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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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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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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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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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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 권 희 주** shiawase30@hanmail.net <ABSTRACT> This study aims to identify Joseon toys' cultural values by reviewing how Joseon acculturated and accepted the 'folk characteristic' given in Imperial Japan's culture industry. Especially, the folk toys', the target of this study means Korean traditional toys showing the folk color and reflecting a local area's folk life or costumes. The campaign of 'Folk Toys Promotion' in such an atmosphere was one of main activities carried out by the Office of Commerce & Industry Encouragement, an organization under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e Office of Commerce & Industry Encouragement took the responsible collecting, selling and advertising various goods from all regions of Joseon, and especially set specific plans for the campaign of 'Folk Toys Promotion' with setting the improvement of local products in Joseon as the office's primary task and actively carried out job educations in each school and encouraged each home to earn more money through sidelines. Looking at some articles about Joseon folk toys written at that time, they referred the 'folk toys' as Joseon's unique toys. To the Joseon people selling Joseon toys to some western and Japanese purchasers, 'Joseonness' might be an urgent problem to be understood. Such 'Joseonness' might be realized through the pursuit for uniqueness and the 'pure Joseon clothes' at the same time. Key words: folk toys, Joseon toys, folk characteristic, new commercialized toys, Joseonnnes, The campaign of Folk Toys Promotion 26)27) 1. 들어가며 新玩)을 비교 검토하여 본고는 식민지 조선의 향토완구 1)를 통해 조선의 옛 완구와 신완( 향토완구 의 출현 과정을 살펴보고 그러한 향토완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향토색 이 무엇 인지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완구는 크게 아동을 위한 장난감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완상용 완구로 나눌 수 있는데 특 * 이 글은 2012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 2012S1A5B5A07036644). ** 가천대 아시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1) 사이토 료스케는 향토완구 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①메이지기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생활의 주변에서 값 싼 재료를 이용한 것, ②수제이며 각지의 민예적인 개성이 있는 것, ③민간신앙과 관련된 기원적인 성격을 갖는 것, ④각지의 습속, 생활행사와 관련되어 계절감이 풍부한 것, ⑤에도시대부터 산업혁명 전인 메이지기에 걸쳐 생겨났고 조카마치(城下町)문화 등을 모태로 향토색을 나타내는 것.(斎藤良輔,(1997), 鄕 土玩具辞典, 東京堂出版, p.48). 한편으로 가토 고지는 향토완구가 동시대의 사조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그 애매함이 전국적인 취미운동으로서 전개될 수 있었던 이유 라고 지적하며 향토완구를 정의내리는 데 대한 어려움과 향후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加藤幸治(2008), 鄕土玩具槪念再考 物質文化へのまなざし と様々なコンセプトー 日本民俗學 256号, p.21).

388 日本學報 第100輯(2014.8) 히 향토완구 는 다이쇼 시대에 취미가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용어로 향토색이 짙고 그 지역의 생활이나 풍속이 반영된 전통적인 완구를 뜻한다. 