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자료집은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포털(www.gjhr.go.kr)과 5 18기념재단 세계인권도시포럼 홈페이지(whrcf.518.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ll materials of this book are posted on both homepag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Portal of Gwangju Metropolitan City(www.gjhr.go.kr) and World Human Rights Cities Forum(whrcf.518.org) of The May 18 Memorial Foundation.
2013 세계인권도시포럼 일정 일 시 주요행사 비 고 15일(수) 18:00~20:00 참가자 도착 / 참가자 교류의 밤 09:00~11:00 개회식 11:00~12:30 오프닝라운드 테이블 4층 컨벤션홀(2,3) 12:30~14:00 오찬 14:00~16:00 주제회의 1 : 인권제도와 정책(한국인권재단) 2층(201, 202) 14:00~16:00 주제회의 3 : 공무원인권교육(광주광역시) 별관 3층(301) 16:00~18:00 주제회의 4 : 건축과 인권(한국인권재단) 별관 3층(309) 16일(목) 14:00~17:30 특별행사 : 인권기록물 소장기관 회의(5 18등재추진위원회) 별관 3층(308) 11:00~17:30 특별회의 : UCLG GOLDⅢ 회의(광주광역시) 별관 3층(311, 312) 16:00~18:00 부대행사 : 논문공모전경연대회(한국인권재단) 2층(201, 202) 2013 광주아시아포럼(5 18기념재단) 13:00~17:00 SDMA워크숍 1 : 아시아 시민사회 사법감시 2층(203, 204) 제12회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 광주대회 참가자 현장방문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국제회의 4층 컨벤션홀(1) 18:00~20:00 2013 세계인권도시포럼 환영만찬 09:00~12:00 주제회의 2 : 인권도시가이드라인 회의(한국인권재단) 4층 컨벤션홀(3) 09:00~12:00 주제회의 5 : 도시와 어린이 청소년(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2층(201) 09:30~12:00 주제회의 6 : 도시와 장애(전남대 5 18연구소) 별관 3층(309) 08:30~12:00 특별회의 : UCLG ASPAC 회의(광주광역시) 별관 3층(311, 312) 09:00~12:00 특별회의 : 인권기록물 소장기관 회의(5 18등재추진위원회) 별관 3층(308) 2013 광주아시아포럼(5 18기념재단) 09:00~12:00 SDMA워크숍 2 : 아시아 민주주의 평가와 감시 2층(203, 204) 제12회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 광주대회 2층(206, 207)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국제회의 4층 컨벤션홀(1) 12:00~13:00 점심식사 13:00~15:30 주제회의 2 : 인권도시가이드라인 회의(한국인권재단) 4층 컨벤션홀(3) 13:00~15:00 주제회의 5 : 도시와 어린이 청소년(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2층(202) 13:00~16:00 주제회의 6 : 도시와 장애(전남대 5 18연구소) 별관 3층(309) 13:00~16:00 주제회의 7 : 국가폭력과 인권도시(전남대 5 18연구소) 2층(201) 17일(금) 12:00~16:00 주제회의 8 : 도시와 여성(전남대 5 18연구소) 별관 3층(310) 13:00~16:00 주제회의 9 : 환경과 인권(전남대 5 18연구소) 4층 컨벤션홀(2) 13:00~15:00 특별회의 : UCLG ASPAC 회의(광주광역시) 별관 3층(311, 312) 2013 광주아시아포럼(5 18기념재단) SDMA워크숍 3 : 시민사회의 의정참여 2층(203, 204) 제12회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 광주대회 2층(206, 207) 13:00~15:30 국가폭력과 트라우마 국제회의 4층 컨벤션홀(1) 동아시아 민주인권평화 네트워크 연례회의 2층(205) 특별행사(13:00~16:00) : 평화실현을 위한 한반도 평화회 의 별관 3층(308) 16:00~17:00 2013 세계인권도시포럼 폐회식 4층 컨벤션홀(3) 16:00~17:00 2013 광주아시아포럼 폐막식 4층 컨벤션홀(1) 17:00~18:00 저녁식사, 전야제 행사장 이동 18:00~22:00 5 18전야제 금남로 22:00~ 2013 광주아시아포럼 참가가 교류의 밤 10:00~11:00 5 18민주화운동기념식 국립5 18민주묘지 2013 광주아시아포럼(5 18기념재단) 09:00~13:00 제12회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 광주대회 2층(206, 207) 18일(토) 11:00~15:00 점심식사 및 사적지 답사 송광사 16:00~18:00 광주인권상 시상식, 축하연 5 18기념문화센터 19:00~20:30 광주인권상 축하음악회 5 18기념문화센터 19일(일) 09:00~17:00 2013 광주아시아포럼(5 18기념재단) 5 18기념문화센터 제12회 역사인식과 동아시아평화포럼 광주대회 분과회의
Contents 국가폭력과 인권도시 State violence and Human Rights Cities - 국가폭력과 인권도시 1 / 서 승(리츠메이칸대학 석좌교수) State sponsored violence and Human Rights City of Gwangju / Suh, Sung(Professor, Ritsumeikan University) - 국가폭력에서 인권도시로: 대만 메이리다오( 美 麗 島 )사건 vs. 한국 광주항쟁 21 / 주립희 (대만 카오슝 인권위원회 위원) From State Violence to the Human Rights City: Formosa(Kaohsiung) Incident of Taiwan vs. Gwangju Uprising of Korea /Chu, Rick Li Shi (Commissioner, Kaohsiung City Human Rights Committee) - 글로벌화와 인권도시 : 과테말라의 사례를 중심으로 47 / 최진숙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기초과정부 교수) Globalisation and Human rights cities: The case of Guatemala / Choi, Jin-Sook (Professor, 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도시와 여성 City and Gender - 다층적 억압에 대항하는 파푸아 여성들의 투쟁 59 / 풍키 인다르티 (인도네시아 임파샬) The Struggle of Papua Women against multi layers oppression / Poengky Indarti(Human rights lawyer, Indonesia) - 미얀마 미디어와 여성들의 역할 73 / 도 쉣진텟 (버마 미디어 활동가 겸 인권운동가) The Role of Myanmar Women in Media / Grace Swe Zin Htaik (Human rights activist, Myanmar)
- 5 18운동과 여성의 역할 그리고 현재적 의미 및 과제 83 / 황정아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前 대표, 활동가) Woman's Roles in 5 18 Democratization Movement, its current meanings and challenges / Hwang, Jeong-Ah (Former President, Gwangju Women s Association United, South Korea) 환경과 인권 Environments and Human Rights - 지속가능한 자연권과 인권 인권옹호를 위한 환경보전, 기후보호에 대한 인식 및 제도와 정책의 전환모색 113 / 딥티 바틍가 (국제 지구의 벗 코디네이터,모잠비크) The earth right as a sustainable human right : environment, ecological preservation and pursuit of awareness and policy alternatives / Dipti (International coodinater,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 Climate justice & energy_program, Mozambique) - 5 18정신과 기후 환경정의 구현 지속가능한 인권도시를 구현하는 생태인권도시, 환경정의에 대해서 119 / 이시재 (성공회대학교 NGO학과 초빙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518 spirit and the environments-climate justice : the environmental and ecological city as a true sustainable human rights city / Lee, See-Jae(Sociologist. Representative,Korea Federation for Environmental) - 환경 기후로 인한 공동체의 파괴 실상과 대안 기후환경문제로 인한 인간공동체 파괴 사례와 대안 135 / 프라카시 샤르마 (Affected Community 사무총장,네팔) Environmental, climatic crisis and the destruction of community (reality and alternatives): the study on how the environmental, climatic crisis is destroying mankind, nature and the community, the pursuit of alternatives / Prakash Sharma ( Executive director, Affected community, Nepal) -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그리고 인권 아르헨티나 로지리오 市 사례 175 / 가브리에라 아데리나 소사 (로자리오시 인권국장) City and Ecological Sustainability / Gabriela Sosa(Argentina. General Director of the Municipal Office of Human Rights, Rosario)
주제회의 7 : 국가폭력과 인권도시 장소 : 2층(201) / 주관 : 전남대학교 5 18연구소 내용 : 국가폭력의 아픈 역사를 딛고 인권도시로 변모를 시도하는 도시들의 경험 공유하고, 광주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인권도시 만들기에 대한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마련 개회사(13:00~13:10) : 홍성흡 (전남대학교 5 18연구소장) 17일 13:00 ~ 16:00 사 회 :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기조발표 : 국가폭력과 인권도시 서승 (리츠메이칸 석좌교수) 사례발표 1 : 국가폭력에서 인권도시로: 대만 메이리다오( 美 麗 島 )사건 vs. 한국 광주항쟁 주립희 (대만 카오슝 인권위원회 위원) 사례발표 2 : 글로벌화와 인권도시 : 과테말라의 사례를 중심으로 최진숙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기초과정부 교수) 13:10~14:25 휴식(14:25~14:40) 지정토론(14:40~15:25) 이은진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박미경 (광주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 자유토론 및 질의응답(15:25~15:55) 폐회(15:55~16:00)
Thematic Workshop 7 : State violence and Human Rights Cities Place : Second floor -Room 201 / Host : Chonnam National Univ The May 18th Institute) Subject : Sharing experience of cities, which got over painful history of state violence and attempt to be transfigured as human rights city and providing a place for diverse discussion about the human rights city based on historical experience Opening Address (13:00~13:10): Hong, Sung-Heup 17일 13:00 ~ 16:00 (Director, Chonnam National Univ The May 18th Institute) Moderator: Kim, Dong-Choon (Professor, SungKongHoe University) Keynote speech: State sponsored violence and Human Rights City of Gwangju Suh, Sung (Professor, Ritsumeikan University) Case speech 1: From State Violence to the Human Rights City: Formosa(Kaohsiung) Incident of Taiwan vs. Gwangju Uprising of Korea Chu, Rick Li Shi (Commissioner, Kaohsiung City Human Rights Committee) Case speech 2: Globalisation and Human rights cities: The case of Guatemala Choi, Jin-Sook (Professor, Ulsan National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 13:10~14:25 Break time(14:25~14:40) Panel Discussion(14:40~15:25) Lee, Eun-Jin (Professor, Kyungnam University) Seo, Young-Pyo (Professor, Jeju National University) Park, Mee-Kyung (Policy Commissioner, Gwangju, Korea Federation for Environmental Movements) Free Discussion(15:25~15:55) Closing Ceremony(15:55~16:00)
