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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역사에서 배우는 공직윤리 다 산 의 목 민 심 서 를 중 심 으 로 김 상 홍(단국대 전 부총장 명예교수) Contents Ⅰ. 새로운 사고로 꿈을 성취 Ⅱ. 발상의 전환으로 청렴사회 구현 Ⅲ.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 Ⅳ. 다산의 목민사상과 업적 Ⅴ. 청렴한 공직자의 자세 Ⅵ. 21세기 공직자의 과제 Ⅰ. 새로운 사고로 꿈을 성취 우리 대한민국은 자랑스럽게도 2년 연속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작년(2012) 수출은 전년 대비 1.3% 감소한 5,482억 달러, 수입은 0.9% 감소한 5,195억 달러이며, 무역수지는 286억 달러 흑자를 냈다. 작년에 무역 1조 677억 달러를 달성하여 이태리를 제치고 무역 8강 국가가 되었다. 우리에 앞서 무역 1조 달라를 달성한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이태 리 등 8개 국가뿐이다. 그리고 런던 올림픽(2012)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젊은이들이 투혼을 발휘하 여 세계 5위를 했다. 또한 지난해 6월 세계 7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을 의미하는 선진 국 클럽 '2050클럽'에 가입했고, 10월에는 인천 송도가 190여개 회원국을 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독일의 본을 꺾고 유치에 성공했다. 우리 국격( 國 格 )이 한층 높아졌다. 국격에 걸맞는 클 린(Clean) 대한민국 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아젠다(Agenda)이다. 아버지가 꿈이 있어야 가족들이 희망을 가질 수가 있고, 선생님이 꿈이 있어야 학생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가 있으며, 대통령이 꿈이 있어야 국민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꿈이 없겠는가? 꿈만 있고 꿈을 실현시키려는 강인한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없다면 그 꿈은 허상에 불 과하다. 발상을 전환(Paradigm shift)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우리는 20C에 태어나서 21C를 살고 있 다. 20C식 사고와 가치관에 안주해서는 자아의 발전은 물론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다. 현 실에 안주한 채 나쁜 관행을 버리지 못하면 발전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국가 사회를 발전시킨 인 물들은 나쁜 관행을 버렸고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갔다. 지난날 묵인되던 관행이 지금은 범 죄가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나만 청렴( 淸 廉, Integrity)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클린해 야 미래가 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파충강( 爬 蟲 綱 )에 속하는 거북이와 공룡은 태초에 지구상에 존재했다. 거 북이는 지금까지 살아남았지만, 공룡은 화석으로 남아 있다. 중생대의 jura기와 백악기( 白 堊 紀 )를 - 1 -

살았던 공룡은 동물의 왕국을 지배했다. 그러나 큰 등치만 믿고 생태계의 변화를 순발력 있게 대 처하지 못했고, 생존전략이 없었기에 어느 날 우주의 빅뱅에 의해 지상에서 사라졌다. 태초에는 거 북이의 등과 배는 딱딱한 견질( 堅 質 )이 아니고 연질( 軟 質 )이었다고 한다. 거북이는 종족보존과 생 존전략으로 자신의 몸을 견질로 변화시키려고, 모래밭에서 작렬하는 태양 빛에 등과 배를 태우는 아픔을 감내했다고 한다. 변신을 거듭한 거북이의 지혜와, 등치만 믿고 변신을 거부하다 멸종된 공룡의 우둔한 처신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발전할 수 있다. 지구촌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겨울에 여름옷을 입을 수 없듯이 시대에 맞는 신사고( 新 思 考 )로 전환해야 한다. 발상을 전환해야 꿈을 성취할 수 있다. 그리고 클린해야 꿈을 이룰 수 있고, 미래가 있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Ⅱ. 발상의 전환으로 청렴사회 구현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했다. 진부하고 낡은 사고를 버리자. 우리는 발상을 전환(Paradigm shift)하여 클린하고 공정한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의 당위성을 우리나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과, 고전소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의 재해석을 통해서 찾아보자. 첫째, 선녀와 나무꾼 이다. 나무꾼이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을 구해주자, 사슴은 선녀들의 목욕 터를 알려주며 날개옷을 훔쳐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선녀를 색시로 삼고 아기 셋을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주지 말라 고 했다. 나무꾼은 날개옷이 없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를 강제로 유인 하여 집으로 데려와 임신시켜 주저앉혔다. 아기 2명을 낳았을 때 선녀가 사정하여 날개옷을 돌려 주자 양팔로 아기를 한명씩 안고 하늘로 올라갔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사슴과 나무꾼은 선녀에 게 엄청난 죄를 지었다. 1사슴은 자기를 살려준 나무꾼에게 은혜를 보답하려면 자기 물건으로 했어야 했다. 그런데 비 겁하게 죄없는 선녀를 나무군의 아내가 되도록 교사( 敎 唆 )하여 나무꾼을 죄인이 되게 했다. 그러므 로 사슴은 납치 교사죄( 敎 唆 罪 )로 처벌해야 한다. 2나무꾼은 사슴을 구해준 것으로 끝났어야 했다. 선행은 선행으로 끝나야지 댓가를 바래서는 안 된다. 명심보감 에 은혜를 베풀거든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후회하지 말라 ( 施 恩 勿 求 報 與 人 勿 追 悔 )고 했다. 3나무꾼은 선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본 관음증( 觀 淫 症 )이 있고,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만큼 형법 제329조 절도죄로 처벌해야 한다. 4나무꾼은 선녀를 강제 유인하여 임신시켰기 때문에 형법 제288조 약취( 略 取 ) 유인죄( 誘 引 罪 ) 로 처벌해야 한다. ➄나무꾼은 선녀의 존엄한 인격을 짓밟았다. 선녀는 나무꾼과의 강제 결혼생활이 얼마나 치욕적 이고 굴욕적이었으면 아기 2명을 안고 하늘로 올라갔을까를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 둘째, 춘향전 이다. 기존의 해석은 춘향은 열녀이자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한 진보적인 신여성 이고, 이도령은 멋있는 공직자로 약속을 지킨 사람이며, 변학도는 색한이자 탐관오리이다. 그러나 이해조는 1910년(융희 4) 신소설 자유종 에서, 춘향전은 음탕 교과서요, 심청전은 처량 교과 서요, 홍길동전은 허황 교과서라 할 것이니, 국민을 음탕 교과서로 가르치면 어찌 풍속이 아름다우 - 2 -

며, 처량 교과서로 가르치면 어찌 장진지망( 長 進 之 望 )이 있으며, 허황 교과서로 가르치면 어찌 정 대한 기상이 있으리까? 우리나라 난봉 남자와 음탕한 여자의 제반 악증( 惡 症 )이 다 이에서 나니 그 영향이 어떠하오? 라고 했다. 장경학도 법률춘향전 에서, 춘향은 출생부터가 양반과 서민의 합성물이다. 그녀에게 양반의 위선과 서민의 성실이 유전되었다. 그녀는 본처가 갖는 정렬( 貞 烈 )과 기첩( 妓 妾 )이 갖는 음탕성을 한 몸에 종합하여 지녔다. 고 하여, 춘향의 음탕성을 지적했다. 1춘향이는 양반과 천민이라는 불공정한 신분사회 구조에 과감히 도전하여 꿈을 성취한 진보적 이고 개혁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방법은 문제가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면과 품행이 바르지 못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천민은 양반과 결혼할 수 없는 불공정한 신분사회의 벽을 깨기 위해 발상을 전환했다. 이도령이 광한루에 놀러온다는 정보를 비서인 향단이로부터 입 수한 후, 그네를 힘껏 밀게 하여, 속치마가 뒤집히게 하고 버선 위의 종아리를 노출시켜 이도령을 유혹했다. 방자가 이도령이 오란다고 하자, 춘향은 안수해( 雁 隨 海 : 기러기는 바다를 따르고), 접 수화( 蝶 隨 花 : 나비는 꽃을 따르고), 해수혈 ( 蟹 隨 穴 : 게는 구멍을 따른다)이란 말로 유혹하고 떠 난다. 춘향은 월장한 이몽룡을 만나자 마자 바로 업고 놀은 불량소녀이다. 16세는 중3이나 고1 의 나이이다. 효경 은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시집 장가가면 야합이다 ( 不 告 而 娶, 野 合 也 )라 고 했다. 이도령과 야합한 춘향은 요조숙녀가 아니고, 불량소녀이다. 그러나 춘향은 불공정한 신분 사회의 낡은 벽을 깨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진보적인 여성이다(재해석일 뿐 춘향은 열녀임). 2이도령은 미성년자인 학생신분으로 A연애할 때 관용차( 馬 )를 타고 갔고, B도둑놈처럼 춘향 이 집을 월장했고 C춘향을 업고 놀은 비행청소년이었다. D공직자가 된 후에도 공정사회에 반( 反 ) 하는 법집행을 했다. 암행어사가 되자마자 제일 먼저 남원으로 달려가 마패를 꺼내 애인 춘향을 구출 했다. 춘향이보다 더 고통을 받는 백성의 구출과 변학도 보다 나쁜 탐관오리의 처벌을 외면 했다. 춘향이가 애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애인이 아니었다면 그를 구출하는 것은 정당한 법집 행이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공권력인 마패를 이용해 애인을 구출하여 공정사회 구현에 역 행한 불량공무원이다. 이도령은 공권력을 사적으로 남용 한 불량공무원인 만큼, 형법 제123조에 의거 직권남용죄 로 처벌받아야 한다. 3변학도는 남원에 부임하자마자 기생점고 부터 한 불량공무원이다. 공정사회 구현에 앞장서야 할 목민관이 사욕을 채우기 위해 춘향이를 구속했다. 그러나 이도령을 업고 놀며 정을 통한 춘 향이를 수청 들라 한 것은, 월장한 불량소년과 합방하고 정을 통하면 안 된다는 것을 교육시킨 것 으로 볼 수도 있다. 춘향을 구속한 것은 청소년들의 풍기문란을 단번에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춘향이가 구속되자 여학생들은 정신을 차리고 TOEIC TOEFL TEPS 공부에 열 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부문만 보면 변학도는 청소년 선도위원이자 성( 性 )교육자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재해석일 뿐 변학도는 탐관오리임). 셋째, 흥부전 이다. 흥부전 의 교훈은 권선징악 및 형제간의 우애에 있다. 흥부는 선( 善 ) 하고 놀부는 나쁜 형으로 악( 惡 )하다는 기존의 해석이 만고불변일 수 없다. 1흥부가 제비새끼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 준 것은 인성( 人 性 )의 발로이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 은 DAN의 하나인 측은지심에서 나온 것일 뿐 대서특필할 만한 큰 선행 은 아니다. 우리는 다리 가 부러진 제비를 보면 치료해주고, 농약이나 덫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야생동물을 구출해주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먹이를 산에다 가져다 놓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새끼 제비 다리를 고쳐 준 것은 우리의 보편적 착한 인성의 결과이다. - 3 -

