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트랜스라틴 5 호 (2009 년 1 월 ) 볼리비아의자원민족주의와천연가스산업 이상현 볼리비아자원민족주의의역사 볼리비아는식민시대이래로천연자원에기반을둔경제운용을하고있다. 식민시대부터 19세기까지는은 ( 銀 ), 20세기초부터 1980년대까지는주석, 그리고 20세기후반부터현재까지는천연가스가볼리비아경제의핵심적역할을담당해왔다. 이렇게하나의천연자원에과도하게의존하는볼리비아의경제구조는역사적으로자원의소유와이익에대한분배를둘러싼다양한정치적갈등을불러일으키는원인이되었다. 따라서볼리비아에서자원의국가통제를통한자원소득의공평한분배를주요목표로하는소위자원민족주의는자원산업만큼이나오랜역사를지니고있다. 1937년다비드토로 (Jose David Toro Ruilova) 정권이실시한스탠더드석유회사국유화와국영석유회사 (YPFB) 의설립, 1952년혁명이후파스에스텐소로 (Víctor Paz Estenssoro) 정권 웹진트랜스라틴 http://translatin.snu.ac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 (SNUILAS)
과테말라에서마야의의미를이해하기까지 83 이실시한주석산업의국유화와국영광업공사 (COMIBOL) 의설립, 그리고 1969년오반도칸디아 (Alfredo Ovando Candía) 정권이실시한걸프석유회사국유화는볼리비아역사에서자원민족주의가실제정책으로표출된대표적인사례들이다. 그러나이러한자원민족주의정책은반작용을불러일으키기도하였다. 1955년의석유산업개방과외국기업투자유치그리고 1997년 YPFB의자본화 ( 부분민영화 ) 와천연가스산업개방은이러한반작용의대표적사례들이다. 자본과기술이부족한볼리비아에게자원산업에대한외국인투자는어쩌면개발을위한불가피한요소였다. 결국볼리비아자원산업정책의역사는국가통제의강화와민간투자의개방이서로반복적으로나타나는양상을보여주고있다. 볼리비아의새로운봉급 - 천연가스 남미가운데에위치한가난한나라볼리비아에게천연가스는현재국가경제를책임지는가장중요한자원이다. 약 7,400억입방미터 (2006년기준 ) 로베네수엘라에이어라틴아메리카제2위의확인매장량을보유하고있는볼리비아의천연가스는시가로그규모가 700억달러에서 2,100억달러에달한다. 지금의생산량수준이라면앞으로약 80년을생산할수있는규모이다. 또한천연가스산업은볼리비아국가재정과수출의 3분의 1 이상을담당하고있다. 볼리비아경제에서천연가스산업의이러한중요성은 1990년대부터확대되기시작하였다. 사실 20세기볼리비아를대표하는자원은주석이었다. 1952년볼리비아혁명의한원인이기도하였던주석은 1952년당시에총수출의 70% 이상을차지하던중요한자
