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Information-Series 2004-07 통일독일의수도이전 이상준, 국토연구원연구위원 2004년 12월 신행정수도건설위헌결정이후국토의균형발전을위한새로운대안들이활발하게모색되고있다. 현재유력한대안가운데하나로거론되고있는행정부기능일부의지방이전과관련해서통일독일의행정기능분담사례가주목받고있다. 통일이후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etz) 에따라 10개의연방부처는본에서베를린으로이전하고본에는 6 개부처가남았다. 베를린으로옮기는연방부처들은 1999년 8 월말까지이전을완료하였다. 이들연방부처외에연방의회상하원과연방대통령실도베를린으로이전하였다. 독일의경우형식적으로는베를린과본에연방부처들이분산되어있지만, 내용적으로는베를린으로의완벽한수도이전이이루어진것이다. 본에서베를린으로이전한부처들은제1 청사를베를린에, 그리고제2 청사는본에설치하였다. 본에남은부처들은베를린에제2 청사를두었다. 베를린과본의업무협조는인터넷, 비디오회의등을통해처리되고있으며, 본과베를린간셔틀항공편도운행되고있다. 그러나직장을따라이주하지못한 900 명의연방정부직원들이주말에본과베를린을이동하는것으로나타났다. 이것은전체연방공무원수에비해높은비율은아니지만, 행정기능분산이정부차원의비용측면뿐만아니라직원들의개인적인가정생활측면에서도적지않은비용을요구하고있음을알수있다. 다만독일의사례에서는베를린으로이전하는부처들이새로운청사들을건설하기보다는기존시설들을최대한활용함으로써이전비용을최소화하기위해노력하였다는점을평가할필요가있다. 이러한독일의사례는우리에게정부부처기능의분산과관련된비용최소화의중요성을보여주고있다. 발행처: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주한협력사무소편집인: 페터가이, 박상희편집위원: 김영희, 안두순, 안석교, 양민석, 이삼열, 정현백, 최연혜 ( 가나다순) 주소: 서울시종로구운니동 98-5 삼환빌딩 1101호 ꂕ 110-742 Tel: (02) 745-2648/9, Fax: (02) 745-6684 e-mail: feskorea@fes.or.kr & fesrok@fes.or.kr http://www.fes.or.kr
1. 통일독일사례의의미 2004년가을행정수도이전을둘러싸고극심한국론분열양상을보였던우리의모습은 15년전베를린장벽이붕괴된이후통일수도의입지문제를놓고국론이분열되었던독일의모습을연상케한다. 독일의경우본(Bonn) 과베를린(Berlin) 을둘러싼수도이전논쟁은결국연방의회의결정을통해종식되었다. 이러한연방의회의결정은다행스럽게도국민의여론을제대로반영한것이었다. 우리도결국독일처럼국민적합의를통해신행정수도건설위헌결정이후의문제를치유할수밖에없을것으로보인다. 현재국토의균형발전을위한새로운대안들이모색되고있는데, 청와대와국회를제외한행정부기능의이전또는일부부처의이전과같은대안들이논의되고있다. 현재유력한대안가운데하나로거론되고있는행정부기능의지방이전과관련한외국의사례로서통일독일의사례가자주언급되고있다. 알려진바와같이독일은통일이후수도를본에서베를린으로이전하면서행정부처의일부를본에잔류시켰다. 물론독일의사례는사실상행정부처가운데주요부처를포함해서상당부분이본에서베를린으로이전하였고, 총리와대통령의관저가베를린으로이전하는등완전한수도이전사례라고할수있다. 현재우리나라에서논의되고있는행정부처만의이전과는근본적으로차이가있는것이다. 전세계적으로수도를이전하면서독일의경우처럼수도의일부기능을분산시킨경우는말레이시아를들수있다. 말레이시아는의회를수도인콸라룸푸르에잔존시키는대신대부분의부처와연방재판소를행정수도인푸트라자야로이전시키는계획을추진중이다. 