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하였습니다. 올해는 6 25전쟁 55주년과 광복 60년, 을사늑 약 100주년 등 우리나라로서는 역사적으로 매 우 의미 있는 해입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지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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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른 바람이 되어

2 발간사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하였습니다. 올해는 6 25전쟁 55주년과 광복 60년, 을사늑 약 100주년 등 우리나라로서는 역사적으로 매 우 의미 있는 해입니다. 우리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지난 역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의 삶을 조명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해 가는 역동성과 추진력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보훈처에서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국가유공자 들의 애국충정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 어주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보훈문예물 공모전을 마련해 왔습니다. 올해에도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 학생부터 고령의 참전용사에 이르 기까지 많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셨습니다. 해를 거듭할수 록 늘어나는 응모작품의 수와 높은 수준에 맞추어 시상인원을 획기적으 로 늘렸으나 워낙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탈락하신 분 또한 많았던 점 안타 깝게 생각합니다. 응모해 주신 분들의 작품을 보면서, 특히 우리의 내일을 짊어질 청소년 들이 조국의 참다운 의미와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진솔하고 감 동적으로 그려낸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또한 국가유공자를 존경하 고 예우하는 마음가짐을 참신하고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을 통해 자라나 는 세대가 건전한 국가관과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 한편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수기에서는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소중함과,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 다 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응모하신 분들의 작품이 길이 보존되고 국민에게 널리 읽혀지기를 바라 는 마음에서 수상작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만, 지면이 한정되 어 가작상을 타신 분들의 작품과 나머지 응모작품을 모두 싣지 못한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 책에 실린 작품을 통해 국가를 수호 하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국민들로부터 진정으로 존경받는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고,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라사랑 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바쁘신 가운데에도 훌륭한 작품을 엄선해 주신 이영호 한국어린 이문화진흥재단 이사장님과,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님, 김송배 사무 처장님, 송세희 사무차장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보내주신 응모자 여러분께도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보훈처장 박 유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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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당신의 나라사랑이 대한민국을 키워갑니다 나라사랑 큰 나무 나라사랑 큰 나무 설명 나라사랑 큰 나무 의상징내용 - 나무의 형상은 대한민국 을 - 태극무늬는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을 - 열매는 오늘의 풍요로움과 내일의 번영 을 - 파랑새와 새싹은 자유와 내일의 희망 을 상징하고 있음. 나라사랑 큰 나무 가 함축하는 의미 -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국가유공자의 고귀한 희생 과 공헌의 바탕 위에 이룩되었으며 - 이러한 희생 공헌이 정신적 귀감으로 가치있게 받아들여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으로 승화되 어야 함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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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차례 푸른 바람이 되어 시 초등부 반쪽이 대한이 조윤주 _ 충주 대림초등학교 17 하모니카 류예빈 _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19 통일의 열차 강슬기 _ 원주 단계초등학교 21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김혜진 _ 전북 이리서초등학교 23 철조망 김은지 _ 광주 태봉초등학교 26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배 한 _ 서귀포 동홍초등학교 28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장채린 _ 마산 신월초등학교 30 국립묘지에서 전대원 _ 목포 북교초등학교 32 나라 지킴이? 우리! 조예은 _ 군산 문화초등학교 34

8 시 중 고등부 사진 한 장 이성주 _ 여주 진남여자중학교 36 별빛 김미란 _ 서울 창동고등학교 38 하늘 손효철 _ 경남 진주고등학교 40 호국의 종 고유정 _ 마산 호계중학교 42 철조망을 두고 김재임 _ 전남 광양여자중학교 44 푸른 바람이 되어 최송아 _ 과천외국어고등학교 46 붉은 봄 이송희 _ 천안 복자여고 48 승전보 이채석 _ 울산 제일고등학교 50 비가 오면 김예슬 _ 부산디자인고등학교 52

9 시 일반부 아버지의 군번외우기 조명숙 _ 울산 북구 중산동 54 외할아버지의 목발 정해미 _ 부산 북구 구포3동 56 푸른 잎 배재형 _ 서울 서초구 방배동 58 우리할매 이주연 _ 서울 종로구 명륜동 60 지리산 위령제( )-철쭉꽃 장세진 _ 부산 연제구 연산 4동 62 한탄강의 실안개 이재석 _ 경기 동두천시 생연1동 64

10 수필 초등부 우리 할아버지 이서연 _ 대전 내동초등학교 69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허장산 _ 마산 월포초등학교 71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소슬미 _ 임실 갈담초등학교 73 할아버지의 눈물 김선영 _ 제주 대흘초등학교 76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권민정 _ 서울 석촌초등학교 79 할머니의 보약 신화진 _ 울산 옥동초등학교 82 끄지 못하는 불 장윤영 _ 평창 면온초등학교 84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유완승 _ 보령 대관초등학교 87 나의 사랑스러운 조국 한국 박지은 _ 군산 서해초등학교 93

11 수필 중 고등부 민이 이야기 김선아 _ 대전외국어고등학교 95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이승우 _ 인하사대부고등학교 100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이현제 _ 문산 제일고등학교 107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태길 _ 포항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112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이화정 _ 마산 제일여자고등학교 117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 박선희 _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126 바람이 붑니다 양지숙 _ 속초상업고등학교 132 할아버지의 다리 정소진 _ 영암 삼호서중 139 연필을 든 용병과 총을 멘 용병 장유진 _ 울산 학성여자고등학교 142

12 수필 일반부 호국보훈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홍창재 _ 충남 아산시 온천동 146 태극기 함정금 _ 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 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 이수진 _ 서울 도봉구 창5동 157 전쟁이 남긴 슬픈 기억 두 토막 박정순 _ 인천 동구 송현동 162 은혜를 기억하는 도리 송채임 _ 서울 마포구 염리동 167 바람꽃 이미숙 _ 전남 목포시 용당1동 172

13 6 25 남침전쟁 한 병사의 수기 김상현 _ 경북 영주시 휴천2동 178 사선을 넘고 넘어서 김천일 _ 대구 수성구 황금동 205 읽어버린 고향 찾을 길 없나 이정모 _ 서울 노원구 상계7동 230 아주 특별한 태극기 사랑 이성균 _ 서울 중랑구 상봉2동 262 베트남 전쟁을 통한 감회 안흥종 _ 인천 남구 도화3동 309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여 영원하리 정청 _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369

14 추모헌시 유월의 장미 류진아 _ 부산 남구 대연5동 408 평화의 노래 오유리 _ 대전 중구 선화동 410 우리민족모두가하나되는그날까지 고선민 _ 경기부천시 여월여자중학교 412 한 목숨 바쳐 살려낸 나라 이미진 _ 경북 포항시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416 유월의 노래 임정윤 _ 경기 과천시 별양동 418 초혼제 임종훈 _ 대구 달서구 도원동 421

15 시 반쪽이 대한이 하모니카 통일의 열차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철조망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국립묘지에서 나라 지킴이? 우리! 사진한장 별빛 하늘 호국의 종 철조망을 두고 푸른 바람이 되어 붉은 봄 승전보 비가 오면 아버지의 군번외우기 외할아버지의 목발 푸른 잎 우리 할매 지리산 위령제( )-철쭉꽃 한탄강의 실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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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시 초등부 반쪽이 대한이 조윤주_최우수상 / 충주 대림초등학교 6학년 내 얼굴의 한쪽 눈이 내것이 아니란다. 내 얼굴의 한쪽 귀도 내것이 아니란다. 두 눈으로 보면 더선명히볼수있고 두 귀로 들으면 더 또렷이 듣게 될텐데 누가 나를 반쪽이로 만들었나! 내몸의한쪽팔이 내것이 아니란다. 내 몸의 한쪽 다리도 내것이 아니란다. 17 푸른 바람이 되어

18 시 초등부 두 팔로 움직이면 더쉽게할수있고 두 다리로 뛰어가면 더 빨리 갈수 있을텐데 누가 나를 반쪽이로 만들었나! 이제는 나의 두눈 찾고 싶어라. 이제는 나의 두귀 찾고 싶어라. 이제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어 50년 동안 겪은 반쪽생활 마치고 싶어라. 반만년 동안 지켜온 단일민족의 문화를 꽃 피우고 싶어라. 온전한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혼신을 다해 싸운 영혼들의 넋을 위해 더 멀리 더 높이 뛰기 위한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조국의 무한한 발전과 영광을 위해 이제는 한몸이 되어 하나의 이름 대한 이로 살고 싶어라. 18 국가보훈처 _

19 시 초등부 하모니카 류예빈_우수상 / 전남 고흥동초등학교 6학년 증조할머니 머리맡에는 하모니카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살아 계셨으면 나를 귀여워 해주실 작은 할아버지의 하모니카입니다. 작은 할아버지는 오래 전 월남전쟁에 참전용사로 파병되어 자유와 평화의 적과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전사하셨습니다. 이기고 돌아와 증조할아버지께 기쁨을 안겨 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한줌의 흙으로 돌아왔을 때 19 푸른 바람이 되어

20 시 초등부 온 동네 사람들도 검은 리본을 달고 애도하였답니다. 작은 할아버지가 소풀을 베다 뒷동산에서 아리랑을 불던 은빛 하모니카 증조할머니 가슴에 소중한 유품으로 간직된 자랑입니다. 해마다 현충일에 허리굽은 증조할머니 모시고 국립묘지에 묵념을 올린 후 옥수수 나무 열매에 하모니카가 달려있네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나에게 증조할머니가 속삭입니다. 꽃중에서 제일 값진 꽃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 흘린 자리에 활짝 피어나는 호국영령들의 넋이라고 국가보훈처 _

21 시 초등부 통일의 열차 강슬기_우수상 / 원주 단계초등학교 6학년 서울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서울로 우리의 소원을 싣고 통일의 열차는 달려간다. 마음속 깊은 구석 녹슨 지뢰 모두 파내고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봄눈녹인햇살로 통일의 꽃 피우려 21 푸른 바람이 되어

22 시 초등부 질끈 묵었던 허리끈을 풀고 두 손 맞잡고 우리는 하나라고 금강산 숲속 새들 노래하는 그날까지 통일의 열차는 달려간다. 22 국가보훈처 _

23 시 초등부 휴전선 지우는 지우개 김혜진_우수상 / 전북 이리서초등학교 6학년 이산가족의 아픔과 슬픔으로 이루어진 휴전선 오늘도 아픔과 슬픔으로 다시 한번 얼룩진다. 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휴전선은 오늘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럴 때,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가? 23 푸른 바람이 되어

24 시 초등부 그런 지우개만 있다면 휴전선은 물론 이산가족의 슬픔을 같이 지워 줄텐데 전쟁의 공포와 원수가 없어지는 대신 평화와 사랑과 친구가 생길 텐데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말이야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고 아껴주고 이해해주면 어느 날, 지우개가 나타나서 휴전선을 말끔히 지워 줄거야 말끔히 말끔히 24 국가보훈처 _

25 시 초등부 휴전선 지워주는 지우개야! 얼른 와 우리나라 평화통일을 이루어 주렴 25 푸른 바람이 되어

26 시 초등부 철조망 김은지_장려상 / 광주 태봉초등학교 3학년 철조망 건너 꽃동산이 넘어가요. 총은 막지만 꽃은 막지 못해요. 철조망 위로 뭉게구름이 지나가요. 칼은 막지만 구름은 막지 못해요. 철조망이 말해요. 26 국가보훈처 _

27 시 초등부 총을 이기는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칼을 이기는 것은 부드러움이라고 27 푸른 바람이 되어

28 시 초등부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배 한_장려상 / 제주 동홍초등학교 4학년 운동장의 고무줄 팔딱팔닥 잘도넘네. 휴전선도 고무줄처럼 마음껏 넘었으면 북한을 왔다갔다 마음 가는데로 언제든 갈 수 있을텐데 비둘기처럼 훨훨 날아서 휴전선도 마음껏 넘어봤으면 28 국가보훈처 _

29 시 초등부 하루빨리 통일되어 우리들도 휴전선을 팔짝팔짝 뛰어봤으면 29 푸른 바람이 되어

30 시 초등부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 장채린_장려상 / 마산 신월초등학교 5학년 만약에 만약에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우리는 한반도 민족에게 제일 먼저 필요할거야 붉은 물결 남으로 정답게 밀려오고 파란 벌판 북으로 멀리 멀리 달려가고 한데 한데 30 국가보훈처 _

31 시 초등부 어울려 보듬고 춤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에 만약에 휴전선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건곤감리 태극물결 전 세계에 넘실댈거야 31 푸른 바람이 되어

32 시 초등부 국립묘지에서 전대원_장려상 / 목포 북교초등학교 3학년 지금은 땅 속에 누워 우리 조국 생각하는 그 마음이 다시 떠오른다. 오직 나라 위한 마음 하나로 그많은아픔이겨내며 나라 사랑 아픔 이겨 내며 나라 사랑 떠올리던 그 얼굴들이 지금도 시들지 않는 한송이 꽃 되어 묘지 앞에 멈춰 있는걸 만나게 된다. 32 국가보훈처 _

33 시 초등부 찬바람 옷깃 속 파고 들어도 언제나 변함없는 그 마음으로 우리 조국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라 사랑의 큰 뜻 알게 해 준다. 33 푸른 바람이 되어

34 시 초등부 나라 지킴이? 우리! 조예은_장려상 / 군산 문화초등학교 6학년 언니, 나라는 누가 지켜? 물어보는 내 동생 당연히 군인이지 문득 애국자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나라에게 너무 무관심하단 생각이 든다. 나라 따위는 군인에게 내 팽겨둔 채 소중한 우리나라를 잊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는 건 우리인데 평소에 조금만 더 생각해 주고 34 국가보훈처 _

35 시 초등부 평소에 조금만 더 아끼고 사랑하며 애국심을 길러야 하는 우리인데 지나가는 동생을 붙잡고, 말했다. 나라는 군인이 아닌 우리가 지키는 거야. 35 푸른 바람이 되어

36 시 중 고등부 사진 한 장 이성주_최우수상 / 여수 진남여자중학교 3학년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물처럼 간직 해온 할아버지 가끔씩 누렇게 뜬 세월을 젖히고 군복을 입은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다. 금방이라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올듯한 얼굴들이 50년이 넘게 사진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왼쪽 어깨에 남아있는 파편 조각은 잊었던 아픔을 몰고오는 36 국가보훈처 _

37 시 중 고등부 슬픈 훈장이다. 아, 아, 그 날 소나기처럼 퍼붓던 총소리 산기슭 흥건히 적시던 뜨거운 핏물 죽음의 끝에서 마주쳐온 어머니 얼굴 사진 속 이름들을 천천히 기억 해내는 할아버지의 젖은 눈에 쓰러져 가는 전우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욱한 포성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의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은 너와 나 우리 모두 간직해야 할 소중한 보물이다. 37 푸른 바람이 되어

38 시 중 고등부 별빛 김미란_우수상 / 서울 창동고등학교 2학년 이 땅을 적시고 적막한 어둠 위로 별이 찬란하게 부서진다. 외로운 밤바람 속 서로의 쓸쓸한 손을 맞잡고 불꽃을 향한 불나방의 가슴으로 그들은 봄을 불사른다. 검붉은 대지위에 푸른 잔광을 흩날리며 조국의 새벽 위해 빛이 되어 부서진다. 이제는 그 시린 빛. 38 국가보훈처 _

39 시 중 고등부 흐릿한 꽃 향기 속으로 잊혀진 채 사라져 가지만 지금도 옅은 전등을 끄고 고개를 들면 너른 곳 가득 그들의 얼 피어나듯 밤하늘이 너무나 눈부시다. 39 푸른 바람이 되어

40 시 중 고등부 하 늘 손효철_우수상 / 경남 진주고등학교 3학년 잿빛 하늘에서 천둥소리 들린다 거친 소나기처럼 여린 봉우리 위에 떨어져 화염을 어루만지며 생명의 꽃을 피우던 축축했던 유월의 대지 파편이 딱딱한 뼈 속에 박힌 지 반세기가 지난 유월의 무덤 위 풀들이 무성한데 아직도 이 땅은 두 갈래 지난 세월 깊이 잠든 영혼의 절규는 한민족과 한 핏줄 그리고 역사를 꽃피울 만남이었을까 40 국가보훈처 _

41 시 중 고등부 그 만남의 순간이 오면 호수빛 하늘을 담은 천지와 옥빛 바다를 담은 백록이 2인 3각 다리를 묶어 온 산하를 건너보자. 동해 건너 거센 파도를 헤쳐 새 세상을 열어보자. 41 푸른 바람이 되어

42 시 중 고등부 호국의 종 고유정_우수상 / 마산 호계중학교 3학년 어깨 위로 둘러맨 빛과 바람을 동여매고 푸른 메아리로 서성이다가 굽이굽이 냇물따라 바람으로 떠돌다가 벌써 잊혀진 누군가가 묘지 앞에서 울음소리 들리지 않게 흐느껴 울며 함께 외로워져 눈물로 떨어진다. 6월의하늘끝에매달려 온 몸으로 울어서 귀 빌려주고 입까지 빌려준다. 42 국가보훈처 _

43 시 중 고등부 잊힐만 하면 길 틔우는 종소리 마침내 조국의 눈 속으로 들어가서 내 나라사랑 가득 품은 빛과 바람을 풀어 놓는다. 43 푸른 바람이 되어

44 시 중 고등부 철조망을 두고 김재임_장려상 / 전남 광양여자중학교 2학년 누가 한반도의 허리를 철조망으로 휘어감아 갑갑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는가. 잔뜩 가시 돋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러움도 토해내지 못한 채 어두운 과거를 한탄하며 맑게 갠 내일만 기다릴 뿐 꼬옥 조여진 한반도는 그날을잊지못하고 아픔 그대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하고 있구나. 44 국가보훈처 _

45 시 중 고등부 생각만 해도 피 비린 내 물씬 풍기고 많은 이들의 눈물로 절여졌던 전쟁 그 역사적 비극을 신도 세월도 갚아주지 못했다. 오십여 년이란 세월동안 그 답답한 허리띠를 아직도 풀지 못했다. 45 푸른 바람이 되어

46 시 중 고등부 푸른 바람이 되어 최송아_장려상 / 과천외국어고등학교 3학년 가고싶어도더이상갈수없는땅 휴전선 155마일, 가시철망이 가로막고 선 달려도 더 이상 치달아 오를 수 없는 건너지 못하는 다리, 비무장지대 아아, 나는 지금 한 줄기 푸른 바람이 되어 굳게 닫힌 임진강 저쪽으로 건너고 싶다.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도 훌쩍 건너고 싶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직 가시지 않은 산하 언제나 북녘 하늘을 보며 할아버지는 두고 온 가족의 안부 때문에 애태우셨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 북녘 하늘이 보이는,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 바람처럼 묻히셨다. 살아생전 가고 싶었던 그리은 고향 그렇게도 보고 싶던 눈에 밟히던 가족 46 국가보훈처 _

47 시 중 고등부 새해 맨 처음 소망은 언제나 통일이셨다. 소리 없이 철의 장막이 허물어지기를 해마다 할아버지는 두 손 모아 기도하셨다. 눈물로 고향 그리던 그 간절한 마음 자나 깨나 소망하시던 북녘가족과의 상봉 아직도 못다 이룬 그 꿈 때문에 할아버지는 여전히 잠 못 드시는 걸까. 애틋한 그 소망 들어드리기 위해 나는 한 줄기 임진강 푸른 바람이고 싶다. 할아버지 그리운 안부를 싣고 한달음에 압록강, 두만강으로 치달리는 아아, 가벼운 발걸음의 바람이고 싶다. 47 푸른 바람이 되어

48 시 중 고등부 붉은 봄 이송희_장려상 / 천안 복자여자고등학교 1학년 우리들의 노오란 봄은 손을 흔들지만 그의 불게 물든 붉은 봄은 슬픈 손 짓을 한다. 불게 물든 총성의 교향곡은 우리들의 귀에 과거가 되었지만 불게 물들어 찢어질 듯한 총성의 교향곡은 오직, 그의 귀에만 아프게 울린다. 두만강의 진한 오랑캐꽃은 우리에게 지나간 사진으로 남았고 48 국가보훈처 _

49 시 중 고등부 너무나 진해서 멍든 오랑캐꽃 그의 눈에 뜨거운 그리움을 묻힌다. 그는,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눈에 따뜻한 묘향의 봄이 오늘이 되고 우리의 귀에 청천의 물소리가 피어오를 내일을. 49 푸른 바람이 되어

50 시 중 고등부 승전보 이채석_장려상 / 울산 제일고등학교 2학년 바람도 불에 타는 산등성이를 걸어 나아가라 산속깊은곳 죽은 자의 눈물과 산 자의 분노가 응어리지는 곳 그 곳에서 발을 굴렸다 디디는 곳마다 혼의 바알-자국 50 국가보훈처 _

51 시 중 고등부 내 육신은 찢어져도 발자국만은 저 어딘가에 남아 후일에도 나아가라 51 푸른 바람이 되어

52 시 중 고등부 비가오면 김예슬_장려상 / 부산디자인고등학교 3학년 소리없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줄기가 굵어져 싸늘한 눈물만 쏟아낸다. 비야! 네가 내리면서 너로 인해 우리들의 마음도 차가워진다. 네가 내리기 시작해서 너로인해 세상은 검은 베일을 뒤집어 쓴 듯 검고 진한 얼룩이 물들어져만 간다.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52 국가보훈처 _

53 시 중 고등부 눈물의 강이 넘칠 것 같아,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겨 본다. 울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비 갠 후 아침처럼 평온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에 절대 울지 않을 것이다. 53 푸른 바람이 되어

54 시 일반부 아버지의 군번 외우기 조명숙_최우수상 / 울산 북구 중산동 돌아가신 아버지 이제 군번 새겨진 양은 목걸이만 남아 책상 속에 남아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받게 되는 군번은 이름보다 군인에게는 소중하다고 항상 걸고 다니면서 백마고지 탈환 한 그 벅찬 승리감에 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살다가신 내 아버지,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고 돌아가실 때도 군복을 수의처럼 입고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국민학교 시절 현충일 때였을 것이다. 군번을 목에서 꺼내 보이시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 얼굴이시던지 손때가 묻은 만큼 더 빛나보이던 54 국가보훈처 _

55 시 일반부 그 아버지의 길고도 긴 군번을 나는 단 한번도 외울 수가 없었다. 군인은 군대를 떠나면서 군번 하나로 남게 된다고 군번 때문에 또 군대를 떠나도 군인이 된다고 치매에 걸려도 군번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상 외우시던 아버지의 군번, 어저면 아버지에게 주민번호 보다 군번은 이 세상 어려운 일들이 다 통하는 비밀번호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어느 고요한 숲 속에서 새와 청솔모를 기르고 눈과 바람과 비와 함께 잠든 비목 앞에도 군인의 이름 대신 군번을 먼저 확인하시던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내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진 군 번호, 하나 외우며 돌아가신 아버지가 금방 환하게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55 푸른 바람이 되어

56 시 일반부 외할아버지의 목발 정해미_우수상 / 부산 북구 구포3동 외갓집에 창고에 목발 하나 있다. 칭칭 감은 헝겊에 때가 묻고 목발의 끝부분이 축축할 정도로 땀이 베인 외할아버지의 목발 하나,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아무도 쓸 일이 없는 나무지게와 함께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발뒤꿈치처럼 닳아진 목발의 끝과 비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몸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 손잡이가 반들반들 한 목발 하나, 어둑어둑한 창고 안에서 56 국가보훈처 _

57 시 일반부 더 녹이 슬어가는 것들과 함께 먼지 앉아가도 식지않고 아직도 외할아버지의 채취가 풍기는 목발 하나, 온 동네 대소사며 고샅길 너머 동사무소에까지도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던 할아버지의 건강한 목소리도 들려오는 목발 하나, 할아버지의 젊은 날의 뛰는 혈관처럼 아직도 그렇게 아킬레스가 꿈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오동나무로 만든 반질반질한 손때 묻은 목발 하나 고향 집 헛간을 지키며 있다. 57 푸른 바람이 되어

58 시 일반부 푸른 잎 배재형 _ 우수상 / 서울 서초구 방배동 마당 한 편 나뭇가지처럼 아버지 허리 굽었다. 겨우내 선잠 자던 햇살이 푸른 잎 앞자락 끌어내리며 봉긋한 허리에 앉아 안마하면 따뜻한 봄 손길 따뜻하신지 6 25전쟁의 참전용사셨던 아버지 일생동안 처마 끝 깊은 제비집처럼 좁고 누추한 마당을 빌려 한 그루 나무에 푸른 잎 기르셨다. 분단의 긴 어둠 속에 서 계셨던 아버지 푸른잎 딱딱한 눈 속 하얀 화석이 될 즈음 퇴근길에 소문도 없이 잎들을 문상하고서는 전쟁 때 돌아가신 어머니 차가운 사진에 따뜻한 입김을 불고 계셨다. 58 국가보훈처 _

59 시 일반부 비라도 연신 내리는 날엔 오래된 추억이라도 묻어 가지 끝 간신히 살아있는 푸른 잎사귀 작은 상처 틈에다가 발라주셨다. 창 열어 슬쩍 들이마신 온기 가슴에 온전히 돌아 봄 나무 앞에서 허리 굽을 때 잎들마다 가는 혈관 따뜻한 피가 낮은 뿌리 제자리까지 돌아가는 중 허리 편 지아비 통일의 꿈은 돠살아나지 않을까. 아버지 전쟁 같은 허리 두드려 드리면 봄 나무 가장 아끼시는 푸른 잎 속에 남기신 어머니의 유언을 더 단단한 흙 밟으며 듣고 계셨다. 59 푸른 바람이 되어

60 시 일반부 우리 할매 이주연_장려상 /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내 손을 이끌고 향하는 곳은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 고쟁이 속 쌈짓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3장의 눈물의 지폐를 나는 달그락 소리내며 6개의 위안동전으로 대답한다. 할매는 동그란 두 개의 창에 삼촌의 이름을 부르며 오십여년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할매는 꼭 살아 돌아오겠다던 삼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삼촌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철쭉화단을 머리에 얹은채 눈물범벅으로 삼촌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있다.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에서 삼촌과 빼닮았다하는 내 얼굴 어루만지며 오십여년의 짧은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60 국가보훈처 _

61 시 일반부 할매는 6개의 동전에 오십여년의 기다림을! 오십여년의 을! 오십여년의 모정을 담아내고 있다. 61 푸른 바람이 되어

62 시 일반부 지리산 위령제( - 철쭉꽃 장세진_장려상 / 부산 연제구 연산4동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낮게 포복해서 넘어가는 빨치산 같은 철쭉들 콩알처럼 돌돌 뭉쳐진 화약 꽃망울을 무수히 쟁여 놓았다가 지지직 꽃망울 속의 뇌관을 향하여 사월의 햇살들이 기관총을 당기듯이 타들어간다. 팔이 잘린 상이군인 같은 고로쇠나무들이 다리 잘린 미군포로 같은 갈참나무들이 타다다닥 연발탄 터지는 소리를 내고 다채색의 폭발음이 잇달아 그날처럼 지리산 계곡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코를 막고 가만히 엎드린다 엎드려 그날처럼 지천에서 쾅쾅 터지는 수류탄 터지는 소리에 62 국가보훈처 _

63 시 일반부 동굴 깊이 숨은 봄들이 빨치산처럼 손을 번쩍 들고 걸어 나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꽝꽝 터지는 철쭉들의 짙은 꽃내음이 화약냄새처럼 가득한 지리산 위령제에서, 나 한때 빨치산 나의 아버지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총알 같은 아픔을 깨물고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들은 발목이 달아난 채로 저 들판 어디 발목지뢰처럼 묻혀 잠든 씨앗이라도 밟았는지, 스멀스멀 아지랑이 피는 계곡마다 기어오르는 다래 넝쿨들도 탁탁 천왕의 고지를 탈환하지 못한 혼들을 위로하는지 탁탁탁 축포를 무한정으로 쏘아댄다. 63 푸른 바람이 되어

64 시 일반부 한탄강의 실안개 이재석_장려상 / 경기 동두천시 생연1동 푸른 물결이 힘줄로 불끈 솟은 평강군 백암산( ) 실개천을 모아 모아서 새벽의 그리움에 등 떠밀려 살얼음 낀 잠을 털어 내고 굽이굽이 실개천 어깨동무하면 황톳물 속에 단단하게 박힌 옹알이 풀어 헤치며 온몸을 내던져 물길을 감싸주는 136 킬로 분단의 허리를 깨우며 상처난 협곡에서 64 국가보훈처 _

65 시 일반부 부딪히고 깨어난 동족이 깊숙이 묻어둔 긴 아픔을 어루만지는 江 까맣게 타버린 가슴앓이로 깎아지른 사상( )에 한 서린 울부짖음이 온몸을 휘어 감으며 발목 묶인 채로 멈춰야했던 서러운 땅 하얗게 누워있는 이름 없이 산화한 혼이 분단 문을 밀고 있는데 남북의 강심( 江 )이 몸을 섞으며 설움을 떨쳐내고 파도가 밀려와 하나가 되는 강이 얼싸 안으며 실안개가 먼저 피어나 아픔을 묻어 버린다 65 푸른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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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수필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할어버지의 눈물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할머니의 보약 끄지 못하는 불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나의 사랑스러운 조국 한국 민이 이야기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 바람이 붑니다 할아버지의 다리 연필을 든 용병과 총을 멘 용병 호국보훈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태극기 2005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 전쟁이 남긴 슬픈 기억 두 토막 은혜를 기억하는 도리 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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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수필 초등부 우리 할아버지 이서연_최우수상 / 대전 내동초등학교 4학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햇살이 눈부신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일찍 잠 을 깬 나는 어머니를 재촉하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계신 할아버 지를 뵈러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상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작은아버 지께서 기다리는 동부고속터미널로 향하였습니다. 어머니, 할아버지는 왜 또 입원하셨어요? 응, 다리가 자꾸 더 아파 와서 서울 육군보훈병원으로 진찰 받으러 가 셨는데 많이 악화되셔서 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는구나. 어쩌면 여러 차례 받으셨던 수술을 또 받으셔야 할지도 모른단다. 왜 다리를 다치셨는데요? 서연아! 너는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지금부터 55년 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 왔단다. 그 때 할아버지께서는 군인이셨는데 1951 년 6월 어느 날 철원 피의 500고지 전투에서 싸우시다 북한 공산당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부상을 당하셨단다. 목이 메이신지 말꼬리를 흐린 어 머니의 눈은 눈물로 꽉 차 있어 까만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 어머니가 우시는 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도 눈물이 핑 돌 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봄 운동회 때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69 푸른 바람이 되어

70 수필 초등부 우리 반은 손님 모시기란 경기를 하였습니다. 출발선 앞에 써 있는 카드 를 주워 보니 어른과 함께 라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크게 불 렀습니다. 언제 들으셨는지 할아버지께서는 입가에 웃음을 띠시며 제게 로 뛰어 오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달렸습니다. 그런데 갑 자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습니다. 저와 할아버지는 자꾸 뒤로 쳐져 꼴찌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비록 봄 운동회 때 꼴찌를 했지만 훌륭한 할아버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댁에 가면 다른 집보다 문패가 하나 더 있습니다. 나라지 킨 용사의 집 이라고 쓴 문패와 할아버지가 받으신 무공훈장이 거실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매월마다 80만원씩 다른 집은 받지 못하는 돈을 국가로부 터 받고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다리를 절룩거리게 하고 한 달에 서너 차례 병원을 다니시며 고통을 겪으시게 한 공산당은 우리 가족의 원수이며 우리 민족의 원수입니다. 언젠가 도덕 시간에 선생님께서 호랑이한테 물려 보지 못한 사람은 호랑이가 무서운지 모른다 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남과 북이 화해하여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우리들도 금강산을 관광 할 수 있 게 되었으나, 지금도 남침 야욕을 버리지 못하여 북한에서 고통을 겪거나 식 량이 부족하여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귀순해 온 가족과 벌목을 하던 사람 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산당이 망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산당이 망하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 의 철도가 남북을 이어주어 함흥까지 달려가는 통일의 그 날이 온다면 천만 명이나 되는 이산 가족들도 다시 만나게 되어 서로 기쁨의 춤을 추고 제가 가보고 싶던 백두산에 마음대로 가볼 수 있을텐 데 생각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작약꽃 같은 뭉게 구름이 북쪽으로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습니다. 70 국가보훈처 _

71 수필 초등부 할아버지의 무공훈장 허장산_우수상 / 마산 월포초등학교 6학년 지난해 2004년에는 우리집에 큰 경사가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국 방부장관이 수여하는 무공훈장을 받으셨다. 사실은 1995년도에 받으셔야 되는 훈장이 었는데 그동안 할아버지의 이름이 누락되어 오늘날에야 받 게 되셨다고 하셨다. 우리집안 가족과 친척들은 5월 20일 마산보훈지청으로 할아버지의 수 상을 축하하러 갔다. 물론 나는 학교 수업중이라 갈 수 없었지만 그날 저녁 약주를 한잔하고 오신 할아버지가 아주 기분이 좋으셔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 이 축하해 주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결혼한 이후에 전쟁이 나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족 때문에 앞장서서 싸우기 힘들었지만 나라가 먼저 있고 가족이 있 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공산당을 무찌르셨다고 한다. 몇 번의 죽을 고비도 넘기고 부상을 입기도 하였지만 무사히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속되있던 부대는 전쟁이 끝날 무렵 북한군을 격퇴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하셨다. 전쟁이 끝나면서 할아버지는 무공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71 푸른 바람이 되어

72 수필 초등부 무슨 이유에선지 훈장을 받지 못하셨다. 어떤 이유냐면 할아버지가 한번 도 무공훈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고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인데 늦게나마 훈장을 받게되니 오히려 부끄럽다고 말씀하셨다. 공무원으로 정년퇴직 하신 우리할아버지, 칠순이 넘은 나이에 요즘은 건강도 좋지 않으신데 동네 경로당을 맡아 지금도 열심히 생활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럽다. 나도 할아버지의 손자로부터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 해야겠다. 72 국가보훈처 _

73 수필 초등부 호국원의 비석을 닦으며 소슬미_장려상 / 임실 갈담초등학교 5학년 우리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호국원이 있다. 여기에는 6 25 전쟁 때에 참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다가 돌아가신 국군들과 월남전쟁에 참 가하였던 용사들을 모셔놓은 곳이라고 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해마다 현충일이 돌아오면 이곳 호국원에 가서 비석을 깨끗이 닦는 일을 한다. 작년에도 우리는 호국원에 있는 비석을 닦았다. 우리는 미리 집에서 비 석을 닦을 수건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스쿨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씽씽 달렸다. 우리는 소풍이나 가 는 것처럼 시끌벅적 소란을 피웠다. 도착하자마자 안내원 아저씨에게 설 명을 듣고 호국탑 앞에 가서 묵념을 하였다. 묵념을 하면서 잠시나마 생각 해 봤다. 전쟁터에서 다치고 죽고 피나는 싸움을 한 사람들이 생각만 하여 도 고마웠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날씨가 더워 묘비를 닦는게 힘들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묘비를 정성껏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묘비를 닦다가 주위를 둘 러보니 묘비가 참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했고 죽어갔 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숙연해졌다. 73 푸른 바람이 되어

74 수필 초등부 걸레가 너무 더러워져서 수돗가에 빨러 갔다. 그런데 물장난을 하고있 는 친구들이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의 묘비앞에서 시끄럽게 물장난을 하니까 예의가 없어 보였기 때문 이다. 묘비를 다 닦고 나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전 했던 전쟁이 어떤 전쟁이 있었는지 생각해보니 6 25전쟁과 베트남전쟁 이 있었음을 알았다. 같은 민족끼리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면서 싸우 고 38선이 생겨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남한에서는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50년이 넘게 살아왔다는 것이 서글펐다.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텔레비젼으로 가끔 본다. 나이 어린 나도 그 분들의 가슴 아픔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6 25전쟁으로 인해 한 나라가 둘로 나뉘고 고향도 갈 수 없는 분들의 상처가 하루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 그 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우리나라가 빨리 통일이 되어 가고싶은 고향땅을 갈 수 있도록 정치하는 어른들이 많이 노력해 주셨으면 좋겠다. 북한에 살고있는 어린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굶주리는 모습을 보고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용돈을 아껴쓰고 돈을 모아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어른이 되었을때 북한에 가 북한 친구들과 함 께 일도 하며 친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베트남전쟁은 월맹군과 베트남군이 싸운 전쟁이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에 대한 우방국으로 참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군인이 베트남을 위해 베트남군과 미 국군과 더불어 싸운 것이다. 남의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고 싸우다 부 상을 당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당 74 국가보훈처 _

75 수필 초등부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나지도 말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것 같다. 전쟁의 후유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나는 호국원에 가서 비석을 닦으면서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목숨을 바 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강하고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 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고 몸도 튼튼히 하여야겠다고 결심하였다. 75 푸른 바람이 되어

76 수필 초등부 할아버지의 눈물 김선영_우수상 / 제주 대흘초등학교 6학년 명절 때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 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설날에는 할아버지께서 눈시울을 적시고 창 밖을 보시다가 두 눈을 지긋이 감으시더니 우릴 부르셨다. 우리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있었다. 이젠 선영이도 다 컸으니까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 들어보는 음성이었다. 항상 인자하시고 우리들을 귀여워 하시는 다정한 음성과는 달랐다. 친척들이 왜 없냐고 물었었지? 사실 할아버지도 형제가 있단다. 아마 너희만한 손주들도 있겠지. 하지만 너희는 아직 그 친척들을 만날 수 없 단다. 왜요? 사실 할아버지는 6 25때 북에서 내려왔단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남 으로 가고 있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폭격으로 다 부서지고 중국군들 이 밀려온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잠시 남으로 피신해야지 생각하고 내 려왔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혼자 남으 76 국가보훈처 _

77 수필 초등부 로 내려오신 할아버지께서는 안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고생보다 더 힘든 것은 가족이 그리워 잠을 자지 못했던 때라고 하 셨다. 작년에 야영을 하면서 가족과 잠시 떨어져 있었을 때 다 잠이든 밤 이 되자 외롭고 무서웠던 생각이 스쳐갔다.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선영아, 할아버지가 남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시신들을 보았단 다. 그 중에서 군인들의 시체를 본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그 사람들 은 나라를 위해 무조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아니겠니? 그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할아버지가 살 수 있었던거고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거란다. 가족들이 보고 싶은 밤이면 할아버지가 보았던 그 시체 들이 떠오르고 악몽에 시달리곤 한단다. 할아버지의 눈물 속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있는게 아니었다. 할아 버지 가슴 속에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전쟁의 잔혹성과 이름없이 죽어간 호국영령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그 많은 아픔을 안고 55년 세월 을 살아오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를 아껴주셨던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 속에 감추어 온 아픔이 더 살아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그냥 울었다. 해마다 6 월이 되면 학교에서 여러가지 행사를 하고 호국영령들에 대하여 묵념도 하고 조기도 달지만 우리 할아버지 가슴 속에 이러한 슬픈 기억이 있을 줄 은 꿈에도 몰랐다. 할아버지 진작 말씀하시지 왜 지금에야 말씀하세요? 77 푸른 바람이 되어

78 수필 초등부 너희가 할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때 말하려고 했단다. 아마 할아 버지의 아픈 세월을 너희가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만이 필요하다고 생각 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나를 필요로 하신거였다. 할아버지의 아픈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가족과의 헤어짐과 그 슬픔을 내가 위로해 드릴 때가 된 거였다. 할 아버지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름 모를 군인들의 죽음에 대한 고마움과 처 참함을 내가 이해해 드릴때가 되었다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늘 나를 안아 주셨지만 그 심장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나를 반성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을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할아버지를 외롭거나 슬프게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할아 버지의 슬픈 기억 속에서 찾아낸 호국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나라를 빛내는 미래의 기둥이 될 것이다. 78 국가보훈처 _

79 수필 초등부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 권민정 _ 장려상 / 서울 석촌초등학교 4학년 우리나라는 많은 아픔을 가지고 사는 민족인 것 같다. 역사를 거슬러 올 라가면 전쟁도 많았고 식민지 지배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로 부터 다시 나라를 찾는데 이바지한 독립 유공자 나 대한민국 건국에 도움을 준 건국 유공자 또는 6 25 전쟁때 열심히 싸 운 전쟁 유공자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편하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젠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을때 할아버지께서 내가 죽으면 국립묘 지로 갈까? 선산으로 갈까? 하고 물으신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는 아니지만 군인 생활을 오래 하시고 월남 전쟁 도 갔다 오셔서 국립묘지로 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 소리를 들을때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돌아 가실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아빠, 고모들이 너무 보고 싶어 편지를 매일 쓰셨다고 한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편지들을 할머니가 보관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편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고통을 참고 견디며 나라를 79 푸른 바람이 되어

80 수필 초등부 위해 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것 같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 다면 못 할 것이다. 나는 아침 7시 50분에 일어 나는 것도 힘들다고 아침마다 엄마에게 투 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반찬이 맛이 없다고 투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저절로 반성이 된다. 다시는 투정 같은거 하지 않기로 내 자신과 약속을 할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거나 독립 운동을 한 사람들은 자기 집도 아닌 곳에서 추 위나 배고픔을 참아가며 보고싶은 가족을 못 본다는게 얼마나 힘들었을 까 생각하니 저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나라에서도 국가 유공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 같다. 국가 유공자 자녀들은 대학교 등록금이 나오거나 공무원 시험에서도 가 산점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런 제도가 국가 유공자들에게는 보람과 위안 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위해 일하느라 가정을 잘 보살피지 못했으니 나라에서 어느 정 도 도움을 주는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는 약소국이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나라도 빼앗겼고 6 25 전쟁도 생겼으니 우선 나라를 부자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요즘 TV에서 보면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무슨 행사 까지 벌이는걸 보고 분노를 느꼈다. 분명히 독도는 한국땅이다. 경상북 도 울릉군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새들의 고향 이란 노래도 있 는 우리땅을 다케시마란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면서 독도가 자기네 땅이 니까 한국사람들 모두 나가라니 정말 기가 막힌다. 세계 각국의 다른 나라들도 일본이 우리보다 잘 살고 힘이 있는 나라니 80 국가보훈처 _

81 수필 초등부 까 일본편을 들어 줄 것 같다. 우리가 일본보다 못 사니까 억울하게 당하 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가 하루 빠리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꿈은 외교관인데 내가 빨리 커서 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기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나라는 더 잘 발전할 수 있 게 되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나라가 될거라고 믿는다. 온 국민이 나 라를 사랑할 나라땅 생각만 해도 희망이 생기고 기분도 좋아진다. 다른 나라를 탓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회 사원들은 일 잘하고 군인들은 나라를 잘 지키고 정치인들은 싸우지 않고 정치를 잘 한다면 정말 살기 좋은 대한민국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라에 큰 도움을 준 분들에 대한 존중과 이름을 널리 알리 고 온 국민이 존경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그 분들에 대한 보답하는 길이 되 리라 생각한다. 일본 사람들이 다케시마 날을 만드는걸 보고 우리 국민들은 분노를 느 끼기도 하고 우리 나라 영토는 우리가 지켜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 같았다. 태극기를 흔들며 독도를 가고 싶어 한다. 나 또한 독도를 무척 가보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독도 화이팅! 대한민국 화이팅! 81 푸른 바람이 되어

82 수필 초등부 할머니의 보약 신화진_장려상 / 울산 옥동초등학교 4학년 우리가족은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대전 국립묘지로 간다. 다른 가족 들은 현충일이면 쉬는 날이라고 하지만 우리 가족은 특별히 삼촌을 만나러 가는 나들이를 한다. 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모두 침묵을 지키고 조용하다. 수다쟁이 동생 유진이도 이날 만큼은 얌전한 유진이가 된다. 우리 가족은 청춘 신고합니다 를 보지 않는다. 군대에서 돌아가신 삼 촌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빠는 청춘 신고합니다 를 볼 때마다 삼촌이 생각난다고 하셨다. 우리 아빠와 삼촌은 정말 우애 깊은 형제였다고 한다. 삼촌이 초등학교 를 입학 하셨을 때에는 아빠와 삼촌은 손을 꼭 잡고 다니셨단다. 또 두 분 다 개구장이여서 할머니께 혼나면 같이 혼나고 서로 위로 해 주셨다고 했다. 국립묘지에 도착하면 할머니의 모습은 애써 아픈 마음을 감추시고 무덤 덤한 표정으로 계신다. 그 때는 아무도 할머니께 말을 걸거나 장난치지 못 한다. 할머니는 그냥 한아름 국화꽃만 쳐다 보시고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에 눈물이 흐른다. 나와 동생은 돌아가신 삼촌 이야기는 여쭈어 보지 못한다. 삼촌이 어떤 82 국가보훈처 _

83 수필 초등부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알 수 없다. 아무에게도 그 이야기는 꺼낼 수 없는 힘든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삼촌 이야기를 모르신다. 그리고 할 머니와 아빠에게는 아픈 상처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운전하시는 옆 모습을 보면서 삼촌은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상 상해서 그려본다. 우리 아빠를 닮았다면 멋쟁이 미남이셨을것 같다. 우리 가족은 기쁜 날, 슬픈 날이 있을 때마다 삼촌을 찾아간다. 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새 묘지가 생기고 그 묘지 앞에서 슬프게 엉엉 소리내어 우는 가족들을 보게된다. 할머니께서는 그 동안 슬피 우셨지만 우리들 앞에서는 절대 표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할머니의 가슴 속은 검게 탄 숯덩어리가 되어 있을것 같다. 요즘은 할머니 마음이 안정을 찾았는지 많이 우시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할머니댁을 찾아 갈 때면 약주를 많이 드시고는 삼촌이 효자라고 혼잣말을 하시면서 우실 때가 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술을 드신다 할머니께서는 술은 삼촌을 잊게 하는 보약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술이 삼촌을 잊게하는 보약이라지만 할 머니의 건강을 생각하셔서 조금만 드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셨으면 하는 손녀의 바램을 할머니께서 알고 계실까?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제가 효성스런 손녀가 될께요. 83 푸른 바람이 되어

84 수필 초등부 끄지 못하는 불 장윤영_장려상 / 평창 면온초등학교 5학년 해가 환하게 비추더니 갑자기 저녁때도 아닌데 어둑우둑해지고는 비가 내린다. 일기 예보에는 어제 저녁부터 내린다고 했는데 야속하게도 비는 이제야 내린다. 이렇게 비가 야속한 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산불 때문이 다. 며칠 전부터 계속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하더니 어제 식목일을 전후로 해서 전국에는 정말 많은 산불이 났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도 타버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도 움을 주고 행복을 주던 나무와 집이 너무나 많이 타버렸다. 이 비가 어제 쯤이라도 시원하게 내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대단한 자연의 힘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반가운 비가 저 휴전선 근처 비무장 지대에도 내리고 있을까? 벌써 열 흘 가까이 북한에서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불을 지뢰가 많이 묻혀 있는 곳도 있고 군 사 지역이라 마음대로 불을 끄러 들어갈 수 도 없다는 것이었다. 84 국가보훈처 _

85 수필 초등부 정말 그렇게 활활 타고 있는 불을 며칠씩이나 바라보고 있어야 하고 불 이 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 곳에서 살던 동물들은 연기와 뜨거운 불 때문에 얼마나 당황하고 아파할 까? 이렇게 슬픈 현실은 전쟁으로 만들어진 휴전선 때문이다. 그 누구도 이긴 것이 아니고 그 누구도 진 것이 아니기에 생긴 휴전선, 언젠가 선생 님께서는 휴전선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쉬고 있다는 뜻이라 고 말씀해 주셨다. 세계에서도 유일한 분단국이고 전쟁 중이라는 말이 나 를 정말 놀라게 했다. 비무장 지대가 타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이 몇 십년 전의 전쟁할 때의 모습과도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너무나 무섭고 다 시는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간절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6 25 전쟁 때 팔에 총을 맞은 자국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징그럽고 보기조차 무섭고 이상했다. 하지만 그 상처가 정말 우 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힘든 고난을 이기시기 위해 내신 상처라 는 생각을 하니 할아버지가 너무 고마웠고 할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셔서 우리나라를 지키셨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는 조금만 손이 베어도 아파서 밴드를 붙이고 엄살을 하는데 그렇게 커다란 상처를 내고도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하신 할아버지를 비 롯한 많은 참전 용사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학교에서 북한말과 우리말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과 북한이 쓰는 말이 너무나 달라서 많이 놀랐다. 수수께끼 문제 중에 한 평생 논딱총을 놓고 서 있기만 하는 것은? 하는 문제가 나왔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신호등 이었는데 아무리 이해하 85 푸른 바람이 되어

86 수필 초등부 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말을 보고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런 말이 다 있던가 하는 생각에 우리가 정말 같은 민족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서로가 한 민족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생각을 하 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요즘은 일본이 독도가 지기네 땅이라고 엉뚱하게 우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하고 마음 아파한다. 더구나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찾 아낸 우리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모습을 보면 참전 용사들은 얼마 나 땅을 치고 통곡을 하실까 정말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우리의 통일은 비무장 지대의 불처럼 이루지 못하고 쳐다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서 두려워만 하면서 쳐다보기만 해야하는 것 일까? 저 비무장 지대에서 살고 있던 갖가지 동물과 식물들이 우리에게 말하 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통일을 해서 이곳을 잘 지켜달라고. 촉촉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그렇게 활활 타던 불이 꺼지듯 우리의 노력 이 얼른 결실을 맺어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 생명을 버리거나 피해를 입 히는 일이 없이, 더 이상 아픈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면 서 통일이 더 이상 끄지 못하는 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86 국가보훈처 _

87 수필 초등부 내 별명은 자랑스러운 유관순 유완승_장려상 / 보령 대관초등학교 6학년 우리나라는 특정한 날이 많이 있다. 그 중 나는 현충일이 가장 뜻 깊은 날이라고 생각된다. 그 날은 우리나라를 위한 일에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 모하는 날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 음을 더욱 돈독히 하는 날이다. 내가 특히 이 날을 더욱 마음에 두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몸 바친 유관순 누나의 이름이 바로 내 별명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내가 유 씨여서 별명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나는 이 별명이 마음에 들고 자랑 스럽다. 현충일은 해마다 있는 날이다. 현충일하면 독립 운동가들이 생각난다. 이 준, 김 구, 이봉창, 유관순 등의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 이 분들의 공 통점은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고 나라를 사랑하였다는 점이 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독립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시다. 나는 이 분들의 이름을 많이 들어보았다. 이 분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나라 가 통일이 되길 바라고,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화합하며 잘 살아가길 바라 고 계실 것이다. 유관순 열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꽃다운 나이에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만세를 외치다 목숨을 잃은 열사이다. 별 87 푸른 바람이 되어

88 수필 초등부 명을 유관순으로 받았는데 유관순 열사처럼 나도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 까 생각해 본다. 나는 유치원 때까지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1학년 때부터 1등을 해 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마침내 5학년 때부터 1등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노력을 하면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 다고 본다. 유관순 열사가 살아계셨더라면 그것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나 도 이 별명답게 앞으로도 1등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고 나라를 사랑하 는 것도 유관순 열사 못지않게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라를 위해 목 숨을 걸고 싸운 분들을 기억할 때 유관순 열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다. 그분은 바로 이 준 열사이다. 나는 이 준 열사가 일본과 강제로 맺어야 했던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고발하려고 하다 가 잡힌 일이 두고두고 억울하며 안타깝다. 내 친구 중 이 준이라는 별명 을 가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도 이 준 열사처럼 아주 억울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떠들었는데 자기만 혼난 것이다. 그것은 자기 가 대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용납하지 못하겠나 보다. 나도 이 친구가 이 준 열사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준 열사 다음으로 또 빼놓을 수 없는 분은 백범 김 구 선생님이시다. 김 구 선생님은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가 되고 이듬해 팔봉도소접주에 임 명되어 해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게 쫓겨 만주로 피 신하여 김이언의 의병단에 가입하였다. 김 구 선생님은 이 때 오로지 우리 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사셨다. 이런 일 이 쉬운 듯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쉬웠다면 우리나라 사람 들 누구나 다 김 구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해에 우리나라에 귀국 88 국가보훈처 _

89 수필 초등부 한 김 구 선생님은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군 중위 쓰치다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이 확정되었었다. 김 구 선생님은 일본인을 얼마나 원수로 여겼느냐하면 씹어 먹어도 시 원치 않을 만큼 원수로 여겼다. 다행히 고종의 특사로 감형되어 사형이 집 행되지 않고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주로 가서 계속 독립운동을 하시 게 되는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김 구 선생님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들이시다. 나는 이런 분들과 독립을 위해 애쓰신 김 구 선생님이 자랑스럽다. 나는 이봉창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아주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난 겨울방학 에 천안 독립기념관에 체험학습을 가서 그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는 사진 자료와 여러가지 서적, 영상자료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이 봉창 의사는 일본 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일로 재판을 받게 되 었을 때 일본의 재판을 거부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나는 너희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거늘 어찌 너희들이 내게 이렇게 무례히 대하느냐? 많은 일본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이렇게 말하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 다. 이 말은 우리나라를 지배했던 일본인들에게 사용하면 목숨이 위태로 울 말인데 용기를 내어 정의롭게 맞서 싸우심에 더욱 감명 깊었다. 이봉창 의사를 생각하니 또 떠오르는 위인이 한 분 더 있다. 그 분은 바로 김 구 선생님과 이봉창 의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윤봉길 의사이시다. 윤 봉길 의사는 이봉창 의사처럼 일본 사람에게 도시락 폭탄을 던졌다. 그래 서 일본의 유명한 대장과 그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일로 윤봉길 의 89 푸른 바람이 되어

90 수필 초등부 사는 결국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고 말았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가장 소중한 목숨도 내놓으신 분들을 생각해 볼 때 고개가 저절로 숙 여진다. 나였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만으로도 자신이 없는데 실 제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런 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가슴 속 깊이 그 정신을 담고 생활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위인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은 우리 외할아버지시다.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살아계 시는데 6 25사변이 일어났을 당시 직접 전쟁에 나가셔서 북한 공산당과 싸움을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부상당하시지는 않으셨지만 나는 우리 외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럽다. 그 공으로 나라에서 국가 유공자로 정하여 예우를 해 주시고 금으로 만든 훈장도 상으로 주셨다고 하셨다. 내가 지난 번에 외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그 훈장을 보여주시며 6 25사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외할아버지가 나는 얼 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나도 외할아버지처럼 우리나라를 위해 조금 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일을 해 내고 싶다. 전에 읽었던 마사코의 질문 이라는 책에서 보았던 방구 아저씨 김봉 구 라는 분도 그러셨다. 김봉구 아저씨는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나도 봉 구 아저씨처럼 나보다 어린 동생들을 아끼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특히 이 김봉구 아저씨한테 가장 본받을 점은 일본사람에게 이봉창 의사처럼 한국말로 당당하게 말한 것이 본받을 점이다. 김봉구 아저씨는 일본어로 말하라는 일본사람들에게 또박또박 한국말로 말했던 것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너희가 와서 행패냐? 라고 말이다. 나라면 그냥 겁나 서 도망갈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또 이 90 국가보훈처 _

91 수필 초등부 책의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것은 책 제목이기도 한 마사코의 질문 이다. 마사코가 할머니에게 왜 미국이 일본에게 원자폭탄을 날렸느냐고 물어보 았다. 마사코의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 미국만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미국과 싸우게 됐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하셨다. 일본이 우리 나라 외에 중국 등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니까 간이 커져서 미 국까지 차지하려 했기 때문인데 말이다. 미국만 잘못했다고 하는 할머니 가 나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친하다니 뭔 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일본이 얼마나 치사한지도 알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일본사람처 럼 치사한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 는 일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다케시마 라고 부르는 독도는 명백한 우 리 대한민국의 땅이다. 하지만 자기네 땅이라고 계속 우기면 우리나라는 곤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수출 국가인데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아지면 수 출길이 막혀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게 된다고 들었다. 또한 각박한 외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하늘이 일본에게 천벌로 지진을 내려 보내주셨나 보다. 그 지진의 피해 는 막대하다. 그 지진으로 일본사람들은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우기면 안되겠다고 반성 좀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큰 지진이 일어 날지도 모르니깐 말이다. 나는 지금 일본사람들에게 이봉창 의사처럼 이 렇게 말하고 싶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영원히 지진 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지진으로 망해버릴 것이다 라고 말이다. 91 푸른 바람이 되어

92 수필 초등부 우리나라가 얼른 통일을 해 세력을 길러서 일본의 이런 억지에도 끄떡 없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학생의 신분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 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나 라를 빛낼 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유관순이라는 자랑스러운 내 별명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92 국가보훈처 _

93 수필 초등부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한국 박지은_장려상 / 군산 서해초등학교 6학년 사람들은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인것 같다. 작년 여름방학 때 난 중국 연태로 5주간의 연수를 다녀왔다. 그때난주로 연태사범대학 안에서 생활하였는데 그곳은 정말 넓었다. 대학안에 미용 실 등 많은 상점들이 있었고 학생 기숙사와 유학생 기숙사가 따로 있었다. 우리 기숙사 안에는 작은 TV 한대가 있었는데 그 작은 TV가 비록 흑백이 지만 우리나라 방송 KBS1을 보여주었다.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가슴이 괜스레 울렁거렸고 뉴스에서 사람들의 소식이 들릴때마다 가슴이 두근거 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거의 KBS1에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고 잘 안보던 뉴스까지 도 재미있게 보았다. 그 방법이 조국에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던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나라에 와 있으니 그 동안은 잘 느끼지 못했던 나라의 소중함과 우리 나라의 기술 그리고 우리나라가 참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 다. 학교 매점에 있는 우리 나라 과자가 맛있다며 사가는 외국인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학교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우리 나라 차 티코나 소나타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좀 우습지만 그 당시엔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내 93 푸른 바람이 되어

94 수필 초등부 가 다녀온 곳은 중국의 작은 일부지만 그 일부인 연태시와 역시 대한민국 의 일부인 나의 고향 군산시를 비교해 보면 환경, 음식, 기술 그 어느것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니 중국 사람들이 내 게 말을 걸거나 배울 때가 자랑스러웠고 또 놀라웠다. 또 그 학교 대학생들이 겨울연가 대본을 들고 한글을 배우는 모습 또 한 보기가 좋았다. 지금까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것 을 보았지만 한국에서 한글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서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한글을 쓰고 말하는 것을 보니 왜 이리 놀랍던지! 그리고 한글을 쓰고 할 줄 아는 중국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까지 느꼈 다. 그리고 한글을 배워 우리 나라에 와 돈을 많이 벌겠다는 나의 과외 선 생님 말씀에 우리 기술의 발달을 느꼈다. 작년 중국여행은 참 힘들고 고달 펐지만 나에게 나라의 소중함과 애국심은 일깨워준 참 의미 깊은 나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94 국가보훈처 _

95 수필 중 고등부 민이 이야기 김선아 _최우수상 / 대전외국어고 1학년 민이는 좋겠다. 대단하신 할아버지가 계셔서... 희숙이가 모두들 들으라는 듯 민이에게 빈정대는 말이었다. 요즘 희숙 이와 민이는 앙숙이 되었다. 같은 중학교, 같은 반에 있었다면서 둘은 앙 숙이 되었다. 방금 전, 식당에서도 희숙이는 민이의 뒤에 앉아서 민이에 대한 너스레를 늘어 놓았다. 우리 반에 민이 있잖아. 걔, 할아버지가 국가 유공잔가 뭐거든 그래서 걔,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학교에 입학한 거야. 공부는 별로거든... 밥을 먹던 민이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교실로 향했고, 희숙이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교실에 따라와서까지 그 말을 계속했다. 책상에 엎 드려 울고 있는 민이에게 너무하다 싶어서 희숙아, 그만해. 민이 울잖아. 그 말을 듣고 민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가방을 싸 벌떡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래, 나 공부 못해. 나 같은 게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다 우 리 할아버지 덕분이야.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너희들이 싫다면 학교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고 푸른 바람이 되어

96 수필 중 고등부 그리고 민이는 훌쩍 교실을 나가버렸다. 반 아이들도 너무나 놀라서 입 만 벌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민이는 어느 새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 날 희숙이는 담임 선생님께 심한 꾸중을 들었던 모양이다. 종례를 마 치고 가방을 챙기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서 민이네 집에 같이 안 갈래? 나는 희숙이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시선을 통해 사건의 개요를 대충 짐 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희숙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직접 민 이의 집으로 찾아가서 사과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 이다. 그러고 싶지만 나는 민이네 집을 모르는데? 선생님께서 약도를 그려 주셨어. 희숙이와 찾아 간 민이의 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요즘에도 이런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싶을 정도였다.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희숙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희숙이가 생각하 던 민이네 집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희숙이는 항상 명랑 한 얼굴에 교복도 말숙하게 빨아 입어서 모두들 부유한 집안의 딸로 이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희숙이와 내가 서로 얼굴만 마주 보고 있을 때, 골목 저 쪽에서 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다 왔어요. 되돌아 보았을 때, 나와 희숙이는 또 한 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민 이 할아버지가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쩔룩거리시고 있었고, 민이는 할아버 지를 부축하여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와 희 96 국가보훈처 _

97 수필 중 고등부 숙이는 국가 유공자라는 단어에 대해서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 었다. 그 공이 무엇인지 그의 가족들이 어떤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 는지 솔직하게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민이는 할아버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한 쪽으로 쓰러질 듯이 몸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민이에게 기댄 할아버지는 못내 안쓰럽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민이야! 의외로 민이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 것은 민이보다는 민이의 할아버지였다. 어이구, 민이의 친구들이니? 이리 이리 어서들 들어가자. 내가 곶감 한 개씩 줄게 할아버지는 힘든 발걸음을 재겨 놀리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하셨다. 그 허둥대는 발걸음이 안쓰러워서 희숙이와 나는 할아버지를 옆에서 부 축하였다. 왜들 이러니? 됐다 됐어. 이 할애비도 충분히 걸을 수 있어. 동란 때는 90킬로짜리 포탄을 메고 산과 산 사이를 누비던 몸이야. 할아버지는 됐다는 우리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장독의 뚜껑을 열어 곶 감을 꺼내셨다. 어여들 먹어 어여들...그라고 우리 민이하고 친하게 지내야 혀. 동란 때 형제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것도 억울한디. 같은 반 친구들끼리 는 친하게 지내야지. 마치 할아버지는 우리들이 집을 찾아 온 내력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씀을 해 주셨다. 희숙이는 민이의 집에 도착하기 전 까지 짜증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 이제 그 표정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97 푸른 바람이 되어

98 수필 중 고등부 안다. 희숙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민이는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 고, 공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서 민 이는 그 흔한 학원 한 번 가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무엇 을 의미할까? 그런 상황에서도 공평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민이는 어린 나이 때부터 해왔던 것이다. 할아버 지가 들려주시는 6 25 참전 이야기는 그 날의 처참함을 깨닫게 해 주었 다. 그 뿐이 아니고, 할아버지의 한 쪽 다리가 얼마나 고결한 희생이었으 며, 할아버지의 희생으로 인해서 현재의 우리들이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 는지 충분히 짐작하게 해 주었다. 사실, 희숙이와 내가 이렇게 열심히 공 부할 수 있는 모든 것도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목숨을 바치고, 신체의 일부를 바치며 조국을 위해 희생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 지는 극구 당신의 영웅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 하신다. 할아버지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어요. 뭘, 그때 다리 한 짝을 잃어갖고. 민이 아범은 핵교도 제대로 못 댕기고 저렇게 막노동꾼이 되어 가지고... 할아버지! 민이가 급히 할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민이의 할아버지는 이 부분의 이 야기가 나오면 밤새 엉엉 우신다고 한다. 당신의 다리 한 쪽 잃은 것보다 당신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것이 더욱 한스럽다고 하신다. 민이의 집을 나오며, 희숙이가 민이를 살포시 안았다. 미안해...정말 미안해...정말 미안해...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희숙이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마 희숙이도 내 눈을 보며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과 신체의 98 국가보훈처 _

99 수필 중 고등부 일부를 바치신 그 숭고한 분들을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랜 세월 잊고 있었다 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되시는 그 분들이 조국을 위해 바친 희생에 비해, 조국이 그 분들에게 준 것은 처절한 가난의 되물림이라고 생각했을 때, 눈 가가 촉촉하게 젖어옴을 느꼈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흘러간 역사는 엄연히 현재의 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우연도 아니며 인간의 노력에 의한 끊임없는 고 통과 희생의 댓가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끝없는 행복감은 누구 의 고통과 희생의 댓가인가?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발이 가볍다. 민이는 다음 날 학교에 등교 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전날처럼 푸른 바람이 되어

100 수필 중 고등부 먼저 새긴 발자국을 따라서 이승우_우수상 / 서울 인하사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새벽도 아니고 아침도 아닌 애매모호한 바탕화면의 시간, 춥진 않지만 아직 내 입 주위엔 하얀 김이 맴도는 시간,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 는 귀 따가운 알람시계 소리. 알람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면서 늦겨울 의 찬 공기가 느껴진다. 올 것이 왔구나 내 몸을 감싸던 따스한 이불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곧이어 나를 잠에서 깨우시는 분이 계셨으니 그는 나의 소중한 아버지셨다. 매주 일요일이 되 면 무의식중에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등산 갈 준비를 마친다. 이젠 이런 생활은 나에게는 습관처럼 굳어졌다. 두 달 전만해도 고등학 교 3학년이라는 이유로 수면부족, 고3병 운운하며 온갖 핑계를 아버지께 말씀드리며 아침 일찍 등산을 하지 않으려고 꾀를 부렸던 나였지만, 이제 는 일요일에도 학교를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등산을 시작한 것이다. 집을 나와 산 입구를 향해 걸어 간 지도 20분이 넘게 흘렀다. 아버지 산에 오르기도 전에 지치겠습니다. 오늘은 왜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지 않는거죠? 나의 투정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계속 앞서 걸어 나가셨다. 100 국가보훈처 _

101 수필 중 고등부 우리집에서 산 입구까지의 거리는 약 4km, 보통 같으면 산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갔는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걸어가신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까? 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입구에는 예상했던 대로 사람들이 많이 운집 해 있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등산하기 딱 좋구나! 언제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등산하기 전에 꼭 한마디씩 말씀하신다. 시계를 보니 정각 9시를 가리켰다. 자! 힘내서 정상까지 가자! 아버지의 출발 소리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매주 같은 산을 오르지만 아 버지는 남달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험한 길만을 선택하신다. 산을 올라 간 지 10분도 채 안되어 나는 그만 지쳐버렸다. 너무 힘에 부쳐 앉을 곳을 찾던 중 옆에 넓적하고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에 다가가 앉아서 아버지께 조르듯 말했다. 아버지 좀 쉬었다 가죠. 너무 힘들어요. 내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아셨는지 좀처럼 쉬지 않으시던 아버지도 내 옆으로 다가와 앉으셨다. 많이 힘드니? 그래도 우리는 지금 이 푸른 산하에서 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 을 치르셨단다. 아버지의 말씀에 힘들고 지친 나의 몸에 용기가 솟아올랐다. 옛 선조들께서는 우리나라 땅을 지키려고 수많은 피를 흘리셨지만, 결 국 이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안타까운 분들도 많단다. 네 증조할아버 지 또한 그런 안타까운 분들 중 한 분이란다. 101 푸른 바람이 되어

102 수필 중 고등부 아버지께서는 내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어렸을때 자장가삼아 들 려주셨다. 친할아버지의 아버지되시는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독립운동을 하시다 그만 옥살이를 하셨다는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한다. 증조할아버지 에 대해 궁금한 나머지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 증조 할아버지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내 질문에 아버지께서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당연히 알고말고,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하니? 나는 아버지의 말씀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지금의 북한에 위치한 황해도 연백이란다. 할아버 지는 1919년 3월 연백군 유곡면 영성리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신 애국지사이셨단다. 할아버지께서 1921년 2 월에는 고향사람들과 3.1운동 기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시다 체포되어 가택 수색때 숨겨둔 태극기와 총기 등을 압수 당하셨단다. 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흥 형무 소에서 옥고를 치르시고 3년뒤 나오셨는데 몸에 성한 부분을 찾을 수 없 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셨다고 하더구나. 결국 할아버지께선 시름시 름 앓다가 광복의 빛을 못보시고 황해도 연백에서 숨을 거두셨단다. 정말 안되셨지. 아버지의 말 끝이 흐려지셨다. 항상 역사책에서만 보아왔던 그런 일본 의 행패에 증조할아버지께서도 당하셨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한참동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점심을 먹고, 나와 아버지는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앙상한 나무들 과 메마른 풀밭 사이를 지나자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에 오르니 어 두운 나무들의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밝은 햇살이 정상을 향해 102 국가보훈처 _

103 수필 중 고등부 비추었다. 아버지께서는 갈증을 느끼셨는지 물 한 통을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벤치가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벤치에 앉아서 숨을 골랐다. 아버지, 외할아버지도 나라를 위해 증조할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신 적 이 있다고 들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좀 알려주세 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들은 적이 있다. 외할아버지께서도 역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6 25전쟁과 월남 전쟁에 참전하셨다는 말씀에 좀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말씀드 렸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외할아버지도 정말 대단한 분이시지. 6 25전쟁때 참전하시고 월 남 전쟁에도 참전하신 예비역 육군 중령이시단다. 나도 네 어머니께 들은 거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집에 돌아오신 적이 거의 없으셨고 몸에는 총알이 스친 자국이 많이 있었다는 정도밖에는 모른단다. 외할아버지께 서는 나와 네 어머니가 결혼하기 2주전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나셨단다. 그래서 네 어머니는 아직도 결혼식 이야기만 하면 가끔 눈물을 보이시더 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기분이 우울해 졌다. 하늘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새파랗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다시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이 산의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다 누구 덕인줄 아느냐? 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국가 유공자들이 계셨기 때문 이란다. 네 증조할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셨는데도 불구하 103 푸른 바람이 되어

104 수필 중 고등부 고, 결국 이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이란다. 네가 밟고 있는 그 흙은 국가유공자들의 피와 살이란다. 얼마나 이 땅이 아름다운지 이제 알겠니? 아버지의 질문에 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며, 국가유공자들에 대해서도 그냥 형식적인 대우를 했을 뿐 그분들에 대해 존경심과 고마움에 대해 생 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쑥스러운 마음에 물끄러미 땅바 닥만 쳐다보았다. 아버지도 잠시 깊은 생각을 하시는 듯이 입을 열지 않으셨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좀처럼 밝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분위기 가 계속 진행되고 빗방울이 하나 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든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아서 아버지께 집에 가자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집에 가야겠어요.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그제서야 입을 여셨다. 승우야, 아까 말한 이 아버지의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있겠니? 네, 아버지. 이제 알겠어요. 제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요.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조상님들이 노하셨나보구나. 맑은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라니. 하늘이 온통 흐린 탓에 내 마음도 덩달아 서서히 불안해지고 있었다. 아 버지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 이 국가 유공자분들의 고마움을 모른단다. 안 104 국가보훈처 _

