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8 남해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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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187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제1장 문화재 제2장 관광 제3장 문학 제4장 미술 제5장 음악 제6장 문화예술단체 제7장 언론 출판

2 1188 남해군지

3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189 제1장 문화재 1. 개요 지역 문화유산이 곧 국가 문화유산임을 인식하고 우리 것을 먼저 알고 잘 가꾸어 계승 발 전시켜야 한다. 역사의 중요성은 역사를 통해 지혜와 정신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미래학이며, 한민족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또한 조상들의 위대한 업적과 전술, 전략이 있기에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재라는 자부심과 국제적 존재 가치를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문화재를 감상하면서 단순하게 조상들의 유물로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문 화재 그 자체 속에는 무궁한 뜻과 혼 그리고 삶의 이상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 다. 우리들은 문화재를 가까이 하면서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고 있지만, 그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함을 망각한 채 단지 외형만 보고 자기 나름대로 빈약하게 평가해 버리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문화재를 감상하면서 그 당시의 역사 문화와 찬란한 예술성이 곁들어 있는 창작물에 대한 진정한 깊은 뜻과 문화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하나의 조각품에서 느껴지는 창작자의 숨 결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를 감상할 때는 그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유물이 지니는 가치 를 더욱 상세하게 알 수 있을 것임으로 단순히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 유물의 가치는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고 가치를 잊어버리고 만다. 문화재는 조상의 삶의 지혜가 형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유물들에 의해 우리는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고 또한 차츰 변천해 온 역사도 읽을 수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지역 의 특수성과 풍습을 알 수 있다.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지역에 따라 삶 의 형태가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상들의 창의력으로 창작한 예술성이 높은 창 작물은 요즘에도 흉내 내지 못하는 고도의 기술을 지니고 있고 국가와 백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행위 뿐 아니라 가족과 개인을 위한 주술적인 기단과 도구들도 삶의 한 부분이었음을

4 1190 남해군지 알 수 있다. 문화재는 역사를 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물적 증거가 되기 때문에 훼손, 멸실, 방치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러한 행위가 발생한다면 역사는 묻혀 버리 거나 차츰 왜곡되어 후대에 이르면 그 비밀은 밝혀지지 않은 채 구전으로 변하여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문화재는 미래 지향적이라고 한다. 우리는 문화재와 역사를 통해서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와 정신을 배우게 되고 우리 조상 들이 이루어 낸 창조물에 대하여 자존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도 조상들이 이루어낸 것과 같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문 화재가 전 인류에게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을 볼 때, 그 위대한 업적에 대하 여 자연히 고개가 숙여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몸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재가 우 리의 문화재라는 것에 자부심과 국제적 존재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 때론 역사가 왜곡되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역사적으로 증빙할 수 있는 문화재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고 있지만, 대응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들이다. 그 래서 왜곡되는 역사를 찾기 위해서는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 명분을 찾고 논리적으로 검토 하고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가 중요하다는 사실만 알고 있지 그 중요성을 상징하는 문화재에 대한 보존 방법론에 대해선 신중하지 못하다는 점 을 스스로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첫째, 지역 문화재가 곧 국가 문화재라는 인식 아래 가까이 있는 문화재를 훼손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서도 안 되며 되도록이면 원형 을 보존해야 한다. 문화재는 그 자리를 떠나면 가치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문화재가 이미 훼손이나 소실되어 복원을 필요로 할 경우 철저한 고증을 거쳐 복원 되어야 할 것이다. 한 번 복원되면, 이후로는 복원된 것이 사실인 양 후대에 그대로 전해지 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왜곡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지역의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며 향 토사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향토사학자들은 항상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 뿐 아니라 문화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연구가들이기 때문에 비록 학술적 인 깊이는 약할지라도 의견을 존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넷째, 유 무형문화재 중 지정 비지정 문화재 보존은 행정 뿐 아니라 민간 연구 단체들 의 활동과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행정과 민간단체의 교류가 원만하게 형성되어 문화재 보 존에 심혈을 기울인다면, 문화재는 살아 숨 쉴 것이고 그동안 미흡한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5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191 새롭게 조명됨은 물론 문화재가 곧 관광사업의 소득 자원이 될 것이라 본다. 남해는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고장이며, 특히 문무( 文 武 )가 겸전하는 고장으로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일 뿐 아니라 문학도 스며있다. 호국의 고장이라 일컬 어지는 것은 고려 팔만대장경의 판각지, 삼별초 주둔지, 해도원수 정지장군의 관음포대첩,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격전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으로는 남해가 유배지였기에 조정 대신들이 당쟁으로 남해로 유배 와서 향사인들과 교유관계를 가 지면서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 외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비옥한 토지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 살 기 좋은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를 정확하고 세밀하 게 알아서 자부심과 자존심을 살려야 할 것이다. 문화재란 인위적,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유산으로 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이라고 하며, 유형 문화재는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 는 고고자료를 말한다. 무형 문화재는 연극, 음악,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 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이다. 기념물은 사지, 고분, 패총, 성지, 궁지, 용지, 유물 포함층 등의 사적지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 과 경승지로서 예술적, 경관적 가치가 큰 것 그리고 동물(서식지 번식지 도래지 포함), 식 물(자생지 포함), 광물, 동굴, 지질, 생물학적 생성물 및 특별한 자연현상으로서 역사적, 경 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민속자료는 의식주, 생업, 신앙, 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 관습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 기 구, 가옥 등으로 국민 생활의 추이를 이해함에 불가결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따른 지정 문화재는 문화재청장이 지정한 문화재(보물 국보 중요무형문화재 사 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보호물 또는 보호구역)이고, 시 도지정문화재는 특별시장, 광역시장, 도지사가 지정한 문화재와 문화재자료 역시 시 도지사가 지정한다. 보호구역은 고정되어 있는 유형물이나 일정한 지역이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 당해 지정문 화재의 점유문화재를 제외한 지역으로써 당해 지정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된 구역을 말하고, 문화재의 보존, 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다.

6 1192 남해군지 2. 문화재 목록 1) 국가지정문화재 (1)보물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1446 남해용문사 쾌불탱 전체 cm 남해용문사 남해 이동 용소 용문사 (2) 사적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관음포이충무공전몰 남해 고현 차면 ,858 유허 남해충렬사 산125외55필 ( ) 남해충렬사 남해 설천 노량 233 남해충렬사 11, 외40필 (3) 명승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남해가천마을 남해 남면 홍현 , 남해군 다랑이논 777외 한려해상국 39 남해금산 m2 남해 상주 립공원 (4) 천연기념물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29 미조리의 상록수림 3,437 남해군 남해 미조 미조 산121외3필 남해군 150 물건방조어부림 25,091 남해 삼동 물건 39-3번지 남해 산닥나무 자생 남해 고현 대곡 9,917 화방사 지 산99-1 화방사 276 남해 고현면의 느티 1주 남해 고현 갈화 남해군 나무 외3필 남해군 299 남해 창선면의 왕후 1주 남해 창선 대벽 박나무 외5필

7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 도지정문화재 (1) 유형문화재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27 장량상동정마애비 1기 남해군 73 다정리삼층석탑 1기 74 보리암전삼층석탑 1기 보리암 85 용문사 대웅전 1동 용문사 138 용문사 석불 1구 172 촌은집 책판 52매 222 남해향교 2,706 남해향교 425 남해용문사 부도군 9기 용문사 남해 남해 선소 196-9외5필 남해군 남해 이동 다정 587-1외1필 남해 상주 상주 2065 보리암 남해 이동 용소 868 용문사 남해 이동 용소 남해 이동 용소 남해 남해 북변 586외8필 남해향교 남해 이동 용소 868 3/ 용문사 426 남해용문사 목조지장 시왕상 25구 427 남해용문사 목조 1기 428 남해용문사 목조 사 천왕상 4구 429 남해용문사건륭이십 오년명운판 1점 446 남해용문사 목조아미 타 삼존불좌상 3구 (2) 무형문화재 지정번 보유자 명칭 생년월일 주 소 지정일 관리자 호 성명 남해군 남면 선구리 27 남해선구줄끗기 김찬중 남해선구줄끗기보존회

8 1194 남해군지 (3) 기념물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6 남해상주리석각 1기 국유 19 대국산성 42, 임진성 16, 남해다정리고인돌 11기 남해군 87 남해금산봉수대 1기 -100 국유 (산림청) 154 남해장성 72,580 남해군 155 전백이정의 묘 199 남해당항리느티나무 200 남해죽전비자나무 247 남해설흘산봉수대 248 남해대방산봉수대 249 남해금오산성 1기 주 주 기 기 -1,500 1기 32,429 수원백씨 문중 남해군 최금철 가천마을 노장진 장병림외 남해 상주 양아 산4-3 남해 설천 진목 산184외15필 남해 남 상가 산291외7필 남해 이동 다정 91-5외4필 남해 상주 상주 남해 이동 신전 115외12필 남해 남 평산 54-1외2필 남해 남 당항 외3필 남해 남 당항 1997외4필 남해 남 홍현 산237-1 남해 창선 옥천 산75 남해 창선 당항 산 남해군 수원백씨 문중 남해군 최금철 남해군 (4) 민속자료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13 남해가천암수바위 2기 가천마을 남해 남 홍현 남해군 (5)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남해 서 중현 운곡사보 41 운곡사 1,577 운곡사 외1필 존회

9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195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42 정지석탑 1기 남해군 43 당항신흥사삼층석탑 1기 44 남면향약계 16권 남면향약계 150 용문사천왕각 1동 용문사 151 용문사명부전 1동 152 화방사채진루 1동 화방사 237 난곡사 6동 난곡사 266 남해척화비 1기 남해군 남해 고현 대사 768외6필 남해군 남해 남 당항 872-1외4필 남해 남 당항 남면향약 계보존회 남해 이동 용소 용문사 남해 이동 용소 868 남해 고현 대곡 1448외2필 화방사 남해 이동 난음 난곡사 남해 설천 노량 남해군 277 남해금산영응기적비 전주이씨 남해 상주 상주 전주이씨 2기 대한중흥공덕축성비 문중 산257-3 문중 333 남해망운암석조보살좌 남해 남해 아산 1기 망운암 상 망운암 334 남해망운암 건륭을사 남해 남해 아산 1점 명동종 남해용문사건양2년영 남해 이동 용소 1폭 용문사 산회상탱 용문사 351 남해용문사소장문헌 2건5책 352 남해용문사삼장보살탱 1폭 353 남해용문사건양2년신 중탱 1폭 377 남해용문사 동종 1점 남해용문사 청동반자 1점 394 남해용문사 봉서루 1동 남해용문사 아미타여 래 오존탱 1점 남해용문사 동치3년 신중탱 1점 408 남해용문사 현왕탱 1점

10 1196 남해군지 지정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409 남해용문사 건양2년 독성탱 1점 410 남해용문사 독성탱 1점 411 남해용문사 산신탱 1점 412 남해용문사 영정일괄 1. 용문사 영해당영정 2. 용문사 백월당영정 3. 용문사 삼화당영정 6점 4. 용문사 파화당영정 5. 용문사 칠화당영정 6. 용문사 경암당영정 416 남해운대암 제석신중 남해 창선 옥천 1점 운대암 정 운대암 417 남해운대암 지장시왕 탱 1점 418 남해운대암 아미타후 불탱 1점 (6) 등록문화재 등록번호 문화재명 소재지 수량 규모 소유자 등록일자 남해 덕신리 남해 설천 밀양박씨 제234호 4동(1층) 하천재 덕신 958 하천공 종중 3) 군보호문화재 지정 번호 명칭 수량(m2) 소유자 소재지 지정일 관리자 1 무민사 정면3간,측면2간 무민사 2 자암김구비 3 봉천사 묘정비 높이 2m 폭 90cm 두께30cm 높이2.6m 폭 80cm 두께30cm 남해군 남해군 남해 미조 미조 남해 설천 노량 376 남해 남해읍 북변 430 무민사보존회 남해군 남해군

11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영모문 팔작와가 김재동 5 국사봉 사당 정면 2.7m 측면 2.5m 적량이장 남해 남해읍 서변 144 남해 창선 적량 산4-1 김재동 마을이장 4) 비지정문화재 구분 성지 봉수대 패총 사찰 사우 금석문 도요지 자연 지리 현판 효행 고인돌 민속 동식물 명 칭 관당성, 성산성, 성산토성, 노량진성, 비란성, 남해읍성, 선소왜성, 옥기산성, 평산진성, 고진 성, 곡포보성, 성고개성, 난포현성, 상주포성, 미조항고진성, 적량성, 구도성 망운산봉수대, 원산봉수대, 성현봉수대, 대국산봉수대, 망기산봉수대, 미조 망운산봉수대, 도마리 패총 용문사, 화방사, 보리암, 망운암, 운대암, 법흥사 녹동사, 영벽정, 금산 문장암, 후송 유의양 기념비, 남산 송덕시혜비군, 3 1독립운동기념비, 난음 관방성비, 창선 감목관비군, 이어 불망비군, 망운산 미공군전공비, 이동 축마비, 미조 무민사 첨사비군, 창선 적량 김후지도몰세불망비 대곡 자기요지, 현촌 자기요지, 이어 청자요지, 정포 불무골 자기요지, 고현 달실 옹기요지, 물뫼 도기요지, 큰독개 도기요지, 서대 자기산포지, 신흥 자기산포지, 독망골 청자요지, 부윤 자기산포지, 해창 자기산포지 세존도, 금산 쌍홍문, 금산 상사암, 금산 송악, 망운산, 대장경추정지대사, 관음포, 서호 장군지, 동정 둔전 제청해관각자 심천리, 평현리, 봉성리, 우지막골, 오리, 서호리, 관당리, 당항리(창선), 서대리 동정선돌, 미조용목, 화전농악, 화계 배선대, 덕신줄다리기, 창선상여놀이, 오곡 입택굿 읍놀 이, 석교 줄싸움, 심천 선돌, 무림 밥무덤, 석평 당산, 금평 벅수, 무민사 석인상, 초전 장승, 우물 막돌탑, 정포 숲 당산, 동정 막돌탑, 관당 칠성당지, 보천 목 상여, 광천 당산, 동대 당목, 구도 당집 백로서식지, 덕신역원, 창선목장, 난음 비자당, 화계 보호수, 난음 보호수, 당항 보호수, 상가 보호수, 물건 보호수1, 물건 보호수2, 서변 보호수, 양아 보호수1, 양아보호수2, 양아 보호수 3, 동천 보호수, 오곡 보호수, 선소 보호수, 봉화 보호수, 선구 보호수, 서상 보호수, 상죽 보 호수, 당항 보호수, 평리 보호수, 양아 보호수, 용소 보호수, 봉화 보호수, 영지 보호수, 노구 보호수, 도마 보호수, 진목 보호수, 문의 보호수, 지족 보호수, 중리 보호수, 남상 보호수, 아 산 보호수, 평산 보호수,

