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1. 서부 신개발지역 서부 신개발지역은 대전광역시의 서부지역으로 유성과 진잠 등 오랜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 위치해 있으며, 대전광역시의 부도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성은 유성온천을 중심으로 한 관광과 위락의 중심지이며, 대전광역시 서북부지역 및 광역교통의 거점이다. 진잠은 서남부 지역의 교 통, 물류, 유통의 중심지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노은, 관저, 도 안 일대에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고급주택, 고급빌라 등 주거단지, 상업시설이 조성되면서 급속 한 인구증가 등 지속적인 변화가 기대되는 지역이다. 유성온천은 조선시대부터 유명했으나 현대적인 의미의 온천시설은 1910년대 일본인들이 온 천공 개발, 온천장을 신설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만년장, 유성관광호텔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유성 5일장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으로 대도시인 대전광역시의 도심 안 에서 옛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유성지역은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로 도시기반을 구축하였다. 1973년에 대덕연구단지가 조 성되고, 2000년대 노은신도시, 도안신도시가 개발되는 등 현재까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노 은신도시는 1지구와 2지구로 나뉘어 계획되었으며 주민의 대부분은 대덕연구개발특구 종사자와 이전 신도시인 둔산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노은신도시는 둔산보다 절반의 면적에 인구 비 율도 작은 편이지만 둔산에 비해 인구밀도가 낮아 쾌적하고 조용하다. 또한 자연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도시설계로 인해 조망권 등이 타 지역에 비해 탁월하다. 진잠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해 진현 현, 진잠현, 진잠군의 고을로 1세기 동안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진잠지역은 면적의 70% 가 개발제한구역이나 서남부권 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데다 유성구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서남부권은 대전에 남은 마지막 대규모 유휴지로, 가수원동에 이르는 서남부지역을 공영개발 방식에 따라 단계적으로 개발하고자 1998년 서남부생활권개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다. 이계 획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개발과 토지이용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우선 1단계로 2000년 496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12월 건설교통부로부터 지구지정을 받아 2006년에 착공, 2011년 준공하였으며 이후 1단계의 개 발 성과에 따라 2, 3단계 지역도 단계적으로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남부권 개발은 광역중심기능을 갖춘 새로운 자원의 미래형 혁신도시 건설과 전략적 개발구 상을 통한 전원형 친환경 생태도시, 자족기능을 갖춘 미래지향적 신도시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 이다. 특히 도안신도시 일대는 대전 도시철도 2호선 노선이 경유하는 지역으로 지역발전이 기 대되는 곳이다. 생활환경도 대체로 양호한 편인데, 현재는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이 부족하지 만 외부에 있는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로의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학하지구는 지역의 역사, 지 리, 환경, 문화, 풍토 등을 고려, 단지별로 주제를 정하여 세부화되고 종합적인 경관계획을 수 립하였다. 서남부권은 광역교통망이 잘 구축 되어있으며 쾌적한 주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문화 시설이 부족한 것은 향후 보완해야할 문제이다. 2. 유성온천의 역사와 관광단지화 유성온천은 삼국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자들이 온천 욕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근대화된 온천 개발은 1910년대 온천공 개발과 1932년 온천장을 신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1960년대에 들어서서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온천지역이 되었다. 