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성의 공간 과 자아 - 이상을 중심으로 / 이창남, 신지은 목차 0. 들어가며 1. 경성의 근대적 공간의 형성과 오감도 시제1호 2. 군중 속의 나르시스 3. 13과 U-topia 4. 나가며 0. 들어가며 본 연구는 1920-30년대 식민도시 경성의 근대적 공간의 변화를 근대적 주체의 문제와 연동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제치하의 수도 경성(서울)은 식민지 시기에 근대적 인 모습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이는 당시 경성 거주민들의 의식에 상당한 의식변화를 수반하 였다. 특히 새로운 시공간적 경험을 체화하여 시로 육화한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이 상의 작품들은 근대적 공간과 자아의 관계를 검토하기 위한 많은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건축가이자 시인이었던 이상은 근대적 공간 속의 체험을 공포, 권태, 멜랑콜리 와 같은 감정들의 코드로 표현하고 있고, 수식이나 좌표 등을 아방가르드적인 시작품에 도입하여 특 징적인 공간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공간적 변화, 가령 도로, 공공 건축물, 백화 점, 카페, 유곽과 같은 근대적 문화적 양태들이 유발하는 새로움에 대한 자아의 의식과 긴 밀히 연관되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본 연구는 이상의 자아가 갖는 감성적 지표들과 공간 적 지표들을 연동시키면서 근대적으로 탈바꿈해가는 식민도시 경성의 공간과 이상을 통해 드러나는 자아의 상호적 관계 속에 나타나는 문제를 검토할 것이다. 1. 경성의 근대적 공간의 형성과 <오감도 시제1호> 조선의 수도 한양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본제국의 식민지 시기에 근대도시 경성으로 변모해간다. 일제는 식민도시의 통치와 경영을 위하여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경성에 도입한 다. 여기서 특히 오스만Baron Georges Haussman식 도시개조가 주요 모델이 되었다. 오스 만의 파리 재정비(1852-1869)는 근대적인 도시계획의 전형적인 예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도시개조의 모델로 채택된 바 있다. 또한 아시아에도 도입되었는데, 1882년 동경 개조사업 을 제안했던 芳 川 顯 正 은 프랑스 제 2 제정기 오스만 1) 의 도시개조를 모델로 안을 제시했던 1) 도시계획은 곧 도시의 규획화regularization를 의미한다. 이것은 근대 도시 계획의 중요한 참조가 되는 파리 대개조 프로젝트의 실행자인 오스만에게서 빌려 온 것이다. 규획화의 목표는 무질서의 규제와 새로운 질서의 확립이었고, 그를 위해 도식적인 레이아웃 을 적용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파리라는 집합체에 동질 성을 주는 것,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발전의 추진력에 적절한 도시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 해 중세의 파리를 상징하는 건조물과 공간 환경의 대규모적인 파괴가 병행되었고, 동시에 대규모적인 새로운 구성으로서의 세팅 이 진전되었다. 이상이 동경을 두고 세트 와 같다고 한 것은 도시의 이러한 일반적인 성 격 뿐 아니라 동경이 서구의 대도시를 모델로 하고 있는 문화적 식민도시, 즉 복제판 성격에 대한 통찰이기 - 1 -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은 도로, 교량, 하천을 근대적으로 정비하고 건축물의 근대화도 달 성한다는 것이었다.(손정목, 1990, 99쪽, 101쪽) 1910년 8월 한반도 식민지화를 완전히 달성한 조선 총독부는 동경에서 수행되던 시구개 정사업의 수법을 그대로 들여온다. 따라서 오스만식 도시개조의 유형은 동경을 거쳐 경성에 도 그대로 답습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성시구개수사업은 1913년에 시작하여 1929년까지 17년간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21325M의 도로와 225M의 광장이 조성되었다. 도로가 확장되고 직선화되었고 교통량이 빈번한 도로는 아스팔트 또는 마카담 공법으로 포 장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같은 책, 105쪽, 158쪽) 이것이 일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경성도심에 대한 시가지 개수 사업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일제는 유럽의 도시계획을 시찰하고 온 本 間 孝 義 라는 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시가지 계획령을 수립하였다. 1926년 1차안, 28년에 2차안을 작성하였다. 비현실적이었던 1차안과 달리 2차안에서는 좀 더 현실적인 안에 제안되었는데, 광화문, 남대문, 서대문, 종로 등에 주요 도로망이 계획되었다. 이상의 구역은 경성도시의 지리적으로는 중구이며 산업지역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간선도로로서 사통팔달하기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획이 부정형하며 그 도로의 연곡, 장단, 횡협이 불규칙하여 막다른 골목 등이 많다 는 것이 정비의 주요 이유였다.(같은 책, 145-146쪽) 근대적 건축물의 경우 1920년대와 30년대 전반기에 걸쳐서 경성에 가장 많이 세워진 것 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태평로, 남대문로 등의 모습이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 었다.(손정목, 1996, 98쪽) 이 시기에 세워진 대표적인 근대적 건물들로는 조선총독부 청사, 경성역사, 삼월백화점, 삼중정 백화점, 총독부 체신분관, 그 밖에 신문사, 은행, 대학 등이 다.(같은 책, 100-101쪽) 이 건물들은 오스만적인 양식과 유사하게 신고전적 양식을 띤 유 럽풍의 건물들이었고, 정비된 도로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과거 왕조 의 수도는 급격히 탈바꿈하였고,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근대를 갑작스럽게 체험하는 식민지 인들에게 아노미적 현상을 유발했다. 이것이 당시 식민지 지식인에게 어떠한 형태로 각인되 는지 이상의 시편 하나를 매개로 살펴보자. 오감도 시제1호 십삼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도 하지만, 그 밑에는 도시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파악도 함축되어 있다. - 2 -
