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17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 南 白 月 二 聖 努 肹 夫 得 怛 怛 朴 朴 >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 헌 선* <차 례> 1. 머리말 2. 구비전승 <부처가 되어도>의 성격규명 3. < 南 白 月 二 聖 努 肹 夫 得 呾 呾 朴 朴 >의 구비전승적 성격 4. 마무리 1. 머리말 구비전승은 문헌전승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구비전승과 문헌전승은 명확히 서로를 구 분할 수 없는 경계면을 형성한다. 1) 그러므로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을 통해서 문헌 자료와의 관 련양상을 지속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문헌 전승을 집약시켜놓은 것이 ꡔ삼국유사ꡕ이므 로 소재 설화를 중심으로 구비전승의 변모 양상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ꡔ삼국유사ꡕ에 관한 일련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자료를 만나게 된다. 일연이 ꡔ삼국유사ꡕ를 편찬할 당시에 여러 가지 문헌자료를 산정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취사선택 하여 기술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현재 전하는 구비전승자료와 비교해서 논의한 연구에 * 金 憲 宣 (Kim Heon-Seon) 京 畿 大 學 校 人 文 藝 術 總 括 學 部 敎 授.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문학석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主 要 論 著 는 ꡔ한국의 창세신화ꡕ, ꡔ화랭이 무속의 역사와 원리ꡕ 외 다수. 1) 이에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저작이 유용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Jack Goody, 1977 The Interface between the oral and the written, Cambridge University.
118 민속학연구 8호 따르면, 의외로 ꡔ삼국유사ꡕ 설화의 자료와 구비전승 자료가 유형적으로 일치하는 유형이 많음을 알게 된다. 2) 따라서 ꡔ삼국유사ꡕ 설화자료를 구비전승과 연결시켜 논의하는 것은 제한적인 의미 만을 가지지 않는다. ꡔ삼국유사ꡕ 설화 가운데 압도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자료는 불교설화이다. 불교설화 가 운데 불교설화의 특징을 가진 것이 수록되어 있는 편목이 <탑상>편이다. <탑상>편 자료에 대해 서 불교설화의 숭고와 비속이라는 대립적 요소를 찾아 정리한 논의는 불교설화 이해의 소중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3) 불교설화는 불교 쪽에서 지어 퍼트린 설화라고 하면 굳이 설화를 채택한 의도가 잘 해명되지 않는다. 불교설화는 불교적 깨달음이나 교리에 유사한 자료를 택해서 윤색 한 것이라고 말해도 그릇되지 않다. 불교설화는 설화의 일반법칙을 따르면서도 독자적으로 변형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ꡔ삼국유사ꡕ 설화 가운데 불교설화 한 편을 택해서 불교설화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고 설화 일반과 어떻게 다른가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자료 자체를 확장해 서 다룰 수 있어야 이 문제는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되리라 생각한다. <탑상>편 가운데 논 의가 많이 진척된 자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논쟁이 치열한 자료가 곧 <낙산 이대성관음정취조신>이다. 4)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도 한 차 례 논의가 있었던 자료이다. 박희병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을 전기소설의 변형태로 파악하였다. 5) 그렇게 보는 근거는 <백월산양성성도기>라고 하는 문헌에서 찾고 있다. 일연이 이 대목을 기술하면서 <백월산양성성도기> 가 있다고 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전기소설의 관점에서 이 자료의 특성이 보이는 것처럼 간파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 자료는 설화이지 전기소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전기소설의 범위와 근거를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서 동일한 자료에 대한 견해가 자못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박희병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구비전승자료와 기록자료 2) 조동일, 1987, 삼국유사설화와 구전설화의 관련양상 ꡔ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 논문에서는 특이한 유형의 한정된 구전, 흔한 유형의 대응, 특이한 유형의 광범위한 구전 등으로 나누어 고찰한 바 있다. 3) 조동일, 1990, 불교설화에서 본 숭고와 비속 ꡔ삼국시대 설화의 뜻풀이ꡕ, 집문당. 4) 조동일, 같은 책, 같은 곳. 고운기, 1993, 일연의 세계인식과 시문학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박성지, 1996, 삼국유사 소재 불교설화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이 밖에도 예거할 수 있는 논문이 많으나, 대표적인 것으로 위의 세 가지 논문을 든다. 5) 박희병, 1998, ꡔ한국전기소설의 미학ꡕ, 돌베개, 69-70쪽. - 118 -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19 의 상관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한문자료에 주목해서 본다면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 박박>은 그와 같은 성격을 일부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의 저본이되었던 <백월산양 성성도기>는 어떠한 자료인가 하는 점을 되물어야 한다. <백월산양성성도기>는 본래 기록으로 전했던 것인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 둘째는 현재 구비전승되는 자료에 관한 대응에 주목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백월산양성성도기>에만 관심을 두고, 구비전승자료에 주목하지 않은 것 은 아쉬운 일이다. 따라서 폭넓은 자료 조사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에 관한 구비전승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쓰여진다. 마침 이 자료와 흡사한 구비전승자료가 채록되어 있어서 두 자료를 비교하여 기록전승과 구비 전승의 상관성을 검토하고, 나아가 구비전승의 원칙과 이해의 각도를 검토하기로 한다. 이 문제 는 설화연구에 있어서도 긴요하지만, 불교설화의 각도에서도 중요하므로 재론하고자 한다. 특히 불교설화의 진리 논쟁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2. 구비전승 <부처가 되어도>의 성격규명 ꡔ한국구비문학대계 7-7ꡕ을 통독하다가 영덕군 강구1동 구강구에서 채록된 <부처가 되어도>라 는 자료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건의 내용이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과 엄격하 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상황설정도 흡사하고, 사건전개도 일치한다. 다만 주인공 이름이 달라져 있어서 그동안 기왕의 연구자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설 화의 이러한 공통점이 혹시 설화구연자가 ꡔ삼국유사ꡕ 자료를 읽고, 다시 구연한 것이 아닌가 의 문이 든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설화 구연자인 강신용에 대해서 먼저 상세한 논 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신용의 구연자적 면모를 파악해야만 <부처가 되어도>라는 자료의 신뢰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가 되어도>의 설화 구연자는 강신용이다. 1980년 채록 당시에 강신용의 나이는 64세이 니 올해 생존해 있다면 84세가 되리라 판단된다. 제보자는 강구 숙모님댁에 놀러왔다가 이곳에 서 조사자들을 만나 구연하게 되었다. 강신용은 설화 16편을 구연했으니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 봉태기 라고 하는 인물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강신용이 구술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 6) 임재해, 1981, ꡔ한국구비문학대계7-7(경상북도 영덕군)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하 설화 출현 면수는 괄호로 처리한다.
120 민속학연구 8호 (1) 우역동의 막덕지구(417면) (2) 정삼봉의 출생(419면) (3) 효자충신벽상고( 孝 子 忠 臣 壁 上 枯 )(442면) (4) 아들 십팔형제(445면) (5) 호랑이 뱃속에서 고래잡기(460면) (6) 근심걱정없는 노인, 무수옹( 無 愁 翁 )(466면) (7) 안사돈의 방귀(494면) (8) 적강한 향담동자(498면) (9) 장사의 힘겨루기(501면) (10) 장사를 무색케한 신부녀의 힘(502면) (11) 부처가 되어도(504면) (12) 가난한 서생 부인의 도술(507면) (13) 서툰 지관의 요행(513면) (14) 아무렇게나 잡은 명당(516면) (15) 불공 드려서 낳은 배 큰 아들(519면) (16) 부마대감과 경상감사(524면) (1)은 우역동이라 지칭되는 우탁의 출생담과 본색 밝히기 이야기이다. 우역동은 몸종에게서 태어난 아들인데, 몸종인 막덕이가 죽었을 때에 명정을 막덕지구 라고 썼다고 전한다. 이것은 인물전설이다. (2)는 삼봉 정도전의 출생담이다. 영일 정씨가 베술고개 근처 수수밭에서 새를 보다가 몸종 을 건드려서 낳은 아이가 정도전 곧 정삼봉이라는 인물이다. 몸종이 증거물을 가지고 찾아가는 내용이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3)은 숙종대왕의 미복담이나 다소 외설스러운 이야기이다. 홀아비가 자위행위를 하다가 정 액을 벽에 뿌리면서 효자충신벽상고라고 말하는 것을 엿듣고, 숙종대왕이 홀아비를 만나서 별과 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시제가 효자충신막덕고여서 홀애비가 벼슬을 했다는 내용이다. (4)는 머슴살이를 하던 인물이 세배를 다니다가 노인을 만나 토정비결을 보니 아들 18명에 이천석을 할 점쾌를 얻는다. 점쟁이 노인의 딸에게 장가들어서 아들 8명을 낳고, 부인과 함께 제금을 나왔다가 다시 쫓겨난다. 그 인물이 함경북도 북청에 가서 고통천이라는 이천석 부자와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21 의형제를 맺고, 열부인과 잠자리를 한다. 열번째 부인이 백리 밖으로 달아나라고 해서 만주에서 10년을 헤매다가 고통천에게 돌아오니 고통천은 죽고 10명의 아들과 부인을 얻고, 마침내 조강 지처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상당히 긴 내용이지만, 구어력과 묘사력이 뛰어난 이 야기이다. 강신용의 이야기꾼적 면모가 잘 드러난 이야기이다. (5)는 소화이다. 소금장사, 석유장사, 노름꾼 세 사람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 세 사람이 투 전을 하다가 싸움이 벌어져서 다투다가 석유가 엎질러져 불이 나자 호랑이가 바닷물로 뛰어들 었다가 고래에게 잡혀 먹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구워먹다가 마침내 고래와 호랑이를 잡아서 부 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6)은 행운담이다. 무주에 사는 김태식이 근심걱정이 없는 인물이라고 서울에 소문이 나서 임금이 벼슬을 주고 옥관자 한 쌍을 하사하면서 부디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다. 배를 타고 건너 다가 옥관자 한쌍을 잃어버렸는데 며느리가 잉어를 사서 요리를 하다가 마침내 찾았다는 내용 이다. 그래서 사흘 근심밖에 안하는 인물이라고 전한다. (7)은 소화이다. 딸네집에 간 사돈이 딸의 시어머니가 뀐 방귀를 무안해서 오다가 등에 업은 아이가 대신 방귀를 뀐 것이라고 여기라 했다는 내용이다. (8)은 적강담이다. 향담동자가 일곱 살때까지 부모의 등에 업혀 이인노릇을 하다가 갑자기 죽었다. 실성한 부친이 한 산골의 집에 갔다가 벽장 속에서 지내는 못생긴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가 향담어르신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신들은 천상의 죄를 씻으려 지상에 온 사람이라고 말하 고, 향담동자를 잊어버리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잡았다는 내용이다. (9)는 장사 힘겨루기담이다. 소백산 다래안산에 껍질을 벗기러 갔던 인물이 그곳에서 더 힘 센 사람을 만났다는 내용이다. (10)은 (9)와 같은 힘겨루기담이다. 그러나 힘겨루기의 주체가 달라졌다. 물을 이고 가던 아 낙네가 포목장사의 짐을 옮겨놓았다는 데서 차이가 생긴다. (11)은 이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다른 데서 상세하게 다루므로 여기서는 다루 지 않는다. (12)는 부인의 지략담 또는 이인담, 도술담 등으로 지칭할 수 있다. 한 서당선생의 밑에서 배 운 서동들의 부인이 얼마나 지혜가 있는가 알아보고자 선생이 시험을 낸다. 맨마지막에 시험을 당한 서생의 부인이 이인어어서 도술로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고, 그 부인을 탐낸 서생의 친구를 도술로 죽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부인이 도술을 보여주기 위해서 갖가지 도술을 사용하고, 천 상에까지 유인하는 삽화는 도술담을 넘어서서 신이담의 수준을 보여준다.
