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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운호 / 편집부장 : 박혜영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 팩스(02) (화요일) vol. 215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김종영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한국에서 미국 유학파 엘리트의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현대의 신화란 본디 그 근원을 감춤으로써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 양 스스로를 자랑스레 전시한 다. 김종영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작년에 펴낸 지배받는 지배자 에서 이러한 한국 학벌사회의 폐쇄성과 허구성을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와의 위 계 속에서 정치하게 분석해냄으로써 학계와 대중 모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에 본보는 지난 5월 26일(목), 김종영 교수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 땅에서 학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 세상과 만나는 창 Q. 지배받는 지배자-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대다수의 교수님들이 미국 유학파였습니다. 물론 학문적으 로 뛰어나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셨죠. 그분들이 어떻게 대 학에서 그렇게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느냐는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되는 의 문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보기보다 간단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심층적으로 분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제가 전공이 지식사회학과 과학기술사회학입니다. 글로벌 지식 위계가 어떻 게 작동하는지를 미국 유학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근접 해보려 했죠. 당시로서는 이런 종단연구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동일인을 추적해 서 그 사회적 궤도를 그려보는 것인데 쉽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에서는 선례도 드물었죠. 미국에는 그래도 종단연구가 꽤 있는 편입니다. Jay MacLeod의 Ain't No Makin' It 이라든가, Annette Lareau의 Unequal Childhoods 같은 책을 대학원 때 접하면서,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하는 아이디어를 얻었 습니다. Q. 이 한 권의 책을 내는 데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5년간 110명 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값진 성과라 생각됩니다. 혹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해보지 않으면 이게 잘 이해가 안 갈 텐데, 사실 대 단한 집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죠. 연구 초기 단계에서 멈췄었다면 이정도 분 석이 결코 안 나왔을 겁니다. 분명히.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간에 질문이 중 요합니다. 질문이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죠. 물론 중간에 힘든 부분 이 많았지만, 미국 유학 경험을 가진 인터뷰이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애플이나 구글 직원들, 한국의 대기업 직장인들, 미국 유수의 대학 교수들을 만날 기회란 사실 흔치 않거든요. 연구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죠. 고통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잘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한편으로 연구자로서,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세심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분 한분의 인터뷰이들이 굉장히 소중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다양한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깊이 감사드 리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굉장히 풍부한 경험과 밀도 있는 지식을 제고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2면에서 계속 지 기 획-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위험관리책임 면 인문학술 -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안 과학학술 - 플라즈마 내 영화비평-<곡성 哭聲>(2016) 3 4~5 6~7 8 문화비평-여성혐오 테마서평- 밀란 쿤테라 책 지 성 -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보도기획 - 대학원 진학에 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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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요일) vol. 215 비 평 영화비평: <곡성 哭聲>(2016) 미끼, 그 의도된 뻔뻔스러움 *다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곡성 哭聲>이 개봉한 지 20여 일이 지 났지만 이 영화에 대한 인터넷상의 논쟁(?) 