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리 연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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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리 연의(1) Haianja Deok Jo yu

2 소개글 전통적 의리사상에 대한 검토

3 목차 1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7 2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3 3 성선설 97 4 간재사상연구 99 5 보편선언 개인적 삶의 반추-생활유학, 가학유자의 전통을 생각한다 유학에 대하여---유학의 출발법 유교 동이족 문명 제물론 경이에 대하여 시종에 대하여 미학의 변전 홍익인간설 물채와 문채 오늘날의 유자 춘추학사글(2) 새로운삶의 양식 춘추학사글(1) 유교적삶의 양식 감성의 유교윤리 유교국가 한국 무본에 대하여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 (1)진실을 느낌 유교경전-치명적인 그무엇 민족의 길 한국 생활유교의 실체 문화경쟁력과 전통주의 169

4 26 회화적 상황-형상성의 문제 인에 대한 질의-인의 다면성 명명덕 사서의 바다-맹자 진심장구 학문론의 방향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유교는 문명사적 성과를 반영한다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경전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1)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상황적 사유와 보편적 사유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동아시아 사상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논어의 해석학적 새지평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한국인의 지적 함정 (3) 사상사적 함정 한국인의 지적 함정(2) 역사인식의 함정 한국인의 지적 함정에 대하여 (1)민족성론의 함정 유교에 대한 오해들 새로워짐의 의미 256

5 51 생활인으로서의 학문과 귀족주의적 학문은 무엇이 귀중한가 시세론 경전문헌 공부 순서 우리시대 경전의 의미와 해석의 도법 기초적 사유 직업윤리와 인격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시론> 민족문화론 <시론>민족이란 무엇인가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동작 그만 유학적 사유에 대한 전망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이상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오만하지 않다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와 전통-연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시아와 유럽의 축도- KoreaJapan Worldcup 2002/사우디 중국 일본 한국과 유럽 유교비판과 여성론의 문제상황 보편적 사유로서의 유교 경전과 역사, 사상에 대한 최근의 상념 시세론 한자적 사유(1) / 그 필요성에 대하여 국가전략론 요의 유교와 동이족-동이는 오랑캐인가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324

6 76 유교관계 기사 송출량 분석 1999~ 유교의 역사 - 효의 사상사 세계화 시대의 유교 일반사유와 경전적 사유(2)-텍스트적 삶의 의미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문명전사를 기다리며 유교에 접근하는 두 길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유교에서의 경험문제 Free Paging 사서삼경 동양학의 일반문제(1)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유교 쓰기 일반 사유와 경전적 사고(1) 최근의 경전 해석 논란들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시청소감 역사 교과서의 역사성 최근의 논어해석 예들에 대한 소견 겅전적 사고와 일상의 상념 경전 독법:어떻게 읽을 것인가-보편성,확신의 형성과 자유사고 377

7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41 의리의 기원과 전망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유교연구소 유 덕 조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7

8 의리란 진실을 배우는 삶이다 -Haianja the haianist- 목 차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8

9 서문 술회 배경 여설 제1장 의리 연의 1.의리란 무엇인가 2.의리의 새로운 모색 3.인과 의리의 범주 4.인의 병칭의 의미 제2장 춘추좌전의 의리 제1편:의리의 일어남 제2편:의리의 전개 제3편:의리의 전성 제4편:의리의 변전 제3장 주역의 의리 제1편 주역상경 제2편 주역하경 제4장 공부수첩 1.책상의 주변 2.최근의 주요메모 에필로그 서 문 이 글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교정신의 에센스를 담담히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유교는 내면적 으로 면면히 이어와 오늘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유력한 현실적 사상의 실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유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9

10 교정신이 우리의 정신임을 적극 받아들이고 확신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본질이 상당정도 곡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본령은 형식에 주로 있지 아니하며 진리와 진실에 접근하는 일반 인생의 방식(General Style of Life )으로서 그 길에서 얻은 체험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보편적 삶의 실체일 뿐이다. 예컨대 예( 禮 )란 형신( 形 身 )과 사사로움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적극적이고 역설적인 지혜의 방책이다. 형식문제에 창조적으로 순응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수신의 노력이다. 고전의 논리와 어법 그리고 명분과 의리의 실제 모습을, 처음 발생했던 당시대 현장에서 생생히 살펴봄 으로써 자연히 유교적 정신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두에 약간의 논설을 전개하고, 춘추 좌전과 주역의 내용을 소개하고 서술하여, 추체험이 가능한 설명을 가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이 되고 자 하였다. 이 책에서 도표와 그림을 다수 넣었다. 인터넷 상의 검색을 통해 많은 자료를 사용하였다. 그림을 올려주 신 네티즌들에게 아울러 특별한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일일이 감사를 올리지 못한 점을 양해해주실 것 을 정중히 청한다.(그림-주석표기하였음) 이 글을 이 땅의 소박한 생활인들에게 바친다. 초야에 있는 이들 가운데 보석처럼 빛나는 고전적 삶을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일반생활인이다. 큰 성취를 이룬 분들은 더욱 아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서 한 두 권에 오로지 의지 해 배움의 삶을 살아온 분들이다. 그들이 진정 유자들이다. 몇 가지 술회 사람은 삶이란 내내 배우며 사는 것임을 느낀다. 100년을 살아 100번을 고칠 수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0

11 인 삶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에 둘째 외숙으로부터 가정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당히 이견을 들은 적 이 있었다. 수신제가의 어려움은 참으로 큰 것이지만 이 모든 가정적 어려움은 결국 나의 부족함에 기인 하였으므로 무슨 말씀인들 달게 받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외숙은 나에게 나도 학자다. 라는 반어법적 명구를 나에게 남기셨다. 그는 소싯적에 아버님에게 명심보감을 배웠고 지금 70이 넘은 연세에도 이를 애독하시고 또 생활 속에 대화로 풀어 쓰시는 분이다. 나는 그 말에 문득 크게 공감했다. 그 같은 자의식이 바로 유자의 삶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나도 학자다 란 표현은 아마도 요즘 말로 치면 반어법으로 네가 학자냐 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외숙의 지적처럼 나의 공부는 지지부진하였다. 돌이켜보면 평생 나의 공부가 아직 크게 미숙 한 것이 사실이고 이룬 것이 없으므로 네가 학자냐 라는 뜻은 나에게 화살처럼 와 닿는 면이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감히 학자라고 자처하지 못한다. 실로 생활로 공부 하시는 분들이 진정한 학자이며 유자임을 느낀다. 공자가 믿음을 가지고 옛 공부를 좋아하였다 하였는데 아마도 믿음이 없다면 공부란 아예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유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배움의 삶을 확신하는 분들이므로 그 믿음의 면에서는 여느 학자가 따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전통적 의미에서 나는 학자다 라고 할 수가 없다. 아직은 분명 사리분별 못하는 백면서생이다. 사 실 절실한 실감이 부족한 공부나 믿음이란 역시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세가 80이 되시는 서광호란 분이 유교연구소로 나를 찾아오셨다. 자신은 평생을 명심보감과 함께 사셨다고 하였다.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대전에 와서 안 해본 일이 없이 살면서도 명심보감 한 권을 애독 하며 의지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8순을 맞으며 잠시 배운 붓글씨 솜씨로 명심보감을 번역 정서하여 이를 책으로 묶어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 교정을 보아 드리면서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역시 진정한 오늘의 유생의 한분인 것이다. 그들 은 바른 독법을 익힐 여유는 없었다. 주경야독하면서 나름대로 그 글들을 그대로 생활하였던 것이다. 나 는 문득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다. 평생 원 뜻을 찾고자 읽는데 주로 몰두해온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들에게 조금이라도 바른 독법의 길을 보여드리면 더 나은 배움의 삶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40여년 경전 공부는 오로지 바르게 읽는 노력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사서오경과 일부 역사서를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으로 보냈으니 어찌 보면 깊이가 부족하고 허무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르게 읽지 않으면 원 뜻을 바르게 알 수 없으므로 바르게 읽는 것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읽은 것을 생활로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배움을 업으로 삼고 있다면 당연히 유학의 의미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와서야 깊이를 따라 읽을 준비가 겨우 된 것이다. 15세에 경전공부를 시작하여 60세가 넘어서야 나는 논어 한 권을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고 하였던 한나라 훈고학자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나는 훈고학 자들의 깊은 근고의 노력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 역시 18세에 읽기 시작하여 60이 넘은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읽는 방법을 조금 알았으니 그 분 들과 유사한 삶을 살기는 살았다. 그러나 고전학자들의 굳은 믿 음의 경지에야 어찌 따르랴. 나는 깨달음과 확신은 약하고 더뎠으니 분명 노둔한 사람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 부는 영민함으로 되는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위로하며 이 글을 쓴다. 나의 경전독습의 경험과 그 결과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1

12 은 담담히 적고 싶어서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가 공부하는 삶을 진정으로 확신할 수 있는지 최종 판단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어느덧 서 있음을 알았다. 끝으로 나는 평생을 죄의식으로 살아왔다. 원죄와 같은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로 인해서 상시 느끼고 생 각돼온 죄의식이다. 아버님을 일찍 여읜 죄의식 불효하였다는 죄의식 무능한 생활인이라는 죄의식 크고 작았던 많은 잘못과 실수 등이 반복적으로 잊혀 지지 않는 삶이었다. 그것은 질곡이었고 나를 극도로 억 압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역시 최근에 나는 모든 선악은 나에게 달렸다는 명제를 생각했다. 나의 내 부에서 그 여부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노력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다. 아마도 그 판단을 내 리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와 가족 사회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삶의 도 리를 다하려는 의식도 아마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가까 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소학에 편안한 삶에 안주하고자 하면서도 의를 향해 변신해갈 수 있다. 는 말 이 있다. 나는 불안한 삶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의를 향해 갈 수 있는가, 를 자신에게 준엄히 묻고 싶 다. 배경 본서의 집필 동기나 기획단계에서 유념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물론 이 밖에도 유학의 역사성이라든가 문화 문명적 특성에 대한 심찰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검토하였지만 가장 공통되고 중심이 되는 항목들 만 요약해 예시한다. 이 글들은 매순간 유교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놓지 않았다. 필자가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 이 순간 까지 지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처음 유학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하여 배움의 중간에 다소 회의가 있은 적도 있었지만 믿음을 버린 적은 없었다. 나의 이 믿음이 과연 유의미한 것인지를 최종적으로 밝힐 수 있다면 최상의 기쁨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아마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유교는 결과적으로 나의 삶을 지탱해준 하나의 유일 한 동력이었으며 이유였기 때문일 것이다. 1.한국유학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한국유학의 현 위상을 직시하고 유학의 미래를 진단하고 오늘에 이 루어져야할 사상적 당위의 전형을 절실하게 모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아니 될 것이다. 2.한국 유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그 최대의 관건이 될 것이다. 3.유학은 원래 생활의 공부이며 삶의 양식으로서 출발한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매우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2

13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4.유학은 진실에 접근하는 절실한 길이다. 철학이나 과학 종교 문학 인문학을 넘어서서 전인적으로 그리 고 직접적으로 진실을 호흡하는 유일한 양식이므로 진실과 일치함으로써 철학과 학문과 예술과 종교의 지평을 넓고 넓게 열어주어야 하는 심오한 사명도 있다. 유교는 삶의 진상에 대한 전인적 접근의 과정이 므로 모든 사상과 문화의 추향과 일치하고자 한다. 5. 전통적으로 유학은 윤리학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외국학자들의 견해였다. 종교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문학적 비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유학은 진실의 학문임을 재확인 할 수 있어야 한 다. 우주의 실체와 인간 생명의 진상을 사색하고 탐구하는 것이 그 본령이었다. 유학은 총체적인 삶의 현 장에서 진실을 느끼고 확인 확증하고 실행하고 응용 창조하는 다차원의 공부다. 이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예를 들어 논어 학이편 1) 弟 子 入 則 孝 出 則 弟 謹 而 信 2) 汎 愛 衆 而 親 仁 3) 行 有 餘 力 則 以 學 文 에서보면 이를 1)제자들이 집안에 들어 효도하고 나가서 공경하면서 삼가 생각하고 신실하게 느끼며 2)널리 대중 을 사랑하여 어진 마음을 가까이 접하여 3)행실 가운데서 배움의 공력이 넉넉해진다면 이것이 바로 배움의 아름다움이리라. 라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이 구절은 오직 윤리적으로 읽어서는 아니 되며 논어의 대부분의 글들이 다 그러하다. 학문( 學 文 ) 글을 배운다고 읽으면, 이전의 내용이 모두 학문( 學 文 )인데 다시 학문을 말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즉이( 則 以 ) 라는 말은 就 是 와 같은 말로 곧..이다 라는 어구로 보아야 한다. 앞의 則 과 뒤의 則 은 용법이 다르다. 경전은 진실을 접하고 배우는 과정으로서 읽어야 하며 윤리성을 그에서 자연 우러나는 것이다. 역시 학이편: 子 曰 : 1) 學 而 時 習 之 不 亦 說 乎 2) 有 朋 自 遠 方 來 不 亦 樂 乎 3) 人 不 知 而 不 慍 不 亦 君 子 乎 에서보면 이를 1)배우면서 익숙히 느껴질 때 기쁘지 않은가 2)친구가 먼데서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 3)사람이 알 아주지 않아도 노함이 없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이는 순수한 기쁨을 추구하는 길이 배움의 길임을 말한 것으로서 1)에서는 배움으로 진실에 다가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3

14 는 기쁨을 말하였고 2)는 삶의 순수한 기쁨을 말하였으며 3)에서는 인격적 자족의 기쁨을 말한 것으 로 읽어야 할 것이다. 논어에서 배움이란 기쁨의 적극적 향유를 의미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고 생각 된다. 삶의 기쁨 배움의 기쁨 그리고 인격적 기쁨은 전연 같은 것임을 설파한 것이다. 무단히 고뇌하며 살 지 말라는 뜻이다.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배우라는 뜻이다. 어떤 것이든 불쾌함은 진정 어두운 삶 의 징조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언제나 기쁨의 진실에 싸여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죽음 과 삶을 초월하여 언제나 기쁜 것이므로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 죽음을 꺼린다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진실을 접하고 나면 그 진실을 다는 몰라도 스스로 노여움이 없을 것이다. 공자의 말씀은 진실과 배움 기쁨이 아닌 것이 없다. 자신의 내외에서 여러 형태의 격함 과 분노의 절제가 바로 극기일 것이다. 5.의리를 주제로 삼아 유학을 대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시종 스스로 자문한 문제였다. 의리는 극기( 克 己 )로 이루어지므로 절제라고 하는 엄정한 어의를 가지고 있다. 그 엄정함은 기쁨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리란 오로지 엄정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엄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밀한 선택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기쁨의 선택이다. 이 점은 맹자의 사생취의장 에서 잘 밝히고 있다. 마음의 수많은 하고자함 가운데 가장 깊고 크고 넓 은 기쁨을 선택하는 과정이므로 의리는 결국 기쁨의 선택이다. 그것이 진정 기쁜 이유는 그 선택이 인 ( 仁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이인장 에서 어질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 고 하였고 이어서 잘 가려서 어질게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 라고 하였다. 의리는 결국 인을 구현하는 방도다. 어짊의 실천적 체계인 것이다. 우리는 인의 세계에 온전히 안주할 수 는 없을 지라도 의를 통해서 무한히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극기할 수는 없을지라도 무한히 극 기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것을 희망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유학은 희망의 공부다. 6.의리를 주로 논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나의 안건이었다. 오늘의 시대는 기술과 물 질의 발전으로 생활의 편의성이 극대화되었으므로 안일함에 기울 위험이 증대하였고 빈부의 격차와 소외 감의 증대로 인해 내외의 갈등이 크게 증폭되고 있으며 사회는 급격한 조직성의 확대를 통해 정치 행정 이외에도 법인 단체 등의 구조적 틀 지워짐 강화되면서 개인의 자유영역이 축소되었고 그에 따라 심정적 정서적 왜곡이 극대화되었다. 이 역시 막대한 좌절과 갈등의 유인일 수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 극기의 노 력이 요구되는 때이며 의리의 강조는 바로 그 절제 요구라는 시의에 맞다. 7.의리란 살아있는 개념이며 고정된 의미에 안주하고 있지 않다. 각 시대의 의리가 나름대로 그 시대를 반영한 역동적 의미를 항시 개척해왔다. 이점을 특히 주목하고자 한다. 의리개념이 살아있다 하는 것은 기존의 개념이 그대로 통용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향해서 확대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시 대이든 살아있는 개념으로서 작용해온 측면을 중심으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리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송대 성리학의 발흥을 말하면서 한-당 시대 1000년의 공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4

15 백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전통시대의 논리는 유교적 고전적 가치관을 준수하여 진전하였는가 하 는 문제를 위주로 생각한 것지만, 고전적 가치관이 묵수되는 것과 새로이 변전하고 강화되는 경향의 사 이에서 이 양자를 구분하여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경우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교적 고전 적 논리로부터 다소 어긋나는 이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넓게 유학의 진전 과정 안에서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당 훈고학 역시 나름대로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시대에 응하는 논 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유학에서 형이상학은 변함없이 추구되었고 그에 기초한 다양한 가치관의 모색도 있었다는 사실 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형이상학이 그 논리적 변전이 미약하였다고 하여 그 사상이 질식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논리의 발전과 내면화의 과정이 교호하여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당 시대는 비록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내면화를 지향했던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고 새로운 논리의 발전은 다음시대를 기약하여야 하였음을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사상이란 반드시 정치한 논리적 구조만으로 전승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새로운 제국의 시대와 융통되고자 한 학문형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8.의리를 중심으로 유학을 논함에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학이 동아시아 보편사상이라는 줄기찬 확신이다. 중국에서 경이롭게 성취된 문헌적 전통이 유교 문헌을 전승하고 유학을 발전되게 한 것은 의 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유교 자체의 성립은 그 문헌적 성취 이전에 혹은 그 바탕에 거대한 동아시아 역사의 다양한 보편 성과와 그 진운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원 땅에서 사상과 문화가 안정을 향하여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면 대륙의 북륙( 北 陸 )에서는 역동적인 활동과 사상과 문화의 전개가 있었다. 중원의 안정화 역사는 이미 은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일정하고 지속적인 문화의 전통이 형성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륙에서는 수많은 나라들이 부침하면 서 사람의 거대한 또 하나의 삶이 이어졌다. 한국과 만주 몽고로 대변될 수 있는 대륙북방엔 만주가 청 나라로 편입되기 전까지 북방의 다양한 민족들이 교섭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영위하였다. 중원과 북륙이 밀접 불가분하게 상호작용해 온 것이 동아시아 역사의 진상이었으므로 그 사상과 문화도 그 틀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대륙에서는 역동적인 삶과 문화 자체가 역사였으며 그 기록이었다. 중원에서는 이를 문자로 정착하여 강 력한 문헌의 역사가 열렸다. 역동의 역사와 문헌의 역사가 상호교섭하면서 형성된 것이 유학이었다고 생 각된다. 우리는 역사가 문헌이나 유물의 형태로 전승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사람의 삶 속에 더 온 전한 역사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생활관습 가치관 사회구조 사람의 정서와 성품 삶의 스타일 등 여러 면모 속에 역사는 더 크게 살아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유학의 탐구가 문헌 텍스트에 매몰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믿는다. 중원이 구조를 위한 역사 가 전개된 반면 대륙에서는 리얼한 삶을 위한 역사가 이어졌다. 구조주의와 삶의 진상 사이의 긴장이 있 었던 셈이다. 유학의 기본 틀도 그 양대 기조 위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유학은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9.유학이 보편사상의 성격과 중원의 문화가 어울려 이루어진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겠는데 중국적 텍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5

16 트의 방대함 자체는 중국적인 특징이다. 그 가운데 빛나는 사상적 개념들은 보편적 특질이다. 문제는 그 사상개념 까지도 구조화되어 보편성을 위협할 소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삼강오륜이나 인의예 지신과 같은 계열화된 개념 그리고 사서삼경 같은 텍스트 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불변의 윤리구조와 문 화 사상구조가 틀 지워져 중국적 가치관을 형성하고 중국유학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이 구조들은 다시 중 국제국의 영향아래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그 전파 현상을 두고 대개는 유교의 수입이라고 이해한다. 사실 은 중국적 형식 구조의 수입이었다. 그것은 유학의 본령과는 많은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유학은 중국적 텍스트와 구조화된 개념들의 내부에 생생히 역동하는 그 무엇일 것이다. 이점을 또한 유의해야 할 것이 다. 9.거시적으로 유학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역사성이나 문명성 등을 따지는 것들이 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개념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유학은 정신적 삶을 위한 것이며 이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리의 탐구는 새로운 본격적인 개념 연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념하였다. 사상사란 결국 개념의 발전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 다양한 사상체계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 이므로 역시 역사적으로 그 개념이 변전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며 이 발전 변동의 사실은 생 각보다 절실하고 또 구체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이 점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같은 문자와 유사한 문맥에서 사용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의미적 상황을 검토해보고 또 사상성을 따져본다면 많은 역 동의 과정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타진하고자 하였다. 10.공부를 하다보면 대개는 자신의 기존의 공부경험이 동원되고 응용된다. 유학을 탐구할 때에도 동서양 역사지식이라든가 일반적 교양과 지식 혹은 서양 철학 등의 학문적 영향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타 학문 이나 문화 사상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편적 가치에 공명하는 의미를 지닌다. 보편성이 야말로 학문이 도달하려는 최종 경지기 때문이다. 다만 유학의 보편성을 위한 길은 매우 독특하고 온전 한 것이라고 믿는다. 유학은 요즘 학문의 입장에서는 아직 기초가 철저히 규명되지 않은 정신생활이라고 규정할 수 있으므로 오직 유학의 내부 논리에서 절실한 체험을 통해 각 개념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전승적 추체험이다. 유학 스스로의 내부연구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의 언어로 역사성 보편성 이 더 뚜렷이 정립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은 그 같은 소박한 내면연구를 위한 것이다. 11.유학의 내면성 탐구란 그 본래의 의미에서는 사실, 자신과의 투쟁이다. 인생의 과정에서 바라지 않는 쪽으로 이끌려 이인된 자신을 회복하고 많은 상처들을 스스로 치유하고 생의 활력을 되찾고 하는 일들이 일반 목적이기도 하다. 과도하게 달려간 도정을 관망하고 교정하며 부족한 부분을 활성화하고 강화하고 하는 일들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의 반성적 삶이 요구된다. 이 반성적 삶은 결국 극기의 노 력과 창조적 해법 사이의 긴장이다. 공자는 술이편에서 덕을 닦지 못함과 배움을 익히지 못함과 의로움을 듣고도 따라가지 못함과 불선을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6

17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근심 이라고 하였다. 공자는 치열한 자아탐구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아른 것 이었다. 일반인들이 이 같은 삶을 따라간다면 분명 성인의 학도이며 성학의 일원일 것이다. 최근에 잠시 본 유교연구소 연구생이었던 박흥일 학인이 찾아와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품이 바뀌고 인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라는 한글 작문을 해가지고 와서 이를 한문으로 지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그가 평생을 나름대로 사려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유학을 접하고 나에게 서 논어 맹자 대학을 읽었다. 아마 그는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평생의 습관대로 이를 스스로 생각하고 재구성하여 글귀를 지은 것이었다. 나는 그가 배움을 응용하는 생활 습관이 매우 뛰어난 것임을 인정하 였다. 그러나 그가 작문해온 것은 이른바 길흉화복의 세속적 관심에 다소 치우친 것이었으므로 그의 작 문을 조정하여 다음과 같이 한문으로 써 주었다. 그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축하할 만한 인생의 한 성취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그가 조화( 造 化 )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易 之 思 之 行 之 化 之 行 之 化 之 由 之 習 之 由 之 習 之 人 之 品 之 人 之 品 之 運 之 命 之 평소의 사심을 바꾸어 생각하면 행실이 자연조화( 自 然 造 化 )를 이룰 것이며 행실이 조화를 이루면 이를 따라서 조화에 익숙해지고 조화에 익숙해지면 인격을 이루고 품격을 이루며 인품이 이루어지면 천운 천명이 따르리라 이 학인 분처럼 스스로 배우고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겪다보면 배움이 깊어지고 넓어 질 것은 당연할 것이다. 배움이란 자신의 삶 자체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배움이란 결국 자신과 의 긴장된 상호작용 이다. 박선생이 지은 글은 요즘 유행하는 리노베이션을 말한다. 사고의 혁신을 말한 것인데 그는 그 혁신적 삶 이 고전 속에 이미 있다는 것을 목도하고 그 기쁨을 글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말 고전이란 역사 를 타고 변함없는 가치를 유지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읽으면 평범해 보이는 말 씀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더욱 공감되는 글들이 많은 것이다. 매일 새로워지라 고 한 대학의 언명 이 역시 그러하다. 항상 매사를 새롭게 느끼라는 말일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일반인들과 경전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느낌이 많았다. 그중에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7

18 여러 가지 양태를 보게 되었는데 의외로 가정생활을 위주로 살아온 여성과 부인들이 남성에 비해 전연 손색이 없으며 경전 수용능력과 이해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었다. 흔히 경전이나 유학은 남성의 학문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었다. 아마 전통시대에 유학이 주로 정치와 연관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본문을 읽고 이해하는 면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순리적인 태도 를 견지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기존의 지식이라든가 평생 공부한 근대적 학문과 교양에 의해서 혹 은 자신의 종교적 성향으로 인해서 순수하게 경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질 문을 들으면 곧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유교 경전을 역시 진리의 서로서 그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감 상을 행하고 이를 자신의 삶 속에서 운용해보는 노력이면 족한 것이다. 그것이 유학의 출발이다. 유학은 매사를 부정적 논법과 견지에서 바라보고 의심하며 공부하는 서양철학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유학은 긍 정의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부면 그리고 변함없는 확고한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 이기 때문이다. 여설 사람은 대개 천성적으로 정당하게 살고자 한다. 그것이 무상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하다는 것은 지적으로 정립되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이 지향해야할 진실이다. 그러나 정당하다는 사실자체 를 생활로서 견실하게 구현하는 일은 범인이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정당하게 살고자 하는 그 추진력의 중심을 외부에 두었을 때는 불안정하거나 지나쳐 마음의 병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정당함의 기준이나 근거는 사실상 자신의 내부에 오직 존재한다. 자신과 진리와 의 거리가 의리의 정당함과 반비례한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진실 공부와 그 감지의 노력과 인격적 수신이 필요하다. 자신이 의리의 유일무이한 준거이기 때문에 결국은 스스로 세워야 하는배움과 수신으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 정당함이 외부와 잘 융통되어야 한다. 순수하고 진정한 최심부 층위의 자아는 보편적 가치가 즉 고유한 천성적 가치가 응축된 것이므로 스스로 개방적이어서 융통 통달의 욕구와 그 본질을 또한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은 역시 자신으로 모두 귀결된다. 이 자아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성이며 성찰일 것이다. 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부동심( 不 動 心 )이다. 그러므로 당당한 자아의식은 모든 의리의 근본이 된다. 그 자아가 무너진다면 아마도 의리의 길을 힘차게 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아와 통달이 의리의 양대 자주일 것이다. 의리가 우주의 진상과 직결되는 것임을 깨닫고 수행하는 데는 오랜 시일이 요구되었다. 역사적으로 경험 적으로 유지돼온 의리의 의미가 그 깊이를 더한 결과이며 특히 기원전 5세기 전후부터 일어난 지적 공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8

19 의 귀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인과 덕 같은 개념이 지적 사유의 중심으로서 모든 학행을 상징하는 것이 었으나 현실의 역사를 헤쳐 나아가면서 학행을 고수하는 일이 지난한 것임을 삶으로 겪으면서 인과 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의리의 개념으로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어질고 덕스러운 일은 좋은 일이나 그에 반하는 강력한 이욕의 도전에 대응하여 배움의 삶을 견지하고 그 결과로서 의리라는 이름으로 이를 수호해 나아갈 때 비로소 인과 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다. 역지사지해보면 비록 이욕이라 할지라도 역시 생명의 욕구이므로 인과 덕과 정반대의 개념은 아니다. 다만 이욕이 정돈되지 못하고 사람의 심혼이 이욕에 끌릴 때 생명적 폭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 로 의와 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설명도 있게 된 것이었다. 의리를 거론 하는 것은 역시 스스로의 삶을 보다 가치화 보편화하고 객관화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와 결 단과 노력의 단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나를 객관화하는 것은 꼭 의리나 인 같은 개념을 통해서 가능할 뿐만은 아니다. 한 장의 인상 깊은 그림이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의 곡조 역시 그 러하다. 나는 또한 어린 시절 할머니의 자애로움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채찍질하거나 나를 질정해온 오 랜 습관이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나 선친의 생전 모습을 상상하거나 꿈에 뵈면서 나 스스로를 다지곤 하 였다. 아마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가 역시 그런데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는 이미 여러 가지 방법으 로 자신을 보다 객관화 하고 넓히고자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자연스런 삶의 일환이기도 하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통의 방식이 언제나 유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성찰함을 교란하는 치명적 인 삶의 요소들이 우리들 내외에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반성적인 삶을 매순간 이어가 기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효과적으로 객관화 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수단이 요구되는 데 그 때 유용한 것이 바로 의리개념이다. 이 한 개념을 의식적으로 스스로 운용하여 확신을 가지고 언제나 소환 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아집에 빠지는 어리석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막연한 자아에 대한 의심 혹은 의문을 넘어서서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생활 속에서 손쉽게 그리고 언 제나 확고하게 견지하면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아울러 있기 때문에 보다 본격적이고 체계적 이며 검증된 것으로서 정통적인 방식이 강력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의리라는 이 단 하나의 개념은 바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굳은 배움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구태여 의리란 무엇인가 하는 명확한 정의가 아직 없어 도 좋다. 의리개념을 마음속에 유지하고 공부하다보면 일상에서 알고 있던 이 뜻이 점점 더 친숙해지고 깊게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에 따라 나를 객관화하는 실효도 증대될 것이다. 그런 기대를 나는 항상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객관화한다 함은 우선은 나의 심신의 균형을 유지함을 말한다. 구체적으 로는 나와 진실 실체 사이의 탐구의 균형이다. 격변하는 오늘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꼭 심오한 형이상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한 공부 중 에 불현듯이 어떤 전율하는 새로움을 절실히 느꼈다면 그 절실함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외의 새로운 각성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한순간 진실과 닿았기 때문이다. 의리란 그런 진실을 느껴 배우고자 함이 다. 스스로 절실함에서 배움은 언제나 요긴하다. 세상에는 많은 배움이 있지만 가장 큰 배움은 역시 그 절실함으로 진실 을 느끼는 의리 를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진정한 배움은 궁극적으로는 결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19

20 국 의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경험으로부터 일상에서 더 새롭게 절감함 에 바탕을 두고 공부해야하는 유학경전 은 의리의 서 라고 볼 수 있다. 경전의 여러 전범을 나의 현재의 경험으로 전환하면서 그 질문을 끊 임없이 유효화해주기 때문이다. 의리란 진실의 절실함을 몸으로 묻고 실감하고 체현함으로 출발하는 것 이 아닐까한다. 나는 최근에야 이 절실함 이 공부와 인생의 진정한 출발이며 끝이고 그 본질임을 알 았다. 나아가 의리는 거시적으로는 오랜 역사 전통 위에서 성립 발전하였으므로 동아시아 역사정신과 문화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화의 격류 속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며 변전하는 삶과 문화의 여건에 비추 어 의리 라는 전통적인 의미를 지금의 시점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삶의 중심을 역사 와 전통과 연관하여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의리정신의 전형적인 의미를 찾고 오늘에 깊이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의리란 의미상 통속적으로는 일견 엄숙하지만 실은 친숙하고 다양한 보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기원적 어의 혹은 넓은 뜻에서 정당함에 대한 사려로서, 의로움의 영역은 생활 일반 외에도, 정치 철학 문학과 예술 스포츠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 이를 수 있고 근본적인 자기성찰 기능을 할 수 있다. 곧 의리란 다름 아닌 순수한 성찰의 최종 결과이다. 성찰은 배움의 삶을 인도하고 무제한의의리의 길을 열어준다. 의리 주역 이란 말이 있듯이 의리예술 의리문학 의리과학 등의 용어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인이 중심에 있는 것은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 문제다. 인이란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공부에 따라 깊 어지고 넓어지는 생성적 개념이다. 일반적으로는 인은 만물의 창조에 가치를 두는 생명의 사상이기도 하 다. 우리가 사랑의 인정인 인을 성찰하지 못한 채로 살아도 좋을 것인가 하는 선택적인 성찰 자체가 바 로 의리의 출발이다. 물론 그 답에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개성이 묻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의리는 바로 개성이며 인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이란 바로 의리의 한 스타일이 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리는 역사의 산물이며 우리 문화의 개성이다. 우리의 개성이라 함은 우리가 인격공동체로서 의로운 정 신을 가장 극명하게 이채롭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역사상 향유하여왔다는 뜻이다. 의롭게 사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든 아니하든 관계없이 우리들 삶의 궤도이다. 이미 우리는 의리의 의미에서부터 일탈할 수 없이 상당정도 의식화 내지 체질화되어 있다. 이를 적극적 자각적으로 재발견함으로써 역사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나라의 근간이며 이 역사궤도를 일탈하고 대성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궤도가 뚜 렷하고 확고할수록 미래를 향한 헤쳐감이 힘차고 당당할 것이다. 바로 역사가 가진 절대적이고 막강한 힘이다. 물론 이는 보편적 양식과 가치를 아울러 온존함을 그 전제적 담보로 한다. 의리는 우리의 삶의 궤도다. 우리는 의리 혹은 의 라는 말을 공사의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현재의 삶 속에 의로움의 개념이 엄연히 널리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의리란 친근하고 일상적인 용어이며 높고 낮은 여러 차원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과 오랜 역사적 전통을 지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의리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20

21 는 일반 생활철학의 실천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각 시대의 사상과 문화를 포괄하고 요약 표현한 것이 므로, 역사적인 개성과 실체에서 나온 역동적인 말이다. 역동적이란 시대에 따라 숨 쉬며 그 질과 내용이 미묘하게 변동 발전한다는 특징을 말하려는 것이다. 의( 義 ) 또는 의리( 義 理 )라고 하면 대개 정의( 正 義 :Justice)와 혼동하기 쉽다. 정의란 말은 우리의 역사적 전통용어는 아니다. 서구어를 번역한 말이므로 의리와는 다소 다른 말이다. 아마 정의 에 의 ( 義 ) 자를 붙임으로 인해서 의리와 혼동하게 된 것 같다. 그 의미상의 혼돈을 없이하기 위해서는 아마 정의( 正 義 ) 를 정의( 正 宜 ) 라고 써야 할 것이다. 바르고 마땅한 것 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의 ( 義 ) 역시 마땅하다는 뜻 에서 시작되었고 의( 宜 )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의( 宜 )와 달라진 것은 역사상 그 어의의 진화가 지속되면서 의미를 심화하였고 차원을 달리하며 시대에 따라 극적인 의미경신 있었기 때문이다. 의리란 옳게 살고자 하는 평소의 정상적인 마음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처음 마땅하다 옳다 아름답다 등등의 뜻으로부터 변동하는 사상사의 발전 과정과 결과를 함축하면서 의리( 義 理 ) 의 뜻으로 고양 진전된 것이었다. 물론 서양의 정의 개념은 서양철학 진리와 연관된 것이며 그 실천적 측면 을 진리와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의의 배경이 되는 진리의 실제 의미는 동아시아적인 도 리와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의리란 동 아시아적 진리와 그 실천적 측면이 미분화된 개념 이라기보다는 상호 융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 의가 표리를 이루며, 즉 그 통합적 본질성은 긴 밀하게 유지하면서, 인과 의가 시의에 따라 적절히 중점을 달리하며 표방 사용되었다. 예컨대 인의가 모두 실천을 전제 로 한 말이지만 공자시대에는 인이 맹자 시대에는 의의 측면이 강조 되었다. 다만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인을 행하는 것은 대개 일상의 범주에 있으며 의를 행하는 것은 보다 특별한 또는 어떤 궁극적 선택적 여건상황의 범주에 있다. 그러나 인의는 매우 일상적인 의미와 고상한 의미를 아우르는 무한정한 것이다. 언제나 결국은 의가 없는 인은 없으며 인이 없는 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 義 理 ) 는 인의( 仁 義 ) 로 병칭되었다. 인이란 변함없이 추구하는 가치 이지만 의 란 단적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 있는 데에서 출발한다. 엄정한 선택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다. 의리란 처음의 원의에서부터 생각하면 도리와 원리에 따라 벗어나지 않고 옳게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의리에는 강력한 원리지향성이 있다. 이 단순한 원의가 보존 유지되면서 자성의 공부로 삶의 이상에 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고래로 항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 앞에 엄숙히 서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을 살아가면서는 자주 까마득히 잊게 되는 것이 또한 의리다. 현실은 가깝고 절실하며 의리는 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 아시아적 관점에서는 우리의 태어남도 바로 의 리 자체이며 살아감 또한 의리의 힘으로 존립하는 것이므로 결국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의리다. 인생은 의리로 시종되는 그 무엇이다. 의리란 무엇인가 상시 생각하는 것은 바로 생의 의미와 깊이를 추구함과 연관된다. 한국 땅에 의리라는 말은 살아 있지만 그 실체적 의미와 가치나 그 역사성 그 깊이 그리고 그 영원한 정 신인 점 등에 대해서는 의식이 부족하다. 이에 여기서 잠시 주요 경전의 구절들과 문헌 역사에 남겨진 유산들을 담담히 재음미하고 의리의 실체를 다각으로 조명하고 재구성 하고자 하였다. 의리의 이해와 관 계되는 발상이나 정의 의미 가치 등을 다시 자유롭게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21

22 부언하면 의리는 우리 민족과 국가를 한국답게 영위하게 해준 민족정신이었다. 국가를 극히 존중한다든 가 부모 가족의 윤리를 지고한 것으로 유지하는 등 한국적 가치를 극명하게 구현해 보인 것이었기 때문 이다. 우리 개개의 삶을 인도해준 견인차였으며 우리 역사와 문명을 이채롭게 한 궁극의 빛이기도 하였 다. 의리는 한국사의 시작이며 끝이고 미래 궤도다. 그러므로 의리는 우리 역사의 이채로운 결단의 성과 이며 역사 가치의 골간을 포괄 함축하는 그런 것이기도 하다. 특히 의( 義 )란 배움의 최종적 결과다. 그러므로 배움으로 얻어지는 이치라는 뜻에서 이( 理 )자를 더하여 의리( 義 理 )라고 한다. 당연히 이 이치란 탐구된 자각적 의미에서는 인( 仁 )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인의( 仁 義 )와 같은 뜻이다. 의리란 또한 삶에서 절감하여 얻는 하늘의 은혜이며 인간 궁극의 지혜다. 의리란 스 스로 열어가는 것이므로 동서고금 어떤 인간사에서도 변함없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지이기도 하 다. 요컨대, 의리란 난폭한 혈기가 아니며 과도한 용기도 아니다. 의리란 날카로운 것이 아니며 모난 것도 아 니다. 의리란 뾰족한 것이 아니며 의리란 좁은 평면도 아니다. 의리란 순간에 번쩍이는 섬광이 아니다. 의리란 굳어 있는 딱딱한 것도 아니다. 의리란 단지 옳은 일일 뿐이지만 높고 깊고 넓은 삶의 진실과 사물의 진상을 꾸준히 담아 충실해진 것이 므로, 그리고 수행으로 회복하여 얻어진 순수한 심혼에서, 혹은 천성적으로 순결한 심성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큰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는 결국 순수한 자아의 회복이며 동시에 그 탐구다. 이제 그 의리의 다양한 의미와 그 본질을 자유롭게 성찰 해보려한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 서문과 배경 22

23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6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의리의 기원과 전망 제1장 의리 연의 1.의리란 무엇인가 의리에 대한 정의 의리란 무엇인가를 명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삶이 무엇이냐 라든가 혹은 사람 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 라고 정 의하였던 것이다. 주자( 朱 子 )는 의는 마음의 제제이며 일의 합당함이요 인은 사랑하는 이치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3

24 라고 정의하였다. 과연 의리란 마음의 제제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당장에 개인적 사리와 사욕에 끌리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합당 하다는 것은 정당 하다는 것인데 그 정당함의 추구는 촌시도 끊임 없이 그리고 무한히 시도하는 데 의미가 있다. 끝이 없는 일이며 또한 절절하게 매순간 확신함으로 이루 어지는 어려운 일이다. 주자의 이 말 속에는 따라서 공자의 가르침이 숨어 있다. 공자는 스스로 진실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옛 공부를 좋아하였다 라고 술회하였다. 공자의 배움의 일생은 결국 진실을 위한 것이었다. 그 진실이란 바로 성선( 性 善 )의 사 실성이며 그 실체를 생생히 느낌이다. 보통 사람이 가지는 삶의 의문과 공자의 의문을 다를 것이 없다. 그 의문을 풀려는 노력에서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생명의 근원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주자의 간 결한 해설은 심중한 의미를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사람은 의욕의 동물이다. 의지가 있고 결단이 있고 창 조력이 있어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허점이기도 하다. 의욕으로 인해 진실과 멀어질 수 있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의 단계에서는 극기의 절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성은 서로 유사하나 습성으로 서로 멀어진다 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하나의 정의를 내려두지 않고는 예컨대 인생의 매 순간 꼭 하지 하지 않을 수 없는 선택을 하여야 할 때 그 선택을 할 수가 없게 된다. 크고 작은 모든 일이 그러하고 어떤 일을 의지를 가지고 수행하고자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그 시점에서 현재로서 가능한 정의를 내리며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의 기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의는 항상 새롭게 구체화되고 경신되는 것이지만 그 정의를 내리는 노력이 게으를 때 우리는 우유부단해지기 쉽다. 정의란 결국은 배움의 노력의 결정이다. 공자가 재여( 宰 予 )에게 진이 빠진 흙으로 된 담장은 흙손질 할 수 없고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 고 질타한 것도 그 같은 뜻에서였다. 잠시의 방심이나 나태함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중히 질타한 데 서 그 깊은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란 상시적인 생활의 태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리란 넓게 정의 한다면 삶의 모든 개개의 가치를 추구함이며 또한 그 총체이고 나아가 모든 의미 있 는 일들의 극한 이다. 의리는 또한 기쁨과 선택과 절제와 결의로 구성되는 모든 아름다움의 감동 이 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오직 절제만이 의리의 절대적 전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자가 맹자 양혜왕 장구 주에서 의리는 마음의 제제다 라고 정의 하였지만 이는 그럴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 모든 의리가 절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제 이전에 있어야 할 것이 있다. 절제란 결국은 기쁨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4