이후 1994년에는 유성온천 일대와 엑스포과학공원이 유성 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전국적인 관 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1) 유성온천의 역사 유성온천의 온천수에는 약 60여 종의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유성온천수는 지하 200m~500m 아래의 화강암 단층에서 분출되는 섭씨 27~56도의 열천으로 알칼리성 라듐 온천이다. 온천물이 매끄럽고 피부에 자극이 없으며 아연, 철 등의 미네랄이 골고루 함유되어 있다. 유성온천은 1,300년 전 삼국시대에 발견된 것으로 우리나라 온천 지구 가운데 가장 오랜 역 사를 지니고 있다. 유성온천과 관련된 일화로 신라군 화살을 맞고 포로가 됐다가 도망쳐 온 백제 군 병사가 온천욕을 하고 난 뒤 온몸의 깊은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497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고려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고려사>에는 전국의 10여 개 온천 중 하나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유성현 동쪽 가까운 곳에 온천이 있다고 기록되 어 있다. 이외에 <동국여지승람>에는 태조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 도안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쉬어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태종은 무예 훈련과 사냥을 위해 전국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태종 13년(1413) 전라도 임실로 무예 훈련을 떠날 때 유성온천에 들 러 하룻밤을 자고 갔다. 그 때 태종은 지금의 유성 장대동 일대에서 군사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그것을 참관했다. 왕이 군사들의 훈련을 지켜봤던 곳이 현재의 왕가봉(유성구 노은동)이며, 군 사들이 훈련하던 곳이 진터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후 조선의 역대 왕들은 당시에 흔했던 염증과 피부병 치료 및 민심을 살피기 위해 가끔씩 온천을 찾았었는데, 유성온천도 그 곳 중 하나였다. 유성온천의 본격적인 개발은 1913년 일본인들이 온천공을 개발하고, 욕조 4개와 특등욕장 2 동 등 근대적인 온천시설을 준공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15년, 당시 공주의 부자였던 김갑순 이 지금의 유성호텔 자리에 온천장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만년장, 봉명관 등의 온천장이 들어서 면서 오늘날의 유성온천으로 발전해왔다. <그림 5-4-1> 일제강점기의 유성온천 [출처 : 대전광역시, 2011, 근대 사진엽서로 보는 100년전 대전] 498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유성온천은 1922년에 대전온천이 설립되고, 1923년 남만주철도가 유성온천 일부를 인수 1부 위치와 영역 해 건물을 신축하면서 대형화되기 시작하였다. 남만주철도는 유천면에 임시정차장을 설치하고, 자동차를 이용해서 철도여행객들을 유성온천으로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유성온천을 전국적으 로 유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1924년 유성온천은 대전온천에서 유성온천으로 바뀌었 으며, 1927년에는 오락장을 신축하는 등 발전을 거듭 해 1940년대에는 자본금 20만원의 기업 으로 성장했다. 2부 자연 <그림 5-4-2> 유성온천호텔 평면도 3부 경제 [출처 : 대전광역시, 2011, 근대 사진엽서로 보는 100년전 대전] 4부 사회문화 <그림 5-4-3> 유성온천 내부 5부 지역특성 [출처 : 대전광역시, 2011, 근대 사진엽서로 보는 100년전 대전] 499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이후 유성온천은 대전시민의 목욕 나들이 장소가 되었다. 유성온천은 대전 도심부와는 달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집들도 거의 없는데다 주변에 논밭이 펼쳐져 있어 목가적인 전원 분위 기를 가졌음과 동시에 큰 호텔들이 즐비한 번화가였다. 목욕탕의 규모도 대전 도심부의 목욕탕 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넓었다. 이후 시민들의 소득이 점차 늘어나고 1980년대 중 후반부터 마이카 붐이 불면서 유성온천 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유성온천에는 주말은 물론이고 주중에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찾 아왔다. 이를 반영하듯 목욕탕의 수도 늘어났다. 유성구의 자료에 따르면, 1990년 15개이던 유 성의 목욕탕은 1997년 22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후 온천 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수많은 경 쟁 온천의 출현과 함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로 레저와 휴양 방법이 다양화되면서 유성온천 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림 5-4-4> 1984년 유성의 시가지 전경 [출처 : 대전일보, 대전 재발견 - (23) 유성온천, 2009. 7. 1. 