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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 국문초록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1) Ⅰ. 독본 연구의 시각 Ⅱ. 일제의 문화통합과 독본 생산의 시스템 Ⅲ. 문화사적 결과로서의 독자 분할 현상 Ⅳ. 문학 장의 활력과 독본의 생산 시스템 Ⅴ. 맺음말 구자황**2) 이 글의 관심은 독본 혹은 독본 생산을 둘러싼 장면에 침전된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위계의 흔적들 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근대 독본의 역사적 존재방식을 구체적으로 재구하려는 것인바, 여기서는 주로 2차 교육령기 조선총독부의 대 표적인 조선어독본과 민간 독본을 우선 살폈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독본은 동일한 학제의 수립과 통합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불구하고 교수자와 학생들 사이에서 비판 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일제의 문화통합의 의도가 그 대로 관철되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제는 스스로 식민지 조선 * 이 논문은 2006년 정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 된 연구임.(KRF-2006-332-A00212) ** 성균관대 연구교수 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는 일제가 선택한 환경 속에서 만 든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환경 이미 이루어졌거나 과거에서 물려받은 속에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놓여있는 환경은 텍스트를 통한 문화적 역류를 가능케 하여 민간 독본의 여지( 餘 地 ) 를 마련함으로써 민간 독본의 생산 시스템을 촉진시켰다. 즉 죽은 전통을 새롭게 호출하기도 있고, 피식민지인의 생존 전략을 자극하기도 하였으며, 전유( 專 有 ) 의 과정을 통해 탈영토화의 지렛 대로 작용했던 것이었다. 조선어 독본 에서의 편지는 근대적 의사소통과 보편적 문식력 의 차원에서 혹은 현지 성을 강화하기 위한 독자 생산의 시스템 이 개입된 것인데, 시문독본 은 편지에 문학적인 것 을, 기행( 문) 에는 민족적인 것 이라는 표상을 덧씌움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적극적 생산을 시도하였다. 즉 독자의 내면을 표현하는 문종이자 미문( 美 文 ) 에의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로 편지가 수용되었다. 또 기행( 문) 에서는 독자들의 내셔널리티를 길러주는 의미로 자연 이 기능하면서 재발견 되었던 것이다. 총독부 편집과를 통한 독본에의 적극적 개입, 즉 독본 생산의 시스템과 민간독본의 제재를 공유하면서도 문화통합을 은폐하는 독본의 내용, 즉 독본의 생산 시스템은 일제의 조선어 정책과 교 과서에 대한 접근을 지배저항 /, 타율성/ 자율성 논의로 단순화할 수 없게 한다. 복수( 複 數 ) 의 글쓰기 사이에 존재하는 길항( 拮 抗 ) 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공존과 분할의 방식 및 상호영향을 상정할 필 요가 있다. 주제어 : 강화( 講 話 ), 독본( 讀 本 ), 독본 문화사, 독본 생산의 시스템, 독본의 생산 시스템, 문학 장( 文 學 場 ), 문 화통합, 범례적 가치( 範 例 的 價 値 ), 전유( 專 有 ), 통 합의 역류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 4 Ⅰ. 독본 연구의 시각 이 글의 궁극적 목적은 근대 독본의 역사적 존재방식을 구체적 으로 재구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종 독본( 讀 本 ) 및 강화( 講 話 ) 류의 앞에 붙은 키워드, 즉 문학- 문예- 문장 등이 독본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으며, 독본의 구체적인 체제와 내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다각도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연 구는 독본 및 강화류를 발굴정리하는 것에서 부터, 몇몇 주요 독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으며, 근대 독본의 문학사적교육사 적 성격과 위상을 밝힌 바 있다. 1) 우선 이 글에서는 기존 연구의 합리적 핵심을 바탕으로 독본 혹 은 독본을 둘러싼 장면에 침전된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위계의 흔적들 을 살펴보려고 한다. 독본을 둘러싸고 있는 교육( 정책), 출 판( 환경) 등의 역사적 맥락을 감안하려는 문화론적 지평에 대한 인식인데, 달리 말하면, 독본 생산의 시스템 과 독본의 생산 시스 템 에 대한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1) 이 글이 다루고자 하는 독본( 讀 本 ) 및 강화( 講 話 ) 는, 문학- 문예- 문장 등을 주제로 한 읽기자료 혹은 자료( 작품) 모음집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들의 전 반적 형성과 주요 텍스트를 다룬 것으로는 다음을 참고할 것. 천정환, 근 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2003, 3 장; 구자황, 독본을 통해 본 근대적 텍스 트의 형성과 변화, 상허학보 13 집, 2004.8; 구자황,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상(1)-- 최남선의 시문독본 을 중심으로, 탈식민의 역학, 소명출판, 2006; 윤여탁 외, 국어교육 100년사 12, 서울대출판부, 2006; 구자황,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상(2)-- 이윤재의 문예독본 을 중심으로, 상허학 보 20 집, 2007.6; 문혜윤, 문학어의 근대, 소명출판, 2008, 3 장; 구자황, 1920 년대 독본의 양상과 근대적 글쓰기의 다층성, 인문학연구 74 호, 충 남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8. 2) 본고의 이러한 발상은 가메이 히데오 龜 井 秀 雄 의 메이지 문학사 ( 고려 대출판부, 2006) 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텍스트 생산의 시스 템 은 문학 외부의 독자를 파악하는데 유용하며, 문학을 둘러싼 제도나 문 화론적 시야는 이와 관련이 있다. 반면 텍스트의 생산 시스템 은 문학 내 기존 연구는 일단의 변화를 연표로 훑어보는, 이른바 기원이나 형성을 파악하는 관점을 내재하고 있었다. 특히 제도권 독본과 비 제도권 독본의 연표를 애초부터 별개의 것처럼 분리해서 고찰하였 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일방적인 스토리만 서술할 가능성이 높 다. 지배와 저항의 관점을 선험적으로 전제하는 한, 변화를 계보로 살펴보는 것은 어렵다. 독본 텍스트의 계보 및 교차, 다층성을 간 과하기 쉽다. 하여 독본 자체는 물론 독본 변화의 다양한 계보에 나타나는 상호작용과 동시적병행적 공존에 주목하고자 한다. 또 이러한 관점 위에서 근대 독본문화사의 범주와 지형을 이끌어 내 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아직 학문적으로 추인 받은 개념은 아니지만 근 대문화제도 3) 의 일단을 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근대적 지식, 교양, 학문( 더 작게는 문학, 문예, 교육 등) 의 형성과 역사적 맥락을 살피는데 독본 이라는 매개체가 중요한 통로를 제 공해줄 수 있다. 아울러 다양한 독본의 성격과 위상을 규명함으로 써 근대 문학의 외연을 넓힐 수 있다. 특히 근대 문학의 정전( 正 典, canon)이 형성되는 과정을 되짚어 봄으로써 근대문학의 영도 ( 零 度 )를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언어와 문화와 글쓰기의 역사성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일제의 문화통합과 독본 생산의 시스템 문학의 독서는 문학 텍스트 내의 세계가 일차적 언어 정보로 부의 독자를 파악하는데 유용한데, 이는 문학적 장치 혹은 텍스트의 계보 및 교차, 다층성 등을 감안하는 관점이다. 3) 한기형, 근대문학과 근대문화제도, 그 상관성에 대한 시론적 탐색, 상허 학보 19 집, 2007 참조.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5 6 독자에게 수용되면서 동시에 독자의 삶의 세계와 조응하는, 그리 하여 무수히 많은 상징의 층위로 의미가 재생되는 그러한 울림의 기제 이다. 이와 같은 문학의 수용이 문화적 의미를 띠기 위해서 는 독서가 문화 형태를 이루고 있어야 하는데,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은 그러한 토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독본 및 강화류의 등장 역시 독자의 형성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최남선의 시문독본 이 1916 년 초판 이래 지속적인 판매를 이어나가고, 특히 1922년 임술판 시문독본 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는 이유와 잡지 어린 이 (1923~1934) 가운데 문학관련 소재만 별도의 어린이독본 (1927)으로 구성되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독자형성과정과 밀접 한 관련이 있다. 즉 독본 및 강화류 현상이란 기실 조선에서의 독 자층이 다양하게 형성분화되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일제의 교육정책과 연성권력 의 운용, 즉 식민지 동화정책의 교육적 구현이 자리하고 있다. 1920년대는 일제의 문화통합을 구현하기 위한 제반 교육정책 및 이념이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던 시기다. 제2 차 교육령(1922.2.4) 시 행은 그 핵심에 해당된다. 제2차 교육령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관 철하고자 했던 것일까? 일제는 1919년 31 운동 이후 문화통합의 기조를 부분적으로 수정한다. 31 운동은 대만( 臺 灣 ) 을 포함한 동 아시아 지역에서 기존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를 해체하고 재편성 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교육전반에 적극적인 문화통합 및 동화정책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어문민 족주의의 언어관 아래서 조선어 교육을 통어하는 전략을 구사했 다. 4) 4) 고마고메 다카시 駒 込 武, 오성철이명실권경희 옮김,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통합, 역사비평사, 2008, 243 면. 일제의 문화통합에 대한 차별 화 및 동일화 논의, 시책의 차질에 대해서는 이 책의 2장과 4장에 잘 나 타나 있다. 조선총독부는 국어( 일어) 상용/ 비상용의 경우를 구분하긴 했지만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학제를 편성하되, 조선어의 시수를 줄이고 국어( 일본어) 의 시수를 늘이는 기본적인 방침을 관철시켰다. 