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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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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동북아역사논총 29호 전후 한 중 양국의 상호 인식과 교류는 남한과 북한, 중국대륙과 타이완 으로 각각 분리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지배체제에 기초한 냉전 구도가 만들어짐으로써 경직되었다. 1978년 중국대륙이 개방되고, 1992년 한 중 수교가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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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동북아역사논총 41호 인과 경계공간은 설 자리를 잃고 배제되고 말았다. 본고에서는 근세 대마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을 주로 영토와 경계인 식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시기 대마도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을 살펴볼 때는 근대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탈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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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石 堂 論 叢 49집 기꾼이 많이 확인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유형이 가족 담, 도깨비담, 동물담, 지명유래담 등으로 한정되어 있음도 확인하였 다. 전국적인 광포성을 보이는 이인담이나 저승담, 지혜담 등이 많이 조사되지 않은 점도 특징이다. 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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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in 응용 말하기 01 I set my alarm for It goes off. 03 It doesn t go off. 04 I sleep in. 05 I make my bed. 06 I brush my teeth. 07 I take a shower.

2 - ABSTRACT 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practical effects of Senior Employment Project, implemented by government as a part of 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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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4 BROWN Education Webzine vol.3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목차 From Editor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Guidance 우리 아이 좋은 점 칭찬하기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Homeschool [TIP] Fa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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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Educational Innovation Research 2016, Vol. 26, No. 1, pp.1-19 DOI: *,..,,,.,.,,,,.,,,,, ( )

6 영상기술연구 실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 3D 영화를 관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 <아바타> 이후, 티켓 파워에 민감한 국내 대형 극장 체인들이 2D 상영관을 3D 상영관으로 점차적으로 교체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

야쿠르트2010 9월재출

Transcription:

인 사 말 세계는 지금 전환기에 서있습니다. 이 전환기는 과거에서 보면 위기지만 미래를 바라볼 때 새로운 가능성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의 가능성도 과거에 대한 반성, 그리고 현실에 대 한 정확한 진단이 없다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될 수 없습니다. 2015년은 2차 세계대전이 파시즘에 맞선 민주주의 승리로 끝난 지 70년이 되는 뜻 깊은 해 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전 세계 모든 정치 공동체들은 자신을 민주주의와 일치시키기 위해 노 력해 왔습니다.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의 통치로서의 민주주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모든 공동체가 답하거나 양립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정치사회적 질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 나 민주주의를 위한 전 인류의 노력과 달리 세계는 지금 내전, 안보위기, 금융위기, 사회경제 적 양극화, 정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난민 문제 등 지금까지의 틀과 가치로는 해결될 수 없는 많은 갈등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양적 성장을 추구해온 전 세계 시장경제는 근대 이후 확산된 모든 인간의 존엄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엄적 가치의 훼손은 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사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모두를 경험하고 있고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있는 아시아는 전후 70년 동안 불균등하고 낮은 경제적 발전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는데 너무도 많은 사회적 열정과 에너지를 소비해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나라들이 제도적으로 민주화를 만들어냈지만, 이 과 정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를 넘어서 탈식민주의, 균등한 경제성장, 분배적 정의의 사회적 실현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GDP나 GNI와 같은 양적인 경제적 수치의 증가가 곧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착각에 깊이 빠지면서,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봉합되 었던 수많은 문제들을 원폭피해, 강제징용, 냉전질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인종 종교적 분쟁, 그리고 중동지역의 역사-지정학적 갈등 또한 경제발전으로 변 질된 민주주의의 환상 속에서 여전히 미궁에 남아있습니다. 불행히도 민주주의의 변질을 동반 한 아시아의 경제발전은 개발독재 에서부터 정경유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치경제적 문제 를 만들어왔습니다. 이제 민주주의는 이러한 현실에 답을 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로마가톨릭 교황과 같은 종 교적 지도자는 사랑, 나눔 그리고 봉사를 통해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을 이겨내가자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제도와 관계를 답해야 할 것입니다. 2015년 서울 민주주의 포럼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현 단계를 진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시 아는 다른 대륙들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아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진단을 위한 하나의 출발이 될 것입니다. 진단은 역사에 대한 검토이며 그 결 과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리고 이 성찰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2015년 서울 민주주의 포럼은 7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아에서의 민주화 과정에 대한 검토를 통해, 민주주의가 새로운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남아있는 역사적 과 제들을 재확인하고, 새로운 궤도 속에서 진행되는 여러 흐름들 중 시민교육과 마을 공동체 활 동에 주목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울 민주주의 포럼은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 를 통해 아시아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분석하고, 전후 70주년을 계기로 기억의 재구성과 민주주의의 재구성의 관계, 그리고 남은 과제들을 찾아볼 것입니다. 2015 서울민주주의포럼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역사적 성찰과 현재의 상황에 대 한 공유의 시간,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0월 21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이사장 박 상 증 4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5

Greeting These days, the world is standing at a turning point. Seen from the past, this turning point appears to be a crisis, but looking towards the future, it becomes in fact a new possibility. However, this future possibility, the future that we hope for, will not come to pass without a thorough reflection upon the past and a precise diagnosis of our current reality. The year 2015 is a year of great significance, as it has been 70 years since the 2nd World War when democracy triumphed over fascism. During the past 70 years, political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have striven to incorporate democracy into their own systems. Even now in the 21st century, a democracy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and of the people is considered the most crucial socio-political question that all communities must either respond to or coexist with. However, despite the efforts of past generations to create a flourishing democracy, the world today is full of civil war, security crises, financial crises, socioeconomic polarization, and refugees who have no assurance of resettlement. Amidst these many problems which cannot be resolved through the framework and value systems that have operated up until now, it is clear that new change in the world is urgently needed. In particular, the global market economy in its pursuit of quantitative growth is causing great harm to human dignity, which had been ennobled after the rise of modernity. Such harm to human dignity has been particularly notable in Asia. During the 70 years after the war, Asia, where the vestiges of a history of imperialism and colonial rule still linger, has consumed an incredible amount of social passion and energy in order to lift itself out of the swamp of unequal and slow economic growth. The results are that while many countries have produced a democratization at the institutional level, this process has not lead to the social actualization of distributive justice, equitable economic growth, or postcolonialism beyond a political-procedural democratization. In particular, falling deeply into the illusion that a rise in quantitative economic figures like the GDP or GNI is equivalent to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since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signed in 1951, many Asian countries have not been able to properly resolve the countless problems that were merely patched up but not cured, such as the aftermath of the atomic bomb, compulsory military conscription, and the Cold War order. The racial and religious disputes in Southeast Asia and the historicalgeopolitical conflicts of the Middle East remain quagmires trapped under the illusion of democracy that has been corrupted by economic growth. Unfortunately, the economic growth in Asia that accompanied this corruption of democracy has produced countless political-economic problems, from 'developmental dictatorships' to government-business collusion. It is now time for democracy to respond to this reality. Religious leaders like Pope Francis have spoken about the need to overcome the vicious cycle of poverty and discrimination through love, sharing, and volunteer. Democracy should respond with concrete and practical systems and relations. At this 2015 Seoul Democracy Forum we aim to diagnose the present stage of democracy in Asia. However, as Asia does not exist in a state detached from the other continents, the diagnosis of democracy in Asia will be one step forward for the diagnosis of democracy across the globe. This diagnosis is an investigation into history and a reflection upon the results. Afterwards, this reflection should in turn lead to new attempts at solving the problems that persist in our communities and nations. Through the examination of Asia's democratization process, which began in 6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7

