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1 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하수( ) 북한의 언어학사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 역사의 기술은 일반적으로 일정한 대상의 시간적 변화와 발전을 보편적이고, 일원론적 이고, 하나의 거대 체계를 중심으로 보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전체의 체계를 구성하는 여 러 부문의 현상을 통합된 흐름의 한 지류로 파악하는 시각은, 역사학이 아닌 언어학적 개 념으로 표현한다면 구조주의적 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적인 시각의 문제는 비체계적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을 손쉽게 그 구조에서 배제해 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특히 언어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활동 역사를 구조주의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파악 하는 일은 어렵다기보다는 다분히 모험적인 사유를 각오해야 하는 일에 가깝다. 그렇지 않고는 언어학과 관련된 더 큰 시대적인 문제의 발전적 재해석 작업에는 탈구조주의화까 지는 아니더라도 기존의 구조에 대한 인식을 일단 해체하면서 재구조화하는 시도가 절실
32 히 필요하다. 북한 사회 라고 하는, 우리에게는 배제된 대상에 대한 재구조화 작업은 그 런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오늘 북한의 언어학사를 들여다보는 나의 작업은 지난날의 언어학적 고정 관념과 대결하는 자그마한 공정 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에 내가 북한의 언어 연구 상황을 살펴 온 시각은 다분히 구조적이며, 동시에 구조주의적이었다. 당시에는 남한의 학계가 북한 학문사를 보는 시각에는 호기심, 남과 북에 대한 질적 평가 욕구, 민족적 애 정과 기대 등 대략 세 가지 시선이 종종 섞여 있거나 특정한 시점에 얽매어 있기 마련이 었다. 덕분에 북한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 오래 전부터 가져온 여러 가지 편견과 감성을 극복하는 데에는 많은 효과가 있었지만 북과 남의 학문적 시각을 통합, 혹은 수렴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의견은 북한의 언어학도 남한과 크게 다를 것은 없는데, 맨 앞에 수령님 말씀 얹어 놓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든지, 지나친 애국심이 드러나서 학문 활동인지 정치 활동인지 구분이 안 된다든지, 목적 의식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하 는 것이 학문적으로 부적절해 보인다든지 하는 불만들이 많았다. 거꾸로 우리가 그런 시 각을 가지는 태도 자체는 별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하는 자기 반성은 적어도 내 눈에는 전 혀 뜨이지 않았다. 북한의 국어학에 대한 남한 학계의 논의는 다양한 편이지만 그 학문적 정체성과 정당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피하고 있는 편이다. 비교적 북한의 언어 연구 경향 에 대해 성격과 흐름을 규정을 시도하고 있는 경우는 크게 보아서 몇 가지의 서로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 하나는 유물론적인 바탕에 주목하는 김민수( ),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으로는 민족주의적 요소에 관심을 표하는 고영근( ), 그리고 내적 비판 을 중심으로 보려고 하는 남기심 김하수( ) 등을 들 수 있다. 김민수( )와 고영근( )은 초기 북한 언어학이 마르크스주의적 연계성을 깊이 가 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을 한다. 특히 김민수( )에서는 마르크스주의적이며 유물론 적인 철학적 바탕을 확인하려는 시도가 무척 강했다. 그에 비해 고영근( )은 철학적 연계보다는 소련 학문과의 유대 관계와 북한 언어학의 민족적 성격에 더욱 주목하는 편 이었다. 크게 보면 비슷하였지만 자세히 보면 접근 방향의 차이가 엿보인다. 이 두 사람 의 작업에서 돋보이는 것은 대단히 정밀한 서지 작업이다. 분단 상황에서 쉽지 않았을 자 료들을 매우 꼼꼼히 점검하려고 노력했다. 또 남기심 김하수( )에서는 북한의 사상적 흐름보다는 정책적 현상과 의미 등을 다루려 했기 때문에 북한의 초기 언어학사를 다루 는 이 자리에서의 논점과는 별로 깊은 관계가 없다. 따라서 북한의 초기 언어학 연구 성 과를 살피는 데에는, 만일 원자료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다면 고영근( )의 정리 작업
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3 도 큰 도움이 된다. 북한처럼 우리와 오랫동안 단절되어 있던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다 양한 자료들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기초 작업이지만 이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더욱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그 해석을 하는 데 있어서 그쪽 사회에서 의도하는 관점과 태도의 문제 역시 대상화하거나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김민수( )와 고영근( )은 아쉬운 점이 많다. 