12면] 2) 유성 관광특구의 현황 관광특구는 여러 가지 법적 규제 완화와 관광산업의 보장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24시간 동안 일정한 지역에서 자유롭게 관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지역관광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관광특구의 지정요건은 연간 외국인 관광객 유치실적이 10만 명 이상인 곳으 로 유성, 제주, 경주, 설악산, 해운대 등 5개 지역이 지정되어 있다. 관광특구는 24시간 영업과 500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관광진흥기금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관광업계 발전을 위한 혁신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 1부 위치와 영역 나 1990년대 관광지구로 지정된 유성온천의 경우에는 호텔 등 기반시설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관광프로그램이 빈약해 관광객이 특구지정 이전보다 10~20% 정도 줄어들었으며,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영업시간 제한조치가 해제되자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가 500여 개소나 늘어났다. 이는 대전광역시 인근의 도시에 퍼져있던 유흥업소가 영업시간의 제한이 없는 유성으로 집중되었다 고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유성 관광특구는 온천의 이미지보다는 유흥업소가 밀집한 향락가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2부 자연 <그림 5-4-5> 1990년대 관광특구 지정후 유성온천 3부 경제 [출처 : 대전일보, 대전 재발견 - (23) 유성온천, 2009. 7. 1. 12면] 4부 사회문화 <그림 5-4-6> 유성온천 족욕 체험장 5부 지역특성 501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이러한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온천관광특구로 거듭나기 위해 유성구에서는 많은 노력을 기 울였다. 현재 유성온천관광특구에는 대중 온천목욕탕과 유성호텔, 호텔 리베라, 계룡스파텔, 호 텔 스파피아, 호텔 아드리아 등 대형 숙박업소와 유흥업소, 편의시설 등이 군집해 있고, 족욕체 험장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이러한 인프라를 활용, 유성온천관광특구에서는 매년 5월 유성 온천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유성온천문화축제는 눈을 닮은 하얀 꽃잎이 아름다운 이팝나무가 심어져 있는 눈꽃거리를 중 심으로 개최된다. 유성을 대표하는 이미지인 온천, 젊음(대학), 전통을 테마로 하는 축제로 매년 5월에 유성온천거리~계룡스파텔 구간에서 열린다. 테마별로 운영 존을 구성하여 유성온천수 무 료 족욕체험, 온천수 과학 체험, 온천 수신제, 테마 퍼레이드, 온천수 플레이존, 테마가 있는 음 식코너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유성온천문화축제는 관람 위주의 축제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직접 축제에 참여하는 참여형 축 제로 개최해 국내외 관광객과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또한 특색 있고 매력 넘치는 다양한 온천(spa) 분야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유성온천이 명실상부한 유명 관광지로 재 부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 5-4-7> 유성온천문화축제 [출처 : 유성구 홈페이지, http://www.yuseong.go.kr] 502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3. 유성의 전통과 현재 1) 유성5일장 유성5일장(이하 유성장)은 대전광역시 유성터미널 주변 장대동 일대 5만 2,707m2에 자리잡 고 있다. 매월 5일마다 4일, 9일로 끝나는 날(4 9 14 19 24 29일)에 열리는 정기 재래시 장이다. 유성장은 1916년 10월 정식으로 개장하여 1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전설에 의 하면 백제시대 도읍이 공주로 정해질 무렵부터 장이 섰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지금의 4일 9일장이 아니라 5일 10일장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장날마다 비가 내려 현재와 같은 4 일 9일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유성장은 초기에는 약 1,980km2의 부지에 점포 40여 개가 있었으나, 점점 확장되어 현재는 버 스터미널, 주변의 공터와 골목에까지 장이 들어섰으며 300여 개의 점포와 1,000여 명의 상인이 장사를 하고 있다. 유성장은 광역시인 대전의 도심 안에서 옛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장의 규모가 커서 대 전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생활권인 옥천 공주 조치원 금산 논산 등지에서 까지도 장을 보 러 올 정도이다. 유성장에서 취급하는 상품도 다양하다. 장대동사무소 뒤편의 장터 입구에서는 가축류가 거래 되고, 그 안쪽으로 어류 채소류 의류 식기류 순으로 좌판이 벌어진다. 지역 특산물로는 구즉 묵마을의 묵, 학하리 고구마, 세동상추, 유성배 등이 거래된다. 