국가폭력과 광주인권도시 서승 (리츠메이칸대학 석좌교수) '광주 인권헌장'(이하, 헌장이라 함)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 글에서는 헌장에 대한 비 판적 검토를 통해서 가공할 국가폭력의 탄압을 받은 광주가 그 처절한 희생의 경험을 토대로 특색 있는 인권도시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한다면, 무엇이 요구되는가 하는 문제를 비교 인권론적인 시각에서 고찰해보려고 한다. 1. 일본의 평화도시, 인권도시선언 1) 평화도시 1931년부터 시작한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국주의는 2000만 명이 넘는 동아시 아 여러 민족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일본 자신도 31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두 방의 원자폭탄까지 맞았다. 일제 패망 후 미주둔군의 가장 큰 목적은 진주만 폭격의 치욕을 안겨준 일본군국주의를 다시 일어날 수 없게 철저히 해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군정 은 일본군국주의의 기둥인 천황제와 군국주의를 해체하여, 전후 일본에게 평화와 민주 주의 라는 가치를 부여했으며, 대일본제국헌법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는 현행 일본헌 법으로 개정케 했다. 그래서 평화와 민주주의 는 전후 일본이 표방하는 기본적인 국가 정책이 되었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실제적인 기능을 다하지 못하 고 청산되지 못한 구일본제국의 죄과를 가리는 외피로 기능해왔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이유는 전후 일본을 거듭나게 하려던 이른바 '전후개혁'이 좌절되어, 평화와 민주 주의라는 가치가 매우 피상적이거나 내향적인 것에 머물고 말았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에 영국에서 시작한 평화도시선언운동은 냉전의 붕괴와 더불어 일본에서 급속 히 확산되어 많은 지자체가 평화선언 또는 평화인권선언을 하게 되었다. 일본의 지자체 1,789개 중에서 비핵평화선언도시는 1,558개이니 선언률은 87.1%이며 선언도시인구는 90%가 된다고 한다 1). 그 중에서 '비핵선언지자체협의회' 가입 도시 수는 286개이다. 평화선언은 주로 일본이 '세계최초, 유일'한 피폭국임을 토대로 비핵, 평화를 내걸고, 평 화주의를 표방하는 일본헌법을 옹호하는 진보성향의 자치체에서 표명되기 시작되었다. 이는 전후 일본국민에게 공감대를 형성한 '전쟁은 다시는 싫다'라는 피해자의식에서 비 롯되는 평화주의와 미점령군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평화헌법에 대한 충성을 표명하는 것이 기저가 되어있다. 비용도 들지 않고 정치적인 색채를 크게 드러내지 않으며, 정치 1) 日 本 非 核 宣 言 自 治 体 協 議 会 HP http://www.nucfreejapan.com/ 2013/4/25 비핵선언지자체란 핵무기폐절이나 비핵3원칙의 준수를 요구하는 내용의 지자체선언이나 의회결의를 한 지자체를 말한다. 최초의 비핵선언은 1980년 영국의 밴체스터시에서 나왔다. 밴체스터시는 미소 냉전의 와중에 핵무기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스스 로 비핵지대임을 선언하고, 다른 지자체도 같은 선언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1
적 부담 없이 두리뭉실하게 '평화, 인권, 인도주의, 인류애' 등 듣기 좋은 말로 도시의 이미지를 치장하기가 좋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많은 도시에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평화도시의 경우, 크게 내용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피폭국으로서 핵 무기에 반대하는 비핵 2) 주장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핵무기의 소지, 생산, 반입을 금 하는 이른 바 비핵 3원칙을 지킨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무장 부전( 不 戰 )을 규정하고 있는 이른 바 평화헌법 9조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토록 많은 일본의 지자체가 평화 선언을 했건만 일본이 오히려 우경화와 재군비의 일로를 치닫고 있으며 아베 일본 수상 을 비롯한 정치가들 사이에서 핵 무장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일본중의원 의석의 3분의2 가량을 차지하는 자민당은 실질적으로는 9조의 폐기를 의미하는 개헌을 요구하여 공식 적으로 군대를 갖는 보통국가 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자체의 비핵평화선언이 평화국가 일본의 정체성 유지에 실질적으로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일본의 우경화 앞에서는 거의 무력하다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2) 인권도시 일본에서는 비핵선언한 도시 중 '평화인권선언 3) '도시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인권(선언)도시 도 많다. 일본의 인권도시선언의 내용을 보게 되면 대부분 피차별부락 문제를 중심으로 한 차별반대의 표명과, 세계인권선언과 일본헌법 준수를 호소하고 있 다. 하지만 인권선언이 요구하는 바는 일본군국주의를 포함한 파시즘의 철저한 청산임 을 전혀 모르고 있는 매우 추상적인 내용이고, 인권선언의 정신을 잘못 짚은 것들이다. 일례로서 요코스카( 横 須 賀 )시의 인권도시선언과 이바라기시( 茨 木 市 )의 인권 옹호도시선 언을 살펴보자. ㄱ. 요코스카시 인권도시선언 인권은 사람이 사람임에 기초하여 당연히 보장 받는 권리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2) 모든 나라의 모든 핵의 즉각 폐지를 요구하는 급진적인 일부 비핵평화도시를 빼고, 일본의 대부분의 비핵선언 도시는 핵확산금지를 주장하며, 따라서 핵의 독점을 최중요 군사정책으로 삼고 있는 미국의 국가이익과도 부 합되어 지자체에게 정치적인 위험부담 없이 정의로운 이미지 부여를 해줄 수 있는 것이다. 3) 평화와 인권이 불가분의 개념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우선 생명을 전제하지 얺으면 인권을 논할 수 없고, 평 화를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라고 규정한다면 폭력이야 말로 인권, 즉 신체의 안전과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독일 일본의 파시즘 세력과 2차세계대전을 치른 연합국들의 최대의 관심사 는 어떻게 하면 나치독일과 일본군국주의의 재생을 막아낼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후 에 파시즘 세력에 대한 감시 통제 기구로서 유엔이 만들어졌고, 유엔헌장 제1장 제1항에는'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 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하고 평화의 파괴로 될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 해결을 평화 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고 명기했고 헌장 53조와 107조의 적국조항에 서 독일 일본 등을 적국으로 규정했다. 유엔 설립목적인 '평화'는 일반적인 평화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파시 즘에 의한 전쟁을 억제하고 방지하는 것을 의미했다. 1948년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2차대전의 반성이 반 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유엔 헌장 제1장(목적) 3항에서 인권의 옹호를 내걸고 있는데, 이것은 파시즘 의 태두를 방치하여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을 만들었고, 그 결과 나치스의 집단학살 등이 방치되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엔에서 규정한 인권도 반 파시즘이라는 정치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고루 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코스카시는 어린이부터 고령자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또한 성별이나 국적을 묻지 아니하고, 이 땅에 살고, 일하며, 배우고, 노는 시민 하나하나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개인으로 존중합니다. 여러 차별이나 편견을 없애고 인권이 침해 당하지 않는 도시를 향하여 시민과 협동하면서 인권존중의 이념에 기초한 시정에 임할 것을 선언합니다. 4) ㄴ. 이바라기( 茨 木 市 )시 인권옹호도시선언 5) 세계에서는, 세계인권 선언을 계기로, 인권에 관한 제조약을 비준하고, 인권확립을 향해서 지구 규모로 구체적인 사업이 진행되어, 인권존중은 세계의 조류가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일본국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적 인권은,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만 보유할 수 있는 것이며, 시민과 시가 일체가 되어서 인권 옹호에 노력하기 위해서 인권이 지켜진 풍부하고 살기 좋은 도시만들기 를 위해서 '인권 옹호 도시선언'을 시의회 의결을 거쳐 제정 했습니다. 오늘날, 시민의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인권을 침해하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기 본적 인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므로, '인권 옹호 도시선언'을 계기로 인권 옹호의 기운이 침투되고, 인권확립의 행동을 지역 학교 직장 가정 등 모든 '곳'에서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도시가 인권옹호 선언도시임을 알아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4) 원문 " 横 須 賀 市 人 権 都 市 宣 言 " 人 権 は 人 が 人 であることに 基 づいて `/ 当 然 に 保 障 される 権 利 です すべての 人 は 生 まれながらにして / 等 しく 人 権 を 有 しています しかしながら 現 実 には 差 別 や 虐 待 などの/ 人 権 問 題 が 存 在 しています 横 須 賀 市 は 子 どもから 高 齢 者 まで 世 代 を 問 わず /また 性 別 や 国 籍 を 問 わず この 地 に 暮 らし 働 き 学 び 遊 ぶ 市 民 一 人 ひとりを/かけがえのない 個 人 として 尊 重 します さまざまな 差 別 や 偏 見 をなくし 人 権 が 侵 害 されることのない 都 市 をめざして 市 民 と 協 働 しつつ 人 権 尊 重 の 理 念 に 基 づく 市 政 に 取 り 組 むことを 宣 言 します 平 成 19 年 2 月 18 日 / 横 須 賀 市 長 蒲 谷 亮 一 5) 원문 '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 世 界 では 世 界 人 権 宣 言 を 契 機 に 人 権 に 関 する 諸 条 約 を 批 准 し 人 権 確 立 に 向 けて 地 球 的 規 模 で 取 組 みが 進 めら れ 人 権 尊 重 は 世 界 の 潮 流 となっています このような 背 景 のもとに 日 本 国 憲 法 で 保 障 された 基 本 的 人 権 は 不 断 の 努 力 があってこそ 保 持 できるものであり 市 民 と 市 が 一 体 となって 人 権 擁 護 に 取 組 んでいくため 人 権 が 守 られた 豊 かで 住 みよい 都 市 づくり に 向 けて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を 市 議 会 の 議 決 を 得 て 制 定 しました 今 日 市 民 の 人 権 意 識 は 高 まりつつあるものの 人 権 を 侵 害 する 様 々な 事 象 が 生 起 し 基 本 的 人 権 が 完 全 に 保 障 され ていない 状 況 があることから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を 契 機 に 人 権 擁 護 の 機 運 が 浸 透 し 人 権 確 立 の 行 動 が 地 域 学 校 職 場 家 庭 などあらゆる 場 で 活 かされていくには 我 がまちが 人 権 擁 護 の 宣 言 都 市 であることを 知 っていただく 必 要 があるのです 市 民 一 人 ひとりの 人 権 が 守 られ 明 るく 住 みよい 茨 木 市 を 築 くため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の 精 神 が 活 かされるよう 私 たちは 力 を 合 わせていきましょう 内 容 は 以 下 のとおりです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すべての 人 は 生 まれながらにして 尊 ばれ 人 間 らしく 生 きしあわせになる 権 利 を 有 しています しかし このかけがえのない 人 権 を 侵 害 する 事 実 が 社 会 のさまざまな 場 面 であとをたちません 私 たちは 日 本 国 憲 法 のもとに この 大 切 な 人 権 が 傷 つき 心 を 痛 めることのないよう 平 和 と 市 民 の 生 命 と 財 産 を 守 り 市 民 生 活 を 向 上 させ あらゆる 差 別 のない 社 会 を 築 いていきたいと 願 っています 私 たちは 基 本 的 人 権 を 擁 護 するために たゆまぬ 努 力 を 重 ね 地 球 市 民 として 国 際 的 な 視 野 に 立 ち 共 に 学 び 考 え 行 動 します ここに 私 たちは 人 権 が 守 られた 豊 かで 住 みよい 都 市 をめざし 歴 史 と 緑 に 恵 まれた 茨 木 市 を 人 権 擁 護 都 市 とすることを 宣 言 します 平 成 7 年 (1995 年 )3 月 28 日 茨 木 市 3
