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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민단,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을 중심으로* 8) 지 충 남 (전남대학교) 국문요약 민단과 조총련의 모국성향은 친한국, 친북한이며, 원코리아페스티벌의 경우, 중립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민단과 조총련은 각각 남북한의 공인 및 공민단체라는 점에서 모국정부의 통일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하는 통일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통일운동의 성과로는 첫째, 민단과 조총련은 통일운동의 전개를 통해 지지 세력의 결집, 회원들의 통일의지의 고취, 미래의 한반도 통일준비에 기여; 둘째, 민단은 32만명 회원을 기반으로 통일운동의 주도권 확보에 노력; 셋째, 조총련은 친북 해외동포와의 연대 강화; 넷째, 원코리아페스티벌은 통일과 축제의 접목을 통한 통일운동의 외연 확산, 자이니치( 在 日 )의 통일의식 함양, 생활 중심의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반면에 통일운동의 한계는 첫째, 민단과 조총련은 공히 타 단체의 통일운동에 무관심과 배척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동포 전체로의 확산에 미흡, 활동의 제약과 자율성 부족, 통합의 기제 역할 미흡; 둘째,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선언적 통일운동에 치중, 대중적 확산 미흡, 민단과 조총련의 견제를 받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통일논의의 개방성과 통일의식의 함양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체를 포함한 재일동포 사회의 한반도 통일에서의 역할은 * 이 논문은 2010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인문사회연구역량강화사업비)으로 한국연 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 S1A5B8A ).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57

2 중개자이며, 그리고 일본 사회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통해 긍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주제어 : 재일동포, 통일운동, 민단,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 Ⅰ. 서 론 1. 문제제기 1945년 일본의 항복, 그리고 미 소의 한반도 진주, 1948년 8월과 9월에는 남과 북에 이념적으로 상이한 정부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휴전협정의 체결은 한반도를 영토, 체제, 민족분단으로 고착화시켰으며, 통일을 민족과 정부의 역사적 과제로 부각시켰 다. 이승만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 모두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굴곡을 극복하면서 다양한 통일방안과 대북정책을 제안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대북포용정책, 참여정부는 평화번영정책,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 로세스, 통일대박론, 드레스덴 선언(Dresden Declaration)을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 조성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제안을 흡수통일의 논리 로 비난하면 서 거부하고 있다. 현재 남북한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대립각만 세우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한 정부의 첨예한 대립과 톱니바퀴가 엇도는 불협화음의 환경 속에서 한반도 평화통 일을 위한 또 다른 돌파구는 재외동포의 활용이다. 한반도 통일을 결정하는 직접 변수는 남북한 정부이며, 모국의 정치적 군사적 갈등의 정도에 따라 재외동포들은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재외동포를 비롯하여 정당, 시민사회단체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통일 의지의 표출과 역할 또한 교류와 협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700만 재외동포는 우리 민족의 통일외교를 위한 자산이다. 문제는 재외동포들이 통일과 관련된 제논의에서 능동적 역할보다는 수동적 피동적 역할과 함께 제외되는 냉전시대의 관점이 지속하고 있다. 남북한 정부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외동포들의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역할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58 민족연구 64호

3 일본에 정주하고 있는 892,704명의 재일동포를 타 국가의 재외동포들과 비교하면, 특히 올드커머(Old Comer)는 차별과 박해의 표본이었다. 동포들은 올드커머와 뉴커머 (New Comer)가 혼재한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올드커머 및 그 후손은 712,704명으로 귀화자 345,744명을 포함한 수치이며, 뉴커머는 약 180,000명으로 나타났다(외교부 2013, 15). 재일동포를 이념적으로 구분하면 친한국, 친북한 그리고 중립적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재일동포 사회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한인회는 3개이다. 친한국 성향으로 32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 및 뉴커머 중심의 5개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1만명 회원, 그리고 친북성향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 련)의 5만명 등 이들 한인회가 동포들을 단결시키고, 이익과 권리를 대변하며,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과 조총련의 양립은 재일동포를 위한 많은 긍정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문제와 관련하여 동포들의 화합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예컨대, 한반도 통일은 주변 강대국 및 재일동포 사회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한반도 통일을 둘러싼 민단과 조총련의 갈등은 모국인 남북한 정부의 영향을 받아 재일동포 사회에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였다. 그 결과, 친한과 친북의 대립구도를 양산했으며, 재일동 포 사회는 현재에도 사상과 이념에 의한 대립과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면서 반목과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이 논문은 재일동포 민족단체를 중심으로 한반도 통일에 대한 활동과 역할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민단,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One Korea Festival)의 단체 형성 과정; 둘째, 이들 3개 단체의 통일운동의 분석; 셋째, 통일운동의 차이, 성과와 한계의 비교; 넷째, 재일동포 의 한반도 통일에서의 역할을 고찰하고자 한다. 2. 선행연구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한인회는 민단과 조총련이다. 이들 단체는 동포들의 생활자 단체이 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단체 활동은 설립 목적에 따라 여러 부문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이 연구는 단체 활동 중 통일운동 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을 두어 민단,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 등 3개 단체의 통일운동 전반을 분석하고자 한다. 재일동포들의 통일을 다룬 연구로는 김성윤(2012); 남근우 외(2010); 박종성 김진 환(2012); 이진영 김판준(2014), 朴 鐘 鳴 (1999); 郭 東 儀 (1994); 上 田 誠 吉 藤 島 宇 内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59

4 (1976) 등의 이론 및 실증 연구가 있으며, 이들은 통일운동의 과제, 재일동포의 역할, 과제, 방법 등을 분석하였다. 박종성 김진환은 재일동포 314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하 였다. 재일동포는 통일을 분단의 극복이자 식민주의의 극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도 분단 극복과 통일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 중 일본 국적의 표본은 적은 반면에 한국 국적 보유자 비율이 높아 통일의식과 관련된 통일의 과제, 가치 지향성과 방향의 설정 등에 있어 가지 중립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남근우의 사례연구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운동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민단계, 조총련계, 조총련 탈퇴자 등을 대상으로 통일운동과 갈등, 민단과 조총련 간 화합과 제약 요인, 통일교 산하단체인 평화통일연합에 대한 민단과 조총련의 입장, 한총련 활동 등을 수록하였다. 손미경(2011); 지충남(2013b); 황혜경(2010); ワンコリアフェスティバル 實 行 委 員 會 (1994) 등의 연구는 축제와 민족정체성 혹은 축제를 통일과 관련시켜 연구하였다. 예컨대 이신철(2015)은 재일동포 사회의 분단고착과 분열의 과정에서 균열이 있었고 새로운 모색의 출발점은 조국통일의 열망이라는 작은 통합 을 지향하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이었다 고 주장하였다. 민단과 조총련을 포함하여 재일코리안 단체의 통일을 다룬 연구는 강희봉(2008); 김태기 (2001, 2003); 지충남(2013a); 정용하(2007); 田 駿 (1972a; 1972b); 윤황 조희원(2014) 등의 연구가 있다. 지충남은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을 제1, 제2 통일운동으로 규정했으 며, 제3의 민족통일운동은 민족단체 간 대립을 불식시켜 공존의 장을 형성하고 화합과 교류를 도모하면서 조국통일을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田 駿 의 연구는 조총련에 대한 편향된 인식의 해소를 위해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관점에 서 시기별로 재일한인의 생성과정, 정착과정의 고찰과 함께 지식층의 민족운동, 공산주의운 동, 조선인연맹운동, 민단과 조총련 활동을 분석하였다. 특히 조직운영과 관련하여 1970년 대 이전의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을 기술하였다. 윤황과 조희원은 재외한인동포사회의 통일운동단체 현황 및 특징을 분석하여 단체들의 통일운동에서의 역할과 과제를 모색하였 다. 일본의 경우, 민단과 원코리아페스티벌이 통일운동을 분석했으며, 재외동포사회의 통일운동단체는 남과 북의 민족공동체를 연합 통합시켜 남북통일의 원동력 역할의 제고와 함께 통일 이후의 확산지 역할을 주장하였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기존연구와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첫째, 대다수 선행연구 는 주로 민단의 단체 활동 가운데 통일운동을 일부분으로 다루었으며, 조총련의 통일운동에 대한 연구는 田 駿 의 연구 외에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둘째, 재일동포 사회에서 비주류에 160 민족연구 64호

5 속하는 제3의 통일운동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의지를 재조명한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갖고 있다. 셋째, 민단과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의 통일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고찰하여 재일동포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역할을 모색할 것이다. Ⅱ. 단체 형성과 통일운동의 전개 양상 1. 민단 1) 단체 형성 1945년 9월, 조련결성중앙준비위원회 는 신조선의 건설, 귀국 지원, 자녀 교육 등 민족 권리의 쟁취를 내용으로 한 선언을 발표했다( 田 駿 1972a, 537). 동년 10월, 좌우세력 을 망라한 비정치적 성격의 재일조선인연맹(이하 조련) 이 결성되었다( 李 瑜 煥 1971, 7). 활동방침으로는 귀국동포의 지원, 생활권의 확보, 조국의 중앙정부수립촉진 등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의결은 김두용, 박은철, 한덕수 등 좌파들이 사전에 회동한 이타바 시( 板 橋 ) 회의의 계획에 의해 진행된 결과물로 조련의 결성부터 좌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구조였다. 제1회 조련 중앙위원회는 4개항의 발표와 함께 각 지방본부로 하여금 친일파와 민족반역 자를 추방하는 인민대회의 개최를 지시하였다. 1) 조련의 주도권을 김천해( 金 天 海 )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부터 조련 내부에서 좌 우 갈등, 신탁통치에 대한 찬 반은 분열의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1946년 10월, 오사카시( 大 阪 市 )에서 제3회 조련 전체대회가 열렸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독립국가의 건설을 주장하였다( 坪 井 豊 吉 1959, ). 다음해 10월, 제4회 조련의 전체대회가 도쿄( 東 京 )의 교바시공회당( 京 橋 公 會 堂 )에서 열렸 는데 동포의 생활위기 타개, 민주주의민족전선 확립, 조국의 완전 자주독립 촉구 등을 기본방침으로 채택하였다( 坪 井 豊 吉 1959, ). 한편 조련에서 배제된 친한국계 반공청년들은 1945년 11월, 조선건국청년동맹(이하 건청) 을 결성했으며, 박열을 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1946년 1월, 조련에서 중앙간부의 1) 첫째, 조선인의 귀국대책추진을 위해 시모노세키( 下 關 ) 하카다( 博 多 ), 센자키( 仙 崎 ) 등의 3곳에 조련출장소 개설; 둘째, 일본당국에 징용노동자의 귀국여비와 식량요구; 셋째, 미군 총사령부에게 외국인의 식량특별배급 요구; 넷째,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조사와 숙청( 坪 井 豊 吉 1959, 111) 참조.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61