그러한 까닭에 향토완구 는 어린이의 장난감만이 아닌 향토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소품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大人)과 아이(子供)의 합성어인 오도모(大供), 즉 어른이면서도 아이처럼 완구 를 즐긴다는 의미인 오도모완구(大供玩具) 에서 발생한 것이 향토완구 로 토속완구, 지 방완구, 제국(諸國)완구 로 불리다 취미잡지인 향토취미(郷土趣味) 에 다나카 롯코(田中緑 紅)가 향토완구 이야기(郷土玩具の話) 를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향토완구 라는 용어가 일찍이 어른( 2) 본격적으로 통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3) 이렇듯 향토완구는 단순한 완구의 범주에 넣을 수 없으며 아직도 그 정의를 명확히 내리는데 어려움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근래 일본에서는 포크로리즘(folklorism)이라는 측면에서 향토완구 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 香川雅信) 지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자로서는 가가와 마사노부( 4)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향토 라는 개념이 쇼와초기에 정작, 분화되어 가는 과정을 점검하고 취미가들의 활동으로 인해 小川都) 향토 관의 이동이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오가와 미야코( 5)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향수 라는 측면이 개입되면서 향토완구 가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규 명하였다. 이들의 연구는 취미의 시작과 1930년대 향토담론의 유행으로 향토완구 가 발생하 였음을 명확히 하였다는데 공통점이 있다. 鈴木文子)의 연구가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는 스즈키 후미코( 것이다. 그녀는 취미회의 탄생과 그들의 통신 네트워크가 식민지 조선의 향토완구 발굴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했다.6) 한편 한국에서의 향토완구 연구는 거의 전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권혁희만이 식민지조선의 풍속인형 에 관한 실증적 보고를 하고 있어 주목할 만 하 다.7) 그는 식민지 조선의 풍속인형 은 관광산업의 성장과 함께 기념품으로 발달하여 일본의 향토인형 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 정의한다. 즉, 조선의 풍속인형은 일본의 전통공예 산업 이 조선으로 소비시장을 확장한 결과 8)이며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인을 시각적으로 재 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이러한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에 관한 선행연구는 첫쩨 조선은 완구가 없는 나라이며 둘 째 일본인에 의해 조선의 향토완구 가 발굴되었고 다시금 그들의 시선으로 재생산되었다는 공통적인 의견이 존재한다. 본고는 이러한 선행연구의 검토 위에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의 출발점을 검토하고 일본 2) 香川雅信(2006), <鄕土/玩具>考 二 世紀初頭における イノセンス の発見 大阪大学日本学報 25, 大阪大学 大学院文学研究科日本学研究室, p.25 3) 斎藤良輔(1997), 日本人形玩具辞典, 東京堂出版, p.136. 4) 香川雅信(2003), 郷土玩具のまなざし 趣味家たちの 郷土 日本民俗学 236 ; 앞의 글, 2006. 5) 小川都(1997), 郷土玩具の基本的性格 百貨店三越を通じて 京都民俗 15号. 6) 鈴木文子(2009), 玩具と帝国ー趣味家集團の通信ネットワークと植民地, 文学部論集 93, 佛敎大學. 7) 권혁희(2007), 일제 시기 조선풍속인형과 조선인의 시각적 재현, 민속학연구 21집. 8) 위의 글, p.12.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89 인에 의해 선택된 조선의 미 가 어떠한 미 인지를 살펴본다. 또한 학교교육과 가정에서 이 루어진 향토완구 장려운동의 배경을 고찰하고 내재적인 조선의 움직임을 통해 식민지조선 의 향토완구 의 생산, 유통, 소비를 다각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2.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의 출현 일찍이 필립 아리에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아동이라는 개념은 매우 근대적인 개념이며 정 치적, 인구학적으로 건강한 노동력을 만들어내려는 거시적인 사회과정의 맥락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9) 이와 같은 아동의 탄생은 상업적인 완구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에서 완구가 본격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간 것은 다이쇼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26년에 황손탄생 봉축행사의 일환으로 어린이박람회 가 개최되는데 이 행사는 아동의 위치를 소비 자 로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10) 이러한 행사는 완구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보여주는 일례로 산업화와 백화점의 성장과 함께 일본을 거대 완구생산국으로 도약하게 하였다. 1927년에는 일본이 셀룰로이드제 완구생산 세계1위를 점유하는데 이는 세 계 셀룰로이드 완구 총 생산의 약 70 80%를 점유한 대단한 수치였다. 이에 1928년도에 일 日本玩具協会) 가 설립되는 등 완구는 일본에서 중요한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하 본완구협회( 게 된다.11) 이러한 급속한 완구의 성장에 제국일본은 조선의 완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경성제국 田中梅吉)는 교수로 임용되기 직전 조선총동부의 지 대학 교수를 역임했던 다나카 우메키치( 朝鮮玩具目録) 을 작성하고 조선의 완구 89종을 소개하였다. 시로 조선완구목록( 12) 완구라는 개념이 대단히 근대적인 개념으로 범주를 명확히 설정하기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현대적 의미의 완구집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근대 조선의 완구를 처음으로 정리했다는 데 그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서문에서 조선의 완구를 선정할 때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독자의 주의를 바라는 점은 본 목록에는 근년(대체로 한일병합의 해) 이래 나타났다고 보이는 새로운 완구는 모두 생략한 것이다. (중략) 대부분 그 모두는 내지에서 근래 수입된 물 9) 필립 아리에스 문지영 역(2003), 아동의 탄생, 새물결. 10) 吉見俊哉(1992), 博覧会の政治学ーまなざしの近代, 中央公論社. 11) 斎藤良輔(1978), 昭和玩具文化史, 住宅新報社. 