시민 한사람 한사람의 인권이 지켜져, 밝고 살기 좋은 이바라기시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인 권 옹호 도시선언의 정신이 살아나도록, 우리들은 손을 잡아 나갑시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권옹호도시선언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중되어, 인간답게 살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중한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사회의 여러 가지 장면에서 끊이지 않습니다. 우 리들은 일본국헌법 아래, 이 소중한 인권이 상처를 받아 마음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 평화와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시민생활을 향상시켜 어떤 차별도 없는 사회를 이루고 싶다고 소원합니다. 우리들은 기본적인 인권을 옹호하기 위하여 꾸준한 노력을 거듭하여, 지구시민 으로 국제적인 시야를 가지고 함께 배우고 생각하며 행동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인권이 지켜 지고 풍요롭고 살기 좋은 도시를 향하여 유서 깊은 이바라기시를 '인권옹호도시'로 할 것을 선언합니다. 더불어 배우고 생각하며 행동하겠읍니다. 1995년 3월28일 이바라기시 위 요코스카시의 인권선언은 인권의 보편성과 차별의 철폐를 일반적으로 서술하고 있 고 이바라기시의 경우에는 차별의 철폐와 일본국헌법 준수, 기본적 인권의 옹호가 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인권도시 선언은 대동소이하여 차별문제와 피상적이고 추 상적인 인권옹호를 표명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2. 광주인권도시선언 1) 광주 인권헌장의 검토와 인권개념의 정리 광주시가 인권도시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많은 예산과 노력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세계인권도시포럼을 개최하고, 인권헌장을 작성했다. 그 규모도 크고 헌장의 채택에 머물지 않고 공무원의 실천을 촉구하여, 후속조치를 취하고 있는 점은 평가 받 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세한 해설서까지 만들어 작성 의도나 과정까지 알 수 있게 되 어 있다. 헌장의 구성에 있어서 제1장 1조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적인 인권의 핵심을 들고 있으며 제1장 2, 3조에서는 시민의 참여와 시민의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 고 제2, 3장에서는 사회권적 인권에 대해 확인하고 있으며 끝으로 위 각조항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헌장은 다른 인권선언에 비해 내용도 많고 구체적이며 공무원에 대해 헌장 이행까지 요구하고 있는 점에 특징이 있으며, 광 주시와 광주시민의 열망에 의해 '인권에 기반한 창조적인 행복도시'만들기를 목표로 하 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나온 헌장을 읽어봐도 인권도시란 무엇인가 명확히 와 닿 지 않는다. '시민의식'에서도 시민이란 법적 주체로서의 주권자인데 그 설명이 안 되어 4
있다. 또 '행복'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은 애당초 사적 소유권을 의미했던 것 이며, 요즘은 물질적 만족도에서부터 심리적인 만족감까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쓰여지 는데 광주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애매하다. 헌장에서는 아마도 인권도시 란 인권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인권이 잘 보장되는 도 시 정도의 일반적인 의미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세계인권선언과 국제인권문서가 가장 잘 지켜지는 도시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주에서는 인권도시라고 하면서 왜 여성 인권도, 장애자 인권도, 어린이 인권도, 외국인 이주자의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가 하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그리고 세계인권선언과 각종 국제인권문서 에 있는 항목을 다 실현해야 인권도시가 되는 것일까? 여성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한 다든지, 베리어 프리를 완전히 실현하면 광주가 인권도시가 되는 것일까? 그러한 과제 는 오늘날 광주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의 국가정책에 제시되어 있으며 어느 곳에서도 지 켜져야 하는 상식 내지는 기본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헌장에는 국가폭력에 의하여 유린당한 광주가 그 경험에서 우러나는 정체성을 세우려 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헌장에서 표명되는 한에서만 본다면, 그 치열하고 고통스 러운 광주의 경험을 광주와 한국, 동아시아와 세계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지를 읽어 내기가 어렵다. 즉 광주의 인권헌장이 다른 인권도시선언에 비해 좀더 비 용과 공을 들이기는 했어도 그저 구두선으로 인권과 반차별을 외우는 다른 도시의 인권 선언과 별반 큰 차이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세계인권선언과 헌법의 선양, 차별 반대나 소수자의 인권 실현, 살기 좋은 생태도시, 행복도시의 실현은 광주가 아니라도 어디서 나 이루어져야 하는 보통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본도 중요하고 의당 이 기 본을 짚고 넘어가야 하되, 광주에서만 주장할 수 있는 인권에 대한 시각과 정체성이 필 요하다고 생각한다. 광주가 인권을 말한다면 빠져서는 안 되는 몇 가지를 들어보면 1. 저항권의 표명, 2. 인권에 대한 동아시아사적인 시각 및 그 속에 있는 식민지와 분단사 의 경험에서 나오는 반식민지주의적 반제 반독재적 시각, 3.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희생 속에서 나타난 광주의 독특한 실천과 역할 등이 인권헌장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2)인권과 국가폭력 인권이란 기본적으로 전근대적 신분사회질서를 깨고 나타난 근대적인 시민의 자유권 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그 근본은 근대적인 '인간'을 탄생케 한 자유권적인 인 권에 있다고 하겠다. 인권이라는 것이 흔히 공권력이 시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처럼 오 해되기가 쉬우나, 원래 자유권적인 인권이란 공권력으로부터 무엇을 얻는 권리를 말하 는 것이 아니다. 사회계약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개개인이 그 구성원으로 되어있는 국 가의 폭력장치인 공권력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권리를 말한다. 즉 혁명을 일으 켜서 전근대적 신분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유를 얻은 시민이, 그 자유를 보호 받기 위해 국가권력을 창조해야 하는 패러독스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권이 라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5
그래서 거대한 폭력장치인 국가폭력을 통제하기 위해 헌법이 있다. 보통 헌법 첫 부 분의 기본권에서는 주권자는, 즉 나라 주인은 인민이고, 공권력은 그 인민의 자유를 침 해해서는 안되기에 공권력이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조목조목 들어 못박고 있으며, 헌 법 2에서는 3권 분립이니 공무원의 선거제도, 임기제도, 국민소환제도, 청원제도, 정보 공개제도 등을 규정하여 공권력을 쪼개고 서로 견제하게 하고 권력 행사에 여러 가지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란 한마디로 인민이 국가의 창조자고 공권력의 원천 이자 결정자인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온갖 수단으로 공권력을 통제할 수단을 명기하고 있는 문서이며 그 권력에 대한 통제장치가 바로 '인권'인 것이다. 그래서 헌법이나 국제 인권문서에서 열거되어 있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과 언론의 자유, 집회 및 시위 결사의 자유, 학문 예술의 자유 등, 시민의 권리란 국가가 시민에게 그 자유를 보장하 고 침해해서는 안되는 행위를 열거한 일람표인 것이다. 국제인권문서는 인권의 보장에 있어서 각 국가에 일차적인 의무를 지우고 있으며, 그 의무의 시행을 감시하고 위반자 에 대해서는 경고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니, 자연법적인 천부인권 이니 하는 주장은 인권에 대한 권위부여를 하기 위한 수식어이며, 인권은 하늘이 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갖다주는 것도 아니다. 인권은 피땀을 흘리면서 근대세계를 연 인민 들이 혁명적인 폭력으로 쟁취하고 결사적으로 지켜야만 했던 것이며, 결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어느 때나, 그저 인간의 간판을 달기만 하면 6) 가만히 있어도 태어나서부터 자 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권도 마찬가지이다. 약육강식의 무정부 상태인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19세기 유럽에서 나타난 빈부격차와 가진자가 없는 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 현실이 자유권적인 인권에서 천명한 '자유와 평등'을 유린하자 등장한 것이 사회권적 인권인 것이다. 그것 은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고, 국 가에게 시민의 사회적 권리의 보호 내지 권리내용의 정책적 충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개념이다. 3. 헌장에서 빠진 것들 헌장을 광주의 특색을 가지고 미래와 세계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헌장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몇 가지 생각해 보겠다. 1)저항권의 주장 주권자인 개개의 인간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개인들 에게 사회적인 규범을 준수케 함으로써 국내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공권력이라는 국가 폭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국가 및 국가폭력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6) 사람이 '인간'으로 자각하거나 인식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신분사회에서는 사람이 모두 고루 평등한 '인 간'일 수가 없었으며 사람이 '인간'으로 자각하고 인정되는 순간에 낡은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가 탄생 했다고 할 수 있다. 6