25 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기쁨이란 역시 배움의 기쁨이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 벗이 번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 와 같은 마음의 열락( 悅 樂 )에서부터 비로소 우리는 힘차고 당당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논 어 초두에 이를 앞세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의리는 막연한 선택일 수 없다. 의리는 배우는 자 혹은 배우고자 하는 자의 삶에서 우러나는 것 이며 배움과 관계없는 삶에서는 생성될 수 없다. 또한 거짓의 배움으로는 의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의리는 진정한 학행( 學 行 )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결국 의리의 문제를 마주한다는 것은 배움의 문제를 마주한다는 말과 전연 같은 의미다. 배움 의 삶이 일단 시작되었을 때 진정 의리의 현상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자하가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하리라 한 것은 형식적 배움만이 배움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생의 모든 장이 배움의 장이 기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순리롭고 경건한 삶의 자세 오직 그것이 요긴한 것이다. 그 배움이란 당연히 진실의 배움이다. 배움의 결과로서 하나의 도를 간직하고자 함이다. 마음의 울림을 따라 인 의 예 지를 일으키고 살면서 배워 덕을 이루고 덕을 미루어 도를 간직하게 된다. 그것이 학행( 學 行 )이다. 의리의 여러 의미층위 의리란 맨 처음 의( 義 ) 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의리란 의 로부터 발전되어 쓰이게 된 다양한 어의를 포괄하는 뜻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의리의 의미는 크게 5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제1영역은 적의( 適 宜 ) 선( 善 ) 미( 美 ) 호( 好 ) 등등의 일반적 의미로 쓰이는 부분이다. 의( 宜 ) 의( 誼 )와 유사 한 개념으로 쓰이는 것으로서 의리의 원래의미다. 제2영역은 의리가 사상발전의 맥락을 따라서 새로운 깊이와 의미를 지니게 된 부분으로 인의( 仁 義 )의 뜻 으로 사용된 경우인데 이는 유교 학자들이 정립한 어의이다. 따라서 유교적 세계관 인간관에서 비롯된 어의다. 제3영역은 의리의 보편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의리( 義 理 )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는 유학의 어의를 확대하 여 천리자체를 파악하려는 원대한 의도에서 비롯된 말이다. 제4영역은 의리의 형식적 의미를 드러낸 부분으로 예의( 禮 義 )를 나타낸다. 고대적 삶에서 전범적인 생 활 을 의미하는 데서 연유하였다. 제5영역은 여러 영역적 의미와 관계되면서 매우 특정한 뜻으로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인데 충의( 忠 義 ) 효의( 孝 義 ) 정의( 情 義 ) 정의( 正 義 ) 우의( 友 誼 : 友 義 ) 신의( 信 義 )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의리의 의미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5

26 특별한 지칭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의리의 뜻이 모든 가치와 융통되는 것임을 보 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의리란 동아시아 사상사의 처음과 끝을 포괄하는 장구한 발전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리 이외에도 장구한 발전사를 지닌 어의가 사상사에 허다하게 많지만 예를 들어 의리는 그 발전사의 중핵을 이룬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인 의 예 지 신 가운 데 의리가 그 중심이라는 사실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미 영역의 탐구가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의리논설의 계통성 의리는 절제의 뜻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 용례로 보아도 매우 엄정한 의미를 지칭 할 수밖에 없지만 원래의 의미에서 보면 아름다운 미학적 감성적 개념이다. 양양( 羊 ) 자로 이루어 진 글자 구성( 義 : 羊 我 )에서 그 같은 의미를 살필 수 있다. 아름다울 미 자과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양 자를 공통 요소로 하여 큰 사람을 그리면 아름다울 미 자가 되고 나를 그리면 옳을 의 자가 된다. 사람의 삶과 사상 철학 문화 등 문화나 정신의 측면에서 의리를 정의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리의 사실상 의 중심문제다. 의리가 문헌적으로 명백하게 확인되고 일반의 삶의 중심 지표가 되었던 것은 대체로 춘 추시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춘추시대 지식인의 삶이 의리로 일관되었다는 것은 이미 춘추 이전부터 이루어진 생활 전통의 결과로 보아야하겠지만 의리라는 사상적 권위를 확고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자 이후로 생각된다. 공자 이전의 의리란 신비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주로는 길흉화복의 논리와 연관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 통적 의리가 유지된 것이었다. 이 전통적 의리를 새로운 의리로 정립한 것이 공자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상적 의미를 담은 의리는 공자 이후이며 학습( 學 習 )이라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수립된 이후 의리는 배 움의 삶을 총괄하고 함축하는 위대한 어의를 거느리게 된 것이었다.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개념으로서 동아시아 역사성을 상징하는 일면도 있다. 처음엔 의 또는 대의 라고 칭위되었지만 후일에 이르러 의리 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의리 란 의 와 리 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중 리 는 도리 나 원리 진 리 를 의미한다. 의 가 홀로 완결되는 개념이 아니고 진리나 도의 실체와 긴밀한 것임을 의미하며 인 과 의 가 불가분한 개념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 은 리 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인 의 의 불가분성이 인식된 것은 춘추시대였지만 더 보편적인 개념인 의리 로 정착된 것은 성리학의 시대 이후부터 였다. 중국의 진보적 사상가 대진( 戴 震 : )은 그의 인의예지설( 仁 義 禮 智 說 ) 에서 인은 생생지덕( 生 生 之 德 ) 이며 한 사람의 생을 이루고 이를 미루어 천하와 더불어 생을 이루는 것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6

27 이라고 하였다. 예는 천지의 조리이며 친소 상하의 구별이고 의란 조리( 條 理 ) 절연( 截 然 )하여 불가란( 不 可 亂 )한 것으로 인의 친애 장양( 長 養 )에 부합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지란 인 의 례를 인식 파악하는 능력 이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의에 대해서 조리 절연한 것 이라고 하고 이어서 친애 장양 하는 것이라 는 설명이다. 장양은 인( 仁 )을 말한 것이며 따라서 인과 의는 불가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의 인에 대한 견해나 의에 대한 정의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인의의 불가분성을 말한 것은 공자이래의 확론이다. 현재는 바로 그 불가분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의( 義 )가 인과 불가분한 것일 뿐 아니라 도( 道 )라든가 천명( 天 命 ) 양심본성( 良 心 本 性 ) 이치( 理 致 ) 배움( 學 )과도 불가분한 관계에 있 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철학가 장대년( 張 岱 年 )은 의를 이( 利 )와 상대적 개념으로 보고 이를 중국철학의 중대과제라고 선언하 였다. 유가에서 의를 중시하고 이를 경시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편 의의 관념은 공자 이전에 생겨 나서 공자에 이르러 확립되었다는 설명을 부가하였는데 이는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그 발전과정 을 더 소상히 밝힐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의와 이가 결정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본 것은 일견 합당한 면이 있지만 의의 개념을 이( 利 )와 대립될 뿐 아니라 욕( 欲 )과도 대립되며 과( 過 )와도 대립되는 것으로 광범한 대립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의와 이의 대립만을 중대한 철학문제로 보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자체가 그대로 의과 대립되 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 의미의 이는 인과 같기 때문이다. 의는 그동안의 어떤 논의보다도 보편적이며 강 력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신중하게 논해야 한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자 한다. 논할 수 있는 방향 은 많지만 보다 넓고 보편적이며 전승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의리의 의미적 위상 의리는 동아시아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한 개념으로서 홀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의념 은 아니다. 다른 중심개념과 체계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일반 개념과 소통하는 생동하는 개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전자를 큰 의미 후자를 작은 의미라고 필자는 편의상 부르고 있다. 이러한 복합성은 의리 개념에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다른 중심 개념들도 마찬가지이다. 의리는 사상사를 통해 형성되고 정립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 지적 진보에 따라서 변전 발전하여 왔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통일적인 체계를 이루어왔다. 그 의미적 위상을 크게 분류하면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7

28 1)선천성에 기초한 영역 2)감성적 지적인 이해를 표현한 영역 3)배움의 삶의 영역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제 1영역 즉 선천성에 기초한 영역이란 성선설과 유사한 것으로서 예컨대 맹자의 4단설에서 단적으로 나 타나는 것이다. 인은 측은지심의 발로이고 의는 수치를 아는 마음의 발로이며 예는 사양하는 마음의 발 로이고 지는 시비를 가르는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 의 예 지 등이 그것이다. 제 2영역 즉 지적 감성적 영역이란 덕( 德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삶과 행실 속에서 실천과 관찰로 인 해 일치감을 통해 확인하여 받아들이는 진리의 영역과 이를 지적으로 재구성하는 도( 道 )의 영역이다. 나 머지 제 3영역은 일반적 탐구를 통해 이 지감을 끊임없이 쇄신하여 개선하는 학( 學 )의 영역이다. 이들 3 개 영역은 모두 학( 學 )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절실함 혹은 실실함으로 그 공 효를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신( 信 )이 요구된다. 신이란 신의 를 의미하기도 하고 진실 을 의미하 기도 한다. 이을 제4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는 이처럼 선천성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그 실천 과정에서 새로운 지감을 획득하고 이를 재구성하고 다시 쇄신하여 의리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였 다고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의리를 정립하고 수행할 때는 오직 절실한 실감과 실증을 통해 신실( 信 實 )하 게 노력 하여왔다. 공자가 궁행군자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은 바로 이 신( 信 ) 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의리의 내면성 맹자 호연지가장 고자장 에서는 의리의 내면성을 논하고 있는데 맹자와 고자 사이 의 의리의 내외논쟁이 유명하다. 맹자는 의리의 축적을 통해 호연지기를 이룬다고 보고 그 호연지기의 중심은 의지라고 보고 있다. 기의 주체가 의지라고 본 것이다. 그 의지의 면모가 의리의 축적( 集 義 )으로 구현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보다 세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경전이 의리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유교경전은 아름다운 것 정당한 것 합당한 것 선 한 것을 지향하여 긴장된 절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며 그 긴장된 절조의 실행을 이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양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의리란 기쁜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며, 원하는 것이며 절실한 것이며 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열락( 悅 樂 )의 추구이며 기원( 祈 願 )과 소망이며 아름다움 의 선호이며 절실( 切 實 )한 것을 추구함이다. 의의 의미적 남상 의( 義 )에 대한 자원설명은 대개 미( 美 ) 선( 善 ) 의( 宜 ) 등과 같은 의미에서 출발한 것으 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의( 義 )자의 구성을 보면 양 양자 에 나 아 자가 결함되었다. 이 때 나 아 자는 날이 달린 무기를 그린 것인데 은주( 殷 周 ) 시대에 청동기가 유행하였으므로 은나라의 독자적 청동기의 높은 수준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그 자부심을 표현하여 청동기를 대표하는 무기가 나 란 뜻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양 양 자와 결합하여 의( 義 )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8

29 는 뜻으로 사용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생각된다. 청동기의 아름다움과 우월함을 표하고자 하는 것이 의( 義 )의 원래 뜻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은 시대의 자부심은 청동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의 문 화 특히 제사 의례 등의 문화적 자부심도 아울러 있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변방국을 토벌한 예에서 알 수 있다. 은 시대의 자부심의 일반적 표현이 의였던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제례와 같은 신비 의식을 오직 그 기원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사람은 처음부터 상당정도의 이지적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부정할 근거는 없다. 은의 발전에 따라 예의 제도와 문화 군사 등등의 여러 방면의 권위를 이 의( 義 )로 표현하였던 것인데 차 후에는 무기에 국한되지 않는 뜻으로 옮아갔을 것으로 보인다. 의( 義 )가 예의( 禮 儀 )와 같은 뜻으로 쓰인 데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미는 사상의 발전에 따라 극히 보편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춘추시 대 공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공자에 이르러서는 무기나 기술 문화를 넘어서서 철학적 사상적 의미를 포괄하게 된 것이었다. 공자는 위령공편에서 군자는 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로 행한다. 고 하였다. 안연편에서는 극기복례( 克 己 復 禮 ) 가 바로 인이라고 하고 안연이 그 요목을 물은데 대해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 라 고 하였다. 위령공편과 안연편을 비교해보면 극기복례 가 의( 義 )에 해당되고 이를 바탕으로 예를 행하 는 것이 인( 仁 )이라는 어의가 성립된다. 안연이 인에 대해 물은데 대하 공자는 의와 예와 함께 이루어지 는 것이 인임을 밝힌 것이다. 인과 의는 예와 함께 불가분한 개념이었던 것이다. 한편 논어 양화편에서는 어질기를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고 하였다. 여기서 인( 仁 )이란 타고난 어진 마음을 중시하는 의미로 보인다. 어진 마음을 배움을 통해서 진정한 인( 仁 )으로 고양하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극기복례는 배움의 일환인 것으로 생각된 다. 물론 예도 배움과 불가분한 것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의는 또한 배움과 불가분한 것이다. 또한 안연 편에서 중궁이 인을 물은데 대해 문밖을 나서면 큰 손님을 대한 듯이 하고 백성을 부리기를 큰 제사 지내듯이 하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29

30 고 하였다. 이 모두 자신에 대한 절제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되므로 극기복례와 유사한 뜻이다. 예를 통해 자신을 가 다듬음으로 얻어지는 그 무엇이 인이라고 보고 있으며 그 가다듬은 바로 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드디어 는 논어 양화편에서 자로가 군자는 용기를 숭상해야 합니까? 물은데 대해 군자는 의를 으뜸으로 삼 아야 한다. 고 답하였던 것이다. 논어 이인편에서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고 한 것 역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상통하고 있다. 역사적 의미 의리 는 사실 철학적 개념 이전에 이미 생활화된 일상 언어다. 의는 유교 경전의 많은 주제어 가운데 한 중심언어이기도 하지만 인 혹은 인애 란 말보다도 오히려 더 자주 쓰인다. 국민으로서, 사람 가족 혹은 동료 벗으로서 행해야 할 온당한 도리 정도의 포괄적인 뜻으로 널리 받 아들여져 이미 하나의 생활규범으로 널리 통하고 있다. 물론 각 개인이 의리 에 얼마나 철저하고 반 성적인가 하는 실제의 수행 평가는 별도 문제이다. 또한 그 수행의 비율과 정도에 관계없이 이미 의리개 념은 우리 사회에 상당 정도 확고한 지도력을 유지하고 있음은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고대 이래로 그러 하였으므로, 그런 것이 바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 것일 것이다. 문화적 의미 그러나 이 말이 익숙하고 친근하다 하여 그 뜻을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전 용 어 가운데도 우리가 대화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범위에서 자유롭게 쓰는 말들이 이 외에도 많고, 그 역시 어떤 나름대로의 의미향유를 통해서 의미가 유지 되고 혹은 새로이 개척되기도 하는 등 매우 중요한 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삶 가운데서 그 의미를 실제로 구현하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 사실도 역시 중 요하다. 그러나 그 의미를 보다 더 반성적 자각적으로 또 의지적으로 사용한다면 사상적 문화적 의미를 아울러 다할 수 있으므로 의미 있고 바람직하고 이상적일 것이다. 의리는 하나의 독특한 문화다. 의미의 긴장 어떤 개념과 언어가 사상 문화 등 정신적인 면에서 보다 활성화 되고 유용하기 위해서는 필 수적으로 늘 자각적이어야 한다. 일반의 언어생활은 그 자체로서 이미 그대로 일반적인 삶의 장이다. 삶 자체를 위한 장이므로 여기서 매순간 그 의미를 탐구하거나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겨를을 가지 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 자체를 명백히 배움의 장 으로 확고하게 의지적으로 전환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기 달라질 것이다. 언어적 의미의 긴장 상태를 항상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는 그처럼 명백히 일상의 가운데 끊임없이 돌이켜질 수 있을 때 자연히 생활화되는 것일 것이다. 물론 배움의 삶 으로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사람들이 매우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며, 삶의 다이 내믹한 상황에 멀리 물러서 있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배움의 의미를 매우 절실하게 일상화 하 였음을 의미한다. 배움의 삶 이라는 정의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에서 더 상세히 누차에 걸쳐 논의할 것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0

31 고뇌는 배움만 못하다 미리 말한다면 의리는 그 같은 배움의 삶 이라는 사전 전제 아래서만 그 역동 적으로 의미를 논할 수 있다. 물론 천재적인 의리인도 있다. 신념으로 신앙으로 세워진 의리인도 있다. 민족애 인류애와 같은 고상한 정신으로 우뚝 선 의리인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의리인일지라도 아마도 반 드시 그 삶이 어떤 형태로든 전적으로 학구적인 것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모든 다양한 양식의 배움만이 진실에 닿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수 있는 굳건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심각한 고뇌도 배움만 못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삶의 재구성 우리가 한 시대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호흡하며 향유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삶이 제한되 고 엄정한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시간을 막연히 엄숙한 이념과 긴장으로만 보내 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다만 담담히 자연스럽게 그대로 삶을 절실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배움의 긴장이란 그런 자연스런 감성과 지성의 발휘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재구성이라는 점에서는 인생이란 진솔한 작가가 예술 작품을 하는 것과 같다. 의리란 그 최종적인 그리고 궁극적인 인생의 작품인 셈이다. 미리 요약한다면 의리란 이미 우리가 익숙하게 습용하고 있는 반면에 극히 보편적인 넓은 사상성을 함축 하고, 동시에 전통의 공부와 배움을 요약한 역사성을 띤 개념이라서, 우리의 오랜 정신사를 반영하고 상 징하는 말이다. 의리란 이름아래 모든 경전의 의미와 깊은 사유의 결과들을 대변할 수도 있다. 의리란 우 리가 추구해야할 정신의 근간의 언어라는 것이다. 역사적 인간 진정 의리를 지향함으로서 우리는 역사적 인간으로 전환될 수 있으며 사려 깊은 사상성을 구현할 수도 있으며 모든 현실을 의미화 하는 문화적 마인드를 유지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리일관( 義 理 一 貫 )을 추구함으로서 우리 삶이 보다 순리에 따라 절실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의리란 전통공부의 요체이며 공부의 과정이기도 하고 또한 효험이기도 하며 그 최종의 드러남이기도 하 다. 이모든 과정에서 의리를 추구함은 사실적 삶의 진상을 적극적으로 실감하고자 함으로 인하여 삶의 진실 을 추구한다는 의미가 내재하고 있다. 진실이란 나의 존재적 실체이며 그 진실을 사유함으로써 나의 닫 힌 자아를 넘어서는 힘이 되기도 하다. 의리란 주관적 의지적 결단이면서 동시에 나를 객관화하는 오묘 함을 주는 것이며, 역시 진실을 적극 감지함으로서 가능한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실하기 그지없 는 공부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다. 1)의리의 역사적 실체 의리의 보편성 현재 의리라는 말은 특별히 정의를 요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근래에 이르도록 그 의미가 본격 적으로 적극 탐구된 예도 보기 힘들다. 원래 의리란 유교경전을 대표하는 말인데 이를 새로이 거론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1

32 하려는 것은 그 의미의 보편성이 발휘되기를 바람이며 이 땅에서 영위돼온 전통적 의리의 본모습을 지금 시점에서 살펴 확인하려는 것이며, 특히는 한국이 실로 의리의 나라일 수밖에 없다 는 국민 문화사의 한 단면적 의의를 새로이 살피기 위해서다. 의리는 우리 국민이 역사상 내내 중시하여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의 범주와 영역이라든가 보편적인 성격 을 생각해보며, 오늘에 그 본의를 회복하고 나아가 이를 적극 향유하여 재창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 지 않겠나 하는 등등의 문제와 전망을 특별한 제한 없이 그리고 보다 자유롭게 논급하고자 하였다. 절대가치 물론 여기서 의리란 일반적인 용례로 막연히 모든 선악시비를 포괄하여 지칭하려는 것은 아니 다. 의리의 의미는 일정한 대표성 일관성 내지는 절대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의외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대적인 입장의 모든 선악시비를 정돈하고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정의라는 말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며 우리 사상의 중심을 상징하는 말이고, 보다 더 문화전통에 맞고 절실한 것임을 생각 하려는 것이다. 대개 이상적이거나 상대적인 가치란 일시적인 혹은 추상적 가변적인 것이어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절실한 절대가치의 측면에서 의리의 실체를 따져보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오랜 역사에서 이룩한 이 일관되고 절대적인 가치를 찾고 추구할 수 있다면 개개의 삶이 보다 유력하고 안정되고 중심과 형평을 이루어 안정되고 생산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또한 의리란 동시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 었던 것 보다 더 삶에 친근하고 더 절실하고 더 넓고 더 깊은 일반적인 그리고 특히는 기쁜 그 어떤 것 이라 점도 특별히 주목하려하였다. 시대성과 의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유비와 조조를 언급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유비는 의리의 상징이고 그 상대편에 있는 조조는 실용적 지혜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다. 그리고 난세에는 조조가 태평시대에는 유비스타일이 알맞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그 뿐이 아니다. 유가보다는 묵가가 더 유용하고 공자보다는 도가가 더 시대에 맞는다는 생각도 널리 통하고 있다. 아마 이는 서구 합리주의와 중국의 실용노선이나 일본의 유교비판 같은 외래적 견해에 보다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근대사에서는 이런 논쟁을 독자적으로 깊숙하고 치열하 게 전개해본 적은 아마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유학은 그런 논쟁에 휘말릴 이유가 전연 없다. 의리란 스스 로 충분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사색으로 구성되는 절대적 보편사상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많 은 이들이 명백히 놓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교전통의 강인함 최근세 까지는 유학에 대한 논쟁이라든가 의심이란 그럴 필요가 없었으며 우리 사회 가 유교적 전통을 생활로서 매우 강고하게 견지해오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물론 부분적 유교비판은 많 이 있었다. 그러나 진정 진지하고 깊이를 갖춘 객관적 학구적 논쟁은 거의 없었다. 찻잔 속의 풍파 같은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식인 종교계에서 유교를 종교로 몰아가면서 극단 적인 배척이 있어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그 영향도 현재에 아직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미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절실한 학문적 탐구의 결과는 아니다. 서구나 일본의 일부 강력한 유교비판의 영향도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2

33 심각하게 받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중 일반의 생각은 그와는 많이 다르다. 유교정신이 아직 엄연히 자연스럽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일상의 관념과 생활로서 숨을 쉬면서 살아있다. 그들 순수대 중들은 의심부터 하지는 않았고 서양 역사 문화를 기준으로 자신의 역사를 비하하려 하지도 않았기 때문 이다. 유교와 근대 엄연히 유교는 비판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반의 삶을 아직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유교의 본모습을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일반 생 활유교로서 생활 스타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언어와 사고와 행동의 근저에 잠복하고 있으며 이를 일부 에서 부정하려는 풍조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유학은 본시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당연한 귀결이기 도 하다. 유교비판 현상은 아마도 근대화와 연관된 것으로서 전통적인 것들이 근대적인 개념의 반대편에 있다고 보고 유교는 반근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 서구주의의 입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교의 중심과 지 엽, 각 시대의 과제와 유교의 긴장관계 같은 문제가 이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유교를 유 구한 전통사상사의 중심으로 인정하는데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나라의 실체적인 역사적 문화와 사상은 생각 없이 중절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 것이다. 유교는 그저 소중한 보편적 배움의 양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근대성이란 반전통적인가? 사실 근대란 나아가서는 미래까지도, 하나의 역사의 발전 형태이므로 반전통 적인 것은 전연 아니다. 서구에서도 신은 죽었다고 하였지만 역사가 죽었다고 한 적은 없었다. 서구의 역 사상 중심사상인 그리스 철학전통이 반근대적인 것이라고 매도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 사상을 끊임없 이 되살리고 진전하여 근대정신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그러한 자신의 역사적 사상전통을 지금 처럼 식자층이 매도한 예는 역사상 없었다. 그러나 이는 역시 치열하고 정중하며 심도 있는 사상적 학문 적 결론인 것은 아니므로 역시 찻잔속의 태풍이다. 어떤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진정 고상한 역사적 정신은 소멸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 역사적 정신을 요약 대변하는 것이 역시 바로 하나의 의리일 것이다. 물론 지식인들이 전통사상에 학문적으로 보다 주목하는 경향이 90년대 중반이후 서서히 대두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아직 우리 역사와 사상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 나아가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전통적 의리는 별도의 독립된 체계를 가지고 사색 영위되었거나 예컨대 윤리학이나 철학 사회학 등 어느 특정한 학문양식으로 탐구되고 결행돼온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고유하게 유지해온 일반 보편적 사 색과 가치와 신념을 여기에 포괄하여 표현한 의미가 강하였다. 매우 자연스런 귀결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널리 통하는 상식적 의미 아래 생활의리의 특징이 강하였고 이 역시 매우 유의미한 것이었다. 이것이 그 대로 학문적 깊이를 추구함에 따라서는 그 스스로 깊은 철리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의리 의리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활로서 전승해오고 호흡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만 큼 체질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삶이 탐구되기 이전에 먼저 살아가야하는 것과 같다. 의리 자체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3

34 향유하였던 것이다. 의리 독자의 의미에 대하여 일정한 논설이나 특별한 정의가 있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경학과 경서에 준거하여 그 행실이 요약 평가되어 왔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궁극적으로는 주로 경학 적 사색과 그 확대 변용의 방식에 의하여 이해되고 가름되었으며 그 맥락에서 그대로 자유롭게 생활화된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언급한 경학이란 특별한 전적만을 추종하였음을 말한 것은 아니고 우리들의 일상 보편의 사 색에 어떤 역사적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란 의미이며 경학 텍스트에 오로지 몰두하여 개인의 삶이 그에 매몰되었었거나 고착되거나 나아가 그것이 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어떤 특별한 경 학적 체제를 추구하거나 정의를 새로이 하는 노력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보편 일반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단지 보다 넓은 이해를 도모하고 방만해 보일 수도 있는 다양한 입장에서 의리를 제한 없이 생각 함으로써 의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여러 가능성을 충분히 타진하여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정신 특히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을 지탱해온 사상적 명분의 골간이었다는 점에 중심을 두고 과 연 그렇다면 의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다양한 행동지침은 구체적으로는 당연히 사상과 역사의 진전에 따라서 질적으로 변전해 나아갔을 것은 자명한 것이므로 세태에 따라서 변전한 그 내면적인 의미와 그 확장 가능한 의미를 최대한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또한 공자가 일생의 학행을 결산하기 위하여 춘추를 지어 대의를 천명하였다는 점을 내내 유의하고자 한다. 개인과 사회에서 수행된 의리의 궁극은 결국 온 천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왕의 시대와 국민의 시대의 가치관은 다른 것이지만 그 일관된 보편적 가치탐구를 결여한다면 역사적 의미의 의리를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논어의 개권초지: 모든 정당한 명분을 대표할 수 있는 이 의리의 일차적 근원으로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마땅한 것은 논어다. 그중 학이시습( 學 而 時 習 ) 은 명실상부한 성인의 가르침이며 의리의 남상이다. 또 의리의 끝이기도 하다. 시비선악을 분별하는 역량을 가르치고자 한 것이며, 단순한 학습론이나 공부 에 대한 논의가 아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인생론이며 삶의 양식이다. 배움이 기쁘다. 고 한 것은 의리의 바람이며 하나의 원과 망을 나타낸다. 벗이 찾아오니 즐겁다. 고 한 것은 배움의 소통의 기쁨이며 배 움의 확산의 즐거움이다. 배움은 열린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자주지 않아도 성나지 않는다. 는 것은 의리 결단이 전연 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고 자신의 깊은 결의가 있는 자가 군 자 라는 뜻이다. 배우고 때에 따라 익혀 나아간다. 는 것은 인생에서 배움의 의미와 가치 나아가 그 방법론을 아울러 요약해 말한 것이다. 특정한 과목의 학습이나 일정한 가치관과 정해진 규율을 지도 교육 혹은 학습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공직자들이 국민과의 행정적 관계를 지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용어가 아니다. 특별한 정의나 배려 없이 사용하는 지도 라든가 정신교육 혹 은 인성교육 이라는 말들이 뜻밖에 진실을 왜곡하고 거품을 일으키는 권위주의의 병폐를 일으킬 수 있다. 전통적인 배움의 삶의 뜻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처음의 학이( 學 而 ) 에서 학( 學 )이란 문자 그대로 배움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배움을 말한 것은 아니다. 삶의 양식 곧 배움의 삶을 말한 것이다. 배움이나 공부만을 논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4

35 한 것이라는 뜻이다. 배움의 삶이란, 삶 그 자체를 오로지 전체적으로 배움으로 인식하고 배움으로 영위 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새로운 양식이며 삶의 바람직한 새로운 스타일을 말한 것이다. 물론 이 배움이란 삶의 진상이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겸허함을 말한다. 시습 에서 시 란 삶의 시간 자체다. 삶의 시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상( 事 相 )에 배움으로 대응할 것을 말한 것이다. 배움이 현실에 실시간으로 의기투합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임을 말한다. 습 이란 방 법론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배움이나 느낌일지라도 실감되어 몸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의미 없을 것이다. 습이란 익힘 이라고 해석되는데 기억 속에 익힘을 말할 뿐만 아니라 전인적으로 실감하고 실 행할 수 있는 공부를 말한 것이다. 배움을 실제로 나의 영육으로 보다 더 친밀히 일치하게 하는 것이다. 습이란 모든 절실한 자각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학 은 배움이라 할 수 있고 습 은 공부라고 할 수 있다. 공부란 스스로 실감하고 이를 전인적인 조응( 調 應 )의 상태로 긴장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로지 그 같은 학습상황 에서 시의적절함 을 견지하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의리다. 그러므로 학습과 의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공자가 배움의 삶을 처음 제창하고 강조하였을 때 이 배움의 삶이 과연 옳고 정당한 것이며 인류가 추구 해야할 최고의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때의 의리란 배움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는 따라서 배움의 의리 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배우고 공부하는 것이 대개는 즐거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의 학습개념에서는 분명 그러하다. 성취하고 난 보람은 무한할 수 있지만 그 배움의 과정이 힘 들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배움 밖에 없는 것인가? 공자는 이와 다른 말씀으로 논어를 시작한다.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그러나 공자는 안연 을 제외하고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배움은 기쁨을 위한 것인데 그렇게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배움을 좋아하는 삶은 하나의 이상이지만 도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쉬운 일이라면 공자가 그렇게 강조하였을 리가 없을 것이다. 배움의 삶의 진정한 가치를 공자가 발견하였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한 이가 거의 없었으므로 우리에게 남 아있는 최대의 과제 역시 배움의 삶을 관철하는 것일 것이다. 배움의 삶을 견지하는 정도와 수준이 바로 의리의 품격을 이루는 것임은 당연할 것이다. 안연과 같은 호학의 인격체가 의리에 있어서도 진정 이상 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당당함 일어섬 : 인생에서 최선의 판단이란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삶은 다양하고 매순간이 새롭 게 창조되기를 기다리는 속성을 스스로 지니기 때문이다. 인생은 그러나 항시 선택을 요구하며 이를 피 할 수는 없다. 다만 변동하는 삶의 내외 상황 가운데서 보다 적절한 선택을 구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 적절하다는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먼저 한없는 막연함을 느낀다. 주역에서 말하는 선미후득( 先 迷 後 得 ) 의 그 막연함의 타개책은 단 하나다. 흔들림 없이 자신을 굳건히 모든 삶의 중심으로 자각 견지 하 면서도 대외적으로 막힘없는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때 나의 정립이 먼저 요구된다. 내가 반 듯이 서 있어야 모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 것인가 즉 반듯이 서 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 다. 경건한 배움의 자세로 서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의리다. 우리는 오로지 배움으로 설 수 있을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5

36 것이다. 배움을 향하여 선 자신은 배움을 유지하면서 그 배움을 실행한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세움이다. 내가 선 것은 결국 세움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직립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으로 진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섬을 넘어 나의 외부에 나의 뜻을 따라서 무언가를 세웠을 때 이차적으로 문명과 문화가 탄생하였다. 의 리는 바로 배움을 중심으로 한 섬과 세움의 이중적인 문제다. 배움에 따라 당연히 무엇을 세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의리다. 의리는 형이상학인가 : 의리란 순수한 가치탐구의 결과지만 서구적인 형이상학은 아니다. 형이상학과 똑 같은 여러 가지 모순의 데이터에 기초하지만 그 현실의 여러 모순들을 성급하게 논리적으로 갈구하여 풀 어보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리는 다만 우리의 매 순간의 갖은 생각과 느낌이 일으키는 자신과의 전인적 반응에 문제가 있을 때 일어나는 자연적 질문에 의한 것이며, 하나의 생명과 삶의 제 여건 사이 의 조화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정신 행동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그 스스로 온전히 심신이 편안하다면 그는 의롭게 사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공자가 삼년상의 단축을 주장한 재여에게 네 마음이 편안하면 하라 고 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나와 관계된 모든 주변 역시 편안해져야 할 것이다. 의리란 편안하고 당당한 삶의 방도를 찾음이다. 나의 모든 지감이 일체화된 상태에서 넓은 일치감의 감동을 느끼는 그런 것이다. 평소 우리가 알고 있는 의리란 결연한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 본질 면에서 보면 분명 단 지 정신적인 가치다. 비물질적인 가치란 뜻이다. 정신적인 가치 혹은 비물질적인 가치란 삶의 저변이나 그 궁극의 끝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최상의 가치다. 이는 확신으로 이루어진 가치이며 생각하고 느끼는 가치다. 주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감동하는 가치다. 실제로 만져보고 감촉할 수 있어 일상에서 누리는 효 용가치는 아니란 뜻이다. 맹자는 성선을 논하면서 정( 情 )의 실상을 보면 선하다 라고 간단히 정의한 적이 있었다. 정이란 마음 의리 감정 의욕 애욕 등을 포괄한 지칭어이다. 이를 더 부연하여 인의예지를 말하였었다. 그렇게 실제로 누릴 수 없는 가치가 과연 의미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 의문에 도전하고 그 의문을 풀고 나아가 무상의 가치임을 확신하게 하고 또 이를 삶으로 승화하게 한 것이 고대적 정신이며 가르침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동아시아 고대문화다. 의리란 그러므로 정신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나아가 정신과 삶과 특정 행동의 측면에 걸쳐 어우러져 있다. 의리의 문화 : 고대문화를 의리의 문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고대 역사와 문화가 의외로 의리의 힘 으로 구동되어 나아갔기 때문이다. 만일 의리가 없었다면 어떤 역사나 사상이나 제도가 끊어짐 없이 이 어져 발전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하나의 튼튼한 궤도와 같은 것이며 삶이란 그 궤 도를 달리는 열차다. 예를 들어 중국이나 한국의 고대국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권력의 쟁탈과 전쟁 계급간의 모 순과 충돌 착취 등의 난관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문화 정치가 진전되어 나아간 것은 바로 그 내면에서 도 저히 의리를 부정할 수 없었던 정신의 힘에 있었다. 인간의 타락상에도 불구하고 예컨대 비틀거리며 나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6

37 아간 것 같지만 그러나 결국은 의리의 길을 따라갔던 것이었다. 공자 맹자가 만난 왕들이 그 정치적 도덕적 유세를 동의하면서도 받아들여 수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정을 주장하고 백성을 위하라고 한 가르침은 수용하였다. 권력을 나누고 재부를 분산해주고 세금을 줄 이고 전쟁을 앞세우지 말라는 가르침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부정하지 못하였다. 이들 가르침이 정당함 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어떤 순수한 권위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들 가르침은 바로 의리의 길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하나의 중후한 기준이 되어 서서히 따라서 수행되어 나아갔다. 한나라 시대의 위민정 치가 그 예가 된다. 그 가르침은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며 수행이 가능한 여건에서 추진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와 맹자가 그 시대에 한일이 전연 없었다는 주장은 허무한 주장이다. 정신유산 : 동아시아의 정신유산은 서너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공자학이라는 특징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공자는 고대 학문의 집대성자로서 고대정신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논어는 우주제일서 라고 칭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다는 표현이다. 논어가 진정 우주제일서의 가치가 있다면 이는 오로지 배움의 삶을 강조한데 기인한다. 공자 자신은 의리의 서 인 춘추를 편찬 하고 춘추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을 평가해주기를 바랬지만 실은 배움의 삶을 설파한 논어로 인해 공자는 자신의 진면목을 온전히 보여준 것이었다. 논어에는 배움의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배움이 인생에서 어떻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는가를 논하 고 가르치고 그 가치와 효용을 느끼고 체험하는 전 과정의 여러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공자는 배움을 통해서 한 시대를 이끌어가고자 하였고 군주들을 계도하고 사람을 가르치고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 모든 노력들은 오로지 배움의 자세로부터 시작되고 그 결실로서 그대로 가르침이 되어 빛났 던 것이었다. 논어의 말씀들은 그러나 결코 그 결론이 아니고 배움으로 이룰 수 있는 가치와 의미 그리 고 배움으로 얻어지는 기쁨 행복 보람의 증좌와 경험들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 이 를 익혀서 시대에 맞도록 배움의 삶을 구현하도록 한 것이므로 논어는 결코 결론이 아니라고 할 수 있 다. 배움의 자세와 가르침의 노력 그리고 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의지의 3가지가 어울려 이루어진 일 이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한다. 둘째는 역사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자시대는 춘추시대라고 칭해진다. 춘추시대는 혼란의 시기로 규정된다. 초기국가에서 마련된 제도와 삶의 양식 그리고 권력이 변동하면서 무한한 충돌과 모순이 나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대는 경제적 발전기 기술의 혁신시기 국가와 권력의 성장기 등으 로도 정의된다. 변동하면서도 국가제도는 새로이 창안되고 있었고 권력이 구체화되어 갔다. 나아가서는 거대한 진 한 제국의 싹이 자라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적 사회적 제도적 진전이 있었 다고 하더라도 역시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민생이었다. 백성의 삶이 보호되지 못하고 무너진다면 어떤 성장과 발전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이 같은 시대문제를 진단하고 민생을 보호하기 위한 노 력을 경주하였다. 민생을 중심에 둔 모든 제도와 정치를 심사숙고하고 제시하였던 것이었다. 셋째는 정신유산은 절대적이고 자율적인 가치를 독립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을 또한 생각해야한다. 말 하자면 사상적 정신적 자율성에 따라서 순수한 정신가치가 절대적으로 추구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생물학적 삶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은 나무처럼 조용히 살 수 없으며 동물처럼 싸우며 거칠게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7

38 살 수도 없다. 호랑이처럼 가죽만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배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적 정신은 바로 그 가치를 묻고 탐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이 바로 인의( 仁 義 )였다. 정신적 삶의 지표로서 의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되는 것이 인이다. 또 그 인을 수 행하는 것이 의다. 이 전 과정이 배움과 공부를 통해 영위되었던 것이 고대정신과 문화의 본질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부터 : 말 한마디 실수로도 우리는 흔히 크고 작은 여러 곤경에 처하곤 한다. 말이란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이치( 理 致 )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감촉 되지 않는 것이 진정 중요하다. 그 빈 공간에서 질서와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도 천지간의 어 떤 사물이나 공간도 사로 감통한다. 왜냐하면 같은 이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중용에서 는 시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내가 가진 명덕( 明 德 )은 크게 소리 나거나 생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였고 공자는 말 하기를 소리와 색은 백성을 교화하는데 저급한 것이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덕은 가볍기가 털과 같으니 털은 많이 모여질 수라도 있지만 위 하늘에 실린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면서 지극한 것이다. 공간에 존재하고 공간을 지배하는 힘과 물질이 있다는 뜻이다. 3-4 천 년 전에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다름 아니다. 우리의 말과 우리 몸과 우리 주변과 모든 삼라만상이 공간과 함께 어울려 서로 상통하는 존재이며 그 뿌리에 있어 영원한 존재라는 사실은 자연과학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매 일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의 이치를 느끼고 표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신통한 것일 것이다. 말이 말이 씨가된다. 는 우리 속담이 있다. 이 역시 그 한 예다. 겨울철에 접어들 때 누군가가 금년에 감기 안 걸릴 것 같아, 지금 몸 상태가 아주 좋거든... 라고 한 후에 바로 지독한 독감에 걸리는 경험을 흔히 하게 된다. 말의 저주도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저주의 말을 퍼부으면 분명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마음속에 어떤 맺힘은 스스로 풀어야 하는데 그대로 방치할 경우 예기치 않게 그 마음으로 인해 어떤 불상사가 꼭 나게 된다. 저주의 말이나 원한의 마음 이런 것들이 무서운 것임을 본다. 왜 그런가 하면 마음과 말과 행동이 모두 이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말과 마음과 행동이 이치와 일치하지 않을 때 즉 진실이 아닐 때 서로에게 분명한 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간의 존재를 말해주는 증좌다. 나에게 가두인 말이나 마음 행동은 나만의 독한 냄새를 가진다. 나의 냄새가 왜 독한가 하면 사사로움으 로 뭉쳐져 있어 독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향기라도 지나치게 농축하면 독이 된다. 독한 것이 해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심지어 사람의 콧물도 보통 때는 비강을 적셔주는 윤활제이며 오염 을 씻어주는 것이지만 많아지면 콧물이 되고 농축되면 지독한 악취가 되고 나아가서는 병이된다. 공간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독함의 증상이다. 이들 역시 지주 경험하는 일이다. 문제는 그 소통이 말로 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의 진정한 원칙은 진실뿐이다. 진실은 어질고 생명적이며 편안한 그 무엇이 지만 전인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것이다. 진실이 아닌 소통의 수단들은 길게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8

39 작용할 수 없다. 우리 신화에 홍익인간이란 의미심장한 표상이 있다. 홍익이란 이롭게 한다는 뜻이니 바로 공간의 의지 즉 진실의 모습이다. 진실은 천이며 명이며 하늘이며 땅이며 신이며 귀다. 인간이란 사람의 공간이란 뜻 인데 이중적인 의미를 아우른 고차원의 언어다. 첫째는 인간 공간 즉 일정한 공간의 점유자인 사람 자신을 말한다. 둘째는 사람 사이의 공간이다. 공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그 끝이고 살 아감의 무대다. 바로 그 공간은 진실의 거소다. 사람 자신이 진실의 거소인 셈이다. 잘 응축된 진실 그것이 향기로운 인 간이다. 다만 너무 농축하지 말아야 할 뿐이다. 홍인인간 사상은 사람이 공간의 존재임을 처음으로 설파 한 파천황의 언어다. 사람의 공간 사람 사이의 공간 뿐만 아니라 지상의 공간도 있고 천상의 공간도 있 다. 이를 삼재사상이라고 한다. 모두 공간을 깨달음으로 인해 얻어진 불멸의 철학적 범주다. 의리란 원의 에서는 바로 그 공간정신을 고수하는 삶이다. 공간정신은 배움을 통해 절감하고 느껴 행하는 것이므로 배움과 공부의 소산이라고 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의리에서는 타고난 천재가 있을 수 없다. 어진 인정은 타고 날 수 있으나 밝은 지혜도 타고나는 것이나 의리는 전연 그렇지 않다. 배우고 공부하지 않 은 자가 진정 큰 의리를 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진정한 의리란 알고 느껴야만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기 때문이다. 새로움의 삶의 기쁨 : 우리에게 매일의 혁신은 오랜 삶의 지표였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새로운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고대 현자들은 그침 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대학의 경 일장 첫머리에서 배움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다. 명덕을 밝힌다는 말은 사실은 명덕을 분명히 깨닫는 다는 의미다. 또한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백성을 새롭게 함이란 새롭게 다스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 람들의 삶을 경신하고 개선하겠다는 말이다. 끝으로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있다고 하였다. 지극한 선 에 머무른다는 것은 의리를 행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게 아는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무는 데 있다. 여기에서 신민( 新 民 ) 은 원래는 친민( 親 民 )으로 되어 있는데 주자는 이를 신( 新 )으로 해석하였다. 고대 문 사사용의 원칙에 비추어 신민( 新 民 )으로 읽는 것 역시 아무런 하자가 없으므로 이견이 있을 수는 있으나 부정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친민 이라고 읽었을 때와 신민 이라고 읽었을 때 사실상의 의미의 차이는 없 다. 모두 배움을 말한 것이기 때문에 배움의 삶이 백성에게 일상화하도록 한다는 것이 친민 이고 백성의 삶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신민 인데 배움 자체가 스스로 새로움 을 지향하는 것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배움의 내용이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공 사의 삶에서 새롭게 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배움의 삶이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생명은 유한하다. 타고난 선한 마음이라 할지라도 이 선한 마음이 스스로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39