12) 예를 들면 아래의 삽화를 분분(풍키풍키<ぶんぶん(プンキプンキ)>라고 소개하며 노는 방법과 재료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日本學報 第100輯(2014.8) 390 품이므로 반드시 여기에 수록할 필요는 없어 여기에서는 생 략했다. (중략) 본집에 수록된 완구는 기성품만을 완구로 보 는 우리 내지인에게는 다소 색다르게 생각되는 일시적인 수 제로 만든 장남감이 많다.13)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일본에서의 완구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기성품 이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목록집 의 완구는 연, 팽이, 각시(인형)와 같이 아동이 스스로 만들 어 즐기는 수제형 완구가 대부분이다. 이 목록집에는 제국일 본에서 향토완구 의 수집열기가 정점에 달했던 1930년대 조 方 <그림1> 일본완구도편 에 소개된 복신(福神) 선의 대표적 완구로 소개되는 복신, 해태, 대장군, 방상시( 相氏) 14) 등이 빠져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武井武雄)가 그의 저서 일본항토완구 서부(日 本鄕土玩具 西の部) 에서 조선 완구의 대부분은 병합 후 내 지인의 손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그러한 완구를 신완(新 玩) 이라 부른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다케이 다케오는 향 다케이 다케오( 토완구 라는 말을 일반명사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서15) 향토완구 의 수집에 대단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다나 카 우메키치도 다케이 다케오도 모두 신완 과 조선의 완구 를 구분하고 있으며 신완 이 조선 고유의 완구가 아님을 인 <그림2> 방상시 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논조는 상반된다고 할 수 있다. 다나카 우메키치가 신완 을 수입품으로 규정한 것과 달리 다케이 다케오는 조 新玩) 을 조선 선을 제국일본의 서부지역으로 편입시키고 조선에서 생산됐기 때문에 신완( <그림3> 일본항토완구 서부 소개된 조선의 완구 <그림4> 일본항토완구 서부 에 소개된 신완(新玩) 13) 田中梅吉(1926), 朝鮮玩具目録, 民族 第2巻第1号, pp.184-185. 14) 임금의 행차나 외국 사신의 영접, 기타 궁중의 행사에 사용하였으며, 장례 때는 역귀를 쫓는 데 사용하기도 하 였다. 15) 香川雅信(2003), 앞의 글 참조.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91 완구의 개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완구의 속성을 산지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제국의 자 장 안에 조선의 완구를 편제하려는 의도로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다케이 다케오가 신완 을 완구의 개혁으로 평가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세계의 단위에서 일본향토완구로서 조선을 첨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조선은 완구가 없는 나라라고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조선 각지를 일부 러 돌아다니며 조사한 사람, 또 남북의 조선인 자신들의 구술에서 하등 얻는 바가 없어 유감스 럽게도 긍정할 수 밖에 없으나 그것이 과연 본질적으로 완구를 갖을 수 없는 민족인가라고 한 다면 요컨대 후천적인 환경이 없어지는 쪽으로 이끈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6) 조선시대에는 석가탄신일을 기점으로 경성의 동대문 앞에 완구시장이 열렸으나 연산군 때 완구와 인형을 비하, 죄악시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동을 가축 취급하여17) 완구가 소멸해 갔다고 주장한다. 즉 조선은 완구가 없는 나라라기보다 조선왕조의 폭정으로 완구가 사라졌 으며 그러한 완구들을 새롭게 발굴하여 개혁한 결과물이 바로 신완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정말 완구가 없었는지는 더욱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연, 팽이를 비롯한 남자아 이들의 완구뿐만 아니라 풀각시놀음 이라 하여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인형놀음이 있어 인형을 유희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것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도 기록되어 있으며18) 허용호는 조선시대 인형 전통이 일천하지 않고 인형이 마를 부르는 흉물 이 편협 한 시각임을 이미 증명한 바 있다. 그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인형을 예시로 한 비유적인 표현이 적지 않게 사용되었고 어린이들의 놀이감으로 인형이 존재했음을 밝혔 다. 또한 인형을 오락으로서 재미나 신기함으로 받아들이는 시각 또한 다수 있어 조선시대 의 인형은 주술적, 종교적 용도와 예술, 오락적 용도라는 두가지 측면이 있음을 밝혀19) 일본 의 시각은 단연코 편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나카 우메키치 역시 89종의 완구 를 소개하며 조선의 각시 를 인형과 같은 의미라 설명하고 다섯 종류를 제시한20) 바와 같이 조선을 인형과 완구가 없는 나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식민지조선의 신완 은 <그림4>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1930년대의 향토완구 와 다 르지 않다. 바로 조선의 신완 은 내지로부터의 수입되거나 내지인들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 진 향토완구 라고 할 수 있으며 조선 재래의 완구와는 분리되어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16) 武井武雄(1930), 日本鄕土玩具西の部, 地平社書店, pp.384-385 참조. 17) 武井武雄, 위의 책, p.385 참조. 18) 월내조(月內條)에 아가씨들이 푸른 풀을 한줌 따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그것을 붙인 다음 붉은 치마 를 입힌 것을 각시라 한다. 이부자리와 머리맡 병풍을 쳐놓고 그것을 희롱하는 것을 각시놀음이라 한다."라 하였 으며 개성에는 이러한 놀이의 내용이 노래와 함께 남아있어 인형이 완구로서 기능하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19) 자세한 것은 허용호, 연행 인형 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형 인식 양상, 구비문학연구 제19집, 2004.12 참조. 20) 田中梅吉, 앞의 글, p.193.

