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장소 그리고 장소적 재현체계 -로컬리티의 생성론적 접근 이 명 수(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 목 차 - Ⅰ. 실마리 글 Ⅱ. 공간과 장소의 존재론적 접근 Ⅲ. 공간, 장소 그리고 장소적 재현체계 Ⅳ. 맺음말 Ⅰ. 실마리 글 로컬리티의 학, 이는 일면 정체성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학이다. 정체성, 그것은 때 로 길 이라는 탈을 쓴다. 인간이면 누구나 공유해야 하는, 보편적 동일성 이 어디까지인지도 모 른 채, 나약한 피조물로서 인간은 성인 이 말했다거나 대철학자가 설파했다고 하면, 신앙처럼 믿 고 따르기도 해 왔다. 그것은 일자, 존재, 물자체 의 탈을 쓴 참된 존재 의 길과 같은 것으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이 같은 용어로 포장될 법한 길 을 우려한 노자는 道 可 道, 非 常 道, 名 可 名, 非 常 名 1) 이라고 하였다. 이는 길이 길이라고 할 수 있으면, 일정불변의 길이 아니며, 이름(규정)이 이름이라고 할 수 있으면 일정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라고 하여, 이것이 딱히 길이다 라고 말하고 규정해 버 린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강한 경계를 드러낸 것이다. 로컬리티 도 하나의 실체 이겠지 만 딱히 이것 이다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연주적 각도에서 대상 을 접근하려는 노자의 사물 인식에 관한 문제의식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일정부분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무엇이다 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명적 그 무엇 이 있으니, 가정적으로 그 같은 실재에 대하여 말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컬리티, 일단 장소적 자기 존재 체계 라고 일단 말해두자. 이때 그것은 장소적 속성에 주 목하는 것이겠지만, 공간이 갖는 문화적 표상 또한 로컬리티를 접근하는 하나의 각도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로컬리티 연구에 공간이나 장소가 문제되는가? 과연 공간은 무엇이고 그것은 실재 하는가? 장소는 또한 무엇인가? 공간과 장소의 의미도 문제겠지만. 이들의 함의가 도대체 왜 로 컬리티의 연구에 주목되는가? 연구자는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하면서, 잠정적으로 이렇다 라고 그 1) 老 子, 道 德 經 1장. - 27 -
해답을 시도해보려 한다. 그렇다 할 때 연구자의 접근법은 로컬리티라는 가정적 존재를 장소적 체계, 장소적 자기 존재의 시스템, 현재성(현존성)의 축적, 지역적 시간성, 지역적 표상, 지역적 문화요소, 지역적 아우라, 장소성, 지역적 속성(가능성, 점재성)과 같은, 다소 사변적이면서 직관 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공간 이론이나 철학적, 과학적 존재론에 보이는 場 이론도 일정부분 검토, 수용하면서 논의를 조심스럽게 진행하려고 한다. Ⅱ. 공간과 장소의 존재론적 접근 1. 공간과 장소의 존재 인간은 몸 을 갖고 있어서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장소 를 갖춘다. 그러면서 몸은 그것을 수용할 공간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갖는다. 몸이란 육체와 정신의 복합체로서 이성과 감성에 걸친 의식 활동을 진행하는 곳 이어서, 그 의식은 또한 무한한 공간에의 욕망을 지닌 다. 이런 의미에 서 우선 자신이 수용될 집, 공간에 관심을 가졌다. 크게는 그것은 우주를 들 수 있는데, 주 는 시 간을 나타내며 우 는 공간이다. 그런데 주( 宙 ) 이건 우( 宇 ) 이든 모두 집( 宀 )으로서 공간이다. 이 렇듯 동양의 우주관에는 시간 은 원초적으로 공간 속에 포함된다. 2) 그런데 플라톤은 대화록의 근본 이념인 존재와 형상의 두 범주가 이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충 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모든 생성을 수용할 수 있는 제3의 카테고리가 필요하다는 것 이다. 이 모든 것-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형상물, 그 외에 어떤 규정도 없는 이것을 플라톤은 공간 이라 한다. 그래서 공간 자체는 어떤 한 장소에 그 시작과 끝을 가지는 언 제나 존재하는 항존자에 속하지도 않으며 또한 생성된 것에 속하지도 않고, 하나의 중간 위치를 차지한다. 플라톤에게 공간은 그것이 하나의 장소이며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땅 위에 있지 도 않고 또 우주 속에 달리 존재하고 있지도 않는 것으로 도대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리스 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자기 앞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공간의 실존을 확정지으려 했을 뿐 아니라, 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인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간은 몸으로 점유하는 모든 장소의 총합으로 여겨진다. 장소 자체는 공간의 부분으로 공간의 경계는 공간을 받아들이는 몸체의 경계와 일치한다. 장소, 빈 곳, 시간 없이는 어떤 운동도 없을 것이다. 아리스 토텔레스가 공간을 다루는 계기가 된 것은 운동이라는 주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간 문제 가 생기는 것은, 공간이 운동과 만나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해 이야기할 뿐 공간에 대해서는 말 하지 않는 자연학 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1 장소란 그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포괄하는 것이며 2 장소는 포괄된 대상물 자체 의 어떤 조각이 아니며 3 직접적 장소는 그 장소에 에둘러진 사물보다 더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4 장소는 각 사물을 뒤에 남기며 그 사물로부터 분리될 수 있다. 