현실적으로는 왕왕 국가가 주권자인 인민의 머리위에 군림하거나 군림하는 것처럼 생각 하는 경우가 많고 수단과 목적의 역전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인권선언에는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자연권적)으로 저항권을 배경에 깔고 있으며, 반란권 또는 혁명권이라고도 하는 저항권은 독재나 폭정이 인내의 한도를 넘어서면 인민들은 무기를 들고 자신을 지 키기 위해 일어서게 된다. 저항권은 근대적 인간사회를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담보가 되어 있다. 미국독립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인정한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 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생명권과 자유권과 행복 추구권은 이러한 권리에 속한다.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정부가 조직되었으며, 정당한 정부 권력은 피치자의 동의로부터 나온다. 어떤 형태의 정부라도 이러한 목적을 훼손하는 경우, 그러한 정부를 언 제든지 변혁하고 해체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원칙에 입각하여, 권력을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할 수 있는 권리가 바로 인민에게 있다.... 인민을 절대적 전제 정치의 지배에 예속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을 때, 그런 정 부를 타도하고 인민의 향후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보호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인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또 세계인권선언 앞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반란에 호소하도록 강요받지 않으려 면 인권이 법에 의한 지배 7) 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함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인민들은 몇 차례의 항쟁이나 혁명을 통해서 위에서 말하는 저항 권을 행사해 왔다. 1980년 광주 5.18이야말로 19년에 걸친 박정희 군사독재의 탄압 속 에서 신음해 온 인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구하는 열망이 신군부에 의해 짓밟히는 현실 에 항거하여 들고 일어난 항쟁이며 바로 각 인권선언에서 천명하고 있는 저항권의 행사 인 것이다. 이 저항권은 인민이 국가의 주권자임을 명시하는 궁극적인 보장장치다. 5.18은 저항권의 실천이자 5.18의 가장 중요한 성격이기에, 헌장에 5.18이 저항권의 행 사임을 명시하여, 항상 폭압자에게 경고를 주고 억압된 인민을 고무하는 전범임을 명시 하여야 할 것이다. 2)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의 인권개념의 표명과 서구의 인권기준에 대한 표명 5.18은 근대 이후의 우리 역사의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강화도사건 이후 일제 및 서구제국주의의 침략이 본격화되어 우리나라는 급기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에 이 르렀다. 해방 직후 형성되기 시작한 분단체제의 미군정 하에서는 친미파가 득세하여 친 일파를 보호하고 친일파와 연합하면서 우리겨레의 참된 해방, 즉 식민지 지배체제와 그 7) 여기서 법이 지배하는 것이란 국가 공권력을 말한다. 7
잔재의 극복이라는 민족사적인 과제는 왜곡되게 되었다. 게다가 냉전의 시작과 6.25전 쟁은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대한민국을 친미반공독재국가로 굳히게 하면서 장기적으로 는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5.18이 일어난 역사적인 배경이 다. 5.18은 민족해방투쟁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하면서 민주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인민 과 친미 친일 독재세력과의 일대 결전장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하건데 식민지지배가 없었다면 미소의 분할점령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전이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반공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덮 어버리고, 친일파를 다시 지배자로 부활케하면서, 항일의 전통을 이어 받아 새로운 사 회건설의 열망에 불타는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하는 '인도에 대한 범죄'를 정당화 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해방 후 미국에 의해 도입되어 헌법에 명기된 서구식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외세와 독 재지배 앞에서는 한낱 장식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이 그나마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광주와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피로 겨우 얻어낸 성과였다. 서구에서 세계를 향하여 기준 으로 삼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인권개념은 '문명과 야만'이라 는 이중 기준 위에 세워진 서구적 '보편적 인권'의 성격을 짙게 지닌 것이다. 그 인권은 노예제와 식민지 지배 위에 번영을 구가한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가리는 허위 의식을 형성하고 '적반하장격'으로 비서구세계에 보편적인 인권을 실현시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적 개입이나 테러와의 전쟁 등의 명목으로 '문명과 야만'의 이원적인 세계관을 새롭게 단장하여 세계에 군림하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인권은 제국 주의자들의 패권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되어 있다.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현되려면 인권을 지금 현재 서구적 인권 메뉴에 맞나 안맞나를 평면적인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경험에 대 한 통찰을 전제로 한 세계사적인 지배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적인 시각에서 근대 이후의 인권개념을 근본적으로 재 정의할 필요가 있다. 근대 서구제국주의가 노예 제와 식민지지배 위에 번영을 구가해온 범죄성을 고발하여 밖으로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철저한 청산을 요구하고, 안으로는 제국주의자의 공범자-친일파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 며, 희생자에 대한 원상회복 및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5.18에서 광주시민 을 학살한 만행이 바로 근대 이후 일제의 우리나라 식민지지배에까지 이어지는 제국주 의 헤게모니의 맥락 속에서 저질러진 만행임을 헌장에 명시하여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노예제와 식민지 지배 및 그 잔재의 청산을 요구하는 세계사적인 과제해결에 광주가 앞 장선다는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덧붙여서 현대의 차별이라는 것도 대부분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의 논리인 '문명과 야 망'에서 발단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제국주의자들은 사회 다윈니즘 또는 우생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에 근거하여 인종, 민족, 인간에게 우열을 매기고 차별 을 제도화시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것으로 고정화하려고 했 다. 제국주의자들은 그 이론으로 전쟁과 침략, 절멸(genocide)과 식민지지배를 정당화 하였다. 일제는 방대한 조사를 통하여 일본민족에 비해 조선민족은 "게으르고, 비위생적 8
이며, 거짓말쟁이고, 단결심이 없는 민족"으로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일제의 식민지통치 는 뒤떨어진 조선인들에게 지배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다 라는 논리를 퍼뜨렸다. 현 대의 차별의 뿌리에는 인간과 인간집단의 우열을 매기는 역사적인 지배의 논리가 깔려 있으며, 단순히 '차별을 하지 맙시다'라는 말로 그 뿌리를 끊을 수 없는 것이다. 3) 국가폭력의 감시센터 광주가 우리의 아픈 역사와 광주의 처절한 경험을 토대로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국 가폭력에 대한 감시센터, 자료센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2001년 다반선 언에서 노예제와 식민지지배는 '인도에 대한 범죄'임이 천명되었는 바, 집단학살을 경험 한 광주가 '인도에 대한 범죄' 특히 식민지지배 범죄에 대한 감시와 고발자의 역할을 해 야 할 것이다. 4) 국가폭력의 상처의 치유 트라우마센터 광주가 인권도시로서 시민들이 인권을 향유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 연한 일이지만, 그러한 일상적인 삶을 넘어서 국가폭력의 희생자의 구제에 앞장 서는 실천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트라우마센터가 광주에 설치된 것은 크게 평가 받을 일이다. 나아가서 그 위상을 높이고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의 트라우마 센터의 중심거점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법적인 구제와 원호의 센터 설립도 검토해 볼 일이다. 광주 인권헌장은 과거의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역사에 뿌리를 내린 상태에서 현재의 국가 폭력을 고발하고 피해자를 옹호 지원하는 실천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래서 근대 이후 500년에 걸친 서구제국주의 중심의 세계를 개변하면서 피억압자들이 중심에 서게 되는 큰 미래를 그려내야 할 것이며, 새로운 제안과 혁신을 수용하는 열린 헌장이 되어 야 할 것이다. 9
State sponsored violence and Human Rights City of Gwangju SUH, Sung (Professor, Ritsumeikan University) As I pay my respect to the Gwangju Human Rights Charter (hereafter as Charter ), I d like to go over what is required for Gwangju to establish its own identity as a unique human rights city after having gone through formidable state sponsored violence and gruesome sacrifice, based on a critical review of the charter and with a comparative human rights perspective. 1. Japan s declaration of peace city and human rights city 1) Peace city The Asia-Pacific War waged by the Japanese militarists which started in 1931 had cost more than 20 million people s lives of East Asia and 3.1 million of its own people, in addition to the two atomic bomb attacks. After the Japanese collapse, the most important purpose of US armed forces occupying Japan was to thoroughly dissolve the Japanese militarism, so that it would never revive again which caused humiliation of the Pearl Harbor bombing to America. By breaking up the emperor system and militarism, the US military GHQ(General Head Qurtar) had provided the value of peace and democracy to post-war Japan and pushed it to amend the Japanese empire constitution to the current one called peace constitution. Thus, peace and democracy became a basic national policy that post-war Japan has advocated, but the following history showed the peace and democracy principle didn t work properly and has only functioned as a cover to hide crimes of the Japnese Imprialism that haven t been liquidated. That is because the so-called post-war reform to revive post-war Japan was frustrated, leading to value of peace and democracy staying superficial and introverted. The movement of peace city declaration that started in the 1980s in the UK has expanded to Japan with collapse of the cold war system, resulting in quite a few many local governments declaring peace or peace & human rights. Among the 1,789 Japanese cities, 1558 local governments had declared to be a 10
