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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포함내용 비교

6) 송승종길병옥, ' 군용무인기개발의역사와그전략적함의에대한연구,' 군사 제 97 호, ) 최근공개된자료에따르면주한미군은기간중 268 회의무인기비행을수행한것으로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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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핵 미사일위협으로부터 우리대한민국을더안전하게지키겠습니다 주한미군 THAAD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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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왔던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는 년을 거치면서 중대 고비를 맞이했다. 2009년 북한의 로켓 발사와 한-미-일의 과잉대응으로 촉 발된 위기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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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ㆍ 大 韓 政 治 學 會 報 ( 第 20輯 1 號 ) 와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문제 로 모든 합의가 무산되었다. 이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 북ㆍ미회담이 자리 잡게 되었고, 미국이 주요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북핵문제는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북미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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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남북관계전문가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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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세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6자회담 재개 대( 對 ) 한 미 일 군사협력 금년 들어 남북관계의 개선 신호는 북측의 적극적인 평화공세에서 시작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이 어, 북한 국방위원회는 1월 16일 우리측에게 중대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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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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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정책연구제 33 권제 3 호 2017 년가을 ( 통권제 117 호 ) Ⅰ. 서론 2017, SLBM(Submarine Launched Ballastic Missile, SLBM),,. 7 ICBM(Intercontinental Ballastic Missile, 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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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Program l l 사회 : 권정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발제 : 이삼성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동북아 비핵무 기지대화 : 상호의존성의 인식과 연계의 비전 l l l l l 토론 :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 소장 토론 :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토론 :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토론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토론 :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

인사말 9 19 공동성명 10주년, 새로운 평화의 길을 모색합시다. 안녕하십니까?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진성준입니다. 9 19 공동성명은 10년 전인 2005년 참여정부 당시 6자회담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모든 핵무기 파기와 NPT, IAEA로의 복귀를 약속받은 날 입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체제의 희망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9.19공동성명의 합의가 깨어졌고, 지난 10년 전쟁의 불안과 공포가 동아시아를 지배하였습니다. 군비경쟁과 불신이 강화된 10년이 었습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체제 생존 전략으로 택하고 제3차 핵 실험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였습니다. 북한의 정치 군사적 고립은 심 화되었고 동아시아 각국의 역내 군비경쟁은 강화되었습니다. 더 이상 평화의 길을 모색하지 않겠다는 실망감이 미국의 전략적 인 내, 한국의 비핵개방 3000정책 으로 표현되었습니다. 6자 회담, 특사 외교 등 평화를 위한 탐색은 자취를 감추고 그 빈자리를 군사동맹과 4 2015. 09. 18

군비경쟁이 채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9.19 공동성명>이라는 이정표가 희 망의 근거입니다. 여기에 동아시아 시민들의 평화를 갈망하는 뜨거운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9.19의 반추를 통해 새로운 평화를 모색하는 오늘 토론회가 다시 평 화의 희망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금일 9 19 공동성명 10 주년 기념 토론회를 준비해주신 많은 분들과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토론회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9월 18일 국회의원 진 성 준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5

발제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와 비핵화, 그리고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 : 상호의존성의 인식과 연계의 비전 이삼성 /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6

I. 문제의 제기 II. 북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 실패와 그 원인 1. 한미 양국의 외교 실패인 이유 2. 한국의 대북정책의 분열, 미국 대외정책의 분열, 그 둘의 파괴적 교차 3.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과 미사일방어: 한반도 소분단과 대분단체제의 접속 심화 III. 미국의 MD와 중국 핵전력의 도전: 사드 배치 문제의 동아태적 맥락 1. 미국의 MD 구축과 중국 러시아의 인식 2. 중국의 최소 억지 전략과 전략핵(ICBM & SLBM) 현대화 3. 미국 동아태지역 해상패권과 중국의 중거리급 핵전력과 정밀타격 능력의 도전 4. 즉응발사체제와 2010년 미국의 핵정책 검토 5. 미국의 위기의식의 소재와 대응: MD 확대 구축 IV. 북한 핵프로그램의 현재와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 1. 북한 핵프로그램의 현재 2. 한반도 비핵화의 필요성 3.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의 문제 V. 이란 핵협상 타결과 북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에의 시사점 1, 이란 핵문제의 평화적 타결과 그 요점 2. 이란 핵협상 타결의 특징 3. 이란 핵협상 타결 내용이 북핵 문제 해결에 가질 수 있는 의의 VI. 한반도 평화협정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7

VII. 한반도 평화협정의 내용: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균형 1. 평화협정에 반영되어야 할 내용의 대강 2. 북한의 비핵화와 대북 안전보장의 문제 3. 외교관계 정상화와 대북한 경제제재 완전 해제에 관한 명확한 일정 제시 4. 북한에 대한 불가침 및 핵 불사용에 대한 확고한 약속 5. 남북한과 미국의 대한반도 군사전략 수정과 군비통제의 명확한 일정 6. 외국 군사력 철수와 군사동맹 해소 문제 7. 평화협정 이행의 공정한 관리를 위한 4국 협의체 및 국제감시단 8. 북한 비핵화 일정 3단계의 설정과 상응하는 안전보장 VIII. 핵확산 방지 원칙의 견지, 그리고 핵 없는 세계를 향한 노력 IX.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1. 공동안보를 위한 구체적 어젠다: 평화벨트와 비핵지대 2. 동북아 비핵지대화 발상의 궤적 X. 한반도 평화협정체제와 동북아 비핵무기지대의 상호의존성과 연계 1. 한반도의 질곡, 그 출구로서의 한반도 평화협정 2. 한반도 평화협정체제와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의 상호의존과 역할 분담 XI.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한국의 선택 1. 대분단체제 안에서 한국의 위치: 중간자적 존재 2. 미일동맹과 중국 간 세력균형 이동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의 변동 3.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체성의 재구성을 향한 중국의 요구와 노력의 구체 화 본격화 4. 동아시아 질서의 미래와 한국의 선택 5. 최근 한중관계의 양상과 그 함정 XII. 글을 맺으며. 8 2015. 09. 18

I. 문제의 제기 지금 한반도 평화체제를 가로막고 있는 근본 문제는 무엇인가? 그 문 제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그 문제들을 극복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먼저 현재 한반도 평화체제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은 크게 상호 연 관된 두 가지 문제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남북 간에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소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 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기보다는 군비경쟁이 고도화해 왔다. 이것은 북한 의 핵무장과 남한의 대북 선제타격전략의 대립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 반도 소분단체제에서의 군비경쟁이 가장 극단적인 패턴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물론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실패하고, 그 결과인 북한의 핵무장으로 한반도의 긴장과 군비경쟁이 심화된 것에 서 기인한다. 문제는 왜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갈수록 악화되어 왔는가 이다. 우리 사회엔 북한의 핵무장으로 귀결된 한미 양국 외교 실패에 대한 의미 있는 성찰이 부족하다. 오히려 잘못된 교훈을 얻거나 실패한 외교를 수정하기보다 그 실패한 외교 패턴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이 있 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막지 못하여 북한 핵무장을 초래한 정책이 북한 핵무장 이후에도 지속됨으로써 문제는 더욱 구조화되어 왔 다. 둘째, 특히 동아시아 대분단선, 특히 대만-오키나와-제주도로 이어 지는 동중국해역 전반, 그리고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이 발전하는 것과 결합하면서 미일동맹의 동아태 해상패권과 중국의 도전 사이에 긴장과 전략적 군비경쟁이 고조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미국이 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지향하고 2000년대 들어 이를 강행하면서 중국도 이에 대 응하여 ICBM 및 SLBM, 그리고 중거리급 핵전력의 현대화를 추구해왔 다.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군비경쟁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9

바퀴처럼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다. 대분단 기축관계에서의 군비경쟁 심 화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가능성을 제약하는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맥락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상호 상승작용을 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방해하고 있다. 그래도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북한 정권을 제외하고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가 한결같이 한반 도 비핵화를 여망한다. 북한 정권 또한 핵무장 자체를 사랑해서가 아니 라 초강대국의 적대정책 때문에 자위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 장한다. 문제는 북한 핵무장 해체를 평화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일관 성 있는 노력은커녕 거꾸로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실 권력의 비전 자체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더욱 굳어져만 가는 동아시아 대 분단의 상황을 공동안보의 질서로 변화시키는 노력과 동전의 양면 관계 에 있다. 이 글은 북한 핵무장의 평화적 해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 한 길로서의 한반도 평화협정, 그리고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서 공동안 보의 단초를 마련할 출발점이면서 한반도 평화를 지원할 시급한 장치로 서 동북아 비핵무기지대 건설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II. 북한 핵문제 평화적 해결 실패와 그 원인 1. 한미 양국의 외교 실패인 이유 1992년 1월 1일 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에 서명했다. 그 러나 1993년 3월 북한은 한미 양국의 팀스피티릿 훈련 강행을 이유로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였고, 그로부터 13년 후인 2006년 10월 9일 끝내 핵무기 실험을 강행했다. 10 2015. 09. 18

2002년 10월 북한 우라늄핵무기프로그램을 둘러싼 북미갈등으로 미 국이 1994 제네바 핵합의(경수로 제공 포함)를 파기했다. 2003년까지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스탠퍼드 대학의 핵 전문가 시그프 리드 헤커(Siegfried Hecker) 교수는 필자의 판단으로는 가장 신뢰할만 한 북한 핵문제 분석가이다. 그는 2010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영변 핵시설을 방문한 바 있다. 그가 2014년의 한 세미나에서 재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이 2003년까지는 플루토늄을 생산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미국이 의심한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의 존 재에 대해서도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1) 국제사회가 북한의 우라늄핵시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2010년 북한 이 헤커교수를 초빙해서 경수로 시설과 함께 2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우라늄핵시설을 공개했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헤커 교수에게 북 한이 한 얘기는 그것은 발전용 실험용 경수로를 위한 저농축우라늄시설 이라는 것이었다. 2014년 발표에서 헤커교수는 자신이 확인한 2,000개 의 원심분리기 시설을 북한 당국자는 2009년에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라고 얘기했지만, 그보다는 훨씬 전에 프로그램을 추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북한이 본격적으로 우라늄핵시설을 모색 한 것은 2002-2003년 미국이 제네바핵합의를 파기한 이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헤커 교수는 그의 발표에서 북한의 우라늄 핵시설 모색이 그보 다 일찍 시작했을 것으로 암시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북한이 2002년 이전에 이미 우라늄농축시설에 대한 자체 기술 개발을 모색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핵 무장을 위한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은 분명 제네바 핵합의 를 이행하고 있었고, 핵물질을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바꾼 것 1) Siegfried Hecker, A 10-Year Retrospective of North Korea s Nuclear Program, The 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 The James Martin Center for Non-proliferation Studies, April 16, 2014. (www.youtube.com)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11