105 수필 중 고등부 타까운 일이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것은 다 국가 유공자들 의 희생이 뒷받침이 되어있기 때문이란다. 나도 우리 할아버지께서 독립 운동을 안하셨다면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고 지냈을거다. 아니 아예 국가 유공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거야.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자 의 이익만을 챙기며 살아오느라 그들의 노력을 모르지. 너희 학교는 국가 유공자들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지만, 학생들은 귀찮아하고 웃어넘기는게 현실 아니니? 아버지의 말씀에 순간 가슴이 뜨끔하였다. 또 나는 현충일, 광복절 등 국경일에 내가 한 번도 태극기를 손수 달아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계 속 말씀하셨다. 이 한반도는 예전부터 다른나라의 침략과 전쟁이 빈번했던 곳이란다. 우리는 이 한반도를 지켜 나간 사람들, 그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역사를 지키고 보전해야한단다. 우리 땅, 우리 나라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도 곧 국가 유공자들의 노력과 희생을 아는 길이란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에 아버지와 내 옷이 흠뻑 젖었다. 정상에 있던 많 은 사람들은 서둘러 다 떠나고 없었다. 아버지와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누고 서야 결국 하산을 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그 어둠보다도 더욱 어두웠던 지난 날의 나의 의식을 머릿속에 되 새기며, 축축히 젖어 미끄러워진 잎들을 밟으며 내려오니 나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한 나는 잠자리에 누웠다. 누워서 오늘 있었던 105 푸른 바람이 되어

106 수필 중 고등부 일을 곰곰이 되새기며 눈을 감고 반성했다. 반성하며 나는 값지고 중요한 것을 얻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이 땅을 밟을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가능 했던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국가 유공자들의 희생이었음을 오 늘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와 멀지 않은 조상님께서 독립투사였고, 참전 용사였다는 것이 나의 가슴 한 구석에 애국의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 깨워주었다. 내일 난 다시 그 분들이 먼저 새겼을지도 모르는 발자국을 따라 다시 걸 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피흘림으로 지켜주셨던 그 길을. 106 국가보훈처 _

107 수필 중 고등부 봄바람이 전해준 이야기 이현제_우수상 / 문산 제일고등학교 2학년 따사로운 봄 햇살이 유리창을 넘어 집안 구석까지 봄 향기를 퍼트린다. 얼어있던 대지도 한껏 봄기운을 머금으며 참았던 숨을 내쉬고, 겨울내 잠 자고 있던 작은 씨앗들도 빼족 말간 고개를 내밀고 햇살에 안긴다. 봄기운이 완연한 한가로운 주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갑 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봄 햇살의 미소에 홀렸는지, 파란 하늘을 이불 삼아 졸고 있는 전선 위의 새 한마리에게 끌렸는지,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산책을 하기로 하고 뒷산에 올라갔다. 산에 올라가 가득 봄기운을 만끽한 후 천천히 산등선을 따라 걸었다. 작 은 산에 안겨있는 우리 마을이기에 나는 어느새 마을 옆모습이 보이는 얕 은 언덕에 서있었다. 100년이 넘게 우리 마을을 지키고 있는 큰 은행나무 의 뿌리에 걸터앉자 때마침 아직은 조금 겨울 내음을 가지고 있는 바람이 다가왔다. 조용하고 나른하면서도 역동적인 봄, 그 봄에게 안겨 나는 살풋 잠이 들었다. 내가 문득 조금은 오래된 그 일이 떠오른 건 봄에 취해 나른 해진 나에게 봄바람이 가져다 준 기억의 단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나른한 봄기운에 안긴 채 하얀 종이위로 기억의 조각을 새 겼다. 107 푸른 바람이 되어

108 수필 중 고등부 그건 그러니까 6년 전,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 교는 전교생이 100명이 조금 넘을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였다. 한 반 이라고 해봤자 20명이 채 안되었던 우리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 대 개 반 전체가 함께 하는 일이 많았다. 현장체험 학습을 중요시 하셨던 담 임선생님은 그런 우리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이곳저곳 체험 학습을 시키 셨다.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5월의 마지막 주말, 우리는 현충일을 앞두고 현충원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당시 나는 짜증이 나있는 상태였 다. 여름이 일찍 왔는지 햇빛은 뜨거웠고 간간히 부는 바람 또한 무더웠 다. 그 때의 나는 현충원, 자운서원 같은 곳보다 놀이공원이 더 반가운 나 이였다. 그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쩔수 없이 선생님의 손에 이 끌려 왔지만 다들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께 호되게 혼나고 나서야 겨우 투덜거림을 멈췄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 았다. 묘비에 국화꽃 한 송이라도 바치고 오라는 선생님의 엄명에 아이들 은 국화 한 송이씩을 사들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 또한 국화 한 송이를 들 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와 직접 관계있는 사람도 아니고 황금 같은 주말에 내가 뭐 하러 이 고생을 해야 되? 어휴, 덥고 귀찮은데 아무데다 꽂아두고 아이스크림 먹 으러 가야지. 아이스크림 생각에 더욱 모든 일이 귀찮아진 나는 아무데나 꽃을 두려 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나는 희한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할 머니 한 분이 묘비에 국화 한 송이를 꽂아두고 계셨다. 할머니의 종이 가 108 국가보훈처 _

109 수필 중 고등부 방엔 아직도 국화꽃이 많이 남아있었다.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스럽게 국화 꽃을 꼽고 기도를 드리는 그 모습은 어딘지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었 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할머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은 그 할머니는 20송이가 넘게 국화꽃을 꽂아두고도 여전히 국 화꽃 꽂는 일을 계속하셨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는 할머니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할머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응?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지. 기억하는 일이요? 그래, 기억하는 일.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시며 할머니는 내 질문에 대답해 주셨다. 그리곤 이내 국화꽃 꽂는 일을 계속하셨다. 기억하는 일 이란 게 무슨 뜻인지 궁 금했지만 진진하게 기도드리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차마 다시 질문할 수 없었다. 이도저도 할 수 없이 나는 할머니 곁에서 묵묵히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차츰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은 말이야. 기도를 드리고 할머니의 국화꽃이 다 없어지자 나와 할머니는 큰 아름 드리 나무 아래 앉았다. 잠시 후 할머니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지도 않으신 채 말씀 하셨다.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잊혀지게 마련이지.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세월 이 가면 그 의미가 조금씩 희미해진단다. 할머니는 내가 그 말을 이해할 시간을 주시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셨다. 이 곳에 누가 있는지 아니? 109 푸른 바람이 되어

110 수필 중 고등부 갑자기 바뀌어 버린 화제에 나는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아랑 곳 하지 않으시며 계속 말씀하셨다. 이곳엔 높은 관직의 장교도 있고 전쟁에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 유공자 들도 있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영광스런 사람이 있지. 그것은 이름이 잊 혀진 사람들 이란다. 다리가 아프네 라며 할머니는 잠시 무릎을 두드리시곤 다시 말문을 여 셨다 전쟁 때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전적지가 되었지. 많은 사람들 이 목숨을 잃었단다. 내 남편도 6 25전쟁에 참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 했어. 아직도 눈 감으면 남편이 집을 나서던 그날의 그 모습이 눈앞에 선 하단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의 생사 여부도 모르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지. 할머니의 자글자글 주름진 눈가에 눈물 방울이 아롱거렸다. 내 남편은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는 거지. 이 늙은이는 그것이 슬펐단다. 그래서 내 남편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었 지. 결국 나는 이렇게 그들을 잊지 않는 것 이것 하나만 지키고 있는 거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6 25를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닌 나 로서는 할머니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음성에서 간간히 베여나오는 슬픔의 향기는 내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할머니 는 다시 빙그레 웃으시곤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 나가셨다. 나는 멀 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 뒤로 고고히 피어있는 국화꽃 한 송이를 보았다. 110 국가보훈처 _

111 수필 중 고등부 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할머니께서 국화꽃을 나누는지 확인할 길 은 없지만 나는 왠지 아직도 이름없는 묘비에 할머니의 국화꽃이 놓여져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인데 뭐.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 숨 바쳤다는 형식적인 내용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전쟁에 나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 웃, 마을 그리고 삶을 위해서. 사람들은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강해진다고 했다. 아마 그들도 그런 이유가 아니였을까? 우리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소중한 미래의 일부 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조금은 오래된 그 시간속의 영 웅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 그들이 흘린 피 만큼 붉은 정열과 용기를 본받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힘찬 새싹들을 보며 나는 오늘, 이름이 잊혀진 영웅 들에게 따사로운 봄 햇살 한 줌을 보내며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돌아본 은행나무는 봄바람을 품으며 햇살보다 더 투명하게 웃고 있었다. 111 푸른 바람이 되어

112 수필 중 고등부 무궁화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이태길_우수상 / 포항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3학년 무궁화는 아무리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쳐도,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어 꽃잎이 찢겨지고 줄기가 끊어질지라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깊숙이 뿌리 내린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당신은 비바람도 햇볕도 죽음도 두 렵지 않았다. 나는 이른 새벽에 꽃이 피고 저녁 무렵에 지는 무궁화가 조국을 수호하 기 위해서 목숨을 내던진 참전용사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무궁 화가 저녁에 질지라도 다음날이면 다시 우아하고 옅은 빛깔을 머금은 채 끈질긴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국수호 참전용사들도 적으로부터 무참히 짓밟히고, 온몸의 뼈마디가 깨어지고 흩어져 목숨을 잃는다 해도 다시 일어나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던 것이다. 만약 조국을 위해서 희생한 그들의 충성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없는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아마 우 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누리고 있는 사회적 혜택과 발전된 문화, 선 진국으로 도약하는 국제적 지위, 인간으로서 존중과 자유는 생각도 못했 을 것이다. 이만큼 그들의 충성심과 애국심이 현재 한반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12 국가보훈처 _

113 수필 중 고등부 나는 아직도 충혼탑에 이르는 돌계단에 올라서서 보았던, 포항을 감싸 안고 있던 푸른바다를 잊지 못한다. 그때 바다의 모습은 마치 포항을 지키 려는 용감한 학도의용군처럼 의지와 용기가 강해보였기도 하거니와 어머 니의 모습처럼 따뜻하고 온화하였기 때문이다. 가을 소풍으로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에 왔던 나는 전에도 이곳에 와 봤던지라 처음에는 이런 딱딱하고 답답한 곳에 왜 또 와서 아까운 시간 을 허비해야 되나? 하고 여러 친구들과 나는 이리저리 불만이 많았다. 차라리 놀이공원이나 갔으면 이렇게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전시품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 다. 하지만 나는 이내 이런 생각은 나라를 위해 싸운 그들의 애국심과 충 성심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학도의용군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학도의용군은 6 25 전쟁 당시 조국의 운명이 위기에 처하자 학생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고 여린 손에 총을 쥐고 전쟁에 참전했던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이었 던 것이다. 붓 대신 총을 들어야만 했던 학도의용군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 던 충혼탑에 묵념을 하면서 그들에게 사죄의 말을 마음 속 깊이 되 뇌여 보았다. 군번도 계급도 받지 못하고 젊은 기백하나로 조국을 위해 싸워야 만 했던 학도의용군의 울려 퍼지는 함성과 적을 향해 나아가는 몸짓이 머 릿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지금 19살인 나보다 나이가 더 어리고 동급인 학도들이 어떻게 죽음이 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전쟁터로 향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당시 내 가 학도의용군의 단원이었다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마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그만 굴복해 버리고 도망쳤을 113 푸른 바람이 되어

114 수필 중 고등부 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나는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얄팍한 지식을 가지 고 물질적 충족만을 위해서 공부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는 나약한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학도의용군의 정의로운 죽음이 무의미하게 남겨질 까봐 두렵기까지 한다. 나 역시 학도의용군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퇴색 시켜 놓은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끝이 없다. 학도의용군은 어리고 여린 무궁화 꽃봉우리였지만 그 애국심과 충성심 은 어느 조국수호 참전용사만큼이나 훌륭하고 의젓했다고 생각한다. 이 미 그들은 무궁화 꽃봉우리를 활짝 피었던 것이다. 학도 의용군의 정신이 스며있는 충혼탑이 아직도 내 뇌리 속에서 숨쉬 고 있는 건 그날 그렇게 장엄했던 충혼탑의 모습으로 봐선 이 세상에 없다 할지라도 조국을 지키려는 마음이 계속 남아있어서 인건 아닐까?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조국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주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많은 용사들을 위해 지금 남아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과 애국심을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 금의 실정은 어떠한가? 참전용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도 잘 이루어지 지 않고 있다. 해방 이후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청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재산을 거느리고 호화롭게 살고 있지만 정작 나라를 위해 몸 까지 내던진 조국수호 용사들의 후손들은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 는 사회적 약자로서 소외되어가는 현실에 직면되어있다. 무엇이 나라를 위해서 또 이들을 위해서 올바른 것인가? 처음에 잘못 끼운 첫 단추 하나 114 국가보훈처 _

115 수필 중 고등부 로 인해 국가 유공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현실을 맞보게 해야 하 는 것인가? 처음에 잘못 끼운 첫 단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들에 대 한 제도적 보장은 시급하다. 잘못된 단추가 제 자리로 놓기 위해서 노력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취한 행동들이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 우 리는 대한민국의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들 이 보여준 애국심과 충성심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런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의 정신과 용기를 이어받아 지금 국민 모두가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에 반박하여 동쪽 끝의 작은 섬이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기상을 닮아 의연하고 호젓한 독도를 수호해 야 할 때가 온 것이다. 6 25전쟁 때부터 계속 독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드 러낸 일본에 대항하여 우리 땅을 지킨 독도의용수비대의 꿋꿋한 의지를 본받아 독도를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외로움과 배고픔을 물리치며 목숨을 걸어서 자신들의 가족과 자식을 버 리면서까지 독도를 지키려했던 의용수비대의 희생은 한반도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죽음의 고비를 맞으면서까지 독도에서 외로운 전쟁 을 치러야만 했던 그들의 희생의 가치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금까 지 독도를 내팽겨 치듯 하고 오늘날의 상황까지 이끌어버린 우리는 그들 의 희생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지난 3월 1일은 여태껏 한번도 태극기를 단 적이 없던 내가 그 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처음 내 손으로 대문에 태극기를 달았던 아주 뜻 깊은 날 이었다. 펄럭이는 태극기의 모양새가 아주 부드럽기도 했지만 바람에 흩 115 푸른 바람이 되어

116 수필 중 고등부 날리는 태극기는 힘차 보였다.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조국수호 참전용사들은 한반도의 빛나는 불꽃이요, 한반도의 진정한 영 웅이다. 아무리 한반도의 운명에 큰 시련과 좌절이 닥쳐올지라도 한반도의 사람 들은 또 일어서고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무궁화의 타오르는 용기와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 그리 고 한없이 나라를 사랑하는 무궁화의 가슴이 한반도 사람들의 마음과 머 릿속에 고이 심어졌기 때문이다. 116 국가보훈처 _

117 수필 중 고등부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이화정_장려상 /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나라 사랑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테야. 아직도 난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불렀던 노래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북적거리는 교실 안, 창가 옆 햇빛이 내려앉는 자리에 앉아있던 내 옆으 로 짝지인 미정이가 다가왔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막 들어왔는지 얼 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다음 시간은 음악이라며 책을 주섬주섬 꺼내 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나도 덩달아 책상 위에 음악책을 펼쳤다. 수업이 시작되고 또각또각 바른 소리를 내는 선생님의 오르간 리듬에 맞춰서 많 은 친구들과 사탕 같은 입술로 옹알옹알 부르던 동요가 바로 나는 자라 서 무엇이 될까요? 이다. 대한민국 초등학생이라면 모두 배웠을 테지만, 나와 미정 이에게는 아주 특별한 동요가 되었다. 미정 이와 나의 인연은 어렸을 때부터, 아니 세상에 눈을 떴을 때부터일 지도 모른다. 어머님 두 분 모두 같은 산부인과에서 우리를 낳으셨으니 말 이다(비록 일자는 다르지만). 같은 동네친구였던 미정 이는 7살 때, 나와 같은 토끼 반에 입학하였고 함안초등학교, 함안여자중학교의 졸업식 사 진은 항상 우리 둘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산제일여고 2학년, 서로를 알 고 지낸지 18년째이지만 사실, 함께 지내온 시간으로 따지자면 10년도 안 117 푸른 바람이 되어

118 수필 중 고등부 될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1반이었던 이후로는 계속 반이 엇갈릴 때가 많 았고 심지어 중학교 3년 하고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한 번도 같은 반 이 된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반이야? 하며 실망도 많이 했지만 다시 다음 해 같은 반으로 배정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런 우리의 기다림이 하늘 까지 닿았는지 드디어 나와 미정이는 올해 같은 반에 배정받게 되었다. 나와 미정이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꿈이다. 미정이와 난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이 될 거라고 습관처럼 말했 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미정이도 질세라 나도, 나도! 하면서 소리 치던 게 생각난다. 이렇게 우리에겐 서로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다른 친구 들보다 더 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정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에서 고귀 한 목숨을 나라를 위해 바치셨고, 아버지는 민주운동에 앞장서시다가 많 은 부상과 오랜 감옥살이로 인해 다리 한 쪽을 쓰시지 못했다. 정말 집안 대대로 애국자 집안이란 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정이 또한 나라 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현충일만 되면 빠지지 않고 기념 행사에 참석했고, 삼일절에는 기념행사를 TV로 보느라 집 밖으로 나올 생 각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삼일절에 미정이 집에 놀러 갔었다. 대문에 달 린 조기를 보고는 옷을 다시 바로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미정이 집에 놀 러온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미정이네 가족은 엄숙한 분위기로 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그러셨듯이 가족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거 같았다. 미정이는 항상 밝았다. 아버지가 다리가 그렇게 되시고 나서 어머니가 118 국가보훈처 _

119 수필 중 고등부 혼자서 가족을 이끌어 나가신다고 말하면서도 전혀 얼굴에 그늘을 내비 추지 않았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되셔서 매달 연금이 나온다고도 스치듯이 말해주었다. 하지만 미정이네는 조금 힘들 어 보였다. 어린 동생들이 둘이나 있는데, 어머니 혼자서 버시느라 집안일 에는 신경을 쓰실 겨를이 없어 미정이가 동생들을 다 돌보고 있다고 했다. 나도 동생이 둘인데, 아직 내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끙끙대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해져 있는 미정이는 예전과는 많 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몇 년 동안 오고가면서 인사만 나누고 얇은 농담만 주고받았으니, 미정이의 속사정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미정이의 성격 상 걱정시킬까봐 남들에게 말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런 데 이번에 같은 반이 되면서 어렵사리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씩 듣게 되었 고, 이제는 제법 미정이의 고민상담은 내가 전담할 정도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아직 서로를 몰라 어색해할 때, 선생님이 나의 꿈에 대해서 말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친구들의 꿈 중 에서 의사, 변호사, 간호사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건 역시 선생님이었다. 언제부턴가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뜨면서 너도 나도 교사가 되겠 다고 진로를 바꾸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사회에서 당초 순수한 취지로 선 생님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미정이와 나도 선생님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머, 미정이도 꿈이 교사니? 미정이는 좋겠다. 국가유공자는 10% 가 산점이 더 있으니깐 말이야. 다른 친구들보다 선생님 되기 쉬울 거야. 그때 교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가유공자 가산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는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내 친구가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신기해 119 푸른 바람이 되어

120 수필 중 고등부 서라고 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선생님의 그 말이 있으신 이후부터는 우리 교실의 주된 이슈는 국가유공자 가산점 에 대해서였다. 입시의 불길이 발등에 떨어지니 더욱 민감한 모양이었다. 80점만 받아도 쟤는 90점으로 된다며? 진짜? 완전 거저 주는 거네! 공무원 중에 반 이상은 다 국가유공자래. 자기가 애국자도 아니면서 가산점은 왜 준다고 그래? 미정이가 교실에서 모른척하며 들어야 했던 얘기는 대충 이런 이야기였 다. 나와 같이 다니면서도 이런 말을 여럿 들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 거리는 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몇 번 괜찮으냐고 넌지시 물어 봤었는데 그때마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미정이가 난 너무 안쓰러 웠다. 뒤에 들어보니,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중학교 때도 국 가유공자의 자녀라서 원하는 고등학교에 자유롭게 지원을 할 수 있어서 친구들의 시기를 샀었다고 한다. 같은 반이 아니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전혀 알지를 못했다. 그렇게 반에서 점점 미정이는 소외되어 가는 듯 했다. 일주일 쯤 지난 사회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토론시간을 가져보라고 말씀하셨다. 주제를 뭘로 정할까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난 국가유공자 가 산점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흔쾌히 받아주 셨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난 미정이에 관한, 크게 말해 국가유공자에 관한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론이 시작되었다. 국가 유공 자 혜택에 관해 찬성하는 사람은 나와 미정이를 포함해서 고작 다섯 명뿐 이었다. 나머지 30명은 모두 반대를 한다고 손을 들었다. 너무 황당하고 120 국가보훈처 _

121 수필 중 고등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지만, 미정이를 봐서라도 흔들리지 않으 려고 애썼다. 첫 번째 친구가 말하기를, 국가유공자라고해서 매달 연금에, 여러 가지 혜택까지 누리는 건 불공평하다는 내용이었다. 미정이와 난 그런 이야기 가 나올 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들으니 또 울컥한 모양이었다. 말을 꺼 내지 못하는 미정이를 대신해서 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 해주신 분들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목숨을 담보로 나라 를 위해 싸운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한 그 이 상의 용기와 다짐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다짐을 하신 분 들에게 고작 배당 된 보조금으로 그 넋을 위로한다는 것 자체가 전 너무 죄송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어려 있는 피를 조금이라도 아 시는 분이라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가유공자분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결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조금 술렁거리더니, 두 번째 친구가 국가유공자의 혜택을 비판하는 것 이 아니라, 그 가족까지 혜택을 보는 것에 불평등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건 미정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점점 어두워지는 미정이의 얼굴을 보기 가 가슴 아팠다.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유공자 분들 중에서는 지금 이생에 명을 다하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그런 분들이 혈혈단신이셨을 것 같습니까? 분명히 아 닐 것입니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셨을 겁니다. 하루 아침에 가정의 가장이 사라진 가정의 모습은 어떨까요? 슬프다 못해 참담할 것입니다. 그런 가정과 보통 가정이 같은 대우를 받는 단 자체가 모순입니다. 헌법에 121 푸른 바람이 되어

122 수필 중 고등부 도 국가유공자 등의 근로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한다고 나와 있 습니다. 그런데 국가유공자 가산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도 첫 자녀 만 해당할뿐더러 그 범위가 2세대를 넘기지 않습니다. 이 정도를 가지고 불공평하다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한동안 교실은 조용했다. 그러자 어떤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하 는 것이었다. 전적으로 국가유공자를 존경하고, 또 그 혜택을 받는 것 또한 정당하 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유공자 가산점의 경우만은 예외입니다. 10%가 입니까? 소수점 하나에 시험의 당락이 결정되는 데 10점은 너무 터무니없는 점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친구 또한 선생님이 되겠다고 말한 애였다. 나와 미정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엷게 미소를 짓는 미정이에게 나도 엷게 웃어보였다. 선생님이 발언하지 않을 거냐고 물어오셨다. 난 다 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국가유공자 가산점에 대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취업 시험도 그렇고 특히 공무원 시험 때문에 더 가산점에 대해서 사회 많은 사 람들이 민감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시험에 가산점을 주 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정고시, 사법고시와 자격증 시 험에는 가산점이 적용되지 않더군요. 회사 입사 시험에서는 가산점을 받 아서 합격 라인에 들어가더라도 국가유공자 취업의 비율이 정해져 있으 므로 모두 합격될 수도 없습니다. 교사 임용시험에 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것 또한 무한히 불공평한 것은 아닙니다. 10%의 가산점으로 받고 합격 할 수 있을 정도면 시험 성적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말이 아닌가요? 아까 그 친구가 다시 일어나 여전히 임용 고시에서의 불공평을 언급했 122 국가보훈처 _

123 수필 중 고등부 다. 참다 못해 난 다시 일어섰다. 교사는 뭘 하는 직업입니까? 단순히 지식만을 전달하는 공급자의 역 할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지금의 이 땅을 지키 기 위해서 희생하신 위인들의 정기를 이어 받아 더 나라를 사랑하자는 애 국심을 기본으로 심어줘야 한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과 임용고시에서도 국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 사가 되는 데 국가유공자가 가담한다면 당연히 가산점을 매겨서라도 교 사가 되어야할 겁니다. 나라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 서, 가장 숨김없이 봐 온 장본인이니까요. 공무원 또한 일만 잘하는 로봇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애국심을 가슴깊이 지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 는 사람입니다. 이런 직업에 국가유공자만큼 확실한 자격조건을 갖춘 사 람이 있을까요? 더 이상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양쪽에서 너무 의견이 분분했고, 선 생님께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더 진행하지 않으시려는 눈치가 역력 했다. 그때 미정이가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열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전 국가유공자의 자녀로 많은 혜택을 받고 생활 하고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주어진 데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육이오 전쟁에 참전하셨다 돌 아가셨고, 아버지는 민주항쟁에 앞장서시다 다리의 기능을 잃으셨습니 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저를 포함한 딸 셋의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등 골이 다 휘어지셨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절대 동정표를 바래서가 아닙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건 국가유공자의 가정이 보통 가정 보다 더 좋은 생활환경에 좋은 조건을 가졌단 생각을 않으셨으면 하는 겁 123 푸른 바람이 되어

124 수필 중 고등부 니다. 제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겁니다. 임용고시를 칠 때 가산점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것 때문에 선생님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전 민족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실현에 힘쓰셨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을 제 후손에게 전하고 싶을 뿐입 니다. 평소에 아무 말도 없던 미정이가 이렇게 말을 하니, 다들 고개를 숙였 다. 선생님도 더 이상 토론을 진행하지 않으시려는 눈치셨다. 그렇게 우리 반은 끝나지 않은 토론을 끝냈고, 더 이상 미정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아이 들은 없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국가유공자 가산점 제도에 관한 조사에 응 답자 수중 55%가 폐지를 원했다. 현대인의 이기심에 화가 났다. 누군가가 내게 10%의 가산점이 아닌 교사의 자리를 거저 줄테니 전쟁에 참가하겠 냐고 물어온다면 난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50여년 전 우리의 조상님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모든 것을 버 리고 오로지 애국심 하나만으로 전쟁이란 죽음의 구덩이로 몸을 내던졌 다. 앞, 뒤 가리지 않고 제 몸을 던졌다. 그런 분들의 넋을 위로해드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화가 났다. 국가유공자분들의 깊고 큰 애국심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유공자를 위한 혜택은 새발의 피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텐데, 어찌 그리도 매정 할까. 가끔씩 미정이가 내게 물어온다. 자기가 가산점을 받는 게 억울하지 않 겠냐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바보 같은 소리라며 장난처럼 놀려댄다. 하지만 절대 미정이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다. 다만 그런 생각을 가지게 124 국가보훈처 _

125 수필 중 고등부 한 이 사회에 대해서 한바탕 크게 놀려대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10%의 가 산점 안에 국가유공자분들의 고통과 그 가족의 힘든 시간들을 다 포함시 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그 10%마저도 없애버리려는 현대인들에 대해서 그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 난 미정이와 내가 선생님이 되어 있을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의 가사처럼 선생님이 할 일 중 가장 큰 일은 나라 사랑을 전 하는 것이다. 나와 미정이는 미정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후 세의 자손들도 나라를 사랑하고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나는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나라 사랑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테야. 아직도 우린 이 노래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 을 이 노래를 나와 미정이가 부르고 있다. 125 푸른 바람이 되어

126 수필 중 고등부 호국영령과 국가유공자 박선희_장려상 /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3학년 아빠, 여기는 뭐 하는 데야? 이 건물은 왜 이런 산 속에 있어? 선희야, 이곳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 을 기리는 곳이란다. 싸움? 언제? 6 25때? 여기서도 싸운거야? 허허~ 이놈 참! 그분들이 없으셨더라면 지금 우리는 대구에서 살 수 도 아니 대구란 도시도 없었을 거야. 어렸을 적, 대구에서 군 복무중이시던 아빠를 따라 다부동 유학산을 처 음 올라온 날 내가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아빠는 어린 나에게 전투에 관한 설명을 해주시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 지만 전쟁이 무엇인지, 왜 이분들의 넋을 기리는 것인지도 몰랐던 나에 게는 올 때마다 그저 재밌게 뛰어 노는 곳이었다. 그러나 어엿한 고등학 생이 된 지금 그 전투를 생각하면 웃음 꽃 피던 얼굴은 온데 간데 없고 숙 연해지는 마음뿐이다. 조국을 구하고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이곳 다부동 유 학산. 당시 방어를 담당한 국군 1사단은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한 7천 국가보훈처 _

127 수필 중 고등부 여 명의 병력과 170여 문의 화포로 3개 사단 21,000여 명의 병력과 전차 20대, 각종 화기 670여 문을 동원해 진격해오던 북한군을 숫적, 양적, 질 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그리고 9월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으로 다부동을 탈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이곳에서의 전투의 중요성과 치열했던 상황을 생각해보 고는 저절로 호국열령들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이낌없이 그들의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대구가 있을까? 아마도 모 든 한강 이남이 공산화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즈음 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편하신 몸을 이끌며 옛 생각에 젖어 자신이 알 고 있는 범위에서 다부동 전투를 설명하고 계시는 한 분 아빠. 그때 넌 어린것이 뭘 알기나 한다는듯이 말끝마다 6 25를 외치고 있 었단다. 그때가 좋았지 라며 말끝을 흐리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 호국영령들 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 분들도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지!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되었다. 아빠는 11년 전, 군 출장중 과로로 쓰러지셔서 국가유공자가 되셨다. 몇 년을 통합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어릴적 기억인데도 불구하고 생생 히 기억되는 일이다. 통합병원에는 수많은 환자가 입원해 있다. 꼭 전쟁중을 연상하게 할 만큼 다리가 잘린 사람, 팔이 없는 사람, 심지 어는 식물인간까지 처음 한동안은 너무 무섭고 낯설어서 알 수 없는 선들을 붙이고 있는 아빠 옆에서 떨어지지도 않았지만 그곳 아저씨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가고 있었다. 특히 마음을 더 빨리 열 수 있었던 것은 아빠에게서 나라를 지키신 분 127 푸른 바람이 되어

128 수필 중 고등부 들에 대한 이야기를 항상 들었기 때문에 동질감 형성이 쉬웠을지도 모른 다. 그리고 나서 차츰 적응해가고 있을 때, 한 장병아저씨께서 과자를 사 주시며 이야기를 건네 오셨다. 이름이 뭐니? 박선희~ 몇 살? 10살 아이고~ 귀여워라. 어린 마음에 친근하게 다가오시는 아저씨가 편했는지 불쑥 "아저씨는 다리가 왜 아파요? "라고 물었다. 아저씨는 사격훈련을 하는 중에 오발사고로 인해서 다리를 다쳤단다. 선희는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하시고는 눈에 눈물이 고이시던 그 아저 씨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더 기억나는 이유는 통합병원은 전쟁 중 다친 사람만 있는 곳, 우리 아 빠는 훌륭해서 있는 것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성립하고 있었고, 그 등 식이 깨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내 의문 속에서 잠자고 있었는데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빠 의 치료차 보훈병원을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그동안 잠자고 있던 그 의 문이 떠올라 아빠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아빠! 통합병원에 있는 환자 분들이 전쟁 중에 다치신 분들 아니에 요? 아빠는 중학교 1학년이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으로 웃으시면 말 씀하셨다. 통합병원은 군 복무 중에 다친 사람들이 있는 곳이고 보훈병원은 국가보훈처 _

129 수필 중 고등부 25전쟁, 고엽제 피해자, 월남전 참전용사와 군 복무중 심한 장애로 계속 적인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란다. 그리고 국가유공자 유족들 과 선희같은 가족들을 위한 의료지원을 해주는 곳이기도 하지. 설명이 끝나갈 즘 보훈병원에 도착했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실제 로 젊은 장병아저씨들이 아닌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분들을 보 고 있자니 문득 어릴적 들었던 다부동 전투가 생각났다. 깊게 팬 주름, 전쟁 중 얻은 영광의 상처들 전쟁의 산 증인들이셨다. 전우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아무런 도움조차 주지 못한 채 뒤돌아야만 했던 그들 당신들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과 고통 그들을 보면서 우린 나라를 위해 산화한 분들만 생각하고 참혹한 전쟁 기억 속에서 고통받고 살아가시는 분들은 생각하지 못했구나! 라고 생 각했다. 그리고 그런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며 냉혹한 현실을 살 아가는지 궁금증이 더해만 갔는데, 나라 사랑(보훈신문)을 통해 몸은 불 편하지만 고향과 직장에서 꿋꿋이 좋은 일들을 하시는 모습들을 보고 국가유공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고 계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 안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이들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지만 부상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항상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순국한 분들만 생각하게 되는데 유족들과 부상당한 분들도 잊지않고 기억해야 하며 그 분들에 대 한 예우를 지켜야 할 것이다. 지난해 통일전망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망원경으로 북측 군 129 푸른 바람이 되어

130 수필 중 고등부 인들도 볼 수 있었고, 저 북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실향민들과 전쟁으 로 인해 반세기 이상을 부모형제를 볼 수 없는 이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엔 하얀 손수건과 다른 한 손엔 하얀 꽃다발을 들고 복받 쳐 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틀어막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 썽거려졌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었다. 이런 슬픈 현실을 우리 세대들은 진심으로 느끼고 있을까? 더 나아가 어린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알기라도 하는걸까? 학교에서 견학으로 전쟁 기념관을 다녀왔다. 호국영령들의 업적이 소개되고 전시된 곳에서 학교 운동장인양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을 보았다. 견학 오기 전 이곳에 대한 선 생님의 지도가 있었을 텐데도 너무 소란스러운 모습에 저 아이들도 내 가 어릴 적 다부동에서 그랬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 아이들이 더 커서 그 사실들을 알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며 나라를 위하여 숨지거나 다치신 분들을 위해 고 개 숙여 감사할 줄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학교에서도 좀 더 세심한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호국영령들에 대한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참전용사들에 대 한 교육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학년초 선생님들께서 부모님 직업을 조사할 때에 젊은이들에게도 생소한 원호대상자 라는 말로 표현을 하 시는데 우리 학생들에겐 더욱 생소할 뿐더러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나라를 위해 몸바치신 모든 순국용사들과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교육하고 '원호대상자'라는 옛말보다는 국가유공 130 국가보훈처 _

131 수필 중 고등부 자 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은 듯싶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산화한 모든 호국영령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 드리 며, 이 땅에 모든 군인, 경찰 분들께 감사드린다. 131 푸른 바람이 되어

132 수필 중 고등부 바람이 붑니다 양지숙_장려상 / 속초상업고등학교 3학년 학교 갔다가 돌아와 보니 책상위에 건빵 세 봉지가 놓여져 있었다.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가방을 내려놓고 맛있게 먹으려는 찰나 건빵에 이 상한 물질이 들어가서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잠 시 멈칫했다.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먹지 못하는 건빵을 잠시 동안 바 라보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건빵에 관한 추억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물치라는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나와 내 친구가 누런 종이를 두고 신경 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건군철을 맞이하여 조선 인민군을 믿 고 사랑한 김정일 장군님께 최대의 영광을 드리옵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김정일 장군님 무병장수 기원 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친구가 무섭게 그 중이를 낚아채 갈 기세로 달려들어서 나는 이내 등을 돌려 잽싸게 경사 진 언덕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동안을 정신없이 달렸을까? 가쁜 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려 뒤를 돌아보니 친구는 온데간데 없었고 주위가 온통 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서 있었다. 너무 깊숙이 들어왔다는 생각에 돌 아가려는 발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 내 등뒤에 어떤 등치 큰 군인 아저씨 가 서 있어 조금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내 동생이 말하던 건빵주는 아저 132 국가보훈처 _

133 수필 중 고등부 씨인 것 같아 건빵 좀 달라고 말했더니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건빵 세 봉지를 안겨주셨다. 이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는 좋아서 뒷산을 깡충깡충 내려왔다. 그 후 로 지나가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스멀스멀 뒷산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 생 각이나 지금도 가끔은 그 육군 아저씨는 제대를 해서 없을 테지만 우리 동 네 뒷산에 올라가 볼 때가 있다. 내가 사는 곳 물치는 전방과 가까운 곳이어서 군인들이 탄 탱크가 도로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날 때가 있다. 소리가 얼마나 큰지 늘 크 게 틀어져 있는 우리 집 컴퓨터 음악소리를 능가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 도 한데 언제나 탱크 지나가는 소리는 산통을 깨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 든다. 땅이 꺼질 것 같은 소리에 어머니께서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다.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나는 건빵아저씨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어머니 눈치를 살짝 살피며 우 리 친척 중에도 6 25전쟁 때 희생당한 사람이 있는 지 조심스레 여쭈었 다.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나에게 한 가지 지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요 복선이라는 여자아이에요. 저에게는요 이 세상에서 제일 고운 어머니, 그리고 용감하고 나에게 늘 잘해주시는 오라버니가 한 명 있어요. 주위는 온통 누런 밭과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팔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구 름사탕 한 점 뗄 수 있을 것 같은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그리 살림은 넉넉 하진 않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채로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무척 만족해요. 우리 집 뒤쪽으로 가서 한쪽 눈을 살며시 감고 바라보면 가지가 무성한 나 무로 이루어진 뒷동산이 하나 보이는데요, 우리 오라버니가 가끔 내 손을 133 푸른 바람이 되어

134 수필 중 고등부 잡고 그곳까지 데려가 주곤 해요. 그 곳은 한마디로 천국이랍니다. 봄 여 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 풀벌레들이 찌르르 찌르르 울어대고 숲 속 요정님들이 왔다가는 곳이에요. 풀밭에 누워 세상과 이야기해요. 잠시 눈 을 감고 있다가 산이 햇님을 잡아먹으려고 할 때 냇가에 얼굴을 씻고 다시 오라버니 손을 잡고 내려오곤 합니다. 따스한 어느 6월의 봄날, 어김없이 그 날도 나는 오라버니를 따라 뒷동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오라버니가 아무 말씀도 안 하시 는 거야요. 조금 이상했지만 풀 냄새가 너무 독해서겠거니 생각을 했습니 다. 제일로 높은 곳에 올라가 오라버니가 내손을 더욱 꼬옥 잡으며 처음으 로 입을 열었어요. 우리 막둥이 손이 고사리 같구나. 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세상을 어 떻게 살아갈까? 오라버니 손은 내 손을 충분히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크더라구요. 아래 를 내려다 보는척하며 곁눈질로 본 오라버니의 얼굴은 새까맸습니다. 한 집안의 기둥이자 기대주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쩍새가 울었습 니다. 우는 소리가 다른 것을 들으니 다음해는 흉년이 들려나 봐요. 소쩍 새가 울자 오라버니께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하늘여행을 다녀올테니, 소쩍새가 다시 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흔쾌히 알 았다고 대답을 했죠. 북녘에서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내려 오는 길 물가에 비친 오라버니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어요. 그날 밤 저는 꿈을 꾸었어요. 오라버니의 등뒤에 하얀 날개가 돋아나 하 늘을 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등뒤에 매달리고 싶어 폴짝폴짝 뛰었지만 그 럴수록 오라버니는 나에게서 더욱더 멀어져만 가더라구요. 정말로 떠나 134 국가보훈처 _

135 수필 중 고등부 버릴 것 만 같아서 보채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오 라버니가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어요. 꿈에서 깨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냉큼 뛰어갔지요. 방문을 활짝 열었는데 내 앞에 서는 한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던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셔서 나도 덩달아 울었어요. 어머니께선 그런 내 양쪽 좁은 어깨를 양손으로 잡 으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오빠는 의용군에 지원해서 전쟁에 나갔으니 오 빠생각은 하지말고 얼른 짐을 챙기라고 말씀을 건네셨어요. 1950년 6월 25일 우리 모녀도 피난행렬에 이렇게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오라버니 와 함께 올랐던 곳을 지날 때쯤 살며시 고개를 돌려 그 곳을 멍하니 바라 보았죠. 귓가에 청천벽력처럼 울려 퍼지는 대포소리에 놀라 다시 어머니 옆으로 재빠르게 뛰어갔어요. 대포소리는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들었어요.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실오라기 줄에서 정신을 바짝 차 리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아기 울음소리, 숨소리, 엄마 잃은 아이의 울부 짖음 총소리가 들려왔고 주위엔 누런 옷을 걸쳐입은 피곤한 기색이 역 력한 사람들, 만삭의 임산부까지 있었어요. 그 모습은 여태까지 내가 보아 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해가 질 때가 되면 산비탈에 자리를 잡 아 잠시 눈을 붙였다가 배가 고프면 주먹밥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주 먹보다 훨씬 작은 밥을 먹으며 걷고 또 걷기를 몇 수십 번 계속했죠. 발이 다 부르텄어요. 봉긋 솟아오른 풍선 같은 것을 톡 터뜨리니까 너무너무 아 팠죠. 가끔 승전보 소식이 들려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지만 어른들이 좋아하시니까 저도 좋아했어요. 걷다가 발밑에 무언가 물컹물 컹한 게 있는 것 같아 밑을 보면 싸늘한 시체가 밟혀서 소스라치게 놀라면 서도 말이죠. 후에 그 시체의 주인은 건넛마을 김 아무개라는 것이 생각나 135 푸른 바람이 되어

136 수필 중 고등부 마음이 아팠어요. 김 아무개가 키우던 누렁이, 누렁이는 지금쯤 어디에 있 을까요? 피난길에는 누렁이도 있었고 폭격 맞은 나무, 자연들도 있었습니 다. 1953년 기나긴 전쟁은 끝이 났어요. 난리 통에 친척들과의 연락은 끊기 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었어요. 전쟁이 끝난 후 찾아간 고향은 어른들 말로 만신창이가 되어있었어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고 향이었어요. 엄마 손을 이끌어 뒷동산으로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라버 니와 함께 갔던 뒷동산은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었고 조쩍새는 더 이상 울 지 않았죠. 나무와 숲이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실바람이 스쳐갔어요. 어 머니와 저는 먼곳만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이야기를 해주시던 어머니께서 한숨을 내쉬며 그 이야기 속 여자아이가 나의 외할머니라는 것을 말씀하셔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고 속에서 무엇인가가 솟구쳐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태 껏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니. 지난번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가 외할 머니께 한번 신청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나 는 어머니께 의용군이라는 어떤 것인지 여쭈었지만, 잘 모르시겠다고 하 셔서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다. 의용군이란, 학도 의용군이라는 건데 6 25전쟁 때 중 고등학교 남자 아이들을 징집해서 학도 호국단을 중심으로하여 전쟁으로 나가도록 만든 임시부대란다. 전쟁에 나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어. 이들의 목표는 우 리가 흔히 말하는 '빨갱이'를 없애는 거였지 빨갱이, 참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차갑기 그지없고 낡은 단어 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빨갱이란 단어의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해 136 국가보훈처 _

137 수필 중 고등부 졌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지만 뜻을 모른다. 빨갱이를 상징하 는 빨간색, 나는 빨간색을 좋아한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빨갱이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다. 빨강 그 얼마나 정렬적인 색인가? 실제로 2002년 FIFA 월드컵 때 나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었으며, 나뿐만 아니라 한 국 사람들 모두 빨간색 옷을 입어 거리는 온통 빨간색 물결이 출렁거리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핵을 보 유하고 있다는 북한의 선전포고에 다시금 분위기가 침체되었다. 통일이 란 정말 멀리 있는 것일까? 남한에선 북한을 도우려고 지원금을 보내주는 데, 북한에서는 그 돈으로 핵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침투하지 말고 그 냥 통일하면 좋을텐데 핵무기 보유 소식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일제히 북한은 아마 지금도 공 격준비를 몰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몇 년 전, 강릉 잠수함 무장 공비 침투사건이 생각난다. 우리 동네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있어 금방 이라도 무장공비가 나타날 것만 같아서 겁이 났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반 아이들과 함께 무장공비들이 입었던 옷, 먹었던 음식, 물건, 무기 등을 전 시해 놓은 곳에 갔었다. 비상식량으로 라면이 있었고, 옷은 여기저기 낡아 서 올이 풀려 있었다.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방 파제 끝으로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빠 잃은 설움으로 뒷동산에서 가만히 서있던 소녀에게 닿았던 바람이 내 곁을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때 왠지 모르게 의용군 소년의 얼굴과 건빵 군인아저씨의 얼굴이 겹쳐서 머 릿속에 떠올랐다. 마음 한구석이 휑해졌다. 나는 이렇게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이 땅에서 아무런 고마움도 모르면서 살아왔던 것이다. 나이 어린 학 도의용군 소년은 목숨 걸고 싸우다가 지금 어딘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 137 푸른 바람이 되어

138 수필 중 고등부 어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소년을 위해서 너는 무엇을 했느냐며 양쪽 선 그리는 법을 몰라 그리다만 태극기가 나를 나무란다. 이 땅에서 수많은 사 람들이 죽어갔다. 목숨바친 그분들의 희생정신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여태까지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살았으니 순국선열을 추모하며 통일의 길로 접어들려고 한다. 누구를 위해 그렇게 맹렬히 싸웠던가요? 우리 모 두 같은 하늘아래 피어난 연약한 민들레였을텐데 모든 게 다시 시작되 는 봄이 왔다.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조금씩 고개를 내민다. 이제 곧 고결 한 민들레 꽃씨가 북쪽과 남쪽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자유로이 흩날리겠 지 138 국가보훈처 _

139 수필 중 고등부 할아버지의 다리 정소진 _장려상 / 영암 삼호서중학교 3학년 하교 길에 다리를 저는 2학년 학생을 만났다. 그 아이는 나보다 앞서 걸 어가고 있었는데, 다리를 저느라 어느덧 나와 거리가 좁혀져서 함께 걸어 가게 되었다. 나는 그 애보다 앞서서 가기가 싫었다. 남들이 자기보다 빨 리 가고 있으면 그 애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싶어서 조심조심 뒤따라 가기 로 했다. 백화점 앞을 지나 횡단보도에 이르러서야 그 애는 신호를 기다리 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애 곁을 지나 한참 지난 뒤에 되돌아보고 있으려니까, 신호가 바뀌고 그 애는 길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은 편도 6차선이라 절룩거리는 걸음으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애는 빨리 걸음을 옮 겨 마침내 신호가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애 모습 뒤에 우리 할아버지 의 모습이 겹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10년 이 넘었다. 할아버지는 6 25 참전용사로, 전투 중에 다리를 다친 보훈등급 3등급 인 국가유공자이셨다. 평범한 가정의 5남 2녀 중 셋째로 충청북도 단양에 서 태어나신 할아버지는 나이 열여덟 살에 할머니와 결혼 하셨고 그 이듬 139 푸른 바람이 되어

140 수필 중 고등부 해 49년 군대에 입대 하셨다고 했다. 군복무 기간 중에 6.25가 일어나 할 아버지께서는 전쟁에 참전하시게 되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해 싸우 시던 할아버지는 1.4 후퇴 도중 중부전선에서 중공군과의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제대하셨다고 한다. 그 후로 할아버지께서는 다리를 절면서 생활을 하셨다. 바깥 출입이 힘 들어 장을 볼 때나 먼 길을 가야할 때는 항상 할머니가 나서야 했고 무거 운 짐도 할머니가 들어야 했다. 비가 올 무렵이면 할아버지는 통증으로 잠 을 주무시지 못할 만큼 괴로워하셨다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다행히 나라에서 주선해 주어 초등학교에서 서무실 소사로 일을 하시게 되고, 할머니는 초등학교 앞에서 매점(구멍가게)을 하였기 때문에 장애를 겪으면서도 탈 없이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 때 다치신 다리가 후유증이 생겨서, 할아버지는 그 나마 저는 다리마저 잘라야 했다. 지금은 국가보훈처라고 하지만 그때 당 시에는 원호청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 진찰을 받아보니 다치신 다리가 더 좋지 않아서 절단하셔야 했다고.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께서 겪으셨을 고통을 아까 보았던 2학년 학생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보았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할아버지는 다리 없는 흉 한 모습으로 사시면서 얼마나 남보기 부끄럽고 가슴 아프셨을까. 당시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다고 아빠는 말씀하 셨다. 그러나 장애인이라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할아버지께서는 자식들 앞에 서 한번도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항상 이 나라를 지키는데 나도 한몫을 했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이 훈계 140 국가보훈처 _

141 수필 중 고등부 속에서 성장한 우리 가족은 모두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살고 있다. 아 빠를 비롯해서 다섯이나 되는 숙부님들이 모두 군대에 가 훌륭하게 군복 무를 마치셨으며, 하나같이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셨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바친 다리는 돌아오지 않았으나, 할아버지의 사라진 다리 는 우리를 지켜내는데 바치셨다고 할머니께서도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는 다리를 절단하시고 10년을 넘게 사시다가 병환으로 1984년에 돌아가 셨다. 나는 지금 다리를 저는 2학년 남학생의 뒷모습에서 할아버지를 생각하 고 있다. 그 애는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너 길 저 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마 아랫마을 교회가 있는 동네에서 사는가 보다. 나는 그 애가 사라진 뒤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애정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 리 뒤에는 또 이런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소진이가 많이 자랐구나. 어느새 남의 고통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구나. 141 푸른 바람이 되어

142 수필 중 고등부 연필을 든 용병과 총을멘용병 장유진_장려상 / 울산 학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나는 10시가 훨씬 넘어서야 종종걸음으로 집에 도착한다. 어머니께서는 오늘도 전쟁 잘 하고 왔니? 하신다. 내가 연필을 든 용병이거든.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잠과의 전쟁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이렇게 어머니와 마주앉아 하루동안 묵힌 이야기 보따리를 끄르다 보면 금세 두어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내일 을 위해 잠을 청하면서 오늘 한국 근현대사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을 잠깐 떠올려 보기로 했다. 한국 근현대사 시간에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의 굵직굵직한 이름들을 아주 섬세한 실로 연결해 나가는 작업을 한다. 금방 내 눈앞엔 파노라마가 떠오른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부터, 36년간 계속되었던 한 민족 압제의 역사 일제강점기, 잃어버린 조국을 위한 평화적 시위였던 3 1운동, 독립전쟁 그리고 그리고 대 한 독 립 만세! 이렇게 머리속으 로 영사기를 돌리던 도중 문득 1950년에서 영상이 멈춘다. 동족 상잔의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쟁이 발발했던 그 해. 역사시 간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문학 작품과 영상 매체를 통해 6 25와 그 전후 142 국가보훈처 _

143 수필 중 고등부 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간접체험 해왔다고 자부하는 터라 왠지 한번쯤은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던 대목이다. 6 25는 좌익세력이 주둔하고 있던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 그리고 인민군의 계속되는 승리로 남진( 南 ) 에 남진이 거듭되자 갈팡질팡하던 국민은 전쟁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위안하며 가족들의 손을 붙잡고 피란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6 25에 참전하셨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라를 위해 전장으로 포성이 산을 울리는가 싶더니 코앞에서 다리가 끊어지고, 배가 고파 먹 을 것 구하러 간 사이에 가족과 친지를 잃어버렸다. 대담한 사람들은 벌 써 끊어진 다리의 앙상한 철근을 붙잡고 건너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찾는 엄마의 통곡소리, 그들이 어디쯤 왔을까요? 하고 웅성대는 소리, 겁에 질린 아이들은 엄마 품에 얼굴을 묻어버리거나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 간히 들려오는 대포소리. 전쟁이 불러온 대 혼란 속에서도 라디오는 국군 이 거듭 승리를 거두고 있으니 직장을 사수하라. 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인민군의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피란 행렬이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경 주 내동 중학교 학생들은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때 교장선생님께서 남학생들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오라고 방송하였다. 남학생 들은 영문도 모르고 집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우리 외할아버지도 그 무 리에 끼어 계셨다. 이것이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6 25 학도병이 되신 내 력이다. 외할아버지는 입던 교복 그대로 총 한 자루 달랑 메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연일 계속해 굶주리기도 했고, 바로 옆 143 푸른 바람이 되어

144 수필 중 고등부 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날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겨우 16살에 지나지 않던 어린 외할아버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 하고 참혹한 것들이었다. 지금도 나는 한달에 한 뻔씩 외갓집에 들러 외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진다. 할아버지의 순수하고 소박했던 시골에서의 유년시절 이 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다. 이렇게 외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 기를 하다 보면 언제든지 할아버지께서는 옛날 6 25에 참전하신 당시의 이야기로 화두를 잡으신다. 그리고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두꺼운 대학노 트 빼곡히 적어둔 내가 겪은 라는 재산목록 1호를 꺼내주신다. 나는 그 때마다 항상 노트를 소중히 받아 열심히 읽어 나가지만 고등학생 이 된 지금도 그 책을 다 읽지 못하였다. 그 책 가장 끝머리에는 할아버지 가 6 25에 참전 하셨던 당시의 빛바랜 사진이 한장 있다. 그 속의 어린 외 할아버지는 근엄한 표청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계신다. 어리지만 너무나 깊은 할아버지의 눈동자에는 고향땅을 향한 한숨이 묻 어난다. 나는 자랑스런 참전용사의 외손녀 외할아버지께서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히 싸운 6 25 참전용 사로서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가슴에 참전용사 배지를 달고 외출하는 것 은 할아버지의 기본사항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전쟁을 종전시키지 못 한 6 25 참전용사들을 분단의 직접적 원인으로 치부하는 내용의 글을 읽 게 되었다. 그 글을 접한 나는 자랑스러운 6 25 참전용사의 자식으로써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목숨을 담보로 전장에 뛰어든 할아버지와 같은 분께 144 국가보훈처 _

145 수필 중 고등부 너무나 가혹한 언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에 참여하신 모든 분 들은 한반도 분단에 일조한 악의 무리가 아니라 오히려 분열된 민족정신 을 통합하기 위해 희생되신 것이다. 6 25가 휴전협정으로 마무리 되고 벌써 50년이나 흘렀다. 16살의 어린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어느덧 칠십을 넘기셨다. 얼마 전에 할아버지, 저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 배워요! 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께서는 미 소를 머금고 일본어로 구구단을 외워 보이셨다. 그리고는 내가 십년만 젊었더라도 일본어 안 까묵었을 낀데 하신다. 일제의 압제에 억눌려 친구들끼리도 일본어를 하지 않으면 호되게 야단 맞았다는 그 아픈 기억을, 이제 할아버지께서는 유년시절의 추억 정도로 여기시는 것 같았다. 내색은 안 하시지만 할아버지 가슴 깊숙한 곳 응어리 를누가풀어줄수있을것인가. 내일 3교시에 있을 한국 근현대사 시간을 기대하며 나는 꿈속에서 외갓 집에 보낼 편지를 쓴다. 할아버지,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 - 외손녀 유진 올림 145 푸른 바람이 되어

146 수필 일반부 호국보훈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홍창재_최우수상 / 충남 아산시 온천동 녹음을 부르는 투명한 햇살이 창공에 흩어지고 살갗에 와 닿는 훈풍에 문득 6월임을 확인합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6월이면 뇌리에 각인된 현충 일 아침 국립묘지의 숙연한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천사 같은 새하얀 소 복에 흰 국화꽃을 한 아름 안고 국립묘지를 찾은 등 굽은 할머니의 모습 을. 할머니께서는 현충일의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휩싸인 어느 사병 묘 역에 다가가 복받치는 슬픔에 이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얼마나 시 간이 흘렀을까? 묘비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며 혼절한 듯 했다가 다시 정 신을 추스려 묘비를 쓸어내리며 통곡하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6월의 녹음만큼이나 젊고 싱싱하던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당신의 슬픔을 그 누구인들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이 잠들어 계신 민족의 성역 국립묘지 와의 인연은 청천벽력과 같은 집안 아저씨의 갑작스런 전사로 그곳을 찾 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전방 부대에 배속되어 근무 중이던 아 저씨께서는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순찰 근무를 하던 중 미확인 지뢰 를 밟아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 송이 의로운 146 국가보훈처 _

147 수필 일반부 꽃으로 산화한 것입니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명법관이 되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밝히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여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들을 위해 가치 있는 생을 살리란 그 고결한 꿈은 한순간 폭발음과 함께 영원히 조국과 민족을 지키는 한 마리 학으로 장렬히 산화한 것입니다. 순 백의 깃털에 고고한 기품을 가진 학을 유난히도 좋아하던 당신이기에 조 국과 민족을 지키는 한 마리 학으로 승천하여 영원히 우리 곁에 함께 하리 라 확신합니다. 한 개인의 삶에 있어서 제일 소중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 을 하게 될까요? 어떤 이는 명예나 권력 혹은 재물이라고 대답하는 사람 도 있겠지만 좀더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생명이라고 답하 지 않을까요. 명예나 권력, 재물도 생명 앞에는 한낮 호사스런 겉치레에 불과할 뿐 살아있을 때만이 비로소 그 가치를 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단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국가를 수호한 숭고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호국영령들이십 니다. 그렇다면 호국영령은 생명의 고귀함을 모르는 분들일까요? 결코 그 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사랑하는 가족 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단 하나뿐인 고귀한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 할 수 있는 진정 높은 뜻과 용기를 지닌 위대한 분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평화 속에서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도 분명 조국을 위해 몸 바쳐 희생하신 순국선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생전 에 당신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하던 가족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정부와 사 회 각계의 보살핌으로 이제 겨우 자립의 터전을 닦아가고 있다지만 지난 날에는 누구 하나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어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으면서 147 푸른 바람이 되어

148 수필 일반부 빈곤을 헤쳐 온 분들입니다. 우리는 순국선열의 그 숭고한 뜻을 헤아려 보 훈가족이 좀 더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겠 습니다. 순국선열의 값진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이 강산에 존재 하는 하찮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우리 몸 구석구석에도 그분 들의 피와 얼이 흐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호국영령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본받아 조국과 겨레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슴 깊이 새 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아산고교는 1998년부터 연중 가장 중요한 학교행사로 평화 통일 기원 고난 체험 걷기대회 를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걷기대회 에 앞서 참전용사나 유관기관에서 위촉 받은 저명한 강사님의 특강을 통 하여 한국전쟁 및 한반도의 상황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 다. 강연회가 끝나면 맨 앞에 교기와 한국전쟁을 상기하며 학급단위로 공 동 제작한 깃발을 앞세우고 30학급의 전교생 및 교직원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학부모, 동문이 길고 긴 대열을 이루며 행군을 합니다. 시내를 거쳐 왕복 약 17km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걷는 동안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극 기 과정을 몸소 체험함으로써 심신을 단련하고 순국선열의 나라사랑, 겨 레사랑의 숭고한 뜻을 되새깁니다. 아울러 급우와 사제간의 사랑을 확인 하는 장을 마련하고 보훈 가족의 고마운 뜻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하여 진한 애국심과 애교심을 느끼며 한국전쟁 때 전장에서 목숨을 나누던 전우끼리 나눠 먹었다는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 주먹밥 먹기 체험활동을 통해 실제 빈곤을 체험하고, 느낌과 생각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148 국가보훈처 _

149 수필 일반부 순국선열을 떠올리면 진정한 애국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얼핏 생각하면 애국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또는 학생과 같은 특정 집단의 전유 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애국은 이 나라, 이 땅에 몸담고 살아가 는 모든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에서부터 비롯되며 진정한 의미의 애국은 모든 국민이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고장 아산에는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떨쳐 일어선 조선의 명장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입니다. 한양에서 태어나 아산시 염치읍에서 자란 장군께서 는 조선을 속국화 하려는 일본의 간교한 책략으로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온 조선반도가 혼란에 빠졌을 때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고자 불타는 애 국심과 탁월한 지혜로 국가를 구한 아산이 낳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장군 의 인격과 전략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사사로움 을 돌보지 않는 청렴한 생활태도 등은 충무공이 우리에게 준 값진 교훈입 니다. 호국영령은 대부분 한국전쟁과 일제로부터 독립을 찾고 자랑스러운 대 한민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순국하신 분들입니다. 한 때 우리민족은 이 념과 사상 중심의 세계사적 조류에 휩싸여 동족 간 전쟁을 치러 쌍방 모두 숱한 물적 인적 피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3년간 계속된 전쟁은 분명 민 족의 크나큰 비극으로 전 국토가 전쟁의 폐허로 잿더미가 됐고 안타깝게 도 숱한 인명 피해와 행방불명자를 냈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자유 우방의 지원과 우리의 적극적 인 경제개발 의지와 성과로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발돋 움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우리 국민의 경제재건 의지와 집념은 세계사에 149 푸른 바람이 되어

150 수필 일반부 유례가 드물 정도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칭송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재벌 기업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정경유 착, 정치인의 부정부패, 책임 있는 정치인을 선출하는데 무관심했던 국민 의 안일한 정치의식과 일부 국민의 과소비 등으로 국가 경제가 도탄에 빠 져 한때 IMF의 경제식민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굳센 단결력을 자랑하던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 아나바다 운동 등 의 물자절약 운동으로 IMF의 경제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대,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며 스스로에게 민족사적 사명감을 다짐해야겠습니다. 전 세계는 바야흐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인류의 평화와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 한 조상의 피를 물려받은 한 민족으로 같은 땅에 사는 한 핏줄, 한 형제 가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산가족의 뼈저린 아픔을 안고 살고 있으 니 이 얼마나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분단 조국의 쓰라린 아픔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우리 손으로 통일 과업을 이룩해야겠습니다. 문득 어릴 적 무심코 따라 읊조리던 노래 한 소절이 절실해져 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하여 통일, 통일을 이루자. 그렇습니다. 호국영령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통일 국가를 이루어 남북한 우리 민족이 한 덩어리로 굳게 뭉쳐 세계 사의 발전에 기꺼이 참여하여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당당한 주역으 로서 우리 민족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칩시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 웅비 하는 대한민국의 장한 이름을 각인하도록 합시다. 그 길만이 우리 조국과 150 국가보훈처 _

151 수필 일반부 겨레를 위하여 단 하나 뿐인 고귀한 생명을 기꺼이 바치며 이 강산과 이 겨레를 지켜 내신 호국영령의 위업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지름길이라 확신합니다. 오늘 따라 순국선열과 보훈가족의 나라사랑, 겨레사랑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분명 내 삶은 못 다한 임들의 빛나 는 삶에 무언가 보탬이 돼야한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뿐 인 소중한 생명을 던져 지켜내신 이 민족 이 국가를 위해 진정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맹세를 하게 됩니다. 호국영령이시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평안 하소서. 151 푸른 바람이 되어

152 수필 일반부 태극기 함정금_우수상 / 강원도 원주시 태장2동 1950년의 초여름, 햇빛은 대지에 거침없이 쏟아지고 상큼한 미풍은 신 선한 수목들에게 푸르름을 선사했다. 화단의 다알리아 장미 봉선화가 제 빛깔 제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보석을 굴리는 물망초 잎새들, 6월의 아 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어머니는 산에 가셔서 떡취를 뜯어다 삶어 절구에 찌어 꼬리떡을 만 드셨다. 난생 처음 해 보는 맛절구질이라 힘이 들지만 재미가 있다. 대청 마루에 모여 떡을 만드는데 쾅~ 쾅~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시어머니께 서는 얘야 어디서 소낙비가 오는 모양이구나 어서 장항아리들을 덮고 오 너라 다음날 새벽이었다. 남부여대 짐을 이고 지고 혹은 소 등에 싯고 길이 미여지게 남으로 남으로 가고 있었다. 아저씨 무슨일이 났습니까? 큰일 났습니다. 인민군이 쳐내려 옵니다. 빨리 피난을 가셔야 합니다. 난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복통이 시작되었다. 너무 심한 충격으로 배는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태아는 가슴까지 올라와서 호흡곤란 이 왔다. 병원도 모두 문을 닫고 속수무책으로 운명에 맡기는 수 밖에 없 152 국가보훈처 _

153 수필 일반부 었다. 어머니 도련님들 데리시고 어서 떠나세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며 떠나지 않으 시고 나를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셨다. 동네 사람들은 다 떠나고 조용하 다. 초여름의 햇살은 서산을 향하고 수런수런 말 많은 느티나무가 처량해 보인다. 대포소리는 가까워 지고 이제는 기관총 소리까지 들리는데 시간이 흐르 면서 태아도 제자리를 찾았다. 그날 밤 가마니를 쪼개 들것을 만들어 나를 싣고 피난길에 오르며 비로소 피보다 진한 가족이란 참사랑을 실감했다. 들것에 실려 하루를 가다가 또 통증이 와서 집으로 돌아와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몇번이나 넘나들다가 딸을 낳았다. 그리고 동네사람들도 돌아왔 다. 그런데 인민군들이 젊은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생각 끝에 남편과 두 친구를 우리집 고무다락(지붕과 천정사이)에 올라가 생활을 하고 밥을 해서 올려주었다. 집집마다 문을 열어보고 젊은사람이 있으면 공산당이 되라고 권하는 바 람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남한의 인사들은 총살 당하거나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때 내 나이 22살, 무서웠다. 그래서 봉두난발하고 아기옆에 누워 죽어가는 시늉을 하고 지냈다. 어느날 나는 소중히 간직하던 태극기를 장롱 깊숙히 넣어두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께서 한밤중에 태극기를 보여주시고 반닫이에 넣으시던 태극기를 몰랐던 유년시절의 수 많은 상념들이 떼지어 밀려온다. 대동아 전쟁은 한창 치열해져서 조선사람들의 놋그릇과 식량을 빼앗고, 153 푸른 바람이 되어

154 수필 일반부 징병 보국대 근로동원 정신대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노동력이 강제동원 이 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말과 이름까지도 빼앗아 우리는 거의 일본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방학이었다. 서슴없이 옷을 벗은 나목위에 설화가 아름답게 피던 밤, 아버지는 대문을 잠그시고 방문은 이불로 가리시고 엄숙한 표정 으로 반닫이 안에 깊숙히 감춰 놓았던 태극기와 한 권의 책을 꺼내 놓으셨 다. 누렇게 색 바랜 국기였다. 얘들아, 이게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라고 하는 거란다. 우리의 조국 은 일본이 아니고 조선이란다. 한일합방과 함께 조국 강토는 남의 땅이 되 어버리고 우리 백성은 나라없는 식민지 노예가 되었단다. 너희들은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그림책은 조선의 기생 논개가 적장 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드는 그림이란다. 아버지는 다시 반닫이 밑에 소중하게 숨겨 놓으셨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교 2학년인 나와 언니는 태극기를 처음 보았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 설레임, 어머니처럼 포근히 감싸주는 따스함, 우리나라 국기지만 버젓 이 내놓을 수 없는 나라없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날 밤을 뜬 눈으 로 새웠다. 짧은 만남이지만 긴 설레임으로 가슴을 메웠던 태극기, 아! 태극기, 눈 물이 핑 돈다. 아이가 꼬물거리며 운다. 지나간 상념을 털어버리고 젖을 물린다. 시간의 윤희를 지나 가을이란 계절과 마주친다. 신의 오묘한 꿈으로 생 성되었을 화려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자연의 넉넉함. 전쟁은 한창 무르 154 국가보훈처 _

155 수필 일반부 익어도 창밖은 온통 9월의 내음이다. 전세는 역전이 되어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줄을 이었다. 형무소 안에 수 감되었던 남한의 인사들은 손이 쇠줄에 묶인 채 끌려 가다가 어느 밭가에 서 총살시켰다. 우익이래서 죽고 좌익이래서 죽고 이게 무슨 비극이란 말 인가. 연합군이 국토를 갈라놓은 것처럼 우와 좌의 이데올로기가 부모형제를 이간질시키고 서로 총뿌리를 겨눴다. 이상주의라는 평범한 세대차가 우 와 좌의 대립이라는 사상적 갈등으로 나타났다. 1950년 9월 28일 석달만에 중앙청엔 태극기가 휘날렸고 정부가 돌아왔 다. 그저 공산치하에서 벗어난 것이 감사했다. 읍내에 볼일 보러 갔다가 읍사무소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보니 절로 눈물이 난다. 전선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전쟁은 치열해 지고 젊은 생명들이 꽃처 럼 떨어져 갔다. 한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기 위해 철의 삼각지대를 둘러싸 고 벌어진 백마고지 싸움과 저격능선 싸움은 6 25의 대표적인 싸움이라 고할수있다. 1953년 7월 27일 그렇게도 소원하던 통일도 이루지 못한 채 휴전이 되 었다. 3년이 넘도록 겨레의 가슴을 찢던 포소리는 멎었지만 그 피해는 대 단한 것이었다. 한반도는 말 그대로 잿더미로 변하고 전쟁으로 자식 잃은 어머니와 지아비를 잃은 아내들은 누구의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간 절한 사랑은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한반도의 평화는 언제나 안보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적화통일의 욕심을 버리지 못 하는 북한과 대동아 경영권을 꿈꾸었던 일본이, 요즘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영토확장에 혈안이 된 일본이 지척에 있다는 것 155 푸른 바람이 되어

156 수필 일반부 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민족과 국가이건 스스로 강하지 않으면 온갖 수 모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열하지 말고 하나로 뭉쳐 급변하는 국 제 정세 속에서 민족의 정통성을 유지하며 끝없는 번영을 이루어야 한다. 연중행사로 여러차례 국기를 계양하지만 6월 6일 현충일의 국기계양은 남다른 감회에 사로잡힌다.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 꽃처럼 떨어져 간 가신 님들의 넋을 위로하고 또 위로해도 가슴은 아프고 이렇게 살아있음이 감 사하다. 방위군으로 소집되었다가 현역군인이 되어 나라가 위기에 처했 을때 목숨 걸고 참전한 남편에게도 감사한다. 가신님들이 남기고 간 자식들을 묵묵히 키워낸 미망인들, 또한 타국에 와서 피를 흘린 연합군,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어찌 존재하랴. 편안하게 누릴거 다 누리고 사는 신세대들은 나라없는 서러움과 전쟁의 비참함과 배고픔을 모르니 걱정스럽다. 현충일에만 가신님들을 추모하지 말고 항상 고마움과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꽃피고 새우는 푸른하늘에 태극기가 펄렁이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지 켜주신 가신님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는 이 땅 위 에 전쟁을 이르켜서는 안된다고 굳게 다짐하며 어느새 가득 고인 눈물을 닦으며 태극기를 바라본다. 156 국가보훈처 _

157 수필 일반부 2005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 이수진_우수상 / 서울 도봉구 창 5동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 2005년. 일본은 독도에 대한 망언을 또 한번 되풀이 하고 있고, 왜곡된 교과서들 은 일본 전역에 퍼지고 있다. 다시 한번 불거진 독도분쟁, 왜곡된 교과서 문제가 한국 사람들의 역사적 자존심을 자극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 친 애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현충일은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빗나간 얘기이지만, 6월 6일 현충일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특별한 생일 날짜 덕분에, 나는 몇 해 전부터 인터넷 동호회 6월 6일이 생일인 사람들 의모임 의 회원이 되어 왔다. 솔직히 말해, 오늘 현충원을 방문하기 전까 지 현충일은 나에게 내 생일이라는 것과 휴일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없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광복 60주년 에 관한 컨텐츠 기획서를 써오라는 수 업과제를 받았다. 광복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10대에서 20대의 젊은 층을 겨냥한 컨텐츠를 매체를 불문하고 그에 대한 기획을 짜오라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나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현충일의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아르바이트 일정이 없는 목요일에 국립현 충원을 답사하기로 마음먹었다. 157 푸른 바람이 되어