6 총퇴진 요구를 제안하여 제명당한 김재화를 비롯하여 변영우, 오우영 등 조련을 탈퇴한 친한성향의 인사들이 신조선건설동맹(이하 건동) 을 결성했다. 1946년 10월에는 건청과 건동이 반공과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한 재일본조선거류민단 을 발족했으며, 초대 단장에 박열을 선출하였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46; 최진욱 외 2004, 17-18). 민단은 반공민족진영의 단체로 이승만정부가 수립되자 단체명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 단 으로 변경했으며, 한국으로부터 재일동포의 공인단체로 인정받았다. 강령은 대한민국의 국시를 준수하며, 재일동포의 권익옹호 경제발전 문화향상에 힘쓰며, 세계평화와 국제 친선을 도모 한다 등 5개항이었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中 央 本 部 2006, 3). 민단은 1993년 기존 명칭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으로 변경했으며, 2005년부터는 한국 국적으로 제한하였 던 단원의 자격을 한반도에 뿌리가 있는 사람으로 확대하였다. 2) 통일운동 (1) 한국의 통일정책 지지 박춘금, 권일, 백무, 정인훈 등 우익과 친일성향을 띤 인사들이 1948년 도쿄에서 통일문제 에 관한 유지( 有 志 )로서 동우구락부 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의 반성, 공존, 협상으로서의 통일을 주장했다. 동우구락부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장은 이 당시 재일한인 사회 모두의 인식과 일치하고 있었다. 1954년 10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남북협상회의 를 제안한 남북통일에 대한 내용으로 남한, 재일동포, 해외동 포 등 유력인사 1,613명에게 우편물을 발송하였다. 우편을 받은 동우구락부는 민단과 민전을 중심으로 분열과 대립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일운동을 활용하여 좌우세력을 통합하려는 취지로 1955년 1월 남북통일촉진협의회(이하 통협) 을 결성했다( 朴 慶 植 1989, 375; 김태기 2003, 41). 2) 통협은 남북한 자유총선거를 통해 통일중앙정부를 수립하고, 통일 국가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들의 강령은 북한의 주장에 가까운 통일방안이었다. 통협의 결성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좌우를 통해 협의회를 모색한 점에서 활동의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일부 재일동포들은 통협의 활동으로 민단과 민전의 투쟁이 없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2) 통협의 참여 인사는 민단계의 권일, 박춘금; 민전의 남호영, 이재동, 이중추; 중립파 성향의 김삼규, 정인훈; 무정부성향의 원심창; 사회주의자 이북만 등이다. 통협의 강령은 첫째, 과거를 반성하고 관용하여 민족의 단합; 둘째, 평화적 통일 달성; 셋째, 외국군의 철수와 외세의 간섭배격; 넷째, 남부회담과 국제연합 및 관계국 회의 개최; 다섯째, 남북자유선거에 의한 통일정부수립. 고성준 (1979, 274) 참조. 162 민족연구 64호

7 그러나 통협의 한반도 통일운동의 추진은 민단과 갈등을 일으켰다. 민단은 북한의 남일 외상이 남북협상회의를 제의한 1954년 남일어필 에 대해 통협이 동조했으며, 또한 용공적 반정부적 주장으로 민단의 성명이나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을 배격하는 통협의 운동 행태를 비난하였다. 통협의 통일운동에 대해 민단은 결성대회의 방해, 6 25 평화기념 제에 대한 비협조로 대응했으며, 민전의 후신인 조총련도 통협 참여 인사에 대해 탈퇴와 비협력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통협은 민단과 조총련의 방해 및 비협조로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걸친 통일운동으로 활동을 마감하였다. 한편 통협의 활동 부진 및 노선상의 분열을 이유로 일부 세력이 통협을 이탈하였다. 권일, 이북만, 정인훈, 남호영 등 민단계열이다(정용하 2007, 234). 이들은 1956년 3월, 우리민주사회주의자동맹(이하 민사동) 을 결성하였다. 3) 총 7개 강령 중 통일과 관련된 내용은 첫째, 민족자결의 원칙에 기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자주독립의 달성; 둘째, 남북을 통한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중앙정부의 수립; 셋째, 통일 조국의 국제적 영세중립화 를 주장했었다. 민사동의 통일 활동 역시 민단과의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권일 위원장이 1957년 발표한 논문에서 통협의 활동은 한국에서 북진통일기운의 쇠퇴, 북한에서는 선거에 의한 신중앙정부의 수립에 영향을 주어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기여하였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로는 조국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사회주의만이 한반도 통일에 있어 구국의 유일한 길임을 주장하였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77-81). 이러한 민사동의 통일 논리에 대해 민단은 국시 준수( 國 是 遵 守 ) 의 내용으로 서한을 보내면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1958년 11월, 민사동은 제4차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조국의 평화통일은 국제협력과 그 합의하에 국제연합을 중심으로 평화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한국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남근우 외 2010, 15). 그러나 대중적 지지와 동원이 결핍된 상태에서 전개된 민사동의 통일운동은 이후, 한국정부를 지지하는 단체로 전락하였다. 이승만 정부의 3 15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4 19 혁명의 발발로 이어졌다. 혁명 이후 자유로운 정치활동의 재개는 통일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을 놓고 민단은 모국과의 관계에서 주체적인 태도를 모색하였다. 1960년 5월 제3차 선언 을 통해 민단은 거류민을 위한 거류민의 사명을 다하겠으며, 국내정책에 있어서도 국헌에 위배되는 시책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부의 태도를 표명한다고 선언하였다 3) 1956년 5월 단체명을 민주사회주의동맹 으로 개칭했으며, 1957년 6월 제3차 전체회의에서 한국민주 사회동맹 으로 변경하였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63

8 (지충남 2015, 93). 후속 조치로 민단은 통일문제전문위원회 를 설치했으며, 통일에 대해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도 통일방법론을 함께 연구하겠다는 입장을 취하였다(김태기 2000, 77). 먼저 민단은 조총련과 교류의 시작을 비롯해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961년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재일남북경제인 간담 회, 한국학생동맹 조선유학생동맹 합동 문화제, 조국평화통일 남북문화교류촉진재일문 화인회의 등이 결성되었다. 이들 단체에는 민단의 최선, 조총련의 허남기 등 문화인들이 참여했으며, 4) 이상적인 통일을 말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적용 가능한, 즉 민단과 조총련계 문화인들이 사진전, 합동미술전 등 문화제를 공동으로 개최하여 교류하였다. 그러나 5 16 쿠데타로 군사정권을 수립한 박정희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으며, 국토통 일을 위한 실력배양을 주장하면서부터 국민들의 통일 논의를 중지시켰다. 이러한 영향의 결과, 민단 내부에서도 다양한 통일 논의의 중지와 함께 군사정권에 대한 지지와 반대가 충돌하였다.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민단 사람들이 유지간담회를 결성하여 민단 지도부에 반발하였다. 1965년 한일회담에 대한 반대시위와 각종 통일 논의가 부상하면서 국정의 혼란이 가중되 자, 박정희는 선 건설, 후 통일 의 통일정책을 발표하였다. 모국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민단은 제4차 선언에서 반공이념의 고수, 국제연합의 한반도 통일방안의 지지를 선언하였 다. 이에 반대하는 이영근, 곽동의, 원심창 등이 한국민족자주통일연맹(이하 한민자통) 을 결성하였다. 민족자결의 원칙, 평화적 방법, 민주주의적 수속( 手 續 )이라는 이론적 주장을 실천운동으로 전개하면서(고성준 1979, 276), 박정희 정권 퇴진, 한일협정 반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반대와 연계하여 민족통일운동을 추진했지만 민단은 한민자통이 발간한 통일조선연감 이 적성이라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田 駿 1972b, ). 또한 민단은 한민자통이 조총련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아 제5차 중앙위원회의에서 이적단체로 규정하였다. 민단의 제12회 정기중앙위원회가 국토통일과 우리 를 발표했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101). 한국정부가 자유민주주의에 의거한 통일정부수립을 목표로 평화적인 승공통일 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민단은 국토통일의 이념과 자세에서 중화적 혹은 타협적인 태도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즉 용공풍조에 물들거나 무조건적 국토통일을 원하는 무원칙적 통일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장으로 민단은 조총련의 적화사업과 민단파괴공작을 분쇄하 4) 재일동포 문예인들의 동인지 백엽( 百 葉 )의 주간 최선( 崔 鮮 )은 조총련계 문화인과 접촉했으며, 국가보안법 반대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1961년 9월 민단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박병윤(1992, 99) 참조. 164 민족연구 64호

9 기 위해 승공통일을 위한 활동에 전력을 다 할 것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972년 민단 중앙본부 점거 폭행사건이 수습된 시점에서 남북한이 7 4 남북공동성명 을 발표하였다. 동경민단과 조총련은 이 성명을 지지하는 공동 회합을 가졌으며, 한국청년학생 동맹과 조선청년동맹은 공동으로 합동문화제를 준비했지만, 10월 유신의 선포로 민단과 조총련의 합동행사는 무산되었다(정갑수 2006, 12). 이렇듯 재일동포의 화합과 통일운동은 한반도의 정세에 좌우되었다. 광복절에는 동경민단과 조총련의 주도 아래 1만 3천명의 인원이 참석하여 남북공동성명을 지지하는 대회를 개최했었다(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2005, 121; 吳 圭 祥 2005, 92). 그러나 민단 중앙본부는 공동 집회를 중지하도록 동경본부에 요청하였다. 한편 7 4 남북공동성명과 10월 유신의 선포는 민단 내부의 갈등을 가속화시켰지만, 재일동포 중심의 자주적 통일운동의 전환점이었다. 자주적 통일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민단정상화유지간담회(이하 유지간담회) 를 조직한 이희원, 김금석, 배동호는 민족통일협 의회(이하 민통협) 을 결성하였다. 한국의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민단 내부에서는 박정희 정권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 분열과 대립이 발생하였다. 민통협은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하나의 문제로 간주하고, 민주화는 통일을 최후 목적으로 인식하였다. 즉 민주화가 당면 과제라면 최종 목표는 통일이었다. 완전한 민주화는 통일이 되어야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윤상철 2003, 197). 민단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산하단체인 재일본한국청년동맹(이하 한청) 과 한국청년 학생동맹(이하 한학동) 의 자격을 박탈하여 조직을 정비하였다. 민단에서 배제된 단체들은 한국을 비롯한 해외 민주화세력과 연대하여 1973년 8월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이하 한민통) 일본본부를 결성하였다. 박정희 정권 타도, 민주 정권 수립, 미군철수, 남북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민주화 세력과 연대를 추진하였다. 민단은 조총련에 동조, 민단파괴, 내부 분열 획책을 이유로 한민자통, 한민통을 이적단체로 규정하였다(김태기 2001, 237). 1989년 한민통은 기존의 민주화운동 중심에서 통일운동을 보다 중시하기 위해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으로 개칭하여 통일운동을 펼치고 있다. 10월 유신의 선포와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 이후, 민단은 새민단운동, 신민단운동, 재일동포 모국방문성묘단 추진, 총화체제 의 구축을 통해 조직 정비를 마무리하였다. 민단이 지지하는 통일방안은 국제연합의 방안이 아닌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으로 이는 가장 평화적 민주적이라는 인식하에 제5차 선언 을 발표하였다(김태기 2001, 238). 박정 희 정권의 유신체제 수립 이후 남한의 민주화가 쟁점으로 부각되던 시기의 재일동포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65

