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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14:05 14:05-14:10 14:10-14:15 14:15-14:30 Seoul Culturenomics, Vision & Strategy 14:30-14:40 14:40-15:10 15:10-15:40 15:40-16:10 (Rebranding) 16:10-16:30 16: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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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포럼 제 4차 정책세미나 세 도시 이야기, 동아시아 주요도시의 문화생태계 엿보기 3. 북경 798예술특구의 형성과 발전 북경 798예술특구가 자리한 798공장은 1950년대 초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직후 소련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진영에서 진행한 대중국 원조 157개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립되었다. 당시 중국정부는 소련에 국가급 전자공업기지 구축을 요청했고, 이를 사회주의권 전자공업을 선도했던 동독이 맡아 수행했다. 1954년 동독 부총리가 친히 동독의 전문가들을 이끌고 방중하여 시공하기 시작한 798공장은 벽돌 하나까지도 동독 전문가들의 검수를 받으며 제작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57년에 완공되었으며, 이후 중국의 대표적인 군수공장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부터 산업과 도시기능의 변화에 따라 점차 쇠퇴했으나, 2002년부터 일련의 예술가들이 입주하여 창작 및 전시활동을 전개하면서 예술촌으로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림 9> 798공장, <그림 10> 등소평 798공장 참관 모습 3-1 798 예술특구의 형성 요인 ➊ 바우하우스 건축물의 문화적 매력 798공장은 20세기 초 독일에서 탄생한 바우하우스(Bauhaus)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 현대 공업생산과 수요에 맞추어 건축물의 기능, 기술, 경제적 효율을 강조했던 바우하우스 건축의 이념을 반영했던 798공장은 높고 넓은 실내공간, 활모양의 천정, 경사진 유리창, 간단하고 소박한 스타일 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충분한 채광을 고려하고,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반아치형 천정의 북쪽에 비스듬한 유리창을 설치함으로써 흐린 날이나 심지어 비가 오는 날에도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독특한 품격의 바우하우스 건축물은 현재 독일과 미국에 <그림 11> 798예술특구 화랑, <그림 12> 798예술특구 10
세 도시 이야기, 동아시아 주요도시의 문화생태계 엿보기 서울문화포럼 제 4차 정책세미나 일부가 남아있을 뿐이어서 그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전위예술을 지향하는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창작공간이자 전시공간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그림 13, 그림 14> 798예술특구 화랑 ➋ 중국 사회주의 역사에 대한 향수 북경 798공장은 바우하우스라는 모더니즘 건축의 흔적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 이전까지 중국 공업화 건설의 흔적과 문화대혁명 시기의 역사적 흔적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시 말해 798공장은 반세기 중국의 정치, 경제, 기술, 문화, 사상 등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이른바 역사박물관 이기도 하다. 현대예술을 지향하는 중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사회주의 역사의 흔적은 묘한 회고의 정서와 더불어 작품창작에도 적절히 활용될 수 있는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이러한 풍경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해외의 유명화랑들이 다투어 798공장에 들어온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➌ 저렴한 임대료 80년대 초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전통적 전자공업, 개혁개방 이후 도시기능에 대한 재정비가 시작됨에 따라 798공장은 80년대 말에 이르러 반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2만 명이던 노동자수가 4천명으로 줄었고,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되지 않게 되었다. 관리회사인 칠성그룹[七星集團]은 운영이 정지된 공장을 단기임대로 전환했는데, 2002년 당시 200 의 임대료가 월 40만 원 정도였다. 북경시 중심에서 가까우면서 창작활동에 적합한 공간과 분위기, 저렴한 임대료는 예술가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3-2 798예 술 특구의 발전 현황 798공장의 소유주인 칠성그룹은 단기임대 기간이 끝나는 2005년에 이 공장을 재개발하여 아파트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극렬한 반대와 청원에 부딪친 북경시 정부는 798공장을 근현대 우수건축물로 보호하기로 결정했고, 2006년에는 북경시 문화창의산업단지의 하나로 비준했다. 2006년 3월 조양구 정부와 칠성그룹은 북경798예술특구 건설관리 사무실 을 설립하여 따산즈 798예술특구의 종합적 관리를 담당하게 했다. 798예술특구의 면적은 약 50만 이며, 실제 이용면적은 약 12.5만 이다. 2005년 798예술특구를 방문한 관람객은 약 50만 명, 2006년에는 약 100만 명에 달했다. 2005년에 798예술특구에 입주한 업체도 63개에서 2007년에는 354개로 증가했다. 실험성이 강한 현대예술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국내의 저명한 예술가들도 798예술특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등소평 조각상을 제작했던 청화대학 교수 이상군(李象群), 2006년 예술품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던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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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포럼 제 4차 정책세미나 세 도시 이야기, 동아시아 주요도시의 문화생태계 엿보기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 도시 리브랜딩의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디자인이다. 건축, 인테리어디자인, 패션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제품디자인을 통한 도시 리브랜딩의 추진 현황을 살펴볼 수 있겠는데, 싱가포르 도시 디자인을 대내외적으로 크게 알린 레드 닷 디자인 박물관 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본 글에서는 상기한 싱가포르의 예술(art), 미디어(media), 디자인(design) 세 분야를 통한 리브랜딩 중, 특히 영화와 디자인을 통한 리브랜딩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싱가포르의 도시 리브랜딩에 있어서 아울러 살펴봐야 할 것은 이런 리브랜딩 사례들을 싱가포르가 어떻게 능률적이고 효과적으로 마케팅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도시 리브랜딩의 내용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 성과들을 어떻게 포장하여 효과적으로 대내외적으로 홍보했는지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살펴본 싱가포르의 변신이 문화창조도시로서 서울시에게 주는 시사점에 대해서 언급할 것이다. 상기한 각 축들에 있어서 그동안 서울시가 해온 성과들을 싱가포르와 비교하여 그 장단점을 파악해보고 향후 환경적 기회와 위험에 대해 살펴본 후, 서울시에게 줄 수 있는 정책적 전략적 시사점들을 구체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림 1>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 2. 영화산업을 통한 도시 리브랜딩 과학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흥경제 강자였던 싱가포르는 이제 그 타이틀을 지식도시, 문화도시, 아시아의 문화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처럼 싱가포르가 문화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저변에는 싱가포르의 새로운 경제가 말레이시아, 중국으로 제조업 분야 이동을 바탕으로 서비스업, 관광 분야가 크게 발전한 데 기반한다. 싱가포르는 지식도시,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접근성이 용이하고, 서양과 동양을 잇는 나라로서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는 곳으로 상징되기 때문에 문화도시로서의 그 발전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사례연구(case study)가 될 것이다. 지식경영과 창의성은 21세기에 싱가포르를 국제적 지식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 중요한 자원이다. 싱가포르는 영화, TV, 디지털 미디어 산업이 포함되어 있는 창조적인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여기로부터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싱가포르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에 과감하게 대규모 투자함으로써 도시 이미지를 탈바꿈하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 싱가포르 영화 산업 의 역사 싱가포르의 도시 이미지 개선 노력들 중에 특히 영화산업을 포함하는 서비스 분야를 확장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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