김민수( )는, 좀 오래된 관점을 가 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형적인 냉전 시대의 시각을 바탕으로 하여 해석하려는 경향 이 강하고, 고영근( )은 북한 쪽 스스로의 해석을 그대로 되풀이하듯이 인용과 나열을 주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북한의 언어학적 산물을 학문적으로 이 해하기 몹시 어렵게 서술했다는 약점이 역연히 보인다. 이 두 논저를 중심으로 북한의 언어학을 해석한다면, 처음에는 소련 언어학 이론을 무 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다가 소련에서 그 이론의 정당성이 사라지니까 북한도 그 노선 을 버렸고, 나중에는 민족 중심의 주체사상으로 돌아와 버렸다는, 다분히 세속적인 해석 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그들의 학문사를 본다면 사실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할 가치도 없는 극히 종속적 학문에 지나지 않게 되며, 굳이 남과 북의 학문적 차이와 공통성을 애 써 살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그러한 진단이 그 이후 북한의 언어학에 대한 진지하고 도 집요한 연구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게 되지 않았던 원인이 아니었던가 하는 비판을 아 니할 수 없게 된다. 북한 언어학의 발자취를 좀 더 객관화시키면서 살피려면 그들의 논점과 산물이 그들의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더 적극적으로 살펴야 한다. 만일 가상적으로 주시 경의 의미를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연결시켜 살피지 않는다면 갑자기 나타난 특이한 인물 의 독특한 업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한의 언어학도 그래야겠지만, 특히 북한의 언어학은 분단 당시의 시대적 문제와 단절시켜 볼 수는 없다. 왜 그들은 월북 이 라는 비학문적 행동을 하면서까지 그러한 학술적 담론을 이끌어 갔을까? 하는 문제가 적 어도 우리의 시각의 바탕 속에 깔려 있어야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학은 그러 한 문제에 대한 전진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남한의 언어학과 연계시킬 때 매우 값진 논의 의 결과가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련 언어학의 의미 오래전부터 북한의 언어학을 논의할 때는 으레 두 가지의 정치적 함의가 깃든 사건에
34 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그 하나는 월북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김두봉 의 문제였다. 월북의 문제에 중점을 두면 그들의 활동을 중심부에서 이탈한 주변부의 일로 만들기 쉽 다. 김두봉 문제는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당한 일로 학문적 활동이 정치 영역에서는 하시 라도 제거될 수 있는 하찮은 것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그 학문적 성과는 당연히 그 한 계 안에 있을 뿐이라는 전제를 늘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의 언어학은, 특히 초기에는, 소련의 언어학의 영향에서 벗어 나기 어려웠다는 인식 역시 북한 사회에 대한 중요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북한을 왜곡해서 알게 만든 역정보의 구실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련의 언어학의 영 향을 논하면서, 자주 거론해 온 마르의 언어학 역시 북한의 관심사와 성과를 폄하하는 딱 지로 기능했을 뿐 도대체 소련 언어학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의미를 어떻게 생각해 야 하는지 하는 당연한 지적 관심사를 불러오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남한 사 회의 북한 인식은 이제 처음 시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우선 마르의 언어학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이를 조금이나마 가까이 이해하 기 위해서는 마르의 자리매김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이미 김민수( )나 정광( ) 에서 소개되었다시피 그는 언어학보다는 고고학에 더 관심이 많았던 역사 문화 연구자 였는데 특이한 것은 카프카즈 출신으로 그 지역의 비유럽계 언어에 대해 대단히 해박했 다는 것이다. 곧 언어학 출신이라기보다는 역사와 문화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였다. 그리 고 그 당시 언어학의 주류에 속했던 인도게르만학 연구자들에 비해 비유럽어에 대해 매 우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한 토대 위에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와 만나게 되었고, 혁명 이후 새로운 세계관으로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려는 소비에트의 필요에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는 학설을 발표했는데, 이것을 일러 신언어이론 이라 했 다. 