10 통일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연계되어 추진되는 특징을 보인 반면에 민단 지도부는 박정희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동포 조직으로 탈바꿈하였다. 민단은 1977년 평화통일 촉진본부(이하 평통촉본) 를 설치하여 통일방안을 홍보, 지지하였다(정용하 2007, ). 민단은 모국정부의 통일방안이 발표되면 언제나 환영과 지지를 선언하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제5공화국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제6공화국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문 민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에 대해 누가 민단의 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 이 환영 일변도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한국정부에 대한 충성과 지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행태는 모국에 대한 민단정치 의 표출이었다 공동선언과 10 4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자 민단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전기가 된다는 점에서 열렬한 지지와 환영을 표했으며, 조총련과의 회합을 제의하기도 했다. 민단은 2005년 9월 통일문제와 본 단의 자세에 관한 업무연락 이라는 문건에서 본국 정부의 통일정책을 민단 통일정책의 기원으로 삼는다 라고 발표하였다(남근우 외 2010, 64). 민단은 한국의 국시를 준수하는 한인회이다. 민단은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을 기반으로 2개 기관을 통해 통일문제와 통일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본국의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 일본지역협의회로 민단의 중앙본부 단장이 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의 대변자 및 추진자 역할을 수행한다. 또 다른 기관은 민단의 특별위원회 성격을 띤 평화통일추진위원회 이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한국정부의 통일운동을 홍보하는 반면에 조총련의 통일운동에 대항하는 통일운동을 추진하 고 있다. 이렇듯 민단의 통일운동은 한국정부의 통일 관련 정책이나 방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지지하고 홍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조총련도 마찬가지이다. 1960년 민단의 제3차 선언 외에는 민단이 주체적으로 통일정책과 문제를 주장하기보다는 민단 자체의 존립 구조상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홍보하는 조직임을 알 수 있다. (2) 자체 통일 활동 1977년 제27회 민단 정기중앙위원회에서 우리는 7 4 남북공동성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기조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한다 는 발표와 함께 평화통일촉진본부(이하 평통촉본) 를 설치하였다 5) 민단은 평통촉본의 설치 및 통일의지를 일본사회에 알리기 위해 한국동란 제27주년 평화 번영 통일촉진 중앙대회 를 가졌다. 166 민족연구 64호

11 약 1만명의 인원이 참가하여, 평화통일 촉진을 위한 결의문의 채택과 함께 식후 행사로 가두행진을 진행하였다. 민단은 평통촉본 전국대표자회의를 1978년 3월, 히로시마에서 개최하였다. 이 회의는 11월, 조총련이 계획하고 있는 조선통일세계지지대회 를 무산시키려는 목적에서 열렸다. 조국의 평화정착과 통일달성에 역행하는 김일성 집단의 무력적화 음모를 저지하고, 조선통 일세계지지대회의 국제적 책동의 분쇄, 한국의 평화열망이라는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는 일본 언론계에 조총련이 주도하는 대회를 저지하려는 민단의 활동을 홍보하려는 의도에서 개최된 회의였다. 민단의 전국지방단장회의는 1979년부터 평화통일 권익옹호 신생활을 위한 180일간 운동 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 간 추진하였다. 통일과 관련된 운동 목표는 첫째, 평화통일 촉진운동의 지방별 추진실태의 파악; 둘째, 지방의회에 대한 한국의 평화통일안 지지의결 활동의 촉진; 셋째, 조국의 평화통일에 관한 이론의 확립과 홍보, 선전의 강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활동의 결과, 일본의 318개 지방의회가 민단이 제출한 평화통일안건을 채택하는 성과를 올림으로써 지방차원에서 조총련의 통일 활동에 대한 제약과 압박으로 작용하였다. 제5공화국은 헌법기관으로 평화통일자문회의(198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개칭) 를 조직하였다. 민주평통의 결성은 민단 내부의 통일기구인 평통촉본의 활동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민주평통의 역할과 활동의 확대를 위한 연장선상에서 재외동포로 하여금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고 홍보하는 기관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 회의 해외지역협의회 를 구성하였다. 일본 동포사회의 여론 수렴, 통일정책에 대한 동포사회 의 공감대 형성을 목표로 활동하기 위해 1982년 7월, 일본지역 자문위원, 주일대사 등 관계자가 모여서 일본지역협의회를 발족하였다. 협의회는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우리 민족이 열망하는 조국통일을 자주적, 민주적,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방도로 재확인 한다 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김태기 2001, ). 동부협의회, 근기( 近 畿 )협의회, 중부협의회, 서부협의회 등 4개 협의회에 총 403명이 참여하고 있다. 2015년 8월, 지역협의회 출범식을 가졌으며, 민단의 오공태 단장이 일본지역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민단은 일본지역회의 외에도 민주평통이 개최하는 아시아 지역회의에 대표를 참여시켰 5) 첫째, 조국의 평화통일에 대한 확언과 통일이론에 대한 조화의 필요성; 둘째, 일본사회에 대해 한국정부가 표명하는 통일이론의 합리성 홍보; 셋째, 조총련계 동포에 대해서 북한 통일이론의 불합리성과 비현실성에 대한 계몽 등을 위해 평통촉본을 조직하였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136) 참조.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67

12 다. 아시아한인회총연합회, 재중국한인회, 재태국한인회, 타이뻬이한인회, 재일한인회, 필리핀한인총연합회 등의 다수의 한인단체 대표가 참가하였다. 2012년 민주평통 제15기 아시아지역회의에 일본지역회의 대표가 참석했으며, 아시아 17개국 12개 협의회의 자문위 원들이 참가하여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가졌다. 1982년 한국정부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을 발표하자, 민단은 실천운동의 일환으로 지지대회를 동경과 각 지방본부에서 개최하여 통일을 다지는 기반의 활동으로 활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조총련 동포에 대한 통일 관련 계몽활동을 펼쳤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158). 민단 중앙본부는 통일방안의 대대적인 홍보를 위해 1982년 6월부터 9월까지 민족화 합민주통일촉진 100일 운동 을 전개했으며,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북해도, 히로시마, 후쿠오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족화합민주통일촉진 재일한국인대회 를 열어 재일동포들의 통일 의지의 확충을 꾀하였다. 간부 단원들의 통일의지를 함양하려는 취지에서 민단은 매년 통일부의 협조를 받아 통일연수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및 통일문제, 남북한 관계, 대북정책 등 통일정책 전반에 대한 교육과 토론 형태로 연수회를 진행한다. 이 행사는 민단의 통일 관련 연례행사 중 하나이다. 2014년 11월에도 통일교육원에서 연수를 가졌었다. 2012년 모국에서 미래의 한반도 통일비용의 재정마련을 위해 통일항아리 운동이 시작되자, 민단은 단원과 동포들을 대상으로 통일성금을 모금하는 운동을 추진하였다. 민단은 모국정부의 각종 통일정책이나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단원과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통일정책의 홍보, 통일의지의 결집을 모으려는 의도에서 다양한 통일 활동이나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정부가 제안한 통일문제를 북한과 조총련이 수용하라는 의미의 제안 촉구대회나 계몽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단원들이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을 이해하고, 교육시키려는 취지에서 매년 민단 간부를 대상으로 모국에서 통일연수회를 실시한다. 한편 민주평통의 일본 지역협의회 참여 인사 가운데 상당수가 중앙 혹은 지방본부 의 민단 임원이었다. 이들은 민주평통의 지역협의회 회원과 민단 단원의 자격으로 재일동포 사회에서 한국정부가 지향하는 통일운동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3) 조총련과의 통일 교류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평화통일구상선언 이 발표되었다. 긴장상태 완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접근의 강조, 북한에 대해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 전복 기도의 포기 촉구, 남북한 사이의 인위적 장벽의 단계적 제거 등이었다. 제3공화국의 평화통일구상 선언은 선 건설 후 통일 이라는 기존의 통일단계를 선 평화 168 민족연구 64호

13 후 통일 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민단의 이희원 단장은 8 15 선언의 발표 후, 조총련의 한덕수 의장에게 8 15 선언과 영주권신청에 관해 회합을 갖자고 제안하였다. 조총련은 조국의 통일을 촉진하고, 민주주의적 민족 권리를 수호하는 문제에 대해 민단과 토의할 용의가 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 田 駿 1972b, ). 민단과 조총련은 회담 일정, 문구에 대한 왜곡, 조총련이 민단을 분열시키기 위한 정치적 책략 등을 이유로 서로 비난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다시 말해 상호간 불신감의 팽배가 회동을 무산시킨 원인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 당시 민단은 조총련에 비하여 조직적 열세였으며, 민단의 통일에 관한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없는 이론 무장에 있어 열세에 놓여 있는 관계로 민단 내부에서도 회동을 반대하였다. 민단의 제38회 정기중앙대회가 1976년 3월에 개최되었다. 민단은 제5차 선언에서 민단이 지지하는 통일방안을 기존의 국제연합 을 삭제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방안 으로 수정하였다. 통일 관련 선언의 수정은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이 가장 평화적 민주적이다는 인식에서 민단의 한국정부에 대한 지지의 견지와 함께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을 무조건 수용하려는 민단의 모국정부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였다. 조총련이 주관하는 조선통일세계지지대회 가 도쿄에서 열리자 민단은 일본 외무성과 법무성을 방문하여 친북세력에 동조하는 외국대표의 입국 허가에 항의했으며, 민단 산하의 청년회와 부인회는 퍼시픽호텔 앞에서 반대 시위를 했다. 특히 민단은 조총련, 일본공산당, 일본사회당, 일조협회 등이 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남북통일의 한쪽 당사자를 대표하 는 한국측 인사들의 배제는 대회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가진다고 제기하였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 민단은 조총련의 통일 활동을 저지할 목적에서 일한의원연맹의 산하단체인 일한친선협회의 협력을 받아 일본 지방의회를 상대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지지 라는 결의문을 채택해 달라는 요망서를 발송하는 통일운동을 펼쳤다. 1990년 조총련은 민단에 대해 범민족대회 의 공동 참가를 요청하였다. 6) 민단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199). 1991년 민단의 정해룡 단장은 남북한 UN 동시가입을 축하하는 회견에서 민단과 조총련 동포 간에 동수( 同 數 )의 남북한 상호방문, 전후보상 문제의 공동 대처, 8 15 공동 개최를 조총련에 제의하였다. 민단이 조총련과의 단절된 교류를 모색하려는 차원에서 추진한 6) 범민족대회는 8월 13일, 백두산에서 남측대표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밀입북한 황석영이 대표로 참가하였다. 북한 및 해외 대표들이 참석하여 개막식을 가졌으며, 15일에는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 본대회 및 백두-한라대행진, 평양에서는 체육 및 문화 행사를 진행하였다. 후에 대회 참가자들이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했으며, 양동민이 일본지역본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69

14 동포교류사업은 비정치적, 인도적 교류를 통해 단체 간 신뢰관계의 회복과 구축을 위한 제안이었다. 그러나 조총련은 강경하게 민단과의 대화를 거부하였다. 문제는 그동안 민단과 조총련 간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상대방의 제의를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반드시 새로운 조건을 첨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조총련의 범민족대회 공동 참여에 대해 민단은 긍정적 검토와 함께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조총련 간부 및 동포들의 한국 방문 허용, 민단과 조총련 간부들의 판문점을 이용한 평양과 서울 방문, 북경 아시아경기에 함께 참관하자는 3개항을 역으로 제안하였다. 조총련은 박병헌 단장의 제안에 대해 회답하지 않음으로써 이 회동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민단의 제안을 조총련의 입장에서 보면, 수용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는 점에서 민단이 과연 통일문제에 대해 진정성 을 갖고 접촉과 대화를 하려고 했는가하는 의문이 든다. 조총련 또한 민단의 제안에 대해 항상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였다. 민단과 조총련의 상대방에 대한 제안은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평화적 공세의 일환으로 보여주려는 대외 홍보용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단과 조총련의 체육 교류로 민단은 1986년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0회 아시아경기대 회에 조총련계 동포들도 같이 참관하자는 내용을 한덕수 의장에게 제안하였다. 민단 실무진 이 조총련을 방문하여 제안서를 전달한 것은 해방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총련은 민단의 이러한 제의를 거부하였다. 민단과 조총련 간 회동의 무산은 2000년 6 15 공동선언 에서도 나타났다. 두 단체는 공동선언을 지지한다고 발표하면서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 염원의 희망 차원에서 회동을 제안하고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만남의 세부 조항을 놓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회합은 실패로 끝났다. 반면에 민단과 조총련의 교류가 성공적으로 실행된 것은 1991년과 2002년 2차례이다.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하였다. 민단과 조총련은 한반도기를 내세우면서 공동응원을 펼쳤다. 민단은 이 행사를 계기로 재일동포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중기방침을 수립하여 조총련과 교류에 나섰다. 재일동포교류촉진협의회 를 조직하여 대화와 교류창구의 일원화, 비정치적, 인도적 문제에 대한 구상을 밝혔지만, 조총련의 무성의한 태도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를 계기로 민단은 재일동포 사회의 화해와 단결, 상호간의 신뢰구축을 위해 조총련에게 월드컵 관람을 제안하였다. 민단과 조총련은 4회에 걸쳐 협의를 진행했으며, 재일동포들의 남북한 상호방문에 합의했다. 7) 먼저 민단 대표단이 평양에서 개최된 '아리랑축제'를 참관했으며, 7) 민단신문, 교류, 민단과 총련 만남의 발자취, artcl.php?newsid=2405(검색일: ). 170 민족연구 64호