122 민속학연구 8호 (13)과 (14)는 풍수담이다. (13)은 부인의 성화를 못이긴 사내가 엉뚱하게 풍수노릇을 해서 잘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엉뚱한 풍수노릇을 어찌어찌 하다가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되는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14)는 가난한 종놈이 우연히 쓴 묘터가 당대 발복하는 명당터였음을 말하 는 이야기이다. 온전한 풍수담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풍수가 되었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전 개된다. (15)는 불공을 드려서 엉뚱한 아들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배가 너무 커서 금강산에 가서 참 외로 큰배를 채울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내용과 의미가 불분명한 점이 있으나, 기상 천외한 발상이 돋보이는 이야기이다. (16)은 제보자가 황급하게 이야기한 까닭에 이야기의 두서가 잘 서지 않는다. 핵심적인 내용 은 주막집에 든 과객이 부마대감과 경상감사의 힘겨루기로 말미암아 잘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 다. 잘 살게 해준 인물은 부마대감이다. 강신용이 제공한 자료를 정리하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강신용은 전형적인 이야기꾼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꾼은 긴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 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강신용은 이야기 봉태기 라고 지칭되는 측면은 이 때문이다. 강신용은 아주 긴 이야기 들을 구사하는 것이 예사로 드러난다. 긴이야기와 짧은 이야기 또는 장편설화와 단편설화를 분 별하면, 이 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장편설화: (4), (6), (12), (16) 단편설화: (1), (2), (3), (5), (7), (8), (9), (10), (11), (13), (14), (15) 강신용이 제공한 설화 가운데 장편설화에 해당하는 것이 4편으로 대략 1/4의 비율이다. 강신 용의 길고 지루한 이야기가 청자에 의해서 배척되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승하는 것 은 강신용의 이야기꾼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단편설화에서도 장편설화로 이어질 법한 것이 적지 않다. 본인이 긴 이야기라고 예고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4)번 설화를 말할 때 에 기우 좀 얘기가 하는 것은 장편설화의 구연에 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16)번 설화를 구 연하기 전에 요건 조끔 인제 길어 하는 것은 장편설화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강신용이 제공한 이야기의 가지 수 또한 풍부하다.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서 강신용의 설화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산출된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23 (가) 신이한 이야기: (8), (11) (나) 이인 이야기: (9), (10), (12), (13), (14) (다) 인물 전설: (1), (2) (라) 우스운 이야기: (7), (15) (마) 외설스러운 이야기: (3) (바) 요행스러운 이야기: (4), (5), (6), (16) 이러한 분류가 엄격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서 여섯 가지를 편의적으로 분류했 기 때문이다. (가)에서 (바)까지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야기의 가지 수가 다채로움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가)의 신이한 이야기는 이야기의 소재와 내용에 의한 분류 결과이다. 그런 데 (8)은 부합되나, (11)은 신이한 것을 부정하자는 쪽에 가깝다. (나)는 이인 이야기이다. 이인 은 비범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서 도술가, 풍수, 장사 등의 이야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렇 게 분류된 내용에는 이인의 능력 자체가 얼떨결에 습득된 것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인 이야기의 부정형 내용까지 여기에 포함시켜 분류했다. (다)는 인물전설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에 관한 전설이다. 그런데 (다)에 소개된 인물전설은 한결같이 서자로 태어난 인물 이 불행을 딛고 훌륭하게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라)는 본디 소화였다. 그런데 내용 의 핵심적인 부분이 변질되거나 탈락해서 그 본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어 있다. (마)는 음담패설 이다. 그런데 음담패설이 숙종대왕의 미복한 이야기와 섞여 있다. (바)는 행운담이다. 불행한 일 이 있을 법한데, 급격하게 행운으로 바뀌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전체 가지수를 살펴보니 강신용의 이야기꾼적 면모가 예사롭지 않음을 찾아낼 수 있다. 탁월한 기억력, 풍부한 묘사력, 다양한 전승의 구사력 등이 강신용의 이야기꾼적 면모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하겠다. 강신용은 탁월한 기억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유식한 인물은 아니 다. 한문에 대한 해석력이 분명치 않은 것은 이 점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설화(13)에서 좌향은 칠신용화에 잠자비형 이라는 것에 한자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한 (14)에서 종구혈 이 한자로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그 점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유식한 인물이라 면 설화 전승자로서의 면모가 다소 신뢰할 수 없다는 반증이 된다. 강신용을 설화제보자로서의 면모라는 각도에서 분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강신용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강신용이 제공한 <부처가 되어도>의 자료가 갖는 특징을 조심스럽게 접근 하고자 한 때문에 강신용의 설화제보자적 측면을 다양하게 검증한 것이다. 강신용이 이야기꾼적
124 민속학연구 8호 면모가 있다는 사실은 <부처가 되어도>라는 설화가 책을 보고 옮겼거나 설화를 창작했을 가능 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강신용은 구비전승의 자료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추정 할 수 있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부처가 되어도>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부처가 되어도>의 구체적인 자료를 검토하기로 한다. 우선 설화가 매우 중요하므로 전문을 검토하기로 하겠다. 그리고 설화의 핵심 적 서사단락을 정리하고자 한다. 7) 이전에 언제 여 저 부자집 노인들이 둘이 인제 부처가 된다고, 부처가 된다고 인제 산중에 들어가서 공 부를 할라고 드갔는데 8), 한 노인이 인제 산중에 들어가서 밑에, 지방노인이라고 이래고, 한 노인은 탐방 노인이라고 이래고 꼭대기에 올라가고 9), 그래서 인제 부체가 10) 될라고 공부를 하고 이래 11) 있는데, 공부 를 인제 한 십년 공부를 다 돼가는데 12). 한날 13) 저녁에 밑에 지방노인 집에 비가 후직지그리 14) 오고 저물었는데, 여자가 하나 와설랑에 15) 주 인을 찾어 좀 자고 가자고 그러면서, 시 머여 공부가 다 돼가는데 16) 오니 그 참, 십년공부 나미아미타불 하고 못잔다 이랬단 말이지. 못잔다 그래이, 이리 가면 인가가 있느냐고? 예, 이리 가면 <작은 소리로>집이 하니 있으니 거기 하루 쉬라고 이랬단 말이지. 그 이 노인이 걸 <말을 바꾸면서>참, 이 여자가 가설라므네 17) 쥐인을 18) 찾으이, 노인이 나온다 말 이래 19). 어떤 사람이 이렇게 밤중에 들어오느냐고? 그런게 아니라 20), 길을 잘못 들어가설랑에 산중으로 들와가주 잘 데는 없고 여기 자고 가자꼬 21). 7) 임재해, 같은 책, 504-507쪽. 사투리와 낯선 어휘에 대한 주석은 필자가 모두 새로 달아 제시한다. 8) 들어갔는데 9) 제보자에 의하면, 탐방 은 바위를 뜻하고, 지방 은 초가를 뜻한다고 했다. 탐방노인은 천작( 天 作 )으로 이루어진 바위 밑 동굴에서 청도를 닦았고, 지방노인은 풀을 깍아서 지붕을 이은 초가에서 도를 닦았다 는 이야기를 덧붙여 설명하였다. 10) 부처 11) 이렇게 12) 되어갔는데 13) 하루날 14) 후두둑하고 잠깐 15) 와서는 16) 되어가는데 17) 가서는 18) 주인을 19) 말이라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25 그레 인제 들오라고. 그러이, 들어가주 22) 있다 말이지. 들어가주선 기뭐 자기 먹던 저녁을 마주 채려 가 밥을 먹었다 말이지. 그래 먹은 뒤에 뜨신 데 23), 부인 뜨신 데 재고 24), 아랫묵에 가 자라. 칵, 그래 아랫묵에 잤어. 한참 잤는데, 한잠 자고선 <큰 소리로>아 배가 아파 죽는다는 배가 아파 죽겠다고 아래 불을 켜 놔달 라고, 불을 켜 노니, 아 한참 설설 매더니만 얼라 소리가 난다 말이래. 아 여 머참 그래니 인간에 찾아가 설랑에 하마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어떻게 뭐 할 수가 업지. 그 언나(아기)를 인제 자기가, 아이구, 나는 머야 태를, 내가 얼라를 놨으나 태를 못가르니 25), 태를 갈라도고 그래 태를 갈라 좄어 26). 이거 참, 미안하지마는 나는 몸만 풀만 27) 몸을 말짱 28) 씨야 되니 29) 물 한솥 대어 와서 씰 30) 수 없느냐? 그 물을, 이 노인이 나가서 물을 데워설랑에 31) 큰 함지에 32), 이전에는 그 나무함지, 큰 함지에다 하나 인제 떠다가, 이래 방바닥에 놓고선, 씨이라! 33) 고 그러이 34) 그저 머 미안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머 내가 벗고 들앉을테니께 좀 <큰 소리로>씻기 35) 달라. 는 거 래 36). 아, 때 머 참 할수 없지. 그래 다 씨드러(씻어주었어) 그저 머 샅도 씻기고 뭐 다 씩기 달라고 아 이랜다 말이래 37). 그래 말짱 씨이서 이래 씻고 나니, 그래 나와서 옷을 주워 입고선, 내 모욕한 38) 물에 노인이 <웃으면서>모욕을 하시오. 이래드래 39), 아, 그래가주 40), 20) 그런 것이 아니라 21) 갈려고 22) 들어와 가지고 23) 따뜻한 데에 24) 재우고 25) 탯줄을 못자르니 26) 주었어 27) 아이를 해산하면 28) 깨끗하게 29) 씻어야 되니 30) 씻을 31) 데워가지고 32) 함지박 33) 씻어라 34) 그러니 35) 씻겨 36) 것이라 37) 아 이렇다는 말이라 38) 목욕한
126 민속학연구 8호 안한다고. 이래니까 아이, 상관없다고. 달겨들어 41) 옷을 마구 벳긴다 42) 말이여, 옷을 빗기구선 들앉으라니 43) 머 소골지(완전히)머머 하 마 당했으니께, 뭐 그래 들앉았으니께, 자기가 그래 씻겨준다 말이래, 전부 씻겨설랑에 44), 그 씻구선 인제 옷 입을라꼬 나와선, 나오니께 아, 여자가 간 곳이 없어. 여자도 간 곳이 없고 뭐야, 아도 간 곳 없고, 그 질로 몸띠이 45) 를 들여다 보니 무대이(무단이)노오란 기 고만, 아주, 노오란 기 46) 그 질 로 47) 이래 들어앉으이께 48) 고만 노란 금부처가 됐다 말이래.<웃음> 금부처가 돼가주구선 가마 앉았이어, 지방노인이 그래 뭐여, 여자가 그렇게 글로 올라가라고 했으 니, 어떻게 됐는가? 하고 그 이튿날 자고서 올라왔다 말이래. 올러보니, 불도 때는 게 없고 기체(기 척)도 없다 말이래. <감격한 어조로>아, 문을 열고 보니까, 아, 노란 금부처여 고만. 건드려도 머머 꿈쩍도 안하고, 그 부처가 돼가주, 하! 이거 참, 내가 그 여자를 괄시했드니마는 이 분이 뭐야 도통 을 하고 나는 도통을 못했다. 그래서 인제 고만, 그 지방노인이 니러와가주서는 49) 자손들한테 이 얘기를 해선, 자기 아부지 50) 모셔가드록 하구선, 모셔갔는데. <큰 소리로>자기는 도통이 안되니께로 고마 참 있는데, 집에 가니께, 아, 아부지가 여태껀 51) 삼십년 동안 얼매나 고생하시고 음식을 못, 맛난 음식을 못자셨다. 고 아들 네가 자꾸 대접을 해도, 그 머야 탐방노인네가 그양 52) 가마이 53) 앉았지 머머. 그래 인제 머 부처가 돼도 뭔 귀하고 천한 걸 알어야 인간이지, 뭘 먹지도 안하고 뭘 귀한 줄도 모르고, 부처가 소양 54) 없다고 그래. <작은 소리로>소양없다. 그래 뭔 도통이고 머고 부처가 되고 머 소용없고, 사람이 사는 동안에 그저 내 맛나게 먹고, 내가 좋은 일도 보고, 나쁜 일도 보고 이래. 부 처가 돼도 소냥 55) 이 없다고 그런 말이 있어. 39) 이렇게 말하더라 40) 그래 가지고 41) 달려들어 42) 벗긴단 43) 들어앉으라니 44) 씻겨서는 45) 몸뚱이 46) 노오란 것이. 여기서는 금물( 金 泥 )을 뜻한다. 47) 그 길로. 