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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 언양의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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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51 창화현이라고도 한다. 현종 9년(1018) 양주에 예속시 키고 후에 감무를 두었는데, 본조(조선) 태조 6년 (1397)에 양주에서 치소를 이곳 견주로 옮겼다가 뒤 에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지금의 古 州 內 이다. 라고 하여 두 기사간에 다소의 차이점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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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지동동 산28-1번지 외 4필지 태양광발전소건립부지 내 문 화 재 지 표 조 사 보 고 서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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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2008 겨울호 제31권 제4호(통권 113호) pp. 131~162. 硏 究 論 文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박 정 애 * 1) Ⅰ. 머리말 Ⅱ.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정 Ⅲ. 17~18세기 山 水 版 畵 의 유형과 특징 Ⅳ. 朝 鮮 後 期 實 景 山 水 畵 에 미친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I. 머리말 중국미술사에서 판화는 일반회화 못지않게 오랜 역사를 지니며 일찍부터 각종 경전과 실용서의 이해를 돕는 데 활용되었다. 회화사적으로는 옛 대가의 작품들이 판화로 제작 유포됨으로써 특정 주제와 양식이 정형화되고 확산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글에서 다루는 山 水 版 畵, 즉 實 景 山 水 版 畵 는 17~18세기에 걸쳐 비약적으로 발전 한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산수판화 는 실재하는 산수경관을 내용으로 하는 판화를 지칭하며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자연경을 담은 山 水 畵 譜 와 대칭되어 쓰인다. 이러한 중국 산수판화의 발생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소로는 方 志 와 實 景 山 水 畵 가 있다. 대개 어떤 지역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적 내용을 실은 방지에 는 지도나 경관을 도해한 삽도가 게재되었다. 초창기 산수판화에 지도와 地 理 圖 說 의 성격이 복합되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송대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실경산 * 한국산업기술대 강사, 회화사 전공(inh87@yahoo.co.kr).

132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수화는 시대가 내려오면서 산수판화의 밑그림 역할을 하게 되었다. 1) 특히 명대에 는 沈 周 이후 소주화단에서 실경산수화가 널리 유행하였고, 명말청초에도 기행문 학과 실경산수화 제작이 성행하였다. 2) 이는 萬 曆 年 間 (1573~1620) 강남지역을 중 심으로 번성했던 출판인쇄 문화와 조응하며 산수판화가 흥기하는 데 일조하였다. 3) 17세기를 전후하여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한 산수판화는 역으로 실경산수화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는가 하면 점차 독자적 위상을 확보해 나갔다. 따라서 산수판화에 대한 고찰은 판화는 물론 동시기 회화의 흐름을 파악 하는 데도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중국판화사 전체를 개관 하면서 단편적으로 다루거나 특정 화파나 작가론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하는 경향을 보였다. 4) 최근 들어 개별 산수판화집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5) 이에 산수판화 자체에 초점을 맞춘 종합적 접근이 요청된다. 명ㆍ청대 실경산수화 및 일반회화와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考 究 를 통해 그 의의를 구체화시 키고, 당시 판화집이 조선에도 전래된 만큼 조선 화단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 것 도 현재진행형의 과제이다. 이 글에서는 17~18세기 중국 산수판화집의 형성과 그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자 1) 朴 恩 和, 元 代 의 實 地 名 山 水 畵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221ㆍ222(1999), 111~142쪽; 宮 崎 法 子, 南 宋 時 代 における 實 景 圖, 嶋 田 英 誠 ㆍ 中 澤 富 士 雄 ( 編 ), 世 界 美 術 全 集 東 洋 編 (6): 南 宋 ㆍ 金 ( 東 京 : 小 學 館, 2000), 149~150쪽 참조. 2) Edwards, Richard, The Field of Stones: A Study of the Art of Shen Chou(1427~1509), Freer Gallery, 1962; Cahill, James, PARTING AT THE SHORE: Chinese Painting of Early and Middle Ming Dynasty, 1368~1580(New York: Weatherhill, 1982), pp. 82~96; 리차드 에드워즈(저)/한정 희(역), 中 國 山 水 畵 의 世 界 (도서출판 예경, 1992), 73~126쪽; 韓 正 熙, 17~18세기 동아시아에서 實 景 山 水 畵 의 성행과 그 의미, 美 術 史 學 硏 究, 237(2003), 135~141쪽; 劉 順 英, 明 代 吳 派 의 蘇 州 實 景 圖 硏 究, 홍익대 석사학위논문(2003). 3) 오오키 야스시(저)/노경희(역),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 (소명출판, 2007), 15~182쪽 참조. 4) 王 伯 敏, 中 國 版 畵 史 ( 臺 北 : 蘭 亭 書 店, 1986); 馮 鵬 生, 中 國 木 版 水 印 槪 況 ( 北 京 : 北 京 大 學 出 版 社, 1999); 고바야시 히로미쓰(저)/김명선(역), 중국의 전통판화 (시공사, 2002); Kobayashi, Hiromitsu and Sabin, Samantha, The Great Age of Anhui Printing, Shadows of Mt. Huang: Chinses Painting and Printing of the Anhui School(Berkeley: University Art Museum, 1981), pp. 25~33; 小 林 宏 光, 版 畵 と 版 本, 西 岡 康 宏 ㆍ 宮 崎 法 子 ( 編 ), 世 界 美 術 全 集 東 洋 編 (8): 明 ( 東 京 : 小 學 館, 1999), 335~344쪽 참조. 5) 崔 玎 妊, 三 才 圖 會 와 朝 鮮 後 期 繪 畵, 홍익대 석사학위논문(2003); 박도래, 明 末 淸 初 期 蕭 雲 從 (1596~1669)의 山 水 畵 硏 究, 홍익대 석사학위논문(2004).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33 한다. 17세기 초 본격화되는 산수판화의 성립 및 전개 양상을 일별하면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산수판화는 지리도설을 보완하는 삽도로 기능하 는 인문지리적 성격에서 출발하였다. 이어서 순수회화적 요건이 강화되는 방향으 로 이행되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들 유형의 발전적 면모가 수렴 되고 집대성되는 성과도 발견된다. 따라서 두 유형으로 범주화시킴으로써 전체 윤 곽을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주요 산수판화집에 담긴 실경적 요 소, 상호간의 연계성, 실경산수화와의 관련성 등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간의 연구 성과에 새로운 사실을 더해 중국 산수판화가 조선후기 실경산수화에 미 친 영향을 살피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산수판화의 미술사적 위상을 정립하고 한국과 중국의 실경산수화 연구를 심화시키려는 노력의 일단이다. II.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정 중국판화사상 산수표현은 북송대 불교판화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원대 희곡 과 명대 소설 삽화의 배경, 그리고 顧 氏 畵 譜 (1603)와 같은 山 水 畵 譜 에 산수표현 이 쓰였다. 6) 하지만 실경을 내용으로 하는 산수판화는 명대 만력연간 판화의 생산 지가 확대되고 저변화되면서 비로소 독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15~16 세기에 간행된 黃 山 圖 經 (1462), 吳 江 志 (1488), 大 岳 志 略 (1537), 西 湖 志 類 鈔 (1579) 등의 방지나 안휘성 신안에서 간행된 方 氏 墨 譜 (1588)와 程 氏 墨 苑 (1606) 같은 墨 譜 에 포함된 판각본 산수도가 주목된다. 특히 묵보는 문인화가 丁 雲 鵬 (1547~1627?)이 밑그림에 참여한 것으로 정련된 판각기법과 함께 실경의 黃 山 圖 가 포함되어 눈길을 끈다. 본격적인 산수판화집의 효시는 1607년에 간행된 三 才 圖 會 이다. 이어서 1609년에 海 內 奇 觀 이, 1633년에는 名 山 圖 가 간행되 었고 1648년에 太 平 山 水 圖 가 출간됨으로써 대표적인 4대 산수판화집이 완간되 었다(표 참조). 이들은 모두 낱폭이 아니라 수십 혹은 수백 폭이 엮어진 판화집으 6) 송혜경, 顧 氏 畵 譜 와 조선후기 화단, 홍익대 석사학위논문(2002); 河 香 朱, 조선후기 화단에 미 친 唐 詩 畵 譜 의 영향, 동국대 석사학위논문(2004); 朴 玟 貞, 明 ㆍ 淸 代 通 俗 文 學 揷 圖 의 硏 究, 홍 익대 석사학위논문(2005); 劉 順 英, 明 末 淸 初 의 山 水 畵 譜 硏 究, 溫 知 論 叢, 14집(2006), 367~421쪽.