15 그 답례로 조총련 및 민단의 대표단 500여명이 한일월드컵 관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며, 이 행사는 민단과 조총련의 지도부간 교차 방문한 사례이다.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와 협력 분위기는 2006년 5월에 결실을 맺었다. 민단의 하병옥 단장과 조총련 서만술 의장은 6 15 남북공동선언의 이념에 따라 재일동포의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전환하자는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는 민단 내부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결렬은 남북한의 체제경쟁을 초월하여 통일을 지향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던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의 여건이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임을 입증하였다. 두 단체의 결렬은 통일운동 이전에 재일동포의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반성과 지적의 계기가 되었다. 모국정부가 중대한 통일정책을 발표하면 후속조치로 민단은 조총련에게 여러 차례 회합을 제안하였다. 조총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의 제안에 대한 새로운 조건의 추가, 홍보용 차원의 형식적 제안, 불신의 팽배, 조직 내부의 반대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 두 단체 간 중앙본부 차원의 만남은 주도권 갈등으로 인해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1991년과 2002년 공동행사는 성공적 회동으로 이어졌으며, 민단과 조총련 지방본부가 주관하는 공동행사는 대체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한 간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경색되었다. 이러한 남북한의 정세는 그대로 재일동포 사회에 투영되었으며, 그 결과 민단과 조총련의 중앙본부 차원의 화합과 교류는 단절된 상태이다. 2. 조총련 1) 단체 형성 조련을 사회주의자들이 장악하자 친한과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세력이 조련을 이탈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건동과 건청을 규합하여 민단을 발족하면서부터 민단과 조련은 재일동포 사회의 주도권 및 한반도 정세를 놓고 대립하였다. 도쿄 에다가와( 枝 川 ) 사건, 조선장학회 사건, 시모노세키( 下 關 )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진희관 2009, 217). 민단과의 충돌 외에도 조련은 미군이나 일본정부의 조선인 탄압에 맞서 대항하였다. 1947년 한신교육사건( 阪 神 敎 育 事 件 ), 북한에 대한 지지, 일본정부의 재일동포 귀환사업의 방해, 공공정책에 대한 저항 등이다. 특히 한신교육사건의 결과, 조련은 해체되었다. 1949년 9월, 연합국총사령부는 조련이 점령군에 저항했으며, 폭력주의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단체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71

16 등 규제령( 團 體 等 規 制 令 ) 을 의거하여 조직해산과 재산몰수를 단행하였다(이광규 2000, ; 최영호 2009, ; 진희관 1995, 222;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2005, 15). 조련은 전국 조직을 동원하여 단체 해산에 저항했지만, 조직의 해체와 함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였다. 조련이 재일본조선민주여성동맹, 해방구원회 등 산하단체를 기반으로 조직의 재건을 모색하자, 일본공산당은 민족대책부 를 설치하여 재일조선인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년 조국방위중앙위원회(이하 조방위) 를 결성하여 조련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조직 활동을 재개시켰다. 조방위는 투쟁을 위한 산하 조직으로 재일조선인조국방위대(이하 조방대) 를 운영하였다. 조방대는 군사훈련을 통해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문제는 이 조직들이 일본공 산당의 지휘와 지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조련의 간부들은 재일조선인 중심의 합법적 조직체 설립을 원하였다. 1952년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결성대회 를 개최하여 조국의 통일과 방위를 목표로 하는 대중단체인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이하 민전) 을 결성하였다. 민전은 조련의 산하단체 외에도 민단의 이강훈, 건청의 일부를 합류시켜 통일전선형태로 조직되었다(박일 2005, ). 8) 민전은 재일동포의 한반도 강제송환 반대, 조국방위운 동의 강화 등을 주장하면서 친북성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으며, 이승만 정부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진희관 2009, ). 북한의 외무상 남일은 1954년 11월, 재일조선인을 공화국의 해외공민 으로 포함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민전 제19회 중앙위원회가 열리자 한덕수는 민전노선의 비판과 함께 재일 전체의 조선 동포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주위에 총 집결시킬 것 을 주장하였다(박일 2012, 359). 민전 제6차 대회가 개최되자, 주도세력은 북한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민전의 해산을 결정했으며, 일본공산당의 동의하에 재일조선인의 사회주의 활동은 조선노동당의 지도하에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1955년 5월, 조총련의 결성대회는 창립선언, 강령과 규약, 일반 활동방침을 채택했으며, 강령은 조국통일의 실현, 재일동포 사회의 단결, 화해, 단합의 실현, 재일동포의 공화국 주위로의 결집, 재일동포의 민주적 민족적 권리 옹호, 민족교육의 실시, 조일의 친선, 국적선택과 망명 자유의 고수 및 강제추방의 반대, 세계평화에의 공헌 등이다( 田 駿 1972b, ). 초기 조총련의 체제는 이심철, 한덕수, 신홍식, 김은순 등 6명의 8) 민전의 강령은 첫째, 조국의 완전 통일과 외국군대의 조선 철수; 둘째, 인민의 생활, 인격, 거주의 자유, 재산의 보호; 셋째, 민족교육의 자주성 확보; 넷째, 조국통일을 방해하는 분열책동자와 매국분자 의 소탕, 반동분자의 타도; 다섯째, 일본을 아시아전략의 기지로 삼는 군사화 반대; 여섯째, 원자무기의 반대 및 세계평화 기원; 일곱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수이다( 田 駿 1972b, 29-30) 참조. 172 민족연구 64호

17 의장단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였으며, 북한의 공민단체로 활동하였다. 2001년 한덕수 의장의 사망 이후, 서만술 의장이 2012년까지 조총련을 이끌었으며, 그의 사망으로 허종만이 조직을 지도하고 있다. 조련과 민전을 거쳐 온 조총련은 약 5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이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를 주장하고 있다. 2) 통일운동 (1) 북한의 통일정책 지지 조총련은 조국통일운동에서 유일무이한 지침으로 북한 김일성의 통일유훈과 김정일의 통일 실현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조총련은 김일성의 통일유훈이 집대성되어 있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 방안 등의 조국통일 3대헌장 과 민족대단결 5대방침 을 통일운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김 창희 2006, 382; 권양주 2014, 273). 조총련은 조국통일 3대원칙에 대해 7 4남북공동성명 을 통해 확인된 그리고 내외에 선포된 민족공동의 통일대강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총련 은 10대 강령을 온 민족의 단합을 이룩하여 조국통일의 주체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강령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은 6 15 공동선언에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마련해나가는 기초로 확인되었다고 조총련은 주창한다. 이와 함께 자주적 평화통일, 민단족대단결, 남북의 관계개선, 반통일세력에 대한 투쟁, 남북한과 해외 동포들의 내왕, 접촉을 통한 연대의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민족대단결 5대방침의 구체적 실현을 2000년과 2007년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찾고 있었다. 1974년 2월, 조총련 제10회 전체대회에 김일성의 교시가 전달되었다. 조총련은 조국통일 의 위업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는 내용으로 조총련은 1975년부터 북한 통일전선 의 일본지부로 위치하였다(김태기 2001, 241). 조총련은 김일성을 교시를 토대로 일본사회 에서 통일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총련은 민족 최대의 과제 실현을 위해서 동포들이 조국 통일에 기여함을 기본적 사명으로 강조한다.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조국통일에 이바지할 것을 호소하였다. 조총련은 애국사업 이라는 명목으로 조총련계 기업인들로 하여금 150억엔을 북한에 투자하게 만들었으며, 북한의 각종 기념일에도 맹원들로부터 축하와 조국통일의 기여라는 명목으로 기부금을 받아 매년 6억~8억 달러를 북한으로 송금시켰다. 1982년의 경우, 조총련계 기업인들이 공장 건설, 자동차, 기계 등 약 50억엔의 자금을 모아 북한으로 보냈다(임영언 허성태 2013, ).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73

18 1955년 결성대회에서 조총련은 조국의 민주기지강화와 평화적 통일을 강력하게 주장하 면서,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한 대표의 상호파견, 상호왕래의 자유, 조선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 소집의 요구를 제안하였다( 田 駿 1972b, 282). 1988년 11월, 통일지 향, 외국군철수, 북남군축, 당사자 협상 등 4개항의 평화보장 4원칙을 제기했으며, 휴전협정 40주년 기념식에서도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군축을 3단계에 걸쳐 시행하는 포괄적 평화방안을 발표하였다. 북한의 통일 관련 선언 후, 조총련은 중앙대회에서 북한의 제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발표한다. 조총련은 자주적 통일 이라는 북한 통일정책을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 북한이 발표한 통일 제안과 평화 제안을 내외에 홍보하고, 남과 북, 그리고 해외동포와 협력하는 통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조총련의 북한 추종에 따른 통일운동에 대한 신념은 현재까지도 불변의 원칙으로 고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2) 자체 통일 활동 (가) 재일동포의 민족적 단합 조국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사상, 정견, 신앙, 소속단체의 차이를 초월하여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조총련은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재일동포들과의 민족적 단합을 도모하는 통일운동을 추진하였다. 1948년 8월,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재일동포 이강훈, 문동건은 단독정부 반대와 남북협상운동을 지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단이 한국의 국시를 준수하고, 절대적 지지를 표명하자 이에 반발한 이강훈은 김구의 단정반대와 남북협상론을 이상적인 통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건청 내의 통일파를 중심으로 10월에 재일조선민주통 일동지회(이하 통일동지회) 를 결성하였다( 田 駿 1972a, 522). 1949년 9월, 재일조선인연맹 (이하 조련) 이 해산을 당하자 통일동지회는 일본정부를 비난하는 규탄성명의 발표와 함께 조련과 공동보조를 취하였다. 1951년 7월, 통일동지회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이하 민전) 의 남북조선통일을 찬성하면서 민전에 협조하였다. 민전은 한반도에서 공산화 통일을 전제로 활동한 단체였다. 통일동지회는 1954년 이강훈을 스파이로 지목하여 제명 처분했으 며, 1956년 6월, 전국대의원 회의의 결정에 따라 조총련의 가맹단체로 가입하였다. 조총련은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고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전쟁도발, 그리고 분열책동을 반대하고 배격하려는 목적에서 평화통일을 활용하고 있다. 1974년 4월, 조총련은 대남적화통일의 결정적 시기를 조성한다는 전략에서 통일사업부 를 조직하 였다. 민단 조직의 와해와 대남 적화공작의 수행, 위장 평화 공세에 의한 통일전선전략을 추진하려는 의도이다. 조총련은 1975년 7~8월 걸쳐 10만명 동포들의 서명을 받은 조선에 174 민족연구 64호

