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인 제 청 년 상 우수상 차가운 열광 일베의 감정동학 김 학 준
차가운 열광 일베의 감정동학 무력한 비판 처음엔 유머 사이트였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인터넷 세상에서는 널리 알려져 새로울 것도, 창의적이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성향이 맞는 사람들이 알음 알 음으로 찾아와 자기들만의 방언을 리드미컬하게 주고받으며 시시덕댔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언젠가부터 급작스럽게 증폭되더니 일국의 선거판을 뒤흔 드는가 하면, 정통적 역사해석에 반기를 들고, 전혀 침범될 수 없으리라 믿어졌던 가치를 맹렬히 비난하며 이윽고 한국사회의 쌩얼 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일베이 야기다. 일베가 적대시하는 이들은 여성에서 호남, 진보세력, 외국인 노동자에 이르 는, 요컨대 소수자들이다. 그곳에선 우리 사회에서 암암리에, 혹은 드러내놓고 차별 받고 멸시되는 이들을 향한 냉소와 비아냥, 비난이 난무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이 일베를 벌레취급하거나, 루저loser로 단정하거나, 보수의 반동으로 일축하거나, 무식의 소치라고 비웃거나, 정신병자들의 소굴이라고 조롱한 다. 이러한 일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그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뱉는데서 기인한 것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럴까. 굳이 2012 년 10월의 인증대란 i 을 들 것도 없이, 일베충 ii 들의 사회경제적 상태는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열광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던 재특회 1) 회원들을 실제로 만나 보니 겸손하고 예의바른 이들이었다는 야스다 고이치의 평가(야스다, 2013)는 아마 도 일베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베를 향한 비판이 무기력한 이유는 일베이용자들을 소수의 특수한 이들로 국한 시키려는 시선의 배후에 저급함과 고급스러움을 대비시키는 구별짓기의 논리가 작 용하여 결과적으로 일베와 똑같은 차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베에 대 한 피상적 비판은, 그들이 실제로 행하고 있는 패악무도한 짓들과는 별개로, 한국사 회가 맞이하고 있는 중대한 징후를 포착할 수 없게 한다. 도리어 윤보라의 지적처 럼 일베를 통해 우리가 가진 어떤 혐의와 불안을 해소하려는 것 (윤보라, 2013)일 수도 있다. 이 글은 오늘날 한국의 갈등의 축으로 부상한 일베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 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일베를 옹호하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 당장 드러난 일베 를 일종의 징후라고 한다면, 일베는 우리 안에도 자리하고 있을 야만을 보여주는 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 在 日 特 権 を 許 さない 市 民 の 会 )의 준말. 일본의 대표적인 혐오발화 그룹이며 특히 재일 한국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다가 오프라인으로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흔치않은 사례로, 혐오발화와 직접적인 행동 등 극단적 행태로 일본 내에서도 문제 가 되고 있다. 1
일베의 탄생 일베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일베는 2000년대 이래 지 속적으로 분화 해온 사이버 공간의 역사와 맥락을 오롯이 담지하고 있는 사이트라 고 할 만 하다. 일베는 원래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의 일간 베스트 게시물을 저 장 하던 사이트를 그 기원으로 한다. 지금 알려진 것과는 달리 2000년대 초반의 디 시는 일반적인 사이버 커뮤니티와 다르지 않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이트였다. 그 중에서도 정치사회 갤러리(이하 정사갤)는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노사모에 비견될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할 정도로 반 한나라당 세력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2004년 전여옥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의 공개 토론을 계기로 완전히 역전되었다. 자신만만하게 전여옥 의원과 토론을 하겠다던 정사갤러들은 전 의원의 논리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공당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을 계 기로 디시에서 우파의 목소리는 급격하게 신장된 한편,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좌파 들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후 정사갤은 사이버 우파들의 집결지가 되었 고, 이러한 성향은 차츰 디시의 유력 갤러리들로 확산되어갔다. 특히 2008년 촛불집회는 사이버공간의 정치적 동원을 확인시켜줬지만, 그만큼 진 보세력에 대한 혐오를 증폭시키기도 했다. 예컨대 촛불집회의 폭력집회 를 반대하 며 생긴 <노노데모>가 사이버상에서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았고, 네티즌들은 포털사 이트조차 이념을 잣대로 진보와 보수로 가르고 각자의 정치적 입장에 맞는 곳을 이 용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최진실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당시 극을 이룬 고 인드립 은 주로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이하 코갤)등에서 유행하던 것이었고, 프로 야구가 흥행하자 프로야구 갤러리(이하 야갤)에서 유행하던 지역드립 에도 많은 영 향을 받았다. 특히 지역드립 은 패드립 과 함께 각 지역을 비하하는 용어로 자리매 김했다.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전라도 지역은 홍어 로, 대구는 2003년 지하철 참 사에 빗대 통구이 로 표현하는 등 많은 비하적 명명이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표 현들이 소수의 악플러 에 의해 구사된 것이라기보다는 디시의 거대 갤러리에서 폭 넓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게시판 관리자의 권한이 막강한 디시에서 이러한 표현들은 예고 없이 삭 제되는 등의 제제를 받았다. 2013년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게시물, 즉 일간 베스트 게시물은 이러한 적절치 못한 내용을 담은 것들이 많았으 며, 이것이 바로 일간베스트 게시물을 저장 할 만한 대피소가 필요했던 결정적인 이 유이다. 공교롭게도 일베의 탄생과정에서 겪었던 관리자의 탄압 경험은 지금의 일베 운영자가 일베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 즉 민주화 iii 시키지 않는다고 공언하며 게 시물들에 대한 거의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는 전통 의 중요한 전거가 되었다. 일베가 지금의 영향력을 얻게 된 데에는 특유의 시스템과도 적지 않은 관계가 있 다. 2013년 10월 현재 디시는 1500여 개의 갤러리로 분산되어있고 사이트 특성상 공통의 시선이 집중될만한 기회가 많지 않은 반면, 특유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2