시골 아줌마들이 손수 재배한 푸 성귀를 내다파는 채소전에는 애호박 오이 가지 등 싱싱한 채소가 푸짐하다. 쌀이나 콩 등 곡 <그림 5-4-8> 1960년대 유성장날 (좌) <그림 5-4-9> 최근의 유성장 (우)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출처 : 대전일보, 대전 재발견 - (24) 유성 2009. 7. 22. 12면] 503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물류를 됫박 단위로 사고 파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무쇠솥에 끓여 파는 국밥집, 천원짜리 한 장으 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잔치국수, 숭숭 썰어 놓은 소의 생간과 천엽을 막걸리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주막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특히, 장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치면 장날 중의 장날이 된다. 이 시기에는 좁은 시장골 목을 지나다니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 특히 충청도 사투리로 이루어지는 흥정은 오가 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장의 활기는 이전에 비해 점차 침체되고 있다. 인근에 들어서고 있는 대형유통점들이 가장 큰 원인인데,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낡은 장옥 일부를 최근에 현대적인 상가 건물로 재건 축하기도 했지만 늘어나는 대형유통점과 경쟁하기에는 벅찬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고 대형유통점와의 차별을 두기 위해 유성장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 다. 유성구는 최근 유성장에서 시민들이 사시사철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문화공연장을 설치 했다. 전통5일장과 예술의 만남 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새로 생긴 야외무대와 마당 놀이장에서는 장날마다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유성온천문화축제와의 연계도 이루어져, 축 제시기에는 유성장에서 품바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유성장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처럼 유성장은 대전광역시에서 가장 큰 5일장의 이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 을 기울이고 있다. 2) 유성의 토지구획 정리사업 1960년대 유성지역은 대전역으로부터 약 10km 지점에 위치한 인구 약 17,000명의 면사무소 소재지였다. 비록 작은 면이지만 국내 굴지의 온천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계룡산으로 가는 길 목에 위치하고 있어 대전시민과 관광객, 국내외 귀빈의 방문이 많아지면서 개발의 필요성이 증 대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난립하여 시가지가 복잡하였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유 성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시행하여 도시적인 가로 시설 조성, 교통 및 보안상의 불편과 위험 제거, 관광시설 확충 등을 통해 토지의 이용가치를 증진시켰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1970년대에 유성읍사무소 주변 경사가 완만한 평탄지는 유 성의 특징인 관광휴양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부여받게 되었으며, 대전시의 부족한 주택난을 해 소하는데 일익을 담당하는 한편, 관광객의 유치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504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3) 노은신도시 [출처 : 대전광역시, 2010, 대전광역시 도시계획백서] 대덕군 유성면 또는 대덕군 유성읍 시절, 노은리( 老 隱 里 )였던 이 동네의 원래 이름은 논골이 다. 논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었을 법한 논골이 노은골로 불리다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행 정구역 개편 때 노은리라는 한자 지명을 얻었다. 노은지역은 갑하산과 우산봉 및 분지 지역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후기 청동기 시대까지의 유물 유적이 대거 발견된 곳으로 예부터 농경생활을 하였던 지역이다. 조선시대 후기인 1760년 노은 동의 한 마을인 덕미마을 상주인구가 170명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 지역이 풍 <그림 5-4-10> 1960년대 유성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 위치도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505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요로운 농경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조용한 농촌지역이었던 노은은 1993년 12월 및 1995 년 2월에 각각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다. 