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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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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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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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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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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4 정착부흥기 35 정착부흥기: 1884년 ~ 1940년 이 장에서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1884년 청국조계지가 설정된 후로 유입 된 인천 화교들의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기별로 정리하였다. 조사팀은 시기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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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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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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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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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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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은이가 4) ᄀ에 5) 위 어져야 하는 것이야. 5 동원 : 항상 성실한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해. 에는 민중의 소망과 언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이처럼 과거를 뛰어넘고, 사회의 벽을 뛰어넘고, 드디어 자기를 뛰어넘 는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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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한국사능력검정시험대비(/, 목) 쪽 문. 다음 선언문의 필자와 관련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점][ 회] 내정 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 평화, 한국 독립 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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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하 1 우리 은하 위 : 나선형 옆 : 볼록한 원반형 태양은 은하핵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 2 은하의 분류 규칙적인 모양의 유무 타원은하, 나선은하와 타원은하 나선팔의 유무 타원은하와 나선 은하 막대 모양 구조의 유무 정상나선은하와 막대나선은하 4.

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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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교육실습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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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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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오스본을 중심으로 한 작은 정부, 시장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에 대응 하여 노동당은 보수당과 극명히 반대되는 정강 정책을 내세웠다. 영국의 정치 상황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 국민의당이 서로 경제 민주화 와 무차별적 복지공약을 앞세우며 표를 구걸하기 위한

세월호라는 사건과 인류학적 현장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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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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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의 이 달의 법문 성철 큰스님 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석굴답사 연구팀을 따라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 니다. 대동의 운강석굴, 용문석굴, 공의석굴, 맥적산석 굴, 대족석굴,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과 주변의 큰

15강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106월 평가원] 1)심청이 수궁에 머물 적에 옥황상제의 명이니 거행이 오죽 하랴. 2)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아침저녁으로 문 안하고, 번갈아 당번을 서서 문안하고 호위하며, 금수능라 비

주택시장 동향 1) 주택 매매 동향 2) 주택 전세 동향 3) 규모별 아파트 가격지수 동향 4) 권역별 아파트 매매 전세시장 동향 토지시장 동향 1) 지가변동률 2) 토지거래 동향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시장동향 15 준공업지역 부동산시장 동향

Transcription: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에 따른 한국의 경관 변화 양영균(한국학중앙연구원) 1. 들어가는 글 관광객을 변화를 경험하려는 목적에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정소를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일시적으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 이라고 정의할 때, 관광은 그런 행위를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Graburn(1983)에 따르면 관광은 일상샐활로부터의 구조적 단절의 일종이며, 여행도 그 속에 포함된다. 즉 비일상적 행위의 집합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관광에 관해 논의할 때는 대중관광에 초점을 맞추지만, 광의의 관광에 포함시킬 수 있는, 즉 일상생활에서 벗어나서 어딘가를 자발적으로 방문하는 행위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광이 인류학의 연구대상이 된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인류학계에서 관 광을 주요 주제로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미국 인 류학회 심포지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는 Smith(1977)에 잘 정리되어 있다. 또 하나의 선구적 연구로 꼽히는 것은 MacCannell(1976)이다. 이처럼 1970년대부터 인류학에서 관광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 Graburn(1983), MacCannell(1984), Nash(1981) 등을 비롯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대중관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1990년 이 후 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류학자들에 의한 관광 연구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Stronza 2001). 하나는 관광의 기원(origin)에 관한 것이다. 즉 관광의 역사적 기원뿐만 아니라 현대에 들어 사람들은 왜 관광을 하는지, 어떤 관광객들은 왜 특정 장소에 가려고 하고 특정 경험을 하려고 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왜 다른 장소와 경험을 원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관광의 영향에 대해 분석하려는 것이 다. 즉, 관광객 혹은 관광시장에 포함됨으로 인해서 관광객을 받아들이는 사회(host society) 가 어떤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물리적 변화를 겪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한국을 찾는 관광객 혹은 그들의 행위에 의해 한국의 경관 (landscape)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관은 문화를 가진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경관, 즉 문화경관을 뜻한다. 관광과 경 관의 관계를 분석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주체는 매우 다양하다. 관광으로 인한 경관 변화에 관여하는 주체로는 관광객, 지역주민, 기업, 지방정부, 중앙정부, 언론, 연구단체 혹은 연구자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경관 변화를 살펴보려고 할 때 위에 거명한 주체들은 좀 더 세분화할 수 있다. 특히 기업의 경우, 관광업계에 종사하 는 기업도 있고, 관광객이 이용하는 시설과 상점 등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언론 이나 연구 관련 단체나 사람은 물론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관 변화를 보고 분 석 해석하기도 하고, 경관 변화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바람직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 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에 의한 한국 사회의 경관 변화를 서울 지역을 중심 으로 살펴보되, 다양한 주체들의 활동과 그들의 변화까지도 포괄하려고 한다. - 1 -