교육 칙어 로 대변되는 이념의 구현이나 것에서 충량한 신민 을 양성하려던 순량한 신민 을 위한 기본적인 문식력의 보급에 언어정책 의 일의적 목적을 두었다. 1차 교육령 (1911.8 ~ 1922.2) 2차 교육령 (1922.2 ~ 1938.4) < 표1> 1,2차 교육령 교과목별 주요 내용 비교 교육연한 국어 ( 일본어) 보통학교 고등보통학교 비고 국어 조선어 한문 조선어 한문 ( 일본어) 4년 4년 4년 4년 주당시수 10 5~6 8 4~3 교과서 교육연한 보통학교 조선어급 한문독본 고등조선 어급한문 조선총독부 인쇄소 6년 6년 5년 5년 여고보 4년 주당시수 10~12 4~3 7~5 2~3 교과서 보통학교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한문독본 신편고등 조선급한문 조선서적 주식회사 근대 독본문화사의 관점에서 볼 때, < 표1> 에서 주목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교과서 편찬 시스템의 변화다. 조선총독부는 1910 년 이후 조선 내의 교과서 발행에 관한 전권을 장악하면서 독자적 인 권한을 행사해 왔다. 1 차 교육령기 사용된 교과서는, 적어도 조 선어독본의 경우, 편찬 인원과 내용에 있어 조선총독부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산물이라고 보긴 어렵다. 개략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1910년 이전 학부 편집부가 유지해오던 근대문물의 소개 와 일본문화의 선택적 구성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2차 교 육령을 기점으로 교과서의 내용과 편제는 눈에 띄게 변모하는데,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7 8 그 핵심은 일본문화( 풍속, 지리 등) 의 적극적 구성과 조선적 내용 ( 인물, 고전 등) 의 제한적 반영, 그리고 근대 문물 및 관념( 위생, 근검 등) 을 삼분하여 구성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교과서의 역할과 위상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기 시 작했다. 이는 교과서의 배포와 판매전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 다. 1910 년대 조선총독부 인쇄소 가 발행하던 교과서를 1920년대 들어서는 조선서적주식회사 를 설립함으로써 조선총독부가 편찬 하는 교과용 도서의 발행과 판매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 표2> 교과서 판매와 배포현황(1918 ~1923) 5) 대정7 (1918) 대정8 (1919) 대정9 (1920) 대정10 (1921) 대정11 (1922) 대정12 (1923) 유료판매 812,159 651,562 1,083,575 2,475,848 3,386,600 4,386,569 무상공급 211,241 124,495 240,911 187,879 142,306 78,702 계 1,023,400 776,057 1,324,486 2,663,727 4,002,906 4,465,271 조선총독부는 1910 년 이후 국어( 일어) 의 보급 차원에서 교과서 를 무상으로 배포해왔다. < 표2> 에서 보듯 1919년 일시적으로 줄어 들긴 했지만 1922년 2차 교육령을 전후로 무상공급이 급격히 감소 하면서 반대로 판매부수는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2차 교육령의 영향으로 삼면일교제( 三 面 一 校 制 ) 6)가 시행됨에 따라 학 5) 조선총독부 학무국, 조선교육요람, 대정16 년(1927), 152~153 면. 식민지 조선교육정책사료집성 3, 龍 溪 書 舍, 大 學 書 院, 1990. 6) 삼면일교제 의 내용은 1919년부터 1926년까지 8개년 동안 약 3개면에 하 나 꼴로 보통학교를 증설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 계획은 31 운동 직전 인 1918 년 말에 수립되었다. 그러던 것이 31 운동의 영향과 보통학교에 대한 조선인의 취학 요구가 급격히 고조됨에 따라 1921년부터 실시 기간 을 단축하여 1922 년까지 완료하기로 하고, 애초 4년제 보통학교 증설 방침 을 2차 교육령에 따라 6 년제 보통학교 증설로 바꾸게 되었다. 이로써 보통 교수가 늘어난 것에서 주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22년 이후 학 교와 판매망을 확충하면서 제도교육( 공교육) 이 강화되었기 때문이 다. 식민정책 초기 일어보급 차원의 무상공급이 이른바 제도권 교 육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교과서 판매와 보급 현황의 변동은 교과서의 편찬업무에도 영향 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교과서 편찬 및 검인정을 담당 하던 조선총독부의 인원이 증감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주목 되는 것은 교과서 편찬업무를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편수관과 편수 서기의 이동이다.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는 교과서의 편찬과 검인정에 관한 제반 업무를 다루는 곳이었다. 여기에서는 교과용 도서의 편집반포검정인가와 민력( 民 曆 ) 의 편찬을 주로 담당 하였으며, 교과서 편찬업무는 편수관과 편수서기의 몫이었다. 7) 2 차 교육령기 조선어독본의 편찬도 이곳에서 행해졌는데, 특히 일 본 서적의 직역 및 직수입이 가능했던 교과목과 달리 조선어의 경 우, 편집과에서 직접 편찬하였다. 편수관은 비교적 높은 학력과 교직경험 등 전문성을 갖추고 있 었다. 물론 조선인의 참여도 눈에 띈다. 당시 교과서의 편찬방식은 다양한 편이었다. 그러나 문부성 교과서를 참고할 수 없는 중등 조선어독본과 같은 경우, 주요과목이었던 수신, 국어, 공민 등과 함께 조선총독부의 편수관이나 편수서기가 직접 편찬하였다. 다음 은 2 차 교육령기의 국어( 일본어) 과 및 조선어과를 담당한 이들의 학교 취학자 및 취학 희망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반대로 전통적인 교 육기관이던 서당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삼면일교제 는 순전히 총독부 당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제된 정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성철, 식민지 초등교육의 형성, 교육과학사, 2000, 26~27 면. 7) 편수관( 編 修 官 ) 은 상관( 편집과장 1인이 따로 존재했다- 인용자 주) 의 명을 받아 교과용 도서의 편수 및 검정에 관한 사무를 담당 하는 실질적 주체 였고, 편수서기( 編 修 書 記 ) 는 상관의 지휘를 받아 교과용 도서의 편수 및 검정에 관한 사무에 종사 하였다. 조선총독부 관보, 제205 호, 1911.5.3, 칙령 제136 호.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9 10 경력을 정리한 것이다. 이름 ( 출생년도) 小 倉 進 平 (1882) 玄 櫶 (1880) 李 能 和 (1869) 申 鉉 鼎 < 표 3>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 인력 현황 (1920 년대 국어과 및 조선어과 기준) 8) 재직기간 및 직위 출신학교 및 전공 1921.01.06 동경제대 ~1926.04.01 문과 편수관 주요경력 전 후 ( / ) 편수서기(1911-1919)/ 경 성제대 법문학부 교수 기타경력 1921.07.06 경성고보, 경성여고보 교1921년 보통학교 ~1931.09.23 일어학교 유, 학무국 시학관( 겸)/ 중 용 언문철자법대 편수관 추원 참의 요 작성에 참여 1921.11.02 영어학교, ~1931.12.11 법어학교, 편수관 한어학교 1922~1922 편수서기 李 源 圭 1924~1929 田 島 泰 秀 1926~1934 한성사범 학교 경성고등 보통학교 임시교원 양성소 한성외국어학교 학감, 중 조선어 교과서 추원 촉탁/ 조선사편수회, 검정 담당자 고적조사위원회 위원 (1929~1935 년) 수하동보통학교, 경성여고 보다동보통학교, 훈도/ 송 전보통학교 훈도 양주보통학교 훈도, 이리 조선어 교과서 농림학교 교유/ 평북 후 검정 담당자 창군수, 태천군수 (1929~1935 년) 경성공립보통학교 훈도, 조선어 교과서 학무과 속, 편집과 속 검정 담당자 ( 겸) / 평북 선천군수, 정 (1929~1935 년) 주군수 1910년대에는 총독부 검정교과서만 학교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 었다. 그러나 학제가 같아지면서 법적으로 동일한 자격을 갖추었 던 1920년대 이후에도 인가과정에서 문부성 검정교과서는 총독부 의 것보다 열세였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교과서 채택 제도가 변했는데도 총독부가 자신이 직접 관여한 교과서를 우선시 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총독부는 인원부 족이라는 현실 앞에서 검정이나 인가 제도를 병행했지만, 조선 통 치라는 특수사정을 강조하면서 국정과 총독부 검정 교과서의 사용 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9) 이렇듯 1920년대 2차 교육령을 근간으로 하는 교육정책과 이념의 구현은 문화통합의 기조 속에서 조선총독 부에 실질적 권한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그러한 정책 과 이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매개하는 교과서( 독본) 에 적극적 으로 개입하였는바, 교과서 편찬과 검인정에서의 이니셔티브는 이 를 증명한다. Ⅲ. 문화사적 결과로서의 독자 분할 현상 동일한 학제의 수립과 통합을 위한 인프라 구축( 독본 생산의 시 스템) 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어독본은 교수자와 학생들 사이에서 비판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적극적인 일제의 조선어 정 책으로 인해 교과서의 수준이나 내용이 방치 나 말살 에 가까웠 다는 의미와 맥락이 다르다. 오히려 문화통합의 의도가 그대로 관 철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일제는 스스로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을 자기의 뜻대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는 일제가 선택한 환경 속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앞에 놓여 있는 환 8) 장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와 교과서 편찬, 역사문제연구 16 호, 2006.1 < 부록1,2> 에서 해당시기 조선어과만 발췌하여 정리한 것임. 9) 장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와 교과서 편찬, 역사문제연구 16 호, 2006.1, 61~62 면.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11 12 경 이미 이루어졌거나 과거에서 물려받은 속에서 만든 것이다. 그 놓여있는 환경은 죽은 전통을 새롭게 호출할 수도 있고, 피식 민지인의 생존 전략을 자극할 수도 있고, 전유( 專 有 ) 의 과정을 통 해 탈영토화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교육 현장에서의 문제제기는 일제의 문화통합이 직면한 구 체적인 현실과 규율권력의 세목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일제 교육당국은 2차 교육령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교육 현장까지 내용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여러 한계가 존재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낮은 취학률을 감안할 때 교육의 실제와 그 결 과는 지배자의 의도가 순조롭게 일방적으로 관철된 것이라고 예단 할 수 없다. 