축 사 earnest 70 years ago, the 2015 Seoul Democracy Forum will revisit the remaining historical problems that must be resolved in order for democracy to embark upon a new trajectory, and among the many currents running in this new trajectory, we turn our attention to civic education and neighborhood community activity. Along with this, the Seoul Democracy Forum will analyze the dynamism of democracy in Asia using the 'Asian Democracy Index' and, on the occasion of the 70th anniversary of the end of the war, search for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reconstruction of democracy and the reconstruction of memory, as well as other remaining challenges. I hope that the 2015 Seoul Democracy Forum becomes an occasion for sharing both historical reflections and present day circumstances, as well as an opportunity to raise important questions for the future of democracy. To all of you who have gathered here to participate in this forum together, I offer to you my wishes of peace. Thank you very much. October 21st, 2015 Korea Democracy Foundation Chairman, Park Sangjeung 반갑습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장 진 영 의원입니다. 서울민주주의포럼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09년을 시작으로 벌써 4회째 접어든 포럼은 아 시아와 국제사회의 민주주의 이슈와 동향을 논의하고 미래지향적인 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뜻 깊은 행사에 저와 국회안전행정위원회가 후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 하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아시아 민주주의 진단 위기인가 전환인가 라는 주제로 개최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물론,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뜻 깊게 생각할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준비된 이번 포럼은, 전쟁이라는 같은 아픔을 겪었던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보는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진행되어 온 민주주의 발전과 정을 종합적으로 볼 수 습니다. 시민교육, 노동은 물론, 협동조합이나 마을 공동체 경제 등과 같은 생활 에 밀접한 다양한 세션들까지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 만큼, 폭넓은 상호간의 이해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본 포럼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엇이며 발전과제는 무엇인지, 전세계적 민주주의 흐름과 공 감 교류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아시아 민주주의만의 차별성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고민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상증 이사장님과 실무진 여러분의 노고에 감 사드리며,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행정자치부와 파트너 기관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끝으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더 나은 미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 의의 실험과 도전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0월 2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장 진 영 8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9

축 사 Congratulatory Remarks 안녕하십니까? 행정자치부장관 정종섭입니다. 오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아시아 민주주의 진단-위기인가, 전환인가 라는 주제로 2015 서울민주주의포럼을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이석현 국회 부의장님, 김용태 의원님, 김경성 서울교육대학교총장님, 마티아스 주 주한스웨덴 부대사님 등을 비롯한 오 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짧은 기간에 산업 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기적을 이루어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제는 대한민 국에서 민주주의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세계로부터 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Hello, everyone! My name is Jong-sup Chong, the Minister of the Interior. I would like to extend my sincere congratulations on the opening of 2015 Seoul Democracy Forum, hosted by Korea Democracy Foundation, to reflect on democracy in Asia, whether we face a crisis or a new trajectory. I would like to welcome Mr. Seok-hyun Lee, Deputy Speaker of the National Assembly of the Republic of Korea; Mr. Yong-tae Kim, National Assemblyman; Mr. kyung-sung Kim, Presiden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Mr. Mattias Chu, Deputy Head of Mission, the Embassy of Sweden in Seoul; and many other dignitaries here today.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국경을 넘어 아시아로 전 세계로 관심을 넓혀나가야 할 것입니다. 제2 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습니 다. 하지만 아시아의 일부 국가는 민주주의를 굳건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 경제적 민주화로까지 나아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지구적 차원의 공동협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서울민주주의포럼이 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역사적 성찰과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공유를 가능하게 하여, 아시아 특성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지역네트워크를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포럼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드리며,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건승을 기원합 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10월 21일 행정자치부장관 정종섭 The Republic of Korea has been ceaselessly trying to advance the democracy. She had surprised the entire world by achieving a miracle of industrializing and democratizing herself at the same time. Now, the democracy has become a value that no one even bothers to challenge in Korea. Of course, many nations in the global community helped Korea in the course of becoming a democratic country. Now, the democracy of Korea will have to expand its scope beyond its borders, to Asia and to the world.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efforts have been made throughout all areas in the world to develop democracy. However, the democracy is yet to take its root in some countries in Asia. The democracy in Asia must not only achieve political democratization, but also must improve quality of people s life by democratizing societies and economies. To achieve this initiative, a global level cooperation is necessary. I wish the 2015 Seoul Democracy Forum hosted by Korea Democracy 10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11

Foundation will bring countries together, to self-examine their histories and share their current situations, so that the democracy in Asia will be advanced, and an opportunity will be created to establish a regional network that can contribute to the advancement of democracy tailored to Asia. I congratulate, again, the successful kick-off of the Forum, and wish the best for every one of the participants here today. Thank you. Jong-sup Chong, Minister of the Interior The Republic of Korea 12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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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세션 아시아 민주주의 진단 - 위기인가 전환인가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기조발제 1 토노히라 요시히코(강제노동희생자추도,유골봉환위원회 공동대표, 일본) : 아시아민주주의의 전환을 향한 역사적 성찰 기조발제 2 스테판 린드버그(예테보리대학교,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대표, 스웨덴) 아시아를 둘러싼 민주주의의 한계와 과제들 사례발표 1 베르나 비하자르(필리핀) 이주노동자와 민주주의 사례발표 2 보나짓 후세인(인도) 사회적 안전망과 민주주의 사례발표 3 프램루디 다로웅(태국) 개발협력과 민주주의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27

기조발제 1 아시아민주주의의 전환을 향한 역사적 성찰 - 동아시아의 희망 _국경을 넘은 시민의 공동협력 도노히라 요시히코( 殿 平 善 彦 )_강제노동희생자추도,유골봉환위원회 공동대표, 일본 동아시아의 희망-국경을 넘은 시민의 공동협력 올 봄, 일본과 한국, 재일한국인 그리고 미국과 호주의 참가자로 결성된 강제노동 희생자 추도 유골 봉환 위원회 는 전시 하에 홋카이도( 北 海 道 )에서 강제노동에 의해 희생된 조선인 115명의 유골을 모시고, 지난 9월12 일 홋카이도를 출발하여 일본열도를 종단하는 버스 여행을 실현했습니다. 시모노세끼에서 페리로 부산에 상륙 해 19일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20일 경기도 파주의 서울시립묘지 납골당에 안장할 수 있었습 니다. 재일한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들이 상호 협력하여 계획을 세워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 독자적으 로 유골 봉환을 실현한 것은 현대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유골봉환 이전의 역사 아시아태평양전쟁 하인 1940년~45년 일본에 연행되어 강제노동을 하게 된 조선인은 70만명에 달한다고 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전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홋카이도를 비롯해 각지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많은 유골들이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의 화해를 실현하려 한다면 일본에 남아있는 희생자의 유골조사와 반환은 불가결한 과제 입니다. 홋카이도는 그 중에서도 희생자의 유골이 계속 남아있는 장소이며, 홋카이도에서 시작된 민중사 발굴운동에 의해서 많은 유골이 발굴되고 또 불교사원 납골당에서 유골이 발견되어 왔습니다. 일본인 자신이 착수한 스스 로의 역사 다시 보기 운동이며, 그 운동이 동아시아 사람들과 화해를 실현하고 싶다고 하는 바람으로 이어졌다 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29