그 외에도 5 모든 장소는 자기의 한 종류로서 위나 아래 를 가지고 있고, 6 모든 물체는 천성적으로 위로 혹은 아래로 운동하여 자기가 원래 생겨난 장소로 움직이고 거기에 머문다. 2) 이명수, 중국문화에 있어 시간, 공간 그리고 로컬리티의 문제, 동양철학연구 55집, 동양철학연구회, 2008. 452쪽 참조. - 28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장소는 어떤 것을 포괄하는 물체의 경계 인데, 이는 물고기는 물속에 있고 새는 공중에 있는 등등과 같은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네 개의 가능성-형상으로서의 장 소, 물질로서의 장소, 확장 혹은 거리로서의 장소, 경계 혹은 외부적인 것으로서의 장소-을 하나 씩 차례로 검토하고 나서 맨 마지막에 그 중 마지막의 가능성을 선택했다. 속이 찬 용기로서의 장소라는 이 표상은 한 동안 영향을 주게 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트는 공간은 스스로 어떤 현실성을 갖지 않으며, 단지 물체들의 상대적 위치를 서로 확정하는 물체의 질서의 관계일 뿐이다.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에게 공간은 서로 연결된 관계들의 체계 인 것 이다. 공간은 매체인데, 이 매체의 도움으로 질서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계상이 지속적으로 흔들리게 된 것은 르네상스 철학 때문이었다. 3) 이에 비해, 장소는 피조물에 의해 점유되고 있는 공간이다. 지리학적으로는 인간이 물질적 존 재와 맺는 공간이 장소이다. 사람의 의식이 근대성의 물질 조건과 결합되는 곳을 장소, 장소성으 로 규정되기도 한다. 렐프에 의하면, 장소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며, 장소는 인간의 경험을 반 영하여 향상될 수 있는 환경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4) 그 이후 물리적 공간과 추상 공간, 절대공간과 상대 공간의 접근이 시도되고 사회공간과 같은 관계적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화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2. 사물 존재와 생성의 근원으로서 공간 한편, 노장철학은 존재와 운동, 생성의 근원으로 공간을 접근한다. 노자는 공간이 갖는 절대적 추상성과 구체성에 대한 시각을 견지하였다면, 장자는 노자 철학을 발전시켜 존재와 운동성의 근 원으로서 공간 이외에, 그것이 갖는 공간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자연물마다 개별적으로 갖는 가 치 문제를 도 로 규정한다. 노자철학의 경우, 있음은 없음이 근원으로, 존재는 비존재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존재와 비 존재는 공존의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그릇이 있다 면 없음 으로서 빈 공간 이 있을 때 그릇 이라는 존재가 있다. 무, 비존재로 표현할 수 있는 공간적 속성과 같은 형이상학에서 구체적 현 상에 이르기까지 공간 을 존재의 본질이 된다. 그로부터 만물은 파생한다. 천하 만물은 유( 有 )에서 생성하고 유는 무( 無 )에서 생성한다. 5) 천하만물은 존재의 표상, 현상으로 현상학적 관점을 빌자면 현존재이다. 이것은 존재, 실체로 서 有 (reality)에서 생성되며, 근원적 생성의 존재는 無 (비실체, 도)이다. 노자는 이 같은 설법 을 구체 사물에서 관찰해 낸다. 수레바퀴 가운데의 바퀴 통 이나 그릇의 빔 (Vacancy)처럼, 공 간적 속성은 수레바퀴와 그릇의 존재를 결정한다. 6) 존재로서 유( 有 ) 와 공간으로서 무( 無 ) 는 따 3) 마르쿠스 슈뢰르 지음, 정인모ㆍ배정희 옮김, 공간, 장소, 경계, 에코리브르, 2010, 30~36쪽 참조. 4) 마루타 하지메 지음, 박화리ㆍ윤상현 옮김, 장소 론, 심산, 2011, 118쪽. 5) 老 子, 道 德 經 40장, 天 下 萬 物 生 於 有, 有 生 於 無 참조. 6) 老 子, 道 德 經 11장, 三 十 輻 共 一, 當 其 無, 有 車 之 用. 埏 埴 以 爲 器, 當 其 無, 有 器 之 用. 鑿 戶 以 爲 室, 當 其 無, 有 室 之 用. 故 有 之 以 爲 利, 無 之 以 爲 用 참조. - 29 -
로 떨어지지 않아서 상생관계에 있다. 7) 노자철학에서 무, 공간은 존재 를 위한 실체 이면서, 존재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 같은 의미 에서 노자철학은 자연물 생성의 기초를 공간 에 두었고, 거기서 공간은 운동성을 내재하고 있다. 자연의 도란 행위 없는 공간 상태이면서,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도 없다. 그 점에서 무불위( 無 不 爲 ) 의 무위( 無 爲 ) 이다. 8) 행위의 무화( 無 化 ), 공백, 여백, 인간적 행위의 공간화, 이것이 오히려 운동성의 확보가 되어 만물 스스로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인간은 무한히 행위의 공백 상태, 무위를 이룸으로써 못할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간섭과 같은 행위는 공간 확보의 장애가 되어 만물 스스로의 변화에 장해가 될 따름이다. 공간이 라는 점에서 행위 없음 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무한 생성의 기틀이 된다. 무위자연 이란 그런 미 덕을 갖는다는 점에서 무불위( 無 不 爲 ) 하는 것이다. 배움을 하면 날로 보태는 것이지만, 도를 하면 날로 더는 것이다. 덜고 덜어서 행위 없음에 이 르면, 행위는 없으나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천하를 취함에 늘 꾸미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니, 꾸미는 일이 있음에 이르면 천하는 취할 수 없다. 9) 노자철학에서, 일마다 사물마다 존재물에는 요소요소에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 은 곧 무, 무위 의 공간이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공간 확보를 통해서 운동성 을 확보할 수 있다. 노자철학에서 꾸미는 행위가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꾸미는 행위 없음은 곧 못하는 일이 없음이다. 늘 꾸미는 일이 없음은 운동의 항상된 원인이다. 