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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도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 일 시 : (화) 14:00 16:10 장 소 :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 출석위원 : 김영식(위원장), 김성우, 김용수, 김정신 박문열, 백영흠, 오진경, 윤경로, 한태식 (이상 10명) 심의내용 및 의결사항 : 이하 자료와 같음 문 화 재 위 원 회

2 목 차 심의사항 1 근대문화유산 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 공개 2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 유물 문화재 등록 공개 3 김붕준 일가 유물 등 3건 문화재 등록 공개 4 윤웅렬 일가 유물 등 2건 문화재 등록 공개 5 인천 구 대화조( 大 和 組 ) 사무소 문화재 등록 공개 6 사적 제248호 구 서울역사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현상변경 공개 검토사항 7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문화재 등록 공개 8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문화재 등록 공개 9 예천 윤우식 생가 문화재 등록 공개 10 거창 구 자생의원 문화재 등록 공개 11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 성당 문화재 등록 공개 12 등록문화재 명칭 변경(안) 공개 보고사항 13 사적 제281호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현상변경 허가사항 변경허가 보고 공개 - 2 -

3 심 의 사 항 - 3 -

4 심의사항 안건번호 근대 가. 제안사항 1. 근대문화유산 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 근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유물 중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근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2012년)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전문가 자문회의 및 등록조사, 검토회의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물 10건에 대하여 등록예고 기간( )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재청장 (2) 대상문화재 : 이도재 예복 등 10건 번호 유물명 착용자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1 이도재 예복 1식, 상의 74.5cm, 하의 이도재 년경 103cm, 예모 61cm 육군박물관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1식, 길이 86.3cm, 민철훈 가슴둘레/2 37.8cm 1901년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3 민철훈 모닝코트 민철훈 1식, 길이 91cm, 조끼 55cm, 하의 101.5cm 1900년대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1식, 길이 103.2cm, 박영숙 박기준 년 가슴둘레/2 36.5cm (한국자수박물관) 5 김선희 혼례복 1식, 원삼 113cm, 치마 김선희 120.5cm 1935년 김은영 6 이해상 내외 상복 이해상 2식, 다양 1970년 경운박물관 7 백선엽 군복 백선엽 5점, 다양 1958년 전쟁기념관 8 판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장 김홍섭 85cm 1953년 9 검사 법복 민복기 1점, 길이 110cm, 화장 85cm 1956년 10 일제강점기 변호사 변호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장 김홍섭 73cm 1941년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민복기 1점, 길이 110cm 1956년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비 고 - 4 -

5 (3) 추진경과 ᄋ ~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용역(서울여대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통문화 대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 자문결과 : 이도재 부장 예복 등 26건 등록 조사 대상 유물 선정 및 기 준(안) 마련,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물은 윤웅렬 일가 유물을 일괄 검토 ᄋ ~4. 22 의생활분야 등록조사(9개소 13건) - 조 사 자 :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이화여대 교수(복식사), 한경대 교수(복식사) -조사장소 : 육군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 9개소 ᄋ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 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대상 및 등록기준(안) 검토, 이도재 예복 등 10건 등록 검토 대상 선정 ᄋ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의생활 유물 10건 문화재 등록 예고키로 함.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에 대한 보존관리 방안을 확보할 것 (4) 문화재 등록예고 ᄋ 기 간 : (30일간) ᄋ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 대 상 : 백선엽 군복(5점),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 (69점) 등 4건 (5)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번호 유물명 조사자 의견 검토회의 1 이도재 예복 미조사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미조사 3 민철훈 모닝코트 미조사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미조사 5 김선희 혼례복 미조사 비 고 - 5 -

6 번호 유물명 조사자 의견 검토회의 6 이해상 내외 상복 미조사 7 백선엽 군복 미조사 8 판사 법복 미조사 9 검사 법복 미조사 10 변호사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미조사 비 고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예고기간 중 문화재 등록에 대한 국회 등의 반대 의견이 있으므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됨. 또한 등록문화재의 명칭 부여 지침 (예규 122호, )에 따라 등록문화재 명칭에 대한 검토가 필요함 마. 의결사항 : 조건부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이도재 예복, 박기준 대례복 일습, 김선희 혼례복, 이해상 내외 상복, 판사 법복, 변호사 법복(일제 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문화재 등록 보류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민철훈 모닝코트, 백선엽 군복, 검사 법복, 변호사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 사 유 : 의복사적 가치는 인정되나, 착용자의 친일행위와 관련하여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지 못한다는 의견이 있어 추후 심도있는 검토 후 등록 여부를 결정하기로 함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1. 근대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2. 친일반민족 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서(민주당 김광진 국회위원 등 12명) 3. 문화재청의 친일파 미화에 반대하는 독립운동단체 및 민족운동진영의 입장 (성명서) 4.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의 문화재 보존관리 방안(법원도서관 의견) - 6 -

7 < 붙임 1> 근대의생활 유물(1차)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목 적 ᄋ 우리나라 의생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근대의생활분야 유물 중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등록 보존하고자 함 ᄋ 의생활 유물 검토대상 중 문무관복 및 제복류, 혼례복, 상장례복 등에 대하여 1차로 등록 추진함 2. 추진경과 ᄋ ~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서울여대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통문화대 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 자문결과 : 이도재 부장 예복 등 26건 등록 조사 대상 유물 선정 및 기준(안) 마련,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유물은 윤웅렬 일가 유물을 일괄 검토 ᄋ ~4. 22 의생활분야 등록조4사(9개소 13건) -조 사 자 :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이화여대 교수(복식사), 한경대 교수(복식사) -조사장소 : 육군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 등 9개소 ᄋ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대상 및 등록기준(안) 검토, 이도재 예복 등 10건 등록 검토 대상 선정, 박찬주 결혼예복과 트레인은 관련자료 정밀조사 후 재검토, 판사 법 복은 1953년형 판사 법복만을 대상으로 할 것, 동덕여자고등학교 교복은 등록가치 미흡 ᄋ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의생활 유물 10건 문화재 등록 예고키로 함 ᄋ 문화재 등록 예고 -기 간 : (30일간)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대 상 : 백선엽 군복(5점),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69점) 등 4건 3. 조사개요 가. 조사일자 : ~4.22(4일간) 나. 조 사 자 ᄋ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 7 -

8 ᄋ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ᄋ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다. 조사내용 : 의생활 유물 실사 및 문화재적 가치 검토, 관계자 인터뷰 등 번 호 유물명 착용자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비 고 1 이도재 예복 1식, 상의 74.5cm, 하의 이도재 103cm, 예모 61cm 년경 육군박물관 1식, 길이 86.3cm, 박영숙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민철훈 1901년 가슴둘레/2 37.8cm (한국자수박물관) 3 민철훈 모닝코트 1식, 길이 91cm, 조끼 민철훈 55cm, 하의 101.5cm 1900년대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박기준 1식, 길이 103.2cm, 가슴둘레/2 36.5cm 년 박영숙 (한국자수박물관) 5 김선희 혼례복 1식, 원삼 113cm, 치 김선희 마 120.5cm 1935년 김은영 6 이해상 내외 상복 이해상 2식, 다양 1970년 경운박물관 7 백선엽 군복 백선엽 5점, 다양 년 전쟁기념관 1956년 8 판사 법복 김홍섭 1점, 길이 110cm, 화 장 85cm 9 검사 법복 1점, 길이 110cm, 화 민복기 장 85cm 10 일제강점기 1점, 길이 110cm, 화 변호사 변호사 법복 김홍섭 장 73cm 법복 1953년형 민복기 1점, 길이 110cm 변호사 법복 1953년 1956년 1941년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대법원 법원도서관 4. 등록기준(안) ᄋ 문화적 사회적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복식사적, 그리고 문화재적 가치가 우수한 유물 ᄋ 근 현대 의생활 분야와 관련하여 전환을 나타내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유물 ᄋ 유물의 제작과 착용 및 사용 이력이 뚜렷하고 용도가 구체적인 것 ᄋ 사용된 옷감이 직물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 ᄋ 동종의 유물이 있을 경우에는 시기적으로 앞서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착용자가 확실한 것 5. 조사자 의견(요약) 조사자 의견 번호 유물명 1 이도재 예복 미조사 2 민철훈 대례복 일습 미조사 3 민철훈 모닝코트 미조사 비고 - 8 -

9 조사자 의견 번호 유물명 4 박기준 대례복 일습 미조사 5 김선희 혼례복 미조사 6 이해상 내외 상복 미조사 7 백선엽 군복 미조사 비고 8 판사 법복 미조사 9 검사 법복 미조사 10 변호사 법복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1953년형 변호사 법복 미조사 가. 이도재 예복 ᄋ 대한제국기 고위 관료의 중요한 복식자료임( ) ᄋ 대한제국 시대 예복이라는 상징적인 가치 외에도 유물의 형태와 색상, 디자인, 보존상태 등에서도 우수한 유물임( ) ᄋ 대한제국 시기의 유물이 양적으로 적으며, 특히 부장예복으로는 유일한 유물임 ( ) 나. 민철훈 대례복 일습 ᄋ 국가상징 문양에 현재의 국화( 國 花 )인 무궁화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복식사 적으로 의미가 있음( ) ᄋ 문관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것으로 착용자와 제작지와 제작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임( ) ᄋ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대한제국 문관대례복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해야 할 가치가 충분함( ) 다. 민철훈 모닝코트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일제강점기 서구식 예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음 ( ) ᄋ 대한제국시대 외교관이었던 민철훈의 모닝코트로, 대한제국 시대 이후 일제 강점기 때 착용되었던 것으로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구성을 갖추고 있음( ) ᄋ 대한제국시기의 유물이 적은 현 상황에서 착용자의 신분이 확실하고 유물의 상 태도 좋음( ) 라. 박기준 대례복 일습 ᄋ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서구식 대례복의 제작국에 따른 특징 및 보관방식까지 살펴볼 수 있음( ) ᄋ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임( ) ᄋ 박기준이 착용했던 예복으로 일습을 갖추고 있고 대한제국시기 우리나라 서구식 예복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 - 9 -

10 마. 김선희 혼례복 ᄋ 근현대 직물과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됨( ) ᄋ 보존상태가 좋으며, 근대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의 혼례(1935)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것으로 직물과 복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ᄋ 착용자가 확실하고 혼례사진도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있음( ) 바. 이해상 내외 상복 ᄋ 1968년 이후 상복과 장례과정이 간소화되었고, 탈상한 후에 상복은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통 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려움( ) ᄋ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 초상 때 착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 으로.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ᄋ 착용일과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사. 백선엽 군복 ᄋ 계절에 따른 예복의 형태와 착용 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 등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 ) ᄋ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무 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복이 갖추져 있음( ) ᄋ 대한민국의 육군복식 그중에서도 장군의 각종 유형의 복식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 아. 판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판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자. 검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검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차. 변호사 법복 ᄋ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로 착용자가 확실하며, 변호사 법복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임(,, ) 6. 유물별 주요특징 및 가치 가. 이도재 예복 1) 명 칭 : 이도재 예복 2) 소 유 자 : 육군박물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 4) 수 량 : 1식(상의, 하의, 예모) 5) 규 격 ᄋ 상의 : 길이 74.5cm, 소매길이 55.8cm ᄋ 하의 : 103cm ᄋ 예모 : 전체둘레 61cm

11 6) 착 용 자 : 이도재( 李 道 宰, )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년경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군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낸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의 것으로, 대 한제국 군대에서 정2품급에 해당하는 부장( 副 將 )의 복식이다. 대한제국 시대의 예 복이라는 복식사적 가치 외에 어깨의 금색 장관용( 將 官 用 ) 견장( 肩 章 ), 예도( 禮 幍 ), 입전모( 立 前 毛 ), 식서( 飾 緖 ), 식대( 飾 帶 ), 바지( 袴 ) 등이 모두 완벽한 형태로 갖춰져 있다. 대한제국기 고위 관료의 중요한 복식 자료로 평가되므로 근대의생 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모자의 형태는 유지되고 있지만, 금속사는 퇴색하여 빛을 잃음 -상의의 견장 금속 장식사 분리되어 있음 -바지 옆 장식선과 바지 일부 좀으로 인해 헤어짐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가 착용했던 것이다. 이도재는 한말의 문신으 로 1894년 군부대신을 거쳐 학부대신이 되었으나, 단발령을 반대하여 사직했다. 1898년 지석영에게 한성의학교 설치를 인가하여 한국 최초의 서양의학기관의 설립을 지원한 인물이다. 1902년 12월 육군부장( 陸 軍 副 將 )으로 철도원총재가 되 었다. 1903년 초 외부대신 평안북도 관찰사 1904년 충청남도 관찰사를 거쳐 내 부대신 표훈원의정관을 역임하고 다시 농상공부대신에 임명되었으며, 1905년 다시 내부대신에 발령되었다. 경상북도 평안남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충청남 도 전라남도 관찰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906년 8월 그 동안의 공적으로 태 극장( 太 極 章 )을 서훈받고, 그 뒤 장례원경 시종원경에 임명되었으나, 1907년 7 월 총리대신 이완용의 모함으로 나문정죄( 拿 問 定 罪 )당하였다. - 이 옷은 1897년 5월 15일에 발표된 육군복장규칙(관보 제 639호)에 따른 정장

12 ( 正 裝 ) 대예장( 大 禮 裝 )차림에 따른 것이다. 관보에 의하면 이 옷은 1900년 이후 의 것으로 이도재가 부장에 임명받은 1902년의 옷이다. 1897년 정장은 성절전하 와 문안시 등 가장 큰 행사 때 착용하였다. 옷의 구성은 모( 帽 ) 입전모( 立 前 毛 ) 대예의( 大 禮 衣 ) 고( 袴 ) 대견장( 大 肩 章 ) 식대( 飾 帶 ) 도구서( 刀 具 緖 ) 도 대( 刀 帶 ) 백혁수투( 白 革 手 套 :백색 가죽장갑) 백포하금( 白 布 下 襟 :깃 안쪽에 붙 이는 흰색 포) 화( 靴 ) 등으로 구성되었다. - 예모( 禮 帽 )는 1897년 육군복장제식의 개정에 따라 프랑스군의 장교모인 케피 (Kepi)모 형태였다. 모자의 구성은 정개( 頂 蓋 )와 상반부, 하반부로 구성되었다. 부수물로 상부 정개의 이화장, 차양인 전비, 모표인 표장(표장) 등이 부착되었 다. 상반부에는 관등을 표시하는 종선, 하반부에는 계급을 표시하는 횡선을 금 사양고직( 金 絲 兩 股 織 )으로 부착하였다. 1897년에 개정된 예모의 규칙에 따라 흑 색융질에 정개( 頂 蓋 )는 이화형 붉은색 융질 위에 금사로 이화를 수놓았다. 정개 와 하반부 사이는 전 후 좌 우측 4곳에 관등을 표시하는 수금선양고직:종선 을 띠었는데 장관은 3줄이었다. 이 모자에는 3줄 장식이 있다. 상반부와 연결되 어 머리가 들어가는 몸통부위인 하반부에는 계급을 표시하는 횡금선양고직을 계급에 따라 부착하였는데, 이 모자에는 8줄 장식을 하여 부장의 신분을 표시하 였다. 표장( 表 章 )은 모표로 1897년 5월 이후 타원형의 흑색융질 바탕을 횡으로 하여 정중앙에는 은색 선과 금색 꽃술을 수식한 자두꽃을 수놓아 장식하고, 그 좌 우에 금색 잎과 은색 꽃송이를 수놓은 무궁화가지를 교차시킨 수 장식을 했고, 부분적으로 무궁화 나뭇잎을 중심으로 소형 무궁화꽃을 수놓은 형태였다. 모자에는 턱끈이 달려있었다. 턱끈은 금사로 둥글게 짠 것을 두줄로 나란이 하 여 늘리거나 줄일 수 있게 하고, 양 쪽 끝은 모자의 차양 양쪽 끝에서, 도금한 무궁화무늬 단추를 주물로 만들어 붙어 고정하였다. 차양은 반달모양이었고 흑 색 가죽으로 만들었다. -입전모( 立 前 毛 )는 모자 앞에 꽂는 상모이다. 1900년 3월 23일에 새롭게 규제되어 금속철선에 백색 깃털을 중복 연결한 형태로서 모자의 모표 위 부위에 삽입 착 용하였다. 모자의 크기는 전체 둘레 61cm, 앞높이 8.3cm, 뒤높이 10.8cm이다. 5cm 높이의 금색 띠를 둘렀고, 앞 중심에 이화무늬가 자수되어 있는 장식을 붙 였다. 그 위에 깃털이 달려있다. 모자의 챙은 너비 4.2cm, 둘레 24.5cm이다 년도 이후 예의( 禮 衣 )의 깃에는 정도기자형의 금사로 수놓은 띠를 붙이고 금사로 별을 수놓아 달았다. 장관급은 3개로 이도재의 예의에는 금사로 3개의 별이 수놓여 있다. -소매부리 상단에는 八 자형의 홍색융록( 紅 色 絨 綠 )을 붙이고, 그 위쪽에 황금색 띠 를 계급에 따라 참의에서 대장까지 1줄에서 9줄까지 붙인다. 이 유물은 황금색 띠가 8줄이 있으며, 도금한 이화무늬가 양각된 단추 3개를 계급의 구분없이 소 매부리 쪽으로 1줄로 나란히 달았다. -바지에도 융으로 만든 장식선[ 縫 章 色 : 측면 띠]을 붙였는데, 장관 및 보병은 홍 색이었다. 이도재의 바지에는 홍색 띠가 붙어있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Ⅰ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 군사복식 ᄋ 기 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설립자인 석주선선생의 기증품이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 복식은 이도재의 부장예복으로 1897년 5월 15일 육군복장제식 개정에 따른

13 복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에 속한다. 부장예복으로는 완형이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ᄋ 종합의견 :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는 군부대신과 학부대신을 지냈다. 대한제국 군대에서 정2품급에 해당하는 부장( 副 將 )의 복식이다. 대한제국 시대 예복이라는 상징적인 가치 외에도 유물의 형태와 색상, 디자인, 보존상태 등에서도 우수한 유 물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보존상태가 양호하나 금속사의 상태가 좋지 않고 바지의 일부가 좀으로 헤어짐 ᄋ 내용 및 특징 - 이 옷은 이도재( 李 道 宰 : 1848~1909)가 착용했던 예복으로 1897년 5월 15일에 발표된 육군복장규칙(관보 제 639호)에 따른 정장( 正 裝 ) 대예장( 大 禮 裝 )에 대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이 옷은 모( 帽 ) 입전모( 立 前 毛 ) 대예의( 大 禮 衣 ) 고( 袴 ) 대견장( 大 肩 章 ) 식대( 飾 帶 ) 도구서( 刀 具 緖 ) 도대( 刀 帶 ) 백혁수투( 白 革 手 套 :백 색 가죽장갑) 백포하금( 白 布 下 襟 :깃 안쪽에 붙이는 흰색 포) 화( 靴 ) 등으로 구 성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Ⅰ -육군박물관(2012), 육군박물관 소장 군사복식 ᄋ 기 타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 설립자인 석주선선생의 기증품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이도재의 부장 예복으로서 1897년 5월 15일 육군복장제식 개정에 사례 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당시에는 복장제식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이 예복 일습 은 1900년 이후의 것으로 이도재가 부장에 임명받은 1902년의 옷으로 추정된다. 해당시기의 유물이 양적으로 적으며, 특히 부장예복으로는 유일한 유물이므로 반드시 문화재로 등록하여야 할 것이다. ᄋ 종합의견 : 이도재( 李 道 宰 :1848~1909)부장( 副 將 )의 예복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복 식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나. 민철훈 대례복 일습 1) 명 칭 : 민철훈 대례복 일습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대례의, 대례모, 조끼 대례고, 대수장 등) 5) 규 격 ᄋ 길이(칼라제외) 86.3cm, 가슴둘레/2 37.8cm, 소매길이 58.7cm

14 6) 착 용 자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 7) 재 질 : 모직 8) 제작연대 : 1901년(프랑스 Jules Maria 제작)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민철훈( )이 190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하여 착용했던 것 이다. 국내에 보고된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것으로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대수장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ᄋ 대례의 앞중심선 좌우에 표현되는 국가상징 문양에 현재의 국화( 國 花 )인 무궁화 가 최초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복식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대한제국기 1등 대례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특히 대례복 깃 부분과 어깨 부분에는 습기로 인해 금속자수사가 변색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작게 좀이 쓴 흔적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서구식 대례복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의식 검( 劍 )까지 모두 갖 춘 상태로 전해 온다. - 대례모는 검은색 융직물에 흰색 타조털이 장식되어 있다(바이콘, Bicorn). tail coat 형(연미복형) 서구식 대례복으로 대례복 상의의 뒷고대 안쪽에 Min chul Whin/JULES MARIA/14. R. du. 4 Septembre. PARIS라고 자수되어 있다. 포켓 안쪽에는 Jules Maria/ 이라고 남아 있어 프랑스 파리에서 1901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례의 겉감은 검은색 모직, 안감은 흑견으로 만들었 다. 칼라(collar), 포켓, 커프스는 청색 모직으로 만들었다. 대례복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국가상징 무늬는 앞중심선 좌우에 반근화( 半 槿 花 ) 6송이와 전근화( 全 槿 花 ) 6송이가 금사로 수 놓여있다. -바지에는 2줄[ 兩 條 ]의 요철문( 凹 凸 紋 )이 부착되어 있다

15 -조끼와 의식 검까지 일습으로 전해온다. -모자를 보관하는 양철케이스와 복식과 칼을 보관하는 보관함이 있다. - 민철훈의 광무 4년, 광무 5년, 광무 8년, 광무 10년의 칙임장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 포함되어 있다.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이 착용한 것이다. 민철훈은 고종 21(188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자리를 거쳐, 광무 3년(1899)년에는 변리공사로서 궁내부특진관 에 승임하였다.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로 부임 하였고, 광무 5년(1901)에는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그 후 광무 8년(1904)에는 주미전권공사로 전보되었다가 그 다음 해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 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되기도 했지만, 융 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 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철훈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 용한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서구식 문관대례복은 첫째, 서양과의 외교 현장에서 착용하기 위해 대한제국이 주체적으로 도입하였다는 점. 둘째, 현재의 국화로 이어져 오는 무궁화무늬를 최 초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복식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본 유물은 국내에서 보 고된 광무 4년(1900)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 로 유일한 것이다. 착용자와 제작지와 제작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칙임관 1등의 문관대례복으로 1901년 파리에서 제작한 것이다. 민철훈이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근무했을 때 제 작, 착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착용자와 제작지와 일시 등이 남아 있는 귀중한 자 료이다. 이와 함께 유럽과 미국공사의 칙임관 칙령문서 4건과 호패도 함께 있다. 대한제국시대 문관대례복을 알 수 있는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되어 보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비교적 상태 양호하나 금속자수사의 변색과 부분적으로 좀 쓴 흔적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서구식 대례복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대례고, 의식 검( 劍 )까지 모두 갖 추어져 있다. 대례모는 서구식 예모인 바이콘 햇(bicorn) 으로 흰색 타조 깃털이 장식되어 있다. 연미복(tail coat) 스타일의 서구식 대례복이며, 상의 뒷고대 안 쪽에 있는 자수의 내용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1901년에 제작된 것이 확실하다. 칼라(collar), 포켓(pocket), 커프스(cuffs)는 청색 모직이다. 대례복의 앞 중심선 좌우에 금사로 반근화( 半 槿 花 ) 6송이와 전근화( 全 槿 花 ) 6송이를 수 놓았다. 바 지에는 2줄[ 兩 條 ]의 요철문( 凹 凸 紋 )이 부착되어 있다. 조끼와 검이 일습으로 있

16 으며, 모자를 보관함과 칼 보관함도 있다. 민철훈의 광무 4년, 광무 5년, 광무 8 년, 광무 10년의 칙임장도 함께 보관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허동화)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 건의 문서 포함되어 있다. -복식의 착용자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은 고종 21(1884)년 문과 급제, 광무 3 년(1899)년 변리공사,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 부임, 광무 5년(1901)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광무 8년(1904)에 는 주미전권공사, 9년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 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 융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 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철훈 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용한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광무 4년(1900) 칙령 제15호 문관 대례복 제식에 따른 칙임관 1등 대례복으로 유일한 유물이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민철훈이 외교관으로 유럽에서 근무했을 때 주문 제작하 여 착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럽과 미국에서 1890~1914년에 사용되었던 바이콘 햇(bicorn, 나폴레옹이 쓰고 있는 모자와 같은 것), 모자와 검의 보관함까지 포함된 이 예복을 통해 대한제 국 시기 우리나라의 외교관의 복식의 면모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서구식 예복 에 대한제국의 주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무궁화 무늬를 사용한 최초의 사례인 점 에서 의의가 크다. 착용자와 시기만이 아니라 제작지와 일시 등이 확실한 자료 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함께 소장되어 있는 유럽과 미국공사의 칙임관 칙 령문서 4건과 호패도 사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대한제국시대 문관대례복을 알 수 있는 유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되어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ᄋ 종합의견 :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대한제국 문관대례복 유물이다.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의 예복으로 칙령문서를 포함하여 근 현대 의생활자료로 일괄 등록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 민철훈 모닝코트 1) 명 칭 : 민철훈 모닝코트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모닝코트, 조끼, 하의, 보타이 2점) 5) 규 격 : 모닝코트 길이 91cm, 조끼 55cm, 하의 101.5cm, 보타이 36.8cm

17 6) 착 용 자 : 민철훈( 閔 哲 勳, 1856~1925)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00년대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유물은 민철훈(1856~1925)이 일제강점기 정장용 예복으로 착용했던 모닝코트 이다. 모닝코트는 테일러드 칼라, 싱글 브레스티드, 허리 절개선, 허리다트가 있어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모닝코트와 함께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도 전해 진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일제강점기 서구식 예복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 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임 ᄋ 내용 및 특징

18 -민철훈( )의 모닝코트 일습으로 모닝코트,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이다. - 모닝코트(morning coat)는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으로, 남자의 관 혼상제( 冠 婚 喪 祭 )의 어느 경우에라도 착용할 수 있으며, 저녁부터 밤에는 착용하 지 않는 정장예복이다. 모닝코트의 상의는 검정색 도스킨(doeskin)이나 캐시미어 (cashmere)와 같은 모직물로 만들고 깃은 노치드 라펠(notched lapel)이고 허리 에 절개선이 있으며, 뒷길은 무릎길이까지 온다. 앞길의 좌우 자락이 사선으로 패어 바지의 앞부분이 드러난다. 여밈은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이다. 바지는 검정이나 회색의 줄무늬 옷감을 사용한다. 조끼는 상의와 같은 옷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록코트(frock coat)가 정장용이며, 모닝코트는 프록 코트의 대용으로 반정장(semi formal)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정식 예복으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모닝코트는 일제강점기에 정장용 예복으로 많이 착용되 었다(현재까지 일본의 관료들도 예복용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 민철훈의 모닝코트는 두꺼운 검정색 모직으로 만들었고 총길이 91cm, 밑단둘레 59cm, 소매길이 68cm, 어깨넓이 18cm, 수구 15.5cm이다.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 notched lapel)에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로 앞중심에 길이로 2 개의 단추로 여몄다. 왼쪽에 행거치프 주머니가 있다. 허리에 절개선이 있고 허 리다트가 양쪽에 있어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형태이다. -조끼는 앞길은 검은색 모직, 뒤길은 검정색 공단이며 안감은 아이보리색 공단이 다. 길이는 55cm, 소매둘레 27.7cm, 옆트임 3.5cm, 어깨넓이 9cm이다. 앞 중심 에 4개의 단추가 있고, 허리에는 다트가 있다. 양쪽으로 주머니가 2개씩 총 4개 의 주머니가 있다. 조끼의 뒤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 보타이는 총길이 36.8cm이고 중심에 2개의 리본이 겹쳐있으며 리본의 길이는 9cm이고 너비는 5.5cm이다. - 바지는 회색 줄무늬 옷감을 사용하였다. 총길이 101.5cm, 바지부리(1/2) 22cm, 허리밴드 4cm, 허리둘레(1/2) 38.5cm이다. 양옆에 인포켓이 있고, 허리밴드 밑으 로 벨트 고리가 있다. 뒷중심이 3cm 트여있고, 중심의 양옆으로 6cm 지점에 단 추가 달려있다. 또한 뒤의 허리밴드 아래에 버클과 벨트가 34.5cm 너비로 부착 되어있다. 뒤 포켓의 너비는 14.5cm이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와 문관대례복 칙임관 1등 예복 포함되어 있다.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한 것이다. 민철훈은 고종 21(1884)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자리를 거쳐, 광무 3년(1899)년에는 변리공사로서 궁내부특진관 에 승임하였다.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로 부임 하였고, 광무 5년(1901)에는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그 후 광무 8년(1904)에는 주미전권공사로 전보되었다가 그 다음 해 독일특명전권대사로 부 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되기도 했지만, 융 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전권대사로 임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 다. ᄋ 등록 가치와 근거기준 -이 복식은 대한제국시대 외교관이었던 민철훈의 모닝코트이다. 대한제국 시대이

19 후 일제 강점기 때 착용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전형적인 모닝코트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민철훈의 문관대례복 1등 칙임관 복식과 함께 등록하면 좋을 것으 로 생각한다. ᄋ 종합의견 :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했던 모닝코트이다. 대한제국시대 미국공사와 유럽 여러나라의 칙임관을 지냈던 민철훈이 착용한 모닝코트라는 점 에서 의의가 있다. 민철훈의 칙임관 1등 대례복과 칙령문서 4건과 함께 일괄 등 록할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는 양호한 편임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의 모닝코트에 조끼, 바지, 나비넥타이 2점이 포함된 일습유물이다. 검정색 모직이며,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 notched lapel)에 싱글 브레스티드(single breasted)의 전형적인 모닝 코트형태를 갖추고 있다. - 조끼는 앞길은 검은색 모직, 뒤길은 검정색 공단이며 안감은 상아색 공단이다. 앞 중심에 4개의 단추가 달려 있고, 주머니가 좌우 2개씩 총 4개 있다. 조끼의 뒤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보타이는 중심에 2개의 리본이 겹쳐있다. 바지 는 회색 줄무늬 옷감으로 만들었고 양옆에 인포켓이 있고, 허리밴드 밑으로 벨 트 고리가 있다. 뒷 허리밴드 아래에 버클과 벨트가 부착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미국공사 칙령 외 3건의 문 서와 문관대례복 칙임관 1등 예복 포함되어 있다. -복식의 착용자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은 고종 21(1884)년 문과 급제, 광무 3 년(1899)년 변리공사, 광무 4년(1900)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특명전권공사 부임, 광무 5년(1901) 오스트리아 특명전권공사를 겸직하였다. 광무 8년(1904)에 는 주미 전권공사, 9년 독일 특명 전권대사로 부임하였다. 광무 10년(1906)에는 궁내부 특진관의 내직으로 보임, 융희 3년(1909)에는 다시 주독일 전권대사로 임 명되는 등 주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01년 파리에서 제작된 이 대례복은 민 철훈이 유럽에 있을 때 제작하여 착용한 것이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대한제국 외교관이었던 민철훈( 閔 哲 勳 )의 모닝코트로서, 전 형적인 모닝코트의 형태와 구성을 갖추고 있다. - 모닝코트(morning coat)는 19세기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옷으로, 야간예복 으로 착용되는 연미복(frock coat)와 달리, 관혼상제( 冠 婚 喪 祭 )의 어느 경우에라 도 착용할 수 있는 주간용 정장예복이다. - 대한제국시기의 유물이 적은 현 상황에서 착용자의 신분이 확실하고 유물의 상 태도 좋으므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칙임관을 지냈던 민철훈( 閔 哲 勳 : 1856~1925)이 착용했 던 모닝코트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철훈의 문관대례복과 칙령문서 4건과 함 께 등록문화재로 가치가 높다

20 라. 박기준 대례복 일습 1) 명 칭 : 박기준 대례복 일습 2) 소 유 자 : 박영숙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132길 34 한국자수박물관 4) 수 량 : 1식(대례의, 대례모,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 모자함 등) 5) 규 격 : 총길이 103.2cm, 등길이 46cm, 가슴둘레/2 36.5cm, 소매길이 59.5cm 6) 착 용 자 : 박기준( 朴 基 駿 1875~?)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년(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박기준(1875~?)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하여 착용했던 서구식 대례복이다. 대 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 옷솔, 모자함, 대례복 보관함까지 모두 전해지고 있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서구식 대례복이 제작국에 따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대례복의 보관방식까지도 살펴볼 수 있으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상태는 양호한 편이나 부분적으로 좀이 쓸어 있음. 특별히 검을 꽂는 플랩(flap) 부분에는 헤어져 있음 -깃(collar) 부분은 착용한 흔적이 있으며 조금 헤어져 낡은 상태임. 깃 부분에 흰 실로 박 이라고 수를 놓았지만 소장자가 편의상 표기한 것으로 생각함 ᄋ 내용 및 특징

21 -박기준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박기준( 朴 基 駿 1875~?)은 광무9년(1905)년 8월 24일 예무관물훈 5등 팔괘장수장, 국내부 1900~1910년 외교문서 및 황실비서업 무를 맡았다. - 서구식 대례복의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은 물론 옷을 손질하는 솔과 모자함 그리고 대례복 일습을 보관하는 함까지 모두 소장 되어 있다. - 대례모는 검정색 모직에 가장자리는 공작깃털이 달려있다. 모자의 가운데에 태 극무늬와 그 위에 사선으로 이화무늬의 자수와 이화 단추가 달려있다. 모자함은 대례모와 같은 형태의 철제 위에 옻칠을 하였다. -대례의는 프록코트(frock coat) 형이고, 전면에 자수된 무늬는 이화( 梨 花 :오얏꽃) 이다. 무늬의 형태는 半 開, 全 開, 未 開 의 오얏꽃을 하나의 가지에 연결한 것으로 친임관( 親 任 官 )은 11가지, 칙임관( 勅 任 官 )은 9가지, 주임관( 奏 任 官 )은 7가지로 규 정되었다. 박기준의 대례복은 7가지가 수놓아져 있다. 대례의 겉감은 검은색 모 직, 안감은 흑견으로 제작되어있다. 칼라(collar)와 소매끝동, 주머니는 파랑색 모 직 위에 금사와 프랭글을 수놓았다. 앞중심에 7개의 단추가 달려있으며, 뒤 허리 에는 2개의 단추가 있다. 뒤허리에서 밑단까지 트임이 있다. - 조끼는 앞목둘레, 앞중심선, 도련선까지 가장자리에 금사편직이 부착되어 있다. 앞 여밈에는 이화 단추 5개가 달려있다. -바지는 양옆에 요철( 凹 凸 )무늬의 금색 선이 둘러져 있고, 허리 밴드에 단추가 달 려있다. 뒷중심에는 버클과 벨트가 달려있다. 바지에 달린 단추는 영어로 요코 하마 라고 써 있어 이 옷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검( 劍 )에는 이화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검대[칼집]는 검정색 옻칠이 되어 있고 하단부는 금색 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박기준 일가의 한복류가 70 여점 있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대한제국 궁내부의 서구식 대례복은 1900년에 문관대례복에 포함되어 정해졌다 가 1906년 2월 27일에 분리되어 새롭게 제정되었다. 현재까지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박기준 일가의 유물은 대례복을 포함하여, 한복을 비롯한 70여점이 있다. 등록문 화재로 등록할 때 개항기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등 격동기의 관리복의 변화와 편복류를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함께 등록할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부분적으로 좀의 흔적이 있고 낡은 상태임 ᄋ 내용 및 특징 -박기준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박기준(1875?)은 대한제국의 관료이며 일제강

22 점기의 법관이다. 그는 광무9년(1905)년 8월 24일 예무관물훈 5등 팔괘장수장, 국내부 1900~1910년 외교문서 및 황실비서업무를 맡았다. - 서구식 대례복의 일습 중 대례모, 대례의, 조끼, 바지, 검과 검대, 훈장은 물론 옷을 손질하는 솔, 모자함, 대례복 일습을 보관함까지 포함된 일괄 유물이다. ᄋ 문헌자료 -한국자수박물관 편(1991),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 유희경, 이강칠, 허동화, 이순자(1991), 대한제국시대 문무관복식제도( 大 韓 帝 國 時 代 文 物 展 카다로그 附 錄 ), 韓 國 刺 繡 博 物 館 出 版 部 -이경미(2012), 제복의 탄생, 민속원 -경운박물관(2012), 대한제국 남성 예복 새로운 물결, 주체적 수용 ᄋ 기 타 -소장자가 후손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복식 외에도 박기준 일가의 한복류가 70 여점 있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이 유물은 대한제국시기 궁내부의 서구식 대례복 일습니다. 궁내부의 서구식 대 례복은 1900년에 문관대례복에 포함되어 정해졌다가 1906년 2월 27일에 분리되 어 새롭게 제정되었다. 지금까지 대한제국 궁내부 및 예식원 대례복의 도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복식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박기준 일가의 유물은 대례복과 한복 등 70여점이 있다. 개항이후 대한제국시기 와 일제강점기 등 근대 우리나라 복식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하고 가치 있는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박기준이 착용했던 예복으로 일습을 갖추고 있고 대한제국시기 우리 나라 서구식예복의 면모를 알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마. 김선희 혼례복 1) 명 칭 : 김선희 혼례복 2) 소 유 자 : 김은영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 ) 수 량 : 1점 5) 규 격 ᄋ 원삼 : 앞길이 113cm, 뒷길이 120cm, 화장 80cm ᄋ 치마 : 120.5cm(허리포함), 허리말기 길이 81cm, 너비 10cm ᄋ 띠 포함 6) 착 용 자 : 김선희( ) 7) 재 질 : 견(화문단) 8) 조성연대 : 1935년(소장자 가문 제작)

23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이 원삼은 연한 녹색 비단으로 만든 혼례용 원삼인데 가장자리를 따라 붉은 선단을 댄 일명 개성 원삼 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매에는 여러 색상의 색동이 달려 있고 수 구에도 홍색 선단을 대었다. ᄋ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1914~1993)의 혼례(1938)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 던 것이다. 근현대 직물과 의례복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 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녹색의 모본단에 빨강 모본단으로 둘레에 선을 두른 원삼이다. 파랑, 홍색, 노랑, 홍색, 노랑의 색동 소매에 대대를 두른다. 개성지방 원삼은 경기지방과 다르게 겉감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다. 배자 깃을 달듯이 꼬집어 박기로 원삼 깃을 달 았으며, 원삼 단추가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원삼단추는 금파로 만든 것이 2 개 있었다고 하나, 이를 이용하여 브로치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 원삼의 바느질은 어깨솔기가 있고, 등솔은 입어서 오른쪽으로 넘겼다. 홑옷이나 소매부분에만 안감이 대어져 있다. 소매의 색동은 가름솔로 연결하였다. 대대의 옷감은 덧단과 같은 옷감이며, 원삼의 겉감과 치마의 옷감 등 모두 같은 무늬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 원삼과 함께 착용하였던 홍색 치마가 남아있다. 치마는 혼례 때 입었던 것으로, 원삼 겉감과 같은 무늬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치마는 왼꼬리이며 치수는 길이 120.5cm이다. 허리에는 흰 옥양목으로 만든 허리말기가 81cm, 10cm 너비로 달 려있다. ᄋ 문헌자료 -북한지방의 전통복식, 개화이후-해방전후(현암사) ᄋ 기 타 -이 원삼은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인 김은영 선생의 친정 어머니 의 혼례복이다. 김은영선생의 친정아버지는 근대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이다. 친 정어머니 김선희는 1935년 3월3일에 혼인하셨고, 2007년 93세로 사망했다. 친정 어머니는 개성출생이며, 함북 이원에서 성장하였고 혼례도 함북이원에서 했다고

24 한다. 친정아버지인 김광균의 어머니(김선희의 시어머니)가 사람을 시켜 만들어 서 개성머리어멈과 함께 혼례 때 보낸 것이라 한다. < 사진 1> 은 김광균과 김선 희의 혼례사진이다. < 사진 2> 는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재현한 사진 으로, 착용자는 이 원삼의 소장자인 김은영의 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원삼 과 사진에 남아 있는 치마, 그리고 봉띠[ 大 帶, 鳳 帶 ]이다. 사진 속의 개성화관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민속박물관의 전시를 위해 김선희의 고증으로 재현한 것 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한삼은 김선희가 며느리 볼 때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한 다. 이 원삼은 김선희가 수의( 壽 衣 )로 사용하려고, 빨간 보자기에 싸서 6.25 전쟁 에서도 보관하였다고 한다. 보관은 김선희가 생전에 담배가루를 넣어 좀이 써는 것을 방지했다고 한다. 김광균 시인과 부인의 혼례모습 재현 모습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원삼은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 부부의 혼인 때 신부인 김선희가 입었 던 옷이다. 당시 혼례식 사진도 남아 있으며, 제작연도와 착용자가 확실한 옷으 로 가치가 있다. 혼례 때 입었던 옷으로 수의( 壽 衣 )로 사용하던 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옷이다. 또한 이웃에 혼례용으로 빌려주면 수의로 입을 때, 망자가 좋은 곳 으로 간다는 풍습 등이 있어 이 옷을 이웃에게 빌려주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다. 현재 개성지방의 혼례풍습을 알 수 있는 좋은 유물이다. 개성지방은 서울이나 경기지방과는 다른, 혼례용 원삼과 머리모양 등이 특이하다. 이 외도 개성지방 혼례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등도 함께 전래되고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하 는 것을 추천한다. 보관상태도 매우 좋다. ᄋ 종합의견 : 개성지방 원삼으로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이 원삼은 근대시인으로 유 명한 김광균(1914~1993)의 혼례(1935)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것이다. 근 현대시대의 직물과 복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 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녹색 길과 색동소매에 빨강 모본단으로 가장자리 선을 두른 전형 적인 개성지방의 원삼이다. 원삼과 함께 착용하였던 홍색 치마는 흰색 옥양목 치 마허리가 달린 전통적인 형태이다 ᄋ 문헌자료 -북한지방의 전통복식, 개화이후-해방전후(현암사)

25 - 이경자, 홍나영, 개성 복식의 연구-실물을 통한 실증적 고찰, 복식 16호, 한국 복식학회 ᄋ 기 타 - 이 원삼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장인 김은영 선생의 모친 김선희의 1930년대 혼례 예복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원삼은 근대 시인으로 유명한 김광균( ) 부부의 혼인 때 신부인 김 선희가 입었던 옷이다. 1930년대 개성지방의 혼례복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착용자가 확실하고 혼례사진도 남아 있어 등록문화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시인 김광균(1914~1993)의 혼례 때 부인인 김선희가 착용했던 개성지 방의 원삼이다. 근현대시대의 복식자료로 가치가 충분하다 마. 이해상 내외 상복 1) 명 칭 : 이해상 내외 상복 2) 소 유 자 : 경운박물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로 29 4) 수 량 : 2식 5) 규 격 ᄋ 이해상 상복 -최의( 縗 衣 ) : 길이 115.3cm, 화장 79.3cm -상( 裳 ) : 전3폭(하단폭 48cm), 후4폭(하단폭 65.5cm), 길이 62.2cm -중단( 中 單 ) : 길이 113cm, 화장 83cm, -행전( 行 纏 ) : 길이 24.5cm, 너비 20cm -굴건( 屈 巾 ) : 높이 36cm, 너비 17cm -수질( 首 絰 ) -건( 巾 ) -요질( 腰 紩 ) ᄋ 이해상 부인 상복 -대수장군( 大 袖 長 裙 ) : 뒷길이 115cm, 화장 76.8cm -중단( 中 單 ) : 길이 123.5cm, 화장 70cm -요질( 腰 紩 ) 6) 착 용 자 : 이해상( )과 부인 신계완( ) 7) 재 질 : 삼베 8) 조성연대 : 1970년

26 9) 조사자 의견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이해상 상복 ᄋ 이해상이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일습이다. ᄋ 1969년 이후 상복과 장례과정이 간소화되었고, 탈상한 후에 상복은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통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복은 착용자가 분명 하고 착용했던 상황도 역사적인 영왕 이은의 장례식이므로 역사적, 문화적, 근대 의생활 변화에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나. 이해상 부인 상복 ᄋ 이해상의 부인 신계완이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중 대수 장군( 大 袖 長 裙 ), 중단( 中 單 ), 요질( 腰 紩 )이다. 대수장군은 여자 상복의 제일 겉에 입는 옷으로, 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이다. ᄋ 1969년 이후 장례과정의 간소화, 탈상 후 상복을 소각하는 현상 때문에 전통상복 유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복은 착용자와 착용했던 상황도 분명하므로 근대의 생활 변화에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따라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이해상 상복

27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이해상(1913~1985)은 이달용의 아들로서, 흥선대원군의 형인 흥완군, 완순군, 이 재완, 이달용의 가계를 이은 사람이다. 이해상은 영왕과 재종질( 再 從 姪 )관계이 다. 이 상복은 1970년 5월 영왕 이은의 장례 때 이달용의 아들과 며느리인 이해 상과 신계완이 입었던 옷이라고 한다. - 이해상의 상복( 喪 服 )은 굴건( 屈 巾 ), 건( 巾 ), 수질( 首 絰 ), 최의( 縗 衣 ), 상( 裳 ), 요질 ( 腰 紩 ), 중의( 中 衣 ), 행전( 行 纏 )으로 구성되어 있다. - 건(4017)과 굴건( 屈 巾 ) 수질( 首 絰 4016)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 3가지 를 갖춘 것을 굴건( 屈 巾 ) 이라고 한다. 최의( 縗 衣 4023)는 거친 마포로 만들었으 며, 가슴 왼편에는 최( 縗 )가 달려있다. 상( 裳 4025)은 전3폭, 후4폭이다. 삼[ 麻 ]으 로 만든 요질( 腰 紩 4019)과, 베로 만든 행전( 行 纏 4018)이 있다. 속에 입는 중의 ( 中 衣, 中 單 4022)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상복 일습 가운데 지팡이와 짚신만 빠 진 상태이다. 이와 같은 상복( 喪 服 )을 굴건제복( 屈 巾 祭 服 )이라 부르기도 한다. ᄋ 문헌자료 -조우현(1989), 조선시대 상복에 관한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 경기여고 경운박물관 유물등록카드 4016, 4017(굴건 일습), 4018(행전 일습), 4019(요질), 4022(중단), 4023(최의), 4025(상) ᄋ 기 타 - 이 상복은 경기여고 졸업생인 이남주가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 상복의 착용자는, 기증자의 부모로 어머니 신계완 또한 경기여고 졸업생이다. 이 굴건제복은 기증자의 아버지가 1970년 5월 1일 낙선재에서 거행된 영왕의 초종에 입었다고 한다. 기증자 아버지 이해상은 영왕의 재종질( 再 從 姪 )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해상 상복은 영왕 이은(1897~1970)의 초종( 初 終 ) 때 거행된 1970년 5월1일에 착용하였던 옷이며, 이 옷을 입고 이해상은 명정을 썼다고 한다 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대통령 고시로 선포한 이후, 상복을 간소화하고 노제와 삼우제등을 없애기로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복이 남아있기 어렵다. 특히 상복은 탈상 이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재 전통 상복은 찾아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의 상징적인 인물인 영왕 이은의 장례 식 때 착용한 상복은 역사적, 문화적, 생활 등에서 기념이 되며,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과 가정의례준칙의 반포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생 활에서 마지막 전통적인 상복은 근현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1879~1970) 초상 때 착 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이다.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현대 제복 을 알 수 있어,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추천한다. 나. 이해상 여자 상복 ᄋ 현 상 : 상태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 이 상복의 착용자는 이해상의 부인 신계완이다. 이해상은 고종의 사촌인 완순 군의 고손자로서 영왕과는 재종질( 再 從 姪 )로 6촌 사이이다. 이해상의 부인 신계 완(~1991)은 영왕의 장례 때, 이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대수장군은 여자 상복 일습 가운데 제일 겉에 입는 옷으로, 저고리와 치마가 붙

28 은 형태이다. 저고리 길이는 42cm, 치마길이 73cm, 화장 78cm, 뒷품 60cm, 치 마폭은 188cm이다. -요질은 126cm이다. 이 외도 중단이 있다. ᄋ 문헌자료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2012) 아름다운 기증, 소중한 모음 도록 pp 년 5월 9일 경향신문 7면 -1970년 5월 9일 mbc TV 9시 50분 영왕 장례식 중계 -대한뉴스 제 776호 영왕 서거 ( ᄋ 기 타 - 이 상복의 기증자인 이남주는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생이며, 상복을 직접 착용 했던 이해상의 부인인 신계완(1913~1991)도 경기여고 23회 졸업생이다. 이남주 가 모교 박물관에 부모의 상복( 喪 服 )을 기증하였다. ᄋ 등록가치 및 근거기준 - 이해상 상복은 영왕 이은( )의 영결식이 거행된 1970년 5월에 착용하 였던 옷이다. 1969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대통령 고시로 선포한 이후, 상복을 간소화하고 노제와 삼우제등을 없애기로 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복이 남아있 기 어렵다. 특히 상복은 탈상 이후 태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현재 전통 상복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실의 상징적인 인물인 영왕 이은의 장례식 때 착용한 상복은 역사적, 문화적, 생활 등 에서 기념이 되며, 상징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과 가정의례준칙 의 반포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생활에서 마지막 전통적인 상복은 근현대 등록문 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대한제국시대 왕실종친인 이해상부부가 영왕(1879~1970) 초상 때 착 용하였던 상복( 喪 服 ) 일습이다. 전통 상복을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근현대 제복 을 알 수 있어,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추천한다. <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명칭 : 이해상과 부인의 상복 일습 -색상 : 소색 -소재 : 삼베 ᄋ 내용 및 특징 -본 유물은 영왕 이은( 李 垠 ; )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해상과 그의 부인이 착용한 것으로 이해상의 딸인 이남주가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영왕은 고종황제의 일곱 번째 아들로 어머니는 순헌황귀비 엄씨이다. 그는 순종 황제의 제위기간인 1907년에 황태자로 봉해졌고 1926년 순종황제의 사후 이왕 ( 李 王 )으로 불리었다. 대한민국 수립 후 귀국이 허락되지 않아 일본에 머무르다 가 1963년 귀국하였고 1970년 5월 1일 오후 1시에 낙선재에서 사망하였다. - 영왕의 장례는 그가 사망한 다음날인 5월 2일 정부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이 협의하여 15명으로 구성된 영왕 장의준비위원회(위원장 李 建 雄 ) 에서 의논하 여 9일장으로 진행하였는데 황태자의 예우로 하였다. 주요 장의절차는 다음과 같았다.(동아일보 1970년 5월 4일 7면 참조) 5월 5일 소렴( 小 斂 ), 대렴( 大 斂 ), 재실은정( 梓 室 銀 釘 : 관에 못을 박음) 5월 6일 성복( 成 服 )

29 5월 7일 재실서상자( 梓 室 書 上 字 : 판위에 上 자를 씀), 결과( 結 裹 : 관을 묶음) 5월 9일 계빈발인( 啓 殯 發 靷 : 관을 밖으로 내옴), 노전( 路 奠 : 청량리 로타리에 서 노제를 지냄), 천전( 遷 奠 : 묘소로 옮긴다는 제사) <그림 17>재실을 대여로 옮긴 후 낙선재를 나오는 유족들, 1970년 5월 9일 동아일보 자 료 사진 - 이 유물은 이해상과 그의 부인 신계완이 영왕의 장례식에서 착용한 것이다. 이 해상은 고종황제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 李 載 完, )의 아들인 이달용 ( 李 達 鎔, )의 3남으로, 영왕은 그의 재당숙이 된다. 이해상은 가계로 보아서도 상복을 입어야 하는 유복친( 有 服 親 )이지만 조선시대의 경우로 비추어 볼 때 영왕의 상을 국상으로 보아 참최복( 斬 衰 服 )을 착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國 朝 喪 禮 補 編 에 따르면 국상 때 종친과 문무백관은 모두 참최복을 착용하 여야 한다. < 그림1> 은 영왕 장례식 당시 상주인 이구(사진에서 맨 왼쪽)와 함 께 참최복을 착용한 유족들을 촬영한 사진으로 동아일보 1970년 5월 9일자 지 면에 실렸던 장면이다. - 기증자인 이남주의 증언에 의하면 이 상복은 그의 부모가 낙선재에서 거행되었 던 영왕의 초종( 初 終 : 초상이 난 때부터 졸곡까지의 기간)에 입었던 것이고, 특 히 그의 부친은 영왕의 명정을 쓴 분이라고 한다. 본 상복을 착용한 모습이 사 진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착용자가 명백하고 착용 상황이 뚜렷하다. -유물의 구성은 남자 상복 일습과 여자 상복 일습이다. 유물 중 남자상복은 다음 < 표1> 과 같다. < 표1> 남자 상복 일습 참최의(제복)와 참최상 광수주의형 중단 굴건(수질) 효건 요질2점 행전

30 <그림2>최복 도식화 <그림3>최상 도식화 - < 그림2>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최복의 길이는 115.3cm, 화장은 79.3cm 이다. 굴 건의 높이는 36cm, 너비는 17cm이고, 행전의 길이는 24.5cm, 너비는 20cm이다. 예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 대로 최복을 구성할 때는 허리부분을 따로 마름질하여 붙이는데 본 유물은 그 부분은 생략되었고, 허리아래에 임( 衽 )이라고 하는 자락 과 연결하여 구성되어 있다. < 그림3> 의 최상은 전3폭, 후4폭의 구성으로 한 폭 의 너비는 16cm 정도이고, 폭을 연결한 후 맞주름을 잡아 허리에 연결하였다. 눈물받이인 최( 衰 )는 父 喪 에 해당되어 왼쪽 가슴에 붙어 있고 크기는 가로가 12cm, 세로가 17cm이다. 지극한 애도를 등에 짊어진다는 의미를 지닌 부판( 負 板 )은 뒷길에 부착되어야 하지만 탈락된 것으로 보인다. -<표1> 에서 중단 중 한 점은 남자 상복과 한 점은 여자 상복과 함께 착용한 것 으로 생각된다. 또한 요질 두 점 중 한 점은 여자 상복의 구성품으로 생각된다. - 이해상의 부인이 착용한 여자 상복으로는 대수장군과 광수주의형 중단이 함께 기증되었고 유물의 사진은 < 표2> 와 같다. < 표2> 여자 상복 일습 대수장군 앞 대수장군 뒤 -대수장군의 저고리길이는 42cm, 치마길이는 73cm 이며 총길이는 115cm이다. 화 장은 78cm, 뒷품은 60cm, 치마폭은 188cm이다. 하상에 맞주름을 잡아서 상의와 연결하였다. 앞가슴에 눈물받이인 최는 부착되어 있지 않고, 뒷길에 부판이 달려 있다. 대대가 부판 아래를 지나 앞길 중심에서 매듭지어진다. ᄋ 기 타 -착용자 이해상의 딸인 이남주가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31 -본 유물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하고 국가에서 9일장으로 장례를 치른 영왕 이 은의 장례 때에 재종질인 이해상과 그의 부인이 착용한 남녀 상복 일습이다. -유물의 구성은 남자 상복으로 참최의(제복)와 참최상, 광수주의형 중단을 비롯하 여 효건, 수질, 요질, 행전과 여자 상복인 대수장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 민속적인 전통상 상복은 장례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관습이지만 이 상복 일습은 후손들이 잘 보존하여 일습의 형태로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전통적인 상 복 착용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재 대한제국 마지막 왕으로 칭해졌던 영왕의 상례라는 착용일과 왕실종친인 이해상과 부인 신계완이 착용하였다는 착용자가 명확한 유물이므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ᄋ 종합의견 : 본 유물은 1970년 5월 1일에 사망하고 국가에서 9일장으로 장례를 치 른 영왕 이은의 장례 때에 재종질인 이해상과 그의 부인 신계완이 착용한 남녀 상복 일습이다. 전통적인 상복 착용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재 대한제국 마지막 왕으로 칭해졌던 영왕의 상례라는 착용일과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 는 측면에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바. 백선엽 군복 1) 명 칭 : 백선엽 군복 2) 소 유 자 : 전쟁기념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4) 수 량 : 5점 ᄋ 하예복 상하 각 1벌, 동정복 상하 각 1벌, 동만찬복 상하 각 1벌, 동근무복 상하 1벌, 트랜치코트 1벌 5) 규 격 ᄋ 하예복 -상의 : 총길이 71cm, 가슴둘레/2 52cm, 소매길이 57cm -하의 : 바지길이 97cm, 허리둘레 88cm ᄋ 동정복 -상의 : 총길이 75cm, 가슴둘레/2 48.5cm, 소매길이 58cm -하의 : 바지길이 100cm, 허리둘레 88cm ᄋ 동만찬복 -상의 : 총길이 56cm, 뒷길이 52.5cm, 가슴둘레/2 49.5cm, 소매길이 59.5cm -하의 : 바지길이 103.5cm, 허리둘레 88cm ᄋ 동근무복 -상의 : 총길이 85cm, 가슴둘레/2 53cm, 소매길이 56.5cm -하의 : 바지길이 101cm, 허리둘레 86cm ᄋ 트렌치코트 : 총길이 122cm, 가슴둘레/2 60cm, 소매길이 63.5cm 6) 착 용 자 : 백선엽( 白 善 燁, 1920 ) 7) 재 질 : 개버딘, 울 등 8) 조성연대 : 1950~1962년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백선엽(1920 현재)이 1950년대 착용했던 여름 예복, 겨울 정복ᆞ예복ᆞ근무복, 트랜치 코트이다. ᄋ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분명하고 계급에 따른 표식을 알 수 있다. 또한 계절에 따른

32 하예복 동정복

33 동만찬복 동근무복

34 트렌치 코트 예복의 형태를 비교할 수 있고 착용목적에 따른 형태 비교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 대 군사복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되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 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매우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백선엽(백선엽 : 1920~현재)은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 군인이자 대한민국의 군 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 교육인이다.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제9기로 졸업하 여 만주국의 장교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였으며 만주군 중위로 있을 때 1945 년 광복을 맞았다. 해방 직후에는 고당 조만식의 비서로 활동했다. 1946년 군정 기 남조선국방경비대에서 활동하였고, 1949년 제5사단장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창군 주역으로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에 대한민국 국군 장군으로 참여하였다. - 백선엽 육군 장군의 옷은 하예복(상하 1벌), 동정복(상하 1벌), 동만찬복(상하 1 벌), 동근무복(상하 1벌) 그리고 트렌치코트 1벌이다. 1. 하예복( 夏 禮 服 ) 상하의 1벌로 구성되어 있고 흰색의 개버딘으로 제작하였다. 홑옷으로 자켓의 상부에만 안감을 넣었다. 상의는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에 싱글 브레스 티드(single breasted)이다. 앞중심에 무궁화 장식의 단추 4개를 달아 여몄다. 양 쪽으로 각 상하 2개씩 모두 4개의 주머니가 있다. 상부의 주머니는 아웃포켓 (patch pocket)으로 뚜껑(flap)에 장식단추가 달려있다. 왼쪽 주머니 위에 군인들 의 상징인 약장이 8단 22개가 달려있다. 오른쪽 주머니 위에는 태극무늬 수장식 이 있다. 양 어깨에는 장식 단추가 있는 견장이 있고 장군을 상징하는 별이 4개

35 달려있다. 뒷트임이 있다. 하의인 바지도 상의와 같은 옷감인 개버딘으로 만들었다. 뒷주머니는 양쪽 2 개로 뚜껑(flap)이 달려있다. 착용자가 분명한 제복으로 여름 행사용 예복이다. 착용한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2. 동정복( 冬 正 服 ) 상하의 1벌로 구성되어 있고, 겉감은 두꺼운 카키색 울(wool) 저지(개버딘), 안감은 실크(silk)를 사용하였다. 형태는 하예복과 유사하지만 포켓의 flap 모양 이 조금 다르다. 상의는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에 싱글 브레스티드 (single breasted)이다. 앞 중심에 무궁화 장식의 단추 4개를 달아 여몄다. 양쪽 으로 각 상하 2개씩 모두 4개의 주머니가 있다. 주머니는 山 자를 거꾸로 놓은 듯한 모양의 뚜껑(flap)에 장식단추가 달려있다. 뚜껑의 가장자리는 상침 장식이 있다. 뚜껑 양쪽 가장자리에 작은 스냅 단추를 달아 뚜껑을 고정하였다. 주머니 는 웰트 포켓[입술 주머니]이다. 어깨에는 장식 단추가 있는 견장이 있고 장군 을 상징하는 별이 4개를 금속사로 수놓았다. 뒷트임이 있다. 상의의 안쪽에 한 자로 백선엽 이라는 미싱자수가 놓여있다. 겨드랑이 안쪽에 너비 12.5cm, 높이 3cm의 반달모양의 가죽위에 강호 양복 이라는 상호와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 되어 있다. 안감에는 많이 착용하여 훼손된 곳이 있다. 상의의 가장자리의 일부 는 상침하였다. 하의인 바지도 상의와 같은 옷감인 울(wool) 저지으로 만들었다. 뒷주머니는 양쪽 2개로 뚜껑(flap)이 달려있다. 그 밑에 2.5cm의 단추를 달아 주머니를 고정 하였다. 3. 만찬복 1958~1962년까지의 만찬복( 晩 餐 服 )은 서양에서 착용하던 디너 재킷(Dinner jacket: 약간의 약식예장)을 뜻하는 것이나, 군에서 제정한 만찬복의 모양은 이 와는 다르게 메스 재킷(Mess jacket) 형태로서, 연미복에서 꼬리를 잘라낸 형태 의 만찬복을 말한다. 재킷의 어깨에는 견장대, 소재의 수장( 袖 章 )은 관등의 구별 없이 폭 2.5cm의 복지색 편직 띠를 부착하였고, 앞면의 중형 단추와 견장대의 소형단추는 황금색 금속제이다. 바지의 양 측면 봉제선상에는 관등을 표시하는 흑색 편직 띠를 관등에 따라 장관급은 폭 1.5cm 크기를 2줄을 부착한다. 고 하 였다. 이를 참고하여 보면 이 옷은 1958~1962년 사이에 착용되었던 동만찬복 ( 冬 晩 餐 服 )이다. 카키색 울(wool:모직물) 짧은 볼레로 형식의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 자켓으로 소매 끝에 검은색의 선장식이 8.5cm 정도 달려 있다. 허리 에는 양쪽에 2개씩 다트가 있고, 더블 단추가 사선으로 달려있다. 테일러드 (tailored) 칼라(collar)이고 왼쪽 칼라에는 단추 구멍이 있다. 어깨에는 3cm 너 비의 단추가 달린 견장에 금속사로 수놓은 별이 4개 있다. 라펠(lapel)과 왼쪽 길에는 훈장을 걸 수 있는 실 루프(loop) 3개가 있다. 소매의 끝에서 3.5cm 올 라 온 곳에는 너비 7.8cm의 편직으로 된 브레이드 장식이 있다. 안 포켓 가까 이에 라벨이 있다. 바지의 양옆에는 너비 1.8cm 금색 브레이드 장식이 두 줄 나란히 붙어있고, 서스펜더 벨트(suspender belt)를 맬 수 있게 바지 안쪽에 흰 단추가 달려있다. 바지의 안감은 무릎 아래 길이 정도 들어 있다

36 4. 동근무복 카키색 울로 만든 동근무복으로 셔츠와 바지 1벌로 구성되어 있다. 컨버터블 칼라(Convertible collar)에는 별 배지가 4개 달려있으며, 어깨에는 견장이 달려 있다. 커프스에는 단추가 2개 달려있다. 셔츠 앞 중심의 양쪽에 아웃포켓이 달 려있다. 밑단은 굴린 형태이다. 여러 곳에 충해를 입었다. 바지 양옆에 인포켓이 있으며, 뒤에는 뚜껑이 달린 포켓이 2개씩 있다. 허리 안쪽으로 서스펜더(suspender) 벨트(belt)를 걸 수 있는 단추가 있다. 바지 포켓 안쪽에는 상표와 벨트에 W-9478 이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동근무복은 미국에서 제작된 기성복이다. 5. 트렌치 코트 전형적인 트렌치 코트의 형태이다. 더블 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이며 칼 라 안에 단추가 달려있다. 허리에는 벨트가 있고, 뒷 중심에는 47.5cm 트임이 있다. 단추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더블(double)로 3줄 달려있다. 소매 끝에는 밴드가 있고 단추 4개가 달려있다. 어깨에는 견장이 있고, 별이 4개 달려있다. 이 트렌치코트의 안쪽에는 H.NAKASHIMA/OSKA,TOKYO라는 라벨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962년까지 주로 장교들에게 지급하여 정복 근무복 작업복 등의 겉옷으로 착용하였다고 한다. 보존상태 매우 좋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Ⅱ ᄋ 기 타 : 백선엽 장군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백선엽 육군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벌과 트렌치 코트 1벌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건의한다. ᄋ 종합의견 : 백선엽 육군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 벌과 트렌치코트 1벌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산증인으로 대한민국 장군복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근무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복이 갖추져있 다.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건의한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상태 매우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이 유물들은 백선엽(1920~ )장군의 여름 예복(상하 1벌), 겨울 정복(상하 1벌), 겨울만찬복(상하 1벌), 겨울근무복(상하 1벌) 그리고 트렌치코트 1벌이다. ᄋ 문헌자료 -국방군사연구소(1997), 韓 國 의 軍 服 飾 發 達 史 Ⅱ ᄋ 기 타 -백선엽 장군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백선엽 장군의 하예복, 동정복, 동만찬복, 동근무복, 상하의 각 1벌과 트렌치코트 1벌 유물로서 대한민국의 육군복식 그중에서도 장군의 각종 유형의 복식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착용자가 확실하고 유물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여 등

37 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백선엽(1920 )장군의 근무복에서부터 예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 형의 복장을 알수 있는 자료로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사. 판사 법복 1) 명 칭 : 판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 량 : 1점 5) 규 격 : 길이 110cm, 화장 85cm, 가슴둘레/2 69cm 6) 착 용 자 : 김홍섭( )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53년 추정( 년 착용)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판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으로, 김홍섭( ) 판사가 1953년부터 서울고등법원장 재직 중 사망한 1965년까 지 착용하였던 것이다. 착용자와 착용 시기가 확실한 판사 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 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판사 법복은 김홍섭(1915~1965)이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 중에 입었던 법 복이다. -해방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몇 년 동안 법복은 정비되지 못하였다. 1953년 3 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이 법복은 검정색 모직(확인) 가운으로, 목 부분에는 스탠드 칼라(stand collar) 를 부착하고 검정색 법모와 함께 착용하였다. 가운의 앞에는 5개의 단추가 달려 있는 탭(tap)이 있어 앞에서 여미게 되어 있다. 소매는 두리소매이다. 가슴 중앙 에는 지름 20cm의 무궁화 무늬의 은사로 몰 자수되어 있다. 현재는 은사가 변 색되어 마치 갈색처럼 보인다. 함께 보관되어 있는 법모는 구름과 태극무늬를 은사로 수놓았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 7월 26일 칙령 제222호와 1890년 (명치 23년) 10월 23일 칙령 제 260호 조선총독부 재판소 직원의 복제에 관한 건에 의한 판사 법 복임

38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으 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과 변색. ᄋ 내용 및 특징 -이 판사 법복은 김홍섭(1915~1965)이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 중에 입었던 법 복이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기준 및 근거기준 -이 옷은 김홍섭(1915~1965) 판사가 고등법원에 근무하던 당시에 착용하였고 소 장해왔던 판사의 법복이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까지 유 지되었다. 당시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의 색상과 형태는 모두 같으나, 무궁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판사 의 법복에 장식된 백색의 자수는 은사로 자수되어 있다. 전 민복기 대법원장의 검사, 변호사 법복과 자수문양의 색상만 달라 당시의 규정과 일치하는 유물로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판사법복이며 착용자(김 홍섭)가 분명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아. 검사 법복 1) 명 칭 : 검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 량 : 1점 5) 규 격 : 길이 110cm, 화장 85cm, 가슴둘레 140cm 6) 착 용 자 : 민복기(1913~2007) 7) 재 질 : 모직 8) 조성연대 : 1953년 추정( , 년 착용) 9)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검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으로,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복기(1913~2007)가 195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또 는 1955~1956년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때에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착용자 와 착용 시기가 비교적 확실한 검사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 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39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 이 검사 법복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대법원장 임명 전인 195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또는 1955~1956년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때에 착 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검사법복이다. -해방이후 6.25 동란을 거치면서 몇 년 동안 법복은 정비되지 못하였다. 1953년 3 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이 법복은 김홍섭 판사의 판사법복과 형태는 동일하나 무궁화 무늬의 색상만 다 르다. -검정색 모직(확인) 가운으로, 목 부분에는 스탠드 칼라(stand collar)를 부착하고 검정색 법모와 함께 착용하였다. 가운의 앞에는 5개의 단추가 달려있는 탭(tap) 이 있어 앞에서 여미게 되어 있다. 양쪽에는 주머니가 있다. 소매는 두리소매이 다. 가슴 중앙에는 지름 20cm의 무궁화 무늬 속에 지름 10cm의 무궁화가 금사 로 몰 자수되어 있다. 함께 보관되어 있는 법모는 지름 5cm의 무궁화 무늬 속 에 태극 무늬가 은사로 수놓았다. 모자 뒤쪽에는 리본장식이 있다. 리본장식의 안쪽에 고무줄로 착용자의 머리 사이즈를 조정할 수 있다. -길이 110cm, 화장 73cm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기증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검사법복으 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내용 및 특징 -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소장해 온 검사의 법복이다. 민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1956년 이전의 유물로 추정된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법복의 색상과 형태는 같으나 무궁 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검 사 법복의 무궁화 자수는 금사로 수를 놓았다. 김홍섭 판사의 은사(백색) 무궁 화 자수 유물과 자수문양의 색상만 달라 당시의 규정과 일치한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 기증.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소장해 온 년 시기의 검사의 법복이다. 이는 민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 추

