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A Study on Taoist Literatures Including in Annotated Classified Bibliographies in Joseon Dynasty 리 상 용 (Sang-yong Lee)* 초 록 본 논문은 조선시대에 편찬된 분류순 해제목록인 해동문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씨독서록 등에 수록된 도가서적의 해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이단인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해제를 기술했는지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전반적으로 도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는데 있어, 성리학적인 관점이 아닌, 도가 자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해제를 기술하였다. 다만 홍석주의 홍씨독서록 에서 는 도가의 장단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극명하게 피력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 해제목록에서 당시 이단시했던 도가서적을 선정하여 수록하고 나름대로 해제의 객관성을 유지한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d the annotations of Taoist literatures in Haedong -munheon-chongnok, Gyujang-chongmok, Nupango and Hongssi-dokseorok, which were annotated classified bibliographies compiled in Joseon Dynasty. Based on the analyses, the study explored the perspectives from which the annotations were written since Taoism was considered to be heretical from a Confucian point of view. With respect to writing the annotations of Taoist literatures, it was general that the annotations were written objectively about Taoism, rather than relying on a Confucian perspective. Yet, Hong Seok Ju, who wrote Hongssi-dokseorok clearly expressed his opinions about the pros and cons of Taoism. Overall, it would be well appreciated that the annotated bibliographies in Joseon Dynasty retained objectivity in Taoist literatures regarded as heresy at that time. 키워드: 도가, 도가서적, 해동문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씨독서록 Taoism, Taoist literatures, Haedong-munheon-chongnok, Gyujang-chongmok, Nupango, Hongssi-dokseorok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문헌정보학전공 교수(syly@ewha.ac.kr) 논문접수일자 : 2013년 2월 13일 논문심사일자 : 2013년 2월 26일 게재확정일자 : 2013년 3월 7일
64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1. 서 론 고려시대의 도교와 불교는 조선왕조의 개국 과 더불어 그 자리를 점차 상실해 갔고, 새 시대 를 펼칠 지배이념으로 성리학이 대두되기 시작 하였다. 역성혁명( 易 姓 革 命 )을 일으킨 이성계 ( 李 成 桂 ), 조준( 趙 浚 ) 등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 와 신흥무장집단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통 치이념이 필요했다. 정도전( 鄭 道 傳 ), 권근( 權 近 ) 등 조선초기의 개국공신이자 학자들은 성 리학의 기초를 닦고, 사회지배체제에 뿌리 내리 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여, 이 성리학은 조선왕 조 500년을 지배하는 통치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시대에 정신적인 지주 역할 을 했던 불교와 정부차원에서 비교적 성행했던 도교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쇠퇴의 길을 가게 되 었다. 도교는 불교에 비해 그리 큰 타격을 받지 는 않았지만, 태조 때부터 소격서( 昭 格 署 )를 제외한 기존의 초소( 醮 所 )를 혁파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축소적 개혁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의 도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국가적 차원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수련 차원에서 그 명 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편찬된 대표적인 해제목록 가운데 도가 서적을 수록한 목록으로는 김휴( 金 烋 )의 해동문헌총록( 海 東 文 獻 總 錄 ) (1638), 서호 수( 徐 浩 修 )의 규장총목( 奎 章 總 目 ) (1781), 서유구( 徐 有 榘 )의 누판고( 鏤 板 考 ) (1796), 홍석주( 洪 奭 周 )의 홍씨독서록( 洪 氏 讀 書 錄 ) (1810) 등이다. 이들 목록에서는 도가류, 노가 류 등의 분류항목을 설정하여 관련 저작을 수 록하였다. 이들 목록에 대한 기존 연구들을 살펴보면, 목록의 해제(강주진 1969), 편찬자의 가계 및 학문(김문식 1999; 박인호 2006; 김희영 2009), 목록의 편찬 및 분류체계와 목록기입법(배현숙 1975; 리재철 1976; 김윤식 1979; 송일기 1983; 김희영 2009; 리상용 2012), 수록 서적의 선정 기준 및 질적 분석 평가(리상용 2005a; 2005b; 2011a), 불교서적에 대한 연구(리상용 2011b) 등 다양한 연구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해제목 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 는 현재 없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제목록들은 당시 성 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성장한 정통 유학자들이 편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유학자들이 그 들이 편찬한 해제목록에서 당시 이단시 했던 도 가서적에 대해 어떻게 해제했는지 궁금하지 않 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해제 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의 해제 내용을 토대로 당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에 대해 어떤 관 점에서 이들 서적의 해제를 기술하였는지에 대 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조선시대의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 적으로는 해동문헌총록( 海 東 文 獻 總 錄 ) 제 가시문집류( 諸 家 詩 文 集 類 ) 의 선귀목( 仙 鬼 目 ) 에 1종, 규장총목( 奎 章 總 目 ) 의 도가류( 道 家 類 )에 6종, 누판고( 鏤 板 考 ) 의 도가류( 道 家 類 )에 3종, 홍씨독서록( 洪 氏 讀 書 錄 ) 의 노 가문( 老 家 門 )에 9종 등 총 19종이다. 이들 목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65 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19종을 열거해 보면 다 음과 같다.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목록 해동문헌총록 自 然 堂 集 / 靑 衣 童 子 규장총목 老 莊 翼 十 本 / 老 子 卽 周 柱 下 史 老 聃 所 著 道 德 經 二 本 / 卽 老 子 南 華 經 四 本 / 卽 莊 子 周 易 參 同 契 解 一 本 / 漢 魏 伯 陽 撰 明 涂 國 柱 集 解 南 華 經 副 墨 十 一 本 / 明 方 壺 外 史 陸 西 星 註 金 丹 正 理 大 全 十 七 本 / 明 亡 名 氏 編 누판고 新 註 道 德 經 二 卷 / 李 朝 吏 曹 判 書 文 貞 公 朴 世 堂 撰 句 解 南 華 眞 經 十 卷 / 宋 中 書 舍 人 林 希 逸 撰 周 易 參 同 契 一 卷 / 漢 魏 伯 陽 撰 宋 朱 子 註 홍씨독서록 老 子 二 卷 / 周 柱 下 史 老 聃 作 莊 子 十 卷 / 莊 周 作 列 子 八 卷 / 列 禦 寇 作 關 尹 子 一 卷 / 關 令 尹 喜 作 參 同 契 一 卷 / 漢 魏 伯 陽 作 抱 朴 子 八 卷 / 晋 葛 洪 作 黃 庭 內 景 經 一 卷, 外 景 經 一 卷 / 晋 以 前 人 作 陰 符 經 一 卷 / 唐 李 筌 傳 위의 19종 서적의 저자를 살펴보면 한국인 저작으로는 해동문헌총록 에 수록된 청의동 자( 靑 衣 童 子 )의 자연당집( 自 然 堂 集 ), 누 판고 에 수록된 박세당( 朴 世 堂 )의 신주도덕 경( 新 註 道 德 經 ) 2종에 불과하고, 나머지 17 종은 모두 중국인 저작이다. 3. 도가서적 해제의 실제 여기에서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19종의 해제의 내용과 그 성격에 대해 살펴보 고 도가서적 해제에 대해 평가를 내려 보고자 한다. 3.1 도가서적 해제분석 조선시대 편찬된 주요 해제목록인 해동문 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씨독서록 등에 수록된 19종의 도가서적 가운데 해제를 기술하지 않고 저자표시만 한 경우는 규장총 목 에 수록된 도덕경( 道 德 經 ) 1종이고 나 머지 18종의 서적에 해제가 기술되어 있다. 여 기에서는 이들 목록에 수록된 저록의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의 주요 해 제목록에서 당시에 이단에 속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어떻게 해제를 기술했는지 그 내용을 보 는 것은 의미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서 는 해동문헌총록, 규장총목, 누판고, 홍 씨독서록 등 목록의 편찬순서대로 그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3.1.1 해동문헌총록( 海 東 文 獻 總 錄 ) 해동문헌총록 에 수록된 도가서적은 제가