158 수필 일반부 2005년 4월 7일 오늘, 드디어 나는 현충원을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어제에 이어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나는 모처럼 여유 있는 목요일을 즐기 며,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말끔한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나무와 연못이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조깅이나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리고 연못을 지나 바삐 들어선 기념관에는 나 이외에 다른 방문객은 없 는 듯 했다. 건물 안은 썰렁했고 오로지 밖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웅웅거리 며 기념관을 메웠다. 그냥 건조한 설명이 씌어진 액자 몇 개가 걸려있겠 지. 생각하며 별 기대 없이 들어선 기념관에서 나는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쓸쓸하긴 했지만 그곳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쓰러진 청춘들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흔적은, 처음엔 희미하게 느껴졌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붉고 뜨거 워졌다. 그리고 어떤 책임감이 어깨를 지그시 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광복 60주년 이라는 과제를 받아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현충원을 쓰윽 둘러보려던 나는 과제의 주제가 생각처럼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다. 과연, 여기서 내가 보고 있는 청춘들의 광복 과 내가 느끼는 광복 은 같은 정도의 무게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을 담은 채 광복을 맞이한 순간 시민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앞에 섰을 때, 나는 잠시 사이다 같은 짜릿함 을 느꼈다. 광복 60주년 이라는 주제는 그렇게 내 마음 속에서 다시 자리 매김되고 있었다. 기념관 벽에 붙어있는 어느 태극기 앞에서 나는 잠시 멈 추어 섰다. 자세히 살펴보니, 태극문양의 붉은 색이 더 진해지는 듯 했고, 파란색은 더 파래지는 듯 했다. 또는 흰색 국기가 점점 애국선열의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살아 숨쉬며 일제시대 이후 우리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만 같 158 국가보훈처 _

159 수필 일반부 은 커다란 태극기에 가만히 손을 갖다 대 보았다. 애국선열의 두근거림이 또는 나라에 대한 열정이 내 손을 타고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현충원을 조금 더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에 기념관을 나와 조금 걸어들어 갔다. 그러자 내 앞에 하얗고 창백한 묘비들이 죽 늘어섰다. 안타깝게 목 숨을 잃은 애국자들이 국립묘지에 그렇게 황량하게 누워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줄지어 있는 묘비는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을 정도였고, 마치 거대한 무덤밭처럼 보였다. 이러한 국립묘지 가 이곳 말고도 전국에 걸쳐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생 각이 드는 한편,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다시 웅웅거리며 바람이 불어왔고 추울까봐 옷깃을 여미려던 나는, 뜻 밖에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애국선열의 혼들 이 나를 감싸주고 있어서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묘비 사이를 걸 으면서 푹신한 잔디가 깔려있는 땅이 너무나 단단하게 느껴졌다. 여기 이 묘비들이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라는 조그만 땅은 굳건하게 지 켜질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면서 벅차올랐다. 국립묘지엔 나 이외의 참배객들은 보이지 않았고, 저만치 떨어진 누군 가의 묘비에는 까치가 날아와 앉아 넋을 기리고 있었다. 묘비 옆에는 꽃병 이나 화분이 서 있었고 종종 그 꽃병에는 조화가 꽂혀 있었다. 며칠 전 불 었던 바람 때문인지...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인지... 더러는 꽃병과 화분 이 넘어져 있기도 했다. 나는 조화와 함께 쓰러져 있는 꽃병과 화분을 묘 비 옆에 잘 세워두고 계속 묘비 숲을 걸었다. 처음에는 화려했을 조화들은 흙먼지에 때가 타 있었고 어떤 묘비에는 참배객이 바로 얼마 전에 들렀었 는지 생화가 꽂혀있기도 했다. 기념관에서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자 그나 159 푸른 바람이 되어

160 수필 일반부 마 황량함을 달래주던 조화들도 꽂혀있지 않은 묘가 많았다. 현충원내 스 피커에서는 마침 선구자 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고, 이름 모를 새들이 소 리 내어 울었다. 알 수 없는 구슬픈 음들이 바람과 함께 불어왔다. 그리고는 커다란 비행기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주로 2, 3인용인 비행기는 프로펠러를 돌리면 바로 날아오를 듯 했다. 세월의 흔적인지, 자 세히 보니 비행기 곳곳에는 녹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있었고, 거센 바람에 휘둘릴 것 같은 프로펠러는 전쟁이 끝났음을 의미하듯 끄떡없이 멈춰있 었다. 비행기가 있는 광장을 지나... 마지막으로 현충탑을 향해 걸었다. 기념 식이라도 있었는지, 버스 두어 대가 내가 현충문 앞에 도착하자 출발했다. 현충탑 앞에는 향긋한 향이 타고 있었고, 나는 현충탑 안으로 굴처럼 생긴 입구를 향해 들어갔다. 현충탑 안에는 땅부터 천장까지 꽉 차는 바위벽이 서있고, 그 바위벽에는 빼곡하게 수많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바위벽을 둘러서 꽃들이 장식하고 있었고, 어떤 이름 밑에는 액자가 기대어져 있거 나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간에 서신을 왕래하는 듯이 편지가 조용히 놓여 있기도 했다. 현충탑 안에는 성당처럼 고고하고 엄숙한 기운이 돌았다. 곧 폐장시간이라 나는 현충탑을 서둘러 나왔다. 학창시절, 현충원에 견학을 왔던 기억이 난다. 소풍 오듯이 김밥과 음 료수를 사들고, 친구들과 즐겁게만 놀다 갔던 것 같다. 기념관도 들렀었 고, 현충탑도 들렀지만 오늘처럼 비장한 기분이나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 낌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마치 인간 피라미드 쌓기처럼, 나는 순국선열 의 희생 위에 아늑하게 서 있고 밑에서 든든히 받쳐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60 국가보훈처 _

161 수필 일반부 일본을 비롯해 위치상으로 외세의 침략이 끊일 수 없었던 한반도의 역 사는 여기저기서 누덕누덕 기워져 있었다.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 앞에 무 력하게 흔들렸다고만 생각했던 한반도의 역사는 누덕누덕 기워질망정 끊 이지 않고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대한민국은 건재하며 그 역 사는 현충원에 누워있는 애국선열들이 있는 한 굳건히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현충원을 나와 대로변을 걸으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밟을 수 있 는 땅이 있다는 것과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새삼 신기하고 낯설게 느껴졌 다. 조상들의 치열한 애국정신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당연한 자유와 권리 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이십 여 년 째 생일을 맞이했던 내가 어쩌면 한번도 현충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 다시 한번 현충원을 여유있게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현충일에 태어난 동호회 친 구들에게 우리들의 생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었다. 돌아오는 현충일에는 자그마한 꽃다발이라도 들고 그 곳을 다시 찾아야 겠다. 161 푸른 바람이 되어

162 수필 일반부 전쟁이 남긴 슬픈 기억 두 토막 박정순_장려상 / 인천 동구 송현동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단어겠지만 전쟁 직후에 태어난 우리들한테 상이군인 이란 말은 늘 공포의 의미로 통했다. 봄 산에 활짝 핀 진달래를 꺾으러 올라가면 문둥이가 있다고 하여 무섭 고, 외딴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상이군인이 아닐까 무서워 심지어는 다른 길로 빙 돌아서 피해가곤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던 근거 없는 얘 기들을 듣다보면 저절로 막연한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이군경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 나는 일부러 더 혐오스러운 모습을 한 채 동냥을 다니는 행동이 거부감을 주었고, 싸구려 물건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강매하였는데 심지어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경우 떼를 지어 행패를 부린다는 점에서였다. 처음에야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그렇게 됐고 국가 의 보상이 미약하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오죽하면 저렇게 할까 동정심 에서라도 이해하려하며 우호적이었으나,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가짜 상이 용사들이 많이 생겨나 나쁜 선입견을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만 것이다. 글머리를 이런 씁쓸한 주제로 삼은 것은 수십 년 전의 어떤 사연을 말하 기 위해서다. 162 국가보훈처 _

163 수필 일반부 우리 고향마을 앞에 크지 않은 강이 있었는데 거기 있는 뱃사공은 한쪽 팔이 없는 남자였다. 원래 있던 뱃사공이 사고로 죽자 그 일을 맡아할만한 사람이 마땅치 않던 차에 마침 그가 배를 맡았고 봄 가을마다 집집에서 곡 식 몇 말씩 거둬주어 생계를 이어가게 했다. 한손으로도 귀신처럼 노를 잘 젓지만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 때문에 사 람들이 혼자는 배를 타기를 꺼렸으나 하지만 싫든 좋든 그의 신세를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여자가 밤에 타면 갈고리를 만들어 단 팔로 위협해 못된 짓을 한 다는 소문이 있었고, 들리는 말에 그는 상이용사로 지난 전쟁터에서 사람 을 많이 죽여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당한 자신의 불구를 비관해서인지 술을 많이 마셨으 며 술버릇도 곱질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해, 한밤중에 닥친 엄청난 홍수로 강이 범람 하였다. 강가 마을 사람들은 전쟁 이후 가장 처참한 상황을 맞고 말았는데 여러 집과 전답은 물론 가축까지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지경이었다. 그 생지옥 같은 상황에서 뱃사공은 큰 활약을 했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 지 않은 채 고립된 마을사람을 구하고 응급조치를 하였다. 그러나 끝내 마을 노인 한분이 물살에 떠내려가고 말았다. 동이 트자마 자 장대를 들고 시신을 찾아 나선 그는 오후가 돼서야 물속 나뭇가지에 옷 이 걸려 가라앉은 노인의 시신을 기진맥진 건져 올렸다. 그 일이 있고 나자 사람들은 비로소 우호적인 생각으로 돌아서게 되었 다. 전쟁터에서 겪은 그의 경험 덕분에 그나마 마을이 무사했다고 고마워 하였다. 163 푸른 바람이 되어

164 수필 일반부 하지만 얼마 뒤, 수해복구 차원에서 강에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놓였고, 결국 그는 이제 할일이 없어지게 되고 말았다. 한쪽 팔로는 농사일조차 할 수 없는 막막한 처지였으나 궁하면 통한다 는 말처럼 그에게 할일이 생겼다. 그 강가의 한적한 바위벼랑 쪽에다 군인 들이 와서 사격을 하는데 훈련을 마치고 떠나면 수많은 탄알이나 파편 따 위가 남겨지는 것이다. 고철이 무척 귀하던 시절이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사격이 있는 날은 그 걸 주워서 팔아 짭짤한 알돈을 벌었으니 역전의 용사답게 총기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던 그는 남들보다 많은 수입을 올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끝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전쟁의 상흔과 함께 마감되었다. 어느 날인가 포사격 훈련이 있었는데 불발탄 하나를 흙속에 서 캐낸 그는 무얼 잘못 건드렸는지 하늘로 치솟은 포탄과 함께 불귀의 객 이 되고 말았다. 자기 과실인지라 보상받을 길도 없이 허망한 인생을 마친 것이다. 그 얼마 뒤 월남 파병 바람이 불었다. 전쟁은 예상보다 오래갔고 해가 지날수록 파월장병 숫자가 늘어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 얘기 가 주위에서 드물지 않게 되었다. 우리 집안에도 파월장병과 관련된 일이 터졌다. 막내 이모에게 비보가 전해진 건 그 즈음, 월남의 약혼자에게서 온 군사우편 편지봉투 한쪽에 선혈이 말라붙어 있 었던 것이다. 많이 보고 싶다. 죽도록 사랑한다. 는 애절한 내용의 연서. 이미 둘은 정혼한 사이였고 곧 귀국하여 제대하면 예식을 올리기로 소 문이 난 상태였다. 164 국가보훈처 _

165 수필 일반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이모는 편지를 가슴에 안고 약혼자 집으로 갔다. 기 우로 끝나길 바라는 기대와 달리 예감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귀국을 보름 인가 남긴 마지막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으며 그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편 지였다는 것이다. 그 다음 해 집안의 반대와, 심지어 남자 쪽의 거부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은 이모는 신랑 집으로 들어갔다. 말이 좋아 결혼이지 하반신 불구가 된 남자의 수발을 드는 평생 간병인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차라리 한쪽 팔을 못 쓰던 뱃사공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증 장애의 몸인 한 남자에게로 간 이모는 그의 손발이 되어 삼십 몇 년을 함께 살았다. 자신이 꼭 떠맡아야할 숙명은 아니며 스스로의 행복을 얼마든지 찾아갈 길이 있었음에도 희생을 감수한데는 죽음의 전장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준 한 남자의 피 묻은 편지 한통의 힘이었을 것이 다. 이모는 인간으로서 그 점을 배신할 수 없었으리. 그렇게 자손도 두지 않고 늙어간 세월, 전쟁이 아니었으면 이 세상 누구 보다 행복했을 지난 날들, 그래도 국가유공자란 명예와 긍지 하나로 남 앞 에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었을 것이다. 한적한 변두리에서 꽃집 겸 분재를 가꾸며 살아온 부부는 나무나 꽃을 정성껏 가꾸면서도 꺾꽂이를 하거나 꽃다발을 만들어 팔지 않았다. 신체 일부가 잘려진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기에 비록 말 못하는 한 포기 식물이라 한들 함부로 아프게 하기 싫었으리. 평화시대에 길들어진 요즘 사람들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을 한 이모, 만약 내가 그런 입장이었으면 과연 이모처럼 자신을 희생할 수 있었 을까. 165 푸른 바람이 되어

166 수필 일반부 이모는 국가에서도 못하는 거룩한 일을, 아니 온 국민들이 해야 될 몫을 40년 가까이나 떠맡아 희생을 감수한 셈이다. 이모가 홀로된 지 3년이 되었다. 차라리 지금이 한결 홀가분할 텐데도 곁에서 보기에 요즘 더 쓸쓸해 보이는 건 우리들의 괜한 착각인지 모른다. 이렇듯 전쟁은 남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많은 고통을 준다. 중동지 역의 전쟁국가에서도 보듯, 실제로 전쟁에 참가하는 남성들보다 힘없는 여성이나 아이들까지 직 간접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처럼 그래서 평화도 평화로운 시기에 더 굳건하게 지켜야 한다. 얘기가 좀 빗나가지만 요즘 독도문제를 곰곰 생각한다. 일본의 행태에 화가 치솟기도 하나, 한편으론 힘이 미약했던 우리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 까 되새겨볼 일이다. 그동안 누군가 지켰기에 독도가 우리 땅으로 남아있지만 엄연히 우리 땅을 놓고 이웃나라와 서로 임자를 다투는 처지가 된 건 우리세대의 큰 불 찰이란 점을 반성해야 된다.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짓지 않으면 후손들이 두고두고 일본과 끝 없는 영토싸움을 해야 할 것이다. 아니, 끔찍한 일이어서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언젠가는 전쟁까지 일어나지 말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런 관점에서 이 문제는 우리 세대가 확고히 매듭짓고 넘어가야 한다. 이건 장차 후손들 손에 넘겨질 분쟁거리를 미리 막아주는 역사적 대명제 인 것이다. 166 국가보훈처 _

167 수필 일반부 은혜를 기억하는 도리 송채임_장려상 / 서울 마포구 염리동 보훈의 사전직인 의미는 공훈에 보답함입니다. 사사로움이 아닌 공적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한 당사자들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그 들의 공로에 존경을 표하고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을 때 서로 격려하고 힘 을 모아서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보 훈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보통 보훈하면 55년전에 일어났던 6 25전쟁과 월남전에 파병 하여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당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이 겪고 계 신 육체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을 국가가 주관하여서 여러 도움을 주고 그 분들의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하는 수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보훈병원 같은 곳이 그런 대상의 공훈자들을 집중적으로 돌 보고 치료하는 기관의 하나라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씀이지만 지금도 어디에선가 나라를 위한 공무의 수행중 불의의 어려움에 처한 분들이 참 많음을 주위의 분들을 보면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독립운동을 헌신적으로 수행하여 개인은 물론 그 분 들의 가족까지 큰 어려움을 당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데, 사상적인 문 제 때문에 또는 객관적인 자료의 부족 등으로 대상에서 제외 되었다가 최 167 푸른 바람이 되어

168 수필 일반부 근에 정치적인 배려에 의하여 명예가 회복되신 분들에 대한 소식을 언론 을 통하여 접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늦고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고 당사자들의 평생에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기회로 여 기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전에 비하 여 우리나라가 바름을 추구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애쓰고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대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음지에서 어려움을 무릎쓰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서 헌신하는 분들이 너무 많지만 이제 우리의 생각의 수준이나 경제적 능력,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그 분들에게 더욱 감사하고 어려 움에 처하였을 때 그들이 정말 감동할 수 있도록 힘써 아픔과 어려움을 같 이 나누는 성숙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되고, 사회와 국가가 되었으면 좋 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좋은 환경이 만들어 질때 우리나라에는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국가 자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 올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어서 참 많은 어려움 을 당하면서도 자랑스럽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이어가고 있습니 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의 인재들이 살 신성인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몸 바친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데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어떤가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이 배 운 분들은 나라에 미련을 갖기 보다는 개인들의 삶의 안전을 위해 여러가 지 묘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만들어 놓습니다. 예를 들면 여자들 같은 168 국가보훈처 _

169 수필 일반부 경우는 건강이 위험함과 경제적인 큰 손실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나가서 출산을 한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한편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그리하면 좋은 나라의 영주권을 받게 되고 까다로운 절차없이 이중국적을 취득하 게 되어서 상황에 따라 개인에게 좋은 자리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살 수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탱하고 이끌어 가는 나라라면 우리에게는 앞날 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오래 전에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중동국가간에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우리는 중동전쟁 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마자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유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고국행 배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받고 전장에 나아가서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동 국가 의 유학생들은 그곳에 가지 아니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피하였다 고 합니다. 전쟁의 결과는 우리가 아는대로 조그마한 이스라엘이 승리하 였습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저는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 의 정신자세에서 벌써 승패는 결정되었다 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유학생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너무 부럽습니다. 우리나라 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나라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지 못할까요? 천성 때문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속좁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라를 위 해 애쓴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부족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거추 장스러워 하기도 하는 풍조가 조금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계승하여야할 좋은 정신이 왜곡되고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 169 푸른 바람이 되어

170 수필 일반부 회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런 보훈 정신이 반드시 바르게 확립되어야 우리나라는 정말 강하고 바람직스러운 국가와 민족을 계속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사회와 나라를 위해 개인적인 위험이 따르더라도 헌신하는 마음이 모두 의 마음속에 한결같이 숨쉬고, 그러한 이유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 을 측은히 가엽게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경 의를 표하고 은혜를 생각하며 서로 힘을 모아 도우며 살아가는 문화가 만 들어 진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훌륭한 나라, 세계의 모범이 되는 나라로 우 뚝 설 것입니다. 충신이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도 하지만, 사회와 국가가 충신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충신과 충신을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을 간직한 우 리나라, 제가 꿈꾸는 사랑스런 조국의 모습입니다. 저는 비록 현재로서는 마음으로 밖에는 나라를 위해 애쓸 수 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제 아이에게만이라도 이런 엄마의 마음을 전하고 올 곧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이제 보훈의 달이 다가옵니다. 여러가지 행사도 굉장히 중요하고, 그 행 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안전과 평화를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의 현상 을 보면 전쟁이 곳곳에서 발생합니다. 우리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라 크와 미국의 전쟁에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사막에서 목숨을 담보로 전쟁의 중심에서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여 만약의 170 국가보훈처 _

171 수필 일반부 어려움이 발생할 때 우리의 할일에 대하여 마음과 몸으로 배려해아 할 준 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아파해야하고 서로 격려하며 그 숭고한 수 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지금까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였습니다. 안되었구나. 그런 생각은 늘했지만 남의 일이다보니 지나쳐서 잃어버리고 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전환점으로 삼아서 숭고한 희생으로 어려움 당하는 분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아픔과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제가 되어야 겠 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훈! 공훈에 보답함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보답하는 기회로 삼고 싶 습니다. 이 시간 저도 모르게 제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할 수만 있으시면 어려움이 없게 하시고 나라를 위하여 각각의 처소에서 수 고하는 이들과 함께 하셔서 추호라도 아픔당하지 않게 해 주시라는 마음, 간절히 원합니다. 기본이 바로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우리나라, 숭고한 희생의 대상들에게 진실한 마음의 존경과 함께하는 보훈, 그리고 이러한 소중한 전통을 빨리 만들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보훈의 달을 앞으로 남겨두고 제가 간절히 소망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순국선열과 어디에선가 지금도 그 희생 때문에 아파하고 계시는 소중한 분들, 당신들 때문에 제가 이렇게 평안함 가운데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드 립니다. 171 푸른 바람이 되어

172 수필 일반부 바람꽃 이미숙_장려상 / 전남 목포시 용당1동 언덕을 넘자, 추수가 끝난 밭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수숫대에 가을바람이 일어나고, 메마른 수숫잎이 서로 몸을 비비며 술렁거렸다. 산 아래 밭둑 길가에 서 있는 나도배나무에서 손톱만한 열매 를 한웅큼 따서 서로 나누었다. 입에 넣자 시디신 과육이 퍼지고, 신맛에 진저리를 치며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순덕이와 나는 항상 언덕길을 택하여 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오가는 길 목엔 봄이면 진달래가 피고 산벚꽃나무에 핀 화사한 꽃잎을 따먹곤 하였 다. 개울을 건너다가 징검다리 위에서 물장난을 치기도 하였다. 바쁜 가을 철이라 집안 일손을 도우러 서둘러 가는 길이었다. 문득 밭둑 저 편 땅바 닥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다. 저게 뭐지? 사람 같았다. 가까이 가보기로 하였다. 소나무 삭정이며 낙엽을 묶어 실 은 지게가 보였고, 그 밑에 사람이 깔려 있었다. 우리는 급히 달려갔다. 아 마 나무를 지고 가다 쓰러진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무지게를 지고 일어나려다 힘에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지게 밑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소리를 듣고 순덕이 얼굴이 하해졌다. 순 172 국가보훈처 _

173 수필 일반부 덕이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아! 깔려있는 이는 순덕이 어머니였다. 우리는 힘을 모아 지게를 바로 세우 고 순덕이 어머니를 일으켰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보였다. 우 리를 보고 그제야 안심을 한 듯, 이내 주저앉아 다리를 뻗고 숨을 몰아쉬 고 있었다. 순덕이도 엄마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순덕이네 엄마는 예전댁이라 불리웠다. 예전리에서 온 분이라 댁호( )를 그렇게 지어 불렀던 모양이다. 우리는 예전아짐 이라고 불렀다. 몸 이 허약하였고 천식을 앓고 있었다. 밤이면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곱 상한 얼굴이지만 오랜 고생으로 검고 메마른 얼굴이었다 인공난리 중에 순덕이네는 아빠를 잃었다. 고을을 점령한 빨치산 들에게 순덕이네 아빠가 죽임을 당하자, 예전아짐은 어린 두 자식을 이끌 고 우리 마을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가끔씩은 예전리에 볼 일이 있었던가 보다. 순덕이가 심부름을 갈 때마다 나는 동행을 하곤 했다. 한번은 예전리 논길을 걷다 저만큼 걸어오고 있는 키 큰 남자를 봤을 때 순덕이가 짓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순덕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자그마한 손이 힘껏 쥐어지고 있었 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저 사람이 우리 아빠를 죽인 사람이야. 그러고는 그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마을에 인공 치하를 바라던 사람들이 있고, 국군을 환영하던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있 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분열의 와중에 순덕이 아빠는 반대편으로 인식되 어 밀고를 당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어느 비 오는 날 밤 끌려가 예전마을 173 푸른 바람이 되어

174 수필 일반부 저수지 곁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렇게 죽게 만든 밀고자가 바로 그 남자라 는 것이었다. 그 후로 겪고 있는 모진 고생에 대해 순덕이는 모두 아빠를 잃은 일로 해서 일어난 것으로 알게 되었고, 그런 고생으로 인해 슬픔이 일어날 때마 다 아빠를 죽게 한 그 남자를 기억하곤 했다. 우리 아빠를 죽인 사람 은 순덕이의 어린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상처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 순덕이네는 오직 예전아짐 손에 살림을 꾸리게 되었 다. 허약한 여자 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밤이면 머리맡에 낫을 두고 잤다. 우리 어무니는 항상 윗목에 낫을 두고 잔단다. 어느 날 밤 술 취한 마을 남정네 중에 하나가 방문을 따고 들어온 이후 로 예전아짐은 머리맡에 낫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몹 쓸 사람들이 집적거린다고 순덕이는 불안해 하는 눈으로 말하곤 하였다. 밤이면 천식으로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어린 아들과 딸을 품에 놓지 않고 잔다는 예전아짐은 그 무렵이 설흔을 갓 넘긴 나이였다. 그러나 젊은 청상 이 홀로 자식을 기르며 살기에는 너무도 힘든 시절이었다. 바로 그날도 겨울을 나기 위해 산에 가서 낙엽을 긁어모으고 삭정이를 꺾어 나무를 해 오던 참이었다. 밭길로 해서 지게를 지고 오다가 미끄러져 넘어졌던 것이다. 일어나려고 수없이 발버둥을 치며 애를 써도 일어나지 못하자 그만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 없는 설움이란 것을 그렇게 울음으 로 토해내고 있던 중 그만 나와 순덕이에게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지게를 벗고 몸을 추스린 예전아짐은 등을 돌리고 머리수건을 벗어 얼 굴을 닦고 있었다. 누덕누덕 기운 저고리가 가을바람에 들썩이고 있었다. 174 국가보훈처 _

175 수필 일반부 나와 순덕이는 나뭇짐을 셋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나눈 짐을 머리에 이고 집을 향해 갔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왔다. 마을은 흰눈에 쌓여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 내고 있었다. 집집마다 밥을 짓는 연기가 오르는 모습은 고향을 생각할 때 마다 떠오르는 잊지 못할 정경이었다. 그러나 그 해 겨울에 있었던 일은 예전아짐을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리에 서 떠나지 않은 진한 감동이었다. 그날은 며칠을 시들시들하던 순덕이 머 리가 열로 끓고 있었다. 밤을 새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순덕이가 마침내 의 식을 잃자, 아짐은 순덕이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하얗게 눈 쌓인 신작로를 달려갔다. 영광 읍내까지는 이십 여 리 길을 의원을 찾아갔던 것이다. 그 먼 눈길을 헤치고 오직 자식 하나 살 리겠다는 일념으로 달려가던 예전아짐, 동무 잃을까봐 따라나섰던 내가 추위에 발길을 돌리고 말았을 때도 예전아짐은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짐이 순덕이 손을 잡고 마을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 얼굴에 피던 환한 웃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침내 자식을 살려낸 오직 어머니 만이 지을 수 있는 숭고한 승리의 웃음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두 해가 지나고, 나와 순덕이는 국민학교를 졸업했 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갔고, 순덕이는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살고 있었 다. 방학 때면 순덕이를 찾아 어울려 놀았고, 그렇게 함께 놀던 어느 해 겨 울방학 때 예전아짐은 이제껏 붙잡고 살던 장성한 두 아들 딸의 손을 놓고 세상을 떠났다. 예전아짐의 상여가 고개를 넘어가던 날도 지게를 지고 밭둑에 넘어져 175 푸른 바람이 되어

176 수필 일반부 있던 그때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상여 앞에 가던 만장기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꽃상여 가는 길목 바로 앞 순덕이 아빠가 숨을 거두었던 저수지 수면 위에 하얀 바람꽃이 일어나고 있었다. 176 국가보훈처 _

177 6.25 남침전쟁 한 병사의 수기 사선을 넘고 넘어서 읽어버린 고향 찾을 길 없나 태극기에 미친 할아버지 베트남 전쟁을 통한 감회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여 영원하리

178 6 25남침전쟁 한 병사의 수기 김상현_최우수상 / 경북 영주시 휴천2동 필자 김상현은 1931년 생으로 당시 만 18세로 1950년 7월 18일 경북 안 동시에서 제8사단 교육대에 입대하여 2주간의 훈련을 받고 8사단 10연대 11중대 3소대에 배치 되었습니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고참병 들은 다른 병력이 소모되고 신병들인 저희들이 보충이 되어 재 편성을 받 아 또 다시 전투에 들어거게 되었습니다. 여름의 뙤약볕 아래 벌써 안동 시가지에는 적군이 들어오고 있었고 안 동의 젖줄인 낙동강 넘어로 우리군은 후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동강 건 너편 산으로 자대를 배치받고 그때부터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한 피흘리 는 전투는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졌다. 당시 14일의 교육만을 받은 우리 신 병들로써는 처음 맞이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 우는게 더 힘이 들었다. 날이 새면 이동명령을 받고 남으로 남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가고 그렇게 전투, 그리고 후퇴를 반복하다 드디어 9월 20 일경 부대는 경북 안강 지구를 도착하여 잠깐의 휴식 후 전 대원들을 긴장 시키는 명령이 떨어진다. 각 소대장은 중대장님 앞으로 집합이다. 무슨 일일까? 178 국가보훈처 _

179 소대장님은 돌아오셔서 말씀하시길 지금부터 잘 들어라! 우리는 오후 3시 안강읍 뒷산을 공격한다. 그 말 한마디에 우리 전 중대원들은 전투 준비를 하고 일제히 오후 3시 를 기해 인민군이 있는 적진을 향하여 총을 쏘며 기습공격을 가하기 시작, 그런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하늘을 가르는 우뢰와 같은 폭탄 세례와 소나 기같은 파편들, 그리고 대기를 갈라놓는 적군의 따발총 소리,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것은 괴성을 내뱉는 핏빛 전우들의 모습만이 있었다. 그렇게 30 분 있는 힘을 다해 적진으로 돌격한다. 그런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 가슴 팍에 지어진 M1소총 하나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대신해서 나를 지켜줄 뿐이다. 다다다 적군이 있는 곳을 향해 내가 가진 총을 쏘아 댄다. 내 머 릿속에 있는 생각이라는 것은 이대로 적을 향해 뛰어가 적군을 죽인다 는 그 생각 하나뿐 겁을 먹을 만한 시간도 지금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쿠 쾅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포탄이 내 고막을 찢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 시 나의 좌측 대퇴부가 섬뜩하다. 다리에는 시커먼 구멍이 두개가 뚫려 있 던 것이다. 그 구멍 사이로 나조차 놀랄만큼의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 져 나오고 아! 이렇게 끝이란 말인가 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으악 소리 를 지른다. 위생병! 위생병 어딨어! 혼미해지는 가운데 전우 누군가의 외침이 들리고 위생병이 달려와 바지 를 끌어내려 지압을 한다. 그리고 전우는 나를 재빨리 골짜기 옆으로 끌고 내려간다. 골짜기 아래 개울가 그곳에는 나 아닌 또 다른 수많은 부상자들 로 인해 여름날의 습한 훈기가 피비린내가 되어서 훅- 하며 다가온다. 나 의 전우들이 그렇게 고통 속에서 아우성을 치는데 그 중에 고참병이 포탄 179 푸른 바람이 되어

180 에 복부가 파열되어 숨을 거둔다. 그를 지키고 있는 또 다른 고참이 숨을 거두어 가는 그에게 소리친다. 김하사! 김하사!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불러, 어서! 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역시 고참이구나! 그 말 한마디가 나의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게 힘을 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전우들은 모두가 눈물 속에서 대한민국 만세! 를 되뇌인 다. 그 말이 영원하길 간절 또 간절하다. 다행히 전투가 끝나고 나는 걷지 못하고 누워 있는 가운데 위생병이 와 서 차에 실어 주어 후송이 된다. 그곳은 부산 5육군 병원 3병동 당시 토성 국민학교 자리에 약 2천명 정도의 전우들이 병원을 대신하여 입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일동안 사경을 헤매다 깨어 보니 수술을 했는지 다리에 는 봉합이 되어있다. 그러나 급하게 되었는지 수술 후 다리 사진에 남아있 는 것은 큰 파편 5개만이 제거된 채 여전히 30개가 넘는 파편들이 남아있 다. 그렇게 나는 5개월이라는 시간을 전시라는 물자지원이 빈약할 수 밖 에 없는 굶주림의 병원 생활을 하게 됐다. 전방에서는 중공군이 밀어 닥쳐 와 1.4 후퇴라는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아군이 강원도 원주까지 후퇴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산에 각 병원마다 외상만 완치된 환자들 을 차출하여 전방으로 보내기 시작한다. 팔, 다리 불편한 환자 절반 이상 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그렇게 차에 오른다. 내 차례가 오고 나 또 한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한 채 전방으로 향하는 차에 오른다. 배치 받은 곳은 동래 온천의 보충대다. 트럭을 타고 이틀을 다리도 오므리지도 펴지 도 못한 채 그렇게 간다. 영천 신령을 지나 내 고향 안동, 떠날 때는 푸르 180 국가보훈처 _

181 른 여름이었건만 다시 본 그 곳은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 황무지가 되어 있다. 친지 그리고 가족 생각에 눈물이 흐른다. 모두들 내가 지켜야만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내가 지켜야할 땅, 내 나 라, 내 가족이다. 반드시 반드시 지키리라! 그렇게 나는 눈을 감고 다시금 이를 악 물어본다. 소백산을 넘어 제천에 들어서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곳에 남 겨지고 차는 부산으로 다시 돌아간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3 사단에서 트럭이 왔다. 힘겨운 출발이 다시 시작이다. 아니 이젠 진짜 출 발이다. 모두들 굳은 표정이다. 강원도 치악산 아래 우리의 종착지인 치악 골짜기 그곳에 내리니 온 산천이 눈이다. 깊게 쌓인 저 흰 눈이 서럽기도 하다. 1951년 2월 20일 경이다. 3사단 22연대 2대대 6중대에 배치되었다. 그런 데 중대 본부 부름으로 가보았더니 중대장님께서 나는 대한민국 육군 중위 배중위이다. 부산에서 오느라 수고 많이 했 다. 자네는 3소대에 가서 약간의 부대교육을 하게나, 그리고 나서 함께 전 투에 임하세나. 그렇게 되어 나는 3사단으로 배치된 후 5일간의 부대교육을 마치고 강 원도 홍천지구로 오른다. 그곳은 인민군 패잔병들을 토벌하는 작전이 벌 어지고 있었다. 당시에 패잔병들은 대구 팔공산 전투에 참가했던 북한 인 민군 주력부대였던 것이다. 얼마나 강한 부대며 사상 결단력이 강한 부대 인지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어떤 부대이든 아니 김일성을 직접 만나 전투한다해도 두려워 하면 안된다. 아니 두렵지 않다. 그들에게 사상이 있다면 나에게는 지켜야 181 푸른 바람이 되어

182 할 내 나라가 내 가족이 있다. 그렇게 적군을 향해 쌓인 눈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정말이 지 쌓인 눈이 내 키만큼이라 시야도 가릴 처지이다. 그 눈이 3월까지도 그 렇게 녹지 않을 정도였으니 우리는 하룻밤에도 수 차례 이동을 하고 있 다. 타 중대와 연락이 되면 또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계속해서 앞선 부대를 따르며 전투를 한다. 인민군들은 이 산 어딘가에서 숨어서 우리가 지나가 길 기다리고 있다. 불시에 우리의 몸을 이 흰 눈 밭위에 붉은 핏빛으로 물 들인다. 먼저 들키는 쪽이 적의 먹이 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밤 초 소도 없는 눈 밭 한가운데에서 겨울산 그 세찬 눈바람을 소나무 한 그루에 기대야만 하니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동상에 걸려 발이 곪아 발가락을 절단하는 전우도 있다. 정말이지 토벌 작전이 이렇게도 힘들지 누가 알으 리. 그러나 언제 어디에서 뛰어나와 우리 전우들의 목숨을 노릴지 모를 적 군을 생각하면 추위도 잊는 느낌이다. 깜깜 산중의 밤 조용한 정적 속에서 무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새벽 3시경이다. 부- 드- 득, 부- 드- 득 이건사람발자국소리? 그 쪽 방향이면 분명 인민군 패잔병이다. 때는 왔다. 소대장은 각 분대장에게 조용히 지시를 한다. 신호탄을 쏘기 전에는 절대로 사격을 해선 안된다는 지시다. 적막한 어둠속의 설원에서 조금씩 커지느 발자국 소리 부- 드- 득, 부- 드- 득 가까이 온 것이다. 약 20미터 정도까지 접근했다. 들리지는 않지만 숨죽 182 국가보훈처 _

183 이며 기다리는 긴장된 전우들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쾅 하 며 산야의 적막이 깨진다. 동시에 하늘로 치솟은 하나의 불줄기 신호탄이 었다. 일제히 한 개의 소대가 사격을 시작한다. 어둠속에서 울리는 총탄의 연발과 총구의 화력 정말이지 대낮을 연상케 한다. 멀리서 적들이 쓰러지 는 형체가 보인다. 그러나 우리를 향해 쏘는 적군의 따발총 소리가 얼음 송곳같이 우리 귀를 자극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윽 소리를 내며 쓰러진 다. 그러나 뒤돌아볼 여유는 없다. 적이 도망가는 것이 보인다. 우리 중 일 부는 엄호사격을 하며 그들이 달아난 방향으로 추격을 한다. 쾅 달아나 는 적들을 향해 던진 수류탄이다. 그렇게 적들이 일부는 도주했으나 대부 분이 우리 전우들의 총에 사살되고 그 중 5명만이 생포됐다. 몸을 수색하 니 그 중 한명은 인민군 장교였다. 지도, 나침반, 소련제 권총1점, 한국지 폐 상당수 그에게서 나온 물품들이다. 지도를 보니 대구 팔공산 전투까지 참가한 부대가 확실하였다. 그 인민군 장교에게 수갑을 채우고 중대본부 로 인계를 하니 드디어 동쪽 산중턱에 붉게 태양이 떠오른다. 전날의 전투 로 우리 소대원들은 복귀를 명받고 우리는 중대본부에 중대장님의 무전 을 받아 막사로 향한다. 김소위 정말 수고 많았소 하시며 악수를 청하신다. 어느 정도 우리는 토벌을 마치고 북진하여 강원도 현리 인재 설악산 아 래 가리산이라는 가리봉(해발 1,519m)고지까지 북진을 했다. 얼마나 높고 험악한 산중인지 4월 말 경인데도 산후사면이 모두 눈으로 뒤덮혀 있다. 소싯적 경상도 소백산을 여러 차례 올라봤던 나로써도 힘든 일이었는데 함께 한 전우들은 무척이나 지쳐 보인다. 일단 눈을 녹여 식수로 사용하여 세면을 한다. 약 5일간을 방어태세를 하여 적군을 기다린다. 그런데 봄비 183 푸른 바람이 되어

184 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가오니 눈이 녹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3일을 내린 봄비에 안개가 심해져 5m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다음날 비가 그치고 중대 본부에서 연락병이 온다. 당장 이동하라는 말에 모두들 하던 식사마저 멈 추고 우리들은 10분 이내로 도착해야한다는 말에 모두들 불길한 맘이 앞 선다. 내려가 보니 모두 이동 준비를 끝내고 화기소대 60m포를 적진을 향하여 모두 발사하고 전우들이 포만 메고 산을 내려간다. 중대장이 우리 를향해소리친다. 빨리 빨리 내려 가야해, 우리는 현재 적군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됐다. 아차! 싶다. 그 3일간의 봄비로 인해 안개 속에서 중공군 일개 군단 병 력이 우리 뒤로 빠져나가 현리에 있는 우리 군단을 습격하고 군단 본부가 후퇴하게 된 것이다. 지난 밤 동안의 일이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어 찌됐던 지금 빨리 움직여야한다. 우리는 완전 포위가 된 상황이기에 지원 병력을 받을 수 조차 없다. 우리 중대 우측에는 1연대 1중대가 그리고 좌 측에는 3사단 23연대 일개 중대가 배치되었다. 중대장들의 의견으로 우리 는 동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포위된 상태에서 오히려 적에게 더 잘 눈에 띄이는 결정이었다. 동쪽 능선으로 2개 중대가 넘어가는데 산 위 쪽에서 적군이 소낙비 같이 따발총을 쏘아 댄다. 우리 군도 반격을 가하나 우리의 전세가 너무나 불리하다. 그들이 산 위에서 던진 방망이 수류탄이 우리 군을 향해 정확히 명중을 한다. 그 넓은 산에서 10분만에 모두 해산 이 되어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함께 움직이면 적의 좋은 과녁이 될 것이었다. 모두가 흩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한편 현리 방향으로 간 병사들은 중공군에 의해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전우 한사람을 만났다. 이 전우는 고향이 서울이란다. 성은 이씨, 둘 184 국가보훈처 _

185 이서 손을 잡고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 라고 약속하며 그렇 게 둘의 힘든 사투가 시작된다. 한참을 그렇게 적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산을 넘는데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허기가 져오는 것이 느껴 진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급히 내려오느라 어제 이른 저녁식사 이후로 아 무런 식사가 없었다. 그 전우와 함께 개울 물로 대신 배를 채운다. 그러기 를 하룻밤, 이틀밤, 일단 적의 눈을 피해야 하기에 우리는 밤 시간을 이용 하여 이동을 하였다. 개울물 만을 마시며 이 산들을 넘기에는 힘이 든다. 그래서 우린 소나무 껍질을 베껴서 대신 끼니를 채운다. 나는 국민학교 시 절에 그것을 먹어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전우가 나에게 더 이상은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며 말한다. 자 그럼 이걸 한번 먹어보게 오다가 개울가에서 캤던 거네. 시금치야 소나무 껍질보단 넘기기가 수월할 꺼야. 그렇게 우리는 이 풀을 뜯어먹으면서 다시 산을 넘는다. 아마도 끼니 삼 아 먹었기에 그 동안 100여 번은 먹었으리라 3일 밤을 숨어서 나온 것이 6 25전 38선까지 도착을 했다. 이 고지만 넘어서면 대한민국 땅이다. 어쩌면 민간인을 만날지도 모른 다. 그러면 우리는 살수 있다. 힘을 내자! 그러나 만 72시간을 굶고서 산행을 했으니 더 이상 다리에 힘도 들어가 지 않는 것이 설 수 조차 없다. 우리는 간신히 산을 올라 내려오는 내리막 에서는 미끄러지고 굴러서 내려온다. 몸이 나뭇가지에 긁혀 여기저기 찢 겨졌다. 그러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썰매마냥 타고 내려가니 차라리 빠르 다. 저기 한 채의 집이 보인다. 이 동리는 가리산으로 가기 전에 약 5일간 의 교육을 받고 지나간 곳이기에 조금 지리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폭격 185 푸른 바람이 되어

186 때문에 근처 바위 밑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그 곳으로가 우리는 도움을 청한다. 도와주십시오. 저희들은 십오일전에 저기 아래에서 교육을 받고 갔던 3사단 소속입니다. 가리산에 포위되어 3일을 굶으며 산을 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야 한숨을 돌려본다. 그런 우리를 본 주인이 정말 수고했 네 한다. 그리고 나서 옆에 할머니께 점심에 먹을 밥을 우리들에게 내어주라고 한다. 여기에서 낮에는 폭격 때문에 밥을 지을 수는 없고 아침에 한 밥이 있 어요. 라고 말한다. 정말이지 너무나 고맙다. 그렇게 옥수수며 감자, 보리, 팥 등을 삶은걸 내 주시는데 그것들을 다 먹고야 우리는 이제는 살았다고 겨우 말을 제대 로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 그나마 몇 개월 치의 봉급이 있었기에 그것들 을 모아 그 주인에게 드리는데 주인이 사양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에게 화랑담배를 권하며 아시다시피 우리는 나라에서 옷주고 밥도 주는데 쓸데가 없는 돈이니 사양하지 마시고 그냥 받으세요. 그리고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지 살 수 있죠? 국군들 포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아무래도 이대로라면 한 200리 이상 내려간 것 같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소리에 기가 막힌다. 아직 동해안은 함포 사격을 하니 거 기에는 후퇴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로 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내가 옥수수랑 콩을 뽑아 줄테니 날이 어두워지면 오대산을 넘어 대관 186 국가보훈처 _

187 령에서 강릉 쪽으로 가세요. 그런데 여기서 오대산은 거리가 얼마나 되나요? 약 150리쯤 될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콩자루를 메고 상처나고 삔다리를 절룩절룩 거리며 다시 밤을 이용하여 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적군의 눈을 피해 오대산으로 향한 다. 그렇게 얼마의 밤이 또 지났을까? 어느 산중에 이르러 낙엽사이 속에 서 밤이 오길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떠보니 밤 기운속에 궁궁 거리는 울림이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날이 밝아오고 쿵 쿵 포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온다. 지금부터 조심해야돼 적군이 후퇴할거야 전우가 말한다. 산에서 숨어 살펴보니 멀리 산 아래로 인민군 야전 병원이 후퇴를 하고 있다. 그것을 본 우린 너무나 기쁘다. 이제 곧 우리 군이 보일것이다. 12시 경이 되니 인민군 주력부대가 후퇴를 하는데 그 위로 포가 비 오듯 떨어진 다. 저쪽 하늘 위에는 정찰기가 계속 돌며 폭격기가 인민군 후퇴하는 곳에 포탄을 투하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기관포를 계속 쏘아대고 이제는 몰 아가면서 폭격을 가하고 있다. 우리는 아군들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아 직 나아간다면 충분히 위험할 것이다. 이대로 좀더 기다려 보자. 오후 2 시경 MI총소리가 한발 두발씩 들린다.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것이 수색대 가 보인다. 철모를 쓴 우리 아군이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야! 외치며 우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누구냐 우리는 3사단 22연대입니다. 우리는 22연대 신분증을 보였다. 187 푸른 바람이 되어

188 고생많이 했다. 3사단 장병들 많이 나가고 있다. 하면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중대 보급반에 가서 보니 5사단이다. 정말 이지 오래간만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10일만에 쌀밥을 먹었습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라고 우리 둘이 취사반장에게 인사를 하니 취사반장이 건빵을 가면서 먹으라고 내어준다. 정말이지 고맙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니 헌병차 가있다. 3사단 22연대가 어디에 있습니까? 강릉에서 집결이다. 그곳으로 가면 된다. 대관령을 넘어 가면 된다. 라고 한 헌병이 말한다. 우리는 군용차가 가는 곳까지만 함께 타고 갔다가 내려서 강릉을 향해 다시 걷고 걸었다. 하지만 지금의 발걸음은 며칠전 보다 훨씬 더 가볍다. 우리 아군이 어디선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정말 힘차게 걸어갈 수 있다. 날이 지면 가까운 민간집에서 신세를 지고 물어물 어 우리는 강릉에 도착하였다. 때는 벌써 음력 5월 5일경이다. 강릉의 단오는 이 지방에서 큰 명절이 다. 그네 뛰는 아낙네들을 보니 정말이지 고향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흐른 다. 고향에서도 저렇게 놀았었지 하는 생각에 부모님 안부가 걱정이다. 한 참을 더 가니 3사단 장병들이 하나둘씩 모여 10여명 정도가 되었다. 강릉 시내를 들어가니 점심때가 되었다. 가면서 만난 타 부대 장교님과 하사관 들이 함께 냉면을 먹자고 하신다. 장교님 저희들은 돈이 없습니다. 188 국가보훈처 _

189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군군이다. 굶어도 같이 굶고 먹어도 같이 먹는다. 알았나! 하시며 자신에게 돈이 있으니 걱정말고 따라 오라고 하신다. '냉면'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감사의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몸조심하라며 손 흔드는 그 분을 보며 우리도 우리의 갈길로 향한 다. 강릉시에서 22연대를 찾아간다. 6중대를 찾아가니 가리산에서 중대장 배중위님과 각 소대장님들 중 어느 분도 나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부관 이 영근 소위님이 진급되어 중위로 6중대의 중대장이 되셨다. 중대장님께서 는 정말이지 반갑다 하시며 수고 많이 했네 악수를 청하신다. 3소대 선임하사 및 각 분대장 역시 가리산에서 못 나오셨다. 중대장님 이하 총인원 28명이다. 그리고 몇일 후 난 갈매기 두개의 당시 하사로 진급이 된다. 부대가 주 문진으로 이동하니 병원에서 퇴원한 병력이 우리 6중대에 50명 보충이 된 다. 각 소대 인원이 16여명이다. 본부 행정반 6명 외 소위 장교님들이 4명 더 오셨다. 부대 총인원이 약 80여명으로 몇 일 후면 제주도 훈련소 신병 이 배를 타고 온다며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배가 도착하는 날 오후에 전 원 부두로 나간다. 배가 도착하고 신병들이 내려오는데 모두들 부둣가에 서 쓰러지기부터 한다. 일어나지도 못 한채 뒹구는 그들에게 다가가니 모 두가 눈병환자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마른 명태같다. 당시 제주도 훈련 소는 물이 귀하여 마시는 물도없이 교육을 받고 막사를 지어가며 교육장 에서 교육을 마치면 또 다시 교육장 사역을 하였다고 한다. 제주도 훈련소 1기생들은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다고 말을 한다. 대대 인사과에서 명부 189 푸른 바람이 되어

190 를 인계받아 호명을 하는데 전체가 누워서 한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 을 지경이다. 일어서지 조차 못하는 그들을 보니 내일이면 출동을 해야하 는 우리들로써는 기가 막힌다. 그러는 와중에 대대장님께서 중대장님들 을 집합시켜 무언가를 지시하신다. 잠시 후 우리 중대장님이 오셔서 말씀 하신다. 6중대는 신병 80명 보충이다. 지금부터 중대 고참병 40명이 들어가서 한사람이 2명씩 손을 잡고 나온다. 만약 안되면 끌고 나오든지 업고 나와 라. 실시! 나도 재빨리 들어가 덩치가 좋은 2명을 찾아가 말한다. 지금부터 하는 내 말 잘 들어라. 이 부두에서 20km를 올라가면 최전선 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너희들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 같은 너희들 분대장 이다. 오늘밤부터 같이 자고 같이 먹고 이제 우리는 한가족이다. 빨리 일 어서서 내 손을 꼭잡고 어서 가자. 하며 그들을 데리고 나온다. 우리 분대에 6명을 보충받아 다음날 성명 및 군번 명부를 작성에 중대에 보고했다. 제주도 1기생들입니다. 군번이 0600***인 전우들은 광주 출신 전라남도 각 지역고장 출신입니다. 그리고 삼일 후 이동명령이 떨어진다. 양양지구 해변에서 서쪽으로 20km지점의 별로 높지는 않으나 약 550여 고지가 있는 그곳으로 이동이 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중대가 내일 공격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밤이되니 바다에서 우리 아군이 적군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한다. 멀리 검 은 밤하늘을 가르는 그 포탄들이 마치 번갯불이 번쩍거리는 것처럼 보이 다. 소리는 더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다. 쉭 쉭 지나는 그 포소리에 신병들 190 국가보훈처 _

191 은 정말이지 전쟁을 실감하는가 보다. 내일 6중대 고참병 일개 소대를 편 성하여 공격을 하니 신병들은 우리 뒤를 따라 오면 된다하고 그들을 조금 이나마 안도 시켰다. 밤새도록 바다에서는 함포사격을 하고 후방의 155mm 포연대의 105mm 포, 화기중대 80mm 포들이 모두 계속해서 이 고지의 적군을 향해 사격하니 산 전체가 날아갈 것 같다. 아침 일찍 식사 를 마치고 공격 준비다. 지금부터 고참병 일개 소대가 먼저 올라간다. 능 선의 7부정도까지 우리는 자세를 낮추며 신속히 올라갔다. 지금이다 대공표판을 편다. 그러자 즉시 전투기가 와서 연달아 투하를 해댄다. 전 투기의 포탄 투하 이후 우리는 쏜살같이 적진에 들어간다. 여기저기서 숨 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날아오는 방망이 수류탄, 우리는 이미 예상을 하 고 가까운 교통로로 몸을 숨긴다. 이곳은 우리 아군이 설치해놓은 고지였 기에 우리는 어느 정도 지리를 알 수 있다. 뒤에 올라오는 아군들은 산등 성이에 몸을 감추고 적들을 향해 우리군의 MI 사격 실력을 보여준다. 타 당 타당 울리는 우리군의 총소리가 이 고지에 남아있던 적군을 쓰러뜨린 다. 따따따따 거기에 반격하듯 적군이 있을거라고 예측 못했던 숲 속으 로부터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온다. 재빨리 우리중 일부가 그 곳을 향해 사 격을 가하고 또 다른 전우 일부가 엄호사격 하는 사이 나와 내 주변의 전 우 몇 명이 산등성을 돌아 적군들이 있는 곳으로가 일정거리를 두고 그들 뒤에서 사격을 한다. 드디어 고지의 각처로 흩어져 있던 인민군들의 모습 이 하나씩 사라지고 각 대원이 적군의 생사를 확인한다. 그리고 적군이 모 두 소탕된 것을 확인 한 후 우리가 올라온 곳의 지형을 살핀다. 우리가 예 전에 가리산에서 후퇴했을 당시에 여기서도 우리 아군이 많이 적군에게 191 푸른 바람이 되어

192 밀렸던 것 같다. 그래서 밀려오는 적군에 의해 이 고지를 빼앗겼으리라 우리는 이 곳 을 차지하고 그 전에 있던 아군들이 만들었던 초소와 교통로 전체가 우리 아군이 만들어 놓았던 그대로 있음을 확인한다. 여기에서 우리 중대는 장 기간 방어전투로 들어가기로 한다. 얼마간의 보수작업을 하고 방어를 한 다. 앞 전방은 산의 골이 깊다. 항시 앞을 수색해야 한다. 매일같이 1개 분 대씩 교대로 전방 수색을 해야한다. 어느 전방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오늘 은 3소대 2분대 나의 분대차례이다. 출발할 때 단단히 무장을 하고 중대본 부에 가서 중대장님께 지시를 받는다. 중대장님이 김하사, 수고해! 내려가면 초가가 한집 있으니 더 내려가지 말고 그곳 에서 근무해. 하시며 무전기를 주신다. 분대원 7명이 내려가 그곳 초가에 이르러 집 안을 수색하니 소금 한 점도 없고 밭에 씨앗도 뿌리지 않는 소를 먹이는 집인것 같다. 골짜기와 들판에 소 다섯 마리가 저희들끼리 풀을 한가롭게 뜯어 먹는 것이 보인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분대원 한 명이 말한다. 이상하네 저 소들 좀 봐봐, 저 큰 소가 앞에 가는 데로 작은 소들이 따 라 가는 게 저 큰 소가 분대장인가 봐 하니 모두들 웃음 바다다. 아마 분대장인 내가 소띠여서 우리처지와 비 교한 모양이다. 나는 중대장님께 무전기로 보고를 하니 적진에 있는 소는 먼저 본 부대의 소다. 인민군들이 그 소들을 보면 분 명 웬 떡이냐며 몰고 가 잡아먹을 것이니 소를 모두 몰고 와라. 이 말을 대원들에 하니 모두들 기뻐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불안하다. 적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저 소를 어떻게 몰고 갈지 걱정하 192 국가보훈처 _

193 는데 한 대원이 말을 한다. 제가 내려가서 몰고 오겠습니다. 자네 혼자서 어떻게 다 몰고 오냐? 솔 솔 기어가서 큰 소 고삐를 잡고 끌고 오면 작은 소들은 그냥 따라 올 것입니다. 그러나 거리는 4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다. 과연 가능할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몸 전체를 위장해라. 그리고 우리는 그를 풀로 몸 전체를 위장시키고, 그는 소가 있는 쪽으로 다가간다. 우리는 긴장된 맘으로 경계를 철저히 한다. 대원이 내려가는데 풀인지 우리 대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기어코 큰 소의 고삐를 잡 고 조심스럽게 풀들 사이로 올라오는데 뒤에 작은 소들이 음메 음메 거리며 잘들 따라온다. 소들을 모두 몰고 우리는 아군 진지에 도착하니 모두들 웬 소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 소들은 산 사면에 묶어놓고 6중대 부관으로 계셨을때 보급반의 사정을 잘 아시던 중대장님께서 소대장들을 집합한다. 큰 소는 보급을 싣고 다니게 하고 작은 소 4마리는 각 소대장이 책임지 고 맡는다. 일주일에 한 마리씩 잡아 부식한다. 각 산후 사면에 끌고 가서 풀을 베어 소들을 먹인다. 지금부터는 부식이 소고기이다. 제주도에서 온 마른 명태같던 신병들도 이젠 자신의 양대로 식사를 하니 사기가 왕성해지고 그 신병들이 3소대 김하사님 누구신지 정 말 보고싶다고들 한다고 우리 부대원 하나가 말한다. 여기에서 벌써 한달 째 교대없이 근무를 했다. 가리산에서 포위 당해 고 193 푸른 바람이 되어

194 생한 전우들, 신병교육대에서 고생한 신병들 모두가 여기서 몸보신을 한 셈이다. 이제 8월이다. 우리들은 교대를 하고 주문진으로 가 약 2주간의 교육을 한다. 그리고 대대전체가 중동부로 들어가게 되었다. 남아있던 큰 소는 여기서 잡아 각 부대에 나눠주어 회식을 하고 다음날 전체가 이동을 한다. 어디로 가는지 사병은 아무도 모른다. 도착한 지점은 중동부 전선 김일성 고지였다. 5사단과 교대를 한다. 김일성 고지가 얼마나 중요하며 5 사단에서는 이 고지를 다섯 번이나 공격했으나 한번 고지를 점령했으나 그날 밤 기습한 적군에 의해 완패하고 병력만 다 소모시켰다고 한다. 이러 한 고지에 3사단 22연대 2대대 6중대 우리 중대가 투입이 된다. 참모총장 육군대장인 백선엽, 우리 군단장 육군소장 배인엽, 3사단장 육군준장 백 남권, 22연대장 육군대령 장춘권, 6중대장 육군중위 이영근, 이 분들의 명 예를 걸고 이 김일성 고지를 우리 손에 꼭 들어오게 해야만 한다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5사단과 교대를 한 후 며칠간 적의 동태를 관찰한 후 우리 대원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특히 신병들 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분대장이 시키는 대로만 동작을 취하면 된다. 언제라도 지형지물을 잘 봐둬라 동작이 느리면 안돼. 바위 나무 등으로 빨리 은폐하여 공격하는 사 람이살수있다. 신병들은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인다. 다음날 각 소대장들은 중대 장 앞으로 집합이다. 얼마 후 소대장이 돌아 왔다. 그리고 각 분대장 집합 내일 새벽4시에 공격개시이다. 3소대가 제일선 공격이고 2소대는 우 측, 좌측은 7중대가 1소대는 예비소대 우리 뒤를 따른다. 지금부터는 무기 점검을 하고 휴식이다. 나는 분대로 돌아와 점검을 철저히 한다. 그리고 분대원들에게 명령을 194 국가보훈처 _

195 전달하고 오늘은 특별 부식을 하라고 지시한다. 신병들 얼굴도 이제 좀 살 이 붙고 동작도 많이 빨라졌다. 그러는 동안 정도 많이 들었고 우리는 서 로를 믿고 의지하는 전우애도 깊어졌다. 내 명령만 떨어지길 기다리는 그 들은 이제 준비된 군인이 되어있었다. 해가 지면서 후방에서 155mm 장거 리 포문부터 열기 시작한다. 연대 105mm포, 화기중대 80mm포, 60mm포 전 포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모든 공격준비가 완료되었다. 이곳 김일성 고지는 아직 칠흙같 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쿠쾅쾅 하며 지축을 뒤흔드는 포 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리고 연달아 터지는 불기둥들, 그렇게 우리들의 공격이 시 작된 것이다. 우리 주위는 우리 아군이 쏘는 포 소리에 땅들이 꺼져내려 앉을 듯이 흔들리고 그것을 보고있던 신병들은 무척이나 큰 공포감에 휩 싸여 있다. 겁먹지 말아라. 밤새도록 저렇게 포탄이 떨어지면 산봉우리가 날아간 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명령에만 따르라. 그러면 분명 무사할 것이 다. 자정이 오면서 기관총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온 천하가 울려대는 것이 잠시도 쉬지 않는다. 여기저기에서 기관총, 경기관총 일제히 사격하며 '다 다다다'소리만 연발된다. 조명탄이 터진다. 연대 전체가 후방에서 쏘니 하 늘은 불꽃 천지 마냥 여기서 팡! 저기서 팡! 하늘에 불을 지른 것 같다. 사방이 어두운 검은색 뿐인데 거기에 보이는 것은 포탄에서 나오는 불 기둥과 점을 찍으며 날아가는 불, 이 세상에 번쩍이며 활활 타는 불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런 구경은 우리 아군만이 하겠지. 적군들은 아마도 우왕좌왕 하는 아비규환이리라 드디어 새벽 4시 행동개시다. 능선의 푸른 바람이 되어

196 부까지 우리는 적의 동태를 살피며 오른다. 날이 밝아온다. 지형을 먼저 정찰한다. 2소대는 우측, 우리는 정면 능선이다. 1분대가 제1선 분대다. 1 분대장은 앞, 옆을 살피며 올라가 지형을 보고 손으로 신호한다. 이쪽으 로 오르라, 저쪽으로 오르라 그렇게 우리가 화력으로 적의 사기를 죽이 며 대원들이 쏜살같이 산을 오르는 가운데 멀리 환해지며 태양이 떠오른 다. 지금부터가 생과 사의 갈림길이리라. 계속해서 포가 떨어진다. 아 군의 정찰기도 돌고 있다. 나는 대공 표지판을 펼첬다. 그리고는 몸을 굴 려 피하여 하늘에 뜬 아군의 정찰기를 보니 정찰기가 표지판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정찰기 뒤를 우리 폭격기 편대가 날아오고 있 다. 수대의 폭격기가 차례로 창공을 돌며 포탄을 1개씩 투하하기 시작한 다. 이제 우리도 기관총 사격이다. 소리라고는 들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다. 그러는 와중에 1분대장이 신호를 보낸다. 빨리 올라오라는 신호이다. 대대지휘소에서는 사단장 연대장이 망원경으로 내가 펼쳐놓은 대공표지 판을 보고 부대의 모든 대포를 적군의 후사면으로 쏘게 한 것이다. 그리 고 이제 소대장이 돌격 준비를 시킨다. 콰쾅 신호탄이 터진다. 우리 모 두는 외친다. 돌격! 돌격! 앞으로 모두들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뛰어간다. 적군에게도 이 고지만큼은 분 명히 빼앗길 수 없는 곳이기에 전원이 목숨을 걸고 끝까지 우리와 싸울 것 이다. 이곳은 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고지이기에 그들은 후퇴하거 나 도망가지도 못하게끔 뒤에서 그들을 지키는 또 다른 군인이 있을 정도 다. 그렇게 그들과 우리는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단 두개의 운명으로 나 눠져 싸운다. 여기저기 산 능선의 적군 초소에서 총알이 벌떼처럼 쏟아진 196 국가보훈처 _

197 다. 그런데 갑자기 좌측편으로 올라오던 우리 2분대 대원들 쪽에서 "쾅 쾅 쾅" 소리와 함께 땅 속에서 폭발이 터져 나온다. 지뢰를 밟았다 그들 대 부분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 뒤를 잇는 7중대는 적군의 방 망이 수류탄을 쉴새없이 받고 만다. 그들 또한 일부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어깨나 등허리에 파편을 맞고도 피를 흘리며 MI총을 적군을 향해 끝까지 쏘는 이들이 있다. 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앞 서 올라가는 우리는 바위사이에 몸을 숨기기도 하며 남아있는 적군을 향 해 있는 힘껏 수류탄을 던진다. 쾅 소리 후 우리는 또 적군을 향해 모든 총알을 쏘고 다시 산을 오른다. 그러기를 수 차례 우리의 공격과 후진의 포 사격으로 어느 정도 적군도 자취를 감춘 듯 산 위쪽에서 총소리가 점차 사그라진다. 고지가 눈앞이다. 1분대장이 앞서 도착 그의 뒤를 이어 나도 올라와 보니 수많은 인민군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고 우리 앞의 초소에 3명의 인민군이 있다. 2명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그 두명의 인민군이 도망쳐 내려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듯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3명을 모두 총으로 쏘아 사살하니 이제 우리가 이곳 김 일성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는 대공표판을 아군의 대대관측소를 향 해 흔들어 보인다. 그것을 보고 예비중대 5중대가 올라온다. 5중대가 배치 를 하고 우리 소대는 6부 능선으로 내려오는데 중대장님이 오신다. 오후 3 시경이다. 능선에 통신병이며 위생병, 1소대, 화기소대 등 모두 올라와 이 능선에 꽉 차있어 인원점검도 힘이 든다. 그러나 정찰기 폭격기는 계속해 서 돌며 김일성 고지 뒤를 폭격하고 있다. 장거리포 역시 그대로 폭격한 다. 사실 예전에도 5사단이 고지를 차지한 적이 있었으나 밤을 새는 동안 적군이 기습공격을 해와 다시 고지를 잃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많은 197 푸른 바람이 되어

198 아군들이 이곳을 지금부터 철저히 지켜야하는 것이다. 잠시 우리는 숨을 돌리기 위해 모여 앉아 담배 한 가치씩을 피운다. 모두들 얼굴이 피와 흙 과 땀으로 얼룩이져 시커멓다. 새벽 4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열두시간 가깝 게 산 능선을 뛰어오르며 죽음과 사투를 벌인 전우들의 얼굴인 것이다. 우 리들은 정말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용감하게 싸운 것이다. 우리들의 전우가 자랑스럽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화랑담배 연기사이 로 잠깐이나마 전우들의 편안한 미소를 바라본다. 중대장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수고들 많았다. 정말 최선을 다해 잘 싸워 주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안 심해서는 안된다. 우리 국군이 낮에 우세하다면 인민군들은 꼭 밤에 우세 하다. 어느 전투에서든 그래왔다. 우리는 경계를 늦추어선 안된다. 하시 며 각 분대장에게 명령을 내리신다. 오늘 밤 동안 최선을 다해 이고지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포부대는 계속해서 포를 산 넘어 적군이 있을지 모르 는 곳으로 투하하고 정찰기 편대는 낙하산 조명탄을 대낮 같이 환하게 터 트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밤이 새도록 그 고지를 사수하며 적군의 동 태를 살폈다. 무사히 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온다. 걱정스럽던 우리 전 우들의 마음에도 밝은 해가 떠오른다. 3대대와 우리는 교대하여 후방으로 돌아가 인원 파악을 하니 6중대가 36명이 부상 및 사망이다. 3소대원들은 16명이 주로 지뢰에 많이 부상하였다. 그리고 포탄 파편에 사상자가 생겼 다. 제주도에서 온 그 신병들이 많이 사망하였다. 소대장님께서 말하신다. 신병들 잘 먹고 훈련도 열심히 해주고 또 잘 싸워줬는데 부디 좋은 곳 으로 가길 모두가 바라자. 모두 먼저 간 우리의 전우들을 위해 묵렴! 모두가 한 마음이었으리라. 우리와 함께 동거동락하던 그들, 함께 싸운 198 국가보훈처 _

199 그들 이젠 편히 쉴 수 있길 빈다. 우리는 후방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중대장님께서 대부분의 우리 전우 들을 한 계급 진급해 주셨다. 그리고 또 다시 인원을 보충받았다. 그렇게 5 일간이 지나 우리는 강원도 화천군 부근으로 이동한다. 목적지에 도착하 니 큰 강이 흐르고 야전 고무보트 다리가 물살을 버티고 있다. 길이가 약 200m정도 되는데 우리가 행군을 하니 저쪽 다리 위쪽에서 군악대가 우리 를 위해 연주를 한다. 장병들은 마음 울적해 하며 다시 이 다리를 건너 살 아 돌아올 수 있을까 생각한다. 우리가 간 고지는 949고지인데 이 산은 김 일성 고자와 같은 험악한 산은 아니다. 그러나 넓이가 김일성 고지의 3배 나 되고 6km 전방에 큰 산이 있는데 1개중대가 사주 방어를 하며 연결되 어진 봉우리의 교통호를 한 바퀴 돌면 약 250m정도나 되는 넓은 산이었 던 것이다. 여기에 또 우리의 6중대가 배치되었다. 정면이 적의 진지라 약 300m 걸어가다보면 적군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정면에 3소대가 배치되 고 1분대 좌측, 2분대 우측 초소로 배치가 된다. 한번 들어가면 7일간씩 근무를 하고 교대를 하였다. 낮에는 보초 약간 명이 서지만 밤이오면 전체 가 초소에서 모여 2명이 한 조가 되어 잠을 자지 않고 보초를 선다. 이곳은 전초지대로써 가장 방어를 힘써야 하는 곳이다. 이곳이 터지면 6 25때의 팔공산까지 밀렸던 일 같은 큰일이 생긴다. 우리는 대부분의 끼니를 동트 기 전 새벽무렵에 뭉치 밥 두개와 담배 그리고 건빵 하나를 각자 받고 아 침식사와 점심식사 때 한개씩을 먹는다. 그리고 또 어두워져야 저녁을 먹 을 수 있었다. 젊고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이러한 식생활을 하다보니 머리 가 어질어질해 진다. 거기에 세수가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일주일 내내 군 화한번 벗을 수 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힘든 근무가 끝나고 7중대와 199 푸른 바람이 되어

200 교대를 한다. 이제 또 며칠간은 군화를 벗고 밤에 몸을 뉘일 수 있을 생각 을 해보니 기분이 좋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7중대가 들어간지 5일째 되 는 날이다. 주지왕산고지에서는 전초지대의 사정을 알기가 힘들다. 그러 는 중에 사주방어를 위해 항상 사단 수색대가 우리들도 모르게 고지 골짜 기를 매일 교대로 수색을 나가서 적의 동태를 파악한다. 골짜기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있다. 밤과 낮 교대를 하며 수색을 하는데 오늘은 전과 다르 다. 적의 포탄이 많이 날아온다고 한다. 수색분대가 무전으로 연락이 온 다. 중공군 1개 대대 병력이 강을 건너 7중대가 있는 전초중대 쪽에서부터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고지에서의 싸움은 인민군과의 전투이 나 이번에는 중공군이라는 것이다. 중공군은 공격을 해올 때 무척이나 요 란하다. 역시나 요란한 공격을 지금 해오는 듯 하다. 산 전체가 둥둥거리 는 소리로 울려오는것 같다. 아군 포부대를 향해 급하게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적의 포부대가 우리 아군진지에 포탄을 먼저 퍼부어 댄다. 또다시 전투이다. 우리 6중대는 전초지대를 향해야할 것이다. 밀려도 공격이고 이틀후면 우리가 전초지대에 교대를 들어가는 상황이다. 이 전초지대의 사주방어가 터지면 이곳 주지왕선 본선이 터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얼마나 밀려 내려가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기는 무슨 일이 생겨도 지 켜내야만 하는 것이다. 자정이 되어오니 쌍방의 포를 쏘는 소리가 콰광 콰광 하며 천지를 진동시킨다. 비행기의 조명탄은 계속해서 공중에서 두 세차례씩 투하되고 있다. 1개가 터지며 비춰지는 빛은 사방 4km에 있는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개미새끼들도 다 보일 정도로 환하다. 장거리포 155mm가 중공군이 있는 강쪽을 향해 퍼붓는다. 그러나 자정이 넘어가니 전세가 역전되는 듯 하다. 적진에서 새빨간 불빛이 올라온다. 공격 신호탄 200 국가보훈처 _

