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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박기열 (동국대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국문초록 디그나가가 말한 감관지의 인식대상으로서의 집합체(sañcita)는 외계 대상 과 인식대상이 다르다는 점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피사체에 비유 할 수 있다. 외계 사물는 감각기관을 포함한 제반 여건에 따라 한순간 일부분 만이 포착되어 인식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집합체는 감관지의 인 식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푸른색 그 자체 는 동일한 제반 조건을 가진 사람들 에게는 모두 푸른색 그 자체 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독자상이 가지는 보편적 성격을 필자는 디그나가가 다수의 극미로 이루어진 집합체는 보편 (sāmānya)이라는 형태로 인식영역(āyatana)에 투영되어 五 識 身 의 인식대 불교학리뷰 (Critical Review for Buddhist Studies) 15권 (2014. 6) 261p~296p

262 불교학리뷰 vol.15 상이 된다고 말한 것과 결부시켜 이해하고자 한다. 본고는 집합체, 그것의 보편 그리고 인식영역 내의 독자상이라는 감관지의 인식대상과 관련된 중심 술어들을 디그나가의 프라마나사무차야와 그 자주, 지넨드라붓디의 프라나마사뮤차야티카 그리고 다르마키르티의 프라마나와르 티카의 해당 원문들을 비교 검토하고 각 술어들의 관계성을 규명한다. 한편 필자는 다르마키르티가 집합체들은 지식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의 지식 이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이 지식은 감관지의 인식결과로서의 지식과 지식의 2상성에서의 대상적 측면의 지식, 즉 독자상 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개념적으로 집합체는 인식영역 외 부에, 그리고 독자상은 그것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상호 인과관계에 놓이게 된 다. 여기서 집합체의 보편은 인식대상이 인식영역의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가 는 과정에서의 구체적 형상으로 집합체와 독자상을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디그나가는 푸른색 그 자체 와 같이 하나의 집합체가 인식대상이 될 경우에 관해서 서술한다. 이에 반해서 다르마키르티는 푸른색 그 자체 와 노 란색 그 자체 와 같은 다수의 집합체들이 동시에 하나의 지식을 일으키는 원 인들이 된다고 한다. 즉 그는 디그나가의 집합체론을 하나의 인식영역에서 일 어날 수 있는 집합체들의 복합적 관계를 부분과 전체라는 관점에서 보다 미시 적으로 고찰하였다고 할 것이다. 주제어: 극미의 집합체, 보편, 독자상, 감관지, 인식대상, 디그나가, 지넨드 라붓디,다르마키르티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63 Ⅰ. 서론 불교인식론은 한 인간이 어떤 대상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작용에 관 한 것이다. 따라서 인식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인식능력에 의지한다. 즉 인식대상 역시 감각기관(indriya)과 意 (manas)에 의해서 지각될 수 있는 것들에 한정된다. 한편 연구 범주는 크게 인식대상, 인 식주체(인식수단), 인식결과라는 세 가지 측면 1) 으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인식대상 2) 중에서 직접지각(pratyakṣa)의 인식대상(prameya) 인 독자상(svalakṣaṇa) 3) 중에서 감관지의 인식대상에 관한 고찰이다. 구체적 1) 아비달마의 입장에서 보면 인식작용은 觸, 즉 根, 境, 識 의 三 事 和 合 이 시발점으로 인식론적 연구 범주는 근은 인식수단, 경은 인식대상, 식은 인식[결과]로 볼 수 있다. 한편 필자는 디그 나가의 자기인식론은 아비달마의 촉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디그나가의 PS의 자기인식 에 관한 서술은 다음과 같다. yadā ābhāsaṃ prameyaṃ tat pramāṇa-phalate punaḥ/ grāhaka-ākāra-saṃvittyos trayaṃ na ataḥ pṛthak kṛtam// 현현하는 것(ābhāsa)이 바른 인 식대상(prameya)일 경우, 그것은 또한 바른 인식수단(pramāṇa)과 결과(그것에 의해서 초래 된 것, phala)이다. [인식수단이란] 인식주체이고 [인식결과란] 형상에 대한 [자기]인식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k. 10. PSV p. 4.17-18. 박기열, 불교인식론 의 의지각 과 자기인식 을 위한 구사론의 수(vedanā)에 관한 고찰, 인도철학 제40집, (서 울: 인도철학회, 2014) pp. 80-84 참조. 2) 인식작용은 직접지각, 간접지각, 의사지각( 擬 似 知 覚 ) 등이 있다. 또한 다르마키르티는 직접 지각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감관지, 의지각, 자기인식, 요가행자의 직관을 말한다. 따라서 인 식작용에 구별을 두는 이상, 그 인식작용에만 해당하는 각각의 인식대상이 상정되어야만 이 치에 맞다. 불교인식론에서는 우선 이들 인식대상은 일반적으로 감관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 과 의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으로 분류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인식대상이란 찰나 단위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각기관에 의해서 파악되는 지식의 대상은 직후의 찰나에서는 의 에 의해서 파악되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편 인식대상은 디그나가의 지식의 二 相 性 을 기반으로 하며 인식작용에 있어 인식주체(grāhakākāra)와 인식객체(grāhyākāra)의 상관 성을 근거로 성립한다. 이것은 불교인식론에 있어 자기인식설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船 山 徹, 認 識 論 ー 知 覚 の 理 論 とその 展 開, 認 識 論 と 論 理 学 シリーズ 大 乗 仏 教 第 九 巻, 桂 紹 隆 外 編 者, 第 3 章 ( 東 京 : 春 秋 社, 2012), pp. 107-108 참조. 3) 自 相, 개별상이라고도 하며 직접지각의 대상으로 당연히 직접지각의 정의에 위배되지 않아

