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꾸준히 관심을 끈 것은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에 따 라 북한체제가 달라질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하는 자체보다는 후계자에 의해 북한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 는 점인데, 북한체제에서 최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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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2013년에 들어와서는 북한 지도부에서 장성택보다는 최룡해의 영향력이 더욱 커 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 바 있음. 3) - 장성택이 북한 지도부의 핵심 엘리트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만약 그가 명실상부한 2 인자 나 실질적인 1인자 에 해당하는 영향력을 가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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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등장과 북한의 변화 전망 1) 이교덕 통일연구원 Ⅰ. 서 론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0년으로 만 68세를 넘어섰다. 2008 년 하반기 이후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관측되지만 주로 군부대를 방문하는 그의 현지시찰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현지시찰과 국정운영에서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절감할 것이다. 2) 그 때문인지 김정일의 건강 이상 이후 그의 3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되었고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이 북한내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서방측 언론 보도가 꼬리를 물었는데 2010년 9월 드디어 김정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9월 28일에 열린 북한 로동당 당대표자회는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 장으로 선출했고 하루 전에는 인민군 대장에 임명했다. 뒤이어 김정은의 모습을 TV화면과 로동신문에 공개했다. 그 동안 후계문제는 북한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해 정보가 부족한 데다 북한이 극 도로 보안을 유지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추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따라 서 연구의 객관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본질적 한계가 있었다. 1) 이 논문은 곧 통일연구원 보고서로 출판될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여 재정리한 것이다. 2) 김정일의 현지시찰은 평균 3일에 1회꼴이고 대부분이 군부대 방문이다. 군부대가 일반적으로 교통이 불 편한 험지에 있기 때문에 그의 육체적 부담은 상당히 클 것으로 추측된다. - 1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꾸준히 관심을 끈 것은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에 따 라 북한체제가 달라질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하는 자체보다는 후계자에 의해 북한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 는 점인데, 북한체제에서 최고지도자가 지닌 절대성을 고려하면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와 북한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지급처럼 부자세습되면 아들인 후계자가 아버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부정하고 다른 정책 을 시행하기란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북한체제의 특수성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 이 크다. 이 점에서 북한체제의 향배를 후계자라는 프리즘을 통해 가늠해 보려는 시도는 일정한 정당성을 가진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북한의 정치변동에 따라 다양한 후계체제 구축 상황을 상정 해 왔으나 3) 이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안정된 가운데 그가 후계자에게 서서히 권력을 이양하는 모습이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김정일 후계체제, 곧 김정은체제의 권력구조는 어떤 모습을 띨 것이고 그 특징은 무엇일까? 본 논문에서는 김정은체제의 권력구조를 지배체제 형태, 당 정 군 관계, 정치국 및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권 력엘리트 변화의 네 가지 측면에서 전망하고자 한다. 지배체제 형태는 최고지도자와 지배엘리트 사이에 권력이 어떻게 배분될 것인가, 즉 현재의 수령유일지배가 지속될 것인가,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지배체제가 등장할 것인가를 논의하게 된다. 이와 연관된 것이지 만 당 정 군 관계에서는 현재의 관계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지 또는 특히 당 군 관계에서 변화가 있을지를 전망하게 되며 이 속에서 근래 그 역할이 강화 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이 후계체제 구축과정과 김 정은체제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예측한다. 마지막으로는 권력구조내 주요 행위자이자 체제운용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권력엘리트들이 김정은체제에 서 어떻게 달라질지 전망한다. 3) 이석수는 북한의 정치변동 가능성에 주목하여 김정일 주도로 후계자가 선정되고 그의 후원으로 후계체제 가 구축되는 경우, 민중봉기로 새로운 민간지도자가 부상하는 경우, 군부쿠데타로 군부정권이 탄생하는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석수,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현황과 전망, 국방대학교 안보문제연구 소, 국제질서의 변화가능성과 국내외 안보쟁점, 안보연구시리즈 제5집 2호, 2004, pp. 143-193. - 2 -

Ⅱ. 지배체제 김정은 후계체제의 지배체제에 대해 선행연구들은 크게 보면 일인지배체제, 집단 지도체제, 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혼합형 체제의 3가지 형태를 제시한다. 일인지 배체제의 성립을 주장하는 연구들은 북한의 수령중심 당-국가체제의 안정성, 엘 리트들의 협력, 강한 체제내구성 등을 근거로 제시하고 집단지도체제나 혼합체제 를 주장하는 연구들은 후계체제의 준비 부족, 후계자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 후계자의 취약한 지지기반과 지배엘리트의 반발, 후계과정에서 파벌 형성 및 대 립 발생 가능성 등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4) 1. 수령 유일지배체제 김정은체제가 수령 유일지배체제로 될 수 있느냐는 수령 유일지배체제를 지속시 킬 수 있는 주요 조건들이 앞으로도 충족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충족되지 못 한다면 새로운 체제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일단 김정일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기존 체제가 요동치고 권력구조내에 균열 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그것을 최소화하고 주어진 환경과 미래의 예상되는 상황에 맞춰 변형을 시도할 것이지만 5) 기본적으로는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수령 유일지배체제의 구축이 불가능하거나 그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다면 김정일이 유일지배체제의 구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세습을 결정한 핵심적 이 유도 후대 수령에 의한 기존체제의 고수에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입장에서 김정은체제를 수령 유일지배체제보다 당과 군의 실력자들에게 권력을 분산시켜 그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집단지도체제 형태가 되도록 할 이유가 있을까? 김정일이 후계자에게 기대하는 바, 즉 전임자에 대한 충실성과 우리식 사회주의 의 고수라는 기대에 더 잘 부응할 수 있다면 집단 지도체제 구축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후술하다시피 집단지도체제는 그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4) 오경섭, 북한 권력승계의 특징과 3대세습체제의 지속가능성, 세종정책연구, 제6권 1호(2010), pp. 282-283. 5)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 전망과 권력구조 변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주최, 제42차 통일전략포럼 발표문(2009.3.24), p. 3. - 3 -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당과 군 등의 지배엘리트들을 김정은과 권력을 분점하는 집단지도체제의 일원으로 후계체제에 참여시키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의 충복으로 서 권력에 참여시키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2009년 김정일은 국방위원회가 김정 은의 후계체제를 가장 충실하게 보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존의 군 최고 엘 리트들로 구성된 국방위원회에 오극렬, 장성택, 주상성, 우동측 등 보안기구들을 총괄하는 핵심 엘리트들을 포진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6) 2010년 9월에는 당대표 자회를 통해 김정은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 임하여 군을 장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고 최근 차수로 승진하여 군의 실 세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영호 총참모장을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하여 군 경험이 없는 김정은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도록 했다. 또한 여동생 김경희 부부 와 최룡해 등으로 하여금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입지와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그들을 정치국과 비서국,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배치했다. 절대자인 김정일의 의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령 유일지배체제의 지속 가능성 을 낮게 평가하는 일부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김정은의 권력기반과 장악력 이 약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후계자의 일천한 정치적 경력 때문에 개인적 리 더쉽(personal leadership)을 획득하기 어렵고 이는 결국 제도적 리더쉽 (positional leadership)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7) 이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물론 김정은이 권력기반을 미처 구축하기 전에 아버지 가 가까운 시일에 갑자기 사망해 버리거나 유고가 되는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있 다. 바꾸어 말하면 김정일이 앞으로 수년을 생존하면서 후계체제 구축을 주도하 는 경우 김정은의 장악력이 약할 것이라고 추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김정일의 경우 후계자로 추대된 이후 권력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곁가지 를 정리하고 70년대 중반의 권력투쟁을 거쳐 후계자로 공식 선포되기까지 6년여 밖에 걸리지 않았고 후계자로서 흔들림이 없는 입지를 다지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불과 3~4년이었다. 또한 북한의 전반적 상황이 그 때와 크게 다르지만 후계자로서 권력을 숭계한 경험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의 후 계체제 구축을 주도하고 후계수업을 효과적으로 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6) 오경섭, 북한 권력승계의 특징과 3대세습체제의 지속가능성, p. 297. 7)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 전망과 권력구조 변화, p. 5;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 전망: 구조적 제약 하 의 전략적 선택, 북한민주화네트워크/시대정신 공동포럼 발표문, 2009. 3.12, pp. 35-36. - 4 -