먼저 지정된 곳은 노은 1지구, 나중에 지정된 곳은 노 은 2지구라고 불리게 된다. 이때 노은동에 살던 주민들은 240여 가구, 약 1,000여 명이었다. 이 들은 택지개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노은지역을 떠나면서도 정든 고향을 잊지 말자면서 노은동 수정초등학교 건너 편에 노은 지족 유래비 를 세웠다. <그림 5-4-11> 1960년대 노은동 일대(좌), 2004년 모습(우) [출처 : 대전일보, 대전 재발견 - (26) 노은 신도시, 2009. 8. 5. 12면] 노은 1지구는 현재 유성구 노은동과 지족동 일대의 196만 8,000m2에 8,689가구의 공동주택 과 단독주택 등에 3만 5,000여 명이 살고 있다. 노은 2지구는 유성구 지족동, 반석동, 하기동, 죽동 일원 157만 5,000m2에 9,072가구의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에 2만 2,000여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주민 대부분은 대덕연구개발특구 종사자이거나 둔산신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다. 두 지구의 개발은 3년여의 시차를 두고 시작됐으며 각각 6~7년간의 공사 끝에 노은 1지구 택지개발사업은 2002년 3월, 노은 2지구는 2005년 12월에 각각 완료됐다. 노은 1지구와 2지구를 합한 면적은 약 354만3000m2이다. 가구 수는 1만7,761호, 상주인구 5만 7,000여 명으로, 불과 5.5km 떨어져 있는 둔산 신도시(면적 743만 4,838m2, 총 5만 700 호, 상주인구 약 25만 명)에 비하면 면적은 절반 정도, 가구 수는 3분의 1가량밖에 되지 않는 다. 인구비율은 더욱 낮아서 약 5분의 1정도로 둔산 신도시보다 인구밀도가 적은데, 이 때문 에 둔산 신도시에 비해 훨씬 쾌적하고 조용하다. 둔산 신도시와 10년 가량의 격차를 두고 개발된 노은 신도시 아파트들은 같은 동이더라도 층 고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같은 단지 안에 있는 아파트들도 대부분 층고가 다르며, 맨 꼭대기 옥상에는 삼각형의 지붕을 얹었다.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건물간의 층고가 다르도록 설계된 것 이다. 이는 조성당시 규제로 인해 비슷비슷한 디자인의 아파트로 도시를 채운 둔산신도시와는 506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상이한 모습으로, 노은신도시만의 아파트 경관을 보여준다. 아파트 건물 자체의 디자인에도 미 1부 위치와 영역 적 요소를 많이 가미해 비슷해 보이는 아파트들을 찾기 힘들뿐만 아니라 둔산과 달리 단지 내 건 물의 배치도 의도적으로 불규칙적인 형태를 고려했다. 설계할 때부터 단조로움과 반복적 요소들 을 없애려고 노력한 결과이다. 아파트 내부 구조도 단순한 격자형 배치가 아닌, 다양한 디자인 과 구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이 반영됐다. 10여년의 차이가 아파트 설계 및 배치, 규 제 등에 있어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밖에도, 택지개발사업 시행 이전의 자연경관을 최대한 살려 신도시를 조성하여 도로와 빌 2부 자연 딩, 아파트 단지 내부에도 언덕과 구릉이 살아 있다. 각종 나무의 군락과 숲도 최대한 보존해 10 년 먼저 지어진 둔산과 비교해서 부족하지 않다. 노은 1지구와 2지구가 완료된 2005년부터는 노은 3지구와 4지구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노 은 3지구는 75만7,347 규모에 공동주 택 5,357세대와 단독주택 51세대 등 총 <그림 5-4-12> 노은동 쌈지공원 5,408세대, 1만5,143명을 수용하는 계획 3부 경제 으로 2013년 완료되었다. 노은4지구는 23만 1,794.3 지역에 조성되고 있다. 노은3지구와 4지구는 매봉산, 갑하산 등 이 둘러싸고 있는 지역으로 공원과 녹지 율이 1,2지구보다 높은 쾌적한 주거단지 로 계획되었다. 4부 사회문화 4. 대규모 주거단지 개발 대전광역시는 1990년대에 들어 정부대전청사, 계룡대의 3군본부, 자운대 등 정부 관련기관, 연구단지 건설에 따른 인구유입이 지속되면서 주택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5부 지역특성 이러한 주택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1993년 택지 중장기 수요 공급계획의 일환으로 공영개발 방식의 서남부권 택지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서남부권은 유성 시가지 남부에서 가수원동에 이르는 미개발지역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 고 있는데, 서남부권의 개발은 대규모 택지개발, 충분한 공원과 녹지개발을 통해 쾌적하고 전원 507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적인 주택지를 조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서남부 개발지구는 관저지구, 도안지구, 학하지 구 등으로 구분하여 단계별로 진행되고 있다. <표 5-4-1> 서남부 지역의 택지개발사업 완료 현황 지구명 면적 (천m2) 사업비 (백만원) 예정지구 지정 사업시행 기간 호수 (세대) 인구 (명) 사업 시행자 관 저 383 74,115 1989. 12. 29 1993. 11 ~ 1998. 