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희망 이야기 다시서기 2013년 5월 (월간/ 통권140호) 대한성공회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140-801 서울특별시 용산구 갈월동 14-30 02)777-5217 / FAX 02)777-5393 월간 다시서기 통권 140호 발행인 여재훈(루가)신부 / 편집인 우대경 / 발행일 2013. 5. 6. / 인쇄처 세진인쇄 다시서기센터 www.homelesskr.org 새희망고용지원센터 www.newhopekr.org (정기간행물등록 서울 라10956호) 두바퀴희망자전거 www.2bike.co.kr 02)777-8008 미소꿈터 02)3272-7975 마중글 도반( 道 伴 ) 함께 살아가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같은 눈높이로 가만히 경청하는 것 노숙인이 아닌 노숙인 신부님 안녕하셨지요? 오래간만에 뵙 네요.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는 김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은 약 2년여가 지나서 처음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떠 나 여러 곳을 전전하시다가 형편의 어 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쩔수 없이 다시 이곳에 도움을 받으러 오신 듯하 였다. 3년전 인문학 대학에 입학한 신 입생이었던 김선생님은 성프란시스 인 문학 대학 과정을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셨던 분이다. 60 대 초반의 그는 귀티 나는 외모에 선한 인상을 가졌으며 말끔한 옷차림을 하 신, 얼핏 보기에는 전혀 노숙인 이라는 단어가 안 어울려 보이는 평범한 외모 를 가지신 분이셨다. 그는 서울의 명문 고를 졸업하였고, 괜찮은 대학도 졸업 한, 노숙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력 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가지 시대적 상 황으로 인하여 기업에서 퇴출되었고 경 제적인 문제로 가정이 해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어느날 문득 노숙인 이 라는 낙인을 받은 분으로, 그당시 스스 로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즉, 여재훈(루가)신부 다시서기센터 소장 그는 본인의 상황에 비추어 스스로를 포기하듯 노숙인 이라고 인식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러한 암울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고 다른 이들에게 공격적 이고 고압적인 모습을 보였었다. 그 결 과 그는 함께 공부하던 인문학 동기생 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고, 공동체 주 위를 맴돌기만 했다. 다만 그가 사람들 의 중심에 설 때가 있었는데, 안타깝게 도 동기들 사이에 분란이 일어날 때 종 종 그 가운데에서 분란 조장자로 자주 서있었다. 분명히 자신이 자원하여 들 어온 노숙인 인문학 대학이었지만, 자 신의 나이와 학벌과 사회성을 볼 때에 이곳은 본인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는 이야기를 종종 동기들과 활동가들에 게 표현하였다. 안타까웠지만 그의 불 편한 심내를 다잡아주려 건낸 주변의 관심은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 오기를 반복하였다. 결국 그는 한 학기 수강 후 성프란시스 대학을 떠나갔고 센터에도 발길을 끊어버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아가 그를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수 없게 만든 듯하였다. 그런 그가 좀 더 초췌해지고 야윈 모습으로 2
함께 할 수 있는 지원과 격려의 방법을 센터를 방문한 것을 보곤, 여러 가지 다는 이유로 쪽방과 여인숙에서 거부당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는 환경에서 정 생각이 오고갔다. 어디에서 무얼 하셨 하여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시설을 연 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무언가 조 는지, 요즘 생활은 어떠신지. 궁금함이 계하려 하였으나 당사자가 시설은 극구 치를 해야 한다는데 현장 활동가들과 앞서지만 선뜻 물어 볼 수 없었던 것은 반대하여 결국 어렵게 설득한 응급쪽방 상담원들의 깊은 고민 이 있다. 다행히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그가 그의 얼굴 표정에서 읽혀지는 삶의 무 에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건강하고 이쁘게 이 겨울을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게 때문 이었다. 그가 부담스럽지 않도 후 그녀와 아이는 서울역을 계속 배회 잘 지냈고, 아이 엄마 또한 마음의 여 가족과 같은 이웃으로 자리 매김하는 록 간단한 인사와 안부 정도를 묻고 필 하며 희망지원센터를 마실 삼아 아이를 유를 찾는 듯하다. 아이와 엄마가 모두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흠도 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 후 거리를 두고 데리고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였다. 한 가 건강하게 여름을 맞이하길 위해 새 많고 탈도 많지만 자신의 결핍이 무엇 지켜본다. 부디 자기 자신으로부터 좀 달 여가 지난 뒤 현장에서 그녀를 다시 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인지 몰라 헤매는 이들과 가족이 없는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래본다. 만났는데, 사람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 그녀의 유모차에는 아이가 둘이 타고 있었다. 깜짝 놀라 상황을 서울역의 아이 둘 엄마 찾아가고 있다. 암과 싸우고 있는 김선생님 물어보니 지방 보육원에 맡겨져 있던 구가 없는 사람들, 자신을 아픔을 공감 해서 함께 울어줄 이웃이 없는 이들을 둘째가 너무 보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 벌써 1년 반이 훌쩍 넘은 것 같다. 그 우리는 만나고 있다. 어떠한 물적 지원 아니 아이 셋 엄마가 맞을 것이다. 지 는 것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엄마 가 간암선고를 받고 외롭게 병을 이겨 과 제도적인 지원보다도, 그의 삶의 여 금 함께 사는 아이 둘과 보육원에 맡겨 건강과 아이들 근황 등 안부를 묻고, 내려고 싸워온 시간이. 수술이 불가능 정에 함께 동행 할 수 있는 도반(道伴) 져 있는 막네까지 합한다면 말이다.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물어보니 한 부위에 암세포가 자라 시술과 항암 으로서의 관계 맺음이 우선 되어야 한 녀가 서울역에 나타난 것은 약 5개월전 단호하게 제가 데리고 살 거에요. 그리 치료 만으로 암을 이겨내려는 그의 일 다는 것이 이곳에 오랫동안 마음을 써 이었다. 5살 남짓 아이 하나를 유모차 고 다음에는 셋째도 꼭 데리고 올 거에 상이 처절하고 힘겨워 보이다. 지난 겨 왔던 에 태우고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 도움 요! 무어라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녀와 울 병원에 입원한 그를 찾아 갔을 때 함께 살아가는 것, 기다려 주는 것, 같 을 요청을 하면서 우리와 관계를 맺게 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었 바싹 마르고 퀭한 눈으로 요즘은 가끔 은 눈높이로 가만히 경청하는 것이 우 되었다. 큰 키에 웬만한 남자 성인보다 으므로 그저 가볍게 웃으며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요... 