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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時 間 을 깨 우 다 산업화 시절 인천 이야기 유네스코지정 2015 세계책의 수도,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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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간 時 間 을 깨 우 다 산업화 시절 인천 이야기 인천만의 가치창조

4 일러두기 본 책자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인천광역시가 소장한 것이며 그 외 사진은 소장자나 촬영자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글은 인천광역시 대변인실 홍보콘텐츠팀장 유동현(굿모닝인천 편집장)이 인천일보에 연재한 것을 재편집한 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마흔아홉 번째 이야기 순서의 괄호 안 날짜는 인천일보 게재 일자입니다. 본 책자는 e북(전자책)으로도 발간되어 네이버 등 주요 포털과 인터넷서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5 인천만의 가치 창조,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인천만큼 드라마틱한 역사(이야기)를 품은 도시는 없습니다. 바다에 보석처럼 떠있는 168개 섬과 유구한 역사가 흐르는 강화 그리고 신 문물이 들어온 개항장 등 도시 곳곳에 무수한 이야기들이 스며있습니다. 여기에 6 25 전쟁과 피란민의 정착 그리고 산업화 시절의 시간이 더해지 면서 그 역사 이야기의 줄기는 더 굵어지고 그 갈래는 더 길게 뻗어나갔습 니다. 인천만의 가치창조 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습니다. 때론 사진 한 장이 수많은 글자와 이 야기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묵은 먼지를 털고 세상의 빛을 본 사진은 우리 가 잊고 있었던 현장과 사건, 혹은 사람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 게재한 사진들은 인천이 지닌 역사와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 할을 할 것입니다. 낡은 사진 한 장이 잠들어있던 인천의 시간 을 다시 깨 웁니다. <사진, 시간을 깨우다>에 실린 흑백 사진과 그 사진을 보고 풀어낸 이야기 를 접하노라면, 누구나 그 시절로 돌아가 사진 속 주인공과 함께 하는 듯한 착각이 들 것 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인천시민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지나온 인천의 역사를 더듬 어보며 인천의 시간과 공간을 더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역사, 인천이 들려주는 그 소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길 바랍니다. 인천광역시장 유 정 복

6 차 례 16 콜레라, 대통령 선거에 영향 끼쳐 8 청춘의 부고장, 입영통지서 12 물맛 다른 풀장에서 헤엄치다 16 마을 황소 동원해 만든 고속도로 20 매스게임 같은 대청소 빗질 24 마녀 백옥자, 아시아를 던지다 28 인천은 한국 사이클 금빛 질주의 출발지 32 시민의 날 50년 인천현대사 고스란히 36 한국 여자배구 강스파이크 동일방직배구단 40 인천OB밴드부 에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되기까지 44 빛바랜 추억 속 자유공원 비둘기집 48 주판알 잘 튕겨야 취업 52 52

7 68 엄마표 겨울용 털실 옷 56 월남 파병 출항지이자 보트피플 피난지였던 인천항 60 집도 절도 없던 거리의 천사 64 부평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모판 68 한국에서 처음으로 메시아 전 곡 연주한 내리교회 72 인천에서 처음 실시된 야간통행금지 76 산업화 시절의 슬로건 더 일하자 80 누구에겐 여전히 필수연료인 19공탄 84 겨울철의 불청객, 화마( 火 魔 ) 88 송림리 얼음판에서 선학국제빙상경기장까지 92 동인천 남북을 최초로 연결한 굴다리 지하도 96 사라진 아이들의 골목 놀이

8 낡은 졸업 앨범 속의 친구들 104 Made in Incheon 통기타, 세계를 노래하다 108 부부싸움도 멈추게 한 얼음땡 국기 하강식 112 빛바랜 사진첩 속 공민학교 116 한국 마라톤의 영원한 출발지 해안동로터리 120 내 고장은 내가 지킨다 향토예비군 창설 124 한국 경제의 씨앗이 된 파독 근로자 128 동인천 그 이름 60년 132 어린이 주간 최고 이벤트 우량아선발대회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 열린 아암도 140 용동마루턱의 아치형 선전 철탑 144 양동이 하나 들고 가뭄 철 농촌 일손 돕기 148 잃어버린 우리의 동인천역 광장 152 인천 수돗물로 농사지은 부천 농부들 156 망국병 인천이 치료하다 160 영세 어민의 생명줄이었던 조개 164 모기 박멸 여름철 전염병 방역 168 피서지 이동도서관 임해문고

9 184 고행도 낭만이었던 섬 기행 176 가까이 있지만 아주 멀리 있는 섬, 작약도 180 낙도 어린이들의 도시 나들이 184 시청사 이전 그 굴곡진 역사 188 동일방직의 미인선발대회 192 동상이몽( 銅 像 異 夢 ) 맥아더 동상 196 덮어놓고 안 낳으면 거지꼴 못 면한다 200 돌고 도는 로터리 조형물 204 저 눈빛, 치열한 삶을 말하다 205 배 타러 가는 새 길 206 반공가요 오디션 무대 207 물맛이 곧 술맛 208 인천 화교 이수영, 미스 월드대회 2위 그릇 생산도 뽐낼 만한 일 210 판유리공장 롱다리 급수탑 211 저 다리가 내 밥줄 끊는구나 212 오천 년 비류의 물줄기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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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첫 번째 이야기(2014년 8월 4일) 콜레라, 대통령 선거에 영향 끼쳐 날이 더워지면 전염병의 두려움이 한층 높아진다. 1970년대 초 까지 우리나라 국민은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뇌염 등 돌림병 에 많이 걸렸다. 호열자( 虎 列 刺 )로 불리던 콜레라는 호랑이 호( 虎 ) 자 를 쓸 만큼 공포 그 자체였다. 불결한 환경과 방역 시스템이 미비했 던 1960년대 우리나라에는 콜레라가 세 번 창궐했다. 63년 316명, 64년 2명, 69년 137명이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1963년도의 콜레라 발생은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63년 9 월 인천을 비롯해 서울, 부산 등 대도시는 물론 영덕, 완도 까지 콜레 라가 창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긴급히 전국을 방역지구로 설 정했다. 야권의 각 당 대통령 후보 측에서는 그해 10월 15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한 달 가량 연기해서 11월 26일 국회의원 선거와 동 시에 치르자고 주장했다. 통행금지 구역이 확대돼 사람들이 유세장 에 모이질 않을뿐더러 선거 당일에도 콜레라가 완전히 퇴치되지 않 으면 투표율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8

13 북한이 콜레라균 퍼뜨린다는 소문 돌만큼 국민 모두 전염병에 예민 전염병이 돌면 방역 관련자들은 주사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특히 부두와 항만은 전염병 취약 지구였다. 72년 항만 근처에서 부두노동자들이 예방주사를 맞는 모습. 9

14 일반 시민들, 길거리와 시장 등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예방주사 맞기 위해 줄 서 정부와 여당 측에서는 선거에 지장을 줄 만큼 크게 번지지 않을 것이 라며 선거일을 고수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면서 제 5대 대통령이 된다. 만약 이때 콜레라가 더욱 더 기승을 부렸다면 선 거일도 연기되었을 것이고 역사의 물줄기는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과거 인천은 전염병에 취약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7월 인천에 콜레라균이 돌아 3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오십호 가량이 살던 도화동의 한 마을에서는 4명이 사망했다. 그들이 재배한 채소와 과 일이 도심으로 들어간 것으로 파악한 보건 당국은 뒤늦게 출하된 농 작물에 소독을 실시했다. 그해 인천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중국에서 넘어 온 것으로 추정되었 다. 광복군과 전재민( 戰 災 民 ) 등 1천900명을 태운 선박이 중국을 떠 나 6월 4일 인천항에 입항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콜레라 환자가 발 생했다. 나흘 동안 상륙하지 못했고 방역을 실시한 후에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인천은 항구를 통해 전염병이 유입되곤 했다. 실제로 1963년 10월 구호양곡인 대만(자유중국) 쌀 4천 톤을 싣고 인천항에 들어 온 대륭 호의 선원 한 명이 콜레라 환자로 판명돼 시립병원 제민원에 격리 수 10

15 용된 적이 있다. 보건 당국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인천에 들어오는 외국 선원과 해외 여행이 잦은 미군 병사에 의해 콜레라가 전염되는 것으로 의심하곤 했다. 한때 북한이 콜레라균을 퍼뜨린다는 웃지 못 할 소문도 돌만큼 국민 모두 전염병에 예민했다. 인천에는 오래 전부터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한 병원이 있었 다. 일제강점기에 덕생원이란 전염병 전문 병원이 설립되었다. 개원 당시 이 병원의 명칭은 피할 피( 避 )자 를 써서 피병원으로 명명되었 다. 전염병을 피하고 싶었던 절실한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 이 병 원은 사정병원, 전염병원을 거쳐 덕생원으로 변경되었다. 도원동에 있던 덕생원은 6 25 전쟁 중 소실되었고 그 자리에 현재 중앙여상이 들어섰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방역 당국은 바로 주사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행인들은 너나 할 것이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사를 맞았 다. 당시에는 일회용 주사기도 없었다. 앞 사람이 맞은 주사기를 소 독약 솜으로 한번 쓱 문지르고 다음 사람이 맞았다. 약이 부족했기 때문에 맞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근로자들은 공 장에서, 일반 시민과 주부들은 길거리와 시장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 지 않고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섰다. 세월이 흘러 이제 전염병은 그 종류가 다양해졌고 더 흉폭해졌다. 콜 레라, 장티푸스 대신에 싸스, 조류독감, 구제역,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 등 새로운 돌림병 이 21세기 지구촌을 호심탐탐 노리며 돌 고 있다. 11

16 두 번째 이야기(2014년 8월 11일) 청춘의 부고장, 입영통지서 입대( 入 隊 )는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이 거쳐야 하는 가장 중요 한 통과의례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들도 여전 히 징집영장을 청춘의 부고장처럼 느끼는 게 사실이다. 최근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등 병영 내 인권유린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어 젊은 이들의 입대 기피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1948년 대한민국 창군( 創 軍 ) 이래 병역 기피를 비롯한 병무 부정사 건은 사회 부조리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특히 1970년대 말까지 입 영기피, 응소기피, 징병검사 미검 등 적지 않은 병역기피는 사회적으 로, 특히 안보상 큰 문제를 야기했다. 1969년도를 기준으로 볼 때 고의든 타의든 병역 기피자는 45만 명 에 육박했다. 당시에는 병무행정이 전산화 돼있지 않아 기피자의 절 반 정도는 소재불명( 所 在 不 明 ) 이었다. 산업화 시대가 되면서 직장 을 얻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사람이 많아 영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2

17 1969년도 기준 병역 기피자는 45만 명에 육박. 기피자의 절반 정도는 소재불명( 所 在 不 明 ) 정부는 병역 기피자와 근무 이탈자(당시 신문 표기는 도망병)의 색 출작전 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이미 기업에 채용된 사람들은 해고 조 치하도록 했고 이를 위반하는 업주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해외에 체 류하는 사람들에게 빨리 귀국하도록 종용했고 그들의 호주와 보증 인에게 경고장을 발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병사계 경찰관, 수사과 요원, 병무청 직원들이 일일이 직장을 방문해 기피자와 이탈자를 색출했다. 특히 미군부대 종업원 중 기피자가 많은 것으로 보고 미군부대를 샅샅이 뒤지기도 했다. 사진은 1971년도 인천공설운동장(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소집 된 인천지역 입영 장정들의 모습이다. 언제 보아도 가슴 먹먹한 장면 이다. 줄을 서는 순간 그들의 호칭은 장정( 壯 丁 ) 으로 바뀐다. 장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앞날을 축복하고 송별하기 위해 간 단하게 장행회( 壯 行 會 )가 열리지만 장정들의 머리는 벌써 논산훈련 소에 가 있다. 맨 앞에 섰다가 얼떨결에 입대 축하 꽃다발을 목에 건 대표 장정들은 이미 군기가 바짝 들었다. 13

18 기피자 중 기업에 채용된 사람들은 해고 조치하도록 하고 색출하기 위해 미군부대까지 샅샅이 뒤지기도 지금은 개별적으로 훈련소를 입소하지만 1985년까지는 단체 인솔 입영제를 시행했다. 한군데 모여 입영열차를 함께 타고 훈련소에 입 소했다. 인천에서는 주로 인천공설운동장에 모였다. 인근 부천, 김 포, 시흥 지역 등의 장정까지 포함해 보통 1천500명가량이 소집되었 다. 그날 운동장 주변의 풍경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환송 나온 가족과 친구들, 목도장을 파는 사람, 군번줄 파는 사람, 세면도구 주머니 파 는 사람, 각종 먹을 것을 파는 행상 등이 한데 뒤엉켰다. 완장을 찬 호송관이 인원 점검을 끝내면 줄을 맞춰 운동장을 빠져 나 와 숭의로터리를 거쳐 남부역(수인역 부근)으로 행진했다. 간혹 지역 의 고등학교 밴드부가 군가와 행진곡을 연주하며 앞장서기도 했다. 그 음악은 장정들에게는 마치 장송곡처럼 들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지 일부 행인들은 손을 흔들며 파이팅 을 외치기도 했다. 남부역 철길에는 이미 논산행 입영열차가 길게 서 있다. 객차 입구마 다 검은 화이버를 쓴 헌병들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뻗치기를 하고 있 다. 이제 부모, 친구, 애인과 헤어져야 할 시간. 환송하는 사람들이나 떠나는 장정들이나 얼굴에는 눈물 콧물이 뒤범벅된다. 14