264 불교학리뷰 vol.15 으로는 디그나가(ca. 480-540)의 PSV에서 오식신( 五 識 身 )은 집합체 4) (sañcita)를 인식대상으로 한다는 취지의 서술 중의 집합체 라는 용어를 PSV를 기본으로 지넨드라붓디(ca. 725-785)의 PSṬ와 다르마키르티(ca. 600-660)의 PV의 해당 부분을 검토하고자 한다. 원문 검토는 PSV에서의 디그나가의 견해가 PSṬ에서 어떻게 해설하는가 야 한다. 따라서 독자상은 분별과 결합되지 않은 무분별지의 대상이다. 무분별이란 언어와 종류가 결합되지 않은 지각으로 비유적으로 푸른색 그 자체 와 같이 말해진다. 또한 독자상 의 진위 판단 척도는 그것이 하나인가 다수로 구성된 복합물인가가 아니라 언어와 종류와 같은 사회적 약속과의 결합 여부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보면 가츠라의 디그나가의 독자상과 일반상이 아바달마의 그것들과 다르다는 분석 - 아비달마의 독자상이 디그나가에게 있어서는 일반상이 된다 - 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桂 紹 隆, ディグナーガの 認 識 論 と 論 理 学, 認 識 論 と 論 理 学, 講 座 大 乗 仏 教 9, 平 川 彰 外 編 集, ( 東 京 : 春 秋 社, 1984), pp. 106-108 참조. 4) sañcita: saṃ- ci-1의 사전적 의미로는 축적된 것, 집합된 것 의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다수의 극미로 이루어진] 聚 集 또는 積 集 이라고 쓴다. 그러나 적어도 디그나가와 다르마 키르티에서는 sañcita 는 외계실재의 최소 단위인 극미들이 축적되거나 쌓이는 형태라기 보 다는 서로 근접한 상태를 말한다. 본고에서는 sañcita를 집합체 라고 부르기로 한다. 비록 집합체 의 체 라는 말이 물질적 기체의 어감을 가지지만 집합된 것 이라는 일종의 고유 용 어로 집합체라고 지칭하는 것이 논리 전개에 있어 명확성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한편 다수 의 극미가 모인 집합체( 和 集 또는 和 合 )에 관한 유부, 경량부 그리고 구사론의 바수반두의 입장 등에 관해서는 加 藤 純 章, 経 量 部 の 研 究, ( 東 京 : 春 秋 社, 1989), pp. 173-183., 디그 나가의 집합체의 사상적 배경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那 須 円 照, ヴァスバンドゥの 外 界 非 実 在 論, 仏 教 学 研 究 第 55 号, ( 京 都 : 龍 谷 仏 教 学 会, 1999) pp.1-21(l). ; 박창환, 法 稱 (Dharmakīrti)의 감각지각(indriyapratyakṣa)론은 과연 經 量 部 적인가?- 上 座 슈리라타(Ṡrīlāta) 의 감각지각 불신론과 이에 대한 世 親 의 절충론을 통해 본 경량부 前 5 識 說 의 전개 과정, 인도철학 제27집, (서울: 인도철학회, 2009), pp. 5-51. ; 吉 田 哲, ディグナーガの 感 官 知 説 とアビダルマの 伝 統, 佛 教 學 研 究 第 69 号, ( 京 都 : 龍 谷 仏 教 学 会, 2013), pp. 169-207 등이 있다. 또한 디그나가와 다르마키르티의 유식학파적 입장에서의 외계실재론 비판에 관해 서는 久 間 泰 賢, 後 期 瑜 伽 行 派 の 思 想 - 唯 識 思 想 と 外 界 実 在 論 との 関 わり, 認 識 論 と 論 理 学 シリーズ 大 乗 仏 教 第 七 巻, 桂 紹 隆 外 編 者, 第 3 章, ( 東 京 : 春 秋 社, 2012), pp. 221-253이 있다. 한편 본고와 동일한 주제의 주목할 만한 선행연구로서는 Junjie Chu, On Dignāga s theory of the object of congnition as presented in PS(V)1, JIABS, Vol. 29-2, 2006, pp. 211-253이 있다.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65 에 주안점을 두기로 한다. 한편 지넨드라붓디에 있어 다르마키르티와 그의 주 석자들의 사상적 영향에 관한 본격적인 고찰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따라서 본고는 논사들의 시대 순에 따르지 않고 PSV, PSṬ, PV의 순서로 전 개할 것이다. 본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극히 일반적 의미에서 인식대상과 관련하여 일 어날 수 있는 문제를 다음 세 가지로 분류하여 그것들을 염두에 두고 집합체 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5). 첫째, 인식대상의 존재에 관한 문제: 인식대상의 실체(dravya)/실재 (vastu), 무형상(anākāra)/유형상(sākāra)에 관한 논의. 둘째, 인식대상의 위치에 관한 문제: 공간적으로 외부 세계 또는 의식의 내면, 또한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논의. 셋째, 인식대상의 경험적 가치에 관한 문제: 바른 인식의 정의에 위배되지 않으며 타인에 의해서도 동일한 인식과정을 통해서 경험이 가능한가 에 관한 논의. 5) 실체란 외계에 존재하는 자성을 가진 기체로서의 사물을 의미한다. 불교인식론에서는 실재란 실체는 물론이고 자성이 없어도 인과 연에 의해서 외계에 존재하는 것도 지칭한다. 실재인가 비실재인가는 그것이 유효한 작용(arthakriyā)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의해서 판단된다. 한 편 불교 4대학파의 외계 실재와 형상론을 간단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설일체유부는 외계 의 실재를 인정하지만 형상은 비실재로 본다. 경량부는 외계 존재는 추리로만 알 수 있는 실 재하는 것으로 보며 형상도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유가행파는 외계 존재는 비실재로 보 지만 향후 유 무상유식학파로 나뉘면서 형상의 실재가 진실하다고 주장하는 학파와 형상은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학파로 나뉜다. 중관학파는 본질적으로 외계와 형상을 모두 인정하 지 않는다. 한편 본고는 가능한 한 위와 같은 형식적인 분류에 의한 학파적 선입견에 의존하 지 않고 논사들의 논리의 전개를 고찰함에 있어 위의 세 가지를 기준으로 면밀히 재검토할 것이다. 필자는 특히 형상이 존재하는 위치에 관해 주목할 것이다. 만일 형상이 실재하다고 했을 때 그것이 오로지 인식영역(āyatana)에만 있는 것이라면 동일한 독자상을 지각하는 모 든 사람들이 일정 부분의 동일한 인식결과의 값을 가지는 것은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 이다. 이 문제는 집합체와 독자상의 관계성을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266 불교학리뷰 vol.15 Ⅱ. 디그나가의 집합체(sañcita) 디그나가의 PSV에서 직접지각의 인식대상 6) 으로서 집합체가 서술되는 문 맥을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바른 인식수단에는 직접지각과 간접지각이 있다. 왜냐하면 바른 인식수단 의 인식대상이 두 종류만 있기 때문이다. 즉 직접지각은 독자상을, 그리고 간 접지각은 일반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7) 계속해서 그는 k. 3c에서 두 가지 6) 디그나가는 PSV에서 직접지각의 대상, 즉 독자상에 관해 독립적으로 고찰하지 않는다. 그러 나 그는 본 장에서 인용한 PS k. 4bc-5cd와 해당 자주에 보이는 구사론의 인용문으로 독자 상에 관한 설명을 대신한다. 이에 관해 가츠라는 인용된 아비달마의 설이 직접지각의 인식대 상으로 당시 잘 알려진 내용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桂 紹 隆, 앞의 책, p.10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지각의 인식대상은 대상이 속성(dharma)을 가진 기체(dharmin)인가, 아니면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허위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논 의는 디그나가 이후 지속되었다. 왜냐하면 독자상을 일으킨 원인으로서의 외계 사물은 직접 지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간접지각에 의해서 그것의 실재는 추리에 의해서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 이와 같은 도식적 이해에 대해 다르마키르티는 PV II k. 53d에서 승의적 입장에서는 오로지 독자상만이 인식대상이라고 한다. 즉 독자상을 자신의 인식과 타인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 측 면으로 분석하고 후자가 간접지각의 인식대상인 일반상에 해당한다. 나아가 지각판단 (adhayavasāya) 이라는 개념을 후자에 적용시킨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물을 바르 게 판단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 즉 대상의 정합성(avisaṃvāditva) 을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다르못타라(ca. 740-800)는 지각판단 의 인식대상을 간접적 판단대상(adhayavaseya) 이라고 해서 전통적 인식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직접적 판단대상(grāhya) 과 함께 제시한다. 한편 바른 인식의 대상은 실재하는 것으로 반드시 대상을 성취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하 는 데 이를 효과적 작용(arthakriyā) 이라고 한다. 즉 인식대상의 실재 여부는 인식작용에 있어 바른 인식[결과]에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과 외계 대상을 실질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따라서 간접지각과 개념지의 차이는 효과적 작용의 유무로 구별되며 개념지는 그것의 인식대상이 효과적 작용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인식 이다. 船 山 徹, 앞의 책, pp. 109-111. ; 박기열, 불교지식론에서 Arthakriyā 개념의 意 義,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pp. 23-29. 다르못타라의 판단대상(adhyavaseya) 과 관 련된 NB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dvividho hi viṣayaḥ pramāṇasya - grāhyaś ca yad ākāram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67 의 바른 인식 중에서 직접지각(pratyakṣa)은 분별을 배제한 것이다. 8) 라고 직접지각을 정의한다. 해당 자주(vṛtti)부터 k. 5ab까지 아비달마의 오식신과 그것의 인식대상을 근거로 상정될 수 있는 의문과 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직접지각의 정의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디그나가 자신의 견해가 피력되어 있 다. 집합체는 이와 같이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인식대상이 직접지각의 정의 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논의하는 문맥 속에 놓여 있다. 우선 그가 상정한 반론 자의 의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아비달마에서는 또한 눈에 의한 지각을 [온전하게] 갖춘 자는 푸른색 그 자체 utpadyate, prāpaṇīyaś ca yam adhyavasyati/ anyo hi grāhyo nyaś ca adhyavaseyaḥ/ pratyakṣasya hi kṣaṇa eko grāhyaḥ/ adhyavaseyas tu pratyakṣa-bala-utpannena niścayena saṃtāna eva/ saṃtāna eva ca pratyakṣasya prāpaṇīyaḥ/ kṣaṇasya prāpayitum aśakyatvāt/ thatā numānam api svapratibhāse narthe rtha-adhyavasāyena pravṛtter anartha-grāhi/ sa punar āropito rtho gṛhyamāṇaḥ svalakṣaṇatvena avasīyate yataḥ, tataḥ svalakṣaṇam avasitaṃ pravṛtti-viṣayo numānasya/ anarthas tu grāhyaḥ/ tad atra pramāṇasya grāhyaṃ viṣayaṃ darśayatā pratyakṣasya svalakṣaṇaṃ viṣaya uktaḥ/ 한편 바른 지식의 대상은 두 가지가 [있다]. 즉 [첫 번째는 직접지각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으로 [그것은] 형상으로 일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간접지각에 의해서] 도달되는 것으로 [그것은 개개의 대상을 지식으로] 결정짓는 것이다. 실로 [직접지각의 인식대상인] 파악되는 것과 [간접지각의 인식 대상인] 판단대상(adhyavaseya)은 각각 별개의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직접지각에 있 어 파악되는 것은 한 찰나[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판단대상은 직접지각에 의해서 생 성되는 [지식의] 확정(niścaya)에 의한 찰나의 상속일 뿐이다. 또한 직접지각이 도달되는 것 은 찰나의 상속뿐이다. 왜냐하면 한 찰나는 [지식의 확정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 문이다. 그와 같이 간접지각도 스스로 현현하는 비실재를 실재하는 것으로 대상을 판단하는 [인식]활동을 가진 것이기에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만들어진 실 재인 파악되는 것 은 독자상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판단된 독자상은 간접지각의 활동 대상 이다. 그러나 파악되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위의 문맥에서 [다르마키르티가] 직접지 각은 독자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라는 말은 바른 지식에 의해서 파악되는 인식대상을 나타 낸다. NBṬ pp.71.1-72.3. 8) pratyakṣaṃ kalpanā-apoḍhaṃ/ k.3c. PS p. 7.