게시물을 일간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시키거나 일베로 (추천)를 많이 받을수록 등 급이 올라가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일베 특유의 단일한 대오를 만들어내는데 성공 했다. 일베 가 된 글은 자체로 일베에서 통용되는 담론을 더욱 강고하게 했고, 이용 자들은 더 높은 등급을 얻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렸다 2). 또한 일베의 집중력 은 일베(와 디시) 내에서만 사용되던 용어들을 일반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 할을 했다. 즉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되는 기사나 게시물의 좌표 iv 를 공유하여 댓글 로 비판하거나, 자신들의 의견과 일치하는 댓글에 추천을 집중하거나, 나아가 작성 자의 신상을 터는 등의 여론전 을 한 것이다. 이 모든 행위는 일베를 한국 사이버 공간,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일베를 유니크한 무엇으로 만들었다. 일베적 언어 드립, 어그로, 씹선비, 그리고 팩트 일베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과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시에서 일베로 넘어 오는 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각종 어휘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 하다. 일베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드립 이다. 드립 이란 애드리브 ad-lib 를 줄인 신조어인데, 애드리브는 원래 정해진 원고나 대본에 의존하지 않고 상황적 특색에 맞춰 배우가 즉흥적으로 표현하여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을 뜻한 다. 드립 은 한국 사이버스페이스의 맥락에서 중요한 유머코드로 변용된다. 애초의 용법은 TV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무하고 얄팍한 애드리브를 비난할 때 쓰이던 개드립 에서 출발했다. 개드립 을 처음으로 정착시킨 것은 디시 의 코갤이었는데, 애초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개드립 은 코갤러들 사이에서 상당한 재치 및 풍자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로 바뀌었고, 이러한 용법이 사이버상에서 대중화되어 드립 이라는 말이 유행어로 정착되었다. 3) 이후 최근에 이 르기까지 드립 은 일종의 접미사가 되어 유머의 소재에 드립 을 접합하는 방식으로 신조어들을 쏟아냈다. 그 중 일부가 지역감정을 소재로 한 지역드립 이나 패륜적인 내용의 패드립 과 같은 용례로 나타난다. 한편 어그로 란 영어 aggravation의 속어 aggro에서 비롯된 말인데, 원래는 온라 인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였다. 온라인게임은 각 캐릭터의 능력이 특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공격과 방어, 마법 등의 스킬에 따라 분업화된 파티party를 구성 하여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파티원 중 체력 및 방어력 수치가 높은 사람이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며 공격을 혼자 감당 해야 하는데, 이것을 어그로를 끈다 고 한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의 담화상황에서 어그로 는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이 주는 부정적 감정에 2) 이러한 밴드왜건 효과는 일베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담론과 별개로 일베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을 만드 는데 일조했다. 3) http://rigvedawiki.net/r1/wiki.php/%ea%b0%9c%eb%93%9c%eb%a6%bd 3
의한 주의집중상태로 변용된다 4). 어그로를 자주 끄는 사람을 통칭 어그로꾼 이라 부르는데, 이들은 자주 격렬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점차 인정을 받고 흔한 일이 되자, 어그로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화했다. 어그로를 고의로 끄는 이들이 구사하는 다양한 전략은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고, 그들이 펼치는 기만과 자극에 넘어가지 않도록(즉, 낚이지 않도록)구성원들을 각성시키기 도 한다. 요컨대 어그로꾼들의 목적은 욕을 많이 먹는 것 에 있고, 많은 모욕을 받 았다는 것은 그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것, 즉 많은 이들이 그가 던진 떡밥 을 물었 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던진 떡밥이 건드리는 것은 그가 낚을 대상들이 공유하는 성스러운 것, 혹은 금기이다. 이러한 행태는 일베를 포함한 여러 커뮤니티사이트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들 커뮤니티사이트에서 존댓말 등이 사 라지는 데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드립과 어그로의 중요성은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는데 있다기보다는 그런 표현들 이 성스러운 것을 부정하고 해체한다는데 있다. 유머와 풍자의 본질이 그러하듯 드 립은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며, 일베 이용자들은 성스러운 것을 파괴하는 쾌감을 통해 그들의 감정적 에너지emotional energy(콜린스, 2009)를 고양시킨다. 가장 패륜적인 드립조차 받아들여지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베에서, 오늘날 한국사 회의 그 어느 것도 그들의 비난과 냉소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이런 드 립과 어그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통틀어 씹선비 라고 부른다. 이때 씹선비 란 유교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인정하며 즐기는 막장 스러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질타하는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 는 말이다. 