제 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11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중에 일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이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이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중에 일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십삼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오감도 시제1호>, 이상전집1, 40-41쪽) 이상은 2-30년대 전통적인 시풍의 시인들과는 달리 아방가르드적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 으로 통한다. 이 작품도 풍부한 감성을 시적 대상물을 통해서 육화하는 방식을 취하기보다 는 사태를 투시하여 일종의 축도를 만드는 작업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난해한 그의 작품들 가운데 위 시 속에 활동하는 존재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해(아이) 라는 일 반명사로 지칭되고, 제 1의 아해, 제 2의 아해와 같이 번호로 호칭된다. 그런 점에서 아이 들은 불특정한 다수라고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의 움직임은 도로 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이 루어지며, 서술하는 화자는 조감도적 위치에서 이를 관찰하고 있다. 아이들이 불특정 다수 로 상징화되고 있다는 사실과, 시제목을 비롯하여 건축적 메타포가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할 여지가 있다. 작품에서 새 조( 鳥 ) 의 자리에 들어선 오( 烏 ) 는 까마귀를 지칭하는 것으로 전체의 시점 을 구성하는데, 여러 해설들이 이를 건축적 투시도와 유사하게 고찰하고 있지만, 실상 이 시점은 이상이 <조선과 건축> 권두언에서 몇 회에 걸쳐 언급한 바 있는 바우하우스 교수 출신 예술가 모홀리 나기László Moholy-Nagy의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 해 보인다.(이상, <<조선과 건축> 권두언4, 5, 11>, 정본 이상 문학전집3, 276, 278, 284 쪽)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에서 공부했던 이상은 바우하우스 교수출신 예술가 모홀리나기 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모홀리 나기를 직접 언급하면서 그 의 전인 全 人 개념, 촉각 연습tactile exercice, 감각적 훈련sensory training, 동력학적 리듬 (운동성) 등을 독창적으로 전유한다. 그가 설계도, 평면도 작성 등에서 영감을 얻은 투시도 법은 기존의 원근법을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기존의 원근법은 근대의 공간을 점유한 단일한 규제 시스템이 드러나는 곳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있다. 원근법은 하나의 중심점을 정하고 그 중심점으로부터 멀고 가까움을 가늠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레 사람들을 중심을 향하도록 통제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모홀리 나기의 새로운 시각은 새로운 원근법에 의한 시야와 관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 - 3 -
는 아카데믹한 원근법 즉 수평선 위에 설정된 소실점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이 소실점은 언제 나 눈높이에 자리 잡게 되는 전통적 원근법을 부정한다. 그와는 다른 의미의 시각을 제시하 고자 하는데, 이는 벌레와 새 의 시점에서 보는 각도로 알려져 있으며, 지각의 기계적 운동 을 분쇄하고 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다. 2) 모홀리 나기의 이러한 방법을 시의 시점으로 채택한 것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근대적 공간에 대한 이상의 비판적 의식의 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유럽에서 이루어진 근대 적 도시계획에서 국가 중심적 체계와 통제를 위한 도로망의 구성은 이미 문제적으로 지적되 어왔다. 도로는 단순한 수송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보행자의 방향을 지시하고, 도로를 둘러 싼 건축물들은 통치 체계의 영원성을 홍보하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갖는다. 식민도시 경성 에서 이루어진 도시재구조화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궁 앞을 가로막는 총 독부 건물을 비롯하여 식민통치의 주요 건물들이 새로 조성된 도로망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은 물론 작품에서 정치적 경향성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시인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 려 근대적으로 변모하는 도시화 과정에 대한 체험을 시적으로 육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시인의 정신적 지향점과 함께 서술 되고 있는 작품 속에는 많은 수수께끼적 사태들이 내 장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 가운데 공포 는 작품 속의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표현하는 감정적 지표로 나타난다. 이 작품에 국한해서 볼 때 공포에 대한 단서는 그렇게 많지 않다. 다만 우리는 그 공포를 우선 도시재구조화의 과정 속에 제도적으로 도입된 공간이 유발한 공포라고 가정할 수 있 다. 또한 아이들 상호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공포라고 전제하고 출발해볼 수 있겠다. 첫 번째 의미에서 이 공포는 우선 아고라포비아 현상과 관련하여 고찰해 볼 수 있다. 아고라포 비아라는 용어는 베를린 대학 교수였던 칼 프리드리히 오토 베스트팔 Carl Friedrich Otto Westphal(1822-1891)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Milun, 2007, p. 25) 이는 거대광장과 도로 에서 순간적으로 지각의 균형을 상실하는 공포증을 의미하는 것으로 19세기 유럽에서 근대 도시가 발전하면서 보고되기 시작한 병적 증후이다. 밀런에 따르면 거대한 빈 광장, 사각 화된 자연, 거리가 만드는 투시도적인 보행자의 방향설정 (Milun, 2007, p. 71) 등이 광장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의 전형적인 예이다. 19세기에 이러한 도시환경은 적대적인 환 경을 조성했고, 공포증 환자들은 집이나 침대, 그리고 작은 공간으로 숨어드는 경향을 보였 다. 최근에는 거대 쇼핑몰이나 도시의 프리웨이에서 이러한 증세를 드러내는 경우가 나타난 다. (Milun, 2007, p. 2) 19-20세기에 유럽에서 보고되기 시작한 이러한 증세가 곧바로 이상의 오감도 시제1호에 나타나는 아해들의 공포를 해명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고라포비아도 병인지 증후인지 모 호한 점이 그 자체에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밀런이 아고라포비아를 들뢰즈와 가 타리가 설정한 두 가지 공간의 형식 즉 홈이 패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 사이의 변증법적 전 2) 모홀리 나기가 보여준 단편적인 이미지, 대각선 구도, 클로즈업, 밑에서 위로 보기 혹은 위에서 아래 보기 등 의 앵글, 그림자 효과 등은 사진을 프레임 안에서 완결된 것으로 느끼게 하기보다는 프레임 밖의 상황을 연상 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새로운 시각을 적용한 사진 이미지를 접할 때 소외되고 버려진 듯한 느낌, 불 편하며 부자연스런 느낌을 갖게 된다. 이는 원근법적 구도에 충실한 사진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다. 미 술사학자 엘리어노 하이트Eleanor Hight는 모홀리 나기의 단편 이미지 사용을 제유법synecdoche 으로 설명 하는데, 이것은 일부로서 전체를 나타내는 방식에 의해 중심과 주변의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그 질서 개념을 분산시키게 된다고 한다.(박신의, 2002, 192쪽) 현대의 삶이란 전체성으로 쉽게 환원 흡수되지 않고 단편과 병치의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모홀리 나기의 예술적 방법이 한 사회의 정치, 사회, 일상의 측면에 까지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 4 -