03 5,531 22,124 주공 관 저 2 585 182,480 1990. 07. 26 1994. 09 ~ 1999. 06 6,442 25,768 주공 관 저 3 454 150,000 1995. 02. 17 1996. 12 ~ 2003. 12 3,510 11,934 주공 서남부 (도안1) 6,109 2,996,400 2001. 01. 05 2003. 12 ~ 2011. 6 22,952 64,266 LH, 대전도시공사 [출처 : 대전광역시, 2010, 대전광역시 도시계획백서] 1) 관저지구 관저지구는 대덕군 진잠면과 기성면 지역으로 자연마을, 농지, 만수원(공원과 놀이기구 운 영), 군부대가 있었던 대전광역시의 외곽지역이었다. 관저지구는 1983년 대전시에 편입된 이 후 서남부지역 균형발전의 시초로 관저지구가 개발되면서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관저지구는 1990년대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개발이 시작되어 현재는 5.63km2 면적에 약 5만 명이 거주하는 대 전광역시의 최대 인구밀집지역이다. 관저지구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선 아파트 단지 이름에 느리울, 신선바위, 선유동 등 관저지 구 택지개발로 인하여 사라진 옛 자연마을의 이름을 넣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건양대병원과 건양대학교 대전캠퍼스의 대학생 수요 및 관저동과 진잠동의 많은 인구 덕분에 이들을 위한 상 당한 규모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셋째는 구봉산, 장갓골 근린공원, 느리울 근린공원, 신선암 <그림 5-4-13> 관저동과 진잠동 일대 [출처 : 대전시청 홈페이지, http://www.daejeon.go.kr] 508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근린공원 등의 공원을 중심으로 녹지지역이 잘 보존되어 있어 타지역에 비해 좋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관저지구는 관저 4 5지구 건설과 서남부생활권이 본격 개발되면서 대단위 도시 지역으로의 변모가 기대되는 지역이다. 2) 도안신도시 도안신도시는 서구 도안동, 가수원동, 관저동과 유성구 상대동, 원신흥동, 봉명동, 구암동, 용 계동, 대정동, 원내동 일원의 15,371,900m2에 총 3단계에 걸쳐 조성될 예정이다. 대전광역시의 가장 큰 개발사업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대전도시공사 등 2개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림 5-4-14> 서남부생할권 토지이용계획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출처 : 대전광역시, 2010,대전광역시도시계획백서] 509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현재는 1단계 개발계획이 완료되었다. 도안신도시의 1단계 계획은 6,049,586m2 면적에 6만 5,000여 명, 2만3,000여 세대를 수용할 수 있다. 특히 도안신도시는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갑천, 진잠천, 관저천과 도안공원, 복명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환경적인 입지가 양호한 편 이다. 또한 둔산 및 원도심, 그리고 계룡시와 같은 외부와의 접근이 양호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도시는 3개 소생활권으로 구성된다. 인구밀도는 107명/ha으로 노은 180명, 분당 189명, 둔 산 277명보다 낮다. 공원 녹지율은 27.6%로 둔산 13%, 노은 15%, 분당 19%보다 높고 유성, 도 안, 가수원 등 생활권별로 중심상업지구, 공동주택, 근린생활시설을 배치하였다. 공동주택은 전 체 면적 중 66.4%를 차지하며, 18개 블록으로 구분되어 2만1,130세대가 공급되는데 단독주택 1,839세대, 블록형 단지 96개소가 계획되어 있다. 주택계획에서는 주거 선호도를 고려하여 공동 주택과 단독주택 비율을 70.9대 29.1로 했으며 공동주택 평형도 중대형 평형이 전체 78.9%를 차 지하도록 했다. 한편, 단지 북쪽은 한국주택토지공사(구 주택공사)가 시행하여 주공아파트 라는 브랜드로 공급되며, 서쪽에 위치한 대전도시공사 지구는 민간업체에 택지를 분양하였고, 가수원 생활권인 한국토지주택공사(구 토지공사) 시행분은 전체를 민간업체에 매각하였다. 상업용지는 전체 면적의 1.27%를 차지하며 유성쪽, 중심부, 가수원 쪽에 집중 배치되었다. 중심부인 목원대 학 주변에는 대학촌을 조성하기 위한 준주거용지가 배치되어 있다. 교육환경은 단지내에 유치원 4개, 초등 7개, 중 5개, 고 3개, 특수학교 1개가 신설토록 하였으며, 초 중 고교는 각 블록별 인 구 등을 고려해 배치했으며 단지 내에 위치하거나 인접하도록 해 안전한 통학동선을 확보했다. 도안신도시는 친환경적인 미래형 전원 주거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환경오염방지를 위해 생활 쓰레기를 관로로 통해 자동집하시설에서 자체 처리하고, 깨끗하고 저렴한 지역난방을 공급하는 집단에너지공급설비를 설치하는 등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 건설되고 있다. <그림 5-4-15> 도안신도시 일대 [출처 : 대전일보, 2014. 1. 1.] 