비약적으로 압축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 에 김정은이 빠른 속도로 권력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하고, 김정은에게 점진적으 로 업무를 이양하여 과중한 업무부담을 덜려고 할 것이다. 이 점에서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은 허점이 있다. 김정일의 경우는 후계 자로 내정된 이후 비공개적으로 권력기반을 구축하는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자신 이 공개적으로 아들의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얼마만큼 빠른 시간에 탄탄하게 구축하느냐는 어 느 정도는 자신의 정치적 능력에 달려 있겠지만 김정일의 지원이 가장 큰 변수일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얼마나 더 생존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북한체제 의 성격상 후계체제 구축에서 절대 권력자 김정일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지배엘 리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배엘리트들은 권력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권력공백 으로 인한 위험을 막기 위해 통치자의 후계자 선택을 따르게 된다. 이들은 유력 한 다른 후계자를 맞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투쟁을 하기보다는 독재자의 아들을 받아들여 각종 혜택을 공유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8) 따라서 지배엘리트들은 김정일이 생존해 있는 기간에 김정은을 적극적으로 지지 하고 후계체제 구축에 앞장 설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권력기반을 완전히 구축 하기 전에 김정일이 사망하거나 유고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김정은이 지배엘리 트들의 자발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기 때문에 후 계체제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아버지의 유 고 상황에서도 지배엘리트들을 장악할 수 있을만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 고 강화하여 야 한다. 물론 이는 아버지의 권력 이양 속도에 맞추고 비위를 거슬 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실행해야 하는 일이다. 김정은에게는 다행한 일이지만 9월 말의 당대표자회의 결정으로 볼 때 외부 관찰자의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게 아버 지의 권력이양이 진행되고 있다. 2. 집단지도체제 통상 집단지도체제는 그 누구도 1인자로 부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등장한다. 후 계자로 지명된 김정은이 미처 권력기반을 구축하기도 전에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 하는 경우 북한의 수령 유일지배체제가 한시적으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될 가능 8) 오경섭, 북한 권력승계의 특징과 3대세습체제의 지속가능성, p. 299. - 5 -

성이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사망한 뒤 3년여 동안 당 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공석으로 남겨둔 바 있다.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김정은이 곧바로 최고 권력직을 승계하지 않고 일정한 기간을 추모기간으로 정한 뒤 이 기간 동안 김정 은을 포함한 당 정 군 유력인사의 연합체인 집단지도체제가 수립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8년의 주장이긴 하나 고유환은 김정일의 갑작스런 유고 경우 새로운 지도부 를 옹립할 때까지 군부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서 그 중심은 국방위원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9) 고재홍도 김정일 사망시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국방위원회가 아니라 당 중앙군사 위원회나 당 조직지도부 중심으로 당 정 군의 주요 기관들이 연합한 비상연합 관리체제가 될 것이라고 보는 점이 다르다. 10) 김정은이 스스로의 힘으로 북한을 통치할 수 있는 기반을 미처 구축하기 전에 김 정일이 사망하는 경우 이러한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논의의 초점으로 부각시키고 싶은 것은 집단지도체제의 지속기간이다. 집단지도체제는 본질적으로 북한의 수령론과 배치된다. 오랫동안 지속해 온 수령 체제가 북한 사회주의의 확고한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에서 수령의 역할을 다수가 대신하는 집단지도체제는 북한에게 받아들이기 힘들고 익숙하지도 않다. 지금까지 북한이 수령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사회주의권 붕괴를 역사적 교훈으 로 설명할 때도 가장 많이 비판했던 것 중의 하나가 수령 사망 이후 집단지도체 제의 폐해였다. 11) 더욱이 권력의 속성상 집단지도체제는 과도적일 수밖에 없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지도자를 옹립하거나 야심가가 나타나 1인 중심의 권력체제를 구축하기 마련이다. 김일성이 유일지배체제를 구축한 과정도 그러했다. 공산주의국가들에서 는 지도자의 사망으로 권력공백과 권력승계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정치국에 의한 과두제(oligarchic leadership)를 구축해서 해결했다. 권력승계 초기 과두제속 일 인자의 권력이 여타 지배엘리트들에 비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그와 지배연합은 9) 고유환, 상징적 수령제, p. 27. 10) 고재홍, Post-김정일체제와 북한 정세 전망, 군사논단, 2009년 겨울호 기고문, p. 8. 11) 김근식, 제42차 통일전략포럼, 토론요지문, p. 6. - 6 -