12 1198 남해군지 3. 국가지정문화재 1) 보물 (1) 남해 용문사 쾌불탱 지정번호 및 일자 : 보물 제1446호, 소 재 지 :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868번지 규 모 : 분야-불화, 재질-미본채색, 전체 cm 시대 및 관리자 : 조선시대 본존불상 좌우에 협시보살상만을 배치시켜 삼존도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중앙 의 본존불상을 위시하여 좌측에는 정면을 향한 채 똑바로 서서 여의( 如 意 )를 들고 있는 보 살상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좌협시보살상과 동일한 자세로 서서 연꽃가지를 받쳐 든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본존불상은 어깨가 훤히 드러내고 오른손을 길게 내려 뜨려 왼손을 가슴 앞까지 들어 올린 채 두 발을 좌. 우로 벌려 연화좌를 딛고 서 있는 입불상 으로 동글 넓적해진 형태의 눈, 코, 입이 작게 묘사되고 미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직된 표정 의 얼굴은 수평으로 들어 올려 각이 진 어깨와 더불어 18세기 후반 이후 불화에서 주로 나타 나는 전형적인 양식 특징이다. 좌협시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여의를 들고 있는 점으로 미루 어 보아 석가모니불의 좌협시인 문수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머리 크기에 비하여 어깨가 좁고 작은 발이 위축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팔에 걸쳐 흘러내린 길고 굵은 천의 자락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는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우협시보살 또한 좌협시보살상과 표현이 유사하다. 그 림 화단부에는 7 개의 화기가 있다. 이 괘불탱은 인물의 형태 및 신체 비례 등에 있어 18세 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조화롭고 세련된 표기법 을 보여주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있다. 2) 사적 (1)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 지정번호 및 일자 : 사적 제232호, 소 재 지 :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산125번지 규 모 : 이충무공유허비( 높이 187cm, 폭 75.5cm, 두께 22cm) 부 속 물 : 이충무공 유허비와 비각, 이충무공 전적비, 첨망대(누각), 이충무공 유언비

13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199 시대 및 관리자 : 조선시대 남해군 연 혁 : 삼도수군통제사 충무공 이순신장군 노량해전 중 관음포에서 순국 충무공 이순신장군 유허비와 비각 건립 1814~1903. 유허관리(김용해, 김계언, 김여홍, 김여복, 김여백, 깁정준, 김중순) 전적비 및 공사기념비 건립(군민성금으로 유허와 참배로 조성) 유허비 모각비 세움 사적 제232호로 지정 유허비 국역 청동판 세움 성웅 충무공 이순신 유허 도로변 석비 세움(증 남해라이온스클럽) 첨망대 준공 충무공 이순신 유언비 건립 이순신영상관 기공 이순신영상관 준공 핏물로 붉게 물들인 역사의 현장 관음포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호국 바다로 불린다.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戰 方 急 愼 勿 言 我 死 ) 는 유언을 남기고 순국 하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지요 순국지다. 관음포는 일명 이락포라 불리어지고 있다. 이곳 유허는 주변이 수려하고 풍요를 누렸던 유 서 깊은 고장으로 왜구의 침입시마다 왜선과 왜구를 물리친 곳이며 호국충절의 얼이 서린 곳 이기도 하다. 관음포를 내려다보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어느 곳과 다름이 없건만, 가슴 속에 묻혀 있는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지난 날 국난을 상기하면 잔잔한 바닷물이 용솟음치며 붉게 물들 여진다. 고려 팔만대장경 판각, 삼별초, 정지장군의 관음포대첩, 이순신장군 노량해전 등의 역사로 인하여 호국의 정신이 깃든 곳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임진년에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야 망과 1597년 정유년에 한반도 이남을 일본 영토로 만들려는 야심으로 조선을 침략한 7년 전 쟁 중 노량해전은 최후 최대 전투이다. 1598년 8월 18일에 7년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 데요시가 병사하면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고 조선을 침략한 병사는 모두 철군하라! 는 유언에 따라 남해안에 주둔하였던 일본 군사와 함대는 11월 10일에 철수하기로 약속하고 순 천 고니시 유키나가군( 軍 ), 남해 소오 요시토시군( 軍 ), 사천 시마즈 요시히로군( 軍 )은 창선도 에 집결하기로 하였다. 이것을 알아차린 조명 함대는 11월 9일 연합함대를 편성하여 나로도 에서 광양만으로 함대를 이동하게 되었고 일본 함대는 11월 10일에 약속대로 창선도에 집결 하였으나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군( 軍 )군만 아군함대에 의해 퇴로가 차단되었다. 11월 14 일 순천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줄 것을 호소하면서

14 1200 남해군지 간청하였으나 오로지 구국일념으로 조명연합 함대는 왜군 전선의 퇴로를 차단하니 순천 고 니시 유키나가는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11월 18일 6시경 창선도에 집 결한 일본군과 거제도와 부산에 집결한 일본군은 500여 척으로 전선을 재편성하여 순천 고 니시 유키나가를 구하기 위해 노량해협으로 진격하였다. 11월 18일 밤 12시에 이충무공은 원사기 밑에서 청수로 손을 씻고 백단향을 피운 다음 축 천 기도하기를 이 나라를 위해 적을 섬멸할 수 있다 하오면 죽어도 또한 한이 없겠나이 다 하였다. 이때에 큰 별 하나가 하늘에서 바다 위로 떨어지니 도열하고 있던 군사와 장수 들은 이상한 감회에 사로 잡혔다. 11월 19일 밤 2시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일본 함선 200여 척이 격파 당하게 되자 일본 군은 전투에 패( 敗 )하였음을 자인하였고 50여 척은 도주를 하였지만 나머지는 관음포구에 갇혀 차단되면서 최후의 항전을 하였으나 이미 승부가 결정되어 있었다. 오전 10시경에 이 충무공은 독전 중 적의 유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퇴로가 차단 된 일본군은 함대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하였고 순천 고니시 유키나가군( 軍 ) 도 여수 앞 바다를 통하여 도주하였다. 관음포 앞 바다에서의 승리로 전쟁은 종식되었고 이 순신 장군의 영구( 靈 柩 )가 처음으로 육지에 오른 곳이 이곳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이다. 공이 순국한지 234년이 지난 순조 32년(1832)에 공의 8세손 이항권이 통제사로 부임하여 왕명으로 단( 壇 )을 모아 제사하였으며, 비와 비각을 세워 추모하고 이락사라 명하였다. 비명( 碑 名 )은 유명수군도독조선국삼도통제사증의정부영의정시충무이공순신유허비( 有 明 水 軍 都 督 朝 鮮 國 三 道 統 制 使 贈 議 政 府 領 義 政 諡 忠 武 李 公 舜 臣 遺 墟 碑 ) 라 새겨져 있다. 예조판 서 겸 홍문관 대제학 홍석주( 洪 奭 周 )가 찬( 撰 )하고 형조판서 겸 예문관 제학 이익회( 李 翊 會 ) 가 서( 書 )하였다. 1965년 4월 13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락사와 대성운해( 大 星 隕 海.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 다)를 친필로 써 현판하였다. 1950년에 이충무공 전적 한글비를 세웠으며, 1991년 2월 16 일에 유허 비각이 있는 곳에서 500m정도 능선을 따라 바다 쪽을 향하면, 임진왜란 당시 치 열했던 광양 바다와 노량해협 그리고 관음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첨망대( 瞻 望 臺 )를 2층 누각으로 건립하였다. 그리고 잔디광장에는 이충무공께서 유언한 전방급신물언아사 ( 戰 方 急 愼 勿 言 我 死 ) 라는 글씨로 높이 8m의 자연석 유언비가 1998년 12월 16일(음 11월 19일)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 추모식 때 제막 되었다. 글씨는 해군 대장 유삼남 참모총장의 휘호이다. 이락사의 소유는 사단법인 남해충렬사이며, 남해군에서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다. 유허 경내에 입석되어 있는 비문과 시설물 그리고 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15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01 유명수군도독조선국삼도통제사증의정부영의정시충무이공순신비 바로 남해현 동쪽 2십리쯤에 바다 물결이 넘실거리는 군용선이 드나드는 바 그곳을 일컬어 관음포라 하 니 옛 삼도통제사 증 의정부 영의정 충무 이공이 순국하신 곳이다. 공이 수군을 지휘하여 바다에서 왜구를 대파함으로서 해상에서는 왜구를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 으로부터 230여 년 전 공은 적의 비환( 飛 丸 )에 맞아 순국했던 것이다. 아! 슬프다. 임진란은 실로 우리 동국의 양구( 陽 九. 재앙)라 말할 정도로 큰 재액이었다. 그러나 이때에 충성스럽고 용기 있는 공과 같은 이가 좌우에 있어 선조 임금님을 도와 사직을 지키고 국가의 중흥을 이루었다. 그때 이미 이종( 彝 鍾. 옛날 공신의 이름을 새겨 보관하여 오래 전한 일종의 제기)에도 새겨지고 사록에 도 등재되어 환하게 빛나도다. 그 빛이 있음이여! 지대한 공훈은 천지가 넓다한들 어찌 이를 모두 채우 겠는가? 그 충성스런 명성은 명나라 이웃 오랑캐나라에까지 떨쳐 마치 우주를 비치는 일월성신( 日 月 星 辰 )처럼 적적하였다. 이와 같이 신사( 紳 士 ) 및 부녀자 심지어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서로 한 번도 의논하 지 않고 충무공을 으뜸으로 숭앙하는 것은 대개 공이 노약하고 쓸모없는 군사로 백만의 용기 있는 적군 을 격퇴하고 일방(바다)을 막아서 홀연히 국가의 간성( 干 城 )이 됨은 장수양( 張 睢 陽. 장순의 별칭. 당나라 사람. 수양성에서 안록산을 막음)과 같고 거센 물결을 막고 종횡무진 신출귀몰한 전술을 써서 적을 섬멸 하여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은 주공 근( 瑾. 삼국시대 오나라 명장)과 같고 소수의 군사로써 중적( 衆 敵 )을 상대하여 승리를 거둠에 앞에는 강한 적군이 없고 위엄 있는 명성은 원근에서 추모하였으니 악무목( 岳 武 穆. 남송의 충신. 호 忠 武 )과 같고 천하를 재조 위태( 危 殆 )한 것을 돌려 태연하게 하고 한 몸으로서 종 국의 경중을 책임짐은 곽분양( 郭 汾 陽. 당의 명장), 이서평( 李 西 平. 당의 명장)과 같고 정성을 다하고 공 정을 앞세워 마음과 힘을 바쳐 나라에 헌신하니 덕과 위엄이 같이 나타나 어리석은 백성들까지도 뜻을 결단하고 생사를 겁내지 않음은 오직 제갈무후( 諸 葛 無 侯. 호 孔 明 )가 이러함과 같다. 그러나 제갈무후가 죽음은 병사( 病 死 )한데 반하여 공은 적과 싸우다가 순국하셨다. 공명이 죽은 후 얼마 안 가서 한나라가 위태로워졌거니와 공은 비록 죽었어도 지우금일( 至 于 今 日 )에 사목( 社 穆 )을 봉안케 하였다. 이에 공은 무 슨 유한이 있겠는가? 공의 공적과 충성은 위로는 주상께서 포상하시고 백성들로부터도 추앙을 받아 아 름다운 비취보다 빛났으며 태상( 太 常. 奉 尙 寺 의 별칭. 시호를 맡아보던 관청)에 기록되어 있고 맹부( 盟 府. 誓 約 의 소류를 넣어두는 창고)에 등재되어 있으며 그 충절과 공열은 학사 대부들에 의해서 시가로 혹은 문장으로 찬양되어 더욱 길이 빛났다. 이는 진실로 췌언( 贅 言 )이 불요( 不 要 )하는 것이다. 오직 공은 해상에서 이룩한 공이 크고 많아 그 처음 무공을 펼침은 호남수역( 湖 南 水 域 )에서 녹유( 綠 由 )함인즉 좌수영에 대첩비가 있고 흉측한 왜군의 전열 을 막아 호기지방을 안정시킴은 벽파 해전에 있음인즉 여기에는 명량대첩비가 있고 수아건곤( 樹 牙 建 閫 )하여 앉아서 청안( 淸 晏 )함을 얻었음은 삼도통제영에 있음인 즉 고성에는 충렬사비가 있고 순천의 충 렬사와 남해의 충렬사와 고금도의 탄보묘( 誕 報 廟 )에 모두 현액이 있어서 무궁토록 전하거늘 홀로 이 땅 은 정성스런 인( 仁 )을 이루는 성역이라 하겠다. 돌이켜 보건대 아직 이 공훈이 기록된 문서가 없더니 우 리 성상( 聖 上. 순조) 32년 임진년에 선조임금께서 도회( 圖 恢 )하신 네 번째 환력( 還 曆 )을 맞는 때라 주상 께서 임란 당시의 그 해를 회상하시고 함께 충신들의 공훈의 크고 작음의 차이에 따라 신위를 모시는 자리에서 공의 영위( 靈 位 )를 수위( 首 位 )로 모신 바 있다. 이즈음 공의 팔세손 항권( 恒 權 )이 마침 공이 옛날 통제하던 삼도수군통제사로 있던지라 왕명을 받들어 공이 순국한 이 자리에 사당을 지어 영( 靈 )을 모시고 여러 지방 인사와 의논하니 많은 인근 사람들이 모