그 참으로 48) 들어앉으니까 49) 내려와 가지고서는 50) 아버지 51) 여태껏 52) 그냥 53) 가만히 54) 소용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27 <부처가 되어도>의 핵심적인 서사단락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부자집 노인 둘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 산중에 간다. (2) 산밑에 기거하는 노인은 지방노인이고, 산꼭대기에 있는 노인은 탐방노인이다. (3) 두 노인은 10년동안 산중에서 도를 닦고자 거처를 한다. (4) 어느 날 저녁에 지방노인 집에 여자가 찾아와서 자고가기를 청하자 십년공부가 허사가 되니 재울 수 없다고 거절한다. (5) 여자가 이리 가면 인가가 있느냐고 묻자 지방노인이 인가가 있다고 하며 그곳에서 쉬어 가라고 한다. (6) 여자가 탐방노인 집에 이르러서 자고 가기를 청하자 자고 가라고 한다. (7) 남방노인은 여자를 아랫목에 재우고, 자신은 윗목에서 잔다. (8) 아랫목에서 자던 여인이 불을 켜달라고 하더니 아이를 낳는다. (9) 여자가 노인에게 태를 잘라달라고 하자 잘라준다. (10) 여자가 몸을 씻겨 달라고 하자 큰 함지에 물을 데워와 씻긴다. (11) 여자가 목욕을 다하고 나와서 그 물에 목욕을 하라고 한다. (12) 탐방노인이 목욕을 안한다고 하자, 여자가 몸을 씻겨준다. (13) 목욕을 다하고 나니 여인과 어린아이는 간데 없고, 노인은 금빛물이 들게 되어 금부처 가 된다. (14) 지방노인이 와서 보고는 자신은 도를 통하지 못해서 금부처가 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15) 탐방노인은 금부처가 되었으므로 후손에게 연락해서 집으로 모셔가고, 지방노인은 도를 더 닦기 위해 산중에 남는다. (16) 금부처는 먹지도 못하고 귀한 것도 모르니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17) 사람이 사는 동안에 맛나게 먹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체험해야지 부처가 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부처가 되어도>의 서사단락을 단락별로 정리한 결과 불교설화의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은 부처의 깨달음이나 득도를 부정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변형되어 있으니 불 55) 소용
128 민속학연구 8호 교설화를 통한 불교설화의 부정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을 서둘러 내릴 일은 아니 다. 우선 서사단락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충실하게 따져보고 다음 단계의 논의를 해야 한다. 부잣집 노인 두 명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 산중에 간다고 하는 것은 출가를 의미한다. 노인이 자신의 부귀를 마다하고 속세를 버린 것은 불교설화의 흔한 설정이다. 세속의 욕망과 명리 따위 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를 닦아야 새로운 차원의 비약을 꾀할 수 있다. 이를 흔히 도반( 道 伴 )설 화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이 도반이 되는 것은 좀체로 드문 설정이다. 함께 기거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으므로 산밑과 산꼭대기에 각기 나누어 기거한다. 산밑에 기거하는 노인이 지방노인이고, 산꼭대기에 기거하는 노인은 탐방노인이다. 공간설정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의 정도나 등급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살펴 볼 때에 산밑의 거주자는 여성을 먼저 만나 옹골차게 거절하는 점이 속세에 강한 거부가 득도 의 장애로 나타난다. 엄격하게 계율을 지킨 것이 득도에 장애가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등급이 낮다. 산꼭대기의 거주자는 높은 위치에 있듯이 등급이 높다. 그런데 산밑과 산꼭대기의 설정은 도반의 수도공간으로 긴요한 구실을 한다. 유례로 ꡔ삼국유 사ꡕ <피은>편에 있는 <포산이성( 包 山 二 聖 )>조에서 보면, 관기( 觀 機 )와 도성( 道 成 )이 포산의 남쪽 고개와 북쪽 굴에 각기 수도하며 거처하는데, 둘 사이의 거주 공간은 거리가 10여리 정도 떨어져 있었음에도 서로 긴밀하게 만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두 노인의 거주공간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두 노인이 10년 동안 열심히 수도를 하는데, 낯선 여성이 거처하는 공간에 찾아온다. 근엄한 수도자에게 여성이 찾아오는 설정은 불교설화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이다. 금욕적 계율을 내세우 고 있는 중세종교 불교설화에서는 여성은 금기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성의 출현은 수도자의 태도를 시험하는 긴요한 장치이다. 지방노인은 십년 공부가 허사가 될 수 없으니 여성을 재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지방노인은 계율의 엄격성을 지키면서 여성을 축출한다. 지방노인의 태도 는 당연한 것이나, 불교의 깨달음에서는 바람직한 짓이라 여기지 않는다. 날이 저물고 이슥한 장소에 찾아온 여성을 과연 내쫓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자리심( 自 利 心 )은 있 으나 이타심( 利 他 心 )이 없다. 지방노인은 탐방노인의 거주처를 알려준다. 탐방노인에게 찾아간 여성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시험을 하게 된다. 탐방노인은 이타심을 발휘해서 여성에게 저녁을 대접하고, 함께 잠을 청한다. 계율에 의하면 마땅히 탐방노인은 여성을 배척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태도로 여성을 대했다. 여성을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태도가 여기에 깃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29 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성은 더욱 난처한 주문을 해서 탐방노인을 한 차례 더 시험한다. 곧 아이를 출산하 겠다고 하고서 탯줄을 잘라달라고 한다. 부정한 것을 볼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면 마땅히 이 러한 요청을 거절해야 하지만 탐방노인은 더욱 이러한 행위를 부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래서 탯줄도 끊어주고, 마침내 여성의 몸을 씻겨준다. 게다가 여성이 탐방노인의 몸도 씻겨주는 것에도 응한다. 샅도 씻겨주고 라는 묘사 대목에서 원융자재하게 어울리는 탐방노인의 태도가 강조되어 있다. 탐방노인은 여인이 씻은 함지에서 목욕을 하다가 마침내 부처가 된다. 지방노인은 탐방노인 의 대처가 궁금해서 탐방노인의 거주처에 왔다가 탐방노인이 금부처가 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탐방노인은 도통해서 부처가 되었으나, 지방노인은 십년 공부가 허사가 된 셈이다. 계율에 얽매인 자신의 노력이 오히려 계율에 자재했던 탐방노인의 그것과 남달랐음을 말해준다. 지방노인과 탐방노인의 두 가지 태도는 설화 제보자나 일반 민중들의 관점에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깨달음이 완성되고 득도하여 부처가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방노인은 금부처가 된 탐방노인을 후손에게 연락하여 집으로 모셔가게 한다. 그리고 지방노인은 산중에 남아서 득도를 하기 위한 공부를 더한다. 이하의 과정에서는 제보자인 강신용의 평가가 이어진다. 강신용의 설화 자체 평가는 불교설 화에 관한 평가여서 더욱 주목된다. 금부처가 되어서 다시금 집으로 돌아갔다는 설정도 흥미롭 거니와, 깨달음의 효용성을 논하고 있는 설정이어서 더욱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집에서 머물 러 있으면서 금부처는 자식들의 극진한 공대에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으로 된다. 세속의 빈부귀 천이나 욕망에도 초연한 태도는 바람직하나,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에 돌아와도 그다지 신통한 일이 없다. 강신용은 그 점을 맹렬하게 질타하고 있다. 부처가 된 처지에서 이 설화를 보면 최상의 깨달음을 내세우고 있으나, 오히려 속세에 머물 러 있는 사람에게는 깨달음 자체가 무모하게 여겨질 정도로 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부처에 대 한 성속( 聖 俗 )의 변별성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자료라고 하겠다. 강신용은 압축적 으로 말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동안은 그저 내 맛나게 먹고, 내가 좋은 일도 보고, 나쁜 일도 보고 이래. 부처가 소냥이 없다고 그런 말 있다.(507면)
130 민속학연구 8호 설화의 결말에 명시되어 있는 이 말은 깨달음 자체에 대한 세속적 견지를 갈무리하고 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의식주에 시달리고 세사에 시달리는 것이 바람직하며 부처가 되어도 소용 이 없다고 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인간 이상의 부처는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 다. 이러한 관점은 인생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견해와 관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인생 다음의 세계나 보이는 것 이상의 세계를 지향할 때에 과연 이러한 견해가 온당 한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유가적 관점에서 말한 생의 의미는 이렇게 요약된다. 근심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 근심이 있구나. 천지만물의 조화를 타고 돌아가니, 다시 무엇을 구하리요( 憂 中 有 樂 樂 中 有 憂 乘 化 歸 盡 復 何 求 兮 ) 가 그것이다. 이 말은 이황이 미 리 지어놓은 묘갈명에 있던 말이다. 앞에서 설화 제보자인 강신용이 말한 바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강신용은 의식주와 희 노애락의 세사에 의미를 두었다면, 이퇴계와 같은 유학자들은 근심걱정과 즐거움이 상대적이며 상호작용 속에 놓인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운의 작용이 천지만물 의 조화로움이라고 깨달았다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세상에 머물면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깨우치 자는 유학의 경지와 강신용의 부처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깨달음은 정 도의 차이이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거듭 강조해도 좋다. 다만 궁극적인 지향점 을 어디에 두었는가에 따라서 종교나 세계관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부처가 되어도>는 불교설화이면서 불교설화가 아니다. 불교설화이 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지방노인 과 탐방노인의 대립적 태도가 이러한 사정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부처가 되어도>는 불교설화 가 아니다. 불교설화가 아니기 때문에 불교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들어가 있다. 깨달은 자인 부 처가 후손이 있는 집에 와서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하는 말 속에서 부처는 실제 생활에서는 그다 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불교설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가 되어도>의 비판적 견해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부처가 되어도>는 삶의 길이 무엇인가 거듭 반성하게 하는 진리 논 쟁의 설화이다. 첫 번째 길은 주어진 생애 동안에 인간의 기본적 욕망과 세사에 시달려 살아가 는 길이 있을 수 있다. 인간 자체가 누리는 삶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두 이러한 첫 번째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누리고 살면서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며, 부지불식 간에 우리가 누리고 있다 하겠다. 두 번째 길은 우리가 누리는 삶 자체가 무엇인가 반성하고 이 길이 무슨 길인가 반성하는 방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31 법이 있다. 누리는 삶에도 곡절이 있고 법칙이 있을텐데, 그것이 우주삼라만상의 일반적 법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따지는 길이 있다. 