19 승차! 호송 헌병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장정들은 열차에 오른다. 털 컹. 입영열차는 몸부림을 한번 크게 친 후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 한다. 열차는 지금은 사라진 주인선( 朱 仁 線 )을 달리며 가족들과 이별 한다. 잠시 후 제물포역 부근에서 경인선 철길 옆을 따라 가다가 주 안역 못 미쳐서 경인선과 합류한다. 그리곤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3 년간의 군복무 첫날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입영열차를 타는 단체 입영제는 86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폐지되 었다. 그때 두발도 빡빡 에서 스포츠형으로 변했다. 대규모 국제경 기 개최를 앞두고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1971년 인천공설운동장에 집결한 입대 장정들. 이들은 숭의로터리를 거쳐 남부역으로 행진해 논산행 입영열차를 탔다. 15

20 세 번째 이야기(2014년 8월 18일) 물맛 다른 풀장에서 헤엄치다 몇 발자국만 떼면 바닷가였던 인천에서 풀장은 그리 흔한 시설 이 아니었다. 1971년 6월 22일 옛 시립도서관(현 율목도서관) 뒤편 에 율목풀장이 개장했다. 사진은 개장 첫날 시범 수영을 하는 모습이 다. 규격 없이 그저 넓게 시멘트를 부어 어른용, 어린이용 풀을 각각 한 개씩 만들었지만 이 풀장의 개장은 인천시민에게 대단한 뉴스거 리였다. 주안 염전이나 용현동 낙섬 등에서 짠물로 멱을 감던 아이들은 여름 방학 중 율목풀장에 한번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휴가와 레저라는 개 념이 없던 시절, 풀장에 다녀온 꼬마는 동네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었다. 어렵사리 풀장에 가면 입장료 생각에 온몸이 퉁퉁 불 정도로 물속에 서 놀았다. 이곳에서는 주로 남자들이 수영을 즐겼는데 당시 만해도 여성들이 도심 한가운데 노천풀장에서 노출이 심한 수영복 입기를 꺼려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16

21 휴가와 레저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풀장에 다녀온 꼬마는 동네 아이들 선망의 대상 율목풀장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일설에 의하면 묘지 상당수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때 목숨을 잃은 일본군 이었다고 한다. 뼈가 나뒹굴던 산꼭대기 땅이 풀장 으로 환골탈태하 자마자 금세 인천의 명소가 됐다. 지하수를 퍼 올려 쓰던 이 풀장에 시체 썩은 물이 흘러든다는 괴담이 돌곤 했다. 아마도 풀장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퍼뜨린 소문일 테지만 아무튼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이 차가웠던 것은 사실이다. 시멘트를 부어 만든 풀장이었지만 율목풀장은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의 물놀이 시설이었다. 일본인 묘지터에 생긴 풀장이라 물이 아주 서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17

22 오림포스호텔 마당에 있던 투숙객 위한 풀장은 일부 여유 있는 시민들만 이용 이 풀장은 1996년 폐쇄되었고 그 이듬해 다시 공원으로 조성됐다. 공사를 하던 중 땅 속에서 귀와 목이 잘린 채 거꾸로 매장된 문인석 6점이 발굴됐다. 일제가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저지른 행위였던 것으 로 추측되었는데 그중 3개의 문인석이 현재 율목공원 맨 위쪽에 세 워져 있다. 율목풀장에 앞서 오림포스호텔(현 파라다이스호텔) 마당에 풀장이 있었다. 1965년 12월 호텔이 개업했고 이듬해부터 풀장을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투숙객을 위한 시설이었지만 일반인 출입도 허용했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도 모를 만큼 일부 여유 있는 시민들 만 이용했던 풀장이었다. 1968년 8월 20일 이 풀장에서 당시에는 굉장히 생소하고 외설스러 운 행사가 하나 열렸다. 영국에서 온 전위 미술가가 보디페인팅 시 범을 보였는데 언론에서는 이것을 나체에 그림 그리기 라고 소개해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풀장은 1988년 경에 폐쇄되었고 현 재는 주차장이 되었다. 문학산 기슭에도 풀장이 있었다. 샘물이 풍성하게 흘러나와 땅 소유 주는 1969년 공중목욕탕으로 허가를 받아 청학풀장 을 만들었다. 18

23 주변 자연 환경이 좋아 지금도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개장을 하는 이 풀장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풀장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 지금의 학익동 송암미술관 주변에는 새인천풀장이 있었다. 바닷물 을 끌어들인 도크식 풀장으로 동양화학 계열사인 동양관광개발에서 1974년 경부터 80년대 초까지 운영했다. 키 작은 아카시아나무 몇 그루 밖에 없었던 뙤약볕 아래의 풀장이었다. 동양화학은 1976년 1월 이곳에 해양종합관광지를 개발한다는 계획 을 발표했다. 해면 매립지 1만 5천 평에 동양 최대 규모의 매머드 수 족관과 수중터널, 해수풀장을 비롯해 휴게실, 조탕, 쇼핑센터 등을 갖춘 8층짜리 관광호텔을 세운다는 계획이었지만 조감도만 남긴 채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인천 시내에 있던 풀장들은 개장하자마자 콩나물시루처럼 항상 만 원이었다. 문제는 위생이었다.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간혹 구정물 풀장 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당시에는 풀장 관리에 대한 법규가 없어 보건사회부는 공중목욕장 업법 규정을 적용했다. 1풀장 내의 풍기문란 금지 2전염병 환자 입 장 금지 3하루 세 번씩 환수( 環 水, 물갈이) 조치 4인체에 해로운 세 균을 막기 위한 염수 소독 5변소, 탈의시설 구비 등이 지켜야할 규 정이었다. 19

24 네 번째 이야기(2014년 8월 25일) 마을 황소 동원해 만든 고속도로 개통한 지 46년 만에 경인고속도로가 직선화 되었다. 서인천 나들목에서 청라국제도시까지 총길이 7.49km가 개통되면서 곧게 펴 졌다. 경인고속도로 건설은 광복 후 여러 형태로 몇 차례 입안됐으나 번번 이 예산문제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1966년 정부는 국토균형 개 발, 공업지대 분산, 도시인구 분산, 안보상 국방도로 필요성 등을 내 세우며 대국토건설계획의 일환으로 경인고속도로 건설을 결정했다. 세계는 이미 컨테이너 시스템으로 기계화된 운송 수단이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화물트럭이 점점 대형화 추세에 있는 등 물류 차원에서 도 그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철도 하나를 개설하는 예산으로 고속도 로 3개를 개통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부 신문은 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달리면 운전자의 피 로도가 덜어지면서 교통사고가 감소하고 교통 쾌적도가 높아져 사 회가 한결 명량해질 것이란 기사를 실었다. 심지어 고속도로가 많이 20

25 부자들이 기생 끼고 놀러나 다닐 길이란 폄하 속에 고속도로는 사투리를 순화 시킬 것이란 찬성 컬럼이 게재되기도 재원 마련 때문에 4차례 연기된 끝에 1967년 5월 27일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경인고속도로 기공식. 민심을 의식해 7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에 열렸다. 21

26 만들어지면 사투리도 순화될 것이라는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 렇다고 모두 고속도로 건설을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고 속도로를 부자들이 기생들 끼고 놀러나 다닐 길 이라고 폄하했다. 사진은 1967년 5월 27일 오전 11시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경인 고속도로 기공식 장면이다. 정일권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시민 3만 여 명이 모여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그 내막을 보면 결코 잔치 분위기 라고 할 수 없었다. 기공식은 차관 도입 문제 등으로 네 차례나 연기한 끝에 개최되었다. 기본조사 조차하지 못한 채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6월 8일 치 러지는 제 7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에 서둘러 기공식을 했다. 그해 고속도로 건설 예산은 한해 총 투자액의 1%에 지나지 않은 고작 2천 만 원만 확보된 상태였다. 640m 밖에 공사할 수 없는 액수였다. 노선도 우왕좌왕이었다. 당초에는 종로구 사직동을 출발해 김포공 항 인근을 거쳐 인천 송림로터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후 에 이 노선은 서울 양평동부터 한창 건설 중인 인천항 제2도크까지 연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인천 방향으로는 가좌 동에서 도화동 선인학원을 지나 인천공설운동장 앞길과 연결해 부 두 쪽으로 닿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선인학원 백선 엽 인엽 형제의 입김으로 용현동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변경된 코스는 염전 지대를 많이 통과하기 때문에 지반 침하가 심해서 공사 에 어려움이 많았다. 경인고속도로 건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날씨도, 기술도 아니었다. 재 원( 財 源 )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50달러였다. 22

27 송림로터리에 도착하는 당초 설계안은 선인재단 백선엽 인엽 형제의 입김으로 용현동 염전지대를 통과하는 것으로 변경 우리 돈으로는 결코 개통시킬 수 없었다. 차관을 도입하기 위해 관료 들은 외국에 나가 손을 벌렸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재원 확보를 위해 채권을 발행했고 휘발유 값을 200% 인상하기도 했다. 개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철야 작업은 물론 세계 건설사에서 듣도보 도 못한 공법 을 활용했다. 길이 얼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씌어가며 아스팔트 공사를 했고 포장공사 장비가 부족해 인근 마을의 황소까 지 동원해 로울러를 굴려가며 도로를 다지기 까지 했다. 육사 출신 공병 장교들은 현장 감독으로 차출되었다. 그들은 영어 원서를 펼쳐 들고 일일이 체크해가며 현장을 관리 감독했다. 1968년 12월 21일 역사적인 경인고속도로 개통식이 서울 쪽 출발 지인 양평동 안양천변에 있는 당중국민학교에서 열렸다. 1967년 3 월 24일 착공해 1년 9개월 걸렸지만 본격적인 공사일로 보면 8개월 만에 만든 고속도로였다. 인천과 서울 사이 km를 18분 만에 주파하는, 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가장 빠르게 달리는 도로를 만든 것이다. 도로혁명 없이 산업혁명 없다 라는 취임사와 함께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는 바로 최대속도 100km 규 정 표지판을 뒤로하고 인천 가좌동까지 시속 120km 고속 으로 시주 ( 始 走 )하면서 대한민국의 고속도로 시대를 열었다. 23

28 다섯 번째 이야기(2014년 9월 1일) 매스게임 같은 대청소 빗질 인천시는 각종 국제 행사에 참석하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클 린업(Clean-Up) 주간 을 정했다. 옛날식 표현으로 하면 대청소 강 조기간 이다. 시민 대청소 기간은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은 1950년대에도 실 시될 만큼 오래된 시 정책의 하나이다. 인천시에서 발행한 주간소식 지 인천공보 1955년 3월 14일 자에는 춘계대청소에 시민 궐기( 蹶 起 )하자 라는 다소 선동적 제목이 붙은 기사가 실렸다. 지난 11일부터 25일까지 설정된 춘계대청소 강조기간에 인천시에 서는 경찰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여 명랑하고 깨끗한 고장을 이룩하 려는 적극적인 청소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인천시 보건과에서는 공 동변소, 쓰레기 적재장, 하수구 등 불결한 곳의 소독을 실시하는 한 편 도 당국으로부터의 예방약품이 도착하는 대로 예방주사 실시도 계획 중에 있다는 바 일반 시민은 이 행사에 적극적인 호응 협조하 여 변절기에 고개 드는 각종 질병을 미연 방지하여 깨끗한 고장, 명 24

29 대청소기간 중, 동원된 사람들 위해 치울 쓰레기를 일부러 남겨 둬 랑한 가정을 꾸미는데 힘써 줄 것이라 간망되고 있다. 1970년대 들어서자 대청소는 새마을 운동과 맞물리면서 중요한 일 상이 된다. 범시민 대청소는 도시 새마을 운동의 핵심이었다. 정부는 1972년 4월부터 각 시 도 단위별로 매월 하루를 새마을의 날 로 제 정해 운영토록 했다. 농촌이야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뚜 렷한 액션 이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보여줄 뭔가가 없었다. 대부분의 도시는 매월 1일을 새마을 청소의 날 로 정했고 한 달에 한번 공무원과 학생들은 오전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거리를 쓸고 다 녔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은 1972년 동인천역 광장에서 대청소를 하는 시청 공무원들의 모습이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요식업협회, 미용협회 등 직능단체와 각 학교별, 그리고 각 공장 근로자들도 동원돼 구역을 나눠 청소를 했 다. 주로 역 주변과 싸리재, 답동사거리 등 눈에 띄는 장소에서 현수 막을 내걸고 매스게임 하듯 빗질을 했다. 각 동은 주민들의 동참을 유도했다. 동사무소 옥상에 매달린 확성기 는 매월 1일 오전 6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새벽종 이 울렸다. 70 년대에는 새마을 노래가, 80년대 초에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 25

30 농촌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뚜렷한 액션 이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보여줄 뭔가가 없자 청소경진대회 열어 1972년 동인천역 광장에서 대청소를 하는 시청 공무원들의 모습. 동인천은 가장 번화한 거리로 시민들에게 대청소 강조기간을 계몽하기 좋은 장소였다. 26

31 울려 퍼졌다. 반경 3km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머리 맡 자명종이 울 리는 것 같은 굉음이었다. 그야말로 조기( 早 起 ) 대청소 를 무섭게 독 려했다. 서울은 당시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선전 효과를 노리기까지 했다. 엄 앵란, 최남현 등 영화배우들이 빗자루를 들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 나 타난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내무부는 전국청소경진대회를 열어 청소우수기관과 공무원에게 표창을 하며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겼다. 이 때문에 대청소 강조기간 중에는 환경미화원들이 새벽 청소를 못 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동원된 사람들이 치울 쓰레기를 남겨 둬야 했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1977년 명예로운 시민 카아드 제를 시행했다. 이 카드에 는 반상회 출석, 새마을청소 참여 등의 항목이 적혀 있다. 반상회와 새마을 청소 때 이 카드를 꼭 갖고 다녔고 반장이 확인 도장을 찍어 주었다. 관계관의 제시 요구가 있으면 보여줘야 했고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 뗄 때 반드시 지참해야 했다. 6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새마을 대청소는 유명무실해졌다. 새마을운 동에 대한 거부감과 반감이 커지면서 청소 현장에는 공무원과 일부 새마을 지도자만 참석했다. 결국 정부는 1989년 4월 1일 새마을 청 소의 날 을 17년 만에 폐지했다. 27