자기 조작에 의해 일을 꾸민다면 천하를 획득할 수 없을 것인데, 천하를 얻을 수 없음은 통솔의 근본을 잃었 기 때문이다. 10) 따라서 인간의 부질없는 자기조작에 의한 공간의 상실과, 그로 말미암은 운동성 상실이 문제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공간적 질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억지로 맞추어 보려는 인간적 행위, 예를 들자면 판에 박힌 틀이나 문명 행위, 정체성 강요는 有 爲 로서 무위 의 무불위 적 기 능성을 마비시킬 따름이다. 생성의 공간을 잠식하는 것이다. 만물은 스스로 공간성을 확보하여 변화할 도모하지만, 이를 막는 욕망이 부질없이 일어난다면 소박 상태의 도, 공간성의 회복이 그 같은 상태를 막게 될 것이다. 11) 노자적 자연철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공간은 생성과 운동성이며, 지도자에 의해 자행되는 간섭 행위, 예를 들자면 중앙집권적 지도행위나 정체성, 판에 박힌 지시 행위는 공간성 말살 로 서, 만물이 지닌 스스로의 변화, 생성을 막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일 없는 상태 가 될 수 없 다. 따라서 인간은 무, 무위 의 존재론적 공간을 세상 일에 확장하면 된다. 꾸밈이 없을 때 존 재하는 생성의 공간은 그 만큼 넓어 세상을 얻는 일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7) 老 子, 道 德 經 2장, 有 無 相 生 참조. 8) 老 子, 道 德 經 37장, 48장 참조. 9) 老 子, 道 德 經 48장, 爲 學 日 益, 爲 道 日 損. 損 之 又 損, 以 至 於 無 爲, 無 爲 而 無 不 爲. 取 天 下, 常 以 無 事, 及 其 有 事, 不 足 以 取 天 下 참조. 10) 道 德 經 48장에 대한 王 弼 의 주, 有 爲 則 有 所 失, 故 無 爲 乃 無 所 不 爲 也. 常 以 無 事 者 動 常 因 也. 有 事 者 自 己 造 也. 不 足 以 取 天 下 者, 以 失 統 本 也. 참조. 11) 老 子, 道 德 經 37장 참조. - 30 -
3. 생성과 시공간의 문제 이렇듯 운동이나 생성이 있으므로 공간은 필연적으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생성과 공간의 관 계성은 동서를 막론하고 원초적으로 사유한 것으로 보인다. 운동과 생성, 그리고 공간 존재의 관 계에 있어 시간적 선후는 없다. 그러면서 역시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애매성은 내재한다. 플 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이나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 공간(장소)의 문제를 상정한 것으로 보이며, 동양의 자연관에서 대상물, 사람을 포함한 피조물은 우주 공간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며( 生 生 不 已 ), 인간은 이를 조심스레 관찰하면서 삶을 영위한다면 그것이 생성을 도모하는 것이고 인 문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12) 노장적 자연철학에서는 공간은 존재 와 생성의 근거이자 장소와 연결된 곳 이기도 하다. 거기 서 공간은 존재론적 실재이며 속성이자, 그것은 만물존재의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다. 라 이프니츠의 단자( 單 子, Monad), Arthur Koestler의 全 子 (Holon), 아낙사고라스의 과립자( 種 子 ) 개념에는 생성과 관련하여 시공간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13) 생성은 우주의 본래적 내재 특성이다. 창생성은 우주 간은 공통된 형상( 形 相 ) 가운데 공통된 형상으로 우주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이다. 생성 능력이 있고서 새로운 사물은 비로소 끊임없이 생겨날 수 있는데, 그래야 비로소 시간과 공 간이 있고, 역시 비로소 세상 만물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과학철학자 진우룬( 金 吾 倫 )은 生 子 論 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우주의 이러 한 내재 특성과 능력으로 생자, 생성인자( 生 子 ) 는 잠재적 존재( 潛 有 ), 기회적 존재( 緣 有 ), 실존적 존재( 實 有 ) 란 3개의 잠재성을 갖고 있다. 잠재적 존재, 잠유는 무(non-Being) 와 유(Being) 의 통일적인 존재로서 노자의 도 가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황홀한 존재여서 그 형상을 인식할 수가 없지만 그 속에 像 이 있 다.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지만 그 속에 물질이 있다.(도덕경, 21장) 이는 형상없는 상( 狀 ), 물상( 物 象 )없는 상( 象 )(도덕경 14장)이다. 기회적 존재, 연유는 기우적( 機 遇 的 ) 유(존재, Occasion-Being)로, 그것은 잠존하는 음양의 상호운동과 구체적(내재적, 기회에 따름) 환경의 상 호 작용으로, 개체가 생성, 변화하여 실유, 실존적 존재가 된다. 실존적 존재, 실유는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경험 현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사물이다. 이 같은 실유 는 화이트헤드가 지적한 것처 럼 실유마다 모두 우주간 기타 부분과 함께 뒤섞여 조직을 교환하는 방식을 빌릴 때 비로소 이 해가 가능하다. 생성과정은 잠재적 존재에서 기회적 존재로, 기회적 존재에서 실존적 존재로 옮 아가는 과정인데, 그것은 순식간에 지속되는 것으로, 공간은 정해진 영역은 아니다. 생성 인자는 물질도 아니며, 양을 헤아릴 수 없으며, 정신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으 며, 자주성과 조직성을 가지는데, 이 같은 자주성과 조직성은 우주가 본래적으로 갖춘 것이다. 14) 우리는 여기서 사물에 내재한 관념적 실체로서, 가능성, 잠재성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사물의 속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진우룬은 이 같은 생성인자적 속성을 유기적 속성으로 보았다. 그러면 12) 이명수, 로컬, 로컬리티 그리고 인문학적 공간, 로컬리티 인문학 3,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0, 56쪽 참조. 13) 金 吾 倫, 生 成 哲 學 河 北 大 學 出 版 社, 2000, 188쪽. 14) 金 吾 倫, 生 成 哲 學 河 北 大 學 出 版 社, 2000, 188쪽. - 31 -