한일정부의 유골문제 2004년12월,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한일정상회담 석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에 남아있는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반환을 요구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 정부간 협의가 단속적( 斷 續 的 )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군인군속 유골반환은 일부 이루어졌 으나, 기업에 의해 사역된 희생자들의 정부에 의한 유골반환은 오늘까지 한 구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 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 할 수 없는 일본과 내셔널리즘을 내세우는 양국 정부로 인해 정상회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변 지인들에게 협력을 부탁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님도 그 중 한 분 입니다. 시장님과 우리는 1990년대부터 만남을 이어온 친구입니다. 우정을 키워온 동아시아 공동워크숍의 멤버들이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유골봉환의 직접적인 동기는 유골을 되찾고 싶다는 유족의 강한 염원을 실현하고 싶다는 바람으로부터 입니 다. 우리는 한국정부의 진상규명위원회의 지원을 받으며 한국 내 유족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유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골을 유족에게 전달하는 것과 함께, 유족을 찾을 수 없는 유골이 있더라도 한국에 전달 하고 싶다고 결심해 이번 유골봉환 준비에 착수한 것입니다. 시민이 진행하는 화해의 미래 개인의 만남과 공동협력 정부간 유골반환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이번에 시민의 손에 의한 유골봉환이 실현된 이유에는 무엇 이 있을까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한국의 시민운동의 지속과 고조가 배경이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개인과 개인 의 만남이 시작이었습니다. 1989년 가을, 우연히 한 명의 젊은 한국인 연구자가 홋카이도의 저희 절을 방문하였습니다. 정병호 라는 문 화인류학자입니다. 당시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 재적하고 있던 정병호씨는 보육시스템 연구를 위해 제가 경영하 는 보육원을 시찰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 때 저희 집에 한달 동안 머물면서 조사를 했습니다. 저는 1980년부터 홋카이도 각지에 산재하는 조선인 강제노동희생자의 유골의 발굴과 조사 활동을 하고 있었 습니다. 저는 그에게 홋카이도 각지에 희생자들의 유골이 남아 있으며, 바로 근처의 우류( 雨 竜 )댐에도 유골이 잠들어 있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꼭 유골들을 발굴해서 유족에게 반환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그 때 그는 저는 곧 한국에 돌아가지만, 대학교 교원이 되면 학생들을 데리고 발굴하러 오겠습니다. 그 때, 당신은 일본인 과 재일한국인 학생들을 모아주십시오. 한국, 일본, 재일한국인의 젊은이들의 손으로 유골을 발굴해 봅시다 하 고 제안했습니다. 그 약속으로부터 9년째가 되는 1997년 여름, 일본, 한국, 재일한국인의 젊은이들이 유골 발굴 공동작업을 하 는 10일간의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 이 실현되었습니다. 슈마리나이( 朱 鞠 内 )에 모인 100명의 젊은 이들은 댐 공사에서 희생된 일본인 타코베야(열악한 시설의 노동자 합숙소) 노동자와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의 유골 4구를 발굴했습니다. 유골발굴을 위해 같이 땀을 흘린 젊은이들은 흙속에서 발굴된 유골과 대면합니다. 바로 자신들과도 이어지는 역사가 눈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참가자들끼리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우정을 나누었습니 다. 그 후, 지금까지 18년간,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은 지속되어 10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 습니다. 거기에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조직이 개재된 것은 아닙니다. 유골을 통해 손에 넣은 공통의 역사인식을 배경 으로 우정을 계속 이어가고 만남을 이어 가고 싶다는 그들의 생각이 워크숍을 지속시켜 온 것입니다. 이 활동에 대해서는 오후 세션에서 다시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유골봉환은 89년의 두 사람의 만남을 재현하듯, 저와 정병호씨 두 사람의 논의로부터 구체화되었고, 주 이번 유골봉환은 한일 양국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이 독자적으로 활동한 것 입니다. 그것은 시민운동이 특정 권위나 권력과 결부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이 정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닙 니다.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필요하다면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본래 현대 시민운동이 정치적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실정치가 전쟁과 평화나 인권 등 동아시아의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정 치는 항상 우리의 생살여탈권( 生 殺 與 奪 權 )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유골봉환의 여정 가운데, 각 지에서의 연설을 통해 한일 양국 정부에게 유골 협의 재개를 촉구했습니다. 즉, 현대의 우리 시민운동은 정부와 도 대등하게 마주하여 발언하고 비판도 하지만, 필요하다면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골문제도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최종적인 해결은 어려울 것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정부는 시민운동과 마주하는 것에 너무 신중하며, 거부적이기까지 합니다. 분명히 일본의 운동사의 과거에는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이 반정부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 지만, 21세기인 오늘날, 시민운동의 기본적인 성격이 반정부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비판은 서슴 지 않지만, 시민운동의 목적이 정부를 타도하는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오히려 현안에 따라서는 상호 협력 해야 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실현해야 할 전쟁책임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에 관해 말한다면, 저희들도 일본정부나 기업과 함께 동아시아인들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자각하는 사람이 며, 정부에 적대적으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권위주의적으로 행동하고 국수주의적이 되면 될수록 정부와 시민운동의 공동협력은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굳이 말씀 드리자면, 일본정부는 시민운동과 솔직히 마주해야 합니다. 시민운동과 정부의 역할이 공동 협력 관계로 성장한다면 동아시아 현안의 대부분이 해결의 방향으로 향할 것입니다. 기업의 책임과 역할 이번 유골봉환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일본기업이 존재합니다. 전시 하에 조선인 노동자나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를 사역한 일본기업은 당연히 사망한 희생자의 유골을 유족에게 전달하고 사죄하고 보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전후 70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 115구의 유골에 대해 책임이 있는 기업으로 5개 회사가 밝혀졌습니다. 이와타치자키건설( 岩 田 地 崎 建 設 ), 히시나카건설( 菱 中 建 設 ), 스가와라건설( 菅 原 建 設 ), 미쯔비시 머티리얼( 三 菱 マテリアル), 닛테츠광업( 日 鉄 30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31