268 불교학리뷰 vol.15 를 지각(nīlaṃ vijñāna)하지만 푸른색이다 라고 지각(nīlaṃ iti vijñāna)하지는 않는다. [그는] 대상에 관해서 대상 그 자체를 지각하는 것(artha- saṃjñin)이지 [그것의] 속성을 지각하는 것(dharma-saṃjñin)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직접지각이 분별을 배제한 것일 경우에] [오식신이] 그것(극미의 집합체)을 하나 의 [개념을 가진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9) 어떻게 [아비달마 문헌에서는] 오 식신( 五 識 身 )이 [그] 집합체(sañcita)를 그것의 인식대상(ālambana)으로 한다 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떻게] 그것(오식신)들은 각각의 고유의 인식영역 (āyatana)에서 독자(svalakṣaṇam)[상]을 인식대상으로 하고 실재하는 것 (dravya)의 독자[상을 인식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0) 밑줄 친 부분은 PSV에서 집합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는 곳이다. 반론자 는 아비달마 논서의 인용을 근거로 집합체에 관해 의문을 제시한다. 반론자의 이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반론자는 직접지각이 분별을 배제한 것이라는 정의에 있어 직접지각 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다섯 감각기관에 의해서 일어나는 지각인 오식신 에 관한 설명을 아비달마에서 인용한다. 인용 내용은 오식신의 인식대상이 다 수의 극미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을 근거로 반론 9) na ca eka indriya-paramāṇur viṣaya-paramāṇur vā vijñānaṃ janayati /sañcita-āśrayaālambanatvāt pañcānāṃ vijñāna-kāyānām / ata eva anidarśanaḥ paramāṇur adṛśyatvāt // 그러나 하나의 감각기관의 극미가 또는 [하나의] 인식대상의 극미가 인식을 일으키는 것은 없다. 오식신은 [다수의 극미의] 집합체에 의지한 [것]을 인식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 기 때문이야말로 극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별의 극미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AKBh p. 34.1-2. 10) abhidharme 'py uktam cakṣur-vijñāna-samaṅgī nīlaṃ vijānāti no tu nīlam iti, arthe 'rtha-saṃjñī na tu dharma-saṃjñī iti. kathaṃ tarhi sañcita-ālambanāḥ pañca vijñāna-kāyāḥ, yadi tad ekato na vikalpayanti. yac ca āyatana-svalakṣaṇaṃ praty ete svalakṣaṇa- viṣayā na dravya-svalakṣaṇam iti. PSV p. 2.20-23.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69 자는 첫째, 집합체이기 때문에 개념이 배제된 직접지각의 인식대상이 될 수 없다. 둘째, 집합체는 감각기관의 고유의 인식영역(āyatana)에 있는 것이 아 니라 외부 세계의 실체에 귀속되는 속성이라는 견해를 반의적으로 피력한 다 11). 디그나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앞에서 인용된 아비달바 논서에서 [오식신은] 다수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나기 에 스스로의 대상에 있어 보편(sāmānya) 12) 이 인식대상이 된다. [오식신은] 다수 11) 반론자 질문의 취지는 아비달마의 인용에 따르면 집합체는 개념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직접 지각의 정의에 위배된다는 말이다. 12) 핫토리는 The whole 로, 도사키는 共 相 으로 번역한다. 그는 [극미들이 개별적] 차별이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전체 로 번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그는 이 구절 이후 디그나 가의 답론의 후반에 나오는 sarvathā 를 all its aspects 라고 해서 the whole'과의 혼동 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핫토리의 이 두 가지의 술어들에 대한 번역은 의미의 함축성 (connotation)에 있어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sāmānya 를 전체 라고 할 경우 본 고에서 다루는 다르마키르티의 PV의 해당 부분 중에서 집합체란 [극미가 모인] 전체 (samudāya)이고 그것은 보편(sāmānya)이다 라고 할 때의 전체(samudāya) 라는 술어와 의 개념의 차이가 불분명하게 된다. 한편 도사키와 같이 sāmānya 를 공통하는 상 또는 共 相 등으로 번역할 경우 간접지각의 인식대상인 일반상(sāmānya-lakṣaṇa) 과 혼동된 다.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마키르티의 지각판단(adhayavasāya) 과 다르못타라의 간접적 판단대상(adhayavaseya) 의 개념을 도입하면 도사키의 공상 이라는 번역도 옳지 않은 것 은 아니지만 디그나가의 단계에서는 이러한 개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상의 이유와 함께 본고는 독자상이 동일한 제반 조건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지각되는 부분을 가 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sāmānya 를 보편 이라는 말로 번역한다. 예를 들어 푸른색 그 자체 는 똑같은 조건하에서 두 사람이 바라볼 경우, 그것은 동일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이것 은 언어와 같은 사회적 약속이 결합되기 이전의 인식현상으로 그것이 바른 인식으로서의 직 접지각이라면 그들은 해당 인식대상인 집합체를 모두 노란 색 그 자체 가 아닌 푸른 색 그 자체 를 인식해야만 한다. 따라서 집합체에 있어 sāmānya 를 전체 보다 보편 으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간접지각(anumāna)의 인식대상인 일반상(sāmānyalakṣaṇa)은 푸른 색 그 자체 의 지각에 개념적 작용, 즉 기억에 의한 언어와 종류에 관한 분류가 개입되어버린 보편 을 특성으로 가진 것이라는 점에서 집합체의 보편과는 분명한 차 이가 있다. M. Hattori, On Perception, being the Pratyakṣapariccheda of Dignāga s

270 불교학리뷰 vol.15 의 실체(극미)들로부터 일어나기에 그것은 자신의 인식영역에서 보편을 인식대 상으로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적 부분(bhinna)들(다수)에 관해서 구별이 없는 [하나의 보편으로 지각하는] 분별[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우리 는 13)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다수의 형태(rūpa)의 [속성을 가진 기체로서의] 사 물(dharmin)은 감각기관에 의해서 전체(sarvathā)로서 인식될 수는 없다.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되는 인식대상인 [외계 대상의] 형태(rūpa)가 스스로 인식되는 것은 실로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섯 감각기관으로부터 발생하는 직접지각은 분별이 없는 지식이다. 14) 반론자의 견해에 대한 디그나가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견에 대해서는 다수의 개념이 모인 집합체는 오식신의 인식대상 이지만 그 집합체는 보편(sāmānya)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두 번째에 대해 서는 집합체의 보편은 인식영역에서 인식대상이 되지만, 외계 사물 자체에 속 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집합체의 보편이라는 말은 극미 하나하나의 개별적 인 것들을 전체로 파악한다는 의미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k. 4cd 자주에서 Pramāṇasamuccaya from the Sanskrit fragments and the Tibetan version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8), p.26 ; 戸 崎 宏 正, 仏 教 認 識 論 の 研 究 上, ( 東 京 : 大 東 出 版 社, 1979) p. 294 참조. 13) M. Hattori, 앞의 책, p. 91, n. 42. 14) tatra aneka-artha-janyatvāt svārthe sāmānya-gocaram//k.4cd anekadravyā-utpādyatvāt tat sva-ayatane sāmānya-viṣayam uktam, na tu bhinneṣv abheda-kalpanāt. āhuś ca dharmiṇo 'neka-rūpasya na indriyāt sarvathā gatiḥ/k.5ab. svasaṃvedyam hy anirdeśyaṃ rūpam indriya-gocaraḥ//k.5cd. evaṃ tāvat pañca-indriya-jaṃ pratyakṣa-jñānaṃ nirvikalpam. PSV pp. 2.24-3.4. 有 法 非 一 相 根 非 一 切 行, 唯 內 證 離 言 是 色 根 境 界. 다수의 속성을 가진 기체(dharmnin)가 감각기관에 의해 전면적으로 인식되는 일은 없다. 단지 그것 자신으로서 인식되어질 뿐이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색 (따위)가 감각기관의 대상이다. NM k.16. 桂 紹 隆, 因 明 正 理 門 論 研 究 [ 五 ], 広 島 大 学 文 学 部 紀 要 第 42 巻, ( 広 島 : 広 島 大 学 文 学 部, 1982), p. 85.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71 오식신은 자신의 인식영역에서 보편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15) 라고 한다. 여기서 개별적인 부분 이란 집합체를 구성하는 개개의 극미들을 말 한다. 16) 다수의 극미가 모여 집합체를 형성할 때 하나의 보편성을 가지는 의미이다. 따라서 디그나가는 다수의 형태를 가진 기체(dharmin)의 전체 (sarvathā)가 감각기관에 의해서 지각될 수 없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하나의 집합체는 전체로서의 사물 그 자체 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선 어떤 사물의 가려진 측면 등은 눈 에 의해서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물은 다른 감각기관에 의해 서만 알 수 있는 것은 눈에 의해서는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두 번째는 다수의 집합체들은 각각에 감각기관에 상응하는 것만 지각될 수 있다는 의미 이다. 17) 이상과 같이 문맥에 보이는 주요 용어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5) anekadravyā-utpādyatvāt tat sva-ayatane sāmānya-viṣayam uktam PSV pp. 2.25. 필 자는 집합체는 직접적으로 인식영역에서 인식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의 형태로 오식 신의 인식대상이 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16) 다르마키르티의 부분 은 각각의 오식신이 인식대상으로 하는 다수 집합체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보편으로 인식영역에서 동시에 인식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다양한 색상으로 이루어 져 있는 그림을 지각할 때 다수의 각각의 색상이 부분 에 해당한다. 17) 직접지각은 공유하지 않는 원인을 가진 것이라는 디그나가의 감관지의 명칭에 관한 설명과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부합된다. asādhāraṇa-hetutvād akṣais tad vyapadiśyate/ k.4ab. na tu viṣayai rūpa-ādibhiḥ. tathā hi viṣayā manovijñāna-anya-santānika-vijñāna-sādhāraṇāḥ. asādhāraṇena ca vyapadeśo dṛṣṭo yathā bherī-śabdo yavāṅkura iti. tasmād upapannam etat pratyakṣaṃ kalpanā-apoḍham. 공유하지 않는 원인 때문에 감각기관에 이름 붙여진 다. 그러나 대상인 색 등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색 등의) 대상들은 意 에 의한 지각 과 타인의 [심] 상속에 의한 지각으로 공유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분명한 표현(vyapadeśa) 은 공유되지 않는 것에 의한다. 예를 들어 북소리, 보리의 싹이라는 [표현처럼]. 따라서 직 접지각은 개념이 배제된 것이라는 이것은 타당하다. PSV pp. 2.16-19.