서 그는 물질성의 속성, 기계론적 속성에 대하여 접근함으로써 우주간 내재적 잠재적 특성으로서 생성인자에 관한 설명을 세밀하게 진행한다. 유크리드 기하학의 공간의 맥락을 통한 라이프니치 의 단자론을 통하여 물질성의 운동과 공간의 문제를 아울러 접근했던 것이다. 생성인자는 원자론의 원자와 다르다. 1 원자는 실존하는 것이지만, 생성인자는 잠재적인 것이 다. 생성인자는 잠재적이므로 일정조건하에 있어야 비로소 생성변화가 실재로 존재할 수 있다. 2 원자는 공간상 定 域 的 이고, 그것은 공간에서 어떤 작용력을 거쳐 운동라며, 생성인자는 非 定 域 的 인데, 자기운동을 할 수 있다. 3 원자운동은 변화를 외력에 의존해야 하므로 그 자신은 자 발적으로 변화할 수 없다. 4 사물의 변화는 생성인자의 생성, 변화의 결과이다. 5 원자는 기계 론적이라면 생성인자는 有 機 性 的 인 것이어서, 원자로부터 구성되는 것은 機 械 의 大 鐘 이라면 생성 인자는 有 機 의 整 體 를 조성한다. 총괄하자면, 원자가 기계론의 基 本 單 元 이라면 생성인자는 생성론의 기본인자이다. 우리는 라이 프니치의 단자론을 통해 생생인자의 개념에 대하여 진일보 인식할 수 있는데, 1 단자는 나눌 수 없는 것이어서 일체 사물의 單 元 (근원적 단위)롤 조성한다. 2 단자는 단지 돌연히 생기거나 소 멸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창조에 의해 생길 수 잇고 毁 滅 에 의해 소실될 수 있다. 모든 창조물 은 변화하는데, 단자도 변화가 있는 것이다. 3 단자는 유기성을 갖고 있다. 그것의 변화는 내재 원인으로부터 조성된 것이어서 기계적인 理 由 를 써서 설명할 수는 없다. 4 단자 자신은 일정한 완만성을 갖고 있고, 일종 자족성은 그것들의 내적 활동의 원천을 保 持 하게 하므로, 그것들로 하 여금 무형의 自 動 機 를 이루도록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단자는 역시 영혼이기도 한데, 현 대과학의 학술어를 써서 말한다면, 단자는 自 主 性 또는 自 組 織 性 을 갖추고 있다. 이외에 라이프 니치의 단자론을 살펴보건대, 시공의 물질객체의 모든 현상이 단위마다 완전하게 있다( 萊 布 尼 蒫 自 然 哲 學 著 作 選,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1985, 174-175쪽). 단자론에서 공간과 시간은 진실한 것 도 아니며 그것들은 실체도 아니다. 그것들은 관념적이며 추상적이다. 라이프니치의 관념론의 공 간은 유크리드 기하학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는 이 같은 구조를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다. 15)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은, 사물의 존재나 운동, 생성을 설명하기 위해 원초적으로 시간이나 공 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 본 바, 플라톤은 근본 이념(이데아)의 존재와 형상의 두 범주로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모든 생성을 수용할 수 있는 제3의 카테고리, 모 든 것-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형상물, 그 외에 어떤 규정도 없는 이것을 공 간 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소, 빈곳, 시간 없이는 어떤 운동도 없을 것이라는, 운동성 설명의 필요에서 공간 개념을 다루었다. 노장철학은 공간을 존재의 근거로 보았으며, 그것은 스스로 운동성을 내재하고 있어서 천지만 물(현상)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며, 그것은 구체 사물의 생산의 쓰임이 되어, 유무상생 관계에 있 는데, 이는 도 라고 말하는 저절로 그렇게 되는( 自 然 而 然 ) 유기적 조직성이나 자동성이 있다는 점에서 라이프니치의 단자론적 생성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기적 잠재 적, 가능성으로서 생성인자와 기계론적 운동성이라는 사물의 내재성을 가지고 그 현상, 표상, 존 재성을 파악하려는 시도로서, 현장적 장소성으로서 로컬리티 의 연구에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는 15) 金 吾 倫, 生 成 哲 學 河 北 大 學 出 版 社, 2000, 189쪽. - 32 -
것이라 할 수 있다. Ⅲ. 공간, 장소 그리고 장소적 재현체계 1. 사물의 자기 존재와 장소 우주와 세계를 존재의 공간으로 하는 피조물이나 인간은 생성과정에 피투되어 있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문명적 생성과정에 참여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적 과정 에 존재자 로 존재한다. 천생지양( 天 生 地 養 ) 16) 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천 이라는 우주자연은 자연물의 생성을 담당하 고 지 는 토양으로서 자연물을 길러낸다. 여기서 인( 人, 사람), 사람은 역사 활동을 진행한다. 천지라는 공간은 사람을 수용하고, 인간은 이 천지를 장소,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만큼 천지는 생성과 길음의 기초이자 토대로서 에너지를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천지 는 生 (생 성) 과 養 (양육) 을 통해 공간적, 장소적 수용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용기( 容 器, container)의 의 의로서 공간성을 확보한다. 장자는 이 같은 공간에 주목하여 존재론적 기운을 기( 氣 ) 로 파악하 였다. 17) 氣 는 공간을 확보하고 사물, 대상물을 맞이한다. 이는 공간, 장소에 내재한 유의미성 으 로서 공간성, 장소성이다. 딱히 알 수 없는 자연적 기운 이 공간을 확보하며 사물을 맞이하는 것 으로 풀이할 수 있거니와, 기 는 공간을 생성하여 사물을 수용하는 근거가 된다. 장자적 기, 공간 적 기운, 공간에 딸린 에너지로서, 이 같은 자연물에 내재한 속성을 송대 기철학자 장재( 張 載 )는 성( 性 ) 이라고 직관하였다. 여기서 장소성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장재의 사유를 활용해 보자. 천지의 만물은 모두 일종의 굴신( 屈 伸 )ㆍ동정( 動 靜 )ㆍ종시( 終 始 )의 능( 能, 능성, 가능성) 즉 성 ( 性 ) 을 갖는다. 그리고 성( 性 )은 감응 의 본체인데, 이를테면 감응이라는 것은 성( 性 )의 신묘함이 고, 성이라는 것은 감응의 본체이다. 18) 장재의 사유를 통해 우리는 사물이 갖는 성질, 장소성에 대한 반응과 느낌으로서 장소감에 대 한 의미 포착에 일정 부분 도움을 받게 된다. 감응 이라는 말은 장재의 저작에서 함의가 매우 광 범하여, 거의 모두가 운동, 상호작용, 감동, 감화, 인간과 동물의 감각, 의식 등이다. 19) 지식은 근 원적으로 감응에서 온다. 