40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역시 생명이 쇠하면서 감쇄될 수 있다. 타고난 선한 마음과 함께 건강한 몸이 역시 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이 쇠하고 건전하고 선한 마음도 위협받을 때 무슨 힘으로 살 것인가? 그 때에 유일한 해결책이 배움의 삶을 강화하는 길이다. 밝은 사려분별을 유지하는 것이 빛나는 생명의 표상 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움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가 이상에 불타는 사람이라면 지금 바 라는 이상을 향한 개혁이 왜 이렇게 더디게 나아가는지 답답하게 생각할 것이다. 역사상의 모든 시대의 변 화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혁신의 이상이 살아있어서 현실의 더딘 진행을 이겨 나아갔었다. 배움의 삶의 시작 : 진정한 배움은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는 의리란 배움의 시작이며 또한 그 완성이다. 그것이 바르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배우고 익히면 즐겁다고 하 였다. 그러나 그의 가장 아끼는 수제자 안연이 독실한 학행의 삶을 이어가다가 예기치 않게 요절하자 그 는 목 놓아 울었다. 배움이나 의리란 우리가 삶 중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특수한 사상들에 대한 희노애락 이 아니라 보편한 힘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이므로 어떤 슬픔이나 비극도 결코 공부 와 의리를 무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편한 힘이란 보이지 않는 데 있으나 또한 피부로 느껴 절감할 수 도 있는 그런 것이다. 빈한한 생활을 하며 학문에 매진하던 안회는 천재적인 재능과 품성으로 높은 경지를 이룬 제자였고 공자 를 이어갈 재목이었으므로 그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공자에게 자식의 죽음과 꼭 같은 슬픔이었다. 안연 의 빈궁한 삶과 요절 그리고 공자 자신의 고초에도 불구하고 공자에게 배움은 과연 기쁜 것이었으므로 공자는 저녁에 도를 들으면 아침에 죽어도 좋다고 선언하였다. 배움은 고통과 비극마저 넘어서서 진정한 희열을 향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배움은 꼭 세속적 행복이나 부귀영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안락함을 위한 것도 아니며 즐거 움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배움과 공부는 과연 기쁜 것인가 하고 자문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일신 의 기쁨과 편안함과 부와 명예는 대개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일반조건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대외적인 조건에 주로 의존한다. 즉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거나 육체적인 것이다. 정말로 속에서 우러 나는 진정한 즐거움은 따로 있다는 데에 동의할 수 있다면 비로소 배움의 기쁨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배움이 기쁠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사실 배움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배움으로 인해 얻어지 는 넓은 이해와 공감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가 영위하는 삶이 드디어 당당하기 때문에 진정 기쁜 것이다. 떳떳함보다 더 큰 열락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나의 학당인 춘추학사를 찾아온 공부 수행 자 노모씨가 있었다. 계룡산에서 17년간 도를 닦고 몸을 수련한 사람이었으며 세상에 알려진 우학도인의 몇 안 되는 제자였다. 그는 잠시 대담을 나누다가 나에게 잠시 후 물었다. 경전을 공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0

41 나는 한마디로 답하였다. 당당해지지요. 그는 그 길로 여러 해에 걸쳐 사서삼경 공부를 수행하였다. 물론 그의 주된 관심분야인 기학( 氣 學 )을 위 한 것이었다. 배움이란 결국은 떳떳함의 체험이다. 당당함 즉 떳떳함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을 얻게 되는 그런 것이다. 그 떳떳함을 견지하는 힘 그것이 바로 의리다. 배움은 결국은 오직 의리를 통해서만 완성되 는 것이다. 수행자 노씨는 공부를 생활화하는 데 힘썼고 진정한 학생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그는 생활 고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다가 큰 병을 얻었다. 다른 사제사이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한없는 안타까 움을 느낀다. 나의 가르침이 너무도 부족한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깊은 자괴감 때문이다. 그가 밝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언젠가 드디어는 치유가 가능할지 하는 것은 오직 공부의 보람이 어떤가 하는 문제외도 직결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어느 정도는 뚜렷한 확신을 가 질 수 있다. 당당함과 호연지기가 회생의 힘을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공자가 만년에 천하주유를 그만두고 노나라로 돌아와 학문과 편찬과 가르침에 전념한 것도 분명 하나의 명백한 의리였다.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삶의 고뇌와 근심은 그 당당함의 삶을 견지함으로 인해서 기쁨으 로 전환될 수 있다면 그가 곧 다름 아닌 의인( 義 人 )일 것이다. 유사 이래 공자가 배움의 삶을 처음 연 이래로, 사람은 무엇보다도 지적인 존재가 된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음 으로 인해 당당할 수 있게 되었고 보다 굳은 의지를 갖추었으며, 확신과 기쁨을 찾아가는 삶을 스스로 열어가게 되었다. 공자가 강조하는 배움이란 이미 늘 있어왔던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전에 비 해 전연 새로운 삶의 양식이었다. 인생 자체를 그대로 배움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과거나 현재에 이미 있어온 일이지만 배움 이 삶이라는 일치 의식은 공자이전엔 없었다. 단지 일상으로 신앙과 제사의례가 일반 문화를 이끌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 내부에서는 지적 성장이 꾸준히 있었다. 의리란 바로 그 새로운 배움의 삶이 이룩한 영원하고 위대한 실천 양식이다. 배움의 삶 이란 일반의 단순한 익힘 이나 배움 과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첫째는 배움이 어 떤 이유에 의한 것이기 보다 그대로 삶의 질적인 실체를 이루는 것 즉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다. 둘째는 그 배움의 대상이 특정 사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천리와 지리 인간의 광범한 문제에서 무제한으로 출 발한다. 이 때 다만 사실성의 근거를 나의 지감으로 따라가는 공부이며 막연한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 다. 천리란 요즘말로 형이상학적 관심이다. 지리란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다. 인간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다. 특히는 이 세 가지의 분야에서 순수하고 절실한 일치감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 하나 의 방법론으로서 마음공부가 있다. 맹자가 지적한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고 본성을 알면 천리를 안 다. 고 한 것이 그것이다. 또 한 방법으로는 주지하듯이 대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 가 있다. 그 배움 으로부터 일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도( 道 )이며 이( 理 )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1

42 의리란 그 같은 배움과 공부의 이차적인 완성 단계로서 한 실천 면모다. 조용히 삶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배움과 공부의 큰 뿌리는 역시 일상의 고뇌다. 우리는 삶에서 고뇌를 느낄 때 비로소 사물의 진상을 궁 리하게 된다. 보다 진실에 입학하여 절실하게 대응함으로써 고뇌를 기쁨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기 위해서 다. 공자가 논어의 서두에서 배우고 익히면 기쁘다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고뇌는 의리의 시작 이며 동아시아 정신의 출발이었다. 군자란 자신과 사람들의 안녕과 기쁨을 위해 걱정하는 존재이기 때문 이다. 공자는 진실로 순수한 천리, 인을 공부하여 순리로 행하여 나아가는 삶을 이상으로 여겼지만 이미 공자 당대는 혼란과 상쟁의 시대였고 민생의 곤란이 극심한 여건이었다. 군자들의 내외의 삶은 고뇌와 우환으 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공자의 시대는 이미 극명한 의리가 요구되는 시대였다. 인의 시대는 이미 고대 의 황금시절에 지나갔고 그 후로도 이제껏 부활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공자의 고뇌 였다. 실제로 우리가 아무것도 고뇌하지 않는다면 아마 배움이나 공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을 것 이다. 그러나 고뇌는 부정이나 의심과는 다르다. 고뇌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정과 긍정의 표현이다. 동아시아 정신이 자신의 믿음과 삶의 긍정에서 출발하였으므로 그에 바탕을 둔 의리 역시 생명을 위한 삶의 철학 의 한 구현형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 義 ) 글자에 양( 羊 )자가 들어있는 까닭일 것이 다. 물론 인( 仁 )은 더더구나 본격적인 생명존중의 생명지향성을 나타낸다. 물론 가장 흔한 고뇌의 인자는 과실이며 착오이며 막힘이나 실수다. 이로 인해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 다. 매사에 과불급 을 경계하는 것도 그러한 고뇌를 해소하거나 막고자 함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중용( 中 庸 )이란 개념도 일부는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대개 우리가 말하는 중용은 과불급 이 없는 상태이므로 이상의 경지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공부의 출발일 뿐이다. 물론 그 끝일 수 도 있다. 실수나 고뇌를 인정하지 않거나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다른 아집이나 집착 혹은 고집을 가지고 있다면 물 론 배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용을 추구하는 마음 역시 배움과 공부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귀결된 다. 중용이란 판단의 회피나 중지를 의미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해석이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중용의 여러 의미 : 맹자의 설에 따라서 의리를 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이라고 정의하였을 때 의리란 결국 마음의 문제다. 부끄러움이란 당당하지 못함의 심태다. 이 스스로 미워할만한 혹은 부끄러워할 만한 마음의 심태는 결국 천심 혹은 양심의 일탈을 의미한다. 일탈하지 않은 상태를 중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변함이 없을 때 다시 용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건 중용( 中 庸 )이 단지 실수나 부적절함이나 착오의 회피를 위한 단순한 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중이란 단적으 로 천심과의 만남을 말하고 그 변함없는 적절함을 말한다고 보게 된다. 외형상으로는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만 본질상으로는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위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다. 순수함이란 의미상 우주의 실체다. 용 이란 일상이라는 의미이다. 곧 일상의 삶 속에 만나고 견 지해야 할 막힘이 없는 통달된 순수한 마음의 일치감이나 그 기쁨을 말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성찰을 전제로 한 배움과 공부를 통해서일 것이므로, 중용 역시 공부를 말한 것으로 해석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2

43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경에서는 단지 윤집기중( 允 執 其 中 ) 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도는 은미하다 는 그 구절 앞의 수식어는 마음속에서 도를 찾으라는 어의로 보게 된다. 역시 공부를 말한 것이다. 중 이란 만남 이란 어의로서 마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도를 찾는다는 말은 맹자가 순수한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게 되면 천명을 알게 된다. 고한 것과 잘 통한다. 전통적인 어의에서 본 중용 은 서경에 대한 심오한 해석 의 결과인데 도( 道 ) 부분에 중심을 두 어서 도심으로부터 벗어남을 경계한 것이었다. 도란 물론 배움으로 얻어진 순수한 이치의 이해규 율 을 의미한다. 도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까닭이다. 도는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모습으로 재구성 되고 궁극적으로 구현되는데 그 때 자신의 도와 일치되는 마음이 바로 중일 것이다. 우리는 성선설을 믿 지만 본성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신의 마음으로 감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마음의 감통은 그대로 자신의 기로 전환되는 것이며 나아가 스스로의 기와 형으로 형상화될 수 있 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두고 몸에 충만한 그 무엇이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도가 쌓 임이며 그것이 성선의 증거가 된다. 맹자는 이를 고( 故 )라고도 하였는데 해와 달이 도는 이치 즉 공자의 눈을 밝게 뜨고도 보이지 는( 明 目 而 視 之 不 見 ) 내면에 존재하는 질서다. 맹자의 의를 결집하여 생겨 나는( 集 義 所 生 ) 것이 역시 그런 의미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현상이 보임의 현상과 동질적이라는 이해가 이미 성립되어 있었 던 것이다. 물론 그 보이지 않는 현상이란 마음이며 공간이다. 공간의 비어 있지만 허무한 것이 아니라 생령이 충만한 것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허령불매( 虛 靈 不 昧 )가 그것이다. 의리란 그같이 실을 직시하 는 공부의 실행이며 그 실천이다. 우주 공간에 실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죽음마저 허무하 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사생취의( 捨 生 取 義 ) 가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의리는 생명적 공간의 사상을 실 행함이기도 하다. 공부와 의리: 우리는 배워서 의리를 알고 인의 경지에 도달한다. 그 이후에는 공부를 통하여 이를 체현한 다. 이 역시 의리다. 배움과 공부는 의리의 시작이며 끝이다. 공자의 배움이란 주지하듯이 사람과 사물에 대한 공감 이해 앎 깨달음이며, 공부란 그 실천이며 익힘인데 그 본질은 하나 됨이다. 하나 됨 을 행 하는 것이 인이며 하나 됨을 고수하여 지키고 견지하고 관철하는 것이 의리다. 그 같은 배움을 구현함이 공부일 것인데 공자의 30십이 되어 입( 立 )하였다는 것 이 그것이며 배우고 시습( 時 習 )하는 것이 그것 이다. 공부의 단계에서는 인의가 따로 없는 것이다. 도달함이 인이며 견지함이 의인데 일상에서 평소 수 행하는 단계에서는 인이 시작이며 의가 끝이다. 하나 됨이란 사물이 나의 마음과 격의 없이 공감함이며 그 절실한 체현이다. 그로부터 나아가서 궁극에 서는 보이지 않는 천리를 공감함이다. 그 하나 됨의 방법론이 바로 구체적인 여러 공부개념일 것이다. 예 컨대 서심( 恕 心 ) 극기( 克 己 ) 자성( 自 省 ) 무본( 務 本 ) 종시( 終 始 ) 격물( 格 物 ) 자중( 自 重 ) 자락( 自 樂 ) 자안( 自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3

44 安 ) 지언( 知 言 ) 신언( 慎 言 ) 적자심( 赤 子 心 ) 등의 절실한 생활 체험공부가 그것이다. 대개 의리의 어의는 일반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움과 연관하면서 궁극적인 옳고 그름 을 밝히고 이를 벗어나지 않고 실행해 나아가는 것 즉 결국은 역시 공부를 말한다. 일견하여 매우 평이하고 광범한 혹은 매우 일상적인 의미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막연하고 안이한 것은 아니며 절 실한 말이고, 오히려 인생에서 배운 모든 결과를 잘 요약한 말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가 하는 중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항시 그 안에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중심 상대는 언제나 공부의 실효( 實 效 )에 두어져 있다. 옳고 그름을 밝히는 일은 타고난 지혜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배움을 통해 깨닫고 공부를 통해 체현한다. 절실히 느끼고 진실한 현실로서 행한다는 의미다. 맹자는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지혜라고 하였는데 시비 를 가리는 마음이 바로 의리의 소임이다. 맹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의리라고 하였다. 부끄러움을 안 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 시비를 절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 역시 의리다. 다만 수치를 안다 고 한 것은 지적이고 정의적인 양면에서 시비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비와 나 나 자신 이 하나 된 표상이다. 그것이 의리라는 것이다. 지혜는 의리의 과정이다. 맹자는 또한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 인이라고 하였다. 본성적으로 그러할 수도 있으나 시비를 알고 이 역시 지적 정의적으로 그 아는 지혜와 일치되어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이 또한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시 인도 시비와 연 관된다. 맹자는 또한 사양할 줄 아는 것이 예라고 하였다. 맹자는 얻음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 고 하 였다. 의리에 옳지 않을 때는 사양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도 시비와 의와 직결된다. 맹자의 사단설은 결국 의리설인 셈이다. 의리가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의의 전제인 배움이란 다름 아닌 삶의 진상인 이치에 관한 전인적인 지적 갈구다. 또한 밝힌다는 말은 내외의 자각, 즉 객관적 탐구가 내적으로 순수한 자각과 체험으로 일치되어 균형을 이루는 일의 중요성 을 아울러 말한 것이다. 대학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자명( 自 明 ) 을 말한 것이 그것이다. 자명 이란 스스로의 체험과 스스로의 절실함으로 깨달아가는 것을 지칭한 말일 것이다. 이 때 밝을 명자는 깨 닫는다는 뜻과 깨달음을 결행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명( 明 )이란 글자 안에서도 인의의 뜻 이 동시에 아울러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깨우쳐 행함 은 인의 속성이며 밝게 행함 은 의의 속성 이다. 의는 인보다 더 엄정한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깨달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진리와 상황과 사리 도리에 맞는가? 하는 점과 이를 행동으 로 철저히 실천 견지하였는가? 하는 점이 극도로 긴장되게 어우러진 말이다. 행동의 질과 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 때 그 물음에 응한 스스로의 지적 기준과 그 답에 대한 개인의 실천 양태가 구체적 의리의 질 과 내용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무엇을 의롭다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의를 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코 자의적 임의적인 데에 그칠 수는 없다. 지혜와 결단 즉 배움의 삶과 공부의 내용과 깊이에 따라, 실은 그 쌓임에 따라서, 강화되고 뚜렷해지는 그런 속성의 것이다. 배움과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논어에 잘 나타나 있다. 양화편에서 공자의 6언 6폐를 언급한 것이 그 것이다. 인애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어리석어지고 지혜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4

45 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방탕해지며 신의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해치게 되고 곧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긴급해지고 용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 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난을 부르게 되고 굳셈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으로 광간( 狂 簡 )해지느니라. 6언 이란 어짊 지혜 신의 곧음 용기 굳셈 등 여섯 가지 언행의 품덕을 말한 것인데 이에 대하여 공부를 겸하지 않고 이 품격만을 고수한다면 각각 어리석음 방탕함 해로움 긴급함 혼란 지나치고 거침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자들의 언행을 말한 것이지만 의리적 측면을 주로 칭하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6언 스스로는 인을 행하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로서 배움을 통하여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예를 들어 어진 마음일지라도 절제가 필요하며 나머지 품격들도 모두 적절한 절제를 통해서 상호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배움이 전제되지 않은 어짊의 실천은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 다. 어리석음 방탕함 해침 진급함 혼란 거칢 등은 모두 역시 불의의 영역에 드는 것이므로 결국은 불의 를 경계한 것이다. 의리란 어짊과 배움과 직결되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인을 행하기 위한 의리의 품덕에 비교되는 것인 인 자체의 품격인데 학이편과 양화편의 언급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학이편 : 자금이 자공에게 물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이들 나라에 이르시면 반드시 그 나라 정사를 들 으시게 되는데 그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들려드린 것입니까? 공자께서 요구하신 것입니까? 자공이 말 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온화하시고 양순하시고 공손하시고 검소하시고 사양하시는 인격으로 그런 대접을 얻으신 것이니 공자께서 구하시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구하시는 것과는 다르니라. 양화편 : 자장이 공자께 인을 물은데 공자께서 말하기를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향할 수 있다면 어질다 하리라. 청하여 물은데 공자 말하기를 공손함과 관대함과 신의와 민첩함과 은혜로운 것이니라. 공손 하면 모욕 받지 않을 것이며 관대하면 대중을 얻을 것이고 신의를 지키면 사람들이 맡겨줄 것이며 민첩 하면 공을 세우게 될 것이며 은혜를 베풀면 사람을 다스리기에 충분해지리라. 학이편의 내용은 자공의 입장에서 즉 제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공자의 어진 인격을 정리해 말한 것으 로 생각된다. 온화하고 양순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사양하는 마음이 공자의 인격 즉 어짊을 대표한다고 본 것이다. 에에 비하여 양화편의 내용은 공자가 자금에게 어진 인격의 특징을 설명한 것이므로 이 역시 어진 품격을 정리하여 발한 것이었다. 공손함 관대한 신의 민첩함 은혜로움이 그것이다. 학이편의 어진 덕성과 공자 자신이 언급한 어진 덕성은 다소 달라 보이지만 자공의 말은 어진 인격적 덕 성 자체를 말한 것이며 공자의 언급은 어짊을 행하기 위한 품덕을 말한 것이므로 오히려 의리에 가깝다. 인의란 이같이 다르면서 같고 또 공통요소가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배움과 연관하여 논어 양화편에서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으로 서로 멀어진다 는 말씀은 바로 학 문의 이유를 지적하는 말로서 역시 유용하다. 사람의 본성은 순수하고 선하여 천리와 감통할 수 있는 것 이나 살아가면서 사사롭게 익숙해지는 일들에 의해 순수성을 잃고 감통의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바로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5

46 이를 정화하려는 것이 공부임을 밝힌 내용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특히 익숙해지는 일이란 습관 적으로 행하는 사사로운 행실로 인해 천성 천리와 멀어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삶 자체를 성찰할 것을 요구하며 이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섭공과 번지와 공자 : 섭공( 葉 公 )이 공자에게 우리 고장의 처신이 곧은 이는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을 때 이를 증명해 준다. 고 하였다. 이에 답하여 공자는 우리 고장의 처신이 곧은 이는 이와 다르니 자식이 아버지를 위해 죄를 숨겨주고 아버지가 지식을 위해 죄를 숨겨준다. 고 하였다. 의리란 원초적으로는 곧은 마음에서 나오며 순수하고 자연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아울러야 함 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직( 直 ) 즉 곧다 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바르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서 정직으로 표현되며 의의 범주에 직접 소속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의미로 보면 시비를 가린 곧 음 마음도 직이며, 순수한 마음도 직이다. 이 두 요소가 잘 어우러질 때 의리가 된다. 그러나 의리도 인 과 같이 친친( 親 親 )의 원칙에 의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의리( 義 理 )는 인애( 仁 愛 )의 외연이기 때문이다. 궁극의 문제는 역시 순수함 즉 천리성을 견지하고 있느냐 인위적이냐의 분별에 두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의리에 속한 개념은 다 매거할 수는 없지만, 정직 어짊 정의 공정 아름다움 선함 신의 의지 등등의 여러 가치를 포함한다. 위 글에서 직이란 정직을 말한 것인데 섭공의 말은 통속적인 의미를 표현한 것이며 공 자의 대답은 천리를 전제로 한 넓은 의미의 정직의 본질을 아울러 직시한 말씀이다. 통속적인 정직이란 누구나 알 수 있으나 그 절실하고 깊이 있는 의미를 충분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지성스런 배움과 가르침 성찰 등이 요구된다는 점을 또한 알 수 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인( 仁 )을 물은 번지에게 공손하게 생활하고 경건하게 일에 임하며 신의를 지키는 일은 이적( 夷 狄 ) 나라 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아니 된다. 고 가르쳤다. 어느 곳 어느 경우라도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 공손과 경건과 신의임을 말씀한 것이다. 바로 그 의로운 삶의 본질이 인임을 또다시 구체적 형식으로 말한 것이다. 공손과 경건함 이란 그 자체의 의미적 이름다움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심의 요소인 오만함과 자만을 견제하기 위한 내면적 목적의 말씀이다. 공손하고 경건함이 없다면 자신의 자의적 생각이 자신을 지배할 것이며 따라서 천리와는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번지가 공자께 인을 물은 것은 이 이외에도 두 번이 더 있었다. 번지가 인을 물은데 공자는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6

47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라고 하였다. 언제나 사람이 공부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지혜를 물은데 공자가 사람을 아는 것 이니라 라고 한 것도 그중의 하나인데 번지가 이를 알아듣지 못하여 공자는 다시 정직한 사람을 등용하여 부정한 사람 위에 두면 부정한 사람을 바로잡을 수 있다 고 하였다. 이 역시 인의 실행을 매우 현실적으로 말해주신 것인데 이에 대하여 자하는 번지에게 설명하 여 말하기를 풍부하다 말씀이여! 순이 천하를 차지하고 사람들에게서 뽑아서 고요를 등용하니 불인한 자 들이 멀어졌고 탕왕이 천하를 차지하여 사람들에게서 뽑아서 이윤을 등용하니 불인한 자들이 멀어 졌다 고 하였다. 공자의 말씀을 잘 설명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사람을 강조한 것을 두고 정직한 삶을 등용하는 것이라고 부연한 것은 당연히 사람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말한 것이며, 사람을 아는 것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됨을 말한 것인데 천리와 이치를 바탕으로 하면서 사람을 강조한 이유는 사람이 그 배우고 자각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제한된 사색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할 것이다. 번지는 또한 논어 옹야편에서 인을 물었는데 공자는 어진 사람이란 먼저 어려운 일을 행하고 얻고자 하는 것을 뒤로 미룬다면 어질다 하리라 하였다. 공자는 번지에게 어짊의 실천적 측면을 말하여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어 인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물론 이는 사심의 극복이 인을 알게 되는 길임을 말한 것이 주된 뜻일 것이다. 아울러 그 행함이란 바로 의리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번지에게 어려운 것이란 역 시 스스로를 이기는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무지라든가 조급함 등을 아울러 극복할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인과 의는 사실상의 경계선은 없다. 다만 결연히 엄중히 인의 속성을 견지한다면 이를 특 히 구분하여 의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자는 농사를 묻는 그에게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이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의( 義 )를 좋아하면 백성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7

48 들이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진실하지 않을 수 없다. 고 가르쳤다. 번지가 중시한 것으로 보이는 농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은 의의 대전제이며 그 본질이다. 인은 경제적 혹은 물질적인 것이 위주라고 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것임을 깨우친 말씀이기도 하다. 아울러 극히 실천적인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전통적인 의리의 바탕과 그 일반의미가 공자의 언명 에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여기서 공자의 말씀은 예와 의와 신의를 지극히 평범한 뜻으로 그리고 지적으 로도 긴장된 의미 없이 편안하게 언급한 경우이다. 그러면서도 인의의 효를 아울러 설명한 것이다. 의리는 이같이 편안히 여러 가치 개념과 공존되기도 한 것이다. 예는 공적인 행실에서, 의는 일반적인 전 체 생활의 장에서, 신의는 세세한 언어와 일들에서 지킬 일을 말한 것이지만 결국은 역시 넓은 의미의 의리를 말한 것이다. 이는 결국은 곧 다름 아닌 어짊의 실천을 말한 것이다. 인의라는 말 속에 다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이들 개념 가운데서는 맨 처음에는 예가 가장 전통적인 가치다. 역사적으로는 처 음 예로부터 모든 새로움의 의식이 발전되고 분화되어 새로이 나온 것이었다. 예는 신에 대한 제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보아야 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에서는 군자는 의를 행하여 바탕을 삼고 예를 지켜서 행하며 공손히 일을 시작하고 신의로 이루어야 군자답 다. 고 하였다. 여기서 특히 의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였던 것은 의리가 인을 실천하는 바탕임을 말한 것으로 각별히 주목된다. 맹자 이전에 공자도 이미 새 시대의 이념 혹은 행동주의로서, 의리의 시대 가 다가 오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특히 위의 글에서 의( 義 )란 어진 청치를 구현하는 불가결한 한 요소로 말한 것이며 윗사람 지도자 즉 그 당시의 용어로 군자들의 실천 항목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 당시는 거개가 군자들만이 국가와 백성의 삶 과 문화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의롭다면 백성은 불복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울러 의리란 예와 신의와 인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의리와 예와 신의와도 특별 한 경계선을 없는 것이다. 공손과 경건함은 인의 의지이며 예와 의는 그 행동이다. 양자에 공통된 신의는 진심으로 행한다는 의미다. 여기서는 특별히 지혜를 언급하지 않았다. 번지에게 말씀해준 내용을 알고 자 각 체득하는 것 그 자체가 지( 知 )이기 때문에 다시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주목할 것은 공손 경건 신의는 일상생활 중에 인을 자각하고 행하는 길로서 말씀한 것이며 예와 의는 인 을 자각한 이후에 그 배움을 실제 수행하는 것으로 말씀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예는 일상중의 아름다운 행실이며 의는 보다 특별한 어떤 경우에 지켜야할 보다 절실한 행실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심 각한 시비선악 선택의 결정적 순간을 말한다. 그 시비선악의 선택은 결국 자신과 외부세계의 도리 사이 의 사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서 극기 복례( 克 己 復 禮 ) 가 인이라고 가르쳤다. 극기 복례의 요목에 대한 설명을 청한 안연에게 극기복례가 인이다. 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거든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거든 말하지도 말고 예가 어니거든 움직이지도 말라 고 엄중하고 철두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8

49 철미하게 가르쳤다. 바로 의리의경지다. 또한 한편 공자시대에는 전통적인 주례가 절대적인 준거였기 때 문일 것이다. 공자에 있어 예는 인의 정신의 역사적 기원이며 동시에 그 결정체였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 사상이 철저한 역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예법은 시대에 따라 변 하거나 의미가 재해석되고 재편성되면서 변모하게 된다. 여기서 공자의 예란 말은 의리와 다를 것이 없 을 것이다. 다만 엄정한 논자로서 공자가 강조하고 싶은 영역에 따라 예의 영역에 서서 말한 것일 뿐이 다. 그러므로 의리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인의( 仁 義 )의 정신은 공자이후 2500년의 역사를 통해 이어지면서 변모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 히 그 과정에서 유의할 것은 맹자의 역할이다. 공자는 인을 위주로 말하여 그 내부에서 의를 언급하였는 데 맹자에 이르러 인의를 병칭하면서 오히려 의를 앞세워 표현하였다. 이는 맹자 자신의 말대로 시대의 변화에 기인한다. 이때부터는 명백하게 의리표방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그러나 인과 의는 표리관계에 있는 것이므로 인의 라고 하거나 의리 라고 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理 )는 바로 인 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의 의리표방은 전통질서의 광범한 혼란 속에서 전통가치관을 지키려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광범하게 역사정신 자체가 무차별적으로 동요하는 이 시대에는 의를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의의 강조를넘 어설 수 있는 대안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의의 강조를 위해서 원래의 인의균형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허실실의 대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현재 의리 : 대개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특히나 항상 의리의 문제와 직면한다. 비난할 때도 칭찬 할 때도 의리에 의거할 때가 많다. 우리 전통 가운데 강력하고 변함없는 떨칠 수 없는 한 인자이다. 의리 는 우리 일상에서 마치 유전자처럼 존재하게 된 것이다. 부언하면 크고 작은 공 사 양면의 삶에서 요 구되는 다양한 결단적 행위과정( 行 爲 過 程 )에서 우리는 대개 의리상 옳은가? 하고 자문하는 정신행동 기제( 精 神 行 動 機 制 )를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유컨대 의리는 우리 삶을 순화하는 일종의 자가 정수기인 셈이며 또 하나의 지남인 셈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자신이 스스로를 당당하고 자긍심 있게 인도하는 자 주성 넘치는 지표이며 자기의 처신을 궁극적으로 지탱하는 불변의 패러다임이다. 서양의 지혜가 지식에 대한 사랑 이라면 의리란 삶 자체의 도리( 道 理 )에 대한 사랑의 염원이며 그 행동 이라고 대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의( 義 ) 리( 理 ) 라고 한다. 도리란 의리의 절대적 전제로 광범 한 이치 탐구의 최종 결과이므로 의리란 밝은 통찰에 근거하는 것이며 널리 보면 역시 지혜의 한 양식이 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 배움과 공부의 최종적인 공효( 功 效 )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움이 삶의 본질로 받 아들일 수 있다면 의리는 바로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을 좌우하는 종결자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의리 는 우리들 삶의 수호자인 셈이다. 이상적 인격인 군자란 공부하는 자임으로 인해 의로운 존재이다. 이미 살펴본 대로 서구문화에서 정의(justice) 역시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정의 (justice)는 대개 법률과 도덕 혹은 미덕과 자유의 가치 등의 형식으로 명확히 정해진 의미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에 의리의 영역은 특별히 제한된 형식은 없으며 확정 혹은 고정된 규율도 없고 끊임없는 엄정 한 원리지향성이 있을 뿐이다. 의리란 특히 법과 제도 규정 규율 나아가 그 이전 질서까지를 포함하는 그 어떤 것이기도 하다. 의리란 다만 인정( 人 情 )과 시비선악( 是 非 善 惡 )에 관련하여 그 마음과 행동이 합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49

50 당하다는 뜻 혹은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란 소박한 뜻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배움과 공부에 따라 넓어지 고 깊어지면서 엄정하고 확고하게 된다. 그 의로움의 가치와 의미가 자각 수립된 후에는 다양한 삶의 현 장에서 운용되어 재구성되고 구체화되면서 변함없이 결행되어 나아간다. 그러므로 의리의 크기는 일상에 서 특별한 것까지, 극미한 것에서 극대한 것까지를 모두 함축한다. 경건함과 품격: 의리란 특별히 의미영역을 특정하여 일정하게 정의 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상적으로 우리 를 지배하는 오묘한 덕목이다. 박식함과 정밀한 지식을 위주로 한 의미영역에서는 서구적 학문의 언설을 따를 수 없다. 그러나 현실에 살아있는 삶의 내외에서 그 탐구와 배움의 의미를 자연스럽고 온전하게 받 아들이고, 그 일치 공감된 지혜에 바탕을 둔 의리 자체를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 으로 대하는 동아시 아적인 경건함의 전통에서는, 그 탐구된 의미를 재구성하고 확립함에서는 의미의 제한이나 치우침을 피 하려는 절대적 노력이 견지되며, 신중하고 철저하게 운용하면서 또한 아울러 반지성의 부끄러움을 피하 려는 당당함의 추구가 굳게 유지된다. 그것이 바로 의리의 정의에 해당된다. 의리에는 모든 종류의 지성 감성의 균형을 이룬 성과가 종합 응축되었다는 뜻이다. 그로인해 의리의 의의에 대한 높은 품격과 믿음이 유지 강화된다. 의리는 지상적이며 인간적이지만 본질 적으로 천상적인 것이므로 존귀한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고한 정신활동의 성과이기 때문이다. 다만 생활의 장에서 의리가 자주 도외시되는 것이 문제지만 의리 자체를 망각하거나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 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의리란 출발에서는 자각하고 이해가능한 선에서 하나의 믿음으로 시작된다. 이는 보통 사람다운 것으로 언급되어왔다. 문제는 그 의리 자체의 가치를 철두철미하게 견지하고 배우며 고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선비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뜻을 고상히 하라 고 하였던 것이다. 의리의 보다나은 이해를 뜻하는 말이다. 뜻을 고상히 한다는 것 역시 인의에 철저함을 말한 것이 었다. 철저하다는 것은 단순한 뜻이 아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에 철저함이다. 성인의 학도: 여기서 의리가 꼭 정의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은 아니다. 아주 손쉽게 정의할 수 있지만 그 높고 낮은 의미의 가변성으로 인해 어떤 정의에도 안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면서 아울러 그 의미를 깊게 이끌어 확고하게 하여 이끌고 나아가야 하는 이상적 개념형태다. 언제나 살아 숨 쉬며 변용할 수 있고, 의리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 仁 )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들 인의라는 개념들은 무오류 를 지향하는 의지의 언 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언어영역적인 성스러움을 지니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인격화될 수 있다면 곧 성인의 경지이다. 따라서 성인이란 인간초월( 人 間 超 越 )의 지칭어가 아 니다. 우리가 최소한 성인의 학도가 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선택이 의리다. 그러므로 의리는 진실을 추 구하는 엄정함에 있어 종교적 신성함에 비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 의리 란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이를 자신의 신념으로 승화하여 살 수 있다면 이미 성학( 聖 學 )의 문도로 입 문한 것이므로 당당한 동아시아 군자학인( 君 子 學 人 )이다. 의리란 존재론적 의의에서 보면 가장 명쾌하게 원시종교나 신을 대체한 실체성을 지녔으며 혁명적 의념이었다. 위대한 자립( 自 立 )과 자명( 自 明 )의 상징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0

51 인 셈이다. 의리란 주로 결연한 실천적 영역을 대표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가장 적실하게는 의행( 義 行 )으로 표현될 수 있다. 본질을 말하면 의리( 義 理 )이지만 진리의 깨달음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수행( 遂 行 ) 이 필요한 것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아는 것도 행하는 것도 일관 된 의미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알고 깨달아서 진정한 확신을 가지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인의 품성이라면 이를 고수하여 수행하는 것이 의리다. 공자는 예기 표기에서 인이란 천하의 드러남( 表 )이며 의란 천하의 다스림( 制 )이다. 예란 천하를 이롭 게 ( 利 )하는 것이 다. 라고 하였다. 인은 이 세상에 사표( 師 表 )가 될 만한 것이라는 뜻일 것이며 의란 천하를 정돈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며 예란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러남 이라든가 혹은 사표 라는 의미는 천리를 깨달음이며 다스린다 는 것은 그 수행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천리를 행하는 것이 이로운 것이므로 예를 이롭다고 하였다. 인은 천하의 진실을 앎이며 예란 그 깨달음의 실상을 행함이며 의란 그 실상을 고수하여 변함없이 지키고 관철하는 것이다. 인과 예와 의 역시 실체에 있어서는 곧 서 로 일탈됨 없이 일관된 그 어떤 것이다. 2)역사의식과 의리 의리는 역사의식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의리사상이 명백히 역사적 방식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시간과 더불어 동시대를 호흡하였다는 뜻이다. 해외학계에서 동아시아에 철학이 없다거 나 역사가 없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데 이는 단지 우리들 스스로가 매순간을 숨 쉬며 영위된 자신의 역사 와 철학을 평가절하한 데서 기인한다. 의리사상은 바로 그 핵심에 있다. 의리는 단순한 도덕률이 아니다. 인의로 병칭되게 되었던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역사의식이라고 하였지만 단순한 역사의식이 아니라 역사의식의 중심 골간을 이루는 역사의식의 실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역 사를 밀고 온 동력이기도 하다. 의리가 역사의식의 결정체라는 말은 의리란 개념이 춘추시대에 처음 생겨나 성립되면서 그 후대로 이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춘추시대 이전부터 성장해온 의리라는 말이 새로운 체계를 갖추고 의미를 경신하면서 역사적 생명을 영위하는 살아있는 개념이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를 호흡하고 개성을 수용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절실한 가치를 더해 나아갔다는 뜻이다. 다만 역사란 현재로서 의식하는 자에게만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시간적 진전의 의식이 없는 허울의 역사는 무의미한 것이다. 의 리도 그러하다. 그 단순한 의미의 허울은 정말 의미가 없다. 시대의식과 역사의식이 어울려서만이 살아있 는 의리가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의리가 일상의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하며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1

52 특별한 때에 행하는 것은 아니다. 절실한 삶이 되지 못한다면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 사는 단순히 언어나 문자이거나 개념에 머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가 역사 자체라는 말은 의리가 역사 문헌 같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범주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 지는 않는다. 의리는 오히려 그 기록이나 지성의 내적 실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추상이 아니라 는 말이며 삶이나 문화 그 자체라는 뜻이다. 예컨대 회화는 빛이다 라고 하였을 때 회화와 빛의 관계 는 일치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빛이 회화일 수는 없다. 회화역시 한 실체의 존재이며 그것이 빛으로 드러 나는 것일 뿐이다. 모든 문화가 다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회화가 결국 문물( 文 物 ) 즉 창조된 실물 이 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겠다. 의리는 그런 문물에 가깝다. 회화나 문자가 자연물이 아니고 어떤 아이디어나 사상이나 이름다움 혹은 주장을 나타내는 형식이지만 그 형식 스스로 사람의 진실한 감응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도 역시 물화( 物 化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에 물화되는 회화 를 비판하는 의견들도 있었다. 그러나 물화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회화적 의 미의상실을 나타내는 말이다. 황금만능의 물화는 문제지만 순수함의 물화 자체가 문제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의리의 의의도 그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이 양쪽 면을 다 포괄 함축한다. 정신과 감성 시대적 실상이 어우러져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의리란 바로 그러한 양면성을 견지하는 것 이므로 이런 의미에서도 질적으로도 역사적 이라는 정의가 명실상부하게 어울린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역사의 부재현상은 광범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정신의 부정이라든가 자신의 문화의 경시라든가 생활양식의 서구화 학문의 서구화 언어의 서구화와 같은 여러 분야에서 역사 적 전통이 왜곡 내지는 부정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를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외부문화와 사상을 수용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하는 주체가 그 내부에 그 수용을 주관하고 정돈하고 정리할 아무것도 없다면 그 수용은 단지 추종이 될 것이다. 중심이 없는 추종은 민족사상 위험한 일일 것이다. 국가와 민 족의 존립의 이유 자체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족은 왜 존립하여야 하는가하면 민족 국가의 확고하고 온전한 전승이 안정되고 행복하며 최상의 창조력과 개척능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자의로 해석하여 왜곡하는 것은 역사의 부재 이상으로 위험하다. 결국은 역사를 말살하고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중화주의라든가 일본의 제국주의의 잔재는 역시 역사왜곡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중화주의 제국주의의 잔재는 없으나 그 피폭된 영향이 있고, 자신의 역사를 존 중하는 태도는 지녔으나 실제로 자신의 구체적 역사의 가치를 몰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역시 동질적이 다. 역사는 그 진상을 똑바로 이해하고 계승하기 전에는 역사라 부를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백제 토 기의 넉넉함을 말한다. 신라 토기의 미려함을 말하고 고려 토기의 강건함을 말한다. 그런 부분적 해석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넉넉함의 역사적 기원과 정신태도, 그 역사적 전개상, 그 정체성과 미래지 향성까지 탐색되어야 한다. 의리 역시 그러하다. 3)의리의 단초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2

53 의리가 역사사실 기록 중에서 생생한 의론( 義 論 )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722년경, 노나라 은공 때의 <춘추좌씨전( 春 秋 左 氏 傳 )> 기록이다. 정나라 장공이 즉위한 후 일어났던 공숙단의 난에서였다. 공숙단( 共 叔 段 )이 모부인 강 씨의 비호를 받으며 경성( 京 城 )에서 반란을 도모하고 있을 때 장공( 莊 公 )은 불의 를 많이 행하면 스스로 죽게 되리라 하였고 이어서 의롭지 못하면 친목할 수 없으 니 많이 모여도 장차 무너지리라 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이 당시에 의리란 난( 亂 ) 이라든가 반 역의 위험성 을 지적한 말로 쓰였다. 역( 逆 )이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난( 亂 )과 동의어이며 순리( 順 理 )의 부정어이다. 순리란 이치( 理 致 )의 따름을 의미하며 이 이( 理 )는 어느 면에서나 당시의 우주관 자연 관 인생관을 상징하는 말이다. 신앙이나 점법( 占 法 )보다는 이시기에는 이미 당대의 철학적 지적 진리관이 더 중요해진 것을 의미한다. 의외로 순리( 順 理 )를 의미하는 순( 順 )의 개념이 바로 의와 직결되어 통하는 것임을 역사현실로서 보여준다. 공자는 인( 仁 )을 말하였고 맹자는 인의( 仁 義 )를 붙여 의( 義 )와 인( 仁 )을 한 말처럼 언급하였다. 인의가 상 호 불가분한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맹자가 비로소 일반적인 의미로 통용되던 의를 전면에 강조 부각함 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차원으로 승화하였던 것이다. 이 이후 시대에 따라서 인과 의는 동질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대상황에 따라 그 중점을 달리하였던 것인데 지금은 의를 말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일반 도리( 道 理 )의 가르침은 이미 경전 속에 충분하고, 배우고 공부하는 방법도 자세하다. 문제는 이를 체득하 여 이어가고 공부하고 흔들림 없이 지켜야하는 일 즉 의가 오늘의 최대 과제라 점을 인식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의리는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남상이며 동시에 최후의 보루이며 그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다. 의는 공부하는 삶을 대표하는 말이다. 인의는 공맹이 선창하였던 것이며 동아시아 정신가치를 대변하는 양대 지주다. 인이 없는 의가 없으며 의가 없는 인도 없기 때문이다. 동질적인 가치를 지칭한 말이지만 현실차원을 대변하는 것이 의리라면 이상차원을 대표하는 것이 인이다. 아무런 일호의 갈등이 없이 인을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성인의 경지 이며 천연( 天 然 )하거나 신묘( 神 妙 )한 경지다. 주저함 없이 의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호연지기를 지닌 최 대경지의의 용기이다. 물론 공맹은 스스로 인의의 경지를 자처한 적이 없으며, 다만 공자는 호학( 好 學 )을 자부하고 맹자는 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겸손히 말하였다. 말을 알아듣는 것 역시 공자의 언급에 따르면 역시 가장 높은 배움의 경지다. 공자는 논어의 맨 끝에서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세워 나아갈 수 없으며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고 하였다. 이 때 말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길이고 사람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의 결과였다. 지혜 란 바로 배움의 끝이다. 번지가 지혜를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 이라고 대답한 것이 그것이 다. 이 지혜란 공자의 이어지는 설명에서 보면 사람을 잘 등용하여 널리 인을 행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 므로 지혜 역시 인과 불가분한 것이다. 인문에서 천명이란 이치나 순리를 의미한다. 요즘의 언어로 진리 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3