라며 힘 선되어야지만이 그들의 삶과 마음에 가 도 덩치가 컷 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이쁘다고 칭찬만 해주었다. 참 많은 고 없이 말을 건내던 그에게 치유의 가능 장 작은 자리하나 마련 할 수 있다는 잠 잘 곳을 찾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 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성과 긍정적 마음가짐의 중요성에 대해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봄바람에 따뜻 고 이곳을 찾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은 방치하자니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앞으 강조했지만, 그것이 크게 위로가 되지 하여 꽃들이 아름답게 세상을 장식하고 아니었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진행한 상 로의 성장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고, 않았음을 느끼며 함께 힘겨워 했던 기 있다. 우리들 마음속도 아름다운 봄처 담을 통해 우리는 더 놀라운 사실을 알 아이들을 떼어 시설로 보내자니 아이 억이 그를 볼 때 마다 떠올랐다. 열심 럼 더 넉넉히 이웃을 바라볼 수 있는 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가 세 명이 있 엄마의 상태가 더 안 좋아 질 것 같아 으로 자신의 치유와 회복에 대한 기대 여유가 가득하기를 바래본다. 었는데 6살, 4살, 그리고 그 밑에 한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 를 놓지 않도록 이런 저런 지원 방안을 으로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다 다르다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벌써 5개월 찾고 있지만 그어떤 지원보다 그를 기 고 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보육원에 아이들은 노숙인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 억하고 그를 염려하는 이웃들의 관심과 있던 큰아이를 무작정 데리고 서울로 였고, 노숙인들도 아이들의 존재에 매 배려가 가장 큰 치료약이 아닐까 생각 왔고 수급신청을 한 상태였으나 수급비 우 익숙해졌다. 아이들의 존재가 노숙 된다. 현재 그는 그가 치료받고 있는 가 지급되지 않아 서울역 현장팀을 찾 인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듯한 것 보라매 병원 옆에 숙소를 잡고 자신 속 아온 것이었다. 유독 날씨가 추웠던 그 은 참 보기 좋은 일이었으나, 아이들의 의 병마와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 날 현장팀은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들어 성장에는 이 상황이 오히려 심각하게 중이다. 우리는 그가 그 전쟁을 잘 치 갈 수 있는 숙소를 찾았으나 아이가 있 폭력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조만간 르고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 수 있도록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3` 4 활동가들의 한결같은 자세이다. 월간 다시서기
해외역사문화탐방기 다시서는 마을의 해외 나들이 1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담당자를 포함하여 10명이 레드캡투어 여행사 상 품으로 상해, 항주, 황산여행을 4월 2일 부터 6일까지 4박 5일간 다녀왔습니다. 여행일자와 여행지를 잠정적으로 결정 한 이후에도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최 종적으로 확정하지 못하고 심사숙고하 였는데, 그 이유는 수급을 받는 몇 분 을 포함하여 모두들 어렵게 조금씩 마 련한 여행비이기에 값있게 사용해야 한 다는 생각과 여행지에 따라 불참의사를 밝히는 분이 계셔서, 어쩌면 혼자서는 가지 못 할지도 모르는 기회를 무시하 기에는 마음이 편치 못했기 때문입니 다. 2월 15일 참여희망자 1차 모임시에 는 18명이 참여 희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 갈수록 개인적 사정으로 참여가 힘들어진 분들이 늘어나 3월 26일 여행 설명회 모임에서는 예상 인원보다 적은 10명으로 확정되었습니다. 4월 2일 아 침 7시에 인천공항에 집합하여 아시아 나 항공 OZ361편으로 상해의 푸동공항 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2011년 1차 여 행시 한 분이 40여분 이상 지각을 하면 서 모두를 지체시켰던 기억이 있어 야 간당직 근무중이던 마명철선생께 새벽4 시에 모닝콜을 부탁하였습니다. 사업지원팀 매입임대 담당 양경철 그럼에도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시는 두 분이 3~40여분 늦게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출발 전부터 열을 받 기 시작합니다. 서둘러 짐을 부치고 항 공권 검사, 개인 소지물 검사, 출국 체 크 등을 마치고 항공기 탑승장으로 가 는 중에 레드캡 여행사 공항직원의 전 화가 왔는데, 이홍렬 선생의 항공화물 에 문제점이 있으니 본인이 다시 출국 장 밖으로 나와 처리하라고 합니다. 비행기 탑승시간은 40여분 밖에 안 남 았는데 다시 나가서 짐을 정리하고 들 어 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여행사 직원에게 문제되는 짐을 정리해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합니다. 다시 출국장 밖으로 나오려니 아시아나항공사 직원 의 동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속이 타 기 시작하던 차에 레드캡 직원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짐 속에 스프레이형 큰 화장품(화물 속에는 일회용 라이터도 안 된 답니다)이 들어 있어 가방을 열 고 제거했다고 나오지 말라고 해서 안 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비 행기 탑승 게이트가 바뀌면서 30분간 출발시간이 지연된다고 안내 방송이 나 오더군요. 푸동공항에 도착해 연변이 고향이며 교포3세라는 억센 북한 사투 리를 쓰는 29세의 젊은 청년 신양춘 가이드를 만나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여행팀 10명, 76세, 73세, 71세 형 제 부부 6명과 보호자로 온 51세 아들, 친구 사이라는 65세 아주머니 2명, 친 구 사이의 36세 청년 2명 등 총 21명이 4박 5일간 즐겁고 유쾌한 동행을 하였 습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노익장을 과시하는 동행인들의 행동을 보고 우리 선생님들이 느낀 점이 많았다고 이구동 성으로 이야기 합니다. 여행 첫째 날, 상해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 후 상해박물관을 관람하였는데, 입장객의 소지품 검사를 공항 출입이상 철저히 하는 것이 유적물 관리유지에 철저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쉬운 것은 시간 관계상 4개 층에 전시 된 유물들을 한 시간도 못 보고 나왔다 는 점으로, 파트별로 잘 정돈된 기원전 유물도 쉽게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역 시 장대한 역사와 유적을 가진 나라라 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 일정으로 1920년대의 건축양식으로 복원시킨 신 천지(서울의 청담동 비유)를 가기 전, 가이드와 협의하여 예정에는 없지만 우 리 팀의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지 중 하나로 생각했던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 옛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지금은 보잘것 없는 초라한 구건물에 불과하지만, 191 9년 4월부터 1932년 4월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후 일제에게서 도피하기 까지 13년간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 서도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를 놓았던 역 사적 현장이라는 점에서 홍보 영화관람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같이 눈 물 속에서 만세삼창을 크게 외쳤습니 다. 