환과 접목시키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상이 오감도 시 제 1호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이 두 가지 상이한 공간의식의 접경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 다. 홈이 패인 공간은 직선적이고 안정적이며, 하나의 중심점을 둘러싸고 사회적 세계를 구성 하는 격자형 네트워크를 설정한다. 이러한 공간의 양상은 고착된 주체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근대국가로 축도화되는 국가의 형성과 관련된다. 당시 경성은 식민주의자들이 국가를 세우 고, 식민국가에 의해 주도된 도시계획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유럽과는 달리 다소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홈이 패인 공간이 나타난다. 낡고 구불구불한 길들은 일직선으로 정리되고, 외 국에서 이식된 건축물들이 늘어선다. 이와 같이 사회공간이 남의 공간이 되면서 겪는 혼돈 과 불안감, 좌절의 정서는 보편화된다. (신형기, 1997, 45쪽) 다른 한편 매끄러운 공간은 대양과 같이 매끈하고, 유동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유 목적인 주체의 형성과 관련이 된다. 근대적 공간은 홈이 패인공간이 지배적이므로 매끄러운 공간은 홈이 패인 공간에 의해 잠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매끄러운 공간의식은 늘 잠재적인 양태로 홈이 패인 공간의 형식을 동반하고 있다. 일제가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도시 공간은 앞서 보았듯이 직선적인 홈이 패인 공간을 형성하고, 그로부터 벗어 나고자 하는 의식은 매끈한 공간을 환기시키면서 의식에 혼동을 야기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 다. 이 두 가지 공간과 자아의 형식 사이의 변증법을 밀런은 아고라포비아의 증세에 연관시키 고 있다. 말하자면 아고라포비아의 증세는 홈이 패인 공간이 일정한 강도에 이르러 매끄러 운 공간으로 미끄러지듯 이행하는 현상과 연계될 수 있다.(Milun, pp. 87-88참조). 이러한 미끄러짐(slippage)을 들뢰즈와 가타리는 회귀적인 매끈화lissage rétroactif (Delueze, Guattari, 1980, p. 601) 로 정의하는데, 이는 단일한 선적인 공간의 합리적 질서가 그 강 도에 있어서 일정한 한계에 도달하면 더 이상 그 원리가 작동하지 않고, 새로운 공간에 대 한 의식이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다.(Milun, p. 88) 아고라포비아의 환자는 단일한 공간을 처음에 건축학적으로 의도되었던 유클리드적 기하 학의 장대한 확장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는 갑자기 기하학적인 투시적 방향성이 더 이 상 작동하지 않고 공간은 혼란스럽게 불안정해지고, 시각적 신호는 통행인의 관통을 돕는 감각의 권위의 보다 촉각적인 형식을 위하여 포기된다. (ibid., p. 87) 3). 잘 정비된 도로, 건축물, 광장 등이 미로로 지각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두 가지 공간 의 식의 접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며, 여기서 자아가 느끼는 공포는 바로 그 접경의 경계의 감 성적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30년대 식민도시 경성에서는 홈이 패인 공간의 영토 가 확장되고 있었고 4), 그러한 공간적 기획에 대해 이상이 건축기사로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는 시적인 차원에서 이미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 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매끈한 공간에 대한 구상이 비유클리트적인 리만의 수학과 카오스 이론에 의존하고 있듯이 이상의 경우도 반유클리트적인 의식은 아주 직접적으로 원을 살해 3)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하는 홈이패인 공간으로부터 매끈한 공간으로 미끄러짐 에 대한 논의에서 비유클리드 적인 리만의 수학과 카오스 이론 들이 고려되고 있다. 4) 1910년대의 시구 개정, 20년대의 도시계획, 30년대의 시가지 계획(구획 정리)을 통해 30년대에는 경성이 대 체로 도시 정비가 되었다. - 5 -
하는 직선 (<이상한 가역반응>, 이상전집2, 13쪽)이라는 관념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하나 의 소실점으로 수렴시키는 근대적 원근법이 인문의 뇌수를 마른 풀처럼 소각 (<선에 관한 각서2>, 이상전집2, 47쪽)한다는 표현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이상의 기하학과 공간에 대한 의식은 절망과 새로운 탄생의 변주로 나타난다. 이 를 두 가지 공간 의식의 변주적 양태로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 절망은 공포 로 표면화되 고 있다. 이상은 자아정체성 상실에 대한 공포를 죽음의 체험과 동일하게 경험하면서도 동 시에 그러한 새로운 정체성을 탄생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입체에 의한 절망에 의한 탄생 운동에 의한 절망에 의한 탄생 (<선에 대한 각서 1>, 이상전집2, 45쪽) 실제 일제에 의해 수행된 경성의 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생겨난 중심 도로는 근대의 직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20세기 초 르 코르뷔지에는 과거 성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 로형 도로와, 빈둥거리며 감정적인 본능적 걸음으로 길을 가는 당나귀의 길 같은 과거의 도 로망을 이러한 기하학적 형태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성적 판단에 의해 과거 도시의 미로적 형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성에 도입된 도시구조 도 이러한 합리적 근대도시계획의 이념으로부터 멀지 않았다. 십자의 메인 스트리트를 중심 으로 자본의 수송에 편리한 도로와 전차길이 생기면서 경성의 중심 도로는 기하학적 형태를 갖게 되었고, 중심 도로의 교차점에는 각각 근대적 자본주의와 권력을 상징하는 건물이 위 치했다. 도시가 이와 같은 근대적 외양으로 정비됨에도 불구하고 이상에게 경성의 풍경은 재해지 로 인식된다. 백지 위에 한 줄기 철로가 깔려있다. [...] 