221C는 무한경쟁사회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다. 고금을 막론하고 무능력한 자는 가난하다. 흥부의 능력은 자식 많이 낳는 재능과, 방 뜯는데 조역군, 담 쌓는데 조역군, 비 오는 날 멍석 걷기 등이다. 전문성이 결여된 필부( 匹 夫 )에 불과할 뿐, 가난을 능동적으로 극 복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그는 무능력자였기에 가난했다. 3부창부수라고 흥부 마누라 역시 자식 잘 낳는 재주와 추운 날 김장하기, 오뉴월 김매기, 혼대사에 음식하기 등으로 평범한 아낙네이다. 전문성이 없어 가난했다. 4흥부가 낳은 자식의 숫자는 판본( 板 本 )에 따라 각기 다른데 수다한 자식들, 아들만 28명, 반육갑, 설흔 두엇 이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식을 32명이나 낳은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흥부는 가장( 家 長 )의 5대 의무인 A의( 衣 ), B식( 食 ), C주( 住 ), D교육, E자녀의 결혼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다. 흥부는 처자식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고 자식 교육을 시키지 않은 무능한 가장으로 형법 제 271조에 따라 처자식 유기( 遺 棄 )와 학대죄 (존비속학대죄)로 구속 처벌해야할 대상이다. 5흥부는 국민의 4대의무인 신성한 근로의무와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가난을 극복하고자 땀 흘려 일을 안했다.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 덕택에 큰 부자가 된 후, 엄청난 불로소득을 국세청에 자진신고 안했고, 형 놀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놀부가 소문을 듣고 찾아가 화초장 을 짊어지고 온 것 하나만 보아도 그의 잘못된 인간성을 알 수 있다. 세금을 포탈한 흥부는 공정사회 구현에 역행한 인물이다(재해석일 뿐 흥부는 착함). 한편 놀부는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나, 생각을 바꾸면 평가를 달리 할 수 있을 것이다. 1놀부가 흥부에게 쌀 한 가마니를 주면, 흥부 내외는 이 쌀을 먹고 기운을 차려서 여 10개월 후에 1명을 낳으면 35명이 되고, 쌍둥이를 낳으면 36명이 되기 때문에 더욱더 가난하게 될 수밖 에 없다. 결과적으로 놀부는 흥부의 자활능력과 독립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일부러 양식을 주지 않 은 것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2놀부는 남을 괴롭히는 심술 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의 심술은 초상난데 노래하 기, 패는 곡식 모가지 뽑기, 잠든 놈에 뜸질하기 등 150가지나 된다. 놀부는 역설적으로 심술 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이자, 창의적이고 독보적인 인간이다. 심술에 관한한 기네스북에 오를 만 한 인물이다(재해석일 뿐 놀부는 나쁜 인간임). 넷째, 심청전 이다. 심청을 효녀로만 국한하지 말자. 발상을 전환하여 조명해 보자. 1개천에 빠진 심봉사를 구해준 몽은사 화주승은 좋은 일을 했다. 그러나 가난하여 처지가 뻔한 심봉사에게 쌀 3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꼬여 심청을 인당수에 죽게 한 사기꾼이다. 화주승은 심봉사와 공정한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사기 계약을 했다. 2심청은 부친이 눈을 뜨려는 욕심 때문에 공양미 3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 희생양이 다. 후에 연꽃이 되고, 환생하여 황후가 된 후, 도화동에 사는 아버지 심학규( 沈 學 奎 )를 찾아오라고 비서에게 지시하지 않았다. 요즈음 같으면 도화동의 심봉사를 청와대로 모셔오는데 KTX를 이용하 면 한 나절이면 충분하다. 아버지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국고를 들여 전국의 맹인들을 대궐로 초대 하여, 아버지인가 확인하는 척하면서 일일이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격려했고 대궐의 곳곳을 구 경(?) 시켜주면서 넓은 가슴으로 보듬었다. 심청은 맹인 복지정책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실천한 훌 륭한 장애복지 전문가이다. 만일 보건복지부 장관 적격자를 소설 속의 인물 중에서 찾는다면 심청 이가 단연 0순위일 것이다. 3한편으로 심청은 효성으로 아버지를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장님들을 일시에 두 눈을 뜨게 한 - 4 -

만큼 안과 전문의이자 천하의 명의( 名 醫 )이기도 하다. 이처럼 발상을 전환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우리는 박제된 틀과 낡은 사고를 버리고 발상을 전환하여 공정한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공직자는 구각( 舊 殼 )을 벗고 발상을 전환하여 공정한 사회 를 구현하고 건강한 조국을 건설하는데 향도( 嚮 導 )가 되어야 한다. Ⅲ. 자랑스러운 한국의 역사 우리 대한민국은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이다. 역사학계의 보고에 의하면 고조선부터 1950년 6 25때 중공군이 남침한 것까지, 한반도가 외침( 外 侵 )을 당한 횟수가 무려 931회라고 한다. 우리 선 조들은 931회의 숱한 외침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조국 산하를 물려주었다. 우리만 살다간 조국이 아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무가 있다. 1948년 8월 15일 건국한 우리 대한민국은 금년(2013)이 건국한지 66년이 된다. 우리는 남북분 단의 아픔 속에서도 1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2국력을 세계 10위권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1961년에 남한은 1인당 소득이 89$로 125개 국가 중 101번째 나라였고, 북한은 329$로 세계 50위였다. 60여년 만에 1민주화를 이루고, 2경제기적을 이룬 국가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1948년 1900만 달러였던 수출 규모는 2012년에 5,482억 달러로 2만 9천배 증가했다. 무역 1조 달러 클럽에 2년 연속 가입한 9번째 국가로 이태리를 제치고 무역 8강이 된 자랑스러운 우리 대 한민국이다. 그러나 이런 밝은 측면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면도 없지 않다. 독일 베르린에 본부를 둔 부패감 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국가별 청렴도, 즉 부패인식지수(CPI Corruption Perceptions Index) 순위를 보면, 한국은 2007년 43위, 2008년 40위(10점 만점에 5.6점), 2009년 39위(5.5점), 2010년에도 180개국 중 39위(5.4점), 2011년 183개국 중 43등(5.4점), 2012년에는 176개국 중 45위(56점)를 하여 2010년 대비 6단계나 하락 했다. 국력이 세계 10위권인데 청렴도는 40위권인 만큼 청렴도를 국력의 수준인 10위 정도로 높 여야 한다. 청렴도를 굳이 경제수준에 꼭 맞춰야 하는가? 청렴도가 1등이 되면 어디가 덧나는 것 은 아니다. 우리만 살다갈 조국이 아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살아갈 조국이다. 클린한 대한민국, 정 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청렴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미래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세우면 길 게는 1천년이고 작게는 5백년을 존속시켰다. 신라 992년, 고구려 705년, 백제 678년, 고려 475년, 조선 519년의 역사가 있다. 5천년 역사상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을 하지 않은 평화를 사랑하 는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인류 역사상 천년왕국을 세운 나라는 992년의 신라(B.C.57 A.D.935)와 1,123년간 존속한 동 로마 비잔틴제국(330 1453)뿐이다. 조상들이 이처럼 장구한 세월동안 나라를 존속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발상을 전환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과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국 역대왕조 중에서 3백년 이상을 존속한 국가는 811년 의 주나라와, 407년의 한( 前 漢 + 後 漢 ) 나라와, 320년의 송(남송, 북송)나라뿐이다. 진시황의 진나라는 만리장성을 넘어 온 외국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로 40년 만 - 5 -

에 멸망했다. 진나라는 6국을 통일한지 15년 만에 멸망했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 淸 )나라는 부패로 1911년 10월 10일 손문( 孫 文 )의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역대 왕조는 모두 부패로 멸망했 다. 부패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나라가 약하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제나라 역사까지 빼앗긴다. 중국은 천하의 중심 국가이 고 주변의 국가들은 모두 오랑캐라는 오만한 중화사상( 中 華 思 想 )과 무례한 역사패권주의( 歷 史 覇 權 主 義 )에 빠진 나머지 동북공정( 東 北 工 程 )을 통하여, 고구려 705년의 역사를 고대중국의 지방민족정 권으로 주장하고 있다. < 표 1 > 한 국 과 중 국 역 대 왕 조 존 속 기 간 한 국 중 국 국명 존속기간 국명 존속기간 국명 존속기간 국명 존속기간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 일제침 략시기 미군정 대한 민국 992년 (BC 57 AD 935) 705년 (BC 37 AD 668) 678년 (BC 18 AD 660) 475년 (918 1392) 519년 (1392 1910) 36년 (1910 1945) 3년 (1945 1948) 66년 (1948 주( 周 ) 진( 秦 ) 한( 漢 ) ( 前 漢 ) 신( 新 ) 후한 ( 後 漢 ) 삼국 ( 三 國 ) 서진 ( 西 晉 ) 811년 (BC 1066 BC 256) 40년 (BC 246 BC 207) 211년 (BC 202 AD 8) 19년 (AD 8 27) 196년 (25 220) 60년 (220 280) 52년 (265 316) 동진 ( 東 晋 ) 오호 ( 五 胡 )16국 남북조( 南 北 朝 )(9개국) 수( 隋 ) 당( 唐 ) 오대( 五 代 ) 10국(15개국) 송( 宋 ) (남송,북송) 103년 (317 420) 140년 (304 444) 169년 (420 589) 38년 (581 618) 290년 (618 907) 78년 (902 980) 320년 (960 1279) 요( 遼 ) 금( 金 ) 서하 ( 西 夏 ) 원( 元 ) 명( 明 ) 청( 淸 ) 219년 (907 1125) 120년 (1115 1234) 195년 (1032 1227) 163년 (1206 1368) 294년 (1368 1662) 297년 (1616 1911) 신해혁명1911.10.10 중화민국 중국 1912 1949 백보를 양보하여 중국의 주장대로 고구려가 당나라 지방정권이었다면, 그 기간은 50년에 불과하 다. 즉 당나라는 618년에 건국했고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다. 고구려는 고대중국의 지방민족정 권이 아니라 중국과 대등한 황제의 나라였다. 고구려는 신생( 新 生 ) 당나라 존립에 위협적인 국가였 기에 당 태종이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당 태종은 처참하게 패했다. 우리는 고구려가 기원전 37년부터 서기 668년까지 705년간 존속한 이 기간에, 중국 대륙에는 35개 나라가 세워졌다가 멸망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중국은 고구려가 705년간 존속하는 동안 에 중국에는 한( 漢 ), 신( 新 ), 후한( 後 漢 ), 삼국( 三 國 ), 서진( 西 晉 ), 동진( 東 晋 ), 오호( 五 胡 )16국, 남북 조( 南 北 朝 ) 9개국, 수( 隋 ) 등 명멸( 明 滅 )한 35개 나라가 과연 고구려의 종주국이었던가를 대답해야 한다. 고구려는 중국 역대왕조가 두려워한 대륙의 강성한 황제의 나라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다. 패자는 말이 없다. 조선왕조는 1910년 8월 29일 519년의 역사를 종언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금년(2013)이 - 6 -