연도 전체 학생수 < 표4> 보통학교 취학률(1912 ~1942) 10) 취학률(%) 남자 학생수 취학률(%) 여자 학생수 취학률(%) 1912 44,638 2.1 40,640 3.7 3,998 0.4 1913 51,826 2.4 46,830 4.1 4,996 0.5 1918 90,778 3.8 79,571 6.4 11,207 1.0 1919 89,288 3.7 77,239 6.2 12,049 1.0 1920 107,201 4.4 93,285 7.4 13,916 1.2 1921 157,219 6.4 136,266 10.8 20,953 1.8 1922 236,031 9.5 203,956 16.0 32,075 2.7 1923 317,667 12.6 272,482 21.1 45,185 3.7 1928 462,538 17.2 386,541 28.2 75,997 5.8 1936 798,224 25.9 624,854 40.0 173,370 11.4 1942 1,752,590 47.7 1,219,156 66.1 533,434 29.1 10) < 표4> 의 학생수 자료는 조선제학교일람 ( 조선총독부 학무국) 에서, 추정 학령인구 자료는 통계연보 ( 조선총독부) 에서 추출한 것으로 원자료에서 주요시기만 발췌한 것임. 전체 통계 자료 및 자세한 내용은 오성철, 식 민지 초등교육의 형성, 교육과학사, 2000, 133 면 참조. 현실은 조선어연구회(1921) 같은 단체가 설립되어, 철자법 개정 등 본격적으로 한글운동에 참여하였고, 신문잡지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총독부의 철자 법은 관민( 官 民 ) 양쪽에서 그다지 권위를 인정받는 편이 못됐다. 오히려 조선어 교육정책이 의붓자식 처럼 또는 어찌 되어도 괜 찮다 식으로 다루고 있어 직무를 유기하고 있으며, 11) 흥미 없는 교재 로 인하여 학생들의 학습열이 떨어지고 있다 12) 는 비판이 일선 교육현장의 교원들로부터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 러한 현장의 문제와 교과서에 대한 문제점은 교육당국이나 관료들 까지 인정할 정도였다. 편찬 상 곤란을 느낀 것은, 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사용할 조선어독 본이었다. 종래 조선인이 사용한 문학은 다 漢 文 이어서, 諺 文 을 섞은 11) 李 完 應, 朝 鮮 の의 學 政 當 局 は 何 故 朝 鮮 語 わ 度 外 視 するか, 朝 鮮 及 朝 鮮 民 族 제1 집, 1927, 141~143 면. 마쓰이 다카시( 三 ツ井 崇 ), 식민지하 조선 에서의 언어지배 - 조선어 규범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연구 4 호, 2003.6, 214~215 면에서 재인용. 이완응( 李 完 應, 1887 ~?) 은 1911년 8월 1차 교육령으로 새로 개편된 관립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유( 敎 諭 ) 가 되어 1925 년까지 조선어과를 담당하였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일본인에게 장려하던 조선어교육에 참여, 1913년부터 1925 년까지 가르쳤으며, 이때 조선문 조선어강의록 의 문법 부분을 일 본어로 집필하였다. 당시 조선어시험을 치려는 일본인을 위하여 1927년 이토 伊 藤 韓 堂 와의 공저로 朝 鮮 語 第 三 種 受 驗 必 携 를 내기도 하였 다. 1929년 발행한 중등교과 조선어문전 은 당국의 검정을 받은 고등보 통학교용 교과서로 널리 쓰였다. 1930년 2월 조선총독부가 공포한 개정 언문철자법 심의의원 중 한 명이었고, 당시 조선어연구회 의 회장 자격 으로 참석하였다. 위의 2 책 모두 발행 기관은 조선어연구회 로 되어있다. 이는 조선어학회(1931) 의 전신인 또 다른 조선어연구회 와는 상이한 단 체로, 이토 伊 藤 韓 堂 가 주간을, 이완응( 李 完 應 ) 이 회장을 맡아 1912년 12 월에 조직된 것이다. 12) 정열모, 이 날을 기념하야-- 조선어 독본의 결점과 다행한 소식, 조선일 보, 1927.10.24. 당시 정열모는 사립학교( 중동학교) 교원이었으며, 1929년 독자적으로 ( 현대) 조선문예독본 ( 권1, 殊 榜 閣 ) 을 만들기도 하였다.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13 14 文 은 겨우 관보 등에 사용하는 데 지나지 않고 또 문학이라 볼만한 게 없다. 따라서 중등정도의 교과서의 재료로서 적당한 朝 鮮 文 을 발견 하는 게 매우 곤란했다. 13) 무엇보다도 교과서 편찬 작업에 있어 총독부는 언문철자법의 정 리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조선어 부분의 경우 국한문 혼용으 로 되어 있는데 한자음의 표기법과 순조선어 표기에 있어서도 표 의적 표기, 표음적 표기가 통일돼 있지 않았다. 14) 는 현실은 조선 어 독본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 데 적잖은 장애가 되었다. 실제로 당시 조선어독본의 어느 단원에서도 문법이나 조선어 문장에 관한 설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15) 1920년대 빈번하게 일어났던 학생 동 맹휴학은 식민지 교육의 차별적 구조와 낮은 질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동맹휴학의 단골 조건 중 하나가 조선어 문법 교 수였다. 16) 물론 총독부는 1912 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을, 1921 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대요 를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은 조사원들의 의견을 집약하지 못했으며, 보통학교 교육 이외에 는 적용되지 않았고, 조선어 교원들의 비판을 받을 정도로 위신이 미약했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표기법 내지 맞춤법 통일에 관심 (?) 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처럼 놓여 있는 환경 과 결코 13) 小 田 省 吾, 新 敎 科 書 は斯 う云 ふ方 針 で編 纂 した, 조선교육 7-5, 1923.2. 오다 쇼고 小 田 省 吾 는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 집과에서 편수관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으며, 사무관과 편집과장을 역임 하기도 하였다. 그는 동경제대 사학과 출신으로 일본의 사범학교 교유와 교장을 거쳐 조선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경성제대 예과 교수가 되었다. 14) 嚴 詳 燮, 現 行 朝 鮮 語 讀 本 に對 する私 見, 文 敎 の朝 鮮, 소화2 년(1927) 11 월, 제27 호, 69~70 면. 15) 박붕배, 일제기 우리 국어( 조선어) 과 교재 분석 연구, 논문집 18, 서울 교대, 1985.6 94 면. 16) 김호일, 한국 근대학생운동연구 --1920 년대를 중심으로, 단국대 박사학위 논문, 1987. 110~196 면 참조. 무관하지 않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7) 교과서의 내용과 관련한 갈등은 좀 더 복잡하면서도 미묘하다. 2 차 교육령기 고등보통학교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高 等 普 通 學 校 規 定 第 二 章 學 科 及 程 度 > 18) 第 十 一 條 朝 鮮 語 及 漢 文 은 普 通 言 語, 文 章 을 了 解 며 正 確 且 自 由 로 思 想 을 表 彰 는 能 力 을 得 케 며 文 學 上 의 趣 味 를 養 며 兼 야 智 德 의 啓 發 에 資 으로써 要 旨 로 홈 朝 鮮 語 及 漢 文 은 普 通 朝 鮮 文 及 平 易 漢 文 을 講 讀 케 며 實 用 簡 易 朝 鮮 文 을 作 케 고 朝 鮮 語 文 法 의 大 要 를 敎 授 이 可 홈( 밑줄 강조- 인용자) 위 인용문은 중등 조선어교육 목표로 실용간이( 實 用 簡 易 ) 의 성 격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기본적 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제한적 범주 안에서의 목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제의 동화정책 및 어문민족주의 속에서 조선어 교육은 국어( 일어) 와 상호보완하면서 그것의 하위목표가 되어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진술 또한 이것을 뒷받 침한다. 반도에 있어 언어 교육은 인격도야의 방면부터 보아도 국어를 학습 하는 방법부터 보아도 국어를 학습하는 방법부터 보아도 단독으로 국 어교육, 조선어 교육을 생각할 수 없다. 양자는 흡사 磁 針 一 體 와 같이 생각된다. 그래서 국어교육이 남극이라면 조선어교육은 북극이다. 양 17) 조선총독부의 어문정책과 조선어학회의 참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다 음의 글을 참조할 것. 이혜령, 한글운동과 근대 미디어, 한국 근대문학 의 형성과 문학 장의 재발견, 소명출판, 2004.12. 18) 조선총독부 관보, 1922.2.6. 이 법령이 칙령 제19호로 반포된 것은 1922 년 2월 4 일이며, 시행된 것은 그 해 4월 1 일이다. 번역문은 윤여탁 외, 국어교육 100년사 1( 서울대출판부, 2006), 70~72 면에서 재인용.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15 16 극이 활동하여 조선어교육은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 > 조선은 내지와 사정이 달라서 조선교육령을 따로 만들어내었다. 신교육령 공 포 이전은 특히 내지인 교원은 내지에서 직접 이입해 왔으나 지금은 조선에 양성하게 되었다. 또 조선어 장려금도 고액의 재정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이라면 국어를 통해, 내지인이라면 조선어를 통 해서 두 민성과 두 국어의 공통성도 그러한 바를 충분히 연구하고 이 해하여 그것을 교육화해서 직책상 이끌어야 한다. < > 국어독본도 조선어독본도 공히 국민적 사상과 함께 조선어에 있는 조선 특유의 사상을 중핵으로 문예적 방면, 도덕적 방면, 과학적 방면을 포함한 교 재이지 않으면 안 된다. 19) 조선어독본의 교수요지는 보통의 언어, 일상수지의 문자 급 문 장, 정확한 사상 표창, 문학상의 취미 양성, 지덕 계발 로 요약될 수 있다. 앞의 세 가지는 도구 과목으로서의 조선어를 생각하게 하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문학상의 취미양성 은 심미적 기 능을, 자기 계발 은 다양한 기술과 윤리적 기능을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보통학교의 조선어 교과목에 수 록된 문학의 실상은 어떠한가? 좀 더 정교한 논의가 뒤따라야겠지만 방치 라거나 말살 의 수 준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상적으로는 주제를 제한하고 소재를 확대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선적 소재( 인물, 문종 등) 가 늘어난 것은 문화통합의 기조 속에서 조선의 반향을 고려한 것이지만 그 구체적 항목은 시조, 수필( 기행편지일기 ) 등이다. 하지만 주로 서술된 충군, 학문 등의 제한된 주제는 근대 형성기 조선의 독본류, 예를 들면, 대한제국이 편찬한 국민소학독본 ( 학 부,1896) 이나 민간에서 발행한 고등소학독본 ( 휘문의숙,1905) 을 넘 어서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4 장에서 상술할 것임.) 19) 崔 璋 烈, 普 通 學 校 に於 ける國 語 敎 育 と朝 鮮 語 敎 育 の使 命, 文 敎 の朝 鮮 13, 소화 3 년(1928) 4 월, 제32 호, 71~83 면. 일제는 신문학 이전의 조선문학을 폄하하면서 문학 소재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고 보았다. 문학이 갖는 다양한 기능은 조선어 교 과의 목표, 즉 실용간이의 문식력 확보라는 점에서 선택적 항목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교수내용의 체계와 소재 등이 빈약할 수밖 에 없었다. 교재의 일부를 각종 국어( 일어) 책에서 직역한 후, 재수 록하는 형태가 발생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20) 아울러 소재 의 확대란 측면에서도 일제의 학교를 다닌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 라도 근대 문물의 다양한 세례를 기대했던 독자들을 충족시키기엔 실용간이( 實 用 簡 易 ) 의 편폭은 그리 넓지 못했다. 