134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로서 산수판화의 발생 및 변천사가 인문서적의 발달과 유관함을 보여준다. <표> 17~18세기 주요 산수판화집 제목 제작시기 간행처 수량 편찬자 밑그림작가 각수 비고 王 圻, 1 三 才 圖 會 1607 金 陵 219폭 地 理 卷 王 思 義 2 海 內 奇 觀 1609 抗 州 夷 白 堂 3 名 山 圖 1633 抗 州 墨 繪 齋 4 太 平 山 水 圖 1648 當 塗 懷 古 堂 10권 陳 一 貫, 汪 沖 信 楊 爾 曾 139폭 郭 之 屛 ( 新 安 ) 밑그림 55폭 鄭 重, 吳 左 干, 趙 左, 杜 士 良, 藍 瑛, 劉 叔 憲, 陳 路 若, 黃 長 吉, 孫 子 眞, 單 繼 之 劉 榮 43폭 張 萬 選 蕭 雲 從 湯 尙 湯 復 弘 仁 江 注 5 黃 山 志 1667 新 安 10권 弘 眉 梅 淸 鄭 重 등의 그림 6 黃 山 志 圖 1676 新 安 王 士 金 宏 雪 庄 弘 仁 제자 7 黃 山 志 定 本 1679, 1684 新 安 7권 閔 麟 嗣 蕭 晨 안휘파 화가 8 古 今 圖 書 集 成 康 熙 年 間 (1662~1722) 北 京 212폭 陳 夢 雷 山 川 典 가장 먼저 그 길을 닦은 三 才 圖 會 는 명대 만력 35년( 初 刊 : 1607, 續 刊 : 1609) 금릉에서 출간된 일종의 도설백과사전이다. 7) 총 106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천문ㆍ지리ㆍ인물ㆍ조수ㆍ초목 등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송강 출신 문인 王 圻 (?~1614)와 王 思 義 부자가 역대 저서를 섭렵하여 편찬한 것으로 私 撰 임에도 불구하 고 官 撰 本 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 중 地 理 卷 에는 각각의 위치 및 지세에 대 한 설명과 함께 산수판화가 수록되어 있다. 총 219곳의 지형도와 명산대천의 삽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산수판화사의 서막을 장식하는 것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이어서 1609년(만력 37) 楊 爾 曾 이 항주 夷 白 堂 에서 간행한 海 內 奇 觀 은 삼재 7) 1607년에 천문권 ㆍ 지리권 ㆍ 인물권 이 발행되었고, 1609년 나머지 11개 분야가 증보되어 속 집으로 편찬되었다. 삼재도회 의 내용에 대해서는 崔 玎 妊, 앞의 논문, 14~77쪽 참조.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35 도회 와 달리 중국의 명산과 명승지에 대한 인문지리적 설명과 판화만으로 구성된 순수 산수판화집이다. 8) 총 10권 140여 폭의 삽도는 五 嶽 을 비롯해 중국 대륙의 명승명소를 아우르고 있다. 서두에 실린 瞻 德 遠 의 海 內 奇 觀 引 에 따르면, 양이증 은 당시 소주지역 문인들 사이에 번진 名 山 遊 記 集 의 간행에 자극받았고 시각적 해 설을 위해 산수판화를 삽입했다 한다. 밑그림은 항주의 陳 一 貫 과 郭 之 屛 이 담당하 였고 신안의 汪 沖 信 이 刻 工 으로 참여하였다. 전체적으로 해당 지역의 지리와 지세, 역사적 전통에 대한 설명 사이사이에 雙 面 連 式 의 삽도를 곁들인 체제이다. 일부 < 瀟 湘 八 景 >이나 < 詞 咏 西 湖 十 景 >, < 咏 錢 塘 十 勝 > 등은 題 詩 와 함께 單 面 一 圖 一 咏 의 詩 詞 畵 譜 형식으로 편집하기도 했다. 해내기관 은 앞서 간행된 삼재도회 와 뒤이어 출간되는 名 山 圖 의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어 교량적 위치를 점한다. 1633년( 崇 禎 6) 출간된 名 山 圖 는 원래 名 山 勝 槩 記 의 부록으로 제작되었다. 名 山 記 로도 불렸던 명산승개기 는 六 朝 부터 明 末 까지의 山 水 紀 行 詩 文 1,550여 편이 지방별로 집대성되어 있는 기행문학전집이다. 9) 애당초 총 55장면의 명산도 산수판화는 詩 文 을 보완해 주는 시각자료였던 것이다. 권두의 題 記 에 의하면 항주 墨 繪 齋 에서 간행되었고 기존의 舊 志 를 참조했다 한다. 판화의 밑그림은 10명의 화 가가 담당하였는데, 鄭 重 ㆍ 吳 左 干 ㆍ 趙 左 ㆍ 杜 士 良 ㆍ 藍 瑛 (1585~?)ㆍ 陳 路 若 ㆍ 黃 長 吉 ㆍ 孫 子 眞 등 8명이 각각 한 장면씩 그렸다. 나머지 47장면은 劉 叔 憲 이 重 摹 하고 單 繼 之 가 補 寫 하는 방식으로 합작하였다. 10) 이들 중 정중이나 남영, 조좌 등 몇몇을 제외 하면 오늘날 그리 저명한 화가가 아니지만 당시에는 세간에 이름난 화가로 인정되었 던 것 같다. 그러나 刻 工 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양식과 각 법에 전대의 산수판화를 계승한 흔적과 보다 발전시킨 면모가 함께 드러난다. 17세기 안휘지역에서 활동한 蕭 雲 從 (1596~1669)의 밑그림으로 완성한 太 平 山 8) 楊 爾 曾 은 항주 출신으로 자는 聖 魯 이고 호는 雉 衡 山 人 또는 夷 白 主 人 이며, 해내기관 에서와 같이 臥 遊 道 人 이라 서명하기도 했다. 그는 1607년 총합적인 화보 제작의 방향성을 계승하여 화론과 화 법을 설명하는 정밀한 판각의 풍부한 삽화를 갖춘 圖 繪 宗 彝 를 편찬하기도 했다. 石 谷 風, 海 內 奇 觀 跋, 海 內 奇 觀, 中 國 古 代 版 畵 總 刊 二 編, 제8집(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94) 참조. 9) 서문으로 湯 顯 祖 의 名 山 記 序, 王 世 貞 의 遊 名 山 記 序, 王 穉 登 의 遊 名 山 記 序 가 실려 있다. 10) 명산도 題 記 원문은 名 山 圖 仿 自 舊 志 黃 山 白 嶽 出 鄭 千 里 吳 左 干 天 台 雁 蕩 出 趙 文 度 杜 士 良 匡 廬 石 鐘 出 陳 路 若 黃 長 吉 赤 壁 浮 槎 出 藍 田 叔 孫 子 眞 餘 皆 劉 叔 憲 重 摹 單 繼 之 補 寫 咸 一 時 名 士 勝 流 云 崇 禎 六 年 春 月 墨 繪 齋 新 摹.

136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水 圖 는 명말청초 대표적인 산수판화집 중 하나이다. 11) 청초 1648년( 順 治 5)에 간 행된 것으로 안휘성 太 平 府 에 재직했던 張 萬 選 이 임지를 옮기며 편찬한 太 平 三 書 의 일부이다. 태평삼서 는 圖 畵 ㆍ 勝 槪 ㆍ 風 雅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도화 부 분이 태평산수도 에 해당한다. 소운종이 밑그림을 그리고 劉 榮 ㆍ 湯 尙 ㆍ 湯 復 이 판 각하여 장만선의 서재인 當 塗 懷 古 堂 에서 출간되었다. 장만선은 序 文 에서 삼재도 회 와 마찬가지로 그림으로 유람을 대신할 수 있다는 臥 遊 論 을 펴고 있다. 또 소 운종의 跋 文 을 통해 그들이 판화의 효용성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수 판화는 모두 43장면으로 < 太 平 山 水 全 圖 > 1폭과 當 塗 경승 15폭, 蕪 湖 경승 14폭, 繁 昌 일대의 경승 13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17세기부터 판화사에서 점유율을 높여온 산수판화는 청대 들어와 한층 성황리에 제작되었다. 태평산수도 와 같이 특정 지역 승경을 집중적으로 담은 방 지 삽도와 산수판화집이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弘 仁 (1610~1664)을 필두 로 鄭 重 ㆍ 梅 淸 등 명말청초 안휘파 화가들을 직접 내세운 황산도류 판화집을 첫손 가락에 꼽을 수 있다. 1667년(강희 6)에 간행된 黃 山 志 와 1676년(강희 15)의 黃 山 志 圖, 그리고 黃 山 志 定 本 (1684)이 그 계열에 속한다. 또 소운종의 판식과 연관되는 徽 州 府 志 (1693), 吳 鎔 의 밑그림과 劉 功 臣 의 판각으로 완성된 白 岳 凝 烟 (1714) 등이 있다. 乾 隆 年 間 (1736~1795)에는 平 山 堂 圖 志 (1737)와 揚 州 名 勝 圖 외에도 강희연간(1662~1722) 歙 縣 志 의 일부로 吳 逸 의 밑그림 24장면을 판 각했던 古 歙 山 川 圖 가 독립된 화집으로 재출간되었다. 天 台 山 方 外 志 (1767)에는 부록으로 天 台 十 六 景 圖 가 수록되었고 嘉 慶 寧 國 府 志 (1815)에는 劉 光 顯 이 밑그 림을 그린 寧 國 府 의 경치 24폭이 실렸으며, 청대 후기의 鴻 雪 因 緣 圖 記 (1846)도 빼놓을 수 없다. 12) 한편 명말청초에 이룩된 산수판화집의 성과는 강희제가 야심적으로 편찬한 古 今 圖 書 集 成 으로 수렴되기도 하였다. 전체 권수가 1만에 이르는 중국 최대 叢 書 의 하나로서 강희제의 명에 따라 陳 夢 雷 가 편찬했고, 1725년 옹정제(재위 1723~1735) 11) 蕭 雲 從 과 太 平 山 水 圖 에 대해서는 박도래, 앞의 논문, 6~83쪽 참조. 12) 馮 鵬 生, 앞의 책, 78~81쪽; 고바야시 히로미쓰, 앞의 책, 138~139쪽. 청대에는 서양에서 유입된 동판화기법을 목판에 적용한 御 製 避 暑 山 莊 圖 詠 이나 御 製 圓 明 園 詩 圖 가 있는가 하면, 臺 灣 征 伐 圖 卷 처럼 아예 동판화로 제작한 예도 있다. 이 글에서는 동판화와 서양화법의 유입에 대해서 는 논하지 않는다.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37 때 蔣 廷 錫 의 책임 아래 동활자로 인출되었다. 13) 이 고금도서집성 山 川 典 에는 각 部 의 첫 머리에 총 212폭의 정식 산수판화가 실려 있다. 14) 당시 전거로 삼은 판화는 다름 아닌 삼재도회 나 명산도 같은 산수판화집이었다. 이상과 같이 17세기 이후 산수판화는 궁정으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제작되어 전체 규모와 종류를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과정에서 지 형지세를 기록하는 삽도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실경산수판화로서의 회화성을 확충 해 나갔다. 또 그림보다 복제하기 쉬운 산수판화집들은 중국을 넘어 이웃 나라 한 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III. 17~18세기 山 水 版 畵 의 유형과 특징 17~18세기에 간행된 중국 산수판화집은 전반적으로 인문지리적 성격에서 순수 회화적 성격이 증대되는 추세로 발전하였다. 17세기 초반 성립기에 나온 삼재도 회 와 해내기관 의 산수판화는 기록성을 중시하는 지리여도의 요소가 불식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에 비해 17세기 중반 발전기의 명산도 나 태평산수도 의 산수 판화는 순수회화, 즉 실경산수화에 근사한 화면에 도달하였고 이후의 산수판화가 나아갈 방향을 예시해준다. 그 결과 17세기 후반 이후의 청대 산수판화는 판화 특 유의 미감을 발산하는 고유한 장르로 정착되었다. 구체적인 특징은 두 유형의 편 집체제, 화면의 구성과 양식, 일반회화와의 접목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 인문지리적 산수판화 방지와 산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산수판화집은 기본적으로 지리지의 성격 을 내포하고 있다. 4대 산수판화집 가운데 삼재도회 와 해내기관 은 상세한 인 13) 명ㆍ청대에는 규모가 방대한 類 書 와 叢 書 의 편찬이 활발했다. 명대의 永 樂 大 典, 청대의 古 今 圖 書 集 成 과 四 庫 全 書 가 대표적인 예이다. 고금도서집성 초고는 1706(강희 45)년 4월에 완 성되었다. 翦 伯 贊 (편)/이진복ㆍ김진옥(역), 中 國 全 史 ( 下 ) (학민사, 1990), 290~291쪽; 故 宮 博 物 院 ( 編 ), 淸 代 宮 廷 版 畵 ( 北 京 : 紫 禁 城 出 版 社, 2006), 44~45쪽. 14) 이외에 도해 형식의 < 入 山 符 >, < 入 山 佩 帶 符 >, < 五 嶽 眞 形 圖 > 세 폭이 더 있다.