청대의 옛거리를 재현한 예원상장, 상해의 역사, 문화의 축소판이라는 남 경로, 다양한 국가의 건축양식이 모여 있는 외탄 등을 구경하고 해물누릉지탕 으로 저녁 식사 후 화려하고 고난이도 의 묘기를 자랑한다는 상해 서커스를 손에 땀을 쥐면서 관람하고 하루 일과 를 마쳤습니다. 새벽부터 움직여 피곤 함 속에서도 인솔자 숙소에 모여 각자 가 느낀 소감을 깊이 있고 진지하게 나 누고 내일의 일정을 알린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둘째 날,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하여 항 주를 향해 긴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항주의 주요 강인 전단강의 범람을 막 기 위한 기원탑으로 970년에 세워졌다 는 육화탑을 보고, 항주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붙어진 이름이라는 서호를 유람선을 탑승하여 구경하였습니다. 서 호 인근에 붉은 잉어와 모란꽃이 볼만 하다는 화항관어를 보았는데 각가지 봄 꽃들이 만개한 속에서 봄의 정취를 만 끽할 수 있었습니다. 동파육과 거지닭 으로 점심식사 후 남송시대 때부터 번 창했던 상점가라는 청하방 옛거리를 둘 러 보았습니다. 마침 중국에서는 중요 하게 여긴다는 청명절 연휴와 맞물려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5 6
거리를 가득 메운 중국인들 사이에서 소수 민족들의 노점상들과도 많이 만나 게 되는데, 옥으로 만든 노리개를 중국 돈 800원 부터 시작해서 호가가 50원으 로 떨어질 때 까지 사람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고 버스가 출발도 못하게 붙들 고 있는 그들의 끈덕짐에 두 손발을 들 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황산을 향해 또 다시 긴 버스 여행을 시작하면서 일 행들 사이에 뜨거운 친목 다짐의 시간 을 가졌고, 황산에 도착하여 현지식으 로 저녁식사를 했는데 고춧가루에 버무 린 콩나물 무침이 입에 맞아 추가 신청 했더니 20원이라고 합니다. 식사 후 중 국의 유명한 장예모 감독이 연출하여, 황산의 사계절과 휘주에서 태어난 여인 의 삶과 애환을 크게 4막으로 구성했다 는 휘운가무쇼를 관람했습니다. 대형무 대와 화려한 배우들 의상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연출들이 나올 때 마다 아낌없 는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어제와 마찬 가지로 예정되었던 담당자 숙소에서의 대토론의 시간은 일행 중 한명이 만취 직전이어서 아쉽지만 생략하기로 하였 습니다. 셋째 날, 이번 여행의 두 번째 목적이 었던 황산 등반을 위해 아침 5시 30분 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여 행상품에는 옥병루 케이블카를 타고 자 광각에 도착하여 등반을 시작하여 1860M의 광명정을 보고, 서해대협곡을 돌아 본 후 백아령에서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 다. 하지만 우리 팀에도 2명이 등반이 어렵고, 다른 팀도 고령으로 황산의 전 코스 등반이 어렵다고 해 차선책으로 태평케이블을 타고 올라가 서해대협곡 을 한 시간 정도 가벼운(?) 등반을 하고 산위의 호텔에서 점심식사 후 힘드신 분들은 호텔에 남고 일행 중 10명만 가 이드와 함께 황산 최고봉인 광명정을 다녀왔습니다. 2시간여 층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뼈져리게 느꼈지만 평소 볼 수 없는 장관에 잘왔 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100Kg에 달한다는 각가지 짐 보따리를 장대 양 끝에 매달고 맨몸으로도 힘든 길을 오 르내리는 일꾼들을 보고 경외감과 측은 감이 교차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도 이런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 니다. 선생님 한분은 사진을 찍어 액자 에 넣어 방안에 걸어 놓고 나태해 질 때마다 쳐다 보시겠다고 하더군요. 여 행 출발 전 확인했던 주간 기상 날씨에 는 비가 온다고 해서 내심 걱정했으나, 흐리다 맑다가를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비는 내리지 않아 준비했던 비옷과 우 산이 필요 없었음을 수없이 감사했습니 다. 잠깐 잠깐 안개가 비껴가면서 맑아 지는 날씨를 틈타 수 없이 사진을 찍었 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을 디지 털 사진기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 다. 호텔에 남아 계시던 분들도 대만족 속에 태평케이블을 타고 하산하여, 1000여년 전 송나라때 부터 형성된 거 리로 명.청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 었다는 청대옛거리를 구경 후 우리 선 생님들의 관심거리였던 발맛사지를 받 으러 갔습니다. 여자 맛사지사가 싸이 의 강남스타일 을 구성지게 불러주는 가운데 유쾌하고 즐거웠던 시간을 뒤로 하고 삼겹살로 저녁식사 후 하루 일정 을 마무리 합니다. 숙소로 돌아와 다른 여행팀의 젊은이들까지 합류하여 긴 시 간의 토론이 시작되었으나, 여행이야기 보다는 출입이 중단된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넷째 날, 오늘은 오전에 휘주박물관을 견학 후 점심을 먹고 상해까지 버스로 6시간 가는 일정뿐이라 평소보다 한시 간 늦게 일과를 시작했는데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합니 다. 그 동안 안개인지 황사인지 구분이 안되는 희뿌연 날씨 속에서 몇일을 지 내다 다행히 여행 막바지에서 비가 적 지 않게 뿌려댑니다. 상해 도착 후 남 는 저녁 시간을 여행 상품 하나만 더보 기로 했으나, 한 팀은 황포강 유람을, 저희 팀은 동방명주와 밀랍역사전시관 을 보기를 원해 가이드가 결정을 못하 길래 70대 노부부 세가족의 의견을 존 중해 황포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습니 다. 서울에는 강남과 강북지역을 나누 는 한강이 있듯이, 인구 2,200만명이 산 다는 상해에는 황포강이 동. 서로 신. 구 시가 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연휴를 맞아 수 없이 많이 나온 중국인 관광객들과 어 울려 한강유람선보다 크고 특이하게 번 쩍거리는 장식들로 단장된 각가지 형태 의 유람선단들 속에서 동. 서가 확연히 구분되는데, 한쪽은 세월이 흘러도 잘 보존된 건축물들과 한쪽은 세계 최고의 신축된 각가지 형태의 초대형 건축물들 의 빛의 축제를 보며 다시 한번 한강 주변의 아파트 숲들을 생각하면서 중국 의 저력을 뼈져리게 느낍니다. 국가 차 원에서 일사분란하게 계획되고 준비되 지 않고서는 연출 될수 없는 장관을 보 면, 앞으로 세월이 얼마나 흐르던지 관 광 자원으로 한 목을 단단히 할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 유람선들의 측면 대 형 불빛으로 현대, 삼성, 기아 등 한국 기업들의 광고 문구들을 볼 때 반갑고 자부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유람선 안 에서 희안한 광경 몇가지를 볼 수 있었 는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에서 사진을 찍기 좋은 곳에 새끼줄을 쳐 놓고 그 장소에서 사진을 찍을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거나, 상해 야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3층 칸의 절반을 줄을 쳐 놓고 비 막이 천막까지 있는 가운데 테이블까지 놓고서 입장료를 받 고 맥주 등 음료를 팔고 있었는데 그 곳에 앉은 사람들은 거들먹 거리며 다 리 뻗고 앉아 있고, 나머지 공간에 사 람들이 바글거리며 비를 맞고 서 있는 다는 것이 사회주의국가 에서나 있을 법한 일로 보여져 기분이 상해 1층 실 내로 내려와 버렸습니다. 개인당 30불 씩이나 승선료를 냈으면 차별없이 선상 내 공간을 즐기게 하거나, 처음부터 승 선료에 차등을 두어 제대로 갖춘 공간 으로 분리하던가 했으면 합니다. 숙소 에서 여행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 하면 서 늦도록 대토론은 이어집니다.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7 8