이를테면 식( 識, 인식) 도 있고 지( 知, 지식, 지적 체계)도 있어서 사물 이 교환하는 객체적 감각이다. 20) 이미 만물은 똑같이 성( 性 )을 갖게 되었고, 똑같이 바깥 사물과 감응할 수 있가. 그렇다면 만물 은 똑같이 지( 知 ) 가 있는 것이다. 장재는 이 세상에 성( 性 )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은, 마치 금속 16) 董 仲 舒, 春 秋 繁 露 立 元 神, 天 地 人, 萬 物 之 本 也, 天 生 之, 地 養 之, 人 成 之 ; 天 生 之 以 孝 悌, 地 養 之 以 衣 食, 人 成 之 以 禮 樂, 三 者 相 爲 手 足, 合 以 成 體, 不 可 一 無 也 참조. 17) 莊 子 人 間 世, 氣 也 者, 虛 而 待 物 者 也. 唯 道 集 虛. 虛 者, 心 齋 也 참조. 18) 張 載, 正 蒙 乾 稱, 感 者 性 之 神, 性 者 感 之 體. 19) 程 宜 山, 張 載 哲 學 的 系 統 分 析, 學 林 出 版 社, 1989, 35쪽. 20) 張 載, 正 蒙 太 和, 有 識 有 知, 物 交 之 客 感 爾. - 33 -
의 성은 강( 剛, 굳셈)이고 불의 성은 뜨겁고 소의 성, 말의 성도 본디 있지 않음이 없다. 21) 고 하 였다. 따라서 장소성은 느낌이나 반응, 감응으로 이어지는데, 이 감응에는 사물 자체의 인식이나 지적 체계가 고유하게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2) 장재는 비단 토지뿐만 아니라 자연물에는 자 기 고유의 개체성, 자기 정체성이 있음을 말하였다. 기로 존재하는 속성은 흩어져 들어옴이 형상이 없지만 마침내 나의 몸을 얻고 모일 때는 표상 이 있지만 나의 일상성을 잃지 않는 23), 그와 같은 것이다. 장자가 기가 공간을 확보하여, 사물을 수용할 수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았다면, 마찬가지로 장재는 허공이 곧 기이다( 虛 空 卽 氣 ) 24) 라고 하여, 공간을 단순한 공간으로 파악하지 않는, 기의 취산에 의해 설명하는, 공간성, 운동성에 주 목하였다. 결국 이 같은 사유를 통해 우리는 사물이란 자기방향성, 근원적 자기 정체성을 갖고 존재하며, 거기에는 나름의 운동성과 창생성이 또한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것이 추상 적이거나 구체적이며, 실재적이거나 과정으로 인식한 차이는 있지만, 자기 존재체계를 지니고 있 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 사물의 장소적 재현체계 무엇 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존재론적 실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록 관념적, 추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場 을 통해 존재한다. 그 존재가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 장 소 를 통해 또 어떻게 표상 될까를 문제 삼는다면, 이는 장소적 재현 체계 라고 해도 틀리지 않 을 것이다. 이 재현체계는 극히 추상적이며 가상적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생성하며, 더욱이 그것은 변화무 쌍하므로 포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재 한다고 말하지만, 비실재 의 존재이므로 논리적 이성 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노장철학의 무 와 같아서 없음 이지만 카오스적 없음 으로 있음 의 없음 이다. 이렇듯 우리가 맞이하는 장소적 표상도 마치 푸주간의 포정 이 노련하 게 찾아내는 없음 이라는, 비실재의 실재적인 결처럼, 없음 이 없음 이 아닌 있음 의 없음 인 이 치와도 같은 것이다. 25) 그 결, 문양은 자연물 어디에나 표상되어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포착 하지 못한다. 어쩌면 달관한 至 人 의 경지에 도달할 때 접근할 수 있는 무, 없음 일 수 있을 것 인데, 이는 공간성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이 개입되는 장소로서 공간이라면, 장소성이라 해도 또한 무방할 것이다. 기 또는 성 이라는, 존재의 이치와 결부된 보이지 않는 그것 이라는 점에서 없음 은 없음 이 아닐 것이라는 접근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거니와, 역시 그런 점에서 비실재이지만, 비실재가 아닐 수 있다. 이를테면, 장자 의 도 에 관한 언표처럼 도란 귀로 들을 수 없는 것, 들었다면 21) 張 載, 拾 遺 性 理 拾 遺, 天 下 凡 謂 之 性 者, 如 言 金 性 剛, 火 性 熱, 牛 之 性, 馬 之 性 也, 莫 非 固 有. 凡 物 莫 不 有 是 性, 由 通 蔽 開 塞, 所 以 有 人 物 之 別, 由 蔽 有 厚 薄, 故 有 智 愚 之 別. 22) 程 宜 山, 張 載 哲 學 的 系 統 分 析, 學 林 出 版 社, 1989, 35~36쪽 참조. 23) 張 載, 正 蒙 太 和, 氣 之 爲 物, 散 入 無 形, 適 得 吾 體, 聚 爲 有 象, 不 失 吾 常. 24) 張 載, 正 蒙 太 和. 25) 이것은 庖 丁 解 牛 에 관한 것으로, 莊 子 養 生 主 에 보인다. - 34 -
도가 아니요, 도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 보였다면 도가 아니요, 도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것, 말했다면 도가 아니다. 만물에 형체를 베풀어 주면서도 형체가 없음을 앎이여! 도는 의당 이 름 붙여서는 안 된다. 26) 이처럼 만물의 근거와 참모습은 응당 비실체적이거나 실체가 해소된 것으로서 실체 일 수 있 다. 장자는 실체로써 본체론 근거의 감성과 논리와 이지의 인식을 삼는 일을 방기하였는데, 무 는 본체론의 근거이고 또 다른 지혜의 길이다. 27) 이는 無 形 無 象 의 장소적 재현 체계로서, 그 형 체는 이렇듯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는, 그 같은 공간적 특성을 볼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의 공간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때 공간의 가치체계로서 공간성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간성은, 공간적 특성, 장소성, 장소에 존재 하는 실재, 궁극적 가치, 가치 체계, 물자체, 인간이 장소에서 빚어내 는 방향성일 수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실재와 성(현상), 하이데거의 실재(존재) 28), 장자의 도실 재 와 같은 것이다. 이는 장소에 시간이라는 과정에 쌓인 공간적 속성일 수 있다. 