32 여섯 번째 이야기(2014년 9월 15일) 마녀 백옥자, 아시아를 던지다 드디어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이번 주 금요일(19일)에 개 막한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90개로 종합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혹 자는 아시아경기대회의 금메달을 가벼이 여길 수 있으나 이번 대회 에 참가하는 45개국 중 금메달커녕 동메달 하나를 획득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을 나라도 있다. 한국도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하나에 온 국 민이 환호성을 지르던 적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진은 1970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맹활약한 인천출신 선수들 의 카퍼레이드 모습이다. 오픈카에 탄 선수들은 동메달이라도 목에 건 선수들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국민 환영회를 마치고 바로 인천으 로 금의환향했다. 동인천역 광장에서 인천시장의 영접을 받은 후 검 은 짚차에 올라타고,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축하 퍼레이드를 벌였다. 카퍼레이드 코스는 용동 마루턱을 넘어 경동사거리 거쳐 답동사거 리에서 우회전해 인천시청(현 중구청) 마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8

33 월등히 큰 체구 때문에 대열 균형 맞지 않는다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개회식 입장 행렬에서 제외돼 1960, 70년대 인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면 으레 이 코스로 진행했 다. 월남 파병 귀환 장병들과 무장간첩을 사살한 모범 용사들도 이 코스에서 시민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다. 사진 맨 앞 차에 탄 선수는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이다. 그는 방콕아 시아경기대회에서 14m57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육 상이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2년 만에 쾌거를 이룩한 것이었다. 무엇 보다 건국 이후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딴 최초의 금메 달이었다. 백옥자는 1951년 십정동에서 6남매 중 외동딸로 출생해 주안국교를 졸업하고 인성여중에 입학했다가 숭의여중으로 전학해 농구와 배구 를 번갈아 했다. 다시 박문여중으로 옮겨왔는데 이렇게 여러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남들보다 월등히 큰 체구 때문이었다. 175cm에 65kg로,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체격이지만 당시에는 각 종목에서 손을 뻗친 보기 드문 거구 였다. 체격은 이후에도 더 육중해져서 1970년 12월 방콕아시아경기대회 에 참가할 때는 175cm에 86kg이었다. 이 때문에 개회식에 참가하지 29

34 건국 이후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딴 최초의 금메달 경사 못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한국 임원단은 백옥자를 개회식 입장 행 렬에서 제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체구가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에 대열의 균형이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마디로 선수단 입장 행렬의 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옥자는 덩치 값을 확실하게 했다. 박문여고 시절인 1968년부터 정식으로 포환을 던지기 시작해 그해 열린 경기도체육대회에 나가 14m02로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다. 이는 일본 선수가 보유한 아시아 최고 14m43 기록에 다음 가는 성적이었다. 내친김에 같은 해 열린 전국체전에서 14m75으로 아시아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백옥자의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늙고 병들었으며 송림동 현대극 장 앞에서 콩나물 노점상을 하는 어머니가 가족의 끼니를 이어갔다. 효녀 백옥자는 집안 걱정으로 훈련에 매진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 지곤 했다. 건국대 2학년 재학 중 육상연맹회장의 주선으로 국민은행에 취업하 면서 안정을 찾았고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두고 맹훈련에 들어갔 다. 서독(독일) 정부 초청으로 퀼른대학에서 전지훈련을 했지만 올림 픽에서 자신의 기록보다 뒤진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다. 30

35 국비로 뮌헨올림픽에 관광 보낸 꼴이 됐다 라는 비판이 일었고 이 제 백옥자도 한물갔다 라는 냉소도 들렸다. 그는 1974년 테헤란아 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정초부터 인천공설운동장에 매일 나가 포환 을 던졌다. 하루에 1천 번 넘게 포환을 던진 날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인 1974년 9월 10일 테헤란. 야앗- 그날 그의 괴성은 유달리 컸다. 4kg의 검은 쇳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하 늘로 솟구쳤다. 16m28.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나왔다. 아시아 신기록 을 세우면서 우승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유효한 아시아의 마녀 라 는 별명을 만들어준 바로 그 경기였다. 백옥자는 현재 대한육상경기 연맹 여성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의 마녀 라고 불린 백옥자는 1970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투포환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당시 인천시에서는 인천 출신 메달리스트들을 열렬히 환영하며 동인천역에서 시청(현 중구청)까지 카퍼레이드 행사를 마련했다. 31

36 일곱 번째 이야기(2014년 10월 6일) 인천은 한국 사이클 금빛 질주의 출발지 신문물 유입의 창구였던 인천은 자전거의 출현도 타도시보다 빨랐다. 조선인에게 자전거는 낯선 물건이었다. 개화기 초 선교사들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조선인들은 그들의 다리에 이 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빠르게 자전거가 보급되었던 인천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전거경주대 회도 빈번하게 열렸다. 자전거경주대회는 주로 화정( 花 町 지금의 중 구 신흥동) 매립지에서 열렸다. 1925년 10월에 열린 전 조선 자전거 경기 대회에는 경성에서 손꼽히는 십여 명의 기생 선수들이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편배달부와 양조장 혹은 냉면집 배달원들은 인천자전거점원구락 부 라는 일종의 동호회를 조직하고 전조선남녀자전거경주대회를 주 최하기도 했다. 배달원과 선수의 구분이 모호했던 시절에는 자전거 급 종별경기대회가 종종 열렸다. 코스 달리기 외에 물건을 싣고 달 리는 실용운반 경주, 장애물을 피해 달리는 실용차 장애물 경주 등의 32

37 멜버른올림픽 출전팀 전지훈련 대신 비슷한 코스 인천 주원고개와 원통이고개에서 맹훈련 종목이 포함되었다. 광복 후 자전거경주대회의 열기는 전국적으로 계속되었다. 1946년 경향신문 주최 제1회 전국지역대항자전거경기대회가 열려 인천과 서울을 비롯해 수원, 군산, 목포 등이 참가했다. 아쉽게도 38선 이북 의 도시들은 한 곳도 참가하지 못했다. 경향신문은 기사를 통해 아 직은 남조선만 거행하지만 앞으로는 문자 그대로 전 조선을 총망라 해서 거행할 것을 기대한다. 고 말했다 전쟁 이후 인천은 도로경기의 출발지 혹은 결승점 역할을 했 다. 전국체전 혹은 국가대표 선발전은 서울 중앙청을 출발해 인천까 지 두 번 왕복(약 150km)하거나 그 역순으로 하는 것이 단골 코스였 다. 대회 때마다 이를 지켜보기 위해 경인가도에 수많은 시민들이 모 여들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걸출한 자전거경주 선수 한명이 인천에서 성 장했다. 인천개항100주년사 에 의하면 김호순은 1952년 핀란드 헬 싱키에서 열린 제15회 올림픽에 인천인 최초로 올림픽 대회에 참가 했다. 1956년 평화신문사 주최 인천~서울 간 자전거경주대회(86.6km)에 33

38 벨로드롬이 없던 시절, 사이클 트랙경기는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육상 경기 하듯 경주를 했다. 코너를 돌 때 뒤엉켜 자전거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서 1위를 했고 그해 열린 호주 멜버른올림픽 선발전에서도 우승, 당 당히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연맹은 멜버른 도로경기가 아주 험난한 코스에서 치러진다는 정보 를 입수했다. 레이스가 펼쳐지는 코스에서 미리 훈련을 해야 좋은 성 적이 나오겠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지훈련을 갈 형편이 못되었 다. 연맹은 전국 도로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비슷한 코스를 인천에서 발견했다. 인천~주안 간에 한 곳, 주안~부평 간에 세 곳이 있다고 발표했는데 주원고개와 원통이고개 등으로 추측된다. 선수 들은 이 고개를 이용해 3, 4개월 동안 수없이 페달을 밟았지만 세계 의 벽은 높았다. 기대주 김호순은 37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 사이클 실력은 전통적으로 도로경기에 강했다. 반면 벨로 34

39 계산동 벨로드롬, 효창인조잔디축구장과 함께 80년대 한국 스포츠의 두 명물로 꼽혀 드롬 경기장이 없어 트랙경기에는 아주 약했다. 사진은 1973년 지금 은 사라진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사이클 트랙경기의 모습이다. 경사진 길쭉한 타원형의 벨로드롬에서 시합을 해야 하지만 당시 그 런 경기장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라 운동장 트랙에서 서로 부딪혀 가며 경주를 펼쳤다. 1982년 인천시는 남구 옥련동 194 일대 3만여 평 부지에 민자를 유 치해 국내 최초로 관광객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자전거 전용경기 장을 건설키로 발표했다. 또한 대한사이클연맹은 88서울올림픽을 위한 재원 확보의 일환으로 우선 인천에 경륜장(벨로드롬)을 설치해 프로사이클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와 관련해 당시 삼미슈퍼스타즈야구단을 운영하던 삼미그룹이 송 도 부근에 1983년 봄 경륜장을 착공할 것을 구상했지만 이는 실현되 지 못했다. 대신 인천시는 1983년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64회 체전 을 대비해 우리나라 최초로 계산동 체육공원 안에 국제규모의 벨로 드롬을 건설해 개장했다. 이는 당시 효창인조잔디축구장과 함께 80 년대 한국 스포츠의 두 명물로 꼽혔다. 35

40 여덟 번째 이야기(2014년 10월 13일) 시민의 날 50년 인천현대사 고스란히 10월 15일은 제 50회 인천시민의 날 이다. 시민의 날은 시류에 따라 그 날짜가 여러 번 변경됐다. 그 곡절을 살펴보면 인천 현대사 의 한 페이지를 엿볼 수 있다. 지난 1965년 인천시는 지역의 애향심 을 고취하고 시민이 다 같이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시민의 날 제정에 나선다. 인천 역사와 관련한 유서 깊은 날 을 택하기 위해 시정자문 위원회가 소집됐다. 위원회가 난상토론 끝에 고른 날은 인천 개항일 이었다. 인천이 공 식적으로 개항한 날은 1883년 1월 1일이다. 시민들이 다 같이 하루 를 즐기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고 게다가 연말연시이기 때문에 모두 들 바쁜 철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참고한 것이 일본 인에 의해 편찬된 조선사대계( 朝 鮮 史 大 系 ) 였다. 그 책에 인천의 실 질적인 개항은 1883년 6월부터 시작됐다고 기록됐다. 이를 유추 적 용해 6월 1일을 시민의 날 로 정했다. 36

41 1965년 제1회 시민의 날 부평에스캄부대 미군들과 인천 거주 화교들 초청 제물포제는 자유공원에서 기념식을 갖고 동인천 등에서 차량 퍼레이드를 펼쳤다. 갑문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선박으로 개조해 카퍼레이드를 하는 대성목재. 글씨를 우에서 좌로 쓴 모습이 이채롭다. 37

42 인천상륙작전기념일, 인천항개항일, 경인선개통일 등에서 시민의 날 택일하는 설문 조사 실시 1965년 제1회 시민의 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자유공원 광장에 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초청객 중에는 부평에스캄 부대 미군들과 인 천의 화교들이 포함됐다. 국적은 달라도 넓은 의미에서 그들을 인천 시민 으로 간주하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이날 시민의 다짐(헌장) 도 처음으로 공포했는데 이 헌장은 지금까 지 매년 시민의 날 행사에서 여전히 낭독되고 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 맥아더 동상 부근에 시민헌장비가 세워져 있다. 처음 제정 된 시민의 날 축하잔치에는 당시 최고 인기가수들이 총출동했다. 그 날 밤 8시부터 9시 30분까지 공설운동장에서 시민위안의 밤이 흥겹 게 진행됐다. 그날의 풍경을 한 지역신문은 이렇게 전했다. 국내 베테란급 가수인 현미와 한명숙, 박제란, 최희준 등이 출연해 그칠 줄 모르는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1968년 제4회 때부터 지역 상공계의 제안에 따라 인천시민의 날은 항도제( 港 都 祭 )를 겸해서 치르다가 이듬해부터 두 행사를 통합해 제물포제 라 개칭했다. 이 제물포제는 시민의 날이 제정된 지 10년 째 되는 지난 1974년부터 다시 날짜가 변경됐다. 동양최대 도크식 38