그러나말레이시아의경우에는완전히수도가이전한독일과는달리기존수도가수도로서의지위를그대로유지하며 새로운행정수도를건설하는것으로서근본적인차이가있다. 특히말레이시아의경우에는콸라룸푸르와새로운행정수도인푸트라자야간의거리가 20km에불과해본과베를린간의직선거리가 500km에가까운독일과는단순비교하기어려운경우이다. 말레이시아의사례는세종로와과천으로분산되어있는우리의정부부처입지사례와가깝다고할수있다. 때문에말레이시아의사례는독일과같이행정기능의분산에따른업무비효율문제는발생할여지가없는것이다. 독일의사례는일부정부부처가본에남으면서통일수도인베를린과과거수도였던본간에일부연방정부기능을분담했다는점에서우리의관심을끈다. 헌법재판소의위헌판결이전에신행정수도건설과관련한논의과정에서통일수도문제도제기된바있다. 통일에대비해서신행정수도건설을유보해야한다는주장에서부터통일이될경우신행정수도와북한지역간의수도기능분담을고려해야한다는주장에이르기까지다양한주장들이제기된바있다. 이러한측면에서통일독일의사례는통일시대를대비한다는측면에서도우리에게의미하는바가크다고할수있다. 이글에서는통일독일의수도이전사례에서행정부의본- 베를린분산배치가갖는의미와구체적인내용을소개하였다. 2. 통일독일의수도이전결정과추진과정 1) 수도이전결정과정 독일은제2차세계대전이후동서독으로분단되면
서두개의수도를갖게되는운명을맞았다. 서독은 1949년의회에서본을임시수도로동독은동베를린을수도로결정하였다. 본이임시수도로결정되었지만당시서독국민들간에는향후통일이될경우베를린으로환도( 還都 ) 한다는합의가있었다. 본은서독국민들에게는어디까지나임시수도였던것이다. 본이서독의수도가된지 40년이되던 1989년베를린장벽이붕괴되면서통일수도에대한논의가활발하게시작되었다. 동독주민들은서독정부와맺게되는통일조약(Einigungsvertrag 1990) 의조건으로연방수도를베를린으로이전할것을요구한반면, 서독주민들간에는베를린으로환도하자는주장과본을통일수도로해야한다는주장이맞섰다. 1990년당시설문조사에서독일국민의 51% 가베를린을, 23% 가본을지지하였다. 베를린지지세력의 70% 가동독국민이었고, 서독국민가운데베를린지지세력은 46% 였다( 김인희 2003). 베를린으로의환도를주장하는측은베를린이수도로서의정통성을갖고있다는점과중부유럽의중심지라는지경학적강점, 그리고무엇보다도 1949년본을임시수도로결정할당 시의국민적합의등을환도의근거로내세웠다. 반면에본을통일수도로하자는측에서는중앙집권적이고도독재적인히틀러정권의부정적이미지를강조하면서베를린으로의환도를반대하였다. 이러한본-베를린수도이전논쟁은 1991년 6월연방의회선거에서 337:320의근소한차이로베를린이통일수도로서결정되면서종식되었다. 종전이후동서베를린으로분단되었던시련에도불구하고독일역사에서베를린이차지했던위상과정체성그리고통일이라는국가적전환점이이러한결정에커다란영향을미친것으로볼수있다. 그리고무엇보다도중요한것은이러한의회의결정이국민여론과배치되지않았다는점이다. 만약국민여론다수가통일수도로서베를린을선호하지않았음에도불구하고국회의원들이베를린으로의천도를결정했다면, 그러한결정이실제로집행되기는어려웠을것이다. 이것은국민적합의가수도이전과정에서필수적이라는것을우리에게강하게시사하고있다. 독일이통일이후베를린으로환도하게된것은 < 표 1> 통일독일의수도이전경위 시기내용 1990.8.31 동서독간통일조약의체결 - 통일독일의수도로베를린을명시 - 정부및의회소재지는통일이후결정하기로명시( 본- 베를린수도이전논쟁본격화계기) 1991.6.20 연방의회에서베를린으로수도이전결의 1992.8.25 수도조약체결 - 연방정부- 베를린, 연방정부-브란덴부르그주간의협력계약 1994.5.6 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etz) 공포 1999.8.31 연방의회및정부베를린으로이전완료 자료: 한국토지공사. 2004. 해외의수도이전과관련된논쟁및시사점. p12.