2. 조선시대 중국인의 한국 관광 과거에 생계활동을 중단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관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상류층 에 국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부유한 평민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을 포함한 상 류층들이 단체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관광기업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가 더욱 발전하 여 중산층 서민을 포함한 폭넓은 계층의 사람들이 여가를 활용하고 자기 창조를 위하여 관광 을 떠나게 되면서 대중관광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이 한국사회의 경관을 변화시키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그 전사에 해당하는 전통시대, 특 히 조선시대의 관광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은 오랜 세월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따라서 양국 사이에는 많은 인적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양국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더욱 쉽게 월경이 가능했을 것이 다. 관리들의 공적 방문, 상인들의 무역활동의 일환으로서의 방문, 전쟁을 치르면서 국경을 넘 나드는 행위, 생계유지나 여타 목적을 위한 백성들의 월경 행위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데 왕래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었던 전통시대에는 사적으로 유람을 목적으로 하는 방문보다는 업무상 방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즉 사신이나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적 교류가 굉장히 많았을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공 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접대하기 위하여 숙소를 건립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성으로 옮긴 후에 중국 사신의 접대와 숙박을 위해 태평관을 신축했으며 1395년 하반기에서 1396년 상반기 경에 건물이 완공되었다. 그 후 태평관이 협소하여 이전을 여러 번에 걸쳐 논의하였으나, 원래의 위치에서 확대, 보수하는 것에 그쳤다. 태평관은 명나라 사신 의 접대와 숙소제공 외에도 사신들이 가지고 온 중국의 물품을 조선의 상인들과 거래하는 장 소이기도 했다. 또한 조선의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도 했다. 당시 거래되었던 물목은 각종 옷 감과 향료, 인삼, 그릇 등 다양했다. 동평관은 왜인과 유구 등 동남아 여러 나라의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한 장소였다. 동평관은 왜인의 숙소뿐만 아니라 점차 왜인 행정 일반에 이르는 업무도 담당하였으며, 공물을 무역하 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 야인들의 사신을 위한 접대 장소는 야인관이었으며, 세종 20년 (1438)에 이르러 명칭이 북평관으로 바뀌었다. 북평관에는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 이 머물기도 하였고, 다른 나라의 관사에서와 같이 밀무역으로 인한 문제점도 노출시키고 있 었다(이상배 2004: 223-233). 그런데 이처럼 전통시대에 있었던 인적 교류의 결과가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은 관리들에 의 한 공적 방문이 압도적으로 많다. 따라서 중국 사신들의 한국방문, 특히 그 과정에서 공무 이 외에 다른 곳을 유관( 遊 觀 )한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태조 대에서 인조 대까지 240여 년 동안 약 228회 명나라 사신이 다녀갔는데, 그 중 서울에 와서 유관한 것은 총 138회에 달한다(이상균 2013: 160). 명은 외국과의 교류에 있어 서 인신무외교( 人 臣 無 外 交 ) 라 하여 원칙적으로 자국의 조관을 파견하지 않고, 환관을 적극 활용하는 관례가 있었다. 조선에 대해서도 환관을 주로 파견했으며, 그 중 조선 출신 환관을 많이 파견했다. 그러나 그들의 탐욕 때문에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도 했으며, 조선의 문화수준 을 고려할 때 환관으로는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중요 사안이 발생할 때에는 문관을 사신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에게만 해당하는 특혜라고 명은 누누이 강조하였으며, 문관을 보낼 때는 학행이 있는 자를 선발하여 보냈는데, 이는 사행길을 맞이하 는 조선의 접반사와 종사관과 더불어 시문을 수창하는 관례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종 32년 - 2 -

(1450)부터 인조 11년(1633)까지 180여 년간에 걸쳐 양국의 문인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25책 50권으로 편찬한 문집이 황화집( 皇 華 集 )이다. 황화집에 실린 사신들의 시문 수는 총 3,172수 에 달한다. 이들은 사행로를 따라 지나가는 지역들에 대한 시문을 많이 남겼는데, 대표적인 지역이 평양, 개성, 그리고 한양이었다(신태영 2005). 평양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이자 대동강이 있는 등 뛰어난 풍경을 지닌 곳이기도 했다. 황화집에는 평양을 읊은 무수한 시가 있는데,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명 황제의 공적을 칭송하고 태평성세를 확인하는 경우; 2) 평양을 통해 역사를 회고한 경우; 3) 평양의 아름다운 자연과 유적을 노래 한 경우; 4) 임란의 참혹함을 회상한 경우. 이 중 세 번째 경우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도 사신들의 관심을 많이 끌었다. 이들은 개성의 수려한 경관을 노래하고 전조의 일을 회고하였다. 한양에서 사신들은 문묘와 성균관에도 많이 들렀지만, 가 장 많이 유관했던 곳은 한강이었다. 명사들은 한강의 경치뿐만 아니라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흥치를 돋을 수 있는 조선 문신들의 문학적 능력과 그들을 정성스럽게 대접해준 아름다운 마 음에 감명 받은 바를 시문을 통해 표현했다(신태영 2005: 156-171). 사신들의 서울 유관 현황 은 아래와 같다(이상배 2004: 242). <표1> 명사( 明 使 )의 서울유관 현황 한강 사찰 도성내 성균관 모화루 남산 기타 계 59 21 18 9 9 8 14 138 가장 유관을 많이 했던 한강 유역에서의 유관 실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2> 한강 유역에서의 유관 실태 한강 가을 한강 양화 노량 한강 낙천 전관 제천 화양 한강뱃 계 두 정 도 도 정 교 정 정 놀이 15 6 2 3 4 3 1 2 7 1 15 59 서울 이외 지역 중에서 중국 사신들이 가장 많이 유람하기 원했던 곳은 금강산이었다. 비록 거리가 멀고 거기까지 사신들이 다녀오면 많은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조선 조정에서는 가 능하면 피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었다. 태종~연산군 대에 금강산 유람 요청이 꾸준히 있었고, 총 8회에 걸쳐 17명의 사신이 금강산 유람을 다녀왔다. 그 중 15명이 환관이었고, 그 중 9명이 조선인 화자 출신이다. 금강산 유람 목적은 모두 예불 을 위해서였다. 명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불교를 숭상하지 않았지만, 환관이나 황실 내부에서 불교를 숭상하는 자들이 많았다(이상균 2013: 161). 이처럼 명에서는 사신도 많이 파견했고 파견된 사신들이 유람을 겸하는 경우도 많았고 조선 의 조정에서도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으나, 청으로 바뀌면서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겨났다. 후 금이 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꾼 이후 청사( 淸 使 )의 조선사행은 총 222회 이루어졌다. 명사에 비해 사행횟수도 적고 유람을 요구한 사례도 드물다. 청사 중 조선을 유람한 것은 총 네 차례 였고 모두 한강유람이었다. 명 멸망 전부터 후금에게 적대적이었던 조선은 명이 멸망하고 청 이 들어선 이후에도 청사들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다. 명사를 접대했던 전례를 따르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명사의 경우에 비해 소략하고 간소하였다. 청사들도 조선 유람에 대해 - 3 -