은 부시행정부의 출범이라는 미국의 권력변동이었고, 특히 2002년 10 월 이후 미국의 본격적인 제네바 합의 파기 정책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이후에도 몇 차례 북미 간에 대화가 오 고 갔지만 결국 미국은 어떤 효과적인 대안도 마련하지 못했고, 결과적 으로는 북한을 본격적인 핵무장으로 내몰았다고 할 수 있다. 헤커 교수 가 지적하듯이, 2014년 현재 북한은 무기용 플루토늄을 24~42킬로그 램을 보유하게 되었다. 핵무기 하나 만드는데 보통 6킬로그램을 생각하 므로, 핵탄두 4~7개 정도의 핵물질을 갖게 된 것이다. 핵무기 제조에 쓸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 Highly Enriched Uranium)도 2003년 1월의 시점까지도 북한이 갖고 있는 것은 제로 였을 것으로 헤커 교수 는 추정했다. 그러나 2014년 1월의 시점에서도 헤커 교수는 북한이 우 라늄핵시설에서 전력생산용 저농축우라늄 이외에 고농축우라늄을 생산 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않았다. 헤커 교수는 다만 한 중국인 전문가가 북한이 현재 약 100킬로그램 의 HEU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 주장을 소개한다. 2) 이 중국인 전문가의 말이 맞다면 그리고 북한이 가진 HEU가 90퍼센트 이상의 고농축이라 고 가정하고 가능한 최대치를 계산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최대 4개까지 만들 수 있는 HEU를 추가로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 경우 북한은 플루토늄과 HEU를 합해 대체로 10개의 핵무기 제조에 쓸 수 있는 핵 물질을 갖고 있는 셈이라고 헤커 교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주목할 것은 2003년 1월의 시점에서 북한은 플루토늄도 그리고 HEU도 갖고 있는 것이 제로 였을 것으로 헤커 교수는 판단하고 있다 는 점이다. 2) 농축율이 20퍼센트 이상인 것을 고농축우라늄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라늄은 자연상태 우라늄 U-238이 아닌 U-235를 가리킨다. 핵무기 하나를 고농축 우라늄으로 만들 경우엔 플루 토늄보다 더 많은 양이 필요하다.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은 HEU로 만들어진 것인데, 80퍼센트의 고농축 우라늄 64킬로그램이 사용되었다. 90퍼센트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하면 필 요한 양이 더 적어진다. 12 2015. 09. 18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10년이 못되어 그 합의가 파탄나고, 그로 부터 수 년 후에 북한이 마침내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후 약 10년 동안 이 지나도록 북한 핵문제는 왜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악 화되기만 했는가. 지난 20여 년간의 한미양국의 대북외교 실패는 어디 에서 비롯된 것인가. 먼저 북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조건에서도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근본주의적 단정은 사태를 정확히 판단한 것 이 아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제네바 합의 10년 동안 북한이 이것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라는 결과를 행태적 상호작용론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랬을 때 이 외교실패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관건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의 명분이었 던 에너지난과 그 결과인 경제위기, 그리고 북한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것은 곧 한반도 평화체제 의 구축이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을 의미하는 것이고,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은 그 핵심일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한미양국이 평화적 해결을 위한 일관성 있고 신 뢰성 있는 외교 공조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양국 사이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갖춘 대북 정책 외교공조는 존재하지 않았 다. 1994년 6월 한미 양국과 북한은 저마다 전쟁불사론을 앞세우며 전쟁 위기까지 갔었다. 그러나 곧 북미 협상이 진행되어 그 해 10월 북미 제 네바합의(Geneva Agreed Framework)가 성립한다. 이것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 의 지정학적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은 독자적인 핵프로그램을 추진 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미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13

국의 정책이 군사행동으로까지 연결되지 않고 일단 평화적 합의로 가닥 을 잡은 것 또한 중국의 미국 견제에 크게 기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대분단체제의 기축관계인 미중관계의 역할이었다. 그렇다고 북한 핵무장의 책임이 중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관 점에서는 북한이 에너지난 해결을 위한 평화적 핵 이용에 머물지 않고 온갖 경제제재를 무릅쓰고 군사적 핵 프로그램을 추구하게 된 것은 미 국과 한국 외교의 책임이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 제네바에서 서로 주 고받는 방식의 평화적 해결방안에 합의해 놓고도 미국과 한국이 (제네 바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미사일 문제와 같은) 각종의 추가적인 쟁점을 제기하며 핵 합의 이행을 거부하고 걸핏하면 군사적 압박을 가했는데, 이것은 많은 부분 미국 내부의 정치적 역학관계 변동과 깊은 관련이 있 었다. 3) 결과적으로 제네바합의로부터 12년 후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귀결 되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2. 한국의 대북정책의 분열, 미국 대외정책의 분열, 그 둘의 파괴적 교차 미국에서 대단한 국제정치학자로 통하는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는 미국 패권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정치적 다 원주의에서 비롯된 개방적인 정치제도에서 찾았다. 그러한 정치질서는 정책결정과정이 투명하다. 다른 나라들에게 미국의 정책결정은 그래서 예측가능하다. 갑작스런 정책변동으로 상대 국가를 지배하려 하거나 배 신할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국익 개념에 바탕해 전개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 라들은 미국의 정책 일관성에 신뢰를 갖게 되고, 미국과의 동맹을 선호 3) 이삼성, 세계와 미국, 한길사, 2001, pp.303-313. 14 2015. 09. 18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패권의 장기적 지속을 이끈다. 4) 아이켄베 리의 주장은 그러했다. 그러나 1994년 이후 북한 핵실험을 거쳐 2010년에 이르는 15년의 기간에 미국이 보인 대북한 정책은 일관성이나 신뢰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며, 그것은 아이켄베리가 일관성과 신뢰성의 근거로 지목한 미 국 정치질서 자체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5) 북한의 정권과 달리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세계전략에서도 대북정책에서도 다른 철학에 기초한 다른 정책을 내세웠을 뿐 아니라, 의회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여야 권력 균형의 변화,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로 말미암아 정책의 일관성도 신뢰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켄베리는 미국 정치 제도는 갑작스런 정책변동을 방지한다고 했으나, 정권교체에 의한 갑 작스런 정책변동 이야말로 북한이 경험한 미국 정치질서의 현저한 특징 이었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한 것은 바로 매우 다른 철학을 갖고 대외정책을 펼치는 세력들 사이의 정권교체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도 예외가 아니어 서, 북한을 이중적인 혼란에 빠뜨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불행한 것은 미국과 한국이 서로 철학과 접근법이 다른 정권들이 교차하면서 일관성과 신뢰성 파탄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는 데 있다. 요컨대 한미 양국의 외교실패의 본질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이라는 극단적인 비대칭전략에 의지하지 않아도 북한이 에너지난과 안보불안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한미 양국의 일관성 있는 대 북정책이 불가능했다는 데에 있었다. 4) G. John Ikenberry, Institutions, Strategic Restraint, and the Persistence of American Postwar Order, International Security, Vol.23, No.3, Winter 1998/1999; 이삼성, 미국의 대 북한 정보평가 및 정책의 신뢰성 위기와 북핵문제 해결방향: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 전환이 유 일한 대안인 또 하나의 이유, 현대북한연구, 7권 2호(2004). pp.9-11. 5) 이삼성, 2004. pp.10-12.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15

첫째, 한국의 대북정책 내부의 분열이었다. 한국의 보수정권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앞세워 북한과의 협상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진보적 정부 가 추진했던 대북한 협상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백지화되었다. 둘째, 1990년대 이래 미국 정치권도 세계전략을 둘러싸고 철학적 분 열 상태에 놓여왔다. 민주당 정부들의 자유주의적 다자주의와 공화당 정권들이 추구하는 현실주의적 일방주의 사이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또 한 요동하였다. 민주당 정권이 타결한 대북 협상은 공화당 정권으로 바 뀌면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북한의 안보불안을 해소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성 공할 가능성은 한국과 미국 모두 진보적 혹은 리버럴한 세력이 집권했 을 때에 한정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런 조건은 1998-2000년 사이의 3년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 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좌절시 켰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19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는 민주당 클린턴행정부에 의해서 타결되었 다. 한국의 김영삼 정권은 이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제네바합의 를 소극적으로 수용하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는 없었다. 마 침 1994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뉴트 깅그리치(Newt Gingrich)가 이끄는 공화당 혁명 이 성공하면서 보수세력이 미 의회를 장악했다. 한 국의 보수정권과 미 공화당의 연합이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 의 북한 불신과 북한의 대미 불신이 결합했고, 제네바합의는 잘 이행될 수 없었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첫 번째 기회는 그 결과로 사 장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16 2015. 09. 18

2)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제네바합의를 다시 살려낸 것은 1998년 2월 한국에 김대중정부가 출 범하면서였다. 1996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여전히 상하 양원의 다수파 를 유지했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이 경제를 살린 업적에 힘입어 민주 당 행정부가 외교력을 더 발휘할 수 있었다.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 동 미사일 발사로 위기가 가중되었다. 6) 그러나 한미 양국은 곧 대북 평화협상을 했다. 1998년 8월의 북한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위기 를 해소했다. 1999년 9월 한국전쟁 이래 최초로 미국이 대북한 경제제 재를 해제했다. 2000년 6월 15일 역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 다. 그해 10월 미 국무장관 마들린 울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가 북한을 방문했고, 김정일과 3-4시간의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김 정일은 북미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타진하기까지 했다. 7) 2001년 1월 조지 부시행정부가 출범했다. 민주당행정부의 대북 협상 성과는 완전히 무시되었다. 8) 2001년 1월 부시행정부는 첫 신년사에서 6) 마들린 울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클린턴행정부의 마들린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은 2003년 미국 공영방송 P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1998년 대포동 미사일 시험을 제네바합의 파기 와 기만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 측도 할말이 많았다. 미국이 제네바합의 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김정일도 나에게 문제를 제기했었다. 실제 미국의 약속 이행이 일정과 달리 늦어졌다. 주로 기금 조성 문제때문이었는데, 미국의 문제는 아니었고, 한 국과 일본 때문이었다. 우리도 경수로의 핵심 부품을 끝내 북한에 넘겨주지 않고 있었다. PBS FRONTLINE, Kim's Nuclear Gamble: Interview with Madeleine Albright, March 27, 2003. (http://www.pbs.org) 7) 울브라이트는 2003년 3월 미국 공영방송 PBS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미국과 협상을 원 했고 킅린턴대통령과 회담을 가져서 관계개선을 하고 싶어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 밝혔다. 8) 울브라이트는 자신의 방북이 북한 김정일이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김대중대통령 의 시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클린턴행정부는 과거에 미국이 스탈린, 마오쩌둥,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등과도 협상을 했고 협정을 맺었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한 과의 유의미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으나,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의 기본철학 이 협상은 유화 (talking is appeasement)라는 관점에 서 있었고, 북한의 체제가 내파 (implosion)할 때까지 압박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개념에 기초했다고 말했다(Albright, 2003, interview with PBS).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17