경술국치( 庚 戌 國 恥 ) 103주년이다. 생각해보자. 조선이 멸망한 모든 책임이 매국노 이완용( 李 完 用, 1858 1926) 한 사람에게만 있고, 당시 임금과 정승 판서 및 관리들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직 자를 뇌물로 부패시킨 이들과, 당시 2천만 백성들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느냐는 점이다. 망국의 모 든 책임을 매국노 이완용 한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비겁하다. 당시 무능한 국왕과 부패한 지도 층과 탐관오리로 인해 망국의 길을 걸었지만, 백성들도 망국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보았듯이 클린해야 미래가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 管 仲 )은 국가 를 유지하는 4대강령( 四 維 )이 있다고 했다. 나라에는 4대강령이 있다.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傾 ), 두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위태롭고( 危 ), 세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覆 ), 네 가지가 끊어지면 나라가 멸망( 滅 ) 한다. 기울어진 것은 바로 잡을 수 있고( 正 ),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安 ) 수 있으며, 뒤집어진 것은 일으킬( 起 ) 수 있지만, 나라가 망하면 다시 일으킬 수 없다.( 國 有 四 維, 一 維 絕 則 傾, 二 維 絕 則 危, 三 維 絕 則 覆, 四 維 絕 則 滅, 傾, 可 正 也, 危, 可 安 也, 覆, 可 起 也, 滅, 不 可 復 錯 也.) 무엇을 4대 강령이라고 하는가? 첫째 예( 禮 ), 둘째 의( 義 ), 셋째 염( 廉 ), 넷째 치( 恥 )이다. 예 ( 禮 )란 절도를 넘지 않는 것( 不 踰 節 )이고, 의( 義 )란 스스로 나서지 않는 것이고( 不 自 進 : 벼슬하 기 위해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는 안 됨), 염( 廉 )은 악을 감추지 않는 것이고( 不 蔽 惡 ), 치( 恥 )는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 不 從 枉 )이다. 그러므로 절도를 지키면 윗사람의 자리가 평안하고, 스스로 나서지 아니하면 백성들 사이에 교활함과 속임이 없어지고, 악을 감추지 않으면 행실이 저절로 온전해지며,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아니하면 사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何 謂 四 維, 一 曰 禮, 二 曰 義, 三 曰 廉, 四 曰 恥. 禮, 不 踰 節, 義, 不 自 進, 廉, 不 蔽 惡, 恥, 不 從 枉. 故 不 踰 節, 則 上 位 安, 不 自 進, 則 民 無 巧 詐. 不 蔽 惡, 則 行 自 全, 不 從 枉, 則 邪 事 不 生.) ( 관자 ( 管 子 ) 목민편 ( 牧 民 篇 )) 예의염치 ( 禮 義 廉 恥 )가 국가를 지탱하는 4대강령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예의염치의 회 복 이 매우 시급하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 많아야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계승 발전시켜 대한민국을 6백년, 6천년, 6만년 이상 수수만년 영 구토록 존속시켜야할 책무가 있다. 우리만 살다갈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는 물론 후손들이 정의 가 강물처럼 흐르는 조국에서 자자손손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예의염치를 회복해야 한다. 나만 청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클린(Clean)해야 한다. 또한 우리 후손들을 청렴한 사람으로 키 워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Ⅳ. 다산의 목민사상과 업적 금년(2013)은 다산( 茶 山 ) 정약용( 丁 若 鏞, 1762 1836)이 탄신한지 251주년이 되고, 운명한지는 177주년이 되며, 1818년 봄 다산초당( 茶 山 草 堂 )에서 완성한 목민심서 (48권)가 세상에 나온 지 195주년이 된다. 독일에 괴테((Johann Wolfgang Goethe, 1749 1832)가 있다면, 조선왕조에는 다산 정약용이 있다. 다산은 괴테보다 13년 늦게 태어났다. UNESCO는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와 일치하는 전 세계 역사적 사건 또 - 7 -

는 명사의 기념일을 유네스코 연관 기념행사로 선정하여 세계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유네스 코는 2011년 10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한 제36차 총회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2013 동 의보감 발간 400주년(2013) 과 정약용 탄생 250주년(2012) 이 2012 2013 유네스코 연관 기념 행사 로 선정했다. 2012년 작년에 다산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국제학술대회 등 많은 행사를 통하여 다산의 위대한 업적을 조명했다. 다산은 18년간 유배를 살면서 좌절하지 않고 조선을 새롭게 개혁하려는 꿈을 목민심서 와 경세유표 와 흠흠신서 등에서 밝혔다. 또한 유배의 역경 속에서도 제자를 양성한 교육자이 다.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하여 우리나라 5천년 지성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위대한 선명자( 善 鳴 者 ) 이다. 그 위대한 선명( 善 鳴 )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승 발전시켜야 할 과제이다. 1. 다산의 목민사상 다산은 조선은 공직자가 국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공직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병 든 나라라고 했다. 그는 귀양이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고난에 찬 삶을 살면서도 우국의 일념으로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고자 유배지에서 목민심서 를 집필했다. 다산은 원목 ( 原 牧 )에서, 목민관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생 존하는 것인가? 백성이 곡식과 베( 布 )를 바쳐서 목자를 섬기며 백성이 수레와 말과 종복을 내어서 목민관을 맞고 보내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목민관을 살찌게 하니 백성이 목민관을 위하여 생존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아니다. 목민관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牧, 爲 民 有 也 ) 라고 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준엄한 논리이다. 정치사회 진 단 < 표 2 > 다 산 의 개 혁 사 상 과 꿈 或 生 而 致 死 之 亦 死 而 致 生 之 民, 以 土 爲 田 吏, 以 民 爲 田 공직사회 진 단 개혁안 (처방전) 以 尊 國 法 以 重 民 生 牧, 爲 民 有 也 개혁안 (처방전) 다산의 꿈 新 我 之 舊 邦 新 朝 鮮 創 造 다산의 꿈 澤 萬 民 育 萬 物 다산은 18년간 고난에 찬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민초( 民 草 )들이 겪는 고초를 자아의 것으로 동 일시하면서 낡고 병든 나라를 개혁하여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 일생동안 치열하게 선명했다. 그 는 18C 후반과 19C 초반의 정치사회를 살려야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고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 ( 或 生 而 致 死 之, 亦 死 而 致 生 之, 尙 恬 焉 安 焉 )고 통탄했 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를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 8 -

것인데 이를 어찌 충신과 지사( 志 士 )가 팔짱끼고 방관할 수 있겠느냐. 고 개혁의지를 밝혔다. 또한 공직사회를 백성들은 땅으로 농토를 삼는데 관리들은 백성들로 전답을 삼는다( 民 以 土 爲 田, 吏 以 民 爲 田 ). 백성의 껍질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으로써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수확하는 일을 삼는다. ( 剝 膚 槌 髓, 以 爲 耕 耨, 頭 會 箕 斂, 以 爲 刈 穫 )고 진단했다. 부패한 정치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법이 존중되고 백성을 중하게 여겨야 한 다. ( 以 尊 國 法 以 重 民 生 )고 정조( 正 祖 )에게 건의했고, 공직사회를 개혁하여 공직자는 백성을 위해 서 존재하는 ( 牧 爲 民 有 也 )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산의 꿈은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개 혁 하는 것 ( 新 我 之 舊 邦 )으로서 요즈음 말로 신조선 창조 이다. 그의 꿈은 오래된 조선을 새롭게 개혁 하여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육성하는 것 ( 澤 萬 民 育 萬 物 )이다. 다산은 유배 죄인이 라서 개혁을 주도할 수도, 청사진을 임금께 올릴 수도 없었다. 택만민 육만물 의 꿈을 실현코자 발상을 전환하여 차선책으로 마음속에 있는 개혁안을 저서인 여유당전서 에 남겼다. 목민심 서 를 비롯한 일표이서( 一 表 二 書 ) 등 542권의 여유당전서 는 병든 조선왕조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낡은 조선은 그의 선명을 수용하지 않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다산의 사상을 요약 정리한다. 첫째, 정치사상.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자 우리 백성들이 고르게 살도록 해 주는 것 ( 政 也 者, 正 也. 均 吾 民 也 )이라 했다. 주권재민의 사상을 가졌던 그는 천자( 天 子 )도 민의( 民 意 )에 의해 상향식 으로 추대하는 것이라 하여 백성에 의한 정체(Government by the people)를 주창했고, 황제도 민 의에 반하면 갈아치울 수 있다는 정치계약설을 전개했다. 둘째, 법사상. 법은 백성을 위한 법 ( 爲 民 之 法 )이어야 한다 정의하고, 예법일치( 禮 法 一 致 )와 시 의변통론( 時 宜 變 通 論 )과 죄형법정주의를 주장했다. 셋째, 경제사상. 백성을 부유케 하는 것이 우선 ( 民 富 于 先 )이라 했다. 경자유전( 耕 者 有 田 )과 지 주제철폐, 사족( 士 族 )의 생산자화, 근로부국론, 사농일치( 士 農 一 致 )를 주장했다. 넷째, 농업사상. 중농주의( 重 農 主 義 )와 삼농주의( 三 農 主 義 )를 주장했다. 다산은 황해도 곡산도호 부사 재직(37세, 1798)에 상소한 응지논농정소 ( 應 旨 論 農 政 疏 )에서, 농민이 가난한 이유가, 농 사의 이치는 지극히 정밀한 것인데 거칠고 차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거칠고 차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고는 많아도 이익이 적으며 2수고는 많아도 이익이 적으므로 농업을 하는 자가 날로 신분이 낮아지고 3날로 신분이 낮아지므로 더욱 거칠고 차분하지 못하니, 반복하면서 서로 인연하여 농정이 소홀해 졌다( 大 抵 農 理 至 精, 爲 之 以 麤. 爲 之 以 麤, 故 勞 多 而 利 寡. 勞 多 而 利 寡, 故 業 者 日 卑. 業 者 日 卑, 故 爲 之 益 麤. 徇 環 相 因, 農 政 疏 矣 )고 했다. 이어서 농촌부흥책인 3농주의를 제시 했다. 1 편농( 便 農 )이니 농사를 편하게 질수 있게 하고( 一 曰 便 農, 將 以 佚 之 也 ) 2 후농( 厚 農 )이니 농민들에게 이익이 나게 하는 것이며( 二 曰 厚 農, 將 以 利 之 也 ) 3 상농( 上 農 )이니 농민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三 曰 上 農, 將 以 尊 之 也 ) 이 1편농( 便 農 ), 2후농( 厚 農 ), 3상농( 上 農 )의 3농주의는 시공을 초월하여 농정의 근간이 된다. 다섯째, 교육사상. 선교육 후형벌론 ( 先 敎 育 後 刑 罰 論 )과 천재와 수재의 조기교육론 을 주장했 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형벌을 가하는 것은 백성을 속이는 것이라 했다. 고을에 천재와 수재가 - 9 -