일베 이용자들에게 씹선비는 일베의 분위기를 알면서도 어그로를 끌기 위해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비난을 받으며 희화화의 대상이 된 다. 씹선비들은 커뮤니티의 분위기와 지배적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난독증 환 자 들의 집단인 한편, 이 말이 자주 진보세력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무기력하고 한심 하며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베에서의 어그로가 특히 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씹선비 들의 격렬한 반응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팩트 이다. 일게이들에게 있어서 팩트는 일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어휘이다. 팩트의 강조는 일베는 확인된 사실에 의거하여 합 리적 비판을 한다는 일부심 의 핵심적 요소이다. 일게이들은 그들의 주장이 이성적이 고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는데, 이것은 자주 오유와 같은 좌좀 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 적이어서 잘 선동 당한다는 주장과 깊은 연관이 있으면서도(감성팔이), 자신들의 감정 적 표현을 강화시키며 지목당한 이를 비난하는 것을 정당화시킨다. 이때 선동은 어그 로꾼들이 허위의 사실을 조작해내어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행위와 자주 비교되 며, 스스로의 주장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일베 이용자들 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선비 들이 팩트 를 동원한 어그로 앞에 아 무 말도 못하고 화만 내는 상황은 일베를 열광하게 하는 중요한 놀이요소이다. 4)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96%b4%ea%b7%b8%eb%a1%9c 4
이처럼 일베는 사이버공간의 수많은 전통과 맥락, 의미들이 얽히고 섥히며 만들 어진 한 극단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일베는 가장 극단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문제시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가 부여해준 권리를 무기로 민주주의를 비난한다는 역설적 상황 그 자체에 있다. 드립과 어그로 로 대표되는 일베의 극단적 행태는 웹사이트로서의 일베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 계보다도 그 사이트를 구성하고 있는 이용자들이 처한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서 비 롯된 것이다. 감정의 합리화 배태된 일베 최근 감정사회학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일루즈는 현대의 감정이 근대의 합 리화 과정과 공명하며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녀는 사랑이 현대를 살아가는 주체들에게 각자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감정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한 편, 심리학 담론의 확산 및 그로 인한 감정관리 기술의 체계화로 인해 사랑이 점점 역설적인 면모를 띠게 된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사랑은 종종 신화처럼 표현되듯이 아무런 조건도 바라지 않는 맹목적인 것에서부터, 서로의 사회경제적 위치나 취향, 성격과 같은 복잡다단한 요소들을 철저히 계산하는 공리적인 무엇이 되었다. 오늘 날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로 대표되는 세밀한 연인찾기 시스템이 다. 공리적 인 사랑을 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은 상처받지 않으려 하고, 가장 효율적 이고 빠르고 무엇보다 합리적으로 배우자나 연인을 선택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혼 정보회사에 등록된 많은 이들을 세분화시킨 효율적 체계는 오히려 그 과도한 정보 로 인해 어떠한 선택도 불가능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연애와 결혼에서 감정을 거세 시킨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언제나 사랑에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일루즈, 2013) 일루즈의 논의가 시사하는 점은 사회의 합리화, 혹은 탈주술화가 세계를 계 산가능하고 예측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사회적 삶에 있어 또한 필수적인 감정과 애착, 그리고 성스러운 것the sacred가 존립할 공간을 없앴다는 점에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집합적 열광을 느끼고 사회를 온몸으로 현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바우만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저명한 <현대성과 홀로코스 트>에서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대량학살이 아니라 관료제화가 모든 절차를 형식화 하고, 가해자에게서 피해자를 떨어뜨려놓음으로써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하게 하는 현대성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폭력에서 감정을 떼어놓는 일이야 말로 홀로코스트가 현대성의 시금석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바우만, 2013) 현대의 폭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감정적 연결이 없어졌다는 주장은 매우 의미심장 하다. 이미 100여년 전에 뒤르켐은 분노가 공공의 도덕을 확인하는 감정임을 주장 한 바 있다. 그가 보기에 형법은 성스러운 것을 훼손시킨 자에게 공적인 복수를 하 5