40 정가능하다. 법복에는 금색으로 무궁화 자수를 수놓아 규정과 일치한다. 1950년 대우리나라 법복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검사법복이며 착용자(민 복기)가 분명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자. 변호사 법복 1) 명 칭 : 변호사 법복 2) 소 유 자 : 대법원 법원도서관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219 4) 수량, 규격 및 재질 등 연번 구 분 규 격 재 질 착용자 1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길이 110cm, 화장 73m 모직 김홍섭 년형 변호사 법복 길이 110cm 모직 민복기 계 2점 조성연대 (착용시기) 1941년 ( ) 1956년 ( ) 비 고 5) 조사자 의견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이 변호사 법복은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던 김홍섭(1915~1965) 판사가 일제강점 기인 1941년부터 해방 때까지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 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므로 근대의 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1953년 3월 5일에 발표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하여 제작ᆞ착용된 변호사 법복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의한 것이 다. 대법원장을 역임한 민복기(1913~2007)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 였다고 하는데 그 시기에 착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착용자와 착용 시기가 비 교적 확실한 변호사 법복이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판단된다. <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 이 변호사법복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변호사로 활동 할 때 착용한 것이다. 김홍섭은 1941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당시 김병로( ~ )와 함께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을 때이다. - 변호사의 법복으로 규정에 따라 흰색의 오동나무 꽃무늬와 당초무늬가 수 놓여 있다. 전해오는 사진에 보면 모자를 착용했으나 현재 모자는 없는 상태이다. - 법복은 스탠드 칼라(stand collar)가 달린 검정색 가운과 법모( 法 帽 )로 구성되었 다. 가운은 앞 중심에 부착한 4개의 단추로 여미게 되어있다. 오동나무 꽃과 당

41 초무늬가 어깨와 가슴에 구름무늬처럼 수 놓여있다. -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 법복에 관한 규정(대정 9년 7월 27일자 제정 공포 칙령 제 222호 및 대정 9년 8월 2일자 조선총독부 관보 제 2393호)이 새로 마련되어 검은색 모직( 毛 織 ) 바탕에 일제의 상징인 오동나무꽃 무늬를 수놓은 법복과 구 름무늬가 있는 모자를 착용하게 되었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 형태와 무늬 의 구성은 같았고 오동나무 꽃 색깔에 구별이 있었다. 오동나무 꽃은 일본내각 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무늬의 색은 판사는 자색, 검사는 비색, 변호사는 흰색이었고, 고등법원은 오동나무 꽃 7개, 복심법원은 5개, 지방법원은 3개로 꽃 의 색깔과 숫자로 구별하였다. 길이 110cm, 화장 73cm이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일제 강점기 시대인 1920년 7월 26일 칙령 제222호와 1890년 (명치 23년) 10월 23일 칙령 제 260호 조선총독부 재판소 직원의 복제에 관한 건에 의한 변호사 법복임. 일제 강점기 시대 법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ᄋ 종합의견 : 이 변호사법복은 1941년부터 해방 때까지 독립투사 변론에 앞장섰던 김홍섭(1915~1965)판사가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등록자료로 추 천하는 바이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변호사 법복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착용하고 소장했던 변호사 법복이다. 전 대법원장 민복기는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이 있 으므로 당시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대 한민국의 공식적인 법복이 마련되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판사는 백색, 검사 는 황색, 변호사는 자색의 무늬를 수놓았다.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 새로운 규칙을 정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6년 이후 변호사는 판사 검사와 달리 더 이상 법복을 입지 않았다. 이 변호사 법복은 김홍섭 판사법복이나 민홍기 전 대법원장 검사과 형태는 동일 하나 무궁화 무늬의 색상만 다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기증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1953년 3월 5일에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의해 대한민국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법복 으로 착용자가 확실한 귀중한 자료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복식사)> 가.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하여 변색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이

42 다. 검은 색 의복과 모자에 흰색의 오동나무 꽃무늬와 당초무늬가 수 놓여있다. ᄋ 문헌자료 -조선총독부관보(제2393호 대정 9년 8월 2일)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김홍섭(1915~1965) 판사의 부인인 김자선 여사 기증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옷은 1940년대 김홍섭(1915~1965)이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으로 일제시기 법 복의 면모를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7월 법복에 관한 규정(대정 9년 7월 27일자 제정 공포 칙령 제 222호 및 대정 9년 8월 2일자 조 선총독부 관보 제 2393호)에 따라 제정된 법복은 검은색 모직 바탕에 오동나무 꽃 무늬를 수놓은 법복과 구름무늬가 있는 모자를 착용하였다. 판사, 검사, 변호 사의 법복 형태와 무늬의 구성은 같았고 오동나무 꽃무늬의 색이 달랐다. 고등 법원은 오동나무 꽃 7개, 복심법원은 5개, 지방법원은 3개로 꽃의 색깔과 숫자로 구별하였다. 일제강점기 법복을 알 수 있는 흔치 않을 자료로 근 현대문화재로 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ᄋ 종합의견 : 일제시기 김홍섭(1915~1965)판사가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할 때 착용했던 법복이다. 1920년 법복 규정 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등록을 추천한다. 나. 1953년형 변호사 법복 ᄋ 현 상 : 일부 퇴색과 변색. ᄋ 내용 및 특징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1913~2007)가 착용했던 변호사 법복이다. ᄋ 문헌자료 -법복디자인연구(1998),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 연구소, 경원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ᄋ 기 타 -민찬홍 기증. 민복기(1913~2007) 전 대법원장의 손자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옷은 전 대법원장 민복기가 착용했고 이후 소장해온 변호사의 법복이다. 민 복기가 1956년 7월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1950년대 중반 에서 60년대 중반 시기의 법복으로 추정된다. - 대한민국 법관의 공식적인 법복은 1953년 3월 5일 발표한 판사 검사 변호사 및 법원 서기 복제규칙 에 따라 마련되었다. 당시 판사 검사 변호사의 법복은 색상과 형태는 같으나 무궁화 자수문양의 색상으로 판사(백색), 검사(황색), 변 호사(자색)를 구별하였다. 이러한 1953년의 복제규칙은 1966년 새로운 규칙을 정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966년 이후 변호사는 판사 검사와 달리 더 이상 법 복을 입지 않았다. - 이 유물은 당시의 규정과 일치하고 착용자가 분명한 유물로 등록문화재로 등록 할 가치가 충분한 귀중한 자료이다. ᄋ 종합의견 : 해방이후 최초의 공식적인 법복제도에 따라 제정된 변호사 법복이며 착용 자(민복기)가 확실하여 보존 가치가 충분한 자료이다

43 <붙임 2>

44 - 44 -

45 - 45 -

46 < 붙임 3>

47 - 47 -

48 < 붙임 4> 판사, 검사, 변호사 법복 보존관리 방안(법원도서관 제출) 등록문화재 예고 법복 관리현황 구 분 자료설명 보관위치 판사 법복 검사 법복 변호사 법복 광복후 첫 판사 법복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 착용 광복후 첫 검사 법복 민복기 전 대법원장 착용 일제강점기 변호사 법복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 착용 광복후 첫 변호사 법복 민복기 전 대법원장 착용 법원전시관에 전시중 법원사자료실에 보관중 법원전시관에 전시중 법원사자료실에 보관중 보존관리 방안 ᄋ 자료실에는 형광등 자외선 차단봉을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방충방균제를 비치 하고 있음 ᄋ 기타 자료유해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조치할 예정임 - 문화재청 동산문화재 관리 가이드북 을 참고하여 자료보존환경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함 <자료보존 유해요인 및 권고사항> 빛 온, 습도 유해요인 대기오염과 공해 해충, 곰팡이 및 세균 취급 및 관리부주의 권고사항 - 직사광선 차단 - 실내 형광등 자외선 차단, 조도는 50룩스 이하 - 전시기간은 3개월 이내 - 20도 내외 - 상대습도 50 60% - 중성처리 보관용기 사용 - 검은 숯 비치 - 바닥에서 50cm 이상 떨어진 위치에 보관 - 방충방균제 사용 - 취굽자의 주의 - 정기적인 상태 점검 -전시관에 진열되어 있는 법복은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 복제본으로 대체함 -복식자료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중성한지로 포장하고 중성처리된 보존상자에 넣어 보관 -자료보존환경이 갖춰진 서고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함

49 안건번호 근대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 유물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유물 중 산업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2012년) 결과를 바탕 으로 관계전문가 자문회의 및 등록조사, 검토회의 등을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물 18건에 대하여 문화재 등록예고 기간 ( ~7.20)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재청장 (2) 대상문화재 ᄋ 대 상 -신규 등록 대상 : 압사기 등 17건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1 압사기 2 공병우 세벌식 타자 기 3 현대자동차 포니1 4 해양조사 연보 5 통일벼 유물 6 1점 152(w) 119(h) 182( ) 1대 26.5(w) 28(d) 12.5(h) 1대 26.5(w) 28(d) 12.5(h) 1대 397(l) 156(w) 136(h) 해양조사요보 총9호 4 6배판( ) 해양조사연보 총15호 4 6배판( ) 허문회 시 험도구 및 조사야장 통일벼 조 사야장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7 전기로 2건 야장 : 권 기 823(h) 654(w) 655(d) 1건 8점 800(l) 750(w) 970(h) 1886년 추정 1949~ ~ 1952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 사업회 이수창 1975 백중길 1928~ 1942 국립수산 1954~ 과학원 ~ 1970년대 1960~ 1970년대 1959~ 1962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식량 과학원 한국전력공사 1963년 철박물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56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 11길 3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대신로 244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해안로 경기도 과천시 상하 벌로 110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5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길 130 충청북도 음성군 영 산로 360 소유자 미동의 소유자 미동의

50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8 9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1식 29(l) 80(w) 196(h) 1식 325(l) 72(d), 높이 다양 10 금성 라디오 A-501 1대 42.9(w) 17.5(h) 16.3(d) 1대 42.9(w) 17.5(h) 16.3(d) 11 금성 냉장고 GR-120 1대 38.0(w) 75.5(h) 41.4(d) 12 금성 텔레비전 VD-191 1대 63.0(w) 40.0(h) 32.0(d) 1대 63.0(w) 40.0(h) 32.0(d) 13 금성 세탁기 WP-181 1대 69.0(w) 38.0(h) 90.0(d) 14 삼성전자 64K DRAM 15 글 1.0 패키지 16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17 과학조선 2점 웨이퍼 : 4.0인치 칩 : 2.3(w) 0.9(d) 0.8(h) 1건 2점 매뉴얼 : 디스켓 : 5.25인치 1책 총22호 4 6배판( ) 총28호 4 6배판( ) 1961년 1964년 1959년 1959년 1965년 1966년 1966년 1969년 박상희 한양대학교 박물관 (주)LG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주)LG (주)LG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주)LG 1983년 (주)삼성전자 1989년 1882년 (주)한글과 컴퓨터 규장각한국학 연구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삼성2로 95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644번길 49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103동 1933~ 1941년 연세대학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 1944년 고려대학교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변경 등록 대상 : 1건 번호 유물명 수량 규격 제작년대 소유자 소재지 비고 당초 국가표준 근대도량형기 변경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154건 331점 236건 549점 1900~ 1960년대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 1900~ 1960년대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98 기술표준원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98 (3) 추진경과 ᄋ 12.3~ 11월 :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실시 -용역수행 :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 김근배 교수), 175건 목록화 ᄋ : 산업기술분야 등록조사 대상 선정 및 등록기준(안) 마련 전문가 자문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한양대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대 교수) -자문결과 : 등록 검토대상 유물 선정 기준(안) 마련, 등록조사 대상 선정 ᄋ 13.4~ 5월 : 문화재 등록조사(21건)

51 ᄋ : 문화재 등록 대상 선정 사전검토 회의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광운대 교수), (경주대 교수), (가천대 교수) -회의결과 : 조사대상 중 1건 제외(산업용 화약 제조 설비), 2건 보류(압인기, TDX) ᄋ : 제3차 근대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 압사기 등 18건을 등록 예고키로 함 (4) 문화재 등록예고 ᄋ 기 간 : ~7.20(30일간) / 압사기 등 18건(변경등록 1건 포함) ᄋ 예고결과(2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소유 관계 불분명 -통일벼 조사야장 제출처 : 국립식량과학원 의 견 : 문화재 등록 유물 추가 및 등록예고 사유에 대한 문안 검토가 필요함(벼 품종개발에는 육종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육종팀 전체의 각각 역할이 종합적으로 결집된 성과임) (5)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등록조사( 월) > ᄋ 전북대교수 등 의견 : 붙임 참조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예고기간 중 의견수렴 결과에 따라 소유자 미동의 2건은 제외하고 압사기 등에 대하여 등록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 압사기,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현대자동차 포니1, 해양조사연보, 통일벼 유물(허문회 시험도구 및 조사야장), 전기로, 연세 101 아날로그전자계산 기, 아날로그전자계산기 3호기,금성 라디오 A-501, 금성 냉장고 GR-120, 금성 텔레비전 VD-191, 금성 세탁기 WP-181, 삼성전자 64K DRAM, 글 1.0 패키지,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과학조선,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ᄋ 문화재 등록 보류 -통일벼 유물(통일벼 조사야장),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사 유 : 소유자 미 동의 및 소유 관계 불분명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근현대문화유산 산업기술분야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52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목 적 ᄋ 우리나라 근 현대 산업기술분야 유산 중 산업사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가 큰 것을 문화재로 등록 보존 ᄋ 산업기술 유산의 문화재적 평가 및 가치 부여를 통해 근대 동산문화재에 대한 대국민 홍보 및 관심 제고 2. 추진경과 ᄋ 12.3 ~ 11월 : 근현대 산업기술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용역 실시 -용역수행 :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 김근배 교수), 175건 목록화 ᄋ : 산업기술분야 등록조사 대상 선정 및 등록기준(안) 마련 전문가 자문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한양대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전북대학교 교수) -자문결과 : 등록 검토대상 유물 선정 기준(안) 마련, 등록조사 대상 선정 ᄋ 13.4 ~ 5월 : 문화재 등록조사(21건) ᄋ : 문화재 등록 대상 선정 사전검토 회의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광운대학교 교수), (경주대학교 교수), (가천대학교 교수) -회의결과 : 조사대상 21건 중 3건은 제외(압인기, 산업용 화약 제조 설비, TDX) 하여 총 18건을 등록 대상으로 하며, 등록 대상 18건 중 현대자동차 포니1, 해양조사연보, 통일벼 유물,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에 대해 서는 다음 유물을 등록 대상으로 함 현대자동차 포니1 : 총 1건 (백중길 소장 1975년식) 해양조사연보 : 총 24호(해양조사연보 제1호~제15호 및 해양조사요보 제1호~제9호) 통일벼 유물 : 총 2건(허문회 연구도구 및 조사야장, 통일벼 조사 야장)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 총 82종 218점(벽걸이시계, 조선인사예규 제외 및 도 량형계기각종류일람표 추가) ᄋ : 제3차 근대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 압사기 등 18건을 등록 예고키로 함 ᄋ : 문화재 등록예고 -기 간 : ~7.20(30일간) / 압사기 등 18건(추가등록 1건 포함) -예고결과(2건)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소유 관계 불분명 통일벼 조사야장(국립식량과학원) : 문화재 등록 유물 추가 및 등록예고 사유에 대한 문안 검토가 필요함(벼 품종개발에는 육종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으며 육종팀 전체의 각각 역할이 종합적으로 결집된 성과임) 3. 조사개요 가. 조사대상 : 압사기 등 18건

53 나. 조 사 자 : (전북대학교, 과학사) (연세대학교, 과학사) (서울대학교병원, 과학사) (KAIST, 과학사) (부산대학교, 과학사) (광운대학교, 전자공학)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학) (부산대학교, 해양학) (경주대학교, 보존과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 (가천대학교, 산업디자인) (IT문화원, 정보통신사) (한양대학교, 원자력공학) (문화재위원, 서지학) (한국예술종합학교, 근대건축사) (연세대학교, 국어학) (서경대학교, 산업공학) (대한화약발파공학회, 화학공학) (대림대학교, 자동차공학) 다. 조사내용 : 유물 실사 및 문화재적 가치 검토, 관계자 인터뷰 등 번호 유물명 수량 규격(cm) 제작년대 소유자 비고 1 압사기 2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3 현대자동차 포니1 4 해양조사 연보 5 통일벼 유물 연구용 원자로 6 TRIGA Mark-Ⅱ 7 전기로 1점 152(w) 119(h) 182( ) 1대 26.5(w) 28(d) 12.5(h) 1대 26.5(w) 28(d) 12.5(h) 1대 397(l) 156(w) 136(h) 해양조사요보 총9호 ( 海 洋 調 査 要 報 ) 4 6배판( ) 해양조사연보 총60호 (계속 발간 중) ( 海 洋 調 査 年 報 ) 4 6배판( ) 허문회 시험 도구 및 1식, 4권( ) 조사야장 3권 통일벼 조사 야장 원자로 1기 823(h) 654(w) 655(d) 1건 8점 800(l) 750(w) 970(h) 1886년 추정 1949~ ~ 1952 한국조폐공사 세종대왕기념관 이수창 1975 백중길 1926~ ~ 국립수산과학원 1960~ 1970년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1968~ 1970 국립식량과학원 1959~ 1962 한국전력공사 1963 철박물관 8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대 1961 박상희

54 번호 유물명 수량 규격(cm) 제작년대 소유자 비고 29(l) 80(w) 196(h) 9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1대 325(l) 72(d), 높이 다양 1대 10 금성 라디오 A (W H D) 1대 (W H D) 11 금성 냉장고 GR-120 1대 (W H D) 1대 12 금성 텔레비전 VD (W H D) 1대 (W H D) 13 금성 세탁기 WP-181 1대 (W H D) 2점 14 삼성전자 64K DRAM 웨이퍼 : 4.0인치 칩 : 2.3(w) 0.9(d) 0.8(h) 2점 15 글 1.0 패키지 매뉴얼 : 디스켓 : 5.25인치 16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1책 총22호 17 과학조선 4 6배판( ) 총28호 4 6배판( ) 18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82종 218점 1964 한양대학교박물관 1959 (주)LG 1959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65 (주)LG 1966 (주)LG 196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69 (주)LG 1983 삼성전자 1989 (주)한글과컴퓨터 1882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933~ 1941 연세대학교 1933~ 1944 고려대학교 1900~ 1960년대 기술표준원 추가 등록 4. 등록기준(안) 가. 공통 ᄋ 각 분야별 산업 발전의 역사성을 갖춘 유물 ᄋ 사회문화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산업기술 유물 ᄋ 희소성이 있고 멸실 가능성이 큰 유물 ᄋ 한국 산업기술사 및 과학기술사 연구 및 교육에서 가치가 있는 유물 ᄋ 국제 시장에서 기술 및 상업적으로 높이 평가 받은 유물 나. 제품 ᄋ 각 산업별로 최초, 최장수, 최다 판매 제품 ᄋ 해당 산업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기술과 관련된 제품 ᄋ 연구개발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자체 생산한 유물 다. 시설 ᄋ 산업적으로 중요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이용된 기계류 ᄋ 해당 분야에서 특정 시기에 널리 이용된 시설 라. 자료 ᄋ 각 산업 분야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사진, 도서, 문서, 기념패 등

55 ᄋ 산업기술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니는 연구개발 자료 5. 조사자 의견(요약) 번호 분 야 유물명 소유자 조사자 의견 비고 1 기계 압사기 화폐박물관 세종대왕기념관 2 기계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이수창 3 기계 현대자동차 포니1 백중길 4 농수산 해양조사 해양조사요보 국립수산과학원 연보 해양조사연보 5 농수산 통 일 벼 허문회 시험도구 국립과천과학관 및 조사야장 유물 통일벼 조사야장 국립식량과학원 6 재료 연구용 원자로 한국전력 TRIGA Mark-Ⅱ 7 재료 전기로 철박물관 8 전기 연세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박상희 9 전기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 한양대학교박물관 10 전기 금성 라디오 A-501 (주)LG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1 전기 금성 냉장고 GR-120 (주)LG 12 전기 금성 텔레비전 VD-191 (주)LG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3 전기 금성 세탁기 WP-181 (주)LG 14 전기 삼성전자 64K DRAM 삼성전자 15 전기 글 1.0 패키지 한글과 컴퓨터 16 토목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7 기타 과학조선 18 추가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기술표준원 (1) 압사기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56 ᄋ 우리나라가 도입한 첫 번째 근대식 생산기계인 압사기는 역사적 의미를 감안할 때 등록문화재 등록 가치가 있음( ) ᄋ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근대식 기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사용된 기계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음( ) ᄋ 외국과의 교역을 위해 당시 조선이 시급히 도입해야 했던 서구식 화폐제도와 그에 걸맞는 화폐 제작을 위해 국내에 들여온 최초의 서구식 기계로서 그 가치가 큼( ) (2)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ᄋ 국내최초의 실질적 세벌식 타자기이며 현재 보존되는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타자기이며, 우리나라 문화생활, 문서작성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음( ) ᄋ 실용화된 최초의 한글 타자기의 초창기 모델로서 한글 기계화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산이므로 보존가치가 높음( ) ᄋ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여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3) 현대자동차 포니1 ᄋ 현재 수십 대 이상의 포니가 산재하고 있으나 보존 상태나 연식 등을 고려하면 제시한 최초 해인 1975년식 포니 승용차가 가장 타당하다 판단됨( ) ᄋ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자동차기술의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한 고유모델 포니는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음( ) ᄋ 포니1 자동차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로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 준 상징물로도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음( ) (4) 해양조사연보 ᄋ 1920년부터 현재까지 보존되는 한국 주변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정보를 기록한 책자이며, 우리나라 해양조사기록을 수록한 유산이며 과학자산으로서 보존가치가 높음( ) ᄋ 세계적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해양조사에 대한 기록을 남긴 예가 드 물기 때문에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음( ) ᄋ 세계적으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해양환경을 관측한 결과를 편찬한 예는 매우 희귀함( ) (5) 통일벼 유물 ᄋ 한국 농학이 거둔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물품이므로 관련 물품 일체를 일괄 등 록할 것을 권함( ) ᄋ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주곡의 자립을 달성하게 한 통일벼는 한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성취로서, 통일벼 관련 유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 요성이 매우 큼( ) ᄋ 본 유물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한민족의 주곡식인 쌀의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허문회 박사의 매우 중요한 사료 및 유물로써 근대문화유산으로써 가치가 높고 이에 따른 체계적인 보존관리 수행이 요구됨( ) (6)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57 ᄋ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연구용 원자로로서 한국이 현재 세계 5위권의 원자 력 강국으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한 기념비적인 유물임( ) ᄋ 기여도와 역사성을 고려할 때 문화재로 등록할 충분한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평가됨( ) ᄋ 한국의 첫 원자로로서 현대 과학기술 및 산업기술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님( ) (7) 전기로 ᄋ 년대 제강업의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산업기술유물로 등록 필요성이 큼 ( ) ᄋ 국내 최초의 전기로이며 특히 고철을 다량으로 용해 재재처리 하는 전기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제철산업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큼( ) ᄋ 국내최초 전기로이며 현재 보존되는 유일한 전기로이며 우리나라 제강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음( ) (8)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ᄋ 한국 최초로 교수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서 연구에 이용되었으며, 처음 수학적 계산 장치를 전자공학의 연산장치로 이루어 냈다는 역사적 가치를 가짐 ( ) ᄋ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컴퓨터임( ) ᄋ 역사성과 기여도 등을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짐( ) (9)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ᄋ 한국 최초로 교수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서 연구에 이용되었으며, 처음 수학적 계산 장치를 전자공학의 연산장치로 이루어 냈다는 역사적 가치를 가짐( ) ᄋ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전자계산기임( ) ᄋ 역사성과 기여도 등을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짐( ) (10) 금성 라디오 A-501 ᄋ 한국 전자산업의 초기 제품으로서 전자정보통신 산업화의 역사와 기술개발에 대한 사료적 보전가치가 있음( ) ᄋ 전기전자산업의 시금석을 마련했으므로 근현대 산업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음 ( ) ᄋ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산업디자인 업무를 위해 설립된 금성사의 도안실에서 국내 최초로 채용된 기업의 산업디자이너에 의해 디자인된 최초의 가전제품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큼( ) (11) 금성 냉장고 GR-120 ᄋ 한국 최초의 가정용 식품 보관용 냉장고로 냉동 및 냉장산업 기술 발전에 기여한 산업적 가치가 있음( ) ᄋ 식품위생법의 재정비, 저장 창고의 개발 및 확장, 냉장식품 산업의 성장을 견인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 ) ᄋ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산업디자인 부서인 금성사의 도안실에서 디자인한 국내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로 현재의 제품과 비교해도 형태나 기능면에서 디자인이 뒤처지지 않는 등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임( )

58 (12) 금성 텔레비전 VD-191 ᄋ 전자공학기술의 종합적 제품으로서 한국의 전자산업육성에 적극적인 기여를 한, 기술 산업의 역사적 가치와 기술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한국 최초의 것( ) ᄋ 한국 전자통신 산업의 기초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대중 문화의 형성을 촉진시키면서 문자보다 영상과 음향에 친숙해지는 데에 영향을 미친 생활사적, 기술사적, 산업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임( ) ᄋ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산업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금성사의 도안실 에서 디자인한 최초의 흑백TV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임( ) (13) 금성 세탁기 WP-181 ᄋ 세탁기는 전기모터를 응용한 것이며, 이 기술로 인하여 전기전자산업에 비중 있게 기여한 고찰도 분명하지 않음( ) ᄋ 한국사회에서 관련산업상황 및 사회적 여건에 따른 기술 채택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임( ) ᄋ 우리나라 기업 최초의 산업디자인 수행 부서인 금성사 도안실에서 디자인한 최초의 세탁기로, 국내 주부들의 가사노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등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임( ) (14) 삼성전자 64K DRAM ᄋ 한국 최초의 상용화된 반도체 메모리로서 메모리 분야의 세계점유율 1위 달성의 기원이 되는 제품이다. 한국의 메모리 제조 기술적 및 산업적 역사를 보존한 제품임 ( ) ᄋ 반도체 강국 한국의 출발점이 된 64K DRAM 칩으로 삼성 박물관에 보관 전시 되고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 ) ᄋ 선진국과 비교해서 10년 이상 차이가 나있던 국내 반도체 생산 기술수준을 3~4 년으로 단축시켰다고 평가되며,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크게 기 여함( ) (15) 글 1.0 패키지 ᄋ 국내 최초의 가장 대중적인 문서편집기(워드프로세서)이며 현재도 계속 후속 판이 개발되고 있는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이며, 우리나라 컴퓨터시대의 개막 후 문서작성과 IT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음( ) ᄋ 오늘날 관공서 등에서 사실상의 표준으로 쓰는 컴퓨터용 한글 문서작성기의 최초 버전으로, 기술사와 문화사 관련 의의가 크므로 보존가치가 높음( ) ᄋ 한글의 정보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므로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여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음( ) (16)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ᄋ 근대적 과학기술에 대한 초기의 대표적 저작으로 당시의 도로 정비 인식과 우리 나라 도로 정비 역사를 보여주는 희소성이 매우 큰 귀중한 자료임( ) ᄋ 治 道 規 則 은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價 値 가 있는 것으로 판단됨( ) ᄋ 일종의 도시론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고, 이 내용에 따라서 1880년대의 치도사업이

59 시행되어 역사적 학문적 의미가 매우 큼( ) (17) 과학조선 ᄋ 우리나라 초기의 최대 과학기술 종합잡지로 당대의 과학기술활동 전반을 집대성 해서 담고 있는 역사성과 희소성을 동시에 갖춤( ) ᄋ 科 學 朝 鮮 은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價 値 가 있는 것으로 판단됨( ) ᄋ 1933년부터 해방 전까지 한국의 과학운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유지들이 과학지식 보급회를 결성하여 발간한 잡지로서, 그 역사적 학문적 의미가 매우 큼( ) (18)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ᄋ 산업기술 중에서 보기 드물게 그 종류와 수량이 풍부한 대표적 분야로서 시대별 과학기술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가치를 지님( ) ᄋ 우리나라 계량 측정 표준에 대한 유일한 물품으로 표준의 역사, 도량형의 시대성, 학술적 가치가 높음( ) ᄋ 우리나라 도량형제도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근대화 과정을 유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학문적 기술적 의미가 매우 큼( ) 6. 유물별 주요특징 및 가치 (1) 압사기 1) 명 칭 : 압사기 2) 소 유 자 : 한국조폐공사 3) 소 재 지 :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80-67(가정동) 화폐박물관 4) 수 량 : 각 1점 5) 규 격 : 압사기 - 너비 152cm, 높이 118.5cm, 핸들지름 182cm 압인기 - 높이 87cm, 핸들지름 123cm 6) 재 질 : 강철 7) 제작년도 : 1886년 추정 8) 조사자 의견 <KAIST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황 -한국조폐공사가 운영하는 화폐박물관이 188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근대식 생산기계로 추정되는 압사기와 압인기 1대씩을 소장 중이다. ᄋ 현 상 년 우리나라 최초의 조폐기관이었던 전환국은 근대식 화폐를 제조하기 위 해 독일에서 압인기 3대와 압사기 1대 등 11종을 도입했다. 당시 모든 산업이 수공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기계들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도입한 근대식 생산기계라 할 수 있다. 이후 전환국이 서울 남대문에서 인천, 다시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는 과정에서 이 기계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현재 화폐박물관이 당시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압사기( 壓 寫 機, 주화 금형을 만드는 기계) 1대와 압인기( 壓 印 機, 금화, 은화, 적동화를 만드는 기계) 1대를 소장하고 있다. 비록 이 기계들이 당시의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는 없지 만 우리나라가 최초로 도입한 근대식 생산기계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 다. 압사기의 경우 여러 자료를 통해 이 때 도입된 기계가 확실해보이지만 압

60 인기의 경우 처음 도입된 3대 중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한 상태 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압사기만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ᄋ 내용 및 특징 년(고종 20년) 8월 7일(음력 7월 5일) 전환국 관제( 典 圜 局 官 制 ) 공포와 함 께 설립된 조폐기관인 전환국은 주화를 제조하는 최초의 국가 상설 기관이었지 만 한편으로 서구 선진국의 기계를 도입해 처음으로 공업제품을 제조한 곳이기 도 했다. 전환국 설치 이전까지 조선의 화폐는 임시로 설치한 주전소( 鑄 錢 所 )에 서 제작했다. 전환국 설치 직전인 1883년 2월의 경우 당오전( 當 五 錢 ) 주조를 위 해 3곳의 주전소가 설치되었다. 경희궁 안쪽 금위영( 禁 衛 營 ), 창덕궁 뒤쪽 군자 감별고( 軍 資 監 別 庫 ), 용산 만리창( 萬 里 倉 ) 등 3곳의 주전소에서 엽전을 일정한 틀에 넣고 두드려서 만드는 고주( 鼓 鑄 ) 방식으로 당오전을 만들었다. -전환국은 무질서하던 주화의 제조 발행을 정부가 독점하여 악화의 주조를 막고 조폐사업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당시 극심한 궁핍 상태였던 국가 재 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오전을 주조 발행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삼았다. 전환국은 처음에는 별도의 건물을 짓지 못하고 창덕궁 부근 원서동의 큰 집을 빌려 임시 사무소로 사용했으며, 민태호( 閔 台 鎬 )가 책임을 맡았다. 책임자인 관 리( 管 理 ) 민태호 밑에 총판( 總 辦 ) 이중칠( 李 重 七 )이 있었으며, 모두 12명이 일 을 했다. - 전환국은 설립 직후 기존 방식인 주성법( 鑄 成 法 )으로 당오전을 제작했다. 이후 근대 화폐를 주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그 일환으로 고종의 고문 으로 일하던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llendorff)가 1883년 말 신 식 화폐 주조를 위한 주전 설계서( 鑄 錢 設 計 書 ) 를 작성하여 고종에게 제출했다. 이후 묄렌도르프는 1884년 3월 전환국 총판( 總 辦 )에 임명되어 근대적 화폐 주 조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년 2월 전환국은 세창양행( 世 昌 洋 行 )과 기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멕시코 은화 30,000원(조선화 21,600 兩 ) 상당의 기기를 독일에서 수입했다. 세창양행은 독일인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가 중국 천진에 세운 무역 회사 마이어상사(H. C Eduard Meyer & Co.)의 조선 대리점이었다. 마이어는 조선의 외교관이 독일에 파견되기 이전 조선 정부로부터 임명된 독일주재 조선 국총영사였다. 세창양행은 물감과 바늘 등 생필품 생산으로 유명했으며, 조선 정부와의 긴밀한 관련 속에 많은 일을 진행했는데, 조폐기기 수입 알선도 그중 의 하나였다. 독일로부터 수입한 기기 품목은 압인기( 壓 印 機 ) 3대, 신연기( 伸 延 機 ) 2대, 압사기( 壓 寫 機 ) 1대, 선반( 旋 盤 ) 2대, 재단기( 裁 斷 機 ) 2대, 천공기( 穿 孔 機 ) 1대, 압차기( 壓 車 機 ) 1대, 기기( 汽 機 ) 1대, 기관( 汽 罐 ) 1대 등 11종 19대였 다. 당시 조선의 공업은 전문적인 기계공이나 제철공이 없고 공장의 기계 설비 조차 전무한 상태에서 일상 생활용품인 성냥, 자리, 부채 등을 수공적 방법으로 만들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환국이 다량의 서구 기계 설비를 도입한 것 은 매우 새롭고 야심찬 시도였다. - 전환국은 이 같은 근대적 조폐 기기의 도입과 함께 독일에서 기술자를 초빙했 다. 제일 먼저 초빙된 디이트리히(C. Diedricht)는 조폐기기를 담당했으며, 뒤이 어 초빙된 크라우스(F. Kraus), 리이트(C. Riedt)는 금 은 분석을 담당했다. 전 환국은 조폐기기 구입시 주화를 주조하는 데 필요한 소전( 素 錢, 압인이 되지 않은 둥근 원형의 일차제품)과 금형의 일종인 종인( 種 印, 돈의 종류를 나타내는 금형), 극인( 極 印, 값어치를 나타내는 금형)도 독일에서 제조해 왔는데, 각인의

61 조각( 彫 刻 )이 선명하지 못해 일본 조폐국에서 조각을 담당하는 기술자 이나카 와( 稻 川 彦 太 郞 )와 이께다( 池 田 隆 雄 )를 초빙하여 각인을 완성했다. 또한 증기기 관을 관리할 기술자로 미타니( 三 谷 克 三 )도 초빙했다. - 원서동의 전환국 건물에는 새로 도입된 조폐기기를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창양행에서 제시한 설계에 따라 서울 남대문 옆, 당시 선혜청 별창( 宣 惠 廳 別 倉 ) 자리에 건물을 신축했다. 정확한 위치는 서울시 2호선 시청역 8번 출구 삼성생명 빌딩 왼쪽으로, 현재 전환국 터를 나타내는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이 건물을 이후의 인천 전환국, 용산 전환국과 구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경성 전 환국이라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그냥 전환국 이었다. 독일에서 제작해 들여 온 종인 및 극인은 금화( 金 貨 ) 5종, 은화( 銀 貨 ) 4종, 적동화( 赤 銅 貨 ) 5종 등 모 두 14종이었는데, 실제 시주화( 試 鑄 貨 )로 발행된 것은 1환( 圜 ) 은화와 10문( 文 ) 및 5문 적동화 3종뿐이었고, 발행 액수도 1환 은화 1,300여 매, 10문 및 5문 적 동화는 4,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당시 금과 은의 보유량이 얼마 되지 않아 자금이 부족했고, 근대 화폐를 받아들일 만한 사회경제적 여건이 마련되 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최초의 근대 화폐는 실제로 거의 유통되지 못해서 시주화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고, 독일에서 도입된 기계도 그다지 활발하게 작동되지 못했다 년 전환국 방판( 幇 瓣 ) 안경수( 安 駉 壽 )는 전환국의 기계를 활용하고자 일본 으로 건너가 오사카제동회사( 製 銅 會 社 ) 사장 마스다( 增 田 信 之 )를 만나 신식화 폐 주조협정을 체결했다. 마스다는 한국 정부에 25만원( 圓 )을 대부하고, 그 대 가로 전환국의 감독권을 위임받는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전환국의 인사권이 마스다에게 넘어갔고, 많은 일본인들이 전환국에 관여하게 되었다. 이 후 마스다와의 계약에 따라 1892년 5월 인천에 전환국 설립 공사가 시작되었 다. 이는 인천이 기기나 원자재의 하역관리 등이 서울보다 편리하다는 이유였 다. 결국 경성 전환국은 폐쇄되고, 전환국은 1892년 11월 인천시 전동으로 이전 했는데 이를 통상 인천 전환국이라 부른다. - 인천 전환국에는 압인기를 9대 설치했는데, 이 중 3대는 경성 전환국에 있던 기계를 옮겨왔으며 나머지 6대는 오사카 조폐국에서 양도받은 것이었다. 그 밖 에 대칭량기( 大 秤 量 機 ) 1대, 소칭량기( 小 秤 量 機 ) 2대, 선반 3대, 극인 마기( 極 印 磨 機 ) 1대, 극인 압사기( 極 印 壓 寫 機 ) 1대, 경성 전환국에서 가져온 20마력의 기 관 1대 등이 설치되었다. 인천전환국에서 제조된 동전은 5냥( 兩 ), 1냥 은화( 銀 貨 ), 2전5푼( 二 錢 五 分 ) 동화( 銅 貨 ), 5푼 적동화( 赤 銅 貨 ), 1푼 황동화( 黃 銅 貨 ) 등 5종의 동전을 제조했다. -이후 인천 전환국은 관리권을 둘러싼 갈등과 운영 자금 부족에 따른 조폐 사업 부진, 청나라 원세개( 袁 世 凱 )의 간섭으로 주조된 동전의 발행이 지연되는 등 많 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896년 독립 기관이었던 전환국은 탁지부( 度 支 部 ) 소 속의 1개 국으로 격하되었다가 1898년 다시 서울 이전이 결정되었다. 용산의 군자감창고( 軍 資 監 倉 庫 )(전 체신부 중앙전기시험소 자리)에 전환국 건축공사를 시작하여 1900년 완료했으며, 이를 용산 전환국으로 불린다. 새로 가설된 경인 선 철도를 이용하여 인천 전환국의 기계를 용산 전환국으로 운송해 설치했는 데, 모두 25톤 화차 6양분을 옮겼다. 주요 기계 장비는 압사기 1대, 압인기 9대 등 17종 22대였다. - 용산 전환국은 1900년 9월 극인소( 極 印 所 ) 등에 제반기계 설치를 완료하고 백 동화( 白 銅 貨 )의 압인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백동화는 과잉 발행되어 일본화와 의 교환 비율이 93대 1에 달하는 등 그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이에 따라 전환

62 국 폐지 요구가 제기되었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국 식민지 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전환국의 폐지를 건의했다. 결국 1904년 11 월 전환국은 국가의 조폐기관으로 설립된 지 2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이 후 화폐 주조는 일본 오사카 조폐국에 위탁해서 주조하게 되었다. - 비록 전환국의 조폐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주화 제조 과정에서 필수적인 업무였 던 시험분석기능은 이후 공업전습소( 工 業 傳 習 所 )를 거쳐 중앙시험소로 이어졌 다. 공업전습소는 1899년 설립된 학부( 學 部 ) 소속의 상공학교( 商 工 學 校 )에 기원 을 두고 있다. 상공학교는 1904년 농업 분야가 추가되어 농상공학교( 農 商 工 學 校 )가 되었다가 1906년 다시 분리되어 농과는 농상공부 소관의 수원농림학교 ( 水 原 農 林 學 校 )로, 상과는 사립 선린상업학교( 善 隣 商 業 學 校 )로, 공과는 농상공부 의 관립 공업전습소로 각각 독립되었다. 공업전습소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2년의 수업연한에 염직( 染 織 ), 도기( 陶 器 ), 금공( 金 工 ), 목공 ( 木 工 ), 응용화학, 토목( 土 木 ) 등 6개 과를 두었다. 1907년 반포된 칙령에 의하 면 공업전습소는 공업에 관한 기술을 전습함 을 목적으로 했는데, 1910년 개정 된 공업전습소 규칙에는 공업기술의 전습 에 공업에 관한 시험을 행함 이 목적 으로 추가되었다. 이는 전환국이 폐지되면서 사라졌던 시험분석 기능이 공식적 으로 공업전습소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공업전습소는 1912년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가 설립되면서 그 부설기관이 되었고,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가 설립된 이후 그 부설기관으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그후 공업전습소는 1922년 관립공업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38년 설립된 경성공립공업학교와 1940년 합병 되었다. 해방 이후 이 학교는 서울공업고등학교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서울공업고등학교는 1899년 관립 상공학교를 기원으로 삼고 있다. ᄋ 문헌자료 -국립공업기술원 편, 국립공업기술원백년사 (1993) -한국조폐공사 편, 한국화폐전사 (동공사, 1971)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전환국의 압사기는 전환국의 폐쇄이후 공업전습소를 거쳐 서울공업고등학교로 전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1992년 대전의 화폐박물관으로 이전되어 현재에 이 르고 있다. 실제 공업전습소의 판금임상실습장 교육 장면을 찍은 당시 사진에 현재 보존되고 있는 압사기로 보이는 장치가 등장한다. 1) 여러 정황과 기록을 통해 화폐박물관의 압사기(수동형 screw-press)가 전환국이 독일에서 도입한 압사기인 것으로 여겨진다. 압사기는 전환국 초기 도입에서 폐지될 때까지 1대 만 있었고, 주한일본공사관 기록 중 典 圜 局 調 査 報 告 書 기록 2) 에 운전 방식이 사람의 힘으로 돌리는 수동식이고, 누르는 하중을 받쳐주는 지주( 支 柱 )가 2개인 이완형( 二 腕 形 ) 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 대전 화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압사기가 최초로 독일에서 도입된 공작기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비록 전환국의 압사기가 전환국의 부침에 따라 한국의 기계공업이나 산업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에 도입된 최초의 서구 근대적 기계장치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재 화폐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전환국의 압인기는 그것이 전환국이 도입한 압인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 상태이며, 어떤 경로를 거쳐 화폐박물관까지 이전 되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또한 압인기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1880년 제조된 기계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압인기는 등록문 1) 국립공업기술원 편, 국립공업기술원 백년사 (1993), 132쪽. 2) 국립공업기술원 편, 국립공업기술원 백년사, 76-77쪽에서 재인용

63 화재로 등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ᄋ 종합의견 -우리나라가 도입한 첫 번째 근대식 생산기계인 압사기는 역사적 의미를 감안할 때 등록문화재 등록 가치가 있지만 압인기는 증빙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등록 이 어렵다고 판단된다. <부산대학교 교수 (과학사)> ᄋ 현 상 -압사기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야외에 전시되어 있고 외부에 녹이 슬어 있는 상태임 -압인기는 박물관 내부에 전시되어 있고 상태가 매우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 전환국은 근대 화폐의 주조를 담당하는 상설기관으로, 1883년(고종 20년)에 한 양에 설립된 후 1892년에 인천으로, 1900년에 용산으로 옮겨졌으며, 1914년에 폐쇄되었음. 해당 시기는 각각 경성 전환국, 인천 전환국, 용산 전환국으로 불 리고 있음 년 2월 전환국은 세창양행과 기기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약 3만원( 元 ) 상 당의 기기를 독일에서 수입하였음. 당시 독일로부터 수입한 기기 품목은 압인 기( 壓 印 機 ) 3대, 신연기( 伸 延 機 ) 2대, 압사기( 壓 寫 機 ) 1대, 선반( 旋 盤 ) 2대, 재단 기( 裁 斷 機 ) 2대, 천공기( 穿 孔 機 ) 1대, 압차기( 壓 車 機 ) 1대, 기기( 汽 機 ) 1대, 기관 ( 汽 罐 ) 1대 등 11종 19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음 - 경성 전환국에서는 독일에서 5금화( 金 貨 ) 5종, 은화( 銀 貨 ) 4종, 적동화( 赤 銅 貨 ) 5종 등 모두 14종을 들여왔지만, 실제 시주화( 試 鑄 貨 )로 발행된 것은 1환 ( 圜 ) 은화와 10문( 文 ) 및 5문 적동화 3종뿐이었고, 발행 액수도 1환 은화 1,300여 매, 10문 및 5문 적동화는 4,000원 정도에 불과했음. 그러나 이처럼 근대적 화폐를 주조하고 발행했다는 자체가 한국 화폐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 년에 전환국이 폐쇄된 이후에 전환국의 조폐 기능은 중단되었지만 시험분 석기능은 공업전습소로 이어졌으며, 공업전습소는 1940년에 경성공립고등학교 와 합병된 후 해방 이후 서울공업고등학교가 되었음 ᄋ 문헌자료 -국사편찬위원회, < 고종시대사( 高 宗 時 代 史 )>, 국립공업기술원, < 국립공업기술원백년사>, 한국조폐공사, < 한국화폐전사>, 동공사, 1971 ᄋ 기 타 -전환국이 서울 남대문에서 인천으로, 다시 용산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의 화폐제조기계는 소실되었고, 현재 압사기 1대와 압인기 1대만 남아 있는 것 으로 추정됨 - 특히, 압사기는 전환국이 폐쇄된 이후에 공업전습소와 서울공업고등학교를 거 쳐 1992년에 화폐박물관으로 이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압사기는 여러 기록이나 정황을 고려해 볼 때 1886년경에 도입된 것이 비교적 분명하지만, 압인기의 경우에는 언제 만들어져 어떻게 소장하게 되었는지가 분 명하지 않음. 게다가 압연기는 보존 상태가 지나치게 양호하여 19세기 말에 제 작된 기계로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음

64 - 따라서 압사기는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데 큰 무리가 없지만, 압인기의 경우 에는 등록문화재 등록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됨 ᄋ 종합의견 -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근대식 기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사용된 기계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음 <경주대학교 교수 (보존과학)> ᄋ 현 상 -압사기( 壓 寫 機 )란 주화를 제작할 때 필요한 금형을 만드는 기계이고 압인기( 壓 印 機 )는 주화를 직접 찍어내는 기계를 말한다. -화폐박물관에서는 압사기 1대와 압인기 1대를 소장하고 있다. 이 기기는 고종 23년(1886) 조선이 외국과의 통상을 위해 근대 화폐가 필요할 때 묄렌도르프 (( 穆 麟 德, Paul George von Mollendorf)의 건의에 따라 독일에서 수입한 조폐 기기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된다. -당시 경성전환국에 설치된 조폐장비는 압사기( 壓 寫 機 ) 1대, 압인기 3대를 비롯 하여 압연기( 壓 延 機 ) 2대, 선반 2대 등 모두 11종의 기계가 있었다고 한다. 또 한 여러 종류의 금화, 은화, 동화 등 모두 15종의 주화금형도 함께 수입하였 고, 더불어 독일에서 기계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자도 초빙했다고 한다. [네이 버 지식백과] 경성전환국 (한국의 박물관, , 문예마당) <그림1> 화폐박물관의 압사기 <그림2> 화폐박물관에서 전시중인 압인기 -압사기는 화강암 석판을 감싼 전시대 위에 박혀 고정된 상태로 화폐박물관 앞 뜰에서 전시되고 있다. 크기는 너비 152cm, 폭 61.5cm, 높이 118.5cm, 핸들지 름 182cm, 무게 5톤이나 나가는 상당히 큰 철제 기계장치이다. 설명문에 의하 면 고종 23년(1886년) 경성 전환국( 京 城 典 圜 局 )에서 근대 화폐를 제조하기 위 해 독일에서 수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압사기의 구조는 152cm x 61.5cm 직사각형의 받침 위에 U자를 뒤집은 모 양의 지지체를 세우고 그 중앙에 커다란 핸들[손잡이]을 붙인 나사를 삽입한 장치로 핸들을 돌리면 나사가 아래 위로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나사의 회전 력을 상하운동으로 전환시켜 엄청난 압력으로 눌러줌으로써 아래에 놓아 둔 금속 표면에 정밀한 도형과 문자를 새길 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현재 나 사 아랫부분은 원통의 칼럼[기둥]이 연결된 채 내려와 있지만 바닥까지는 높 은 공간이 빈 채로 남아있어서 정확히 어떤 장치를 연결해 어떤 작업을 수행 했는지는 불명확하다

65 -제작기법은 철로 여러 가지 부품을 주조로 만들고 각각의 부품을 용접으로 조 합한 다음 선반 등 가공작업을 통해 표면을 정리했다. 핸들 같은 경우 지름이 182cm나 되는 상당한 크기의 원형 고리모양을 완벽하게 주형하고 더하여 6개 방사상 축을 작은 흠도 없이 용접한 것으로 보아 고도의 철강 기술이 적용되 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도 쉽지 않을 정도이다. -철제임에도 불구하고 10년 이상을 야외에서 노출된 상태로 전시된 압사기의 보 존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하지만 핸들은 돌아가지 않는다. 부식 때문일 것이다. 기기 표면은 매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부분도 많지만 많은 부분이 부식으로 삭고 침식되고 있으며 그 증거는 수화물 형태로 나타난다. 빗물이 흘 러내린 수직부분이나 쉽게 증발할 수 있는 좁고 매끈한 수평부분은 부식이 덜 한 반면 바닥의 넓은 부분이나 부품의 밑면에는 상당히 심한 형편이다. -장치에 박혀있는 여러 개의 육각나사 머리는 부식의 정도에 따라서 종류가 달 라진다고 판단된다. 원래 것은 내부식성이 있고 교체된 것은 그렇지 못해 부 식이 심한 편이다. 아무래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거나 보호 시설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 화폐박물관 압인기는 상설전시실로 들어가자마자 마주치는 정면 전시대 위에 놓여 있다. 기기의 전반적인 구조는 압사기와 같다. 압인기는 역U자형 지지체 중간에서 내려온 나사 중간부분에 가로축이 하나 더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 마름모꼴 홀더가 붙어있다. 홀더 속에는 같은 모양의 칼럼[쇠기둥]이 나사와 연결되어 있어서 핸들을 돌리면 이 칼럼이 아래로 이동하며 압력을 가해 각인 을 하는 것이다. 칼럼의 밑면에는 동전 조각용 틀을 고정하는 구멍이 나 있다. 현재 이 틀은 결실된 상태이고 바닥과의 간격도 손가락 하나 들어갈 정도의 좁은 공간만 남아 있다. 또한 그 아래 받침 위에도 또다른 동전 고정틀이 앉 아 있어야 하지만 현재 결실되었다. -압인기는 제작방법도 압사기와 같이 각종 부품을 주물주조로 만들고 용접으로 접합하여 완성한 점은 유사하지만 표면을 마감한 선반공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실내에서 보관되고 있어서인지 심각한 부식은 보이지 않고 별다 른 흠도 찾을 수 없다. 핸들은 움직이지 않는 상태라고 한다. ᄋ 내용 및 특징 -압사기와 압인기 두 대의 장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작기계로서 주화를 만들 때 사용한 기계라고 한다. 1886년 독일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장치 어디에도 제작사 이름이나 연도, 제작국 등을 나타내는 라벨과 표식은 찾 을 수 없었다. - 과연 이 장치 2점은 고종 23년에 뭴렌도르프를 통해 독일에서 구입한 것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검증은 불가능 했다. 조사한 내용을 간략 히 정리해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스페인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압인기는 1831년 프랑스의 과학자 J.F. Saulnier가 제작한 것으로 원래는 다빈치의 발명품을 개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3> 유럽에서는 동전제작을 16세기말까지 주조법(Cast coins)을 사용했으나 그 후 찍어내는 압인법(Milled coins)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압인기의 크기는 높이 77cm, 폭은 40cm이다

66 좌 우(좌의 세부) <그림3> 스페인 국립박물관 소장 압인기(1831) 년 독일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려진 화폐박물관의 압인기와 원리는 같지만 손잡이 모양이 크게 다르고 크기도 약간 적다. 스페인의 압인기 핸들이 일자형 인데 반해 50여년 뒤에 제작된 화폐박물관의 압인기는 원형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보다 효율적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이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 그림4> 좌측 사진의 압인기는 일본 조폐국이 1868년 영국의 조차지인 홍콩 조폐국에서 6만량으로 구입한 것이다. 1871년 조폐국 창업 초기에 금 은 화폐를 제조할 때 사용했으 며 프랑스 토네리 社 의 압인기라고 한다. 우측 사진은 1872년에 구입한 대형 압 인기로서 1분에 60매 압인이 가능한 제품이다. 독일의 유롤 社 에서 만들었다. 좌 우 <그림4> 일본 조폐박물관(오오사까) 소장 압인기

67 - 조선의 전환국 사정과는 상당히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독일에서 유명한 압인기 제작사는 우롤 외에도 뷜켄 운트 줴네(Wilken & Shne)가 있었다. 현 재까지 운영되는 회사로서 마크는 이다. 작게 표시하는 특징도 있다고 하지 만 화폐박물관 기기에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ᄋ 문헌자료 -국내 최초로 수입, 사용된 서구식 압사기와 압인기에 대해 간략히 훑어보았다. 공식 관찬사서인 조선왕조실록 과 승정원일기 고종 21년(1884)부터 고 종 23년) 사이의 기록을 살펴보았지만 압인기와 관련된 내용의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각사등록 등 공문서 조사를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여하튼 고종 21년 조에 전환국 총판에 협판교섭통상사무 뭴렌도르프를 총판으로 임명하였고 그 뒤 고종22년 10월 9일에 감하한 기록과, 당시까지 전 환국에 주조한 당오전( 當 五 錢 )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종 23년 기록 역시 관련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ᄋ 기 타 - 소장 경위로, 압사기는 무슨 연유인지 서울공업고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을 1992년 4월 28일 화폐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압인기는 1988년 화폐박물관이 설립되자 조폐공사 경산조폐창에서 관리해 오 던 것을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 조폐공사는 1975년 주화공장을 경산으로 옮기 며 경산조폐창으로 불렸는데 이때 본 압인기가 경산으로 이전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경산조폐창 이전 자료는 불명이라고 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화폐박물관의 압사기와 압인기를 조사하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 기기가 고종 23년(1886) 독일에서 수입한 여러 종류의 주화 제작용 장비의 일부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작기계로서 중요한 유물로 판단된다. - 하지만 1886년 수입한 압사기와 압인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폐박물 관의 기기가 바로 당시 수입한 그 장비인지는 증명할 수 없다. 특히 장비 어 디에도 제작사 이름이나 제작 연도, 제작국 등을 나타내는 라벨과 표식을 찾 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장비는 19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에서 주화 제작에 일반적으로 사용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압인기는 조폐공사 경산조폐창에서 보관해오던 것을 이전해 왔다는 이력을 감안한다면 1886년 수입한 것은 아닐지라도 등록문 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함께 압인기 보다 더 크 고 정교하게 제작된 압사기 또한 등록문화재로서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단 전 소장처가 서울공업고등학교라는 점을 포함해 기기의 전력( 前 歷 )과 유전( 遺 傳 )에 대한 보강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 압사기와 압인기는 외국과의 교역을 위해 당시 조선이 시급히 도입해야 했던 서구식 화폐제도와 그에 걸맞는 화폐 제작을 위해 국내에 들여온 최초의 서구 식 기계로서 그 가치가 크다. ᄋ 종합의견 - 압사기와 압인기는 외국과의 교역을 위해 당시 조선이 시급히 도입해야 했던 서구식 화폐제도와 그에 걸맞는 화폐 제작을 위해 국내에 들여온 최초의 서구 식 기계로서 그 가치가 크다. (2)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1) 명 칭 :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

68 2) 소유정보 연번 소유자 소재지 수량 비고 1 세종대왕기념관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이수창 서울 종로구 평창 11길 3 1 3) 규 격 : 38.0(w) 25.5(d) 18.5(h) 4) 재 질 : 철, 플라스틱 등 5) 제작년도 : 1949~1952년 6) 조사자 의견 <서경대학교 교수 (산업공학)> ᄋ 현 상 - 공병우 타자기는 국내 최초의 실질적 한글타자기로서 타자기는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문서 작성, 문자 생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공병우 타자기는 1949 전국과학전람회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이래 1950년부 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1914년 이원익이 영문 타자기에 한글 활자를 붙이는 방 식으로 만들었는데 자음 2벌, 모음 2벌, 받침 1벌의 5벌이며 세로쓰기였다. 그 후 송기주는 4벌식의 세로쓰기 타자기를 만들었다. 해방 후 1949년에 공병우가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 원리를 이용한 실용적인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었다. - 공병우 타자기의 의의는, 한글 시대에 부응하는 가로쓰기로서, 초성 중성 종성 원리에 따르며, 속도가 빠른 실용적인 타자기라는 것이다. 모아쓰기를 하는 한 글은 영문타자기보다 속도가 느리다는 기존 생각을 깨고 영문타자기의 속도를 능가한다. 모양보다는 속도를 중시하여 타자기의 본질에 적합한 것이다. - 공병우타자기는 자음 모음 받침 각 1벌로 된 3벌식 글자판으로 한글의 구성원 리에 부합하고 빠른 타자라는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타자기이다. 세벌식 한 글타자기 외에도 다른 모델들 즉 5벌의 타자기, 3단의 한영겸용타자기 등이 있 으나, 세벌식 한글타자기가 대표적이다 년 한글기계화 표준자판을 확정 공포하기까지 대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표준자판이 정해진 후, 사용자는 줄어들었으나, 초성 중성 종성의 원리는 글자 판 분야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여 1982년 컴퓨터용 건반 즉 키보드 자판을 두벌식으로 표준으로 정하였으며, 4벌식의 표준 타자기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병우 타자기를 접목한 컴퓨터 키보드는 계속적으로 소수의 사용자 집 단을 가지고 있으며 연구도 되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아날로그 기기에서나 똑 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 세벌의 모아쓰기라는 점에 서, 구체적 디자인은 다를 수 있으나, 그 원리는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공병우 타자기는 50~60년대의 문자 생활의 필수품으로서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타자기로서 높은 가치를 지녔다. 일렬로 쓰는 로마자에 비해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은 타자가 영문보다 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초성 중성 종성의 원리 를 타자기에 과학적으로 반영하여 현대 한글 시대에 맞는 가로쓰기로서 영문 타자기 이상의 속도를 내는 타자기인 것이다. 이것은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 다고 본다. -본 대상물의 경우 여러가지 모델이 만들어졌으므로 사용 당시의 시간별 유래와 여러 모델의 대표적 기기에 대해 관계자의 증언과 당시 자료를 수집 기록할 필

69 요가 있다. -타자기의 글쇠는 오늘날의 컴퓨터 기기처럼 치기 좋게만 놓을 수 없다. 그리고 벌 수를 늘려 활자를 많이 갖출수록 네모꼴에 가까운 글씨를 나타내기 좋은 대 신 한정된 글쇠로 많은 활자를 넣느라 윗글쇠(시프트)를 자주 눌러야 하므로 타자 속도가 떨어지고 손가락 부담도 크다. 그래서 타자기는 모양과 능률의 상 대적 장단점이 있다. - 공병우 타자기는 모양보다 속도를 노렸다. 공병우 타자기는 한글의 구성 원리 를 따라 최소인 3벌을 택했다. 또 왼쪽 글쇠를 먼저 칠 때 활자대가 엉키는 일 이 자주 나타나서(조사자 판단에, 왼손보다 오른손이 빨리 움직이기 때문) 오른 쪽에 초성, 왼쪽 가운데에 중성, 왼쪽 끝에 종성을 두었다. -이런 특징들 덕분에 공병우 타자기는 실무에 적합하게 손가락이 유연하면서 빠 르게 글을 칠 수 있었다. 4벌, 5벌 타자기처럼 자모를 구분하고 윗글쇠를 누르 는 잡다한 조작이 최소화 되었다. 공병우 타자기가 나옴으로써 로마자 이상의 타자 속도를 자랑하며 한글 문화권의 사무 능률을 한껏 끌어올렸고, 한글 타자 기 시대를 활짝 여는 밑바탕이 되었다. -오늘날 다양한 폰트(글자체)가 사용됨에 따라 공병우 타자기의 글자 모양도 거 부감이 없이 사용되기도 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1950년대 대한민국의 문서 작성의 근간을 이룬 타자기의 대표적 제품으로서 보 존의 가치가 있다. - 49년 개발되어 50년부터 언더우드타자기회사가 생산하여 문서 생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현재로선 수 개의 모델과 수 개의 보존품이 있으나, 희소 성이상으로 기술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다. - 기술 발전 상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였는데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루어 지는 사실이 컴퓨터 정보처리에도 관련이 되며, 이 공병우 타자기의 개념이 컴 퓨터의 입력 설계에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한글은 모아쓰기를 하는 바, 음절 뭉치를 한번에 보여주는 장점의 요소가 있는 데 풀어쓰기를 하는 로마자나 다름없이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수 있도록 기술 적 해결을 최초의 타자기로서 큰 가치가 있다. -대표성을 지닌 세벌식 한글 공병우 타자기로서 보존상태가 깨끗한 제품이 문화 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함. 현재 보존되는 제품은 작동이 가능한 상태이다. ᄋ 종합의견 - 국내최초의 실질적 세벌식 타자기이며 현재 보존되는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타자기이며, 우리나라 문화생활, 문서작성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서울대병원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황 - 세종대왕기념관과 이수창(뉴타자 컴퓨터학원 이사장) 자택에 각각 1점씩 소장 되어 있다. -세종대왕기념관 소장품은 일반에 공개되어 전시 중이고, 이수창 소장품은 개인 소장용으로 보관되어 있다. ᄋ 현 상 - 공병우(1907~1995)가 개발한 세벌식타자기의 최초 양산모델로서, 미국 언더우 드 타자기회사에서 공병우의 도안에 따라 제작하여 한국에 수입한 것이다

70 -도장 색상이 약간 다른 것을 빼면 두 타자기의 외관은 거의 동일하다. 이로 미 루어 보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언더우드 영문타자기를 개조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 두 타자기 모두 공병우타자기의 특징인 쌍초점 가이드 를 갖추고 있으며, 두 타자기의 자판 배열은 똑같다. -두 타자기의 자판 배열은 공병우가 1949년 8월 미국에 출원한 특허 도면에 실 린 자판과는 다르고, 또 2008년 TV쇼 진품명품 에 출품되었던 공안과 소장 타자기와도 다르다. 공안과 소장 타자기가 년 제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출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두 타자기는 1949년 말부터 1952년 사이 생산 된 것으로 추정할 여지가 있다. (참고: - 한편 세종대왕기념관 소장품에는 없지만 이수창 소장품에는 언더우드 상표 양 옆으로 공병우 타자기 라는 한글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사진 참조). - 세종대왕기념관 소장품은 사용 가능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소장 하고 있는 다른 타자기들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관리하는 과정에서 함 께 관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창 소장품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만 실제 사용을 전제로 하지는 않고 보관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부속 등에는 먼지가 약간 끼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공병우타자기는 최초로 실용화된 한글타자기이다. - 공병우는 광복 후 직접 한글타자기를 만들어 쓰기로 결심하고, 영문타자기를 개조하는 작업을 수개월 동안 벌인 끝에 세 벌의 자판(초 중 종성)과 쌍초점 가이드를 이용하는 메커니즘을 고안하였다. - 공병우는 자신이 발명한 한글타자기를 한국과 미국에 특허 출원하고, 미국 언 더우드 타자기회사에 생산을 의뢰하였다 년 초 언더우드사에서 시제품을 제작하였지만, 양산에 들어가려던 찰나 한 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해군과 해병대가 공병우타자 기로 타자교육을 실시하여 200여 대의 공병우타자기가 군수물자로 수입되었다. -이를 계기로 공병우타자기는 초창기 한글타자기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다지고, 1969년 정부 표준자판이 제정될 때까지 대표적인 한글타자기로 받아들여졌다 년 정부 표준자판은 공병우타자기와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과 자판 배열에 바탕을 둔 것이었고, 정부는 강력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표준자판을 강요했으므 로 공병우타자기는 과거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특히 1984년 현행 컴퓨터용 표 준자판이 제정되면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표준자판을 이용하게 되었다. -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공병우타자기는 한글기계화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 실용적인 타자기였으며, 이것을 통해 한글 타자에 입 문한 과거 세대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병우가 반평생 한글 운동에 헌신했던 사실도 공병우타자기의 명성의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년대 후반 공병우타자기 주식회사에서 타자기를 조립 생산하기 전까지는 공병우타자기도 전량 수입한 것을 판매하였다. 완제품 공병우타자기를 수입하 기도 했고, 영문타자기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개조하여 공병우타자기 상표로 판 매하기도 했다. (이는 공병우타자기 뿐 아니라 다른 한글타자기 생산자들도 마 찬가지였다.) - 따라서 언더우드 뿐 아니라 스미스코로나 등 여러 회사에서 제작한 공병우타 자기 가 존재한다. -이번에 검토한 두 대의 타자기는 모두 언더우드사에서 제작하여 수입한 것으로

71 보이며, 그 중에서도 매우 초창기 모델로 보인다. -세종대왕기념관 측은 자신의 소장품이 국내에 세 대 존재하는 공병우타자기의 시제품 중 하나 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공병우의 회고에 바탕을 둔 주장으로 보인다. 공병우는 자서전에서 1950년 초 언더우드사에서 세 대의 시제품을 생 산하여 장면(당시 주미 한국대사), 호러스 언더우드(연희대학교 교수), 공병우에 게 보냈다고 쓰고 있다(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92-93쪽). 세종대왕기념관이 소장한 언더우드사 제작 공병우타자기가 공병우가 기증한 시 제품이라면, 공병우의 회고와 종합하여 이 주장은 사실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 만 이를 확증하려면 세종대왕기념관 측이 소장 경위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제 출할 필요가 있다. - 만일 이수창 소장품에 새겨진 공병우 타자기 상표가 상업적 판매를 위해 새 긴 것이라면, 상표가 새겨지지 않은 세종대왕기념관 소장품이 시제품이라는 가 설도 세워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설일 뿐이고, 음각 상표의 유무로 시제 품인지 판매용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타자기이므로 일련번호를 대조하면 두 타자기의 선후를 가릴 수 있다. 세종대왕기념관 소장 타자기는 , 이수창 소장 타자기는 맨 앞 숫자가 다른 부속에 가려 확인되지 않으나 (?)56203 의 일련번호를 지 니고 있다(추가 확인 필요). 이수창 소장 타자기의 일련번호 맨 앞자리가 9라 면, 두 타자기는 거의 같은 시기에 생산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00 정도 밖에 일련번호가 차이 나지 않는다면 두 타자기의 가치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2008년 10월 5일 방영된 TV쇼 진품명품 (제678회)에 공안과가 소장하고 있는 공병우타자기가 출품된 일이 있다. 이것은 이번에 검토하는 두 타자기와 자판 배열이 근소하게 다른데( 참조), 공안과 측의 설명을 받아 들인다면 제조 시기도 약간 뒤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검토 대상 타자기의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 비교 사례가 될 수도 있다. ᄋ 문헌자료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대원사, 김태호, 가장 과학적인 문자 와 근대 기술의 충돌: 초기 기계식 한글타자기 개 발 과정의 문제들, 한국과학사학회지 33권 3호, 2011, 쪽 -공병우, 1949, 쌍촛점타자기, 대한민국 특허 공고번호 , 출원, 공고 - Pyung Woo Kong, Korean Typewriter, U.S. Patent 2,625,251, filed July 8, 1949 and issued January 13, 공박사 고안 타자기 미국에서 대량제작, 경향신문 , 2면 - 세대를 나누어 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1. 첫 세대(1948년~1950년대 초),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공병우타자기는 한글기계화의 상징과 같은 물건이므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 치는 충분하다. 시간이 더 흘러 가령 공병우타자기 발명 100주년이 되는 2048 년 이후에는 등록문화재보다 상위의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 다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물건이므로 희소성과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 는데, 공병우타자기 가운데서도 양산되기 전 단계 시제품이라면 그러한 우려 없이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다

72 - 한 가지 더 제안하자면, 공병우타자기 뿐 아니라 한글기계화의 역사에서 분수 령이 되는 다른 물품들도 앞으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해야 한다. 공병우타자기 뿐 아니라 실물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타자기인 김준성타자기, 1960년대 중반까지 공병우타자기와 시장을 양분했던 김동훈타자기, 1969년 정 부 표준 자판을 채택하여 최초로 국내 생산된 크로바타자기 등의 가치를 평가 하고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특성상, 생산시기 등을 기준으로 각 상품을 대표할 수 있는 물건을 선정하여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이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ᄋ 종합의견 - 실용화된 최초의 한글 타자기의 초창기 모델로서 한글 기계화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산이므로 보존가치가 높다. <전 연세대학교 (국어학)> ᄋ 현 상 -언어는 의사전달의 매체다. 언어를 통해 사상이나 감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 달하고 전달받는다. 이 언어활동을 통해 인간은 협동(동시적 협동, 계기적 협동) 을 하고, 이 협동을 통해 문화를 창조하고 축적해 간다. 언어를 통해서만 인간은 협동을 할 수 있다. 언어 중에서 말이 지니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 문자를 발명해 내었다. -우리나라도 1443년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다. 한글 은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이용하여 왔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입력하고 또 출력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한글을 편리하 게 사용하게 된 것은 창제된 이후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뜻있는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의 축적 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문자를 이용하여 어떻게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를 전달하는가 하는 것이 문화 발 전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인류는 그 문제에 대하여 무한한 노력을 해 왔다. -우리나라도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한글을 사용함에 있어서 몇 가지 목적을 위 해 끝없는 노력을 해 왔다. 그 결과로 1 쓰는 도구 2 인쇄 방법 3 기계화 등 의 몇 가지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쓰는 도구 : 처음에 주로 붓을 이용하여 왔으나 19세기말에 연필과 펜 및 만년필 이 수입되었고 서양에서 1938년에 개발된 볼펜이 1945년 미군에 의해 도입되고 또한 이것이 1963년에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시작된 이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 -인쇄의 방법 : 처음에는 필사를 통해 이루어지다가 의사를 한꺼번에 여러 사람에 게 전달하기 위해 인쇄 가 시작되었다. 인쇄의 초기에는 목판본으로 찍어 내다가 고려말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하여 찍어내고 이것이 목활자 등의 활자 본으로 변천하여 왔으며 19세기에는 석인( 石 印 ) 인쇄술이 도입되어 이 방법이 이용되다가 19세기말에 연활자가 도입되어 연판 인쇄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공 판타자 인쇄나, 청판타자 인쇄도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디지털 인쇄, 즉 컴퓨터로 입력하고 프린터로 출력하는 세계가 되었다. - 한글의 기계화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이 기계화된 것은 19세기말에 한글을 모스 부호로 전환시켜 전보를 친 것이 처음이다. 이것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한글로 의사를 전달하는 최초의 기계식 방식이었다