19 서의 핵전쟁 도발 반대, 한국에서 미군 철수, 조국의 자주평화통일 을 위한 오사카-도쿄 대행진, 1979년 6~7월까지 진행한 조국통일 촉진, 전민족대회 실현을 위한 동포 청년학생 들의 오사카-도쿄 대행진, 1982년 6월에는 남조선으로부터의 미군철수와 핵무기 철거 요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촉진 재일조선인 대행진 을 주제로 서명운동, 강연회와 집회, 가두행진을 전개했었다. 1994년 3월, 한덕수 의장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자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투쟁에 총궐기할 것을 주장하였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민족자주, 조국통일, 민족화해, 상호협력과 교류, 대화 등을 담고 있는 2000년 6 15 공동선언을 조총련은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으로 인식하 고 있다. 따라서 조총련은 이 선언을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즉 이 선언의 기치 아래 모든 재일동포들이 단합하여 공동선언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통일운동 을 추진하였다. 2001년 북한에서 개최된 민족통일대토론회 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준공식 및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 에 조총련 대표를 파견하였다. 또한 조총련은 한국의 단체 및 인사들과의 연대와 교류를 강화하는 한편 재일동포들을 6 15 공동선언의 지지실 현에 동참시키려는 활동을 펼쳤다. 오사카의 하나 마쯔리, 교토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진행한 원코리아 카운트다운, 효고와 요코하마에서의 마나도 마쯔리, 히로시마에서 후라와 축제, 기후에서 통일한마당 등 다양한 축제와 행사에 조총련 회원들을 참여시켜 동포들의 단합과 통일의식의 함양을 북돋는 일련의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행사는 조총련이 조국광복 60주년이 되는 2005년을 자주통일의 원년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들 이었다. 광복 56주년을 맞이하여 조총련은 6 15 공동선언의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 민단 동포와 일본 국적을 가진 동포들과 연계하여 통일운동을 강화할 것이며, 이를 위해 민족통일촉진운 동 을 전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조총련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2004년 조총련은 제20회 전체대회에서 조국통일과 관련하여 우리는 6 15 북남공동 선언의 기치 아래 재일동포들의 민족적 단합과 북과 남, 해외동포들과의 유대를 강화 발전시키며, 반통일세력을 배격하고 연방제 방식으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데 모든 힘을 다 한다 고 말하였다(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2005, 27). 연장선상에서 2007년 10월 개최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및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에서 거론된 한반도 평화 및 통일 실현을 조총련은 적극 찬성한다고 발표하였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75

20 (나) 남북한 동포들과의 연대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을 위해 청년학생, 여성, 통일운동가, 문화예술인, 종교인, 체육인, 과학자 등 한국의 다양한 인사들과 통일을 주제로 조총련은 접촉과 연대를 시도했다. 조총련은 북한의 지원을 받아 1977년 2월, 벨기에 브뤼셀(Belgium Brussels)에서 북한의 통일정책에 지지를 표명하는 전 세계 각지의 대표를 초청하여 홍보하는 제1회 조선통일세계 회의 를 개최했으며, 제2차 회의는 1978년 11월, 일본공산당, 일본사회당, 일조협회, 조총련 등이 공동으로 일본 도쿄에서 대회를 주최하였다. 민단이 항의와 자동차 시위, 반대성명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1997, ). 1989년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다. 임수경이 불법으로 전국대학 생대표자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으며, 한덕수 의장과 재일조선청년학생대표단, 조총 련 상공인들이 참석하였다. 조총련의 주도로 해외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의 선언과 호소문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 중앙대회를 진행했으며,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평화대행진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다 공동선언 이 발표되자, 조총련은 민단의 제의를 수용하면서 이는 조국통일실현에 기여하겠다는 조총련의 통일 노력의 발현이라고 주장하였다. 9) 이후에도 조총련은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속적으로 대변하였다. 1994년 8월, 조총련은 제5차 범민족대회 전야제와 제4차 조국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을 위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의 통일대축전을 도쿄 기바공원( 木 場 公 園 )에서 열었 다. 1995년 6월, 6 3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 해외청년학생대회 의 개최, 광복 50주년을 기념하여 도쿄 요요기공원( 代 々 木 公 園 )에서 재일동포통일대축전을 열어 참가자들의 통일 의지를 고취시켰다.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조총련 예술단인 금강산가극단 이 2000년 12월, 서울에서 공연을 가졌다. 공연의 개최를 조총련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주장하고 있다. (다) 해외 동포들과의 연대 조총련은 해외동포들의 북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의도에서 세계 각지의 동포들과 유대 관계의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1992년, 조총련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운 9) 조총련 남승우 부의장 등 대표 3명이 민단 중앙본부를 방문하여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권리 옹호운동, 민족성 육성사업의 협력, 양단체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중앙본부 간 협의기구 설치를 조총련이 제안하였다. 이에 민단이 응하였지만 조총련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 무산되었다(김영의 2011, 62). 176 민족연구 64호

21 동 을 추진하였다. 이는 조총련이 해외 거주 동포들과 범민족 연합 을 강화하여 남한 및 민단계 동포들과 민족적 단합사업의 강화를 위한 차원이었다. 1990년 조국통일북미주협 회와 재중동포여성의 초청, 1992년 러시아 조선통일위원회 대표단 초청, 여성동맹 창립 45주년 및 남북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해외 동포여성 대표 초청, 1997년 7 4 남북공동성명 발표 25주년을 기념하여 재미, 재유럽 동포들을 초청한 해외동포 통일토론회 개최, 1999년과 2000년, 조총련 맹원들의 미국 방문단 파견, 2000년 재일조선청 년학생들과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무용부의 미국 공연과 취주악부 학생들의 중국 공연, 1993년 국제고려인통일연합회 제2차 대회 및 2004년 이 단체의 창립 15주년 행사에 조총련 간부들을 참석시켰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조총련은 해외동포들과 통일연대를 긴밀히 하고, 조총련 활동과 조직의 정당성, 통일에의 노력 등의 모습을 알려서 재외동포들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민단도 유사하지만, 문제는 북한과 조총련을 지지하는 특정 인사들만 초청하여 참여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민족화합과 통일을 위하기보다는 조총련 지지 세력의 확보 및 홍보를 위한 반쪽자리 행사에 불과하다. (3) 민단과의 통일교류 4 19 혁명이 발발나자 조총련은 민단에게 공동 모임을 제안했으며, 그 결과 조총련과 민단의 문화인들이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남북문화교류촉진 합동문화제 를 열었다. 남북한 정부의 주도로 7 4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조총련은 이를 지지한다는 담화를 발표했으며, 민단과 공동으로 이 성명을 지지하는 동포들의 모임을 도쿄에서 개최하였다. 3 1절 70주년 행사를 공동으로 개최할 것을 제의하기 위해 1989년 조총련 대표단이 민단 중앙본부를 방문했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공동응원단 결성, 그리고 2000년 남북공동선언을 환영하는 후속조치로 조총련은 재일조선청년축제를 개최하면서 공동선언에 대해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통일선언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합의한 방안은 한국의 연합제와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토대로 통일방안의 지향점을 모색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조총련은 이를 왜곡하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족통일운동의 기류와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에 대한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았다. 2000년대 이전과 마찬가지로 남북한의 정세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발표되자 민단계 한청동경본부와 조총련계 조청동경본부는 남북최고위급회담 개최를 지지하는 동경동포청년학생집회 를 개최하였다. 오사카에서도 남북정상회담 환영 오사카동포청년학생제 가 열려 재일동포 800여명이 참여했다. 또한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77

22 12일에는 간사이( 關 西 ) 지역의 민단과 조총련계 상공인들이 친선 골프모임을 가졌었다(김 용찬 2000, 109). 이러한 집회나 모임은 재일동포들이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대한 지지를 보낸다는 의사표시였다 6 15 공동선언 의 발표 이후, 민단이 재일동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와 통일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조총련에게 대화를 제의하자, 조총련 또한 공동선언의 지지와 함께 남과 북, 해외의 모든 동포들과 같이 조국통일실현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조총련은 재일동포의 민족적 권리 옹호, 민족육성사업의 협력, 양단체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중앙본부 간 협의기구 설치를 제의했으며, 민단은 협력기구 설치에 찬성한다는 의견과 함께 동포단결 을 위한 교류와 화합사업, 남북의 평화정착과 교류, 통일에 도움이 되는 사업 추진, 재일동포 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과위원회 설치를 제안하였다(민단신문, ; 김태기 2001, 244 재인용) 그러나 이 회합 역시 새로운 조건의 추가, 상호간 신뢰의 부족으로 무산되었다. 한편 2000년 6 15 남북정상회담 이 개최된 후, 2006년 5월, 민단은 조총련과 교류를 모색하였다. 하병옥 단장이 조총련을 방문하여 서만술 의장을 만났으며, 이는 최초의 대표자간 만남이었다. 민단과 조총련은 이른바 5 17 공동성명 이라는 화해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10) 그러나 지방조직과 보수적 성향의 인사들이 반발한 결과, 성명은 철회되었 다. 하병옥 단장이 사퇴하고, 후임 단장으로 정진이 선출되었으며, 11) 그 결과 두 단체의 대립각이 지속되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및 10 4 남북공동선언 이 발표되었다. 민단과 조총련은 이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전기가 된다는 점에서 지지와 환영을 표하였다. 민단은 공동선언을 계기로 비정치 적 인도적 분야에서 재일동포 사회의 화합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간다고 했으며, 조총련 또한 재일동포의 민족적 단결을 강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공동선언의 실현을 위해 전 민족적인 통일운동에 전력을 다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였다. 10) ⅰ) 재일동포사회의 민족적 단합을 위해 노력하며; ⅱ) 6 15 민족통일대축전 에 일본지역위원회 대표단 성원으로 참가; ⅲ) 8 15 기념축제 의 공동 개최; ⅳ) 새 세대 교육과 민족문화의 진흥에 노력; ⅴ) 재일동포의 권익옹호를 위해 상호간 협조한다( 統 一 日 報 編 輯 部 2006) 참조. 11) 공동성명은 민단 내부의 반대에 의해 7월 철회되었다. 한통련 인정에 대한 반발, 조총련과의 화해에 대한 사전 설명 부족, 총련과 화해는 시기상조를 이유로 보수세력이 반발하였다(지충남 2008, 70). 178 민족연구 64호

23 3. 원코리아페스티벌 1) 단체 형성 1970년대 일본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과 철폐운동이 대두되면서부터 동포사회의 내부에서 통합이 과제로 등장하였다. 고착된 분단체제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조국 귀향 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였던 1세대들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1975년에 창간한 계간 삼천리 의 잡지운동, 그리고 재일동포의 민족정체성 확립과 통합을 목적으로 1983년 태동한 오사카 이쿠노( 生 野 )민족문화제 등 다양한 문화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활동에 서 2세와 3세 청년들은 한반도의 분단 상황보다는 재일 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자신의 주된 정체성으로 새롭게 인식하면서부터 새로운 문화운동을 통한 정체성의 재확립과 재일동포 사회의 통합 및 통일운동을 모색하였다(이신철 2015, 302). 재일동포 사회는 민단과 조총련의 이념적 대립과 반목, 귀국과 정주의 문제, 조국지향성과 재일지향성에 대한 동포사회 내에서의 찬성과 반대, 일본 국적의 획득이냐 영주권의 유지냐 등 다양한 쟁점이 표출되면서 민족단체를 중심으로 첨예한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를 해소하는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였다. 재일동포 2세대는 민단과 조총련의 대립 상황에서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문화와 결합시키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 다. 민단계와 조총련계, 자이니치로 구분되어 분열과 대립하는 재일동포 모두가 이해관계를 청산하고, 이념, 사상, 소속, 국적의 차이를 극복하여 축제에 동참한다면, 이는 민족의 화해이며, 재일동포 후세대에게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였다(지충 남 2013a, 138). 1980년대부터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은 이념으로부터 탈피하여 생활과 연계된 실용적인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이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재일동포들의 화합과 통일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했기 때문이었다(정 용하 2007, 251). 원코리아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재일동포 중심의 통일 관련 축제는 이념 지향적인 통일운동의 한계, 남북한 정부에 의존적인 재일동포사회 통일운동의 문제점 인식, 변화하는 일본사회의 상황을 감안하여 재일동포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의 통일운 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1985년 광복 40주년을 기념하여 민족, 미래, 창조 페스티벌 은 원코리아페스티 벌의 출범이었다. 재외동포를 비롯하여 남북한 국민 모두의 염원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다. 통일 의 화두는 사상을 초월하여 한민족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으며, 이념적 분열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 의 화두는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기제가 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재일동포가 한반도와 해외동포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79