여 성스러운 것을 회복시키는 속죄의례라고 볼 수 있는데(뒤르켐, 1992;2012), 이 는 역으로 범죄자나 일탈자를 향한 몰아( 沒 我 )적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의 폭력은 전혀 다른 맥락이다. 후기근대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오늘날의 사회는 사적인 것에 공적인 것이 식민화되었고, 모두가 공유하는 도덕이나 제약은 녹아 없어졌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타인과의 교제를 통해 연대를 얻기보단 한없이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게 된다. 이러한 후기근대를 특징짓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불안 일 것이다. 세계가 탈주 술화되고 합리화되었다고는 하지만 2008년을 전후로 한 외환위기 등에서도 나타나 듯이 사회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증대됐다. 불안한 주체들은 어떠한 선택도, 결정도 할 수 없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저 숨죽인 채 형식적인 관계만을 맺으며 순응해 갈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회적 불 안이 전염병처럼 퍼진 상황에서 연대의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진다. 도덕적 연대 가 사람들이 개개의 삶을 서사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였다는 점에서, 연대의 망실은 결국 현대인들이 각자의 삶을 재구성할 만한 내러티브를 아웃소싱 하게 한다. 바로 이 아웃소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일루즈가 말한 감정장 5) (일루즈, 2010)인 바, 인간의 감정에 사회가 개입되는 과정을 삭제하고 내담자 가 현재 겪고 있는 혼란을 과거의 트라우마로 환원시켜 모든 문제를 사적인 것으로 환원시킨다. 현대의 감정장이 제공하는 치료내러티브는 이른바 부정적 감정 들, 예컨대 분노나 불안의 원인을 개인에게 국한시킴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드러내놓는 것을 병리적인 것으로 낙인찍는다. 이제 개인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감정관리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이를 바꿔말하면 일게이 와 씹선비 를 구분짓 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다름아닌 감정관리의 능력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으로 써 연대의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해지고, 한때 공적 도덕의 현현이었던 분노는 이렇 게 현대사회에서 버려졌고 사적인 것으로 빨려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자 신의 감정을 드러내놓고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사이버공간인 바, 그곳에서조차 가 장 격렬한 분노가 한낱 연예인에게 향한다는 사실은 공적인 감정의 소멸을 극적으 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후기근대의 갈등은 과거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과거의 갈등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어디까지 확보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었다면, 지금의 갈등은 복지국가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제공했던 혜택 들을 거두어들일 것을 요구한 다. 이는 전선이 희미해진 시대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청산의 대상이 분명했고 착취 의 주체가 명확했던 과거와는 달리 탈산업사회에서는 투쟁의 주체가 희미해진다. 민주주의가 심화되며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는 결국 5) 다시 말해 감정장이란 사회생활의 한 영역, 곧 국가, 학계, 각종 문화산업, 국가와 대학이 인가한 전 문가 집단, 대규모 의약 및 대중문화 시장 등이 이리저리 교차함으로써 창출되는 모종의 작용 담론 영역을 가리키며, 그 나름의 규칙과 대상과 경계를 갖고 있다. (일루즈, 2010;125) 이 감정장은 사회 구성원들의 감정자본을 구성하며, 이윽고 감정 아비투스를 재생산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특유의 압축적 성장으로 인해 근래에 들어 감정장이 도입되었을 뿐, 감정의 계급적 재생산이라는 메커니즘은 아직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6
착실히 세금을 내는 보통사람 이 두터웠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불안을 원료삼아 폭주하게 되고, 이 불안은 사람들을 더 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기존의 복지국가체제가 체제 내에 포 섭되지 않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다양한 혜택을 역차별 이라는 이유로 거두어들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트 는 역설적으로 그 사회의 가장 바깥 언저 리에 위치하는 이들이 된다. 이러한 후기근대적 맥락과 그것이 구조화한 지배적 감정의 변화는 일베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틀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베를 특수한 사람들 로 위치시키는 지금까지 의 약한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전거를 제공해주는 한편, 일베를 오늘의 갈등 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집단으로 위치시킬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 듯 일베가 루저 라면, 그 루저는 일베에서(즉,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나 두드리며)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오히려 어느날 갑자기 나 역시 루저 가 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감이야말로 일베를 조건짓는 주된 정서이 다. 불가능성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 자체를 냉소하게 된 다. 불가능함과 무의미함을 이해하는 지식인의 정조가 멜랑콜리라면(김홍중, 2009), 그 구체적인 행태는 냉소가 된다(주은우, 2010). 이것이 이른바 최근에 회자되는 루 저정서 인 바, 불안감과 냉소는 공적인 곳에서 어떠한 희망도 가능성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사적인 것으로 침몰할 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사 람들이 일베 충 으로서의 충분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베의 도덕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일베가 타자화하며 비난하는 대상은 호남, 여성, 진보주의 (자), 외국인 노동자로, 요컨대 소수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일베 이용자들은 그 들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주장한다 6). 이미 일베가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 서 일베를 한다 고 주변인들에게 밝히는 일은(즉, 일밍아웃) 사실상 모든 사회적 관계를 단절할 것을 각오해야 할 일이 된다.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 은 세대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보수주의자로서 동세대 내에 서 이념적 소수자이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다. 이에 더불어 앞서 언급한 후기근대가 낳은 루저 인 일베 충 으로서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이들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는 진정한 소수자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일베는 제 2의 고향 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편함을 공감하는 사람들을 사실상 처음으로 만나고 생각을 교류한 공간이다. 자신이 잘못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준 일종의 해방구이다. 그곳에선 모두가 평 6)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593 7