북한을 악의 축 으로 규정했다. 정책이 급선회한 것이다. 2002년 3월 공개된 미국의 2002 핵정책 검토 (2002 Nuclear Posture Review Report)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러시아, 중국 등과 함 께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 비상사태 계획 (contingency plans to use nuclear weapons)을 수립한다고 명시했다. 9) 미국 정책의 일관성에 대 한 북한의 신뢰는 더욱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 마들린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도 북한 김정일은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소회를 훗날 피력한다. 2003년 PBS와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이렇게 말 했다: 미국정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단지 독재자뿐만 아니다. 많은 다른 나라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정치생활은 4년 단위로 쪼개진 다. 특히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외교정책도 바뀐다. 이것은 자신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북한의 김정일에게는 특히 낯선 일이었을 것이 다. 왜 우리가 협상했던 것들이 모두 취소되는지에 대해 김정일은 많은 오해를 했을 것이다. 10) 2002년 10월 미국은 제임스 켈리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이 고농축 우랴늄(HEU) 핵무기 프로그램 을 추가로 갖고 있음을 시인했다고 주 장한다. 이와 함께 미국은 1994년 타결된 북미 제네바 합의 (Geneva Agreed Framework)를 공식 폐기했다. 이로써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타결의 두 번째 기회는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다. 미국의 대북 정책 자체의 일관성 폐기는 또 하나의 악의 축 국가인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관련이 깊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후 사담 후세인의 운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2003년 12월 미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공개 재판에 시달렸다. 그 리고 2006년 12월 30일 그가 교수형을 당한 참혹한 장면이 전 세계 9) William M. Arkin, Secret Plan Outlines the Unthinkable: A secret policy review of the nation s nuclear policy puts forth chilling new contingencies for nuclear war, Los Angeles Times (latimes.com), March 10, 2002. 10) Albright, 2003, interview with PBS. 18 2015. 09. 18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이것이 북한 지도부의 사이키에 깊은 충격을 주 었고, 이후 북한의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3) 2005년 제4차 6자회담과 9.19 공동선언 북한이 과거에 정말 핵에너지를 군사용으로 개발할 의지가 설령 없었 다 하더라도 부시행정부 하에서 북한 안팎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그 의지가 없다가도 생기고 약하다가도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 나 북한 핵무장의 현실화를 피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가 없었던 것 이 아니다. 2005년 7월에서 9월에 걸쳐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북한 의 평화적 비핵화를 위한 9.19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일정한 창의적 대안을 갖고 특히 중국과의 외교적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미국의 일방적 인 대북한 압박전략을 견제한 노무현정부의 노력이 그 바탕이었다. 11) 9.11 이후 미국은 전 지구적인 대테러 전쟁을 주도했고, 중국과 러시 아도 일응 동참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도 대북한 다자 적 압박에 합류시킬 목적으로 6자회담을 구성한다. 그러나 2005년 여 름 노무현정부의 외교는 중국과의 전례 없는 긴밀한 협력을 구성했다. 6자회담은 이제 미국의 동아시아에서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실질적인 다자외교로 조정해내는 채널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응하면서 9.19공동성명에 일단 서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한편에서 BDA(Banco Delta Asia) 사태를 벌였다. 9.19 공동성명은 휴지가 되었 다. 당시 노무현정부의 NSC사무차장으로 일하고 있던 이종석은 훗날 이 소중한 합의가 강대국의 일방주의로 그렇게 쉽게 유린될 줄은 몰랐 다 고 말했다. 12) 11) 이종석, 칼날 위의 평화: 노무현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 개마고원, 2014. 12) 이종석, 2014, p.339.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19

예상된 불행한 결과였지만, 미국의 일방주의는 북한 핵무장을 저지하 기보다는 촉진했다. 한국정부가 6자회담을 통해 초강대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면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다자적 장치로서의 잠재적 효용을 드러낸 것은 그나마 이 시기에 남은 것이었다. 그 장치 안에서 한국이 평화적 해결의 촉진자 및 균형자로서 행동할 수 있는 가 능성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제1차 핵실험을 했다. 이후의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은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차 핵실험 후인 2007년 10월 한국의 노무현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역사상 두 번째의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10월 4일 두 지도자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 할 것을 약속하는 공동선언을 발 표한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북한의 신뢰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은 자신의 생존에 절대적이라고 판단 한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2009년 5월 25일 두 번째 핵실험을 했다. 4) 핵실험 이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기회: 2009년 말에 서 2010년 초 2008년 2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 남북 간에는 긴장이 고조되 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2010년 3월 벌어진 천안함( 天 安 艦 ) 침몰 사 건이 벌어졌고, 이로써 북미 간 평화협상의 기회도 결정적으로 사라진 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거의 주목을 받는 일 이 없는 일정 한 과정이 있었다. 부시행정부가 끝나고 민주당 오바마행정부가 출범한 20 2015. 09. 18

2009년 가을에서 2010년 초에 걸친 시기에 비록 희미한 것이었지만 불빛이 남아있었다. 한국 이명박 정부는 대화를 배제하고 있었지만, 오 바마 행정부는 멈칫멈칫 하면서도 협상의 길을 탐색하려 했기 때문이 다. 필자는 그것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네 번째 기회였 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앞서 언급했듯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첫 기회는 1994년 말 이었는데, 그 기회를 파탄시킨 것은 미 의회 안의 권력변동이었고, 한 국 김영삼정부가 미 정치권에서 부상한 보수파들과 합류한 탓이라고 할 수 있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두 번째 기회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무 산되었다. 2005년의 세 번째 기회도 미국 부시해정부 안에서의 강온파 사이 갈등에서 강경파의 사보타지에 의해 쓸모없이 되었다. 2009-2010년 초에 네 번째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법했던 기 회는 논란과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미국 내 보수파의 반발과 득 세 그리고 한국 보수정권 사이의 협력이 그 원인이었다고 볼 소지가 없 지 않다. 2002년 북미간의 제네바합의를 공식 폐기하고 부시행정부가 모색한 대안은 북한에 대한 다자 압박 외교였다. 당시 미국의 일차적인 대외정 책 초점이었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대테러 전쟁이 수렁에 빠 지면서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다자적 압박정책은 힘을 상실한다. 급기 야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사태로 귀결되었다. 2009년 출범한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행정부의 명백한 대북정책 파탄이라는 유산을 물 려받은 채, 새로운 암중모색의 시기에 들어갔었다. 그러나 2009년 5월 25일 북한 김정일정권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이에 대응해 바로 다 음날 한국은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대한 참여를 공식 화하고, 6월 12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 대한 기존의 제재를 강화하는 결의안 1874호 를 통과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 부시행정부와는 달리 북미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21

직접대화를 모색하려 했다. 그 신호탄은 2009년 9월 11일 미 국무부 대변인(P. J. Crowley)이 미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선행조치로서 북한과 양자협의에 들어갈 용의가 있다 고 밝힌 것이었다. 13) 이후 북 미 간에 일정한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 해 10월 5일 북한 김 정일이 북미 간 양자대화가 유익한 결과를 낳으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임을 중국 원자바오 총리에게 밝힌 사실에서 확인된다. 14) 10월 20일 미 국무부 대변인(Ian Kelly)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맡 고 있던 스티븐 보스워스(Stephen Bosworth)에게 평양 방문 초청장을 보냈다고 밝힌다. 15) 이어 11월 9일엔 스티븐 보스워스가 북한정부와의 직접대화 를 위해 평양방문단을 이끌 것이라고 국무부가 발표했다. 그로부터 열흘 후인 2009년 11월 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에 있 었다. 그는 이 날 이명박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북핵문제 해결 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초점은 명백히 북핵문 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미 간 직접대화의 의지를 밝히는데 두어져 있었다. 오바마는 이 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핵문제의 명확하고 포괄적인 해결을 달성하기 위해 6자회담에서 공동 노력할 것임을 재확 인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북한과의 직접대화에 임하기 위해 12월 8일 보스워스 대사를 북한에 파견할 것이다. 그는 아울러 만일 북한이 의무를 충족시키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제거할 구체적이고 불가역적인 조치들을 취한다면 미국은 북한에게 경제지원을 하고 북한 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통합될 수 있도록 도울 것 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북한 핵문 제의 포괄적 해결 에 동의하고, 그 자신 나름의 대흥정 (grand bargain)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북미 직접대화에 대한 13) ACA(Arms Control Association), Chronology of U.S.-North Korean Nuclear and Missile Diplomacy, Updated April, 2013 (http://www.armscontrol.org/factsheets/dprkchron). 14) ACA, 2013. 15) ACA, 2013. 22 2015. 09. 18

찬동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한미 군사동맹 강화였다. 그는 (핵)연장억지를 포함한 공고한 한미 방위태세, 그리고 21세기 전략동맹 (a strategic alliance of the 21st century)을 역설했다. 16) 오 바마의 11월 서울방문의 목적은 이전 10년간에 걸친 김대중-노무현정 부의 햇볕정책을 폐기하는데 힘을 쏟고 있던 한국의 보수정권에게 북 미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여 이해를 얻고자 한 데 있었으며, 한국 정부는 다분히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12월 8-10일 미국 대표들은 평양에서 북한정부와 첫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보스워스대사는 김정일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 달한다. 다음해인 2010년 1월 11일 북한 외무부는 1953년의 정전협정 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대화를 제안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 편 1월 하순 남북한 사이엔 험악한 상호위협이 교환되었다. 북한의 핵 무기 타격 위협이 있을 경우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남한의 발표가 있었고, 이에 대해 북한은 전쟁을 위협한다. 그러나 2월 9일 중국 신화 통신은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위해 노력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김정일이 중국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17) 그렇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벌어 졌다. 한반도 서해상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 있는 백령도 앞바다에서 한 국 해군 쾌속 호위함(corvette) 천안함( 天 安 艦 )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 며 침몰했다. 북한 해안에서 16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해상이었다. 승선 해 있던 104명의 승조원 중 46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따랐다. 약 두 달 후인 5월 20일 한국정부는 국제민관합동조사단의 결론에 근거해 북한 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미국을 중심한 국제 사회는 한국정부의 결론을 지지했다. 북미 직접대화는 더 이상 진전될 16) Remarks by President Barack Obama and President Lee Myung-bak Republic of Korea in Joint Press Conference, Blue House, Seoul, South Korea, November 19, 2009 (http://seoul.usembassy.gov/p_pv_111909.html). 17) ACA, 2013.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23