모르고서 사는 삶보다 알고서 사는 삶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으며 지식과 보편을 총합하는 삶이 있다. 이 설화에서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 지 않으나,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바로 그러한 길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길은 우리가 누리는 삶보다 궁극적인 무엇이 있다고 판단하고, 궁극적인 삶을 더 높 은 차원에서 구하려는 길이 있다. 그런데 그 길에 이르고자 하는 방법이 다시 두 가지로 나뉜 다. 하나는 엄격하게 세속적 삶과 결별해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 자체를 절제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을 멀리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하나는 욕망 자체를 벗어나고자 하는 계율 자체까지도 욕망의 일종이므로 세속적 대상과 어울려 살아야 욕망에서 벗어나 진정 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방식이 있다. 첫 번째 길은 인간 모두의 길일 수 있고, 이 설화에서는 강신용과 같은 제보자나 청자가 이 에 해당한다. 두 번째 길은 두 노인의 출가 동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득 도하겠다는 결단이 이에 해당한다. 세 번째 길은 두 노인의 궁극적 깨달음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노인은 얽매인 길을 갔고, 탐방노인은 자유로운 길을 갔다. 이 세 가지 길은 편의상의 구분 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 고양의 단계이거나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3. < 南 白 月 二 聖 努 肹 夫 得 怛 怛 朴 朴 >의 구비전승적 성격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ꡔ삼국유사ꡕ <탑상>편에 전해지는 자료이다. 전하는 내용이 길고 복잡하니 주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56) (1) 백월산양성성도기( 白 月 山 兩 聖 成 道 記 )에 이런 기록이 있다. (2)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 仇 史 郡 )의 북쪽에 있으며, 경관이 빼어난 진산이다. (3) 옛노인들이 서로 전해 들었다. (4)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못을 하나 팠더니 매월 보름 전날이면 못 가운데 산이 있고, 산에 는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꽃 사이에 은은히 비쳐 그림자가 나타났다. (5) 황제는 화공에게 명하여 형상을 그려서 천하에 사자를 보내 이 산을 찾게 했다. 56) 이재호 역, 1997, ꡔ삼국유사ꡕ, 솔.
132 민속학연구 8호 (6) 사자가 해동에 이르러 백월산( 白 月 山 )을 보니 그림과 꼭 같았다. (7) 사자는 진산인지 알 수 없어서 신 한짝을 사자암의 꼭대기에 걸어놓고 당나라에 돌아와 황제에게 고했다. (8) 산그림자가 못에 나타났으므로 황제는 이를 이상히 여겨 산이름을 백월산이라 이름을 하 사하고, 그 후에는 못 가운데 산그림자가 사라진다. (9) 백월산의 동남쪽에 선천촌( 仙 川 村 )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 두 사람이 사니 이름이 노힐 부득( 努 肹 夫 得 )이고, 다른 사람은 달달박박( 怛 怛 朴 朴 )이다. (10) 두 사람은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갸륵한 뜻이 있어서 스무 살이 되어서 마을 동북쪽의 영 밖 법적방( 法 積 房 )에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11) 두 사람은 치산촌( 雉 山 村 )의 법종곡( 法 宗 谷 ) 승도촌( 僧 道 村 )의 옛절이 수련할만하다는 말을 듣고, 함께 대불전( 大 佛 田 ), 소불전( 小 佛 田 ) 두 마을에서 각각 살았다. (12) 부득은 회진암( 懷 眞 庵 )에서 살고, 박박은 유리광사( 琉 璃 光 寺 )에 살았는데 처자를 데리 고 와서 살면서 산업을 경영하고 왕래하며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잊지 못했다. (13) 신세의 무상함을 느껴서 연화장의 세계를 가고자 했는데, 하루는 꿈에 백호( 白 豪 )의 빛 이 서쪽에서부터 오더니 빛 가운데 금빛 팔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졌는데, 깨어 확인하니 두 사람의 꿈이 꼭 같았다. (14) 드디어 백월산( 白 月 山 ) 무등곡( 無 等 谷 )으로 들어가 달달박박은 북쪽 고개 사자암( 獅 子 庵 )을 차지하고 판방( 板 房 )이라 하고, 노힐부득은 동쪽 고개 돌무더기 아래 물있는 곳 을 차지하여 승방을 만들어 뇌방( 磊 房 )이라고 했다. (15)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암자에 살면서 노힐부득은 미륵불을 근실히 구했고, 달달박박은 아미타불을 염송했다. (16) 3년이 채 못되어서 경룡( 景 龍 )3년 기유년(709) 4월 8일에 날이 저물려 하는데 나이 스 무 살 됨직한 아름다운 자태의 낭자가 향내를 풍기며 북암에 와서 재워주기를 청했다. (이내 글을 지어바쳤다.) (17) 달달박박은 사찰은 깨끗해야 하므로 여자가 올 곳이 못된다고 하고서 떠나라고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18) 낭자는 남암으로 찾아가서 앞서와 같이 청했다. (19) 부득은 어디서 왔느냐고 먼저 물으니 낭자가 湛 然 與 太 虛 同 體 何 有 往 來 但 聞 賢 士 志 願 深 重 德 行 高 堅 將 欲 助 成 菩 提 라고 하면서 게를 지어바친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33 (20) 부득은 낭자가 거처할 곳은 아니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일종이라고 하면 서 읍하고 낭자를 맞이한다. (21) 부득은 염불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데, 이윽고 밤이 다하려고 하자 낭자가 부득에게 산기( 産 氣 )를 고하고 짚자리를 부탁하자 불쌍히 여겨 그대로 시행한다. (22) 낭자는 해산을 다하자 목욕하기를 또 청하고 그대로 목욕통을 준비해서 낭자를 앉히고 물을 끓여 목욕을 시키자 향기( 香 氣 )가 진동한다. (23) 낭자는 부득에게 함께 목욕하기를 청하자, 부득이 마지못하고 응하니 정신이 상쾌해지 고 살결이 금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니 연화대( 蓮 花 臺 )가 있다. (24) 낭자가 자신은 관음보살이라고 하고, 대사를 도와서 대보리를 이룬 것이라고 하면서 홀 연 사라진다. (25) 한편 달달박박은 부득이 반드시 계( 戒 )를 더럽혔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비웃어주고자 찾 아왔다. (26) 와서 보니 부득은 연화대에 앉아서 미륵존상이 되어 광채를 내쏘이며 금빛으로 물들어 있다. (27) 박박은 머리를 숙이고 예를 갖추어 사연을 물은즉 부득은 사연을 말한다. (28) 박박은 탄식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옛날의 교분을 잊지 말라고 하며 도움을 청 한다. (29) 부득은 통에 금물이 남아 있음을 말하고 목욕을 하라고 하고, 박박 역시 남은 물에 목 욕을 하니 무량수불이 되어 두 부처가 엄연히 마주 앉는다. (30) 산 아래 백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우러르니 두 부처는 백성을 위해 불법의 요체( 要 諦 ) 를 설명하고 온몸이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31) 천보( 天 寶 )14년 을미년(755)에 신라 경덕왕이 왕위에 올라 이 사실을 듣고 정유년(757) 에 사자를 보내 큰 절을 세우고 백월산 남사라 하고, 미륵존상을 금당에 모셨다. 아미타 보살은 강당에 모셨는데, 남은 금물이 모자라서 몸에 두루 바르지 못했으므로 아미타불 상에 얼룩진 흔적이 있다. (32) 논평해서 말한다. (33) 찬한다. 다소 인용이 길어졌으나 자료의 일부만을 발췌해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원문을 충실하게 요 약해서 모두 제시했다. 제시된 서사단락을 크게 요약하자면 모두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134 민속학연구 8호 번째 부분은 (1)이다. (1)은 굳이 분리해서 다루지 않아도 되지만, 기왕에 연구자가 <백월산양 성성도기> 자체를 문제삼았으므로 분할해서 제시하기로 한다. 별도로 전하는 기록이기 때문에 이러한 내력을 밝혔으리라 짐작된다. 두 번째 부분은 (2)에서 (8)까지이다. 당나라의 황제가 조성한 연못에 산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에 그 산을 그림으로 그리게 해서 사자에게 찾게 하니 해동의 백월산 그림자였음을 알게 되었다는 대목이다. 이러한 내용의 삽화가 있는 까닭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곰곰이 따져볼 필요 가 있다. 그것은 불국토의 관념이 있다고 상정할 수 있다. 신라에서도 장차 중국과 다를 바 없 이 부처가 나타날 수 있다는 보편적 관념이 이러한 삽화를 형상화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래 서 황제의 꿈에 이러한 신이함이 구현되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표면적 인식에 불과하다. 두 번째 부분의 핵심은 중국에서 생긴 신이 한 일의 근거지가 해동이라는데 발상의 긴요함이 있다. 더구나 당나라 황제를 들먹이면서 백월 산의 경관을 내세우는 이유는 당나라와 신라를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대등하게 여기는 사고방식 이라 할 수 있다. 백월산의 탁월한 경관은 당나라 황제와 연계되어 있고,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 아 장차 성스러운 부처가 이 곳에 나타나리라는 조짐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부분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에 있어 전혀 예외적인 삽화가 아니라 두 성인 의 출현을 예고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ꡔ삼국유사ꡕ <탑상>편을 위시한 곳곳에서 중국과 해동 신 라를 연계시켜 설화의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고 있어 매우 흔한 발상인 동시에 설화적 이분법이 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해동에 찾아온 당황제의 신하가 백월산의 적실성 여부를 증명하기 위 해서 신 한 짝을 걸어놓은 행위 또한 불교설화에서 흔한 설정이다. 예컨대 <낙산이대성관음정취 조신>과 같은 대목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한 원효가 나무 아래서 발견한 신발 한 짝의 화소는 동 일한 발상의 소산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따라서 두 번째 부분은 확실한 기능을 하는 삽화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분은 (9)에서 (30)까지이다. 이 대목은 이 설화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선천촌에 거주하는 도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뜻을 세우고 지극히 염불해서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다. 그런데 두 도반이 스스로 염불했다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사실 은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부처가 되었다는 내용을 더 깊이 내세우고 있다 하겠다. 이들 세 인물 의 관계가 초월적인 차원에서 관계를 맺고 정리되었다면,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 것이 다.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갸륵한 뜻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번뇌와 욕망 속에서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 전하고자 하는 설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35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지닌 범부이다. 그러한 뜻을 가졌 으나 실제로 뜻을 행하거나 결단을 하지 못한다. 부처에 뜻은 있으나 속세에 머물러서 그 뜻을 실행하려고 한다. 그 과정이 (9)에서 (12)까지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부처에의 발원이 간절 하나 여전히 중생 세간에 머물러 있음을 말한다. 