우리에게도의미하는바가크다. 그것은수도라는것이역사적, 민족적, 정치경제적으로복합적인의미를가질수밖에없음을보여주기때문이다. 2) 수도이전과정수도를베를린으로이전하기로결정한후연방정부는수도이전계획을수립하였고, 1994년 4월에확정된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etz) 에는 2000 년까지실행할정부이전계획이명시되었다. 1999년까지최종적으로총리실과홍보처를포함한 10개연방부처는베를린으로이전하고본에는 6개의연방부처가남게되었다. 베를린/ 본-법에따라이전하거나남는부처들은각각본과베를린에부속사무소를두도록하였다. 즉베를린으로이전하는부처는본에제2 청사를, 그리고본에남는부처들은베를린에제 2 청사를설치한것이다. 이로써사실상모든부처가본과베를린에서일부기능이나마유지하게되었다. 베를린으로이전한부처는총리실, 홍보처외에내무부, 법무부, 노동사회부, 재무부, 경제기술부, 건설교통부, 여성가족부, 외무부등이며, 본에남는부처는국방부, 교육연구부, 식품및농림부, 보건부, 환경부, 경제협력부등이다. 전체적으로볼때베를린으로이전하는연방부처들은행정부내에서도핵심적인부처들이라할수있으며, 이것은사실상베를린을중심으로정부기능이작동된다는것을의미하고있다. 베를린으로이전하는부처들은 1992 년부터시작해서 1999년 8 월말까지이전을완료하였다. 한편이들연방행정부처외에연방의회상하원과연방대통령실이각각베를린으로이전하였다. 1999년 9월 1일부터연방하원과연방정부는베를린에서공식적인업무를시작하였다. 수도이전과정을통해총리를포함해약 8,300 개의연방정부일자 11,400개의일자리가본에서베를린 으로이동하였다. 그리고본의급격한경제위축을막기위해베를린과라인 -마인지역에서연방기능과관련된약 6,550 개의일자리가본으로이동하였다. 2002년 10월기준으로 13,000명이베를린의연방정부, 연방의회, 연방대통령실에서근무하고있고, 본에서는 8,500 명이근무하고있다. 3) 본과베를린간의이전부처업무활동 여기에서는베를린으로이전하거나본에남은 16 개연방부처가운데건설교통부, 환경부와국방부의사례를통해본과베를린간에어떻게업무협조가이루어지는지를살펴보았다. 본에서베를린으로이전한부처가운데건설교통부는제1청사를베를린에, 제2 청사는본에두었다. 베를린에있는제 1 청사에는장관실, 총무국, 홍보부서와내각및의회협의관련부서, 주택및건설국등이, 본의제2청사에는도로철도국, 수운국, 항공국등이배치되었다. 베를린의제1 청사에는전체일자리(1,650여개 ) 베를린 < 표 2> 연방정부기능의본-베를린분산배치 총리실, 홍보처, 내무부, 법무부, 노동사회부, 재무부, 경제기술부, 건설교통부, 가족여성부, 외무부 10 개 본국방부, 교육연구부, 식품및농림부, 보건부, 환경부, 경제협력부 6개 주:1) 베를린과본에위치하는부처들은각각본과베를린에제2사무소를두도록되어있음 2) 부처의명칭은필자가편의상축약하였음
의약 33%( 약 550 개) 가, 본의제2청사에 67% 가배치되어있는데, 이러한직원배분비율은 2002년기준자료로서 2004년현재에는다소변동이있을것으로예상된다. 당초본의건설교통부청사는현재건설교통부산하기관인연방건설청(BBR) 이사용하고있다. 의회활동과관련해서건설교통부장관 는다소변동이있을것으로예상된다. 환경부장관은주로베를린에머물고있고, 보통 2주에한번정도본으로이동해서 1-2 일정도집무한다고한다. 연방건설교통부와마찬가지로베를린과본의업무는기본적으로인터넷과비디오회의등으로처리되고있다. 은주로베를린에머물고있으며, 베를린과본의 업무협조는인터넷, 비디오회의등을통해처리되고있다. 환경부와마찬가지로본에제1청사를두고있는국방부의경우제1 청사에는군사전력국, 총무국, 군사행 정국, 육 해 공군국등이, 베를린제2청사에는홍보 본에남은환경부의경우, 제1청사에는부처의예산담당, 인사, 기타내부행정관리등일반행정관련부서와 WA( 수질, 쓰레기, 토양), IG( 보건, 공해방지, 시설보호및교통, 화학물질안전), N( 자연보호), RS( 원자력시설의안전, 방사선보호, 핵처리관련) 등 4 개부서가, 베를린의제2청사에는홍보부서와내각및의회협의관련부서등환경부의수뇌부와관련된핵심기능과환경법관련부서, 환경정책관련주요부서( 환경정책의경제적문제관련등) 와국제협력부서가배치되어있다. 베를린제2청사에는전체일자리(742 개) 의 25% 가, 본제1청사에 75% 가배치 부서와내각및의회협의관련부서, 국방정책국, 무기국등이배치되어있다. 