 条 の 改 正 についても 廃 止 論 が 民 主 党 議 員 の 多 数 を 占 めているとみられてきた しかし 政 権 交 代 を 実 現 するということは 自 民 党 政 権 とは 違 うこと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をや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そのような 期 待 が 国 民 の 中 にみなぎっている ということを 感 知 して それを 実 行 するとすれば よりタカ 派 的 になる か よりハト 派 的 になるかのどちかしかない いま 自 民 党 以 上 にタカ 派 になる 道 をとるはずがない 政 権 交 代 選 挙 の 総 指 揮 者 小 沢 一 郎 氏 はより ハト 派 的 にするという 道 を 選 択 したように 考 えられる 証 拠 は 朝 日 新 聞 8 月 19 日 掲 載 の 候 補 者 アンケートである 憲 法 改 正 について 自 民 党 候 補 は 賛 成 が95% 民 主 党 は43%である 05 年 の 調 査 では 自 民 党 は97%で 変 化 がないが 民 主 党 は71%だったものが 激 減 してい る 防 衛 力 の 強 化 は 自 民 党 が 賛 成 76% 05 年 より11%ふえている が 民 主 党 は24%で 8% 減 っている 集 団 的 自 衛 権 の 行 使 も 自 民 が 賛 成 76%だが 民 主 は17%である 完 全 に 今 回 の 民 主 党 候 補 はハト 派 が 選 ばれている これが 小 沢 氏 の 選 択 である マニフェストでは 対 北 朝 鮮 政 策 は 北 の 核 保 有 に 反 対 拉 致 問 題 の 徹 底 解 決 以 外 には 語 られていない つまり 何 も 語 っていないということで ある 小 沢 氏 が 党 首 であった 時 代 に 党 の 国 際 局 副 局 長 に 川 上 義 博 参 議 院 議 員 が 任 命 された 彼 は 超 党 派 の 日 朝 国 交 正 常 化 議 連 の 事 務 局 長 であ る 彼 は 民 主 党 内 の 拉 致 問 題 グループが 追 加 制 裁 案 を 決 定 しようとして いるところにのりこんで 政 権 をとる 党 の 手 をしばるようなことをして いいのかと 決 定 を 中 止 させたという 人 である 彼 の 線 で 小 沢 が 日 朝 関 係 の 展 開 をはかるものとかんがえられている 首 相 になる 鳩 山 氏 は 歴 史 問 題 と 戦 後 補 償 問 題 に 積 極 であった 人 であ る 細 川 内 閣 で 官 房 副 長 官 をしていたとき 戦 後 補 償 のための 基 金 構 想 を 考 えたことが 知 られている 民 主 党 共 産 党 社 民 党 で 慰 安 婦 問 題 の 立 法 解 決 法 案 を 出 したとき 民 主 党 の 提 案 者 の 中 心 だった 今 回 の 選 挙 では 靖 国 神 社 に 代 わる 無 宗 教 の 国 立 追 悼 施 設 案 に 積 極 的 であるところ を 示 した また 幹 事 長 の 岡 田 氏 は 在 日 外 国 人 の 選 挙 権 問 題 に 熱 心 である と 同 時 に 東 北 アジアの 非 核 地 帯 化 問 題 にも 熱 心 で マニフェストにも りこむことを 推 進 した 民 主 党 には どうして 東 北 アジアの 平 和 問 題 北 朝 鮮 との 関 係 正 常 化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問 題 を 解 決 するかという 方 案 はいまだない しかし 政 権 をとったら 自 民 党 政 権 ができなかった 対 話 と 和 解 の 路 線 を 進 めて 行 く 可 能 性 が 高 い これは 日 本 にとってラスト チャンスであり これをのがすと 日 本 は 希 望 のない 深 みに 落 ちていくほかないだろう 韓 国 側 からの 支 援 をお 願 いしたい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강 연]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한 상 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머리말 1998년의 평화적 정권교체 이래 민주정부 10년을 이끌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2009년 돌연히 세상을 떠남에 따라 두 구심점을 잃은 민주당 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구조변화, 체질개선의 호기라는 주장도 있다. 이런 상 황에 민주당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구심점의 소멸로 거대여당의 공세 앞에 지리멸렬, 분열의 길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범 야권 또는 민주화 세력의 새로 운 통합과 연대의 시대를 열 것인가? 타계한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자산을 어 떻게 계승할 것이며 또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는 이런 질문에 대하여 민주당과 범 야권이 어떤 응답을 하느냐에 의해 상당히 좌우될 것처럼 보인다. 전환기 이후 민주화의 모호성 한국 정치는 현재 큰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표면적으로 보면, 집권 여 당은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 만 그렇지 않다. 여당과 야당은 같은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어느 측이 이 위기를 정 확히 보고 넘어서느냐에 따라 당장 금년 10월 선거 때부터 정당의 미래가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의 핵심은 극심한 정치소통의 빈곤, 사회통합의 부재로 요약된다. 이 현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상은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민주정부 수립 이후 구조적 변동 과정에 있는 여 러 대륙의 나라들을 비교해볼 때, 유사한 모호성과 혼란이 발견된다. 여러 유형 들의 비교를 생략하고 한국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여권과 야권 또는 범 보수진영과 범 개혁진영 가운데 어느 쪽도 정치소 통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 즉 양측의 소통역량 지수는 거의 비 슷하다. 다시 말해, 서로가 자기 주장을 하는데 역량의 의미 있는 격차가 없다. 2) 그럼에도 정치체제와 시민사회에 정치소통의 순환효과는 놀라울 만큼 저 조하다. 