43 인천항 갑문 준공일 5월 10일을 기념하기 위해 변경됐다. 지난 1981년 7월 1일 인천은 경기도로부터 분리돼 인천직할시가 됐 다. 시 승격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시민의 날로 다시 제정했다. 그 러나 의미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길일( 吉 日 ) 을 택하지 못했다. 7월 1일은 계절적으로 폭염과 장마로 인해 행사를 치르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랐다. 해가 갈수록 시민들의 호응이 식어갔다. 날짜를 다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솔솔 흘러 나왔다. 1993년 인천시사 를 발간하는 시기와 맞물려 시사편찬위원회의 제 안에 따라 날짜 변경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1994년 인천시는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인천상륙작전기념일(9월 15일), 인천항개항일(2 월 27일), 경인선개통일(9월 18일), 인천 으로 개칭한 날(10월 15 일) 중 택일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많은 시민이 10월 15일 을 택했다. 1970년 대 말까지 시민의 날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들썩거리는 축 제일이었다. 특별한 문화 행사가 별로 없던 시절, 인천시는 지역 행 사와 한데 묶어 그 기간에 경축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특히 지역 의 큰 업체들은 기업 이미지에 맞게 트럭이나 버스를 개조해 매년 카 퍼레이드를 벌여 시민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현재 인천시민의 날 경축 행사는 IMF 사태 이후 지난 1998년부터 격 년제로 실시되고 있다. 짝수 해에는 간소하게 기념식만 치르고 홀수 해는 각종 경축 행사도 곁들여 열고 있다. 인천시는 올해부터 시민 의 날 을 국기 게양일로 지정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다른 해와 달리 10월 15일 시내 곳곳에 인천 시민의 긍지와 애향심이 담긴 태극기가 펄럭일 것이다. 39

44 아홉 번째 이야기(2014년 10월 20일) 한국 여자배구 강스파이크 동일방직배구단 프로배구 2014~2015 V리그가 지난 18일 시작해 6개월간의 대 장정에 들어갔다. 인천 연고 팀은 남자부는 대한항공 점보스팀, 여자 부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팀이다. 핑크스파이더스(pink spiders)의 전신은 동일방직 여자배구팀이다. 동구 만석동에 자리 잡은 동일방직(전 동양방적)은 1934년에 문을 열었다. 설립 당시 종업원 3천 명에 직조기 1천292대로 조업을 시작 해 일본인들이 동양 최대 라고 자랑할 만큼 큰 규모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면방직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동일방직은 1960년대 초 여자배구팀을 창단했고 뒤를 이어 대전방직, 경성방직, 선경직물 등 섬유 관련 업체들이 배구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국세청, 산업은행, 제일은행, 석유공사 등과 함께 한국 여자실업배구의 한 시 대를 풍미했다. 그중 동일방직 배구팀은 강팀으로 분류되었다. 박계조배쟁탈남녀배 40

45 최천식(현 인하대 감독)의 어머니 박춘강 씨 동일방직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 구대회, 전국춘계실업배구연맹전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항상 톱 랭킹에 속했다. 올림픽대회, 아시아경기대회 대비 국가대표팀을 구성할 때마다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서희숙 등 주전 대 부분이 상비군으로 선발될 정도로 1960년대 내내 상위권에 속했다. 그들이 훈련하는 체육관 겸 강당은 공장 안에 있었다. 선수들의 고함 이 하루 종일 직조기 소리에 섞여 만석동 공장 담 너머로 흘러 나왔 다. 인하대와 대한항공에서 주전으로 뛴 미남 선수 최천식(현 인하대 감독)의 어머니 박춘강 씨도 동일방직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했 다. 사진은 1966년 대회에서 우승한 동일방직 여자배구팀이 인천시청 을 방문해 시장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당시 이미 6인제 배구로 바뀐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전 6명만이 앵글에 들어 왔다. 영원히 코트를 누빌 것만 같았던 동일방직 배구팀은 면방직 업계의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1971년 8월 전격 해체된다. 당시 국내 여자 실업팀 중 가장 오래된 배구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태광산업이 인수해서 재창단하기로 결정해 선수들은 유니폼 만 갈아입게 되었다. 창단 이듬해 1972년 실업무대에 본격 나서며 3 41

46 동일방직배구단 해체된 지 38년 만에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변신해 다시 고향 코트를 밟아 천하 여장군들의 금의환향. 1966년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동일방직여자배구팀이 시청을 방문해 윤갑로 인천시장(가운데)과 포즈를 취했다. 선수 대부분이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동일방직배구팀은 1960년대 내내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42

47 월 부산에서 열린 실업연맹전에서 5전 전승, 창단 7개월 만에 우승 을 일궈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1975년 국가대표 이순복을 주 축으로 전국대회 3관왕의 영예를 누리며 8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 를 구가했다. 동일방직 출신의 이순복은 1972년 뮌헨올림픽 주전과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주역으로 한국배구사의 명 플레이어로 꼽힌다. 태광산업은 방계회사인 동양합섬을 통합했는데 이 팀은 남자배구단 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로써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같은 종목 남 녀 스포츠팀을 모두 보유한 회사가 되었다. 1991년 태광 배구팀은 태광그룹 자회사인 흥국생명에 속하게 된다. 흥국생명여자배구팀은 2005년 11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프 로 전환을 선언했다. 2005~2006 여자프로원년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을 동시에 제패,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V-리그 챔프전에 서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최초로 V3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08년까지 천안시가 연고지였던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2009년 인천시와 정식 연고 계약을 체결했다. 동일방직 여자배구팀 이 해체된 지 38년 만에 다시 고향 코트를 밟은 것이다. 그동안 핑크 스파이더스는 도원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올 시즌부터 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때 배드민턴 경기를 치렀던 계양구 서운동 의 계양체육관에 새로운 거미집 을 만들고 다시한번 인천여자배구 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43

48 열 번째 이야기(2014년 10월 27일) 인천OB밴드부 에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되기까지 가을이 깊어 갈수록 각종 음악 공연이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 특히 각 교향악단은 그동안 갈고 닦은 새로운 레퍼터리를 선보이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 분주하다. 인천의 대표적인 교향악단은 인천시 립교향악단이다. 이 오케스트라는 1966년 시립으로는 국내에서 서 울, 부산, 대구, 전북(전주)에 이어 다섯 번째로 창단되었다. 인천시사 70년대편 에 의하면 인천시립교향악단은 1966년 5월 4 일 창단에 따른 조례가 승인됨에 따라 40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다. 초대 상임지휘자는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제물포고에서 음악교사를 하던 김중석이었다. 창단 기념공연은 6월 1일 오후 7시 30분 제1시민관에서 열렸다. 이 날은 제정된 지 두 번째 맞는 인천시민의 날이었다. 인천시향은 첫 레퍼터리로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 등 10여 곡을 연주했다. 창단 공연에 이어 보름 후 KBS에 출연해 전파를 통해 전국 시청자들에게 창단 신고를 했다. 44

49 인천시향 창단의 근간은 1965년 창단된 육군경기지구 정훈( 政 訓 )관현악단 1968년 인천시는 중구, 동구, 남구, 북구 등 구제( 區 制 )를 처음 실시했다. 인천시향은 구제 실시 기념식이 열린 시민관 무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요즘과 달리 여성 단원의 비율이 아주 낮은 것이 이채롭다. 45

50 1960년 동산중 강당에서 열린 서울시향 초청 음악회에 안익태 선생이 한국환상곡 을 연주 지휘 조례가 통과되자마자 교향악단이 일사천리로 창단될 수 있었던 것 은 이미 인천에 오케스트라의 토대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 시향 창단의 근간은 육군경기지구 정훈( 政 訓 )관현악단이었다. 이 악 단은 6 25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1953년 6월 인천에서 창 단되었다. 1957년 해체되었다가 같은 해 인천음악애호가협회교향 악단으로 다시 발족했다. 이 교향악단의 추계대연주회가 11월 2일 인천시민관에서 열렸다. 이때 지휘자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 의 작곡가 최영섭이었다. 그는 1964년 동아방송 편곡지휘자로 스카우트되기 전까지 이 악단을 이 끌었다. 후에 인천애협교향악단원 대부분은 인천필하모니관현악단 으로 재편성되었고 아홉 차례의 연주회를 가진 후 1966년 인천시립 교향악단으로 다시 무대에 서게 되었다. 인천음악애호가협회는 1960년 5월 19일 동산중학교 강당에서 서울 시립교향악단 초청 인천시민위안음악회를 연다. 지역의 문화 예술 계 인사들과 남녀 학생들로 신축 강당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초로의 지휘자가 무대 한가운데 섰다. 애국가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지휘자 안익태 선생이 서울시향을 이끌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 46

51 천 무대에서 한국환상곡 을 연주했다. 1981년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인천시향도 한 단계 도약했 다. 마침내 모든 단원이 정식으로 봉급을 받게 되었고 85명의 단원 으로 3관 편성을 했다. 당시 단원들 대부분은 서울 출신이었고 4분 의 1은 유학파로 구성되었다. 비로소 인천OB밴드부 라는 오명을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기 전 인천의 주 공연무대는 주안에 있던 시민회관이었다. 비록 제대로 된 음향시설을 갖추지 못했지만 시향 정기연주회 때마다 1천350석의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높 았다. 창단 20주년 되는 1986년 3월 17일에 드디어 정기연주회 100 회 공연을 했고 이듬해 4월에는 창단 이후 첫 해외공연 길에 올랐다. 싱가포르, 홍콩, 자유중국(대만) 등 동남아 3개국을 방문해 베토벤의 에그먼트 서곡, 교향곡 5번 운명 을 연주했다. 1994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개관을 맞아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 자로 금노상을 영입하고 국제적인 오케스트라 규모의 4관 편성으로 그 면모를 갖췄다. 2010년부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자 금 난새가 지휘봉을 쥠으로써 인천시향은 지역을 넘어 세계무대에서 최상의 연주를 들려주는 명실상부한 메이저 오케스트라로 거듭나 고 있다. 2014년 10월 17일 인천시향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340회 정기연주회를 했다. 47

52 열한 번째 이야기(2014년 11월 10일) 빛바랜 추억 속 자유공원 비둘기집 올해 서울 창의상 최우수상은 가느다란 피아노 줄을 이용한 비둘기 퇴치법이 수상했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이제 도시의 골칫거리 중 하나가 되었다. 정부는 2009년 배설물로 인한 건물 부 식과 차량 피해 그리고 위생상의 문제를 야기하며 혐오감을 주는 비 둘기를 유해( 有 害 ) 동물로 지정했다. 광장과 공원의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을 완성하는 소재였던 비둘기는 오늘날 환영받지 못하는 조류 로 전락했다. 자유공원 광장에는 커다란 비둘기집이 있었다. 공원을 찾은 사람들 은 맥아더 동상과 더불어 비둘기집 앞에서도 인증샷 을 꼭 찍었다. 사진은 1982년 자유공원으로 그림 그리러 나온 인근 유치원 원아들 이 비둘기집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11층으로 된 이 비둘기집은 1967년 대성목재공업에서 제작해 기증 한 것이다. 190쌍 정원의 규모로 만들어 30쌍을 처음 입주시켰다. 해마다 식구가 늘어나 6년 만에 30배인 1천쌍이 되면서 극심한 주택 48

53 1967년 대성목재가 제작 기증한 자유공원 비둘기집, 식구 늘어 수원시와 여주군에 분가시켜 지금은 도시의 골칫거리가 되었지만 1990년대 까지만해도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 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은 1996년 철거되기 전의 자유공원 비둘기집. 난과 식량난을 겪었다. 결국 일부를 수원시와 여주군에 분가시키기 도 했다. 설치된 지 30년 만인 1996년 초 공원 환경개선 계획에 의해 이 비둘기집은 철거되었다. 졸지에 홈리스 가 된 비둘기들은 대부분 공원 아래 인천경찰청(현 하버파크호텔)으로 집단 이주했다. 바로 앞 에 인천항 양곡 양륙장이 있어 밥벌이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비둘기 49

54 소월미도에 인천관측소와 일본군 군용기지, 여의도비행장을 오가는 통신용 비둘기 사육장 있어 들은 하역 작업 중에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주워 먹거나 아예 인근 제분 공장으로 날아가 쌓여 있는 곡식을 축내기도 했다. 공원 비둘기의 새 거처가 된 경찰청 건물은 배설물로 골치를 앓았다. 급기야 경찰청 측은 본관 건물 옥상에 비둘기집 두 동을 설치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인천은 오래전부터 비둘기와 인연이 깊다. 일제강점기 때 소월미도 에는 인천관측소와 일본군 군용기지, 여의도비행장을 오가는 전서 구( 傳 書 鳩 : 통신용 비둘기) 사육장이 있었다. 전서구는 다리에 각종 정보를 동여매고 인천~경성, 인천~팔미도를 매일 오전, 오후 한두 차례 적게는 5, 6마리 많게는 40~50마리가 뭉쳐서 저공으로 날아다 녔다. 이 비둘기들은 교통이 불편하고 전신, 전화 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섬을 오가며 폭풍 경보와 해난 통보 등에 활용되었다. 1930년대 초 체신국은 종래 팔미도를 중심으로 한 비둘기 통신을 멀 리 등대가 있는 자월면 목덕도(88km), 태안반도 앞 옹도(91km), 격렬 비도(122km)까지 확장했다. 인천해사출장소장은 앞바다 섬의 등대 를 순시하러 다닐 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전서구를 갖고 다녔다. 훈련을 받았지만 간혹 임무 수행을 못하는 고문관 비둘기도 있었 50

55 다. 1934년 1월 영종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가 길 잃은 전서구 한 마리를 잡아 보호해 경기도청에 신고했다. 다리에는 조체 ( 朝 遞 ) 8463호 라는 쪽지가 달려 있었다. 인천해사출장소와 팔미도 사이를 날아다니며 임무 수행하던 전서구가 잠시 방향을 잃고 갈 길 을 헤맸던 것이다. 수렵금지 기간이 해제되는 가을철이 되면 전서구의 수난이 뒤따르 곤 했다. 사냥꾼들은 다른 새와 구분하지 못하고 전서구들에게 총구 를 겨누기도 했다. 체신국에서는 사냥꾼들의 총부리로부터 통신병 을 보호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안에도 비둘기 통신중 대가 창설될 만큼 오랫동안 비둘기 연락병의 역할은 계속되었다. 1970년대 만해도 귀소( 歸 巢 ) 능력이 있는 이 비둘기는 애완동물의 하나였다. 비둘기 애호가들의 모임인 애구( 愛 鳩 )협회가 결성돼 1년 에 한두 차례 비둘기 레이스 경기를 펼쳤다. 회원들은 자신들이 사육하는 비둘기들을 먼 지점에 갖고 가 그곳에 서 동시에 날려 보냈다. 비행 후 각기 자기 집에 도착한 시간을 특수 시계로 기록하여 각 비둘기가 날아온 분속을 계산하여 등수를 매기 는 경기였다. 멀리 제주도에서 날려 보내는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다. 비둘기들은 시속 60km로 제주~서울 간을 8시간 꼬박 비행해 집으로 돌아왔다. 51