nuclear-free peace city, which accounted for 87.1% with declared population of 90% 8). Among them, the number of cities that have signed up for the Natinal council of Japanese nuclear free local authorities was 286. Such declaration has first started by a progressive local government which advocated idea of peace and Japanese constitution with the catchphrase of denuclearization and peace based on the fact that Japan was the world s first and only nuclear bombed country. This has stemmed from the pacifism coming from the victim mentality of no more war and expression of loyalty towards the peace constitution made according to the order of the US occupation forces. It was rapidly spread throughout the cities because it didn t cost money or require a political stance. It was convenient to vaguely decorate a city with comfortable words such as peace, human rights, humanitarianism or lover for mankind without any political burden. There are two important aspects for the Japanese peace cities: One is a nuclear-free argument that opposes nuclear weapons as a nuclear victim country 9). To be more specific, it is to abide by three denuclearization principles such as ownership, production and import of nuclear weapons. The other aspect is to follow article 9 of the peace constitution that stipulates no armament and no war. Although many Japanese local governments declared peace, Japan is heading for turning rightist and re-armament, and some politicians including Japanese Prime Minister, Abe Shinzo, are even arguing for nuclear armament. Members of the Liberal Democratic Party that account for two thirds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 call for constitutional amendment to eliminate article 9 so that Japan can be come an normal country that officially has its military. In this regard, declaration of nuclear-free peace by local governments did not actually help Japan maintain its identity as a peaceful country. It is impotent in front of the rightist Japan. 2) Human rights city 8) 日 本 非 核 宣 言 自 治 体 協 議 会 HP http://www.nucfreejapan.com/ 2013/4/25 Denuclearization declared local governments are the ones that declared or passed contents that require abolition of nuclear weapons or compliance with three denuclearization principles. The first denuclearization declaration came from Manchester city of the UK in 1980. It declared it was a nuclear zone during the cold war in order to avoid nuclear threats and asked other cities to do the same. 9) Except for some radical denuclearized peace cities that ask every country to dismantle all their nuclear bombs, most denuclearization declared cities in Japan argue for nuclear non-proliferation, which is in line with national interests of America whose most important military policy is exclusive ownership of nuclear weapons. Thus, it only gives a righteous image to cities without having to take any political risks. 11
Among the declared cities, some named themselves a peace & human rights city or a human rights (declaration) city. When looking closely, the declaration is about opposing discrimination of the BURAKU people and pleading for compliance with the Japanese constitution. But the contents are very abstract, failing to include the requirement of the declaration that fascism including the Japanese militarism must be thoroughly liquidated and misunderstanding the spirit of the human rights declaration. Following is the declaration of human rights city of Yokosuka and declaration of human rights protection city of Ibaraki. a. Declaration of human rights city of Yokosuka Human rights are naturally guaranteed based on the fact that one is a human. Every person equally obtains human rights from the moment of birth. City of Yokosuka respects each and every citizen as a irreplaceable precious individual who lives, works, learns and plays on this land regardless age, gender or nationality. We declare we engage in city administration based on the ideology of human rights protection by cooperating with citizens to become a city without discrimination, prejudice and human rights violation 10). b. Declaration of human rights protection city of Ibaraki 11) 10) Original text: " 横 須 賀 市 人 権 都 市 宣 言 " 人 権 は 人 が 人 であることに 基 づいて `/ 当 然 に 保 障 される 権 利 で す すべての 人 は 生 まれながらにして / 等 しく 人 権 を 有 しています しかしながら 現 実 には 差 別 や 虐 待 などの/ 人 権 問 題 が 存 在 しています 横 須 賀 市 は 子 どもから 高 齢 者 まで 世 代 を 問 わず /また 性 別 や 国 籍 を 問 わず この 地 に 暮 らし 働 き 学 び 遊 ぶ 市 民 一 人 ひとりを/かけがえのない 個 人 として 尊 重 します さまざまな 差 別 や 偏 見 をなくし 人 権 が 侵 害 されることのない 都 市 をめざして 市 民 と 協 働 しつつ 人 権 尊 重 の 理 念 に 基 づく 市 政 に 取 り 組 むことを 宣 言 します 平 成 19 年 2 月 18 日 / 横 須 賀 市 長 蒲 谷 亮 一 11) Original Text: '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 世 界 では 世 界 人 権 宣 言 を 契 機 に 人 権 に 関 する 諸 条 約 を 批 准 し 人 権 確 立 に 向 けて 地 球 的 規 模 で 取 組 みが 進 めら れ 人 権 尊 重 は 世 界 の 潮 流 となっています このような 背 景 のもとに 日 本 国 憲 法 で 保 障 された 基 本 的 人 権 は 不 断 の 努 力 があってこそ 保 持 できるものであり 市 民 と 市 が 一 体 となって 人 権 擁 護 に 取 組 んでいくため 人 権 が 守 られた 豊 かで 住 みよい 都 市 づくり に 向 けて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を 市 議 会 の 議 決 を 得 て 制 定 しました 今 日 市 民 の 人 権 意 識 は 高 まりつつあるものの 人 権 を 侵 害 する 様 々な 事 象 が 生 起 し 基 本 的 人 権 が 完 全 に 保 障 され ていない 状 況 があることから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を 契 機 に 人 権 擁 護 の 機 運 が 浸 透 し 人 権 確 立 の 行 動 が 地 域 学 校 職 場 家 庭 などあらゆる 場 で 活 かされていくには 我 がまちが 人 権 擁 護 の 宣 言 都 市 であることを 知 っていただく 必 要 があるのです 市 民 一 人 ひとりの 人 権 が 守 られ 明 るく 住 みよい 茨 木 市 を 築 くため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の 精 神 が 活 かされるよう 私 たちは 力 を 合 わせていきましょう 内 容 は 以 下 のとおりです 人 権 擁 護 都 市 宣 言 すべての 人 は 生 まれながらにして 尊 ばれ 人 間 らしく 生 きしあわせになる 権 利 を 有 しています しかし このかけがえのない 人 権 を 侵 害 する 事 実 が 社 会 のさまざまな 場 面 であとをたちません 私 たちは 日 本 国 憲 法 のもとに この 大 切 な 人 権 が 傷 つき 心 を 痛 めることのないよう 平 和 と 市 民 の 生 命 と 財 産 を 守 り 市 民 生 活 を 向 上 させ あらゆる 差 別 のない 社 会 を 築 いていきたいと 願 っています 12
After release of 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human rights treaties have been ratified in many countries, and specific projects have been carried out on a global scale, indicating human rights protection has become a world s trend. Under the circumstances, fundamental human rights guaranteed by the Japanese constitution could be possessed only through continuous efforts. Declaration of human rights protection city was enacted by the city council in order to make efforts to protect human rights with tight cooperation between the city and the citizens and to make a affluent and attractive city where human rights are protected. Although citizens awareness of human rights has been raised, there are still violations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human rights are not fully protected. To make the spirit of human rights protection to be permeated into the society and to establish human rights at every place such as home, work, community and school based on the declaration, you need to know our city is human rights protection declared city. In order to build a happy and attractive Ibaraki city by protecting each and every citizen, let us hold hands so that the spirit of declaration of human right protection city can be uplifted again. The