392 日本學報 第100輯(2014.8) 3. 조선의 향토완구 에 요구된 그로테스크 근대 국가의 성립은 도시를 발전시키고 이와 아울러 지방이라는 의식을 형성시킨다. 향 토 는 도시의 발달과 서구문화의 이입에 대한 반발로 향수 의 대상이 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21) 가가와 마사노부는 일본인들의 에도시대에 대한 동경과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이 정확히 일치하면서 완구가 그 교착지점에 위치하는 특이한 상징물로서 취미인들의 대상이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22) 이러한 취미인들에게 각광을 받은 것이 바로 오도모완구 로, 메 이지기 오도모완구 는 다이쇼기 향토완구 의 수집취미로 전환해 가는 과도기에 위치한 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23) 이러한 수집취미가 대중화되는데 공헌한 것이 바로 백화점 이다.24) 백화점에서 팔리는 상품 은 소비를 통해 다시금 새로운 상품 을 개발, 유통시키게 되고 상품 으로서 향토 를 어떻게 팔 것인가는 판매자에게 대단히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이에 대해 가가와 마사노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취미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향토색 이라는 심미적인 기준으로 역으로 이것만 충분히 갖추고 있 創生玩具) 에서 보듯이 설령 새롭게 제작된 것이라도 수집취미의 대상이 되는 다면 창생완구( 것이다. 이 점이 아마 민속학의 시점과는 완전히 다른 부분일 것이다. 민속학에서는 손길이 닿 지 않은 자연 으로 순수 한 것이야말로 가치를 갖는다.25) 위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창생완구 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완구를 지칭하 는 것으로 취미가들에게 향토완구 의 선택기준은 고래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향토색 에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1920년대 러시아의 농민미술을 배워 귀국 山本鼎)를 중심으로 농민예술 창작운동이 일어났을 때 아리사카 요 한 화가 야마모토 가나에( 有坂与太郎)는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제기한다. 그는 완구연구가이자 향토완구 수집가 로서 각지의 작품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아질 우려가 있다며 창생완구(創生玩具) 를 육성하자 타로( 는 논을 제기하였다.26) 즉, 개성 있는 향토색 창조가 취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향토완구 의 미적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향토색 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일본의 향토 는 근대화로 인해 도시와 지방이 구분되고 점차 내지와 외지의 구분으로 확 장되면서 외지를 주변화하고 배제해갔다. 특히 제국 일본에게 외지를 주변화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은 서구문화의 축출이었다. 향토 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원시적인 생활을 하지 21) 小川都, 앞의 글 참조. 22) 香川雅信(2006), 앞의 글, p.25. 23) 香川雅信, 위의 글, p.29. 24) 小川都, 앞의 글 참조. 25) 香川雅信(2003), 앞의 글, p.124. 26) 斎藤良輔(1997), 鄕土玩具辞典, 東京堂出版, pp.38-39.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93 만 그들 안에는 선조부터 내려온 고유한 문화 가 있는데 이것을 지키지 못하고 서구의 악풍 에 물들고 있다는 것이 제국 일본의 논리였다.27) 바로 이 고유한 문화 가 향토 로, 내지의 향토 와 외지의 향토 는 중측적인 성격을 띠며 전개되어 간다. 일본의 향토 는 서양화, 근 대화의 흐름을 목도한 지식인들이 오히려 일본적인 것을 재인식하고 과거를 그리워한 향수 에 근간한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28) 조선의 향토 는 근대 관광의 발전과 함께 조 선 이라는 이국적 엑조티시즘 에 근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시자와 데키호는 조선에는 인형완구가 뛰어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습속으로 만들지 않는다 고 소개하면서 조선에서는 인형을 신앙의 용구로서 이를 기피하는 습관 이 있으나 그러한 범주 안에서는 대단히 성행하여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니시자와 데키 호는 조선의 인형완구를 종교적이며 기원적인 물건으로 그 특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5>는 아사히신문에 소개된 조선완구 가이다(カイダ)로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이다 는 사자와 기린을 섞은 듯한 모습인데 화제(火際)의 신 또는 마를 쫓는 동물이라고도 한다. 그의 언급처럼 일본 내지에서 사자가 완구로 사랑받는 것과 어떠한 차이도 없다.30) 여 기서 주목할 것은 마를 쫓는 동물 이라는 것으 로 실제 조선인들이 향유하는 완구라기보다 내 지의 욕망을 담고 있는 기원적 성격이 강한 물 건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조선의 완구뿐만이 아 니라 만주의 향토완구 도 종교관련 인형이 주로 수집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31) 외지의 향토완구 는 기원적 인 성격의 완구가 다수 수집되었다. 그는 뒤이어 조선의 향토완구 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림5> 아사히신문에 소개된 조선완구 가이다 29) 조선의 이 방면에서의 제작에는 다른 것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 즉 정돈되지 않은 미라고도 할 수 있는, 엇박자 속에 재미와 일종의 그로테스크한 맛...중국에도 없도 일본에도 없는, 앞서 서술한 조선 독특의 것이 다량으로 있다는 점32) 위의 인용문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의 독특한 향토색 을 그로테스크의 미 로 규 정한다. 이러한 논조는 비단 그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조선의 향토완구 소개에 종종 볼 수 있는 설명으로서 다케이 다케오도 그로테스크한 목조로 된 머리 33)로 조선의 향토완구 27) 西澤笛畝(1943), 大東亜玩具史, 大雅堂. 28) 加藤幸治, 앞의 글, pp.7 8. 29) 1937년 5월 18일 朝日新聞 석간 朝鮮に来て玩具と人形を探る(上) 니시자와 데키호 그림 30) 위의 기사. 31) 芹澤知広 編(2008), 日本人の中国民具収集 歴史的背景と今日的意義, 大雅堂. 32) 1937년 5월 18일 朝日新聞 석간 朝鮮に来て玩具と人形を探る(下)