73 -그러다가 한글 쓰는 일을 빠르고 정확하고 균일하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타자기 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 우리나라의 한글타자기의 변화를 보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이원익( 李 元 瀷 ) 한글타자기 (1914년) 2 송기주 한글타자기 (1930년) 3 공병우 한글타자기 (1947년) 4 김동훈 한글타자기 (1950년) 1 이원익의 한글타자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타자기로, 1914년에 재미교포 이원익이 만든 것이다. 로마 자 타자기에 한글 활자를 붙여 개발한 레밍턴(사) 제품의 다섯벌씩 모아쓰기 타 자기이다. 타자 방식은 가로 찍어 90도 돌려서 세로로 읽는 것이며, 글자꼴은 해 서체이며, 실용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12글쇠 7열의 84글쇠식 타자기이다. 처음에는 언문글시 쓰 기계 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용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였 다. 이원익은 로나녹크대학에서 상업을 전공한 이원익(wonic leigh)이었는데, 그 는 1913년 84개 키로 이루어진 최초의 타자기를 발명했다. 2 송기주 한글타자기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만든 옆으로 찍어서 세로 읽는 모아쓰기 타자기로 자음글자 3벌(가, 고, 과 등에 쓰이는 3종)과 모음 글자 1벌의 4벌의 배치로서, 받침은 가로모임 글자의 자음글자를 겸용하도록 만들었다. 연희전문 출신인 송기 주에 의해 1930년에 개발되었다. 송기주(keith c. song)는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25세 때인 1925년 도미하여 텍 사스 주립대학교에서 학사학위(b. s.)를 받고 1926년 시카고의 랜드 맥넬리 회사 에서 지도 제도원으로 일하면서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다가 뉴욕으 로 갔다. 그래서 그는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에는 시카고 한인감리교회의 교인이 었고, 뉴욕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뉴욕한인감리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는 시카 고에 있을 때 한국 지도를 최초로 서구식 입체 본으로 제작하였으며, 한글타자기 를 고안하여 7년 간 연구 끝에 1933년 뉴욕의 타자기 제조회사 언더우드 (underwood-elliott-fisher)와 제작에 합의하였다. 종전에 타자기가 있었으나 자판 이 복잡하고 타자 열이 고르지 않아 실용성이 없었는데 언더우드-송기주 타자기 는 42개 키로 현대체 한글을 고르게 찍을 수 있는 타자기로 각광을 받았다. 뉴욕한인감리교회에서 한글타자기 개발은 송기주 이후에도 계속되어 1946년 해 방직후 담임목사인 김준성 목사가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쳐지는 한글타자기를 제작했으나 상업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타자기를 개발했을 때 한국에도 그것에 못지 않은 한글타자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뉴욕한인교회 70년사는 한글타자기의 선구자로 알려진 공병우 박사가 1940년대 뉴욕한인감리 교회를 출석한 바 있고 김준성 목사와 교분이 있는 사이였다는 점을 근거로 공 병우 박사의 타자기가 김준성 목사가 개발한 모델과 연관성이 있지는 않은가 추 측하고 있다. 송기주가 귀국 후 공병우 박사가 발명권 양도를 교섭했는데 이를 거절했다는 설도 있다. 그 후 6.25때 송기주가 납북된 후 그 방식의 타자기가 공 병우 박사에 의해 시장화됐다고 알려져 있다. 3 공병우 타자기(1947년) 처음으로 대중화된 한글타자기는 1947년 공병우가 개발한 가로쓰기의 세벌식 타자기이다. 1969년 과학기술처의 검토에 의해 네벌식 타자기가 표준자판 타자기

74 로 공포되었다. 4 김동훈( 金 東 勳 )식 타자기 이 타자기는 5벌식의 글자판인데, 활자로 박은 네모꼴 글자에 가깝게 찍힌다. 즉 자음(변자음 14자소, 관자음 14자소) 2벌과 모음(받침이 필요없는 모음 13자 소, 받침이 필요한 모음 13자소) 2벌, 그리고 받침(16자소) 1벌을 가지는 타자기 이다. 이의 윗글자쇠 사용률은 5.5%이며, 1959년부터 시판되었다. ᄋ 내용 및 특징 -위와 같은 한글타자기 개발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의 한글타자기 개발은 일 반화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용화 과정도 거치지 못하였다. 한글타자기가 널리 보급되고 일반화된 것은 공병우 타자기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병 우( ~ )는 한글타자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글 및 타자기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한글타자기를 과학화시키는 데에 진력하였다. - 이미 이원익, 송기주에 의해 만들어진 한글타자기가 있는 상황이어서 공병우의 타자기를 최초의 한글타자기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병우 타자기가 유명해진 이유는 기존 타자기와는 달리, 가로 찍기가 가능했으며 세벌식으로 자 판이 배열되어 실용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표준 자판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두벌식 배열 이지만 공병우 타자기의 자판은 세벌식 배열로써, 글쇠에 자음과 모음 외에 받침 까지 추가되어 있다. 세벌식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지는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가, 타자기의 자음, 모음, 받침의 글쇠로 구현된 것이다. -공병우 한글타자기의 자판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ᄚ ᆴ ᄏ ᆳ ᆪ ᅭ ᄐ ᄊ ᄉ ᄑ ㄸ ᄊ ㅃ ᄍ # ᆱ ᅤ ᆬ ᄒ ᆮ ᄋ ᆷ ᅢ ᅧ ᅵ ᅥ ᄉ ᆨ ᆷ ᄎ ᆩ ᄏ ᆭ ᆹ ᄌ ᆷ ᄌ ᅳ ( ) / % ᄋ ᆯ ᆫ ᅡ ᅳ ᆫ ᄋ ᆮ ᄌ ᆸ ᄐ ᆲ ᆩ ᅨ ᆰ ᅲ?!. \ ᆸ ᆨ ᅦ ᅩ ᅮ ᆯ ᄒ,. ᄑ -그 자판의 배열을 사진으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75 -이 세벌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방향으로 개별 문자가 나열되는 영문타자기의 기계적 원리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고, 따라서 공병우는 쌍초점 방식을 개발해 냈다. 이 쌍초점 방식 타자기의 성능에 대해서 공병우는 다음과 같은 6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가로글씨 맞춤법 한글을 빠르게 자동적으로 찍어 낼 수 있다. 2 사용법이 극히 간단하여서 다만 한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3 영문 타자기와 같이 촉짓법( 觸 指 法, Touch system)으로 찍을 수 있으므로 손익으면 키 판을 보지 않고 찍을 수 있다. 4 키 판에 자모의 배열이 비과학적으로 된 영문 타자기에 비하여 과학적으로 정확히 되어 있으므로 찍기에 매우 능률적이다. 5 꼐 모양이 영문 타자기와 같아서 휴대에 편리하고, 제작이 용이하고, 제작 비용도 비슷할 것이다. 6 찍어서 나타난 글자들의 꼴과 배열에 있어서 닿소리, 홀소리, 받침이 각각 일정한 선과 위치에 규율적으로 배치되어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일 필요가 없이 읽을 수가 있으며, 자획의 수에 비례하여 면적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상하로 고저가 있어서 어떤 글자나 동일한 시각으로 잘못 읽음이 없이 바르 게 읽기가 용이하므로 시간 절약과 아울러 보안상 내지 보건상 실질적이다. -공병우의 한글타자기는 한글의 구성 원리를 따른 것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타자 를 칠 수 있으며, 손가락에 부담이 덜 간다는 이유들로 여러 기관에서 인정을 받 으며 사용되었다. - 공병우는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개인병원인 공안과 를 개원한 안과 의사 였는데 특이하게도 6.25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인 1947년, 처음으로 한글타자기 를 개발하게 된다. 그는 눈병으로 자신의 병원에 찾아온 한글학자 이극로의 한글 에 대한 열정에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한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방 후, 공병우는 후학들을 위해 소안과학 이라는 책을 한글로 번역하여 발행하 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마다 제각각인 필기체를 읽느라 번역작업 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더 정확하고 빠른 작업이 가능한 한글타자기의 필요성 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수동식 영어 타자기를 해부하듯 다 뜯어내어 타자기의 기본구조를 익히는 것부터 연구를 시작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한글타자 기 시제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 미국에 가 있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가 한글 타자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미국의 유수한 타자기메이커인 언더우드(Underwood Co.) 회사와 상담하여 실용 한글 타자기 1호를 내놓았다. 그 사진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76 - 이 타자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를 소지하여 보관하고 있는 곳이나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그 소장처가 알려져 있는 곳은 개인 소 장(이수창 소장)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둥이다. - 이수창 소장 공병우 한글타자기와 세종대앙기념사업회 소장 공병우 한글타자기 는 아직도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다. 그 사진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 이 시제품은 조립 결과, 영문보다 오히려 속도가 빨라서 6.25 당시에는 각군에 서 사용하게 되었고, 1952년 10월에는 공 박사를 중심으로 공한글타자기 보급 회사 가 설립, 풀어쓰기식(21벌)의 타자기가 시중에 나오게 되었다. 물론 이 당 시에는 기기의 거의 전부가 국산이었다. - 그후 공병우 박사는 전혀 미개척분야인 한글 타자기의 보급에 진력, 1962년에 는 시내 천호동에 국산타자기 제작공장을 설립하는 한편 한글 자판에 대한 특 허를 한국과 미국에 각각 내고 3벌식 타자기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1963년에는 이 공장은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로 정식 설립되었다 ᄋ 문헌자료 -공병우(1948), 林 語 堂 先 生 의 明 快 한 打 字 機, 한글 13권 3호 조선어학회 -공병우(1949), 내가 고안한 쌍촛점 한글 타자기, 한글 107, 한글학회 -윤준호(2003), 공병우 타자기, 광고정보 통권 262호, 한국방송광고공사 -임종철(2006), 한글 기계화에 집념한 공병우 박사님, 나라사랑 112, 외솔회 -한재준(2006), 공병우 3벌식 타자기 할자꼴의 발상과 구조에 대한 가치와 의미, 나라사랑 112. 외솔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공병우 타자기는 한글의 기계화 과정에서 과학적이고 훈민정음 창제 원리에 맞는 한글타자기를 개발하여 이를 국민들에게 보급하여 한글 이용에 회기적인 공헌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한글 자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됨으로써 오늘날에는 비록 두벌식 한글 자판이지만, 컴퓨터의 한글자판을 표준화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가 되었다. -이 공병우 한글타자기는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의 기계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 으므로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ᄋ 종합의견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여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다. (3) 현대자동차 포니1 1) 명 칭 : 현대자동차 포니1-76 -

77 2) 소 유 자 : 백중길 3) 소 재 지 : 경기 여주군 대신면 대신로 244 4) 수 량 : 1대 5) 규 격 : 397(l) 156(w) 136(h), 축간거리 224, 4기통, 후륜구동 6) 재 질 : 철, 동, 알루미늄, 유리, 플라스틱, 고무, 가죽, 직물 등 7) 제작년도 : 1975년 8) 조사자 의견 <대림대학교 교수 (자동차공학)> ᄋ 현 상 -국산 최초의 양산형 고유모델 1호이며, 경기도 여주 현지에 6대가 보관되어 있 다(3대는 외부 수리 중). 현지에서 3대를 확인하였으며, 상태는 모두 양호한 편 이다. 1975년식 자가용 (진파란색) : 수동변속기, 휘발유 사용 1979년식 자가용 (하늘색) : 자동변속기, 휘발유 사용 1984년식 영업용 택시 (초록색) : 수동변속기, LPG사용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시동상태도 일발 시동이 가능 할 정도로 운행가능하며, 기존 부품의 상태나 보존도 매우 훌륭한 편이다. 엔진 룸 내의 엔진이나 부속 부품이 모두 원품이며,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휠이나 휠캡, 사이드 미러, 각종 등화장치도 원품 유지가 되어 있으며, 운전석 인태리어 상태 및 부착 부품 모두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계기판의 상태도 원 품이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포니는 자가용, 영업용, 자동변속기 및 수동변속기, 휘발유 및 LPG 등 시스템 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고 차종도 일반 승용, 픽업, 해치백 등 6종 이상의 다 양한 모델이 출시되었다. 각 모델마다 범퍼의 형태나 휠이나 휠캡 등이 다르고 계기판도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 각 모델마다 포니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연식에 따라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가장 오래된 1975년식 최초의 양산 모델로서 기본 승용 모델이 그 중심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국내에서는 수십 대 이상의 포니 모델이 산재되어 보존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모두가 1970년대 후반이나 1980년대 초반의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1975년 첫 해 양산된 모델이 확인되면서 더욱 의미 있는 차 종을 확인할 수 있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1975년식 포니는 가장 오래되고 원년에 제작한 유일한 차량으로 예측되고 있어서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연식의 차종에 비해서도 엔진룸이나 외부 및 실내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ᄋ 종합의견 - 현대차 포니는 국내 최초의 양산형 국산차이다. 현재 세계 5위의 선진국 수준 의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1975년 처음 생산한 포니의 문화재 등록은 후 대를 위해서도 당연한 조치라 판단된다. 현재 수십 대 이상의 포니가 산재하고 있으나 보존 상태나 연식 등을 고려하면 제시한 최초 해인 1975년식 포니 승용 차가 가장 타당하다 판단된다. <부산대학교 교수 (과학사)>

78 ᄋ 현 상 - 울산박물관 소장 1979년 포니와 1981년 포니는 모두 새롭게 도색을 한 상태이 지만, 기본 부품은 대부분 원래의 것을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ᄋ 내용 및 특징 -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는 핵심기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도 입함으로써 개발되었다. 현대는 스타일링과 차체설계를 위하여 이탈디자인(Ital Design)사에 기술용역을 의뢰하였고, 엔진, 변속기, 후차축 등 동력발생 및 동 력전달 장치, 플랫폼(언더바디섀시 및 플로어)의 설계도면(섀시레이아웃), 엔진 제조를 위한 주물제조기술은 일본의 미쓰비시에서 도입하였다. 그밖에 현가장 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엔진마운트, 냉각 및 배기시스템 등 주요 섀시부품들은 현대가 미쓰비시의 랜서 차종을 분해하거나 도입한 부품을 일일이 측정하여 도 면화하였다. 부족한 기술자료는 기존의 코티나, 뉴코티나 등의 포드 사양을 응 용하되 국내 기술수준을 감안하여 약간 수정하는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 이처럼 현대는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함에 있어서 차체설계, 엔진, 변속기 등의 주요 기술을 모두 외국 업체에게 의존했으나, 이들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차종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은 자체적인 기술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했다. 즉, 성능이 확인된 완성차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엔진의 차체 탑재, 차체와 섀시의 조화 등 제반 측면에서 기술적용을 위한 노력과 시험이 뒤따랐다. 시행착오를 불가피하게 동반했던 이러한 기술적용 노력은 고유모델 이기 때문에 생겨난 기술학습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이처럼 현대는 다국적 기 술의 도입으로 새로운 기술학습의 원천을 창출하고 소위 짜집기식 기술조합 을 통해 자신의 고유모델을 개발했던 것이다. -포니의 개발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를 보유하게 되었다. 현대는 1975년 11월에 종합자동차공장을 완공하면 서 포니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으며, 1978년 12월까지 10만대를 생산하는 기록을 남겼다. 포니를 매개로 현대는 1976년부터 기아를 제치고 자동차업계 1 위로 올라섰다. 포니는 남미와 중동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수출되었던 최초의 국산 승용차이기도 했다. - 기술발전과 관련하여 현대가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하면서 얻었던 가장 중요한 성과로는 기술인력의 양성을 들 수 있다. 현대는 이탈디자인사에 대리에서 차 장급에 이르는 5명의 인력을 1년 동안 파견하여 차체설계에 관한 제반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일과 시간에는 현지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눈 에 담았다가 퇴근 후에는 이를 기록하고 토론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또한 현대 는 시작차를 제작하고 시험할 때에는 초빙한 영국인 기술자와 국내 기술진이 공동으로 작업을 수행하게 하였고, 포니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섀시, 차체, 시험, 금형, 프레스, 엔진 등 각 부문별로 외국인 전문가 7인과 3년간 고용계약 을 체결하여 기술적 자문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현대의 기술진은 선 진 기술을 흡수하는 것은 물론 독자적으로 기술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 또한 현대는 고유모델의 개발을 계기로 부품국산화율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 다. 현대는 포니를 처음 출시한 1975년에 85%의 국산화율을 달성한 데 이어 1976년부터는 부품국산화율을 90% 이상으로 유지하였다. 이에 반해 외국모델 을 기본으로 했던 기아의 브리사나 GM코리아의 제미니는 생산 초기에 부품국 산화율이 70% 내외에 머물렀다. 외국모델을 도입했던 다른 기업들은 수입부품 의 사용이 불가피했던 반면, 고유모델을 개발했던 현대는 국산부품을 적극적으

79 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대의 전략은 우리나라 자동차부 품 업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다른 완성차업체의 국산화율을 개선하는 데에도 긍 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ᄋ 문헌자료 -현대자동차, < 현대자동차 20년사>, 현대자동차, < 현대자동차사>, 오규창, 조철, <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역사와 성장잠재력>, 1997 ᄋ 기 타 -현대자동차가 구입하여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울산박물관에 소장된 2개의 포니 이외에도 여주의 금호클래식카(소유자 백중 길)가 소장한 포니가 있는데, 여주에 있는 포니는 1975년에 제작된 것이고 보 존 상태도 원래의 것과 더욱 가까운 것으로 판단된다. ᄋ 종합의견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자동차기술의 발전에 획기적인 계기로 작용한 고유모델 포니는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다. <경주대학교 교수 (보존과학)> ᄋ 현 상 1. 포니1 자동차 개요 - 현대자동차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생산한 후륜구동의 승용차이다. 이 자동 차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모델로서 우리나라 자동차 공업이 자립 선언과 동시 에 도약의 발판이 되어준 차종이므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하겠다. - 현대자동차(대표 정세영)는 당시 미국 포드자동차(Ford Motor Co.)와 녹다운 방식(원형을 분해하여 운송한 뒤 재조립하거나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하는 방식)으로 코티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두 회사 사이에 기술이전이 원활하지 못했다. 1973년 정부에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이 발표되며 여기에 포함된 자동차산업 5대 원칙 이 제시되면서 자동차 국산화 정책을 확고히 하자 현대자동차에서는 독자 모델개발을 추진하게 되면서 탄생하게 되었다. - 정세영 사장은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산업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쥬지아로 (Giorgetto Giugiaro, 1938~)를 찾아가 대한민국 고유의 독자적인 모델로 디자 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쥬지아로는 직선과 각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1970년대 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인물인데 그의 작품 중에는 우리도 잘 아는 명차 폭스 바겐 골프 도 있다. 자동차 개발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1973년 9월 스타 일링 디자인에 들어간 1년 뒤인 1974년 10월 30일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콘셉트카로 최초 공개된다. - 이 모델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롱 노즈 패스트 백(Long Nose Fast Back : 전면이 길고 후면이 짧은 모습) 형태를 따랐다. 또한 전면은 직선을 강 조하여 강력한 힘을, 뒷면은 유연한 곡선을 채용함으로써 속도감과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드러냈다. -자동차는 디자인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차의 심장인 엔진도 필요했는데 당 시 국내 기술로는 자체 제작이 불가능해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공업[ 三 菱 自 工 ]의 새턴엔진(4기통, 1,238cc 80마력)을, 플랫폼은 초기 모델에 미쓰비시의 랜서 등 을 사용하여 했다. -포니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12월부터였으며 울산공장에서

80 전담하였다. 시판은 1976년 2월부터, 가격은 223만원이었다. 포니는 특히 한국 인의 취향과 체격, 그리고 당시 비포장 상태가 많았던 도로사정에도 알맞으면 서 경제적인데다 내구성도 좋아 국민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던 차였다. 시 판 첫해 우리나라에서만 10,726대가 판매되어 43.5% 점유율을 보였고 수출 또 한 에쿠아도르에 5대를 시작으로 북미와 유럽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포니 는 1985년 12월 생산종료까지 여러 모델이 개발되었지만 특히 1982년 3월 포 니2 로 변화를 거치며 총 293,936대(내수 226,549대, 수출 67,387대)를 생산하 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포니는 후속 모델인 포니 엑셀 로 진화하며 그 맥을 이었으며 1986년 이 모 델이 드디어 세계 최대인 미국시장으로 진출하여 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코리 아의 명성을 높이게 되었다. <그림1> 최초의 포니1 자동차(홍보용 팜플렛 사진) 구 분 내 용 3,970mm X 1,558mm X 1,360mm 크기 (전장X전폭X전고) 4도어 승용(5) 3도어 해치백(5) 보디 타입 5도어 해치백(5) (승차정원) 5도어 왜건(5)-1977년 탄생 2도어 픽업(2) 엔진<모델>과 배기량 : 출력 최고출력/토크 변속장치 최고속도 현가장치 제동장치 기화기형식 연료탱크 용량 <미쓰비시 4G36형 4기통 SOHC> 1. 1,238cc : 80ps/6,300rpm 2. 1,439cc : 92ps/6,300rpm 80마력/10.8km,m 수동4단/자동3단 155km/h 전륜 : 맥퍼슨 스트럿 후륜 : 판 스프링 <하이드로릭 2중식> 전륜 : 디스크방식 후륜 : 드럼방식 스트롬버그 2벤츄리 수직형 45l <표> 포니자동차 제원 2. 울산박물관 소장 포니1 자동차 -울산박물관에서 소장중인 포니 자동차는 모두 2대이다. 개관과 함께 수증, 구입

81 한 것이다. 편의상 현재 박물관 산업사 2관에 전시중인 포니를 포니A, 수장고 에서 보관중인 포니를 포니B로 기술한다. - 포니A는 1981년에 생산되어 유럽[네덜란드]으로 수출되었던 자동차다.< 그림2> 현대자동차가 네덜란드 현지에서 구입해 국내로 들여와 전면적인 수리를 거쳐 2011년 9월 울산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생산연도는 조금 늦지만 수출형[3도 어 해치백] 모델을 국내로 역수입해 왔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육안 조사만으로는 어디를 얼마만큼 수선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흰 색으로 재도장된 외관, 깨끗한 유리, 국산 자동차 타이어 등이 대대적으로 수리 되었다고 예상되는 근거이다. 나머지 부분은 사용으로 인한 흠과 닳음, 재질의 노화로 인한 변질, 오염 등에서 오래되었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적절한 세정 과 녹제거, 기름칠, 도색 등 일반적인 정비와 함께 일부 부품 교체도 있었을 것 으로 믿는다. -박물관 학예원의 말에 의하면 포니A는 주행이 가능한 상태로 전시실로 들여와 현재까지 전시중이라고 한다. 언제든지 운행이 가능한 동태보존( 動 態 保 存 ) 상태 로 판단된다. 외관은 오염이나 부식흔적도 없이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전조등, 방향등, 후미등과 같은 조명장치, 전면의 그릴과 로고, 뒷면의 회사와 모델명 로고, 앞 뒤 범퍼에 덧붙여진 고무제 충격 완화판 같은 유리제, 플라스 틱제 외장 부품 또한 모두 원래의 부품이 완벽한 상태로 장착되어 있다. 하지 만 좌우에 사이드 미러가 없다는 점이 의아하다. 뒷면의 해치백을 열면 따라서 올라오는 가림판의 천은 교체된 것 같은 반면 트렁크 밑부분에는 예비 타이어 와 작업용 잭까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도 원형을 상당히 좋은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다. 계기판이나 핸들 등 플라 스틱 재질은 30년의 세월동안 운전자의 손길이 닿았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깨끗 한 상태로 원상을 보존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시트는 비닐[레자]과 합성 직물을 연결한 재질이지만 닳거나 찢어진 흔적 없이 깔끔해 놀라울 정도이다. -자동차의 밑바닥 부분은 원래 도색부분이 탈락했고 부식도 발생한 흔적이 있지 만 현재는 깨끗이 정리되었고 검은색 페인트로 재 도장되어 있다. -자동차가 운행된 기간이 30년을 훌쩍 지났지만 주행거리는 기록계에 km 로 나타나 있다. 네 바퀴 모두 장식용 허브 캡은 장착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림2> 울산박물관 전시실의 포니A 정측면 <그림3> 울산박물관 소장 포니B 정측면 -나머지 한 대인 포니B는 내수용 모델[3도어 해치백]이며 현재 수장고에 보관중 에 있다.< 그림3> 우리나라 도로를 주행했던 자동차다. 대쉬패널의 차량번호는 KMHPD31EPAU 이다. 이 차가 생산된 연도를 표시하는 10번째 알파벳 A가 규정대로라면 1976년이 되어야 하지만 1979년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82 면 1979년 울산공장에서 359번째로 생산된 자동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색상은 MR로 표기되어 있지만 현재 색상은 자주색 한색이다. 직접 도색한 전 소유주의 설명에 의하면 원래 자주색과 흑색 투톤칼라였다고 한다. 자동차의 상부인 A B C 필러와 루프[천정] 부분이 검은색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새 로 칠한 자주색은 원색에 비해 약간 어두운 색상이 되었다. 보닛 내부 가장자 리에 남아있는 자주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포니B의 상태는 매우 좋아 보인다. 울산박물관이 구입하자 대전에서 거주하던 소유주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와서 인계했다고 하니 당장 운행해도 전혀 문 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닛을 열고 훑어보자 엔진을 비롯해 라디에이터, 공기청정기 등 주변의 각종 장치와 배선들이 가지런하고 곳곳에 청결함이 묻어 나 관리유지가 철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동차에는 자동차등록증도 함께 보 존되어 있고 포니A에는 없는 에어콘과 펜더 미러(정식 부품으로 판단됨)도 좌 우에 하나씩 달려 있다. - 외관은 특히 재 도장되어 깨끗하고 유리도 흠이 없다. 전조등, 방향등, 후미등 과 같은 조명장치, 전면의 그릴과 로고, 뒷면의 회사와 모델명 로고, 앞 뒤 범 퍼에 덧붙여진 고무제 충격 완화판 같은 유리제, 플라스틱제 외장 부품 또한 모두 원래의 부품이 완벽한 상태로 장착되어 있다. 바퀴도 마모되지 않은 상태 이며 앞 뒷바퀴 흙받이가 모두 잘 붙어있다. 36년여를 운행한 자동차로서 최상 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총 주행거리는 믿기 힘들지만 기록계 에 km로 나타나 있다. -내부도 원형을 상당히 좋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부분의 내장재가 잘 보 존되어 있다. 계기판이 모여있는 작동 패널(Instrument Panel)의 플라스틱재 커 버는 30년의 세월동안 운전자의 손길이 닿았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깨끗한 상태 로 원상을 보존하고 있다. 핸들에 가죽커버가 씌워져 있는데 벗겨버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시트는 과거 어느 시기에 새로 교체한 것으로서 깔끔한 상태이다. 바닥의 녹색시트는 새로 깔아 놓은 것이지만 그 아래에 원래의 것이 남아있다. -자동차 밑바닥부분은 현재 손상없이 깔끔한 상태인데 외장 도색시 함께 재도색 한 것으로 판단된다. 재도장 할 수 없는 머플러 배기장치나 현가장치, 드럼브레 이크 등에는 약간의 부식이 생성되어 있다. 바퀴의 장식용 허브 캡은 현재 없 는 상태이다. ᄋ 내용 및 특징 -위의 내용을 다시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 생산연도 모델명과 일반 내용 특 징 포니A 1981 포니B 1976 흰색, 3도어 해치백 외장 재도색, 1,238cc, 수동변속 유럽 수출모델, 네덜란드에서 역수입 동태보존 상태 : 기계적으로 특별한 문제 없음 자주색, 3도어 해치백 내수 모델 외장 재도색, 1,439cc, 자동변속 동태보존 상태 : 기계적으로 특별한 문제 없음 ᄋ 문헌자료 -최인정, 자동차백과 ᄋ 기 타 -포니A는 현대자동차(주)가 울산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마련한 산업기술실1에 전

83 시하기 위해 유럽으로 수출한 초기 모델을 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전면적으로 수 리하여 기증한 것이다. - 포니B는 울산박물관이 구입한 모델로 대전에서 거주하는 전 소유주가 운행하 던 자동차이다. 소장 경위와 운행 기간 중에 발생한 사건, 사고, 미담 등을 조 사하여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겠다. - 금번 조사 대상 자동차로 경기도 여주의 개인 소장 포니1(3도어 해치백, 감청 색)이 있다. 직접 조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을 통해 확인 한 바 포니1이 시 판된 해인 1975년 2월 생산된 자동차이다. 대쉬패널의 차량번호가 KHO P F-0125라서 그 해 125번째 생산차로 이해된다. 확인된 예로는 가장 이른 시기 의 생산품이다. - 외관은 말끔하지만 내부는 관리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하지만 운행이 가능한 상 태이며 특히 도장은 물론 부품도 원래의 것이라고 한다. 전면의 그릴은 교체된 것으로 판단된다. - 한편 위의 소장자는 포니1 자동차를 2대 더 보유하고 있다. 1979년 생산된 밝 은 청색의 자동변속 5도어 해치백 승용차와 1984년 생산된 상용차[택시]로서 녹색의 5도어 해치백 수동변속 LPG 가스차이다. 두 차의 상태는 모두 썩 좋아 보이지 않으며 동태인지는 불분명하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1. 고유모델 개발 상황과 그 의미 - 현대자동차가 고유 모델인 포니 자동차를 개발한 이야기는 기적을 이룬 것과 같다는 평가가 있다. 70년대 중반 우리나라 산업 수준은 가내수공업 단계를 벗 어난 상태였고 특히 자동차 기술은 모든 부품을 들여와 조립 생산하던 수준이 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무모함 자체였다. 특히 당시 세계 자동차 시장도 공급과잉 상태로 어려웠고 내수시장 또한 너무 좁았 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우려는 당연했고 반대의견도 상당했다고 한다. - 하지만 자동차산업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고 과감히 뛰어든 소수의 운영진과 국내 산업의 발전을 위해 피땀흘려 노력한 유능한 전문인, 제작 완성을 위해 불철주야로 희생한 수많은 공장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열매였다. 그 결과 우리 나라 산업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유발시키는 효과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산업체질도 수출주도형으로 변모시켜주는 계 기가 되었다. - 포니 자동차는 우리나라 산업의 고도화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발달사 속에서도 포니는 성공 신화로서 자리매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화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 확고한 신뢰와 역사성을 부여하는 역 할을 하고 있다. 2. 포니 자동차가 끼친 영향 -자동차는 기계, 철강, 전기, 화학 등 산업기술이 모두 일정한 수준 이상이 되어 야 생산이 가능한 분야이다. 정밀한 부품 2만여 개가 정확하게 조립되어야 만 하는 기계공업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모의 상태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차 개발을 3년이라는 초 단 기간 내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동차 이름 포니(Pony) 도 국민 공모 를 통해 결정된 것이다. 소형 승용차로서 포니는 적합했고 튼튼함의 상징으로 도 자리매김했다. - 포니 자동차의 탄생과 성공은 국내 외를 막론하고 모든 한국인들에게 자부심 과 긍지를 심어준 점도 컸다. 변변한 상품이 없던 시절 자체 모델의 자동차를

84 생산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포니가 그러한 역할도 했다. 3. 포니1 자동차의 가치 - 우리나라 산업발전은 물론 세계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포니 자동차는 생산된 댓수만 해도 엄청났다. 최초의 모델인 포니1이 생산 중단된 지 31년이 지난 현 재 국내에 존재하는 포니1이 과연 몇 대가 남아있을까?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 만 이번 심사에 대상이 되는 3점 외에 여러 대의 포니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 지난 2012년 11월 3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트리움 관장에서 현대자동차 주최 포니자동차 행사(행사명 "Pony, The Brilliant Memories")가 열렸다. 이때 출품 되었던 포니1 모델은 2대로서 승용차(은색, 3도어 해치백)와 상용차 택시(녹색, 5도어 해치백)였다.< 그림8> 또한 제주도에서는 생산년도가 불확실하지만 황색 의 포니1 왜건이 운행 중에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1977년 생산된 포니1(4도어, 자주색) 1대가 자동차 커뮤니티 보배드림(bobaedream)에서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는 등 몇가지 모델의 포니1이 확인된다. 모두 운행이 가능한 상태로서 외관 도 멀쩡해 재도장 등 지속적인 정비와 수리를 거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약간의 포니1이 몇 대 더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4> "Pony, The Brilliant Memories" 행사모습( ) -산업유산으로서 자동차는 여러 대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희소성이 적다고 진정성도 함께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모델 속에서도 생산 연도별로 약 간의 개량과 첨삭이 있었고 특히 현재 조사된 자동차는 수출용과 내수용으로 분명한 특성이 있다. -금번에 조사 대상이 된 3점의 포니1 모델은 모두 운행을 계속해 오면서 철저한 정비와 관리유지도 함께 진행되어 상태 또한 최상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국내 에 현존하는 포니1 모델을 모두 전수 조사 후 비교 선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아있는 포니1 자동차를 모두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기에는 불가능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지만 포니1은 산업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는 크다 하겠다. ᄋ 종합의견 - 포니1 자동차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유 모델로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 준 상징물로도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 요가 있다

85 (4) 해양조사연보 1) 명 칭 : 해양조사연보 2) 소 유 자 : 국립수산과학원 3)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해안로 ) 수 량 : 해양조사요보: 9권, 해양조사연보: 60권(1954~2012) 5) 규 격 : 4 6배판( cm) 6) 재 질 : 지류 7) 제작년도 : 해양조사요보(1928~1942년), 해양조사연보(1954~계속) 8) 조사자 의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해양학)> ᄋ 현 상 - 해양조사연보는 단군이래 국내에서는 최초로 근대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우리나라 주변의 해양특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결과를 기록한 책자이며, 해양 조사요보, 조선근해해양도, 해양조사연보 등의 이름으로 내용과 성격을 약간씩 달리하여 발간되었으며, 이들 자료는 모두 하나의 묶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 해양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연구는 1915년 7월 중앙행정부 수산과에서 연안 12 개소의 수산조합에 위탁하여 정지관측 시행이 시초이며, 1917년 2월 Misago Maru가 건조되어 수시로 근해 해양조사 실시. 1921년 5월 중앙행정부 수산시 험장(현 국립수산과학원)이 창설되어 본격적인 해양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한 국근해 해양조사의 역사, 국립수산과학원을 중심으로, 2007) 년 수산시험장 창설후 각도에 도립수산시험장 설치, 소속시험선으로 정선 관측 실시하고 수산시험장에서 종합, 분석하였다. 1944년 도립수산시험장 폐지 로 중앙행정부 수산시험장으로 통합되어 업무수행중 광복 맞이함. 광복후 시험 선과 조사장비 점검 및 정비과정에 6.25 전쟁 발발로 해양조사 중단. 휴전후 열 악한 국가재정으로 최소한의 해양조사를 수행하였다. 1961년부터 기존정선 페 지후 해양조사체계 구축하였으며, 1965년 시작된 CSK (쿠로시오 국제합동조 사)가 해양조사 발전적 계기가 됨. 1966, 1967년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선박건조 와 해양조사장비 확보로 1970년까지 CSK조사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998년 탐구호 건조와 함께 Nasen Cast에서 최신 CTD 조사체계로 변경하였다. -이같은 시대상황에 따라 한반도 주변해 해양관측결과는 일제치하인 1928년부터 해양요보, 조선근해해양도(요보부록), 1954년부터는 해양조사연보가 발행되었으 며, 일부는 미발간자료로 보존되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해양조사연보는 1926년-1934년까지 관측자료를 1928년(1호), 1930년(2,3,4호), 1933년(5,6호), 1936년(7호), 1938년(8호), 1942년(9호)에 해양조사요보 로 발행 되었다. 해양조사연보는 1954년,1956년,1958년, 1962년, 1963년, 1965년, 1967년 까지 1권-15권으로 발간되었다. 그리고 1968년(16권)-2012년(60권)이 발간되었 다. 관련된 해양조사요보와 해양조사연보를 모두 문화재로 등록할 것으로 권고 한다. - 아울러 해양조사요보의 부록으로서 조선근해해양도를 1926년-1932년까지의 매 년 관측자료를 년(1-7호)에 발행되었고, 년까지의 자료를 1934년~1942년까지 매년 발행되었다. 수온, 염분분포 등을 도면으로 제시하고 있는 조선근해해양도를 해양조사요보와 함께 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권고한다. -미발간자료로서 1923년-1944년간 수온,염분 등 한반도 근해 관측자료를 수기로 기입한 관측자료 원장에 해당되는 수기 횡단관측기록 역시 보존이 필요하다

86 1926년-1944년간 수온,기상요소등 연안정점에 대한 관측자료를 수기로 기입한 수기 연안정지 해양관측성적표도 일괄 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권고한다. - 그간 국립수과원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자료를 단지 아날로그 형태인 보고서 형태로 보존만을 해왔으나 Digital 기록으로 새롭게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해 단순히 문화재적 가치뿐만 아니라 1920년부터 축적 된 과학적인 자료와 최신 관측자료를 결합하여 장기간의 자료를 필요로 하는 한반도주변해에서의 기후변화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년대부터 한반도 주변해양에 대한 수온,염분,기상요소에 대한 관측자료를 기록한 보고서(그림) 형태자료로서 한국에서의 해양과학적인 조사가 시작된 최 초의 자료이며, 해방이후 관측되고 있는 자료와의 연속적인 자료로서 보존의 가치가 있다. - 일제강점기에는 1928년부터 해양조사요보, 1954년부터 해양조사연보로 보존되 어 온 것으로, 일제강점기의 자료가 제한된 수량의 책자만이 존재하여 희귀본 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년부터 관측시기, 관측기관, 관측방법, 관측기관 등이 모두 명료하게 기록 이 남아있어 과학적인 자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 일련의 해양조사요보, 해양조사연보 외에도 해양조사요보의 부록은 조선근해해 양도등도 연계하여 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권고하며, 이들 자료 외에 수기기록 한 자료도 보조자료로서 함께 등록하기를 권고한다. - 대한민국에서의 과학적인 조사는 선진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제에 의해 한국 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찍이 1920년대부터 한국 주변 해역에서의 해양조사가 진 행되었다. 이들 자료는 문화재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기후변화의 일환 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 주변의 장기간에 걸친 해양특성 이해를 위한 연속 적인 시계열 기초자료로서도 매우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과학적인 자료 로서 디지털화 복원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기를 권고한다. - 특히 일제강점시에는 북한수역에도 관측이 실시되어 현재 접하기 어려운 북한 수역에 대한 해양과학적인 자료로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향후 통일시에 추가적으로 관측되는 해양과학 자료와의 연속성을 위해서도 보존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ᄋ 종합의견 년부터 현재까지 보존되는 한국 주변해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인 정보를 기록한 책자이며, 우리나라 해양조사기록을 수록한 유산이며 과학자산으로서 보존가치가 높다. <부산대학교 교수 (해양학)> ᄋ 현 상 - 종이 인쇄물. 1920년대 일제시대 발간된 것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나 년대 것은 종이의 산화가 심하여 부스러지기 쉬운 상태이다. ᄋ 내용 및 특징 년 일제 강점기 현 국립수산과학원의 전신인 수산시험장이 설립된 직후부 터 우리나라 근해의 정선 및 정점에서의 수온과 염분 등 해양조사를 정기적으 로 실시해왔으며, 이 조사는 광복 후 6.25 동안의 혼란기를 제외하고 현재까지 정선 및 정점을 추가정비하며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조사 결과는 일제 시대

87 에는 해양조사 요보와 조선 근해 해양도에 그리고 광복 후에는 해양조사 연보 에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발간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조사정선과 정점은 정비되고 추가되어 현재는 초기에 비해 정 점의 수가 매우 늘어났지만 조사의 연속성은 잘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체계적인 해양조사가 계속 끊임없이 실시되고 그 결과가 보고서로 발 간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한 경우로 해양조사 이 보고서들은 해양학계 의 세계적인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보고서들은 역사성 뿐 아니라 이에 수록된 해양조사 자료들 역시 해양학적 으로 매우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해양학자들이 이들 자료를 이용하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변동 연구 에 있어서도 표준 자료로의 가치가 클 것이다. ᄋ 종합의견 -세계적으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해양환경을 관측 한 결과를 편찬한 예는 매우 희귀하다. 수산과학원에서 수행한 1950년대 이후 의 연보 뿐 아니라 이 연보의 시작인(비록 일제 시대의 수산시험장에서 편찬한 것이기는 하지만) 해양조사요보, 조선근해해양도, 미발간 자료인 수기 횡단관측기록, 수기 연안정지 해양관측 성적표 등과 관련 야장들을 함께 등 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본다. <부산대학교 교수 (과학사)> ᄋ 현 상 - < 해양조사연보> 는 1954년(1, 2권), 1956년(3권) 1958년(4권), 1961년(5, 6권), 1962년(7권), 1963년(8권), 1964년(9, 10, 11권), 1965년(12, 13권), 1967년(14, 15 권)에 발간되었으며, 1968년(16권)부터는 매년 발간되어 왔음 - < 해양조사연보> 의 기원은 1928년부터 발간된 < 해양조사요보> 로 볼 수 있는 데, < 해양조사요보> 는 1928년(1호), 1930년(2, 3, 4호), 1933년(5, 6호), 1936년(7 호), 1938년(8호), 1942년(9호)에 발간된 바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 해양조사연보> 는 1952년부터 연안정지관측과 정선해양관측을 통해 조사한 자 료를 정리하여 싣고 있으며, 관측항목은 기상요소, 수온, 염분, 용존산소, 영양 염류, 동물플랑크톤 등임. 1960년에 정선을 전면적으로 개편함에 따라 1961년부 터는 현재의 기준에 따라 < 해양조사연보> 가 발간되고 있음 -< 해양조사요보> 는 1926년부터 연안정지관측과 정선해양관측을 통해 조사한 자 료를 정리하여 싣고 있으며, 수온, 염분 등을 도면으로 제공하고 있는 < 조선근 해해양도> 를 부록이나 독립된 보고서로 구비하고 있음 ᄋ 문헌자료 - 국립수산과학원, < 한국근해 해양조사의 역사: 국립수산과학원을 중심으로>, 국립수산진흥원, < 국립수산진흥원 80년사>, 2001 ᄋ 기 타 - < 해양조사연보> 는 해방 이후에 작성된 것이고 < 해양조사요보> 는 일제강점기 에 작성된 것이지만, 두 자료가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자료 모두를 등록문화재의 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됨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88 - < 해양조사요보> 와 <해양조사연보> 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해양조사 에 대한 기록을 남긴 예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음 -국립수산과학원이 2007년에 발간한 < 한국근해 해양조사의 역사> 에 따르면, 영 국이나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 해양조사연보>가 가진 가치를 인정하고 별도 로 관리할 정도로 관심이 많음 -이와 함께 < 해양조사연보> 는 국내외의 많은 해양학자들이 해당 자료를 시계열 로 분석하여 우수한 연구결과를 생산하는 기초로 작용해 왔음 ᄋ 종합의견 - 세계적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해양조사에 대한 기록을 남긴 예가 드물기 때문에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할 가치가 높음 (5) 통일벼 유물 1) 명 칭 : 통일벼 유물 2) 소유정보 연번 명칭 수량 재질 제작년도 소유자 소재지 1 허문회 박사 시험도구 1식 금속 1960~70년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경기과천시과천동706 2 허문회 박사 조사야장 4권 지류 1968~70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경기과천시과천동706 3 통일벼 조사 야장 3권 지류 1968~70 국립식량과학원 경기수원시권선구수인로125 3) 조사자 의견 <서울대병원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황 -통일벼(IR667) 육성 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다섯 점의 자료들이다. -농촌진흥청에 3점, 국립 과천과학관 내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 2점 소장되어 있다. 농촌진흥청 소장 자료 : 통일벼 개발 관련 시험연구 야장( 野 帳 ) : 국립식량과학원 소재 대통령 단체 표창 수치( 綬 幟 ) ( 수여) : 농업과학관 전시실 소재 녹색혁명 성취 기념탑( 건립) : 농업과학관 야외 소재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 소장 자료 : 통일벼 개발 관련 시험연구 야장 허문회의 교배시험 도구 -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통일벼 개발 관련 자료의 목록(자료명과 소재 등)을 정리하여 소장하고 있다. 상기 자료는 그 목록 가운데 통일벼 개발 과정 을 간명하게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표적인 것을 선정한 것이다. ᄋ 현 상 -다섯 건 모두 현재 보존 관리되고 있는 자료들이므로 당장 파손의 우려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치는 현재 농촌진흥청에 다른 통일벼 관련 자료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시 장 보관 외에 특별한 보존처리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보존 방안 수립 이 필요하다. - 녹색혁명 성취 기념탑은 실외 조형물로 노출되어 있으나 35년 정도 경과한 석 조물이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식량과학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야장은 농촌진흥청 육종사업에 이용한 다른 야 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는데, 문화재로 등록하고 나면 일반적인 보관문서와는

89 달리 수시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별도 보관할 필요가 있다. -국립 과천과학관 소재 야장과 시험도구는 현재 일반 공개 중이다. ᄋ 내용 및 특징 -야장(field note)은 육종 시험을 할 때 교배조합을 기록하고 이후 재배 결과 등 을 적는 수첩으로, 해석이나 가공되기 전 가장 원초적인 데이터를 기록한 문서 이다. 이번에 검토한 야장은 허문회(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가 1968년부터 1970년 사이에 통일벼의 원형이 된 IR667을 교배하여 육성한 결과를 적은 것 (국립 과천과학관 소장)과, 농촌진흥청 연구자들이 1960년대 말 수원에서 IR667과 그 후계 품종을 육성하면서 관찰한 결과를 적은 것(식량과학원 소장) 이다. 특히 국립 과천과학관 소장 야장은 IR667의 육성 데이터(1968년 2책), 뒷 날 유신벼 로 명명된 IR1317의 육성 데이터(1969년 1책), 찰기가 부족한 통일 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통일찰벼 육성 데이터(1970년 1책) 등이 허문회의 육필로 수록되어 있어 그 가치가 높다. -허문회는 필리핀 연수 기간 중 당시 동남아시아를 석권하던 기적의 벼 IR8의 다수확성 형질을 도입하고자 IR8과 온대성 벼를 교배하였고, 수백 개의 교배조 합을 시험한 끝에 삼원교잡 테크닉을 적용하여 IR667을 개발했다. 국립 과천과 학관에 소장된 시험도구는 벼 인공교배에 쓰이는 장비들로, 허문회가 직접 사 용한 것들이다. -허문회의 귀국 후 IR667은 수원에서 농촌진흥청 차원의 적응 시험과 계통 선발 을 거쳐 1971년 통일 이라는 품종명을 받았다. 대통령 단체 표창 수치는 통 일 의 육성 완료를 치하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수여한 것이다. 아직 통일벼가 일반 농민에게 보급되기 전인데도 포상을 했다는 것에서 당시 정부가 통일벼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통일벼와 후계 품종의 보급으로 한국의 쌀 생산량은 5년 사이 30퍼센트 이상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1977년 녹색혁명 성취 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기념행사 를 벌였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정희가 쓴 綠 色 革 命 成 就 휘호를 새기고 연구자와 농민의 부조상 등을 실은 석조 기념탑을 농촌진흥 청 구내에 세웠다. 이 기념탑은 녹색혁명의 전성기의 열광과 기쁨을 보여주며, 현재 원본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녹색혁명 성취 휘호를 새기고 있다는 점에 서 여러 가지 의의가 있다. ᄋ 문헌자료 - 김인환, 한국의 녹색혁명: 벼 신품종의 개발과 보급, 수원: 농촌진흥청, 김태호, 통일벼 와 1970년대 쌀 증산체제의 형성,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여러 종류의 통일벼 개발 관련 유물 가운데 이번에 일괄 등록을 제안하는 자료 들을 선정한 기준은 유물의 진정성과 희소성, 그리고 대표성이다. -우선 1977년 녹색혁명 성취 를 기념하여 배포된 각종 기념패와 동판 등은 현재 여러 개인이나 단체가 소장하고 있으므로 희소성의 기준에 입각하여 제외하였다. -또한 개인이 받은 훈장이나 포상 관련 자료도 가급적 배제하였다. -이런 취지로 다섯 건의 자료를 선정하였다. 두 건의 야장과 허문회의 인공교배 도구는 통일벼 육성의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는 자료이므로 선정했으 며, 농촌진흥청이 받은 단체표창 수치는 통일벼의 실용화가 개인의 힘으로 이 루어진 일이 아니라 농촌진흥청의 집단적인 연구의 성과로 비로소 가능했다는

90 점을 알려줄 수 있어 선정했다. 또 녹색혁명성취 기념탑은 다른 네 건과 달리 통일벼 보급의 결과와 관련된 대표적인 자료라고 판단하여 선정하였다. - 통일벼와 그로 인한 1970년대의 녹색혁명은 근현대 한국과학사에서 가장 두드 러진 성취 중 하나일 뿐 아니라, 1970년대 한국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이 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유물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다. - 다만 이들 유물 중 상당수가 식량과학원에서 다른 자료들과 한 목록으로 관리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소장처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등록된 유물 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 또한 식량과학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야장은 농촌진흥청 육종사업에 이용한 다 른 야장과 함께 보관되어 있는데, 문화재로 등록하고 나면 일반적인 보관문서 와는 달리 수시로 활용이 가능하도록 별도 보관할 필요가 있다. ᄋ 종합의견 - 한국 농학이 거둔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주는 물품이므로 관련 물품 일체를 일괄 등록할 것을 권한다. <KAIST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황 -통일벼의 개발을 주도한 연구자 허문회와 관련된 자료는 경기도 과천의 국립과 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이 소장하고 있고, 통일벼의 개발 보급을 이끈 기관인 농 촌진흥청과 관련된 자료는 경기도 수원의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과 국립식량과 학원이 소장 중이다. ᄋ 현 상 년대까지 한국은 주곡인 쌀의 생산이 부족한 상태였다. 보릿고개, 춘궁기, 절량농가는 그 같은 식량부족 상황을 지칭하는 표현들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농촌진흥청의 주도로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협조를 받아 서울 대 교수 허문회가 개발한 다수확 품종 IR667이 1970년대 들어 정부의 적극적 인 노력에 힘입어 여러 후속 품종들이 개발되고 농가에 빠른 보급이 추진됨에 따라 쌀의 수확량을 크게 늘어났다. 통일 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품종은 한국 인이 먹어 온 자포니카에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는 인디카를 교잡한 것으 로 자포니카에 비해 미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높은 수확량이라는 장 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에 정부는 무리할 정도로 신품종의 보급을 추진했고, 결 국 1977년 4,170만석의 생산량을 기록하여 쌀의 자급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쌀 수입을 중단하고 그 동안 쌀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여러 절 미정책들을 철회하며 주곡의 자립, 녹색혁명의 성취 를 선언하였다. - 통일벼의 개발과 보급에 의한 주곡의 자립은 한국 현대 산업기술사 또는 한국 농업사에서 가장 중요한 성취 중 하나이며, 이에 따라 관련 유물의 등록문화재 등록이 꼭 필요하다. 다만 통일벼 자체는 재배를 통해 재생산되는 종자로서 현 재 몇몇 기관이 종자 자체를 보존하고 있지만, 재배하여 계속 반복 생산할 수 있는 종자 혹은 그 종자의 생체표본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곤 란한 상황이다. 따라서 통일벼의 개발, 보급, 녹색혁명의 달성과 직간접으로 관 련된 다른 유물을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 따라서 통일벼 개발의 주역인 허문회 교수가 연구 과정에서 사용했던 연구도 구, 연구 과정을 기록한 야장( 野 帳 ), 이후 이 연구를 이어 받아 후속 연구를 수 행했던 농촌진흥청의 시험연구 야장, 1971년 통일벼 개발 성과를 인정받아 농 촌진흥청에 수여된 대통령 단체 표창 수치와 상패, 1977년 녹색혁명의 달성을

91 기념해 이듬해 농촌진흥청에 건립된 녹색혁명 기념탑 등을 함께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제안한다. 기념탑이나 대통령 표창은 통일벼 개발 및 보급이라는 성과 자체와 직접 관련된 유물이 아니라 그 성과를 기념하는 유물이지만 녹색 혁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에 등록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념탑과 대통령 표창이 여의치 않다하더라도 허문회 의 연구도구와 야장(국립과천과학관 소장), 농촌진흥청의 야장(농촌진흥청 국립 식량과학원 소장)은 등록문화재로 등록될 가치와 의미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농촌진흥청 야장의 경우 소장 기관의 협조를 얻지 못해 현재 몇 권이 어떤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 등록문화재 로 등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1950년대까지 부족한 식량은 미공법 480호(PL480)에 의한 미국의 잉여농산물원 조로 채워나갔지만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면서 식량 도입에 필요한 외화는 경제 개발을 추진하는 정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 보리증산이 이루어졌으나 1인당 쌀소비량이 계속해서 증가하자 정부는 주곡의 자립을 최우 선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에게 주곡인 쌀이 지니는 의미가 각별했기 때문에 쌀의 자립은 매우 큰 정치적 과제가 되었다. 한국인에 쌀은 음식 그 이상의 것 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혼 이자 생명줄 로 인식하고 있었 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원조정책이 바뀌어감에 따라 양곡도입은 막대한 외 화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식량자급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혼분식장려와 함께 강력한 절미정책을 실시했다. 무미일로 지정된 수요일과 토요일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쌀밥 판매가 금지되었으며, 혼식 비율이나 7분도 이내 쌀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각종 행정규제를 통해 식 량절약을 강조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수확 신품종 개발은 중요한 방안의 하나로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육종학자들은 농촌진흥청의 주도로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 (IRRI, 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의 협조를 받아 체계적인 연구를 통한 다수확 품종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미작연구소에 파견되어 벼 육종 연구를 수행하던 서울대 교수 허문회가 새롭게 개발한 품종은 한국 녹색혁명의 시작이었다. 미작연구소의 667번째 개발품종이라는 의미로 IR667 이라 불린 이 품종은 한국인이 먹는 자포니카(Japonica)와 다수확의 인디카(Indica)를 교배한 것이다. 인디카는 높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내랭성이 높지 않아 한국의 기후 에는 맞지 않았는데, 허문회는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원연교잡(remote cross)에 서 돌파구를 찾았다. 원연교잡은 거리가 먼 종끼리 교잡하는 것으로 내병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임인 경우가 많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 다. 허문회는 다양한 교배조합을 통해 잡종불임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 고, 수대에 걸쳐 자가교배를 실시하는 한편 이 품종을 제3의 품종과 교배하는 매개교잡(bridge cross)을 통해 불임을 해결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내랭성이 좋은 인디카 품종 TN1과 자포니카 품종 중 추위에 강하고 인디카처 럼 수확시기도 빠른 유카라(Yukara)를 원연교잡하고 여기에 생산성이 높은 IR8을 매개교잡하는 방식을 통해 IR667이 태어났다. - IR667의 시험재배를 통해 다수확성을 확인한 허문회는 이를 가지고 1966년 귀 국했는데, 이것의 보급을 위해서는 계통선발, 적응시험 등 긴 여정을 거쳐야했 다. 개발된 신품종의 계통 선발을 위해 여름에는 한국에서, 겨울에는 필리핀에 서 경작을 하는 왕복선발을 도입하여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

92 에서 우수한 생산력을 보인 여러 계통을 확보했다. IR667의 개발은 1968년말 박정희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되었고, 그는 특별 예산을 배정하는 등 신품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신품종은 이듬해 언론을 통해 시험재배 결과 가 보도되면서 기적의 쌀 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신품종의 개선 및 보 급연구는 최초 개발자인 허문회의 손을 떠나 농촌진흥청이 주관하게 되었다. - IR667은 보급을 위한 현지 적응시험과 생산력 검정시험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부터 대통령의 각별한 기대를 받았으며, 대통령은 1970년 연두기자회견을 통 해 신품종 보급을 통해 1976년 식량자급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 뒤 이어 가장 유망한 세 개의 계통이 장려품종으로 선발되었고, 이 품종에 통일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통일 은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1971년부터 농가에서 본격적인 시험재배가 시작되었다. 1971년의 시험재배 결과 통일벼는 기존 벼보다 2배 이상의 생산량을 기록한 곳이 있는 등 기적의 쌀 임을 재확 인시켜 주었다. 부분적으로 병충해의 출현이라는 문제도 생겨났지만 이는 놀라 운 생산량에 의해 가려질 수 있었다. 이 결과에 자신을 얻은 대통령은 이듬해 부터 전국적인 확대보급을 지시했다 년 농촌진흥청은 전면적인 확대보급을 주도했으나 그해의 통일벼 수확 결 과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농촌진흥청은 전국의 20만ha에 통일벼를 공급하 고 통일벼 재배법 교재 75만부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한편 농한기를 이용하여 사전교육을 실시하고 지역마다 통일벼 재배 성공을 위한 촉진대회를 여는 등 보급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나 이해는 8, 9월의 폭우와 저온, 우박 등의 기상이 변이 닥쳐 통일벼 재배 농가들이 큰 타격을 보게 되었다. 재래품종 역시 자연 재해의 피해를 피하지 못했으나 통일벼를 재배한 농민들은 통일벼가 재래품종 에 비해 탈립(수확 전 벼 낱알이 떨어지는 것)이 심해 더 큰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 그러나 그 같은 논란 속에서 농촌진흥청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이듬해에도 통일벼의 보급을 추진하게 되었다. 대통령은 1972년말 식량자급자 족의 조속한 달성을 위하여 식량의 증산과 소비절약시책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 진하라는 특별지시를 국무총리에게 내렸으며, 이는 다수확의 가능성이 확인된 통일벼의 확대보급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조치로 해석되었다. 정부는 1972년의 실패가 자연재해 때문이었다는 믿음아래 좀 더 다양한 유인책과 경우에 따라 강제성을 동원하여 통일벼의 재배를 유도해나갔다. 낮은 미질 때문에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는 통일벼를 고가에 수매하고 식량증산대회 등을 통해 농민들의 통일벼 재배 의욕을 고취시켰다. 영농 현장에서 적극적인 보급 및 지 도를 위해 농촌진흥청은 농업지도사의 숫자를 대폭 늘렸는데, 연구인력의 증가 에 비해 지도인력이 훨씬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는 사실은 정부 정책이 신품종 의 확대보급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같은 노력에 힘입어 1973년 통일벼는 다시금 높은 생산성을 기록했으며 이듬해 확대보급이 더욱 가 속화되었다. 대통령은 일선 농촌지도공무원에게 봉급의 200%에 달하는 파격적 인 상여금을 지급하는 한편 主 穀 의 自 給 達 成 이라는 휘호를 보내 통일벼 보급 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1974년은 전체 논 면적의 25%에 달하는 30만ha에 통일벼가 재배되었으며, 농촌진흥청은 군사작전과 같은 쌀 3,000만석 돌파 7단 계 작전 을 세워 목표 달성에 매진했다. - 통일벼의 빠른 보급 속에서 연구자들은 통일벼가 지닌 단점을 개선하기 위한 후속품종 개발을 추진했다. 여전히 다수확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후속 품종들도 인디카 계통이 교배친으로 이용되었다. 후속 품종 중 밥맛을 개선한 유신 이

93 대표적이었으며, 이는 당시 정치 체제를 이름으로 삼을 정도로 정부의 큰 기대 를 모았다. 이에 따라 초기의 통일벼는 1975년을 정점으로 재배 면적이 줄어들 었고, 유신을 비롯한 양질 다수성의 통일형 신품종들이 점차 비중을 높여갔다. -우려와 희망 속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된 신품종들은 꾸준히 생산량을 늘렸으며, 1977년 적당한 기상조건에 힘입어 목표량을 초과한 4,170만석을 기록하여 실질 적인 쌀의 자급을 달성했다. 공식적으로는 1975년 3천만 석을 넘어서면서부터 쌀의 생산량이 수요량을 넘었지만, 이때의 수요는 정부의 강력한 절미정책에 의해 크게 억제된 수치였으며, 정부의 외국산 쌀 수입 역시 계속 되었다. 그러 나 1976년 3천5백만 석을 넘은 생산량은 이듬해 4천만 석을 넘어서면서 쌀 수 입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쌀의 자급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해의 전국 평균 수 확량은 10아르 당 494킬로그램으로, 일본(1975)의 종전 세계 최고기록 (447Kg/10a)를 넘어서는 성과였다. -쌀의 자급을 이루게 됨에 따라 그동안 대표적인 절미정책이었던 무미일이 폐지 되었으며, 그 밖의 쌀 수요 억제책들도 완화되었다. 이러한 성과에 대통령은 농 촌진흥청에 綠 色 革 命 成 就 라는 휘호를 보내고 관련자들에게 훈장과 포상금을 수여하며, 1970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선언했던 쌀의 자급이 달성된 것을 치 하했다. 비록 1978년부터 병충해, 냉해, 태풍 등으로 통일계 신품종이 큰 타격 을 받고 수확량이 크게 떨어졌지만 1980년대를 거치면서 통일벼의 개발과 보급 에서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자포니카 품종에 대한 개량 연구가 계속되어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주곡인 쌀의 완전한 자급을 이루고 있다. ᄋ 문헌자료 -김인환, 한국의 녹색혁명: 벼 신품종의 개발과 보급, 농촌진흥청, 김태호, 통일벼 와 1970년대 쌀 증산체제의 형성,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김환표, 쌀밥 전쟁, 인물과사상사, 이완주, 라이스 워, 북스캔, 2009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녹색혁명의 성취는 허문회를 비롯한 육종학자들의 연구와 신품종의 보급을 위 한 연구 및 영농교육에 매진한 농촌진흥청의 노력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따 라서 현재 국립과천과학관 명예의 전당에 소장되어 있는, 허문회가 IR667 개발 에 이용한 인공교배도구(핀셋, 돋보기, 가위, 메스 등)와 교배 실험결과를 기록 한 연구노트인 야장( 野 帳 )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아울러 허 문회의 연구를 이어 받아 우량 계통을 선발하고 후속품종을 개발한 농촌진흥청 의 교배 실험결과를 기록한 야장(현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소장) 역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여기에 1971년 3월 통일벼 개발을 치하하는 의미에서 농촌진흥청에 수여된 대통령 단체 표창 수치와 상패, 그리고 1978년 농촌진흥청에 세워진 녹색혁명성취 기념탑도 그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박 정희 대통령은 1977년 주곡의 자립을 기념하여 綠 色 革 命 成 就 라는 휘호를 보 냈는데, 현재 이 휘호의 원본은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농촌진흥청 농업과 학관은 사본을 전시중이다. 녹색혁명기념탑에는 바로 대통령이 보낸 綠 色 革 命 成 就 휘호가 새겨져 있다. 따라서 허문회 1연구도구와 2야장, 국립식량과학 원이 소장하고 있는 농촌진흥청의 3야장,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1971년 4대통령 단체 표창 수치와 상패, 그리고 농촌진흥청 내의 5녹색 혁명기념탑을 하나로 묶어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 다. 다만 농촌진흥청의 야장은 현재까지 정확한 소장 상황이 확인되지 않았기

94 때문에 최종심의 전에 해당 기관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아 검증할 필요 가 있다. ᄋ 종합의견 -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주곡의 자립을 달성하게 한 통일벼는 한국현대사에서 매 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성취로서, 통일벼 관련 유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보존과학)> ᄋ 내용 및 특징 - 세계적인 식물육종학자인 허문회(1927~2010)의 작물육종기술 관련 자료로 1960~19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성이 높은 벼 품종(통일벼)에 대한 연구 자료로 연구 수첩과 실험 도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일벼 개발기 술은 쌀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기술로 지금도 생산성이 높은 작물을 육종 하는 모델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현재까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가치 를 지니는 벼 육종 연구시 허문회 박사가 직접 기입하고 사용한 자료로써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ᄋ 조사 방법 1) 규격 및 구성 - 유물의 구성을 설명하고 정확한 규격을 측정하기 위해 줄자를 이용하여 cm단 위로 측정하였다. 2) 색도 측정 - 현재 색의 관찰 및 기록을 위해 대표적 색상별 위치를 선정하여 색도 분석 (A-6800, BY K)을 실시하였다. 색도는 KS A 0063의 규정에 의거하여 CIE 표 색계의 L *, a *, b * 값으로 표시하였다. 색도는 기본적으로 명도, 색상, 채도로 평 가되며 L값은 명도 수치로 0~100까지 표시되며, 낮을수록 명도가 어두워진다. a와 b는 색상과 채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값이 높을수록 채도가 좋은 색상 이며 +a는 적색, -a는 녹색, +b는 황색, -b는 파란색의 경향을 각각 나타낸다. 한 측정 위치에서 3번을 측정하여 평균값을 나타내었다. 3) ph 측정 -유물의 산성도를 측정하고 수치로 나타내기 위하여 지류용 ph 측정기(TS-110, SUNTEX)를 사용하여 전체 유물 중 일부 유물을 대상으로 측정하였으며, 각 측정 위치에서 3번을 측정하여 평균값을 나타내었다. ᄋ 조사 결과 1) 1968년도 수첩 (1/2) 1 규격 및 구성 - 가로 약 19cm, 세로 약 11.4cm로 합성가죽으로 추정되는 재질의 커버와 내부

95 의 속지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의 테이프는 접착물의 열화가 진행되어 황색으 로 변색되었다. 2 색도 측정 분석위치 L * a * b * 비고 첫 장 가운데 장 마지막 장

96 2) 1968년도 수첩 (2/2) 1 규격 및 구성 - 가로 약 19cm, 세로 약 11.4cm로 합성가죽으로 추정되는 재질의 커버와 내부 의 속지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의 테이프는 접착물의 열화가 진행되어 황색으 로 변색되었다. 2 색도 측정 분석위치 L * a * b * 비고 첫 장 가운데 장 마지막 장

97 3) 1969년도 수첩 1 규격 및 구성 -가로 약 18.7cm, 세로 약 10.6cm로 합성가죽으로 추정되는 재질의 커버와 내부 의 속지로 구성되어 있다. 커버에 주름이 매우 발생하였으며 이에 따라 형태가 변형된 상태였다. 2 색도 측정 분석위치 L * a * b * 비고 첫 장 가운데 장 마지막 장

98 3 ph 측정 - 가운데 장의 ph가 5.151, 마지막 장의 ph가 5.128로 종이의 산성화가 다소 진 행된 상태였다. 분석위치 산성도 비고 가운데 장 마지막 장 ) 1970년도 수첩 1 규격 및 구성 -가로 약 18.7cm, 세로 약 10.6cm로 합성가죽으로 추정되는 재질의 커버와 내부 의 속지로 구성되어 있다. 커버에 주름이 다소 발생하여 변형된 상태였다

99 2 색도 측정 분석위치 L * a * b * 비고 첫 장 가운데 장 3 ph 측정 - 가운데 장의 ph가 5.125, 마지막 장의 ph가 4.813으로 종이의 산성화가 다소 진행된 상태였다. 분석위치 산성도 비고 가운데 장 마지막 장 ) 실험도구 1 규격 및 구성 - 가죽 및 금속으로 구성된 케이스와 그 안에 안경, 가위, 메스, 핀셋, 스포이드 등 실험을 위한 소도구들이 들어 있는 형태이다. 금속 재질의 가위, 메스 등이 녹슬어 있는 상태로 이러한 녹이 가죽 케이스 내부에 묻어 있다

100 ᄋ 보존관리방안 -본 조사 대상인 허문회의 통일벼 관련 유물은 종이, 가죽, 금속 등이 주요 재질 인 수첩 4점과 실험도구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물의 대부분은 수분으로 인 한 재질의 변형(주름 등)과 산성화, 부식 등이 진행된 상태이다. 따라서 산성화 된 종이를 위한 탈산처리가 실시되어야 하며, 부식된 금속 재질의 녹 제거가 필요하다. 또한 처리 후 적합한 보존환경에 보관하여 더 이상의 열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탈산처리 -탈산처리(deacidification)는 화학적으로 종이에 생기는 산( 酸 ) 또는 산을 발생시 키는 물질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킴으로써 기록물의 보존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탈산처리 이후에도 잉여의 알칼리성 물질이 종이에 잔류하 여 내부에서 추가로 발생하거나 외부의 대기 오염물질 등으로부터 침입하는 산

101 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양지는 나무로 만든 펄프가 주 원료로 펄프 를 얻기 위해서는 황화나트륨이나 수산화나트륨으로 처리하여 섬유질을 용해시 켜 제거하기 때문에 산성화가 보다 빨리 진행된다. 따라서 탈산처리가 필요한 종이의 산성화(pH 4~7)는 우리 고유의 한지보다는 양지에서 주로 발생한다. 처리 과정에서 침적 및 수세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수용성 잉크를 사용한 경우 에는 적용할 수 없다. 녹 제거 및 안정화처리 - 비( 非 )출토 금속 유물의 주요 열화 현상은 산소 및 수분 등의 요인으로 인한 부식( 副 食 )으로 이를 예방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금속 재질의 가장 중요한 보존 처리이다. 이러한 녹은 스카펠(scalpel)과 같은 치과용 소도구나 심한 경우 정 밀분사가공기(Air brasive) 등을 이용하여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녹 제거 후 부식의 재발생을 막기 위하여 보존처리 약품을 이용하여 피막을 형성함으로 써 표면을 코팅해주는 것이 좋다. 이러한 녹 제거 및 안정화처리가 끝난 후에 는 수분과의 반응을 방지하기 위하여, 조습제 혹은 실리카 겔(Silica gel) 등과 함께 보관하여야 한다. 보존환경 -유물의 보존환경은 온도 및 습도, 그리고 빛이 매우 중요하다. 온도를 조절하게 되면 대기 중의 상대습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물이 건조한 환경 에 놓이게 되면 유물의 부피 변화가 일어나고 이는 유물의 박락, 갈라짐, 꺾임 등 직접적인 물리적 손상을 입히게 된다. 반대로 습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세 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고 해충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또한 종이 특 히 양지에 자외선이 가해지면 황색으로 변색 되고 종이 섬유 자체의 열화를 초 래한다. 자외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시실에 자외선 차단 필름이 부착 된 램프 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각 재질별 권장 온 습도> 종이 가죽 금속 권장온도 20±2 20±2 20±2 권장습도 55~65% 50~65% 45% 이하 ᄋ 종합의견 -본 유물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한민족의 주곡식인 쌀의 자급자족을 가능케 한 허문회 박사의 매우 중요한 사료 및 유물로써 근대문화유산으로써 가치가 높고 이에 따른 체계적인 보존관리 수행이 요구된다

