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2010) : 73~99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1) 육 상 효** 1. 들어가는 말 한국의 영화와 TV 드라마에 아시아 여성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베트남 여성이다. 왜 베트남 여성인가? 한국이 참전한 베트 남 전쟁 때문인가? 영화 <하얀 전쟁>, <푸른 옷소매>, 드라마 <머나 먼 쏭바강>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베트남 배경의 공포영화 <알 포 인트>, <므이> 속의 베트남 여성들은 무엇인가? 전쟁이 끝난 지 삼 십년이 넘은 시점에 왜 베트남 여성들은 우리의 영화 속에 불쑥 귀 신이 되어 등장하는가? 또한 최근의 TV 드라마 <하노이 신부>나 <산 너머 남촌에는>, <황금신부> 등에 다시 등장하는 베트남 여성 들은 누구인가? 2005년 현재 결혼이민자 여성의 수는 중국 출신이 조선족, 한족을 합쳐 4만 명을 넘고 베트남 출신은 7천 7백 명 정도 이다(김현재 2007: 226). 중국 출신 여성이 베트남 출신 여성의 4배 가 넘는 셈이다. 그런데 중국 출신의 신부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 는 TV 드라마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더구나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과 훨씬 더 많은 역사적인 교류가 있었으면서도 중국 여성이 * 본 논문은 인하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습니다. **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문화콘텐츠전공 조교수
74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국 영화도 거의 없다. 왜 유독 베트남 여성만 이 우리의 영화와 TV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가? 전쟁은 한국에게 참혹한 베트남 경험이었다. 자유수호의 전사로 참전했다가 제국주의의 용병으로 귀환한 장병들의 집단적 상처는 정치적 관점에서든 실존적 관점에서든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필요 로 했다(송승철 1993: 79-81). 그것은 또한 시간적, 인식적 거리를 확보함으로서 상처를 객관화하는 방식이기도 했다(장두영 2008: 410-419). 이렇게 나온 <하얀 전쟁>, <머나먼 쏭바강> 등의 베트남 전쟁관련 소설들은 자연스럽게 베트남 전쟁 영화로 전이되어 대중 앞에 나타났다. 전쟁은 정서적 격렬함과 남성적 스펙터클로 언제나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베트남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가 많은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전쟁물 외에도 베트남 관련 영상물들은 여전히 많다. 두 나라 간의 역사적 유사성에서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양 국은 공히 1)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제국의 일원이었으 며, 2) 20세기를 전후하여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했다. 또한 3) 제 국주의로부터의 해방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했으며, 결정적으 로 4) 미국이 개입한 전쟁도 같이 경험했다(전상인 1996: 67-70). 역 사적 유사성은 정서적 동질감을 만들어내고, 이 동질감은 한국의 관 객들이 베트남 관련 이야기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는 것이다. 최근 급격하게 베트남 신부들이 한국의 농촌으로 결혼 이주를 해오는 현상에 대해서도 한국인과 외모적, 문화적으로 유사 하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역사적 친밀감 때문에 한국 남성이 결혼 상대자로 베트남 여성을 선호한다는 분석(김현재 2007: 228)에서도 양국의 정서적 동질감은 확인된다. 그러나 여전히 남는 문제는 있다. 왜 중국 여성은 아닐까? 문화적, 외모적으로도 훨씬 더 유사하고, 한국으로의 결혼 이주 여성의 수도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75 베트남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 여성은 한국의 영상 매체에 자 주 등장하지 않는다. 탈식민주의 담론의 타자화 이론은 이 점에서 중요한 시사를 준다. 식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 당화하기 위해 늘 열등한 타자를 필요로 한다. 동일자의 반대 개념 인 타자(The other)는 자신들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계층 및 인종을 일컫는다. 그들이 타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인종 적, 문화적, 도덕적, 기술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다(박종 성 2006: 29). 우리의 영상 매체에서 베트남 여성은 우리라는 동일자 에 대한 타자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의 관객들은 베트남 여성을 보면서 자신들의 문화적, 경제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 여성들이 우리의 영상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해진다. 중국과 우리 사이에는 타자화를 위한 적절한 거 리가 확보되지 않는다. 그들은 타자화 되기에는 우리와 너무 가까웠 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베트남 여성은 가장 우리와 유사한 타자였 던 셈이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본격적인 관계의 시작은 베트남 전쟁이었 다. 아시아 민족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충돌(전상인 1996: 69)이라 는 이 전쟁에서 아시아 민족인 한국은 이번에는 미국의 이익을 대리 하는 동맹군으로 참전하였다. 최원식(2009: 140)의 표현을 빌리면 두 나라 관계의 시작은 아류 제국주의적이었던 것이다. 베트남의 사 회주의화 이후 적대국으로서 국교가 단절되었던 두 나라는 1992년 12월 22일 정식 수교하였다. 양국이 불편한 과거를 묻어두고 수교한 것은 베트남 식 경제 쇄신책인 도이모이 정책에 한국의 경제력이 필요했던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던 한국, 두 나라의 이해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수교 이후 경제 교역량은 급속히 늘어 2006년에 이미 한국의 베트남 누적 투자액은 85억 달러에 달하 고 한해 교역량도 5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1500개의 한국