열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상균 2013: 168-172). 이러한 사신들의 유관으로 인해 경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술했다시피 사신들의 접대와 숙 박을 위해 태평관을 짓고, 보수, 확장했으며, 그곳에서는 상거래가 일어나기도 했다. 가장 많 이 이루어졌던 한강 유람을 위해서는 대개 3척의 배를 연결하여 정자각을 만들었고, 때로는 대규모 선단을 준비하기도 했으며, 유람할 곳에 감독관[ 監 役 ]을 파견하여 필요한 시설이나 배 를 만들고, 정자선( 亭 子 船 ), 교량( 橋 梁 ) 및 동관왕묘( 東 關 王 廟 )를 수리하는 등 많은 공역을 소 비하였다. 금강산 유람의 경우 길이 멀기 때문에 훨씬 더 부담이 컸다. 일단 명의 사신이 보 아서 흠이 될 만한 것들, 책잡힐 만한 것들, 논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단속했다. 예컨 대, 아녀자들이 절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다.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에 다 니는 아녀자들이 눈에 띠면 국가의 체면이 손상되기 때문이었다. 명사들이 지나는 관아와 역 이 있는 문서 등 기록물들을 모두 감추어서 국내의 행정과 관련된 사항이 노출되지 않도록 했 으며, 금강산에 있는 사찰들의 사적( 事 跡 )도 보지 못하도록 조치하였다.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과 달리 조선의 왕실에서 사찰을 중창하고 특별히 시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러한 사실이 명사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명사들은 오가는 길에서 정자나 산천을 보면 이름을 고치고, 글자를 써주어 현판에 새겨서 걸기를 청하여 자신의 이름을 남기 려고 했기에, 건물의 현판과 樓 題 까지 모두 철거하도록 했다. 또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 있 을 것을 우려해서 백성들이 창과 벽에 바르는 것은 모두 글자가 없는 종이를 쓰도록 했다. 이 처럼 사신들의 존재와 유관으로 인해서 경관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3. 근대 전환기 중국인의 한국 관광 전통시대의 관광에서 대중관광으로 넘어가기 전, 과도기적 시기의 중국인의 한국 관광을 살 펴보자. 도보, 말, 마차, 배 등의 전통적 교통수단이 철도와 선박(특히 윤선)으로 바뀌고 여행 사라든가 숙박시설 등의 여행 인프라가 갖추어져 가는 근대 전환기는 중국에서는 청말에서 중 화민국 시기까지 그리고 한국에서는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라고 할 수 있다. 교통수단의 근대적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철도이다. 중국에서는 1876년 영국자본에 의해 오송철로가 개통된 이래 1934에 이르면 14개 노선, 총 16,000km의 철로가 부설된다. 주요 대도시는 대부분 철도교통망 속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철도 이용은 한반도 및 일본 열도까지 확대되어 있었다. 중일주유표( 中 日 週 遊 票 )를 구입하면, 중화국유철로, 남만철도, 한국 을 경유하는 일본철도 및 한반도와 일본을 잇는 연락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중국에 서 출발할 경우, [출발지-봉천-부산-도쿄-고베-( 輪 船 航 路 )-상해-귀로]가 주요 코스였고, 일본 에서 출발할 경우, [출발지-(연락선)-부산-봉천-북경-한구-( 輪 船 航 路 )-상해-( 輪 船 航 路 )-고베- 귀로] 혹은 [출발지-(연락선)-부산-봉천-북경-천진-상해-( 輪 船 航 路 )-고베-귀로] 코스가 자주 이용되었고, 유효기간은 4개월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선박이었는데,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 선박의 이용은 거의 필수적이었다. 1862년 미국자본이 상해에 기창윤선 공사를 설립하고 영업을 시작함으로써 중국에 윤선 교통이 도입되었고, 그 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자본에 의해 여러 회사들이 설립되었다. 중국에서 해외로 가는 주요 루트를 보면,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는 1903년에 개통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거나 상해나 홍콩에서 출발하는 대형 여객선을 이용하는 것이며,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본을 경유하여 대형 여 객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프라는 여행사였다. 중국에 근대적인 여행 사가 나타난 것은 1910년대 서구 및 일본의 유명 여행사들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중국인이 - 4 -

세운 최초이자 이 시기 유일의 여행사는 1923년에 시작된 중국여행사였다(박경석 2008). 조선에서도 가장 중요한 여행 인프라는 철도였다. 1899년 제물포-노량진 구간이, 1905년에 경부선이 완공되었다. 1932년에 이르면 주요 구간의 열차 운행속도도 크게 빨라졌으며, 부산 에서 서울뿐만 아니라, 신경, 봉천, 북경으로 연결되는 열차노선이 운행을 했다. 선박의 경우,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중국, 일본, 조선을 왕래하는 해운이 있었고, 국제우편선도 유럽과 아시아 각국을 운항하였다. 한일간 노선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인천에서 조선의 몇 개 항구를 거처 상해, 청도까지 운행하는 노선이 있었고, 미국과 유럽은 일본을 경 유하여 갈 수 있었다(한경수 2005). 중국에서 1920년대 중반 정도가 되면 해외여행을 위한 인프라는 어느 정도 갖추어졌지만, 해외여행에는 막대한 비용, 번거로운 절차, 언어 소통의 어려움 등 많은 난관이 따랐다. 그런 데 당시 중국 지식인의 여행에 대한 열정은 매우 뜨거웠다. 많은 여행 경험 또는 견문이 사회 지도층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출입국 기록을 보면, 1880년 대 중국인 출입국 유동인구는 대략 40만 명 수준이었는데, 1910~20년대에 이르면 200만~300 만 명으로 증가한다. 이민자, 해외유학생, 무역상인, 각종 시찰단 등이 포함되는데, 귀환을 전 제로 한 여행 만을 고려한다면, 근대중국의 해외여행은 전반적으로 정치색이 농후했다 는 특 성을 보인다. 정부에서 비용을 제공해 파견한 경우가 많았고, 정치적 망명가의 해외여행도 꽤 있었다. 여행의 목적 내지 지향 역시 정치색이 농후했는데, 대개 독립되고 부강한 나라를 건 설하자는 지향이 강했다. 1930년대가 되면 레저로서의 여행 이 하나의 풍조를 이루며, 여행기 에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며 저자 중에서 무명인사가 종종 발견된다. 즉 정부에서 파견한 관 료나 학자 외에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반 국민들도 해외여행을 즐기게 된 것이다. 당시 의 해외여행에 대한 여행기를 살펴보면,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과 낙후된 중국의 현실을 비 교하면서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태도가 많이 발견된다. 이에 반해 조선은 반면교사 의 역 할을 하는 타자였다. 중국 지식인들은 일본의 강제합병 이후 조선의 근대적 발전에 경탄하기 도 했지만, 조선 내부에서 망국의 원인을 찾고 이를 타산지석 으로 삼아서 국민의 각성을 촉 구하고 자강을 위한 방안을 찾고자 했다(박경석 2009). 신문기사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구인의 한국 방문은 1889년부터 시작되었고, 외교관, 성직 자, 선교사 등이 주요 방문자였다. 한국이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인 중에는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실제 일본인들의 한국 관광을 독려하는 분위기도 강 했다. 서구인의 관광단이 방문하기도 했고 남미인의 방문도 있었다. 중국인이 1920년대에 한 국을 방문한 것은 4건밖에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한경수 2005). 중국인의 방문은 계속적으로 있어왔고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신문에 실리지 않았지 실제 방문객수가 아주 적은 것은 아 니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여러 가지 경관의 변화도 있었 던 것으로 보고된다. 4. 현대 중국인의 한국 방문 19세기 말부터 중국은 외세의 침략과 내전으로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949년 내 전이 종식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바깥세상과는 어느 정도 차단이 되었다. 따라서 공적 목적 이외의 해외여행은 거의 불가능했을 뿐더러 국내여행조차 당의 허락을 받아야 했 고, 공무나 가족방문, 의료 등의 목적에 한해서 허용되었다. 1978년 정권을 장악한 덩샤오핑 은 중국의 발전을 위해 개혁과 개방을 주창했다. 그는 관광의 중요성에 관해 다섯 번의 지도 - 5 -