권력균형을 형성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인자는 핵심적인 직책이 자신의 수중에 있고 권력을 강화시키기에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권력 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래서 일인자가 충분한 권력을 갖게 되면 일인 자와 지배연합 사이에 힘의 균형이 깨어진다. 결국 초기에 정치국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는 당의 최고지도자에 권력이 집중된 일인독재체제로 변형된다. 12) 결론적으로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미처 확고히 다지기 전에 아 버지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김정은의 후견을 위한 일시적인 집단지도체제가 등 장할 가능성은 있으나 그 지속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이다. 3. 혼합체제 김정은체제의 권력구조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김정은이 어리고 현실정치 경험 이 부족하며 당내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혼합형 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북한정권이 3대세습 과정에서 제도적 리더쉽을 확립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 리더쉽을 확립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습후계자의 취약한 개인적 리더쉽과 일천한 정치경력 을 보완하려고 할 것이고, 그 방안으로 정보력을 장악한 당의 엘리트들과 무력을 담당하는 군부의 엘리트들을 고루 포진시킨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할 것이라는 주 장이다. 13) 이러한 주장하에 혼합형 권력구조가 당 정치국의 기능을 복원하여 후계자가 정치 국 상무위원직을 맡고 주요 결정을 정치국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형태이거나 국 방위원회에 하부기구들을 확충하여 그것을 중추로 하는 국가영도체계를 확립하는 형태가 될 것이고 이 경우 후계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맡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14) 김근식과 김갑식도 일인이 수령을 계승하되 집단지도체제와 일정하게 공존하는 12) Milan W. Svolik, "Power Sharing and Leadership Dynamics in Authoritarian Regim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53, No. 2 (April, 2009), pp. 478-480, Myron Rush, "The Problem of Succession in Communist Regimes," p. 175. 오경섭, 북한 권력승계의 특징과 3대세습체 제의 지속가능성, p. 295에서 재인용 13)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 전망: 구조적 제약 하의 전략적 선택, pp. 35-36. 14) 이기동, 북한의 후계구도 전망과 권력구조 변화, p. 7. - 7 -

혼합형을 상정해 볼 수 있다고 동의한다. 후계자가 수령의 지위와 역할을 승계받 지만 과거 수령과 같은 완벽한 내용적 승계를 하지 못할 수 있고 이 경우는 일인 의 공식적 수령이 존재하되 실질적으로는 군, 테크노크라트, 당비서 등의 집단지 도체제가 사실상 권력을 분점하는 제한적 수령제 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다. 더욱이 제한적 수령제로 될 경우 언젠가는 수령의 권력약화와 정당성 약화를 초래해 결국 수령제 해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15) 이처럼 혼합체제는 실질적인 내용상 김정은이 수령이지만 명목상일 뿐이고 16) 실 제로는 유력한 정치인들이 뒤를 돌보아주는 형태를 말한다. 따라서 후견체제, 상징적 수령제 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겉모습은 수령체제이지만 실제는 집단지도체제인 경우이다. 그러나 혼합체제는 머리속으로는 상정할 수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수령일인지 배체제이든가 집단지도체제이든가,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위의 주장들 은 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혼합체제가 집단지도체제와 다른 새로운 지배체제 유 형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으나 사실은 세습후계자인 김정은과 당 군의 실력자들 에게 권력이 배분된 집단지도체제이다. 따라서 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혼합체제 는 집단지도체제 중 하나라는 오경섭의 주장이 옳다. 결국 김정은체제의 권력구조는 개인지배체제가 될 것인가, 집단지도체제가 될 것 인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7) 겉모습이 혼합체제인 형태는 김정은과 유력한 정 치인 집단 사이의 힘의 균형추가 후자 쪽에 쏠려있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유 력한 정치인 집단이 김정은을 상징적 존재로 세워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때 성립할 것이지만, 이는 본질상 집단지도체제이고 나중에 겉모습을 벗어버리고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될 가능성도 크다. 혼합체제는 현 김정일체제 형태 유지에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유력 권력엘리트들 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형태라는 점에서 성립 가능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잠정 적일 뿐이다. 권력엘리트들이 바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지 않고 이 형태를 선 15) 김근식, 토론요지문, p. 7; 김갑식, 북한의 후계구도 및 권력구조 전망: 안정적 승계 를 중심으로, 정 책연구 (2008, 겨울), p. 110. 16) 수령의 절대성을 감안하면 이 경우 수령으로 부르기도 힘들 것이다. 17) 백승주도 이분법에 동의하고 있다. 백승주, 포스트 김정일체제 프로세스와 한반도 비전 (서울: 한국국 방연구원, 2009), p. 55. - 8 -

호할 이유가 있다면 수령체제를 지켜온 오랜 관성에 있을 것이다. Ⅲ. 당 정 군의 관계 김일성 시기 북한 권력구조의 특징, 특히 당 정 군의 관계를 당의 지배, 권력집 중의 주석제, 군에 대한 통제라고 한다면 김정일 정권의 그것은 당 기능의 약화, 권한분산의 국방위원장제, 군의 역할 증대라고 할 수 있다. 1. 김정일 정권에서의 당 정 군 관계: 당기능 약화, 권한분산, 군의 부상 북한에서 당 기능은 1990년대의 경제난을 거치면서 일부 마비되었는데, 특히 기 층의 초급당 조직에서 그러했다. 원래 당세포, 초급당 조직 등 기층당 조직은 모 체 조직인 기관, 기업소, 지역행정체계가 정상적으로 기능해야, 그에 기생하여 자 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층당 조직의 붕괴 때문에, 도 시 당급의 지방당 조직 역시 과거와 같이 효과적인 정치사상적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지방당 조직은 기관, 기업소 단위를 통제해야 하지만 통제에 필요 한 자원을 확보하거나 공급할 능력을 상실했다. 기층당 및 지방당 조직의 부분적 붕괴는 전반적으로 당이 담당하던 기층 조직에 대한 조직사상적 통제 및 경제관리를 이완시킴으로써 북한 정권에 중대한 위협상 황을 초래했다. 이 때문에 군이 체제수호의 보루로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당을 대체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사회내에서는 인민보안부 및 국가보위부가, 군대내에서는 보위사령부가 과거 당조직이 하던 일을 맡아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18) 상대적으로 정도는 덜 하지만 중앙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당의 최고의 결기구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1993년 12월의 제6기 제21차 회의 이후로 열리지 않았다. 따라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는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 당 비서, 군사위원 등이 새로 충원되지 못했다.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1997년 김정일을 김일성 18) 박형중 외, 김정일 시대 북한의 정치체제: 통치이데올로기, 권력엘리트, 권력구조의 지속성과 변화 (서울: 통일연구원, 2004), pp. 225-226. - 9 -