394 日本學報 第100輯(2014.8) 를 설명하고 있다. <그림1>의 복신 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의 그림은 목제로 된 복신의 그로테스크한 미가 충분히, 특히 색채도 포도빛의 피부에 녹청색이나 하얀색이나 붉은색의 화려한 색채는 일종의 별스러운 감동을 받을 정도이다. 일본 내지에서 말하면 다소간 가난의 신(貧乏神)이라고 말하고 싶은 형태와 색을 보이고 있다.34) 위의 인용문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미 가 강조되고 있는데 복신 과 가난의 신 을 연계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가난의 신 은 화폐경제의 발달이 시작된 근세 이후의 문헌에 등 장하는데 이 가난의 신 을 정중히 받들면 오히려 부와 복을 갖고 오는 복신 으로 바뀌 는 것으로35) 부 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향토완구 임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 은 1930년대를 풍미했던 그로테스크 의 미로 복신 을 표현함으로써 하위문화로 변화시 키는 담론이다. 그로테스크 는 하위문화의 특징으로36) 주변부의 문화를 규정하는 용어 로 선택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가가오 마사노부가 이노센스의 발견 으로 규정한 바 와 같이 일본의 향토완구 는 순수 성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7) 이러한 이노센스 와 그로테스크 의 대비는 식민지였던 조선의 향토 를 지방색 으로 규정해가는 유효한 대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식민지조선 향토완구 의 유통과 장려운동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는 재조일본인에 의해 유통되기 시작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단체 釜山鄕土玩具同好會)이다. 이 단체는 기요나가 간지(清永完治)를 중심 가 부산향토완구동호회( 으로 조선뿐만이 아니라 중국 등지의 향토완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내용을 회지 토 土偶) 우( 38)로 출간하였다. 토우 는 제7기까지 전 20책(1935 1941)으로 회원한정으로 공유 되던 비매품이다. 스즈키 후미코의 조사에 의하면 제1기 제3호(1935년 10월)에 동호회 멤버 8인을 밝힌 이후 정식회원명부가 게재된 적은 없으며 8인 중 7인이 부산거주자였다.39) 또한 이들은 당시 부산에서 교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아 후에 부산의 보통학교에서 직 33) 武井武雄, p.390 34) 西澤笛畝(1934), 玩具叢書 日本玩具圖篇, 雄山閣, p.176. 35) 世界大百科事典, 株式会社日立ソリューションズ ビジネス, 2013. http://kotobank.jp/word/%e8%b2%a7%e4%b9%8f%e7%a5%9e?dic=sekaidaihyakka&oid=00288004 36) 미리엄 실버버그 저, 강진석 외 역, 에로틱 그로테스트 넌센스, 현실문화, 2014 참조. 37) 香川雅信(2006), 앞의 글 참조. 38) 土偶 는 제3기 제1권부터 土偶志 로 개명한다. 현재 한국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그 일부가 귀중본도서로 보관 되어 있다. 39) 鈴木文子, 앞의 글 참조.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95 업교육을 실시할 때 향토완구 의 제작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6> 토우 제2기 제1호 <그림7> 토우 에 실린 조선 탈 상기 사진 자료의 토우 를 살펴보면 조선완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함께 사진을 첨부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조선 탈(化面) 의 경우 유입 경로,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 으며 탈을 쓰고 친친나레(チンチンナレ) 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즐겁다는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패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나 조선완구와 관련된 일화, 향후 조선 완구에 대한 전망 등이 실려 있어 완구 자체 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풍속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혁희가 지적한 바와 같이40) 한국의 풍속인형은 관광기념품으로서 다수 판매되었는데 향토완구 에는 기념품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민속품 중 유통에 용이하고 휴대성이 강한 것이 향토완구 로 흡수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파악할 수 있다. 조선인들이 향토완구 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한 불황과 관동대지진의 혼란을 정비하기 위해 일본주의, 농본주의적인 운동을 고양하고 시골에 대한 멸시에 대항하는 분위기 속에 향토 가 강조되었다. 이 때 등 장한 것이 새로운 향토완구 이다. 불황에 시달리는 농촌의 수입을 증강시키는 수단으로서 농촌의 민예품을 상품 으로서 판매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쇼와기에 들어와 전국적으 로 확대되었는데 조선에서도 이와 유사한 운동의 일환으로 향토완구 장려운동이 일어난다. 일본 내에서는 향토완구 의 몰개성화로 인해 반대의견도 상당했으나 조선에서는 조선총독부 의 산하조직인 상공장려관의 주요활동으로 향토완구 장려운동이 추진되어 일본과는 다른 전개양상을 보인다. 상공장려관은 조선 각도의 상품을 모아 판매하고 알선하는 사무를 담당 하였으며 특히 조선 토산품의 개선을 제일의 과제로 삼아 1934년 4월 조선상품조사연구회에 서 제5회 연구회를 열어 향토완구 장려운동의 구체안 마련하고 일선 학교의 직업교육과 각 40) 권혁희, 앞의 글 참조.