66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시문집류( 諸 家 詩 文 集 類 ) 의 선귀목( 仙 鬼 目 ) 에 수록된 자연당집( 自 然 堂 集 ) 1종이다. 그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계만록( 松 溪 漫 錄 ) 에 의하면, 거창현( 居 昌 顯 )에 사는 이익수( 李 翼 壽 )가 나이 16인가 17세 때 길에서 12살 쯤 된 청의동자( 靑 衣 童 子 )를 만났는데, 자칭 해중선( 海 中 仙 )이라 하 였다. 서로 이야기 했는데 너무 좋아서 밤새 놀 다 아침나절에야 집에 돌아왔고, 걸핏하면 따라 다녔다. 그 때부터 이씨의 문장은 날마다 향상 되어 붓만 잡으면 그 자리에서 쑥 써내려가서, 그의 저술이 거의 천여 편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식과 조카들이 어려서, 저작들이 거의 다 없 어지고 흩어져서 약간 수를 모아서 1권의 책으 로 만들어 제목을 자연당집( 自 然 堂 集 ) 이라 했는데, 이는 해중선( 海 中 仙 )의 자호( 自 號 ) 이다. 거기에 수록된 삼청정기( 三 淸 亭 記 ), 오가사기( 五 可 寺 記 ) 등은 사람이 미칠 수 없 는 것이다. 그의 시 관형( 觀 螢 ) 과 증형( 贈 兄 ) 과 같은 작품들은 귀신이 지은 시가 아닌 듯하 지만 이 시들은 기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그가 귀신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 만방으로 내쫓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이별하 고 공중으로 솟아올라 가버렸다. 날아올랐을 때 간혹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본 모습 으로 돌아온 뒤로부터는 성명이나 대충 쓸 수준 이었다. 중년이 되서 나에게 배웠는데 항상 실성 한 사람 같았다. 지금은 없지만, 친히 그의 말을 들어서 이렇게 사실을 기록한다. 1) 이처럼 해 동문헌총록 에서는 권응인( 權 應 仁 )의 시화집 인 송계만록( 松 溪 漫 錄 ) 에 수록된 내용을 인 용하여 해제를 기술하였다. 특별히 도가에 대한 내용은 없고, 자연당집 에 대해 해제를 기술하 였다. 3.1.2 규장총목( 奎 章 總 目 ) 규장총목 자부 도가류에는 노장익( 老 莊 翼 ), 도덕경( 道 德 經 ), 남화경( 南 華 經 ), 주역참동계해( 周 易 參 同 契 解 ), 남화경부묵( 南 華 經 副 墨 ), 금단정리대전( 金 丹 正 理 大 全 ) 등 6종의 저록이 수록되었다. 이 가운데 도덕 경 을 제외한 나머지 5종의 서적에 대해 해제 를 기술하고 있다. 이들 해제의 내용을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먼저 노장익( 老 莊 翼 ) 의 해제에서는 주 대의 노자와 장자가 지은 것으로 명대 한림원 ( 翰 林 院 ) 수찬( 修 撰 )인 초횡( 焦 竑 )이 64명 의 주석을 모아서 책을 편찬하고 말미에 부록 으로 자신의 초횡필승( 焦 竑 筆 乘 ) 을 붙이고, 고이( 考 異 ) 를 수록했다 2) 고 밝히고 있다. 1) 金 烋. 海 東 文 獻 總 錄 諸 家 詩 文 集 類 仙 鬼 目. 松 溪 漫 錄 曰 居 昌 顯 有 李 翼 壽 年 十 六 七 時 道 遇 靑 衣 童 子 年 可 十 二 三 自 稱 海 中 仙 相 語 大 悅 夜 歸 朝 來 動 輒 追 從 自 此 李 之 文 章 翰 墨 日 益 進 操 筆 立 成 其 所 作 幾 至 千 餘 篇 而 子 侄 輩 幼 穉 散 亡 殆 盡 僅 拾 若 干 首 合 爲 一 卷 目 曰 自 然 堂 集 此 仙 子 自 號 也 如 三 淸 亭 五 可 寺 等 記 人 固 莫 及 其 觀 螢 詩 么 麽 微 腹 貯 陽 精 屋 高 低 滅 復 明 莫 向 碧 空 風 裏 落 觀 臺 明 日 奏 流 星 贈 兄 詩 文 場 得 失 正 如 碁 一 敗 寧 無 大 勝 時 莫 訝 月 娥 分 桂 盡 他 年 那 欠 贈 兄 枝 其 六 言 詩 煙 籠 庭 樹 勻 綠 雨 過 園 桃 嫩 紅 門 外 靑 山 遶 野 醉 來 高 臥 軒 東 牆 下 叢 筠 嫩 綠 山 前 躑 躅 層 紅 主 人 醉 裏 淸 興 明 月 三 更 出 東 如 此 等 作 似 非 鬼 詩 然 是 不 及 文 矣 其 嚴 親 懼 其 爲 魔 所 傷 驅 逐 萬 方 泫 然 泣 辭 騰 空 而 去 飛 昇 之 祭 人 或 見 其 形 者 也 一 自 還 錦 粗 記 姓 名 中 年 來 學 於 余 常 若 失 性 者 今 也 則 亡 親 聞 其 語 記 實 如 右 云. 2)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道 家 類. 老 子 卽 周 柱 下 史 老 聃 所 著 莊 子 卽 周 漆 園 吏 莊 周 所 著 明 修 撰 焦 竑 輯 注 釋 六 十 四 家 排 纘 成 編 而 自 附 焦 氏 筆 乘 于 末 並 錄 考 異.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67 다음으로 남화경( 南 華 經 ) 의 해제를 살펴 보고자 한다. 남화경 4책. 장자 지음. 한서예문지 에서는 52 편이라 하였다. 진( 晉 ) 상수( 向 秀 )와 곽상( 郭 象 )의 합본이 33편인데, 내편 8편(실은 7편), 외 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남화진경( 南 華 眞 經 ) 이라 한다. 진진손( 陳 振 孫 )이 다음과 같이 말 하였다. 진서( 晉 書 ) 의 곽상전( 郭 象 傳 )을 살 펴 보건데, 상수가 장자를 주해했는데 다 완성하 지 못하고 죽자, 곽상이 이를 몰래 자기 주석으로 삼고, 추수( 秋 水 )와 지락( 至 樂 ) 2편을 자기가 주해하였다. 또 마제( 馬 蹄 ) 1편을 바꾸고, 그 나 머지는 문구만을 점정( 點 定 )하였다. 그 뒤에 상 수의 장자해의( 莊 子 解 義 ) 가 별도의 책으로 나와서 지금 상수와 곽상 2종의 장자해설서가 있지만 그 뜻은 하나이다. 그러나 상수의 장자해 의 는 지금 전하지 않고 단지 육덕명( 陸 德 明 )의 장자석문( 莊 子 釋 文 ) 만 볼 수 있다.( 南 華 經 四 本 卽 莊 子 漢 志 本 五 十 二 篇 晉 向 秀 郭 象 合 爲 三 十 三 篇 內 篇 八 [실은 七 ] 外 篇 十 五 雜 篇 十 一 號 南 華 眞 經 陳 振 孫 曰 按 晉 郭 象 傳 向 秀 解 莊 子 未 竟 而 卒 象 竊 以 爲 已 注 乃 自 注 秋 水 至 樂 二 篇 又 易 馬 蹄 一 篇 其 餘 點 定 文 句 而 已 其 後 秀 義 別 出 故 今 有 向 郭 二 莊 其 義 一 也 然 向 義 今 不 傳 但 見 陸 氏 釋 文 ) 3) 위의 해제에서 남화경 의 편권에 대해 기 술하고, 상수와 곽상 2종의 해설서가 나오게 된 경위와 현전본에 대해 밝혔다. 다음으로 주역참동계해( 周 易 參 同 契 解 ) 의 해제에서는 이 책이 한대의 위백양( 魏 伯 陽 ) 이 편찬하고, 명대의 도국주( 涂 國 柱 )가 집해 한 것이다. 주자께서 이 책에 대해 참동계( 參 同 契 )에서 말한 감리( 坎 離 ), 수화( 水 火 ), 용호( 龍 虎 ), 연홍( 鉛 汞 )과 같은 것들은 단지 정( 精 )과 기( 氣 ) 두 개일 뿐이며, 그 방법은 신운정기( 神 運 精 氣 )로 하고 결합하여 단( 丹 )이 된다. 양기 는 아래에 있어서 처음에는 물을 이루는데 불로 서 단련하면 응고되어 신단이 된다고 하니 그 설이 아주 신기하다. 고 하시고, 또한, 문장이 아주 좋은데 대개 후한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 거기에서 쓴 글자는 모두 고서를 참고하여 지었으므로 지금 사람이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평하신 내용을 기술하였 다. 또한 갈홍( 葛 洪 )의 말을 빌어서 위백양이 참동계 를 지었는데, 그 설은 주역 과 비슷 하지만, 실제로는 효상( 爻 象 )을 차용하여 단 ( 丹 )을 만드는 뜻을 논의한 것 4) 이라고 기술 하였다. 다음으로 남화경부묵( 南 華 經 副 墨 ) 의 해 제를 보면, 명대의 방호외사( 方 壺 外 史 ) 육서 성( 陸 西 星 )이 주해한 것이라 하고 그가 저술한 독법( 讀 法 )에서 남화경 의 문자 가운데 평이 해서 해석할 수 있는 부분과 어려워서 풀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독자들은 풀이가 가능한 것만 해석하고 따질 수 없는 것들은 따지지 말 아야 비로소 그 뜻을 얻을 수 있다. 만일 하나 3)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道 家 類. 4)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道 家 類. 周 易 參 同 契 解 一 本 漢 魏 伯 陽 撰 明 涂 國 柱 集 解 朱 子 曰 參 同 契 所 言 坎 離 水 火 龍 虎 鉛 汞 之 屬 只 是 精 氣 二 者 而 已 其 法 以 神 運 精 氣 結 以 爲 丹 陽 氣 在 下 初 成 水 以 火 鍊 之 則 凝 神 丹 其 說 甚 異 又 曰 文 章 極 好 蓋 後 漢 之 能 文 者 爲 之 其 用 字 皆 根 栝 古 書 非 今 人 所 能 解 葛 洪 曰 伯 陽 作 參 同 契 其 說 似 周 易 其 實 假 借 爻 象 以 論 作 丹 之 意.