수 없었다. 그 해 7월 21일 미국은 대북한 제재를 강화하고, 이어서 7 월 25일 미국은 한국과 함께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4일 간에 걸친 합동군사훈련을 동해에서 실시한다. 8월 30일 오바마 대통 령은 대북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대통령령(executive order)을 발했 다. 한편 북한은 8월 25일 북한 국경을 침입한 혐의로 억류되어 있던 미국 시민 고메스(Gomes)의 석방을 위해 전 미 대통령 지미 카터의 평양 방문을 수용했으며, 카터는 9월 15일 뉴욕타임스 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북한 방문 중에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재개를 원한다는 명백하고 강력한 신호 를 보냈다고 밝힌다. 그러나 같은 날 미국 보스 워스 대사는 미국의 입장은 부정적임을 확인한다. 18) 이어 2010년 11월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으로 북미 직접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모색 가능성은 당분간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첫째는 11월 12일 북한이 그간 미국이 의심을 해오던 우라늄 핵시설을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의 전 소장 시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 를 초빙하여 공개한 일이었다. 북한은 이 시설은 1994년 제네바합의에 서 미국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 동결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에 제공하기 로 했던 경수로(LWR: Light Water Reactor)를 운영하기 위한 저농축 우라늄(LEU: Low Enriched Uranium)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로서 군사 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군사용은 저농축이 아닌 고농축 우라늄 (Highly Enriched Uranium: HEU)을 사용한다. 북한 경수로는 2012년 완공 목표라고 밝혔다. 19) 헤커교수는 자신이 북한에서 목격한 시설은 군사용의 고농축 우라늄이 아니고 경수로 발전용 저농축 우라늄이었다 고 확인한 바 있다. 다만 그는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시설을 별도로 갖 고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는 있으나 알 수 없다고 하였다. 20) 18) ACA, 2013. 19) ACA, 2013. 20) Siegfried S. Hecker, Redefining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Bulletin of Atomic Scientists, December 20, 2010. 일부 학자들은 북한이 2009년 이후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24 2015. 09. 18

북한이 이 시점에 공개한 우라늄핵시설은 한편으로는 2002년 10월 부시행정부가 제네바합의를 파기하면서 제기한 의혹의 실체를 확인해준 것으로 해석되었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북한은 의혹의 대상을 투명한 협상대상으로 공개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실제 북한은 2011년 3월 15 일 러시아 정부 인사들에게 6자회담에 복귀하고 우라늄핵시설에 대해 협상할 용의가 있다 는 뜻을 밝힌다. 21) 북한이 이 때 공개한 우라늄 핵 시설이 2002년 10월 이전에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부시행정부의 제네바합의 파기 이후 본격적으로 구축된 것인지는 명확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든 북한 핵 프로그램의 다면성과 그 잠재적 위협이 더욱 부각되기에 이른 것은 분명하였다. 둘째는 2010년 11월 25일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이었다. 이를 두고 남북한 간에 책임공방이 이어졌다. 남한은 북한의 도발행위 로 규정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의 선제 포격에 대한 자위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사건 다음날 국회에서 야당이 의문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사 건 당일 한국 측이 포격훈련을 실시하였으며, 포탄의 일부가 북한의 작 전통제선을 침범했을 개연성을 인정했다. 또한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 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북한은 사건 당일 오전 8시 20분 남북 장성 급 군사회담 의 북측 단장 명의로 북측 영해에 대한 포 사격이 이루 어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 며 남측에 통지문을 발송 했다 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22) 이에 비추어, 북한의 사전 경고가 있었 음에도 남한 측이 무리하게 포격훈련을 강행했을 가능성이 지적되었다. 어떻든 이로 인한 긴장상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중국은 6자회담 비상회 의(emergency session of the six-party talks)를 제안했다. 그러나 미 시인했다고 설명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의 설명도 그런 오해를 드러낸다(Lankov, 2013, p.153). 그러나 헤커교수의 설명에서 보듯이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아직 의혹 수준이지 확 인된 것은 없다. 21) ACA, 2013. 22) 구혜영 기자, 野 가 본 연평도 의혹 3대 쟁점, 서울신문, 2010년 11월 26일.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25

국과 일본은 한국과 함께 6자회담 이전에 남북관계 개선이 선결조건이 라는 이유를 들어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23) 이후 한반도의 상황은 두 가지 점에서 더 불안정하고 근본적으로 더 위험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첫째, 북미간 직접대화의 실질적인 가 능성은 사라졌다. 북미대화가 간헐적으로 시도되기는 하지만 미국도 북 한도 대화에 무게를 두었다고는 할 수 없다. 24)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 이후 남북한 간에 그리고 북미 간에 그 어느 쪽도 평화 협상을 통 해서 각자의 안보딜레머를 극복하려는 모습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미국도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모색했던 북한과의 진지한 직접대화는 사 실상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2012년 2.29합의를 했으나,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그 합의를 파기했다. 한국은 북미 직접대화를 더욱 반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둘째, 이제 남북한에게 남은 대안은 저마다 일방적인 군비경쟁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그 후 실제로 한반도의 군비 23) ACA, 2013. 24) 천안함 사건으로 중단되었던 북미간 직접대화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1년 7월 말 보스워스 와 북한 김계관의 뉴욕회담에서였다. 뒤이어 2011년 8월 24일 러시아대통령 메드베데프 (Dmitry Medvedev)와 김정일의 회담 후에,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전제로 핵무기와 미사일 의 생산과 테스트의 유예를 준수할 뜻을 밝힌다. 9월 24일에는 북한 총리 최영림이 중국을 방 문하여 같은 뜻을 재확인했다. 이어 10월 24-25일에는 제네바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간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해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막내아들 김정은이 권력을 계 승하는 변동이 있었지만, 2012년 2월 29일 북미 양국은 베이징에서 만나 2.29합의 에 이른다. 북한은 영변의 우라늄농축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테스트를 유예하기 로 했고, 미국은 24만 톤의 식량원조를 엄격한 모니터링을 전제로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 다. 그러나 이 합의는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2012년 3월 16일 북한은 4월 중순에 김일성 탄 신 100주년을 맞아 위성을 발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미국은 그것을 2.29합의 위반으로 규 정했다. 4월 13일 북한은 예정대로 3단계 액체연료 로켓인 은하-3호 (Unha-3)를 발사했으나, 발사 90초 만에 1단계에서 추락해 실패한다. 미국은 경고한대로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 중단을 발표했다. 2012년 12월 12일 북한은 다시 은하-3호를 발사했고 이번엔 궤도에 진입하는데 성 공했다고 발표한다. 2013년 1월 22일 유엔 안보리는 은하-3호가 탄도미사일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유엔 안보리의 2006년 결의안 1718호와 2009년 결의안 1874호를 위반했 다고 판정하고 결의안 2087호를 통과시켜 대북 제제를 강화했다(ACA, 2013). 2013년 2월 12 일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유엔 안보리는 2013년 3월 7일 결의안 2094호를 통과 시켜 금융제재(financial sanctions)와 무역제재 등을 기존보다 더 강화했다. 26 2015. 09. 18

경쟁이 가속화했다. 2010년 초 타결될 예정이었던 북미 간 평화협상을 무산시킨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아직도 의문과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25) 논란의 핵 심에는 사건의 실체가 좌초로 인한 침몰인가, 아니면 북 잠수정의 의도 적 폭침인가를 둘러싼 군사기술적 판단 문제가 있다. 그러나 논란이 유 발된 첫째 원인은 한국 정부와 주한미군 측 발표의 비일관성에 있었다. 처음에는 북한의 어뢰가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도 보도되었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가 첫 언론 브리핑에서 발표한 내용은 북한의 개입을 의심 할 만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었다. 3월 29일 김태영 국방부장관은 한국 전쟁 시기에 남겨진 북한의 기뢰가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을 제기했다. 3월 30일에도 국방부 원태재 대변인은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로 천안함 이 침몰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장(원세훈)은 4월 7일 발언에서도 천암함이 침몰한 날 근역에서 북한이 특별한 활동을 벌인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런 공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승인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당시 북한 내부 사정으로 보아 김정일이 이런 일 을 승인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국정원장의 견해였다. 26) 같은 무렵 북한의 어뢰 공격이 원인일 가능성을 제기한 김태영 국방장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해석이었다. 2010년 5월 20일 정부의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계속 제기 25) 천안함 사건과 그 원인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 발표가 있은 후인 두 달 후인 2010년 7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는 전국을 대상으로 국민의식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정부 발표를 신뢰하는 사람보다 불신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전적으로 신뢰한다 는 답변은 6.4%에 불과했고, 신뢰하는 편 이라는 국민은 26.1%였다. 반면에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는 국민은 10.7%, 신뢰하지 않는 편 이라는 응답도 25%에 달했다. 결국 신뢰하는 국민은 32.5% 인 반면에, 불신하는 국민은 35.7%에 달해 불신하는 쪽이 더 많았다. 나머지 31.7%의 국민도 반반 이라고 응답해 정부발표를 반쪽만 믿는다는 것을 드러냈다(이상신, 정부신뢰의 위기: 천안함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정치학회보 제44집 제4호, 2010.12, p.106). 적어도 당시에 는 약 70%에 달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발표를 불신하거나 동의 를 유보했던 것이다. 26) The Hankyoreh, NIS says N.Korean attack on Cheonan impossible sans Kim Jong-il approval, Apr.7,2010.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27

