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북한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확보를 위한 외교정책 모색 홍 현 익 지음
차 례 Ⅰ. 서론_5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_9 1.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의 배경 2.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의 내용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_31 1. 2012년 11월 미 대선까지 : 대화 모색 후 현상유지 2. 2012년 11월 미 대선 이후 2013년 4월 북한 태양절까지 : 대립 심화 3. 2013년 4월 태양절 이후 : 대화 모색 재개 Ⅳ. 한국의 대외전략 환경과 한반도 정세 전망_48 1. 한국 대외전략 환경의 주요 변수로서의 주요국 한반도정책 2. G2관계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른 한반도 정세 전망 Ⅴ. 한국의 대응전략_64 1. 미 오바마 행정부와의 한 미동맹 및 대북공조 강화 2. 실용적 균형외교로 중국의 협력 확보 3. 북핵문제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해결 4. 김정은이 선군정치보다 선경정치를 채택하도록 유도 5.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미 중 갈등 완화와 담합 방지 6. 일본의 협력 유도와 중 일간 갈등 중재자 및 균형자 역할 7. 가스관 사업 등 남 북 러 3각 협력 추진 참고문헌_78 요약문_81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북한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확보를 위한 외교정책 모색 Ⅰ. 서론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동구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2001 년 9 11테러 이후 반테러전쟁에 나서서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를 공격 점령하는 등 일방주의적인 양상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함으로써 미 국의 국력 쇠퇴를 가져왔고 미국 금융산업의 과도한 신용 남발로 인해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발발하여 미국의 세계 질서 주도력도 약화되 어 왔다. 더구나 2013년에는 미국의 재정적자 심화와 민주 공화 양당 간 타협없는 대립으로 인해 정부가 폐쇄되는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반면 1970년대 말부터 30년 이상 연평균 9% 이상의 초고속 경제성장 을 이루어온 중국은 정치적인 안정을 유지하면서 군사력도 빠른 속도로 증강하고 있어 초강대국화가 시간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중국은 등샤오 핑의 도광양회 에서 2003년 화평굴기, 2004년 화평발전, 2005년 조화 세계 등 국제사회의 평화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도모한다는 국가 전략 기조를 제시해 왔다. 미국은 경제적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급성장 과 부상이라는 도전을 받게 되자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해왔 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
6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구하고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이 내적으로는 애국주의 사조에 휩 싸이고 외적으로도 종전보다 중국의 국익을 보다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호기가 도래했다. 중국이 급부상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국익 옹호 주장을 강화하기 시작하여 주변국들을 긴장시키자 미국도 이 를 명분으로 보다 강력한 대중정책에 입각한 아시아 정책을 구사하게 되었다. 중국이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북한을 두둔하고 일본 및 주변 국가들과 영토분쟁에서 강경한 의지와 행태를 보임으로써, 그 간 중국과 함께 G2로서 국제사회의 공동 경영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이 던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전략을 유럽 중동 중시 기조에서 중국 포위 압박을 포함한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기조로 전환한 것이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11월 6일 재선되어 2기 행정부를 출범시 킨 이후에도 비록 정부 재정적자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전략적 재 균형(strategic rebalancing)정책이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 중시 정책 기 조는 계속 유지해 왔다. 한편 2011년 12월 김정일의 급사로 북한에 3대 세습 정권이 들어선 이 후 한반도 안보에 관련된 다른 모든 나라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2012년 5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2000-2008년에 이어 3기 정권을 출범시켰고, 11월 중국에 시진핑 공산당 신임 총비서 가 이끄는 제5세대 지도부가 집권하였으며 12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이 승리하여 극우성향의 아베정권이 들어섰다. 한국에도 2012년 12월 대선 결과로 2013년 2월 25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주창하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였다. 이렇게 한반도와 주변 국가들의 정권이 새롭게 재편되는 가운데 미국 의 대북 적대시 정책을 비난하면서도 미국과의 대화 통로는 유지해왔던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 인공위성 탑재를 빌미로 장거리로켓을 발사하 여 미 본토에 도달할 정도의 대륙간탄도탄 미사일 발사 기술을 과시하 였다. 또한 2013년 1월 23일 유엔안보리가 이에 대한 대북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오히려 이를 빌미로 삼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Ⅰ. 서론 7 감행하였다. 유엔안보리가 또 다시 강력한 대북 제재결의안 2094호를 채택하고 한국군과 미군이 독수리 및 키리졸브 연례 연합훈련을 시행하 자,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와 판문점대표부 활동 전면정지, 북 미 군 부 전화 차단 그리고 남북불가침 합의 폐기 및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적 십자채널) 차단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을 남한 에 보내 군사 시위를 하는 가운데 북한은 이에 질세라 대남 대미 핵 공격 가능성과 남북간 전면전 불사를 협박하였다. 2013년 봄 적어도 수 사적으로 한국은 전면전과 핵전쟁 발발 위협에 처했는데 그 본질은 미 국의 동북아 전략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충돌하는 데 있었다. 비록 북한의 경제력은 미국의 4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장거리미사일 시 험에 성공하고 핵 보유에 근접한데서 자신감을 얻자 지정학적으로 취약 한 남한을 볼모로 잡고 초강대국과 치킨(chicken, 겁쟁이)게임과 유사한 극단적인 위협 고조 게임을 벌였던 것이다. 한반도가 심리적 군사적으 로 위험한 안보 상황에 처하자 지정학적 취약성과 함께 대외 경제의존 도가 큰 한국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중국의 강력한 압박을 받아온 김정은 정권은 태양절 이후 남북 관계의 정상화를 모색하는 한편 핵-경제 병진노선의 공식 언급을 자제 하고 한반도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는 점을 선언하면서 미국과의 고 위급 회담을 제안하고 조건없는 6자회담을 주장하는 등 대외관계 정상 화를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2013년 12월 김정은 정권이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겸 노동 당 행정부장을 전격적으로 처형하여 향후 내부 불안정성이 우려되는 새 로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나마 김정은이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향후 적극 노력하겠다 는 의향을 보인 것은 다행스러 운 점이다. 그러나 2013년 전반에 걸쳐 상호 내정에 대한 비난을 주고 받아 남북간 불신이 심화된데다 북한의 핵 개발이 지속되고 있고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원칙적 입장이 확고하여 6자회 담 재개도 쉽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2014년 2월말부터
8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시행되는 한 미 키리졸브와 독수리 연합훈련을 계기로 또 다시 남북관 계가 대립국면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고 있고, 심지어 북 한이 내부 권력 불안정 상황에서 군부와 주민들의 결속을 강화하고 충 성심을 유발하기 위해 새로운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본고는 2010년 경부터 시작된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이 북한의 각 종 도발을 억지하는 데는 유용성을 발휘해왔지만, 한국의 다른 국가안 보 전략과제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평화 정착 및 평화 통 일, 동북아 평화 공영 질서 구축 등을 실현하는 데는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이 지역에서 우월한 국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려운 한국이 이러한 전략과제들을 고루고루 최대로 실현하기 위해 취 해야할 합리적인 국가 외교 안보전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고는 먼저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 정책이 수립된 배 경과 그 내용을 검토하고, 2012년 김정은 정권 출범 후 북 미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안보 정세가 전개되어온 과정을 살펴보며, 한반도 안 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들을 검토하고 향후 한국의 대외전략 환 경과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 뒤, 한국정부가 국익을 최대한 증진하기 위 해 취해야할 현명한 대응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9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오바마 행정부가 2010년경 동아시아 중시 정책을 채택한 것은 이전 행정부들의 정책을 검토하여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중국의 도 전에 적절히 대응하여 미국의 국제정치 지도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다. 오바마 행정부는 냉전 종식 후 클린턴 행정부 시기 미국의 국력이 더욱 성장하여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도력을 갖게 되었으나 부시 행정부가 자만감과 일방주의적인 세계관으로 비효율적인 대외정책을 펼쳐 미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반성하고, 국제 무대에서 맞상대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아태지역에서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협력을 중시하는 클린턴 행정부 방식으로 우방국들을 동원하 여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편입하려 시도하 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 안보정세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 미 중관계의 한 축이자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가장 강력하고 주도적인 변수 로 작동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정책을 정책 채택 배 경과 정책 내용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의 배경 미국이 세계전략 기조를 동아시아 중시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무엇보 다 아시아가 21세기 세계 질서를 주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1) 중단기적으 로는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 약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재정적자가 심화되 어 미 국내문제의 상대적 중요성이 커져 대외정책을 보다 효율적이고 1) 2030년 경에는 GDP, 인구 규모, 군사비 지출과 기술 투자를 기준으로 한 평가에 서 아시아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합을 추월할 것으로 평가된다.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Global Trends 2030: Alternative Worlds (Dec. 2012), p. 16.