이 이론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김하수( )에 간략히 소개되어 있고, 정광( )에서 도 많은 비판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럼 왜 소련 당국은 마르의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 했을까 하는 점에 대한 추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시 소련의 언어학계는 그리 녹록하거 나 어설픈 시절이 아니었다. 카잔,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등지에 쟁쟁한 언어학 이론가들 과 학파들이 이미 자신들의 학설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언어학 외부에서 들어온 마르의 무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적인 언어학, 당시의 초미의 관심사였을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기능을 담당할 언어학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 당초 마르 크스나 엥겔스, 또 레닌에게 있어서도 언어 문제는 다른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조금 스쳐 가기만 했을 뿐이지 충분한 논지를 드러내지는 못한 형편이었다(단지 엥겔스는 프랑켄
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5 방언에 관한 흥미 있는 논문을 썼음). 이 무주공산에 마르는 언어 문제를 역사적, 사회문화적 흐름을 엮어 일정한 유물론적 이며 역사변증법적인 구성을 그럴듯하게 갖춘 언어 이론으로 발표했다. 이 연구가 타당 하든 타당하지 않든 소련 당국에게는 매우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소련은 언어학 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에 대한 타당성을 증명하는 것이 더욱더 중요했다. 더구나 소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가 그리 깊이 다루지 않았던 복잡한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은 혁명 의 과정에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민족자결 에 공감을 표했다. 또 그로 말미암 아 혁명과 내전에서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아마도 소련 당국은 마르의 이론에서 두 가지의 유용한 논점을 발견했을 것이 다. 혁명의 대척점에 있는 서구 언어학 이론을 비판할 수 있는 그럴듯한, 완전히 다른 패 러다임을 지닌 무기를 발견했다. 또 하나는 당시에 선진 사회로 자부하고 다른 지역에 대 해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던 서구 사회 중심이 아닌, 인류 공통의 언어, 말하자면 원조 언어의 성격과 그 분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시도한 것은 분명 소련 학문이 독보적 인 문제 영역을 선점했다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거칠게 표현해서, 이러한 마르의 언어에 대한 문제 의식과 비교가 가능한 서구의 언어 이론이라면 미국의 언어상대주의 이론이 아닐까 한다. 김수경 선생이 번역한 까즈넬손의 논문(조선어연구 집, )에 나오는( 쪽) 프란츠 보아스나 에드워드 싸피어를 그 주 도자로 하는 아메리카 민속학파는 북부 아메리카 종족의 박물관의 진품( 珍 品 )이나 다름없이, 연구되고 있다. 라는 문구처럼 뜨거운 대결 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소련 당국은 마르의 이론으로 서구 사회의 위선적인 시민 문화, 그들의 세계 인식 방법 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도구로 마르의 언어와 사회와 문화를 역사적으로 엮어내는 파노 라마는 분명히 유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도 서구 사회의 연구 성과에서는 이렇다 할 반격을 하기 쉽지 않은 북아시아, 카프카즈 지역의 진기한 언어를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마르크스주의를 어설픈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정 대안적인 세계 를 보여 주는 징표로 내세울 만했을 것이다. 당시( 년대부터 년대) 소련은 내전과 기근, 그리고 농업 정책의 몇 가지 문제로 대단히 큰 곤욕을 치를 때였다. 자칫 혁명의 이상과 삶의 현실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위험할 정도였다. 이 위기를 이른바 철권통치를 통해 버텨 나갔고, 소련에게는 다행이었 는지 서구 사회도 매우 힘들었다. 그 고통 속에서 점점 파시즘의 뿌리가 왕성히 뻗어나고 있었다. 잘 나가던 미국도 년대 중반에 대공항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풍부한
36 자원을 이용하여 가까스로 재기를 했다. 일본 역시 이 어려움을 이겨 내는 과정에서 만주 와 중국을 공격하게 되었다. 소련은 어떻든 이 시기를 버텨 냈다. 유럽의 파시즘은 소련 을 증오했지만 그들의 증오는 오히려 소련의 정당성을 확인해 줄 뿐이었다. 소련은 결국 그 실체적 존재가 인정된 것이다. 국가와 제도, 그리고 그 이념과 문화 모두 존재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약소/소수민족들이 소련에 대한 로망을 가지게 되었다. 곧 소련은, 더 나아가 마르의 이론은 서구 사회, 부르주아 세계에 맞서는 안티테제를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소련에서 계급이 철폐되었다고 선언했다. 철학적으로는 어림없는 말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충분 히 효과가 있는 선언이었다. 