등하다. 계급과 계층은 물론, 학벌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베를 하는 한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루저이자 벌레이고 병신이며 게이 7) 이다. 아무도 누군가를 가르칠 자 격따윈 없고, 이미 일베에 들어옴으로써 병신 임을 스스로 인증 한 차에 더 이상 숨길 것도, 잰 척 할 것도 없다. 자신이 병신 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진짜 병신, 요컨대 씹선비 들을 향한 일베의 냉소는 여기서 비롯된다. 일베 특유의 평등주의는 일베 내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도덕이 된다. 여기 까지만 본다면 일베는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적인 공동체 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일베를 우리 로 지칭하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이다. 일베에서 유저들 간에 닉네임을 부르거나 존댓말을 쓰는 일은 금기시된다. 일간베스트 로 선 정된 게시물 때문에 어떤 유저가 고소를 당했다 하더라도, 그 글에 일베로 를 던져 준 이들에게는 강건너 불구경 일 뿐이다. 종종 김치년 과 홍어, 좌빨 들을 향한 격렬한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을 향한 냉소와 비아냥 이 지배적이고, 기실 그마저도 드립과 드립이 환유적으로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말장난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일베를 가득 채우는 드립과 클리셰 는 의미를 창출해내는 담론이라기보다는 시시덕거림에 가깝고, 의례이기는 하나 표 상을 만들어 우리 를 낳지 못하는 불임( 不 姙 )의 의례이다. 노알라 v 라는 표상이 일 베충 임을 드러내는 코드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드립 에 머무르기에 현실적인 힘은 지극히 미약하다. 일베에서 자주 이야기되듯이 각종 어그로성 드립의 핵심은 성스러운 것에 대한 도전 자체라기보다는, 성스러운 것을 비꼬았을 때 그것을 숭상 하는 씹선비 들의 반응이 우습다 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 반응이 격렬하면 격렬할 수록, 일베의 의례는 성공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들의 비난은 징벌이기도 한 만큼 놀이와도 가깝다. 일베 에 등극하기 위한 치열한 경연agon은 드립 의 강도를 심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사이버공간의 특 수성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거리를 무한에 가깝게 벌려놓았다. 관료제 하에서 의 폭력이 피해자와 집행자 사이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복잡한 행정적 절차를 마련 한 것과는 판이하게, 애초에 물리적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공간은 모든 가해 자 가 피해자에게 맹폭을 가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동시에 일베 이 용자들은 신상털이와 같은 열광적인 속죄의례의 과정에서도 팩트fact와 증거, 좌표 를 요구한다. 그들이 원하는 정보만이 수집되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례에의 요구에 대해 냉소한다. 겉으로 보는 일베는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라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끝없이 파편화되어있다. 심지어 일베의 코드에 동 의하지 않더라도 이미 일베에서 문화적으로 확정된 의례의 형식을 알고 있다면 실 제의 감정이 요구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드립 을 치며 동화될 수도, 기만할 수도 7) 일베 이용자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유저들을 통틀어 일게이 라 부른다. 보통 일베게시판 이용 자 를 줄인 말로 알려져있으나, 일베, 나아가 디시 등에서 게이 는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각주 1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평등의식과 동지애를 표명한다는 의미와, (남성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강자 라는 의미가 포함되며, 마지막으로 영문 guy 를 gay 로 오타를 낸 게시물이 유행을 타 면서 사이버상에서 남성, 나아가 커뮤니티 구성원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8
있다. 그러므로 일베와 그 동료들을 위한 충성심도 찾아보기 힘들며, 바로 그 점이 일부심 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루저이되, 여전히 감성팔이 에 속아 쉽게 선 동당하는 씹선비 와는 대비되는, 높은 감정자본을 지닌 합리적 인 병신 이기 때문 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있는 병신 이 씹선비 를 비난하는 가장 치명적 인 무기는 냉소인 바, 일게이 들이 날리는 차가운 웃음은 선비 들이 믿고 있는 성 스러운 것의 신화를 그 기반부터 무너뜨린다. 또한 합리성과 감정관리의 기술, 그리고 팩트로 무장한 일게이 들이 보기에 이른 바 소수자들의 요구는 한낱 투정 에 불과하다. 자신이 아무에게 도움을 주지 않듯, 타인들 역시 자신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는 파편화된 사회에서 믿을 것은 오 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뿐이다. 사회적인 편견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극복할 일 이기도 하거니와, 능력이 있다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런데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의 책임을 사회에 돌리며 그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 민주화는 이들의 무책임하고 비합리적인 요구에 굴복하여 애꿎은 자신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보호의 명목으로 기회의 평등이라는 원 리를 내팽개쳤고, 이윽고 모든 것을 하향 평준화시킨다. 