鉱 業 ) 입니다. 작년부터 기업들을 방문해 유골봉환 계획을 전달하고, 책임감 있는 대응을 촉구해 왔습니다. 우 리들은 기업에 법적인 전후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골을 유족에게 돌려주는 것은 기업에게 있어 당 연한 책임이 있는 인도적인 대응이며, 그에 대한 협력을 요청한 것 입니다. 결국, 몇몇 기업은 협력 의뢰에 응해 자금을 갹출했으나, 몇몇 기업은 협력을 거부했습니다. 이번 기업들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우리가 논의를 해봐야 하지만, 기업들이 이번 유골봉환에 이러한 태도를 표명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한일 시민운동의 공동협력 이번 유골봉환은 일본과 한국의 시민운동의 긴밀한 협력관계로 실현된 것입니다. 1997년의 유골발굴이 일본 과 한국 등 청년들의 만남과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2015년 유골봉환도 한국, 일본, 재일한국인의 운동 과 종교인들의 긴밀한 연계와 협력 속에 진행되어 왔습니다. 일본에서는 강제연행 강제노동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과 NPO법인 동아시아 시민네트워크, 동아시아 공동 워크숍 등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혼간지( 本 願 寺 )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승려들과 관심 있는 연 구자들이 협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몇몇 시민운동이 결집해 사단법인 평화디딤돌 을 결성해, 일본과 한국의 시민운동이 상호 협의 하여 서로 협력해서 강제노동 희생자 추도 유골 귀환 위원회 를 결성했습니다. 위원회의 공동대표는 저와 정 병호씨가 맡았습니다. 전후 70년이 지난 이제서야 비로소 라는 생각은 있지만, 당연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골 귀환 위원회의 바람은 일본열도, 한반도 종단의 여정 중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유골이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향하며, 성공회 대성당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된 19일 새벽, 일본의 국회에서는 전쟁에 대한 길을 여는 안전보장법안을 강행채결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을 허용하는 정부와 예전의 전쟁과 식민 지지배의 어두운 부분을 극복하려고 하는 유골봉환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유골봉환 프로세스 를 한국과 일본의 매스컴들은 적극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번 유골봉환은 일본정부의 전쟁정책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정부의 유골문제에 대한 활동을 촉구하는 여 론 환기의 역할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시민이 만드는 다양한 시민운동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시민운동도 글로벌화 되어 갑니다. 상호 시민운동이 국경을 넘어 교류하고, 우정을 키우고, 정치를 추종하지 않고, 정치에 촉구하는 운동을 동아시아에서 발전시켜 간다면, 오히려 시민이 앞장서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과 함께 대만의 시민운동에서도 배우고 연계해 나가고 싶습니다. 또, 중국이나 북한 사람들과도 적 극적으로 교류하고 싶습니다. 거기에야 말로 새로운 21세기의 희망이 보인다고 확신합니다. 完 Keynote Address 1 東 アジアの 希 望 - 国 境 を 越 え る 市 民 の 共 同 報 告 殿 平 善 彦 この 春 私 たち 日 本 と 韓 国 在 日 の 市 民 そしてアメリカやオーストラリアからの 参 加 者 で 結 成 した 強 制 労 働 犠 牲 者 追 悼 遺 骨 奉 還 委 員 会 は 戦 時 下 の 北 海 道 で 強 制 労 働 により 犠 牲 になった 朝 鮮 人 115 体 のご 遺 骨 を 奉 持 し 去 る9 月 12 日 北 海 道 を 出 発 して 日 本 列 島 を 縦 断 するバスの 旅 を 実 現 しました 下 関 からフ ェリーで 釜 山 に 上 陸 し 19 日 にソウル 市 庁 前 広 場 で 葬 儀 を 営 み 20 日 に 京 畿 道 坡 州 のソウル 市 公 共 墓 地 に 納 骨 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日 韓 在 日 をはじめ 多 様 な 市 民 が 相 互 に 協 力 しながら 計 画 し 政 府 に 依 存 するこ となく 市 民 独 自 の 遺 骨 奉 還 が 実 現 したことは 現 代 史 に 新 たな 刻 印 を 標 したと 言 っても 過 言 ではないでし ょう 遺 骨 奉 還 前 史 アジア 太 平 洋 戦 争 下 の1940 年 ~45 年 日 本 に 連 行 され 強 制 労 働 を 強 いられた 朝 鮮 人 は70 万 人 に 上 ると 言 われています 多 くの 犠 牲 者 が 出 ましたが 戦 後 70 年 になる 今 日 まで 北 海 道 をはじめ 各 地 に 故 郷 に 帰 ることなく 止 まり 続 けている 多 くの 遺 骨 があります 東 アジアに 歴 史 和 解 を 実 現 しようとするなら 日 本 に 残 された 犠 牲 者 の 遺 骨 調 査 と 返 還 は 欠 かせない 課 題 です 北 海 道 はその 中 でも 犠 牲 者 のご 遺 骨 が 残 り 続 けている 場 所 であり 北 海 道 で 始 まった 民 衆 史 掘 り 起 し 運 動 によって 多 くのご 遺 骨 が 発 掘 され あるいは 仏 教 寺 院 の 納 骨 堂 から 遺 骨 が 発 見 されてきました それは 日 本 人 自 身 が 取 り 組 んだ 自 らの 歴 史 見 直 しの 運 動 であり その 運 動 が 東 アジアの 人 々との 和 解 を 実 現 したい 32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33