연설 을 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엘리자베스 베커 2013; 384). 즉 그는 관광이 자본 순환 과 외화벌이에 아주 유용한 산업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해외 관광에 있어서의 발전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공무여행이 주를 이루던 중국인의 해외방문 은 1983년 11월 광동성에서 홍콩으로 친적 방문을 위한 관광단이 출발함으로써 새로운 시작 을 알렸다. 1989년에 이르면 국외관광객 규모가 300만 명에 이르게 된다(차경자 진학문 2013: 76).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인근의 동남아시아 지역이 국외관광 목적지로 개방되었고, 1999 년부터 중국 정부는 해외로 놀러 나가려는 관광객에게 여권을 발급해주기 시작했다. 1999년부 터 황금연휴제도가 도입되었고, 2000년에는 국외관광 목적지가 14개국으로 확대되었고, 그 해 약 1,050만 명이 해외로 관광을 떠났다(차경자 진학문 2013; 베커 2013). 중국이 정식으로 WTO의 회원국이 되어 관광 관련 법규와 조례, 세칙 등을 개정 정비하기 시작한 2001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해왔고 위안화의 강세 또한 지속되고 있어서 중국인의 해외관광 역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국외관광 시장 규모는 2001년 1,213만 명에서 2012년에는 8,318만 명으로 약 7배 성장하였다. 2012년의 경우 중국인 해외관광객 중 아시아 지역으로 여행간 사람이 90.44%라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대만, 일본, 한 국, 홍콩, 인도네시아, 태국 등으로 여행가는 사람의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차경자 진학문 2013: 87-88). 오랜 단절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들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고, 그 이후 친지방 문의 형태로 한국을 방문하는 조선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은 정식으로 수교를 했고, 1998년 중국 정부는 한국을 전 세계 국가들 중 7번째로 국외 관광 목적지로 지 정했다. 1) 이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였고, 2005년부터 2013년 사이에 전체 입국자 수와 중국인 입국자 등을 살펴보면 다음 표와 같다. <표3> 방한 외국인 수와 중국인 입국자 수 단위: 명/백분율 연도 입국자 수 중국인 입국자 일본 대비 증가율(%) 구성비(%) 수 비율(%) 2005 6,022,752 710,243 11.8 29.1 2006 6,155,046 896,969 26.3 14.6 38.3 2007 6,448,240 1,068,925 19.2 16.6 47.8 2008 6,890,841 1,167,891 9.3 16.9 49.1 2009 7,817,533 1,342,317 14.9 17.2 44.0 2010 8,797,658 1,875,157 39.7 21.3 62.0 2011 9,794,796 2,220,196 18.4 22.7 67.5 2012 11,140,028 2,836,892 27.8 25.5 80.6 2013 12,175,550 4,326,869 52.5 35.5 157.5 출처: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중국인 입국자 수는 연평균 약 25% 증가하였고, 전체 입국자 수 중 차지하는 비율도 매년 증가했다. 중국은 2005년부터 계속 일본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격차는 해 가 갈수록 좁혀졌고, 2013년에는 중국인 입국자가 약 433만 명으로 드디어 전체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전체 입국자 중에서 중국인이 35.5%나 차지하게 되었다. 1) 1998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20만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차경자 진학문 2013; 92). - 6 -