10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비용절약적인 방향으로 운용해야될 필요성이 커진 배경에서 유럽에서의 안보 위협이 감소한 점을 감안하고 지나친 국력 소모를 가져온 중동지 역에서 철군을 결정하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급속히 부 상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의 안보 도발과 도전은 이에 중요한 명분으로 작동하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 정책이 설정된 배경을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미국의 재정 적자 오바마 행정부는 수십년간의 재정 적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2008년 금 융위기로 미국 경제와 재정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집권했으므로 대 외정책보다는 국내정책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또한 해외 정책도 국익 보호와 증진에 가장 필요한 사안을 선택하여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2) 특히 2011년 예산통제법과 연방정부 예산자동삭감(sequestration) 이 발 동되어 미 행정부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2021년까지 1조2천억달러를 절감해야 하며, 이로 인해 2013년부터 매년 850억달러의 예산 감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3) 이에 따라 오바마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를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 는 국방비를 줄이려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해외에 과다하게 주둔하 고 있는 미군 배치를 축소지향적으로 재검토하고 우방국들의 방위 부담 증대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 재무부가 2013회계연도인 2012년 10월 1일 에서 2013년 9월 30일까지의 재정적자가 6803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 2)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재선을 위한 후보자로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유지를 위해 국제 경제 발전과 개발 촉진, 막강한 군사력 유지, 보편적 가치의 추진 등 세 가지 정책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막대한 비용을 수반할 것이 므로 추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현욱,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한 반도, 2012년 정책연구과제 I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2013년 2월), p. 143. 3) 박건영, 오바마의 주판과 긴 파장?: 재균형과 한반도에 대한 함의, 한국과 국 제정치, 제29권 제3호 (2013년 가을), p. 14.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11 혔는데, 이는 2012회계연도 미국의 재정 적자인 1조4200억달러와 비교 하면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다. 미 연방정부의 세수입과 지출 격차가 1 조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8년 이후 5년만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취임 이후 처음이다. 특히 2013회계연도 마지막 달인 9월에는 751억달러의 재정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4) 더구나 셰일가스 개발과 미 제조업체의 수출 증가 등으로 2013년말에는 미국 경제가 회복 되는 동향이 역력하여 미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는 2013년 12월 그간 시행했던 양적완화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테이퍼링(tapering) 시행을 발표했다. 또한 미 의회는 초당적으로 2014년 예산에 동의함으 로써 미 행정부는 어느 정도 재정 위기의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2) 미국의 유럽정책 및 중동정책 조정 소련의 해체와 동구의 민주화로 미국이 서유럽의 나토 회원국에 군대 를 주둔시킬 필요성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독일 등에 배치되었 던 미군을 축소시켜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막대한 재 정이 소모되고 미군의 사상자가 끊임없이 발생해왔기 때문에 철군이 시 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전역시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실업 문제가 더욱 악화할 수 있으므로 이들을 군사전략적 중요성이 커진 동아시아로 재배치하는 것이 대안으로 고려되고 있다. 3) 북한의 안보 도전 북한이 2006년과 2009년에 각각 장거리미사일과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2010년에는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에 포격을 감행하였으며 2012년에 두 차례 장거리미사일 발사 시험을 시행했고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이제 북한의 행동을 계속 방관하면 2015년에 는 핵무기의 실전능력을 가질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5) 4) 매일경제 인터넷뉴스, 2013년 10월 31일. 5) 2013년 7월말 서울에서 개최된 제4차 한 미 통합국방협의체회의(KIDD)를 비롯 한 한 미 정보채널간 협의에서 북한의 핵무기 제조기술을 검토한 결과, 북한이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하기 직전의 기술에 와있으며 2015년경에는 실전용
12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물론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의 핵 보유 저지는 매우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아직 핵 개발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란 핵 문제를 더욱 중시하는 듯하다. 따라서 북한의 안보 도전이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중시정책을 채택한 직접적인 사유라 보기는 미흡하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동아시아 중시정책이 사실상 겨냥하는 중국 견 제의 명분으로 작동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과 동맹국이고 유엔안보리 등 국제사회의 각종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게 석유와 식량 부 족분의 60% 이상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5 24조치 로 남북한 교역이 중단된 이후 급증한 북한의 대중무역의존도는 80% 이상이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도발을 근거로 삼아 중국에게 대북 압 박 강화와 국제 제재에 대한 실질적인 참여를 꾸준히 종용해왔을 뿐 아 니라 북한 도발시마다 동북아시아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하고 한 미 및 미 일 동맹을 강화하며 한 미, 미 일 및 한 미 일 연합 훈련 등을 통해 군사력을 시위해왔다. 4) 중국의 부상과 도전 중국은 1979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9.9%의 경이로운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어 2010년 2/4분기에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이 되었으며 대체로 2025년에서 2030년 사이에 GDP면에서 미국을 추 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골드만삭스는 2027년, 일본 내각부는 2025 년으로 예상). 세계 각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도 급속히 증가하여 통상에 서의 중국의 영향력도 급상승하였고 중국의 외환보유고도 2013년 9월 말 3조6천억달러가 넘어 단연 세계 1위이다. 특히 중국은 1조달러가 넘 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의 재정적자를 지탱해주고 있다. 단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기업들이 중국에 막대한 투자를 행하고 있고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매년 2,000억 달러를 넘어 중국의 대미 경제의존도도 매우 높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통상 경제를 포함하여 전방위적으로 대립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미국과 중국은 경제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중앙일보, 2013년 9월 5일.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13 적으로는 상호의존이 상당히 심화된 상태이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국가전략 기조로 화평굴기를 주창하고 패권적 의 도나 영토 확장의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역설해 왔지만, 미국은 성장 하는 능력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하여 지역내에서 중국 정부의 대외정책 의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6) 특히 미국은 중국의 군 사적 부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는 크게 군사력 증강과 군사 활동, 그리고 군사적 의도 등 세 부분에 대한 우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우려는 군사비의 급증과 무기현대화 및 작 전능력 향상으로 나누어진다. 미 국방부는 중국의 군사비가 1990년대 이후 급증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수치를 인용하면서 중국의 국방예산은 2000-2010년 기간에 연평균 12.1%씩 증 가해 매우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7) 중국 정부는 2013년 3월 5일 국방예산이 전년대비 10.7% 증가된 1,140억 달러라고 발표했지만, 미국방부는 2012년 실제 중국의 군사비지출이 1,350억달러와 2,150억달 러 사이라고 평가했다. 8) 이는 미국에 이어 사실상 세계 2위라는 것이 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 등에서 첨단 무기 수입을 지속하고 있고, 무기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전역을 가격할 수 있는 둥펑-31A와 둥펑-41을 시험하고 있고 중거리지대함탄도미사일 둥펑-21D 등 미 항모 의 중국 연안 접근차단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항공모함 랴오닝호 를 진수하고 스텔스전투기 젠-20, 위성 요격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으며 6) U.S. Department of Defense(U.S.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3 : Annual report to Congress (2013), pp. 20-21 참조. 7) 특히 이 기간에 경제성장률은 10.2%였는데 이보다 더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을 주목하고 있다. U.S.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1 : Annual report to Congress (May 06, 2011), p. 41. 또한 미 국방부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동안 물가상승율을 감안한 국방예산 증가율을 9.7%로 평가한다. U.S. DoD (2013), p. 45. 8) U.S. DoD (2013), p. 45. 중국 당국은 2011년 3월 4일 군사예산이 전년 대비 12.7% 상승한 915억달러라고 발표했지만, 미 국방부는 중국의 실제 군사비 지출 은 75%정도가 더 많은 1,600억달러로 추산했다 U.S. DoD (2011), p. 41.
14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우주선 발사에 진전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2020년께는 독자적인 우 주정거장 건설 운영을 모색하고 있다. 9) <그림 1> 재래식 전력에 의한 중국의 접근차단능력 (Conventional Anti-Access Capabilities): 출처: 중국의 미사일 사거리와 제1 및 제2열도선. U.S. DoD, 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People s Republic of China 2011 : Annual report to Congress (2010), p. 32. 9) 중국의 군사비 증가와 군사력 강화에 대해서는 졸고, 중국의 부상에 따른 러 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방안, 세종정책연구 2013-13 (세종연구소, 2013년 2월 5일), pp. 11-15 참조.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15 미국의 우려는 중국의 군사 활동과 의도에 대한 의구심으로 인해 증 폭되고 있다. 먼저 중국은 연안방어를 중심으로 하는 연해방어전략에서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포함해 보다 넓은 수역에서 적대세력의 접근을 저지하는 적극적 근해방어전략 으로 전환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10) 중국은 작전해역을 근해와 외양으로 나누는데, <그림 1>에서 보는 것처 럼 근해는 쿠릴열도에서 일본, 류큐열도, 대만, 필리핀, 말라카 해협에 이르는 제1열도선 이며, 외양은 오가사하라, 괌, 사이판, 파푸아뉴기니 를 연결하는 제2열도선 이다. 제1열도선 전략은 이미 완성되었고, 제2 열도선 전략도 2020년을 목표로 군사력을 건설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중국이 이미 1960년대에 개발해 실전배치한 둥펑3중거리미사일(서양분 류명 CSS-2)은 제2열도선을 사정거리로 한다. 11) 이러한 중국의 적극적 근해방어전략 은 2010년 천안함 사태이후 한 미연합훈련을 반대하면서 황해를 자신의 근해(coastal waters) 라고 규정 한 것이나, 2010년 3월 남중국해의 해양 권익을 대만이나 티베트문제와 같이 주권영토와 관계되는 중국의 핵심국가이익(core national interests) 으로 규정하고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선언한 데서도 잘 드러난 다. 12) 인민해방군 해군은 중국 해안선을 따라 2013년 2월 항공모함 랴오닝 을 배치한 산둥성 칭다오에 사령부를 둔 북해함대, 저장성 닝보의 동해 함대, 광둥성 잔장의 남해함대 등 연해를 관할하는 3개 함대를 두고 있 는데, 2015년까지 자체 기술로 건설하고 있는 항공모함을 배치하려하는 남중국해의 전략 요충지인 하이난다오 싼야에 제4함대를 창설하여 연근 해방어를 넘어서는 공격형 작전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13) 더구나 미국은 10) 이상현,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응: 한국의 안보에 대한 함의, 국가전략, 17-1 (세종연구소, 2011년 봄), p. 18. 11) 이상현, 2011년 봄, p. 19-20. 12) 이상현(편), 새로 그리는 동아시아 안보지도, 세종정책총서 2011-5 (세종연구 소, 2011년 9월), p. 93. 13) 연합뉴스, 2013년 3월 29일과 홍콩 明 報, 2011년 9월 7일자 보도, 중앙일보, 2011년 9월 9일자에서 재인용.