56 열두 번째 이야기(2014년 11월 17일) 주판알 잘 튕겨야 취업 취업시즌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을 얻기 위해 영어, 컴퓨 터, 봉사활동 등 갖가지 스펙 쌓기에 온 힘을 쏟는다. 30여 년 전 까 지만 해도 고용시장에서 우대받는 취업 스펙 중 하나는 주산 실력이 었다. 개항장 인천은 다른 도시에 비해 일찍 근대적 상점과 회사가 많이 설 립되면서 주산이 활성화 되었다. 1924년 2월 3일 인천주산경기회와 인천남상업학교 주최로 부내 상업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은행원, 상 점원 등이 참가한 주산경기대회가 열렸다. 속산( 速 算 ), 전표산( 傳 票 算 ) 등 9개 분야에서 실력을 겨뤘는데 주로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에 근무하는 현직 은행원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다. 1920년대 후반 유도 사범 유창호는 당시 인천의 유지 최승우, 김윤 복의 도움을 받아 율목동 유도관 2층에 인천 최초의 주산 부기 학원 인 상업전수학교를 개설했다. 후에 이 학교는 동산중학교로 승격했 고 더 나아가 동산고등학교로 성장했다. 52

57 인천상공회의소, 광복 후 재건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주산경기대회의 효시인 전( 全 )인천주산경기대회 개최 1936년부터 인천부(현 인천시)와 인천상공회의소는 공동으로 매년 2주간 매일 밤 두 시간 동안 인천공회당에서 상점실무강습회를 열었 다. 부내 각 상점 1명씩 총 50명을 대상으로 주산, 부기, 상사요항( 商 事 要 項 )을 가르쳤다. 광복 후 인천은 우리나라 주산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인천 상의 110년사 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인천상공회의소는 재건 사 업의 일환으로 전( 全 )인천주산경기대회를 개최했다. 1946년 10월 26일 실시한 제1회 대회는 8 15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 된 기능보급 행사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주산경기대회의 효시였다. 1949년 제4회 대회를 치르기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실시해 왔으 나 6 25 전쟁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 인천 출신 주산인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1960년 10월 8일 문교부 주 최 제6회 주산능력검정고시가 서울상고와 덕수상고에서 응시자 5천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그들 중 인천송현국민학교 6학년생 전 숭영(12) 양이 역대 최연소로 2급에 응시, 언론에 주목받기도 했다. 1965년 5월 일본, 자유중국, 마카오, 멕시코 등이 참가한 제3회 세계 주산회의가 경희대 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53

58 1960년 주산능력검정고시 5천 명 참가자 중 인천송현국교 전숭영 역대 최연소 응시, 언론에 주목받아 1970년대 인천상의가 주관한 주산경기대회 모습. 당시 인기직장이었던 은행에 들어가려면 보통 2급 이상의 주산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인천여상 강인구 교사가 주산기능에 미치는 요인 분석 을 발표해 눈 길을 끌었다. 이듬해 12월 자유중국 타이베이에서 열린 한 일 세계 주산대회에는 이봉운 인천상의 부회장이 대표단 단장을 맡아 참가 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주판은 필수 사무용품이었다. 은행 창구나 54

59 관공서 책상은 물론 동네 어귀 구멍가게 계산대 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1950년대 상업학교에서 주산은 의무 교육이었고 60년대 초 중학교에서는 특기교육과정이 되었다. 신학기 학교 앞 문방구의 대목 학용품으로 주판이 낄 정도였다. 한창 때는 전국 10여 개 공장에서 생산하는 주판이 한해에 10만 개씩 팔 리기도 했다. 골목마다 주산학원이 들어섰고 아이들은 한글과 구구 단을 깨치기 전에 조기교육으로 주산을 배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다 양한 색상의 천주머니에 주판을 넣고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 주산자격증은 확실한 취업증명서 였다. 1973년 중구 사동에 있는 경기은행 본점에서 상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남자행원 약간 명을 모 집했는데 고시과목은 주산, 부기, 종합상식, 작문이었다. 당시 인천 상의는 전국주산경기대회에서 입상한 지역 실업계 학생들에게 시내 기업체 취업을 알선해 주었다. 실업계고 주산부 학생들이 거둔 성적에 따라 그 학교의 위상이 오르 락내리락 하기도 했다. 각 시도의 선거종합상황실 투개표 상황집계 는 상업고 주산부 학생들이 도맡아 처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전자계산기가 일상화되면서 주산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대한상의 주관 1988년도 주산국가기술자격검정에 1백 11만 명이 응시한 것을 정점으로 주판알 튕기는 소리 는 점점 희미 해져 갔다. 55

60 열세 번째 이야기(2014년 11월 24일) 엄마표 겨울용 털실 옷 찬바람이 불면 따스한 털실 옷이 그리워진다. 예전에 뜨개질은 의( 衣 )식주 해결의 하나였다. 섬유 의류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 절 겨울옷은 주로 주부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돈을 주고 옷을 사기보 다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입는 손뜨개질 옷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크면 털실을 풀어 다시 몸에 맞게 뜨개질해서 입혔다. 첫째 아들이 입었던 옷을 막내 여동생용으로 다시 고쳐 뜨곤 했다. 옷뿐이 아니었다. 장갑, 양말, 모자, 목도리 심지어 가방까지 온갖 엄마표 털실 제품이 만들어졌다. 손뜨개질은 일제강점기에도 성행해서 주로 부유층 주부들을 대상으 로 강습회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내리 44번지에 있는 인천가정편물 연구회에서는 1932년 10월에 2주간의 편물강습회를 개최했다. 수 강 과목은 자켓, 조끼, 스웨터, 남녀 아동복이며 강습비는 1원이었 다. 비슷한 시기 인천수예연구소에서도 유사한 내용으로 모사편물 강습회를 열었다. 56

61 1966년 대한어머니회 인천지부 주최 수출편물강습회에 육영수 여사 참석해 수강생들 격려 월동 대비 집안일이었던 뜨개질은 1970년대에 접어들자 보세가공 수출품목이 되면서 중요한 부업거리가 되었다. 사진은 1966년 인천시에서 주관한 편물강습회의 모습. 아이를 들쳐 업고 온 주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57

62 6 25 전쟁 후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 손뜨개질은 더욱 중요한 가사 ( 家 事 )가 되었다. 이 뜨개질이 1960년대와 70년대에 접어들자 집안 일에 머무르지 않고 주부들의 부업거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주부가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고 부업을 갖는 것도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즈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털실 옷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손으로 직접 뜬 털실 스웨터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보세가공 수 출품목이 되었다. 특별한 기계설비 없이 바늘과 실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이 가내수공업을 적극 적으로 권장했다. 농촌지역에서 조차 겨울철 농한기에 남자들은 가마니를 짜고 여자 들은 스웨터를 짰다. 나중엔 여름철 농번기에도 털실 옷을 뜰 만큼 농가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었다. 전국의 부녀복지회관이나 야간기술학교를 중심으로 편물 강습회가 자주 열렸다. 1960년대 인천에서도 가사원( 家 事 院 ) 인천지부에서 편물강습을 정기적으로 실시했으며 수료한 4천여 명의 회원들은 각 자 집에서 편물 가공품 생산에 종사했다. 1966년 5월 30일 대한어머니회 인천지부가 주최한 수출편물강습회 에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참석해 수강생들을 격려할 만큼 당시 에는 편물수출이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진은 1960년대 중반 인천시 차원에서 동네 대표 주부들을 모아 놓고 뜨개질 무료 강습을 하는 모습이다. 맡길 데가 없어 아이를 둘 러업고 나왔지만 엄마는 아랑곳 않고 강사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 58

63 1962년 동인천역 북광장 인근에서 문 연 털실가게 송현모사, 신포동으로 둥지를 옮겨 장사 계속 고 열심이다. 신기술 을 익힌 엄마들은 동네로 돌아가 이날 배운 기 술을 이웃들에게 전수했을 것이다. 1966년 국내에서 첫 국내 기능올림픽이 열렸다. 이듬해 스페인 마드 리드에서 열리는 제1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전초 전 성격이었는데 첫 국내 기능대회부터 손뜨개질 종목이 포함되었다. 각 지역의 손뜨개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가대표를 선발했다. 국 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매번 좋은 성적을 거두자 해 외에서는 우리나라 여성의 손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이민이나 유학 을 가는 여성들이 뜨개질 기술을 익혀 가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에 1, 2개월짜리 속성 과정의 양재 편물학원 광고가 자주 실렸 고 뜨개질 강습 기사가 연재돼 인기를 끌었다. 대부분의 여성잡지사 는 아예 별책부록으로 편물가이드 를 발행해 잡지 판매에 큰 재미를 보기도 했다. 인천의 시장 어귀마다 털실 가게 한 두 개씩은 있었다. 특히 현재 동 인천역 북광장 인근에 모사 간판을 단 10여개의 가게들이 옹 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중 1962년 문을 연 송현모사는 주부들 사이 에서 꽤 유명했다. 몇 년 전 북광장이 조성되면서 이 가게는 현재 중 구 신포동으로 둥지를 옮겨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59

64 열네 번째 이야기(2014년 12월 1일) 월남 파병 출항지이자 보트피플 피난지였던 인천항 올해는 월남 파병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4년 5월 9일 미국 존슨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25개 자유 우방국에 남베트남(월남) 지원 을 호소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한국 정부 측에는 1개 이동외과 병원 의 파병을 요청했다. 1964년 9월 11일 이동외과병원 인력 130 명과 태권도 교관 10명 등 총 140명이 부산항을 출발했다. 건군 이 래 최초의 해외 파병이었다. 1965년 3월 10일 2차 파병을 했다. 공병대대를 중심으로 한 경비대 대, 수송자동차중대, 해군수송분대(LST) 등으로 편성된 건설지원단 비둘기부대 는 인천항에서 미 해군 수송함에 승선해 미 제 7함대 소 속 함정과 함재기의 호위를 받으며 사이공을 향해 출항했다. 사진은 그날 오전 6시경 인천항에서 진행된 환송식의 모습이다. 동 트기 전, 이른 시각에 군 관계자와 가족들이 부두에 나와 수송함 바 로 앞에서 차디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월장병들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60

65 1966년 파월 장병 전투력 향상 위해 신흥동에 김치통조림을 생산할 인천원예협동조합 건설 그해 10월 13일 이번엔 실질적인 전투부대가 베트남으로 향했다. 사 단장 채명신 장군이 이끄는 전투사단 맹호부대 가 미 제 7함대 수송 함 베이필드 호 등 3척에 나눠 타고 인천항을 빠져 나갔다. 이후 1973년까지 약 9년간에 걸쳐 31만3천 명이 낯선 땅 월남으로 파병되었다. 동네마다 한두 명의 젊은이가 월남에 건너가 베트콩과 싸웠다. 1970년도 인천시정백서에 의하면 1968년과 1969년 인천 의 파월장병 가족세대는 692세대로 조사되었다. 인천항을 통해 나간 것은 장병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물자가 쉴 새 없이 월남으로 향했는데 그 안에는 김치 도 끼어 있었다. 쌀이나 고 기는 현지에서 조달이 가능했지만 김치는 그렇지 못했다. 장병들은 고국에서 만든 토종김치를 그리워했다. 정부는 김치를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보내기로 했다. 1966년 8월 1일 정부 지원을 받은 인천원예협동조합은 김치통조림 을 생산할 식품가공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인근 농촌에서 생산하는 각종 농산물의 조달이 편리한 수인선과 제품을 바로 선적하기 좋은 인천항이 이웃한 신흥동(현 신광초교 뒤)에 부지 2천평을 마련했다. 1967년 3월 18일 오전 11시 드디어 국내 최초의 김치공장이자 통조 61

66 림공장의 준공식이 열렸다. 이날 농림부장관, 경기도지사, 농협중앙 회장 등이 참석할 만큼 이 공장의 가동은 그 의미가 컸다. 서독(독일) 에서 들여온 설비를 갖춘 이 공장은 연간 200만 통의 통조림을 생산 해내며 파월장병들의 전투력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월남으로 모든 게 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월남 패망 후 많은 난 민들이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1977년 8월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를 싣고 한국으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선적 유조선이 남지나 해 1965년 인천항에서 열린 해군수송대(백구부대)의 환송 모습. 그들은 후에 월남에서 철수하는 장병들을 다시 안전하게 고국으로 수송하는 임무도 맡았다. 62