138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문지리적 설명과 판화삽도를 함께 편집하여 인문지리적 산수판화 계열을 대표한 다. 삼재도회 지리권 에서 지형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삼재도회 를 비롯해 해내기관, 태평산수도 에는 화면의 여백 에 實 地 名 을 명시하는 畵 題 가 있다. 또 상대적으로 시기가 앞서는 삼재도회 와 해내기관 은 경물의 명칭까지 부기하여 고증과 기록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이와 달리 명산도 와 태평산수도 는 산수판화를 별도로 모아 편집 했지만 애초에 시문과 합본이었다는 점에서 무관하지는 않다. 이들 산수판화는 목판에 새겨 찍은 것인 만큼 밑그림을 살리는 刻 法 의 뒷받침 이 있어야 한다. 목판 인쇄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전문 刻 手 가 등장하지만 모든 판 화에 각수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아서 판각에 초점을 맞춰 논하는 데는 한계가 있 다. 15) 어쨌든 대부분의 산수판화는 흑백의 單 色 版 畵 이기 때문에 點 描 와 線 彫 에 의 존할 수밖에 없고 刻 刀 를 이용해 毛 筆 에 의한 필묵법을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렵 다. 때때로 墨 法 을 의식한 면적 처리가 눈에 띄지만 역시 선조가 지배적이다. 그러 한 판화의 특성은 선각이 전면적인 삼재도회 에 잘 드러나 있다. 즉 한결같이 일 정한 굵기의 가는 필선을 써서 매우 고식적이다. 화면은 넓은 경관에 雙 面 連 式 을, 부분경에 單 面 을 할애했는데 해내기관 도 비슷하다. 대체로 부감시를 기본으로 장면에 따라 수평시점을 조합하는 복합시점을 적용하였다(도1). 산은 겹겹의 능선 으로 표현하였고 遠 山 의 실루엣은 윤곽선만으로 처리했다. 능선에 줄지어선 樹 木 표현도 상투적이며 회화적인 묘미는 부족하다. 판화의 양이 방대하지만 전체 삽도 를 관통하는 양식에 일관성이 있다. 해내기관 도 線 刻 線 描 가 대세인 점은 삼재도회 와 같지만 米 點 이나 披 麻 皴 등 皴 法 을 의식한 장면이 눈에 띈다. 그 표현 양식에 따라 다시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 華 岳 圖 >처럼 같은 경관을 담은 삼재도회 의 < 華 山 圖 >와 흡사 한 선조로 표현한 장면들이 첫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도2, 도3). 이 경우 화면 전 체의 인상이나 수목과 가옥 등 세부 표현도 유사하여 삼재도회 에서 차용한 것으 로 생각된다. 이는 < 嵩 嶽 圖 >와 < 西 山 圖 > 등 13개의 장면이 삼재도회 를 거의 그 15) 주요 산수판화집은 후대에 重 刊 되거나 覆 刻 되면서 판본에 따라 각법이나 완성도에 차이가 나게 된다. 하지만 초간본의 밑그림을 크게 변형하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이 글을 서술하며 판본에 따 른 세부 각법의 비교는 차후의 과제로 미룬다.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39 대로 옮겨놓은 데서도 증명된다. 16) 두 번째 유형은 黃 山 圖 에 가해진 필선으로 뾰 족하게 날을 세운 창을 연상시키는 산형이 특징적이며 판각 효과가 두드러지는 예 이다(도4). 마지막 유형은 산과 언덕, 바위의 주름을 일정한 간격의 필선을 늘어놓 은 듯 표현한 그룹으로서 나중에 명산도 에 영향을 끼쳤다(도5, 도12). 이와 같이 유형별로 묶어지는 것은 밑그림을 陳 一 貫 과 郭 之 屛 이 나누어 담당했고 경승에 따 라 차별을 꾀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산수판화집과 일반 회화작품의 관련성은 실경산수화가 밑그림이 되고 화가에 의해 그려진 데서부터 출발한다. 특히 명대 만력기 이후 陳 洪 綏 (1598~1652)나 정운붕, 소운종 같은 저명한 화가들이 밑그림에 참여하면서 판화 와 회화는 더욱 밀착되었다. 17) 어떤 장르보다 유포와 전승이 용이한 매체로서 판 화와 회화, 양 부문에 공히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명말청초 안휘지역에서 黃 山 派 가 성립할 정도로 애호되었던 黃 山 圖 는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원래 황산 은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인적이 닿기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1606년 승려 普 門 이 앞장서 사찰을 건립하고 오지를 개발하면서 유람객과 화가들의 발길이 줄을 이 었고 황산도가 대유행하게 되었다. 17세기 들어 황산도가 붐을 이룬 원인은 황산 유람객의 증가, 홍인과 석도 등 명나라 유민화가들이 현지에 거주한 사실, 황산이 위치한 안휘성 신안이 상업도시로 번성하면서 축적된 경제력, 그리고 여러 지역으 로 이동성이 강했던 안휘 상인들이 고향을 기념하는 의미로 황산도를 의뢰했던 수 요의 증가 등으로 정리된다. 18) 삼재도회 의 <황산>은 특정 봉우리의 감식이 불가능한 채 뾰족한 봉우리 일색 16) 삼재도회 와 해내기관 의 동일 장면은 < 嵩 嶽 圖 > < 華 嶽 圖 > < 衡 嶽 圖 > < 恒 嶽 圖 > < 孔 林 圖 > < 西 山 圖 > < 峨 眉 山 圖 > < 三 峽 圖 > < 四 川 棧 圖 > < 七 星 巖 圖 > < 鷄 足 山 圖 > < 雲 南 九 鼎 山 圖 > < 點 蒼 山 圖 > 등이다. 崔 玎 妊, 앞의 논문, 79쪽. 17) 일찍이 황산도 를 그리기도 했던 정운붕의 산수화풍은 그가 밑그림을 그린 정씨묵원 의 판화에 투영되었다. Cahill, James, The Compelling Images: Nature and Style in Seventeenth-Century Chinese Painting(Cambridge: Havard Univ. Press, 1979), pp. 150~151 도판 및 pp. 155~157; Kobayashi, Hiromitsu and Sabin, Samantha, op. cit., p. 27. 18) DeBevoise, Jane and Jang, Scarlett, Topography and the Anhui School, Shadows of Mt. Huang: Chinses Painting and Printing of the Anhui School(Berkeley: University Art Museum, 1981), p. 44; 西 上 實, 淸 代 の 繪 畵, 中 野 徹 ㆍ 西 上 實 ( 編 ), 世 界 美 術 全 集 東 洋 編 (9): 淸 ( 東 京 : 小 學 館, 1998), 129~133쪽 참조.