54 우리 현재의 시점은 개인과 국가의 어떤 측면에서든 그 이룩한 성취나 성과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 하지만 전통적 정신과 도리의 역사에서 보면 그 진보 발전의 역사현상은 아직 미미하거나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이 공자를 새로이 내세우고 있다든가 한국에서 전통문화를 내내 강조하고 있 다든가 하는 일들은 국한된 세태를 반영하는 현상이며 정통 정신사의 흐름과는 관계없다. 예컨대 한국에 서는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아시아 정신과 문화를 재평가하는 강한 흐름이 일어났 지만 주체적 역사정신의 회복을 향한 역량의 결집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의로움이 우리들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식인의 공동책무다. 다시 말하여 자신의 전통에 대한 배움의 노력은 일어났지만 넓은 공감이라든가 공부의 깊이는 아직 축적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역사를 믿음 은 더욱이나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 가 문화 생활정신으로서 재정립하거나 계승 부활하려는 공감된 역사성을 띤 움직임은 아직 거의 없다.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이다. 공자가 신이호고( 信 而 好 古 ) 를 언급한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인의 정신은 장구한 역사를 타고 그 면면한 힘으로 완성된 동아시아의 초민족적이고 보편적인 최고 가치 다. 인의 정신의 전사( 前 史 )로서는, 예컨대 복희는 하도의 그림을 보고 팔괘를 그어 주역의 남상을 열었 으며 우왕은 낙서의 무늬를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를 지었다. 팔괘는 고대의 점법을 승화하여 철학의 길 을 연 것이며 구주는 고대인의 삶을 종합하여 대원칙을 수립한 것이다. 이는 하늘과 땅의 진정한 만남이 었다. 그런 가운데서 인도에 대한 성찰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시경에 보이는 삶의 의지적 혹은 정감적 승 화다. 그러나 인의 이전에는 다만 순수한 형태의 시비와 선악과 호오와 미추와 길흉만이 있었다. 인의는 이를 승화 통일하려는 위대한 지적 노력이었다. 모든 역사적 성과는 인의정신으로 귀결되었으니 공맹학이 그것이다. 이 오랜 역사정신은 가나긴 역사무 대에서 심한 굴곡과 부침이 있었다. 공맹이후 1000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성리학 이후 근세를 지나면서 오늘날 다시 100년간의 공백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1000년의 공백에도 부활했던 역사상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동아시아 문화의 고유한 본질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 1000년 100년의 공백기란 표현은 완전히 텅 비었다는 뜻은 아니다. 인의의 이름은 있었지만 그 가치와 의 미를 반추하고 새로이 하고 절실히 자각하고 결연히 실천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인의가 살아 움직이게 하 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그 대신에 다른 정신이 유행했었다. 불교와 도교 같은 것이 그것이며 실증적 학문이 그것이며 실용에 치우친 학문이 그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때의 실용주의는 오늘의 합리주의와 거 의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정신의 체제나 학문이 꼭 나쁘고 배격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공자 시대에도 이단이 있었고 그 이단마저도 오로지 배격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 인의체제와 다른 체제들은 우리의 각 시대 삶에 서 유용한 면이 있지만 그것이 정신의 본류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또 그것이 역사적인 것으로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강한 역사성이 있는 것만이 온 세상을 이끌 수 있고 모든 이의 삶을 가장 복되게 할 수 있다. 역사성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문화의 뿌리 중에 그 역사와 함께 문화를 특징짓는 핵심 줄기란 뜻이다. 그 문화권을 규정하게 하는 계기를 끊임없이 창출할 수 있는 힘이란 뜻이다. 이를 정통이( 正 統 )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4

55 라고 한다. 의리는 정통사상의 실천주제다. 오늘의 공백기가 지난 1000년의 공백기와는 매우 다른 특별한 것이다. 과거 한-당 시대에 걸친 공백기는 비록 유학은 역동하는 사상성이 쇠퇴하였지만 경학에 대한 지적 열정이 있었다. 이 열정은 중국대륙의 시대부들이 이끌어 왔다. 그 결과 유학의 부흥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성리학 이후는 중국에서는 지적열정 에만 치우쳐 경학의 기본 정신이 즉 정통성이 다시 쇠하였다. 오직 조선 성리학이 경학의 근본을 견지하 고 강한 사상성과 의리정신의 정통을 고수하였다. 이처럼 뒤바뀐 유학의 중심무대가 그 특수함의 하나다. 한국 땅이 지니고 있는 그 같은 깊은 책무를 지식인들이 통감해야할 것이다. 오늘의 세태에서는 사고무 친의 상황에서도 의리를 위한 변명을 믿음으로 견지하며 그 외로운 부활의 노력을 수행해야하는 것이 역 사적 당위다. 의리정신은 바로 그 중심에 있다. 의리란 철상철하한 인간적 생활표상이다. 전통적으로는 사람이 되는 법리이며 인간의 조건이었다. 오늘에 는 단지 추억된 명분이며 박제된 기호다. 이상적 인간의 조건인 의리가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면 그 사회 는 탈 인간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의리를 거론하고 있음에도 왜 의리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가. 끊임없는 일관된 원칙으로 고수하지 않기 때문이며 명실상부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 기준삼음이 극히 자의적이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탈 진리의 의리란 그런 것은 바른 의리는 아니며 전형적 의리도 아니다. 의리는 가까운 것이며 먼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의 삶에서 무엇이 의리인지 언제나 깨달을 수 있 고 또 의리를 선택할 수 있다. 삶의 현장에서 나와 남 또는 어떤 상황 사이의 긴장 속에 의리가 작동하고 있고 그 절실한 삶의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항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일견 삶의 긴장관계에서 그 긴장을 주도하는 것이 세속적 현실적 권위를 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것은 진정한 에너지는 아니다.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고 긴장을 완화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의리는 아니다. 그 긴장에서 일어나는 제3의 창조적 힘이 의리다. 나와 남의 중간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긴장의 상황에서 시시각각의 순간에 행동의 진자가 나와 남 사이를 고르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용이다. 공자의 용서하는 마음이다. 그 끝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의리로서 절의란 죽음과 삶의 선택이다. 중용과 서심은 의리의 중요한 원천이다. 맹자는 무한한 용기는 의리의 축적으로 나온다고 하였다. 의리를 고수하는 정신을 의지라고 한다. 맹자는 의지가 호연지기의 근원이며 지존한 것이라고 하였다. 우주를 채울만한 무한히 강한 기백의 머리이며 그 근거라고 본 것인데 과연 의리와 의지가 인생에서 가장 강한 힘일 수 있는가. 오늘의 배운 사람들은 아 니라고 한다. 옛날의 배운 사람들은 이를 목숨처럼 신봉하였다. 의리란 삶의 최상 최대 덕목이다. 삶을 정화하고 강화하는 행동 강령이다. 누구나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친근한 도리다. 가장 오래고 변함없는 개인과 사회와 국가의 통용 지표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신분의 고하 그리고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통용되어야 하는 기초 원리이며 동시에 모든 도리의 끝이다. 의리를 반성적 삶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다면 아마 새로운 삶은 스스로 눈떠 열릴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새 로운 창조의 근원이다. 의리는 동아시아적인 문화 학문 예술의 영원한 본질이다. 결단의 의리는 마음에서 또 배움에서 나오므로 단순한 용기이거나 상무정신은 아닌 것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5

56 4)일반화된 의미 개개 일반적인 의미에서 한국인들은 스스로 의리 있는 사람인 것으로 자신을 평가해왔다. 현재 널리 통 용되는 뜻으로 보면 의리란 개인주의에 반대되는 생활 속의 실천 원리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대개 다소 특별한 경우에 발휘되는 의리는 일반인들이 누구나 공감하는 아름다운 극기의 행동의 양식이다. 물론 이 실천의리는 의리의 소박한 모습이다. 또한 의리의 뿌리이며 원 모습이다. 이 소박한 의미의 의리가 전형 적 의리사상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유전자다. 우리 누구나 의리 없는 사람 이란 평가를 듣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마치 불효자식 이란 말을 듣 기를 두려워하듯이 의리는 거의 모두가 지키고자 하는 덕목이다. 우리 행동 선택을 지배하는 몇 가지 주 요 가치개념의 하나가 바로 의리이다. 그 외에도 어질다든가 지혜롭다든가 예의 바르다든가 신의가 있다 는 등의 인격 평가도 같은 범주에 있다. 인의예지신( 仁 義 禮 智 信 )으로 통칭되는 인격이 바로 일반인 누구 나 지향하는 인격이다. 이 다섯 가지 원리는 인( 仁 )으로 대표될 수도 있고 의( 義 )로도 대표될 수 있다. 마음의 원리로 말하면 인 으로 대표되고 의지적 실천적 원리로 말하면 의로 대표될 수 있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영위해오면서 어 느덧 고전적으로 제시된 인격 덕목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은 아직도 엄연히 우 리를 통치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직은 희망이 있다. 아울러 부언할 것은 인의 ( 仁 義 )는 질적으로는 불가분한 것이므로 같은 범주에 있다는 사실이다. 맹자는 이루장구 상에서 인의 실상은 어버이 섬기는 것이 이것이요, 의의 실상은 형을 따르는 것이 이것이다 라고 하였다. 인과 의가 가장 절실한 덕목임을 말한 것이며 인과 의가 모두 실천적 행동을 전제로 하였 음도 같다. 이어서 부연 설명한 것을 보면 지혜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알아서 떠나지 않는 것이요 예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절도 있고 문채 있게 하는 것이요 악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즐거워하면 생기가 나고 생기가나면 어찌 그치겠으며 어찌 그치랴 하면 자신도 모르게 발이 뛰고 손이 춤춘다. 고 하였다. 인과 의를 중심으로 하여 지혜와 예의나 악은 모두 이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지 적하였다. 인의예지신이 실상은 인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어도 자신의 삶의 모든 장에서 이 의리를 고수할 수 있고 또 그 의리의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6

57 가치를 마음에 되새기며 넓혀가고자 노력한다면 즉 자신의 삶을 오직 의리로 영도할 수 있다면 그는 이 미 당당한 선비다. 공자 제자 자하가 말한 대로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 고 할 만하다. 남이 배울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이 같이 배울만한 사람을 선인( 善 人 ) 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맹자의 선인은 신인( 信 人 ) 미 인( 美 人 ) 대인( 大 人 ) 성인( 聖 人 ) 신인( 神 人 )의 단계로 높아지는 인격의 제1단계이다. 공자는 선인( 善 人 )의 도리를 물은 자장에게 선인은 성현들을 배워 실천하는 사람은 아니며 성현의 경지에 든 사람도 아니 다 라고 대답하였다. 공자의 뜻은 선인이란 착한사람이지만 학문을 하여 높은 경지에 든 사람은 아니란 뜻이다. 그 사람의 바탕이 착하고 그 행동이 착한 것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다. 배움과 공부 그리 고 의지적 실천이 더 축적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 부족함이란 학문과 공부를 통해서 의리의 소재를 명확히 각성하지 않는다면 그 선인의 인격을 온전히 고수하거나 관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몇 가지 이욕에 무너지는 선인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학문을 깊이 한 사람이 또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자주 보게 된다. 의리란 지식의 배움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을 절실히 공부한 후에 확고한 의리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과 공부는 유사하지만 매우 다른 개념이다. 공부는 배움을 수행하는 것이며 절절한 받아들임이며 확신의 실을 거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 서두에서 배움( 學 )과 익힘( 習 )을 동시에 말하였다. 공자의 학습 이란 이같이 배움과 수행을 동시에 말 하는 것이었으며 그 익힘 곧 수행이 의리의 주체적 실천이다. 학습을 통해서 굳게 고수된 의리를 세워 나아간다( 立 )라고 한다. 공자가 논어에서 삼십이 되어서는 세워 나아갔다 고 한 바로 그것이다. 5)의미의 극대화 의리란 의( 義 )와 이( 理 )가 합체된 말이다. 이때의 의란 마땅한 것( 宜 ) 합당한 것( 當 ) 맞는 것( 合 ) 좋은 것 ( 好 ) 선한 것( 善 ) 아름다운 것( 美 ) 적절한 것( 適 ) 의좋은 것( 誼 ) 등을 의미한다. 이( 理 )란 원리 도리 이치 원리 법 등을 뜻하는 말로서 천( 天 ) 명( 命 ) 도( 道 ) 인( 仁 ) 법( 法 ) 등의 어의와 동질적인 위치에 있다. 이 두 의미가 합쳐져서 의리가 되었으므로 이 의리라는 용어는 의( 義 )가 가진 내외의 뜻을 종합한 의의가 있 고 아울러 일상의 어의로 친근함을 더하는 효과도 있다. 의리라고 하면 의( 義 )라고 하였을 때 뒤따를 의 미의 막연함을 정리하고 의( 義 )가 지닌 의미를 온전히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의( 義 )가 갑자기 스스로 그렇게 의미의 진화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의( 義 )가 의리 의 뜻으로 무엇보다 강한 생활정신으로 수립된 것은 맹자의 공헌에 의해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상의 뜻으로 애용돼온 의가 의리정신으로 승화된 것은 결국 맹자의 한마디 말에 의한다. 맹자에서 사생취의( 捨 生 取 義 )를 설파한 뒤로 이 의( 義 )는 유력한 정신지표로 우뚝 서게 되었다. 기원전 4 세기 중 후반의 일이다. 사생취의 장에서 맹자는 의란 행동의 선택이며 궁극의 선택은 생명을 초월한다 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 생명을 초탈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사람의 본성에 스스로 갖추어졌다고 보았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7

58 사생취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인간 본성이 온전히 발휘된 자연스런 선택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의는 철학의 최고 명제로 수립되었으며 의를 인간의 본성과 결부 연결하여 통일된 일관의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한 없는 광대한 사유의 길을 열고 아울러 행동의 절대지표를 수립한 것이다. 생명을 버리고 의를 선택한다는 이 맹자의 철학적 명제는 한편으로는 공자의 인( 仁 )사상을 수호하는 의 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맹자 당시 전국시대의 처절한 민생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짙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강한 역사성과 맥동하는 사상성을 동시에 갖추었다. 의리정신의 수립이야말로 맹자의 위상 을 증명하는 최고의 요목이다. 그러한 사상성과 역사성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 의리정신의 강조가 모든 사람 모든 시대의 삶에 무엇보 다 긴요한 것으로서 또 조건 없는 아름다움이며 생의 힘으로서 무엇보다 바람직한 것으로 모든 지성적 인간이 동의하였기 때문이며 모든 생활인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민심과 민생 속에 뿌리를 내릴만 한 불변의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리는 민심 천심의 덕목인 셈이다. 문제는 이제 오직 그 진실성 의 축적과 집약 그리고 그 이념적 순도의 강화에 있게 되었다. 당시 의를 둘러싼 학자들의 활발한 논쟁 이 그러한 사정을 잘 반영한다. 의리정신 이전에는 선악 시비 호오 당부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선악 시비 호오 당부의 확고하고 높고 변할 수 없는 준거는 없었다. 희노애락( 喜 怒 哀 樂 ) 애오욕( 愛 惡 欲 ) 있었고 그 감정이 어떤 가치로 드러나야 하는지 하는 방향은 없었다. 이해를 따짐이 있었으나 이를 삶의 각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 방법은 제시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결국 공사( 公 私 )의 문제였다. 사사로운 자아에 가두임과 공 적인 자아들의 상호융통의 문제였다. 사생활도 중요하고 공덕심도 중요하지만 사생활은 스스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오직 자아의 이기심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이익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이익초탈을 제시하였지만 맹자는 직접적 언명으로 그 초월을 강조하 였다. 그러므로 역시 모든 것은 결국 초월( 超 越 )의 문제였고 극기의 문제였다. 6)의미의 창조적 확장 초월함은 모든 생활미학의 기법이다. 또한 각 영역의 문화를 여는 방편이기도 하다. 아울러 학문과 공부 의 요체다. 시는 초월의 언어요 회화는 초월의 상징이며 정치는 초월의 권력이요 군사는 초월의 힘이다. 문제는 진정한 초월의 구현에 있었고 초월의 가치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었다. 초월의 언어 상징 권력 힘이 넘치는데도 어째서 사람은 초월의 가치를 이루기 힘든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초월이 없는 곳은 그저 잠자는 적막한 대지다. 초월이 없이는 누구도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 도 왜 초월을 지향하지 않는가가 문제다. 의리는 허다한 초월의 모든 양식을 집약하고 그 정법을 대변하 고 창출한다. 증자가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 것은 초월을 위한 진지한 몸짓이었다. 자로가 시비당부를 떠나서 의리로 죽은 것 역시 순정함을 실천한 것이었다. 자장이 공자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배움에 파고 든 것도 순정함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8

59 을 바라는 열망이었다. 자하가 공자 말씀을 깊이 받든 것도 순정함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순정함을 향 하는 것을 호학이라고 한다. 공자가 오직 안연만을 호학한다고 평가한 것은 안연이 가장 온전하게 배움 에 임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군자들은 공자 제자들의 호학을 보고 경악하였다. 자공이 공자 3년 상을 치른 후에 다시 초막을 짓고 3년간 더 시묘한 것은 바로 호학의 행동이었다. 개개의 사랑을 초월하여 인이 되고 나의 아름다움 나의 정당함을 초월하여 의가 된다. 인과 의를 정의하 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초월의 언어라서 모든 정의를 다시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인을 일 정하게 말하지 않았고 맹자는 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한 적이 없다. 정의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생명과 삶을 정의하는 순간 왜곡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삶은 고해다 라고 정의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비 참해지겠는가? 생명은 영원하지 않은 그 무엇이다. 라고 정의한다면 삶이 얼마나 애처롭겠는가? 공 자 맹자에 의해 인과 의는 자유로운 창조의 언어로서 재구성되었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사색하고 탐구하 고 즐기는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인의를 반려로 하지 않은 삶은 드디어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맹자는 그런 자를 금수( 禽 獸 ) 라고 통렬하게 정의하였다. 인간이 아니다. 라고 직접 언명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의미를 새롭게 밝히 는 것이 바로 대학의 명덕( 明 德 )이며 일신( 日 新 )이다. 공맹의 인의에 이르러 사람들은 드디어 신( 神 )을 대 체하여 의지할 곳을 얻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을 넓은 거처라고 하였다. 인의에 이르러 사람은 드디어 의심 없는 당당한 길을 갈 수 있게 되었고 종교적 신앙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를 사람이 걸어갈 큰길이라고 하였다. 인이란 본성마음이며 의란 의지의 실천이므로 불가분한 것이다. 둘이 며 하나이고 하나이며 둘이라는 일반적 표현에 걸맞다. 세상에는 완전한 순결 물질은 없다. 모든 기물들도 순정품은 없다. 다이아몬드 금 은인들 100% 순도일 까. 그러나 사람은 인의를 통해 순결 순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사람이 가장 고상한 이유이다. 순정함과 순결함으로 자아를 초월한 이가 바로 성인이며 그로 인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는 이가 신인이다. 우리는 이미 성인을 가지고 있고 배우고 있으며 신인을 지향하고 있다. 맹자가 신인을 말한 것은 영원한 지표이 기 때문이다. 그 길이 바로 인의의 길이다. 모든 순정한 것은 강하고 빛난다. 그러므로 순정함을 불후하다고 하고 영광이라고도 한다. 말로 불후하다 함은 순정한 언어를 뜻하고 삶으로 불후하다 함은 행동이 순정함을 말한다. 전자는 경과 전을 말하고 후 자는 성현을 말하고 군자를 말한다. 동이 나라에 군자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용감함으로 순정 한 자를 유협 혹은 자객이라고 하였고 절의로 순정한 자를 충신이라고 하였다. 순정함의 모습은 제한 없 는 것이었다. 역경에 의하면 공간에 유동하는 것이 생명의 기운인데 여기는 바로 천리가 행해지는 공간이다. 물질 사 이의 공간과 물질이나 사람의 실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라이브 니즈의 저술에서 말하는 아르케(Archei) 엔텔레피(Entelephy) 등 역시 유사한 생각이다. 영원불변 불사의 존재인 영혼의 드러남이며 마음으로 화하여 만물을 드러나게 하는 기제이다. 우리 단군신화의 명제인 홍익인간 사상은 바로 그 사이간 자의 존재로 말미암아서 공간사상이 될 수 있 다.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간이 가진 생명요소와 그 영원성에 바탕을 두었다. 나아가 사람의 사이도 공간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천리는 도처에 있는 것이 된다. 사람의 사이 공간 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59

60 역시 의리를 말한다. 의와 배합된 것이 리( 利 : 益 ) 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인간이라고도 부른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의 내부에도 순수공간이 개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7)인과 의리의 관계 공자는 인을 정의하지 않았다. 정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인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말하 였다. 안연에게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은 의미상 사 랑의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하는가. 정말로 순수한 사랑인가. 절대의 사 랑인가. 하는 세 가지 물음이 더 있을 뿐이다. 맹자는 의를 정의 하지 않았다. 다만 의가 어디에 있는 지를 말하였다. 차마하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 즉 인이 그것이다. 의는 바로 이 인을 절실히 느끼고 견지하는 것이므로 의미상 극히 옳은 것일 뿐이다. 옳고자 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가졌는가. 변함이 없 는가. 절대로 지키는가. 하는 세 가지 질문에 직결돼 있을 뿐이다. 인의는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정화하고 견지하기가 어려울 뿐이며 넓혀 나아가기가 어려울 뿐이다. 인의란 단지 순수함이며 절대적인 그 무엇일 뿐이다. 아울러 그 가운데서 공과 사의 균형과 중용 즉 순수한 마음과의 일치 만남 이 또한 어려울 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인의 경지를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속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인은 영 원히 추구해야하는 끝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맹자 역시 누구에게 의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는 죽음으로 지킬 수 있다면 완결될 수 있으므로 백이와 숙제를 성인이라고 평가하였다. 맹자는 자신도 그 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여 자신에게도 허용하지 않았었다. 인은 마음속에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인은 인( 人 )이라고도 정의한다. 사람답 게 하는 마음이란 결국 사람이 배움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므로 문화적인 마음이다. 가치를 주구하는 마 음이다. 의란 그 마음을 고수하는 의지이며 믿음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는 내안에 있다고 하였다. 인은 마음이며 의는 의지에서 나온다. 의지란 영혼 마음과 행동을 이어주는 직결된 통로를 연다. 의지가 있으 면 삶이 굳건해지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지가 호연지기의 우두머리이며 장수이며 지존한 것이 라고 하였다. 물론 무한한 기상인 호연지기는 의리의 축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의리는 용기 있는 결단적 삶의 근거인 것이다. 용기와 결단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참되고 새로운 가 치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공과 사가 만나는 장에 서 있는 인간으로서 의는 고뇌를 수반할 수밖 에 없으므로 의리는 고뇌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자의 극기( 克 己 )는 인에도 의에도 똑같이 통하는 원리다. 공자는 이미 인을 말함으로써 의도 같이 동시에 표현한 것이었다. 인의는 정의돼야하는 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인의는 모든 삶의 장에서 느끼고 정화해야하는 생명의 문제다. 그러나 밝은 통찰이 없이는 뚜렷이 자각할 수 없고 사물을 성찰하지 않고는 그 가치를 진실로 확신할 수 없으므로 지혜가 요구된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격물치지가 근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격물치지란 사 람의 전인적 체험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지식의 탐구도 그 하나이고 사물의 분석도 그 하나이지만 직접적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0

61 으로 삶 속에서 부딪는 여러 경험을 제한 없는 받아들임과 그 반추를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 배움과 공부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문자 그대로 사물의 진상과 의미에 바르고 지극하게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끊임없어야하는 영원한 길이다. 맹자는 천하의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대도를 행한다고 하였다. 이어서 부귀 도 이를 변하게 할 수 없고 빈천도 이를 옮기게 할 수 없으며 위무도 이를 굽게 할 수 없는 것을 대장부 라고 한다고 하였다. 맹자의 이 대장부론은 바로 인의의 대도를 행하는 자를 지칭한다고 한 것이다. 여기 서 주자는 넓은 거처를 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바른 자리는 예를 뜻하는 것으로 대도는 의를 가리키는 것 으로 풀고 있다. 그러나 바른 자리란 바로 의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넓은 거처 나 바른 자리 대도란 사실은 똑같은 내용을 거듭 칭한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거처는 어짊을 베푸는 일상 생활을 강조한 것으로, 자리는 고수 선택하는 의리를 말하는 것으로, 대도는 천명과 이치의 중핵인 인의 를 통칭한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른 자리를 예( 禮 )라고 보는 것은 의( 義 )의 원 뜻과 다 소 어긋나는 점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의는 본래가 바르다 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8)예와 의의 관계 예는 이행한다는 의미에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실천적인 의미에서는 의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실천하거나 이행한다는 것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본질에서는 인 즉 어짐을 행하는 것이 며 철상철하한 면에서는 의리를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는것이다. 예란 결국 인의를 행하는 준비된 행동양 식이다. 이 준비된 행동 양식을 절문( 節 文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에기에서는 예는 인의도덕에서 나온 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이 적극적 펼침의 의미를 바탕으로 하는 반면에 의는 절제의 의미를 기초로 하였 다. 인은 무소불위( 無 所 不 爲 ) 가 허용되는 순수영역이고 의는 유소불위( 有 所 不 爲 ) 해야 하는 영역 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천명에서 나왔으므로 총칭하면 도( 道 )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예와 의는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예는 천리의 절문이라 고 하였듯이 때 예는 인위적이거나 장식적인 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도와 천리 등 이치를 따르는 행실이다. 천명을 따른다는 말 그대로 순리적인 면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이런 사실은 예가의 설을 살펴보면 대개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에 비하여 의란 인간행동 가운데 절제적인 면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을 말할 때도 극기복례란 말처럼 절체가 요구된다. 절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인이나 예도 마찬가지이다. 그 일반적 절제의 의미가 의와는 어떻게 다른가가 문제일 것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였듯이 인의 절제는 마음의 절제다. 사욕이라든가 지나친 정서를 정돈함을 주로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예의 절제는 행동의 모양을 위한 동작적인 절제이다. 물론 이 때는 아울러 예기( 禮 器 )가 사용되어 보조하게 된다. 제사라든가 만남의 예절 등에서 술이나 제물 예물 등이 함께 사용된다. 이에 비하여 의는 행동의 본질에 관계하는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1

62 질적인 절제다. 질적인 절제라 함은 의지( 意 志 ) 또는 의향( 意 向 ) 자체의 절제란 뜻이다. 의향이란 삶의 많 은 국면에 대응하는 일반적 절제란 뜻이다. 국가의 존망 상황이라든가 가족의 삶의 논란 혹은 사회적 관 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선택적 상황에서 결단하게 되는 일반적 결단의 중심 에 있는 것이 의리다. 그 상황은 중차대한 것일 수 있고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동제에 관계된 것일 수 있으며 삶의 모든 국면에서 명확히 가려야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므로 의리란 반드시 생애나 생명을 건 것만이 아니라 일반적 삶의 결단의 양식이라고 총괄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9)신의와 의리 신의란 충실한 진심을 행함이다. 맹자는 실제로 있는 것( 實 有 )을 신이라고 하였다. 의리는 진심이 아닌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며, 진심을 수호하는 것이다. 두 말은 같으면서 다른 말일 것이다. 진심이란 천혜 의 참마음이며 이는 인의 본질이기도 하다. 물론 예의 바탕이기도 하다. 예의 대전제인 천명과 성( 性 )과 성( 誠 : 眞 誠 )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란 그 일반적 실체 자체를 지적한 말이다. 사과도 아름답고 딸기도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맛이 인이라면 각개의 아름다움의 실상 자체가 신의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다 모인다면 인일 것이며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힘을 경주 하여 행한다면 그것이 의리일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는 인의예지의 공통된 질료가 되는 그런 것일 것이 다. 대개 오행에 비견하면 신의는 토에 해당되고 토는 나머지 사행의 불가결한 바탕이다. 토가 없이는 오 행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토는 물질이나 실체를 이루는 것이므로 오늘의 개념으로 말하면 분자나 입자를 구성하는 기초단위를 말 하는 것이기도 하고 분자결합을 통해 실제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다만 그 결합과 성취의 바탕을 이루 는 실체를 주로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오행 상생 상극의 출발선에 토가 있는 것이므로 토는 만물의 기 초다. 인의예지 역시 인물이든 사물이든 물적인 어떤 것으로 최종 드러날 수밖에 없으므로 토를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의는 물론 만물의 기초 속성이기도 하지만 단적으로는 인격적 기초 속성이다. 신의가 없다면 어떤 가 치든지 있다 없다 할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의지할 수 없다는 뜻이며 무엇이든 이룰 수도 없 다는 뜻이다. 공자는 이를 수레의 끌채나 멍에에 비유하여 수레가 갈수 없는 것과 비교하였다. 신의가 없 다면 세워 나아갈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의는 믿을 신( 信 ) 자로 표현되는데 사람 과 말 로 구 성된 자다. 사람과 말의 사이에 진성이 없다면 허무하게 될 것이다. 2.의리의 새로운 모색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2

63 1)이해의 여러 방향 전범 추구 사람의 태어남이 극히 정연한, 그리고 불변의 영원한 자연의 이법에 따라 가능하였듯이 우리 의 살아감 또한 스스로 강력하고 영구하고 일정한 질서와 규율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 연하다. 우리가 원칙 없는 무질서와 혼란을 꺼리는 것도 원초적으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들 삶 을 위태하고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주어진 불가항력의 막강한 규율과 이법을 무의식적 혹은 선험적으로 그대로 추종하 여 살아가는 말하자면 자연 상태에 가까운 삶에는 만족을 하지 못한다. 이는 아마도 사람의 강한 삶의 욕구와 조건에 의해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이법의 힘이 자의적으로 왜곡 변형되고 나아가 스스로 합리화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창조적으로 그 이법을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펼치고 강화하고 확 장하려는 인간 고유의 본원적 지적 의욕 즉 품은 이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법의 왜곡이란 이법이 소실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이법이 균형성을 잃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선천 적으로 이법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떠날 수는 없으며 이법은 우리 생명의 고향이므로 이를 떠나면 심 중이 공허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심이다. 그러나 다만 사람의 자유의지는 비록 그것이 이법이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자각적으로 수행할 때 더 가치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또한 왜곡될 수도 있다는 것이 다. 의리란 그 같은 유동성 위에서 자각적으로 걸어가는 흔들림 없는 이법의 길일 것이다. 이법에 대한 적절한 각성의 결여는 생물학적인 여러 종류의 공복감 외에도 정신적 감성적 이상을 따라감 에 따른 제3의 공복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당당한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도 그 하나의 증좌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 이법에 저항하거나 지나치거나 혹은 부족함으로 인해 우리의 순수 영성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 일 것이다. 이법은 영혼의 근저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경전에서는 항시 과불급을 경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러나 이법을 온전히 객관적 으로 명각하여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무한히 절실한 감각으로 접근할 뿐이다. 그 접근의 노력과 결과가 바로 역사상 이룩된 고전적인 이상과 전범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전범이 부단히 재해석되어 경신 되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면서 사상이 발전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불로장생 하고자 하는 소망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자연의 이법에는 반 하는 것이다. 물론 영원한 삶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유한한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 그것이 바로 인간의 특징이며 도전적 명운이기도 하다. 새로움을 지 향하고 바람을 지향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는 인간의 막한 생명적 의욕이다. 인간은 드디어 나아가 자신이 우주와 자연과 함께 3대 주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주에서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자긍의 태도에 이르기도 하였다. 오르테가 Y 가세트(Ortega Y Gasset, Jos )가 우 주는 위대함에도 자신의 위대함을 모르지만 사람은 스스로 이를 자각한다고 한 것이 그 한 예다. 물론 사람이 아무리 이법에 이탈하고자 하여도 이를 벗어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법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함 으로 인해 수시로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3

64 사람은 우선 자연적으로 주어진 몸으로 살지 않는다. 의상을 걸치고 집을 짓고 무언가를 스스로 마음대 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적 창조라는 것도 자연의 이법을 따름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자 연의 이법을 이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아가서는 이용하는 그 일환이다. 사람의 삶의 역사가 그렇 게 이루어졌으므로 그들의 전체 생활 자체도 역시 스스로 자각해낸 이법의 범주에 따라 더 나아가서 인 위적 창조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창조적 삶도 결국은 그 자연의 위대한 이법의 안에 존재 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인위적인 것마저도 이법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만 들어가는 삶은 자연이 만드는 것보다 더 단순하고 명백하고 가시적이다. 자연의 이법보다는 교묘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감성과 현상성을 확보함으로서 그 단순함을 빛나게 한다. 단순함의 아름다움 이다. 삶에서 추구하는 창조적 적극적 인위적 이법의 운용은 그 자각한 이법 자체의 이해의 내용과 방식에 따 라서 많이 달라진다. 어느 면에서든 사람의 다양한 삶의 모습 자체는 의식적 무의식적 여러 수준에서 가 지게 되는 이법자각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꼭 배움으로만 자각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삶 스스로가 이 법의 깨달음과 느낌의 기회인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배움 자체를 자각하고 배움을 적극적으로 영 위하는 것이 제일이다. 나아가 그 배움의 영역을 현실 자연 역사에 까지 넓혀가는 것은 이법을 이해하는 최상의 방도일 것이다. 맹자의 상우( 尙 友 )가 역시 그런 것이다. 의리란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이법 자각내용을 요약하고 이를 재정비하고 정돈하여 이법 자체와 일치되게 하고자 하는 궁극의 노력이다. 의리란 크게 보면 역시 배움과 공부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배 움과 공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위대한 이법 자체와 일치되기 위해서는 이법 이해의 수준과 질이 증진되 어야 하고 또 그것이 명백하고 절실하게 느끼고 자각하여 알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깨달음의 끝없는 경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삶을 구현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깨달음 을 높여 나아가기 위해서 전 삶의 장을 배움과 공부의 장으로 전환할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의리는 배움과 공부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궁극의 생활태다. 의리란 그냥 본성이나 성격을 따라서 이루 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과 행동을 제어하는 배움을 통해서 인생의 무지로 인한 막연함 혼미 함이나 방황 무절제함 제멋대로임을 정돈하고 하나의 삶의 전범을 찾아 나아간다. 그 삶의 전범은 사람 에 따라 개성이 발휘될 수 있어 다양하다. 말하자면 인생의 정돈된 작품과 같다. 의리란 인생의 하나의 전범적인 주제를 표현한 노작이다. 그 배움과 공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전통적 측면이다. 이른바 성경현전이 보여주는 의리전범을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의 사상은 자율적 발전의 모델을 유지해왔다. 물론 시대와 호흡하 지만 그 내면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범들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역사를 초월한다. 자율적 특성 아래서 각 시대에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치지만 큰 삶의 틀은 굳게 유지되었으므로 비약이나 특별한 이인은 없는 것이 정통사상의 특질이다. 그런 점에서 성경현전은 의리의 자율적 측면을 보여주는 보고이 다. 다음은 내면공부다. 나 자신의 마음이 유리같이 투명할 수 있다면 삼라만상의 현상들이 내 마음을 지나 면서 그대로 일치되는 감동을 맛보게 될것이다. 그 일치된 감동이야말로 진실의 표상이다. 예술적 문학적 경지에서 느끼는 감동도 있지만 학문적 감동은 더 강렬하고 진하고 영구하다. 이것이 역시 사상적 자율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4

65 성의 모델의 또 하나이다. 마지막으로는 시대를 숨 쉬고 여건과 환경을 숨 쉬는 것이다. 당 시대와 호흡하지 못한다면 사상을 이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현실과 같이 동일화될 것인가 하는 것이 또한 의리의 과제다. 이는 역사적 환경과 또 다른 절실하고 절대적인 삶의 명제와 연관 지워져야 하고 시대의 모순이나 과제에 응답하여야 한다. 고금의 모든 문헌과 경전은 사실 의리의 기록이다. 서양의 철학이나 동아시아 유학에서 텍스트를 중시한 것은 결국 진실의 전범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다. 상고시대의 무축이나 기술 공인집단 이래로 오늘의 내면화된 철학자에 이르기 까지, 전범을 추구하는 이들은 동질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예술 이나 문학일지라도 수행의지를 담은 전범을 추구하지 않음이 없다. 바로 의리의지( 義 理 意 志 )다. 문제는 의리의 수행 양식과 개성일 것이다. 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된다고 하였을 때 증자는 이를 서( 恕 )라고 풀었다. 증자의 서심( 恕 心 )이란 이미 공자가 언급한 충서( 忠 恕 )를 말한 것인데 진정한 정성 즉 참마음 곧 진심을 말한 것으로 바로 그 진 심을 통하게 하는 것 또는 펼쳐 나아가는 것 그것이 일관의 뜻이라고 풀이한 것일 것이다. 참마음은 실 로 의리의 근거이며 바탕이므로 증자의 지적은 옳은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뚜렷 이 느끼고 감지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며 감정이다. 그러므로 이를 은미하면서도 드러난다 고 하였다. 그러나 증자처럼 오래 마음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서심과 의리의 관계를 절실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 을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의 마음의 성찰이 없이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증자의 제자 자사와 그 사숙 ( 私 淑 ) 제자인 맹자만이 그 의미를 바르게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용서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 사물 을 궁리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서심의 범주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증자의 언명은 넓고 깊고 그 러면서도 절실한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까운 것 절실한 것을 느끼고 이를 성찰하여 배움으로 삼는 공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증자가 매일 3가지로 자신을 반성하였다는 말이 바로 그 증좌다. 서심은 이미 의리행실의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의리행실은 서심보다는 더 앞의 시급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학단에서 서심을 이야기 하는 것은 그곳이 배움의 장이므로 매우 유 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리는 더 일반적 의미로 통행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깝고 절실한 언어로 풀어낼 수는 없는가 하는 의문도 들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배움의 언어일 것이다. 배우고 익히면 기 쁘지 않은가 라고 한 한 마디가 더 절실한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배움의 자세로 살아 간다면 우리 삶이 옳지 않은 쪽으로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자의 말씀을 따라 갈 말은 아마 천하에 다시없을 것 같다. 증자의 서심이란 사실은 인심( 仁 心 )을 말한 것인데 인을 안다는 것은 지극한 공부의 귀결일 것이다. 천지 와 사물과 인간을 배움이 깊어질 때 확신하게 되는 경지일 것이다. 물론 맹자의 언명에 의하면 사람이 천성적으로 가진 인심( 人 心 ) 즉 사람다운 마음이지만 내안의 인심이 확고하게 갖추어진 것임을 깨달은 것이 인( 仁 )일 것이다. 의리란 그 인심의 깨달음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행하게 되는 보다 절실한 어떤 것 이라고 생각된다. 맹자의 사단( 四 端 )은 사람이 똑같이 가진 근원적인 심성이 인의예지의 단서라는 것인데 예컨대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라든가 수치를 알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라든가 시비를 가리는 마음 사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5

66 양하는 마음이 다 절실한 것이지만 이 네 가지 마음은 서로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함께 뭉쳐져 있으면 서 그중 한 쪽으로 일어나게 되는 그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는 수치를 알고 악을 미워 하는 마음이지만 인과 예와 지를 함축여야 진정한 의리다. 마음의 종합적 발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단은 인으로 대표될 수도 있고 의로 대표될 수도 있고 예로 대표될 수도 있고 지로 대표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같은 본질을 지적한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일관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가지 가운데 아마도 의리가 가장 절실한 것일 것이다. 수치와 증오라는 두 가지 마음 작용이 아울 러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자기반성을 유도하며 증오는 바른 행동의 결의를 나타낸다. 마음과 행동을 아울러 나타낸 말이기 때문에 의리란 이 네 가지 마음을 항시 대표하기 에 좋으며 특히는 무도한 시대 행동적 결단이 요구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맹자의 언급대로 역사상 대개 잘 다스려지는 시대는 적었고 어지러운 시대가 많았으므로 의리로 말하는 것이 더 시의에 맞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맹자 시대에 비하여 공자 시대는 원칙과 제도가 비교적 많이 살아 있는 시대였다. 맹자시대는 원리와 원칙이 무너진 혼란이 극한 시대였다. 의리용어가 더 절실 했던 것이다. 공자는 진리를 말했으며 맹자는 이를 수호하고 이어가야 하였으므로 인의( 仁 義 )를 강조하여 의리( 義 理 )를 부각하였던 것이다. 수립의 미학 우리의 태어남은 자연의 이치이므로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는 것이 생명 체로서 부여받은 지상명령이다. 자연스럽게 살지 않고는 그 자연의 생명을 보존하거나 영위할 수 없다. 이를 순리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삶의 내용이든 크게 자연의 영역에서 창출되고 이루어져 존재할 수밖 에 없을 것이다. 맹자는 이를 천형( 踐 形 ) 이라고 하였다. 온전히 자연스러움을 따라 산다는 뜻이다. 그 러나 성인만이 천형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늘 자신의 인위적 생각에 얽매이고 자 신의 욕구에 제한 당하게 된다. 자신을 제어하고 이 천형의 원칙 위에 세워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문 화이며 문명일 수 있을 것이다. 천리나 순리의 효험이 문화적 인간 활동에 의해 더욱 창조적이며 빛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인간을 위대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삶이란 극히 정상적인 자연의 이법의 구현이다. 그러므로 이를 상도( 常 道 ) 라 고 부른다. 나의 삶과 자연의 운행을 합치되게 하는 이상적인 삶이다. 그러나 그 상도 혹은 이법이란 그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뚜렷이 볼 수는 없다. 체험과 배움 속에서 형성되는 확신의 모습으 로 존재한다. 탐구함으로서 비로소 느끼고 알게 되는 그런 것이다. 그 같은 자각을 얻게 되는 경험적 대상도 당연히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농사를 짓다가 불현듯이 깨달 을 수도 있고 수레를 만들다가 갑자기 알 수도 있고 말하다가 그냥 느낄 수도 있다. 성실히 살면서 그냥 아는 것이다. 이를 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자각의 내용도 일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역 계 사전( 繫 辭 傳 ) 에서는 이일분수 를 강조하였다. 자연은 하나에서 나왔지만 나뉘어 매우 다양하다는 것 이다. 안연은 공자의 학문을 말하여 앞인가 하면 뒤였다 고 하였다. 황홀난측하다는 것이다. 이 모두 가 이법의 자각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자연이란 느끼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스스로 동참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자연을 그 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사유하는 것이 자연과 하나 되는 길이다. 이 때 느끼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주체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6