272 불교학리뷰 vol.15 다수의 극미들=집합체, 집합체=보편, 보편=오식신의 인식영역 내의 인 식대상 집합체=오식신의 인식영역 내의 인식대상 이와 같이 디그나가의 집합체와 관련하여 논란의 핵심이 되는 것 중의 하나 가 [집합체의] 보편(sāmānya) 이라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극미의 집합체의 보편은 반론자의 이견에 대한 디그나가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분별지 (kalpanā) 또는 간접지각의 인식대상인 일반상(sāmānya-lakṣaṇa) 등과의 구별에 있어 혼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그나가의 집합체의 보 편에 관한 지넨드라붓디와 다르마키르티의 견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Ⅲ. 지넨드라붓디의 집합체와 그것의 보편(sāmānya) 1. 지넨드라붓디의 집합체 먼저 집합체에 관한 앞의 PS와 자주에 해당하는 지넨드라붓디의 PSṬ의 주 석을 반론과 답변 부분을 나누어서 원문을 검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운운에 대해서. [반론] 오식신은 집합체를 인식대상으로 한 다. 라는 것, 이것은 정설인데 그것이 어떻게 적절한가? 만일 그것을 하나의 [분 별을 가진 것]으로(ekatas), 인식대상의 동일성에 의해서 분별할 수 없다면 [이라는 가정이다.] [또한 반론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집합체(sañcita)라는 말에 의해서 전체(samudāya)가 말해진다. 명사적 의미(존재의 상태)를 가지는 접미사(niṣṭhā), -ta 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sañciti, sañcita, sañcaya,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73 samudāya 라는 말들은 [모두] 동의어(paryāya)이다. 그리고 그 sañcaya 는 하나의 극미만이 아니라 다수의 공통하는 속성(dharma)이다. 그 보편(sāmānya) 에 대해 만일 감관에 의한 지각이 작용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감관에 의한 지 각)은 분별을 가진 [지식]이 될 것이다. 실로 보편을 지각하는 것은 언제나 분별과 결합된다. 실로 보편은 정설[이 인정하는] 실재(vastu)의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감관에 의한 지각)이야말로 그것(보편)을 분별한다라고 [반론이 제 기]될 수 있다. 또한 운운이라고 말한다. [오식신의] 인식영역(āyatana)에서의 독자상(svalakṣaṇa) 이란 눈에 의한 지각에 의해서 파악되는 성질을 가진 것 따 위이고 [각각]에 대하여 그것들 이란 오식신이 독자상을 대상들로 하고 [외계] 실체(dravya)의 독자상 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푸른색 등의 구별들이 실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푸른색 등의 실체의 독자상을 인식대상으로 갖는다는 것을 부정하여 그것들(푸른색 등의 구별들)에 있어 구별이 없는 보편이 그것(감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별을 배제한다 는 [직접지각의 정의는] 모순이다. 어떻게 그 [아비달마의] 논서가 다른 방법으로 설명될 수가 있겠는가라는 취지이다. 18) 18) kathaṃ tarhi ityādi/ sañcita-ālambanāḥ pañca vijñāna-kāyā iti yo yaṃ siddhāntaḥ, sa kathaṃ yujyate, yadi tad ekata ekatvena ālambanaṃ na vikalpayanti/ evaṃ manyate sañcita-śabdena samudāya ucyate, bhāve niṣṭhā-vidhānāt/sañcitiḥ sañcitaṃ sañcaya samudāya iti paryāyāḥ/ sa ca sañcayo na ekasya eva paramānoḥ, api tu bahūnāṃ sādhāraṇo dharmaḥ/ tatra sāmānye yady akṣa-dhīḥ pravarteta, tada asāu vikalpikā syāt/ sāmānya-buddhir hi niyataṃ vikalpena anuba- [44.5] dhyate/ na hi sāmānyaṃ vastusat-siddhānta iṣyate/ tasmāt sa eva tad vikalpayati iti kṛtvā yac ca ityādi/ āyatana-svalakṣaṇaṃ cakṣur vijñāna-graḥyatva-ādi, tat praty ete svalakṣaṇa-viṣayāḥ pañca vijñāna-kāyāḥ, na drvya-sva-lakṣaṇam i- ti/ dravyaṃ nīla-ādi-bhedāḥ/ nīla-ādidravya-svalakṣaṇa-viṣayatva-pratiṣedhena sāmarthyāt teṣāṃ yat sāmānyam abhinnam sa viṣaya ity uktaṃ bhavati/ ataś ca kalpanā- [44.10] pā-aḍhatvaṃ virudhyate/ tat kathaṃ tac chāstram anyathā netuṃ śakyata iti bhavaḥ/ PSṬ pp. 43.16-44.10.

274 불교학리뷰 vol.15 PSṬ에서의 반론자에 따르면 첫째, 집합체(sañcita)라는 단어는 어원적으 로 명사형 접미사(-ta)에 의해서 존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명사이기 때문에 전 체(samudāya)를 말한다. 또한 집합체는 다수의 극미 뿐만 아니라 다수의 공통하는 속성(bahūnāṃ sādhāraṇo dharmaḥ) 을 의미한다. 따라서 집합체 는 속성(dharma)으로서 실물(dharmin)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집 합체는 어떤 실물, 즉 실체(dravya)에 보편 이라는 속성으로 존재하기 때문 에 감각기관에 의해서 그것을 파악하는 지식은 분별이다. 둘째, 푸른 색 등의 속성은 그것을 가진 실체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특징(독 자상)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의한 지각의 인식대상, 즉 눈의 인식영역에 있는 보편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지넨드라붓디의 반론의 첫 번째 이견에 대한 답변의 원문을 읽어보자. [답론] 이상의 두 가지 [반론에 관해서]도 [디그나가는] 거기에는 다수의 대 상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는 하나의 [답변으로] 논파한다. 거기에서 란 [아비달마] 논서에서[라는 의미]이고 다수의 대상으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다수의 극미로부터 일어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스스로의 여러 가지 因 들과 緣 들로부터 극미들은 일어나는 데 그것들은 상호간에 근접한 상태 에 도달할 때만 각각의 존재는 인식을 일으키는 능력들을 가진다. [따라서] 집합 체라는 말에 의해서 말해진다. 함께 생기한(sañ-jātaṃ) 집합체(cita)는 집합된 것 (caya)의 동의어로 이것에 속한 이라는 [의미에서] 집합체(sāñcitāḥ)[이다]. Vārttika (Pāṇ 2.2.24)에서 pra 로 시작하는 말의 동사 어근으로부터 나온 말 (파생어)은 [접두사와 결합하여 Prādi] 소유복합어(bahuvrīhi)를 [만들]고 [접두 사] 이후의 말은 탈락한다. 예를 들면 praparṇa [는 prapatita parṇa, 떨어져 버린 나뭇잎을 가진 에서 patita 가 탈락하고 pra 와 parṇa 가 결합한 것]과 같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75 다. 혹은 여기서(sañcita의) 접미사 kta (Pāṇ 3.3.114)는 존재의 중성적 행위 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실로 행위의 대 상 [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극미)들의 집합체들은 서로서 로 접근하여 여러가지 연에 의해서 결합을 한 것들이다. 그와 같은 그 다수의 형 태들에 의해서 스스로 현현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집합체를 인식대상으로 한 다. 라고 [아비달마 문헌에서] 말했다. 일체의 그것(극미)들을 집합체로 이름 붙 인 특수한 것으로서의 [인식대상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오로지 하나만의 실체 [로서의 인식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 지넨드라붓디에 따르면 먼저 집합체는 속성(dharma)과 기체(dharmin)의 관계에서의 속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즉 집합체란 극미들이 서로 근접한 상태로 모인 것으로 인해 인식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한편 sañcita 라는 말은 원래는 saṃ-jātaṃ-cita, 함께 일어난 집합 으로 집합된 것, 즉 집합에 속하는 것 을 의미한다. 이것은 문법 규칙(Pāṇ 2.2.24)에 의 하여 jātaṃ 이 생략되어 축약된 말이다. 이것은 존재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 이 아니며 인식행위의 대상을 의미하는 말로서 여러 가지 형태로 스스로 현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합체(sañcita)는 소유복합어(bahuvrīhi)로 다수의 극 미가 상호 간에 접근하여 여러 가지 원인과 연에 의해서 결합하여 인식을 일 19) [44.11] tasya-ubhayasya apy eka-parihāram āha tatra aneka-artha-janyatvād ityādi/ tatra iti śāstre, aneka-artha-janyatvād ity aneka-paramāṇu-janyatvād ity arthaḥ, svahetu-pratyayebhyo ye paramāṇavo jāyante, te nyonya-sannidhāna-avasthā-prāptā eva santaḥ pratyekaṃ vijñāna-upajanana-samarthāḥ sañcita-śabdena-uktāḥ/ sañjātaṃ citaṃ caya-paryāyam eṣām iti sāñcitāḥ/ pra-ādibhyo dhātu-jasya vā iti bahuvrīhir uttara-padalopaś ca, praparṇa iti yathā/ na eva vā atra kta-pratyayo bhāve vihitaḥ, kiṃ tarhi karmaṇy eva/ paraspara-upasarpaṇa-pratyayair hi te sāñcitāḥ saṃhatīkṛtāḥ/ tais tathā vidhair anekaiḥ sva-pratibhāsā janyanta iti sañcita-ālambanā ity uktāḥ, sarvāṃs tā- [45.5] n sāñcita-ākhyāna-viśeṣeṇa-ālambante, na ekam eva dravyam iti kṛtvā// PSṬ pp.44.11-45.5.