있으면, 목민관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올 때 데리고 와서 교육시켜 큰 인물로 키워 국가에 바쳐 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유배 18년 동안에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배지에서 서간과 가계( 家 誡 )를 통해 자식들을 원격 교육했고, 또한 제자를 양성하였고 제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하여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여섯째, 문학사상. 다산은 문학도 사회를 바로 잡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광제일세론( 匡 濟 一 世 論 ) 을 전개했다. 다산은 71세(1832) 때에 문학 사대주의를 거부하고, 자신은 조선 사람이기에 즐거이 조선시를 쓴다( 我 是 朝 鮮 人, 甘 作 朝 鮮 詩 )고 하여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그는 오랜 세월 시를 쓰면 서 느낀 결론으로 다산은 다산의 시를 쓴다 고 선언했다. 이미 중국적 아류(Epigonen)의 문학사 대주의를 버리고 조선시를 썼다. 다산의 사상은 인간을 향한 사랑, 즉 휴머니즘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2. 다산의 업적 첫째, 다산은 발상의 전환으로 조선후기 실학( 實 學 )을 완성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목민심서 를 저술한 목적은 삼정의 문란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과 아픔을 광정( 匡 正 )하기 위 해서였다. 광정( 匡 正 )의 첩경은 목민관에 있다 판단하고 이들에게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을 요구한 것이 바로 목민심서 이다. 다산은 이미 30대에 발상의 전환으로 신조선을 건설하는데 기 여했다. 다산이 설계 제작한 거중기( 擧 重 機 )이다. 31세 때(1792년) 정조대왕의 명을 받고 수원성제 ( 水 原 城 制 )를 지어 올렸다. 다산의 거중기는 40근의 힘으로 25,000근의 돌을 들어올렸다( 以 四 十 斤 之 力, 能 動 二 萬 五 千 斤 之 重 ). 이 거중기는 최 첨단 건설장비로 수원화성 1공사의 기간을 단축시키고, 2공사비용을 절감시키고, 3공사비용을 절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796년에 화성이 완공되자, 정조는 거중기를 써서 4만냥을 절약했다면서 공적을 치하했다( 鏞 乃 作 起 重 架 圖 說 以 進 之, 滑 車 鼓 輪, 能 用 小 力 轉 大 重, 城 役 旣 畢. 上 曰 幸 用 起 重 架, 省 費 錢 四 萬 兩 矣 ). 총공 사비 873,520냥이 소요된 화성 공사에서, 4만냥은 4.6%에 이르는 큰 금액이다. 수원 화성은 1997 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는 다산의 위대함이 재차 입증된 것이다. 이처 럼 발상을 전환하면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둘째, 다산은 지방행정의 달인이자 목민관의 전범( 典 範 )이었다. 그가 33세(1794) 때 경기도 암 행어사가 되어 적성 마전 연천 삭령 지방을 염찰( 廉 察 )하고,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애련의 눈물을 지었으며, 서용보( 徐 龍 輔 ) 등 세력가들의 횡포를 척결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어사의 임무를 마치고 복명( 復 命 )한 상소에서 국법이 존중되고 백성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 以 重 民 生 以 尊 國 法 )고 정조에게 건의했다. 또한 36세(1797) 때 황해도 곡산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재임 2년간 10대 치적을 남겼다. 1포척( 布 尺 )을 바로잡아 중간협잡 방지. 2물가 안정책으로 백성들의 고통 제거. 3농가 마다 송아지를 기르게 한 축산장려 정책실시. 4창곡( 倉 穀 )의 이용을 고르게 하기 위해 일시에 수송 분배. 5호적 경계( 經 界 ) 첨정( 簽 丁 ) 등 사무정리. 6호포( 戶 布 ) 남용 시정. 7천연두 치료책인 마과회통 ( 麻 科 會 通 )을 저술. 8청나라 사신 영접(외교업무 수행). 9도내 수령들의 - 10 -

장부( 臧 否, 善 惡 )의 염찰. 10도내의 의옥( 疑 獄 )을 심리 판결. 그의 내면세계에 애민정신 휴머니즘이 있었기에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다산은 지방행정의 달인이자 목민관의 전범( 典 範 )이었다. 곡산부사의 경험은 후일 목민심서 와 흠흠신서 ( 欽 欽 新 書 )를 저술하는 기초가 되었다. 셋째, 다산은 도덕적 완전주의자(Moral perfectionist) 이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23세, 1784) 쓴 시 남과탄 ( 南 瓜 嘆 )에는 도덕성의 일면이 나타나 있다. 성균관에서 장마로 인하여 열흘 만에 집에 와 보니, 식량이 떨어진 지 오래되어 어린 여종이 이웃집 호박을 훔쳐서 죽을 끓였다가 부인 에게 회초리를 맞고 있었다. 남과탄 을 보자. 궂은비 열흘 만에 여기저기 길 끊기고 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 苦 雨 一 旬 徑 路 滅 城 中 僻 巷 煙 火 絶 태학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 문 안에 들어서자 시끌시끌 야단법석 我 從 太 學 歸 視 家 入 門 譁 然 有 饒 舌 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니거리 떨어져서 호박으로 죽을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 聞 說 罌 空 已 數 日 南 瓜 鬻 取 充 哺 歠 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었네 早 瓜 摘 盡 當 奈 何 晩 花 未 落 子 未 結 항아리만큼 커다란 옆집 밭의 호박 보고 어린 여종이 남몰래 그걸 훔쳐 가져와서 隣 圃 瓜 肥 大 如 瓨 小 婢 潛 窺 行 鼠 竊 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맞는 야단 누가 네게 훔치랬냐 회초리 꾸중 호되네 歸 來 效 忠 反 逢 怒 孰 敎 汝 竊 箠 罵 切 아아 죄 없는 아이 꾸짖지 마오 내 호박죽 먹을 것이니 두말 마시오 嗚 呼 無 罪 且 莫 嗔 我 喫 此 瓜 休 再 說 옆집 주인 노인께 사실대로 말하리니 오릉중자 작은 청렴 달갑지 않다 爲 我 磊 落 告 圃 翁 於 陵 小 廉 吾 不 屑 이 몸도 때 만나면 출세길 열리리라 안되면 산에 가서 금광이나 파야지 會 有 長 風 吹 羽 翮 不 然 去 鑿 生 金 穴 만 권 서적 읽었으나 어찌 아내가 배부르리 破 書 萬 卷 妻 何 飽 - 11 -

밭 두어 이랑 있었던들 여종은 깨끗했을 텐데 有 田 二 頃 婢 乃 潔 이 시에는 다산의 부인 풍산홍씨 홍혜완의 도덕성과 결벽성과, 가난한 청년 다산의 고뇌와 지적 갈등과 정직함이 형상화되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남에게 말하거나 이 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다산은 그렇지 않았다. 훔친 호박으로 끓인 죽 을 달게 먹은 다음 호박 주인에게 사실대로 말할 것이니 여종 아이를 꾸짖지 말라고 했다. 일만 권의 책을 독파했으나 그것으로는 사랑하는 아내를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음을 괴로워하며 밭이 두어 이랑만 있었던들 어린 여종이 도둑질을 하지 않아 깨끗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우리는 이 시에 숨겨져 있는 부인 홍혜완( 洪 惠 婉, 1761 1838)의 깨끗한 인품을 읽을 수 있다. 당시 부인은 24세였고 작년에 태어난 장남 정학연(1783년 9월 12일생)이 아직 돌도 안 된 아기였 다. 식량이 떨어지자 어린 여종이 굶고 있는 주인마님과 젖먹이 아기에게 충성하려고 이웃집 호박 을 훔쳐다가 죽을 끓여 드렸으나 부인은 먹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호박을 도둑질을 하랬느냐고 어린 여종에게 회초리를 쳤다. 대단한 부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부인의 고고한 인품과 청렴성 이 있었기에 다산은 18년의 엄혹한 유배를 겪을 수가 있었고, 이런 부인의 훌륭한 내조가 있었기 에 다산은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 다산의 부인 홍혜완은 요즘말로 내조의 여왕, 내조의 달인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젊은 날의 초상을 솔직하게 시로 형상화한 다산의 용기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다산 시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바로 티끌만한 가식이 없고 가을 하늘과 같은 청징( 淸 澄 )함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숨김없는 고백을 통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위대한 학자이기 전 에 인간 다산의 진솔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30세(1791) 때인 4월에 3남 구장( 懼 牂 )이 세살로 요절하자,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아들을 잃는 재앙을 받았다고 시 억여행 ( 憶 汝 行 )에서 자책했다. 네가 병마와 싸우며 고통 받을 적에 애비는 즐겁게 질탕히 놀았느니라 曩 汝 苦 痛 楚 我 方 愉 佚 宕 배타고 북치며 물놀이 하고 기생 이끌고 홍루에서 놀았노라 撾 敲 綠 波 中 攜 妓 紅 樓 上 방탕하였으니 재앙 받는 것 마땅한 일 어찌 너를 잃는 벌을 면할 수 있겠는가 志 荒 宜 受 殃 惡 能 免 懲 創 어린 아들이 병마와 싸우면서 신음하고 있는 줄 모르고 진주( 晋 州 ) 남강에서 기생들과 놀았기 때문에, 하늘이 노해 아들이 죽는 벌을 내렸다고 자책했다. 기생들과 놀았다고 하늘이 어린 자식을 죽게 한다면, 이 세상 아버지 중에서 몇 명이나 자식을 키울지 모르겠다. 다산은 49세(1810) 때인 11월 6일 밤 귀양지 다산초당에서 꿈에 한 미인이 나타나 자신을 유 혹하자, 처음에는 마음의 동요가 있었으나 바로 물리치고, 시 한 수를 지어주고 고이 돌려보냈다. 꿈을 깨고 나서 미녀에게 써준 시를 시집에 기록했다. - 12 -