16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현재 보유중인 12척의 항공모함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있는 반면 중국은 2020년까지 최소 4척의 항공모함을 추가 제작할 예정으로 알려 졌다. 14) 이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력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를 명확히 보여준다. 따라서 그간 이 지역에서 압도적인 군사 능력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으로서는 행동이 제약되고 영향권이 축소되므로 기득권이 침해당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군사적 으로도 전방배치와 전력투사 전략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15) 또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이익 수호 뿐 아니라 동 맹국이나 우방국의 국익도 보호해 주려고 하는데, 중국의 이러한 전략 이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미국 우방국들의 국익과 충돌하므로 개입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중국이 점차 인도양과 서태평 양 지역까지 군사전략 영역을 확장하여 언젠가는 미국을 동아시아와 서 태평양 지역에서 축출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끝으로 미국은 군사부문에서 중국의 대만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최근 중국과 대만간 경제 교류가 증가하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군사력 우위를 확고히 유지하 려하며 상황에 따라서는 대만에 군사 개입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일국양제 원칙 하에 평화통일을 선 호한다고 강조해 왔지만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는 점을 중시한다. 즉 중국 정부가 대만의 공식 독립 선언, 대만내 불안정, 대만의 핵무기 취득, 통일에 대한 양안 대화의 무기한 연기, 대만 국내 문제에 대한 외국의 관여, 외국군의 대만 주둔 등의 경우에는 대만에 무 력 개입할 것임을 시사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16) 14) 연합뉴스, 2013년 2월 28일. 15) 정철호,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해양전략과 한국의 해양안보: 미 중간의 남부 중국해 해양통제권 경쟁과 갈등의 영향, (세종연구소, 2012년), p. 38. 16) U.S. DoD, 2011, pp. 48-49.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17 2.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의 내용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 적자와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부상 등 새로운 대내외 전략환경 변화에 대해 전방위적인 대외전략인 동아시아 중시정 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략의 내용을 전략기조, 군사 정책, 외교정책, 경제정책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1) 전략 기조 : 오바마 독트린 오바마 행정부는 초강대국을 향해 급속히 부상중인 중국에 대해 경쟁 국이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동반자임을 강조해왔다. 물론 오바마 행정부 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센카쿠( 尖 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釣 魚 島 ; Diaoyudao)를 둘러싼 중 일간 갈등에서 일본을 지원한 것을 계기로 그해 10월 28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하와이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중추를 아시아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 것임을 천명한 뒤, 지속적으로 동 아시아 중시 대외정책을 지속해왔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1월 17일 호주 의회 연설을 통해 중국 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전략 기조로 아 태지역을 대외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 는 이른바 오바마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전략과 안보전략에서 유럽과 중동이 최우선시 되어 왔 는데 이제는 아시아를 이들 지역보다 우선시하여 가용할 수 있는 외교 적 군사적 자원을 집중시키겠다는 기조를 밝힌 것이다. 즉 미국의 대 외전략에서 중심지역이 아시아로 전환된다는 것인데, 이는 다분히 향후 중국을 경쟁자 또는 전략적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오바마는 취임 초부터 미국이 아 태국가이고 자신은 첫 번째 태평 양 대통령이 되겠다 고 선언해왔고, 이라크문제와 아프가니스탄전이 어 느 정도 수습되자 본격적으로 아시아지역을 대외정책의 최우선지역으로 설정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 아를 군사 부문에서 최우선 순위에 놓게 되었고, 이는 아시아의 안보는
18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아시아인들의 힘으로 라고 외치면서 미국의 아시아 철수를 선언한 1969 년 7월 닉슨독트린(괌독트린)과 뚜렷하게 대비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 태지역에서 미군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주둔과 임무를 최우선 순위에 두라고 국가안보팀에 지시했고, 미국이 경제적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향후 10년간 매년 평균 1천억달러 규모의 군사 비를 삭감할 예정이지만 아시아지역에서는 예산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 고 선언하였다. 오히려 호주에 2,500명의 미 해병대를 배치하고 미군 전 투기와 핵탑재함정 등이 호주군 시설을 수시로 이용하는 등 양국간 군 사협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혀 17) 중국을 고립시키고 포위하기 위한 군사전략을 펼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방조하고 일본과의 동맹을 주축으로 삼으면서 호주에 미군을 배치하고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주위 의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과 군사 협력을 양자적 다 자적으로 강화해왔고, 인도와도 전략적인 협력을 강화해왔다. 2) 군사 정책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초 발표한 국방계획서에서 미국이 전세계에 과도하게 군사력을 투사하였으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축소할 것이지만,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아시아 지역으로의 전략적 재균형을 모색할 것임을 천명했다. 18) 기존의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아태지역 안보의 사활 적인 기반으로 삼고 새로운 동반국들과의 네트워크를 확대하며 인도와 의 장기적인 전략적 관계에 투자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여 한반도 에 평화를 유지할 뿐 아니라 중국과 이란 등이 모색하고 있는 반접근과 17) 2012년부터 미 해병 250명이 호주 북부 다윈 근처의 로버트슨 해군기지에 상시 주둔하여 2016년까지 모두 2,500명의 미 해병과 공군, 군관계자들이 6개월씩 순 환근무 형식으로 머물 예정이다. 18) U.S. Department of Defense,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se, Jan. 2012, p. 2. 신전략지침서에 따른 미국의 새로 운 국방전략에 대해서는 최우선, 미국의 새로운 방위전략과 아시아 안보, 주 요국제문제분석 (2012년 6월 12일) 참조.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19 지역거부(A2/AD) 환경에서도 미군이 효율적으로 작전할 수 있는 능력 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만큼 투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19). 오바마 행정 부의 아시아 중시전략은 파네타 국방장관이 2012년 6월 제11차 아시아 연례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발표한 신국방전략 에서 구체적으로 드러 났다. 그는 21세기 미국의 번영과 안보는 아태지역에 달려있으므로 미 의회의 국방비 감축 요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태지역에 최우선순위 를 부여하고 군사적 역량을 집중하겠다 면서 아태지역의 재균형 군사전 략이 국제적인 법과 질서 준수,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동반자관계 현 대화 및 강화, 군사배치 확대 강화, 2020년까지 태평양과 대서양 해군간 전력비율을 50% 대 50%에서 60% 대 40%로 조정하는 전투력 투사 등 4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고 밝혔다. 20) 특히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해 미국은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접근차 단 전략에 대응하는 공해전 개념을 도입해 준비하는 한편, 중국 주변국 들과의 군사외교를 강화하여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 (1) 空 海 戰 (AirSea Battle) 개념 도입 중국의 접근차단 전략에 대응하여 미국은 기존의 합동작전 개념인 空 地 戰 (AirLand Battle) 을 재검토한 결과, 2009년 미 공군 참모총장과 해군 참모총장간의 비밀 양해각서를 통해 새로운 작전 개념으로 공해 전 을 도입했다. 21) 이는 접근차단을 위해 중국이 동원하는 무기체계의 19) U.S. Department of Defense,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se, Jan. 2012, p. 2 & pp. 4-5. 20) 신성호, 미국의 대중국 외교안보 전략, 전략연구, 제20권 제3호 (2013년 7월), pp. 48-49. 미국은 핵잠수함 정찰 활동의 60% 이상을 한반도 인근 해역을 비롯 한 태평양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한스 크리스텐슨, 로버트 노리 스 박사는 핵과학자회보 에 공동 게재한 2014 미국 핵전력 (US nuclear forces, 2014) 보고서에서 미군이 트라이던트II D5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탑재한 오하이오급 핵전략잠수함 14척을 이용해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핵억지 정찰 활동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정찰 작전의 60% 이상은 태평양에서 이뤄진 다 면서 이는 중국과 북한, 동러시아를 상대로 한 핵전쟁 계획을 위한 것 이라 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2014년 1월 12일. 21) 이상현, 2011년 9월, pp. 95-96.
20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비대칭성이 큰 것을 상쇄하기 위해 해 공군간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것 이다. 전진배치된 미국의 공군기지, 항모강습단 등 주요 군사시설과 미 국 동맹국의 주요 목표를 중국군이 공격할 것이라 상정하고, 이에 대응 하여 항공모함 지상기지의 항공기와 수상함발사미사일과 협조하여 미 공군이 전투기와 폭격기, 미사일 등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22) 미국은 중국 군사력 증강을 상쇄하기 위해 항모탑재 무인 폭격기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23). 또한 미국은 서태평양과 남중국해의 우방 국들과 연합하여 중국의 대양진출을 차단하고 필요시 말라카 해협도 차 단하는 중국 포위 봉쇄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24) (2) 군사동맹 및 우방국과의 협력 강화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동맹국 및 우방국과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첫째,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을 재정비 강화하고 일본을 아시아 정책 의 주축으로 재설정하면서 미 일동맹의 다양한 3각 동맹으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아시아 중시정책을 펼치겠다던 일본 민주당 정 권의 대외전략을 천안함 폭침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활용하여 미 일 동맹 중심 기조로 복귀시켰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연합 군사훈련을 시행하고 미사일방어(MD)계획도 공동으로 적극 추진해왔다. 특히 2012 년 12월 극우 성향의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정권이 출범하여 미 일동맹 을 강화하면서 재무장정책을 추진하자 일본의 방위비 증액과 집단자위 권 행사, 일본군의 역할 확대 등을 환영하고 후원하면서 미 일동맹을 한 미 일, 미 일 호주, 미 일 인도 3각 동맹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다. 특히 한 미 일 3국은 2008년부터 정기적으로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25). 22) 이상현, op. cit., pp. 95-97. 23) 연합뉴스, 2011.5.17. 24) 정철호, p. 40. 25) 2012년 6월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와 세종 대왕함 등 3국의 이지스구축함과 순양함 등이 참가하여 수색 구조 훈련 및 해 양 차단 작전을 시행한 데 이어 2013년에는 3국간 두 차례나 연합 군사훈련을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21 둘째, 미국은 한 미동맹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한 미 동맹 중시정책을 펼쳐 일본 민주당의 대외전략을 미국 중시 기조로 복 귀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일본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외교에 대해 미국이 한 미동맹을 종전보다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2010년 9월 센카쿠열도 인근에서의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의 충돌을 계기로 일본 과 중국이 힘겨루기 양상으로 정면 대립하자 일본 정부는 미 일동맹 중시 기조로 서둘러 복귀하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실 용적 균형외교를 비판하면서 한 미동맹에 집중하는 대외정책을 펼쳤 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기를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연기하 였고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압박정책을 구사 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한 미 공조를 모색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 반도전략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중국 과의 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나 역시 한국 정부의 대외 전략은 한 미동맹을 중추로 하여 추진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전작권 전환 시기를 또 다시 연기하자고 제안하여 미국이 이를 긍정적 으로 검토하면서 미국은 한국정부에게 대북 억지를 위한 자주 국방력 확보를 위한 방산물자 구입 확대뿐 아니라 한 일간의 군사협력 강화와 한국의 동북아 미 일 MD체제 참여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하여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26) 베 시행했다. 5월 15일 제주 동남방(규슈 서방) 공해에서 각국의 이지스함과 구축함 이 참가하여 함정 기동 및 수색 구조 훈련을 실시했고, 10월 10일에서 이틀간 경남 남해 해상에서 미 항모 조지워싱턴호, 유도탄순양함, 유도탄구축함, 한국 해군의 이지스함 뿐 아니라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항모급 헬기호위함 이세 (1만 3,500t)가 참가하여 인도적 차원의 해상 재난시 수색 구조 훈련을 가졌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항상 그랬듯이 북침 핵전쟁 책동 이라고 비난하면서 강력 대응 차 원에서 최고사령부가 군 동원태세를 지시했다. 연합뉴스, 2012년 6월 15과 21일, 2013년 5월 22일, 2013년 10월 5일, 7일, 8일 10일; 동아일보와 서울신문, 2013 년 10월 11일. 26) 미국과 대만은 2011년 9월 대만이 보유한 145대의 F-16 A/B 전투기의 성능 개량 지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58억5천만달러 규모의 무기 지원 계약을 맺었다. 미국 측은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대만의 최신형 F-16 C/D 전투기 66대 구입 요구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2011년 11월 20일 & 2011년 9월 22일. 제임스
22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먼저 힐 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010년 7월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ARF에서 남 중국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 미국 국익과 직결된다 고 발언하고 미국 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의도로 2010 년 8월 베트남과 사상 첫 군사훈련을 한데 이어 핵 협력까지 할 수 있다 는 강공을 펼쳤다. 2011년 7월에도 미국은 브루나이 부근 남중국해에서 일본, 호주와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고, 뒤 이어 이지스함 2척을 포함한 미 제7함대 소속 구축함 3척이 베트남 다낭 앞바다인 남중국해상에서 7일간의 합동훈련을 가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1월 아시아를 순 방하면서 필리핀과는 해군 현대화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군사적 동 맹관계를 업그레이드했고, 인도네시아에는 24대의 F-16 C/D 전투기 공 급을 약속했다. 미국 해병대원 250명은 2012년 여름 호주 다윈 항에서 호주군과 합동 군사작전을 벌였고, 비슷한 시기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 도네시아 등지에서도 미군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이 전개됐다. 또한 2012 년 9월 괌에서는 중국이 주시하는 가운데 일본 자위대와 미국 해병대가 가상의 적으로부터 도서 탈환 작전을 벌였다. 27) 2012년 11월 5일 일본 자위대 3만7000여명과 주일미군 1만여명이 참가하여 사상최대 규모의 병력이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 각지에서 2012년도 연합 군사훈련을 실 시했다. 28) 필리핀 해군은 2013년 6월말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거행했다. 29) 인호프 미국 상원의원은 2013년 1월 8일 대만의 마잉주( 馬 英 九 ) 총통을 예방하 고 미국은 아파치 공격용 헬기 30대와 블랙호크 수송헬기 60대를 2013년과 2014 년에 각각 대만에 판매할 것이고 2015년에는 신형 패트리엇 미사일을 제공할 것 이라고 공개했다. 연합뉴스, 2013년 1월 9일. 27) 연합뉴스, 2012년 11월 12일. 28) 중국은 이 훈련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고, 남해함대 소속 강습상륙함인 쿤룬산함과 구축함, 호위함,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 함대가 남중국해의 한 해역에 서 가상의 적이 차지한 대규모 섬을 상륙훈련을 통해 탈환하는 훈련을 중국중앙 텔레비전(CCTV)으로 방영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았다. 이는 유사시 센카쿠 열 도를 관할하는 동해함대 외에 남해함대 전력도 증원해 작전을 펼칠 능력이 있다 는 점을 과시한 것이라고 분석되었다. 한겨레, 2012년 11월 7일.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23 특히 미국은 동맹국 및 우방국들과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화하여 중간 기점에 위치한 기지를 재확보하고 이를 연결하여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 위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991년 철수한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 지를 재건해 사용하고, 태평양전쟁 당시 사용했던 사이판과 타이니안 항공기지를 개발하며 월남전 당시 운용하였던 태국의 유카파오와 코라 트기지를 호주 북부의 항공기지와 함께 운용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또한 베트남 사이공 근처의 탄손누트 항공기지와 캄란만 항구의 이용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의 구상이 실현되면 오산 공군기지로부터 태국의 코라트 기지를 거쳐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기지까지 연결하는 대중국 원 거리 전략적 봉쇄선이 구축되는데 이는 2차대전 때 일본이 구축하려던 거점 연결선과 유사하다. 30) 단지 미국과 파키스탄간의 사이가 벌어지고 파키스탄과 중국간 관계가 더욱 밀접해 지면서 이 구상의 실현은 단기 적으로는 어려울 전망이다. 31) 이에 더해 미국은 중앙아시아에는 미군기 지를 운영하고 몽골과도 각별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32) (3) 중국과의 군사 교류 및 협력 유지 오바마 행정부는 동아시아 중시정책의 대상국인 중국을 군사 안 29) 연합뉴스, 2013년 6월 20일. 미국과 필리핀 해군은 이미 2011년 6월 연례 훈련차 원에서 분쟁지역 인근인 필리핀 남서쪽 팔라완섬 부근에서 11일간의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가졌고 10월에도 난사군도( 南 沙 群 島 ) 부근 해상에서 합동 군사훈련 을 가졌다. 30) 정철호, p. 40. 31)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나토군이 2011년 11월 26일 파키스탄군 초소를 공격해 28명의 병사가 숨지자, 파키스탄 정부는 미군에 서부 발루치스탄의 주도 퀘타에서 300km 떨어진 샴시 공군기지에서 보름 내에 떠날 것을 요구했다. 연 합뉴스, 2011년 11월 29일. 32) 2001년 12월 키르기스에 개설된 미 마나스 공군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벌 이는 연간 수만 명의 병력과 그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주요 역할을 수행한 다. 단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2년 9월 20일 키르기스 비슈케크를 방문하여 알마즈벡 아탐바예프 대통령과 회담한 뒤, 키르기스가 러시아에 지고 있는 약 5억달러의 채무를 탕감해주기로 하고 미군 기지의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는 2014년 이후 이를 철수시키고 대신 러시아 군사기지를 주둔시킨다는 합의가 발 표되었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20일.