16 1202 남해군지 여들어 나무를 치고 돌을 깎아 그 터를 표하고 글을 새기니 이때 사람들은 항권 통제사가 능히 그 세대 를 이었다 하더라. 그 명( 銘 )에 이르기를 오직 남해에 태양을 이고 있으니 큰 물결이 망양( 茫 洋 )하도다. 바람이 자고 파도가 없으니 이무기와 악어가 깊이 그 몸을 감추었도다. 세상이 평화로우니 아녀자들의 얼굴도 화락( 和 樂 )하고 황소도 부지런히 밭을 갈며 양잠( 養 蠶 )하고 길삼하니 이제 전쟁은 끝이 나고 평 안하도다. 누구의 주심인가. 공의 충성을 생각하도다. 무용이 뛰어나신 공이시어 실로 동사( 東 士 )를 안정시켰도다. 큰 거북과 건장한 매도 크고 분발하여 기상을 펴도다. 명량에서 갑옷 씻고 옥포에서 싸움을 끝내었다. 많은 고기잡이배가 만선으로 돌아오매 오리 떼는 물가에서 노는구나. 난여( 鸞 輿. 임금이 타는 수레)가 서서히 돌아오다 악기를 제 틀에 걸었으니 사방이 고요하도다. 공이 남긴 공훈은 만세에 빛날 것이나 공은 먼저 떠났도다. 아득한 바다 물결처럼 많은 사람들 눈시울에는 슬픔이 가득하니 공의 영령은 길이 살아남으리라. 하늘에 북두칠성이 있어 재앙을 물리치며 복을 낳으시고 적은 두 번 다시 바다를 침범할 수 없음이 확 연하니 백성들은 영원히 평안하리라. 공의 높고 어진 공열은 영구히 이어져 오직 돌처럼 굳은 절개일지 어라. 자헌대부예조판서겸지경연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재학지성균관사규장각제학 홍석주( 洪 奭 周 ) 짓고 자 헌대부형조판서겸지경연춘추관사예문관제학 이익회( 李 翊 會 ) 쓰다. 숭정기원후사년임진( 崇 禎 紀 元 後 四 壬 辰. 1832년) 월 일 세우다 有 明 水 軍 都 督 朝 鮮 國 三 道 統 制 使 贈 議 政 府 領 議 政 諡 忠 武 李 公 舜 臣 遺 墟 碑 直 南 海 縣 東 二 十 里 溟 漲 之 所 環 蒙 衝 之 所 出 入 名 其 地 曰 觀 音 浦 者 故 三 道 統 制 使 贈 議 政 府 領 議 政 忠 武 李 公 殉 國 之 所 也 公 以 舟 師 大 破 倭 寇 於 海 中 海 上 無 倭 警 者 今 二 百 三 十 有 餘 季 而 公 則 爲 飛 丸 所 中 以 歿 嗚 呼 壬 辰 之 難 我 東 之 陽 九 也 時 則 有 忠 藎 勇 知 之 士 若 而 人 左 右 我 宣 廟 以 克 襄 中 興 烈 旣 威 銘 彛 鐘 被 竹 素 火 卓 乎 其 有 燿 矣 至 勳 塞 天 地 聲 震 華 夷 燀 爀 磊 落 軒 宇 宙 而 揭 日 星 者 薦 紳 婦 孺 不 謀 一 辭 以 忠 武 公 爲 稱 首 蓋 公 以 偏 陬 積 弱 之 旅 當 百 萬 賈 勇 之 敵 蔽 遮 一 方 屹 然 爲 于 城 如 張 睢 陽 橫 波 絶 流 出 奇 制 勝 使 兇 渠 摧 敗 煨 燼 而 無 遺 如 周 公 瑾 用 少 擊 衆 前 無 勍 敵 威 聲 所 讋 遠 邇 望 風 如 岳 武 穆 再 造 區 宇 斡 危 奠 泰 以 一 身 以 宗 國 輕 重 如 敦 汾 陽 李 西 平 若 其 開 誠 布 公 鞠 躬 盡 瘁 德 威 交 彰 甿 卒 咸 懷 而 卒 之 以 志 決 身 殲 則 惟 諸 葛 忠 武 候 是 已 武 候 之 歿 以 疾 病 而 公 之 歿 也 以 戰 然 武 候 之 歿 漢 室 遂 危 公 則 雖 歿 矣 而 遺 烈 之 所 覃 被 式 至 今 社 稷 是 賴 公 於 是 亦 可 以 無 憾 矣 公 之 功 之 忠 寵 于 綸 言 昭 于 琬 琰 紀 在 太 常 載 在 盟 府 煥 燁 乎 學 士 大 夫 之 歌 誦 敍 述 固 無 容 復 贅 也 惟 公 績 寔 多 在 海 上 其 肇 暢 武 功 由 湖 南 水 閫 則 有 左 水 營 大 捷 碑 式 遏 兇 鋒 永 靖 湖 畿 在 碧 波 之 戰 則 有 嗚 梁 大 捷 碑 樹 牙 建 閫 坐 收 淸 晏 在 三 道 統 制 營 則 有 固 城 忠 烈 祠 碑 至 順 天 之 忠 愍 祠 南 海 之 忠 烈 祠 古 令 島 之 誕 報 廟 咸 有 顯 刻 以 詔 無 極 獨 玆 爲 立 慬 成 仁 之 所 而 顧 無 文 以 徵 其 實 我 聖 上 三 十 二 年 壬 辰 宣 廟 圖 恢 之 四 周 甲 也 惟 聖 上 撫 歲 興 懷 咸 秩 忠 勞 功 宗 之 祀 首 及 于 公 于 時 公 之 八 世 孫 恒 權 實 踐 公 舊 治 統 制 三 道 水 軍 承 王 命 侑 公 于 是 地 設 壇 以 降 靈 退 諏 于 衆 伐 大 石 以 表 其 地 而 章 之 以 銘 辭 人 於 是 謂 統 制 克 世 矣 其 銘 日 維 南 戴 日 巨 渤 茫 洋 恬 風 無 浪 蛟 鰐 深 藏 閭 井 如 櫛 婦 子 熙 熙 犁 牛 箔 蠶 不 識 鼓 旗 亡 誰 之 賜 懷 我 忠 武 桓 桓 忠 武 實 奠 東 土 穹 龜 健 鶻 大 奮 厥 庸 嗚 梁 洗 甲 玉 浦 休 鋒 盈 盈 萬 艘 彼 嗚 渚 鑾 輿 徐 返 鐘 石 在 虡 公 勳 萬 世 公 則 先 逝 洪 波 渺 瀰 萬 眥 同 涕 公 靈 不 味 上 有 星 斗 驅 祲 産 祉 永 綏 黎 首 截 被 海 浦 公 仁 攸 成 維 烈 載 永 維 石 之 貞 資 憲 大 夫 禮 曺 判 書 兼 知 經 筵 事 弘 文 舘 大 提 學 藝 文 館 大 提 學 知 成 均 舘 事 奎 章 閣 提 學 洪 奭 周 撰 資 憲 大 夫 刑 曺 判 書 兼 知 經 筵 春 秋 館 事 藝 文 舘 提 學 李 翊 會 書

17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03 崇 禎 紀 元 後 四 壬 辰 月 日 立 이충무공전적비 단기 삼천구백이십오년에 왜적들이 침범하니 이것이 임진난이다. 때의 전라좌수사 이충무공은 이를 크 게 분히 여겨 거북선을 만들어 적을 옥포와 노량에서 깨뜨리고 사량과 당항포에서 무찌르며 영등포에서 크게 전공을 이루고 견내량에서 적을 꾀어 이를 패하니 붉은 피가 바다에 넘치다. 이어 안골포를 거쳐 부산을 나아가 적을 패하고 한산도에 진을 치시니 왜적이 크게 두려워하다. 선조대 왕께서 공을 칭찬하시고 벼슬을 높이시어 삼도통제사의 대임을 맡기시다. 왜장 행장이 도망하고자 하여 사자를 보내 공에게 애걸하였으나 공이 엄하게 물리치시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꺽여지다. 사천 왜적과 남해 왜적이 노량에 모여들고 또 광주로부터 적선 오백 척이 들어와서 행장과 힘을 합하였 다. 공이 이를 관음포에서 마저 싸워 적을 크게 패한 때에 불행이 적의 비환에 맞아 돌아가시니 향년이 오십사세요 그날은 단기 삼천구백삼십일년 십일월 십구일이었다. 왜란 칠 년 동안 전적이 가장 많으신 이 땅에 비를 새우니 공의 장렬하신 공적은 진실로 천추에 빛날 것이다. 단기사천이백팔십삼년(1990년) 월 일 남해군민이 힘을 모아 세우다 리홍주는 짓고 이갑성은 쓰다 이충무공전몰유허 공사기념비 우리나라 歷 史 上 에 가장 빛나는 忠 武 公 의 戰 跡 地 인 이 땅에 그 碑 閣 이 헐어지고 庭 園 이 황폐됨은 郡 民 이 크게 걱정하는 바이다. 이번에 本 郡 山 林 係 主 管 으로 工 事 를 시작하니 古 縣, 雪 川 兩 面 에서는 人 夫 七 千 三 百 名 을 奉 仕 하고 南 海, 二 東, 三 東, 西, 南, 昌 善 面 에서는 工 事 費 七 十 萬 원을 誠 納 하고 南 海, 西, 南, 彌 助 의 漁 業 組 合 에서는 各 各 三 萬 원을 헌납하여 庭 園 二 百 坪 과 運 動 場 七 百 二 十 坪 과 參 道 二 個 所 를 新 設 하고 한글 戰 跡 碑 를 세우고 庭 園 樹 壹 阡 八 百 本 을 심어서 이 工 事 를 竣 工 하다. 檀 紀 四 二 八 三 年 五 月 日 郡 守 具 兌 書 監 督 李 治 一 石 工 柳 在 實 첨망대기( 瞻 望 臺 記 ) 통영 충무에서 한려수도를 따라 유유히 흘러 남해 노량 앞바다에 이르면 관음포가 있으니 곧 삼도수군 통제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이요 관음포에 연접하여 있는 이락산은 충무공의 본향인 아 산으로 반장( 返 葬 )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영구를 안치한 곳이다. 그 뒤 2백4십년을 지나 순조 32년 임진 년에 공의 팔 세손 항권이 통제사가 되니 임금의 명을 받들어 공의 영혼을 이 땅에 위안함에 단을 만들 어 영혼을 강림케 하고 큰 돌을 깎아 그 곳에다 비를 세우고 비각을 마련하니 이락사이다. 이로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물론 무릇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경건하게 추모( 追 慕 )의 법도를 다 하더라. 지난 1990(경오)년에 군수 거창 유금렬 씨가 이락사 서쪽 500m 거리 산기슭에 군민의 숙원인 첨망대를 세우게 하여 그 때의 국회의원 박희태 씨가 거액의 사업비를 지원받게 하니 새로 부임한 평해 황기준 군수가 이 일을 이어 집행하여 준공하였다.

18 1204 남해군지 이후 다시 벽진 이조헌 씨가 이 고을 군수로 오셔서 모든 행정이 잘 추진되는 형편에 이 첨망대에 대해 서도 관심이 커 보완 공사를 하여 이를 마무리 짓고 1994년 갑술 5월에 군민을 모아 여러 가지 낙성 행 사를 베풀었다. 오오라!. 이 첨망대는 실로 이충무공을 위하여 지어진 것인 즉, 이 대( 臺 )에 오르는 사람 어찌 감회가 깊 지 않으리오. 예로부터 나라의 다스림이나 화평과 변란이 승제의 대운과 관계지어 진다하였으니 임란 때 왜구의 침란으로 우리 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려 엄청난 곤욕을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비록 놈들의 살을 사료로 하고 그 가죽을 침구로 한다 하여도 오히려 그 죄에 비하면 벌 받음이 부족하리라. 당시 충무공의 대장기가 세워지고 호령 소리 들리는 곳에서 산과 바다에 맹세하여 초목과 어룡도 감동 하거든 하물며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이야 어떠하리. 마침내 기묘한 계책으로 왜적을 무찔러 승리로 이끌 어 함락된 산하를 빨리 수복한고 백성들이 쟁기질하고 누에 쳐서 처자와 같이 가족이 즐겁게 지내니 충 무공의 공훈은 만세에 일월과 더불어 빛을 다투리라. 이제 이 좋은 때에 첨망대에 올라 바라보면 푸른 물결은 넓고 아득한데 바람이 고요하며 물결은 잔잔하 고 교어 악어는 깊은 물에 잠겼으며 상하의 하늘빛은 만경에 한결같이 푸르러 어부의 노래 서로 화답하 고 갈매기는 자유로이 날아 오르내리니 그 승경을 눈에 가득히 하는 즐거움 무궁하리라. 그런 어찌 이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충무공의 충성과 효도 다함을 사모하여 배우면 그 세대 의 교육에 어찌 도움이 작다 하리오. 내 병으로 쇠약해진 몸이라서 내 힘으로는 첨망대에 올라서 그 때 거북선으로 이 바다를 오가며 왜적을 쳐 무찌르던 형상을 눈앞에 그려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는 형편 이라. 이를 한탄하던 중 모충회장 경주 김정윤씨가 찾아와 첨망대 사실의 기록을 간절히 청하였으므로 내 이미 세분 군수님의 지극한 모충의 정성과 사려 깊고 정성어린 조장( 朝 獎 )행정의 공을 높이 평가하 여 왔던 터라 청을 거절치 않고 기꺼이 받아 들여 이 사실을 영원히 전하고자 기록함이라. 대한민국 칠십육년 갑술 국화의 계절에 성균관 유도교도원 진양( 晉 陽 ) 정철기( 鄭 喆 基 )가 짓고 장수( 長 水 ) 이성숙( 李 性 叔 )이 쓰고 석명( 碩 明 ) 김외석( 金 外 碩 )이 각( 刻 )을 하여 첨망대에 현판하였다. 첨망대 기 문을 같은 해 십이월에 김해 김경수가 번역한 것임. 於 統 營 之 忠 武 循 閑 麗 水 道 攸 攸 南 下 至 南 海 露 梁 前 海 有 曰 觀 音 浦 海 者 卽 故 三 道 水 軍 統 制 使 忠 武 李 公 戰 死 之 處 也 接 海 有 山 曰 李 落 山 忠 武 李 公 返 葬 于 牙 山 本 鄕 之 前 幾 箇 月 間 靈 柩 安 置 于 此 處 經 二 百 四 十 年 純 祖 三 十 二 年 壬 辰 公 之 八 世 孫 恒 權 亦 爲 統 制 三 道 水 軍 承 王 命 侑 公 于 是 地 設 壇 以 降 靈 伐 大 石 表 其 之 而 建 閣 卽 所 謂 李 落 祠 者 也 自 是 本 鄕 人 勿 論 凡 行 過 此 地 者 無 不 敬 式 而 追 慕 焉 去 西 紀 一 九 九 年 庚 午 郡 守 劉 今 烈 氏 因 民 宿 願 而 建 立 膽 望 臺 于 祠 之 西 麓 二 百 步 地 于 時 國 會 議 員 密 陽 朴 熺 太 氏 自 中 央 得 巨 金 而 協 贊 之 劉 候 旋 而 遞 任 郡 守 平 海 黃 基 俊 繼 治 是 役 幾 乎 竣 事 而 又 復 遞 遷 今 碧 珍 李 祖 憲 氏 來 守 是 郡 庶 政 咸 理 乃 益 加 補 完 斯 臺 而 告 竣 工 以 明 年 甲 戌 夏 五 月 會 集 鄕 人 設 諸 般 行 事 以 落 之 斯 臺 經 三 侯 而 完 工 可 知 其 事 之 難 成 有 如 此 者 矣 噫 此 臺 者 實 爲 追 慕 李 忠 武 公 而 作 則 千 載 之 下 凡 登 此 臺 者 豈 無 所 思 乎 自 古 國 之 治 亂 雖 關 於 乘 除 之 數 然 追 憶 昔 日 龍 蛇 之 際 倭 寇 之 侵 亂 而 血 我 生 靈 則 雖 食 其 肉 而 寢 處 其 皮 商 有 餘 罪 存 焉 當 時 公 之 旌 纛 所 臨 喑 噁 所 被 之 處 盟 山 誓 海 而 草 木 魚 龍 猶 爲 感 動 況 乎 天 地 神 人 哉 卒 能 出 奇 制 勝 而 山 河 快 復 則 犁 牛 箔 蠶 婦 子 熙 熙 公 勳 萬 世 旣 與 日 月 而 爭 光 矣 今 夫 良 辰 住 節 登 臺 而 望 之 則 滄 波 渺 濔 而 恬 風 無 浪 蛟 鰐 深 藏 上 下 天 光 一 碧 萬 頃 漁 歌 互 答 沙 鷗 浮 沒 滿 目 勝 景 其 喜 無 窮 矣 然 豈 惟 止 此 必 須 慕 忠 武 公 之 忠 孝 兩 全 而 學 之 則 其 於 世 敎 豈 曰 小 補 哉 余 以 病 衰 不 能 登 斯 臺 而 想 像 當 日 龜 船 運 海 衝 破 倭 賊 之 狀 爲 恨 日 慕 忠 會 長 慶 州 金 正 潤 氏 訪 余 而 請 其 事 余 旣 重 三 候 之 慕 忠 誠 深 而 並 有 政 聲 於 南 土 喜 爲