눈 덮인 산속 깊은 곳에 한 송이 꽃 복숭아꽃과 붉은 비단처럼 아름다워라 雪 山 深 處 一 枝 花 爭 似 緋 桃 護 絳 絲 내 마음 이미 금강석과 쇠가 되었는데 풍로가 있다한들 어찌 내 마음 녹이리오 此 心 已 作 金 剛 鐵 縱 有 風 爐 奈 如 何 다산이 꿈속에서 까지 미인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평상시의 내면세계가 극기와 결백성, 도덕성 으로 항상 무장되어 있었기에 꿈속에서도 도덕적 완전주의를 실천했다. 평소의 삶 과 꿈속의 삶 이 일원적( 一 元 的 ) 이었다. 이러한 도덕적 완전주의를 추구한 삶과 철학이 있었기에 목민심 서 비롯한 542권의 저서에서 개혁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넷째, 다산은 상생( 相 生, Win-Win)의 미학을 추구했다. 두 아들(정학연, 정학유)에게 문학의 사 명은 마음속에 항상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 此 心 常 存, 澤 萬 民 育 萬 物 底 意 思 )고 했다. 다산은 자신의 문학론인 택만민 육만물 ( 澤 萬 民 育 萬 物 )을 봉지 염찰도적성촌사작 ( 奉 旨 廉 察 到 積 城 村 舍 作 ), 기민시 ( 飢 民 詩 ), 애절양 ( 哀 絶 陽 ), 시랑 ( 豺 狼 ), 전간기사 등 많은 우국애민의 사회시에 오롯하게 구현했다. 높은 관리들이 산천 유람을 오면 스님들과 가마를 메는 백성들의 고난에 찬 삶을 시 견여탄 ( 肩 輿 嘆 )에서 핍진하게 형상화했다.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고 가마 메는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네 人 知 坐 輿 樂 不 識 肩 輿 苦 신분의 귀천에 따라 이질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불공정한 사회를 비판했다. 상생의 삶을 추구한 것이다. 다산의 꿈인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모든 사물을 기르려는 마음, 즉 택만민 육만물 ( 澤 萬 民 育 萬 物 )은 바로 국민 행복시대 와 그 의미가 상통한다. 다산은 택만민 육만물 을 실천하였기에 생시는 물론 사후에도 경세적( 經 世 的 )인 학문으로 높은 평가받고 있다. 다산의 사상과 꿈인 택만민 육만물 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실현해야 할 과제이자 지켜야할 아름다운 가치( 價 値 )이다. Ⅴ. 청렴한 공직자의 자세 서양사회를 지탱해온 것이 기사도 정신 이라면, 동양사회를 지탱해온 정신적 근간은 선비정 신 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 士 (사)자는 열 十 (십)자에 한 一 (일)자를 플러스(+)한 자이다. 선비 士 (사)자의 뜻은 十 (십)명이 공부를 해도 한( 一 ) 사람만이 선비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선비는 9명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야 하고( 九 人, 不 言, 言 ) 9명이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하는( 九 人, 不 行, 行 ) 사람인 것이다. 그런 만큼 선비는 도덕적으로 9명보다 우위 ( 優 位 )에 있어야 한다. 그 대쪽 같은 고결한 선비정신이 청백리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청백리는 이 선비정신을 대쪽 같이 지킨 분들이다. 서산선생( 西 山 先 生 )으로 널리 알려진 남송( 南 宋 )의 채원정( 蔡 元 定, 1135 1198, 호 西 山 )은 자 - 13 -

기관리에 엄격하였다. 송사 ( 宋 史 ) 채원정전 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혼자 걸어가도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고 혼자 잠을 자도 이불에게 부끄럽지 않았네 獨 行 不 愧 影 獨 寢 不 愧 衾 채원정은 혼자 걸어가도 제 그림자에게 부끄럽지 않고 혼자 잠을 자도 덮고 있는 이불에게 부끄 럽지 않는 청징( 淸 澄 )한 삶을 살았다. 그는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한다는 군자 신기독 ( 君 子 愼 其 獨 )을 실천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다. 자아관리( 自 我 管 理 ), 자아검속( 自 我 檢 束 )의 중요성 을 말한 것이다. 인생의 승패는 자기관리에 있다. 지도층 인사들의 일언일동( 一 言 一 動 )이 때로는 일파만파를 일으킬 수 있다. 즉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1961년에 발표한 나비효과 (Butterfly effect)를 초래할 수 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는 나비효과 는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세계화시대에서는 더욱 강한 힘을 갖는다. 생선은 꼬리부터 썩지 않고 반드시 머리부터 먼저 썩는 법이다. 백합이 썩으면 잡초 썩는 것보 다 오히려 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고 세익스피어가 말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이 특히 지도층이 클린해야 조국의 미래가 있다. 다산은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50%, 목민이 50%라고 했 다.( 君 子 之 學, 修 身 爲 半, 其 半 牧 民 也.) 여기에서 목민 은 고을 수령( 守 令 )의 직무이다. 다산은 부하 를 통솔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시했다. 부하를 통솔하는 방법은 위엄과 신뢰뿐이다.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신뢰는 성실에서 나오는 것이니, 성실하고도 능히 청렴해야 뭇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다( 馭 衆 之 道, 威 信 而 已. 威 生 於 廉, 信 由 於 忠, 忠 而 能 廉, 斯 可 以 服 衆 矣 ). 청렴해야 위엄을 세울 수 있고 성실해야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수령의 리더 십은 청렴 과 성실 여하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국가사회의 기강이 무너지고 인간악과 사회악이 난무할 때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목민심서 의 중요성과 그 정신의 구현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목민심서 가 공직자의 바이블로 위민행정의 지남( 指 南 )이자 경세학( 經 世 學 )으로서 시공을 초월 하여 촛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 총리 장관 등 고위층이 교체될 때마다 일부 인사들은 목민심서 를 읽지도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서 아래 사람들에게만 읽으라고 했던 것이 과거의 공 직사회였다. 다산은 1818년 봄 유배지 강진에서 완성한 목민심서 의 서문에서, 자신은 목민관이 되고 싶 은 마음은 있으나 유배된 죄인이라서 몸소 실행할 수 없기에 마음속에 있는 것을 책으로 썼기에 목민심서 라고 했다( 其 謂 之 心 書 者, 何. 有 牧 民 之 心, 而 不 可 以 行 於 躬 也, 是 以 名 之 ). 목민심서 는 다산이 경기도 암행어사와 황해도 곡산부사 시절 몸소 실천한 행정 경험과, 삼정의 문란으로 고통 받던 민초(Gassroots)들의 삶을 목격한 바를 토대로 하여 지방행정을 쇄신할 수 있는 마스터 프랜을 완성한 것이다. 풍부한 자료와 예화를 들어 위민행정의 요결( 要 訣 )을 제시한 이 책은 목민관으로 부임하는 것으 - 14 -

로부터 시작하여 해임 이임되어 이삿짐을 꾸리는 것으로 끝난다. 총 12편 72장(편마다 6장)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에서 부임( 赴 任 ) 율기( 律 己 ) 해관( 解 官 )은 수신윤리이고 나머지는 치인윤리( 治 人 倫 理 )이다. 목민심서 의 내용은 인간에 대한 사랑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목민심서 에 내 재된 공직윤리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능력과 분수를 알자. 목민심서 의 첫 줄은 다른 벼슬은 구할 수 있으나 목민관을 하 겠다고 구해서는 안 된다 ( 他 官, 可 求, 牧 民 之 官, 不 可 求 也 ) 이다. 이는 목민관의 책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것과 한 고을을 다스리는 원리는 같기 때문에( 唯 守 令 者, 萬 民 之 宰, 一 日 萬 機, 具 體 而 微, 與 爲 天 下 國 家 者, 大 小 雖 殊, 其 位 實 同, 斯 豈 可 求 者 乎 ) 목민관을 하겠다고 엽관운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보다 벼슬이 크면 눈을 가리게 되어 자신과 국민들을 불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대통령과 군수는 업무량이 다를 뿐 위민행정의 본질은 같다는 것이다. 개 대가리에 관( 冠 ), 거적문에 돌쩌귀 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자가 격 ( 格 )에 맞지 않게 높은 지위에 있을 때 흔히 이 속담을 사용한다. 그렇다. 개 대가리에 관( 冠 ) 을 씌운다고 해서 개가 호랑이로 변하지 않고, 거적문에 돌쩌귀 를 박는다고 거적문이 솟을 대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자질과 능력이 여러 면에서 모자란 자들이 어울리지 않게 높은 자리에 앉게 되 면, 사람 죽는 줄도 모르고 팥죽만 생각 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국가와 국민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역사와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다. 2006년 7월 1일에 취임한 민선 4기 기초단체장 230명 중 97명(42.2%)이 비리 위법으로 재판 에 넘겨졌다. 그리고 2010년 7월 1일 출범한 민선 5기 기초단체장 227명 중 24명이 비리 등으로 중도하차했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처음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17년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시 군 구 단체장은 173명이다. 비리로 128명, 국회의원 등 선거 출마로 33명, 기타 12명이다. 227개 기초자치단체(광역자치단체 제외) 중에서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단체장 은 민선 1기 5명에서, 2기 42명, 3기 43명, 4기 52명으로 늘었다. 5기는 현재까지 31명(13.7%)에 달한다. 지자체장이 3번 이상 중간에 물러나거나 재임 시와 퇴임 후 비리에 얽혀 사법처리된 이른 바 '블랙홀'(사망으로 인한 공석은 제외) 지역도 경기 용인시 시흥시 성남시 등 11곳이다.(조선일보, 민선5기, 1년반 남았는데 비리 낙마 지자체장 벌써 24명, 2012. 11. 8.) < 표 3 > 기 초 자 치 단 체 장 (광 역 자 치 단 체 제 외 )중 도 하 차 이 유 (2 0 1 2.1 1.8.현 재 ) 구분 비리(뇌물) 출마 (국회의원등) 기타(사망) 계 1기 4 1 5 2기 29 8 5 42 3기 28 12 3 43 4기 43 7 2 52 5기 24 6 1 31 계 128 33 12 173 그리고 4년마다 군수선거를 해야 하는데, C군은 18개월 동안 군수선거를 3번 치렀고, 또 다른 - 15 -