<표4> 중국인 입국자의 목적별 수 단위: 명 연도/목적별 관광 상용 유학연수 기타 계 2005 314,360 114,044 21,682 260,157 710,243 2006 392,081 164,618 35,832 304,438 896,969 2007 420,467 168,182 60,350 419,926 1,068,925 2008 417,593 172,153 75,822 502,323 1,167,891 2009 581,234 152,667 96,685 511,731 1,342,317 2010 1,011,823 136,823 106,456 620,787 1,875,157 2011 1,312,511 98,795 113,994 694,896 2,220,196 2012 2,033,665 72,306 103,856 627,065 2,836,892 2013 3,139,867 126,011 102,433 958,558 4,326,869 출처: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위의 표를 보면 관광 목적의 입국자 비율은 2004년 이후로 계속 감소하다가, 2009년에 회 복세를 보였고, 2010년부터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반면 비즈니스 관광객은 2008년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있고, 유학연수 목적의 입국자는 2009년 이후로 비슷한 수를 유지하고 있 다. 이를 입국자 통계와 비교해보면, 2010년을 기점으로 전체 입국자 수 중 구성비가 20%를 넘어섰고, 일본 입국자 대비 비율도 60%를 넘어섰다. 즉 2010년 이후 전체 입국자에서 차지 하는 중국인 입국자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것은 관광 목적의 입국자 증가세에 힘입은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2) 한국 방문의 목적에서 2003년의 경 우, 사업 또는 전문활동이 58.3%로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반면, 순수 관광에 해당하는 여가/위락/휴가는 21.6%에 불과했다. 이 비율이 2008년에는 각각 39.2%와 37.1%로 비슷해 졌으며, 2013년에는 각각 13.4%와 59.1%로 역전되었다. 즉 최근으로 올수록 순수 관광 목 적의 입국자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국여행에 동반하는 사람 수에 있어서 2003년에는 평균 8.3명으로 전체 평균 5.5명보다 훨씬 많았으나, 2008년에는 6.7명으로 평균 인 5.8명과의 격차가 줄어들었고, 2013년에는 4.4명으로 평균인 4.0명에 매우 근접하였다. 그 리고 동반자와의 관계에서 가족의 비중이 2003년에는 15.3%, 2008년에는 30.9%, 그리고 2013년에는 47%로 높아지고 있다. 즉 업무를 목적으로 동료들과 함께 한국으로 여행 오는 비율이 높았다가 점차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관광 목적의 여행을 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 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한기간 중 했던 활동에 있어서도 2003년에는 관광/오락이 98.4%로 압도적이었지만, 비즈니스 역시 55.0%로 상당히 높았다가, 2008년에는 주요 활동을 사례수가 많은 대로 배열했을 때, 비즈니스에 해당하는 미팅/학술대회 참가, 연수/교육, 업무 수행이 4,5,6위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모두 관광/오락에 해당하는 활동이었다. 2013년에는 상 위 5개의 활동만 제시되어 있는데, 그 중 비즈니스에 해당하는 활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여행 중 방문지에 대한 실태조사는 방식이 중간에 바뀌어서 연도별로 평면적 비교는 힘 들지만, 추세를 살펴볼 수는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서울이 가장 중요한 방문지역이지만 그 비중은 줄어들고 있고, 제주도를 방문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2003년의 경우, 서울을 방문한 사람이 93.3%(전체 평균은 85.0%)로 중국인 관광객 방문지 중 압도적 다수를 2) 아래의 논의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집계하는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중에서 2003년에서 2013년까지 10년 간 자료를 이용했다. 대개의 경우 2003년, 2008년, 2013년의 자료를 가지고 5년 단위로 변화 추세를 살펴보았으며, 필요한 경우 다른 년도의 자료를 보충적으로 활용하였다. - 7 -

차지했고 전체 평균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2008년에는 서울 방문자가 79.7%(전체 평균 74.5%)로 비중이 감소했고 전체 평균과의 격차도 줄어들었으며, 2013년에는 서울 방문자가 79.3%(전체 평균 80.9%)로 5년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전체 평균보다는 오히려 낮아졌 다. 제주 방문자는 2003년의 경우 29.1%로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지 중에서는 부산 다음으로 3위였지만, 거주국별로 보면 중국이 가장 높았다. 2008년에는 22.7%로 인천에 이어 3위였고, 거주국별 통계에서는 홍콩과 말레이시아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가, 2013년에는 35.1%로 중국 인 방문 권역 중에서 2위, 거주국별 통계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서울을 방문한 사람과 제주 를 방문한 사람의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 대다수가 방문하는 서울 내에서의 방문지를 살펴보면, 2003년에는 동대문시장-명동-남대문시장이 1, 2, 3위를 차 지했는데, 2008년에는 동대문시장-명동-고궁, 2013년에는 명동-동대문시장-롯데월드의 순서 였다. 동대문시장과 명동은 각각 1위와 2위를 계속 차지해왔는데, 그 격차가 점점 줄다가 2010년에 동대문시장이 아주 근소한 차이로 1위였다가 2011년부터 명동에 1위 자리를 내주 고 그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 하나 특기할 사항은 전체 관광객의 방문지 상위 10위 안에 신촌/홍대주변이 2012년부터 포함된 것이다. 2012년에는 이태원에 이어서 10위, 2013 년에는 이태원을 밀어내고 9위를 차지했는데, 중국인의 경우, 2012년에는 9위, 2013년에는 6 위를 차지했다. 즉 중국인들이 유난히 신촌/홍대주변을 많이 찾는 것을 알 수 있다. 3) 방한 관광객들의 방한활동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쇼핑이며, 관광지방문과 식도락관광 이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은 2003년부터 10년간 변함이 없으며,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도 마찬 가지이다. 다만 중국인 관광객은 쇼핑활동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003년 에는 쇼핑활동을 했다는 중국인 응답자가 96.6%(전체 평균은 88.9%)이었으며 조사대상국 중 2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쇼핑이 68.8%(전체 평균 57.1%)로 전체 1위를 차지했고, 2013 년에는 82.8%(전체 평균 70.9%)로 전체 4위를 차지했다. 4) 이처럼 중국인들이 쇼핑을 많이 한 다는 것은 한국여행 중 지출경비에서도 확인이 된다. 1인당 총 지출경비에서 중국은 2008년 에는 12위였으나, 2009년부터 3년간 3위였고, 2012년과 2013년에는 1위였다. 쇼핑에 쓴 액 수만 계산하면 중국의 순위는 더 높아진다. 이 자료는 개별관광과 단체관광을 구분해서 제시 되는데, 2008년에는 중국의 개별관광객이 쇼핑에 지출한 액수는 3위, 단체관광객은 7위였는 데, 2009년부터는 모두 3위 내에 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가지 다른 측면에서 이 부분 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체재기간이다. 체재기간이 길수록 1인당 지출비용은 당연히 늘 어날 것이다. 중국은 2008년에는 8.0일로 전체 평균 6.4일보다 길었지만, 지출비용은 16개국 중 12위였다. 지출경비에서 1위를 차지한 2012년에는 전체 평균 6.7일보다 조금 긴 7.5일, 2013년에는 전체평균 6.8일과 거의 같은 7.1일이었다. 이처럼 체재 기간은 평균에 가까우면서 지출경비는 가장 크다면 그 차액을 어디에 썼을지 검토해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용 숙박 시설이다. 중국인 관광객은 비용이 많이 드는 호텔에 묵는 비율이 낮다. 2003년에는 러시아 다음으로 그 비율이 낮았고, 2008년에는 캐나다 다음으로 낮았다. 그리고 2013년에는 16개국 중 12위였다. 5) 비록 호텔에 묵는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지만, 친척/친구집, 게스트하우스/ 여관, 학교나 회사 기숙사, 콘도/펜션 등에 골고루 퍼져서 묵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전 체적인 지출 경비는 매우 많은 편이지만, 비교적 긴 체재기간에도 불구하고 숙박에는 적은 비 3) 이것에 관해서는 신문지상을 통해서 여러 번 보도가 되었는데, 특히 중국 관광객은 이화여대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4) 대만(86.8), 태국(86.1), 홍콩(83.3)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5) 중국인 여행객 전담 가이드의 제보에 의하면 단체 관광객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 호텔에 묵는 경 우에도 경기도에 있는 등급이 높지 않은 호텔에 묵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8 -