19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05 傳 示 永 世 遂 爲 之 記 大 韓 民 國 七 十 六 年 甲 戌 菊 秋 成 均 館 儒 道 敎 導 員 晋 陽 鄭 喆 基 記 長 水 李 性 淑 書 충무공 이순신 장군 유언비 19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을 양력으로 환산)에 이충무공순국 400주년을 맞이하여 순국지 이 충무공전몰유허 입구 잔디광장에서 전국 추모행사를 봉행함에 따라 이충무공의 마지막 유언인 戰 方 急 愼 勿 言 我 死 (전방급신물언아사) : 전쟁이 바야흐로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를 자연석 거 북형 좌대 위에 세웠다. 높이는 8m이고 글씨는 당시 해군참모총장인 남해 출신 해군 대장( 大 將 ) 류삼남 ( 柳 三 男 )의 휘호이다. 수호도감( 守 護 都 監 ) 교지( 敎 旨 ) 및 첩지( 帖 紙 ) 망지( 望 紙 )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에 거주하고 있는 김석동( 金 石 東 )이 보관 관리하고 있는 고문서 중 이충무공전몰 유허 관리에 따른 첩지와 망지가 있다. 이 첩 망지는 충무공 순국지에 수호도감을 설치하여 비각과 주 위를 관리하고 불경자들을 잘 관찰하라는 관의 발령장이다. 첩 망지를 받은 자는 김녕 김씨 충의공파 ( 忠 毅 公 派 ) 후손들이며, 남해에 입남( 入 南 )하여 차면에 거주하면서 유적지를 관리해 왔다. 김용해( 金 龍 海. 1756~1824), 김계언( 金 啓 彦 ), 김여홍( 金 麗 鴻. 1790~미상. 4.23), 김여복( 金 麗 福 ), 김여백( 金 麗 伯. 1792~미상 12.19), 김정준( 金 鼎 俊. 1845~미상 4.14), 김중순( 金 仲 純 ) 등으로 대를 이어 유허를 관리 하였다. 교지와 첩 망지는 다음과 같다. 김용해( 金 龍 海 ) 첩지 行 縣 令 爲 差 定 事 公 事 別 監 差 定 爲 去 乎 不 輕 察 任 合 下 仰 照 驗 施 行 須 至 帖 者 右 下 幼 學 金 龍 海 準 此 甲 戌 十 二 月 日 현령이 뽑아 정하는 일은 충무공 수호별감을 뽑아 정하는 것이니 가볍지 않게 살피는 이 일 비추어 증 험하여 시행토록 모르지기 발령함에 이름. 이 사람 유학 김용해는 이에 따를 것. 갑술(1814년) 12월 일 김계언( 金 啓 彦 ) 첩지 三 道 統 制 使 爲 差 定 事 守 護 都 監 差 定 爲 去 乎 不 輕 察 任 向 事 合 下 仰 此 驗 施 行 須 至 帖 者 右 下 南 海 金 啓 彦 準 此 戊 寅 六 月 初 七 日 在 營 삼도통제사가 뽑아서 정하는 일은 수호도감을 뽑아서 정하는 것이니 가볍지 않게 살피는 이일 그대가 이를 받들어 증험하여 시행토록 모름지기 발령함에 이름. 이 사람 남해 김계언 이에 따를 것. 무인년 (1818년) 6월 7일 영에서 김용해( 金 龍 海 ) 교지 敎 旨 金 龍 海 爲 通 政 大 夫 者 道 光 元 年 正 月 日 年 乃 十 依 定 貳 加 資 事 泳 傳 김용해는 통정대부(정3품)자 임. 도광원년(1820년) 1월 일 김여홍( 金 麗 鴻 ) 첩지 行 縣 令 爲 差 定 事 忠 武 公 碑 閣 守 護 都 監 差 定 不 輕 察 任 向 事 合 下 仰 照 驗 施 行 須 至 帖 者 右 下 幼 學 金 麗 鴻 準 此 癸 巳 十 月 현령이 뽑아 정하는 일은 충무공 비각 수호도감을 뽑아 정하는 것이니 가볍지 않게 살피는 이일 비추어 증험하여 시행토록 모름지기 발령함에 이름. 이 사람 유학 김여홍 이에 따를 것. 계사년(1833년) 10월

20 1206 남해군지 김여복( 金 麗 福 ) 첩지 行 縣 令 爲 差 定 事 觀 音 浦 忠 武 公 碑 閣 守 護 都 監 差 定 爲 去 乎 不 輕 察 任 向 事 照 驗 施 行 須 至 帖 者 右 下 幼 學 金 麗 福 準 此 己 亥 八 月 日 현령이 뽑아 정하는 일은 관음포 충무공 비각 수호도감을 뽑아 정하는 것이니 가볍지 않게 살피는 이 일 비추어 증험하여 시행토록 모름지기 발령함에 이름. 이 사람 유학 김여복 이에 따를 것. 기해년(1839 년) 8월 일 김정준( 金 鼎 俊 ) 망지 南 海 金 鼎 俊 忠 武 公 監 碑 閣 守 護 都 監 差 定 着 實 擧 行 事 己 亥 六 月 日 固 城 地 方 大 隊 長 남해 김정준 충무공대감 비각 수호도감으로 뽑아 정하니 착실히 거행할 일 기해년(1899년) 6월 일 고 성지방대대장 김중순( 金 仲 純 ) 망지 南 海 車 面 居 金 仲 純 忠 武 公 碑 閣 所 在 四 山 局 內 守 護 之 節 着 實 擧 行 者 光 武 七 年 四 月 日 鎭 衛 第 三 聯 隊 二 大 隊 長 남해 차면에 사는 김중순은 충무공 비각이 있는 사방 판국의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절차를 착실히 거행 할 것 광무 7년(1903년) 4월 일 진위제 3연대 2대 대장 (2) 남해충렬사 지정번호 및 일자 : 사적 제233호 소 재 지 :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규 모 : 사우(맛배와가 높이 2.9m, 가로 3.69m, 세로 2.76m, 면적 10.18m2) 부 속 물 : 묘정비, 비각, 충무공비 및 충민공비, 내외삼문, 청해루, 한글비. 시대 및 관리자 : 조선시대, 남해군 연 혁 : 1598년 충무공 순국 (이락사 운구 최초 안치, 남해충렬사 이장 안치) 1599년 아산 본향에 안치 1628년 향토인 김여빈, 고승후 사당 건립 주창 1633년 김여빈, 고승후 초옥 1칸 사당 건립 남해현령 이정권 충민공비 건립 1643년 충무( 忠 武 )시호 책봉 1658년 어사 민승중이 통제사 정익에게 사우 신축을 명함(초사철거, 이충무공비로 개건) 1660년 유명조선국삼도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 건립(송시열찬, 송준길서) 1663년 현종어필 충렬사 현액 내림 1722년 5대손 충민공 봉상(통제사) 서원비각, 사당, 강당, 담장수축, 관리규칙 확립 1726년 노량 서원 개원 1746년 5대손 노은공 언상, 동전 2백민 출원 (사림, 사찰 관리비로 줌) 사당 곁에 호충암 짓고 승려 10명, 승장 1명을 두어 수직호사에 임함 1760년 지사공 태상(통제사) 청해루(2층 문루) 지음 1761년 병사공 관상(진주병사)진교에 사답 1백두 매수 헌납 1769년 6대손 한응 비각 중수와 사우 단청

21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년 훈장공 한풍(진주병사) 비각 단청, 전답매수, 전나무, 소나무, 가래나무 등 식수 1792년 7대손 건수(진주병사)문루 중수, 장도3곳 어장, 2척 어선을 원에 소속시킴 1793년 5대손 병상(전라좌수사) 이충민공비 매몰하고, 이충무공비 세움. 영의정 추증 1814년 현령 이행중 문루 중수 1871년 서원 훼철(위패 : 본당 뒤편 묻음, 제기 : 향교로 이관, 토지: 매각, 어조: 실권) 비각만 남고, 제단은 약식 축조 1899년 11대손 민승(진남대 육군 참영) 비각중수 (곤양 답 2두 매입, 비각을 수호케 함) 1907년 10대손 규진, 11대손 민승, 비각 보수 1921년 향사 박진평, 정민주 비각 중건, 수직사 복건 1922년 보존회 조직, 진주 사림은 후원회 조직 1925년 11대손 민봉, 청해루 지음 (강당, 창고를 복건) 1949년 보존회 해체와 남해 충렬사 모충회 조직, 충무공 한글비 세움 (남해군민과 경남도 초등학생 성금) 정인보 짓고, 김충현 씀 1965년 박정희 대통령 충렬사( 忠 烈 祠 ) 보천욕일( 補 天 浴 日 ) 액자 현판 1973년 대한민국 사적 제 233호로 지정, 매몰된 이충민공비 복원 1980년 충렬사력 청동판 세움 (임창순 역술, 정문장 씀) 1987년 내삼문 보수 및 단청, 관리사 내부 수리 1988년 상수도 거북형 시설 공사 및 주변 조경 1994년 사당 내 신위 교체(구 신위 본당 뒤편에 묻음) 1995년 남해충렬사지 발간 2004년 청해루 중수 2005년 사단법인 남해충렬사 법인설립 인가(경상남도 도지사) 2006년 남해충렬사지 증보판 발간 남해 충렬사는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면, 사적 233호로 지정되 어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선조 31년(1598) 11월 19일에 순국하여 아산 현충사로 이장되기 전에 잠시 이곳에 안치되었던 곳으로 전하며, 공이 순국한지 35년 후인 인조 11년에 이 고 장의 선비 김여빈과 고승후에 의하여 처음으로 초옥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신 후, 배향한 곳 이다. 노량 충렬사 창조집문(1633년)에 슬프다. 노량은 곧 충무공 이 선생이 나라에 몸 바 치신 곳이다. - 중략 - 지난 무진년(1628)에 이 고을 유학 김여빈이 이를 슬퍼하여 동지 고 승후와 더불어 여론을 앞장서 일으키고 이끌어 바야흐로 재력을 모으고 집안의 자제와 집안 노비로 터를 닦고 돌과 나무를 운반하여 한 칸 초옥을 처음으로 세우고 - 하략- 김여빈과 고승후가 초옥 사당 한 칸을 세움으로서 시작한 것을 계기로 공의 후손과 국가에서 성지로 가꾸고 보존하였으며, 1726년에는 노량서원을 개원하여 유림으로 하여금 보존 관리하게 되 었고 1746년에는 호충암을 짓고 화방사의 승장과 승병으로 하여금 수직호사( 守 直 護 祠 ) 하도 록 하였으나 1871년에 대원군 향사 철폐령에 의거 훼철되는 수난을 겪었다. 1921년에 본 고장의 사림 박진평과 정민주가 비각을 중건하고 이듬해 보존회가 조직되어

22 1208 남해군지 시설물을 복건함으로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현재는 (사)남해충렬사의 소유로 남해군에서 사적지로 관리하고 있다. 남해노량이충무공묘비( 南 海 露 梁 李 忠 武 公 廟 碑 ) 유명조선국삼도수군통제사증시이충무공묘비 숭록대부의정부우찬성겸성균관제좨 송시열 찬 정헌대부의정부좌찬성겸성균관제좨 송준실 서 남해의 노량에 3 간의 사당이 있으니 그 안에는 위패를 모시어 놓고 돌아가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제 사를 모시는 곳이다. 명나라 신종황제( 神 宗 皇 帝 ) 만력 원년에 왜놈 추장 수길( 秀 吉 )이 그의 임금을 죽이고 온 나라를 들어서 우리나라를 도둑질하러 왔다. 이충무공께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북쪽 변방에서 여러 번 큰 공을 세웠으나 사람들이 전혀 알 지 못 하였다. 신묘년(1591) 2월 전라도 좌수사로 임명되어 이충무공께서는 부임하자마자 매일 전쟁 도구를 수리하면 서 사졸들을 다독이어 보살펴 주셨다. 마침내 왜적들과 싸우게 되매 이충무공께서는 옥포에서 왜적들을 패주시키셨고 노량과 당포에서도 왜적을 물리치셨고 사량에서도 왜적과 싸워 크게 이기셔서 적장의 귀 한 목을 베시었다. 또 당항포에서도 왜적들과 싸워 크게 이겨서 적선 40여척을 격파하셨다. 이는 모두 적은 수의 수군으로 대적을 분쇄한 것이다. 임금님께서는 공의 공훈을 치하하는 조서를 내림과 동시에 그 벼슬도 올려 주셨다. 또 영등포에 이르러 서도 왜적과 싸워서 그들을 물리치셨고 견내량에 이르러서는 적을 유인 격파하여 바다를 적들의 피로 물들게 하셨고 또 안골포에는 왜선 40여척을 격파했으며, 마침내 부산으로 나아가 적선 백여 척을 격파 하셨다. 드디어 좌수영의 본영을 한산도로 옮기시고 군량을 비축하여 가면서 군사들을 재편성하고 의주 에 몽진 중이신 선조 임금님을 맞이하고자 계획하였다. 조정에서 공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하여 공이 부임하시니 왜적은 매우 두려워하면서 간첩을 이용하 여 어리석은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들을 이간하였다. 원균이 또 공을 질시하여 일을 꾸미니 조정의 공론 이 양분되었다. 공은 마침내 체포되어 고문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직언하는 대신도 있었고 임금님께서도 또한 충무공의 공훈을 생각하셔서 장군의 벼슬만 뺏는 것으로 문책하셨다. 바로 그 때에 어머니께서 별세하셨다 는 부고를 받고 바삐 곡하며 즉시 친가로 가면서 내 오직 한 마음으로 충과 효를 행하였거늘 이러한 때에 상까지 당한단 말인가? 라고 탄식하셨다. 같이 가던 군인과 민간인들은 말고삐를 붙잡고 울고 모든 사람들이 매우 한스러워하면서 같이 슬퍼하였 다. 원균은 통제사를 대신하고 있다가 적의 계략에 빠져 크게 패하고 달아나다가 자신도 전사하니 한산도도 마침내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 왜적은 드디어 서해를 덮쳐 남원까지 진격하게 되었다. 조정에서는 마침내 공을 다시 통제사로 삼으니 공은 1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급히 순천부로 들어가 달 아났던 군졸들을 조금 모아 마침내 난도( 蘭 島 )의 벽파정에서 적과 싸워 모든 왜적들을 크게 무찔러 버 렸다. 크게 승리하였다는 보고가 임금님께 들리니 임금님께서는 공의 작위를 높여 주려 하셨으나 공의 품계가 이미 높으니 그만 두고 휘하 장졸들에게만 상을 주시는 것으로 그치셨다. 명나라 장수 양호( 楊