이처럼 일베의 도덕이 가지 고 있는 또 다른 면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담론이다. 이들이 하는 말에서 공적 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오직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차가운 열광 이처럼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의례적이지만 자세히 따져본다면 뒤르켐이 논한 바 있는 의례의 도덕적 조건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즉 (프랑스에 서) 조국, 프랑스 혁명, 잔다르끄 등은 우리 모두에게 신성하다. 그리고 우리는 어 떤 사람이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허용하려하지 않는다. 여론은 민주주의, 진보라 는 현실, 그리고 평등의 관념의 도덕적 우월성에 도전하는 것을 관용하지 않는다 (김종엽, 1998; 296 재인용)는 주장과는 정 반대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일베 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떡밥 과 어그로 의 축제는 뒤르켐이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성스러운 것에 대한 훼손의 욕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거대서사가 사라진 오 늘날 성스러운 것은 더 이상 단일한 무언가가 아니며 그마저도 주체들의 행위양식 을 규제할 만 한 압력을 행사하는데 예전같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뒤르켐이 말하는 연대를 창출하는지도 의문을 남긴다. 콜린스가 지적했듯 상 호작용에 있어 대면은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뒤르켐 역시 사람들이 모 인 곳에서 집합감정이 전기처럼 촉발되고 감정적 에너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주 장했다. 이는 일베의 특수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지점이다. 즉 온라인상에서 만 큼은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보다도 열광적인 힘을 과시하는 일베는 현실세계 에서 9
직접 대면한 적이 없기에 근본적으로 그들이 일부심 등으로 연출하는 연대가 근본 적으로 불충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일베에서 재기찡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고( 故 )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시신이 발견된 직후인 7월 30일, 일베에는 그를 추모하는 만화가 올라왔다 8). 남성 연대와 일베가 공히 여성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고, 일반적으로 통용되지 못했던 역 차별론을 펴 온 일종의 동지적 관계 였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응당 있을 법 한 일 이었다. 하지만 일베에서의 반응은 일반적인 추모와는 달랐다. 압도적인 일베로 와 추모댓글의 와중에도 글쓴이의 감성팔이 에 거부감을 느끼며 너무하게 미화 했다 는 이유로 민주화 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일게이들은 추모라는 감정적 열광 상태 에서조차 그것이 만들어내는 슬픔이라는 감정에서 애써 자신을 떼어놓는 감정관리 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 작품 외에도 성 전 대표를 다룬 많은 게시물들이 일베 가 되었는데, 게시물의 퀄리티 와는 상관없이 당시 일베로 등극할 떡밥 이 그의 사 망을 추모하는 게시물이기 때문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누 구보다 현실세계 에서 그들을 옹호해주고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표현하던 사람을 향한 감정마저 관리하는 것이 일베의 감정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연대를 만들어내지 않는 열광 이 일베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 드라고 생각하며, 이를 차가운 열광 이라고 지칭하고 싶다. 이 차가운 열광은 타자 에게 향하는 냉혹한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열광은 희생자 인 타자에게 는 물론 동료이며 가해자 인 우리 에게조차 냉담한 열광이고, 일베라는 공간 자체 는 공적이되 그 구성원들은 사적인 공간에,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머물러있기 에 가능한 열광이다. 일베와 피해자들 간의 감정적 거리가 먼 만큼이나, 같은 일게 이 들 역시 멀리 떨어져 서로의 모인다는 사실 (뒤르켐, 1992)이 만들어내는 전류 를 한데 모을 수 없고, 잠시나마 튄 전류조차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한다. 따라서 일베는 공적인 감정 인 분노를 표출하며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 모든 성스러운 것을 용납하지 않기에 본질적으로 파편화 되어있다. 이러한 파편화와 감정적 연대의 상실은 각종 드립 과 어그로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중시하는 팩트 가 상징하는바, 연대의 상실은 합리적 추론에의 요구가 이끄는 필연 적인 결과이다. 이처럼 일베에서의 차가운 열광이 보내는 조소가 80년대의 뜨거웠던 열광을 향한 다는 사실은 결국 한국의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실패했다는 것 을 의미한다. 80년 광주로 표상되듯, 민주주의를 성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지속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일상생활의 변화는 거의 없거나 도리어 악화되었다. 소수자를 위 한 다양한 시도의 와중에 인정이 전제되었던 과거의 다수는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낯선 경주를 해야만 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신자유주의는 민주 화 이후 세대들에게 새로운 마키아벨리즘, 혹은 다위니즘을 내면화시키도록 강제했 8) http://www.ilbe.com/1711409138(제목:성재기에게 바치는 만화.manhwa, 댓글 2436개, 일베로 7994개, 민주화 593개)2013년 7월 30일을 전후하여 성재기 전 대표를 추모하는 작품이 많이 게시되 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이다. 10