276 불교학리뷰 vol.15 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현현하는 특수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지넨드라붓디의 집합체의 보편 반론자의 두 번째 이견, 즉 집합체가 외계 사물에 존재하는가 인식영역 (āyatana)에 존재하는가에 관한 디그나가의 답변에 대한 지넨드라붓디의 주 석이다. 또한 그것들은 [각각의] 인식대상의 독자상에 있어서 등과 같이 말해진 것은 여기서도 [역시] 그것들과 같이 극미들이 결합하는 것에 의해서만 눈 등에 의한 지각이 일어난다고 말해진다. [즉] 오로지 하나의 [극미]만에 의해서 [눈 등에 의 한 지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수의 대상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 문에 스스로의 대상에 있어 보편을 가진 것을 [인식] 대상으로 한다. 고 말했다. 이것(sāmānya-gocaram의 복합어)은 보편을 인식대상으로 가지는 것 이라고 [소유복합어, bahuvrīhi로] 분석된다. [반론] 그러나 보편적인 것은 차별이 없는 것으로 분별이 아닌가? 또한 감관에 의한 지식(indriya-jñāna)의 인식대상은 극 미라고 불리워지는 다수의 실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보편적인 것 을 [감관지의] 인식대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답론] 이것은 과실이 아 니다. 집합체 라는 말과 인식영역의 독자상이라는 말에 의해서 그것은 다수의 극미로 [이루어진] 실재(vastu)를 말했다. 실로 그것은 각각 제한된 지각을 일으 키는 능력이 있기에 동류성(sādharmya)에 의해 서로(집합체라는 말과 인식대상 의 독자상이라는 말)가 동일한 것(samāna)으로 간주된다. 보편 은 동일한 것 (samāna)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래의 의미에서 2차 파생 접미사 (taddhita), -ya 가 접미되었기 때문이다. 네 가지 계급(catur-varṇya) [이 catur-varṇa 에서 파생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디그나가에 의해서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77 다음과 같이] 말해졌다. [즉] 집합체를 인식대상으로 하고 [각각의] 인식영역에 서 독자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것들[을 지각하는 데] 있어 차 별이 없는 것이 분별에 의해 [일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보편을 인식대 상으로 한다라고 말해졌다 라는 이것(문구)과 결부되어 [이해된다]. 그러나 개별 적인 것들[을 지각하는 데] 있어 차별이 없는 [보편]이 분별에 의해서 집합체를 인식대상으로 하고 인식영역에서 독자상을 인식대상으로 한다라고 말했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체(dravya)의 독자상이 아니다 라는 이 [복합어]에 의해서도 하나의 극미인 실체에 한정되는 것을 부정하는 가르침이 행해진 것으로 이해해야 만 한다. 보편(sāmānya)을 인식대상으로서 속성을 가진 것(viṣayatva)[이라는 의 미]에 동의한다는 것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과실이 아니다. 20) PS k. 4cd와 자주 그리고 k. 5ab의 보편에 관한 지넨드라붓디의 견해는 다음 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눈에 의한 지각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극미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 20) [45.6] yac ca uktam āyatana-sva-lakṣaṇaṃ praty eta ityādi, atra api tair eva yathā uktaiḥ paramāṇubhiḥ sahitena eva cakṣur-ādi-vijñānaṃ janyate, na svakena eva/ tasmād aneka-artha-janyatvāt sva-arthe sāmānya-gocaram ity uktam/ sāmānyaṃ gocaro sya iti vigrahaḥ/ nanu ca sāmānyam abhinna-kalpitam indriya-jñānasya ca [45.10] viṣayaḥ paramāṇv-ākhyam anekaṃ vastu/ tat kathaṃ sāmānya-gocaratvam upapadyate/ na eṣa doṣaḥ/ yat tat sañcita-śabdena ayatana-svalakṣaṇa-śabdena ca uktam aneka paramāṇu-vastu tad eva prati-niyata-vijñāna-janana-sāmarthyena sādharmyeṇa parasparaapekṣayā samānam/ samānam eva sāmānyam sva-arthe taddhita-vidhānāc cātur-varṇyavat/ tad etad uktaṃ bhavati sancita-gocaram āyatana-sva-lakṣaṇa-gocaraṃ ca uktam iti/ na tu bhinne- [45.15]ṣv abheda-kalpanād iti sāmānya-viṣayam uktam ity anena sambandhaḥ/ na tu bhinne- [46.1]ṣv abheda-kalpanayā sañcita-viṣayam āyatana-svalakṣaṇa-viṣayaṃ ca uktam ity arthaḥ/ na dravya-svalakṣaṇam ity anena apy eka-paramāṇu-dravyaniyama-nirākaraṇaṃ śastraṃ kṛtaṃ drṣṭavyam na sāmarthya-ākṣiptaṃ sāmānya-viṣayatvam ity aviruddham// PSṬ pp.45.6-46.3.