という 願 いにつながってきたとい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日 韓 政 府 の 遺 骨 問 題 2004 年 12 月 廬 武 鉉 大 統 領 と 小 泉 総 理 大 臣 の 日 韓 首 脳 会 談 の 席 上 廬 武 鉉 大 統 領 が 日 本 に 残 されてい る 朝 鮮 半 島 出 身 者 の 遺 骨 返 還 を 求 め 小 泉 首 相 は 努 力 すると 約 束 しました その 約 束 に 基 づく 政 府 間 協 議 が 断 続 的 に 開 かれてきました 軍 人 軍 属 の 遺 骨 返 還 は 一 部 実 現 しましたが 企 業 によって 使 役 された 犠 牲 者 の 政 府 による 遺 骨 返 還 は 今 日 まで 一 体 も 実 現 していません その 原 因 は 植 民 地 支 配 に 反 省 を 表 明 できない 日 本 と ナショナリズムを 振 りかざす 相 互 の 政 府 にあって 首 脳 会 談 もで きない 状 況 が 続 いてきたからであります 個 人 の 出 会 いと 共 同 政 府 間 の 遺 骨 返 還 が 膠 着 状 態 に 陥 っている 中 で この 度 市 民 の 手 による 遺 骨 奉 還 が 実 現 した 理 由 には 何 があるのでしょうか もちろん 今 日 に 至 るまでの 日 本 と 韓 国 の 市 民 運 動 の 継 続 と 高 まりが 背 景 にありますが 直 接 的 な 契 機 は 個 人 と 個 人 の 出 会 いが 始 まりでした 1989 年 秋 偶 然 一 人 の 若 い 韓 国 人 研 究 者 が 北 海 道 の 私 の 寺 を 訪 れました 鄭 炳 浩 という 文 化 人 類 学 者 です 当 時 アメリカのイリノイ 大 学 に 在 籍 していた 鄭 炳 浩 さんは 保 育 のシステムの 研 究 を 志 し そのため に 私 の 経 営 する 保 育 園 を 視 察 に 来 たのです その 時 彼 は 私 の 家 に 一 ヶ 月 間 泊 まり 込 んで 調 査 をしまし た 私 は1980 年 から 北 海 道 各 地 に 散 在 する 朝 鮮 人 強 制 労 働 犠 牲 者 の 遺 骨 の 発 掘 と 調 査 に 取 り 組 んできまし た 私 は 彼 に 北 海 道 の 各 地 に 朝 鮮 人 犠 牲 者 の 遺 骨 が 残 っており すぐ 近 くの 雨 竜 ダムにも 遺 骨 が 眠 ってい ると 告 げました そして ぜひ 遺 骨 を 発 掘 して 遺 族 に 返 したいと 伝 えました その 時 彼 は 私 は 近 く 韓 国 に 帰 るが 大 学 の 教 員 になったら 学 生 を 連 れて 発 掘 に 来 ます その 時 あなたは 日 本 人 と 在 日 朝 鮮 人 の 学 生 を 集 めてください 日 韓 在 日 の 若 者 たちの 手 で 遺 骨 発 掘 を 試 みようではありませんか と 提 案 しまし た その 約 束 から9 年 目 の1997 年 夏 日 本 韓 国 在 日 の 若 者 たちの 遺 骨 発 掘 の 共 同 作 業 を 行 う10 日 間 の 平 和 のための 東 アジア 共 同 ワークショップ が 実 現 したのです 朱 鞠 内 に 集 まった 若 者 たち100 人 はダム 工 事 で 犠 牲 になった 日 本 人 タコ 部 屋 労 働 者 と 朝 鮮 人 強 制 労 働 犠 牲 者 の 遺 骨 4 体 を 発 掘 しました 遺 骨 発 掘 に 共 に 汗 を 流 した 若 者 たちは 土 の 中 から 現 れた 遺 骨 と 対 面 します まさに 自 分 たちにつながる 歴 史 が 目 の 前 に 現 れたのです 参 加 者 同 士 は 葛 藤 を 経 験 しながらも 離 れがたい 友 情 を 生 み 出 しました これ 以 来 今 日 までの18 年 間 東 アジア 共 同 ワークショップは 継 続 し 1000 人 以 上 の 若 者 たちが 出 合 いつ づけています そこには 特 定 のイデオロギーや 組 織 の 介 在 があったのではありません 遺 骨 を 通 して 手 に 入 れた 共 通 の 歴 史 認 識 を 背 景 に 友 情 を 継 続 し 出 会 い 続 けたいという 彼 らの 思 いが ワークショップを 継 続 させてきた のです この 取 り 組 みは 午 後 のセッションで 改 めて 報 告 します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は 89 年 の 二 人 の 出 会 いを 再 現 するように 私 と 鄭 炳 浩 さんの 二 人 の 相 談 から 具 体 化 し 周 りの 友 人 に 協 力 を 依 頼 しました 朴 元 淳 ソウル 市 長 もその 一 人 です 市 長 と 私 たちは1990 年 代 から 出 合 いつづけてきた 友 人 です 友 情 を 育 ててきた 東 アジア 共 同 ワークショップのメンバーが 準 備 に 奔 走 しま した 遺 骨 奉 還 の 直 接 の 動 機 は 遺 骨 を 取 り 戻 したいというご 遺 族 の 強 い 思 いを 実 現 したいという 願 いからで す 私 たちは 韓 国 政 府 の 真 相 糾 明 委 員 会 の 援 助 を 受 けながら 韓 国 内 で 遺 族 を 探 してきました そして 何 人 もの 遺 族 が 発 見 されました 遺 骨 を 遺 族 に 届 けることと 共 に 遺 族 が 特 定 できない 遺 骨 であっても 韓 国 にと どけたいと 決 心 し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の 準 備 に 入 ったのです 市 民 が 進 める 和 解 の 未 来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は 日 韓 両 政 府 とは 依 存 関 係 を 作 らず 市 民 独 自 の 奉 還 として 取 り 組 みました それは 市 民 の 運 動 は 特 定 の 権 威 や 権 力 と 結 びつくことを 拒 否 することを 意 味 します しかし 市 民 運 動 は 政 治 を 拒 否 するのではありません 主 体 性 を 維 持 しつつ 必 要 なら 政 治 に 積 極 的 にコミットします そもそも 現 代 の 市 民 運 動 が 政 治 的 になる のは 当 然 であります 現 実 政 治 が 戦 争 と 平 和 や 人 権 など 東 アジアに 住 む 市 民 に 直 接 の 影 響 を 与 えるから であり 政 治 は 常 に 私 たちの 生 殺 与 奪 の 権 利 を 握 っているからです 私 は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の 旅 の 途 上 各 地 でのスピーチを 通 して 日 韓 両 政 府 に 遺 骨 協 議 の 再 開 を 呼 びかけました つまり 現 代 の 私 たちの 市 民 運 動 は 政 府 とも 対 等 に 向 き 合 い 発 言 し 批 判 もしますが 必 要 なら 協 力 も 惜 しまない 運 動 だと 考 えます 遺 骨 問 題 も 政 府 が 役 割 を 担 わなければ 最 終 的 な 解 決 は 難 しいでしょう 日 本 軍 慰 安 婦 の 問 題 もしかりで あります しかし 今 の 日 本 政 府 は 市 民 運 動 に 向 き 合 うことに 極 めて 慎 重 であり 拒 否 的 ですらあります 確 かに 日 本 の 運 動 史 の 過 去 には 学 生 運 動 や 労 働 運 動 が 反 政 府 運 動 の 性 格 を 強 く 持 っていた 時 代 がありました しか し 21 世 紀 の 今 日 市 民 運 動 の 基 本 的 性 格 が 反 政 府 運 動 であるとは 言 えません 必 要 な 批 判 は 遠 慮 なくしま すが 市 民 運 動 の 目 的 が 政 府 を 打 倒 することでないことは 明 らかです むしろ 課 題 によっては 相 互 に 協 力 しあう 運 動 であるべきだと 考 えています 今 日 の 東 アジアにおいて 実 現 すべき 戦 争 責 任 と 植 民 地 支 配 への 責 任 に 関 して 言 うなら 私 たちも 日 本 政 府 や 企 業 とともに 東 アジアの 人 々に 対 して 歴 史 的 責 任 を 自 覚 する 者 であり 政 府 に 敵 対 して 戦 うわけではないのです 政 府 が 権 威 主 義 的 にふるまい ナショナリスティックになればなるほど 政 府 と 市 民 運 動 の 共 同 は 難 しく なります しかし あえて 申 し 上 げるなら 日 本 政 府 は 市 民 運 動 に 率 直 に 向 き 合 うべきであります 市 民 運 動 と 政 府 の 役 割 が 共 同 協 力 の 関 係 に 成 長 するなら 東 アジアの 懸 案 の 多 くが 解 決 の 方 向 に 向 かうでしょう 企 業 の 責 任 と 役 割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には 責 任 ある 日 本 企 業 が 存 在 します 戦 時 下 に 朝 鮮 人 労 働 者 や 日 本 人 タコ 部 屋 労 働 者 を 34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35