나의 생활은 이런 재해지( 災 害 地 )를 닮은 거 리에 점점 낯익어 갔다. (<거리-여인이 출분한 경우>, 이상전집2, 143쪽) 또 대로가 드러내는 직선의 이미지는 이상의 작품 속에 군용장화 (<오감도 시제15호>, 이상전집2, 96쪽)의 이미지와 같은 군사학의 이미지, 식민지의 통치 국가의 이미지와 밀접 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상 자신의 꿈을 더럽히는 것으로 등장하는 군용장화는 군사 퍼레 이드를 연상시킨다. 5) 이는 거대광장에서 이루어지는 식민국가의 상징적 페스티벌이다. 일본 군 2개 사단 병력이 상주하고 있던 식민지 조선에서 관병식이라는 행사는 드문 일이 아니 었고, 주로 용산 일본군 기지 내부에서 거행되곤 했다. 그런데 1926년 서울 북촌 조선인 거 주지의 심장부인 광화문 거리에서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졌다.(김백영, 2009, 328 쪽) 6) 5) 이상은 <가외가전>에서 거리의 생존투쟁적인 소음 때문에 자신이 받는 충격을 훤조 때문에 마멸되는 몸이 다., 어디로 피해야 저 어른 구두와 어른 구두가 맞부딪는 꼴을 안볼 수 있으랴. 한창 급한 시각이면 가가호 호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멀리 포성과 시반( 屍 班 )이 제법 은은하다. 고 표현한다. 거리의 뒤엉킨 소음은 멀리서 포성처럼 들리기도 해서 그에게 대도시 거리가 전장 을 알게 해주는데, <보통기념>이나 <파첩>에서 시가전 이라는 말로 그러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6) 1926년 초에는 왜성대 구청사에서 경복궁 신청사로의 총독부 이전으로 군사 퍼레이드가 경성 거리를 북적이 게 만들었다. 일제 식민권력이 왜성대를 떠나 5백 년 토착 왕조의 심장부로 본거지를 옮기는 것은 외래 식민 권력자들에게 위험 부담이 컸을 것인데, 이러한 위험을 압도하기 위해 식민권력의 압도적 군사력을 한눈에 드 러낼 수 있는 관병식이 채택된 것이다. - 6 -
군인이 군복을 벗고 광장을 지날 때 광장공포증이 나타나지만, 군복을 입을 때 그 증세가 사라지는 것처럼 국가주의적 정체성은 어떤 의미에서 공포를 잠재우는 사회적 정체성이 될 수 있다. 이상은 정치적인 반식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투쟁한 지식인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군중집회와 국가주의적 정체성에 대해 무의식적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이 드러내는 두 가지 공간의 변증법은 국가의 계획에 따라 수행된 도시계획의 단면을 드러내고, 후자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비국가적인 유목적 공간 의식이 표면화 된 것 이다. 점점 더 잘 정비되어가고 있던 경성이 미로적인 공간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두 가지 공간의식의 중첩을 고려하면 우연한 일은 아니다. 당시 조선의 경우 특징적으로 민족 적인 분할이 지리적인 분할로 이어지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성은 한인이 주로 거주 하는 북촌과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남촌으로 나눠지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북촌은 개발이 늦었고, 남촌은 상대적으로 많이 개발되고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한 개발의 양상은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난다. 경성과 같이 도회적으로 정비되고 있었던 도시와는 달리 이상이 방문했던 성천은 그에 대 비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시골에서도 공포를 느 낀다. 그런데 시골에서의 이 공포는 초록의 공포, 영원한 녹색이 주는 공포이다. 말하자면 도시의 직선화된 도로와 거대 광장이 공포를 유발하면서 매끈한 공간 의식을 일깨운다면, 여기서는 거꾸로 광대무변한 초록의 공간이 홈패인 공간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시골의 공간은 우선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 으로 인식되며, 권태와 공포를 유발한다. 특히 촌에서의 경험을 서술하는 <어리석은 석반>에서 시골의 하늘과 영원의 초록인 자연이 혼도 나 민절 을 야기하는 것으로 서술된다.(<어리석은 석반>, 정본 이상 문학전집3, 173-184쪽) 시골에서도 화자는 길 잃은 아해가 되 는 것이다. 도회의 정비된 길과 시골의 영원한 초록 사이의 접경. 이 공간은 공포스럽기도 하고, 권태롭기도 하다. 이 두 가지 감정 즉 공포와 권태 사이에서 이상의 의식은 변주적으로 진동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감정적 지표는 운동의 표상으로는 질주와 정지의 변증법으로 나타난다. 미로 속에서 질주한다는 것은 결국 그대로 서있는 것과 다를 바 없으며, 또 뚫린 길은 막힌 길이 기도 하다. 이는 이상의 의식 속에 모순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두 가지 공간의식 사이의 교 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 설정된 공간적 배경을 미로 로 이해할 때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이상이 설정하고 있는 뚫린 길과 막힌 길이 교차하는 미로는 이러한 두 가지 상이한 공간의식이 중첩되며 나타나는 모순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군중 속의 나르시스 군중은 18세기에 시작되어 19세기에 확립된 근대적 대도시의 새로운 현상으로, 즉 대도 시에서 사람들이 익명의 상태로 대량으로 무리 짓는 것을 일컫는다. 대도시 군중은 유럽에 서 18세기에 기원을 두는 현상으로서 런던이건 파리이건 농촌 인구의 이농과 도시 경제의 전환과 관련이 있다.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농촌인구의 이농에 그 원인이 있었는데, 농 촌으로부터 진입하여 신분을 알 수 없었던 이 이방인들과, 신분적, 인격적 관계를 배제하는 새로운 도시경제로부터 발생하여 정체성이 불투명했던 신흥 부르주아지들이 이방인들의 무 리, 즉 군중을 이룬다. 일본인 유입 등으로 식민지 조선 특히 경성에서도 인구의 급증이 일 어나고, 군중이라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오감도 시 제 1호의 공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변화된 도시 공간에서 유래하는 것으 - 7 -
로 볼 수 있으며, 또한 당시 경성의 공적 공간을 점유하던 이 군중과 자아의 관계 속에 나 타나는 현상으로도 고찰할 수 있다. 어느 한 수필에서 이상은 복수화된 자아를 군중에 비유 하고, 군중을 곧 죽음에 비유하고 있다(<얼마 안 되는 변해>, 이상전집4, 343쪽 참조). 군 중과 자아의 이러한 배리적 관계는 <오감도 시 제 1호>의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 해들을 군중으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즉 이들의 두려움은 군중에 대한 개인의 두 려움이며, 군중 속에서 안정적인 자아의 테두리를 잃어버릴 것 (Milun, p. 79; Huyssen, p. 53)에 대한 두려움이 이 공포의 근원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아해들이 서로 간에 갖는 공포감은 그들이 서로 마주치게 하는 도시구조가 주는 공포와 상동적 관계에 있다. 광장과 대로는 이들이 조우하는 공간이며, 이 안에서 군중은 그 공간 을 채우면서 서로에게 익명인 존재로 마주하게 된다. 19세기 도시 공간의 텅 빈 광장은 정 체성을 형성에 있어서 낯선 것과의 조우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되 고 있다.