처자와 얽혀 있고, 수련을 한다고 해도 본격적 인 출세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3)에서 (15)까지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세간을 온전히 떠나는 출세간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생세간에 머물러서 호의호식하는 것보다 연화장의 세계에 이르러서 기이한 화초와 온 갖 새와 더불어서 깨달음을 증득하는 것이 훨씬 긴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출세간 의 조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두 사람의 꿈에 서쪽에서 백호의 빛이 비치고 금빛 팔 이 내려와 두 사람의 이마를 어루만진 꿈을 꾸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13)번 단락에서 상세하 게 구현된다. 이러한 꿈은 앞서 살핀 두 번째 대목과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부처가 되기 위 한 예고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황제와 연계된 해동신라 백월산에 진정한 부처가 나타났다 는 설정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상징적인 사건 자체가 출세간의 뜻과 연결되기도 한다. (14)와 (15)에서는 도반인 두 사람이 각기 장소를 차지하고, 어떠한 염불을 했는가 밝히고 있다. 달달박박은 북쪽 고개를 차지하고 아미타불을 염송했고, 노힐부득은 남쪽고개를 차지하고 미륵불을 염송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사람의 믿는 성향이 각기 차이가 있으나, 부처를 기원한 다는 점에서 같다. 아미타불을 염송하는 것은 현세불을 상정하는 것이고 미륵불을 염송한다는 것은 미래불을 상정하는 것이다. 아미타불과 미륵불을 염송하는 차이가 무엇인가 곰곰이 따져보 아야 할 사항은 아닌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이 중생세간에서 벗어나 출세간의 경 지를 염원하면서 수도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출세간의 경지는 다시 한 차례 비약을 가해야 뜻한 바를 이룩할 수 있다. 곧 스스로 의 깨달음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보살행을 행해서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문제가 정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단락이 곧 (16)에서 (30)까지이다. 그래서 속세에서 벗어났으나 다시금 속세의 문제까지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문 제가 명확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16)에서 (30)까지의 단락은 도를 닦고 있는 두 인물과 한 여인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 다. 달달박박, 노힐부득, 자태가 아리따운 낭자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은 진정한 깨달음은 세속적 욕망의 화신인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다. 달달박박은 밤중에 찾아든 낭자에게 사찰의 깨끗함을 내세워서 여성이 올 곳이 못된다는
136 민속학연구 8호 사실을 강조하며 여성을 축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세종교인 불교에서 여성을 속세의 비천한 상징으로 보는 것은 흔한 설정인데, 그러한 사고가 이 설화에서도 지속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하겠다. 달달박박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면서 낭자가 범접하지 못하게 했 다는데 수도자의 도리를 다한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늦은 밤에 갈 곳 없는 여성을 내쳐도 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면 온당한 태도로만 보기 어려운 면모가 있다. 자리심에 충만한 달달박박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노힐부득은 달달박박과 상이한 태도를 갖는다. 단락(19)에 제시된 바와 같이 노힐부득과 낭 자는 엄격한 태도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문답을 통해서 낭자의 처지를 헤아리게 된다. 그대는 밤을 다토아 어디에서 왔느냐( 汝 從 何 處 犯 夜 而 來 ) 는 노힐부득의 물음에 이미 진정한 깨 달음이 무엇인가 하는 가르침이 들어있다. 낭자가 말한 바는 담연( 湛 然 )함이 태허( 太 虛 )와 더 불어 한가지 몸인데, 어찌 오고감이 있겠는가? 단지 어진 선비의 뜻과 바램이 깊고 덕행( 德 行 ) 이 높다는 말을 듣고 도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드리고자 할 따름이라 고 했다. 이러한 문답 은 예사롭지 않다. 달달박박은 낭자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으므로 기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請 寄 宿 焉 因 投 詞 曰 行 遲 日 落 千 山 暮 路 隔 城 遙 絶 四 隣 今 日 欲 投 庵 下 宿 慈 悲 和 尙 莫 生 嗔 朴 朴 曰 蘭 若 護 淨 爲 務 非 爾 所 取 近 行 矣 無 滯 此 處 閉 門 而 入 ( 記 云 我 百 念 灰 今 無 以 血 囊 見 試 ) 달달박박은 낭자가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게를 하나 지어준 것에 유념하지 않았다. 나그네 걸음 늦어 해가 지니 천산이 저물고, 길은 성에서 멀어져 인가에 끊쳤다. 오늘밤 암자에서 자고 가려하니 자비로운 스님께서 노하지 마시오 라고 했다. 낭자의 딱한 처지를 글로 지어 바쳤는데 도 불구하고, 달달박박은 사찰은 정갈함을 임무로 하니 그대가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이곳에 서 지체말고 가라 고 하면서 문을 닫고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기( 記 )에서는 다르게 낭자에게 나의 온갖 생각은 재처럼 차게 식어 있으니 혈랑으로 나를 시험하지 말라 고 했다. 달달박박의 문답은 거절된 것이고 진행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노힐부득과 낭자의 문답은 본질적이고도 긴요한 것이다. 둘의 문답에는 진정한 깨달 음의 요체가 있다. 노힐부득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에 답한 것은 불교의 근본적 깨달음 이 있는 것이다. 곧 어찌 오고가는 것이 있겠느냐는 말 속에 팔불( 八 不 )의 요체가 있다. 나가르 쥬나가 말한 不 往 亦 不 出 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湛 然 與 太 虛 同 體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37 何 有 往 來 와 같기 때문이다. 낭자가 게송을 노힐부득에 지어바쳤는데, 그 게송에서도 중요한 암시가 계속된다. 가령 乞 宿 非 迷 路 尊 師 欲 指 津 이라고 하는데서 그 점이 확인된다. 곧 자고 가기를 청하는 것은 길을 잃었 기 때문이 아니라 스님에게 깨달음의 요체를 지시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힐부득은 낭 자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노힐부득이 한 말이 더욱 흥미롭다. 此 地 非 婦 女 相 汚 然 隨 順 衆 生 亦 菩 薩 行 之 一 也 況 窮 谷 夜 暗 其 可 忽 視 歟 이 땅은 부녀자가 더럽힐 땅은 아니지만, 그러나 중생의 순리에 따라서 행하는 것도 보살행 의 하나인데, 하물며 깊은 골짜기에서 밤이 어두우니 소홀하게 대접할 수 있을까 라고 했다. 노힐부득은 엄격하게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비심을 내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련한 처지의 여성을 위해서 보살행을 행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는 달달박박의 그것과 자못 다르다. 그런데 노힐부득과 낭자의 문답에 이어서 낭자는 산기가 있어서 짚자리를 깔아주기를 요청하 고, 더 나아가서 해산을 다한 뒤에는 몸을 씻겨주기를 바란다. 노힐부득은 이러한 요청을 거절 하지 않고 순순히 응하게 된다. 낭자는 노힐부득에게 함께 목욕하기를 권하면서 본색을 드러낸 다. 낭자는 관음보살이고 씻던 물은 금빛으로 변한다. 노힐부득이 관음보살의 지시대로 몸을 씻 고 연화대가 생겨서 그곳에서 미륵불이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남자가 부처가 되고자 하는 곳에 여성이 찾아오고, 찾아온 여성이 해산을 하며 몸을 씻겨주기를 희 망한다. 이러한 설정은 불교의 기본적인 계율과는 어긋나는 상황설정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중생심을 발휘하고 부정하고 비속한 여성과 어울려 행위를 해야만 숭고한 부처의 뜻 이 구현된다는 진리를 이렇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숭고하고 높은 뜻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나, 숭 고하고 높은 뜻을 혼자서 지키지 않고 비속하고 낮은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실천해야만 더욱 훌륭 한 것이라는 뜻을 밝혀서 더욱 중요하다. 자신만의 깨달음으로 아는 것이 긴요하지 않고 반드시 실천 하고 행위해야 값지다는 사실을 노힐부득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의 파계를 확인하려고 왔으나, 오히려 금빛 미륵불이 된 사실을 확인하 게 된다. 원융자재하던 노힐부득에게 예를 다하면서 옛날의 교분을 강조한다. 그러자 노힐부득 은 통에 남은 금빛 물에 몸을 씻으라고 한다. 마침내 달달박박도 남은 금빛 물을 얹어서 무량수 불로 된다. 노힐부득은 끝까지 달달박박을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공통점은 앞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깨달음에 뜻을 세우고 출세간을
138 민속학연구 8호 한 것에 있었다. 그러나 출세간의 처지에서 중생세간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있어서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노힐부득은 중생세간과 출세간을 원융자재하게 혼합해서 출출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출세간의 아라한이 겪을 자리심 만 추구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노힐부득의 이타행으로 말미암아 다소 모자라나 아미타불 또는 무량수불의 경지를 터득한다. 그 경지는 온전한 것이라기보다는 금빛이 온전하게 칠해지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16)에서 (30)까지의 단락에서 중요한 사실은 숭고한 뜻을 드러내는 설화인데도 불구하고 인 간사의 속된 일을 계기삼아 불교의 깨달음이 무엇인가 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불교적 경이를 말하는 불교설화와는 다르게 진정한 인간의 길이 무엇인가 반성하게 한다는 점이 긴요하다 하겠다. 평범한 삶 속에서 비범한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올곧게 밝히고 있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의 네 번째 부분은 백월산 남사의 조성경위이다. 709년에 있었던 신이한 행적을 757년에 경덕왕이 백월산 남사를 조성하는 불사 창건담으로 바꾸어 변형시키고 있다. 어찌보면 백월산 남사의 조성경위가 본질이고, 오히려 위의 세 부분은 네 번째 부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백월산 남사의 금당과 강 당에 봉안한 미륵불과 아미타불의 형상이 세 번째 부분의 금빛 물에 담구어 부처되는 내용 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709년에 있었던 서화의 내용이 757년에도 반복되었다는 것은 앞뒤 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757년에 있었던 조성경위 이야기가 역산되어서 꾸며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네 번째 부분의 경덕왕 백월산 남사 창건 설화는 연기설화의 성격이 뚜렷하다. 757년에 시작 한 불사가 764년 7월 15일에 절이 완성되었고, 부처를 안치하고, 액호를 각기 미륵불 존상은 현 신성도미륵지전( 現 身 成 道 彌 勒 之 殿 )이라 하고, 아미타불상은 현신성도무량수전( 現 身 成 道 無 量 壽 殿 )이라 했다고 전한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아미타불을 조성할 때에 금물이 모자라서 몸에 두 루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불상에 얼룩진 흔적이 있다고 전한다. 불상 조성 때에도 아미타불이 문제된 셈이다. 그것은 달달박박의 도가 부족한 것과 상통한다. 다섯 번째 부분은 일연의 논평과 찬시가 있는 부분이다. 낭자의 출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 가? 이 문제는 진실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연은 여성의 출현과 해산하는 까닭에 대해서 ꡔ화엄경ꡕ의 전례를 들어서 규명하려고 했다. 