주장과 주장이 부딪혀 요란한 파열음은 내지만 소통이 분절화되 어 의미가 순환되지 않는다. 따라서 소통부재와 그 피해에 대한 국회의 원, 언론인, 일반 국민의 체감지수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한국에서 가장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민주정부 10년 동안 주요 언론매체와 야당 사이에 강력한 연합이 작용했다. 이것 역시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피노체트 군사독재 이후의 칠레, 흑백 인종분리체제 이후의 남아공 등에서도 이 경향은 확인된다. 다만, 한국 은 이 경향이 특히 현저한 사례에 속한다. 요컨대, 정치싸움은 요란하지만 소통은 안되는 경험의 배후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언론이 창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입하여 확대 강화시키는 편가르기 싸 움이 정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조사자료를 국제 비 교한 결과이다. 구체적 행태는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어디서나 공허하고 비생 산적인 색깔 시비, 이념공방이 정치를 석권하고 생활정치, 민생정치는 뒷자리로 밀려난다. 정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하기보다 실패하기 때문에 민주 화라는 시대적 추세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 치현실에 대하여 불신과 환멸을 느끼는 것이 지구촌 곳곳의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왜 정치가 이런 분절화의 함정에 빠져 정치의 원래 목적인 국민통합 또는 사회통합의 길로부터 크게 벗어나는가? 이것을 일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단 전환기 이후 민주화의 모호성으로 설명해보겠다. 여기서 전환기 란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민주적 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을 뜻한다. 전환기의 핵심 과제는 선거민주주의의 확립이다. 이 과제가 결실을 이 루어 자유롭고 공평한 선거를 통해 정치권력의 평화적 이행이 제도화된다면, 전환기 이후 가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1) 전환기에는 흔히 권위주의 정권의 모 순과 한계, 인권억압의 실상이 전면에 들어나기 때문에 공통의 적을 향한 시민 집단들의 연대 투쟁은 고도의 탄력을 받는다. 역사이행의 방향이 분명한 듯 보 이고 합의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전환기 이후가 되면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열망과 헌신 또는 프리미 엄은 하락한다. 대신 민주정부의 도덕성, 통치능력, 업적 등이 도마 위에 오르 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당연시되는 과정의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전환기에는 민주화의 열기에 압도되어 침묵 속에 상황을 주시하던 기득권 세력들이 그 이후가 되면 본격적으로 권력자원을 동원하여 자신의 영향 력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고 다 양한 상징자본을 동원하는 미디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전환기 에는 시민사회가 개혁에너지의 공급원으로 작동했다면 그 이후에는 서로 충돌 하고 갈등하는 여러 이념, 세력, 운동이 각축하는 팽팽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 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경우, 세계적 냉전체제의 영향과 전쟁의 악몽을 겪으면서 국가의 권 력자원이 비대칭적으로 확대된 강성 권위주의 체제가 확립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는 이 지점을 깊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권위주의 체제 라고 부르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 또는 정권 보다 훨씬 포괄적인 기성체제 (Establishment)를 뜻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1980 1) 주류 정치학에서는 이 시기를 민주주의의 공고화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목적론 적 함의를 갖는다. 선거 민주주의가 확립된 이후에 과연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이루어지는 가는 좀 더 열린 눈으로 검토해야 할 주제라고 본다. 오히려 민주화가 많은 혼란과 도전에 직면할 개연성도 크다. 때문에 이 글에서는 전환기 이후 라는 표현을 쓰고자 한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년대에 이르러 자체의 모순과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여 무너졌다. 이로서 1987 년 민주전환 이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정권이 떠받들고 있던 기성체제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보다 명료한 개념규정이 필요하다. 기성체제란 정치적, 경제적, 사회 적, 문화적, 심리적, 이념적, 그리고 초국가적 권력들의 중층 결합에 의해 이 체 제를 이끄는 중추세력 및 연합집단들에게 특권 또는 혜택을 제공하고 반대세력 을 차단하며 이 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포장 또는 정당화하는 선택과 배제의 지 배 전략을 뜻한다. 그 안에서 권위주의 정권은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물질적, 제도적, 법률적, 억압적 자원들을 이용하여 기성체제 안에 각인된 특권과 혜택 또는 차별과 억압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정치과정을 가리킨다. 