201 이다. 중공군에 의해 전초중대가 무너진 모양이다. 피~익 삐~이~익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중공군은 역시나 무기나 전술이 아니라 사 람의 숫자로 싸움을 할 작정이다. 적군이 밀려오는 것이 새까만게 수를 헤 아릴 수도 없다. 밀려오는 그 중공군들은 손에 따발총과 딱콩총을 들고 산 을 올라온다. 참으로 그 숫자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중공군은 공격을 할때 제대로 갖춰진 전력이나 무기가 없기에 대신해서 술을 먹인다. 그래서 흥 분한 그들은 미치듯이 달려드는 것이다. 지난번 우리 아군에 중공군이 약 80여 명이 잡혀 온 적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왜 중국에서 여기까지 우리 와 싸우러 왔냐는 우리 통역사의 물음에 그들은 한국전쟁에 나가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왔는데 막상 와 보니 우리가 도망갈까 뒤에서는 총을 들고 우리들을 지키는 중공군이 또 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없어 여기까지 왔다. 라고 말하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무너진 전초고지를 목표 로 한다. 고참 병사들은 밤에도 탄막 지점만을 봐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 다. 주지왕선 본선에서도 기관총, 경기관총, 수령식 화력들이 전초고지를 향해 들어 붓기 시작한다. 쿠르룽 쿠르릉 쿠르릉 그렇게 쏟아 부어도 산을 올라오는 중공군들은 쉬지 않고 밀려온다. 새 벽 3시경 소대장은 중대에 집합이다. 명령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들 공격 준비다! 목적지까지 가야하니 빨리 충돌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우리는 각 분대에서 출동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간단한 짐만을 가지고 갈 뿐이다. 우 201 푸른 바람이 되어

202 리는 밝기 전에 전초고지에 도착해야하므로 마음이 급하다. 그런 우리에게 소대장님이 말씀하신다. 우리 6중대가 강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5중대가 우리 반대쪽을 맡을 것이다. 우리가 올라가는 동안 우리의 뒤 아군은 전초고지 적군을 향해 포 를 쏠 것이다. 모두들 몸조심들하고 이 고지가 무너지면 우리 뒤의 대한민 국은 더 이상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우리 손에 이 대한민국 이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상이다. 6 25가 일어난 이후 휴전이 제의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북한측 과의 요구 조건이 맞춰지지 않아 결렬이 여러차례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북한측에서는 휴전이 되기 전 조금이나마 이 땅을 자신들이 차지하 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이 전투에 서 밀리기 시작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이 어떻게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우 리 손에 달린 일이다. 나는 우리 대원들을 한번씩 돌아본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도 이번 전투에 목 숨을 걸었다는 것이 보여진다. 우리는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한마음 한뜻이라는 것을 안다. 지난날의 그 숱한 전투들이 말해주지 않았는가. 전우들이여 이제 나가세나, 그리고 싸우세나 1소대는 산의 5부 능선까지 올라가기 시작하고 우리 소대 역시 그 뒤를 따른다. 적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한다. 쿠광쾅 쿠광쾅 파박 파박 우리 뒤에서는 아군이 빼앗긴 전초지대의 적진을 향해 포를 쏘아대고 우리 앞에서는 적군이 던지는 수류탄 소리가 포탄소리와 섞여 귀를 찢는 듯한 굉음만이 들려온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는 적군을 향해 쏜 202 국가보훈처 _

203 살같이 달려가며 총을 쏘아댄다. 중공군들과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며 칼 부림을 당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중공군들을 헤쳐 나간다. 파편을 맞고 쓰러진 아군의 모습도 여기저기에 보여진다. 그러나 뒤로 돌아볼 수 없다. 지금은 이 고지를 오르는 길만이 그동안 먼저 간 전 우들을 위하는 길이다. 적군들을 향하는 부리에는 어느새 우리들조차 놀 랄 만큼의 힘이 실려져 있다. 모두들 헐떡이며 아군이 중공군에게 빼앗겼 던 우리의 전초고지에 올라선다. 나는 분대원들에게 명령한다. 초소안에 모두들 수류탄을 던져 넣어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분대원들과 함께 지내던 곳이라 잘 아는 지형 이었다.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향해 중공군 이 수류탄을 던진 것이다. 파편이 내 어깨에 박혀있다. 다행이 야전 점퍼 를 뚫지는 못했다. 손으로 그것을 툭 떼어 버리는데 이번에는 우측 팔등에 무언가 파박 하며 박힌다. 역시나 파편이다. 이러나 이번것은 심각한 듯 하다. 순간 몸이 섬짖하다. 총을 들려고 하나 악 소리와 함께 팔을 움직 일 수가 없다. 총도 들 수가 없다. 피가 솟구친다.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 이다. 총도 들지 못한다면 싸울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산을 내려오게 된다. 다행이도 전투는 우리 쪽의 우세인 상황이다. 산을 내려가니 중대장 님이 빨리 치료를 하라며 나를 보낸다. 나는 동거동락하던 우리 분대원들 에게 인사 한마디도 하지 못한채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건투를 빌며 돌아 선다. 그리고 그 길로 후방에 있는 울산 23육군 병원으로 후송이 된다. 울 산 23육군 병원 입원중에 나는 22연대에서 보낸 우리군의 승리 소식과 화 랑무공 훈장증을 받게된다. -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이 낙동강에 흘러가도 끝까지 이 악물고 사수하여 용감 203 푸른 바람이 되어

204 히 적을 물리쳤다. 밀고 또 밀어 올리고 38선을 밀어올려 설악산을 차지했 다. 관광 명소 동해가 되고 설악산이 절경이 되어주고 참 아름답기도하구나. 이제는 이 땅에 그러한 아픔이라고는 생기지 마라 -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많은 일들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전투 그리 고 전우들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며 지키고자 했던 우리 조국. 이 모든 것 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 지 잘은 모르겠습니 다. 다만 이 글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우리 조국을 소중하게 느껴지는 계 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4 국가보훈처 _

205 사선( )을 넘고 넘어서 김천일_우수상 / 대구 수성구 황금동 전쟁과 훈련소 생활 36년 동안 일제식민지의 억압 속에 헐벗고 고통 속에 살던 우리는 대동 아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일본의 항복으로 1945년 8월 15 일에 기쁨의 해방을 맞았다. 이젠 독립국가로서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평 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일만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뿐이었고 어느 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라디오를 통해 보도되었다. 특보 긴급뉴스입니다! 하고 시작된 보도의 내용은 북쪽의 인민군이 38 선을 넘어서 불법남침을 해온다는 것이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이 내 용은 1950년 6월 25일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 국민에게 긴급 보도되었 고,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을 큰 불안과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다. 온 국 민은 불안과 초조함 속에 라디오방송 뉴스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우 리 국군이 강력한 반격을 가하여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 계속 격퇴시키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안심하라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와 같이 나도 대한 민국 국군의 방위태세에 대하여 신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의 한편 에는 어느 정도의 안도감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다시 작전상 부득이하게 한강다리-그 당시에는 하 205 푸른 바람이 되어

206 나 밖에 없었음-를 아군이 폭파한다는 보도를 듣게 되었고 전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게 되었다. 또 뉴스는 임시정부를 작전상 대전 으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오고 곧 이어서 임시정부를 또 다시 부산으로 안 전하게 옮겨서 승전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대처해 야하나! 가슴을 졸이면서 점점 커지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체할 수가 없 었다. 또 수많은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온다는 뉴스와 함께 북쪽 인민군은 한강이남 수원, 대전, 광주, 김천 등 각지를 침공하면서 남하한다는 소식 이 들렸고 그것이 유언비어인지 진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1950 년 8월 중순경에는 대구에서도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급격 한 전란의 현실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곧 대구에서 소개령( 開 )이 긴급보도 되었다. 이때 나는 25세의 젊은 사람으로 국립 대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 5월 30일부로 신설된 대구사범학교 교사로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와같이 조국이 고난과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시점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자문자답을 하면서 장시간 고심한 끝에, 나와 같이 젊은 사 람이 아니고서는 조국의 위기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결론짓고 조국 수호 곧 국토방위를 위해서 용기 있게 전선으로 나가야 한다는 자각과 결심을 확고히 하고, 곧 삼덕파출소에 가서 군입대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 1950년 8월 16일에 입대하게 되었다. 첫날은 구 대구농림학교에 집결하였다. 그러나 전투상황이 악화되자 내 가 속한 소대의 소대장이 출전하였고 본부에서는 소대장을 보충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그 임무를 임시로 맡아달라는 본부 206 국가보훈처 _

207 의 명령이 있어 소대장 임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대장 임무를 맡고 예비교육을 받는 동안에 야간을 이용해서 옆에 있는 소대에서는 몇 사람 의 예비병이 도망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우리 소대원 들에게 국가가 고난과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 우리 같은 젊은 사람이 국토방위를 담당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죽을 사람은 후 방에서도 죽고 전방에서도 죽을 것이며 살 사람은 전방에서도 살고 후방 에서도 살 것입니다! 라고 하여 절대로 도망을 치면 안된다는 것을 역설 하였다. 그래서인지 다행히도 우리소대에서는 한 사람도 도망을 치는 사 람이 없었다. 한 날 본부에서는 나를 호출하여 육군소위 임관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문의 하였다. 나는 즉석에 국토방위의 임무를 마치면 내가 해야 할 일 - 교 육자로서 후진육성 - 이 있으니 육군소위 임관을 하지 않고 사병으로서 국 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력을 다할 생각이라는 것을 설명하였다. 나는 구 대구농림학교에서 이틀을 지내고 구 대구농과대학, 현 대구교 육위원회 자리에 있는 육군제일교육대로 이동이 되었다. 이동이 되자 곧 군번 을 받고 제일중대 제일소대의 소속이 되어 훈련병으로서 기 초적인 제식교육을 받는 것과 동시에 경기관총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과 원리에 대해 열심히 교육훈련을 받았다. 우리 훈련병은 단시일로 기본훈련을 끝내고 앞산 사격훈련장에 가서 경 기관총의 실탄 사격 연습 3발 점사, 4발 점사, 5발 점사로 전 훈련병 약 5 시간정도 훈련하였다. 이렇게 경기관총 실탄연습을 한 결과 불행하게도 나의 귀가 갑자기 막 힌 듯이 옆에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고 귀안에서 소리 207 푸른 바람이 되어

208 가 났다. 나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약 한 시간이 지 나가니 옆에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가 아주 가늘게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오늘날까지 생활하는 동안에 귀의 난청으로 인하여 친우들로부터 웃음거리도 되고 상사로부터 주의도 여러번 받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나는 앞산 사격훈련장에서 경기관총의 실탄연습을 끝내고 훈련병과 같 이 육군제일교육대로 귀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을때 선임하사가 너는 이 곳에 좀더 남아 있다가 다른 잔류 훈련병과 같이 귀대하라 는 명령을 하 였다. 나는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혹시 특공대를 편성하여 전투에 참 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선임하사의 명령대로 약 한 시간정도 사격연습을 더 하고 본부 중대 선임하사관이 잔류병 사병을 전원 집합시켜서 M-1소총에 총검을 하 고 어깨총하여 삼열종대로 도보행진을 하면서 육군제일교육대로 씩씩하 게 귀대하였다. 우리가 귀대해 보니, 나와 같이 훈련을 받은 신병들은 전원 최전선으로 출전하고 아무도 없었다. 마음이 허전하였다. 우리는 잠시 후 대대본부에 집합하여 대대장으로부터 너희들은 오늘부터 육군제일교육대 기간요원 ( 基 幹 )으로서 조교가 되고 그 임무가 막중하다 는 내용의 훈시를 약 20분가량 들었다. 나는 육군제일교육대 제일중대 제일소대에 배속되어 기간요원으로서, 교관이 훈련병을 가르치면 그 옆에서 여러 가지 보조를 하는 조교가 되었 다. 그러나 당시에는 훈련병이 하나도 없어서 제일소대장 김광웅소위(육 사생도1기생)가 보충부대-당시 남산초등학교-에 훈련병을 차출하기 위해 서 출장을 가게 되었고 나에게 동반하자고 해서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208 국가보훈처 _

209 그 때 공교롭게도 보충병 속에는 상당한 수가 나의 고향친구들이 있었 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놀라고 나도 놀랐고 반가웠다. 나는 소대장에게 부탁을 하여 고향친구 전원을 차출하여 제일교육대로 귀대하였다. 주간에는 전력을 다하여 신병을 훈련시키는 소대장 옆에서 열심히 보조 의 임무를 다하였다. 야간에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 게 최대의 편리를 제공하는 한편, 잡비(돈)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실은 입대할 때 월급봉투를 내 호주머니 속에 그대로 넣고 입대하였기 때문에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나는 돈 같은 것이 군생활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일정기간의 훈련을 받은 신병은 전원 전방으로 향하여 출전하였는데 후 에 6.25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가보니 친구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전 투에서 전사했다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미안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하 여 위로하면서 하느님에게 기도를 하였다. 2. 가산 다보 전투 참전 이렇게 하여 수차례 신병을 훈련시켜서 일선으로 보내고 있을 때, 1950 년 9월 하순경 밤 12시가 지나자 대대본부로부터 긴급방송을 통해서 전방 투입병을 차출하는 명단이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귀가 좀 들리지 않아서 멍하니 있는데 옆에 있는 조교동료가 나의 이름이 방송되고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말을 듣고 즉시 대대본부 로 출두하였다. 이 때 대대본부에 도착하자마자 중대장이 나에게 나를 제일대대 제일 중대 제일소대 기관총 분대장으로 임명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즉석에서 209 푸른 바람이 되어

210 복창을 하고는 5명의 기관총 분대원을 점검했다. 그 분대원들은 모두 대 구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2~3학년생들로 지원학도병이라는 것을 파악하 였다. 이와 같이 확인 후에 말하기를 나는 사범학교 교사로서 있다가 지원 입 대한 육군일등병 김천일이다 하니, 분대원 전원이 분대장님, 잘 부탁합 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 명령을 순종하면 살 것이고 위반하면 죽는다. 고 말하니, 분대원 전원은 잘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 당시 전쟁에서는 분대장급 이상은 즉결권이 보장된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와 같이 차출된 장병들 전원은 대구평장공장-당시 대구상업고등학교 옆자리-에 동원되어 집결한 결과, 각 교육대에서 차출된 많은 기간요원과 훈련병들로 교육연대를 편선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교육연대장은 이중 한 대령으로 우리 교육연대 장병을 집합시켜서 호령하기로 지금부터 칠 곡 방면으로 향하여 출발한다 는 요지의 간단한 훈시가 있었다. 출발 명령이 하달되자, 나는 우리 기관총분대를 인솔하여 선두의 세 번 째에 있는 GM자동차 -당시 운전기사는 모두 미국인 흑인이었다- 에 올라 앉았다. 모두들 말없이 칠곡 방면으로 향하여 출발하여 가고 있는데 동석 한 두 장교가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서울에서 내려 올 때보다 기분이 좀 이상하다 이제 대구는 영원히 다 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하며 대화하는 것을 듣고 나는 이제나는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집 에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와의 일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기 전에 증손자를 보고 싶다 하시 210 국가보훈처 _

211 며 천일아, 너는 성숙했으니 결혼해라 라고 하시는 것을 듣고 나는 말씀 드리기를 경제적 자립능력이 있을 때 결혼하겠습니다. 했는데 할아버지 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후 계자도 없고, 이제 죽으면 몽다리 귀신이 되는구나 하는 여러 생각들이 머리에 떠다니고 있을 때 쯤 어느새 팔달교 근방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선 전시상황이 실제임을 알려주듯 대포소리 총소리가 산 발적으로 들렸고, 머리에 떠다니던 온갖 잡념은 싹 사라지고 목숨과 같은 총대만 꽉 움켜잡고서 머릿속에서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이 총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항상 훈련 교관이 총은 생명이다! 라고 강조한 것이 실감이 났다. 칠곡까지 오는 도 중에 대포소리, 박격포 소리, 따발총소리 등이 계속 우리들의 뇌를 복잡하 게 하였다. 칠곡을 지나서 전 장병이 자동차에서 하차하고 도로 양가로 전 장병이 오보간격으로 긴장감속에서 도보하였다. 여러 가지 총소리를 들 으면서 아무도 대화 없이 묵묵히 조용하게 조심조심 걸어서 칠곡까지 내 려왔다. 내려오다 칠곡의 한 민간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때는 반별 활동 이 되어 2개 분대가 공동보조를 맞추었는데 반장은 육국하사 안 모병 - 육 군사관학교 조교였다고 함 - 이 이었다. 육군하사 안 반장은 상당히 군사 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안 반장은 말하기를 오늘 밤만이 이런 접속 에 쉬지만 내일부터는 산속에서 전투를 하면서 비 오는 고지에서 보내야 한다 고 말하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침이 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노인이 나타나서 우리는 놀랐다. 어 떻게 소개를 하시지 않고 계십니까? 하고 우리들이 질문하니, 할어버지께 211 푸른 바람이 되어

212 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소개해도 도중에 죽을 것이고, 여기에 남아 있 어도 죽을 것이니 집에서 죽을 것이다 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할 머니께서 탁주 한 주전자를 우리들에게 주셨다. 안 반장은 그것을 받아서 우리 사병들에게 한 컵씩 마시게 하며 이것이 너희들의 최후의 술잔이 다 라고 말하면서 뜻있게 마시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와 같은 뜻으로 술 한 잔을 마시게 되었다. 생사의 갈림길인 전 시 속에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최후가 될 지언정 내 젊은 생에 대한 미 련과 곧 시작될 생사를 건 사투에 대한 두려움을 탁주 한잔과 함께 들이킬 수 있는 여유에 대해 진심을 의미있게 느꼈고 또 감개무량했다. 주먹밥 하나씩을 공급받고 아침식사를 하고 있으니, 본부에서 출동하라 는 긴급명령이 하달되자 우리는 곧 가산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가산으로 올라가자마자 계속되는 전투 속에 아군의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자 후방에 서 빨리 후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전 병력은 급히 후퇴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 교육연대는 미10사단과 연합작전을 하기로 합작이 되었다. 우리 교육연대는 미10사단과 합작이 되어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기관총 탄알과 M-1소총탄알을 얼마든지 공급받게 되었다. 우리들은 탄알을 양어깨에 걸머지고 또 양손에 탄알을 가지고 가게 되 었으니 사기가 충천하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미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에게 기도하였다. 칠곡에서 대로를 횡단하려고 하는데, 미군장교 대위가 손으로 사인을 해 만류하였다. 인민군의 탄알이 순간적이고 산발적으로 날아오고 있었 기 때문에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 틈을 이용해 우리들이 대로를 무사히 건 너갈 수 있도록 미군대위가 편의를 도모하고 있던 것이다. 212 국가보훈처 _

213 덕택으로 우리 분대는 전원이 무사히 대로를 횡단하여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를 보고 왜 산위로 올라가지 않느냐며서 고개를 갸웃하 며 올라가는 것이었다. UN군이 올라 간 지 약2시간 뒤에 대부분의 UN군 은 총탄에 맞아 부상을 입고 내려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를 위해 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해주는 UN군 군사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을 금 할 수가 없었다. 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두려움을 가라앉히며 작전계 획을 생각했다. 그 이튿날 미군 탱크부대가 칠곡 대로에서 인민군 지역에 포격을 가하 면서 서서히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탱크 뒤에는 미군병사들 이 소총을 가지고 따라가고 있는 광경을 멀리 산 고지에서 바라볼 수가 있 었다. 전투영화에서나 관람하던 광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다. 탱크부 대는 진격하다가 멈추고 또 진격하다가 멈추면서 고전하고 있는 광경을 보니 미군 탱크부대에게 감사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우리 분대가 어느 한 고지에 올라가니 아군과 미군의 시체가 있어서 피 비린내가 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한 부하가 미군 시체 속에서 미화(돈)를 찾아내었다. 그것을 보고 난 물질에 욕심내면 죽어! 하며 호통을 쳤다. 그 시체를 옮기라고 했으나 긴급출동명령이 있어서 시체를 방치하게 되 었다. 마음이 대단히 괴로웠다. 그 다음날 우리가 포위당한 상태로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두렵게도 물 질에 욕심내서 나에게 혼이 났던 부하가 맨 먼저 머리에 총을 맞고 전사하 였다. 그의 시체도 운반하지 못했다. 우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오게 되 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전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213 푸른 바람이 되어

214 을 금할 수가 없다. 그 영혼을 위로할 뿐이다. 전쟁 후에 그곳에 가보니 전 투의 흔적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들은 밤에는 전투를 하고 낮이 되면 UN군 제트기가 수십 대 날아와 서 인민군과 중공군이 있는 곳에 폭격을 가하고 총을 쏘았다. 사실 6.25전 쟁시 매일 UN군 제트기가 많은 활약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힘이 지대하 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우리의 군사는 사기는 충전하였다고 판단하면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전투를 하는 동안에 불행하게도 우리의 경기관총이 고장이 나서 사령부로 반납하고 우리는 소총 분대로 편성이 되었다. 어느 날 밤에 우리분대는 척후명( )이 되어 중대장의 명령에 의해 서 인민군이 있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중대장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분 대원을 집합시켜서 물 한 컵씩을 주시면서 술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마시 라고 하였다. 그 물을 술로 마시니 마음이 복잡하였다. 중대장의 하달된 명령사항은 이러하였다. 적군의 화력과 병력을 탐사하고 만약에 대부대 가 오면 신호탄 세 발을 공중으로 쏘아 올리고는 곧 후퇴하고, 소부대가 오면 대항을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소총분대는 야간이 되자 중대본부 선임하사에 의해서 작은 강-당 시엔 매일 비가 왔음-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선임하사는 작은 강이 있 는 곳에서 우리 소총 분대원에게 강을 건너가라고 지시했고, 우리 분대가 강을 완전히 건너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라졌다. 그 곳은 인민군이 있는 지역이었다. 나는 우리 분대원 5명에게 너희들은 지금부터 내 명령을 잘 준수하면 살 것이고, 어기면 우리 전부가 전사하게 될 것이니 개인행동은 절대로 하 214 국가보훈처 _

215 지말라 고 지시하고는 중대장 명령을 준수하기위해서 M-1 소총에 총검 을 하고 분대 산개하여 공격의 태세를 갖추었다. 적의 병력과 중화기의 수량을 탐지하려고 노력하였고 총탄은 밤새도록 아군고지와 적군고지에서 주고 받았고, 산고지는 요란한 총소리들과 여 기저기의 번쩍이는 빛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우리분대는 그 산 밑에서 작 전을 하고 있는 것이었고 실은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은 적군지역이기 때문 에 아군탄알이 더 겁이 났다. 우리가 만약에 이곳에서 후퇴하게 되면 대구는 전멸이 될 것이고 대한 민국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 우리가 지금 최전방에서 전투하고 있는 것을 굳게 명심하고 끝까지 필승의 정신으로 싸워야한다 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게 되었다. 그러한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밤 2시경 우리분대가 산개하고 있는 전 방 약 50보정도 앞에서 약 3명의 적군이 이곳으로 향해서 내려오는 소리 가 들렸다. 우리들은 긴장하여 숨을 죽이고 총검을 하여 앞에 다가오면 찔러 죽이 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여기는 적군지역이기 때문에 총소리를 내면 우리 분대 전원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숨을 죽이고 있을 때, 그들 이 우리들 전방 약20보정도에서 좌로 방향을 바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계속 내리고 깜깜한 밤이었기 때문에 사람을 볼수가 없었다. 그 익일 새벽이 되자 전선은 급격하게 변동이 되어서 미군 탱크 부대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미군이 우리를 보고 인민군으로 알고 총을 쏘려고 하기에 영어로 우리는 한국군이라는 것을 외쳤다. 우리는 죽음에서 구제되고 미군장교가 탄알을 가지고 가자고 하기에 그 215 푸른 바람이 되어

216 것을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탄알이 얼마나 무거운지, 내가 공부를 하 지 않고 농사꾼이 되어 있다면 이런 무거운 탄알쯤 문제없이 운반할 수 있 을 것인데... 하는 생각에 공부만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우리가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인민군 낙오병 2명이 총을 쏘고 도망치 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도 총을 쏘면서 인민군에게 손들어, 손들어! 호령을 하고 무기를 버려! 무기를 버려!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날쌔게 산 속으로 도망치고 보이지 않았다. 계속 더 추격을 할 수가 없었다. 전투를 하다가 제 2선을 교대하여 내려와 있으니, 우리 군인들을 위해 서 물과 음식물을 운반해 주는 민간인 장정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에 내가 배급받은 담배를 전부 나누어 주었다. 내가 언 제 죽을지 모르는데 담배 같은 것은 아무 필요가 없다고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또 작전 명령이 하달되어 산고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전투는 여전히 치 열했고 비는 계속 내리고 내 발 바닥은 부어있어서 무좀이 생겼고 도보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그 통증을 초월해서 전투에 임해야 되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에 전우와 같이 전방 보초를 섰다. 밤이 깊어지자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 전우와 교대로 뒤에서 안아주 기로 하였다. 몸과 몸이 서로 닿으니 따뜻하였다. 이렇게 산고지에서 순간 적인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앞에 있는 전우는 보초근무를 하고 뒤에 있는 나는 전우를 안고 순간적으로 잠을 잘수가 있었다. 전투생활을 해 보지 않 은 사람은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부대는 작전상 다른 산으로 이동을 하였다. 아침이 되자 인민군지 역에서 아군지역으로 포탄을 실은 작은 수레 다섯 대가 유유히 인민군 호 216 국가보훈처 _

217 송하에 오고 있었다. 이것을 목격한 나는 즉시 고지에서 산 밑으로 내려가 면서 정지! 손들어! 하고 총을 쏘았다. 그러자 인민군도 나를 보고 총을 쏘는 것이었다. 나는 자리를 이동하면서 계속 총을 쏘았다. 나 혼자 고지에서 밑으로 내 려 온 것을 후회를 하고 있을 무렵 선임하사가 많은 병사를 인솔하여 하산 하면서 총을 쏘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총을 더 쏘았고 호송하는 인민군은 대항하다가 아주 빠른 동작으로 산속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것을 보고 우리들은 계속 총을 쏘며 추격하였고 작은 수레 다섯 대와 소를 모두 15~16세 정도 되는 인민군 병사 5명과 함께 생 포하여 선임하사 일행은 사단본부 겸 연대본부-당시 합작해서 작전하고 있었고 사단본부는 송림사를 이용했다-로 인계하였다. 왜 이 지역으로 왔 느냐고 인민군 병사에게 질문을 하니, 인민군병사는 우리 동무부대가 다 점령한 곳이라고 하여 수레에 탄알을 싣고 왔다고 답하였다. 또 어느 날 아침이 되자 인민군 지역에서 한 병사가 고지에서 따발총을 메고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을 본 나는 즉시 고지에서 하산하면 서 총을 쏘며 정지! 손들어! 라고 외쳤다. 그는 급히 논 속으로 들어가서 숨었다. 나타나지 않고 피하고 있는데 저 편 도로에서 전투 경찰관이 5명이 오는 것을 본 나는 인민군인지, 아군인 지 확인할 수 없는 병사가 논안에 숨어 있으니 조심하시오! 하면서 높은 소리를 외쳤다. 그러자 전투경찰관은 손을들고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니 한 병사가 논에서 손을 들고 나왔다. 그는 한국군 학도병으로서 다리에 인민군 따발총을 맞았다는 것이었다. 빨리 육군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큰 소리를 하고 본대가 있는 산고지로 올 217 푸른 바람이 되어

218 라갔다. 그 후 오늘날까지 대면 못한 것을 마음속으로 죄송하고 그를 위해서 하 느님께 기도하였다. 누구인지 확인하여 대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 었다. 선임하사가 빨리 오라는 소리에 본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전쟁의 비 극은 이것뿐이 아닐 것이고 나의 좋은 경험의 기회가 되었다. 전투상황은 시시각각으로 급변하였고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희소식이 있었다. 그것은 UN총사령관 맥아더장군이 연합군을 인솔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원산에서도 UN군이 상륙작전 을 하여 중간지점에서 인민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한다는 소리가 우 리 군인들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는 전선이 아주 소강상태로 변하였고 인민군의 반격도 감소하 게 되었다. 그 희소식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인민군 진영에서 확성기를 통해서 온갖 욕소리와 함께 가지각색의 선전하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군인의 마음을 동요케 하려고 하는 목적으로 선전을 밤새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 인민군 전부대가 후퇴하고 하나도 없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 었다. 인민군은 확성기를 이용해서 작전을 계획하여 전원후퇴를 한 것이었다. 우리 군인들은 마음속 기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전쟁의 승리와 영광 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가산전투와 다보전투는 한국군과 미국, 그리고 UN군의 희생자가 어 느 전투보다도 많이 발생한 전투로서 현재 한국전쟁사 기록에 남을 것이 라고 생각되었고, 이 가산전투와 다보전투는 이제 종전상태로 들어가는 218 국가보훈처 _

219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졌다. 이와 같은 우리군의 사기와 위력을 가지고 우리들은 압록강까지 진격을 하여 이 좋은 기회에 남북이 통일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였다. 우리 전투병은 계속하여 북상을 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육군교육대 육 군훈련소에서 파견된 전투기간요원은 모두 원대복귀를 시키는 명령이 하 달되었다. 이 전투생활에서 나의 인생철학은 새롭게 확립되었고 국가와 민족을 사 랑하는 마음과 충성심은 더 투철하게 되었다. 6.25전쟁과 같은 동족의 살 생은 다시 재발하지 말아야 되겠고 민족의 영원한 평화가 이 땅에 꽃피울 것을 희구하였다. 3. 훈련소 및 육군본부 행정요원활동 1) 훈련소 휼병부 요원 나는 약 4개월 동안의 가산전투, 다보전투의 사선을 넘고 넘어서 1950 년 12월 하순경에 육군제일훈련소 제1교육대로 원대복귀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51년 1월 초순경에 육군제일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로 이 동하게 되었다. 육군제일훈련소 육군준장 백인협소장과 장병전원이 합심 하여 단시일 내로 육군제일훈련소를 창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였다. 제주도의 유명한 삼다인 풍다, 석다, 마다 를 초월하여 온갖 고난을 극 복하면서 기간요원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제주도의 육군제 일훈련소가 완전히 창건되자, 곧 나는 제일연대로부터 훈련소본부로 전 출되어 신설되는 휼병부 원호계로 배치발령을 받았다. 이 부서는 아주 귀중한 임무를 담당하는 곳으로서 나에게 훈련소의 장 219 푸른 바람이 되어

220 병 - 이등상사 이상 장교 - 의 후생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이 주어졌다. 나는 장병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다니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 로 도왔다. 이때의 일들 중에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두 가지 만 소개한다면 장병가정을 방문하면서 알게 된 것은 훈련소 부소장 김용 근 대령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대령의 사모님에게서 훈련병이 종종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 집에 들어와서 먹을 음식을 좀 달라고 하 면 감자를 삶아서 줍니다. 는 말을 듣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었다. 사모님의 인간미에 대해서 감탄하면서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 었다. 또 한날 모연대장 채수용소령 집을 방문하였을 때, 사모님께서 수고가 많다고 하시면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또 한번은 연대장과 동석하 여 식사를 대접받은 것을 기억한다. 나와 같은 사병으로서는 영광이고 평 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그분들에게 축복 있기를 기원한다. 또 그때 소본부 인사과 병무계에 있는 황지호 사병과 같이 휴식시간을 이용해서 문예 잡지를 발간하는데 노력한 결과 몇 사람의 글을 받아서 [파 동]이라는 제목으로 프린트를 하여 우리 사병들에게 배부한 것이 영원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 잡지 속에는 이병후 전 대법관(그때 훈련소 사병) 의 글도 게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뜻있고 보람 있는 임무를 다하면서 군대생활이 참으로 즐겁 고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판단하여 공정 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220 국가보훈처 _

221 2) 육군본부 군수국행정과 서무계 요원 나는 1951년 11월 초순경에 육군본부 휼병부의 업무연락 차 공문서를 제출하기 위해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는 출장하여 임무를 다 끝내고 훈 련소로 귀대하려고 하였으나 곧 육군본부 군수국 행정과로 육군총참모장 백선엽대장의 발령을 받게 되었다. 제주도 육군제일훈련소로 귀대할 시 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육군본부 군수국 행정과장에게 이야기를 하여 잠시 훈련소로 갔다가 올 수 있게 허락을 구했으나 육군총참모장의 발령이 났기에 제주도 훈련소 에서도 공문을 보고 이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이니 갈 필요가 없고, 그 먼 곳을 다녀 올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단념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때는 육군본부 군수국 행정과 서무계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군수국 행정과 서무계의 업무는 방대하고 창의성이 필요한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 나는 특무상사 선임하사로부터 신임을 얻게 되었다. 또 행정과장과 서무계장도 나를 대단히 좋아하였으 며 군수국장의 직인까지도 나에게 보관시켰다. 나는 막중한 책임을 통감 하여 더 열성과 충성을 다하였다. 군수국 각과의 외부발송 공문은 전부 군수국장 결재의 유무를 보고 그 다음 내가 검토해서 군수국장 직인을 날인하여 발송하는 업무를 담당하 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행정과장의 어느 인사발령 공문을 보고 놀랐다. 왜냐하 면 윤영모( )소령(예편후 원호청장)이 부임한다는 것이었다. 그 소 221 푸른 바람이 되어

222 식에 내가 동기생으로서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으나 결국 부임을 하지 않았고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육군본부의 다른 부서의 모든 사병들은 일과 후에 전부 본부중대 내무 반-당시 삼덕 초등학교 자리-에 가서 천막 속에서 취침하지만, 군수국 소 속 사병들은 전부 각과 내부에 단독적인 취침 내무반이 있어서 본부증대 내무반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군수국 소속 사병은 특별 대 우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었다.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왜 냐하면 육군본부 군수국 업무를 소개하는 것은 일급 군사기밀에 속하기 때문에 비록 제대군인이라도 소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느 날 행정과 인사장교 장대위가 육군 제일군단 창설 당시의 육군본 부 사병차출의 임무를 맡았었는데, 그가 군수국에 있는 사병 차출을 위한 계획서를 작성하여 결재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군수국장 백선진 준장 에게 상신하였는데, 결재서류를 보고 인사장교 장대위에게 행정과 서무 계는 보내면 안돼! 하시면서, 인사장교 장대위에게 기합을 주었다는 것이 후에 나의 귀에 들렸다. 인사장교 장대위는 나를 불러서 훈화를 열심히 업 무를 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 후에 더욱 열심히 업무를 보았다. 보통 일과시간은 5시에 끝나 는 것이지만 행정과 내무반은 행정과 사무실 안에 있었기에 밤에도 업무 를 보았다. 그날 할 업무는 다음날 넘기지 않고 그날 전부처리하고 취침을 하였던 것이다. 업무가 과중되었는지 내 몸이 좀 이상하게 느껴져 본부 의무대에 가서 진찰을 받게 되었다. 그때 의무대장이 나에게 육군제일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하기에 부득이 나의 뜻은 아니나 육군제일병 222 국가보훈처 _

223 원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병명은 의무대장의 말에 의하면 고혈압에다가 여러가지 병이 합병되어 있다했다. 그가 빨리 입원하라고 수속절차를 해 주었기에 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후방군인의 입원은 상당히 어 려운 것이었다. 4. 병원생활과 약제과 환자사역병 육군본부 군수국 행정과 서무계의 업무를 수행하다가 육군제일병원으 로 입원하게 되니 마음이 대단히 허전하고 섭섭하였다. 군수국 사병으로 서 막중한 일을 담당하여 처리하다가 이런 곳에 오니 가슴이 답답하고 환 자가 되니 불명예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빨리 내 몸이 완치되어 군수국 으로 원대 복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입원하게 된 것은 1952년 10월 하순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병원 내과 치 료를 받고, 그리고 이비인후과에서 귀의 치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귀는 치 료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귀는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아프지는 않았기 때문 에 앞으로 보청기를 사용하라고 의무관이 말했다. 처음에는 매일 내과치료를 받았고 보청기를 사용하라고 의무관이 말했 다. 처음에는 매일 내과치료를 받았고 나머지 시간들은 병실에서 평안하 게 쉬며 보냈다. 입원날짜가 오래되자 치료과정도 격일 혹은 삼일, 5일로 치료기간이 장기화되었다. 입원하여 약 한 달쯤 되는 어느 날, 대학을 졸업하고 경환자로서 약제과 에 와서 일을 도울 수 있는 사역병을 차출하니 희망자는 손을 들어 보라고 하기에 내가 손을 들었다. 그때 아무도 손을 드는 환자병이 없었다. 그 후 부터 환자 사역병으로서 매일 약제과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223 푸른 바람이 되어

224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인생의 가치로운 것을 알게 되었 다. 일반사회에서는 도저히 나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여러가지 알 수 가 있게 되었다. 그것은 환자들의 심리와 뇌에 관한 연구였다. 나는 약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약제과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위약효과] 의 이론이었다. 그것은 내과 환자나 외과환자에 같은 종류의 약을 투입하 여도 치료의 효과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환자는 이 약을 먹으면 자기병이 낫는다고 생각하면 병이 낫는 것이고, 이 약은 별로 내 병에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면 효과가 없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혈압도 20에서 30정도는 자기 마음의 여하에 따라서 올라가고 내 려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혈압이 올라가면 심호흡을 3~4회 하면 곧 혈압이 내려오는 것도 알았다. 사람의 수명은 125세라고 하는 것은 상식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자세이고 맹독의 호르몬을 많이 방출시키 므로 자기의 수명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병은 자율신경의 부조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으며, 교감신경은 신경을 많이 사용할 때 활 동하고 부교감신경은 마음이 즐거울 때 나타나는 것이다. 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잘 조화가 이루어지면 병은 발생하지 않고 조화가 파괴되 면 병이 발생되는 것이다. 장수하는 사람의 공통적 생활방법은 인생을 즐겁게 플러스적 발상, 스 트레스 감소, 우뇌생활 중심 등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 이다. 224 국가보훈처 _

225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 예를 잃으면 많이 잃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 는 우리나라 격언이 있 는 것과 같이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육군병원 생활을 통해서 절감 하게 되었다. 여기서 병원생활에서 알게 된 건강방법으로 자율훈련법을 참고로 설명 하고자 한다. 자율훈련법은 상당히 오래된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73년 전의 1932년에 독 일의 신경생리학자 슐튜박사가 고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수할 수 있고 자기병을 치유시키는 비결의 하나가 된다고 확신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슐튜박사가 창시한 것을 모방해서 고안한 것입니다. 병의 자연 치유력이 높아지고 아무 도구 없이 기가 높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피로, 긴장, 두통해소, 대인관계 개선, 신경체질개선, 주의력 및 기억력 향상, 자기컨트롤, 신경증 및 심신증 치료 등에 대단히 효과가 있고, 자기 능력개발이 되는 것이며 장소하는 방법 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설명을 하겠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해도 좋고, 누워서 해도 좋은 것 입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의자에 앉아 배근을 바르게 하고 발 폭은 어깨 폭 만큼 벌리고 바른 자세로 앉습니다. 이때 전신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은 반정 도 열고 시선은 앞을 보고, 자율훈련법은 여섯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준비단계가 일곱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준비단계 : 기분이 대단히 평안하다 제1단계 : 양수, 양족이 무겁다(중감) 225 푸른 바람이 되어

226 제2단계 : 양수, 양족이 따뜻하다(온감) 제3단계 : 심장이 조용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인다(심장조정) 제4단계 : 호흡이 평안하다(호흡조정) 제5단계 : 배가 따뜻하다(복부조정) 제6단계 : 이마가 기분 좋게 시원하다(액부양감< 感 >) 예) 첫단계의 중감훈련을 할 때 실제로 중감을 느껴야 하고, 느끼는 곳은 양수, 양족입 니다. [우수가 무겁다] [좌수가 무겁다] [우족이 무겁다] [좌족이 무겁다] 가급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입으로 말합니다. 실제로 무겁다는 느낌이 하나하나 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다음 단계는 온감 훈련을 시작합니다. [우수가 따뜻하다] [좌수가 따뜻하다] [우족이 따뜻하다] [좌족이 따뜻하다] 고 소리를 내면서 입으로 말합니다. 실제로 따뜻한 느낌이 하나하나 들면 또 다음단계 로 넘어갑니다. 만약에 따뜻한 느낌이 없으면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제6단계까지 계속 하루에 일회 이상하면 그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 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잘 안되기 때문에, 제1단계에서 연습을 하고 숙달되면 다음 단계 로 계속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설명을 한 바와 같이 사람의 몸 안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있습니 226 국가보훈처 _

227 다. 교감신경이 활동하는 것은 좌뇌 중심으로 긴장사태가 유지됩니다. 우리가 활동할 때는 그의 좌뇌 중심의 교감신경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스트레스 상태 투쟁호르몬의 세계에서 활동합니다. 그것을 달래는 것이 부교감신경의 역할이며 우리들이 하루 중 부교감신경이 우위로 활동하는 시간은 특히 잠을 잘 때라고 할 수 있고, 이 부교감신경을 우위의 상태로 하자 면 각성중에 하는 방법이 명상법이며, 자율훈련법은 그 입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육군 제일병원에서 약 11개월 동안 입원환자로서 치료를 받으면서 약제과 사역병으로 근무를 하는 동안에 사람의 심리분야, 생의학분야 특 히 뇌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현재로서 가치 있게 활용되고 있는 것을 생각 할때, 군 복무가 대단히 나에게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병원에서 환자로 있을 때 내과 과장 장소령과 내과 부장 조중령 의 친절한 조언과 지도에 감사하고 있다. 제대 후 그 분들은 종전이 되고 서울의과대학교수로 복직했다는 후문을 듣고 있다. 또 같은 약제과에서 복무한 안육군 일등중사는 제대 후 대구에서 인산 약국을 경영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해서 헌신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육군제일병원의 생활을 끝으로 1953년 9월 6일자로 의병제대를 하 게 되었다. 나는 3년 1개월 16일간의 군 생활을 통해서 얻은 전쟁경험, 군 행정요원경험, 병원생활 경험 등을 기초로 하여 남보다도 더 열심히 더 성 실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고 또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미력이나마 헌신 노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제대 후 오늘날까지 내 머릿속에는 육군본부 군수국 행정과에서 육군일등중사로 복무하고 있을 때, 선임하사가 화랑무공훈장 약장을 주 227 푸른 바람이 되어

228 면서 본장이 나오면 교환하라는 말을 듣고, 항상 가지고 다니다가 제대 후 분실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년 7월에 그 사실유무에 대한 것을 육군본부에 신청원을 제출 한 결과, 1952년 11월 10일부-그당시에 육군제일병원 입원 중이었음-로 < 화랑무공훈장> 수여단 미교부라는 회신공문서를 받고 너무도 기뻐서 관 계 직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2004년 8월 25일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 와 <훈장>을 받고 기쁨과 영광의 마음은 한량없고 감사의 마음은 금할 수 가 없었다. 그분들에게 영원한 영광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모든 것 은 사필귀정 이라는 금언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제대 후 사선을 넘고 넘었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중등학교교감, 효성여 자대학교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각 대학교 강사, 국군간호사관학교 강사, 경북도민방위 정신교육 본부강사 등을 역임하면서 1989년 경북도 문화사(학술부), 1992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하였다. 1992년 퇴임 후 현재는 명예교수, 국가유공자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천일천재개발 교육연구소를 창건하여 아동, 학생의 천재능력을 개발하여 장래 노벨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는 한편 세계 적인 지도자 양성에 미력이나마 노력하고 있다. 또 CIWE(Cosmos Information Wave Energy, 우주정보파동에너지)를 이 용하여 수맥파, 전자파를 차단시키고, 사람과 동 식물, 광물에도 CIWE 를 주입시켜 나쁜 에너지를 좋은 에너지로 교체시켜서 자연환경을 정화 시키는데 여생을 다하고 있다. 228 국가보훈처 _

229 6.25 참전 후 나의 생활신조 1. 죽을 각오로 국가위기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살고 2. 살기 위하여 국가 위기를 피하고자 하는 자는 죽고 3. 물질에 허욕이 없는 자는 살고 4. 물질에 허욕이 있는 자는 죽고 5. 모든 일을 플러스로 생각하면 뜻과 같이 되고 6. 모든 일을 마이너스로 생각하면 뜻과 같이 안되고 7. 자기병을 자기가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낫고 8. 자기병을 자기가 치유할 수 없다고 믿는 자는 악화되고 9. 인류애와 평화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도운 자는 복을 받고 10. 모든 일에 불평불만 없이 실행하고 감사하는 자는 장수한다 229 푸른 바람이 되어

230 잃어버린 고향 찾을 길 없나? 이정모_우수상 / 서울 노원구 상계7동 평양에서 부산으로 천오백리길 서기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 강산에 동족상잔의 비극 으로 난데없는 포성이 터지며 우리 삼천리 강산을 진동시켜 한 순간에 온 국토는 혼란과 전쟁터로 뒤바뀌어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나는 공산정권에 시달리다 못해 서기 1950년 12월 5일 평양에서 친구 10여명과 같이 끊어진 대동강철교를 건너 흑교, 사리원, 황주를 거쳐 토 성, 문산, 서울로 철도길을 따라 도보로 만 7일만에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은 서울에서 하루밤을 쉬고 계동 대동상업고등학교에서 서울 에 잔류하고 있던 젊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군에 입대수속을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 일행에 끼어 들어가기로 결심하고 찾아갔다. 장교 한 사람이 마중 나와 우리들을 반가이 맞아주었고, 그 이튿날 우리들은 새벽에 한강 다리를 건너 인천으로 도보 행군이 시작되었다. 약 3000여명 정도는 되었 던 모양이다.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불어 꽤 쌀쌀했고 매서운 날씨였는데 하루종일 걸어서 하 인천에 도착하니 밤이 되었다. 밤 늦게서야 LST 배 한 척에 우리 일행 전원을 승선시켰다. 인천 앞 바다 에서 출발해서 얼마쯤 가 아마 약 4,5시간정도 지난 장소에서 배가 멈추었 230 국가보훈처 _

231 다. 갑판 위에 올라가 앞을 바라다보니 넓은 빌딩 한 채가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어 전기불이 찬란한 불빛을 우리 배위를 비춰주고 있었다. 나 는 육지에 도착한 줄만 알았다. 곧 인솔 지휘관이 마이크로 안내방송을 해 옆에 있는 큰 배로 옮겨 타라고 지시를 했다. 우리들은 높은 배 안에서 만 3일 동안 주먹밥 한 덩어리로 요기를 대신 했고, 인왕산과도 같은 큰 파도가 밀려와 우리 뱃머리를 이리저리 후려친 다. 배 안에는 온통 배 멀미로 즐비하게 누워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간신히 부산항에 만 3일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하여 하선할 수가 있었다. 부산항에 내려 목적지도 모르는 낯선 전찻길을 따라 가니 마이크를 장 치한 차량 한 대가 우리들을 환영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북 월남 청년들께 서 우리 국토를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국방군으로 지원 입대한 애국학생 청년들로서 지금 부산항에 막 도착하였으니 부산시민들께서는 격려와 열 렬한 환영을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전찻길 양 옆 상가에서는 물동이와 바가지를 뛰워 하나 둘씩 내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부산 시민들이 환영을 하는데도 우리 일 행들은 지쳐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산의 첫 인상은 우리들의 눈에 꽤 좋은 인상으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첫째로 이북 또는 서울은 온통 우리 강토가 전쟁중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어 아수라장으로 변해있는데 여기 부산 시민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또 어디서 전쟁을 하는지 먼 나라 이야기로 듣는 듯하여 한편으로는 불쾌감 까지 들기 시작하였다. 우리와 같은 동족인데 북쪽과는 상반되도록 희희 락락하는 모습이었으며, 우리들이 무슨 붕어인줄만 알고 맹물동이만 내 231 푸른 바람이 되어

232 어놓는 부산 시민들의 모습이 불만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자 누구인가 가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하여 물동이들을 차례로 발로 부시기 시작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삽시간에 환영의 물동이는 불만의 제물이 되어 우리들의 쌓인 스트레스를 통쾌한 기분으로 전환시켜 주었다. 나중에야 알 수가 있 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부산에서는 상수도가 부족해서 부산시민들에게 식수가 꽤 귀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날 오후가 되어서야 모 상업 학교 교정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부산 제 2훈련소 제 16교육대대였다. 강원도 태백산맥 석병산전투 나는 1950년 12월 17일 부산 제 2훈련소 제16교육대대로 입소하여 만 14일동안 99식 일본제 장총으로 소총분해결합 무기에 대한 성능 정도를 겨우 이수하고, 1950년 12월 31일경 일선으로 출발, 1951년 1울 4일부로 최전방 부대로 나갔고, 같이 교육받은 전우 55명은 제9사단 제28연대 2대 대 제6중대로 정착하게 되었다. 배속받은 지 며칠 후 우리들은 각 소대별 로 배치되어 각자의 임무에 들어갔다. 나는 중대본부 소대로 배속 받은 후 강원도 태백산맥 능선으로만 매일같이 강행군했다. 그러던 어느날 1951년 2월 말경인지 3월 초순경 강행군이 중지되고 고 지에서 5미터~7미터 지형에 따라 10미터 정도씩 간격을 두고 두명 한 조 로 배치되어 호를 구축하라는 중대장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사방 주위에 는 흰눈으로 뒤덮여 온통 눈바다를 연상케했으며 또한 눈보라까지 휘몰 아쳐 꽤 쌀쌀한 날씨였다. 지정해 준 장소에다 호를 구축하기에는 매우 어 려운 상황이었다. 눈은 우리 키의 한길 반 정도가 쌓여 은폐될 만한 흙이 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눈을 발로 밟아서 한길 232 국가보훈처 _

233 정도로 다져 호를 구축하였다. 그런데 밤이 되면서 난데없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밤이라고 해 도 워낙 눈이 많이 쌓여 환한 낮과 같았다. 내려다보니 하얀 눈 위에 까만 점으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속으로 아이 고 저것이 적군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때 아군 진지에서 총소리가 들 렸고 그때부터 일제히 아군 초소에서는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사 격을 시작했다. 훈련소에서는 하나하나 목표물에도 정조준해서 사격연습 을 했으나 여기서는 조준할 여가가 없었다. 무조건 대충 방향만 어림잡아 사격을 가했다. 사방은 불바다로 실로 처절한 싸움이었다. 박격포탄이 우리 진지에 마 구 떨어졌으며, 우리 또한 박격포, 기관총, 로켓트포 등 각종 있는 화력은 모두 발사하였다. 적은 마치 물밀듯이 올라온다.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 도 마구 올라왔다. 실로 공포의 밤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고지능선 위에 서 싸우는 입장이므로 무척 유리한 싸움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 날 밤 악착같이 올라오는 적들을 우리들은 끈질기게 물리칠 수가 있었다. 아침 동녘이 뜨면서 중대장의 돌격 명령이 내려졌다. 돌격 앞으로 야~!!! 하면서 소리를 외치면서 능선 아래로 내려갔다. 총을 옆으로 끼고 사격을 하면서 계곡으로 내려가니 하얀눈 위에 온통 빨간 물이 들어 사방이 피투 성이에다 인민군 시체가 즐비하게 넘어져 있었다. 나는 정 조준도 하지 않 은 채 방향 감각만으로 사격했었는데 이렇게 많이 명중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 내가 군에 입대하여 이 전투가 최초의 큰 전투였다. 계속 산골짝을 끼고 내려가 보니 거기에도 적의 시체가 즐비하고 미쳐 도망가지 못한 적의 부 233 푸른 바람이 되어

234 상병들도 수십명이 있었다. 그래서 부상병들은 포로로 잡아 후방으로 이 송시키고 나는 중대 선임하사와 함께 골짜기 밑으로 깊숙이 내려갔다. 더 전진을 하다보니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나는 무심코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임하사가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였 다. 왜 그런가 하였더니 그 농가에 패잔병들이 있을지 모르니 자세히 경계 를 하면서 접근하라고 일러주었다. 나와 선임하사는 총을 옆구리에 끼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끼우고 자세히 경계를 하며 문을 살짝 열었다. 그랬더니 정말 패잔병들이 7, 8명이 누워 있었고. 손들고 나와 하고 외쳤더니 살려 달라고 두손으로 빌고 있었다. 모두가 중상자였다. 우리들은 처리문제가 매우 곤란했다. 그대로 방치하 고 전진하자면 우리 후속부대가 불리해질 염려가 있게 되었고, 같은 사람 의 도리로 보니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어 선임하사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선임하사께 물었다. 선임하사는 다 쏴버리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겁 이났다. 사람을 직접 눈앞에 두고 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줄 모르고 쩔쩔매고 있는 동안에 선임하사는 이렇게 해! 하고는 시범으로 칼빈 소총으로 두두두하고 사격을 가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눈을 딱 감고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 순간에는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보 잘 것 없는 존재가치가 허무해 질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이 왔다. 미안하 다. 선임하사는 나보고 이렇게 말해주었다. 인정보다는 상황판단을 우선 해야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때 생각하기를 너와 나는 한번 보지도 못한 초면이건만 이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 슬프구나. 너와 나는 서로의 그리 다른 무슨 사 상이 투철하여 마치 서로 원수로서 서로 적으로 대하여 살상을 하여 이렇 234 국가보훈처 _

235 게까지 해야하니 나로서는 정말 미안하다. 친구여, 부디 좋은 곳으로 잘 가다오. 라는 마음뿐이었다. 우리 중대는 적군 소탕 작전을 계속하면서 약 2킬로미터 정도까지 더 진격하여 부대가 집결하였다. 그날밤 우리는 다시 그 고지 주위에 각 소대 별로 배치되어 임무를 했는데, 나는 중대본부에 속해 보초 근무로 밤을 새 웠다. 아침이 되어 민간인 농부 한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와 집에 인민군 한 명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중대 선임하사는 나와 또 한사람을 불러 두 사람이 같이 갔다오라고 지 시를 했고, 우리는 그 아저씨 뒤를 따라 총을 장전하고 달려갔다. 그 아저 씨는 자기집 건너방을 향하여 손가락으로 저기라고 가리킨다. 같이 온 전 우는 방 옆에서 총을 겨누고 나는 방문 앞에서 손들고 나와! 하고 소리 를 외쳤다. 아무 대답이 없다. 손들고 나오면 당신의 생명은 보장한다! 하고 소리를 재차 질렀다. 인민군은 좀처럼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총을 집에다 대고 한방 사격 을 가했다. 그 때서야 쏘지 말라고 방안에서 인민군은 소리쳤고, 긴장의 순간이었다. 사격자세로 숨을 죽이고 있는데 살며시 방문이 열리고, 마음 이 섬뜩하였을 때 인민군은 손을 들고 나왔다. 나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몸 수색을 하고 같이 온 전우는 사격 자세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몸수색을 하니 수류탄 방망이 두발이 나왔다. 그리고 방안에서는 38식 장총 한 자루 와 실탄 수 백발이 나왔다. 우리들은 인민군에게 손을 높이 들게하고 앞세 워 장총과 수류탄, 실탄을 거두어 인민군 동태를 살피며 중대본부까지 무 사히 도착했다. 인민군에게 손을 내리게 하고 선임하사에게 인계했다. 선임하사의 심문 235 푸른 바람이 되어

236 이 이어졌다. 그의 고향과 그 동안의 경로를 물으니 그의 고향은 황해도 황주로 계급은 인민군 전사라고 하였다. 그 후 얼마 안되어 서기 1951년 3월 15일부로 우리 중대 전사병은 일계 급씩 특진을 하였고, 나는 이등병으로부터 일등병으로 특진 강원도 석병 산 전투로부터 고사리 전투로 인하여 혜택을 받았다. 우리 선임하사는 포 로생포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그 때만 해도 우리는 신병으 로서 군생활을 잘 몰랐던 때였다. 그 후로도 강원도 태백산맥 석병산 전투 및 고사리 전투는 큰 전과로 대승하였다. 우리는 이 전투가 제9사단에 전 속받고 우리들이 잊지 못하는 첫 전투로써 사단에서도 첫번째의 대승으 로 기록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 당시 적은 인민군 제10사 제4여단으로 인민군 중에서는 제일 강한 빨치산 특수부대로 남한에 팔공산까지 침투했다가 우리 사단에 의해 영 영 편제에서도 사라진 사단으로 알려졌다. 태백산맥 유격전 전투일 ~ 우리 중대는 태백산맥 석병산 전투를 시발로 해서 태백산 줄기능선을 따라 때때로 적과 부딪쳐 수 십차례나 격전을 해가며 날마다 유격전에 대 비해 일렬 종대로 능선을 따라 행군하였다. 야간에는 앞사람과 일미터 이 상만 뒤떨어져도 앞사람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철모 뒤에는 각자의 철모 에다 야간표시로 흰 페인트로 계란보다 약간 크게 원 표시로 뒷사람이 잘 보이게끔 표시를 하였다. 우리들은 앞사람 철모 뒤의 표시만 보고 행군에 행군을 거듭했다. 워낙 236 국가보훈처 _

237 험준하고 높은 산악이라 정신을 바짝 차리지 못하면 수 백 길이나 되는 낭떨어지로 귀신도 모르게 떨어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은 뽀족 한 산을 오르내리며 하루 24시간 봉우리를 타야만 했다. 우리는 행군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면 10분 정도 앉아 있 는 시간에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잠을 잤다. 그렇게 취침시간은 단지 10분 의 휴식시간 뿐 이었다. 혹시 평탄한 도로를 행군할 때에는 눈을 감고 졸 면서 앞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으며 감각으로 뒤를 따라 행군했다. 워낙 단련이 되어 낙오자 없이 잘 따라갔다. 어느덧 강원도 동해에서부터 고사리, 정선, 송계, 인제, 석병산, 여랑, 백 석산, 대화, 평창, 대하, 하진부, 상진부, 황계, 대관령, 강릉, 두루봉, 오대 산, 한계령, 가리봉, 진부령, 한계, 인제, 소양강, 현리 등 등, 그 밖에 지명 도 모르는 강원도 어느 고을하나 빠짐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왔다갔다 수십번 반복되는 도보행군으로 끝이 없었다. 그러다 운이라도 좋은날이면 산골짝의 민가라도 한 채 발견되면 일개 중대 또는 소대가 한방에서 하루라도 휴식과 식사를 같이 하는 날은 몇 달 중 고작 며칠 정도였는데, 그때 상황은 주로 보급은 잘 되지 않아 각 중대 와 각 소대별로 해결 해야만 하였기에 때에 따라서는 분대별로도 해결할 때가 허다했다. 그 지방의 사정따라 콩, 옥수수를 구해 오거나 아니면 주 로 소와 돼지를 구입해서 소금도 없이 맨입으로 육식만으로 살아야 하는 마치 육식 동물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보통 하루 이틀을 먹고나면 그 후 이 삼일을 굶는 날이 상식이다. 워낙 험준한 지형에 날마다 행군을 해야 했으니 보급품이 우리의 뒤를 따르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강원도에는 쌀도 귀하고 산중 산이라 민가도 없다. 237 푸른 바람이 되어

238 얼마쯤 그렇게 지냈을까. 오대산을 거쳐 두루봉 고지 부근인가 확실한 장소를 짐작할 수가 없었는데 수색대로부터 적이 출몰했다라는 정보가 입수되었고,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골짜기에 농가 한 채가 보였다. 우리 중대는 그 골짜기를 중심으로 각 소대별로 배치되어 중대장의 명령 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골짝에 옥수수를 포대에 군데군데 두텁 게 세워놓고 그 속에 인민군 보초병들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중대장으 로부터 사격 신호탄이 발사되었고 일제히 사격이 개시되었다. 골짝에 있 던 적 초소에서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적군들이 마구 뛰쳐나왔다. 우리 중대는 힘나게 사격을 가해 인민군을 전멸시키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후방에서 적탄이 날아왔다. 앗! 우리 후면에도 적군이 또 있었구 나! 우리가 포위된 모양이었다. 중대장이 재빠르게 단호한 철수명령을 내렸다. 방향도 모르고 우리 중대원들은 대충 적의 실탄을 피하는 방향으 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측면고지로 이동하여 능선으로 오르고 있던 중이 었는데 역시 그 봉우리에도 적이 매복해 있었다. 우리 중대는 꼼짝없이 완 전포위 상태에 놓였기 때문에 우리 중대는 각 소대별로 중대본부를 위시 해서 대충 방어 태세로 배치되어 밤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우리 중대는 포위망을 뚫을 공격태세로 일개 소대씩 약간의 간격을 두고 능선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전초소대에서 교전 이 벌어졌고, 일개 소대는 전초소대를 지원해 그 지점을 돌파하기로 하고, 우리 소대와 중대본부 소대는 그 측면으로 빠져 공격하기로 했다. 측면으 로 돌파하는데는 별다른 저항은 없었지만 험준한 산악이라 중대원이 뿔 뿔이 흩어져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빠져나와 아침이 되어서야 연결된 능선 위로 한명 두명씩 중대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238 국가보훈처 _

239 얼마쯤 갔을까? 민가 한채가 산중턱에 있었는데 그 초가집에서 군인들 이 출입하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들이 인민군인지 아군인지 분간 하기가 어려웠다. 자세히 관찰해 보니 분명 아군인 것 같았다. 틀림없는 아군이었다. 민가로 들어가보니 노파 한 분이 우리 군인들에게 술독을 열 어놓고 한잔씩 배식을 주고 있었다. 저보고도 한잔하라고 하며 바가지에 그득히 떠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술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며칠동안 굶은 상태라 요기를 할까하여 약간 마실까했는데 이상하게 막 걸리 술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쌀뜨물과 같은 하얀 것이 무엇인가 이상하 게 여겨지는 처음 보는 술이었다. 같이온 전우들은 한잔씩 꿀꺽 꿀꺽 잘도 마셨고, 나도 내고픈 김에 반 바가지 정도 마시니 얼얼하게 몸에 열이 올 라 힘이 솟구친다. 나는 낙오하지 않기 위해 또 행군 대열의 뒤를 쫓아갔다. 얼마쯤 갔을 까? 지점은 확실치 않으나 중대원이 총 집합이 되어 재편성이 시작되었다. 재편성을 받고 보니 어찌 된 일인지 같이 배속받은 고향친구들이 많이 보 이지가 않는다. 박춘근, 박인식, 정인덕, 조홍규 등 어찌 되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나는 갑자기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재편성을 끝내고 또 태백 산맥을 따라 능선으로 능선으로 행군에 행군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걸어 도 태백산맥 끝은 나오지 않았고, 험준한 울퉁불퉁한 산봉우리 뾰족뾰족 한 암벽에 깊고도 깊은 골짜기뿐이다. 민가는 한 채도 없고 짙은 안개 구 름만이 우리들의 전신을 촉촉히 적시며 빠른 속도로 모여들었다가는 사 라지고 또 삽시간에 모여들고 우리들을 감싸주면서 우리들을 맞이하는 듯 하였다. 239 푸른 바람이 되어

240 지명도 모르는 이 골짝 저 골짝 능선마다 오르내리다 어느 험준한 산맥 을 통과할 무렵 나는 이상한 물체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뾰족뾰족한 암벽 을 한사람 한사람씩 기어 올라가는데 그 높은 봉오리 상상봉에 이상하게 배에서나 사용하는 닻을 발견하게 되었다. 1000고지도 넘는 듯한 태백산 맥의 봉우리 정산에 철로 된 약 1미터도 넘는 듯한 크기의 닻이 산 봉우리 에 굵은 철사줄로 시멘트 큰크리트에 묶여 있었다. 나는 그 철사줄에 묶인 닻이 지금도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그 높은 봉우리에 옛날에 배의 닻으로 사용한 흔적이라면 우리나라 전 국토가 바다였는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그 봉우리 한곳을 통과하는데 우리는 많은 시간 을 소비했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일렬로 기어 올라가다 수명은 떨어져 직 사하는 전우도 있었지만 밤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적전 지시에 날마 다 이동을 하면서 한 곳에서 오랜시간을 머물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 면 낙오가 되어 험준한 산중에서 고립되어 죽은 목숨이 된다. 일년 열두달 하루와 같이 행군에 행군, 유격전을 수 십차례씩 겪으며 행 동하다보니 어느덧 인제 소양강에 도달했다.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 전투 전투일 : 오늘은 어찌 되었는지 주위가 살벌한 느낌이 감돌았다. 행군하다가는 집결시키고 행군하다가는 정지시키는 것이 아마도 심상치않아 적의 대병 력이라도 맞부딪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소대는 소양강 줄기를 앞으 로 보고 두명씩 능선으로 배치했고, 밤이 되면서 우리 소대는 다시 재집결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소양강 둑으로 내려가 전초 잠복근무 명령이 내려 240 국가보훈처 _

241 졌다. 어두운 밤이지만 그래도 모래알이 어슴프레 환히 보이는 듯 했다. 발걸음을 죽여가며 가슴을 조여가며 살금살금 한발짝씩 강 가까이 다가 섰는데 빠드득~ 빠드득 모래소리가 귀에 요란하게 들리는 듯 하다. 소 양강 강물이 눈앞에 보였다. 우리 소대원은 강줄기 둑에 한명씩 2미터 간격으로 일렬 횡대로 배치되 었다. 주위는 적막한 밤이었다. 숨을 죽이고 총알을 장전하고 총부리를 강 줄기에 겨냥하고 우리들은 긴장상태였고, 소대장께서는 수시로 소대원들 을 격려했다. 순찰이 계속되었다. 불과 적진은 2, 30미터 앞에 물줄기하나 사이를 두고 서로가 대치되어있는 상태였다. 새벽 3시경쯤 어수선하게 떠드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우리 대대 수색대원들이 우리 소대에 합류된 모양이었다. 우리 사단과 인접 사 단에 공백 지점으로 적은 이미 우리 연대 후방까지 침투했다라고 수색대 원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의아하고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였지마는 새 벽 4시경이 되어 갑작스럽게 철수 명령이 내렸다. 허둥지둥 우리소대와 대대 수색대가 혼합이 되어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아직 날은 밝지 않는 관 계로 한발짝씩 한발짝씩 철수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지로 오른다. 고지 6부 능선까지 올라가 그것에서 정지명령이 내린다. 암호, 두만강 나는 의아한 심정으로 정지를 하였다. 고지에서 답신이 왔다. 우리는 9사단 공병대다. 여기는 지금 지뢰가 매설되었으니 나의 지시대로 따라오라 한다. 우리 소대원과 대대 수색대원들은 그 공 병대원 뒤를 따랐다. 또 공병대가 지시를 한다. 한발짝 한발짝씩 전진할 때 발을 무릎정도까지 높이 올리고 지뢰선을 넘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지뢰선 있는 장소 밑에는 솔잎가지로 표시하였으니 솔잎이 놓여있는 곳 241 푸른 바람이 되어

242 에서는 발을 높이 쳐들고 조심성있게 침착한 행동으로 임하라고 일러 주 었다. 나는 우선 마음이 조급하니 도무지 지뢰선이 보이지가 않았다. 앞사람 이 하는 행동대로 발을 높이 들었다, 낮게 들었다 해서 뒤를 따라갈 수 밖 에 없었다. 다행히 지뢰는 한발도 폭발하지 않았고 무사히 지뢰밭을 넘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고지 8부 능선까지 뛰어올라갔다. 고지능선에는 중대원이 모두 집결하고 우리소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중대장은 각 소 대장에게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목적지는 미확인이다. 이미 우리 후방 사단본부까지 적에게 포위되었다는 정보다. 우리들은 재 집결지가 어디 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능선을 따라 철수했다. 그러던 중 날이 밝아왔다. 우리 중대원들은 맥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축늘어진 어깨에 일렬로 자유 롭게 줄지어 뒤를 따랐다. 하루종일 행군이었다. 보급도 단절되고 식량 담배도 끊겼다. 하루 이틀 밤낮으로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행군은 계속되었다. 한사람 두사람 낙오되기 시작했 다.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계속 행군이다. 지칠대로 지쳤다. 어떤 사람은 고지 밑에까지 내려가 냇가에 얼굴을 담그고 물 한 모금 마 시고는 물 속으로 다시 푹 담그고 숨을 거두는 전우들까지 눈에 띄었다. 누구 한사람 도와줄 기운들이 없는 상태다. 고지 위에서 강가 계곡 밑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오늘은 비까지 사정없이 퍼부어 몸은 생쥐같이 되 었다. 보급품이라고는 배낭에 우비 그리고 소총밖에 남은 것이라고는 없 었다. 평시에도 산이 너무 험하여 보급은 한달에 몇번 정도 야산으로 이동되 242 국가보훈처 _

243 었을 때 약간의 보급을 받아왔기에 별 신통한 장비라고는 없는 상태다. 떨 어진 군복에 신발이라고는 옛 농구화를 신었지만 그것마저 보급이 잘 되 지 않아 위 헝겁은 떨어지고 헝겁과 고무바닥이 각각 떨어져 실탄줄로 발 에다 신발바닥을 위 헝겁과 같이 묶어서 신었다. 그러니 행군 하다보면 묶 은 실탄줄이 끊어져 고무바닥이 떨어져 나가곤 했다. 실탄줄도 귀한 물건 이었다. 실탄줄로 철모 위장망과 신발바닥을 묶는 역할까지 하게되니 실 탄줄도 모자랐다. 신발은 일년에 한 두 족씩 배급되는 관계로 적 또는 아 군 전사자들의 신발까지 벗겨서 신는 일이 허다했다. 쌀 보급은 험준한 산악지대이므로 개인 보급이다. 하루 보급량은 항고 부식 뚜껑에 쌀을 담아 손바닥으로 수평으로 민 것이 하루분 식량배급이 다. 약 2홉 내지 3홉량이다. 물론 부식은 없다. 단지 된장, 고추장만 약간 씩 보급해 주었다. 봄과 여름에는 각자 산에서 적당한 산나물을 캐서 요리 해 먹는다. 나는 도시에서 자라서 전혀 산나물을 몰라 보급해주는 된장 고 추장에다 물만 약간 부어서 끓여 먹었다. 그 보급마저도 재때에 보급이 잘 되지 않았다. 험준한 관계도 있겠지만 항상 이동하는 관계로 그 보급이 우리의 뒤만 따르다보니 우리 부대를 따 라올 수가 없었다. 한번 보급받으면 개인별로 2, 3일분 혹은 3, 4일분을 한 번에 받았다. 보급 받으면 그 날은 마치 생일과 같이 즐거운 날이다. 보급 받으면 하루 식량으로 한번에 먹어치우고 하루 이틀정도는 단식으로 굶 은 것이 보통으로 단련이 잘 되었다. 심지어 일주일까지도 금식할 때도 많았다. 담배는 2일에 화랑담배 한 갑씩 보급이 되지만, 소총소대까지는 철저한 전달이 잘 안되었다. 그 보급 마저 끊기는 경우는 도토리 가랑잎으로 종이에다 말아서 담배 대용으로 243 푸른 바람이 되어