따라서 총독부의 조선어독본은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전통적 독자층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었고, 중간층 혹은 엘리트층의 독서 취향에도 부합하 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앞서 언급한바 있지만, 식민지 정책의 실무자조차 동의했던 조 선어 교육의 난맥, 특히 조선어독본의 성근 부분을 메우기 위해 일제한 선택한 방법은 일서의 직수입 혹은 재수록이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 문화통합의 의도는 곧바로 통합의 역류( 逆 流 ) 를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일서의 직수입은 다수의 문학관련 서적이 중학교 정도의 일어 능력이 있으면 곧바로 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특히 엘리트층의 독서 취향을 자극하고 독자층 을 분할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면서 조선 문학의 형성과 문단의 성립에 촉매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21) 20) 신편 고등조선어독본급한문독본 과 여자 고등조선어독본 의 목차를 비 교해보면, 본문과 단원 구성에 있어 상당부분이 중복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1에서는 17 개 단원이, 권2에서는 15 개 단원이, 권3과 권4에서 는 각각 15 개, 11 개 단원이 공통적으로 제시된다. 자세한 내용은 조지원 논문( 1920 년대 중등학교 조선어 독본 분석, 고려대 교육대학원, 2007.8) 42 면 및 논문의 < 부록> 을 참조할 것. 21) 1910년대 발행한 시문독본 이 1920년대 화려하게 귀환할 수 있었던 데 에는 31 운동 이후 더욱 존재감이 커진 최남선의 권위나 지명도 말고도 이같은 독자 분할 시스템이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문독본 의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17 18 결국 일제의 문화통합 전략은 교육정책이나 교과서 등 연성 권 력에 근간을 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세목까지 전일적으로 지 배하기는 어려웠으며, 특히 교원 수급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대 개의 조선어과 교수 주체가 조선인이었다는 점도 그들이 고려하 지 못한 변수였다. 그리고 1919년 이후에도 정치적 공론장이 폐쇄 되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급격하게 재편된 식민지 조선의 각종 문화담론의 역류는 문학 장( 場 ) 의 엔트로피를 급격히 향상시켰다. 이에 각종 문학 동인지와 초창기 잡지는 그 자체로 제한성과 폐 쇄성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1920년대 중반 창작, 표현, 쓰기 에 대한 열정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광범위한 독자층을 양산했으며, 22) 한편으로는 작가이면서 다른 한 독본문화사적 의의는 통합의 의도가 관철되면서 생긴 문화의 여지( 餘 地 ) 에 문체모형 과 민족모형 을 독자적으로 구축했다는 점, 즉 역류의 교두 보였다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언문일치의 과정과 문체의 정전(canon) 이 교체되어 가는 과정 사이에는 큰 갭이 존재한다 는 사실이다.( 가메이 히데오 龜 井 秀 雄, 김춘미 옮김, 메이지문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6 면) 이렇게 보면, 독본을 문학정전 혹은 교육정 전 말고도 문체정전의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텍스트로 활용할 수 있는데, 필자는 최남선의 시문독본 이 시문 을 통해 문체정전 의 수립하는 것 으로, 이윤재의 문예독본 은 문학정전 을 확립하는 텍스트로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구자황,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 상(1)-- 최남선의 시문독본 을 중심으로, 탈식민의 역학, 소명출판, 2006. 6; 구자황,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상(2)--이윤재의 문예독본 을 중심으 로, 상허학보 20 집, 2007.6. 22) 1920 년대 초의 신문학 은 작가들이 직접 새로 쓴 작품임을 강조하였다. 당대 글쓰기와 문학에서 창작 만큼 호소력 있는 단어는 없었다.(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2003, 292 면) 1920년대 조선문단 이 새롭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매개는 이광수와 최남선이라는 1 세대 문사들의 상징권력 외에도 신인들의 글쓰기, 즉 창작 욕구를 고취 시키거나 반영하는 구조 때문이었다. 이는 글을 통한 자기표현 이라는 당대 젊은이들의 창작열에 적절히 부응하는 기획이었으며, 이는 대중성 과 전문성을 병행하였다는 점에서 단순한 상업성과는 구별되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경돈, 조선문단에 대한 재인식, 1920 년대 문학의 재인식, 깊은샘, 2001; 이봉범, 1920년대 부르주아문단의 제도적 정착과 조선문 편으로는 독자인 그룹을 형성하는 등 독자 분할 현상이 두드러지 기 시작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독자적으로 문학 장을 마련하기 위해 일서의 독자층까지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이면서, 일반 대중 독자들은 이러한 문학 장의 역치( 閾 値 ) 에 힘입어 그들의 앎과 표 현에 대한 욕망을 독본의 형태로 표상하는 선순환 구조(virtuous cycle) 를 견인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1920년대 후반부터는 독본에 서 문학이 특권적 지위( 시민권) 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23) 한편 2차 교육령 이후 조선어교육은 공교육 기관인 학교교육 외 에 총독부의 조선통치 목적에 따른 간접교육이 병행되는 형국이었 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어 장려금 정책이며, 다른 하나는 조선어교 육을 위한 연구 단체의 활용이다. 1910년대 제도 교육이외에 조선총독부의 조선어교육 정책은 각 종 전문분야의 강습회를 통해 행해졌다. 각종 관리 양성에 중점을 두면서 지배의 효율을 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31 운동 이후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방향을 바꾸게 된다. 먼저 조선총독부는 학습을 장려하였다. 조선어 장려 규정 을 두어 내지인의 조선어 단, 민족문학사연구 29 호, 2005.12 참조. 23) 근대 사회에서 문학 작품이 거론되는 것은 비평과 학문의 행위가 일어나 는 공론장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텍스트들에 대해서 가장 대규모로 그리 고 가장 조직적으로 거론되는 장은 아무래도 문학교육의 장이라 할 것이 다. 문학교육이야말로 비평이나 문학사를 제도적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자 리 잡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문영진, 정전 논의에 관련 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2001.6, 60 면) 이런 의미 에서 볼 때, 독본이야말로 비평이나 문학을 제도적으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게 한 핵심적 매개체이자 제도가 아닐 수 없다.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19 20 < 조선총독부 조선어 장려 규정> 24) 朝 鮮 總 督 府 にては 總 督 府 及 所 屬 官 署 職 員 に對 する朝 鮮 語 獎 勵 の爲 め 大 正 十 年 五 月 訓 令 第 二 十 八 號 を以 て獎 勵 規 程 を發 布 したか 大 正 十 三 年 八 月 十 日 日 附 若 干 の修 正 を可 へた. 規 程 の全 文 は如 左. 제1 조 朝 鮮 總 督 府 及 所 屬 官 署 ノ內 地 人 タル判 任 官, 判 任 官 ノ待 遇 ヌ受 ク者 及 雇 員 ニハ當 分 ノ 內 朝 鮮 語 獎 勵 手 當 ヌ支 給. 旦 シ 朝 鮮 語 ノ通 譯 及 特 別 ノ規 定 ニ依 リ朝 鮮 語 通 譯 ノ爲 メ手 當 ヌ受 クル者 ハ此 限 ニ在 ラス 제8 조 試 驗 ノ程 度 及 科 目 左 ノ如 ツ 일제는 第 一 種 試 驗 朝 鮮 語 ノ通 譯 ニ差 支 ナキ程 度 一. 解 釋 朝 鮮 語 國 譯, 國 語 鮮 譯 二. 譯 文 朝 鮮 語 國 譯 ( 諺 文 交 リ文, 朝 鮮 式 ノ漢 文, 熟 語 ) 三. 作 文 諺 文 交 リ通 言 文 四. 對 話 朝 鮮 語 及 國 語 ノ解 釋, 朝 鮮 語 ノ口 述 第 二 種 試 驗 朝 鮮 語 ニテ自 己 ノ意 思 ヌ發 表 スル差 支 ナキ程 度 一. 解 釋 朝 鮮 語 國 譯, 國 語 鮮 譯 二. 譯 文 朝 鮮 語 國 譯 ( 諺 文 交 リ文 ), 國 文 鮮 譯, 假 名 交 リ文 三. 書 取 諺 文 ノ聽 取 及 交 譯 記 四. 對 話 朝 鮮 語 及 國 語 ノ解 釋, 朝 鮮 語 ノ口 述 第 三 種 試 驗 普 通 ノ朝 鮮 語 ヌ解 シ得 ル程 度 一. 單 語 解 釋 朝 鮮 語 國 譯, 國 語 鮮 譯 二. 連 語 解 釋 同 上 三. 書 取 諺 文 聽 取 ハ譯 記 四. 對 話 朝 鮮 語 及 國 語 ノ解 釋, 朝 鮮 語 ノ口 述 1910 년부터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는 일본인 관리나 교원, 순사, 부군( 府 郡 ) 서기, 각종 조합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선어 장 려정책을 실시해오고 있었다. 그들은 조선어 구사 능력에 따라 1 24) 이 규정은 1922년 5월 훈령 제28 조로 발포 된 것을, 1925년 8월 11일 개 정하였으며, 이는 월간잡지 조선어 2-3( 통권 16 호) 에 다시 실렸다. 종, 2 종, 3 종의 조선어 장려 시험을 치르고, 그에 따른 장려금을 지급받았다. 이는 향당( 鄕 黨 ) 을 지도하고 사회 교화를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처음에는 내지인 교원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1921년 5월 6일부터는 조선총독부 소속 관원들도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 다. 이 조선어 시험은 1943 년까지 해마다 실시되었다. 특히 합격자 는 조선총독부 관보에 그 명단을 게재하였고, 월간잡지 조선어 (1924~1927, 통권 40 호 발행) 에서는 그들의 합격 수기를 싣기도 하 였다. 25) 조선총독부의 조선어교육 기조는 조선에 근무하는 각종 관리들 의 업무능력 향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인입( 引 入 ) 전략 에 초점을 맞췄으며, 어용단체를 통해 조선어 연구 및 활용 방안을 꾀하였다. 따라서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독본의 생산시스템 보다 독본 생산 의 시스템 에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어 장려정책이 사 람 위주의 인입전략이었다면, 조선어독본에 등장하는 다수의 직역 단원은 소재 위주의 인입전략이었던 셈이다. 일제의 인입전략은 적어도 두 가지 양상을 초래하였다. 이는 당 연하게도 독본의 부실로 이어지는바, 2차 교육령기 동안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개정하지 않는 경직된 독본의 형태를 유지할 뿐이었는 데, 26) 실용간이 이상의 내용은 독본 및 개론서의 직수입으로 해 결하는 형국이었다. 당시 고급독자층에게 향유됐던 대표적인 문학 개론서는 구리야가와 하쿠손 厨 川 白 村, 근대문학 10 강 ( 厨 川 白 村 集 刊 行 會, 1924) 27), 혼마 히사오 本 間 久 雄, 문학개론 ( 동경 25) 허재영 엮음, 일제 강점기 조선어 장려 정책 8 권, 도서출판 역락, 2004. 