(Milun, p. 96). 식민도시의 광장이나 거리는 대중을 황국의 신민으로 혹은 소비주 체로 훈육시키는 집합적 정체성의 장소이자 동시에 일정한 정체성이 없는 낯선 타자들의 집 단과 대면하게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백화점, 카페, 교회, 역사, 유곽 등 당대 군중들이 마주치는 근대적 공간과 건 축물들은 일본을 거쳐 이식되고 있었다. 이러한 장소에서 군중들과의 마주침은 소위 알려지 지 않은 것(the Unknown)과의 마주침이며, 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는 이러한 낯섦의 체험은 아노미현상을 야기하는 정도로 강력하였다. 여기서 기존의 자아는 와해되고, 새로운 자아가 생성되는 일련의 과정이 내재한다. 이 과정 속에 심리적으로 '죽음'과 '트라우마'의 체험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럽적 예들을 통해서 지적된 바 있는데(Milun, p. 96), 근 대적 충격을 체험하는 경성의 공간들 속에서 그러한 근대적 충격을 야기하는 타자(알려지지 않은 자)로서의 군중과의 마주침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빌딩을) 나오면 남대문통 십오간( 十 五 間 ) 대로 GO STOP의 인파 (<실화>, 이상전집1, 378쪽) 이상이 이와 같이 간략하게 정리하는 경성의 군중은 1930년대 야시장, 박람회, 백화점, 카페 등을 채우고 있었다. 특히 백화점을 중심으로 근대적인 소비문화가 도입됨으로써 식민 지 대중들은 근대적 소비자로 훈육되고 있었다. 이러한 양상의 전형적인 예는 당대 새로운 유행으로 경성의 거리를 장식하던 모던걸과 모던 보이들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백화점 종 업원, 관공서 사무원, 학생, 주부, 기생 등 다양한 부류에 속하였다. 모던걸은 그 모던한 직 업에 걸맞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가이드걸, 버스걸, 티켓걸 등이 그것이다.(신명직, 2004, 304쪽) 직업적으로 신문화의 도입과 더불어 만들어진 직종에 종사 하던 이러한 사람들 이외에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 신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모던보이 와 모던 걸들은 경성의 소비문화를 주도했다. 모던걸이 화사한 치마, 저고리를 사고 손과 머리에 온갖 치장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시 경성의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명직, 305쪽) 이러한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패션은 때때로 파격적인 노출로 전근대적인 관습과 규 범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군인이 군복으로 자신의 정체적 안정성을 확보하듯, 여성은 패션 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남성중심의 문화를 이어온 조선에서 모던걸이 주도하는 이 색적인 패션은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당대의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과 눈 - 8 -
총을 받으며, 소위 현대식, 20세기 식 이라는 새로운 시대 현상으로 자리 잡아 갔다. 이에 대해 당대 논객들은 유행은 사회를 화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 이라고 긍정하는가 하면 도 덕적 비난을 퍼붓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기수이며, 카페를 경영하기도 했던 이상도 이러한 모던적 대중의 대오에 함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거울에 비친 복수화된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정체성의 상실과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은 혼동 과 괴리의 상태를 많은 시편들을 통해서 드러내기도 한다. 이상이 즐겨 사용하는 거울 메타 포에 따르면 거울 없는 실내 는 거리이고, 거울 있는 실내 는 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방 에서 이상이 자기 자신과 대면한다면, 거리에서는 자신과 동일한 유행의 기표를 지니고 있 지만 그와 동화되지 못하는 대중들과 마주친다. 여기서 알려지지 않은 존재(The Unknown)로서의 대중은 타자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거울 속에 복수화되어 나타나는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의 괴리에 대해 이상은 악수도 없는, 오른 손을 내밀면 왼손을 내밀어 악수를 모르는 자아 (<거울>, 이상전집2, 74쪽)라고 지칭한 바 있다. 이는 군중에 대해, 그 군중의 일원으로서의 자아가 느끼는 정신적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아와 대중의 불균형한 관계는 여성들과 관련하여 더욱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과 대중이 상응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이미 유럽에서 많은 이론가들에 지적되어 온 바 있다. 대중에 대한 공포는 늘 여성, 성 정체성 상실에 대한 공포였고, 대중들 속에서 안정적인 자아의 테두리의 상실에 대한 공포였다. (Huyssen, Milun, p. 79) 휘센은 이러한 공포를 부르주아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질서의 상실에 대한 공포와 연계시킨다. 식민도시 경 성에서도 여성의 성도덕은 모던 걸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새로워지면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수반하였다.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은 변화했고, 자유연애가 도입되기도 한다. 여자는 이제 이미 오백나한의 불쌍한 홀아비들에게는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유일한 아 내인 것이다. (<광녀의 고백>, 이상전집2, 39쪽)라는 이상의 언급은 그러한 문화적 변모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 유럽에서 여성과 군중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군중의 혁명성은 통제되어야할 대상이기도 했다. 이는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고 사회적 도덕을 견지하기 위한 부르주아들의 불안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 여성이 이와 같이 대중과 유사 한 인식적 코드로 읽히는 현상은 대중과 여성이 동반하는 문화가 소위 전통의 팔루스를 대 체하는 일종의 상징적 거세를 수행하는 것과 연관 지을 수 있다. 과거 문화와 결별하면서 도덕적, 문화적 거세를 수행하는 여성의 부상은 그러나 쇼윈도의 상품이나 패션, 화장품 등 과 같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더불어 나타난다. 어떤 면에서 이는 여성의 해방인 측면 보다 는 거세하는 여성을 유리 안에 가두는 (Buck-Morss, 1986, p. 386)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하겠다. 