76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으며, 한국 교민도 6만 명에 이르게 되었 다(연합뉴스 2007/07/02). 베트남에 한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 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신윤환( 1993)은 이 새로운 국면을 신제국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신제국주의 란 2차 대전 이후 전통적 식민지들이 사라지면서 미국으로 대표되 는 중심부 나라들이 정치적 통치 없이 경제적으로 제3세계 국가를 지배하는 방식이다. 신윤환(1993: 306-308)은 이 신 제국주의가 구 제국주의처럼 중심국과 주변국의 관계가 일방적인 수탈의 관계를 이루지는 않지만, 중심국 자본들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훨씬 더 노골 적이라고 본다. 그는 한국은 미국이라는 중심국의 신 식민지적 속 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미약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신 제국주의적 속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 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보면 한국과 베트남을 아우르는 문화적 담론 에도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적 관점을 도입하는 것은 유효하 다. 그것은 이 논의가 진정으로 겨냥하는 것이 전통적 식민지의 해 체 이후에 잔존하는 식민주의적 의도들을 문화적으로 읽어내는 것 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의도는 한국의 영화 속에서 베트남 여성 들이 어떻게 타자화 되어 왔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 여성에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식민주의와 유교적 가부장제도이라는 이중의 타자화 전략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들여 다보는 것은 우리 내면의 음험한 아류 제국주의적 속성과 맞대면하 는 것임과 동시에 가부장적 통속성과도 대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77 2. 베트남 관련 영화 속의 여인들 강성률(2008: 404-425)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베트남 관련 영화의 종류를 4가지로 구분한다. 반공영화와 멜로드라마, 전쟁의 상처와 죄의식을 다룬 영화, 우리는 결국 외세 용병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 는 영화가 그것이다. 반공영화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당시에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말한다. 자발적 시장에 대한 상 업적 의도보다는 국민들에게 베트남 참전의 정당성과 참전의 성공 을 홍보하고 싶은 의도가 많았던 이 영화들은 주로 정부의 지원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되는데, 국군의 활약상을 기록한 기록영화 <월 남전선 이상 없다>와 반공주의 시각의 극영화 <맹호작전>, <여자 베트콩 18호> 등이 그것들이다. 베트남전을 일방적인 반공주의 시 각으로만 보는 것도 현실과 차이가 있고, 홍보성 목적을 가진 관제 영화들이란 점에서 작품적으로는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는 영화들 이다. 종전 후인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에 주로 만들어진 멜로 드라마들은 과거 베트남 전쟁의 기억이 현재의 사랑에 장애가 되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이다. <사랑 그리고 이별>, <미 친 사랑의 노래>, <푸른 옷소매> 등이 그것들이다. 그 다음에 나오 는 영화들이 전쟁의 상처와 죄의식에 관한 영화들이다. <우리는 지 금 제네바로 간다>, <하얀 전쟁> 등의 영화들로, 전쟁이 더 이상 승리와 패배로만 귀결되는 이념적 대상도, 개인적 사랑의 장애물만 도 아닌, 인간성을 파괴하는 참혹한 실존의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출 발하는 영화들이다. 마지막 종류의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 군이 또 하나의 외세이거나 아니면 용병일 뿐이라는 정치적 자각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이다. 공포영화 <알 포인트>와 독립 다큐멘터리 <미친 시간> 그리고 최근작 <님은 먼 곳에> 등의 영화들이 외세이 자 동시에 용병이었던 한국군의 이중적 입장을 다룬 영화들이다.
78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강성률의 분류는 베트남 전쟁 관련 영화들을 주제적으로 구분함 으로써 베트남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변화 과정을 드러내준다 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러 주제가 한 영화에 공존하는 영 화 작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그의 분류가 오히려 개개의 작품들을 단순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또한 전쟁의 상처 같은 주제적 규정과 멜로드라마 같은 장르적 규정을 애매하게 혼용 하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님은 먼 곳에>를 외세이 자 용병이라는 인식 의 영화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또한 가 장 전형적인 전쟁 멜로드라마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알 포인트> 같은 영화도 같은 종류의 정치적 인식을 주제로 하는 영화라 분류하 고 있지만 실상 영화는 그것은 단지 배경이고 공포를 생산해 내는 장르적 공포 영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지나치 게 정치적 해석을 한 측면도 있다. 또한 베트남 전장의 장면이 하나 도 나오지 않아도 베트남의 기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베트 남 영화 에 포함시켜,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베트남 영화 를 규정하 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권호(2006: 83-84)와 백태현(2009: 9)은 베트남 전쟁 영화들을 1) 전쟁을 직접 다룬 휴머니즘 영화, 2)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을 다 룬 영화, 3) 참전 군인을 영웅적으로 다룬 액션 스릴러물로 나누고 있다. 1) 백태현은 1)의 영화들로 <여자 베트콩 18호>, <푸른 옷소 매>, <하얀 전쟁> 등을 들고 있고, 2)에 해당하는 영화로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클래식>을, 3)의 영화로 <추적>, <구사일생> 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의 분류 역시 직접 전쟁 장면의 유무로 1)과 2)를 구분하는 단순화를 범하고 있다. 또한 3)에 해당하는 영화 로 의미 있게 다루어질만한 영화는 거의 없는 것도 이 분류의 흠이 1) 백태현은 김권호의 3가지 구분을 한국 전쟁 영화와 베트남 전쟁 영화를 혼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차이가 없는 방식으로 구분하고 있다.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79 다. 