102 (6)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1) 명 칭 : 연구용 원자로 TRIGA Mark-Ⅱ 2) 소 유 자 : 한국전력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노원길 130, 한국전력 인재개발원 4) 수 량 : 원자로 1기 5) 규 격 : 823(h) 654(w) 655(d) 6) 재 질 : 콘크리트, 납, 철 7) 제작년도 : 1959~1962년 8) 조사자 의견 <한양대 교수 (원자력공학)> ᄋ 현 상 -본 조사 대상 연구로는 국내 최초로 도입된 원자력 연구용 원자로 시설로서 당시 미국 General Atomic 사로부터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1959년 7월 착공하여 1962 년 3월 정격출력 최초임계에 도달하였다. 30년 이상 운영하며 원자력 관련 연구 들을 활발히 수행하였으며, 현재는 원자로 본체 내부의 제염 해체가 진행 중이 다.(그림 1) 그림 1. 제염 해체 중인 작업 현황 -제염 해체는 방사능에 오염된 부분들을 제거하고 폐기물로 처리하여 별도의 방 사선 안전관리가 필요하지 않도록 해체하는 작업으로, 이 작업으로 내부 방사 능 오염 부위는 제거되나 외형 및 제어반(그림 2, 3) 등 관련 장치들은 원형대 로 보존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림 2. 원자로 제어반 현황 그림 3. 작업자 출입 여부 표시판 ᄋ 내용 및 특징 - 우리나라의 원자력 분야 기술 역사는 1958년에 한양대학교에 원자력공학과가 설치된 것이 효시이며, 이후 1959년 서울대학교에 핵공학과가 설립되었고, 한국 원자력연구소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1959년 착공된 본 원자로는 우리나라 원자

103 력 기술 분야의 역사적 시초를 증거하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다. -또한, 원자로가 들어 있는 건물의 머릿돌(그림 5, 6)에는 단기 4292년 7월 14일 로 명기되어 있어 1959년 7월 14일에 이 건물과 원자로가 착공되었음을 증명하 고 있다. 따라서 원자로와 함께 부속 건물도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림 4. 건물 전경 그림 5. 머릿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앞에서 상세히 기술한 바와 같이 본 원자로는 우리나라가 최초로 원자력 관련 기술의 개발에 착수하게 된 것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유물로서 가치가 매우 높 은 것으로, 우리나라에 1959년 제작이 시작된 원자력 기술 관련 유물은 본 원 자로뿐인 것으로 파악되며, 반드시 보존하여 문화재로 등록, 관리하여야 할 것 이다. ᄋ 종합의견 -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된 연구용 원자로로서 한국이 현재 세계 5위권의 원 자력 강국으로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한 기념비적인 유물이다. 기술적 사료로 서 문화재등록 필요성이 매우 높다.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ᄋ 현 상 -본 연구용 원자로 1호기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는 1962년 가동을 시 작한 이래 1969년 초기에 용량 100kW를 250kW로 증가시켰으며, 1995년 가동 이 중단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원자력과학기술 발전과 원자력 과 학교육 및 동위원소 생산 등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 원자로는 33년 동안 에 총운전시간 36,535시간, 총 출력 3,735MWh의 실적을 기록하였다. 대전의 한 국원자력연구원 부지 내에 건설된 30MW급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가 1995년 준공 가동에 들어감에 따라, 연구로 1호기의 활용도가 감소하였다. 이 에 앞서 원자 주변 시설 부지를 포함한 구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는 전부 1985 년 한국전력에 매각되었다. 다만 당시 계약에 의거 원자로 및 주변시설 부지는 추후 제염 해체후 한국전력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기본 방침 에 따라, 당시 과학기술처(현 과학기술부, 이하 과학기술부라 칭함)에서는 연구 로 1호기를 폐로하기로 결정하고, 1996년 3월 원자력이용개발 전문위원회에 본 계획을 보고하였다. 위원회는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제염 해체 및 철거하 기로 결정하였으며, 국내 최초의 원자로로서 교육적,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기념물로 보존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원자로의 제염 해체 사업은 연구 용 원자로 1호기를 운영하였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관하여 시행하고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104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 (TRIGA Mark-II)는 1955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 제회의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미국이 우방국에 원자로 건설을 제의하여 건설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8년 12월 미국의 제너럴 아토믹사 (General Atomic Co.)와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1959년 7월에 원자력연구소 구 내에 건설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1962년 3월 19일 첫 임계에 도달함으 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가 가동되게 되었다. 1995년 가동이 중단 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 이 원자로는 33년 동안에 총 운전시간 36,535시간, 총 출력 3,735MWh의 실적을 기록하였다. 그 동안에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을 비 롯하여 원자력 과학교육 등 원자력과학기술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따 라서 원자로 설치 건물, 원자로, 제어실, 제어 콘 솔 등 기타 원자로 운영, 제어 관련 설비 일체를 등록하여 자료의 보존에 만전을 기해야 한 다. 아울러 원자 력 산업의 산실인 원자로 설치 건물을 기념관으로 전환할 것을 건의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연구용 원자로 1호기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는 1959년 7월에 착공하여 1962년 3월 가동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이다. 1995년 가동이 중단될 때 까지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원자력과학기술 발전과 원자력 과학교육, 전문 인 력 양성 및 동위원소 생산 등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 시대 개막에 기여했다. 또한 원자력 기술 자립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연구용 원 자로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ᄋ 종합의견 - 위와 같은 기여도와 역사성을 고려할 때 문화재로 등록할 충분한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평가된다. 원자로 설치 건물, 원자로, 제어실, 제어 콘솔 등 기 타 원자로 운영, 제어 관련 설비 일체를 등록하여 자료의 보존에 만전을 기 해야 한다. 아울러 원자력 산업의 산실인 원자로 설치 건물을 기념관으로 전환할 것을 건의한다. <KAIST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상 - 트리가 마크-투(TRIGA Mark-Ⅱ)는 우리나라가 원자력 연구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미국 General Atomic(제너럴 아토믹)사로부터 도입한 연구용 원자로이다. 1959년 7월 서울 공릉동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전력 중앙연수원 부지)에 착공돼 1962년 3월 첫 임계에 도달했다. 준공 당시 열출력 100kW로 설계됐으나 동위원 소 수요 증가와 기초과학 연구 수행을 위한 높은 중성자속 요구에 부응하고자 1969년 250kW로 출력이 증강 됐다. -트리가 마크-투는 1995년 1월 가동 정지될 때까지 33년 동안 총 출력량 3,735MWh, 총 운전시간 36,535시간을 기록했으며, 원자로 계통 설비 및 시스템 연구 등과 같은 원자로 특성 연구에 활용됨으로써 원자로에 대한 이해 증진과 연구로 설계 및 운영에 필요한 기술 자립에 이바지했다. 또한 트리가 마크-투는 1972년 완공된 TRIGA Mark-Ⅲ(트리가 마크-3) 원자로와 함께 원자력 기술요원 훈련, 전문 인력 양성 및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등에 이용돼 우리나라 원자력 기초 기술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원자력 발전 요원 양성 과정 운영에 활용돼 우리 나라의 원자력 발전 시대 개막에도 기여했다. ᄋ 내용 및 특징 1. 한국의 원자력 사업의 시작 -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53년 12월 유엔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 이라는

105 연설을 통해 세계 각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공동 관리할 것을 제안 하면서 원자력을 농업, 의학 및 기타 평화적 활동에 응용할 수 있도록 미국이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은 1956년 미국과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정을 맺고 원자력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거의 모든 산업이 황폐화되었고, 특히 전력사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국제적인 움직임은 전력문제 해결 방안으로 국내 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소장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원자력 연구모임이 결성되 었고, 1956년 3월 문교부에 원자력과가 신설되었으며, 국비로 원자력 유학생을 해외에 파견하기 시작했다. 1958년 3월 원자력법이 공포되었고, 이듬해 국무총 리 직속의 원자력원과 산하기관으로 원자력연구소가 발족했다. 원자력원과 원 자력연구소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생산과 이용 등 원자력과 관련된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표방했으나 원자력 자체가 여러 분야가 망라된 종합과학의 성격을 지 니고 있고, 한편으로 당시 과학기술정책이나 연구를 담당하는 기관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전체 과학 분야를 대상으로 학자나 기관에게 연구비를 지급하는 등 초창기 한국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하는 핵심 기관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과 미국 사이의 원자력 협정에 따라 1958년 미국의 General Atomic사와 원 자로 도입계약을 체결하고 트리가 마크-투를 도입하기로 했다. 트리가(TRIGA) 마크-투는 교육 연구 목적의 소형 원자로로, 그 이름 자체가 영어로 교육 (Training), 연구(Research), 동위원소 생산(Isotope)과 제조사(미국 GA사)를 의 미했다. 1959년 7월 착공하여 1962년 3월 19일에 첫 임계에 도달함으로써 한국 의 첫 번째 원자로로 본격 가동되었다. 트리가 마크-투 원자로의 도입 가격은 73만 2천 달러로, 절반에 해당하는 35만 달러는 미국 정부의 원조를 받았다. 1950년대 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 불과했음을 볼 때 원자로 도입 에 40만 달러에 가까운 막대한 외화를 사용하고, 또한 많은 외화를 들여 원자력 장학생을 파견한 것은 원자력에 거는 정부의 기대가 막중했음을 보여준다 년 처음 운전을 시작한 트리가 마크-투는 1995년 가동이 정지될 때까지 30 여 년 동안 우리나라 원자력 기초 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과 방사선을 이용한 농작물 품종 개량 연구, 중성자 이용 물질 구조 연구 는 물론, 특히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 크게 이바지했다. 국내 대학과 원자력 관 련 산업체 직원들 중에 트리가 마크-투를 이용해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3천명 에 이르렀다. 특히 트리가 마크-투를 이용해서 진행한 원자력 발전 요원 양성 은 훗날 우리나라가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도입하는 데 중요 한 기여를 했다. 또한 트리가 마크-투를 보유한 원자력연구소는 이후 한국 과 학기술계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고급 과학기술자들은 대거 배출한 역사 적인 기관이 되었다. 2. 트리가 마크-투의 의미 -트리가 마크-투는 열출력이 100kW인 소형 연구용 원자로였다. 연구로 열출력 최대 열 중성자속 원자로 형식 냉각 방식 제어봉 구동방식 핵연료 냉각재/반사체 100kW (1969년 6월 250kW로 증강) 1x10¹³n/cm2 s 개방수조형 상향 자연 대류 방식 상부 구동 방식 UZrH H2O / 흑연

106 - 비록 트리가 마크-투는 미국의 GA사의 원자로를 그대로 도입한 것이었지만 1969년 한국 과학기술자들의 노력으로 출력을 250kW로 증강시켰다. 이 과정에 서 한국 과학기술자들은 연구로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트리가 마크-투는 1962년부터 33년간 총 35,535시간 가동되었고, 총 출력량은 3,735kW에 달했다. -트리가 마크-투를 이용한 구체적인 활동은 다음과 같다. 1 연구용 원자로 기술 자립 발판 마련 : 트리가 마크-투는 연구용 원자로 계통 설비 및 원자력 시스템 연구에 활용됨으로써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시키고 연구로 설계 및 운영에 필요한 기술 자립에 이바지했다. 2 원자력 인력 양성 : 원자력 전문 인력이 부족했던 우리나라에서 트리가 마크-투는 원자력 관련 실험 실습 및 교육 훈련에 사용됨으로써 한국전력공사 원자력 발전소 운전 요원 등 관련 산업 종사자 1,339명, 서울대, 한양대, 제주대, 조선대 등 원자력 공학 전공 학생 1,719명 등 약 3천여 명의 원자력 전문 인력 양성에 이바지했다. 3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 질환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 I-131, Au-198, Fe-55, 산업용 방사성 추적자 Na-24, Br-82, 생명과학 연구용 방사성 동위원소 P-32, S-35 등 10여 핵종을 생산하여 방사성 동위원소에 대한 연구 기틀을 마련했다. 4 중성자 및 방사선 관련 연구 : 중성자빔 실험장치를 이용한 물성연구, 라디오 그래피 기술 개발, 중성자 방사화 분석 등 중성자를 이용한 연구개발에도 이 바지했으며, 방사선 육종 개량, 방사화 분석에도 활용되었다. 5 연구용 원자로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여 : 노( 爐 )특성연구, 노재료연 구 등 연구용 원자로 특성 연구를 발판삼아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HANARO) 자력 설계 및 건조(1995), 우리나라 사상 첫 원자력 시스템 일괄 수출로 기록된 요르단 연구용 원자로(JRTR; Jordan Research and Training Reactor) 수출(2009) 등 우리나라가 연구로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기 여했다. 3. 트리가 마크-투의 현황 - 트리가 마크-투와 1972년 가동을 시작한 2MW급 TRIGA Mark-Ⅲ 연구용 원자 로는 1995년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가동을 중지했다. 이에 앞서 원자로 및 주변 시설 부지를 포함한 구 한국원자력연구소 부지는 전부 1985 년 한국전력에 매각되었다. 다만 당시 계약에 의거 원자로 및 주변시설 부지는 추후 제염 해체 후 한국전력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따라 1997년 1월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해체 공사에 착수했다. TRIGA Mark-Ⅲ는 2005년 원자로 본체까지 완전 해체됐으며, 트리가 마크-투는 2007년 부속시설 및 주변시 설 해체를 완료했다. 원자력연구원은 트리가 마크-투가 국내 첫 원자로라는 상징 성을 살려 원자로 본체 원형을 보존하려 했으나 지속적인 방사선 안전 관리의 어 려움에 따라 방사화된 내부 구조물을 제거한 뒤 모형을 제작해 설치하기로 했으 며, 이 작업은 2014년까지 완료예정이다. 트리가 마크-투 폐로 사업은 우리나라에 서 최초로 시도하는 원자력 시설 해체 사업으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제염 관 련 기술 실증 및 데이터 축적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리가 마크-투는 폐로 사업이 완료된 다음 한국 첫 번째 원자로가 지니는 역 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기념관화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 해 원자로와 부속 시설, 그리고 원자로 들어선 건물 전체를 등록문화재로 등록 할 필요가 있다. 트리가 마크-투가 한국 원자력 산업계, 더 나아가 한국 과학

107 기술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현재 원자로 가 있는 건물이 한국전력에 매각되어 한국전력 연수원 부지의 일부가 되어 있 기 때문에 원자로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원자력연구원이 기념 관 사업을 주도할 수 없다는 점이다. - 폐로 작업이 완료되면 트리가 마크-투는 콘크리트 구조물로만 남게 되지만 첫 번째 원자로로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대시설과 원자로 건물 자체를 보존 해야 한다. 원자로와 함께 원자력연구소 전체 건물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 를 지니고 있지만 현재 많이 쇠락한 상태이고 연구로 2호기(TRIGA Mark-Ⅲ) 는 이미 완전히 철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1호기인 트리가 마크-투의 건물은 최 대한 보존해서 기념관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 구 원자력연구소 현황도 -위 그림은 연구로 부지 현황도로서, 왼편의 연구로 1호기 건물이 트리가 마크- 투가 위치한 공간이다. 핵심인 원자로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실, 원자로실 동남쪽 구석의 빔튜브 플러그 저장랙과 북쪽 바닥의 피트에 원자로 수조수 냉각 및 정 화장치가 설치된 원자로실 건물 전체를 함께 등록하여 기념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ᄋ 문헌자료 -한국원자력연구원, 국내 첫 원자로 TRIGA Mark-Ⅱ 반세기 (2012). -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 1&2호기 시설 해체 사업 해체계획서(3차 개정판) (2011) - 한국원자력연구원, 풍부한 에너지 깨끗한 환경 건강한 삶: 한국원자력연구 원 50년사: 1959~2009 (2009) - 김성준, 한국 원자력 기술 체제 형성과 변화 (서울대학교 박사학 위논문, 2012)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현재 한국이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 출발점이자, 더 나아가 한국 현대 과학기술연구의 초석이 된 원자로 트리가 마크-투는 산업기술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매우 크다고 판단된다. 또한 원자로의 가동과 활 용이 원자로 자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자로 주변의 각종 제어 장 치 및 설비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설이 함께 설치된 원자로 건물 전체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현재 트리가 마크-투 원자로의 부대시설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실, 동위원소 생산 및 연구개발 핫셀, 그리고 주변 연구실 실

108 험실이 있다. 따라서 원자로 자체 뿐 아니라 원자로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 전 체를 함께 등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ᄋ 종합의견 - 한국의 첫 원자로로서 현대 과학기술 및 산업기술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원자로만이 아니라 원자로가 설치된 건물 전체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7) 전기로 1) 명 칭 : 전기로 2) 소 유 자 : 철박물관 3) 소 재 지 : 충청북도 음성군 영산로 360 4) 수 량 : 1종 8점 5) 규 격 : 다양 6) 재 질 : 철 7) 제작년도 : 1963년 8) 조사자 의견 <KAIST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상 -1966년 동국제강 부산공장에 설치된 15톤 규모의 아크 전기로로 한국의 전기로 제강산업 초창기를 상징하는 대표적 전기로이다. 1966년 10월 조업을 시작해서 1980년까지 약 140만톤의 철을 생산했으며, 1998년 1월 철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전시되고 있다. 이 전기로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국내에는 1~5톤 규모의 소규 모 전기로 10여기 정도가 가동되고 있었으며, 1960년대 들어와 부산제철소(주) 의 12톤 전기로에 이어 동국제강의 15톤 전기로가 가동되면서 전기로 제강산업 이 본격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이후 전기로의 규모는 40~70톤의 대용량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국제강의 15톤 규모 전기로는 초창기 제강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한 주역이자 현재 남아 있는 그 시기 유일의 전기로라 할 수 있다. 전기로 뿐 아니라 전기로 제강 공정과 관련된 슬래그박 스, 전기마그네트, 대형파쇄추, 몰드튜브, 후크, 레이들, 턴디쉬 등의 시설이 함 께 보존되어 있어 전기로 제강 전 공장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전기로가 처음 설치될 때 작성되었던 설계도면도 남아 있어 당시 제강공장의 건설과 관 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업기술유물은 산업기술의 변 화 속도가 빠르고, 대형 기계 장치의 경우 보존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50년 이상 된 대형 유물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따라서 1960년대 본격화한 한국 산업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자 한국 철강업의 초창기 발 전 모습을 담고 있는 드문 산업기술유물로서 철박물관의 전기로와 부속 장치 및 설계 도면까지 전체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된 다. ᄋ 내용 및 특징 1. 철강업과 전기로 제강업 - 산업화를 이끌었던 핵심 업종의 하나가 철강업이다. 철강업은 산업 각 분야에 필요불가결한 생산재 또는 소비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으로, 특히 기계공업, 건 설업, 자동차공업, 조선업 등 타 산업과의 연관 효과가 매우 크다. 이에 따라 철강 생산량은 각국의 국부를 가늠하는 척도로 활용되고 있으며, 각종 현대 산 업의 기초소재로 사용되는 철은 공업화의 요체이자 근대화의 요건이라 평가받

109 는다. 철은 산업의 쌀이다 라는 표현은 철강업이 현대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 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철강업의 주요한 작업공정은 제선, 제강, 압연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모든 철 제품은 고로( 高 爐 )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선철)을 뽑아내 제강로에서 정련해 강괴로 만든 후 다시 압연가공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고로 등에서 선철을 만 드는 공정을 제선( 製 銑 )이라 하고, 제강로에서 쇠의 물성을 견고하게 하는 과정 을 제강( 製 鋼 )이라 한다. 또한 강괴를 회전하는 2개의 롤 사이로 통과시켜 판, 봉, 관, 형재( 形 材 ) 등으로 가공하는 공정을 압연( 壓 延 )이라 하는데, 제선 제강 압연에 이르는 전 공정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공장을 선강일관공장이라 한다. -선철은 탄소함량이 높고, 인, 황, 규소 등 불순물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깨지기 쉬운데, 이러한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탄소량을 조절하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제강이다. 예전에는 철광석을 저온으로 환원하여 직접 강을 만들었으나 요즘의 제철법에서는 일단 선철을 만들고, 다음에 제강공정으로 옮겨 여분의 탄소를 제거하여 강을 만든다. 일반적인 제강용 노는 평로, 전로이지만 그밖에 전기로, 도가니로 등도 사용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제강법 은 철광석을 녹여 얻은 용선을 주원료로 이용하는 LD전로법과 고철을 주원료 로 하는 전기로법 두 가지이다. 고로제철법은 철을 만드는 전통적이며 진정한 제철법이나, 원료인 철광석이나 코크스용 석탄 채굴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환경 이 파괴된다. 또한 코크스 생산 및 제선과정에서는 엄청난 CO2도 발생된다. 반 면 전기로법은 주원료로 고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파괴가 야기되지 않고 제 선과정에서 발생하는 CO2도 고로제철법에 비해 30%에 정도에 불과해 훨씬 환 경 친화적이며 자원 순환적이다. 대신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고 고로제철에 비 해 생산규모도 작은 약점이 있으나 훨씬 기술집약적인 산업이다. - 전기로를 가열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저항로, 아크로, 유도로, 전자빔로 등으로 구분된다. 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국제강의 15톤 전기로도 아크로로서, 흑 연전극 사이 또는 전극과 피열물 사이에서 아크방전을 일으켜, 그 열로 목적물 을 가열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전기로가 아크로이기 때문 에 대체로 전기로라고 할 때에는 아크로(Electric Arc Furnace)를 지칭하는 경 우가 많다. 2. 한국 철강업의 형성과 동국제강 전기로 - 한국의 근대 철강공업의 효시는 1918년 일본제철(주)에 의해 황해도에 세워진 연산 5만톤 규모의 겸이포 제철소이다. 이 제철소는 한반도를 원료공급지와 상 품시장으로 이용하려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이후 전쟁 수행을 위한 군수공업 기지의 일환으로 세워졌고, 선철중심의 소재생산과 군수용 특수강을 주로 생산 하는 기형적인 생산체제를 갖추었다. - 해방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대부분의 철강공장이 북한 지역에 편중되어 있었 기 때문에 남한의 철강산업은 극히 미미한 상태였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나마 있던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휴전 이후 산업시설의 복구에 힘입어 철강분 야의 복구가 시작되었고, 제선부문의 삼화제철, 제강부문의 대한중공업공사, 압 연부문의 동국제강 등이 시설복구 및 생산능력을 늘려나갔다. 이들은 전쟁 고 철을 재생시켜 철근, 선재 등을 제조하는 수준이었다 년대 들어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철강공업도 기틀을 닦게 되었다. 경제 개발5개년 계획을 통해 제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촉진됨에 따라 철강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한국의 철강생산량은 1962년 14만 2천톤에 불과했 지만 1972년에는 180만 7천톤으로 증가했고, 철강자급률은 1962년 53.5%에서

110 1972년 84.3%로 향상되었다. 동국제강의 큐폴라 용선로 설치를 비롯하여 1960 년대를 거치면서 인천중공업의 평로 설비능력 확장, 대한중기의 큐폴라로와 산 성전로 연결공정 채택 등으로 제강능력도 크게 확장되면서 한국의 제강업이 본 격화된 것이다. 물론 아직 대부분 철강업체의 규모가 영세하고 설비가 노후한 상태였으며, 국가 전체로는 압연 부문이 기형적으로 발단한 가운데 제강 부문 이 부족하고 제선 부문의 더욱 부족한 구조적 불균형을 보였다. 이러한 불균형 은 1970~1973년 포항제철소 1기 사업이 추진되면서 극복되기 시작했다. -동국제강(주)은 1954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못 제조회사였던 조선선재를 모태로 하여 설립되었다. 동국제강은 1963년부터 부산 용호동 앞바다를 매립하 여 부산 제강소를 건설했으며, 1965년 1일 50톤 규모의 고로를 준공했다. 이듬 해 3월 제1전기로(15톤/차지, 연산 6만톤) 공장을 착공했는데, 당시 전기로의 규모로는 국내 최대였다. 건평 2,134평의 규모의 기존 공장에 일본으로부터 설 비를 들여와 1966년 10월 4일 준공 및 점화식을 가졌다. 이 전기로는 일본 오 사카 소재의 우라야먀 제조주식회사(Urayama Maf. Co. Ltd.)에서 제작한 것이 었다. 해방이후 국내 전기로 제강업계는 5개사가 모두 14기의 전기로를 보유하 고 있었으나 대부분 용량이 1~5톤대의 소규모였다. 1961년 12월 설립된 부산 제철소(주)가 용량 12톤의 전기로를 가동하고, 1966년 동국제강이 국내 최초의 15톤 전기로를 가동하면서 전기로 제강업이 본격화되었다. 동국제강은 1968년 부산제철을 인수했으며, 1973년 용량 40톤 규모의 전기로 설비를 준공하여 전기로 제강업의 강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년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15톤 전기로는 1980년까지 140만톤의 철강을 생산했는데, 이는 경부선 철도(450km)를 40번 정도 건설할 수 있는 양이다. 이 전기로는 1997년 동국제강이 충북 음성군에 자리 잡은 철박물관에 기증하여 이 듬해 이전 설치되었으며, 전기로 외에 전기 제강공정 전체를 보여주는 관련 설 비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기로 제강공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으며, 이 공정 에 등장하는 설비들은 모두 철박물관이 소장중이다.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강의 주원료가 되는 고철은 수명이 다한 철제품을 수집한 것이다. 수집된 고철은 전기로에 넣기 쉽도록 대형파쇄추( 破 碎 錐 )를 이용하여 압축 가공한 뒤 전기마그네트를 이용하여 전기로로 옮겨진다. 전기마그네트는 전기를 통하면 강한 자성을 띠기 때문에 무거운 고철을 운반하는 데 용이하다. -전기로는 뜨거운 열을 견딜 수 있도록 바깥쪽은 두꺼운 철판으로, 안쪽은 내화 벽돌로 제작한다. 또한 공정에 따라 기울일 수 있도록 되어있으며, 천정 중앙에 는 전극을 수직으로 넣을 수 있도록 구멍이 있다. 전기로에 고철을 넣은 후 전 기를 투입하면 탄소봉과 고철 사이에 전기가 합선하면서 아크열이 발생하고, 이 열에 의해 고철이 녹게 된다. 철박물관의 전기로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 어 이 같은 전기로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전기로에서 녹인 고철 속에는 불순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철과 불순물(슬래 그, slag)을 분리하기 위해 제강 과정에서 생석회를 넣어준다. 이때 슬래그는 철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에 뜨며, 이것을 슬래그박스(slag box)에 분리하여 담 는다. 슬래그박스는 주조를 통해 만드는데, 슬래그가 굳어서 잘 빠질 수 있도록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모양을 하고 있다. - 전기로 안에서 녹은 쇳물은 탄소, 규모, 망간 등으로 성분을 알맞게 조절한 후 1,630 에서 양동이 모양의 레이들(ladle)에 담아 연속주조공정으로 옮겨진다. 레이들 내부는 높은 온도를 견디기 위해 내화벽돌이 설치되어 있다. 쇳물이 담 긴 무거운 레이들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레이들의 손잡이 역할을 하는 후크

111 (hook)로 천정기중기에 연결해야 한다. - 레이들에 담겨진 용강은 바닥의 분출구를 통해 턴디쉬(turndish)로 주입된다. 주입된 용강은 턴디쉬 구멍을 통해 분배되어 몰드튜브(mold tube)의 모양과 크 기에 따라 냉각되어 슬래브(slab, 각종 강판류의 재료), 블룸(bloom, 철근, 봉강, 형강, 선재 등의 재료가 되는 대강편), 빌레트(billet, 소강편) 등의 반제품으로 만들어진다. ᄋ 문헌자료 - 김주한, 탁승문, 정은미, 전기로제강업의 역할과 전망 (산업연구원, 1994) -동국제강주식회사, 동국제강 50년사 (2004) -철박물관, Iron beyond Imagination (세연문화재단, 2009) -송성수, 한국 철강산업의 기술능력 발전과정: 1960~1990년대의 포항제철 (서 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철박물관에는 이러한 제강과정 전체를 보여주는 전기로, 대형파쇄추, 전기마그 네트, 슬래그박스, 레이들, 후크, 턴디쉬, 몰드튜브 등의 유물이 모두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1960년대 전기로 제강시대를 본격화한 국내 첫 15톤 규모의 전기 로이자, 이 시기 사용된 전기로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철박물관 전기로는 산업기술유물로 등록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철을 특화한 전문박물 관인 철박물관은 전기로 및 관련 유물을 핵심 소장품으로 중시하고 있기 때문 에 산업기술 분야 등록문화재로서 전기로가 지니는 가치를 유지 보존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전시중인 전기로는 본 래의 전기로 본체와 설치 및 전시를 위해 덧붙인 부분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 게 도색을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고증 및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 겨진다. ᄋ 종합의견 -제강산업 초창기 대표적인 전기로로, 전기로 제강공정과 관련된 부속 시설들도 함께 전문 박물관에 잘 보존되어 있음. 1960~70년대 제강업의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산업기술유물로 등록 필요성이 크다. <경주대학교 교수 (보존과학)> ᄋ 현 상 1. 개요 <사진1> 철박물관 앞뜰의 전기로 -이 문화재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63년 일본의 우라야마제조(주)에서 제작한

112 15톤급의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서 부산 남구 용호동 소재 동국제강 에 설치되어 1966년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하여 1980년까지 15년간 철을 생산한 경력이 있는 근대문화유산 자료이다.< 사진2> -전기로는 가동되었던 부산에서 1997년12월~1998년 1월 사이에 현 위치인 철박물관 앞뜰로 이전 설치되었다.< 사진1> 이때 전기로와 함께 관련된 시설이 모두 이전 된 것은 아니지만 제강공정에 필요한 슬래그 박스, 몰드 튜브, 턴 디쉬, 레이들, 후크 등이 함께 이전되어 야외에서 전시 중에 있다. 2. 외관과 구조 -전기로는 콘크리트 받침 위에 설치되어 있다. 자 모양의 철제 프레임이 외부 를 감싸고 있고 이 프레임 위에 철판을 깔아 작업대를 만듦으로써 상 하 2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사진3> 작업대 위에 깐 철판과 난간 등 회청색으로 도장된 부분은 이전 설치시 새로 제작한 부분으로 판단된다.< 사진4> - 이 자형 프레임 속에 대형의 둥근 로[ 電 氣 爐 体 ]가 안치되어 있는데 프레임 한 면 위에 ᆨ자형의 대형 프레임 2개가 고정되어 있다. ᆨ자형 프레임 사이에 는 단면이 H빔인 높다란 철체 봉[마스터]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이것은 노 내 에 전기를 공급하는 시설로 판단된다. -노는 강철판재 2장을 겹처 둥글게 만든 원통 2개를 위 아래로 연결하고 아래는 깔대기처럼 움품 들어간 모양의 하부를 붙인 후 외부에 보강용 프레임과 철근 투입구, 용탕 배출구, 감시창 등을 뚫거나 리베팅, 용접 등으로 부착 설치한 복 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진3 참조> 노 상부에는 둥글고 두꺼운 철제뚜껑 이 덮여 있고 뚜껑 중앙에 전기방전을 일으키는 장치[카본]를 고정하는 원통 3 개[카본홀더]가 꼿혀있다.< 사진5> 노 내부에는 원래 내화재[벽돌]로 둘러져 있 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현재 없어져 외피인 철판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이다. < 사진6> 천정 부분에는 내화벽돌이 붙어있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2> 제조사 명패 <사진3> 노( 爐 )와 자 프레임 <사진4> 작업대 위의 철판과 난간 <사진5> 노내 천정과 카본홀더

113 <사진6> 노 내부 <사진7> 노 아래의 기어와 레일 - 노 아래는 활처럼 둥근 모양의 기어(gear) 달린 레일 2개가 양쪽에 붙어있는 데 그 아래에는 콘크리트에 고정된 반대 레일과 맞붙어 있어서 이것이 노를 기울이고 세우는 데 활차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사진7> 이 장치는 바닥에 설치된 모터 와 축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기로 작동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1. 철 구조물의 상태 -전기로는 각종 철강재가 조합된 구조물로서 가동 중에는 엄청난 고열에 지속적 으로 노출되었고 가동이 중단된 후에는 17년을 방치된 상태에서 지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이미 상당부분 부식이 진행되었고 특히 기계적으로 복잡한 부 분에서 손상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후 해체, 이전, 재조립되는 과정 에서 다시 많은 부분이 변형, 생략, 탈락되었던 것으로생각된다. 노심 내부 전 면에 있어야 할 내화벽돌이 상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콘크리이트 대좌 위에 재설치된 노는 노천에서 노출된 채 15년이 경과된 뒤 현 재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노 표면에 검은색 페인트로 도장하여 철의 부식을 막고자 하였으나 오랜 기간 야외환경에 노출되면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상당히 다양한 부식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다. 2. 철강재 상태 -문화재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로서 철강의 상태는 고열을 지속적으로 받은 전기 로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좋은 상태로 판단된다. 하지만 고열의 영향과 야외에서 장기간 노출된 영향에 의해서인지 대체로 상 하로 구분하여 상태가 달라지는데 상부는 대체로 양호하고 하부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노의 외 관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분명히 확인된다. 페인트가 하부로 갈수록 손상이 커 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철판이 부식되면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 진3 참조> -특히 철판이 이중으로 된 로는 두 철판 사이에 악성부식이 진행되며 사이가 벌 어지는 곳도 여러 군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사진8> 빗물이 오래 머무르는 곳에서 철제의 부식은 심해지며 부식은 다시 빗물을 오래 머물게 하고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며 부식손상을 급가속시키고 있다. - 전반적으로 철강재가 부식으로 인해 취약해져 구조물 안전에 위험하거나 손상 을 줄 정도의 문제는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로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 곳은 용 접부분이 아니라 강판재가 리벳으로 연결되었거나 부품이 맞닿고 물려있는 부 분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보존조치가 요망된다

114 3. 기계적인 부분의 상태 - 노는 녹은 용탕을 안전하게 붓기 위해 기울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축과 기어, 모터 등이 연결되어 있어서 현재 가동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러한 기계적 인 부분은 겉으로는 판단이 불가능한데 내부에서 부품이 맞물려 있거나 연결된 부분 등 과거 작동했던 부분은 장기간 방치와 미작동, 그리고 그에 따른 부식 등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9, 10> <사진8> 노의 이중판재 사이 부식 <사진9> 전기모터와 연결 축 <사진10> 전기모터에서 연결된 축과 기어박스 4. 페인트 상태 - 외부는 검은 유성페인트가 두껍게 도포되어 있다. 페인트는 내구연한을 훨씬 경과해 갈라지고 부풀고 탈락되는 등 고유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 사진11, 12> 상태가 양호한 곳 또한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곳곳에 오염과 녹으로 남아있다. - 현재의 페인트인 검은색은 철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사진첩을 통해 원래 가동될 때의 색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진13> ᄋ 문헌자료(없을 경우 생략) -전기로와 관련된 문헌자료로는 철박물관에서 소장중인 전기로 설계도 1건과 가 동시 공장의 전경을 담은 사진, 이전 작업 과정을 기록한 사진과 이와 관련된 내부 문서 등이 정리되어 있는 파일 1건을 확인하였다.< 사진14> -이 사진과 문서류는 전기로와 함께 귀중한 자료로 판단되며 보존이 요망된다. - 특히 설계도는 트레싱지 라고 불리는 왁스 코팅된 특수지인데 상태는 일 부에서 구겨지고 찟겨지는 등 손상이 확인되어 보존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전통 표장과 같은 조치는 특수지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하겠다. 설계도 한 장씩 프레임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적합한 조치로 생각된다. <사진11> 철판 부식과 페인트 탈락 <사진12> 빗물에 의한 부식

115 <사진13> 전기로 사진(97년촬영) <사진14>자료파일 ᄋ 기 타 - 전기로의 문화재적 가치는 상당히 크지만 일반인 등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지 하고 찾아와 그 구조와 기능을 이해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전기로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고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이 유물의 가치를 알기 쉽게 설명한 새로운 자료의 생산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의 경우 각종 근대문화유산 자료를 성격별로 나누어 한 건 한 건 꼼꼼하게 기록한 출판물이 시리즈로 발간되어 시판되고 있다. 주제는 폐광, 폐선된 철로, 폐기관차, 폐건축물, 전쟁폐허, 산업시설 등 다양하다. 이러한 예를 참고로 하 고, 보존된 관련자료 등을 종합하여 전기로의 가치를 부각하고 또 일반의 흥미 를 불러일으킬 기록물의 출간이 요망된다 하겠다. -현재 전기로는 도포된 페인트가 삭아 떨어지고 부식도 다양하게 생성되어 보존 상태가 좋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의 가치가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로 등록이 된다면 적절한 보존조치를 통해 노가 가동될 당시의 원래 모습을 되 찾아 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존조치 후 로가 반드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복원된 동태보존( 動 態 保 存 )을 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전기로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 로는 1963년 국내 최초로 동국제강이 도입한 15톤 규모의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서 우리나라에 제강역사에서 전기로시대의 막을 연 역사적인 유물로 알려져 있다. - 전기로의 원리는 저전압, 고전류의 상태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발생하는 아 크방전이 고온을 생성한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금속을 용해시키는 에너지로 사 용하는 것이다. 기존의 거대한 용해로에 철광석과 코크스, 석회 등을 켜켜히 쌓 고 석탄이나 가스 등으로 가열하는 방식에 비해 이 전기로는 플라즈마 상태의 고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황(S)이나 칼슘(Ca)와 같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 전기로는 철광석을 용해하는 제철용 보다 고철을 재활용하는 용해로로서 경제 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철을 시기 적절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식이 된다. 즉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자 다량의 철강재 가 안정적으로 수급될 필요가 높아졌을 때 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해내기 보다 고철을 재용해하는 것이 양질의 철을 다량으로 생산하는 데 가장 적합한 시스 템이다. -제 1차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자 곧 1967년 제 2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내 철소요량이 증대하자 동국제강의 이 전기로에서 생산된 철이

116 그 소요량의 대부분을 충당하게 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철 소요 량이 폭발적으로 증대하자 대형 제철소가 필요해져 포항제철[현 POSCO]을 설 립하게 된다. - 즉 전기로는 기존의 용해로를 사용하는 구식 제철공법에 비해 양질의 철을 단 기간 내에 공급함으로써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놓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 로 판단된다. 전기로에 필요한 전기는 다목적댐에서 생산된 값싼 전기를 이용 하였다 년 처음 가동을 시작한 이래 1980년까지 15년간 생산한 철의 양이 140만 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양을 다시 환산하면 연간 10만여 톤을 생산했고 일 일 산출량으로는 약 274톤이 된다. 용량 15톤의 전기로가 매일 18회 이상 쏟아 내야만 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 본 전기로는 가동시 필요했던 모든 부품과 구조물 등 시스템이 완벽하게 보존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 자체와 함께 제강공정에 필요한 슬래그 박스, 몰드 튜브, 턴 디쉬, 레이들, 후크 등이 함께 이전 보존되어 있어서 이들 모두를 함 께 등록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 분야에서 등록 가치를 도출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찾지 못해 제 시할 수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등록문화재의 가치를 판단할 기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ᄋ 종합의견 - 전기로는 국내 최초의 전기로이며 특히 고철을 다량으로 용해 재처리 하는 전기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제철산업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크다. <가천대학교 교수 (산업디자인)> ᄋ 현 상 -국내 최초로 도입된 전기로이자 우리나라 전기로 제강시대를 시작한 산업 시설 로 한국제철 산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기로는 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폐철 즉 고철을 다시 용해해 강제를 재생하는 시설이 다. 전기로 제강은 1980년대 이후로는 생산성의 극대화를 위해 40~70톤의 대 용량 전기로가 주가 되기 때문에 본 15톤 전기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퇴출 되는 계기가 되었다. - 철박물관의 전기로는 한국 전기로 제강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유물로 1963년 3 월 일본 우라야마 제조 주식회사가 제작한 15톤 용량의 전기로로, 동국제강 부 산공장에 6기가 수입 설치되었다. 그 후 1966년 10월부터 제강 조업을 시작하 여 1980년까지 약 140만 톤의 철을 생산하며 중요한 우리산업의 제강역할을 담 당해 왔다 년 시기종의 도입으로 동일한 우라야마 15톤 고로 중 5기는 파쇄되어 철강 으로 재생되었고 1기는 기업의 기록물과 산업유산으로의 가치를 부여받아 기업 의 유휴부지가 있는 음성으로 해체되어 옮겨져 재조립되어 일반 전시되었다. 워낙 규모가 큰 시설로 이전설치에도 당시에 상당한 금액이 투입되었고 고난이 도의 기술로 해체 이전 조립된 기록이 남아있다(이전기록 파일과 운영 사진첩 있음). - 전기로라고 명칭되는 기기를 중심으로 전기로 자체뿐 아니라 연결된 제강공정 에서 필요한 슬래그박스, 몰드 튜브, 턴 디쉬, 레이들, 후크, 전기 마그네트, 대 형파쇄추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 전기로와 함께 7종의 연계 시설이 같이 보

117 존되고 있는데 고로의 경우 전장이; 7~8m 에 이르고 부속품들도 무게는 물론 규모가 커서 실내에 전시를 못하고 옥외에 전시를 하고 있다. 현재는 안전을 위해 지지대와 바닥 지지시설을 설치하여 일반에게 무상으로 공개되고 있으며 현재 기동은 불가능한 상태이다. -현재 야외 본 대상물은 야외 전시시설로 보호각 등이 없어 우천에 그대로 노출 되어 녹과 외피 파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각 부속의 연결부가 강한 부식으로 형상변형이 일어나고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 전기로 자체뿐 아니라 연결된 제강공정에서 필요한 슬래그박스, 몰드 튜브, 턴 디쉬, 레이들, 후크, 전기 마그네트, 대형파쇄추를 연계하여 문화재로 등록할 것 을 권고한다. -본 대상물의 경우 장소이전기록, 수입당시의 조립설계도서 등이 같이 보존되고 있으므로 이의 검토를 통해 보존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으며 현재 본 시설을 기 동하고 작동하던 엔지니어들이 생존해 있으므로 운영 매뉴얼, 활용기록, 본 시 설에 대한 구술사 등이 채록되도록 하고 운영당시의 유지보수 기록과 사진기록 물 그리고 우리 산업사에 미친 영향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 - 기업은 기록물로서 가치만 인식해서 현상 보존만 했고 학술적, 기술적 연구와 기록 그리고 기동 가능한 상태로의 보존을 추진하지 못하였다. 또한 세계적으 로 이와 유사한 기기의 보존 또는 운영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검토와 파악이 요구된다. -향후 산업 유산의 경우 기계 설비나 전기전자 제품의 경우 기동이 가능한 상태 로 보존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형상의 보존에 급급해 기구 부품의 망실과 작동 프로세스가 기록되지 않은 상태는 유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격하 시킨다고 볼 수 있기에 이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요구 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년대 대한민국의 근대화 산업을 견인한 철강 산업의 시초가 되는 산업 시 설물로 보존의 가치가 있다. -6기가 수입되어 대한민국 현대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현재 5기가 파쇄 되었고 1기가 기업사 측면서 보존되고 있어 유일한 시설물로 가치가 있다. - 제조사, 수입경위, 산업에 끼친 역할 등이 명확하고 구성품의 본존상태가 산업 공정을 이해할 만큼 연계 보존되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 전기로 자체뿐 아니라 연결된 제강공정에서 필요한 슬래그박스, 몰드 튜브, 턴 디쉬, 레이들, 후크, 전기 마그네트, 대형 파쇄추를 연계하여 문화재로 등록할 것을 권고한다. -대한민국 현대 산업의 시초는 강철, 전기, 화학 등의 기간산업의 중흥으로 시작 되어 대한민국 산업사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음. 제철/제강 산업은 오늘날 대 한민국의 사업이 있게 한 중요한 기반산업으로 이에 대한 산업시설 등은 보존 하여 교육과 현대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어야 한다. -수입당시 제작 제공된 조립설계도서가 같이 보존되고 있음 이를 같이 등록함을 권고함. 또한 시설 이전 기록과 활용사진 및 엔지니어 기록이 보관 되고 있음. 이 자료 또한 같이 보존 기록물로 등록되기를 권고한다. ᄋ 종합의견 - 국내최초 전기로이며 현재 보존되는 유일한 전기로이며, 우리나라 제강산업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높다

118 (8)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 명 칭 :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2) 소 유 자 : 박상희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50, 연세대학교 4) 수 량 : 1대 5) 규 격 : 28.5(l) 80.0(w) 196(h)cm 6) 재 질 : 진공관 등 전자부품, 금속제 틀 7) 제작년도 : 1961년 8)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형 식 : 진공관, 오실로그램 CRT 출력, 프린터 출력 ᄋ 내용 및 특징 - 대학의 공학연구기 미진한 시기에 아나로그 전자계산기의 제작은 획기적인 연 구 성과였다. 많은 수의 진공관을 이용한 연산 증폭기를 설계 및 제작하였으며, 실제로 실험에 사용될 수 있는 입출력단을 구성하였다. -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초기 조정과 진공관 특성에 적응하는 실험적 기술을 익혔으며, 수리와 보수운영의 노하우도 함께 발전시킨 시스템이다. -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기본적으로 자동제어의 피드백시스템의 실현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비선형회로의 분석을 위한 미분방정식의 솔루션을 (파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컴퓨터이다. - 디지털 컴퓨터의 일반화가 있기 전에 시도된 모델로서, 디지털 컴퓨터의 등장 으로 넓게 이용된 시스템은 못되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한국의 전기전자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전자계산기 시스템에 도전한 최초의 작품 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산업분야가 아닌 순수 교수연구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ᄋ 종합의견 -아나로그 전자계산기는 한국 최초로 교수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서 연구에 이용되었으며, 처음 수학적 계산 장치를 전자공학의 연산장치로 이루어 냈다는 역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IT문화원 원장 (정보통신사)> ᄋ 현 상 -연세대 한만춘 교수가 제작한 전자계산기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자계산기 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사실 여부는 정밀조사 해봐야 함. 1963년에 제작된 제품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라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자계산기일 것으로 보 나, 연세101의 경우 초기 제품에서 개량을 거친 것으로 알려짐. 이 개량이 1963 년 본체에 부품을 추가한 것이라면 오래된 컴퓨터라는 이름을 유지하나, 개량 된 설계도에 의해 새롭게 제작되었다는 의미면 제작년도가 최근 시점으로 올라 가버림. 이 경우 한양대 이만영 박사의 3호기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자계 산기 자리를 놓고 비교평가가 이루어져야 함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인지 여부는 불확실함. 1961년부터 제작에 들어가 구성 모듈을 한씩 제작한 것은 맞지만, 전체시스템으로 완성 발표와 구동은 한 양대 이만영 1호기보다 늦기 때문에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는 어려움

119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산 전자계산기(컴퓨터) 1. 연세대 101컴퓨터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산 전자계산기라는 역사적, 유물 적 가치를 지님 2. 연세대 101컴퓨터는 단지 제작만 하고 사용이 안 된 제품이 아니라 각종 연 구에 실질적으로 이용되었고, 학술적으로 활용되었음 3. 연세대 101컴퓨터는 부품 및 시스템의 제작과정과 제작기술, 제작 후 결과 등 이 논문 등을 통해 공표되고 전수됨으로써 국산 전자계산기 기술 향상에 토 대를 마련한 컴퓨터임 ᄋ 종합의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컴퓨터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ᄋ 현 상 - 이 상사형 전자계산기 (analog computer)는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의 한만춘 ( 韓 萬 春 ) 교수가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위탁을 받아 1961년에 개발한 것으로서 국내 최초의 상사형 전자계산기이다. 1962년부터 동교 전기공학과 대학원 교 육과 연구에 활용되었으며, 계속하여 원자로 시뮬레이션 등 주요 계산 기능을 위한 부품이 추가되었으며, 1970년대 말 우리나라에 디지털 컴퓨터가 보급될 때까지 활용되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공학원 지하창고에 보관돼 있다. 30여년을 지나는 동안 계산기에 사용되는 몇 가지 부품은 유실되었으나 본체는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저장 실에 항온, 항습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주요 구성부품인 철제 본체, 진공관, 계기판 등 부품과 재료 등이 부식되고 있어 보존에 대해 시급한 대책이 요구 된다. ᄋ 내용 및 특징 -상사형 전자계산기란 길이, 전압, 전류 등과 같은 연속적인 물리량을 실시간 처 리하는 계산기로서 2차 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탄도( 彈 道 )를 계산하는 미분분석기(differential analyzer)로 개발되어 군사분야 등에서 활용되었다. 계 산결과는 실시간 파형(waveform)의 형태로 출력되므로 탄동식이나 진공관식 기록기로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다. 측정된 자료를 즉시 처리할 수 있으므로 공 장 등의 자동제어, 원자력발전소 등의 제어에 이용되었지만 자료의 저장 기능 이 없고, 디지털 컴퓨터에 비해 정밀도가 떨어지는 등 단점이 있지만 1950년대 에서 70년대 후반까지 자동제어, 항공역학, 통신, 음향 시스템 등 다방면에 걸 쳐 활용되었다. -위의 전자계산기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 것들로서 우리나라 전자식 컴퓨터 초창 기 역사의 선발 주자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延 世 101 Analog Computer는 1958년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영국 노팅검 대학교 (Nottingham University)에 파견되어 대학원을 수료한 연세대학교 전기공학과의 한 만춘 교수가 1960년에 귀국하여 아날로그 컴퓨터 기법을 원자로 제어에 활용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경험을 살려 1961년에 개발한 한국 최초의 전자식 계산기이다. 한만춘 교수는 가스 냉각식 원자로의 동특성을 연구하는 과정에 아날로그 컴퓨터 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기법을 개발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는 원자로의 안전운전에 관한 새로운 방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2년부터 이 컴퓨터에는 써어보 승산기, 2 극관함수발생기, 직류증폭기, 시분활 승산기, 의사 불규칙 2진 신호 발생기, M-계

120 열 신호발생기 등이 증설되어 다기능 전자계산기로서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원 자로의 크세논 독( 毒 )작용, 전력계통의 과도안정도 해석, 주파수변조 계통해석, 휴 먼 오퍼레이터의 동특성 추정, 선형제어 계통의 동정과 추정, 인간의 동공반사제어 등의 연구에 시뮬레이터로 활용되었다. ᄋ 문헌자료 -김교림, 상사형 전자계산기 직류증폭기,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62 등 4편 -한만춘, 이호철, 김권, 김교림, 延 世 아나로구 콤퓨터의 設 計 와 試 作 (I), 硏 究 論 文 集 ( 原 子 力 院 ), 제4집, 쪽, 한만춘, 延 世 101 Analog Computer, 연세대학교 80주년 紀 念 論 文 集 自 然 科 學 篇, 쪽, 한만춘, 延 世 101 Analog Computer의 발전, 연세논총, 525쪽, 박상희, M-계열 신호에 의한 휴먼오퍼레이터의 동특성 추정 등 연세대학교 대학 원 박사학위 논문, 1970 외 2편 - 사진 1매, 延 世 101 Analog Computer 와 한만춘 교수 (1961년 촬영)(춘강기념사 업회, 춘강 한만춘, 1985) - 사진 1매, 연세 101 아나로구 컴퓨터와 기기 (김권, 상사형 전자계산기용 써 어보 승산기의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지도교수 한만춘, 89쪽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년대 초에 연세대에서 설계 제작되어 공학 연구와 교육에 사용된 이 상사 형 전자계산기는 우리나라 전자식 컴퓨터 역사의 초창기 문화유산이다. 진공관 식 전자장치를 사용하여 고등 미적분 계산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을 갖 추고 전력제어, 원자로 제어, 생체제어 등 복합 시스템의 시뮬레이터로 활용되 어 디지털 컴퓨터가 도입되기 이전인 1960, 70년대 과학기술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ᄋ 종합의견 -이 전자계산기의 역사성과 기여도 등을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 를 갖고 있다. (9)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1) 명 칭 :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2) 소 유 자 : 한양대학교

121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한양대학교 4) 수 량 : 1점 5) 규 격 : 325(l) 72(d)cm, 높이 다양 6) 재 질 : 진공관 등 전자부품, 금속제 틀 7) 제작년도 : 1964년 8)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형 식 : CRT 파형 출력, reading meter의 출력 ᄋ 내용 및 특징 - 대학의 공학연구기 미진한 시기에 아나로그 전자계산기의 제작은 획기적인 연 구성과였다. 많은 수의 진공관을 이용한 연산 증폭기를 설계 및 제작하였으며, 실제로 실험에 사용될 수 있는 입출력단을 구성하였다. -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초기 조정과 진공관 특성에 적응하는 실험적 기술을 읶 혔으며, 수리와 보수운영의 노하우도 함께 발전시킨 시스템이다. - 아날로그 전자 계산기는 기본적으로 자동제어의 피드백시스템의 실현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비 선형회로의 분석을 위한 미분방정식의 솔루션을 (파형으로)나타낼 수 있는 컴퓨터이다. - 디지털 컴퓨터의 일반화가 있기 전에 시도된 모델로서, 디지털 검퓨터의 등장 으로 넓게 이용된 시스템은 못되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한국의 전기전자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전자계산기 시스템에 도전한 최초의 작품 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산업분야가 아닌 순수 교수연구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 할 것이다. ᄋ 종합의견 - 아나로그 전자계산기는 한국 최초로 교수에 의하여 설계 제작된 것으로서 연구 에 이용되었으며, 처음 수학적 계산 장치를 전자공학의 연산장치로 이루어 냈다 는 역사적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IT문화원 원장 (정보통신사)> ᄋ 현 상 -한양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제품은 3호기로 보관상태가 매우 양호함 -동작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음 ᄋ 내용 및 특징 - 한양대 이만영 박사가 만든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컴퓨터로 1, 2호기는 한양대 화재 때 불타서 소실되고 현존하는 제품은 1964년 5월 7일 조립완료된 제3호기임 -당시 조립에 사용한 진공관이 610여 개에 이르고, 부속품은 총 4만개임 -최초의 제품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국내 최초 전자계산기의 맥을 이어 제작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국내에서 제작된 최초의 전자계산기(컴퓨터) 1. 한양대 이만영 박사의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국내 최초로 제작한 컴퓨터라 는 역사적 의미와 상징을 가짐 2. 최초의 컴퓨터인 1호기와 2호기가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현재는 3호기만 남았 고, 3호기는 연세대 101보다 뒤에 제작됨으로써 3호기 자체는 국내 최초 컴퓨 터라는 의미는 가지지 못하지만 국내 최초 컴퓨터의 3호기라는 점과 역사상

122 가장 오래된 컴퓨터 몇 대 중 한 대라는 의미만으로도 문화재적 가치는 충분 하다고 판단함 3. 3호기 보존 상태가 우수하기 때문에 당시의 국내 컴퓨터 제작과 관련된 부품 및 기술, 시스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연구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님 ᄋ 종합의견 - 국내 최초의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로 1964년에 제작된 3호기가 남아 한양대 박 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음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ᄋ 현 상 - 이 상사형 전자계산기는 한양대학교 이만영( 李 晩 榮 ) 교수가 1962년 8월에 진공관을 조립하여 설계 제작한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호기와 63년 3월 1호기를 개량한 2호기에 이어 1964년 4월에 제작된 3호기이다. 1호기와 2호기는 1963년 11월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3호기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제어공학 부문에서 교육과 연구에 활용되었으며, 디지털 컴퓨터의 도입으로 1980년대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수차례 교내 전시를 통하여 박물관에서 전시한 바 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ᄋ 내용 및 특징 - 상사형 전자계산기란 길이, 전압, 전류 등과 같은 연속적인 물리량을 실시간 처리하는 계산기로서 2차 대전 중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 탄도( 彈 道 )를 계산하 는 미분분석기(differential analyzer)로 개발되어 군사분야 등에서 활용되었 다. 계산결과는 실시간 파형(waveform)의 형태로 출력되므로 탄동식이나 진공 관식 기록기로 기록하는 것이 보통이다. 측정된 자료를 즉시 처리할 수 있으 므로 공장 등의 자동제어, 원자력발전소 등의 제어에 이용되었지만 자료의 저장 기능이 없고, 디지털 컴퓨터에 비해 정밀도가 떨어지는 등 단점이 있지 만 1950년대에서 70년대 후반까지 자동제어, 항공역학, 통신, 음향 시스템 등 다방면에 걸쳐 활용되었다. -조사대상인 두 개의 계산기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 것들로서 우리나라 전자식 컴 퓨터 초창기 역사의 선발 주자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년에 제작된 것으로서 부품이나 성능이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범위나 활용 도는 앞의 것과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컴퓨터의 개발에 관해서는 당시의 1, 2 호기 사진과 보도자료 등이 남아있어 당시의 국내외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년대 초에 한양대에서 설계 제작되어 공학 연구와 교육에 사용된 이 상사 형 전자계산기는 우리나라 전자식 컴퓨터 역사의 초창기 문화유산이다. 진공 관식 전자장치를 사용하여 고등 미적분 계산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다. 디지털 컴퓨터가 도입되기 이전인 1960, 70년대 과학기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ᄋ 종합의견 -이 전자계산기의 역사성과 기여도 등을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 를 갖고 있다. (10) 금성 라디오 A-501 1) 명 칭 : 금성 라디오 A-501 2) 소유정보

123 연번 소유자 소재지 수량 비고 1 (주)LG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 규 격 : 2밴드, 5구 슈퍼 헤테로다인, 주파수 범위 중파 535~1605KC, 단파 4 5~16.5MC, 중간파수 445MC, 무왜출력 1.5W, 최대출력 2W, 전원 AC 100V, 스피커 5인치, 크기(W H D) mm 4) 재 질 : 플라스틱, 금속 등 5) 제작년도 : 1959년 6)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현 상 -한국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 제품이다. 1950년대 구형 일제라디오와 미국제품 이 일부분 유통되었으나 국산으로서 일반 가정 보급형의 방송 수신기로서는 금 성사 제품이 유일하였다. -5개의 진공관으로 구성된 최신 기술인 수퍼헤테로다인 방식을 채택하였고 단파 대를 포함한 2 밴드 시스템으로서 지역방송 및 해외방송도 청취할 수 있는 기 능을 가졌다. - 한국의 전자공업을 본격적으로 데뷔시킨 산업제품이었으며, 진공관을 이용한 전 자회로의 설계와 시스템을 상용화 시킨 최초의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회로 설계와 프로토타입 제작, 그리고 성능측정 및 시험의 과정을 갖는 제 품 생산의 노하우를 축적하는 전자산업의 기틀이 되었다. - 라디오는 전자회로적 기술과 제품화를 위한 기계적 구조 및 외형(플라스틱)에 대한 디자인 등 다양한 산업화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하였으며, 본격적인 산업 화의 진입으로서, 진공관 외 여러 가지의 저항, 컨덴서, 코일 등의 전자부품 산 업이 동시에 성장하게 된다. -아울러 라디오 보급이 증가함에 따라 라디오 수리를 위한 서비스업도 동반하게 된다. ᄋ 내용 및 특징 - 5구 수퍼헤테로다인 방식으로서 여러 가지의 다른 주파수를 일정한 감도 (sensitivity)를 갖게한 수신기 방식이다. 전력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을 고려하여 약간 낮은 전압에서도 완만한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한 전원회로를 사용하였다. - 진공관식 정류기를 사용하였고 출력변압기를 통한 스피커를 동작시켰다. 방송 주파수 선택은 가변 컨덴서를 사용하는 다이알 조정 방식이다. 소리크기 조정 용 volume, 중파단파 선택 select 그리고 다이알 tuner의 3 단자로서 조정한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한국 최초의 라디오는, 기술적으로는 전자시스템에 대한 설계기술의 향상 등을 위한 연구개발이 정착하게 되며, 이러한 기술은 오늘날 한국의 전자전보통신산 업 기술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 - 이 라디오는 한국 전자산업의 초기 제품으로서 계속 전자정보통신기술의 연구 개발 촉진으로 이어져 다방면의 세계적 기술을 보유하도록 한국산업의 역사적 보전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ᄋ 종합의견 - 한국 전자산업의 초기 제품으로서 전자정보통신 산업화의 역사와 기술개발에 대한 사료적 보전가치가 있다. <연세대학교 강사 (과학사)>

124 ᄋ 현 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은 미색, LG인화원 소장은 회색의 케이스로 둘 다 양호하게 보존됨 ᄋ 내용 및 특징 년 6월 금성에서 설계된 최초의 라디오 모델(전기전용으로 진공관은 5구, 스피커는 5인치, 중파 단파 겸용. 2접점 3회로 로터리 스위치, 이어폰 탈부착형) -라디오 생산에 필요한 부품들도 자체 제작 -일제 라디오인 산요를 참고로 하여 최초의 국산 라디오 개발 - 기기설비 구축, 생산라인을 국내공장에서 확보한 최초의 전자기기임(선반, 프 레스, 세이퍼, 금속가공기, 표면연마기 공구, 변압조정기, 변압기, 바후 4대, 연 선기, 코일 권선기 등 5대, 주파기 측정기) -제작을 위한 기기설비는 독일등지에서 수입했음에도 기기 운용과 관리가 국내 기술진들에 의해 이루어져 이후 정밀 기기 생산의 토대가 구축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비록 중요 부품인 진공관, 스피커 등은 수입품이었지만, 기타 전기도선을 포함 한 부품을 국산화함으로써 대한민국 전자 산업의 시금석 역할 담당했던 중요 한 유물임 ᄋ 종합의견 - 금성 A-501 라디오 제작으로 전기전자산업의 시금석을 마련했으므로 근현대 산업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산업디자인)> ᄋ 현 상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품 : 전반적으로 보관 상태가 양호하나 케이스 상단과 우측 측면부분에 파손을 보수한 흔적이 있음.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고 도금의 부분의 일부가 벗겨진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양호한 상황임 - LG인화원 소장품 : 케이스 자체의 상태는 양호하나 전면의 도금 부위가 대한 민국역사박물관 소장품에 비해 보관 상태가 좋지 않음. 전반적인 보관 상태로 보았을 때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보이므로 보수가 이루어졌는지 확인 해 볼 필요는 있을 듯함 -현재 제품의 외관만 육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 문화재 등록 시 다양 한 방법을 통한 충분한 검토를 권장함 ᄋ 내용 및 특징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가전제품임 - 부품의 국산화에 따른 독자적인 디자인이 수행되었으며, 대형의 투명 소재를 디자인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등 당시로써는 매우 유려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음 -5가지 색상의 케이스로 생산되어 소비자 취향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락희화학이 축적한 금형기술의 디자인 구현에 도움이 된 것으로 판단됨 -라디오에 별을 모델로 해 마크와 금성의 영문표기인 Gold Star 는 우리나라 상 품 브랜드의 시초였으며 오랫동안 금성사에서 통용되었음 ᄋ 문헌자료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40년사, LG, LG50년사, 강현주 외,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산업문화역사, 시지락,

125 -정시화, 韓 國 의 現 代 디자인, 悅 話 堂, 1979 ᄋ 기 타 -근현대디자인박물관(마포구 와우산로 30길 36) 소잠품도 비교 평가하여 가치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최초의 국산화된 라디오이자 최초로 가전제품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으로 산업 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제품임 -금성 A-501 라디오를 디자인한 금성사 도안실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업 내에서 산업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임 - 금성 A-501 라디오 디자이너인 박용귀, 최병태 등은 금성사에서 최초로 국산 화에 성공한 가전제품의 디자이너들로 국내 최초로 기업에 고용된 전문 산업디 자이너임. 공채로 입사한 사람들로서 이후 약 15년간 금성사에 있으면서 우리 나라 초창기 가전제품 디자인 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함 -당시 정부 정책의 홍보 수단으로 농촌에까지 광범위하게 보급된 제품으로 정치 적인 역사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제품이기도 함 -비교적 짧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기술과 디자인의 발전과 역사적 인식 의 부족으로 원형에 대한 관리가 소흘하여, 초기 생산 당시의 형태를 유지한 제품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현존하는 제품들도 일부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신 속한 문화재 등록을 통해 유물의 체계적인 유지 및 관리가 필요함 ᄋ 종합의견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산업디자인 업무를 위해 설립된 금성사의 도안실에서 국 내 최초로 채용된 기업의 산업디자이너에 의해 디자인된 최초의 가전제품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이다 (11) 금성 GR-120 냉장고 1) 명 칭 : 금성 GR-120 냉장고 2) 소유정보 연번 소유자 소재지 수량 비고 1 (주)LG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 규 격 : 내용적(총/유효) 120l/111l, 전밀폐형 출력 95W, 콘덴서 100V 60C/S, 냉매 R-12, 외부 특수백색 멜라민 수지 도색, 내부 특수고급 플라스틱 성형제품, 부속품 선반 3, 물받이 그릇 1, 얼음 그릇 2, 야채그릇 1, 맥 주병 바구니 1, 크기(W H D) mm, 무게 66kg 4) 재 질 : 금속, 플라스틱, 유리 등 5) 제작년도 : 1965년 6)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내용 및 특징 - 금성냉장고는 한국 최초의 상용화된 냉장고이다. 냉동 기술이 정립화 되지 않 았던 시기에 가정용으로 시판되었으며, 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만들어 사용한다 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음식물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신선함이 오래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정도이다. 냉장고를 구입하여 아래 윗집에 얼음 을 그릇에 담아 돌리는 새로운 자랑하기 문화도 생겼었다. - 냉동실과 냉장실이 함께한 간단한 구조였으며, 소형 냉각장치로 구성되었다

126 가정용의 필수품으로 부상하면서 연관 산업도 발전하였다. -축적된 기술은 후에 실내용 에어콘, 대형 건물의 냉온방 컨트롤, 대형 냉장시설 등에 응용할수 있는 기초 기술력이 되었다. -한국의 냉동기 산업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보존한 제품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한국 최초의 가정용 식품 보관용 냉장고이다. -냉동 및 냉장산업 기술발전에 기여한 산업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ᄋ 종합의견 -문화재 등록이 합당하다고 판단된다. <연세대학교 강사 (과학사)> ᄋ 내용 및 특징 -빙과점에서 쓰던 미군부대 유출품 냉동기 분해/조립으로 구조를 익혀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한 120L 냉장고 -직접냉각방식 채용/ 냉장실과 냉동실 일체형 -가격은 8만 6백원으로 비쌌으나 첫 시판 6천대/ 보름 만에 매진 기록 세움 -부품을 자체 개발하는 등 자체 기술 개발로 탄생된 최초의 국산 냉장고 -1975년 간접식 냉각방식 국산화 성공 -1980년 500L급 대형화에 성공 -1994년 한국형 냉장고 김치냉장고 개발 -최초 국산 개발한 냉장고 이후 냉장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됨 - 기술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식품위생법의 재정비, 저장 창고의 개발 및 확장, 냉장식품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한국 사회의 식생활을 전환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침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한국 최초로 제작된 냉장고라는 기술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식품위생법의 재정 비, 저장 창고의 개발 및 확장, 냉장식품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유물임 -한국 사회의 식생활을 전환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침 -이후 냉장시설의 한국적 변용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유물임 ᄋ 종합의견 - 한국 최초로 제작된 냉장고라는 기술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식품위생법의 재정 비, 저장 창고의 개발 및 확장, 냉장식품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유물임 -한국 사회의 식생활을 전환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침 -이후 냉장시설의 한국적 변용을 가능하게 한 유물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산업디자인)> ᄋ 현 상 -외부 도색에 일부 손상이 있지만, 외관상으로는 비교적 양호하게 관리된 상태임 -현재 제품의 외관만 육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으므로 문화재 등록 시 내부 상 태 확인 및 여러 종류의 부속품 존재 여부에 관한 충분한 검토를 요함 ᄋ 내용 및 특징 -냉장실과 냉동실이 일체화된 국내 최초 냉장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색가전 디자인

127 -가정용 일체형 냉장고의 표준형으로 개발된 제품임 ᄋ 문헌자료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40년사, LG, LG50년사, 강현주 외,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산업문화역사, 시지락, 정시화, 韓 國 의 現 代 디자인, 悅 話 堂, 1979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국산화에 성공한 최초의 백색가전으로 냉동실과 냉장실이 일체화된 가정용 냉장고임 -산업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 금성 A-501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디자인실인 금성사 도안실에서 최초로 기업에 채용된 산업디자이너에 의 해 수행된 최초의 냉장고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음 -냉장고의 경우 디자인의 변화가 크게 없어 금성 GR-120 냉장고의 구성 및 디자 인은 현재의 일체형 냉장고의 디자인과 거의 유사한 특징이 있음. 이는 냉장고 변 천의 역사적 관점에서도 매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함 -비교적 짧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기술과 디자인의 발전과 역사적 인식 의 부족으로 원형에 대한 관리가 소흘로 인해 현존하는 제품들도 일부 훼손되 어 있기 때문에 신속한 문화재 등록을 통해 더 이상 훼손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하며, 산업화시대 상징적인 유물로서 체계적인 유지 및 관리가 이 루어져야 함 ᄋ 종합의견 -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산업디자인 부서인 금성사의 도안실에서 디자인한 국내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로 현재의 제품과 비교해도 형태나 기능면에서 디자인이 뒤처지지 않는 등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임 (12) 금성 텔레비전 VD-191 1) 명 칭 : 금성 텔레비전 VD-191 2) 소유정보 연번 소유자 소재지 수량 비고 1 (주)LG 경기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 규 격 : 전원 100V, 최대출력 1.5W, 무왜 출력 1.0W, 19인치 화면, 12cm 스 피커 1개, 진공관 12구, 다이오드 5개, 크기( mm) 4) 재 질 : CRT 튜브, 플라스틱 외형, 금속샤시 5) 제작년도 : 1966년 6)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현 상 - TV를 생산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수년간 준비과정을 필요로 한다. 수상기를 조립하고 시험할 수 있는 생산 설비가 있어야 하고, 시험을 위한 각 채널의 필 요주파수를 공급하는 송신 설비도 준비되어야 한다. 금성사는 일본의 기술 제 휴와 자체기술을 준비하여 흑백TV를 생산하게 된다. - TV는 복합적인 전자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자제품으로서, 우선 높은 주 파수(VHF very high frequency)를 사용하는 통신기술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 며, 음성(audio) 및 영상(video)방송을 수신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광대역 증폭