24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보 전략면에서 포위 견제하면서도 기본적인 군사 교류와 협력은 유지 해왔다. 미 행정부가 2010년 1월 대만에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3)을 포함 한 67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이 반발하여 1년여 양국 군 고위층 간의 교류가 사실상 중단됐다. 2011년 1월 로버트 게이 츠 미 국방장관의 방중과 같은 달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미로 버락 오 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개최된 후 미 중 간 군사교류도 정상화되 었다. 게이츠 장관은 미 중 정상회담 의제 사전조율 차원에서 방중하 여 천빙더( 陳 炳 德 ) 중국 중앙 군사위원회 위원겸 총참모장과 카운터파 트인 량광례( 梁 光 烈 ) 중국 국방부장은 물론 그 윗선인 쉬차이허우( 徐 才 厚 )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시진핑( 習 近 平 ) 국가부주석, 심지어 후 주석까 지 면담하였다. 33) 또한 천 참모장은 2011년 5월 방미하여 멀린 합참의 장과 회담하고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이 어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도 회동하였다. 34) 그러나 양국간 군사 협력이 원활할 수는 없었고 곧 양측의 입장차이 와 한계가 드러났다.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2011년 7월 중국을 방문하였으나 양국의 기본적인 인식과 입장 차이가 다시 한번 노정되었 다. 35) 또한 천 총참모장은 7월 11일 베이징 멀린 합참의장과 회담 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필리핀, 베트남과 남중국해에서 군사훈 련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의 남중국해 불개입을 강력하게 요구했 다. 36) 중국이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에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33) 연합뉴스, 2011년 1월 12일. 34) 연합뉴스, 2011년 6월 30일. 35) 멀린은 인민대학교에서의 연설에서 미국은 앞으로도 남중국해에서 미군의 존 재 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 이라는 의지를 표명했고, 중국 군 수뇌부인 천빙더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은 미국이 국방예산을 조금이라도 줄여 미국인의 민생개선 에 사용한다면 훨씬 더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것 이라고 반격했다. 36) 연합뉴스, 2011.7.16. 또한 천 총참모장은 멀린 합참의장에게 둥펑( 東 風 )-21D의 개발 사실을 확인하면서 둥펑-21D에 대한 시험이 진행중이며 공격용이 아닌 방어 용으로 사용될 것 이라고 말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전했다. 연합뉴스, 2011.7.12.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25 2011년 12월 7일 베이징에서 미첼 플루노이 미 국방차관과 마샤오톈 중 국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국방회담이 열렸다. 중국 측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와 항공기 및 군함의 근접 정찰이 양국군의 관계발전에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37)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은 2012년 5월 중국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 정부와 군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간에 쌓인 오해를 풀고 군사적 협력을 증진했다. 38) 중국의 량광례 국방부장과 마샤오톈( 馬 曉 天 )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은 2012년 6월 베이징에서 새뮤얼 록클리어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접견했다. 또한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은 2012년 9월 베이징에 서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과 회담했다. 창완취안( 常 万 全 ) 국방부장은 2013년 8월 워싱턴DC에서 헤이글 장관과 회담함으로써 연례 국방장관 회담을 이어갔다. 3) 외교 정책 중국의 부상에 대한 외교적 대응방안으로 미국은 먼저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국제협력을 모색해왔다. 미 중 G2 가 21세기 국제질서를 주도해갈 것이 분명하므로 양국이 협력할 수 있 는 부문에서는 적극적으로 협력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양국 간 양자관계에 관련된 각종 현안들, 국제 경제 회복과 발전, 양국간 경 제 통상 협력, 반테러활동, 해적 퇴치, 국제 환경문제, 대량살상무기 확 산 방지 등 공동의 이해관계 사항에 대해서는 힘을 모으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양국은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인 협력의 큰 틀을 기획해 가면서 세부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미 중 전략 경제대화 를 통해 협의하고 있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매년 두 차 례 미국의 재무장관과 중국의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가 상대국을 오가 면서 총 다섯 번의 전략 경제대화를 열었고, 2009년 7월부터는 매년 37) 연합뉴스, 2011년 12월 8일. 38) 연합뉴스, 2012년 5월 18일.
26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교차하여 방문하면서 미국의 국무 재무장관과 중국의 외교담당 국무위 원 및 국무원 경제담당 부총리간 2+2 미 중 전략 경제대화를 2013년 7월 워싱턴 회담까지 다섯 차례 시행했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 중국의 협력국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도록 도모하면서 중국의 경쟁국들을 규합하여 중국과 대적하게 함으로써 효 율적으로 중국을 관리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미국은 무엇보 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동반자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해지지 않도록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를 복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중국 의 지역 최대 경쟁국인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을 견제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여 인도는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 인 일본과의 협력을 증진하는 한편 베트남과도 협력을 도모하면서 중국 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사실상 중국의 방해로 그간 참여가 배제되었던 동아시아정상 회의에 2011년부터 회원국이 된 것을 계기로 미국이 아 태지역 국가임 을 강조하고 이 지역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 명하였다. 미국은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영토 갈등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 필리 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의 입장을 두둔하면서 이들 국가들의 후원국을 자처하고 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을 국제해양법재판소에서 풀자고 중국에 촉구해온 필리핀은 미국의 지원에 편승하여 2011년 11월 15일 아세안의 일부 회원국들에게 반 중국 남중 국해 공동전선 을 구축하자고 제안하였다. 베트남도 제3국의 개입을 배 제하고 분쟁 당사국 양자 간에 풀자는 중국의 요구를 거스르며 인도와 남중국해 석유탐사를 추진키로 했을 뿐 아니라 자국 땅에 인도 해군기 지를 허용했다. 특히 2011년 11월 30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 국무장관으로서는 56 년만에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미얀마는 아세안 국가들 중 최대 자원부 국이고 그간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온 반면 미국은 군사독재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27 정권의 인권 탄압 때문에 모든 원조를 중단하고 국제제재를 주도해왔 다. 미국은 미얀마가 각종 정치 경제 개혁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사실상 미얀마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하 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아세안의 차기의장국인 미얀마와 타협을 모색한 것이다. 미얀마가 갑자기 미국과 연합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역 할을 맡지는 않겠지만 미얀마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축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2년 11월 오바마 대통령도 재선 뒤 첫 해외 방문지로 미얀마를 방문하여 테인 세인 대통령과 회담하고 미얀마의 민 주화 개혁을 높이 평가하고 이러한 진전이 계속되도록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때를 맞춰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부가 국제개발처 (USAID)를 통해 미얀마 정부에 2년간 1억7천만달러를 지원하는 원조 계획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대외전략으로 국방 (Defense), 외교(Diplomacy)와 함께 개발(Development)을 활용하는 것 을 보여주었다. 39) 또한 인권문제는 내정을 넘어서는 인류 보편적인 사안이라는 차원에 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1년 7월 백악 관에서 17개월 만에 또 다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39) 오바마 행정부는 대외정책을 위해 세 가지 수단을 동원하고자 한다. 클린턴 국무 장관은 2010년 10월 28일 아시아 순방에 앞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행한 연설 에서 대외정책의 3D인 국방(Defense), 외교(Diplomacy), 개발(Development) 은 함께 추진되어야 하고, 아시아에서 우리의 군사 활동은 우리의 포괄적 관여 의 핵심부분인데, 외교와 개발의 전진배치 접근과 군사 활동을 균형시키고 통합 함으로써 미국은 국익을 확보하고 공동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Secretary Hillary Rodham Clinton(Remarks by), America s Engagement in the Asia-Pacific, (Kahala Hotel, Honolulu, HI, October 28, 2010), http://www.state. gov/secretary/rm/2010/10/150141.htm.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반테러전쟁과 관련해서도 가난하고 부패한 나라, 법이 없는 나라가 테러리스트와 각종 범죄 자의 안식처 노릇을 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비록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스마트 파워 접근법으로서 군사력을 동원하는 방위, 외교, 그리 고 불안정한 상태의 나라들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중산층을 키울 수 있도록 개발 지원을 진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Hillary Rodham Clinton, Leading Through Civilian Power: Redefining American Diplomacy and Development, Foreign Affairs (Nov./Dec. 2010), pp. 13-24.