26)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독본의 정격화( 定 格 化 ) 로 명명한 바 있다. 구자황, 1920 년대 독본의 양상과 근대적 글쓰기의 다층성, 인문학연구 74 호,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8, 37~42 면. 27) 이 책은 모두 10 강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근대의 문예사조에 대한 소개는 물론, 특히 자연주의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인상적이다. 문학론 上 이라 는 부제가 붙은 것으로 보아 이론서 격에 해당되는 이 책 이외에 실제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21 22 당서점, 1924) 28), 사이토 齋 藤 淸 衛 편, 집성 문학개론 ( 명치서 원, 1927) 29) 등이 있었고, < 개조사> 판의 일본 근대작가소설집으로 신선명작집( 新 選 名 作 集 ) (1928) 30) 등이 광고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즉 중학 이상만 되어도 직수입된 서적을 접하게 함으로써 고급독자층을 분할하였고, 이들은 대체로 문학의 특권적 지위를 강화하는 방향에 기여하게 된다. 31) 작품 위주로 구성한 下 편을 예상할 수 있다. 저자가 쓴 권두언은 1912년 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총독부에 소장되었던 장서인과 더불어 비매품이 라는 표시를 확인할 수 있다. 28) 혼마 히사오(1866 ~?) 는 일본의 영문학자이자 비평가로 츠보우치 쇼요 坪 內 逍 遙 와 시마무라 호게츠 島 村 抱 月 에게 사사한 유미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개론 은 문학은 생활의 향락을 얻기 위한 것 으 로서 문학연구는 현대 문화인이 취해야 할 중대한 교양 이라는 전제 아 래 서술되고 있다. 특히 문학 각론에 해당되는 시, 희곡, 소설, 비평 부분 의 내용이 많은 양을 차지한다. 서언에 의하면, 이 책은 대정 6 년(1915 년) < 신조사> 에서 신문학개론 이라 제목으로 발간됐던 소책자를 개정 발매 한 것이다. 김명인, 주체적 문학관 구성의 모색과 그 좌절, 한국근대문 학의 형성과 문학 장의 재발견, 소명출판, 2004.12, 281~282 면. 29) 이 책은 예술, 문예, 문학, 문학각론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마다 대표적 인 문인들의 논의를 묶어 놓은 형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소화 2년 (1927) 8월 15 일에 발행되었는데, 조선총독부도서관의 도서 수령일자는 다음달 9월 20일 자로 찍혀있어 당시 일서의 이동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 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30) 이 소설집에는 나가이 가후 永 井 荷 風, 하야마 요시키 葉 山 嘉 樹, 오 사나이 가오루 小 山 內 薰, 다니자키 준이치로 谷 崎 潤 一 郞 등의 시리 즈물이 들어있으며, 광고면의 추이로만 보면 1928년경부터 외국 소설 광 고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 사, 2003, 299 면. 31) 천정환은 당시 중등학교 교육은 새로운 문장과 문학에 대한 대중의 갈증 을 풀어주지 못하거나,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곧 일반적인 문학적 교양은 학교 바깥에서 읽는 조선인 작가의 책을 통해 쌓고, 보다 전문적이거나 수준 높은 문학적 교양은 서양문학 과 일본문학을 통해 길렀다는 것인데, 고전소설( 소년기) 과 조선신문학 작 품( 중고시절), 그리고 외국의 근대소설( 본격문학기) 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면서 작가를 길러내고 엘리트적 독자의 문학적 취향을 형성하는 데 기 여했다고 본다. 당시 여고생의 독서경향에서도 기쿠치 칸 菊 池 寬, 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조선인 중심으로 진행된 문자보급운동 의 전개였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 반까지 주로 중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한글운동은 조선 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매개하였으며, 이러한 운동은 경성부 조 선어연구회의 활동이나 총독부의 조선어장려 차원의 강습회와 대 립되는 의도를 갖고 진행되었는바, 여기에 조선어학회 인사들이 적극 참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듯 조선어 장려 정책, 독본의 직역 및 개론서의 직수입, 연 구단체의 활용으로부터 조선어교육의 영역이 확장되었으며, 교수 법의 개선, 고급독자층의 형성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어교육의 지평 확대가 곧바로 식민지근대성 논의를 보증할 만 큼 실속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면의 존재하는 식민지배의 효 율성 전략이 작동하는 방식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작동방식이 조선어독본이라는 구체적인 텍스트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Ⅳ. 문학 장의 활력과 독본의 생산 시스템 2차 교육령기 식민지 조선인의 폭발적 교육열은 학교가 모종의 꿈 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즉 일제의 동일한 학제 편성과 학교의 증설은 독립의식이나 근대 문명에 대 한 희구( 希 求 ) 말고도 교육을 통해 신분상승과 사회이동이 가능하 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피식민지인의 생존전략과 식민지적 주체의 루미 유스케 鶴 見 祐 輔, 나쓰메 쏘세키 夏 目 漱 石 등 일본 유명 작가 들의 작품이 광범위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 남녀 고등보통학교의 조 선어독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거의 수록되지 않았다. 천정환, 근대의 책 읽기, 푸른역사, 2003, 348~350 면 참조.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23 24 측면을 감안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의 지향은 중간층과 엘리트층의 독서 취향과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지적한 바 있거니와, 반대로 민간독본의 지향이 단일하게 읽혀지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와 최남선의 시문독본 만하더라도 1권에 등장하는 공부의 바다 견딜성 내기 같은 단원은 유학생의 불안한 심리를 달래주고, 그들의 유학을 정당화시켜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문독본 가운데 공부의 바다는 압이 멀고나, 나가고 나 가도 보겟네, 갈수록 아득함 怯 하지 마라 ( 공부의 바다 ) 로 시 작하는 시를 읽으며, 모험과도 같은 공부의 길을 흐뭇한 試 驗 으 로 여기고 기꺼운 마음으로 정진하게 되었음을 밝히는 독자도 있 었다. 또한 독자는 남북전쟁에 참여해 승리를 거둔 미국 그랜트장 군의 일화( 견딜성 내기 ) 를 통해서도 인생 승리의 비결 이라는 가르침을 얻고 있다. 32) 따라서 이런 독법이 글쓴이에게 가르쳐주 고 또 길러주는 것은 자기수양의 마음과 방법이다. 이로써 시문 독본 의 독자층은 2차 교육령 이후 이른바 꿈을 찾아 나서는 당 시 청년들의 수양론 과 입신출세주의 의 필독서이기도 하였던 셈 이다. 33) 특히 이러한 정황은 1910년대 총독부 편찬의 보통학교 수 신서( 修 身 書 ) 에서 스마일즈(S. Smiles) 의 자조론( 自 助 論 ) 이 사라지 고, 문명이란 단어 대신 문화가 등장하고, 1916 년 신문관( 新 文 館 ) 에서 시문독본 과 함께 의욕적으로 번역했던 자조론 이 1920년 대에 와서는 가뭇없이 사라지는 하면, 또 1922 년 임술판( 壬 戌 版 ) 시문독본 에서 그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생 32) 김기수, 동경여행기 일편을 이긍석 군에게, 조선일보, 1920.6.29. 33) 우미영, 동도의 욕망과 동경이라는 장소(Topos) - 1905~1920년대 초반 동경 유학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109 호(30권 4 호), 2007. 겨울, 96~97 면, 수양론과 입신출세주의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소영현, 근대 인쇄 매체와 수양론교양론입신출세주의, 상허학보 18 집, 2006, 206~210 면 참조. 각하면 설득력이 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문독본 이 재래 의 전통적 독자층을 흡수하고, 고급 독자층까지 확보할 수 있었는 데, 주된 이유는 시문독본 을 둘러싼 독본 생산의 시스템보다는 시문독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본의 생산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사회가 근대학문의 출발의 계기를 맞이한 것은 일본 유학 생들이 귀국해 돌아온 1910 년대 후반이었다. 최남선의 초창기 선 구적 출판 사업이 시문독본 을 통해 집대성된 것은 1916년이었 다. 그런데 1910 년대 시문독본 의 독자이기도 했으며, 경우에 따 라서는 필자이기도 했던 그들의 민족주주의의 발단은 일본 또는 일본적인 것 이라는 생성되는 것에 대한 소멸하는 것으로서의 자 민족 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조국이 전근대적 식민지 라는 정체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며, 그로 인해 그 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양식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과거에의 소급 과 전통의 단절 을 통해 민족을 상상해 내게 된 다. 34) 이로써 전근대의 극복을 위한 새로운 것으로서의 민족 을 상상하면서 우리 라는 가치를 창안하기에 이른다. 시문독본 에 수록된 다수의 고전국역 작품과 그것의 목표는 을 신문화의 창조 35) 와 결코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최남선은 이러한 인식을 조선적이라 일컬 31 운동 당시 조선 총독에게 제출한 요구서에 정확히 명시하고 있었다. 기미 독립 선언서 와 마찬가 지로 최남선이 초안한 이 요구서는 식민지 당국이 전력을 쏟은 일본어 교육은 겨우 10 만 명 의 일본어 해독자를 산출하는 데 그 쳤으며 최근 십수 년간 습속이 격심하게 변화 한 것은 문화통합 이 효과를 거둔 것이 아니라 과도기적인 사회현상 때문이라고 주 34) 박광현, 경성제국대학 의 문예사적 연구를 위한 시론, 한국문학연구 21 집,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1999, 365 면. 35) 이광수, 우리의 이상, 학지광 14 호, 1917.11.20.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25 26 장했다. 또 신문화의 과정에서는 가령 몇 발자국 낙후 되었다 할 지라도, 조선의 문화적인 고급스러움 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지위와 역사와 운명을 정확히 자각하는 조선인 은 스스로의 운명 을 자력으로 처리 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떤 수단도 동원할 것 이라고 말했다. 36) < 표 5> 신편 고등조선어 급 한문독본 체제37) 제 목 요 지 문종 / 성격 출 전 3-1. 습관 선량한 습관 양성 논설문, 전통적 3-2. 앵무 앵무새의 생태 설명문, 근대적 생물기담 3-3. 