석가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십일지( 十 一 地 )에 머물 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 解 脫 門 )을 보인 것과 상통하는 것이고, 낭자로 화한 관음보살이 순산 한 뜻도 해탈문의 증도와 일치한다고 파악하고 있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39 일연의 논평도 일리가 있으나,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위대한 선지식이 사바세계에 모 습을 나타내어 해탈문을 제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처지를 바꾸어서 오히려 평범한 일 상의 견지에서 초월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도 있다. 깨달음의 세계인 출출세간의 경지라는 것은 일상의 평범함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분할되어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화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생명의 존속만이 새로운 비약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순간임을 밝혀서 말하고 있다. 해탈이나 깨달음은 일상적 진리의 화신이라는 사실을 거듭 되새 기게 한다. 관음이 출현하는 설화에서 관음은 흔히 여성으로 등장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일연의 견 해처럼 마야부인이 십일지에 머물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사실을 전 반적으로 관음설화에 확장하여 말하기 어렵다. 관음이 여성으로 등장하는 설화에서 남자 승려와 일정한 관련을 맺을 때에는 반드시 남녀관계로 설정되는 것이 예사이다. 이러한 사 실은 관음설화에서 남녀의 상호관계성에 관한 근원적인 고찰이 내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남성 혼자서 궁극적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인정하면 서도 여성과의 차별성을 인정하는데서 깨달음의 바른 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관음 설화에서 여성의 기능이 중요하다. 다섯째 부분에서 찬시도 아울러 존재한다. 찬시는 북암, 남암, 성랑( 聖 嫏 )인 관음 화신의 낭자 등에 대해서 기려 노래했다. 찬시는 ꡔ삼국유사ꡕ 전반에 두루 등장하는데, 이처럼 세 가지 찬시 가 동시에 나열되어 있는 조목은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승 일연의 이 편목에 대한 애착을 쉽사 리 간파할 수 있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어떠한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고 서술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 졌는가 반성해야 할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각도에서 검토되어야 함을 뜻한다. <남 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구전의 정착인가 아니면 순수한 창작인가? 그리고 한문기록이라는 사 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각도에서 기술되었는가 하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순수한 기록작품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문면에 서 그러한 사실이 직접 노출되어 있다. 白 月 山 兩 聖 成 道 記 云 이라고 했으니 분명히 <백월산양성성도기 >라는 기록을 옮겨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백월산양성성도기>는 어떠한 종류의 글 인가? 기왕의 논의에서는 이 글이 아마도 전기소설의 중간적 형태가 아닌가 추정한 견해가 있다. 57) 57) 박희병, 1998, 앞의 책, 69-70쪽.
140 민속학연구 8호 이러한 추정은 대체로 의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에 동의할 수 없다. 글 전체를 보면 승 일연의 치밀한 서술 방식에 대해서 살필 수 있는 구절이 적지 않다. 필요 한 대목을 뽑아서 제시하고 논의하도록 한다. (가) 白 月 山 兩 聖 成 道 記 云 (나) 古 老 相 傳 云 (다) 1. 鄕 傳 云 雉 山 村 誤 矣 2. 鄕 傳 云 夫 得 鄕 傳 誤 矣 (라) 記 云 我 百 念 灰 冷 無 以 血 囊 見 試 (마) 傳 曰 北 庵 (바) 1. 古 記 云 天 監 二 十 四 年 乙 未 法 興 卽 位 何 先 後 倒 錯 之 甚 如 此 2. 古 記 云 大 曆 元 年 亦 誤 (가)는 서두에 제시되어 있으니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의 근간이 되는 기록물이었음 을 시사받을 수 있다. (나)는 (가)의 기록물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별도로 첨가된 것인지 알기 어렵지만, 옛노인들에게 구비전승되는 측면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가)를 비롯한 전체의 기록 에 회의를 갖게 한다. (다)로 미루어보건대 (나)와 같은 부류로 시골에 전승된다는 뜻을 함의하 고 있으며, 향전이 그릇되었다고 비정하였으니 그 점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라)에서는 (가)를 뜻하는 것인지 별도의 기록을 뜻하는지 알기 어렵다. 다만 협주를 밝혔으니 별도의 기록 물로 보아야 하겠다. (마)는 전이라고 했으니 향전을 뜻하는지 별도로 전하는 바인지 밝혀놓지 않았다. (바)에서 옛날 기록이라 했으니 (가), (라)가 아닌 또 다른 기록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증좌이다. (가)에서 (바)까지의 기록은 승 일연의 ꡔ삼국유사ꡕ 서술에 관한 일관된 태도를 알 수 있는 증거인 셈이다. 기왕의 연구에서 ꡔ삼국유사ꡕ 글쓰기 방식의 의의에 관해서 상세하게 논한 바 있 다. 58) 그런데 (가)에서 (바)까지의 사례는 승 일연의 기술방식이 철저하고 서사성과 상징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물이라 할 수 있다. 기술방식이나 서술의 상이성을 극복하고 일관성을 유 지하려는 핍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58) 정천구, 1996, 삼국유사글쓰기 방식의 특성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0, ꡔ삼국유사ꡕ와 중 일 불교전기문학의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41 그런데 이러한 서술방식의 비정이 철저하게 요청되는 까닭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구전과 기록의 양측면이 서로 착종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생기 는 현상일 수 있다. (나), (다), (마)는 구전의 자료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가), (라), (바)는 기록 자체의 상관성으로 말미암아서 생기는 현상일 수 있다. 실제로 구전과 기록이 서로 구분되지 않고, 이미 일연이 ꡔ삼국유사ꡕ를 기술할 당시에도 넘나들고 있었다 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사리가 이렇다면 이제 본고의 핵심적인 문제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실마리가 되 었던 것은 구비전승되는 <부처가 되어도>와 ꡔ삼국유사ꡕ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이 어떠 한 연관성을 가지는가 밝히려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논의의 초점을 여기로 옮겨보기로 한다. 그 래서 구비전승과 문헌정착이 상당히 유관한 것을 밝힐 필요가 있다. <부처가 되어도>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의 서사단락비교를 하면 쉽사리 두 자료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부처가 되어도> --------------------------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 부(1) -------------------------- 남(9)(10)(11)(12)(13) (2) -------------------------- (14) (3) -------------------------- (15) (4) -------------------------- (16) (5)(6)(7) -------------------------- (18)(19)(20) (8)(9) -------------------------- (21) (10) -------------------------- (22) (11)(12)(13) -------------------------- (23)(24) (14) -------------------------- (25)(26) (15)(16)(17) -------------------------- -------------------------- (27)(28)(29)(30) 두 자료가 서술의 비중이나 묘사의 정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락별로 이러한 일치 를 보인다고 하는 것은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우선 공통점을 단락별로 의미를 부여해서 정리 하면서 검토하고자 한다. 부(1)(2)과 남(9)(10)(11)(12)(13)(14)(15)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은 곧 출가 및 수도 라고 할 수 있다. 두 인물이 속세에 뜻을 버리고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련하는 뜻을 실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4)와 남(16)(17)은 여성 요청에 관한 특정 인물 의 거절 이라고 할 수 있다. 부(5)(6)(7)과 남(18)(19)(20)은 여성 요청에 관한 특정 인물의 수 락 이라고 할 수 있다. 부(8)(9)와 남(21)은 여성의 출산을 공통점으로 한다. 부(10)과 남(22)는
142 민속학연구 8호 여성의 출산 후 목욕 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부(11)(12)(13)과 남(23)(24) 함께 목욕하다 가 목욕물이 금빛물로 변하기 라는 공통점이 있다. 동시에 여성과 아이가 홀연히 사라진다는 공 통점 역시 아울러 가지고 있다. 부(14)와 남(25)(26)은 여성 요청을 거절한 인물이 사태의 진 상을 깨닫고 후회하기 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자료의 서사단락이 갖는 공통점을 극단적으로 추상화하면 이렇게 정리된다. 두 인물이 부 처가 되기 위해서 출가하여 수도하다가, 여성이 나타나서 자고갈 것을 요청하나 한 인물은 거절 하고 한 인물은 수락한다. 여성의 요청을 수락한 인물은 여성의 해산을 돕고 여성과 함께 목욕 하다가 부처가 되는 행운을 누린다. 이러한 공통점은 각자의 차별성을 전제로 한다. 두 인물의 명칭이 차이가 난다. <부처가 되어도>에서는 산 밑의 지방노인과 산꼭대기의 탐방 노인이라고 되어 있으나,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에서는 북암의 달달박박과 남암의 노힐 부득이라고 되어 있다. 인물의 명칭 차이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경남 양산군에 전승되는 설 화 <원효산설화>에서는 노힐부득은 원효로 달달박박은 의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설화마다 제 각각임을 알 수 있다. 59) 인물의 명칭은 차이가 나더라도 인물의 구실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건에 있어서 결정적 차이는 부(15)(16)(17) 등에서 확인된다. 세 단락은 탐방노인이 금부처가 되었으므로 자손에게 연락해 모셔가도록 하고 그 뒤에 사정을 기술한다. 깨달음 을 얻었으나 음식과 희노애락을 맛볼 수 없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관 점에서 부처 무용론을 전개하고 있다. 남(27)(28)(29)(30) 등은 이 자료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다. 노힐부득의 도움으로 달달박박이 부처가 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가 되어도> 에서는 지방노인은 도를 더 닦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둘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에 따라서 두 가지 자료는 결정적 차이가 된다. <부처가 되어도>는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속세를 초월하는 부처 무용론을 전개한 이야기 이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속세를 초탈하고자 하나, 평범 한 일상생활을 온전히 거부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이야기는 공통의 내용을 색다른 관점에서 평가한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가 되어도>는 범인의 견지에서 부처의 쓸모 없음을 논한 것이고,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부처가 되더라도 부처의 바른 길은 일상적 생활을 초월하자는 것이 아니고 깨달은 바를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를 강조점을 달리해서 두 자료를 형성시켰다고 하겠으며, 두 59) 이재호 역, 1997, ꡔ삼국유사 2ꡕ, 솔, 106쪽.