140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으로 운무 사이에 솟아있다(도6).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黃 山 松 이 보이지 않고 도 식화된 수목과 물결로 채워졌다. 직접 여행하기 이전 막연히 전승되던 이해를 바 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19) 이와 유사한 특징이 청초 화가 石 濤 (1642~1707)의 黃 山 圖 나 梅 淸 (1623~1697)의 黃 山 十 九 景 圖 冊 에도 배어 있어 흥미롭다(도7). 이에 비해 네 장면으로 나누어 실은 해내기관 의 <황산>은 보다 설명적이다(도4). 하 단의 강변에 마을이 자리하고 황산으로 통하는 길이 명시되었으며 봉우리의 명칭 이 병기되었다. 여타의 경물도 이름을 꼼꼼히 밝혀 놓았고 인물을 그려 넣는 점도 삼재도회 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날카로운 각선으로 과장한 암봉이나 삼재도회 와 흡사한 수목 등 회화적인 맛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편 해내기관 황산판화에 적용된 능각형 윤곽의 봉우리 표현법이 대표적 황산파 화가인 弘 仁 (1610~1664)의 黃 山 圖 冊 에 쓰여 눈길을 끈다. 20) 그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이미 해내기관 이 간행되어 있었으므로 홍인이 해내기관 의 황산판화를 참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또 < 靈 巖 寺 圖 >를 비롯해 雁 宕 山 경관에 적용된 해내기관 의 표현법이 홍인의 < 煉 丹 臺 >나 江 注 의 < 丹 臺 > 등 다른 황산도에도 차용되어 그 가능성을 배 가시킨다(도8, 도9). 이처럼 인문지리적 성격의 초기 산수판화는 판화 내적 발전을 도모했을 뿐 아니라 다음 단계를 여는 토대가 되었고 일반 실경산수화 창작에도 활용되며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2. 순수회화적 산수판화 앞 절에서 논한 인문지리적 성격과 구분되는 산수판화로는 명산도 와 태평산 수도 가 대표성을 지닌다. 즉 삼재도회 나 해내기관 과 20여 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된 명산도 에 이르면, 산수판화는 인문지리적 성격에서 순수회화적 성격으로 변화, 발전하게 된다. 도설기록으로서의 구태를 지양하고 독립된 산수판화로서 진 일보한 회화성을 보여주며 후속 산수판화의 전범이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태평 19) DeBevoise, Jane and Jang, Scarlett, ibid, p. 46. 20) 도판은 明 淸 安 徽 畵 家 作 品 選 ( 合 肥 : 安 徽 美 術 出 版 社, 1988), 49~51쪽 참조. 홍인의 황산도에 대 해서는 Cahill, James, op. cit.(1979), pp. 146~168; Cahill, James(ed.), Shadows of Mt. Huang: Chinses Painting and Printing of the Anhui School(Berkeley: University Art Museum, 1981), pp. 76~88; 高 蓮 姬, 安 徽 派 의 黃 山 圖 硏 究, 홍익대 석사학위논문(1996), 59~78쪽 참조.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41 산수도 와 각종 황산판화들이 감상용 회화에 근사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명산도 는 康 熙 南 巡 圖 卷 같은 기록화나 고금도서집성 의 편찬에 활용되는 등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1633년에 간행된 명산도 는 중국 전체를 통괄하지 않고 名 山 에 초점을 맞추어 선행 산수판화와 차별된다. 매 장면의 版 心 에 경관의 내용을 알려주는 제목과 면 수가 새겨져 있을 뿐 일체의 제발이나 지명을 부기하지 않았다(도10). 애초에 글 과 그림을 분리시켜 따로 편집함으로써 각각의 특장을 부각시켰다. 이미 익숙해진 쌍면연식의 횡장한 화면은 태평산수도 로 이어지며 청대 산수판화의 보편적 화면 형식으로 자리잡는다. 명산도 산수판화는 대상 경관의 특징에 따라 짜임새 있게 공간을 운용하여 경물이 꽉 차있는가 하면 여백이 시원하게 펼쳐진 장면도 있다. 상당수가 삼재도 회 나 해내기관 에 포함된 내용이지만 양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 京 口 三 山 >을 삼재도회 의 해당 장면과 비교해 보면, 삼산이 長 江 의 한가운데 띄엄띄엄 포치된 기본구도나 능선에 수목을 배치한 구성은 비슷해 보인다(도10, 도11). 그러나 명산도 에서는 하단에 명확히 근경을 설정하였고 삼산의 가옥이나 탑, 수목에 실재감을 부여하였으며, 물결은 근경에만 표현하고 돛배를 띄워 수면 을 암시하였다(도10). 또 산주름과 원경의 沙 丘 에 가해진 선조도 지형도에 가까운 삼재도회 의 장면보다 훨씬 회화적이다. 이 명산도 역시 선조를 근간으로 삼지만 준법에 대한 의식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해내기관 과 마찬가지로 표현에 다양성이 엿보이는데, 일차적으로 10여 명 의 전문화가가 밑그림에 동원된 데서 연유할 것이다. 준법을 기준 삼아 살펴보면 첫째, 대부분의 경물을 길게 이어지는 윤곽선 위주로 표현한 장면이 가장 많은 양 을 차지한다(도12). 유사한 필선은 이미 해내기관 에 쓰였으며 명말청초 안휘파 화풍과도 연관성을 지닌다(도5). 일정한 굵기의 필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으로 < 天 目 > 같은 일부 장면은 荷 葉 皴 을 연상시킨다. 두 번째는 산언덕의 주름 위에 單 線 이나 點 을 가미한 그룹으로 < 桂 林 >에서는 짧은 횡선을 촘촘히 찍어 통일감을 부여하였다(도13). 세 번째로 사천성 봉절현의 < 瀼 西 >는 산과 언덕에 길게 늘어지 는 선조가 잇대어 있고, 운남성 < 點 蒼 山 >은 부분적으로 선 위에 細 形 針 樹 식 단선 을 더하였으나 모두 披 麻 皴 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도14). 이 외에도 < 西 湖 >와 < 木

142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蘭 陂 >는 米 點 을, < 匡 廬 >는 斧 碧 皴 을, < 白 岳 >은 牛 毛 皴 을 떠올려 준다. <황산>은 명산도 를 위시한 이른바 순수회화적 산수판화 계열에도 포함되어 있다. 안휘성 흡현 출신으로 황산파 화가이기도 한 鄭 重 (1565~1630년경 활동)이 밑그림을 담당한 명산도 의 <황산>은 고식성에서 벗어났다(도15). 21) 삼재도회 와 해내기관 의 장면에 비해 좁은 경관을 클로즈업했는데, 운해에 감싸인 산봉과 강, 건물과 수목 등 주요 경물을 적절히 안배하여 현장감 느껴지는 공간을 연출하 였다(도4, 도6, 도15). 구체적인 위치가 밝혀져 있지 않으나 石 濤 (1642~1707)의 黃 山 八 勝 畵 冊 을 참고할 때 文 殊 院 과 天 都 峰 을 담은 것으로 짐작된다(도16). 22) 중앙의 사찰이 문수원이고 그 뒤로 솟은 거대한 암봉이 천도봉이며 그 왼편으로 약간 거리를 두고 솟은 봉우리는 蓮 花 峰 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삼재도회 나 해내기관 의 뾰족한 봉우리들과 달리 둥글둥글한 명산도 의 황산 봉우리가 < 蓮 花 峰 圖 > 같은 석도의 또 다른 황산 그림과도 흡사하다. 명산도 는 석도가 태어나 기 이전에 간행되었고 그가 안휘파 화가들과 교유하던 때는 황산판화가 풍미하던 시절이어서 서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석도는 직접 황산 을 여행한 화가이지만 그의 황산도가 삼재도회 나 명산도 와 연관되는 사실은 홍인의 예와 더불어 당시 산수판화의 효용 양태와 범위를 시사한다. 이 밖에 일반회화와의 연관성이 엿보이는 예로 < 虎 丘 >와 < 燕 磯 >가 있다. 명산 도 의 <호구>는 沈 周 (1427~1509)의 蘇 州 山 水 全 圖 중 <호구> 부분과 구도나 경물의 포치, 수목표현 등이 상통한다. '호구'는 심주 이후 소주화단에서 인기를 누린 명승으로 유사한 작품이 많이 전한다. 23) 따라서 밑그림을 담당한 劉 度 와 單 繼 之 가 吳 派 의 소주 실경산수화를 참조했을 가능성이 많다. 명산도 의 작가 중 < 雁 湯 >을 그린 杜 驥 龍 이 오현 출신으로 심주 화풍을 따른 것도 명산도 에 안휘 파와 오파 화풍이 두드러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康 熙 帝 가 1689년에 가진 제2차 21) 鄭 重 의 황산도는 1667년 弘 眉 가 간행한 黃 山 志 에도 포함되었다. DeBevoise, Jane and Jang, Scarlett, op. cit., p. 53, 도12 참조. 22) 석도의 생애와 황산도에 대해서는 Cahill, James ed., Shadows of Mt. Huang: Chinses Painting and Printing of the Anhui School(Berkeley: University Art Museum, 1981), pp. 127~134; 中 村 茂 夫, 石 濤 : 人 と 藝 術 ( 東 京 : 東 京 美 術, 1985); 리차드 에드워즈, 앞의 책(1992), 129~189쪽 참조. 23) <호구>의 전형적 이미지는 산수판화뿐 아니라 문학 삽도에도 차용되어 1616년(만력43년)에 나온 陳 與 郊 의 희곡 櫻 桃 夢 에서도 배경으로 채택되었다. 고바야시 히로미쓰, 앞의 책, 74~75쪽.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43 南 巡 을 주제로 제작된 康 熙 南 巡 圖 卷 에서는 그 반대로 명산도 같은 산수판화 를 참조한 흔적이 발견된다. 이 작품은 1691부터 1695년까지 청초 정통파 화가 王 翬 (1632~1717)가 총감독을 맡고 부문별로 전문화가들을 동원하여 완성하였다. 당시 남 순에 동참하지 않았던 왕휘는 남순 여정을 기록한 문헌과 백과사전류, 지도, 지리지 의 삽도 등을 참조하여 草 本 을 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소흥이나 항주 등의 도시 경관이 해당지역의 지도와 많은 부분 유사하다. 24) 또 제11권의 연자기 부분은 명 산도 의 <연기> 같은 산수판화에 의탁해 그렸음을 알 수 있다(도17, 도18). 명산도 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태평산수도 는 순수회화적 산수판화의 전형 으로 소운종이 밑그림을 담당하여 문인 산수화의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는 전대에 축적된 참고자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해진 상황에서 추출된 성과이기도 하 다. 태평산수도 산수판화는 전통적인 詩 意 圖 ㆍ 實 景 圖 ㆍ 倣 作 을 조합해 놓은 형식 이다(도19). 곧 장면마다 경관의 명칭과 관련 시문을 써넣었으며 倣 한 화가의 이 름까지 명시하였다. 25) 문학과 회화가 융합하는 詩 書 畵 合 璧 帖 형식으로 꾸며져 중 국의 문예전통을 집약한 최초의 산수판화라 할 수 있다. 소운종은 태평산수도 에 서 倣 한 화가로 총 39명을 거명했으나 연계성이 확인되는 장면은 극소수에 불과 하다. 사실상 < 靈 山 >에서 확인되듯이 소운종 고유의 필묵법과 안휘파 화풍이 지 배적이다(도19, 도20). 소운종은 대체로 해당 경관의 현장성을 고려하여 구도를 잡고 주요 경물을 포 치하였다. 태평부의 전체 경관을 담은 < 太 平 山 水 全 圖 >에는 광활한 구역을 포괄하 기 위해 지도와 유사한 조감도식 구도를 적용했다. 개별 명승도의 경우 실제 지형 을 살리려 했고 산이나 수목 등의 자연물 또는 건축물 같은 인공지물을 빌어 현장 성을 제시하였다. 명산도 와 같이 米 點 ㆍ 披 麻 皴 ㆍ 斧 劈 皴 ㆍ 苔 點 ㆍ 胡 椒 點 등의 정 형화된 준법이 판각으로 구현된 점도 눈에 띈다(도 21). 과감한 묵면의 활용으로 흑백대비 효과를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며 多 色 版 畵 와는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자아낸다. 24) 康 熙 南 巡 圖 卷 에 대해서는 Maxwell Kessler Hearn, The Kangxi Southern Inspection Tout : A Narrative Program by Wang Hui, Ph.D. dissertation, Princeton University(1990); 聶 崇 正, 談 康 熙 南 巡 圖 卷, 宮 廷 藝 術 的 光 輝 ( 臺 北 : 東 大 圖 書 公 司, 1996) 참조. 25) 태평산수도 각 장면의 地 名 과 倣 한 화가, 題 詩 의 목록은 박도래, 앞의 논문, 68~69쪽.

