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서 Ⅰ부 사회 :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개회사 : 전기호(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축사 기조강연 :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04 Ⅱ부 사회 : 허남성(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제1주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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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2 순 서 Ⅰ부 사회 :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개회사 : 전기호(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축사 기조강연 : 서중석(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 04 Ⅱ부 사회 : 허남성(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제1주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을 중심으로 / 12 발표 : 김삼웅(전 독립기념관 관장) 토론 : 박환(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제2주제 1910년대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신흥무관학교 / 29 발표 : 윤경로(전 한성대학교 총장) 토론 : 김희곤(안동대학교 사학과 교수) 제3주제 신흥무관학교 이후 독립군 군사간부 양성 / 46 발표 : 한시준(단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토론 : 한상도(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제4주제 대한민국 국군의 창설과 신흥무관학교의 정통성 계승 / 62 발표 : 한용원(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토론 : 노영기(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종합토론 사회 : 허남성(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폐회 및 만찬

3 기조강연 3

4 기조강연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신흥무관학교의 위상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 1. 4 신흥무관학교는 독립운동의 주요 방략이었던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을 구체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자 즉각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독립운동 가운데 크게 호응을 받은 것이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이었다. 일제와 즉각적으로 무력 항 쟁을 벌이는 것은 그 의기는 장하지만 비현실적이고 무모하기 때문에, 당장에는 독립운동 및 독립군의 기본 역 량과 토대를 배양하고 강화하는데 치중해야 한다는 독립운동 방략이었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비밀결사나 지하투쟁 형태로 전개될 수 있었지만,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무단통치로 독 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은 국외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은 적절한 시 기가 도래하면 즉각 일제와 독립전쟁을 벌이겠다는 점에서 실력양성운동이나 준비론과 크게 다르다.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 주창자들은 일제의 침략성을 볼 때 언젠가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때 한국이 중국 또는 러시아나 미국과 함께 일본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독립전 쟁을 전개해 독립을 쟁취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초기 활동은 을사조약 강제체결 직후부터 있었다. 이상설 이회영 이동녕 여준 등은 일 제 통감부가 설치되자 국권과 자유를 되찾을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북간도 용정에 학교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1906년 10월경 용정촌에서 문을 연 서전서숙은 민족운동 기지 건설의 효시였다. 그뒤 고종으로 하여금 이상설 등을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하도록 활동한 이회영이 1908년 이상설과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났을 때 이상설 은 이회영에게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이 일본을 경계하기 때문에 전운이 일어날 것이므로 이에 호응하여 조국 광 복을 기약하자 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기지 건설은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도 추진했다. 신민회에는 교육과 산업, 인격도야 등 실력양성을 중 시하는 간부도 있었지만, 양기탁 이동녕처럼 적극 항일투쟁을 강조한 간부들은 국외에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 지를 건설하는 것에 기울어져 있었다. 1910년 8월 일제가 병합조약을 강제할 때 이회영 이동녕 등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일대를 답사하여 무관학 교를 세울 장소를 물색하고 돌아왔다.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는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 외에도 몇 군데 더 있 었다. 이상설 이승희 등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 러시아와 중국 국경지대에 있는 흥개호 부근 봉밀산에 한흥동을 건설하고 한민학교를 세웠다. 이동휘와 그의 동지들은 만주 왕청현 라자구에 비밀 군사학교를 세웠다. 박용만 등 미주 동포들도 군사학교를 세워 미래의 독립군을 양성했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만이 1911년에 설립된 이후

5 10년 동안 쉬임없이 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특히 3 1운동 직후에는 한반도 각지와 중국 각지에서 뜻있는 많은 젊 은이들이 몰려들어 유하현 고산자에 본교를 새로 크게 지어야 했고, 통화현 쾌대무자에도 분교를 세워, 합니하 무관학교와 함께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관 교육을 받았다.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의 중심이 된 것은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 립 기념강연에서도 밝힌 바대로, 서울에서 이회영 6형제와 이동녕 이장녕 등 여러 지사와 무관, 안동에서 이상 룡 김동삼 등 혁신유림 지사, 선산에서 의병장으로 처형당한 허위의 대소가 등 쟁쟁한 인물이 많이 모였고, 망명 자들이 단결이 잘 된 데다가 이석영 같은 재력가가 있었던 점, 서간도는 산이 많고 땅이 척박한 데다가 평안도 등 지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거의 다 가난한 소작농이어서 계급 분화가 약했고, 주민들의 동질성이 강했던 점이 작 용했다. 그와 함께 신흥무관학교가 왕성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을 찾으려는 망명자 결사 경학사와 서간도 일 대의 주민들이 참여한 강력한 주민자치조직인 부민단, 한족회가 강력히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신흥무 관학교는 교장 교감 교관 교사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무관 양성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았다. 3 1운동 이후 신흥무관학교에는 일본 육사 46기로 현역 장교였던 지청천과 역시 일본육사를 나온 장교 인 김경천 신팔균 등이 최신 병서를 가지고 합세해 기세를 올렸다. 신흥무관학교가 지속적으로 명성을 갖고 영 향력을 갖게 된 데에는 주로 이 학교 졸업자로 조직된 신흥학우단의 활동에 힘입은 바가 컸다. 신흥무관학교 졸 업생들은 서간도 각지에 학교를 세우는 등 서간도에는 많은 학교가 있었다. 한 기록에는 20호 또는 몇십호만 거 주해도 소학교를 세워 의무교육이나 다름없이 이주민들 자녀를 가르쳤다고 쓰여 있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수년간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에 매진해온 신흥무관학교 관계자, 졸업생들은 벅찬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드디어 고대해 마지 않았던 중일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연합국에 가담했고, 중일전쟁이 일어나지 않자, 혈전 준비에 모든 것을 바쳤던 신흥무관학교 관계자들과 졸업생들은 독립을 향한 찌를듯한 강렬한 의기를 소화, 조절 하기 위해, 제2 군영으로 백두산 서쪽 쏘베차에 백서농장을 세웠다. 백서농장은 신흥무관학교의 성가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 다. 김동삼을 장주로 하여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주로 참여한 백서농장은 4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 인적 미 답의 메마른 고원에서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지극히 힘들 고 고된 훈련을 했다. 이들중 채찬( 白 狂 雲 ) 등 상당수가 3 1운동 후 서로군정서에 들어갔고 통의부 참의부 정의 부에서 활약했다. 독립운동가들이 기다렸던 일본과 중국과의 전쟁은 1931년 만주사변 의 형태로 터졌다. 만주에서건 상해 등 중국관내에서건 독립운동가와 독립군은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고 독립운동 단체의 단결에 힘을 쏟았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에 독립운동전선은 더욱 투지를 다져나갔다. 1941년 일제가 무모하게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 습하자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즉각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민족혁명당 등 좌파를 받아들여 광복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넓혔다. 2. 신흥무관학교는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무기력했던 1910년대에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민족의식을 고 취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일제가 무단통치를 하던 1910년대 독립운동의 간고함과 만주에서 펼 쳐졌던 근대적 민족의식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 독립운동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전개되었는가를 간단히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5

6 6 독립운동 하면 만주나 상해가 떠오를 정도로 독립운동은 국내 지하투쟁이나 비밀결사 활동을 제외한다면 주 로 국외(해외)에서 전개되었다. 인도나 베트남 등 다른 지역에서의 독립운동이 주로 국내에서 있었던 것을 볼 때 우리의 독립운동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국은 인도에서 간디나 네루의 민 족(독립)운동을 용인했지만, 일제는 한국의 독립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철저히 탄압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일제강점기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근대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가 없었다. 그 점은 1920년대 문화통치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3 1운동이건 6 10만세운동이건 광주학생운동이건 모두다 불법이었다. 아리랑 의 주인공으로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생도였던 김산(본명 장지락)은 독립운동을 하는 한국인은 3,4개 의 국가를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선혈을 뿌리고 있다고 토로했지만, 독립운동은 만주, 산해관 안쪽 의 중국, 연해주와 시베리아, 국내, 일본, 미주 등지에서 각각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만큼 간난신고가 컸고,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언제 어떠한 위해를 받을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점에서도 인 도 등 다른 지역의 독립운동과 크게 다르다. 지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한국인은 독립군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참으로 대단 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에서 1930년대까지 독립군이 있었던 지역은 아주 드물다. 지금까지 한국인이 얼마나 어 려운 조건 속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가를 일별했지만, 독립운동을 펼치던 시기 중에서도 가장 암담했던 시기 가 3 1운동 이전의 암흑기로 불리는 1910년대였다. 일제가 무단통치를 자행했던 국내와 거의 절연되어 있었고 어 떤 외부적 지원도 받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 때문에 3 1운동 이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활발히 전개되었던 독립운동과 달리 1910년대에는 주목할만한 독립운동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도 1910년대에 한시도 쉬지 않고 무관 양성에 진력했던 신흥무관학교 는 우리 역사에서 소중한 위치에 있다. 근대적 민족의식도 1910년에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한국인의 독립의식에 대해 몹시 경계를 했기 때문에 국 내에서는 확대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위축되었다. 대한제국 출범 직후 몇 종류의 애국가나 독립신문 등 언론의 논조를 볼 때 1900년 이전에도 근대적 민족의식이나 국가의식이 약하지만 있었다. 그렇지만 민족 이라는 용어가 슈미드의 연구에 따르면 1900년 이후에 등장했고, 특히 1907년을 전후해서부터 계몽운동과 관련해 많이 사용 되는 것을 보면 근대적 민족의식은 이 시기부터 신지식층 또는 애국지사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식이나 민족주의는 대한매일신보와 단재 신채호에 의해 열렬히 고취되었다. 신채호는 한국인이 항상 애국 국가 민족 이란 말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그것은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독사신론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최도통전 등을 지었고, 그것을 여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판도 만들었다. 그는 아( 我 ) 가 확립되지 못한 채 모방을 일삼는 외국 유학생, 세계주의자, 동양평 화론자, 문화론자를 통렬히 비판했다. 그렇지만 민족의식은 1910년 일제의 강점에 의해 현저히 위축되었다. 일제 는 친일매국단체인 일진회조차 해산시킬 정도로 결사를 극도로 제한했고,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철저히 억 압했다. 3 1운동 이전 한반도는 칠흑같은 암흑의 반동시기였다. 독립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었고, 민족의식을 전 파할 수 있는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염상섭은 초기의 대표작 묘지송 에서 3 1운동 이전의 한국사회를 아무 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묘지와 같은 사회, 절망이 감도는 무기력한 사회로 묘사했다.( 墓 地 頌 은 나중에 萬 歲 前 으로 제목을 바꾸었음) 지사들은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갔다. 3 1운동 이전 1910년대에 민족의식 또는 민족정신이나 동포애, 애국심은 서간도와 북간도, 연해주에서 맥을 이 어갔다. 1910년대에 만주지방은 근대적인 민족의식이 크게 위축되었던 국내와는 다르게 망명자 사회이기 때문 에 더욱 그러했지만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북간도의 경우 서전서숙의 영향을 받은 명동학교 광성학

7 교 창동학교 북일학교 등에서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운동을 펼치며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불어넣어주 었다.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은 거처하는 곳 어디에서건 민족지사들로부터 민족정신을 배웠지만, 특히 학교 생활은 민족의식과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아침 조례시간에 애국가 제창이 끝나면 여준 교장이 양쪽 눈에 망국한 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훈화를 하였고, 혹한에도 교사들은 홑옷에 초모를 쓰고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군사 교육시간은 군사시설이나 무장이 부족했기 때문에도 정신교육을 많이 했다. 신채호는 애국심을 심어주는데 역 사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신흥무관학교 역사교재로 사용된 대동역사 를 저술한 이상룡은 역사는 국가의 체통을 보존하고 국민의 정신을 격려하는 학문이라고 역설했다.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은 나라도 없어지고 민족도 죽은 암담한 상황에서 독립의 깃발을 높이 들고 나라를 다 시 찾을 사상을 떨치게 하려면 민족의식을 제대로 갖게 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교가 칼춤 추 고 말을 달려 몸을 단련코 / 새로운 지식 높은 인격 정신을 길러 / 썩어지는 우리 민족 이끌어내어 / 새 나라 세 울 이 뉘이뇨 를 부르며 민족적 사명감을 불태웠다. 신흥무관학교 교가는 학생들만 부른 것이 아니라 서간도 주 민들도 아이들도 즐겨불렀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신흥무관학교 교가, 용진가 와 같은 독립군가를 힘차게 부르 며 민족정신을 길렀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로 구성된 신흥학우단은 1.나는 국토를 찾고자 이 몸을 바쳤노라. 2.나는 겨레를 살리려 생명을 바쳤노라. 3.나는 조국을 광복하고자 세사( 世 事 )를 잊었노라. 4.나는 뒤의 일을 겨레 에게 맡기노라. 5.너는 나를 따라 국가와 겨레를 지키라 는 선열의 시범 다섯가지를 소리 높이 외치며 조국과 겨 레에 대해 신명( 身 命 )을 바칠 것을 다짐했다. 서간도에는 애국열, 동포애,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데 또 하나의 유력한 무기가 있었다. 신흥학우단이 신흥무 관학교와 분교, 지교, 부민단-한족회에서 견인차이자 중추신경과 같은 활약을 하게 된 데는 독립정신을 고취하 며 계몽활동을 편 미디어로서 신흥학우보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월간 또는 격월간으로 발간된 신흥학우보는 서간도 주민들의 교육잡지로서 주민들과 신흥무관학교, 부민단-한족회 등의 자치단체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했다. 서간도를 비롯해 만주에서는 민족적 상징도 발전시켰다. 신흥무관학교 교가에는 우리 우리 배 달나라 라는 말이 나오지만, 단군은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데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 존재였다. 신흥학우단의 선 열의 시범 에 나오는 조국 이라는 용어는 근대적 국가 관념을 갖게 했다. 백두산은 만주에 사는 한국인에게 의미 가 큰 상징이었다. 1914년 충천하는 투지를 조절 하기 위해 제2군영으로 세워진 군영의 이름이 백두산 서쪽이라 는 뜻을 가진 백서농장 인 것도 상징적이다. 8월 29일 국치일에는 학생이건 어린아이건 노인네건 부녀자건 모두다 신흥무관학교에 모였다. 그들은 경술년 추팔월 29일은 / 조국의 운명이 다 한 날이니 / 가슴을 치고 통곡하여라 / 자유의 새 운( 運 )이 온다 는 노래를 목 이 터져라 부르며 동포애를 다졌다. 음력 10월 3일 개천절에도 신흥무관학교 운동장이 꽉 차게 모여 화려강산 동( 東 )반도는 / 우리 본국이요 로 시작하는 애국가를 부르며 기념행사를 크게 가졌다. 신흥무관학교 학생이나 신흥학우단원, 망명자와 서간도 이주민들이 항상 민족의식으로 충만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불현듯 절 망 이라는 병이 엄습하곤 했다. 만리이역에서 절망이라는 요괴와 끝없이 싸움을 벌이는 것은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망명자 사회에는 쓸쓸함과 허전함, 끝없는 불안함, 애처러움과 서글픔이 고향에 대한 상념과 함께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3. 신흥무관학교는 근대사나 민족운동사, 독립운동사, 독립군전쟁에 지울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7