278 불교학리뷰 vol.15 의 인식대상을 보편이라고 한다. PS k. 4cd의 sāmānya-gocaram 은 소유 복합어(bahuvrīhi)로 보편을 인식대상으로 가진다 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 와 같이 다수의 극미의 집합체인 보편은 실체(dravya)가 아니고 실재(vastu) 이다. 보편(sāmānya)이란 동일하다(samāna) 는 말에서 파생되었다. 집합 체와 독자상이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보편(sāmānya)이라고 한 것이다. 집합 체 를 인식대상으로 하고 [각각의] 인식영역의 독자상 을 인식대상으로 한 다. 21) 라고 한 것은 바로 집합체와 독자상이 같다는 의미에서 보편이라고 한 것이다. 따라서 극미 개개에 대한 차별이 없는 보편이 외계에 실재하여 그것 이 인식영역에서 독자상이라는 인식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22) 이상 디그나가의 PS와 자주 그리고 지넨드라붓디의 PSṬ에서 보편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았다. 비록 지넨드라붓디는 다르마키르티보다 약 100년 후에 산타락시타(ca. 725-788)와 동시대에 활동한 논사이지만 본고의 주제에 관 한 디그나가의 견해와 특별히 다른 새로운 개념의 도입은 보이지 않는다. 그 러나 집합체 와 그것의 보편 을 어원적, 문법적 분석을 통해 집합체와 독자 상이 동일한 것임을 증명하여 보편이라는 용어가 집합체와 독자상을 연계시 켜주는 위치에 있는 개념임을 보여준다. 집합체 [집합체의] 보편 감관지의 독자상 끝으로 두 논사의 집합체는 앞에서 인용한 PSV의 해당 부분을 기초로 다 음과 같이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극미(P), 집합체(S), 실체(D) 23) 일 때 S=P1+P2+ +Pn이다. 21) sancita-gocaram āyatana-sva-lakṣaṇa-gocaraṃ PSṬ p.45.14. 22) M. Hattori, 앞의 책, p. 89, n.40 참조. 23)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실체, 즉 인식대상으로서의 실재를 의미하며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그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79 눈에 의한 지각을 일으키는 집합체(S1) 신체에 의한 지각을 일으키는 집합체(S5)일 때 D=S1+S2+S3+S4+S5이다. 오식신의 각각의 인식영역에 존재하는 인식대상을 X, 눈에 의한 지각의 인식대상(X1) 신체에 의한 지각의 인식대상(X5)일 때 X1=S1, X2=S2 X5=S5 각각의 X1,..., X5는 < D이다. *D: Dravya, P: Paramāṇu, S: Sañcita. Ⅳ. 다르마키르티의 집합체의 보편 다르마키르티는 본고의 주제에 관련하여 PVⅡ의 k. 194-196에서 논의를 한다 24). 것의 본성 등에 관한 논의는 본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24) 다르마키르티는 PV에서 직접지각의 대상에 관해 논하기 전에 k. 197-230에서 감관지의 인 식대상인 집합체와 그것의 보편을 둘러싼 타학파의 여러 이견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답론을 서술한다. 본고에서 다루는 k. 194-196 이후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k. 197-207: 동일한 인식 영역에서 다수의 형상은 하나의 知 에 의하여 파악된다. k. 208-222: 하나의 지식이 다수의 형상을 가진다. 223-224: 극미의 집합체는 인식대상이다. 왜냐하면 집합체는 감관 지를 일으키는 원인이고 지식에 형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25-230: 유분( 有 分 avayavin, 예: 소)과 부분(avayava, 예: 뿔), 한정자(viśeṣana)와 소한정자( 所 限 定 者, viśeṣya)의 관계 를 논파한다. k. 208-222는 다양즉불이( 多 樣 卽 不 二, citrādvaita)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기열, 앞의 논문, pp. 11-14 참조. 한편 이 부분에서 다르마키르티는 자신의 견해를 반증 하기 위한 다양한 비유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k. 197-199: 참깨(tila)의 비유: 참깨 한 알 한 알은 비록 공간적으로 떨어진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동시에 인식대상이 된다. 또한 그것들이 쏟아져 내리는 형상은 신속하게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실제로 동시에 파악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k.200-204: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나비(citra-pataṃga)에 대해 색깔 하나 하나가 다른 집합체, 다른 보편들로 인식대상이 되지만 그것들은 나비의 형상이라는 지각을

280 불교학리뷰 vol.15 [이견] 집합체란 [극미가 모인] 전체(samudāya)이고 그것은 보편(sāmānya)이 다. 그리고 (정설에 의하면) 그것(보편)에 대해서 감관지가 있다[라고 말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보편에 관한 지각은 반드시 분별과 결합되어 있다. k. 194. 25) [답론] 다른 대상(극미)과 결합하는 것으로부터 또 다른 것[극미]에 극미들이 일어난다. 그것들이 집합체들이다. 실로 그것들이 지식을 일으키는 원인들이다. k. 195. 26) [답론] 또한 극미들에 있어서 그 특수성(지각을 일으키는 능력)은 다른 [극미] 가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지각)은 하나 [의 극미]로 한정되지 않는 것이기에 지식은 보편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라고 말했다. k. 196. 27) PV에서도 아비달마 논서를 인용한 반론자의 이견(k. 194)은 내용상 디그 나가의 것과 특별한 차이점은 없다. 위의 k.194의 게송을 PSV와 비교했을 때 한 가지 특징은 디그나가는 해당 부분의 반론자의 아비달마 인용에 따라 인식 대상인 집합체를 지각하는 인식주체로 오식신(pañca-vijñāna-kāya)을 들고 있으나, 28) 다르마키르티는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akṣa-dhī)을 인식주체로 하 일으키는 하나의 보편으로서 인식대상이 된다. k. 205-206: 다양한 색상과 부분으로 이루어 진 그림(ālekhya)이 하나의 보편으로서의 인식대상이 된다. 그밖에 다르마키르티는 다양한 색의 보석(citraṃ maṇi), 다색의 천(citra-paṭa) 등의 비유로 반론자들을 논파하고 있다. 한 편 PVin와 NB에서는 독립적으로 아비달마 인용에 근거한 집합체와 보편에 관한 논의를 다루지 않고 있다. 戸 崎 宏 正, 앞의 책, pp. 298-327 참조. 25) sañcitaḥ samudāyaḥ sa sāmānyaṃ tatra ca akṣa-dhīḥ/ sāmānya-buddhiś ca avaśyaṃ vikalpena anubudhyate// PVⅡ k. 194. 26) artha-antara-abhisambandhāj jāyante ye aṇavo apare/ uktās te saṃcitās te hi nimittāṃ jñāna-janmanaḥ// PVⅡ k. 195. 27) aṇūnāṃ sa viśeṣaś ca na antareṇa aparān aṇūn/ tad eka-aniyamāj jñānam uktaṃ sāmānya-gocaram// PVⅡ k. 196.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81 고 있다. 이것은 다르마키르티가 디그나가의 아비달마적 요소를 불교인식론 관 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넨드라붓디도 자설에 있어서는 다 르마키르티와 같이 감관에 의한 지각을 사용하고 있다. 29) 즉 그의 PSṬ 주석 에는 다르마키르티의 견해가 일정 정도 반영된 일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0) 또한 반론자의 견해에서는 다르마키르티는 집합체를 전체(samudāya)라는 말로 설명하는 데 지넨드라붓디는 전체 를 하나의 극미만이 아니라 다수의 공통하는 속성(dharma) 31) 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이것은 반론자의 집합체 에 관한 견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반론자들도 집합체 를 다수의 극미가 모인 것임을 인정하나 그것은 기체에 속하는 속성 또는 외 계에 존재하는 실체 32) 인 것이다. k. 195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본고의 saṃcitās te hi nimittāṃ jñāna-janmanaḥ 는 미야사카의 교정본에 따른 것이나 Shastri본에서는 nimittaṃ 으로 되어 있고 도사키도 nimittaṃ 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미야 사카의 티베트 교정본에서는 śes pa skye ba i rgyu mtshan yin 에서 보는 바와 같이 nimitta 가 rgyu mtshan 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상의 텍스트 상 에 있어 'nimitta'의 수(number)가 혼용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k.197부터 전개되는 다수의 부분들과 하나의 전체 또는 다수의 형상들과 하나의 지식 과 같은 다르마키르티의 독자적인 이론을 염두에 둔다면 k.195 의 해석은 원인(nimitta)을 집합체들(saṃcitās)의 복수에 맞추어 nimittāṃ 28) kathaṃ tarhi sañcita-ālambanāḥ pañca vijñāna-kāyāḥ PSV 4ab. 29) tatra sāmānye yady akṣa-dhīḥ pravarteta, tada asāu vikalpikā syāt/ sāmānya-buddhir hi niyataṃ vikalpena anubadhyate/ na hi sāmānyaṃ vastusat-siddhānta iṣyate/ PSṬ p. 44.3-5. 30) sañcitaḥ samudāyaḥ sa sāmānyaṃ 의 표현은 지넨드라붓디의 어원적 해석에서 보았듯이 여기서도 집합체 전체 보편 이라는 말들은 개념의 편충이 동일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1) sañcayo na ekasya eva paramānoḥ, api tu bahūnāṃ sādhāraṇo dharmaḥ/ PSṬ p. 44.2-3. 32) 가령 승론학파의 6범주 등에 해당하는 것을 들 수 있다.