이러한 양가적 측면을 가진 모던걸이 이상에게 매혹과 더불어 공허감을 불러일으키 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오는 백화점에 적! 사람이 없고 백화가 내 그림자나 조용히 보존하고 있는 거리에 여 인은 희붉은 종아리를 걷어 추켜 연분홍 스커트 밑에 야트막히 흔들리는 곡선! (<산책의 가을>, 이상전집2, 343쪽) - 9 -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여성의 성적 호소력이 다소간 상품의 호소력으로 물들어있는 (벅모 스 124) 것처럼 위 시구에서 여성이 보여주는 매혹은 백화점의 상품이 주는 매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은 이러한 소비문화를 추동하는 대중의 탈개인적 특성을 간파하고 있다. 유니폼에 벌거벗은 팔목 피부는 포장지보다 정한 포장지고 그리고 유니폼은 피부보다 정 한 피부이다. (<산책의 가을>, 이상전집2, 344쪽) 일부 모더니즘 작가들이 쇼윈도우를 내적으로 내장한 시선을 보여주듯, 백화점과 거리의 모던걸 모던보이는 어느새 스스로 쇼윈도우가 혹은 상품이 되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패션을 향한 행인들의 시선을 즐기기도 하겠지만 그는 결국 모보라는 쇼윈도우 이고, 마네킹이 되 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이 주도하는 유행의 물결 속에 개인과 인간의 흔적이 소거되는 현상은 이상의 자아와 대중 사이의 관계에서 어떤 큰 괴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상의 작품 속에는 학생, 혹은 기생으로 칭해지는 신여성들이 많이 주제화되는데, 이들 은 가부장적 사회의 성도덕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들은 잠재적 매춘부로 등장하 고 있다. 사회적으로 20-30년대 식민지 조선은 불황에 따른 생활고로 인해 매춘행각을 하 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손정목, 1996, 470쪽) 모던걸들의 다양한 별칭들 중에는 그러한 것을 시사하는 이름들이 많이 나타난다. 사나이의 지팡이 대신으로, 산보를 즐기는 사나이의 겨드랑이를 부축하는 스틱걸, 사나이의 손을 대신하여 다리를 주무르거 나 발을 씻겨주는 핸드걸, 키스걸 등이 그것이다.(신명직, 2004, 304쪽) 이들은 일부일처제 의 전통적 관습을 위태롭게 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런 관습에 도전하기 보다는 오히 려 경제적 약자로서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 희생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확하다. 당시 남촌지역에 신문화의 표상으로 자리잡아가던 모던 카페 는 소위 자유연애의 실험 장 (장유정, 49쪽)으로서 모던 걸과 모던 보이들의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고, 간혹 성매매의 장소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신형 술집이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1927-29년경이었고 20년대 말에 조선에도 도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손정목, 1996, 469쪽) 본격적인 의미 의 매춘은 유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상의 작품에서 내 것이 아닌 지문이 그득한 네 육체 (<무제3>, 이상전집2, 137쪽)라 고 칭해지는 아내는 모던 걸이면서 매춘부이다. 그녀에 대한 감정적 불안과 두려움은 이상 의 작품 속에 빈번하게 주제화되는데, 이는 공적 공간의 대중에 대한 공포와 의미상 유사한 문맥을 지닌다. 정조를 기준으로 여성을 처녀와 매춘부로 나누지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 안에는 처녀와 매춘부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작가 이 상에게는 파라독스의 힘 밖에 없다. 이상은 이를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러니 를 실천 하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날개>라는 그의 대표작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날개>, 이상전집1, 236쪽). 특히 아내를 매개로 자아와 근대적 대중의 교차적이면서도 대 립적인 관계가 공간구조를 통해서 표현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곳은 사창의 집단가옥 으로 추정된다. 이는 1920년대부터 일반화되 기 시작했다.(손정목, 1996, 472, 463쪽) 이 가옥 안에 아내와 나의 거주지 공간은 두 칸 으로 나뉘어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장지를 통해 나뉘어진 그 분할이 내 운명의 상징 이라 고 의미부여하고 있다. 볕드는 방이 아내 해[것]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 해[것] (<날개>, 239쪽)이다.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장 밑으로 쫙 돌려 못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 - 10 -
가 걸렸다. (같은 책, 240-241쪽) 이 방의 구조에 따라 주인공인 나 는 아내와 그녀를 방문하는 남자들로부터 격리되어 있 다. 그러한 격리된 공간을 넘어서는 순간 아내로부터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 여기서 화자 인 나 의 공간과 아내 그리고 그녀를 방문하는 남자들의 공간의 구분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두개의 방이 아니라 개인적 공간과 사회적 공간의 분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아내는 당시 유행한 것으로 알려진 수면제 아달린을 두통약 아스피린이라고 먹여서 사적 공간의 나 를 재운다.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매춘을 한 다. 7) 화자인 나 는 돈을 사용할 줄 모르지만, 그 역시 처음 아내의 방에서 잔 것은 돈 을 건네 주고 난 후였다. 여기서 돈은 공적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매개물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주인공인 나 는 아내와 정상적인 부부관계 즉 2세를 낳아서 사회적인 재생 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사정은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생식 력을 과시하는 매춘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어떤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돈 으로 교환하기 위한 상품화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섹슈얼리티는 생산력의 미래(아이들의 잉태)라는 상상보다는 자본의 힘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다. (Benjamin, 1989, p. 436). 변화무쌍하고 살 수 있는 사물로서 여성을 욕망하는 것은 교환 가치 자체 즉 자본주의의 본질 자체를 욕망하는 것이다.