68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하나 그것을 곡설( 曲 說 )하면 지리( 支 離 )하고 파쇄( 破 碎 )하여 그 뜻을 얻지 못하게 된다 고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호응린( 胡 應 麟 )의 말을 인용하여 장자의 남화경 은 그 문사가 뛰어나고 우뚝 솟으며, 제멋대로 휘갈겼 으니 참으로 천지간에 홀로 행한다. 성신( 聖 神 ) 을 배격하고 현철( 賢 哲 )을 능모( 凌 侮 )하는 것 역시 인류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변괴이며, 소 동파가 그 문사를 탐닉하여, 도척편( 盜 跖 篇 )과 양왕편( 讓 王 篇 ) 등 4편은 장자의 저술이 아니 라고 했는데, 그 취지를 조사해보니 사실에 가 깝다. 천하편( 天 下 篇 )에서 공자를 언급하지 않 은 것을 겉으로는 배척하고 몰래 도와주었다고 평했는데 이는 아주 말도 안 된다. 5) 고 해제하 였다. 다음으로 금단정리대전( 金 丹 正 理 大 全 ) 의 해제를 보면 명대에 편찬된 저작미상의 서적 인데, 도가서적 11종 42권으로 구성되었다. 종 실( 宗 室 ) 주번( 周 藩 ) 숭악주인( 嵩 嶽 主 人 )의 서문에서 금단정리대전 은 말마다 도를 밝히 고 구절마다 기미를 드러냈다. 용호경( 龍 虎 經 ) 과 참동계( 參 同 契 ) 의 비밀을 파헤치고, 음부경( 陰 符 經 ) 과 오진편( 悟 眞 篇 ) 의 은 미함을 밝혔으니, 진실로 수진( 修 眞 )의 모범 6) 이라고 해제하였다. 3.1.3 누판고( 鏤 板 考 ) 누판고 의 자부 도가류에는 신주도덕경( 新 註 道 德 經 ), 구해남화진경( 句 解 南 華 眞 經 ), 주역참동계( 周 易 參 同 契 ) 등 3종의 서적이 수 록되었다. 이들 해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신주도덕경( 新 註 道 德 經 ) 의 해제를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주도덕경 2권. 조선 이조판서 문정공 박세당 편찬. 박세당이 말하기를 노자의 도는 한대에 써 서 다스려지고, 진대의 사람이 써서 현허( 玄 虛 ) 에 귀결시켰다. 도에는 두 가지 길이 있지 않다. 해석을 잘했느냐 잘못했느냐만 있다. 라고 하셨 다. 마침내 그 책의 취지와 귀결을 자세하게 주석 하였다. 대부분 임희일( 林 希 逸 )의 주석서인 노 자구의( 老 子 口 義 ) 에 대한 오류를 논박한 것이 다.( 新 註 道 德 經 二 卷 李 朝 吏 曹 判 書 文 貞 公 朴 世 堂 撰 世 堂 謂 老 子 之 道 漢 用 之 而 治 晉 人 用 之 歸 於 玄 虛 道 非 二 致 解 有 善 不 善 耳 遂 爲 之 疏 釋 其 旨 歸 多 駁 林 希 逸 注 之 謬 ) 7) 위의 해제에서 박세당이 도덕경 을 주석 해서 그 취지와 귀결을 자세히 해석했다고 하 고, 대부분 송대의 학자인 임희일의 노자구 의 의 오류를 논박한 것이라고 해제하였다. 다음으로 구해남화진경 의 해제를 살펴보 5)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道 家 類. 南 華 經 副 墨 十 一 本 明 方 壺 外 史 陸 西 星 註 自 著 讀 法 曰 南 華 文 字 中 有 平 易 可 解 者 有 艱 澁 不 可 致 詰 者 讀 者 但 當 解 其 所 可 解 而 不 致 詰 其 所 不 可 詰 乃 爲 得 之 若 一 一 爲 之 曲 說 非 惟 支 離 破 碎 不 得 其 旨 胡 應 麟 曰 莊 周 南 華 其 文 辭 瑰 崛 橫 放 固 獨 行 天 地 間 至 掊 擊 聖 神 凌 侮 賢 哲 亦 生 民 以 來 未 有 之 變 也 眉 山 氏 癖 其 文 辭 而 謂 盜 跖 讓 王 四 篇 非 周 作 尋 其 旨 趣 或 近 之 至 以 天 下 篇 不 敍 仲 尼 爲 陽 擠 陰 助 則 亡 謂 之 大 者. 6)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道 家 類. 金 丹 正 理 大 全 十 七 本. 明 亡 名 氏 編 道 書 十 一 種 總 四 十 二 卷 宗 室 周 藩 嵩 嶽 主 人 序 曰 金 丹 正 理 大 全 言 言 顯 道 句 句 露 機 剖 龍 虎 參 同 之 秘 密 燭 陰 符 悟 眞 之 隱 微 誠 修 眞 之 模 範 也. 7)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道 家 類.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69 면, 편찬자인 송대의 중서사인( 中 書 舍 人 ) 임 희일( 林 希 逸 )이 장자에 대해 터득한 지식이 자 못 얕은데도, 옛 주석을 배척하였으니, 제 국량 을 헤아리지는 못했지만, 문장의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서 쉽게 이해되니 어린 학생들에게 도움 이 되는 것이다. 지금 판각한 책에는 조선시대 최립( 崔 岦 )의 언두( 諺 讀 )가 있다. 8) 고 해제 하였다. 주역참동계 의 해제를 살펴보면 한대 위 백양( 魏 伯 陽 )이 편찬하고 송대 주자가 주석한 책이다. 위백양의 참동계 는 세간에서 역가라 고 하지만 실제로는 효상( 爻 象 )을 빌려서 단 ( 丹 )을 만드는 뜻을 논의한 것이며, 단경( 丹 經 ) 가운데 이 책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주자 주의 구제( 舊 題 )는 주역참동계고이( 周 易 參 同 契 考 異 ) 지만, 글자를 정정한 것은 불과 7, 8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단법을 해석한 것이므로 실제로는 전주( 箋 註 )이다. 이 책은 조선의 남구만( 南 九 萬 )이 유염( 兪 琰 )의 주 역참동계발휘( 周 易 參 同 契 發 揮 ) 에서 주자의 주석 및 황서절( 黃 瑞 節 )의 부록을 추려서 1권 의 책으로 편찬한 것 9) 이라고 해제하였다. 3.1.4 홍씨독서록( 洪 氏 讀 書 錄 ) 홍씨독서록 자부 노가문( 老 家 門 )에는 노자( 老 子 ), 장자( 莊 子 ), 열자( 列 子 ), 관윤자( 關 尹 子 ), 참동계( 參 同 契 ), 포박 자( 抱 朴 子 ), 황정내경경( 黃 庭 內 景 經 ), 외 경경( 外 景 經 ), 음부경( 陰 符 經 ) 등 9종의 서적을 수록하고 있다. 먼저 노가의 사상적 원류인 노자( 老 子 ) 와 장자( 莊 子 ) 의 해제를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자 2권 주( 周 ) 주하사( 柱 下 史 ) 노담( 老 聃 ) 지음. 도 덕경( 道 德 經 ) 이라고도 한다. 이 책을 주해한 사람은 하상공( 河 上 公 ) 이하 거의 수십 명인데, 왕필( 王 弼 )의 주( 注 )가 가장 정밀하다고 한 다.( 老 子 二 卷 周 柱 下 史 老 耼 之 所 作 也 亦 曰 道 德 經 注 其 書 者 自 河 上 公 以 下 殆 數 十 家 而 王 弼 注 號 最 精 云 ) 10) 장자( 莊 子 ) 10권 장주( 莊 周 ) 지음. 노자( 老 子 )는 비록 허무( 虛 無 )를 숭상했으나, 처음부터 큰 소리로 선왕( 先 王 )의 도를 꾸짖지 않았는데, 장자( 莊 子 )에 이 른 후에는 멋대로 날뛰고, 방자하게 언동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 설은 자연( 自 然 ) 을 으뜸으로 삼으니 또한 노자의 뜻과 약간 차이 가 난다. 그 문장과 조리 있는 논설은 선진( 先 秦 ) 이래 가장 뛰어나다. 세간에 전하는 것으로 곽상 ( 郭 象 ), 여혜경( 呂 惠 卿 ), 초횡( 焦 竑 )의 주해 서가 있는데, 오직 임희일( 林 希 逸 )의 구의( 口 8)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道 家 類. 句 解 南 華 眞 經 十 卷. 宋 中 書 舍 人 林 希 逸 撰 所 得 於 莊 子 者 頗 淺 乃 排 斥 舊 註 殆 不 自 量 然 詞 旨 明 顯 易 入 尙 有 裨 於 幼 學 今 刻 本 有 李 朝 崔 岦 諺 讀. 9)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道 家 類. 周 易 參 同 契 一 卷 漢 魏 伯 陽 撰 宋 朱 子 註 伯 陽 參 同 契 世 稱 爲 易 家 其 實 假 借 爻 象 以 論 作 丹 之 意 丹 經 中 此 爲 最 古 朱 子 註 舊 題 考 異 然 訂 正 文 字 者 不 過 七 八 處 餘 皆 詮 釋 丹 法 實 卽 箋 註 也 今 本 李 朝 南 九 萬 從 兪 琰 參 同 契 發 揮 中 掇 取 朱 子 註 及 黃 瑞 節 附 錄 編 爲 一 卷. 10)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70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義 ) 및 조선조( 朝 鮮 朝 ) 박세당( 朴 世 堂 )의 집 주( 集 注 )가 성행( 盛 行 )한다.