24 담당하여 통일의 상징으로 부각된다면 조국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통일 축제 를 제안하였다. 먼저 실행위원회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민족문화와 접목시켜 원코리아페스티벌을 태동시 켰다. 통일의 문제를 최정점에 놓고 이를 여타의 미해결 문제들과 연계한다면 대립, 갈등, 분산되어 있는 재일동포들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동포들이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인식하였다( 朴 鐘 鳴 1999, 299). 통일의 상징성은 동포들의 만남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며,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재일동포들의 문화와 전통, 민족정체성, 화합과 교류, 공생 등 민족문화의 향유 및 동포 내부에서 소통의 기제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원코리아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재일동포 모두는 서로 쉽게 만나 화해와 교류, 협력을 통해 하나가 될 것이다. 12) 그러므로 원코리아페스티벌은 비정치적 운동과 문화적 운동을 결합시켜 축제로 승화시키려는 통일운동의 롤모델(role model)이었다. 민족단체 간 이념적 갈등을 봉합하고, 재일동포 세대 간 불통을 극복하여 동포 사회가 하나가 되는 화합과 통일의 장을 제공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재일동포, 한국, 북한, 중국 조선족, 타국의 문화단체 등을 초대해서 음악제 형식과 함께 전시, 음식, 참가행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은 공익재단법인이며, 2014년 30회까지 개최되었다. 2) 통일운동 남북한 정부 및 민단, 조총련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을 표명하면서 재일동포의 화합, 조국 통일에 대한 기여를 목적으로 통일을 문화와 접목시켜 오사카 지역의 대표적 축제로 부상한 원코리아페스티벌의 통일운동을 살펴보겠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1985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2014년 제30회까지 긴 역사를 가진 축제이다. 축제의 초창기 키워드는 통일 이었다. One(하나)은 조국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재일동포 사이의 화해와 교류, 통일을 뜻하는 상징성(Symbolism)이었다. 따라서 하나 는 축제에서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한정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문제는 한반도 통일을 위한 축제로 고착화된다면 참가자는 재일동포로 국한될 수밖에 없으며, 동포만을 위한 축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이유에서 실행위원회는 원코리아에서 원아시아 로 주제를 확장했으며, 통일 은 아시아 시민 모두의 한마음을 뜻하였다(지충남 2013b, ). 통일의 상징성은 협의적으로는 조국의 통일이며, 광의적으로는 아시아의 평화와 12) 정갑수, ). 180 민족연구 64호

25 공동 발전을 위해 하나가 되는 통일의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재일동포는 남북을 왕래하면서 통일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북한의 극단적 대립을 완화시켜 중립적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 통일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김성윤 2012, 43).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금기어인 통일문제를 거론했으며, 재일동포들 이 염원하는 조국 통일을 축제의 이슈로 부각시켰다. 또한 재일동포 사회의 주축으로 등장하고 있었던 제2세대가 민족에 관심을 가져 후속세대가 통일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황혜경 2010, ). 이 축제는 남과 북을 경계 짓지 않고 남북의 예술인과 문화인들이 함께 공연하는 것 그 자체가 통일에 대한 바램이었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재일동포를 포함해 한민족 모두가 문화적으로 하나가 되는 열린 민족공동체 로서의 통일을 추구하고 있었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의 통일운동에 대한 기여로는 첫째, 통일을 상징적 테마로 다루었다는 점; 둘째, 동포 사회에서 거의 금기시 혹은 무관심했던 통일 정서의 고양; 셋째, 문화와 축제를 통해 통일운동과 재일동포의 화합을 위한 노력; 넷째, 민족정체성 확립과 통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의 통일과 일본인들과의 공생을 목표로 내세웠음; 다섯째, 문화를 소통방식으로 활용하여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게 문화를 도구로 이용하여 정치적 이슈인 통일문제에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 등은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이신철, 2015, 312). 문제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이 제안하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비전의 제시이 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재일동포의 파이프 역할은 가능하겠지만, 주최측이 민간단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남북한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한반도에서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불통이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이 주장하는 원코리아는 실천적이기 보다는 단지 선언적 추상적 의미에 가깝다. 그것은 표면적인 제스처(gesture)일뿐 하나의 허상( 虛 像 )이다 는 일부의 비판도 제기되었다(최길성 2001, 10). 현재까지 총 30회의 원코리아페스티벌이 열렸지만, 통일에 대한 구체적 결과물은 산출되지 않았다. 이는 원코리 아페스티벌이 추구하였던 목표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즉 초기에는 통일을 위한 축제였지 만, 사회주의 국가의 해체와 붕괴는 시민적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향한 사람들의 염원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하여 인류 공통의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 보장되는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이 추구하는 목표를 변화하게 만들었다. 시민적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실현되는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과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원코리아페스티벌은 활동하고 있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2000년대 중반부터 그 한계가 나타나고 있으며, 주변의 협력 여건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81

26 또한 좋지 못한 상태이다. 축제와 통일을 접목시킨 원코리아페스티벌이 통일운동을 추진함 에 있어 소수 중심의 운동 참여로 전락했으며, 초기와 달리 현재는 통일운동의 동력 또한 많이 저하되었다. 예컨대, 민단과 조총련의 비협조 13) 및 참여의 소극성은 재일동포 사회에 서 통일운동을 전개하는데 있어 대중적 확산의 어려움을 나타낸 한 단면이다. 여기에 금강산 총격 사건과 천안함 폭파로 한국정부는 대북제재 수단으로 5 24 조치를 취하였다. 남북한 관계의 경색 국면의 조성으로 재외동포재단이 2009년 행사 지원을 중단했다가 2010년부터 재지원하고 있지만, 기존의 지원금 중 상당액을 축소하였다. 또한 장소 및 대회 진행의 직접적 도움을 주고 있는 오사카시에서 보수성향의 하시모토 도루( 橋 下 徹 ) 시장이 취임하였다. 그 후부터 대회장 무료 사용을 유료로 전환했으며, 지하철역에서의 원코리아페스티벌 행사 포스터 부착 금지, 행사를 지원하는 오사카 시청 직원의 감축 등은 이 축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Ⅲ. 통일운동의 성과와 한계 1. 성과 민단은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중시하면서 한국의 평화통일 및 대북정책에 대해 재일동포 를 대상으로 홍보와 지지를 펼치고 있었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민단은 2개 기구를 중심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의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의 일본지역 협의회와 민단 내부의 평화통일추진위원회 이다. 반면에 조총련 또한 사회주의를 고수하면 서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와 북한의 통일정책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듯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과 조총련을 중심으로 한 통일운동의 전개는 남북한 대결구도의 축소판 내지 대리전의 양상을 보여주었으며, 조국지향적 그리고 모국정부의 통제를 받는 통일운동이었다. 민단과 조총련 모두는 상대방의 통일운동을 비난하면서 민단은 조총련에 게 그리고 조총련은 민단에게 한국과 북한의 통일방안의 수용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13) 초기 원코리아페스티벌은 남북한의 균형을 맞추는데 중점을 뒀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지적을 피해왔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한 이 단체가 추구하는 목표의 변화는 조총련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182 민족연구 64호

27 민단과 조총련은 본국의 통일정책을 활용하여 재일동포 사회에서 지지 세력의 결집, 회원들의 단체 및 본국에 대한 충성심 유발, 통일문제의 주도권 획득을 위한 대외 홍보용 제안의 난발, 상대방에 대한 책임의 전가, 한국과 북한의 통일정책을 각각 지지하는 특정의 해외동포와의 연대 강화, 남북한 관계가 좋으면 민단과 조총련은 화합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만, 이와 반대일 경우 교류와 화합에 무감각하였다. 즉 6 15 공동선언의 발표 이후, 민단과 조총련은 재일동포 사회의 화합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상호 간 평양의 아리랑축제와 한국의 월드컵 관람을 위해 교차 방문하였다. 이는 남북한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가능하였다. 남북한 관계가 경색 혹은 악화된 국면에서는 남북한 정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민단과 조총련 조직의 특성상 교류에 소극적 태도를 취하였다.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 남북관계의 단절은 그대로 재일동포 사회에 반영되어 민단과 조총련 간 중앙본부의 차원의 교류나 접촉을 위한 시도나 노력이 단절되고 있음이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민단과 조총련 간 중앙차원의 통일 교류가 정체된 상황에서도 지방본부 간에는 제한적이나마 지속적인 교류가 실행되고 있었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두 단체의 지방본 부 간 교류행사는 617회 였다(남근우 외 2010, 67). 시즈오카( 靜 岡 ) 시미즈( 淸 水 )지부에 서는 경로회, 사이타마( 埼 玉 ) 켄호쿠( 縣 北 ) 지부 단위의 신년회 참석 등 친목을 도모하는 교류가 있었다. 치바( 千 葉 )본부의 민단과 조총련계 동포 간 합동골프대회, 오사카( 大 阪 ) 및 야마구치( 山 口 ) 시모노세키( 下 關 ) 지부 간 유도협회의 친선시합, 오사카 원코리아페스티 벌, 원코리아바둑대회, 1996년 후쿠오카( 福 岡 ) 민단과 조총련의 히가시후쿠오카( 東 福 岡 ) 지부가 공동으로 원코리아 후쿠오카 벚꽃축제, 2001년 3월, 오사카 조총련과 민단, 오사카 시청은 공동으로 재일동포와 일본인의 공생을 염원하는 하나마쓰리(ハナマトゥリ) 축제 를 열었다. 축제는 재일동포 사회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것으로 조총련과 민단의 중앙본부 임원들도 함께 하였다. 이렇듯 지방의 교류행사는 동포들 간 민족화합의 장이면서 또한 통일 한반도를 위한 지역 민단과 조총련계 동포들의 풀뿌리 통일운동이었다. 이러한 행사를 민단과 조총련 중앙본부는 지역차원의 교류로 평가절하하면서도 강력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비록 중앙차원의 통일 교류나 행사는 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차원 에서 행해지고 있는 통일 행사가 지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재일동포들의 통일의지가 살아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단과 총련의 대결 구도가 고착화된 상황에서 1980년대 중반, 새로운 통일운동을 주창하는 재일동포 세대가 등장하였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남북한 정부에 대한 정치적 중립을 표명하면서 민단과 조총련의 일방적 통일운동의 주도를 반대, 재일동포의 화합,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83