더구나 전쟁 관련 영화에만 국한되어 전쟁뿐 아니라 포괄적으로 베트남에 관련된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는 본 논문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의 반공 베트남 영화 속에서 베 트남 여성은 처음으로 우리 관객들과 만난다. 백태현(2009)의 분류 에서 1)의 영화들 중 앞 시대에 제작된 영화들이다. 참전 홍보와 반 공 이데올로기로 베트남 여성을 의미 있게 노출시키지는 않지만 <여자 베트콩 18호>같은 영화에서는 거의 주연급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면서 오랫동안 베트남 소재 영화는 한국에서는 금기가 되었다. 베트남 이야기가 한 국 영화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한 베트남 전쟁 후일담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그 배경이 한국이고, 한국 사람들이 주요 등장인물이어서 베트남 여 성을 영화 속에서 만나보기는 힘들다. 베트남 현지에서 촬영한 베트 남 전쟁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이다. <푸른 옷소 매>(감독 김유민, 1991)를 필두로 <하얀 전쟁>(감독 정지영, 1992), 그리고 TV 드라마로 <머나먼 쏭바강>(연출 이강훈, 1993) 등이 쏟 아져 나오면서 영화와 TV 화면에는 갑자기 베트남 전쟁의 장면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한국 내의 정치적 상황에 다른 검열의 완화와 종전 15년이 넘으면서 드디어 객관적으로 전쟁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 거리의 확보, 그리고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 <풀 메 탈 자켓> 등 미국 베트남 전쟁 영화들의 국내 개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하얀 전쟁>은 전쟁 속에서의 인간성 훼손과 그로 인한 상처와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베트남의 전쟁터와 그 후의 서울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군인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한국 남성들을 주되게 다루고 있 어 의미 있게 나오는 베트남 여성을 찾기는 힘들다. <푸른 옷소매>
80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와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는 베트남 여성이 여주인공으로 나 온다. 두 작품 속에서 베트남 여성은 한국 남성과의 러브스토리의 대상으로 나온다. 어쩌면 처음으로 베트남 여성이 한국의 관객들과 뚜렷하게 조우하는 이 영화들 속의 베트남 여성들은 마치 전장에 핀 꽃처럼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여주인공으로 나온다. 1993년의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을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다시 오랫동안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90년대 초반의 전쟁 영화들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 시장의 상업적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킨 이후에 한국의 영화는 전쟁 이외의 것들로 베트남과 접촉 할만한 접점을 잃어버렸다. 적어도 한국의 영화 속에서 한국과 베트 남의 삶은 전혀 연관성 없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영화들이 양쪽 삶에서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관련성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쯤 지났을 때였다. 그 하나는 공포 영화의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서 왔다. <알 포인트>(감독 공수창, 2004)와 <므이>(감독 김태 경, 2007),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두 편의 공포 영화가 나온 것이 다. <알 포인트>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들이 주 인물로 나 오지만 <므이>는 전쟁 이후의 현재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최초의 한국 영화이다. 두 영화에는 베트남 여성이 귀신으로 나온다. 한국 의 영화에 갑자기 베트남 여성이 귀신으로 몰려 온 것에는 베트남의 역사, 이국적 풍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의 접점은 새로운 현실에서 나왔다. 한국인의 삶에 베트남 이주여성 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농촌으로 시집 온 베트남 여성들이 몇몇 방송의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등장하 더니, 어느새 TV 드라마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노이 신 부>(연출 박경희, 2005), <산 너머 남촌에는>(연출 유현기, 2007~현 재), <황금신부>(연출 운군일, 2007~2008) 등의 드라마에서 베트남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냉전논리 속에서 베트콩 여전사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81 로 그려지던 베트남 여성이 전쟁의 꽃과 이국적 유령을 거쳐서 드디 어 현재 우리 일상 속의 인물이 된 것이다. 3. 양가성(Ambivalence)의 타자화: 전쟁 멜로드라마의 베트남 여성들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문화이론가 호미 바바는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조소의 대상으로서 식민지 담론의 양가성에 주목한다(호미 바바, 나병철 2002: 147). 그에 의하면 식민 모국이 피식민국을 보는 방식은 자신들을 모방하되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차이를 전제하는 양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식민지적 모방의 이런 양가성은 결국 식민 모국과 피식민국의 문화가 양피지처럼 결합되는 혼종성 (Hybridity)을 낳게 된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창시자 에드워드 사이 드는 이 양가성에 대해 서양은 익숙한 동양에 대해 조롱을, 그리고 새로운 동양에 대해 즐거움 혹은 두려움을 드러낸다고 한다(고부응 외 2003: 227). 그에 의하면 서양인의 시선 속에서 동양은 한편으로 는 관능성을 나타내는 나약한 여성으로, 또 다른 편으로는 후진성을 보이는 야만적인 남성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베트남전 배경의 전쟁 멜로드라마 속에서 베트남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가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관능성과 야 만인 남성에 두려움은 영화 속의 베트남 여성들 속에서 이국 여성에 대한 관능적 시선과 잔인한 여자 베트콩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자화 된다. 