장소적 속성과 같은 것으로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존재한다. 고 할 때, 존재의 주체로서 무엇이 어디 라는 장소에서 어떻게 는 표상, 재현, 형상일 수 있다. 어디에 놓여서 무엇을 표상하는가? 어디 라고 하는 장소에서 라이프니치가 말한 근원적 단위, 단원과 같은 물질성의 지역적 정체성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욕망이나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아주 자연스런, 마치 소잡는 포정이 포착한 소의 자연 결 과 선험적 표상일 것이다. 장소도 자기 존재의 체계로서 장소성이 있지만, 사람 또한 장소를 통해 자기표상을 이룩하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소(공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또다른 공간, 타자 공간의 참 모습을 보 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의 공간화가 일정부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장소는 입지조건과 같 아서 사람을 사건 으로 수용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 를 지니므로 인간 활동의 장소를 유 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天 生 과 地 養 의 공간과 장소에서 人 成 되는 관계에 있는, 그러한 場 을 형성하는 곳일 수 있다. 이 같은 의미로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사물이나 사람들은 장, 장소 를 생활의 근거지로 삼아왔다. 이것은 지역적 특수조건인 장소라는 공간성에 대상물이 반응하여 장소적 총체성으로서 장소성을 성취한 것이다. 장소의 특수성, 장소성을 基 體 로 하여, 새와 짐승들이 몰려들고 사람들 은 양파 농사 로 시대적 조건과 조응하기도 한다. 거기에 쌓인 시간성의 경과에는 지역(지방) 조 건에 어울리는 주민들의 기억이나 기록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명적이면서 문화적인 국면에 걸 쳐 이루어진 인간 활동의 숨결, 흔적으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측면의 참 모습일 것이다. 이 같은 체계를 로컬리티, 생명흐름의 장소적 표상, 현장적 자기실현의 공간, 재현의 자기시스템, 장 소적 재현체계, 장소적 표상-선험적 표상(칸트, 장자의 푸주)과 경험적 표상-으로 규장해도 또한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과 사물은 각기 자연물로서 평등하게 자기 존재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 26) 莊 子 知 北 遊 : 道 不 可 聞, 聞 而 非 也 ; 道 不 可 見, 見 而 非 也 ; 道 不 可 言, 言 而 非 也. 知 形 形 之 不 形 乎! 道 不 當 名. 27) 伍 雄 武, 中 國 哲 學 的 无 與 非 實 體 主 義, 羅 嘉 昌 등 주편, 場 與 有 - 中 外 哲 學 的 比 較 與 融 通 ( 五 ),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1998, 37쪽. 28) 伍 雄 武, 中 國 哲 學 的 无 與 非 實 體 主 義, 羅 嘉 昌 등 주편, 場 與 有 - 中 外 哲 學 的 比 較 與 融 通 ( 五 ),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1998, 31~33쪽 참조. - 35 -
구하고 사물은 우리가 만드는 인식의 경계에 존재한다. 사물이나 사람이 놓이는 곳도 자연적이지 만 인간의 의식은 자기 나름의 인식체계를 갖고 사물을 접근한다. 그 같은 경계 의 땅에는 아름 다운 것, 추한 것, 고상한 것, 저급한 것이 존재하며, 개똥이, 소똥이는 자기 가치가 본의 아니게 잠식되는, 이념적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문명론적 세태를 우의적으로 설파한 장자는 도 ( 道 )는 어느 곳이든 없는 데가 없다고 하여 이른바 사물의 가치와 그것이 놓인 장소적 정체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 체계를 수립할 것을 권장하였다. 인간이면 그렇게 희망하는 궁극적 규준이나 가치, 법칙성으로서 도 는 똥이나 오줌에도 있다고 하여 장자 나름의 가치 존재의 소재, 장소성 과 공간성을 설파하였던 것이다. 29) 이 같은 의미에서,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존재자 를 존재 로 동일시하려는 우를 범할지도 모 른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사물 인식의 패러다임을 현상학적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성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장소 기억의 문제 문화철학자 주겸지에 의하면, 1918년 근대 문화철학자 짐멜은 생명관 (Lebensan-schauung, p.49)에서 문화일반은 생성 에 의존하고, 생성하면서 여러 범주가 생기며, 생성이 객관 고유의 가치 형상에 이를 때, 문화가 생성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문화는 생명의 물줄기의 산물이며, 생명의 필연적 단계인데, 짐멜을 통해 볼 때 생성은 역사적이면서 사회적 중심이며 사회조직과 예술작품, 종교와 과학 인식, 경제와 도덕, 기술과 민법을 막론하고, 요컨대 문화와 문명은 생성 과정의 산물의 지나지 않으며, 생성 의 무한 다양성의 표징일 따름이다. 이 같은 생성의 문화관 은 의심할 바 없이 짐멜의 일대 공헌이며, 이로 말미암아 짐멜은 형식사회학자의 지위에서 문화 사회학자의 반열에 올랐는데, 문화란 짐멜이 지적한 것과 같은 것이며, 문화의 본질적인 것은 인 류생활의 깊은 곳, 영원히 창조되고 진화하는 생명의 물줄기 와 같은 것이다. 30) 공간의 어느 한 장, 인간은 그들이 머무는 장소 에서 과거, 현재, 미래로써 시간성, 역사성을 축적한다. 그 과정은 장소적 생성으로서 문화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꾸로 말하면 시 간성은 장소에 쌓이는 것이다. 사물은 그 역사 를 지니며 그 시종 을 가지며 눈앞의 위치에서 존재 하는 것도 아니다. 사 물이 사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눈앞의 위치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가 결정해주는 것으로, 사물의 근거 는 시간 에 존재 하며 역사 에 존재 한다. 시간 과 역사 는 사물로 하여금 사물의 자기 를 이룩하게 한다. 