67 월남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사람들 귀국해 도원동에 슬라브 2층집 짓고 살며 월남촌 형성 상에서 보트피플을 구조했다. 어린이 14명이 포함된 33명(남24명, 여9명)은 인천항으로 들어와 신흥동에 있던 옹진군민의 집에 수용되 었다. 이듬해 2월 13일 인도네시아에서 원목을 싣고 한국으로 오던 화물 선 상동호가 45명, 1979년 9월 28일 석탄공사가 수입하는 석탄을 싣고 오던 영국 선적의 화물선이 32명 등의 난민을 각각 구조해 인 천으로 들어왔다. 당시 인천, 부산 등을 통해 한국 땅을 밟은 월남 난 민의 수는 2천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한국에 잠시 수용되었다가 대다수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이주 했다. 일부는 이 땅에 남아 주점이나 음식점을 운영하며 힘겨운 삶을 꾸려 나갔다. 신포동에서 전통복 아오자이를 입고 과일냉차 장사를 해 눈길을 끌었던 웬레슨(28)이라는 베트남 여인도 그 중 한명이었 다. 중구 일대와 부평 지역에는 뉴사이공 등의 간판을 달고 장사를 한 베트남인들이 몇 명 있었다. 월남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사람들도 속속 귀국했다. 전장에서 돈을 번 그들은 중구 도원동에 당시에는 고급 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슬라 브 2층집을 여러 채 짓고 함께 살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월남촌 이 라고 불렀다. 63

68 열다섯 번째 이야기(2014년 12월 8일) 집도 절도 없던 거리의 천사 폭풍한설이 몰아치면 지내기 가장 힘든 이들은 집도 절도 없 는 사람들이다. 거리를 떠돌며 문전걸식하던 사람을 일컬었던 거 지 라는 호칭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거지같은 놈, 빌어먹을 놈 이란 말은 참기 힘든 욕설이었다. 행태만 변했을 뿐 거지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한다. 일 제강점기에도 부랑아 로 불린 걸인들의 문제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1934년 10월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인천 인구 6만 명에 끼니를 제대 로 잇지 못하는 궁세민( 窮 細 民 )이 4천582명(일본인 4명)이었다. 아 예 주거지도 없이 유리걸식하는 걸인은 59명으로 조사되었다. 겨울철 걸인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빈 집이나 골목에서 불을 피우 는 바람에 화재가 자주 발생했고 굶주려 얼어 죽은 시신인 강시 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자주 실렸다. 일제는 부랑아들을 수용하기 위해 경기도 사회사업협회 기부금으로 옹진군 선감도(대부도 인근) 전체를 매수해서 복지시설을 건립했다. 64

69 1955년 도원동 산꼭대기에 부랑아들을 선도하기 위해 세운 인천소년수양원, 나중에 광성중고교로 성장 1960년대 중반 인천시에서 마련한 부랑인 임시 수용소의 모습. 군용 천막 안에 작은 난로 하나 피워 놓았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묻어난다. 65

70 1964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구경하기 위해 인천으로 왔다가 부랑아로 오해돼 잡혀가기도 1942년 5월 인천에서 배편으로 195명의 부랑아를 수송하면서 개원 했다. 대부분 거리를 배회하다가 잡혀간 그들은 강제 노역과 가혹 행위를 피해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곳을 벗 어나는 방법은 헤엄치는 게 유일했다. 당시 적지 않은 수가 물을 건 너다 익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수용소는 1946년 2월 선감학 원 이란 사회복지시설로 간판을 갈아 달고 1982년 10월에 폐쇄될 때까지 전쟁고아와 부랑아 등을 수용했다. 광복 후에도 걸인의 숫자는 줄지 않았다. 1950년 초 전국적으로 3만 여 명의 걸인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중 수용된 인원은 서울, 인천에 700여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동냥, 절도, 소매치기 심지어 약탈을 일삼았다. 특히 좌 우익 분쟁의 혼란기를 틈타 북한에서 보 낸 간첩들이 남한에서 거지 행세를 하며 조직을 확장해 방화와 파괴 를 일삼는다는 소문이 퍼져 부랑인 문제는 국가 안위에도 큰 위협을 줬다. 정부는 각 도에 걸인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걸인강제수용법 을 만들어 인구 10만 명 이상 도시에 수용소를 설치하는 한편 걸인 돕기 후생복표(복권)를 발행하기로 했다. 이런 와중에 서울의 자생원 66

71 에 수용된 걸인들이 구걸하며 푼푼이 모은 돈 2천200원을 군용기 헌 납 기금으로 동아일보에 기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쟁은 또 다른 부랑인들을 양산했다. 거리마다 전쟁고아와 거 지들이 넘쳐났다. 인천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류충렬 씨는 1955년 12 월 16일 도원동 산꼭대기에 부랑아들을 선도하기 위하여 인천소년 수양원을 건립했다. 구두닦이 등 거리의 소년 약 500명을 모아 교육 하기 시작했는데 집 없는 아이들에게는 합숙소까지 제공했다. 이 수 양원은 1965년 광성고등공민학교를 거쳐 오늘의 인천광성중고교로 성장한다. 1960년대 산업화시기에 접어들자 농촌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사람 들이 직장을 찾지 못해 거리마다 걸인, 넝마주이 등이 넘쳐났다. 보 사부는 그들이 동사, 아사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년 12월 1일부 터 다음해 2월 28일까지 3개월간 부랑아구호정책을 펼쳤다. 인천시 와 인천경찰서는 매년 합동단속을 통해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아들 을 붙잡아 선감도로 이송했는데 실적 위주의 단속으로 부작용을 낳 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부모와 함께 살던 지유성(15)은 1964년 인 천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구경하기 위해 인천으로 왔다가 동인천역 에서 붙잡혔고 장성길(16)은 운동장 근처로 행상을 하러 왔다가 단 속에 걸려 섬으로 끌려갔다. 이렇듯 인천전국체전 기간 중 감옥과 다 름없던 선감도에 수용된 아이들의 수가 82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 돼 큰 물의를 일으켰다. 연고자 소재 파악을 위해 당시 신문에 그들 의 명단이 게재되었다. 67

72 열여섯 번째 이야기(2014년 12월 15일) 부평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모판 인천이 지난해 말( ) 기준으로 승용차 100만대 시대를 열었다. 시민 3명당 1대 꼴로 승용차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인천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도시이다. 이 땅 최초의 자동차로 기록된 고종의 어차( 御 車 ) 미국제 포드 승용차가 1903년 제물포항을 통해 수입되었다. 개항장답게 외국무역상이나 선교사들이 자동차를 들여와 운행함으로써 그 어느 지역보다 먼저 자동차라는 신문물을 접한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천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지 역이다. 정부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자동차공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정책을 세웠다. 재일동포 박노정에게 인천 부 평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했고 드디어 1962년 8월 27 일 새나라자동차사의 간판이 내걸렸다. 그날 오후 3시에 열린 준공식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했다. 최고 실력자가 만사 제쳐두고 참석할 만큼 이 공장의 준공 68

73 세단형 새나라자동차 나오자 1955년부터 망치로 두드려서 생산해 온 시발자동차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쳐 은 그 의미가 컸다. 당시 한 신문은 그날 준공식에 박 의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구름처럼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박 의장은 치사를 통해 우수한 자동차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외화 를 절약하게 된 것이 기쁘다 며 하루바삐 우리 손으로 자동차를 만 들 수 있는 기술과 태세를 갖출 것 을 당부했다. 사진은 준공식 후 공 장 내부를 시찰하는 군복 차림을 한 박 의장의 모습이다. 그는 아직 군인 신분이었다. 8만평(건평 4천500평)의 터에 자본금 1억원으로 출발한 새나라자동 차는 일본 닛산의 1천200cc 자동차 블루버드를 반제품식으로 들여 와서 조립하였다. 말이 조립 생산이지 사실 나사와 볼트를 끼우고 맞 추는 정도의 단순 작업이었다. 닛산은 물자 제공뿐만 아니라 프레스 가공과 엔진 제작 등 기술 원조를 하기로 새나라자동차사와 7개년 기술협조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타이어 튜브, 시트, 유리 등 국산 화율은 고작 20%에 머물렀다. 일본의 파랑새 가 대한해협을 건너 날아와 새나라 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근대적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 진 최초의 국산 승용차로 기록된다. 69

74 외국인 관광객 전용 차량으로 새나라가 사용되면서 영어 해독할 수 있는 운전수 150명을 선발해 운전대 잡게 해 지난 1962년 8월 27일 부평 새나라자동차사 준공식에 참석한 후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군복 차림의 박정희 의장. 자동차 생산 라인이라기보다는 요즘의 공업사 수준의 모습이 당시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70

75 미끈한 세단형의 새나라자동차가 시중에 나오자 1955년부터 미군 지프의 중고 부품을 조립하고 드럼통을 망치로 두드려서 생산해 온 시발자동차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했다. 새나라는 초기에 일반인들이 쉽게 탈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처 음 생산된 400대 중 150대는 외국인 관광객 전용 차량으로 사용되 었으며 이를 위해 영어를 해독할 수 있는 운전수 150명을 선발해 운 전대를 잡게 했다. 나머지 250대는 주한 UN군용이나 대도시의 일반 관광용으로 운행했다. 이를 위해 거리 곳곳에 새나라 전용 승하차장 이 설치되었다. 새나라는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돼 갈지자 행보를 했다. 외환 사정이 악화돼 부품 수입이 어렵게 되었고 대당 수입 단가 1천40달러(당시 환율로 13만1천원)의 국내 판매가가 22만4천원의 폭리로 밝혀지는 등 자동차 탄생에서부터 부품 수입 단계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 의 혹에 휘말렸다. 새나라자동차 문제는 국회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지면서 정쟁으로 까지 비화돼 한동안 장안을 들끓게 했다. 결국 1963년 7월 2,772대 를 끝으로 생산이 중단되었다. 하루 10대 정도 생산을 하고 문을 닫 게 된 것이다. 새나라자동차사는 1964년 1월 31일 인천지방법원에 서 경매 처분되었고 한일은행에 낙찰되었다. 새나라자동차는 자동차의 국산화라는 거창한 꿈을 접고 1965년 신 진자동차로 넘어감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신진자동차 는 새한자동차, 대우자동차 그리고 한국지엠으로 그 바통이 건네지 며 오늘에 이른다. 71

76 열일곱 번째 이야기(2014년 12월 22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메시아 전 곡 연주한 내리교회 성탄절을 맞아 교회마다 크고 작은 성탄축하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가장 많이 선택되는 곡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이다. 이 곡은 연주 시간이 거의 3시간에 이르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대작( 大 作 )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할렐루야 등 일부 곡만 발췌해 연주한 다. 이런 메시아 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전 곡을 연주한 교회는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인천 중구 내동의 내리교회이다. 메 시아 첫 연주는 아직도 6 25 전쟁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 1954년 성 탄절에 이뤄졌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내리교회 찬양대원이었던 이선환 씨는 원어로 된 전 곡의 악보 를 한 질 3권(총 120여권)으로 번역해 만들었다. 40여 명으로 구성 된 내리교회 찬양대는 드디어 1954년 12월 23일 내리예배당에서 헨델의 메시아 를 국내 최초로 전 곡을 연주한다. 그 어느 합창단과 찬양대에서도 꿈꾸지 못했던 대곡( 大 曲 )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72

77 1885년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아펜젤러는 그해 일본에서 주문한 풍금이 도착하자 내리교회 인근 초가에서 찬송가 봉헌 1954년 성탄절을 맞아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전 곡을 한국에서 최초로 연주한 후 기념 촬영을 한 내리교회 찬양대 모습.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소박한 무대가 눈에 띈다.( 내리교회 95년사 에서) 73

78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비목 작곡가 장일남 등 인천 통해 서양음악의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 사진은 그날 메시아 연주회를 마치고 교역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한 찬양대원들의 모습이다. 앞 줄 대원의 무릎에 놓인 악보가 꽤 두 툼해 보인다. 한국에서 메시아 를 초연한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인천지역 교회는 1970년대 접어들면서 인천시메시아연합연주회를 기획한다. 인천 시사 70년대편 에 의하면 1978년 11월 4일 인천시민회관에서 메시 아연합연주회 창립기금 마련을 위한 내리교회성가대와 부평감리교 회성가대 그리고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연합연주회가 개최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인천시메시아연합연주회가 창설되었고 이듬해 12월 22일 제 1회 연합연주회가 열렸다. 내리감리교회, 중앙감리교회, 제 3장로교회, 송현성결교회로 구성된 초교파 연합성가대와 인천시향 이 연주하는 메시아 가 인천시민회관 무대에 울려 퍼졌다. 내리교회는 우리나라 서양음악 역사의 작은 씨를 뿌린 곳이다. 한국 의 서양 음악은 찬송가로부터 시작됐다. 1885년 4월 5일 복음을 들 고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아펜젤러는 그해 7월 7일 일본에서 주문 한 풍금이 도착하자 현재의 내리교회 인근 초가에서 만복의 근원 하 나님 이란 찬송가를 봉헌했다. 74

79 풍금 소리가 울려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그 집에 몰려들었 고 아름다운 소리에 금세 반해 버렸다.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찬송가 는 당시 장구와 꽹과리 그리고 피리가 중심이 된 국악 음률에 익숙해 있던 조선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종교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일제강점기에도 내리교회는 인천지역 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회의 좋은 무대가 되었다. 1920년 7월 4일(주 일) 인천남자엡윗청년음악부는 오전 11시부터 내리예배당에서 인천 찬양회를 개최했다. 인천과 경성에 있는 서양인, 중국인, 일본인 교 회의 음악가를 초청해 각자 언어로 독창과 합창 프로그램을 진행했 다. 1922년 4월 29일(토) 인천남자의법청년회 음악부 주최로 오후 7 시 30분부터 내리예배당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시내 각 교회를 비롯해 일본인교회와 중국인교회 찬양대 그리고 경 성의 성악가와 기악연주가를 초청해 성대하게 음악회를 개최했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 20전 짜리 입장권을 판매했는데 제모( 制 帽 )를 쓴 학생에 한해 반액으로 할인했다는 내용이 당시 한 신문에 보도되 기도 했다. 이후 내리교회는 음악계의 거목들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국민가곡 그리운 금강산 의 작곡가 최영섭은 내리교회 찬양 대를 이끌며 메시아 를 여러 번 지휘했고 한국합창계의 대부로 우뚝 서며 얼마 전까지 인천시립합창단의 지휘봉을 쥐었던 윤학원도 내 리교회 무대에서 활동했다. 비목 의 작곡가 장일남은 광복 직후 월남해 송현동에 본적지를 두고 내리교회 찬양대를 지휘하며 서양음악의 자양분을 마음껏 섭취했 다. 75