사후 공석으로 있던 당 총비서직에 추대할 때도 당규약에 따르면 전원회의를 통 해 공식적으로 선거해야 하지만 10월 8일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특별보도를 통해 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당 중앙위원회가 열리지 않는 사이에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 도하게 되어 있는 기관이자 당정책 결정의 중추기관인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 회 역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했다. 특히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김정일만 위원 으로 남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었다. 김정일 정권에서 정치국 회의가 개최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가 있지만 정치국의 위상 및 역할과 관련하여 특기할 것은 김일성 사망 이후 정치국 의 명의가 전반적으로 사라져 버린 점이다. 예를 들어 건국 기념일의 축하주체가 1994년 이전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임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와 공화국 정부 였으나, 1995년부터는 김정일동지의 위임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와 공화 국정부 였다. 창군 축하주체도 1994년부터 1996년까지는 김정일동지의 위임 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였으나, 1997년부터는 김 정일의 위임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로 바뀌었다. 전반적으로 당이 기능마비에 빠진 상황은 실제 1996년 12월 김정일이 식량난으 로 인해 무정부 상태가 되고 있으며, 당 조직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당사업이 잘 되지 않아 사회주의 건설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조성되고 있다고 당 중앙위원회 를 비롯해 당 조직과 당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데서도 19) 증명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북한은 1998년 무렵부터 혁명과 건설의 주력군으로서 군을 내세운 선군정치를 시행한다고 선전했다. 그 즈음 북한은 핵문제를 둘러싸 고 미국과 대결국면에 있었고 대규모 자연재해로 식량난이 심화되어 주민들의 동 요가 심각한 실정에 있었다. 북한 지도부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여 체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군대의 활용으로 판단했다. 군을 내세워 체제위기를 타개하려는 선군정치는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법적 제도적으로 정비되었다. 북한은 이 회의에서 19) 김정일, 우리는 지금 식량 때문에 무정부 상태가 되고 있다, (1996.12.7), 월간조선, 1997년 4월호, p. 308. - 10 -

헌법을 개정하고 국가기관체계를 개편했다. 이 개편에서 김일성 정권 때의 주석 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회가 강화되었다. 과거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 관 으로 규정된 국방위원회는 국가주권의 최고 군사지도기관 이자 전반적 국방관리기관 으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국방위원회는 1998년 이전의 경우 김정 일 위원장을 포함하여 5명이었으나 개편에서 모두 10명으로 확대되었는데 김정 일, 연형묵, 전병호를 제외한 7명 모두 현역군인이었다. 지위와 권한이 강화된 국 방위원회에 이와 같이 현역군인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군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 고 국가운영에서 군의 역할을 확대하는 선군정치 가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것 이었다. 이와 함께 군부인사의 권력서열이 급상승했다. 북한의 권력서열은 김일성 사망전 까지는 주로 당내에서의 직책을 기준으로 하여 당 정치국 위원(1~13위), 후보 위원(14~23위), 당비서(24~29위), 부총리 등의 순서였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후 군부 인사들의 서열이 상승하기 시작하여 1998년 이후에는 권력서열 기준이 정치국 위원, 국방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당비서 순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군부인사들의 서열 상승은 당이 여전히 군을 지배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정치적 위상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1998년의 국가기구개편 특징의 하나는 국가기구들의 권한과 역할 조정을 통해 실질적 권력 행사와 형식적 국가수반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진 것이다. 외형 상 권력을 국방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내각 총리 등에게 분산시킨 구 조를 만들었다. 형식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을 높여 최 고주권기관으로서 입법권을 행사하고 상임위원장이 대외적인 국가수반의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그리고 내각이 전반적인 국가관리기관으로서 행정, 경제사업을 책 임지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결국 김정일 자신은 국가운영과 관련해 외교, 입법, 경제문제에서 오는 부담을 덜 고 당 운영과 군사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물론 이는 외형상 권한분 산이었을 뿐 김정일 일인에게 집중된 권한이 실제로 나뉘어진 것은 아니었다. 2. 후계체제에서의 당 정 군 관계: 당기능 복원, 권한집중, 군의 약화 북한은 아직까지 당적 영도 원칙이 지배하는 당 우위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 - 11 -

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당의 영도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주의체제 자체를 부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의 영도적 지위를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북한 사회주 의체제에서 최고 권력집단인 중앙당 조직은 다른 어떤 조직들보다 김정일과 각별 한 운명공동체를 구성하고 있고 대다수 군부의 고위층들은 당원의 직분을 보유하 고 있는 중첩적 엘리트 충원구조하에 있으므로 20) 당이자 곧 군대이고 군대이자 곧 당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21) 2010년에 들어와 그동안 약화된 당의 기능을 복원하여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대두했다. 6월 7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 국 제의에 따라 총리를 소환 선거 하였다고 하고 6월 23일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당과 혁명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하여 조선로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조선로동당대표자회를 2010년 9월 상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 했다 고 발표함으로써 정치국이 재등장했다. 또한 한동안 사라졌던 당 중앙위원회를 사수하자 라는 구호가 중앙보고대회에서 다시 등장하고 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설들이 로동신문에 연이어 게재되었다. 9월 28일 개최된 당대표자회는 당 기능의 회복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우선 당대표자회 자체가 당을 강화하고 그 기능을 높여나가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 다. 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말단 하부조직에 대한 점검과 당원의 참여가 필 요하기 때문이다. 당의 기능을 정상화해 당-인민의 관계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 가 있는데 로동신문 도 이번 당대표자회가 우리 당에 대한 인민의 신뢰를 더 욱 두터이 하고 당과 인민의 혼연일체의 위력을 강화하는 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 진다 라고 밝혔다. 22) 또한 당대표자회는 당 핵심기구의 비어있던 자리를 채우는 대대적인 인사를 통해 당의 정상화에 나섰다. 중앙위원회 산하의 정치국과 비서국의 인원을 1980년 6 차 당대회 수준으로 회복시켰다. 정치국은 위원과 후보위원을 합쳐 32명으로 늘 어났고 정치국의 핵심인 상무위원에 김정일을 비롯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이영호 군 총참모장 5명을 선임했다. 중요한 정책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비서국도 11명으로 채워졌 20) 박영자, 북한의 집권엘리트와 포스트 김정일시대, 통일정책연구, 제18권 2호(2009), pp. 33-66. 21) 이기동, 선군시대로의 이행과 후계구도, 북한학연구 창간호 (2005), pp. 88-89. 22) 로동신문, 2010.6.30. - 12 -