(Buck-Morss, 1986, p. 383) 나 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본질에 전혀 동화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는 돈을 쓸 줄 모르 며, 마치 거세당한 것처럼 무능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 거세의 자리에는 아내의 다른 매춘행각과 거기서 벌어들이는 돈이 들어서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상품과 화폐의 원 리의 지배 속에서 나 의 사회적인 관계와 활동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상품화한다는 점에서 매춘과 노동이 등가적 의미를 지닌다면, 이상의 주인공이 보여 주는 매춘에 대한 거부감은 동시에 노동에 대한 거부감으로도 나타난다. 이상의 오감도 시 제13호에는 끊어진 두 개 팔을 촉대 세움으로 내 방안에 장식하여 놓았다 (<오감도 시제 13호>, 이상전집2, 94쪽) 그리고 또 다른 시편에서는 양팔을 자르고 나의 직무를 회피한 다 (<회한의 장>, 이상전집2, 161쪽)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팔은 노동력을 상징하는 데, 그러한 팔을 잘라서 방안에 두는 상징적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 노동력을 매매하는 일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팔은 무엇에 몹시 위협당하는 것처럼 새파랗다 (<오감 도 시제13호>, 이상전집2, 94쪽)고 표현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매끈한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행동 과 홈이 패인 공간에서의 일 을 구별하고 있는데, 일은 국가장치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다.(Deleuze, Guattari, p. 611). 그렇다면 여기서 팔이 느끼는 두려움은 홈이 패인 공간 즉 공적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자, 그러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노동의 주체인 군중에 대한 공포라고 할 수 있다. 노동하지 않 고, 사회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이 두려워하는 나르시스는 자본주의 소비주체로 생산주체로 형성되고 있는 군중 속의 타자이다. 이 나 가 군중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비주체이자 생산주 체로 형성되는 군중이며, 역시 화장은 있고, 인상은 없는 얼굴로 (<지비-어디갔는지모르는 아내>, 이상전집2, 104쪽) 탈개인화된 아내이다. 나르시스적인 주인공은 서구에서 사회적 재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적으로 해석 되어오곤 했다고 마르쿠제는 지적한 바 있다. 한국 내에서도 나르시스는 개인주의적인 측면 으로 인해 비교적 긍정적인 해석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나르시스는 어떤 부정 7) 신형기에 따르면 작품 날개에서 아내의 매춘은 제도공간의 폭력성을 상징 한다.(신형기, 1997, 45쪽) - 11 -
적 의미의 공적공간과 그 안의 대중들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으로 오히려 부정 적 재생산을 추구하는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 나'에게 아내 의 방과 마찬가지로 경성의 거리는 회탁의 거리 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경성의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내려와서 거리를 배회하다 다시 한 번 거세된 욕구의 재생을 희망하듯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날개>, 이상전집1, 264쪽)고 말한다. 도시는 불임의 공간을 형성해가고, 어떤 절망 속에서 출구를 찾는 모습이다. 주인공 은 거울 속에 거울을 설계하듯, 자궁 속에 자궁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불임의 공간을 탈주하고자 한다. 날개에 대한 희구는 거세당한 욕망의 회복 그리고 불임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렬한 탈주욕을 육화하고 있다. 이 때 뚜우 하고 정도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 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날개>, 이상전집1, 264쪽) 3. 13과 U-Topia <날개>에서 자정이나 정오를 시계숫자판으로 지시하는 12는 어떤 경계의 표지이다. 이 시간을 넘기면 아내의 금지된 방에 들어서는 것도 허용된다. 이는 이상이 자주 사용하는 13 이라는 수의 의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상에게도 수는 계산이나 계량의 수단이 아니 라 자리바꿈의 수단이다. (Deleuze, Guattri, p. 484). 이러한 자리바꿈의 표시로서 시계 원 판의 12개의 수를 벗어나는 13은 유토피아적이다. 이 시간 속에서는 현실의 금지, 공적공간 과 사적공간의 구분이 해제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과거적이기도 하고 미래적이기도 하다. 오감도 시 제1호에 등장하는 13 인이 어른 이 아니라 아이 인 이유도 이러한 문맥에서 이 해해 볼 수 있겠다. 즉 아이는 어른의 미래이자 동시에 어른의 과거이기 때문이다. 13은 시 간적으로 가장 늦게 오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먼저 오는 시간이다. 시계에는 12까지의 숫자만 존재하는데 이 12는 시계의 표상이자 근대의 표상이라고 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이마무라, 1999, 71쪽 참고) 이러한 12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맥에서 이 상은 나의 방의 시계가 별안간 13을 치다. 그때, 호외의 방울 소리 들리다. 나의 탈옥의 기사. (<1931년-작품 제1번>, 이상전집2, 158쪽)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13이라는 수의 의 미는 확대해서 보자면 근대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근대 바깥으로 나아가는 탈주(탈 옥)를 표상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3은 현실적 시간의 바깥으로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의 시간이자 비장소의 장소로서 일종의 유토피아U-Topia를 지칭한다고 하겠다. 13으로 지칭되는 이 비장소적 장소의 유토피아는 질주 를 통해서 혹은 정지 를 통해서 기다려지는 시-공간이다. 그러나 식민도시 경성은 유토피아를 가장한 헤테로토피아들을 형 성하고 있었고, 유토피아의 기호들은 늘 가짜의 혐의를 지니고 나타난다. 백화점, 유곽, 카 페 등은 전통적 조선의 수도에서는 이질적인 공간들이었다. 이러한 이질 공간들을 생성시키 는 식민지 도시계획과 소비문화는 사이비 유토피아의 기호들을 유포하고 있었다. 경성에서 이루어진 도시 계획과 경성에 세워진 상징적 근대(양식) 건축물들은 조선에 근대화를 가져 - 12 -