C군은 37개월 동안 군수선거를 4번 치렀다. 부정 비리 부패의 극치이자 공직윤리의 실종이 아닐 수 없다. 선거법 위반과 비리 또는 사퇴로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가 선거 비용을 물어내도록 공직선거법을 반듯이 고쳐야 한다. 둘째, 청렴( 淸 廉 )이다. 다산은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 本 務 )이자 모든 선( 善 )의 원천이요 모든 덕 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廉 者, 牧 之 本 務, 萬 善 之 源, 諸 德 之 根, 不 廉 而 能 牧 者, 未 之 有 也 )고 했다. 공자의 논어 를 한 글자로 요약한다면 어질 인 ( 仁 )자 이고, 불경 을 2자로 요약한다면 자비 ( 慈 悲 )이고, 성경 을 한 글자로 요약한다면 사랑 애 ( 愛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목민심서 를 한 글자로 요약한다면 청렴의 렴 ( 廉 ) 자이다. 다산은 조선조에 청백리로 뽑힌 자가 통틀어 110명인데, 태조 이후에 45명, 중종 이후에 37명, 인 조 이후에 28명이라고 했다. 경종 이후로는 청백리 선발마저 끊어지고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백 성은 더욱 곤궁하게 되었으니 한심한 일이라면서, 4백여 년 동안에 벼슬한 자가 천 명이나 만 명 인데 그중에서 청백리로 뽑힌 자가 겨우 여기에 그쳤으니 사대부의 수치라고 한탄했다. 다산은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이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고, 취임시나 이임할 때의 재산이 같으면 훌륭한 목 민관이라고 했으며, 오직 선비가 청렴해야하는 것은 처녀의 순결과 같다 ( 唯 士 之 廉, 猶 女 之 潔 )고 했다. 그리고 공직생활의 3자의 비결은 1청( 淸 ), 2신( 愼 ), 3근( 勤 )이라고 했다. 또한 청백리를 3 등급( 象 山 錄 云, 廉 有 三 等 )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첫째, 최상( 太 上 )의 청백리는 1봉급 이외에는 일체 먹지 않고, 2먹고 남은 것도 집으로 가지 고 가지 않으며, 3벼슬을 그만둘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고 한 필의 말을 타고 집으로 시 원스럽게 가는 것이니, 이것이 옛날에 말하는 청렴한 관리( 廉 吏 )라는 것이다( 太 上, 俸 廩 之 外, 悉 皆 不 食, 其 食 而 餘 者, 亦 不 持 歸, 歸 之 日, 匹 馬 蕭 然, 此 古 之 所 謂 廉 吏 也.). 둘째, 그 다음 청백리는 1봉급 이외에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2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3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것이니 이것이 중고( 中 古 )의 염리( 廉 吏 )라는 것이 다( 其 次, 俸 廩 之 外, 其 名 正 者 食 之, 其 不 正 者 不 食, 其 食 而 餘 者, 輸 之 家, 此 中 古 之 所 謂 廉 吏 也.). 셋째, 최하의 청백리는 1이미 규례( 規 例 )가 있는 것은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지만, 2규례가 없는 것은 죄를 먼저 짓지 않고, 3향임( 鄕 任 )의 자리를 팔지 않으며, 4천재를 입은 전답에 세금을 감하는 재감( 災 減 )을 훔쳐 먹거나 곡식을 번롱하지 않고 5송사( 訟 事 )와 옥사( 獄 事 )를 팔아먹지 않으며 6조세를 더 부과하여 나머지를 착복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 말 하는 염리( 廉 吏 )라는 것이다( 最 下 者, 凡 已 成 規 例 者, 雖 其 名 不 正, 食 之, 其 未 成 規 例 者, 不 爲 禍 首, 不 賣 鄕 賣 任, 不 偸 灾 飜 穀, 不 賣 訟 鬻 獄, 不 加 賦 竊 羡, 此 今 之 所 謂 廉 吏 也.). 다산은 이어서 모든 악을 갖춘 자가 지금 도도한 대세를 이루고 있다. 능히 최상을 하는 것이 진실로 좋지만 능히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오히려 그 다음 것을 해도 좋다. 소위 최하위에 해당하 는 경우에는 옛날에 있어서는 반드시 삶아 죽이는 팽형( 烹 刑 )을 당했을 것이다. 무릇 선을 좋아하 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 諸 惡 悉 備 者, 今 之 滔 滔 者, 皆 是 也. 能 爲 太 上, 固 善 矣. 如 其 不 能, 抑 其 次 可 也, 若 所 謂 最 下 者, 在 古 必 烹, 凡 樂 善 恥 惡 之 人, 必 不 肯 爲 是 也.)라고 했다. - 16 -

당나라 고승인 한산( 寒 山 ) 스님은 시 무제 ( 無 題 )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산과일은 원숭이 너나 따먹고 연못의 물고기는 백로 너나 먹으렴 山 果 獼 猴 摘 池 魚 白 鷺 銜 이 시는 인간들의 탐욕을 꾸짖고 있다. 우리는 탐욕의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아야 당당하고 떳떳 할 수 있다. 자연의 것은 자연에 돌려주는 덕성과 인품을 가진 사람은 꿈속에서도 부정과 불의와 손을 잡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은 상생(Win-Win)해야 한다. 바로 다산의 꿈인 택만민 육만물 ( 澤 萬 民 育 萬 物 )을 실현해야 한다. 미끼 에 초연한 붕어 는 절대로 뜨거운 냄비에 올라타는 일이 없 다. 미끼 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미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꿈을 이룰 수 있고 명예를 지킬 수 있다. 백수( 百 獸 )의 왕인 사자는 굶어죽을지언정 절대로 썩은 고기는 먹지 않는다. 중국에 이런 속담이 있다. 신령스런 용은 맛있는 먹이를 탐내지 않고 기품 있는 봉황은 새장이 예쁘다고 들어가지 않는다 神 龍 不 貪 香 餌 彩 鳳 不 入 雕 籠 그렇다. 신령스런 용은 절대로 맛있는 먹이를 탐하지 않고, 기품 있는 봉황은 새장(감옥)이 아름 답다고 제 발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용과 봉황의 흉내를 내며 거들먹거리며 고고한 체하면서 뒷구멍으로는 독약 묻은 미끼를 먹고 들켜서 감옥으로 직행하는 이들을 수없이 보았다. 자신과 처자식과 부모를 사랑하고, 직장과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절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다산은 11년간 벼슬을 했으나 가난했다. 부인 홍혜완은 양잠( 養 蠶 )을 하였고, 큰아들 정학연( 丁 學 淵 )은 마늘 농사를 지어 이를 팔아 노자로 삼아 강진 유배지로 면회를 갔었다. 둘째 아들 정학유 ( 丁 學 游 )는 아버지가 유배된 지 8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갔었을 만큼 경제적으로 궁핍했다. 다산은 11년간 벼슬했으나 자식들에게 물려줄 전답이 없었다. 다만 근검 ( 勤 儉 ) 2자만을 자식에게 유산 으로 남겼다. 강효석( 姜 斅 錫 )의 전고대방 ( 典 故 大 方 : 1924)을 보면, 조선왕조 519년간 청백리로 선정된 이는 218명이다. 1392년 개국이후 선조(재위 1567 1608) 때 까지 216년간은 전기( 前 期 )로 청백 리는 162명이다. 후기인 1608년 광해군(재위 1608 1623) 이후 1910년 조선이 망할 때까지 303 년간 청백리는 56명에 불과하다. 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가 많았던 조선후기 303년간 청백리가 56명에 불과한 것은 공직사회가 부패했다는 증거이다. 청백리가 적었던 조선후기에 결국 망했다. 송나라 나경륜( 羅 景 綸 )은 사대부가 돈 한 푼을 좋아하면 그의 값어치는 한 푼어치도 못 된다 ( 士 大 夫, 若 愛 一 文, 不 値 一 文 )고 했다. 정암 조광조( 靜 庵 趙 光 祖, 1482 1519)는 중종에게 대개 청렴이란 신하의 분수 안의 일입니 다. 사람이 만일 청렴하지 못하다면 무슨 일인들 잘 하겠습니까? 청렴은 사대부가 항상하는 일이 요, 특이한 행실이 아닙니다 ( 蓋 淸 廉, 乃 其 分 內 事 也. 人 若 不 廉, 則 何 事 可 能 乎. 此 乃 士 大 夫 常 事, 非 卓 異 之 行 也 )라고 했다.( 중종실록, 13년(1518) 1월 18일) 청렴은 사대부가 항상하는 일이지 특이 한 행실이 아니라는 것은 만고의 명언이다. - 17 -