은 식을 줄 모른다. 대체로 기자나 평론가 들은 걸작이 나왔다고 극찬하는 쪽이다. 아 니 적어도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 로 몰입하게 만드는 극적 흡인력에 찬사를 보낸다. 여기에 나도 동의한다. 적어도 긴 장감 있는 리듬으로 서사를 전개시키는 나 홍진 감독의 재능은 칭찬해 줘 마땅하다. 관객들의 반응은 명확하게 호불호가 나뉜 다. 어떤 이들은 풀리지 않는 퍼즐을 맞추 는 데 열광하고, 어떤 이들은 서사의 허점 을 비난한다. 사실, 기자, 평론가들도 역작 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찜찜한 구석을 무시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찜찜한 구석을 일거에 날려버릴 어떤 명쾌한 해석 을 할 생각도, 의도도, 능력도 없다. 애초부 터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 이다. 이 글은 <곡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 아니라(이미 네티즌들의 경천동지할 해 석들은 인터넷상에 차고 넘친다) <곡성>이 눙치고 지나간 것들을 영화장르의 규칙에 입각해 찬찬히 되짚어보면서, <곡성>같은 영화를 낳은 미디어 환경에 대해 짧게 덧붙일 것이 다. 장르의 규칙과 영화언어의 일탈 <곡성>은 외지인 이라 불리는 일본인이 낚시에 미끼(떡밥)를 끼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많은 이들이 거론했듯이, 이것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거대한 미끼로 채워질 거라는 걸 암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의 공식 포스터에서 유일한 카피는 절대 현혹되지 마 라 다. 이는 영화의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보내는 메시지이자, 관객들에게 정신 차리고 이 영화를 따라오라는 감독의 큐 사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마치 <살인의 추억>(2003)처럼 시골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과는 달리 개인(여성)에게 가해지는 강력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집단학 살이다. 살인과 방화, 학살당한 사람과 겨우 살아난 사람들의 몸에 난 의문의 두드러기, 피해 자들이 짐승처럼 난폭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관객의 의문은 증폭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은 야생 독버섯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의 중반부에는 야생 독버섯이 일으킨 가공할 사고에 대해 전하는 TV뉴스가 뒤따른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영화라면 이 문 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의문의 사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의 몸에는 두드러기가 나고 눈을 까뒤집으면서 짐승같이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가? 영화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주 는 대신 다른 장르로 이동한다. 여기서 다른 장르란 공포영화의 하위장르인 오컬트(occult)다. <엑소시스트 The Exorcist>(1973), <오멘 The Omen>(1976) 등의 영화로 대변되는 오컬트는 한국의 공포영 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장르는 서양의 기독교가 갖고 있 는 명징한 선과 악의 세계관에 기초하고 있으며, 유일신(여호와)을 부정하는 적그리스도를 다룬다. 이런 맥락은 한국적인 차원에서 샤머니즘과 주술로 변이된다. 종구의 딸 효진(김환 희)이 악몽에 시달리다 귀신이 들리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무속인 일광(황정민)을 불러온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 효진이 걸린 병(?)은 앞선 피해자들과 같은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 이다. 피해자들이 외지인과의 접촉 혹은 상해에 의해 그렇게 된 것처럼 효진 역시 그러한 추 측을 가능하게 하는 서사가 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는 장르적 차이가 있다. 앞선 피해자 들은 물리면 감염되고 또 다른 이들을 물어 감염시키는, 공포영화의 또 하나의 하위장르인 좀비(zombie)에 가깝다. 그에 비해 효진은 오컬트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귀신들린 아이인 것이다. 이 아이가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맞지만 짐승처럼 난폭해지거나 눈을 까뒤집으 며 남을 물지는 않는다. <곡성>은 이렇게 여러 장르에서 수많은 규칙과 관습을 이리저리 섞어놓는다. 물론, 그것 은 탓할 일이 아니다. 장르란 그 자체로 혼합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광과 외지 인이 주술을 겨루는 것을 교차 편집한 장면에서 죽었던 박춘배가 갑자기 살아나는 것은 오 컬트가 아닌 좀비영화를 연상시키지만 이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주자. 문제는 이 영 화가 영화언어의 일탈을 장르의 규칙(과 일탈)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앞선 문장에서 일광과 외지인이 주술을 겨루는 것 이라고 썼지만 이는 정확한 표 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둘이 한패일 수도 있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에 가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눈 밝은 네티즌들은 일광이 처 음 등장할 때 일본처럼 왼쪽 차선으로 차 를 몬 것, 그가 외지인이 입는 훈도시를 입 고 있었던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지인 이 살인한 자들의 사진을 모은 것처럼 그 역시 사진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이를 추 측한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짓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가 설명돼야 한다. 