관능적 시선은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 시선을 반영하고, 여자 베트콩에 대한 두려움은 레드콤플렉스와 아마조네스 공포가 함께 빚어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것은 긴 생머리와 허벅지까지 트인 아오자이 속의 이국적 여인이나, 혹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82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품에서 수류탄을 꺼내 던지는 월남 소녀의 모습이다. 1967년 작 <여자 베트콩 18호>(강범구 감독) 2) 속에서도 이러한 양가성은 두드러진다. 그 동안의 쓰라렸던 훈련도 우리가 자유수호의 십자군으로 멀리 떠나는 이 날의 감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들 가슴 속엔 모든 자유국가는 공산침략을 막을 의무가 있고 뼈저린 공산 침략을 맛본 한국도 예외는 아니며 조국의 영예와 용맹한 한국군 의 전통을 지키자는 굳은 결의 그것뿐이었다(곽일로 1967: a-5). 시작 부분의 이 내레이션에서 보이듯이 이 영화는 반공주의 이데 올로기와 참전 한국군에 대한 영웅적 찬사의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 러나 스토리 중심에는 한국군 중사와 베트남 여자의 러브 스토리를 위치시켜 최소한의 상업성을 담보하고 있다. 당시 개봉 포스터도 주 연을 맡은 한국 배우 박기수와 베트남 배우 깐난의 사진을 중심에 놓고 박력!, 격정 등의 문구로 수식하며, 전쟁 스펙터클과 이국 여인과의 사랑이라는 이 영화의 상업적 지향점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적진에 고립된 김 중사의 분대가 사로잡힌 여자 베트콩 신의 길안내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은 원래 베트 콩이 아니고 남베트남 출신으로 연인을 찾으러 전장을 다니다가 베 트콩에게 잡혀 억지로 베트콩 행세를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김 중사의 도움으로 신도 한국군 진영에서 풀려나고 그러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베트콩 연 인의 강권으로 신은 또 다시 베트콩 활동을 하게 되고 김 중사의 부대와도 싸우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김 중사와 신의 설득으로 신의 베트콩 연인은 남부 베트남으로 귀순하고, 그런 두 사람의 행 2) <여자 베트콩 18호>의 영상 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한국 영상자 료원이 보관하고 있는 촬영 시나리오를 참조한다.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83 복을 빌면서 김 중사는 떠난다. 영화 속에서 베트남 여인 신은 한국군과의 교전 장면에서 베트콩 으로 처음 등장한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군복 속에 서 신은 한국군과의 백병전 중에 사로잡힌다. 여자 베트콩에 대한 두려움, 즉 후진적 야만성에 대한 두려움으로 타자화 되는 장면들이 다. 그러나 신의 정체가 베트콩이 아니고 베트콩에 사로잡힌 남베트 남 여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신의 모습은 급격히 여성적으로 변 한다. 먼지와 땀투성이 얼굴이지만 어딘가 순진한 아름다움이 엿보 이는 여자 (곽일로 1967: a-28), 여자, 수통의 물을 마시고, 자기 입 이 닿았던 곳을 손으로 훔쳐 내민다 (곽일로 1967: a-37), 강깃 가까 운 잔디에 나란히 앉은 김중사와 신, 좀 사이를 두고 앉은 그들 시선 이 마주치자 가끔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인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의 미소는 말 이상의 것을 얘기하고 있다 (곽일로 1967: b-33) 이상의 시나리오 지문에서 보듯 여인의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국의 여인으로 다시 타자화 된다. 양가성의 경계는 이 영화에서는 이데올로기이다. 공산주의 진영의 여인은 아마조네스적인 야만성으 로 재현되고, 자본주의 진영의 여인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드러난다. 레드콤플렉스와 남성 중심의 성적 판타지가 한 영화 속에서 양가적 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의 결과는 우리와 다른 그들 이라 는 타자화인 것이다. 영화 끝에서 김 중사와 신은 맺어지지 않는다. 김 중사가 헬기 위에서 신과 그녀의 연인 민을 내려다보며 그들의 행복과 베트남의 자유 민주 수호 를 기원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 난다. 인종 간의 결합은 봉쇄되고, 잠시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가까 워지는 식으로 시도 되던 모방 은 결국 확연한 차이 를 노정한 채 끝난다. 헬기를 타고 위에서 베트남 땅과 사람을 내려다보는 마지막 장면의 설정도 이 전쟁에 처한 한국의 아류 제국주의적 입장을 내비 친다.
84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양가적 타자화는 김유민 감독의 1991년 작 <푸른 옷소매>에서 한 층 분명한 모습을 띤다. 북베트남의 승리로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16년이 지나서 나온 이 영화의 여주인공 레이는 <여자 베트콩 18 호>의 신과 자매처럼 닮아 있다. 냉전의 이데올로기는 주인공인 한 국군 남자의 자의식과 상처로 바뀌어 있지만 베트남 여성에 대한 영화적 묘사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영화 속에서 베트콩 여전사 레 이는 국군인 이종원을 포로로 잡는다. 그러나 베트콩의 캠프에서 포 로와 감시자로 지내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 레이는 이종원을 구해 주지만 자신은 한국 군인들의 사격으로 죽는다. 레이 역시 전투복을 입고 소총을 든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녀 는 여전사의 모습보다는 사랑에 빠진 유약한 여성의 모습으로 전이 되어 간다. 복장은 검은 전투복에서 색깔 있는 아오자이로 바뀌며, 처음을 제외하곤 소총을 든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 는 영화 속에서 한국의 남성 관객들이 갖는 이국 여인에 대한 성적 환상을 철저히 만족시키는 쪽으로 조립된다. 그녀의 역을 맡은 배우 는 베트남 배우가 아닌, 당시 <변강쇠3>라는 영화로 섹시 여배우의 이미지를 강화한 하유미이다. 영화는 이 한국의 섹시 여배우에게 이 국의 옷을 입혀 한국 남성 관객들의 은밀한 성적 판타지를 만족 시 킨다. 그녀는 강인한 베트콩 여전사이면서도 영어를 구사하고, 음악 을 이해하며 아름다운 얼굴에 베트남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볼륨 있는 몸매를 갖고 있다. 그녀가 스스로를 희생하며 한국의 남성을 살릴 때 이 성적 판타지가 가진 가부장적 남성 중심주의의 음험한 의도가 명확해진다. 당연히 영화 속에서 그녀를 드러내는 카메라도 객관적이고 주체적인 숏들보다는 남자 주인공 이종원의 주관적 시 점 숏을 통해서 성적 매력을 관음증적으로 확대시킬 뿐이다. 로라 멀비(1993: 56-57)가 간파한대로 지배적인 남성의 시선에 따라 여성 인물에 성적 환상을 투사하는 것이고 영화는 이것에 따라 양식화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85 되는 것이다. <푸른 옷소매>보다 2년 뒤에 나온 SBS 창사특집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서 양가성은 훨씬 더 내면화 된다. 