다섯째 날, 모닝콜 부탁없이 평소보다 몇일간의 여행을 위해 개인당 한달 생 늦게 아침식사 후 짐을 챙겨 기념품 판 활비가 될 수도 있는 경비와 시간을 지 매가게도 들려서 두시간 거리의 푸동공 출하는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가 항으로 여유있게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수없이 자문을 했습니다. 또한 여건상 밟는데, 귀신같이 항공화물 속의 라이 프로그램에 동참하지 못하신 분들이 느 터를 찾아내고 호출하는 검사원들 때문 낄 상실감도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태엽처럼 돌아가는 인연 그 분들의 시간에 에 시간을 빼앗기고 결국 조금의 여유 함께 공유 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를 가지고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 결론은 여행에 참여하신 분들 모두 새 니다. 오후 4시에 인천공항 도착 후 안 로운 세상을 보았기에 2년후에 있을 제 전하게 여행을 마치고 귀가함을 자축하 3차 해외역사문화탐방을 위해 열심히 는 파이팅과 기념 촬영을 한 후에 각자 일하고 준비해서 또 참여하겠으며, 기 진로에 대한 확고한 결정 없이 이런저 서 저에게 가장 소중한 말인것 같습니 버스와 지하철 편으로 귀가하였습니다. 회가 된다면 그 도중에라도 희망자들 런 고민을 하며 보내온 시간들에 대한 다. 저는 현재 금요영화 프로그램과 고 중국에는 몇 번을 가 봤지만 지역마다 끼리 여행을 가자고 하는 건의도 받았 늦은 후회와 동일한 고민을 가진 사람 용 관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먼저 느낌이 완전히 다른데, 상해 날씨는 해 기에 대부분 혼자 생활하시는 다시서는 들에게 저의 경험을 토대로 실제적인 금요영화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매주 변가라 그런지 습기차고 맑은 날이 많 마을 주민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삶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작은 바람 가운데 금요일 마다 선생님모시고 센터 지하 지 않은 것 같고(황산지역 기후도 같 이겨나갈 동기와 힘을 주었다는 확신을 준비하게 된 직업삼당사의 길... 프로그램실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 음), 경제도시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주 가지게 됐습니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 민들의 경제 수준이 평준화되었다는 느 에서도 만사 제쳐놓고 프로그램에 참여 낌을 받았습니다. 여행 일정중 구경한 해 주신 다시서는마을 주민들과, 부족 상해서커스, 서호, 황산, 휘운가무쇼, 황 경비를 선뜻 지원해 주신 신부님과 실 포강, 지역마다 서울의 인사동을 능가 장님, 팀과장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 2012년 12월 21일 저는 다시서기와의 및 마음의 감동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하는 각가지 옛거리와 건축물 등 모든 니다. 또한 야간 당직근무 후 바로 여 첫 인연을 맺었고 그 자리는 바로 면접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 것이 역사물과 자연물 보존에 더해서 행길에 참여하여 뒤에서 끝까지 열심히 보는 자리였습니다. 그 때 제가 했던 다. 처음에는 그저 영화를 상영하고 상 인위적인 관광거리로 만들어 졌고, 그 챙겨주신 우리들의 전담 사진사 마명철 많은 답변 중 특별히 제가 다이어리에 영시간 동안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것은 후손대대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 선생님과 여행 참여자들의 근무 공백을 적어놓은 말이 있는데 이는 선생님들은 것에만 마음을 두었던 적도 있었지만, 한 유산이라는 것을 볼 때 우리도 본받 동료애로 채워주신 센터의 동료 선생님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횟수를 거듭할수록 영화 선정에 대한 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 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말씀드립니다. 먼저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부분도 선생님들의 의지가 추가되면 좋 합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라는 것을 겠다는 생각하게 되었고, 영화상영 후 느낄 수 있게,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의 한 분이 같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하 손길만으로도 삶의 의미를 찾게 도와줄 고 그 선정에 대한 이유까지 나눈 후 겁니다. 라고 했었던 말을 지켜 실천하 영화를 상영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마 자라는 것입니다. 음이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보 2회 해외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하면서, 월간 사업지원팀 복진우 니다. 힘든 생활 속에서 잊혀 지거나 저의 첫 걸음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업지원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리지 못하고 지냈던 문화생활을 선생 님에게 제공을 하여, 2시간 정도의 영 화감상을 통해 일상 속 스트레스 해소 다시서기 고 싶은 영화를 적는 데까지 진행되고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9` 처음 시작의 마음의 기준이 되었던 저 있습니다만 그래도 매주 시간을 지켜 의 말은 노숙인 관련 업무를 올 해 1월 금요명화에 참여하시고 보고 싶은 영화 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시간을 보내면 를 깨알같이 적어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10 10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그 분들의 시간 과 생각이 저와 함께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는 작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습니 다. 또 다른 저의 업무인 고용 업무에서 취업상담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된 선생님들이 어느덧 70여명이 되었습니 다. 