使 役 した 日 本 企 業 は 当 然 ながら 死 亡 した 犠 牲 者 の 遺 骨 を 遺 族 に 届 けて 謝 罪 し 補 償 すべきでありまし た しかし 彼 らはその 責 任 を 果 たすことなく 戦 後 の70 年 を 過 ごしてきました 今 回 115 体 のご 遺 骨 に 責 任 ある 企 業 は 5 社 が 明 らかになりました 岩 田 地 崎 建 設 菱 中 建 設 菅 原 建 設 三 菱 マテリアル 日 鉄 鉱 業 です 昨 年 から 企 業 を 訪 問 し 遺 骨 奉 還 の 計 画 を 伝 え 責 任 ある 対 応 を 求 め てきました 私 たちは 企 業 に 法 的 な 戦 後 補 償 を 求 める 立 場 にはありません 遺 骨 をご 遺 族 にお 返 しすること は 企 業 にとって 当 然 の 責 任 ある 人 道 的 な 対 応 であり そのことへの 協 力 を 要 請 したのです 結 局 いくつ かの 企 業 は 協 力 依 頼 に 応 えて 資 金 を 拠 出 し いくつかの 企 業 は 協 力 を 拒 否 しました 今 回 の 企 業 の 対 応 をど う 評 価 するかは 私 たちの 論 議 を 待 たねばなりませんが 企 業 がこの 度 の 遺 骨 奉 還 にそのように 態 度 を 表 明 した 事 実 をお 伝 えしておきます Keynote Address 1 Historical Reflection for The New Trajectory of Democracy in Asia 日 韓 の 市 民 運 動 の 共 同 協 力 Yoshihiko TONOHIRA( 殿 平 善 彦 )_President of East-Asian Collaborative Workshop, Japan 今 回 の 遺 骨 奉 還 は 日 本 と 韓 国 の 市 民 運 動 の 協 力 関 係 が 強 く 結 びついて 実 現 したものであります 1997 年 の 遺 骨 発 掘 が 日 本 と 韓 国 などの 青 年 たちの 出 会 いと 協 力 で 実 現 したことと 同 様 に 2015 年 の 遺 骨 奉 還 も 日 韓 在 日 の 運 動 と 宗 教 者 の 緊 密 な 連 携 と 協 力 の 中 から 進 められてきました 日 本 では 強 制 連 行 強 制 労 働 犠 牲 者 を 考 える 北 海 道 フォーラム と NPO 法 人 東 アジア 市 民 ネットワ ーク 東 アジア 共 同 ワークショップ などが 積 極 的 な 役 割 を 果 たし 本 願 寺 教 団 に 所 属 する 僧 侶 や 関 心 ある 研 究 者 たちが 協 力 を 惜 しみませんでした 韓 国 では いくつかの 市 民 運 動 が 結 合 して 社 団 法 人 平 和 の 踏 み 石 を 結 成 し 日 本 と 韓 国 の 市 民 運 動 が 相 互 に 話 し 合 い 協 力 し 合 って 強 制 労 働 犠 牲 者 追 悼 遺 骨 奉 還 委 員 会 を 結 成 しました 委 員 会 の 共 同 代 表 には 私 と 鄭 炳 浩 さんが 着 きました 戦 後 70 年 を 越 えた 今 になってようやくとの 思 いではありますが 当 然 の 正 義 を 実 現 したいという 遺 骨 奉 還 委 員 会 の 願 いは 日 本 列 島 韓 半 島 縦 断 の 旅 の 中 で 多 くの 人 々の 心 に 届 いたように 思 います 遺 骨 が 釜 山 からソウルに 向 かい 聖 公 会 大 聖 堂 の 地 下 納 骨 堂 に 安 置 された19 日 未 明 日 本 の 国 会 では 戦 争 への 道 を 開 く 安 全 保 障 法 案 を 強 行 採 決 していました 戦 争 を 許 容 する 政 府 に 対 して かつての 戦 争 と 植 民 地 支 配 の 暗 部 を 克 服 しようとする 遺 骨 奉 還 は 見 事 な 対 比 を 描 きました 私 たちの 遺 骨 奉 還 のプロセスを 日 韓 のマスメディアは 積 極 的 に 報 道 しました この 度 の 遺 骨 奉 還 は 日 本 政 府 の 戦 争 政 策 批 判 であるとともに 政 府 の 遺 骨 問 題 への 取 り 組 みを 促 す 世 論 喚 起 にもなったのではないかと 考 えます 東 アジアの 市 民 が 創 る 多 様 な 市 民 運 動 はこれからますます 重 要 な 役 割 を 果 たして 行 くでありましょう 市 民 運 動 もグローバル 化 していきます 相 互 の 市 民 運 動 が 国 境 を 越 えて 交 流 し 友 情 を 育 み 政 治 に 追 随 せ ず 政 治 に 働 きかける 運 動 を 東 アジアに 育 むなら むしろ 市 民 が 先 駆 けとなって 新 たな 時 代 を 創 り 出 す 可 能 性 があります 私 たちは 韓 国 とともに 台 湾 の 市 民 運 動 にも 学 びたい そしてつながりたいと 願 っていま す また 中 国 や 北 朝 鮮 の 人 々にも 積 極 的 に 語 り 掛 けていきたい そこにこそ 新 しい21 世 紀 の 希 望 が 見 えて くると 確 信 します 完 This spring, the Committee to Mourn and Return the Remains of Deceased Forced Laborers formed by Japanese, Koreans, Koreans living in Japan, and participants from the U.S. and Australia carried the remains of 115 Koreans who died in Japan after being forced into hard labor during World War II, departed Hokkaido ( 北 海 道 ) in September 12, 2015, and travelled in Japan by a bus. The remains were carried and arrived in Busan from Shimonoseki by a ferry. Memorial ceremonies were held at the Seoul Square on September 19, and the remains were laid to rest in the charnel house at Seoul Memorial Park in Paju, Gyeonggi province. Citizens from all sorts of backgrounds including Koreans living in Japan cooperated and made a plan autonomously to return the remains of Koreans who died Hokkaido during World War II to their home without relying on the government. It is not too much to say that it marked a new era in modern history. History before the Return of the Remains It was estimated that over 700,000 Koreans were taken and forced to work in Japan during World War II from 1940 to 1945. Many of them died in Japan, never made it to home, and the remains have been left throughout Japan including Hokkaido even 70 years after the end of war. Investigation and the return of the remains of the victims are indispensable tasks to realize reconciliation of history in East Asia. Hokkaido is the one of the places where the remains are still left behind. Civic groups have been exhuming the remains and the remains have been found in charnel houses of Buddhist temple in Hokkaido. This is a campaign of addressing history in the past, which is began by Japanese 36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37

themselves, and this movement led to a wish to reconcile with the people in East Asia. Issues on the Remains of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In December 2004, President Roh Moo-hyun pressed to return the remains of Koreans in Japan at the Korea-Japan summit of President Roh Moo-hyun and Prime Minister Koizumi, and Prime Minister Koizumi pledged to work. Consultations between governments have been done intermittently in compliance with the promise. Some of the remains of conscripted Korean soldiers and civilians have been returned, but the remains of the victims who were forced to work by companies, even a single body, haven t been returned up to today. It was because even a summit couldn t be continued due to the Japanese government that did not express its reflection and both governments that advocate nationalism. Individual Meeting and Cooperation Why are the remains returned by citizens while the return of the remains between governments has come to a dead end? There have been civic movements of Japan and Korea up to this day. However the direct opportunity was the beginning of a meeting between individuals. In the fall of 1989, a young Korean researcher visited our temple by chance. He is Jung Byoung Ho, a cultural anthropologist. At that time, he was studying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 and he came to inspect a child-care center, which was managed by me. He investigated the childcare center while he was staying at my place. I have been investigating and exhuming the remains of Korean forced labor victims, scattered throughout Hokkaido, since 1980. I told him the remains of victims were remained throughout Hokkaido, and some of the remains were buried near the Uryu dam. And I told him that I would exhume the remains and return them to their families. Then he suggested I will go back to Korea soon but I will bring students to exhume the remains when I become a professor. Please gather students of Japanese and Korean residents in Japan. Let s exhume the remains by hands of young Koreans, Japanese, and Koreans living in Japan. In the summer of 1997, the 9th year since the promise, the East Asia Joint Workshop for Peace that was formed by young Japanese, Koreans, and Koreans living in Japan to exhume the remains was held for 10 days. One hundred young people gathered in Shumarinai ( 朱 鞠 内 ), and exhumed the remains of four Japanese takobeya (labor camp in poor conditions) labors (Japanese prisoners who were forced to work) and Korean forced labors who died for a dam construction. Young people who sweated together to exhume the remains have faced with the remains that were excavated from soil. History that is connected to the young people appeared before their eyes. Though participants were experiencing conflicts, they began to share a friendship. The East Asia Joint Workshop for Peace has been continued for 18 years, and over 1,000 young people are continuing the meeting. A specific ideology or organization was not interposed in this project. Their thoughts that they want to continue a friendship based on common historical awareness obtained through the remains have kept the workshop. I will present this activity in the afternoon session again. The return of the remains has solidified by the discussion of me and Mr. Jung, Byoung Ho and we sought cooperation of our acquaintances. Park Won-soon, the Mayor of Seoul, is the one of them. The mayor is the one of our friends who has kept participating the workshop since the 1990s. Members of the East Asia Joint Workshop for Peace who have been developing a friendship have worked busily to prepare the workshop. A direct motive of the return of the remains is from a wish to realize a strong desire of the bereaved. We searched for the bereaved in Korea while we are receiving support from the Korea s Truth Committee, and we have found the bereaved families. We have prepared to return the remains to the bereaved families, and we also wanted to return the remains that failed to locate the bereaved to Korea. The Future of Reconciliation by Citizens Citizens of both countries autonomously have worked on the project to return the remains of forced Korean labors who died in Japan during World War II without relying on the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This means that civic movements refuse to be related to a particular authority. However this doesn t mean that civic movements refuse politics. Civic movements get involved in politics if necessary while they maintain their independence. It is natural that civic movements are being political. It is because realistic politics directly affect the citizens in East Asia by wars, peace, human rights, etc. and it always seizes life-or-death authority of us. I have pressed both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to resume the consultation on the remains through speeches in various places along my journey to return the remains. Modern civic movements face the governments equally, state their opinions, and criticize the government. However civic movements are willing to cooperate with the government if necessary. It will be hard to settle issues on the remains, if the government does not perform its role. So is the Sexual slavery issue. However, currently the Japanese government has a very cautious attitude toward civil movements, and the Japanese government has rather resisted citizens initiatives. There was a time when student movements or labor movements were antigovernment movements in the past of Japanese history of civil movement. However, it is not necessarily that a civic movement is an antigovernment movement in the 21st century. Civic movements do not hesitate to criticize the government if necessary but it is clear that civic movements do not target overthrowing the 38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39

