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 호 9 3 와 신시가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나면 제일 먼저 이 도시에서 언제나 활기가 넘 쳐나는 신시가지로 가게 된다. 그 중심에 는 티무르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을 중심으 로 티무르 박물관과 쇼핑 거리가 밀집돼 있다. 공원 중심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 웅,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서 있다. 우즈베 키스탄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도시에서나 티무르의 동상이나 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나게 된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레닌과 스탈린 동상 대신에 15세기 중앙 아시아를 호령했던 티무르 대제의 동상이 있는 것이다. 지진 이후에 계획된 도시로 신시가지를 건설한 탓에 모든 길이 바로 티무르 동상 이 있는 공원과 연결된 것이다. 특히 유네 스코 지원에 의해 건설된 티무르 박물관은 터키, 중동, 러시아, 인도, 이란까지 평정 했던 티무르 제국의 역사만큼이나 유명하 다. 내부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문양과 티무르 대제의 일생을 그린 다양한 그림과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외에도 타슈켄 트 최고의 번화가로서 현지 음식점과 오락 시설, 각종 기념품과 골동품을 만날 수 있 는 타슈켄트의 로데오 거리 로 불리는 브 로드웨이 등이 여행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좀 더 타슈켄트의 정체성을 알 고 싶거나 이슬람 문화에 대해 알아보려면 도시 곳곳에 있는 이슬람 모스크나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마드라사로 가는 것도 좋 다. 이슬람의 종교적 향기가 그윽한 타슈 켄트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볼거리는 세계기 록유산에도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경전, 쿠르안 이다. 이슬람에서 최고의 보물로 꼽히는 이 쿠르안을 오스 만 본 이라고 부른다. 이 경전은 1400여 년 동안 사용되고 있는 이슬람 최고의 경 전으로 이슬람의 교조 무함마드에게 내린 토막 계시들을 모은 책이다. 이 쿠르안은 터키의 이스탄불, 이집트의 카이로, 사우 디아라비아의 메디나, 이라크의 바스라 등 네 곳에 보관된 경전 중 티무르가 바스라 에서 가져온 것이다. 오스만 본을 제외하 고는 다른 나라에 보관 중이던 사본이 없 으므로 이슬람의 무슬림들은 타슈켄트의 오스만 본을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이런 세계적인 보물을 두 눈으로 볼 수 있 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종교를 떠나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슴 가죽에 쓴 이슬 람 경전을 보고나면 왜 타슈켄트가 이슬람 의 성도인지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5 6 7 1 _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스트 이암 모스크의 아름다운 모습. 2 _ 기하학적 무늬와 코발트 빛이 조화를 이룬 하스트 이암 모스크. 3 _ 알라의 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 4 _ 타슈켄트의 '로데오 거리'로 불리는 브로드웨이에서 만난 현지 미술품들. 5 _ 나보이 극장 앞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예비 부부들. 6 _ 고풍스런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7 _ 건물의 외관이 하나의 미술 작품을 연상케 하는 타슈켄트 호텔. 8 _ 화려한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무슬림의 여성들. 9 _ 세계에서 가장 작고 아담한 구멍 가게. 8 4 9
제 124 호 11 ④ 조상의 생활흔적과 산악인들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수로길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 수많은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곳의 특색을 나타내는 길. 크고 작은 예산들을 받아 산을 정비하고 마을길 을 다져서 만드는 길이 조금은 지나치게 많이 만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 만 옛것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주려는 노력 도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다. 지난 추억과 조상들 의 삶을 담아 길의 테마를 만들어 제주의 아름다 움을 더욱 맛깔나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중에 나 는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지나 법정사 입구에 들어 가면 만날 수 있는 하원수로길 을 추천하고 싶다. 한라산의 나무들이 푸른 숲을 만들 준비를 하는 이맘때 고사리 장마를 알리듯 잦은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졸졸졸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으 며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원수로길 이 다. 