8 8 신흥무관학교는 서전서숙 창설 정신을 더욱 발전시켰고, 신흥 의 앞머리 글자인 신 은 신민회를 상징하는 뜻을 가지고 있듯 신민회의 독립운동 및 독립군 기지 건설 운동이 구체화된 것이기도 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의 결의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대한제국 무관학교와 의병의 맥을 이어받았다는 점 에서도 민족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아관파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나라를 새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광무제(고종)는 1897년 국호를 대한제 국으로 바꾸고 여러 가지 개혁을 했다. 광무제는 특히 국방력의 중요성을 체험으로 뼈저리게 인식해 군제 개혁 에 국력을 기울였던 바, 시위대 친위대를 연대 병력으로, 지방 주둔 진위대를 진위대대로 개편함과 동시에 1898 년에는 제대로 된 무관학교를 통해 장교들을 육성시키고자 했다. 이때부터 일본이 노골적으로 간섭하기 이전인 1904년까지의 대한제국 무관학교가 신흥무관학교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로 신흥무관학교 교장이었던 이세영은 대한제국 장교였고, 교관이었던 이장녕 이관직 김창환 양성환은 대한제국무관학교 졸업생이었다. 3 1운동 이후 가담한 신팔균은 1903년에 무관학교 속성과를 졸업했다. 신흥무관학교가 속성과와 본과를 둔 것도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이어받은 것이지만, 대한제국무관학 교 교과목이었던 전술학 군제학 병기학 축성학 지형학 위생학 마학( 馬 學 ) 외국어 중 마학 등 당시 여건상 도 저히 하기 어려운 것을 제외하고는 신흥무관학교 무관 교육과정에 넣은 것도 신흥무관학교가 대한제국무관학 교를 이어받았음을 말해준다. 주지하는 대로, 의병의 항일전쟁은 1907년 8월 대한제국군대가 해산될 때 대거 군 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력이 크게 확충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07년 8월 이후부터 1910년까지 의병장 430명 중 군인 출신 의병장이 홍범도 연기우 민긍 호 김규식 등 87명에 이른다. 이중 장교 출신이 18명인데, 영관급 장교 3명을 제외한 위관급 장교 15명이 무관학 교 출신 장교로 생각할 수 있고, 하사관 또는 병졸 출신의 의병장들은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의 통솔하에 있었 으므로,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들이 의병들의 항일전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임재찬, 구한 말 육군무관학교 연구 ) 신흥무관학교 관계자나 교관, 생도들은 3 1운동 이후 독립군 활동, 독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1운 동 후 신흥무관학교와 직접 관련 있는 군대로는 의용대와 교성대가 있다. 3 1운동 직후 부민단을 확대해 조직 한 한족회와 쌍둥이단체로 탄생한 것이 군정부였다. 군정부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워지자 그것을 옹 호하였고, 명칭도 서로군정서로 바꾸었다. 서로군정서 산하에 있었던 독립군이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많이 가 담한 의용대이다. 의용대는 국내로 들어가 일제 경찰대와 교전하는 등 주로 유격활동을 벌였는데, 나중에 서로 군정서 등이 통합하여 통의부를 조직할 때 그 기간병력이 되었다. 교성대는 신흥무관학교 생도들로 구성되었는 데, 교관 지청천이 이끌었고, 병력은 약 4백명 정도였다. 일제가 만주에서 독립운동 근거지를 제거하기 위해 첫 번 째 중요 조치로 중 일 합동수색대 를 1920년 5월에 서간도로 출동시키자 교성대는 백두산 아래 안도현으로 이 동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생도들의 독립군 활동은 청산리전쟁에서부터 본격화되었다. 1920년대에 전세계 독립전쟁 사에서 청산리전쟁과 같은 큰 규모의 전쟁은 찾아보기 힘든데, 일반적으로 청산리전쟁은 대한군정서-북로군정 서가 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신흥무관학교가 깊이 관련되어 있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1919년 8월 이후 대한군정서가 만들어질 때, 대한군정서는 많은 것을 신흥무관학교쪽이나 서로군정서에 의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장녕을 참모장으로 초빙했고, 신흥무관학교 교관 이범석과 졸업생 김훈 오상세 박영희 백종열 강화린 최해 이운강 등을 교관으로 초빙하고, 신흥무관학교 교재를 공급받아 사 관연성소를 설립했다. 그뒤 신흥무관학교 교관, 졸업생들은 일선부대의 핵심직책을 맡아 청산리전쟁에서 싸웠 다. 이장녕이 참모장, 박영희가 사령부 부관 및 연성소 학도단장을, 이범석이 연성대장을 맡은 외에도 김훈 백종

9 열 강화린 오상세 이운강이 종군장교와 소대장, 학도단 제2학도대 제3구대장과 제1중대장서리, 제4중대장, 소대 장서리 등을 맡아 일본군과 싸웠고, 생도인 최해 신형섭 등 적지 않은 신흥무관학교 관련자들이 청산리전쟁에 서 일역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지청천이 이끈 교성대는 청산리전쟁의 또 한 명의 주역인 홍범도부대의 지원을 받아 이 전쟁에 참여했다. 그 뒤 홍범도부대 약 6백명은 지청천의 교성대와 통합해서 활동하다가(총사령 홍범도, 부사령 지청천), 밀산 부근에서 서일을 총재, 김좌진 홍범도 조성환을 부총재로 해서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을 때, 참모총장 이장녕, 여단장 지청천, 중대장 김창환 김경천 광선 등 군 지휘관 직책을 신흥무관학교 교관이나 졸업생이 맡았다. 독립군에서 신흥무관학교 생도와 관련자들이 활동한 사실은 이루 다 매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들은 서 로군정서 통군부 통의부 정의부 및 참의부 외에도, 조선혁명군 대한독립군 고려혁명군 등 여러 독립군 단체에서 활약했다. 특히 1940년 9월 17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소속 군으로 광복군이 조직되었을 때, 지청천이 총사령관, 이범석이 참모장과 제2지대장, 신흥무관학교 생도였던 김학규가 제3지대장을 맡은 것은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신흥무관학교 생도였고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과 군무부장(국방장관)이었던 김원봉은 조선의용대원으 로 구성된 광복군 제1지대를 통할 지휘했다. 또한 1920년대에 수많은 의열투쟁을 전개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의열단( 義 伯 또는 단장 김원봉) 단원들도 신흥무관학교를 다녔다. 1919년 11월 만주 길림성 파호문 밖에서 13 명이 의열단을 결성했을 때, 김원봉 이종암 등 8명이 신흥무관학교 생도였는데, 이들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급진 파였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은 독립군 활동, 혁명사업, 교육사업에 헌신하여 남북만주, 중국 관내, 시베리아 등지에 그들의 족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에 끼친 자취는 1919년 2월경에 발표된 대한독 립선언서 민족대표 39인 가운데 김동삼 여준 이동녕 이상룡 이세영 이시영 이탁 허혁 등 신흥무관학교 관련 자들이 8명이나 된다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상룡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통령제에서 국무령제로 바뀔 때 초대 국무령으로 모셔졌다. 이회영은 헤이그 밀사사건에도 관여했지만, 3 1운동 직전 고종 망명을 기획했고, 아나키스트운동의 원로로 폭탄투척에 의한 철 저항일과 상부상조에 의한 인류사회 건설에 매진했다. 이동녕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조직되었을 때 초대 의장이었고, 그뒤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국무령, 주석, 국무위원을 역임하면서 사거할 때까지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이시영 또한 임시정부의 법무총장 재무총장과 국무위원을 역임한 임시정부의 증인이다. 김동삼은 1923년에 독립운동의 대방침을 정하고 독립운동 기구를 개편하기 위해 열린 국민대표회의 의장이었으며(부의장 안창호, 윤해), 통의부 중앙집행위원장, 정의부 참모장, 만주지역 민족유일당촉진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윤기섭 은 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이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 의 주인공 김산으로 유명해진 장지락은 신흥무관학교 생도로 혁명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신흥무관학교 관련자들은 해방 후에도 활동이 많았다. 이중 정부에 참여한 인물들만 꼽아보자. 이시영은 초 대 부통령으로, 독립운동가답게 이승만대통령의 독주를 비판하였고, 국민방위군사건이 일어나자 항의의 표시 로 사임했다. 윤기섭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부의장을 지냈고(의장 김규식), 2대 국회의원이었다. 지(이)청천은 초 대 무임소장관과 제헌 국회의원, 2대 국회의원이었다. 이범석은 초대 국무총리이자 국방장관이었고, 자유당 창당 시 부당수였다. 신흥무관학교 초기 졸업생인 변영태는 1950년대에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처럼 신흥 무관학교는 민족사, 독립운동사에서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을 맞 아 군은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관학교의 경우 대한제국무관학 교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이어받고 독립운동사 독립군사가 교육되어야 할 것이다. 9

10 10

11 발표문 11

12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 교육과정과 군사간부 양성을 중심으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1. 대한제국의 무관학교 최초의 장교양성기관 무관학교 12 조선왕조는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27)이라는 전대미문의 병란을 겪고, 제17대왕 효종이 집권하면 서 북벌( 北 伐 ) 계획이 추진되었다. 효종은 반청 척화파의 인물을 등용하여 북벌을 준비하면서 먼저 남한산성의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수어청( 守 禦 廳 )의 군사력을 정비하는 한편 어영청군( 御 營 廳 軍 )을 크게 증가시켰다. 종래 약 7천 명의 3개월 근무 비상비군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을 2만 1000명으로 증가시키고 국왕의 친병( 親 兵 )인 금군( 禁 軍 )을 전부 기병화( 騎 兵 化 )하는 한편 훈련도감군 어영청군의 기병도 강화하였다. 또한 의주부윤 임경업을 시켜 명나라와 함께 대청전선( 對 淸 戰 線 )을 구축했다. 하지만 청나라가 명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면서 대륙을 지배하게 되고, 효종이 10년만에 사망하면서 북벌계획과 군사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청국이 17세기 동아 시아 최강자로 부상하게 되면서 조선의 대청 복속 관계가 심화되고, 따라서 군사력의 강화는 청국에 대한 도전 으로 인식되어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청국은 19세기에 들어 구미 자본주의 세력이 급속히 밀려들 고, 아편전쟁(1840~1842) 이후 열강에 의해 불평등조약을 강요받게 되었다. 태평천국혁명 등 민중의 봉기는 열강 의 무력개입으로 압살되어 차츰 반식민지 상태로 빠져들었다. 조선에 대한 우월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청일전쟁 에서 청국이 패배하면서 조선은 체제위기와 함께 안보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고종은 1881년 일본 공사의 권고에 따라 궁궐 내에 소규모의 별기군( 別 技 軍 )을 창설했다. 5군영으 로부터 건장한 80명을 뽑아 무위영( 武 衛 營 )에 소속케 하고 이를 별기군이라 이름하였는데, 이것이 중앙에 창설 된 최초의 신식군대였다. 교관에는 서울주재 일본공사관 소속 육군 공병 소위 호리모토( 掘 本 禮 造 )를 초빙하고, 훈련은 모화관에서 실시했다. 일본인 교관에 의해 신식군사훈련을 받게 되고 이들은 황실경호부대인 무위소( 武 衛 所 )에 소속되었다. 별기군에는 신식무기를 지급하고 급료나 피복지급 등에서 구식군대보다 월등한 대우를 하 였다. 이로 인해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임오군란은 별기군과의 차별대우에서 발생했지만 결과는 비참하게 전개되었다. 3천명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상륙한 청국의 원세개( 遠 世 凱 )는 이 난의 책임을 물어 대원군을 톈진( 天 津 )으로 납치해갔으며, 조선의 군부대 편성을 청국식으로 바꾸었다. 일본은 조선정부를 강력히 위협하여 손해배상과 제물포조약을 맺도록 했다. 이 조 약으로 일본공사관에 일본경비병이 주둔하게 되고, 일본군대가 정유재란 이후 철병한지 294년만에 공식적 으로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일본군은 1910년 한국병탄과 36년간 식민통치의 핵심적 배경이 되었다.