84 트랜스라틴 5 호 (2009 년 1 월 ) 볼리비아의천연가스송유관 원이었다. 특히국영광업회사 COMIBOL을중심으로한볼리비아주석산업은가장크고중요한산업일뿐만아니라민족주의에기반한국가주도적발전전략을추진하는볼리비아경제정책기조의시금석이기도하였다. 그러나이러한기조는 1980년대일어난경제위기와함께급변하였다. 연 20,000% 에달하는살인적인플레이션을극복하기위한방안으로실시된신자유주의적기조의 신경제정책 은때마침발발한국제주석가격의붕괴로어려움에처한주석산업의구조조정으로까지확장되었다. 수십년간볼리비아경제의견인차역할을담당하던주석산업의붕괴는볼리비아경제시스템의변화뿐만아니라새로운주력산업의필요성을요구하였다. 결국 1985년당시기획장관으로신경제정책의설계자역할을한산체스데로사다의대통령취임 (1993-1997) 은볼리비아경제의신자유주의화를통한천연가스산업의확장을가져오는계기가되었다. 특히민영화에대한국민적반감이큰볼리비아에서산체스
과테말라에서마야의의미를이해하기까지 85 데로사다는민영화에대한반감을회피하기위한목적으로주요국영기업의자본화 (Capitalization) 정책을실시하였다. 가장큰규모로이루어진 YPFB의자본화는에너지산업에대한해외자본의대규모투자를유치하는계기가되어천연가스산업의비약적확장을가져오는계기가되었다. 1997년이후브라질의 Petrobras, 스페인의 Repsol-YPF, 영국의 BP와 British Gas, 그리고프랑스의 Total을중심으로 40억불을천연가스부분의탐사와생산에투자한해외자본은 1997-2005년의기간동안볼리비아천연가스의확인매장량을 6배이상그리고생산량을 4배이상각각증가시켰다. 한편 YPFB의자본화와더불어진행된볼리비아천연가스산업의개방및해외자본직접투자의급격한증가는또다른자원민족주의를고양시키는계기가되었다. 신자유주의정책의확대에도불구하고여전히개선되지않는빈곤과빈부격차에실망한볼리비아국민에게급격히늘어난천연가스는희망의자원이었다. 더불어 1990년대이후신자유주의에대한실망을자양분으로성장한원주민세력을비롯한사회운동의급격한정치화는민족주의적좌파정당인사회주의운동당 (MAS: Movimiento al Socialismo) 을구심점으로볼리비아정치와경제에새로운변화의바람을불러일으켰다. 천연가스산업과자원민족주의의부활 2002년산체스데로사다는다시대통령에당선되었다. 하지만원주민출신의코카재배농민운동지도자에보모랄레스 (Evo Morales) 를중심으로더욱강력해진야당사회주의운동당의존재
86 트랜스라틴 5 호 (2009 년 1 월 ) 는산체스데로사다정권에게무엇하나쉬운일이없게하였다. 특히늘어나는천연가스의매장량과생산량에도불구하고로열티가 18% 에불과한천연가스산업에대한국유화요구는점점더힘을얻어가며조직화되었다. 위태위태하던산체스데로사다정권의종말은결국천연가스가원인이되었다. 2003년 10월다국적기업의투자를유치하여볼리비아로부터칠레를경유하는파이프라인을건설, 미국과멕시코로천연가스를수출하려던산체스데로사다의계획은전국민적정권퇴진투쟁을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운동당중심의다국적기업투자유치반대와재국유화주장은 19세기태평양전쟁의패배로생긴해묵은반칠레감정과맞물리며걷잡을수없이증폭되었다. 결국 2003년 10월 17일산체스데로사다대통령이수십만의시위대에굴복하여미국마이애미로망명길을떠나며소위가스전쟁은끝이났다. 1982년민주화이후처음중단된헌정은임시대통령과국민투표로이어지는정치혼란을겪은후 2005년 12월 18일사회주의운동당후보로출마한에보모랄레스가대통령에당선되며일단락된다. 모랄레스정권과천연가스산업재국유화 오랜기간볼리비아정치에서소외받던원주민출신으로코카근절정책에반대하는코카재배농민운동의지도자를지낸모랄레스는볼리비아의총체적변화를약속하였다. 사회주의운동당의핵심지지세력으로 500년이상차별과빈곤에시달려온원주민과빈민세력은모랄레스정권이약속한변화에큰기대를걸었다. 정권의성패를가름할지지세력의규합을위한모랄레스정권의노력은천연자원산업재국유화, 원주민권리신장그리고