용만을 지출하고 있으며, 6) 많은 부분을 쇼핑에 쓰고 있는 것이다. 쇼핑품목을 살펴보자. 2003년에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구매한 품목은 담배(43.2%)이 며, 의류, 식료품 향수/화장품, 인삼/한약재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2008년에는 향수/화장 품의 구매가 가장 많았으며(36.9%), 의류, 식료품, 인삼/한약재 등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 이 후에는 계속 향수/화장품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품목인데 2013년의 경우 그 비중이 압도적으 로 높았고(73.1%), 의류(40.8%), 식료품(32.7%), 인삼/한약재(18.9%)의 순서로 많이 샀다. 쇼 핑장소에 있어서는 2003년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선호도와 전체 평균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2008년에는 공항면세점의 비율(60.3%)이 전체 평균(45.9%)보다 훨씬 더 높고, 대형할인점과 명동의 비중도 전체 평균보다 높았다. 2013년에는 시내면세점 이용 비율(60.7)이 중국인 관광 객 이용 장소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2위인 명동이 42.8%임), 전체 평균 (32.9%)에 비해서도 훨씬 더 높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5.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경관의 변화 1년여 전에 우연히 이화여대 앞을 지나던 필자는 너무나 많이 바뀐 주변 풍경을 보고 놀랐 다. 특히 신촌역에서 지하철 2호선 이대역으로 가는 길에 줄줄이 늘어선 화장품 가게 7) 들이 숫 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매장의 규모도 상당히 커서 놀랐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 장품을 사러 오기에 이렇게 크고 많은 가게들이 있나? 예전에는 이대 앞에 소규모 옷가게와 신발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더니 이젠 모두 화장품가게로 바뀌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 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 화장품 가게들의 주 고객이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관 광객으로 인한 경관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방한 관광객 중 중국인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고, 그들이 지출하는 비용, 특히 쇼핑비가 막대하기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변화들 이 발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비자제도의 개선 이다. 2010년 8월 1일자로 시행되기 시작한 개선안에 의하면 복수비자의 발급대상을 최고 우 수인재 또는 부유층(학술회의 참석 교수 등 전문가, 골드카드 이상 소지자)에서 중산층(초 중 고 교사, 퇴직 후 연금 수령자, 우수대학 졸업생, 500대 기업 임직원 등)으로 확대하였고, 유 효기간도 1년에서 3년으로 늘였다. 비자 선택권 확대를 위한 2회 유효 복수비자(더블비자) 를 신설하였다. 이전에는 복수비자 발급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비자 선택의 범위가 협소 하고, 입국을 위해서는 매번 공관을 방문하는 불편을 겪었는데, 복수, 단수 외에 더블비자를 신설하여 비자 선택권을 확대하였다. 복수비자를 받을 수 있는 범위도 본인의 배우자와 미성 년 자녀로 제한하고 있던 것을 부모와 배우자의 부모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청년 관광객 유치를 확대하기 위하여, 대학생들은 재정능력 입증이 곤란하여 배낭여행, 수학 여행, 단기연수 등을 위해 비자를 받기가 힘들었던 것을 중국 정부에서 정한 우수대학 재학생 6) 세계 어느 지역을 가든 중국인 관광객들은 쇼핑에 목을 매는 반면 항공료나 숙박비 지출에서는 구두 쇠다. 쇼핑에 더 많은 지출을 하기 위해 교외의 싼 호텔에 묵고 초저가 항공권을 산다. 그리고는 숙 소와 음식에 대해서 많은 불평을 한다(베커 2013: 394). 7) 그 화장품 가게들은 소위 로드샵 화장품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파는 곳이었다. 로드샵 화장품은 대개 가격이 저렴하고 길거리에 있는 자신들의 매장에서 판매되며, 백화점이 아니라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 되는 것이다. 최근 로드샵 화장품의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났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더페이스샵, 미샤, 이니스프리, 스킨푸드, 네이쳐리퍼블릭, 아리따움, 에뛰드 하우스, 잇츠스킨, 토니모리, 더샘, 올리브영, 보떼, 홀리카홀리카, 어퓨, 클리오, 마몽드, 바닐라코, 비욘드, 예스쁘아, 라네즈, 보브, 오리진스 등. - 9 -