된 데에는 천안함 침몰 당시 그 지역 해상에서는 키-리졸 브 (Key-Resolve)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전개되고 있었다는 사실과 관 련이 깊다. 그 훈련 내용에는 대잠수함 작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천안 함 역시 대공 및 대잠수함 장비를 갖춘 전함이었다. 한미 양국의 해상 군사작전이 전개되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이 공격적 행동을 취했을 가능 성을 국민의 상당수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계기는 2010년 8월 말 뉴욕타임스 와 인터 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에 실린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 대사(재임 1989-1993)의 기고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활동적인 대표적인 친한( 親 韓 ) 인사의 한 명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는 이 글에서 한미 양국이 주 도한 합동조사단의 결론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러시아 전문가 들의 문제의식을 주목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에 비판적 태 도를 취했다. 27) 그는 한미 양국이 만들어낸 보고서의 문제점은 모든 사람이 천안함이 북한에 피격당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 실 이라고 지적하면서, 북한은 일관되게 책임을 부인하고, 중국과 러시 아가 북한에 책임을 지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반대했다 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레그는 이어서 러시아가 해군 전문가 팀을 한국에 파견 해서 한국정부가 북한 책임의 근거로 내세운 증거들을 조사하고 보고서 를 작성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 보고서는 공개되지 못했지만, 천안함 침몰 원인이 어뢰( 魚 雷, a torpedo)보다는 기뢰( 機 雷, mine)일 가능성 이 높으며, 이 배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좌초했고 어망과 얽히게 되 었으며, 그 어망이 끌어당긴 기뢰가 폭발하면서 배를 두동강낸 것으로 결론지었다는 사실을 또한 언급했다. 그레그가 러시아 사정에 정통한 지인에게 그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보고서가 이 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모두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줄 것 을 우 려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하였다. 27) Donald P. Gregg, Testing North Korean Waters, The New York Times, August 31, 2010; &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September 1, 2010. 28 2015. 09. 18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물론 사건 발생 후 약 두 달 후에 한미 양국이 내린 결론처럼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다. 북한 김정일 정권이 그토록 원하던 북미 평화협상의 기회를 북한이 스 스로 파괴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에서도 이 가능성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 내부에 북핵의 평화적 해체에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 다. 두 번째의 가능성은 북미 평화협상의 진전에 불만을 가진 한미 양국 내부의 강경 그룹들이 불명확하고 의심스런 증거를 근거로 북한 책임론 을 관철했을 가능성이다. 오바마 행정부 초기였던 만큼, 미국내 정보조 직과 군사정책 결정의 핵심 부서들에는 8년에 걸친 공화당 집권기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북한 문제 정보판단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 능성이 없지 않다. 2009년 말에서 2010년 초에 이르는 시기는 북한의 체제 안전에 북 한 내부로부터 심오한 도전이 제기된 시기였고, 미국과 한국의 권력 핵 심부의 일각에서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때 였다. 2009년 말 김정일 정권은 그 이전 10여 년간의 경제위기 속에서 태동하여 확산된 시장( 市 場, market)과 그 안에서 형성된 독립적인 사 적 부의 형성 메커니즘을 파괴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국가가 경제와 사회를 철저히 통제할 수 있는 과거의 시스템을 복원하려 했다. 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화폐개혁이었다. 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없 는 김정일이 주도한 이 개혁은 그 시작과 끝에 이르기까지 공식 매체에 는 일체 보도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는데, 이 위험한 실험은 그나마 존 립하던 국가부문을 포함한 경제 근간을 무너뜨리는 철저한 실패작이었 고 그만큼 북한의 엘리트집단의 공개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28) 평 양의 특권 엘리트집단이 외국인들에게 공개적으로 김정일 정권을 비판 28) Andrei Lankov, The Real North Korea: Life and Politics in the Failed Stalinist Utopia,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pp.126-132.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29

한 것은 바로 2010년 1~2월의 시점이었다. 안드레이 란코프에 따르면 북한의 정보기관 관리가 서방 외교관에게 북한 정부가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비판을 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 서방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북한붕괴론이 급속하게 확산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29) 분 명 치명적인 실수를 깨달았을 김정일은 2010년 2월 화폐개혁을 중단했 으며 4월이 되면 북한 경제는 개혁 시도 이전으로 돌아가면서 아무 일 도 없었던 일처럼 되었고, 사설 시장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열리게 된 다. 30) 천안함이 침몰하고 그 원인에 대해 한미 양국이 주관해 벌인 조사 결 과가 미국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들 사이에서도 의문을 불러일으킨 일 련의 상황이 벌어진 2010년 3월에서 5월 하순의 시기는 북한이 처한 절체절명의 경제적, 정치사회적 위기와 겹치고 있었다는 점에서 알만한 사람들에겐 깊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2010년의 천안함 사태와 그 해 말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2012년 4월 13일 개정된 북한 헌법은 핵 보유 를 국시로 명문화했다. 2013년 2월 12일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다. 한편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전반에서도 2010년은 주목할만한 분기 점을 기룬다. 2010년 9월 센카쿠/댜오위다오 섬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이 섬을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이 본격화된다. 이후 사실상 중국에 대한 견제와 포위를 근본 목적으로 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에의 전략적 재균형 (strategic rebalance to Asia) 전략은 중일 간의 영토분쟁 및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긴밀한 연관을 맺으며 제기된다. 천안함 사태로 북미대화가 실 종된 한반도 소분단체제의 긴장이 중요한 명분을 제공하면서 대분단의 기축관계의 긴장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29) Lankov, 2013, pp.129-130. 30) Lankov, 2013, p.130. 30 2015. 09. 18

3.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과 미사일방어 : 한반도 소분단과 대분 단체제의 접속 심화 2012년 미 국방차관 애슈턴 카터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핵 심을 요약했다. 부시행정부가 중시했던 대테러 전쟁(war on terror, counterinsurgency)에는 투자를 줄이고, 그 자원을 첨단무기체계를 동 아시아에 배치함으로써 이 지역의 미국 동맹 네트워크 강화를 뒷받침한 다는 것이었다. 31) 더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의 동아태 해상 패권을 강하하기 위한 해군력 증강배치였다. 다른 하나는 특히 일 본과 한국과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것이었다. 그 는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미사일방어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일본과 한 국과 함께 미사일방어 기술에 관해 협력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레이 더 센서들(sensors)을 미국의 우주감시네트워크에 통합하고 우주 능력 에 관련해 호주와 협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32) 천안함 사건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한반도 소분단체제의 긴장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미 사일방어 구축을 위해 일본과 한국과 협력하고, 이 지역에 대한 해군력 증강에 좋은 명분을 허용하였다.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됨에 따라 한국의 대미 동맹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아시아 재균형 이라는 이 름 아래 동아시아 동맹체제를 재정비하고, 그 안에서 일본과 한국 등 31) 오바마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2012년 8월 미 국방차관 애슈턴 카 터가 행한 연설이 잘 밝혀준다. Ashton Carter, The U.S. Strategic Rebalance to Asia: A Defense Perspective, 2012. 32) Ashton Carter, 2012. 이 연설에서 카터는 미국 해군력의 60퍼센트를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배 치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군 역시 폭격기 등 공군력을 미 본토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으로 이동배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태평양지역의 전략적 허브로서의 괌의 역할을 높일 것이 라고 했다. 일본의 Kadena 기지에 F-35 Joint Strike Fighter의 영구배치에 이어 F-22 편대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시아에 관련해서 미국은 전통적인 동북아 중심에서 벗어나 동남아 시아와 인도양도 함께 중시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연해지대 전투함대 (Littoral Combat Ships)를 구성하여 괌에 전진배치하고 싱가포르에 그 기지를 구축한다.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1

동맹국들의 역할을 확대하려 나섰다. 한국의 군비증강 정책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동아시아 대분단 기축관계의 긴장과 더욱 깊이 얽히게 되었다. 미 태평양사령부(U.S. Pacific Command)의 사령관 사무엘 록리어 (Navy Admiral Samuel Locklear)는 2013년 초 미국의 태평양 중시 정책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그리고 태국과의 군사동맹을 현대화 하고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 노력은 이미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 다고 밝혔다. 33) 여기서 미국이 말하는 군사동맹의 현대화와 강화란 동 맹국들로 하여금 더 많은 미국 첨단무기 체계들을 구입해 전력을 강화 하는 것을 포함했다. 짐 울프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의 무 기판매는 세계 전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는데 점점 더 중요한 수 단이 되었다. 미 국무부의 앤드루 샤피로(Andrew Shapiro)는 2012년 12월 5일의 연설에서 미국무기의 판매는 미국 동맹국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미국이 짊어진 짐을 덜어준다고 말했 다. 34) 미국의 이른바 아시아 주축 (Pivot to Asia) 전략은 2012년 1월 공 식화되었지만, 2011년부터 본격 거론되었다. 35) 이와 함께 한국, 일본, 타이완 등 동북아 국가들과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 들에 대한 미국의 무기판매는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크게 확대되었 다. 그리고 미국 군수업체들의 해외 무기판매를 위해 미국 정부가 브로 커의 역할을 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평가된다. 이것은 이 지역의 대분단 구조가 또한 한반도와 타이완해협의 소분단 상황들과 직접적으로 상호 33) Jim Wolf, Analysis: U.S. arms sales to Asia set to boom on Pacific pivot, Reuters, January 1, 2013. 34) Wolf, Analysis, 2013. 35) Hillary Clinton, America's Pacific Century: The future of politics will be decided in Asia, not Afghanistan or Iraq, and the United States will be right at the center of the action, Foreign Policy (November 2011: http://www.foreignpolicy.com). 32 2015. 09. 18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2013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강력한 한 미 연합 방위체제를 유지하면서 킬 체인(Kill Chain) 과 한국형미사일 방어체제(KAMD: 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등 핵과 대량살상 무기(WMD) 대응능력을 조기에 확보하겠다 고 밝혔다. 북한 정권에게 도 핵과 미사일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하겠다 는 것이었다. 킬 체인 (Kill Chain)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징후를 보일 때 신속히 탐지하여 30분 안에 북한을 선제타격 한다는 개념이다. 이에 앞서 2013년 2월 6일 정승조 합참의장은 국회 국방위에서 "적이 핵무 기를 사용한다는 명백한 징후가 있다면 선제 타격하겠다"고 밝혔다. 그 는 북한 핵무기에 대한 선제 타격은 미국과 협의해야 가능한 것도 아니 고 자위권 차원 문제 라고 말했다. 36) 2015년 현재 킬체인 구축을 위 한 예산확보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37) 한국정부의 이 같은 공개적인 선제타격 논의는 2012년 10월 워싱 턴안보협의회의 에서 한미 양국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비해 발사 전( 前 ) 단계에서 타격 하는 킬 체인(kill chain) 시스템을 구축하고, 발사된 미사일을 상공에서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 체제(KAMD) 도 추진키로 합의한 것에 따른다. 38) 즉 MD 시스템은 물론이고, 북한 36) 유용원, 전현석 기자, 탐지부터 타격까지 30분내 완료 '킬체인(Kill Chain)' 추진, 조선일 보, 2013.2.8. 37) 2016년 방위력개선비 정부안은 11조 6,803억 원으로 2015년에 비해 6.1% 증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폭적인 방위력개선비의 증가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비한 킬체인 구축, 무인정찰기, 비무장지대(DMZ)의 전력 강화 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 는 킬체인 체계 구축에 편성한 예산은 1조 5,292억 원 규모다. 2015년의 9,298억 원보다 64.5% 증액을 목표로 제시했다. 킬체인은 공격할 징후를 보이는 표적을 미리 탐지해 선제공격하는 타격순환체계 이기 때문에 고고도정찰용무인항공기(HUAV), 중고도정찰용무인항공기 (MUAV), 장거리공대지미사일(TAURUS) 등 16개 사업 이 관련되어 있다. 아울러 한국 공중 미사일 방어체계 (KAMD) 구축을 위해 패트리어트 성능개량, 패트리어트요격미사일, 철매-Ⅱ 성능개량 등 6개 사업 을 추진한다(송덕순, 방위력개선비 6% 증가 북핵 대응 킬체인 체계 구축 '숨통', 중앙일보, 2015.9.14). 38) 중앙일보, 북 미사일 발사 전( 前 ) 타격: 한 미, 킬 체인 만든다: 워싱턴안보협의회의합의,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3