고용 업무를 맡으면서 선생님들과 의 상담 속에서 그들의 삶의 깊이를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분, 한분 취업 을 하여 자리를 잡으셨을 때 그 사실에 저 역시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며 취업까지의 과정 속에서 아파하는 분이 있다면 그 슬픔에 함께 공유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한 분이 술을 드시 고 저를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 랜 시간을 들여 여기저기에 취업알선을 부탁하고 기다리고 있으나 결과가 없다 보니 이제 취업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할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전 에 다른 분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직업상담사로써 나는 무얼 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에 속상해했던 경험이 있던 저였기에 그 상황에 제가 할 수 있는부 분은 그저 그 이야기에 함께 가슴아파 하고 저 또한 취업을 진심으로 기대하 고 있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습니다. 짧 은 대화 속에서 그 분이 조금은 기운을 얻으시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며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면에서 더 노력 해야겠 다고 마음을 먹은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다시서기를 통해서 수많은 만 남과 인연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만남과 인연에 비추어 그 분들의 시간 가운데 당신은 함께 하고 있는가? 라 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작아 질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감히 저는 다른 한편으 로는 그 분들 역시 저라는 사람을 인연 으로 받아주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다이 어리 한 켠을 채우고 있는 그 문구를 기억합니다. 월간 다시서기 우리들의 나의 고민 어제가 아닌 내일을 위해 나는 오늘 고민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소꿈터에서 사회복지사 일을 하고 있는 김성준이라고 합니다. 미소 꿈터를 소식지로 자주 접하신 분들에게 는 미소꿈터가 어떠한 시설인지 잘 알 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혹여나 생소하 신 분들이 있을까 싶어 다시 간단하게 설명 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소꿈터는 미래와 소망을 꿈꾸는 터전 이라는 약 어로 결핵노숙인 전문 치료시설입니다. 결핵완치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완 미소꿈터 김성준 콜 중독이셨지만 입소 7개월이란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음주문제, 무단외박 문제도 없었고, 프로그램 참여율과 시 설 청소 및 식자재 정리 등 타 입소인 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퇴소 후 요양보호사 자격증으로 일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퇴소 전에 요양보호사 학원 등록 자격증 취득까지 완벽히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퇴소 후 다시 음주에 빠지셨 습니다. 지금도 서울역 주변에서 노숙 치 이외에도 자격증 취득 및 퇴소 후 동료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거리생활 주거지원을 통한 지역사회 정착에도 노 을 하고 있습니다. 노숙생활을 벗어나 력하고 있으며 현재 미소꿈터가 개소 1 서 잘 생활하실 것 만 같았던 선생님이 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동안 입소 자연스럽게 노숙생활로 돌아가는 모습 인의 완치율은 90% 이상이 될 만큼 노 을 보니 마음이 굉장히 무거워 지더군 <금요영화> <금요영화 신청메모> 숙인 결핵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시설입니다. 요. To want to be what one can be is purpose in life.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Cynthia Ozick- 업무를 하면서 제가 느낀 고민을 소식 지를 통해 전해 보고자합니다. 제가 사 례관리를 맞았던 한 선생님이 계십니 다. 노숙생활을 할 때에는 비전트레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모르겠습 니다. 선생님은 원래 알콜 중독이셨지 만 미소꿈터 입소 후 음주에 대한 특별 한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기에 알콜치료 를 하거나 교육을 받으신 적이 없었기 <2013 고양시 장애인 현장채용의 날> 닝을 수도 없이 다녀왔을 만큼 심한 알 때문이죠. 미소꿈터에서 아무런 문제없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1` 12
이(알콜, 도박, 대인관계 등) 퇴소하신 분들이 재 노숙을 하는 경우가 간간히 있습니다. 결핵은 완치했지만 탈 노숙은 하지 못 하는 상황이죠. 도박 중독이신 분들은 다시 경마장에 찾아가시고, 알콜 중독 이신 분들은 술을 다시 먹게 되는 반복 되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제 고민은 이런 것입니다. 퇴소 시까지 특별한 문 제가 발생되지 않았기에 퇴소 후에도 생활을 잘 하실 거라 믿었던 선생님들 이 재 노숙환경에 빠지게 되는 것 최근 에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왜 선생님 들은 미소꿈터에서는 특별한 문제도 없 이 생활하시다가 퇴소 후에 노숙을 하 기시게 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누 군가에게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은 아 닐까요? 노숙인에게는 돌아갈 가정, 정 착할 지역사회도 없습니다. 하지만 미 소꿈터에서는 함께 치료를 하고 격려를 해주는 동료와 고민거리를 상담하고 해 결해줄 수 있는 사회복지사, 간호사, 건 강한 식사를 책임져 주시는 조리사, 국 장, 소장님 등 도움을 청 할 수 있지만 퇴소 후에는 그럴 수 없게 되는 거죠. 익숙했던 서울역 환경, 술잔을 기울이 던 동료, 별다른 취미 없이 즐겼던 경 마 미소꿈터 입소 전 생활했던 환경으 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죠. 미소꿈터의 주목적은 결핵완치입니다. 결핵을 완치하더라도 근본적인 노숙환 경을 벗어나기 위한 교육과 프로그램참 여도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 재 미소꿈터에서는 대부분의 입소인들 의 구직활동 참여로 인해 시간적인 제 한으로 프로그램 참석률이 저조합니다. 일을 해서 돈을 모아 퇴소하신다고 해 서 당분간 그 돈을 가지고 생활은 가능 하시겠지만 돈이 떨어지고 나면 다시 노숙환경으로 돌아가는 일이 비일비재 하기 때문이죠. 또한 대상자의 입소기 간이 다릅니다. 알다시피 미소꿈터는 완치 후 퇴소해야하는 시설입니다. 입 소기간이 1년 이상 되는 분들은 결핵완 치 및 탈 노숙 준비가 충분히 가능하지 만 짧은 입소기간의분들은 결핵완치 및 건강회복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미소꿈터가 개소한지 어느덧 1년 6개 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나라 의 첫 번째 노숙인 결핵치료 시설로서 타 사회복지시설이나 노숙인 쉼터처럼 인프라를 갖춘 상태에서 시작된 시설이 아니기에 미흡하고 부족한 면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미소꿈터의 영향 때 문인지 서울시에서는 제 2의 미소꿈터 를 개소한다고 하더군요. 결핵 앓고 고 통 받고 있는 노숙인에게는 너무나 좋 은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개소 첫 일원으로서 미소꿈터의 입소하신 모 든 분들께 미래와 소망을 꿈꿀 수 있는 터전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는 사회복지 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간 다시서기 우리들의 이야기 1600-9582 상 담 원 그리고 행복의 비결 얼마 전, 위기대응콜센터(1600-9582) 가 서울역에 있는 희망지원센터(다시서 기종합지원센터)내에 만들어졌습니다. 