조선조의 청백리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 즉 부자( 父 子 )가 청백리로 선정된 인물은 최유경과 최 사의 부자와, 윤지인과 윤용 부자가 있다. 1최유경( 崔 有 慶, 1343 1413) : 태조 때 청백리. 본관 전주( 全 州 ), 호 죽정( 竹 亭 ), 판한성부사, 시호( 諡 號 ) 평도( 平 度 ). 최사의( 崔 士 儀, 1376 1452) : 세종 때 청백리. 최유경의 아들, 판돈령( 判 敦 寧 ), 시호 양도( 襄 度 ). 2윤지인( 尹 趾 仁, 1656 1718) : 숙종 때 청백리. 본관 파평, 호 양강( 楊 江 ), 병조판서. 윤 용( 尹 容, 1684 1746) : 영조 때 청백리 윤지인의 아들, 형조판서. 조선왕조의 형제 청백리는 허종과 허침, 김전과 김흔, 임호신과 임보신, 홍섬과 홍담이다. 1허 종( 許 琮, 1434 1494) : 성종 때 청백리로 본관은 양천( 陽 川 ), 자 종경( 宗 卿 ), 호 상우당 ( 尙 友 堂 ), 이조판서, 시호 충정( 忠 貞 ). 허 침( 許 琛, 1444 1505) : 성종 때 청백리로 허 종의 동생, 자는 헌지( 獻 之 ), 호 이헌( 頤 軒 ), 좌의정. 시호 문정( 文 貞 ) 2 김 흔( 金 訢, 1448 1492) : 중종 때 청백리. 벼슬은 공조참판, 시호 문광( 文 匡 ). 김 전( 金 詮, 1458 1523) : 중종 때 청백리, 본관 연안( 延 安 ), 자 중륜( 仲 倫 ), 호 나헌( 懶 軒 ), 우의정, 영의정 겸 세자사( 世 子 師 ). 김흔의 동생, 시호 충정( 忠 貞 ). 3임호신( 任 虎 臣, 1506 1556) : 명종 때 청백리, 본관 풍천( 豊 川 ), 호 지족당( 知 足 堂 ), 시호 정 간( 貞 簡 ), 우승지, 도승지, 한성부윤, 말년(1556)에 호조판서로 기용되었으나 병을 이유 로 사직, 살아있는 청백리인 염근리( 廉 謹 吏 )로 인정받은 인물. 임보신( 任 輔 臣,? 1558) : 명종 때 청백리로 임호신 동생, 자 필중( 弼 仲 ). 호 포초( 圃 樵 ), 추 ( 樞 )의 아들. 벼슬은 교리( 校 理 ) 지평( 持 平 ) 등을 거쳐 1554년 장악원정( 掌 樂 院 正 ) 전 라도암행어사, 형조참의. 4홍 섬( 洪 暹, 1504 1585): 명종 때 청백리로 본관은 남양( 南 陽 ), 호 인재( 忍 齋 ), 영의정, 시호 경헌( 景 憲 ). 홍 담( 洪 曇, 1509 1576): 명종 때 청백리로 홍 섬의 동생. 호는 태허( 太 虛 ), 벼슬은 이조판 서, 좌참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형과 아우가 청백리로 선정된 이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만고의 사표가 된 다. 우리는 조상들이 실천한 청백리 정신을 계승발전 시켜야 한다. 셋째, 삼금론( 三 禁 論 ) 이다. 삼금론은 1금주( 禁 酒 ), 2금색( 禁 色 ), 3금황일( 禁 荒 逸 )을 말한다. 목민관은 술을 끊고 여색을 물리쳐서 공순하고 단엄하기를 큰 제사 받들 듯 할 것이요, 감히 놀고 - 18 -

즐김으로서 거칠고 방탕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斷 酒 絶 色, 屛 去 聲 惡, 齊 遫 端 嚴, 如 承 大 祭, 罔 敢 游 豫, 以 荒 以 逸 )고 했다. 금주는 술을 지나치게 탐닉( 耽 溺 )하지 말라는 것으로, 술을 좋아하게 되면 간악 한 백성들이 술로 유혹하여 이권을 챙기려는 음모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즉 특정 한 기호품에 집착하면 완물상지 ( 玩 物 喪 志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유혹의 덫에 걸릴 수 있기에 경 계한 것이다. 금색은 이성관계가 깨끗해야 함을, 금황일은 도를 넘는 거친 행위 및 무사안일주의와 복지부동을 뜻한다. 넷째, 사지론( 四 知 論 ) 이다. 다산은 뇌물을 주고받는 것을 누가 비밀히 하지 않으리오마는 한 밤 중에 한 것도 아침이면 들어난다( 貨 賂 之 行, 誰 不 密 行, 中 夜 所 行, 朝 已 昌 矣 )고 했다. 이 세상에는 비 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감쪽같이 남몰래 행동하더라도 1하느님이 알고( 天 知 ), 2귀신이 알고 ( 神 知 ), 3내가 알고( 我 知 ), 4상대방이 안다( 子 知 )고 했다. 후한( 後 漢 ) 때 양진( 楊 震 )이 형주자사로 재직할 때이다. 왕밀( 王 密 )은 양진으로부터 창읍( 昌 邑 )의 원님을 제수 받고, 밤에 황금 10근을 몸속에 품고 와서 양진에게 내놓으며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양진은 당신이 황금 10근을 나에게 가져온 것을 하늘이 알고, 신 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오. 하니, 왕밀이 부끄럽게 여기고 물 러갔다. 양진이 탁군태수가 되었을 때 누가 그에게 가산을 장만하도록 권했더니, 응하지 않고 말하기를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청백리 자손이라고 일컫게 하여, 이것을 물려주게 되면 역시 후한 것이 아 니겠는가 라고 했다. 이 사지론( 四 知 論 )은 세상에 비밀은 존재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청렴해야 당당할 수 있다. 다섯째, 사외론( 四 畏 論 ) 이다. 다산은 공직생활을 잘할 수 있는 요체는 두려울 외 ( 畏 ) 한 글자 뿐이라고 했다. 사외론은 1외의( 畏 義 ), 2외법( 畏 法 ), 3외상관( 畏 上 官 ), 4외소민( 畏 小 民 )이다. 정 의와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과 백성을 두려워하여 마음에 언제나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으면, 방자 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허물을 적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섯째, 제가( 齊 家 ) 이다. 다산은 한 고을을 다스리려면 먼저 자기 집안부터 다스리라고 했다.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으니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고을을 다스 리겠느냐( 欲 治 其 邑 者, 先 齊 其 家. 治 縣, 如 治 國, 不 能 齊 家, 何 以 治 矣 )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가족관 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무리 청렴하고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수십 년간 했더라도, 가족들이 분수 에 넘치는 행동을 하면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다. 수신( 修 身 )이후에 제가( 齊 家 )하고 제가 이후에 치국( 治 國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포청천( 包 靑 天 )으로 널리 알려진 송나라 포증( 包 拯, 999 1062)은 청백리로 공정사회 구현에 앞장섰던 훌륭한 인물이다. 그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악인들을 작두 로 처단해 황제는 물론 귀신 들도 무서워했다. 그의 유명한 가훈을 보자. 후세 자손들이 벼슬살이 하다가 부정을 범한 자는 집으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되며, 죽은 후 에 선영에 묻힐 수도 없다. 내 뜻을 따르지 않으면 내 자손이 아니다( 後 世 子 孫, 仕 宦, 有 犯 贓 濫 者, 不 得 放 歸 本 家, 亡 歿 之 後, 不 得 葬 於 大 塋 之 中 不 從 吾 志 非 吾 子 孫.). 포청천은 자손들이 부정을 범한 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죽어서도 선영에 묻히지 못하 - 19 -

게 했다. 이 가훈을 동쪽 벽에다 돌로 새겨 놓게 했다. 추상같은 가훈이다. 나 혼자 클린하고 청렴 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도 바르게 키워야 조국의 미래가 있다. 일곱째, 소신( 所 信 ) 이다. 다산은 권문세가, 즉 정치적 실력자를 후하게 섬기지 말라고( 權 門 勢 家, 不 可 以 厚 事 也 )했다. 연산군을 축출하고 중종을 등극시킨(1506년) 일등공신 성희안( 成 希 顔, 1469 1513)이 영의정이 되었을 때이다. 영의정 성희안은 경상도 청송부사인 정붕( 鄭 鵬, 1469 1512)에 게 사신( 私 信 )을 보내 진상품인 꿀과 잣을 보내달라고 했다. 영의정의 편지를 받고, 정붕은 붓을 들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 후 잣나무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벌꿀은 농가 백성들의 벌통 속에 있는데, 수령 된 사람이 이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 松 在 高 峰 頂 上, 蜜 在 村 家 桶 中, 爲 太 守 者, 何 由 得 之 )라고 답신을 보냈다. 정붕은 영의정보다는 청송 백성들의 사유재산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편지를 받은 영의정 성희안은 잘못을 깨닫고 부끄러워 하며 정붕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다( 成 公 愧 謝 ). 성희안과 정붕은 다 같이 훌륭하다. 정붕과 같은 올곧은 기상과 청징( 淸 澄 )한 영혼이 있어야 한 다. 여덟째, 애민정신( 愛 民 精 神 ) 이다. 즉 가슴이 따뜻해야 한다. 다산은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 자식 없는 사람( 鰥 寡 孤 獨 )을 사궁( 四 窮 )이라 하는데, 이들은 곤궁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설 수 있다 고 했다. 천하에 궁색하기 그지없는 사궁을 보살피고 그들이 일어 설 수 있도록 행정을 하는 것이 공직자의 소임이다. 아홉째, 품격 있는 언어 사용이다. 공직자의 언어는 신중하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다산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갑자기 성내지도 말라 ( 毋 多 言, 毋 暴 怒 )고 했다. 그리고 백성의 윗사람 된 자는 그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정지하며 한 마디 말하고 한 번 침묵 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모두 살피어 의심쩍게 탐색하는 법이니, 방에서 문으로, 문에서 고을로, 고 을로부터는 사방으로 새어나가서 온 나라에 다 퍼지게 된다. 군자는 집안에 거처할 때에도 응당 말을 삼가야 하거늘, 하물며 벼슬살이할 때이랴 고 했다. 명나라 정선( 鄭 瑄 )은 자신이 목민관이 되면 몸이 곧 화살의 표적이 되는 고로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도 삼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다 ( 身 爲 牧 民, 則 此 身, 便 爲 射 的 矣. 故 一 言 一 動, 不 可 不 愼 )라고 했다. 또 말하기를 한 마디 말로 천 지의 화평을 상하게 하는 수가 있고, 한 가지 일로 평생의 복을 끊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 모름지 기 절실하게 점검해야 한다 고 했다.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칼에 찔린 상처는 쉽게 나아도 말( 言 )에 찔린 상처는 낫기가 어렵다. 좁은 입으로 말하고 넓은 치맛자락으로 못 막는다 와,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 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심심풀이로 연못에 조약돌을 던지지만 그 돌이 내일 결혼식을 올 릴 신랑 개구리의 소중한 고추를 정통으로 맞춰 성불구자를 만들 수도 있으며, 신부 개구리의 눈 을 멀게 할 수도 있다. 내 말 한 마디 가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도 있고, 평생 이룩한 것을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 선인들은 입 지키기를 병과 같이 하라( 守 口 如 甁 )고 가르쳤다.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다. 공직자의 언어는 신중해야 하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열째, 준법( 遵 法 ) 이다. 목민심서 에서 목민관은 무릇 국법이 금하는 바와 형률에 실려 있는 바는 마땅히 조심조심 두려워하여 감히 함부로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凡 國 家 所 禁, 刑 律 所 載, 宜 慄 慄 危 懼, 毋 敢 冒 犯 )라고 했다.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불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한다. 지도층은 국가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다한다는 뜻이다. 속담에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 - 20 -