67 인 나는 자유로워야 하는 존재다. 자유롭다함은 나의 내면 외부 그 어디에 의해서도 강요되거나 제한되 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자체도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므로 그에서 비롯한 인간도 자유로워야 하는 이법의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 자유롭다 함은 생물학적인 자유는 아니다. 생물로서 우리는 늘 그 삶의 욕구나 그 발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의 길은 결국 끈질긴 입체적 성찰이다. 공자가 현자를 배우기를 사랑하듯이 하라고 한 것도 그런 것이다. 인생의 고통과 기쁨까지도 성찰할 때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된다. 사람의 내부에는 자신을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충분히 성찰하지 못하게 하는 삶의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 다. 이를 이욕( 利 慾 )이라고 한다. 사람의 칠정과 욕구들은 이 역시 정당한 생명의 요구이지만 오로지 여 기에 매일 때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비록 정당하지만 그 생명의 요구를 따르되 이에 지나치지 않 도록 자연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지나친 것은 악이다. 부족함으로 병이되 는 경우보다 지나침의 해악이 더 많다. 우리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다 그러할 것이다. 공자가 어질되 배 우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 고 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극기가 필요하고 끈질긴 자성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자연적인 순화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인생의 참 본질일 것이다. 이 같은 자기균형을 위 한 노력을 대표하는 것이 배움이다. 성찰이 중요하지만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공자는 배움만 못하다 고 하였다. 나 자신과 나의 환경적 모든 대상을 모두 배움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배움만 이 자신을 제대로 성찰하고 극기하고 모든 사물과 시원하고 밝고 화통하게 통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 다. 배움이란 겸손한 것이며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서 나온다. 다만 배움이란 꼭 독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이해하고 산다면 모든 것이 다 배움일 것이다.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좋은 것도 바쁜 것도 즐거운 것도 슬픈 것도 오욕과 명예마저 도 다 배움일 뿐일 것이다. 배움을 통해 우리는 새 길을 세워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의리란 순수 사색으로 이루어진 논리적인 사상적 결론은 아니다. 존재의 의미를 고뇌한 철학적 신념도 아니다. 그렇다고 틀에 박힌 도덕도 아니다. 종교는 더욱 아니다. 전통사상이 조상숭배나 제례를 행한다 고 하여 종교로 볼 수 없으며 남녀를 분별하는 사상을 지녔다고 하여 도덕이라고 할 수 없고 주역과 같 은 추상적 논법이 있다고 하여 철학이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 다 배움의 양식일 뿐이다. 그 어떤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만 온전히 언제나 배우고 깨닫고 수행하는 입체적인 것이다. 자연스런 그리고 무제한의 배움으로 인해 자연히 일어서게 되는 것은 진정한 나의 수립이다. 그 배움은 한이 없지만 대개는 1)나 자신의 내면을 잔잔히 성찰하고 2)빈 공간과 주변의 여러 현상을 그대로 수용하 며 3)역사적 인물과 전통을 살피고 이해하는 등의 세 부류의 노력으로 구성된다. 중용의 신독( 愼 獨 ) 이란 나의 생각에 가두어지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결국 위의 배움의 3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이 삼자가 균형을 이루면서 통찰의 힘이 넓어지고 뚜렷해지고 깊어지는 것인데 그 밝은 생각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명쾌한 결단이 바로 의리다. 의리란 결국은 가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그 어떤 것이다. 당연히 이는 크고 작은 여러 단호한 선택과 행동으로 구현된다. 이를 역시 세운다고 이를 수 있다. 하나의 스마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7

68 트한 행동 일관된 행실 결연한 선택과 같은 삶의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의리란 세워 나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워 나아간다 함은 물론 새로운 것, 상상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것, 예상을 넘어선 것, 나아가 놀라운 것 등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절실히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그 어떤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단지 자연의 정상적인 이법 즉 상도를 순수하게 따라간 것일 뿐이다. 나를 넘 어설 수 있는 것이므로 공변되고 공정하고 공평한 것이기도 하다. 나의 내면적 자연적 일어섬을 넘어서서 결국은 누가 보아도 새로운 섬을 창조해 일구어내는 그런 것이 다. 자신의 독특한 의지를 현실에서 가시적으로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므로 새로운 수립의 미학이며 창조 적 세움의 의지다. 인간은 직립함으로써 인간이 되었음에 만족하지 않고 무한한 세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세움은 사소하고 작은 것일 수도 있고 거창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의리란 자연과 내면의 마음과 행실이 즉 자연과 나 사이에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새로운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므로 역시 제3의 길이 다. 단순한 이기의 길도 아니고 무심히 자기를 버리는 길도 아닌 조화의 길인 셈이다. 의리란 결코 자포 자기( 自 暴 自 棄 )가 아니다. 슬프고 애처로움 것이 아니다. 대인행이다. 그 같은 의지와 행동을 세움에 있어 절실한 새로움이 결국 문제인데 의로운 자가 진정 새로움을 이루고 향할 수 있는 것은 절실한 자각의 생생함에서 비로소 발원된다. 밝은 생각이라고 한 까닭이다. 대학에서 는 이를 명덕( 明 德 )이라고 하고 자명( 自 明 )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절실함의 에너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의로운 행동이란 바로 절실한 의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전인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며 냉철한 상상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절실함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할 필요를 느낀다. 공부와 의리의 중 핵이기 때문이다. 절실함이 없이는 사실 어떤 일도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뜬 인생이라고 한다. 허황되 다는 것이다. 절실한 느낌 절실하게 다가오는 생각은 진정한 배움의 진실과 기쁨을 일으킨다. 그 절실함 은 사실 우리 내면에 그리고 주위에 어디에나 무한정으로 항상 존재한다. 그 절실함을 요구하는 대상들 과 상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배움이 장애되는 것일 것이다. 통달이라는 말은 그러므로 매우 적절한 어휘 다. 의리란 통달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막힘이 없는 것이 통달이다. 공자는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이 되어서부터는 세워 나아갔다고 하였다. 물론 이는 그의 모든 생 활의 장에서 배움의 노력을 견지하면서 그 배움과 공부의 결과를 명백히 그리고 창조적으로 수행하였음 을 의미한다. 모든 의미 있는 의지적 기립 그것이 바로 의리다. 가치 있는 일어섬은 생명의 표상이며 창 조의 의표다. 산에 나무가 동산에 꽃이 하늘을 향해서 저마다의 몸짓으로 일어선다. 그 섬은 촌시도 변함 이 없다. 죽음에 이르도록 변함없이 서있음이다. 나무와 꽃은 다름 아닌 의리의 자연적 정화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연적 정화를 자신의 의지로 적극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 의리다. 그와 같이 확고 함의 자격으로 서는 것이 의리다. 우리는 스스로 서는 자립으로 비로소 삶이 시작되지만 결국은 내 몸을 넘어서서 어떤 일을 수행하고 구 현하는가가 중요할 것이다. 진정한 수립은 삶의 외연에서 객관적으로 가시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것 은 모두 나에게서 시작되므로 진정한 나 자신의 확대이며 그 확장이기도 하다. 의리란 바로 나 자신이며 또한 나의 분신이다. 환언하면 행동으로 인해 실로 창조하여 이루고자 하는 개성에 찬 나다운 절대의 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8

69 치다. 나가 서지 않으면 의리도 없을 것이다. 의리란 인생에서 어떤 일을 이루어 존립해 둘 것인가 하는 것을 문제 삼는 삶의 태도일 것이다. 평생에 아무것도 순수하게 세워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삶이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인 생은 결국 연륜이 깊을수록 순수함으로 승부가 나야 하는 그런 것이다. 또 하나의 필수적 문제는 삶을 시종하는 그 시공에서 얼마나 삶의 일관성을 견지하느냐가 의리의 관건일 것이다. 의리란 일회적인 속성 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의리란 강한 일관성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그 결 과물도 영속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의리의 바탕인 상도 이법의 특징이 바로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일관성 위에 영원한 자신을 세워 나아감은 진정 경이로운 것일 것이다. 채움의 기쁨 우리가 아직 건강하다할 때, 무얼 하다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개는 나 스스로의 감각과 사고가 잠시 진실의 실을 떠난 때문일 것이다. 한 순간 지나치거나 과도한 어떤 상태가 되었음을 뜻한다. 충실한 삶에서는 허전함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런 생각도 안 난다면 아마도 그 때는 우리가 어딘가에 마음이 팔려있거나 스스로의 울에 가두여서 심신이 시달리고 피곤한 때문일 것이 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역시 진실을 따라가는 삶에 커다란 장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일 어난다면 이 역시 진실로부터 멀어져서 오는 하나의 혼란상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것만이 삶의 진정한 빛이며 힘일 것이다. 또 안정된 길일 것이다. 그 진실을 채움을 충실 하다고 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그 같은 실에 의해 좌우된다. 마음마저도 그러하다. 실로 보고 실로 느끼고 실로 생각 하고 실로 말하고 실로 써야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바로 그 실을 걱정한다. 실을 떠난다면 과 장되거나 허황되거나 막연하거나 두려울 것이며 결국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 기쁨의 참이 그것이며, 참사랑의 참이 그것이며, 참인생의 참이 그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실에 의지해서 비로 소 현실적이고 동시에 본질적인 가치를 튼튼히 확보한다. 물론 이 실은 꼭 세속의 물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시적인 것을 넘어서서 진실의 실체와의 융통을 말한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실에 더 유의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일지라도 가상적인 것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진실은 온 감각으로 느낌을 다할 또 그것이 영속적일 때 진정한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제는 자신의 허울에 가두이지 있지 않다는 조건아래서다. 누차 공자가 서심( 恕 心 )을 강조한 것은 바로 그래서 일 것이다. 진실인가 실지인가 정말 그러한가 하고 항상 스스로 묻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은 그러므로 좋은 일이다. 더욱이는 얼마나 절실히 생생하게 느껴지는가를 또한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실감함에 더없이 생생하 고 전율하는 절실함일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그만큼 진실에 가까웠다는 뜻이니까. 진실을 느끼려는 노력 의 중요함은 아마 생각보다 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조되어야할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착한 것을 높 이 사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위선이라면 높이 살 이유가 전연 없을 것이다. 의리란 바로 그 실을 채워 나아가도록 우리 삶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다. 진실의 영역을 벗어남이 없도록 특히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어떤 유혹에도 또는 어떤 욕구나 의욕에 의해서도 그러하도록 진실의 범주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69

70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의로 인해서 그 진실이 우리 삶에 쌓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인생 은 진실의 축적만이 그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복과 안위 축복마저도 오로지 그 힘에 의한 것이라 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가상이나 억측과 상상과 비약으로 허술해진 그 막연하고 빈 마음을 진정으로 채우고, 있어야 할 것 들을 부지런히 모으고 준비하여 허한 곳을 채워 쌓아서 충만해지는 기쁨을 위한 것 그것이 의리다. 쌓는 다는 것은 일정한 중심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일정한 외연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중심과 외연이 갖추어진 후에 쌓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채운다는 것은 사실은 자신과 모든 주변에 대한 진실한 주시이며 배려이며 받아들임에서 시작 된다. 눈에 보이는 것, 마주하는 것, 나누는 대화 아니면 조용히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 심지어는 지 나가는 바람까지 그대로 왜곡 없이 응찰함으로써 진정은 일어날 것이다. 상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나의 느낌과 욕구에만 제한되지 않은 것이라면 언제나 진정이 일어날 것이다. 진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실의 의미는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이란 혹은 참 실이란 현실세계를 이루는 근본이며 나아가 동시에 또한 모든 이상의 언어다. 생활에 요 구되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꿈꾸어야 하는 향방이기도 하다. 그 실 가운데 가장 미묘한 것이 마음속에 있 으므로 중용 에서는 신독( 愼 獨 ) 을 강조하였다. 홀로만 느끼고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며 마음의 진 실이 모든 진실 중에 가장 근본이 되고 현실과 이치세계를 통관하는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마음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맹자는 진실의 신의가 충만하여 아름답다 고 하였다. 그 때 신( 信 ) 이란 실유( 實 有 ) 를 의미한 다. 진실로 존재하는 것 이다. 결국 역시 채움의 미학을 말한 것이다. 맹자는 그 말에서 대인 직 전의 미인 의 인격을 지적해 말한 것이다. 의리란 속 찬 것이다. 그 채움의 알갱이들은 영구히 참한 그 어떤 것들이다. 의리란 결코 허세가 아니며 참마음의 행실을 쌓아 나아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축적하 여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리라기보다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세세한 시비선악을 가리는 부분적인 일 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도 선에 도달하고 의에 도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리란 그 끊임없는 축적의 결과로 나타나는 창조적 행동이다. 일화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는 뜻이다. 맹자가 호연지기 는 의리의 집적 으로 이루어진다고 한 것은 핵심을 잘 지적한 말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의리가 기( 氣 )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정기( 正 氣 )인 것이다. 대개는 기를 리와 구분하 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다른 것은 아니다. 존재하는 것은 이 이며 활동하는 것은 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권에 공기는 항상 있었지만 높은 가압차로 인해 강력한 운동을 일으 킬 때 폭풍 태풍이 되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리가 축적되어 형체가 생겨난다고 할 때 그 축적의 운동은 기에 속한다. 기가 없다면 모든 이 는 우주상에서 산만하게 흩어진 채 그냥 있어야 할 것이다. 기를 말할 때 순기와 탁기를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순정한 기운이 모여 사람이 되었고 탁 한 기운이 모여 동물이 되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기나 이에 원래부터 순정한 것과 탁한 것이 있었으리라 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리와 기의 모임과 움직임은 내적 축적의 과정과 외적 활동의 과정으로 양분될 것 인데 내적 응축의 과정이 기 본래의 활동의 과정보다 강화될 때 무거워진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말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0

71 하자면 탁한 것이란 일종의 비만현상일 것이다. 이와 기는 원래 모습을 조금도 변용함이 없다고 보는 것 이 옳을 것이다. 이기이원론이나 기일원론이 언급되기도 하였지만 이와 기를 강조하는 의미일 뿐 실제도 이와 기가 분리 되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어떤 경우는 이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 우는 기를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은 경우도 있음은 당연하다. 예컨대 영혼의 존재라든가 죽음의 문제 를 거론할 때는 이의 방향이 더 논리적으로 유용할 것이다. 예컨대 불변의 이가 전제되어야 영혼불멸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사의 문제에 들어가면 기의 통제를 통해서 삶이 가능하고 기가 일정 한 질서를 상실할 때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살아감에 천성적인 의욕이 있다고 보고 그것은 인의예지 라고 하였을 때 어짊 명철함 사양함 선악의 분별 등 인간적인 요소들은 이 스스로 자아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마음의 요소 중에 강력한 어떤 욕구가 생겨나고 또 이를 억제하는 것은 격렬한 마음의 작용 이므로 이는 기 부분에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 심신이 스스로 자아내지는 요소가 있고 이것이 격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스스로 자아내지는 경우를 우리는 실 혹은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진실들이 어우러지면서 의욕거 ㅘ 결합하여 과하게 움직일 때 이는 기의 영역이며 의리의 영역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을 살아가면서 많 은 부딪음이 있게 된다. 생의 어려움이나 위험 같은 것인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원적인 그 자아내 짐이 격하게 활동할 수 있다. 또한 삶의 풍요를 누리는 과정에서도 그 스스로 자아내짐이 어느 한 쪽으 로 과도해 질 수도 있다. 이 역시 기의 문제다. 심신의 내면에서 어떤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났을 때 이는 역시 기다. 그 기를 명확히 감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뚜렷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과도함을 느낄 때 이를 자각하고 통제하는 것이 바로 의리다. 그러므로 의리란 생동의 선택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 않 는 일이 있다 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처음 본성의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그 그릇은 위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과 육신이 본성의 그릇인데 이 그릇은 진정한 본성을 담아야만 활기차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므로 충만의 기쁨이란 본성을 채우는 기쁨이기도 하다. 진실이 쌓여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쌓이는 곳이 바로 그 릇이며 사람 자신이다. 의리란 바로 그 쌓임의 영역 속에 있다. 그릇의 크기와 형상을 정하는 것은 결국 기다. 기의 운동과 중심의 힘의 여하에 따라 그로부터 그어지는 경역이 있게 되고 그것이 진정한 그릇이 된다. 인격이란 신체의 크기나 아름다움을 말한 것이 아니듯이 그릇이란 역시 하나의 구체적 질서체계다.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것이 그대로 행동체계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를 의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의를 지키다가 목숨을 버릴 수도 있는데 이를 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리를 지키다가 치명적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실일까. 사실 무의미한 삶은 허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의미 있는 생명의 향연 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삶은 요령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영악함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교묘한 기술로 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어리석어 보여도 실을 잃는 것 같아도 결국은 진실이며 그 행실인 의리 다. 이를 떠난다면 취생몽사라는 표현이 이에 적합할 것이다. 의리를 지키다가 순절하기도 하지만 의리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1

72 지켜 더 행복하고 보람 있을 것이다. 기쁘고 당당할 수 있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불빛 사람이 지성의 불빛을 열었던 것은 매우 오래된 유구한 일이다. 이미 네안데르탈인이 추상적 사고 능력이 있었다든다 하는 사실들은 접어두고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3000년 전 경의 신정정치 시대라 할지라도 지성의 빛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은나라 갑골점법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기에도 그 이면에 매우 밝은 사리의 분별이 있었다. 왕궁창고에 보관된 갑골편의 예언들이 모두 적중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뚜렷한 증거다. 대개는 국가가 형성되면서 이미 지성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하였 던 것이었다. 한국사의 예로는 아마도 고조선 시기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것은 문화접변의 문제 이전에 개별적 개성적 국가적 삶의 영위 자체가 이미 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의리란 빛나는 것이다. 모든 진정 빛나는 것들의 모체다. 지적 광원이다. 그것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다. 태우는 빛은 유한하고 반사하는 빛은 번뜩일 뿐이지만 속과 몸이 하나 되어 우러나는 빛은 장구하고 무 한하다. 맹자는 신실함의 아름다움이 축적되고 커져서 빛난다고 하였다. 대인을 칭한 것이다. 의리의 빛 남은 진실의 빛남이며 그 진실의 충만함이 드러나다가 확산되어 발하는 빛이며 아름답기 때문에 또 광명 하기 때문에 누구나 받아들이는 찬연한 빛이다. 의리행실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빛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밝고 뚜렷한 정신의 소산이며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역사상 발휘해온 모든 빛을 바로 이 의리가 대변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빛이란 당연히 밝은 것이다. 밝은 것이란 뚜렷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현저한 것이 바로 빛의 속성이다. 혼돈을 밀어내고 명백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의리가 빛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의 힘에 의한 것이므로 의리란 결코 막연히 추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단순한 일시적인 의기로 가능한 것 도 아니다. 가장 진정한 진실은 순수 공간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의리란 어떤 면에서는 공간의 힘이기도 하다. 공간은 또한 빛을 수용하는 무제한의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공간은 허무한 곳이 아니다. 이와 기 가 어우러지는 공유의 장이다. 그 빛을 만들고 빛을 통행하게 하는 힘이 바로 공간에 순수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간의 알갱이다. 공간 은 텅 비어 허무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알갱이들이 고요 히 있을 때 그것은 이이다. 이들이 움직일 때 이것은 기이다. 움직여 축적되고 형태를 이룰 때 이것은 만 물이 되며 이들 역시 크게 공간에 내재한 미묘한 힘에 의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형성되고 작동한다. 그 끝에 나온 것이 생명체다. 이기설은 추상론이 아니다. 진실의 발론이다. 알갱이들은 빛을 받아 빛나고 그 스스로도 응축하여 빛을 낸다. 응축하여 빛나는 것 그것이 의리일 것이다. 다만 어느 점을 중심으로 응축하느냐가 의리를 빛나게 하는 초점이다. 조국애 민족애 가족애 등등 그 어느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초점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중심으로 모든 행실이 응축될 수 있는 것 그것이 의리라는 뜻이다. 지킴의 의지 의리란 지켜 나아가는 것이다. 생명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견고한 전위적 인 의지다. 의리는 그러므로 생명의 축도이며 죽음의 제전이 아니다. 삶의 장을 무한으로 열어가는 것이 다. 그러므로 의리는 활력을 일으키고 진전하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이를 호연지기의 머리라고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2

73 하였다. 내안의 의지에서 의기가 나오고 그것이 바로 의리라는 말씀이다. 의리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하면 그것은 단지 삶이다. 죽음의 제전일지라도 이를 생명으로 대할 때 의리가 된다는 것이다. 나날이 달라지는 것 의리란 나날이 달라지는 것이다. 의리란 생명의 진실을 위한 것이므로 그 실체를 명 확히 깨달을수록 강해지고 살아가는 매순간에 삶을 따라 경신되고 진전한다. 의리란 살아 있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의리란 사는 것이므로 생명의 이상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배우는 진실의 범위가 시시각각 넓어진다면 우리의 믿음과 의리의 실체는 확대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 의리란 깨달음으로 피어난 모든 생명적 경이의 실체다. 생활의 미학 의리란 꼭 학자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하고자 할 만한 행실 을 동조하고 행하는 데서 나왔다. 그런 행실을 맹자는 선인( 善 人 )이라고 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아름다운 행실이 의리의 바탕이다. 이 행실이 쌓여 의리의 실을 이룬다. 그러므로 맹자는 적선하는 가문에 많은 경사가 있다 고 하였다. 의리란 결국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데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데서 완성된다. 생명의 제의 의리란 사는 것이다. 의리란 어떤 죽음의 찬미가 아니다. 살기 싫어도 죽지 않는 것은 죽음 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워도 죽이지 않는 것은 죽임이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남이 다 사 는 것 그것이 의리의 끝이다. 진실은 신과 같다. 진실이 없다면 인간계가 있을 수 없고 진실이 없는 것 그것이 다만 죽음일 뿐이다. 온 세상을 이루는 진실은 극미하고 미력하지만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없앨 수 없다. 그 속도 없고 밖도 없는 무한히 작은 것이 쌓여 나타나는 그런 것이다. 그 존재와 힘을 믿고 따 르는 것이 의리다. 의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쌓고 배워야하지만 누구나 의리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므로 맹자는 의리 는 인간의 대로 라고 하였다. 왜 대로인가 누구나 갈수 있는 탄탄한 길이며 무한한 길이며 막힘없는 길 이기 때문이다.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것은 의리의 길을 막는 작은 걸어감의 길이며 나 하고자 함을 절제할 때 의리의 길이 열린다.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맹자는 이를 두고 왜 이 길을 걸어가지 않 는가? 하고 물었다. 의리의 절정 우리가 자기에게 가두인 사심이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의리이므로 의리란 순수한 길이 다. 식혜 한 사발 마시고 싶다면 이 역시 의리다. 삼겹살 한 조각 구워 먹고 싶다면 이것 역시 의리다. 순수한 순리이기 때문이다. 의리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며 다만 선택하는 것이다. 최상의 선택이 의리다. 그러므로 공자는 70이 되어서는 하고 싶은 것을 따라가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고 하였 다. 맹자는 살고도 싶고 죽고도 싶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최상일 때도 있으며 이 역시 내 하고 싶 은 것 이라고 하였다. 의리는 나의 아름다운 선택이다. 맹자는 생선도 맛이 있고 곰의 발바닥도 맛이 있지만 나는 곰의 발바닥을 택하겠다. 고 하였다. 이 역시 의리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3

74 2)의리의 실천적 측면 춘추대의란 말이 있다. 공자 춘추의 역사에 기록된 선악 시비를 평가한 의리를 말한다. 천자 군주의 일을 말한 것이므로 대의라고 하였으나 그 대의는 개개의 군자들의 행실에서 구현되었으므로 결국은 의리의 기록이다. 의리행실을 평가한 것이 춘추다. 대의를 평가하는 바탕을 이루는 것은 신의가 있는가? 어진 가? 예에 맞는가? 결단력이 있는가? 순수하였는가? 하는 것과 사사로운 이욕에 빠졌는가? 안일하거나 방탕하였는가? 아집이나 고집이 있었는가? 오만하였는가? 하는 구체적인 것들이다. 의는 포괄적인 시비 선악의 행동평가다. 이는 지혜와 비교될 수 있지만 시비선악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시비선악을 느끼고 행하는 것이 의리이므 로 서로 다른 의미차원을 지닌다. 의리는 예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예란 사양지심이라는 말이 보여주 듯이 삶의 여유다. 시비선악을 넘어 이를 제도화하여 아름답게 창출된 미학적 형식이다. 예는 사단의 꽃 이다. 예는 예술과 같은 것이므로 예악( 禮 樂 )을 병칭하고 회화( 繪 畫 )가 필수적으로 함축되며 안무( 按 舞 )로 상징되는 종합예술이다. 의리의 꽃인 셈이다. 자족하는 것 의리란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해하지도 않고 남에게 구하지도 않는 다. 고 하였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혹은 스스로 만족하는 길을 찾아간다면 사람들은 서로 편안할 것이다. 물론 서로 만족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더불어 선을 행한다고 하였고 천하와 더불어 근심하고 천하와 더불어 즐거워한다고 하였다. 스스로 기쁨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분하지 않다고 하였다. 먼 곳에서 벗이 오면 기쁘다고 하였다. 여럿이 음악을 하면 더 즐겁다고 하였다. 조화를 이루는 것 의리란 무서운 것 같지만 지극히 화락한 것이다. 화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내 안으 로 나의 마음의 사단칠정을 조화롭게 견지하고 밖으로 남의 칠정을 건드리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다. 다 만 그 조화를 해하고자 할 때 조화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조화를 위한 용기를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화이부동( 和 而 不 同 )이라고 하였다. 부동 이란 반 조화에 대한 결연한 절대적 금기를 의미한다. 변함이 없는 것 의리란 최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지키는 것이 없는 것을 방탕하다고 한 다. 자기가 깨달은 가치가 비록 부족할 지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지킨다면 바로 성인의 경지다. 맹자는 백 이( 伯 夷 )는 너무 좁고 유하혜( 柳 下 惠 )는 불공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성인이라고 평가한 것이 그것 이다.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변덕이라고 하고 변함이 없는 것을 상도( 常 道 )라고 한다. 의리란 상도를 지키 는 것이다. 변함없어야 하는 가치를 지킨다는 것이다. 생사를 넘어서는 것 의리란 미학적 창조의 궁극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이루고 죽음으로도 이룬다. 시신으로서 간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며 자로가 공자의 우려를 뒤로하고 죽음의 길을 간 것도 그것이다. 국가 조직에 힘을 주고자 하는 것 나라의 조직이 없다면 사람은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 없는 티베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4

75 트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구려 해명태자는 자살의 검을 내려준 부왕 의 명에 저항하지 않고 대동강 가에서 장렬히 자결하였다.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다. 호동왕자는 부왕의 기쁨을 위해 자살을 택하였다. 역시 국가의 존립을 위한 헌신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전설상의 순임금이 아버지 고수와 동생 상의 죽임의 위협을 넘어서서 요를 계승하고 천자가 되었던 것은 국가를 위한 참음 이었다. 그가 들에 나아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 것은 가족적 슬픔의 표현이었다. 이를 이겨낸 것은 효심 이었다고 평가해 왔지만 또한 역시 국가의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리 없을 것이다. 국가란 모두 함께 사는 생명의 장이다. 이 튼튼한 삶의 장이 없다면 누구나 위태해질 것이다. 국가의식이란 사사로움이 없어야 하는 최대의 영역이므로 국가의리는 모든 의리 중에 가장 큰 것이다. 물론 이보다 큰 의리도 있다. 성인 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온천하의 편안함이다. 국가의리도 이 천하의리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 다. 또한 국가는 가정 가문과 표리를 이루고 있음도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 하 는 의리의 범주가 4단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성실한 것 의리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며 특정 현실과 직결되는 것이다. 물론 그 현실이란 배움의 입장에 서 말한다면 인을 추구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대소의 곤란상황 을 지칭하는 말이 다. 그에 따라 매사에 세세히 분별해보고 치우침이 없는지 사려하고 조절해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는 자 장은 너무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의리에 도달하는 길은 자장 같은 탐구와 자하 같은 믿음 두 가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 성실한 노력이 의리를 강화해 줄 것이다. 의리는 나아가 사람의 특유의 온전한 본성을 닦을 것이 요구된다. 본성을 직시하고 절실히 깨닫는 공부 가 모든 배움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심( 常 心 )이라고도 한다. 하늘이 준 타고난 아름다운 본성을 변함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정상적 인간이라는 전제 아래 얘기다. 본성을 돌아보지 않는다 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것이므로 이를 금수( 禽 獸 )라고 부른다. 물론 짐승도 어진 인심이 없는 것은 아니 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 인물성동이론이 나왔었다. 의리란 1)본성 수치 2)공부 확충 3)실행을 통한 절실한 체험이라는 세 가지 과정을 성실하게 의식적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데서 성장하는 가치다. 이를 두고 원시반본( 原 始 反 本 )이라고 한다. 보다 큰 어짊을 향해 나아가는 것 성인교육프로그램 강의 중에 어느 분이 인에 대해 물었다. 인이란 한마디로 무어라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먼저,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전연 어려운 뜻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인이란 한마디로 아껴주는 것이다. 사랑인 것이다. 의미는 그 외에는 전연 없다. 다만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 떳떳함과 변함없음이 있을 뿐이다. 인은 사랑 중에 지극히 순수하고 정성스럽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인이란 그 사랑의 가치를 인식하고 행하는 지혜의 결과이다. 무지해서는 인 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이란 또한 인과 불인을 철저히 가려서 어긋남이 없이 실행하는 것이다. 바로 의리로 구현되는 것이다. 의리를 빼놓고 인을 말할 수 없다. 성실한 신의를 빼놓고 인을 말 할 수 없다. 그리고 인의는 역사적으로는 예에서 나왔으므로 궁극적으로는 예를 모르고서는 인을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공자의 학문이 예에서 출발한 것임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인의( 仁 義 )란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5

76 이란 결국 질과 깊이를 함축한 말일 뿐 모를 말은 아닌 것이다. 의리를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묻는 것-자문자답 백이는 왜 좁은 의리를 행하였는데도 성인이라고 하였는가? 순수하였기 때문 이다. 이렇게 남에게 묻듯이 스스로에게도 묻는 것 그것이 의리다. 나에게 묻는 것은 남을 묻는 것과 다 르지 않은 것 그것이 의리다. 공자는 왜 소정묘를 죽였는가? 일벌백계를 위한 것이다. 다른 마음을 추호 도 끼어있지 않았다. 순수하였으므로 성인의 행동이다. 수많은 순수한 물음들로 구성되는 것이 의리다. 공부하면서 느껴서 하는 것이 인이고 물어서 자답하여 하는 것이 의리다. 의리는 무한한 자문자답이다. 3)의리의 기원 공자는 논어 서두에서 배우고 때로 익히면 곧 기쁘지 않은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하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닌가? 라고 웅변하였다. 이 세 마디 말은 무한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모든 지적 소산들은 배움과 그에 따른 정서와 자신의 절실한 실행으로 완성된다. 배움이란 남과 타자에게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며 정서란 스스로 마음속에서 일치되는 감동이다. 실행이란 그 마음 그대로 밟아 나아가는 것이다. 기쁘고 즐 겁고 노하지 않는다. 는 것은 깊은 천심의 자연스런 발로다. 때로 익힌다. 는 것은 배움을 다지 는 의미도 있지만 그 배움을 현시대에 적절하게 구현함을 의미한다. 때를 모르는 것을 철모른다. 고 하듯이 때를 살피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천심을 온존하고 배우고 행하는 삶은 바로 어진 삶이다. 결국 노하지 않는 삶은 의로운 것이다. 인의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배움과 공부 즉 학습은 하 나 됨이다. 주자는 익힘과 때에 대하여 익히지 않는 때가 없는 것이라고 풀었다. 삶의 모든 장을 익힘으 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익힘은 배움의 실질적 과정이며 진정한 일치 즉 하나 됨의 성취다. 그 성취된 결 과를 행함이 인이며 이를 고수하여 지키는 것이 의다. 의리정신은 전통적 배움의 소산이며 특히는 그에 따른 공부의 소산이다. 배움과 공부는 정통적으로 학 습( 學 習 ) 이라고 칭해왔다. 배움과 과정과 익힘의 과정 즉 공부는 사실상 판이하게 다른 과정이다. 배움 으로 얻은 새로운 안목은 학습 또는 공부를 통해서 절실한 자신의 정신과 행동의 강력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는 내면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기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현실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배움이 없는 의리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또 굳 건한 확신을 얻은 진정한 의리일 수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전통적으로 실천( 實 踐 )이라고 부르던 것이었다. 실천화되지 않는 공부는 사실상 인생에서 크게 유용한 것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삶의 중추적 힘이 될 수 없으며 창조적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없을 것이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6

77 다. 그런 배움을 두고 서자서아자아( 書 自 書 我 自 我 ) 라고 하였다. 지식은 지식대로 따로 있고 나의 의 지와 행동지표는 또 따로 홀로 멋대로 있다는 뜻이다. 배움의 공부를 철두철미하게 고수하고 수행하는 것이 바로 의리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천성만을 잘 지키는 일도 유의미하며 이를 선인( 善 人 )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선인에 머무른다면 철상철하( 徹 上 徹 下 ) 할 수 없을 것 이므로 의인이 요구되는 것일 것이 다. 의리정신의 사람의 자연스런 감정과 사색에 기초하므로 천성적인 것이다. 그 천성은 명백히 자각될 때 보다 확고해 질 수 있으며 사물 보편의 대 원칙으로 재정립 될 때 완전해질 것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격 물치지다. 내면적 자성과 사물에 대한 격물치지는 배움과 공부의 양대 기둥이다. 자성과 격치는 상호 표 리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리정신의 맹아는 어떻게 싹튼 것인가 하는 사상적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명쾌한 답이 없다. 공맹이 그 시초인 것은 분명하나 공자는 옛것을 배워서 전할 뿐이라고 자신의 학문을 말하였다. 맹자는 공자 학문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그 이상의 기 원이 있다는 말이므로 우리는 한 단계 더 소급하여 그 기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맹학의 기원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환언하면 공자 학의 기원의 문제다.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 확인되면 좋겠으나 아직은 역사학 분야에서 기원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다. 철학 분야에서도 아직은 불 가능하다. 결국은 종합적으로 정신과 문화생활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추적함으로써 그 기원 문제를 풀어 보는 노력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러한 접근은 잠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노나라의 사기 인 춘추을 보면 공자이전 혹은 당대에도 많은 지성인들이 있었다. 학문이 이미 강력한 전통으로 수립되 어 있었다. 공자는 학문의 시초를 연 분은 아니다. 맹자는 이런 특성을 지적하여 공자를 집대성자( 集 大 成 者 )라고 하였다. 공자 당대 때까지의 학문을 완전히 종합하고 대성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그 학문의 기원 이 문제다. 전통적으로는 학문의 대성자들은 복희씨 문왕 주공 공자로 말해왔고 시대로 말하면 삼대 즉 하 은 주 시 대가 이어서 발전한 것임을 말해왔다. 장구하게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것임을 자각한 것이다. 전설의 시 대인 삼황오제시대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것도 역사적인 사실임을 자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 는 구체적인 그 역사적 계기성이다. 주역을 예로 들면 복희씨가 팔괘를 그어 무언의 상으로 만물 이치를 표현하였고 문왕이 여기에 언어 형태로 단사를 붙였으며 주공이 효사를 지었고 공자는 계사전등 10익을 지어 오늘의 주역으로 구체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전승의 사실성 여하와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역시 언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의리의 기원도 결국은 역사적으로 통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의에 대한 역사적 일반론 인의는 오랜 역사 가운데서 이루어진 정신사의 중핵이지만 현재의 현실적인 시대 요구에 부응한다면, 오늘의 처지에서 새롭게 그 이상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용어 중에서 선 택한다면 인이란 봉사하는 마음 에서, 의란 헌신적인 마음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인의의 미래지향적 의미를 포괄하여 극대화한다면 아마도 인은 절대적 사람의 마음이며 의란 어떤 경우라도 그 인을 구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더없이 결연한 그 모든 것 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미를 확장하는 정의 만으로는 인의의 의의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7

78 다할 수 없으므로 역사와 시대의 대응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인의는 역사상 몇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고 변화 발전해오면서 매우 역동적인 의미의 진전을 보익 있다. 아마도 의가 먼저 나오고 인이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게 된다. 인의가 표방되기 전에는 신( 神 )이 있을 뿐이었다. 이에 따라 나온 것이 경( 敬 :경건함)의 정신이다. 아마도 은 왕조 이전 혹은 직후 까지의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국가의 형성과 함께 사람의 조직적 능력 지혜 등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능 력이 새상을 죄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자각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지도자들의 방탕함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신에게 경건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신 중심의 시대에는 덕( 德 ;은덕)이라는 심상이 있었다. 자연과 인간계의 경이로운 현상을 처음 신의 은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신의 은총을 확 인하는 것 혹은 그 주도자 신관이 바로 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이 시행하는 은혜로부터 인간이 행 하는 은총 즉 사람이 더 중요하진 후에 비로소 인( 仁 )의 용어가 창출되었다고 생각된다. 인이란 신이 아 닌 사람이 베푸는 은총이며 사랑이다. 그런데 이 덕과 인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의( 義 )였다고 생각된 다. 의란 글자는 희생을 의미하고 있어 제사 의미로부터 출발한 것인데 신을 섬기는 것은 복을 받기 위 한 것이다. 즉 신의 사랑을 얻기 위한 인간주도의 적극적 행위가 정성스런 제사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 은 옳은 일이었기 때문에 의는 정당함 또는 합당하다는 뜻을 처음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고대 국가 공 동체의 지지를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의의 정신을 이어 나타난 것이 인( 仁 )이었다고 믿어진다. 제례는 인간의 행위로 신의 의지를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현이었다. 이는 자신의 지결 능력에 대한 신의이며 그 승리였다. 이 제례의 의미가 후일에 구체적으로 확대되고 제도화 된 것이 예였다. 덕이란 글 자는 신의 뜻을 살펴 행한다는 뜻이므로 덕은 경건히 신의 뜻을 받드는 이름이었다. 종교지도자의 능력 을 지칭한 것이었다. 제례를 통해 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덕에 대신할 새로운 의미 창출을 요구 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제사의 의미는 관습적으로 쓰여 온 제( 祭 ) 자가 있었으므로 이 새로운 의미는 의 ( 義 )가 대표하게 된 것이었다. 이 의( 義 )를 확대 재편한 것이 예( 禮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의의 등장과 함께 덕은 인덕( 人 德 )으로 확대되었고 이 진전된 의미를 새로이 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 이 인( 仁 )이었다. 인은 천신과 인간의 위상의 변화를 가져온 극적이 의미를 상징한다. 이제 인이란 신이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유능한 이 지도자 현자 등이 베푸는 사랑이 되었다. 인은 물론 정신적 이지적 역 사의식적인 것이므로 일시적 혹은 우연한 베풂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삶 자체가 그래야 함을 의미 한다. 이 인의 의미를 유도한 중개자인 의( 義 )는 이미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그냥 사용되었다. 이것은 공자 시대의 일이었다. 인애를 베풀기 위해서는 믾은 내적 외적 난관을 돌파하여야 하였으므로 공자는 이를 극기복례( 克 己 復 禮 )라고 표현하였다. 이어서 의의 의미가 달라졌으니 인의 보편적 절대적 시행의 의 미하는 새로운 용어로서 경신되었다. 이것은 맹자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의는 절대적 사랑을 의미하므 로 맹자는 이를 칭하여 사생취의( 捨 生 取 義 )라고 하였다. 의( 義 )는 맹자에 이르러 덕 인 예를 통일하는 의 미로 사용되면서 인의( 仁 義 )가 하나의 용어가 된 것이었다. 인의의 용어는 의리( 義 理 )로 칭하게 된 것은 의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오늘의 입장에서 그 역사성을 얹어서 새로이 정의될 필요가 있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8

79 의리개념 범주의 재편성 대개 초기 국가시대의 정신문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종교적인 것이었음을 감안 하면 오늘에 이어진 여러 중요한 언어들이 대개 <신>이나 <제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 어 덕( 德 )이라는 용어는 은혜 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 원의에서는 신의 은총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 禮 )는 제례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이 제례를 고안하고 시행한 내면에서는 매우 오랜 지적 정신적 진보가 반영되어 있다. 인신희생의 시대에는 신에 대한 복종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주된 뜻 이었을 것이나 예기에 나타난 여러 형식의 제의를 갖추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그 안에 막대한 지적 진보 를 나타낸다. 인간이 하늘의 은혜에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참여하고 관여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는 이 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그 주도의 중심에 의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바로 이 지적인 의미화 과 정에서 새로이 나타난 것이 인이며 의였다. 시기적으로는 대개 전통적으로는 주공제례( 周 公 制 禮 )의 시기 부터로 알려져 왔다. 신의가 중심이 된 은나라 이후 주나라에 이르러 드디어 이 같은 지적 주도권이 성 장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공자가 주공을 추앙하고 존경하였던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하늘이나 신은 여 전히 언급되었다. 이어지면서 그 가치와 의미가 변했을 뿐이다. 이 같은 현상을 우리는 역사적이라고 부 른다. 이 같은 의미의 변화 발전은 오로지 역사적 진전의 현실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영명한 존재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일상의 삶이 스스로 신에게 얽매어 있었다고 보 는 것은 무리다. 신을 강조하고 복종의례를 수행한 것은 아마도 조직의 지도자들의 의도에서 기원한 것 으로 보인다. 사람의 조직 사회 국가는 탈 인간적인 제3의 존재형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가구( 家 國 )의 구 조는 일반의 삶을 통제하고 이끌고 그 구조의 존립에 봉사하도록 요구한다. 조직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올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한 모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의 제정은 언제나 순리를 벗어날 수 있으며 정치적 권위적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이 야만에서 출발하였듯이 가국의 조직도 역시 야만으로부 터 문명으로 진화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예의 발전사일 것이다. 조직과 사 회가 합의하고 형식화 한 것이 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의 지적 성과들은 예의 형식으로 표현 된다. 그 내부에서 역동적인 지적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적 진보는 개인적 느낌과 판단과 결의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공동체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말과 사상이 권위와 힘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예 가운데서 일어난 경이로운 일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가 지적 성과에 의해 좌우되면서 과거의 공동체 조직의 권위를 위해서는 새로운 것이 필요하였다. 그것이 바로 법과 제 도일 것이다. 예는 법과 제도 이전의 삶의 형식이다. 4)오늘의 의리 그동안의 배움의 삶을 돌이켜보면 너무 상황에 얽매이거나 아니면 문헌이나 타의 전범을 찾아보려는 생 각이 앞섰던 것 같다. 특히 주로 읽는 고전에서 어떤 전거를 찾거나 의지하고자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나를 중심한 생각의 문제이며 나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직솔한 부딪음이 정도라고 생각된 다. 절실한 공부를 하라. 든가 가까운데서 찾으라. 하는 언명들이 결국 정답이었던 것이다. 나의 안에서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 스스로의 정화의 정도를 스스로 가늠할 때는, 스스로의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79