그러나 시간 과 역사 는 모두 장소에 있지 않고서는 장소에 존재하는 대상"(Gegestand)을 형성할 수 없다. 때문에 그 존재 를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같을 뿐만 아니라, 경청 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사물자체 를 이 해할 수 있고 사물의 시종일관을 알 수 있다. 31) 이런 점에서 장소에서 재현되는 표상은 하이 29) 莊 子 知 北 遊, 東 郭 子 問 於 莊 子 曰, 所 謂 道 惡 乎 哉. 莊 子 曰, 無 所 不 在. 東 郭 子 曰, 期 而 後 可. 莊 子 曰, 在 螻 蟻. 曰, 何 其 下 邪. 曰, 在 稊 稗. 曰, 何 其 愈 下 邪. 曰, 在 瓦 甓. 曰, 何 其 愈 甚 邪. 曰, 在 屎 溺. 東 郭 子 不 應 참조. 30) 黎 紅 雷 편, 朱 謙 之 文 集, 中 山 大 學 出 版 社, 2004, 125쪽. 31) 葉 秀 山, 論 事 物 與 自 己, 羅 嘉 昌 등 주편, 場 與 有 - 中 外 哲 學 的 比 較 與 融 通 ( 五 ), 中 國 社 會 科 學 出 版 社, 1998, 16쪽. - 36 -
데거의 존재자, 현존재, 사건, 시간과 사건이 어우러지는 역사성일 수 있다. 32) 예를 들자면, 청계천, 우포늪, 낙동강 유역 등등과 같은 수많은 장소에는 인간의 발자국이 스쳐 갔고, 앞으로도 그 흔적은 쌓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사물이나 사람이 몰려들어 장소를 생활의 근거지로 삼아 살아왔다. 장소성, 공간성, 그것에 반응하거나 감응한 장소감이 어 우러져 장소적 총체성을 성취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살아왔고 미래에 또한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기억 을 남길 것이다. 이는 그들 장소 특유의 시간성, 역사성으로서 재현의 자기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장소마다 존재하는 인문학적 자료로서 슬픈 이별의 노래 도 형상화되어 있을 수 있다. 비단 우포늪이 아니더라도, 장마철이면 범람하는 홍수의 기억은 늪이나 강 주변 한국 농촌에서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비가 많이 온 날 다리를 건너다 오빠, 동생, 새언니 세 사람 이 물에 빠져 떠내려 가다가, 오빠는 미처 여동생을 구해주지 못하고, 제 색시를 먼저 구해주다 보니 여동생은 구해줄 겨를이 미처 없었던 서민의 기억도 있을 수 있다. 33) 이렇듯 장소는 시간성을 토대로 빚어지는 기억으로서 장소성 을 생성하는 곳이다. 무수한 현존 재의 모습, 형상, 표상이 존재하는 터로서, 장자의 포정해우 에 보이는 것처럼 소의 몸 이라는 장소적 결, 무늬가 선험적으로 표상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그곳에 참여한 인간의 메커니즘이 더 해져서, 장소감, 장소 정신이 포함되는 총체성으로서 장소성을 형성되어 또 다시 시간 속에 하나 의 문화 요소를 형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Ⅳ. 맺음말 하이데거는 공간성과 공간을 구분하였다. 공간성 이란 현존재 가 살아가는 존재론적 범주의 공간이다. 여기에는 세계=내( 內 )=존재로서 현존재가 규정된다. 공간 은 배시적( 配 視 的 ) 배려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인식론의 범주에 있는, 주체가 사물이나 타자를 인식하는 그러한 공간이다. 34) 그런데 필자는 공간성 을 현존재 의 공간 말고도 그것이 빚어내는 성( 性 ) 으로 규정하고 싶다. 32) 김종두, 하이데거에 있어서 존재와 현존재, 서광사, 2000, 430쪽 참조. 33) 우포늪에는 늪지의 입지 조건에 어울리는 지역 주민들의 기억이나 기록이라는 공간적 시간성이 쌓이고 있다. 그 가운데는 모 노래 도 있고 수제비 노래 도 있으며, 슬픈 이별의 노래도 있다. 퐁당퐁당 수제비/ 사위 판에 다 올랐네/ 요 넘어 할마씨 어딜 가고/ 딸에게 통제를 시켰는고. (노용호, 장소의 문화지형-생태와 인문 자원이 어우러진 우포늪, 로컬리티의인문학 21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11, 4~5쪽 참조). 이 노래는 시집간 딸에게 수제비를 만들어 오라하니 알맹이는 남편에게 주고 아버지에겐 국물만 가져 왔다는 내용이다. 우포라는 입지에는 밭농사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널따란 습지에 밀농사는 더욱 어려울 것이었 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름철 구미를 당기는 수제비를 맛보기란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딸이 신랑에게 수제비 건더기를 떠주다 보니 친정아버지에게 갈 내용물은 여의치 않았던가 보다. 제 남편을 더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비친 딸을 원망하면서 양손으로 수제비를 빚는 시늉을 하면서 부른다는 노래는 우포늪 근처에서 독특하게 전해 내려온다. 한편 물에 빠져 죽은 여동생의 슬픈 외침이 담긴 노래도 있다. 무정하다 우 오라바/ 나는 죽어서 뱀이 되고/ 오빠 죽어서 개구리가 돼서/ 오월이라 단오날에/ 미나리깡서 만나자 (노 용호, 장소의 문화지형-생태와 인문자원이 어우러진 우포늪, 로컬리티의인문학 21호, 부산대학교 한국민족 문화연구소, 2011, 4~5쪽 참조). 이렇듯 장소는 기억을 쌓는다. 시간성의 과정을 통해 존재자인 인간의 사건 으로 쌓는 것이다. 그 점에서 공간이라 하지 않고 장소 라 하며, 그 나름의 표상이나 재현 체계를 장소성, 현존성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우포늪에는 그 같은 장소적 조건을 근거로, 지금은 대단위 양파 농사 단지가 조성되고 있는데, 이 역시 시간성의 사건 으로 쌓이는 장소 기억 일 것이고, 진정한 인문학자라면 여기에 쌓 일 미래 기억 을 에측해 내는 혜안이 있어야 할 것이다. 34) 마루타 하지메 지음, 박화리ㆍ윤상현 옮김, 장소 론, 심산, 2011, 85~86쪽 참조. - 37 -