위기대응콜센터는 거리노숙인들, 특히 나 여성노숙인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노숙인 혹은 위험에 노출된(동사의 위 험, 혹은 질환등으로 인한 위험등) 노숙 인등 365일 24시간 접수를 통해 이분들 에 대한 즉각적인 보호 조치는 물론 노 숙위기계층에게는 상담과 지원 가능한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콜센터에서는 전화 접수 뿐 아니라, 노숙인 지원을 위한 현장출동과 상담, 보호, 시설연계 및 기타 이용 가능한 서비스에 대한 정보 안내등 노숙인과 관련된 많은 일들을 진행하다 보니 전 화 주시는 많은 분들께서 뭔가 큰 시설 과 인력의 구성을 생각하시는 분도 있 으시더군요. 하지만 위기대응콜센터에 는 직원 2명(팀장1명, 상담원1명)이 전 부이며, 그중 상담원 1인의 역할이 저 의 업무입니다. 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콜센터는 큼지막한 발신번호 창이 보이는 전화기와 헤드셋 그리고 파티션을 통해 칸칸히 나눠져 있는 정 현장구호팀 방동환 돈된 자리, 네비게이션이나 지하철 안 내방송에나 나올 법 한 아름다운 여성 분의 목소리등,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콜센터만의 기본 셋팅이라고나 할까 요? 아쉽게도 위기대응콜센터는 위 해 당사항에 없습니다. 다만 발신번호가 표시되는 전화기 한 대가 전부이지요. 거기다가 콜센터 사무실에는 항상 상담 을 원하시는 노숙인분들로 북적거립니 다. 그래서 아직은 준비되지 못한 걸음 마 단계의 콜센터이지만 우리의 역할과 내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 앉아서 전화 응 대 업무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콜 센터 상담원과는 다르게 직접 현장에 출동하기도 하지요. 민원인 요청 중 상 당부분이 차량을 통해 직접 현장에 출 동하여 상담과 이송, 그리고 일시보호 역할을 요청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현장 출동시에 콜센터에 걸려오는 전화 상담은 누가 할까요? 물론 그것도 저희가 합니다. 차량에서 혹은 현장 조 치 상황중에서도 개인 핸드폰으로 직접 전화응대는 물론 상담까지 가능합니다. 착신전환이라는 감사한(?)서비스가 존재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3` 14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위 기대응콜 매뉴얼과 기타 필요한 자료들 을 스마트폰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며 전화 상담시 활용하곤 합니다. 스마트 폰에 파일로 담겨져 있는 매뉴얼을 통 해 연계 가능한 시설 혹은 서비스를 안 내하기도 하고, 혹은 스마트폰을 활용 하여 인터넷에 접속해 업무를 처리하기 도 하지요. 정말 스마트한 세상입니다. 위기대응콜센터는 경찰부터 구청 및 주민센터 공무원, 119, 기자, 병원 관계 자와 복지시설 종사자, 일반시민과 노 숙인(혹은 노숙위기계층)까지 다양한 분 들을 통해 민원 요청이 접수되는데요, 접수된 클라이언트(노숙인)의 대다수는 여성, 결핵, 알코올, 치매노인, 정신질환, 가출, 성폭력, 가정폭력등 노숙상황과 결합하여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로 이들에 대한 현장출동 및 상담, 보호 혹은 서비스 안내에 대한 요청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신원 확인이 불가한 치매노인 및 정신질환자 와 심한 음주상태, 주거 및 거주불명의 이름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셔서 십 지문 조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보호 가 가능한지 경찰서에서 전화를 주신 상황이었습니다. 옷차림과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봐서는, 보호자가 있을 것 같 았지만, 결국 주거지와 보호자를 찾지 못하시면 노숙위기상황으로 발생할 위 험이 있어, 희망지원센터에서 일시보호 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 노인보 호 시설이 아닌 열악한 노숙인 시설에 서 보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 아, 연계 가능한 치매 관련 노인시설에 요청 해보았지만, 신원은 물론 보호자 없이, 주거지 없이, 혹은 본인의 시설 입소 요청 없이는 받아 줄 수 없다는 대답뿐이더군요. 특히나 치매 어르신에 게 본인의 시설 입소 요청이 있어야 한 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또한 시 설별 입소 절차는 왜 그렇게나 복잡한 지, 심사를 거쳐야 되고, 상담을 받아야 하고... 당장에 주거지가 없어 추운날씨 에 잠시나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 임에도 불구하고, 입소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시설 담 다양한 자체 규정들의 문턱은 너무나 높아서 대체 누가 저 높은 문턱을 넘어 입소 가능할지, 너무 궁금하더군요. 결 국 시설별 규정이라는 필터링에 걸러지 지 못한 클라이언트는 거리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상황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서울역 희망지원센터 사 무실에서 보호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경찰서에서 십지문 조회 결과 가 일주일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그 기 간 동안 할머니를 모시고 있기가 쉽지 않겠더군요. 집이 있어서 혹은 볼일이 있어서 빨리 나가봐야 한다는 할머니를 수십번이나 간신히 설득하여 자리에 앉 아 있으시도록 부탁드리는 상황이었기 에 더욱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내용들을 파악하고자, 계 속되는 질문에 할머니께서 무심코 본인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 따님으로 추정 되는 이름을 간혹 이야기 하시더군요. 또 집이 석촌호수 인근 지역이며 노인 정 혹은 양로원으로 추정되는 곳을 이 용하셨던 것으로 생각되어, 석촌호수 인근 지역의 주민센터와 구청을 통해 취했던 곳마다, 상담원의 이름과 연락 처를 남기고 혹시나 실종자를 찾는전화 가 오거나 비슷한 이름으로라도 확인이 되면 꼭 연락 주십사 부탁을 드리곤 전 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을까 요? 늦은 저녁 시간. 핸드폰으로 할머 님을 보호하고 있는지 여쭤보는 여성분 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영상통화를 통해 할머님과 통화하시고는, 우리 어 머님이라고 하시면서 너무나 기뻐하시 더군요. 밤 12시가 넘어서야 서울역 희 망지원센터에 방문하셔서, 감사의 말 전하시며 집으로 모시고 돌아가셨습니 다. 이렇게 접수되는, 한건, 한건의 상 황들에 대한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매번 경험합니다. 또 그런 난감하고 답 이 나오지 않는 상황들은 어찌나 그렇 게 다양하고 많은지,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 자체가 짜증나고 답답하기도 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건, 그런 일련의 과정 자체가 어느 순 간(의도적이긴 하지만) 나에게 즐거움으 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외국인등에 대한 보호조치 요청 또한 종종 접수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 우 노숙인 시설은 물론 타시설로의 연 계 및 보호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 예로, 어느 날 늦은 오후시간에, 경 찰서에서 치매로 의심되는 할머님을 보 호 해달라는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신분증도 없으시고, 본인 주소는 물론 당자의 말이 너무나 야속하게 느껴졌습 니다. 