282 불교학리뷰 vol.15 의 복수로 취하고 jñāna-janmanaḥ 를 jñānañ janmanaḥ 으로 지식을 단 수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집합체들이 지식(jñāna)을 일으키는(janmana) 원인(nimitta)들이라 고 했을 경우 지식(jñāna)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그 지식의 인식대상을 규명하는 데 주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집합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지식은 두 가지의 경우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 선 바른 지식의 발생, 즉 효과적 작용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전제하고 한 개의 극미 에서부터 지식 이 일어나는 과정을 도식화해 보자. 1) 다수의 극미의 집합체 (보편) 독자상(원인) 지식(인식결과) 위 순서에서 마지막 단계인 지식은 감각기관에 의한 인식결과(pramāṇaphala)로서의 지식이다. 또한 집합체와 독자상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보편)으 로 이것들은 인식결과로서의 지식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필자는 비록 지넨드 라붓디가 집합체와 독자상이 같다는 의미에서 보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집합체와 독자상에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즉 다수의 극미 가 근접해 있는 집합체는 지식의 인식대상이지만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 식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인식영역에 있는 것은 독자상이다. 다시 말해서 보편이라는 말은 다수의 극미에 의해서 형성된 집합체로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집합체의 실재의 형상이 인식영역에 들 어갈 때 비로소 독자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33) 그러므로 집합체, 보편, 독자 상은 모두 다수의 극미들이 근접한 형태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지만, 이 세 33) 디그나가, 지넨드라붓디, 다르마키르티 모두에게 다수의 극미가 모인 것이 독자상 이라는 표현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적어도 독자상이 인식영역 밖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 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집합체란 독자상이라는 말과 대비할 경우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 은 인식영역 안에 들어오기 이전의 인식대상을 의미한다.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83 가지는 인식대상의 존재 위치에 따라 구분하는 말들로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 다. 결론적으로 집합체와 독자상은 각각 인식영역의 외부와 내부에 있으며, 보편은 집합체가 인식영역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형태(rūpa)를 의미한다 고 해석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집합체와 그것의 보편 그리고 독자상과의 개념적 관계성에 의 거하면 집합체가 일으키는 지식은 지식의 2상성 34) 에서 독자상, 즉 스스로 현 현하는 대상적 측면에서의 지식을 의미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2) 다수의 극미의 집합체(원인) (보편) 독자상(지식의 대상적 측면) (결과) 결론적으로 다르마키르티가 말한 집합체들이 지식을 일으키는 원인들 이 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집합체를 원인으로, 독자상을 지식으로 볼 수 있다. 특 히 집합체가 스스로 지식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 35) 는 의미는 집합체는 인식영 역에 그것의 보편이라는 형상을 던져주는 제공자로서의 외계 실재로 규정해 도 무방할 것이다. 이 경우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명칭들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 이 모순이라고 지적될 수도 있지만 실재의 위치와 발생 시점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라면 인식작용의 인과관계는 성립한다. 34) viṣaya-jñāna-taj-jñāna-viśeṣāt tu dvi-rūpatā/k. 11ab. 지식의 二 相 性 은 대상에 대한 지식 과 그것(지식)에 대한 지식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PSV pp. 4.20. 35) sva-hetu-pratyaye- [44.13] bhyo ye paramāṇavo jāyante, te nyonya-sannidhāna-avasthāprāptā eva santaḥ [44.14] pratyekaṃ vijñāna-upajanana-samarthāḥ sañcita-śabdena-uktāḥ/ 스스로 여러 가지 因 들과 緣 들로부터 극미들은 일어나는 데 그것들은 상호간에 근접한 상 태에 도달할 때만 각각의 존재는 인식을 일으키는 능력들을 가진다. PSṬ p. 44.13-14.

284 불교학리뷰 vol.15 다르마키르티의 집합체와 보편을 논함에 있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위의 세 게송 이후에 서술되는 내용으로 집합체의 부분과 전체에 관한 논의이다. 36) 다르마키르티는 하나의 인식영역에서 집합체들이 동시다발적으 로 들어올 경우, 그것은 하나의 지식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이때 다수의 집 합체는 부분에, 하나의 지식으로 파악되는 것은 전체에 해당한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것은 이와 같은 인식작용은 각각의 감관지 안에서 개별 적으로 일어나는 인식현상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즉 눈에 의한 감관지 안에서 다수의 집합체, 예를 들어 푸른색과 노란색이 동시에(sakṛt) 하나의 전체로 파 악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말은 디그나가가 PS k. 5ab에서 말한 다수의 형태(rūpa)의 [속 성을 가진 기체로서의] 사물(dharmin)은 감각기관에 의해서 전체(sarvathā) 로서 인식될 수는 없다. 라는 것과는 다른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말이다. 디 그나가의 경우 각각의 오식신이 독립되어 인식대상이 한계성을 가진다는 의 미이다. 37) 그러나 다르마키르티의 경우는 어떤 감관지의 내부로 들어오는 다 수의 집합체(부분)와 그것을 전체로 파악하는 지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 서 두 논사의 견해와 논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디그나가는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인식대상을 오식신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하나의 집합체와 하나의 인식결과라는 조건하에 고찰한 것 이라면 다르마키르티는 하나의 감각기관에 의해서 파악되는 인식대상을 두 36) 다수(aneka)의 보편(sāmānya)들은 부분(binna)이고 동시에(sakṛt) 전체(sarvathā)로서 하 나의 지식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단계별로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 감각기관인 눈이 파란 바탕에 노란 꽃이 그려진 항아리를 본다. 2. 그 항아리에는 파란색을 만드는 극미들이 근접하여 파란색이라는 집합체를 만든다. 노란색의 집합체도 그와 같이 일어난다. 3. 두 가지의 색이 각각 부분으로서 인식영역에 각각의 보편들로 들어온다. 4. 파란색의 보 편과 노란색의 보편은, 즉 두 가지 색이 동시에 하나의 지식에 의해 파악된다. 37) 한편으로는 외계 대상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형상( 形 象, ākara)을 동시에 파악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85 개 이상의 집합체로 상정한 복합적인 인식과정을 미시적으로 고찰했다고 할 수 있다. Ⅴ. 푸른색 그 자체, 집합체와 그것의 보편에 관한 예증 이상의 논의는 서론에서 언급한 인식대상을 고찰함에 있어 일반적으로 염 두에 둘 수 있는 세 가지 중에서 집합체와 그것의 보편에 관한 존재 형태와 그 것의 위치에 관한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실질적으로 감관지의 인식대상인 이 두 가지 개념들을 우리의 일상 경험 속에서 적용하여 간접지각 의 대상인 일반상(sāmānya-lakṣaṇa), 세속적 경험에 의한 지식(saṃvṛti-sajjñāna)인 분별지(kalpanā), 착란지(bhrānti-jñāna) 그리고 감각기관의 결함 으로 인한 예안지( 翳 眼 知, taimira)와 어떻게 다른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직접지각은 무분별지이고 그 인식대상은 독자상이다. 독자상이란 예를 들어 푸른색 그 자체 를 인식하는 것이지 저것은 푸른색이다 라는 인식이 아니다. 38) 왜냐하면 푸른색이다 라는 인식에는 이미 명칭과 종류 등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 에 분별지에 해당한다. 따라서 푸른색이다 라는 인식은 직접지각이 아니다. 위의 말은 필자가 불교인식론에서 직접지각과 그 인식대상인 독자상 그리 고 개념지에 관한 일반적 정의를 요약한 것이다. 한편 푸른색 그 자체 라는 지각은 언어와의 결합, 즉 분별지를 배제한 것이므로 사실 그것에 관해 구체 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러나 여기서 푸른색 그 자체 란 자기인식의 인식결과인 동시에 인식대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식대상으 38) PSV p. 2.17, k.4ab.

286 불교학리뷰 vol.15 로서의 푸른색 그 자체 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작업은 독자상, 즉 감관지의 인식대상을 고찰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푸른색 그 자체 라는 인식결과로서 의 감관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인식대상으로서의 푸른색 그 자체 는 본고의 분석에 의하면 독자상 이고 집합체의 보편에 해당한다. 그 보편은 외부에 있는 집합체가 원인이 되 어 인식영역 안으로 들어와 독자상이 된다. 따라서 집합체의 보편이란 푸른 색 그 자체 가 언어와 결합하기 이전에도 동일한 조건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 면 모두 푸른색 그 자체 를 독자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하는 원리에 해당한다. 지넨드라붓디에 의하면 이들 극미들은 다양한 因 緣 들에 의해서 모인다. 因 (원인)에 해당하는 것이 다수의 극미들, 그리고 緣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 빛, 감각기관 등이다. 역으로 말하면 다수의 극미로 이루어진 푸른색 그 자체의 집합체 는 인식주체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제반 여건들이 갖추어졌을 때 보편 으로서 인식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제반 여건인 집합체의 인과 연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경우들을 부연할 수 있다. 첫째, 어떤 두 사람이 똑같은 여건 속에 있다면 두 사람은 모두 푸른색 그 자체 를 지각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푸른 색 그 자체는 집합체의 보편 으 로 두 사람 모두에게 동일하게 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른색이 일어난 실재의 형상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지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가령 특정 형상을 형성하는 다수의 극미들은 같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는 각도라는 조 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편 두 사람이 본 같은 대상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고 자 할 때 그것은 사회적 약속인 언어와의 결합과 푸른색이 아닌 것들의 배제 를 통해 간접지각의 대상인 일반상(sāmānya-lakṣaṇa)이 되어 버린다. 둘째, 한 사람이 빨간색 조명 아래서 푸른색(blue) 그 자체 를 본다면 그것 은 어두운 회색 그 자체 가 된다. 그러나 이것도 집합체가 어두운 회색 그 자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87 체의 보편으로 인식영역에 들어온 것이기에 독자상이고 감관지의 인식대상이 다. 왜냐하면 그것도 언어와의 결합 이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람이 빨간색 조명에 의해서 원래는 푸른색인 것이 어두운 회색으로 보인다 고 생 각하는 순간, 그 어두운 회색 또한 간접지각의 대상인 일반상이 된다. 이 경우 그는 미리 빨간 조명 아래의 푸른색은 어두운 회색으로 보인다는 세속적 경험 에 의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기억으로부터 나온다. 한편 신기루를 보 고 물로 착각하는 착란지(bhrāti-jñāna)는 빨간 조명 아래의 푸른색을 어두운 회색의 예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신기루를 물로 착각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물 이라는 기억(smṛti)이 미리 존재해야만 성립할 수 있으며 그것에 의해서 착란 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로프를 보고 뱀이라고 착각하는 것 또한 신기루와 물의 경우와 같다. 이와 같이 기억 내지 언어와 결합된 세속적 경험에 의한 지 식의 인식대상은 분별(kalpanā)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이기에 직접지각의 대 상인 독자상이 아니다. 셋째, 만일 황달에 걸린 사람이 푸른색 그 자체 를 본다면 그것은 가령 노 란색 그 자체 일 것이고 거기에는 푸른 색 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역시 그 사람에게는 노란색 그 자체 는 과거 경험한 기억에 의해서 판단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지각의 인식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와 같은 예안지(taimira)는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비록 감각기관에 의해 선 명하게 일어난 무분별지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지각의 대상인 독자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안지의 대상은 애초부터 인식하기를 원한 것(abhiniveśata) 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인식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anvayavyatireka)이 무시된 오로지 감각기관의 결함에 의해서 왜곡(vikriyā)된 것일 뿐이다. 그러 나 노란색 그 자체 를 인식대상으로 하고 다른 인식주체에 의해서 그것이 파 악될 경우 노란색 그 자체 는 분별지의 대상인 일반상이 된다. 따라서 감관지(indriya-pratyakṣa)의 인식대상인 푸른 색 그 자체 란 본