text is as follows: Declaration of human rights protection city All people are given the right to be respected, to live with human dignity and to be happy. However, constant violations of such precious human rights are seen on many scenes of the society. Under the Japanese constitution, we hope to build a society without discrimination by guarding peace, life and property of citizens and by enhancing lives of citizens so that such precious human rights are not violated. We will learn, think and take actions together based on a global perspective through constant efforts in order to protect fundamental human rights. We declare historic Ibaraki is a human rights protection city that is to become a affluent and attractive city where human rights are protected. We will learn, think and act together. Ibaraki city, March 28, 1995 The human rights declaration by Yokosuka city above generally stipulates universality of human rights and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The declaration of Ibaraki is about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s, compliance with the Japanese constitution and protection of fundamental human rights. Japan s declarations of human rights are almost identical, expressing superficial and abstract human rights protection. 私 たちは 基 本 的 人 権 を 擁 護 するために たゆまぬ 努 力 を 重 ね 地 球 市 民 として 国 際 的 な 視 野 に 立 ち 共 に 学 び 考 え 行 動 します ここに 私 たちは 人 権 が 守 られた 豊 かで 住 みよい 都 市 をめざし 歴 史 と 緑 に 恵 まれた 茨 木 市 を 人 権 擁 護 都 市 とすることを 宣 言 します 平 成 7 年 (1995 年 )3 月 28 日 茨 木 市 13
2. Gwangju s declaration of human rights city 1) Review of Gwangju s human rights charter and concept In order to establish an identity as a human rights city, Gwangju has held a large scale of world human rights cities forum with great efforts and budget, and has written a human rights charter. It is noteworthy that the scale is large and it doesn t stay at just adopting the charter but it facilitates execution by civil servants leading to follow-up measures. In the booklet, detailed explanation is also contained so that intentions and process can be understood. The article 1 of chapter 1 stipulates fundamental human rights such as freedom of thought and speech, and the article 2 and 3 state citizen participation and citizenship. Chapter 2 and 3 emphasize social human rights, and implementation of each article is called upon. The charter includes more contents and specifics than other charters, and it even requires implementation by public servants. It targets making a creative and happy city based on human rights according to the aspirations of the city and the citizens of Gwangju. Even so, the charter released last year doesn t seem to convey a clear concept of what a human rights city really is. Regarding citizenship, it is not explained that a citizen is a sovereign as a legal subject. As for happiness, it originally meant private ownership and it came to include more meanings nowadays such as physical and psychological satisfaction, and Gwangju s definition of the concept is ambiguous. It seems that the charter contains a general meaning of human rights city that it is a city where human rights are well protected by getting special attention. In other words, it is a city that abides by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nd international documents on human rights. However it is said there is also criticism in Gwangju over why human rights of women, the disabled, children and migrant workers are not properly protected even though it is a human rights city. Does a city have to implement all the items specified by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and international documents on human rights to be a human rights city? Do equal rights have to be given to women or a barrier-free society has to be realized in order for Gwangju to be a human rights city? Nowaday, aren t they almost common sense that is already presented by national polices of many states rather than specific to Gwangju? The charter doesn t clearly show that Gwangju that had been sacrified by state sponsored violence tries to establish its own identity based on these 14
experiences. By looking at what is expressed in the charter, it is hard to identify a determination to make the painful and intense experiences a chance to change Gwangju, Korea and East Asia. In other words, although the human rights charter of Gwangju was made with more expense and efforts, it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e decralations of other cities where concepts of human rights and anti-discrimination are just verbally cited. Human rights declaration, exaltation of constitution, anti-discrimination, implementation of human rights of minority, building an attractive ecological city and realization of a happy city are ordinary words that can be said anywhere, not specific to Gwangju. A perspective and an identity about human rights that can be stated by Gwangju only are necessary, although basic principles are important and thus need to be emphasized. What shouldn t be missing in the Gwangju s charter are as follows: 1. Expression of right of resistance, 2. Perspective of East Asia over human rights, anti-imperialism and anti-dictatorship based on the experience of a colony and nation s division, 3. Gwangju s unique implementation and roles shown in sacrifice and resistance against state sponsored violence. 2) Human rights & state sponsored violence The concept of human rights has stemmed from modern civil liberties that emerged from breakup of pre-modern hierarchy system, and still the fundamentals lie in the human rights of civil liberties that gave birth to modern humans. Often times, human rights are misunderstood as services provided by government authority to citizens. But human rights of civil liberties are not the rights to obtain something from the government authority. From the theory of social contract, they are the rights not to be interfered by the governmental power which is a violent mechanism of a state where each individual is a sovereign. In other words, citizens who broke the pre-modern hierarchy system and obtained freedom by waging a revolution have come up with a mechanism called human rights, in facing a paradox that common state violence needs to be created in order for the freedom to be protected. That is why constitution exists to control state sponsored violence which is a mechanism of huge violence. Usually as for the fundamental rights of the first section of the constitution, since a sovereign or an owner of the state is people, public authority must not infringe on freedom of the people. Thus, each action that must not be done by the government authority is stated in the constitution. And the constitutions also stipulates separation of the three powers, election system of civil servants, term system, summons system, petition system and information 15