13 1888년 최초의 사관학교라 할 연무공원( 鍊 武 公 院 )이 설치되었다. 연무교관은 미국인 다이 준장, 커민스 대령, 리 소령 그리고 린스 테드 대령 등이 주로 담당했는데, 교육의 성과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1) 한반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어느 정도 세력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던 1897년 고종은 광무개혁을 추진했다. 황 제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군제( 軍 制 )를 근대적으로 개편하여 황제가 육ㆍ해군을 친히 통솔케 하고, 중앙과 지방 각 군대의 지휘ㆍ감독권을 가진 원수부를 창설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처는 어디까지나 황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서 국방력이나 국가안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국방력이나 치안유지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는 1898년 1월 5품 최웅( 崔 雄 )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에서 잘 드러난다. 갑신년에 폐하가 도성을 떠나 변란을 피해 갈 때 한 명의 호위군사도 없었으며 갑오년에 일본군이 대 궐을 침범했을 때도 저지하는 군사가 한 명도 없었으며, 을미년에 대궐로 쳐들어온 역적 군사들의 화가 황후에 게 미쳤어도 저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용단을 내리시어 지휘체계를 엄정히 하여 장신 이하 지휘관으로부터 대오에 편성된 군사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군제에 따르게 하십시오. 2) 고종은 열강의 위협으로 국기( 國 基 )가 위협받게 되면서 1896년 1월 11일 무관양성기관으로 무관학교관제 (칙 령 제2호)를 반포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관학교 설치의 관제로서 이 날을 무관학교 설치일로 볼 수 있 다. 3) 무관학교의 설치목적, 구성, 운영방법 등을 명시한 무관학교관제 는 본문 20개 조항을 포함하여 총 24조로 구성되어 있다. 교장은 군부대신에 예속케 하여 지휘체제를 갖추고, 교장을 포함하여 19명의 직원과 약간 명의 통역관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 1인의 교장을 정점으로 부관 1, 의관 1, 교두 1, 교관 3, 조교 8, 번역관 2, 주사 2, 전어생( 傳 語 生 ) 약간인으로 되어 있다. 4) 이와 같은 조직을 기반으로 이 해 1월 15일 군부대신은 학생모집령을 공 포하였다.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민 중 년 20~30세까지의 남자. 2 체격은 신장 5척 이상 체질의 건강한 사람 3 학과는 한문으로 자기의 의견을 진술할 만한 자. 4 시험 후 급제 중 우등자는 순서에 따라 선발. 5 입학을 원하는 자의 유의 사항. 1. 수학기간은 대략 1년으로 한다. 2. 수학 중 자의로 퇴교하지 못한다. 3. 수학 중 피복과 식료는 관비이며 약간의 용전을 준다. 4. 수학 중 귀성과 휴가를 불허한다. 6 지원자는 무관학교 입학원서ㆍ이력서ㆍ호적등서를 첨부하여 관할 관찰사의 날인을 받아 군부군사국 군사 과로 제출한다. 5) 엄격한 규정에 따라 1월 11일 설립된 무관학교는, 그러나 1개월 뒤인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 1) 이동희, 구한말의 군사제도, 한국군제사,169쪽, 공학사, ) 고종실록 권 37, 광무 2년 1월 3일. 3) 관보 4, 제 222호, 건양원년 1월 15일, 23쪽. 4) 무관학교 관제, 참조. 5) 관보 건양 원년 1월 15일 군부광고 제2호 무관학교모집령,(현대문 정리) 13

14 를 옮기는 이른바 아관파천이 발생하고, 따라서 무관학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896년에 입교하 여 1897년에 참위로 임관한 장교 5명이 기록에 보이고 있다. 이들은 1896년 초부터 1897년 초까지 1년 여 기간 동 안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나 당시 몇 명이 언제 입교하여 어디에서 언제까지 교육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5명이 임관한 이후로 무관학교는 모든 기능이 정지된 채 유명무실해진 것은 분명하다. 6) 실질적 무관학교 200명 선발 교육훈련 초기 무관학교가 아관파천 등 정변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다가 1898년 4월 1일 군부대신 이종건이 무관학교 부활 문제를 고종에게 건의하고 재가를 받으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개정된 무관학교관제 가 5월 14일 칙령 제11호로 반포되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대한제국의 무관학교다. 1896년의 관제와 비슷한 내용이었지만 몇 가지 다른 점도 있었다. 20세부터 30세까지의 연령 조항이 18세부터 27세까지로 바뀌었다. 교직원 구성은 교장 1, 부관 1, 교두 1, 교관 4, 의관 1, 번역관 1, 주사 2, 조교 10명으로 합계 21명이었다. 교관과 조교가 약간 명씩 증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관학교 개정령이 반포되면서 다시 학도의 모집이 시행되었다 년 6월에 200명 모집인원에 1,700여 명이 지원하여 8.5대 1의 경쟁률을 보여주었다. 선발된 200명의 학도들은 이 해 6월 말에서 7월초에 입학시켜 교육ㆍ훈련에 들어갔다. 교육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이들의 교육기간에 몇 차 례 무관학교관제가 개정되었다. 군부대신에게 예속케하여 조정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조항과 직원의 연봉 관련, 사비( 私 費 )로 입학을 원하는 자는 50명으로 한정하는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대한제국이 무관학교를 세운 목적은 교육강령 에 잘 나타난다. 강령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학도가 받아야 할 교육강령 1. 무관학교 교육의 목적은 학도로 하여금 초급무관이 되는데 필요한 학술을 수득케 하여 독학자습에 필요 한 소양을 교수하는데 있다. 2. 따라서 곤난급극에 때와 분규착잡한 때를 당해도 능히 이를 적요하게 처리함은 군인만 한 자가 없으므 로 장교는 군기를 유지하고 단대( 団 隊 )를 규합하여 임기응변함에 더욱 정확한 학습과 민활한 기능을 요 하기 때문에 초급무관에 필요한 기본학술을 교수하여 고상견학한 성품을 양성하고 아울러 장래 장교단 의 교육을 받으며, 혹 각과의 전문학교에 들어가며, 혹 독학자수하게 함으로써 고등학술을 연구할 수 있 는 소질을 갖추게 할 정도의 교육을 실시한다. 3. 이 같은 교육을 위하여 일과 학업의 번간도를 적의하게 배당하되 일과 학업의 묘를 얻기 위하여 강습의 순서를 정해서 시습과 연구와 학리의 요지를 소화하여 응용의 묘미를 요득하게 하는 동시에 후일 이를 능히 활용할 수 있게 한다. 4. 위의 여러 조목의 요의( 要 意 )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수 및 훈육을 실시하되 교수 과목은 무술학ㆍ군제 학ㆍ병기학ㆍ축성학ㆍ지형학ㆍ외국어학(불ㆍ독ㆍ영ㆍ청ㆍ러ㆍ일)ㆍ군인 위생학ㆍ병기학 및 마학( 馬 學 )이며, 훈육 과목은 교련ㆍ마술ㆍ체조 및 검술ㆍ군용문장 및 제 근무의 훈모 등으로 규정하였다. 교관이 지켜야 할 교육강령 14 6) 차문섭, 구한말 무관학교연구, 아세아연구 50, 180쪽.

15 1. 교관이 교수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 뜻을 밝혀 마음속으로 요득하게 하고 후일 실시에 착오가 없을 능력 을 배양하는데 있으므로 교관은 마땅히 학도의 소양과 능력을 고려하여 교훈지도하고 활발한 기력을 보 유하여 주밀히 학리를 연마하고 감위한 정신과 확실한 학식을 양성하여 그 응용력의 발달을 기해야 한다. 이러기 위하여 교수는 학과 강수와 응용작업의 두 종류로 나누어 강의하되 학과는 현유한 이론을 피하고 간명적실한 첩령을 취해야 하며, 또 실물과 규범, 도화 등으로 강설의 명료와 이해의 정확을 기하여 학도 의 머릿속에 담겨지도록 해야하며 또 적용 작업은 학도의 기능에 따라 이미 배운 학과 범위 내에서 과제 를 정하여 완급 소요한 지도를 하고 학도는 자근 연구하여 이미 얻은 학식을 응용하고 천품의 양능을 발휘하여 정당하게 학리를 활용하는 길을 알게 하고, 순차로 이미 배운 학술을 들어 이를 실제에 응용하 는 법을 깨달을 수 있는 소양을 얻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관은 학도가 작성한 응용작업의 답안을 수정ㆍ강평하거나, 기타 만반 기회에 겸하여 수사와 속문의 세밀한 것이라도 역시 이를 교정 수치해야 하고 필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만 지적하여 시켜서 사상 의 연계로 이해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 교육에 있어서는 학도들이 이미 수학한 여러 과목을 교정 중보하여 초급 사관된 자가 실체 소부대를 교 도 지도할 능력을 양성하는데 있으므로 조련을 위하여 무술학 강습을 비보하고 또 기술과 함께 학도의 체육에 적합하게 전학기간을 나누어 교육하되 초급사관됨에 족한 기능을 연성하게 해야 한다. 군인정신의 강조 장교의 적부는 학식과 기능도 중요하지만 군인정신으로 학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학도에게 항상 덕의 를 장려하고 정기를 고무하여 충군애국의 본의를 양성하여 군인의 지조를 도야 성장하도록 하고 또 군은 무투가 주 임무이기 때문에 군사학 교육에 있어서는 무투동작에 적도한 독단전행을 허용하며 공격정신의 발달을 장진하며 지휘통일 동작의 공동을 요구하고 장차 활발 유위한 장교가 되도록 양성한다. 7) 무관학교의 목적은 초급장교의 양성에 있었다. 따라서 교육 과목은 어디까지나 군사학 관련이 중심이 되었지 만 일반교양 과목도 포함되었다. 무관학교 교관들은 담당 과목의 책임을 맡아서 전문으로 가르쳤다. 당시 무관 학교 교관이었던 어담( 魚 潭 )은 그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모든 교관은 담당과목이 있는데 김교 원( 金 敎 元 )과 함께 군사학 과목인 병기학을 비롯하여 일반학인 산술ㆍ기하ㆍ대수 등 4개 과목을 담당하였다. 8) 학과 과목의 강의횟수와 비율은 다음과 같다. 학과 과목의 강의 횟수와 비율 9) 과목 강의 횟수 비율(%) 과목 강의 횟수 비율(%) 전술학 85회 이상 18 지형학 40회 이상 8 군제학 20회 이상 4 위생학 15회 이상 3 병기학 70회 이상 14 마 학 15회 이상 3 축성학 50회 이상 10 외국어학 200회 이상 40 7) 차문섭, 조선시대군사관계연구 재인용(정리), 316~318쪽, 단국대학교 출판부, ) 어담, 어담소장 회고록, 상권, 25쪽. 9) 육군무관학교 교칙 광무4년 전문. 15

16 각 과목의 중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전술학은 학술의 기본원칙을 강술하여 그 응용력을 구비하게 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병기학은 병종( 兵 種 )의 기능을 터득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축성학은 임시축성과 영구축성으로 나누고 도로ㆍ교량ㆍ철도 등의 교통학을 포함시켰다. 지형학은 지형의 학설ㆍ측도법 및 군사상의 지형관계를 강수하였다. 위생학은 군인위생의 대요를 알게 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마학( 馬 學 )은 승마장교에 필요한 마필의 사용ㆍ사육과 간호 등에 중점을 두었다. 외국어학은 200회 이상으로 규정되고 있으나 실제 어떤 종류의 외국어를 가르쳤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일ㆍ영ㆍ독ㆍ불어 등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 무관학교 학생들은 초급무관이 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구술과 필기시험을 보고 교관들의 평점을 통해 급제자와 낙제자를 갈라냈다. 낙제로 판정된 자는 퇴교를 명하고 유급된 자는 체학( 滯 學 )을 명하 였다. 11) 500여 명 배출, 항일투쟁 선봉 무관학교 생도들은 1900년 1월 19일 장연창( 張 然 昌 ) 등 128명이 무관학교 제1회 졸업시험을 통과하여 참위로 임관하였다. 이들은 1898년 7월경부터 약 200명이 과거 훈련도감 신영을 교사로 사용하는 무관학교에 입교하여 1년 6개월 동안 군사교육을 받고 128명만이 졸업시험에 합격하여 참위로 임관된 것이다. 12) 이들이 무관학교 제 1회 졸업생이다. 제1회 졸업생이 배출되자 정부는 1900년 3월 27일 칙령 제12호로 무관 및 사법관 임명규칙 을 반포하였다. 제1조, 무관 임명은 무관학교 졸업인 중에서 원수부 시험을 거친 후에 주임할 것. 제2조, 사법관 임명은 법률학교 졸업인 중에서 법부 시험을 거친 후에 서임할 것. 제3조, 군무 혹은 사법 사무에 숙달한 자는 졸업증서가 없어도 곧바로 임명할 것. 제4조, 본령은 발표일부터 시행할 것. 13) 대한제국의 무관에 임용되기 위해서는 위의 규칙 제1조에 저촉되지 않고 무관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원수부 의 시험에 합격해야만 가능했다. 14) 무관학교는 당시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재정의 부족으로 사비 교육생을 입교시키는 등 편법 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존폐의 곡절을 거듭하면서도 이후 500여 명의 장교를 배출하여 대한제국의 군사력 향상에 기여하였다 ) 차문섭, 앞의 책, 320~325쪽 참조. 11) 앞의 책, 331쪽, 재인용. 12) 서인환,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153쪽 재인용, 혜안, 2000년. 13) 고종실록 권 40, 광무 4년 3월27일 : 관보 8, 제1538호, 광무4년 4월 3일. 14) 서인환, 앞의 책, 154쪽.