28 조국 통일에 대한 기여를 목적으로 정치적 성격이 강한 통일 을 문화 와 접목시켜 축제 형태로써 원코리아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통일운동의 전개 에서 남과 북을 연결하는 파이프로서의 역할에 운동의 중점을 두었으며, 재일동포 사회의 다양한 축제 가운데 유일하게 한반도 통일이라는 정치적 쟁점을 문화와 접목시킨 축제였다. 3개 단체가 추진한 통일운동의 차이 및 성과를 보면 첫째, 이념적 성향에서 민단은 친한국과 우, 조총련은 친북한과 좌, 원코리아페스티벌은 남북한으로부터의 정치적 중립 이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민단과 조총련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남북한을 대표하여 통일운 동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여타 단체들의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무관심 내지 배척하려는 태도를 취하였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이러한 경쟁 구도의 틈새에 서 독자적인 통일운동의 전개를 통해 한반도 통일, 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단체 활동을 펼치고 있다. 둘째, 민단과 조총련의 정치적 이념적 중심의 기존 통일운동에 대해 원코리아페스티벌 은 이념을 탈피하여 축제나 문화제의 개최, 해외동포와의 연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통일운동 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이들 단체는 남북한 정부의 공인, 그리고 공민단체라는 성격을 띤 한인회이다. 민단과 조총련은 남북한 정부의 통일방안과 정책을 재일동포와 일본 사회를 대상으로 홍보하고 지지를 이끌어내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운동의 자율성이 거의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원코리아페스티벌은 남북한 및 민단, 조총련에 대한 중립적 입장의 표명, 한반도 통일과 축제라는 정치와 문화의 결합을 통해 재일동포 간 화합과 교류를 모색한 통합의 기제였다. 이와 더불어 축제의 공식행사로 통일과 공생을 주제로 한 포럼의 개최, 다양한 공연의 실행 등은 재일한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의지를 결집시켜 주었다. 셋째, 매년 8천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재일동포의 일본 국화는 통일 동력의 상실로 나타난다. 재외동포의 개념은 한민족의 혈통을 갖고 있지만, 현재는 다른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동포, 그리고 남북한의 국적을 갖고 있지만 현재는 모국을 떠나 해외에 정주하고 있는 국민을 포함한다. 문제는 전자와 후자의 통일에 대한 의지가 다르다는 점이다. 후자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가 훨씬 높을 것이다. 예컨대, 재일동포이지만 영주권자와 일본 국적 취득자의 통일의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일본사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통일운동의 전개는 재일동포들의 통일의식의 고취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단체 중심의 통일운동은 재일동포 단체 회원들의 통일 세력을 결집하였다. 민단과 184 민족연구 64호

29 조총련은 자체 행사를 통해 남북한 정부의 통일정책의 지지 표명과 함께 통일 관련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단의 경우, 매년 간부들의 본국 통일연수회를 갖고 있으며, 조총련 또한 북한에서 열리는 민족통일대축전, 민족통일대토론회 등에 파견단을 보내고 있다. 민단과 조총련은 가두행진, 포럼 및 학술행사, 각종 통일 촉진대회 등을 통해 통일운동의 지지를 유인하는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는 자기 단체의 통일운동에 대한 지지와 함께 단체 회원들의 적극적 능동적 참여가 조직 내에서 통일의지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산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코리아페스티벌 또한 오사카를 중심으로 매년 축제를 통해 통일 세력을 결집하 고 있었다. 다섯째, 재일동포의 통일운동은 미래의 한반도 통일준비에 대한 기여 및 역할의 확산이라 는 파급효과를 창출하였다. 3개 단체 모두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모국의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민단과 조총련은 각각 남북한 정부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거나 홍보하는데 주력한 반면에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중립적 입장에서 한민족의 통일 염원을 하나(One) 라는 상징 적 기제를 통해 축제에서 발현하였다. 3개 단체의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염원의 추구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이들로 하여금 향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의 함양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개인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산출하고 있다. 여섯째, 통일운동의 외연적 확산을 위한 해외동포와의 통일 네트워크 구축이다. 먼저 민단은 민주평통의 해외지역협의회의 일원으로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민주평통 본국 회의와 아시아지역회의에 참석하여 통일문제를 논의하면서 재외동포 간 연대를 갖고 있었다. 조총련은 해외 동포들과의 범민족운동 추진, 재미 재중 재러 동포와의 해외동포 통일토론회 개최, 조총련 학생들의 미국과 중국 공연, 국제고려인통일연합회에 조총련 간부 참석 등으로 해외동포와의 통일네트워크를 강화하였다. 원코리아페스티벌은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동포들이 참석하여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동북아시아 코리안 네트워크 포럼을 개최했으며, 1998년에는 원코리아페스티벌을 미국의 뉴욕에서 개최하여 통일운동 의 외연적 확산을 꾀하였다. 2. 한계 민단 조직의 혼란을 조종하였던 조총련과 민단의 갈등,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북한의 지속적인 남침야욕 등에 대해 민단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조총련을 분쇄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조직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민단의 관점은 조총련과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화합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물론 조총련도 민단에 대해 비슷한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85

30 입장이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을 주도한 민단과 조총련은 각기 남북한 정부가 공인하고 있는 한인회이다. 두 단체는 남북한 정부의 통일정책이나 방안과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남북한 정부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통일정책을 제시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막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준수한다는 것이 민단의 정체성이다, 반면에 조총련도 북한을 지지하는 공민단체이다.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서론 다른 체제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이념과 사상을 떠나 한반도 통일을 위한 화합과 단합을 이루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혹은 불가능한 과제일 수도 있다. 민단과 조총련의 화합이 어려운 이유로는 첫째, 민단과 조총련 모두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 즉 조총련은 여전히 민단을 진정한 대화의 상대가 아닌 포섭 혹은 박멸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민단 또한 조총련과 유사한 논리를 갖고 있다. 둘째, 일본 내의 반북여론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핵문제 등 일본사회에서 조총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남근우 외 2010, 27). 민단이 조총련과 교류협력을 진행하면 일본사회는 민단과 조총련을 동일 존재로 보면서 민단계 동포들과 그 후손들의 일본 생활에 막대한 장애와 어려움을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먼저 조일관계가 회복되어야 민단과 조총련의 원활한 교류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셋째, 본국정부의 존립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민단과 조총련이 존재하는 기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단체가 각각 남북한 정부의 이념과 지지를 포기한다면 조직 기반의 붕괴와 함께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여 단체 존립의 필요성이 없어진다.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은 이념적 성향을 중심으로 남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지와 홍보를 위한 통일운동이었다. 그리하여 민단과 조총련이 주도한 통일운동은 동포사회에서 갈등이나 대립, 분열의 기제로 작용한 반면에 통합의 기제로는 미흡하였다. 더불어서 이들 단체의 통일운동은 친한 혹은 친북 성향의 재일동포 위주로 전개됨에 따라 재일동포 모두를 포함하는 대중적 확산에 있어 한계를 표출하였다.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의 한계점 노출은 일본에서 민족통일운동의 정체, 동포들 간 이념적 대립과 분열의 존속 및 공감대 형성의 실패, 통일에 대한 무관심, 소수자의 참여라는 결과를 산출하였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재일동포의 민족적 회합을 위한 태도의 전향이 요구된다 공동선언과 10 4 선언은 민단과 조총련을 비롯해 재일동포 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의 긍정적 신호였다. 민단과 조총련 중앙본부는 북한의 아리랑축제 참석과 월드컵 공동 관람을 실행하였다. 지방차원에서는 골프대회, 바둑대회, 축제의 공동 개최, 체육행사 등을 공동으 186 민족연구 64호

31 로 개최하여 동포들의 화합과 교류, 통일의지의 함양에 기여하였다. 문제는 민단과 조총련 중앙본부의 화합이나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예컨대, 민단이 특정 안건을 제의하 면, 조총련은 긍정적 답신과 함께 새로운 조건을 추가로 제안하였다. 이는 민단도 마찬가지였 다. 새로운 조건은 상대방이 수용하기 어려운 혹은 곤란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 로 상대방에 대한 책임 전가와 무성의를 이유로 회합이 자주 무산되었다. 민단과 조총련은 상대방의 제안이 있다면, 새로운 조건을 추가하지 않고, 그대로 응하려는 태도의 전향이 필요하다. 한편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 외에도 원코리아페스티벌, 삼천리철도, 14) 재일코리아 협회 15) 의 결성과 활동은 재일동포들의 또 다른 통일운동의 출현이었다. 이들 단체는 민단과 조총련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통일운동을 펼치고 있다. 민단과 조총련은 이들 단체의 통일 활동을 무관심 혹은 적대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 협조를 통해 함께 한반도 통일을 고민하고 협력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전개된 원코리아페스티벌은 생활중심의 통일운동을 실행하여 재일동포 사회에 새로운 통일운동을 선보였다. 그러나 일회성 및 이벤트성 행사, 초기의 통일 중심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이라는 목표의 수정은 재일동포 에게 있어 통일의 화두보다는 즐기는 축제로 변질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민단과 조총련 중심의 기존 통일운동과 부분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원코리아페스티벌의 통일운동 또한 대중적 확산에는 미흡하였다. 통일을 위한 재일동포 단체 및 개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동포 사회는 친한과 친북 그리고 중립적 성향의 단체와 개인으로 분열되었다. 3개 단체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해 일정한 공감대 및 역할 수행에 동의하고 있지만, 문제는 남북한 관계에 의한 정치적 영향이 재일동포 사회와 단체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단과 조총련은 적대적 관계이며, 원코리아페스티벌에 대한 입장은 비우호적이다. 대립과 분열의 상황에서 3개 단체의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역할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현재의 불신을 통일 기제와 접목시켜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동포 단체의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중요한 기여가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먼저 통일 의지의 고취가 필요하다. 통일방안 이나 체제에 대한 논의는 그 다음 순서이다. 또한 비정치 분야에서 단체 간 지속적인 14) 조국의 분단 극복과 화해, 통일을 모색하는 NPO 법인 삼천리철도가 2000년 9월 조직되었다. 남북의 비무장지대 4km에 철도 건설을 위한 기금 모집이 삼천리철도를 결성한 기본 취지이다. 삼천리철도, ). 15) 하나의 재일동포 사회, 남북통일과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취지를 갖고 단체를 결성하였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87

32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간다면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표 1>에 3개 단체의 통일운동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였다. <표 1> 통일운동의 성과와 한계 민단 조총련 원코리아페스티벌 단체 성격 한인회 한국정부 공인단체 한인회 북한 공민단체 공익재단법인 시민사회단체 모국 성향 친한국 친북한 중립 성과 한국 통일정책 홍보와 지지를 통한 세력결집 단원의 통일의지 고취 통일준비에 기여 운동의 주도권 확보 북한 통일정책 홍보와 지지를 통한 세력결집 맹원의 통일의지 고취 통일준비에 기여 친북 해외동포와 연대 강화 통일과 축제의 접목 통일운동의 외연 확산 자이니치( 在 日 )의 통일의식 함양 생활 중심의 통일운동 전개 한계 타 단체의 통일운동 무관심 동포 전체로의 확산 미흡 활동의 제약과 자율성 미흡 통합의 기제 역할 못함 타 단체의 통일운동 배척 동포 전체로의 확산 미흡 활동의 제약과 자율성 미흡 통합의 기제 역할 못함 선언적 통일운동 치중 대중적 확산 미흡 민단과 조총련의 견제 받음 민간단체의 제한적 활동 Ⅳ. 결론 해방이후 현재까지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은 민단과 조총련을 중심으로 친한 및 친북의 통일정책에 대한 지지와 홍보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70~1980년대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연계하여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운동이 추진되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는 이념을 탈피하여 일상생활과 연계된 통일운동이 나타났다. 원코리아페스티벌과 삼천리 철도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통일의 주체 범위를 남북한으로만 인식하며 통일과정에 서 재외동포의 역할을 남북한 간 중개자 혹은 매개적 역할로 국한시켜 왔다. 그렇지만 한반도 통일을 남북한의 통일을 넘어서 전 세계 재외동포들을 포함하는 한민족공동체의 범위로 확장한다면, 재외동포들은 단순한 중재자를 넘어서 통일과정의 주체 역할도 가능하 188 민족연구 64호