는데 특히 지방근무와 실무경험이 풍부한 최룡해, 박도춘, 김평해, 태종수, 홍석 형 등이 임명되어 당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중앙당 조직의 틀이 갖추어졌으므로 앞으로는 중앙당의 손발인 지방당과 각 단위 세포조직을 복원하 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당이 인민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짐으로써 당에 대한 인민들의 기대와 의존도가 크게 줄었지만 당-국가체제에서 당은 여전히 가장 권위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당 기능의 복원 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큰 사업인 동시에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안착하는 데 필요 한 여러 사업, 예컨대 선전선동의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한편 북한은 2009년 4월 9일 헌법의 일부 조문을 수정했다. 선군사상을 주체사 상과 함께 통치이념에 추가했고 군 임무에 혁명 수뇌부 보위 를 명시함으로써 군의 체제수호기능을 강조했다. 특히 국방위원장 을 별도의 절( 節 )로 신설하 여 헌법상 지위를 격상시켰고 권한을 강화했다. 국방위원장의 지위를 최고영도 자 및 최고사령관 으로 명문화하여 법 제도적 권한을 과거의 주석에 버금 가게끔 했다. 이는 김정일이 이미 실질적으로 행사해온 권한을 조문에 반영한 것 이다. 또한 국방위원장이 국가 전반 사업을 지도하고 중요 조약의 비준 폐기 및 특사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1998년 수정헌법에서 외형상 권한과 실질적 권한이 일치하지 않던 점들을 제거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절대권력을 가진 김정일에게는 그 불일치가 문제되지 않지만 그것을 그대로 둘 경우 후계자가 국방위원장에 취 임하여 겪을 수도 있는 불편과 제약을 고려하여 없앤 것으로 추측된다. 90년대 중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 를 거치면서 강화되고 높아진 군의 역 할과 위상은 어떻게 될까? 9월 28일의 당대표자회는 당규약을 개정했는데 여기 에는 인민군대 안의 당조직들의 역할을 높일 데 대한 내용 이 들어있다. 간단 히 말해 당의 군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에서 도 군부 인사의 약진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영호 총참모장의 발탁을 제외하고 는 나이든 최상층 군 인사들이 예우차원에서 현직을 유지하는 선에 그쳤을 뿐 김 정일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던 현철해나 리명수도 정치국원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김경희, 최룡해, 김경옥이 대장으로 임명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도 일부 민간인 이 진입했다. 이런 점은 향후 김정은 체제에서 당 기능 복원의 가속화와 함께 군 부의 정치적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후계자로 내정 되어 가는 길목에서 김창봉, 허봉학 등 군 수뇌부가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을 방해하고 혁명전통 계승을 반대하여 숙청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경험은 - 13 -

비대해진 군의 기득권과 상대적으로 높아진 군의 위상, 그 활동영역을 그대로 방 치할 경우 김정은체제의 착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 다. 물론 북한은 선군정치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체제위 기 속에서 김정일이 선택한 선군정치가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북한을 변화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족쇄로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뚜렷한 업적없이 아버지 의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으로서는 몇 년 동안 외쳐온 강성대국 진입 이 헛구 호에 그치지 않도록 무엇보다 인민생활 개선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하고 이는 국 가자원의 많은 부분을 인민경제 향상에 투입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선군정치 는 김정은체제에서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고 군부의 기득권이 다른 조직으로 재 분배될 가능성이 있다. 갈등의 내연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이 과정을 아버지는 원만히 조정할 수 있지만 김정은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내부폭발 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Ⅳ. 당 정치국 및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조선로동당 규약 제25조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당 중앙위원회의 명의 로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지도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정치국은 당의 최고기구 이고 협의체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유일지배자가 존재하는 북한에서 정치국은 명 목상의 기구에 가까웠다. 상징적인 기구였지만 김일성은 비록 형식적이라 하더라 도 주요 정책은 당 정치국이나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의 협의체 기구에서 토 론을 거친 뒤 결정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런 협의체 기구에서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통치스 타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김정일은 획일적이고 엄격한 위계질서를 중시하면서 공개된 토론이나 의견교환을 피하고 당, 정, 군의 각 보고채널을 통해 정보를 수 집한다. 그는 해당 기관에 직접 지시하며 직접 점검하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정 책결정과정상의 일정한 수준에서 부서간의 조정과 협의가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김정일의 지침에 따른 일상적 업무에 한정된 것이다. 보통은 그들 사이의 정보 흐름이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정의 전반을 모두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정일뿐이다. 이 때문에 그는 90년대 중반 모든 분 - 14 -