80 열여덟 번째 이야기(2014년 12월 29일) 인천에서 처음 실시된 야간통행금지 자정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초초한 표정을 지으며 부산해졌 다. 매일 밤 국민 모두가 안절부절 못하는 집단적 조건반사 를 보였 다. 30여 년 전 야간통행(야통) 금지가 실시됐던 때의 모습이다. 지 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밤 12시가 넘으면 절대로 다니지 못 했던 시절이 있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다음날 거리 전봇대와 골 목 담장에 영어로 쓴 종이들이 나붙었다. 영어 깨나 하는 사람이 더 듬거리며 번역을 해줬다. 그런데 단어 하나에서 막혔다. curfew. 처음 보는 단어였다. 콘사이스를 들쳐보니 유럽 중세 때 소등을 명 하는 종소리 라고 적혀 있다. 야간통행금지는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 왔다. 광복 이후 이 땅에 내려진 미군정 포고( 布 告 ) 제 1호는 일본 식민지 정책 하에서 해방된 한국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질서 유지 76

81 1945년 9월 7일부터 1982년 1월 4일 까지 36년 4개월가량 야간통행 금지 아래서 살아와 1966년 12월 31일 동인천역 광장의 밤 풍경. 건물 위에 설치된 미원 네온사인이 광장을 화려하게 비추었다. 나중에 맞은편 건물에 후발업체 미풍 의 광고탑도 세워져 한동안 경쟁하듯 이곳에 불빛을 쏟아냈다. 77

82 를 위해 통금을 선포할 수 있다 였다. 그 포고를 근거로 당시 주한 미군사령관 하지 장군은 인천과 서울에 통금을 선포했다. 그날부터 두 지역은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 행을 금지했다.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적국인 일본이 지배해왔던 한 반도 지역에 대해 경계 태세를 갖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제도 는 1950년 7월 8일 전국으로 확대됐고 6 25 전쟁으로 남한이 전시 상황에 빠지자 요지부동으로 굳어 버렸다. 일제하에서도 실시되지 않았던 이 통금제도는 1955년 4월 내무부 고시 경범죄 처벌 제 1조 43항으로 입법화 되면서 생활 풍속도를 완 전히 바꿔 놓았다. 우리 국민은 1945년 9월 7일부터 1982년 1월 4 일까지 36년 4개월가량 야간통행 금지 아래서 살아왔다. 일 년 내내 야통 이 실시된 것은 아니었다. 성탄절과 한해의 마지막 날(31일)에는 한시적으로 통금을 해제했다. 1962년에는 군사혁명 제1주년기념산업박람회(4월) 기간에 20일간, 관광의 달(5월)을 맞아 외국인들에게 불편을 줘서는 안된다며 15일간 해제하기도 했다. 사진은 1966년 연말연시를 맞아 통금이 해제된 동인천역 부근의 야 경 모습이다. 일 년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밤새 꼬리를 물며 질주 하는 차량들의 불빛이 번잡하다. 당시 인천에서 유일했던 네온사인 도 밤새 번쩍거렸다. 딱히 갈 곳 없었던 젊은 청춘들은 부나비처럼 화려한 불빛을 쫓아 동인천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1964년 1월 18일 0시를 기해 제주도가 통금에서 해제됐다. 이어서 이듬해 해안선이 없는 충북, 그리고 1966년 유명 관광지였던 경주, 온양, 유성 등이 통금에서 벗어났다. 이를 계기로 야통 금지를 없애 78

83 당국은 치안과 안보 문제, 특히 대부분 가정주부들이 통금제도를 원한다는 논리로 통행금지 존속시키려 해 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국은 치안 문제, 더 나아가 안보를 앞세워 존속 논리를 폈다. 심지 어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이 통금제도를 원한다는 핑계를 댔다. 이에 대해 언론에서는 밤늦게 기생집이나 바에서 술 먹고 다니는 특권층 일부 부인들의 하소연이라고 맞받아쳤다. 20세기에 야간 통행금지를 항시적( 恒 時 的 )으로 시행하는 국가는 지 구상에서 한국과 칠레 밖에 없었다. 치안 사태가 좋지 않았던 베트남 도 전국적으로 시행하지 않았고 분단 국가였던 독일(서독)도 이 제도 를 실시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1982년 1월 5일부터 이 제도를 철폐했다. 정통성에 자 신이 없던 정권은 마치 시혜처럼 국민들에게 빼앗긴 심야의 4시간 을 돌려 줬다. 무엇보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 제도를 존속 시키는 것은 여러모로 거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폐지했다. 어찌됐던 요즘 말로 하면 36년 만에 비정상의 정상화 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지역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접적( 接 敵 ) 지구와 해안선 등 전국의 52군 292읍 면은 제외시켰다. 강화군, 옹 진군 전부와 인천 인근의 군자, 소래 지역 주민은 이후에도 한동안 여전히 밤에 발이 묶였다. 79

84 열아홉 번째 이야기(2015년 1월 5일) 산업화 시절의 슬로건 더 일하자 새해를 맞아 각 지자체와 기업에서는 2015년의 슬로건을 새롭 게 내걸고 있다. 슬로건은 구성원의 결집과 집단의 목표를 함축적으 로 표현하는 효과가 있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 지자체마다 그 지 역 특성에 맞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지만 관선( 官 選 ) 시대에는 중앙 에서 정한 국정지표가 전국적인 구호가 되었다. 산업화 시기 정부가 내걸었던 슬로건은 그 시절의 애환과 시대상을 잘 나타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그 당시에 는 재건 과 부흥 이란 개념이 근간이 되었다. 지금처럼 세련된 언어 를 선택해 추상적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간단명료하고 직설 적이었다. 심지어 명령적이며 선동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 1965년 병오년( 丙 午 年 )을 맞아 박정 희 대통령은 신년 메시지를 통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을 모든 국민에게 호소했다. 새해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 80

85 1965년 일하는 해 로 정한 정부는 증산, 수출, 건설에 총 매진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1966년 슬로건은 더 일하는 해 로 확정 는 변함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안정과 성장을 도모하면서 특히 증산을 하고 수출을 증가시키고 국토를 개 발하여 번영을 향한 줄기찬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일하 는 해 로 정한 정부의 결의는 이러한 우리들의 목표를 한마디로 집약 해 놓은 것입니다. 국정 구호 일하는 해 는 전국 행정기관은 물론 기업체와 공장 현장 으로 전파되었다. 동사무소, 공장 굴뚝은 물론 학교에도 내걸렸다. 그해 인천지역은 부평지구수출공단 지정, 시민의 날 제정, 시내 자동 전화 개통, 경인선복선(동인천역~영등포역) 개통, 인천시공보관 준 공, 오림포스호텔 준공 등의 일 을 했다. 이듬해를 맞아 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1966년을 다시 일하는 해 로 정하고 근면과 검소와 저축을 행동강령으로 삼아 증산, 수출, 건설에 총 매진할 것을 국정 지표로 내놓았다. 최종적으로 다시 대 신 더 를 붙여 1966년 슬로건은 더 일하는 해 로 확정되었다. 그 뜻이 너무 강압적이라는 여론이 일었고 무엇보다 물가가 치솟자 사람들이 더 올리는 해 라고 비아냥거리자 그해 8월 경 청와대와 정 부 측 실무진이 모여 근면의 해 로 변경하는 것을 논의한다는 보도 81

86 슬로건 현판에 문맹자 위해 황소를 앞세워 쟁기질하는 농부의 모습도 함께 그려 넣어 1966년 초 인천시청에서 열린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시장 회의 후 기념 사진. 앞 줄 가운데 짙은 안경을 쓴 이가 윤갑로 인천시장이다. 청사(현 중구청) 본관에 그해 국정 슬로건 더 일하는 해 현판이 걸려 있다. 전년도 1965년에는 일하는 해 가 걸려 있었다. 82

87 가 있었다. 그러나 그 해는 그냥 더 일하는 해 로 끝까지 갔다. 사진은 1966년 초 인천시에서 열린 5대 도시(서울, 부산, 대구, 인 천, 광주) 시장회의 후 시 청사(현 중구청) 앞에서 찍은 모습이다. 청 사에 그해 국정 구호 더 일하는 해 현판이 크게 걸려 있다. 문맹자 가 많았기 때문이지 글자 옆에 황소를 앞세워 쟁기질하는 농부의 모 습도 함께 그려 넣었다. 1966년 인천은 슬로건에 걸맞게 많은 일을 했다. 제 47회 동계빙상 체전 인천개최, 인천수출산업공업단지 기공, 인천제철주식회사 공 장기공, 인천시립교향악단 발족, 인천항 제 2도크 축조공사 기공, 자 유공원 석정루 준공, 경인간 직행버스 개통, 인화여자종합고 광성 중 숭덕중 설립 등 인천 발전의 토대가 된 굵직한 일들을 많이 진행 했다. 더 일하는 해 의 과중한 업무 탓이었는가, 윤갑로 시장 후임으로 그 해 7월 12일 부임한 신충선 시장은 과로로 쓰러져 신촌세브란스 병 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9월 5일 숨을 거두었다. 향년 46세였다. 2014년 새로 출발한 민선 6기의 슬로건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 래 이며 시정목표는 새로운 인천 행복한 시민 이다. 특히 재정 건전 화의 원년 을 목표로 삼은 올해 시정철학이 담긴 사자성어는 극란신 흥( 剋 亂 新 興 ) 이다. 어려운 인천시정을 잘 이겨내서 새롭게 일으킨 다 라는 뜻이다. 50년 전처럼 다시 더 일하자 라는 의지를 담고 있 다. 83

88 스무 번째 이야기(2015년 1월 12일) 누구에겐 여전히 필수연료인 19공탄 인천연탄은행이 올 겨울 후원 받은 연탄은 28만여 장이다. 연탄 은행이 해마다 인천지역 저소득층 1천500여 가구에 지원하는 연탄 은 45만여 장에 이른다. 17만여 장이 부족한 상황으로, 장당 500원 짜리 연탄이 없어 추위에 떠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빛바랜 사진 속 장면이 아니라 엄연한 오늘의 이야기다. 연탄은 6 25 전쟁 후 1950년 대 초부터 취사용과 난방용으로 상용 되기 시작한 이래 한동안 국민연료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해왔다. 지 금은 저소득층의 필수연료로 인식되는 연탄이지만 한때 우리나라에 서 한해 생산량이 70억 개에 이를 정도로 연탄 마련은 한 가정은 물 론 한 도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월동대 책 중 하나였다. 연탄은 구멍의 개수에 따라 9공탄, 19공탄, 22공탄 등으로 불리었 다. 지게를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시커멓게 땀범벅이 된 연탄배 달부와 꼰 새끼줄에 연탄을 끼고 집으로 가는 가장의 뒷모습 그리고 84

89 월남으로 파병되는 군인들을 수송하기 위해 무연탄 수송 열차 동원되는 바람에 제때 연탄공장에 석탄 공급하지 못해 동구 송현동에 있던 황해연탄공장의 1960년대 말 모습이다(사진 4장 합성). 이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황해도 피난민 출신들이었다. 한 어린 소녀가 5장의 연탄을 올려놓은 빨래판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다. 아이는 저 멀리 보이는 수도국산 고개 위 집까지 몇 번은 가다 쉬다 하면서 올랐을 것이다. 85

90 부서진 연탄 조각들을 모아 물로 반죽해 틀에 넣고 떡메로 쳐서 다시 연탄으로 만들어 벌이를 하던 아저씨의 모습 등은 1960년대, 70년 대에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당시 인천 곳곳에는 크고 작은 연탄공장이 있었다. 송현동 황해연탄, 창영동 영화연탄, 숭의동 장흥연탄, 신생동 태성연탄, 신흥동 강원 연탄, 북성동 인천연탄, 주안 대동연탄과 제일연탄, 부평 한일연탄과 명신연탄 등이 있었다. 이 공장들은 인천지역의 하루 소비 물량 20 만개 중 절반가량 밖에 생산할 수 없어 시민들은 연탄에 늘 갈급했 다. 1966년도 연탄 파동은 의외의 사건 때문에 일어났다. 당시 월남으 로 파병되는 군인들을 수송하기 위해 36개 편 열차가 각 지역으로 동원됐다. 그 바람에 강원도 탄광지역으로 가야할 무연탄 수송 열차 가 부족해 제때 연탄공장에 석탄 공급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해 겨 울 시민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1974년 터진 오일쇼크는 대체 연료인 연탄의 품귀 현상을 최고조로 만들었다. 정부는 인천을 비롯한 도청 소재지가 있는 12개 도시에 연탄판매기록카드제 를 도입했다. 일종의 배급제를 실시한 것이다.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연탄을 사서 때지 못했다. 시장은 동장들에게 출하증을 배부하고 동장은 지정연 탄판매소에 출하증을 교부했다. 지금의 편의점처럼 동네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연탄판매소는 공 장에 가서 출하증을 제출하고 연탄을 받았다. 일반가정 소비자는 동 장으로부터 가구 단위별 연탄구매카드(일명 백색카드)를 받아 판매 86