33 다(이상걸 2015, 3). 재외동포는 한민족의 일원이며, 이들의 모국은 한반도이다. 한반도 통일은 미시적으로는 남북한의 문제이지만, 광의적으로는 한민족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다. 따라서 재외동포는 한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반도 통일과 관련하여 객체가 아닌 주체자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에 있어 재외동포의 역할은 주로 중재자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왜냐하면 통일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남북한 국민의 동의를 얻어 이를 실행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1~2세대는 모국과의 지속성 유지, 강한 민족정체성 표출, 조직에 대한 높은 충성심을 갖고 있는 반면에 3~4세대는 일본 귀화, 재일한인 단체 활동의 미흡, 모국과의 거리감, 모국문제에 대한 낮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재일동포 가운데 1세대의 통일 의식은 매우 강하며, 분단의 극복과 통일을 자신들의 삶과 연계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재일동포가 한반도 통일을 자신들과 연관시키는 이유로는 첫째, 역사적인 측면에서 한반도의 분단이 일제 식민지의 잔재이며, 우리 민족에게 남긴 상처였다는 점이다. 둘째, 민족적 중요성의 측면에서 분단이 민족 발전의 저해 요인이므로 민족의 발전을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셋째, 국제적인 측면에서 통일은 동아시아 평화와 공존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박종성 김진환 2012, 247). 재일동포들이 인식하는 한반도 통일 전망을 보면, 응답자의 30.6%는 긍정적, 61.5%는 부정적으로 답변하였다(박종 성 김진환 2012, ). 그 이유로는 재일동포들은 현재의 남북관계에서의 적대성을 민단과 조총련을 통해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국가폭력의 존재는 재일동포로 하여금 강한 민족적 지향성을 갖게 했으며, 이러한 폭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재일동포들에게 있어 통일 의지로 표출되었을 것이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통일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통일 논의의 개방성과 통일의 식의 함양이다. 첫째, 통일 논의의 개방성이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자유롭게 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동포 사회에서 통일을 향한 과거의 역사를 보면, 장애물로 작용했던 요인은 재일동포 사회의 역할이 아닌 남북한 정부의 민단과 조총련에 대한 통제와 견제였다(김태기 2001, 248). 재일동포 사회를 이끌고 있는 민단과 조총련은 친한과 친북 성향을 갖고서 일본에서 통일문제를 주도하려는 입장이다.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을 논의하는데 있어 민단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조총련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 방안 을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홍보하면서 지지를 얻고자 한다. 이러한 것은 재일동포 사회에서 분열의 고정화를 초래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신생 단체의 출현은 기존 단체가 이들의 주장과 이익을 충분히 대변하고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다. 민단과 조총련의 통일운동과는 다른 제3의 통일운동의 출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89

34 재일동포 사회가 한국 혹은 북한의 통일방안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재일동 포 사회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역할은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통일문제를 주도하고 결정하는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과 정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동포 사회의 다양한 통일운동이나 주장의 출현은 통일문제에 대한 분열이 아닌 통일 의지의 고취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재일동포 사회에서 개방적 통일 논의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민단과 조총련이 소규모 통일단체와 소통하고 협력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둘째, 통일의식의 함양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은 단체 중심으로 그리고 소수의 동포들만이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고서 참여하고 있다. 통일운동의 정체는 분명히 그 원인이 있다. 정체의 원인 규명과 함께 통일운동의 재추진 동력의 확보는 재일동포의 통일의 준비, 역할, 기여와 상관성을 갖고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통일의지의 함양은 통일의 당위성 인정, 통일의 촉진 요인, 통일로 인한 이익의 기대,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긍정적 전망, 통일 동력의 확보 측면에서 필요한 것들이다. 이를 위해 재일동포들의 통일 의지의 결집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재일동포의 통일의지가 미결집된 상황에서 미래의 통일방안이나 통일체제에 대한 논의는 오히려 통일단체나 동포들 간 분열과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후차적으로 논의될 사안이다. 남북한에 상이한 체제가 존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일동포들이 특정의 통일방안과 체제를 지지하더라도 큰 효과나 영향력은 소소하다.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남북한 정부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재일동포들의 통일의지의 결집과 함양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190 민족연구 64호

35 강희봉 총련과 민단의 조국통일 도쿄 제9회 세계한민족포럼. 자료집, 고성준 재일제주동포의 통일안보 의식에 관한 서설적 연구. 제주대학교 논문집 1, 권양주 한반도 평화통일 프로세스. 서울: 선인. 김성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재일동포 사회의 역할. 한국동북아논총 17(2), 김영의 재일동포 사회의 협력과 갈등 연구: 민단 총련 관계를 중심으로. 고려대학 교 석사학위논문. 김용찬 남북정상회담과 재외한인사회의 반응. 민족연구 5, 김창희 북한 정치사회의 이해. 서울: 법문사. 김태기 한반도 통일과 재일한국인: 통일문제를 둘러싼 민족단체의 분열을 중심으 로. 한국과 국제정치 17(2), 김태기 분단의 갈등을 넘어 통일의 민족단체로: 재일동포 단체의 역사와 현황. 한일민족문제학회. 재일조선은 그들은 누구인가. 서울: 삼인, 남근우 외 구술로 본 해외한인 통일운동사의 재인식: 일본지역. 서울: 선인. 박병윤 남북의 UN동시가입과 재일동포의 역할: 91년 문제의 총괄과 분단극복을 위하여. 재외한인연구 2, 박일 재일코리안 사전. 서울: 선인. 박종성 김진환 재일조선인의 분단 통일의식.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코리언의 분단 통일의식. 서울: 선인, 손미경 오사카 원코리아페스티벌: 통일운동에서 다문화 공생의 장으로. 재외한 인연구 23, 외교부 재외동포현황. 윤상철 재일한인의 사회운동: 민주화 및 통일운동 그리고 내부지향운동. 한국사 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자료집, 윤황 조희원 재외한인동포사회의 통일운동단체 현황과 과제: 중국 미국 일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91

36 본의 재외한 인단체를 중심으로. 디아스포라연구 8(2), 이광규 재외동포.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이병수 정진아 코리언의 분단 통일의식 연구의 관점과 의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코리언의 분단 통일의식. 서울: 선인, 이상걸 재일한인 차세대의 정체성과 통일 의식 연구: 민족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이신철 재일동포사회의 통일운동 흐름과 새로운 모색: 원코리아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사림 52, 이진영 김판준 통일준비와 재왜동포: 통일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재외한인의 역할, 통일과 재외동포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 자료집, 임영언 허성태 디아스포라적 관점에서 본 북한-총련-일본 관계 연구. 한국동북 아논 총 66,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총련. 동경: 조선신보사. 田 駿. 1972a. 朝 總 聯 硏 究 1.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田 駿. 1972b. 朝 總 聯 硏 究 2. 서울: 고려대학교출판부. 정갑수 정상회담 이후 재일동포사회의 화해 협력: 민단 조총련간의 화해와 협력을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12(1), 정용하 재일한인 통일운동에 나타난 연대 네트워크: 통일운동의 시기별 특징과 관련을 중심으로. 한일민족문제연구 13, 지충남 재일한인 사회단체 네트워크 연구: 민단, 조총련, 재일한인회를 중심으로. 세계지역연구논총 26(1), 지충남. 2013a. 재일동포 사회의 제3의 민족통일운동 고찰. 한국동북아논총 69, 지충남. 2013b. 재일동포와 원코리아페스티벌: 통일과 공생의 기제. OUGHTOPIA 28(1), 지충남 재일한인 디아스포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단체활동과 글로벌 네트워크. 파주: 마인드탭. 진희관 조총련 연구. 역사비평 30, 진희관 분단정부와 민단, 총련. 일본 한인의 역사( 上 ). 과천: 국사편찬위원 회, 최길성 한민족의 해외 이주와 문화변용. 동북아시아 문화학회 제2차 국제학술대 192 민족연구 64호

37 회. 자료집, 최영호 재일한인의 해방과 귀환(1945~1952).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한인의 역사( 上 ).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최진욱 외 4인 동북아 한민족 사회의 역사적 형성과정 및 실태. 서울: 통일연구원. 황혜경 재일코리안에 있어서 민족축제 의미와 호스트사회와의 관계. 일본문화 학보 46, 李 瑜 煥 在 日 韓 國 人 60 萬 - 民 團 朝 總 聯 の 分 裂 史 と 動 向. 東 京 : 洋 洋 社. 吳 圭 祥 朝 鮮 總 連 50 年 ( ). 東 京 : 綜 合 企 劃 ウイル. 上 田 誠 吉 藤 島 宇 内 朝 鮮 の 統 一 と 人 権. 東 京 : 合 同 出 版. 郭 東 儀 わが 祖 国 統 一 論. 東 京 : わが 祖 国 統 一 論 刊 行 委 員 会.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民 團 50 年 史.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中 央 本 部 宣 言 綱 領 規 約. 東 京 : 在 日 本 大 韓 民 國 民 團. 坪 井 豊 吉 在 日 朝 鮮 人 運 動 의の 槪 況. 法 務 硏 修 所 究 : 東 京. 統 一 日 報 編 輯 部 民 團 總 連 の 和 解 のウラで 何 が 起 っていたのか?. 東 京 : 洋 泉 社. 朴 慶 植 解 放 後 在 日 朝 鮮 人 運 動 史. 東 京 : 三 一 書 房. 朴 鐘 鳴 朝 鮮 半 島 の 統 一 と 在 日 朝 鮮 人. 朴 鐘 鳴 編. 在 日 朝 鮮 人. 東 京 : 明 石 書 店. ワンコリアフェスティバル 實 行 委 員 會 [ 編 ] ONE KOREA. 東 京 : ワンコリア フェ スティバル 實 行 委 員 會. 민단신문. 교류, 민단과 총련 만남의 발자취. spaper/read_artcl.php?newsid=2405(검색일: ). 삼천리철도 ). 정갑수 ). 투고일: 심사일: 게재확정일: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93

38 Abstract The unification movement in society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Focusing on Mindan, Jochongryon and One Korea Festival Choong Nam Ji (Chonnam National University) The propensity of motherland in Mindan and Jochongryon includes pro-south Korea and pro-north Korea. In case of One Korea Festival, it is expressing a neutral position. Especially in that Mindan and Jochongryon are the official and civic organizations of South and North Korea, respectively, those are concentrating on unification movement that unilaterally supports and promotes the unification policy of the homeland government. As for the results of the unification movement, first, Mindan and Jochongryon combined supporters through the development in unification movement, encouraged members' intention of unification, and contributed to preparing for the futur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Second, Mindan strived to secure the initiative in unification movement based on 320,000 members. Third, Jochongryon reinforced the solidarity with pro-north Korea overseas residents. Fourth, One Korea Festival expanded the denotation of unification movement through the integration of unification and festival, promoted the unification perception in Korean Japanese, and developed the life-centered unification movement. On the other hand, as for the limitations of unification movement, first, Mindan and Jochongryon are being virtually consistent with indifference and exclusion in unification movement of other organizations, are insufficient in expansion into the whole countrymen, are lacking in restriction and autonomy of activity, and are inadequate for a role of mechanism 194 민족연구 64호

39 in unification. Second, One Korea Festival is concentrating on the declarative unification movement, is insufficient in popular expansion, and is being checked by Mindan and Jochongryon. To vitalize unification movement in Korean Japanese society, there is a need to be preceded the openness of a discussion about unification and the promotion of the unification awareness. A role of Korean Japanese society including organiz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unification is an intermediator and is what forms positive public opinion through creating the bond of sympathy for the Korean peninsula unification in Japanese society. <Key words> Korean residents in Japan, Unification Movement, Mindan, Jochongryon, One Korea Festival 재일동포 사회의 통일운동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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