government. I believe today s civil movements shall cooperate with the government by pending issues. As for war and colonial rule responsibilities to be realized in East Asia countries, we are aware of historical responsibilities to East Asian people, along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or companies. However, we do not wage a war against the government. It becomes more and more difficult for the government and civic movements to cooperate as the government is being authoritarian and nationalistic. However, if I may say, the Japanese government needs to face with civic movements openly. If the role of civic movements and the government grow as cooperative relations, the most of pending issues of East Asia will head for the direction of solutions. Responsibilities and Roles of Corporations There are Japanese companies who are responsible for the return of the remains to Korea. Japanese corporations that employed forced Korean labors or Japanese takobeya labors during World War II should have returned the remains of victims to the bereaved, made an apology, and compensated. However, 7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end of war without fulfilling responsibilities of Japanese corporations. Five companies have been revealed as companies that are responsible for the remains of 115 Korean forced labors. Those companies are Iwata chizaki Inc., ( 岩 田 地 崎 建 設 ), Hisinaka Construction Corporation ( 菱 中 建 設 ), Sugawara construction ( 菅 原 建 設 ), Mitsubishi materials ( 三 菱 マテリアル), and Nippon Steel and Mining( 日 鉄 鉱 業 ). We have visited corporations, have delivered the plan of returning the remains, and have pressed them for a responsible response since last year. We are not asking for legal compensations to the corporations. Those corporations that employed force labors are responsible to return the remains to the bereaved, which is a humanitarian response, and we have requested cooperation in returning the remains. Several corporations eventually responded to our request and paid funds, but other corporations have refused to cooperate. We need to discuss how to evaluate the response of these corporations, but we would like to inform you that corporations showed these attitudes towards the return of the remains. role, and Buddhist monks from the Hongwanji order and interested researchers have spared no efforts. In Korea, several civic movements have united and formed the Peace Steppingstone Corporation, civic movements of Japan and Korea cooperated with each other, and they formed the Committee to Mourn and Return the Remains of Deceased Forced Laborers. Mr. Jung Byoung Ho and I are co-representative of the committee. We have the feeling that it is rather too late, 70 year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However, we believe wishes of the committee to return the remains to the families were delivered in many people s minds in our journey from Japan to Korea. The enactment of new security legislations have passed in the Japanese National Security Cegislation at dawn of September 19, when the remains of forced labor victims arrived in Busan and laid in a vault of cathedral of the Anglican. The government that allows for wars presents a clear contrast to the return of the remains, which is a part of reconciliation to overcome a dark past of war and colonization. The media have aggressively reported the process of the return of the remains. I think the return of the remains is criticism for the war policy of the government and it also played a role to arouse public opinion to press the Japanese government for the activities on the issue of the remains. Diverse civic movements created by citizens of East Asia will play the more important role. Civic movements are being globalized. If civic movements of the two countries interact each other beyond the border, develop a friendship, do not follow politics and develop citizens movements that press the government and politics in East Asia, it is possible to create a new era by citizens. We would like to learn about civil movements of Taiwan with Korea, and establish ties with civic movements in Taiwan. We also would like to interact with Chinese and North Koreans actively. We are sure that there is new hope for the 21st century. Cooperation of Korean and Japanese Civic Movements The project to return the remains of Korean forced labor victims has been done by close cooperation of Japanese and Korean civic movements. As the exhumation of the remains were done by a meeting and cooperation of Japanese and Korean young people in 1997, the return of the remains has been ongoing under a close association and cooperation of civic groups and religions of Korean, Japanese, and Koreans living in Japan in 2015. In Japan, the Hokkaido Forum for the Recognition of Forced Labor and its Victims, NPO Corporation East Asia Citizen Network, and the East Asia Joint Workshop have played an active 40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41

Case Presentation 1 Migrant Workers and Democracy: Critical questions in the context of a neoliberal world order Verna Dinah Q. Viajar, _ ICDD Graduate Program University of Kassel SLIDE 1 Introduction I wish to thank the Korea Democracy Foundation for inviting me to participate in this important forum. It is indeed a great pleasure to come to Korea and I appreciate this opportunity to learn from the interaction with scholars and activists in this forum. I hope to contribute in this discussion on how we keep democratic concepts, based on our experiences, remain meaningful today and in our own lives because for some of us, the lack of democracy is still a matter of life and death. For some of us, the absence of democracy continue to push people into precarious life and work conditions such as the migrants and the domestic workers. For some of us in distant lands, the absence of democracy is sowing the fertile grounds of war and leaving hungry people along the way. And for some of us, the lack of democracy has created millions of refugees and economic migrants around the world. We saw Syrian children dying on the shores of Turkey just to cross the oceans to Germany. Closer to our homes, we saw Rohingyas left stranded in the middle of the ocean surrounded by Asian countries unwilling to take them in. From Asia to Europe, we share critical questions on why a few countries can become the destination of dreams while the many the epitome of misery; why a 1% of the population control the wealth created by hard labor while the rest remain slaves to the concept of wages; and why capital can multiply many times, goods can have freedom of movement but labor cannot. In this presentation, I will link the phenomenon of migration with the shifting and sometimes flowing understanding of democracy in the context of an increasingly neoliberalizing world that challenges our multi-faceted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lives. I further argue that in this moment of history, democracy need to be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power relations by raising critical questions about today s political and economic norms and challenging the dominant concepts in the current capitalist development. Democracy: critical questions Democracy is a concept important to me. So important that I named my daughter, Minju (however, I told her that if she is uncomfortable with it she can change her name when she s old enough). Being from the Philippines, a nation that has suffered under a dictatorship and revolted through people power, I understood democracy as inherently tied to the concept of freedom. And so my daughter s first name, Yana, is a derivative from the Tagalog/Filipino word Kalayaan which means freedom (I apologized to her about this and told her that she would understand her mother better for this). Being part of the generation called Martial Law Babies, those who grew up as a child in the 1970-80s, I got involved in the student movement while in university in late 1980s. Our understanding of democracy has evolved then into how to rebuild our political institutions and civil society severely damaged by authoritarianism. Democracy then would mean having the freedoms to speak our own mind, to organize workers against oppressive work conditions, to practice freely cultural beliefs and religions, to challenge systemic patriarchy, and to struggle for gender equality. SLIDE 2 Twenty-nine years later today, these issues remain relevant but our progressive movements in the Philippines need to ask more from our so-called democratic political institutions. To ask more critical questions such as: why despite institutionalizing the election process, governance remain corrupted and political elites still control the rules of the game?; or why Filipinos continue to sail abroad for work when this practice was supposed to be temporary to ease social unrest during the dictatorship? ; or why despite the freedom to unionize, Filipino workers remain powerless and destitute?. SLIDE 3 Our understanding of democracy has been transforming since it was practiced by the citizens of Athens in the ancient times. True to its literal meaning of rule of the people, the Athenoan form of direct democracy consists of the citizens governing themselves through collective dialogue and debates. But then during those times, only men with properties were considered citizens and so they excluded the rest of the human race.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nation-state further redefined the meaning of citizenship and ushered the practice of indirect 42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43