28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만났다. 마리아 오테로 미국 국무부 민주주의ㆍ인권 담당 차관은 2012 년 12월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중국은 티베트인의 항의 활동에 대해 그 들의 종교ㆍ 언론ㆍ집회ㆍ결사의 자유를 더욱 억압하는 방식으로 대응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 정부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나 그의 대표들과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 대화를 하는 한편 기자, 외교관, 옵서버들이 중국 내 티베트인 밀집 거주지역에 자유롭게 왕래 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40) 끝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 이후에도 북한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 내 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2012년 북 미간 2 29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북한이 4월 15일 김일성 출생 100주년 기념으로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 거리미사일 시험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4월초 평양에 백악 관 특사를 파견했지만 북한은 4월 13일 이를 강행했다. 오바마 대통령 은 8월 중순 또 다시 평양에 특사를 보내 설득하여 미 대선 전까지는 북한의 도발을 통제했다. 그러나 북한은 12월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 리미사일을 또 다시 발사했고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은 존 케리 국무장관이나 척 헤이글 국방장관 등 협상파를 주요 대외정책 책임자로 기용했지만 북한에게는 성의있는 선 행동 을 요구하면서 전략적 인내 기조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오바마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 기조는 톰 도닐런 백악관 안보 보좌관이 2013년 3월 11일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소사이어티 회의에서 북한의 핵 보유를 수용할 수 없고 핵 미사일 개발을 방관하지도 않을 것 이며 북한의 외국환 거래 은행인 조선대외무역은행을 추가 제재하 고 있다 고 설명하면서 밝힌 4가지 원칙으로 잘 설명된다. 첫째, 한 미 일 세 나라의 긴밀한 협력과 미 중의 공조가 필요하다. 둘째, 북한 의 나쁜 행동 에 보상하지 않고 헛된 약속을 받아들이거나 위협에 굴 복하지 않겠다. 셋째,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와 핵 물질을 다른 나라로 옮겨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면 대응에 나서겠다. 40) 연합뉴스, 2012년 12월 7일.
Ⅱ. 미국의 동아시아 중시정책 29 마지막 원칙은 미국은 협상을 다시 시작하고 북한의 경제 개발을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이 더 나은 길을 선택하도록 계속 돕겠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현재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면서 북한 에 의미 있는 행동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미얀마는 이미 엄청난 금액의 부채를 탕감받았다. 대규모 개발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신규 투 자가 유입되고 있다 면서 미국의 용서와 새로운 관계 구축의 증거로 미 얀마를 눈여겨보고 오바마 대통령의 약속을 믿으라고 북한에 당부했 다. 41) 이러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우라늄 농축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북한에게 UN안보리 등의 다양한 기존 제재의 이행 외에 새로운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하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선 행동 으로 핵문제 해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게해주지 않는다면 미국이 먼저 대화나 협상을 시도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경제 통상 정책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부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경제 부문이다. 특히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인위적인 개입을 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해왔다. 일자리를 창출하여 침체된 미국 경제를 살리고 금융위기를 극복하겠 다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상적자를 축소할 뿐 아니라 미국의 수출을 증대하여야 하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상품 관세 철 폐 뿐 아니라 미국 경제의 강점인 지적재산권 노동규제 금융 의료 분야의 비관세 장벽 제거를 추구해왔다. 이를 위해 미국은 2005년 뉴질 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이 시작한 다자간 FTA인 환태평 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2008년 2월 참가하였고, 회원국은 호주 말 레이시아 베트남 페루 등 9개국으로 늘어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1월 12일 하와이 APEC 정상회의에서 위안 41) 연합뉴스, 2013년 3월 12일.
30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화가 불공정하게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에 규칙을 지키 라고 촉구하는 한편 미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지적재산권을 보호받 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동시에 오바마는 TPP의 필요성을 역설하 면서 환태평양자유무역지대 구상을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TPP를 지칭하면서 21세기 자유무역협정 은 개방과 노동조건을 포함한 기본적인 가치존중과 연계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11월 11일 TPP 협상 참가를 공식으로 선언하고 캐나다 멕시코도 관심을 표명하자 참가 제안조차 받지 못한 중국은 고립감을 느끼면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세계 경제 3위인 일본이 이에 참가하 여 중국의 입지는 위축되었지만, 중국이 고립을 모면하기 위해 이에 동 참하려면 추가 시장 개방과 위안화 환율 자유화, 지적재산권 보호 등 미 국이 원하는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전략적 곤경에 빠진 것이다.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31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정책이 펼쳐지는 가운데 한반도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출범해 후계 권력 안착 작업을 진행하면서 미국과 대화 를 모색하는 듯하더니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미사일 도발을 감행하 여 안보 정세를 긴장국면으로 몰아갔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 어 2기 행정부를 출범시키자마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감행하였고 유엔 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가 논의되는 와중에 한국에 박근혜 정부가 출범 했다. 2013년 봄 한 미연합훈련 중 북한은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최 악의 수사적 위협을 가했지만 4월 중순 이후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강 력히 제지하고 나서자 결국 북한은 또 다시 대화 모색쪽으로 대외정책 을 선회하여왔다. 1. 2012년 11월 미 대선까지 : 대화 모색 후 현상유지 북한은 김정은 후계정권의 안착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미국과 북핵문 제에 대한 협상을 추진하였다. 2012년 2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글 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간에 베이징 3차 고위급회담이 개최되어 2월 29일 양측은 각각의 해석에 따른 합의 내용을 발표하였다. 양측의 발표에 차이점이 노정됐지만, 그 주요 내용은 미국이 매달 2만톤씩 1년 간 대북 영양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은 IAEA 사찰단을 복귀시키 고,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가동 정지하며, 핵 실험 유예 및 장거리미사 일 발사를 임시 중지(북한의 주장) 한다는 것이었다. 3월 초에는 북한의 6자회담 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뉴욕에서 열린 Track II 세미나에 참석하여 2 29합의 이행의지를 확인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만 되면 북핵문제는 쉽게 풀릴 것 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조만간 IAEA 사찰단이 북한에 복귀할 것 임을 밝히는 등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
32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진할 의향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인 3월 16일 북한은 4월 12일과 16일 사이에 인 공위성을 발사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는 이런 북한의 행동이 약속을 깨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3월말 서울 핵정상 회담에 참석한 세계 정상들은 북한의 위성 발사가 동북아 안정을 위협 하는 행위라고 한 목소리로 비난하면서 발사 중단을 요구하였다. 특히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북한의 위성 발사가 안보리결의안 위반이 라면서 발사 중단을 요구하였고, 후진타오 중국 주석조차 중국이 발사 저지를 위해 외교적 설득과 경고를 행하고 있다고 확인하였다. 42) 북한은 새로운 권력의 안착 과정을 밟아갔다. 2012년 4월 11일 노동 당은 제4차 당대표자회를 개최하여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최고 사령관직만 갖고 있던 김정은을 노동당 제1비서 겸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로써 김정은은 공식적으 로 당권력을 승계받았다. 43) 북한은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를 열어 김정은 제1비서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로써 북한의 3대 세습은 제도적으로 완성됐고 당 정 군을 아우르는 김정은 1기 체제 가 공식 출범했다. 특기할 사항은 최고인민회의가 헌 법을 개정하여 그 전문에 북한의 핵보유를 명기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만류하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 한은 결국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개최 직전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 서 로켓 발사를 감행하였으나 2분도 되지 않아 1단 추진체가 폭발하여 평택 및 군산 앞바다에 그 잔해가 추락하였다. 국제사회는 이구동성으 42) 졸고,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동향과 한국의 대응방안, 정세와 정책 (세종연 구소, 2012년 4월 1일), pp. 5-8. 43) 제4차 노동당 대표자회는 당규약을 개정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을 당 제1비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영원한 총비서 로 추대했고, 서문에서 당 의 지도적 지침을 주체사상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로 교체했다. 또한 당비서에 서 인민군 차수 칭호와 함께 군부내 최고직책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발탁된 최룡해는 당 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돼 북한체제내 서열 2인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연합뉴스, 2012년 4월 12일.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33 로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비난하였고 불과 몇 시간 뒤 유엔안보리가 소집 되었다. 결국 안보리는 4월 16일 북한의 행위가 안보리결의안 1718호 및 1874호를 심각하게 위반 하였다고 강조하고 발사를 강력히 규탄 하 며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어떠한 추가적인 발사도 하지 말 것을 요 구할 뿐 아니라 대북 제재 대상을 추가로 지정하여 확대하고 추가 발사 나 핵실험을 감행하면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경고(트리거 조항)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였다. 김정은 체제 출범과 강성대국 진입, 김일성 100회 생일 축포로 발사 한 로켓이 추락하면서 김정은 정권의 위신도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김 정은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주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했 지만 경제면에서 단시간에 이를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형편이었으 므로 대남 도발이나 또 한번의 로켓 발사 또는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 이 있다고 관측되었다. 특히 북한은 2006년이나 2009년에도 장거리로켓 을 시험발사한 뒤 이에 대해 유엔안보리가 규탄한 것을 빌미로 삼아 핵 실험을 감행하였으므로 이런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했다. 44) 그러나 이후 북 미관계는 소강상태를 보여왔고 북한이 도발을 자제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정면 대립이나 위기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 았다. 2 29 합의가 4월 북한의 로켓발사로 이행되지 않았지만 북 미 어느 측도 2 29 합의에 구속될 의무는 없다고 하면서도 합의가 폐기되 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이 로켓 발사 1주일전인 4월 7일 평양에 백악관 관료들을 특사로 파견하여 북한 과의 관계를 관리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이후 뉴욕 채널 등을 통해 북 미 대화는 지속되었고 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7월 31일부터 3일간 싱가포르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국장을 만났다. 특 44) 북한은 2006년 7월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비록 동해에 떨어져 실패하였지만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1695호가 채택되었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동년 10월 제1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또한 북한은 2009년 4월 무수단리에서 은하2호 로켓(광명성 2호)을 발사하였다. 안보리에서 북한의 행위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이 채택되자 북한은 또 다시 이를 빌미로 5월 제2차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34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히 백악관 특사가 8월 17부터 3일간 또 한 차례 평양에 체류하면서 향 후 양국관계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45) 즉 북 미 양측은 정면 대립을 자제하고 물밑 대화를 이어갔다. 그 결과 북한은 11월초 미 대선까지 핵 실험이나 추가 로켓 발사를 자제했고 한반도 문제는 선거 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2. 2012년 11월 미 대선 이후 2013년 4월 북한 태양절까지 : 대립 심화 1) 경과 오바마 대통령은 미 대선 과정에서 미국 국민들이 한반도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내 경제 회복 문제나 중동의 이란 및 시리아 문제에 집중하였다. 또한 2 29 합의나 두 차례의 특사 파견에도 불구 하고 북한이 핵문제에서 가시적이고 적극적인 양보를 행하지 않았으므 로 대북 정책에서 새로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취하지 않았다. 마침내 오바마가 재선되었고, 북한은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 를 추진하리라 기대했는데 곧 실망했다. 오바마는 여전히 중동문제를 더 중시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얀마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했다. 이에 북한은 미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미 국의 관심을 끌며 장거리미사일 기술도 발전시키기 위해 4월에 실패한 장거리로켓 발사를 또 한 차례 시도하였다. 46) 12월 12일 발사된 장거리 로켓은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리고 예정된 지점 근처까지 날아갔 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갖추고 이를 미사일로 전용하면 머지않아 미 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장거리 전략미사일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45) 동아일보, 2012년 11월 29일. 46) 2012년 11월말 미국 위성사진 전문기업 디지털 글로브 가 2012년 4월 장거리로 켓을 발사했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 징후를 포착해 전 세계 언론이 보도했지만 11월 27일 미 국무부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은 새로 운 것은 없다 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도 미 대선 후 적절한 시기에 북 미 대 화를 재개하기로 묵계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한다.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35 19년만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낭독한 2013년 신년사에서 김정은 은 2012년과 달리 미군 철수 요구를 언급하지 않고 외세의 지배와 간 섭, 침략과 전쟁책동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는 정도로만 말하는 등 미 국을 직접 비난하지도 않아 북 미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점을 시사했 다. 그러나 유엔안보리가 2013년 1월 23일 북한의 로켓 발사를 규탄하 고 북한에 대한 기존 제재를 확대 강화하며 북한의 새로운 도발이 있 을 경우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는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 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북한은 외무성과 국방위원회의 성명을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모든 나라가 누릴 수 있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자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안보리결의안에 찬 성표를 던진 중국을 겁쟁이 라고 비난하는 한편,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을 겨냥하여 인공위성과 장거리로 켓을 계속 발사할 것이며 높은 수준의 핵 시험도 진행할 것임을 천명하 였다. 또한 1월 25일 조평통의 성명을 통해 한국이 유엔 제재에 직접적 으로 가담할 경우 물리적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위협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완전 백지화와 무효화를 천명했다. 연이어 노동신문의 정론이 나왔고,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에서 김정은이 국가 적 중대조치를 취할 단호한 결심 을 밝혔으며, 안보 최고 기관으로 간주 되는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결 론 을 냈다고 발표하여 핵 실험 감행 결정이 제도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선언했다. 마침내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핵 탄두의 소형화 및 경량화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해줄 것이라 평가되는 제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1년 전부터 핵 실험을 준비해왔으나 내세울만한 명분이 없어 기다렸다가 안 보리의 북한 주권 무시 를 빌미로 이를 강행한 듯한 행보였다. 특히 체 제 출범 1주년을 맞아 김정일의 유업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이 어느 정도 성공하여 과학자들을 포상하고 전국적으로 이를 경축했는데 미국이 주도하여 북한의 행위를 처벌하였기 때문에, 김정은