과테말라에서마야의의미를이해하기까지 87 빈부격차해소를위한정책들로구체화되었다. 특히모랄레스정권창출의일등공신을한천연가스산업의재국유화는빈곤과빈부격차해소를위한재원마련을위해서도시급한과제로떠올랐다. 결국모랄레스대통령은 공장시설의국유화조치를알리는현수막 취임후첫번째로맞이한세계노동자의날인 2006년 5월 1일천연가스산업의 국유화 를선언하였다. 1997년의자본화와개방이후다국적기업이주도하고있던천연가스산업의국유화는볼리비아정부가설정한 6개월간의 전환기간 동안의볼리비아정부와다국적기업들간의협상을통하여이뤄졌다. 지루한협상끝에 2006년 10월타결된협상은모랄레스정권의당초구상대로되었다. 기존의최저 18% 였던로열티와세금은대형유전의경우 50~82% 로그리고소형유전의경우 60% 로높아졌다. 또한국유화를통하여볼리비아정부는천연가스산업에대한소유권을재확인하고경영통제권을회복하였다. 세금과로열티비율의재협상은천연가스산업에서얻어지는볼리비아정부의수입을 2003 년에비하여무려 6배나증가시킬것으로예상되며, 이는모랄레스정권의중대한업적으로기록되었다. 결국 2006년의천연가스산업국유화는모랄레스정권의등장을전세계에본격적으로알리는계기가되었을뿐만아니라개혁을위한경제적토대의역할을하였다. 특히천연가스자원과생산시설의완전몰수보다는지분과세수조정을통한수익분배구조의재편에초점을둔 2006 년의국유화는모랄레스지지자의다수를차지하는빈곤층을위
88 트랜스라틴 5 호 (2009 년 1 월 ) 한사회복지정책의재원을충당할중대한원천을제공하였다. 따라서중앙정부의재정지출은 2005년의국내총생산대비 34% 에서 2007년 42% 로증가하였으며, 그럼에도불구하고여전히재정흑자를기록하였다. 확대된정부지출의대부분은총인구의 60% 에달하는빈곤층을위하여사용되었다. 교육과생활보조금연계프로그램을활성화시켰으며, 최저임금및공무원임금인상을단행했다. 또한최초의원주민출신대통령인모랄레스는원주민권리증진을위한다양한정책을실시하였다. 모랄레스정권과새로운갈등 모랄레스정권의개혁정책은대내외적으로다양한갈등을낳았다. 우선기존의친미ㆍ친서방기조를탈피하여집권전부터공공연하게반제국주의와반신자유주의를천명하던모랄레스의대외정책은대외적갈등을낳았다. 코카근절정책및경제정책기조를둘러싼미국과의마찰은대사추방과원조중단을주고받으며격화되었다. 또한천연가스산업의국유화과정에서비롯된해외투자자들과의마찰은미국, 영국, 스페인등의서방국가들과는물론볼리비아천연가스의주요수입국인브라질과도심심치않은갈등을일으켰다. 그러나모랄레스개혁정책에대한반발은볼리비아내부에서더욱강력하게터져나왔다. 식민시대이래로축적된모순과질곡을일거에해결하려는모랄레스의구상은기득권상실을우려한기존지배층을중심으로한저항에직면하였다. 특히최근라틴아메리카급진좌파가개혁정책들의정착을위한수단으로사용하는헌법개정은정치적갈등을절정에이르게하였다.