( 莊 子 十 卷 莊 周 之 所 作 也 老 子 雖 崇 尙 虛 無 未 始 大 言 詆 先 王 之 道 至 莊 氏 而 後 猖 狂 恣 睢 之 弊 極 矣 然 其 說 以 自 然 爲 宗 又 與 老 氏 之 旨 微 異 其 文 章 雄 辯 則 先 秦 以 降 所 未 有 也 世 所 傳 者 有 郭 象 呂 惠 卿 焦 竑 注 而 唯 林 希 逸 口 義 及 本 朝 朴 世 堂 集 注 盛 行 ) 11) 위의 해제에서 전반적으로 노자 와 장자 의 주해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장 자 에 대해서는 그 폐해가 아주 심하지만 그의 문장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열자( 列 子 ) 의 해제에서는 이 책의 내용 은 대부분 장자( 莊 子 ) 에서 따오고, 그 문장 또한 평이하여 선진( 先 秦 )의 고서 같지 않아서, 다분히 위진( 魏 晉 )시대 사람이 의탁한 것 12) 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관윤자( 關 尹 子 ) 의 해제에서는 이 책은 가장 늦게 나왔으며, 그 글도 비약( 卑 弱 )하니 대개 후당인( 後 唐 人 )의 위작( 僞 作 )이다. 그 러나 오묘한 이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 였으므로 이따금 볼만한 것이 있다. 13) 고 하 였다. 참동계( 參 同 契 ) 의 해제에서는 이 책은 주역( 周 易 ) 을 빌려서 연단( 煉 丹 )의 이치를 밝힌 까닭으로 주역참동계( 周 易 參 同 契 ) 라 고도 하는데, 대개 모두 화로와 숯에다가 납과 수은을 달이는 일이고, 그 말은 대개 은미하고 오묘하여 깨닫기 어렵다. 세간에 팽효( 彭 曉 ), 진현미( 陳 顯 微 ), 유염( 兪 琰 ) 및 조선조 권극 중( 權 克 中 ) 등의 주해가 있다. 그러나 해석하 면 할수록 더욱 뜻이 통하지 않아서, 주자가 일 찍이 이를 위하여 주역참동계고이( 周 易 參 同 契 考 異 ) 를 지었고, 또한 그 문사( 文 辭 )의 고 아( 古 雅 )함을 극찬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유학의 도를 연구하는 사람 또한 감히 그 책을 없애버리지 않는다. 14) 고 기술하였다. 포박자( 抱 朴 子 ) 의 해제에서는 노자( 老 子 )와 장자( 莊 子 )의 서적은, 무위( 無 爲 )로서 주종( 主 宗 )을 삼고, 치허( 致 虛 )와 수정( 守 靜 ) 으로 수도하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장생구 시( 長 生 久 視 )의 설( 說 )을 진술하고 있다. 그 러나 처음부터 일찍이 노정( 爐 鼎 ), 복식( 服 食 ), 환단( 還 丹 )의 방술( 方 術 )이 있던 것은 아니다. 위백양( 魏 伯 陽 )이 참동계( 參 同 契 ) 를 지은 후부터 수련( 修 煉 )의 학문이 처음으로 세상 밖 에서 성하였으나, 부록( 符 籙 ), 과교( 科 敎 ), 핵 치( 劾 治 ), 신괴( 神 怪 )한 담론( 談 論 )이 일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포박자( 抱 朴 子 ) 가 나오 자 연( 燕 )과 제( 齊 )의 괴이하고 허풍스럽고, 방자하고 무도한 무리들이 다투어 노자와 장자 11)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12)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列 子 八 卷 列 禦 寇 之 所 作 也 其 辭 多 勦 莊 子 其 文 亦 淺 易 不 似 先 秦 古 書 蓋 魏 晉 間 人 所 依 托 也. 13)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關 尹 子 一 卷 關 令 尹 喜 之 所 作 也 其 書 最 晩 出 其 文 卑 弱 蓋 唐 後 人 僞 作 也 然 發 明 玄 理 亦 時 有 可 觀 者. 14)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參 同 契 一 卷 漢 魏 伯 陽 之 所 作 也 其 書 借 大 易 以 闡 煉 丹 之 理 故 亦 曰 周 易 參 同 契 大 抵 皆 爐 鼎 鉛 汞 之 事 而 其 語 率 隱 奧 難 曉 行 于 世 者 有 彭 曉 陳 顯 微 兪 琰 及 本 朝 權 克 中 諸 注 然 愈 解 而 愈 不 可 通 朱 子 嘗 爲 之 考 異 又 亟 稱 其 文 辭 古 雅 以 故 爲 吾 道 者 亦 不 敢 廢 其 書 焉.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71 를 인용하여 중요하게 여겼다. 이 어찌 노자와 장자의 죄이겠는가? 그러나 역위( 易 緯 ) 에서 말하기를 호리( 毫 釐 )의 실수가 천리를 그르친 다. 라고 하니, 이는 군자의 도가 중용을 귀하게 여기고, 감히 기이( 奇 異 )하고, 풍속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박자 ( 抱 朴 子 ) 를 노가( 老 家 )의 뒤편에 나열한 것 은 그 폐단의 지극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 나머 지 재초( 齋 醮 ), 부주( 符 呪 ), 과교( 科 敎 )의 책 들은 일체 삭제하고 기록하지 않았다. 15) 고 혹 평하였다. 황정내경경( 黃 庭 內 景 經 ), 외경경( 外 景 經 ) 의 해제에서는 이 책의 문장은 모두 칠언 협운( 七 言 叶 韻 )이며 그 뜻은 모두 수련( 修 煉 ) 의 비결인데, 도가에서는 이 책을 존중하여 도 덕경( 道 德 經 ) 과 함께 나란히 놓는다. 16) 고 기 술하였다. 음부경( 陰 符 經 ) 의 해제에서는 이 글은 겨우 300여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문사( 文 辭 )가 은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깊은 뜻은 없다. 다분히 이전( 李 筌 )이 저술한 것임은 의 심할 여지가 없다. 주자( 朱 子 )의 주( 注 )가 세 간에 행하는데, 주자( 朱 子 )가 이 책에 대해 자 연의 도 라고 극찬하고, 정( 靜 ) 1장이 정밀하다 고 하였는데, 지금의 책은 이 부분을 삭제하고 주해하지 않았으니, 주자( 朱 子 )로부터 나온 것 이 아님이 분명하다. 17) 고 기술하였다. 3.2 도가서적 인식 및 불교서적과의 비교 여기에서는 목록편찬자들의 도가에 대한 인 식, 목록의 편찬주체별 도가 서적에 대한 관점, 당시 이단이었던 불가서적과의 해제 비교로 구 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3.2.1 목록편찬자의 도가 인식 해제목록을 편찬하면서 수록 도서의 해제를 기술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조선시대 도가의 경우 불가와 함께 이단으로 취 급된 점을 감안할 때, 도가서적의 해제를 기술 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목 록편찬자들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해제의 내용 을 기술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조선시대 주요 목록의 편찬자들이 도가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 살펴보 고자 한다. 18)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모두 도가와 불가를 이 단이라고 배척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부류도 15)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抱 朴 子 八 卷 晉 葛 洪 之 所 作 也 老 莊 之 書 以 無 爲 爲 宗 致 虛 守 靜 可 以 延 年 故 有 長 生 久 視 之 說 然 初 未 嘗 有 爐 鼎 服 食 還 丹 之 術 也 自 魏 伯 陽 作 參 同 契 而 修 煉 之 學 始 盛 於 方 外 猶 未 嘗 有 符 籙 科 敎 劾 治 神 怪 之 談 也 自 抱 朴 子 出 而 燕 齊 迂 怪 不 經 之 徒 爭 引 老 莊 以 爲 重 是 豈 老 莊 之 罪 哉 然 易 緯 曰 失 之 豪 釐 謬 以 千 里 此 君 子 之 道 所 以 貴 乎 大 中 而 不 敢 爲 奇 詭 異 俗 之 言 也 是 以 列 抱 朴 子 于 老 家 之 下 以 著 其 流 弊 之 所 極 其 餘 齋 醮 符 呪 科 敎 之 書 一 切 削 而 不 錄 云. 16)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黃 庭 內 景 經 一 卷 外 景 經 一 卷 不 祥 其 時 世 蓋 晉 以 前 人 作 也 其 文 皆 七 言 叶 韻 其 旨 則 皆 修 煉 之 訣 道 家 尊 之 與 道 德 經 齊 列 焉. 17)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陰 符 經 一 卷 唐 李 筌 之 所 傳 也 其 文 纔 三 百 餘 字 其 辭 故 爲 隱 晦 而 實 無 深 旨 蓋 爲 筌 所 自 作 無 疑 有 朱 子 注 行 于 世 然 朱 子 於 陰 符 經 最 稱 自 然 之 道 靜 一 章 以 爲 精 今 本 乃 刪 去 不 注 其 不 出 於 朱 子 明 矣. 18) 김휴의 경우 자연당집 의 해제에서 도가에 관한 논의가 없으므로 이절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72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상당히 있었겠지만, 도가와 불가의 장점을 적 절히 수용하여 활용하는 부류도 있었기 때문이 다. 그렇다면 규장총목 과 누판고 를 편찬한 서호수 부자와 홍씨독서록 을 편찬한 홍석주 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다. 