80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역시 도의 길이라고 믿는다. 선현들이 마음공부를 강조한 것이 별다른 초월의 이 상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인이란 혼연한 덕이며 의리란 결연한 덕이다. 혼연함과 결연함은 여전히 우리들 삶의 양대 지주이지만 오늘의 세계는 전통 역사시대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리들 삶의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지리상의 인식의 변화는 우주에 나이르고 있고 사람과 일의 만남은 국가를 초월하여 세계화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그 혼 연함과 결연함의 내용은 무한대 시각으로 새로이 조절되어야 한다. 어느 때 보다도 보편적 가치가 새로 운 기준으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서양에 복수법의 전통이 무의미해진 사실과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시대배경과 환경에 대응한 최선의 선택이며 의리란 그 선택의 핵심이다. 전통시대의 의리는 역사를 밀고 온 위대한 동력이었지만 오늘의 의리는 이를 더 확대하여 일상화하는 일 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의리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아시아 성인들이 처음 발견한 것은 배움의 삶이었다. 인생의 본질을 잘 간파한 가르침이었고 역사의 위대한 진전을 이루었다. 동아시아 문명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배움이었기 때문이다. 공자에 의해 활짝 열린 배움의 삶이라는 삶의 양식은 인간다운 가치를 진전하는 진정한 삶을 열어준 것이었다. 그 배움의 삶은 모든 경건함의 기초였 으며 진실함의 근거였고 근면함의 바탕이었다. 배움의 삶으로 도달한 최고의 경지가 인이었고 의였다. 다 만 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의는 실행하기 어렵다는 오해가 있어 왔었다. 그 같은 오해는 매우 오랜 동안 유지되어 왔는데 이는 정신사를 이해하는 약간의 오류였다. 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가 있고 의가 실 행하기 어려운 경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의의 본질은 아니다. 이해하기 쉽고 행하기 어려 운 것이 인의의 실제면모라고 생각된다. 이 같은 본래의 면모를 회복할 때다. 의를 일상화 일반화하는 일은 실로 중차대한 과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의리란 말을 세속적인 용법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의 본질을 다시 일으키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만나는 벽이 의리의 초월성이다. 어려 측면에서 현실과 거리를 느끼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은 매우 생활에 절실한 말이면서도 거리가 멀 다고 느끼는 것은 그 본질을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리를 일반화 혹은 일상화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전면적으로 의리화하자는 말이다. 공허한 공맹학의 부활을 외치는 것 보다는 그 요핵인 의리를 일상 속에 부활함으로써 정신사의 맥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 다. 의리를 부활하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질문만 있으면 된다. 이것은 의리에 맞는가? 각자의 의리관 이 다소 잘못될 수도 있고 꼭 같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리를 향한 걸음이 굳 건하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의리에 맞는가 스스로 묻고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고 혹은 내려고 노력한 다면 그것이 바로 의리의 길을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리의 길을 가면서 우리는 자연히 의리란 무 엇인가 묻게 되고 그 본질도 더 알게 된다. 행동하며 배우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공자가 인을 물은 제자들에게 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오직 가르쳤다. 인의 속성들을 행하면서 인을 깨닫기를 바랬기 때 문이었다. 오늘의 의의 실천적 속성표 : 의리의 속성을 응용하여 연관 지워보면 다음과 같다. 1)극기 2)결단 3명철 4)확신 5)공감 6)독행 7)엄정 8)무사 9)전일 10)강건 11)용약 12)혼후 13)항구 14)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0

81 직솔 15)천연 16)무의 17)불변 18)무혹 19)순리 20)일념 21)적응 22)통합 23)조화 24)개성 25)자유 26) 풍부 27)건강 28)진실 29)미려 30)탈민족 31)인류애 32)역사성 33)언어화 34)철학화 35)과학화 36)기술 화 37)예술화 37)물질초월 38)물질향유 39)장수 40)자기개발 41)복지 44)자연친화 45)힘의 추구 46)에 너지화 47)우주의식 48)평안함 49)행복 50)즐거움 51)창조적 성취 52)편리 53)일치 54)탈권위 55)시스 템 56)가르침 57)가족애 58)동료의식 59)국민의식 60)문화권 인식 61)동서융화 62)종교와의 대화 63)논 리화 64)조형화 65)미려스타일 66)패션 67)소통 68)통달 69)치료 70)양생 80)전문화 81)순수화 82)탈규 제 83)억압의 반대 84)탈인위 85)탈권세 86)탈부귀 88)소박함 89)자동화 90)기계화 91)의식화 92)경제 화 93)아마츄어리즘의 애호 온존 94)취미화 95)인간화 96)사회화 97)추상화 97)물질화 97)동기화 98)경 쟁 99)승리 100)자아화 101)예방 102)내면화 103)영광과 명예 104)신사와 선비 105)여성시대 106)양성 일치 107)가족화 108)조직화 109)전쟁 110)스포츠 111)오락 112)사교 113)논쟁 114)정쟁 115)권력투쟁 116)압도 117)희생 118)진전진보 119)오만과 자긍 120)성취 121)편견 122)정화 123)향락 124)방임 125) 계산 126)술수 127)연극 128)속임 129)예단 130)절감 5) 의리의 미래 의리는 동아시아 고전의 정신이며 동시에 우리의 고전적인 정신이다. 문헌으로 전해오므로 고전의 정신 이고 역사상 우리 삶의 지표였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나아가는 굳건한 틀을 이루어 상구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진정 고전적이다. 현재의 세태에서 보면 의리정신은 사실상 형상만 남았다. 지도층이 의리정신을 목숨처럼 철저히 견지하 지 않고 있고 일반 생활인들의 문화로서도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리를 칭하는 말이라 든가 글은 많지만 의리가 무엇인지 되새기도 그 뜻을 삶으로 구현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결국은 의리정신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으며 미래로 나아갈수록 그 위상은 뚜렷하게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것은 의리가 역사의 산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의리는 순국열사만이 하는 것이 아니며 목숨을 건 의인의 행적만 의로운 것은 아니다. 생활에서 이루어 지는 의리가 의리의 본분이다. 의리란 결코 꼭 과도한 것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의리는 우리들 삶의 골간이 되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길이라고 한다. 의리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잠시도 떠나지 않는 진정한 도인의 삶이다. 의리를 견지하는 것이 바로 도란 말이다. 현재 형상만 남은 의리는 이대로 의미쇠락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삶의 절실한 도로서 다시 굳 건히 펼쳐질 것인가. 라고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 삶이 역사적인 것으로 즉 오랜 본래의 궤도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임시방편적 방도( 方 途 )를 능사로 하는 고식주의( 姑 息 主 義 )를 이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 다. 역사란 실없는 이론이거나 꾸민 장식이 아니다. 국민적 삶의 실질을 이루는 영원한 도정 즉 오랜 국 민생활에서 스스로 선택 개척된 길이다. 길을 벗어난 삶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된다. 누구나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바라고 있으므로 우리가 도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의리는 우리들 삶의 궤도이기 때문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1

82 비록 기복이 있겠지만 우리의 도는 회복되는 것이 민족사의 순리다. 그러므로 의리의 미래는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의리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이루어온 모든 가치 있는 것을 상징하는데 우리는 역사적이라는 말에 익숙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않다. 나름의 이해에 그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적이라 는 말은 세계 보편지성의 언어이며 현대에 들어 의미가 경신되고 재정립된 새로운 용어이지만 이미 동아 시아는 스스로 역사적이었다. 그 역사와 문화가 분리되지 않고 공존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이란 말의 의미를 탐구하지 않고는 의리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이란 무엇인 위에서 의리가 역사적인 것 이라고 하였다. 오랜 말로는 고전적이라고 하였다. 고 전적이란 말과 역사적이라는 말은 가치의 본질에서는 같은 말이지만 의미는 매우 다르다. 고전적이란 영 원한 전범이라는 가치를 지적한 말이지만 역사적이란 말은 미래에 까지 변함없이 이어가는 실질적 힘이 라는 뜻이 함축된다. 아울러 민족사의 처음부터 변함없이 지켜온 것이라는 뜻이 추가된다. 또한 각 시대 에 따라서 계승 변전 발전해온 것이라는 역동적인 의미가 더해진다. 역사적이란 이렇게 입체적인 의미가 있다. 시간성 공간성 가치성을 아우르는 의미라는 말이다. 우리 언어가 이미 역사적이고 우리 문화가 역 사적이고 우리 삶의 태도가 역사적이다. 의리는 바로 그 속에 자리하는 근간이다. 서양의 학자들은 동아시아가 비역사적이라고 평가한다. 역사적이란 말은 자신들이 이를 최종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들의 발달한 제도와 문화와 과학 학술도 모두 역사적 탐구의 성과라고 믿는 다. 자신들이 세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믿는 그 맨 한가운데 자신들이야말로 역사의 선각자라는 의식 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연전에 한국에서 세계 철학자 대회가 열렸다. 그 때 외국 석학들은 동아시아에 고유한 철학이 있었는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고답적인 자세 역시 역사에서 나왔다. 자신들의 철학은 철저하게 논리화 역사화 내 면화 과학화 되었는데 동아시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뜻인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서구 세계의 근대화란 단적으로 자신들의 역사적 성과의 영향을 받아서 이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들의 최종성과인 역사학의 역사(Historiography)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것을 정의함을 의미한다. 과연 의리는 비역사적 신념인가. 그리고 동아시아의 문화와 가치들 역 시 비역사적인가? 전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근대화란 단지 서구화일 뿐이며 동아시아 역사는 스스로 역사적이었다. 그러나 냉정히 돌이켜보면 우리 근대의 국민적 의식은 매우 비역사적이었다. 서구화라는 외부지향적인 가치만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외부 지향적인 것은 자기화 내면화의 결여를 의미하므로 가깝게는 철학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다름 아 닌 역사의 상실이다. 역사의 상실은 삶과 문화의 개성의 상실을 뜻한다. 우리는 근래의 한류현상을 보면서 우리 기질과 개성 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발휘된 개성이 극히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우리 체질임은 생각하지 않 는 것이다. 막연한 개성주의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저 새로우면 되니까. 그러나 그저 새로운 것이란 바 로 식상하며 지속될 수 없다. 무력한 개성인 셈이다. 역사적인 것이야 말로 최대의 개성이다. 역사의 새로움 역사는 낡은 것이 아니다. 새로움이다. 과거에 정지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잠시도 쉼이 없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2

83 이 이어져 진화하는 것이 역사다. 물론 다만 그 진전이란 다소 느릴 수도 빠르거나 격할 수도 있을 뿐이 다. 서구의 역사에서 르네상스란 중단되었던 어떤 역사의 실체가 부활하였다. 이는 그 내면에 역사적인 것의 단속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단속이 있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르네상스란 탈 역사적인 것을 반성함 으로써 이룩된 것이다. 그 반성은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끝난 뒤에 중세의 끝에 이루어졌다. 역사의 부활 인 셈이다. 그러나 시실은 중세의 신의 시대도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인 것이다. 신앙의 역사에서는 중 세야 말로 극성의 시대다. 다만 다른 문화요소들과 균형을 이루며 진전하지 못하여 그 진전의 형평과 조 화가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르네상스란 결국 역사적 조화의 회복이기도 하다. 의리란 그 같은 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반 생활의 힘일 것이다. 의리란 구식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가치 를 견지하면서 새로운 어떤 상황에서도 역사적 가치를 전승하여 나아감이다. 조선의 쇄국 정책이나 중국 의 동도서기( 東 道 西 器 ) 노선은 형식상 역사를 이어감이며 자신의 역사에 대한 본능적 수호의 의지였다. 이 본능은 생리적 본능이라기보다는 문명적 본능이었다. 동아시아의 이 근대노선은 바로 새로움의 추구 가 부족하였으므로 일시적으로 실패한 것이었다. 역사는 새로움의 추구라는 교훈을 얻게 하였다. 새로움의 고수 서경에 유명한 문구가 있으니 곧 주나라는 비록 오랜 나라이지만 천명을 얻은 것은 새 로움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은 주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말이지만 이는 그대로 역사의 본령이기도 하다. 경전에서는 새로움의 의미를 별도로 정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새로워지라 고 하였다. 대학에서 말한 것에 따르면 새로워짐이란 덕을 깨닫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머물 고자 하는 가운데의 새로움이다. 대학의 새로움이란 배움으로 진전되는 자각의 새로움이며 깨달음과 실천의 새로움이다. 대학에서 뜻하는 새로움은 새로움의 본질을 잘 직시한 말일 것이다. 아울러 새로움의 본질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는 경전 원의를 대전제로 한 말이므로 당연히 덕의 새로움이 며 인의 새로움이며 의리의 새로움이다. 그 새로움의 표현이 예의일 것이다. 그 근본 의미는 물론 천명 천리의 새로운 구현이다. 새로움이란 배운 만큼 깨달은 만큼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덕이란 천명 천리의 도( 道 )를 생각하는 삶이다. 인이란 도의 실체이며 의란 이를 수호함이다. 6)의리의 정의적 의미 현대는 과학과 기술, 물리적 힘과 경제력, 자본과 물질의 시대다. 이 3대 요소는 현재로서는 영원할 것처 럼 보인다. 만일 사람이 야성적인 힘과 자연적 성능에 의해 그 삶이 결정될 수 있고 그것이 최상 최대의 생명의 요소라면 이들 요소들의 절대적 권위는 영원할 것이다. 이 여부를 판단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들에 야생의 생명체들이 이미 30억년의 진화를 지속해오고 있음에 비추어보면 사람의 삶도 생물 일반의 그것에 포함되므로 자연과 야생의 생태라든가 자연 특히 그 물리적 파워가 가장 중요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력은 자연에 반발함으로써 강화되었다는 것이 오랜 양생학의 결론이다. 자연에 반발 한다는 것은 자연을 파괴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사람이 자연의 흐름에 부딪어 이겨냄을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3

84 말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하면 사람의 직립함 자체가 이미 물리적 지구의 인력에 최대 저항한 결과가 아 닌가. 어떤 동물도 사람처럼 꼿꼿이 서는 것은 없었다. 서있는 것에 물론 나무가 있다. 그러나 나무의 기 립은 의지로 서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힘이 이룬 자연의 결과다. 산이 솟아 오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사람의 이겨내려는 힘은 그 정체성이 자율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율적이고 자유로움을 위해서 법칙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리적 법칙에서는 저항이 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보면 자유 영역의 확보이며 그 창조해 나아감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같은 자유의 확보 결과가 바로 문명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것이 창조로 이루어진 문명사이기 때문에 진 정한 역사일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보면, 힘으로 구성된 3대요소가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가 동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사람다움을 이룩해온 1만년 문명사를 지탱했던 자유와 자율을 향한 의지가 무 의미하다고 할 수 없고 문명과 정신이 역시 사람의 삶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어야 함을 또한 알게 된 다. 생각해보면 삼라만상이 우주의 의지가 아니고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며 사람의 문명이 역시 사람의 고 유한 정신이 아니고는 일궈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삼라만상에 가까운 물적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신이나 우주의 정신과 질서를 재현하고자 하는 놀라운 존재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는 언제나 그 정신의 근원을 천명( 天 命 )에 두었다. 천명이란 진리 ( 眞 理 )라고 하는 지식의 언어보다 한 층 더 상위의 개념이다. 천명은 인간의 삶의 가치와 방향을 결정하 는 유일한 지존의 핵이다. 후대에 와서는 이를 천리라고 불렀다. 의리란 바로 이러한 천명 천리를 따름이 다. 천명 천리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있는 것이라는 믿음도 있다. 이들 성선설이라고 한다. 이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의리란 마음을 따름이며 천리를 따름이다. 인의는 자연의 길이며 인간의 길이고 동시에 문명의 길이다. 700만년 인류 진화의 역사를 밀고 온 원초적 힘이며 특히는 그 명백한 자각의 결과다. 사람이 생겨날 때 인의가 있었고 개개인이 태어날 때 인의가 있었다. 우주가 탄생할 때 인의가 있었고 지구가 이루어질 때 인의가 있었다. 만물이 화생할 때 그 자연 의 조화 속에도 인의가 있었다. 인의는 천명 천리의 구체적 이름이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름이 인의이며 산이 서고 들이 펼쳐짐이 인의이며 숲이 자라고 못이 깊어짐이 인의 이며 해와 달이 뜨고 별이 빛남이 인의이며 꽃이 피고 동물이 뛰놂이 인의이며 먹고 삶이 인의이고 일에 종사함이 인의이고 벗과 만남이 인의이고 집짓고 농사지음이 인의이며 대화하고 만남이 인의이며 잠자고 일어남이 인의이고 남녀가 만남이 인의며 낳고 죽음이 인의이고 만나고 헤어짐이 인의이다. 싸우고 전쟁함은 인의가 아니며 남을 해하고 책망함이 인의가 아니며 나만의 생각에 가두임이 인의가 아 니며 경솔하고 조급함이 인의가 아니며 인위에 빠져 삶이 인의가 아니고 마음 놓고 안일한 것이 인의가 아니며 과욕을 부려 무리하는 것이 인의가 아니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인의가 아니고 삶을 경 시하고 죽음을 피하려는 것도 인의가 아니다. 혼후함이 인이며 명쾌함이 의다. 혼후함은 편안하고 명쾌함 은 빛나고 높다. 인의는 정의할 수 없는 넓고 깊은 뜻을 지녔다. 그 속성들을 일부 생각나는 것들만 열거 해본다. 인의 본질 속성에서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4

85 잠시도 변하지 않으므로 인은 변함없는 사랑이다. 대상이 제한 없으므로 제한 없는 사랑이다. 자신의 능함을 다하므로 지극한 사랑이다. 다른 마음이 없으므로 사심이 없는 사랑이다. 언제나 베풀어지므로 일상의 사랑이다. 막을 수 없으므로 강한 사랑이다. 무한히 크고 넓으므로 한없는 사랑이다. 중단됨이 없으므로 강물 같은 사랑이다. 편안하므로 산 같은 사랑이다. 하늘과 땅에서 나왔으니 높고 깊은 사랑이다. 온화하고 기쁘니 꽃향기 같은 사랑이다. 순수함으로 이루어지니 순결한 사랑이다. 자식 어버이에서 처음 피어나니 자연스런 사랑이다. 누구에게나 미치니 공평한 사랑이다. 가까운데서 멀리로 이르니 정연한 사랑이다. 삶을 이루니 생명의 사랑이다. 아름답게 행하니 문명한 사랑이다. 기쁘고 즐거우니 열락의 사랑이다. 용기를 일으키니 힘의 사랑이다. 스스로 이루어야하니 자립 자유의 사랑이다.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니 신묘한 사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니 조화의 사랑이다. 새로움을 이루니 창조적 사랑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니 태평의 사랑이다. 사랑은 자라남이니 육성의 사랑이다. 역사를 나아가게 하니 불후한 사랑이다. 모든 이가 공감하니 통합 통일의 사랑이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니 극복의 사랑이다. 우주심에서 뿌리를 두었으니 하늘같은 사랑이다. 모든 사랑의 기초이며 끝이니 사랑의 근본이다. 의의 본질 속성에서 의는 결단이며 절제다. 신실함이며 맑은 정신의 요약이다. 순수하고 학구적이며 천명 천리를 탐구함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5

86 이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함이며 사사로움을 배제함이며 모든 가치를 종합 표현함이다. 호연지기는 인의 힘이요 의는 인의 결연함이요 예를 그 창의적 표현이요 지혜는 그 자각하고 응용함이다. 신은 인의 순결함이며 의의 그 개성이다. 의는 결국 최상의 선택이다. 부정함이 없으니 정의로운 선택이다. 잡된 마음이 없으니 순수한 선택이다. 자신만을 위하지 않으니 초탈된 선택이다. 무한한 공감을 부르니 감동적 선택이다. 한결 같은 마음이니 전일한 선택이다. 보다 큰 가치를 위함이니 위대한 선택이다. 천리에 따름이니 천사의 선택이다. 맑은 심혼에서 나오니 청명한 선택이다. 언제나 굴하지 않으니 불굴의 선택이다. 주저함이 없으니 용단의 선택이다. 막을 수 없으니 막강한 선택이다. 그 가치가 변함이 없으니 영원한 선택이다. 선현에게서 이어졌으니 배움의 선택이다. 같이 살고자 함이니 함께하는 선택이다. 누구나 밝게 보니 일월 같은 선택이다. 어떤 공을 세우고자 함이 아니니 무위의 선택이다. 인을 위한 것이니 어짊의 선택이다. 성심에서 나오니 신실한 선택이다. 본심에서 나오니 선한 선택이다. 수신에서 나오니 인격의 선택이다. 넓고 깊은 배움에서 나오니 지혜의 선택이다. 확신에서 나오니 확고한 선택이다. 극기에서 나오니 절제의 선택이다. 천인조화에서 나오니 낙천적 선택이다. 죽음으로도 삶을 이루니 생명의 선택이다. 누구나 기리니 명예의 선택이다. 자신을 버리니 무사함의 선택이다. 혼란을 반대하니 평화의 선택이다. 치우침 없는 마음이니 중용의 선택이다. 자신의 분노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객관의 선택이다. 아름답게 빛나니 화려한 선택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6

87 순간으로 영원하니 불후한 선택이다. 만난을 이겨내기 극기의 선택이다. 비극을 넘어서니 이상의 선택이다. 7) 문화와 정신의 수호 의는 개인을 수호하고 가족을 수호하고 공동체 나라를 수호하고 나아가서는 천하를 수호하여온 역동적 언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화화 사상 정신을 지키고 발전되게 한 에너지요 동력이기도 하였다. 의리 아 래서 모든 사상과 가치 있는 개념이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의리가 하나의 준거가 되어 이에 미달 되는지 넘어설 수 있는지를 항시 자성하며 염두에 두고서야 학구( 學 究 )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의 리인가를 묻는 순간에 강력한 문화 사상적 연관효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의리와 문화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잠시 학구라는 말이 왜 의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우선 먼저 여기서 학구란 오늘의 학구와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의리개념이 성장하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인데 이때의 학구란 삶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삶과 동떨어진 혹은 삶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 생활의 장 자체를 학구로서 유지하는 식의 삶이었으며 신 중심의 삶을 경과하고 나서 새로이 개척한 새로운 삶의 양식이기 도 하였다. 그 학구의 무게는 오늘의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요컨대 실질적 삶의 방향이라든가 의미를 학구를 통해 발견하고 확정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롭다는 것은 그대로 학구적이란 의미와 동의 어이기도 하였다. 의란 학구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구자만이 의의 본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화와 사상은 학구로부터 나온 것이며 의리란 학구를 유지하면서 학구의 삶과 학구의 결과를 철두 철미 실천하는 선두에 있는 것이므로 모든 문화와 사상이 의리로 인해 그 수호의지 아래서 성장할 수 있 었다는 말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학구의 결과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를 지키고 수행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연 무의미한 것이며 유지되거나 발전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의리가 문화와 사상의 수호자이며 새로운 정신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은 정신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의리란 삶과 가족 사회의 존립을 위한 정의일 뿐만 아니라 그 삶의 보편적인 질을 향상하고 고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의리란 넓은 의미에서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 속한 다는 뜻이다. 3.인과 의리의 범주 인은 무한한 가치의 경지를 제시한 정신의 성역이다. 성역이라고 함은 이를 통해서 무한한 사상과 가치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7

88 의 창출이 가능한 신성하고 불가침한 정신적 에너지원이 된다는 의미다. 공자가 인을 일정하게 정의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였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가 4단설이었다. 일반적으로 정 작 인이 이해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운 까닭은 그 지칭의 난해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의미의 본질의 정 체성 특히는 그 의미적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한한 것에 대한 이해가 매우 곤란하다. 무한한 것의 궁 극모습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한한 사랑을 의미하는 인이 잘 이해되지 않는 원인이다. 우리는 우주가 무한하다고 말하지만 우주의 무한함의 의미를 전연 공감하거나 실감할 수 없다. 우주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은 우주론과 같은 범주의 개념이다. 무한한 그 의미를 아울러 인 의 속성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천도란 의미의 크기 혹은 천리란 의미의 본질 같은 것들은 항 시 사용하는 말이면서도 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인은 천도 천리의 본질을 말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이 해가 역시 하나의 관건이다. 인은 천리론과 불가분한 것이므로 하나의 우주론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인은 인도를 말한 것이지만 이것이 동시에 천도가 되는 이유는 사람과 만물의 삶이 역시 그러하기 때문 이다. 역설강령( 易 說 綱 領 )에서 정자는 위 하늘에 실린 것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나 그 체례는 역이라 하 고 그 이치는 도라고 하고 그 작용을 신이라고 한다. 고 하였다. 그 같은 하늘의 덕이 인인 것이다. 냄 새도 없고 소리도 없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해한 하늘의 감각적 특징이었다. 그러나 냄새도 없고 소리 도 없다는 것이 허무 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속에 역리가 있고 도가 있고 신이 있다는 것이 다. 인은 이치이며 도리이며 신이기도 한 그런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영구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우리가 체험하는 시간 개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나 이해하기 어렵다. 무한한 공간을 지난 끝에는 언제나 종착역이 있는 법인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것 그것은 인생이거나 땅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은 바로 우주인데 이 점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주는 결국 개념으로 이 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주를 여행해보고고 무한한 곳을 향해 무한히 나아가볼 수 있다면 경험적으 로 우주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은 전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조건에서 무한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의미를 저 하늘위로 상정하지 않는 다면 우리의 이해의 폭은 조금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기와 넓이 혹은 부피를 가진 어떤 영역을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공간은 크게 물질공간과 비 물질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적인 물질적 공간의 덩어리와 경험적 특징이 없는 무의 공간이 상 정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물질 공간 속에도 빈공간이 있고 우주 공간도 허무한 것이 아 니므로 이 구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오늘날 극미세계의 발견 이후에는 더구나 그러하다. 우주의 미 립자가 존재함에 비추어 우주도 물질공간일 수 있다. 그 미립자를 제외한 순수공간이 즉 진정 허무공간이 존재하는가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현재로 서 공간이란 상대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므로 잠정적으로 경험적 물질이 감지되지 않는 공간을 그냥 공간이라고 부르고 물질로 채워진 공간을 물질공간이라고 지칭한다면 공간의 상대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이 양대 공간이 똑같이 물질과 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8

89 양대 공간의 공통성에 대해 인지하고 생각하면 우주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하늘 끝 저 너머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여기 이곳에도 그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므로 우주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의 공간 이것과 저것의 공간 즉 의미 있는 것 사이의 빈 곳이 다 공간이다. 바로 이곳의 공간에서 우주 공간을 충분히 체험하고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우리의 홍익인간 의 인간 공간 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간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유의한 물질 공간 외의 빈 공간이 물질공간의 기초라고 믿기 때문이 다. 그 빈 공간이 순공간이라고 보든 아니면 물질공간과 크게 다름없는 물질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든 관계없이 우리가 주목한 물질과 그 물질성을 감지할 수 없는 무 물질성의 공간 사이의 관계가 허무 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점을 지적하여 마음과 육체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공간의 공능을 지 칭하여 이치 신 이라고 한 것이며 그 공능을 특히 인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설이 아닌 것 이 없다. 인은 본질적으로 넉넉한 공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은 분명 공간과 사이를 이해한 개념일 것이다. 인간의 내적으로는 생명공간의 경이를 외적으로는 생명 을 이루어지게 하는 타의 어떤 공간의 의미를 말한다. 하늘의 자손이라는 전통적인 논법이야 말로 인의 이해 형식을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부모에 비유하여 부모심( 父 母 心 )이라고 한 것도 의미 있는 비유다. 인이 의리의 기초이다. 인 의 예 지-4단 맹자는 사단을 말하면서 인은 불인지심( 不 忍 之 心 )이 실마리이며 의는 수오지심( 羞 惡 之 心 )이 실마리이고 예는 사양지심( 辭 讓 之 心 )이 실마리이며 지는 시비지심( 是 非 之 心 )이 실마리라고 정의 하였다. 이 사단을 말하면서 신( 信 )을 말하지 않은 점을 지적해왔는데 이는 대개 오행설로 이해해왔었다. 신은 토( 土 )에 속하며 인은 (목)에 예는 화( 火 )에 의는 금( 金 )에 지는 수( 水 )에 비견하고 토는 나머지 4행 에 함축되어 있으므로 특별히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고 해명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4단과 연관하여 오행으로 이해하고 말기에는 다소 서운한 감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형식적 구 조적 이해 이전에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이 일반 학인들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역을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음양설이나 오행설로만 이해하기에는 그 괘사와 효사의 말씀들 이 너무도 의미 깊고 상징적 은유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적 비유의 요체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의리문제도 그러하다. 부언한다면 오행설 같은 형식적인 이해란 사색의 한 방식일 뿐이며 그 끝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마음으로부터의 이해 법 맹자는 4단을 말하면서 모두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 공자학이 증자 이래로 마음을 중요시하였고 자사에 이르러 중용을 지은 것도 그 심학의 전통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증자 자사 를 이어받은 맹자의 경우 역시 마음 심 자를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의 내적 깊이를 표현하고 다시 그 마음의 드러남을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여도 역시 새로운 해법이 가능해진다. 그의 불인지심이란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어진 마음의 출발이라고 본 것이며 그것이 곧 인인 것은 아니다. 불인지심은 더 나아가 사랑하는 마음( 愛 )이 되고 넘어서서 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 으로 이해된다. 한편 불인지심은 후( 厚 )한 행위로 나타나고 이 후함이 나아가 은혜( 惠 )를 베풀게 되고 더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89

90 나아가 덕( 德 )을 행하게 된다. 이 때 불인지심과 은혜 인 사이, 그리고 후함과 은혜와 덕의 사이에는 정신적 발전모습이 게재된다. 즉 불인지심이 후함이 발단이며 아끼는 마음 은혜는 그 발전적 형태이고 인과 덕은 자각적으로 강화된 것이 인이므로 그 사이에는 발단-확장-자각의 단계별 진전이 요구된다. 이를 심상으로 말하면 불인지심과 후함은 본심( 心 )의 발동이며 애심과 은혜는 본심의 강화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이 강화된 본심이 명확이 지감되고 자각되고 확신된 결과가 인이며 덕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의 과정을 발단( 發 端 ) 확장( 擴 張 ) 자각( 自 覺 )이라고 명명할 수 있으며 이 3 과정에 나타나는 심적 변 화는 심( 心 )-의( 意 )-지( 志 )로 표현할 수 있다. 심-의-지의 변화는 감정에 의해 구분하면 열( 悅 )-락( 樂 )- 일( 一 : 合 誠 實 信 )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자각이란 바로 명덕( 明 德 )이며 지( 智 )이 다. 격물( 格 物 )이기도 하다. 그 합일된 성심을 드러낸 것이 덕이며 그 덕을 고수하는 것이 의( 義 )라고 정 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단계 (1)단계 (2)단계 (3)단계 비고 본심 不 忍 愛 仁 본심회복 베풂 厚 惠 德 본심구현 과정 發 端 擴 張 自 覺 ( 明 德 智 格 物 ) 경과 심태 心 意 志 심상변화 정의 悅 樂 一 ( 合 誠 信 實 ) 정의변화 결과 起 從 結 ( 義 理 禮 義 時 宜 ) 고수수행 부끄러움과의 관계 맹자는 수오지심( 羞 惡 之 心 )이 의리의 실마리라고 하였다. 이 수오지심을 두고 대개는 자신의 악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의 악을 미워하는 마음 이라고 풀이하였었다. 물론 주자집주의 설이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0

91 다. 그러나 맹자가 언급하는 마음( 心 )은 본심 즉 양심을 중심으로 말한 것이므로 양심에 비추어 부끄러움 을 느낀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순리롭다고 생각된다. 수( 羞 )와 오( 惡 )는 모두 추( 醜 )한 것을 의미하며 부 끄러운 것( 恥 )를 의미한다. 물론 미워한다. 는 뜻도 있다. 수치를 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주어진 영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수치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Rm러움을 안다는 것은 타고난 본심의 아름다움을 믿음이며, 본심이 우주와 인간 의 진실을 반영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주적 진실 혹은 참 생명의 가치와 의미 이런 중요한 문제를 탐 구하고 배우는 한 중요한 통로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마음만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 다. 그러므로 격물치지가 강조되었던 것이며 격물이 되어야 진실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대학에서 말하 고 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주관적 해법이라면, 격물은 말하자면 객관적인 탐구이며 확인인 셈이 다. 그 성찰과 지성을 발휘한 후에 감성적 일치라는 과정이 더 있었다. 기쁨을 느낄 때 즐거움을 느낄 때 일치감을 느낄 때가 그것이다. 도에 대하여 도( 道 )란 길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도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길을 간다는 의미이며 가면서 사려한다는 의미이며 깨닫는다는 의미다. 책받침에 머리 수자가 들어 있는 까닭이다. 도는 즉 공부인 것 이다. 지성과 성찰과 감성을 다하여 생을 체험하고 그로부터 삶의 진체를 느껴보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를 통하여 다양한 도를 자각하였을 때 그 도의 집적된 결과를 수행하는 것이 덕 ( 德 )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덕( 道 德 )이라고 하여 도와 덕을 병칭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도란 덕의 일 환이다. 덕에 대하여 덕이란 다닐행 변에 열십 눈목 한일 마음심이 결합된 자다. 다닐행은 물론 행한다는 뜻이며 열십자는 마음의 빛을 눈은 객관적 성찰을 한일은 진실과의 합일을 마음 심자는 지적 성서적 의지적 깨 달음을 종합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열십자를 마음의 빛으로 보는 까닭은 열십자가 일만 만자( 卍 )자 와 같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 덕자를 주술사의 그림이라고 보기도 한다. 얼마간의 연관성은 있다고 생각된다. 주술사야 말로 마음으로 신을 깨닫는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이라는 글자가 이루어진 은 나라 시기에는 이미 상당한 지적 진보가 일어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오늘의 개념으로 확립된 것은 적어도 주나라에 들어서 일 것이므로 주술 일변도의 해석은 다소 문제가 될 것이다. 의리 의 전제 의( 義 )는 선( 善 ) 혹은 미( 美 )라는 글자와 어원이 같은 것으로 대개 보고 있다. 후대에 대개 의는 절제( 節 制 )의 의미로 이해해 왔었다. 의 자 의 일부를 구성하는 양 양자가 기른다다는 의미 음식 이라는 의미로 전용될 수 있는 부호이므로 역시 절제라는 의미와 소박하게 연결된다. 하나의 일상생활 용어였던 것이다. 이것이 유의미한 의미로 전환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마도 그 원래의 의미로부터 진전 발전 과정을 경과하였기 때문인데 음식을 절제한다는 소박한 의미가 통용되는 것은 아마도 육식자인 고 대 귀족과 왕족들 사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식과 학식 기술의 독점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진전과 함께 새로운 의미로 발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 의리는 절제를 어원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의리라는 의미에서는 절제보다는 고수 견지라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1

92 는 일반적 의미 또한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고수 견지의 내용이 없다면 절제란 어의는 너무 막연할 수 있다. 또한 고수 견지의 의미라고 보더라도 역시 그 의미적 전제가 필요함은 마찬가지다. 여기서 의리란 전제 개념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성장한 개념임을 알게 된다. 어질 인 자 가 그것이다. 인과 의는 불 가분의 개인 것이다. 이같이 연관 개면 속에 성장하였다는 것은 언어적 논리적 체계가 갖추어지고 있었 음을 의미하며 주요 글자들이 단독적인 발전의 범주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범주의 중요성 그 사상성의 탐구 없이는 의리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또한 분명할 것 이다. 그러므로 위의 표에서 보듯이 여러 개념들이 상호 연관을 지우면서 존재하고 진전해온 특징을 파 악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우리는 어떤 범주를 발견하고 그 범주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 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자의 일이관지 란 말씀 역시 그런 뜻이라고 믿는다. 관계에 대하여 의리란 단독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경전과 학문의 다양한 개념을 상호 통합하여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유기적이며 통일지향적인 개념으로서 이를 단선적으로 파악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의리는 우선 인에서 나왔고 인의 실천적 모습인 덕이라는 개념을 궁극적으로 수행한 결과가 바로 의리다. 따라서 인-덕-의리라고 하는 정통라인이 형성된다. 의리란 정통적 개념인 것이며 통일 지 향적 라인업을 추구하는 선구적 전위적 개념이다. 의리가 없다면 인과 덕의 강력한 수행이나 실험정신의 창조적 발휘는 아마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의리의 역동성 의리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매 순간 역동하는 선택과 행동을 추구하는 다이내믹한 의 미 속에 존재한다. 의리는 언제나 동일한 것 같은 상황에서도 매우 다르고 특이하고 새로움을 추구한다. 구태의연함을 한 순간도 허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보다 의로움을 추구함으로 그 길은 영원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오직 죽음으로만이 중단되는 가치의 새로움 그것이 의 리다. 자로가 위나라 난리중에 죽었을 때 공자는 탄식하였지만 자로는 나름대로 새로운 의리를 구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자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의리는 시의적절 이라는 4글자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시대에 하필 도덕적으로 온전한 주군만을 섬길 수 있겠는가. 비록 정당하기 그지없는 군주가 아 닐지라도 내 신명을 다 바쳐 그를 정당한 군주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것 역시 오늘의 신민의 분명한 도 리가 아니겠는가? 4. 인 의 병칭의 의미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2

93 공자 시대에는 어질인 자만 강조할 수 있었다. 원칙이 아직 그런대로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춘추시 대 이야기다. 공자가 춘추를 쓴 것도 원칙을 강조하다보면 원칙을 이루는 세상 즉 도를 구현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공자의 판단이었고 그로 인해서 공자는 인의를 말하되 인 을 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실제의 역사는 공자의 바람과는 달리 많은 원칙이 약화되고 폐기되며 나아 가 변질되는 쪽으로 나아갔다. 역사는 이미 새로 써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자는 역사가의 한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적 인간형 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변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로 공자가 꿈꾸던 이상과는 매우 다른 쪽으로 중 국 역사가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중국이 합중국과 같은 대규모 역사무대를 일사불란하게 권력으로 통치 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 사고는 아마 공자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자에게 천하는 있었지만 천하 유일의 국가 그것도 대규모 영토와 신민을 거느리는 유일통치자로서 제 국을 국가의 정상체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천자는 다만 도덕적 원리의 지도자였다. 그것이 춘추의 의리였다. 천하의 신민을 직접 통치하는 것은 천자의 소임이 아니라고 보았다. 고대봉건제를 이상 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 주 국가는 천하의 지도국이었지만 천하의 직접적인 통치자는 아니었던 것이 다. 주지하듯이 최초의 천하 직접적인 통치자는 진시황의 나라였다. 그 천하통치자의 선구자는 춘추오패였다. 이 다섯 명의 패자들은 힘으로 휘하의 나라들을 지배하였다. 이 경우에도 직접 천하를 통치한 것은 아니 므로 진시황이 시작한 제국과는 달랐다. 춘추오패를 향한 당시대 중국의 역사는 공자의 뜻대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공자의 뜻과는 달리 모든 나라가 힘에 의한 지배와 피지배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격렬히 항쟁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이상의 문제가 아니며 권력자 귀족과 왕족의 생존의 문제일 뿐이었다. 새로 일어난 신흥의 경제가와 관료 지식인 새 기술 등을 통합하여 새로운 강한 나라가 이루어져 가고 있 었고 그 새로운 힘에 의해 제국이 가능하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삶들이 바라보기 시작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제국이란 일시적으로 가능하지만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우는 없다. 로마제국 알렉산더제국 원나라제 국 등이 이를 증명한다. 맹자의 시대는 전국시대다. 전국시대에 이르면 춘추시대의 명분은 거의 사라지고 개인과 국가 그리고 새 로 등장할 제국의 그림만이 있었다. 공동체라든가 귀족이라든가 하는 중간계급은 주도자가 되지 못하고 각국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군주에 의해 새로운 통일제국이 대망되었다. 맹자가 강조한 의리는 이 시 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의의를 담은 것이었다. 인의 이상은 이제 내면화하여 잠복하고 의의 결연한 수행 이 요구되었다. 맹자 역시 인의를 말하였지만 공자와는 달리 의리를 주로 말하였고 의리를 중심으로 만 사를 논하였다. 전국의 7웅 국가는 춘추오패와는 매우 달랐다. 많은 나라를 지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 복하였다. 일종의 정복국가인 셈이다. 유목민족 출신의 정복국가와 다른 점은 천하의 신민들이 그 정복됨 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천하의 합의된 의식아래 정복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비 해 맹자의 왕도론은 당대 실세들에게는 매우 공허하게 들렸던 것이다. 맹자는 과거 천자제도의 이상을 계승하여 새로운 제국이 탄생하기를 바랐다. 맹자의 이상은 공자와 다른 것이었지만 그렇게 유사한 면이 있었다. 도덕적 지도력을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3

94 모든 선현의 공부는 시대를 위한 것이며 시대를 느끼지 못할 때 그 공부는 현실의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를 모르면 인간을 알 수 없듯이 현실을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면 절실한 공부가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항상 인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시간성의 자 각이며 역사를 현재화하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선현들의 언사가 다르고 실천이 차이가 나게 된 것은 역시 공부의 차이도 있으나 시대의 차이에 대한 민감한 대응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공맹이 모두 인의를 병칭하였는데 공자는 인을 보다 강조하였고 맹자는 의를 보다 강조하였다. 이 사실 은 공자와 맹자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맹시대에는 근본적으로 인의 가 병칭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강한 원리론에 대한 사회 일반의 지지가 심정적으로 매우 강고하게 존재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상적 유효성의 실존상태가 생생하였던 것이다. 공맹이 성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리론 인도로 대표되는 원리에 대한 위대한 권위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맹자가 만난 제나라 선왕이나 양나라 혜왕 등이 맹자에 대한 경의를 표함에 주저함이 없었지만 전국시대 집권세 력의 반대로 인해 맹자가 집권할 수는 없었다. 공자 역시 위령공이나 계강자 등 집권자들에게 공감을 얻 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맹이후의 시대엔 유학이 표장되고 국교가 되었지만 오히려 순수한 인의의 권위는 퇴색하고 정치 제도 권력의 힘이 압도하여갔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자체라든가 유학자들이 공 맹 같은 권위 를 창출할 수는 없으며 제도화된 이대올로기도 역시 생생한 실존적 원리의 권위를 높일 수는 없는 것이 었다. 말하자면 인의 원리론의 약화현상이 장구한 동안 2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것이었다. 그에 대체한 것이 제도였다. 학문 사상의 실체로서 인의 자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그 결정적 증거다. 어느 시대이든지 인이라 무엇이며 의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통해서 그 본래의 정신적 권위를 부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주로 표방한 인은 단지 배움으로 이루어야 할 아름다운 마음의 경지이며 실천의 처신 방식이었 다. 배움으로 높아지는 마음 바로 그것이었다. 인의라든가 원리주의란 결국은 배움과 공부의 원의를 진정 으로 회복하는 일이다. 바로 혁신적 배움의 삶이며 추축시대에 이룩한 새로운 삶의 양식 즉 누천년동안 잃어버린 그 삶의 위대한 방식으로 돌아감이 절실하다. 맹자의 의리강조 역시 이 같은 원리주의를 고수 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본질적으로 공 맹이 인의를 병칭한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 다. 공맹은 절대군주가 신과같이 초월적이고 신성한 존재가 될 것을 기대한 적은 없었다. 천하의 중심은 민이었으며 사람의 중심은 인의의 의리였다. 5.한국 신화의 의리 사상 한국의 의리사상은 명쾌하다. 단군신화에 언명한 홍익인간이란 넉자 속에 온전히 함축되어 있다. 충분히 넉넉한 의리사상이다. 우리는 인의 사상과 의의 사상이 나온 것이 우리 신화의 뒤인지 증명할 수는 없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4