36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으로서는 이에 강력히 반발하지 않고서는 정권의 위신이 크게 손상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에 더해 동맹국인 중국도 제재에 찬성했 으므로 북한은 자주적 억지력 만이 북한 체제를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 하여 핵 무장으로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북한의 3차 핵 실험으로 북 미관계는 대화 모색에서 대결국 면으로 전환되었다. 북한 정권은 3월초 시작된 한 미 연례 연합군사훈 련인 독수리훈련(3.1-4.30) 및 키리졸브 연습(3.11-21)과 북한의 핵실험 에 대한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안 2094호 채택(3월 7일)에 반발하여 정 전협정을 백지화하고 남북불가침 합의를 무효화하며 전면전과 핵 전쟁 을 불사하겠다는 수사적 위협과 협박을 가했을 뿐 아니라 미사일과 전 략로켓부대에 제1호 비상대비태세를 발동하는 등 언제라도 전면전이라 도 벌일듯한 호전적 태세를 보였다. 북한 내에서는 3월 31일 노동당 중 앙위원회 전원회의가 개최되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동시에 추구 하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다. 47) 또한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제 12기 7차회의는 핵 억제력과 핵 보복 타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 적인 대책을 세우고 다른 핵보유국이 자신들을 침략 공격하는 경우 최 고사령관의 최종 명령에 의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 등 을 담은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 를 최고 인민회의 법령 으로 채택했다. 48) 이른바 핵 경제 병진노선 과 상기 법 47) 전원회의는 새로운 병진노선의 우월성은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이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 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 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핵억지력 확보로 선경정 치를 취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지만,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가 요원해졌다 는 데 있다. 전원회의는 선군 조선의 핵무기는 미국의 달러와 바꾸려는 상품이 아니며 우리의 무장해제를 노리는 대화마당과 협상탁 위에 올려놓고 논의할 정 치적 흥정물이나 경제적 거래물이 아니다 라며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할 것 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일방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는 회담에 응하지 않을 것이며 전지구적 차원의 핵군 축 차원에서만 핵포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존의 논리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핵 포기 조건으로 미국이나 한국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을 내세운 것이 다. 연합뉴스, 2013년 3월 31일. 48) 연합뉴스, 2013년 4월 1일. 이 법령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해 우리 공화국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37 령의 채택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 북한은 4 월 8일 개성공단 근로자를 철수시켰고 박근혜 정부도 남한 근로자 전원 을 철수시켜 남북한은 개성공단 전면폐쇄와 정면 대립을 불사하는 팽팽 한 기싸움을 벌였다. 북한은 4월 11일과 13일 김정은 체제 출범 1년, 그리고 4월 15일 김일성의 101회 생일(태양절)을 기해서는 사거리 3,000km에 달하는 무수단 미사일과 한반도와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둔 스커드 및 노동 미사일 발사동향을 보였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핵 공격 가능성마저 표명하 는 상황이므로 비핵국인 남한으로서는 상당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한 미동맹에 의거해 미국은 확장억제력 제공을 계속 확 인하고 B-52, B-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F-22 스텔스전투기를 남한에 보내 이를 행동으로 과시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감시 하기 위해 탐지거리가 2천 5천km의 해상기반 X밴드 레이더(SBX-1)를 하와이에서 서태평양 해역으로 이동시켰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 에 대비해 고( 高 )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괌에 투입했다. 그러 나 한국 국민은 전쟁 발발 위협과 안보 불안감에 시달렸다. 북한의 호전 적인 위협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 것은 북한의 핵 능력 강화와 젊은 김정은의 행동의 예측불가능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2) 북한의 극단적인 위협의 배경 김정은 정권은 왜 2013년 3-4월에 걸쳐 극단적인 대남 대미 군사 위 협을 가했던 것일까? 그 배경을 북한 내부요인, 한 미동맹과 북 미관 계 및 미국변수, 남북관계 및 한국 변수, 중국변수 등으로 살펴본다. (1) 김정은 리더십 강화 사회주의 체제에서 합리화할 수 없는 3세 세습으로 권력을 잡은 김정 은은 젊은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정권 안착을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 을 침략하거나 공격행위에 가담하는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Ibid.
38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었다. 독재 정권을 안착시키려면 무엇보다 군 및 공안기관 등 무력기관 의 충성 확보가 관건이다. 따라서 대외 긴장을 고조시키고 외부의 압박 에 단호히 대응하는 군사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하여 이들의 충성을 확보 하고 주민들의 불만을 억제할 뿐 아니라 전제적 지도력을 강화하고 정 권을 확실히 장악하려 한 것이다. 특히 2012년 12월의 장거리 로켓 발 사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하여 핵 실전능력 보유에 다가선 데서 생긴 자신감과 남한에 대한 지정학적 이점을 악용 하면서 수사적으로 대남 협박을 극대화한 것이다. (2) 한 미연합훈련에 대한 대응 미국의 과도한 대북 압박 시위에 대한 김정은의 과장된 수사적 대응 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은 독수리 훈련과 키 리졸브 (Key Resolve) 연습에 이지스구축함 2척 외에도 F-22 스텔스 전투기, 핵잠수 함 샤이엔,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B-52(하늘을 나는 요 새, 3월 8 19 25일), 미 본토에서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논스톱으로 날 아온 B-2 스텔스전략폭격기(스피릿: 하늘의 유령; 3월 28일),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 F-22 랩터를 한반도에 공개 출격시켰고(3월 31일) 군산 앞바다에 있는 직도에 훈련탄을 투하했는데 북한은 이를 상당히 공세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49) 미국이 전쟁시나리오 중 공세 적인 부분을 연습에 적용해 본 것인데, 이처럼 미국이 예상외로 강하게 나온 것에 대해 김정은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는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오히려 과장되게 강력히 대응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49) 북한은 B-52가 처음 출격한 3월 8일 불가침합의 전면 폐기를 선언했고, 세 번째 출격한 다음 날인 26일 북한군 최고사령관의 전투근무 태세 돌입을 지시했다. 또한 B-2 폭격기가 미국에서부터 중간 기항없이 날아와 훈련을 시행한 다음 날 인 29일 김정은은 최고사령부 회의를 주관하며 미국 본토 등을 겨냥한 미사일 사격 대응을 지시했다. 중앙일보, 2013년 4월 2일.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39 (3) 미국에 대한 불만 표출 및 북 미 협상 재개 압박 2012년 4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기 일주일전에 백악관 특사가 평양 에 갔고, 8월에는 백악관 특사가 3일이나 머무르면서 북한을 관리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이 된 후에는 북한 관리의 후속 조치에 소 홀했다. 미국 특사들이 북한 당국자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될 때까 지만 조용히 있어주면 재선이 된 뒤 대화를 하겠다 라는 메시지를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재선 뒤 협상 재개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부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12월 에 로켓을 발사했을 수 있다. 또한 로켓발사는 대체로 안보리 의장 성명 정도로 다루어 왔는데 2013년 1월에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것이 북한을 더 실망 시킨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오히려 이를 핵실험의 명분으로 삼은 것 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로켓발사 성공으로 전국이 축제분위기였는데 안보리가 제재 결의안을 내놓으니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핵 실험을 위한 적당한 명분을 찾고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이 그 때를 놓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유엔 안보리가 또 다시 강력한 대북 제재결의안을 내놓고 한 미 군사훈련이 시작되자 북한은 벼랑끝 전술 을 구사했는데, 그 배경으 로는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조성해 북한이 그동안 제창했던 한반도 평 화 복원과 정착을 위한 평화체제 협상이 필요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고 볼 수 있다. (4) 평화 관리보다 응징에 중점을 둔 한국 정부의 안보정책 이명박 정부는 지정학적 여건을 포함한 남북관계에 대한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인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관계를 갑을관계로 인 식하여 북한의 체면을 경시하면서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정책을 펼쳤다. 자연히 한반도 평화의 관리보다는 남북간 정면 대결을 불사하 는 태도를 보였다. 즉 북한의 악행에 대한 예방보다 응징에 중점을 두었
40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으므로 이에 자극을 받은 북한 정권은 공멸 불사의 모험주의적인 대남 정책을 구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에 비교적 균 형감을 가진 대북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이념과 도덕에 입 각한 대북 정책으로 북한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북한의 정면 대결 도 전을 받게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5) 한국 일부 언론의 북한 비하 보도 남북간 평화가 정착되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로서 한국 일부 언론의 이념과 도덕에 입각한 대북 보도가 북한의 대남 화해정책 채택을 어렵 게 하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내세운 개성공단 가동 잠정 중단 사유에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북한은 남한의 일부 언론이 개성공단 남한 근로자 를 인질로 잡을 수 있고 매년 900억원 정도의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데 이를 중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한 것을 북한을 비하하고 모함하 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반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유민 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생각할 때 정부가 이런 보 도와 평론에 제한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향후에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 해서 불가피하게 슬기롭게 극복해야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이를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북한의 박근혜 신정부 길들이기 북한은 종전에도 한국의 새 정권을 길들인다는 차원에서 정부 출범 즈음에 각종 도발을 자행했다. 남북 화해 협력을 모색했던 김대중 노 무현 정부 출범시에도 이런 행태를 보였었다. (7) 중국 정부의 대북 제재 가담에 대한 항의 표시 및 중국 결박 북한은 동맹국인 중국이 로켓발사에 대한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표 를 던진 것에 분격했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핵 실험 뒤 제재 결의안 채택에서 더 심화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정권은 중국이 동맹적 우 의를 저버리고 미국의 반북 정책을 지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한반 도 위기시 중국이 결국 북한 편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이해관계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41 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대남 대미 전쟁 불사 위협을 가함으로써 중 국을 북 중 동맹의 틀 속에 결박해두려 하였다. 물론 북한의 이런 전술 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새로 출범한 시진핑 정권의 반감 을 초래했다. 3. 2013년 4월 태양절 이후 : 대화 모색 재개 1) 경과 한반도 안보 상황과 북 미관계는 2013년 4월 초 북한이 동해지역에 서 사거리 3,000km의 중거리 무수단미사일과 스커드미사일을 시험 발 사하는 동향을 보이다가 정작 4월 15일 태양절에 군사행진마저 하지않 고 4월 25일 인민군창건일도 조촐한 행사로 마무리함에 따라 소강국면 을 거쳐 정상화 모색을 위한 탐색기에 들어갔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 관의 한 중 일 3국 방문 직전인 4월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박근 혜 대통령의 대화로 문제를 풀자 는 대북 제의에 이어 케리 장관도 4월 12일 서울에서 북한의 성의있는 태도만 확인되면 대화를 재개할 수 있 다 는 점을 밝혀 한반도 정세 안정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모색 되는 국면으로의 전환이 서서히 이루어졌다. 특히 중국 시진핑 정부가 김정은 제1비서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5 월 22일-24일) 북한내 권력 서열 2위로 볼 수 있는 최룡해 인민군 총정 치국장을 박대하고, 장거리 로켓발사에 이어 핵 실험을 강행한 북한이 더 이상 도발을 행하지 말 것과 남한과의 관계 정상화와 북 미 대화 및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뒤 50) 북한 의 대외 정책 태도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왔다. 미 중 정상회담을 전후 하여 비록 결렬되었지만 6월 6일 북한의 대화 제의로 남북간 당국회담 재개가 모색되었다. 그러나 남북 장관급회담이 6월 12일 서울서 개최되 는 듯했으나 6월 11일 양측 대표의 급과 격문제로 인해 성사되지 않았 50) 시진핑 주석은 5월 24일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맞아 상황이 변해도 중국 은 한반도비핵화를 목표로 추구할 것이다 고 단언하였고 최국장은 6자회담 등 각종 형식 대화를 원한다 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24일.