128 기 등의 회로기술이 필요하다. 음성은 FM, 영상은 AM변조방식, 수평동기, 수 직동기 등, 복합적인 통신 기술이 적용되어 숙달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 산 작업에 투입되므로, 높은 수준의 전자공학 기술이 요구되는 시스템이다. -TV의 생산기술은 오늘날 이동통신 등 한국전자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위한 원 동력을 제공한 기술의 집합체라고 사료된다. - 또한 TV 수신기용 부품으로서, 튜너, IFT(intermediate frequency transformer) 유닛, 고압발생의 flyback coil, 및 CRT 생산 등의 부품산업의 확장을 가져왔다. ᄋ 내용 및 특징 -흑백TV, CRT 튜브, NTCS방식, 주사선 525의 비월주사 방식이다. 수동으로 채 널을 선택하는 기계적 튜너를 사용하였고, 콘트라스트 조정단자와 볼륨조정단 자가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12개의 진공관으로서 능동회로를 구성하여, 증 폭, 검파, 동기분리, 음성 및 영상신호 증폭 등을 수행하였다. 옥외 TV수신용 안테나가 필요했으며, 안테나 제작산업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본 TV는 여러 가지 전자공학기술의 집합적 제품으로서 당시 낙후된 한국의 전 자기술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자공학 기술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기원을 제공하였고, 따라서 전자기술 산업발달의 역사적 가치 와 기술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한국 최초의 것이다. ᄋ 종합의견 -본 제품은 전자공학기술의 종합적 제품으로서 한국의 전자산업육성에 적극적인 기여를 한, 기술 산업의 역사적 가치와 기술개발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한국 최초의 것이다. <연세대학교 강사 (과학사)> ᄋ 현 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온전한 형태로 보관되어 있으나 LG인화원의 경우는 다리가 제거된 상태로 보존됨 ᄋ 내용 및 특징 - VD-191이란 진공관식 19인치 1호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국내 제작해 시판한 최초의 흑백 텔레비전임임 -1966년 8월 1일 이를 생산하였으며, TV 생산을 위해 1966년 6월 1차로 500대 분의 부품을 수입하고, 이후 2만대분의 부품을 히타치 제작소로부터 수입 -국산화율 50%로 설정 - 판매가는 8만 6,000원 정도로 고가로 판매(당시 쌀 한가마 값이 4천원)되었음 에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공개추첨을 통해 판매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끔 -1968년 새로운 모델 개발을 위해 단종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주요 부품을 수입, 조립이 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기술 및 몇 가 지 국산 부품으로 제작된 최초의 흑백TV -국내 전자통신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기여 -더 나아가 수출산업의 촉매 역할을 담당 -중요 부품의 기술 개발에 따른 국산화에 따라 본격적 영상매체 시대로 진입하 게 한 토대가 되었음 - 이후 한국 사회의 대중 문화의 형성을 촉진시키면서 문자보다 영상과 음향에 친숙해지는 데에 영향을 미침

129 -이런 여러 기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TV는 문화사적, 기술사적 중요한 유물임 ᄋ 종합의견 - 한국 전자통신 산업의 기초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대중 문화의 형성 을 촉진시키면서 문자보다 영상과 음향에 친숙해지는 데에 영향을 미친 생활사 적, 기술사적, 산업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산업디자인)> ᄋ 현 상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품: 외형이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잘 관리되어 있음. 다리를 포함하여 원형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음 - LG인화원 소장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리나 상태 가 좋지 않음. 다리는 부착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 - 현재 제품의 외관만 육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 문화재 등록시 다양 한 방법을 통한 충분한 검토를 권장함 ᄋ 내용 및 특징 - 삼성산요전기가 흑백TV를 생산하기 5전 전에 국산화에 성공한 우리나라 최초 의 흑백TV -다리를 설치하여 고급 가구적인 이미지를 부여함으로서 고가의 제품에 대한 기 대에 부응한 디자인 -기능 위주의 절제된 디자인을 적용하였음 ᄋ 문헌자료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40년사, LG, LG50년사, 강현주 외,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산업문화역사, 시지락, 정시화, 韓 國 의 現 代 디자인, 悅 話 堂, 1979 ᄋ 기 타 - 근현대디자인박물관(마포구 와우산로 30길 36) 소장품도 비교 평가하여 가치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금성 A-501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국산화에 성공한 최초의 흑백 텔레비전임 -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디자인실인 금성사 도안실에서 수행한 최초의 텔레비전 디자인으로 산업디자인의 역사에서 그 의미가 있음 - 금성 샛별 VD-191 TV에 달린 다리는 당시 텔레비전의 가치가 대를 물려 사용 하는 가구와 같은 가치가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요소임 -대한민국 영상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상징적인 제품으로 평가됨 - 타 국가의 산업제품에 비해 최근 생산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원형에 대한 관 리가 소홀하여, 생산 당시의 형태와 기능을 완벽하게 유지한 제품이 거의 존재 하지 않고 현존하는 제품들도 일부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조속한 문화재 등록을 통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산업디자인의 성장을 이끈 상징적인 존재로서 근대 유물의 체계적인 유지 및 관리가 필요함 ᄋ 종합의견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산업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금성사의 도안 실에서 디자인한 최초의 흑백TV로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제품임 (13) 금성 세탁기 W P

130 1) 명 칭 : 금성 세탁기 WP-181 2) 소 유 자 : (주)LG 3) 소 재 지 :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지산로 , LG인화원 4) 수 량 : 1대 5) 규 격 : 4단 수위 선택 스위치, 스피링식 15분계 타이머, 알루미늄 세탁조, 크기 mm 6) 재 질 : 알루미늄, 플라스틱, 철 등 7) 제작년도 : 1969년 8)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내용 및 특징 -한국 최초의 세탁기로서 세탁과 탈수의 기능이 별개로 된 구조이다. -가사노동 중 세탁에 소비되는 노동과 시간을 절약하는 획기적 제품이다. -세탁과정이 끝나면 수동적으로 세탁물을 탈수기로 옮겨서 탈수작업을 수행한다. -전기적 모터를 응용한 제품으로서 세탁과 탈수를 행하는 비교적 간단한 제품이다. -손으로 짜는 기존의 탈수방법에 비하여 월등한 탈수 효과를 내며, 세탁물의 건 조시간도 크게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생활의 편리성을 제공한 제품 전기 모터를 응용한 것이다. - 그러나 본 세탁기의 기술로 인하여 부흥된 기술적 발전을 선별하기 어렵고 전 기전자산업에 비중 있게 기여한 역사적 가치의 판단이 쉽지 않다. - 이러한 사항들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34조 규정에 의한 등록가치에 대한 합당한 근거기준에는 부족하다고 사료된다. ᄋ 종합의견 - 세탁기는 전기모터를 응용한 것이며, 이 기술로 인하여 전기전자산업에 비중 있게 기여한 고찰도 분명하지 않다.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제34조 규정에 의 한 등록가치에 대한 합당한 근거기준에는 부족하다고 사료된다. <연세대학교 강사 (과학사)> ᄋ 현 상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1969년 2월 국내에서 제작, 판매한 최초 전기세탁기 -세탁/탈수 분리된 2조 수동식 1.8kg급 세탁기 최초 생산 -1차 1백95대 생산 -불편한 수동 조작, 비싼 가격으로 초기 보급 저조 -전문세제(가루세제) 부재 및 세탁성능 불신으로 판매부진에 따라 생산 중단 -1971년 생산재개/ 1972년 히타치와 기술제휴 -1974년 2만대 돌파/1979년 16만대 생산/ 대량생산 되면서 전국적 보급 -1977년 2조식 자동 세탁기와 전자동 세탁기가 생산/가정 필수품이 됨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2조 수동식으로 불편하기는 했지만 국내 생산된 최초 세탁기로 세탁에 투여되 는 여성 노동력을 줄인 기기임 -시판 당시 관련 세제개발 미비, 여성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절하, 세탁조와 탈수 조 분리에 따른 불편, 가루비누 사용에 대한 신뢰 미형성 등에 따라 시장에 적

131 응하지 못함 -1970년대에 넘어서면서 여성 사회진출의 진전, 위생의식 및 경제여건의 상승에 따라 가정 필수품화 됨 - 한국의 상황에서 관련 산업의 여건과 기술의 사회적 채택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임 ᄋ 종합의견 -한국사회에서 관련산업상황 및 사회적 여건에 따른 기술 채택의 관계를 보여주 는 기술사적으로 중요한 유물임 <서울과기대 교수 (산업디자인)> ᄋ 현 상 -세탁조와 건조부의 뚜껑 모두 변색되고 도색이 박리되어 있음 -배수호스가 분리되어 있음 -현재 제품의 외관만 육안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으므로 문화재 등록 시 내부 상태 확인 및 규격 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속품 존재 여부에 관한 충분한 검토를 요함 ᄋ 내용 및 특징 -국내 주부들의 가사업무에 큰 변화를 가져옴 - 백조세탁기 란 애칭으로도 불리었으며 이후 레이디세탁기, 빨래판세탁기, OK세탁기, 리듬세탁기, 카오스세탁기, 통돌이세탁기, 트롬 등의 브랜드를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프리미엄 세탁기의 대표 브랜드가 되었음 ᄋ 문헌자료 -한국전자산업진흥회, 전자산업40년사, LG, LG50년사, 강현주 외, 한국의 디자인: 산업 문화 역사 산업문화역사, 시지락, 정시화, 韓 國 의 現 代 디자인, 悅 話 堂, 1979 ᄋ 기 타 -대부분 부품을 일본 히타치에서 들여왔으며, 국산 부품은 세탁물 바구니와 인쇄 포장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 확인을 요함.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금성 A-501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국산화에 성공한 최초의 가정용 세탁기임 - 금성 WP-181 세탁기는 산업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 디자인실인 금성사 도안실에서 최초로 기업에 채용된 산업디자이너에 의해 수 행된 최초의 세탁기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음 - 세탁기는 주부들의 가사 노동을 도와줌으로써 가정에서의 주부들의 생활을 변화시 키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기여한 제품임. 금성 WP-181 세탁기 역시 국내 주부들 의 생활을 변화시키는데 공헌한 제품으로 그 의미가 큼 -금성 WP-181 세탁기의 경우 사용의 특성상 물과의 잦은 접촉으로 외부나 부속 등 에 훼손이 많은 상태로, 신속한 문화재 등록을 통해 근대 산업화시대의 유물로서 체계적인 유지 및 관리가 필요함 ᄋ 종합의견 - 우리나라 기업 최초의 산업디자인 수행 부서인 금성사 도안실에서 디자인한 최초 의 세탁기로, 국내 주부들의 가사노동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등 그 역사적 가치 가 매우 큰 제품임 (14) 삼성전자 64K DRAM

132 1) 명 칭 : 삼성전자 64K DRAM (64킬로비트 동적 무작위 메모리 반도체 소자) 2) 소 유 자 : 삼성전자 3) 소 재 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 산24 4) 수 량 : 1점 5) 규 격 ᄋ 웨이퍼 : 4인치 ᄋ 칩 : 2.3(w) 0.9(d) 0.8(h) 6) 재 질 : 실리콘 7) 제작년도 : 1983년 8) 조사자 의견 <광운대학교 석좌교수 (전자공학)> ᄋ 현 상 - 집적기술이 전무였든 당시, 한국의 반도체 집적기술에 대한 도전은 무리라는 주장이 많았다. 우리는 이룰 수 없다는 기술적 열등감과 기술에 대한 확신성을 판단 못하는 당시의 기술 수준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삼성은 64K DRAM 메모리 기술개발에 도전하였고, 단시일의 개발기간 을 갖고 상업화에 성공한다. 반도체라는 높은 기술과 집적회로(IC)라는 고난도 의 기술을 우리가 해냈다는 결과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증명으로서, 우리도 우수한 두뇌와 성실함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온 국민에게 알려준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도 어려운 기술에 도전해도 된다는 자신감과,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성취 의 확실성을 깨워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ᄋ 내용 및 특징 -실리콘 웨이퍼의 절단, 가공, 집적기술이 요구되며, 공장 환경으로서 청정, 무진 동 작업장, 항온 항습의 유지기술이 수반되어야 한다. - 집적회로의 설계기술과 사진처리기술 등 고난도의 정밀 기술이 필요한 산업으 로서 대단위의 투자가 요구되는 산업구조를 가진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한국 최초의 상용화된 반도체 메모리로서 메모리 분야의 세계점유율 1위 달성의 기원이 되는 제품이다. 한국의 메모리 제조 기술적 및 산업적 역사를 보존한 제 품이다. ᄋ 종합의견 -한국 최초의 상용화된 반도체 메모리로서 메모리 분야의 세계점유율 1위 달성의 기원이 되는 제품이다. 한국의 메모리 제조 기술적 및 산업적 역사를 보존한 제 품이다. ᄋ 기 타 (추가 의견 : 1G DRAM) - 1G DRAM의 생산은 디지털 시스템의 기억용량 대형화에서 큰 변화를 준 제품 이다. 대용량 기억장치인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대치할 수 있게 하 고 결과적으로 소형화와 고속화를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삼성만이 가진 고유의 기술로서 세계적 기술로 리드하고 있다. 디지털 시스템에서 메모리가 갖는 하드웨어에 설계와 구성을 변혁시킨 획기적인 제품이 된 것이다. -초집적화한 집적회로 기술은 기술적 한계를 넘는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 반도체 기술의 첨단화를 이룩한 계기가 된 것으로서 전기전자정보기술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 삼성전자에서 개발된 세계 최초의 대용량 메모리 칩으로서 디지털 시스템의 혁

133 신적 구조변화에 기여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 세계최초의 산업화에 성공한 기술로서 문화재 등록에 추천되는 제품이다. <IT문화원 원장 (정보통신사)> ᄋ 현 상 - 삼성에서 생산한 64K DRAM은 반도체강국이자 IT강국 한국의 출발점이 된 제품으로 사회문화경제역사적 가치가 있음 -삼성전자 용인 전시관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제품은 64K DRAM을 비롯하여 그 이후 모델인 256K DRAM, 1M DRAM, 4M DRAM을 비롯하여 다양한 칩 을 소유 전시하고 있음 - 현재 삼성이 보유하고 있은 64K DRAM의 정확한 생산일은 모르겠으나, 64K DRAM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함 ᄋ 내용 및 특징 - 삼성전자에서는 64K DRAM 뿐만 아니라 그 이후 모델도 소유 전시하고 있으나, 역사적 의의로 볼 때 최초 생산품인 64K DRAM이 문화재로 가치가 있다고 봄 - 삼성에서는 64K DRAM 칩만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4인치 웨이퍼도 소장하 고 있기 때문에 칩 하나만 소장하는 것에 비해 더욱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봄 -단, 64K DRAM 칩 자체는 다른 곳에도 다수 존재할 수 있고 이 경우 모든 칩 마다 문화재로 등록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 등록시에는 삼성 64K DRAM 칩과 웨이퍼 로 등록하는 것을 권장함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반도체 강국을 이끈 첫 번째 시발점이 된 제품 1. 삼성이 만든 64K DRAM은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하게 된 출발점이 된 첫 번째 제품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경제적 의미가 큼 2. 64K DRAM은 자체 개발로 개발 생산됨으로써 이후 한국 반도체 산업을 세 계 1등으로 이끄는데 초석을 마련함 3. 삼성이 소유한 것은 64K DRAM 칩과 웨이퍼 두 가지를 모두 소유하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 및 학습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칩 하나만 소유한 것보다 높음 4. 64K DRAM의 경우 역사가 짧지만 IT분야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이고, IT 분야에서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산업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IT 특성 을 감안하여 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함 ᄋ 종합의견 -반도체 강국 한국의 출발점이 된 64K DRAM 칩으로 삼성 박물관에 보관 전시 되고 있으며 문화재적 가치가 있음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ᄋ 현 상 -삼성은 1983년 3월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하고 첫 양산 제품을 64킬로비 트 동적 무작위 메모리 소자(dynamic random access memory, 64K DRAM)로 결정하고, 5월부터 개발에 착수 한 후 6개월 후인 11월에 64K DRAM의 공정, 검사, 조립 기술 등 반도체 생산 공정기술을 독자적인 힘으로 개발하고 이를 국내외에 발표했다. 당시 국내의 반도체 산업은 시계, TV에 들어가는 단순한 기능의 칩들을 생산하는 기술과 장비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선진국이 20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개발해낸 4K, 16K, 32K DRAM을 3단계나 뛰어넘어 64K DRAM을 개발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

134 째로 이룩한 성과로서 선진국과 비교해서 10년 이상 차이가 나던 국내 반도체 생산 기술수준을 3~4년으로 크게 단축시켰다고 평가된다. -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2년에는 64M DRAM, 1994년에 256M DRAM, 1996년 에 1G DRAM을 각각 세계 최초로 출시하여 DRAM 분야의 시장을 석권하게 되었으며, 첨단기술이라는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도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상기 3종의 반도체 소자의 현재상태는 양호하며, 역사성과 기여도를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ᄋ 내용 및 특징 -64K DRAM은 1980년 대 초기에 개발된 TV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전자제품에 사용되었던 반도체 소자의 하나로서 엄지손가락의 손톱만한 칩 속에 6만4천개 의 트랜지스터 등 15만개의 소자를 800만개의 선으로 연결해 8천자의 글자를 기억할 수 있는 VLSI (초고밀도 집적회로)급 첨단 반도체이다. 64M D램은 엄 지손톱만한 칩에 2억5600만개, 축전기 소자 2억5600만 개의 소자를 집적시켜 신문지 512쪽에 해당하는 용량을 기억할 수 있는 제품으로 1992년 당시 다른 선진국들은 개발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과정에서 리소그래피 기술, 입체 축전 기술, 배전기술 등 중요 생산기술을 개발함으로서 단위공정기술 분야에서 세계 적인 수준에 오르게 되었다. 1994년 8월 29일에는 세계 최초로 256메가 DRAM 개발에 성공해 확실한 기술 우위를 입증했고 삼성은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루 게 되었다. 1996년에는 손톱만한 소자에 10억7천4백만 개의 단위소자가 완벽하 게 작동하는 1G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이것의 개발로 한국은 반도체 분야의 최강국이 되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이러한 성과는 64킬로비트 DRAM의 개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역 사성과 기여도를 고려할 때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다 고 평가된다. ᄋ 종합의견 -64킬로비트 동적 무작위 메모리 소자 (64K DRAM)는 삼성전자(주)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 생산한 반도체 소자로서 선진국과 비교해서 10년 이상 차이 가 나있던 국내 반도체 생산 기술수준을 3~4년으로 단축시켰다고 평가되고 있 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92년에는 64메가(M), 1994년에 256메가, 1996년에 1 기가(G) 비트 DRAM을 각각 세계 최초로 출시하여 우리나라가 첨단기술이라 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등록문화재로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15) 글 1.0 패키지 1) 명 칭 : 글 1.0 패키지 2) 소 유 자 : (주)한글과컴퓨터 3) 소 재 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왕판교로 644번길 49 한컴타워 10층 4) 수 량 : 1점 5) 규 격 : 매뉴얼 cm, 플로피디스크 5.25인치 6) 재 질 : 종이, 플로피디스크 7) 제작년도 : 1989년 8) 조사자 의견

135 <서경대학교 교수 (산업공학)> ᄋ 현 상 -아래아한글은 상품명 " 글"의 통칭이다. PC에서 한글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그 램이다. 1989년 1.0 판을 최초 개발하여 러브리컴퓨터에서 판매가 되었고, 1990 년 (주)한글과컴퓨터가 설립되어 1.5판을 발표하였다. 지금의 워드프로세서와 비교하면 기초적 수준이지만, 최초 아래아한글의 의미는 PC기종이나 프린터, 한글카드 여부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었던 점, 완성형 코드로 불가능한 1만 여 자의 한글 모두를 표현할 수 있었던 점, 표준 자판 외에 세벌식 자판을 지 원하는 점, 옛한글 외국어를 표현할 수 있었던 점 등이다 년 획기적 기능을 추가한 한글 2.0이 발표되어 외국제품을 뛰어 넘는 전문 적인 워드프로세서로 발전되었다. 타자기와 확연히 다른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의 발전에 따라 PC 수요도 증가하고, 글꼴(폰트) 시장의 확대, IBM용 전 자출판 등으로 다방면에 영향력을 미침으로서 한글의 컴퓨터화에 역사적 공헌 을 하게 되었다. - 그 후 2.5판, 윈도용 한글, 한글오피스 등으로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하고 있다. 아래아한글은 컴퓨터 시대에 문서 작성, 문자 생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기술적, 문화적 충격을 준 것은 1.0판과 2.5판이다. ᄋ 내용 및 특징 - 아래아한글은 거의 타자기의 컴퓨터화 수준인 초창기 워드프로세서 시장에 등 장한 의미있는 워드프로세서로서, 90년대 이후의 컴퓨터 문서작성의 필수품처 럼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아래아한글 1.0의 특징은, 1) 별도의 한글카드 없이 PC 기종에 상관없이, 모든 프린터에서 사용 가능한 점, 2) 조합형 코드로서 1만여 자의 모든 한글을 표현 할 수 있는 점, 3) 풀다운 메뉴 4) 문단 정렬, 5) 각주 처리, 6) 옛한글 영문 외 국어를 표현할 수 있었던 점 등이다. 또 표준 두벌식 자판 외에 세벌식 자판을 신념있게 지원하는 점도 특징이다. 2.0부터 한 차원이 높아진 기능으로서 우수 한 워드프로세서로 발전하였다. -아래아한글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이 전 세계의 사무도구를 석권하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습성에 적합하게 만들어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프로그램이다. - 본 대상물의 경우 최초 1.0판 이후 계속적 업그레이드 되어 왔으며 도스 시대 의 워드프로세서인 1.0이 문화적 충격이 컸으며,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아래아한글은 1990년대 우리나라의 컴퓨터 문서 편집기의 대종을 이룬 대표적 제품으로서 보존의 가치가 있다. - 89년 개발되어 90년부터 (주)한글과컴퓨터가 생산하여 문서 작성의 중추적 역 할을 수행하였으며, PC 수요 증가, 글꼴(폰트) 시장의 확대, 전자출판 등에 영 향력을 미침으로서 한글의 컴퓨터화에 역사적 공헌을 하게 되었다. - 아래아한글이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워드프로세서인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컴퓨터 시대의 개막에 즈음하여 사용자 요구에 부합하였으며 시장의 변화에 잘 부응했기 때문에 사용자로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역사적으로 계속 업그레이드되어 왔으며, 상징적 가치로서, 최초 판인 아래아한 글 1.0이 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 국내 최초의 가장 대중적인 문서편집기(워드프로세서)이며 현재도 IT 기술발전에 맞추어 계속 후속 판이 개발되고 있는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

136 이며, 사무도구와 IT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치가 충분하다. - 더불어 아래아한글의 업그레이드에 따른 기능 변천 자료와 매체 실물을 함께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ᄋ 종합의견 - 국내 최초의 가장 대중적인 문서편집기(워드프로세서)이며 현재도 계속 후속 판이 개발되고 있는 기술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소프트웨어이며, 우리나라 컴 퓨터시대의 개막 후 문서작성과 IT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 유산으로 보존가 치가 높다. <서울대학교병원 연구교수 (과학사)> ᄋ 현 상 -패키지는 거의 손상 없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 정품 플로피디스켓 뿐 아니라 사용설명서 등 소책자가 모두 파일에 보관되어 있어 당시 판매되던 모습 그대로를 알 수 있다. -다만 플로피디스켓에서 자료를 읽어 들일 수 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ᄋ 내용 및 특징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 개인용컴퓨터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그에 따 라 한글 문서작성기에 대한 수요가 민간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관공서에서는 몇 종류의 행정전산망용 문서작성기를 쓰고 있었으나, 이것들 은 한글을 입출력하는 것 이상의 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 이에 비해 글 은 다양한 기능을 갖추어 문서를 자유롭게 꾸미고 인쇄할 수 있었으므로 배포하자마자 한글 문서작성기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 글은 198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생들이 개발하였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이찬진은 1988년 가을 서울대 컴퓨터연구회에서 만난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 등 과 함께 새로운 문서작성기를 개발하여, 베타 버전인 글 0.9 를 1989년 3월에 발표하였다. - 이들은 1989년 4월 2일에는 최초의 상용버전인 글 1.0 을 출시하였다. 글 1.0은 세운상가에서 4만7천 원에 판매되었는데, 화면에서 최종 결과물의 모양을 보며 편집이 가능( WYSIWYG 편집)했으며, 다양한 글꼴을 지원하고, 미려한 인쇄물을 얻을 수 있으며, 선 그리기 기능 등을 지원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1989년 12월에는 이것을 개량한 글 1.2 가 출시되었다. -이찬진 등은 한글문화원 내부에 1990년 10월 9일 한글과컴퓨터 사를 설립하고 정내권, 박흥호 등을 영입하였다. 한글과컴퓨터사는 같은 해 12월 20일에 글 1.5 를 출시하였다. 글 1.5는 문서에 삽입한 그림을 인쇄할 수 있었고, 옛한글 과 외국어를 포함해 완성형 한글코드(정부표준)로는 표현 불가능한 글자들을 지 원했으며, 세벌식 자판 등 다양한 선택사항을 지원했다. 글 1.5는 문서작성기의 기본적인 기능을 완비함으로써 한글 전산화의 새 장을 열었다. 글 1.5와 1992 년 출시된 글 2.0은 1990년대 후반 윈도우즈 환경으로 이행하기 전까지는 도스 (DOS) 환경에서 사실상 표준 문서작성기로 자리 잡았다. ᄋ 기 타 -검토한 것은 소프트웨어가 담겨 있는(또는 담겨 있으리라고 추정되는) 플로피디 스켓과 사용설명서 등이며, 글 1.0 소프트웨어 자체를 검토한 것은 아니다. -앞서 밝혔듯 디스켓에서 소프트웨어를 문제없이 읽어 들일 수 있는지는 검토하 지 못했다. - 이는 일차적으로는 오늘날 5.25인치 플로피디스켓을 읽을 수 있는 드라이브를

137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지만, 드라이브를 구하여 읽는다고 해도 자성 기록 매체의 수명을 감안하면 24년 전의 디스켓에 담긴 자료가 열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소프트웨어 자체는 진본의 개념이 없으므로, 만일 디스켓이 열화되었다면 별도 의 경로를 통해 글 1.0 의 디지털 복사본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한글 기계화는 민족문화운동의 중요한 부분이자 한국인의 업무 능률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중요한 요소이다. -이 물품은 기계로 한글을 구현하던 시대(한글타자기, 식자기, 인쇄기 등)에서 전 자장비로 한글을 구현하던 시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 한국어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이용자에게 친숙한 대표적 한글 소프트 웨어의 원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당시에 글을 사용하지 않은 개인용 컴퓨터 이용자가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소 프트웨어 시장이 성숙하지 않아 정품을 구입해서 사용한 이도 거의 없었다. 따라 서 글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품 패키지를 소장한 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추 측된다. -본 검토 물품은 최초로 판매된 글 1.0의 완전한 패키지이므로 보존 및 전시 가 치가 높다. -다만 현재 등록 대상이 되는 것은 소프트웨어를 담았던 매체(플로피디스켓)과 그 에 딸린 패키지이지 소프트웨어 그 자체가 아니다. 실행 가능한 소프트웨어 복사 본을 같이 확보하여 보관하여야 물품의 가치를 온전히 살릴 수 있으므로, 이것을 권장사항으로 부기하여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ᄋ 종합의견 - 오늘날 관공서 등에서 사실상의 표준으로 쓰는 컴퓨터용 한글 문서작성기의 최 초 버전으로, 기술사와 문화사 관련 의의가 크므로 보존가치가 높다. <전 연세대학교 (국어학)> ᄋ 현 상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디스켓으로 보관되어 있어서 보관이 어렵고 모두 새로 나 온 버전만 사용함으로써 초기의 버전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행이 한글과컴퓨 터사에서 1부를 보관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ᄋ 내용 및 특징 - 현대는 정보의 세계화를 통하여 이루어진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컴퓨터에 저 장하여 놓고,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제공받아 이를 모든 분야의 발전에 이용하는 정보 시대 이다. - 20세기말 이전까지는 문화 축적의 도구인 언어의 기능이 중시되어 언어의 중요 성이 증대되어 온 시기이다. 그러나 21세기인 오늘날은 언어에 담겨져 있는 모든 내용을 정보화하고 이를 가공하여 인간이 요구하는 모든 정보를 추출하여 내는 정보화 사회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언어를 정보화하기 위한 기술의 개발은 물론이고, 이렇게 구축된 정보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는 정보 사회로 급변하게 될 것이다. 곧 기술의 시대에서 문화의 시대로 변천하게 될 것이다. - 최근에는 고도 정보화 사회라는 용어가 정보화 사회와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다. 정보화 사회를 제1차 정보화라고 한다면, 고도 정보화를 제2차 정보화라고도 한 다. 제1차 정보화라는 개념은 1960년대에, 그리고 제2차 정보화는 1980년대에 이 루어진 개념이다. 제1차 정보화의 과정에서는 산업 내부의 컴퓨터화를 의미하는

138 산업의 정보화 와 정보 관련 산업의 탄생을 뜻하는 정보의 산업화 가 두드러진 데 비해, 제2차 정보화의 단계에서는 개인 컴퓨터나 문서작성기가 가정으로 보급 되어 가는 생활의 정보화, 그리고 현금카드 등의 보급으로 사회 전체가 정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가는 사회의 정보화 로 변화하고 있다. 1990년대는 모든 네 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의 세계화 가 일반화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몹스 smart mobs 행동 즉 똑똑한 군중들이 인터넷, 스마트폰 smart phone 즉 휴대전화에 인터넷 통신과 정보검색 등 컴퓨터 지원 기능을 추가한 지 능형 단말기, SNS Social Network Service, 즉 온라인상에서 불특정 타인과 관 계를 맺을 수 있는 서비스를 통하여 집단행동이 가능한, 제3차 정보화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정보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도구는 문서작성기이다. 이 문서 작성기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고려글 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어서 아름글, 팔란티어 등이 출시되어 사용되었고, 이어서 보석글, 글, 훈 민정음 등의 문서작성기가 출시되었다. 특히 후의 3 가지 문서작성기는 우리나 라의 문서작성기 발전을 돕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글 은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는 대중적인 문서작성기이다. - 글 1.0은 한글과컴퓨터(주) 설립자인 이찬진( 李 燦 振 )과 김형집 우원식이 1989 년 공동으로 개발해 발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이다. 한글로 만들어진 최초의 워드프로세서로, 1989년에 한글 1.0으로 시작해 1992년 2.0, 1994년 2.5가 발표되었다. 이 한글 2.5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묻혔다. - 이어서 한글 오피스 96(1996), 매킨토시용 한글 96(1997), 한글 97 강화판(1999), 한글 워디안(2000), 한글 2002(2001), 한글 2004(2003), 한글 2005(2004), 한글 2007(2006), 한글2010(2010)이 잇따라 출시되었다. - 한글 2004는 새로운 데이터의 유통 표준으로 각광받는 차세대 인터넷 언어 XML을 지원해, 기존의 한글 사용자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XML을 활용할 수 있 도록 한 제품이다. 또 OLE 오토메이션을 지원해 그룹웨어나 광학식문자판독기 (OCR) 같은 외부 프로그램에서도 한글을 쉽게 컨트롤할 수 있도록 확장성과 연 동성을 크게 강화하였다. 그 밖에 공개키기반구조(PKI)의 암호화 솔루션을 사용 해 문서를 보안문서로 저장할 수 있고, 사용자 설정 기능을 강화해 자신만의 효 율적인 작업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후 출시된 한글 2005에는 회 사나 공공기관 등 조직에서 문서와 관련한 협업에 반드시 필요한 버전관리, 버전 간 비교 기능, 메모 기능, 형광펜 기능 등이 추가되었다. 2008년에는 한컴 2008 리눅스가 출시 되었으며, 2011년 현재 한컴오피스 한글 2010 SE가 최신제품으 로, 한글에서 작성한 문서를 웹과 쉽게 연동할 수 있는 기능, 시각장애인용 점자 변환 기능,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개인 정보 보호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 한글이 세계 최고( 最 高 )의 과학문자이자, 컴퓨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라는 사실을 증명한 워드프로세서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인정을 받은 소프트웨어이다. 그만큼 한국의 컴퓨터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한글을 컴퓨터로 처리하여 문서를 작성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문서작성기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프로그램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으 나 디스켓으로만 남아 있어서 사라질 운명에 있다. 특히 제일 먼저 개발된 제품 은 후에 출시된 제품 때문에 사라지기 일쑤이어서 보존해야 할 가치가 매우 높 다고 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사용설명서(매뉴얼)도 함께 등록해 두어야 할 것이

139 다. -이 글 1.0은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의 정보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므로 문화 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ᄋ 종합의견 -국가문화재로 등록하여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다. (16) 치도규칙 1) 명 칭 :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2) 소 유 자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103동 4) 수 량 : 1책 5) 규 격 : cm 6) 재 질 : 지류 7) 제작년도 : 고종19년(1882) 寫 8) 조사자 의견 <전북대학교 교수 (과학사)> ᄋ 현 상 -국내 유일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음 -이 책은 겉표지에 < 치도규칙>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치도약론 과 치도약 칙, 그리고 중국인 黎 庶 昌 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음 -이 책은 저자 김옥균이 직접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의 글을 보고 나중 에 필사한 것임 -표지의 재질이 본문과 다른 것으로 보아 제본은 추후에 한 것으로 보이고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함 ᄋ 내용 및 특징 -근대시기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가장 초기의 과학기술 관련 저작의 하나임 -필자가 개화파의 거두 김옥균이라는 점도 아주 인상적임 - 이 책은 내용과 제본 양측면에서 전통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시기의 독특한 양 식을 보여주고 있음 -주요 내용으로는 근대적 도로 정비를 위한 치도국 설치, 고위관직 배치, 오물처리 법, 도로정비 감독 순검의 배치, 가가의 금지, 공중변소 설치 등을 제시하고 있음 - 이 책은 이후 박영효를 필두로 시작된 한성의 근대적 도시 정비에 참고자료 로 활용됨 - 따라서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대적 도로 정비의 시작을 여는 출발점을 제공 해주고 있음 ᄋ 문헌자료 - < 치도약론> 과 관련한 학술논문으로는 우동선, 도시와 건축에 대한 박영효의 생각,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제17권 제7호, 2001, 쪽; 김광우, 대한제국시대의 도시계획-한성부도시계획개조사업-, < 향토서울> 50, 1990, 등이 있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우리나라 근대 도로 정비의 시작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 는 자료임 - 이 책은 국내에 소장되어 있는 유일본으로서 그 희소성의 측면에서도 매우 커다 란 의미를 지님

140 -이에 대한 연구는 학술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근대 도로 및 도시 정비에 대한 새 로운 관심과 흥미를 가져올 수 있음 -구체적으로는 국가차원의 도로, 위생, 미관, 도시 등의 근대적 개선책을 총체적 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임 -이 책은 동아시아 국가들, 즉 중국과 일본의 유사 저작과 비교 연구를 위한 주 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음 ᄋ 종합의견 - 근대적 과학기술에 대한 초기의 대표적 저작으로 당시의 도로 정비 인식과 우 리나라 도로 정비 역사를 보여주는 희소성이 매우 큰 귀중한 자료임 <문화재위원 (서지학)> ᄋ 현 상 書 誌 記 述 : 調 査 對 象 文 化 財 의 書 誌 記 述 은 다음과 같다. - 治 道 規 則 / 金 玉 均 ( ) 著. -- 筆 寫 本. --[ 京 城 ] : [ 筆 寫 地 不 明 ], [ 高 宗 19(1882) 寫 ] - 不 分 卷 1 冊 (9 張 ) : 四 周 單 邊, 半 郭 22.0[ 確 認 要 望 ] 17.4[ 確 認 要 望 ]cm 內 外, 有 界, 10 行 21 字 內 外, 註 雙 行, 白 口, 無 魚 尾 ; cm. 楮 紙. 線 裝 ( 四 針 眼 訂 ). - 本 書 名 : 表 題 와 標 題 에 의함 - 表 題 : 治 道 規 則 - 標 題 : 治 道 規 則 - 目 次 : 治 道 略 論 (4 張 ), 治 道 略 則 (4 張 ), 跋 (1 張 ) - 卷 首 緖 論 : 治 道 略 論 聖 上 卽 阼 十 九 年 壬 午 ( 高 宗 19, 1882) 十 一 月 望 金 玉 均 ( ) 謹 題 - 卷 中 本 文 : 治 道 略 則 金 玉 均 書 - 卷 末 跋 文 : 光 緖 壬 午 ( 高 宗 19, 1882) 十 一 月 黎 庶 昌 拜 識 - 版 心 : 統 理 交 涉 通 商 事 務 衙 門, 第 道 - 版 面 : 匡 郭 이 四 周 單 邊 이며 半 葉 의 行 數 가 10 行 인 印 札 紙 에 內 容 은 筆 寫 되어 있으며, 版 心 에는 木 活 字 體 의 統 理 交 涉 通 商 事 務 衙 門, 第 道 가 있다 - 內 容 : 金 玉 均 ( )이 1882( 高 宗 19)년 11월에 道 路 의 整 備 問 題 에 대하여 記 述 - 言 語 : 漢 文 - 印 文 : 朝 鮮 總 督 府 藏 書 之 印, 서울 大 學 校 圖 書 - 所 藏 處 : 奎 章 閣 ( 奎 15255) 現 狀 -조사본 治 道 規 則 은 朝 鮮 時 代 末 期 의 政 治 家 이며 開 化 運 動 家 였던 古 筠 金 玉 均 (1851~1894)이 고종 19(1882)년 9월에 일본 정부와의 壬 午 軍 亂 ( )의 사후수습을 협의하기 위하여 特 命 全 權 大 臣 겸 제3차 修 信 使 로 임명되어 14명의 隨 行 員 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파견된 朴 泳 孝 ( )를 수행하던 시기에 道 路 整 備 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論 說 하여 執 筆 한 筆 寫 本 1책이다. -조사본 治 道 規 則 의 紙 質 은 楮 紙 이며, 裝 訂 은 線 裝 이나 韓 國 의 傳 統 的 인 五 針 眼 訂 法 의 線 裝 이 아니라 日 本 式 의 四 針 眼 訂 法 의 線 裝 이다. 裝 訂 의 형식에 있어 서는 東 洋 傳 統 의 線 裝 을 취하고 있으나, 書 籍 의 體 制 는 表 紙 와 標 題 紙 가 분리 된 西 洋 式 의 包 背 裝 형태와 유사한 西 歐 式 最 新 體 制 를 따르고 있다. -조사본 治 道 規 則 은 서울시 冠 岳 區 冠 岳 路 1103동의 서울대학교 奎 章 閣 韓 國 學 硏 究 院 에 의하여 매우 良 好 한 상태로 維 持 管 理 되고 있으며, 閱 覽 守 藏 施 設 이 完 備 된 奎 章 閣 에 守 藏 되어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141 -조사본 治 道 規 則 은 朝 鮮 時 代 末 期 의 政 治 家 이며 開 化 運 動 家 였던 古 筠 金 玉 均 ( )이 壬 午 軍 亂 후에 日 本 에 파견된 修 信 使 朴 泳 孝 ( )를 수행 하던 고종 19(1882)년 11월에 道 路 整 備 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정리하여 論 說 한 1책의 筆 寫 本 이다. 匡 郭 이 四 周 單 邊 이며 半 葉 의 行 數 가 10 行 인 印 札 紙 를 사용 하여 총 3,050자의 漢 文 으로 筆 寫 되어 있으며, 版 心 에는 木 活 字 體 의 統 理 交 涉 通 商 事 務 衙 門, 第 道 가 있다. 表 題 와 標 題 는 治 道 規 則 이며, 內 容 은 크게 治 道 略 論 (4 張 ), 治 道 略 則 (4 張 ), 跋 (1 張 ) 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량은 총 9 張 이다. 裝 訂 은 線 裝 이나, 韓 國 의 傳 統 的 인 五 針 眼 訂 의 線 裝 法 이 아니라 日 本 式 의 四 針 眼 訂 法 의 線 裝 을 따르고 있다. 裝 訂 의 형식에 있어서는 東 洋 傳 統 의 線 裝 을 취하고 있기는 하나 書 籍 의 體 制 는 表 紙 와 標 題 紙 가 분리된 西 洋 式 의 包 背 裝 형태와 유사한 西 歐 式 最 新 體 制 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本 書 의 本 書 名 은 表 題 와 標 題 에 나타나는 治 道 規 則 으로 著 錄 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 조사본 治 道 規 則 의 < 治 道 略 論 > 은 金 玉 均 의 治 道 에 관한 緖 論 이며, < 治 道 略 則 > 은 金 玉 均 의 治 道 에 관한 本 論 이며 < 跋 > 은 당시 駐 日 淸 國 公 使 였던 黎 庶 昌 ( )의 跋 文 이다. 緖 論 인 < 治 道 略 論 > 에서 金 玉 均 은 治 道 의 必 要 性 과 아울러 著 述 의 動 機 를 설명하면서 修 信 使 朴 泳 孝 와 副 使 金 晩 植 ( )의 권유로 본 論 說 이 執 筆 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本 論 인 < 治 道 略 規 > 에는 道 路 의 整 備 와 관련된 문제가 13개의 細 目 으로 論 及 되고 있다. 治 道 局 의 설치를 비 롯하여, 治 道 技 術 者 의 양성과 필요한 機 械 의 구비, 汚 物 處 理 法, 監 督 巡 檢 의 설 치와 監 督 의 內 譯, 人 力 車 와 馬 力 車 의 운행, 卸 賣 市 場 의 설치 등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跋 > 은 黎 庶 昌 이 金 玉 均 의 論 說 을 읽고 治 道 에 필요한 資 金 과 技 術 者 의 확보가 先 行 되어야 함을 助 言 한 跋 文 이다. - 조사본 治 道 規 則 은 朴 泳 孝 가 修 信 使 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漢 城 判 尹 에 임명된 고종 20(1883)년 초에 漢 城 府 에 治 道 局 을 설치하면서 漢 城 의 道 路 整 備 事 業 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施 行 된 바 있다. 그 성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3개월 후에 朴 泳 孝 가 廣 州 留 守 로 좌천될 때까지는 道 路 整 備 事 業 이 계속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朴 泳 孝 의 左 遷 과 함께 道 路 整 備 로 인한 民 家 의 撤 去 등으로 市 民 의 불평과 반대파의 비방이 뒤따르자, 治 道 規 則 의 현실적 적 용도 中 斷 되고 말았다. - 金 玉 均 의 治 道 規 則 은 < 漢 城 旬 報 > 제26호(1884년 윤5월 1일자)의 國 內 私 報 欄 에 게재되었을 뿐 아니라, 이보다 앞서 후쿠자와 유키치( 福 澤 諭 吉 )가 東 京 에 서 발행한 < 時 事 新 報 > (1883년 1월 13 15일)에 金 玉 均 의 上 書 라는 題 下 에 게 재된 바 있다. ᄋ 기 타 - 所 藏 管 理 : 治 道 規 則 은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103동의 서울대학교 奎 章 閣 韓 國 學 硏 究 院 에 의하여 매우 良 好 한 상태로 維 持 管 理 되고 있으며, 閱 覽 守 藏 施 設 이 完 備 된 奎 章 閣 에 守 藏 되어 있다. - 關 聯 事 項 : 김옥균( ): 조선시대 말기의 정치가 개화운동가로 본관은 安 東 이고 字 는 伯 溫 이며, 號 는 古 筠 또는 古 愚 이고 諡 號 는 忠 達 이다. 충청도 公 州 에서 金 炳 台 ( )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나, 7세 때에 당숙 金 炳 基 (1814-?)에게 입양되어 서울에서 성장하였다. 11세 때인 철종 11(1861)년에 養 父 가 江 陵 府 使 가 되자 養 父 를 따라 江 陵 으로 가서 16세까지 栗 谷 祠 堂 이 있는 書 堂 에서 栗 谷 學 風 의 영향을 받으며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뿐 아니라 문장 시 글씨 그 림 음악 등 예능부문에서 탁월한 소질을 발휘하였다. 당시 吳 慶 錫 ( ) 劉

142 鴻 基 (1831-?) 朴 珪 壽 ( ) 등에 의해 근대적 개혁을 위한 開 化 思 想 이 형 성되고 있었는데, 그도 다른 청년들과 함께 고종 7(1870)년 전후부터 朴 珪 壽 의 사랑방에서 開 化 思 想 을 학습 발전시켜 개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고종 9(1872) 년 謁 聖 文 科 에 壯 元 及 第 하고 고종 11(1874)년에 弘 文 館 校 理 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부터 정치적 결사로서의 개화당의 형성에 진력하여 다수의 동지들을 모아 지도자가 되었다. 고종 16(1879)년에 開 化 僧 李 東 仁 (?-1881)을 일본에 파견해 일 본의 근대화실태를 알아보게 하고 紳 士 遊 覽 團 의 파견을 주선하도록 하였다. 국 내에서 혁신의 뜻을 가지고 있는 관리들과 청년들을 모아 개화당의 세력의 확 장에 진력하였다. 그는 스스로 일본의 근대화 실정을 시찰하기 위해 고종 18(1881)년 12월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의 明 治 維 新 의 진전과정을 돌아보고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가들과도 접촉하여 그들의 정치적 동향 등을 상세히 파악 하였다. 돌아오는 도중에 일본의 시모노세키( 下 關 )에 이르렀을 때, 본국에서 壬 午 軍 亂 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귀국하였다. 제1차 渡 日 직후에 箕 和 近 事 를 편찬하였다. 壬 午 軍 亂 이 수습된 뒤 承 政 院 右 副 承 旨 參 議 交 涉 通 商 事 務 吏 曹 參 議 戶 曹 參 判 外 衙 門 協 辦 등의 요직을 거치면서 自 主 近 代 化 와 개화당의 세 력 확대에 진력하였다. 그는 일본이 동양의 영국과 같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조 선은 동양의 프랑스와 같이 自 主 富 强 한 근대국가를 만들어야 나라의 완전한 독 립을 성취하여 유지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전반에 大 更 張 改 革 을 단행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양반신분제도의 폐지, 문벌의 폐지,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인재의 등용, 국가재정의 개혁, 공장제도에 의거한 근대 공업의 건설, 광업 의 개발, 선진 과학기술의 도입과 채용, 상업의 발달과 회사제도의 장려, 화폐의 개혁, 관세 자주권의 정립, 농업과 양잠의 발전, 목축의 발전, 임업의 개발, 어업 의 개발과 포경업의 개발, 철도의 부설과 기선 해운의 도입, 전신에 의거한 통신 의 발전, 인구 조사의 실시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학교를 널리 설립하고 신교육 의 실시를 주장했다. 자주 국방력 양성, 경찰제도의 개혁, 형사행정의 개혁, 도로 의 개선과 정비, 위생의 개혁, 종교와 신앙의 자유 허용, 조선의 중립화 등도 주 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국가 정책으로 실천하고자 했으나 청국의 극심한 방해를 받았다. 당시 淸 國 은 壬 午 軍 亂 의 진압을 위해 3천명의 군대를 조선에 파 견해 大 院 君 을 납치해 갔다. 壬 午 軍 亂 을 진압하여 閔 妃 政 權 을 재수립한 뒤에도 철수하지 않고 靑 軍 을 그대로 서울에 주둔시킨 채, 조선을 실질적으로 屬 邦 化 하 기 위한 적극적인 간섭정책을 자행하였다. 淸 國 은 金 玉 均 등의 자주근대화정책 이 그들의 屬 邦 化 定 策 에 저항하는 것이며, 淸 國 으로부터의 朝 鮮 獨 立 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고 金 玉 均 등의 개화당과 개화정책을 극도로 탄압하였다. 淸 國 의 도 움으로 재집권한 閔 妃 親 淸 事 大 守 舊 派 들도 이에 야합하여 金 玉 均 등 개화당을 박해하였다. 壬 午 軍 亂 후 고종 19(1882)년 9월 그는 수신사 朴 泳 孝 ( )의 고문이 되어 제2차로 일본에 건너갔다. 수신사 일행을 먼저 귀국시키고 徐 光 範 ( )과 함께 더 체류하면서 본국으로부터 유학생들을 선발해 보내도록 하여 일본의 여러 학교에 입학시킨 다음 고종 20(1883)년 3월에 귀국하였다. 당 시 일본 동경에 체류하는 동안 治 道 略 論 을 저술하였다. 고종 20(1883)년 6월 에 국왕의 委 任 狀 을 가지고 제3차로 일본에 건너가서 國 債 를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묄렌도르프(P. G. Mӧllendorff)와 閔 妃 守 舊 派 의 사주를 받은 주조선 일본 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 竹 添 進 一 郎 )가 그가 휴대한 高 宗 의 國 債 委 任 狀 을 위조 한 것이라고 본국에 허위 보고하였다. 이로써 국채모집은 완전히 실패하고 고종 21(1884)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는 3차에 걸친 渡 日 過 程 에서 닥쳐올 나라의 위 기를 급박하게 느껴 더욱 초조해졌다. 그가 개화정책을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淸

143 國 및 閔 妃 守 舊 派 와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더욱 첨예해졌다. 이에 그는 政 變 의 방법으로 먼저 정권을 장악하여 나라를 구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대개혁 을 단행할 것을 모색하게 되었다. 淸 國 과 프랑스가 安 南 問 題 를 둘러싸고 淸 佛 戰 爭 의 조짐을 보이자, 고종 21(1884)년 5월에 淸 國 은 조선에 주둔시킨 3천명의 청군병력 중에서 1,500명을 安 南 戰 線 으로 이동시켜 서울에 청군은 1,500명만 남 게 되었다. 1884년 8월 마침내 청 불전쟁이 일어나 淸 國 은 연전연패하자, 정변을 일으킬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고종 21(1884)년 9월에 개화당 동지들과 함께 정변을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일본공사 다케조에가 일본에 갔다가 동년 10월 30일 서울에 귀임하여 종래의 개화당에 대한 적대정책을 바꾸어 개화당에 접근 하였다. 그는 정변에 대한 청군의 무력개입을 막는데 이용하기 위해 조선군 1,000명 이외에 일본공사관 호위용의 일본군 150명을 정변에 끌어들이는 계획을 세웠다. 고종 21(1884)년 음력 10월 17일 (양력 12월 4일)에 郵 政 局 준공 축하연 을 계기로 마침내 甲 申 政 變 을 단행하였다. 그날 밤에 閔 妃 守 舊 派 의 거물 대신들 을 처단하고 12월 5일에 국왕의 종형인 李 載 元 ( )을 領 議 政 으로, 洪 英 植 ( )을 左 議 政 으로 하는 개화당의 新 政 府 를 수립하였다. 그는 신정부 에서 판서가 임명되지 않은 호조참판을 맡아 재정권을 장악하고 실질적으로 정 변과 신정부를 모두 지휘하였다. 개화당은 정권을 장악하자 12월 5일 저녁부터 6일 새벽까지 밤을 새워가며 회의를 열어서 그의 주도 하에 革 新 政 綱 을 제정하 였다. 6일 오전 9시경에 국왕의 傳 敎 形 式 을 빌려 공포하였다. 이날 오후 3시에는 국왕도 추인하여 대개혁정치를 천명하는 詔 書 를 내려 국정전반의 대개혁이 이 루어질 듯하였다. 그러나 청군 1,500명은 이날 오후 3시부터 甲 申 政 變 을 붕괴시 키기 위한 무력개입을 시작해 불법으로 궁궐에 침입, 공격해 들어왔다. 外 衛 를 담당했던 조선군이 청국 침략군에 저항하다가 패퇴하였다. 그러자 中 衛 를 맡았 던 일본군도 개화당이 사태를 수습할 사이도 없이 도망하고 철수해 버렸다. 이 처럼 청군의 무력공격을 방어하지 못해 갑신정변은 실패하고 金 玉 均 등 개화당 의 집권은 三 日 天 下 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후일의 재기를 기약하고 朴 泳 孝 徐 光 範 徐 載 弼 등 9명의 동지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망명한 그를 박해하였다. 고종 23(1886)년 8월에 오가사와라섬( 小 笠 原 島 )에 귀양 을 보냈으며 또한 고종 25(1888)년에는 北 海 道 로 추방하여 연금시켰다. 그 뒤 東 京 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어 고종 31(1894)년 3월에 淸 國 의 上 海 로 망명하였 으나, 閔 妃 守 舊 派 가 보낸 자객 洪 鍾 宇 ( )에게 上 海 東 和 洋 行 객실에서 암살당하였다. 淸 國 과 閔 妃 守 舊 派 정부는 야합하여 시체를 서울 楊 花 津 에 실어 다가 陵 遲 處 斬 하였다. 4개월 뒤에 甲 午 更 張 으로 開 化 派 政 府 가 수립되자 이듬해 法 部 大 臣 徐 光 範 과 總 理 大 臣 金 弘 集 ( )의 상소에 의해 죄가 赦 免 되고 復 權 되었다. 1910년 奎 章 閣 大 提 學 에 追 贈 되었다. 저서로는 箕 和 近 事 治 道 略 論 甲 申 日 錄 등이 있다. < 출처: 네이버백과-한국민족대백과사전; 김옥균>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조사본 治 道 規 則 은 近 代 以 後 의 道 路 整 備 에 관한 國 內 最 初 의 著 述 로 朝 鮮 時 代 末 期 의 都 市 道 路 整 備 計 劃 의 方 向 을 細 部 的 으로 제시하고 그 內 容 을 자세히 記 述 한 귀중한 資 料 이며, 후일 漢 城 判 尹 朴 泳 孝 가 本 書 에 기술된 내용에 따라 漢 城 의 道 路 整 備 에 적용을 시도하였다는 점 등에서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ᄋ 종합의견 - 治 道 規 則 은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價 値 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144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근대건축사)> ᄋ 현 상 - 김옥균( 金 玉 均, )이 1882년에 쓴 치도약론( 治 道 略 論 ) 과 치도약 칙( 治 道 略 則 ) 이다. 전체 책 제목은 치도규칙( 治 道 規 則 ) 이라고 붓글씨로 적었다. 이러한 경우에 첫 페이지에 나온 치도약론( 治 道 略 論 ) 을 제목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치도약칙( 治 道 略 則 ) 은 일종의 시행규칙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책은 한지로 되어 있고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ᄋ 내용 및 특징 - 김옥균은 1882년에 정사 박영효를 수행하여 일본 도쿄에 갔고, 이때의 견문과 평소의 지론을 더하여 이 책을 집필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치도( 治 道 ) 가 국가사업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치도사업의 지침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 생과 도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시행항목으로는 치도국, 공중변소, 순검 등 의 설치와 가가의 금지 등을 주장하였다. 이는 곧바로, 후쿠자와 유키치( 福 澤 諭 吉, )가 발행에 관여하였던 일본의 지지신포( 時 事 新 報 ) 1883년 1 월 13일자와 1월 15일자에 金 玉 均 の 上 書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어서 우 리나라의 한성순보( 漢 城 旬 報 ) 제26호, 개국 493년(1884) 윤 5월 1일자에 게 재되었다. 이 자료는 도시학자들이 일찍부터 주목하고, 개화파의 도시론으로 높 이 평가해왔다. ᄋ 문헌자료 -김옥균 박은식 외, 이민수 윤남한 이원섭 역, 한국의 근대사상, 서울; 삼성출 판사, 김광우, 대한제국시대의 도시계획 -한성부도시개조사업-, 향토서울 50, 1990년 - 우동선, 도시와 건축에 대한 박영효의 생각,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001년 7월호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치도약론 이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은 학술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록 가치를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ᄋ 종합의견 -이 치도약론 은 김옥균이 1882년에 쓴 보고서이다. 이 치도약론 은 일종 의 도시론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고, 이 내용에 따라서 1880년대의 치도사업이 시행되었다. 그 역사적 학문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17) 과학조선 1) 명 칭 : 과학조선 2) 소유정보 연번 소유자 소재지 수량 비고 1 연세대학교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22호 2 고려대학교 서울 성북구 안암로 호 5) 규 격 : 4 6배판( cm) 6) 재 질 : 지류 7) 제작년도 : 1933~1944년 8) 조사자 의견

145 <전북대학교 교수 (과학사)> ᄋ 현 상 -< 과학조선> 은 제1권 제1호(1933년 6월) - 제9권 12월호(1944년 12월)까지 발간 된 것으로 알려져 있음. 하지만 발간 권호는 정확히 파악이 안된 상태임 - 그 가운데 연세대 학술정보원에는 제1권 제1-4호(1933년, 발명학회)/ 제2권 제 1, 4호(1934년)/ 제3권 제1-2호, 제4-6호(1935년, 과학지식보급회)/ 제4권 제1호 (1936년)/ 제5권 제1-7호( 년)/ 제6권 제1호(1941년, 과학보급협회)가 소 장되어 있음(총 22권)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및 과학도서관에는 제1권 제2-4호(1933년, 발명학회)/ 제2권 제1, 4호(1934년)/ 제3권 제4-6호(1935년, 과학지식보급회)/ 제4권 제1호 (1936년)/ 제5권 제2-7호(40년)/ 제6권 제1호, 12월호(1941년, 과학보급협회)/ 제7권 1월호, 8월호(1942년)/ 제8권 8월호, 10월호(1943년)/ 제9권 12월호가 소 장되어 있음(총 22권) - 연세대와 고려대에 소장되어 있는 < 과학조선> 은 중복을 제외할 경우 총 28권 으로 현재 추정하기로는 제2권 제2-3호/ 제3권 제3호/ 제4권 제2호 이후(불명)/ 제6권 이후의 일부 등이 빠져있음 - 연세대 학술정보원과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및 과학도서관에는 < 과학조선> 소장자료가 제본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함 참고로 < 과학조선> 창간호는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서강대학교 도서관에도 소 장되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어려운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주도로 무려 10년에 걸쳐 발행한 우리나 라 초기의 최대 과학기술 종합잡지임 -당시의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이 대대적이고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과학기술 계의 최고 성과임( 조선 유일의 과학잡지 로 자평) - < 과학조선> 은 과학기술 동향 소개, 과학기술 진흥방안 제시, 발명 지도와 장 려, 산업의 발전방안 모색, 과학기술 문답, 과학기술 대중화 등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음 - 이 잡지의 발간으로 한국인들의 과학기술 관심 고취,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자긍심, 과학기술 대중화운동 등의 파급효과가 널리 나타났음 - 특히 이 잡지 발간을 주도한 과학지식보급회는 < 과학조선> 을 매개로 전국 각 지에서 민족적 과학운동(과학대중화운동)을 활발히 펼쳤음 - < 과학조선> 은 발명학회 및 과학지식보급회를 이끈 김용관의 주도로 이종만의 대동출판사 등의 지원으로 발간되었음 참고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인이 발간한 대중적 과학기술 잡지로는 유일한의 < 수리학잡지> (1905), 공업연구회의 < 공업계> (1908), 공우구락부의 < 공 우> (1920), 연희수리연구회의 < 과학> (1929) 등이 있으나 대부분이 단명했거나 극히 일부의 권호만이 남아있음 ᄋ 문헌자료 -< 과학조선> 을 직접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은 학술적 연구성과는 아직까지 없음. - 다만, 이 잡지를 중요하게 활용한 연구논문으로 현원복, 1930년대의 과학기술 학 진흥운동, < 민족문화연구> 12, 1977, 쪽; 임종태, 김용관의 발명학 회와 1930년대 과학운동, < 한국과학사학회지> 17권 2호, 1995, 쪽이 있 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146 -우리나라 근대시기 과학기술 인식, 활동, 성과 등 과학기술 전반을 아주 방대하 고 생생하게 담고 있는 과학기술의 보고 임 -사회문화적으로 이 잡지는 대중적 과학운동의 공간으로서 한국인들의 과학기술 고취와 진출, 나아가서는 민족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함 -현재 이 잡지는 매우 희소할 뿐만 아니라 멸실될 경우 귀중한 근대 과학기술사 료를 송두리 채 잃게 됨 - 이 잡지는 한국의 근대 과학기술사 및 산업기술 연구와 교육에 아주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임 - 대외적으로 이 잡지는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유사 사례와 충분히 비견될 수 있는 매우 가치있는 자료임 추후 < 과학조선> 은 영인작업을 하여 연구자들이 이 귀중한 자료를 학문적 연 구에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함. 그 일부(11권)는 1988년에 한 국외국어대학 사학연구소에서 영인본으로 출간한 적이 있음 ᄋ 종합의견 -한국인 과학기술자들이 총결집해서 10년 동안 발간한 우리나라 초기의 최대 과 학기술 종합잡지로 당대의 과학기술활동 전반을 집대성해서 담고 있는 역사성 과 희소성을 동시에 갖춘 자료임 <문화재위원 (서지학)> ᄋ 현 상 書 誌 記 述 : 調 査 對 象 文 化 財 의 書 誌 記 述 은 다음과 같다. - 科 學 朝 鮮 / 發 明 學 會 出 版 部 編. -- [ 京 城 ] : [ 發 明 學 會 出 版 部 ], [ 昭 和 8(1933)- ]. - 冊 : cm. 洋 紙. 包 背 裝 - 刊 期 : 不 定 期 - 言 語 : 韓 國 語 - 發 刊 狀 況 : 제1권 제1호(1933년 6월), 제1권 제2호(1933년 7 8월), 제1권 제3호 (1933년 9월), 제1권 제4호(1933년 11월), 제2권 제1호(1934년 1월), 제2권 제2호 (1934년 未 詳 월), 제2권 제3호(1934년 未 詳 월), 제2권 제4호(1934년 6월), 제3권 제1호(1935년 2월), 제3권 제2호(1935년 3월), 제3권 제3호(1935년 4월), 제3권 제4호(1935년 6월), 제3권 제5호(1935년 8 9월), 제3권 제6호(1935년 11월), 제4 권 제1호(1936년 1월), [ 續 刊 ] 제1집(1939년 3월), 제2집(1940년 4월), 제3집 (1940년 5월), 제5권 제1호(1940년 未 詳 월), 제5권 제2호(1940년 未 詳 월), 제5권 제3호(1940년 未 詳 월), 제5권 제4호(1940년 6월), 제5권 제5호(1940년 7월), 제5 권 제6호(1940년 8 9월), 제5권 제7호(1940년 11월), 제6권 제1호(1941년 3월) - 所 藏 處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처 국학자료실(중앙도서관 5층) - 所 藏 : 제1권 제1호(1933년 6월), 제1권 제2호(1933년 7 8월), 제1권 제3호(1933년 9월), 제1권 제4호(1933년 11월), 제2권 제1호(1934년 1월), 제2권 제2호( 缺 號 ), 제2권 제3호( 缺 號 ), 제2권 제4호(1934년 6월), 제3권 제1호(1935년 2월), 제3권 제2호(1935년 3월), 제3권 제3호( 缺 號 ), 제3권 제4호(1935년 6월), 제3권 제5호 (1935년 8 9월), 제3권 제6호(1935년 11월), 제4권 제1호(1936년 1월), [ 續 刊 ] 제 1집(1939년 3월), 제2집(1940년 4월), 제3집(1940년 5월), 제5권 제1호( 缺 號 ), 제 5권 제2호( 缺 號 ), 제5권 제3호( 缺 號 ), 제5권 제4호(1940년 6월), 제5권 제5호 (1940년 7월), 제5권 제6호(1940년 8 9월), 제5권 제7호(1940년 11월), 제6권 제1 호(1941년 3월)

147 現 狀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1933년 6월 10일에 創 刊 되어 1944년 1월까지 刊 行 된 發 明 學 會 의 機 關 誌 로, 韓 國 人 主 導 하여 不 定 期 的 으로 간행된 韓 國 初 期 의 綜 合 科 學 雜 誌 이다. 편집의 특성은 읽는 雜 誌 보다는 보는 雜 誌 로 과학에 대한 畵 報 와 外 國 의 最 新 科 學 發 明 記 事 에 비중을 두었으며 또한 生 活 科 學 과 家 庭 醫 學 및 科 學 技 術 振 興 의 方 法 論 등을 포함한 科 學 論 壇 이 많이 수록되었다.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현재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처 국학자료실(중앙도서관 5층) 에 守 藏 되어 있으며, 閱 覽 守 藏 施 設 이 完 備 된 圖 書 館 施 設 에 수장되어 있다.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차후에 毁 損 된 版 面 을 補 修 하고 影 印 하여 學 界 의 硏 究 자 들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ᄋ 내용 및 특징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1933년 6월 10일에 創 刊 되어 1944년 1월까지 刊 行 된 發 明 學 會 의 機 關 誌 로, 韓 國 人 主 導 하여 不 定 期 的 으로 간행된 韓 國 初 期 의 綜 合 科 學 雜 誌 이다. 편집인 겸 발행인은 李 承 學 (?-?)이며, 京 城 의 發 明 學 會 出 版 部 에서 4 6배판 30 面 으로 발행되었다. 1933년 5월 1일의 < 朝 鮮 文 繼 續 發 行 出 版 物 一 覽 表 > 에 이미 李 承 學 명의의 科 學 朝 鮮 이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發 行 許 可 는 5월 이전에 取 得 되었던 듯하다.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日 帝 治 下 에서 우리 民 族 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科 學 振 興 밖에 없다는 취지 아래 金 容 瓘 ( )을 비롯한 金 鍾 射 ( ) 朱 耀 翰 ( ) 李 仁 ( ) 李 殷 相 ( ) 등이 중심이 되어 1924 년에 설립된 發 明 學 會 의 機 關 誌 로 創 刊 되었다.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의 창간 당시의 任 員 으로 專 務 는 金 容 瓘 이고 理 事 는 鮮 于 全 (?-?) 金 鍾 射 金 海 琳 (?-?) 朴 吉 龍 ( ) 玄 得 榮 (?-?) 姜 鎭 斗 (?-?) 등이었으 며, 顧 問 은 玄 相 允 (1893-?) 徐 椿 ( ) 金 東 成 ( ) 朱 耀 翰 李 仁 등 이고 편집고문은 金 昶 濟 ( ) 李 春 昊 (?-?) 辛 鳳 祚 ( ) 李 殷 相 李 萬 珪 ( ) 朴 長 烈 (?-?) 尹 柱 福 (?-?) 등이었다. 執 筆 陣 은 대개 譯 員 이 겸 하였으며, 生 活 科 學 記 事 는 金 容 瓘 과 기자 沈 昇 澤 (1916-?)이 外 國 의 科 學 書 籍 이 나 新 聞 에서 옮겨 실었으며, 당시 京 城 高 等 工 業 學 校 교수였던 安 東 赫 ( )과 미국에서 공부한 工 學 博 士 崔 晃 (?-?) 등 여러 과학자들이 執 筆 陣 으로 동원되었다. -조사본 科 學 朝 鮮 에 수록된 內 容 은 發 明 과 特 許 에 관한 記 事 가 主 宗 이었으나, 一 般 讀 者 를 위한 生 活 科 學 과 科 學 常 識 도 함께 실었다. 1933년 6월에 創 刊 되어 1934년 6 月 號 까지 發 刊 되다가 일시적으로 休 刊 되고, 1935년 2 月 科 學 知 識 普 及 會 의 機 關 誌 로 續 刊 되면서 大 衆 科 學 에 置 重 하였으나 1944년 1월에 終 刊 되었다. -조사본 科 學 朝 鮮 의 編 輯 特 徵 은 읽는 雜 誌 보다는 보는 잡지로 每 號 科 學 에 관 한 畵 報 와 海 外 의 最 新 科 學 과 發 明 記 事 에 비중을 두었으며, 生 活 科 學 과 家 庭 醫 學 記 事 도 많이 수록하고 科 學 大 衆 化 運 動 의 前 衛 誌 답게 科 學 技 術 振 興 의 方 法 論 을 포함한 科 學 論 壇 에도 많은 誌 面 을 할애하였다. 雜 誌 의 체제는 4 6배판 ( cm)으로, 每 號 1,000부씩 발행하여 대부분 科 學 知 識 普 及 會 의 會 員 에게 配 布 되었으며, 1930년대 科 學 大 衆 化 運 動 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1986년에 韓 國 外 國 語 大 學 校 史 學 硏 究 所 의 所 長 이던 朴 星 來 교수가 科 學 朝 鮮 의 기자를 역임한 원로 科 學 著 述 家 沈 昇 澤 의 所 藏 本 4 年 分 을 11 冊 으로 編 輯 하여 科 學 世 紀 社 에서 200부 한정판으로 影 印 刊 行 한 바 있 다. ᄋ 문헌자료