미사일기지를 선제타격하는 공격적 전략을 2012년 10월에 이미 공식화 했던 것이다. 선제타격 전략은 2009년 미국이 지하 벙커 버스터 폭탄(GBU-28)을 한국에 판매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미,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을 가 진 미국이 한국에게 승인해 준 셈이었다. 미국은 2011년 말 북한의 미 사일 지하벙커들을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Earth Penetrator Bombs: GBU bunker buster bombs) 150기의 한국 수출을 승인했 다. 39) 한국이 도입한 벙커버스터 GBU-28는 지하 30미터에서 폭발하 는 5천 파운드급 레이저 유도폭탄이다. 이것은 선제타격으로서만 의미 가 있는 무기들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국 GBU 수출은 미국이 한국의 대북한 선제타격을 실제 무기체계에서 승인했다는 말이 된다. 코리아 타임스 의 보도에 따르면, 이 무기의 대한 판매에 미국이 동의한 것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후였다. 40) 킬 체인 의 구축은 선제타격 전략을 공식화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를 신호탄으로 한국 해군과 공군은 저마다 한반도에 MD를 구축하기 위해 수조 원 대의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무기구매를 위해 미국 군수업 체들과 접촉했다. 41) 최첨단 무기체계 도입과 선제타격 전략 공식화는 한국형 MD도 추진하기로, 2012년 10월 25일. 39) 7천 1백만 달러에 달하는 이 무기들의 대한 판매는 2011년 11월 최종 결정되었고, 2013년에 인도되어 배치될 것이라고 한국 방위사업청 관계자가 밝혔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 의 WMD 위협을 근거로 이스라엘에 100기의 같은 무기를 수출 승인한 이래 한국이 그 두 번 째였다(Lee Tae-hoon, Seoul to deploy 150 bunker busters, The Korea Times, December 7, 2011). 한국 방위사업청은 2014년 1월 벙커 버스터의 전력화를 완료했다고 밝힌다. 미국 제조 사로부터 2013년과 2014년 초에 걸쳐 모두 2백 발의 물량을 납품받았으며, 공군 F-15K 최신 예 전투기에 장착했다고 밝힌 것이다. 방사청은 "개전 초기, 북한군 지하 핵시설과 미사일 기 지 등의 전략 표적을 조기에 무력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 국군은 지난 2007년, 7백억여 원을 들여 GBU-28 도입 사업에 착수했다. 미국 역시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자극받아 한국에 GBU-28의 수출을 허가했다(윤혜진, 벙커 버스터 전 력화 완료, 북한군 지하 핵시설 무력화 가능할 위력, 한국경제, 2014.1.16). 40) Lee Tae-hoon, Seoul to deploy 150 bunker busters, The Korea Times, December 7, 2011. 41) 안성규, 김병기, 한국 미사일 방어망 우주로 확대 저층 벗어나 대기권 밖까지 요격 ( 중앙 34 2015. 09. 18

한미동맹이 더 이상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 지 않으며, 대신 천문학적 예산 투입을 전제로 한 최첨단 무기체계와 공격적 군사독트린에 본격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뜻했다.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 은하-3호를 다시 발사해 성공시켰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한다. 북한의 핵무장 강화 행동들은 한 미동맹의 공격적 군사독트린과 최첨단 군비강화와 맞물린 점이 없지 않 을 것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미국의 아시아 주축 (Pivot to Asia) 전략에 따라 미국무기의 최대 수출지역으로 떠올랐다. 이것은 2007년 이래 중 동이 최대 수출지역이었다가 2012년에 들어 처음으로 아태지역이 중동 을 대체했다. 2012년에 미국 무기 구매 신청 액수가 가장 많은 5개 나 라들 가운데 3개 나라가 아태지역이었다. 중동의 카타르가 1등으로 236억 달러, 바로 다음이 88억 달러어치를 신청한 한국이었다. 82억 달러어치를 신청한 3위 사우디아라비아를 앞질렀다. 4위와 5위는 각각 17억 달러의 호주와 16억 달러의 일본이었다. 42) 한국은 2001-2008년 일보, 2013.10.6.). 이 보도에 따르면, 그간 한국의 미사일 방어는 패트리엇 3 미사일을 위주 로 한 고도 30km 이하 저층 방어였으나 최근 국방부 기조가 바뀌었다. 국방부는 상층 방어가 필요하며 관련 무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북 미사일 방어를 맡 는 한국 공군의 방공유도탄사령부 는 미국 MD에서 하강 단계의 중 상층 고도(40~150km)에서 요격하는 미사일 시스템인 사드(THAAD)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요격체계는 1개 포대에 약 2조원의 비용이 든다고 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해군 역시 이지스함에 장착할 수 있는 MD 시스템인 SM-3 미사일 구입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하였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합 참과 해군 지도부는 몇 년 전부터 이런 방안을 고려해왔으며, 2013년 2~3월 북한의 3차 핵실 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5~6월부터 SM-3로 방향이 잡혔다. 이와 함께 국회 국방위도 이지스함 세 척의 추가 건조를 위한 타당성 평가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 확인되었다. SM-3 미 사일은 미국 MD의 핵심 주축으로 요격 고도 70~500km, 사거리 500km로 THAAD보다 고도 거 리 측면에서 훨씬 더 성능이 우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 척의 이지스함 성능 개량과 SM-3 구입에 소요될 것으로 해군이 추정한 비용은 2조 원에 달한다. THAAD와 이지스 시스 템은 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사의 제품이며 SM-3는 미국 레이시온(Raytheon)사의 제품이다. 이 가운데 록히드 마틴은 이미 해 공군을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2) The Arms Control Association, Proposed U.S. Arms Export Agreements From January 1, 2012 to December 31, 2012, (http://www.armscontrol.org) Updated: January 2013.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운위하지만, 한국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보여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5

의 기간에도 미국의 전체 무기 수출액의 13%를 차지하여 미국 무기에 관한 한 최대 수입국으로 꼽혔었다. 43) 사실 미국의 아시아 주축 전략은 미국의 국방비 삭감 추세로 인해 그 자체의 실질적인 내용은 별로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44) 그래서 그 실질적 내용은 우선 미국 주도 동맹체제 안에서의 일본과 한국 등 주니 어 파트너의 역할 강화라고 지적된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을 획득하 고, 45) 공격적 무기체계도 확보하여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로 도약하 는 것을 미국이 옹호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46) 이와 함께 미국은 센카 쿠/댜오위다오에서의 분쟁에 개입할 의지도 표명했다. 47) 이 한국은 전 시작전권 이양과 그에 따른 최첨단 정보수집 기능을 스스로 확보하도록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군도 마찬가지로 선제타격 등 매우 공격적인 군 사독트린을 공식화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아울러 동아시아 국가들에 준다. 43) Statistics Brain, Military Arms Sales Statistics, April 25, 2012. Source: CRS & SIPRI. 44) Stuart Grudgings, As Obama's Asia 'pivot' falters, China steps into the gap, Reuters, October 6, 2013 (http://www.reuters.com). See also, Thom Shanker, Study Criticizes Pentagon Over Its Plans for a Greater Focus on Asia, The New York Times, July 31, 2012. 45) 집단적 자위권(collective self-defense)은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자국 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미국은 2013년 10월 4일 척 헤이글(Chuck Hagel) 국 방장관의 발언을 통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공식 지지했다. 북한이 미국으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판단되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에 근거해 북한을 공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46) 2013년 10월 3일 미일동맹 개편 내용은 일본과 미국 사이의 역할분담의 근본적 변화를 담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도 공격 능력을 보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본국제문제연구 소 의 테츠오 고타니 연구원은 이번에 합의된 새로운 미일동맹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요약 했다: 지금까지는 미국은 공격적 능력을 제공하고, 일본은 방어적 능력만을 보유한다는 것이 었다. 말하자면 미국은 창, 일본은 방패 (spear and shield division of labor) 식의 역할분담이 었다. 이제부터는 일본이 방어능력과 함께 공격능력을 갖춤으로써 미국과 더 동등한 파트너가 된다는 얘기다. (Daniel Schearf, Kerry in Asia to Discuss Security, Trade, Voice of America, October 2, 2013. (www.voanews.com), 47) 2013년 10월 4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센카쿠열도에 대한 일본의 영토적 권리를 미국이 공동으로 방어하는 것은 미일동맹의 집단방위 대상이라고 밝혔다. 36 2015. 09. 18

미국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최첨단 무기들의 판매를 확대하는 것 역시 못지않게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한국과 일본의 역할강화와 이들 동맹 국들에 미국이 최첨단 무기들을 판매하는 것은 실과 바늘처럼 서로 얽 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배경으로 미국이 한국에 배치 혹은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미사일방어 체계에는 종말 고 고도 지역방어 시스템인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가 있다. 사드는 1996년 당시 미국 탄도미사일방어 국 이 전역미사일방어(TMD)의 시스템으로는 가장 위협적인 최종 단계 로 기획한 것이었다. 강력한 X-Band 레이더와 긴 사정거리를 바탕으 로 적의 탄도미사일을 세 단계에 걸쳐서 요격하려는 시스템이다. 먼저 적의 미사일이 대기권 밖에 있는 상태(at the end of the mid-course stage)에서 요격을 시도한다. 레이더망으로 요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 으며, 요격되지 않았으면 종말단계(terminal stage)에서 두 번째 요격 을 시도한다. 이 두 단계의 요격 모두 성공하지 않았다면 사드는 패트 리엇 미사일 등을 이용해서 마지막인 세 번째 요격을 시도한다. 48) 한국정부는 적어도 2013년 하반기부터 사드 시스템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 주한미사령관은 한국에 대북한 억지력으로 사드의 한국 배치를 권고했다고 밝힌다. 49) 고고도 다층방어 시스템인 사드의 도입 가능성을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진핑( 習 近 平 )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7월 초에 서 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 한국정부에 직접 강 48) 이삼성, 세계와 미국, 한길사, 2001, 제4장, 21세기 미국의 군사전략과 미사일방어, 특히 pp.346-348. 49) Ashley Rowland, Top US general backs new missile defense in South Korea, Stars and Stripes, October 1, 2014. KBS 방송은 같은 무렵 한국정부가 미국에 사드에 관한 정보를 요청 했다고 보도한다(KBS World, S.Korea Requested Information on THAAD to Develop L-SAM. June 5, 2014).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7