드라마는 앞의 영화들 보다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한국 병사 황일천과 베트남 여인 빅 뚜이의 사랑을 다룬다. 베트콩 여전사가 아닌 빅뚜이는 한국의 영상 매체에 처음으로 의미 있게 등장하는 베트남 일반 여인이다. 당연히 이전의 영화들에서 베트남 여성에 대한 양가성의 한 축을 이루던 아마조네스 공포는 사라진다. 남성적인 여성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지점에 등장하는 것은 원주민, 즉 인종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녀는 마치 미국 영화 속의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이스 켈리처럼 성적 욕망 이 완전히 거세된 곳에 구원의 여신처럼 놓여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의 삶과 베트남에서의 삶, 둘 다에서 좌절한 황일천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사랑의 대상이다. 베트남의 언덕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아오자 이를 입고 서 있거나, 비오는 처마 밑에서 땅을 보며 조용히 흐느끼 는 그녀의 순수성은 전쟁의 장면이 광폭하거나 야만적일수록 빛난 다. 한국군 성병 치료소 생활의 부조리가 심해질수록 황일천은 그녀 와의 사랑이 마치 삶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집착한다. 이국적 여 인에 대한 한국 남성의 성적 환상은 순수한 사랑으로 전이된다. 그 러나 순수한 사랑은 인종적인 거부감이라는 양가성의 또 다른 축과 만난다. 그녀는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이었지만 한국 여인과는 다른 베트남 여인 이었던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황일천이 그녀와의 결 혼을 놓고 갈등하는 장면은 이 양가성이 황일천의 내면에서 충돌하 는 것이고, 결국 황일천은 그녀를 버리고 떠남으로서 양가성의 갈등 을 봉합해 버린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그녀는 한국에 온다. 그러나 드라마는 그녀가 한국에서 황일천을 만나는 것은 보여주지 않는다. 원주민의 백인 남성에 대한 동경은 모방 으로서 인정되나, 백인 남 성과의 합법적 결합은 차이로서 거부하는 미국 영화의 식민주의적
86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사고와 닮아 있다. 4. 또 하나의 정형화 -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베트남의 여자 유령들 재현(Representation)이란 대상, 사람, 현상 간에 의미가 생성되고 교환되는 과정이다(박종성 2006: 30-31). 식민지배자들은 재현을 통 해서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 이 문화적 정당화의 방식중 의 하나가 정형화(Stereotype)이다. 서양인은 동양인은 열등하다는 정형화를 통해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우월성을 주장해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주재 영국 총영사를 지내면 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이끌었던 에블린 베어링 크로머의 동양인에 대한 정형화는 그 자체로 독보적이고, 또한 전형적이다. 동양인의 정신은 동양의 기이한 길거리와 마찬가지로 균형이 현 저히 결여돼 있다. 동양인의 추론은 매우 감상적인 것이다. 고대 아랍인은 약간 높은 논증술을 습득했으나, 그 후손들은 논리적 능 력이 극심하게 떨어져 있다. 그들은 그들이 인정할 수 있는 진리 의 단순한 전제로부터 가장 분명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 2007: 78). 크로머는 동양인의 지적 능력을 폄하함으로써 영국의 식민 지배 를 정당화했다. 또한 그의 논리는 피식민자인 이집트인들에게도 주 입되어 자신들의 피식민 상태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하기도 했다. 1994년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을 끝으로 베트남은 오랫동안 한 국의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전쟁도 끝났고, 그 전쟁에 대한 회고도 끝났다. 한국의 영상 매체는 베트남과 연관된 더 이상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87 의 문화적 접점을 찾지 못했다. 베트남이 우리의 영화에 다시 등장 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2004년이었다. 1992년 수교 이 후 베트남과 한국의 경제 교류가 한창일 때였고,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인의 일상으로 서서히 들어오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번에는 귀신이었다. 전쟁 멜로드라마 속에서 두려움과 성적 판타지 라는 양가성으로 재현됐던 베트남의 여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공포 영화 속의 귀신들로 정형화되어 한국의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 의 영화들은 전쟁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적으로 찾아온 베트남 여인 들을 공포 영화 속 귀신들로 타자화시키게 된 것이다. <알 포인트> 속의 공포는 전쟁과 반식민주의에서 나온다. 프랑스 식민 시절에는 프랑스 병사들이 죽었고, 베트남 전쟁 시에는 미군들 이 몰살당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군들도 하나 둘 죽어간다. 전쟁 멜 로드라마에서 선정적인 미모를 뽐내던 베트콩 여전사는 이제는 죽 어 원귀가 되어 남성과 외세라는 이중의 억압에 대해 복수하고 있 다. 베트남은 이제 한국의 관객들에게 정치적 상상력에 의한 공포 영화를 가능케 하는 곳이며, 그 속에서 베트남의 여인들은 아마조네 스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장르 영화의 문법 속에서 구현하는 매개체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을 피식민지적인 피해의 식 아래에 놓고, 은연중에 한국을 식민지배자의 지위에 위치시키는 한국 영화의 무의식이 이 공포의 생산을 뒷받침한다. 제국주의 나라 의 침략에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인들은 다시 살아나 귀신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영화들은 그 복수의 대상으로 한국인을 설정 함으로서 역으로 한국의 아류 제국주의적 위치를 확인시킨다. 판타지 형태로서의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이중성에서부 터 출발한다. 그 이중성은 수동적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그 욕망의 능동적 분출의 주체라는 점이다. 억눌린 존재의 욕망의 분출에 대 한 판타지가 바로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제라르 렌느 1993:
88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110-122). 전쟁 멜로드라마에서의 두려움과 성적 판타지는 베트남 배경의 공포 영화 <므이>에서는 다시 욕망의 분출과 욕망의 대상화 라는 양가성으로 재현된다. <므이>에서는 사랑의 배신으로 죽게 된 베트남 여인이 원귀가 되어 복수를 한다. 소설가 윤희는 오래전 친구 서연을 만나러 베트남 다랏으로 간다. 거기서 서연에게 그 지역의 흥미로운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조사해 소설로 쓰기로 한다. 1백 년 전 므이는 한 남자를 사랑했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그 남자의 부인이 휘두른 잔인한 폭 력에 얼굴을 잃고 세상을 떠나 얼굴 없는 유령으로 떠돈다. 2차 대전 막바지 패전 직전의 일본군은 사원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훔쳐 그녀 가 원귀가 되어 이승을 떠돌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그녀는 그녀 의 저주를 현대 한국의 여성들에게 내린다. <므이>의 스토리는 베트남 다랏 지역의 풍광의 아름다움에서 출 발한다. 영화는 처음으로 현재의 베트남 풍경을 한국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반 고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다랏 지역의 천연색 풍경, 서양과 동양의 아름다움이 교묘히 혼재된 거리들, 남국식 건물의 인 테리어, 화사한 색감의 아오자이 등 한때 처절한 전쟁터였던 베트남 은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이국의 장소로서 한국의 관객들과 만난다. 그 풍경 위에서 영화는 베트남 여인을 가 부장적 유교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희생된 귀신으로 정형화한다. 여전히 그녀들은 한국의 관객에게 비일상적인 존재이고, 그녀들의 복수의 대상은 또 여전히 한국의 여인들이다. <므이>의 공포는 베트 남과 한국의 차이 에서 나온다. 그 차이가 클수록, 현대 한국의 세 련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베트남 여인의 공포도 커진다. 많은 공포 영화가 과거로부터 귀신을 소환하는 것은 현재와는 다른 어떤 것의 공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므이>는 시간적 과거 대신 현재 존재하는 공간적 과거로서 베트남을 선택했다. 영화 곳곳에 드러나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89 는 베트남의 풍광과 남국의 집들, 형형색색의 아오자이들도 결국은 이 차이 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전쟁 멜로드라마 속에서 베트 콩 여전사로서, 아름다운 이국의 여인으로서 양가화되던 베트남의 여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아름다운 귀신으로 다시 돌아와 한국의 관객들을 위한 이국적 상상력에 봉사한다. 그 두려움과 아름다움의 양 쪽을 함께 지지하는 것은 남성적 시선에 의한 성적 욕망의 억제 와 분출이다. 공포 영화 속의 공포는 성욕을 감추어야 하는 시대에 서는 에로티시즘의 아슬아슬한 등가물이었던 것이다(제라르 렌느 1993: 111). 5. 한국 속의 서발턴(Subaltern) - 베트남 신부들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에서 sub는 하위나 하부의 뜻이라기 보다 substance에서의 sub처럼 우리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처럼 소중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실체를 가리킨다. 하위주체란 생산 위주의 자본주의 체계에서 중심을 차지하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포괄하면서도 성, 인종, 문화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로 확장 될 수 있다(태혜숙 2004: 117). 그람시의 이 개념을 탈식민주의 페미 니즘 이론에 접목시킨 가야트리 스피박은 제국주의와 남성 가부장 주의에 이중으로 핍박받는 여성 하위주체의 목소리가 서구의 문학 이나 여타 제국주의 담론에서 왜곡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스피박은 남편이 죽으면 남은 부인도 그 불 속에 같이 뛰어들어 자살하는 인 도 풍습인 사티에 대한 담론에서도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가짜 인도 주의와 인도 남성들의 가부장적 낭만주의만이 득세하고, 여성 하위 주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는 것에 주목한다. 또한 그녀는 소 설 제인 에어가 유색인종 버사 메이슨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하고
90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는 현실을 서구 중심의 의사 페미니즘 으 로 비판한다. 한국과 베트남의 문화적 접점은 이번에는 베트남 신부들의 이주 로 발생한다. 2001년 불과 134명이던 베트남 결혼이민자의 수는 2004년 2462명으로 급격히 늘었다(김현미 2006: 12).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 국제 경제체제에서 국가 간의 경제력 차이가 사적인 차 원의 성적 결합으로 변환되는, 이른바 이주의 여성화(Feminized Immigration)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지만, 그 외에도 오랜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에서의 여초 현상, 베트남 내의 한류로 인한 한국 남성 의 이미지 제고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이 주로 농촌 출신이거나 도시 에서도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도시 빈민 이어서 이들과 결혼하는 베트남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이 계층에 편 입된다. 더구나 언어와 문화적 차이, 남성 중심의 한국적 가부장제 도 등에 의해 소수자로 고립된다. 계급, 인종, 문화 등의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작용하는 전형적인 하위주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TV 드라마에 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 면 당연한 것이다. 영화가 아직 이들에게서 상업적 형상화의 방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 사회 내 이들의 존재를 주류 사회의 관점 으로 해석하고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책임을 TV가 진 것이다. 2005 년 <하노이 신부>라는 추석 특집 드라마가 그 시작이었다. 드라마의 제목에 신부 라는 말이 붙은 것은 한국 사회 내에서 베트남 여성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가늠케 한다. 2 부작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의 내용은 간단하다. 베트남에 의료봉사를 갔던 한국인 의사 청년이 현지에서 사랑을 나눴던 티브라는 베트남 여인과 헤어져 한 국으로 돌아온다. 그 뒤 이 여성은 결혼 중개업소를 통해서 한국에 맞선을 보러 오는데, 그 상대가 의사 청년의 형인 농촌 총각이다.