먼저 규장총목 을 편찬한 서호수의 부친 이자 누판고 를 편찬한 서유구의 조부인 서명 응은 54세 때 노자 전문을 주해하고 61세 때 그 주해본을 수정 보완하여 도덕지귀( 道 德 指 歸 ) 를 편찬하였는데, 19)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노자 도덕경 오천마디의 장구 를 해석하여 그 뜻의 귀결을 밝힌 이유는 대개 노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노자를 공격하는 우리 선비들에게 그 실정을 공평하게 하기 위함이다. ( 余 故 於 老 子 道 德 五 千 言 章 解 句 釋 明 其 指 歸 盖 非 爲 老 子 也 爲 吾 儒 之 攻 老 子 者 平 其 情 也 ) 20) 즉, 그가 도덕지귀( 道 德 指 歸 ) 를 저술한 이유는 노자의 근본정신을 밝히고 노자의 실정 을 공평하게 드러내서 당시 유학자의 노자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다. 21) 그는 노자의 도를 송대 성리학의 개창자인 주 렴계( 周 濂 溪 )의 무극이태극( 無 極 而 太 極 ) 설 과 연관하여 파악하여 노자의 도체( 道 體 )에 관 한 설을 높이 평가하였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주렴계의 우주론( 宇 宙 論 )이 사실상 노 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노자학을 이단으로 지목하여 배척 하던 당시 사상계의 경직성에 비추어 볼 때 대 단히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22) 이처럼 서명응은 노자에 대해 대단히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입장 을 견지했으며, 이 같은 그의 입장은 아들인 서 호수와 손자인 서유구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서유구 역시 조선 후기 도가의 양생술을 집성한 보양지( 葆 養 志 ) 를 편찬하 여 임원경제지( 林 園 經 濟 志 ) 에 수록할 정도 로 도가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것이다. 따라 서 서호수, 서유구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당시 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 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홍씨독서록 을 편찬한 홍석주가 도가에 대해 어떻게 인식했는지에 대해 살펴보 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저작 학강산필 에서 노가의 장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 며, 44세 때에는 정노( 訂 老 ) 란 책을 저술하 여 유가적인 입장에서 노가에 대해 새롭게 해석 하기도 하였다. 기본적으로 홍석주는 도가를 불 가와 마찬가지로 도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단으 로 여겼지만 노자의 경우 장점을 잘 살리면 천 하를 보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23)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도가의 장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 19) 이강수. 1989. 徐 命 膺 의 老 子 理 解. 동방학지, 62: 107.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 老 子 著, 徐 命 膺 註. 道 德 指 歸 序 文. 서울대학교 소장. 21) 금장태. 2006. 한국유학의 노자이해. 서울: 서울대학교. 154. 유성태. 1991. 徐 命 膺 의 道 家 思 想. 도교문화연구, 5: 425. 22) 이강수. 1989. 徐 命 膺 의 老 子 理 解. 동방학지, 62: 107.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3)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老 家 門 序 文. 老 釋 之 於 道 俱 異 端 也 然 爲 老 氏 之 說 者 猶 不 敢 絶 君 臣 父 子 夫 婦 之 倫 用 其 長 猶 足 以 寧 謐 天 下 漢 文 帝 曺 相 國 是 也.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73 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연천은 같은 도가에 속하는 장자에 대해서는 그 견해를 달리하였다. 그는 노자의 시절보다도 장자가 나온 이후에 선왕의 도를 꾸 짖고, 미쳐 날뛰고 제멋대로 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고 혹평하고, 다만, 장자의 뛰어난 문장 에 대해서만 극찬하였다. 24) 사마천( 司 馬 遷 )이 장자 의 특징을 우언( 寓 言 )에서 구했던 것이 도가담론( 道 家 談 論 )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좋 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25) 고 했는데, 연천도 장자 에 대해서는 극렬히 비판했지만 그의 문장에 대 해서만 극찬한 것이다. 장자에 대한 연천의 평 가는 정조와도 관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당 시 정조 역시 莊 子 는 문장이 비록 호한( 浩 瀚 )하지만 사정이 간절한 곳에서는 가끔 과거 시험문체와 매우 비슷하므로, 문장 공부를 하 는 자가 읽지 않으면 안 된다. 26) 라고 하여 문 장 공부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고 한 것이다. 3.2.2 편찬주체별 해제 성향 전절에서 목록편찬자들의 도가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들 편찬자들이 실제 목 록을 기술할 때 어떤 식으로 해제를 기술했는지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편찬한 사찬목록인 경우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해제를 기술할 수 있지만, 왕명으로 편찬한 관찬목록인 경우에는 자신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 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 성향과 달리 당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는 데 왕명을 받들어 편찬한 관찬목록과 개인이 사 적으로 편찬한 사찬목록 사이에 어느 정도 차이 가 있지 않을까 예상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목록의 편찬주체별 즉, 관찬목록( 官 撰 目 錄 )과 사찬목록( 私 撰 目 錄 )으로 구분해서 해제의 내 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관찬목록( 官 撰 目 錄 ) 여기에서는 관찬목록으로 규장총목 과 누 판고 에 수록된 도가류 서적에 대한 성격을 살 펴보고자 한다. 이들 관찬목록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면, 규장총목 에 수록된 남화경부묵( 南 華 經 副 墨 ) 의 해제에서 장자의 뛰어난 문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가 성신을 배격하고 현 철을 능모한 것이 유사 이래 최초의 변괴라고 비판한 부분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객관적이 고 수용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하였다. 먼 저 규장총목 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노장익( 老 莊 翼 ) 은 초횡( 焦 竑 )이 64명의 주석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라고 하였고, 남화 경( 南 華 經 ) 에서도 상수와 곽상 2종의 해설서 가 나온 경위를 밝혀주고 세간에 유통하는 도 가관련 서적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또한 주역 참동계해( 周 易 參 同 契 解 ) 에서는 단( 丹 )을 이 루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 주고, 그 내용이 뛰어 나서 후대 사람들이 해석할 수 있는 수준이 아 니라고 언급하였으며, 금단정리대전( 金 丹 正 24) 리상용. 앞의 책. 205-208. 25) 한국고전문학회 편. 1998. 국문학과 도교. 서울: 태학사. 82. 26) 정조. 弘 齋 全 書 卷 161. 日 得 錄 1 文 學 1. 莊 子 文 章 雖 浩 瀚 其 切 事 情 處 往 往 酷 類 科 文 爲 文 者 不 可 以 不 讀.