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또 달리 전 략 핵무기 체계에서 미국과 심한 불균형을 겪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중국 심장부의 바로 코앞인 한반도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의 일환으 로 기능할 수 있는 강력한 레이더 시스템과 고고도 요격미사일 체계가 배치된다면, 그것은 대북한 억지력을 넘어서 미일동맹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 억지력까지 더욱 무력화시킬 것을 중국은 우려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밝혀온 한국형 미사일방어 시스템이 사드 체계를 포함 할 경우, 그것은 한반도 소분단체제에서의 군비경쟁 차원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대분단 기축관계의 군비경쟁의 일부로 깊이 접속될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현실화로 인해서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망 체계에 편입될 처지에 놓인 한국은 그 결과로서 대분단체제의 기축관계의 전략적 균형에 더 깊숙이 개입하려 하고 있 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한 편에 하위 동맹자로 편입된 지정학적 중 간자의 고뇌는 그래서 더 깊어져 가고 있다. 아울러 주목할 점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이후 더 깊어진 한국의 미국 핵우산 의존현상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실제 현실화되었고,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 선제사용(nuclear first-strike) 위협을 더 쉽고 더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50)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서 북한에 대한 핵타격(nuclear attack) 훈련을 더 노골적으 로 하게 된다. 51) 이러한 한미 양국의 군사적 접근은 당연히 북한의 핵 50)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은 2014년 10월에 간행된 자신의 회고록 값진 전투들 (Worthy Fights)에서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을 포함한 한국 고위당국자들과 만났을 때, 북한이 침략한 다면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하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 안보에 대한 우 리의 오랜 공약을 확인했다 고 밝혔다. 또한 패네타가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맡고 있던 2010년 방한했을 때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북한 침략에 따른 비상계획을 보고했다. 이 보고에서 샤프는 만일 북한이 남침한다면 우리의 전쟁계획은 미군 사령관이 모든 한국과 미 국의 병력에 대한 명령권을 갖고 한국을 방어하도록 돼 있으며, 필요할 경우 핵무기 사용도 포함된다 고 말한 사실도 공개했다. 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美 북한 남침시 필요하면 핵무기 사용 2011년 밝혀, 2014.10.9. 51) 한국군은 키리졸브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진행 중이던 2014년 2월 6일 "미국의 B-52 전략폭 38 2015. 09. 18

무기 개발 및 확장 의지를 심화시킨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미국 핵우산 의존을 강화하게 되고, 아울러 미일 간 미사일방어망 공동 구축을 촉진시킨다. 이로써 한국의 미국 핵우산 의존은 단순히 한반도 소분단체제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의 핵무기 및 미사일방어 군비경쟁으로 직결되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에 내재하는 전략적 불안과 지정학적 긴장을 가중시킨다. 한국의 대미 의존의 심화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는 전시작전권 문제에서도 나타났다. 한국전쟁 이래 미국이 갖고 있는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의 2015년 한국 이양 계획 은 최근 다시 연기된 것이다.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 양국은 전작권 이양의 재연기를 합 의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양 시점은 대체로 2020년대로 상정하되 한국군이 능력을 갖출 때까지 라고 모호하게 정함으로써 사실상 무기 한 연기를 한 셈이었다. 52) 격기 1대가 5일 한반도 서해 상공으로 출격했었다 고 밝혔는데, 이것은 한국 서해 상공에서 타격연습을 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라고 조선일보 가 보도했다. 한국군 관계자 에 따르면 B-52 전략폭격기는 괌에서 출격해 전라북도 군산의 직도 상공 일대에서 북한의 도 발에 대비한 훈련을 한 것이었다( 조선일보, 美 B-52 전략폭격기 한반도 상공서 훈련 北 주장 사실로, 2014.2.6.). 이에 앞서 북한 언론들은 같은 날 기사에서 미국이 핵전술 훈련 의 일환으로 B-52 전략 폭격기를 동원하여 북한에 대한 핵타격 훈련 을 했다고 비판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재앙거리는 다름 아닌 미국 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 문, 北 美 B-52 전략폭격기, 서해서 핵타격 연습, 2014.2.6.). 52) 이에 대해 한 언론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이 소 요되는 미 첨단무기들을 구매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다. 우리 정부는 지 난해 11월 말 차기전투기 사업의 작전 요구 성능에 스텔스 기능을 넣음으로써 유일한 후보인 미 록히드마틴의 F-35를 사실상 낙점한 데 이어, 올해 3월 40대(약 7조3418억원)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수년간 끌어오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4대(약 9000억원) 도입하기로 올해 3 월 결정했으며, 4월에는 패트리엇(PAC)-3 미사일(약 1조3000억원)도 도입하기로 결론내렸다. 월스트리트 저널 은 21일 일부 분석가들은 한국이 자국의 국방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 관리들은 정찰 능력(글로벌호크)과 정밀타격 능력 (F-35)을 강화하는 조처를 취한 점을 언급한다 고 전했다. 여기에다 올해 1월 타결된 한-미 방 위비분담 협정 개정에서 우리가 지난해보다 5.8%(505억원)나 늘어난 9200억원을 부담하기로 한 것도 미국 내 분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국회는 이를 오바마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39

한국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하여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 한 창의적 모색을 포기할수록 전시작전권 회복을 포기하는 것과 같이 미국에 대한 의존은 높아진다. 이러한 의존은 한국의 대북 정책 비전의 불모화를 가져온다. 그럴수록 한국의 안보정책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일부로 더 충실하게 기능하게 된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악 순환 장치의 더욱핵심적인 부품으로 되는 것이다. III. 미국의 MD와 중국 핵전력의 도전 : 사드 배치 문제의 동아 태적 맥락 1. 미국의 MD 구축과 중국 러시아의 인식 미국은 유럽에서 미사일방어를 구축하는 명분으로 이란 등 중동으로 부터의 위협을 앞세워왔다. 동아시아에서 일본 등 동맹국과 함께 미사 일방어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포동 미사일 등 북한의 위협을 명 분으로 삼았고,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53) 러시 아와 중국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러시아도 중국도 미 국의 미사일방어 발전으로 자국의 핵전력이 무력화될 위험을 줄이기 위 해 핵전력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2015년 푸틴은 40기의 새로이 현 대화된 ICBM을 갖추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4) 대통령이 방한하기 10일 전인 올해 4월16일에 비준했다.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한 미국의 동의가 공식화한 시점은 2014년 4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때였다. 두 정상은 이때 전작권 전 환 시기를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정부의 미 첨단무기 구매 및 방위비분담 협정 비준과 절묘하게 시기가 맞물린다 (박현, 미, 작년만 해도 (전시작전권) 재연기 반대 한국 무기 대량 구입에 급선회, 한겨레, 2014.10.24.). 53) Bureau of European and Eurasian Affairs, U.S. Department of State, Fact Sheet: U.S. Missile Defense, January 20, 2009, (http://www.state.gov/p/eur/rls/fs/83119.htm). 40 2015. 09. 18

중동을 빌미로 삼은 미국의 유럽 MD에 러시아가 반응하는 것처럼, 북한을 빌미로 한 동아시아에서의 미사일방어는 중국의 반응을 불러왔 다. 미국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명분으로 본격적인 동아시아 지역 MD를 거론할 때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이다. 55) 2000년 한 중국 관리는 이렇게 말했었다: 중국의 최대 우선과제는 경제발전이다. 그러나 미국이 방어망을 구축한다면 미국은 무슨 문제에 대해서든 우리에게 협박하고 마음 놓고 공격도 할 수 있다. 중국은 그 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 미국의 방어망을 파괴해야 하는데, 이것은 막 대한 돈이 든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56) 그로부터 15 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프로그램을 명분으로 줄기차 게 동아시아 MD 구축을 추진했다. 중국은 그들이 경고했던 대로 핵전 력 현대화를 실행에 옮겼다. 중국 핵전력은 전략핵의 현대화와 함께, 중거리급 핵전력에서 지난 10년 사이에 질적인 변화를 보였다. 특히 후자는 동아태지역에서 미국 의 해상 패권과 일본의 안보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을 대표한다. 미국은 중국의 중거리급 핵미사일과 첨단 재래식 정밀타격 미사일들로 부터 동아시아의 미군기지들과 일본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지역 미사 일방어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동아시아 대분단 기축관 계에서 고도화되고 있는 군비경쟁의 한 본질이며, 사드(THAAD) 문제 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드 문제는 동아시아 대분단의 기축관계(미일동맹과 중국관계)의 긴장과 한반도 소분단체제 의 긴장을 직결하는 고리의 표현이자, 그것을 심화하는 중요한 현상이 54) Neil MacFarguhar, As Vladimir Putin Talks More Missiles and Might, Cost Tells Another Story, The New York Times, June 16, 2015. 55)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대한 중국의 경계 에 대해서는 2001년의 책에서 상술한 바 있다. 이삼성, 세계와 미국, 제4장 21세기 미국 의 군사전략과 미사일방어, 특히, pp.368-370, 374-383. 56) Eckholm, 2000; 이삼성, 2001, p.370.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41

될 수 있다. 이미 일본에 배치하기로 결정됐는데 한국으로의 확대가 거 론되는 중이다. 2. 중국의 최소 억지 전략과 전략핵(ICBM & SLBM) 현대화 중국이 4-5메가톤급 핵단두를 장착하고 12,000킬로미터를 날아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인 DF-5를 개발배치한 것은 1981 년이다. 57) 중국의 핵전략 자체는 매우 절제된 것이었다. 1964년 10월 처음 핵실험에 성공한 이래 중국의 핵전략은 핵 선제공격 배제(no first use: NFU)에 기초한 확증 보복 (assured retaliation)이었다. 58) 핵무기 보유 숫자도 최소 억지 (minimum deterrence) 개념을 벗어나지 않았 다. 그러던 중국이 군부 안에서 전략 개념 수정 논의가 일어난 것은 1987년이었다. 제한적 억지 (limited deterrence) 개념이 그것이다. 알 래스테어 존스턴은 중국이 말하는 제한적 억지 가 제2차 공격 능력(보 복 능력) 뿐만 아니라 재래식 공격에 대한 핵선제공격 능력까지도 포괄 하는 공세적인 핵전략이라고 이해한 바 있다. 59) 그러나 1990년대 말 중국내 전략가들은 중국에서 제시된 제한적 억 지 개념은 근본적으로 보복 공격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것임을 강조 하는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들에 따르면, 중국의 제한 억지 전 략 개념은 미국의 전략핵무기들이 더욱 정확한 탄도미사일 및 크루즈미 사일로 진화하고, 또한 전략적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이 추진되는 새로운 57) Vipin Narang, Nuclear Strategy in the Modern Era: Regional Powers and International Conflic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p.126. 58) Narang, 2014, p.129. 59) Alastair Iain Johnston, Prospects for Chinese Nuclear Force Modernization: Limited Deterrence versus Multilateral Arms Control, China Quarterly, no.146(june 1996), pp.548-576; Narang, 2014, p.131. 42 2015. 09. 18