심사를 거쳐야 하는 기간 동안 아무 조건 없이 할머님이 머무실 수 있 는 일시보호 시설은 노숙인 시설밖에는 없는 건지 안타까웠죠. 물론 시설 입장 에서는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수 의 이용자를 위해 일정부분 나름대로의 조건과 규정, 그리고 절차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설별로 내세우는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계신분인지, 수급 자이거나 혹은 보호자 이름을 아시는지 확인해 보기도 하고, 인근 지역의 수십 곳에 이르는 요양시설과 노인시설(데이 케어센터, 지역복지관등), 노인정등에 연락하여 이름과 생년월일을 토대로 이 용하신 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습니 다. 하지만 이름과 생년월일 또한 정확 하다고 볼 수 없었기에, 결국은 연락을 저는 오늘도 행복을 찾아 나섭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 한 일이기에, 오늘도 저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항 상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무언가를 위 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가장 아 름답고 행복한 순간임을... 월간 다시서기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5` 16
야순님과 친구들 사회복지사로써의 첫걸음 파워블러거인 야순님과 친구분들께서 4 동절기를 보내며 월 13일, 20일 현장라운딩과 오리엔테이 션 후 배식 및 설거지 자원봉사를 해주셨 습니다. 현장지원팀 김재승 자원봉사에 참여해주셨던 분들께서 노숙 2012년 8월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안좋은 인에 대한 인식과 자원봉사하시면서 느꼈 현장지원팀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첫 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가 그들을 적 던 느낌들을 야순님 블로그에서 활발히 을 내디디게 된 날이다. 마침 입사 후 극적으로 지지해주고 이해해주는게 필 나누어 주시었고 자원봉사에 참여하신분 교육을 받으면서 노숙인 관련 복지업무 요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그들과 가까 들과 글을 보시고 나신 후에 저희 기관으 를 하는데 있어서 노숙인 분들의 실태 운 곳에서 함께 소통하며 아주 작은 것 로 후원물품들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일지라도 도움과 관심을 보이는게 우리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내심 현장지 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하게 받고 있습니다. 원팀에 가기를 원하고 있었기에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많은 금액과 물품도 감사하지만 보내주 시는분들의 마음이 느껴질 수 있어서 감 이러한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을 때 동절기가 찾아왔고, 2013년 11월 12 연필통 캠프를 다녀와서 처음 현장지원팀에서 상담을 하면서 일 응급대피소가 개소와 함께 응급대피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 야간근무자로 응급보호 업무를 진행 4월 19일~20일 이틀간 가평의 한적한 펜션에서 연필통 캠프를 갔다왔습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과 편견이 하게 되었다. 지하도내에 콘테이너 박 펜션 주위를 돌아보며 자연에서 느꼈던 감성을 시로로 표현해보고, 각자의 시를 발 모두 깨지게 되었다. 각각이 가지고 있 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응급대피 표 후에 장원을 뽑아 축하해주는 시간과 풍선을 가지고 다양한 레크레이션을 통해 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도저히 해결 방 소.. 밖에서 보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친밀감을 가지고 평소에는 이야기 하지 못했던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면 서로를 좀 법이 없어 보이는 각종 상황들을 들으 의아해 할 만한 곳이다. 이 안에서는 더 알아갈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올 한해 연필통이 나아가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 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해져만 갔 매일 140여명의 거리 선생님들로 북적 도 공유할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 물론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여 북적하다. 러 가지 서비스가 있지만 모든 문제를 인해 동절기 혹독한 추위를 버텨낼 곳 해결하기에는 부족하고 아주 작은 도움 이 없는 분들이 모이는 곳이다. 확장공 밖에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와 여러 가지 시설 보수를 통해 작년 서울역 대합실 퇴거조치로 사회복지사로서 정말로 그들에 줄 수 보다는 조금 더 나아졌지만 많은 사람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라는 고민이 들이 함께 잠을 청하다보니 그리 편한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고 해결점은 보이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그리 좋 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이 은 여건이 아닐지라도 그저 추위를 피 야기를 털어 놓고 들어줄 사람 또한 우 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는 분들 리밖에 없음에 경청하고 따뜻한 말 한 이 있다는 것에 응급대피소의 존재 이 마디가 결코 작지 않은 것임을 느끼게 유가 있지 않을까? 월간 1년동안 잘 준비해서 멋있는 무대에 올릴 날을 기대해봅니다. 다시서기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7` 18 18
포근한 마음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개인] 고형곤10,000 김금자40,000 김원규50,000 김지은10,000 김진욱 5,000 마명철10,000 문창경45,000 박세순10,000 박헌용10,000 박형영10,000 박형준10,000 신선혜10,000 윤 오10,000 이안열10,000 이주범20,000 이형운50,000 임은주200,000 장근식10,000장송자10,000 정은영50,000 조완희10,000 최광필 5,000 최장수 5,000 한영희30,0000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단체] 뿌리깊은교회100,000 서부교회200,000 에스케이커뮤니1,122,200 우리 은행명동500,000 한국금융정책공사 2,500,000 [다시서기지원센터/개인] 고태양10,000 권영환10,000 김 경10,000 김경태10,000 김기석 5,000 김기수10,000 김대영10,000 김덕선10,000 김동은10,000 김명식10,000 김민수10,000 김석배60,000 김선희10,000 김성모10,000 김성일10,000 김성자10,000 김성지 5,000 김수민10,000 김승모10,000 김여은 5,000 김영자30,000 김영진60,000 김용기10,000 김윤희30,000 김재경20,000 김정배60,000 김정용10,000 김종대10,000 김진욱10,000 김창수10,000 김태윤10,000 김한준10,000 김홍윤10,000 남주연10,000 남화정10,000 노경준10,000 노기종 5,000 노승재10,000 노혜승20,000 류동연10,000 류은정 5,000 문민수20,000 문양금10,000 