396 日本學報 第100輯(2014.8) 가정의 부업으로 적극 실시해간다. 一년간에 이입된 완구의 소비총액만도 一억만원이상의 거액에 달한다고 한다. 그 까닭에 이것을 조선 안에서 제조한다하면 외래품의 이입을 방지하는 동시에 농촌의 부업 으로서도 효과 잇을 것이라하야 대대적으로 장려할 예정이라한다.(중략) 완구는 향토예술품으로서 지방색을 나타나게 할 예정인데 (중략) 조선 안 각지의 명승고적지 에서 관객이 오면 그들이 그곳의 산물로서 기념될만한 것을 제조하야 판매케 하는 동시에 다 른 것도 모 을 가서 각색으로 맨들어가지고 시험하야 보아 완구로서 안전하다하면 각 시장에 출품하는 동시에 해외에까지라도 수출토록 할 계획이라 한다.41) 위의 기사를 살펴보면 상당한 액수의 완구가 조선으로 이미 수입,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 을 알 수 있는데 시기적으로 미루어보아 일본과 미국이 완구 수출로 갈등을 겪고 있을 정도 로 일본의 완구생산이 정점에 달했을 때이다.42) 이입품의 상당한 부분은 일본제였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는데 향토완구 장려운동의 목적은 크게 외래품의 이입을 방지하 고, 농촌의 부업으로서도 효과를 얻기 위한 두가지 측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의 배 경에는 이미 다양한 지역과 학교에서 향토완구 의 제조와 판매가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예 平壤每日新聞) 의 기사에는 경성, 경주, 부산 등지 를 들어 1933년 7월 13일 평양매일신문( 에서 주문이 쇄도하여 평양부의 간이수산장에서 1403점의 완구 270원 50전아치가 전 조선 大阪 으로 팔려나갔다 고 보도하고 있으며 1932년 3월 17일 오사카매일신문 부록 서부매일( 每日新聞附錄西部每日) 는 부산부가 신학기부터 관내의 각 보통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실시 한다고 보도한다. 이 기사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현재 부산의 영도초등학교의 전신인 마키노 牧 島普通校)에서 점토완구의 제조를 장려하기로 결정한 사실로 향토완구 의 시마 보통학교( ノ 유통에는 이미 학교의 직업교육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927년 미국과 일본의 인형교 류43)를 통해 조선에서 인형이 주요한 문화상품으로 인식되면서 조선의 인형은 미국으로 수 출되기 시작하였는데 당시 수출되던 완구는 순 조선옷 을 입은 흙 인형으로 유치원 등지로 수출되었으며44) 1933년에는 조선옷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적지 않은 양이 수출되었다. 41) 1934년 5월2일 동아일보 鄕土玩具奬勵 地方色을 表現하고 農村의 副業으로 生産, 구체안을 작성하야 불원 에 통첩 작난감 消費 年百萬圓 42) 1934년 4월9일 동아일보 日本고무製 玩具의 排斥運動을 開始 一年輸入이 三十六萬弗以上 米國 玩具製造協 會에서 43) 1924년 5월 미국에서 신이민법 제정으로 인해 일본인은 귀화불능외국인 으로 분류되자 미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이에 민간교류의 일환으로 1927년 미국 어린이들의 모금으로 모아진 우정인형 이 일본에 도착하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 서구국가를 비롯한 중국, 조선, 만주로까지 교류가 확산되어 인형 의 생산과 유통이 국제교류의 중요한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是澤博昭(2006), 人形 子ども使節の誕生 昭 和初期の国際交流の動向を中心として 日本人形玩具學會誌 第17号). 논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 기사는 조선에도 여러 차례 사진과 함께 보도가 되었으며 1931년부터는 일본의 히나(雛)인형이 조선으로 무상 기증되어 소학교의 어린이 교육에 이용되기도 하였다(졸고(2010), 근대국민국가와 히나마쓰리 일본어문학 제44집). 44) 평양의 崇惠여학원에서 만든 인형을 미주의 유치원 등지에서 많이 사간다고 보도하고 있다(1928년 5월 17일 東亞日報 참조)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97 이와 같이 재조일본인 사이에서 유통되던 향토완구 와 함께 미주로의 인형수출은 직업교육 에 의탁한 생산, 재조일본인 및 수출을 근간으로 한 유통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향토완구 의 유통에는 반드시 조선인 제작자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조선인 제작자도 내재되어 있는 특유의 감각과 전설이나 형식, 색채와 같은 것을 생각해내어 점점 재미있는 것, 특이한 것을 만들게 되었던 것 45) 이라고 보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적 이면서도 특이한 것은 조선인 생산자들에게 부여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이 조선의 향토완구 에서 발견해낸 것은 그로테스 크의 미 였다. 그러나 조선의 내부에서는 조선다움 을 단지 그로테스크한 미에서 발견해 냈던 것이 아닌 순 조선옷 으로 구현해내려 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 1937년 7월 헬렌 켈러가 조선을 방문했을 당시 재경여성연합회에서는 헬렌 켈러를 위해 조선 방문 기념선물로 남색 치마에 자주색 동정과 고름을 달고 흰 저고리를 입은 46) 조선 인형을 건넨다. 