244 피우면 약간의 효력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철수하기 시작한 일자도 아마 6, 7일 정도는 경과되었던 것같다. 우리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고지능선으로부터 모처럼 계곡 밑 강줄 기로 내려왔다. 물을 처음보니 수통에다 물도 담고 민가를 찾아 들어가 강 냉이, 콩, 밀 등을 얻어 강가에서 콩도 볶고 강냉이도 볶아서 요기를 하며 세면도 하고 발도 오래간만에 씻었다. 양말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 양말 도 대충 빨아 신었다. 각자 한명 두명씩 모인 우리 아군 병력의 수는 점차 불어나 지금은 강가에 집결되어 일개 연대 병력도 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휴식을 하며 볶은콩, 강냉이로 요기를 하는 도중 어디선가 딱콩 하 고 총성이 울리며 강가에 총알히 푹하고 꽂힌다. 깜짝놀라 양말, 신발을 대충 신고 배낭, 총, 장비를 대충 걸머지는 순간부터 타다다 따르르- 따르 르쿵! 하고 박격포탄 및 총탄이 우리 병력이 집결되어 있는 한복판에 사 정없이 떨어진다. 적의 기습공격에 우리 아군은 난장판이 되었다. 뛰는 사람, 쓰러지는 사 람, 죽는 사람, 아이구 아이구! 비명소리, 부상당한 사람, 누구 한사람 도 와줄 사람이 없었다. 각자가 우선 이 탄막 지점을 벗어나는 수밖에 별도리 가 없었다. 워낙 많은 병력이 한꺼번에 한 지점으로 밀려가니 적들은 신바 람이 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빠져 나가야할 통로는 그 쪽 한군데 밖에 없었다. 앞쪽은 강물이 가로막혀 있고 강줄기를 따라 가다보면 줄기가 좁아지는 곳에 징검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방향만 보고 많은 병력이 달려가니 적은 그 쪽으 로 집중사격을 가했다. 나는 더군다나 제일 뒤쪽이라 빨리 달려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강물을 가로 지르기로 결심하고 강 244 국가보훈처 _

245 으로 뛰어들었다. 완전무장하고 강으로 뛰어드니 좀처럼 빨리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한 발짝 두발짝씩 물을 헤치고 들어가니 갑작스럽게 푹하고 물 속이 깊어진 다. 몸이 물 속 깊숙이 들어가니 한길이 넘는 깊이였다. 물위로 좀처럼 떠 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배낭과 수류탄을 물 속에서 벗어 던 졌다. 그리고 발을 물 속에서 힘차게 차니 위로 떠오른다. 머리가 물밖으 로 약간 떠 올랐다. M1소총과 실탄을 메고 헤엄을 치니 좀처럼 건너편까 지 가기가 참 어려웠다. 박격포탄이 물속으로 꽝하고 떨어지니 물에 진동이 힘차게 내 몸을 후 려쳤다. 간신히 강을 건너 앞산으로 뛰어올라 7부 능선 가까이 올라가서 한숨을 크게 쉬었다. 주저앉아 잠시 쉬는 동안에 내 뒤로 두 명이 따라 올 라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직까지 쓰러지고 엎어지고 뛰고 야단들이었다. 기 관총 실탄이 푹푹 땅에 꽂히고 먼지가 자욱하다. 우리 세명은 총을 대충 물을 닦아내고 실탄을 장전하고 마주 보이는 적의 사격하는 방향에 우리 들은 사격을 가했다. 어찌 되었는지 우리 아군은 더욱더 당황하는 기색이 다. 우리는 사격을 중지하고 고지 밑을 자세히 내려다보니 우리 병력은 징 검다리를 건너 소로 길로 우리 고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건너 접어드는 것 같았다. 우리 세명은 빠른 걸음으로 7부 능선을 가로질러 우리 아군 철수 하는 방향으로 따라가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엎어지며 넘어지며 뒤뚱뒤뚱 거리며 산 비탈길로 간신 히 아군대열에 끼어 들었다. 또 하루를 걸어서 인제, 고사리, 현리, 상진 부, 하진부, 대화에 도착하니 사단 사령부에서 각종 보급품이 골짝에 가득 245 푸른 바람이 되어

246 히 쌓여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굶주림에 지쳐 쌀 밖에 눈에 보이지가 않았다. 쌓여있 는 쌀가마를 헤치고 미제 양말에다 욕심껏 쌀을 담아 철모에다 밥을 그득 히 지었다. 워낙 욕심껏 많은 양을 철모에다 밥을 지으니 밥이 잘 되지 않 고 삼층밥이 되었는데도 우선 배가 고프니 입으로 잘도 넘어간다. 생 쌀로 도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아 이 정도는 보통이었다. 그 많은 밥을 욕심껏 혼 자서 다 먹어 온몸이 노곤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만 나도 모르는 사 이에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쯤 잠을 잤을까 나도 모르는 순간에 잠귀에 어렴풋이 집합하는 소 리가 들리는 듯하다.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일어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적이 또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 여기 모인 병력만이라도 저 고지 를 공격해서 확보해 놓아야만 한다라고 누군가가 외친다. 비록 모르는 상급자이지만 그 상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무장이라고 는 단지 단독 무장으로 실탄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고지능선으로 올 라갔다. 아직까지 철수해 오는 병력은 계속 남하 중이었고, 나는 고지 능 선을 따라 전진하다보니 차차 조용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뒤를 보았더니 정기 편성부대가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생각대로 전진 또는 철수 하는 병력으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각 소속부대 집결지로 철수했다. 그 날 한사람 한사람 철수해 오는 병력으로 헌병초소에서 각 부대소속 으로 안내해 주었다. 철수해 온 우리 중대원들은 반 이상이 없었다. 우리 는 재편성을 해서 그 다음날부터 다시 소양강 방향으로 재차 전진하기 시 작했다. 246 국가보훈처 _

247 얼마간 전진하니 미군 기갑 사단이 우리를 지원해서 장갑차와 전차 부 대가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며칠이 되었을까? 행군이 계속되다 또다시 정지 명령이다. 고요한 계곡에 간간이 적 포탄만이 떨어지는 소리가 우리 들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으스스한 적막이 감돌고 무엇인가 또 한마당 겪 어야만 될 것 같았다. 나는 통신병과 위생병 중대행정요원 몇 명과 같이 한호로 집결하여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호 안에서 누군가가 서울에서 막 유행한다고 하는 노래를 한 곡조 부 르기 시작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에 궂은비에 젖는구나. 왕거미 집을 짖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 소 우리들도 자신도 모르게 되취되어 합창을 하기 시작하자 쉬~ 쿵! 하 고직통우리호에명중 쾅! 소리 와 함께 호 안에는 화약 냄새와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숨이 막히고 앞이 깜깜했다. 순간, 아! 죽었구나 하고 한 참동안 생각하니 어찌 되었는지 죽은 것 같은 느낌이 안든다. 정신을 차려 밖으로 나오니 중대장께서 이상이 없느냐고 물으시고 우리는 이상이 없 다고 대답하니 중대장께서 전진명령을 내리셨다. 얼마쯤 전진하고 중대 병력은 고지에 배치되어 그날밤을 지내니 그 노래 한 곡조가 지금도 생생 하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음날도 또 출동 명령이 내린다. 우리 부대는 그 날 부터 전진에 전진 을 계속해 어느덧 당시 후퇴했던 위치까지 전진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이색적으로 중부전선으로 이동명령이 내렸졌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산 악지대 동부 전선에서만 근 1년 가까이 유격전만 시행해 오다 이제 처음 으로 중부전선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었다. 철원 방향으로 대이동을 하여 포천에 도착, 예비연대로 재편성과 재훈련으로 들어갔다. 247 푸른 바람이 되어

248 철원 동북방 281고지 전투 전투일 : 강원 사창리에서 예비대대로 재편성과 재훈련으로 약간의 심신을 단련 하고, 또 철원 동북방 281고지에 우리 중대는 배치를 받았다. 우리 좌측 고지에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미군부대가 배치되었다. 계곡에는 낮은 낭 떨어지로 절벽을 이루고 절벽 밑에는 강줄기가 절벽을 끼고 서서히 흐르 고 있었다. 우리의 후방에는 무한한 평야를 이루고 정면에는 적진지가 우 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금방이라도 우리들의 숨통을 찍어 누를 듯한 험준 한 산이 우리들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들짐승 소리만 요란하게 여기저기서 여우떼가 뛰어다니며 캥 캥거리는 소리만 들려 고요한 정막을 깨뜨리며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 게 현혹하고 있었다. 때는 크리스마스 전날인가? 아침부터 적 포탄이 유별나게 많이 떨어진다. 중대장은 호 구축을 견고하게 보수하고 경계를 철저히 하 라고 지시를 했다. 각자가 두명씩 배치된 호를 보수하느라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교통호가 너무 낮아서 같이 배치받은 전우와 교통호 에서 나와 삽질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소리도 없이 쉬- 쿵! 하고 포탄이 날아왔다. 아차 몸을 날쌔게 교통호게 납작하게 엎드렸다. 숨을 돌리고 옆 의 전우를 보니 쓰러져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이 방심해 있는 틈이었다. 호 구축에만 신경을 썼지 적진에는 경계심을 소홀했던 것이다. 방심을 역이용하여 적은 우리들의 동정을 노려 직사포 공격을 하기 시작하여 갑 자기 적 포탄이 여기저기 마구 떨어진다. 적의 공격으로 한 전우는 쓰러졌 지만, 후송해 줄 여가가 없다. 나 혼자 이 진지를 지켜야만 한다. 다행히 248 국가보훈처 _

249 우리 소대 전방에는 포탄만 비오듯 마구 쏟아지고 적은 3소대 부근으로 집중 공격해 오고 있었다. 그 날 밤새도록 사격에 사격을 가해 있는 화력을 다 소모하고 아침이 되 어 확인하니, 옆에 있던 이 일병은 숨을 거두고 3소대 교통호에는 적군 시 체가 넘치게 줄줄이 포개서 수백명도 넘게 죽어있었다. 3소대와 적진과 연결된 능선을 따라 우리의 최전방 전초진지와 3소대와 연결된 교통호를 따라 적군은 공격하였던 것이다. 오늘은 하얀 백설같은 눈까지 차분히 내려앉아 화이트 크리스마스 선물 로 우리들의 승리를 장식해 주었다. 전과는 잘 기억이 안되나 이백 몇 십 명 사살에 무기도 대량으로 노획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번 전투에서 적은 소총 중대에서 직사포를 사용한 것이 처음으로 생 각된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직사포가 없었다. 그 다음날 우리 좌측 미군부대에서는 강기슭에 전차를 배치시키고 전차로 적의 직사포 진지에 대하여 귓전이 멍멍할 정도로 사격을 가한다. 나는 이 고지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한가지가 있는데, 어느날이다. 공급 계가 각 소대에서 1명씩 차출해서 보급품을 대대 CP까지 가서 수령해 오 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우리 소대에서 차출되어 5명이 출발했다. CP로 출 발 당시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고지에서 내려와 논밭을 통해서 평야를 가 로질러 별 사고 없이 대대 CP까지 약 40분 정도 걸어서 도달했다. 담배, 쌀, 고추장, 된장 등을 보급받아 각자 짐을 나누어서 등에다 짊어지고 중 대를 향하여 출발했다. 약 중간정도 도달했을 무렵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어찌 되었는지 갑자기 앞이 보이지가 않는다. 앞에 가는 전우 이름을 불렀다. 그 전우는 다가왔다. 어찌되었는지 내 249 푸른 바람이 되어

250 눈이 보이지가 않아 라고 했다. 그 전우는 이 하사 눈은 아무렇지 않은 데? 하고는 왜 그래? 하고 물었다. 내 눈이 도무지 앞이 보이지가 않는다 고 했더니 그 전우는 내 눈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재차 대답해 준다. 참 이상한데 하고는 재차 출발하는데 도무지 눈을 뜨고도 앞이 보이지가 않 으니 답답하기가 짝이 없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이리저리 넘어지며 헤엄 치다시피 왔다갔다 헤메니 한 전우는 이 하사 참 이상하다며 부축을 해주 기 시작하였다. 간신히 부축을 받아 중대 본부까지 도착하여 보급품을 내 려놓고 인사계 님께 말씀드렸다. 해만 서산으로 지기 시작하면 눈이 보이지가 않으니 의무대로 치료 받 게끔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으나 중대에서는 의무대로 보내줄 생각을 하 지 않았다. 아침에 해만 뜨면 감쪽같이 평범한 사람과 같이 정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가 해만 지면 앞은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이것 참 답답한 문 제다. 만약에 야간에 철수 작전만 전개 된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 되는 것이다. 중대 상급자들도 이상이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별 대책을 세워주지를 않았는데 이유는 만약에 의무대에 보내면 후방으로 이송되어 다시는 원 대복귀가 힘들 것으로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중대 고참병들은 전투경험 이 많으니 고참병 한명이라도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고참 한사람은 신병 열사람 아니 스무 명보다도 더 소 중하다는 것은 삼척 동자도 알 수 있는 현실이었다. 나도 경험해본 결과 신병시절은 전투만 벌어졌다 하면 우선 겁부터 나 서 활동을 할 수 없어 공격개시와 더불어 신병시절은 대부분 얼마동안 지 탱하지 못하고 전상 및 전사로 소모되고 소수의 병사만이 남았다. 전투에 250 국가보훈처 _

251 전투를 거듭 경험하다보면 극소수에 몇 명만이 남곤 했다. 이 병사야말로 고참의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한 두달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6개월 내지 최소한 1년 이상은 지탱해 내야 만이 이 병사야말로 고참이 되는 것이다. 신병으로 배 속되어 3개월 내 또는 6개월 이내에 전부 또는 대부분 소모되며 전상 혹은 전사로 후송 되곤 했다. 전투만 벌어지면 신병으로서는 정신병자와 같이 정신없이 당황하는 수 밖에 없다. 고작 훈련소에서 3개월 또는 6개월 교육 을 받고 전방에 배속되면 기본 교육에 지나지 않아 여기 저기에서 마구 쏟 아지는 포탄이 예고없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지니 안전 지대라고는 갑자기 찾을 수가 없다. 항상 공격에는 움직이는 상황이므로 참호를 짊어지고 다닐수도 없으니 경험없는 사람으로서는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정상일 지도 모른다. 그러 나 침착하게 정신을 가다듬어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하여야 하는데 어 디서부터 포탄이 발사되는지 방향 탐독 능력이 있어야만 탄막을 피해 다 닐 수가 있는데 신병으로서는 전혀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적진 또는 아군 진지에서 발사되는 포 발사 소리만 잘 들어도 아~~ 이 포탄은 중대 OP, 이 포탄은 대대OP 소리에 감각만으로도 낙하지점을 고참들에겐 판단능력이 생긴다. 워낙 전투에 전투를 경험하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동물적인 경험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이 포탄은 나의 정면에 떨어질 것이라는 직감을 느끼게 되는 시기는 적 진에서 펑하고 발사소리가 났어도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다 가 내 정면에 도달해서야 힘없이 사릇사릇, 또는 쉬- 하고 포탄 날아오는 소리가 잠시 나다가 갑자기 소리가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내 정면에 떨어 251 푸른 바람이 되어

252 지는 순간이다. 소리가 없어지는 그때는 잽싸게 그 자리에 가장 낮은 자세 로 엎드려야만 한다. 될 수 있으면 그곳이 은폐물이면 더욱 좋다. 포탄 종 류에 따라 소리는 다르나 포탄 떨어지는 순서는 마찬가지로 나의 정면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잠깐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없어지는 순간이 바로 위험한 순간이다. 적 또는 아군 포탄에 근 2, 3미터 옆에 포탄이 떨어진다해도 은혜물에 잽싸게 엎드렸다면 잘 맞지 않는다. 좀처럼 죽을 운명이 아니고서는 직통 명중되지는 않는다. 총알도 날아오는 방향만 확인하고 은폐물, 지형 지물만 잘 이용하면 잘 맞지 않는다. 이러한 등등 경험으로 봐서 중대 고참병은 좀처럼 후송 또는 후방으로 잘 보내주지를 않았다. 기술교육 간부후보 후반교육 자체도 고참병들은 보내주지를 않고 중대에서 골치 아픈 사고자들이 운좋게 후방으로 전속 되는 편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야말로 후방에 가서 대우 받는 출세길이 트이게 되는 사실이 허다했다. 자랑거리는 안되지만 이러 이러한 사실로 해서 나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얼마동안 시일이 경과되어도 내 눈병은 좀처럼 낫지 않으니, 하루는 인 사계님께서 사단병참교육을 받고 오라는 명령을 하여 그 즉시 나는 사단 사령부로 달려갔다. 사단병참교육 제7기생으로 입교했다. 6주동안 교육 받던 중 아침, 점심, 저녁 3식 모두 시금치국만 주었다. 치료는 한번 받아 보지도 못하고 시금치국만 열심히 먹다보니 약 3, 4주가 넘어서부터 이상 한 반응이 돌기 시작하였다. 해가 질 무렵부터 보이지 않던 눈이 차츰 변 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해가 지면서 눈 수평으로부터 눈 아래 방향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해 252 국가보훈처 _

253 며칠이 지나면서 이제는 아래 방향이 아니고 반대현상으로 눈 수평위가 보이고 아래 방향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나 6주가 되면서부터는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어도 약간씩 아래 위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참 이 상한 현상이었는데 이것이 영양실조로 야맹증이라는 것을 사단병참교육 을 받으며 알게 되었고, 교육받으며 치료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 었다. 아마 나 말고도 또 다른 사람 몇 명이 더 있었다. 이 환자가 모두 병 참교육을 받으러 왔던 모양이었다. 6주 교육을 마치고 중대장께 보고했더 니 공급계 조수로 명하시었다. 우리 중대 행정요원들은 대부분 35세가 넘는 고령자가 많아 불과 20세 의 젊은 나로서는 감히 완전한 책임있는 직책을 맡을 수가 없었다. 행정요 원으로 필요할 때는 서무계 또는 공급계 조수로, 병력 손실이 되면 소총소 대로 필요할 때마다 중대본부 아니면 소총소대로 수많은 전투를 경험했 다. 지명도 모르는 강원도 골짝 계곡마다 능선 능선마다 싸움 터전으로 누 비고 다녀 지금 조용히 생각을 해보아도 그 젊은 혈기가 없었더라면 무슨 힘으로 강원도 고시리 전투를 시발로 해서 석병산, 인제 603고지, 철원 백 마고지 396고지, 신예산 공격 저격 능선, 북진능선, 락타고지 500능선공 격, 철마고지 등등 이름도 모르는 골짜기와 능선마다 강행군으로 다닐 수 있었겠는지 모를 일이다. 정상을 오르내리다 보면 동으로 서로 정처없이 바람에 떠다니는 안개 구름만이 우리를 맞이하곤 했다. 철원 서북방 철마고지 강원 중부지구 동부전선에서 중부전선으로 이동하고 포천에서 한 달간 재훈련 253 푸른 바람이 되어

254 을 받고 철원 서북방 상병 호수 저수지에 우리중대는 배치되었다. 철원 평 야 사방 80리 평야라 불리는 강원도 일원에서는 제일 큰 곡창지대였다. 우리는 호수 중앙에 위치한 작은 섬에 배치받아 작은 배를 이용해 건너 야만 했다. 호수에 배치되고부터 그동안 동부전선에서 지쳐있던 피로를 다소나마 회복할 수가 있었다. 같은 최전선이지만 평야라 활동이 자유로 워 무엇보다 물과 보급품이 원활했으며 평지에 배치되기에는 이번이 처음 이었다. 그런 어느날, 장마철이라 날마다 궂은비는 지겹게도 억수같이 쏟아지다 가 결국 우리들이 배치되어있는 호수의 둑이 무너져 버려 호수의 물은 순 식간에 논바닥으로 빠져버리고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자 우리는 때아닌 기적을 만나게 되었다. 큰 물고기 떼가 팔딱팔딱 뛰고 있어 우리들은 맨손 으로 물통에 담아 상당히 많은 물고기를 잡아 그 날 중대부식이 처음으로 잔치상이 벌어졌다. 그런 얼마후 우리중대는 섬에서 철원평야 논바닥으로 교대하여 나왔다. 사방이 논과 밭으로 확 트인 곳이었다. 방치되면 적의 침투가 용이한 전선 으로 허술한 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 중대는 장애물 구조를 더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철조망과 지뢰를 이중 삼중으로 장애물 설치를 하고 경계를 더욱 철저 하게 신경을 집중했다. 밤이되면 밤하늘에 별빛만이 반짝이는 들녘에 이 곳저곳으로 뛰어 다니는 짐승소리만 스산하게 우리들을 현혹시켰다. 그 리고 우리중대가 또 이동 명령을 받은 날이다. 넓은 들판을 지나 적의 진 지 깊숙히 무한한 들판 한가운데 자그마한 독립고지에 동그랗게 솟은 봉 우리 하나가 우리 사단의 최고 전초 진지였는데 우리중대는 저 고지를 탈 254 국가보훈처 _

255 환하라는 공격명령을 하달받았다. 아마 저 고지를 우리사단 30연대가 방어를 하다 적의 공격을 받고 밀려 났던 모양이었다. 독립고지로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사방을 잘 관측하기 가 편리한 요충지였다. 공격명령을 받고 전진하여야만 했지만 평지의 들 판이라 적군은 우리들의 행동을 너무나도 잘 관찰하고 있었기에 전진할 래야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하나하나 행동하여 움직이는대로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은폐물 을 이용해도 높은 곳에서 평지를 내려다보는 관계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 었다. 논두렁에 바짝 몸을 붙여도 적의 위치는 우리가 너무나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대대장까지 와서 오늘 무조건 저 고지를 6중대가 탈환하여 야만 한다라고 재촉했다. 우리 6중대는 제9사단에 속해 있었고, 그중의 28연대, 28연대라면 2대 대, 2대대하면 우리 6중대야말로 우리사단에서도 전통을 가진 중대로서 항상 어려운 공격은 도맡다시피 했었다. 무슨 일이든 어려운 일들을 현재 까지 잘 해왔다. 그러나 오늘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밤도 아니고 대 낮에 행동이 너무나 제한된 상태라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중대 장은 강력한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이번 저 고지를 오늘 탈환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전부 살아서 나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소리를 친다. 우리 소대는 좌측 측면으로 적의 후방으로 쳐들어가라는 명령이었다. 간신히 측면고지 밑으로 기어갔다. 대대장까지 바라보며 권총을 발사하 면서 빨리 올라가라고 고함을 쳤다. 7부 능선까지 올라가니 철조망까지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어 도저히 더 올라가기가 힘들었다. 철조망을 끊는 도구가 없었다. 일일이 철조망 하나하나를 추려서 나가니 살이 이리 찢기 255 푸른 바람이 되어

256 고 저리 찢긴다. 우리 중대는 어려웠지만 대부분 7, 8부 능선까지 다 올라온 상황인 것 같았다. 돌격! 돌격! 을 시작하였다. 사격을 하면서 한발짝 두발짝씩 전 진을 시작하니 중공군도 별 수 없는 모양인지 도망가기 시작했고, 일제히 사격을 가하니 아무 저항이 없다. 고지에 올라가 보니 죽은 시체만이 늘비 하고 중공군은 다 도망간 모양이었다. 이렇게해서 우리 중대는 또 어려운 문제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참으로 힘든 날이었다. 나는 고지를 오르고 보니 현재까지 그 많은 전투를 겪어오 면서도 부상한번 당하지 않았던 나로서도 다리 군복이 쭉 찢어져 있어 보 니 철조망에 약 20센티미터쯤 살이 푹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처음으 로 겪은 부상이다. 우리중대는 신속한 상황판단과 각 소대별로 배치명령을 받아 내가 속한 우리 소대는 중대 좌측 능선을 맡았다. 제일 중요한 곳이었는데 나는 소대 연락병으로 배속 받았다. 우리 소대에 좌측 능선을 3분대, 중앙은 2분대, 우측에 1분대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소대 본부는 2분대 뒤에 호를 구축했 다. 우리 소대에 중요한 지점은 2분대의 적진지 방향으로 뻗어있는 능선 계곡이었다. 그 독립고지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 후방에 배치되어있는 주지왕선 지금 의 휴전선이 한눈에 환하게 내려다 보였다. 광활한 들판에 끝이 보이지 않 는 평야 지평선으로 펼쳐 있었다. 이 고지야말로 중요한 관측소로서 우리 의 중요한 전초 진지의 역할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이 철마고지를 탈환할 수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전선에서도 철원 남방으 로 더 후퇴하여야 할 만큼 중요한 전초 진지였다. 그 넓은 광활한 기름진 256 국가보훈처 _

257 들판이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황폐화되는 생각을 하게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그 진지에서 오랜 기간을 방어하며 호 구축을 견고하게 보수하고 교통호도 사람의 한길 정도로 깊숙이 구축하였다. 날짜는 기억 을 못하나 늦은 겨울인가 초봄쯤 되는가 싶다. 그날따라 하얀 백설이 능선 골짜기 계곡마다 소복히 쌓여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 새삼스럽게 자랑스러웠다. 땅거미가 질 무렵, 그 날은 많은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서부터 정신없이 적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우리 중대원들은 철저한 경계를 했고, 예상처럼 적은 공격해 오기 시작하였다. 아마 연대 병력쯤 되는 병력이 집중적으로 침공해 오니 도무지 정신이 없었다. 우리의 12배 정도 되는 병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고, 있는 화력은 다 모아 일제히 사격을 가해 일초의 숨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적 포탄이 우리 소대 방향으로 더 많이 집중되었다. 포탄이 우리 호 위에 정통 명중했고, 호 안 에 먼지가 자욱하여 소대장과 나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 정신을 차려보니 소대장과 나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소대장은 괜찮냐고 나보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했더니 나보고 교통호에 나가 상 황을 관찰하고 오라고 지시를 하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낮은 자세로 나가 보니 중대본부 방향에서는 따발총소리가 따르르, 따르르하는 요란한 소 리가 들리고 우리 소대 교통호는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고 지형이 180도 변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우리 소대 본부 앞은 무인지경이었다. 큰일났구 나. 중공군 소리는 옆에서 위에서 중대본부 방향에서 마구 떠들고 우리소 대 앞에 배치되어있던 2분대원은 한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257 푸른 바람이 되어

258 나와 소대장은 포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대장께 보고 했더니 또 소대장은 3분대 방향으로 가보라 했지만, 3분대 방향으로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2분대 BR 기관총 사수가 배치되어있는 능선에는 적군에게 점령 당해 중공군은 까맣게 올라와 우리진지에 수류탄 따발총으로 무차별 사 격을 가해오고 있는 상태라 도저히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중공군은 우리소대 2분대에 연결된 능선으로 올라와 우리 소대본부 앞 에 배치한 2분대원들은 전사 혹은 전상으로 온데 간데 없어져 3분대와의 연락은 이미 두절된 상태였다. 나는 하는 수없어 소대장께 2분대는 전멸되고 적은 우리 2분대가 있던 지점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보고했고, 소대장은 중대장께 유선전화로 통하하려 했으나, 이미 적포탄에 의해 유선줄은 박살이나 끊어진 상황이라 전화통화가 안되었다. 휴대용 무전기는 소대 선임하사가 가지고 전투 개시 전에 3분대에 가서 전투가 시작되면서 중간 분대가 엉망이 되어 두절된 상 태라 역시 선임하사도 소대본부로 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암호로 중대본부 또는 1소대, 3소대 거듭 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소대장 역시 우리소대가 포위된 상황으로 직감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소대 위에 후방 배치 되어있는 중대본부 방향에서도 따발총 소리가 끊임없이 따르르, 따르르 울리고 그 옆에서도 따발총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기관총 소리, 우리호 위에서도 중공군이 떠들어 대는 소리로 우리들 의 머리를 복잡하게 흔들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소대장과 나는 죽지 않으 면 포로로 끌려가겠다 생각하니 아득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던 찰라 어디 선가 난데없는 하모니카 소리가 들렸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앗! 이 하모니카 소리가 나 258 국가보훈처 _

259 와 소대장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우리 중대는 아직 후퇴하지 않았구나하는 직감으로 나도 모르게 용기가 나 저절로 기운이 솟구친다. 앗! 여기도 살아있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여기도 있다. 저기서도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를 쳤다. 나는 용 기를 얻어 1분대 방향으로 몸을 낮춰 제일 낮은 자세로 뛰었다. 그랬더니 1분대는 그대로 있었다. 1분대도 2분대 방향으로 측면지원 사격을 하고 있었다. 우리 소대는 밤새도록 있는 화력은 다 발사하여 실탄, 수류탄을 다 소비하였다. 동녘이 트기 시작하면서 중공군 소리는 잠잠해지기 시작하였다. 환히 밝아서 2분대를 점검해보니 교통호는 오간데 없이 흔적도 없어지고 BR기 관총 사수와 부사수는 기관총을 쥔 자세로 엎드려 앞이마에 직통 총상을 맞아 기관총 앞쪽으로 엎드려 사수는 전사했으며, 부사수는 그 옆에 넘어 져 전사해 있었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다.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 앞에는 일미터 밖에 안 떨어진 위치에서부터 중공군시체가 줄줄이 늘비하게 붙어 누워 일렬 로 죽어 넘어져 있었다. 육안으로 대충 보아 수 천명은 죽어 넘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확한 적의 전사자 수는 지금 기억이 희미하지만 후 송을 못해 우리 정면에 방치된 전사자 수만 무려 280여명으로 기억된다. 그리하여 우리 철마고지는 대승의 대승으로 개가를 올렸다. 우리 중대 는 어려운 전투마다 승리를 했고 승리만이 우리 6중대에 전통이 되었다. 백마 28연대 2대대 6중대는 그 전통을 현재까지 우리 후배들도 계속 이어 주고 있다. 그 날의 기억은 벌써 어언 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우리들에게는 생생한 현실로 잊혀 지지가 않는다. 259 푸른 바람이 되어

260 끝맺음 잃어버린 고향을 떠나 온지도 어언 55년 반세기가 넘었다. 어느나라도 여권만 가지면 전 세계를 왕래가 가능하지만 오로지 세계에서 한 곳만은 아직도 통하지 않는 나라가 바로 내 고향이다. 고향을 찾으려고 갖은 몸부림을 목숨을 수십, 수백번씩 걸고 어린 몸으 로 6 25전쟁에 참전까지 했으나 원치않는 휴전으로 무산되고 영영 요지 부동 속에 내 고향의 통치자는 철통같이 문을 잠그고 열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근래 우리사회는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는 세상이 너무 변한 것이 많아 다양한 각자의 목소리만 높여 자기들의 이익만 챙길 생각으로 상대 의 말을 들어줄 줄 모르고 요지 부동속에 협조심이 부족한 것 같다. 차마 분열의 위기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목숨과 피와 땀으로 바꾸며 이 나라를 지켜온 우리들의 마음은 헤아려 줄줄 모른다. 일인당 수출 만불, 2만, 3만 불이라 부르짖고 열심히 매진하지만 나라없이 될 법이나 하는 말인지? 가 슴이 답답한 심정이다. 어느날인가 영등포에서 인천가는 지하철을 탔다. 70고비는 넘어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승차했다. 가슴에는 빛나는 훈장과 약장이 주렁주렁 달 려 있었다. 의아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알고보니 한 손에는 껌통이 들려 있었고 그 노인은 묵묵히 승객에게 일일히 고개 숙이며 적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이 찡했다. 우리 옛 동지가 젊어서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용감무쌍 했 었을텐데 말년에 나라에 쓸모없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빛 나는 훈장과 약장이 그렇게 초라해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260 국가보훈처 _

261 참으로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 전쟁을 모르고 이 좋은 세상을 사는 세대 는 민주화만 가지고 유지된 나라로 착각하는 젊은이도 있는 듯하다. 말로 만 전쟁을 알지 직접적인 경험은 없기에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목숨과 맞바꾸고 피와 땀으로 갖은 고통을 이겨내며 지켜온 나라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생사를 가름하는 길이었는지 모른다. 나라없는 민주화가 가능한 것인가? 낙동강을 최전선으로 하여 부산 한 모통이만 간신히 남겨놓고 공산군에게 나라 전부를 점령당해 UN 16개 국과 우리 늙은 세대가 합심해서 간신히 구출해 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 국 이다. 기세가 등등하여 지난 과거를 모르고 그런 고마움을 모르는 국 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자성이 아쉽다. 이제부터라도 믿음으로 서로가 갈등없는 한 목소리로 협심해서 다같이 밝은 세상으로 행복의 길로 매진했으면 한다. 261 푸른 바람이 되어

262 태극기에 미친 할아버지 이성균_장려상 / 서울 중랑구 상봉2동 <벚꽃과 민들레꽃의 시비> 1942년 봄날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한계마을에 철정공립국민학교 3학 년인 열 살 소년은 가난한 노동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점심을 못 먹고 자 랐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도시락을 긁는 소리가 거슬려 우물로 나 와 냉수를 한 두레박 퍼 마시고는 허기진 배를 달래려고 관사 뒤에서 민들 레 홀씨를 따다가 운동장으로 나와 입으로 불어 올리고 날아가는 홀씨를 하늘로 두 팔을 허우적대면서 날리다가 교장선생님 관사로 가는 길목까 지 따라갔다. 신나게 노는데 누군가 옆에서 홀씨를 같이 불어 올리고 있어 뒤돌아보 는 순간 소년은 깜작 놀라서 놀이를 멈추고 말았다. 다름 아닌 학교에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일본인 다까이( 高 )교장선생님이자 소년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교장선생님은 일본육군 병장출신으로 유도선수여서 교장선생님 또래 의 학생들을 벌을 줄 때는 교실 창밖으로 내던져 머리가 터져 피투성이가 되는 때가 있어 더욱 무서운 선생님이셨다. 262 국가보훈처 _

263 교장선생님은 떨어지는 홀씨를 보고 어이 떨어지고 있다 빨리 날려? 이것 재미있는 놀이구나? 너, 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않 먹고 혼자 민들레 홀씨를 날리고 있어? 네, 벌써 먹었습니다. 무엇을 먹었는데 그렇게 빨리 먹었니? 네, 물을 마셨습니다. 뭐, 밥 대신 물을 마셨어? 네, 그렇습니다. 왜, 점심을 안 싸왔니? 우리 집은 점심을 원래 먹지를 않습니다. 무엇을 먹는데 아침과 저녁만 먹고사니? 네, 나물 국 죽을 먹습니다. 나물 국 죽을 먹어?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시는데? 네, 노동일을 하십니다. 그래, 그럼 너는 민들레꽃을 좋아하겠구나? 네, 좋아합니다. 그럼 벚꽃과 민들레꽃 중에 어떤 꽃이 더 좋으냐? 네, 민들레꽃입니다. 저기 교무실 앞에 피어 있는 벚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네, 그래도 저는 민들레꽃을 사랑 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얼굴이 일그러지셨다. 263 푸른 바람이 되어

264 교장선생님은 그만 놀이를 멈추고 너 혼자 놀아라. 네, 교장선생님. 관사로 교장선생님은 점심을 드시러 가셨다. 소년은 우물로 가서 물을 길러 마실 때 반 친구들이 운동장으로 나왔다. 소년은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날 소년이 하교 시에 교장선생님은 교무실 로 들렸다가 가라고 하셨다. 교실 청소를 끝내고 친구들과 모여 신사참배 를 하였다. 그리고 교무실로 갔다. 히라끼세이낑 ( 均 ) 교장선생님께 불려 왔습니다. 부동 자새로 소년은 거수경례를 하였다. 잠간 기다려라. 교장선생님은 무엇인가 하시던 서무를 마치고 조선인 선생님 두 분을 먼저 퇴근을 시키셨다. 잠시 소년을 바라보던 교장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너, 점심시간에 민들레 홀씨놀이 정말 재미있었다. 너. 낮에 벚꽃보다도 민들레꽃이 더 아름답다고 하였지? 네, 그랬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벚꽃이 민들레꽃만 못하지? 소년은 벚꽃도 아름답습니다. 왜, 민들레꽃이 벚꽃보다 좋으냐고 물고 있다. 네, 민들레꽃은 풀을 봄에는 나물로 먹고 또 장난감 꽃이거든요. 그리고 또 뭐야? 소년은 일본말이 서툴러 말문이 막혀 버렸다.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괜찮아 대답 해봐 감기약으로 뿌리를 다려서 마십니다. 264 국가보훈처 _

265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은데 어서 말을 해 소년은 한참을 생각하였다. 이때 교장선생님은 책상을 탕 치면서 독촉 을 하셨다. 네, 민들레는 어디서나 잘 자라고 튼튼한 풀입니다. 어디서나 튼튼하게 잘 자란다. 네, 그리고 민들레 홀씨는 봄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서 혼자 어디서 나자라서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교장선생님 더는 모릅니다. 그러면 나물과 약으로 먹고 장난감도 되고 강인한 풀이며 혼자서도 잘 자라는 풀이여서 벚꽃보다도 민들레가 아름답다고? 네, 그렇습니다. 바가야로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깜작 놀라서 소년은 겁먹은 얼굴로 떨고 있었다. 너, 양동이에다 물을 반만 받아와? 네, 교장선생님. 소년은 물을 길러왔다. 이번에는 저기 걸려있는 주판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소년을 바라다보며 교장선생님은 피식 웃으셨다. 너, 저기에 가서 무릎 꾸러. 교장선생님을 소년의 머리에다 주판알이 머리로 오도록 얹어 주셨다. 그리고 물동이를 주판 위에다 올려놓았다. 너, 이것을 이고 잘 생각을 해 보아, 벚꽃이 민들레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이 들면 내려놓고 집으로 가도 좋다. 265 푸른 바람이 되어

266 네, 교장선생님 알았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뚜벅뚜벅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벌을 서고 있는 자리가 구석진 곳이기 때문에 주판 뒤와 왼쪽을 벽에다 기댈 수 가 있었다. 그러나 빡빡 깎은 머리에 주판일이 살을 파고들었다. 겁에 질 리고 무겁고 힘들어 땀이 흐르기 시작을 했다. 정말 소년은 왜, 벌을 서야 하는지를 몰랐다. 벚꽃은 교장선생님 꽃이며 민들레는 내 꽃인데 참 이상도 하였다. 무겁고 힘들어 주판과 물동이를 내려놓으려고 하여도 소년은 힘에 겨워 내려놓을 수가 전혀 없었다. 소년은 소리를 내어 슬피 울고 있었다. 그리 고 교장선생 개새끼 같은 놈이라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학교 앞으 로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을 찾기 위해 현관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을 하였다, 이번에는 학교자리가 공동묘지 자리여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생각으로 무서워 온몸이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시계 종소리가 일곱시를 칠 때 교무실이 울려 더욱 무서웠다. 그 리고 어디선가 악귀가 곧 나올 것 같아 죽을 것 같다. 밤 아홉시가 지나자 교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뚝, 딱하고 울려왔다. 그리 고 오줌도 마려워서 그대로 몇 번을 싸고 말았다. 땀과 오줌으로 얼룩진 몸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멀리서 불빛이 학교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교무실 괘종시계가 땡땡하고 열시를 쳤다. 불빛은 교무실 쪽으로 오자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서 사람 살려달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나 밖에서는 들리지를 않는 것 같았다. 광솔 불이 교무실 가까이 이르자 다시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불이 멈추 고 교무실 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면서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로 교장선생 266 국가보훈처 _

267 님은 소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을 하였다. 어이 히라끼세이낑, 히라끼세이낑 안에 있나? 그러나 소년은 대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불빛에 반사된 소년을 발견한 교장선생님은 급히 달려와서 너, 왜 아 직 집에 가지 않았니? 주판과 물을 혼자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못 갔습니다. 그래, 교장선생님은 주판과 물동이를 내려놓아 주셨다. 히라끼상 아들을 데리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양심은 있는지 교장 선생님은 히라끼상 정말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를 하고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고 아버지는 아 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소년은 오금이 펴지지를 않았다. 아버지는 아 들을 주무르기 시작하셨다. 너, 무엇을 잘못 하였니? 저 잘못한 일 없는데요. 이 놈아 그럼 왜 벌을 밤중까지 섰어? 아버지 정말 왜 벌을 받았는지 정말 몰라요. 잘 생각해 보거라 무엇인가 있어? 너, 낮에 무슨 일 없었니? 낮에 점심시간에 민들레 홀씨 놀이를 하는데 교장선생님이 오셔서 재 미가 있다며 같이 놀아 주셨어요. 그럼 참 이상하지 않니? 아참, 벚꽃과 민들레꽃 중 어떤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을 했니? 267 푸른 바람이 되어

268 민들레꽃이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더니 바가야로 라고 욕을 먹었 어요. 그래 알았다, 바로 그거로구나. 죽일 놈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하시면서 울먹거리셨다. 아버지 그게 무엇인데요? 그래,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이면서 일본 사람들의 정신이란다. 그런데 네가 민들레꽃이 벚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여서 화가 난거지. 아버지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구요? 그래, 너, 옷이 왜, 이렇게 젖었어? 오줌을 싸서 그래요. 아버지는 아들의 옷을 벗겨서 양동이 물에다 빨아서 입혀주셨다. 그리고 아들을 업고 집으로 오면서 이놈아 거짓말로 벚꽃이 좋다고 하 지 어떻게 거짓말을 해요. 그러나 벌을 설 때와는 달리 아버지의 등이 따듯했다. 소년이 태어나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업어 주셨기 때문이다. 소년이 업혀서 집에 오자 아들을 본 순간 어머니는 아들을 얼싸안고 머 리를 쓰다듬으시며 흐느끼셨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로 갔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놀다 다쳤어. 야! 그럼 머리는 왜 멍이 들었니? 소년이 피식 웃고 있을 때 히라끼세이낑 너 교장선생님이 오래 268 국가보훈처 _

269 그래 소년은 늦을까봐 뛰어서 교무실로 갔다. 차렷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면서 히라끼세이낑 교장선생님께 부름을 받 고 왔습니다. 그래, 너, 지금도 민들레꽃이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하니? 아닙니다, 벚꽃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야지, 그만 나가봐. 그날 이후 신사참배도 않하고 민들레 홀씨도 날리지를 않았다. 어른이 되어 알아낸 것은 민들레의 꽃말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내 사랑 그대에게 또는 신으로부터 받은 사랑 그리고 노아홍수 때 물이 민들레 목에 차오르자 민들레가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하느님이 바람에 날려 양지바른 언덕위에서 피도록 도와주신 아름 다운 꽃으로 기록되어 있는 전설의 꽃이다. 열 살의 소년은 어른이 되어 민들레를 별명으로 경기철교장선생님께서 아호 로 지어 주셨다. 한자로는 아호가 지정( )이며 지정은 곧 민들레를 이르는 말이다. <8.15해방과 조선의 국기> 1945년 8월15일 그해 여름방학 임시 소집일이여서 학교로 갔다. 일제식 민지 치하 당시는 나이가 선생님보다 많은 학생들이 일본어를 배우가 위 하여 13세 소년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고들 있었다. 조선어를 폐지하 고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치면서 소년은 열 살부터 학교에서는 일본어만 을 사용해야만 하였다. 이는 조선 사람을 일본인 천황폐하의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내선일체라 269 푸른 바람이 되어

270 는 일제의 만행으로 식민지속에서 말과 성씨, 문화, 국기 등 모두를 한일 합방으로 잃고 억압을 받던 때였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많은 학생 들이 금지된 조선말로 이제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면서 책상을 징검다 리삼아 뛰어서 넘나들면서 소년신문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있었다. 소년은 아무것도 모르고 겁에 질려있는데 아침 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 앞으로 나온 교장선생님은 곧 바로 단상으로 올라 가서 학생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시무룩한 말투로 우 리는 미국 놈들이 우리 일본 본토 히로시마에다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전 쟁에서 항복을 하였다. 방학을 무기한 연기하니까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집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이때 대열 뒤에서 아침에 소란을 피운 학생들이 낄낄대면서 비웃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화난 얼굴로 지금 웃고 있는 놈이 누구야? 앞으로 나오지 못해? 이 놈들아 송진 드럼통을 두들겨도 시원하지 않은데 웃고들 있어? 이번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술렁대기 시작을 하였다. 눈치가 빠른 교장선생님은 교단을 내려가서 급히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 다. 남아있던 조선인 선생님은 일본이 패전함으로 우리조선은 해방이 되 었으니 이제부터는 일본어가 아닌 조선말을 하여도 좋다 고 조선말로 말 씀을 하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연락이 있을 때까지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 라고 하셨다. 소년은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을 할아버지 몇 분이 모여서 무엇인가 옳 270 국가보훈처 _

271 고 그름을 놓고 언쟁을 하시고 계셨다. 소년은 어린 동심으로 호기심이 생겨 할아버지들이 뭔가 하시는 일을 엿보려고 살금살금 가서보았다. 소년은 깜짝 놀라며 할아버지 왜 일본의 국기에 다가 낙서를 하셔요? 이것은 낙서가 아니고 조선의 국기를 그린단다. 예, 그럼 왜 일본국기에다 덧 그리셔요? 응, 조선의 국기를 그리려는데 그릴만한 천이 없어서 이제는 필요가 없는 일본국기에 다가 태극기를 그린단다. 할아버지 조선의 국기는 무엇이고 태극기는 또 무어예요? 그래, 조선의 국기를 태극도설로 그려서 태극기라는 이름으로 부른단다. 그럼 조선의 국기 이름이 태극기네요? 옳거니, 맞다. 그럼 태극은 어떤 그림이여요? 동그라미 안에 있는 빨강과 파란 소용돌이가 태극이지. 하시면서 손가락으로 짚어 보여주셨다. 그런데 소용돌이가 무어에요? 너, 바람개비 알지? 네, 할아버지 장난감 말이지요? 그래, 그 바람개비처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머리는 두텁고 꼬리는 가늘어 보이는 것처럼 이게 돌고 있는 형상이란다. 그럼 바탕 네 귀에 있는 그림은요? 이것은 4괘인데 건, 곤, 감, 이 라고 하셨다. 그럼 왜, 국기를 그리시면서 괘가 맞다 또는 틀리다고 하셔요? 271 푸른 바람이 되어

272 그러게 말이다, 잘 생각이 않나서 그런단다. 향로에 있는 8괘의 견본과는 태극기에 사용한 괘가 달라서 그런단다. 견본인 갓집에 있는 8괘를 네 괘만 그렸는데 4괘의 자리가 국기에서는 견본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한분이 그래 맞아, 감 괘와 이 괘를 서로 바꾸어 그렸을 거 야. 하시면서 무릎을 탁 치셨다. 옆에서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영감 생각이 옳아, 자 그려보세. 할아버지 여기 4괘는 어떤 뜻이 있어요? 할아버지는 신문지에다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건 은 하늘, 낮, 남자, 수컷이며 곤 은 땅, 밤, 여자, 암컷이고 감 은 달이며 이 는 해 라고 일러 주셨다. 그리고 한문글씨로 아래와 같이 적어 주셨다. 은 乾 (하늘 건) 은 坤 (따곤) 은 坎 (물웅덩이 감) 은 (밝을 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4괘는 4방위와 4계절이라고 다음과 같이 일러 주셨다. 4방위는 동쪽, 서쪽, 남쪽, 북쪽 ( 南 ). 4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 ) 그럼 여기 있는 8괘중에 왜 4괘만 국기에다 그렸어요? 그러게 말이다. 처음에 조선에 국기로 그릴 때는 8괘를 조선 8도로 그 리려고 하였으나 멀리서 보아서 태극도 동그라미 8괘도 동그라미로 보이 므로 알아볼 수가 없어서 쉽게 구분 하려고 4괘로 그렸단다. 그럼 8괘에도 뜻이 있겠네요? 그렇지, 8괘는 8절기를 나타냈지. 8절기는 또 무엇이여요? 272 국가보훈처 _

273 그놈 성가신 놈이구나, 여보게들 누가 대답 좀 해 주어? 할아버지들께서는 웃으시며 영감이 맡았으니 영감이나 훈장질을 하게 나 하시면서 한바탕 웃고들 계셨다. 소년은 먼저 그려준 신문을 내밀며 여기다 마저 그려 주셔요. 할아버지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시고 붓으로 다음처럼 절기와 괘를 그려 주셨다. 할아버지 조선의 국기는 일본기보다 복잡하네요? 그렇지 일본 국기는 해 하나만을 그려서 간단하지. 8괘의 8절기란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 8괘의 이름도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셨다. 건괘, 곤괘, 감괘, 이괘, 진괘, 태괘, 손괘, 건괘 이번에는 8괘의 담긴 뜻을 적어 주셨다. 하늘, 못, 해, 불 우뢰, 땅, 바람, 달, 물 산 이라는 뜻이 담겨있단다. 할아버지 무슨 뜻인지 정말 어렵네요? 그럼 어렵지, 어렵고 말고 하시고는 웃으셨다. 할아버지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 하였나요? 아니란다, 처음에는 하루만 임시국기로 조선과 미국이 조약을 맺을 때 하얀 바탕에다 빨강과 파란 태극을 그려서 사용 하였는데 그 임시 국기를 태극도형기라고 하였단다. 그러면 일본국기와 비슷하겠네요? 그래서 일본 국기로 지금 태극기를 그릴 수가 있는 거란다. 273 푸른 바람이 되어

274 그럼 갓집에 태극그림은 왜 태극이 흰색과 검정이여요? 그것은 낮은 밝아서 흰색을, 밤은 어두워서 검정색으로 도형을 그려서 썼다. 그럼 왜 태극기는 태극을 홍과 청으로 그렸어요? 흑백은 너무 어두워서 국기로 그리면서 빨강은 태양, 파랑은 태음으로 그렸다고 하더라. 그리고 국기를 만들 때 빨강은 임금님의 옷, 파랑은 신하의 옷이며 바 탕은 국민들의 옷 색으로 그렸다는 말도 있더라. 아~아 참, 재미있는 국기 이야기네요. 할아버지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너무어렵지? 너, 집에 가서 일본 국기를 가지고 오면 할아버지들이 태극기로 고쳐 줄 터이니 어서 가지고 오라 고 하셨다. 소년은 할아버지 제 것 먼저 그려 주셔야 돼요? 그 녀석 우물에 가서 숭늉 달랠 놈이구나. 하시면서 그래 알았다. 소년은 일본의 국기를 찾아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옆에 그려놓은 먹물과 잉크가 마른 것으로 바꾸어 주셨다. 얘야, 이제 그만 가서 조선독립만세, 그리고 대한독립만세 나친구 들과 같이 불러보아라 라고 말씀을 하셨다. 소년은 일본의 국기를 태극기로 그린 국기를 휘날리며 3년 전에 다까이 교장선생님이 민들레와 벚꽃을 비교하여 벌을 섰던 일을 생각하면서 교 장선생님께 태극기를 보여 드리고 어떤 국기가 더 좋으냐고 물고 싶었다. 불편한 게다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교장선생님 관 274 국가보훈처 _

275 사로 신명나게 달려갔다. 이때 밭일을 하시던 마을 사람들 누가 저기 태극기를 들고 뛰는 소년이 누구야? 라고 한 말이 별명으로 태극소년이 되었다. 여보게들 우리 조선이 해방이 되었으니 우리도 만세를 불러야지. 하면 서 호미를 허리춤에다 꽂고 군중들과 같이 만세를 불렀다. 소년은 대한독립만세 그리고 조선독립만세 를 부르며 달려가자 마 을에 벌거숭이 어린이들이 소년의 뒤를 따라 가면서 아무런 뜻도 모르고 만세놀이로 알고 학교로 가는 태극소년을 뒤따르고 있었다. 소년이 교장선생님 관사로 갔을 때는 교장선생님은 어디로 숨어버리고 관사에는 없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관사로 몰려와서 학교 창고까지 뒤지면서 창고에 서 나무로 만든 목검을 들고 와서 교장 놈 어디로 도망을 쳤어, 이 왜놈 의 새끼 찾기만 해봐 죽여 버린다. 라고 하면서 관사 유리창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궁중들 앞으로 마을 어르신이 나오셔서 일본 놈 한 놈 죽이거나 관사를 부순들 마음이 시원하겠는가? 이제 관사는 우리 마을 재산이니 그 만들하고 돌아들 가게나 라고 말리셨다. 그러나 유리창과 문짝은 모두 박살이 나있었다. 그리고 교장가족이 언제 어떻게 마을에서 도망을 쳤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5년이 흘러 태극소년은 태극청소년으로 성장을 하였다. 이렇게 그려진 태극기를 소중하게 간직을 하였을 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태극기가 그리는 사람마다 달라 규격을 통 275 푸른 바람이 되어

276 일하기 위하여 43인의 국기시정위원회를 두어 1949년 10월, 현재 사용하 고 있는 태극기의 규격을 문교부고시 2호로 제정하여 그려진 규격국기를 산골마을까지 반상회를 통하여 집집마다 판매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식 국 기로 정하고, 국기에 관한 그 어떠한 규정이 없어 1984년 4월21일 대한민 국국기에관한규정을 대통령령11361호로 공포하여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치루면서 공산권 국가가 참여함으로 몇 번의 개정으로 보완하 여 세계 속에 자랑스런 태극기로 휘날리고 있다. <태극청소년과 6.25전쟁> 태극청소년은 당시 18세에서45세까지를 대한청년단원으로 조직하여 마을의 자제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생일이 6월7일이여서 대한청년단원이 된지 28일이 되던 새벽을 가르는 조용한 산골마을에 사이렌과 타종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새벽잠에서 깨여난 마을 청년들은 또 빨갱이들이 넘어왔다는 생각으로 눈곱을 뜯으면서 대한청년단 회관으로 모여들었다. 궁중들이 웅성거리는 앞으로 철정지서주임과 대한청년단장이 와서, 지 서주임은 굳은 표정으로 북한의 인민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 어왔으니 집으로 돌아가서 간단한 피난봇짐을 꾸려놓고 청년당원들은 인 민군과 싸우는 경찰병력들의 취사를 담당 하여야 하므로 쌀과 소금, 그리 고 가마솥과 멍석 및 가마니와 두멍을 준비하고 다리 밑 강변으로 급히 모 이라 고 하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그날 점심부터 주먹밥을 소금물로 반찬을 삼아 만 들어 전선으로 올라가서 직접 배식까지를 하였다. 276 국가보훈처 _

277 총알이 날아오는 고지에서 밥을 나누어 주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인민군의 AK소총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 가자 태극청소년들은 잠시 옥수수집 더미로 은신을 하였다가 트럭을 타 고 마을로 돌아와 땀으로 흠뻑 적은 몸을 옷을 입은 채 홍천강물에 텀벙하 고 뛰어들어 몸을 식혔다. 다음 날 점심을 지을 때 강변 여기저기에 포탄이 떨어지면서 사이렌과 타종소리를 듣고 끓어오르는 밥솥에 불을 끄고 피난길을 떠나야만 하였 다. 태극청소년은 말 고개 지름길로 식구들의 옷자락을 붙잡고 고개 마루에 올라 성황당 앞에서 마을을 뒤돌아보다가 집에다 두고 온 태극기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봇짐을 성황당 앞에다 벗어놓고 내리막길을 달려 집 으로 갔다. 그러나 비어있는 마을에 지금쯤 인민군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에 등에다 찬물을 뿌린 듯 오싹한 마음으로 마을을 두리번거리며 살금살 금 집으로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장롱 속을 뒤졌으나 태극기는 보이지가 않아 옷가지를 방바닥에다 낱장 으로 널어놓으면서 찾고 찾았으나 태극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집 앞에 포탄이 떨어져 터지는 폭음을 듣고 놀라서 손에 들려있는 옷을 버리는 순간에 숨바꼭질을 하듯이 태극기가 마루바닥에 펼쳐졌다. 순간 앗!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태극기를 집어 옷자락 속에다 감추었다. 싸리문을 나와 마을을 살피고는 말 고개를 마라톤 선수처럼 한달음에 달려 올라갔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씻으며 봇짐을 다시지고 성황당님 감 277 푸른 바람이 되어

278 사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절을 꾸벅 하였다. 야시대리 마을을 향해 내리막길을 욱어진 숲 속을 헤치고 달리면서 옆 에서 동무하고 인민군이 불러 세울 것 같아 마음은 더욱 급했다. 야시대리 마을 입구를 달릴 때 누군가 이름을 불러 뒤돌아본 순간 부모 님이 늦어진 태극청소년을 기다리고 계셨다. 멈칫하는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너,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고 화 가 나신 표정으로 호통을 치셨다. 태극청소년은 능청맞게도 화장실을 다녀 온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피난민 대열 속으로 깊이 숨어들어가자 어머니가 얘야 같이 가 야지 하시면서 불러 세웠다. 성산마을에 이르러 주위를 살펴본 결과 작은아버님과 할머니가 보이지 를 안아 어머니께 귓속말로 할머니 왜 안보여요 라고 여쭈어 보았다, 어머니는 할머니는 걸음이 늦어서 앞서 가셨으니 어서가자. 어머니, 할머니 어디서 만나요? 홍천읍 당 고개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그날 어둠이 깔릴 무렵 당 고개에 도착하여 할머니를 찾았으나 찾을 수 가 없었다. 피난길 하루만에 우리가족은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께서 할머니를 못 찾으시자 이놈아 이게 모두 너 때문이야 라고 꾸짖으셨다. 태극청소년은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만지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남면 며느리 고개 아래서 더 이상 가지 못 하도록 경찰관들이 야간에 통금으로 발을 묶어 버렸다. 신작로 배수로에 풀을 자리삼고 하늘을 지붕 삼아 극성맞은 개미와 모 278 국가보훈처 _

279 기의 습격을 받으며 쑥을 뜯어 모기를 날리면서 밤하늘에 수많은 별을 세 었다. 경찰관들은 불도 피우지 말며 담배도 피지 말고 아이를 울려서도 안 되 며 밤에 자리를 이탈하여 무차별로 총에 맞지 말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 지 말라고 하여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면서 잠을 청했다. 언제쯤일까 땅이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검은 물체가 꿈틀대면서 신작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트럭에다 대포를 끌고 가며, 삼륜 오토바이와 기마병 까지 이어서 끝도 없이 코앞을 지나갔다. 어디로 갈려고 하여도 뒤는 산으로 막혀 인민군의 대열을 보내고 마을 로 들어와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북에서 온 붉은 제복의 사나이가 내무서 원이라면서 동무들 피난을 서울로 갑니까? 서울은 자랑스런 인민의 군대가 접수를 하여 해방이 되었으니 더 이상 피난 갈 곳이 없으니 집으로 돌아들 가라 고 하였다. 혼이 빠진 태극청소 년은 그들이 지나가자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전쟁 직전까지 인제경찰서 철정지서에서 사환으로 일을 하여 북한군에 게는 숙청대상임을 알고 있었으며 가슴에 숨겨둔 태극기 때문에 사시나 무 떨듯 하였다. 겁에 질려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너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극기가 몸 속에서 발각 될 경우 살아서 집으로 가기는 틀렸다는 생각 으로 걱정을 하면서도 가족 누구와도 상의 할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결단을 내린 것은 태극기 이전에 일장기였으며 1949년 태극 279 푸른 바람이 되어

280 기를 규격을 정하여 규격 미달로 국기가 아닌 태극문양 포스터로 보고 버 리기로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피난민 속에서 태극기를 버리는 장소가 문제가 되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호밀이 우거진 화전 밭으로 대변을 보는 흉내를 내고 들어가서 돌무덤 속에다 돌로 묻어버렸다. 스무 시간 전의 애국심은 온데 간데 없고 한 순간에 불충을 저질러야만 하였다. 그로부터 100일 동안을 인공치하에서 밤마다 열리는 각종 회의에 서 자아비판을 하라면서 쇄뇌교육을 식혔다. 그리고 낙동강까지 해방을 시켰음으로 부산은 시간문제라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무를 맞을 환영준비라며 김일성 장군 노래를 가르쳤다. 낮에는 군수물자를 차량이 없어 이어달리기 계주를 하듯이 군 경계에서 군경계까지 등짐으로 날라다 주는 부역으로 젊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밤 낮으로 남쪽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밤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자랑스런 해방전사로 의용군 을 지원하라고 하자 아무도 나서지를 않으니까 남의 집에서 머슴을 사는 두 사람을 지적하면서 이 두 동무가 지원을 했다 며 박수를 이끌어 내기 도 하였다. 그 시각 회관에서 기다리던 내무서원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해 9월 말 추석명절 차례상을 차려놓고 초혼을 하다가 집이 흔들리며 열어놓은 쌍바라지 방 문짝이 여닫치면서 폭음과 동시에 폭풍이 일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온 식구가 뛰어나가서 비행기 소리가 나는 남쪽을 바 라보자, 까마귀 같은 검은 비행기 네 대가 콜라병 같은 물체를 떨어트리고 는 비행기는 차례대로 곤두박질을 하면서 기관총을 쏘아대자 물체가 새 280 국가보훈처 _

281 우젓 항아리만 해지자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 며 요란한 폭음과 폭풍이 일고 땅이 흔들릴 때 비행기는 하늘로 솟아오르 고 있었다. 몇 번을 되풀이하고는 남산 넘어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갔다. 동심으로 호기심이 가득하여 폭격을 하고간 장소를 그날 찾아가 보았 다. 인민군이 6월26일 탱크를 몰고 남침해 올 때 한국군 8용사가 작전을 지연시키려고 북한 탱크 8대를 포탄을 안고 자폭하여 고장난 탱크를 폭격 으로 산산조각을 내었던 것이다. 폭격 후 3일이 지니자 후퇴하는 인민군들이 대열을 지어 걷다가 졸아 배수로에 넘어지면서 이틀간을 마을을 지나가고들 있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소총과 식량만을 메고 말 한마디 없이 북으로 도망치 던그중한대열이가지고온쌀로마을아낙들에게 취사를 시키고 쌀을 씻는 물과 우물 물까지 아낙들에게 먹이고는 밥이 다 될 때까지 두 사람의 인민군이 지켜서 있다가 다된 밥을 아낙들에게 먼저 먹이고 스스로 식통 에다 퍼서 담아 가지고 갔다. 그리고 반찬은 소지하였던 소금을 찍어먹고 북으로 도망쳤다. 북한군의 후퇴 대열이 지나 간 지 3일 뒤에 한국군이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휘날리 며 도망가는 인민군들을 뒤쫓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태극기를 흔들며 마을을 지나가는 국군 트럭을 향해 국군만세를 부르고들 있었다. 아쉽게도 태극청소년만은 맨손으로 국군을 환영하고는 그만 눈물을 남몰래 흘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 달려있는 태극기를 똑바로 바라다 볼 수가 없었으며 한뼘 남 짓한 태극청소년의 가슴속에다 태극기를 그려 담았다. 그해12월 대한청년단 홍천군단부에서 별동대가 조직되면서 마을의 대 281 푸른 바람이 되어

282 표로 입단하여 그날 밤 한국군 제2사단 본부가 주둔한 홍천국민학교로 인 솔되어 3일간의 첩보훈련을 받고 G2라는 첩보요원이 되었다. 1.4후퇴로 38선을 넘어온 중공군의 전황을 첩보하려고 가리산을 넘어 내평리에 주둔한고 있는 중공군의 병력과 장비를 첩보하고 3일 뒤에 사단 으로 귀대를 하였다. 이것이 당시에 한국군의 허술한 작전임을 엿볼 수가 있다. 부대로 복귀 하여 다른 적진으로 투입하려고 대기 중인 첩보요원 30명을 갑자기 현역 으로 현지 입대시켰다. 군번도 계급도 군복도 총도 없는 현역병이 되였다. 그날 밤 홍천군은 야간에 나타난 비행기로 등화관제 실황으로 읍내는 암흑 세상으로 변했다. 비행기는 저공으로 비행하며 검은 물체를 홍천강 변에다 투하를 하였으나 폭발음은 들리지가 안았다. 곧이어 등화관제가 해제되면서 현지 입대한 30명 전원을 사역병으로 징 발하여 무장한 사병 2명과 같이 홍천강변에 투하된 보급품을 운반하러 갔 다. 춘천과 홍천이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군수품 보급로가 차단되어 군용 수송기를 이용한 군수품을 투하시킨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제서 포위된 사실을 알고 사역병으로 동원된 30명은 현지입대를 불만 으로 서로 약속을 하고 진리 사각지대에서 동시에 도망을 치고 말았다. 신분증이 없어 대한청년단 홍천군단부 별동대로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집결되었던 것은 그날 밤 암호가 총 칼 이여서 무사히 귀대를 하였다. 그러나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홍천경찰서에서 노획한 무기운 반책으로 30명 전원을 의용경찰로 징발하여 등사기로 등사한 사진도 없 는 신분증을 소지하고 완전 무장이 되었다. 경찰서 본대는 징발된 트럭으로 포위망이 뚫리자 원주로 직행을 하면서 282 국가보훈처 _

283 무기운반책인 의용경찰 소대는 동면 협곡으로 중공군 포위망을 피해 이 틀 뒤에 집결지인 원주경찰서로 갔다. 그러나 원주도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본대는 청주로 갔다면서 청주로 오 라는 메모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공군은 야간에만 작전을 하므로 주간을 이용하여 피난민들과 같이 중 앙선 철길을 따라 밤에는 피난민을 지키는 초병과 낮에는 피난민들을 보 살피면서 이틀 뒤에 충청북도 음성군에 도착하여, 경찰관들의 잡역과 보 초가 될 것을 미리 알고 중공군이 포위를 한경계로 달래강 앞마을에서 피 난민을 이주시키면서 밤에는 마을에 초병으로 자치활동을 하였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어서 보은경찰서 관내 청산지서 부근마을에 서 야영을 하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방위군, 별동대, 의용결찰 등 무장단체를 일괄 무장해체시켜 청산지서에다 무기를 반납하고 3인1조로 분산하여 아군의 진격에 맞추어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달래강을 건너가기 위해 여울목을 골라놓고 그날 밤 민가에 투숙을 했 다가 집주인의 신고로 마을에서 방위군 소위와 청년들이 밤에 몽둥이를 들고 몰려와서 신분을 확인 하였다. 사진이 없는 의용경찰 신분증을 수상하게 생각했는지 방위군 소위는 신 분증을 압수하고 어디론가 조사를 한다면서 데려 가려고 하였다. 다급하여 방위소위의 가랑이를 잡고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았다. 피난하기 힘든 세상 함께 가자면서 자폭을 하겠다고 위협을 하고 신분 증을 돌려받고 10분간에 여유를 주고 도망가지 않으면 수류탄을 투척한 다고 하였더니 10여명의 청년과 방위소위는 도망을 쳤다. 그 길로 밤에 달 래강 여울로 나가서 물이 목에까지 차오르는 강물은 해동으로 녹아 흐르 283 푸른 바람이 되어

284 는 어름성애를 피하면서 도강을 하여 강원도로 숨어들었다. 너무 추워서 후미진 곳에다 모닥불을 피웠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어 포로 로 잡혀갔다가 통역관의 통역으로 신분이 확인되자 풀려나서 미군들이 주는 비상식량으로 부대를 떠났으나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미군들이 먹다가 남은 음식물 쓰레기장에서 상자로 움막을 꾸리고 쓰레 기에서 미군들이 먹다버린 음식물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작전상 미군과 한국군의 교체로 한국군 쓰레기장에서는 음식 쓰 레기가 전혀 없었다. 한국군의 전선을 숨어서 협곡으로 횡성군 삼마치리 고개 입구에 도착 하였더니 많은 중공군의 사체가 불에 타죽어 얼어 있어 중공군의 시체를 뒤져서 타다 남은 중공군의 비상식량을 거두어 먹으면서 홍천군 동면 월 운마을에 숨어 들어갈 수가 있었다. 불타다 남아있는 움집에서 주인을 잃은 개를 잡아먹다가 움막에서 연기 가 피어오르자 수상하게 여긴 한국군 헌병들이 들이닥쳐 잡혀갔다. 신분을 확인하고는 새끼줄을 치고 그 안에다 가둬 버렸다. 그리고 헌병이 지켜서 20명쯤 되면 트럭으로 어디론가 실고 간다고 하 여 은밀하게 알아보았더니 20대는 현지입대 40대는 노무자로 보내진다고 하여 도망을 치려고 하였으나 소변도 그 자리에서 누라고 하였다. 태극청소년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헌병에게 맡기고 변소를 다녀 오면 달라고 하고는 도망을 칠 수가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고령으로 피난을 못간 노부부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폭격으로 쓰러진 나무를 농목으로 해주는 임시 머슴이 되었다. 유엔군 전투기 추락지역인 야산에서 나무를 자르다가 이상한 행렬을 발 284 국가보훈처 _

285 견하고 지개와 도끼, 그리고 톱을 산에다 버리고 논밭으로 달려가 숨어서 보았다. 인제경찰서의 수복 행렬이여서 안면이 있는 경찰관을 찾다가 철정지서 주임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달려가서 지서주임의 봇짐을 넘겨받아 지고 고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꿈속에 그린 고향은 잿더미로 변해 폐허가 되어있었다. 오고 갈 데가 없는 태국청소년은 침식을 위해 철정지서에서 또 다시 사환으로 소 일하다가 미군부대로 보낼 노무자(KSC) 모집이 있어 나이를 속이고 미군 보급중대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분확인 결과 나이가 어려서 대상에서 제외되어 중대장의 심부 름꾼인 쑈리가 되어 미군들의 마스코드가 되고 말았다. 침식이 해결되자 부모님 생각으로 고민을 하는데 부대가 홍천군에서 경기도 양펑군 지평 으로 이동이 되어 따라갔다. 어느 날 양키물건 장사를 하는 고향사람을 만나 아저씨에게 많은 물건 을 소개 시켜주고는 대가로 부모님 소식을 부탁을 하였다. 일주일쯤이 지 나서 아저씨는 부모님 소식을 전해주어 부대를 나와 걸어서 충청북도 음 성군 밤티 수용소에서 가족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군의 진격으로 충북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가 일괄 폐쇄되어 강원도 부론수용소로 가라는 통보를 받고 수용소로 찾아갔다. 그러나 수 용할 천막이 없어 시멘트로 만든 농산물 보관창고를 빌려 짚을 깔고 가마 니를 뜯어 문짝을 만들고 배급만을 수용소에서 받아왔으나 식생활에 어 려움이 있어 어머니는 조석으로 마을을 돌면서 밥을 얻어 드리셨다. 어느 날 대한청년단 강원도단부에서 18세에서 45세까지 피난중인 대한 285 푸른 바람이 되어