95 그러나 홍익인간이란 사상은 모든 경전의 개념을 아우를 수 있는 크나큰 언어 큰말 임에는 틀림이 없 다. 홍익인간이란 특별한 설명을 요하지 않고도 보편적으로 요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상의 용어이면서 모든 가치의 정점에 있는 언표 위상을 스스로 지닌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지표보다 더 숭고한 이념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사 우선 이욕의 투쟁사이며 권력의 쟁탈사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본다면 이 홍익인간의 지표성은 빛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홍익인간을 위해서는 어질어야 하며 자신을 극복해야 하고 나아가 자기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어우러지 지 않을 수 없으므로 진정한 의리관의 남상일 것이다. 이울러 홍익인간이 하느님의 이름을 빌어 선언되 었으므로 지상 최고의 이념임을 나타낸다. 동아시아 사상사에서는 후일에 하늘이라든가 신이라는 용어마 저 이치라든가 인격의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그런 점에서 홍인인간의 하늘 역시 이치이며 지고한 인격의 상징이다. 그 숭고한 경지에서 발표된 명제가 바로 인간을 널이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 한정 된 사상이 아니므로 보편사상이며 한국의 역사에서 발해진 사상이므로 한국사상이다. 신화를 전하는 문 헌의 내용은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탐구해야 하겠지만 이 넉자의 이념만 가지고도 우리 의리관은 이미 넉넉하다. 홍익인간 사상은 신화에 결코 머무르지 않았다. 각 시대에 이어지면서 국민정신의 핵심을 이루었음을 유 의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안중근 의사의 살신성인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양 평화를 주창하였다. 홍익인간 적인 심성이 없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생각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부산포 진격의 왕명 을 어기고 백성을 보호하고자 한 어진 마음이나, 침략자의 사악함을 용서하려하지 아니한 단호하고 엄정 함이 모두 그 정신에 투철함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의리정신이란 이 같은 넉넉함에서 나와서 엄정하게 결행되는 그런 것일 것이다. 홍익인간 사상의 깊이와 계승문제 홍익인간사상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주장된 것은 아니다. 오랜 정신 생활의 결과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단군신화가 신의 이야기였다면 신이 직접 내려와 세상을 다스리고 사상을 보급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한마디 말로인해서 응축된 고대 지성의 역사정신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은 중국과의 패권다툼에서 패하여 멸망하였지 만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그 후 삼국을 통해 부활하였다. 특히 고구려의 초기에 그 같은 의리정신의 계승을 보여주는 강력한 의리의 역사를 접하면서 놀라게 된다. 역사적 전승성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는 것이다. 부여가 신흥 고구려의 정통성을 부인하고자 하였을 때 왕자 무휼은 단호한 의지를 밝힌 누란론( 累 卵 論 ) 을 통하여 강력한 의지를 외교적으로 전달하였다. 왕자 해명은 강궁을 꺾어 강국 황룡국왕을 수치스럽게 한 외교적 실책으로 인하여 부왕으로부터 자살 검을 받고 대동 강변에서 장렬한 죽음을 택하였다. 모두 개인보다는 국가의 존립과 생존을 위한 희생이며 결의였다. 백제는 건국 초부터 위민 정치를 내세워 어 진 정치를 표방했다. 이 역시 사소한 듯이 보이지만 삼국 초기 시대성을 살펴보면 놀라운 이념이었던 것 이다. 물론 홍익인간의 정신 계승 문제를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일은 아직 더 필요하다. 많은 작업이 요한 다는 뜻이다.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5

96 춘추의리와 주역의리 제1장 의리연의 96

97 성선설 :54 성선설 성선설 97

98 성선설 글을 읽다가 이생이 말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치타가 성인보다 중용을 잘할 것 같아요" 근래 불교공부를 좀 하더니 많이 심취했나보다 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람은 이런저런 욕망이 많으니 그럴 수 있겠다" 치타이야기 같은 것은 사실은 전통시대에 논란이 이미 있었다 성악설 논자들이 그렇다 난 은근히 송대 유학자를 말했다 소동파 호안국 그리고 사마광 존경받는 일대의 학자였으나 성선설은 확고하지 못했다 "중국학자들은 사상성이 강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내 결론이었다 -하이안자haianja the haianist 성선설 98

99 간재사상연구 :31 연전에 필자가 발표한 글입니다 간재사상.hwp 논문요약 Haian Digital Review 6 문물과 사상 제6호 /12~1/12 간재 사상의 정체성 - 그 동아시아적 보편사유 艮 齋 田 愚 先 生 之 東 亞 思 想 史 中 的 正 體 性 The Essencial Thought 0f Grand Master GanJae Jeonoo Stsnding in the World of East Asian History of Ideas A Spontanious Approach of The Text of The Essays and Epistles 간재사상연구 99

100 하이안자 유 덕 조 1.서론 간재 전우( ) 선생은 율곡 학설을 위주로 학문을 모색했던 학자로서 한말에 걸출한 대표적 사문( 師 門 )을 구축하였다. 한국에서 주자 성리학과 퇴계 율곡이라는 삼각의 사상적 역학구조를 구성하면서 동아시아 성리학의 최고수준이 난만하게 개화한 그 첨단적 전개 속에서 그 의 학문적 성과가 중요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은 조선 성리학의 계승발전을 물론이고 중국주자학의 미래적 방향을 제시하는 거시적 지표를 창출하였다는 데에 있다. 즉 동아시아 사상사의 과거와 미래를 통관하는 그의 학설적 커패시티는 조선의 이기론쟁을 결말지우고 해소 하려는 학문적 역사적 순수함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학문이 율곡학설과 퇴계의 학설을 연구하고 주자학을 성찰하면서 분파주의적 학풍을 개선하고 순수한 학문적 활로를 개척하는 데 성공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한 주목의 대상은 경서에 대한 새로운 개안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주자 율곡 퇴 계가 그의 학문의 중요한 대상이었지만 그 궁극의 학적 기준은 경전이었다. 그의 당당하고 함찬 논리력의 정체성은 결국 경전해석을 새로히 하고 이를 통해서 일반 보편의 이성을 세워나아가면서 얻어졌고 그 궁극 목적은 민족사상과 문화로서 유학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었다. 이 는 조선유학의 권위라든가 자긍심에 대한 깊은 확신과 존중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민족적 정체성을 학문을 통해 민족의 신성하고 지고한 역 량으로서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완성하려는 절실한 멸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동아시아적 보편성과 역사성의 균형된 추구 가 그 주된 의지였음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그의 학문은 단적으로 강렬한 역사주의 문화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측면에 서 분석될 수 있다. 문제는 그의 학문적 민족적 목표가 보편적 이성과 한국사상사의 역량을 통하여 이루졌다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 해결의 방식과 학문적 수행 과 그 구체적 대응은 사념성 논리성을 따라서 이루어진 깊은 성찰이라는 성리학적 철리로서만 운용되었는가 아니면 사상사적 광대한 사유가 겸행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학의 역사적 본질성 혹은 본원성의 재확립이라는 동아사아 전통적 과제와 조선성리학의 높은 수준 의 발전결과와 그 여파라고 하는 두가지 학문적 상황 속에서 어느 한 쪽에 무게를 두었는가 아니면 유학의 본래적 윈리주의에 충실하면서 그 와 같은 제상황을 소화 해결 진척하였는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 공자이래 유학은 장기간에 걸쳐 형식와 유형화의 구조화의 길을 걸어왔고 그것은 주로 중국적 유학현상이었다. 그 형식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어난 송학( 宋 學 )은 성리이기문제 간재사상연구 100

101 ( 性 理 理 氣 問 題 )를 중심으로 하고 현실의 실경험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유학의 본래적 학문본질을 회복하려는 것이었으므로 학문적 부흥이 라고 할 수도 있고 유학의 보편적 사상 가치를 모색하는 근대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상의 발전은 조선 유학의 몫으로 회 부되었던 것이 사상사적 사실이었으므로 조선유학의 책임과 사명은 막중하며 차제에 유학의 진실한 역사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노력을 겸행하 는 것이 현대 역사학의 기초적 과제일 것이다. 간재사상은 그 같은 역사적 의의 탐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2.간재 서간의 분석 1-1 上 全 齋 先 生 書 제1서-기질과 본체론 일반 (1)제1서 원문 해석 1) 上 全 齋 先 生 書 ( 戊 辰 :1868/28세-스승 全 齋 任 憲 晦 에 올린 서간) 선생께서는 氣 質 의 本 體 는 心 에 該 當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인데 지금 그대의 오류( 病 )는 氣 質 을 합치( 合 致 : 合 就 )하지 못하고 體 用 을 구분하는 것이다 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 愚 )가 주의 깊게 생각해보았습니다만, 사람이 天 으로부터 稟 賦 받은 形 氣 心 性 이 라는 4가지는 총괄하여 말하면 性 이 心 氣 形 의 本 體 이며 나머지 3가지는 그 作 用 으로 나온 것일 것입니다( 用 ). 구분하여 논하면 이 4가 지는 각자 또한 體 用 의 작용이 있어 渾 然 ( 渾 淪 -분별 없이 합일됨)히 섞이어 충막( 冲 漠 :깊고 고요함)한 가운데서 條 理 가 分 派 되는 것이 < 性 의 體 用 >일 것입니다. 잠연( 湛 然 -고요히 고임)히 응결하여 고요히 쉬고 측연( 惻 然 -연민의 모습/애처로움을 느끼는 모습)히 반응하는 것이 < 心 의 體 用 >일 것입니다. 手 足 眼 鼻 (손 발 눈 코) 등이 잡고( 執 - 手 ) 기울고( 傾 - 足 ) 보고( 瞬 - 眼 ) 숨쉬는( 息 - 鼻 ) 것은 < 形 의 體 用 >일 것입니다. 고요 하여 순전하게( 醇 然 - 純 全 )하지만 움직이어( 動 ) 간혹 混 雜 되는 것이 < 氣 의 체용>일 것입니다.(천하 고금의 허다한 병통이 모두 이로부터 일어나서 생기게 된다) 기질이 고요히 있을 때 순전하여 혼잡됨이 없어야 그러함을 보게될( 臆 見 然 )뿐이며 고거( 考 据 -생각에 의지함)함이 있는 것은 아 닙니다. 최근에 우연히 孟 子 夜 氣 章 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저 스스로의 견해와 합치된다고 느꼈습니다. 이로부터 이려( / -나아 가)하여 볼 때 朱 子 가 이 意 義 를 논한 것이 증거삼을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夜 氣 란 곧 夜 間 에 자라나는( 息 ) 기질로서 청정한 것입니다. 평명 ( 平 明 )한 이른 아침의 氣 란 바로 이것이 밤을 자난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를 제가 살피기 어렵습니다.(기의 작용은 현인 이하에 이르러 말하면 실오가 없을 수 없으므로 움직임에 혹 혼잡됨이 있다고 한 것이다) 事 物 에 대한 旣 往 의 念 慮 가 이미 고요하여도( 息 ) 또 한 氣 質 이 청정해지기를 기다린 후에 이 心 의 本 體 가 드러날 수 있으므로 그 發 現 되지 않은 가운데서의 상황이 만일 그러하지 못하다면 비록 간재사상연구 101

102 사물과 접촉하지 않았을지라도 思 慮 의 싹이 단지 다소 있으면 濁 駁 함이 있게 될 것이니 마치 바람이 처음 고요할 때에 淸 凉 한 기운이 오히려 있는 것과 같으며 물결이 처음 고요해질 때에도 渾 然 한 물이 이 당시에 청정하지는 않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대개 < 未 發 之 體 >란 어느 경로 를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인지요.? 2) 上 全 齋 先 生 ( 戊 辰 2) 未 發 의 시기에는 氣 質 이 淸 粹 하여 聖 人 과 凡 人 이 이미 같은( 同 一 ) 하고 氣 象 도 또한 동하며 分 數 도 또한 조금도 優 劣 이 없고 또한 조금도 加 減 이 없을 것입니다. (미발 이하의 31자는 나의 說 이며 선생께서 이런 점에서는 결국 곧 옳다고 하셨던 것이므로 지적하여 문의드립니다.) 곧 이로 인해서 氣 質 의 本 體 가 영향을 주지( 乞 /줄기)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無 不 可 乞 ) 밝은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2)제1서의 분석 - 기질론의 의의 기질론은 불가불 인간론일 것이다. 선생이 기질을 논한 것은 단지 철학적이거나 지적 의문에서만 촉발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학 문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절실한 중심주제이며 경전 해석의 관건이었고 더욱이는 그가 살았던 당대의 구성원으로서 <지인( 知 人 )>하여 <경세 치인지도( 經 世 治 人 之 道 )>를 강구하는 출발이며 바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그의 학문적 물음의 언사는 단도직입적이고 절실하기 그지없으며 깊은 사려로 인한 강고한 믿음을 허 보하고 있었고 이 믿 음을 공고히 하려는 열망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전재선생의 가르침을 경건히 응시하되 그에 대한 엄중하고 예를 갖춘 반론을 불사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선생의 그 같은 학문적 열성과 진성을 이해하는 것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출발일 수 있을 것이다. 全 齋 先 生 의 학설비판으로 촉발된 이 서간은 氣 質 과 形 氣 가 本 體 와 相 互 作 用 하는 과정과 의미에 대한 성찰이다. 전재선생이 간재의 학설을 두 고 < 體 用 >을 구분해 보려는 기본 자제가 옳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막연한 體 用 區 分 의 비판이라기보다는 그 당시에 유행 하던 理 氣 論 의 전개가 四 端 七 情 論 을 중심으로 학파간에 방만한 分 化 를 거듭하고 있었고 이 분파주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깊은 것이었으므로 안이한 再 反 論 이 허용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간재는 자신의 체용구분론이 기존의 분파주의적 학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분화된 학설을 통합하려는 것임을 밝히고 바로 그 통합적 이해를 위한 각고의 결과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새로운 통합적 이해의 틀로서 1) 形 氣 心 性 을 구분하되 性 이 본체이며 形 氣 心 은 그 작용이라고 보았다. 2) 形 氣 心 性 의 각각의 단계에 다시 體 用 작용이 있다고 보았다. 즉 < 性 의 體 用 > < 心 의 體 用 > < 氣 의 體 用 > < 形 의 體 用 >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아마 그러한 생각은 周 易 의 < 太 極 論 > 가운데 < 兩 儀 의 太 極 > < 四 象 의 太 極 > < 八 卦 의 太 極 > 같은 생각과 유사한 것이다. 그의 체용론은 소위 < 中 體 西 用 >같은 고정적 의미이거나 이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哲 理 的 인 것으로서 그 당시 체용론의 새로운 양태인 理 氣 論 에 대한 도식적 이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평가된다. 다시 말하면 그는 각단계에 체용설을 적용함으로서 체용론이 어떤 도그마 를 위한 것이 아니고 格 物 致 知 즉 窮 理 의 과정에서 하나의 과정과 방식으로 운용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체용론의 확대해석은 기와 리의 <존재론>과 <작용론>을 아울러 설정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의 학설의 유력한 기초가 될 수 있었고 기존의 학설적 대립 을 해소할 수 있는 중대한 방향을 열어 보인 것이라고 평가된다. 간재사상연구 102

103 문제는 유학의 최종 목적일 <논의의 절실함>의 정도가 과연 증대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인데 우선 학파적 대립을 해소하려는 의지 자체가 학문적 절실함을 위한 것이었고 리와 기의 개별적 존재와 작용을 인정함으로서 존재와 작용의 상호 본질적 차이점을 이해라는 새로운 방향의 학문적 과제를 드러냄으로서 단순한 理 無 爲 氣 有 爲 의 설명방식을 심화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 人 物 之 性 同 異 論 >도 역시 긍극 적으로는 인간본질론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대개 性 善 의 理 致 를 믿음으로서 삶과 역사의 희망을 확보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 문 제와 유리된 성선-성악논쟁은 급기야는 성악혼재설이나 절충설의 용인이라는 사상적 왜곡을 불러왔었다. 그 왜곡의 바탕은 결국 현세적 절실 함을 결여한 학파적 학리 일변도의 공연한 전개에 있었다. 조선시대의 이기논쟁도 그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간재의 학설 역시 그 와 같은 고식적 절충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의문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문제를 일언하지 않을 수 없다. 간재는 맹자의 夜 氣 章 을 인용하여 平 明 한 기상이 청정하게 이루어진 후에 心 의 본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 전재선생이 강조 하는 < 未 發 之 體 >를 절실하게 체험해낼 수 있는 별다른 방도가 있는지를 역으로 물음으로서 서간을 맺고 있다. 간재의 절실한 소망도 바로 그 < 本 體 >의 < 作 用 >의 실질적 정황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기론의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본질의 문제를 거듭 제기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바 로 그의 순수한 학문적 요구에 의해 일어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그의 관점에서는 理 의 작용이란 본질성을 벗어남을 규제하려는 自 克 의 범주에서 유용하며 기의 작용이란 생체로서의 인간이 역동하는 환경에 대응하면서 창조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움의 가능성에 두어져 있었다. 그 새로움의 확장을 통하여 학설적인 무리한 대립은 자 연히 소화되고 해소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라고 평가된다. <밤의 고요할 때>와 <낮의 격동> 사이의 상호작용의 변화가 그의 절실한 관심이 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는 이 양론에서 動 時 에도 靜 時 에도 상호 淸 濁 이 어느 정도 공유된다고 한 생각은 그다운 절실한 사유의 출발이었 다. 그는 전재의 비평과는 전연 달리 오히려 형식적 구분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이는 사실 공자의 < 一 以 貫 之 >의식에 충실한 것으로서 확고 한 정단성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며 유학의 기초적 주의점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상적 기초의 이해의 중요성을 두고두고 절감하게 된 다. 제2서-중정 인의예지 동정설 일반 (1)제2서 원문해석 1) 上 全 齋 先 生 ( 壬 申 :1872/32세) 中 正 仁 義 動 靜 에 관한 학설은 앞의 학자들이 논한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용이하게 확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周 濂 溪 의 본의에 의거해 보면 이 4가지는 곧 五 行 의 象 가운데 仁 은 火 陽 이며 動 的 인 것입니다. 正 義 는 金 水 이며 陰 며 靜 的 인 것입니다.(이것은 農 巖 의 설이다) 또한 中 正 이란 禮 智 인데 禮 智 라고 하지 않고 中 正 이라고 한 까닭은 아마 仁 義 禮 智 란 性 의 본체로서 말하려는 때문일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孟 子 의 언급과 같습니다. 中 正 이란 仁 義 를 두고 性 이 流 行 하는 견지에서 말한 것일 것입니다. 그것은 易 의 元 亨 간재사상연구 103

104 利 貞 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行 하는 것은 中 하고(과 불급이 없는 것을 이름) 居 處 하는 것은( 語 類 에서는 處 를 居 라고 하였는데 字 意 가 더욱 分 曉 하 다.) 正 하고(조금도 偏 倚 됨이 없는 것을 말함) 發 揮 하는 것은 仁 하고( 發 育 으로 말함) 裁 量 하는 것은 義 로운( 收 斂 으로 말함) 것을 말하는 것일 것입 니다. 이러한 圖 解 는 正 義 를 靜 으로 생각하고 體 로 생각한 것이며 中 仁 을 動 이며 用 으로 본 것이어서 濂 溪 이 본의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 나 大 全 에서는 張 呂 양씨에게 보낸 서간에서 곧 正 을 中 에 상대되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中 이 중요시된 것이며 義 가 仁 에 配 合 된다고 하였 으니 仁 을 근본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中 과 仁 이 모두 靜 으로부터 遊 離 되지 않은 것이 正 義 라고 하였으니 모두 사물에 감응하여 변동하는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뒤에 그러한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함을 스스로 느끼고 변경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張 敬 夫 에게 답하였던 것은 우 리가 말하는 主 靜 之 說 이라는 것인데 이는 中 正 仁 義 의 動 靜 문제에 그 위치지움이 합당하지 못한 면이 있으므로 당연히 中 을 正 과 對 答 되는 것 으로 본다면 正 이 근본이며 仁 義 가 義 와 配 合 되는 것으로 본다면 義 가 바탕이 되는 것으로 보아야만 흠이 없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定 說 일 것입니다. 退 溪 는 東 萊 書 에 주를 달아 말하기를 이 서간과 敬 夫 에게 답한 글은 모두 中 과 仁 을 靜 에 속한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圖 說 의 本 註 에서는 正 義 를 靜 에 속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正 義 가 靜 인 것은 확실하므로 記 論 性 答 稿 에서 이를 定 論 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中 仁 이 靜 에 속한고 보는 경우에 대해서도 반드시 說 明 이 있어야만 더욱 의미가 상세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義 理 면에서 만족되는 경우를 생각 할 때 이미 그와 같고, 여러 의논의 早 晩 ( 始 末 )을 생각해보아도 또한 이와 같으니 제가 向 來 ( 最 近 )로 생각한 글들이 모두 근거 없는 것은 아 닐듯합니다. 延 稿 에 실린 栗 谷 尤 庵 두 선생의 말씀은 제가 감히 알 수 없습니다만 退 溪 의 말씀은 매번 圖 解 와 大 全 의 내용이 같지 않아서 의혹을 품어온 지가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동안 미루어 생각하고 연구한 결과 비로소 대략 그 까닭을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점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中 과 仁 이 靜 한 處 地 가 體 라는 부분에서부터 말한다면 正 과 義 가 역동하는 경우가 곧 用 이라 할 것입니다. 正 과 義 가 靜 한 처지가 體 라는 부분에서 말하면 中 과 仁 이 역동하는 경우가 곧 또한 用 이라 할 것입니다. 대개 4가지가 모두 體 用 이 있으므로 서로서로 체용이 되는 것입니다. 양설이 비록 다르나 동일한 의미적 귀결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해 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節 要 註 에 서 말한 것으로 中 仁 爲 靜 의 문제에는 별도의 다른 학설이 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4가지 體 用 의 의의를 泛 論 한다면 이와 같은 설 명에 역시 큰 잘못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설명이 周 子 의 의미와는 어긋나는 것이므로 朱 先 生 은 이 두 설에서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 렸습니다. 지금 退 溪 는 두 설이 같은 의미적 귀결을 이루는 면에 해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으므로 剳 疑 에서도 말하기를 朱 先 生 의 本 意 가 결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尤 翁 의 定 論 이 근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 延 公 에게 답한 글 가운데 本 註 를 周 子 의 뜻 과는 같지 않다고 한 것은 아마도 照 檢 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있어서 그리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선생님의 尊 意 로는 어떠하신지요. ( 尤 翁 의 설은 朱 子 大 全 의 答 南 軒 最 後 書 에 보이고 剳 疑 는 農 巖 의 說 이다. 本 集 의 雜 議 에 보인다) 2) 上 全 齋 先 生 ( 壬 申 2) 大 學 章 句 에 < 無 不 到 > < 無 不 盡 >의 양 구절을 두고 선생께서는 사물도 허다하고 알아야 할 것도 허다하므로 朱 子 는 < 無 不 >이라는 두 어귀로 포 괄하여 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臨 時 的 - 部 分 的 學 說 ( 橫 說 )일 것입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비록 사물의 이치를 推 尋 한다고 하여도 충분히 다하는 경지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므로 理 致 의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을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이 치의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면 마음으로 안다는 것도 반드시 미진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궁리하여 物 理 를 지극히 하여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않음이 없게 하고자 하고 지식을 推 極 하여 그 아는 것이 다함이 없게 하고자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 無 不 到 > < 無 不 盡 >이라는 두 구절은 一 端 의 견지에 나아가 충분히 지극한 경지를 해득한 것을 곧 지칭하여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두 구절을 朱 子 가 본래 단지 하나의 橫 說 로서 말한 것이라면 구 上 句 에서 반드시 < 博 窮 物 理 >를 말했어야 하며 또한 반드시 < 廣 致 知 識 >을 말한 이후에야 비로소 下 句 의 橫 說 과 서로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 窮 至 >라고 하고 또한 < 推 極 >이라고 하였으니 단지 이 4자만으로도 곧 이미 스스 로의 一 部 分 數 를 미루어서 全 部 의 의의를 깨달은 것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전의 견해를 바꾸어 새로운 의미를 따르고자 하는 까닭 입니다. 선생께서는 또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程 子 는 오늘 格 物 致 知 한다는 가르침을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여기의 無 不 到 란 견고한 학설 간재사상연구 104

105 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살펴보면 드디어 一 物 에 止 格 하였을 때 어찌하여 곧 그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않음이 없게 하려한다고 한 것인 가? 만약 나의 생각을 말한다면 비록 지극한 경지일지라도 < 無 不 到 >라고 하는 것인가? 3) 上 全 齋 先 生 ( 壬 申 3) 지난해에 저에게 말할 것이 있다는 이가 말하기를 우리는 世 上 사람들을 번번히 流 俗 的 이라고 부당하게 지목하는데 이 같은 사람은 아마 생 각의 規 模 가 좁은 것이라서 거의 사람과의 관계를 끊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명에 대해 저는 거의 당연하다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다시 생각해보니 도리어 매우 만족스럽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儒 者 들은 마음을 영위함에 당연히 四 海 를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에서도 도리어 混 淆 되는 일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만 일일이 변별( 剖 析 )하려고만 하므로 한 등급이라도 汚 濁 하거나 卑 下 한 무리들에게는 더불 어 和 同 하지 못합니다. 다만 處 事 하는데 道 理 가 있게 하고 甚 한 데에 이르지 않게 할 뿐입니다. 오직 이와 같이 한 후에야 비로소 儒 者 의 高 明 하고 廣 大 하며 磊 落 峻 正 한 道 를 이룰 것이며 泥 帶 水 하여 확고히 하나의 大 規 模 의 경지를 포괄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사이에 마음을 심고 기름에 무한한 병통이 없어질 것입니다. 孔 孟 이 鄕 原 을 논한 부분을 보면 그 彼 此 의 양자의 사이에 남은 여력이 없을 정도로 截 然 히 논하였습니다. 그것이 어찌 규모가 작고 식견과 도량이 얕아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대개 大 規 模 가운데 스스로 嚴 重 한 心 法 이 있으니 털끝만큼도 어긋나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어긋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서로 유용한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학문 을 논의함에 圓 熟 한 이가 많습니다만 일에 임하면 오직 서로 撤 回 합니다. 朱 子 도 오늘날의 학자들이 단지 공자를 배우되 곧 공자가 미복을 하고 宋 을 지났다는 내용, 군주가 부르면 멍에 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내용, 佛 이 공자를 불렀다는 내용 등 부류를 공부하고, 공부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단지 그런 내용만 배우고자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그 글을 읽고 배를 잡고 抱 腹 絶 倒 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지 금에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곧 사람을 한없이 惻 隱 하게 합니다. 委 靡 (시들고 쇠약함)하여 세속을 따라가는 자는 時 宜 를 따를 수 없고 오직 굳세어 特 立 해야만 時 宜 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은 伊 川 先 生 이 緊 要 하게 사람들을 위해서 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 속에 든 허다한 猥 濫 되고 雜 된 識 見 을 모두 씻어내고 곧 이러한 의리를 살 속에 스미고 몸에 사무치게 하여 바뀌거나 변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까요? 이미 이런 일들 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당할 것입니다. 이 같이 근심( 怛 )만 하고 있습니다. 이미 마음 속에 感 興 이 있으나 또한 선생님이 아니고 는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개 마음 속에 혹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여러 벗들을 차례로 헤아려보아도 결국은 함께 논의하기 어려 움이 있으므로 선생께 매번 이같이 陳 達 합니다. 참으로 선생께 번거로움을 드려 모독되어 미안스러움을 잘 압니다만 제 情 을 또한 그칠 수가 없습니다. 혼자 생각하니 선생께서는 밝은 답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라고 한 부분은 申 箕 善 을 말한 것이다.) (2)제2서 분석-동정의 문제 < 中 正 > < 仁 義 動 靜 >의 문제 역시 高 踏 한 峻 論 의 하나로서 결국은 < 格 物 致 知 >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는 仁 義 禮 智 의 상호작용이라는 예 민한 문제를 사유한 것이다. 五 行 論 을 적용한 논의의 경우는 仁 義 - 禮 智 구도를 仁 義 - 中 正 구도와 동일시하고 仁 - 中, 禮 - 正 이라는 의식을 도출한다. 이 경우 中 이란 德 目 과 正 이란 義 理 가 본질상 상당히 대립하게 되는데 이 때 仁 은 生 育 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火 혹은 木 ( 陽 )이라고 보고 動 的 인 것으로 생각하며 禮 는 節 制 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金 혹은 水 의 陰 으로 보고 靜 的 인 것으로 생각하게된다. 간재사상연구 105

106 이 문제와 연관하여 朱 子 와 退 溪 가 모두 일견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는 動 靜 比 定 上 의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詳 論 한 것이다. 朱 子 의 경우는 中 을 중요시하면서 義 가 仁 에 配 合 된다고 하여 仁 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中 과 仁 이 모두 靜 이라고 하고 이것이 正 義 라고 하였으 니 상당한 혼선이 야기될 수 있었다. 부연하여 中 이 正 이 대답되는 경우는 正 이 근본이고 仁 義 가 配 合 되는 경우는 義 가 바탕이 된다고 하여 逆 의 해석을 허용하였다. 간재는 앞의 경우는 仁 義 가 私 物 에 감응하여 변동하는 경우를 지적한 것이며 후자가 본질상의 定 說 이라고 단정하였 다. 교육의 문제에 적용하면 이 문제의 의의를 잘 생각할 수 있다. 어진 가르침은 상대 학생을 역동적으로 배우게 할 수 있으므로 동적이므로 火 인 것이며 정의로운 절제의 가르침은 상대의 동적 면모를 靜 肅 하게 하는데 효용을 발휘한다. 그런데 의로운 가르침일지라도 仁 을 구현하려는 것이므로 결국은 仁 義 - 動 靜 은 서로 配 合 되어야 한다는 當 爲 性 을 지니고 있다. 始 終 의 線 上 에서는 서로 逆 의 경우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다. 즉 주자는 순수한 正 中 의 구현 문제에서는 正 이 중심이며 仁 義 의 문제에서는 中 이 중심이라고 한 것인데 이는 가르침의 경우는 仁 義 의 구체 적 문제를 중요시하고 개별 인격에서의 이념의 구현에 있어서는 正 中 의 문제를 중시하여 전자의 경우 中 이 중심이며 후자의 경우는 正 이 중 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의 가르침은 仁 義 라는 動 的 인 목표를 중시하고 개별 인경의 수양에서는 正 義 를 중시하게 된다. 간재는 그 같은 방식으로 朱 子 의 논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退 溪 의 경우도 그러하다. 그의 東 萊 書 註 에서는 中 과 仁 이 靜 的 이라고 하였다. 圖 說 本 註 에서는 正 義 가 靜 에 속한다고 하였다. 正 義 가 靜 이라는 것은 정설이므로 당연하나 中 仁 이 靜 에 속한다는 것은 一 見 矛 盾 이다. 바로 이점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설명이 적용된다고 간재는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보아도 大 全 의 견해와 서로 그 동정비정 자체가 다르다는 重 且 大 한 問 題 가 發 生 한다는 점을 간재는 核 心 的 으로 지적한 다. 그 문재를 간재는 < 中 仁 이 靜 한 경우( 中 仁 之 體 )는 正 義 가 역동하여 用 이 되고 正 義 가 靜 한 경우( 正 義 之 體 )는 中 仁 의 작용이 역동하여 用 이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해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생각은 이미 周 子 의 의견과 다르기 때문에 原 論 中 心 의 정신에 따라서 朱 子 는 한 쪽의 경우를 <버렸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의 과정에서 農 巖 과 尤 庵 의 설을 원용하였다. 간재선생은 朱 子 栗 谷 退 溪 尤 庵 등의 학설을 읽으면서 그 상호간의 異 同 이 있을 경우 이를 擴 大 하여 異 引 하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학자적 성 심을 깊이 신뢰한 깊이를 가지고 최대한의 새로운 의미적 상황을 창조적으로 조성하고 부여함으로서 矛 盾 과 相 異 点 을 解 消 - 解 決 하면서 보다 새로운 절실함과 깊이를 구축하고 있다. 실로 순수하고 위대한 학문방법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선학들의 발론의 상황에 대한 폭넓 고 깊은 이해와 신뢰를 보여줌으로써 학자의 본분을 다하고 그 학설의 혼돈을 해결함으로서 지식계의 혼란과 낭비를 막고자 하였다. 그가 어 찌 명예욕으로 치열한 논변을 벌인 것이랴. 그러므로 또한 그가 어찌 후일에 나약한 의지로 학문에 숨어들려 하였으랴. 이미 높은 이상을 보 였으니 죽음으로서도 그 공을 무산할 수 없거늘 시국의 비운 속에서 그 학문을 완성하려 한 것이 어찌 추호라도 비난받을 일이랴. 맹자의 말 에도 의지가 지극한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의 의지가 어찌 어느 衝 天 한 勇 夫 의 義 氣 에 비해 遜 色 있는 것이랴. 오늘의 관점에서 냉정히 바라볼 때 仁 義 中 正 體 用 說 은 새로운 청신함을 줄 수 있지만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오히려 그 때 문에 학문이 발전하는 것일 것이다. 끝으로 부언한 格 物 致 知 論 의 이해상의 착오를 지적한 것은 그의 상밀한 학자적 태도를 보여준 경이로운 탐구의 모습이다. 그의 제반 논의가 그 같은 치열한 사유의 소산이었음을 유감없이 증거 할 만 하다. 간재사상연구 106

107 제3서- 고자출후 장자불참 제자위사설 등 예제문제 (1)제3서 원문해석 1) 上 全 齋 先 生 ( 丙 子 :1876/36세) 전에 重 菴 의 서간에서 孤 子 도 역시 出 後 할 수 있고 長 子 는 父 親 을 계승하는 嫡 子 의 지위가 소멸하지 않으며 弟 子 가 스승을 위해 訟 冤 한다는 3가지 일로 크게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저의 비루하고 졸렬한 식견으로 어찌 논란에 참여하여 그 설을 평가하겠습니까?( 上 下 其 說 乎 ) 그러나 이미 논의의 실마리가 제기되었고 또한 결국은 피하지 못할 면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이 3가지 일을( 三 事 ) 일일이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다루 고 설명하여 나아가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또한 어찌하겠습니까? 대개 孤 子 가 出 後 하지 못하는 뜻( 義 )은 스스로 天 理 人 倫 가운데 지극한 것이며 백 세대를 지나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을 두지 못할 일입니다. 비록 人 君 일지라도 그 뜻을 빼앗아 강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이 같지 그 처음부터 이해하려하지 않고 단지 君 上 이 듣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논란이 話 頭 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이 다시는 언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논의를 어찌 다시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長 子 服 制 의 說 에 이르러도 역시 後 世 儒 者 들의 脚 註 下 段 을 따라 설명하고 전 연 經 傳 의 本 文 에 입각하는 방향으로는 강론한 적이 없었습니다. 農 翁 이 탄식하신 대로 끝내 正 義 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라는 형편을 면 하지 못할 것입니다. 거기에 인용된 續 解 에서 풀이한 < 不 繼 祖 之 說 >은 본래 喪 服 傳 의 鄭 氏 註 입니다.그 글의 처음과 끝까지 350자 논설은 어느 한 자도 < 禰 嫡 亦 服 長 子 斬 >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이를 원용하여 설을 세웠으니 역시 밝을 수가 없습니다. < 爲 師 訟 寃 論 >은 그 처음 3설이 모두 오늘날 논쟁하는 내용과는 같지 않습니다. 다만 그 중에 스승이란 道 의 소재처이다 라고 한 데서부터 어 찌 개괄하여 논변하지 않으랴 고 한 데까지에는 충분한 道 理 가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그 설이 참으로 옳습니다. 다만 저의 소견을 말한다 면 이는 비단 제자가 스승에게 그러할 뿐 만 아니라 모든 同 朝 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역시 스승을 위하여 訟 寃 한다는 것을 별도로 하나의 주제로 하는 것을 옳지 못합니다. 또한 그 말은 在 朝 와 在 野 를 막론하고 한마디로 정밀하지 못한 것 같습니 다. 저는 和 靖 說 을 아꼈었습니다. 程 氏 의 학설을 배운 某 氏 는 斥 語 를 가지고 得 體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분은 도리어 도리를 밝혀 上 心 을 밝게 하려 하지 않고 尹 公 에게 허물을 돌리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上 의 마음을 만약 돌릴 수 있다면 단지 이 한마디 말도 역시 밝 히어 깨닫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수 만 마디의 말을 소비하고서도 일에 보탬이 되지 못할 것이며 다만 치욕을 얻을 뿐일 것입 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和 靖 은 당시에 부름을 받고 있지 않았다면 이 말은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혹 便 宜 를 엿본 데 가깝지 않겠습니까? 밝은 가르침을 내려주시기를 바라오며 金 丈 의 書 信 과 저의 答 을 말씀드리고자 아울러 올립 니다. 저의 論 辨 가운데 詞 理 가 부족한 곳이 있으면 繩 削 (바로잡아 없앰)하사 경망하고 흠이 없게 해주신다면 천만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2) 上 全 齋 先 生 ( 丙 子 2) 저는 최근에 儒 學 과 佛 敎 의 차이를 우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로 우리는 理 를 위주로 하고 저들은 氣 를 위주로 할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간재사상연구 107

108 그러나 요즘에 일부의 士 友 들이 비록 理 를 위주로 설명하고 있으나 곧 知 覺 運 動 하는 것을 지목하여 理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主 本 되 어야 할 것들이 끝내 刑 而 下 의 경지를 벗어날 수 없고 그리고 刑 而 下 란 곧 불교와 같은 의견일 것입니다. 가르침을 주시기를 엎드려 청합니 다. (2)제3서 분석 - 예제 논의의 문제 군주의 禮 制 와 연관된 이 서간은 1)첫째 君 王 의 강제적 영향력이 바른 禮 說 의 수행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2)둘째 학자 들이 禮 制 의 근본적 문제를 도외시하여 유교적 윤리의 근본 도리를 유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통탄하였고 3)셋째 논자들이 文 獻 的 脚 註 를 위주로 논하고 經 傳 의 본문에 의한 심찰을 하지 않고 있다는 本 末 顚 倒 의 문제를 논하였으며 4)넷째 주석을 인용함에도 그 본의를 왜곡하여 마음대로 원용하여 自 說 을 세우려 한 학자적 양식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5)아울러 禮 說 論 爭 이 일어난 실제 상황을 도외시하여 恣 意 的 논의가 일어나고 있고 排 斥 의 선입견을 가지고 논하고 있다는 논의상의 無 理 를 痛 打 하였다. 禮 說 을 바로잡고자 논의를 전개하였으나 실은 禮 自 體 의 是 非 를 가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기 보다는 학자적 자세를 보다 더 문제삼고 있다는 사실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특히 경전의 본문을 중시하지 않고 각주의 설을 인용하고 또 자의적으로 援 用 하고 있다는 치명적 문제를 지적하 려는 것이 그 본의일 것이다. 아울러 道 理 로 대표되는 기초적 當 爲 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 것도 오히려 학문하는 전반적 자세와 연관된 주장 이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학설왜곡의 주된 경로가 대개는 본말을 전도하거나 발론의 상황적 이해상의 미스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학설과 인물 의 분파를 강화 조장한다고 본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군왕일지라도 學 的 이어야 한다는 큰 목소리에 있으며 非 學 問 的 分 派 主 義 排 斥 主 義 는 排 擊 되어야한다는 遠 慮 를 반영하고 있다. 동시에 제2서는 학문적 완숙기로 접어들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는데 불교적 사유와 유교적 사유를 비교하고자 하는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유 교는 理 를 위주로 하고 있고 불교는 氣 를 위주로 하고 있다는 이해는 退 栗 이 학설적 차이에 비추어 기묘한 감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는 학파적 분리의식보다는 통일적 이해를 도모하고 있었으므로 그에게는 退 理 栗 氣 의 분파적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율 곡의 학설이 결코 氣 의 독존적 강조에 있지 않다는 審 察 을 그의 학문 입장에 비추어 간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주목해야할 부분일 것이다. 1-2 上 肅 齋 趙 丈 ( 秉 悳 : 戊 辰 1880/40세) 간재사상연구 108

109 (1)원문해석 老 洲 先 生 이 말하기를 中 庸 章 句 에서 大 本 은 天 命 의 性 이다 라고 하였는데 < 天 命 의 性 >이 이미 < 人 物 과 통한다는 說 > 은 整 菴 이 말하는 < 未 發 한 가운데 모든 事 物 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설명이 매우 명쾌한 것 같지만 실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감히 門 下 에 여쭈오니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 말씀 주시기를 바라오며 저 혼자서 의문을 품어보았습니다. 性 과 中 은 다소 구별이 있는 듯하오 며 하나로 일괄하여 논하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 未 發 之 中 >을 논한 淵 翁 의 설에 지극하다고 한 부분과 지극 하지 못하다고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의문스러운 것은 이미 中 이라고 하였다면 어찌 지극하지 못함이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최 근에 老 洲 의 雜 識 을 보니 대개 三 淵 의 < 未 發 說 >을 < 前 人 이 밝히지 못하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農 翁 의 四 七 論 과 竝 稱 되고 있 는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뜻으로 그러한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 淵 翁 이 渼 湖 를 설명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었습니다. (2)분석- 天 命 之 性 의 문제 천명지성을 논하는 것은 인간의 心 性 作 用 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사람의 삶에서 이상 실현의 가능성과 현재적 희망의 소재를 적실하게 발견 하기 위한 깊숙한 모색의 과정 한 모색이다. 유자들은 당연히 그 이전에 이미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일상 가운데서 살아있는 생각과 믿음 그리고 처신으로서 체현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考 究 가 필수적이다. 비록 空 理 空 談 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러한 사유는 가능하다면 더 치 밀하고 더 진지할수록 좋을 것이다. 간재 선생이 선학들의 문집을 읽고 성리문제에 깊이 진입하면서 당연히 의문이 없을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특히 선학들 사이에서 < 定 說 >로 통하는 문제들에 대해 위와 같이 異 議 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그의 기본적 태도가 보다 切 實 함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는 후일 그의 학문적 성취를 예견하게 하는 중요한 서간일 것이다. 1-3 上 苟 菴 申 丈 ( 應 朝 ) (1)원문해석 1)제1서( 癸 巳 1893/52세) 간재사상연구 109