순 조선옷 은 1927년 미국으로 인형을 수출할 때부터 조선다움 을 나타낸 조선의 표상물로 조선의 물건임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인에게 고유의 향토 라는 것은 바로 순수 한 조선을 뜻하며 그것은 순 조선옷 으로 수렴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향토완구 장려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제국의 시선 속에서 선 택된 향토완구 를 양산해내게 되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인 스스로가 어떠한 것이 조선의 향 토완구 인지 재료와 모양에 대한 논의와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마치며 본고는 식민지 조선의 향토완구 를 통해 조선 재래의 완구와 신완( 新 玩 )을 비교 분석하 고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에 요구되었던 그로테스크의 미 와 조선인이 구현해 내려한 순 조선옷 의 길항관계를 통해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의 생산, 유통, 소비를 다각적으로 검토 하였다. 조선을 제국 일본의 서부지역으로 편입시켜 신완 을 조선 완구의 개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향토완구 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식민지였던 조선의 향토 는 지방색 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서구 완구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수집 취 미를 갖는 이들이 향토 를 적극적으로 구입하게 된 것이 조선의 향토 가 유통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적 특색이 농후한 향토완구 는 생산과 유통이 연계 되어 조선의 향토완구 에 엑조티시즘 의 가치를 부여해 간다. 이러한 엑조티시즘 은 그로 테스크의 미 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주로 종교적이고 기원적 인 조 45) 1937년 5월 18일 朝 日 新 聞 석간 앞의 자료. 46) 1937년 7월 15일 동아일보 朝 鮮 옷 입힌 人 形 을 女 史 에게 프레센트

398 日本學報 第100輯(2014.8) 선의 향토완구 를 유통하고 그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미 를 찾아낸데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 완구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완구관은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수한 측면 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성품 을 완구로 보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볼 때 완구산업화가 늦은 식민지조선의 완구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나카 우메키치의 목록집을 통해 조선이 완구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외래품의 이입을 방지하고, 농촌의 부업으로서 효과를 얻기 위해 개시한 향토완 구 장려운동의 배경에는 재조일본인 사이에서 유통되던 상품 으로서의 향토완구 와 미주로 의 인형수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공장려관이라는 관주도의 측면이 있지만 향토완구 장 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다양한 지역과 학교에서 향토완구 의 제조와 판매를 실시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에서의 향토완구 는 이미 상품 으로서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향토완구 장려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제국의 시선 속에서 선택된 향토 완구 를 양산해내게 되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인 스스로가 어떠한 것이 조선의 향토완구 인지 재료와 모양에 대한 논의와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Reference) 권혁희(2017. 12) 일제 시기 조선풍속인형과 조선인의 시각적 재현, 민속학연구 21집. Kwon, H.(2017. 12) Ilje sigi chosenpungsokinhyonggwa chosenini sigakjeok jaehyeon, Minsokhakyeongu 21jip. 권희주(2010. 3) 근대국민국가와 히나마쓰리 일본어문학 제44집. Kwon, H.(2010. 3) Geundaegukmingukgawa Hinamatsuri Ilboneomunhak Je44jip. 미리엄 실버버그 저, 강진석 외 역(2014) 에로틱 그로테스트 넌센스, 현실문화. Silverberg, Miriam, Kang J.(2014) eroticgeurotest neonsens, Hyunsilmunhwa. 필립 아리에스 문지영 역(2003) 아동의 탄생, 새물결. Pilrip Aries, Mun J.(2003) Adongetansaeng, Samulgyeol. 小川都(1997) 鄕土玩具の基本的性格 百貨店三越を通してー 京都民俗 15号. Ogawa M.(1997) Kyodogangunokihontekiseikaku hyakkatenmitsukosiwotoosite, Kyotominzoku 15gou. 權錫永(2013.3) 植民地期の 朝鮮玩具, 北海道大学研究科紀要 139, 北海道大学大学院文学研究科. Kwon Seok Yeong(2013.3) Syokumintsino tsoshengangu, Hokkaidodaigakukenkyukakiyou, 139, Hokkaidodaigakudaigakuinbungakukenkyuka, 2013.3. 香川雅信(2006. 