disclosure system and others so that government power can be divided and held in check, and there can be limits in power exercise to protect human rights. Simply put, constitution is a document that states people are the sovereign who are the creator of the state, the source and decision maker of governmental power, and every way to control public authority. And the control mechanism of such state violence is human rights. Therefore civil rights stipulated in a constitution or international human rights documents such as freedom of conscience and ideology, freedom of speech, freedom of assembly, demonstration & association, academic freedom and freedom of art are the list of actions that should be guaranteed by state and should not be infringed upon. The international human right documents have been drawn upon in order to impose each nation of a primary obligation in protecting human rights, to monitor execution and to warn violators. Human dignity or natural rights of man is just like as a modifier to give authority to human rights. Human rights are not given by God or Heaven, etc. Human rights were earned through revolutionary violence and have been desperately guarded by people who opened the modern world with their blood and sweat. It is not something that is automatically given to someone just because he or she is a human 12). That is same as the social rights. Under the market economy system of anarchy state which was ruled by law of jungle, the reality of the 19 th century Europe was that the haves persecuted and exploited the have-nots. That s when such rights have emerged since freedom and equality were violated which was declared in the human rights of civilliberties. That is the concept generated from the process that demanded implementation of actual freedom and equality and asked nation to protect social rights of citizens or to come up with policies to do so. 3. What is missing in the charter Following are several aspects necessary for the charter to contribute to the future and the world with Gwangju s unique characteristics. 1)Argument for right of resistance To protect each individual or sovereign from outer threats and to maintain domestic order and security by making individuals whose interests are 12) It was not easy for a person to be recognized as a human. Under the hierarchy system, not every person was an equal human. Once a person started to be acknowledged as a human, the old system has begun to collapse to become a new society. 16
conflicted each other, state sponsored violence called public authority is necessary. State or state sponsored violence here is a tool to protect human rights. However, often times in reality, state ruled over or is considered to rule over the people, and there was reversal of means and purpose. Hence, declaration of human rights is explicitly or implicitly (according to the natural law) base on the right of resistance, and such right also called right of uprising or revolution can be exercised by people with weapons to protect themselves when tyranny goes beyond their patience. Right of resistance should be a last resort to guard the modern human society. America 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states as follows: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That to secure these rights, Governments are instituted among Men, deriving their just powers from the consent of the governed, --That whenever any Form of Government becomes destructive of these ends, it is the Right of the People to alter or to abolish it, and to institute new Government, laying its foundation on such principles and organizing its powers in such form, as to them shall seem most likely to effect their Safety and Happiness.... When a long train of abuses and usurpations, pursuing invariably the same Object evinces a design to reduce them under absolute Despotism, it is their right, it is their duty, to throw off such Government, and to provide new Guards for their future security. And the preamble of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states as follows: if man is not to be compelled to have recourse, as a last resort, to rebellion against tyranny and oppression, that human rights should be protected by the rule of law 13) In Korean history, people have exercised their rights of resistance through several occasions of rebellions and revolutions.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or 5.18 was an uprising raised against reality where people s desire for democracy and freedom after going through suppression of Park Chung-hee s military dictatorship for 19 years was trampled upon. That was an exercise of resistance rights stated in each declaration of human rights. That is an ultimate safeguard that indicates people are sovereigns of a state. Because 13) It means here that law rules government violence. 17
the 5.18 movement was an act of resistance which is the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 of the movement, it should be stated as an exercise of resistance rights so that oppressors are warned and oppressed might be encourage by the 5.18 movement as a touchstone. 2) Concept of human rights in East Asian history and standard of human rights in the West The 5.18 movement had occurred in the context of our modern and post-modern history. Since the Ganghwado incident, incursions of Japanese and western imperialists have started in earnest, resulting in Korea being colonized by Japan. Under the US military rules during the start of divided Korea which was formed right after Korea s liberation, pro-american groups have gained influence in the country, protecting and joining forces with pro-japanese groups. As a result, our historical callings of gaining true independence and overcoming colonial rules and it s legacies were disrupted. In addition, the Cold War and the Korean War have fixated the nation s separation and made a Korea pro-american and anti-communism dictatorship country, resulting in long-term rule of the dictator administration. And that i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5.18 movement. It can be defined as a remarkable showdown between the pro-american and pro-japanese power groups, and people who have desired democracy and unification of the country by maintaining spirit of national liberation. Looking back, if there was no colonization, there wouldn t have been separated occupations by the US and the Soviet Union. Unless the Cold War has started, there wouldn t have been justification of crimes against humanity that massacred civilians by covering anti-state activities and reviving pro-japanese groups based on the absolute value of anti-communism although those civilians had desired to build a new society with anti-japanese spirit. The western style of democracy and human rights introduced by the US after liberation which was stated in the constitution was just a mere slogan, facing foreign influence and the dictator government. That has gained significance later through numerous pro-democracy advocates and Gwangju s sacrifice. The concept of human rights used in Korea which is pushed by the west to be adopted by states around the world has a western universal human rights characteristic based on a double standard called civilization and barbarism. Such human rights form false consciousness that commemorate brutality of the western and Japanese imperialists who have enjoyed prosperity based on slavery and colonization. But they rather criticize non-western nations, saying 18