권위주의 정권과 기성체제 사이에는 상호 호혜의 순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는 기성체제를 이루는 재벌 권력, 미디어 권력, 학벌 권력, 종교 권력, 문화 권력 등을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의 몸통을 이루며 그 안의 상이한 권력 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의미의 기성체제는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 당한 기간에 걸쳐 거의 불가항력적인 구조적 압력 속에서 행위집단들의 체험에 엇물려 일종의 당연시된 그러나 정당화된 것은 아닌 집단의식 또는 선택으 로 정착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민주정부로의 전환은 기성체제와 정치권력의 분화를 촉발시키는 계기 가 된다. 그 핵심은 자유롭고 공평한 선거제도에 의해 정치지도자를 뽑는 제도 의 확립이다. 이를 계기로 하여 민주적 대표성, 정당성, 투명성, 책임성의 원칙 들에 의해 국가기구와 활동 안에 제도화된 특권 또는 차별을 검증하고 제거하 는 개혁이 시작한다. 정경유착의 개혁, 인권유린의 과거청산, 인권억압적 국가 기구의 개혁, 시민의 기본권 보장, 기업 지배구조의 개혁, 노동3권의 보장, 사회 복지 제도의 확충 등은 대표적인 보기들이다. 그러나 전환기 이후의 상황이 되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는 현저히 동력 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보듯이, 선거민주주의의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간격은 여전히 매우 높다. 정치의 실제와 관행이 국민의 삶 안으로 파고들기 보다는 권력획득을 위한 정치집단들 간의 과도한 대결과 야합의 부작용 등으로 인하여 정치에 대한 환멸이 높아진 다. 아울러 민주화가 되면 경제성장의 과실이 보다 공평하게 분배되고 약자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며 정의가 신장되리라는 대중의 기대에 정반대되는 증가하 는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의 추세 앞에서 민주주의가 과연 대중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비판과 냉소의 심리가 현저히 증가한다. 민주화는 끊임없는 미완의 과정으로서 선거에 의한 국가권력의 민주화로부터 시작하여 사회도처에 강고히 버티고 있는 기성체제의 특권과 차별을 검증하고 교정하는 방향으로 전진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명확하며 현실 적으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즉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토론, 공론의 비판 적 기능은 원칙상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환기 이후의 상황이 되면 어디서나 이념적, 인종적, 종교적 색깔논쟁이 판을 치는 경 향이 있다. 민주화의 연속 이행을 좌파로 부르거나 포퓰리즘, 과격주의 또는 근 본주의 같은 이념적 딱지로 채색하여 주변으로 내모는 전략이 행사된다는 것이 다. 그러면서 절차적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보수 진 영의 반격이 일어난다. 시민의 참여보다는 사회질서를 강조하며 빈부격차 개선 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옹호하고 합리적 토론보다는 이념적 편가르기가 성행 한다. 이런 맥락에서 소통 대신 다툼과 혼란이 가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전환기 이후의 민주화의 모호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초국가적 양극화의 압력 오늘의 민주당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전환기 이후 민주화의 모호성을 깊숙이 통찰하는 것이다. 모호성의 비생산적 악순환에 파묻힐 것이 아니라 이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의 깔끔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 서 본다면, 김대중/노문현 유산의 계승발전은 엄격한 비판정신을 수반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민주화 10년의 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노무현 의 두 정부는 전환기 이후 민주화의 모호성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졌지만 결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과적으로 그 안에 갇혀 있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회통합을 근원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양극화의 구조적 압력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조성된 화해와 협력의 가치를 대승적으로 이어가는 궤도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극화의 구조 적 압력이란 간단히 말해 가진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빈곤해 지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힘이 초국가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구조적 압력이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는 권력자원에 의존한다.