본의제1 청사에는 2002 년기준으로전체일자리(3,300 여개의 ) 90%( 약3,000 개) 가, 베를린제2청사에는 10% 가배치되어있는데, 국방부장관은주로베를린에머물고있다고한다. 베를린과본의업무협력은타부처들과마찬가지로인터넷( 국방부인트라넷), 이메일, 비디오회의등을통해처리되고있다. 현재본과베를린간에는정부업무와관련한정기항공노선도운영되고있는데,2003년 10 월부터는 Hapag-Lloyd-Express와 Deutsche BA가이노선을공동으로운영하고있다. 되어있는데, 이역시 2002년기준자료로서현재에 < 표 3> 본과베를린간일자리이동과이주 구분이전한일자리( 개) 이주자수( 명) 본에서베를린으로 ( 연방정부, 연방상하원, 연방대통령) 약 11,400 약 7,500 베를린에서본으로약 4,350 약 1,900 라인-마인지역에서본으로약 2,200 약 1,200 주: 이외에본에약 3,900 개, 베를린에약 2,450개그리고라인-마인지역에약 1,000개의기존일자리가그대로남게되었음. 자료: 독일연방건설교통부홈페이지자료. 2003. http://www.bmvbw.de/cms-aussen-speziel/
4) 수도이전에따른베를린의청사건설과본의경제기능보강새로운수도를건설한다른나라들의사례와는달리독일의경우에는기존수도로환도하는형식으로수도이전이진행되었기때문에수도이전에따른건설비용이많이소요되지는않았다. 연방정부는수도이전에따른재정부담을줄이기위해가급적새로운청사를건설하기보다는기존건물을개보수하여활용하는경우가많았다. 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 etz) 에서는수도이전비용의상한선을 200 억마르크( 약 12 조원, 1990 년기준) 로명시하였는데, 이전비용에는청사건설비, 토지구입비, 주택공급비, 본에대한보상비등이포함되었다. 법에정한이전비용의상한선은대체로지켜진것으로평가받고있다. 수도이 전과관련하여일반건설공사에약 61 억마르크( 표 4 참조), 베를린과브란덴부르그(Brandenburg) 지역의주택건설에 16 억마르크, 수도이전과관련한교통인프라건설에 10 억마르크가각각소요되었다. 이러한투자금액외에도추가적으로 90억마르크가기타인프라건설에투자되었다. 본에서이주하는직원들을위해 9,100 호의주택이필요하게되었는데, 이는베를린에위치한군사시설이전지의기숙사개조, 베를린과근교지역의주택신축등을통해주택을공급하였다. 베를린이동서베를린으로분단되었을당시서베를린지역에주둔하였던미군이통일이후철수하면서많은군숙소들이남게되었는데, 이러한숙소들이개보수를통해이주직원들을위한주택으로서제공되는경우가많았다. 수도가베를린으로이전함으로써기존수도였던본의도시경제에대한경제침체가우려되었다. 1993 년본에서발간된한보고서에따르면, 본전체일자리가운데약 1/3에해당하는 45,000개가수도기능 과관련되어있으며, 이중절반에해당하는 22,600개 의일자리가수도이전으로인하여줄어들것이라는예측도있었다 ( 김인희 2003). 그러나이것은기우에지나지않았다. 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etz) 에따라연방정부부처가운데6개가본에남은것외에도다수의연방기관및연방에속한각종단체와협회들이전부혹은부분적으로본으로이전하였 기때문이다. 본보상에관한협정에따라연방정부 는행정기관및국제기구의본유치, 본에 1995년 부터 2004년까지연방정부가 28억마르크지원등 을추진하였다. 이에따라약 24개의연방기구와행정기관들이베를린과라인- 마인지역에서본으로이전을하면서약 6,550 개의일자리가창출되었다. 또한공기업과민간기업들도다수본에입주하기시작하였고,1996년부터는 10 개의국제연합(UN) 관련기관들도본으로이주하였다. 본은노르드라인-베스트팔렌 (Nordrhein-Westfalen) 의대도시권과도시경제가긴밀히연계되어있어서수도기능의이전에따른충격을자체적으로흡수해낼수있는잠재력을갖고있었다. 본은이전의연방수도에서이제는보다경쟁력을갖춘국제도시로서변모하고있는것이다. < 표 4> 연방기관의건설비용 항목 연방의회의사당개보수 비용( 마르크) 6억 연방하원관련신축 19억 2,800만 연방총리관저신축 4억 6,500만 연방정부청사개보수또는신축 29억 1,600만 연방상원관련개보수또는신축 2억 자료독일연방건설교통부홈페이지자료 :.2003. http://www.bmvbw.de/cms-aussen-speziel/