야를 직접 장악하는 수평적 직할통치 구조를 만들었다. 당 국제부와 외무성의 수 직적 종속관계가 수평적 병렬관계로 전환되었고 군부에서도 인민무력부와 총정치 국, 총참모부가 대등한 관계로 바뀌어 김정일의 직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당의 정 책적 지도 기능이 약화되면서 주로 군사, 외교, 보안 분야 등의 조직들은 당 비서 국의 해당 담당부서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직접 김정일에게 보고서를 제출했 다.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 정권에서 두드러진 점은 역시 협의체인 국방위원회의 위상 강화와 더불어 국방위원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 관여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의 고별 오찬에서 상호 비방 중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군 간부들에게 대남 비방방송 을 중지할 것을 지시했으나 일부 장성들이 우리가 안해도 남측에서 계속할 것 아 니냐며 반대하기에 내가 화를 내면서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자고 설득했다 고 말했다. 24) 또한 2000년 8월 방북한 남한 언론사 사장단에게 자신의 서울 답방 시기 문제를 국방위원회와 외무성이 토론중 이라고 말해 국방위원회가 정책을 협의하고 결정하는 폭이 광범위함을 시사했다. 25) 장성욱에 따르면 1998-2009 년 동안 국방위원회는 민간경제와 주민통제, 주요 대외정책, 남북관계 등에 폭넓 게 관여했다. 26) 이에 따라 당 비서국과 정치국의 기능이 상당 부분 국방위원회로 이관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27) 김일기도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어 당 대 당의 국제관 계가 대폭 축소되고 자본주의국가와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국가 기능이 점차 확 대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여 북한이 국방위원장과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했고 이는 향후 국방위원회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조직이자 후견그룹 으로 활용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28) 이처럼 국방위원회는 정치국이 유명무실한 가운데 선군정치 하에서 그 기능과 23) 현성일, 북한의 국가전략과 파워엘리트 (서울: 선인, 2007), pp. 413-414. 24) 동아일보, 2000. 6. 17. 25) 중앙일보, 2000. 8. 14. 26) 장성욱, 북한의 공격우위 신화와 선군정치: 탈냉전기 군비태세와 군사전략에 관한 이론적 연구, 고 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6, pp. 283-285. 박형중 조한범 장용석,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서울: 통일연구원, 2009), pp. 89-90에서 재인용 27) 박형중 조한범 장용석, 북한 변화 의 재평가와 대북정책 방향, pp. 93-94. 28) 김일기, 북한헌법의 개정 내용과 의미, p. 11. - 15 -

역할이 확대되는 징후가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국가 전반을 통치 하는 새로운 국가기구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 국방위원회는 2009년에 수정된 헌 법 조문을 보면 최고의 국방지도기관으로서 국가의 중요정책을 세우는 곳이다. 헌법상 군 지휘권도 국방위원장에게 있고 인민무력부와 국가보위부도 그 산하에 있다. 더욱이 2009년 4월 9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는 국 방위원회를 개편하여 위원을 4명에서 8명으로 늘렸는데 새로 임명된 위원은 5명 으로 주로 당 정 군 통제기구의 책임자들이었다. 기존의 국방관리와 군수공업 영역을 넘어 국내치안과 군 통제를 담당하는 인사까지 보충된 것이었다. 따라서 헌법으로 보나 인원 구성으로 보나 국방위원회가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로 평가되 었고 군사분야에서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분석되어 당 중앙군사위원 회와 비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결원이 되었던 자리에 인원이 보 충됨으로써 국방위원회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당연직 성격의 인물과 예우차원의 인물이 다소 들어가긴 했으나 향 후 후계체제 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영호, 김경희, 장성 택, 최룡해와 당 비서국 비서들이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정 치국이나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예외적으로 특별한 역할과 권한을 행사하지는 못 할 것이지만 적어도 김정일과 김정은의 결정을 정치국의 집체적인 결정이라고 포 장해 줌으로써 그 결정에 권위를 더욱 불어넣어 주는 역할은 할 것으로 예상된 다. 또한 국방위원회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은 김정일이 국방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음으로써 국방위원회가 국가기구 중에 수위에 놓이게 되었지만 당처럼 혁명 과 건설 전반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지도할 수 있는 정연한 지도체제와 조직기 구, 능력있는 일꾼들 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 주목한다. 29) 군사분야에서도 국방위원회보다는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여전히 권위있는 기구이 다. 김정일 정권에 와서 북한은 국가적인 주요 결정이나 발표가 있을 때 당 중앙 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 공동명의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2009년 4 월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으로 재추대하자는 김영남의 연설도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제의를 받아 최고인민회의에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30) 2010년 29) 고재홍, 북한 국방위원회의 지위와 역할 분석, 북한연구학회보, 제12권 2호(2008), pp. 41-45. - 16 -

2월 당 창건 6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당구호도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군사위 원회의 공동명의였다. 31) 또한 2010년 7월 김일성 사망 기일을 맞아 고위 인사들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찾 은 보도에서도 김일성동지의 립상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 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공동명의로 된 꽃바구니가 진 정 되었다고 밝혔다. 32) 기관의 명의 순서에 유의해 보면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상이나 권위가 격하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매년 창군 축하의 주체도 국 방위원회가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원회이다. 그리고 군의 각종 대회 축하문을 보 낸 기구도 199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당 중앙위원회, 그 이후는 당 중앙군사 위원회이다. 당-국가체제에서 당내 군사기구가 존재하고 기능하는 한, 국가부문의 군사기구 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현재 북한에서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 대로 기능하느냐이다. 그동안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조짐 도 없었지만 김정일 정권에서도 군의 지휘나 군에 대한 통제는 아직 당 중앙군사 위원회의 몫으로 보인다.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권한이나 역할이 국방위원회로 이 관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2010년 9월 28일에 단행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인사는 앞으로 이 기구가 명실공 히 선군정치의 핵심이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후계자 김정은이 부위 원장에 임명되었고 2009년 4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새로 임명되었던 북한의 각 분야 최고 실세들이 총망라된 점에서 그러하다. 현재 북한이 선군사상, 선군정 치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높이고, 후계자가 이를 통해 당의 군사노선 확립과 군 장악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김 일성처럼 당사업보다 군사업을 먼저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선군정치 개 시일을 원래 주장하던 1995년을 수정하여 1960년으로 소급한 바 있다. 이를 감 안하면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김정은이 중앙군사위원회와 군사업을 첫 무대로 활 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30) 로동신문, 2009. 4. 10. 31) 로동신문, 2010. 2. 6, 32) 조선중앙통신, 2010. 7. 9. - 17 -