에 대해서는 재학사실만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요약하면 비자 발급을 위한 법적 요건을 완화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용이하게 한국방문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의 정 책을 변경한 것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방한이 급등한 것에는 이 개선안의 공헌이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광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장 큰 원인은 그것으로 인해 창출되는 경제적 효과 때문일 것이다. 관광객으로 인한 수입에 가장 민감하고 발 빠르게 반응하는 주체는 기업일 것이다. 오랫동안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해왔고 따라서 가장 큰 손의 역할을 해왔던 일본인 관광객을 중 국인 관광객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방한 중국인 관광객은 그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씀 씀이도 크기 때문에 그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위치하 고 있는 것은 관광업계이다. 현재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유치하는 한국의 전담 여행사는 178개 가 등록되어 있다. 이러한 여행사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자본도 필요하지만, 중국의 여행사 (outbound travel agencies)와의 긴밀한 관계가 필요하다. 중국의 여행사에서 제휴한 한국 여행사로 관광객을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에는 본국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출신의 사람들(대개는 조선족임)이 소유한 여행사가 많다. 관광통역해설사(가이드) 의 경우 대다수가 조선족이며, 최근에는 중국인 상대 가이드의 수입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국인들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중국어 실력과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 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조선족들은 정식으로 관광통역해설사 자격을 따는 데 어려 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많은 여행사들이 영세하여 정규직 해설사를 고용하지 못하거나 소수 만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고, 중국인 관광객의 계절적 특수에 따른 수요 변동이 심하기 때문에 무자격 가이드나 파트타임 가이드가 많이 활동하고 있다. 8) 이 같은 무자격 가이드 중에 대다 수는 조선족이라고 한다. 저가의 패키지를 이용하는 중국인이 많고 여행사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의 패키지를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9) 이 경우 여행사와 가이드들 은 관광객들이 찾는 면세점, 쇼핑센터 등으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로 자신들의 수입을 보전한 다. 10)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해서 중국인 상대 여행사와 가이드 시장에서 조선족이 주요 참가자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관광객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의 대응 또한 매우 적극적이다. 최근 중국 인을 비롯하여 전체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동의 경우를 보자. 명동성당 사거리에서 롯데 백화점 맞은편에 이르는 유네스코길은 명동의 가장 중심이며, 땅값이나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다. 그 길의 양쪽 입구에는 중국 인롄( 銀 聯 )카드가 후원한 입간판이 서 있고 그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가로등에는 배너가 설치되어 있는데, 중국어와 일본어로 명동에 온 것을 환영한 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유네스코 옆 길 양 옆으로는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구입하는 물품인 화장품 가게 들이 모여 있다. 이 가게들에는 중국어를 할 있는 직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게 앞으 로 나와서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가게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8) 2012년 현재 관광통역해설사협회에 등록된 중국어 가이드는 5,182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1,00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중 한국 국적자가 아닌 사람이 약 1,000명 정도인데, 이들은 대 부분 조선족이고 화교도 일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Bae 2013). 9) 쇼핑 강요, 상품 강매, 바가지 요금, 질 낮은 숙박시설과 음식 등, 많은 문제들이 이러한 구조에서 비 롯되고 있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저가 덤핑으로 싸구려 관광 이미지를 야기하고 시장을 교란한 여행사에 대해서는 지정을 취소하기로 했다(문화일보 2014년 10월 10일). 10) 2009년에서 2014년 8월까지 국내 면세점 업체들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지 급한 리베이트가 1조1654억원에 달했다고 한다(연합뉴스 2014년 10월 14일). - 10 -

들고 거기 저장된 정보와 사진을 보면서 구입할 물건을 고르고 있거나 그들에게 중국어로 설 명해주고 있는 직원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화장품 가게들은 명동의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수를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물론 화장품이나 향수를 구입하는 관광객이 중국인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관광객이 모두 화장품을 많이 구 매하기 때문에 중국어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7월 3-4일에 국빈 방문한 시진핑 주석과 부 인 펑리위안 여사의 영향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펑여사가 샀다는 달팽이크림을 특별히 광고하는 간판을 내건 화장품 가게를 명동에서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다녀간 동대문의 대형 쇼핑몰 롯데피트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고, 그녀가 구입했다는 공예품, 식품 등의 매출 이 급등하고 있으며 그녀를 활용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이해서 16만 명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 도 많이 이루어졌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을 가격에 사용하기도 하고(예컨대, 종래의 9,900원 대신 8,800원을 가격으로 책정함),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붉은색과 황금색을 인테리어 에 사용하거나 제품에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들이 몰리면서 교통체증도 많이 빚어졌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장소인 경복궁, 남산 한옥마을, 롯데월드 등에서는 가이드가 중 국인 단체 관광객을 이끌고 다니는 모습과 중국인 개별 관광객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 만, 전체적인 모습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이런 장소들은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관람객들 도 많기 때문이다. 즉,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특별히 어떤 시설이나 그에 비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른 신촌 지역의 경우 이대 앞이나 홍대 앞에는 중국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 는 화장품 가게들이 많이 생겼고, 이대 캠퍼스에는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들 을 많이 볼 수 있다. 한류가 중국인 관광객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한류가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동기와 효과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한 다수의 연구가 있다(예를 들면, 김은정 박상준 2010, 박은숙 최해수 2012, 최경은 2007 등). 이 연구들에서 중국인들이 방한 관광을 하게 되 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되 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의 한류는 대장금 이후로 큰 인기 를 누린 콘텐츠가 거의 없다가 11), 2013년에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 가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한 장소를 찾아서 오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었고, 급기야 세트 장을 전시하기에 이른다. 2014년 6월 10일부터 8월 7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세트장 전시회가 열려서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았는데, 그 중 약 80%는 중국인 관광객이었 다고 한다. 이 전시회는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야외특별전시관에서 9월 5일 시작되어서 1년 간 지속될 예정이며 1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에 일으킨 치맥 붐에 대해서는 언론지상을 통해서 많이 보도되었는데, 한국의 치맥을 맛보고 싶어 하는 방한 관광객들을 위해서 가이드들이 숙소의 방으로 치맥을 배달시켜주기도 하고, 사정이 허락하면 직접 데리고 치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따라서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묵는 호텔 주변에 큰 규모의 치킨 가게가 생기기도 한다. 중국인 관광객과 관련하여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또 하나의 분야는 뷰티관광이다. 12) 성 11) 경복궁 내의 소주방은 경복궁을 재건할 당시에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대장금의 전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현재 재건 중에 있으며, 그 현장에는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을 담은 큰 입간판이 서 있다. 12) 뷰티관광 관련 연구로는 김명주 2011, 양삼 최기탁 2014, 전인순 민동규 이경숙 2012 등이 있다. - 11 -