42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 캘리포니아를 방문해 6월 10일 오바마 대통령에 게 북한의 핵을 용인하지 않겠다 고 약속하였고 이후 중국의 대중 압박 은 더욱 강해졌다. 51) 핵 보유국임을 헌법전문에 명시한 북한의 입지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6월 16일 국방위원회 중대담화를 통 해 위임에 따라 비핵화 의지를 피력하고 미국에게 회담장소와 시일은 편리한대로 정하라 면서 고위급회담을 제안하였다. 주목되는 점은 북한 이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 군대와 인민 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일 뿐 아니라,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의 유 훈 이고 노동당과 국가와 천만군민이 반드시 실현해야할 정책적 과제 라고 천명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7월 27일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도 무력 과시를 자제하는 한편 그간 핵 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국 가시책으로 강조해온 것과 달리 공개적으로는 이의 언급을 자제했다. 남북관계도 6차례 실무회담에서 세 대결을 벌인 뒤 마침내 8월 14일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목할 점은 과 거 어느 회담 때보다 북한이 남한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양상으로 합 의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부도 7차회담에서는 실용적 인 방향으로 유연성을 보였다. 향후 공단 정상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는 책임 주체를 남북한 모두로 규정하는데 남한이 양보하 는 대신, 북한이 공단의 정상 가동, 남측 인원의 신변과 기업 재산 보장, 개성공단 남북 공동위원회 운용, 공단의 국제화 등을 받아들이는 등 실 질적인 내용에서는 북한이 상당한 양보를 행했다. 합의에 따라 9월 16 일 166일만에 개성공단이 재가동되었다. 51) 중국 소재 북한 은행에 제재를 가했으며 북 중간 세관 검열을 강화하여 북한의 모험주의 정책에 중국이 무조건적으로 뒤를 봐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 다. 중국 상무부와 공업정보화부 등은 2013년 8월 23일 핵무기와 화학무기 등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는 기술 수십 건을 포함해 236쪽에 달하는 대북 수출금지 목록을 발표했다. 수출금지 대상엔 핵무기 관련 장비-기술은 물론 무인 비행체와 레이저기기, 정밀 탐지기, 장거리 미사일을 실은 특수 운반 차량 등이 총망라됐고 중국 전역 항구와 국경 세관에까지 통보됐다.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43 한편 박근혜 대통령의 8 15 경축사에서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북 한이 호응하여 행사 개최가 추진되었으나, 북한이 상봉행사를 4일 앞둔 9월 21일 금강산 관광 재개가 여의치 않다는 판단 하에 이의 연기를 발 표해 또 다시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다. 북 미관계의 최대 현안은 북핵문제인데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종 용에 자극을 받은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으로 하여금 중국과 러 시아를 방문하게 하여 조건없는 6자회담 재개를 주장하였고, 중국도 활 동을 개시하여 우다웨이 중국측 6자회담 대표이자 한반도사무 특별대표 가 평양을 방문하였고 이후 북한 중국 러시아가 조건없는 조속한 6자 회담 재개를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 재개전 북한이 회 담에서의 비핵화 성과를 보장하기 위해 먼저 2 29 합의 + 알파 를 행 동으로 이행하라고 요구하여왔다. 즉 북한이 6자회담을 재개하고 싶으 면 북한이 먼저 일방적으로 IAEA 사찰단을 복귀시키고, 우라늄농축 프 로그램을 가동 정지하며, 핵 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유예 조치를 취 하라는 것이다. 52) 북 미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지만 접점을 모색하는 노 력도 이루어졌다. 북한의 6자회담대표 리용호 부상이 9월 25-26일 양일 간 베를린에서 스티븐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전 국무 부 차관보이자 1994년 제네바협상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를 트랙2 비 52) 이러한 북 중 러 대 한 미 일간 입장차는 중국이 9 19 공동성명 8주년을 맞아 9월 18일 베이징에서 개최한 1.5트랙(반관반민) 형식의 6자회담 10주년 기 념 국제 토론회 에 북한은 핵협상을 총괄하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리용호 6자회담 대표 등 북핵 관련 주요책임자를 모두 파견하였고, 러시아 역시 6자회 담 차석대표를 보냈으나 한 미 일 3국은 이 회의가 6자회담의 예비성격이 안 되도록 실무급 외교관과 민간인만 참석시킨 데서도 잘 드러났다. 회의에서 중국 뿐 아니라 러시아도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재개 하자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 했다. 이 국제 토론회 를 주재한 데 이어 김계관과 접촉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그 다음날 워싱턴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을 만나기 직전 6자회담을 어떻게 재개 할지, 비핵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추진할지에 대해 미국과 새롭고 중 요한 합의를 도출할 자신이 있다 고 밝히는 등 의욕을 보였다. 연합뉴스, 2013년 9월 20일 & 한겨레 2013년 9월 22일자 이 회의에 참석한 문정인 이희옥 교수 의 대담.
44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공식세미나 형식으로 만났고 53) 이어 10월 2일 런던에서도 북한 관리와 미국 전문가간 비공식 대화가 이루어졌다. 54) 존 케리 국무장관은 10월 3일 도쿄에서 미 일 안전보장협의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 리는 북한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지 않는다 고 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협상에 나 설 경우, 북한과 불가침조약(Non-aggression agreement)에 서명할 준비 가 되어있다 고 말했다. 55) 또한 중국 역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 미간 중재 노력을 강화하였 다. 9월에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하면서 6자회담 재개에 자신있 다 고 말한 데 이어 10월에 미국을 방문한 우다웨이 한반도 사무 특별대 표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물론 북한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양보적인 행동을 할 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하여왔다. 케리 국무장관의 불가침조 약 체결 제안을 거부하였고, 북한 외무성은 10월 31일 미국이 대북 적 대정책 을 철회하지 않는 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일방적으로 먼저 움직 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다웨이는 11월 4일부터 닷새동안 북한을 방문했다. 따라서 향후 중국의 적극적인 주선하에 미국과 한국이 선행조치나 이 행 시기 등을 조정해 줄 것인지 그리고 북한이 그 조치들을 6자회담을 53) 회담에는 북한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과 장일훈 유엔대표 부 차석대사, 그리고 미국의 밥 칼린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도 참석했 다. 연합뉴스 & 세계일보, 2013년 9월 27일. 54) 이 회의에는 리용호 외무성 부상과 차석대표인 최선희 외무성 부국장, 미국의 보즈워스 전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 협력 프로젝트국장, 토니 남궁 전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등이 참석했 다. 헤럴드생생뉴스, 2013년 10월 2일.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에 일정한 영향력 을 갖고 있는 이들 두 사람은 10월 27일 뉴욕타임즈에 공동기고문을 통해 현재 의 교착상태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줄 뿐 이고, 북한은 영 변 밖에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우라늄농축시설을 포함한 핵 관련 모든 것을 협 상할 수 있다는 의사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므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재개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Stephen Bosworth and Robert L. Gallucci, Reason to Talk to North Korea, The New York Times, Oct. 27, 2013. 55) 중앙일보, 2013년 10월 5일.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45 전후하여 시행할 것인지가 6자회담 재개 여부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2013년 4월 중순 이후 한반도 정세는 남북 관계가 어느 정도 정 상화 과정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북 미 양측이 신중하게 대화를 모색하는 국면으로 전환되어 왔다. 물론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으로 북한 내부 불안정 가능성이 한반도 정세를 압도했지만 2014년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 는 의 향을 보였기 때문에 북 미 대화와 남북관계 정상화, 그리고 6자회담 재 개의 희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의 핵 개발은 계속 진전되고 있기 때문 에 이를 동결시키거나 포기시키지 못하면 북한은 머지않아 핵 실전능력 을 보유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 하에서 상시적으로 심각 한 안보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데 있다. 2) 2013년 9월 중순 이후 북한의 대남 강경책과 2014년초 남북관계 개선 의향 표명의 배경 북한이 미국과는 지속적으로 대화를 모색하는 것과 달리 2013년 9월 21일 남북간에 합의해 추진중이던 이산가족 상봉을 무기 연기시킨 뒤 2013년말까지 한국 정부에 대해 비방전에 나섰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북한은 개성공단 재가동이 김정은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고 주 장하면서 남한 언론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승리라고 평가한 것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대남 강경책 전환의 표면 상 이유일 뿐이고 근본 원인은 경제부문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지도부는 주민들에게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파급되는 것을 우려하 지 않고 단지 국토 일부에 대한 통행만 허락하면 경화를 취득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열망해왔다. 그러나 10월 2일로 예정되었던 금 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성과 도출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대남 공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정은 정권은 개성공단에서 근로자를 철수시키면서 박근혜 정 부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압박정책을 구사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국 근
46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로자를 철수시키는 강 대 강 맞대응에 나서자 실책이었음을 깨닫고 공 단 정상화까지는 남한의 주도에 끌려왔지만, 이제 공단이 정상화되어 자신들의 뜻을 이루었고 남한 정부가 공단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을 쓸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대남 강경책을 구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2013년 4월 이후 남북 대화와 북 미대화 및 6자회 담에 대해 적극적인 의향을 보여 동맹국이자 체제유지 후원국인 중국과 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의 지원을 보장받으면 더 이상 남한에 유 화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맥락 에서 김정은 정권은 남북관계는 주도하는 한편 북 미대화 재개를 모색 하여 통미봉남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12월 초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북한내 친중파의 거두이자 북 중경협을 주도해온 장성택을 전격적으로 처형한 것 자체가 중국에게는 충격이었다. 더구나 장성택의 사형 죄목에서 석 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모두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 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 를 저질렀다고 56) 명시하여 사실상 중국을 매도함으로써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정면으로 훼손했다. 따라서 김정은으로서는 외교적 고립을 면하 고 체제 생존을 도모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 처했다. 이런 배경에서 김정은은 2014년 신년사에서 남북사이 관계개선을 위 한 분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 로도 적극 노력할 것 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을 계기로 한 2013년 9월에 못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시행하자고 제의했으나 통일부가 이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별개라고 정리하자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은 판문점을 통해 56) 2013년 12월 12일 장성택에 대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문, 조선중앙통신 보도, 2013년 12월 13일.