510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3) 학하지구 학하지구는 유성구 학하 덕명 복용 계산동 일원으로 사업면적은 1,811천m2이며, 계획인 구는 2만 명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학하지구는 계룡산국립공원 수통골과 생태 하천인 화산 천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또한 학이 내려앉은 형상이라 하여 옛날 부터 학하리 라는 지명으로 불렸을 만큼 풍수지리학 상의 명당으로, 풍광이 수려하여 자연환경 친화적인 생태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06년부터 대전도시공사를 통해 1,812천m2를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개발사업 환지방식으로 도로, 공원 녹지 등 기반시설을 조성해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창조적 생태환경 도시로 건설 하고 있다. 신도시에 한밭대학교를 비롯한 덕명중학교, 계산초등학교가 사업지구내 입지하고 있 기 때문에 교육환경이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유성 나들목과 도안신도시가 인접되어 있어 광 역교통망도 양호하고 유성온천의 배후 도시로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 학하지구를 가로지르는 화산천(연장 2.2km) 구간에는 200억 원을 들여 주민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수변공간을 조성하고 갈수기에도 충분한 수량을 유지할수 있는 용수확보 등을 통 해 자연형 하천으로 생태환경을 복원할 계획이다. 이처럼 학하지구는 자연환경과 교육적 입지가 돋보이는 새로운 신도시이다. 또한 쾌적한 도 시환경 조성을 위해 한국전력과 협의를 거쳐 100억 원을 들여 고압 송전선로 1.3km를 지중화하 기로 했으며, 235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서남부 신도시에 추진중인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을 학 하지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이 설치되면 쓰레기통이나 청소차량이 필요 없게 돼 쾌적한 주거환경이 조성된다. <그림 5-4-16> 학하지구 일대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511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5. 진잠의 역사 자원 진잠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지역으로, 삼국시대에는 진현현, 진 잠현, 진잠군의 고을로 1세기 동안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또한 진잠지역은 70%가 개발 제한구역이지만 서남부권 개발지역의 중심축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처럼 진잠지 역은 전통과 개발이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진잠지역은 백제 부흥운동, 동학농민운동, 구한말 을미의병 선봉지역으로 지역의 유지와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위한 활동에 앞장 섰던 올곧은 기개를 가진 곳이다. 진잠현은 현재의 유성구 진잠동과 서구 가수원동 관저동 일대였는데, 진잠현에는 관아 건물 인 기성관, 진잠향교, 객사, 관리의 살림집인 내아, 무기와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 등이 갖춰져 있 었다. 진잠현의 관아인 기성관은 지금의 진잠초등학교 자리인 유성구 원내동에 있었다. 조선시 대 진잠현에는 기성관 이외에도 객사, 무기고, 향교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기성관과 진 잠향교 외에는 남아 있지않다. <그림 5-4-17> 기성관(좌) <그림 5-4-18> 진잠향교(우) [출처 : 대전광역시, 2014,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 중학용] 1980년대 호남고속국도 나들목이 설치되면서 교통의 혼잡을 이루고 기존 시가지 도로가 극히 협소하여 차량소통에 막대한 지장이 뒤따랐다. 1980년 소도읍 가꾸기 사업으로 도로확장, 포장 사업을 시행한 지구로 택지조성과 배수시설이 시급한 지역이어서 대전시에서는 제반문제를 해 결하고자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하였다. 진잠지역은 소규모의 밀집된 시가화지와 주변의 농 경지, 구릉지가 많아 개발잠재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 자연스럽게 점진적인 개발 유도 및 대전 의 부도심으로 지정하여 성장거점 도시개발을 촉진하려는 지역이다. 2000년대에 들어 물류중심지, 부도심 기능을 수용하기 위한 상업지역 확대 등 진잠지역의 도 시계획이 수립되어 추진 중에 있다. 512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진잠 주민화합의 한마당 축제는 진잠지역 주민의 자긍심과 애향심 등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 기 위해 개최되는 것으로 대전광역시에서 유일하게 순수 민간주도로 열리는 축제이다. 6. 서부 개발지역의 주요 시설 1) 대전현충원 1974년 20년된 서울 국립현충원의 안장능력이 한계에 달하자 중부지역에 국군묘지를 창설 할 것을 결정하면서 1976년 대덕군 유성읍 갑동리에 국립묘지를 설치하기로 결정되었다. 1979 년 4월에 공사를 착공하였고 8월에 국립묘지관리소 대전분소를 설치함으로써 국립묘지가 설치 되었다. 1996년 6월 대전국립묘지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전국립묘지의 전체 면적은 약 3,305,785m2로 이 중 묘역 전역이 약 661,157m2이며, 서울 묘지의 2.5배인 135,000기의 안장 능력을 갖고 있다. 