고, 이러한 일상적 불안정성은 최소한의 안락도 사치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라는 신성한 것에 대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반론을 제기하 며 냉소와 희화를 보내는데 이르렀다. 일베에서의 민주화 가 비추천 이라는 말을 대신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민주화 에 대비되는 산업화 의 대상에 5.18이나 진보세력, 그리고 여성이 포함된다는 의미는 민주화가 일베로 대표되는 보통 사람 들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고 느끼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 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룩한 산업화의 결실은 여성 등의 전혀 생 경한 이들이 민주화의 이름으로 강탈해간 것이다. 이것이 일베를 한국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적 징후로 보아야 하는 이유이지만 또한 같은 이유로 일베는 궁극적으로 무력하다. 민주주의의 자식들인 일게이들에게 독재와 산업화는 상상될 수 있을지언정 후기근대의 현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파악하 고 있는 한 도달 불가능한 상상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가능성을 말 하며 나대는 이들을 향해 냉소를 머금으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당장 눈앞에 닥친 과제를 하며 제 앞가림 이나 잘 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 것만이 후기근대적 인간의 최선이며 유일한 해법일지도 모른다. 불편함을 마주하기 일베는 그 본질이 유머 사이트이고 2010년대 이래로 인터넷에서의 유머는 드립 이고 그것은 자주 어그로 를 향하는 한, 일베는 어디까지나 갈등을 유발하고자 하 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논했듯 일베라는 사 이트와 그 이용자들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해있는 후기근대적 조건들을 보여주는 창이다. 때문에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이용자들을 사법처리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베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것을 배태시킨 기저를 바라보지 않는 한, 그 비판은 병신 들에게 여전히 한물 간 윤리와 도덕을 내세우며 준엄하게 꾸 짖는 훈장질 일 뿐, 어떠한 의미도 없다. 일베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진짜 물음은 우리 모두가 소수자를 보며 일베와 똑같은 불안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나아가 그러한 불편함을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동시에 느끼고 있지는 않 은지에 있다. 부르디외가 지적했듯 패러디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코믹물은 가슴을 탁 털어놓고 호탕하게 웃는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만족감을 주며 다시 이것이 사회 세계를 전복시키고 실천과 예의범절을 뒤집어버림으로써 사람들을 자유롭게 (부르 디외, 2006;77)해준다. 한국사회의 신화를 내동댕이치는 일베의 유머는 결국 그들 이 진보의 과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가능성의 시대에 진보를 말하던 젊은이 들은 불가능의 시대에 냉소를 던진다. 이제 과거 민족주의나 개발독재, 심지어 민주 주의조차 만족시키지 못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 시점인 것이다. 11
앞서 소개한 야스다 고이치는 재특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단체에 가입하거나 인 터넷 활동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재일 코리안 문제를 부각시키는 재특회의 다양 한 활동에 방법은 틀렸지만 내용은 공감한다 는 여론이 또한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 다. 일본 내의 한국인을 보며 바퀴벌레 라고 욕설을 퍼붓지는 않지만 재일 코리안 들이 일본사회에 기생 하는 존재이며 근본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이들이라는 편견은 여전히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암묵적인 차별도 지속되고 있다. 일베에서 비난하는 네 가지 소수집단 역시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 담론의 현실적인 수행성이야 차치하더라도 여성부로 대표되는 권익기관이 존재하고, 10년에 걸쳐 호 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2000년대 이후 진보정당은 원내 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명백히 여성의 사회 진출에 많은 장애가 존재하고, 호남 사람들 역시 수많은 편견에 시달리며,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닌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불편함을 참아내는 강박, 말하자면 체화된 감정관리이다. 즉 일베의 둔기가 향하는 곳이 오늘날 한국에서 정치적 올바름 을 지켜야 할 대상 이라는 점에서, 그들을 향한 적대감은 타인과의 조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 는 불편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는데서 피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혹쉴드는 이미 80년대에 감정노동자들이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말한 바 있다. 개인의 감정 이 상품화되고 노동의 도구로 이용되는 과정에서, 노동자의 실제 감정과 표현은 필 연적으로 분리되고 소외된다. 하지만 노동자는 다양한 감정작업을 통해 표현과 감 정을 동일시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진정성 없는 감정은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혹쉴드, 2009) 하지만 현대인들의 감정작업 은 직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적인 도덕이 사라지고 개인의 정서적 표현이 치료의 대상이 된 시대에, 개인들은 오히려 감정의 늪에 빠지고 만다. 빛바랜 정치적 올바름 과 감정자본의 과시를 위해 무대 뒤편 조차 없이 항상 감정관리상태를 유지해야하는 것이다. 이러 한 지속적인 긴장 앞에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스로를 기만하며 불편함의 근원인 소수자를 인정하는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을 기만 하며 내면에 들끓는 불편함을 다른 곳에서 표출하는 일이다. 전자의 문제는 스스로 가 가지고 있는 편견의 벽을 뛰어넘어야하는 결정적인 난점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비밀을 공유하는 끈끈한 연대에 기반한 무대 뒤편 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사회적 관 계망이 파편화되었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것의 대체재가 바로 일베이다. 술집, 뒷골목에서의 시시덕댐과 같이, 일 베는 비천하고 비열한 드립 들이 난무하는 사이버공간의 뒷골목이다. 그렇기에 누 군가는 일베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립 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바를 조금만 더 자세히 고찰해본다면, 드립 은 화자의 발언이 애초에 계 획되지 않았음을 전제한다. 만약 화자의 발언이 드립 으로 규정된다면( 드립 이 어디 까지나 전체적인 대화상황의 리듬을 극대화하기 위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한 재치였다고 할 수 있는 만큼) 화자의 발언에서 책임성을 증발시킨다. 즉 자신이 한 말은 전혀 무 12