우선, 일 광이 소위 살(煞)을 날리는 굿을 할 때, 이 에 질세라 외지인도 일본식 제의(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태국식 제의에서 가져온) 를 한다. 일광은 효진에 들씌운 살을 날리 는 거겠지만 이 장면은 일광의 주술, 그에 goksung.modoo.at 고통스러워하는 효진의 모습, 그리고 자신 의 거소에서 제의를 하는 외지인의 모습으 로 교차 편집된다. 즉, 이것은 명백하게 효 진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주술의 대결인 것이다. 심지어, 외지인은 일광의 주술에 걸려든 것 처럼 고통스러워한다. 종구가 고통스런 효진을 보다 못해 주술을 멈추게 하자 거의 죽은 줄 알았던 외지인은 깨어난다. 그 이후 장면에서 종구와 친구들이 외지인에게 린치를 가할 때 그의 모습은 그저 약한 늙은이나 다름없어 동정심마저 자아낸다. 이 장면들은 도대체 무엇 이란 말인가? 만약 둘이 한 패라면 이 장면들은 관객의 눈을 속인 것이다. 둘째, 일광은 무명(천우희)을 보고 그 기에 눌려 피를 쏟는다. 그러면서 종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살을 잘못 날렸다고, 즉 마을 사람들과 효진을 그렇게 만든 것은 외지인이 아 니라 무명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진심으로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것처럼 제시되는데, 둘 이 한 패인 것이 맞다면 이 역시 논리에 어긋난다. 영화의 편집은 무명을 보고 자신의 실수 (하지만 둘이 한패라면 실수란 건 있을 수 없다!)를 깨달은 일광이 이를 종구에게 알리는 것 이외에 다른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주술이 외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효진을 향한 것이라 해도 3중의 교차 편집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기 때문 이다. 마인드 - 게임 영화? 영화학자 토마스 엘새서(Thomas Elsaesser)는 복잡한 플롯과 각종 트릭에 관객들이 잘 못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는 영화들을 마인드-게임 영화(mindgame film) 라고 불렀다. 퍼즐을 펼쳐놓으면서 관객들을 현혹하고 그들의 마음을 사기 위 해 그들과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낳은 이 영화들에서 관객들은 갖가 지 해석을 덧붙이며 서사의 빈틈을 채운다. 영화 자체가 갖고 있는 개연성을 따지기보다는 새로운 해석을 통해 빈틈을 채우는 것이다. 때로 이런 영화들은 거짓말하는 내레이터가 등장 하거나 허위의 시점 쇼트 같은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건 흔하다. 예를 들어, 영화 에서 기억의 주체가 아닌 사람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플래시백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다반 사다. 그러나, <곡성>의 빈틈은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자신의 영화언어가 갖고 있는 내적 결함을 관객들의 새로운 해석으로 채우고자 한다. 그리고 마케팅의 필수적인 일부 로서 감독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면 관객들은 그 실마리를 토대로 또 새로운 해석을 낳 는다. 이렇게 영화는 수많은 해석과 억측 속에서 거대한 퍼즐이 된다. 말하자면 이 빈틈들은 의도된 뻔뻔스러움 이다. 나홍진 감독이 천재라면 이런 미디어 환경을 즐길 줄 아는 영민함 때문이지 그의 영화가 걸작이기 때문이 아니다. 엘새서는 말한다. 이 영화들은 그들 자신의 지시성(referentiality)을 창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이 지시하는 것은 게임의 규칙 일 뿐이다. 정 영 권 / 단국대학교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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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요일) vol. 215 서 평 테마서평: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저 권오룡 역, 민음사, 200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 이재룡 역, 민음사, 2009) 불멸 (밀란 쿤데라 저 김병욱 역, 민음사, 2010) 밀란 쿤데라와 키치 소설은 인식의 도구 체코의 브루노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망명한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창작 여정은 흔히 세 사이클로 나뉜다. 첫 번째는 농담 (1967)에서 삶은 다른 곳에 (1973)로 이어지는 체코 사이클 이다. 작품 소재를 주로 체코라는 국가적 틀 안에서 찾은 시기다. 두 번째는 웃음과 망각의 책 (197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소설의 기술 (1896), 불멸 (1990)로 이어지는 중간 사이클 이다. 망명 작가 쿤데라가 국 가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설적 탐구의 정체성을 유 럽이라는 대(大)맥락에서 찾는 시기다. 이 시기까지 그의 작 품들은 모두 체코어로 씌어져 불역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느림 (1995), 정체성 (1997), 향수 (2000)로 이어지는 프 랑스 사이클 이다. 우리가 살펴볼 키치라는 테마는 중간 사 이클 에 속하는 위의 세 작품에서 가장 강도 높게 탐구된다. 