Ⅲ. 김정은 집권(2011년 12월) 이후 한반도 정세 전개과정 47 통일부에 보낸 통지문에서 남측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는 것이 없고 우 리의 제안도 다같이 협의할 의사가 있다면 좋은 계절에 마주앉을 수 있 을 것 이라고 밝혔다. 57) 키리졸브 등 한 미 연합 군사훈련 기간을 피하 고 한국이 북한이 제안한 금강산 광광 재개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 을 보인다면 한국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응하겠다는 완곡한 거절 메시지로 평가된다. 즉 2014년초 북한 정권은 한 미 일과 국제 사회에서 전방위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마저 어려워지자 또 다시 남북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정권의 위신을 손 상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실리 획득이 가능한 경우에야 이를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파국에 처한 남북관계를 개선 하기 위해서는 (남한이) 그를 위한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58) 공을 남한에 넘기고 실리와 남북관계의 주도권 두 가지 모두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57) 연합뉴스, 2014년 1월 9일. 58) 노동신문, 2014년 1월 14일.
48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Ⅳ. 한국의 대외전략 환경과 한반도 정세 전망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뒤 한반도와 인근 모든 나라에서 새로 운 권력이 구성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 안보 관련국들의 대외정책이 새롭게 채택되고 있고 이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각국간 관계와 안 보지형이 유동적으로 재구성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미국과 북한의 대외정책 및 북 미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한국의 대 외전략 환경을 구성한다. 향후 한반도 정세에 주요 현안은 북핵문제이기 때문에 우선 미국과 북한의 대외정책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에 동북아 안보 질서와 상황전 개도 구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시진핑 시대 중국의 대외정책과 미 중 관계 및 보다 긴밀해질 북 중관계가 변수이다. 물 론 극우 성향의 아베정권 출범 이후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 역할 강화 동향도 변수이지만 이는 미 중관계와 미국의 동북아정책의 틀 속에서 다루기로 한다. 마지막 변수지만 북 미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칠 변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및 외교정책이다. 한국은 그간 상대적으로 괄목할만한 국력 성장을 가져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당사자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해왔고, 주변 강국들도 점차 이를 인 정해온데다 주변국들의 한반도 정책이 유동적인 가운데 주당사자인 한 국의 입장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 장에서는 한국의 대외전략 환경의 주요 변수들인 중국, 한국,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북한의 체제전략 기조 및 정책 선택 을 분석하고 향후 미 중관계와 남북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반도 안 보 정세를 전망해본다.
Ⅳ. 한국의 대외전략 환경과 한반도 정세 전망 49 1. 한국 대외전략 환경의 주요 변수로서의 주요국 한반도정책 1) 중국 시진핑 정권의 신형대국관계 추구와 미 중 및 북 중관계 중국이 대국굴기 차원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펴지 않는 한 미 오 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지역 안보 차원에서는 봉쇄하고 견제하겠지만 환 경 보호, 테러 방지, WMD 확산 방지 등 여타 부문에서는 협력을 모색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경제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환율과 지적 재산권, 무역부문 등에서 대중 압박정책은 강화될 것이다. 이에 대해 새로 출범한 중국의 제5세대 시진핑 정권은 덩샤오핑이 권 고한 도광양회 를 넘어 화평굴기 와 유소작위 를 적절히 구사하면서, 후 진타오 주석이 2012년 5월 발언하고 7월 시진핑이 반복한 신형대국관 계 를 미국에 요구해왔다. 이 용어에는 미 중 양국이 각자의 이익을 존 중하고 21세기 새로운 안보문제나 중요한 국제지역 문제에서 협력을 강 화하자는 주장과 함께 미국이 중국의 사활적 이익을 무시하지 말라 는 경고도 담겨있다. 59) 그러나 이처럼 중국 신지도부가 점차 자신의 목소 리를 점점 더 크게 낼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미국의 군사력이 워낙 압도적으로 우세하므로 적어도 시진핑 1기 5년간은 미국의 압박에 대해 중국이 수세적인 입장을 보여 G2간 정면 충돌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의 국가전략을 수립할 때는, 비록 미국은 중국의 반개입(anti-access) 군사정책을 군사 안보적 위협으로 인식한 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미국의 부당하고 과도한 군사적 압박과 개입을 억지 차단하거나 대중 포위망을 무력화하려는 매우 정당하고 합리적인 군사 안보정책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므로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59) 미 국방부 보고서는 신형대국관계 가 평등, 상호존중과 상호 이익에 입각한 협력 적인 미 중관계를 주장하는 개념으로서 화평굴기를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피하 자는 것을 강조하는 강대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중국의 열망을 반영한다고 평가했 다. U.S. DoD (2013), p. 21. 김재철 교수도 신형대국관계 의 핵심 사항은 미국 과의 대결과 충돌을 회피하고 상호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와 협력을 추구하는 것 이라고 정리했다. 김재철, 새로운 형태의 강대국관계 구상과 미 중관계, 중 소연구, 37-3 (2013 가을), pp. 27-35 참조.
50 미 오바마 행정부의 동아시아 중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60) 특히 중국 지도부는 임기에 구애되지 않고 수십년 앞을 내다보는 중장기적인 전략에 입각하여 대외정책을 추 진하는 성향을 보여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국수주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처럼 중국 지 도부 역시 영토 문제 같은 핵심적인 국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국 내정치적인 고려로 대외 강경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들의 민 주화 요구를 우회하기 위해 중화주의 및 반외세적인 민족주의에 편승하 려할 유혹을 느낄 것이므로 영토문제에서 특히 일본에게 양보할 가능성 은 희박하다. 61) 따라서 중 일간 영토분쟁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중시전략에 따라 미국이 센카쿠열 도 영유권 논란에 대해 기존의 중립적 중재자적인 입장에서 일본 지지 로 선회하여 중국을 자극하고 있는데, 62) 향후 현상유지를 원하는 일본 이 중국과 무력충돌을 먼저 일으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현상타파적인 중국은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할 때 위험을 감수하고 일본과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63) 그러나 중국은 일본이 헌 법 9조를 개정하기 전까지는 중 일 영토 갈등이 통제되겠지만 일단 평 60) 박건영, pp. 22-25 참조. 61) 이미 1999년 미국의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 오폭, 2005년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그리고 2010년 9월과 2012년 9월 센카쿠열도 를 둘러싼 중 일 갈등시 중국 국민의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집단적으로 분출했다. 강근형, 미국의 대중국정책과 한반도 안보환경: 미국 패권의 상대적 쇠퇴 가능 성과 중국의 부상과 관련하여, 신아세아, 19권 4호 (2012년 겨울), pp. 146-147. 62) 중국은 댜오위다오열도가 청일전쟁후 1895년 4월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 라 강제할양되었는데 2차대전 이후 미 군정을 거쳐 미 일 오키나와 반환협정이 이를 1972년 일본에 반환하겠다고 명시하자, 1971년 12월 30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중국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노골적인 침범 으로 규정하고 다음해 5월 유엔 사무총장에게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김기주 황병선, 센카쿠(댜오위다오)열도 영토분쟁을 둘러싼 일 중간 전쟁 발발 가능성 전망: 전쟁의 단계 이론 적용과 함의, 국제정치논총, 제53권 2호 (2013), pp. 48-49 참조. 이는 중국 지도부가 미국 정책의 부당성이 중 일 영토갈등의 일부 원인을 구성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63) 김기주 황병선, pp. 62-63 참조.
Ⅳ. 한국의 대외전략 환경과 한반도 정세 전망 51 화헌법이 개정되면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어 불확실성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64) 게다가 중국 정부는 한국과 배타적경제수 역(EEZ)이 겹치는 이어도에 설치한 해양과학기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 로 항의해오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65) 한편 핵 개발과 인공위성을 내세운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대남 군 사도발 등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 는 북한은 경제 회생과 발전을 위해 중국의 투자와 지원에 큰 기대를 걸고 2012년 8월에는 북한의 2인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대 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중국은 이에 적극 부응하기보다는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북한 지도부를 애타게 했다. 더구나 2013년 두 차례의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찬성표 를 던졌고, 이에 대해 북한은 대미 대남 위협 발언 등 모험주의 정책을 펼쳐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고 미 중관계에서도 중국의 입장을 어렵 게 만들었으며, 또 다시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 기 때문에 북 중관계는 매우 서먹해졌다. 게다가 전술했듯이 장성택 처형은 중국 지도부의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크 다. 어쨌든 중국 시진핑 정권은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의 동맹국, 초강 대국 진입을 모색하는 책임있는 아시아 강대국으로서 한반도 정세를 안 정시키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을 압박 설득하고 한국 및 미국과의 정책 조율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지도부가 자리를 잡아가면 서 점차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 및 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향후 중국은 북한에게 핵 실험 등 추가 도발 감행시 중국이 비호해 주기 어렵다는 점을 설득 경고하는 한편 일정 정도의 식량 및 석유 지 원을 제공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의 진척에 따라 자금 지원과 투 64) Jiangyong Liu (칭화대 교수), The Abe/Aso Regime and Sino-Japanese Relations, CIR, 23-4 (July/Aug. 2013), p. 22. 65) 강근형, p. 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