288 불교학리뷰 vol.15 질적으로 그 어떤 자성을 가지고 외계에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실 재하는 집합체의 보편이 인식영역에서 인연에 따라 찰나 생멸하는 것에 지나 지 않는다. 이와 같은 집합체의 보편을 직접지각의 대상적 측면에서 독자상이 라 부른다. 한편 감관지의 대상인 푸른색 그 자체 가 바른 인식의 대상이라면 동일한 조건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푸른색 그 자체 로 보여야만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조건을 두 사람이 동시에 가질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거 의 동일한 원인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언어와 결합하기 이전일지라도 적어 도 나에게 있어 푸른색 그 자체 는 타인에게 있어서도 그와 같이 보여야 한다. 필자는 집합체의 보편 이라는 말로 독자상이 가지는 이와 같은 보편성이 설 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Ⅵ. 결론 바른 인식(pramāṇa)이 직접지각과 간접지각으로 구분하는 것은 각각의 인 식대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르마키르티 이후 직접지각이 네 종류로 나누어지는 것도 바른 인식의 분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직접지각의 종류는 인식대상인 독자상이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지기 때문이 다. 이와 관련하여 직접지각의 대상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는 것과 意 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감관지 의 인식대상인 집합체는 감각기관이 파악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어떤 사 물에 대한 것임에 틀림없다. 즉 그 사물이 다수의 극미가 모인 집합체라고 할 경우 극미 그 자체는 감관지의 인식대상에서 제외된다. 39) 따라서 디그나가가 39) 경량부(슈리라타)는 극미만을 실체, 유부는 극미와 그것의 집합체도 실체로 본다. 加 藤 純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89 감관지는 집합체를 인식대상으로 한다라고 한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이 고 집합체가 실체인가, 실재인가하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한편 그것이 존재하는 위치가 인식영역의 내부인가 외부인가는 충분히 논 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외계 사물의 존재를 인정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만일 집합체가 실체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에 대 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집합체가 실체인가 실재인가, 그리고 그것이 인식영역 안과 밖, 어 디에 존재하는가는 감관지의 대상으로서의 집합체에 관한 주요한 인식론적 주제라고 할 것이다. 아비달마의 인용으로부터 시작된 집합체(sañcita)에 관한 논의에서 디그나 가의 집합체는 다수의 극미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체(dravya)가 아 니고 실재(vastu)이다. 다르마키르티에 의하면 실재란 효과적 작용(arthakriyā) 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합체는 지식을 일으키는 원인이기에 인식론적으로 효과적 작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집합체를 통해서 그것을 제공 한 외계 사물 40) 을 획득 내지 파악할 수 있는 효과적 작용도 함께 가지고 있기 에 집합체는 실재인 것이다. 집합체는 극미를 각 개물로서 구별하는 것이 아니기에 보편이라고 한다. 따 라서 집합체의 보편이란 개별적인 것을 전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이 보편 은 사물(dharmin)이 가지고 있는 속성(dharma)이 아니라 개별 극미인 부분 들이 모인 어떤 전체적 형상에 해당한다. 이것이 인식영역에 들어왔을 때 감 관지의 인식대상인 독자상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지넨드라붓디의 다그나가의 집합체에 관한 설명은 보다 구체적이다. 즉 다 章, 앞의 책, pp. 176-177. 그러나 감관지의 인식대상에 관한 문제와 극미가 실체인가 아닌 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왜냐하면 극미는 감관지의 인식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40) 외계 사물에 대한 지식은 분별지의 일종인 간접지각에 의해서 추리로 파악되는 것이지 직접 지각에 의해서가 아니다.

290 불교학리뷰 vol.15 수의 극미가 상호간에 접근하여 여러 가지 원인과 연에 의해서 결합한 것이다. 이러한 지넨드라붓디의 해석은 집합체가 일어날 수 있는 원인(극미)과 감각기 관 등의 제반 조건에 따라서 생멸하는 실재라는 것을 명확히 말하고 있다. 나 아가 그는 집합체는 인식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현현하는 것이라 고 한 것은 실재로서의 효과적 작용을 가진 것임을 의미한다. 다르마키르티는 집합체들은 하나의 지식을 일으키는 원인들이라고 한다. 즉 디그나가가 다수의 극미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집합체의 보편이 인식영역 에서 인식대상으로서의 독자상이 되는 것을 말했다면 다르마키르티는 다수의 디그나가의 집합체들의 보편들이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된다고 말한다. 즉 다 수의 집합체들은 부분들이지만 지식에의 의해서 하나의 전체로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감관지의 인식대상으로서의 집합체는 보편을 특징으로 하며 인식영역에서는 독자상으로 현현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여기서 집합 체의 보편이란 집합체가 인식영역의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형상으로 집 합체와 독자상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연결고리와 같은 개념으로 독자상이 가 지는 인식의 보편성 41) 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1) 앞 장 결론 부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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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불교학리뷰 vol.15 Abstract On sañcita, its sa ma nya, and svalaksạnạ of indriya-pratyaksạ Park, Ki Yeal Dongguk University The object of cognition by five sense organs in Dignāga s PSV would be metaphorically expressed as the appearance reflected on the mirror in the camera inasmuch as the exterior substance is different from the object of cognition. Because cognition by the sense organs is limited to all conditions surrounding the object which we try to be aware so that we can only perceive a part of all aspects of the object. The appearance reflected on the mirror of the camera is being before understanding through combining with languages in our mind. Dignāga describes on the object of perception by sense organs as blue, itself, but this is blue having been defined and categorized by means of words and the exclusion of different objects.

감관지의 인식대상, 집합체(sañcita) 에 관한 고찰 295 On the other hand, all people under the same conditions to perceive the object should get a common result of cognition to the object, that is blue itself, although the object is for the direct perception by sense organs(indriya-pratyakṣa) called svalakṣaṇa. This common aspect of svalakṣaṇa could be understood Dignāga s common property (sāmānya) of the aggregate (sañcita) made of a lot of atoms, is grasped as the whole in the cognition sphere (āyatana). In this paper, the three terminologies; sañcita, its sāmānya, and svalakṣaṇa, are compared to verify the relationship among them on the base of Dignāga s PSV, Jinendrabuddhi s PSṬ, and Dharmakīrti s PV. Sañcita is said that it has the ability to cause knowledge (jñāna). In this case, the knowledge could be supposed to be not only indriya- pratyakṣa as the result of cognition, but also svalakṣaṇa which is one of knowledge as the object aspect in the two aspects (dvirūpatā) of knowledge. In the latter, as sañcita is located out of the cognition sphere and svalakṣaṇa is in the cognition sphere, sāmānya is acceptable as a style(rūpa), how the aspect(ākāra) to move from outside to inside the cognition sphere. Thus, sāmānya would be said to play a role in a link to connect between sañcita and svalakṣaṇa. Unlike Dignāga basically describes on the object of cognition under the condition that sañcita is one, Dharmakīrti assumes the object of cognition under multi-conditions that plural aggregates (sañcita) bring out one knowledge in one cognition sphere at the

296 불교학리뷰 vol.15 same time. Therefore, if Dignāga s sañcita theory is said to be plain like blue itself becomes svalakṣaṇa, Dharmakīrti s sañcita has multiple layers like blue itself' and 'yellow itself become one svalakṣaṇa simultaneously. Key Words: sañcita, sāmānya, svalakṣaṇa, indriya-pratyakṣa, object of cognition, Dignāga, Dharmakīrti, Jinendrabuddhi 2014년 5월 30일 투고 2014년 6월 10일 심사완료 2014년 6월 20일 게재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