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거나 관철시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조직화된 힘을 가 진 집단은 적자생존의 경쟁 앞에서 크던 작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 힘을 사용하는 데 반하여, 그런 힘이 적거나 결여된 집단은 갈수록 게임에서 배 제되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이것을 우리는 권력자원의 동심원형 네트워크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사회적 관심을 끌고는 있으나 좀처럼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방대한 비 정규직 문제 또는 영세 자영업, 중소기업, 하청 계열에서 일하는 불안정한 신분 의 빈곤 노동자의 문제가 대표적인 보기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물러난 퇴직자, 해고자의 문제,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노인의 문제, 또는 학생 등 청년 실업 자의 문제 등도 비슷하다. 복지, 교육, 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계층 의 상황도 유사하다. 이런 문제의 뿌리에는 승자 위주의 제로섬 게임의 리더십이 있다. 사회의 균 열구조를 응시하고 치유하기보다는 이에 편승하여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려는 권력집단의 행태가 사회도처에 미만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앞서 본 기 성체제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념적 균열을 치유하기보다 이를 다양 하게 확대재생산 하는 것이 지배전략의 핵심을 이루었고 그 전략은 전환기 이 후의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균열, 계층균열에 대한 대응양상도 비슷하다. 요컨대, 힘 있는 집단은 이 균열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대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국제경쟁의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파고 앞에서 이들은 기술혁신 등으로 대응하려 하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핵심부문에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청 계열의 기업들에게 순차적으로 부 담을 전가시켜 경영을 쥐어짬으로써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국민경제가 전체적으로 상승, 확산되는 성장의 국면에서는 이런 제로섬 리더 십의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국면이 지나고 위기, 위험 의 다양한 징후들과 함께 경제의 체질개선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런 구시대적 유습이 반복된다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증가하기 쉽다. 한국사회 는 이런 상황으로 접어들었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빈부격차에 대한 갈등이 날카롭게 변하고 있고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 경제성장 위주와 환경보호 사이 의 가치대립, 정부정책의 계급성을 둘러싼 반목이 심화되고 있고 여야 갈등의 수위도 높다. 우리의 공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압력은 상당히 강하다. 초국가적 수준의 거 시적 경쟁의 압력과 국내 권력집단들의 자기보호의 기제들이 엇물려 만들어내 는 양극화의 추세를 우리는 과연 이겨낼 수 있는가? 적자생존의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핵심은 사회적 대화체제를 가동함으로써 약자를 포용하고 강자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 엇보다 사회집단들이 눈앞의 최대이익을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를 절제함으로써 가까운 미래에 서로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의 한국정치에 심각히 결여된 것은 바로 이 런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조성된 화해와 공 존의 국면에서 민주당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 만성적 결핍을 해소하는 것 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아우르는 중도개혁 제3의 길도 결국 이 지형에서 찾아 야 할 것처럼 보인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현 상황의 진단 민주화 10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부딪치고 있는 위기의 징후들에 관하 여 4가지 테마를 제시하고 싶다. 선거민주주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이것으로 민주주의의 품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파시즘도 남미의 포퓰리즘도 선거를 외면하기보다 선거를 통하여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격조 있는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질을 위해 서는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는 국가통치기구의 지속적 민주화에 관련된다. 한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는 막강한 공안통치의 유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기성체제의 핵심을 이 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10년 동안 이 유습의 개선을 위한 노 력이 계속되었지만 오래된 체질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과 거의 유습이 되살아나는 징후들을 발견한다. 