형, 피부, 미용 등과 관련하여 시술이나 수술을 받기 위해 성형외과, 스파, 미용실, 피부관리 실, 네일아트샵 등을 방문하는 것을 통칭하여 뷰티관광이라고 하는데, 그 수요가 늘어나면서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013년 성형외과를 찾은 외국인 환자 24,075명 가운데 중국인이 67%에 달하며, 그 다음으로 일본(5.7%). 미국(4.3%), 러시아(3.6%) 관광객이 많았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공항픽업에서부터 관광지 에스코트까지 포함된 패 키지 상품이 개발되고, 서울 강남 지역의 성형외과들은 간판을 한자로 표기하기도 하고, 외국 인 전담 코디네이터, 중국인 통역자 등을 배치하여 고객 유치와 만족도 향상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13) 6. 나오는 글 인류학에서 이루어진 관광에 관련된 연구의 대부분은 제1세계의 관광객이 제3세계를 관광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혹은 제1세계의 작은 마을이나 타운이 관광객으로 인해 겪게 되는 변 화를 다루고 있다. 즉 이러한 관광지를 찾아가는 관광객의 동기나 관광경험, 그리고 관광지 주민들이나 물리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이 관광으로부터 받는 영향 등을 주로 다루고 있 는데, 따라서 관광지 문화의 진정성(authenticity), 관광객의 시선(tourist gaze), 관광 버블 등이 중요한 논의 주제였고, 지역의 환경 훼손, 지역문화의 상품화와 변질, 지역주민의 의식 변화, 계층화 심화 등이 주요 주제로 다루어졌다. 그런데 중국인의 한국 관광은 조금 다른 맥 락에 있다.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전통시대 중국인의 한국 방문 내지 관광은 대부분 사신들의 방 문이었고, 선진국(명이나 청) 관리가 후진국(조선)을 방문하는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관광의 전사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중국인의 한국방문은 그 횟수나 규모가 제한적이었던 만큼 동반되 는 경관의 변화 역시 제한적이었다. 근대 전환기의 중국인의 한국방문은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면서 한국 사회의 일부는 근대적으로 변모되었고 이에 대해 중 국인들은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나라 잃고 근대화 과정에서도 소외된 서민들에 대해 동 정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인이 한국을 찾은 관광객 중 압도적 다수였고, 이들을 더 많이 유치하고 만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대응이 있었고, 그로 인한 경관의 변화 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기 시작한 현대 시기 중국인의 한국 관광은 2000년대 중반에 접어 들면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 그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관 광의 형태는 저발전 지역에서 발전 지역으로의 이동으로서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 이다. 더구나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로서 한국의 중심지일 뿐 만 아니라 세계화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의 경관에 미칠 수 있 는 영향은 더욱 제한적이다. 14) 하지만 관광은 현대 사회에서 부가가치 창출의 주역으로 각광 받고 있기 때문에 관광과 관련된 경제활동의 주체인 기업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 역주민, 학계, 언론계 등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그 결과 경관의 변화가 초래되고 있다. 가장 현저한 변화는 역시 쇼핑과 관련된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의 수와 그들이 쇼핑에 지출하 13) 최근 중국에서 붐을 일으킨 별에서 온 그대 가 뷰티관광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극 중 주인공인 천송이(전지현)나 도민준(김수현)과 비슷한 모습으로 성형하기를 바라기 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국의 연예인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늘었다는 것이다. 14) 이에 비해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의 경우 그들로 인한 경관의 변화가 훨씬 더 크게 나타나 고 있다. - 12 -

는 비용으로 인해서 거리의 모습, 상점 내의 모습, 직원의 구성과 대응, 상품의 구성 등에서 중국인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중국인의 입국을 용 이하게 하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재방문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 으며, 지방정부는 자기 지역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언론계나 학계는 경관 변화에 직접 관여하진 않지만 관광과 관련된 현상분석과 개선안 도출에 관심을 집중함으로 해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주민은 관광으로 인해 혜택을 받 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의 이해가 상충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조사와 분석이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정부의 활동과 그로 인한 경관 변화에 대해서도 연구가 더 진 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명주, 2011, 중국관광객의 한국의료관광 선택속성에 관한 연구: 성형미용을 중심으로. 경 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김은정 박상준, 2010, 중국의 한류현상이 한국 관광의도에 미치는 영향. 호텔관광연구 8(1): 171-184. 박경석, 2008, 근대중국의 여행 인프라와 이식된 근대여행: 중국여행사의 설림과 활동을 중 심으로. 중국사연구 53: 203-237. -----, 2009, 근대 중국인의 해외여행과 내셔널리즘, 그리고 타자인식. 동양사학연구 107: 91-119. 박은숙 최해수, 2012, 한류가 관광지 이미지와 관광객 만족에 미치는 영향: 중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관광연구 27(6): 57-73. 신태영, 2005, 명나라 사신은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 서울: 도서출판 다운샘. 양삼 최기탁, 2014, 방한 중국인의 뷰티관광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항공경영학회지 12(1): 63-79. 이상균, 2013, 조선시대 유람문화 연구. 강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상배, 2004, 조선전기 외국사진 접대와 명사의 유관 연구. 국사관논총 104: 221-253. 전인순 민동규 이경숙, 2012, 중국인의 한국의료관광상품 선택속성에 관한 연구. 동북아관 광연구 8(3): 259-281 차경자 진학문, 2013, 중국 국외관광의 발전현황과 한국에의 시사점. 국제지역논총 6(2): 69-103. 최경은, 2007, 중국인의 방한관광에 대한 한류의 영향. 대한지리학회지 42(4): 526-539. 한경수, 2005, 한국의 근대 전환기 관광(1880~1940). 관광학연구 29(2): 443-464. Bae, Hyun Jin, 2013, Structure and Dynamics of the Chinese Tourism in Korea Society: A Qualitative Research on Package Tours. M.A. Thesis, Yonsei University. Becker, Elizabeth, 2013, Overbooked: The Exploding Business of Travel and Tourism. New York: Simon & Schuster. (엘리자베스 베커, 2013, 여행을 팝니 다. 유영훈 역, 서울: 명랑한지성) Graburn, Nelson, 1983, The Anthropology of Tourism. Annals of Tourism Research -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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