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론하기로 한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43 편의 이야기는 한 가지에서 나온 것이다. 구전과 기록의 설화 내용이 다르지 않다고 하는 사실은 구비전승의 심층적 작용이 이면과 표 면의 양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니 <부처가 되어도>와 <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구전과 기록의 결과물이지만, 같은 내용을 별도로 가지고 있음 을 보여준다. 그러한 관점에서 구전과 기록은 절대적이지 않고 상호보완적이라는 점을 항상 상 기시켜 준다. 그런 점에서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을 전기소설이라고 하는 견해는 재고되 어야 마땅하다. 기록이 지니는 세부적 묘사력과 서사의 풍부함은 어떻게 보면 구전의 골격에 견 주어서 그 이상의 의의가 있다 할지 모르겠으나, 구전의 소박한 전승력을 우선할 수 있다고 판 단되지 않는다. 각도를 달리해서 본다면 구전과 기록은 일정한 경계면을 두고 지속적인 교섭작용과 준별작용 을 거듭해왔다고 판단할 수 있다. 구비전승의 생명력은 핵심적인 줄거리를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지속시키면서도 변형시키는 원리에 있다. 기록 정착의 특성은 핵심적인 줄거리에 의존 해서 표현을 미세하게 하고 군더더기를 다채롭게 부착시킬 수 있는데 있다. 구전과 기록은 저마 다의 특성에 입각해서 각자의 특성에 맞는 전통을 유지해왔으나 특정한 국면에서 두 가지 자료 가 비교되기에 이르렀다. <부처가 되어도>는 1980년에 채록된 자료인데, 13세기에 정비된 <남백 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의 자료와 비교하니 핵심적이 서사내용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이로써 증명되었다. 구전과 기록의 근간 내용이 같다고 하는 사례는 풍부한 예증을 통해서 확장하여 다룰 수 있 다. 기존의 연구에서 구전설화와 문헌설화를 함께 연결해 다루려고 한 것은 이와 같은 각도에서 심대한 의미가 있다. 60) 이러한 논의에서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방법은 구조적 유형의 일치 여부와 차이점을 논의하는 방식이다. 구전설화와 ꡔ삼국유사ꡕ 소재 설화를 고유명사까지 일치하 는 유형, 흔한 유형의 대응, 특이한 유형의 광범위한 구전 등으로 비교해서 논의한 것이다. 구조 적 유형의 관점에서 구전과 기록의 자료를 비교하는 것은 흔한 유형의 비교이므로 의의가 있으 나, 유형에 소속되지 않고 직접적인 대응을 이루는 자료를 다룰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부처 가 되어도>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구조적 유형을 이루지 않는 특이한 자료인데, 핵 심적인 줄거리가 일치하는 자료이다. 60) 강진옥, 1989, 구전설화 유형군의 존재양상과 의미의 층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논문. 임재해, 1990, ꡔ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ꡕ, 지식산업사. 김대숙, 1995, ꡔ한국설화문학연구ꡕ, 집문당.
144 민속학연구 8호 예외적인 자료일 것 같은 두 자료를 통해서 구전과 기록의 심층적 공통기저를 발견한 것만으 로도 소중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ꡔ삼국유사ꡕ에 수록된 설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 다. 특정시기에 편집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구전과 여러 층위에서 일치되는 면모를 지 닌다. 61) 그런데 일치되는 층위에 대한 대응관계에서 새롭게 첨가시켜야 할 문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13세기 이래로 구전이 지속된 자료에 관한 다각도의 고찰이 요망된다는 사실이다. 구조 적으로 대응되는 자료는 이러한 문제점이 그 자체로 해소되지만, 자료가 드물고 특이하고 예외 적이기까지 한 자료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고민이 생긴다. <부처가 되어도>와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구전과 기록의 양 측면에서도 소중한 자 료이다. 채록된 시기가 다르고 설화의 내용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주체가 다르다고 하더라 도 동일한 설화의 내용을 별도의 방식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 긴요하다. 특히 사람이 부처가 된다는 불교설화의 내용을 부정하고 있으면서도 온전히 그 골격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설화전승의 행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증거물이 된다. 두 자료는 진리를 추구하거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동일한 면모가 발견된 다. 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인생의 희노애락과 욕망에 얽혀서 사는 길이 있다. 그것을 알고 사는 것이든 모르고 사는 것이든 우리는 거의 이러한 삶에서 자유 롭지 못하다. 두 번째 방법은 삶의 세속적 욕망과 일상사에서 초탈하고자 하는 길이 있다. 바람 직한 삶을 생각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세 번째 방법은 초월적인 삶의 길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금 세속적 삶을 다시 살아보는 실천의 길이 있다. 초탈하는 세속적 삶이 다 시 이 세상에 돌아오는 길임을 깨닫는 길이다. 떠나는 길이 되돌아오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알아야 한다. <부처가 되어도>에서는 이 세 가지 길이 상세하게 드러난다. 화자와 청자의 경우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삶을 벗어나고자 지방노인과 탐방노인처럼 속세를 떠나는 길이 다음의 방책이다. 속세를 떠났어도 지방노인처럼 엄격하게 사는 길이 있고 탐방노인처럼 남에게 한없이 관대해서 일상의 삶을 긍정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해서 비범한 삶을 사는 비법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길이다. 지방노인의 길은 계를 지키는 수도자의 길이지 만 성인의 길은 아니다. 탐방노인의 길은 수도자의 길을 넘어서 성자의 길을 간다고 하겠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첫 번째 길은 예사사람 누구나 누리는 61) 조동일, 1989, ꡔ삼국시대설화의 뜻풀이ꡕ, 집문당.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45 삶이다. ꡔ삼국유사ꡕ를 읽는 독자나 작가까지도 이러한 길에서 결단코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런데 두 번째 길은 예사사람이기를 거부하고 초월적인 세계의 길을 나서는 삶이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바로 이러한 길을 흠모했다. 세 번째 길은 속세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이 다. 그 지점에서 노힐부득의 길과 달달박박의 길이 갈라졌다. 노힐부득은 자신의 계율에 엄격하 면서도 세속의 중생에게는 관대했으니 이것이 성자의 길이다. 달달박박은 자신의 계율에 엄격하 고 중생에게도 엄격했으므로 이것은 수도자의 길일 따름이다. 세 가지 길을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부처가 되어도>는 세 번째의 길을 부정하고 첫 번째의 길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불교의 깨달음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반면에 <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세 번째의 길을 긍정한 설화이다. 그래서 불교설화에서 성자전 의 길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부처가 되어도>는 성자전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설화도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길을 기본설정으로 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 세 가지 길은 의식의 각성 정도에 따른 차이이면서 실천여부에 따른 구분임을 깨닫게 된다. 첫 번째 길은 이른바 세간( 世 間 )의 중생( 衆 生 )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 과 의식주에 얽매인 삶의 길이다. 두 번째 길은 세간의 삶을 벗어나서 의식적 각성을 이룬 삶이 다. 중생이나 범부의 삶에서 초탈하여 새로운 각성을 이룬 길이다. 두 번째 길은 세간의 삶을 벗어나서 의식적 각성을 이룬 삶이다. 중생이나 범부의 삶에서 초탈하여 새로운 각성을 이룬 삶 이다. 그것은 출세간( 出 世 間 )의 보살( 菩 薩 )에 해당한다. 속세의 번뇌와 고민을 딛고 수도하고, 정진하는 삶이다. 세 번째 길은 출세간의 삶을 한 차례 고양시킨 길이다. 그것은 출출세간( 出 出 世 間 )의 부처( 佛 陀 )의 길이다. 세간의 부정이 출세간이라면, 세간의 부정의 부정이 출출세간이 다. 세간의 부정의 부정은 곧 세간의 긍정이 된다. 결국 출출세간은 출세간의 부정인 동시에 세 간의 긍정이므로 이러한 자취를 보여주는 것이 노힐부득이나 탐방노인의 길이다. 이들의 길은 자신의 삶에 엄격하고 남의 삶에 관대하게 베푸는 성자의 삶이자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의상( 義 湘 )식으로 한다면, 기세간( 器 世 間 ), 중생세간( 衆 生 世 間 ), 지정각세간( 智 正 覺 世 間 ) 등으로 전개할 수 있다. 어떠한 길이 바람직한가 하는 설화적 진리논쟁이 <부처가 되어도>와 <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에 깃들어 있으며, 저마다의 고유성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4. 마무리 이 글은 구전설화 <부처가 되어도>의 설화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설화가 지니는 의의가
146 민속학연구 8호 무엇인가 규명하고자 했다. 이 설화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설화의 소재적 측면에서 해명할 수 있는데, 제보자 강신용의 특성과도 일정한 관계를 지니고 있 다고 말할 수 있다. 강신용은 다양한 종류의 설화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화의 가지수도 풍부하게 소유한 제보자이다. 그가 제공한 이 설화는 불교설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에 대 한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서 본격적인 검토가 요청되었다. 둘째, 이 설화는 ꡔ삼국유사ꡕ 소재 설화와 내용적 공통점이 있어서 구전과 기록의 양 측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적절한 본보 기가 되기 때문이다. 비교의 도달점은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자못 달라지겠으나, 동일 한 소재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부처가 되어도>의 설화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제보자의 특징, 제공한 설화 자료의 성격, 실제 설화의 특성, 설화의 구조 분석 등을 통해서 다각도로 분석하여 규명하려 했다. 제보 자는 한문수업을 받지 못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유식한 인물전설이나 역사적 소재의 이야기에 밝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신이한 이야기도 전승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제보자 강 신용의 구비전승 자료에 관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 <부처가 되어도>는 삶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 설화임이 밝혀졌다. 이야기를 하 고 듣는 일상적 인간 군상들이 지향하는 삶의 길이 한 층위라고 할 수 있다. 제보자 강신용은 이 러한 차원에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한 각도에서 이야기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그러한 층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야기에서는 좀 더 나은 삶, 그리고 세속의 욕망에 서 벗어나는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층위도 존재한다. 