소련의 변모와 소련 언어학의 변화 제 차 세계대전이 승리로 끝나는 날 소련은, 아니 스탈린은 유명한 연설을 한다. 그는 전쟁의 승리를 위대한 소비에트 인민 이 아닌 위대한 러시아 민족의 승리 라고 선언했 다. 이미 소련은 여러 민족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어느덧 러시아화된 거대한 국가가 된 것 이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기 위해 골몰하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 전 세 계를 미국과 두 쪽으로 나누어가진 거인이 된 것이다. 로망을 가지려는 욕망보다는 새로 운 세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곧이어 거대한 중국 땅도 그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 핵무기도 손에 넣었다. 이제 소련은 수많은 약소/소수민족들의 민족성과 그들의 고유 문화가 배어 있는 토착 어의 발전이라는 문제가 절실하기보다는 현실 에서의 세계적 지배력이 더 중요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양각색의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언어의 역사적 타당성과 불가피한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모든 공산 사회를 대변하는 대표성이 더 중요해 진 것이다. 그들에 선행했던 많은 제국들이 품 안에 많은 소수민족을 안고 있었듯이 그들 도 또 다양한 소수민족을 지닌 또 다른 거대 제국이 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마르의 언어 이론은 기실 언어 이론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영감에 바탕 을 둔, 그리고 그 위에 유물론적 변증법의 옷차림을 입힌 로망이었다. 이 논리를 받아들 이는 한 언어 사실에 바탕을 둔 언어 연구가 서로 잘 맞지 않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옷 을 갈아입을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스탈린은 년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 라는 논평에서 마르의 정당성을 확실하게 거부했다. 앞에서 거론한 몇몇 북한 언어학 연구자들은 이것을 서구 구조주의
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7 로의 환원이라든지, 제대로 된 마르크스주의로의 복원이라든지 하면서 언어학 이론의 대 변혁처럼 말했지만, 이것은 언어학이 아닌 정치적인 결단이었다고 본다. 이미 소련에서 는 유물론적인 언어학이 그 나름 활발하게 자기 발전을 도모해 나가고 있었다. 언어와 철 학에서 볼로시노프, 문학과 시학에서 바흐친, 언어 발달과 실어증 연구에서 루리야, 또 언어 활동 이론에서 레온트예프(와 그의 아들) 등은 현실 속에서의 언어 문제를 착실하게 연구하여 오히려 서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유물론적이고도 언어학적인, 또 많은 경우에 심리학적인 성과를 일구어 냈다. 조소적으로 말한다면 이미 마르는 죽었을 뿐더러 더 이상 그가 필요한 세상이 아니었다. 마르의 언어학을 비판하면서 마치 그 반대자들이 엄청난 박해를 받은 것처럼 언급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물론 그 반대자 가운데 가장 비련의 인물은 폴리바노프였다. 그러나 그가 기소된 것은 마르 이론을 반대했다는 죄명이 아니 라 일본의 스파이였다는 혐의였다(그는 매우 독보적인 일본어 학자였다). 마르의 이론에 반대한다는 행위가 기소 대상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때는 일본과 군사 충돌 이 이어지던 시기여서 지리적으로 매우 먼 곳의 일본의 공격 행위가 소련에게는 대단한 위험으로 비쳐 소련의 예민한 과민 반응이 잦던 시기이기도 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만주 의 동북항일유격대들이 소련에 제압당하기도 했고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 당하기도 했었다. 마르와 마르 이론이 사라지게 된 과정을 지나치게 극화시키며 마치 엄청난 사건인 것 처럼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도 마르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야페트 이론을 계승했던 메슈차니노프(Meschtschaninow, 북한 문헌에는 메싸니노브로 표기)는 그 이후에도 마르 이론의 틀 안에서 매우 흥미 있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마르의 어휘문화론적인 연구를 통사론 층위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따라서 마르 언어 이론의 폐기를 대단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마르 언어학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의 표현에 가깝다. 북한의 초기 언어학은 어떤 의미를 가졌었나? 언어학은 정치와 무슨 관계에 있을까? 아마도 이러한 주제 자체가 매우 흥미 있는 독 립적 연구 영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와 사고, 그리고 이념, 또 이념과 사회구성 등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이 부분에도 무진한 논의거리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이 부 분에 대해 깊이 더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 같다.