는 말과 비슷하다.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Truman, 1884 1972)은 시력이 나빠 병역면제에 해당됐지만 시력표 를 외워 입대한 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싸웠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즉 고귀 한 신분이 병( 病 )든 사회에선 희망이 없다. 역사적으로 노블레스 오불리주 정신이 강물처럼 흘렀던 나라는 융성했고, 노블레스 말라드가 춤을 추던 나라는 멸망했다. 모랄 헤저드(Moral hazard)가 만연한 사회는 희망이 없다. 한때 현역으로 입병을 하면 어둠의 자식 이고, 방위병으로 제대하면 장군의 아들 이고, 병역 면제자는 신( 神 )의 아들 이란 말과, 방위병도 군인이라면 파리도 새( 鳥, bird)다 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말라드를 입증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 순조 때의 시인 임연당( 臨 淵 堂 ) 이양연( 李 亮 淵, 1771~1853)은 노래했다. 눈을 뚫고 벌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그릇되게 가지 말라 穿 雪 野 中 去 不 須 胡 亂 行 오늘 나의 걷는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들의 길이 되나니 今 朝 我 行 跡 遂 作 後 人 程 이 시는 김구( 金 九 ) 선생이 휘호( 揮 毫 )하여 많은 애독자를 갖고 있다.(김구 선생의 휘호에는 첫 구의 穿 이 踏 으로, 3구의 今 朝 가 今 日 로 됨. 이양연의 임연당별집 과 장지연의 대동시 선 에도 이양연의 작으로 수록됨. 이 시가 서산대사(1520 1604)의 작품 알려져 있으나 서산대 사의 청허집 ( 淸 虛 集 )에는 없음, 안대회). 이 시는 우리가 한 세상을 살면서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어떤 행적을 남겨야 하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눈 덮인 들판을 맨 처음 걷는 사람은 바르게 가야 한다. 첫발자국은 뒤에 오는 이들의 길이 되는 만큼 똑바로 가야한다. 앞서 간 사람들의 행적 을 주시하는 것은 그 행적에서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서기 660년 황산벌 전투 때 신라의 총사령관은 김유신이었고 부사령관은 좌장군 김품일( 金 品 日 )이었다. 품일 장군은 아들 화랑 관창( 官 昌 )을 단기필마로 계백 장군에게 두 차례나 돌진케 하여 결국 장렬하게 산화토록 했다. 이를 본 신라군은 총력을 다 해서 백제를 멸망시켰다. 우리는 처자 식을 죽이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백제의 최후를 찬란하게 장식한 계백장군과 신라의 품일 장군과 관창 부자의 노블레스 오불리주가 있었기에 백제는 678년을 신라는 천년간(992년) 존속할 수 있 었다. 조상들이 실천한 노블레스 오불리주 정신은 계승 발전 시켜야할 아젠다 이다. 열한째, 명예로운 정년퇴직이다. 다산은 옛날의 현명한 수령은 관청을 여관으로 여겨 마치 이 른 아침에 떠나갈 듯이 문서와 장부를 깨끗이 정리해두고 그 행장을 꾸려두어, 항상 마치 가을 새 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가 훌쩍 떠나갈 듯이 하고, 한 점의 속된 애착도 일찍이 마음에 머무른 적 이 없다 ( 故 古 之 賢 牧, 視 爲 逆 旅, 如 將 夙 駕, 淸 其 書 簿, 束 其 裝 任, 常 如 秋 隼 坐 架, 鴥 然 將 逝, 一 點 俗 累, 曾 莫 小 留 )고 했다. 옛 선비들은 출처진퇴가 분명했고 멋이 있었다. 조선조 중종 때 김정국( 金 正 國, 1485 1541)은 경상도관찰사 시절 선정한 목민관이다. 그는 여러 참판 벼슬을 지낸 후 낙향할 때 행장( 行 裝 )은 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신 한 컬레, 잠을 청할 때 필요한 베개 하나, 바람들 일 창구멍 하나, 볕을 쬘 툇마루 한쪽, 차를 다릴 화로 하나, 늙은 몸 의지할 지팡이 하나, 봄 경 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 였다. 검소하기 그지없는 행장이다. 벼슬을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 - 21 -

니다. 한 푼도 챙기지 않고 도포자락을 훠이훠이 날리며 빈손으로 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공직자 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공직자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살아온 지난 세월의 삶도 소중하다. 그러나 더욱 소중한 것은 오늘 이후 정년 때 가지 국가발전에 기여한 후 명예롭게 정년퇴직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 價 値 )이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 Ⅵ. 21세기 공직자의 과제 공직자는 우리 사회에 굽은 곳을 바르게 펴서 올곧게 하여 다시는 굽어지지 않게 하고, 막힌 곳 을 뚫어서 시원하게 소통시켜야 한다. 바로 클린(Clean)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책무가 있다. 선 조들이 아무리 훌륭한 저서를 남겼더라도 거기에 내재( 內 在 )된 정신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외면한다면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다산은 고난에 찬 유배생활을 겪으면서도 5백년 조선왕조 학술사에 실학의 집대성 이라는 미 증유의 찬란한 금자탑을 헌정( 獻 呈 )했다. 이러한 다산을 18년간 귀양살이를 시킨 조선왕조는 다산 에게 큰 빚을 졌다. 주권재민과 위민주의( 爲 民 主 義 ) 철학으로 점철된 공직자의 바이블인 목민심 서 (1818)가 세상에 나온 지 195년(2013)이 되었건만, 아직도 공직사회에서 비리가 근절되지 않 고 있어 다산에게 부끄럽다. 다산의 꿈은 오래된 조선을 새롭게 개혁 ( 新 我 之 舊 邦 )하여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육성하는 것 ( 澤 萬 民 育 萬 物 )이다. 이 다산의 꿈은 시공을 초월하여 이 땅에 실현시켜야할 아젠다(Agenda)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한지 66년이 되었다. 21C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조상들이 931회의 크고 작은 외침을 극복하고 조국을 지켜왔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 려줘야할 책무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 문제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위기( 危 機 )의 기 ( 機 ) 자가 기회( 機 會 )의 기 ( 機 ) 자도 된다. 자만에 빠져 멸종된 굼뜬 공룡의 길을 택할 것인가? 변신을 거듭한 거북이의 교훈을 배울 것인가 를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조국산하는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인 만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깨끗 한 나라를 물려주어, 후손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첫째, 훌륭한 공직자는 발상의 전환(Paradigm shift)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한다. 어제의 관행이 지금은 범죄기 된다. 박제( 剝 製 )된 틀과 낡은 사고를 버리고 구각( 舊 殼 )을 깨고 발상을 전환하여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고 건강한 조국을 건설하는데 향도( 嚮 導 )가 되어야 한다. 둘째, 훌륭한 공직자는 클린하고 공정사회 구현에 앞장선다. 나 혼자 클린하고 청렴한 시대는 지났다. 5천만 국민 모두가 클린해야 미래가 있다. 그래야만 66년 된 우리 조국을 6백년, 6천년, 6 만년 수수만년 존속시킬 수 있다. 먼 훗날 자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셨느냐 고 물었을 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청렴한 한국을 건설하는데 이바지 했노 라 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길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자 내가 갈 길이다. 셋째, 훌륭한 공직자는 아름다운 가치와 이상을 후손들에게 심어준다. 대한민국은 우리만 살다 갈 나라가 아니다. 우리 후손들이 자자손손 수수만년 살아가야 한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 리고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우리 후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도 정신과 육체가 건강 - 22 -

한 민주시민으로 키워야만 조국의 미래가 있다. 넷째, 훌륭한 공직자는 자신과 가족, 부모형제와 조국을 사랑한다. 지난 세월의 삶도 소중하지만 더욱 소중한 것은 앞으로의 삶이다. 남은 기간 국가발전에 기여한 후 명예롭게 정년퇴직하는 자랑 스러운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람차고 가치 있는 삶이다. 끝마무리가 중요하다. 다산은 유배의 역경 속에서도 지방행정을 쇄신할 수 있는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여 조선을 새롭게 개혁( 新 我 之 舊 邦 )하여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고 만물을 육성( 澤 萬 民 育 萬 物 )하려 했다. 그 아름다운 꿈과 목민심서 에서 제시한 공직자의 자세는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할 아젠다이다. 클린 해야 꿈을 이룰 수 있고, 미래가 있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참고 문헌> 김상홍, 아버지 다산, 글항아리, 2010. 5(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김상홍, 다산학의 신조명, 단국대출판부, 2009. 6(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김상홍, 다산의 꿈 목민심서, 새문사, 2007(조선일보 <거실을 서재로> 8월의 도서선정, 대한 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2007 올해의 청소년도서> 가을분기 선정). 김상홍, 다산 문학의 재조명, 단국대출판부, 2003(다산학술상 학술대상 수상, 대한민국학술 원 선정 2004년 우수도서). 김상홍, 조선조 한문학의 조명, 이회, 2003(대한민국학술원선정 2004년 우수도서). 김상홍, 다시 읽는 목민심서, 한국문원, 1996. 김상홍, 다산학 연구, 계명문화사, 1990. 김상홍, 다산 정약용문학연구, 단국대출판부, 1985(제18회 문화공보부추천우수도서). 김상홍, 다산 시선집, 유형지의 애가,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1. 김상홍, 다산을 통해 본 공직자의 자세, 2010년 고위공무원단후보자 교육과정, 중앙공무 원교육원, 2010. 11. 김상홍, 다산 사상의 이해, 2012년 제20기 고위정책과정, 중앙공무원교육원, 2012. 3. 김상홍, 역사 속에 인물을 통해 본 공직자의 자세, 제11기 공직가치 함양과정, 중앙공무 원교육원, 2012. 5. 김상홍, 역사 속 청백리를 찾아서, 2012년 제2기 신임 리더과정, 서울특별시인재개발원, 2012. 2. 김순동, 淸 白 吏 考, 韓 國 故 事 大 典, 回 想 社, 1965. 문화일보, 한국 부패지수 40위 작년보다 3단계 개선, 2008. 9.24. 晏 振 宇, 中 國 皇 帝 傳, 中 國 人 事 出 版 社, 2003. 연합뉴스, 선거법 위반 자치단체장 잇단 불명예 퇴진, 2011. 8. 18. 유광수, 흥보전연구, 계명문화사, 1993. 이해조, 자유종 (1910), 권영민 外 編, 한국신소설전집,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 장경학, 법률춘향전 (을유문고 44), 을유문화사, 1970. 정약용, 여유당전서 (전6권), 경인문화사 영인, 1970. 조선일보, 민선5기, 1년반 남았는데 비리 낙마 지자체장 벌써 24명, 2012. 11. 8. -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