소설의 기술 에서 쿤데라는 세계를 인식 대상으로 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 전통을 잇는 위대한 유럽 예술 로서의 소설을 논한다. 이 책 제1부 <세르반테스의 절하된 유산>은 그의 소설론의 핵심을 품은 글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앎 에 대한 열정 에 이끌려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살피고 존재 의 망각 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 소설이다. 소설의 존재 이유 는?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오직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 는 것을 발견 하는 것,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실존의 부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 ) 들을 발견 하는 것이다. 소설의 역사란? 바로 그런 새로운 발견들 의 계승이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 오늘날 문학은 존재 이유 자체를 의 심받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과거에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학, 하나의 문화 의 구성적 단일성이 전제되었고 이 단일성을 구성하는 줄기 로서 문학이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 일은 없 었으나 이제 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문학보다는 드라마나 영화가 더 효율적인 문화 수용 기 제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바로 그래서, 소설이란 인간의 삶을 망각에서 지켜주는 등불이요, 오 직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는 쿤데라의 주장은 오늘 날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소설의 적, 키치 다시 한 번 말하자. 쿤데라에게 소설은 인식 의 도구다. 한데 이 소설이 하는 일과 정반대되는 일(망각)을 수행하는 것들이 있다. 쿤 데라는 라블레의 아젤라스트(웃지 않는 사람), 플로베르의 통념, 브 로흐의 키치를 소설의 세 적(敵) 으로 꼽으며 이들이 머리가 셋인 하나의 괴물 ( 소설의 기술 )이라고 말한다. 어째서 키치가 소설의 적인가? 쿤데라에게 키치란 무엇인가? 브로흐와 마찬가지로 쿤데라는 키치를 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현 상, 실존의 한 범주 로 본다. 그래서 키치는 키치 인간 의 태도 문 제, 즉 현실을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꿈으로 대체하려는 매력적인 인간 능력의 표현으로 고찰된다. 그런 점에서 키치는 실물보다 예쁘 게 보여주는 거짓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거기에서 감동적인 만족을 맛보며 자신을 그런 모 습으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구로 정의될 수 있다. 키치가 문제인 이유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를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인식 이 직접 체험한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모방에 의거하기에 더욱 더 그렇다. 감동에 대한 감동, 즉 어떤 감동적 이미지에 감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실세계를 목가적이고 도취적인 세계상으로 왜 곡하는 것이다. 이를 쿤데라는 두 번째 눈물 로 설명한다. 키치는 두 가지 감동의 눈물을 흘러내리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 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 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번째 눈물만이 키치를 키치로 만든다. 모든 인간의 우애는 키치를 바탕으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물론, 구체적인 삶의 세계를 가리는 베일로 기능하면서 우리를 도취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관 으로 이끄는 이 키치라는 테마는 쿤데라의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도 탐구된다. 특히 삶은 다른 곳에 의 서정시인 야로밀이나 향수 의 여주인공 미라다는 모두 사랑이나 죽음을 현실의 차원이 빈 하나의 이미지 로 만들어버리는 키치의 희생양이다(미라다는 자신을 버린 남자 친구에게 순백의 눈 위에 영원히 잠든 자신의 이미지 를 내 밀한 메시지로 전하고 싶은 충동에 끌려 수면제를 먹고 눈 위 에서 잠들었다가 죽지 않고 깨어나 동상으로 귀만 잃는다). 하지만 위 두 번째 눈물 에 대한 성찰에서 보듯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는 키치에 대한 탐구가 인류애의 바 탕 이 되는 키치, 전체주의 키치에 대한 탐구로 진화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주요 등장인물들인 사비나-프란츠 커플을 보 라. 공산주의보다 공산주의 키치(공산주의가 쓴 아름다움의 가면)를 더 끔찍해 하는 사비나는 사람들이 띠는 연대의 미소 와 일제히 치켜 든 주먹들 뒤에서, 고유 의지를 체념한 얌전한 군중과 동일한 존재가 되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말한다. 