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91 형제는 이 여자를 두고 갈등하다가 결국 티브는 원래의 사랑이었던 의사 청년과 맺어지게 된다. 드라마는 하롱베이를 중심으로 한 베트 남의 아름다운 풍광과 한국 충주호의 풍광을 병치시키면서 청춘 멜 로드라마의 성격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베트남 여성이 한국의 가족 에 통합되는 과정을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으로만 드러내고, 그 여성 의 입장에서 본 사회적, 문화적 이질감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철저히 두 아들을 키운 홀어머니와 그녀의 두 아들이 베트 남 여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다. 베트남 여 성은 한국의 가정에 통합되어야 할 대상으로서만 드러날 뿐, 그 문 제에 대해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의 끝에서 티브가 끝내 의사 청년을 선택하는 과정은 이 드라마가 농촌의 현실과 그 속에서 타자화 되는 베트남 여성의 현실보다는 후진국 여성이 한국에 와서 맞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더 관심이 있다 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남자의 사랑을 승인하기만 하면 베트남 여 성은 월남댁 으로 한국 가정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 는 베트남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주연인 베트남 여성 티브 의 역할은 한국의 청춘스타 김옥빈이 연기한다. 실제 베트남 배우는 여전히 한국의 TV에서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과거 할리우드 영 화가 동양을 그리면서도 동양 배우들을 출연시키지 않는, 서구인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만 오리엔탈리즘을 그렸던 것과 닮아 있다. 2007년 드라마 <황금신부>는 총 64부작의 주말드라마로 베트남 여인 주연으로 한국 방송에 처음으로 정규 편성된 드라마다. 한국과 베트남 혼혈인 라이따이한 응우 엔 진주는 눈이 멀어가는 엄마에게 한국인 아빠를 찾아주기 위해 천오백 만원에 팔려서 한국에 신부로 온다. 그녀의 남편은 일류대를 나왔으면서도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취업을 못하고 있다. 진주는 베트남 여성 특유의 생활력으로 남편의
92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병도 고치고 쓰러져가는 시댁의 사업도 번창시킨다. 마지막에 그녀 는 생부를 만나지만, 생부 역시 오랜 동안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했다 는 것을 알고 그를 용서한다. 이 드라마가 방영 내내 집요하게 추구 하는 것은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한국 중산층 문화와 베트남 문화의 대비이다. 한국의 중산층이 부유하지만 타락했다면, 베트남은 가난 하지만 건강하다. 드라마는 베트남적인 건강함이 한국 중산층의 타 락을 개선시켜 간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런 모습들은 70년대 TV 드라마 속에서 서울의 중산층 가정으로 시집온 시골 출신의 가 난한 신부가 겪는 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신부들은 노골적인 조롱 과 모멸을 참고 견디며 끝내는 가족 통합을 이루어 낸다는 것이 당 시 드라마들의 기본적인 플롯이었고, 이런 플롯들은 요즘도 재벌가 로 시집간 평범한 집안의 신부로 번안되어 반복되고 있다. 결혼은 언제나 계급 간의 결합이며 그 과정에서 통합은 또 언제나 강자가 바라는 쪽으로 진행된다. 베트남은 현재 한국의 시골이었던 것이다. 과거 드라마 속 시골 여인이 어떠한 역경과 오해에도 스스로는 결코 화를 내거나 타락하지 않았듯이 현재의 베트남 여인도 스스로 타락 할 권리는 없다. 그녀들의 존재 이유는 타락한 한국의 개선에 있지 그녀들 스스로를 위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인이 한국 중산층 가정으로 시집온다는 설정도, 이 드라마에도 역시 베트남 여 인 역할로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한국의 드라마는 여전히 베트남 여인들이 한국에서 맞는 진짜 현실과는 대 면할 준비가 안 됐던 것이다. 2007 년에 시작되어, 지금도 방송되는 농촌드라마 <산 너머 남촌 에는>은 베트남 여인이 처음으로 농촌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또한 실제 베트남 출신의 여인이 주요 역할로 출연하는 첫 번째 한국 드 라마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인물과 배경을 설정해 놓고 매 회 다른 상황을 만들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 주간 시추에이션 드라마에서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93 베트남 신부 하이엔은 이장 집 둘째 며느리로 나온다. 총 방영 횟수 100회를 넘어가는 이 드라마에서 하이엔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는 이야기는 총 5회 정도이다. 하이엔이 마을에 처음 오는 선녀와 나무 꾼 편, 하이엔의 베트남 친구와 같이 하이엔이 도망갈까 걱정하는 남편 순호의 갈등을 다룬 그녀를 믿어주세요 편, 한국 생활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생활에 적응 못하는 하이엔의 이야기인 꿈엔들 잊힐 리야 편, 하이엔의 베트남 오빠가 실제로 하이엔의 남자친구가 아 닐까 걱정하는 순호의 이야기인 내 아내의 남자친구 편, 하이엔의 출산일이 가까워 오면서 아이의 태교와 인종 문제로 갈등하는 부부 를 다룬 내 자식 당신 자식 편 등이 그것이다. 하이엔은 이 마을에 서 전혀 일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착한 베트남 새댁이지만 그녀의 모든 문제는 결국 그녀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것에서 나온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를 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지 그녀 스스로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예쁘고, 생활력도 강하 고 한국의 농촌 사회에도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런 그녀 의 모습은 철저히 한국인이 베트남 신부들에게 바라는 모습일 뿐이 다. 한국의 40대 노총각에게 선녀처럼 떨어진 이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에게는 한국의 여성들이 버린 농촌을 살려내야 할 슈퍼우먼의 임무만 맡겨졌지, 그녀 스스로 고민하고 개척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타락할 권리도 없다. 태어날 아이에 대한 고민을 담 은 내 자식 당신 자식 편에서 하이엔은 아이의 태교를 위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호치민의 사진을 방에 갖다 놓는다. 그러나 이 아이 는 베트남 아이가 아니라 한국 아이 라는 남편의 말에 끝내 사진을 장롱 속에 다시 집어넣는다. 호치민이라는 사회주의자의 사진이 한 국 가정의 안방에 걸릴 수 없듯이 베트남 신부들 스스로의 입장은 여전히 장롱 속에 감춰지는 것이다.