144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이 태평산수도 는 소운종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희ㆍ건륭년간에 간행된 古 歙 山 川 圖 는 倣 古 회화 형식이나 묵면을 적극 구사한 점에서 태평산수도 양식을 따른 전형적 예이다. 26) 하지만 해내기관 과 명산도 의 특징이 혼재하고 서양 동판화 기법을 적용한 소주판화와도 유사한 장면이 있어 간행 당시의 조류를 보여준다. 그러한 영향력은 명실공히 회화교본다운 내용과 형 식을 갖춘 畵 譜 로서 1679년에 간행된 芥 子 園 畵 傳 初 集 에까지 이어진다. 세부 경 물의 모티프뿐 아니라 < 倣 李 公 麟 峽 江 圖 >처럼 태평산수도 의 < 大 小 荊 山 圖 >를 그 대로 임모해 만든 장면도 있어서 그 영향이 지대함을 알 수 있다. 27) 한편 개자원 화전 山 石 譜 중 大 瀑 布 法 과 石 梁 垂 瀑 布 法 은 명산도 의 < 石 梁 >과 < 龍 湫 > 를 옮겨온 도상이기도 하다. 28) 순수회화적 산수판화의 전개상에서 홍인에 의해 정형화된 황산도와 여타 황산 파 화가들의 작품이 판화화된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지적한 대로 홍인은 황산도 양식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해내기관 같은 산수판화를 참고하였다. 그리 고 그의 황산도는 다시 황산판화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판화와 회화가 교차하는 실 례를 보여준다. 1667년 弘 眉 가 편찬한 黃 山 志 10권은 홍인과 매청, 강주 등 안 휘파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서 판각한 것이다(도22). 또 홍인을 배운 雪 庄 의 밑그 림으로 王 士 宏 이 간행한 黃 山 志 圖 (1676)의 < 臥 龍 松 >, 그리고 閔 麟 嗣 가 蕭 晨 의 밑그림을 판각하여 엮은 黃 山 志 定 本 (1684) < 始 信 峯 > 등에도 홍인의 화풍이 배 어 있다(도22). 29) 앞서 언급한 대로 17세기에 산출된 산수판화는 강희연간에 편찬된 고금도서집 성 산천전 판화의 원천 자료가 되었다. 이 산천전 은 말 그대로 고금의 도서 에서 발췌한 인문지리적 내용과 순수회화적 판화를 결합시켜 집대성한 모양새이며 2백 폭이 넘는 산수판화는 명산도 양식이 주조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명산도 와 거의 일치하는 화면이 32폭이나 되어 명산도 를 覆 刻 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 다. 30) < 天 目 山 > 같은 동일 장면들을 대조해 보면 세부에 미미한 차이가 있을 뿐 26) 도판은 古 歙 山 川 圖, 中 國 古 代 版 畵 總 刊 二 編, 제8집(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94) 참조. 27) 崔 耕 苑, 朝 鮮 後 期 對 淸 회화교류와 淸 회화양식의 수용, 홍익대 석사학위논문(1996), 91~94쪽. 28) 劉 順 英, 앞의 논문(2006), 390~391쪽. 29) DeBevoise, Jane and Jang, Scarlett, op. cit., pp. 48~53 참조. 30) 거의 같은 장면은 명산도 의 燕 山, 盤 山, 鍾 山, 茅 山, 九 華, 黃 山, 白 嶽, 包 山, 小 金 山, 徑 山, 天 目,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45 원본이 된 명산도 와 거의 같다(도12, 도23). 다만 명산도 에서 판심에 표시했 던 화제를 화면의 여백에 넣어 양자를 구별시켜 준다. 또 본문의 삼재도회 를 인 용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명산도 외의 산수판화집도 참조되었다. 가령 명산 도 에 없는 < 小 孤 山 圖 >의 경우 삼재도회 도상을 명산도 식 구도와 양식으로 변형해서 실었다(도24, 도25). < 灊 山 圖 >와 같이 비교적 삼재도회 나 해내기관 의 특징을 보존한 장면도 있고 箕 山 처럼 태평산수도 에 근사한 각법으로 새기 기도 했다. 31) 다시 말해 고금도서집성 의 산수판화는 순수회화적 완결성에 가까 워진 명산도 를 메인 양식으로 채택하되 축적된 자산을 두루 활용해 더욱 치밀하 고 정련된 판각으로 마무리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17세기초 삼재도회 가 선도한 산수판화의 흐름은 청대까지 면면 히 이어졌다. 삼재도회 는 인문지리적 성격을 정립시키는 발판이 되었고 해내기 관 은 실경산수를 다른 판화로부터 독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명산도 에 이르면 더 이상 보조적 설명도로 기능하지 않고 순수회화적 성격으로 전이되며 완성도를 높였다. 또 소운종의 태평산수도 는 판화를 통해 문인화적 전통의 총합을 실현하 였다. 그 여정은 고금도서집성 으로 수렴되면서 궁정판화로 전화되었는가 하면, 황산도 같은 실경산수화와 보조를 맞추며 이어졌다. 이들 산수판화가 실경산수화 와 조우하는 현상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후기 화단에서도 살필 수 있다. IV. 朝 鮮 後 期 實 景 山 水 畵 에 미친 영향 조선후기, 영ㆍ정조대 화단의 새로운 동향 중 하나는 실경산수화의 성행이었 다. 32) 謙 齋 鄭 敾 (1676~1759)이 중기까지의 전통을 뛰어넘는 내용과 양식으로 실 경산수화의 유행을 이끌었고, 정조대 檀 園 金 弘 道 (1745~1806 이후)에 의해 다시3 雁 蕩, 仙 巖, 樊 山, 武 當, 衡 嶽, 赤 壁, 匡 廬, 石 鐘 山, 太 行, 嶧 山, 恒 嶽, 羅 浮, 隱 山, 桂 林, 峨 眉, 七 曲 山, 修 覺 山, 靑 城 山, 點 蒼 山, 阿 盧 三 洞, 飛 雲 巖 등이다. 31) 도판은 陳 夢 雷 ( 編 ), 古 今 圖 書 集 成, 18, 山 川 典, 上 ( 臺 北 : 鼎 文 書 局, 1977), 636~637쪽 및 836쪽 참조. 32) 한국미술사학계에서 일반적으로 18세기 겸재 정선 이후의 실경산수화에 대해서는 眞 景 山 水 畵 라 는 명칭을 쓰지만 이 글에서는 실경산수화 로 통칭한다.

146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금 일신되면서 19세기까지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기행시문의 발달, 기행유람 문화의 확산 등 18세기 사회문화계의 변화상을 반영하며 중국에서 전래 된 각종 판본류와도 무관하지 않다. 17세기를 전후하여 서적수입이 왕실은 물론 사대부, 민간에까지 확대되면서 말 그대로 엄청난 양의 서적이 들어왔고 종류도 다양했다. 33) 그 속에는 예의 산수판화집도 포함되었는데 애초의 수입 목적이 판화 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서적은 역대 중국의 역사와 지리, 문예 등에 관 한 보편적 지식욕을 충족시켜주는 훌륭하고도 절대적인 창구였던 것이다. 34) 하지 만 막대한 양의 서적이 유통되면서 문화계에 지각변동을 불러왔고 화단에서는 실 경산수화를 발흥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주요 산수판화집은 조선 문사들의 晩 明 期 문예와 새로운 청조 문물에 대한 호 기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큰 시차 없이 유입되었다. 중국의 지리와 형승에 대한 당 시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17세기초에 수입, 열람된 西 湖 志 를 통해 단적으 로 확인된다. 35)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삼재 도회 나 해내기관 같은 산수판화집이 전래됨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삼재도회 는 芝 峰 李 晬 光 (1563~1628)이 芝 峰 類 說 권2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 하고 있어 1614년 이전에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36) 판본의 성격이 백과 전서였던 만큼 왕실 이하 폭넓은 계층에서 활용하였다. 숙종은 1713년(숙종 39) 삼재도회 에 실려 있는 명나라 세 황제의 화상과 중국인이 그린 金 堉 의 초상화에 대해 논급한 바 있다. 37) 또 19세기 초 徐 有 榘 가 林 園 經 濟 志 에 채택한 자료였고 고종연간에 작성한 왕실 도서 목록인 皆 有 窩 北 坊 書 目 에도 포함되어 왕실 소장 서적이었음이 재확인된다. 38) 뒤이어 해내기관 이 전해졌음은 虛 舟 李 宗 岳 (1726~ 1773)의 虛 舟 遺 稿 에 수록된 書 海 內 奇 觀 後 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1630년 33) 강명관,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ㆍ유통과 장서가의 출현: 18, 19세기 경화세족 문화의 한 단면,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253~276쪽. 34) 홍선표(외), 17ㆍ18세기 조선의 외국서적 수용과 독서문화 (혜안, 2006) 참조. 35) 朴 銀 順, 恭 齋 尹 斗 緖 의 畵 論 : 恭 齋 先 生 墨 蹟, 美 術 資 料, 제67호(국립중앙박물관, 2001. 12), 104~105쪽; 金 炫 志, 朝 鮮 中 期 實 景 山 水 畵 硏 究, 홍익대 석사학위논문(2001), 37~38쪽. 36) 朴 孝 銀, 朝 鮮 後 期 문인들의 繪 畵 蒐 集 活 動 연구,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1999. 6), 44~45쪽. 37) 肅 宗 實 錄, 숙종39년(1713) 5월 6일 壬 午. 38) 李 成 美, 林 園 經 濟 志 에 나타난 徐 有 榘 의 中 國 繪 畵 및 畵 論 에 대한 관심, 美 術 史 學 硏 究, 193 (1992), 48쪽; 黃 晶 淵, 朝 鮮 時 代 書 畵 收 藏 硏 究,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2006), 253쪽.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47 冬 至 使 로 북경에 파견된 晴 沙 高 用 厚 (1577~1652)가 구해온 해내기관 의 일부를 소장했다. 따라서 늦어도 1631년에는 알려졌고 훗날 이종악의 수중에 들어갔음을 확인시켜 준다. 39) 또 南 鶴 鳴 (1654~?)과 金 昌 翕 (1653~1722)이 해내기관 을 열람 했는가 하면, 40) 18세기의 문인 柳 道 源 (1721~1791)도 언급하고 있어 지속적으로 회자되었음을 알 수 있다. 41) 순수회화성이 짙은 명산도 가 전래된 시기도 17세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金 壽 增 (1629~1689)을 위시하여 農 淵 형제, 즉 金 昌 協 (1651~1708)과 金 昌 翕 (1653~ 1722), 그리고 그 문하의 인사들이 명산승개기 의 기행시문을 탐독하였다. 42) 18 세기에는 李 麟 祥 (1710~1770)과 李 胤 英 (1714~1759), 洪 奭 周 (1774~1842) 등 문인 들 사이에 두루 알려져 있었다. 43) 이처럼 대표적인 실경산수판화집이 17세기에 유 입된 사정과 달리 태평산수도 가 언제쯤 전해졌는지는 불명확하다. 일본의 경우 18세기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선에는 1845년 연행했던 李 裕 元 (1814~ 1888)이 선물로 받아온 기록이 가장 이른 시기로 확인되었을 뿐이다. 44) 그처럼 태평산수도 는 비교적 늦게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내용이 광범한 지역을 통괄하는 다른 판화집에 비해 태평부에 한정되어서 흥미가 덜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근래 이들 4대 산수판화집이 일종의 회화교본으로서 당시 화단에서 臨 摹 되거나 참고자료로 쓰였음이 가시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우선 삼재도회 지리권 은 息 山 李 萬 敷 (1664~1732)의 지도첩 坐 觀 荒 紘 의 원본으로 쓰였고 北 關 酬 唱 錄 과 谷 雲 九 曲 圖 같은 17세기 실경산수화의 화법으로 전용되었다. 경기도박물관 소 장 五 岳 圖 帖 이 삼재도회 를 임모한 사실도 알려져 있다. 45) 이 외에 18세기 39) 李 成 美, 虛 舟 府 君 山 水 遺 帖 : 傳 李 宗 岳 (1726~1773)의 眞 景 山 水 畵 帖 簡 介, 藏 書 閣, 제3집 (2000), 217~218쪽. 40) 高 蓮 姬, 鄭 敾 의 眞 景 山 水 畵 와 明 淸 代 山 水 版 畵, 美 術 史 論 壇, 제9호(1999), 146~147쪽. 41) 柳 道 源, 蘆 厓 集, 卷 3, 答 李 山 甫. 42) 高 蓮 姬,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연구: 鄭 敾 과 農 淵 그룹을 중심으로 (일지사, 2001), 65~68쪽. 43) 朴 晶 愛, 之 又 齋 鄭 遂 榮 의 山 水 畵 연구, 美 術 史 學 硏 究, 235(2002), 100~101쪽; 朴 銀 順, 朝 鮮 後 期 寫 意 的 眞 景 山 水 畵 의 形 成 과 展 開, 미술사 연구, 제16호(2002), 338쪽 및 343~345쪽. 44) 陳 傳 席, 有 關 蕭 雲 從 及 太 平 山 水 詩 畵 諸 問 題, 朶 雲, 25( 上 海 : 上 海 書 畵 出 版 社, 1990), 86~92쪽; 박도래, 앞의 논문, 97쪽. 45) 이선옥, 息 山 李 萬 敷 (1664~1732)와 陋 巷 圖 書 畵 帖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227(2000), 22쪽; 朴 孝 銀, 앞의 논문, 46쪽; 金 炫 志, 앞의 논문, 37쪽.