286 청년단원을 소집하였다. 도단부에서 온 감찰에게 발탁되어 수용소에서 담요를 지급받고 원주로 또 다시 강제로 끌려갔다. 각 수용소에서 또래들을 30명쯤 데려다 놓고 99식 장총으로 무장을 시 켜서 2주간의 집총훈련을 시켜서 원주 치악산으로 숨어 들어간 인민군과 중공군 패잔병과 지방 공산당원들의 소탕작전을 입석사와 구룡사 양 방 향에서 강원도전투경찰병력과 합동작전을 하여 토벌을 하였다. 당시19세인 태극청소년은 선임하사로 보초와 불침번 그리고 척후는 특 동대원이 앞장을 서고 경찰관들은 지역 한청에서 제공되는 야식과 간식 을 즐기며 오락으로 밤을 지새웠다. 늘 그러했지만 경찰병력의 임전태세는 무방비로 허점을 드러내어 토벌 작전에서 6 25당시의 전황을 알 수가 있었다. 도단부로 귀대하여 곧바로 감찰대원이 되어 김우종 강원도단장을 호위하는 호위병으로 미제 기관단 총으로 무장되었다. 1952년 7월 초순에 현역 소집영장을 받고 상사와 동료들이 사인으로 얼 룩진 태극기로 머리띠를 하고 두개의 노란어깨띠를 두르고 원주 기차역 에 대기한 화차1량에다 50명씩 태우고 탈주를 막으려고 문에다가 각목을 대고 못질을 하였다. 급식이 않되자 자비로 헌병들을 시켜 음료수와 빵으로 이틀을 버티고 밤새 실려간 곳은 포항 기차역이였다. 화차에서 내리자 포항 시내에서 동원된 이발사들이 달려들어 보리밭 이 삭처럼 머리를 삭발시켰다. 내무반으로 인솔되어 양은 대접에다 보리밥 을 담고 밥 위에다 가지로 끓인 국을 부어주어 아침 식사를 하고 신체검사 286 국가보훈처 _

287 를 받았다. 합격된 입소자는 군복을 지급받고 세 평쯤 되는 골방에 몰아넣고 옷을 길아입는 시간을 5분을 주어 옷을 갈아입고 헌옷을 포장하라고 하면서 5 분이 지나면 몽둥이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다음 날 포항 항구에 대기한 미군 군함에 실려 제주도로 가면서 높은 파 도에 전원이 배 멀미로 토하는 신병들에게 소금으로 간을 한 주먹밥이 배 식되었으나 먹을 수가 전혀 없었다. 구토를 한 냄새와 밥 그리고 신병들이 뒤엉켜 배안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모슬포에 도착하여 내릴 때 신병 시신을 보는 순간 먼 하늘만 쳐다보았 다. 훈련병으로 배를 타고 오면서 반항으로 맞아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 기 때문으로 찹찹하기만 하였다. 훈련을 받으러 온 것인지 죽으러 왔는지 분간을 할 수가 없는 찹찹한 마 음으로 5연대 89중대로 배치되어 대열을 갖추고 행군을 하였다. 중대 내무반은 벽돌 구조물 안에다 바다모래를 채우고 시트는 제주도에 서 서식하는 억새풀을 가마니를 풀어 꼰 세끼로 짠 자리가 전부이며 식기 는 일제 항고가 지급되였다. 6.25전쟁 당시는 전쟁을 기피하려고 훈련소에서 문맹을 자초하고 각종 사고를 치면서 늦깎이 훈련병으로 휴전까지 고문관이 되어 바보로 전쟁 을 피하고 살아남은 훈련병이 있었다. 첫날밤 머저리 같은 늦깎이 훈련병이 화장실이 가기가 싫어 의도적으로 막사 옆에다 소변을 보다가 주번 하사관에게 발각되어 300명 전원이 기압 을 받았다. 제1정신봉인 야구방망이로 볼기를 세대씩 때리다 지쳐버린 하사관은 287 푸른 바람이 되어

288 훈병들을 마주 보도록 세워놓고는 서로의 뺨을 세대씩 때리게 하였다. 삼복더위로 찌는 듯 한 더위를 참으며 15주간의 교육훈련도중 안질과 이질은 필수과목처럼 알아야하고, 물이 부족하여 300명의 세수할 물이 50 리터쯤 되는 식통 여섯 통이 배급되면 6개소대 병력이 수건을 적셔서 세 수를 하기 때문에 끝번이 차례가 되면 검정 물로 2리터쯤 되는 물로 세수 를 하여 안질환자가 있으면 전 중대원으로 번져갔다. 그리고 약으로는 중대장님이 취사장에서 얻어온 소금으로, 이질은 고추 장에다 보리밥을 비벼 먹는 것이 이질 약이며, 식채에는 구보로 배가 아프 지 않을 때가지 연병장을 돌면서 약이라고는 전무한 강인한 극기 훈련으 로 15주간 훈련 기간에 여름에 목욕 한번 못하고 세탁 한번을 못한 고된 극기 훈련을 받고, 포항에서 입소할 때 입은 군복 한 벌로 훈련을 마치고, 일등병으로 진급이 되면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훈련소를 퇴소하여, 부산 동래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보충병으로 입대 당시와 변함없이 검은 화차1 량에50명씩 실고, 문짝을 못질을 하여 탈영을 예방하고, 검은 연탄 연기를 뿜으면서 밤새도록 경부선을 달려갔다. <6.25상이 국가유공자> 1952년 12월8일 제주도 신병훈련소에서 15주간의 군사훈련교육을 수 료하고 일등병이 되어 미군함인 LST편으로 부산항으로 도착을 하였다. 1952년7월24일 징집되어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1952년12월9일 처음으로 동래온천에서 입영16주 만에 온천욕으로 목욕을 하였다. 다음 날 한국군 제1사단으로 200명이 보충되어 부산역전에서 화차1량 에다 50명씩 태우고는 탈영을 방지하기 위하여 밖에서 못질을 하여 암흑 288 국가보훈처 _

289 천지에서 밤새도록 경부선 철로를 칙칙폭폭 거리며 검은 연기를 뒤로하 고 달려갔다. 다음날 아침에 서울역전에 도착하여 아침 급식을 하기 위하여 화차의 문을 뜯는 순간 서울은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무장을 한 병력들이 초병으로 거총을 한 상태로 중죄인을 감시하듯이 아침 식사로 반찬이 없는 주먹밥을 물도 없이 배식되어 화차 내에서 식사 를 하고 또 다시 화차 문에다 못질을 하여 문을 봉쇄하고 경의선을 달려 포천역전에 도착하였다. 1사단에서 200명의 보충병을 인솔하기 위하여 병력과 트럭 열대를 대기 하고 보충병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트럭에 20명씩 태우고 감시병 2명과 함께 그날 점심시간이 지나서 1사단 본부가 주둔하고 있는 포천으로 인솔 되었다. 보충병 앞으로 나온 사단 인사과 특무상사가 하는 첫마디가 제 군들 전국에서 제일가는 하나 밖에 없는 1사단으로 온 것을 진심으로 환 영한다. 제군들은 지금부터 종이를 받아 본적과 주소, 그리고 학력과 가족상황 및 특기가 있으면 특기까지 한문으로 기록하여 내고 식당으로 가도록 하 라. 한문으로 못쓰는 자는 한글로 기재하여도 좋다. 200명 전원이 종이와 볼펜을 받아 신상명세서를 써내고 식당으로 가서 식판에다 자율적으로 먹을 수 있는 양만큼 배식을 받아서 후식으로 사과 와 집을 떠 난지 5개월 만에 흰 쌀밥을 배불리 먹었다. 식사를 할 때 사단 인사계는 제군들이 훈련소에서 교육 중에 굶주린 식 사는 이제 오늘로 끝났다. 제군들이 부대로 배치되면 이와 같은 배식이 날 마다 주어질 것이다. 훈련소에서 15주간 꽁보리밥만 먹든 보충병들은 천 289 푸른 바람이 되어

290 국에 온 느낌으로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보충병 200명을 세워놓고 호명을 하여 사단에서 필요한 보충병을 충당 하고 나머지는 연대에서 인솔하러 온 인솔자에게 이끌려 연대별로 트럭 에 올랐다. 사단본부를 떠 난지 얼마쯤 가고 있을 때 인솔사병 2명이 차량 밖으로 나가서 라이트를 끄고 스몰라이트만 켜고 그것도 작업모로 가리고 엔진 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가고 있었다. 협곡을 지나 막 벗어나려는 순간 엄청 남 포성과 불빛이 번쩍번쩍 일자 승차하고 있던 보충병들은 한 덩어리가 되면서 놀라 오줌과 설사까지 지렸다. 아군의 지원사격을 하는 포병부대 의 발사현황을 보고 적의 포탄이 터지는 것으로 오인을 하였기 때문이다. 겁먹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다 보면서 울상이 되어 있을 때 연대본부에 도착이 되어 사단에서와 똑같은 방법으로 연대에서 필요한 보충병을 선 별한 후 나머지를 대대로 보냈다. 가나다순으로 명단이 작성되어 성씨별 로 보충시킴으로 부대 배치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대대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필요로 하는 보충병을 골라내고 나머지 병사 는 각 중대로 인솔되었다. 결국 무능한 병사와 특기가 없는 병사만으로 최 전방 고지로 배치되는 상황을 보고 결과는 가난한 자들은 군에서도 푸대 접을 받아야만 하였다. 나는 3중대로 동료 11명과 같이 이씨 성과 원씨 성, 그리고 심씨 성을 가 진 병사들로 중대 본부로 인솔되어 갔다. 서무계는 명단을 확인하고 철모 네 개를 화이바에서 빼라고 하였다. 너, 그리고 너, 나를 따라와. 두 사람의 보충병을 취사장으로 데리고 갔다. 290 국가보훈처 _

291 취사반장이 다짜고짜로 야! 고향이 어디야? 네, 강원도 입니다. 그래, 감자 바위라. 피식 웃으면서 밥을 두 철모, 국 두 철모를 담아 주었다. 동료들이 기다리는 참호로 배식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야! 뭐 하고들 있어 식사에 대한 감사 안하나?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러나 수저가 없어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빨리 처먹어 이 새끼 들아 수저가 없는데 무엇으로 먹습니까? 뭐, 수저라고 웃기는 놈들 봐라? 야, 이 새끼들아, 군인은 요령이 본분이야, 살기위한 방법을 동원하여 알아서 들 빨리 처먹어. 연대에서 인사계의 말과 상반되는 급식이 여서 눈망울만 굴리고 있을 때 고참 일등병이 목에건 군번줄을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 눈치를 채고 목에건 군번을 꺼내들고 밥은 먹을 수가 있으나 국은 전혀 먹을 방법이 없어 입술만 적시는 흉내를 내고 철모를 돌려가면서 주고받 았다. 그리고 국이 식은 다음에 한 모금씩 마시는 것으로 전선의 밤은 깊 어만 가고 요란한 총소리를 들으면서 사재 밥을 먹은 심정이었다. 고참들 은 실실 웃으면서 보충병들을 원숭이 취급을 하고 있었다. 뒤에 안 일이지 만 고참들이 보충병들에게 장난을 하는 신고식 인줄을 알았다. 그리고 잠은 4방이 2m 남짓한 참호 속에다 12명의 신병들을 3인 일조로 샌드위치 잠을 재웠다. 전선은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조용한 설화가 피 어난 눈 세상으로 온 산이 눈으로 뒤덮여 아침 햇살을 받고 반짝 거렸다. 291 푸른 바람이 되어

292 아침 식사가 끝나자 취사장에서 사용할 땔감을 대검만으로 나무를 베어 오라고 눈밭으로 내 모는 두 번째 시험이었다. 나무꾼으로 사역이 끝나자 전우가 물려준 붉은 피로 물든 담요와 총을 비롯하여 헌 내복과 양말 및 방한모, 그리고 항고와 수통, 끝으로 실탄300 발과 수류탄 두개로 완전무장을 하고, 임진강 앞 절벽을 밧줄을 잡고 내려 가서 뗏목을 타고 임진강을 도하하여 바블 고지에서 중대부관에게 신고 를 하고 중대장이 머물고 있는 노리고지로 가서 신고식을 하였다. 중대장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보충병과 악수로 환영을 하고 중대통신 병을 선발하려고 문제를 냈다. 중대에서 사용되는 야전용 전화기에 사용 되는 건전지가 문제였다. 나는 경찰관서에 재직당시 경험이 있어 1,5v로 BA30이라고 하였더니 중대 통신병으로 남고 11명은 소대로 분산되어 보 충되었다. 주특기가 소총수여서 M1소총을 메고 통신 가설에는 무리가 따 랐으나 중대본부에 머물러 그나마 다행한 일로 받아드렸다. 다음 날 소대장의 보고로 알게 된 것은 지난밤에 보충한 신병 동료 세 사람이 전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 순간 사람의 목숨이 파라와 같은 목숨으로 하루살이였음을 확인하고 살아남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하였다. 내가 소속한 고지는 임진강 건너에 있는 야산으로 중공군이 있는 고지 의 높이보다 반 이하로 낮아서 항상 위험이 노출되었으며 200m정도의 벌 판을 지나면 곧 노리고지로 밤마다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있었다. 노출을 피하기 위하여 교통호를 통해서만 오르고 내리므로 철모가 노출 되면 곧바로 적의 기관총이 날아오는 지형으로 취약 지구였다. 유일하게 임진강 건너에 들어가 있어 한국군을 중공군은 임진강 건너로 292 국가보훈처 _

293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써왔고, 한국군은 임진강을 도하한 유일한 고지를 지키려는 작전상에 요새지대였다. 1953년 1월 어느 날 중공군의 대남방송이 처량하게 고지를 메아리치고 있을 때 고향생각, 부모님 생각으로 망향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포성과 소총소리에 예광탄을 발사하여 대낮처럼 밝은 노 리고지 밑에는 중공군이 철조망을 넘기 직전으로 까맣게 인해전술로 밀 려오고 있었다. 조명탄을 계속 발사 하면서 노리고지에서 아군의 중대병력의 화기가 기 어오르는 중공군을 향해 쏘아대면서 고지는 콩을 볶듯 쌍방의 총소리로 그칠줄을 몰랐다. 자정을 지나 새벽녘이 되자 M1소총은 총열에 탄피가 눌어붙어 참호에 세워놓고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맞섰으나 아군의 화력이 급격하게 약화되 어 후방으로 지원사격을 요청하여 중공군과 아군의 포격으로 노리고지는 엄청난 피해를 불러오면서 초토화되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와 위생병을 찾는 소리로 아수라 장이 된 노리고지는 사상자와 부상병을 돌봐줄 여유도 없이 수류탄으로 기어 오르는 중공군을 향해 정확한 투척이 요구되었다. 그 순간에 무전기가 고장으로 불통이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아군과 중공군의 포격으로 전화선마저 끊기자 중대장님은 울 부짖으며 통화를 시도하였으나 통화가 불가능하자 수화기를 내던졌다. 중대장님은 제발 한 시간만 지켜달라고 장병들을 찾아가서 고래고래 소 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수류탄을 최대한 절약을 하여 투척해야 하며 중대원에게 착검을 지시하 293 푸른 바람이 되어

294 여 탄피가 눌어붙은 총에다 착검을 시키고 만약을 위한 육박전을 준비하 고 중공군을 기다렸다. 그리고 장 하사와 나는 화약 냄새와 흙먼지로 뒤덮인 포탄 속으로 케이 블통을 지고 뛰어 들었다. 교통호는 전사한 아군의 사체를 뉘여 놓아 동료 들의 시신을 발판으로 삼고 어둠을 이용하여 가설도중 바블 고지에 이르 자 포탄이 머리위로 떨어지는 소리에 장 하사는 급히 이 일병 엎드려 하면 서 밀어버렸다. 교통호 속으로 굴러서 떨어지는 순간 폭음과 함께 흙으로 생매장되었다. 장 하사는 결과를 중대장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이 일병을 그대로 두고 한 선만이라도 급히 가설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장 하사는 이 일병을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생사만을 확인하려고 흙 밖으로 나와 있는 이 일병에 발을 힘껏 몇 번이고 걷어찰 때 발이 움직여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친 듯이 맨손으로 손톱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잊고 파냈다고 전해 들었다. 케이블통 위에 남아있는 흙 을 들어내려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장 하사님, 장 하사님 하고 불러댔다. 너, 야! 살아있구나, 다친데는 없어, 일어나봐. 몸이 꼼짝도 안 하는데요? 그럼 같이해보자 하나, 둘, 셋 하고 케이불통을 당겼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하고는 장 하사는 대검으로 끼어있는 케이블통 옆 흙을 파내어 교통호를 넓히고 일으켰다. 야~이 자식 너, 살았어? 네, 장 하사님 감사 합니다. 둘은 교통호 속에서 오고가는 예광탄을 불꽃놀이 삼아 밤하늘을 쳐다보 면서 잠시 한숨 돌리려고 교통호에 누워있었다. 294 국가보훈처 _

295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바블 고지에서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을 보고 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때 어이, 이 일병 가설을 해야지. 네 대답을 하였으나 허리가 미치도록 아팠다. 너, 걸을 수 있겠어? 네, 가설을 마쳐야죠. 눈으로 눈이 얼어붙은 비탈진 고지를 미끄럼을 타듯하면서 고지를 내려 왔다. 그리고 강변을 지나 뗏목으로 밧줄을 잡아당기면서 무사히 도강을 할 수가 있었다. 이번에는 바위 절벽을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려고 하였으나 케이블통과 M1소총을 메고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다. 장 하사가 케이블통과 총까지 모두 올려놓고 목덜미를 잡아당겨 절벽을 겨우 오를 수가 있었다, 새벽 3 시30분에 가선을 마치고 이 일병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장 하사는 전화 를 연결하고 중대장님께 실험 통화보고로 두선을 가설하였다는 보고를 하였다. 뭐야, 두선을 모두 가설 하였다고 하였나? 네, 중대장님. 수고들 했다. 그런데 이 일병이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래 알았다. 후송시켜. 보급품을 운반한 트럭에 실려 의무중대로 갔다. 군의관의 진찰결과 타 박상으로 외상이 없자 방치하고 사경을 헤매는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느 라 옷이 피투성이가 된 위생병들은 울부짖는 부상자를 달래면서 의무중 295 푸른 바람이 되어

296 대는 초상집 같았다. 고통을 줄여주려는 듯 위생병이 진통제를 주사하여 잠을 재웠다. 임진 강을 도하하기 때문에 응급환자를 우선하다가 뒤처진 경환자도 과다 출 혈로 응급환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서 병력부족으로 경환 자는 무조건 원대 복귀시켰다. 고지로 지팡이를 짚고 돌아온 이 일등병은 참호에 누워서 통신 업무를 담당하였으나 지속적인 근무가 어려워서 서무계와 교대가 되었다. 지팡이 를 짚고 휴전까지 서무계로서 중대의 병력 상황을 체크하기 때문에 12명의 동료 보충병들의 신상을 파악 할 수가 있었다. 1명은 오른팔 절단 1명은 척 추골절, 1명은 군악대로 전출되었고, 9명은 전사로 이생을 달리했다. 휴전이 되어 비로소 5이동외과 병원으로 후송되어 진단결과 타박상을 9 개월간 방치로 인한 합병증으로 요추4번과 5번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급히 수도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석고붕대로 석고상이 되어 울산 23육 군병원으로 수송하여 4개월 만에 석고를 뜯어내고 부산 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당시 병원에는 치료약품이 없어 아이나를 개인부담으로 약을 구입하여 병행 치료를 받다가 마산36육군 병원으로 후송되면서 전 문 치료를 육군병원에서 투여하는 약물로 치료를 받았다. 처음부터 전문병원인 36육군병원으로 보내 주었으면 회복이 빠를 것을 여러 병원을 돌려가면서 인턴들의 실험용 자료로서 군의학의 발달을 위 한 연구자료가 되어 결과는 완전 불구자로 장애인이 되었다. 병원생활 만 3년만에 완치가 되어 장애인으로 직업군인을 희망한 결과 주특기가 소총수여서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군에 입대이후 3년6 개월 만에 목발을 집고 첫 휴가로 부모님을 찾아 뵐 수가 있었다. 296 국가보훈처 _

297 그러나 정부는 장애자가 된 상이군인들을 일괄 강제로 전역을 시키면서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전역을 피하려고 외출을 한 사이에 서류만으로 탁 상 전역 심사를 하여 장애자들은 불복을 하였으나 병원에서 침식이 허용 되지를 않았다. 울면서 겨자 먹기로 고향열차에다 몸을 실고, 강원도 병사사령부에서 전역서류를 개봉하면서 전 공상자만이 진급되어 일등병으로 입원하여 병 장까지 정상적으로 진급된 명예제대를 착오로 제2국민병력으로 도장 하 나를 잘못 찍는 과실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시켰다. 항의를 하자 서류를 구비하여 국방부로 가서 수정을 하라면서 병사사령 부의 소관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국방부를 찾은 민원인에게 한번 결 정된 것을 범복할 수가 없으니 권한 밖이라며 민원을 접수조차 못시켰다.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권 등 역대대통령으로부터 외면을 당하였으니 문 민정부에서 거주표와 병역중명서, 그리고 진술서를 갖춘 증빙서류에 의 하여 1997년2월에 국가보훈처에서 복권이 이루어졌다. 국가의 과실로 장애를 입고도 40년 5개월간의 보상을 못 받아 오다가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5년 공소시효가 지난 것을 특별법을 만들어 일괄 보상하는 국민의 정부를 보고 6 25전상자들도 특별법을 만들어 보 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청와대를 비롯하여 요로에 보냈으나 보상법 5년 시효가 경과하여 보상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고 말았다. 이것이 단체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차별예우임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지체 5급으로 평생을 장애로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자부담으로 진료를 받다가 1997년 5월부터 한국보훈병원에서 365일 장기 투약으로 척추협착 증, 만성기관지천식, 고혈압, 고지혈증, 약물 중독에 의한 전신관절염. 백 297 푸른 바람이 되어

298 내장 등 노환과 합병증 치료를 받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며 보훈에 감사를 하며 투병생활의 고통을 감수하고 통원치료를 하는 국가유공자다. <태극기 휘날리며> 1945년 해방으로 마을 할아버지들께서 그려주신 일장기를 개조한 태극기 를 들고 13세 소년은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휘날렸던 태극기를 5년 뒤에 6 25동란으로 26일 피난을 갈 때, 태극기를 품고 함께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남침을 한 인공치하에 들면서 서울로 가던 피난 은 갈 곳이 없었다. 가슴 속에 숨겨둔 태극기를 더 이상 지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호밀이 무성한 화전 밭에 들어가서 돌무덤 속에다 돌로 묻 어버렸다. 청소년은 태극기를 묻으면서 약속한 언약은 어른이 되면 대한민국 인구 의 1000분의1인 30000장을 나누어 주면은 용서를 하여 달라고 태극기에 게 사과를 하였다. 1956년9월30일 전역을 하여 태극기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취직을 하려 고 하였으나 장애인이 된 상이군인을 채용하는 곳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자영업으로 부란기를 직접 제작하며 종란을 양계장에서 구입하여 석유램 프로 21일간을 밤을 새워 병아리를 부화하여 산란용으로 사육를 하다가 뉴켓슐이란 닭의 전염병으로 3개월간 기른 보람도 없이 땅속에다 묻어버 리고 말았다. 빚을 얻어 시작한 양계 사업은 부화기와 종란 사료 등 채무로 더 이상 자본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채무를 변제하기 위하여 오막살이 초가집 마 저 빚으로 넘겨주고는 부모님까지 노숙자가 되고 말았다. 298 국가보훈처 _

299 태극기를 달아주려면 우선 직업을 구해야 하는데 먹고 살기도 힘들어 그럴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 속담에 바다에서 고래잡고 시내에서 피라 미를 잡는 다 라는 속담이 떠올라 모험을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자본금 60만원(당시 쌀60가마니)을 마련하여 허리춤에다 차고 금강운 수 완행버스에다 몸을 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마장동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지리를 몰라 묻고 물어서 성동역전으로 걸어 나와 45번 시내버스로 청계천 4가 육교상가 앞에서 내려 동대문 시 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목발을 짚고 나타난 상이군인이여서 상인들은 호객행위를 하면서도 나 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눈이 없으면 코를 비어간다는 서울 동대문시장에 서 허리에 찬 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광장 시장을 둘러보았다. 소개소에 들어가 점포를 물어 보았더니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 이 가장 싼 점포였다. 60만원으로는 점포를 얻을 돈도 되지 않아 엄두도 못 내고 도깨비시장 을 다음 날 새벽에 나가 보았다. 광장시장과 새마을상가, 협성상가를 구경하여 보았더니 자전거와 오토 바이로 실고 나온 봇짐은 새로 만든 옷을 공장에서 직접 손질을 해서 내다 팔고 있었다. 한 봇다리 속에 싸인 옷을 똑같은 옷들로 지방에서 동대문시장으로 올 라와서 여관에서 잠을 자고 통금이 해지되면서 밀려나온 지방상인들이 주로 고객들이었다. 비닐봉지에다가 치수 별로 골라서 싸놓고 다른 점포를 넘나들면서 순식 간에 물건이 팔려 나갔다. 다음은 남대문 시장과 평화시장을 둘러보았으 나 소자본으로는 동대문 새벽시장이 적당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299 푸른 바람이 되어

300 일주일간을 조사를 한 결과 장사를 가장 못하여 옷이 그대로 남아있는 점포를 골라 점포크기 길이2m중 40Cm너비를 전세30만원을 주고 바지를 반으로 접어서 한 장을 겨우 노을 수 있는 자리를 계약하였다. 그리고 어렵게 하청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릉 변두리공장을 찾아가서 바지를 하청을 주고 동대문종합시장에서 공장주와 같이 원단을 구입하여 제품을 시작하여 매일200장의 바지가 생산되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제일 잘 팔리는 고고바지를 사서 앞주머니 두개에 뒤 주머니 두개를 더 붙인 주머니 네 개의 고고바지를 생산 하였다. 결론은 남의 물건을 모방은 하였으나 주머니 두개가 더 있어 유사한 바 지로 시비를 피했으며 거래처가 없는 장사, 그리고 호객을 못하는 상술로 바지는 날이면 날마다 쌓여만 가고 있었다. 30만원의 자본금이 바닥을 치자 할 수 없이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타 고 중소도시를 찾아가서 양품점을 방문하여 외판원으로 제품의 우수성을 일일이 설명을 하고 외상으로 걸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호가 대도사여서 남대문 물건과 비슷하여 소비자 들은 분별을 못함으로 유사품을 만들어 걸어준 바지를 팔아보고 소비가 가능하면 팔린 것만큼 계산하고 재고는 방문하여 인수를 하며 대도사와 거래가 성사되면 바지12벌을 사은품으로 주기로 하였다.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12벌의 바지를 얻기 위한 약삭빠른 상인들이 거래를 트기시작을 하였다. 1973년에 상경 하여 태극기통장을 만들어 하루에 담배 한 갑,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 값 만큼을 저금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는 점포를 월세로 한간을 임대하고 2년이 지나자 300 국가보훈처 _

301 내 집 마련을 하였다. 22평짜리 집에다 안방과 마루를 공장으로 만들고 사 랑방을 공녀들의 숙소로, 골방을 주거전용으로 사용하면서 자체 공장을 차렸다. 장사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어 점포를 520만원주고 구입을 하고 집과 점 포대금은 거래처에서 원단을 약속어음을 주고 3개월 단위로 외상으로 구 입하여 옷을 만들어 어음 지불 기일까지의 기간을 회전하는 방법을 선택 하여 작은 성공으로 중산층이 되었다. 이것은 은행돈을 잘 쓰는 사람이 사업에 성공여부가 달렸다는 말과 태 극기 통장으로 매일 입금하여 목돈을 만드는 태극통장의 평균잔액으로 은행도 당좌거래를 트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1981년 태극기 구입자금이 태극기30000장을 살수가 있는 1억원의 자금 이 확보되면서 통장을 들고 동대문구 휘경2동에 있는 태극기제조공장인 대한국위선양회를 찾아갔다 김정호 회장은 전라도 출신이며 부인은 강원도 재경홍천군민으로 태극 기제조공장의 재봉사였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타향살이여서 쉽게 사귀면서 태극기1000장을 구입하고, 종로4가에서는 비닐로 국기 함 1000개를 주문제작하고, 동신상가에서는 달력1000부를 주문하여 태극기 를 버린 홍천군 남면과 두촌면 고향에다 먼저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공짜라는 이유로 강원일보에서 미담으로 6 25상이용사 고향 에 애국심을 심다 라는 기사로 벽지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한목소리 로 우리학교 관내가 어려우니 국기와 도서를 보내달라는 청탁이였다. 이번에는 태극기의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알고 교육과 홍보가 절대로 필요하여 총무처에다 태극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요청하고 책방을 돌아 301 푸른 바람이 되어

302 다니면서 태극기에 관련된 책을 모아 드렸다. 그리고 초등학교 바른생활 과 도덕교과서 및 중 고등학교의 윤리교과서까지 수집하여 연구에 착수 하였다. 초등학교에서는 1, 2학년은 음악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미술시간에 밑그 림에다 색칠하기, 그리고 3, 4학년은 국기에 대한 예절교육, 5학년은 국기 계양방법과 6학년이 국기를 그리는 교육으로 초등학교에서 정규과목 단 원이 아닌 특별활동시간을 이용한 교육이 국기교육의 전부였다. 거리에서 학생들에게 태극기는 우리들의 얼굴인데 바로알고 올바르게 달아야 한다고 하면서 태극기를 나누어 줄 때였다. 할아버지 태극기가 밥 먹여줘요? 그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니까 밥을 먹여준다고 봐야지. 그것은 왜요? 네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지를 않느냐? 대한민국에 산다고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닌데요? 너는 우리나라 국민이기 때문이며 자유를 누리고 잘 사는 것이란다. 할아버지 우리나라 국기 때문에 남북으로 길라진 것 맞아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북은 빨갱이여서 태극기 위가 빨강이고 우리나라가 파랑이잖아요? 그것은 빨강은 태양이고 파랑은 태음으로 하늘과 땅이란다. 건곤감이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일본라고 하던데요?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나라의 발전하는 모습이란다. 어른들이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4대 강국이라고 하던데요? 그러니, 4괘는 동서남북과 춘하추동이며, 하늘, 땅, 해, 달을 나타낸 괘 302 국가보훈처 _

303 란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이래서 국기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아버지 우리나라 국기는 그리기에 너무 어려워요. 네가 순서를 모르고 이해를 못해서 어렵게 느끼고 있을 뿐이란다. 어떠한 순서로 그리면 쉬워요? 그럼 내가 하는 말을 지금부터 잘 들어보렴. 네, 할아버지. 태극기는 바탕이 2대3의 직사각형이지. 네, 그런데요. 그래, 직사각형 네 귀에다 두개의 대각선을 그려보자. 태극기를 그리는데 왜, 대각선을 그리셔요? 응, 중심을 찾아 기폭반의 원을 그리려는 거란다. 그 원의 반지름은 알지? 네, 반지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래, 이번에는 좌상과 우하로 지나가는 대각선에다 두개의 원을 그 리렴. 그것은 왜요? 응, 태극을 그리려는 거린다. 접시나 대접을 놓고 그리면 쉬운데요? 그러며는 규격이 맞지를 않기 때문이란다. 꼭 규격이 맞아야 되나요? 그럼, 규격이 맞지 않으면 광고를 하는 포스터이지. 아~아, 규격이 절대로 필요하네요? 303 푸른 바람이 되어

304 그래, 규격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문교부고시 2호로 정했단다. 위의 원은 위를 지우고 아래 원은 아래를 지우면 태극이 된단다. 아~아, 할아버지 맞네요 그렇지, 이번에는 위는 빨강 아래는 파랑을 칠하거든. 그리고 4괘는요? 그래, 먼저 태극과 괘 사이를 태극지름 1/4로 대각선에다 점을 찍자. 그건 왜요? 응, 괘를 그릴 자리를 정하는 거란다. 그 다음은요? 그래, 괘의 번을 뜨는데 괘의 길이가 태극1/2 괘의 너비가 태극지름1/3 로 그리면 국기의 바탕처럼 2대3의 작을 직사각형을 만들어 길이를 반으 로접지. 왜, 접어야 돼요, 할아버지? 괘의 밑그림을 그리려고 그런단다. 괘의 밑 그림을 접은 선을 대각선에 점을 찍은 위에다 대고 번의 접은 선을 대각선에 맞추어 4각형 4개를 그리면 괘의 자리가 그려 진거란다. 이제 효를 그려보자. 할아버지 효가 무어에요? 괘를 보면 긴 막대 그림 낱개가 효라고 한단다. 그럼 중간이 비어 있는 것은요? 그래, 긴 것은 양효 중간이 비어 있는 것은 음효라고 한단다. 할아버지 양효와 음효는 무슨 뜻이 있어요? 그래 양효는 하늘, 낮, 남자, 수컷으로 따듯한 성질을 나타내고, 음효는 304 국가보훈처 _

305 땅, 밤, 여자, 암컷으로 차거은 성질을 지니고 있는 효로 각각 성질이 다르 단다. 그래서 양과 음은 하나가 된 것이 태극이란다. 그럼 남자와 여자는요? 너는 아빠가 엄마에게 아기씨를 주어 네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단 다. 참 이상한 그림이 태극이네요? 그래 모든 것은 인간, 동물, 식물, 곤충 그리고 우주는 성질이 다른 둘 로 짝을 지어서 새끼도 낳고 열매도 맺도록 만든 거란다. 아~아, 그럼 효는 어떻게 그려요? 그래, 효 너비는 괘 너비1/4, 그리고 비어있는 효와 효 사이는 괘 너비 1/8로 그리고 검정색으로 칠을 하고 바탕에 남아있는 대각선을 지우면 정 확한 태극기를 쉽게 그릴수가 있단다. 태극기를 그리는 방법을 노래로 만들었으니 가사를 따라 그리도록 하 여 보아라. 이번에는 악보를 건네주었다. 할아버지 태극은 무슨 그림이여요? 응, 태극기란 우주의 본체이며 우리가사는 세상을 만든 이야기라고 하 더라. 그럼 우주대자연이 태극인가요? 옳거니 잘 맞추었다. 할아버지 이제는 태극기가 남한과 북한이라고 안 하겠습니다. 이제 잘 알았으니 태극기를 선물로 주지 잘 달 거라. 할아버지 좀전에 죄송하구요, 감사합니다. 305 푸른 바람이 되어

306 서울 중랑초등학교에서 태극기 전시회를 열고 3학년 이상을 태극기를 그리는 노래를 지도하고 국기를 그리게 하였더니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려냈다. 그러므로 무의미하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홍보와 교 육이 필요하여 연구를 계속하였다. 20년간의 태극기연구로 명예강사와 명예교사로 태극기 전시회를 열고 전시회에 참석한 교육자 그리고 학부모, 지역사회 단체장을 참석시켜 어 린이와 함께 교육하고, 전시한 작품을 한 눈에 알아보도록 국기를 쉽게 그 릴 수 있는 동요를 만들어 노래를 들려주면서 군관민 교육을 하고 참관인 전원과 학부모에게는 공장에서 이월된 상품인 의류와 태극기를 기념품으 로 나누어 주어 효과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나라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 는 것을 이용하여 태극 기를 보급하였더니 대부분이 태극기는 공짜로 주는 것으로 알고들 있었 다. 벽지초등학교 어린이를 초청하여 청와대 경내와 국회의사당, 남산타워, 어린이회관과 공원, 전쟁기념관과 독립기념관 및 현충사를 현장 학습지 도로 교과서에서 삽화 또는 사진으로만 접한 것을 직접 볼 수가 있다는 체 험이 중요하여 열린 교육으로 받아 드렸다. 견학이 끝나면 선물은 어김없이 태극기와 도서를 들려 보냈다. 그리고 경상북도 학생회관 및 전라남도교육공무원 연수원과 전라북도 전주기전여자중학교 강당, 강원도 고성군, 양구군, 화천군, 철원군, 홍천 군, 춘천시, 서울시 등 학교의 요구에 따라 나라사랑관 자료60000점으 로 29개 장소에다 대한민국국가상징물 자료를 전시하도록 자료를 지원해 주어 가까이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데도 큰 몫을 하였다. 306 국가보훈처 _

307 물론 전시하고 강연이후 기념품은 의류와 태극기를 주었다. 또한 자식들이 환갑연을 차려 줄때도 대한민국국가상징물 전시회를 열 고 생일이 6월7일을 하루를 앞당겨 6월6일 현충일 행사에서 애국가를 4절 까지 개창하며 음주와 가무를 폐지하고 환갑 잔치를 발표하면서 음식과 음료수만을 대접하고 하객들에게 태극기와 애국가액자 國 旗, 國 歌, 國 자료를 동봉하여 줌으로 태극기에 미친 사람이라며 정신병자라고들 하 였다. 아울러 딸들의 결혼식 하객들에게 태극기를 답례품으로 주려고 하자 예 식장주가 말려서 벌금5만원을 미리 준비하고 태극기와 애국가액자를 주 는 보급방식으로 태극기를 주었더니 매우 기뻐들하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태극기가 제작공장마다 품절이여서 어떻게 알 고 전화를 하여 보관중인 태극기4000장을 인천 및 지방으로 택배로 보내 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보급하여 목표하였던 30000장을 초과 한 수량인 37,300장을 보급 하면서도 태극기를 6 25전쟁터에서 버렸다 는 사실을 극비에 부쳐두었다가 한국일보사 기자의 질문으로 태극기를 보급한 동기를 물어 비로소 사실을 50년간의 비밀을 고백하였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면 보다 더 많은 태극기를 달아주는 것이 소원인데 건강의 장애로 아쉬움이 남는다. 목적은 탁상공론식 애국보다 작은 것일지라도 실천하는 나라사랑으로 평화통일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먼저 해이해진 안보의식을 드높이고 집 집마다 태극기를 달아 휘날리게 하여 정신통일과 민족통일을 그리고 이 념을 통일하여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을 이룩하여 태극기가 휘날릴 때 필연적으로 평화적으로 남북통일을 이끌어내는 마음으로 꿈을 키우듯이 307 푸른 바람이 되어

308 국기를 보급함으로, 이웃들은 태극기가 밥을 먹여 주느냐며 미친 짓거리 라면서 태극기에 미친 정신병자로 손가락질을 뒤로하고 남아있는 여생을 한 장이라도 더 많은 태극기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아주 특별한 태극기 사랑으로 태극기할아버지로 이름보다 더 많이 알려진 할아버지는, 2002 년 월드컵 때 세계 속에 자랑스런 우리 얼굴 우리 태극기가 휘날리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308 국가보훈처 _

309 베트남 전쟁을 통한 감회 안흥종_장려상 / 인천 남구 도화3동 1972년 1월 8일, 찬바람 맞으며 부산 제3부두에서 수송선을 타고 출발 하여 월남에서 임무를 마치고 1973년 3월 14일 나트랑(Nha Trang : 냐짱) 에서 고국 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 440일 동안 판랑(Phan Rang : 판장)의 제30연대 수색중대 장거리 정찰대 소총수로 근무했다. 제30연대가 주둔 해있던 판랑은 동쪽으로는 넓은 평야와 바닷가가 펼쳐져 있고, 북쪽과 남 쪽 역시 평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시계가 매우 양호하다. 사막화된 지역으로 넙쩍 선인장 군락지가 많으며 키 작은 나무와 가시 덤불이 뒤엉켜 있고, 먼지 나는 모래땅에 강인한 생명의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그러나 서쪽으로는 혼롱산이라는 700m의 험준한 산악으로 연결되고, 그 같은 산악은 캄보디아 국경까지 연결되어 베트공의 소굴로 활용된다. 판랑 지역의 하늘은 맑고도 파랗다. 석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는 서 쪽하늘로 기울어지고 관망대에서 경계근무를 하다보면 혼롱산 너머로 떨 어지는 붉은 태양 빛은 아름다운 주황색 노을을 만든다. 간헐적으로 산을 향해 포탄이 발사되고 포성과 함께 포연이 피어오른다. 수색중대의 작전 방식은 특이하였다. 월남에서는 연대급 이상 작전을 309 푸른 바람이 되어

310 대( )작전, 대대이하 단독 작전은 통상 소( )작전이라 한다. 월남에 근 무할 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당시 상황을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평 화협정을 체결하고, 월남전쟁에서 손을 빼려는 미국과 전쟁의 최종승리 를 획득하려는 공산군의 이해가 맞서 치열한 전쟁 상황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한국군 역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소 작전 위주의 작전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수색중대는 통상 작전부대에 배속되어 작전 부대의 첨병소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적과 치열한 공방전보다는, 수 색 매복전투를 통해 전과를 올린다. 아군은 은거한 적을 찾아내어 소탕하 고, 적은 숨어서 아군을 저격하는 이상한 형태의 전투였다. 일찍이 타국에서 전투한 역사가 없었던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국군의 파 병은 한국이 세계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소극적 현실안주 에서 탈피하여 용기와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가난으로부터 해방과 동시에 경제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양을 만 들어 놓은 것이다. 월남파병으로 인하여 한국이 국제무대에 당당히 등장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한국군이 참전하여 피를 흘려가며 도와줬던 남베트남이 무너지고 사이 공은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물든 시민들 상당수는 수용소에 끌려가 재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 었다. 남베트남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종교지도자, 지식인들은 적화통 일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이다. 적화통일에 기여한 이들도 북베트남은 모 조리 투옥시켰다. 한번 정권을 몰락시킨 사람들은 다른 정권에도 위협적 310 국가보훈처 _

311 인 존재가 될 것으로 보고 궤멸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밤낮으로 대치한 상황에서 우리가 망하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패망한 월남의 경험에 서 우리는 똑똑히 보아왔다. 정글을 누비며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적은 물론 자연과도 싸웠던 용맹스런 용사들이 다시 뭉쳐 그날의 산 교훈을 후세에 알리고, 옛날 씩씩 했던 용사답게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기꺼 이 응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여전히 약육강식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적자생 존의 대결장이다. 국제사회에서 감정의 호소는 한갓 구호에 지나지 않는 다. 정신무장과 힘을 기르지 않으면 강자에게 먹히고 마는 것이다. 확고한 국가관, 철저한 정신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월남으로 떠나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파월을 명받은 나에게 선임하사는 막걸리 한 되를 받아주면서 위로해 주었고 휴가 갈 때 신으려고 관물 함에 반짝반 짝 광내고 모셔놓은 군화는 일등병 헌 군화와 바꿔 신고 광주 31사단 예하 부대 해남에서 홀홀 단신으로 소총 반납하고 따불백 메고 일차 집결지 춘 천으로 향한다. 월남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아군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 고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인생에 한번 있는 군 생활 에 전투경험을 해보고 싶은 특유의 젊은 혈기가 발동한 것이다. 춘천 1차 집결지 연병장에는 각 부대에서 지원한 병사, 차출된 병사들 311 푸른 바람이 되어

312 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하고 순서대로 트럭에 분승하여 오음리로 향하는데 바깥바람이 왜 그리 매섭고 차가운 지 얼굴이 얼얼하고 콧등이 시려온다.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고갯길이 구절양장이든가, 난생처음 이렇게 가파 르고 험준한 길이 처음이라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오금이 저려오고 추위 에도 손바닥에는 땀이 쥐어지고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높은 절벽에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끼며 달구지 운전병은 솜씨좋게 곡예 하듯 좌로 꺽고 우로 꺽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험준한 강원도 산세가 장 엄하게 느껴졌다. 실전에 대비한 강도 높은 훈련이 끝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파월 날짜를 기다리며 오음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훈련 끝나고 받은 일년 치 봉급이 병사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준 다. 그동안 함께 훈련받은 정들었던 전우에게 막걸리 한 사발 받아주고, 몇 번 들락거렸던 술집에 작별인사하고 외상값 착실히 갚아주고 홀가분 한 마음으로 조용히 고향생각 해 본다. 집에서는 파월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3.1운동 당시 탑골 공 원에서 학생의 신분으로 시위에 참여하여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 른 애국지사로서 조국독립을 위해 애국하셨다면 아들은 이역만리 월남 전투에 참가하여 애국함으로서 부자가 다 함께 조국을 위한다는 자부심 이 생겼다. 72년 1월 새해가 시작되고 트럭에 분승하여 오음리를 출발했다. 주점에 서 술 따르던 아가씨들 분바르고 눈썹 화장하고, 태극기 손에 들고 열심히 흔들며 오빠 살아서 돌아와~ 베트콩 많이 잡아~ 드문드문 주민들 모습도 보이고, 월남 전투에 임 312 국가보훈처 _

313 하는 병사들에게 손 흔들어 주는 주민들, 아가씨들, 죽지 말고 무사히 돌 아오라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 싸워서 이겨 승리하고 돌아오리라 다짐하면서 차량은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춘천으로 향했다. 춘천에서 군악대의 환송식을 끝내고 전용 야간열 차로 부산에 도착하니 우리를 월남까지 태우고 갈 커다란 수송선이 대기 하고 있다. 처음 타보는 수송선은 촌놈 얼을 빼고도 남았다. 배는 왜 그리 큰지, 가 설해 놓은 발판으로 배에 오르니 의장대와 부산 여고생들은 백마군가 합 창으로 환송 해 주었다. 가설해 놓은 발판은 철거되고 부두와 배 사이에는 바닷물이 넘실대고, 육지와 유리된 상황에서 여인들은 오빠~ 여보~ 하고 소리쳐 봐도 안타 까운 메아리만 들릴 뿐...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아이디어한번 기발하다. 선물 꾸러미에 빨랫줄 단단히 묶고 한쪽 끈으로 사과를 칭칭 동여매어 서 배위로 힘껏 사과를 집어던지면 갑판에 있든 병사가 사과를 받아 줄을 잡아끌어 올리면 낚시 줄에 고기 달려오듯 선물꾸러미가 배위로 올라오 는데, 계급 성명을 적은 것을 보고 본인을 찾아서 분명하게 전달하는 전우 애를 발휘하고, 인기 있는 내용물은 김, 오징어, 볶은고추장, 고추장에는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이 담겨져 있고 우리아들 무사함을 밤낮으로 빌고 또한 빌었겠지, 속으로 또 얼마나 우셨을까. 배는 천천히 선수를 돌리며 오륙도를 멀리하고 부 웅~~ 부 웅~~ 구성 진 뱃고동소리는 긴 여운을 남기고 육지와 서서히 이별하면 웅성대던 병 사들은 갑자기 숙연해지며 뱃전을 잡고 훌쩍이는 병사, 멍하니 하늘을 바 313 푸른 바람이 되어

314 라보는 병사, 부산 제3부두를 향해 넋 나간 듯 바라보는 병사들 싸워 이겨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배는 서서히 육지와 멀어지고 사방이 바다만 보이는 망망대해로 항해하 고, 이런큰배처음타본다. 식사시간 길게 늘어선 줄이 한발자국씩 식당으로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데 고국 취사장에서 풍기는 구수한 된장 냄새가 아니어서 느끼한 특유의 국물냄새가 비위를 건드린다. 느글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체력 보강을 위해 우물우물 삼키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고, 비위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니 속은 거북하고 배는 흔 들리고 출렁거려 멀미와 함께 구토가 시작되고 정신이 아뜩해지며 몽롱 해온다. 전쟁도 치르기 전에 이대로 배위에서 죽는구나 생각된다. 매서운 삭풍 불어대는 1월에 얼얼한 볼 부비면서 출항했는데 며칠 지나 니 훈풍이 불어오고 입었던 야전잠바는 따불백에 집어넣고 정글복 입어 도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 이름 모를 물고기가 은빛 반짝이며 포물선을 그리면서 물위로 튀어 오 르고 뒤 따라오는 은빛 고기도 궤적을 따라 솟구쳤다 떨어지는 물고기의 율동은 한 폭의 그림이였다. 지평선 위에 걸려있는 섬들을 멀리하고 육중한 배는 선수를 남으로 향 하여 일주일동안 밤낮으로 계속 미끄러지고, 어느 병사가 월남 땅이라고 지평선 아득한 곳을 가르친다. 검은 육지가 길게 시야에 들어왔다 선미에 있던 병사들 잘 보려고 우르 르 선수 쪽으로 몰리면서 미지의 땅을 바라보는 천진한 병사들의 얼굴에 는 전쟁을 하러 가는 긴장된 모습이 아니라 유람선 타고 가는 모습으로 보 314 국가보훈처 _

315 였다. 배 옆으로 아오자이 입고 롱나이 쓴 여인이 출렁이는 바다위에 나뭇잎 같은 조그마한 배에 의지하고 열심히 노 젓는 모습이 전쟁하는 나라 같지 않다. 한가로이 고기잡이 가는지 긴 장대로 느릿느릿 노 젓는 평화스런 모습 이 인상적이였다. 키 큰 야자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배가 나트랑 항구에 정박하자 드디어 병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따불백 메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낮선 월남 땅을 두리번거리며 하선하여 배치되는 부대별로 앞뒤 좌우로 정렬하여 집합했다. 병력 수송할 군용 트럭이 대기해 있고 처음 본 M16소총 메고 인솔 병은 방탄조끼 입은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는 유난히 두 눈이 반짝였다. 투이호아에 위치한 백마 28연대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28연대 병력 을 인사담당 장교가 호명하여 인원 파악하고 나서 트럭에 분승하여 출발 하는데, 오음리 내무반에 함께 고락한 최상병 트럭에 오르다 나와 눈이 마 주치자 둘이 동시에 손 흔들어 주고 신의 가호와 함께 무사하기를 진심으 로 빌어주었다. 다음은 29연대 순으로 병력 실은 트럭은 긴 행렬을 만들고 주둔지로 향 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판랑에 위치한 30연대가 가깝게 있는 관계로 제일 늦게 수송되는데, 인 원 파악을 하려고 횡 방향으로 앞줄 좌로 번호시키고, 종 방향으로 뒤로 번호시키는데, 구령과 동시에 핫, 둘,셋, 넷, 다, 여,~~~뒤쪽 병사 힘차고 신속하게 번호 끝, 인사담당 장교 고개를 갸우뚱, 앉음 번호를 시켜보니 315 푸른 바람이 되어

316 한명이 남았다. 군에서는 남아도 곤란하고 모자라도 곤란하다. 병사가 한명 남았으니 이를 어쩌랴, 병력을 인수인계해야 하는데 인원 파악이 늦어져서 인사장교 성질나서 소리 빽빽 지르고, 일일이 호명하는 데 호명당한 병사 옛! 소리와 함께 용수철에 튕기듯 위치로 신속히 튀어 나간다. 호명 당하지 않은 병사가 분명히 한명 남았다. 남은 병사는 28연대에 배 치를 받았는데 북쪽이라 위험하다 생각하여 전투도 하기 전 꽁무니부터 뺀 것이다. 승차할 때 우왕좌왕 어수선한 틈에 슬쩍 30연대 병사 쪽으로 세치기 하였다. 28연대 수송차량은 진작 출발했고 인사장교는 열심히 치지직~~거리는 무전기로 교신이 잘 안되는지 알았나? 오~바, 알았다 오~바 씩씩거리고 나서 문제의 병사를 정강이 차고 따귀 때리고 흠씬 얻어터진 병사는 30연 대 병력으로 잡아줬는데 얻어맞고도 30연대에 떨어진 안도감으로 씩 웃 는 모습이 너무 우습다. 우리를 실은 차량이 부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열하는 태양에 노출되어 가열된 차량은 엔진 열과 함께 기름 냄새를 풍겨 숨이 탁탁 막히 고, 욱하고 구토할 뻔했다. 차량에 가속이 붙으니 스치는 바람결에 한결 숨쉬기가 부드러웠다. 처 음 보는 주변 열대 환경이 너무 신기했다. 키다리 야자나무가 가로수처럼 길옆으로 듬성듬성 서있고 파초 잎 치렁 하게 늘어진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는 자전거 페달 밟는 아가씨의 팔락이 는 아오자이는 젊은 용사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316 국가보훈처 _

317 백마 30연대 수색중대로 배치 받다 도로 따라 차량은 빠른 속도로 달린다. 대로변 좌우에는 올망졸망한 작 은 집들이 보이고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천진한 눈망울로 우리를 쳐 다보고 있었다. 평화가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과일 가게에는 바나나, 파파야가 쌓여있고, 야자나무 양쪽에 그물 같은 망태기를 붙잡아 메어놓고 그 안에 어린 아이는 편안하게 잠자고, 엄마인 듯 한 젊은 여인이 한번씩 흔들어준다. 람브레타라고 불리우는 삼륜 딸딸이 차가 많이 보였다. 람브레타 범퍼 를 발판삼아 2~3명이 뒤꽁무니를 붙잡고 위험하게 질주한다. 30연대 위병소는 빳빳하게 날 세운 바지 입은 헌병이 차렷 자세로 꼿꼿 하게 서있다. 30연대서 2주간 M16소총 다루는 법, 부비츄랩 설치방법 등 실전에 필요 한 훈련을 다시 받고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정글복에는 소금인지 모래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범벅이 되지만 휴식시간 그늘 속에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남국의 바람을 맞으면서 월남 에서 마지막 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수류탄 투척하니 잠시 후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와 모래먼지가 솟구친 다. 유탄 발사기로 총류탄을 날려보면 퐁 소리와 함께 탁구공만한 크기의 유탄이 날아 가는 것이 보이고, 잠시 후 목표 지점에 연기와 흙먼지가 푹 석 일면서 유탄이 터진다. 2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연대 수색중대로 배치 받았다. 월남에서 근무할 수색중대 본부 막사 앞에서 중대장께 신고하고 내무반에 들어가니 벙커 구조는 반 지하로 마대에 모래를 담아 둑을 쌓고 지붕도 모래 마대로 덮혀 317 푸른 바람이 되어

318 있으니 반 지하 동굴과 마찬가지다. 통과 의례로 신고식 하는데, 모자 삐딱하게 쓴 불량해 보이는 일등병이 신고 태도 건방져 보인다고 뺨을 갈긴다. 아픔이야 참겠지만 일병에게 상 병인 내가 따귀 맞는 순간은 치욕과 수치감으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일등병 양어깨를 확 밀치니 침상에 걸려서 뒤로 발랑 나뒹굴어졌다. 신 고식 구경하던 파월고참이 느닷없이 옆차기로 옆구리를 가격하여 정신이 아뜩하고 한동안 숨도 쉴 수 없었다. 월남에서는 파월고참이 군번고참보다 우선으로 얼마쯤 지나야 융화되 고 전우애가 싹트는 것이다. 동물들의 영역 싸움처럼 한동안은 군번고참, 월남고참 가지고 으르렁거린다.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동화되어 정글 전 에서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저녁에 캔 맥주 파티가 있었다. 신고할 때 옆구리를 가격한 천병장이 맥 주 한 캔을 권한다. 진한 전우애를 느끼면서, 비로소 고국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파월할 때 걱정할까봐 집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입대하던 그해 돌아가시고 어머니께 불효자의 무사함을 편지로 소식을 전했다. 그때부터 귀국 할 때까지 거르지 않고 한달에 한통씩 꼭 소식 전 했다. 수색중대 배치 받고 처음으로 장거리 매복을 나갔다. 어둡기 전에 간단하 게 개인호를 구축하고 매복해야 한다. 전방에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격발기 옆에는 수류탄, 수타식 조명탄, 그리고 소총은 품안에 안고 하룻밤을 지새 운다. 318 국가보훈처 _

319 동보작전에 투입되다 30연대 동보작전에 투입하기 위해서 군장을 꾸리고 3일치 식량도 배낭 에 집어넣고 수통에 물 채우면 50kg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 우리가 타고 갈 치누크 헬기는 프로펠라 날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연병장에 대기해 있다. 치누크 헬기를 타고 총구방향이 밑으로 향하도록 16m소총을 거꾸로 매 고, 투투투투~~요란한 치누크 소리는 고막을 진동시켰다. 렌딩지점은 지형이 고르지 않아 헬기는 얌전히 내리 못하고 지상에 살 짝 떠서 기우뚱 기우뚱거린다. 먼저 배낭을 집어던지고 뛰어 내리는데 기 우뚱거리는 헬기에서 뛰어내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뒤를 따라 천병장이 뛰어내리는 순간 갑자기 헬기는 큰 동작으로 흔들 하고 요동쳐서 그만 옆으로 고꾸라지면서 발목 골절상을 입어 작전에 투입 하지 못하고 타고 온 헬기에 곧바로 실려 가서 의무대 신세를 진 것이다. 4박5일 작전을 마치고 띄고 다음 숙영지를 향해서 지도에 표시한 좌표 로 이동하면서 첨병을 선두로 정글을 헤치고 전진한다. 키 큰 교목 나무 우거진 대 정글보다 관목 우거진 소 정글에서 행군하기 란 무척 힘들고 넝쿨식물 가시가 낚시 바늘처럼 진행방향과 반대 방향으 로 날카롭게 도사리고 있어 전진을 방해한다. 덤불을 가르고 길을 개척하 노라면 땀은 비 오듯 하고 무수한 가시나무가 할퀴고 간 손등에는 선혈이 흐른다. 전방에 넙적 선인장 군락이 보였다. 유일하게 정글화를 뚫는 식물은 선 인장 가시 밖에 없었다. 선인장 밭을 만나면 우회할 수밖에 없다. 다음 숙 영지로 이동하고 주요 길목에 크레모아와 부비츄랩을 설치하고 피곤한 319 푸른 바람이 되어

320 몸으로 야간 매복에 임하면서 가면에 들어갔다. 새벽 동틀 무렵 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부비츄렙이 터지고 검은 연 기가 치솟았다. 사주경계하고 조심스럽게 폭발 지점에 내려가 보니 남자 한명 여자한명이 숨을 거둔 체 엎드려있다.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남자 베트콩 가방에는 놀랍게도 권총과 피아스타 뭉칫돈이 발견되었다. 권총과 상당한 돈뭉치로 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베 트콩이 틀림없는 것 같다. 죽은 남여가 부부사이인지 알 수는 없으나 베트 콩은 부부가 함께 행동하는 수가 많다. 여자 베트콩, 남자 베트콩은 성별 확인사진을 찍어서 기록하고 봉긋한 가슴으로 봐서 젊음을 알 수가 있었다. 당소 파랑새 귀소 나와라 오~바~ 감도 양호한가 오~바~ 날려라 오~바~ 베트콩 2명 사살, 노획물 다수 확보 오~바~ 베트콩 사살 혹은 생포하면 훈장받는데 공동으로 설치한 부비츄렙에 걸 렸으니 누구를 줘야하나? 이땐 상관 말 잘 듣고 말썽피우지 않는 모범 병 사를 훈장 상신하는 것이다. 훈장에 대한 욕심도 없고 전장에서 훈장에 대한 가치를 계산할 만큼 약 지도 못했다. 그저 맡은 임무 충실하고 몸성히, 무사히 귀국하는 것이 소 원이었다. 내일이면 부대로 귀대한다는 기대감에 수색 정찰 활동을 계속하면서 C- 레이션으로 한 끼 식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목적지로 정찰은 계속된다. 앞서 걸어가는 황상병은 어께에 피가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왼 320 국가보훈처 _

321 부상인가? 황상병은 당황하여 정글복을 벗어보니 시커먼 거머리가 굵은 지렁이만큼 배 부풀려 피를 빨아 먹은 것이다. 거머리는 나뭇잎에 거꾸로 매달려 볼펜심 보다 가는 몸으로 굶주리고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면서 몸통을 지렁이처럼 부풀려 한 달은 거뜬히 견딘다. 거머리에게 영양 보충을 제공했던 전우에 게 위생병이 지혈제 흰 가루약을 뿌리고 붕대를 감아준다. 거머리에 빨리 면 한동안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한다. 허리에 찬 20발 들이 탄창 어께 띠에 채워 넣은 탄창이 천근처럼 무겁게 조여 오고, 배낭에 C-레이션 넣고 수류탄, 연막탄, 소총 등 군장 무게만 해 도 한 짐이였다. 가장 중요한 수통은 탄띠에 2통, 배낭에 4통 정도 넣는데 이걸로는 어림없다. 정글화 끈으로 묶어서 휴대할 수 있는 한 능력껏 메달 고 나면 약한 병사는 일어서서 걷기도 힘들다. 매복하고 나서 아침에 수통 마개를 열고 마시는 하룻밤 냉각된 물은 감 로수와 비교하랴. 얼마나 차고 시원한지 마셔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다. 행군 도중 전방에 총성이 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M16소총 연발로 작 동시켜 총구방향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허리에 찬 탄창을 절반이상 소진 시켰다. 군장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좁은 계곡에서 총소리가 천지 를 진동시켰다. 잠시 후 고요한 적막감에 말할 수 없는 고독이 밀려온다. 첨병이 적을 발 견하여 방아쇠를 당겼는데, 적은 정글 숲으로 몸을 날려 도망쳐 버린 것이 다. 놓친 적은 잡기가 힘이 든다. 주변 지리에 밝아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동굴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내부가 칠흑처럼 캄캄한 동굴에서 수색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321 푸른 바람이 되어

322 모두 물이 떨어졌는지 빈 수통을 흔들어 보고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쉰다. 내 탄띠에는 마개도 안 딴 비상용 물이 한통 그대로 남아 있는데 목 말라 있는 옆 전우 눈치 때문에 물도 못 마시고 함께 갈증을 느낀다. 전투 시 식 량은 나눠 줘도 물은 안 나눠준다. 목이 타들어가고 혓바닥이 바싹바싹 조여 온다. 앞에 가는 차상병 수건 비틀고 땀 물로 입추기고 다시 내뱉는다. 침도 말라서 입안이 끈적거린다. 못 본체 수통 마게 열고 한입 탁 털어 넣었다. 눈 마주칠까봐 모른 체 허리 에 찬 수통 집에 쑤셔 넣었다. 뒤 따라 오던 포병 소위 핼쓱한 얼굴로 물 한 모금 한다. 포병소위에 게 수통 째로 건네줬다. 딱 한 모금 입에 털어 넣고 다시 돌려준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말이 없다. 눈치로 충분히 고맙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귀대해서 포병소위 자기 막사로 부르더니 맥주 다섯 캔을 P.X.에서 사 다놓고 마시라고 한다. 작전 중 물 한 방울이 맥주 다섯 캔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전쟁터에는 외출 외박이 없다. 월남 전쟁터에서는 공식 외출 외박이 없다. 민가나 시가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작전을 마치고 차량으로 귀대 할 때 주변 경관을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다. 촌로들이 농기구 들고 들로 나간다. 한가하게 나무 그늘에 흔들그네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아낙도 보였다. 작전 후 귀대차량이 지나가면 월남 꼬마들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온다. 배낭에 남아있는 C-레이션 깡통을 월남 꼬마에게 주는데 앞에 있는 녀 322 국가보훈처 _

323 석부터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진다. 아이들은 깡통 떨어진 방향으로 몰리면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지고 아이들은 그쪽으로 우르르 몰리면서 아우성이다. 서로 받아먹으 려고 난리다. 힘센 놈이 뺏기도 한다. 봉지 커피, 껌도 집어 던졌다. 지금 생각하니 아이들을 놀린 것이 무척 미안하게 느껴진다. 전쟁으로 인한 젊은 미망인은 얼마나 많이 생겼는가. 전쟁터에서 아빠 를 잃은 전쟁고아도 많았다.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여인들, 어린아이가 무 슨 죄가 있겠는가? 내무반에 월남 꼬마 하나가 있다. 파월 선배들이 베트콩 수색하여 전과 를 올리고 아기는 부대에 대려 와서 키운 것인데, 부대 내에서 먹고 자고 따이한 군인아저씨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열한살짜리 어린이로 영리하고 귀엽게 생긴 꼬마를 영철이라 이름 지었다. 30연대가 동보작전을 끝내고 수진마을 옆 연대 휴양소에서 하루를 보낸 다. 막걸리 잘 담그는 병사는 미리 막걸리를 제조하여 식판 가득 찰랑찰랑 하게 부어 마시는 술 맛이 일미였다. 보드랍고 뽀얀 해변의 모래가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잔잔한 바다는 호 수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휴양지 해변의 석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해는 찬란한 주홍빛을 발하고 지평선을 향하여 점점 기울고 있다. 전과가 있으면 무공훈장 상신을 하는데, 작전 중 적이 나타나면 적을 보 고 사격하는데 적과 가까이 있는 몇 명의 병사 총구에서 발사되는 총알에 사살 되는 것이다. 여럿이 동시에 M16소총으로 적을 사살하면 누구 총구 에서 발사된 총알에 맞았는지 입증이 안 된다. 323 푸른 바람이 되어

324 중대장이 무공 대상자를 상신하면 아무 불만이 없다. 상신 대상자는 누 가보아도 착실히 군복무한 병사의 몫이다. 훈장받은 병사나 받지 않은 병 사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월남에 참전한 장병 전부 훈장감이다. 병영생활에 가장 큰 낙은 고국에서 보내온 어머니의 편지였다. 어머님 의 편지 읽고 또 읽었다. 고국에서는 재주가 없어 변변한 애인도 못 챙겼 다. 다른 전우들은 예쁜 애인에게 편지 왔다고 자랑하는 것을 보면 부럽기 도 하고 질투도 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편지만큼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을 라고, 월남에 도착 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올렸는데 어머니가 답신을 해준 것이다. 눈이 좋지 않아서 돋보기 쓰고 붓으로 쓰신 편지에는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과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이 실려 있었다. 파월장병 모든 어머님의 심 정도 한결 같았겠지. 내용은 전번 달에 온 편지의 내용과 대동소이한 월남 에는 독충이 많다는데 물리지 말고 밥 많이 먹고 건강 하여라. 편지 말미 에는 꼭 건강조심 하여라 로 끝난다. 부적마냥 어머니 편지를 정글복 상 의에 고이 접어 넣고 정찰 매복을 나섰다.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2~3시간 걸어서 지정된 좌표에 도착하여 매복 하는데 하루는 요령을 부려 한 시간 정도 행군하다가 적당한 지점에 매복했는데 하필 그날 적이 나타났다는 첩보가 있었는지 포대에서 지원 사격한다. 포는 매복지점 바로 앞에 폭음과 함께 포탄이 터진다. 잠시 후 조명탄이 터지고 상공에서 환한 불기둥이 낙하산을 타고 천천히 선회한다. 우리는 납작하게 엎드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 올까봐 마음을 조렸다. 다행히 더 는 포가 날아오지 않았다. 324 국가보훈처 _

325 놀라서 오줌을 지린 병사도 있었다. 하마터면 아군 포에 우리가 맞을 번했다. 날이 밝고 매복 철수하여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무사히 귀대했다. 그 다음부터는 요령부리지 않고 상황판에 좌표 찍힌 장소가 계곡이면 계곡, 가시덤불이면 가시덤불 어디든 간에 목적지까지 가서 철저히 매복 임무를 이행했다. 태양은 작열하고 푸르고 맑은 하늘엔 뭉게구름이 솜뭉 치처럼 떠다니는 모습은 고국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근거리 정찰 수색을 나선다. 농촌 마을을 지나고 넓은 들판이 나온다. 십오륙세쯤 되어 보이는 어린 목동이 회초리 하나 들고 소 떼를 잘도 몰고 간다. 어미 소, 송아지 합하여 50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소 떼를 회초리 하나로 고삐도 매지 않은 소 들을 잘도 유도하는 평화스런 정경이였다. 비옥한 땅, 개척 가능한 넓은 개활지, 광활한 평지, 우거진 정글이며 충 분한 일조량, 한없이 축복 받은 자연 환경에도 불구하고 멀리서 간헐적인 포성이 들려온다. 어린소녀가 늙은 아버지 발목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며 울고 있었다. 다 가가서 살펴보니 농부는 어린 딸과 함께 밭일을 하러 가다가 폭풍 지뢰를 밟아 발목이 잘려 나갔다. 우는 어린 딸이 가여웠다. 근거리 수색 정찰할 땐 위생병은 따라 가지 않는다. 다행히 배낭에 연고와 붕대가 있어 간단히 소독약을 바르고 압박 붕대 감으니 붕대에 피가 스며들며 붉은 색으로 변한다. 아픈 중에도 농부 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병장으로 진급하다 병장 진급자 명단에 안상병이 포함되었다고 중대본부에서 연락이 왔다. 325 푸른 바람이 되어

326 중대장님께 진급 신고하고 병장으로 계급장을 바꿔다니 천하가 발아래 다. 어깨에 힘주고 막사(벙커)에 들어가니 조금 전까지 안상병 하든 전우 가 안병장 하고 고쳐 부르니 용어에 숙달되지 않아 듣는 내가 도리어 어색 했다. 오늘 저녁에 연예인 위문 공연 있다는데 공연히 신바람이 났다. 전장에 서 분 냄새도 못 맡은 병사들이 국내 일류 정상급 연예인들의 노래와 함께 섹시하게 춤추는 모습을 누가 싫어 하리요. 쇼는 앞자리가 제일 좋다. 앞 쪽으로는 장교들의 좌석이 배치되고 뒤쪽부터는 병사들이 빨리 저녁 먹 고 선착순으로 앉으면 된다. 이상한, 이상해가 혓바닥을 도마뱀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름날름대며 한바탕 재롱떨고 둘이서 함께 사회를 진행하면서 여흥을 돋운다. 조미미 씨가 바다가 육지라면 을 열창하고, 밤안개의 현미 씨가 반짝 이 옷을 입고 등장했다. 바나나 가지를 양 갈래로 묶어 목걸이로 준비하여 마음에 드는 연예인에게 걸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현미 씨에게 잽싸 게 뛰어 올라가서 목걸이 해줬다. 다음은 하춘화 씨를 소개하는데 미성년자여서 주민증이 없어 특별 케이 스로 월남에 위문왔다고 소개한다. 영감~ 왜 불러~ 앙증맞게 노래하고, 김세레나 씨는 등이 다 패인 옷을 입고 새 타령하면서 간간이 획 휙 돌면서 등을 보여준다. 병사들은 등을 보고도 박수를 친다. 무희들이 다리 번쩍 높이 들며 캉캉 춤을 추면 싸움에는 노도처럼 용감 한 병사들도 반쯤 벌린 입에서 침이 흐르고 얼이 빠진다. 다음날 해변에 위치한 연대 휴양소에서 하루를 보낸다. 막걸리도 있고 326 국가보훈처 _