개인 성을 말살하는 키치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이미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비나와는 달리, 그녀의 연인 프란츠 는 대행진에 매료되어 캄보디아 국민을 돕기 위해 국경으로 몰려가는 사람들 행렬에 참여했다가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 야 이 역사적 대행진이 어느새 한바탕 소극(笑劇)으로 전락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공산주의든 대행진이든 키치 모델로 변 해버린 것은 모두 삶을 시뮬라크르로 만들고 갈등적 현실을 상투화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키치와 존재의 망각 불멸 은 이 전체주의적 키치가 완전히 구현된 세계(키 치의 제국)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제6 부 <대행진>의 속편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역사가 멈추는 곳에서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끝나고 이마골로기의 지배가 시작된다고 불 멸 의 화자는 말한다. 대행진마저 키치 모델로 변해버린 역사의 종 말 기에는 따라야 할 관념들의 체계(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따라야 할 이미지들의 체계(이마골로기)에 봉사해야 한다. 신의 눈처럼 편 재하는 카메라의 눈이 사람들 각자에게 하나의 이미지(일종의 홍보 용 정체성)를 제안하면서 그 이미지에 맞춰 살도록 강요하는 세계. 이 이마골로기의 왕국에서는 모든 인간이 시간의 흐름에서 뽑혀져 나와 최후의 덧없는 환상인 불멸 형(刑)을 선고받은 존재들이지만 이 소설 등장인물들 중 순간을 영원으로 변화시키는 것, 인간을 시간의 지속적 운동에서 뽑아내버리는 것 보다 더 끔 찍한 것이 없음을 이해하는 이는 아녜스 부녀(父女)와 루벤스뿐이다. 이미지가 유일한 현실 ( 제2의 피부 )이 된 세계에서 구체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도, 죽음도, 웃음(케네 디)도, 섹스(루벤스)조차도 더는 개인적인 무엇이 아니요, 개인적인 모든 것은 이미지 뒤로 모습을 감춘다. 베티나의 괴테 사랑을 떠올려보라. 그녀가 쓰는 사랑의 편지들( 시인과 어린 소녀의 편지 ) 은 진정한 사랑의 편지가 아니라 불멸의 존재를 사랑하는 어린 소녀의 아름다운 이미지 를 그 린 날조된 서간집이다. 그녀는 괴테와 나눈 사랑의 이미지 를 대중에게 전시 하고자 한다(남 편과 주고받은 편지를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숨기려 하는 웃음과 망각의 책 의 여주인 공 타미나의 사랑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녀가 가꾸는 지고한 참된 사랑 은 자기 자신의 나르시스적 자아에 대한 서정적 도취일 뿐 괴테 라는 실제 인간에게 느끼는 사랑이 결코 아니요, 피와 살을 가진 개 인 으로서의 그녀 삶의 진실은 이 한 장의 날조된 이미지 뒤로 영 원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영원히 각인하 려는 행위가 오히려 우리 존재를 망각으로 인도한다는 것, 이 역시 역사의 종말 기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역설( 종말의 패러독스 ) 아 니겠는가. 얼굴 없는 세계 를 꿈꾼 불멸 의 여주인공 아녜스를 통해서 쿤 데라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알프스의 깊은 산속으 로 은둔하고자 했던 아녜스의 비극은 자신의 자아가 아니라 자기 자 아의 이미지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비극이다. 어쩌면 작별 (아녜스는 작별 의 화신이다. 그녀는 소설 첫 장에서 수영선생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부인의 몸짓에서 탄생했다)은 이 키치의 제국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방식인지도 모른다. 김 병 욱 /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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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화요일) vol. 215 특강취재 특강취재: 학술단체협의회 봄 기획특강 <가능성의 글쓰기> 몸 과 접촉하는 열림의 공간, 글쓰기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학술단체협의회는 4월 27일부터 5월 25일까지 매주 수요일(5 월 18일 개교기념일로 휴강)에 2016학년도 봄 기획특강을 개최했다. 이번 기획특강은 < 가능성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본 강연은 1강 프로이트의 다른 유산-사후적 글쓰기, 2강 로넬의 어리석음-백치의 글쓰기, 3강 낭시의 몸-몸 을 쓰기 또는 몸을 향하여 쓰기, 4강 데리다의 텔레파시-남아 저항하는 편지들 로 구 성됐다. 민승기(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강연자는 지난 5월 11일과 5월 25일 두 강의에 걸쳐 낭시의 몸에 대한 사유에 대해 설명하고 그 의미를 재조명했다. 몸을 쓰다 우리는 때때로 나의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몸이 무겁게 느껴 질 때도 있고, 때로는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의 몸은 매일, 매시간 시시각 각 다르게 다가온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느껴지는 나의 손가락, 컴퓨터 타자를 치고 있는 나의 손끝, 바닥과 맞닿아 있는 나의 발,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의자를 돌려보면 나 의 몸은 자연스럽게 왼쪽, 오른쪽 의자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친숙하면서 낯선 몸, 가끔은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듯 나의 몸이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사유 할 수 있을까. 몸 에 대한 사유를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한 철학자가 있다. 장-뤽 낭시(Jean-Luc Nancy, 1940~ )는 그의 저서 중 코르푸스-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1992)에서 몸 에 관한 독창적인 사유를 담아냈다. 