석탄 이야기 석탄의 생성과 혜택 설명문, 근대적 실업학교국어독본 3-4. 정몽주 업적과 일대기 전기, 서사, 조선적 신편고등국어독본 3-5. 臺 灣 의 하(1) 3-6. 臺 灣 의 하(2) 대만의 기후, 식수, 해충 설명문, 개정고등국어독본 대만의 수목, 의복, 가옥, 설명문 개정고등국어독본 과실 3-7. 상식의 수양 상식의 개념과 수양 방안 논설문, 근대적 실업학교국어독본 3-8. 농업의 취미 사람의 취미와 시정 양성 설명문, 전통적 실과여학독본 하는 농업 3-9. 情 景 반도 정경 예찬 문학( 시), 조선적 陸 紹 珩 雜 古 劍 掃 3-10. 經 學 院 의 釋 尊 대성전과 문묘제례 3-11. 폐물 이용 폐물 이용의 의미 논설문, 근대적 설명문, 전통적 改 修 고등국어독본 3-12. 조선의 음악 고대 이후 조선음악 설명문, 조선적 잡지 조선 정철, 안민영, 석선탄, 조명 3-13. 古 歌 五 節 문학( 시조), 조선적 리, 무명씨의 시조 3-14. 우표 우표의 발명과 유래 설명문, 근대적 金 子 元 臣 의 文 36) 姜 德 想 편, 현대사자료26 조선2, みすず 書 房, 1967, 54 면. 고마고메 다 카시 駒 込 武, 오성철이명실권경희 옮김, 식민지제국 일본의 문화 통합, 역사비평사, 2008, 265 면에서 재인용. 37) 이 표는 다음 논문의 부록에서 3권과 5 권의 조선어지부 를 발췌 요약한 것임. 5 권 전체의 목록과 자세한 사항은 다음을 참조할 것. 조지원, 1920 년대 중등학교 조선어 독본 분석, 고려대 교육대학원, 2007.8. 3-15. 石 潭 九 曲 율곡의 구곡가 문학( 시조), 조선적 3-16. 전기의 응용 전기의 편리와 이학의 진보 설명문, 근대적 황국보습독본 3-17. 典 故 五 則 5개 고사성어 풀이 문학, 전통적 3-18. 조선부업품 공진회의~ 경복궁내 조선부업품 공진 설명문, 근대적 회 알림 3-19. 품성 품성여하에 따른 존비 논설문, 전통적 嘉 納 治 五 郞 의 文 5-1. 자연미의 애호 풍토 및 강산 애호 설명문, 조선적 5-2. 좋은 꽃 앵화, 목단, 장미 설명 설명문 5-3. 동무 나비 나비의 여정과 시련 문학( 운문), 근대적 5-4. 기독 예수 일대기 및 기독교의 설명문, 서사 성립과정 5-5. 두더지 혼인 두더쥐 부부의 깨달음 문학( 우화), 조선적 유몽인, 어우야담 5-6. 西 湖 日 記 서호의 풍경과 정취 문학( 수필) 5-7. 時 調 四 首 이명한, 조식, 작자미상, 작 문학( 시조) 자미상의 시조 5-8. 高 朱 夢 동명성왕 일대기 문학, 서사, 조선적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5-9. 비둘기 편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문학( 운문) 5-10. 千 里 秋 色 (1) 북관천리 기차여행 문학( 기행문) 5-11. 千 里 秋 色 (2) 북관천리 기차여행 문학( 기행문) 5-12. 재담과 미 재담 및 수수께끼 문학 5-13. 고려도자기 (1) 개념, 발굴지 소개 설명문, 조선적 李 王 家 博 物 館 所 藏 寫 眞 帖 5-14. 고려도자기 (2) 특징, 발굴현황 설명문, 조선적 李 王 家 博 物 館 所 藏 寫 眞 帖 5-15. 從 弟 에게 졸업후 진로 5-16. 古 詩 意 譯 5-17. 선각자의 임무 휴세홍, 산중문답, 촌가의 의역 대세 순응, 폐습 혁신, 삼 강오륜 계승 문학( 서간문), 전통적 문학( 시조), 전통적 논설문, 전통적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신편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1924.2, 전5 권) 은 각 학년에 한 권씩 학습하도록 편성된 중등학교 조선어 교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27 28 재다. 이 책에는 1910년대 교재와 달리 도시 소개나 기행문의 대 상이 나라현 奈 良 縣, 후지산 富 士 山 등으로 확대되는가하면, 일본의 풍속이 가감 없이 소개되고, 보험, 채무, 근로 등 식민지 실업인 양성을 위한 지식과 기능 설명이 많아진 특징이 있다. 이 러한 점은 본문의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바, 후쿠자와 유키치 福 澤 諭 吉, 카네코 모오미 金 子 元 臣, 가노지 고로 嘉 納 治 五 郞, 도리이 류조 鳥 居 龍 藏 등 일본인의 글이 빈번하게 수록 되고, 일본어로 발행된 조선에 관한 잡지를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심지어는 실업 및 실무 기능과 관련된 내용의 경우, 당시 일본에 서 사용하던 신편 실업학교 국어독본, 신편 고등국어독본, 개 수 고등국어독본, 황국 보습독본 의 내용을 가감 없이 옮기는 방법을 취하기도 하였다. < 표5> 는 근대문물 일반, 조선적인 것, 일본적인 것의 세 가지로 구성된 총독부 조선어 독본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특 기할 만한 것은 문학 분야의 제재가 늘고 수록된 내용 가운데 일 부는 민간 조선어독본의 체제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 독본은 대개가 조선인인 국어 비상용자의 수의과목으로 편성된 것 이었으나, 엄연히 중등 교과목의 교수요지로 문학상의 취미 양성 을 명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수준 있는 내 용이 구성되지 못했다. 38) 물론 문학 개념이 본격적으로 정초되기 이전의 상황임을 감안할 수는 있겠지만 학년이 올라 갈수록 문학 작품의 비중이 높아진 결과가 이 정도다. 따라서 문학분야의 내용 과 구성은 교수요지에 밝힌 것과는 현저히 다른 모습이라고 하겠 38) 사정은 보통학교 조선어독본도 마찬가지다.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1923) 에 실린 문학 작품은 매 권마다 5~6 편에 불과하다, 3권 기준으로 그 작 품들( 나븨, 달, 말하는 남생이, 노인의 이약이, 여호와 가마귀 ) 을 보면, 수신( 修 身 ) 교과서의 내용을 방불케 하는 동시와 우화류가 대 부분이다. 다. 그나마 2차 교육령기 조선어독본은 이전 교과서보다 좀 더 다 양한 제재와 구성상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개념으로는 문학의 변두리로 취급받는 수필( 기행일기편지 등) 의 반영이고, 격언수수께끼고사성어속담 등 흥미를 유발하 기 위한 구성의 일단이 민간독본의 체제로부터 반영되었다는 점이 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관점을 참조할 경우 간과할 수 없는 의미 를 추론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식민지 통치는 강제력, 즉, 무장한 거주민과 저항을 박 멸하고 억압하기 위한 힘에 기반합니다. 그러나 식민주의는 단순히 그 러한 강제력으로만 유지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자들은, 피 식민자가 식민지배자의 상대적 우위를 인식하도록 하는 정치적, 문화 적 환경의 창조를 통해 헤게모니를 확립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하 면, 콜로니얼리즘은, 피식민자들에게 식민지배자들에 의해 창조된 세 계에서 사는 법, 그 세계에서 살기 원하는 열망, 그렇게 창조된 세계 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적 노력이었 습니다. 39) ( 밑줄 강조- 인용자) 인용문에 의하면, 일제의 조선 식민지화는 일제의 군사적경제 적 우위뿐만 아니라 결국은 지식생산, 즉 인류학, 역사학, 경제학 과 같은 학문 분과에 의해 생산된 지식, 그리고 인구조사, 토지조 사, 지도, 박물관, 사진 등의 기제들을 통해 창조된 새로운 형식의 현실 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즉 시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서 구식 개념은 현재를 과거에서 분리시켰고( 탈영토화), 과거는 개별 적이고 토착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서, 현재와 과거의 관계는 쇠퇴침체부패와 같은 식민지적 수사( 修 辭 ) 를 통해 재서사되는 39) Henry Em, 최근 미국 일본사 연구자의 식민 조선 연구 : 복잡성(complexity) 과 비교가능성(comparability) 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 한국문화연구단 초청 세미나, 2008.10.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29 30 것이다( 재영토화). 조선의 과거에 대한 이런 식의 재서사가 사진, 출판 자본주의, 시계, 그레고리안 달력들로부터 창조되어 새로운 형태의 현실 를 주창하는 한편, 고려자기 및 석굴암과 같은 유적 은 영광스러운 것에서 비루하게 된 조선의 현재를 강조하고, 일본 을 조선의 과거와 미래의 보호자로 다시 주조하는 수입된 식민지 적 서사 전략을 위한 구체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40)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꾸준한 독자를 확보해온 시문독본 역시 아직은 문학 분야의 제재가 선명한 모습은 아니 다. 게다가 이 독본의 주된 초점은 이른바 시문( 時 文 ) 에 있었다. 문학적 내용과 성격을 전문적으로 형성하던 창조 (1919) 나 폐허 (1920)와 달리 보다 대중적인 읽고 쓰기의 모형을 만드는 것이 이 독본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시문 의 규정성이 그만큼 강했다는 의 미다. 따라서 문학관련 제재가 적지 않고 창작, 표현, 쓰기와의 친 연성을 높게 드러내고 있지만 근대적 의미의 소설( 노블) 은 단 한 편도 수록되지 않았다. 이는 아직 신문학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반영할 만큼 난숙( 爛 熟 ) 한 사정이 아니었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창작과 표현 을 핵심적 자질로 하는 자율적 문학이 당대적 교양 범주 안에서 확고한 위상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 나 새로운 읽기와 쓰기를 열망하던 독자층은 시문독본 을 통해 전문적인 문학 수업 이전의 문체( 혹은 문범) 기준을 마련할 수 있 었고, 이러한 독본의 생산 시스템은 새로운 독자층을 흡수하는 동 력으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이 독본은 1910 년대를 거친 후 문 학이 시민권을 취득한 여러 경로 41)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는 셈이 다. 흥미로운 것은 총독부 조선어 독본과 민간 독본에서 드러나는 문학 의 위상에 대한 차이다. 총독부 조선어독본은 문학 의 시민 권 취득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민간독본의 경우, 문학 을 스스로 정전화하고 추인하게 하는 문학적 회로( 回 路 ) 와 독자적 경로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한편 독본의 생산 시스템 측면에서 시문독본 의 또 하나의 동 력은 구( 舊 ) 독자층을 끌어들인 고전국역 사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적국역 사업의 반영은 무엇보다도 자생적 한국학의 기초를 쌓았 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시문독본 에 수록된 고전 국역 작품의 비율은 꾸준히 유지되었는데, 시문독본 에 반영된 고전 국역 사업은 뚜렷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그것은 근대 초기 재편되는 교양, 즉 새로운 앎의 목록을 구성하는데 하나의 뚜렷한 근간을 제공하였다. 이것은 재래의 구( 舊 ) 독자층을 분할생산하는 데 효과를 발휘하였는바, 구체적으로는 조선광문회 활동 및 고전 국역 사업의 축적을 통해 그들을 새로운 문화론적 지평 안으로 끌 어 들였다. 전통과 단절하면서도 새로운 민족의 산물로 다시 씌여 진 문범을 창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문독본 은 근대의 문물 이나 신문학의 맹아, 나아가 고전국역의 성과를 범례적( 範 例 的 ) 가 치로 편제한 읽고- 쓰기의 독본이기도 하였다. 