23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09 鎬 )도 또한 돈과 비단을 보내어 위로하면서 상을 주고 명나라 조정에 공의 이름을 아뢰니 마침내 공의 이름이 온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에 공은 오히려 나물 반찬으로 밥을 드시고 잠자리를 괴롭게 하며 상주( 喪 主 )로서의 몸가짐을 지키 셨다. 선조대왕께서는 특사를 보내시어 보약을 하사하셨고 공은 눈물을 흘려 울면서 더욱 충성할 것을 다짐하셨다. 임금님께서는 공이 거느리는 수군의 세력이 너무 약한 것을 생각하셔서 먼저 물러났다가 전세를 관망하라 하셨다. 이에 공은 급히 계문을 올려서 여쭙기를 신이 한 번 항구를 떠나가면, 왜적들은 반드시 육지를 올라 멀리 쳐들어갈 것입니다. 라고 하셨다. 때마침 명나라 장수 진린과 유정이 수륙 양면으로 와서 도와주 게 되니 공은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셨다. 공은 고금도에 머물면서 백성들을 모아 농사를 짓게 하며, 공과 사로 그들을 편하게 하여 주시니 남쪽 의 백성들이 많이 몰려 왔다.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는 오직 달아날 길을 열기 위하여 명나라의 두 장수에게 심히 공손히 굽실거리며 틈틈이 뇌물을 주니 두 장수들은 모두 길을 열어 주려고 하였다. 공 은 풍자하여 구들을 꾸짖으니 심지어 고니시 유키나가가 또 공에게까지 사신을 보내어 직접 총검을 뇌 물로 바쳤다. 공은 원수이기 때문에 왜적과는 사신을 교환할 수 없음을 엄한 말로 꾸짖어 돌려 보내셨 다. 공의 휘하 장수와 군사들은 용기가 백배로 늘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궁지에 몰리게 되자. 마침내 경상도 사천에 머물고 있던 저희 도적들을 데려다가 그를 구원하게 하였다. 어느 날 저녁때에 큰 별똥별이 바다 가운데에 떨어졌다. 군인들은 그것을 흉조로 보고 두려워하였다. 무 술년(1598) 11월 19일에 공은 명나라 장수 진인과 함께 노량에서 왜적을 맞이하여 싸워 크게 이기셨는 데 공은 갑자기 적의 총알을 맞고 운명하셨고 진인은 왜적에게 포위되어 위태롭게 되었다. 공의 조카 완( 莞 )은 담략이 있었으므로 곡성을 내지 아니하고 스스로 독전하여 마침내 진인을 구하여 내 었고 고니시 유키나가는 겨우 도망치듯 달아날 수 있었다. 이미 공의 전사가 알려지니 우리 군사들과 명나라 장수들의 두 진영에서 모두들 목을 놓아 울어서 울음소리가 바다를 뒤덮었다. 남해에서 아산까지 천리 길에 영구를 맞이하여 호곡하며 제물을 올리는 사람들은 끊이지 아니하였다. 또한 스스로 3년 상을 지키는 이들도 있었고 중들은 곳곳에서 천도제를 베풀어 올리기도 하였다. 사람 들은 모두 말하기를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고 우리의 원수를 잡아 죽여 원한을 갚아 주신 어른이 라 고 하였다. 공은 성품이 곧고 깨끗하여 스스로의 뜻을 지켜 정의를 독실하게 지키셨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도 항상 의를 지켜 일을 처리할 때에도 조그만 잘못이나 부끄러움이 없게 하셨다. 한번 용단을 내리시 면 어떤 강한 적이라도 반드시 이겨 내셨다. 군정은 간결하면서도 법도가 있어서 헛되이 한사람을 죽이지 아니하셨으니 삼군( 三 軍 )이 하나의 뜻으로 뭉쳐서 감히 군령을 어기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공이 지킨 대의는 모함하는 왜장의 밀사를 물리쳤 고 밀사의 함정에 빠져서 화의론을 주장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꾸짖으셔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비수( 沘 水 )같게 하셨으니 공의 충성은 장충헌( 張 忠 獻. 송나라 충신)이나 악무목( 岳 武 穆. 송나라 충신)보 다도 뛰어 나셨다. 그러므로 허약한 신졸을 통솔하여 천하에서 제일 강하다는 적과 크고 작은 수십 번 의 싸움에서 한 번도 지지 아니하고 이기시어 우리나라 동남쪽을 굳게 막아 내셨다. 이것은 우리나라 가 중흥의 위업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공의 위열은 명나라 천자까지도 특별한 사랑을 베푸셔 서 인부( 印 符 )까지 하사하셨다. 온 나라 안의 백성들은 비록 가가호호마다 공의 신주를 모셔 존경하여도 지나칠 것이 없을 것이다. 하

24 1210 남해군지 물며 이 노량이라는 곳은 군사를 지휘하시던 곳이니 전사하시어 말씀은 없지만 공의 혜택을 입은 사람 들은 공의 충정을 두려워할 만도 하니 진실로 억만년을 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산을 박차고 바닷물을 내뿜는 듯하고 바람이 성나서 구름을 휘몰아 항상 대마도를 뛰어 넘고 지금의 일 본 동경까지 무찔러 버릴 기세이었으니 공의 영위( 靈 位 )를 엄숙히 받들어 모시고 있는 고장이다. 먼저 있던 옛 사당은 너무나 누추하고 좁은데다가 지대마저 낮아서 공의 넋을 모시기에는 마땅하지 아 니하기 때문에 통제사 정익은 포은 선생의 이손( 耳 孫 )으로 공의 충의에 감동되어 곧 고쳐서 새롭게 하 였다. 또 나무를 베고 돌들을 다듬어 사당을 새로 지은 뒤 민학사 정중을 인연하여 나로 하여금 그 일을 글로 쓰게 하여 거칠게나마 다 이루어지니 판서 홍공명하( 洪 公 命 夏. 조선 인조 문신)에게 알려져 임금님 까지 전하여져 아시게 되매 효종대왕께서는 이 초본을 바치게 하여 열심히 읽으시고 또한 기뻐하셨으니 자못 백성들에게 격려하시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며 능백처럼 푸르른 공의 꿋꿋한 혼백도 거듭 구천에서 감읍하고 계실 것이다. 여기에 시말을 갖추어 아울러 적어 두는 것은 오직 세월이 흐를수록 옛날의 일을 피나는 교훈으로 삼아 우러러 받들게 하려 함이다. 공의 휘는 순신이시고 자는 여해이시고 보관은 덕수이시다. 때는 숭정 신축( 辛 丑 1661)년 10월이다. 지금 임금님이신 현종 계묘( 癸 卯. 1663)년에 충렬( 忠 烈 ) 이라는 현액을 왕께서 쓰셔서 내려 주셨다. 이에 이르러서는 더한 영광이 없다. 비석을 세우는 일은 전후임( 前 後 任 )의 통제사 박경지( 朴 敬 祉 )와 김시성( 金 是 聲 )이 맡아 하였다. 이 해 7월 일에 추각함. 有 明 朝 鮮 國 三 道 水 軍 統 制 使 贈 諡 忠 武 李 公 廟 碑 崇 祿 大 夫 議 政 府 右 贊 成 兼 成 均 舘 祭 酒 宋 時 烈 譔 正 憲 大 夫 議 政 府 左 參 贊 兼 成 均 舘 祭 酒 宋 凌 吉 書 南 海 之 露 梁 有 廟 三 間 中 設 位 牌 以 祀 故 忠 武 李 公 者 也 神 宗 皇 帝 萬 曆 紀 元 倭 酋 秀 吉 弑 其 君 擧 國 來 寇 公 先 在 北 邊 屢 立 奇 功 而 人 不 甚 知 辛 卯 二 月 擢 授 全 羅 在 水 使 公 至 則 日 修 戰 具 撫 循 士 卒 遂 與 賊 戰 敗 之 於 玉 浦 敗 之 於 露 梁 及 唐 浦 敗 之 於 蛇 梁 斬 其 貴 將 又 敗 之 於 唐 項 浦 撞 破 其 四 十 餘 船 皆 以 少 擊 衆 上 下 書 褒 之 陞 其 資 級 至 永 登 浦 敗 之 至 見 乃 梁 誘 賊 敗 之 腥 血 漲 海 又 戰 於 安 骨 浦 燒 其 船 四 十 餘 遂 進 戰 於 釜 山 又 破 其 船 百 餘 艘 遂 置 陣 閑 山 島 積 粟 整 師 以 爲 迎 駕 龍 灣 之 計 朝 廷 爲 置 三 道 統 制 使 以 處 之 賊 畏 甚 行 間 以 愚 我 諸 將 元 均 又 嫉 搆 之 朝 廷 兩 信 之 公 遂 被 追 拷 有 大 臣 言 上 亦 念 公 功 只 削 職 從 軍 以 責 効 時 母 夫 人 卒 公 便 道 奔 哭 卽 行 曰 吾 一 心 忠 孝 到 此 俱 喪 矣 軍 民 擁 馬 號 泣 遠 近 嗟 惋 元 均 代 爲 統 制 使 爲 賊 所 誘 軍 敗 走 死 而 閑 山 遂 陷 賊 遂 由 西 海 進 陷 南 原 朝 廷 遂 以 公 復 爲 統 制 公 以 十 騎 馳 入 順 天 府 稍 收 亡 卒 遂 戰 於 於 蘭 島 碧 波 亭 皆 大 破 之 捷 至 上 欲 陞 公 崇 品 有 言 公 爵 秩 巳 高 遂 止 賞 將 士 天 將 揚 公 鎬 亦 送 銀 段 以 慰 賞 而 奏 聞 天 朝 公 之 名 遂 得 聞 天 下 時 公 猶 食 素 寢 苫 上 特 使 論 旨 且 送 草 木 之 滋 公 涕 泣 勉 從 上 念 公 舟 師 單 弱 欲 令 前 却 以 觀 勢 公 馳 啓 曰 一 臣 去 港 則 賊 必 登 岸 長 驅 矣 時 天 將 陳 隣 劉 綖 水 陸 內 會 公 接 應 有 方 俱 得 歡 心 公 進 據 古 今 島 募 民 耕 作 以 便 公 私 南 民 繈 屬 歸 之 賊 將 行 長 亟 謀 撤 歸 求 道 甚 恭 雨 天 將 中 其 賄 誘 欲 許 之 公 諷 刺 甚 至 行 長 又 遣 使 于 公 遺 以 銃 劒 公 以 讐 賊 不 可 通 使 嚴 辭 却 之 將 士 勇 氣 百 倍 行 長 計 窮 遂 引 酒 川 屯 賊 以 自 援 一 夕 大 星 殞 海 中 軍 中 畏 之 戊 戌 十 一 月 十 九 日 公 與 陳 公 迎 戰 于 露 梁 賊 大 挫 衄 公 忽 中 丸 而 絶 陳 公 被 圍 急 公 從 子 莞 有 膽 略 不 發 哭 督 戰 自 如 遂 解 陳 公 圍 而 行 長 僅 得 遁 去 旣 發 喪 我 師 與 天 將 兩 陣 皆 號 哭 聲 殷 海 中 自 南 海 至 牙 山 迎 柩 哭 奠 千 里 不 絶 亦 有 喪 之 三 年 者 僧 徒 處 處 設 齋 皆 曰 活 我 命 復 我 讐 者 公 也 公 內 有 篤 行 貞 介 自 宇 意 有 不 可 雖 達 官 要 人 必 據 義 媿 屈 之 發 謀 制 事 擧 無 遺 策 奮 勇 決 機 前 無 堅 敵 軍 政 簡 而 有 法 不 妄 殺 一 人 而 三 軍 一 志 莫 敢 違 令 至 其 擧 大 義 斤 倭 使 使 中 賂 者 顔