91 1974년 오일쇼크 때 정부는 인천을 비롯한 12개 도시에 일종의 배급제인 연탄판매기록카드제 실시 소에서 연탄을 샀다. 가구당 1회 구입량은 50장 이내로 제한했다. 판 매소는 매일 판매량을 동장에게 보고해야만 했다. 시는 공장별로 감독관 2명씩을 상주시켜 생산, 출하, 판매를 통제했 다. 이쯤 되면 연탄공장은 사기업이라기보다 관에서 운영하는 공기 업 성격을 띠었다고 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암거래 가 생기는 법. 출하증을 웃돈 받고 팔기고 하고 카드를 돈으로 거래 하기도 했다. 육지에서 부족하면 섬의 상황은 최악으로 내닫는다. 1980년대 초 인 천 앞바다 섬으로 갈 연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게다가 백령도, 대 청도 등 5개 섬을 운행하는 선박들이 수송 이익이 좋은 건축 자재 등 만 운반하면서 연탄 수송을 기피했다. 1982년 11월 18일 하오 3시 인천항 3부두에서 연탄가공선(750톤) 2척의 취항식이 있었다. 혜민( 惠 民 )호 로 명명한 이 선박은 연탄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 취항식에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가 참석했다. 87

92 스물한 번째 이야기(2015년 1월 19일) 겨울철의 불청객, 화마( 火 魔 ) 불을 가까이 하는 요즘, 전국 각지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화재 가 끊이질 않고 있다. 인천은 1884년 소방조( 消 防 組 ) 가 설치되는 등 개항장답게 다른 지역보다 일찍 신식 소방기구가 들어섰다. 1907년 인천은 화재로 인해 큰 재앙을 당했다. 3월 5일, 지금의 신포 동에서 불이나 무려 400채 가량의 집이 잿더미가 되었고 10월 19일 각국 거류지의 가옥 19채가 불타는 등 그 한 해 동안 7차례의 큰 화 재로 모두 587채가 전소되면서 인천부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1926년 인천의용소방대 및 상비소방대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 난 5개년 동안 발생한 화재 건수는 376회였다. 원인은 아궁이와 연 통 때문에 148건, 풍로 10건, 궐연(담배) 124건, 양등( 洋 燈 ) 14건, 난 로 9건, 어린이 장난 16건, 내다버린 재 9건, 화로 18건, 방화 1건, 목욕탕 9건, 원인 불명 18건 등이었다. 88

93 전화기가 대중화되기 전, 육안으로 발견해서 출동해보겠다는 취지로 수봉산 정상에 화재감시용 망루를 설치 분류에서는 빠졌지만 경인선 화차에서 뿜어진 불똥으로 인해 심심 치 않게 기찻길 옆 초가집이 불타버렸음을 당시 신문은 보도하기도 했다. 인천에서 현대적인 소방 활동이 펼쳐진 것은 미 군정기인 1947년부 터였다. 미국으로부터 기증받은 신식 소방차 15대를 갖춘 인천소방 서는 화마에 본격적으로 맞서 싸웠다. 6 25전쟁 후 10여 년 동안 큰 화재가 없었던 인천은 1964년 한여름 에 예기치 못한 화마로 인해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6월 2일 일요 일 오전 11시 경 답동 주택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고 큰 폭발음 이 연이어 터졌다. 선박 시동용 화약을 밀조하던 무허가공장 우성화 학공업사가 화염에 휩싸였다. 인천소방대는 물론 인천에 주둔한 미 군 소방대까지 총출동해 불길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16 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가운데는 불구경을 하다가 연쇄폭발에 의해 희생된 어린이들이 많았다. 농약을 생산한다며 속이고 공장을 가동해 왔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은 단순한 화재인줄 알고 현장에 가깝게 접근해 있다가 변을 당했다. 1968년 인천소방서는 유류 등 화학성 물질로 발생한 불을 끌 수 있 89

94 화재취약지구로 지정된 중앙시장, 매년 11월 초부터 아예 소방차 한 대를 입구에 배치 는 화학소방차를 도입했고 5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차 1대를 배치했다. 당시 인천에는 5층 이상 건물이 거의 없었다. 1976년 내무부는 기다리는 소방에서 움직이는 소방 이라는 모토로 인천을 비롯해 6대 도시에 고층건물이나 산꼭대기에 망루를 설치했 다. 아직 전화기가 대중화되기 전 시절이라 화재 신고에 앞서 먼저 육안으로 발견해서 서둘러 출동해보겠다는 취지였다. 인천은 수봉 산 정상에 화재감시용 망루를 설치했다. 1970년대 화재 발생의 단골 장소는 시장이었다. 1970년 12월 12일 새벽에 동구 중앙시장에서 불이나 6명이 사망했고 20개의 점포를 불태웠다. 중앙시장은 화재취약 지구로 지정돼 있어 매년 11월 초부 터 아예 소방차 한 대를 입구에 배치해 놓았지만 이불가게, 포목점 등이 밀집돼 있어 불을 초기에 진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77년 2월 27일 밤에도 시장 한복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천소 방차 33대를 비롯해 서울소방차와 미8군 소방차 등 44대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2명이 숨지고 34개 점포를 태웠다. 중앙시장은 1960년 11월 28일에도 불이 난 적이 있었다. 90

95 인천화재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1999년 10월 30일 밤에 일어난 인현동 화재 였다. 이 불로 57명의 어린 영혼이 화마에 희생됐다. 인천 시내 거의 모든 고등학교 소속 학생이 한두 명씩 포함될 정도였 다. 1971년 서울 대연각호텔 165명, 74년 청량리 대왕센터 88명 이 후 건국 이래 3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낸 대형 화재였다. 이 화재 사 건은 미국의 CNN 등 주요 언론에서 크게 다루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내각 총사퇴를 강력하게 주장 할 정도로 이 사건은 육지의 세월호 라고 할 만큼 한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1963년 3월 초 남구 관교동 화재 현장. 당시에는 보기 드문 사다리 소방차가 출동해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소방차 벽면에 원조 마크 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에서 기증한 것으로 추측된다. 91

96 스물두 번째 이야기(2015년 1월 26일) 송림리 얼음판에서 선학국제빙상경기장까지 최근 연세대와 상무(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부가 연고지를 인천으로 옮긴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지난해 인천아시아경기대 회 때 사용되었던 선학핸드볼경기장이 선학국제빙상경기장으로 새 롭게 변신하면서 두 팀이 인천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축구, 야구 등 서양 스포츠를 처음 받아들인 개항장답게 인천은 대표적 동계스 포츠인 스케이트도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보급되었다. 1924년 2월 10일 제물포청년회 주최로 제 1회 전( 全 )인천빙상경기 대회가 송림리(현 동구 송림동)에서 열렸다. 정식 빙상장이라기보다 공터에 물을 채워 얼린 넓은 얼음판이었다. 이것이 인천에서 처음으 로 열린 공식 스케이팅대회로 기록된다. 그런데 시합 당일의 날씨가 너무 따듯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몇 차 례 연기를 하게 된다. 경기를 보러 갔다가 허탕 친 사람들을 위해 주 최 측에서는 시합이 열릴 경우 도심지에서도 볼 수 있는 연화( 煙 火 ) 를 피워 알리겠다고 공지한다. 이 대회가 정상적으로 치러졌는지는 92

97 빙상 경기가 정상적으로 열릴 경우 도심지에서도 볼 수 있는 연기 피워 시민들 발걸음 모아 1960년대 인천공설운동장(현 숭의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빙상대회 모습. 오후가 되면 경기가 끝나길 애타게 기다리던 일반인들이 입장해 빙판이 물반 얼음반이 될 때까지 스케이팅을 즐겼다. 93

98 인천남중학교 정문 건너편 와룡양조장 폐수 웅덩이는 겨울철 훌륭한 동네 빙상장 아쉽게도 이후의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눈에 띄는 것은 이 대회의 위원장 이길용이었다. 그는 후에 베를린올 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일장기를 지우 고 동아일보에 보도한 기자이다. 각종 빙상경기는 교외 지역이었던 송림리에서 주로 열렸지만 일반 인들은 주로 웃터골공설운동장(현 제물포고)과 축현역(옛 동인천청 과물시장) 앞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즐겼다. 인천부에서는 부민에게 겨울철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웃터골운동장 정구 코트 부근에 물을 뿌려 폭 15간, 길이 33간 (약 1천800m2) 규모의 스케이트장을 만들 었다. 1933년 도원동으로 공설운동장이 이전되면서 부터는 이곳이 인천 빙상의 중심이 된다. 매년 겨울철이 되면 물을 채워 얼음판을 만들었 는데 야간에도 개장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같은 라이트 시설이라기 보다 간이 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스케이트를 즐긴 것으로 추측된다 전쟁 후 인천공설운동장이 폐허가 되면서 인천의 동계스포츠 는 한동안 그야말로 빙하기를 맞는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야 인천 공설운동장은 다시 겨울철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었다. 1966년 1월 8 일, 9일 이틀에 걸쳐 인천공설운동장에서 제 47회 전국체전 동계빙 94

99 상대회가 열렸다. 총 144명의 선수가 참가해 20개의 대회신기록을 수립했다. 동계체전 개최를 계기로 인천에서는 매년 빙상인 추모 전국남녀스 피드스케이팅대회 등 각종 대회가 열렸다. 심지어 1968년에는 인천 시가 처음으로 중구, 동구, 남구, 북구의 구제( 區 制 ) 실시를 기념하기 위해 시민위안회와 더불어 전국고교생빙상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인천공설운동장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되었는데 종종 선수들의 연 습이나 경기 이후인 오후 시간에야 문이 열렸다. 조금 타다보면 기온 이 올라가 물 반 얼음 반으로 변해 진창 얼음판에서 달릴 수밖에 없 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운동장 보다는 아예 주안, 부평 등 교외에 있는 논이나 공터의 사설 스케이트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동네 스케이트장은 지금의 인천남중학교 정 문 건너편에 있던 와룡양조장 저수지였다. 고구마에서 주정을 뽑은 검은 색 폐수가 공장 앞 큰 웅덩이로 흘러 나왔는데 겨울이 되면 이 곳은 훌륭한 빙상장이 되었다. 문제는 몇 번 넘어지면 옷에 보랏빛 물이 들었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반 연수택지가 개발되면서 이곳에 국제 규격의 실내아 이스링크가 설립되었다. 1994년 3월 24일 인천 최초의 실내아이스 링크 대동월드가 개관했고 비슷한 시기 근처에 동남스포피아가 문 을 열었다. 이 링크에서 밴쿠버동계올림픽 여자쇼트트랙 은메달리스트 이은별 과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김나영 등이 배출되었다. 아쉽게도 이 두 링크는 운영난 등으로 얼마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95

100 스물세 번째 이야기(2015년 2월 2일) 동인천 남북을 최초로 연결한 굴다리 지하도 얼마 전 부평지하상가는 미국의 세계기록인증업체로부터 단 일면적 세계최다 지하상가 점포 로 인증을 받았다. 기네스북 감이 된 부평지하상가는 1978년 준공됐으며 3만1천692m2 규모에 1천408 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다. 현재 인천지역 내에는 총 15개의 지하도상가가 조성돼 있다. 그 원 조는 동인천역(인현동)에서 중앙시장(송현동) 쪽으로 뚫린 지하도이 다. 시공된 지 50년이 넘은 이 지하도는 경인선 철길 밑을 뚫어 만든 일종의 반( 半 )지하도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지하도 건설은 그야말로 당시 40만 인천시민의 숙망( 宿 望 ) 이었 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놓인 이후 인천 곳곳은 철길로 남북이 갈 라졌다. 최고의 번화가였던 동인천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하도가 생기기 전에는 동인천역 광장에서 지척에 있는 중앙시 장을 가려면 배다리철교나 화평철교 밑을 통과해 약 1km 가까이 돌 96

101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 빈궁한 북쪽 동네와 통하는 것이 못마땅한 역 남쪽 주민들 지하도 설치 반대 아가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1963년 2월 15일 첫 삽을 떠서 1963년 11월 20일 인 천에서 최초로 폭 8m, 길이 70m의 지하도가 개통되었다. 건설비 1 천만원은 중앙시장 송구지역 1천500평을 연고가 있는 상인 400명 에게 매각해 재원을 확보했다. 개통 초기에는 골조 천장에 백열등이 달렸고 바닥은 거친 시멘트 길 이었다. 처음엔 상가도 들어서지 않아 말 그대로 지하도로였다. 지금 은 동인천 구( 舊 ) 지하상가 로 명명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흔히 굴다 리 라고 불렸다. 지하도 필요성에 대한 제기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인천시에서 발행 한 인천공보 1955년 8월 29일 자를 보면 인천시의회 내무위원회 는 중앙시장에서 동인천역(축현역)을 직접 통할 수 있는 지하도 설치 는 대인천시 발전을 위해서 타당한 계획으로서 조속한 시일 내에 지 하도를 관통할 수 있게 촉진한다. 라고 결의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 결의가 인현동에 거주하는 주민 장인식 씨 외 99명은 동 지하도 설치를 적극 반대하니 선처해 달라 는 청원서를 인천시의장에 제출한 것에 대한 의결이라는 점이다. 동인천역 남쪽 인현동에 사는 주민들은 왜 이 지하도 설치를 반대했 97

혼자서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되게 한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는 했어? 치료나 하세요. 견디는 건 내가 하면 되니까. 너희들은 엄마라도 있지만 난 남편을 잃어 날 지탱할 수 없다고! 왜 우린하고 싶은데 못하는 게 많아? 여보, 내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줘야 해요. 사랑해요. 아빠, 아빠의 사랑하는 첫째 딸 상 받았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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