이는 다분히 폐쇄적 이었던 유통 혹은 제한적 필진을 각각의 한계로 삼고 있던 신( 新 ) 독자층과 구( 舊 ) 독자층을 독본이라는 광장으로 불려 낼 수 있었던 강력한 동인( 動 因 ) 중 하나였다. 40) 독본 문화사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대목은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독본의 내용 가운데 조선적인 소재로 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 성과가 반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과 식민정책, 그리고 조선적인 것의 복합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박진숙, 식민지 근대의 심상지리와 문장 파 기행문학의 조선표상, 조선적인 것 의 형 성과 근대문화담론, 소명출판, 2007.8. 41) 장석만 외, 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다, 돌베개, 2006, 54~59 면.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1 32 < 표6> 시문독본 체제(2 권,1922 년 정정합편, 신문관) 제 목 요 지 문종 / 성격 출 전 비 고 1. 첫봄 신체시(7.5 조) 붉은 저고리 2. 백두산 등척 기행문 3. 힘을 오로지 함 4. 이의립 5. 개미나라 6. 선한 습관 일로매진, 정진, 집중 조선 효종, 입지전 일화 서명응, 백두산기 논설문, 설명문 붉은 저고리 설명문 개미 생태, 생활 설명 어릴 적 습관의 설명문 강조 7. 잔디밭 잔디 예찬 신체시 붉은 저고리 고전 국역 인조 때 장유 일화 이구충당, 삼보 고전 국역 창조일기 - 더라 체 하니라 체 8. 남의 장단 황희 정승 일화 전기, 서사 국조명신언행록 고전 국역 9. 만폭동 만폭동 기행문, 묘사 이경석, 풍악록 10. 덕량 황희 정승 성품 11. 상진 - 더라 체, 고전 국역 전기, 묘사, 국조명신언행록 고전국역 서사, 일화 조선 명종 재상 전기, 서사 대동명신전 고전국역 상진일화 12. 내 소와 개1 나와 소의 인연 수필, 1인칭 이광수 - ㄴ다 현재형 13. 내 소와 개2 나와 소의 인연 수필, 1인칭 이광수 풀이표 사용 14. 활발 게으름, 부지런, 비유적 표현, 활발 계몽적 유영모 15. 서경덕 화담집 고전 국역 16. 상해서 상해 입항과정, 풍경 17. 시조 2수 통군정, 위화도 시조 소년 18. 파라데이 19. 주지( 사자) 20. 가을메 시( 노래) 새별 21. 화계에서 해 떠오름을 봄 22. 김단원 심리, 풍경묘사 이광수 의성의태어 문예독본 재수 록 기행, 수필 - 는듯의태묘사 23. 오대산 등척1 기행문 24. 오대산 등척2 기행문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조선총독부 조선어독본 과 시문독본 의 영향관계다. < 표 5> 에서 천리추색 은 시문독본 1 권의 천리춘색 과 쌍을 이룬다. 각각의 계절만 다를 뿐이지 공간 의 이동에 따라 풍경과 심정을 묘사하는 기법이며, 기행가사에서 근대적 기행문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식의 표방과 제목도 그러 하다. 조선적인 것 을 표방하며 매권 빠뜨리지 않고 수록한 시조 도 양쪽 독본에 단골로 등장하는 제재다. 심지어 시문독본 에 수 록된 시조 가운데 일부는 김삼연, 오대산기 김삼연, 오대산기 25. 때를 아낌 붉은 저고리 26. 딱지벌레의 힘을 입음 조선어독본 에 그대로 수록되기도 하여 눈에 띈다. 42) 같은 책( 유몽인의 어우야담 ) 에서 각각 다른 소재를 뽑아 수록하기도 하고, 일본의 유명한 학자들을 포함하여 동양의 고전에서 발췌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전국역 고전국역 에피소드, 지략 터어키 27. 말코니 이탈리아 28. 우어오칙 29. 물의 가는 바 30. 강남덕의 모 샘에서 바다로 묘사, 서술, 여정 비유 유몽인, 어우야담 고전 국역 42) 시문독본 1 권 태산이 높다 하되 ( 이이) 와 4 권 고금시조선 가운데 나 하기 좋아하고 ( 변계량) 는 조선어독본 2 권의 시조3 수 (2-8) 에 그대로 실 려 있다. 조선어독본 3 권에 수록된 석담구곡 역시 시문독본 의 4권 고금시조선 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어독본 은 권학, 인 물, 풍경 등을 위주로 한 내용인 반면, 시문독본 은 엔솔리지에 가까운 분량을 수록하고 있거니와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고, 단원으로 구성한 시 조의 경우( 시조 2 수 ) 에는 의기, 충정 등 역사적 맥락을 강조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3 34 동시에 주목할 점은 두 독본이 비슷한 체제와 소재에도 불구하 고 드러나는 본질적인 거리다. 우선 조선어독본 은 시문독본 에 존재하지 않는 근대적 편지(< 표 5> 5-15. 從 弟 에게 ) 와 편지를 활 용한 운문(< 표 5> 5-9 비둘기편지 ) 이 들어 있다. 이는 당대 신문 이나 잡지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시대의 아이콘, 즉 편지 형식을 수용한 것이다. 이것은 우정( 郵 政 ) 제도의 정착 및 확산 속에서 대 중적 커뮤니케이션의 소통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된 결과다. 한편으 로는 현지 보고 등의 장치로 활용되면서 신문이나 잡지 같은 미디 어가 판매망을 확장하기 위해 되도록 많은 지역의 독자들에게 관 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의 편지는 실용간이 의 성격에 충실한, 따라서 소통 자체가 강조되는 문예 이전의 편지에 가깝다. 43) 이렇듯 조선어 독본 에서의 편지는 근대적 의사소통과 보편적 문식력의 차원에서 혹은 현지 성을 강화하기 위한 독자 생산의 시스템이 개입된 것인데, 시문독본 은 편지에 문학적인 것 을, 기행( 문) 에는 민족적인 것 이라는 표상을 덧씌움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적극적 생산을 시도하였다. 즉 독본 안에 독자의 내면을 표현하는 문종이자 미문( 美 文 ) 에의 욕망을 자극하는 기제로 편지 가 수용되었다. 또 기행( 문) 에서는 독자들의 내셔널리티를 길러주 43) 전근대적 의미의 척독( 尺 牘 ) 이 아니라 근대적 의사소통의 총아로, 또 미 문( 美 文 ) 충동과 문학에 대한 조선적 발현 양식으로서의 편지가 문예의 범 주에 들어가는 것은 서한집 을 경유하면서 부터로 보인다. 따라서 독본 의 하위범주로 척독 아닌 서한집 이 들어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투르 게네프 가 좋아서 감격과 흥분으로 밤늦게까지 책장을 번지( 게 하) 던 기 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의 것은 그 전날 밤 연기 귀족의 집 아버지와 아들 들의 소설과 산문시, 서한집까지도 거지반 뒤져 읽었 다. 는 노천명의 사례는 시사해주는 바가 있다. 특이한 것은 서한집을 통 한 독자 생산과 독본의 영역에서 운위되는 편지의 경우, 여자 독본에서 활발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여자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1924) 는 한문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남학생용 교재보다 조선어 사용 비중이 훨씬 높다. 동시에 편지와 경어체의 비중도 높다. 는 의미로 자연 이 기능하면서 이들이 재발견 되었던 것이다. 이 는 문학 혹은 민족의 개념을 형성하면서 문종 혹은 지역 및 지리 적 조건 등을 호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44) 실제로 본 에는 이를 상기할만한 다수의 기행문이 존재한다. 시문독 이처럼 민족의 이산과 방랑서사, 즉 민족의 식민적 재편성( 여정, 정착과정) 을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그것이 소설로 정착되어 드러 나기 이전까지, 많은 경우 기행( 문) 의 형태로, 혹은 아직 정착되지 못한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부유하면서 독본 안에 존재하였던 것이 다. 그리고 이는 민족적 일체감을 고취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 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에서 상상의 공동체 형성을 직접 운위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위한 문화적심리적 기초를 마련하는데 기여하 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Ⅴ. 맺음말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의 문화통합 정책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여 러 사건들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마찬가지로 독본( 讀 本 ) 및 강화 ( 講 話 )류의 형성과 분화 역시 역사적으로 특수한 여러 문화 지형 의 소산이다.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 문학이나 언어예술이 갖는 민족서사의 생래적 측면, 즉 심미적 행위인 동시에 정치적 실천이 었다는 점을 과도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해방과 분단으로 이어 44) 시가 시게타 志 賀 重 昻 는 자연은 민족의 감수성을 생산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데에 내셔널리티(Nationality) 의 주체화가 있다. 고 강조했다. 일본문학과 자연관을 이야기하면서 일본의 근대 초기 문명개화에 뒤처지 고 자연생산력이 낮아 자신을 잃고 있을 때, 자연이 감수성과 정신을 생 산하는 힘 쪽으로 눈을 뜨게 했다는 주장이다. 가메이 히데오( 龜 井 秀 雄 ), 김춘미 옮김, 메이지문학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146 면.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5 36 진 20 세기의 문학사 전반을 볼 때도 이 점은 의식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독본은 문학 그 자체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학 생산의 조건, 문학의 사회적 위상, 나아가 문화의 동학( 動 學 ) 을 텍스트 안 팎의 형식으로 우리 앞에 제시한다. 이것이야말로 독본이라는 창 ( 窓 ) 이 갖는 뚜렷한 근대 독본문화사적 의미다. 독본이라는 창( 窓 ) 을 통해 식민지 근대를 살펴보면 그 자체로도 텍스트가 방대함을 알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다양한 문학과 방대한 문화를 만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비문학적이고 지엽적일지 모르지만 문화론적 지평 안에서 호명되는 순간 하나하나의 의미가 된다. 이 글이 간 략히 서술했고, 앞으로도 탐구해 나갈 방향은 그 창이 당대의 필 요와 이해를 통해 끊임없이 창밖( 현실) 을 보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식민지 근대에 침전된 다양한 위계의 흔적들 이 묻어있다는 점이다. 정치적문화적 독본이라는 창은 둥근 모양도 네모란 것도 있다. 또 투명한 것 과 반투명한 것, 그리고 불투명한 것도 있다. 한때 맹렬하게 역사 적으로는 1920~30년대 독본의 형성분화와 1945~55년 사이 독 본의 귀환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유행하기도 하는데, 그 안의 양 상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또 단일할 수도 없다. 동일한 대상을 다 른 방식으로 인식함으로써 상상의 공동체를 호명하는 민족적 양상 도 있고, 특권적 지위가 강화되고 장르와 위계가 재배치되는 문학 적 양상도 있고, 수양 및 입신출세주의의 이념을 매개하는 통속적 양상이 존재하기도 한다. 전시동원체제기의 그것은 생활전반을 통 제하는 매뉴얼의 성격이 노골화되기도 한다. 