상황에서 유사시 중국의 유효한 보복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한편으로 자신의 핵무기체 계를 미국의 선제타격으로부터 보호하여 그 생존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 을 기울이고 있는데, ICBM 기지의 은폐 및 이동식화, 그리고 해상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스템의 개발배치 등에 투자해 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성공적으로 침투하는 핵무기체 계(다탄두화 및 decoy system 등)를 개발함으로써 그것을 무력화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60) 중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뚫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추 가적인 ICBM 건설을 추진한 것은 2005년에 이미 미 국방부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건설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중 국은 DF-31A ICBM과 같이 더 발전된 이동식 대륙간탄도탄 핵무기체 계(mobile ICBM systems)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61) 나랑에 따르면, 중국은 핵무기를 핵공격을 받았을 때의 보복용으로만 사용한다는 기조를 최근까지도 견지했다. 그래서 핵미사일 총수를 200 기 수준에서 유지했다. 2010년 전후까지만 해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중국의 유일한 ICBM은 DF-5였고, 그것을 20기 이내에로 제 한하는 절제를 보였었다. 이는 미국과의 핵군비경쟁을 자제하려는 의도 인 동시에 일본의 핵무장을 예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 다. 그러나 만일 미국과 일본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이 더욱 본격화하고, 그 결과 중국의 제한된 전략적 핵능력이 완전히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 아진다면, 중국은 DF-31의 개발배치 및 해상발사 핵미사일의 본격 확 대를 포함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는 계속 있었다. 60) Narang, 2014, pp.131-135. 61)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Annual Report to Congress: The Military Powe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05," Washington, DC: Department of Defense, 2005, pp.21-22, 28-29. Requoted from Critchlow, p.14. 중국의 DF-31은 DF-5와 같이 미국 본토 공 격용이지만 더 발전된 것이다. 고체연료를 택하고 있어서 발사 소요 시간이 단축되었다. DF-31 개발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이다(Narang, 2014, p.131).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43

이제 그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중국의 전략핵이 일정한 증가세를 보 인 것은 2010년을 전후한 시기로 보인다. 그래도 아직 중국의 핵무기 고는 미국의 핵전력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그런 만큼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적인 핵전쟁을 대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미 국방부가 잘 파악하고 있듯이, 중국의 핵전략의 기본은 핵 선제사용 금지 (NFU) 원칙을 고수하는 가운데, 중국의 핵공격을 받을 경우 공격 한 나라에 충분한 보복을 가하는 정책을 견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62) 다만 특히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가 확장되고 있는 데 대응하여 미사일 방어망을 뚫고 보복할 수 있는 현대화된 핵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중국은 다탄두미사일체계를 개발하고 있는 점에 미국은 주목해 왔다. 중국의 ICBM은 2015년 현재 50~60개로 미 국방부는 추산한다. 사 일로 시스템인 DF-5 와 고체연료를 이용하고 도로 이동형 (road-mobile)형인 DF-31과 DF-31A가 있다. DF-31A는 사정거리 가 11,200킬로미터여서 미 대륙의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것다. 63) DF-5는 1981년부터 배치되어 있었지만, 2015년 4월에 공개된 이 국 방부 보고서는 DF-5가 이제는 현대화되어 다탄두체계 (multiple-independently targetable re-entry vehicle: MIRV)를 장착 하고 있다고 밝혔다. 64) 중국의 실전배치된 ICBM의 일부가 다단두체계 로 현대화된 사실을 미국정부가 처음으로 밝힌 것이어서 주목받았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로 국한되었던 다탄두핵미사일 (MIRV) 클 럽에 중국이 합류했음을 미 국방부가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65) 62)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U.S. Department of Defense, Annual Report To Congress: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April 7, 2015, pp.31-32. 63)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8. 64)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8. 65) Hans M. Kristensen, Pentagon Report: China Deploys MIRV Missile,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FAS), May 11, 2015. 크리스텐슨은 이번 국방부 보고서의 가장 놀라운 44 2015. 09. 18

해상발사 대륙간 탄도미사일로는 JIN-Class SSBN(SSBN: 탄도미사 일 탑재 핵추진 잠수함)인데, 이것은 장차 사정거리 7,400킬로미터인 JL-2 SLBM을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4대가 취역했고 한 대가 건조 중이다. 미 국방부는 이것을 중국이 비로소 실질적인 장거리 해상 발사 핵전력을 처음 갖게 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들 중국의 SSBN들은 남중국해에 면한 하이난섬에 배치되는데, 이로써 중국은 2015년에 처 음으로 핵억지력을 가진 해군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66) 중 국이 이러한 SSBN을 구축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동아태지역에서의 미 일동맹의 해상 패권에 대한 위협이다. 2015년 4월의 미 국방부 보고서는 DF-41도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이 새로운 도로이동이 가능한, 아마도 다탄두체계를 갖춘 ICBM인 CSS-X-2-(DF-41)을 또한 개발하고 있다 고 밝혔다. 67) 중국이 다탄 두체계(MIRV)와 미사일방어 침투 장치(penetration aids)를 갖춘 새로 운 세대의 첨단 핵미사일체계를 확보함으로써 개발해왔다는 사실을 명 확히 지적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최소 억지 독트린을 고수하면서도, 더욱 발전하고 확대되고 있는 미국 MD에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적으로 부터 핵공격을 받더라도 살아남아 적의 미사일방어를 뚫고 보복 타격을 할 수 있는 현대화된 핵전력, 즉 전략적 억지력의 생존력 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미국은 파악하고 있다. 68) 미 국방부가 이 점을 확인하기 전에 세계의 핵전략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이 다탄두체계를 갖춘 DF-41의 존재를 주목해왔다. 중국이 고체 연료를 사용하고 이동이 가능하며 미사일 하나에 10기의 핵탄두를 장 착한 가운데 세계 최장거리인 14,000킬로미터의 사정거리를 갖는 다탄 점은 중국의 ICBM 전력이 이제 다탄두체계로 장착된 DF-5를 포함하게 되었다고 주장한 점 이라고 파악했다. (https://fas.org) 66)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32. 67)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8. 68)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31.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45

두 핵미사일체계인 DF-41을 개발시험한 것은 2010년대 초로 알려져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의 하나인 환구시보 ( 环 球 时 报, The Global Times)가 중국이 다탄두 ICBM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를 처음 한 것은 2012년 8월이었다. 69)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Jane s Defense Weekly)가 2012년 7월에 DF-41을 시험발사했다고 밝혔는 데, 환구시보 는 시험발사 사실은 부인했지만, 중국이 새로운 다탄 두 ICBM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정했다. 미 국방부의 2015년 보고서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유도 가능한 재진입 탄도미사일 (MaRV, 기동탄두재진입체), MIRVs(다탄두 개별 목표 재진입체), 모의 탄두(decoys), 연막장치(chaff), 통신교란장치(jamming), 열차단 장치 (thermal shielding) 등을 포함한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밝히고, 중국이 2014년 극초음속 활공체(hypersonic glide vehicle)를 시험했다 는 사실을 미국과 중국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보고 서는 중국의 핵무기체계를 관리하는 제2포병전단(Second Artillery Force)이 중국 핵무기체계의 유사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 태의 훈련과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사실을 중국 공식 매체들이 보도하 고 있음을 주목했다. 70) 이를 신호로 해서 미국 언론은 중국의 다탄두 핵미사일체제 개발을 본격적으로 논점화하기 시작했다. 71) 환구시보 의 한 기사는 미국이 미사일방어체계를 발전시키고 있 기 때문에 다탄두 탑재 가능한 제3세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현재 중국의) 대세(the trend)이다 라는 중국 군사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했 69) Keith Bradsher, China Is Said to Be Bolstering Missile Capabilities, The New York Times, August 24, 2012. 70)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32. 71) David E. Sanger and William J. Broad, China Making Some Missiles More Powerful, The New York Times, May 16, 2015; The New York Times, Editorial, China Buys Into Multiple Warheads, By the Editorial Board, May 20, 2015. 46 2015. 09. 18

다. 72) 미 국방부는 중국이 DF-41을 개발 시험한 사실은 중국의 전략 핵 능력에서 질적인 도약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1,642기의 핵무기고를 보유한 데 비해 중국은 240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중 국이 고체연료를 이용할 뿐 아니라 도로이동이 가능한(road-mobile) 이동식 다탄두 체계인 DF-41을 개발배치하면 중국의 핵무기고는 급속 하게 팽창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을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무 기 균형에서 질적인 변화를 뜻한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73) 즉 그간 미 국이 중국에 대해 누려온 압도적 우위에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 다는 얘기이다. 3. 미국 동아태지역 해상패권과 중국의 중거리급 핵전력과 정밀타격 능력의 도전 미 국방부가 파악하고 있는 중국의 탄도미사일 현대화의 특징을 요약 한다면, 중국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은 다탄두체계화 등 을 포함하여 그 생존력(survivability)을 높이기 위한 현대화를 서두르 고 있지만, 숫자의 증가는 최소 억지 독트린의 틀 안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중거리급 탄도미사일은 그 질적 현대화와 함께 숫자의 증가도 현저하다는 사실이다. 미 국방부가 파악한 그 이유 는 중국의 전반적인 군사력 현대화의 일차적인 목적이 짧은 기간의 고 강도 지역전쟁(short-duration, high intensity)을 수행하는 능력을 강 화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대만해협에서의 잠재적 전 쟁을 준비하는 것이 여전히 중국의 군사적 투자의 초점이자 일차적인 동기라는 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전력 강화의 강조점이 대만 이외의 다 72) The Telegraph, China 'confirms new generation long range missiles', Reported by AFP, August 1, 2014. 73) Kalyan Kumar, China Test Launches Deadly DF-41 Multi War Head Super Ballistic Missile: Threat Perceptions Up For USA,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December 19, 2014. 9 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 토론회 47

른 지역분쟁, 즉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74) 그래서 미국은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대만 이외의 지역분쟁에서도 미 국에 대응하면서 전력을 투사하며 미국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능력 (anti-access/area denial capability)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점 을 주목한다. 75) 결국 동아태지역에서의 미일동맹이 견지하고 있는 해 상 패권과 그것의 토대인 동아시아 주둔 미군사력의 안전, 그리고 미일 동맹 자체의 근본 토대인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을 위협할 수 있 는 능력을 중국은 집중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노 력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미사일 전력이며, 공군전력과 원양 해군전력 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76) 중국이 보유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CSS-2는 액체연료를 쓰 지만,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인 DF-21은 고체연료에 도로 이동 형(road-mobile)인 현대화된 시스템이다. 그래서 지역적 차원에서 핵 억지력(regional deterrence)을 갖춘 것으로 미국은 평가하고 있다. 77) 미국이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중거리급 탄도미사일에는 준중거 리 미사일(MRBM)인 DF-21D가 있다. 이것은 지대함 탄도미사일 (anti-ship ballistic missile: ASBM)로서 사정거리 1,500킬로미터로 유도조작 가능한 탄두(maneuverable warhead)를 장착해 서태평양지역 의 함정들을 타격할 수 있다고 미 국방부는 파악한다. 78) 이들 중거리급 탄도미사일들과 함께 주목받는 중국의 미사일들은 공 74)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April 7, 2015, Executive Summary, p.i. 75)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43. 76)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p.39-41. 77)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32. 78)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5, p.38. 48 2015. 0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