327 맥주도 있고, C-레이션 박스 속에는 술안주로 적당한 것들이 많이 있다. 간이 연단이 마련되고 엄하기로 유명한 최근식 연대장이 까만 색안경 끼고 나타나 잠깐 사회 보면서 연예인을 불러내서 노래시키는 지극히 인 간적인 모습을 보였다. 노래듣는 병사, 술 마시는 병사, 나무그늘 에서 낮잠 자는 병사, 휴양소 만큼은 자유스럽다.연예인과 사진 찍기를 하는데 일대일로 찍으려면 하 늘의 별따기, 연예인은 앉아 있고 좌우로 서고 찰칵, 다음 타자 전과같이 찰칵, 인기 있는 여자연예인 뒤로는 사진 찍지 못해 안달하는 병사들로 줄 이 길게 늘어져 있다. 작전이나 매복이 없을 때는 군사 기본 훈련과 사격훈련을 실시하여 긴 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틈틈이 시계확보를 위해서 제초작업과 진지 보 수작업을 하는데, 벙커와 벙커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고 둘이 지나갈 수 있는 폭과 가슴높이의 깊이로 교통호를 판다. 건기 때는 태양열을 받은 모래땅이 돌덩이처럼 딱딱하여 곡괭이로 쪼아 도 곡괭이가 통통 튕겨 난다.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구슬땀 흘리며 작업해 도몇자못판다. 철모에물떠서추기고나서파는요량도배운다. 행군 또 행군 작전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물이다. 언제 물을 만날지 장담을 못한다. 우리나라 계곡에는 의례 물이 있으나 월남엔 고목이 어우러진 정 글 깊은 계곡에도 물이 없다. 수통은 바닥나고 물 보급이 늦어지고 계곡에서 물을 못 만나면 갈증으 로 인한 타들어가는 고통은 죽음보다 더하다. 327 푸른 바람이 되어

328 오늘은 식량을 공수 받는 날이다. 치누크의 로타 소리가 멀리서 투~투~ 투~ 하면서 밀림의 정적을 깨고 들려온다. 연막탄으로 위치를 유도하고 지형이 험하여 렌딩 할 수가 없어서 낮게 떠서 C-레이션을 투하하고 헬기 는 날아 가버렸다. 작전 중 식량을 공급 받을 때가 제일 위험하다. 병사들이 몰리면 멀리서 베트콩이 저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에 사주경계 철저히 하고 조별로 식량과 물을 챙긴다. 물은 포탄 장약통에 넣고 뚜껑을 덮으면 완전 밀봉이 된다. 부대에 남아 있는 병사들이 식량을 실을 때 의례 물도 실어주는데 물이 실려 있지 않았 다. 식량과 더불어 물이 공수 되는 줄 알고 아끼고 아끼든 물 한 수통을 다 마신 것이다. C-레이션에 쥬스가 들어 있으나 갈증 날 때 쥬스를 마시면 입안이 달착 지근하여 갈증은 더욱더 심하게 느껴진다. 물외에는 대책이 없다. 침도 마 르고 눈이 뒤집혀 진다. 베트콩에게 포로로 잡혀 가는 한이 있어도 시원한 물 한바가지 벌컥벌 컥 마셨으면 원이 없겠다. 다리는 후들거려지고 피곤하고 갈증에 목이 탄다. 목적지까지 수색하며 행군해야 하는데 몸은 천근같다. 걷는 것이 아니 라 다리 옮기는 곳으로 몸이 억지로 따라간다. 내가 가는가? 다리가 걷는 가? 정신마저 몽롱해진다. 물도 안 마셨는데 땀은 구슬처럼 흘러내린다. 손바닥으로 연신 얼굴을 훔치며 전진 또 전진, 주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없었다. 가시달린 대나무 숲을 지나고 험악한 산 하나 넘으니 계곡이 나온다. 멀 328 국가보훈처 _

329 리서 쏴 하는 물소리에 귀가 번쩍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이 보다 더 반가우랴. 비실대던 병사가 갑자기 생기가 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포말을 일으키 며 굽이쳐 흐른다. 주변은 얼마나 조용하고 아름다운지 자연의 경관에 감탄하고, 강물의 유속은 계곡이라서 대단히 빠르고 소용돌이치는 곳은 수심이 깊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계곡물 따라 걸으면서 목 처박고 맑은 물을 꿀꺽 꿀꺽 원 없이 마셔댔다. 땀에 찌든 정글복은 자동으로 세탁된다. 목만 내밀고 전신을 담궈 보기도 하고, 머리까지 물속에 집어넣으니 너무 시원한 나머지 자동으로 쉬했다. 바위도 걸리고 수심도 들쭉날쭉하여 물속에서 행군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끼 낀 바위 타넘다가 미끄러져 소총 들고 머리부터 물속으로 처 박혔다. 잠시 만에 정글복은 깨끗하게 세탁, 탈수, 건조, 착용까지 완전 자 동이였다. 수색 정찰할 때 따가운 햇볕도 견디기 힘들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 비는 행군을 방해한다. 먹구름이 끼이고 금시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진 다. 시야를 방해하고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걷다보면 미끄러지기 일쑤다. 자칫 낭떠러지기로 굴러가면 굉장히 위험하다. 앞에 총 자세로 행군하기 때문에 미끄러지면 빨리 손을 짚을 수가 없어 그냥 엉덩방아를 찧는다. 미끄러지면서 급히 옆에 있는 넝쿨을 잡으니 가 시나무 여서 가시나무 훑고 지나간 자리가 아려오면서 피가 베여 나온다. 키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대 정글이 나타났다. 작전에 단골로 매복나간 경험이 있어서 독도법에도 자신이 붙어 이젠 첨병으로 나섰다. 월남 고참 329 푸른 바람이 되어

330 병은 신참 소위보다 낫다는 말은 그 만큼 실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방 가까이 멋스럽게 생긴 나무 가지에 공작새가 긴 꼬리를 늘어트리 고 망중한을 즐긴다. 자연 상태의 공작은 처음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공 작새를 찬찬히 살펴보니 햇빛에 반사되는 꼬리털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우아한 공작이 숲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면서 선물로 가장 아 름다운 깃털 하나를 뽑아준다. 작전 끝나고 귀대하여 여고 다니는 사랑하는 누이동생에게 쓴 편지 속 에 예쁜 공작 꼬리털의 태극 문양 같은 둥근 끝부분을 잘라 동봉해서 고국 으로 보냈다. 주변에 멍청한 병사가 있으면 덤으로 고생한다. 고향이 충청도 보은인 천상병은 등치도 크고 힘이 장사며 마음도 좋다. 스마일 얼굴에 고참 비위 도 잘 맞추고 성실하다. 조별로 한대씩 할당되는 크레모아, 최류탄은 항상 천상병 몫이다. 별명 이 멍청도여서 멍청이로 바꿔놓았다. 가시 뒤엉킨 소 정글, 경사 심한 오솔길을 넝쿨잡고 올라 가는데 줄기 식물은 거의 날카로운 가시가 낚시 바늘처럼 예리하게 돋아있어 요령있 게 기어 올라가야 긁히지 않는다. 갑작스런 최류가스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앞서든 멍청이 천상병이 동 굴 수색용으로 지급된 최류탄을 급경사길 넝쿨잡고 오르다가 나무 가지 에 걸려 안전핀이 뽑아지며 최류탄이 터진 것이다. 눈물 콧물 범벅 되고 천상병은 눈을 못 떠 탄띠에 찬 최류탄을 빨리 제 거도 못하고 전우 전부 최류가스 맛보고 연신 제치기를 해댄다. 재빨리 최 류탄을 뽑아서 멀리 집어던지고 발길로 천상병 엉덩이를 힘껏 걷어찼다. 330 국가보훈처 _

331 제치기는 한참을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되도 행군은 전진한다. 행군 도중 갑자기 사지가 뒤틀리고 다리가 뻣뻣해지며 통증을 동반하고 쥐가 난 것 이다. 전우가 주무르고 맛사지 하여도 나중에는 온몸이 조여 온다. 주리를 틀면 이처럼 아플까. 사지 뒤틀어지는 나를 정글에 두고 갈수도 없고 나 한사람 때문에 작전 에 차질을 초래할 수도 있다. 분대원들이 배낭이며, 실탄이며, 탄띠며, 각 종 군장을 나눠 가지고 다음 매복 지점으로 이동했다. 내 군장도 힘든데 남의 군장까지 짊어지고 간 전우가 고마웠다. 최류탄 터트려 엉덩이 걷어 채인 멍청이 천상병은 가장무게 나가는 배 낭을 메고 묵묵히 이동한다. 내 결코 그들의 전우애를 잊지 않으리다. 마지막 동보작전 공하사 전사하다 연대급 이상 작전을 대작전, 대대단위 혹은 수색중대 단독 작전은 통상 소작전이라 한다. 월남전이 치열하게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백마 30연대 동보 작전이 전개되었다. 작전 떠나기 전 손톱, 머리털을 잘라서 봉투에 넣고 군번 성 명 기재하여 중대 본부에 제출한다. 전사하면 전사자들은 십자성부대로 후송되고 영현부대에서 사지 날아 간 전우는 봉합한 후 추모행사를 한 후 화장하여 유골함에 전사자 숫자 많 큼 나누어 담는다. 여럿이 화장할 때 유골이 섞이기 때문에 고국에 유골을 보낼 때 머리털, 손톱만은 본인 것으로 영혼과 함께 가족에게 인계된다. 내무반에서 공하사와 친하게 지내고 마음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전우 중 331 푸른 바람이 되어

332 한사람이다. 집안이 무척 어렵다고 했다. 부산에서 상고를 나와서 은행에 근무하다 군에 입대 했다. 홀어머니와 여고 다니는 누이동생이 있어 사실 상 가장 노릇하던 효자였다. 작전에 투입하기 전 공하사와 나는 함께 유서를 썼다. 유서는 관물함 맨 위 칸에 넣어두고 전사하면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집으로 편지 보내 주기로 한 둘만의 약속이었다. 공하사와 오전 오후 교대로 첨병을 섰다. 오전 첨병은 내가서고 C-레이션으로 점심 때우고 오후부터는 공하사가 첨병이다. 가는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글 속에서는 날씨가 흐리면 컴컴하 고 주변이 어둡다. 행군할 때 통상 개인거리는 5M 이상이고, 첨병과 바로 뒤따르는 1번 소 총수와의 거리는 20M이상 유지하고 수색 정찰한다. 오후 작전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정글에서 따~콩 하는 한발 의 총성이 고막을 울렸다. 한발의 총성으로는 적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아 저격방향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한발의 총성은 공포심을 유발한다. 첨병 공하사가 저격당하여 옆으로 쓰러진다. 총알이 옆구리를 뚫고 어 께 쪽으로 관통 하였다.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물~ 물~ 하며 물을 찾는 다. 부상에는 물을 마시면 않된다는 검증되지 않는 상식에 물을 주지 않았 다. 내 무릎에 기대어 손을 꼭 잡는다. 몇 분 후 희미하게 어..머..니~~ 말 끝도 채 잇지 못하고 꼭 잡은 손이 힘없이 스르르 풀어진다. 이승과의 이별이 이렇게 허무한줄 알았으면, 물이나 실컷 먹이는 건 데... 하는 회한이 남았다. 고국에 홀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뒤로하고 사랑 332 국가보훈처 _

333 하는 사람과 못내 이별이 아쉬운지 반쯤 뜬 눈으로 영원히 갔다. 요청했던 헬기가 그가 눈을 감은 직후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도착했다. 붉은색으로 적십자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진 구호용 헬기였다. 그러나 정글이 무성하여 랜딩할 수 없기 때문에 수타식 연막탄으로 현 위치를 확인시켰다. 전우의 시신은 판쵸 우의에 정성으로 말아서 싸고, 별 도의 끈이 없기 때문에 도폭선으로 잘 묶어서 헬기에서 늘어뜨린 로프와 견고하게 연결했다. 헬기에서 윈치로 서서히 감아올리는데 아뿔사 시신이 나무 가지에 걸 려 휘청 휘청한다. 무게 중심이 잡히지 않은 시신이 빙글 돌면서 줄이 목을 감고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갈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전우들의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 러내렸다. 첨병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적정도 살펴야 하지만 길을 제대로 유 도 하는 것도 첨병의 몫이다. 지도를 잘못 보고 길을 잘못 들면 전우 전부 가 골탕먹는 정도가 아니라 위험한 상황까지 초래된다. 저물기 전에 다음 목표지점에 크레모아 설치하고 부비츄렙도 설치 완료해야 한다. 엉뚱한 지점에 매복하면 포 지원사격 받을 때 아군 포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지도에 표시된 등고선을 잘 보고 이동할 때 급경사는 피하고 완만한 쪽으로 올라가야 덜 지친다. 정글에서 첨병서면 섬득하고 무섭다. 베트콩이 숨어서 저격하기 때문 에 적은 못보고 총소리만 들린다. 이때 꼭 한명 희생한다. 연발이 아니고 딱 한방 쏘면 어느 방향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대단히 기분 나쁘고 으 스스하다. 333 푸른 바람이 되어

334 교대로 첨병서다 전사한 전우를 조금 전 헬기로 보내고 오후 내내 나 혼 자서 첨병으로 전진한다. 적막한 정글이 갑자기 무서워진다. 언제 적으로 부터 총알이 날아올 지 예측할 수 없다. 세포 하나 하나마다 촉각을 세우 고 좌우를 살피면서 경계한다. 전방에 검은 물체가 재빠르게 바위 뒤로 사라진다. 사라진 바위 쪽을 향 하여 소총으로 연발로 발사했다. 베트콩을 놓친 것이다. 바위 뒤를 수색하 니 입구가 삼각형으로 생긴 동굴을 발견하여 조심스레 입구에서 조금 들 어가니 동굴 안에 넓은 반석이 있고 귀한 물도 밑으로 쫄쫄 흐른다. 동굴 속에서 배낭을 발견하여 풀어보니 까맣게 말린 바나나 풀잎에 돌 돌 말린 김밥처럼 생긴 밥 덩어리는 아직도 따끈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조그마한 종이 곽을 열어보니 솜에 싸인 탄알이 반짝반짝 빛났다. 귀한 탄 알한발쏘면꼭한명다친다. 북쪽 하노이에서 남쪽 캄란까지 야간에 산악에서 산악으로 인력에 의해 운반 됐으리라 짐작한다. 동굴에서 분대병력은 충분히 은거 할 수 있는 구 조였다. 위험하여 더는 수색할 수 없었다. 바위 밑에 또 바위가 있고 집체 보다 큰 바위가 얼기설기 놓여 있는 구조이고 내부는 캄캄하고 동굴 구조 도 모른다. 입구도 출구도 여러 군데 있어서 베트콩이 바위동굴 속으로 들 어가면 잡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군이 당한다. 함포를 때려도 끄떡도 없는 천연구조다. 키 큰 갈대밭을 지나 듬성듬성 풀이 난 황무지를 행군한다. 시야가 확 보되어 적으로부터 위험은 덜하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땅에서는 후끈후 끈한 복사열이 올라오고 위에서는 따가운 태양열에 콩죽같은 땀이 흘러 내린다. 334 국가보훈처 _

335 완전 군장에 통풍이 안되는 방탄복까지 착용하고 무더위와 싸워야 한 다. 매복하면 모기와 전쟁이다. 피부가 예민해서 모기에 쏘이면 살이 부풀 어 오른다. 자그마한 불개미에 물리면 가렵고 따갑다. 열대 지역에서 병사 를 괴롭히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매복지점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배낭을 벗어본다. 능숙하게 지형지물를 이용하여 진지를 구축하고, 크레모아 후 폭풍 고려하여 안전한 위치에 설 치하여 격발기는 수류탄 옆에 놓고 밤을 지세운다. 유난히 밝은 달을 바라 보니 문득 고향 생각에 그리운 부모 형제가 생각났다. 병사들 사이에 많이 불리워진, 머~나먼~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고~ 향~~ 속으로 끝까지 불러보았다. 별빛은 더욱 반짝인다. 저 별이 바로 십자성이구나. 아침의 적막을 깨는 쾅~하는 굉음에 사주경계 하면서 부비츄렙 터진 장 소에 내려가니 베트콩이 한명은 죽고, 한명은 부상으로 신음한다. 즉사한 적군은 관자노리 부분에 피가 조금 나고 부상한 적은 오히려 피 범벅 이였 다. 월남어 교육대 출신 유병장이 부상병을 신문한다. 신문에 답이 충분하지 못한 지 유병장이 대검으로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위협하니 싹싹 빌며 순순히 응하는 분위기다. 죽은 베트콩의 시신은 묻어 주었다. 땅이 딱딱하여 잘 파여지지 않아서 주변의 낙엽을 긁고 돌을 주워서 시신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묻어주고 다시 작전은 계속된다. 수색대가 작전부대 첨병소대 수색중대가 작전부대의 첨병소대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적과의 치열 335 푸른 바람이 되어

336 한 공방전은 경험하지 못하고 수색 정찰하며 은거한 적을 찾아내서 소탕 하는 임무였고, 적은 숨어서 저격하는 이상한 전투형태였다. 정글에서는 일렬로 행군하기 때문에 안전을 고려하여 소총은 안전 잠금 장치를 한 후 전진한다. 첨병만 안전장치 풀고 신속하게 사격할 수 있는 준비 자세를 취하고 정찰한다. 독립가옥이 주로 베트콩의 은신처로 사용 된다. 가옥을 수색하면 사람이 금방 기거한 흔적은 발견되나 어디로 도망 쳤 는지 텅 비어 있다. 주거형태는 지상에서 1m 정도 공중에 띄우고 집을 지었으며 방과 방 사 이에는 촘촘히 엮은 발 같은 것으로 칸막이하고 바닥은 담요가 깔려 있다. 지붕은 코코넛 잎과 갈대 잎을 엮어 덮은 원시적인 형태의 집인데 통풍이 잘되고 비가 세차게 퍼부어도 비 한 방울 안 새는 퍽 과학적인 구조이다. 수상해 보이는 독립가옥을 발견하고 첨병의 수신호에 뒤 따르던 전우들 이 바짝 긴장하며 경계 태세를 취한다. 나의 수신호는 뒤로 전달되고 모두 행군을 멈추고 포복 자세로 경계 돌입한다. 후미 분대는 전방의 상황을 알 수도 없고 보지도 못한다. 독립가옥이나 동굴에 숨어있던 베트콩에게 역습당한 예가 있어 가옥을 수색 할 때는 사격한 후 조심스레 수색하는 것이다. 첨병조가 독립가옥을 향해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가옥을 수색하니 부부일 것 같은 남녀가 사살되었고, 갓 돌을 지냈을법 한 어린 애기가 죽은 엄마 젖을 잡고 까만 눈망울로 죽어있었다. 절친한 전우 영혼과 함께 헬기로 태워 보낸 경험도 있고, 사살된 베트콩 을 묻어준 경험도 있지만, 천진난만했을 애기의 죽음을 대하니 당황해진 336 국가보훈처 _

337 다. 전쟁의 뒤안길에는 전쟁과 무관한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뒤따른다. 전쟁에 투입되고 처음으로 많은 회의를 느꼈다. 내가 전사하면 고국에 계신 부모 형제가 얼마나 슬퍼할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숙영지에 서 밤을 지새운다. 목숨이 아깝고 적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공연히 첨병 서는 게 싫어졌다. 무겁게 억누르는 알지 못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독립가옥을 집중사격 했던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귀대할 때 까지 첨병을 서지 않았다. 행군 또 행군 조심스레 좌표에 표시된 지점으로 피곤함도 잊은 채 수색 은 계속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풀잎으로 교묘히 위장된 1m 깊이의 함정에 끝 이 뾰족한 죽창이 가지런히 꽂혀서 전우들의 정강이를 겨냥하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다 함정에 빠지면 죽창에 찔리고 발목이 부러지기도 한 다. 죽창 끝은 독성이 있는 물소 똥을 발라 놓아서 상처가 나면 잘 낫지 않 고 파상풍으로 곪는다. 정글 속에서 휴식은 시원하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 쪼여도 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습도가 없고 건조하여 땀이 빨리 증발하여 시원함을 느낀다. 고목 밑둥치 움푹 패인 부분을 등에 대고 나무뿌리에 팔걸이하면 무척 편하다. 나무 그늘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다. 휴식도 잠시뿐 군장 추 스르고 앞으로 전진 또 전진, 마을이보이고 도로가 보인다. 동보 작전이 끝난 병사들을 태우기 위해 트럭이 쭉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행군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트럭 옆에 물을 실은 탱크로리가 반갑 게 맞이한다. 물 한 수통을 단숨에 마시고 나니 갑자기 피곤함이 엄습해 337 푸른 바람이 되어

338 온다. 열흘간의 작전에 면도를 못해서 털보 조상병의 몰골은 온통 털북숭이가 되었고 이 후로 털 빠진 원숭이라 별명 하나를 붙여줬다. 전투 시 묵묵히 아무 말이 없다. 작전 끝나면 전우들은 비로소 농담을 한다. 전우 태운 차량은 부대를 향해 덜컹대며 잘도 달린다. 베트콩을 수색할 땐 반짝이던 눈동자가 작전이 끝났다고 긴장이 풀어진다. 달리는 차 위에서 시 원한 바람 맞으면서 남국의 식물을 바라보고 이국의 정취를 느껴본다. 작은 마을을 지나 한참 달리니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났다. 주민들과 꼬마 들도 용감한 따이한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답례로 같이 손을 흔들어 주고, 아오자이 차림으로 열심히 자전거 페달 밟는 아가씨에게 초점을 맞춘다. 차량은 멈추고 병사들은 도로 밑으로 내려가서 시원하게 물줄기를 배출 한다. 근방에 아이스크림과 빙수 파는 장사도 있고 음료수 파는 장사도 있 었다. 이빨 까맣게 물들인 아줌마와 아가씨가 과일을 판다. 이왕이면 다홍 치마 아가씨 가게로 가서 바나나를 샀다. 남은 C-레이션과 물물교환이다. 월남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배낭에 남 아 있는 C-레이션 깡통을 평상위에 전부 쏟아 붓고 손가락으로 C-레이션 과 바나나를 가르키면서 첸지, 첸지, 오케이, 바나나 부꾸부꾸.. 하면 다 통한다. 과일 파는 꽁까이 나에게 반했는지 배낭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양 을 준다. 자대에 남은 대기병은 작전 나간 전우를 위해 등짐으로 C-레이션 을 연대 헬기장까지 운반했고 장약통에 물 받아서 어께에 메고 시동 걸린 헬기를 향해 뛰었겠지. 내무반에 남아있는 전우를 위해 바나나 한 배낭 가 득 메고 주둔지로 향해 차량은 달린다. 338 국가보훈처 _

339 동보작전 끝낸 병사를 실은 트럭이 박수를 받으며 속속 연병장에 도착 하고 함께 정글에서 작전한 수색 중대장님의 훈화를 듣는다. 먼저 떠난 전 우를 위해 명복을 빌며 잠시 동안 묵념 올렸다. 작전 중 함께 첨병서다 전사한 공하사, 내 약속대로 유서 를 부산에 계 신 홀어머니 앞으로 필히 부쳐주마, 살아서 무사히 귀국하면 동작동에서 다시 한번 만나자. 정글에서 여러 날 고생했다고 중대장님이 격려하고 위로 해주었다. 분 대별로 맥주 한 박스로 회식한다. C-레이션에 들어있는 크레커 사이에 땅 콩쨈 넣고 딱 마주 붙이면 특급 안주가 된다. 할당된 맥주가 부족하여 분 대원이 거출하여 월남신참 조상병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사오라고 심부 름을 보냈는데 올 때가 되어도 오질 않는다. 베트콩에게 잡혀 갔나, 탈영을 했나, 다른 전우를 시켜 P.X에 가서 찾아 오라고 보냈다. 잠시 후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조상병이 혀는 꼬부라졌고 허리도 연 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린다. 따귀 한대 올려 부쳤다. 안병장님 한잔 했습니 다, 꺼~억. 죄송꺽~합니다 꺼~억. 나중에는 엉엉 운다. 진짜대책안서네, 저새끼재워! 회식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평소 온순한 녀석이 술만 들어가면 개망나니가 된다. 조상병에게 P.X. 에 가서 맥주 사오라고 시켰더니 한 박스 메고 오던 도중에, 헬기장 옆에 쉬면서 한캔 또 한캔 마시다가 나중에는 한 박스 다 마시고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늘어지게 취침하던 놈을 찾아 온 것이다. 그 후부터는 절대로 술 당번을 조상병에게 시키지 않았다. 339 푸른 바람이 되어

340 훈련하다 이빨 날리다 작전 매복이 없을 때는 자체적으로 긴장 이완방지를 위하여 교육훈련 을 실시한다. 사격장 사선에서 소총 사격을 연습한다. 수색중대원 거의가 일등 사수다. 작전 시 별로 사용하지 않은 로켓포 사격도 연습한다. 우측 어께에 얹어 서 좌측 무릎 90도로 굽히고 우측다리 뒤로 쭉 뻣치고, 무게 중심을 앞쪽 으로 향하게 하고 격발 시키면 로켓포 떨어진 곳에 굉장한 파괴력과 함께 폭발음이 대단하다. 한번 쏜 로켓포는 버린다. 정글전에서는 별로 운용하지 않지만, 분대능대, 분대횡대, 행군종대, 일 렬종대. 분대 전투 대형 취하면서 각개전투 훈련과 함께 마지막으로 수류 탄 투척, 구령과 함께 분대원이 동시에 수류탄을 던지면 짧은 시차를 두고 콰과쾅~,쾅,쾅!! 폭음을 내며 터진다. 수류탄 표면이 매끈매끈하고 손에 잡으면 아담하게 손아귀에 쏙 들어온 다. 수류탄 투척 자세는 엎드린 상태에서 던지기 때문에 멀리 못 날아간다. 수류탄 투척 시 바로 옆 최병장이 던진 수류탄이 언덕을 살짝 넘어줘야 하는데 언덕을 넘지 못하고 대굴대굴 내 앞으로 굴러 온다. 얼마나 놀랬는 지 가제 뒷걸음치듯 엎드려서 잽싸게 양 손을 사용하여 뒤로 물러나는데 최병장이 불안한 지 머리들고 굴러 오는 수류탄을 보면서 가제 뒷걸음하 는 순간 쾅!~ 하고 폭발하였다. 철모에 흙인지 파편인지 먼지와 함께 흠뻑 뒤집어썼다. 수류탄 투척에 실수한 최병장이 피와 함께 모래를 탁 뱉어낸다. 자세히 보니 이빨이 부서 진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파편이 눈은 피하고, 입술을 뚫고 이빨을 차례대로 부셔 340 국가보훈처 _

341 버린 것이다. 나트랑 야전병원에 후송 되어서 한 달 만에 돌아온 새까만 최병장, 아~ 하고 입 벌리게 한 후 후렛쉬로 비춰보니 흰색으로 반짝이는 금속 이빨이 빛에 반사되어 입안이 훤하다. 월남에서 군 생활도 적응이 되었고 더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신체 조건 이 기후 풍토에 순치되고, 얼굴도 까맣게 현지화되어 가고 땀도 그다지 흘 리지 않는다. 월남 신참시절 보초 서면 졸려고 해도 베트콩이 야간 침투 할까봐 겁이 나서 두 눈이 말똥말똥 하면서 전방을 응시하고 바람소리에도 신경이 곤 두서는데, 월남 생활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오면 보초를 서도 꾸벅~ 꾸벅 졸린다. 잠 쫓으려 수통에 채워진 커피를 연속으로 마셔도 잠은 달아나지 않는다. 비몽사몽간에 전방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며, 조명 지뢰가 밝은 빛을 발하며 타들어간다. 얼떨결에 적이 침투하는 줄 알고 소총 방아쇠를 당겼다. 초소에서 총소리가 나면 옆 초소는 엄호 사격을 해야 한다. 실탄 중간 중간에 예광탄을 집어넣어서 탄도가 붉은색으로 궤적을 그리며 유성처럼 휘어져 반딧불처럼 날아간다. 다른 한 초소에서는 수타식 조명탄을 발사하여 하얀 낙하산 타고 조명 탄이 너울너울 춤추면서 선회한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상황은 종료 됐다.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보초 교대하고 벙커로 돌아가는데, 좌측 초소 근무자가 다가와서 조금 전에 들 고양이가 나타나서 조명 지뢰를 건드려서 조명탄이 터진 것이라 고 했다. 야간에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조명지뢰를 철조망 밑으로 촘촘히 341 푸른 바람이 되어

342 설치해 놓은 것을 들 고양이가 쥐 잡다 실수로 건드리기도 하고, 바람난 암고양이 쟁탈전으로 숫놈끼리 다투다 터지기도 한다. 간식으로는 냉면이 최고다. 별다른 조리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간 단히 조리해 먹는다. 식판에 냉면 넣고 물 부어서 벙커 지붕 위에 올려놓 고 햇빛 쪼이면 잠시 후 물도 따끈따끈하고 냉면은 적당히 불어있다. 물로 행궈내고 스프 풀어서 비벼 먹으면 비빔냉면, 물 찰랑찰랑하게 부어서 먹 으면 물냉면이 된다. 취사장에서 안남미 밥에 지친 입에 야들야들한 냉면 발이 입을 즐겁게 해준다. 후루룩 단숨에 먹고 나면 또 한 그릇 해치우고 싶다. 보급품 실은 헬기 경계병으로 혼롱산에 갈 준비를 했다. 연대에서 빠끔 히 보이는 혼롱산 중턱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매일 포사격 한다. 포 떨어진 자리는 멀리서 봐도 황토색으로 변한 황무지였다. 혼롱산 꼭대기에 소대 병력이 주둔해 있고, 유일한 보급 루트로 헬기를 이용한다. 식량과 식수를 헬기로 공급해야 한다. 시누크와 달리 바깥이 보이고 시야가 탁 트인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 여 매도 열린 문 쪽으로 헬기가 기우뚱하면 기분이 섬뜩하다. 위에서 내려 다본 정글은 무척 아름답다. 푸른 정글이 비단 보료보다 더 푹신하게 느껴 진다. 같은 종끼리 군락지를 이루고, 연두색의 무리, 연록색의 무리, 초록색의 무리들이 둥글게 형성되어 있고, 갈색 띈 군락이 군데 군데 보이며 정글은 수를 놓은 것 같았다. 색깔의 경계가 선명하게 나타난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번 감탄했 다. 움직이지 않은 식물들도 저마다 구역이 있고 살아가는 터전을 인정해 342 국가보훈처 _

343 주고 사이좋게 공존한다. 수색대는 첨병 소대로 선투입하여 수색 하다 보면 베트콩으로부터 가장 먼저 노출되어 생명의 위험을 느낀다. 숨은 적으로 하여금 저격을 당할 수 있다. 대작전보다 오히려 소작전이나 매복 나가서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 전진하다보면 뒤에서 누가 잡아당긴다. 돌아보면 대나무 마디에서 자라 난 줄기의 가시에 배낭이 걸려 대나무가지 탄력에 꼭 사람이 잡아당기는 것같다. 베트콩과의 싸움이 아니라 정글과 싸움을 먼저 해야 한다. 밤은 깊어가 고, 사방은 괴괴하고, 주변이 너무 조용하여 오히려 음산하고 무서웠다. 갑 자기 후두둑하는 빗방울 소리와 함께 점차 굵은 빗줄기가 폭우로 변한다. 초저녁에 야전삽으로 개인 경계지점에 혼자 앉을 수 있는 호를 파고, 파 놓은 흙은 마대에 담아서 전방에 올려놓고 마대 위에 소총 거치하고 조금 아래 위치에 크레모아를 설치하고 밤을 새우는 것이다. 수류탄 두발, 타식조명, 크레모아 격발기를 가지런히 놓고 매복 하던 중 야간 폭우를 만나 비는 삽시간에 구덩이에 하나 가득 차고 넘쳐흐른다. 밤 중에 이동할 수도 없고 비를 이때처럼 원망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몸이 덜 덜 사시나무 떨리듯 하면서 한기가 엄습한다. 먼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니 한기는 면하고 젖은 정글복이 칭칭 감겨온다. 흙으로 만든 요상한 모양의 탑을 발견하고 발끝 근질거리던 차 확 걷어 차 버렸다. 탑 일부가 부서지고, 빨간 불개미 수천마리가 집 부쉰 앙갚음 으로 정글화 위로 기어오른다. 탁 탁 털어도 잘 떨어지지 않고 정글복 속 으로 침투한 불개미가 물기 시작한다. 허벅지도 물고 나중에는 사타구니도 무는데 가렵고 따갑고 한마디로 미 343 푸른 바람이 되어

344 치고 환장한다. 옷은 홀랑 벗어 털고 나서 모기약 뿌리고 정글복 다시 입 고 행군은 계속된다. 귀국은 연기되고 귀국병력 인원수만큼 본국에서 파병되어 항상 일정 수준의 병력을 유지 한다. 이런 청천벽력이 있나! 다음달부터 보충 병력 투입이 중지되고 귀 국도 중지된단다. 기다림이 일순간에 와르르 허물어진다. 근무 기간이 많 이 남은 병사는 괜찮지만, 귀국선 타는 날짜 기다리는 나의 심정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귀국할 때 가져 갈려고 미리 준비한 C-레이션 한 박스를 뜯어서 분대원 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울적한 마음을 맥주 한 캔으로 달래본다. 장거리 정찰을 나섰다. 4Km 쯤 걸었을까? 갑자기 구토가 나고 속이 뒤 틀리고 어지럽기조차 한다. 조금 전에 물과 함께 정제로 된 알 소금 몇 개 를 먹었는데 그 영향 인지는 몰라도 속이 거북하고 힘이 빠진다. 소대장이 부대로 되돌아가라고 한다. 원래 매복이나 정찰시 단독 행동 은 금지 사항이다. 부대에서 멀리 벗어난 지역이 아니라서 되돌아가는 월남 최고 고참병장 의 스타일 구기는 순간이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낙오병처럼 부대를 향해 터덜터덜 걷는다. 나무 그늘도 없고 날씨는 덥고 심한 구토를 한 뒤라서 힘도 빠지고 나른 해 온다. 밭에서 늙은 농부 부부가 열심히 밭 메고 씨앗 뿌린다. 목이 말라 서 농부에게 다가가서 물 좀 달라고 하는 시늉을 했다. 월남 농부가 배고프다는 뜻으로 잘못 알아듣고 망태기 속에서 건조 시 344 국가보훈처 _

345 킨 까만 바나나를 꺼내준다. 의사 전달이 잘못되었구나 갈증이 나서 가만 이 있으니 할머니 농부가 바나나 한입 베어 먹고 나서 먹으라고 몸짓으로 말한다. 독이 없으니 안심하고 먹으라는 독미( )를 해본 것이다. 순박한 인간 미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중에 몸짓으로 알아차리고 바나나도 물도 고 맙게 잘 먹고 나니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맑은 마음을 가진 농부 부부 에게 행복이 있기를 속으로 빌었다. 월남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마지막 전과를 올리기 위해 장거리 매복 횟 수가 무척 많아졌다. 월맹 정규군보다 베트콩 소탕작전에 비중을 많이 두 고 베트콩은 생포를 우선한다. 장거리 정찰하던 중 베트콩 비슷하게 생긴 놈이 도망치는 것을 쫓아가 서 붙잡았다. 까무잡잡하고 쬐그마한 것이 하관은 쪽 빠진 것이 영락없는 베트콩이 다. 멱살잡은 손에 힘주고 반 바퀴 돌려서 움켜잡으니 캑캑하고 숨도 재대 로 못 쉰다. 연신 두 손 모아 살려 달라고 싹싹 빈다. 두 손을 묶어놓고 소지품을 검사하니 수첩과 연필뿐 총도 휴대하지 않 았고, 살상할만한 도검류도 보이지 않았다. 장거리 수색할 때 월남어 교육 대 출신이 함께 정찰한다. 심문하고 조사 해보니 민간인이였다. 나의 무공 훈장이 날라가는 순간이다. 돌려보내니 굽실거리며 고맙다고 몸을 조아 린다. 첨병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전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전진하는 데 바위 뒤로 적이 순식간에 숨어버렸다. 베트콩이 사라진 바위를 향해 연속 사격을 가했다. 전과에 욕심많은 중 345 푸른 바람이 되어

346 대장이 바위를 중심으로 개인간격 10m 정도 띄우고 포위 방법으로 밤샘 매복을 지시한다. 개인호 구축할 시간도 없고 지정된 장소에서 경계하면 서 밤을 새워야한다. 달빛도 없고 칡흑같은 어둠이 정글을 뒤덮는다. 밤이 깊어오니 전방에서 갑자기 A.K.소총들고 적이 나타날것만 같았다. 바람에 나무가지 비비는 소리가 나도 바짝 긴장이 된다. 비몽사몽간에 전방을 바라보면 나무 둥지가 총 겨누고 노려보는 착각에 식은땀이 쫙 난다. 상황 변화없이 조용한 아침은 밝아온다. 청솔가지로 연기피워 너구리 몰아내듯 바위 밑 동굴로 연막탄과 가스탄을 터트리고 베트콩 튀어 나오 기를 기다려봤다. 최류가스 냄새 때문에 연신 제치기 하는 전우가 생기고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린다. 동굴 포위작전에도 불구하고 동굴로 도망친 적은 사라져 버렸다. 동굴 안은 천하의 자연요새다. 동굴에 들어가면 칠흑처럼 캄캄하고 후렛쉬를 비춰도 습기가 많아서 불빛이 멀리 조사( )되지 못하고, 동굴내부 길 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흡사 이탈리아의 카타콤베(지하무덤)처럼 미로 로 연결되어 있어서 정밀수색이 어렵고 적으로부터 노출되어 오히려 위 험에 처할 수 있다. 전쟁하는 전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존재하지도 통하지도 않는 다. 죽느냐 죽이느냐 하는 생각 밖에 없다. 적이 나타나면 신속하게 처치 한다는 생각뿐이다. 장거리 정찰 끝나고 벙커에 돌아오니 내무반이 안방처럼 편안하게 느껴 진다. 우물가로 가서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철모 두레박으로 길러서 모처 럼 시원하게 뒤집어썼다. 346 국가보훈처 _

347 군수품 수령 차 나트랑으로 가는 수송트럭에 경계병으로 탑승했다. 판 랑에서 나트랑까지는 트럭으로 3시간 정도 달리면 도달한다. 길이 잘 닦 아져 있다. 부대 밖으로는 겹겹으로 철조망이 쳐져있고 작전 나가면 주로 정글 깊숙이 투입하여 수색정찰하기 때문에 월남의 도시나 민간인을 접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하지 않다. 경계병으로 밖으로 나가면 민간인도 볼 수 있고 마을을 지나면서 단편 적이나마 월남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판랑에서 나트랑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월남의 동맥에 해당하는 도로이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시원 스럽게 북쪽 하노이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람브렐라(삼륜차)가 잽싸게 달려간다. 흰 아오자이 입은 아가씨가 살랑 살랑 지나간다. 전통의상 아오자이 는 매혹적이고 무척 섹시하다. 천이 희고 얇아서 역광에서 바라보면 날씬한 몸매가 투영된다. 바람이 살랑 불면 몸에 착 붙 어도 보기 좋고, 펄럭이다 허벅지 속살이 살짝 보여도 보기좋다. 바람아 불어다오! 남국의 정취 물씬 풍기는 키 큰 야자나무 밑에서 한가롭게 부채질하는 아낙이 쳐다보고 웃는다. 운전병에게 쥬스 사준다고 차량을 정지시켰다. 얼음 담긴 쥬스통에서 음료수 두 컵 사서 운전병과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바나나 한 다발을 사고 나트랑으로 향했다. 물소 두마리를 횡으로 엮어서 논을 가는 농부의 모습은 한가롭게 보인 다. 왕조시대의 유산인 듯 고색창연한 탑이 한가로이 서있다. 옛날 찬란했 던 불교문화의 편린을 보는듯했다. 나트랑 시내는 비교적 조용했다. 길 양옆으로 심어진 열대 가로수는 환 347 푸른 바람이 되어

348 상적이다. 식물원에서나 봄직한 키가 작고 잎이 무성한 난장이 야자수가 질서있게 반겨 준다. 적전 나가서 무릎 부상을 당한 최병장에게 조금 전에 산 바나나 한 다발 을 반으로 갈라서 면회를 갔다. 나트랑 후송병원에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최병장, 야 임마 빨리 퇴원해! 야간매복 함께 나가자. 하며 위로하고 두손꼭잡고둘은눈물흘렸다. 치료더받고고국으로 후송되어 제대해 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 안병장, 몸조심해 하곤 금새 눈시울이 붉게 물 든다. 무릎 관절 종지뼈가 부서져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하는 동작이 불가 능했다. 짜식! 주소지 동작동 국립묘지로 옮기는 것보다 백배 났지 농담 한마디 해주었다. 목발 양 겨드랑 사이에 끼고 절룩거리며 한참을 따라온다. 귀국하여 다 시 만나자고 다짐했다. 나트랑의 해변은 너무도 아름답다. 고운 흰 백사장 에 발자국 찍기가 아까웠다. 잔잔한 물결위로 반사되는 햇빛은 보석처럼 영롱인다. 구렁이와 한판 싸움 야간 매복 후 전투식량으로 아침 한 끼 때우고 재빠른 전우는 화약을 사 용하여 모닝커피까지 마신다. 밤새도록 잠재워둔 수통의 물을 목구멍으 로 넘기면 그 시원함이란 어찌 감로수와 비기랴.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넘 기고 커피 타먹으러 깡통에 물 끓이는데 전우가 비명을 지르고, 그 곳으로 달려 가보니 전우가 베트콩하고 붙은 것이 아니라 구렁이와 한판 대결 하 던 중 구렁이가 몸을 휘감은 것이였다. 전방에 물체가 나타나서 살펴보니 348 국가보훈처 _

349 구렁이라 구렁이를 잡으려고 껴안자 구렁이는 한판 조르기로 대항한 것 이였다. 전우가 나뒹굴러지고 무시무시하게 큰 구렁이는 몸을 완전히 한 바퀴 감고 조르기를 시작했다. 뱀이라면 질겁하기 때문에 대책이 없어 다른 전우들을 불러 두 명이 달 려들어서 뱀에 감긴 전우를 구출해 주었다. 구렁이 힘이 여간 세지 않았 다. 커다란 구렁이를 전우들이 들쳐 메고 부대로 돌아 왔다. 구렁이가 너 무 커서 괴물같았다. 등용문을 못 올라서 용이 되지 못하고 필시 이무기 가 된 놈이라 짐작된다. 자연 상태에서 이렇게 큰 뱀은 처음 본다. 마름모 꼴의 뱀 무늬가 선명 하게 드러난다. 박스 속에 갇힌 뱀은 커다란 몸으로 꽈리를 틀고 꿈쩍도 않는다. 산닭을 넣어주니 닭이 푸드득 하곤 이내 날개 죽지를 늘어뜨리고 꼼짝도 않는다. 뱀도 사람과 한판 붙어 놀랐는지 식욕이 없어 꽈리만 틀고 있었다. 고국 동물원에 보낸다고 연대 본부에 옮겨 놓았다. 귀국하고 싶은 전우 가 뱀 담긴 박스에 C-레이션과 함께 넣어주면 박스에 담겨 귀국하겠다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 월남의 맑은 하늘아래 태양빛이 따가웁게 내려쪼인다. 월남 전투에서 마지막 남은 우리가 철수하면 진지를 물려줄 후임자가 없었다. 밤낮으 로 사역하여 구슬땀 흘려 구축해 놓은 벙커며 교통호는 따이한의 얼이 베어 있고 손발이 부르트도록 곡괭이질한 진지를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 어본다. 커다란 파초를 이유 없이 꺾어 보았다. 작전 중에 전사하여 동작동에 잠 든 전우, 무릅뼈 다쳐서 평생을 뻣다리로 장애를 안고 지내야 하는 전우들 349 푸른 바람이 되어

350 의 모습이 하나하나 지나 간다. 집에서는 모두들 귀한 자식이고 사랑스런 형제들이 이역만리 전장에서 희생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전우야 몸성 히 임무 다하고 영광스럽게 조국으로 개선할 때까지 안녕해다오! 속으로 무사함을 빌어 본다. 정글복을 커다란 용설난에 걸쳐놓았다. 용설난 가시에 고정되어 날라 가지도 않고 태양열이 강해서 금새 건조된다. 옷을 걷으려는 순간 용설난 밑으로 청사 한마리가 잽싸게 도망간다. 청사는 참 예쁜 뱀이다. 연초록색 이고 굵기는 엄지손가락만하고 길이는 30Cm 정도 되는 뱀으로 중대장이 지나가다 보고 잡으란다. 온화하게 생긴 중대장이 청사라면 사족을 못 쓴다. 정력에 좋다고 청사 주를 담근다. 중대장은 정력에 좋다면 뭐든지 먹는다. 도마뱀을 잡으면 쓸 개는 중대장 몫이고 고기는 볶아서 전우들이 술안주를 하는데 비위가 약 한 나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야간 매복은 정숙을 요하는데 감기 걸린 전우는 목구멍이 간질간질 해 도 어금니 앙 다물고 참아야 한다. 참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방귀 소리와 기침 소리는 더 요란하다. 담배도 금기 사항이다. 불빛이 멀리 가고 냄새 도 멀리 간다. 야간 매복은 둘이 한 조가 되어 경계근무를 한다. 담배 안 피우는 나의 짝은 꼭 골초하고 한조가 된다. 전우들이 내가 담배도 안 피 우고 까다롭게 군다고 기피 인물로 진작부터 낙인 찍혔다. 나와 한 조된 왕 골초 박병장은 눈치만 본다. 박병장은 담배 피우고 싶 어 안달이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 밝히듯이 말이다. 나에게 과일쥬스 한 깡통 주고 나서 담배 한대 피워볼까 한다. 받은 뇌물이 있는지라 말없이 판쵸우의를 씌워 줬다. 판쵸우의를 뒤집어쓰고 담배 불 붙여 빠끔빠끔 빨 350 국가보훈처 _

351 면 빛이 전혀 새나가지 않는다. 날이 밝기 전에 배변하려고 숲 속 으슥한 곳으로 가다가 뭉클한 것을 밟 고 미끄러지면서 손을 짚었다. 하필이면 뭉클한 곳에 손을 짚은 것이었다. 불쾌한 감촉에 고약한 냄새 까지 풍겨 울컥하고 구토가 나온다. 피 같은 물 한통을 소비하고 그것도 모자라 풀을 뜯어서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박박 문질렀다. 행군도중 전방에서 찍~찍~하는 이상한 소리에 정글 위를 쳐다보니 야 생 원숭이들이 동료 원숭이에게 위험을 알리려고 하는지 이쪽저쪽 가지 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빤히 내려다보며 약 올리는 원숭이 놈을 향해 정조준하여 방아쇠를 가 볍게 당겼다. 나뭇잎 떨어지듯 원숭이가 떨어진다. 정글도로 길을 개척하고 원숭이 떨어진 장소를 확인하니 핏자국만 보이 고 원숭이가 사라진 것이다. 동료 원숭이가 총 맞은 원숭이를 한적한 곳에 데려간 것이 틀림없다. 원숭이들의 동료애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무리 중에서 화를 당한 원숭이 를 어디론가 안전 장소로 옮긴 것이다. 자연과 동물들도 질서가 존재한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원숭이를 겨냥한 것이 몹시 후회스럽다. 날이 밝자 배낭 정리하고 일어섰다. 시간이 지날수록 짐이 가벼워진다. 한 끼 먹을 때마다 수통 무게와 배낭 무게가 가벼워서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 추락 했는지 오래 된 듯한 동강난 헬기가 계곡에 곤두박혀있다. 작전 시 군장과 식량은 3일분 정도로 배낭을 꾸린다. 그 이상 되면 배낭 에 들어가지도 않고 과중한 무게 때문에 정글전에 행동이 둔해져서 원만 한 작전수행이 어렵다. 정글 속에서 식사 때 C-레이션 따서 먹을 때 먹는 351 푸른 바람이 되어

352 맛보다도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이 더 즐겁다. 3일째가 되면 보급품을 공수받는다. 식량과 실탄을 균등하게 분대별로 배분하고, 장약통에는 주로 물이 담기지만 벙커에 대기병으로 남아있던 전우가 위문품과 위문편지를 보냈다. 위문품은 K레이션의 김치가 으뜸이다. 위문편지는 월남군인 아저씨가 월남군인 아저씨에게 쓴 편지다. 동료 전우가 작전 나간 전우에게 미안하 여 쓴 한통의 편지에는 진한 전우애가 담겨져 있다. 장약통 속에 든 위문편지를 수신인에게 전달한다. 아! 어머니의 글씨 고 국에서 어머니가 쓴 편지를 자대에 남아 있던 전우가 보급품과 함께 보낸 것이다. 정글 속에서 받아보는 어머니의 편지는 밥풀로 단단히 봉해져 있다. 그 것도 모자라서 붙인 자리에 X표시까지 해 놓았다. 조심스레 개봉 해본다. 정겨운 어머니의 필체가 눈에 들어온다. 내용은 지난달에 받아본 내용과 별로 다를 게 없다. 말미에는 더운 나라에서 몸성히하고 집안에는 무고 하니 걱정하지 말기 바란다. 눈물이 핑그르르 돈다.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또 한번 읽어 본다. 정글복 상의에 고이 간직하고 이동을 하였다. 전우의 편지는 정글에서 작전하느라 고생 많이 한다는 말과 전과 올리 고 무사귀대 하라는 우정 어린 내용이다. 귀대하여 편지 쓴 전우에게 맥주 한 깡 사줬다. 다음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몬타냐 마을을 통과한다. 월남인과는 다른 종족으로 보였다. 여인들이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가슴 출렁이며 사 탕수수를 긴 칼로 적당한 길이로 토막 낸다. 사탕수수는 옥수수 줄기와 흡 352 국가보훈처 _

353 사하나 굵고 키도 컸다. 발가벗은 몬타냐 꼬마들이 사탕수수를 질겅질겅 씹어댄다. 하나 집어서 씹어보니 달착 지근하며 당도가 높았다. 몬타냐 족이 총멘 따이한이 무섭지도 않은지 신기한 듯 쳐다본다. 짓궂 은 전우가 어린 꼬마에게 담배 한 개피 권하니 빠끔빠끔 잘도 피운다. 몬 타냐 마을을 통과하여 계곡을 빠져나와 널찍한 평지가 나온다. 고무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나무 둥치에 V자로 홈이 여럿 파여 있고 그 끝에 고무액을 받는 통이 매달려 있어 고무를 채취한다. 관상용으로만 봐 왔던 잎이 손바닥처럼 생긴 넓고 두툼한 품종이 아니라 잎이 좁고 나무 크 기는 밤나무처럼 크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무나무 밭이 조용 하기만하다. 판랑 30연대 30연대가 주둔한 판랑은 사막화한 지역으로 선인장 군락지가 많고 키 낮은 나무들이 뒤덮혀 있고 먼지 나는 모래땅에 강인한 생명력의 잡초가 듬성듬성 나있는 곳에 가시덤불이 엉켜져 있다. 담홍색의 선인장 열매는 높이 매달려 있다. 긴 막대기로 내리쳐서 열매 를 따서 대검으로 껍질 벗겨 씹어보면 아삭아삭 하며 알로에 맛 비슷하고 단면에 좁쌀만한 까만 씨가 촘촘히 박혀있다. 사격장 가는 길은 나무 그늘이 없어서 지열과 복사열이 온몸을 덥힌 다. 사격장 옆으로 알록달록 한 붉은 색이 감도는 도마뱀이 쏜살같이 내 달린다. 다급한 도마뱀은 굴속으로 쏙 들어가 숨어 버린다. 베트콩을 닮았는지 땅굴 속으로 사라지는 데는 명수다. 쥐구멍 같은 구멍을 대검으로 파들어 353 푸른 바람이 되어

354 가기 시작했다. 구멍은 의외로 깊었다. 튀어 나오는 도마뱀이 어찌나 빠른 지 다리 사이로 쏙 빠져 나간다. 뒤에서 구경하던 전우가 동작 빠르게 도마뱀을 움켜잡았다. 큰 이구아 나처럼 생긴 도마뱀의 목덜미는 오색영롱하다. 쓸개는 중대장에게 상납 하고 고기는 볶아서 전우와 함께 나누어 먹어야지. 관물 함에 숨겨진 드라 이진 생각에 발걸음도 가볍다. 취사병은 술도 잘 담그지만 도마뱀 요리 솜씨도 일품이다. 껍질 벗기고 쓸개는 중대장용으로 터트리지 않고 잘라 내야 한다. 살코기는 토막토막 내서 기름에 달달 볶아 내는데 처음에는 비위 상해서 먹는 근방에도 가질 않았다. 냄새가 고소하고 다른 전우들이 먹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어서 한 토막 집어서 씹어보니 꼼장어 맛과 비슷하고 먹을 만했다. 비실비실 하고 털이 듬성듬성한 새카만 개 한마리가 벙커 주위를 맴돌 며 쫓아도 가지 않는다. 평소 동물 좋아하는 나는 손짓으로 부르니 살살 따라온다. 땅콩 쨈을 따서 주니 다 핥아먹고 입맛을 쩝쩝 다신다. 어디서 쫓겨난 개 인지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끼니마다 잔반( )을 타다 먹이니 나만 쫓아다닌다. 개는 나를 주인으 로 알고 있다. 개 이름은 털이 검어서 검둥이라고 불렀다. 열심히 거둬 먹이니 비실비실하던 검둥이는 살이 오르고 털은 윤기가 자르르하다. 경계 초소에 보초서면 영리한 검둥이는 꼭 따라 나온다. 나와 검둥이가 한조가 되어 야간 보초를 선다. 반짝이는 십자성을 바라보고 기 약 없는 귀국 날짜를 기다려 본다. 고국에서는 이 밤에도 어머니는 이역만 리 전쟁터에 근무하는 아들의 무사함을 빌고 있겠지. 354 국가보훈처 _

355 전쟁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공포심을 느끼는 위생병 정상병., 함께 투 입된 위생병 녀석은 얼굴이 희고 곱상하여 귀공자처럼 생겼다. 위생병의 전투 위치는 첨병도 후미에도 두지 않는다. 대열 중간에서 전진한다. 군장 갖추고 응급 약품과 상비약이 들어있는 위생낭을 어깨에 걸치고 시누크 헬기를 타고 갈 때부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처음 작전 투입하는 위생병 정상병에게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행군 도중 베트콩이 바위틈 에서 숨어서 따 콩~ 하고 저격하면 꼭 한명 희생된다고 말했다. 총알 속도가 음속보다 빨라서 총소리 들리면 살았다는 증거라고 말하니 정상병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나 보다. 흰 얼굴이 더욱 창백해지고 식은땀 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이 보인다. 부상자가 발생하면 신속히 응급 처치해야 할 위생병이 먼저 병난 것이 다. 행군 도중 힘들어서 내뱉는 숨소리가 아니라 허억~허억~하면서 공 포에 질린 신음 소리를 토해 낸다. 위생병 정상병은 작전 끝나고 며칠 앓 아 누웠다. 정글전에서 중요한 것은 좌표에 표시된 루트를 따라 수색과 행군을 해 야 한다. 위험에 처하여 포 지원을 받을 때, 돌발 상황이 발발하여 헬기 지 원을 받을 때, 현 위치의 좌표가 가장 중요하다. 작전도는 비닐카버를 씌 워서 비와 습기로부터 보호를 한다. 첨병으로서 지도를 보고 표시된 곳으로 이동하는데, 분명 뭔가 잘못 된 것만 같다. 완만한 경사가 아니고 급경사 길이 앞을 가로막고 지도와 지형 이 일치하지 않는다. 정글이 시야를 가려 능선과 계곡을 잘 살필 수가 없 었다. 위쪽으로 이동하여 시야가 확보된 지점에서 지도와 주변 지형을 대조해 355 푸른 바람이 되어

356 보니 직진한다는 것이 좌측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아차! 내가 실수한 것이 다. 행군 도중 되돌아가면 첨병 소대와 후미 소대가 뒤엉켜서 대열이 엉망 이 되는 것이다. 이때가 베트콩으로부터 저격당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 된다. 목측을 해보니 좌로 2Km 정도 벗어난 것이다. 정글에서 2Km 는 3 시간 이상 걸린다. 급경사진 지름길을 택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작전도와 지형을 대 조하면서 전진했다. 후미 소대는 영문도 모르고 계속 뒤따라온다. 첨병 한 사람의 판단 착오로 여럿 전우를 고생시킨 것이다. 늦기 전에 숙영지로 이 동해야 한다. 능선 위에서 뒤돌아보니 후미 조가 뱀 꼬리처럼 길게 늘어 져서 꾸불꾸 불 따라온다. 첨병은 행군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길이 양호하여 속도를 내면 후미 조에서는 쫓아오다 지친다. 지형이 험 하여 행군 속도가 느려지면 개인 거리가 좁혀져 적으로부터 저격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생긴다. 판단 착오로 배낭 무게만 40Kg 이상 되는 짐을 지고 개인 화기를 휴대하고 가파른 정글에서 땀 흘린 전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번 작전이 월남에서 마지막이 되기를 전우들 모두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후속 교체병력이 투입되지 않을 때부터 전우들은 전쟁이 곧 끝날 것 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휴전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작전 빈도가 많아지 고, 휴전 직전에 대규모 공세가 있을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전우들은 일말 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청룡부대는 진지를 철수했고, 인근 미군 부대도 철수하여 빈 막사 356 국가보훈처 _

357 만남아있다. 정글에서 앞장선 전우만 따라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가파르고 험 한 길 오르느라 지체되면 먼저 올라간 전우는 저 만큼 앞서간다. 앞선 전 우 따라잡느라 힘이 무척든다. 개인 거리가 너무 멀어져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 할 수가 있다. 아차! 옆 길로 들어서 낙오되면 베트콩에게 잡혀 포로가 될 수도 있다. 행군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느렸다 빨랐다 하니 같은 거리를 행군해도 힘이 훨씬 더 든다. 매복 장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사가 심하여 임 시 개인호 구축하기가 힘 든다. 개인호라고 해도 엄폐물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평탄작업으로 바닥을 평평하게 고르고 개인화기를 거치 할 수 있도록 흙을 전방에 두툼하게 둑 처럼 쌓은 후 소총과 탄창, 수류탄을 가지런히 놓고 소총은 잡기 쉬운 위 치에 두고 전방에 이상이 있으면 신속하게 사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나무 틈새로 보이는 반짝이는 별을 보니 문득 고향이 그리 워진다. 옆에서 매복하던 전우가 피곤했던지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매복할 때 코 고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은 금물이다. 코 고는 소리가 강도를 높인다. 살살 기어가서 깨울까? 기어가는 도중 선잠깨서 비몽사몽 간에 적인 줄 알 고 방아쇠 당기면 전우 손에 주소지를 동작동 국립묘지로 옮기기 싫었다. 전투 중에는 잠잘 때도 소총을 가까운 거리에 둔다. 잠결에도 위험을 느 끼면 본능적으로 방아쇠로 손이 간다. 돌 맹이 하나 집어서 코고는 방향으 로 던졌다. 크그긍~ 하고 코 고는 소리가 조용해진다. 다시 한번 돌 맹이 를 집에 던지니 완전히 잠이 깼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총 끄는 357 푸른 바람이 되어

358 소리가 났다. 행군 중 휴식은 꿀맛이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는 오랜 세월동안 정글 과 함께한 아름들이 고목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뿌리 돌출부에 등기대 고 휴식하면 아주 편하다. 휴식 끝내고 배낭 짊어지고 일어서는 전우들의 엉덩이가 무겁다. 작전 중 휴식은 10~15분 정도 가볍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작전 지역 내에 있는 가옥은 샅샅이 수색한다. 적이 은거 할 수도 있고 무기를 숨길 수도 있기 때문에 집주위에 있는 곡식창고까지 뒤진다. 전에는 소총 한정만 노획해도 훈장을 상신했다. 전투 막바지엔 소총은 표창장 정도이고 전과가 있어야만 훈장 대상이 된다. 엄격한 심사와 증거품 확인을 거쳐야한다. 작전나간 전우에게 식량과 부식을 공급하기 위해 개인화기를 지참하고 경계병 임무로 헬기장으로 향했다. 탱크로리 식수차로 열심히 장약통에 물 받아 고무팩킹 붙은 뚜껑으로 밀봉했다. 커레버50 탄통에 밥 담고, 취 사병이 요리한 야채 무침도 탄통 가득 담아서 헬기에 실었다. 시동걸린 헬 기에서 프로펠라는 연신 돌아가고 신속하게 보급품을 실었다. 보급품 실은 헬기는 혼롱산을 옆으로 감아 돌아 곧장 전장터로 날아간 다. 경계병은 문 쪽에 붙은 의자에 앉아서 렌딩할 때 지상으로 위협사격한 후 안전을 확인하고 착륙한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 매고 소총의 총구 방향은 밑을 향하게 한다. 헬 기가 정글 우거진 산허리를 휘돌아 갈 때 문 쪽으로 기울면서 날아간다. 안전벨트는 착용했지만 몸이 문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함에 괄약근 에 힘들어가고 오금이 저려 온다. 헬기 창문 밑으로 펼쳐지는 정글의 바다 358 국가보훈처 _

359 는 파란 보료를 깔아 놓은 듯 하다. 옹기종기 마을이 보이고 꼬불꼬불 길 도 보인다. 마을은 멀리 사라지고 끝없이 펼쳐지는 정글들, 북쪽으로 한참을 날아 간다. 작전 지역에 도착한 헬기는 렌딩지점을 찾기 위해서 한바퀴 크게 원 을 그리며 선회한다. 지상에서 연막이 피어오르고 렌딩할 수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기 우뚱 하면서 헬기는 착지하고 실린 보급품을 다 내려야 한다. 작전중인 전우 두 명이 헬기에 올라와서 나와 함께 식량과 부식을 내린 다. 전우들의 몰골이 며칠동안 면도도 하지 않아서 콧수염은 새카맣게 자 랐고 정글복에는 소금 자국이 희득희득하다. 새카만 눈동자만 유난히 반 짝인다. 작전도중 산화한 전우 매복이 습관화 되어 막사에 오래 있으면 오히려 좀이 쑤신다. 아침에 출 발하여 전투 식량으로 점심 식사하고 행군 또 행군, 매복 지점으로 이동하 는 도중 나지막한 수풀이 듬성듬성 자라고 사막화 되어있는 땅에서 밑에 는 복사열 위에는 직사광선이 내리 쪼이는 햇빛 아래 방탄복 밑으로 등줄 기 타고 땀이 흐른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전병장이 갑자기 주저앉으며 다리에 쥐가 나서 아프 다고 딩군다. 눕혀서 한참을 주무르니 절룩절룩 겨우 걷는다. 행군 도중 탈 수나 일사병으로 쓰러지면 한사람 때문에 단체 행동에 제약을 받아 전투 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익숙하게 매복 지점에 자리하고 전방 경계를 한다.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스산한 밤바람이 서늘하게 몸에 파 359 푸른 바람이 되어

360 고든다. 유성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서쪽 하늘로 사라진다. 괴괴한 밤하늘 바람결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교향곡처럼 들려온다. 매복은 갈 때 보다 매복 끝나고 진지로 돌아올 때 발걸음이 훨씬 가볍 다. 배낭 무게가 줄어들어 움직임이 가뿐하다. 전날 다리에 쥐가 나서 주 저앉은 전병장은 하룻밤 매복하고 나서 생기가 돈다. 매복 체질이라고 농 담 한번 해본다. 베트남 사람들은 도시나 농촌이나 매우 부지런히 움직인다. 낮잠 자는 시간이 있어 우리에게 게으르게 보이지만 농부는 아침 읽찍 들판으로 간 다. 늙은 농부가 괭이 둘러메고 망태기 진 할머니와 이른 아침 밭으로 향 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물소로 논가는 농부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번 작전은 첨병 소대를 중대장이 직접 지휘 하는 것으로 봐서 중요한 작전임에는 틀림없다. 수통에 물 채우고 예비로 몇 통 배낭에 매달고 3일치 식량 차곡차곡 넣 은 배낭 빈 공간에 수통 하나 추가로 더 쑤셔 넣었다. 군장과 배낭 무게가 50Kg는 족히 된다. 일어서면 무직한게 한 짐이다. 수색 소대를 태운 헬기는 혼롱산을 휘감아 돌아 방향 감각도 상실 한채 날아간다. 정글 수색 작전의 목적은 베트콩을 소탕하고 적의 은신처를 파 괴 하는 것이다. 호치민 루트 차단도 병행해야 한다. 무기와 탄약을 짊어 진 농부차림의 베트콩이 운반하는 통로로 이용되는 밀림의 고속도로다. 호치민 루트는 북베트남에서 남베트남으로 이어지는 3,000Km가 넘는 도로다. 정글로 지나가는 도로는 헤아릴 수 없이 여러 갈래로 뚫려져 있 다. 남베트남까지 사람의 힘으로 베트콩에게 무기와 탄약을 직접 전달하 는 보급 방식이다. 360 국가보훈처 _

361 작전 중 매복은 주로 호치민 통로와 연결되는 길목에 매복한다. 매복은 긴장의 연속이다 멀리서 건쉽이 집중 포화를 퍼붓는다. 건쉽은 수천발의 총탄을 몇 분 사이에 발사하는 가공의 위력에 베트콩이 가장 무서워하는 무기다. 짧은 시간에 적을 섬멸하고 호치민 통로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잠 시 후 멀지 않은 곳에 섬광이 번쩍 하고 쩌정! 하는 굉음이 고막을 때린다. 놀란 전우는 머리를 처박는다. 포탄이 터지면 바로 코앞에 떨어진 느낌이 들어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평소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던 배병장이 바로 후미에 따라온다. 휴식 시 간만 되면 나에게 말도 걸고 살갑게 군다. 배병장은 농고 축산과를 나온 경험을 살려 젖소 목장계획이 서 있다고 제대 후 포부를 밝힌다. 순진하게 웃는 모습이 찡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작전 중 첨병이 제일 위험하고 중앙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첨병, 중앙, 후미, 위험 요소는 고루 산재해 있다. 적이 나타나면 일발필중 각오로 눈 부릅뜨고 경계에 신경을 쓴다. 행 군 중 가장 기분 나쁜 아카바 소총소리 따콩!~ 총성 한방이 울린다. 중앙 대열을 바로 뒤따르던 배병장이 풀썩 주저 않는다. 가쁜 숨 몰아쉬는 배병 장 상의를 벗기니 총알이 가슴을 뚫고 등 뒤로 관통 한 것이다. 압박 붕대 를 동여매고 피는 많이 나지 않는다. 괴로운지 몸 한번 비틀고 손으로 풀과 흙을 한웅큼 긁어쥐고 맥없이 고 개를 떨군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영농의 꿈에 부푼 배병장 영혼이 육 신을 떠나 평화로운 하늘로 아주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내 무릎을 베개 삼아 깊이 잠든 전우야, 영혼이 이역만리 구천에서 헤매 지 말고 부모형제 계신 정든 고향으로 빨리 가라,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361 푸른 바람이 되어

362 1973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다. 곧 휴전이 될 거라는 뜬소문에 마음은 벌써 고향을 향하고 있었다. 금년이면 국방의무를 마치고 제대한다. 공연 히 마음이 들뜬다. 매점에 들려서 관절통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하여 주먹크기의 진동안마기 하나를 샀다. 입대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 이 뜨거워진다. 머지않아 귀국 할 거라고 어머니에게 편지 쓰는 도중 아름 다운 고향산하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973년 1월 28일, 파리 평화협정 조인으로 지루했던 베트남 전쟁은 휴 전에 들어갔다. 곧 있으면 귀국 하리라는 막연한 기다림이 현실로 한발 성 큼 다가온 느낌이 든다. 부산항 제3부두 군악대의 우렁찬 군가 달려라 백마 가 힘차게 연주 되 고, 아느냐~그이름~무적의~사나이~, 세운공도 ~찬란한~백마고지~용사 들아! 여고생의 태극기 물결 속에 열열한 환송을 받으며 고국 떠난 지 일 년이 넘은 지금 몇 달 후면 귀국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지난날이 추억으로 영롱인다. 적진 정글 속에서 내 무릎을 베고 산화한 공하사! 배병장! 그들이 평화 의 수호자요, 애국자인 진정한 전우다. 휴전은 되었어도 작전만 없을 뿐 매복 정찰활동은 휴전 이전이나 휴전 이후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오늘도 조별로 장거리 매복을 나간다. 동 시에 함께 귀국할 전우들 말년에 조심하자고 서로 격려해준다. 정글전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야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은 오 히려 힘들고 불안하다. 숨어 있는 적은 작전중인 전우를 향해 조준사격 하 면 틀림없이 전우 한명이 희생된다. 총알은 딱 한발만 날아온다. 한발만 362 국가보훈처 _

363 날아오면 총 쏜 방향을 가늠할 수 가 없다. 아주 기분 나쁜 순간이다. 베트콩은 발견도 못하고 전우만 희생되는 것이다. 정글은 베트콩에게 절호의 은신처를 제공해 주고있다. 정글을 없애려고 화염방사기로 태워 정글 초토화를 시도했으나 끈질긴 생명력과 자연의 복원력 앞에 무력해 질수밖에없었다. 습한 정글 수목은 쉽사리 타지도 않고 비만 오면 정글의 원래 모습대로 녹색의 바다로 되돌아온다.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정글전에는 대규모의 병력이나 기계화 부대이동이 불가능한 환경으로 되어있다. 월남전하면 헬리콥터를 연상한다. 악조건의 환경 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활약한 것이 헬리콥터다. 보병 전투병력을 작전 지역에 빠르고 정확하게 투입할 수 있다. 물자운반, 사상자후송, 수색정찰, 지휘관 공중지휘 등 헬리콥터는 만능 의 무기로서 무장 헬리콥터 건쉽 은 적의 진지를 정확하게 철저히 파괴 하는 무서운 무기였다. 헬기의 지원 없이는 정글전에서 효과적인 작전은 불가능한 것이다. 무사히 전쟁터에서 작전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숨은 공 로자는 단연 헬기인 것이다. 월남이여 안녕히 연병장에 뚜껑 덮지 않은 나무 상자가 줄지어 있다. 사역병을 차출하여 나무상자에 군장 집어넣고 못질하고, 창고에 보관된 군수 물자가 트럭으 로 운반되어 온다. 방독면 방탄조끼까지 상자에 빈틈없이 차곡차곡 집어 넣고 탁! 탁! 못질한다. 모든 군수물자는 하나도 남김없이 박스에 집어넣고 못질했다. 하나라도 363 푸른 바람이 되어

364 더 많이 고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애국인양, 열심히 채우고 열심히 망치질 한다. 작전에 임하면 세포 하나하나를 곤두세우고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림까 지 관찰했던 용감한 수색대는 망치를 쥐어주면 훌륭한 목수로 변한다. 웃통 벗어버리고 경쾌한 망치소리 탁! 탁! 탁! 탁탁 구슬땀을 흘린다. 포장 완료된 박스는 트럭에 실리어 부지런히 캄란 항으로 운반된다. 분주 한 것으로 봐서 철수 시기가 임박한 느낌이 든다. 아껴 모은 돈으로 귀국선물을 준비한다. 짠돌이 김상병은 카메라 사러 매점으로 함께 가잔다. 나는 중국제 만년필 영웅 3자루를 샀다. 한 자루 는 형님 몫, 한 자루는 남동생 몫, 한 자루는 여동생 몫, 속으로 선물할 상 대를 점찍어 놓는다. SP내용물 중 가장 인기 없는 연필은 항상 나의 몫으로 모아둔 연필이 두 손으로 감싸 쥘 만큼 한 묶음이 되었다. 선물은 관물 아래 켠에 고이 간직 해 놓았다. 월남에서 작전과 매복으로 벙커 생활한지 15개월 그리운 고국 으로 귀국하는 일정이 잡혔다. 지난날들이 만감으로 교차된다. 영점 조준에 땀 흘린 사격장, 랜딩 연습 했던 헬기장, 포복 및 수류탄 투척으로 반들반들하게 닳아버린 훈련교장, 모두 정겹게 느껴진다. 전우가 내손 꼭 잡고 산화했던 동보작전,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목말라 갈 증 났던 지난날이 아스라이 구름 저 멀리 추억으로 아롱인다. 따불백 달랑 메고 캄란 항구에 도착했다. 따불백 하나가 전 재산이다. 정들었던 벙커를 천천히 한바퀴 둘러보았다. 눈물이 왈칵 솟구친다. 어디 서 나타났는지 아침저녁으로 밥 주고 함께 보초선 검둥개가 내 곁을 떠나 364 국가보훈처 _