17 일제에 의해 군사력을 상실한 후로도 이들 무관학교 출신 장교들 중에 일부는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투쟁에 투신하여 그 선봉이 되었다. 박승환이 군대해산에 대해 자결로 항거한 것을 시작으로 사재합( 舍 在 洽 )이 의병장 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한 이외에도, 국외로 진출한 신팔균( 申 八 均 )이 만주에서 무장 독립군 훈련에 심혈을 기울 이고, 신규식( 申 奎 植 )이 임시정부의 법무총장, 외무총장 등으로 활약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15) 2. 신흥무관학교 독립군양성소 신흥무관학교 설립 우국지사들은 나라가 망하고 국내에서 활동이 어렵게 되자 속속 국외로 빠져나갔다. 나라마다 쫓겨난 망명 자들은 자신이 인민들의 전위를 상징한다. 16) 라는 한나 아렌트의 지적대로, 이들은 망국시대 민족의 전위들이었 다. 나치 독일에 쫓겨 해외로 망명한 정치사상가 아렌트는 그 자신이 17년간 망명자로서 망명자를 인민의 전위 라 불렀다. 1909년 봄에 서울 양기탁의 집에서는 신민회 간부들의 비밀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집주인을 위시하여 이동녕 주진수 안태국 이승훈 김도희 김구 등이며, 이 회의에서 결정한 안건은 해외 독립기지 건설 건과 무관학교 설치건이었다. 한말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서 애국지사들은 해외 독립운동 근거지건설을 시도하였다. 큰 줄 기의 하나는 유인석( 柳 麟 錫 )을 중심으로 하는 의병부대이고, 다른 하나는 박용만( 朴 容 萬 )이 미주에 설립한 소년 병학교, 그리고 1906년 조직된 신민회( 新 民 會 )의 해외기지 설립계획이다. 유인석은 1895년 을미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반격으로 패배하면서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이듬해 2백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봉천성 관전현으로 넘어갔다. 청국군에 무장해제를 당하고 귀환한 유 인석은 1907년 북천지계( 北 遷 之 計 ) 에 따라 우리나라의 조산( 祖 山 ) 백두산을 중심으로 북간도와 서간도에 군사 기지 설치를 계획하였다. 또한 노령 연해주에 의군을 조직하여 우군영장 엄인섭과 좌군영장 안중근이 국내 진 공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에서 반일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기도 했던 박용만은 1905년 도미하여 1909년 6월 해외 최초의 한인군 사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를 미국 네브라스카에 세우고 군관을 양성했다. 신민회는 1910년 3월 긴급간부회의를 다시 열어 독립군기지와 무관학교 설립 등 주요 사항을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1 독립전쟁전략 을 최고의 전략으로 채택하고 2 국외에 독립군기지 와 그 핵심체로서 무관학교 를 설 립할 것 3일제헌병대에 구속되었던 간부들을 국외에 망명시켜 이 사업을 담당케 할 것 4 국내에 남은 간부 회원들은 이 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종래의 애국계몽운동을 계속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17) 즉 망국은 결정적 사실이 되니 국내에서는 도저히 광복운동을 할 수 없음을 지각한 이들은 이 회의에서 조 선과 인접한 만주 동삼성( 東 三 省 )에 제2의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자금조달 대책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모집금 액수를 할당하였다. 평남도 안태국 15만원, 평북도 이승훈 15만원, 황해도 김구 15만원, 강원도 주 15) 앞의 책, 158쪽. 16)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폭력의 세기, 15쪽, 아후, ) 안도산 전서 부록 826쪽 및 도산 안창호, 50~53쪽. (요약) 17

18 진수 10만원, 경기도 양기탁 20만원, 그리하여 그 해 여름에 간부 이회영ㆍ이동녕ㆍ주진수ㆍ장유순 등을 만주로 파견하여 독립운동에 적당한 땅을 매수케하였다. 이회영 등은 남만 각지를 유력하여 답사하다가 마침내 요녕성 유하현 삼원보 추가가 지방을 선정하였다. 이 지방은 인가 드문 황량한 미개척지라 장래 발전상이 클 것을 알았 기 때문이다. 그 해 겨울 우리나라 처음으로 귀인( 貴 人 )의 만주 진출이 있었으니 이시영ㆍ이석영ㆍ이회영ㆍ이상룡ㆍ김창 환ㆍ주진수 등의 도합 6세대가 솔선하여 압록강을 건너 기설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음해 (1911년) 봄을 기다려 개척 이래 인력미답의 이 황무지개척을 위하여 심혈을 바쳐서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이역 만주 황무지에서 대자연과 싸우는 이 학자들은 1911년 4월에 삼원보에다 민단적 성격을 띤 자치기관으 로 경학사 를 조직하였고, 해사( 該 社 ) 부속으로서 신흥강습소 (신흥무관학교 전신)를 설치하여 국내에서 모 여드는 애국청년들을 훈련케 하였다. 18) 지사들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의 둥지를 튼 것은 대개 4개 지역이 중심을 이루었다. 연해주의 성명회( 聲 明 會 )와 그 이념을 계승한 권업회( 勸 業 會 ), 북간도의 간민교육회( 墾 民 敎 育 會 )와 그를 발전시킨 간민회( 墾 民 會 ), 서간도의 경학사와 그를 이은 부민회, 그 밖의 북만주의 신한국민회 등은 그러한 결사 가운데 유명한 것이었다. 또한 하와 이와 미주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된 공립협회( 公 立 協 會 )와 대동보국회( 大 同 保 國 會 ) 및 그 양자를 발전시킨 대한인국민회( 大 韓 人 國 民 會 ) 등도 중요한 것들이었다. 19) 각 지역의 독립운동기지 설치는 모두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하고, 우리 독립운동사에 불멸의 금자탑으로 남았 다. 그 중에서도 이회영 등이 중심이 되어 삼원포에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무장독립전쟁의 전사들을 길러 내는 요람이 되었다. 신흥학원과 신흥중학은 중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붙힌 이름일 뿐이고 실제는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었다. 이회영과 그의 동지들은 본격적인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에 착수하였다. 이석영이 그동안 극심한 흉년에도 아 껴둔 돈을 꺼내어 천혜의 요새지로 알려진 신안보( 新 安 堡 ) 땅의 매입에 나섰다. 토지 매입이 쉽지 않자 이회영은 1912년 4월 1일, 매입을 허가해 달라는 청원서를 동삼성 도독( 都 督 )에게 보내었으며 7개월 뒤에야 허락을 받았다. 이회영이 이곳을 신흥무관학교 설립지로 택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1991년 10월 이곳을 답사한 조선족 연구자 강원룡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주위가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남북 10리나 되는 평원이 있고 그 남쪽 끝이 논밭보다 약 30미터 정 도 높게 덩실하게 언덕을 이루었는데, 언덕 위엔 20정보 가량 되는 구릉을 이루어 마치 합니하 평원 을 연 상케 했다. 군사적으로도 영락없는 요새였다. 천연 무대와 서쪽 심산이 맞붙어 있기에 실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말할 수 있다. 20) 1912년의 이른 봄부터 이곳에 교사 신축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는 동포 주민들과 학생 교사들의 손으로 이 루어졌다. 초가을부터 내린 눈이 계속 쌓여 3월 하순까지 녹지 않고 얼음판이 된 땅을 파고 짚을 섞어 흙담을 18 18) 채근식, 무장독립운동비사, 47~48쪽, 대한민국공보처, ) 윤병석, 독립군사, 32쪽, 지식산업사, ) 김명섭, 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이회영, 59~60쪽, 재인용.

19 쌓는 공사였다.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공사는 진척되어 7월에야 완공되었다. 뒷날 이곳을 답사한 서중석 교수는 요새지로서 군사훈련을 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지역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야트막한 산 밑 언덕이어서 군사훈련 하기에 좋은 신흥무관학교 자리는 합니하가 주위를 거의 360도 삥 돌 아 흐르는 10정보가 훨씬 넘어 보이는 넓은 언덕빼기 들판 중에서도 남쪽 깊숙이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3.4km 떨어진 광화진( 光 華 鎭 : 현재 지명, 중화민국시기에는 新 安 堡 임) 쪽에서는 물론이고 합니하가 흐르 는 곳에 나 있는 길가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합니하와 신흥무관학교가 위치한 언덕 사이는 상당 부 분이 낭떨어지 비슷하게 가팔라 삥둘러 흐르는 합니하가 마치 해자처럼 되어 있었다. 남쪽으로 10리쯤 가면 혼강이 나온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광화진 뒤도 산의 연속이다. 외부로 나가는 통로를 제외하고는 전체가 산맥으로 삥둘러싸인 곳이다. 광화진에서 북서쪽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주통로인 통화 쪽 외에도 산길에 익 숙한 한국인들로서는 광화진 뒤켠에 있는 용강( 龍 崗 )산맥을 넘으면 고산자가 나오고 고산자에서 삼원포까지 는 30여km기 때문에 그쪽으로 다니기가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21) 천혜의 요새지에 신흥무관학교 교사를 세운 이회영과 그의 동지들은 환희에 넘쳤다. 이제야 숙원이었던 무관 학교를 세워서 원수 일제를 무찌를 수 있는 군관을 육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감격이었다. 무관학교 다운 학교가 탄생하게 되기까지 이회영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노력한 것은 대단히 높이 평가되 어야 할 것이다. 이동녕 이시영 이상룡 김대락 등도 정신적 물질적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이회영과 뜻을 같이하여 재산을 내놓은 이석영이 절대적인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가재를 몽땅 신흥 무관학교에 바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합니하에 반듯한 교실과 강당, 기숙사가 들어설 수 있었다. 22) 신흥무관학교 교사는 이들의 피땀으로 신축되었다. 이 학교의 제1회 졸업생이자 교관이었던 원병상은 남긴 수 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삽과 괭이로 고원지대를 평지로 만들어야 했고, 내왕 20리나 되는 좁은 산길을 오고가며 험한 산턱 돌산을 파 뒤져 어깨와 등으로 날라야만 되는 중노역이었지만, 우리는 힘드는 줄도 몰랐고 오히려 왕성하게 청년의 노래로 기백을 높이며 진행시켰다. 23) 1912년 7월 20일(양력) 낙성식을 할 때는 100여 명의 동포와 중국인 수십 명이 지켜 본 가운데 조촐하게 거행 되었다. 18개의 교실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산허리를 따라 줄지어 있었고, 학년별로 널찍한 강당과 교무실, 내무 반에는 기능별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훈련용 총기를 진영하는 총가( 銃 架 )도 낭하에 비치되었다.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실질적인 주역이었지만,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발기인 이외에는 직책을 갖지 않았다. 교장은 이철영에서 이동녕 이상룡 박창화 여준 이광 등이 차례로 맡았고, 교감은 김달 윤기섭, 21)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107쪽, 역사비평사, ) 앞의 책, 110쪽. 23) 원병상, 신흥무관학교, 신동아, 1969년 6월호, 238쪽. 19