74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理 大 全 ) 에서는 이 책이 진실로 수진( 修 眞 )의 모범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으로 누판고 에 수록된 저록을 살펴보 아도 규장총목 과 마찬가지로 비판적인 측면 보다는 책 자체의 내용에 충실하게 해제를 하 였다. 신주도덕경( 新 註 道 德 經 ) 에서는 책의 내용이 주로 임희일의 오류를 논박한 것이라고 평가하였고, 구해남화진경 에서도 저자 임희 일이 장자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문장을 잘 기술해서 유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고 하여, 그 책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기술하였고, 주역참동계 에서도 세간에 잘못 알려진 책의 내용을 정정해주고, 가장 오래된 고서라는 점을 밝히고, 책의 편찬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등 주 로 책 자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제를 기술했음 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관찬서인 규장총목 과 누판고 에 서는 도가서적의 저자와 편찬자, 책의 내용, 기존의 주해서 등에 대한 정보를 제시해 주고, 내용이 훌륭한 서적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 것이다. 전반적으로, 당시 이단으로 간주하는 도가서적에 대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전적으 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측면에서 해제를 기 술하기 보다는 도가서적 그 자체에 대해 공정 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했던 것 이다. 2) 사찬목록( 私 撰 目 錄 ) 여기에서는 사찬목록으로 해동문헌총록 과 홍씨독서록 에 수록된 도가서적을 대상으로 그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해동문헌총록 에 수록된 자연당집 ( 自 然 堂 集 ) 에서는 송계만록( 松 溪 漫 錄 ) 에 수록된 내용을 인용하여 해제를 기술하였다. 도가적인 입장에 대해서 기술하기보다는 선귀 에 대한 이야기를 사례로 들어서, 그 해제 상 에서 도가에 대한 특별한 입장은 드러나지 않 았다. 다음으로 홍씨독서록 의 해제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홍씨독서록 의 찬자인 홍석주는 유서( 類 序 ) 와 해제에서 노가에 대한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는 노가문의 서문에서 노가를 도가라 고 한 것은 잘못된 용어라고 주장하고, 노가의 담백함과 과욕, 사랑과 검소 등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 단점에 이르면 인의와 예약을 버리 고 군신부자의 인륜을 크게 어지럽힌다 고 하 여 그 장점과 더불어 그 폐해에 대해 직설적으 로 토로하였다. 홍씨독서록 에 수록된 도가서 적에 대해서도 그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는 장자( 莊 子 ) 에 대해서 멋대로 날뛰고, 방자하게 언동하는 폐단이 극에 달했다고 혹평 을 하면서 노자와 장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 였으며, 포박자( 抱 朴 子 ) 에서는 이 책이 나오 면서 노자와 장자가 그 본질에서 벗어나서 그 폐해가 아주 심해졌다고 혹평하였다. 그러나 그 가 무조건 혹평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관윤자 ( 關 尹 子 ) 가 후당인( 後 唐 人 )의 위작( 僞 作 ) 이지만,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여 가끔 볼만한 것이 있다고 하고, 황정내경경( 黃 庭 內 景 經 ) 과 외경경( 外 景 經 ) 은 수련의 비결을 담았다 고 하면서 도가의 장점을 인정하는 학문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찬목록 특히 홍씨독서록 에서 는 편찬자의 노가에 대한 성향을 극명하게 기술 하였다. 개인이 편찬한 목록이므로 평소에 도가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75 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여과 없이 밝혔다고 할 수 있겠다. 3.2.3 불가서적과의 비교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시대이다. 이 성리학적 질서 속에 도교와 불교는 모두 이단으로 분류 되었다. 당시 억불숭유정책( 抑 佛 崇 儒 政 策 )의 실시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적대감 을 갖고 비하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주지 하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해제목록의 편찬자인 김휴, 서호수, 서유구, 홍석주 등은 전통적인 성 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편찬한 목록에 불 교서적을 수록하였는데, 구체적으로 그 종수를 살펴보면,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 諸 家 詩 文 集 類 ) 의 석가목( 釋 家 目 ) 에 54종, 규 장총목 석가류( 釋 家 類 )에 3종, 누판고 의 석 가류( 釋 家 類 )에 12종, 홍씨독서록 석가문( 釋 家 門 )에 10종 등 총 79종이 수록되었다. 여기 에서는 과연 그들이 편찬한 목록에서 불가서적 의 해제를 어떤 관점에서 기술하였는지에 대해 관찬목록과 사찬목록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7) 먼저 왕명으로 편찬된 규장총목 과 누판 고 에 수록된 불가서적의 해제를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규장총목 에는 석가류에 제경품절( 諸 經 品 節 ), 능엄몽초( 楞 嚴 蒙 鈔 ), 능엄정해( 楞 嚴 正 解 ) 등 3종의 불서가 수록되었다. 능엄몽 초( 楞 嚴 蒙 鈔 ) 의 해제에서 이 경전의 문장은 해박하지만 표지( 標 指 )가 가지런하지 못하고, 이전의 해설서에 나온 문제를 답습한 부분이 있으므로 내용을 잘 연구해서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핵심적인 부분을 수정하면 교관( 敎 觀 )이 분명해 질 것 28) 이라고 하여 이 책의 보 강해야 할 부분에 대해 언급하였다. 능엄정해 ( 楞 嚴 正 解 ) 의 해제에서는 전창법사 영요( 全 彰 法 師 靈 耀 )가 불조( 佛 祖 )의 진인( 眞 印 )을 얻어 판석( 判 釋 )한 책인데, 여기에서 교광정맥 ( 交 光 正 脈 )의 편벽되고 잘못된 설을 단호하게 정하여 그와 연관된 문제도 쉽게 해결하게 되 었다. 29) 고 기술하여 이 책에서 기존에 잘못된 설을 바로 잡았다고 설명하였다. 누판고 의 석가류에는 대장경( 大 藏 經 ), 금강반야바라밀경( 金 剛 般 若 波 羅 密 經 ), 묘 법연화경( 妙 法 蓮 華 經 ) 등 12종의 불서가 수 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몇몇 서적의 해제를 살펴 보면, 금강반야바라밀경( 金 剛 般 若 波 羅 密 經 ) 에서는 대장경 내에서 책의 권수와 세간의 유통 본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30) 화엄경( 華 嚴 經 ) 에서는 이 책이 부처가 도를 이룬 뒤에 처음으 27) 리상용. 2011. 해동문헌총록 불가서적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50: 471-511 참조. 28)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釋 家 類 楞 嚴 蒙 鈔. 此 經 章 門 廣 博 標 指 參 差 三 觀 橫 分 三 摩 錯 互 舊 解 旣 表 中 未 定 新 章 亦 逐 北 同 走 竊 欲 甄 明 總 別 參 詳 異 同 搜 剔 本 根 薙 剟 稂 莠 務 俾 鈐 鍵 開 滌 敎 觀 分 明. 29) 徐 浩 修. 奎 章 總 目 子 部 釋 家 類 楞 嚴 正 解. 淸 天 台 比 丘 靈 耀 述 總 十 二 卷 杜 臻 序 曰 天 台 全 彰 法 師 得 佛 祖 眞 印 秉 判 釋 權 衡 約 總 別 以 論 觀 心 而 十 卷 之 靈 文 顯 揭 境 觀 以 定 不 惟 千 秋 不 決 之 案 於 玆 大 定 交 光 僻 謬 之 說 亦 迎 刃 而 解 云. 30)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釋 家 類 金 剛 般 若 波 羅 密 經. 盖 大 藏 敎 般 若 經 合 六 百 卷 四 處 共 十 六 會 是 經 卽 其 十 六 會 中 第 九 會 六 百 卷 中 第 五 百 七 十 七 卷 也 前 後 凡 六 譯 其 文 而 世 多 行 鳩 摩 羅 什 本.