오는 것처럼 선전되었고, 실제 근대화를 촉진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 경성 시 가지 계획은 도시 정화를 빌미로 토착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박탈하는 폭력적인 구획 정비 사업이었으며(손정목, 1990, 175쪽), 식민지인들은 비문명, 무질서와 비위생을 대표하 는 존재들로 타자화되고 있었다. 또 도로, 철도 등 근대적 기반 시설을 통해 수탈과 징발이 이루어졌다. 결국 경성은 세계 체계의 경제적 질료의 기능에 복무하며, 일제의 근대 권력의 정치적 실 험실이 되어, 경성이라는 공간과 일상은 권력과 자본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가고 있었던 것 이다. 이상이 최후에 방문했던 식민지 본국의 수도 동경도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상은 동경으로 떠나지만 제국도시 동경에서 그가 받은 인상은 이 도시가 영화의 세트 이를 테면 모조품 같다는 인상이다. (신형기, 46쪽). 또 그는 동경의 백화점에서는 산적한 상품 과 무성한 숍 걸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동경>, 이상전집4, 160쪽)고 적고 있 다. 이러한 사정은 경성에 이식된 일본식 혹은 서양식 도시문화가 야기한 아노미적 양상에 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30년대 경성에 구현된 이러한 이질적 도시의 형상을 이상은 최저낙원 이라는 제하에 파 악하고 있는데, 이 최저낙원은 <오감도 시제1호>에서처럼 출구를 약속하지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궁의 이미지를 가진다. 겹겹이 중문 으로 된 도시의 모습으로 제시되는 이 <최 저낙원>은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 사각형 으로 표상 되는 백화점(<AU MAGASIN DE NOUVEAUTE>, 이상전집2, 59쪽)의 모습과도 상응한다. 문의 내부에 문이 있고 또 그 문의 내부에 문이 있는 이 미로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 만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새장 속에 갇힌 카나리아와 같은 수인( 囚 人 )이 된 자신의 모습 이다. 백화점의 이러한 표상은 도시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에 의해 그리고 자발적인 근대적 자각에 의해 경성의 공간은 변화하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욕망의 기표를 따라 질 주하지만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뚫린 골목이라도 무관하다. 그것은 결 국 미궁안의 열림과 닫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헐값에 파는 가게 모퉁이를 돌아가야 최저낙원이 부랑한 막다른 골목이요. 기실 뚫린 골목이요. 기실은 막다른 골목이로소이다. (<최저낙원>, 이상전집2, 293쪽) 이 거리에서 번식한 거짓천사들이 하늘을 가리고 온대로 건넌다. (...). 방대한 방은 속으 로 곪아서 벽지가 가렵다. 쓰레기가 막붙는다. (<가외가전>, 이상전집2, 113쪽) 가짜낙원의 더러운 거리로부터 광선보다 빠른 속도로 질주할 것에 대한 요청(<선에 관한 각서 5>, 이상 전집2, 50-52쪽)은 바로 이러한 사이비 유토피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아의 의지의 표 현이다. 13은 바로 이러한 양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비장소의 장소인 U-Topia에 대한 희 구를 표현한다. 이는 근대 식민도시에서 구현되는 수많은 헤테로토피아들이 참칭하는 유토 피아와는 다른 U-Topia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상의 자아의식의 여백이 되고 있다. 4. 나가며 본고는 1930년대 경성의 공간적, 사회적 변화를 당대 모더니즘 작가 이상의 자아의식과 연관하여 고찰하였다. 당시 경성은 전통과 현대, 식민자와 피식민자, 도시와 시골, 과거와 - 13 -
현재가 자리바꿈하면서 대치하는 이질적이면서 혼종적인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근대 문 화는 식민화와 더불어 수입되고 있었고, 과거 왕조의 수도의 모습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 다. 이상의 의식 속에 이러한 혼종적 도시공간의 변화는 홈이 패인 공간과 매끈한 공간의 대 별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교차 관계로 나타나며, 그의 비교적 난해한 암호 같은 시편들 속 에 육화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의 도시계획사업은 정비된 도로망, 광장과 같은 홈이 패인 공간을 만들고, 그 위에 대중들을 신민과 소비자로 훈육했으며, 이 과정에서 백화점, 카페, 유곽 등과 같은 이질공간들도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간들과 그 안의 대중들에 대한 자아의 관계는 이상에게 공포의 체험으로 혹은 거세의 체험으로 내재화되어 작품들 속에 표명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참된 유토피아적 의식은 미궁으로 표상되는 도시의 거리로부터 빛보다 빠른 질주를 통해 벗어나고자 하는 요 청으로 나타난다. 이는 근대적 시공간 안에서 근대를 극복하고자 하며, 식민지의 시공간 안 에서 탈식민적 시공간을 구축하고자 하는 자아 의지의 모순적인 열정으로 읽힐 수 있을 것 이다. 참고문헌 이상, 이상전집1. 소설, 가람기획, 2004. ---, 이상전집2. 시, 수필, 서간, 가람기획, 2004. ---, 정본 이상 문학전집 3. 수필 기타, 소명출판, 2009. ---, 이상전집4. 수필 외, 뿔(웅진), 2009. W.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V. 1, V. 2, Hrsg. V. Rolf Tiedemann, Frankfurt am Main, 1989. S. Buck-Morss, «Le flâneur, l Homme-sandwich et la Prostituée: Politique de la Flânnerie», Walter Benjamin et Paris, édité par H. Wismann, Passages, Cerf, 1986. [Susan Buck-Morss, "The Flâneur, the Sandwichman and the Whore: The Politics of Loitering," New German Critique 39 (1986).] G. Deleuze, F. Guattari, Mille plateaux, Minuit, 1980.[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 개 의 고원, 새물결, 2003] A. Huyssen, After the great divide - Modernism, Mass Culture, Postmodernism, Bloomington, 1986. H. Marcuse, Eros and Civilization - A Philosophical Inquire into Freud, Boston, 1976. K. Milun, Pathologies of modern space: empty space, urban anxiety, and the recovery of the public self, Routledge, New York, 2007. L. Moholy-Nagy, The New Vision: Fundamentals of Bauhaus Design, Painting, Sculpture, and Architecture, Dover Publications, 2005. 김백영, 지배와 공간-식민지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문학과 지성사, 2009.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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