낭시는 근대 프랑스에서 자크 랑시에르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낭시는 독일 낭만주의, 칸트, 하 이데거, 니체 등에 대한 해석을 시작으로, 근대성과 문학,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철학의 망각 (1986), 사유의 무게 (1991), 민주주의의 진실 (2008) 등이 있으며 현재 그의 철학에 대해 논의가 지속 되고 있다. 낭시에게 몸은 하나이자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낭시는 몸은 하나도 아니고, 날 것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 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를 붙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만들기 때문이다. 강연자는 몸은 의미가 될 수 없으며, 하나 이상의 것을 나타내기 때문 에 어떤 사람의 전체, 그리고 그 사람이 남긴 글쓰기 자체가 코르푸스라고 할 수 있다 고 한다. 몸은 전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몸을 보면 그 사람의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구 철학에서는 감각 과 의미 에 대해 대립구조를 이루며 각자의 방식으로 철학적 함의 를 다루었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말하는 감각 과 의미 라고 하는 것은 몸을 배제하고 있을 때 가능한 설명이다. 몸은 여기서 말하는 어떠한 감각도, 의미도 아니다. 그렇기 때 문에 낭시는 몸에 대해서 가 아니라 몸 자체를 쓴다 라고 표현하며, 몸을 육체성이 아 닌 몸에 관한 기호나 이미지, 또는 수치가 아니라 그저 몸 자체를 쓴다고 말한다. 몸과 접촉할 수 있는가. 어떻게 접촉할 것인가. 우리는 감각을 통해서 세상과 마주한다. 우리의 눈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사람을 보 며,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그 사람을 보는 것도 그 사람이 나를 보는 것도 모두 눈을 통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들려오는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나의 귀를 통해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물을 볼 때 나는 그것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나 를 볼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사물이 내는 소리, 세상의 소리를 듣지만 사물은 내가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와 그것이 만나는 지점, 우리는 접촉을 하며 그것들을 느낄 수 있 다. 길을 걷고 있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끼는 것, 내리쬐는 햇볕에 따가움을 느끼는 것, 누군가의 내 손을 잡았을 때 따뜻함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그것들과 접 촉했기 때문이다. 쓰다듬는 것, 보는 것, 안는 것, 삼키는 것 등은 모두 그것들과의 접촉 을 말한다. 강연자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접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각과 청각은 서로 간에 주 고받으면서 오해가 생길 수 있으며, 내가 생각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 다. 즉, 내가 타자에게 보내는 의미와 타자가 나에게 보내는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접촉은 시각과 청각과는 다르다. 접촉은 왜곡되거나 오해할 수 없다. 서로 간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의 거리를 없애는 것이 접촉이라 말할 수 있다. 두 손 을 맞잡아 보면 손이 겹쳐지는 그 자체, 살갗 그 자체, 그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그것을 만질 때 그것은 결코 없어지지도 않으며, 오해의 틈도 생기지 않는다. 쓰는 것은 끝과 접촉하는 것. 그럼 어떻게 하면 글쓰기가 몸의 기호가 되 거나 몸이 기호가 되도록 만드는 대신, 몸과 접촉할 수 있는가? 몸에는 어떤 것을 써넣을 수 없으므로 애초에 접촉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하거나, 몸짓으로 흉내 내는 방식을 통해 몸을 글쓰기 자체에 결합시켜버리면 된다고 말할 수 민승기 강연자가 몸에 대한 사유를 설명하고 있다. 있으련만 (중략) 그럼에도 우리가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사항이 있다면 그 것은 몸에 가 닿는 것, 몸을 건드리는 것, 결국 접촉(toucher) 그 자체 글쓰기 안에서 언제나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낭시는 몸을 만지는 것, 접촉이 일어나는 공간을 글쓰기라 말한다. 글쓰기의 의미는 몸 의 살갗과 신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그 의미의 한계에 접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는 존재를 쓰는 것이며, 이러한 존재는 의미에 대해서 완전 히 소진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의미화된 것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사물에 대해 그것이 가진 의미를 없애기 위해 불로 그것을 태워 없애버렸다고 하자. 그것을 불로 태워버렸다고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 리는 그것의 형태가 사라졌기 때문에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 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워져 한줌의 재로 남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에 대한 의미는 없어졌을지 몰라도 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부재(不在)라고도 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은 온전히 없다고도 혹은 있다고도 말할 수 없게 된다. 