20 학감은 윤기섭 이규봉 등이었다. 교관은 이관직 이장녕 김창환 김흥 등이다. 교사는 장도순 윤기섭 이규봉 이정규 이갑수 김석영 김순칠 이규룡 여규형 관환국(중국인) 등이다. 교관 중에 이세영 이관직 이장녕 김창환 양성환 등은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들이다. 24) 신흥무관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민족정신 함양에도 주력하였다.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양성 하기 위해서는 민족의식과 우리 나라의 역사 국어 지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터였다. 교재를 보면 국어 문전( 國 語 文 典 ) 이 교과서로 채택되고, 국사교재로는 대한역사 유년필독 등이 사용되었다. 이들 교과서와 교 재는 1909년 국내에서 통감부가 발매금지시킨 책이다. 지리 교재는 대한신지지( 大 韓 新 地 誌 ) 와 배달족강역형세도( 倍 達 族 疆 域 形 勢 圖 ) 등이 활용되었다. 이밖에도 서전서숙과 경학사, 신흥중학교에서 교재로 채택되었던 수신 독서 한문 이화( 理 化 ) 체조 창가 중국어 물 리학 화학 도화 박물( 博 物 ) 중등용기법( 中 等 用 器 法 )등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였다. 신흥학교를 비롯하여 서전서숙, 협동학교의 교과과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5) 서전서숙 협동학교 신흥학교 1 신흥학교 2 신흥학교 3 국문학ㆍ역사ㆍ지리ㆍ국제공법ㆍ풍습ㆍ경제대의ㆍ수신ㆍ산술ㆍ한문ㆍ정치학 국어ㆍ역사ㆍ지지( 地 誌 )ㆍ외국지지ㆍ수신ㆍ대수ㆍ한문ㆍ작문ㆍ미술ㆍ물리ㆍ화학ㆍ생물ㆍ동물ㆍ식물ㆍ 박물ㆍ창가ㆍ체조 국문ㆍ역사ㆍ지리ㆍ수학ㆍ수신ㆍ외국어ㆍ창가ㆍ박물학ㆍ물리학ㆍ화학ㆍ도화ㆍ체조 역사ㆍ지리ㆍ산술ㆍ수신ㆍ독서ㆍ한문ㆍ이화( 理 化 )ㆍ체조ㆍ창가ㆍ중국어 국어문전ㆍ중등교과산술ㆍ신정( 新 訂 )산술ㆍ최신고등학이과서( 理 科 書 )ㆍ교육학ㆍ대한신지지( 大 韓 新 地 誌 )초등소학독 복ㆍ초등윤리과ㆍ신선( 新 選 )박물학ㆍ중등산술ㆍ윤리학교과서ㆍ대한국사ㆍ사범교육학ㆍ신편화학ㆍ중등용기법( 中 等 用 器 法 )ㆍ중등생리학 신흥무관학교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유능한 군관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군사학술교련에 중점을 두었 다. 중등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본과와 무관훈련을 시키는 군사과로 나뉘었지만, 본과에서도 군사교련에 비중을 두고 학생을 선발할 때 반드시 건장한 자를 뽑았다. 신흥무관학교는 학생들에게 군사교련을 시키기 위해 교관 으로 대한제국 무관학교 교관 출신인 이세영ㆍ이관직ㆍ이장녕ㆍ김창환 등을 초빙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학과는 주로 보기포공치( 步 騎 砲 工 輜 )의 각 조전( 操 典 )과 내무령( 內 務 令 ), 측도학, 축성학, 육 군형법, 육군징벌령, 위수복무령, 구급의료, 편제학, 훈련교범, 총검술, 유술( 柔 術 ), 격검( 擊 劍 ) 전술전략 등에 중점 을 두었다. 26) 군사교련의 실시에는 비용 관계로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군사훈련을 하면서 장총이나 권총ㆍ기관 총ㆍ대포ㆍ탄약 등 병기가 없어서 이론교육밖에 할 수가 없었고, 역시 경비 때문에 말을 구하기 어려워 기마훈련 을 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정신교육과 신체 단련에 집중하고 각종 훈련을 강화시켰다. 일본의 최근 군사교련 교 재나 각종 병서를 입수하여 교재로 활용하였다. 학생들은 수업료 등 일체의 학비를 내지 않았다. 숙식도 교내에서 공동으로 하였다. 이회영 일가와 유지들이 염출한 기금으로 운영하고, 동포 여성들이 모두 나와서 학생들의 식사준비를 맡았다 ) 서중석, 앞의 책, 119쪽(요약). 25) 서중석, 앞의 책, 120쪽. 26) 원병상, 앞의 책, 23쪽.

21 생도들 자신이 강설기를 이용하여 학교 건너편 낙천동이란 산언덕에서 허리에 차는 쌓인 눈을 헤치며 땔감을 끌어내리고 등으로 이를 날랐다. 매년 월동준비는 학생들의 자력으로 해결하였다. 27) 온갖 어려운 속에서도 교관이나 학생들은 희망에 부풀었고 열심히 공부하며 군사훈련을 받았다. 신흥무관 학교가 설립되면서 만주는 물론 국내에까지 널리 알려져 입학하려고 찾아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님 웨일즈의 소설 아리랑 의 주인공 장지락(김산)이다. 다음은 15세의 소년 장지락이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간 대목이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합니하에 있는 조선독립군 군관학교. 이 학교는 신흥학교라 불렀다. 아주 신중한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군학교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람들은 겨우 15세밖에 안된 꼬마였던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최저 연령이 18살이었던 것이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엉엉 울었다. 마침내 내 기나긴 순례여행의 모든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학교 측은 나를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하여 시험 을 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지리 수학 국어에서는 합격하였지만 국사와 엄격한 신체검사에서는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개월 코스에 입학하도록 허락받았고 수업료도 면제받았다. 학교는 산속에 있었으며 18개의 교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한 눈에 잘 띄지 않게 산허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 어 있었다. 18살에서 30살까지의 학생들이 100여명 가까이 입학하였다. 학생들 말로는 이제까지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중에서 내가 제일 어리다고 하였다. 학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하여, 취침은 저녁 9시에 하였다. 우리들은 군대전술을 공부하였고 총기를 가지고 훈련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였던 것은 산을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 게릴라 전술 - 다른 학생들은 강철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등산에는 오래전부터 단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움을 받아야만 간신히 그들을 뒤따라 갈 수 있었다. 우리는 등에 돌을 지고 걷는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지지 않았을 때에는 아주 경쾌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날 을 위해 조선의 지세, 특히 북한의 지리에 관해서는 주의깊게 연구하였다. 방과 후에 나는 국 사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얼마간의 훈련을 받고 나자 나도 힘든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으며, 그러자 훈련이 즐거워 졌다. 봄이면 산이 매우 아름다웠다.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으며 기대에 넘쳐 눈이 빛났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 인들 못할소냐. 28) 신흥무관학교는 본과와 특별과가 있었다. 본과는 4년제 중학 과정이고, 특별과는 6개월과 3개월의 속성의 무 관 양성과정이었다. 무관학교 생도들의 하루 일과는 앞에서 소개한 원병상의 수기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모든 생도들은 새벽 6시 기상나팔 소리에 따라 3분 이내에 복장을 갖추고 검사장에 뛰어가 인원점검을 받 은 후 보건체조를 하였다. 눈바람이 살을 도리는 듯한 혹한에도 윤기섭 교감이 초모자를 쓰고 홑옷을 입고 나와서 점검을 하고 체조를 시켰다. 자그마하지만 다부진 인물인 여준 교장은 겨울에도 털모자를 쓰지 않은 채 생도들의 체조 광경을 지켜보았고, 벌도 매서웠다고 한다. 활기찬 목소리, 늠름한 기상에 뜨거운 정성이 27) 안천, 신흥무관학교, 160쪽, 교육과학사, ) 님 웨일즈 지음, 조우화 옮김, 아리랑, 87~88쪽, 동녘, 1993(개정1판 7쇄). 21

22 담겨 있었다. 체조 후 청소와 세면을 마치면 각 내무반별로 나팔소리에 맞춰 식탁에 둘러앉았다. 주식은 가축 사료나 다 름없는, 윤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좁쌀이었다. 부식은 콩기름에 절인 콩장 한 가지 뿐이었다. 학생들이 얼마 나 기름기 없는 음식을 먹었는지 한 일화로 짐작할 수 있다. 1912년 합니하 신흥무관학교 낙성식 때 이석영 이 큼직한 돼지고기를 기증하자 이를 정신없이 먹은 생도들은 배탈이나 여러 날 고생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턱없이 부족한 식사와 의복에도 불구하고, 교직원은 단의( 單 衣 )와 초모를 쓰고 교육을 시켰고, 학생들은 주 린 배를 움켜쥐고 훈련에 열중했다. 29) 지도자들의 헌신에 학도들 의기충전 무엇이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무관학교 청년들과 교관들에게 이 같은 열정과 투지를 갖게 하였을까. 조국 독립의 대명제와 더불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이회영 등 신흥무관학교를 이끈 지도자 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그 생명력이 되었을 것이다. 신흥무관학교에서는 학교 행사나 군사훈련을 시작할 때이면 애국가 를 비롯하여 각종 군가를 우렁차게 불렀 다. 작사 작곡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애국가 독립군 용진가 화려강산 동반도는 우리 본국이요 품질 좋은 단군조선 우리 국민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우리나라 우리들이 길이 보존하세. 요동 만주 넓은 뜰을 쳐서 파하고 여진국을 멸하고 개국하옵신 동명왕과 이지란의 용진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쳐보세. 후렴 나가세 전쟁장으로 나가세 전쟁장으로 검수도산 무릅쓰고 나아갈 때에 독립군이 용감력을 더욱 분발해 삼천만 번 죽더라도 나아갑시다. 이 밖에도 각종 군가 민요 창작 노래가 불렸다. 슬프도다 우리 민족아! 오늘날 이 지경이 왠 말인가? 4천년 역사국으로 자자손손 복락하더니 22 29) 원병상, 앞의 책.

23 오늘날 이 지경이 왠 말인가? 철사주사로 결박한 줄을 우리 손으로 끊어 버리고 독립만세 우레 소리에 바다가 끓고 산이 동하겠네. 30) 신흥무관학교에서는 각급 행사와 훈련 과정에서 1910년대에 만주지역에서 독립군의 기상과 동포들의 총궐기 를 주장하는 각종 독립군가를 불렀다. 작자 미상의 독립군가 도 그 중의 하나다. 독립군가 1.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이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2.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건가 정의의 날센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이 너와 나로다. 후렴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가세 31) 봉기가 1. 이천만 동포야 일어나거라 일어나서 총을 메고 칼을 잡아라 잃었던 내조국과 너의 자유를 원수의 손에서 피로 찾아라. 30) 김명섭, 앞의 책, 71~72쪽, 재인용. 31) 이중연,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120~121쪽, 혜안,

24 2. 한산한 우로( 雨 露 ) 받은 송백까지도 무덤 속 누워있는 혼령까지도 노소를 막론하고 남이나 여나 어린아이까지도 일어나거라 32) 일사보국정신, 일하면서 훈련 신흥무관학교의 학생들은 불타는 애국정신과 일사보국( 一 死 報 國 )의 독립정신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 부(훈련)하는 자활자치의 운영방식이었다. 학생들은 <조국을 위해서는 항일투쟁, 모교를 위해서는 경제투쟁>이 란 슬로건 밑에 농사일도 하고 땔감을 구하기도 하면서 교육과 훈련에 맹진하였다. 경영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중국인들이 버려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콩 조 수수 등을 심어 식량을 자 급하였다. 그런가 하면 불시에 나타나서 곡식과 가축을 끌어가는 마적들의 습격에 대비하여 동포들의 마을을 경비해야 했다. 학생들을 뒷바라지 하는 동포들의 생활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합니하의 생활은 간고했다. 소금과 광목천만 시내에서 구입하고 일체는 자급자족하였다. 연도에 토비들의 습 격을 방지하기 위해 육혈포와 화승총, 퉁포총으로 무장한 독립군 30여명이 소발구와 개발구를 이끌고 소금 과 광목천을 사왔다. 독립군들은 솜바지에 무릎까지 나오는 동저고리를 입으며 울로초란 풀로 발을 감 싸고 헝겊으로 다시 감싼 후 초신을 신었다. 발 모양이 아주 둥실하고 컸는데 며칠에 한번 벗으면 그 악취 가 코를 질렀다. 33) 갖은 난관 속에서도 1912년 가을에는 신흥무관학교의 속성 특과인 군사학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의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변영태 성주식 강한연 등 11명이 배출되었다. 이것이 한인으로서 만주에서 군사교관을 배출한 효 시가 되었다. 한때 마적대에게 납치되었던 이영석은 중국의 군사 100여명이 출동하여 무사히 구출하였다. 중국 인 대장은 자기나라 사람들이 문명( 文 明 )치 못하여 도적들이 사방으로 횡행하여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이회영 에게 백배 사죄하였다. 이회영은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학교운영의 책임은 맡지 않았으니, 늘 그러했듯이 뒤에서 유능한 교사, 교관을 초빙하고 유지들을 설득하여 운영기금을 마련하였다. 1913년경에는 제법 사관학교 의 체제가 정비되고 진용도 갖춰졌다. 1913년의 교직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교장 - 여준 교감 - 윤기섭 학감 - 이광조 교사 - 이규봉 서웅 관화국( 關 華 國, 중국어교사) 24 32) 허은 구술, 변창애 기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77~78쪽, 민족문제연구소, ) 권영신, 이판서댁과 나의 외조부 그리고 부친, 주간금일 요녕, 김명섭, 앞의 책, 73~74쪽, 재인용.

25 교관 - 김창환 성준용 김흥 이극 생도대장 - 김창환 생도반장 - 김병상 학제는 4년제를 원칙으로 하고 6개월의 장교반과 3개월의 하사관을 교육하는 속성과를 두었다. 졸업 뒤에는 2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하였다. 학과는 1보병 2기병 3포병 4공병 5경중의 각 병과와 6내무령 7측량학 8축성학 9육군형법 10징벌 령 11위술복무 12구급의료 13편제학 14훈련교범 15전술 등에 중점을 두었다. 술과( 術 科 )로는 연병장에서 주로 1각개교련 2기초훈련을 하고, 야외에서는 고지에서 가상적에게 3공격전과 4방어전을 하고 체육으로는 엄 동설한에 1야간도강 270리 강행군 3빙상운동 4춘추대운동 5격검 6유도 7축구 8철봉 등으로 체력을 연마시켰다. 34) 신흥무관학교 교원 일람표 35) 성 명 직 위 출 신 지 학 력 비 고 이 천 민 교 장 충남 청양 와세다 중퇴 고산자고등군사반 양 규 열 부교장 경기 양평 육군무관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윤 기 섭 학감(교감) 경기 파주 보성중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김 창 환 훈련감 교장서리 서울 육군무관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이 청 천 교육대장(교성대장) 서울 육군무관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계 용 보 교 관 평북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원 병 상 교 관 강원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백 종 렬 교 관 강원 회양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오 상 세 교 관 경기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김 경 천 교 관 함남 일본육군사관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김 승 빈 교 관 - - 고산자고등군사반 손 무 영 교 관 경기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신 팔 균 교 관 충북 진천 육군무관학교 고산자고등군사반 김 성 노 교 관 서울 신흥중학 고산자고등군사반 이 장 령 훈련감ㆍ교장 충남 천안 육군무관학교 합니하초등군사반 성 준 용 교관ㆍ학도대장 서울 신흥강습소 합니하초등군사반 박 영 희 교 원 충남 부여 신흥중학 합니하초등군사반 오 광 선 교 관 경기 용인 신흥중학 합니하초등군사반 홍 중 락 교 원 - 신흥중학 합니하초등군사반 이 범 석 교 관 서울 신흥중학 운남육군강무학교 홍 종 린 교 관 - 신흥중학 운남육군강무학교 신흥학우단으로 정신 이어져 신흥무관학교는 졸업생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조직화하는 신흥학우단 을 결성하였다. 교장 여준, 교감 윤기섭 34) 원병상, 앞의 책, 236~237쪽. 35) 박환, 서북 간도지역 한인 독립운동단체 연구, 59쪽, 박사학위 논문,