이로써 군인 및 군무원, 전사한 향토예비 군, 장관급 장교(20년 이상 군 복무자),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장의된 자, 순국선열 및 애국지 사,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 등의 안장이 가능해졌다. 대전현충원에는 유명한 명사들이 안장되어 있다. 제2묘역 257호에는 한국 최초의 영화 아 리랑 의 감독인 라운규가, 국가유공자묘역 제10호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의 금메달리스트 인 손기정이, 국가유공자 묘역 제12호에는 어린이 날 노래 등 많은 동요의 노랫말을 지은 윤 석중이 안장되어 있다. 독립운동가 로 이름높은 백범 김구의 모친 곽낙 원과 그의 맏아들 김인은 각각 애국 지사 771호와 772호에 안장되어 있 다. 또한, 이곳에는 6.25전쟁 중 군 수품과 피난민을 수송하다 전사한 철 도원 150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13명이 안장되어 있다. [출처 : 국립대전현충원, www.dnc.go.kr] <그림 5-4-19> 국립대전현충원 전경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513
한국지리지 - 대전광역시 2) 대전월드컵경기장 호남고속국도 유성나들목 바로 길 건너 유성구 월드컵대로 32에 건설된 대전월드컵경기장은 현재 대전시민구단인 대전시티즌의 홈구장이다. 경기장 규격은 105m 68m로 국제경기 조건 을 충족하며, 경기장 외부의 디자인은 곧 파도를 타고 넘을 듯한 에너지를 가진 대형선박을 연 상케 한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터치라인에서 관중석까지의 거리가 11m에 불과해 낮은 관중석에서 선수들의 거친 호흡소리, 표정,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관람석 의 경사 각도가 17.85~30.37 로 가파른 편이어서 1층 스탠드 어느 곳에 앉아 있어도 선수들과 호 흡을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밀폐형으로 설계되어 조금만 함성을 질러도 반향 효 과가 크다. 반개폐식인 경기장 지붕은 경기가 없을 때에는 활짝 열어 잔디가 흠뻑 햇빛을 쬘 수 있도록 하고, 비가 내리는 날 엔 지붕을 덮어 전체 관람석 65%까지 가릴 수 있다. <그림 5-4-20> 대전 월드컵경기장 대전월드컵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대 한민국이 승리해 4강 신화 의 견인차 역할을 한 역사적인 장소이며, 2001 년 K리그 FA컵 대회에서 대전시티즌 이 우승컵을 들어올려 축구팬들 사이 [출처 : 대전일보, 대전 재발견 - (25) 대전 월드컵경기장, 2009. 7. 29. 12면] 에서 대전광역시가 축구특별시 로 불 리기 시작한 계기를 마련한 곳이다. 3)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은 현대화된 유통시설확충으로 농수산물 집하, 분산기능을 강화하고 둔산 및 노은지구의 시민 생활 향상을 위해 교통 편이성이 높은 유성나들목 근처에 면적 112,282 m2(건축연면적 51,290m2), 945억 원을 들여 2001년에 개장하였다. 도매시장의 1일 최대처리능 력은 1,065톤(과일 355, 채소 710)이며, 대전중앙청과, 대전원예농협노은농산물공판장 등 도 매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2001년 당시 전국 최초로 전자경매시스템 구축 및 친환경농산물 저온 514
제4장 서부신개발지역 경매장 시설을 완비하였다. 또한 전국 최초로 도매시장내 HACCP 인증 전처리 시설을 갖춘 도 매시장이었다.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은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과 연계되는 편리한 교통 이점을 갖고 있어 산지 농산물 의 집하가 용이하고 소비자의 접근성 이 높아 중부권 최대의 농산물 물류기 지 역할을 하고 있다. 4) 대전종합유통단지 대전종합유통단지는 정부의 유통구조 개선 및 물류비 절감을 위해 수립한 유통단지개발 종합 계획 의 일환으로 1998년 지정되어, 수도권 영남권 호남권을 잇는 교통의 요지인 유성구 대정 동에 462,809m2 규모에 770억 원을 들여 2002년 완공되었다. 대전종합유통단지의 운영목적은 대전광역시와 충남지역의 유통구조 개선과 물류비 절감을 통한 중부권 물류의 중심지, 지역경제발전 및 교통난 완화를 통한 대전광역시의 균형발전 도모, 지역주민들에게 상품을 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맞게 유통단지에는 화물 터미널(59,504m2), 농 공산품 공동집배송단지(62,809m2), 창고단지(36,363m2), 창고형할인매 장 등 도 소매단지(66,115m2) 등이 입지하고 있다. 또한, 유통단지 건설과 함께 도로망을 확충하여 대전광역시 서남부 지역의 교통난을 완화하 였으며 유통단지의 종사자. 지역주민 등을 위해 총 4,700여 명을 수용하는 아파트와 단독주택 이 건설되어 있다. 최근에는 세종시 건설과 서남부권 개발 등으로 물류와 창고수요가 급증하여 종합유통기능이 추가적으로 조성되고 있어서 내륙수송의 요충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림 5-4-21> 노은 농수산물 도매시장 1부 위치와 영역 2부 자연 3부 경제 4부 사회문화 5부 지역특성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