94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6. 맺는 말 스피박은 제국주의와 남성주의 담론 속에 철저히 침묵당한 하위 주체 여성들을 말하게 하기 위해서 말걸기 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하위주체들이 직접 자신들을 재현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윤리성을 가진 지식인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 그들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담론과 문화 영역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태 혜숙 2004: 120). 말걸기란 그들의 현실을 그들의 입장에서 해석하 고 재현하려는 지식인 문화담당자들의 집요한 노력이다. 이런 점에 서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 베트남 여성이 드라마 <황금신부>에 대 해 쓴 글은 스피박의 주장이 한국에서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시사점을 준다. 게다가 베트남 여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아요. 라는 감동적인 대사는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맞 추어 너무 손쉽게 베트남의 여성상을 재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냉엄한 현실을 고려할 때, 시청자들에게 단순한 재미와 근거 없는 희망만을 주는 드라마는 기존의 무책임한 시각들을 재생산할 뿐 이다. 서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동양 의 여자들이 서양 의 구 미에 맞게 그려지고 표현되지 않았던가? 왜 한국의 드라마가 이러 한 병폐를 베트남을 통해 재현하려 하는 것일까? 진주가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복잡한 감정과 어려움들이 사실 그대로 정확히 전달 될 때만이 서구에서 국제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역경도 보다 친근 하게 우리 의 문제로 바라보면서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류 티씽 2007: 42-43). 아류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시작됐던 한국과 베트남 여성의 문화 적 만남은 이제 그 여성들의 하위주체화 라는 새로운 단계에 직면 했다. 여전히 그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은 채 그들은 한국 농촌을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95 살릴 슈퍼우먼이나 한국 사회의 일방적 피해자로서만 정형화되어 그려지고 있다. 그들을 위한 말걸기의 요체는 그들을 일상적 존재로 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일방적 인내나 일방적 긍정, 혹은 일방적 피해의식 등으로 그들의 캐릭터를 상투화 시키는 것이 아니 고, 그들에게도 화내고, 흥분하고, 실수하고, 타락할 권리를 부여하 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은 비로소 베트남 신부가 아니라 한국에 사는 베트남 여성으로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말들이 겨냥하는 것은 당연히 겹겹이 중첩된 우리의 아류 제국주의적인 편견들이다. 주제어: 베트남 여성, 베트남 전쟁, 탈식민주의, 양가성, 정형화, 하위주체 <참고문헌> <1차 자료> 공수창. 2004. 알 포인트. 씨네마서비스. 곽일로. 1967. 여자 베트콩 18호. 한국영상자료원. 김유민. 1991. 푸른 옷소매. 김윤성 영화사. 김태경. 2007. 므이. 빌리픽쳐스. 박경희. 2005. 하노이 신부. SBS. 신창석. 2007. 산너머 남촌에는. KBS. 운군일. 2007. 황금신부. SBS. 이강훈. 1993. 머나먼 쏭바강. SBS. 정지영. 1992. 하얀전쟁. 정지영필름
96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논문 및 단행본> 강성률. 2008. 남한 영화를 통해 본 베트남 전쟁의 기억 역사비 평 84: 404-425. 고부응 외. 2003. 탈식민주의 이론과 쟁점. 문학과 지성사. 김권호. 2006. 한국 전쟁 영화의 발전과 특징-한국 전쟁에서 베트남 전 쟁까지 지방사와 지방문화 9-2: 77-108. 김현미. 2006. 국제 결혼의 전 지구적 젠더 정치학 경제와 사회 70: 10-37. 김현재. 2007. 베트남 여성의 한국으로의 결혼 이민 동아연구 52: 219-254. 박종성. 2006.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살림출판사. 백태현. 2009. 베트남 전쟁의 재현 양식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송승철. 1993. 베트남 전쟁 소설론: 용병의 교훈 창작과 비평 80: 77-94. 신윤환. 1993. 한국인의 제3세계 투자 창작과 비평 81: 303-323. 장두영. 2008. 베트남 전쟁 소설론 한국현대문학연구 25: 383-425. 전상인. 1996. 혁명과 전쟁, 한국과 베트남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 회 논문집 : 65-70. 최원식. 2009.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창비. 태혜숙. 2004.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여이연. 앤 브룩스. 2003. 포스트페미니즘과 문화이론. 한나래. 에드워드 사이드. 2007.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가야트리 스피박. 2005. 포스트 식민 이성비판. 갈무리. 호미 바바. 2002. 문화의 위치. 소명출판.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97 제라르 렌느. 1993. 괴물과 희생자/공포영화 속의 여성 페미니즘/ 영화/여성 : 110-122. 로라 멀비. 1993.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 페미니즘/영화/여 성 : 56-61. 류 티씽. 2007. 어느 베트남 여자가 본 황금신부 플랫폼 5: 42-43. 몰리 해스켈. 2008. 숭배에서 강간까지-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나남. 연합뉴스. 2007년 7월 2일자 기사문. (2010. 4.17 투고; 2010. 5. 22 심사; 2010. 6. 9 게재확정)
98 동남아시아연구 20권 2호 <Abstract> A study on Vietnamese Women in Korean Films and TV Dramas Yook Sang Hyo (Inha University) To properly answer the question 'Why have Vietnamese Women kept appearing in Korean Films and TV dramas?', We need to induce Postcolonial discourse along with historical and cultural similarities between Korea and Vietnam. It is because the relationship of two countries can be defined as a neocolonialism specially in view of economic relationship. Koreans need to locate themselves on the superior position by othering Vietnamese women, who are close enough to be compared and also distant enough to be othered. This paper is intended to bring their being in Korean films and TV dramas under the light of postcolonial discourse. According to the postcolonial concepts such as ambivalence, stereotyping and subaltern, Korean films and TV dramas are classified into three groups, which are Vietnam war melodramas, Horror movies based in Vietnam, and TV dramas with Vietnamese brides. War melodramas have been othering Vietnamese woman through ambivalence of the fear of Vietcom warrior and the fascination of exotic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에 나타난 베트남 여성상 고찰 99 beauty. Horror movies, produced about 10 years later, brought the Vietnamese women back to Korean audience, stereotyping them into ghosts, which are incarnated through the suppression and eruption of sexual desire. The third group consists mainly of TV dramas. Their story usually evolves around Vietnamese brides migrating into Korea. The women are forced into the position of Subaltern, not representing themselves in their own voices. Facing multi-cultural society, our visual media are requested to modify their neocolonial approach of presenting Vietnamese women. To accomplish the goal, they have to find ways of storytelling to show the women in their everyday lives and help them to speak for themselves. Key words: Vietnamese woman, Vietnam war, Post-colonialism, Ambivalence, Stereotyping, Subalt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