그러나 선군정치 의 시행으로 군의 역할이 군사적인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한, 군의 활동을 지도하고 다른 기관과의 조율을 하는 주체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국가를 대표 하는 본래의 기능에 덧붙여 국방위원회의 역할이 늘어나고 정책관여 폭이 넓어졌 지만 국방위원회는 어디까지나 당-국가체제에서 국가기관이라는 한계를 가질 것 이다. 특히 김정은이 1월에 후계자로 내정되고 공안기구를 중심으로 권력장악과 정책관여 폭을 넓혀가던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의 유용성이 컸으나 후계자로 공 식화된 지금에는 손발이 없는 국방위원회보다는 전국단위로 미세한 부분까지 조 직을 갖춰 인민과 접촉할 수 있는 당의 유용성이 훨씬 클 것이다. Ⅴ. 권력엘리트 북한뿐 아니라 어느 국가든 그 국가의 정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어떻게 권력이 행사되느냐인데 이는 권력구조, 권력엘리트와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 다. 권력구조는 권력행사의 장이며 권력엘리트는 권력행사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누구를 고위층의 권력엘리트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김정일의 측근 으로 분류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입수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되어 있는 상 황에서 누가 김정일의 측근인지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흔히 사용되는 기준이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는 빈도이다. <2010년 현지지도 수행 회수> 김경희 김기남 김양건 김영일 김영춘 김정각 김정일 이명수 이영호 이재일 장성택 주규창 최태복 현철해 강석주 7 9 8 9 7 4 10 2 2 10 2 8 2 김경희 35 14 13 13 13 54 13 8 15 42 20 17 15 김기남 16 14 18 17 42 13 12 1 35 12 22 15 김양건 14 11 9 16 2 5 14 2 13 3 김영일 11 8 17 2 5 16 2 12 2 김영춘 17 20 2 12 14 2 15 2 김정각 18 13 11 14 김정일 19 13 16 46 23 23 22 이명수 1 13 11 2 19 이영호 7 10 이재일 10 12 1 1-18 -

장성택 19 16 14 주규창 3 11 위의 회수는 2010년 8월17일 현재 사망한 박남기, 이제강 제외 위의 표는 각 개인이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한 회수와 수행하면서 상호 만난 회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장성택은 2010년의 경우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46회 수행하면서 강석주를 10회, 김경희를 42회, 김영춘을 14회 만났다. 이는 하나의 관계망(network)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관계망 속에서 누가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지를 보기 위해 사회 관계망 분석(social network analysis)을 시도했다. 33) 관계망에서 김정일의 중심성을 1.000으로 가정했을 때 다른 인물들의 상대적인 중심성을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34) 김명국 김원홍 최익규 김정각 이명수 현철해 김영춘 김양건 강석주 김평해 이제강 박남기 이재일 김기남 김정일 장성택 김경희 최태복 이영호 김영일 주규창 박도춘 홍석형 태종수 위의 그림에 나타나는 사람 대부분이 9월 28일의 노동당 인사에서 주요 직책에 임명되었다. 당 비서로 임명된 10명 가운데 위의 표에 없는 사람은 최룡해와 문 33) 사회연결망 분석에 대해서는 김용학, 사회 연결망 분석 (서울: 박영사, 2007) 참조. 34) 사회관계망 분석에서 핵심개념의 하나는 중심성(centrality)인데 이는 관계망에서 중심에 위치한 정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심성이 높다는 것은 관계망의 중심에 위치하여 관계망을 구성하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정도가 높다는 것으로 다른 구성원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 19 -

경덕 뿐이다. 김정일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위의 그림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권 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권력승계가 성공하려면 후계자에게 충성심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간부들 을 북한의 권력구조에 배치시켜 이들로 하여금 후계자의 권력기반을 제도적으로 구축할 것을 필요로 한다. 35) 거꾸로 말하면 후계자는 자신의 사람들로 하여금 주 요 권력기관을 장악하도록 하여야 한다. 포스트 김일성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혁명 1세대인 빨치산 그룹이 후견그룹을 형성하였다면 포스트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는 어떤 그룹들이 부상할 것 이고 김정일 시대 이후를 이끌어갈 권력엘리트들은 누가될 것인가? 김정일 정권에서 이미 점진적이고 폭넓게 권력엘리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북 한은 2006년 10월 15일자 로동신문 정론 "조국이 우리를 지켜본다"에서 김일성 이 혁명 개척세대인 1, 2세대의 대표자라면 김정일은 혁명의 계승 세대인 3, 4세 의 대표자라고 했다. 3, 4세대는 해방된 조국땅에서, 전화의 불길속에서 그리 고 전후의 잿더미속에서 태여났거나 그때 책보를 끼고 다니던 세대들 로서 40-50년대생이며 이들이 혁명의 주력 이라고 선전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 면 주체의 조국 건설에 매진한 1, 2세대에 이어 선군정치의 조국 건설을 담당하게 된 이 세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선군혁명의 최후승리와 강성대국건 설 이라고 한다. 36) 따라서 김정일 이후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혁명 5세대와 6세대인 새세대 의 등장과 더불어 진행될 것이고 앞의 그림에 나타나는 김정일 세대이자 혁명 3, 4 세들인 인물들이 후견인의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엘리트층을 구성하고 있는 3, 4세대와 다음 세대의 엘리트로 성장할 5, 6세대 간에는 차이가 있다. 우선 3, 4세대들은 1970년대 3대혁명의 주축세력 이고 북한체제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으므로 체제에 남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 을 수 있다. 즉 이 세대들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시기에 교육을 받아 35) 김갑식, p. 114. 36) 정론, 혁명의 3세, 4세, 로동신문, 2006. 2.28; 정론 혁명은 대를 이어, 로동신문, 2007. 3.19. 통상 김정일을 혁명 2세대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이 그를 3, 4세의 대표자로 새로 자리매김한 것 은 중국 지도부의 세대 구분과의 일치를 노린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 20 -