25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11 馬 卒 主 和 者 顙 泚 則 張 忠 獻 岳 武 穆 蔑 以 加 矣 以 故 當 積 衰 諱 兵 之 餘 遇 天 下 莫 强 之 敵 大 小 數 十 戰 俱 以 全 取 勝 蔽 遮 東 南 以 基 中 興 之 偉 烈 至 蒙 皇 上 寵 命 錫 以 印 符 則 一 國 之 人 雖 家 尸 而 戶 侑 不 爲 過 矣 況 此 露 梁 者 旌 纛 之 所 臨 喑 噁 之 所 被 其 精 爽 之 可 畏 者 固 將 億 萬 年 不 泯 蹴 山 噴 海 風 怒 雲 屯 常 有 跳 馬 島 擣 江 戶 之 氣 則 嚴 奉 之 擧 尤 在 所 先 也 舊 有 廟 牛 角 隘 下 窄 不 足 以 妥 公 之 靈 故 統 制 使 鄭 木 益 圃 隱 先 生 之 耳 孫 感 公 忠 義 卽 改 而 新 之 又 伐 大 石 以 爲 牲 繫 而 因 閔 學 士 鼎 重 俾 余 書 其 事 文 旣 粗 成 判 書 洪 公 命 夏 以 事 聞 孝 宗 大 王 亟 徵 草 本 特 賜 乙 覽 亦 豈 拊 髀 頗 牧 之 意 歟 只 今 仙 馭 上 賓 陵 栢 蕭 森 公 之 毅 魄 重 亦 飮 泣 於 九 原 矣 因 幷 記 此 以 備 始 末 俯 仰 疇 昔 爲 之 抆 血 也 公 諱 舜 臣 字 汝 諧 德 水 人 時 崇 禎 辛 丑 十 月 日 也 今 上 癸 卯 賜 額 曰 忠 烈 至 是 而 崇 報 無 憾 矣 碑 役 前 後 相 之 者 統 制 使 朴 公 敬 祉 金 公 是 聲 也 是 年 七 月 日 追 刻 충렬사 창건기( 忠 烈 祠 創 建 記 ) 슬프다. 영천에 제갈사가 있고 수양에 청성묘가 있으나 거리는 천리가 넘고 세운 횟수도 천년차가 더 되나 충성을 상주고 절개를 나타내어 주는 것은 국가의 큰 법도이라 충성을 사모하고 정의로 나아가 는 사람의 마음이 같은 바다. 그러므로 땅 이름도 서로 닮음으로 오히려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모시는 데 하물며 노량은 충무공 이 선생이 몸을 버리고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곳이라 지난 숭정 무진년(1629 년)에 이 고을 선비 김여빈공이 분개하여 한탄하고 탄식하여 드디어 선비 고승후와 더불어 앞장서 사당 세울 여론을 일으키고 재목을 모으고 땅을 깎아 자기 집 머슴을 거느리고 초가집 한 칸을 처음으로 세 웠다. 소상을 갖추어 나라에 올리니 그 때의 어사 민정중공이 즉시 당시 통제사 정익공으로 하여금 새 로 고쳐 짓게 하고 인하여 비를 세워 그 공덕을 칭송하였고 옛 정승 홍명하공이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려 드리니 효종대왕께서 특별히 친히 읽어보시고 시호를 다시 충무로 고치시었으며 현종조에 이르러 또 사 액을 친히 내리셨다. 이와 같이 사당은 있으나 비좁고 낮아 보잘 것 없어 영혼을 편안하게 모시기에는 부족하고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보기에 음사스러운 당집 같은지라 크게 높여 사모하는 정성 으로 누구나 눈물을 머금고 길게 탄식치 않으리오. 다음 숭정 기원후 을해년(1635년) 가에 여빈의 손자 경리가 선조의 뜻을 되살려 생각하니 분개하고 한탄함을 견딜 수가 없어 소상을 들고 대궐문 앞에 가서 두 번 세 번 상소로 호소하여 다음 정축년(1637년) 겨울에 이르러 임금님께서 들어주시는 은혜를 입었 으나 서원을 세우지 못하여 오래도록 유교를 전하지 못하였더니 이십육년이 지나 임인년(1663)에 경리 의 아우 경뢰가 다시 선비들의 여론을 주도하고 여러 고을에 통문을 보내니 도내 여러 고을에서 협력함 으로서 비로소 추천으로 원장과 도유사를 선출하여 망지를 주고 선비들로 하여금 향사와 관리를 맡아 하게 하였으니 원장인즉 신명구공이고 도유사는 김경뢰공이니라. 이내 사당의 모양새가 엄숙하고 강당 도 훌륭하고 아름다워졌는데 선생의 오대손 봉상이 통제사 때 사당을 지어 새롭게 할 뜻으로 써서 스스 로 기문까지 지어 가지고 와서 벽에다 걸고자 하였으나 중첩으로 걸어둘 필요가 없었다. 봄가을의 향사 는 八 변팔 豆 로 문묘와 더불어 차이가 없게 하고 忌 日 의 제사는 사변사두로 다른 서원과는 스스로 다르 게 한즉 조정의 풍족한 보상이 이에 이르니 유감이 없다. 다시 팔년이 지난 기유년(1667년)에 충민공을 같이 붙여 모시고자 하는 일로 경뢰의 아들 중명이 류경하공과 더불어 소상을 받들고 대궐문 밖에서 호 소했으나 후사가 막은 바 되어 비록 임금님의 허락은 받지 못하였으나 조창집에 들어 있다고 대개 그렇 게 생각한다. 그러나 큰 흠이란 것은 원생 정원이 스물 명인데 현재 열명 미만으로 말미암아 지켜 보호 하는 절도가 점점 소홀해지고 서원의 규모와 모양새가 극히 쇠잔하니 진실로 은덕을 갚음에 그 법전이 부족함으로 또한 선비들이 탄식함이다. 젊은 선비들의 모임이 유독 우리 고장에서 뿐 아니라 여러 고을 의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뵈옵고 떠들썩하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서원이 모두 원생이 이십

26 1212 남해군지 팔 명이나 이 서원만이 홀로 그렇지 아니하다는 말은 참으로 민망하고 애석한 곳이니라. 구중궁궐에 한 번 상소하기가 쉽고도 어렵도다. 어떻게 하면 목적을 달성하리오. 이와 같이 답답한 세월이 백여 년이나 되고 중명의 아들 덕호와 종손 종한이 또한 뜻있는 선비라 조상의 서원을 세운 뜻을 추모하고 조정에서 충성을 표창하는 법전을 삼가 받들어 몸을 바쳐 일깨우고자 하나 그 때 누가 능히 실마리를 열어 앞장 서 여론을 인도할 것 인고 한 선비가 있으니 박성효군이라 성효인즉 덕호와 종한의 스승이니라 학문이 풍부하고 글씨가 힘 있고 예부터 지켜오는 예절에 민첩하고 통달한 고로 마음과 힘을 같이하여 산 넘고 물 건너기를 꺼려하지 않으니 호사스러운 여행 채비와 순탄한 길이 아닌데도 서류를 지니고 외나무다리 를 걷는 안타까움을 살피건대 충성을 사모하고 본받는 정성이라, 가로데 원생 정원이 이미 대법전의 조 례에 이루어져 있으며 규정대로 처분되었으므로 따라서 이십 명으로 오늘 다시 서원을 여는 때인즉 기 원후 계사년(1653년) 3월 이니라 서원의 차림새도 이로부터 차차 떨치게 되고 지켜 보호함도 점차 잘 짜임에 이르렀으나 아, 이 사람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 공을 이루었으리오, 이 할아버지가 서원을 창건 함이 있었고 손자가 다시 원생을 베풀었으니 공이 막대하고 덕은 어디다 비할 수 없느니라 무릇 착함을 상주고 아름다움을 나타냄은 선비의 일이나 서원을 세운 이래 다만 한 권의 조창집이 있었으나 원래 첫 머리에 게시한 글이 없었으며 지난 것을 이어서 오는 일을 열어줌이 실로 희미하여서 양반들의 마음이 심히 슬프고 애석해 함으로써 창수(세우고 보수함)를 기록하니 대저 창수란 두 글자의 뜻은 앞에 든 사 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큰 은혜와 많은 덕을 또한 느끼고 칭송함에 있어서 다음으로 그 중에서 큰 것을 뽑아 말하자면 忠 武 公 선생의 충성은 해와 달을 꿰뚫고 효도는 천지에 통하니 나라에서 대들보 같 이 깊이 돌봐주고 이어서 복을 입은 자손 길이길이 이어졌으며 대대로 이어받아 통제사의 책임을 맡 게 되었음이니라 사당을 다시 세우고 원장을 넓혀 쌓고 강당을 다시 꾸미고 문과 벽을 아름답게 한 것 이 창수의뜻이니라. 병사의 자리에 부임하면 곧 여기에 다달아 우러러 뵈옵고 선비들을 매우 정답고 친 절하게 대하고 한 가족 같이 봐주며 서원을 돌보고 지키는데 돈을 아끼지 않음은 도리이고 받들어 제 사 모심에 정성이 깊으니 이는 크고 큰 은전이니라 비록 누구라 지목하지 않으나 이 현판을 걸기 전후 의 창수의 덕은 실로 아산의 이씨가 시켜서 한 바가 명확하다. 오직 우리 선비들은 우러러 사모하고 높 여 받듬이 죽더라도 이지러짐이 없고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하여 기문을 지었다고 이렇게 말함. 임금님께서 (정조) 즉위하신지 3년 기해(1779)년 늦봄 갑자 전 도유사 류상렬 삼가 기록하고 이때 도유 사 정점이 썼다. 噫 穎 川 有 諸 葛 祠 首 陽 有 淸 聖 廟 地 之 相 去 千 有 餘 里 世 之 相 後 千 有 餘 歲 而 褒 忠 旌 節 國 家 盛 典 慕 忠 向 義 人 心 牧 同 故 以 地 名 相 似 猶 建 祠 廟 而 享 之 矧 此 露 梁 卽 忠 武 李 先 生 捨 身 殉 國 之 地 乎 粤 在 崇 禎 戊 辰 本 邑 儒 林 金 公 汝 贇 慨 然 發 歎 遂 與 士 人 高 承 厚 首 倡 建 祠 之 論 鳩 材 鏟 土 率 其 家 僮 創 一 間 草 屋 具 狀 呈 聞 其 時 御 使 閔 公 鼎 重 卽 令 其 時 統 制 使 鄭 木 益 改 而 新 之 因 營 立 石 頌 其 功 德 而 故 相 臣 洪 公 命 夏 以 事 聞 于 朝 孝 宗 大 王 特 賜 睿 覽 改 諡 忠 武 及 至 顯 廟 朝 又 賜 恩 額 是 以 於 斯 有 廟 而 牛 角 隘 下 窄 不 足 以 妥 靈 典 守 無 人 視 若 淫 祠 思 皇 尊 慕 之 誠 孰 不 掩 淚 長 吁 呼 哉 越 崇 禎 紀 元 後 歲 乙 亥 秋 汝 贇 之 孫 慶 履 追 思 先 志 不 勝 慨 然 本 章 叫 閽 再 疏 三 疏 越 至 丁 丑 冬 果 蒙 天 聽 未 及 建 院 長 庚 星 晦 斯 文 莫 傳 越 二 十 六 年 壬 寅 慶 履 之 第 慶 賚 更 倡 士 論 發 通 列 邑 道 內 合 事 始 圈 院 長 及 都 有 司 使 士 流 主 其 享 祀 典 其 守 護 院 長 卽 申 公 命 耈 都 有 司 金 公 慶 賚 也 廟 貌 嚴 肅 講 堂 翠 然 此 乃 先 生 五 代 孫 鳳 祥 統 制 時 以 肇 創 新 之 之 意 自 製 記 文 揭 于 壁 上 不 必 疊 床 春 秋 八 邊 之 亨 與 文 廟 無 間 諱 日 四 豆 之 祭 與 他 院 自 別 則 至 是 而 聖 朝 豊 報 無 憾 矣 越 至 八 年 己 酉 以 忠 愍 公 配 享 事 慶 賚 之 子 重 命 與 柳 公 經 河 奉 章 叫 閽 而 喉 司 所 阻 雖 未 得 允 許 疏 在 肇 創 集 中 盖 可 想 矣 然 而 一 大 欠 者 仍 存 祠 生 十 人 未 蒙 院 生 二 十 額 由 是 守 護 之 節

27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13 漸 疎 院 模 之 樣 極 殘 寔 爲 崇 報 之 欠 典 抑 又 士 林 之 歉 歎 靑 衿 聚 會 非 獨 此 邑 瞻 尋 士 子 多 至 列 郡 嘖 嘖 感 歎 曰 我 東 書 院 皆 有 院 生 二 十 而 此 書 院 獨 無 之 說 誠 爲 憫 惜 處 也 九 重 天 門 一 番 封 疏 易 之 難 矣 何 以 得 達 乎 如 是 鬱 悒 百 有 餘 年 重 命 之 子 德 琥 及 從 孫 宗 漢 亦 有 志 之 士 也 追 感 先 祖 創 院 之 意 敬 奉 朝 家 褒 忠 之 典 挺 身 鼓 說 其 時 疇 能 開 端 倡 論 耶 有 一 士 朴 君 聖 孝 孝 卽 德 琥 宗 漢 之 師 也 文 富 筆 健 敏 達 古 禮 故 一 心 共 力 不 憚 跋 涉 擔 帷 順 路 隨 車 控 牒 常 亻 勺 憐 察 慕 忠 之 誠 曰 院 生 定 額 旣 在 績 大 典 考 例 定 給 事 處 分 故 仍 以 二 十 生 今 日 復 設 時 則 紀 元 後 癸 巳 三 月 也 院 模 自 此 稍 振 守 護 漸 至 網 密 於 戱 微 斯 人 孰 能 成 此 功 乎 有 是 祖 之 創 建 書 院 有 孫 之 修 設 院 生 功 莫 大 焉 德 莫 比 也 凡 褒 善 旌 美 乃 儒 宮 之 事 而 建 院 以 來 但 有 肇 創 集 一 卷 元 無 弁 首 之 揭 繼 往 開 來 事 實 矇 朧 峨 冠 博 帶 心 甚 嗟 惜 故 以 創 修 爲 記 盖 創 修 二 字 之 意 不 專 美 於 右 洪 恩 盛 德 亦 感 頌 於 左 撮 其 大 者 而 言 之 忠 武 公 先 生 忠 貫 日 月 孝 通 天 地 故 眷 深 樑 木 福 履 蒙 之 子 孫 綿 綿 世 世 相 承 爲 統 制 之 任 也 重 建 廟 宇 廣 築 墻 屋 再 飾 講 堂 輪 奐 門 壁 此 創 修 之 意 也 爲 兵 使 之 莅 也 卽 臨 瞻 謁 待 士 款 曲 之 情 視 同 一 家 顧 護 書 院 散 金 爲 儲 之 道 誠 深 奉 祀 此 莫 大 之 恩 也 雖 不 敢 指 某 揭 板 前 後 創 修 之 德 實 賴 牙 山 李 氏 之 爲 使 也 明 矣 惟 我 士 林 景 慕 崇 奉 死 無 缺 焉 永 作 不 忘 之 記 云 爾 聖 上 堂 于 三 年 屠 維 閽 茂 季 春 甲 子 前 都 有 司 柳 相 烈 謹 誌 時 都 有 司 鄭 塾 書 충민공비( 忠 愍 公 碑 ) 장군은 국가의 충렬인이다. 통제사로서 만역 정유재란을 당하여 국가의 위태로움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국난을 막고 노량에서 운명하니 청산도 그대로 벽해( 碧 海 )도 예전처럼 흐르는 구나. 불초가 욕되게 이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여 오장지원( 五 丈 之 原.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공명이 위나라의 사마의(사마 중달)와 싸워 전사한 곳.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중달을 패주케 한[ 死 諸 葛 生 走 仲 達 ] 고사가 있 다. 충무공께서는 노량에서 유언으로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 하지 말라[ 戰 方 急 愼 勿 言 我 死 ]고 하여 왜군을 패주케 하였는데 공명과 충무공의 전사하실 때의 거취가 유사( 類 似 )함으로 노량을 오장원에 비 유했다)에 고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감추지 못했다. 봉록을 내어 장인( 匠 人 )을 모으고 언덕에 사 우를 세우나니 영혼은 향화에 의지하여 오래토록 안식하소서. 장군의 일월을 궤뚫는 충성은 세상천지에 알려졌으며 위대한 업적은 국사와 오성( 鰲 城 ) 이정승( 李 政 丞 )이 지은 바 행상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후 세에 알고자 하는 자 나의 누설( 陋 說 )로 약거( 略 擧 )한 것을 기대하지 말라. 덕수인으로 성은 이씨요, 휘 는 순신이라. 숭정계유(1633) 칠월 경술 행남해현령 이정건 기록하다. 將 軍 國 忠 烈 人 也 以 統 制 當 萬 曆 丁 酉 之 難 王 事 未 整 星 殞 於 露 梁 之 上 靑 山 不 改 碧 海 長 流 余 不 肖 辱 守 是 邦 吊 告 於 五 丈 之 原 不 覺 潛 然 出 涕 卽 損 俸 鳩 工 立 祠 是 原 永 屬 香 火 依 歸 良 有 以 也 將 軍 之 軒 天 地 貫 日 月 忠 偉 績 祥 在 國 史 及 鰲 城 李 相 國 所 撰 行 狀 後 欲 知 之 者 不 待 余 之 陋 說 略 擧 其 槪 德 水 人 姓 李 諱 舜 臣 也 崇 禎 癸 酉 七 月 庚 戌 行 南 海 縣 令 李 廷 楗 記 충무공비( 忠 武 公 碑 ) 오호라 선조 충무공께서 굳은 지조로 순국하신지 36년 계유에 남해현령 이정건( 李 廷 楗 )이 공의 충의에 감동하여 사우를 세워 신주를 모시고 또 짤막한 비석에 사적을 간략하게 새겼으나 전면의 각자시호 무 ( 武 )를 민( 愍 )으로 그릇 적었기로 여러 해 지낸 지금 불초가 욕되게도 호남 좌수영 절도사가 되어 벌석 ( 伐 石 )하여 고쳐 쓰나니 희( 噫 )라 선조의 풍성한 공훈과 위열은 천지에 걸려 있고 일월같이 밝고 빛남을 우암 송선생이 묘전비문( 廟 前 碑 文 )에 상세하게 기록한 바 굳이 이 비의 유무( 有 無 )를 따지리오. 이후( 李