글쓰기는 현존 하지도 부재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낭시는 글쓰기를 의미화 될 수 없는 것, 존재를 쓴다고 말한다. 몸은 글쓰기이고, 글쓰기는 존재론 그 자체이다. 틈 - 열림, 공간으로의 초대 몸은 열려 있어야 어떤 것에 접촉을 할 수 있다. 몸이 닫힌 상태로는 어떤 것에도 접촉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지금 닫혀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가능해질 때 열려 있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닫혀 있다고도, 열려 있다고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몸이 아니라고 낭시는 말한다. 우리는 몸 이라고 말하면 영혼 이나 정신 의 반대되는 것으 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몸은 영혼과 정신의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 있는 것이 다. 영혼 이 몸(육체) 을 지배하고 있고, 몸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낭시는 몸은 바깥으로 향해 있는 것, 몸들은 바깥에 향해 놓여 있는 것, 바깥을 향해-있 는 행위 그자체가 곧 존재 라고 말하며, 몸의 바깥 존재가 영혼이고 이 바깥 존재에 의 해 몸은 자신의 안을 가진다 고 한다. 나의 왼손과 오른손이 겹쳐짐으로써 나는 나와 접 촉을 한다. 양손이 겹쳐지기 위해서는 우선 몸이 바깥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이렇듯 몸은 언제나 바깥에, 바깥을 향해 있다. 우리는 평소에 심장이 뛰는 것, 위나 폐 등 우리 몸속 에 있는 장기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에 내가 그것을 느끼고 감지한다면 그 것 또한 바깥으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몸이 열려 있기 때문에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몸은 항상 바깥으로부터 나 또는 다른 사람들 에게 던져지는 것이다. 내가 타자를 볼 때 낯설게 느껴지는 것, 타자의 목소리, 생김새 등은 내가 아니기에, 나와 다르기에 때 로는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몸을 바깥으로 열며 타자를 향해 나의 공간을 내어준다. 나의 공간에 타자를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 가고 수많은 타자들에게 나의 공간을 공유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때로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낯선 것이 친숙해지기도 하 고, 친숙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몸. 지금 나의 몸은 친숙 하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낯설게 느껴지는가. 낭시는 말한다. 몸들을 향하여 쓰라 고, 그러면 존재를 향해, 또는 스스로를 건네는 존재를 향해 보내질 것 이며, 우리의 몸들 로부터 출발하여 우리에게 낯선 것으로서의 몸을 우리 것으로 갖게 된다 고. 김예정 yjeongkim@khu.ac.kr

13 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기증 작품 특별전: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장 vol (화요일) 학술단체협의회 13 습격 인터뷰 R EVIEW 연구의 발자취와 미래, 학술단체협의회 현실에서 괴리된 삶을 살아내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왼쪽부터, 미술관 전경.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72 59cm, 1928년 무렵. 김우영의 초 상, 캔버스에 유채, cm, 1928년 무렵. 사남매 아이들아, 어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신생활에 들면서>, 삼천리, 어느 수업 중 한 교수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만약 다시 태어나 살아갈 시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언제가 좋겠느냐고. 대부분의 원생들이 이대로 다시 태어나 현재를 살고 싶다고 답했다. 리셋, 인생을 초기로 되돌려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 고들 있었다. 하지만 나는 1920년대,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서 무언가를 하고 그 로써 역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수업이 끝난 나른한 어느 금요일 오후, 나는 나혜석을 만나러 수원시립아이 파크미술관으로 향했다. 전통과 혁신, 신구의 갈등과 분열이 휘몰아치던 시대 에 태어나 저항하며 살다간 나혜석을 만나러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웠 다. 시대의 선각자, 신여성이라 불린 센 언니 의 정체를 알고 싶기도, 알고 싶 지 않기도 했다. 나혜석은 1896년 4월 28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48년 12월 10일 서울 원 효로 시립자제원(현 용산경찰서 자리)에서 사망한다. 나혜석은 일본 도쿄사립 여자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였던 청구 김우영과 혼인한 후, 세계 를 일주하고, 개인 전람회를 개최하는 등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아 니, 그러한 인생을 쭉 살 것 같았다. 