검찰의 권력도구화, 국가공권력 투 입에 의한 하류층 생존권 문제의 억압, 정보기관의 국내 사찰기능 부활, 갈등의 평화적 관리 대신 시위와 경찰력의 빈번한 정면대결 등은 지난 10년 간 어렵게 추진했던 통치기구 민주화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민주당은 국제적 으로 공인된 투명성, 책임성, 민주적 호응성 (democratic responsiveness)의 원 칙에 입각하여 통치기구의 지속적 민주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내걸어야 한다. 둘째는 민주주의의 사회통합 기능에 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치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절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출발점에 불과하여 민주화의 효과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집단들에게 보다 공정한 과실의 배분으로 들어 날 때 비로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수 있다. 약자의 권익신장은 사회통합의 필 수조건이다. 민주화 10 년 동안 이룩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 사회안전 망 확충, 의료 복지체제의 강화는 그 이전과 비교하여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의 현실은 이와 너무 대조적인 것처럼 보인 다. 경제사회정책의 초점이 다수 국민보다는 소수 부유층을 배려하는 경향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당은 약자의 포용과 권익신장에 근거 한 사회통합을 주요 목표로 제시해야 한다.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셋째는 시민의 자유와 법치의 관계다. 민주주의는 인치가 아니라 법의 지배 로 특징된다. 이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주적 법의 지배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전제 위에서 정당성을 얻는다. 그렇지 않은 법치는 또 다른 통치의 수단, 행정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을 갖는 다. 때문에 우리는 법치를 강조하되 시민의 자유와 참여를 확장시키면서 정치 제도가 시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식의 유연한 민주적 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지난 10년 간의 경험은 정보기술혁신과 궤를 같이 하면서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특징된다. 평화로운 촛불 시위 문화는 단적인 보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정치현실은 이런 새 로운 잠재력에 대한 적극적 평가 대신 이들에 대한 관료적 통제의 강화에 보다 무게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내재적 발전경향과 모순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 점에서 분명한 변별력,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화해와 소통 대신 분열과 갈등이 전반적으로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지난 민주화 10년 동안 적대적 남북관계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은 심각 한 대립과 불신으로 특징된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을 상대가 따를 것을 요구할 뿐 상대의 주장을 상대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소통의 필수조건이 결여되어 있 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남북 관계를 포함하여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화두 로 소통과 화합, 평화의 전략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당의 6대 과제 민주당은 오늘날 침체한 당의 체질개선이라는 막중한 부담과 함께 새로운 출 발의 문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10년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점을 더욱 계 승 발전시킬 것이며 과거의 실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급변하는 대내외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러 질문이 제기된다. 여섯 가지 테마를 제시하 고자 한다.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첫째, 당의 분명한 정체성 확립이 긴요하다. 민주화 10년의 전통을 당당하게 계승 발전시킨다는 입장에서 민주정부의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노력이 필 요하다. 특히 권위주의 통치기구들을 개혁하고 사회제도들에 각인되어 있던 차 별과 특권을 제거하는 노력들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재현 되고 있는 공안통치의 유습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하여 국민대중의 신뢰 를 얻는 설득력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 민주개혁의 방향에 합류 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집단을 새롭게 결합하는 담론의 프레임을 발전시 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대중적 리더십의 구현을 위해 과감한 문호개방과 자유롭고 공정한 경 쟁의 장 마련이 시급하다. 