28 1214 남해군지 候 )는 공의 공덕을 사모하고 높이 보답하는 정성으로 입석한 것이나 묘전비와 병립함이 불가함으로 비 석과 더불어 민자( 愍 字 )를 매몰하는바 그 전말을 기록하여 후세에 볼 수 있도록 대비하노라. 숭정기원후재계추 12월 일 5대손 명상이 울면서 씀 鳴 呼 先 祖 忠 烈 公 立 慬 後 三 十 有 六 年 癸 酉 南 海 縣 令 李 廷 楗 感 公 忠 義 建 祠 妥 靈 又 立 短 碣 略 記 事 蹟 而 仍 前 面 所 刻 諡 號 以 武 爲 愍 何 其 錯 子 也 歲 歷 于 今 不 肖 適 參 湖 左 節 度 伐 石 以 改 之 噫 先 祖 豊 功 偉 烈 軒 天 地 炳 日 月 於 尤 庵 宋 先 生 所 撰 廟 碑 詳 且 盡 矣 固 不 待 於 是 碣 之 有 無 而 若 其 李 候 景 慕 崇 報 之 誠 不 可 以 幷 與 石 埋 沒 故 書 記 顚 末 以 備 後 之 覽 者 爾 崇 禎 紀 元 後 再 癸 丑 十 二 月 日 五 代 孫 命 祥 泣 書 비갈( 碑 碣 ) 有 明 朝 鮮 國 三 道 水 軍 統 制 使 贈 諡 忠 武 李 公 廟 碑 ( 顯 宗 五 年 [ 一 六 三 ] 七 月 日 追 刻. 宋 時 烈 撰 ) 忠 愍 公 碑 ( 崇 禎 癸 酉 七 月 庚 戌 [ 一 六 三 三 ] 行 南 海 縣 令 李 廷 楗 記 ) 忠 武 公 碑 ( 崇 禎 紀 元 後 再 癸 丑 [ 一 七 九 三 ] 十 二 月 日 五 代 孫 命 祥 泣 書 ) 嘉 善 大 夫 三 道 統 制 李 公 泰 祥 之 碑 ( 崇 禎 三 壬 年 [1882] 五 月 立 監 造 前 判 官 文 景 一 ) 충렬사한글비(대한민국 30년 12월 일 정인보는 짓고, 김충현은 쓰다) 行 郡 守 鄭 任 煥 功 績 碑 ( 檀 紀 四 二 八 五 年 壬 辰 三 月 日 南 海 忠 烈 祠 慕 忠 會 建 ) 현액판( 懸 額 板 ) 忠 烈 祠 創 建 記 ( 于 三 年 屠 維 閽 茂 季 春 甲 子 [1779] 前 都 有 司 柳 相 烈 謹 誌 時 都 有 司 鄭 塾 書 ) 露 梁 書 院 ( 露 梁 淸 海 樓 ) 懸 板 ( 崇 禎 紀 元 后 三 壬 戌 [1802] 三 月 日 星 山 後 人 李 萬 龜 謹 識 ) 露 院 門 樓 重 修 記 ( 崇 禎 紀 元 後 四 丁 丑 [1817] 十 一 月 南 至 日 都 有 司 金 宗 浩 謹 誌 ) 碑 閣 補 修 記 ( 隆 熙 元 年 [1907] 菊 秋 十 一 代 孫 宗 有 司 敏 承 十 代 孫 奎 潽 謹 泣 書 監 董 鎭 南 忠 烈 院 齋 任 洪 鍾 勛 ) 忠 烈 祠 重 創 記 ( 歲 丁 卯 [1927] 季 春 節 振 山 河 謙 鎭 記 ) 忠 烈 祠 重 建 記 ( 壬 申 [1932] 春 三 月 日 ) 忠 武 李 公 事 蹟 한글 碑 築 臺 工 事 記 ( 檀 紀 四 二 八 二 年 己 丑 (1949) 十 月 日 南 海 郡 慕 忠 會 ) 忠 烈 祠 宿 直 舍 建 築 記 ( 壇 紀 四 二 八 三 年 庚 寅 [1950] 十 一 月 日 鄭 柱 瀯 書 ) 慕 忠 會 特 捐 諸 氏 及 事 功 記 ( 檀 紀 四 千 貳 百 八 十 七 年 [1954] 甲 年 九 月 日 南 海 忠 烈 祠 慕 忠 會 ) 故 鄭 公 民 柱 民 三 世 獻 誠 事 實 並 壬 辰 記 念 行 事 記 ( 檀 紀 四 二 九 丁 酉 年 [1957] 二 月 日 南 海 忠 烈 祠 慕 忠 會 ) 忠 烈 祠 位 土 還 元 事 實 記 ( 檀 紀 四 千 二 百 九 十 年 [1957] 丁 酉 二 月 日 南 海 忠 烈 祠 慕 忠 會 ) 대통령 각하 참배 기념(서기 1965년 4월 21일 남해충렬사 회장 김범두) 忠 烈 祠 丹 雘 記 ( 檀 紀 四 二 九 八 年 [1965] 四 月 二 十 八 日 ) 南 海 忠 烈 祠 補 修 記 (단기 4324(1991)년 4월 일 남해충렬사 모충회 회장 이영래, 부회장 이춘홍 이 대기, 총무 정수호, 관리인 강한중 방명기) 忠 烈 詞 ( 後 援 會 謹 修 揭 板 )

29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 명승 (1)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 논 지정번호 및 일자 : 명승 제15호, 소 재 지 : 남해군 남면 홍현 777번지외 규 모 : 195,428m2 시대 및 관리자 : 선사시대 남해군 망망대해가 손바닥에 노니는 생명선의 원점에 인간이 만들어 낸 억척스러움이 산허리를 타고 다랭이논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은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을 아래 바 다와 인접해 있는 곳에 암수바위가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로 1990년 1월 15일에 지정되 어 있는데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다. 해안에서부터 설흘산까지 가파른 경사에 층층이 3평에 서 3백 평에 이르고 지표가 생긴 대로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다. 설흘산과 응봉산에서 흐르는 두 계곡에는 참게를 비롯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뒷산에 는 엘레지, 용담, 춘란, 구절초, 원추리 등 야생 식물들이 자생할 뿐 아니라 앞 바다에는 풍 부한 해산물과 어류들이 노닐고 있다. 마을 인심은 넉넉한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니 마치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가족과 같은 곳으 로 착각하기도 한다. 이 마을에는 61가구에 149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며 김해 김씨 와 이씨가 많고 그 외 조씨, 하씨, 손씨, 문씨, 강씨, 권씨 등이 마을에 들어와 상부상조하며 살고 있다. 마을 아래는 해안이지만 어업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을 간 천( 間 川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내( 川 )가 흐르기 때문에 간천 이라 불렀지만 하나의 내에 하나를 더했다는 가천의 뜻은 서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지형을 보면, 뒤로는 설흘산 봉수대와 응봉산 육조문이 지키고 앞으로는 수평선이 보이는 앞에 삿 갓섬으로 불리는 소치도가 하늘을 뚫고 있다. 마을 가운데 밥 무덤에 금줄이 쳐져 있고 위쪽 에 2~3백년으로 보이는 이팝나무와 아래쪽에 미륵바위가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15번째 명승으로 지정된 다랭이 논은 자연을 그대로 살리면서 층층을 직각으로 돌담을 쌓아 필요 없는 한 치의 땅도 허용하지 않았고 윗 담이 허물어지면 아랫배미가 묻혀 버릴 정도의 작은 땅도 일궈낸 억척스러움에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는 마을 아래 미륵 불의 자비심에 가피된 사람들의 정성과 성실성에서 비롯된 산물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까 한다. 고려시대 중기 기록인 고려도경 (1123)에 이렇게 적고 있다. 평지가 적기 때문에 산

30 1216 남해군지 전을 많이 만드는데 그 지형의 높낮이가 있어 경작하기가 무척 힘들며, 멀리서 바라보면 사 다리나 계단과 같다 라고 했다. 특히 남해는 한정된 토지뿐이다. 4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바다가 가로 막혀 있고 뒤로는 표주박 같은 산(67.5%)들이 많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도달했기에 산비탈까지 전답을 개간한 것 같다. 남해 농경지는 전면적 357.3km2 중 80.87km2로서 22.6%뿐이다. 이런 지형을 가지고 있는 남해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산 높은 줄 모르고 힘닿는데 까지 계속 오르다 보니 산 중턱까지 전답을 개간하 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이곳이다. 두 평 정도 되는 논이 있는데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이러하다. 어느 날 농군이 하루 종일 논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 논을 헤아려 보니 한 배미가 없어졌다. 몇 번이고 세어 보아도 똑 같았다. 결국은 포기 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벗 어둔 삿갓을 드니 그 밑에 한 배미가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작은 땅도 논밭으로 만 들어 경작했다는 억척같은 농부의 이야기이다. 가천은 2002년에 환경부로부터 자연생태 우수마을, 녹색경영대상 수상, 아름다운 마을 가 꾸기 장려상 등을 수상하였고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었다. 천혜의 자연 경관과 살아 있는 생태계에 농촌의 옛 정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1월 3일 다랑이 논은 국가명승지 15호로 지정되었다. (2) 남해 금산 지정번호 및 지정일자 : 명승 제39호, 소 재 지 :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57-1외 7필 규 모 : m2 관 리 자 : 한려해상국립공원 남해 금산 은 지리산맥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형성된 산으로 원래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산 이름이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 단 금( 錦 )자를 써 금산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금산은 영남에서는 합천의 가야산, 방장산(지리산)과 자웅을 겨루고 중국의 남악( 南 嶽 ) 에 비견되기도 했으며, 바다 속의 신비한 명산이라 하여 소금강산 혹은 작은 봉래산 ( 蓬 萊 山 )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산이 작은 봉래산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명산으로 칭 송을 받게 된 것은 멀리 떨어진 남해의 섬 속에서 다시 아득한 섬과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우

31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17 뚝하게 솟은 돌산이라는 점에서 유람객에게 속세를 떠난 신비감을 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 다. 남산은 다도해에서 유일한 큰 체적의 화강암 산임에도 불구하고 토산 성격이 강해 남해 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엽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가을이면 마치 오색 자수판을 보는 듯하 며 대규모의 낙엽수림이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아낸다. 이 밖에도 신라 고승인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중국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왔다갔다는 서불의 이야기가 담긴 서불과차암 과 춘 추분 때만 볼 수 있다는 노인성(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별, 老 人 星 또는 壽 星 )과 관련된 전설 등 신비스런 전설이 많은 곳이며, 전국의 3대 기도도량인 보리 암이 위치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명승지이다. 해발 681m의 금산( 錦 山 )은 한려해상국립공원( 閑 麗 海 上 國 立 公 園 ) 가운데 유일한 산악공 원( 山 岳 公 園 )이다. 예부터 남해 소금강( 小 金 剛 )으로 알려진 산으로 기암( 奇 岩 )과 괴석( 怪 石 ) 이 어울려 자연석굴인 쌍통문( 雙 通 門 )을 비롯한 38경( 景 )으로 절경을 이룬 곳이다. 신라시 대( 新 羅 時 代 )에 원효대사( 元 曉 大 師 )가 보광사( 普 光 寺 )를 창건하였다고 하며, 현재는 신라( 新 羅 ) 신문왕( 神 文 王 ) 3년(683)에 기도처로 창건된 보리암( 菩 提 庵 )이 자리하고 있다. 4) 천연기념물 (1) 미조리의 상록수림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29호, 소 재 지 :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산121번지 외 3필 규 모 : 수림면적 3,437m2 시대 및 관리자 : 미상, 남해군 미조 상록수림은 남해 어업 전진기지인 미조 항을 가기 전 마을 입구에 방풍림으로 수종은 개계피나무, 팔손이, 후박나무, 후피나무, 구피나무, 섬옻나무, 물밤나무, 막나무, 단청나 무, 사철나무, 쇠고피나무, 보리수나무, 후피향나무 등 총 231 주가 집중적으로 군생한다고 도세( 都 勢 )나 람( 覽 )에 기록하고 있다. 경상대 논문집 중 남해도의 수목 -노거수와 특수수림- 에 의하면, 총 36과 44속 62 종으로 상록 활엽수 17종, 낙엽 활엽수 45종 교목 23종, 관목 24종, 만목 15종으로 다소 복 잡한 수성을 보여 문화재적 의의가 한층 깊은 것으로 사료된다고 한다. 상록수로는 해송, 졸