76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로 대승정법( 大 乘 正 法 )을 말씀하신 것인데, 법 신( 法 身 )의 본체는 능엄( 楞 嚴 )이 가장 잘 밝 혔고, 법신( 法 身 )의 용( 用 )은 화엄( 華 嚴 )이 가 장 잘 밝혔다. 31) 고 하여 책의 의미와 능엄경 과 화엄경 의 장점에 대해 기술하였다. 우리 나라 불서인 선문염송설화 의 해제에서도 우 리나라의 불전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박식한 것. 32) 이라고 기술하여 우리나라 불가 서적의 우수성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명에 의해 편찬된 해제목록의 경 우, 이단에 속하는 불가서적이라도 단순히 불교 라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멸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 자체를 인정하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불가서적의 해제를 기술하였다. 다음으로 개인이 편찬한 목록인 해동문헌총 록 과 홍씨독서록 에 수록된 불교서적의 해제 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동문헌총록 에는 승려 29인의 저작 54종 의 불교서적이 수록되었다. 여기에서는 대개 책 의 내용보다는 저자의 행적을 중심으로 해제를 기술했는데, 그 중에 주로 책의 내용을 중심으 로 해제를 기술한 추동기( 錐 洞 記 ) 와 천태사 교의( 天 台 四 敎 儀 ) 의 해제를 살펴보겠다. 추 동기( 錐 洞 記 ) 의 해제에서는 의상( 義 湘 )이 소백산 추동에서 제자 3천명에게 90일 동안 화 엄대전 을 강의한 내용을 문인 지통( 智 通 )이 그 요점을 뽑아 편찬한 것으로, 그가 친히 훈화 하신 내용이라서 언사가 깊은 경지에 이르고 오 묘하다. 33) 고 기술하였으며, 천태사교의( 天 台 四 敎 儀 ) 에서는 이 책이 천태교의 대본에 의 거하여 5시 8교( 五 時 八 敎 )의 개요를 총괄적으 로 기록하고 후학에게 제시한 것이므로, 이 책 의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면, 여러 책을 읽어도 헷갈리지 않을 것 34) 이라고 하여 이 책의 우수 성에 대해 설명하였다. 전반적으로 해동문헌총록 에서는 수록한 불 교서적에 대해 그 내용이 훌륭하다고 판단될 경 우 상당히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저자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조선 중기의 승려 보우 ( 普 雨 ) 35) 를 제외한 나머지 승려에 대해서 객 관적으로 묘사했으며, 사명대사와 같이 국난을 위해 애쓴 일부 승려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공적 을 밝히고 후세에 귀감이 될 존재임을 인정하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이처럼 해동문헌총 록 에서는 당시 성리학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불교서적과 그의 저자인 승려에 대해 대단히 객 관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찬목록인 홍석주의 홍씨독서록 에는 사 31)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釋 家 類 華 嚴 經. 佛 成 道 後 最 初 說 大 乘 正 法 者 明 法 身 之 體 者 莫 辯 於 楞 嚴 明 法 身 之 用 者 莫 辯 於 華 嚴 云. 32) 徐 有 榘. 鏤 板 考 子 部 釋 家 類. 其 書 標 擧 禪 經 字 句 而 廣 引 諸 家 疏 釋 旨 義 東 國 佛 典 中 最 爲 富 博. 33) 金 烋. 海 東 文 獻 總 錄 諸 家 詩 文 集 釋 家 錐 洞 記. 義 湘 率 門 徒 歸 于 小 白 山 之 錐 洞 結 草 爲 廬 會 徒 三 千 約 九 十 日 講 華 嚴 大 典 門 人 智 通 隨 講 撮 其 樞 要 成 兩 卷 名 錐 洞 記 蓋 承 親 訓 故 辭 多 詣 妙. 34) 金 烋. 海 東 文 獻 總 錄 諸 家 詩 文 集 釋 家 天 台 四 敎 儀. 高 麗 沙 門 諦 觀 所 錄 依 天 台 敎 大 本 中 總 錄 五 時 八 敎 之 要 以 示 後 學 令 曉 大 綱 於 此 若 明 則 不 迷 諸 部 也. 35) 金 烋. 海 東 文 獻 總 錄 諸 家 詩 文 集 釋 家 虛 應 集. 釋 普 雨 所 著 普 雨 明 廟 朝 妖 僧 廣 張 佛 法 居 處 僭 擬 又 設 無 遮 會 於 檜 岩 寺 其 費 萬 計 臺 諫 及 太 學 生 連 章 請 誅 命 黜 于 外 毋 令 入 出 京 山 乃 竊 騎 鋪 馬 而 走 被 獲 於 麟 蹄 命 流 濟 州 未 幾 死.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77 십이장경( 四 十 二 章 經 ), 능가경( 楞 伽 經 ), 원각경( 圓 覺 經 ) 등 10종의 불서를 수록하고 거기에 해제를 붙였다. 먼저 홍석주의 불가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연천은 불교에 대해서 철저히 비판하고 있다. 그는 군자가 불교서적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불교에 대항해서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고 논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극히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불가에 대해 철저히 공격하였다. 36) 그러나 연천이 부처의 교리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가하지는 않았 다. 그는 사십이장경( 四 十 二 章 經 ) 의 해제에 서 기술한 바와 같이 37) 석가모니의 근원적인 교리에 대해 부정한 것이 아니라, 불교가 후대 로 내려오면서 그 교리가 황당무계하게 변질된 점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사찬목록이라도 김휴는 해동문 헌총록 에서 불가에 대해 객관적인 측면에서 해제한 반면, 홍석주는 홍씨독서록 에서 불교 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입장을 취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씨독서록 을 제외한 나머지 주요 해제목록에서는 성리학적 인 시각에서 벗어나 불교서적의 해제를 기술하 는 데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해제성향은 당시에 같은 이단으로 분 류된 도가서적의 해제 성향과 어느 정도 상통 하다고 할 수 있겠다. 3.3 도가서적해제 평가 현전하는 조선시대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은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 諸 家 詩 文 集 類 ) 의 선귀목( 仙 鬼 目 ) 에 1종, 규 장총목 도가류( 道 家 類 )에 6종, 누판고 도 가류( 道 家 類 )에 3종, 홍씨독서록 노가문( 老 家 門 )에 9종 등 총 19종이다. 이들 해제목록에 수록된 해제의 내용을 살펴 보면 목록에 따라 도가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왕명으로 편찬된 규장 총목, 누판고 에서는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도 교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적대시하기보다는 비 교적 객관적이고 개방적인 측면에서 도가서적 에 대해 해제를 기술하였다. 하지만 이들 관찬 목록에 비해 사찬목록인 홍씨독서록 의 찬자 인 홍석주는 도가의 장단점에 대해 자신의 입 장을 보다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전반 적으로, 사찬목록보다는 관찬목록이 도가서적 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제를 한 것이다. 아무래도 관찬서라는 점이 거기에 한몫 더했 을 것이고 당시 왕명을 내린 정조의 도가에 대 한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조는 도 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지녔다. 그는 도교 가 지닌 미신적인 요소는 배격하고, 이치에 합 당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 36)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釋 家 門. 老 釋 之 於 道 俱 異 端 也 釋 氏 之 徒 棄 大 倫 絶 人 道 不 可 以 一 日 群 於 生 民 然 自 東 漢 以 後 與 孔 氏 之 道 鼎 立 而 爲 三 敎 天 下 之 人 無 賢 愚 翕 然 嚮 之 千 有 餘 年 矣 今 之 君 子 欲 辭 而 闢 之 固 亦 不 能 不 求 觀 其 書 也. 37) 洪 奭 周. 洪 氏 讀 書 錄 子 部 釋 家 門. 四 十 二 章 經 一 卷 後 漢 所 譯 也 釋 氏 之 書 入 中 國 自 此 始 其 言 簡 質 猶 有 古 人 遺 意 其 旨 亦 淺 近 無 不 可 曉 者 蓋 釋 氏 設 敎 之 宗 旨 固 如 是 而 已 及 其 後 世 能 言 之 士 厭 其 卑 近 而 文 之 以 微 巧 於 是 乎 荒 唐 幽 幻 放 誕 惑 衆 之 辭 始 紛 然 而 不 可 禁 矣 是 亦 豈 釋 氏 之 意 哉.