이런 길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처 음 듣는 사람들도 있을 법한 이곳은 서귀포 하원동 사람들이 1950년 후반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곤 을 이겨내기 위해 논농사를 계획하고 물길을 만들 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실물과 언물을 하원저수지 까지 끌어오기 위해 조성한 수로이다. 수로가 조성 되기 이전부터 한라산등반로가 개설되기까지 한라 산 등반로 구실을 했었다고 한다. 옛 조상의 생활 의 흔적뿐만 아니라 먼저 걸어간 산악인들의 추억 도 서려있는 곳이리라. 그러나 수로는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해 논농사는 계획과는 달리 순 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날 남아 있는 이 끼에 덮인 수로길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길이 시작되는 무장항일운동의 발상지인 무오 법정사지는 한라산둘레길인 동백길 과 하원수 로길 의 기점이 되고, 존자암으로의 절로 가는 길 의 통과점이 된다. 하원수로길은 영실매표소위 1km지점까지 자연림속에 남겨진 수로를 따라 4.2km 걸어 다시 되돌아오는 길이다. 한라산둘레길이라는 둥근 아치를 통과하면 오 른쪽으로 깊게 들어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등 산로에는 마지막 남은 붉은 동백꽃이 활짝 피어 길을 안내하는 듯하다. 조릿대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얼 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 수로를 만난다. 좁은 수로 위를 걷다보면 순간 아슬아슬 계곡을 가로 지르고 있다. 수로 아래쪽으로 계곡을 통과하는 길이 있 지만 아주 옛날 줄타기를 하던 광대처럼 균형 잡 으며 걷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숲은 아직 이른 봄 이라 나무들이 초록 잎을 살짝 내보이고 있어 초 록의 싱그러움은 덜하지만 발아래 작은 생명들이 발길을 더디게 한다. 먼저 낮은 지대에서는 볼 수 없는 노란제비꽃 전문과들도 구별이 잘 안 가는 수많은 보라색 제비꽃이 색색이 피어서 썰렁한 듯 한 등산길을 즐겁게 해준다. 예전에는 제비꽃이 피면 봄이 시작되었다고 했지 만 언제부터인지 겨울날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서 도 보라색 제비꽃을 자주 보게 된다. 추운날 예쁜 꽃을 만나 반갑지만 자꾸만 구별하기 힘든 계절과 날씨변화에 생태환경이 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넓은 우산을 쓰고 있는 듯한 개족두리풀 이 짙 은 보라색 족두리꽃을 수줍은 새색시처럼 잎 아래 에서 피우고 있다. 등산로 길 가득 덮고 있는 도토 리를 밟고 걷다보면 도토리꼭지에서 새싹이 나와 땅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아 기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찍어 놓은 듯한 쇠별 꽃 이름이 특이해서 다시 보게 되는 옥녀꽃대 제비꽃 머위 꽝꽝나무 굴거리나무 옥녀꽃대 천남성 숙순처럼 올라오는 맹독성의 천남성 새순이 여 기저기 올라오고 있다. 불에 태우면 꽝꽝 소리가 난다는 꽝꽝나무와 사이좋게 이웃한 굴거리나무 는 기온이 떨어지면 큰 잎을 아래로 모아 자기 체온을 지킨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토끼가 큰 귀를 아래로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하지만 은근히 귀엽다. 사스레 피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단풍나무 등 이 곳 역시 숲의 안정된 극상림 을 이루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라 힘들지 않은 듯하 면서 등과 이마에 땀이 흐를 때 쯤 언물 (암석 깊 숙한 곳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 쉼터를 만나 목 한 번 적시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오 는데 직진해서 올라가면 영실로 올라가게 되고 오 른쪽으로 제법 넓은 길을 따라 가면 옛날 표고버 섯 농장을 했던 건물이 나오게 된다. 지금은 폐허 로 흉물이 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데 빠른 시일에 철거가 되었으면 한다. 길을 돌아 다시 오던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올 라가면서 봤던 수로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다. 어렵게 산길을 따라 물길을 만들어 허기진 배 를 하얀 쌀밥으로 채워보리라 생각했을텐데 그 바 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흔적만 남기게 된 안타까운 생각에 이끼로 덮인 수로를 보며 발 길을 멈추어 잠시 숙연해지기도 한다. 척박한 환 경에 무한한 노력으로 살아남은 우리 조상들의 인 내와 끈기는 오늘날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우리 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 인내와 끈기는 우리 조 상들만이 아니라 이렇게 오래된 숲을 지키며 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나무와 돌에서도 배우게 된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찾았을 때도 좋았지만 이 렇게 새싹들이 숲을 만들기 시작하는 요즘 봄비가 내려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하원수로길 은 메마 른 우리 마음을 촉촉이 적셔줄 것이다. <정봉숙 제주숲해설사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