148 - 朴 星 來 編 輯, 科 學 朝 鮮. 影 印 本. 서울 : 韓 國 外 國 語 大 學 校 史 學 硏 究 所 科 學 世 紀 社, 全 11 冊. ᄋ 기 타 - 所 藏 管 理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현재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처 국학자료실(중앙 도서관 5층)에 守 藏 되어 있으며, 閱 覽 守 藏 施 設 이 完 備 된 圖 書 館 施 設 에 수장되 어 있다. - 關 聯 事 項 : 科 學 知 識 普 及 會 : 1934년 7월 5일에 서울의 太 西 館 에서 李 仁 金 容 瓘 金 昶 濟 朴 吉 龍 등 발명학회 간부들과 서울시내 중등학교 교사 등 100여 명을 발기인으로 창설된 단체이다. 과학의 생활화 를 강령으로 내세운 이 단체는 회장에 尹 致 昊, 부회장에 李 仁, 이사에 朴 準 鎬 金 容 瓘 兪 億 兼, 간사에 鄭 寅 寬, 보급위원에 李 勳 求 崔 奎 東 玄 相 允 尹 日 善 異 河 潤 李 軒 求 朱 耀 翰, 연구위원에 李 克 魯 李 春 昊 安 東 赫 李 萬 珪 李 采 鎬 趙 福 成 崔 允 植, 재정위원에 辛 泰 嶽 吳 胤 善 朴 興 植 등 각계각층 의 인사들을 망라하여 임원진을 구성하였고, 평양 원산 신천 김천 등을 포함한 전국적인 지부를 구성하여 과학대중화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의 가장 중요 한 사업의 하나는 해마다 다윈(Darwin, C. R.)이 卒 去 한 날인 4월 19일로 정한 과학의 날 과 이날을 전후한 과학주간 행사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기념식과 강 연회를 개최하는 한편, 일반인들에게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과학영화 를 상영하고 과학관과 공장견학을 주선하였다. 또 과학서의 편찬과 발간, 각급 학교의 자연과학교과에 관한 조사, 과학대중화 방법에 관한 조사, 과학표본의 제 작 판매 취급대리, 과학종합지인 과학조선 발행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가 주관한 과학대중화운동은 <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민족지의 적극적인 지원과 각계의 거족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차차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 단체에 탄압을 가하기 시작 하여 1938년 제5회 과학의 날 행사에서 이 운동을 주도한 실무책임자 金 容 瓘 을 체포 투옥함으로써 점차 쇠락하였으며, 1930년대 말에는 그 명칭도 과학보급협 회로 바뀌어 과학의 날에도 소규모의 견학단을 조직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과학기술진흥을 통한 민족 저력의 축적이라는 목표를 내건 이 운동은 구체적으 로 국민일반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크게 진작시켜 1935년 국내에서 일대 발명 붐이 일었으며, 특허와 실용신안 출원이나 등록 건수가 이전보다 5배나 급증하 였다.< 출처: 네이버백과-한국민족대백과사전; 과학지식보급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한국의 주도로 12년에 걸쳐 많은 卷 號 가 간행된 한국 초 기의 科 學 技 術 綜 合 雜 誌 로, 科 學 技 術 의 振 興 을 비롯한 發 明 의 高 趣 및 支 援, 科 學 技 術 의 大 衆 化 등을 중심으로 大 衆 의 科 學 啓 蒙 과 韓 國 의 科 學 發 展 을 주도한 귀중한 雜 誌 라는 점에서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조사본 科 學 朝 鮮 은 차후에 毁 損 된 版 面 을 補 修 하고 各 處 에 散 藏 된 卷 號 를 收 拾 影 印 하여 學 界 의 硏 究 者 들에게 제공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 나아가 韓 國 初 期 刊 行 의 科 學 書 에 대한 實 査 와 目 錄 化 作 業 을 통하여 科 學 關 聯 貴 重 資 料 에 대한 국가문화재 등록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ᄋ 종합의견 - 科 學 朝 鮮 은 國 家 文 化 財 로 登 錄 하여 學 術 的 으로 硏 究 管 理 保 存 할 만한 價 値 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149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근대건축사)> ᄋ 현 상 -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창간호부터 제6권 1호까지 보관하고 있다. 이를 두 권으로 제본하였다. - 제1권 제1호(1933년 6월), 제1권 제2호(1933년 7월), 제1권 제3호(1933년 9월), 제1권 제4호(1933년 6월), 제2권 제1호(1934년 1월), 제2권 제4호(1934년 6월), 제3권 제1호(1935년 2월호), 제3권 제2호(1935년 3월), 제3권 제4호(1935년 6월), 제3권 제5호(1935년 8월), 제3권 제6호(1935년 11월), 제4권 제1호(1936년 1월), 제1집(1939년 3월), 제2집(1940년 4월), 제3집(1940년 5월), 제5권 제4호(1940년 6월), 제5권 제5호(1940년 7월), 제5권 제6호(1940년 8월), 제5권 제7호(1940년 11월), 제6권 제1호(1941년 3월) 년대, 40년대의 잡지라서 산화가 일어나 있고, 낱장의 가장자리가 부스러져 있다. 훼손의 위험이 있어서 이를 중성화하는 보존처리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ᄋ 내용 및 특징 - 이 잡지는 김용관이 창립한 발명학회가 발간한 것으로, 과학기술 종합 잡지라 는 성격을 갖는다. 1933년부터 과학조선 이 간행되었다. 한편 1934년에는 역 시 김용관이 과학지식보급회를 창립하였고, 1940년에는 발명학회와 과학지식보 급회가 통합되어 과학보급협회가 창립하였다. 이 잡지는 과학기술 진흥, 발명 고취 및 지원, 과학기술 대중화 등을 꾀하였고, 과학의 날 을 제정하는데 중요 한 역할을 맡았다. -건축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발명학회의 이사장을 건축가 박길룡이 맡은 적이 있 고, 그가 이 잡지에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싣고 있다는 것이다. 글의 주제는 생활의 과학화, 우주와 지구의 생성 등이었다. 그의 사무실 광고도 이 잡지에 자주 등장하였다. ᄋ 문헌자료 -김근수, 한국잡지사 (서울; 청록출판사, 1998) -김근수, 한국 잡지 개관 및 호별 목차 집 (서울; 1973) -임종태, 김용관의 발명학회와 과학운동, 김영식 김근배 편, 근현대한국사회 의 과학 (서울; 창작과비평사, 1998) - 우동선, 과학운동과의 관련으로 본 박길룡의 주택개량론, 대한건축학회논문 집 계획계, 2001년 5월호 ᄋ 기 타 - 한편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는 연희전문 수물과의 교수진이 발행한 과학잡지 가 소장되어 있고, 이 잡지 역시 당시의 과학 수준을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자료도 등록문화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과학조선 이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은 학술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 기 때문에, 등록 가치를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ᄋ 종합의견 - 과학조선 은 1933년부터 해방 전까지 한국의 과학운동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유지 들이 과학지식보급회를 결성하여 발간한 잡지로서, 그 역사적 학문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며,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18) 국가표준 도량형 유물 (추가등록) 1) 명 칭 : 국가표준 근대도량형기 (등록문화재 제320호)

150 2) 소 유 자 : 기술표준원 3) 소 재 지 :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98 4) 수 량 : 82종 218점 (당초 154종 331점) 5) 규 격 : 종류별로 다양 6) 재 질 : 금속, 목재, 종이 등 7) 제작년도 : 1900~1960년대 8) 조사자 의견 <전북대학교 교수 (과학사)> ᄋ 현 상 -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에는 근대시기의 도량형기가 방대한 분량으로 보존되어 있어 이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는 것이 시급함 년에 위의 도량형기 일부(154종 331점)가 1차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고 이때 빠진 나머지 도량형기를 2차로 추가 등록할 필요가 있음 - 2차로 추가 등록을 추진하는 도량형기는 도(길이) 11종 28점, 량(부피) 41종 104점, 형(무게) 6종 6점, 기타 계기 9종 56점, 문서 15종 24점으로 총 82종 218 점으로 구성되어 있음(기술표준원의 < 문화재추가등록카드>에서 도량형 관련 유물로 보기 힘든 기타 계기 1종 1점(벽걸이시계 4-12), 문서 1종 1점(조선인사 예규 5-09)을 제외하고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도량형 관련 문서 1종 1점(도량 형계기각종류일람표)을 추가함) -도량형기의 생산연대는 대한제국시기부터 1950년대까지이고 그 상당 분량은 일 제강점기에 해당되나 한국인들의 삶과 밀접히 연관을 가지며 사용된 것이기에 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됨 -기술표준원에서 작성한 < 문화재추가등록카드> 에는 생산연대를 잘못 기재한 경 우들이 다수 존재함(특히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다수의 유물을 1900년대 초로 기재해 놓고 있음) - 현재 기술표준원에는 보유중인 방대한 도량형기를 보존할 공간이 부족해 적절 한 시설을 갖추지 못한 3군데에 나누어 분산 소장하고 있는 실정임 참고로 기술표준원이 2013년 말에 음성 지역으로 이전할 예정인데 신설지역에는 적절한 시설을 갖춘 보존 및 전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필요함 ᄋ 내용 및 특징 - 기술표준원에 소장되어 있는 도량형기는 근대시기 산업기술 관련 유물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체계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대표적인 사례임 - 특히 20세기 초 대한제국시기에 생산된 일부의 도량형기는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희소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됨 - 도량형기의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수량이 많아 각 시대의 도량형을 상세 히 파악하고 그것들의 역사적 변화도 비교할 수 있음 -보존상태가 아주 양호해 시대별 도량형의 단위를 정확히 측정하고 아울러 도량 형의 제작기술까지도 파악할 수 있음 -종류별 수량별로 도량형기가 풍부한 까닭에 각 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현대 와 비교하는 데도 도움이 됨 - 따라서 일부의 도량형기를 낱개로 선별하기보다는 보유중인 도량형기 전체를 일괄적으로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필요함 참고로 1894년 프랑스 국제도량형국(BIPM)으로부터 교부받은 국제표준 미터 원기 1종 1점(보관함 별도)과 킬로그램원기 1종 1점(보관함 별도)이 있는데 현재 보유중인 도량형기 가운데 그 가치가 가장 높기 때문에 킬로그램원기의

151 사용이 만료되는 대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는 것이 요구됨 ᄋ 문헌자료 - 근대 도량형에 대한 학술연구로는 이규철 전봉희, 개화기 근대적 도량형의 도입과 척도 단위의 변화, < 대한건축학회논문집> 제25권 제11호, 2009, 쪽이 있음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도량형은 우리나라의 근대시기 산업기술 분야 중에서 그 유물의 종류와 수량이 가장 많은 대표적 분야임 -우리나라의 도량형의 실태와 그 변화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자료로서 그것이 지 닌 가치가 매우 큼 -근대시기 국민들의 생산, 유통, 소비 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 로 활용될 수 있음 -이 유물은 근대 과학기술사 및 산업사 등의 학술적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로 널 리 참조할 수 있음 -시대별, 유형별로 이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청소년을 포함한 국민들 의 역사 및 과학기술 교육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 -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에 활용할 수 있고 그 일부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국제적 가치도 지님 ᄋ 종합의견 - 근대 도량형기는 산업기술 중에서 보기 드물게 그 종류와 수량이 풍부한 대표적 분야로서 시대별 과학기술과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 <전 문화재위원 (전자공학)> ᄋ 현 상 -기술표준원은 총 237종 550점에 달하는 도량형 자료와 관련 고문서 등을 소장하 고 있으며, 이것들 가운데 되용파스 등 154종 331점을 이미 등록 ( , 등록문화재 제320호)한 바 있으며, 이번에 83종 219점을 등록 신청하였다. 이것 들은 조선조 후기에 사용된 소머리 가지자를 비롯하여 섬유제 줄자, 측량용 삼각 대자 등 11점의 길이 자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가지 되 3점, 조선조 후기의 목제 되, 일제강점기에 사용된 유리제 뷰렛 등 41점의 부피 자료, 질량 계 자료 6점, 기타 검증 자료 10점과 고문서 자료 15점 등 5종 83점의 도량형 및 기타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 가운데서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에 선포된 도량형 규칙을 위시하여 광무 9년 (1905)에 선포된 대한제국 법률 1호인 도량형법에 관 한 법류조문을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의 각종 도량형기기의 시험 성적 서류, 1950 년대 국제 도량형국의 업적, 미터법 협약 등 국제 관련 서류, 사이의 국제 도량형 총회 보고서 등 귀중한 자료들로 과학적 보존이 시급한 자료들이다. 우리나라 계량 측정 표준에 대한 유일한 물품으로 표준의 역사, 도량형의 시대 성, 학술적 가치가 높아 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ᄋ 내용 및 특징 -등록을 신청한 도량형 및 고문서 자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도( 度 )[길이계] : 소머리 가지자 등 11종 28점 량( 量 )[부피계] : 바기지되 등 41종 104점 형( 衡 )[질량계] : 목제 대저울 등 6종 6점 고문서 : 도량형 법률 1호 등 15종 24점 기타 : 벽걸이 시계 등 10종 57점

152 -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의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나 종이류 문서는 과학적 보존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도기, 양기, 형기 및 계기류는 국내외로 보존 가치가 높은 것들로서 도량형사에 서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다. ᄋ 종합의견 - 우리나라 계량 측정 표준에 대한 유일한 물품으로 표준의 역사, 도량형의 시대 성, 학술적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1905 년에 제정된 대한제국 법률 1호인 도량형법에 관한 법률 조문 등 종이자료 들은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근대건축사)> ᄋ 현 상 - 조사대상은 83종 219점이며, 그 규격과 형식이 다양하다.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고종 때 프랑스에서 들여온 미터 표준 원기 등은 세계적으로도 드 물어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ᄋ 내용 및 특징 - 기술표준원이 소장한 도량형표준유물은 한국의 근대화과정의 필수과제인 도량 형통일과 관련한 것들이다. 1902년 궁내부 안에 평식원 을 두고 도량형 규칙 을 공포하여 서구식 미터법을 도입한 이래, 그 무게, 길이, 부피의 기준이 되는 표준을 수집해왔다. 평식원은 이후에 제도적 명칭과 소속기관은 바뀌게 되었지 만, 표준을 소장한다는 원칙은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기술표준원에 이번 조사 의 대상이 되는 83종 219점을 소장해왔다. 이 유물들은 한 결 같이 우리나라 도량형제도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근대화 과정을 증거하고 있는 것 들이다. 그러므로 그 역사적 학문적 기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 따라서 등록문 화재로 등록하여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다만, 기록표준원이 이전 하도록 되어 있어서, 이 유물의 산일을 막고 수도권에 전시장을 마련하는 일이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ᄋ 문헌자료 - 계량제도의 발전약사, 기술표준원 계량측정제도과, 2013 (유인물) - 도량형 유물 보유 및 관리 현황, 기술표준원 (한글파일) - 도량형 관련 유물 목록, 기술표준원 (엑셀파일) ᄋ 기 타 -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대한제국시기인 1902년에 설치된 궁내부 평식 원 을 기원으로 삼으며, 그 사이에 여러 번 제도와 명칭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도량형의 표준을 갖는다는 의미와 기능은 지속되었고, 그 결과 위에 적은 바와 같이 도량형표준유물을 소장하게 되었다.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 도량형표준유물 이 위에서 적은 바와 같은 학술적, 역사적, 기술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록 가치를 충족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ᄋ 종합의견 - 도량형표준유물은 1900~1959년에 만든 것들로 국가의 표준으로 써왔으며, 우 리나라 도량형제도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근대화 과정을 유물 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사적 학문적 기술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 하여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153 안건번호 근대 김붕준 일가 유물 등 3건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김임용 소장 임시정부 법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김붕준 일가 유물 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김임용 소장 김붕준 일가 유물 의 목록화 조사 결과에 의거하여 등록조사를 통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유물 3건에 대하여 등록예고 기 간( )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재청장 (2) 대상문화재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유자 소 재 지 비 고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 앙관제 (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暫 行 中 央 官 制 ) 1점, 28면, 9.3cmx12.6cm 임시정부 법규 임시거류민단제상해대한 인거류민단조례급규칙 ( 臨 時 居 留 民 團 制 上 海 大 韓 人 居 留 民 團 條 例 及 規 制 ) 대한민국임시약헌 ( 大 韓 民 國 臨 時 約 憲 ) 1점, 23면, 103cmx146cm 2점, 14면, 9.2cmx12.7cm 년 이후 김임용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철산 주공아파트 13단지 3점, 견, cm, 2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cm, cm 3 김붕준 일가 유물 18점 1940년대 추정 년 (3) 추진경과 ᄋ 월중 ᄋ 소유자의 문화재 등록 가능여부 문의 문화재 검토 예비조사

154 -조 사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한국 근대사) - 조사결과 : 일부 자료만을 선발하여 문화재로 등록하기 보다는 유물을 일괄 정밀 조사, 정리 및 분석하여 자료적 가치에 따라 문화재로 일괄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함 ᄋ 김붕준 일가 유물조사 연구용역(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내 용 : 유물 목록화, 김붕준 일가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 검토, 유물 영인 등 ᄋ 문화재 등록조사 -조 사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한국 근대사) ᄋ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 - 회의결과 : 임시정부 법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김붕준 일가 유물 등 3건으로 문화재 등록 예고키로 함 ᄋ 문화재 등록예고 -기 간 : 예고결과 : 의견없음 (3)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5.31)> ᄋ,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근현대사)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의 공문서,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임(,, ) ᄋ 중부대학교 교수(태극기 전문가) - 상해 임시정부 시절 1941년 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 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로써 귀중한 자료로써 교육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사료됨 ᄋ 전 연세대교수(국어사/서면검토) - 한글 유리원판에 쓰인 한글은 이극로의 글씨로 추정되며, 립운동가의 한 글보급운동 내용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됨 ᄋ 문화재전문위원(보존처리) - 탈산처리와 보존환경의 개선(중성상자 및 온 습도 조건)이 가장 시급하며 테이프 얼룩의 제거 등 전체적인 보존처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155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임시의정원장을 역임한 김붕준과 그 일가의 유물은 희귀한 임시정부 관련 자료일 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생활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므로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가결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김붕준 일가 유물 등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56 김붕준 일가 유물 등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명 칭 : 김붕준 일가 유물( 金 朋 濬 一 家 遺 物 ) 등 3건 2. 소 유 자 : 김임용 ᄋ 주 소 :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철산주공아파트 13단지 3. 대상물 개요 가. 임시정부 법규 :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등 3건 4점 번호 유 물 명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 앙관제 (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暫 行 中 央 官 制 ) 임시거류민단제상해대한 인거류민단조례급규칙 ( 臨 時 居 留 民 團 制 上 海 大 韓 人 居 留 民 團 條 例 及 規 制 ) 대한민국임시약헌 ( 大 韓 民 國 臨 時 約 憲 ) 구분 (재질) 책자 (종이) 책자 (종이) 문서류 (종이) 나.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3점 제작연도 수량 및 규격 내 용 비고 년 이후 28면, 9.3cmx12.6cm 23면, 103cmx146cm 14면, 2개, 9.2cmx12.7cm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제정 공포한 임시정부 관제로, 6차례 규정 제정 중 남아있는 유 일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 대한인거류민 단 운영과 관련하여 제정한 법규 대한민국임시정부 3 차 개정 헌법집, 개 정헌법의 원본, 김 원기 사인이 있음 번 호 관련인물 유 물 명 재 질 제작연도 수량 및 규격 특징 비고 1 김붕준 태극기 1 견 2 김붕준 태극기 2 견 3 김붕준 태극기 3 견 1945년 이전 1945년 이전 1945년 이전 1점, cm 1점, cm, 1점, cm 다. 김붕준 일가 유물 : 문헌자료 및 생활유품류 18건< 세부내역 별첨> 임시정부 태극기 관 제에서 태극무늬가 90도 정도 회전되어 있고, 깃봉에 걸 수 있도록 빨간 실이 달 려 있음 김구 선생 서명 태 극기처럼 4괘의 좌우 가 바뀌어 위치했으 며, 태극무늬가 회전 되어 있다. 깃봉에 매 달 실이 달려있던 흔 적도 오른쪽에 보임 임시정부 태극기 관 제에서 태극무늬가 90도 정도 회전되어 있으며, 직물의 색이 바래 약간 녹갈색을 띄고 있음

157 4. 추진경과 ᄋ 월중 소유자의 문화재 등록 가능여부 문의 ᄋ 문화재 검토 예비조사 -조 사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한국 근대사) -조사결과 : 일부 자료만을 선발하여 문화재로 등록하기 보다는 유물을 일괄 정밀 조사, 정리 및 분석하여 자료적 가치에 따라 문화재로 일괄 등록하는 것이 바람 직함 ᄋ 김붕준 일가 유물조사 연구용역(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내 용 : 유물 목록화, 김붕준 일가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 검토, 유물 영인 등 -용역결과 : 유물 목록화 및 조사 분 류 문 서 책 자 유 물 사 진 기 타 계 건 수 ᄋ 문화재 등록조사 -조 사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한국 근대사) 5. 현 상 ᄋ 임시의정원장을 역임한 김붕준( 金 朋 濬, ) 일가는 김붕준 선생 물론 부인 노영재, 장남 김덕목, 큰 딸과 사위(김효숙과 송면수), 둘째 딸과 사위(김정숙과 고 시복) 등 7명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대표적인 독립운동 가문임 ᄋ 김덕목의 아들 김임용이 소장한 김붕준 일가 유물에 대한 일제조사를 한 결과 문서, 책자, 유물, 사진 및 기타류 5종 273점이 남아있음 ᄋ 자문회의 및 등록조사 등을 통해 문서류 9건, 책자 3건, 사진 1점, 기타 11점 등 24점이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음 6. 등록가치(요약) ᄋ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의 공문서,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임(,, ) ᄋ 상해 임시정부 시절 1941년 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 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로써 귀중한 자료로써 교육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사료됨( ) ᄋ 한글 유리원판에 쓰인 한글은 이극로의 글씨로 추정되며, 독립운동가의 한글보급 운동 내용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매우 귀중 한 자료로 판단됨( ) ᄋ 탈산처리와 보존환경의 개선(중성상자 및 온 습도 조건)이 가장 시급하며 테이프 얼룩의 제거 등 전체적인 보존처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 7. 조사자 의견 <문화재위원 (근현대사)> ᄋ 내용 및 특징 - 김붕준 일가 유물 및 유품 가운데 임시정부 관련 문서, 역대 임시의정원 개최 일람표,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관제, 임시거류민단제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조례 급규제,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보 61호, 대한민국임시약헌 등은 매우 중요한 자 료로 판단됨 -특히 유품 중 3종의 태극기 는 임시정부에서 사용되었던 추정되는데 3종의 태극

158 기 모양 등이 서로 차이가 있어 태극기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됨. 이밖에 귀화 허가 집조, 중산대학 필업 동학록, 중국 군사위원회 문서 등도 중 요한 자료로 사료됨 ᄋ 문헌자료 - 문헌자료 중 특히 大 韓 民 國 駐 粤 代 表 部 用 箋 에 쓴 임시의정원 개회, 폐회일, 개최 장소를 정리한 표와 대한민국임시약헌 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등 문헌자료는 희귀한 것으로 매우 주목할 만한 문헌자료로 판단됨. -김덕목 관련 문건 중에서는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활동할 당시의 군관학교 필업 증서나 중국 군사위원회에서 발행한 공문 등이 주목됨 ᄋ 종합의견 : 3.1운동에 참여한 후 상해( 上 海 )로 망명하여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 부 수립에 참가한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원 및 임시의정원 의원과 비서장 과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붕준과 그의 부 인 및 아들 김덕목의 소장품은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됨. 특히 歷 代 臨 時 議 定 院 開 催 一 覽 表,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潛 行 中 央 官 制 등 임시정부 관련 공문서 및 임정에서 사용된 3종의 태극기와 선별한 사진 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문화재로서 가 치가 높다고 판단됨. 따라서 상기 김붕준 일가 유물, 유품 90여점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기에 충분하다고 사료됨 <문화재위원 (근대사)> ᄋ 현 상 - 김붕준과 부인 노영재, 아들 김덕복목, 딸 김효숙과 관련된 유물로, 문건 태 극기 책자 도장, 사진 등 - 대한민국임시의정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대 부분이고, 졸업장 등 개인 관련 유물도 다수 포함되어 있음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나, 일부 낙장되거나 훼손된 부분이 있음 ᄋ 내용 및 특징 -유물은 크게 문헌류, 유품류, 사진류 등으로 나눌 수 있음 - 문헌류는 임시정부 헌법인 < 대한민국임시약헌>,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 대한민 국임시정부공보>, 임시의정원 회의 장소 및 일자를 기록한 < 임시의정원회의일 람표>, 임시정부에서 공포한 법령 <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와 < 임시거 류민단제 상해대한인거류민단조례 급 규칙>,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졸업장, 중 국군사위원회 임명장 등임. 이 중 < 대한민국임시약헌> <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 중앙관졔> < 임시거류민단제> 등은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음 - 유품류는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극기 3점을 비롯하여, 수 첩 도장 명함 시계 가방 등임. 이 중 태극기는 부인 노영재가 제작한 것으 로, 임시의정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음 - 사진류는 김붕준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을 비롯하여, 김덕목 김효숙의 중산 대학 졸업앨범, 상해 남경 장사 광주 등지의 풍경 사진 등임 ᄋ 문헌자료 - 문헌자료는 < 대한민국임시약헌>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 임시거류 민단제 상해대한인거류민단조례 급 규칙> < 임시의정원회의일람표> < 대한민국 임시정부공보> 등이 있음 - < 대한민국임시약헌> <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 임시거류민단제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조례 급 규칙> 은 임시정부에서 제정 공포한 헌법과 법령으로 중 요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며,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 < 임시의정원

159 회의일람표> 는 회의 개최 장소와 일자를 기록한 것으로, 이미 독립운동사관련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기록한 용지가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駐 粵 代 表 部 用 箋 이라고 하여 임시정부가 광동성 광주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역사적으로는 중요하지만, 등록문화 재로 등록하는 문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 김덕목의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필업증서와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받은 임명장 등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독립운동 시기에 많은 한인청년들을 중국중앙육군군 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았고, 이들은 대부분 한국광복군 등에서 활동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졸업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등록문화재 로 등록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붕준 노영재 김덕목의 중경시 거민증과 귀화허가증 등도 독립운동가들의 생 활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중국의 행정당국에서 이들의 신분과 행적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였고, 특 히 중경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중경시에 거주할 수 있는 신분증을 발행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며,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다. - 이외에 대정공론 을 비롯하여 해방 후 신진당 및 선거유세와 관련한 자료들 이 있지만, 이는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ᄋ 기 타 -김붕준 일가 유물은 김붕준을 비롯하여 부인 노영재, 아들 김덕목, 딸 김효숙 등 의 자료로 김붕준의 손자 김임용이 보관하고 있다. 자료는 시기적으로는 1910년 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있다. 이 중 독립운동 시기의 자료는 중요한 역사적 문 화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 많다. 자료 중에는 이미 대외적으로 공개된 것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ᄋ 종합의견 :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김붕준과 부인 노영재, 그의 아들 김덕목, 딸 김효숙 등 김붕준 일가의 유물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의 공문서,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귀 중한 자료로서 등록문화재로 가치가 있음 <문화재전문위원 (근현대사)> ᄋ 내용 및 특징 -김붕준 일가 유물은 문서류가 많으며, 인물별 자료는 김붕준 선생과 그 아들 김 덕목 선생의 자료가 60% 이상임 -이 가운데 임시정부 관련 문서, 역대 임시의정원 개최 일람표, 대한민국임시정 부잠행관제, 임시거류민단제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조례급규제, 대한민국임시정 부 공보 61호, 대한민국임시약헌 등은 매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됨 -특히 유물 가운데 3종의 태극기 는 임시정부 시기 제작, 사용된 태극기로 그 변 천사는 물론 역사성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됨 -이밖에 귀화 허가 집조, 중산대학 필업 동학록, 중국 군사위원회 문서 등도 임 시정부와 중국 국민당과 관계, 임시정부 요인 및 그 가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됨 ᄋ 문헌자료 -문헌자료는 김붕준 선생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할 당시의 문건들이 주류이고, 대표적인 것이 大 韓 民 國 駐 粤 代 表 部 用 箋 에 쓴 임시의정원 개회, 폐회일, 개최장 소를 정리한 표가 중요하다. 이는 김붕준 선생이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선출되

160 기 전까지 진행된 30회에 걸친 임시의정원 회의 내용을 수록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임시약헌 과 대한민국임시정부잠행중앙관제 역시 임시정부 활 동 당시 원본자료로 중요한 가치를 지님 -해방 후 자료로는 신진당헌과 선거유세 자료, 대동정론 등이 있음 신진당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김원용, 김호, 한시대 등이 김붕준 선생과 유동 열 등 임정 요인 일부와 손을 잡고 1946년 9월에 창당하였으며 좌우합작을 지지 하는 중간파 정당이었음 대동정론 은 대동신문사에서 편찬한 책으로서 해방 후 여러 인물들의 정론을 모아놓은 책임 -김덕목 선생 관련 문건 중에서는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활동할 당시의 군관학교 필업증서나 중국 군사위원회에서 발행한 공문 등이 주목됨 김덕목 선생은 중국 국민당군으로 활동했다는 여러 증거들이 군사위원회나 중 국육군군관학교 필업증서를 통해 나타남 중국 군사위원회 명의의 문서들을 통해 한국광복군이 중국 군사위원회의 지휘 를 받았던 내용들을 알 수 있음 중산대학 졸업앨범을 통해 김덕목, 김효숙(김붕준의 딸)의 모습은 물론 그 당시 중국 대학에 수학한 한인 학생의 규모 등 실상을 어느 정도 알려줌 - 그 밖에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김붕준과 노영재, 김 덕목의 중경시 거민증과 귀화허가증 등 중국 정부 문서, 김붕준 선생 가계가 그 려진 간단한 족보(가승)도 있음 ᄋ 기 타(소장 경위 등, 없을 경우 생략) - 김붕준 일가 유물은 소장자 김임용의 조부인 김붕준과 조모인 노영재, 그리고 부친인 김덕목의 유품으로, 임시정부시기를 거쳐 광복 후 임시정부 환국 시 지 참해 국내로 들여와 지금까지 장손자인 소장자가 보관해오던 자료임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붕준(대통령장)을 비롯하여, 그 부인 노영 재(애국장)와 아들 김덕목(애국장) 등 김붕준 일가의 일괄 유물로,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공문서, 그리고 활동 및 생활 유물로 등록문화재로 가치가 있음 - 특히 임시정부시기 제작, 사용한 태극기 3종은, 제작 유래가 명확하고 임시정부 태극기로 역사성을 지닌 희귀, 중요 자료로 판단함 ᄋ 종합의견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붕준(대통령장)을 비롯하여, 그 부인 노영재(애국장)와 아들 김덕목(애국장) 등 김붕준 일가의 일괄 유물로,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 공문서, 그리고 활동 및 생활 유물 등 등록문화재로 가 치가 있음 <중부대학교 교수(태극기 전문가)> 1. 태극기 조사 내용 Ⅰ) 태극기 1 가. 규 격 가로 약 101cm 세로 74.0cm 나. 재 질 명주 다. 제작기법 각 문양 오려 재봉틀 박음질 라. 제작연대 1940년대 전 후 추정 마. 상태 및 구도 설명 괘중 이괘( ) 부분에 좀이 먹거나 바탕 끝면의 올이 풀려져 보존처리가 필요 함

161 태극문양의 직경은 약 33.5cm이고 우측에 홍색 좌측에 청색을 배치하였고, 태 극문양대로 오려서 바탕면에 두 줄로 재봉틀 박음질을 한 다음 바탕면 뒤에서 태극문양의 원 크기만큼 둥글게 오리므로 써 게양했을 때 앞뒤에서 태극문양을 볼 수 있도록 하였음 괘는 우측 상단에 건괘( ), 우측 하단에 이괘( ), 좌측 상단에 감괘( ), 좌 측 하단에 곤괘( )를 배치하였고, 각 괘는 모양대로 오려서 바탕면 앞면과 뒷 면에 같은 모양을 각 각 재봉틀 박음질하였음 우측 깃대면은 별도의 명주천을 쌈싸듯 박음질하여 그 속으로 1m 95cm 길이 의 홍색 끈을 끼웠는데 바탕면 밖으로 약 60cm 정도 나와 있음. 바탕면 좌측 가장 자리를 접어서 재봉틀 박음질을 하여 나부낄 때 올이 풀려나지 않도록 하 였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미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제388호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비슷함 < 사진 1. 태극기1> <사진 2. 태극기1 실측도> 2) 태극기 2 가. 규 격 가로 약 61.5cm 세로 45.0cm

162 나. 재 질 명주 다. 제작기법 각 문양 오려 재봉틀 박음질 라. 제작연대 1940년대 전 후 추정 마. 상태 및 구도 설명 태극문양 중 청색부문에 좀 먹은 구멍이 2~3개 정도 육안으로 보이는 등 보 존처리가 필요함 태극문양의 직경은 약 17.5cm이고 우측에 홍색 좌측에 청색을 배치하였고, 태 극문양대로 오려서 바탕면에 두 줄로 재봉틀 박음질을 한 다음 바탕면 뒤에서 태극문양의 원 크기만큼 둥글게 오리므로써 게양했을 때 앞뒤에서 태극문양을 볼 수 있도록 하였음 <사진 3. 태극기2> 괘는 우측 상단에 건괘( ), 우측 하단에 감괘( ), 좌측 상단에 이괘( ), 좌 측 하단에 곤괘( )를 배치하였고, 각 괘는 모양대로 오려서 바탕면 앞면에만 재봉틀 박음질하였음 < 사진 4 5> <사진 4. 괘 박음질 앞면> <사진 5. 괘 박음질 뒷면>

163 <사진 6- 태극기 2 실측도> 바탕면 상하와 좌측 가장 자리는 접어서 재봉틀 박음질하여 단단하게 하였으 나 우측은 재봉틀 박음질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게양으로 인하여 낡아서 잘 리어 나간 것 같음 3) 태극기 3 가. 규 격 가로 약 103.0cm 세로 77.0cm 나. 재 질 명주 다. 제작기법 각 문양 오려 재봉틀 박음질 라. 제작연대 1940년대 전 후 추정 마. 상태 및 구도 설명 <사진 7. 태극기 3> 바탕면 전체가 검정색으로 오염이 심하고 곤( ) 부분은 좀 먹은 구멍 5개 정

164 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등 보존 처리가 시급함 태극문양의 직경은 약 30.5cm이고 우측에 홍색 좌측에 청색을 배치하였음. 바탕면에 태극문양 직경만큼 둥글게 오린 다음 그 안에 미리 손질한 태극문양 을 메우듯이 두 줄로 재봉틀 박음질을 하였음 괘는 우측 상단에 건괘( ), 우측 하단에 감괘( ), 좌측 상단에 이괘( ), 좌 측 하단에 곤괘( )를 배치하였고, 바탕면을 각 괘는 모양대로 오린 다음 그 안 에 각 괘를 메움 박음질을 하였음<사진8 9> <사진 8. 태극문양을 오려서 메움 박음질> <사진 9. 괘를 오려서 메움 박음 질> 우측 깃대 쪽은 약 2.0cm 뒤로 접어서 박음질 한 다음 상 하 끝단에 25.0cm 정도의 명주 끈을 단단히 박음질하였음 2. 조사자 의견 조사대상 태극기 3점은 한 사람의 솜씨로 제작한 듯 하고 시대적으로 보아 1940년대 전후로 추측됨. 재봉틀 박음질 제작기법이나 제작구도를 볼 때 상해 임시정부 시절 1941년 김구 서명문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8호)와 비슷하여 일 제강점기 항일운동사의 국가 표상적인 맥을 함께 할 뿐 아니라 국기 변천사로 써 귀중한 자료로써 교육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사료됨 < 전 연세대학교 교수(국어사)> ᄋ 한글 유리원판 -한글 유리원판에 쓰인 한글은 이극로의 글씨로 추정되며, 필기체 한글을 사용하 려던 모습도 보임 -독립운동가의 한글보급운동 내용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자료가 많이 남 아 있지 않아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됨 < 문화재전문위원(보존처리)> ᄋ 본 조사 대상인 김붕준 가문 유물은 직물, 종이 재질이 주를 이루며, 그 밖에 가 죽, 사진, 금속, 플라스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물의 대부분은 건조화 및 산성 화가 매우 진행된 상태였으며 주름 및 꺾임, 바스라짐 및 박락 등이 주요 열화 현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탈산처리와 보존환경의 개선(중성상자 및 온 습도 조건)이 가장 시급하며 테이프 얼룩의 제거 등 전체적인 보존처리가 필요할 것으 로 사료된다. 가. 보존처리 (탈산처리 및 테이프제거)

165 탈산처리(deacidification)는 화학적으로 종이에 생기는 산( 酸 ) 또는 산을 발생시키 는 물질을 알칼리성 물질로 중화시킴으로써 기록물의 보존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말 한다. 또한 탈산처리 이후에도 잉여의 알칼리성 물질이 종이에 잔류하여 내부에서 추가로 발생하거나 외부의 대기 오염물질 등으로부터 침입하는 산을 중화시키는 역 할을 하게 된다. 양지는 나무로 만든 펄프가 주 원료로 펄프를 얻기 위해서는 황화 나트륨이나 수산화나트륨으로 처리하여 섬유질을 용해시켜 제거하기 때문에 산성화 가 보다 빨리 진행된다. 따라서 탈산처리가 필요한 종이의 산성화(pH 4~7)는 우리 고유의 한지보다는 양지에서 주로 발생한다. 처리 과정에서 침적 및 수세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수용성 잉크를 사용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탈산처리를 마친 유물은 고급 중성지로 제작된 보존상자에 넣어 보관함으로써 산성성분 및 오염의 차단뿐만 아니라 온 습도, 자외선, 유해가스 등의 외부 환경으로부터 격리하는 것 이 필수적이다. 테이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접착 성분이 열화 되면서 지류 유물에 스며들어 노 란색 얼룩을 남기게 되며, 테이프가 수축하면서 유물에 주름을 발생시킨다. 이를 무 리하게 제거하는 것은 유물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으며, 습포제법 등 의 방법으로 톨루엔, 아세톤, 에틸아세테이트 등 각종 용매를 각 상황에 맞게 선택 하여 전문가가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 보존환경 유물의 보존환경은 온도 및 습도가 매우 중요하다. 온도를 조절하게 되면 대기 중의 상대습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물이 건조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유물의 부피 변화가 일어나고 이는 유물의 박락, 갈라짐, 꺾임 등 직접적인 물리적 손상을 입히게 된다. 반대로 습한 환경에 놓이게 되면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할 수 있고 해충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특히 사진 및 필름, 금속과 같은 재질의 유 물의 권장 온 습도는 우리가 평소 생활하는 환경범위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 를 요한다. 본 유물 중 가죽가방과 같이 복합재질(가죽, 금속)로 구성되어 있을 경 우 우선 유물의 상태를 안정시키는 보존처리를 거친 후에 적정 온 습도에 놓아야 한다. 권장 온도 권장 습도 < 각 재질별 권장 온 습도> 직물 종이 사진 및 필름 가죽 금속 20±2 20±2 10 이하 20±2 20±2 55~65% 55~65% 30~45% 50~65% 45% 이하 다. 보관 및 관리 중성상자를 이용하여 유물을 보관하는 것은 유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종이상자와 플라스틱상자도 빛이나 먼지로부터 유물을 보호 할 수 있지만, 공기 중에 존재하는 산성 유해가스와 유물과의 반응에 의하여 발생 되는 열화를 막을 수 없고 습기가 내부에 축적되면 곰팡이 및 해충과 같은 피해를 유발한다. 따라서 무산성(Acid-free), 무리그닌(Lignin-free), 무염소성분(Elemental chlorine-free), 무형광증백제(O.B.A. free) 등 화학적으로 안정한 재질인 보존용 중성

166 상자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점의 소형 유물을 앨범 형식으로 보관할 경우, 낱장의 중간마다 비활성적인 재료인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이용하여 보관할 수 있다. 또한 가죽가방 및 도장류 등은 산소흡수제와 함께 이축연신비닐필름에 밀폐하여 보관함으로써 수분 및 화학 적 반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167 < 붙임> 김붕준 일가 유물 세부목록 번 호 관련인물 유 물 명 구 분 제 작 연 도 수 량 및 규 격 특 징 비 고 1 김붕준 2 김붕준 3 김붕준 4 김붕준 5 김붕준 6 김붕준 역대 임시의정원 개최 일람표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潛 行 中 央 官 制 臨 時 居 留 民 團 制 上 海 大 韓 人 居 留 民 團 條 例 及 規 制 金 起 元 韓 國 國 民 黨 理 事 大 韓 民 國 臨 時 約 憲 金 起 元 大 韓 民 國 臨 時 政 府 公 報 61 號 문서류 1938년 이전(추정) 책자 책자 김붕준 김붕준 도장 1 유물 미상 3점 8 김붕준 김붕준 도장 2 유물 미상 2점 9 김붕준 10 김덕목 歸 化 許 可 執 照 ( 金 起 元 ) 國 立 第 11 屆 錄 中 山 大 學 畢 業 同 學 1면, 39.1cmx27.3cm 28면, 9.3cmx12.6cm 23면, 103cmx146cm 30회(1937년 10월) 까지의 역대 임시의 정원 의회가 열린 날짜와 장소가 적혀 있음 기타 2면 2면, 4.7cmx10.2cm 앞 뒷면 영문(필기 체)메모된 명함 표지에 김기원 이름 문서류 1927년 14면, 2개, 친필 서명이 있음, 이후 추정 9.2cmx12.7cm 친필이 있는 것과 없 는 것이 각각 1개임 문서류 년 11월 27일 대한민국임시정 부비서국 발행된 대한민국임 시정부 공보 61호 타원형 도장, 사각형 도장, 사각인주로 구 성되어 있으며, 금속 케이스 안에 들어 있 음 타원형 불투명 도장, 원형인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죽이 덮힌 금속 케이스 안에 들 어 있음 문서류 1921년 35.5cmx43.3cm 一 科 ~이써져있는종이 뒷면에붉은색으로 第 가 붙어있음. 책자 1937년 1권, 26cmx18cmx3. 3cm 김덕목이 중산대학 법학원 경제계를 졸업 할 당시 제작한 졸업 앨범으로, 김붕준의 큰 딸인 김효숙도 찾아볼 수 있음 임시 정부 법규 임시 정부 법규 임시 정부 법규 11 김덕목 軍 事 委 員 會 邮 航 檢 查 处 訓 令 人 字 第 六 九 號 문서류 중화민국 25(1936년) 2면 39cmx26.8cm 대처장 이유백의 도 장이 찍혀 있음 12 김덕목 中 央 各 軍 事 學 校 畢 業 生 學 籍 登 記 證 문서류 1939년 (추정) 16면 7cmx10cm 中 央 各 軍 事 學 校 畢 業 生 學 籍 登 記 證 13 김덕목 金 德 穆 中 國 國 民 黨 黨 員 證 書 문서류 중화민국 28(1939년) 4면 6.6cmx9.7cm 김덕목의 중국국민 당 당원증. 당원증에 는 당원비 지출 내역 이 나와 있음 14 김덕목 金 德 穆 中 央 陸 軍 軍 官 學 校 畢 業 證 書 문서류 1940년 1면 31.5cmx33.4cm

168 15 김덕목 軍 事 委 員 會 軍 令 部 諜 報 參 謀 訓 練 班 畢 業 證 書 문서류 중화민국29 (1940년) 1면 40.9cmx38cm 16 김덕목 17 김덕목 軍 事 委 員 會 辦 公 廳 訓 令 金 德 穆 重 慶 市 外 籍 居 民 身 份 證 孝 字 弟 號 문서류 문서류 중화민국 31(1942년) 1942년 1면 18.8cmx25.3cm 4면 8cmx13cm 김덕목 분증 외적거민신 18 김덕목 金 德 穆 重 慶 市 居 民 身 份 證 字 第 號 문서류 1942년 4면 7.5cmx10.8cm 중경시 신분증 발급 김덕무 19 김덕목 검은색 수첩1 ( 北 平 ) 책자 미상 156면 10cmx16cm 20 기타 사진 유리원판 기타 미상 5장 한글원판 포함 21 기타 한국국민당 창립 사진 기타 점 백범 김구선생이 조 직한 한국국민당 창 립일 기념사진으로 창립일을 알수 있는 유일한 자료임

169 안건번호 근대 윤웅렬 일가 유물 등 2건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윤웅렬 일가 유물 의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연세대학교 박물관 소장 윤웅렬 일가 유물 에 대한 등록조사, 검토회의를 거쳐 문화재 예고기간( )을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연세대학교 박물관장 (2) 대상문화재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1 대한국독립협회지장 (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 2 윤웅렬 일가 유물 69점 1점, 높이 4.0cm, 도장 지름 3.6cm. 위 지름 3.1cm 1898년 19세기말 20세기초 연세대학교 박물관 서울특별시 서대 문구 연세로 50 (3) 추진경과 ᄋ ~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서울여대 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송미경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 통문화대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자문결과 : 윤웅렬 일가 의복 2점 포함(대한제국기 육군 중장 예복, 대한 제국기 늑골형 육군 예복) ᄋ 13. 4월 윤웅렬 일가 유물 일괄을 문화재 등록 요청(연세대학교 박물관)

170 ᄋ 문화재 등록조사 -조 사 자 : 문화재위원(근현대사), 문화재위원(근현대사/서 면검토),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 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 검토 대상 선정 ᄋ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 대한민국독립협회지장, 윤웅렬 일가 유물 로 분리하여 등록 예고 키로 함 (4) 문화재 등록예고 ᄋ 기 간 : (30일간) ᄋ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대 상 : 백선엽 군복,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 등 4건 (5) 심의사항 : 문화재 등록 심의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근현대사) -유품과 자료들이 특정한 인물이 소유했던 자료이지만 대한제국기 자료가 별반 남아있지 않은 희귀성과 역사성에 주목할 때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특히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은 윤씨 문중 유품 과 별도로 구분하여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됨 ᄋ 문화재위원(근현대사/서면검토) -독립협회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역할로 보아 독립협회의 인장은 길이 보존할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됨 ᄋ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보관상태도 양호하며, 복식과 더불어 사진 기록 등도 함께 전해지고 있어

171 복식사와 생활사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임 ᄋ 문화재전문위원,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조선 및 대한제국 시기 복식사 분야에서 제도사 파악, 직물사 연구,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됨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윤웅렬 일가의 유물은 조선말기 및 대한제국 시기 자료로 희귀하며, 복식사 및 직물사 등의 변천을 알 수 있어 역사적,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음. 다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품의 문화재 등록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이 있으 므로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조건부 가결 ᄋ 문화재 등록 -대한국독립협회지장 ᄋ 보 류 -윤웅렬 일가 유물 - 사유 : 자료적 의복사적 가치는 인정되나 착용자의 친일 행위로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지 못한다는 추후 심도있는 검토 후 등록 여부를 결정하기 로 함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윤웅렬 일가 유물 등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72 윤웅렬 일가 유물 등 문화재 등록조사 보고서 1. 명 칭 : 윤웅렬 일가 유물( 尹 雄 烈 一 家 遺 物 ) 등 2건 2. 소 유 자 : 연세대학교 박물관 ᄋ 주 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대상물 개요 번호 유물명 수량 및 규격 제작년대 소장자 (보관처) 소 재 지 비 고 1 대한국독립협회지장 (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 2 윤웅렬 일가 유물 69점 1점, 높이 4.0cm, 도장 지름 3.6cm. 위 지름 3.1cm 1898년 19세기말 20세기초 연세대학교 박물관 서울특별시 서대 문구 연세로 추진경과 ᄋ ~10. 5 근현대문화유산 의생활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서울여대산학협력단, 책임연구원 송미경 교수) -의생활분야 유물 225건 목록화 및 등록 기준(안) 제시 ᄋ 13. 1월중 의생활분야 등록검토 대상 선정 자문(서면검토) - 자문위원 : 문화재위원, 가천대학교 교수, 한국전통문화대 학교 교수, 문화재전문위원 -자문결과 : 윤웅렬 일가 의복 2점 포함(대한제국기 육군 중장 예복, 대한제국기 늑 골형 육군 예복) ᄋ 13. 4월 윤웅렬 일가 유물 일괄을 문화재 등록 요청(연세대학교 박물관) ᄋ 문화재 등록조사 - 조 사 자 : 문화재위원(근현대사), 문화재위원(근현대사/서면검토),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문화재전문위원(복식사), 한경대학 교 교수(복식사) ᄋ 의생활분야 등록 검토회의 -참 석 자 :, 문화재위원,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회의결과 : 문화재 등록 검토 대상 선정 ᄋ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검토 - 대한민국독립협회지장, 윤웅렬 일가 유물 로 분리하여 등록 예고 키로 함 ᄋ 문화재 등록예고 -기 간 : (30일간) -예고결과 내 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물품에 대한 문화재 등록 반대의견 제출 제출자 : 민주당 국회의원 김광진 등 12명

173 대 상 : 백선엽 군복, 민철훈 대례복 일습, 모닝코트, 윤웅렬 일가 유물 등 4건 5. 현 상 ᄋ 윤웅렬( 尹 雄 烈, )은 대한제국 법무대신과 군부대신을 역임하였으며, 그 아들인 윤치호( 尹 致 昊, )는 개화기 최초의 일본 유학생의 한 사람이자, 초대 미국공사의 통역관 외무협판을 역임했으며 1896년 독립협회 회장으로 활동 하였음 ᄋ 본 유물은 윤웅렬과 그 부인인 이씨부인, 아들 윤치호 등이 소장한 유물로 교지, 마패, 독립협회 인장과 복식류 등 총 70점임 ᄋ 윤치호의 아들 윤영선이 1967년 6월 25일에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일괄 기증하여 보관중임 6. 등록가치(요약) ᄋ 유품과 자료들이 특정한 인물이 소유했던 자료이지만 대한제국기 자료가 별반 남 아있지 않은 희귀성과 역사성에 주목할 때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고 판단됨. 특히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은 윤씨 문중 유품과 별도로 구분하여 문화 재로 등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됨( ) ᄋ 독립협회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역할로 보아 독립협회의 인장은 길이 보존할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됨 ( ) ᄋ 보관상태도 양호하며, 복식과 더불어 사진 기록 등도 함께 전해지고 있어 복식사와 생활사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임( ) ᄋ 조선 및 대한제국 시기 복식사 분야에서 제도사 파악, 직물사 연구,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됨(, ) 7. 조사자 의견 <문화재위원 (근현대사)> ᄋ 현상 및 내용 -본 유물 및 유품은 대한제국기 법무대신과 군부대신을 역임하는 등 구한말 명문 가를 이루었던 윤웅렬( 尹 雄 烈 )과 개화기 최초의 일본 유학생의 한 사람이자, 초 대 미국공사의 통역관 외무협판을 역임했으며 특히 1896년 독립협회 창립 후 동 협회의 회장으로 활동한 윤치호( 尹 致 昊 ) 양인과 그 가족들이 소장했던 유품과 유물들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70여점에 달하는 유물 유품 중 50여점 은 구한말 위의 양인과 그 가족들이 실제 착용했던 전통관복과 평복 그리고 신 식군 관복과 여러모양의 모자 등으로 분류된다. 이 복식류 유품들은 당시 윤웅 렬 부자가 사용했던 실물들로 추정되며 그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따라서 이 분 야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는 물론 구한말 대한제국기 의복사를 한 눈에 볼 수 있 어 박물자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다. 현재 대한제국기의 유물 유품자료가 많지 않다는 점에 유념할 때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사료된다. -교지( 敎 旨 ) 6점을 비롯한 여러 문서류 또한 이 시기 자료로 흔치 않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밖에도 조선시대 실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모양의 마패류도 눈에 띤다. 이밖에 특히 주목되는 것은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 둥근모양의 인장( 印 章 )이다. 둥근모 양 인장 가운데는 대한국 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이 둥굴게 양각되어 있으며 그

174 둘레에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이라는 글씨가 세겨있다. 이 글씨 내용과 태극문양 으로 보아 이 인장은 1896년 7월 독립협회가 설립된 후 독립협회의 공문서 등에 사용했던 인장으로 추정된다. 예컨대 독립협회 이름으로 황실에 보내는 공문이 나 외국공사관 또는 여러 민간단체 등에 보내는 문서와 공문 등에 사용했던 독 립협회 기관을 대표하는 인장( 印 章 )으로 현재 유일무이한 1점으로 보인다. -그동안 독립협회에 관한 문헌사적 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졌고 독립협회가 발행한 <독립협회회보>, < 독립신문> 등 문헌적 자료 등은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활동한 전 기간( ) 실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는 이 인장은 그동안 알려진 바 없다. 따라서 이 유품은 국가 등록문화재로서의 가 치가 매우 높다할 것이다. 또한 독립협회 인장으로 추정되는 이 유품은 윤웅렬, 윤치호 문중 소유물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 곧 인 장의 역사적 가치와 공공성 및 희귀성 등을 고려할 때 이 인장은 독립된 유물로 단독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다. -이 인장이 윤웅렬, 윤치호 문중 유품에서 나온 것은 윤치호가 독립협회 결성 초 기부터 관계했을 뿐 아니라 본 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 요컨대 이상의 유물과 유품은 개인 문중에서 보관해왔던 자료이기는 하나 유물 과 유품의 역사적 문화사적 가치를 고려할 때 국가 문화재로 등재하여 영구히 보관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된다. ᄋ 종합의견 : 위 유품 및 유물 자료는 대한제국 시기( ) 군부대신을 역임 했던 윤웅렬( 尹 雄 烈 )과 그의 子 로 독립협회 회장 등 개화기 대표적 개회인물로 다양한 활동을 했던 윤치호( 尹 致 昊 ) 양인의 소장품이다. 이중 윤웅렬이 직접 받았 던 교지( 敎 旨 ) 6점을 비롯해 당시 착용했던 전통관복과 서구식 문무관복 등 50여 점 그리고 특히 1896년 대한독립협회가 결성된 후 동 협회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인장으로 추정되는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1점은 매우 귀중한 유물로서 사료됨. 이 상의 유품과 자료들이 특정한 인물이 소유했던 자료라고 하지만 현재 대한제국기 자료가 별반 남아있지 않은 희귀성과 역사성에 주목할 때 문화재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특히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은 윤씨 문중 유품과 별도 로 구분하여 독립된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됨 <문화재위원 (근현대사)/서면검토> ᄋ 대한국독립협회지장 - 독립협회에서 사용한 인장으로 생각된다. 인장에는 大 韓 國 獨 立 協 會 之 章 이란 글씨가 둥근모양으로 양각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둥근 태극모양이 새겨져 있다. 獨 立 協 會 앞에 大 韓 國 을 붙였는데, 大 韓 國 은 大 韓 帝 國 을 일컫는 것임. 대한제 국을 흔히 한국 또는 대한국 으로 약칭하기도 하였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 월 12일에 성립되었다. 이로 보면, 인장의 제작시기는 대한제국 성립 이후로 보 아야 할 것 같다. -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설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자주독립, 자주 국권, 자유민권 등의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회정치단체이다. 역사적으로는 우리나 라 최초의 근대적 시민운동 단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립협회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나 역할로 보아 독립협회의 인장은 길이 보존할 역사적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문화재로 등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윤웅렬 일가 의 의복과는 별도로 구분하여 등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 생각된다

175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개항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 시간 동안 각종 의제개혁에 맞추어 제작하고 착용한 전통식 및 서구식 문무관복을 비롯하여 같은 시기의 여성 예복 등, 다양하게 구 성된 이 유물들은 지난 지금까지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당시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복식제도의 변화사는 물론 직물,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므로 근대의생활분야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이 바람직하 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전문위원 (복식사)> ᄋ 개항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개화 가문인 윤웅렬 가문에서 보관해 오 던 복식이다. 윤웅렬 가문의 전통 복식과 서구식 관복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귀 중한 자료이다. 보관상태도 양호하며, 복식과 더불어 사진 기록 등도 함께 전해지 고 있어 복식사와 생활사 분야를 연구할 수 있다. 근현대 복식에 있어서 문화재 로 등록하여 보존하여야 한다. < 한경대학교 교수(복식사)> ᄋ 명 칭 : 연세대 박물관 소장 복식 유물 ᄋ 소 유 자 : 연세대학교 박물관 ᄋ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 연세대학교 ᄋ 수 량 : 70점 1건 ᄋ 재 질 : 견, 면, 모, 가죽, 옥 등 복식 재료 ᄋ 조성연대 :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ᄋ 현 상 - 본 유물은 구한말의 신흥무인가문이었던 윤웅렬( )과 그의 부인 전주 이씨, 첫째 아들인 윤치호( )가 착용하였던 전세유물이다. - 윤웅렬은 1856년 무과에 급제한 뒤 1878년 남양( 南 陽 ) 부사를 역임하였고, 1880 년에는 2차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인 군관전중군( 軍 官 前 中 軍 )으로 일본에 다녀 왔다. 1881년에는 함경남도병마절도사, 같은 해 별기군의 좌부영관( 左 部 領 官 )을 역임하였다. 개화파들과 가깝게 지내던 중 갑신정변 당시 형조판서를 맡에 되었 으나 정변의 실패로 전라남도 능주( 綾 州 )로 유배되었다.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정계에 복귀하여 1894년 11월 경무사로 임명되었다. 1895년 춘생문사건의 실패 로 상해로 망명하였다가 대한제국 성립이후 귀국하여 내부협판, 중추원 1등의관, 법부협판, 의정부찬정, 법부대신 겸임 고등재판소 재판장, 궁내부 특진관, 원수부 군무국 총장, 군부대신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10년 국권상실 이후 일본으로 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 윤치호는 1881년 조사시찰단 조사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같 은 해 5월부터 1883년 4월까지 약 2년동안 일본에 체류하였다. 일본에서 동인사 ( 同 人 社 )에 입학하여 게이오의숙( 慶 應 義 塾 )에 입학한 유길준과 함께 최초의 동 경 유학생이 되었고, 일본체류 시 영어를 배웠다. 1883년 5월 초대 주한 미국공 사 푸트(L.G.Foote)의 부임을 계기로 귀국하여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로 임명되어 푸트 공사와 주한 외국사절의 통역, 국서와 외교문서의 번역을 하였다. 갑신정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상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선교사 알렌이 설립한 중서서원( 中 西 書 院 )에 입학하여 3년 6개월간 수학하고, 1889년부터 감리 교회의 후원으로 미국 밴너빌트(Vanderbilt)대학에 입학, 졸업후 에모리(Emory) 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1894년에 미국에서 나와 상해에서 1년 교편생활을

176 하고 1895년 조선으로 귀국하여 6월에 학부협판으로 임명되었다. 1896년 4월 러 시아 황제 니꼴라이 2세의 황제대관식에 전권공사 민영환의 수행원으로 참석하 였다. 1898년 2월에 독립협회 부회장으로, 1898년 8월에는 독립협회 회장으로 선 출되었다. 1898년 10월에 중추원부의장에 임명되었다. 1899년 1월 덕원감리( 德 源 監 理 ) 겸 덕원부윤( 德 源 府 尹 )에 임명되었다. 1903년 7월에는 천안군수로 전보되 었고, 1904년 2월 무안감리( 務 安 監 理 )로 발령받았다. 러일전쟁 발발 이후 1904년 3월 외부협판(칙임관)에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퇴 하였고, 1908년 Y WCA 이사회 부회장에 피선되어 종교와 교육 활동에 전념하 였다. - 윤웅렬가에서 기증한 전체 70점의 유물 중 문서류, 마패, 대한국독립협회 도장 등을 제외한 복식류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56점이다. 복식류로는 구한말 양복 도입을 전후하여 문무관 복식이 전통식과 서구식으로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고, 여자 복식이 함께 기증되었다. 유물의 간단한 내용과 전체 사진은 첨부한 < 부 록표> 와 같다. ᄋ 내용 및 특징 -유물의 내용 및 특성을 근대복식사에 비추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통식 문관복 본 유물에 포함되어 있는 문관복 중 전통식 문관복에 해당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흑단령(대례복) 본 유물에는 전통식 대례복인 흑단령 두 점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한 점은 쌍호 흉배가 달려 있고 소매가 넓은데 비해 다른 한 점은 쌍학 흉배가 달려 있 고 소매가 좁다. 전통식 대례복의 치수는 < 표1> 과 같다. 쌍호 흉배가 달린 대 례복은 무관용, 쌍학 흉배가 달린 대례복은 문관용이므로 윤웅렬과 윤치호 각각 의 대례복으로 추정되는데 기증 당시 모두 윤치호의 대례복으로 정리되어 있다. < 표1> 전통식 대례복의 치수 유물번호 흉배 길이 품 소매너비 진동 화장 쌍호 쌍학 소매가 상당히 좁다는 측면에서 쌍학흉배가 달린 흑단령을 소 례복으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흉배가 부착되어 있고 소매가 두리 소매로 구성되어 있는 점에서 착수형태가 다르므로 대례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 그림1> 과 같이 흉배의 탈부착이 용이하도록 가장자리만 징궈둔 것으로 보아 흉 배를 떼고 소례복으로도 착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2) 흑단령(소례복) 본 유물에서 전통식 소례복은 모두 3점이 포함되어 있다. < 표<그림1> >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청색 계열의 소례복, 녹색 계열의 소례복, 흉배부착 모습 소색 계열의 소례복으로 모두 몸판의 형태는 주의형 단령이다. < 표2> 전통식 소례복의 치수

177 유물번호 색상 길이 품 소매너비 진동 화장 유록색 북청색 소색 유물들 중 특기할 만한 것으로 소색으로 제작된 88-21의 깃부분이다. < 그림 2>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홑으로 단령을 만든 다음 깃 안 쪽에 목판깃만 만들어 부착함으로써 겉에서 볼 때는 직령을 착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도록 간략하게 구성되어 있다. 3) 옅은 분홍색 단령 겉감은 옅은 분홍색 모시이고 안감은 청색인 단령유물 한 점이 있다.(유물번호88-7) 4) 전통식 통상복 1 주의(유물번호 88-18) 유물 중 자색 홑주의가 한 점 포함되어 있는데 구한말 규정 에 비추어 볼 때 전통식 통상복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름이 없이 매듭단추로 여밀 수 있도록 개량되어 있다. <그림2>소색 소례복 단령 2 전복 본 유물에는 자주색 홑 전복 2점, 소색 홑 전복 1점이 포함되어 있다. 1884년 갑신의제개혁 이후 사복( 私 服 )을 착수의로 한정하고 벼슬있는 사람은 여기에 답 호를 더하여 착용도록 하였고, 1895년 을미의제개혁에서는 이를 통상복으로 규 정한 것에 미루어 통상복 일습 구성품으로 파악된다. 5) 전통식 편복-도포 본 유물에는 도포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6) 전통식 관복의 관모 1 금관 금관은 조선시대에 조복( 朝 服 )에 착용하는 관모로 현재 6량관이 기증되어 있 다. 조선시대에 1품이 5량관을 착용하였으므로 이 금관은 대한제국시기에 황제 국으로 격상된 이후의 금관으로 파악된다. 2 흑사모 조선시대에 단령과 함께 착용한 관모인 흑사모 3점이 포함되어 있다. 3 백사모 백사모 2점 중 유물 88-26의 내부에 Aug 이 라고 적혀 있어서 1896년 8월 16일을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3>88-26 백사모 7) 전통식 관복의 대 안에 적혀 있는 날짜 본 유물에는 전통식 관복의 대 중 서대(88-38), 삽금대(88-33), 학정대(88-34), 포각대(88-32), 흑각대(98-41)의 5점이 기증되어 있다. 8) 전통식 관복의 화 본 유물에는 전통식 관복에 착용하였던 흑화 2점, 백화 1점이 포함되어 있다

178 2. 서구식 문관복 1) 대례복 일습 본 유물에는 윤치호가 착용한 서구식 대례복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서구식 대례복은 1900년 4월 17일 칙령 제 14호 문관복장규칙에 의해 규정되고 칙령 제15호 문관대례복제식에 따라 제작된 연미복형 양복이다. 일습에는 대례모, 대 례의, 조끼, 바지, 검, 검대로 구성되는데 기증된 유물에는 검과 검대는 없고, 함 께 착용하였던 흰색 보우타이 2점이 있다. 현재 국내에 보고된 문관대례복은 모두 7점이다. 그 중 착용자가 확실한 유물 은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칙임관 1등 민철훈 대례복, 부산박물관 소장 칙임관 2 등 박기종 대례복, 광주민속박물관 소장 주임관 김봉선 대례복과 함께 연세대 박물관 소장의 윤치호 대례복이다. 이들 대례복 중에서도 특히 윤치호 대례복은 < 그림4>와 같이 실재로 착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서구식 대례복은 1904년 4월 2일 관보의 正 誤 를 통해 앞중심선에 있던 반근화를 모두 생략하고 좌우 가슴부분에 전근화만 자수하도록 수정되었다. 본 유물은 수정된 규정에 따라 제작된 유물로 앞서 살펴본 윤치호의 관직변화에 따르면 1904년 3월 외부협판(칙임관)에 임명되고 난 다음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 다. 위에서 서술한 7점의 보고된 대례복 유물 중 광주민속박물관 소장 주임관 김봉선 대례복과 윤치호 대례복이 수정된 규정에 따라 제작된 대례복 유물인데 김봉선 대례복은 주임관 대례복이고 윤치호 대례복은 칙임관 대례복이므로 현 재 수정된 제식에 따라 제작된 대례복 중 보고된 유일한 칙임관의 유물이므로 매우 중요하다. 유물의 등길이는 49cm, 치마길이는 46cm, 뒷품은 33.2cm, 어깨 선 길이는 16cm이다. 앞길에 4송이, 뒷길에 칼라 바로 아래에 한 송이, 허리에 한 송이, 소매 커프스에 각각 2송이씩의 전근화가 유럽식 자수 기법인 금몰 자 수 기법으로 놓여 있다. <그림4> 윤치호 대례복 도식화 <그림5> 윤치호 의 대례복 착용 모습

179 2) 서구식 소례복-진사고모(실크햇), 검은색 보우타이 대한제국은 1900년(광무4) 4월 17일에 문관복장규칙을 통해 서구식 소례복을 제정하였는데 형태는 연미복에 진사고모(실크햇)를 착용하는 것이었다. 이후 1906년에 소례복 규정이 분화하여 프록코트와 연미복으로 나누어졌다. 본 유물 에는 소례복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소례복에 함께 착용하는 진사고모(실크햇) 한 점과 검은색 보우타이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 그림6> 에서 윤치호가 실크 햇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전통식 무관복 1) 군복 동다리와 함께 착용한 겹전복 한 점, 전대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2) 철릭 본 유물에는 철릭 3점이 포함되어 있다. 4. 서구식 무관복 1) 1895년 제식으로 추정되는 육군 모자 모든 육군을 대상으로 서양식 육군 군복이 처음으로 제정된 것은 開 國 504년 (1895) 4월 9일 칙령 제 78호 육군복장규칙( 陸 軍 服 裝 規 則 )을 통해서이다. 당시에 는 복식의 형태를 규정하는 육군장졸복장제식( 陸 軍 將 卒 服 裝 制 式 )이 함께 공포되 지 못하고 서양의 군복제도를 간단하게 번역하여 요약한 도식이 제시되었다. 도 식에서 육군의 모자는 모정이 둥근 형태이다. 이후 1897년에 발표된 육군장졸복 장제식부터는 정수리가 편평한 형태로 개정되었다. 본 유물에 포함된 모자는 최 초의 제식에서 규정된 형태로 추정된다. 2) 육군 부장 상복( 常 服 )상의 <그림6>윤웅렬 일가 사진 <그림7> 육군 상복 상의 도식화 본 유물에는 < 그림7> 의 도식화와 같은 육군의 상복 상의 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구한말의 육군복장제식을 정리해 보면 1895년 제식에서는 싱글브레스티드 (single breasted)형이지만 소매에 인자형 수장이 없었고, 1897년 제식에서는 늑 골형 군복이, 1900년 개정된 제식에서는 더블브레스티드(double breasted)형 군

180 복이 규정되어 있다. < 그림7> 의 형태는 육군장졸복장 제식의 규정과는 잘 맞지 않다. 그런데, 본 유물과 유사한 군복으 로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종황 제의 대원수 상복이 있는데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해 원수부가 창설되었던 1900 년을 전후한 시기에 착용된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그림8> 참조) 고종황제의 대 원수 상복은 칼라에 별이 다섯 개 부착 되어 있고 소매에 인자형 수장이 11줄이 다. ~본 유물은 칼라에 별이 세 개 부착되어 <그림8>상복을 착용한 고종황제 사진과 육군 있고 소매에는 인자형 수장이 8줄이므 박물관 소장 전고종황제 상복 유물 로 같은 개념으로 보아 육군부장의 상 복으로 추정할 수 있다. < 그림6>은 윤 웅렬과 윤치호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으로 사진에서 윤웅렬이 착용한 군복이 < 그림7>의 형태와 유사하다. 윤웅렬은 1903년 군부대신으로 원수부 군무국 총 장을 지냈다. 사진의 아래에 1904년 5월 6일로 적혀 있는 날짜가 촬영일이라면 윤웅렬은 이 시기에 이 복식을 착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3) 육군부장의 늑골복 상의( 常 衣 ) 建 陽 2년(1897) 2월 25일 반포된 육군장졸복장제식( 陸 軍 將 卒 服 裝 制 式 )의 내용 중 대례의는 품질은 흑융( 黑 絨 )이요 구자( 釦 子 )는 흑사원직( 黑 絲 圓 織 )이요 결두 ( 結 頭 )는 근화형( 槿 花 形 )이요 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을 풀어보면 대례의는 검은색 융으로 만드는데 앞길에 실로 둥글게 짠 형태의 직물로 좌우 양쪽에서 맺는데 매듭의 머리부분은 무궁화 꽃모양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 그림9> 에서 도식화로 표현된 유물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러한 형태의 복식을 일본에서는 늑골복( 肋 骨 服 )으로 지칭한다. 이 제식에서 대례의와 상의( 常 衣 )의 제식과 품질은 같지만 대례의에는 의령장에 격 자무늬형태의 금사수연이 있고 소매에도 금사수선으로 인자형( 人 字 形 ) 장식을 하 는데 비해 상의에는 의령장도 없고, 수장도 흑사직으로 할 것으로 하였기 때문에 본 유물은 이 규정에 따라 상의로 볼 수 있다. 또한 수장( 袖 章 )의 인자형 흑사직 이 모두 8개이므로 부장( 副 將 )의 계급에 해당한다. <그림9>늑골복 상의 도식화