148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말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關 西 名 區 帖 중 < 練 光 亭 >의 화면구성 이 삼재도회 의 < 黃 鶴 樓 圖 >와 흡사하여 주목된다(도26, 도27). 46) 성벽과 누대, 강하 가 어우러진 경관을 부감하여 수평구도로 소화한 점이나 세부 경물의 묘사법이 유사 하다. 이는 18세기 전반에 정선이 동일한 대상을 사선구도로 형상화한 <연광정>과 다른 모습이다. 관서명구첩 계열에 적용된 화풍은 대체로 김홍도 화풍이 지배적 이어서 당시 삼재도회 를 참조한 화원에 의해 고안된 화면이라 여겨진다. 정선이 해내기관 산수판화에서 소상팔경 의 도상을 임모했음이 확인되었고 세부 표현을 자신의 실경산수화에 적용했다는 지적이 제시된 바 있다. 47) 정선이 해내기관 을 참조한 또 다른 자취로서 < 雙 島 亭 圖 >나 < 長 安 烟 月 >에 그려진 원산 의 비현실적으로 꺾이는 능각의 윤곽선도 해내기관 같은 판본에서 유래한 것으 로 생각된다(도28). 48) 이어지는 18세기 후반 정조대 화적으로서 김홍도의 전칭작 金 剛 四 郡 帖 중 한 폭인 < 淸 澗 亭 >의 하단 해변에 그려진 유람객의 모습이 해 내기관 의 < 孤 山 六 橋 圖 >의 점경인물과 상통하여 흥미롭다(도29, 도30). 日 傘 을 받 친 점이나 예닐곱이 행렬을 이룬 점, 극히 작은 크기의 점경인물이 일대 경관의 규모와 대비되는 방식이 일치한다. 이와 같이 일산을 쓴 인물군은 여타의 김홍도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 자리잡았다. 49) 이 밖에 조선후기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한 회화식 지도, 그 중에서도 開 花 式 으로 지칭되는 지도의 구도 역시 삼재 도회 의 < 閎 里 形 勝 總 圖 >나 해내기관 의 < 孤 山 六 橋 圖 >와 비교된다. 50) 동시기에 서울과 평양, 전주 등 주요 城 市 全 景 이 회화식 지도나 목판본으로 제작되는 양상 도 이들 산수판화집에 실린 지도나 全 景 圖 에 자극받았을 개연성이 있다. 명산도 판화 역시 농연그룹과 친밀했던 정선의 실경산수화에 일정하게 영향 을 끼쳤다. 51) 18세기 말에는 명산도 판화를 종축의 긴 화면으로 변형 판각한 46) 관서명구첩 에 대해서는 朴 晶 愛, 朝 鮮 後 期 關 西 名 勝 圖 연구, 美 術 史 學 硏 究, 258(2008), 105~139쪽 참조. 47) 안휘준, 謙 齋 鄭 敾 (1676~1759 의 瀟 湘 八 景 圖, 美 術 史 論 壇, 제20호(2005), 7~48쪽; 高 蓮 姬, 앞 의 논문(1999), 146~150쪽. 48) 정선의 < 長 安 烟 月 >은 이태호, 그림으로 본 옛 서울 (서울학연구소, 1995), 도30 참조. 49) 도판은 檀 園 金 弘 道 : 탄신 250주년 기념 특별전 ( 三 星 文 化 財 團, 1995), 도119 및 도183 참조. 50) 개화식 지도에 대해서는 安 輝 濬, 韓 國 의 古 地 圖 와 繪 畫, 海 東 地 圖 (해설ㆍ색인) (서울대학교 규 장각, 1995), 58쪽. 51) 고연희, 앞의 책(2001), 83~90쪽 참조.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49 金 剛 山 中 古 刹 圖 帖 이 제작되기도 했다. 김홍도 화풍을 특징짓는 윤곽 위주의 각진 바위표현과 가지뿐인 수목 표현, 절벽 꼭대기에 배치하는 한두 그루의 소나 무 등도 명산도 판화를 토대로 창안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홍도가 유독 애용 한 荷 葉 皴 도 명산도 와 연관되는 요소이다(도12). 더욱이 眞 齋 韓 用 幹 (1783~ 1829)의 韓 眞 齋 先 生 遺 墨 이 전적으로 명산도 를 임모해서 엮은 화첩이라는 사실은 19세기로 이어진 명맥을 더듬게 해준다. 52) 아울러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작례로 생각되는 영국도서관 소장 작자미상의 韓 中 名 勝 圖 帖 중 < 苞 山 圖 >도 명산도 의 < 包 山 >과 비교된다. 포산은 江 蘇 省 吳 縣 소재 승경으로서 일찍이 삼재도회 에 < 洞 庭 山 圖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또 고금도서집성 에서는 삼재도회 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면서 판화는 명산도 의 <포산> 도상을 그대로 썼으며 화제는 洞 庭 兩 山 圖 라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포산 은 오현 서남쪽에 있는 太 湖 가운데 위치하는 동정산으로 일명 包 山 혹은 苞 山 으로 표기되고 林 屋 山 으로 칭하기도 하였다. 그 산에 뚫린 세 개의 동굴[ 三 穴 ]이 유명하며 춘추시대 吳 나라 왕이었던 闔 廬 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었다. 이 로써 산수판화집에 따라 화제가 다른 까닭을 알 수 있다. 또 한중명승도첩 의 <포산도>는 섬 한가운데 闔 廬 亭 이 자리하고 별지에 써 붙인 太 湖 와 苞 山 島 라는 지명이 있어 오현의 동정산, 즉 포산을 그렸음이 확인된다. 그 도상이 명산 도 의 <포산>과 정확히 합치되지 않아 직접 임모했다고 하긴 어려우나 기본적인 구도와 표현법으로 미루어 화가가 이와 같은 산수판화를 참조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도31, 도32). 명산도 를 근간으로 삼은 산수판화가 대량 포함된 고금도서집성 은 정조 원 년에 수입된 서적 중 하나이다. 53) 정조는 1776년 즉위하자마자 進 賀 兼 謝 恩 使 에 명하여 四 庫 全 書 를 구해오게 했으나 여의치 않아 그 원본격인 고금도서집성 5,020 冊 을 들여오게 했다. 54) 정조는 1780년 규장각 검서관들에게 부목을 베끼게 52) 朴 晶 愛, 앞의 논문(2002), 99~104쪽. 53)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奎 中 貴 2555)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C3-279)에 고금도서집성 이 소장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는 弘 齋, 萬 機 之 暇, 極 등 정조의 인장이 찍혀 있다. 소장 유 물의 열람조사에 협조해주신 규장각과 장서각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54) 正 祖 實 錄, 정조1년(1777) 2월 24일 庚 申. 당시 고금도서집성 을 구입하는 데 銀 子 2,150 兩 이 라는 거액을 지불하였다. 국내외의 다양한 서적의 수집과 간행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정조