게감이나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개드립 에 불과했다는 변명이 가능한 것이다. 더 나 아가 하나의 드립, 예컨대 지역드립이 일반화될 경우, 이것은 자주 자신이 친 드립 이 어떤 의미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일베는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보며 관찰했던 것과 같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유할 능력이 없고 판단도 할 수 없는 악의 평범성(아렌트, 2006)을 반복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이히만이 한낱 필부에 불과했듯, 일게이 들 역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들이기에 드립 은 언제고 거대한 괴물이 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하물며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 (VERBA VOLANT, SCRIPTA MANENT). 불가능의 시대, 평범한 괴물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 것인가. 오 히려 일베가 스스로를 병신 이라 칭하는 것처럼, 우리가 믿고 수호하려 했던 민주 주의와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가 어떤 것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 하는데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그러므로 일베가 상정하고 있는 것과는 전 혀 다르게도, 우리 사회는 어떠한 것도 진정으로 완성하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베의 냉소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내며, 여전히 끝나지 않 은 해방과 자유의 프로젝트를 일깨운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계 망의 회복이 전제된다. 일베가 대체하는 우리 사회의 뒷 공간, 다시 말해 모든 긴장 이 풀리고 역치(liminal)적 상태가 되며 결국 의미와 연대를 생성해내는 공간을 재 건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인 모든 것이 적출된 곳에서의 열광은 한없이 차갑고 무 의미하다는 점에서, 진정한 공적 축제와 열광을 복원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가 복원해야 할 열광은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전통적인 축제와는 전혀 다른 전례 없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다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우리 안에 은밀히 잠재된 불편함을 마주하고 그것이 이윽고 불편하지 않게 되었을 때, 따라서 어느 무엇도 기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일베의 냉소를 이겨낼 수 있고, 우리 안의 일베를 일소할 수 있다. 일베를 마주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참고문헌 김종엽, 1998, 연대와 열광:에밀 뒤르켐의 현대성 비판연구, 창작과 비평사 김홍중, 2009,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윤보라, 2013, 일베와 여성혐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진보평론 57호 주은우, 2010, 자유와 소비의 시대, 그리고 냉소주의의 시작: 대한민국,, 1990년대 일상생 활의 조건, 사회의 역사 제 88집, 한국사회사학회 뒤르켐. E, 1992,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노치준 민혜숙 역, 민영사, 2012, 사회분업론, 민문홍 역, 아카넷 바우만. Z, 2013,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정일준 역, 새물결 부르디외.P 2006,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최종철 역, 새물결 13
야스다 고이치, 2013, 거리로 나온 넷우익, 김현욱 역, 후마니타스 일루즈. E, 2010, 감정 자본주의 김정아 역 돌베게, 2013, 사랑은 왜 아픈가:사랑의 사회학, 김희상 역, 돌베개 콜린스. R 2009[2004] 사회적 삶의 에너지 진수미 역 한울아카데미 콜린스.R, 2009, 사회적 삶의 에너지:상호작용 의례의 사슬, 진수미 역, 한울아카데미 혹쉴드. A.R 2009[2003] 감정노동 이가람 역 이매진 i 인증대란 : 2012년 10월 22일경 수 백 명의 일베 이용자들이 자신들의 학력, 직업 등을 인증한 사건. 2012년 10월 23일 현재 약 500여 명이 자신을 국내 유수대학 출신이며 의학계열에 종사한다고 주 장했다. 인증대란이 있던 날 일베를 받은 게시물은 총 992개로,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보다 많은 것이다. ii 일베충 : 원래는 각 포털 및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일베 이용자들의 지나친 행태를 비판하며 일베에 벌 레를 뜻하는 충( 蟲 )을 어미로 붙여 만들어진 신조어. 하지만 정작 일베 이용자들은 충 이라는 표현 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iii 민주화 : 본래의 용법은 아고라, 네이트 등 진보 계열 포털에서 보수성향의 댓글에 많은 비난답글이 달리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디시 정사갤에서 그 용어를 수입하고 그것을 일베가 정착시켜 지금 알려진 비추천, 하향평준화, 획일화 등의 의미를 띠게 된 용어이다. 2013년 초 인기 걸그룹 전효성 씨가 한 라디오방송에서 언급하여 큰 논란이 되었을 정도로 일베어 의 확산을 경계하는 목 소리가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iv 좌표 : 게시글이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뜻하며, 대부분 사이버 공간 의 뉴스나 게시글이 출처이기 때문에 url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베에서 팩트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 며, 적지 않은 경우 신상털이나 (자발적)댓글동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v 노알라 : 노무현 전 대통령을 코알라와 합성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의 총칭이며, 노시계 등과 통틀어 그 를 희화화할 때 사용된다. 미주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