78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로 수용하였던 것이다. 38) 도가에 대한 정조의 배경은 동궁 시절 그의 교육을 담당한 서명응과 도 연계된다. 서명응은 세손우빈객( 世 孫 右 賓 客 )으로 정조의 교육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정조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정조 또한 서명응이 죽을 때까지 그에 대한 신뢰를 접지 않았던 것이다. 39) 역대 해제목록 가운데 도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홍석주 역시 유가 적인 입장에서 노자에 대해 해석한 정노( 訂 老 ) 란 책을 저술할 정도로 도가에 대해 풍부 한 지식을 지닌 인물이다. 그 역시 도가의 장점 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으나, 다른 목록에 비 해 그가 편찬한 홍씨독서록 에서 도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보다 극명하게 밝힌 것은 그 편 찬 목적과 연관 지어 살펴볼 수 있겠다. 규장 총목 은 규장각의 장서목록을 만들기 위해 편 찬한 것이며, 누판고 는 전국에서 판각( 板 刻 ) 한 책판( 冊 板 )의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편찬한 것인데 비해, 홍씨독서록 은 그 시발이 자신 의 동생과 홍씨 문중의 후학을 겨냥해서 편찬한 것이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당시 우리 나라의 후학들의 학문 방향성을 설정해 주기 위 해 편찬한 것인 만큼, 40) 다른 목록에 비해 도가 의 장단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을 것이다. 규장총목 과 홍씨독서록 의 특정 해제에 서 장자 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서 해제한 것 을 제외하고, 전반적으로 조선시대에 나온 역 대 해제목록에서는 도가서적에 대해 그 편찬 경위 및 내용, 유통본 또는 각종 주해서, 수록 서적의 장단점 등 서적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여 도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 대해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다. 또한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서 이단으로 분류된 도가서적의 해제 를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한 점은 높 이 평가할 만하다. 4. 결 론 본 논문은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 류 서적의 해제 내용을 분석하여, 당시 성리학 적인 질서 속에서 이단에 속하는 도가서적에 대 해 어떤 관점에서 해제를 기술했는가에 대해 고 구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 고구한 내용은 다음 과 같다. 조선시대 주요 해제목록에 수록된 도가서적 으로는 해동문헌총록 제가시문집류( 諸 家 詩 文 集 類 )의 선귀목( 仙 鬼 目 )에 자연당집( 自 然 堂 集 ) 1종, 누판고 도가류( 道 家 類 )에 신 주도덕경( 新 註 道 德 經 ), 구해남화진경( 句 解 南 華 眞 經 ), 주역참동계( 周 易 參 同 契 ) 등 3 종, 규장총목 도가류( 道 家 類 )에 노장익( 老 莊 翼 ), 도덕경( 道 德 經 ), 남화경( 南 華 經 ) 등 6종, 홍씨독서록 노가문( 老 家 門 )에 노 자( 老 子 ), 장자( 莊 子 ), 열자( 列 子 ) 등 9 38) 김용태. 2010. 정조의 도교 수련관에 대한 일고. 인문과학, 45: 180-185.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39) 김문식. 1999. 서명응의 생애와 규장각 활동. 정신문화연구, 75: 155. 김용태. 2010. 정조의 도교 수련관에 대한 일고. 인문과학, 45: 185.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40) 리상용. 연천홍석주의 서지학. 서울: 아세아문화사. 262-263.
조선시대 해제목록에 나타난 도가서적( 道 家 書 籍 ) 연구 79 종, 총 19종이 수록되었다. 이 19종의 저작 중 한국인 저작으로는 해동문헌총록 에 수록된 청의동자의 자연당집 과 누판고 에 수록된 박세당의 신주도덕경 2종이고, 나머지 17종 은 모두 중국인 저작이다. 도가서적의 해제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고, 그 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았다. 먼저 도가서적해 제의 내용을 소개한 후 이를 토대로 목록 편찬 자의 도가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고, 편찬주체 별로 관찬목록과 사찬목록으로 구분해서 각각 어떤 관점에서 해제를 기술했는지 살펴보고, 당 시 도가와 함께 이단으로 취급받은 불가서적의 해제성향과 비교해 본 후에 전체적인 평가를 내 려 보았다. 목록편찬자의 도가에 대한 인식을 분석한 결 과를 보면, 규장총목 과 누판고 를 편찬한 서호수와 서유구의 노자에 대한 인식은 그의 부친이자 조부인 서명응의 노자에 대한 인식을 통해 도출하였다. 서명응은 당시 성리학적 질 서 속에서 노자에 대해 대단히 파격적이고 개방 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서유구 역시 조선 후 기 도가의 양생술을 집성한 보양지( 葆 養 志 ) 를 편찬하여 임원경제지( 林 園 經 濟 志 ) 에 수 록할 정도로 도가에 해박한 지식을 지녔다. 따 라서 서호수, 서유구의 도가에 대한 인식은 당 시로서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홍씨독서록 을 편찬 한 홍석주는 도가를 불가와 마찬가지로 도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단으로 여겼지만 노자에 대 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장자에 대해서는 그 견해를 달리하여 장자의 훌륭한 문장에 대해서만 찬사를 보내고,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극렬히 비판하였다. 관찬목록의 해제를 분석해 본 결과, 규장총 목 과 누판고 에서는 도가서적의 저자와 편찬 자, 책의 내용, 도가 이론, 기존에 간사된 주해 서 등에 대해 기술하고, 내용이 훌륭한 서적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내용상에 문제점을 지 적하는 등 전반적으로 당시 이단에 속하는 도 가서적에 대해 성리학적인 입장에서 전적으로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측면에서 해제를 기술하 기보다는 도가서적 그 자체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제를 기술하였다. 사찬목 록의 해제를 분석해본 결과, 해동문헌총록 에 서는 도가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홍 석주의 홍씨독서록 에서는 도가의 장단점에 대해 냉철하게 평가하였다. 홍석주는 도가의 장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그 폐해에 대해 서는 극단적으로 비판을 가하였다. 불가서적의 해제 역시 왕명으로 편찬된 관찬 해제목록인 규장총목 과 누판고 의 경우, 비 록 이단에 속하지만 단순히 불교라는 종교적 이 유 때문에 멸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그 자체 를 인정하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불가서적의 해 제를 기술하였다. 반면에 사찬목록인 해동문 헌총록 과 홍씨독서록 의 경우 그 관점 상에 차이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해동문헌총록 에 서는 당시 성리학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불교서 적과 그의 저자인 승려에 대해 대단히 객관적 인 평가를 내렸지만, 홍씨독서록 에서는 불교 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입장을 취 했다. 이 같은 불가서적의 해제 성향은 전반적 으로 도가서적의 해제 성향과 어느 정도 일치 하였다.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규장총목 과 홍 씨독서록 의 특정 해제에서 장자 에 대해 비
80 한국비블리아학회지 제24권 제1호 2013 판적인 입장에서 해제한 것을 제외하고, 전반 적으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주요 해제목록에서 는 도가서적의 편찬 경위 및 내용, 당시 유통되 는 판본이나 각종 주해서, 수록 서적의 장점과 단점 등 서적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기 술하여 도가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 릴 수 있겠다. 또한 당시 성리학적인 질서 속에 서, 이단으로 분류할 수 있는 도가서적의 해제 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술한 점은 높이 평가 할 만하다. 참 고 문 헌 강주진. 1969. 해동문헌총록 해제와 간행서. 해 동문헌총록, 1-7. 금장태. 2006. 한국유학의 노자이해. 서울: 서 울대학교. 김건곤. 2007. 해동문헌총록 소재 고려문집 연구: 부전문집을 중심으로. 藏 書 閣, 18: 57-88. 김문식. 1999. 서명응의 생애와 규장각 활동. 정 신문화연구, 75: 155. 김약슬. 1982. 경와집에 대하여. 서지학, 7: 121-125. 김윤식. 1979. 鏤 板 考 의 書 誌 的 硏 究. 석 사학위논문.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김용태. 2010. 정조의 도교 수련관에 대한 일고. 인문과학, 45: 171-188. 김휴. 1969. 해동문헌총록. 영인본. 서울: 학 문각. 김희영. 2009. 서명응 삼대의 공구서 편찬에 관 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부산대학교 대 학원, 문헌정보학과. 노자 저, 서명응 주. 道 德 指 歸. 서울대학교 소장. 리상용. 2004. 연천 홍석주의 서지학. 서울: 아세아문화사. 리상용. 2005a. 홍씨독서록 수록 서적의 선 정기준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30: 247-281. 리상용. 2005b. 누판고 수록 도서의 질적 수 준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 31: 231-262. 리상용. 2011a. 海 東 文 獻 總 錄 수록 도서의 질적 평가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49: 169-202. 리상용. 2011b. 해동문헌총록 불가서적에 대 한 연구. 서지학연구, 50: 471-511. 리상용. 2012. 해동문헌총록 의 목록기술방식 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51: 341-357. 리재철. 1976. 韓 國 書 誌 目 錄 學 史 의 一 硏 究. 성곡논총, 7: 580-598. 박인호. 2006. 해동문헌총록 에 나타난 김휴의 학문세계. 선주논총, 9: 65-98. 방형보. 2006. 徐 命 膺 의 ꡔ 道 德 指 歸 ꡕ 硏 究. 석사학위논문.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 동양철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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