그래서 지방노인과 탐방노인은 세속적 삶을 부정하고 출가를 하고 수도한다. 출가 후 수도하는 지향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깨달음의 길이 갈라지니 그것이 곧 세 번째 층위이다. 지방노인의 길은 계율의 엄격한 길을 걷고, 탐방노인은 자 신의 엄격성을 지키되 남에게 관대한 성자의 길을 가서 마침내 부처가 되었다. <부처가 되어도>는 첫 번째 층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으므로 세 번째 층위의 탐방노인이 보여준 행적을 부정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일종의 부처무용론으로 불교설화를 부정한 설화이다. <남백월이성노힐부득달달박박>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복합되어 있는 설화이다. 대체로 다섯 가지의 내용이 겹쳐져 있는데, 핵심이 되는 내용은 세 번째 대목이고 구전설화 <부처가 되어도> 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대목에 관한 의미를 따져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결 과 설화의 의미층위 역시 셋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밝혀졌다. 첫 번째 층위는 예사사람의 층위이 다. 이 설화를 읽고 쓰는 독자이다. 그리고 부처의 설법을 듣고자 모여들었던 산 아래의 백성 ( 山 下 村 民 聞 之 競 來 瞻 仰 ) 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 층위는 세속적 삶을 부정하고 초월적 삶을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47 지향하는 부류들의 관점이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곧 이러한 자세를 견지한다. 이 세상을 떠 난 곳에 뜻을 두고 출가한 것이 이러한 삶의 자세를 말한다. 세번째 층위는 세상을 초탈했으면 서도 다시금 이 세상의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지점에서 노힐부득의 길과 달 달박박의 길이 갈라졌고, 이 설화에서는 노힐부득의 길을 긍정하고 있다. 두 설화는 소재, 구조, 세계관 등에 있어서 유사성을 보인다. 채록된 시기가 근 700년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통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구전과 기록의 상호관계를 재인식해야 하는 점을 시사한다. 종래의 학계에서 이러한 견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전과 기록의 상 관성은 유형구조의 일치에 의한 일반적 사례에만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유형구조의 공통 점을 넘어서서 유형구조에서 벗어나는 소재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논의를 밀착시켜야 위의 두 가지 설화와 같은 용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부처가 되어도>와 <남백월이성노힐부 득달달박박>은 구전과 기록의 지속적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희한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별도 의 전승 경로를 통해서 놀라운 일치점을 보여준다. 자료의 대응은 새삼스러운 논의를 할 수 있 는 기본적인 입각점임을 깨닫게 된다. 두 설화에서 문제된 세 가지 길은 설화 속에 잠재된 진리 논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런 데 이러한 길은 정립된 개념으로 논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세간( 世 間 )의 중생( 衆 生 ), 출세간 ( 出 世 間 )의 보살( 菩 薩 ), 출출세간( 出 出 世 間 )의 부처( 佛 陀 ) 등이 적절한 용례와 개념이다. 이러 한 구분을 의상( 義 湘 )식으로 한다면, 기세간( 器 世 間 ), 중생세간( 衆 生 世 間 ), 지정각세간( 智 正 覺 世 間 )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어떠한 구분법을 택하든 세 가지 길의 구분에 공통점이 있음을 깨닫 게 된다. 세 가지 길은 절대적인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더 나 아가서 서로의 차별성을 넘어서서 변증법적 합일성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설화의 진리 논쟁과 철학적 개념 구분은 상통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 본 논문은 심사 과정에서 대체로 여섯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 적절 하다고 생각되며, 완성도 높은 논문이 되기 위해서 그 점을 이어받아 수정하는 데 활용하고자 한 다. 여섯 가지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자료 검증 미비에서 비롯된 논리적 취약성, (나)연역적 전제에서의 탈피, (다)문장 표현의 문제, (라)구전과 기록의 전승경위에 대한 섣부른 추단, (마)작위적인 논문 구성, (바)번다한 내용의 전개 등이 지적된 사항이다. 이러한 문제 지적 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하나, 이렇게 응답하고자 한다. (가)이 논문은 <남백월이성 노힐부득 달달
148 민속학연구 8호 박박>에 대해서 구비전승의 비교연구이므로 동일한 소재의 설화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취약 성이 있다. 다만 유사한 문헌설화가 있으나 연구가 요청되므로 별도의 논문으로 완성하고자 한 다. (나)귀납적 접근으로 밝힐 수 있는 진리와 연역적 방법에 의해서 밝힐 수 있는 진리는 같은 것인가 의문이다. (다)이 문제는 필자의 치약점이니 받들어서 고치고자 한다. (라)구전과 기록의 문제는 큰 문제이면서 작은 문제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그러한 문제 가운데 한 편의 문헌설화와 구전설화를 두고 다룬 것이므로 전반적인 문제로 확장하지는 않고자 한다. (마)작위적인 논문 구 성이라는 말은 일견 타당하나, 번쇄한 글쓰기를 한 것이 아니고 자료가 갖는 의미를 강조하다가 그러한 작위성을 노출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바)는 군더더기가 많다고 하는데, 이것은 학문의 관점과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자료없이 번다한 논의를 공전시키는 것에 이제 새로운 방법의 글쓰 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다소 군더더기가 많은 글을 썼다. 지적된 문제에 성실히 반응하고 완 성도 높은 글로 보답하지 못하는 것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49 참고문헌 강진옥, 1989, 구전설화 유형군의 존재양상과 의미의 층위, 이화여자대학교 박사논문. 고운기, 1993, 일연의 세계인식과 시문학 연구,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김대숙, 1995, ꡔ한국설화문학연구ꡕ, 집문당. 박성지, 1996, 삼국유사 소재 불교설화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박희병, 1998, ꡔ한국전기소설의 미학ꡕ, 돌베개. 이재호 역, 1997, ꡔ삼국유사ꡕ, 솔. 임재해, 1981, ꡔ한국구비문학대계7-7(경상북도 영덕군)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ꡔ설화작품의 현장론적 분석ꡕ, 지식산업사. 정천구, 1996, 삼국유사 글쓰기 방식의 특성연구,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0, ꡔ삼국유사ꡕ와 중 일 불교전기문학의 비교연구,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조동일, 1987, 삼국유사설화와 구전설화의 관련양상 ꡔ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ꡕ, 한국정신문화 연구원., 1989, ꡔ삼국시대설화의 뜻풀이ꡕ, 집문당., 1990, 불교설화에서 본 숭고와 비속 ꡔ삼국시대 설화의 뜻풀이ꡕ, 집문당. Jack Goody, 1977 The Interface between the oral and the written, Cambridge University.
150 민속학연구 8호 ABSTRACT Continuity and Change of Oral Tradition Kim Heon-Seon (Kyunggi University) This article is to reveal the outcome of data analysis. The case of ꡔNambaekworiseong Nohilbudeuk Daldalbakbakꡕ collected in ꡔSamgukyusaꡕ is compared with other data of oral tradition. As a result, one-fourth of Becoming Buddha, one of traditional data, is identical with the above work. This fact may disclose the continuity and change of oral tradition. Becoming Buddha gives rise to a controversy about the truth of Buddhist story. This story and other stories introduced in ꡔSamgukyusaꡕ have uplifted three levels of meaning: a thought of man leading an ordinary life, a thought of Arahan who has overcome the previous situation, a thought of Buddha who has overcome many things. Therefore, the meaning of Buddhist story may be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story ordinary people have interests in. In the story of oral tradition, the meaning of Buddha from the perspective of ordinary people is emphasized while in literary documents delivering from worldly existence has accentuated. In this context, I try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stories of oral tradition and Buddhist stories.
구비전승의 지속과 변천 151 中 文 提 綱 口 碑 傳 承 的 持 續 與 變 遷 金 憲 宣 ( 京 畿 大 學 校 ) 本 論 文 的 主 要 目 的 是 介 紹 資 料 硏 究 的 結 果 本 文 把 三 國 遺 事 中 記 載 的 文 章 與 口 傳 的 資 料 進 行 了 比 較 經 過 比 較 後 認 爲 現 在 口 傳 資 料 中 的 一 篇 卽 使 成 了 佛 與 以 上 的 資 料 在 1/4 的 程 度 上 帶 有 相 似 性 筆 者 認 爲 從 這 兒 能 夠 看 到 口 碑 傳 承 的 持 續 和 變 遷 卽 使 成 了 佛 一 文 是 引 起 佛 敎 說 話 中 眞 理 論 辯 的 一 篇 文 章 這 篇 ꡒ 說 話 ꡓ 與 記 載 在 三 國 遺 事 中 的 ꡒ 說 話 ꡓ 故 事 所 具 有 的 意 義 大 體 可 分 爲 3 個 層 次 : 以 凡 夫 俗 子 的 身 份 平 凡 地 生 活 在 凡 間 的 想 法, 克 服 這 種 想 法 ꡒ 出 世 間 ꡓ 而 成 爲 羅 漢 的 想 法, 再 一 次 克 服 後 通 過 ꡒ 出 出 世 間 ꡓ 成 佛 的 想 法 佛 敎 的 ꡒ 說 話 ꡓ 故 事 和 一 般 人 所 想 的 ꡒ 說 話 故 事 在 含 義 上 有 可 能 存 在 着 差 異 口 碑 傳 承 的 ꡒ 說 話 ꡓ 中 所 强 調 的 是 凡 人 所 理 解 的 佛 的 含 義, 而 在 文 獻 ꡒ 說 話 ꡓ 中 所 强 調 的 是 ꡒ 出 出 世 間 ꡓ 的 含 義 本 文 的 這 些 硏 究 揭 示 了 ꡒ 口 傳 說 話 ꡓ 和 ꡒ 佛 敎 說 話 ꡓ 的 相 關 點
152 민속학연구 8호 日 文 抄 錄 口 碑 伝 承 の 持 続 と 変 遷 金 憲 宣 ( 京 畿 大 学 校 ) この 論 文 では 三 国 遺 事 に 収 録 されている 南 白 月 二 聖 努 肹 夫 得 怛 怛 朴 朴 の 事 例 を 取 り 上 げ, 口 碑 伝 承 資 料 と 比 べてみた その 結 果, 現 在 伝 承 資 料 の 一 篇 であるカンシンヨン 口 述 の 仏 がなっても は 上 記 の 資 料 と 四 分 の1 程 度 の 一 致 を 共 通 的 に 示 している これは 口 碑 伝 承 の 持 続 と 変 遷 を 示 すことといえる 仏 がなっても は 仏 教 説 話 の 真 理 如 何 をめぐる 論 争 を 起 こしている 作 品 である この 説 話 と 三 国 遺 事 所 載 の 説 話 は 大 いに 三 つの 意 味 あいを 有 しているが, 衆 生 として 平 凡 に 暮 している 人 々の 考 え 方,それを 乗 り 越 えて 出 世 間 の 阿 羅 漢 の 考 え 方,それをまた 克 服 して 出 世 間 の 仏 のような 考 え 方 などを 段 階 的 に 高 めさせる 作 品 であるといえる こうみていくと, 仏 教 説 話 的 観 点 からみた 意 味 と 普 通 の 人 々の 思 う 説 話 の 意 味 とは 違 うはずである 口 碑 で 伝 承 される 説 話 では 凡 俗 な 人 々が 想 像 する 仏 の 意 味 が 強 調 されている 反 面, 文 献 説 話 においては 出 世 間 の 意 味 が 目 立 っている それで 口 伝 説 話 と 仏 教 説 話 にどのような 相 違 点 があるのかを 究 明 しようとしたの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