150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하였고, 1789년에는 茶 山 丁 若 鏞 (1762~1836)에게 내려 華 城 건설을 위한 기기를 고안하는 데 참고하도록 했다. 55) 정조는 고금도서집성 을 그저 서고에 보관케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는 圖 畵 署 畵 員 들이 명산도 계 통의 산수판화를 접하는 통로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열어준다. 김홍도를 중심으로 한 정조대 화원들에게 끼친 명산도 식 산수판화의 영향이 수긍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 1784년 이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 관 소장 燕 行 圖 帖 중 < 萬 里 長 城 >에서 산악으로 채운 화면은 고금도서집성 의 < 林 慮 山 圖 >와 비교된다(도33, 도34). 양자에 그려진 대상이 일치하진 않지만 만리장성 주변에 포치한 첩첩 산악이나 필선 위주의 주름 표현은 판화와 상통한 다. 이 연행도첩 은 기록성에 머문 대다수 연행도와 달리 회화성이 높아 눈길 을 끄는데 아직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56) 하지만 문헌기록과 화풍을 단 서로 접근해볼 때 1795년과 1796년, 연거푸 冬 至 使 行 에 참여했던 古 松 流 水 觀 道 人 李 寅 文 (1745~1824)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우선 연행도첩 에 실린 연행도의 계절색이 겨울인 점은 이인문이 두 번 모두 동지사행에 참여한 사실에 부합한다. 화풍 면에서 꼼꼼히 재현한 건축물과 경물들이 界 畵 法 에 능통했던 화원화가의 특 장을 보여주며 평행사선투시도법의 적용이나 樹 枝 法, 水 波 描, 돌 표현 등이 김홍 도나 이인문 같은 18세기 말 화원화가를 연상시킨다. 특히 < 山 海 關 東 羅 城 > 세부 의 조선사신단 행렬 속 말 표현이 주목된다(도35). 말의 다리가 관절을 마디마디 분절시켜 이어놓은 듯 독특하게 처리되었는데, 이인문의 말년작인 < 江 山 無 盡 圖 > 세부에서도 동일한 말 다리 표현이 발견된다(도36). 또 < 正 陽 門 >과 < 永 遠 牌 樓 >의 가지가 앙상한 수목, 여러 장면에 그려진 아치형 교각과 성문을 내면까지 횡선으 로 처리한 점, 유난히 귀가 큰 나귀의 모습 등이 모두 <강산무진도>의 화법과 상 통한다. 연행도첩 과 <강산무진도>는 성격상 기록화와 감상화로 구분되고 제 는 재위 기간 동안 149종 3,890여 권의 관찬서를 규장각을 통해 인출하기도 했다. 姜 惠 英, 朝 鮮 朝 正 祖 의 書 籍 蒐 集 政 策 에 관한 硏 究 : 奎 章 閣 을 중심으로, 연세대 박사학위논문(1990) 참조. 55) 李 德 懋, 靑 莊 館 全 書, 卷 70, 附 錄 上 先 考 積 城 縣 監 府 君 年 譜 上 ; 丁 若 鏞, 茶 山 詩 文 集, 卷 16, 自 撰 墓 誌 銘. 이덕무는 또 자신이 왕명으로 고금도서집성 을 열람했다고 밝히고 있다. 李 德 懋, 靑 莊 館 全 書, 卷 69, 寒 竹 堂 涉 筆 下, 達 句 長 韻. 56) 연행도첩 의 내용에 대해서는 鄭 恩 主, 朝 鮮 時 代 明 淸 使 行 關 聯 繪 畵 硏 究, 한국학중앙연구 원 박사학위논문(2008), 192~206쪽 참조.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51 작시기도 차이가 있음을 고려할 때 동일한 작가의 솜씨로 보기에 충분하다. 아울 러 마치 구슬을 꿰놓은 듯 표현한 말 다리가 1796년경 이인문을 비롯해 金 得 臣 (1754~1822), 崔 得 賢 등이 제작에 참여한 華 城 陵 幸 圖 屛 에서도 확인된다. 57) 이 와 같이 이인문의 행적, 그리고 <강산무진도>나 화성능행도병 과 직접 연관되 는 화풍의 특징은 연행도첩 이 1795~1796년 무렵 이인문에 의해 그려졌을 가 능성을 뒷받침해 준다. 요컨대 연행도첩 의 <만리장성>이나 앞서 본 <포산도>처럼 조선 화가들에 게 익숙하지 않은 중국 실경을 그릴 경우 산수판화는 매우 요긴한 자료였을 것이 다. 나아가 1788년, 정조가 일부러 김홍도와 金 應 煥 (1742~1789)에게 금강산 紀 行 寫 景 을 하명한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실경산수화가 유행하던 화단의 풍조가 일차적 동인이었겠지만 중국 천하의 명승명소가 재현되어 흥미를 돋우는 산수판화 에서 자극받았을 소지도 없지 않다. 18세기 후반 김홍도와 도화서 화원화풍에 배 어있는 명산도 의 요소는 그러한 정황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한편 서호지 나 武 夷 志 같은 방지의 산수판화 양식과 연계되는 화적도 전한 다. 58) 그 중 하나로 강희연간 초간되었고 1755년 건륭제의 명에 따라 蔣 溥 등이 다시 펴낸 薊 州 의 盤 山 志 가 주목된다. 반산은 사신들의 연행노정에 포함되었던 곳으로 徐 浩 修 (1736~1799)가 1790년에 쓴 燕 行 紀 에서 반산지 의 내용을 인용 하고 있다. 또 硏 經 齋 成 海 應 (1760~1839)도 盤 山 十 六 景 을 언급하고 있어 조선 에 알려진 방지였다고 생각된다. 59) 반산지 산수판화 양식은 서울역사박물관 소 장 關 西 八 景 圖 帖 의 < 妙 香 山 >이나 영남대학교박물관 소장 < 金 剛 山 四 大 寺 刹 全 圖 >와 상통한다(도37, 도38). 60) 두 작품 모두 大 景 을 부감시로 포착하여 산과 계 곡, 건물들로 화면이 꽉 차있는데, < 盤 山 全 圖 >나 < 行 宮 全 圖 > 같은 반산지 판화 와 친연성이 강하다. 61) 경물의 명칭을 친절하게 병기하여 지도에 가까운 인상을 57) 華 城 陵 幸 圖 屛 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朴 廷 蕙, < 水 原 陵 幸 圖 屛 >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189 (1991), 39쪽. 58) 무이지 의 유입에 대해서는 朴 銀 順, 앞의 논문(2002), 345~347쪽. 59) 徐 浩 修, 燕 行 紀, 卷 4, 起 燕 京 至 鎭 江 城 ; 成 海 應, 硏 經 齋 全 集 外 集, 卷 65, 雜 綴 類 ㆍ 燕 中 雜 錄, 宮 室. 60) < 金 剛 山 四 大 寺 刹 全 圖 >의 도판은 夢 遊 金 剛 : 그림으로 보는 금강산 300년 (일민미술관, 1999), 도 68 참조.

152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주는 점도 일치한다. 또 반산지 의 <행궁전도> 화제나 세부표현은 華 城 城 役 儀 軌 (1796)와 園 幸 乙 卯 整 理 儀 軌 (1797) 卷 首 圖 說 과도 상통한다. 즉 정조대 편찬 된 의궤 도설 판화의 체제나 표현법이 고금도서집성 이나 반산지 등 청대 궁정 판화와 연관됨을 시사한다. 이상과 같이 17~18세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다양한 산수판화가 조선에 유입되었 고 당시 화단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선후기의 문사들이 인문지리적 지 식과 명망가들의 시문을 접하는 매체인 동시에 화가들에게는 효과적으로 실경을 소화하고 繪 畵 化 하는 데 참조한 기재였다. 특히 정선과 김홍도는 조선의 산천을 담은 실경산수화라는 대명제 앞에서 몸소 현장을 답사하는 한편, 부분적으로 산수 판화의 특장을 소화하여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정형을 모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명산도 는 완성도 높은 회화성과 세련된 판각으로 인해 조선후기 화단 에서 가장 꾸준히 애호 받은 산수판화집이었다. V. 맺음말 명대 만력연간 강남지역에서 발달한 인쇄출판업과 산수기행 문화를 배경으로 독립적 위상을 확보하기 시작한 산수판화는 청대로 전승되며 약진을 거듭하였다. 실재하는 산천경관을 제재로 삼아 전통적 지리여도와 실경산수화의 특징을 수렴하 며 성립하였고, 마침내 한 폭의 회화로 보아도 손색없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17~18세기 중국 산수판화의 전개과정은 인문지리적 성격으로부터 점차 순수회화 적 면모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행되었다. 삼재도회 와 해내기관 이 전자에 해 당하며 명산도 와 태평산수도, 황산판화 등이 후자에 속한다. 이들 산수판화는 대개 전해오던 방지나 선행 판본류를 참작하여 제작되었다. 시 기가 가장 앞서는 삼재도회 지리권 판화는 해내기관 의 원천 자료로 활용되 었다. 이어서 명산도 는 해내기관 의 양식을 일부 차용하면서 실경산수화의 성 과까지 적극 반영하여 회화성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추세는 청초 태평산수도 와 61) 盤 山 志 판화는 中 國 淸 代 宮 廷 版 畵, 7( 合 肥 : 安 徽 美 術 出 版 社, 2002), 129~310쪽 참조.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53 각종 황산판화집으로 계승되어 일반회화와 더욱 밀착되는 양상을 보였다. 산수판 화의 양식에는 명대 소주화단의 오파나 명말청초 안휘파 같은 일반 산수화풍이 이 입되었다. 역으로 각종 산수판화의 표현법이 석도나 홍인, 매청의 황산도에 적용 되었고 강희남순도권 같은 기록화 제작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편 강희제 때 편찬된 고금도서집성 산천전 의 판화는 순수회화적 성격의 명산도 양식을 주조로 하면서 그간에 축적된 여러 산수판화의 장점을 두루 채택하여 완성하였다. 청대 후기에 이르면 서양의 동판화 기법이 수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목판본 산 수판화는 명산도 계열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7~18세기 명ㆍ청대 산수판화는 그리 큰 시차 없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16세기 말부터 문인들 사이에 고양되기 시작한 중국 서적의 구득 열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산수판화집도 속속 유입되었다. 당시 이를 열람한 범위는 고금도서집성 을 수입 케 한 왕실 이하 문인사대부, 화원화가에 이르기까지 광범하였다. 사실상 문사들 의 관심은 판화보다는 지리적 지식이나 시문에 있었겠지만 함께 실린 판화가 일으 킨 반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실경산수화의 붐이 조성된 18세기에는 정선과 김 홍도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양식 정립에 관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명산도 양 식이 가장 오랫동안 선호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영ㆍ정조대 회화식 지도가 활 발히 제작되고 주요 성시전경을 담은 작품들이 인기를 누리는 분위기 생성에도 일 조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연행도첩 은 이인문 이 1795년과 1796년에 참여한 동지사행을 계기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요컨대 17~18세기 산수판화집은 중국과 한국 지식인들에게 인문지리와 시문의 학습서가 되는 한편, 화가들에게는 회화교본으로 기능하는 등 다양한 부면에 영향 을 끼쳤다. 또 간행 전후의 사회문화적 정황과 더불어 화단의 동향을 전해주는 자 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특히 실경산수화와의 연관성은 동북아회화사 연구에 결코 가볍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154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도1> 三才圖會 중 <西湖圖> <도2> 海內奇觀 중 <華岳圖> <도3> 三才圖會 중 <華山圖> <도4> 海內奇觀 중 <黃山圖> 부분 <도5> 海內奇觀 중 <白嶽圖> <도6> 三才圖會 중 <黃山圖>