3), <鄕土/玩具>考 二 世紀初頭における イノセンス の発見 大阪大学日本学報 25, 大阪大学大 学院文学研究科日本学研究室. Kagawa M. <Kyodo/gangu>kou-nijyuseikisyotoniokeru<inosens>nohakken- osakadaigakunihonngakuho 25, Osakadaigakudaigakuinbunkakenkyukanihongakukenkyusitsu. 香川雅信(2003.11), 郷土玩具のまなざし 趣味家たちの 郷土 日本民俗学 236. Kagawa M. Kyodogangunomanajasisyumikatatsino Kyodo - Nihonminjokugaku 236. 加藤幸治(2008. 11), 鄕土玩具槪念再考 物質文化へのまなざしと様々なコンセプトー 日本民俗學 256号. Katou K.(2008. 11) Kyodogangugainensaiko-bussitsubunkahenomanazasitosamazamanakonseppto- Nihonminjokugaku 256go. 斎藤良輔(1978) 昭和玩具文化史, 住宅新報社. Saito R.(1978) Shyowagangubunkashi, jyutakusinnbosya. (1997) 日本人形玩具辞典, 東京堂出版. (1997) Nihongningyougangujiten, Tokyodousyuppan. 斎藤良輔(1997), 鄕土玩具辞典, 東京堂出版. Saito R.(1997), Kyodoganguziten, Tokyodosyuppan. 鈴木文子(2009.3) 玩具と帝国ー趣味家集團の通信ネットワークと植民地, 文学部論集 93, 佛敎大學. Suzuki H. (2009.3) Gangutoteikoku syumikasyudannotsusinnettowakutosyokuminti, Bungakuburonsyu 93, Bukkyodaigaku, 2009. 3. 武井武雄(1930), 日本鄕土玩具西の部, 地平社書店. Takesi T.(1930) NihonKyodogangunishinobu, Tsiheisyasyoten.

권희주 / 제국일본의 문화산업과 식민지조선의 향토완구 399 田中梅吉(1926), 朝鮮玩具目録, 民族 第2巻第1号, Tanaka U. Tsosengangumokuroku, Minzoku dai2kan dai1go. 西澤笛畝(1943) 大東亜玩具史, 大雅堂, 참조. Nishizawa T.(1943) Taitogagangusi, Taigado. 西澤笛畝, 玩具叢書 日本玩具圖篇, 雄山閣, Nishizawa T. Gangusousyo Nihonganguzuhen, Yujankaku. 吉見俊哉(1992) 博覧会の政治学ーまなざしの近代, 中央公論社. Yoshimi S.(1992) Hakurankainoseizigakumanazasinokindai, Tsyuokouronnsya. <要 旨> 新玩 본고는 식민지 조선의 향토완구 를 통해 조선 재래의 완구와 신완( )을 비교 분석하고 식민지조선의 향 토완구 에 요구되었던 그로테스크의 미 와 조선인이 구현해 내려한 순 조선옷 의 길항관계를 통해 식민지조 선의 향토완구 의 생산, 유통, 소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였다. 조선을 제국 일본의 서부지역으로 편입시켜 신완 을 조선 완구의 개혁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로 향토완구 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식민지였던 조선의 향토 는 지방색 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는 것은 주 지의 사실로 서구 완구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수집 취미를 갖는 이들이 향토 를 적극적으로 구입하게 된 것이 조선의 향토 가 유통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방적 특색이 농후한 향토완구 는 생산과 유통이 연계되어 조선의 향토완구 에 엑조티시즘 의 가치를 부여해 간다. 이러한 엑조티시즘 은 그로테스크의 미 로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주로 종교적이고 기원적 인 조선의 향토 완구 를 유통하고 그 속에서 그로테스크한 미 를 찾아낸데 그 한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 완구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릇된 완구관은 일본의 시각을 그대로 수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기성품 을 완구로 보던 일본인의 시각으로 볼 때 완구산업화가 늦은 식민지조선의 완구는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나카 우메키치의 목록집을 통해 조선이 완구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 확히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외래품의 이입을 방지하고, 농촌의 부업으로서 효과를 얻기 위해 개시한 향토완구 장려운동의 배 경에는 재조일본인 사이에서 유통되던 상품 으로서의 향토완구 와 미주로의 인형수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상공장려관이라는 관주도의 측면이 있지만 향토완구 장려운동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다양한 지역과 학교 에서 향토완구 의 제조와 판매를 실시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조선에서의 향토완구 는 이미 상품 으로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향토완구 장려운동을 통해 조선인은 제국의 시선 속에서 선택된 향토완구 를 양산해내게 되지만 한편에서는 조선인 스스로가 어떠한 것이 조선의 향토완구 인지 재료와 모 양에 대한 논의와 고민도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어: 향토완구, 조선완구, 향토성, 신완, 향토완구 장려운동, 조선다움 투 고 2014. 05. 31. 심 사 2014. 06. 15. 심사완료 2014. 0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