과테말라에서마야의의미를이해하기까지 89 천연가스산업국유화라는정치적ㆍ경제적성과의여세를몰아헌법을개정하려던모랄레스의계획은제헌의회구성에서부터난관에봉착하였다. 집권초기임에도불구하고여당이과반수확보에그치며헌법개정에필요한절대의석수인 2/3 확보에실패한후, 제헌의회는헌법개정안의확정을위한최소의석수를둘러싼논쟁으로파행을겪었다. 결국여당은 2007년 12월야당을배제한채헌법개정안을확정하였다. 개정된헌법은모랄레스정권이추구하는새로운볼리비아를위한개혁정책의공고화와집권기반강화를위한다양한조항들을포함하고있었다. 개정헌법은인종적다양성을존중하는다민족국가조항, 천연자원에대한국가소유권재확인조항, 지방자치의확립조항, 경제영역에서의공공성강화조항, 의회재구성그리고대통령의연임규정철폐등을담고있었다. 또한헌법개정안은토지소유를 10,000 헥타르이하로제한하는토지개혁안에대한국민투표를포함하고있었다. 그러나반쪽제헌의회가확정한헌법개정안은심각한후폭풍을불러일으켰다. 천연가스산업에대한국가통제권강화, 토지개혁그리고원주민의권리신장으로요약되는헌법개정안이확정될경우기득권을상실할각세력은조직적반대운동을전개하였다. 특히토지개혁에반대하는지주세력과현재천연가스에서발생하는이익을과점하고있는동부의천연가스생산지역주민들의반대가거세었다. 결국헌법개정을둘러싼갈등은볼리비아서부지역을중심으로한찬성세력과동부지역을중심으로한반대세력간의지역간갈등으로발전하였다. 원주민후손이주민의다수를차지하는수도라파스중심의서부고산지역에비해백인중심의유럽이민후손이다수를차지하는동부지역은천연가스의생산지임과동시에농업과상업의중심지로상대적으로부유한지역이다. 우선양측의대립은주민투표를주고받으며전개되었
90 트랜스라틴 5 호 (2009 년 1 월 ) 다. 먼저동부지역주지사들의주도로지역자치를위한주민투표가실시되었다. 비공식적으로실시된지역자치주민투표가투표를실시한모든주에서압도적인찬성률을보이며정권을압박하자모랄레스는주지사및대통령소환국민투표로대응하였다. 볼리비아유권자의 84% 가참가한 2008년 8월주지사및대통령소환국민투표에서모랄레스대통령은 2005년대통령선거득표율 54% 보다높은 68% 를득표함으로서재신임을획득하였다. 그러나잇따라실시된투표들은문제를해결시키기보다는악화시킬뿐이었다. 투표를통한해결책마저고갈된대립은결국 2008년 8월 28 일모랄레스대통령이헌법개정을위한국민투표를 2009년 1월 25일로공표하자폭력사태로발전하였다. 양측간의유혈충돌은전국적으로수십명의사상자를발생시켰다. 반정부세력은가스 2008년 8월주지사및대통령소환국민투수출을위한파이프라인을절단표장에서투표를하는에보모랄레스볼리하겠다고위협하였으며동부지역비아대통령에서정부의통제력은급격히상실되었다. 이에친정부세력은모랄레스가직접참여한헌법개정촉구행진으로대응하며상황은내전마저우려되는일촉즉발의위기로치달았다. 결국일주일에걸친헌법개정촉구행진을마친 10만여명의여당지지자들이의회를둘러싼가운데열린여야협상은 2008년 10월 20일극적으로타결되며극한대립은한고비를넘기게되었다. 협상의타결은모랄레스의대통령임기제한에대한합의가
과테말라에서마야의의미를이해하기까지 91 기폭제가되었다. 결국일부내용이수정된개정헌법의확정을위한국민투표를 2009년 1월 25일에그리고개정헌법에따른정부통령및의회선거를 2009년 12월 6일실시하기로하였다. 한편모랄레스는 2009년 12월실시될선거에서승리할경우또다른재임이불가능한 5년임기의대통령직을수행하게된다. 마치며 자원과볼리비아는뗄수없는관계이다. 번영과갈등의양날을가진자원은싫든좋든볼리비아역사를좌지우지하였다. 특히가장중요한자원에대한국가통제권강화를통하여주권확대와국민이익극대화를이루어야한다는당위성과사적자본의유입을통하여부족한기술및자본을보충하여야한다는필요성사이의딜레마는가난한자원부국볼리비아가운명적으로직면한문제이다. 자원산업과관련된볼리비아의이러한태생적한계는끝없는갈등을유발하는원인이될것이다. 여러면에서비추어볼때, 천연가스산업을매개로집권하여축적된모순을해결하려는모랄레스정권의실험은주석산업의국유화와더불어보통선거권의확립과토지개혁을이룬 1952년혁명의반복을연상케한다. 그러나혁명없이혁명보다더욱많은과제를이루려는모랄레스의시도는성과만큼이나끊임없는갈등을낳을것이다. 그러나분명한것은모랄레스가흥미롭고의미있는역사를쓰고있다는사실이다. 이상현 - 부산외국어대학교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