그러나 나혜석은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불륜으로 김우영과 이혼 후 행려병자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러한 나혜석 의 삶은 나혜석 유족의 기증 작품(김건 이광일 기증)인 자화상 및 김우영 의 초상 과 삽화, 판화, 미술전람회 출전 작품, 유품 등 아카이브 자료 90점을 통 해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혼돈의 시대 나혜석을 만나다 로 나 혜석의 연보와 초창기 자료를 전시한다. 특히, 연보와 사진, 다큐멘터리, 오디오 북 <경희> 등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성돼 눈길을 끈다. 2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다 는 서양화를 전공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화가로서의 나혜석을 조명 한다. 그녀가 남긴 삽화, 판화, 미전출품작, 유화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3 부 자유를 위한 여정을 떠나다 에서는 문학가이자 여성해방론자로서 나혜석 의 사상관이 드러나는 글들을 소개한다. 나혜석 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한복을 입은 단아한 소녀의 사진이 나온다. 내가 알고 있던 나혜석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다. 전통복식을 갖춘 나약해 보이 는 소녀. 하지만 전시회에서 내가 만난 나혜석은 세련된 현대복식을 갖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알파걸 이었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간 진짜 나혜석의 모습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전시실 1에서 8월 20 일까지 열린다. 관람요금은 4천 원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이번 달 18일 에는 나혜석 탄생 120주년 기념학술대회도 개최된다. 송영은 lovericki@khu.ac.kr Q.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학단협은 학술단체의 진보적 전문적 대중적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학술단체 간의 원활한 교류를 보장함으로써 대학원의 학술 분위기 고양과 학문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원생 들의 학술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문학예술분과, 역사철학분과, 사회과학분과, 자연과학분과 총 4 개의 분과를 운영하고 세부 사업들을 진행하는 학술자치단체입니다. Q. 학단협이 발족된 지 약 20년이 되었습니다. 학술적 측면에서 어떤 성과를 내왔는지 궁금 합니다. 학술제 및 학술 특강 등 학술 사업에 대한 기획과 운영, 소속 학술단체의 연구 지원, 학술 정보 수집과 교류, 고황논집 및 소수전문특강, 기타 본회의 발전에 필요한 자치 사업을 수행해왔습니 다. 또한 학술 기획 특강을 통해 학내 및 외부로부터의 학술적 요청을 수렴하여, 보다 다양하고 심화된 연구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본교만의 독특한 학술적 지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학내 등재지 고황논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연구재단 등재후 보지에 선정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황논집을 통해 원생들의 학술적 역량을 함양하고, 다른 학술지와의 연계 혹은 졸업논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Q. 학술단체 지원, 고황논집, 소수전문특강 등 다양한 업무를 맡고 계신데요. 운영하는 데 있 어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강이나 본 단체에 등록된 학술단체들의 연구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축소돼 어려움이 많습 니다. 학술단체가 늘어나게 되면 현재 4개로 구성된 분과를 세분화해 연구 분야를 구체화하고 각 분과별로 지원하게 됩니다. 학술단체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예산지원이 축소돼 분과별 지 원 금액이 줄어들다 보니 실질적 피해는 원생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단협은 보다 다양한 단체들에게 학술적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 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국제교정 총학생회와 행정실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교정 원생 에 대해서도 학술단체 등록을 받고 있으며, 서울교정을 위주로 진행되던 특강을 국제교정에서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한편, 고황논집에 신청된 논문들 중 엄격한 심사로 인해 미처 싣지 못한 논문들이 많습니다. 이 러한 사정으로 간혹 고황논집에 실린 논문 편수가 적거나, 분과 특성상 고황논집과의 연계가 얕아 미흡한 성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Q. 앞으로도 학단협에 대한 많은 원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원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학단협은 원생들에 의해, 원생들을 위해 운영되는 자치기구입니다. 그간 원생들의 다양한 학술 적 요구를 수렴하고 성과를 독려하기 위해 여러 사업들을 기획 운영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사업 에 대한 원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학술적 소통을 통해 진보하는 자치기구로서 거듭나고자 합니 다. 원생들의 관심과 참여에 늘 감사드리며, 차후 진행될 새로운 사업들에도 아낌없는 관심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황정환 delij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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