민경신10,000 민병학10,000 민정희10,000 박경장10,000 박관용10,000 박남희20,000 박문현10,000 박병도5,000 박병희10,000 박성광10,000 박재익20,000 박정훈10,000 박태만 5,000 방동환10,000 방창호10,000 배길원20,000 변종목10,000 서양식10,000 서연희 5,000 석재순10,000 설민지10,000 신란숙20,000 신석균20,000 심경애20,000 심미정5,000 안상진10,000 안상협10,000 안용남30,000 안재금20,000 안정호10,000 안진희10,000 양경철10,000 양근모10,000 양윤실 5,000 엄장옥10,000 엄진영10,000 여진학50,000 여현주10,000 오선정 5,000 오영균10,000 오차환10,000 왕정숙10,000 왕형진10,000 우대경10,000 우민지20,000 유명구40,000 유재명30,000 유재진10,000 유창윤20,000 유태성10,000 윤건주 5,000 윤수진10,000 이경섭60,000 이귀숙30,000 이명직10,000 이미진10,000 이미혜10,000 이봉희10,000 이상노10,000 이상재10,000 이성종10,000 이수연10,000 이애신10,000 이오영10,000 이재형10,000 이정화10,000 이종만20,000 이진영20,000 이철종10,000 이태용10,000 이해연20,000 이현승10,000 이현희30,000 장동일10,000 장명호10,000 장성권10,000 장세홍10,000 장수경 5,000 장은석10,000 장자영10,000 장재경20,000 장철희10,000 장혜원10,000 전순성10,000 전정일10,000 정광일 5,000 정연순10,000 정연주10,000 정유진20,000 정은희50,000 정재욱10,000 정희경10,000 정희종10,000 조기례 5,000 조동욱10,000 조복호10,000 조영근60,000 조원길10,000 조윤주10,000 조재영10,000 조지혜 5,000 조형준 5,000 주성호 5,000 차제선 5,000 채무병10,000 채순금10,000 최미경 5,000 최보람10,000 최승미200,000 최지현10,000 최현숙10,000 최 희10,000 허 정 5,000 현정안30,000 홍승길10,000 홍은하 5,000 홍주영 5,000 홍주찬 5,000 홍진기 5,000 황동옥10,000 황성민10,000 황지선10,000 황태희10,000 [다시서기지원센터/단체] 삼성에버랜드1,072,000 서울대성당800,000 신동아건설1,200,000 하나 은행사랑봉사단600,000 휴면코드10,000 (주)알알씨10,000 [다시서기지원센터/인문학] 김군배10,000 김미경10,000 김영미10,000 김홍윤10,000 노승현10,000 박경철10,000 박순복10,000 안성찬30,000 정성훈 5,000 정수민10,000 최선호10,000 최은진10,000 따뜻한 손길 [물품으로 후원 해주신 분들] 김시원 팬티, 무명 4명 옷, 박예나 과자 옷, 삼성전자 과자 새물결새은혜 세면세트, 서노협 의류, 씨제이푸드빌 빵, 이 민정 옷, 이화교회 계란, 인소희 옷, 한국금융정책공사 쌀, KT&G중부복지센터 오이 [거리 아웃리치 및 차 봉사] 개인: 박경연 단체: 외국인자원봉사팀(PLUR) 프리메드(의료봉사) [거리 문화 콘서트] 박기태, 정영걸, 김종범, 주성원, 김재경, [센터 자원봉사/개인] 강민지 고동식 공다영 김강래 김도은 김성진 김수진 김승현 김연희 김영실 김예빈 김은아 김종문 김지현 김진원 김태훈 김현수 남혁주 도윤경 류지윤 류지현 박원영 박하영 백현주 블레안 서영헤 신승호 양수진 양해연 유제혁 이명근 이솔아 이수윤 이승은 이원석 이자랑 이재혁 이정민 이지선 임민혁 임주희 장희정 정다의 정석원 정지원 정한별 조경미 조 셉 조영훈 조준영 조진호 지주연 진유찬 채미지 최남식 최민지 최인규 한 채정 함윤지 홍채연 [센터 자원봉사/단체] 교보 리스크관리팀/심사팀, 국민연금홍보팀, 국민은행명동, 군의군향 우회, 미국대사관, 삼성카드, 서부고용지청, 서울지방보훈청, 숙명여 대법대리더쉽봉사단, 숙명여대통역봉사단, 신한은행KBS, 신한은행해 피메신저, 양재미디어, 장훈고등학교, 제일영광교회청년부, 주한미군 교회, 토봉팀, 하나금융리스크팀/자워관리/홍보팀, 하나은행외화업무 부, 희한국음융정책공사, 희망터, PLUR, SK증권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자원봉사] 김의태 오하나 남경순 이정희 김성은 이소영 안송수 [금요영화 봉사/이미용 봉사] 정지영, 최인화 [진료 봉사] *개인: 공상원(한양대학교 ) 김정선 (약사), 김주리, 박준상 (경희대병 원), 유창수(약사 ), 이범주(은평병원 ), 정운진 (은평병원 ), 정 희진(상계백병원 ), 주소연 (숙대약대 ), 이경애(소망한의원 ), 어 수동(어수동피부과 ) *기관 및 단체: 숙명여대 약학과, 서울 여자간호대 화이트뮤즈, 경희대병원 재활의학과, 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을지병원 재활의학과 *민간의료기관: 누네안과병원, 백상치과의원, 조성만치과의원, 삼일교회의료선교부, 스마 일 영상의학과, 씨티안과, 어비뇨기과, 지앤아이내과의원,,초이스이비인 후과, 행복한 내과, 헵시바치과의원 *심리상담봉사: 강덕상(백석대학원),김낙법(후생명상센터),이용기(젠테라피내츄럴힐링센터) 단체봉사로 참여한 봉사자명은 생략했습니다. 필요한 단체의 경우 신청해 주시면 개인봉사자명 또한 함께 올리도록 하겠 습니다. 다시서는 우리들의 이야기 다시서기에서는 노숙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바닥까지 내려온 선생님들과 희망을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들을 해가고 있습니다. 하루 한끼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먹거리와 피곤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잠자리 와 사회적 활동을 준비할 수 있는 일거리 훈련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 둔 가정으 로 서둘러 갈 때, 거리 선생님들은 어디에서 식 사를 할 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밥 한 끼는 내일을 꿈 꿀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어디를 가든 노숙인이라는 손가락질이 따라오 는 현실에서 취업은 자존감의 상실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서로 이해하고 용기를 주며 만들어지는 일자리 공동 체는 실질적인 재기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운 좋게 일을 나가신 분이나, 일을 얻지 못해 하루 온종일 방황 했던 분이나, 가벼운 지갑을 아끼고 지친 몸 을 누이기 위해 센터로 방문 하십니다. 선생님들에게 따 뜻한 잠자리를 제공해 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일 다시 일을 꿈꿀 수 있도록... 노숙인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주세요 노숙인과 함께하는 가장 쉬운 방법 1. 노숙인들에게 수건, 비누, 칫솔, 라면, 쌀, 옷 등 필요한 물품을 후원해 주세요. 2.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으로 직접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다시서기 자원봉사 센터 http://club.cyworld.com/hivolunteer 3. CMS와 자동이체 후원으로 나눔에 동참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6-801-216446 대한성공회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이젠 네이버 해피빈과 싸이월드 사이좋은세상에서도 다시서기를 만나보세요. 해피빈(네이버)의 다시서기 http://happylog.naver.com.homeless 타운(싸이월드)의 다시서기 http://town.cyworld.com/homeless 다시서기센터와 함께하는 즐거운 생활 속 기부 문의 : 자원봉사, 후원담당 우대경 사회복지사 T. 02)777-5217 ngnojl@hanmail.net 나눔 은 작은 손길 에서 시작됩니다! ^^ 다시서기 후원자는 세법 규정에 따라 소득세 감면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함께 만드는 희망이야기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