민주당의 한 취약점은 국민대중에게 호소력이 있는 스타 정치인이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인위적인 산물 일 수 없고 오로지 자유경쟁과 협력의 정치문화를 미래의 지도자들이 같이 만 들어가는 과정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범 민주화 세력을 포용하는 새로 운 리더십 구축을 위한 획기적 처방이 요구된다. 셋째, 당 조직의 민주화와 현대화를 위한 시범 사례의 발굴과 운영이 요망된 다. 정당 조직의 자생력을 위해서는 중앙당 중심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보다 는 당원의 자발성과 솔선수범에 기초한 상향식 조직운영의 성공적 모델이 필요 하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이를 둘러싸고 많 은 갈등과 오해, 불신이 있었다. 이런 경험으로부터 배울 것을 배워 이념이나 노선을 앞세우기보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성공사례를 먼저 개발할 필요가 있 지 않나 생각한다. 혁신적 구상의 전면적인 실시보다는 점진적인 모델로 시행 착오를 점검하고 내실을 기하는 합의과정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보스 중심의 지역 과두제 대신 당원 중심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당의 조직원 리에 접목시키는 실험에 민주당이 앞장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과감한 탈이념의 자세로 실용적 민본노선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민본 노선을 생각하는 것은 국민의 삶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추상적 진보 보수의 이

전환기 이후의 모호성과 민주당의 6대 과제 념대립을 벗어나 역사와 전통에 닻을 내린 생활정치의 장을 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민본노선이라 함은 단순히 국민을 위한 정치라 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민이 적극적인 참여의 주체가 된다는 현대적 의미의 참여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한다. 그 토대 위에서 민생으로 대변되는 삶의 질 문 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다룬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소수의 부유층이 아 닌 국민대중의 생활 안전과 권리실현을 위한 일관된 정강정책을 마련할 수 있 다는 것이다. 다섯째, 공존을 위한 사회적 협약 또는 협의기구를 먼저 주창할 수 있다. 우 리의 현실을 짓누르고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와 정치사회 갈등의 증폭은 과거의 권위주의 국가 모델로는 더 이상 해결이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 만으로는 해결이 더욱 무망하다. 이것은 오직 광범위하고 실효성 있는 사 회적 협의기구를 통하여 해결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통상적으로 이런 생각은 야당보다는 집권여당에게 더 매력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 재의 소통, 화합, 협력의 화두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민주당은 단순 한 외양이 아니라 실질에 있어서 사회적 약자, 소수집단의 권익보장을 강하게 요구하는 노선에서 사회적 대화와 공존의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섯째, 시민사회의 활력 안에 민주당의 미래가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오 늘날 어느 나라보다 활력이 넘친다. 따라서 시민사회와의 연대는 중요한 민주 당의 과제이다.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제의 하나는 국정운영의 다양 한 측면들에 에 관하여 시민실사 제도 (citizen monitoring institution)를 법제 화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에 대한 대표성과 책임성이 확보되는 방식의 실사 기 구를 만들고 공신력 있는 방식의 시민평가를 측정, 공표하며 이를 제도정치에 투입함으로써 질서 있는 방식의 정치변화를 이끌 필요가 있다. 격조 있는 민주 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물론 시민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생기 발랄하게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거리시위의 형태로 표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혁명의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오르는 것은 선거 민주 주의의 패러다임을 넘어 시민들이 주기적으로 국정을 평가하고 정당과 정부의

민주정책연구원 창립 1주년 기념 및 초청강연 운영을 감시하는 실사제도를 공적 자금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불완전하지만 이 런 방식은 이미 여론조사나 선거 모니터 제도 등으로 시험되고 있다. 지방정부 의 차원에서 시민실사제도를 도입한 나라들도 있다. 한국의 경우, 제도정치와 시민사회 사이의 간격은 아직도 매우 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에 의한 자유롭고 공정한 실사를 가능하게 하는 공신력 있는 제도의 법제화는 정당의 체질개선과 민주주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민주당이 이런 제도정치의 체질개선책을 먼저 주창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