365 지 않는다. 검둥이가 이별을 눈치 챘는지 연신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캄란 군용 비행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동 걸린 헬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검둥이가 헬기장까지 쫓아와 함께 가고 싶어 헬기 문을 향해 계속 점프 한다. 정든 주인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지 왕!~왕~!왕! 절규한다. 기우 뚱 헬기는 부양하고 검둥이가 조그맣게 보인다. 막사도 조그맣게 보인다. 판랑이 점점 시야에서 벗어나자 눈물이 흐른다. 캄란 군용 비행장 옆 넓은 땅에 텐트를 친다. 뚝딱하는 사이 질서정연 하게 가지런한 텐트촌이 형성 되었다. 함께 귀국할 전우들이 텐트를 배정 받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북쪽으로부터 다낭, 호이안, 퀴논, 투이호아, 나 트랑, 캄란, 판랑 순으로 주둔해 있던 병력이 북쪽으로부터 순차적으로 철 수 하였다. 월남에서 전투부대로 가장 남쪽 판랑에 위치한 백마부대 30연대는 가장 늦게 철수한 병력이다. 1973년 3월 11일~14일, 4일 동안 4진으로 나누어 철수한다. 역사적인 마지막 철수 제4진에 편성되었다. 3월 11일, 1진을 태운 비행 기가 활주로를 서서히 벗어나 하늘을 향한다. 부러운 눈으로 비행기가 사 라질때까지 쳐다봤다. 32만 전우들이 이국땅에서 피 흘리고 땀 흘리며 목숨 바친 처절했던 전 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무대를 떠난다. 정글을 누비며 전쟁의 신화를 일구어낸 한국군의 능력은 미군도 인정하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살아 돌아간다는 흥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텐트 주위에 야간 경계근무를 마지막으로 365 푸른 바람이 되어

366 서본다. 반짝이는 십자성도 내일이면 이별이다. 서쪽 하늘에 유성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사라진다. 1973년 3월 14일 아침이 밝았다. 아침 점호가 끝나자 말자 선착순으로 철모에 물 받아 세수하고 양치하니 마음이 설렌다. 트랩을 향해 힘차게 걸어서 비행기에 오르니 안에 깔린 카펫트 촉감이 정글화를 통해 부드럽게 전해온다. 월남에서 가장 많이 뇌이던 단어가 고국 정녕 고국으로 간단 말이지? 15개월 동안 작전과 매복, 험준한 정 글을 누비며 교전 중 사살한 베트콩 묻어 주던 일, 작전 중 전우의 죽음, 물 떨어져 타들어가는 목마름에 어금니 악물고 행군했던 일들이 추억으 로 남는다. 전우들 전원 탑승하고 자리 잡았다. 천천히 비행기는 움직이고 덜컹 소리와 함께 동체가 하늘높이 치솟는다. 조그마한 창을 통해 사선을 넘나들던 월남 땅이 점점 멀리 보이고 비행 기는 고국을 향해서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자유의 십자군으로 자유월남을 돕기 위해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월남전 선에서 용감함을 만방에 떨치고, 자유를 심고, 평화를 심고, 대한의 얼을 심고, 승리하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개선용사, 잠시 두 눈을 감아본다. 명멸 하는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월남이여 안녕히~ 전우들은 자세 를 바로하고 모두들 말이 없다. 여섯 시간 넘게 비행하여 한국 상공이라고 안내 방송한다. 고국 땅을 밟 아 본다는 흥분과 환희에 가슴이 뛴다. 기수가 낮아지고 고국 산하가 조감 도처럼 산이며 강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1973년 3월14일 오후, 수원 오 산 비행장 활주로에 개선용사를 태운 비행기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찬바람 부는 초봄의 날씨, 상쾌한 고국의 공기를 힘껏 들어 마셨다. 고 366 국가보훈처 _

367 국의 하늘이 이렇게 좋을 수가! 내 조국 내 나라 어머니의 품이 여라! 1973년 3월 20일, 파월 장병 귀국 환영행사가 동대문 운동장에서 거행 되었다. 이미 동대문 운동장에 많은 시민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운 집해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얀 옷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인이 나를 와락 껴안고 얼굴 을 묻으며 흐느낀다. 갑작스런 일이라 당황하고 민망했다. 흐느끼던 여인 이 고개 들고 쳐다보았다. 군인 아저씨는 씩씩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왔 는데, 남편은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다 고 애써 미소 지으며 죄송하다 고한다. 이어서 남편과 함께 싸운 군인 아저씨들을 환영하고 싶어 아침 일찍 왔 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젊은 미망인이 지금도 뇌리에서 지워 지지 않는 다. 위로의 말도 못하고 부끄러워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그리운 남편, 사 랑스런 자식, 한줌 재가 되어 돌아올 때 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환영식장의 사열대에는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 국무총리, 유재흥 국방 부장관을 비롯하여 삼부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세호 사령관이 귀국 신고와 함께 주월사 기를 반납한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한국군의 용맹성을 자유 우방에 널리 알린 주월사 령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순간이다. 수많은 시민 학생들이 막중한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돌아온 개선용 사 들을 뜨겁게 환영한다. 수천 개의 고무풍선이 하늘을 향해 공중 높이 올라간다. 물결치는 환영인파 속에 개선용사는 동대문 운동장을 출발하여 시청 쪽 367 푸른 바람이 되어

368 으로 힘찬 시가 행진을 했다. 배낭 메고 소총 메고 팔 크게 흔들며 북소리 맞추어 씩씩하게 전진한다. 연도에 수많은 시민들이 물결로 출렁이며 열 열히 환영한다. 행진하는 사이사이 연예인들이 준비한 꽃다발을 목에 걸 어준다. 누군가 달려와 나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었다. 빌딩 옥상에서 오색 색종이 가루가 함박눈처럼 흩뿌린다. 행진하는 연 도 중간에 고등학교 벤드부가 힘차게 개선행진곡을 연주한다. 승리에~깃발로~뒤덮힌~아침~ 조국의~하늘은~맑게 ~피였네~ 이어 서 아느냐~그 이름~무적의~사나이~세운공도~찬란한~백마고지~용사들 아~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용사들에게 환희의 깃발이 물결친다. 368 국가보훈처 _

369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여 영원하리! 정 청_장려상 /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우연한 기회에 호국 보훈의 충정을 기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나 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여 참전수기를 공모한다는 소식에 접 하고 지금은 저 먼 피안의 강만큼이나 아득해 보이는 아련한 기억을 반 추해 본다. 지난 날 우리는 학교에서 멸공교육과 반공교육을 엄하게 받은 바 있다. 혹자는 이러한 교육의 형태에 비판적 시각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당시의 치열한 남과 북의 대치국면을 감안하면 수긍이 간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된 한국 전쟁이 얼어나지도 반세기가 훌쩍 지나고도 몇 해가 더 흘렀다. 남북분단 의 반세기가 넘는 역사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무엇이 국가와 민족을 영원하게 하는가? 우리 민족 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온 수난의 역사는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시사 하는가? 또 장차 민족통일이라는 대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녀 야하고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본인이 참전했던 월남전 을 되돌아보면서 다소나마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369 푸른 바람이 되어

370 1. 논산 훈련소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여 6주간의 기본훈련 과정을 이수했다. 당시 훈련 소 시설은 지금의 시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악했다. 1960년 우리 나라 국민소득이 68달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년대와 70년 중반 정도 까지는 매년 봄이 오면 '보릿고개'가 대명사처럼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 허덕이게 했다. 당시 유행하던 말이 고개고개 높은고개, 보릿 고개 라는 말이 우리의 어려웠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를 눈 앞에 두고 6,500달러로 추락하였다가 2004년 말 다시 1만 6,000달러 대에 진입하여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바 있다. 병영생활의 환경이 국민소득과 비례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니 지금 논산 의 훈련소 복지시설은 6-70년대와 비교하면 여인숙과 호텔수준의 차이 그 이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당시 훈련병들은 넉넉하지 못한 식량사 정으로 늘 허기진 배를 움츠려야만 했다. 그래서 고된 훈련 속에서도 간간 히 나오는 17문, 18문 정도의 여자 신발크기의 기다란 빵을 먹던 일은 커 다란 즐거움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동안 온 국민의 노력으로 우리의 경제가 이만큼 좋 아져 우리 후세들이 좋은 시설에서 병영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논산 훈련소에 전반기 교육을 무사히 마치고 광주 포병학교에서 사격지 휘에 대한 후반기 교육을 받고 133(포병 사격 지휘)이라는 주특기를 부여 받았다. 370 국가보훈처 _

371 2. 155미리 곡사포 대대 광주에서 밤새 기차를 타고 춘천에 도착하여 군용트럭으로 털털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에 소재하고 있는 155미리 곡사포 직할 대대에 배치되어 이등병으로서 본격적인 군생활이 시작되었 다. 부대를 중심으로 북쪽 약 20여km 지점에 DMZ와 향로봉(1,293m)이 있고, 인근의 동쪽에는 매봉산(1,271m), 서쪽의 양구 방향으로 대암산 (1,316m), 남으로 18km 지점에 원통, 원통에서 8km 남쪽에 인제읍이 소 재하고 있었다. 본인이 복무하는 포대는 북한땅 무산(1,320m)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향로봉에서 시작한 물이 합세하여 흐르는 큰 하천변에 위치하 고 있었는데 겨울철에 에이는 듯한 차가운 개울물에 식판을 들고 나가 씻 을때 그릇이 잘 닦이지 않아 애를 먹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매년 겨울이면 추위의 대명사로 매스컴에 향로봉의 수은주가 영 하 몇 십도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그만큼 추운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곳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추운 곳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은 영하 49도의 중 강진이라고 배웠는데 이 곳의 추위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한겨울에는 영 하 27도에서 30도를 오르내렸다. 눈이 한번 내렸다하면 녹을 줄 모르고 그야말로 눈 세상이었다. 새벽같 이 일어나 삽과 비를 들고 나가 엄청나게 쌓인 눈과의 전쟁을 벌이지 않으 면 안되었다. 만약 지금과 같이 레저문화가 발달되었다면 원통에서 신탄 에 이르는 70리의 긴 계곡의 설경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관광명소 371 푸른 바람이 되어

372 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나의 연약한 피부는 겨울을 나는 동 안 벌겋게 부풀어 올라 동상의 증후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황실 근무 가 많아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야외활동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지 않았 는데도 밤만 되면 손발이 가렵고 화끈거려 잠을 이루기 힘든 나날이 계속 되었다. 이러한 나의 신체적 악조건은 내가 월남에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옆 전우들의 말에 의하면 동상에 걸려 상태가 심하면 동상 부위를 절단하는 수도 있다고 걱정을 해 주기도 했다. 3. 출항 춘천 인근의 오문리에서 몇 주간의 재훈련을 받고 춘천에서 기차를 타 고 부산으로 이동하여 거대한 5만톤급 배에 승선을 했다. 당시 전국의 각 처에서 몰려든 파월 군인들과 이들을 전송하기 위해서 동원된 여고생들 로 부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당시 월남에 파병된 부대 명칭은 백마부대 맹호부대 가 주력 전투부대였다. 고국을 떠나는 용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배려로 마련된 환송식 의 노래마당도 별로 흥을 돋우지는 못했다. 가는 곳이 삶과 죽음이 오가는 전쟁터이다 보니 흥겨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으리라. 우리를 실은 거함 군용선은 무심한 드높은 파도를 가르며 끝이 보이지 않는 태평양를 향하 여 남진을 계속했다. 벌써 심한 배 멀미로 구토를 하는 병사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항해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우리 맹호부대 용사들은 일주일간의 항해 끝에 무사히 월남의 퀴논항에 도착했다. 372 국가보훈처 _

373 4. 이국 땅 월남 우리나라 남단을 기준으로 월남까지 약 4,000여 km가 된다. 우리의 거 리 개념으로 만리가 되는 셈이다. 이역만리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선 후덥지근하고 무더운 날씨가 우리나라 여름날씨와는 판이했다. 울 창한 산림과 어우러진 파란 들판 가운데 마을이 보이고 마을 들판에서 평 화로이 풀을 뜯는 소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트럭을 타고 이동하면서 월 남 민간인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오랜 전란으로 체념한 듯 무표정한 표정 으로 별 관심없이 우리를 보는 듯 했다.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표정에서 처지와 어울리 지 않는 여유있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는 오랜 전쟁체험이 빚어낸 특유의 감성 때문인 듯 싶었다. 아이들은 이러한 어른들 모습과는 달리 우 리 한국군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따이한"이라고 외치면서 이 동하는 차를 한 참 동안 따라오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있다면 이 아 이들에게 월남 땅에 도착한 기념으로 선물이라도 건네주었을 것이다 직후 50년대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미군의 행렬을 뒤따르면 손 을 흔들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탄 트럭의 길다란 행렬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하여 쏜살같이 내달았는데 그 이유는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월남 땅에 도착하여 지급 받은 M16 소총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침 묵 속에서 각자 전후방을 경계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선입견을 빼면 전쟁터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 았지만 우리는 교육을 받은 대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참다운 군인정신을 발휘하고 있었다. 373 푸른 바람이 되어

374 5. 105미리 곡사포 포대 꽤 오랜시간 탑승 끝에 배속된 부대에 도착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대부분 1년을 복무하고 고국으로 귀대한다. 우리는 1년의 복무를 무 사히 마치고 귀국한 선임병사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이 부대에 온 셈이 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중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부대원들이 반갑게 맞 아주었다. 고국에서 정들었던 전우들의 전송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먼 이국 땅 전쟁터에 와서 전우들을 만나니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는 별로 말은 하 지 않았지만 오래되지 않아 십년지기를 만난 것처럼 서로 신뢰하며 따뜻 한 전우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병영의 분위기는 일촉 즉발의 위기상 황과 고국을 떠나 이국 만리에서 같은 목적을 수행한다는 공감대가 형성 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포대는 들판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연병장은 3000여 평 정도로 큰 학교 운동장 정도의 크기였다. 부대 경계선에는 철조망이 겹겹 이 쳐 있고 50여 m의 간격으로 초소가 있었다. 철조망 사이에는 적의 기 습공격에 대비하여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네이판탄과 폭약이 설치되어 있었다. 연병장 중앙에는 내가 복무하는 상황실이 있고 상황실에서 일정 한 간격으로 포대가 포진하고 막사는 안전을 위하여 소규모 분대단위로 산재하고 있었다. 우리 포대는 안케페이스 계곡으로 통하는 입구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 는데 우리와 인접하여 보병대대가 있었다. 즉 우리 포대는 보병대대를 지 원하는 임무와 일정 범위 안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독자적인 업무가 주된 임무인 셈이다. 374 국가보훈처 _

375 우리 부대 옆을 통과하는 19번 국도는 2차선 포장도로로 퀴논항에 도착 한 인적, 물적자원을 한국군과 미군에 수송하는 보급로로서 작전상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도로를 안전하게 지켜서 보급이 원 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 우리 부대와 인근의 보병대대가 해야 할 주된 업무 중의 하나였다. 6. 긴장감이 감도는 나날 전쟁터의 군인은 전쟁이 없으면 편안하기 보다는 불안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나는 사격지휘요원으로 2교대로 상황실에서 근무를 했는 데, 근무를 할 때는 OP 관측장교가 보내는 무전을 청취하거나 25,000분의 1, 또는 50,000분의 1 작전지도를 보면서 지형을 숙지했다. 이 때 재미있는 무전을 받은 일이 생각난다. 코끼리 떼가 등에 박격포 를 싣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계속 관측이 요망된다고 전하면서 그 지 점의 좌표까지 알려주었다. 물론 근무시간에 있었던 일은 빠짐없이 기록 하고 끝나면 철저히 인수인계를 한다. 베트콩으로 보이는 행색을 한 무 리가 산 속에서 나와 좌표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는 등의 무전은 매 일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들은 대공세를 위해서 무기를 비축하고 있음 이 분명했다. 우리 속담에 먹구름이 잦아들면 큰비가 온다는 말이있다. 베트콩들은 내놓고 무기를 움직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도로를 거의 우리 아군이 점령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월맹에서 그들의 주력화기인 박격포 를 코끼리 등 동물이나 베트콩 자신, 또는 용병들의 등에 지고 북위 17도 선 이남인 월남으로 반입하는 것이다. 375 푸른 바람이 되어

376 칠흙같은 어둠이 드리우는 밤이되면 불안심리가 한껏 고조된다. 산에서 불빛만 반짝하면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언제 박격포가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베트콩 작전 1호의 타켓은 우리 포병이다. 우선 포병을 진압해 야 자기들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목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의 박격포 야간 세례 드디어 월남 파병 후 첫번째 위기상황을 맞이했다. 밤 9시부터 시작된 박격포탄의 위력적인 공격은 자정이 지나 12시 30분까지 3시간 반동안 쉴 사이 없이 계속되었다. 우선 적의 공격은 조명탄 투하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날밤 조명탄이 그 렇게 밝은 줄은 처음으로 알았다. 조명탄 하나의 밝기는 50만 촉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형광등의 밝기가 40촉이니 12,500개 모은 밝기에 해당한다. 그들은 공중에 조명탄을 계속 띄워 놓고 박격포탄 을 무차별적으로 우리 부대 영내에 쏘아댔다. 당시 나는 초저녁부터 상황실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밤 10시가 임 무교대시간이었다. 그러나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임무교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상황실을 중심으로 포탄이 비 오듯 떨어져 파편이 튀어 쇠에 부 딪치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더니 적의 포탄이 우리의 탄약 창고에 떨어져 장 약에 불이 붙으면서 그 열기로 포탄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펑펑하고 연 쇄적으로 터지기 시작하는 굉음은 박격포탄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포탄소리에 귀가 멍하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날 밤 터진 우리의 포탄은 몇 백발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봉우리 376 국가보훈처 _

377 의 관측장교는 긴급한 목소리로 "무엇이 폭발하는 것 같은데, 무사한가?" 라고 묻고 있었다. 상황실에는 중대장님, 소대장님, 선임하사님, 당직병 등 10여 명이 있었는 데 일단은 우리 상황실의 출입문을 1시간씩 지키기로 하고 내가 첫번째로 보초를 섰다. 실내에서 철모와 방탄조끼, M16 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서 있는 데 식은 땀이 비 오듯 내렸다. 이때 마신 물맛의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너무나 밝은 조명탄 불빛은 우리에게 심각한 정도의 공포감의 주었다. 온 부대가 대낮처럼 밝아 마치 해가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OP에서는 관측장교가 무전으로 박격포탄을 쏘아 올리는 지점의 좌표를 알려왔지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험천만의 상 황에서 포대원들은 포가 있는 포반으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정말로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시간이 흘렀다. 상황실 내에서는 자칫하 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어 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외곽보초가 잘 서고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베트콩의 전통적인 수법으로 보면 오늘 같은 밤은 십중팔구 그들의 특 공대인 세이파 -그들은 맨 몸을 까맣게 칠하고 옷 대신 걸친 그물에는 수 류탄 등 무기를 걸고 맨발로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접근하여 환기 창문 으로 방망이 수류탄을 투척하고 도주하는 게릴라식 전법을 구사한다 - 를 침투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상황실의 중론이었다. 그래서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비장한 각오로 중대장께서 우리의 포탄과 적의 포탄이 난무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외곽순찰을 나섰다. 우리 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수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중대장께서 상황실을 나선 시간이 밤 11시 정도였는데 나가시면서 정 377 푸른 바람이 되어

378 병장이 보초를 오래 섰으니 교대하라 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적의 공격개 시 두 시간 만에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중대장님께서 나가신 지 2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셨다. 우리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은 사단사령부까지 보고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주간에는 도로를 우리가 점령하지만 밤이 되면 베트콩이 점령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있는 형편도 못 되었다. 인근의 보병 대대도 우리와 같은 처지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중위님과 선임하사님은 포병 부대장인 중령님께 상황을 보고하 고 가까운 포대에 연락을 해서 정한 시간까지 우리에게서 연락이 없으면 변고가 일어난 줄 알고 우리 포대에 포탄을 퍼부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 다. 만약 적이 우리의 포대를 점령하는 일이 벌어지면 상황이 심각해지기 때문에 여차하면 적과 함께 죽는 것이 이롭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고국에 돌아갈 희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만 에 하나 적의 포로가 된다면 혹독한 고문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 다. 이런저런 잡념들로 머리가 굳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정적인 생 각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악명 높은 쎄이파가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 한편으로는 용감하고 떳떳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 주자 고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재미있게 읽었던 군협지 의주 인공인 서원평의 용감무쌍한 행동이 클로즈업되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 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점차 누그러지니 머리가 맑아지면서 냉정을 찾 을 수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378 국가보훈처 _

379 상황은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니, 이 는 분명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고 위안을 했다. 그렇지, 중대장님은 무사하신거야. 다만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포탄 세례 때문에 몸을 제대로 움직이실 수가 없기 때문일 거야. 부대 외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 상황실에서 모르지는 않을 터이니까 나는 열심히 상황을 정리하고는 동료들에게 내 생각을 설명했다. 중대 장님 소식이 말 그대로 일각이 여삼추 였지만 태연한 척했다. 시간은 30 분을 경과하고 있었다. 다음 순찰당번은 보좌관인 중위님 차례다. 그때였다. 중대장님의 침착한 목소리가 무전기에 흘러나왔다. 이상이 없다. 보초도 잘 서고 있다. 우리는 중대장님의 이 한마디 말씀에 일순간에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좁은 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렇다. 지옥과 천국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그러니 마음을 잘 다스릴지어다. 과연 그러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이들의 공격은 자정이 지나서 야 수그러들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약 30여 평인 상황실 지붕에 적의 포탄 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적의 박격포탄은 지면에 닿으면 15도 각도로 파편이 터지기 때문에 피해 반경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가까이 있을 경 우피해가커진다. 이날밤적의기습공격으로 우리 포대는 상당한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사상자가 많지는 않았다. 날이 밝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인접한 보병대대 대대장님의 숙소에 박 격포탄이 떨어졌는데 대대장님은 무사했다고 한다. 379 푸른 바람이 되어

380 8. 중대장님의 투철한 군인정신 그 날 밤 순찰 중에 중대장님 머리 위로 박격포탄이 쉿, 쉿, 소리를 내면 서 떨어지고 있었다. 박격포탄에는 날개가 있어 낙하할 때 낙하속도와 회 전속도에 의해 소리가 난다. 순간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지형지물을 이용 하여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첫번 째 순찰 목적지인 높은 망루를 향하여 뛰었다. 그러나 망루에 도착하여 보니 망루 당직 사관인 중사님의 모습이 보이 지 않아 드디어 일이 발생했구나 짐작을 하고 주위를 살핀 결과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렸다. 확인한 결과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망루 관찰자 중사님이었다고 한다. 중사님은 망루에서 워낙 사태가 심각 하여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관찰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쌩 하고 날아온 파편이 중사님의 엉덩이를 때렸는데 이 때의 충격이 심해 8m 높이에서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다리뼈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 을 입었다. 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적의 박격포탄이 아니라 우리 탄약 적재창고에 서 포탄이 터지면서 날아간 파편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엄청난 폭 음이 연병장을 압도하는 가운데서도 초소를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돌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병사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막사에 일일이 들러 병 사들을 안심시켰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위험한 순간에도 중대장님은 자 신의 안위보다도 부대의 안전과 휘하 병사들의 안전을 더 걱정한 것이다. 이러한 중대장님의 심정을 이해한 병사들은 진심으로 중대장님을 존경하 고 군인정신을 발휘해 더욱더 자신의 맡은 임무에 솔선하는 자세를 갖도 록 해 주었다. 380 국가보훈처 _

381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참다운 군인정신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이 러한 군인정신은 병사들의 사기를 진직시켜 군 작전의 효율성을 향상시 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9. 포의 폭발 점점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OP의 관측장교 요청에 의하여 하루에도 몇차례씩 포탄을 발사했다. 보통 표 1문이 하루에 몇 백발씩 포 탄을 적지에 퍼부었다. 당시 105m 포탄 한 발 값은 쌀 한 가마 값이라고 했는데 우리 포대에서 만 하루에 천가마 이상의 쌀이 화염이 되어 날아갔다. 월남 전쟁을 치르는 기간동안 하루에 사용된 전비가 8천만 달러라고 하니 천문학적인 숫자다. 동시 다발적으로 전개되는 국지전은 북위 17도선 이남 거의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포탄을 퍼붓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지속 적으로 전개되었다. FM상으로는 1분에 네발을 발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급하면 마 치 소총을 쏘듯이 4초에 한발꼴로 발사되었다. 포의 설계는 15초에 한발 씩 쏘도록 되어 있는데도 4배나 빠른 속도로 포를 쏘아 대니 탈이 나지 않 을 수 없었다. 사고가 나던 날은 아침 8시부터 거의 쉴 사이 없이 포를 쏘았다. 나는 이 날 관측장교로부터 명중 이라는 응답을 받고 상황장교의 명령대로 효 력사 100발 하고 포반에 사격명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몇 분 후 천지가 진 동하는 소리가 귀 고막을 때렸다. 순간 또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직감했 다. 아니나 다를까 포탄을 연신 발사하던 우리 포 1문이 열을 받아 터져버 381 푸른 바람이 되어

382 린 것이다. 그야말로 올 것이 오고 만 것이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고로 포 옆에서 상황실의 사격명령을 전화로 받아 전달하는 중사 님만 무사하고 8명의 전우가 산화한 것이다. 포신의 부사진 파편은 거의 350도로 원형을 그리면서 날아갔다. 중사님이 위치한 10도 정도의 범위만 포탄이 비껴갔다. 산화한 전우들의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일그 러져 있었다. 파편이 목속을 헤집고 들어가 몸을 분해해 버린 듯한 모습이다. 나는 가 까이 가지를 못하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전장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병가상사라고 하나, 늘 같이 한 솥 밥을 먹는 식구의 죽음은 청 천벽력과도 같은 참담한 그 자체였다. 한참 뒤 시체 수거 전담팀이 와서 시신을 수습하여 영현 백에 넣는 작업 을 했는데 시신의 모습을 조합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연일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데다가 습기가 많아 지독한 냄새 때문에 식상한 부대원들은 몇날 며칠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일 밤잠을 설치면서 강행군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애통한 심정으로 고인이 된 전우들의 명복을 빌었다. 어찌 이렇게 황당하고 비참한 일이 우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 니까? 잠시 전까지만 해도 군인정신과 전우애를 발휘하여 황급한 처지에 처한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자고 봉사와 희생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당신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당신들께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마땅하거 늘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목숨을 앗아가다니 이 보다 더한 일 382 국가보훈처 _

383 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참으로 하늘도 무심합니다. 또 당신이 꿈속에서나 애타게 보고 싶어하던 사랑하는 가족들의 억장 무너지는 심정은 어찌해 야 한다는 말입니까? 청춘이 구만리 같았던 당신의 미래는 또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말 입니까? 조국의 부름을 받아 이역만리 타국땅에 와서 오직 충직하게 명령을 따 르고 명령에 의해 죽음마저 불사하던 당신의 늠름한 기상과 군인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가슴속에 하나의 좌표로 남아 방향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오늘 하루도 무사함을 기원했습니다. 남은 우리는 먼저가신 전우들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무 거운 책무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땅에 머무르는 동안 기필코 오늘의 비통 함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우 리는 군인의 신분으로 돌아가 당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 하도록 하 겠습니다. 혼령들께서도 부디 애절한 한을 거두시고 좋았던 기억만을 간 직하시면서 머나먼 길 부디 편히 가시길 빕니다 일간의 안케페이스 작전 월남의 기후 조건은 건기(11월~4월)와 우기(5월~10월)로 나뉜다. 우리 의 늦은 봄부터 가을까지가 우기이고, 겨울과 초봄까지가 건기이다. 월남 은 우기에 연 강수량의 85%가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비가오면 전쟁을 하 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기에 접어들기 전에 월맹군은 총 공세를 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고 사투를 벌인다. 우리는 이 시기의 전투를 춘 383 푸른 바람이 되어

384 투 라고 불렀다. 드디어 춘투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부대에서 동쪽방향으로 11km 지점에 603고지의 산봉우리가 있고 그 산 능선 옆으로 19번 국도가 지난다. 그런데 603고지에 베트콩 1개 중 대병력이 집결되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다. 만약 603고지가 점령되면 19 번 도로를 이용하여 보급을 받는 미군과 아군 부대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이 첩보는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이 고지를 쟁탈하기 위한 15일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는 우리 보병 부대 1개 중대가 투입되었으나 적의 반발이 워낙 심하여 고 지 근처에도 접근할 수 없었다. 연일 사상자가 발생하여 새로운 병력이 보 충되고 있었으나 별 효력이 없어보였다. 우리 포대의 최대 사거리가 11km이니 겨우 고지에 닿는 셈이다. 우리 상황실은 합동작전본부가 되어 있었다. 사단 본부에서 헬기로 사단장이 와서 하루 빨리 전쟁을 끝내도록 독려 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산 전체가 밀림이 우거져 수 천발 의 포탄을 쏘아도 쏘았는지 외관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일주 일 동안 총 공세를 폈지만 이렇다 할 전과가 없고보니 우리는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밀림 속에서 작전을 수행중인 전우들의 고통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 을 정도였다. 씨레이션으로 끼니를 때우며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사면 초과 상황인데 찌는 듯한 더위로 땀은 비 오듯 하고 마실 물이 없고 보니 거의 아사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무전병은 빨리 물을 보내지 않으면 다 죽 는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물을 보낼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급기야 원통형의 포탄케 384 국가보훈처 _

385 이스에 물을 넣고 헬기로 투하하기로 했다. 몇 차례 시도했지만 적의 빗발 치는 화기 때문에 접근을 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몇 백 미터 전방에 귀한 물을 떨어뜨렸다. 헬기조종사가 우리 한국군이었다면 위험 을 무릅쓰고라도 아군이 있는 가까운 곳에 물을 공수했을 것이다라는 이 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 조종사들은 가능한 한 위험한 곳까지 가려고 하질 않았다. 병사들은 물이 없으니 소변을 그릇에 담아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마시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비극적인 일은 한순간에 발생했다. 두어평 남직한 초소에 병사들이 6명이 몰려 있었는데 적의 박격포탄이 초소 지붕위에 난 환기 구멍으로 날아들었다. 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안에 있던 병사 3명이 죽고 3명은 중상을 입어 본국으로 후송되는 비극이 일어 났다. 한국전쟁 때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확률은 1/5000 이었 다고 하는데 환기구멍으로 박격포탄이 들어 올 확률은 이 보다 높을 것이 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위로를 하나 전쟁은 사고를 당하는 당사자나 가족 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회환으로 남는다.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35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밀림 속 에서 총상을 입은 병사는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일주일을 기어서 구사일 생으로 아군 초소에 도착한 일도 발생하고 있었다. 이 병사의 부상한 다리 는 이미 살이 상해서 구더기가 일고 있었으며 절단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 에 놓여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생태에서도 일주일동안 정신을 놓지 않고 오직 살아서 부모 형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한 일 념이 병사로 하여금 사선을 넘게 한 원동력이었다. 385 푸른 바람이 되어

386 나는 이러한 병사들의 악전고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한 의지 와 용맹스러움에 경의를 표했다. 참으로 대단한 군인이구나! 그 용감한 병 사들이 꼭 살아서 고국에 돌아가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 면서 나도 마음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식사시간과 취침시간만 빼고는 상황실에서 꼬박 15일 동안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글 속에서 일어나는 다급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상 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병사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몇 백 미터를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물 을 구하는데 성공하기도 하고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었다. 그 들에게 물은 곧 생명이었다. 타들어 가는 목을 적시기 위하여 생명을 내놓 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물기근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 었다. 사단장님이 나서서 그들의 원망을 달래 보려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이 아니고서는 하늘을 찌르듯 한 원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 조종사들에게 우리 병사와 근접한 곳에 물을 투하해 주도록 사정하여 물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었다. 월남생활 1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 는 물맛이라고 대답하겠다. 몸에서 수분 증발이 많으니 물맛이 최고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일개 병사로서 명령을 수행할 따름이지만 상황실에서 작전을 수행 하는 지휘관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결론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상식이 곧 작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386 국가보훈처 _

387 군사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 야 하고 한 번 떨어진 말에 대하여는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훌륭한 작전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목적을 수행하는 일일 것이다. 작전지역이 타국 땅, 정글 속이 되어서 지형지물을 잘 파악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작전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베트콩은 지형을 너무 잘 알고 오랫동안 밀림생활에 숙달이 되 어 소수의 병력으로 엄청난 화력 앞에 물러설 줄을 몰랐다. 우리 쪽에서는 이미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고지에서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막는 방패물로 대형 드럼통이 이용되고 있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드럼통에 흙을 넣고 통을 방패삼아 온몸을 이용하여 밀고 올 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몇 십미터도 나 아갈 수 없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도 열흘이 넘어서고 있었지만 아군은 7부 능선에서 더 진전하지 못했다. 적군의 반항도 소강상태를 맞고 있는 듯 보였다. 밀림 속이 되어서 확인할 수 없지만 그들도 적지 않는 피해를 입고 있음 이 분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빨리 끝내서 우리 한국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었다. 그래서 전방의 보병과 후방의 포병은 합심하여 바짝 고삐를 조여나갔다.그런데 한계점이 노출 되기 시작했다. 105mm포의 유효사격거리로는 작전지역을 제압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에 지원요청을 한 것이다. 작전개시 15일을 전후해서 마무 리 작업 수순으로 미군의 펨텀기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일 손을 놓고 최첨단 비행기인 팸턴기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르며 낙엽처럼 보이는 387 푸른 바람이 되어

388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 시야가 확 트인 맑은 날씨였다. 햇빛에 반사된 비행기는 마치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게 보였다. 폭격에 가담한 펨텀기는 일개 편대쯤으로 보였는데 포격이 끝나자 이어 바다에 떠 있는 함대에서 함포사격이 이어졌다. 먼 바다에서 정확히 고지 주변을 포격하고 있었다. 나는 내심으로 미군의 함포 사격의 정확성에 놀랐다. 이렇게 포탄이 집 중투하되었지만 역시 밀림은 밀림이었다. 육안으로는 포탄에 맞은 흔적 은찾을수가없었다. 나중에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바에 의하면 논에 떨어진 자리는 꽤 큰 웅 덩이를 만들었고, 밀림 속의 당과 나무가지는 처참한 몰골이었다. 수천년 동안 자연이 스스로 가꾸어온 소중한 산림자원이 주인을 잘못만나 아름 다운 본연의 모습을 잃고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해버리다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이 나라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도 6 25전란 을 겪으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초토화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울창한 산림이 난데없는 포탄세례를 받아 잿더미가 되어 벌거벗지 않았던가? 전쟁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인 환경을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린다. 옛날의 전쟁은 사람끼리의 전쟁이었지만 현대의 전쟁은 첨단무기의 시험장소가 되어 버렸다. 평생을 피땀 흘려 가꾸고 모은 모든 것을 일순간에 날려 버린다. 우리와 같은 외국병사는 왔다가 때가 되어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나 388 국가보훈처 _

389 라 사람들은 망가진 환경과 자연의 피해를 고스란히 가슴에 안고 되새김 하면서 긴 세월을 탄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힘없는 약소국가의 운명이라 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이다. 11. 고지 점령 우리 보병의 사투, 포 무장헬기 펨텀기 함포사격에 힘입어 전쟁은 15일 간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역시 최후의 승자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보병이었다. 최종 마무리 포격을 한 다음날 이른 새벽에 이 소위가 이끄는 소대병력 의 특공대가 헬기로 투입되었다. 그들은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있었다. 적 의 15일간의 점령지이자 은신처였던 603고지는 땅을 파고 굴을 뚫어 우리 의 공격으로부터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워낙 강한 화 력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의 보병 특공대들은 고지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적군은 잡다한 쓰레기만 남긴 채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의 용감무쌍한 특공대원들은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동녘에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 오니 그때서야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참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이 밟고 다닌 고지 지역은 지뢰밭이었다. 천우신조 란이를두고하는말일것이다. 어떻게 어둠 속에서 지뢰밭을 피해 다닐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기적이 었다. 특공대원을 이끈 이 소위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고의 훈 장인 화랑무공훈장 을 받고 일계급 특진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전 공에 따라 많은 지휘자 분들도 상을 받았다.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고지 를 직접 발로 밟은 보병의 몫이었다. 389 푸른 바람이 되어

390 12. 실전을 통한 전투능력 향상 사실 우리나라에서 포병은 훈련만 할 뿐 실제로 포탄을 발사할 기회는 일년에 한 두번 실시하는 부대 능력 테스트 기간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전처럼 훈련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 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러했다. 월남전에서 나의 임무는 계산병이다. 포병의 눈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OP의 관측장교로부터 적이 출현했다는 지도상의 좌표가 주어지면 그 지 점에 핀을 꼽고 휀을 대어 거리와 각도를 측정하여 사격재원으로 환산하 여 포반에 사격명령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부단한 노력과 실전을 통하여 익힌 나의 전투능력은 15일 간의 전쟁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수없이 무전을 타고 흐르는 다급한 사격 지원 요청을 짧은 시간에 실수 없이 사격명령으로 바꿔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지만 무사 히 작전을 마칠 수 있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사거리 포의 사각 평각이 정확하지 않으면 우리 아군과 민가에 포탄이 떨어져 치명 상을 입히는 실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차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여 목표지점에 정확히 포단을 투하하기 위해 서는 관측장교 상황실 포반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이 라도 실수를 하면 비싼 포탄만 낭비하고 작전은 실패한다. 보통 타켓 지점 을 찾기 위해서는 시험발사로 2발에서 3발을 사용한다. 첫번째 시험포격을 하면 관측장교가 목표지점에서 오차범위를 상하좌 우로 ±몇 m로 유도 교정한다. 이러한 오차는 포의 오차, 지형의 높낮 이, 관측장교의 좌표의 정확성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소총 390 국가보훈처 _

391 으로 사격연습을 할 때 영점을 조정하는 것처럼 포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 한 것이다. 시험사격으로 목표지점에 명중하면 효력사 라는 최종 명령이 떨어진 다. 상황에 따라 효력사 범위가 다른데 효력사 100발 하면 사격명령을 하달 받는 포반은 각각 100발을 발사한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효력사 200발 이라는 사격명령이 내려지기도 한다. 포1문이 200발을 쏜다면 6문이 1,200발을 발사한다. 이를 FM상으로 계 산하면 1분에 4발씩이니, 포1문이 50분 동안 쏘아야 하는 양이다. 그러나 보통 25분 내외에 임무를 마친다. 왜냐하면 적의 움직임이 빠르기 때문에 느슨한 공격은 효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15일 동안 우리 포대에서는 하루에 평균 2,000발 이상을 쏘아 올렸다. 포를 직접 쏘는 사람은 귀마개로 귀를 막아야하고 포가 발사될 때마다 입 을 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에 전달되는 압력때문에 귀 고막이 손상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거운 포탄을 쉴 사이 없이 날라다 발사대에 넣고 잡 아당기고, 무거운 포신을 좌우, 상하로 움직여 각도를 맞추어야 하는 등 몹시 힘이 드는 작업이지만, 마치 한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일사분란하 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이는 오랜 숙달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매일 눈만 뜨면 하는 일이다 보니 어둠 속에서도 착오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 게 되었다. 나는 월남에 1년을 복무한 다음 고국에 돌아와 잔여 복무기간이 남아서 포대에 복귀해서 ATT훈련을 받았는데 그 때 월남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바 있다. 391 푸른 바람이 되어

392 ATT 마지막 과제는 목표물에 얼마나 빨리 포탄을 명중시키느냐? 하는 것과 조명탄으로 목표물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나는 복귀병이어서 옆 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시험이어서 그러는지 평소 실력들을 발휘하 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가는데 진행상황을 보니 정한 시간 안에 과제를 해결하기가 어 려워 보였다. 더구나 조명탄으로 불을 붙이는 일은 더 난망해 보였다. 중 대장님은 급한 나머지 나를 쳐다보셨다. 너는 할 수 있겠느냐는 무언의 표시였다. 나는 지체없이 임무를 인계받아 사격 재원을 계산했다. 한방에 명중이 었다. 조명탄으로 지상의 풀 더미에 불을 붙이는 일도 단 한발로 성공시켰 다. 그랬더니 중대장님을 비롯한 상황실 요원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만약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부대 이미지는 물론 지휘자의 진급에도 영향 을 주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만 실전에는 항상 변수가 있어 마음먹은 대 로 잘 안되는 것이 작전이다. 내가 연습도 없이 낮선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전에 서 익힌 감각과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 무리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하여 도상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예정된 상황에서 벗어나면 당황하고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군인의 실수는 국가의 안위는 물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용 납할 수 없다. 그래서 군인은 작전능력 향상을 위해서 피나는 훈련을 경주 해야 한다. 우리가 월남 파병을 통하여 얻은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은 나라의 소중함 과 실전을 통한 작전능력의 향상 일 것이다. 이는 무형의 자산으로 우리의 392 국가보훈처 _

393 전투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3. 초인적인 힘 월남의 정글은 험난하여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처녀지는 믿기 어렵 겠지만 1시간에 20~30m도 나가기 어려운 곳이 있다. 행군할 때 가장 앞장 을 서는 병사는 길을 뚫으면서 가야한다. 특히 주의 할 것은 부비트랩이 다. 교묘하게 설치한 지뢰를 부주의하여 밝으면 발목이 날아가는 수가 있 다. 밀림 속으로 정찰을 나가거나 작전을 수행하려면 온 신경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소위인 포병 관측장교가 관측업무를 수행하던 중 바로 앞의 적의포탄이 연이어 떨어졌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낮은 포복으로 2km의 거리를 불과 두어 시간에 주파하여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다. 평소 같 으면 하루동안 갈까 말까한 거리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본국에서 갓 태어난 아들의 힘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고 하는지 모른다. 본인도 자기에게 이러한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깜짝 놀 랐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사진으로만 본 아들을 꼭 보아야 한다는 잠재의 식이 자기를 살렸다고 말했다. 팜꿈치의 살이 떨어져나가 뼈가 보이는 데 도 한 동안은 아픈 줄도 몰랐다는 말을 들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인 간의 의지의 힘은 정말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전쟁을 통하여 평소에 생각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들을 만나 는데 이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가를 잘 웅변하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초인적인 힘은 책임의식과 사명감이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 393 푸른 바람이 되어

394 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960여 차례 외세의 침입을 받으면서 이를 의연 한 자세로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음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전력투구 하는 위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월남전에서 우리 한국군이 보여준 군인정신은 국위를 선양하고 국익을 도모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고 본다. 먼 이국땅에 와서 한국군이 보여준 생존방식은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현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도 남음이 있다할 것이다. 14. 고지의 파견근무 우리 한국군은 월맹군의 허를 찌르는 603고지의 점령으로 빚어진 사건 을 계기로 진지 포진을 일부 수정했다. 그 일환으로 우리 포대에서도 포 한문을 파견시키기로 했다. 대부분 파견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었 지만 나는 스스럼없이 파견을 지원했다. 그 동안 겪은 바에 의하면 월남땅 은 그 곳이 어디이든 안전한 곳이 없고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실 전시에서 소규모 인원으로 고지를 지킨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가야하고 본인이 싫다고 해서 안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긍적적인 각도에서 더 많은 월남땅을 보아두자는 의미를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위님을 파견대장으로해서 포 1문을 시누쿠 - 정식 명칭은 모르지만 프로펠러가 앞뒤로 2개 달린 수송용 헬기를 우리는 시누쿠라고 불렀다. - 에 메달고 부대를 출발했다. 수송용 헬기를 타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송용 헬기 안의 넓이는 대형버스 보다도 더 넓어 보였다. 완전군장을 한 소대병 394 국가보훈처 _

395 력이 타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엔진소음으로 안에서 하는 말은 잘 들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비행을 했을까? 했는데 내리라고 한다. 이 수송용 헬 기는 산악지대에서는 1.5m 정도의 지사에 떠 있고 사람은 뛰어서 내려야 한다. 이때 등에 무거운 군장을 하고 잘 못 뛰어내려 등이 뒤로 젖혀지면 서 허리를 다친 병사들이 종종 발생한다. 우리 일행은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군용 야전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 다. 땅을 파서 잠을 잘 막사를 만들고 막사 사이의 통로도 땅을 파서 만들 었다. 모래주머니에 흙을 담아 피에스 철판 위에 두 겹으로 깔고 지붕을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은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야심한 밤이었 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하늘에는 별 이 초롱초롱 반짝이고 어디선가는 풀벌레 소리도 들렸다. 저만큼 멀리서 는 불빛이 반짝거린다. 우리와 인접하여 보병 중대가 있기 때문에 마음은 한결 든든하다. 그러나 예측불허의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의 안전은 우리 가 지켜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잠겼는데 중사님이 와서 저기 보이는 별이 남십자성이라 고 이야기 해주었다. 아! 말로만 듣던 십자성이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별무리가 선명하게 자 모양을 나타내고 있었다. 별의 밝기로 볼 때 1등 성이 분명했다.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전우들도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공포감 때문에 힘들어하는 전우들이 있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고독한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군인도 사람이다. 더구나 낮선 이국땅 전쟁터에 와서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 힘들게 하루 395 푸른 바람이 되어

396 하루를 보내다가 또 전혀 새로운 환경, 그것도 완전 노출된 산봉우리에서 생활하기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서로들 이해하고 도우면서 전쟁터 특유의 전우애가 싹트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뭉치 면 살로 헤어지면 죽는다 라는 의미를 실감케 하고 있었다. 교전 중에 전 우가 심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발생하면 이를 확인하는 순 간부터 전혀 새로운 양상이 전개된다. 그야말로 전의가 불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포효하 는 호랑이 같이 말 그대로 "맹호"가 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믿을 것은 전 우말고는 아무도 없다. 내가 전우의 생명을 지켜주고 또 옆 전우가 내 생 명을 지켜주는 것이다. 굳이 군인정신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진정한 참 군인정신을 발휘 한다. 사정이 위급해지면 우선 동작이 민첩해 지고 눈빛이 반짝거린다. 적이 이러한 전우들의 행동과 표정을 보면 살기를 느끼고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15. 월남의 풍경 고지에서 매일보는 시골의 풍경은 늘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런데 거의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랜 전란으로 사람들은 좀더 안전한 곳을 찾 아 피난을 갔거나 가장을 잃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버린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들은 바로는 장성한 아들이 둘이면 북군(월맹군)과 남군(월남군) 으로 나눠서 보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마을과 주요시설이 낮에는 월남군, 미군, 한국군 등 아군의 지배하에 놓이지만, 밤이 되면 월맹군의 지배하게 놓이는 특수성 때문에 안전을 위하여 나눠서 군에 보낸다고 한다. 참으로 396 국가보훈처 _

397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국민의 사정이 이러하니 노력한 만큼 전쟁의 성과도 없어 보였고 언 제 결말이 날지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프랑스의 식민지통치와 일본군의 탄압에 대항하여 싸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또다시 프랑스와 미국의 지배 하에 놓였지만 1954년 17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분 단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한반도 점령이 원인이 되어 남과 북이 1953년 7월 27일 휴전조인 식에 의하여 분단의 민족적 비극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모든 일이 다 그러하지만 어떤 일의 결과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 다. 우리의 비운도 그렇고 베트남의 슬픈 역사도 약소민족이라는 공통분 모를 갖는다. 명분이야 어떠하든 지금 우리 꽃다운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목숨을 잃는 것도 그 근간에는 우리의 '국력'과 깊은 함수관 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외교 군사적인 문제는 우리에게 염두에도 없었 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우리가 맡은 군사작전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 것만이 우리가 담당한 지역의 안전과 우리의 안위를 보전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월남의 촌락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다른 것은 우리나라 는 양지바른 아담한 뒷동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반면 월남은 보 통 산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골마을은 60~70년대에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주택개량사업 을 하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초가 지붕이었지만 월남은 이미 빨강 397 푸른 바람이 되어

398 노랑 파랑 등 원색의 지붕을 하고 있었다. 이는 프랑스 식민지 문화의 영 향이라고 한다. 이러한 칼라지붕이 작열하는 남국의 강열한 햇빛을 받으며 주변의 초록 색 등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모습은 프랑스식 건축물과 동양의 자연이 어 우러져 서양과 동양의 조화처럼 보였다. 초록빛도 우리의 것과는 사뭇 다 른 느낌이었다. 지금도 그 때 그 고지에서 매일 보았던 마을과 마을 주변 이 손에 잡히듯 선하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외관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마치 유 령의 집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렇게나 내 팽개친 가제 도구, 우거진 잡초, 수없이 난타하여 구멍이 숭숭뚫린 벽면의 상흔들을 보노라면 더위가 싹 가시고 먹장구름이 가득한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기까지 한다. 때론 주인은 없고 집에 홀로 남아있는 소나 드럼통에 가득 담겨진 황설 탕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보노라면 웬지 진한 슬픔같은 것이 밀 려드는 것을 느낀다고 술회하는 보병전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길을 가다보면 고철덩어리들이 널려 있다. 이는 월남땅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현상중의 하나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면 엿판을 하나 들러 메 고 엿장수를 하러 오자고 하면서 웃기도 했다. 고지에서 지내면서 한가지 즐거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전기를 이용하 여 고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다.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잡음이 있기는 하지만 고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먼 곳에 와서 우리말 방송을 들 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자 위안이기도 했다. 여기서 무전기의 성능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월남에서 우 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쟁물품은 MADE IN USA이다. 포, 포탄, M16 소총, 398 국가보훈처 _

399 무전기 등 거의 대부분이다. 모두가 성능이 우수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전 기의 성능은 참으로 대단하다. 사방 40km 범위에서는 마치 안방에서 말 을 하는 것처럼 성능이 우수하다. 이러한 고성능의 무전기가 있었기에 우 리는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16. 베트콩의 미군 보급수송차 공격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엄청난 굉음이 울 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밖으로 뛰쳐나왔다. 우리가 주둔하고 있는 고지에 서 직선거리로 800m 지점에서 까만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트럭 30여대 가 위험한 19번 도로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남쪽으로 보급품을 수송하 고 있었는데 맨 앞 선두차를 1차로 공격하고 이어 뒤를 따르던 기름 탱크 차를 정통으로 명중시킨 것이다. 맨 뒤차도 같은 공격을 바도 있었다. 나 는 주유 탱크차가 폭발하면서 내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큰 소리를 표현할 때 천지가 진동한다는 말을 쓰는데 실로 엄청난 소리 였다. 트럭 행렬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앞차와 뒷차가 공격을 받 고 움직이지 못하니 차량행렬은 정지상태였다. 공격을 하는 적은 숲 속에 있으니 공격지점을 찾을 수도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포대도 비상체제에 돌입하여 공격요청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 다. 우리의 지대는 높고 상황이 발생한 곳은 매우 낮아 적의 모습만 보이 면 직사포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격지원 요청은 오지 않 고 이어 미군의 무장헬기가 출동하여 보이지 않는 숲 속을 향하여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몇 시간 뒤 보급품 수송행렬은 출발했다. 이러한 수법은 베트콩이 즐겨 399 푸른 바람이 되어

400 사용하는 전법으로 이 때 미군을 납치하여 자기들의 포로와 교환하던지 몸값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아무튼 베트콩의 공격은 시도 때도 없 이 우리 아군을 괴롭혔다. 우리는 이러한 적의 공격을 눈으로 보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비 상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채택된 방안이 근접한 적을 공 격할 때 사용하는 직격포탄을 발사하는 방법이었다. 이 포탄은 값이 아주 비싼데 탄두 부분에 특수 처리한 작고 가는 못이 수천 발 들어 있어서 근 접거리에 있는 적에게 직접 발사하는 것이다. 이 때 포의 방아쇠를 당길 사수 한 사람만 남기고 다른 사람은 대피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수천 발의 못 화살이 포물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날아가 적의 몸속으로 들어간 다. 포가 여러 문이라면 360도를 커버할 수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런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우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산 속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다. 산 속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이 관측되면 우리는 OP의 관측장교에 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OP에서도 예의 주시하여 결 과를 알려준다. 월남의 밤은 야경이 없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이 기 때문에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롱불도 켤 수 없기 때문이리라. 적막강 산! 보이는 것은 별빛뿐이다. 고지아래 19번 도로로 차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없다. 밤이 되면 위험요 소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문밖 출입을 억제하고 총력을 기울여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한다. 빤히 눈에 보이는 곳에 바나나가 있 어도 눈요기일 뿐이다. 그곳에 어떤 폭발물을 설치했는지 알 수 없기 때 문이다. 400 국가보훈처 _

401 17. 나들이 파월 한국군 병사들에는 전투수당이 주어졌는데 병장이 55불이었던 것 으로 기억된다. 이 55불도 다 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주고 일부는 본국 의 가정으로 보내졌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병사들은 한 달에 20불도 채 안되는 돈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선물할 물건을 준 비했다. 목숨을 내놓고 몇 푼씩 받은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선물을 마련 하는 착한 심성을 가진 전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착한 백의민족의 후 손답구나! 감탄을 하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바나나 한송이 값은 월남 화폐로 100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한 송이라도 10개짜리와 20개짜리 값이 각각 다른데 그 나라는 한송이가 50 개나 80개나 상관하지 않고 값이 같았다. 그것은 순박한 인심 때문인지, 바나나가 많아서 그러는지, 수 개념이 희박하여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바나나 몇 송이, 코코야자 등을 파는 젊은 여자들의 눈빛이 매우 슬퍼 보였다. 가난한 나라가 전쟁을 하면 국민은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전쟁을 통하여 전쟁이 얼마나 백성들을 굶주림에 떨게 하는 가를 절실하게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비교하면 좋은 조건 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바나나, 야자, 고구마, 사탕수수 등 배고픔을 덜 수 있는 과일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날씨가 따뜻하니 난방비 걱정 없는 것 또한 우리보다는 행복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한국군은 알뜰살뜰 얼마간의 돈으로 바나나도 사먹고, 야자를 사 다가 대검으로 어렵게 쪼개서 야자수 맛도 보았다. 또 종종 나이가 좀 든 여자들이 입술을 검게 칠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401 푸른 바람이 되어

402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천연 열매로 입술을 검게 물들 였다고 하며 이는 유교와 불교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18. 위문편지 그 때에는 학생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거의 의무적으로 위문편 지를 썼다. 본국에서도 학생들이 쓴 위문편지를 받아 보았지만 별다른 감 흥을 주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과 쓰고 싶지 않은 편지를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편지가 갖는 의미를 반감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국땅에서 받는 위문편지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편지의 내 용보다도 편지 그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남달랐다. 내일에 대한 불확실 성과 고국에서 보내온 편지라는 점 등이 상승작용을 하여 위문편지로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위문편지의 내용은 비슷비슷하지만 병사들은 자기 몫으로 배달된 편 지를 열심히 읽고 부지런히 답장들을 썼다.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는 순 간만큼은 무사태평하고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표정들이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었다. 위문편지뿐만 아니 라 날짜가 한참 지난뒤에 도착하는 우리 신문도 인기였다. 다른나라 전 쟁터에 와서 우리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처 럼 나라를 떠나오면 모두가 자기나라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애국자가 된다. 나는 내가 받은 몇 통의 위문편지 가운데서 부산의 초등학교 6학년 여 자 어린이에게 위문편지를 받은 보답으로 고지에서 채집한 날개 색깔이 402 국가보훈처 _

403 아주 고운 나비 두 마리를 답장과 함께 보냈다. 나비를 봉투에 넣어 보내 놓고 가다가 부서지면 어떻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잘 받았다는 답장을 받 고 기뻤다. 월남의 나비는 우리나라 나비와는 많이 다르다. 기후와 자연환경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우선 월남의 나비는 색상이 매우 다양하여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께서도 월남의 다양한 색상의 나비를 보았다면 감 탄사를 연발했을 것이다. 나는 위문편지를 떠올리는 순간 예쁘고 고운 모습을 지닌 나비가 생각 났다. 지금은 통일된 베트남의 공중을 총소리에 놀라지 않고 아름자태를 뽐내며 훨훨 날고 있으리라. 19. 아름다운 조국의 산하여 영원하라! 우리 한국군은 1964년 9월 22일 베트남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기 시작하 여 파리휴전협정에 따라 1973년 3월 24일 모두 철수할 때까지 결코 짧지 않는 8년 8개월 동안 국익과 월남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전쟁 에서 꽃다운 젊은이 5천 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보다 훨씬 많은 수가 부상을 당하여 지금도 상당수가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자리를 빌러 그 때 유명을 달리한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빌고 전쟁 후 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전우들이 하루 빨리 쾌차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편히 살아가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베트남은 우리 한국의 남북 분단과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양군은 식 민지로 있다가 외세에 의하여 남과 북이 분단되었고, 그 결과 통일을 위한 명분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403 푸른 바람이 되어

404 우리의 파병 목적도 월남의 패망과 월맹의 승리로 퇴색되고 말았지만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체험하고 국위를 선양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월남전은 우리와 같은 최 말단의 병사가 보기에도 승산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엄청난 전비를 쏟아 부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는 미국이 전쟁의 승패를 가늠 하지 못해서였을까? 월맹군보다 수십, 수백 배나 강한 화력, 뛰어난 기동성, 각종 뛰어난 첨 단 장비를 갖고도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전혀 전쟁에서 패 할 이유가 없는데도 패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이겨야 할 사람은 지고 져야할 사람이 이긴 셈이다. 월맹이 라는 난쟁이가 거인인 미군을 넘어뜨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의 밑바닥 체험을 한 입장에서 월남전쟁의 패인 정신력, 기후 날씨, 정글 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애국심, 주인정신, 지연 환경 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월남의 군인과 국민들은 전쟁에서 누가 이겨도 별 상관하지 않는 듯한 인식을 주었다. 전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절실한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 처럼 보였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전쟁은 미군과 한국군이 하고 자기들은 구경이나 하고 떡이나 먹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나 월맹군의 태도는 마치 전쟁의 화신처럼 무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이러한 강인한 태도는 공산 독재국가가 강조하는 획일적 인 충성심의 발로로 보였다. 그들은 우리 아군이 주요 도로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북쪽 월맹에서 17도선을 넘어 험준한 산악지대 공급비밀루트를 따라 인력으로 무기를 404 국가보훈처 _

405 반입한다. 박격포탄 1발을 운반하기 위하여 그들이 쏟는 노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등에다 포탄을 지고 숲이 우거진 밀림을 통과하여 릴레 이식으로 인수인계 끝에 작전지역에 반입되는 것이다. 이렇게 얻은 무기 를 어찌 함부로 쏠 수 있겠는가? 어려운 환경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월남군과 국민들은 어떠했는가? 오랜동안 외세의 탄압을 받아 오면서 체념과 무기력증으로 주인정신과 애국심 상실의 증후군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너무 풍부한 전쟁물 자 때문에 그들은 무기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총 알을 흘리고 다닐 정도로 무관심하고 나태했다. 들리는 말로는 베트콩에 게 무기까지 밀매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을 정도였다. 위와 같은 악조건을 감수하더라도 밀림만 아니었으면 전쟁은 월남의 승 리로 끝났을 것이다. 아무리 화력을 쏟아 부어도 외관상으로는 별로 표시 가 나지 않는 우거진 숲은 월맹군의 천연의 방패막 구실을 해 주었다. 만 약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화력으로 전쟁을 했다면 그렇게 오래지 않아 승 리를 거두었을 것이라고 우리는 입을 모은 바 있다. 월남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싶다. 전쟁의 승리는 도움을 주는 외국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 당사 국인 군인과 국민들의 정신력이 좌우한다. 전쟁은 군인만이 하는 것이 아 니라 온 국민이 다 함께 혼연일체가 되어 총력전을 펼쳐야 승리할 수 있 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학교교육과 평생교육 차원에서 나라의 소중 함을 꾸준히 일깨워 주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고 몸소 행동으로 애국심을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아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교훈을 너무 쉽 405 푸른 바람이 되어

406 게 망각하는 경우가 허다했음을 아울러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장차 험난한 통일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국력을 기르는 것 만이 최선의 길이다. 현재 우리의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이다. 조그만 나라 가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남다른 근 면성과 놓은 교육열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우리의 5천년 역사가 말해 주듯이 우리 국민에게는 위기극복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는 우리 국민의 큰 장점이자 우수성이라는 자긍심을 가 지고 민족통일의 과업을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 아름다운 산하가 역사와 함께 영원히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406 국가보훈처 _

407 추모헌시 유월의 장미 평화의 노래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되는 그날까지 유월의 노래 초혼제

408 추모헌시 유월의 장미 류진아_최우수상 / 부산 남구 대연5동 이억 만리 그대의 땅엔 비둘기 날고 이 땅엔 잠든 그대의 고른 숨소리 위로 태양이 금빛 찬란한 가루를 뿌리옵니다. 지나가는 바람도 그대 곁에 머물러 그대 숨결 너머로 들려오는 총포소리에 나라향한 피 끓는 그대의 사랑 안에 회오리로 휘몰아칩니다. 불바다로 던져진 조국의 신음에 용광로 같은 열정을 안고 달려온 그대 그대의 푸른 눈빛은 살아 나라를 지키고 그대의 붉은 가슴은 피어 평화를 지키리. 그대 가신 길에 피어서 붉은 꽃망울 위로 새벽의 이슬이 녹아 그대의 살을 만들고 햇살이 내려 잠든 그대의 영혼을 깨우옵니다. 408 국가보훈처 _

409 추모헌시 북녘의 바람과 남녘의 바람이 만나 저 붉은 빛 봉우리 활짝 꽃피우는 그날 이억 만리 먼 땅에 계신 당신의 나라에도 찬란한 햇살 속 비둘기 떼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올라 하나된 목소리로 노래 부를 것입니다. 당신이 잠든 그 땅에 붉은 장미 만발한 그때 우리도 당신의 닮은 열정을 안고 하나 된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 부를 것입니다. 당신이 계신 그곳에 우리의 노래 소리 들리는 그날 당신도 영혼도 함께 편히 잠드소서. 409 푸른 바람이 되어

410 추모헌시 평화의 노래 오유리_우수상 / 대전 중구 선화동 동방나라 한반도 푸른 새벽 밝아오네 아련한 총구소리 잊을 수 없건마는 희끗해진 머리카락 세월은 잊으라네. 촘촘히 널려있는 구름들 사이로 파랗게 보이는 하늘 한 조각 하늘만큼 파랗던 젊음이여 조국이여. 낮달처럼 떠있는 열망어린 혼백들의 깊에 박힌 상처는 훈장처럼 남겨져 빛바랜 어제도 오늘같이 새롭구나. 평화의 나무들아 자유의 꽃잎들아 이 땅위에 뿌려진 눈물을 기억하라. 이 땅위에 묻혀진 희생을 잊지마라. 410 국가보훈처 _

411 추모헌시 양철같은 시간을 모질게도 삼켜버린 세월이여 인생이여 민족 위해 세계 위해 평화를 노래하라 자유를 노래하라. 너와 나의 노래는 창공을 휘휘 돌아 서럽고도 뜨거웁게 꽃으로 피어나리 애절하고 진실되게 나무로 피어나리. 그 향기 진동하여 벌과 나비 모여들고 그 열매 아름다워 땅과 하늘 칭송하네 동방나라 한반도 푸른 새벽 밝아오네. 411 푸른 바람이 되어

412 추모헌시 우리민족 모두가 하나되는 그날까지 고선민_우수상 / 부천 여월중학교 2학년 한반도 전체를 피로 붉게 물들게 했던 50년전 6월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이 작은 땅덩어리가 반으로 나뉘어 서로에게 상처를 내던 그 날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당하고 우리 조국을 빼앗긴 애통함에 눈물 흘리며 몸둘 곳 없이 이러 저리 끌려 다니던 우리 민족 뒤에서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 아끼지 않고 희생하신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412 국가보훈처 _

413 추모헌시 세계 속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볼 수 있는 것이란걸 너도 나도 너무나 잘 압니다. 여러분들의 희생의 피가 결실을 맺어 세계의 아이티 산업을 이끄는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여러분들의 젊음의 희생과 자녀를 잃은 부모님들의 한없는 눈물의 희생이 우리에겐 힘의 원동력이 되어 밝은 미래를 향해 한발짝 더 나아갑니다. 여러분들의 진한 나라 사랑과 젊은 날의 수많은 눈물을 모두 묻은 이 땅, 대한민국은 그 날의 애통함을 잊지 않고 우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413 푸른 바람이 되어

414 추모헌시 우리가 받은 많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베풀며 살아가고 있음을 순국선열께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렵니다. 세계 속의 작은 한반도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이지만 그 상처가 아물고 우리 민족 모두가 하나되는 그날까지 순국선열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않고 살아갈 것을 다짐, 또 다짐하며 여러분께서 이루신 한국인의 자부심과 열정을 장차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꿈나무들인 우리의 가슴에 품고 순국선열의 숭고하고 414 국가보훈처 _

415 추모헌시 아름다운 정신을 이어받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까지 더 밝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더욱 사랑하리라. 415 푸른 바람이 되어

416 추모헌시 한목숨바쳐살려낸나라 이미진_장려상 / 포항 구룡포여자종합고등학교 3학년 봄냄새가 물씬 풍기는 지금 당신들은 평안하신지요 한 핏줄 한 민족 한 가족끼리 전쟁이 일어나 가족을 잃고 3 8선이 그어진 지금 당신들은 어찌 두 눈을 감았겠습니까 당신들은 얼마나 고통속에 살았는지요 당신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요 태극기로 물결치던 그때 당신들의 애국정신과 당신들의 나라사랑과 당신들의 굳은 의지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 당신들이 살려 낸 이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416 국가보훈처 _

417 추모헌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어도 온몸이 갈기 갈기 찢기는 고통을 받아도 당신들은 이 나라를 위해 귀한 한 몸 받쳐 우리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어쩌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맴돌며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닌지요 어쩌면 다 찾지 못하고 산산히 흩어진 육신을 찾고 있는 건 아닌지요. 당신들의 애국정신 앞에 당신들의 몸을 받쳐 살려 낸 이 나라 앞에 당신들이 물려주신 이 나라를 당신들이 고통받으며 지켜낸 이 나라를 우리는 고마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나라를 살리기위해 고통 받았어도 나라를 살리기위해 한 목숨 내놓을지라도 지켜낸 당신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이제는 마음 편히 잠드십시오. 417 푸른 바람이 되어

418 추모헌시 유월의 노래 임정윤_장려상 /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화약연기 자욱했던 산과 골짜기 녹슨 철모와 썩어 나뒹구는 나무등걸들 그날, 영령들이 흘리신 피눈물을 우리들은 아지도 생생하게 잊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허리가 잘려있는 조국 한마리깃털고운새가되어 이 산골짜기 비무장지대를 지나 임진강에서 압록강까지 아니 저 백두까지 한 달음에 치달려갈 그날은 언제 올까요? 아아, 잊을 수 없는 영령들이시여 포연과 총소리에 피로 물들던 그날 친구도 애인도 부모 형제도 버리고 끝내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통곡의 날 그대들은 포연 속에 말없이 산화해 갔습니다 418 국가보훈처 _

419 추모헌시 비바람과 눈보라에 부대껴 온 아픈 세월 이젠 화약연기도 쓸쓸히 잠든 이 골짜기 6 25의 아픈 상처만 가슴에 묻은 채 글씨조차 희미해져 알아볼 수 없는, 돌무더기 옆에 나뒹구는 썩은 비목 하나 그러나 그대들의 형형한 눈빛은 살아나 여전히 키 큰 나무로 우뚝 서 있습니다 산새소리도 아름다운 6월의 산하 장렬히 산화해 간 그대들이 있었기에 오늘 이 골짜기엔 녹음이 짙푸르고 온갖 짐승들과 예쁜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푸른 젊음을 초개같이 버려서 얻어낸 피의 값이요 오래 지켜야할 우리들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날의 격전지엔 해마다 아름답게 들꽃들이 피어나지만 초개같이 버린 그대들 목숨 값으로 저리도 환하게 피어나는 걸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419 푸른 바람이 되어

420 추모헌시 아아, 영령들이시여 보세요, 피 값으로 지켜낸 아름다운 이 산하를! 푸른 산 계곡에서는 짐승들이 뛰놀고 맑디맑은 강에서는 고기떼가 노니는 것을! 오늘도 나는, 포연의 아픈 흔적이 남은 산하에서 목 메이게 그대 이름을 불러봅니다 반세기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여전히 빛나는,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을! 아아, 님들이시여 이젠 고이 잠드소서 부디 편히 눈 감으소서 420 국가보훈처 _

421 추모헌시 초혼제( ) 임종훈_장려상 / 대구 달서구 도원동 세상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임께서 흘리신 의 한 방울조차 온전히 말하지 못합니다. 항상 그러했듯이 고귀한 임의 피 한 방울이 수천 마디의 말들보다 다 빨리 를 붉디붉게 물들이며 이 나라, 이 겨례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임으로 하여 國 은, 저마다의 가슴에 깊이 새겨 영원토록 이어가야 할 뜨거운 다짐 같은 것임을 비로소 알겠습니다. 421 푸른 바람이 되어

422 추모헌시 임이시여, 당신께서 전날 흘리셨던 이 故 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나무를 키우고 숲을 이뤄 이리도 울울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신 임의 불퇴전의 용기와 이 불굴의 國 으로 고이 남아 우리들 가슴 이리도 든든합니다. 임의 는, 백척간두에 선 國 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셨고 마침내 한 걸음 더 내딛어 떨어져 내리는 그 아득한 추락의 힘으로 길을 내어 산 자들을 뒤따르게 하신 것. 그럼으로 임께서는, 떠도는 이시면서도 우리들 가슴에 내내 으로 남을 아름다운 이십니다. 422 국가보훈처 _

423 추모헌시 나직하게 임의 부르오니 이 나라 이 겨레의 이시여, 언 땅 뚫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減 의 넋으로 오십시오. 423 푸른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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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푸른 바람이 되어 발행처_ 발행일_ 인쇄처_ 2005년 7월 제이아트 비매품 이 책에 게재된 참전수기는 본인들이 겪은 사실을 글로 쓴 것으로 검증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이책에 게재된 모든 내용은 국가보훈처의 사전 허가없이 전재 복사할 수 없습니다. 행정간행물등록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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