32 1218 남해군지 참나무, 모람(뽕나무), 생달나무, 후박나무, 참식나무, 육박나무, 돈나무, 꼭지윤노리(배나 무), 윤노리, 개산초나무, 감탕나무, 사철나무, 사스레피(차)나무, 보리밤나무(보리수), 송 악, 자금우, 광나무, 털마삭줄, 이대(벼과) 등이고, 낙엽수로는 굴피나무, 개시(자작)나무, 구실잣밤나무, 폭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천선과나무, 좁은잎천선나무, 좀깨잎나무, 으아 리, 사위질빵, 으름덩굴, 댕댕이덩굴, 생강나무, 고광나무, 까치밥나무, 국수나무, 멍석딸 기, 복분자딸기, 찔레나무, 조록싸리, 싸리, 골남초, 쉬나무, 초피나무, 예덕나무, 회잎나무, 화살나무, 개머루, 가새잎개머루, 보리수, 말채(층층나무), 검노린재, 때죽나무, 이팝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 누리짱, 계요동, 덜꿩나무, 청미레덩굴, 청가시덩굴 등이다. 상록수 림 조성 동기는 마을의 해풍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된 어부림인데 전설로는 풍수설에 의해 지형적 결함인 마을 노출을 막고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과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 숲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 숲이 우거지면 이 마을에서 뛰어난 인재가 나타난다고 하여 숲을 해 치는 일이 없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2) 물건 방조어부림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150호, 소 재 지 :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39-3번지 규 모 : 수림면적 25,091m2, 길이 약 1.5km, 넓이 30m, 높이 11m 시대 및 규모 : 미상, 남해군 물건 방조어부림은 해안 몽돌 밭을 따라 반원형으로 무성하게 고목으로 형성되어 있다. 나 무의 종류는 느티나무, 포구나무, 게엄나무, 마개목, 개가죽나무, 아구사리나무, 물재목, 구 림목, 뽈동나무, 사람주나무, 벚나무, 때독나무, 소나무, 참나무, 돌배나무, 돌쨍이나무, 개 방맹이나무, 유너리, 옻나무, 굴태나무 등으로 일만 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수령은 300년 이상이다. 숲을 이루게 된 동기는 바다 바람이나 해일 등의 피해를 막고 숲 그늘이 지면 고 기들이 많이 모여 들기 때문에 조성되어 졌다. 숲이 조성된 이후 숲을 잘 보호한 결과 마을 에 각종 재난이 없고 해일 해풍 등을 막는데 도움이 컸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숲은 전주 이씨 무림군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방풍림으로 조성하였는데 100년 전(병술년) 흉 작으로 이 숲을 벌채하여 수림의 초근목피로 연명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200년 전에도 흉 년이 들어 국가 공용전을 납부할 능력이 없어 수림을 벌채 매각하여 공용전에 충당하였던바 불의의 천연재해와 폭풍우가 닥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숲을 헤치면 마 을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 그 이후로는 숲을 헤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33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19 경상대 논문집 중 남해도의 수목 -노거수와 특수수림- 에 의하면, 총 36과 51속 63 종으로 상록활엽수 4종, 낙엽활엽수 59종이며 교목 29종, 관목 19종, 만목 15종으로 상당 한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조사된 상록수로는 사철나무, 보리밤나무, 송악 등이고, 낙엽수로는 굴피나무, 개서나무, 상수리, 굴참나무, 폭나무, 참느름, 푸조나무, 팽나무, 느 티나무, 천선과, 구지뽕, 종깨잎나무, 으아리, 사위질빵, 댕댕이덩굴, 백동백, 일본까치밥, 까치밥나무, 고광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꼭지윤노리, 찔레나무, 멍석딸기, 복분자딸기, 자귀나무, 아까시아, 칡, 쉬나무, 초피나무, 에딕나무, 사람주나무, 광대싸리, 옻나무, 붉나 무, 회잎나무, 화산나무, 말오줌대, 모감주나무, 무환자나무, 가마귀베게, 털갈매나무, 개머 루, 가사잎개머루, 보리수, 박쥐나무, 말채나무, 고욤나무, 검노린재, 아팝나무, 쥐똥나무, 털마삭줄, 누리장나무, 계요동, 덜꿩나무, 괴불나무, 인동넝쿨, 청미레덩굴, 청가시덩굴 등 이다. (3) 남해 산닥나무 자생지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152호, 소 재 지 :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산 99-1번지 규 모 : 수림면적 9,917m2 시대 및 관리자 : 미상, 화방사 산닥나무는 팥꽃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서 키는 1m 내외이다. 나무껍질의 섬유 는 고급 인쇄지를 만드는 원료가 되며, 경기도, 강화도, 전등사 부근 산지와 남해 화방사 주 변 여러 곳에 자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물산에 왜저라고 수록한 것이 산닥나무의 섬유 이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져왔고 강화도, 완도, 남해도, 거제도, 창녕 등지에 심 었다고 한다. 이것은 도래종의 재배 식물로서 자생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전주에 털이 없 고 잔가지가 가늘고 녹색이며,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며 잎이 부드럽고 끝이 다소 뾰족하 며 길이가 2.5~4.5cm, 너비가 1~2.5cm 뒷면은 백색을 띠며 8~9월경에 잔가지의 끝 쪽 에 10개 내외의 꽃이 군데군데 모여 핀다. 꽃받침은 황색이며, 꽃받침통의 길이가 5~7mm 이고 열매는 달걀모양인 타원형인데 길이가 약5mm 정도이다 8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으며 위쪽에 있는 4개의 수술 꽃 밥은 꽃받침 통 밖으로 다소 나오고 밑쪽 4개 꽃 밥은 꽃 받침 통 위쪽에 붙는다. 열매는 짧은 자루가 있으며 털이 없고 10월경에 익는다. 현재 자생 하고 있는 산닥나무는 우거진 소나무, 잡나무 아래에서 자생하고 있어 생육 상태가 좋지 않 아 화방사 옆 양지 바른 곳에 이식하여 관리하고 있다.

34 1220 남해군지 산닥나무가 자생하는 화방사에 지소가 있어 한지를 생산하였다. 화방사의 옛 기록 중 각 항 진상지의 본전에 대한 순영방의 등서 에 한지 종류와 가격을 정해 놓았다. 장지( 壯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8말, 백지( 白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4말, 밀지( 蜜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7말, 명지( 名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0말, 선자백색지( 扇 子 白 色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5 말, 정초지( 淨 草 紙 ) 매장( 每 丈 ) 값 벼 4말, 설화지( 雪 花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2섬 12말, 청화 지( 靑 花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2섬, 옥색지( 玉 色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섬 10말, 도화지( 桃 花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섬 9말, 계본지( 啓 本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섬 5말, 황국지( 黃 菊 紙 ) 매 권( 每 卷 ) 값 벼 1섬 4말, 운람지( 雲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섬 4말, 죽청지( 竹 靑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섬, 전문지( 錢 文 紙 ) 매장( 每 丈 ) 값 쌀( 米 ) 2말, 대내수리지( 大 內 修 理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0말, 대회준지( 大 回 준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2말, 소회준지( 小 回 준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0말, 소첩지( 梳 帖 紙 ) 매장( 每 丈 ) 값 벼 3말, 곡삼지( 曲 衫 紙 ) 매장( 每 丈 ) 값 벼 4말, 사 장지( 謝 壯 紙 ) 매권( 每 卷 ) 값 쌀 4말, 유승지( 油 繩 紙 ) 매장( 每 丈 ) 값 쌀 2말 6되, 입모지( 笠 帽 紙 ) 매장( 每 丈 ) 값 벼 1말 5되, 후백지( 厚 白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4말, 석계장지( 釋 癸 壯 紙 ) 매 권( 每 卷 ) 값 쌀 3말 2되, 초백지( 草 白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말 5되, 유후지( 油 厚 紙 ) 매장( 每 丈 ) 값 쌀 재감( 裁 減.값을 낮춤)하여 3되 7홉 5줌, 백후지( 白 厚 紙 ) 매장( 每 丈 ) 값 쌀 재감하 여 3되 7홉 5줌, 초주지( 草 住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2섬, 저가지( 楮 佳 紙 ) 매권( 每 卷 ) 값 벼 1 섬 5말, 상화지( 霜 花 紙 ) 매권( 每 卷 ) 값 쌀 5말, 본관( 本 官 )이 간혹 당상( 堂 上 )이 되는 가제( 嘉 制. 좋은 일)가 있으면 전례( 前 例 )로 전2냥씩. 이러한 종이의 질에 따라 값을 정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보아 한지를 대규모로 제작하 였음을 알 수 있다. (4) 남해 고현면의 느티나무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276호, 소 재 지 :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732-1번지외 3필 규 모 : 면적 418m2, 수목 높이 약 17.5m, 둘레 9.3m 시대 및 관리자 : 미상,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 마을 앞 들판 한가운데 자라고 있는 느티나무는 높이가 17.5m, 흉고 둘레 가 9.3m인 노거수로서 수령이 약 5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관의 크기가 동쪽 가 지에서 서쪽가지까지 27m, 남쪽가지에서 북쪽가지까지 25m나 된다. 구전에 의하며, 약 500여 년 전에 이 마을 이장이며 부농인 유동지씨가 자기 논의 한 가운데인 냇가에 나무를

35 제10편 문화 관광 예술 1221 심어서 여름철에 농사를 관리하며 휴식처로 삼아 왔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알 수 없으나 해방 후에까지도 매년 여름철이면 이 나무 밑에서 마을 회의를 열고 좌상, 공원, 총각, 대방이라는 임원을 선출하기도 하고 논메기 등 두레를 계획하기도 했으며, 명절에는 술과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을의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전해온다. (5) 남해 창선면의 왕후박나무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299호, 소 재 지 : 남해군 창선면 대벽리 699-8번지외 5필 규 모 : 면적 707m2, 높이 9.5m, 밑 둥 둘레 12.6m, 밑 둥에서 11개가지, 지면 부 둘레 11m, 윗 부분의 넓이동서 21.2m, 남북 18.3m 시대 및 관리자 : 미상, 남해군 왕후박나무는 녹나무 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서 수령은 약 500년이 된다. 구전의 의하 면 약 500년전 이 마을에 늙은 부부가 살면서 할아버지는 매일 고기잡이를 하여 생계를 꾸 려가던 중 어느 날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았는데 고기 뱃속에서 씨앗이 나와 이상히 여겨 씨 앗을 집 앞 뜰에 심었더니 싹이 트고 자란 것이 왕후박나무라고 전하고 있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잎이 맑고 사철 푸르며 빛을 반사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매 년 섣달 그믐날이면 동제를 지내고 풍년 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옛날부터 이 마을에는 대나무 숲이 많았다고 하며 이충무공이 정 유재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 마을에 있는 대나무와 짚 등을 배 위에 잘라 싣고 배 위에 불을 놓았더니 대나무 마디 터지는 소리가 큰 대포 소리 같아 왜적들이 놀라서 도망 을 쳤는데 왜놈들을 뒤쫓던 우리 군사가 이 왕 후박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 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6) 남해 가인리 화석산지 지정번호 및 일자 : 천연기념물 제499호 소 재 지 :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산60-20번지 외 1필지 규 모 : 면적 3,000m2. 용각류 수각류 조각류 공룡발자국, 나무화석, 빗물화석 등 시대 및 관리자 : 중생대, 남해군 가인리 해안에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지이다. 이 곳 가인리 해안에서는 함안층의 몇 개 층 준에서 공룡발자국 화석 200여 점이 발견 보고되었다. 그 중 바다로 기울어져 있는 약 80m2 의 세립질 사암의 성층면 위에 4마리의 용각류, 조각류, 수각류 발자국이 50여 개 발견된다.

36 1222 남해군지 이 밖에 사람의 발자국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2족 보행 용각류의 발자국 보행렬 5개가 교차 상으로 약 60여 개가 찍혀 있다. 창선의 화석들을 조사 보고한 서승조(진주교육대학) 박사가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출지의 위치 및 지질 : 창선면 가인리의 북쪽 해안에 함안층의 최상부에 해당한다. 암 질은 세립질 사암으로 암회색을 띠고 있다. 지층의 주향은 대략 남북향이며 경사는 동쪽(바 다쪽)으로 약 30도 기울어져 있다. 화석 종류 : 용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중형의 용각류에 속하는 발자국 22개가 동에 서 서로 이동하며 발자국의 길이가 55cm 폭이 40cm이며 보폭은 약 200cm이다. 조각류 공 룡발자국 화석 하나는 3개의 발자국이 암반 상단에서 좌로 이동하고 이보다 서쪽에서 같은 모양의 발자국 4개(2개는 서로 겹침)가 보이며 아마도 한 마리의 공룡에 의해 찍혀진 것으로 보인다. 발자국의 길이가 27cm 폭이 16cm이다. 긴 3개의 발가락이 뚜렷이 보인다. 보폭은 약 80cm 정도이다. 조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 둘은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 상단에 2개가 보인 다. 발자국 길이가 27cm이고 폭이 18cm 보폭은 86cm이다. 전자에 비해 발가락이 뭉뚝하 고 짧다. 조각류 공룡 발자국 화석 셋은 왼편 아래의 우측으로 이동하는 3개의 발자국이 보 인다. 조각류와 형태가 비슷하다. 수각류 화석 하나는 암반 좌편에 2개가 보인다. 날카로운 발톱구조를 잘 보여준다. 발자국 길이는 35cm 폭은 25cm이며 보폭은 2개의 발자국 사이 (약 4.5cm)에 있음직한 발자국이 관찰되지 않아 측정이 불가능하다. 수각류 화석 둘은 발자 국 형태가 사람 발자국과 흡사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종이다. 6개의 보행열을 보여주고 있으며 총 45개가 관찰된다. 발자국의 길이는 평균 27cm이며 폭이 12cm이다. 보폭은 평균 50cm전후이다. 따라서 발자국의 모양과 보폭에서 성인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1996년 발 견 및 발표 때 익룡의 발자국으로 발표한 적이 있으나 그 후 관련학자들과 수차례 토의한 결 과 새로운 종의 수각류일 것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종이다. 학술적 가치 : 좁은 면적에 여러 종의 공룡 발자국이 동시에 산출되는 것은 당시 공룡의 종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당시 공룡의 생태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사람 발자국 모양의 공룡 발자국은 앞으로 연구 대상이다. 국내외 많은 학자(임성규, 양승영, Martin Lockley 등)들의 관심을 모우고 있다. 4. 도 지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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