26 과 제1회 졸업생 김석 강일수 이근호 등이 발기하여 조직한 것으로 교직원과 졸업생은 정단원이 되고 재학생 은 준단원이 되는 일종의 동창회와 비슷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명칭을 다물단 ( 多 勿 團 )이라 했다가 학우단 으로 고쳤다. 신흥학우단의 목적과 사업은 다음과 같다. 신흥학우단의 목적 혁명대열에 참여하여 대의를 생명으로 삼아 조국광복을 위해 모교의 정신을 그대로 살려 최후의 일각까지 투쟁한다. 중요사업 1. 군사 학술을 연구하여 실력을 배양한다. 2. 각종 간행물을 통하여 혁명이념의 선전과 독립사상을 고취한다. 3. 민족의 자위체를 조직하여 적구( 敵 狗 ) 침입을 방지한다. 4. 노동강습소를 개설하여 농촌청년에게 초보적 군사훈련과 계몽 교육을 실시한다. 5. 농촌에 소학교를 설립하여 아동 교육을 담당한다. 36) 신흥학우단은 졸업생이 증가함에 따라 서간도 독립운동의 핵심체로 성장하였다. 그들은 모교의 교명에 따라 2년간은 의무적으로 복무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그 대부분은 독립군에 편입되었으나, 여기에 편입되지 않은 졸 업생들도 각 곳에 흩어져서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만주의 독립운동 중에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들어있지 않 은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영향력은 막대하였다. 37) 신흥무관학교는 학생이 늘고 사기가 높아가고 있었으나 그늘진 부분도 있었다. 경영이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 다. 이회영 일가의 돈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관직과 장도순을 국내로 파견하여 자금을 모아 오게 하였다. 두 사람은 합니하를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장도순은 박중화의 집에, 이관직은 안확의 집에 묵으면서 알 만한 인사들을 만나 자금을 요청했지만 모금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에 민심도 변하고, 무엇보다 총독부의 엄한 통치와 사찰에 후환이 두려워 선뜻 돈을 내놓으려 하지 않 았다. 장도순은 1개월 뒤에 만주로 돌아가고, 이관직은 국내에 남아서 장기적으로 자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38) 신흥출신들, 무장투쟁 지도자로 활동 신흥무관학교는 10년 동안 통칭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것으로 연구되었다. 1912년 가을에 속성 특과 로 11명을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속성과 본과의 졸업자가 1,2백 명 씩이었다. 여러가지 상황으로 매년 졸업 자 수는 일정하지 않았으며, 신흥소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 또 이들과 연계되는 학교와 기관도 많았다. 1919년 3ㆍ1운동 이후 신흥무관학교가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까지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학생 수를 알아 26 36) 원병상, 앞의 책, 238~239쪽. 37) 신용하, 한국민족독립운동사연구, 118쪽, 을유문화사, ) 이관직, 우당이회영실기, 158쪽.

27 볼 수 있는 자료를 검토해보자. 필자를 알 수 없는 제9항 백서농장사( 白 西 農 庄 史 ) 에 따르면 1915년 이 농 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385명이다. 이 숫자는 거의 정확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385명에는 신흥무관학교 졸업자뿐만 아니라, 신흥학교 분ㆍ지교 졸업자와 노동강습회 이수자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단단히 각오 하고 독립군에서 중견 역할을 하기 위하여 병농( 兵 農 )학교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대 부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1915년 봄 이전 신흥무관학교 졸업자는 3백 명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 하여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39) 일제는 3ㆍ1독립항쟁 이후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한국독립군을 뿌리 뽑는 것이 조선에서 지배체제의 안정을 이룩할 수 있다고 판단, 이 지역에 일본군을 파견하여 대대적인 학살 작전을 전개하였다. 또한 중국 관헌에 압 력을 가하여 한국인의 무장독립운동을 방해하고, 토족세력인 마적단을 조종하여 습격ㆍ납치ㆍ학살을 자행하면 서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하여 각급 민족운동단체들은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동안 신흥소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는 만주 일대는 물론 노령에까지 수십 개의 학교와 연계하면서 지방 청 년들의 군사훈련에 힘썼다. 각 지역에서 이름을 달리하는 많은 소중학교가 설립되었지만 뿌리는 대부분 신흥소 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에서 기원하였다.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한 졸업자는 3,5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데, 더 정확한 자료는 앞으로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신흥무관학교 관련 학교들의 학생 수는 더욱 추산하기 어렵다. 조선주차헌병대 사령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 거할 경우 통화현과 유하현에 있는 대다수의 학교와 학생수 및 그밖의 지역(북간도지방 포함)학교 학생수의 상당수가 신흥무관학교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축소된 점도 감안할 때, 대충 2천 명 안팎으로 추산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재학생 전체일 것이기 때문에 졸업생 수는 그것의 3배 안팎이 될 것이다. 40)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만주지역과 중국 관내에서 항일 독립운동의 중핵이 되었다. 1919년 11월 만주 길림 성에서 폭렬투쟁 을 선언하면서 조직된 의열단의 핵심멤버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단장 김원봉을 비롯하 여 강세우ㆍ권준ㆍ김옥ㆍ박태열ㆍ배중세ㆍ서상락ㆍ신철휴ㆍ윤보한ㆍ이성우ㆍ이종암ㆍ이해명ㆍ최동윤ㆍ한봉근ㆍ한봉인 등이다. 의열단은 최초 발기 13명에서 1924년에는 단원이 약 7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부산경찰서ㆍ밀양경찰서ㆍ총독 부폭파사건, 황옥( 黃 玉 )경부사건, 종로경찰서ㆍ동양척식회사ㆍ도쿄 니쥬바시( 二 重 僑 ) 폭파사건을 비롯하여, 그 외 에도 16건의 의열투쟁을 실행하여, 독립운동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서로군정서( 西 路 軍 政 署 )는 1919년 4월 한족회와 통합하여 무 장항쟁을 전개하였다. 독판 이상룡, 부독판 여준, 정무청장 이탁, 군정청장 양규열, 참모장 김동삼, 교관 지청 천ㆍ신팔균ㆍ김경천 등 간부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다. 이들 외에 신흥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 출신 으로 한족회와 서로군정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사는 권계환ㆍ김동식ㆍ김중한ㆍ김우권ㆍ김철ㆍ김하성ㆍ김학 규ㆍ박명진ㆍ백광운ㆍ백기환ㆍ신용관ㆍ오광선ㆍ이덕수ㆍ이병철ㆍ현기선ㆍ강화진ㆍ김춘식ㆍ박영희ㆍ백종열ㆍ오상세ㆍ이 운강ㆍ최해 등이다. 39) 서중석, 앞의 책, 131쪽. 40) 앞과 같음. 27

28 신흥중학교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또한 1922년 만주 봉천성 환인현에서 조직된 통의부( 統 義 府 )에 참여 하여 주요 역할을 하였다. 이천민은 군사위원을 맡아 직접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자치행정기구에도 여러 명이 참여하였다. 1923년 만주 통화현에서 조직된 참의부( 參 議 府 )에는 백광운이 참의장 겸 제1중대장으로서 무장투쟁을 지휘 하였다. 이 외에 1925년 만주 영안현에서 조직된 신민부( 新 民 府 ),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된 국민부 등 만주일대의 무장투쟁 단체에는 어김없이 신흥학교와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참여하고 중심이 되었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와 같은 해 10월의 청산리전투는 지청천ㆍ이범석 등 신흥무관학교 교관 출신들이 항일 대첩 을 주도하였다. 신흥학교 출신들은 1940년 중국 중경에서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조직된 항일무장부대 광복 군의 창설에도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지청천ㆍ김학규ㆍ김원봉ㆍ이범석ㆍ권준ㆍ신동열ㆍ오광선 등이다. 광복군 총사 령 지청천ㆍ참모창 이범석, 제1지대장 김원봉ㆍ제3지대장 김학규 등 모두 신흥무관학교 간부들이었다. 신흥무관 학교는 무장독립운동의 사관을 육성한 요람이었다. 28

29 1910년대 독립군기지 건설운동과 신흥무관학교 윤경로 전 한성대학교 총장 1. 머리말 금년 6월이면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치열했던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성을 일별할 때 어느 한해도 역사적으로 지나칠 수 있는 해가 없지만 2011년 올해의 가장 의미 있는 역사성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결성되었고 오늘 발표회를 갖는 학술대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를 준비한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우리가 특별히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주목하는 것은 이 학교가 지니고 있는 민족사적 의미와 함께 역사적 현재성을 주목하기 때문 이다. 다시 말해 신흥무관학교는 현재의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를 찾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갖 고 있기 때문이다. 본 발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배면에 놓고 신흥무관학교가 태동되기까지 설립 배경과 그 여정을 재구성하 는데 목적이 있다. 즉 신흥무관학교가 어떠한 배경과 조건에서 중국 서간도 유하현에 첫 자리를 틀게 되었는 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당시의 정치사회적 현상, 곧 1910년대 집단적 국외이주 실상을 구명하고자 한 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배경에서 동시에 진행된 독립운동가들의 망명과 그들이 국외에 구축하려했던 국외독 립운동 기지건설 운동을 총체적으로 요약 정리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글의 주된 관심사인 신흥무관학교 설립 의 인적 물적 토대에 대해 천착해보려 한다. 최근 들어 신흥무관학교 및 그와 관련된 연구가 큰 진척을 보았다 1) 따라서 새로운 사실을 구명한다는 일 은 용이한 일이 아니기에 본 발표는 기왕의 연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를 재구성하는 수준임을 밝힌다. 또한 신흥무관학교가 1911년 6월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에서 신흥강습소 로 설립되기까지로 제한하고자 한다 년대 항일운동의 변화와 해외이주 물결 항일민족운동 상의 1910년대는 큰 변화를 보인다. 1905년 을사늑결로 사실상 국권상실에 처하자 실추된 국권 1) 신흥무관학교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박환, 만주지역의 신흥무관학교,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 일조각, 1991 ; 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 명자들,역사비평사, 2001 ; 이덕일, 이회영과 젊은 그들 역사의 아침, 2009 ; 김광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민족혁명가 윤기섭, 역사공간, 2009 등을 비롯해 여러 편의 논문과 관련 회고록 등이 있다. 이 발표문은 이상의 연구업적에 의존해 작성하였다. 29

30 회복을 위한 여러 모양의 구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이 전국규모로 전개되었다. 이 두 계열이 추구하는 목적은 동일하였으나 운동양태는 달랐다. 전자가 사회계몽 및 실력양성론적이었다면 후자는 무장투쟁론적이었다. 그러나 1910년에 접어들어 일제에 의한 국권강점이 눈앞에 닥쳐오면서 애국계몽 계열과 의병운동 계열은 공히 국권 완전상실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독립전쟁론( 獨 立 戰 爭 論 ) 곧 국외독립군기지 건설운동론으로 합일되었다. 여기에는 1909년을 전후하여 일제가 획책한 무자비한 토벌작전 등으로 국내에서 더 이상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없게 되었던 점 또한 한 요인이었다. 따라서 그동안 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의병계열 만이 아닌 애국계몽운동 진영 에서도 독립전쟁론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었던 것이다. 일제 측 또한 이 시기부터 애국계몽단체와 그 구성원에 대한 감시를 더욱 강화하였다. 조선반도 의 병합 과정 에 예상되는 한인들의 저항이 애국계몽단체와 그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견했기 때문이다. 일제 의 한국강점 직전인 1910년 7월 경무총감 아카시( 明 石 元 二 郞 )의 아래와 같은 훈시내용은 이 점을 잘 말해준다. 원래 조선인민은 (중략) 학문을 좋아하여 관리가 되기를 희망하나 견실한 실업에는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다. 이러한 풍조는 국가변천 시기에는 더욱 심하여 다수의 인민이 공부한 문학.법률학이 국가의 수요공급을 넘어서고 있어 학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위를 얻지 못하는 인재가 다수 있다. 이들 실의자가 곧 불평분자 가 된다. (중략) 불평분자가 폭도로 나타나는 것은 제압하기 쉬우나 곤란한 것은 비밀결사의 발생인 것이다. 2) 위에서 말하는 불평분자 란 곧 학식을 갖춘 반일 민족진영 인사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유식인 불평분자 가운 데 폭도, 즉 의병의 봉기는 쉽게 진압할 수 있으나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비밀결사라는 것이다. 한편 이들을 가리 켜 위험분자 라고도 하며 이들을 사회여론을 대단한 형세로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세력으로 보았다. 요컨대 일 제는 한국 강점의 마지막 장애물로 애국계몽단체를 지목하였으니, 강점 이후 이들이 비밀결사로 변화했을 때 상 정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던 것이다. 일제측이 조선병합 을 목전에 두고 애국계몽계열을 마지막 장애물 로 지목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장인환, 전명운의 스티븐스 사살(1908.3),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 이재명의 이완용 살해기도 ( ) 등 사건이 연이어 돌발하였는데 이 사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해외의 공기 를 마 신 애국계몽계열의 서북계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3) 따라서 일제측은 이들 애국계몽계 반일세 력을 주목하게 되었고 이들을 조선병합 의 마지막 장애물 로 지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안명근사 건과 양기탁보안사건 등에서 부분적으로 확인되었다. 4) 또한 우리가 잘 아는 105인사건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일 제의 조작으로 국내민족세력을 한줌에 제거하려한 대탄압사건이었다. 5) 이렇듯 독립운동사적 관점에서 1910년대 국내사정은 매우 어두웠다. 말하자면 국내에서는 더 이상 항일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1910년 8월 일제의 국권강점 후 초대 총독부 경무총감 겸 헌병사령관이 자 105인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이었던 아카시( 明 石 元 二 郞 )는 훗날 조선병합 후의 일제의 식민통치를 한마디로 기포성산 ( 碁 布 星 散 )의 무단통치 방법이었다고 자랑하였다. 6) 말하자면 바둑판에 무수히 깔아놓은 바둑알 모 30 2) 小 森 德 治, 明 石 元 二 郞 ( 上 ), 臺 北 臺 港 日 日 新 報 社, 1928, 452쪽. 3) 윤경로, 한국근대사의 기독교사적 이해, 역민사, 1992, 쪽. 4) 윤경로,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 일지사, 1990, 쪽. 5) 위의 책, 9쪽. 6) 小 森 德 治, 明 石 元 二 郞 ( 上 ), 452쪽.