democracy where the people give their power to representatives to govern for them. Different forms of representative democracy exist today. However, no settled model of democracy exists, only a number of competing models (Heywood 1994, 170). Essentially, democracy as a concept, as a norm and as an idea has contested meanings. SLIDE 4 In this light, I argue that we examine democracy as a notion of how we live as a people and emphasize on the kratos or power in the word democracy. I view power in the sense that it goes beyond the ability to influence the behavior of others but power as capability to shape preferences (ideas) and conduct (behavior) through the capability to manufacture broad consent rather than the use of brute force. This is power conceptualized as hegemony. Hegemony is a form of domination but accepted and consented at the level of ideas supported by the production relations (neoliberal capitalist system) and institutions (i.e. laws, media, schools, church, or civil society). Hegemony, understood as opinion-molding activity (Bieler and Morton 2004), shapes our collective notions of reality. Reality being not only of our physical reality but also of the ideas underpinning our social institutions, cultural, moral and ideological contexts that shapes our thoughts and actions (also see Bieler and Morton 2004). To illustrate, the dominant notion today of the good life is accumulating material possessions, to rise above the rest through competition, and the rights of private and individual property reign supreme. Similarly this is reflected at the global level producing and reinforcing inequalities with the intensification of neoliberal capitalist development. Neoliberalism in this context would mean the dominance of the market logic in production relations; it is a type of capitalist accumulation based on competition; and the subjugation of labor by capital through the increase of precarious employment. The inequalities between and among nations along economic development created the core (the advanced) and the peripheral (the developing) countries in the global production system. The uneven development of core and peripheral countries set in motion the conditions for intensive economic and political migration. SLIDE 5 Migration and democracy, concepts which are familiar yet so alien Migration has never been this intense in this neoliberal period. Migration has been happening throughout the history of humankind. We are products of the ancient flow of people across lands and oceans. In the end, we are actually all migrants. Yet the resurgence of primitive accumulation under neoliberal capitalism at the national and global levels reanimates the importation of labor alongside emigration between the core and peripheral countries. The appropriation of labor however, is profoundly racialized which has already began in the past through the migrant flow from the former colonies to the core countries. The phenomenon of migrant labor serves the logic of maintaining low labor costs in capitalist production since the colonial period. In my study of migrant workers in Malaysia, the wheels of industrial development necessitates tapping into the vast army of cheap labor available across borders in order to serve the capitalist class. Migrant workers do not steal jobs but are caught in a production system where workers are put in competition with each other and where their labor is commodified. My study of migrant domestic workers in Malaysia highlights the commodification of labor in the domestic care industry through intensive demand for cheap and disposable labor composed of women from poorer countries in Southeast Asia. Domestic work whether paid or unpaid, reflects the continuing devaluation of women in the social productive-reproductive divide and separation of formal-informal labor. Because domestic work is mostly done inside the household considered not a workplace, most countries still consider domestic work as nonwork. Since domestic work is mostly unpaid and done by women, the patriarchal dimension of capitalist production that undervalues women maintain domestic work as a lowly-paid work. Race and gender hierarchies are intensified in this industry but the class dimension should not be forgotten because domestic workers are workers too. It just happens that they are women and migrants from poorer countries. The neoliberal capitalist system today thrives in the globalization of primitive accumulation expanding global labor reserve and allows enterprises to survive through the availability of coerced unfree labour (Ferguson and McNally 2014). At present, programs of temporary/ guest worker programs in migrant-receiving countries underline temporary servitude through the absence of civil and labour rights especially for the undocumented migrant workers. The migrant workers represent the hyper-precarious workers of our time given the restrictive and punitive migration policies of receiving countries. The inhumane border policies against migrant labor are meant to deepen the condition of deportability of migrant workers (Ferguson and McNally 2014, 6). Concluding Remarks: Alternative democratic visions At this point, I offer suggestions on how to frame the lines of analysis upon which we can base strategies towards democratization. From my experiences with the trade union movement in the Philippines, a clear analysis of the political-economic moment and awareness of the cultural pulse of the society is key in advancing alternative democratic visions and strategies. For example in the Philippines, political power resides to those that hold economic power because joining elections entail massive costs. The political structures and policies reflect the interests of the hegemonic class intent on maintaining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by 44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45

controlling the political processes that excludes the masses and thus, perpetuating poverty of the many. Political family dynasties remain hegemonic because of our cultural traditions that perpetuate a patron-client power relation where the people provide loyalty to political and economic leaders in their villages or communities. Thus, the interrelationship of our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structures held together by hegemony reinforces a system of elite democracy. need to offer alternative ideologies that feeds the mind of the people. In short, the task of changing world order begins with the long, laborious effort to build new historic blocs within national boundaries Robert Cox SLIDE 9 Thank you for your attention. SLIDE 6 The figure shows the interlocking relations of the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dimensions upon which alternative visions of democracy can be anchored. Verna Dinah Q. Viajar Email: verna.viajar@icdd.uni-kassel.de/ verna.viajar@gmail.com www.icdd.uni-kassel.de In order to democratize political structures and institutions, we need to ask ourselves how do we envision a democratic political system? From a neo-gramscian perspective, the view of the State is composed of the interlocking relations of the political society and civil society. In the formation of a democratic state, the political arena is a terrain of contestation of various social forces in the struggle for hegemony. SLIDE 7 Political democracy would then refer to how open and inclusive the space for political contestation and governance is in a given society. Some social movements would call it participatory democracy. Economic democracy would strive for alternative production relations of a social economy where the economy serves the purposes of the society and not the market. Is this what some would call solidary economy or social economy? Democratizing the economy addresses the questions of wealth distribution, income inequality, social protection, etc. Cultural democracy addresses the notions of consumerism, individualism and competition heightened by capitalist relations. This also challenges gender inequalities towards a gender fairer society. Cultural democracy also asks how to uphold individual freedoms but does not damage the collective fabric of society. Bibliography Bieler, A., and A. D. Morton. 2004. A Critical Theory Route to Hegemony, World Order and Historical Change: Neo-Gramscian Perspectives in International Relations. Capital & Class 28 (1): 85 113. doi:10.1177/030981680408200106. Cox, Robert W. 1981. Social Forces, States and World Orders: Beyond International Relations Theory. Millennium (03058298) 10 (2): 203 54. Ferguson, Susan, and David McNally. 2014. Precarious Migrants: Gender, Race and the Social Reproduction of a Global Working Class. Socialist Register 51 (51). Heywood, Andrew. 1994. Political Ideas and Concepts: An Introduction. London: Macmillan Press. SLIDE 8 My point here is that we need to challenge power relations and ideologies underpinning the dominant notions of how our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worlds are constructed. Essentially, democratization cannot only be confined at the political realm but also at the level of the economy and culture. For social movements that forwards alternative democratic visions of society, it is not only important to capture the hearts of the people but there is a 46 2015 _ _, 2015 Seoul Democracy Forum_ The Reflection on Democracy in Asia_ Crisis or New Trajectory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