181 4) 1900년 제식의 육군 부장 예복 일습 光 武 4년(1900) 7월 2일 육군장졸복장제식 중 대례의에 대한 일부 개정이 이루 어졌다. 그 내용 중 형태의 변경을 의미하는 규정으로 釦 子 는 도금근화형이니 흉부 좌우에 각 7개요 을 통해 늑골형으로 규정되었던 1897년 규정의 대례의를 더블 브레스티드형으로 변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윤웅렬은 < 그림10>의 군 복을 착용한 가족사진을 남겼는데 사진에서 착용한 군복은 인자형 장식이 7줄 이므로 기증된 유물은 아니다. < 그림11> 에서 도식화로 그린 유물은 1900년 이 후 제식 중 육군 부장 예복에 해당한다. 현재 대례의와 그 부속으로 견장, 식서, 식대, 바지가 함께 기증되어 있다. 이 시기 제식에 따른 육군 부장 예복으로는 육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도재의 육군보병부장예복이 있다. <그림10>윤웅렬 일가 가족 사진 <그림11>1900년 제식의 육군 부장 예복 상의 도식화 5. 여성복 1) 원삼 본 유물에는 원삼과 대대 한 점씩 포함되어 있다. 원삼은 붉은색으로 이염이 많이 되어 있다. 2) 당의 본 유물에는 초록색 당의 세 점이 포함되어 있다. 3점 중 2점은 겹당의이고 1 점은 홑당의이다. 세 당의 모두 안섶에 주름을 4개 잡아서 안깃을 달아 주었다. 시대적 특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왼쪽 가슴부위에 훈장을 걸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 붙였다.(< 부록표> 참고) 3) 치마 본 유물에는 남색 홑치마 한 벌이 포함되어 있다. 6. 기타 1) 신발류 화를 제외한 신발들로 분투 한 짝, 남녀 태사혜 한 켤레씩, 여성용 운혜 두

182 켤레로 총 5켤레의 신발이 포함되어 있다. 2) 사명기( 司 命 旗 ) 사명기는 군에 있어서 사령관이 가지는 기로서 군의 명령을 맡아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본 유물의 사명기들은 윤웅렬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5점이 포 함되어 있다. 湖 南 諸 軍 司 命, 關 南 諸 軍 司 命 이라고 적힌 큰 사명기 2점과 嶺 左 兵 馬 司 命, 湖 南 諸 軍 司 命, 關 南 諸 軍 司 命 이라고 적힌 작은 사명기 3점이 있다. ᄋ 기 타 년 6월 25일 윤영선( 尹 泳 善 ) 선생이 조부인 윤웅렬( 尹 雄 烈 : ), 조 모인 전주 이씨, 부친인 윤치호( 尹 致 昊 : )의 유품을 일괄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유물은 옷, 혁대, 모자, 가죽신, 왕의 유서( 諭 書 ), 교지( 敎 旨 ), 사명기( 司 命 旗 ), 마패( 馬 牌 ), 대한국독립협회 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류등록번호 유물명 색상, 재질 전체 사진, 특징적 부분 88-1 당의 <부록표> 연세대 소장 복식 유물 일괄표 겉 : 연두색 국사, 안 :홍색 삼팔, 고름 : 자주색 88-2 당의 겉 : 연두색 석류문단, 안 : 홍색 명주, 고름 : 자주색 88-3 당의 겉 : 연두색 화순인, 고름 : 자주색 88-4 원삼 겉감 : 녹색 화순인, 안감 : 홍색 화순인, 남색단, 색동 : 다홍색, 황색 직금단, 한삼 : 백색 화순인 대대 : 홍색 공단

183 88-5 치마 남색 화순인 홑치마, 허리는 명주 88-6 도포 옥색 명주, 총길이 120.5, 화장 82.5, 88-7 시복 겉감 : 연한 분홍색 모시, 안감 : 북청색 사 88-8 철릭 북청색 항라 88-9 철릭 남색 을라 철릭 북청색 운문사 전복 흑홍, 갑사, 겹 전복 북포(미색) 홑 전복 자주, 목문단, 홑 전복 자주, 목문단, 홑 흑단령 (대례복) 겉 : 북청색 운문사, 안 : 남색 운문사, 쌍호 흉배

184 88-16 흑단령 (대례복) 겉 : 유록색 여의사, 안 : 남색 운문사, 쌍학 흉배 군복 88-11의 동달이 주의 자색 홑주의 왜사 항라, 고름이 없이 매듭 단추로 여밈 흑단령 (소례복) 겉 : 유록색, 안 : 남색 명주 흑단령 (소례복) 겉 : 북청색 사, 안 : 남색 삼팔 추포 단령 소색 삼베 사모 사모 백사모 사모 백사모 금관 6량관

185 88-32 포각대 삽금대 학정대 서대 사명기 (관남) 사명기 (관남) 사명기 (영좌병 마) 사명기 (호남) 사명기 (호남) 전대 군복에 착용

186 98-1 진사고 모 (실크햇) 서구식 소례복에 착용 98-2 예의 (1900년 이후 규정의 상의) 98-3 常 衣 (1897년 규정의 상의) 98-4 대례의 98-5 조끼 98-6 대례고( 윤치호) 칙임관 2등 98-7 대례모 常 衣 (1903경 착용 추정 상의) 바지 (윤웅렬) 98-2의 바지 모 (윤웅렬) 흑융, 홍융 백화

187 98-12 흑화 운혜 운혜 진신 분투 진신 목화 흑각대 복식 품목 총수 56점 ᄋ 등록 가치 및 근거기준 -이 유물은 연세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윤웅렬 일가의 복식으로, 윤웅렬과 그의 부인 전주 이씨, 아들 윤치호의 복식을 포함하고 있다. 복식이 제작 및 착 용된 시기는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시기까지이다. 서양을 향해 개항한 이후 복 식제도의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졌는데 본 유물은 이 시기에 무관으로 활동했 던 윤웅렬과 문관으로 활동했던 윤치호의 전통식 복식과 서구식 복식을 모두 포

188 함하고 있다. - 문관의 복식으로는 1895년에 처음 제정된 전통식 대례복과 소례복을 포함하고 있고, 1900년에 처음 제정된 서구식 대례복을 포함하고 있다. 윤치호의 서구식 대례복은 1904년에 개정된 문양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칙임관 2등의 대례복으 로서는 현재 보고되어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착장 사진 이 남아 있는 유일한 유물이다. - 무관의 복식으로는 1895년 이전의 전통식 군복인 구군복과 1895년 이후 제정된 육군복장규칙에 따라 제작된 서구식 유물 3점을 포함하고 있다. 윤웅렬의 서구 식 육군복은 1897년 제식의 상복인 늑골복, 1900년 이후 제식의 더블 브레스티 드형 예복 일습, 1903년 원수부 군무국 총장 시기에 착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상 복 상의 등 대한제국기 육군복의 다양한 형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윤웅렬의 부인 전주 이씨의 원삼, 당의, 치마를 통해 20세기를 전후한 근대 여성 복식의 형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 본 유물에서는 문무관복, 여성복 이외에도 도포, 두루마기, 전복 등이 포함되어 있고, 전통식 쓰개인 사모, 서구식 쓰개인 실크햇과 전통식 관복에 필수품인 각 종 대류, 신발류 역시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어 근대 복식사 서술에 풍부한 자료 가 된다. - 고관의 무관으로서 활동한 윤웅렬이 지니고 있었던 5점의 사명기 유물을 통해 근대 시기의 군사 분야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서양을 향한 개항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이루어진 각종 의제개혁에 맞추어 제작하고 착용한 전통식 및 서구식 문무관복은 물론이 고 같은 시기에 착용한 여성복까지 다양하게 포함한 본 유물은 100 여년이 지 난 지금까지 보존상태가 매우 훌륭하여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복 식사 분야에서 볼 때 제도사 파악, 직물사 연구,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파악되므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하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ᄋ 종합의견 : 서양을 향한 개항 이후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이루어진 각종 의제개혁 에 맞추어 제작하고 착용한 전통식 및 서구식 문무관복은 물론이고 같은 시기에 착용한 여성복까지 다양하게 포함한 본 유물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존상 태가 매우 훌륭하여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복식사 분야에서 볼 때 제도사 파악, 직물사 연구, 형태와 구성 분야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파악되 므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보호하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189 <붙임> 윤웅렬 일가 유물 세부 목록 구분 유 물 명 규격 및 수량 용도 비 고 1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통정대부로 임명 윤웅렬 2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삼아 용양위의 부호군으로 임명 윤웅렬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삼아 3 교지( 敎 旨 ) cm 용양위의 부호군 겸 5위장을 윤웅렬 맡게 함 4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삼아 중추부와 오위장을 맡게 함 윤웅렬 5 교지( 敎 旨 ) cm 숙인 이씨를 숙부인으로 삼음 이씨부인 6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중추부 의 일을 다스리게 함 윤웅렬 7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삼아 용양위 부호군을 맡게 함 윤웅렬 8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 가자로 충 청감여의 중군을 맡게 함 윤웅렬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삼아 9 교지( 敎 旨 ) cm 함경북도 병마우후 겸 토포사 윤웅렬 를 맡게 함 10 교지( 敎 旨 ) cm 윤웅렬을 절충장군으로 용양위 부호군을 맡게 함 삼아 윤웅렬 11 유서( 諭 書 ) cm 절충장군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윤웅렬에게 이르는 글 윤웅렬 12 유서통 높이 80.0cm, 13.0cm 지름 유서를 넣었던 대롱모양의 통, 겉은 붉게 칠함 윤웅렬 13 마패( 馬 牌 ) cm 상서원에서 만든 4마패 윤웅렬 14 사명기( 湖 南 諸 軍 司 命 ) cm 군 사령관이 가지는 기 윤웅렬 15 사명기( 關 南 諸 軍 司 命 ) cm 군 사령관이 가지는 기 윤웅렬 16 사명기( 嶺 左 兵 馬 司 命 ) 65 61cm 군 사령관이 가지는 기 윤웅렬 17 사명기( 湖 南 諸 軍 司 命 ) 62 59cm 군 사령관이 가지는 기 윤웅렬 18 사명기( 關 南 諸 軍 司 命 ) 61 63cm 군 사령관이 가지는 기 윤웅렬 19 백사모 높이 17cm, 둘레 59cm 조선시대 문관 사모 윤치호 20 백사모 높이 17cm, 둘레 56cm 조선시대 문관 사모 윤치호 21 흑사모 높이 18cm, 둘레 58cm 조선시대 문관 사모 윤치호 22 백사모 높이 18cm, 둘레 58cm 조선시대 문관 사모 윤치호 23 금관 앞면 9cm, 뒷면 19cm, 목잠 24cm 6량관 윤치호 24 흑단령(대례복) 길이 122cm, 화장 91cm 직물 : 운문사, 색 : 북청색 윤치호 25 흑단령(대례복) 길이 122.5cm, 화장 94.5cm 직물 : 여의사, 색 : 유록색 윤치호

190 구분 유 물 명 규격 및 수량 용도 비 고 26 시복 길이 121cm, 화장 104cm 직물 : 모시, 색 : 살색분홍 윤치호 27 흑단령(소례복) 길이 121cm, 화장 78cm 직물 : 빈사, 색 : 북청색 윤치호 28 흑단령(소례복) 길이 125cm, 화장 79cm 직물 : 외징, 색 : 유록색 윤치호 29 흑단령(소례복) 길이 120cm, 화장 77cm 직물 : 북포, 색 : 미색 윤치호 30 흉배 세로 19cm, 가로 17cm 쌍호 윤치호 31 흉배 세로 20cm, 가로 18cm 쌍학 윤치호 32 대(서대) 높이 3.5cm, 길이 122cm 계급의 등위 표시 윤치호 33 대(삽금대) 높이 4cm, 길이 105.5cm 계급의 등위 표시 윤치호 34 대(학적대) 높이 3.5cm, 길이 106cm 계급의 등위 표시 윤치호 35 대(포각대) 높이 3.5cm, 길이 102cm 계급의 등위 표시 윤치호 36 대(흑각대) 높이 4.5cm, 길이 105.5cm 계급의 등위 표시 윤치호 37 전복 길이 128cm, 품 50cm 군신 통용 윤치호 38 전복 길이 113.5cm, 품 20cm 군신 통용 윤치호 39 전복 길이 119cm, 품 21cm 군신 통용 윤치호 40 전복 길이 125cm, 품 23cm 군신 통용 윤치호 41 주의(홑주의) 자색 왜사 항라 윤치호 42 도포 길이 120,5cm, 82.5cm 화장 옥색 명주 윤치호 43 화( 木 靴 ) 융 윤치호 44 화( 白 靴 ) 상중에 신던 신발 윤치호 45 화(분투) 윤치호 46 화(진신) 남성용 비오는 날 윤치호 47 화(진신) 여성용 이씨부인 48 화(운혜) 바탕색이 분홍, 무늬색은 남색 윤치호 49 화(운혜) 바탕색과 무늬색이 옥색 비단 윤치호 50 모(모자) 길이 45cm, 높이 12cm 흑모 천아융, 대한제국 문관복 윤치호 51 진사고모 높이 14cm silk top hat, 대한제국 문관복 윤치호 52 상의 짙은 검은색 융, 대한제국 문관복 윤치호 53 동의(조끼) 뒷길이 50cm 검은색 융, 대한제국 문관복 윤치호 54 바지 길이 96cm 검은색 융, 대한제국 문관복 윤치호 55 군복(동다리) 무관의 대례복 윤웅렬 56 전대 길이 400cm, 너비 10cm 남색 사 윤웅렬 57 전복 윤웅렬

191 구분 유 물 명 규격 및 수량 용도 비 고 58 철릭 길이 124cm, 화장 104cm 북청색 운문사 윤웅렬 59 철릭 길이 122cm, 화장 92cm 남색 을라 윤웅렬 60 철릭 길이 122cm, 화장 104cm 북청색 왜사 항라 윤웅렬 61 모( 帽 ) 높이 18cm 흑사, 정면 표장은 도금주예이 화를 수놓고 그 좌우에 금엽은 파상생근화양지수장을 교차로 맺음, 대한제국 무관복 윤웅렬 62 상의(예의) 대한제국 무관복 윤웅렬 63 상의(예의) 대한제국 무관복 윤웅렬 64 상의 대한제국 무관복 윤웅렬 65 원삼 뒷길이 143cm 대례복 이씨부인 66 당의 길이 72cm, 화장 68.5cm 연두색 국사 이씨부인 67 당의 길이 74cm, 화장 69cm 연두색 석류문단 이씨부인 68 당의 길이 73cm, 화장 68cm 연두색 화순인 이씨부인 69 치마 계 길이 150cm, 허리길이 99cm 69점 남색 홑치마 이씨부인

192 안건번호 근대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 소재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를 문화재로 등록 하고자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위원회 검토( )를 거쳐 등록예고( )된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에 대하여 문화재 등록 여부를 심의하기 위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백영임(인천시 중구 관동 1가 17)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ᄋ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17 ᄋ 소 유 자 : 백영임, 계원숙 ᄋ 수 량 : 1동 ᄋ 면 적 -대지면적 : 162m2 -건축면적 : m2 -연 면 적 : m2 -현황측량면적 : 109.9m2 ᄋ 건립시기 : 1880년대 말 1890년대 초 ᄋ 건축구조 : 목조 (3) 등록예고 ᄋ 예고기간 : ~7.26(30일간) ᄋ 예고결과 : 의견없음 (4) 심의 내용 : 문화재 등록 심의

193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단국대학교 교수, 건축사) 년대 인천 개항지에 건축된 일본 마찌야( 町 家 )건물로 주요 부분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등록가치가 높으며, 충실한 고증을 통해 원형을 추적하고 복원 보수함으로써 근대기 건물의 보존 활용의 모범적인 사례이나, 사진엽서를 근거로 한 정면의 형태와 재료, 색채 등의 재현(변경)에 대해서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일본의 마찌야( 町 家 ) 형식이 국내에 유입되어 그 형식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로서, 한일주거형식 비교연구의 의미 있는 자료로 판단되나, 개보수 이전의 건축형식이 원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가로변 2층 발코니를 철거 변경한 상태이므로 원형에 대한 보다 면밀한 고증을 통해 개보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음 ᄋ (인천재능대학 교수, 근대건축) - 항만을 배경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던 회사의 건물인 구 대화조 사무소는 대표적인 네거티브 문화유산임. 따라서 이를 보존하여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 인천에 현존하는 마찌야 양식의 유일한 3층 건물이며,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근대 건축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예고 내용대로 등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가결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등록조사보고서( )

194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조사보고서 1. 명 칭 : (현)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구)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2. 용 도 : (현) 상업시설+전시시설 (원) 업무시설+주거시설 3. 소 재 지 : 인천시 중구 관동1가 소 유 자 : (현) 백영임, 계원숙 (원) 조병협 ᄋ 현소유자 주소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동,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5.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목조 ᄋ 준 공 일 : 1880년대 말 1890년대 초 ᄋ 대지면적 : 162m2 ᄋ 건축면적 : m2 ᄋ 연 면 적 : m2 ᄋ 현황측량면적 : 109.9m2 ᄋ 층 수 : 지상3층 6. 조사자 의견( ) < 문화재위원(건축사)> 1) 구 대화조 사무소 개요 ᄋ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 동안 인천항에서 조운업(하역업)을 하던 하역회사 대화조 ( 大 和 組 )의 사무소 건물로 근대 일본 점포겸용주택의 하나인 마찌야 ( 町 家 ) 유형의 건물임 ᄋ 2012년 전문가의 세심한 고증과 기술지도로 휴게음식점 용도로 복원 및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음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전형적인 마찌야 ( 町 家 )로서 1층은 사무소 2-3층은 주거공간으로 구성되었음. 현재는 1 3층 모두 근린생활시설로 되어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전문적인 고증과 자문으로 전체적인 구조와 형태는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노후 부재의 교체, 새로운 설비의 추가, 용도변경 등이 이루어졌음 ᄋ 복원, 보수공사 전후의 정면형태와 마감재료, 색상 등의 변경이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주변이 차이나 타운으로 관광객의 내방이 잦은 이곳은 인천개항장 근대역사문화 지구 로 지정되어 있고 곳곳에 근대문화유산이 남아있어 보존 및 활용여건이 양호함 ᄋ 특히 도로변에 면한 건물의 입면을 일본풍으로 장식하여 개항기 일본거리를 재현한 중구청 앞 제물포조약길 일대(옛일본인거류지)에서 가장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

195 5) 등록가치의견 ᄋ 1890년대 인천 개항지에 건축된 일본 마찌야( 町 家 )건물로 주요 부분의 원형을 잘 보존하 고 있어 등록가치가 높으며, 충실한 고증을 통해 원형을 추적하고 복원 보수함으 로써 근대기 건물의 보존 활용의 모범적인 사례임 ᄋ 다만 (등록문화재일 경우 외관의 1/4이하의 변형을 허용하는 기준에 비춰볼 때) 사진엽서를 근거로 한 정면의 형태와 재료, 색채 등의 재현(변경)에 대해서는 세 심한 검토가 필요)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구 대화조 사무소 개요 ᄋ 일제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인천항에서 하역업을 하던 廣 池 亭 四 郞 의 大 和 組 사무소 및 거주용 건물임 ᄋ 廣 池 亭 四 郞 는 인천개항25년사 에 의하면, 1885년 인천으로 와서 당시 조운업 (하역업)을 하는 아까마조합( 赤 間 組 )에서 근무하다가, 明 治 25 年 (1892) 2월 6일 야 마토조합( 大 和 組 )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조장이 되었다 고 기술하고 있음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개보수 이전의 건축물은 각 실의 배치 및 공간구성 측면에서 보면, 町 家 형식을 지니고 있다. 1층은 사무실로, 2층은 다다미의 거주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 부 바닥은 1층은 시멘트 마감, 2층은 다다미 또는 마루로 구성되고, 3층은 다다 미임 ᄋ 5~6단의 화강석 전면계단을 오르면 출입문이 있고, 현관에서 좌측으로 사무소 출입문이 그리고 정면으로는 通 り 庭 형식의 통로가 있음. 通 り 庭 을 통해 들어가면 좌측으로 화장실이, 후면에는 坪 庭 형식의 방형 정원이 있음. 坪 庭 에 면한 蔵 의 위치에 별도의 2층의 건축물이 위치하고 있으며, 2층 출입은 坪 庭 을 통해 이루어 지고 있음 ᄋ 2층은 마루의 板 の 間 를 통해 つなぎの 間 그리고 도로측에 板 の 間 와 정면 발코니 가, 후면 경사지붕 아래에는 板 の 間 가 있었음. 현재는 도로측 발코니는 창호로 변 경됨. 3층은 노출천정에 다다미방임 ᄋ 일본에서 3층의 마찌야(3 階 建 て 町 家 )는 明 治 이후 일반적인 町 家 天 井 高 의 2 階 을 지닌 주택이 큰길가에 건축되어 3층의 마찌야( 町 家 )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京 都 町 家 資 料 館 에 의하면 3층의 마찌야(3 階 建 て 町 家 )는 昭 和 이후에 점포 겸 주 택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196 ᄋ 신청건축물은 사진엽서를 근거로 개보수가 이루어진 상태임 ᄋ 최초 건축당시의 원형에 대한 면밀한 조사 및 고증에 대한 아쉬움이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주변은 인천개항시기의 근대건축물이 많이 있는 개항장과 인접하고 있으며, 건축 주는 문화재 개보수를 통해 근대문화유산이 지속적으로 활용가치를 지니길 원함 5) 등록가치의견 ᄋ 건축주가 본 가옥에 대해 강한 보존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개보수 과정에서 최 대한 원형을 보전하려고 노력을 경주한 점은 매우 바람직한 근대문화유산 보전 및 활용으로 보임. 특히 일본의 마찌야( 町 家 ) 형식이 국내에 유입되어 그 형식적 특 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로서, 한일주거형식 비교연구의 의미 있는 자료로 판단됨 ᄋ 다만, 신청건축물은 원형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진엽서의 원경 을 근거로 개보수가 이루어진 상태로서, 개보수 이전의 건축형식이 원형이 아니 라고 판단하고 가로변 2층 발코니를 철거 변경한 상태임. 특히 등록문화재의 경 우 개보수 과정에서 등록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당해 문화재 외관의 4분의 1이상 변경행위 등은 문화재보호법 제50조에 신고토록 하고, 필요시 지도, 조언, 권고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바, 본 조사대상은 등록이전에 기 4분 의 1 이상의 변경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사료되는 바 원형에 대한 보다 면밀한 고증을 통해 개보수가 적절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음 ᄋ 건축 시기는 明 治 25 年 (1892) 야마토조합( 大 和 組 ) 조장이 된 후 사업이 번창하여 현 부지에 건축물을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어, 제시된 시기(1880년대 말~1890년 대 초)는 너무 이른 시기로 판단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 인천재능대학 교수(근대건축)> 1) 구 대화조 사무소 개요 ᄋ 상기 건물은 근대 개항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인천항을 배경으로 하역업을 했던 대화조 사무소 겸 주택임 ᄋ 이 건물의 건립자이자 최초 소유주이던 히로이케데시로( 廣 池 亭 四 郞 )는 인천개항 25년사 에 1885년에 인천으로 와서 당시 조운업(하역업)을 하는 아까마( 赤 間 )조 에서 근무했다 고 기록되어 있음 ᄋ 일제강점기 이 건물이 위치한 지역은 해운회사를 통해 수출입 화물을 운송하던 화주와 배에 화물을 싣거나 내리는 노동에 종사하던 인부를 중개하는 중개업소 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에서 일제강점기에는 나까마치( 仲 町 ) 로 명명되었으며, 해 방 후 관공서가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관동( 官 洞 )으로 변경됨

197 ᄋ 이 일대에 일제강점기 하역회사 건물이 많았지만 한국전쟁기 인천상륙작전으로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인천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하역회사 건물이며, 다른 항 구도시에서도 하역회사 사무소로 명확하게 드러난 사례는 찾기 어려운 실정임 ᄋ 인근에 위치한 해운회사(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군회조점 등)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하역회사 사무실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갖는 건물임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근대일본 점포주택 유형 가운데 하나인 정가( 町 家, 마찌야) 양식으로 1층은 사무 소, 2~3층은 주거공간을 배치함 ᄋ 일본식 목조건축물 대부분이 2층이었던 것과 달리 이 건물은 3층으로 축조되었 음. 이는 항구에 입출항하는 선박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추정됨 ᄋ 정가( 町 家, 마찌야) 양식을 바탕으로 1층에는 영업장을, 2층에는 주택을 배치하는 사례는 많으나, 여기에 한 층을 더 설치하고 3층에 주거공간으로 두는 것은 국내 에서 찾기 어려운 사례로 우리나라에 세워진 일제강점기 점포주택사 연구에 중 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임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매우 낡은 건물이었으나, 현 소유자가 2012년 매입한 뒤, 공사비 2억5천만원을 투입하여 보수공사를 완료했음. 따라서 추후 보수공사비 등에 필요한 예산이 투 입될 가능성이 낮음 ᄋ 1층 내부공간은 용도가 바뀌면서 일부 모양이 변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았으며, 2~3층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 ᄋ 보수공사는 건물의 전체적인 외형을 사진엽서를 근거로 19세기 일본식 건축물의 모습을 복원함 - 보수공사 시 건축당시의 사진엽서에 남아 있는 건물 외관을 근거로 건물 정면 에 설치되어 있던 국적불명의 베란다를 철거하고 일본식 기와지붕을 올린 눈썹 지붕을 설치하여 원형을 복원하였으며, 공사 전의 건물 모습을 전시하고 있음 - 건물전면의 계단과 현관지붕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찌야( 町 家 )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좁고 긴 통로( 通 り)와 점포(みせ)의 형태를 유지함 -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던 2, 3층은 다다미( 畳 )방을 유지하며, 2층에 설치되었던 도꼬노마( 床 の 間 )를 재현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인근에는 해운회사사무소인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등록문화재 제248호), 군회조점( 郡 廻 漕 店, 비지정문화재), 일선상선( 日 鮮 商 船 ( 株 ), 비지정문화재)이 위치 하고 있음. 해운회사와 하역회사는 상호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두 종류 의 회사를 함께 보존하여 근대항구도시로서의 특성을 간직하도록 하는 것은 문

198 화재의 점적 보존을 넘어 역사문화환경 보전을 가능하게 하는 보다 적극적인 문 화재보존정책으로 사료됨 ᄋ 보수공사를 마친 이 건물은 현재 1층은 카페, 2~3층은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용도는 인천광역시 중구청 역사문화지구지정에 따른 것으로 용도변 경 시에는 문화지구운영관련 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는 등 그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변경될 가능성은 적은 편임 ᄋ 특히 공사 도중 발견된 3층 다다미방 벽에 그려진 그림과 일본어로 된 글을 원 형대로 유지하였으며, 벽체의 일부를 경화처리한 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근대건축사의 살아 있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음 ᄋ 건물을 보기위해 찾는 내방객이 상당히 많으며, 2~3층은 다다미방이라는 평상 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사전예약을 통해 세미나 등의 용도로 활용하는 단체도 증가하는 추세임 ᄋ 건물의 공동소유자 중의 1인(백영임)은 문화재청 주관한 문화유산방문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인천근대문화유산방문교육사업의 실무책임자(사, 해반문화사랑회 사무 국장)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근대문화유산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도가 높음 ᄋ 건물주가 건물의 용도를 카페와 갤러리로 정한 것은 이 건물을 민간차원의 대표 적인 근대문화유산 활용사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정함. 따라서 이 건물 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근대문화유산의 중요성과 활용사례로 홍보하는 모델로 활 용할 필요가 있음 5) 등록가치의견 ᄋ 대화조( 大 和 組 )는 인천항을 배경으로 하역업을 하던 회사이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구성된 부두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 일제강점 기 이 일대에는 이러한 하역회사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당시 동명( 洞 名 )인 중정( 仲 町 ;나까마찌) 또한 이러한 하역회사가 많은 동네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항만을 배 경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던 회사의 건물인 구 대화조 사무소는 대표적인 네거티브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이를 보존하여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음 ᄋ 구 대화조 사무소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시형 주택인 마찌야( 町 家 )형식의 건물임. 마 찌야는 일반적으로 1층에는 점포를 두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구성하는 2층 구조임. 그러나 이 건물은 3층에도 주거공간을 배치한 3층임. 인천에 현존하는 마찌야 양식 의 유일한 3층 건물이며, 전국적으로도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근대 건축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음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199 안건번호 근대 사적 제248호 구 서울역사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현상변경 가. 제안사항 서울특별시 중구 소재 사적 제248호 구 서울역사 일반휴게음식점 설치를 위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사항을 부의하오니 심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구 서울역사 내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신청위치는 월 제2종 근린생활 시설 노천카페 로 현상변경 허가를 받은 사항이나 노숙인 등 주변 환경이 열악하여 노천카페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 ᄋ 이에 노천카페 일부구간에 원형복원이 가능한 칸막이를 설치하여 일반 휴게음식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에 대하여 심의하고자 함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문화체육관광부장관(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215) (2) 대상문화재명 : 구 서울역사(사적 제248호) ᄋ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 2가 (3) 신청내용 : 구 서울역사 내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ᄋ 사업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 2가 ᄋ 사업내용 -일반휴게음식점 설치 240m2(현 노천카페 562m2) 차, 아이스크림, 패스트푸드 형태의 품목을 조리 판매 -공사내용 : 칸막이(유리) 설치, 천장설치, 기타 냉난방설비 등 (4) 이격거리 : 당해 문화재 (5) 심의사항 : 구 서울역사 내 일반휴게음식점 설치에 대한 심의 라. 추진경과 ᄋ : 구 서울역사 원형복원 및 문화공간 사업 현상변경 허가 ᄋ : 구 서울역사 문화공간화 사업 현상변경 허가

200 ᄋ : 승강기 설치 위치 조정,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광장 정비 현상변경 허가 ᄋ : 건물용도변경(운수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 현상변경 허가 마. 검토의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문화재의 구조와 경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옥외카페 조성에 대한 대안을 모색할 것 -복합문화공간 활성화를 위한 카페(옥외) 운영방안 개선 차원에서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모색 -상기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을 준비할 것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허가신청 구역은 국군철도수송지원반(TMO)가 있던 자리였으나, 현재는 원래 대로 복원한 상태로 다시 칸막이를 막아 사용하는 것은 문화재 복원의 취 지에 맞지 않음 ᄋ 또한, 맞은편 다목적 홀(공연장)과 연계하여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천 카페의 형태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됨 바. 의결사항 : 부결 ᄋ 현상변경 부결 -사 유 : 구체적인 도면 보완 후 재검토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201 검 토 사 항

202 검토사항 안건번호 근대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 소재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를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된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에 대하여 관계 전문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서울특별시장(서울 중구 덕수궁로 15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동)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서울 행촌동 딜쿠샤 ᄋ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 1-88, 89 ᄋ 소 유 자 : 기획재정부 ᄋ 수 량 : 1동(지하 1층, 지상 2층) ᄋ 면 적 -대지면적 : 467.1m2 -건축면적 : m2 -연 면 적 : m2 ᄋ 건립시기 : 1923년 건립, 1930년 중건 ᄋ 건축구조 : 조적조 (3) 주요 추진경과 ᄋ :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추정하여 등록신청 ᄋ : 등록문화재 가치 미흡 통보 ᄋ : 딜쿠샤 연혁 정정 및 등록 재신청 -2005년 브루스 테일러(알버트 테일러의 子 ) 방한과 심층 자료조사로 역사적

203 의의 및 연혁 정정하여 등록문화재 등록 재신청 ᄋ : 문화재 등록 예고 ᄋ : 등록 유보 ᄋ : 서울시 문화재 지정 신청(종로구청 서울시) ᄋ :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서울시 문화재청) ᄋ : 서울시 지정문화재 지정 요청(종로구청 문화재청) (4)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의견(2006년)> ᄋ 문화재위원(목원대학교 교수, 근대건축) - 문화재로 등록하길 바람. 인근 권율 장군 집터, 그리고 시 지정 수목과 연계되는 정화사업이 필요함 ᄋ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1920년대 건물로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 자체만으로도 등록 문화재로 삼는 데는 손색이 없음. 다만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한 문헌조사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함 ᄋ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사) - 건축물 자체로서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며, 보다 자세 한 조사를 실시하여 연혁을 밝힐 필요가 있음 ᄋ (안산공과대학 교수, 건축사) - 건물의 양식, 벽돌 사용방법 등을 고려해 볼 때 등록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사료됨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단국대학교 교수, 건축사) -완전한 서양식 주택구성, 희소한 벽돌쌓기 등 건물의 건축적 가치와 함께 3.1독립운동을 목격하고 세계에 알렸던 알버트 테일러의 행적과 생활상이 어린 장소적 가치가 있음. 따라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음. 그러나 구체적인 보존활용계획이 수립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등록은 세심한 검토가 필요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 딜쿠샤는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 세계로 타전한 UPA통신사 특파원이었던 Albert W.Taylor와 그의 아내 Mary Taylor가 1923년 거주용 주택으로 건립한 가옥으로서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근대 주거형식을 잘 나타내는 중요한 유산임 - 근대문화유산의 원활한 보존 및 관리를 위해 거주 및 활용이 허용되는

204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기 보다는, 서울시 미래유산 1호로서 상징적 의미 제고를 위하여 서울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무단점유자의 이주 및 적극적인 보존 활용을 위한 대책강구의 필요성이 제기됨 ᄋ 문화재전문위원(경기대학교 교수, 근대건축) -3.1운동과 관련된 장소라는 사실과 건축물이 갖고 있는 희소성을 감안할 때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함께 역사교육과 건축사적 연구 및 활용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딜쿠샤의 건축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면 등록문화재보다는 시도 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됨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3 1독립선언과 제암리학살 등의 일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을 도왔던 외국인 기자의 저택으로 평면형태, 특이한 벽돌쌓기방 식으로 의장적 특징이 뛰어나며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근대주거형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매우 높음 ᄋ 해당지자체(종로구)에서는 딜쿠샤 건물이 추가적인 훼손이나 변형이 없도록 보호,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 되어 등록문화재가 아닌 서울시 지정문화재 지정을 요청하였음( 의견제출) ᄋ 이와 같은 이유로 등록문화재보다는 시도지정문화재로 보존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됨 마. 문화재 명칭 검토 ᄋ 신청자 : 딜쿠샤(Dilkusha) ᄋ 관계전문가 - 문화재위원, 문화재 전문위원 서울 행촌동 딜쿠샤 서울 행촌동 알버트 테일러 가옥 ᄋ 근대문화재과 :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바. 의결사항 : 부결 ᄋ 문화재 등록 예고 부결 -사유 :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 권고함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서울 행촌동 딜쿠샤 등록조사보고서( )

205 서울 행촌동 딜쿠샤(Dilkusha) 조사보고서 1. 명 칭 : (현) 딜쿠샤 (구) 딜쿠샤 2. 용 도 : (현) 주거시설 (원) 주거시설 3. 소 재 지 :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88, 소 유 자 : (현) 기획재정부 (원) Albert W. Taylor ᄋ 현소유자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갈매로 477 정부세종청사 5.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조적조 ᄋ 준 공 일 : 1923년 건립, 1930년 중건 ᄋ 대지면적 : 467.1m2 ᄋ 건축면적 : m2 ᄋ 연 면 적 : m2 ᄋ 층수(높이) : 지하1층, 지상2층 6. 조사자 의견 가. 1차 관계전문가 조사의견 < 문화재위원(근대건축)> ᄋ 먼저 명칭에 문제가 있다. 이 양관은 대한매일신보 사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특히 영국인 배설(베델)과도 관계가 없다. 이 집은 미국인 알버트 테일러(Albert Taylor, )의 집이다. 건물은 1923년 세워진 것이다. ᄋ 지상 2층 지하 1층 붉은 벽돌조 건물이다. 전면 양측이 대칭형으로 된 것이 비례미 가 있다. ᄋ 건축물 하단에 딜쿠샤(DILKUSHA)란 표시석이 남아 있는데 딜쿠샤는 힌두어로 ' 행복한 마음' 이란 뜻이라 한다. 건물 명칭을 ' 딜쿠샤 양관' 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ᄋ 건물은 국유나 오랜 기간 민간에 불법점유 되어 있는 상태이다. 관리가 안 되어 열악 한 환경을 갖고 있지만 보수하여 재활용 되면 좋을 것이다. ᄋ 문화재로 등록하길 바란다. 인근 권율 장군 집터, 그리고 시 지정 수목과 연계 되는 정화사업이 필요하다. <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ᄋ 이 건물은 얼마 전까지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알려졌지만, 그 사옥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건물의 머리돌에는 DILKUSHA 1923 PSALM CXXVII-I 가 새겨져 있다. DILKUSHA는 산스크리트어라고 전한다. 전체적으로 건물은 단아한 벽돌 쌓기를 하고 있으며, 언덕 아래를 향한 세 개의 박공면이 인상적이 다. 현재 15 17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사자가 방문하였을 때 두 곳의 연통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이 건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적어서 도리어 궁금증이 많이 난다. 1920년대 건물로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 자체만으로도 등록문화재로 삼는 데는 손색이 없다. 다만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한 문헌조사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6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사)> ᄋ 본 건물은 구 대한매일신보 건물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역사적 의미 를 크게 부여하기가 쉽지 않으며, 1960년대 이후 무단 점유되어 사용됨으로써 내부 공간의 변형이 심하고 외관 역시 증축 등으로 인하여 원형을 잃고 있다. ᄋ 그렇지만 본 건물은 당시 근대건축물의 계통을 따르지 않고 독특한 형식을 지니 고 있다. 또한 기단의 명문으로 보아 건축 연대도 비교적 확실한 편이고, 비록 원형 훼손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조금만 조사하면 원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 이 아닐 것이다. ᄋ 건축물 자체로서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며, 보다 자세한 조사 를 실시하여 연혁을 밝힐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본 건물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주 민들의 협조가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은 쉽지 않은 문제일 것으로 판단된다. ᄋ 본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하고 그 연혁을 밝힘과 동시에 원형을 회복할 수 있기 를 바란다. < (안산공과대학 교수, 건축사)> ᄋ 머리돌상의 1923년 표식은 건립연대로 추정되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현재 구 대한매일신보 사옥으로 보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기록상으로 틀린 것으로 보임. 그러나 본 건물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은 대한매일신보 사옥이 아니라 할지라도 건립연도, 건물의 양식, 벽돌 사용방법 등을 고려해 볼 때 등록문화재 로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사료됨. 현재 교남동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18가구 정도가 무단 입주하고 있어 문제가 되며, 경찰청 소유로 된 경위들을 거 슬러 조사하고, 1923년도 신문들을 조사해 보면 본 건물의 당시 용도를 추정해 볼 수 있으리라 봄 나. 2차 관계전문가 조사의견( ) < 문화재위원(건축사)> 1) 딜쿠샤 개요 ᄋ 일제강점기 미국인 금광엔지니어 겸 UPA 통신사(UPI의 전신) 프리랜서 특파원 으로 일하면서 3 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던 알버 트 테일러(Albert W. Taylor)가 1923년에 지어서 1942년 일제에 의해 추방당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이며 현재는 16가구 22명이 무단 점유하여 주택으 로 사용하고 있음. 딜쿠샤(Dilkusha) 는 힌두어 ' 행복한 마음 기쁨 이상향' 의 의미로 초석에 새겨져 있는 이 건물의 별칭이다. ᄋ 알버트 테일러는 1910년부터 서울에 거주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선언과 제암 리학살 사건을 외부에 알려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전파하였다. 특히 세브란 스 병원 침상에서 발견한 3.1독립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두 었다가 일제의 눈을 피해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으며, 이를 계기로 조선의 항 일독립운동을 도왔다. 이로 인해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의 수감생활을 거쳐 추방됐으며 48년 미국에서 사망했다.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H자형 평면의 지하1층 지상 2층의 프랑스식 쌓기의 벽돌조 건물로 외벽의 벽돌쌓 기 방식이 특이하다. 즉 일종의 공동벽 세워쌓기(rat-trap bond) 로 한 켜는 면이 표

207 면에 나타나도록 세워쌓고 한 켜는 면과 마구리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쌓았다. ᄋ 평면은 박공지붕의 양익부와 가운데 5개의 열주가 있는 중앙부(전면은 베란다) 로 구성되었으며, 중앙부 4칸 중 좌측 한 칸이 현관과 홀 및 돌출반원형 계단이 있고, 나머지 3칸은 2짝씩의 유리문 3개가 있는 대연회장이, 그리고 동측 익부는 벽난로가 있는 식당, 서쪽 익부는 욕실과 옷방이 딸린 2개의 자녀방(나중에 손 님방), 그리고 후면부는 식료 저장고, 창고 등 서비스구역들로 구성되었으며, 2층 도 1층과 비슷한데 중앙의 응접실에서는 저 아래 도시와 저 넘어 산들이 조망되고 화창한 날에는 한강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하층에는 나무, 석탄, 와인을 저장하였으며, 벽난로와 거대한 이동식 난로, 얼음상자 등이 있었다(Mary Linely Taylor, Chain of Amber 참조) 창호는 오르내리기 창호(외벽의 내부 창)와 여닫이 창호, 미서기 창호가 혼재되어 있으며, 바닥은 목조마루이다.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건물의 전체형태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여러 세대가 무단 점거하여 살면서 내부는 많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현관과 통로 외에는 확인 불가) ᄋ 지붕 트러스, 처마 등 목부재의 노후화와 부식이 심하다.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인근의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 서울성곽, 홍난파가옥 등과 연계하여 역사문화 탐방로로 활용할 수 있다. ᄋ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소유하고는 있으나 현재 16가구 22명이 무단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재로서의 활용여건은 좋지 않다. 그리고 구체적 보존관리 계획이 수 립되어 있지 않다. 5) 등록가치의견 ᄋ 완전한 서양식 주택구성, 희소한 벽돌쌓기 등 건물의 건축적 가치와 함께 3.1독 립운동을 목격하고 세계에 알렸던 알버트 테일러의 행적과 생활상이 어린 장소 적 가치가 있다. 따라서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보 존활용계획이 수립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등록은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서울 행촌동 딜쿠샤 또는 서울 행촌동 알버트 테일러 가옥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딜쿠샤 개요 ᄋ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세계로 타전한 UPA통신사 특파원이었 던 Albert W.Taylor와 그의 아내 Mary Taylor 가 1923년 거주용 주택으로 건립 한 후 194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추방되기 전까지 거주함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지하1층 지상2층으로서, 붉은 벽돌의 조적조임 ᄋ 정면은 완만한 경사를 활용하여 좌우측에 2칸 모듈을 지닌 형 지붕의 2층 벽돌조 와 포치부를 지닌 중앙부로 구성되어 H형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지형이 낮은 부분에 6단의 석축을 쌓아 지하층을 두고 있음 ᄋ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우측의 화강석 계단을 올라가면, 4칸 모듈의 포치가 있으 며, 가장 안쪽 좌측에 주출입구가 있으며 현관부를 들어가면 원형형태의 목재계단 이 있음

208 ᄋ 창호는 내부 오르내리창, 외부 2짝 여닫이 창호로 2중으로 설치되어 있음 ᄋ Mary Linley Taylor, CHAIN OF AMBER, The Book Guild Ltd(1992)에 의하면, - 계단아래 지하창고로 향하는 작은 문이 있으며(현존), 이 창고에는 나무와 석 탄, 와인이 저장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음(현재에는 무단 점유되어 사용하고 있음) -지하에는 적벽돌의 벽난로와 얼음상자가 있었음을 기술하고 있음 -1층에는 45피트 길이의 큰 홀이 있었으며, 현관은 정문과 두짝 유리문이 3개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어 현재와 같이 변형되기 전의 상황을 알 수 있음 -1층 건물의 동쪽에 벽난로와 난로가 있는 식당이 있었으며, 식당에서 은행나무 를 내다볼 수 있는 창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부엌바닥은 돌로 되어 있었고, 이 곳에서 창을 통해 돌로 된 성곽을 내다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음 -1층 건물의 서측에는 아치형의 2중문에 의해 홀과 구분되는 곳에 2개의 방이 있었는 데, 욕실과 옷방과 함께 아이들방으로 사용되었다가, 나중에 손님용 방으로 사용 되었음 - 2층도 1층과 유사한 배치형식을 지니는데, 중앙 홀 위에 응접실이 있고, 이곳에 서 한강까지 볼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현재는 16가구에 22명에 의해 무단 점유된 상태이며, 딜쿠샤 이면 및 양측면으 로 무단 증축되어 원형을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임 ᄋ 중앙 현관 및 계단실, 그리고 복도 등은 노후화되어 전체적인 수리의 필요성이 제기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16가구 22명의 무단 점유로 인해 문화재 보존 및 활용에 난관이 예상됨. ᄋ 딜쿠사 측면 및 후면으로 무단증축 및 사용으로 화재나 재난이 우려됨 5) 등록가치의견 ᄋ 딜쿠샤는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학살사건을 전 세계로 타전한 UPA통신 사 특파원이었던 Albert W.Taylor와 그의 아내 Mary Taylor 가 1923년 거주용 주 택으로 건립한 가옥으로서 외국으로 부터 유입된 근대주거형식을 잘 나타내는 중요한 유산이다. ᄋ 16가구 22명의 무단점유로 인해 문화재 보존 및 활용에 난관이 예상됨 ᄋ 딜쿠샤는 현재 추진 중인 서울시 미래유산 시민생활분야 보존대상 목록 1호로 서 서울시에서 의미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고있음 ᄋ 근대문화유산의 원활한 보존 및 관리를 위해 거주 및 활용이 허용되는 등록문화재 로 등록하기 보다는, 서울시 미래유산 1호로서 상징적 의미 제고를 위하여 서울 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무단점유자의 이주 및 적극적인 보존 활용을 위한 대 책강구의 필요성이 제기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의견없음 <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1)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20세기 초에 서양인에 의해 건축된 붉은 벽돌 주택으로는 드물게 장방형의 평면 을 가진 2층 주택으로 주택형태는 넓은 전면을 갖고 있고 주택의 전망이 최적

209 화된 주택이다. ᄋ 1층과 2층에 위치한 베란다도 공공시설이나 규모가 있는 주택에서는 종종 사용되지 만, 일반적인 붉은 벽돌주택에서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요소라는 점에서 베란다의 존재는 본 주택의 중요한 건축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ᄋ 딜쿠샤는 붉은 벽돌건축이지만, 벽돌쌓기가 독특하다. 벽돌을 쌓는 패턴은 불식 쌓기지 만, 벽돌을 세워 쌓으므로서 전혀 다른 의장적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ᄋ 창호를 비롯한 출입구에 부분적으로 테라죠 타일을 사용한 것도 특징적인 부분 임 ᄋ 향후 정밀 조사 연구를 통해 화재로 인해 바뀐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임. 단, 화재가 1926년에 발생하였으므로 화재로 바뀐 부분도 사실상 원형에 가 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임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계단 중간 참을 이용해서 외부로 연결통로를 만들고 화장실을 증축했음 ᄋ 외관은 비교적 원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이나 내부 공간은 거주하는 세대수 를 감안할 때 작게 분할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됨.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있는 상 황이 아니어서 확인이 불가함 ᄋ 외부 창호는 매우 퇴락했으며, 지붕 일부도 비가 새는 것으로 판단됨. 비가 샌 지 오래된 부분은 지붕 속의 썩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목구조의 안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음 ᄋ 실내의 문 프레임 등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3.1운동과 관련된 장소라는 사실과 건축물이 갖고 있는 희소성을 감안할 때 문화재로서 의 가치와 함께 역사교육과 건축사적 연구 및 활용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ᄋ 주변에 다세대 주택이 많이 건축되어 주변 여건은 양호하지 않으나, 주변의 노거수 가 있어 노거수와 함께 지역의 중요한 역사문화자산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큼 5) 등록가치 의견 ᄋ 딜쿠샤의 건축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면 등록문화재보다는 시도지정문화재 로 지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됨 ᄋ 단, 현재 소유주가 정부기관이므로 멸실의 위험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등록문화재 로 등록하는 것도 문화재 보호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됨 ᄋ 따라서 시도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중 문화재 자체의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현실적으 로 유사한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문화재 주변 경관 관리 측면을 감안한다면 시도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판단 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현재 딜쿠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딜쿠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 용하는 것이 무방하다고 판단됨. 다만 다른 문화재와 작명에 있어 일관성이 문 제가 된다면, 테일러씨와 관련된 이름으로 작명하되 딜쿠샤라는 이름을 동시에 병기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임

210 안건번호 근대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대구광역시 중구 소재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된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에 대하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재)대구기독교청년회(YMCA)유지재단(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75)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ᄋ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24 ᄋ 소 유 자 : (재)대구기독교청년회(YMCA)유지재단 ᄋ 수 량 : 1동(2층) ᄋ 면 적 -대지면적 : 519m2 -건축면적 : m2 -연 면 적 : m2 ᄋ 건립시기 : 1914년 8월 ᄋ 건축구조 : 조적조 (3)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성균관대학교 교수, 근대건축사)

211 -내부에 다소의 변형/변경이 있기는 하였으나 주변의 재개발 계획 등, 급변하는 상황을 놓고 볼 때, 장차 철거, 훼손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으나 소유주가 보존, 활용의 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선 문화재로 등록하여 한 세기 전의 거리/지역 모습을 보존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대구 교남 YMCA 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며,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서 교남 YMCA의 주요 임원 및 회원 17인이 건국훈장 애국장 등 3.1운동 및 임시정부 관련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는 등 항일운동 관련 유적으로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그 정신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ᄋ 문화재전문위원(경기대학교 교수, 근대건축) -교남YMCA회관이 위치한 곳에는 과거 의원 건물과 사택이 하나의 영역에 위치해 있음. 한옥은 근대적 변용이 곳곳에서 이루어진 흔적이 많으며, 의원 건물은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는 디자인이 상 당히 우수한 편임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3 1독립만세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물산 장려운동 등 항일독립운동관련 유적으로 등록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예고 가결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등록조사보고서( )

212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조사보고서 1. 명 칭 : (현) 공가 (구) 대구 교남 YMCA 회관 2. 용 도 : (현) (원) 문화집회시설 3.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소 유 자 : 건물/(재)대구기독교청년회(YMCA)유지재단, 토지/대구광역시중구, (재)대구기독교청년회(YMCA)유지재단 ᄋ 현소유자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75, 대구시 중구 국채보상로 139길 1 5.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조적조 ᄋ 준 공 일 : 1914년 8월 ᄋ 대지면적 : 519m2 ᄋ 건축면적 : m2 ᄋ 연 면 적 : m2 ᄋ 층수(높이) : 지상2층 6. 조사자 의견( ) < 문화재위원(근대건축사)> 1) 개요 ᄋ 1914년 8월 건립하여 1915년 교남 YMCA회관으로 사용되면서 교육기관, 집회장, 강연장 등으로 활용하였다. 1938년 2월 조선약업주식회사에 매매되었고 이어서 한 국흥업은행, 병원 등으로 사용되다가 2012년 5월 대구기독교 청년회(YMCA) 유지 재단에서 매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의 기독청년회관 시기에는 교육, 집회,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활용되었던 곳으로 이 지역 근대역사의 현장으로 서 오늘까지도 장소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는 유적지이다.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대지의 북쪽, 남성로에 접하며 북향의 2층 벽돌 조적조 건축이다. 지붕은 함석을 이 은 모임지붕이다. 동서방향으로 약간 긴 중복도형 평면이다. 줄기초 위에 붉은 벽 돌을 쌓은 조적조로, 외벽은 길이쌓기 3단마다 한단의 마구리쌓기로 치장쌓기를 하였다. 창의 상부는 아치로 인방을 확보하고 사각형의 창문을 설치하였다. 1910년대 20년대의 조적조 건축물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유산으로 여겨진다.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현재 출입구는 옆에 이어 증축한 빌딩에 있으나 옛 사진을 보면 현관은 정면 가운 데 창의 위치에 쌍여닫이문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에 캐노피가 걸쳐져 있었다. 그 현관의 오른쪽에 창은 폭이 넓은 유리 쌍여닫이문을 달아 큰 면적의 방을 설치하 였고 청년회관 시기에 다수인이 모이는 집회실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공간 이 마련되어 있었다. ᄋ 노후건물을 병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주요 구조부(보, 기둥)를 콘크리트로 보강하였 고 바닥마감도 마루널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지금은 콘크리트, 테라죠 물갈기 로 변경하였다. 내부의 모습도 현 상태로서는 원형을 짐작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변형되어 있다. 구조보강을 하고 관리를 면밀히 하여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 다. 벽돌벽의 외부는 꽤 많은 부분에 페인트를 칠하였고 흰색 줄눈을 그어 놓았다. ᄋ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은 좌측면의 증축건물과 사이에 콘크리트 구조로 후에 새롭 게 설치하였다

213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 환경 ᄋ 내부의 구조부위 변경과 공간구성에 변형이 있기는 하였으나 길 건너편의 대구제 일교회(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30호)와 연계하여 대구지역 기독교 전래지 청년활동 중심 지로서 상징성을 부여하여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시행하면 20세기 초의 약령시, 남성 로 지역의 모습을 전해주는 중요한 유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 약령시의 독특한 거리 분위기를 바탕으로 기독교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시 민들이 인식할 수 있는 좋은 사료라 생각된다. 5) 등록가치의견 ᄋ 내부에 다소의 변형/변경이 있기는 하였으나 주변의 재개발 계획 등, 급변하는 상황 을 놓고 볼 때, 장차 철거, 훼손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으나 소유주가 보존, 활용의 의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선 문화재로 등록하여 한 세기 전의 거리/지역 모습을 보존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문화재 명칭: 대구 교남 YMCA회관 ᄋ 현재의 상황은, 특히 평면, 기능상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바, 문화 재등록 이후 원형파악과 복원도의 작성을 위한 면밀한 조사 작업이 있어야 할 것 이다.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개요 ᄋ 교남 YMCA는 3.1독립만세운동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며, 일제 강점기 물 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공간이었음 ᄋ 교남 YMCA의 주요 임원(이만집, 교남 YMCA 초대회장, 건국훈장 애국장, 1999 외) 및 회원 17인이 3.1운동 및 임시정부 관련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는 등 항일운 동 관련 유적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음 ᄋ 교남 YMCA의 건축 관련 내용은, Henry W.Bruen은 The Korea Mission Field.(137) 에서 대구에 1,500$를 들여 건축물을 짓고, 그 건물에 관련 제실 (Religious Book store, reading, committee and administration rooms)을 두기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음. 또한 Henry W.Bruen의 부인인 Clara Hedberg 는 40 years in Korea 에서 Report of Taiku Station(대구선교지회) 년도 보 고서 요약란 에서 대구선교지회는 청년선교를 위해 건물이 필요하다고 느껴 1914년 여름에 착공하여 그해 가을에 준공하였다 고 기록함.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구 교남 YMCA 북측으로 대구제일교회 구관, 약전골목과 더불어 대구 골목길투 어 근대문화골목에 연접하여 있는 동서로 약간 긴 장방형의 붉은 벽돌조 2층 건 물임 ᄋ 구 교남 YMCA 회관에 연접하여 1960년대 구 이해영 정형외과가 신축되면서, 내부 는 가운데 중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병원 입원실로 개조 변형되어 사용된 것으로 사료됨 ᄋ 외관은 도로측 전면에 화단이 있고, 콘크리트 줄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아 벽체 를 구성하고 있음. 벽체에는 아치창 및 齒 形 층간 코니스(Cornice), 하부 창대석, 그리고 주출입구 좌우의 부축벽(buttress)을 두고 있음 ᄋ 1층의 창문하부에는 창대석 하부를 나타내는 벽돌 내쌓기가 시공되어 있고, 창대 석 하부와 현재의 창문 사잇공간을 벽돌을 쌓아 충진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창 문외곽선으로 통줄눈으로 형성되어 있음

214 ᄋ 다만, 1917년 11월 대구 최초의 서양식 결혼 예식 후 기념촬영한 배경에 나타나 는 교남 YMCA 회관과 비교하면, 캐노피 하부의 주출입구 및 창호는 두짝 여닫 이문 및 창의 형태가 있었을 것으로 사료됨 ᄋ 주출입구 우측의 慶 北 書 院 에는 새롭게 부착된 듯 보이는 두짝 미서기문이 있었으 며, 그 우측에도 창호상부에 캐노피 흔적이 보임 ᄋ 현재 지붕은 골슬레이트로 덮혀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전체적인 외관의 분위기는 보전되고 있으나, 1917년 11월 대구 최초의 서양식 결 혼 예식 후 기념촬영한 배경에 나타나는 교남 YMCA 회관과 현재의 모습을 비 교하면 저층부 외관(현관 캐노피, 주출입구, 창호 등) 이 상당부분 변형되었음 ᄋ 1960년대 구 교남 Y MCA에 연접하여 정형외과를 신축하고 구 교남 YMCA 내부 를 병동으로 사용하면서 내부는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내부 간벽 신설, 바닥, 천정 등)로 변형되어 면밀한 철거작업을 통해 원형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음 ᄋ 구 교남 YMCA에 연접하여 정형외과 측에 증축된 철근콘크리트 계단, 차고(주민 목공소), 후면의 창고 등의 벽돌 연대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기존 건축물과 시 공연대를 고려하여 원형을 복원할 필요성이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특히 철거위기에 몰렸던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인 옛 교남YMCA 건물을 1차적으로 시민주도의 대구 교남YMCA 회관 보존기금 모금 을 실시하고, 2차 적으로 대구 중구청 및 대구YMCA 등이 매입하여 보존 활용하기로 한 점(영남 일보 보도자료)은 최근 도시개발로 멸실되어 가는 근대문화유산을 보 존하고 활용하는 좋은 선례로서 의미있는 보존 활용 여건을 지니고 있음 ᄋ 다만, 대구 중구청 및 대구 YMCA 의 구입지분에 의해 문화재 등록을 추진중인 교남 YMCA 회관은 대구 YMCA 주도의 활용계획(3.1운동기념관 및 대구YMCA 역사관)을, 그리고 나머지 주변 구 이해영 정형외과 및 후면의 한옥은 대구 중구 청에서 멸실 후 건물신축을 통해 별도의 활용계획(한방웰빙체험관)을 수립하는 점은 아쉬운 부분임 ᄋ 따라서, 신청 건축물이 문화재로 등록되고 보존 활용되기 위해서는, 중구청에서 추진 중인 활용계획(한방웰빙체험관)이 교남 YMCA 회관 건축물과 건축적이나 주제측면에서 상응하도록 현상변경에 준하는 문화재전문가의 자문 및 참여를 전 제로 활용되어야 할 것임 5) 등록가치의견 ᄋ 대구 교남 YMCA 회관은 일제 강점기에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며,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 의 거점공간으로서 교남 YMCA의 주요 임원 및 회원 17인이 건국훈장 애국장 등 3.1운동 및 임시정부 관련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는 등 항일운동 관련 유적으 로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그 정신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ᄋ 다만, 대구 교남 YMCA 회관의 문화재 등록의 전제로, 현재 대구 중구청에서 추 진 중인 구 이해영 정형외과 및 한옥을 멸실 후 건물신축을 통해 한방웰빙체험 관 신축 등은 문화재 현상변경 기준에 준하는 범위에서 구 교남 YMCA의 건축 적 및 주제적 특성을 고려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것임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대구 구 교남 YMCA

215 <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1) 개요 ᄋ 교남YMCA회관이 위치한 곳에는 과거 의원 건물과 사택이 하나의 영역에 위치 해 있다. 한옥은 근대적 변용이 곳곳에서 이루어진 흔적이 많으며, 의원 건물은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는 디자인이 상당히 우수한 편이다.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ᄋ 창호는 붉은 벽돌건축이 갖는 의장적 특성이 하인방과 창호 상부에 잘 나타나 있다. ᄋ 외벽에는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만, 페인트를 벗겨내면 원 모습을 찾는 데는 어려 움이 없다. ᄋ 조사대상인 교남 YMCA는 외관은 비교적 원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나, 내부는 병원의 입원실로 사용되면서 원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ᄋ 그러나, 지붕구조를 확인하면 YMCA로 사용되었을 당시의 공간구조의 큰 틀을 밝히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ᄋ 창호 일부가 변형되었으나, 원형을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건축된 지 100년 가까운 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형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판 단된다. 다만 지붕의 구조 등은 파악할 수 없어 판단할 수 없다.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 환경 ᄋ 교남YMCA가 위치한 곳이 성벽이 철거된 후 도로가 조성된 부분에 인접해 있어 대구읍성의 근대화 과정과 근대적 변화를 증거하는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으로 판 단된다. ᄋ 현재 주변은 대구시에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길 건너의 제일교회 등이 위치해 있어 근대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측면에서 매우 좋은 조건 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5) 등록가치의견 ᄋ 등록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금번 조사대상 건물은 아니었지만, 병원으로 건축된 건물의 물리적 상태가 양호하 고 디자인도 비교적 양호할 뿐 아니라, 당시의 병실 창호의 모습 등이 원형을 유 지하고 있어 병원 건물은 원 모습을 유지하면서 활용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판단된다. ᄋ 한옥의 경우 전통건축의 구성에 일식이 가미되어 있어 한옥의 근대적 변용을 보여준 다. 철거가 확정되어 있다면 평입단면 등 기본 도면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판 단된다

216 안건번호 근대 예천 윤우식 생가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경상북도 예천군 소재 예천 윤우식 생가 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 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된 예천 윤우식 생가 에 대하여 관계전문가 현지 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윤철재(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272-1)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예천 윤우식 생가 ᄋ 소 재 지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ᄋ 소 유 자 : 윤철재 ᄋ 수 량 : 3동(1층) ᄋ 면 적 -대지면적 : 6,550m2 -건축면적 : 안채/92.68m2, 사랑채/64.8m2, 사당/ 22.5m2 -연 면 적 : m2 ᄋ 건립시기 : 1575년 건립 추정, 1922년 중건 ᄋ 건축구조 : 목조 (3)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대구대학교 교수, 한국건축사)

217 -고택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하여 29세 순국한 남석( 南 石 ) 윤우식( 尹 雨 植 : )의 생가로서, 윤우식은 2004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 전반적으로 근대적인 요소는 발견할 수 없으며, 중건 년대를 기준으로 하여도 등록문화재의 요건에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근대기 독립운동가의 생가이며, 경상북도의 전형적인 ᆷ형의 고택 및 사 당으로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ᄋ 문화재전문위원(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 건축역사) -본 가옥과 같이 건축적 역사가 분명하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항일운동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순국하신 윤우식(건국훈장 애 족장)선생의 생가로 항일독립유적지로써 등록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마.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예고 가결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예천 윤우식 생가 등록조사보고서( )

218 예천 윤우식 생가 조사보고서 1. 명 칭 : 예천 윤우식 생가 2. 용 도 : (현) 주거시설 (원) 주거시설 3. 소 재 지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소 유 자 : 윤철재 ᄋ 현소유자 주소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1리길 5.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목조 ᄋ 준 공 일 : 1575년 무렵 건립, 1922년 중건 ᄋ 대지면적 : 6,550m2 ᄋ 건축면적 : 안채/92.68m2, 사랑채/64.8m2, 사당/ 22.5m2 ᄋ 연 면 적 : m2 ᄋ 층수(높이) : 3동 1층 6. 조사자 의견( ) < 문화재위원(한국건축사)> 1) 개요 ᄋ 죽호( 竹 湖 ) 윤섭( 尹 涉 : )이 건립한 가옥으로, 파평윤씨 집성촌인 신풍마 을에 자리잡고 있음 ᄋ 이 가옥은 소유자의 숙조부인 남석( 南 石 ) 윤우식( 尹 雨 植 : )의 생가이기도 한데, 윤우식은 항일운동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순국하였고 2004년 광복절에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음 ᄋ 이 가옥은 2012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선정되었으나 현상변경기준안 공람 시 인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인해 소유자가 지정신청을 철회하였고, 이 후 등록문 화재로 신청함 ᄋ 건립 년대는 1575년경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원래 70여칸에 이르렀던 것을 1922 년 화재를 당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하여 중건하였음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고택은 경사진 대지위에 동향하여 자리잡고 있는데, 사랑채 전면에는 낙동강을 바 라다 본다 는 뜻으로 망락당( 望 洛 堂 )이란 현판을 걸어 두었음 ᄋ 정침은 ㄴ자형 건물인 사랑채와 ㄱ자형 건물인 안채가 튼 자형의 배치를 이루 고 있으며,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사당이 자리잡고 있음 ᄋ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ㄴ자형 건물인데, 평면은 중문칸을 중심으 로 우측에는 거래방 1칸을 두고 좌측에는 사랑마루 1칸과 사랑방 2칸으로 이루어진 사 랑공간을 연접시켰으며 사랑마루 뒤쪽으로는 두지와 외양간, 고방을 각각 연접시 켜 좌익사를 이루게 하였음. 사랑채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는데, 전면 의 원주 하부에는 팔각형의 짧은 하층주를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으며 퇴칸 의 전면에는 평난간을 세운 헌함을 설치하였음 ᄋ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임.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19 는 웃상방을 우측에는 2통칸의 안방과 부엌을 두었는데 부엌의 전면으로는 익랑 방 2칸을 연접시켜 우익사를 이루게 하였음. 안채 좌측의 웃상방 전면에는 마루 방 1칸을 두었는데, 바닥은 대청보다 다소 높게 설치하여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대청쪽으로는 3분합문을, 좌측면에는 2짝 미서기 유리창문을 설치하였음 ᄋ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정침의 우후측에 자리잡고 있 음. 원래 사당의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두르고 전면에는 일각문을 세웠다 하나 현재 담장과 일각문은 멸실된 상태임. 내부는 3칸을 통칸으로 처리한 후 바 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음. 정면 가운데칸에는 쌍여닫이 판장문을, 양측칸에는 외여닫 이 판장문을 설치하였으며 양측면에는 광창을 설치하였음. 가구( 架 構 )는 5량가의 이익공( 二 翼 工 )집임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현재 소유자 내외가 거주하면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임 ᄋ 안채 우측면에 시멘트 블록으로 보일러실을 설치하는 등 일부 변형된 부분이 있 으나, 구조체 자체가 변형된 것은 없음 ᄋ 습기 등으로 인해 부식된 부분들이 있기는 하나, 이는 배면의 사면 정비와 잡목 제거 등 주변정비로 해결할 수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문화재 인근지역은 경북도청 이전사업이 진행 중에 있으며, 경북도청 신도시 예 정구역과 접하고 있음 ᄋ 마을 주변에는 죽고서원, 죽호정 등 고가들이 있고 하회마을도 가까이 있어, 이 들과 연계하여 활용 가능할 것으로 사료됨 5) 등록가치의견 ᄋ 죽호( 竹 湖 ) 윤섭( 尹 涉 : )이 1575년경에 건립한 가옥이나, 1922년 화재를 당 한 후 원래 70여칸이었던 것을 규모를 줄여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음 ᄋ 고택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하여 29세 순국한 남석( 南 石 ) 윤우식( 尹 雨 植 : )의 생가로서, 윤우식은 2004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ᄋ 전반적으로 근대적인 요소는 발견할 수 없으며, 중건년대를 기준으로 하여도 등 록문화재의 요건에 충족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윤우식이 태어난 집인 것을 분명하지만, 입향조인 죽호( 竹 湖 ) 윤섭( 尹 涉 : ) 이 초창한 건물이므로 예천 죽호고택( 醴 泉 竹 湖 古 宅 )이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개요 ᄋ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했던 남석( 南 石 ) 윤우식( 尹 雨 植 : ) 의 생가로서, 경상북도 도지정문화재로 예고하였으나 현상변경기준안 마련시 인근 지역인 예천군 호명면, 안동시 풍천면 일원이 경북도청 이전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개발기대로 인해 인근주민의 반발로 지정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등록문화재로 신 청함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220 ᄋ 낙동강이 내려다 보인다는 의미의 고택인 망락당( 望 洛 堂 )은 안동에서 예천방향 으로 들어오는 916번 지방도(지풍로) 너머로 넓은 평야를 건너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동향 배치되어 있으며, 민도리 홑처 마의 팔작지붕 구조로 경북지역의 전형적인 ᆨ형의 안채와 ᆫ형의 사랑채가 만나 ᆷ형 을 이루고 있음 ᄋ 마을로 들어오는 좁은 길을 따라 고택 바로 앞에 작은 연지와 정원이 있고, 낮 은 축대위로 사랑채가 올려다 보이고 있음. 사랑채는 중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택호가 걸려있는 사랑마루 1칸, 사랑방 2칸이, 우측으로 작은 사랑 1칸이 있음. 안채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건너다락과 방을, 우측으로는 안방과 부엌 을 두고 부엌 전면으로 온돌방이 연접하여 있음 ᄋ 사당인 죽호사( 竹 湖 祠 )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2익공 홑처마의 一 자형 맞배지 붕 건물임. 정면은 자연석 기단을 사선방향으로 어긋지게 3단을 쌓은 후, 덤벙주 초를 두고 그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고택은 현 거주자가 생활의 편리성을 위해 부엌을 시멘트 블록으로 확장보수하 여 보일러실로 사용 중이며, 안채 건너방 다락의 외벽체도 일부 변형된 것으로 판단 되지만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사료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 환경 ᄋ 인근 지역인 예천군 호명면, 안동시 풍천면 일원이 경북도청 이전사업 진행 중임 ᄋ 경북도청 신도시 예정구역 인근 지역으로서 하회마을 등과 근거리에 있으며, 고 택 주변의 죽고서당 등과 연계하여 경북의 유교 및 건축 문화측면에서 의미있는 유 적으로 활용 가능한 것으로 사료됨 5) 등록가치의견 ᄋ 고택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을 조직하여 29세 순국한 남석( 南 石 ) 윤우식( 尹 雨 植 : )의 생가로서, 윤우식은 2004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음 ᄋ 경상북도의 전형적인 ᆷ형의 고택 및 사당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개 조하여 변형된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경상북도의 전형적인 가옥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음 ᄋ 근대기 독립운동가의 생가이며, 경상북도의 전형적인 ᆷ형의 고택 및 사당으로서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예천 윤우식 생가 < 문화재전문위원(건축역사)> 1) 개요 ᄋ 죽호고택은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은 파평 윤씨의 동족마 을이 형성되어 있음. 파평 윤씨 신풍 문중은 연산군의 폭정을 피하여 청주로 이 거하였고, 죽호( 竹 湖 ) 윤섭( )이 이곳으로 다시 이거하여 세거지를 형성하 였음. 1575년경 건축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건물은 1922년 화재 후 규모를 줄여 중건한 것이라고 함(도지정문화재 지정예고 참조) ᄋ 안채 정침 용마루 양단부 망와에는 開 國 五 百 三 十 二 年 壬 戌 이라는 명문이 있