결국 독본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 당대 독자들이 욕망을 재 구성한 대중적 양식( 제도) 이다. 특히 구성되고 확산되는 방식에 있 어 더욱 대중적이다. 따라서 이는 독본이라는 텍스트가 갖는 생산 성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인바, 텍스트가 궁극적으로 창출하는 문 화상징권력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독본이란, 역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학문이나 분야를 축조하는 문화적 양식( 제도) 이라고 할 수 있다. 축조의 과정은 텍스트의 구성과정과 더불어 독본의 반영성 을 드러내준다. 정전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근대 독본의 결과는 어느 일방의 의도가 순조롭게 관철된 결과 라기보다는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노정했다. 식민지 동화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총독부의 기획과 다른 방식으로 전유 ( 專 有 ) 된 측면도 있지만, 독본에 대한 총독부의 적극적 개입 이에 비하면 검열이란, 소극적 개입에 불과하다 을 지배/ 저항, 타율성/ 자율성 논의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복수( 複 數 ) 의 글쓰 기 사이에 존재하는 길항( 拮 抗 ) 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공존과 분할 의 방식 및 상호영향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 1. 기본자료 참고문헌 최남선, 시문독본 정정합편, 신문관, 1922(1916,1918) 조선총독부,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 권1-6),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1923 조선총독부, 신편 고등조선어급한문독본 ( 권1-5), 조선서적인쇄주식회 사, 1924-1926 조선총독부, 여자 고등조선어독본 ( 권1-4),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1924-1928 새벗사 편집부, 어린이독본, 회동서관, 1927 2. 논문 구자황, 독본을 통해 본 근대적 텍스트의 형성과 변화, 상허학보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7 38 13 집, 상허학회, 2004.8, pp.213~215., 근대 독본의 성격과 위상(1) -- 최남선의 시문독본 을 중심 으로, 탈식민의 역학, 소명출판, 2006, pp.116~119. 문영진, 정전 논의에 관련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민족문학사연 구, 2001.6, p.60. 박광현, 경성제국대학 의 문예사적 연구를 위한 시론, 한국문학연 구 제21 집,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1999, p.365. 박진숙, 식민지 근대의 심상지리와 문장 파 기행문학의 조선표상, 조선적인 것 의 형성과 근대문화담론, 소명출판, 2007.8, pp.69~74. 우미영, 동도의 욕망과 동경이라는 장소(Topos) -- 1905~1920년대 초 반 동경 유학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109호 (30권 4 호), 2007. 겨울, pp.96~97. 이혜령, 한글운동과 근대 미디어,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문학 장 의 재발견, 소명출판, 2004.12, pp.43~53. 장 신,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집과와 교과서 편찬, 역사문제연구 16 호, 2006, pp.61~62. 조지원, 1920 년대 중등학교 조선어 독본 분석, 고려대 교육대학원, 2007.8, p.42. 마쓰이 다카시 三 ツ井 崇, 식민지하 조선에서의 언어지배 -- 조선 어 규범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연구 4 호, 2003.6, p.221. 마쓰이 다카시 三 ツ井 崇, 식민지시기 조선에서의 언어운동 전개 와 성격, 흔들리는 언어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08, pp.367~370., 탈식민의 역학, 소명출판, 2006, pp.103~121. 오성철, 식민지 초등교육의 형성, 교육과학사, 2000, pp.26~27. 임형택 외, 흔들리는 언어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2008, p.416. 윤여탁 외, 국어교육 100년사 1 2,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8, pp.70~ 72. 장석만 외, 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다, 돌베개, 2006, pp.54~59.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2003, pp.348~350. 허재영, 일제 강점기 조선어 장려 정책 8 권, 도서출판 역락, 2004, pp.21~30. 가메이 히데오 龜 井 秀 雄, 김춘미 옮김, 메이지문학사, 고려대학 교출판부, 2006, p.146. 고마고메 다카시 駒 込 武, 오성철이명실권경희 옮김, 식민지제 국 일본의 문화통합, 역사비평사, 2008, pp.107~164. 3. 단행본 문혜윤, 문학어의 근대, 소명출판, 2008, pp.146~166. 민족문학사연구소 기초학문연구단,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문학 장 의 재발견, 소명출판, 2004, pp.281~282.

근대 독본문화사 연구 서설 39 40 An Introduction to the Culture History of Modern Basic Reader Gu, Ja-hwang This study took interest in investigating the traces of diverse political and cultural hierarchies accumulated at the bottom of the scene around basic readers themselves or the production of basic readers. The ultimate goal was to reorganize the ways of modern basic readers' historical existence in specific ways. Examined in the study for the purpose were the major Korean basic readers issued by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and the private basic readers during the period of Second Education Act. Although the Korean basic readers issued by the Chosun Government- General attempted to install the infrastructure(the textbook publication system) to establish and integrate the same educational system across the nation, they attracted active criticism both from the teachers and the students, which means that the Japanese rulers' purport for cultural integration didn't pan out the way they intended. They made the history of colonized Chosun, but it was not according to their will. The history of colonized Chosun was not written in the environment chosen by the Japanese rulers but in the environment given(or already formed or inherited) in front of them. The given environment allowed for the countercurrent of integration and created a room for private basic readers, thus promoting the production system of private basic readers. In other words, it would call for the dead tradition anew, stimulate the survival strategy of the colonized people, or serve as a lever for deterritorialization through the appropriation process. The letters in the Korean Basic Readers were the results of the introduction of a reader production system to promote modern communication or overall literacy or to lecture about locality. In the Poetry and Prose Basic Readers, they covered the letters with something literary and the travel sketches with something nationalistic and thus attempted active production of a different meaning. That is, they introduced letters to the basic readers as a mechanism to describe the inside of the readers and stir their desire for beautiful writing. In the travel sketches, nature functioned to increase the readers' nationality and was rediscovered. The Edition Department of the Chosun Government-General was actively involved in basic readers. The contents of the basic readers concealed integration while having the production system of basic readers share with the private basic readers in terms of materials and systems. That is, the production system of basic readers made it impossible for the Japanese rulers to simplify their approaches towards Korean language policies and textbooks in the logic of dominance/resistance and heteronomy/autonomy. Although the competition aspect present between plural writings is important, it's necessary to suppose the ways of coexistence and separation and the mutual influences. Key words : lecture, basic reader, cultural history of basic reader, system of basic reader production, production system of basic readers, literary field, integration of culture, value of introductory remarks, appropriation, countercurrent of integration 구자황 성균관대 연구교수 주소: (143-831) 서울시 광진구 구의3 동 593-3번지 노블타운 302호 전화번호: 019-373-2378 전자우편: pakua@naver.com 이 논문은 2008 년 11월 13일 투고하여 2008 년 12월 20일까지 심사완료하여 2008 년 12월 30일 간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