17~18세기 중국 山水版畵의 형성과 그 영향 155 <도7> 梅淸, 黃山十九景圖冊 제3엽, 紙本淡彩, 33.9 44.1cm, 상해박물관 <도8> 海內奇觀 중 <靈巖寺> 부분 <도9> 弘仁, <煉丹臺>, 黃山圖冊, 紙本淡彩, 21.2 18.3cm, 북경고궁박물원 <도10> 名山圖 중 <京口三山>, 규장각 <도12> 名山圖 중 <天目>, 규장각 <도11> 三才圖會 중 <京口三山>

156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도13> 名山圖 중 <桂林>, 규장각 <도14> 名山圖 중 <瀼西>, 규장각 <도15> 名山圖 중 <黃山>, 규장각 <도16> 石濤, <文殊院 天都峰>, 黃山八勝畵冊, 紙本淡彩, 20.2 26.8cm, 京都 泉屋博古館 <도18> 王翬(外), 康熙南巡圖卷 부분, 1691~1695년, 絹本彩色, 북경고궁박물원 <도17> 名山圖 중 <燕磯>, 규장각

17~18세기 중국 山水版畵의 형성과 그 영향 157 <도19> 蕭雲從, 太平山水圖 중 <靈山圖> <도20> 蕭雲從, <擬古山水圖>, 1653년, 紙本淡彩, 44.3 23.0cm, 안휘성박물관 <도21> 太平山水圖 의 皴法 <도22> 黃山志定本 중 <始信峰> <도23> 古今圖書集成 중 <天目山圖>

158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도24> 古今圖書集成 중 <小孤山圖> <도25> 三才圖會 중 <小孤山圖> <도26> 작자미상, <鍊光亭>, 關西名區帖, 18세기말, 紙本淡彩, 41.7 59.3cm, 개인 <도27> 三才圖會 중 <黃鶴樓圖> <도28> 鄭敾, <雙島亭圖>(上)와 海內奇觀 <鷄足山圖>(下)의 산 표현

17~18세기 중국 山水版畵의 형성과 그 영향 159 <도29> 傳 金弘道, <淸澗亭>, 金剛四郡帖, <도30> 海內奇觀 중 <孤山六橋圖> 絹本淡彩, 30.4 43.7cm, 개인 <도31> 작자미상, <苞山圖>, 韓中名勝圖帖, 18세기말~19세기초, 紙本淡彩, 35.6 49.0cm, 영국도서관 <도32> 名山圖 중 <包山>, 규장각 <도33> 작자미상, <萬里長城>, 燕行圖帖, 1784년 이후, 紙本淡彩, 34.9 44.7cm,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도34> 古今圖書集成 중 <林慮山圖>

160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도35> 작자미상, <山海關東羅城>, 燕行圖帖, 1784년 이후, 紙本淡彩, 34.9 44.7cm,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도36> 李寅文, <江山無盡圖> 부분, 絹本淡彩, 44.4 856.6cm, 국립중앙박물관 <도38> 작자미상, <妙香山>, 關西八景圖帖, 絹本彩色, 40.0 61.3cm, 서울역사박물관 <도37> 盤山志 중 <盤山全圖> 참고문헌 名山圖, 奎章閣(奎中 3235); 名山圖, 藏書閣(C2-310); 古今圖書集成, 奎章閣(奎中貴 2555); 古今圖書集成, 藏書閣(C3-279); 肅宗實錄 ; 正祖實錄. 徐浩修, 燕行紀. 成海應, 硏經齋全集外集. 柳道源, 蘆厓集. 李德懋, 靑莊館全書. 丁若鏞, 茶山詩文集.

17~18세기 중국 山 水 版 畵 의 형성과 그 영향 161 강명관, 조선후기 서적의 수입ㆍ유통과 장서가의 출현: 18, 19세기 경화세족 문화의 한 단면. 조 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서울: 소명출판, 1999, 253~276쪽. 고바야시 히로미쓰(저)/김명선(역), 중국의 전통판화. 서울: 시공사, 2002. 高 蓮 姬,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연구: 鄭 敾 과 農 淵 그룹을 중심으로. 서울: 일지사, 2001. 박도래, 明 末 淸 初 期 蕭 雲 從 (1596~1669)의 山 水 畵 硏 究.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2004. 朴 銀 順, 朝 鮮 後 期 寫 意 的 眞 景 山 水 畵 의 形 成 과 展 開. 미술사연구 16호, 2002, 333~363쪽. 朴 恩 和, 元 代 의 實 地 名 山 水 畵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221ㆍ222, 1999, 109~144쪽. 朴 晶 愛, 之 又 齋 鄭 遂 榮 의 山 水 畵 연구. 美 術 史 學 硏 究 235, 2002, 87~123쪽. 朴 晶 愛, 朝 鮮 後 期 關 西 名 勝 圖 연구. 美 術 史 學 硏 究 258, 2008, 105~139쪽. 朴 廷 蕙, < 水 原 陵 幸 圖 屛 >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189, 1991, 27~68쪽. 朴 孝 銀, 朝 鮮 後 期 문인들의 繪 畫 蒐 集 活 動 연구.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1999. 安 輝 濬, 謙 齋 鄭 敾 (1676~1759 의 瀟 湘 八 景 圖. 美 術 史 論 壇 20호, 2005, 7~48쪽. 오오키 야스시(저)/노경희(역),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 서울: 소명출판, 2007. 王 圻 ( 編 ), 三 才 圖 會 (영인본). 서울: 成 文 出 版 社, 1970. 이선옥, 息 山 李 萬 敷 (1664~1732)와 陋 巷 圖 書 畵 帖 硏 究. 美 術 史 學 硏 究 227, 2000, 5~38쪽. 李 成 美, 虛 舟 府 君 山 水 遺 帖 : 傳 李 宗 岳 (1726~1773)의 眞 景 山 水 畵 帖 簡 介. 藏 書 閣 3집, 2000, 215~228쪽. 崔 玎 妊, 三 才 圖 會 와 朝 鮮 後 期 繪 畵.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2003. 한정희, 17~18세기 동아시아에서 실경산수화의 성행과 그 의미. 美 術 史 學 硏 究 237, 2003, 133~163쪽. 홍선표(외), 17ㆍ18세기 조선의 외국서적 수용과 독서문화. 서울: 혜안, 2006. 中 國 古 代 版 畵 總 刊 二 編 (영인본) 제8집.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94. 聶 崇 正, 談 康 熙 南 巡 圖 卷. 宮 廷 藝 術 的 光 輝. 臺 北 : 東 大 圖 書 公 司, 1996. 小 林 宏 光, 版 畵 と 版 本. 世 界 美 術 全 集 東 洋 編 第 8 卷 明, 東 京 : 小 學 館, 1999. 陳 夢 雷 編, 古 今 圖 書 集 成 (영인본), 臺 北 : 鼎 文 書 局, 1977. 馮 鵬 生, 中 國 木 版 水 印 槪 況. 北 京 : 北 京 大 學 出 版 社, 1999. Cahill, James, The Compelling Images: Nature and Style in Seventeenth-Century Chinese Painting. Cambridge: Havard Univ. Press, 1979. Cahill, James(ed.), Shadows of Mt. Huang: Chinses Painting and Printing of the Anhui School. Berkeley: University Art Museum, 1981. Maxwell Kessler Hearn, The Kangxi Southern Inspection Tout : A Narrative Program by Wang Hui. Ph.D. dissertation, Princeton University, 1990.

162 정신문화연구 제31권 제4호(2008) 明 代 萬 曆 年 間 (1573~1620)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인쇄출판업의 호황과 기 행문화가 확산되면서 활발히 간행되기 시작한 山 水 版 畵 는 淸 代 까지 꾸준히 발 전하였다. 전통적 地 理 輿 圖 와 實 景 山 水 畵 의 특징을 수렴하며 성립하였고 마침 내 한 폭의 회화로 보아도 손색없는 수준에 도달하였다. 17~18세기 중국 산수판 화의 전개과정은 인문지리적 성격으로부터 점차 순수회화적 면모가 강화되는 방향으로 이행되었다. 三 才 圖 會 (1607)와 海 內 奇 觀 (1609)이 전자에 해당하며 名 山 圖 (1633)와 太 平 山 水 圖 (1648), 黃 山 版 畵 가 후자에 속한다. 이들 산수판화는 대개 전해오던 方 志 나 선행 판본류를 참작하여 제작하였 다. 시기가 가장 앞서는 삼재도회 地 理 卷 은 해내기관 의 원천 자료로 활용되었다. 이어서 명산도 는 해내기관 의 양식을 일부 차용하면서 실경 산수화의 성과까지 수용하여 회화성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추세는 청초 태 평산수도 와 각종 황산판화집으로 계승되어 일반회화와 더욱 밀착되는 양상 을 보였다. 또한 康 熙 帝 (재위 1662~1711) 때 편찬된 古 今 圖 書 集 成 山 川 典 에서는 순수회화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산도 양식을 주조로 여타 판화집 의 장점을 채택하였다. 17~18세기 중국 산수판화집은 큰 시차 없이 朝 鮮 에 전래되었고 왕실 이하 사대부, 화가에 이르기까지 널리 열람되었다. 특히 실경산수화의 붐이 조성 된 18세기에는 鄭 敾 (1676~1759)과 金 弘 道 (1745~1806 이후) 등 당대를 대표 하는 화가들의 양식 정립에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17~18세기 산수판화는 중 국과 한국 지식인들에게 인문지리와 시문의 학습서가 되는 한편, 화가들에게 는 회화교본으로 기능하기도 했던 것이다. 투고일 : 2008. 4. 10. 수정일 : 1차 2008. 9. 29, 2차 2008. 12. 4 게재확정일 : 2008. 12. 10. 주제어(keyword) : 실경산수화(real-view landscape painting), 산수판화(woodblock print of real-view landscape), 삼재도회(Sancaituhui), 해내기관(Haineiqiguan), 명산도(Mingshantu), 태평산수도(Taipingshanshuitu), 황산판화(woodblock print of Huangs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