3. 수도이전의성과 독일의수도이전은통일이라는국가적전환기를 거쳐오면서당초계획했던시간과비용의범위안 에서비교적순탄하게이루어졌다고할수있다. 연 방건설교통부장관만프레드스톨페 (Manfred Stolpe) 는베를린/ 본- 법(Berlin/Bonn-Gesetz) 10주년기념 일을맞아 2004년 4월 25일수도이전이법에따라 만족할만한성과를거두었다는촌평을한바있다. 이 것은수도이전이국민적합의를바탕으로이루어졌 으며, 비용을최소화하기위한노력을기울임으로써 재정적부담도크지않았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의통일과정에서연방정부가 이른바통일비용으로공식적으로구동독에투입한 전체비용이약 1 조마르크에이르는데, 이가운데 수도이전비용은 200 억마르크(2%) 에불과했다. 이 것이가능했던것은앞에서도언급한바와같이독 일의수도이전이새로운수도를건설하는방식이아 니라이미기본적인인프라가확보된도시로이전하 는것이었기때문이다. 그리고통일수도가된베를 린에서는수도이전에따른과도한인구집중과같은 부작용이발생하지않았다.1990년통일당시베를 린의인구는 346 만명이었는데, 수도이전이종료된 지 5년이지난 2004년 3월현재베를린의인구는 339 만명으로통일당시보다도오히려감소하였다. 물론이것은도시의광역화, 교외화에따른결과이 기도하다. 4. 수도이전에따른문제점 독일의수도이전이성과만을나타내고있는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가장커다란문제점은행정기능 의분산에따른정부와의회간업무협력의비효율 성이다.50년동안수도였던본에대한배려측면에 서 6 개정부부처가본에남게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긍정적인평가를받기어렵게되었다. 왜냐하 면잔류기관에따른고용유지효과는그다지크지않 은반면에본과베를린을오가야하는업무상의시 간적, 금전적비용지출이컸기때문이다. 본에는독 일내타지역에있던연방기관들이이전해온것외 에도도이체텔레콤(DT) 등대기업들의본사가이전 해옴으로써새로운활력을얻게되었다. 결국시장이 정부의빈자리를메우게된것이다. 반면에잔류한 연방부서들은베를린과의업무협의를위해많은비 용을지출하게되었다. 인터넷등첨단통신매체가발 달해서과거와같이거리의문제가커다란장애요인 은아니지만의원내각제국가에서의회와장거리에 위치한곳에일부나마정부부처가위치하고있다는 것은업무의비효율이라는문제를야기할수밖에없 는것이다.2001년 5월기준으로 900명의연방정부 직원들이주말에본과베를린을이동하는것으로나 타났는데, 이것은정부기능의분산이정부차원의비 용지출문제뿐만아니라직원들의개인적인가정생활 측면에서도많은비용을요구하고있음을의미하고 있다. 결론적으로독일의행정기능분산은우리에게 분산에따른비용의문제에대한경각심을일깨워주 고있다. 이미본은잔류한정부부처보다는민간기업 들의진출과기타공공기관의입주를통해수도이전 의충격을흡수해내고있다. 이러한측면에서연방정 부부처들이앞으로도계속본에남는것은큰의미 가없을수도있는것이다. 정부부처의분산배치가 한시적으로는지역경제에도움이되겠지만, 결국중 요한것은정부부처의배치는정부업무의효율성이
라는측면에서바라볼필요가있는것이다. 정부부처 보다는공공기관의이전이나기업유치와같은다른수 단을통해서도본의경제활력이유지될수있었다는 점을우리는주목할필요가있다. FES-Information-Series 는유럽의통합과정과독일의정치체제및발전을중심으로독일과유럽의다양한쟁점들을소개함으로써해당주제의다양성과상호관련성을부각시키고, 정책대안에대한논의를촉진할목적으로발간한다. FES-Information-Series 는특정정치노선을지지하지않으며, 개별주제들은독일이나유럽의발전추세를관찰하고평가할능력을갖춘전문가가집필한다. 여기에수록된내용은필자들의개인의견이며, 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의공식견해가아님을밝힌다. FES-Information-Series 는부정기간행물로프리드리히에베르트재단홈페이지(http://www.fes.or.kr) 에서전문을내려받을수있다. Copyright 1998-2004 C by Friedrich-Ebert-Stiftung, Korea Cooperation Off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