they do not abide universal human rights and they try to version up the dualistic world view called civilization and barbarism making up new words of humanitarian intervention or war against terrorism. Their concept of human rights has become a tool for imperialists to pursue hegemony. For true democracy and human rights to take roots in this society, we should not decide whether they satisfy the current western standard or not, but rather we need to have an understanding of world ruling structure based on the insight over historical experiences. Concept of human rights of post-modern era needs to be fundamentally re-defined from a historical perspective. Externally, thorough liquidation of colonization vestige must be carried out by accusing criminality where modern western imperialists have enjoyed based on slavery and colonization. Internally, cats-pawns of imperialists and pro-japanese groups must be convicted, and restoration of rights and compensation of damages must be made for the victims. The fact that brutality of Gwangju citizen massacre that occurred on May 18 is committed in the historical context of colonization by Japanese of imperialism must be indicated in the charter, so that Gwangju can take the initiative over the world in resolving liquidation of slavery and colonization vestige that still exist today. Discrimination of today has also stemmed from imperialists logic called civilization and ambition. In the mid-19th century, imperialists have ranked races, peoples and humans based on pseudo science theories such as social Darwinism or eugenics by institutionalizing discrimination so that people could believe relationships between the ruling and the ruled were inevitable. Based on this logic, imperialists have justified war, invasion, genocide and colonization. Through broad resarchs, the Japanese Governor-General of Korea have tried to verify that people of Korea were more lazy and unsanitary liars who lack spirit of unity compared to the Japanese in order to spread the argument that Japan s colonization of Korea was to give benefit of governance to the Korea people who lagged behind. At the root of discrimination of today, there are logics of traditional ruling tequnic that divide people superiority or inferiority to rank people and groups. Thus, citing a single catchphrase No discrimination cannot get rid of such problems. 3) Watchdog of state sponsored violence Gwangju will have to play a role as a watchdog and data center of state sponsored violence for Korea and East Asia based on the sad history and heartbreaking experiences. In addition, considering slavery and colonization 19
were declared to be crime against humanity at the 2001 Durban Declaration, Gwangju that experienced massacre will have to play a monitor and accuser especially against colonization crimes. 4) Trauma center to treat scars of state sponsored violence Gwangju deserves to enjoy human rights as a human rights city and live happily, but it needs go beyond such daily routines, taking the lead in helping victims of state sponsored violence. In that regard, it is very significant that the first trauma center of East Asia was built in Gwangju. It needs to continue to raise its status and grow to be a leader of trauma centers in Korea and East Asia. In addition to that, I suggest establishment of a legal aid center can be a next step. The Gwangju human rights charter needs to lead to actions of accusing current state sponsored violence and supporting victims, having its roots in the history of Korea and East Asia. By doing so, a big picture should be presented for the future where the oppressed take the lead in transforming the world which had been western imperialism oriented for the past 500 years, and the charter has to be an open for new ideas and innovation. 20
국가폭력에서 인권도시로: 대만 메이리다오( 美 麗 島 )사건 vs. 한국 광주항쟁 주립희 (대만 까오슝시 인권위원회 위원) 2008년 11월에 필자는 대만 중부에 있는 창화현 시조우향( 彰 化 縣 溪 洲 鄕 ) 현지인 약 200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화려한 휴가 를 감상한 적이 있다. 그 다음, 광주MBC 제 작, 5 18기념재단 이 발행한 다큐멘터리 광주항쟁(Gwangju Uprising) 을 보여 주 었다. 행사가 끝난 후, 열정적인 주인이자 시인인 우성( 吳 晟, 대만 문단에서의 지위는 한국의 고은 씨에 상당함)씨의 요청으로 머무르게 되어, 현지의 유지, 지식인들과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가운데, 한 분이 현지 경찰서의 형사부장인 황성루 ( 黃 盛 K, 현재는 시조우향장을 맡고 있음. 전남의 함평군수에 해당)씨로, 그 분은 필자 에게 이 다큐멘터리가 국립경찰대학교에 다닐 때(1977-81)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였다. 당시, 경찰대학교에 폭동진압훈련실무 수업이 있었는데, 바로 한국경찰이 학 생 가두시위를 진압한 자료영상을 교재로 삼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 자료영상은 한국경 찰청이 제공한 것으로, 한국에서 전 후임의 가장 잔혹한 두 군사 독재정권시대, 국가 폭력으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인권을 유린한 실재영상으로 대만 경찰대생의 훈련 교 재로 삼은 것이다. 이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경악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원래 대만과 한국의 독재정권 시대에, 뜻밖에도 이러한 반민주, 반인권 의진압수단이모두서로학습하 고교류한것이라니, 정말이지 얼마나 비열하고 수치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오늘 발표를 이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한다. 시간을 3년 반 전으로 돌려 놓아, 2009년 12월 10일에 메이리다오 사건 30주년 기 념행사가 있었다. 당시, 필자는 까오슝 시장 천쥐( 陳 菊 )를 대신하여 국가인권위원회 를 사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경환 위원장, 당시의 518기념재단 윤광장 이사장 등 귀빈을 초청하여 까오슝에서 일련의 기념 행사에 참가하였다. 필자는 뤼시우리엔( 呂 秀 蓮 ) 전 부총통이 진행을 맡은 대만, 한국 인권대화 에서 통역을 맡았다. 뤼시우리엔 전 부총통은 그때 안경환 교수에게 가슴 아픈 비밀을 털어 놓았는데 본인 이 통역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인상이 깊다. 뤼시우리엔은 메이리다오 사건 의 피해 당사자로, 그녀는 출옥 후에 비로소 국민당 장징궈( 蔣 經 國 )정권이 비열한 수단으로 21
그들을 함정에 빠뜨린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메이리다오 사건 은 미리 짜놓은 선진압, 후폭동 의 책략적인 흉계였던 것이다. 헌병으로 제대한 대만 청년이 그녀에게 알려 주었는데, 메이리다오 잡지사 부근의 건 물 지하실에 200여 명이 넘는 사복경찰, 상고머리를 한 헌병들이 그 안에서 근무 전 훈련 을 받고, 그 다음 여러 무리로 나뉘어서 군중 속으로 섞여 들어가서는 군중과 함 께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하면서 헌병과 경찰들의 봉쇄선 앞까지 갔다고 한다. 이때, 사복 차림의 상고머리를 한 군중들이 큰 소리로 고함을 쳐서, 헌병과 경찰에 야 단을 쳤고, 그 후 손에 든 각목 또는 철기로 헌병과 경찰에게 공격을 시작하였다고 한 다. 공격을 당한 헌병, 경찰은 핑계를 삼아 반격의 공세를 취하고, 몽둥이와 총으로 공 격, 군중에게 강력하게 진압을 전개하여 적지 않은 군중들이 피를 흘리는 부상을 당했 다. 원래 평화시위를 진행했던 군중은 헌병과 경찰의 진압을 당한 후 분노하여, 더욱 격렬하게 대항을 하게 되었고, 잇달아 사방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돌멩이, 몽둥이 등을 찾아서 헌병과 경찰에 대항하였는데, 이른바 군중폭동 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이 짜놓은 함정을 알지 못했던 재야 인사들은 맹목적인 군중들을 이끌어 올가미에 걸리게 된 것이다. 선진압, 후폭동 의 국가폭력은 메이리다오 사건 충돌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만인은 국민당의 이러한 비열한 수단을 모르고 있으며, 국민당 어용언론 에서는 오히려 재야인사가 민주를 쟁취하는 행동을 폭도 의 폭동 으로 보도하였다. 왜냐하면, 신문매체는 단지 헌병과 경찰이 많은 군중들로부 터 난폭한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다고 크게 보도할 뿐, 얼마의 군중들이 다쳤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것은 광주항쟁 당시의 매체와 거의 같다). 보수경향의 연합보 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경찰 한 명이 병원의 침상에 누워서 위아래 이가 폭도의 쇠갈고리에 의해 뽑혔다고 했다. (이게 가능한가? 시위현장에서? 경찰이 얌전하게 입을 벌리고 쇠갈고리를 입에 넣어 이를 뽑 게 했을까?) 사건이 일어난 후 유사한 보도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민주 인사를 폭도화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켜, 독재통치 당국은 군법의 재판을 받도록 합리화 하기 위하여 사건 주모자에게 반란죄를 씌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필자 생각에 광주항쟁을 잘 아는 여러분께서는 데자뷰 의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광주항쟁 과 메이리다오 사건 의 국가폭력 성격이 뜻 밖에도 왜 이렇게 비슷한가? 메이리다오 사건은 1979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발생하였고, 5개월 후에 5 18광주항쟁 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선진압, 후폭동 이 아닌가? 함정 책략도 너무 흡사한 것이 아닌가? 전두환 등의 신군부 세력은 메이리 다오 사건에서 뭔가를 얻은 것은 아닐까? 대만의 장씨 왕조 독재정권에게 폭동진압의 경험과 기술을 제공받은 것은 아닐까? 마치 한국 경찰이 폭동진압 영상을 대만에 제공 하여 교재로 사용하게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당연히 이렇게 합리적으로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양국 독재정권의 최고 정 보기구 간에 반드시 밀접한 합작교류 관계가 있어서, 사건 발생의 시간과 진압의 형태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