38 시대적 전환기에는 일정한 역할을 언어학이 담당해 왔음은 언어학사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어느 정도 추정을 할 수 있다. 독일의 현대화 과정에서 훔볼트와 그림 형제는 독일 어와 독일 국가 사이의 연계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이에 대한 논쟁은 일단 뒤로 미루도록 하자. 소장(청년)문법학파의 등장은 산업화와 시민 사회의 발전과 충분히 연계가 가능하다고 본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서구어에서 나타난 중요한 언어적 현상을 통해 대단히 보편적인 설명의 틀을 획득했다. 인도유럽어 중심의 언어학이 보편성의 형 식을 갖추게 된 것이다(사실 마르의 언어학 혹은 소련 언어학자들의 관심과 비판도 이 부 분에 있다). 이에 반해 사피어와 훠프의 언어상대주의는 낯선 언어와 미지의 언어들의 특 수성에도 그 정당성을 부여했다. 유럽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안티테제의 성격이 드 러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초기 언어학자 주시경은 한국의 중세기에 대한 안티테제를 내어 놓은 셈이다. 곧 근대화를 추동하는 다분히 정치적 역할을 한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사회에서의 규 범문법에 대한 논쟁과 표준어 사정 및 언어순화운동은 근대 시민 사회에서의 주도권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한다. 문법은 특정한 언어 규 범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었고, 표준어 사정과 언어순화는 일정 부분의 어휘에게 정당성 을 부여하는 반면 나머지 어휘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도전이었다. 북한의 언어학자들은 당연히 광복 이전까지는 이러한 정치적 시대적 이념적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이들 이었다. 그들의 월북 은 이러한 자신들의 역정에 비해 별반 모순되지 않은 행동으로 생 각했을 것이다. 한편 평양에 수립되었던 정권은 정치적 군사적 안정도 중요했겠지만 무엇보다 이념에 기초한 가치의 정당성 확보가 매우 시급했을 것이다. 전통적인 중심지에서 지리적으로 벗어난 불리한 조건은 민주기지론 으로 극복을 하고, 토지개혁을 통하여 대다수 주민들 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더 나아가 문맹 퇴치, 한자 폐지 등으로 사회 혁신에 머뭇머뭇하 던 남한 정부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언어학자들은 당연 히 부응하려 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차별적 노선에다가 더욱더 보편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정치적 학문적 담론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소련의 최신 언어 학 이론 은 충분한 보답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남한에서는 언어학 영역에서 민족성 담론 과 과학성 담론 이 서로 부딪치며 매우 오랫동안 정치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유용한 이념의 틀을 제공하는 담론을 엮어내지 못하였다. 근근이 년대에 가서야 일정한 타협적 조건 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 지만 안타깝고도 쓰라린 것은 그 이후 언어학에서 민족성 담론과 과학성 담론은 함께 통
북한의 언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39 합되지 못하고 매우 이질적인 성격과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북한의 언어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당시의 가장 믿음직한 우군 세력이었던 소련의 학문적 흐름에 공감을 표하며 친숙해지는 것은 북한 사회의 정당성 근거를 강화해 주는, 정권에 대한 중요한 공헌이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로 말미암아 북한 사회에서 의 재편성과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과 함께 함으로써 차후의 언어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동력을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북한 학계에서 보인 소련의 언어학, 특히 마르의 언어학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큰 오류도 아니고 그리 참담한 파국이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 옳다. 블룸필드의 언어학 이 론이 주도를 하다가 촘스키의 언어 이론이 그 한계를 비판하며 등장했고, 근간에 컴퓨터 를 이용한 양적인 연구나 대화 분석을 통한 질적인 연구를 해도 한국 사회에 별다른 요동 이 없듯이 북한의 언어학은 당시 시점에서 국제 관계의 두 정파의 한 편, 자신들에게 가 장 유리한 편에 손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고 본다. 오히려 북한 학계의 다음 행보는 사전 편찬, 문법 연구, 문화어 정책 등을 통해 자신들 이 맞닥뜨린 사회 문제에 대응해 나갔다. 일부의 현상은 남한과 비슷했고, 일부는 달랐 다. 남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민족성 담론과 과학성 담론을 잘 통합시킨 북한 언어학계 의 강점은 그 기초를 닦아주었던 초창기 조선어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여러 언어전문가들 의 공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정치적으로 불운을 겪었지만 김두봉 선생의 새 문자 주장은 사실 그 실용성은 정 말 문제였으나 말의 소리를 보는 예리한 시각은 대단히 돋보였다. 이극로 선생의 조직력 과 지도력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시종여일이었다. 그리고 북녘 사회에서 요구하던 진보적 담론에 기초한 언어 이론을 소개, 정리하면서, 두음법칙 문제를 다루면서 보여준 정밀한 언어학의 학술 담론을 닦은, 정치적 정당성과 언어 생활의 양 면의 발전에 이바지한 김수 경 선생의 공로는 언젠가는 꼭 이루어야 할 남북한 언어학의 학문적 (재)통합에서 지워지 지 않는 굵은 자취를 남긴 것이다. 참고 문헌 고영근( ), 통일시대의 어문문제, 서울: 길벗. 김민수(, ), 증보판 북한의 국어연구, 서울: 일조각. 김하수( ), <서평> 김민수( ), 북한의 국어연구, 주시경 학보 제 집, -, 서울: 탑 출판사. 남기심, 김하수( ), 북한의 문화어, (고영근(편) 북한의 말과 글, -, 서울: 을유문화사). 정광( ), 구소련의 언어학과 초기 북한의 언어연구, 언어정보 집, -. Bruche-Schulz, Gisela( ), Russische Sprachwissenschaft, Tubingen: Niem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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