공간에 대한 실재 를 가능하게 하는 성질 이나 성격 과 같은 거기에 내재한 생성적 자기 체계, 기철학적 형상과 질료 개념이 混 淆 된 유의미의 공간으로 접근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장소 와 장 소성 의 관계도, 그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 보려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공간과 장소, 이 같은 사물 존재의 장 에는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 표상 체계가 있어서, 그것 은 현장성의 기억을 이루며 장소성으로서 문화를 형성하며, 역시 그 나름의 장소적 재현 체계를 이룬다. 예를 들어, 경복궁 나뭇잎이 가을에 빨갛게 물들었다 면, 봄에는 녹색으로 표상되고 여 름에는 푸르게, 가을에는 빨갛게 물드는 과정 을 거친다. 여기서 녹색으로, 푸르게, 빨갛 게 라는 속성의 변화 과정 은 봄, 여름, 가을이라는 시간의 실재, 현존재로서 시간성을 갖는다. 경복궁 이라는 장 을 통해서 표상 체계를 형성하는데, 공간 기억의 역사성을, 곧 과거, 현재, 미 래를 통한 현시적 존재자, 현존재의 궤적을 끊임없이 쌓아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풍토 성 35) 이나 상대주의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렇듯 시간과 역사는 모두 장을 통해 對 象 을 빚 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장소는 그 나름대로 입지조건과 같은 基 體 로서 장소성을 갖지만, 인간은 나름의 메커니즘을 갖고 장소의 주체가 된다. 그런 방식으로 인간은 문명적이면서 문화적인 표상을 장소에 재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실 공간으로서 지역, 장소의 말살, 상실, 변형이 문제된다. 장소가 공간이 지닌 내재 가치로서 무한한 성 이 단순하게 획정될 수도 있다. 공간이나 장소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려 는 문명적 과정에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이른바 정체성 이 참된 존재의 출현을 막는다. 정 체성이란 단자 나 원자 와 같이 나눌 수 없는 사물의 보편자적 물질성의 근원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일자 로서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원초적 근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체성 아닌 정체성의 탈을 씌워 수 많은 타자의 가치를 자기편 한바구니 에 끌어넣으려 한다. 국가, 민족, 타자, 마을,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이념적 도구로 정체성 을 이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풍토와 같은 지역적 정체성, 국시, 민족성 같은 자기 가치를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내면이 만들어 내는 추악 한 자기 합리화의 상상력은 이데올로기와 같은 신앙적 정체성을 만들어 진정한 공간과 장소를 말살하거나 그 생성을 막는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사욕을 챙기려는 동물적 속성에 기반한 것으로, 그것은 한편으로 바닥없는 욕망의 심연으로 자기와 타자를 내몰 수 있는 위험한 문명적 동인( 動 因 )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는 누구나 갖고 있는 물질의 내면 경계를 위해 역시 자신도 모르게 타자를 내 안으로 끌어 들이 려 하고 타자 또한 나를 품어내려 한다. 그러다 어느새 수많은 타자들은 나의 손아귀에 있거나 나 역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패배자의 반열에서, 반성을 모른 채 타자화된 나의 칼을 갈며 욕 망의 쳇바퀴에 또다시 빠져든다. 이것이 인간 문명의 과거 기억이며, 역시 신자유주의적 문명 현 상은 이를 자명하게 설명해 준다. 따라서 장소를 둘러싼 기억을 발견하며, 한편으로는 장소에 내재하는 다가올 기억을 성찰하고 대화하는 아량으로 그 재현 체계를 제대로 읽어 낼 때, 앞서 지적한 바, 공간이나 장소의 잠재적, 기회적, 실존적 존재와 같은 장소의 잠재성이나 가능성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로컬리티의 학은 장소적 재현체계에 관한 것으로 유의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35) 풍토성에 주목한 저작으로는 和 辻 哲 郞 의 風 土 - 人 間 學 的 考 察 ( 岩 波 書 店, 1936)가 있다. - 38 -
하고 이 시대 새로운 일자, 돈 과 같은 획일적 정체성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함으로써 공간이나 장 소가 갖는 가능성을 왜곡한다. 이런 점에서 공간, 장소나 풍토가 지닌 문화적 요소에 대해서 뿐 만 아니라 생성론적 관점에서 참된 공간과 장소를 발견하는 진정한 태도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道 德 經 周 易 莊 子 列 子 呂 氏 春 秋 春 秋 繁 露 Kern, Stephen, 박성관 옮김,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휴머니스트, 2004. 게오르그 짐멜 지음, 김덕영ㆍ배정희 옮김, 게오르그 짐멜의 문화이론, 길, 2007. 金 吾 倫, 生 成 哲 學 河 北 大 學 出 版 社, 2000. 마루타 하지메 지음, 박화리ㆍ윤상현 옮김, 장소 론, 심산, 2011. 마르쿠스 슈뢰르 지음, 정인모ㆍ배정희 옮김, 공간, 장소, 경계, 에코리브르, 2010.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孫 歌, 主 體 彌 散 的 空 間 - 亞 洲 論 述 之 兩 難, 江 西 敎 育 出 版 社, 2002. 시미즈 히로시( 淸 水 博 ) 지음, 박철은ㆍ김강태 옮김, 생명과 장소, 그린비, 2010. 신응철, 문화철학과 문화비평, 철학과 현실사, 2003. 안동림 옮김, 莊 子, 현암사, 1993. 어정연ㆍ여홍구, 장소개념에서의 장소가치에 대한 논의, 국토계획 45권 6호, 대한국토ㆍ도시 계획학회, 2010. 黎 紅 雷 편, 朱 謙 之 文 集, 中 山 大 學 出 版 社, 2004. 이명수, 동아시아 사유에 나타난 로컬리티의 존재와 탈근대성, 한국사상과 문화 45집, 한국 사상문화학회, 2008. 이명수, 중국문화에 있어 시간, 공간 그리고 로컬리티의 문제, 동양철학연구 55집, 동양철학 연구회, 2008. 이명수, 로컬리티의 포섭, 갈등, 조화에 관한 존재론적 접근, 동양철학연구 66집, 동양철학연구 회, 2011. 이석환ㆍ황기원, 장소와 장소성에 관한 다의적 개념에 관한 연구, 국토계획 32권 5호(통권 91호), 대한국토ㆍ도시계획학회, 1997. 程 宜 山, 張 載 哲 學 的 系 統 分 析, 學 林 出 版 社, 新 華 書 店 ( 上 海 ), 1989. 陳 遵 嬀, 中 國 天 文 學 史, 臺 北, 明 文 書 局, 1984. 和 辻 哲 郞, 風 土 - 人 間 學 的 考 察, 岩 波 書 店, 1936. E. Relph, Place and Placelessness, Pion Limited, London 1976, 1980(Reprinted). - 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