221 어 임술년을 기준으로 보자면 1922년에 본 가옥의 전면적인 중건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또한 사당의 경우에도 암막새 일부엔 崇 禎 五 年 壬 申 四 月 이라는 명문 이 있는데, 숭정5년은 1632년으로 본 가옥의 초창 시기로 전해지는 1575년 이후, 죽호 공이 돌아가시고 아들인 탕신( 湯 臣 )대에 사당이 건립되었을 것으로 생각됨. 다만, 현재의 사당은 기단과 부재 및 형식으로 보아 원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 며, 암막새는 사당의 중건 시 원래 있었던 것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음 ᄋ 현재는 파평윤씨 신풍문중의 15대 주손이 이철재(봉서)옹 부부가 거주하고 있으 며, 주손의 작은 할아버지인 남석( 南 石 ) 우식( )은 항일운동단체인 무명 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다 순국하였음(2004년 광복절 건국공로훈장 추서)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본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가 口 자 몸채를 이루고 있고, 몸채의 동쪽에 사당이 배 치되어 있음. 가옥의 몸채는 높은 기단위에 배치되어 있고, 몸채의 전면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음 ᄋ 정면 5칸의 몸채 전면은 사랑공간으로 사랑대청(1칸), 큰사랑방(2칸), 중문(1칸), 작은사랑(1칸)이 연이어 있음. 안채는 2칸 안방과 1칸 안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익사가 사랑공간과 연결되어 있음. 건넌방의 경우 원래 1.5칸과 0.5칸의 툇마루로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앞으로 1칸의 마루방을 꾸며놓았다. 안방 측면에는 2.5칸의 부엌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아래 2칸의 아랫방이 있어 전형적인 영남지역의 口 자형 공간구조 형식을 보여줌 ᄋ 구조형식은 안채와 사랑채 모두 5량 구조이고 팔작지붕으로 마감되었으며, 좌우 익 사는 3량 구조로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고 있음 ᄋ 사당은 5량구조로 맞배지붕인데, 좌우 합각면에 합각판을 댐. 초익공 형식으로 3분변작 을 기본으로 가구를 구성하였음. 비교적 이전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려 한 것으로 생 각됨. 전면에 퇴칸을 구성하지는 않고 내부에 4대 봉사를 위한 제향기구를 모두 갖 추고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죽호고택의 초창 원형은 어떠하였는지 알 수는 없음. 그렇지만 1922년 중건된 이후 모습은 비교적 잘 보존된 것으로 생각됨. 안채 부엌과 아랫방 후면으로 보 일러실을 증축한 부분이 있지만 원래 모습을 복원하는데 어려움은 없음. 안채 건넌방의 마루방 역시 원형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데, 현 종손의 증언에 의하 면 한국전쟁 당시 폭격 이후라 하였으므로 이 역시 복원에 어려움은 없을 것임 ᄋ 본 가옥은 그 규모가 비교적 작고 가옥 주변에 큰 나무와 잡목이 많이 있는 까 닭에 안마당에 접한 안채와 높게 자리잡은 사랑채 모두 습기에 쉽게 노출되어 있 음. 따라서 많은 부재들이 노후화하고 부분적으로는 썩은 상태이고, 서까래 이상 지붕구조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본 가옥은 영남지역 소규모 口 자형 반가의 전형적 모습을 잘 지니고 있으며, 주 변 환경 역시 파평 윤씨 동족마을로 전통마을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편이 음. 다만, 본 가옥을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있어 마을사람들의 반대가 매우 심하고 민원이 많기 때문에 보존에 어려움이 있는 편임. 그렇지만 종손의 입장 에서는 가옥을 잘 지키고 보존하려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함. 도청 이전에 따른 개발영향이 마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됨

222 5) 등록가치의견 ᄋ 본 가옥은 마을의 입향조이자 파평윤씨 신풍 문중을 현양하였던 죽호공 윤섭이 초창하였다고 전하며, 1922년 화재로 인하여 중건하였던 것으로 추정됨. 중건 당 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 문화재로서의 건축적 가치가 있고, 비지정 가옥으로 마을의 역사문화 환경을 보존하는 데에 문화재 지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 됨. 그 외에도 본 가옥은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 단체인 무명당을 이끌었던 지도자 남석 윤우식 선생이 태어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함. 무명당 6명의 지도자중 1인이 었던 선생은 1933년 9월 이 지역 대중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투쟁을 전개하였으 며, 1934년 일제에 의하여 조직이 발각되어 재판도중 사망하였음 ᄋ 이와 같은 항일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에 대한 조사가 선행될 필요가 있 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문화재로 등록하는 데에 충분 할 것으로 생각됨 ᄋ 특히, 경제개발의 논리아래 많은 문화재가 멸실되고 역사문화 경관이 쉽게 훼손 되어 가고 있는 현 시점에 본 가옥과 같이 건축적 역사가 분명하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을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본 가옥은 마을의 입향조인 죽호공이 초창한 것으로 전하는 까닭에 죽호고택이 라 불림. 마을과 본 가옥을 관련하여 명칭을 정하자면 현재와 같이 예천 죽호고택 이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임 ᄋ 그렇지만 초창 당시의 건물은 이미 1920년대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재 가옥은 1922년 중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또 본 가옥에서 일제 강점기 항일단체인 무명당 을 이끌었던 남석 윤우식 선생이 태어나고 또 항일활동을 하였던 것을 고려한다 면 남석 윤우식 생가를 병기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됨

223 안건번호 근대 거창 구 자생의원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경상남도 거창군 소재 거창 구 자생의원 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 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된 거창 구 자생의원 에 대하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거창군수(경남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103)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거창 구 자생의원 ᄋ 소 재 지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283-6외 4필지 ᄋ 소 유 자 : 거창군 ᄋ 수 량 : 3동(본관+주택/ 1층, 단층병동/ 1층, 복층병동/ 2층) ᄋ 면 적 -대지면적 : 952m2 -건물현황 구 분 건축면적 연 면 적 건립시기 건축구조 본관+주택 m m2 1954년 목조 단층병동 52.89m m2 1954년 목조 복층병동 72.73m m2 1963년 철근콘크리트조 (3)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검토의견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224 ᄋ 문화재위원(단국대학교 교수, 건축사) - 지역 의원급 의료시설 중 의원, 주택, 병동의 구성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온 유산으로 의료사적, 건축사적 보존가치가 있음 ᄋ 문화재전문위원(동아대학교 교수, 근대건축) -거창자생의원은 50년대 초 건축된 거창지역의 의료시설의 효시로서 보존 가치를 고려할 때 등록가치는 높다고 볼 수 있으나, 의원본관 및 주택 동, 1층 병동, 2층 병동의 경우 각각 건립연대가 상이하고 보존상태 또 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바, 이들 건축물 중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선별하여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사료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거창 (구) 자생의원의 본관동 및 사택동은 지역사회 의료시설로서, 그 원 형이 잘 남아있는 매우 의미있는 건축물임 -다만, 병동부는 노후화되고 형식적으로 환자의 일시적 거주를 위한 여인 숙과 유사한 주거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바, 문화재 등록의 범위는 본관 동 및 사택동으로 한정하여 등록하는 것이 타당해 보임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1954년 건립된 거창지역의 의료시설로써 원형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등록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됨 ᄋ 하지만, 1963년 증축된 병동부분을 등록범위에 포함시킬지에 대한 부분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됨 마. 의결사항 : 조건부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예고 조건부 가결 -대 상 : 본관동, 주택동, 단층 병동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거창 구 자생의원 등록조사보고서( )

225 거창 구 자생의원 조사보고서 1. 명 칭 : (현) 거창 구 자생의원 (구) 거창 자생의원 2. 용 도 : (현) 의료시설 (원) 의료시설 3. 소 재 지 :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283-6외 4필지 4. 소 유 자 : 거창군 ᄋ 현소유자 주소 : 경남 거창군 거창읍 중앙리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본관+주택/ 목조, 단층병동/ 목조, 복층병동/ 철근콘크리트조 ᄋ 준 공 일 : 본관+주택/ 1954년, 단층병동, 복층병동/ 1963년 ᄋ 대지면적 : 952m2 ᄋ 건축면적 : 본관+주택/ m2, 단층병동/ 52.89m2, 복층병동/ 72.73m2 ᄋ 연 면 적 : 본관+주택/ m2, 단층병동/ 52.89m2, 복층병동/ m2 ᄋ 층수(높이) : 본관+주택/ 1층, 단층병동/ 1층, 복층병동/ 2층 6. 조사자 의견( ) < 문화재위원(건축사)> 1) 개요 ᄋ 거창군 거창읍 원도심의 중심에 위치한 (구)자생의원은 초대 성수현 원장이후 3 대째 내려온 지역의료기관(의원)으로서 1954년에 건립되었으며, 의원본관, 주택, 병동으로 구성되어 있음 ᄋ 근대의료박물관과 지역생활사 전시관으로 조성 활용코자 거창군에서 매입하여 추 진하고 있음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의원 본관은 목구조에 시멘트기와를 얹었으며, 외벽은 적벽돌 조적 위 인조석 씻 어내기(하부벽)와 시멘트몰탈 뿜칠(상부벽), 내벽은 목재 징두리벽과 상부 회벽으 로 마감되었으며, 바닥은 목재 장마루로 되어 있다.(수술실:타일마감) 창호는 주 로 목재 오르내리기창으로 되어있음 ᄋ 주택은 전통한옥을 바탕으로 일본식 및 서양식이 절충된 목조건물로 지붕에는 시 멘트기와를 얹었으며, 벽은 회벽 또는 벽지마감, 바닥은 목재장마루, 온돌 위 장 판지, 타일(욕실) 등으로 되어있음 ᄋ 단층병동은 각 방(입원실)과 툇마루가 ᆮ 자 형태로 배치되었으며, 마당에 우물이 있고 각 방에는 난방과 취사를 겸한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조적조에 목조지붕 틀과 시멘트 기와를 얹었다(의원 본관과 연결된 단층병동은 슬레이트지붕) ᄋ 복층병동은 인접했던 주택을 매입해 증축한 건물로 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이며, 도 로에 면한 1층 부분은 상가로 임대하였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신청대상 건물 중 본관과 주택, 그리고 단층병동은 비교적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 고 있음. 다만 단층병동의 경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노후화가 매우 심함 ᄋ 신청대상 건물 중 일부 화랑, 상가 등으로 임대하였던 복층병동은 노후화와 변형이 심함

226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거창군에서는 본 신청대상 시설을 거창 근대의료박물관 으로 조성코자 서울대학 병원과 관리 운영에 대한 협약을 맺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 등록 사전심사평가에서 지자체 박물관 건립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등 공립박물관으로 등 록할 예정으로 있어 보존 활용 여건이 우수함 ᄋ 본 시설은 거창읍의 원도심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거창지역의 의료서비 스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거창군민의 집단기억의 보고라 할 수 있음. 거창군에서는 주 변지역과 연계한 군민의 문화휴식 공간, 역사체험의 장으로의 활용을 계획, 추진하 고 있어 보존활용여건 좋음 5) 등록가치의견 ᄋ 지역 의원급 의료시설 중 의원, 주택, 병동의 구성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온 유산 으로 의료사적, 건축사적 보존가치가 있음 ᄋ 종교단체의 의료선교에 의해 설립되었거나 국가 또는 학교(대학)가 설립한 의료시설 로서 지정 등록된 사례는 있으나 개인의원으로서는 등록된 사례가 전무하므로 희소가 치가 있음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거창 구 舊 자생의원 <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1) 개요 ᄋ 1954년 자생의원 본관 및 주택, 일부병동 건립 ᄋ 1963년 2층 병동 증축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근대기 해방이후 건립된 지방의원인 자생의원은 1954년 건립된 의원본관 및 주택 동과 1층 병동, 1963년에 건립된 2층 병동, 차고동 등의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음 ᄋ 1층 의원본관 및 주택동의 경우 의양풍의 변형된 일식기와 목조건축물로 도로 전 면에 수술실을 비롯한 의료공간과 병원동과 마당을 연결하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주택공간으로 형성되어 있음 - 본관병동 출입구는 맨사드형 지붕과 캐노피를 갖고 있으며, 의원내부는 수술실, 대기실, 진료실, 처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닥은 마루판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난방은 난로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됨 - 의원의 내부에는 의료기기, 비품 등이 원형 상태로 남아 있으며 마감상태 또한 양호하게 남아 있어 근대기 지방의원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음 ᄋ 1층 병동의 경우 일식기와 목조병동과 슬레이트 지붕의 목조병동이 ᆮ 형으로 배 치되어 있으며 툇마루를 통해 연결되어 있음 ᄋ 1963년 증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2층 병동의 경우 철근콘크리트조 기와지붕으로 본관 병동 인근에 위치하고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1층 의원본관 및 주택동의 경우, 형태와 외관 및 내부마감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 여 일부 기능상 변형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원형을 훼손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사 료됨 - 의원부의 외형과 내부공간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음. 특히 내부 마감 및 창호

227 의 경우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공간(X선실)의 경우 용도가 변경되었 으나 외형 및 내부마감 등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추정됨 - 주택부의 경우 내부평면의 변화가 엿보이며, 거실 잔면부와 부엌과 화장실 후면 부의 경우 증축행위로 외관의 변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됨 ᄋ 1층 병동부의 경우 본관에 접한 슬레이트 지붕병동과 일식기와 형태의 병동부로 구성 되어 있으나, 내부평면과 외관 및 형태는 원형을 이루고 있으나 노후화가 심한 상태임 ᄋ 2층 병동부의 경우 내부평면과 외관 및 형태는 원형을 이루고 있으나 노후화가 심한 상 태임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현재 거창군에서는 거창 근대의료박물관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자생병원의 부지와 건 물을 인수하여 활용방안 및 조성계획 용역을 실시하고 있어 문화재로 등록될 경우 그 활용 가치는 높다고 볼 수 있음 ᄋ 인근 지역을 거창의 역사문화 향유 및 관광명소화를 위한 종합정비계획을 준비하 고 있어 역사문화자산 보존에 있어 유익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사료됨 5) 등록가치의견 ᄋ 거창자생의원은 50년대 초 건축된 거창지역의 의료시설의 효시로서 보존가치를 고려할 때 등록가치는 높다고 볼 수 있으나, 의원본관 및 주택동, 1층 병동, 2층 병동의 경우 각각 건립연대가 상이하고 보존상태 또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바, 이들 건축물 중 보존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선별하여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바 람직 할 것으로 사료됨 ᄋ 따라서 현존하고 있는 건축물 중 1954년 건축된 본관 및 주택동의 경우 외형 및 내부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의료시설이 갖는 기능적 공간을 잘 간직하고 있어 등록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며 주택마당에 현존하고 있는 온실을 포함하여 등 록여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음 ᄋ 1층 병동과 2층 병동의 경우 외형과 내부평면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건축물 의 노후화 정도가 심하고 향후 활용가치를 고려할 때 종합계획에 의한 활용에 가 치를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되어 지정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 로 사료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거창자생병원(타 지역 자생병원과의 차별성을 고려)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개요 ᄋ 거창군의 시가지 중심부에 입지한 의료시설로서, 1950년대 교통여건 등을 고려하 면 경상남도 북부 생활권의 지역중심 의료시설이었음. 특히 생활권 측면에서 거 창군뿐만 아니라 무주군 등으로부터 환자가 찾아와 진료를 받았다고 함 ᄋ 거창 자생의원을 운영한 성수현 원장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한 후 부친 이 운영하던 지물상에서 처음 개업하였으나 곧이어 발발한 6.25 전쟁으로 군의관 으로 참전하였으며, 군대에서 얻은 부상으로 의병 제대 후 거창읍 중앙리 번지 주변에서 개업함

228 ᄋ 성수현 원장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야전에서의 외과수술 경험을 바탕으로 거창 과 인근지역에서는 처음 외과수술을 시작한 한국의 전형적인 1세대 외과의로서, 지 역의료서비스에 기여함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자생의원은 크게 1954년 건축된 의원본관과 주택, 그리고 연접한 기존 주택을 병 합하여 증설한 것으로 보이는 수술환자를 위한 1층 병실(건축물 관리대장에는 1954년준공으로 나옴), 1963년 증축된 2층 철근 콘크리트 병동으로 구성되어 있음 ᄋ 건축형식으로 보면 본관동 및 사택동은 동일 구조 및 일체화된 지붕으로 최초 건 축되었으며, 사택동은 별도의 출입구와 마당으로 형성하여 병동부와 분리된 프라 이버시를 유지하고 있음 ᄋ 병동부는 본관동으로부터 좌측으로 ᆮ형의 툇마루 지닌 1층 병동부(목조-기와, 슬레이트 지붕)와 1963년 증축된 콘크리트 2층 병동부가 연접하여 있으며, 콘크 리트 병동부 1층은 가로에 면하여 상업판매시설로 사용되고 있음 ᄋ 의원으로 사용된 본관동은 정면 포치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T형 중복도가 보 이는데, 우측으로 접수 대기공간으로 보이는 영역이 있으며 중복도와 연결하여 대기실이 있고 그 안쪽으로 진료실, 처치실 그리고 약제실이 있음. T형 중복도 좌측으로는 수술실과 X선실, 암실 등이 있음 ᄋ 본관동 바닥은 마루로, 벽체는 징두리벽 위 회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다만, 수술 실은 바닥과 벽체가 타일로 마감되어 위생적 환경 및 수술 후 세척 등을 고려한 타일 마감으로 되어 있음. 특히 수술실 오르내리창 외부에는 망입 방충망을 설치 하여 해충으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고자 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음 ᄋ 진료실 후면으로는 별도의 출입구를 두어 L형으로 복도를 통해 주택 및 안마당 과 연계되고, 반대편으로는 병동부와 연계되는 복도에 간호사실을 두고 있음 ᄋ 병동부는 단기 수술치료 등을 위해 입원한 환자의 거처로서, 마당을 중심으로 툇마 루를 두고 각 실이 직접 연결되어 시골 여인숙을 연상시키는 공간구성을 보여주 고 있는데, 이후 필요에 의해 2층의 콘크리트 병동 및 가로변 상업, 판매시설이 증축 된 것으로 보임 ᄋ 본관동 벽체의 하단부는 인조석 씻어내기 마감으로 줄눈을 넣어 단순하지만 간결 한 마감을 지니고 있고, 그 상부에 시멘트 몰탈 뿜칠로 마감하였음 ᄋ 자생의원의 본관 및 사택동의 건축적 특징으로 미루어보면, 당시의 교통여건 이 나 입지 측면에서 오지인 거창군의 특성을 고려하면, 상당한 건축 및 기술적 수준 을 지닌 기술자를 거창으로 유치하여 건축한 건축물로 판단됨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자생의원 본관동은 포치부 상부의 부재 탈락 등 부분적으로 노후화된 흔적이 보 이지만, 전반적인 보존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판단됨. 다만, 사택동 후면 등 일부 부가적으로 증축된 부분은 철거하여 자생의원 본관 및 사택의 원형적 복원 및 보 존의 필요성이 제기됨 ᄋ 병동부는 일시적으로 환자가 거주하는 시설로서의 형식을 지니고 있고, 아궁이 등을 통해 난방 및 취사 등을 행한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노후화되 어 철거하여 본관 및 사택동의 특징을 잘 보존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사료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을 한 거창 자생의원은, 거창군에서 거창의 근대기 역사문화자원으

229 로서 지역 주민의 의원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보존하면서 활용하기 위하여 활용 방안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12년 3월 부지매입을 완료하여 건축물을 기부채 납 받았음 ᄋ 특히 2012년 (구)재생의원 활용방안 및 기본계획 용역을 완료하고, 2012년 10월부 터 건물 및 주택동 리모델링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중에 있음 ᄋ 2012년 거창군과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역사문화원과 근대의료박물관으로서 활용 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13년 3월 공립박물관 건립지원 사전 심사 승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득함으로서, 2013년 거창 근대의료박물관 개관을 목표로 하 고 있어 자체 활용계획이 진행중에 있음 ᄋ 자생의원은 자생의원이 입지한 거창읍내 산재한 근대건축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활용계획을 수립하면, 거창군의 근대기 역사문화자원의 거점으로서 활용가능할 것으 로 사료됨 5) 등록가치의견 ᄋ 거창 (구) 자생의원의 본관동 및 사택동은 지역사회 의료시설로서,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매우 의미있는 건축물임 ᄋ 특히 건축물 평면형식이 의료시설 및 사택을 목적으로 건축된 실질적인 의료시설 이고, 평면구성 측면에서도 진료, 처치, 약제 및 수술, 그리고 입원 등 제반 시설 이 잘 갖추어진 건축물로 사료되어 문화재 등록을 통하여 보존 및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판단됨 ᄋ 다만, 병동부는 노후화되고 형식적으로 환자의 일시적 거주를 위한 여인숙과 유 사한 주거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바, 문화재 등록의 범위는 본관동 및 사택동으 로 한정하여 등록하는 것이 타당해 보임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거창 (구) 자생의원

230 안건번호 근대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문화재 등록 가. 제안사항 부산광역시 중구 소재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로 등록 신청된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에 대하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것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재단법인대한성공회유지재단(서울시 중구 세종대로19길 16) (2) 대상문화재 ᄋ 명 칭 :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ᄋ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4가 94 ᄋ 소 유 자 : 재단법인대한성공회유지재단 ᄋ 수 량 : 1동(2층) ᄋ 면 적 -대지면적 : 426.4m2 -건축면적 : m2 -연 면 적 : m2 ᄋ 건립시기 : 1924년 신축, 1964년 증축 ᄋ 건축구조 : 조적조 (3) 주요 추진경과 ᄋ : 문화재 등록 신청 ᄋ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ᄋ : 문화재 위원회 검토 -조건부 가결(신청자가 등록 동의서를 제출하는 경우) ᄋ : 문화재 등록신청관련 서류보완 요청 ᄋ : 문화재 등록신청관련 서류보완 제출 -건축물(토지)대장, 건축물(토지)등기부등본

231 (4)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검토의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의견( )> ᄋ 문화재위원(단국대학교 교수, 근대건축사) - 본 건물은 등록문화재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건립 후 86년이나 지난 건물연대로 볼 때 지정의 가치도 충분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청대학 교수, 건축사) - 제단부 아치형 석재 장식 및 천정의 석재 리브(Rib), 창문 및 부축벽의 석재 장식, 부축벽의 단형 쌓기, 처마 장식 등 정교하고 독특한 건축기법 을 구사 따라서 등록문화재로서 등록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됨 ᄋ 문화재전문위원(배재대학교 교수, 건축사) -건축적 가치로서 보다는 부산의 종교사적 측면에서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함 <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 ᄋ 문화재위원(단국대학교 교수, 건축사) -성공회 서울 대성당(1926, 서울시 유형 제35호) 보다 앞서 지어진 로마네 스크 양식의 건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 으며, 부산의 근대종교건축물로서 지정 또는 등록된 건물이 전무하므로 희소가치 또한 큼 - 증축된 유치원 및 출입구, 제의실 부분은 등록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함 ᄋ 문화재전문위원(동아대학교 교수, 근대건축) -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의 경우 역사적 의미, 지역성, 유형적 가치가 우수하고, 특히 근대종교의 변천사를 담고 있어 한국 근대사적으로 의미 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 본 건축물의 등록범위는 본당을 중심으로 1965년 적벽돌을 사용하여 평면 및 벽체를 일부 수평 증축하였던 범위로 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사료됨 ᄋ 문화재전문위원(충남대학교 교수, 건축계획) - 최초 건축 당시에 비하여 마당측 증축과정에서 외관이 부분적으로 훼손 변형되었지만 내부 공간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제대, 종탑, 그리고 방주형 천정구조 등이 지니는 형식적 특징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일제 강점기 건 축된 성당건축으로서 문화재 등록을 통하여 보존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 다만, 등록의 범위는 주랑 및 제단, 종탑 부분으로 하고, 서측 방향으로 증축된 1층 슬라브 구조물은 등록범위에서 제척하는 것이 타당함

232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1964년 증축으로 변형된 부분이 있지만 건립된 지 80년이 넘은 부산지역의 종교시설로 등록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됨 ᄋ 하지만, 증축년도가 명확하지 않은 유치원과 출입구 부분은 등록범위에 포함 시킬지에 대한 부분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됨 마. 의결사항 : 조건부 가결 ᄋ 문화재 등록 예고 조건부 가결 -유치원과 출입구 부분은 등록범위 제외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등록조사보고서

233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조사보고서 1. 명 칭 :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2. 용 도 : 종교시설 3.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4가 소 유 자 : 재단법인대한성공회유지재단 ᄋ 현소유자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19길 건축물 개요 ᄋ 건축구조 : 조적조 ᄋ 준 공 일 : 1924년 신축, 1964년 증축 ᄋ 대지면적 : 426.4m2 ᄋ 건축면적 : m2 ᄋ 연 면 적 : m2 ᄋ 층수(높이) : 2층 6. 조사자 의견 가. 1차 관계전문가 조사의견( ) < 문화재위원(근대건축사)> ᄋ 성공회 서울 대성당(1926, 서울시 유형 제35호) 보다 앞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 식의 건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으며, 부산의 근 대종교건축물로서 지정 또는 등록된 건물이 전무하므로 희소가치 또한 큼. 따라 서 본 건물은 등록문화재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건립 후 86년이나 지난 건물연대로 볼 때 지정의 가치도 충분함 ᄋ 우측 측랑 증축 외에는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나 천장 일부 및 마루바닥의 노 후화가 심하고, 외벽에 바른 페인트 도장으로 통기성이 저하되어 벽돌풍화의 우 려가 있다. ᄋ 협소한 대지조건 때문에 기존 교육관(2층 철근콘크리트조, 1964) 옆에 새건물(사 제관, 사무실) 신축공사를 진행 중에 있어 본 건물과의 부조화, 경관의 훼손우려 가 있으나 본 건물의 보존에는 문제가 없음 ᄋ 주교좌 성당으로 계속 사용될 것이며, 기능의 변경이나 소멸의 우려가 없고, 부 산 근대역사관(1929,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미문화원, 부산시 기념물 제49호)이 가까이 있어 근대역사문화관광 장소로 활용가능성이 높음 < 문화재전문위원(건축사)> ᄋ 부분적으로 증축, 확장되고 마감재가 교체되는 등 개보수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건축원형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며 성당으로 활용되며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되고 있으므로 보존 활용 여건은 양호한 반면에, 대지가 구도심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주변에 건물들이 인접되어 있고 대지 내외의 여유 공지가 부족하여 보존 활용을 위한 주변 환경은 불량함 ᄋ 등록문화재 신청 당시에는 성당 측에서 동의하였으나, 현장조사 당시에는 신부 님이 등록문화재 등록에 부정적 입장을 보임

234 ᄋ 적벽돌조, 로마네스크 양식의 소규모 성당으로 일부 증축, 개보수되었지만 전체 적으로 건축원형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근대 성당의 대부분이 고딕 양식인 상 황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또한 대한성공회 서울본당(1926년 건축, 서울시 유 형문화재 35호) 보다 앞서 건축되었고 건축연혁도 명확함 ᄋ 제단부 아치형 석재 장식 및 천정의 석재 리브(Rib), 창문 및 부축벽의 석재 장 식, 부축벽의 단형 쌓기, 처마 장식 등 정교하고 독특한 건축기법을 구사 따라서 등록문화재로서 등록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단됨 ᄋ 제단부 아치형 석재 장식 및 천장의 석재 리브(Rib), 창문 및 부축벽의 석재 장 식, 부축벽의 단형 쌓기, 처마 장식 등의 정교하고 독특한 건축기법 등록 후에는 가능하면 후에 증축된 측랑 부분을 철거하고 본래의 건축원형 회복이 필요하며, 또한 현재 건축 중인 사제관도 성당의 보존에 적합하도록 건축규모와 형태에 대 한 조정이 필요 < 문화재전문위원(건축사)> ᄋ 1924년 10월 31일 축성된 이후 1964년 7월 26일 다시 20평이 증축되었고 외부 일부 지붕과 종탑이 일부 수리되었음. 원형의 보존 상태는 야호한 편이다. 특히 성당의 골목안 작은 상가들이 철거되어 성당의 모습이 드러나 오히려 성당에 대 한 인식이 더 좋아진 상태임 ᄋ 골목안에 있던 작은 상가들이 철거되면서 성당에 대한 인식성이 좋아졌고 이로 인해 성당에 있던 오래된 수목이 잘 드러나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음. 오래된 성 당의 분위기와 수목 등이 잘 어우러져 있음 ᄋ 소유주는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보존하고자 하여 신청하였으나 후에 철회를 할 의견도 가지고 있어서 의견을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음 ᄋ 대한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은 문화재 등록신청서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기독교 관련 시설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그러나 성당의 건축적 양식이나 평면구성 등 이 수준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움 ᄋ 앱스 뼈대부분의 포인티드 아치(POINTED ARCH), 네이브(NAVE)와 아일 (AISLE)의 단차를 이용한 클리어스토리(CLEARSTORY) 등이 보여지나 수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일부 성당이 지어질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을 잘 보여주 는 것이라고 하겠다. 건축적 가치로서 보다는 부산의 종교사적 측면에서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함 나. 2차 관계전문가 조사의견( ) < 문화재위원(건축사)> 1) 개요 ᄋ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주교좌성당으로 1924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양식의 벽돌조 건물 임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적벽돌 조적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내벽은 몰탈 위 수성도장, 바닥은 목재 장 마루, 천장은 목재졸대 위에 회반죽 마감(제단부)과 합판마감(회중석)으로 되어 있으 며, 제단부 아치는 테두리에 화강석 장식이 되어있고 제단부 앱스의 천장은 석조 리브의 6분 뾰족 보울트로 되어있음

235 ᄋ 평면은 가운데 신랑(Nave)과 우측 측랑(Aisle)만 붙어있어 완전한 바실리카는 아 니지만, 바실리카형식의 공간구조를 갖추고 있음 ᄋ 측랑 끝에 제단과 분리된 감실이 있고, 그 상층부에 제의실, 그리고 그 상부는 종 탑임. 이 부분은 원래 주출입구 현관이 있던 곳이지만 1964년 증축 후 출입구를 옮기고 감실제단을 놓았음 ᄋ 제단은 깊게 들어간 6각 앱스에 성찬란으로 신자석과 구획되어 있음 ᄋ 종탑의 첨탑형태(4각 Broach spire)와 제단 앱스 천장의 석조리브는 국내에서는 매 우 드문 사례임 ᄋ 종탑부의 지붕처마 및 버트레스 상부의 석재장식, 제단 아치의 석재장식 등이 매 우 정교함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우측 측랑과 유치원 및 출입구부분의 증축 외에는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음 ᄋ 천장 일부 및 마루 바닥의 노후화가 심하고, 외벽에 바른 페인트 도장으로 통기 성이 저하되어 벽돌의 풍화가 진행되고 있음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대로에서 은폐된 입지, 협소한 대지조건, 인접한 기존 교육관(사제관)으로 인해 본 건물 과의 부조화, 경관의 훼손우려가 있으나 본 건물의 보존에는 문제가 없음 ᄋ 주교좌 성당으로 계속 사용될 것이며, 기능의 변경이나 소멸의 우려가 없고, 부산 근 대역사관(1929,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미문화원, 부산시 기념물 제49호)이 가까이 있어 근대역사문화관광 장소로 활용가능성이 높음 5) 등록가치의견 ᄋ 성공회 서울 대성당(1926, 서울시 유형 제35호) 보다 앞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 식의 건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으며, 부산의 근대종교 건축물로서 지정 또는 등록된 건물이 전무하므로 희소가치 또한 큼 ᄋ 따라서 본 건물은 등록문화재로서의 충분한 등록가치가 있으며, 건립 후 89년이 나 지난 건물연대로 볼 때 지정의 가치도 있음 ᄋ 증축된 유치원 및 출입구, 제의실 부분은 등록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함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대한성공회 부산 주교좌성당 < 문화재전문위원(근대건축)> 1) 개요 ᄋ 연혁 -1914년 성당대지 구입 (1928년 5월 토지 등기) -1924년 10월 본당 준공(추정) -1965년 7월 본당 일부 증축 -1998년 성당지붕 공사 -2005년 종탑지붕의 수리공사 ᄋ 현황 - 부산성공회( 釜 山 聖 公 會 )는 1906년 1월( 明 治 39 年 01 月 )에 개설되었으며 당시 신도 호수는 내지인( 內 地 人 ) 74명, 조선인( 朝 鮮 人 ) 4명으로 총 78명이었으며 大 廳 町 2 丁 目 에 위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음 < 釜 山 府, 釜 山 府 勢 要 覽, 釜 山 府 (1932)>

236 - 1924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1965년 7월 일부 증축공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1998년에는 지붕 보수공사, 2005년 종탑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인근지역에는 용두산 공원, 부산근대역사관, 부산 지방기상청(부산시지정문화재) 등 다수의 근대 역사시설들이 남아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일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인접건물(구 성화유치원)은 한 국동란 당시 피난민 수용시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알려져 있음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ᄋ 192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공회 부산주교좌 성당은 426.4m2의 대지 위 에 연건평 m2의 화강석과 붉은 벽돌을 쌓은 조적조( 組 積 造 ) 건축물로 외형 은 로마네스크양식을 갖고 있음 ᄋ 최초 내부 평면은 1랑식 장방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64년 7월 증축 시 측 랑이 추가되어 변형된 2랑식 평면구성을 갖고 있음. 별도의 트란셉트(Transept)가 없이 후면부의 챈슬(Chansel)이 일체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는 볼트구조를 강조하는 화강석 장식으로 마감되어 있음. 챈슬(Chansel) 우측편으로는 종탑을 갖고 있으며 1951년 제작된 종이 현재 남아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1923년 발행된 釜 山 府 勢 要 覽 에는 1911년(명치 44년) 이 지역에 성공회 건물과 73 명의 교인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음 ᄋ 한편 현재 성당의 경우 1924년 10월 준공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를 증명할 근거는 부족한 상황이나, 건축물의 양식이나 조형수법, 조적방식 및 화강석의 디 테일 등의 상태를 보아 1920년대 당시에 건립된 건축물로 추측됨 ᄋ 1965년 증축과정(수평증축)에서 평면 및 벽체 원형의 일부가 변형되었으며 1998 년 성당지붕, 2005년 종탑지붕의 수리가 이루어짐 ᄋ 성당 본당의 경우 일부 보수 수리에도 불구하고 본당의 원형 및 내부의 보존 상 태는 비교적 양호한 경우로 근대 종교건축의 역사적, 기술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인근지역에는 용두산 공원, 부산근대역사관, 부산지방기상청(부산시지정문화재) 등 다수의 근대 역사시설들이 남아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일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는 인접건물(구 성화유치원)은 한국동란 당시 피난민 수용시설로 사 용되기도 하였음 5) 등록가치의견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본당 건물은 8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부산경남지역의 종교시설로 지역의 전통과 현대를 잊는 시설로 근대사적, 건축적 의미가 있는 건 축물임 ᄋ 일부 증축부분이 있으나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본당 건물의 관리 및 보존 상 태가 양호하며 관리자측이 본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등록을 적극 원하고 있음 ᄋ 이상과 같은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의 경우 역 사적 의미, 지역성, 유형적 가치가 우수하고, 특히 근대종교의 변천사를 담고 있 어 한국 근대사적으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대한성공회 부 산주교좌성당 본당 건물의 등록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임 ᄋ 다만, 본 시설의 경우 건물에 대한 정확한 건립 연대 및 변천과정, 건축적 특성에

237 대한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ᄋ 본 건축물의 등록 범위는 본당을 중심으로 1965년 적벽돌을 사용하여 평면 및 벽 체를 일부 수평 증축하였던 범위로 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사료됨. 특히 본당 후면에 연결되어 증축한 유치원 부분은 건립년도가 명확하지 않으며, 적벽돌 구 조인 본당의 외관과도 이질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지정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할 것임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본당 < 문화재전문위원(건축계획)> 1) 개요 ᄋ 부산의 원도심부 대청동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1924년 건립된 것 으로 추정되는데, 화강석과 붉은 벽돌 조적조로 이루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당임 ᄋ 대청동은 일본 사신을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연회를 베풀던 곳인 연향 대청( 宴 饗 大 廳 )에서 유래하여, 일제강점기 대청정( 大 廳 町 )으로 불리우다가 현재의 대 청동이 됨. ᄋ 연향대청( 宴 饗 大 廳 )은 1876년 초량왜관이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바뀌면서 철거되 고, 그 자리에 일본인 제1소학교(1912년 4월 1일 개교, 광일초등학교 홈페이지)가 세워졌음.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는 구 일본인 제1소학교(현 광일초등학교, 일본인 제1소학교가 남일초등학교로, 1998년 남일초등학교가 동광초등학교와 통 합하여 광일초등학교가 됨) 운동장과 담장을 맞대고 있음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이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1924년 즈음의 대청정( 大 廳 町 ) 주변상황은 다음과 같음 -1889년 조일통어장정( 朝 日 通 漁 章 程 )이후 거류지내 일본인 인구의 팽창으로 1889 년 12월 복병산과 용두산 사이에 신도로(대청로) 개설 - 통감부 관할 이사청 고시 제9호(1908년 6월 19일) 釜 山 日 本 帝 國 專 管 居 留 地 內 市 街 道 路 區 劃 改 正 에 의해, 전관거류지 북측 경계인 대청정선( 大 廳 町 線 )의 폭 원이 확장되었음 년 12월 19일 광복동, 부산우체국, 대청정을 연계하는 전기철도 시내선이 개설 되는 등 주변지역 확장기이었음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을 건축한 1924년 즈음에는 이미 당시 대청정선( 大 廳 町 線 ) 인근에, 대청정( 大 廳 町 ) 복병산 중턱에 금강사( 金 剛 寺 )가, 남측으로 대곡파 본원사( 大 谷 派 本 願 寺, 1878년 건립), 묘각사( 妙 覺 寺, 1881년 건립), 본파본원사별원 ( 本 派 本 願 寺 別 願, 1902년 건립) 그리고 일본 메소데스트부산교회( 日 本 日 本 メソデ スト 釜 山 敎 會 ) 등이 자리잡고 있었음 ᄋ 이러한 대청정( 大 廳 町 ) 주변의 종교시설 환경에서,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일본성공회 부산성당으로서 건축되어졌으며 이후 일본인 사제관과 수녀 숙소가 건 축되어짐(사진자료 참고; 대한성공회 백년, p.90. 조마가 주교의 부산 일본성 공회 방문 Bishop Trollope visits the Japanese congregation in Pusan; 부산성 당 구내에 일본인 사제관 또한 수녀들의 숙소가 건축) ᄋ 1946년 이후 한국인을 위한 부산 대청동 교회의 활동이 이루어짐(사진설명자료 캡션참조 : Church of the Holy Family was built as a church for Japanese. Korea work started in 1946 when Japanese left Korea). 2) 건축 양식 및 주요 특징

238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 떠 만든 성당 제단과 종탑, 방주 형상의 천정 및 목조마루 등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최초 네이브(nave)와 제단(apse)으로 구성된 1랑식 장 방형 평면이었으나, 마당으로부터 서측으로 진입하여 U turn 하여 동측 제대방향으로 진입하는 진입 형식을 지니고 있었음. 다만, 주출입구 형태는 부산 일본성공회, 해 방 후 군인교인, 그리고 현재의 모습이 모두 다름 ᄋ 1964년 마당방향으로 측랑을 증축하였으며, 그 결과 내부 단면구성이 북측의 벽 체와 증축을 통해 확보된 남측의 측랑이 비대칭 구성을 지니고 있음. 증축과정에 서 해방 후 출입구는 2차 훼손되어지고, 현재의 출입구가 형성된 것으로 보임 ᄋ 종탑 석재 아치 상부의 교회명판이 경다위, 김재헌 신부시절에는 있었으나 현재 에는 없으며, 특히 김재헌 신부시절 사진은 출입구 아치의 형상, 비례, 높이 및 재료 등으로 미루어보면 다른 성당의 사진으로 보여짐 ᄋ 지붕재료는 마름모형상의 재료이었으나 현재는 샌드위치 패널로 변경되어 있으 며, 제대 상부 지붕재료도 변경되어 원형 확인이 필요함 ᄋ 종탑은 붉은 벽돌 조적조 벽체 상부에 목조 구조체를 얹고 종을 매달고 있음 3) 원형보존 변형 및 노후화 상태 ᄋ 1924년 건립 추정 당시 기준으로 보면, 측랑의 증축과 내부 공간구조의 변형, 지붕재 료의 변경, 성당 주출입구 변형 등이 있었음 ᄋ 성당 내부의 주랑(nave) 및 제단(apse), 종탑 부분의 공간구조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ᄋ 주랑 및 제대 상부 지붕재료 이질적이어서 개보수의 필요성이 있으며, 내부 천정 은 수리과정에서 원형 확인이 필요함 4) 문화재 보존 활용 여건 및 주변환경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어 보존 및 활용 여건은 양호한 것으 로 사료됨 5) 등록가치의견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은 일제강점기 대청정( 大 廳 町 ) 인근에 건축된 일련의 종교시설중 하나로서 일본성공회 부산성당으로 건축되어졌으며, 1946년 이후 한 국인을 위한 부산 대청동 교회의 활동이 이루어졌음 ᄋ 최초 건축 당시에 비하여 마당측 증축과정에서 외관이 부분적으로 훼손 변형되었 지만 내부 공간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제대, 종탑, 그리고 방주형 천정구조 등이 지니는 형식적 특징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일제 강점기 건축된 성당건축으로서 문 화재 등록을 통하여 보존 활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됨 ᄋ 다만, 등록의 범위는 주랑(nave, 1964년 증축된 측랑 포함, 스테인드글라스가 포 함된 벽면까지 등록) 및 제단(apse), 종탑 부분으로 하고, 서측 뱡향으로 증축된 1층 슬라브 구조물은 등록범위에서 제척하는 것이 타당해 보임. 또한 향후 문화 재 등록 후 본당의 서측 입면을 보이도록 현재의 슬라브 구조물을 철거하고, 본 당의 조적조와 색채, 재질이 가장 유사한 재료로 출입구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 해 보임 6) 기 타(등록시 문화재 명칭 등에 관한 사항) ᄋ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부산 구 일본 성공회성당) - 최초 건축당시 의미를 반영하여 부산 구 일본 성공회성당을 괄호삽입, 또는 설 명문에 기술하는 방안 검토

239 안건번호 근대 등록문화재 명칭변경(안) 검토 가. 제안사항 등록문화재의 명칭 부여 지침 제정(예규 122호, )에 따라 국민 누구나 문화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존의 등록명칭을 일괄 변경하고 자 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ᄋ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등록된 문화재의 명칭을 등록문화재의 명칭 부여 지침 에 따라 국민 누구나 쉽게 문화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통일성 있게 변경하고자 함 다. 주요내용 (1) 검토대상 : 등록문화재 549건 중 205건(건조물 171건, 동산 34건) (2) 추진경과 ᄋ : 등록문화재 명칭 부여 기준 마련(예규로 고시안함) ᄋ : 등록문화재 명칭변경 기초조사 의뢰(지자체) ᄋ : 지침(안) 의견조회(각 부서 및 지자체 의견조회 완료) ᄋ : 지침(안) 공공언어 감수완료(국립국어원) ᄋ : 지침(안) 외부전문가 검토회의 ᄋ : 지침(안) 문화재위원회(근대문화재분과) 검토 ᄋ : 등록문화재의 명칭 부여지침 제정(문화재청 예규 122호) ᄋ : 등록문화재 명칭변경(안) 외부전문가 검토회의 문화재위원,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문학박사 라. 검토기준 (1) 일반원칙 ᄋ 한글표현 및 띄어쓰기를 원칙으로 함. 단, 의미가 왜곡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240 경우 괄호에 한자나 영문으로 표기 가능(고유 명칭은 붙여 쓰기 가능) ᄋ 인물명은 역사인물인 경우에만 사용토록하고 이름 뒤의 명칭, 직위는 생략 ᄋ 명칭에 약칭은 사용하지 않음(단, 이미 널리 알려져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경우 에는 약칭사용 가능) ᄋ 앞뒤의 단어가 별개 독립된 경우 및, 앞뒤의 단어가 연관이 있는 경우 와, 단어가 3개 이상 나열되거나, 같은 계열의 단어 사이 등의 경우 ᆞ 를 사용하여 부여 ᄋ 등록 명칭에 조사 의, 의존명사 내 등은 사용하지 않음 ᄋ 명칭에 접두사 구( 舊 ) 를 사용할 경우 고유 명칭 앞에 사용하거나 구체 적인 대상이 명확한 경우에는 구체적인 대상 앞에 사용 ᄋ 명칭이 2개 이상인 경우에는 등록 명칭은 1개만 부여 (2) 건조물 표기원칙 ᄋ 등록명칭은 소재지+문화재 명칭으로 함. 시 도(시 군 구) + 문화재 명칭, 시 도(시 군 구) + 리 동(마을) + 문화재 명칭 고유 명칭에 지역명이 포함되거나, 국가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이거나 이를 포함하는 경우, 2개 이상의 지역에 걸쳐있는 경우는 지역명 생략 가능 ᄋ 고유 명칭이 과거와 현재가 다를 경우 널리 알려져 있거나 문화재의 특징이 잘 반영할 수 있는 명칭을 사용 ᄋ 고유 명칭이 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아 부적합한 경우에는 문화재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 ᄋ 가옥 등 등록문화재(건축물)의 고유 명칭이 없는 경우에는 문화재의 건축적 형식이나 특징, 용도 등을 감안하여 부여 (3) 동산 표기원칙 ᄋ 일반적인 경우에는 유물명 만을 부여 ᄋ 장소적 의미나 발견된 장소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경우에는 소장처(소재지)명 + 유물(명), 발견장소 + (발견) +유물(명) ᄋ 소장자 또는 특정인물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소장자(개인 단체 기관) + (소장) +유물(명), 인물명 + 유품 유물(명) ᄋ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는 사건명 + 유물(명) (4) 기타 참고원칙 ᄋ 이미 등록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명칭은 현재 명칭을 유지. 단, 명칭의

241 대표성이 결여되거나 새로운 사료의 발견으로 변경이 필요한 경우는 제외 ᄋ 명칭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이해 관계자 간에 분쟁의 우려가 있는지 확인하고, 기타 행정적 교육적 제반 여건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 마. 검토의견 < 근대문화재과 의견> ᄋ 검토대상 205건 중 분리 등록이 필요한 여수 추도 사도마을 옛 담장 1건을 제외하고 204건을 변경 예고하고자 함 ᄋ 2007년 11월 30일 등록된 제367호 여수 추도 사도마을 옛 담장 은 추도와 사도가 직선거리 약 1km정도 떨어진 별도의 섬으로 분리 등록이 필요하므 로 추후 검토하고자 함 바. 의결사항 : 원안 가결 ᄋ 원안 가결 ᄋ 출석 10명, 찬성 10명 붙임 : 등록문화재 명칭 변경(안) 1부

242 등록문화재 명칭변경(안)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1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 서울 남대문로 약칭, 지역명 한국전력공사 사옥 2 서울 종로구 화동 구 경기고교 서울 구 경기고등학교 약칭, 지역명 3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심슨기념관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약칭, 지역명 4 대구 동구 효목동 조양회관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지역명 대봉동 구 대구사범학교 5 대구 중구 본관 및 강당 6 충북 청주시 청주대성고등학교(구 청주 상고) 본관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 지역명 중복 청주 대성고등학교 본관 1개 명칭통일 월 명 칭변경등록 7 충북 옥천군 옥천 삼양리 옥천천주교회 옥천천주교회 지역명 중복 9 충북 청주시 문화동 우리예능원 청주 문화동 화양절충식 가옥 문화재 특징, 지역명 11 서울 중구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서울 구 국회의사당 지역명 12 서울 노원구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13 서울 동작구 14 서울 서대문 구 대방동 서울공업고등학교 본관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본관과 교사 서울공업고등학교 본관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파이퍼 홀 16 광주 동구 전남도청 본관 광주 전라남도청 구 청사 17 광주 동구 광주 서석초등학교(본관, 체육관, 별관)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 별관 체육관 18 대전 동구 충청남도청 대전 충청남도청 구 청사 문화재 특징, 지역명 중복 지역명 중복 지역명, 띄어쓰 기 도청이전, 지역 명 명칭나열 표기 방법 도청이전, 지역 명 명 칭변경등록 20 대전 동구 조흥은행 대전지점 구 조흥은행 대전지점 ' 구' 명칭 27 강원 화천군 화천 인민군 사령부막사 화천 인민군사령부 막사 띄어쓰기 36 경남 통영시 구 통영청년단회관 구 통영청년단 회관 띄어쓰기 39 제주 서귀포 시 남제주 비행기격납고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 띄어쓰기 46 강원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 삼척 도계역 급수탑 지역명 47 충북 영동군 추풍령역 급수탑 영동 추풍령역 급수탑 지역명

243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48 충남 논산시 연산역 급수탑 논산 연산역 급수탑 지역명 51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 급수탑 밀양 삼랑진역 급수탑 지역명 52 서울 중구 서울시청 청사 서울특별시청 구 청사 53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회관 서울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회관 현재 서울도서 관으로 사용 지역명 55 충북 청주시 충북도청 본관 청주 충청북도청 청사 약칭, 지역명 57 충북 옥천군 옥천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띄어쓰기 59 충북 영동군 영동 노근리쌍굴다리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띄어쓰기 60 충남 논산시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띄어쓰기 61 전북 김제 죽산면 구 김제시 일본인농장 사무소 62 전남 목포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구선교사사택 65 충북 제천시 제천엽연초생산조합 구 사옥 74 전남 고흥군 소록도 성실중고등성경학교교사 구 75 전남 고흥군 구 소록도갱생원 원장관사 김제 죽산리 구 일본인 농장 사무소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제천 엽연초생산조합 구 사옥 소록도 구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 구 소록도갱생원 원장 관사 띄어쓰기 띄어쓰기 띄어쓰기 띄어쓰기 띄어쓰기 지역명, 한글표 77 경기 파주시 경의선 구 장단역지 파주 경의선 구 장단역 터 현 경의선 장단역 죽음의 파주 경의선 구 장단역 지역명, 구 표 79 경기 파주시 다리 죽음의 다리 현 추가 84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고희동 가옥 서울 원서동 고희동 가옥 지역명 명칭변경 85 서울 종로구 계동 배렴 가옥 서울 계동 배렴 가옥 지역명 87 서울 종로구 홍지동 이광수 별장터 서울 홍지동 이광수 별장 터 지역명 89 서울 종로구 평창동 박종화 가옥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 지역명 90 서울 종로구 홍파동 홍난파 가옥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지역명 91 서울 성북구 돈암장 서울 돈암장 지역명 92 서울 성북구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93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 생활관 94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본관(중앙5개 박공부분 건물에 한함) 96 광주 북구 전남대 인문대 1호관 서울 의릉 구 중앙정보부 강당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생활관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1호관 지역명 약칭, 지역명 지역명, 명칭개 선 약칭, 지역명

244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97 광주 북구 광주교대 본관 광주교육대학교 본관 약칭 99 대전 동구 한전대전보급소 한국전력공사 대전보급소 약칭, 띄어쓰기 100 대전 중구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101 대전 중구 충청남도 관사촌 103 울산 울주군 울산 언양성당 본관 및 사제관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 대전 충청남도청 구 관사 호와 부속창고 울산 언양성당 본관과 사제관 '구'명칭 도청이전 명칭나열 표기 방법 명칭변경 현 명칭유지 107 강원 춘천시 춘천문화원 춘천 강원도지사 구 관사 문화재 특징 110 강원 화천군 화천꺼먹다리 화천 꺼먹다리 띄어쓰기 112 강원 철원군 금강산 전기철도교량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지역명, 띄어쓰 기 117 전남 함평군 함평 천주교회 함평천주교회 띄어쓰기 118 전남 함평군 함평군 월호리 282번지 가옥 및 창고 함평 월호리 일식 가옥과 창고 119 전남 영광군 영광 법성리 일본식여관 영광 법성리 일식 여관 121 전남 구례군 구례 구 방광국민학교교사 구례 구 방광국민학교 교사 문화재 특징 일본식 일식 띄어쓰기 띄어쓰기 129 전남 나주시 영산포 등대 나주 영산포 자기수위표 명칭오류 130 전남 장흥군 장흥 예양리 8번지 가옥 장흥 예양리 일식 가옥 문화재 특징 131 전남 장흥군 장흥 기양리 48번지 가옥 장흥 기양리 일식 가옥 문화재 특징 133 서울 서대문 구 서대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 134 서울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 아뜰리에 135 서울 영등포 구 영등포 구 경성방직 사무동 서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 서울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서울 영등포 구 경성방직 사무동 지역명 지역명, 외래어 표기 지역명 136 서울 서대문 구 신촌역사 서울 구 신촌역사 ' 구' 위치 변경, 지역명 137 강원 철원군 구 철원 제2금융조합 건물지 철원 구 제2금융조합 건물 터 '구'명칭, 한글 표현 145 경남 창녕군 남지철교 창녕 남지철교 지역명 추가 146 광주 광산구 광주 장덕동 527번지 가옥 광주 장덕동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148 경남 산청군 산청 금서면 민재호 가옥 산청 특리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150 경남 통영시 통영 문화동 配 水 시설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한글표현

245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151 경남 밀양시 밀양 교동 손병구 가옥 밀양 교동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152 경남 밀양시 밀양 퇴로리 이병수 가옥 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155 제주 제주시 구 제주도청사 구 제주도청 청사 한글표기법 157 제주 서귀포 시 158 광주 남구 159 광주 남구 남제주 구 대정면 사무소 남제주 구 대정면사무소 띄어쓰기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 홀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 홀 160 강원 철원군 철원 수도국지내 급수탑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 161 강원 춘천시 춘천 소양로 천주교회 춘천 소양로천주교회 163 강원 횡성군 횡성 풍수원 성당 구 사제관 횡성 풍수원성당 구 사제관 띄어쓰기 띄어쓰기 의존명사, 우리 말 표현 ~성 당 등 붙 여쓰기 ~성 당 등 붙 여쓰기 166 강원 태백시 구 태백 등기소 구 태백등기소 띄어쓰기 168 대전 동구 철도청대전지역사무소 재무과 보급창고(3호)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170 전남 여수시 제일은행여수지점 구 제일은행 여수지점 171 서울 종로구 이상범 가옥 및 화실 172 전북 전주시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 및 본관 포치 서울 누하동 이상범 가옥과 화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구'명칭 '구'명칭, 띄어 Tm기 명칭나열 표기 방법, 지역명 명칭나열 표기 방법 스탠다스차 타드 은행 현 명칭유지 177 전북 부안군 구 부안 금융조합 구 부안금융조합 띄어쓰기 181 전북 익산시 182 전북 군산시 익산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및 창고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익산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와 창고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 183 전북 군산시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 군산 신흥동 일식 가옥 185 전북 김제시 김제 증산법종교 본부영대 및 삼청전 김제 증산법종교 본부영대와 삼청전 명칭나열 표기 방법 지역명, 띄어쓰 기 띄어쓰기, 표기 통일 명칭나열 표기 방법 현 명칭유지 현 명칭유지 186 전북 김제시 김제 구 백구 금융조합 김제 구 백구금융조합 띄어쓰기 187 전북 김제시 김제 신풍동 일본식가옥 김제 신풍동 일식 가옥 띄어쓰기, 표기 통일 191 전북 진안군 진안 강정리 전영표 가옥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196 경남 창원시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별관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별관 띄어쓰기 198 경남 창원시 구 마산헌병 분견대 구 마산헌병분견대 띄어쓰기 203 경남 거창군 거창 정장리 최남식 가옥 거창 장정리 양식 가옥 문화재 특징 화란식 주택

246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익산 주현동 구 익산 주현동 구 일본인 209 전북 익산시 일본인농장 사무실 농장 사무실 띄어쓰기 211 전북 익산시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농장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212 전북 정읍시 정읍 영주정사 및 영양사 정읍 영주정사와 영양사 띄어쓰기 명칭나열 표기 방법 214 전북 정읍시 정읍 관청리 조재홍 가옥 정읍 관청리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현 명칭유지 215 전북 정읍시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농장 가옥 정읍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띄어쓰기 218 경북 봉화군 봉화 유곡리 김직현 가옥 봉화 유곡리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219 전북 김제시 김제 신풍동 손효성 가옥 김제 신풍동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220 전북 김제시 김제 종신리 황병주 가옥 222 전남 곡성군 곡성 삼기우체국(구 삼기면사무소) 김제 종신리 한일절충식 가옥 곡성 구 삼기면사무소 문화재 특징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224 전남 순천시 순천 별량농협창고 순천 별량농협 창고 띄어쓰기 225 전남 순천시 순천 옥천동 서한모 가옥 순천 옥천동 일식 가옥 문화재 특징 226 전남 보성군 227 전남 고흥군 229 서울 종로구 233 충남 공주시 보성 벌교 농민상담소(구 별교금융조합) 고흥 풍양농협(구 풍양지소 금융조합) 서울 북촌문화센타(구 민형기 가옥)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가옥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 고흥 구 풍양금융조합 서울 계동 근대 한옥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235 경북 울릉군 울릉 도동리 일본식가옥 울릉 도동리 일식 가옥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문화재 특징 띄어쓰기 띄어쓰기, 표기 통일 237 서울 중구 구 대법원청사 서울 구 대법원 청사 지역명 238 서울 중구 구 미국문화원 서울 구 미국문화원 지역명 250 서울 용산구 한강철도교 서울 한강철도교 지역명 253 경북 영천시 영천 과전동 성용환 가옥 영천 과전동 일식 가옥 문화재 특징 256 경북 청도군 청도 풍각면사무소 청도 구 풍각면사무소 264 전남 강진구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강진 한골목 옛 담장 2005년 신청사 로 이전 병영은 면단위 행정구역임 265 전남 담양군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옛 담장 담양 삼지천마을 옛 담장 지역명 중복 268 서울 성북구 최순우 옛집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지역명 269 서울 동대문 구 청량리역 검수차고 서울 청량리역 검수차고 지역명 주변이 한 골목 이라 불림

247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270 대구 동구 반야월역사 대구 구 반야월역사 ' 구' 명칭 271 경기 포천시 구 천주교 포천성당 천주교 구 포천성당 ' 구' 표기위치 변경 273 충북 제천시 제천 엽연초 수납취급소 제천 엽연초수납취급소 띄어쓰기 276 전북 정읍시 정읍 나용균 생가 및 사당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명칭나열 표기 방법 현 명칭유지 277 경남 거제시 거제 학동 진석중 가옥 거제 학동 근대 한옥 문화재 특징 279 전남 완도군 청산도 상서마을 옛 담장 282 전남 신안군 흑산도 사리마을 옛 담장 283 전남 신안군 비금도 내촌마을 옛 담장 완도 청산도 상서마을 옛 담장 신안 흑산도 사리마을 옛 담장 신안 비금도 내촌마을 옛 담장 지역명 지역명 지역명 284 경북 상주시 상주농협협동조합 구 창고 상주농협 구 창고 명칭오류 285 경북 칠곡군 구 왜관터널 칠곡 구 왜관터널 지역명 289 경북 문경시 문경 구 금융조합사택 구 문경금융조합 사택 문화재 특징 292 경북 경주시 경주 우안 양수장 경주 우안양수장 띄어쓰기 293 경북 청도군 청도 이호우 이영도 생가 청도 이호우와 이영도 생가 303 대구 동구 대구 동촌역 대구 구 동촌역사 명칭나열 표기 방법 역사만 등록, 구 표기 321 충남 서산시 서산 동문동 성당 서산 동문동성당 띄어쓰기 323 충남 논산시 구 강경노동( 勞 動 )조합 구 강경노동조합 한글표현 324 충남 논산시 구 한일( 韓 一 )은행 강경지점 328 부산 서구 구 경남상업고등학교 본관 329 부산 서구 한국전력공사 중부산지점 (구 남선전기)사옥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부산 구 경남상업고등학교 본관 부산 구 남선전기 사옥 한글표현 지역명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330 부산 동구 부산 정란각 부산 수정동 일식 가옥 문화재 특징 335 대전 유성구 대전 수운교 종각 및 범종 대전 수운교 종각과 범종 337 충남 논산시 강경 화교학교 교사 사택 강경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 명칭나열 표기 방법 명칭나열 현 명칭유지 338 충남 서산시 서산 상홍리 공소 서산 상홍리공소 띄어쓰기 339 충남 부여군 부여 신동엽 가옥터 부여 신동엽 가옥 터 띄어쓰기

248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340 전남 목포시 342 서울 마포구 348 서울 마포구 목포 중앙교회(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미몽(일명 : 죽음의 자장가) 시집가는 날(일명 : 맹진사댁 경사)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미몽 시집가는 날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349 부산 동구 부산 초량동 일식가옥 부산 초량동 일식 가옥 띄어쓰기 350 충북 청주시 주성교육박물관(구 청주 공립보통학교 강당) 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351 충북 청주시 대성여자중학교(구 청주대학교) 강당 청주 대성여자중학교 강당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57년 이후 사용 352 충북 청주시 구 충북산업장려관 청주 구 충북산업장려관 지역명 353 충북 청주시 충청북도지사 관사 청주 충청북도지사 구 관사 지역명 변경 고시 357 서울 종로구 장면 가옥 서울 명륜동 장면 가옥 지역명 358 서울 광진구 구의정수장 제1 2공장 서울 구의정수장 제1 2공장 지역명 359 부산 남구 재한유엔(UN)기념공원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 지역명, 한글표 현 363 서울 강서구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364 충남 부여군 구 홍산저포조합 본점 367 전남 여수시 여수 사도 추도마을 옛 담장 369 서울 노원구 서울산업대학교 대륙관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부여 구 홍산저포조합 본점 지역명 지역명 분리등록 후 명칭 변경 분리등록 별도의 섬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광산학과 교사 역사성 고려 구 명칭 현재 과기대 373 경북 포항시 포항 오덕리 근대한옥 포항 오덕리 근대 한옥 띄어쓰기 375 서울 종로 국군기무사령부 본관(구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 376 부산 부산진 구 377 대전 중구 대전 대흥동 뾰족집 380 전남 신안군 서울 구 국군기무사령부 본관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구 성지곡수원지 부산 구 성지곡수원지 지역명 신안 가거도(소흑산도) 등대 382 서울 용산구 데니(O.N.Denny) 태극기 383 경기 하남시 대전 대흥동 화양절충식 가옥 문화재 특징 6.25이후 군 부대사용 신안 소흑산도 등대 1개 명칭통일 공식명칭 데니(Owen N. Denny) 태극기 미 해병대원 버스비어(A. 버스비어(Anderson. W. W. Busbea) 기증 태극기 Busbea) 기증 태극기 395 충남 천안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태극기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외국인 이름 표기방법 통일 직위 등 생략 표기방법통일 띄어쓰기 396 서울 용산구 이승만대통령 의전용 세단 이승만 의전용 세단 직위 등 생략

249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397 서울 용산구 박정희대통령 업무용 세단 박정희 업무용 세단 직위 등 생략 398 서울 노원구 박정희대통령 의전용 세단 박정희 의전용 세단 직위 등 생략 402 서울 중구 구 신아일보사 별관 서울 구 신아일보 별관 지역명 405 경북 김천시 김천 부항지서( 釜 項 支 署 ) 망루( 望 樓 ) 408 경기 연천군 연천 유엔(UN)군 화장장시설 김천 부항지서 망루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한글표헌 한글표헌 411 충북 청원군 국산 1호 항공기 '부활' 부활( 復 活 ) 유물명만 부여 412 서울 중구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 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 직위 등 생략 413 서울 마포구 서교동 최규하 대통령 가옥 서울 서교동 최규하 가옥 직위 등 생략 427 인천 중구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지역명 428 서울 용산구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439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혈의( 血 衣 ) 일괄 충남 천안시 백범 김구 인장 金 九 之 印 서울 구 용산철도병원 본관 김구 혈의( 血 衣 ) 일괄 김구 인장 김구지인( 金 九 之 印 ) 지역명 직위 등 생략 직위 등 생략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인장 金 九 김구 인장 김구( 金 九 ) 직위 등 생략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인장 寬 和, 金 九 之 印, 白 凡 김구 인장 관화 김구지인 백범( 寬 和 金 九 之 印 白 凡 ) 직위 등 생략 441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회중시계 김구 회중시계 직위 등 생략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유묵 韓 美 親 善 平 等 互 助 김구 유묵 한미친선평등호조( 韓 美 親 善 平 等 互 助 ) 직위 등 생략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유묵 愼 其 獨 김구 유묵 신기독( 愼 其 獨 ) 직위 등 생략 서울 용산구 백범 김구 유묵 思 無 邪 김구 유묵 사무사( 思 無 邪 ) 직위 등 생략 444 전남 광양시 구 광양읍사무소 구 광양군청 문화재 특징 445 서울 서대문 구 알렌의 진단서 알렌(Horace N. Allen) 진단서 446 서울 서대문 구 알렌의 검안경 알렌(Horace N. Allen) 검안경 448 서울 서대문 구 에비슨의 수술장면 유리건판 필름 에비슨(Oliver R. Avison) 수술장면 유리건판 필름 450 서울 서대문 구 분쉬의 외과도구 분쉬(Richard Wunsch) 외과도구 표기방법 통일 조사삭제 표기방법 통일 조사삭제 표기방법 통일 조사삭제 표기방법 통일 조사삭제

250 등록 번호 지역 시군구 문화재명 명칭변경(안) 변경사유 비고 452 서울 종로구 은제이화문탕기( 銀 製 李 花 文 湯 器 ) 453 서울 종로구 은제이화문화병( 銀 製 李 花 文 花 甁 ) 454 서울 서대문 구 456 강원 동해시 458 서울 은평구 462 충북 청원군 464 서울 용산구 유제화형촛대( 鍮 製 花 形 燭 臺 ) 동해 동부< 구 삼척개발(주)> 사택 및 합숙소 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 은제 이화문 탕기( 銀 製 李 花 文 湯 器 ) 은제 이화문 화병( 銀 製 李 花 文 花 甁 ) 유제 화형 촛대( 鍮 製 花 形 燭 臺 ) 동해 구 삼척개발 사택과 합숙소 서울 진관사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 띄어쓰기 띄어쓰기 띄어쓰기 1개 명칭통일 역사성 고려 장소적 의미 소재지구체화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L-4 L-4 연락기 유물명만 부여 연락기) 휴전협정 조인시 사용 책상 482 서울 종로구 배설 만사집( 輓 詞 集 ) 483 서울 종로구 배설 유품 489 서울 중구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유물 휴전협정 조인 책상 배설(Ernest T. Bethell) 만사집( 輓 詞 集 ) 배설(Ernest T. Bethell) 유품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 495 서울 서대문 구 러들로 흉판 러들로(Alfred I. Ludlow) 흉판 499 서울 노원구 전국체육대회 우승기, 2위기, 3위기 전국체육대회 우승기 2위기 3위기 502 전북 정읍시 필야정 시지( 必 也 亭 試 紙 ) 정읍 필야정 시지( 井 邑 必 也 亭 試 紙 ) 503 서울 동대문 구 청강 김영훈( 晴 崗 金 永 勳 ) 진료기록물 김영훈( 金 永 勳 ) 진료기록물 의존명사 삭제 외국인 이름 표기방법통일 외국인 이름 표기방법통일 띄어쓰기 외국인 이름 표기방법통일 명칭나열 장소적 의미 소재지구체화 직위 등 생략

251 보 고 사 항

252 보고사항 안건번호 근대 사적 제281호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현상변경 허가사항 변경허가 보고 가. 보고사항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재 사적 제281호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관사 신축을 위한 현상변경 허가사항 변경신청에 대한 처리결과를 보고하고자 합니다. 나. 보고사유 ᄋ 본 건은 월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현상변경 심의를 거쳐 허가된 사항으로 이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사항 변경허가 신청이 있어 검토한 결과 경미한 변경으로 판단되어 자체 허가 처리하였음을 보고함 다. 보고내용 (1) 허가받는 자 : Ahmad Y.Al Barrak(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 1동 36-37) (2) 대상문화재명 : 서울 중앙고등학교 본관(사적 제281호) ᄋ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 (3) 허가사항 :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 관사 신축 ᄋ 사업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1-6 ᄋ 접수/허가일 : / 기존 허가내용( ) ᄋ 규모 : 지상2층(본관), 지하1층 지상 2층(별관), 지상1층(부속동) -구조 / 높이 : 철근콘크리트 구조 / 8m -대지면적 / 건축면적 / 연면적 : 4,120.40m2 / 1,590.66m2 / 3,700.16m2 변경 허가내용( ) ᄋ 규모 : 지하1층 지상2층(본관), 지하 1층 지상2층(별관), 지상1층(부속동) -구조 / 높이 : 철근콘크리트 구조 / 8m -대지면적 / 건축면적 / 연면적 : 4,120.40m2 / 1,590.66m2 / m2 (4) 이격거리 : 당해 문화재로부터 30m 마. 의결사항 : 원안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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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52D2D31342DC0CCB0E6C0DA2E687770> 중국 명문가의 가정교육 * - 先 秦 에서 淸 末 까지- ** 1) 李 庚 子 1. 머리말 2. 孝 悌 를 통한 질서의 확립 3. 德 을 통한 품성 수양 4. 立 志 를 통한 자아 확립 5. 맺음말 1. 머리말 교육의 일차기관은 가정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가정의 문화를 배우고 사 물의 바른 질서를 배우며 그 사회와 시대의 문화 양식을 먼저 익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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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9E9BCAD31B1C72DC0DBBEF72D32B1B32E687770>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백서 (상) 발 간 사 2005. 1. 출범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그 소임을 다하고 2년 동안의 활동을 마치면서 그 동안의 성과를 담은 백서를 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고 보람된 일로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의 사법제도에 변화와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기본적인 틀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적지 않은 문제점과 한계를 내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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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금산 은 상위의 중부방언에 속한다. 충청남도의 핵방언권 중 (A)지역, 즉 충청 남도의 남부이며 전라북도와 주로 접경을 이루는 방언권이다. 그중 충청남도의 최 남단에서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 금산 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 다. 금산 지역이 전라북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어 문화 등 제반 교류의 가능성 을 엿볼 수 있고, 이는 곧 금산과 전북방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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