31 양, 가을 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들 모양 조선반도 전 지역에 헌병대와 경찰서를 배치하는 무단통치를 실시하 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조선반도 전지역을 창살없는 감옥화 곧 병참국가(Garrison State)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러한 상황에서 항일독립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국내 항일운동 세력은 애국계몽계나 의병계열이나 모두 국외 곧 해외로 눈을 돌려 국외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나서게 되었다. 북간도, 서간도 등 만주지역으로의 한인이주의 역사는 18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한인들의 간도 지역으로의 이주가 급격하게 촉발된 계기는 서북지방을 휩쓸었던 이른바 기사년( 己 巳 年 ) 곧 1869년 대재해( 大 災 害 )였다. 즉 년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몰아친 대흉년으로 초근목피의 연명을 위해 대규모의 이주가 단행되었다. 7) 이렇게 시작된 간도지역으로의 이주 물결은 이후 더욱 심화되어 북간도로의 이주는 함경북도인이, 서간도로의 이주는 평안북도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894년 실시한 재만 한인동포 출신지 조사에 따르면 대상인원 65,000명 가운데 함북출신이 32,000명, 평북출 신이 14,400명이었고 1904년 통계에는 78,000 명중 함북출신이 32,000명 평북 출신이 23,500명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8) 1987년 현재 요령성 거주 조선족이 198,000명, 흑룡강성 거주 조선인이 430,000여명, 길림성 일대 조 선족이 1,104,000여명으로 총 1,700,000여명의 조선족이 동북3성에 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9) 후술하듯 신흥무관학교가 개교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려 3,500여명에 달하는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 훈련 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한인들의 인적토대가 일찍이 간도지역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할 것 이다. 1905년 외교권의 박탈로 사실상 국권상실 위기에 처한 이래 국외 특히 서간도 북간도지역으로의 이주 물결 은 일종의 사회현상 모양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이 한계에 부딪치자 의병 장 출신들과 애국계몽계 지도부의 국외독립군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한 이주도 이어졌다. 10) 또한 생활고에 고통 을 받던 일반 농민층의 국외로의 집단이주 역시 이 시기에 진행되었다. 11) 국외로의 이주현상은 국내 인구변동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니, 서울의 경우 1908년 현재 190,000명이었던 인구가 1년 뒤인 1909년 9월에는 150,000명으로 40,000명이나 줄어들었다 한다. 12) 1년 사이에 20%의 인구가 감소되었다는 사실은 이 시기 국외로 의 대규모 집단 이주 현상을 잘 시사해준다 하겠다. 이러한 대규모의 집단이주 현상이 이 시기 집중적으로 추진된 배경과 요인에는 당시 국외에서 발행되고 있던 동포신문들의 영향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미국 한인사회에서 간행되고 있던 대표적 동포신문인 <신한민보>에 해외로의 이주를 촉구하는 논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중 한 두 예를 들어보면 <신한민보> 1909년 9월 29일자에 < 靑 年 回 心 曲 >이라는 제목 하에 아래와 같은 당시 해외이주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 는 노래가사가 실려있다. 이 노래 말 내용에서 당시 분위기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먼저위에 손을 언고 / 갈곳이야 만타만은 / 노예양셩 나 실허 / 7) 요녕인민출판사, 조선족백년사, 1981, 2-3쪽 8) 윤병석, 1910년대 국외항일독립운동 I (만주 러시아),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12-13쪽. 9) 천수산, 길림성에로의 조선족 이주, 길림조선족, 17쪽. 10) 신용하, 앞의 책, 쪽 ; 의병단체에 의한 서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 일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은 1907년부터 이미 있었다. 의병 장출신 류린석은 1907년 7월에 60여 명의 문하인과 함께 연해주로의 이주를 계획한 바 있다(강재 언, 한국의 근대사상, 한길사, 1985, 쪽 참조). 11) 현주환, 한국류민사 ( 上 ), 흥사단출판부, 1976, 쪽 참조. 12) <신한민보> 1909년 9월 8일자 내보( 內 報 ) 중 日 增 韓 減 이란 제목에 경시총감 환산듕쥰이가 잇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울 인구가 19만명이 더니 근일에 일인에게 생활을 졈졈 빼앗기고 디방으로 밀려내어 최근 됴사 바를 통계하면 15만명이 넘지 못하더라 라는 기사가 보인다. 31

32 / 가쟈가쟈 멀리가쟈 / 변 발션 야 / 금의환양 목도삼고 / / 나 가오 나 가오 / 영융예비 러가오 / 지금가면 언제오 / / 우지마오 동포들 / 잘잇거라 잘잇거라 / 춘 월에 다시보쟈 / 13) 이밖에도 같은 신문 같은 날짜 기사에 내출양래 ( 來 出 洋 來 ) 라는 제하에 오시오! 오시오! 외국으로 나오시 오! 라며 국내에 남아 있는 동포를 가리켜 집에 들어온 호랑이를 잡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죽기를 기다리는 지아비 에 비유하며 외국으로의 망명을 적극 권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망명할 나라까지도 제시하면 서, 일본에도 많이만 간다면 나쁠 것은 없으나 보다 좋은 곳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국, 중국 등이 좋다 고 하였다. 14) 국외로의 망명을 권유하는 <신한민보>, <대동보> 등 해외에서 발간되고 있던 동포 신문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에 배포되어 큰 영향을 미쳤다. 즉 서울의 기독교청년회(YMCA)와 경신학교, 평양의 대성학교 등에 송부된 해외 동포신문들은 각 지방으로 보내져 널리 회람되었다. 또한 한 번 회람된 신문은 다시 다른 지방으로 보내져 일매의 신문지가 전전해서 능히 수십백천인이 목영( 目 映 )하고 있다 고 했다. 15) 이렇듯 국외로의 이주를 권하고 이에 따라 국외로의 이주현상이 일종의 사회현상 모양 확산되어가자 국내에서 발행되던 대표적 민족지인 <대한 매일신보>는 국외 이주동포에게 고하노라 는 제하의 논설을 통해 근자 한국동포 중 자유공기와 문명산천을 찾는 해외이주자가 급증하고 있다 고 하면서 국외이주를 오리려 자제할 것을 아래와 같이 촉구하기도 하였다. 오호라 국외 이주 동포여 동포가 국외이주를 작 이 果 然 何 必 要 를 因 인가 (중략) 동포는 試 思 라 此 內 地 가 아모리 獄 과 如 되 차는 오히려 동포의 四 千 載 成 守 조국이며 此 內 地 가 아모리 爐 와 如 되 此 는 오히려 二 千 萬 尊 居 하는 조국이니 동포가 설혹 好 經 營 을 抱 고 此 祖 國 을 離 야 국외에 住 시에도 如 茶 如 錦 고국산천을 拜 別 고 族 異 俗 異 殊 域 風 霜 에 流 離 에 반다시 한이 骨 에 切 며 淚 가 臆 에 함 야 不 忍 의 정을 不 禁 지어 何 事 로 絲 身 穀 復 苟 命 逃 生 을 爲 야 祖 國 을 脫 와 如 히 棄 고 국외로 류출 야 생 야 無 國 의 孤 民 이 되며 死 야난 異 地 의 殘 鬼 가 되리요. 16) 말하자면 우리 조국이 아무리 지옥 과 같고 화로 와 같다 하더라도 4천년의 역사와 2천만이 거주하고 있는 조 국을 떠나려는 것은 나라없는 고아백성이 되는 것이고 죽어서는 이역 땅의 귀신이 되는 것이니 무분별한 해외로 의 이주는 삼가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국외이주를 무조건 반대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단순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이주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으나 국가와 민족의 장래 이익과 번영을 목적으로 한 이주는 결 코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 논설은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오호 동포여 동포가 국가민족의 사상으로는 국외이주를 혹작( 或 作 )할 32 13) < 新 韓 民 報 > 1909년 9월 29일 字 (152 號 ) 14) 위의 주. 15) 國 友 尙 謙, 不 逞 事 件 으로 본 朝 鮮 人, 1912, 高 麗 書 林 (영인본), 1912, 쪽. 16)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4일자 론설 <국외 이주동포에게 고하노라>.

33 지언뎡 일신( 一 身 ) 일가( 一 家 )의 관념으로 국외이주를 작( 作 )지 말지어다 17) 3. 독립운동가들의 망명과 해외 독립군기지 건설운동 이상에서 보듯 1910년대를 전후하여 국외로의 집단이주 물결이 사회현상 모양 진행되는 과정에 항일 독립지 도자들의 국외로의 망명 또한 강고하게 추진되었다. 독립운동 투사들의 망명지 또한 매우 다양하였는데 대체로 러시아 지역과 중국 동북지역 그중에서도 북간도와 서간도지역을 독립운동 근거지와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한 적합한 지역으로 정했다. 이중 이 글에서는 북간도와 서간도 지역, 특히 신흥무관학교와 관련 깊은 지역으로 제 한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북간도 경우 일찍이 국망을 예견한 이상설( 李 相 卨 ), 이동녕( 李 東 寧 ), 정순만( 鄭 淳 萬 ), 여준( 呂 準 ) 등이 1906년 부터 용정촌( 龍 井 村 )에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착수하였다. 18) 이들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여 1906 년 8월경에 용정촌에 정착하여 민족주의 교육의 요람이 된 서전의숙( 西 甸 義 塾 )을 열었다. 19) 이어 북만주 밀산부 ( 密 山 府 )에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나섰다. 밀산부 독립운동 기지는 헤이그 사행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이상설 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新 韓 村 )의 한민( 韓 民 )회장 김학만( 金 學 萬 )을 비롯한 정순만, 이승희( 李 承 熙 ) 등이 중 심이 되어 1909년 여름부터 추진하였다. 밀산부 봉밀산( 蜂 密 山 ) 일대는 중국과 러시아 접경 지역이자 한인들이 대거 집단이주하고 있어 지리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 한민학교( 韓 民 學 校 )를 건립하여 교육과 독립군 양성에 나섰다. 한민학교가 개설된 1910년을 전후하여 용정촌과 봉밀산 일대에 한인들이 대거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910년 9월부터 1911년 12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이 일대에 이주한 한인수가 17,000여명에 달했던 것 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20) 1913년 1월 북간도지역의 한인 자치단체이자 독립운동을 도모하기 위 한 결사체인 간민회( 墾 民 會 )가 이곳에 결성되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한편 이 시기 북간도 일대, 곧 연길, 화룡, 왕청, 훈춘, 안도 등 5개현에 158개의 한인학교가 생겨났고 이들 학교 의 학생 수가 3,800여명에 이르렀다. 21) 즉 서전의숙을 비롯해 명동학교( 明 東 學 校 ), 창동학교( 昌 東 學 校 ), 광성학교 ( 光 成 學 校 ) 그리고 정동학교( 正 東 學 校 ), 대전학교( 大 甸 學 校 ), 북일학교( 北 一 學 校 ) 등이 당시 북간도지역에서 독 립운동 투사들을 양성한 교육으로 오랜 기간 존속한 대표적인 민족학교였다. 22) 서간도 한인이주 역시 19세기 이후 대규모로 진행되었는데 그중 1831년 서간도 임강현( 臨 江 縣 ) 모아산( 冒 兒 山 ) 북방으로 한인 두 가정이 이주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23) 1903년 5월 현재 서간도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한인 수 는 장백, 임강, 집안, 통화, 환인, 관전, 단동 등지에 속한 32개 면에 총 9,754호에 45,600여명에 달하는 한인 이주 민들이 거주하였다고 한다. 서간도로의 한인 이주는 1905년 이후 더욱 급증하였는데 이는 정치적 망명으로서의 독립운동가들의 집단적인 이주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후술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한 이회영 ( 李 會 榮 ), 이상룡( 李 相 龍 ) 일가의 집단이주를 비롯 독립운동가들이 서간도를 근거지로 삼으려 했던 것도 이러한 17) 위의 주. 18) 윤병석, 1910년대 서북간도 한인단체의 민족운동, 국외 한인사회와민족운동, 일조각, 1990, 15-16쪽. 19) 윤병석, 1910년대 국외항일운동I,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16-17쪽. 20) 연변인민출판사, 조선족력사, 1986, 280쪽. 21) 윤병석, 위의 책, 17-18쪽. 22) 위의 주. 23) 위의 주. 33