국가로부터의 시혜, 정교한 사회주의 교육제도 등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이기 때문에 투철한 혁명성을 보일 수 있다. 37) 대남부서에 근무했던 한 탈북자는 북한 내 50대 권력엘리트들 중 일부가 앞으로 10년은 우리의 정권이다. 선배들은 자리를 내놓으십시요. 우리가 사회주의를 더 강하게 만들겠습니다 라면서 선배 들의 일선후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38) 정창현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만 난 이들 세대는 국가의 혜택 을 받은 만큼 충성도가 높고 사회주의체제를 유 지하려는 보수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며 내부 사회주의 경제운영의 개선, 대외 무역의 활성화 등에서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전면적인 개혁 개방에 대해 서는 상당히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39) 하지만 5, 6세대는 북한이 합영 법을 제정하고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는 등 개방적 경향을 띠는 반면 경제 외교적으로 급속히 쇠락해가던 시기에 성장했으므로 체제에 대한 정체성이 3, 4 세대에 비해 다소 약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3, 4세대보다 더 실리적이 고 대외개방적 사고를 보인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서 세대교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북한의 간부등용은 노 장 청 배합을 특징으로 하고 있고 특히 노 장에 대한 예우는 유지될 것이 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지금 눈에 띄는 당 정 군의 주요 인사들이 권력행사의 중심이 될 것이다. 김정은체제의 구축에 당 비서국에서는 문경덕을 비롯한 5, 60대의 비교적 젊은 비서들이, 공안 부문은 장성택이, 군부는 이영호과 김경옥이, 근로단체와 젊은 세대의 동원은 최 룡해 등이 선봉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임명한 이들이 후계체제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지만 이 들 못지않게 중요한 집단은 3, 40대의 혁명 5, 6세대이다. 그런데 지금도 북한의 일부 분야에는 담당자들의 나이가 30대이다. 조직지도부를 제외하고는 당내에서 30대 중반이나 40대로 넘어가는 세대가 실무의 팀장급으로서 업무를 이끌어 가 고 있다. 가장 보수집단이라고 평가되는 군부쪽에도 40대의 나이에 군단장에 오 른 경우도 있다. 주승남 제12군단장을 비롯해 군단장은 40~50대, 사단 여단장 들은 일부 30~40대로 교체되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입지를 굳히면서 이들의 직책이 한 단계씩 승진하여 부부장급으로 올라가면 김정은 후계체제를 뒷받침하 37) 이교덕 외, 새터민의 증언으로 본 북한의 변화, pp. 29-31. 38) 탈북주민과의 인터뷰, 2007년 10월 10일. 39) 정창현과의 인터뷰, 2010년 8월 30일. - 21 -

는 당내 파워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내각쪽은 김정일 정권이 들어선 직후부터 실적에 입각해 성과를 낸 사람이 장관, 차관에 오르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세대교체가 활발한 곳 이다. 정보화시대에 맞는 실력, 실제적인 성과를 내는 실적 과 실리 등 3실주의 가 인사발탁에 주요하게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사 고 와 실리주의 를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의 대대적인 등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3, 4세대보다 더 실리적 인 5, 6세대들이 김정은 체제의 경제를 짊어질 가능성이 크다. Ⅵ. 결 론 김정은체제의 지배체제는 수령 유일지배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김정일의 입장에서 자신의 후계체제가 수령 유일지배체제보다 집단지도체제 형태가 되도록 할 이유가 없다. 유일지배체제의 구축이 기존체제를 고수하고 전임자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수령 유일지배체제의 지속 가 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연구자들은 김정은의 권력기반과 장악력이 약하다는 것을 이유로 지적하지만 그 이유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의 경우 후계자로서 흔들림이 없는 입지를 다지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불 과 3~4년이었다. 후계자로서 권력을 숭계한 경험을 가진 김정일이 아들의 후계 체제 구축을 주도할 경우 그 과정은 비약적으로 압축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은 자신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 빠른 속도로 권력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할 것이다.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얼마만큼 빠른 시간에 탄탄하게 구축하느냐는 어 느 정도는 자신의 정치적 능력에 달려 있겠지만 아버지의 지원이 가장 큰 변수일 것이기 때문에 김정일이 얼마나 더 생존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후계체제 구 축에서 김정일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지배엘리트들은 존재하지 않고 지배엘리트 들도 다른 유력한 후계자를 맞아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보다 독재자의 아들을 받아들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한편 2010년에 들어와 그동안 약화된 당의 기능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 - 22 -

다. 정치국 명의가 재등장했고 사라졌던 당 중앙위원회를 사수하자 라는 구호 가 다시 나타났다. 경제가 어려워져 당에 대한 인민들의 의존도가 크게 줄었지만 당-국가체제에서 당은 여전히 가장 권위있는 조직이다. 따라서 당 기능의 복원 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큰 동시에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안착하는 데 필요한 인민 들의 지지 확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다. 당의 기능이 위축되면서 선군정치 로 그 역할이 늘어나고 정책관여 폭이 넓어 졌던 국방위원회는 점차 역할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1월에 후계자로 내정되고 공안기구를 중심으로 권력장악과 정책관여 폭을 넓혀가던 2009년에는 국방위원회의 유용성이 컸으나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금에는 하부조직이 없는 국 방위원회보다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춰 인민과 접촉할 수 있는 당의 유용성이 훨 씬 클 것이다. 반면 앞으로 당분간은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명실공히 선군정치의 핵심이 될 것이 다. 무엇보다 후계자 김정은이 부위원장에 임명되었고 2009년 4월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새로 임명되었던 북한의 각 분야 최고 실세들이 총망라되었다. 김정일 의 선군정치 개시일을 1995년에서 1960년으로 소급한 북한으로서는 김정은이 공개활동을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향후 김정은 체제에서 당 기능 복원의 가속화와 함께 군부의 정치적 역할은 축소 될 것이다. 김정일은 비대해진 군의 기득권과 상대적으로 높아진 군의 위상, 활동 영역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김정은체제의 착근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 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은 선군정치를 폐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뚜렷 한 업적없이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으로서는 몇 년 동안 외쳐온 강성 대국 진입 이 헛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무엇보다 인민생활 개선에서 성과를 거두 어야 하고 이는 국가자원의 많은 부분을 인민경제 향상에 투입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선군정치는 김정은체제에서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고 군부의 기득권이 다 른 조직으로 재분배될 가능성이 있다. 갈등의 내연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이 과 정을 아버지는 원만히 조정할 수 있지만 김정은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 문에 내부폭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권력승계가 성공하려면 후계자에게 충성심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간 부들을 북한의 권력구조에 배치시켜 이들로 하여금 후계자의 권력기반을 제도적 - 23 -

으로 구축할 것을 필요로 한다. 김정은체제 구축과정은 혁명 5세대와 6세대인 새세대 의 등장과 더불어 진행될 것이고 김정일 세대이자 혁명 3, 4세들인 인 물들이 후견인의 역할을 할 것이다. 당분간은 아버지가 임명한 당 정 군의 주 요 인사들이 권력행사의 중심이 될 것이지만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집단이 3, 40대의 혁명 5, 6세대이다. 당내에서 팀장급으로 일하고 있는 그들이 한 단계씩 승진하여 부부장급으로 올라가면 김정은 후계체제를 뒷받침하는 당내 강력한 파 워집단을 형성하게 될 것인데 아마도 5년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