34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룡에 의하면 1913년 서간도를 포함한 봉천성 관내에만 286,000여명의 이주한인 들이 거주 24) 할 만큼 1910년대 초 서간도지역은 이미 대규모의 한인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 이들의 생활은 매우 열악하고 고통스러웠다. 한인들의 이주가 늘어나자 청국정부는 이 지역에 군 대와 관리를 파견하여 한인들에게 수리세, 문턱세, 고용세, 굴뚝세, 소금세 등 터무니없는 30여 종에 달하 는 잡세를 강요하였고 지주들은 3-4할이 넘는 고율의 소작료를 착취하는 실정이었다. 25) 뿐만 아니었다. 변발호 복( 辮 髮 胡 服 )과 청국으로의 입적을 강요받는 치욕을 참으며 머리를 땋아 올리고 중국옷으로 변장( 變 裝 )해야 하 는 등 심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26)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서간도지역 한인사회는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다. 초기 황무지 개 간 작업에서 점차 수전농( 水 田 農 ) 곧 벼농사가 자리를 잡아갔기 때문이다. 1840년대 이후 혼강( 琿 江 )유역을 중 심으로 시작된 벼농사가 점차 확대되어 년대부터 통화현 일대 소택지와 늪지를 개간하여 벼농사를 시작 한 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후 통화현의 상전자, 하전자, 소만구, 그리고 유하현의 삼원포, 신변의 왕청문, 안 동의 당산성 등으로 확대되어 벼농사가 서간도 일대의 경제적 기반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서간도 일대에 한인촌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후술하는 유하현 삼원포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게된 것도 이러한 배 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인들에 의해 수전농이 발전한 유하현과 고산자( 孤 山 子 ), 대우구( 大 牛 溝 ) 일대와 경상 도 출신의 한인들이 무순을 거쳐 왕청문( 旺 淸 門 ), 두도구( 頭 道 溝 ) 등지에 대거 이주하였던 것도 이 지역에 일찍 부터 한인들이 수전농을 일구어 성공했기 때문이다. 27) 독립운동가로서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일대를 가장 먼저 답사한 인물은 백범 김구( 金 九 )였다. 그는 1895년 김 형진( 金 亨 振 )과 함께 삼원포를 두 차례 답사하였다. 28) 그 뒤 1896년 유인석( 柳 麟 錫 )이 제천의병 계열의 70-80명 동지들을 이끌고 통화현 오도구( 五 道 溝 )에 집단 망명하면서 독립운동기지로 자리 잡았다. 29) 유인석에 의하면 이곳은 토지가 매우 비옥하여 한 사람이 경작하면 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1년을 경작하면 3-4년을 먹을 수 있 는 곳으로 이곳에 와있는 한인 중에는 가끔 의기있는 자가 있어 더불어 일을 도모할만한 독립운동을 준비하 기에 적지( 適 地 )였다고 한다. 30) 이러한 적지( 適 地 )에 본격적인 국외독립군 기지건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 했던 세력은 신민회 지도부였고 그 중심에 양기탁( 梁 起 鐸 )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먼저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 판결문의 일단을 보자. 양기탁은 청국영토로 자유의 천지라고 믿는 서간도에 단체이주를 기획하여 조선본토로부터 상당한 자력 ( 資 力 )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동지( 同 地 )에 이주시키고 토지를 매입하여 그곳에 보내어 민단( 民 團 )을 조직 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더 나아가 무관학교( 武 官 學 校 )를 설립하여 문무쌍전교육( 文 武 雙 全 敎 育 )을 실시 하여 기회를 틈타서 독립전쟁을 일으키고자 하였다.(중략) 동년(1910년) 11월 하순 동지 이동녕( 李 東 寧 )이 서 간도 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자 동인과 임치정( 林 蚩 正 ) 집에서 회합을 갖고 서간도에 관한 사정을 상세하게 들었다. 동년 12월 중순 피고(양기탁) 집에 김구, 김도희, 안태국, 주진수 등의 동지들이 모여 서간도 이주방 34 24) 이상룡, 석주유고,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 쪽. 25) 연변인민출판사, 앞의 책, 217쪽. 26) 조동걸, 백하 김대략의 망명일기 한국근현대사학회 월례발표회논문집, 2000, 안동대학교, 14쪽. 27) 현규환, 한국유이민사 (상), 쪽. 28) 백범김구전집편찬위원회, 백범김구전집 3, 1999, 쪽. 29) 윤병석, 앞의 책, 24쪽. 30) 유인석, 與 同 門 士 友 書, 소의신편, 국사편찬위원회, 1975, 26쪽.

35 법을 강구했다. 31) 일제 당국에 의해 작성된 판결문 내용이라는 점에 유념해야겠으나 위의 내용을 양기탁 본인도 시인한 바 있 다. 32) 양기탁을 중심으로 추진된 신민회 지도부의 국외독립군 기지건설 계획은 1910년 8월 국권강점을 전후하 여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 같다. 양기탁은 1910년 4월까지만 해도 조국이 아무리 지옥과 같고 화로와 같다 하더 라도 4천년의 역사와 2천만이 거주하고 있는 조국을 떠나려는 것은 나라없는 고아백성이 되는 것 이라며 국외로 의 망명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우려하던 국망( 國 亡 )이 현실화되자, 그동안 뜻을 같이해온 동지들과 회합을 갖고 서둘러 국외이주와 독립군기지 건설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때마침 동지 이동녕이 앞서 서간도 일대를 돌아보고 왔기에 더욱 속도를 내었다. 그러나 문무쌍전교육( 文 武 雙 全 敎 育 )을 겸비한 무관학교를 국외에 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막대한 자 금이 필요했다. 이 부분과 관련된 앞서의 판결문 내용과 김구의 회고담을 함께 참고할 만하다. <A> 동지( 同 地 ) 통화현( 通 化 縣 ) 부근에 토지를 매입하여 조선 본토로부터 1인당 1백원 이상의 금전 휴대가 가능한 이주자를 모집하여 동지에 이주시켜 앞서 말한 계획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국권회복을 꾀 할 뜻을 설유하여 회합자 일동이 찬성한 후 각기 출신지를 표준삼아 김구는 황해도 일원, 안태국( 安 泰 國 )은 평안남도 일원, 주진수( 朱 鎭 洙 )는 강원도 일원 피고(양기탁) 및 임치정은 경기도 기타의 서간도 이주자를 권 유 모집하는 담당자로 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얻은 이주민은 서간도에 선발이주지로 예정된 이동녕 집에 보 낼 계획을 세우고 임치정 등과 같이 그 모집에 종사하여 목적수행에 노력한 자이다 33) <B> 서울에서 양기탁의 이름으로 비밀회의를 할 터이니 출석하라는 통지가 왔기로 나도 출석하였다. 그 때 양기탁의 집에 모인 사람은 주인 양기탁과 이동녕, 안태국, 주진수, 이승훈( 李 承 薰 ), 김도희( 金 道 熙 ) 그리고 나 김구였다. 이 회의 결과는 이러하였다. (중략) 만주에 이민계획을 세우고 또 무관학교를 창설하여 광복전 쟁에 쓸 장교를 양성하기로 하고 각도 대표를 선정하니 황해도에 김구, 평안남도에 안태국, 평안북도에 이승 훈, 강원도에 주진수, 경기도에 양기탁이었다. 이 대표들은 급히 맡은 지방으로 돌아가서 황해, 평남, 평북은 각각 15만원, 강원은 10만원 경기도는 20만원을 15일 이내로 판비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경술 11월 아침 차로 서울을 떠났다. 34) 우선 <A> 내용서 통화현 일대에 독립군양성 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1인당 1백원 이상의 금전 휴대가 가능한 이주자들을 모집하기로 하고 이주자 모집과 군자금 모금 책임자로, 김구(황해도), 안태국(평안남도), 주진수(강원 도), 그리고 양기탁과 임치정(경기도)을 정하였다고 한다. <B> 역시 같은 내용이나 <A>에 없는 이승훈과 김도희 가 보이며 이들을 무관학교 창설 각도 대표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B>에서 주목되는 내용은 황해, 평남, 평북은 각각 15만원, 강원은 10만원 경기도는 20만원의 무관학교 설립 준비금을 15일 이내에 판비하기로 결정했다는 대 목이다. 우리는 위의 내용에서 양기탁을 중심한 신민회 지도부에서 서간도 일대에 독립군 기지 건설을 위한 구 31)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 雩 崗 梁 起 鐸 全 集 제3권, 우강양기탁선생기념사업회,2002, 226쪽. 32) <양기탁 경성지방법원 제11회 공판시말서>, 양기탁외 122인 모사미수사건 (제59권); 윤경로, 105인사건과 신민회연구, 261쪽. 33) 양기탁보안법위반사건, 雩 崗 梁 起 鐸 全 集 제3권, 2002, 226쪽. 34) 김구, 白 凡 逸 志, 삼중당,1983, 151쪽. 35

36 체적인 방안이 논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도 별로 군자금 모금을 할당하여 총 60만원의 거금을 모아 광복전 쟁에 쓸 장교 양성을 위한 무관학교 를 세우려했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상당한 거금을 그것도 보름 만에 조성하려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아무튼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당시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60여만원의 거금이 요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후술하는 이석영, 이회영 6형제가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위해 40만원의 거금을 괘척한 사실이 갖는 의미와 무게를 새삼 인식하 지 않을 수 없다. 4.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인적 물적 토대 1)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인적토대 신흥무관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11년 5월 14일(양력 6월 10일)이다. 35)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인적토대는 크게 보아 아래와 같은 세 그룹에 의해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첫 그룹은 이회영( 李 會 榮 )을 중심한 상동청년학원( 尙 洞 靑 年 學 院 )과 그 인맥을 꼽을 수 있다. 1903년 상동교회( 尙 洞 敎 會 ) 내에 결성된 엡윗청년회, 곧 상동청년학원에는 당시 민족의식이 강고한 애국청년들이 몰려들었다.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강제 해 산되고 이승만( 李 承 晩 ), 이상재( 李 商 在 ), 김정식( 金 貞 植 ), 유성준( 兪 星 濬 ) 등 지도급 인사들이 체포 구금되자, 일반 회원들은 대거 상동교회의 전덕기( 全 德 基 ) 목사 36) 를 찾았다. 여기에 앞서 체포 구금되었던 지도급 인사들이 곧 풀려나자 이들까지 합세함으로 당시 상동청년학원의 위세는 더욱 높아갔다. 한마디로 당대 최대 규모의 애국청 년들의 집합소가 된 것이다. 당시 상동청년회 안에는 위의 인사들 외에도 박용만, 정순만, 남궁억, 이동휘, 양기탁, 신채호, 최광옥, 안태국, 이준을 비롯한 윤치호, 이상설, 이회영, 이시영, 유일선, 손정도, 장지연, 이종호, 노백린, 이갑, 최남선, 장도빈, 최성 모, 이필주, 김진호, 이동령, 조성환, 김구 등 열혈 애국청년들이 경향각지에서 몰려들어 이른바 상동파 ( 尙 洞 派 ) 민족운동가 진지( 陣 地 )를 결성하였다. 37) 이들 가운데는 훗날 친일파로 훼절한 인물도, 입장과 노선을 달리한 인 사도 있지만 당시 이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이렇듯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상동파 라는 민족운동 진지가 결성될 수 있었던 것은 전덕기 목사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38) 그리고 이러한 당시 애국지사들의 총집결지이자, 민족운동의 산실이었던 상동청년 학원의 학감 역할을 이회영이 맡고 있었다. 39) 바로 이상에서 언급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1907년 2월 안창호( 安 昌 36 35) 김대락, 西 征 錄,27쪽(1911년 5월 14일자(음) 일기에 往 見 學 校 方 以 是 日 下 午 開 學 이라 되어있다. 36) 전덕기 목사는 1875년 서울출신으로 9세 때 부모를 잃고 숯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1892년 상동교회를 설립한 미국 선교사 스크랜튼(W.B. Scranton)를 만나 그 밑에서 공부하여 1902년 전도사 자격으로 상동청년학원을 이끌었으며 1907년 목사안수를 받고 정동교회를 이끌어가던 중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당한 후 1914년에 별세하였다( 이성삼, 감리교와 신학대학교, 1977, 310쪽 ; 윤춘병, 전덕기목사와 민족운동, 한 국감리교회사학회, 1996, 9-11쪽 ; 윤경로, 신민회창립과 전덕기, 한국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 한성대학교출판부, 2008, 참조). 37) 전택부, 한국기독교청년운동사, 정음사, 1973, 79-84쪽; 장석영, 華 泉 回 顧 錄, 익문사, 1976, 51쪽 ; 송길섭, 민족운동의 선구자 전덕기목사, 상동교회, 1985, 59쪽; 윤춘병, 전덕기목사와 민족운동, 한국감리교회사학회, 1996, 17-21쪽. 38) 윤경로, 신민회의 창립과 전덕기, 한국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 한성대학교출판부, 2008, ) 이은숙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 정음사, 1974, 13쪽; 이관직, 우당 이회영 약전, 을유문화사, 1985, 147쪽 ; 이정규, 우당 이회영선생 약전, 又 觀 文 存, 삼화인쇄출판부, 1974,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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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과 임제 신해진(전남대) 1. 머리말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 과정에서의 사육신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남효온( 南 孝 溫 )의 (1492년 직전?), 임제( 林 悌 )의 (1576?), 김수민( 金 壽 民 )의 (1757) 등이 있다. 1) 첫 작품은 집전( 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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