110 제가 門 下 에 절실하게 仰 請 할 問 議 말씀이 있어 이같이 감히 분수 넘치는 글을 올립니다. 저 (1)변방의 오랑캐가 우리 문명국을 어지럽히어 그 재앙이 천하에 이르고 있습니다. 王 者 가 당연히 엄히 막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2) 道 를 무시하고 민중을 迷 惑 하여 그 해가 백성에게 미 치고 있습니다. 朝 廷 에서는 마땅히 法 을 시행하여 禁 絶 해야 할 것입니다. (3) 異 端 이 진리를 어지럽혀 그 해가 우리 性 理 道 術 에 이르고 있습니 다. 儒 學 師 門 에서 당연히 學 說 을 세워 분별해 밝혀야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비록 그 책임 소재가 각각 달리 있겠습니다만 서로 분 리될 수 없는 형세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君 相 이 혹 그 職 務 를 이행할 수 없을 경우 儒 學 者 들이 부득이하게 말과 글로 邪 道 와 亂 政 은 반드시 誅 滅 해야한다는 法 을 밝히어 천명하고 오랑캐들이 문명국에 교활한 짓을 할 경우 응징해야만 한다는 懲 戒 를 엄히 드러내어 이 백성들이 鬼 魅 나 犬 羊 같은 部 類 가 되는데 이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天 地 의 仁 을 體 現 하고 聖 賢 의 義 를 지키기 위한 것일 것입 니다. (...이 아래는 글을 소실하였음.) 2)제2서( 丁 酉 1897/56세) 제가 따르지 못할 박한 자질로 門 庭 에 누를 끼쳐 드린 지 이제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父 師 께서 모두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 외롭고 천한 저 는 선생님께 일심으로 우러르고 숭앙하는 마음을 강물처럼 깊이 하지 않았다면 어느 날 어느 밤인들 그 슬픔을 잊을 수 있었겠습니까. 생각 해보면 근년 나라가 變 亂 을 만나 腐 心 切 齒 하고 끓는 피로 눈물을 마시며 고향을 떠나 자취를 감추고 호수와 산 속에 몸을 감추고 살았으므 로 철따라 문안 말씀을 例 前 처럼 올리지 못하였으니 스스로 門 下 에 죄를 얻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바다 같으신 도량으로 감싸 주시지 않으실 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문득 宋 毅 燮 이 먼저 못난 저에게 問 安 한 글을 보니 평생 왕래하며 講 論 했던 일들이 갖추어 쓰여있었습 니다. 그 뜻이 지극히 정성스러워 이에 저는 감격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제 의지를 더 굳게 하고 채찍질하며 선생님의 깊은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원대함을 기약하려는 생각을 감히 잠시도 끊지 못합니다. 지금 또한 바닷가에 전전하는 客 으로서 骨 肉 이 離 散 하고 신 세가 외롭소 쓸쓸합니다만 道 術 이 장치 망할 것을 생각하고 나라 형편이 어렵고 위급함을 슬퍼하며 衰 殘 해버린 산수의 사이에서 외로운 그림 자 홀로 끌고 가면서 저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는 이어서 통곡을 하고 맙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니 선생께서는 오랜 世 臣 이시고 斯 文 의 元 老 匠 人 이시니 제 말씀 들으시고 응당 저와 같이 슬퍼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가을 서늘해질 때를 기다려 전에 다 못한 큰 포부와 道 言 을 말씀드리고 가르침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神 聖 하신 尊 體, 편안하시도록 寢 膳 精 調 하시기를 저는 오직 간절히 빌 뿐입니다. (2)음미 - 國 家 的 悲 運 속에 흐르는 師 弟 의 情 談 이 의미하는 것 이 서간은 한말의 시운을 1)국제정세적인 광역의 대응 2)내정적인 대응 3)학술 사상적인 대응이라는 3분야로 나누어 성찰하고 있음을 나타내 고 있다. 책임의 분야가 다르다는 이해는 자신이 속한 <유학자의 입장>에서는 학술 사상적 전통의 수호가 그 본분인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그는 바로 1) 王 者 2) 朝 廷 3) 儒 門 으로 시대를 열어갈 그 책무의 주체를 설정하고 있었고 이것은 그의 기본 입장으로서 굳게 견지되 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君 相 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유학자들이 정도를 밝혀야한다고 한데서 보면 스스로 무거운 자존의식과 책임의식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그의 治 亂 論 은 그러나 천지의 仁 을 실현하고 성현의 義 를 지키는 범주에서 생각되었다. 위와 같은 생각은 전통정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가능한 것이었으며 사상적인 면에서 높은 개안으로 뒷받침된 것이었다. 이른바 한말의 선각자로 불리 우는 개혁주의 인사들의 사상과는 본질적으로 극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이 근대적인 것들의 힘과 위력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밖 에 없었을 그시절에 그리고 나라의 살길이 바로 그러한 열강의 경제력과 기술 및 제도와 힘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로 여길 수밖에 없던 그 시기를 호흡하면서도 가치관과 전통적 믿음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경이로운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개혁의 필요성은 간재사상연구 110

111 사실 많은 부분이 내정( 內 政 )에 두어져야 할 것이었고 바로잡힌 내정을 기초로 새로운 내외 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음 에 틀림 없다. 동아시아 역사상 新 戰 術 과 新 武 器 혹은 新 戰 法 등의 힘에 의해 많은 왕조들이 무너졌고 또 새 왕조가 나타났다. 그 동아시아 왕조교대의 역 사는 아직 정확하게 그 본질패턴이 연구사적으로 정립되지 못하였으므로 단언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역사상의 수많은 왕조교체에도 불구하 고 동아시아의 정신과 문명은 크게 훼손된 적은 없었다. 예를 들어 왕조흥망사의 요소는 1)사회혼란과 국민생활의 모순의 발생 진전 2)국제 적 환경의 격변 3)정치상의 혼란 등 적어도 3가지 이상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환언하면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요소의 발전의 과정에서 나타난 모순현상이 역사변동의 중심요인이었다. 그 같은 역사요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상사와 문명사의 궤도와 본질이 지속되었던 것은 바로 유교라는 보편사상의 힘과 권능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통의 전면적 부정을 주로 의미한 근대적 개혁은 어쩔 수 없이 <반역사적( 反 歷 史 的 )>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근대 이래의 개혁의 주장이란 거개가 반역사적 이라는 의외의 본질성을 피할 수 없다. 자기적 전통의 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서구적 侵 侮 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었고 이것은 자연히 역사적 자기비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자기비하가 없이 당당한 정신으로 서구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면 근대화 자체의 도정 이 다소 달랐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근대화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앓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삶의 중심과 가치와 사상의 주축 이 탈자기화( 脫 自 己 化 )되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이런 현상을 세계화라는 미명아래 적극 용인해야하는 것인지 깊이 회의하지 않을 수 없 다. 오늘의 시점에서 근대화의 도정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일본의 침략이라는 힘의 간섭을 통하여 정상적 자기주체적 근대화를 추구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도 확실하다. 전통적 틀에 있어 비교적 박약하였던 일본은 쉽게 서구적 가치에 매몰되었고 그들의 강요나 영향을 받은 韓 末 에는 서 구적 가치에 저항한 지식인들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왜곡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륙침략이란 몽고족의 정복활동이나 만주족의 침임 혹은 그 이전 五 胡 의 침입에 비하면 적어도 동아시아 문화적 변방세력이 일으킨 문화지대에 대한 역사 구조적 침공으로서는 많이 다른 특질 을 드러낸다. 그 최대의 차이는 일본의 침략의 본질적 특징은 서구의 지식과 기술 사상을 등에 업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동아시아 문명지대 침범은 서구적 문화와 가치가 왜곡된 형태로 동아시아를 침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강점이나 중국점유는 그러나 반대로 서구세력이 제3세계를 점령한 사실과는 엄정한 차이를 또한 드러낸다. 서구제국주의가 침범한 제3세계는 오랜 역사적 구조상 1)세련된 사회제도 2)높은 이상구현의 역사와 사상 3)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역동적인 역사를 창출한 광역의 문명권의 영 위라고 하는 높은 수준의 문명권적 영위의 성숙성이 비교적 미약하게 영위되었던 지대였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서구가 발전시킨 모든 제도와 사상의 가치를 능가하는 발전을 지속해온 권역으로서 <도저히 비하될 수 없는> 문화적 격조를 가진 권역이었다는 점에서 그 본질적 상위점을 발견하게 된다. 서구제국주의는 그 점을 지속적으로 왜곡해왔었다. 이제 이러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위배는 장래에는 그들에게도 뼈아픈 반 성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단 그것은 우리 한국-중국을 중심한 동아시아 중심국들이 자존심을 회복하는 당당함의 역사가 다시 열릴 때 가능 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자기 전통에 대한 신념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극히 중요하며 다시 확고한 삶의 주축이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간재의 믿 음>은 지금도 그 가치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더욱더 절실하게 그 비중이 높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腐 心 切 齒 하고 끓는 피로 눈물을 마시며 고향을 떠나 자취를 감추고 호수와 산 속에 몸을 감추고 살았으므로...>(제2서)에서 볼 수 있는 극단의 우환의식은 그 같은 시국관에 따라서 가지게 된 것이며 적어도 당시로서도 독특한 對 比 를 드러내는 出 處 觀 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독특함의 실체로서 그 은둔의 자세 역시 전통적인 치세와 난세를 구분하여 대응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의 선택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러나 그대로 의미 있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이 독특한 것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는 있겠다. 즉 국가지성을 주도해온 유교지식인의 일부에서는 서구사회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세계질서나 국제환경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면서 새 로운 사상과 문화 사회 정치를 지향하면서 당시의 심각한 문제들을 풀고 대응하려 하였다. 말하자면 선구적 근대화론자들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곧 <근대화>라는 움직임은 당연한 흐름이었으나 그 움직임이 전통적 인맥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새로운 세력화의 길을 갔던 것 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전통과 보수논쟁과 같은 틀을 형성하면서 서구화된 운동을 지향하였으므로 전통의 분야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장기적으로 야기하였다고 생각된다. 간재사상연구 111

112 1)반일 반외세 운동의 상당한 타협성의 노정 2)전통 순수 유교지성의 점진적 소외와 약화 3)정부와 유림간의 유대의 약화 움직임 진행 4)절대적 국민사상인 유교의 위상격하 상황구조의 조성 5)서구문화와 사상의 유행과 가치관의 역전작용 인기 6)전반적 정치 사회의 換 骨 運 動 의 일어남 7)탈전통적 움직임의 최종적 指 向 과 推 動 8)유교적 정서의 강인한 지속으로 서구지성과 괴리전선 형성 9)반유교적 제도문화의 유입 성장 10)유교적 외연의 전반적 붕괴 진행 11)유교적 문화 사상의 반성적 沈 潛 作 用 전개 12)보편사상으로 재 탄생되어야 할 유교과제의 등장 13)유교적 세계관의 창조적 수립 요구의 절실화 등이 그것이다. 그 긴 끝에 오늘의 세계화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세계화가 민족적 개성의 경시라는 특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에서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그런 배경에서 보면 간재의 전통고수의지는 선명히 드러나는 오늘의 의미 문맥에서는 깅렬한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출처관을 보수주의라고 부르려한다면 이는 바로 역으로 자신의 역사를 격하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되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보수 개혁이란 이해방식은 깊은 철학적 자아성찰의 결론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오로지 결기에 찬 민족주의적 행동만으로 문화와 사상과 전통이 지켜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실 정명론적 어의상으로는 <개혁>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음미와 평가를 통한 <서구적인 것의 수용 소화>가 필요한 것일 것이다. 자신이 언제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기의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 가운데에 타자를 수용하여 살찌워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단적으로는 모든 행동적 선택의 중심에 전통적 사상 이 주축으로서 작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와 같은 사상과 행동은 오히려 자기애이며 문명애이며 민족애의 깊숙하고 진정한 발로일 것이다. 한 시대의 지성을 이끌만한 선현의 역사적 의미는 어떤 경우도 격하 축소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 위에 한국근대사상의 결기( 決 氣 )의 역 사 주체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탐구해야 할 것이다. 1-4 上 溪 雲 金 丈 ( 洛 鉉 甲 申 1884년 44세) (1)제1서 崔 君 이 기록한 敦 論 과 서간을 열어보니 다행스러워 경건히 읽었습니다. 제가 항시 말하였던 것은 王 者 가 선비를 선출할 때는 바로 실제로 쓰 기 위한 것인데 本 朝 의 抄 選 은 虛 名 을 따름을 면하지 못하여 無 實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아래 200년간 被 選 된 諸 賢 들은 虛 禮 를 위하여 스스 간재사상연구 112

113 로 출사하기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가 묻기를 伊 川 은 3번 사양한 후에 微 職 에 나아갔는데 牛 溪 는 어째서 끝내 나아가지 않았는가 하 였습니다. 栗 翁 이 말씀하기를 伊 川 은 당시에 登 用 에 應 하려는 뜻이 있어 벼슬에 나아갔고 牛 溪 는 그럴 뜻이 없어 부름을 공연한 것으로 보았 으므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宣 祖 때에 牛 溪 를 위하여 처음 經 筵 官 을 두었는데도 栗 翁 께서 오히려 이런 말씀을 하였으니 하물며 그 후대에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예전에 만약 조정에서 맞이할 때 공경을 다하여 예를 행하고 나라를 맡기어 정권을 준다면 선배 제현들이 역시 반드시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였을 것이니: 道 術 이 밝혀지지 못하고 기강이 떨치지 못하며 풍속이 바르지 못하고 이웃나라가 업신여기며 ( 陵 轢 ) 민심이 풀리고 흩어짐이 결코 이런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슬프게도 조정에 있는 諸 公 들이 이와 같은 일을 군주 곁에서 경해( 謦 -기침소리 혹은 面 謁 하여 대화하는 소리)하여 말씀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항상 慨 歎 하고 한( )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선생 님( 函 丈 )께서 上 奏 하신 글을 보니 참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과연 主 上 께서 이 경계의 말씀을 깨달아 몸소 실천 하여 明 賢 을 찾아가시고 뜻을 모아 吉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국가가 망할 것인지 아닌지 기쁜 일이 있을지 어떨지를 모르겠습니다. 구구한 몸으로 책임 없는 초야의 사람이 다행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 생각을 書 啓 에 밝힌 것은 아마 疏 章 의 鄭 重 함처럼 상세히 서술되지는 못하 였을 것입니다. 어찌 이것이 다만 諭 召 만 있고 職 名 이 없어 역시 書 啓 로 修 理 해야할 것이며 辭 疏 에 해당할 수 없기 때문이겠습니까? 살펴보니 지금의 國 勢 로는 도리어 당연히 賢 者 를 渴 求 하여 맡기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程 子 의 養 賢 剳 子 처럼 길러내야 한다는 것을 불가불 이해해야 할 것입 니다.) 性 心 과 體 用 은 動 靜, 寂 感 으로 분별할 것이 아니며 곧 理 氣, 本 末 로써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이 未 發 하여 치우치 지 않고( 無 偏 ) 이미 발하여( 已 發 ) 어긋남이 없는 것( 無 乖 )은 모두 마음의 오묘한 작용이며 未 發 已 發 의 경우에 無 偏 無 乖 한 것은 또한 性 의 本 體 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논하는 것이 어긋남은 없겠는지요) 上 蔡 의 설 같은 경우는 크게 거친 부분( 太 )이 있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을 들고 발을 움직이는 것 등 작용으로 드러난 것일지라도 참으로 역시 마음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것 만으로 마음을 논한다면( 論 心 ) 心 이란 것이 도리어 치우치고( 偏 側 ) 주정( 周 正 -굳고 바름)하지 못한 것일 것입니다. 性 이 당연히 視 聽 擧 運 의 근본( 本 )이 되어야 할 것이며 만약 단지 이것만으로 性 을 말한다면 性 이 動 靜 寂 感 하는 所 以 然 의 오묘함( 妙 )을 보지 못할 것입니 다. 朱 子 가 그르다 한 것이 옳을 것입니다. (2) 答 溪 雲 金 丈 渼 湖 說 을 보여주시고 비유하신 것은 다시 어떻게 究 明 하고 勘 案 해야 할 것인가요. 간절히 말씀 듣기를 원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상세히 살 펴보고 각각 한결같은 그 性 을 本 然 之 性 으로 보고 圖 說 의 大 旨 를 밝힌다면 단지 이 性 의 本 善 을 발휘하는 것이 되므로 이 뜻이 참으로 역시 善 한 것이긴 합니다. 다만 朱 先 生 이 이미 本 註 에서 그 기질을 따라서 稟 賦 받은 것이 같지 않게 된다하여 각각 그 性 이 한결같다는 것을 단 언하였고 大 全 과 語 類 의 여러 설들이 또한 각각 氣 質 之 性 으로 이 구절을 논하였습니다. 이점은 당연히 자세히 성세함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 다. 대개는 氣 가 구별되고( 殊 ) 性 이 다른( 異 ) 것을 氣 質 之 性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질이 다르다는 것은 곧 濁 駁 함을 겸하여 말한 것이 아닙 니다. 단지 나무가 부드럽고 쇠가 강한 것을 지적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性 의 差 異 란 곧 邪 惡 함을 포함하여 말한 것이 아니며 仁 의 溫 和 함과 義 의 斷 乎 함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이같이 생각하면 비록 이것을 기질지성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어찌 全 篇 의 性 善 의 큰 뜻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매양 말하듯이 각각 일개화( 一 個 化 )된 性 理 的 作 用 ( 各 一 其 性 )을 깨닫게 되는 데서 보아 이를 기질이라하는데 참으로 本 然 이라고 해도 역시 통할 것입니다. 대개 쇠와 나무가 품성이 다름을 따라서 말하면 이를 기질지성이라고 하나 그 본연의 理 를 해치지 않 을 것입니다. 仁 義 가 同 善 이라는 관점에서 말하면 本 然 이라 할 수 있고 그대로( 依 舊 ) 이는 一 偏 의 理 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연전 에 벗 宋 炳 華 에게 답한 서신에서 참람되지만 각각 일개화( 一 個 化 )된 性 理 的 作 用 ( 各 一 其 性 )은 分 殊 化 된 本 然 이라고 하였었습니다. ( 筆 者 註 :이 는 性 質 이라고 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氣 質 에 따라서 품성( 所 稟 )이 다른 것이 소위 分 殊 일 것입니다. 所 稟 이 비록 다르나 性 理 는 모두 善 한 것이 소위 本 然 입니다. 만약 스스로를 깨달음이 없는( 自 昧 ) 자가 보다면 本 然 과 氣 質 은 양쪽 모두 막히게 될 것입니다. 대개 기질지성이 라고 하면 거기에 악이 있는 것인가를 의심하고 본연지성이라고 하면 곧 純 全 本 體 라고 간주하여 말하니 어찌 사람의 氣 를 어둡게( 悶 ) 하는 간재사상연구 113

114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義 를 일으키지 못하는 仁 이나 仁 을 일으키지 못하는 義 란 質 의 不 同 함에 따라서 分 殊 한 것으로서 附 屬 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作 義 할 수 없고 作 仁 할 수 없어도 그 義 와 그 仁 은 有 善 無 惡 하여 本 然 에 配 屬 되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기질지성과 본연지성이 서로 통하는 脈 絡 을 활발하게 열고 상당한 超 脫 灑 新 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3) 答 溪 雲 金 丈 ( 丙 戌 1886년 46세) 사람이 태어나면서 성정이 고요하다는 以 上 의 朱 子 ( ) 說 에 대한 해설로는 참으로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明 道 ( 程 顥 )의 이 설은 본래 首 句 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한 것이니 곧 또한 먼저 首 句 는 生 未 生 을 설명한 것지 아니면 發 未 發 을 설명한 것인가를 확정한 후에 그 확정된 것을 가지고 그 解 釋 語 를 살펴야 할 것인데 곧 朱 子 의 해석 중에 어느 것이 定 論 인지를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陳 安 卿 은 未 生 을 未 感 으로 바꾸어 明 道 의 論 性 說 과 일치시키려고 하였는데 朱 子 는 이에 답하여 말하기를 이 설은 노력을 들였으나 단지 합치되게 하려고만 하여 전의 내용 그대로를 다시 생각한 것이다. 라고 하였고 또한 語 類 에서도 論 性 說 을 구주( 舊 做 - 舊 慣 대로 논한 것)라고 하였을 뿐이니 지금 이에 관한 黃 商 伯 의 서신이 어찌 舊 說 이 아닌지를 알겠습니까. 가르침을 받들고 싶습니다. 商 伯 은 朱 子 의 喪 에 始 終 장례를 주관하였다는 데 서 보면 이 서신이 晩 年 의 것임이 확정적일 것입니다. 저의 얕은 소견으로는 도리어 黃 氏 가 비록 그러하긴 하나 이 서간문이 어느 해의 것인 지는 확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語 類 로 생각해보면 董 銖 錄 에서 生 未 生 으로 해설한 것이 丙 辰 年 (1196년)이후입니다. 이는 67세에 이후에 논의한 것이 됩니다. 어찌 黃 書 의 연월이 상세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晩 年 에 定 論 한 것이라고 하고 董 錄 을 舊 說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간재사상연구 114

115 Haian Digital Review 6 Moon Mool & Idea th 문물과 사상 제6호 /12~1/12 간재사상연구 115

116 보편선언 :05 유교는 보편사상이며 보편적 학문이면 보편적 문화를 지향한다 보편선언 116

117 '군자불기'라는 말처럼 유교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다 예론이 있고 화론이 있고 음악론이 있으면서 정치론이 있고 생 활론이 있으며 학문론이 있고 수양론이 있다. 이 모두가 어우러 져 결국은 보편적 가치를 창출한다 -haianja the haianist- 보편선언 117

118 개인적 삶의 반추-생활유학, 가학유자의 전통을 생각한다 :22 한국인의 개인적 삶의 근저를 위하여 개인적 삶의 반추-생활유학, 가학유자의 전통을 생각한다. 118

119 4대성인은 인류의 삶을 이끌었지만 이들이 그대로 우리 삶의 근저이며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의 삶의 근저는 스스로 열어가야 하는 것일 것이다. 개인의 삶이 빛날 수 있는 것은 먼저 자신의 충실함을 이루고 그 충실함의 빛이 자아의 외부로 확산되 어 가정 사회 국가의 복이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친다 그 빛의 근원은 개인이 구축하는 삶이 얼마나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본 궤도를 잘 견지하고 있는가 에 주로 달려있다. 오직 자신의 궤도에서만 진정한 삶의 미학을 창출할 수 있다 막연한 세계주의는 진 정한 빛이 될 수 없으며 닫힌 자아도 빛을 창출할 수 없다. 개인의 충실한 삶은 그 나라 역사 문화에 바탕을 두고서만이 지극할 수 있으며 그 후에 모든 소통과 교 류가 의미 있게 될 것이다. 모든 대응과 적응과 창출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유자들의 삶으로 조용히 돌아가 오늘에 맞는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자신을 진정 반 반추하는 길이며 본궤도를 회복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모든 가능한 비판적 의견을 잠시 유보하고 되돌 아가서 재성찰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한 시대에 완결된 사상이 아니며 시대를 따라 변전 발전하는 사상이어야 한다. 아울러 2000년 유교사에서 이루지 못했던 사상의 원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견지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르네상스다. 유교사상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는 것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의 핵이기 때문이다. -하이안자- 개인적 삶의 반추-생활유학, 가학유자의 전통을 생각한다. 119

120 유학에 대하여---유학의 출발법 :05 유학의 출발방식 해보지 않았으면 말하지 말라 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상상력을 확대해줄 수 있는지 체험해보지 않았다면 당연히 비판하거나 평가하지말라 오늘의 유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하였더라도 그것이 진정 어떤 것인지 모르면 역시 언급을 삼가라 오늘의 유자들은 그저 조용히 스스로 공부할 뿐이다 유학은 보편사상이다. 다만 각시대에 맞도록 정돈되면서 공부가 수행되었기 때문에 그 출발법이 여러가지로 변하였다. 춘추시대에는 공자의 논어로서 출 유학에 대하여---유학의 출발법 120

121 발하였고 물론 공자 당대에는 공자로부터 출발하였다. 맹자시대 이후는 맹자 로서 출발하였다 이는 한 시대의 위대한 사표를 통해서 유학을 출발한 경우이 다 이런 유학출발의 문제를 정리해보면 1)사표로부터 출발하는 방식 2)텍스트 로서 출발하는 방식 3)지침서로서 출발하는 방식이 있다 지침서로서 출발하는 방식이란 1)송나라 시대에는 소학으로 출발하였고 2)한 나라 때는 대학 중용으로 출발하였던 사실을 주목한 것이다 이같은 출발방식 은 중국적인 역사를 반영한다. 유학은 보편사상이므로 그 수행방식은다양할 수 있는데 위의 여러 방식 말고 더 근원적인 출발법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맨 처음 자연스럽게 유 학에 접근한 후에 진정한 유교적 삶을 영위하는 것은 역시 자신으로 돌아와서 모든 주제를 사색하고 받아들이고 재편성하여야한다 아마 한국적방식이 이와 같은 자신에서 출발하는 방식일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그의 성장기에 독서를 하고 살아가면서 이를 자신의 체험으로 재편성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돈해나 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유학 역시 그러하다 체험하고 공부하면서 그 가운데서 절실한 느낌과 확신을 구축해나아가는 것이다. -haianja the haianist 유학에 대하여---유학의 출발법 121

122 유교 동이족 문명 :52 제목:유교유산의 현주소 글쓴이:haianist 조회:9 작성일: :04:31 수정일: :05:40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현재유교의 문제 최근 국내 각 지자체에서 유교문화권 개발이 활발하다 유교로 이루어진 전통적 삶의 유산을 재정리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부각하려는 것이므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유교 자체에 대한 탐구는 매우 안일하고 답보상태에 있 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1)유교적이란 무엇인가 2)유교란 무엇인가 3)한국유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4)유고사 상은 단적으로 무엇인가 5)유교는 오늘에 있어 어떤 의미를 유지해야하는가 등등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 다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관련 URL: 첨부파일: -haianja the haianist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유교 동이족 문명 122

123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8 제목:동이정신 재발견 중대한.. 글쓴이:haianist 조회:26 작성일: :56:13 수정일: :30:49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동이족 정신의 재발견 과제 최근 성균관대 이기동 교수가 사서삼경강설을 완간하면서 언론과 인터뷰하였다. "한국인의 마음을 공자가 정리한 게 유학입니다. 한국인의 가슴으로 들여다보면 그게 보입니다. 라는 것이 그의 유학에 대한 최종 입장이다. 아울러 그는 공자가 동이족 혈통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공자는 은( 殷 )나라 왕족 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8대선조 때 주( 周 ) 나라고 이주한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주지하듯이 은왕조는 동이족의 정권이었다. 물론 그 다음의 주( 周 ) 나라도 이족( 夷 族 )이 세운 정권이었다. 이 이전 중국의 전설시대 소위 삼황오제( 三 皇 五 帝 )의 시대도 역시 동이족의 영향이 주도한 시대였던 것으로 춘추( 春 秋 )의 세계도 ( 世 系 圖 )에 등재되어 있다. 중국의 문명이 일어날 즈음 그 문명과 정신을 동이족의 지성이 지도하였음은 분명한 사실로 보 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유교-유학을 이룩하는데 중국역사와 중국 학자들의 활동이 또한 크게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역대 유교 동이족 문명 123

124 유교의 이념으로 정치에 임하였고 전통사상을 학문과 종교의 경지로까지 집성하여 끌어올린 공은 지대한 것이다. 말하자 면 중국에서 고대제국이 형성되면서 유학이 국교의 차원으로 승화되었고 그 사상과 이념이 제국의 정치 사회 생활을 이끌 어 가게 되면서 유학은 하나의 체계와 정형을 이룩하게 되었다 한( 漢 ) 왕조에서 수립한 유교 국교화 성과가 이를 대변한 다. 물론 유학이 국교화 될 수 있었던 것은 공자가 유학 사상을 집대서하여 무한한 깊이를 부여하였고 맹자가 이를 이어 각 이념들을 숙고하고 체계화하여 원대한 학문의 틀을 이루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경전 중심의 유교사상은 이같이 동이족의 이념과 중국제국의 역사가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시경 서경 역경 논어의 시대 까지는 동이족의 순수이념이 잘 발휘되었고 맹자 이후는 중국적 특성들이 본격적으로 가미되었 다고 생각된다. 대개 중국유학은 맹자시대까지는 그 사상의 본질이 잘 유지되었고 창조적 사유가 중심이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한나라에서 국교화된 후에는 형식과 구조화 하는 경향을 짙게 드리우게되었다. 원래의 유학이 중국제국의 구조에 영향 을 받으면서 중국적 역사의 특질이 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사상가의 입장에서는 한나라 이후 2천년 의 유교역사는 무미건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시대를 지배한 학문방식이 바로 훈고학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송( 宋 )나라 때에 일어난 새로운 학문풍조는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유학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의미깊은 것이 었다. 성리학의 성립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은 맹자에 이어진 주요 개념들을 심화하고 재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유 학의 사유법의 기본 바탕을 재정립한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맹자 이후의 이념을 크게 심화한 것이었으므로 유학의 원래의 면모를 다 드러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학의 기초가 되었던 초기이념의 의미를 새로 발견하고 그 사유법의 본 질을 규명하는 일은 아직 더없이 큰 과제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삼재사상의 사유법의 본질이라든 지 홍익인간과 홍범구주의 정체성 그리고 시경 서경 역경의 시대 사상을 재발견 하는 일 등이 그 구체적 대상이 되어야할 것 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경전을 새로이 읽으려는 노력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며 민족사상을 세우는 길이고 동아시아 정신의 영채를 되찾는 유일한 통로이며 인류 지성에 크게 공한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기동교수가 언론과 인터뷰한 자리에서 이러한 점을 보다 상세히 텍스트 형태로 더 강조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쉬움을 적어두고자 한다. 그러나 경전을 새로이 읽으려한 그의 노력과 성과에 찬사를 보내고싶다. -하이안자-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7 제목:유교적 전통의 의미 유교 동이족 문명 124

125 제목:유교적 전통의 의미 글쓴이:haianist 조회:25 작성일: :39:15 수정일: :40:42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교적 전통의 의미 이미 1990년대 중반으로부터 우리 지성계는 유교적 전통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성계 뿐 아니라 경 제계에서도 그러하였다. 유교자본주의론이 바로 그것이다. 유교적 삶의 전통이 동아시아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는 논의이다 그러나 경제부분에서 동아시아가 크게 성공하고 그것이 유교적 전통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은 상당한 반론도 있었다 실제 로 동아시아의 근대화가 유교적 삶의 방식에 의해 잘 추진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동아시아에 유교적 전통이 굳건하 게 중심적 삶의이념으로 견지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유교가 남긴 절제와 절약의 정신 혹은 사회-국가이념 같은 것이 유용하 였다는 것일 뿐이다 유교는 사실 근대이후 동아시아에서 철저하게 방치되거나 평가절하되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므로 유교공헌론은 상당히 공허한 것이었다. 근대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교육의 전 국면에서 유교는 거의 무시되었었다 다만 일상의 삶 속에 뿌리깊게 유지돼온 유교적 문화의 일부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애호되었다 효사상의 가치라든가 가족에 대한 정념 가문적 전통에 대한 믿음 사양하고 공 경하는 삶의 자세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삶의 밑바탕에 있는 가치관 마저 붕괴되는 조짐을 급속하게 나타내고 있다 호주제폐지라든가 양성평등논의 등 절대적 개혁논의 주장 속에서 유교는 단지 타파되어야할 구습으로 매도되었다 그절대 적 주장이란 서구를 모델로 하고 있으므로 분명 비주체적인 것임에도 이 시대의 한 흐름으로까지 고착화라려는 움직임들이 있다 그 문명적 의험성에도불구하고 역사적 성찰을 상실한 운동적 동태는 심각한 우려는 낳고 있는 정도이다 여러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서 유교적 잔재의 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유교청산론의 최대의 문제는 그것이 깊 은 성찰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의 전통의 가지를 논함에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충분하 배려가 긴요한 것 임에도 이른바 세계사라는 공허한 대세론을 가공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지적 전통은 무한이 격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이 과연 옳은 태도인지 절실히 반추할 때일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도 지명하다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로서 유교의 질실한 가치를 공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서구에 조기유학하고 하바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확고하게 자신의 문명과 지 성의 가치를 확신하고 깊이 탐구하는 인재들도 똑같이 이 사회에서 중시되어야 마땅하다 전통에 선 문화가 기초가 되고 그 위 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아가야 하는 것이 전체 민족사-세계사의 보편법칙일 것이다 이 원칙이 무시되는 것은 <역사주의>에 유교 동이족 문명 125

126 기초하여 일어난 서구 근대문명과도 상치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민족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지만 민족 문화는 근본적인 질전 변전이 없이 전승되어야 하는 것이 신성한 책무일 것이다 바로 우리가 가치로운 개성을 유감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다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아직 유교의 본질의 중심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다 이미 성리학 이래 조선유학이 유 교의 부흥을 추구하였음에도 그 부흥을 불충분하였던 것이며 그 결과가 오늘의 유교침체로 이어졌다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우 리가 유교를 우리의 지성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단순히 수입된 이념으로 보려는 데에 있다 최근 중국이 유교를 부흥하려는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이를 남의 일로 보려한다거나 자기들 사상이니까 당연하다고 보는 것은 커다란 착오이다 중국의 동북공 정도 문제이지만 유교를 중국의 브랜드로 하려는 그 움직임은 동북공적을 능가하는 역사왜곡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할 것이 다. 유교는 단순이 중국사상이 아니다 그 출발과 전개 발전의 전 과정에서 중국은 독자적이고 중요한 문화사적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이 동아시아 지성의 유일한 생산자는 아니다는 점을 생각할 때다 -하이안자-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6 제목:유자의 메세지1 글쓴이:haianist 조회:30 작성일: :46:55 유교 동이족 문명 126

127 수정일: :19:21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유학은 초민족적 보편사상 모든 문명적 성과는 시작하고 발전하고 창조적으로 전환되어 나아간다. 이 3가지과정은 모든 문화사에 통 하는 대원칙이다. 그리고 이 (1)생성 (2)발전 (3)창조의 3과정은 문화사상 동일한 비중의 기여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해야 하겠다. 이들 과정은 상호 반복되며 나아가는 영속적 기제를 운용해가고 있기 때문 이다. 초민족적이라 함은, 유교가 한국과 중국 등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의 사상과 감정이 용융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보편사상이라함은 유학이 단순히 생활 감정을 적은 문학도 아니며 신성함을 중심으로하는 종교도 아니며 사물분석을 위주로 하는 자연학도 아닌 것으로서 철학과 사상과 문학과 종 교적 요소를 아우른 균형된 지성의 혼융체로서 보편한 가치와 사색과 믿음과 정감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의 초민족성과 보편성은 창조적 삶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위대한 문명사적 과제에 대응한 역사의 산물 이다. 중국에 전해오는 가장 권위 있는 문헌적 증거에 의하면 즉 경전과 사기 한서등 역사서의 기록을 보 면 유교사상사는 생활 정치 사회 문명사와 불가분의 밀접한 연관 아래 성립되었으며 그 사상과 문명을 시 작하였던 것은 한국계통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구이 혹은 동이라고 불리웠다. 은 주 왕조와 그 이전의 전살시대의 지도자는 모두 동이족 계통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사상과 문명의 계도자는 동이족인 것 이다. 한국은 그 선조들을 통하여 이미 유교사상과 문명의 뿌리를 일으켰다. 그러므로 한국은 유교문명을 시작한 주체이다. 중국은 동이족이 시작한 문명과 사상을 계승하고 중국 황제의 권위 아래 제국적 광대 공간에서 이를 구조 적으로 구현하여 하나의 제국적 전형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유학을 발전되게 하고 중국적 구조를 가진 문 화로 재탄생되게 하였다. 아울러 유교사상과 문명의 모습을 전승할 수 있는 개성있는 텍스트와 의례를 창 조하여 이를 중국문화로서 승화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유학의 발전 유지 창조에 공헌하는 위대한 역사적 성과를 이룩하였음이 사실이다. 한국은 유학의 발원지로서 그 사상과 정서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중국에서 이룩한 텍스트와 의례를 받아들 유교 동이족 문명 127

128 여 이를 발전되게 하였다. 동시에 중국역사영역으로 들어간 유교의 뿌리가 중국문화로서 구축되는 과정에 서 상당한 정도의 본질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다시 말하여 서양의 르네상스에 버금가는 부흥운동이 필요 하게되었다. 이에 대응한 것이 중국의 성리학이었고 이를받아들이 조선의 성리학이었다. 유교 본질의 회 복운동은 위대한 지성의 개가였으며 중국땅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은 조산에서 최종적으로 대성되고 완 결되었다. 율곡과 퇴계의 학문이 그것이다. 동이족이 출범한 사상을 중국에서 발전되게 하였고 중국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은 한국에서 완결되었던 것 이다. 이는 민족을 초월하여 각자의 역사적 사명을 다한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 의 부흥과 완결은 사상과 문명의 근원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므로 향후에 완전한 부흥을 위해서 유교 사상고 문명의 원질을 탐색하는 노력이 그생활화 움직임과 함께 미래유학의 중심흐름이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안자) 春 秋 學 社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5 제목:공동문명설/ 自 號 解 義 글쓴이:haianist 조회:16 작성일: :04:57 수정일: :20:11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共 同 文 明 說 유교 동이족 문명 128

129 儒 學 也 必 是 共 同 文 明 也 矣 哉 九 夷 中 之 東 西 夷 爲 之 始 起 而 夏 族 於 以 中 原 爲 之 收 容 發 展 故 謂 之 夏 夷 思 想 或 夏 夷 案 可 矣 所 以 我 學 號 爲 之 夏 夷 案 子 也 自 中 國 帝 國 創 立 以 來 其 學 也 變 轉 則 中 國 漢 唐 儒 學 是 也 - 夏 夷 案 子 -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4 제목:유교, 유학은 우리에게 무.. 글쓴이:haianist 조회:22 작성일: :50:12 수정일: :20:42 유교 동이족 문명 129

130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儒 우리는 유교란 말을 꼭 <Religion As Confucianism> 이라는 의미로 보아서는 아니되겠다. 우리가 꼭 그런 의미로 한정 해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학문에서 명백히 종교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것은 유교의 한 부분적 성격을 말하며 환언하면 유교의 본질은 종교나 어떤 하나의 학문으로 제한 할 수 없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 어는 문학이나 예술성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이는 생활에 힘을 주는 생활학이며 삶의 용기와 힘과 목표를 주 는 건실한 배움이다. 한편 유교는 한자로 씌여 있어 이것이 중국의 학문이며 사상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유교의 본질 내용은 우리 국인 선조들의 철학과 이념 종교와 사상, 삶의 정감과 삶의 자세를 잘 담고 있다. 그것이 중국의 역사 속에서 제국 적 권력구조에 의해 텍스트로 만들어지고 중국적 환경에서 의미가 정립된 부분이 있다. 이는 중국적 공헌임에 분명하 다. 그러나 유교 유학의 원 모습을 보고자 하면 한국적 접근이 당연히 요구된다. 유학은 우리의 오랜 정신이며 삶과 문명의 모델이었다. 중국적 특성에 자기도 모르게 경도되었던 때도 많았지만 유학 이 나의 생활학으로서 그 본질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교경전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우리 문명성을 온 존하여 올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역동성이 그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국유학은 한국인을 중국 유학적으로 만들 수는 전연 없었다. - 하이안자 -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유교 동이족 문명 130

131 글내용 상단 번호:3 제목:동서문명은 대립되는가? 글쓴이:haianist 조회:24 작성일: :27:48 수정일: :22:03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文 明 문명이란 말은 오늘날 Civilation의 번역어로 쓰이고 있으며 문화(Culture)라는 말보다는 문질문명을 지칭하는 성격이 강 하다. 그러므로 우리 고유의 동아시아 언어로서 문명( 文 明 )은 그 어의상 이 두 서구의 용어, Civilization과 Culture를 통합 한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문명이란 Civilization의 대역어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야하겠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말을 그 원어로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문명이란 어의는 따라서 서양의 문화사의 이념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 다. 다만 그 어의가 보가 깊고 의미심장함을 내포하고 있다. 흔히 동양은 명상적이고 정적이며 문학적이라고 서구인이 이해하였다. 그러나 실은 서구인을 훨씬 능가하는 치열한 사물 탐구가 있었고 그 통찰의 결과물이 동아시아의 역사이며 문명이며 정신이라는 사실을 깊이 유의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 다. 예컨대 서양 철학은 자연주의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동아시아 유학에서는 자연주의만을 강조한 적은 없었다. 자 연과 인간의 문화 사이의 양자 조화를 추구하였다. 이는 인류가 발견한 더없이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유교 동이족 문명 131

132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2 제목:내면화의 과제와 유사한.. 글쓴이:haianist 조회:20 작성일: :10:56 수정일: :21:24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恕 心 현대 세계 철학의 동향으로서 역사화, 과학과, 논리화의 동향과 함께 내면화의 동향을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내면화란 무엇을 말하는지를 깊이 논할 수는 없으나 그와 유사한 과제가 우리 유학에도 이미 존재해왔었다. 말하자면 <실천궁행>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실천이란 단순한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확신이 설 수 있다면 굳은 의지로 실행할 수 있겠으나 <공부>의 경우 이를 실천 궁행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1)깊은 이 해를 통해서 2)경전의 개념들이 나의 내면의 여러 지적 정의적 면모와 함께 하나되는 울림이 일어날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를 수행( 修 行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서자서 아자아( 書 自 書 我 自 我 )'가 되어서는 이를 공부라고 할 수 없었다. 여러 해 경전을 읽으면서 경전의 난해한 구절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못지않게 내면의 울림을 얻기가 쉽지 않았고 더우나 그 울 림을 널리 넓혀 나아가기는 더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그 최대의 장애는 우리들이 상당한 정도 기존의 관념과 자의적 가치관 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임을 느낀다. <사사로움을 벗어나라든가> <날로 새로워지라>는 가르침 그리고 <서( 恕 )>의 마음을 강 조한 이유가 그런 데 있다고 생각된다.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유교 동이족 문명 132

133 글내용 버튼 인쇄하기비공개 전환하기수정삭제 댓글0개트랙백0개 글내용 상단 번호:1 제목:춘추학사는 유학의 본원.. 글쓴이:haianist 조회:58 작성일: :16:37 수정일: :23:15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유자의 메시지 1 儒 敎 起 原 文 明 復 興 for Our Real Renaissance of Confucianism 유교의 정체성 유교내지 유학은 그 기원에서 살펴본다면 동아시아의 역사의 기원과 그 때를 같이하는 오래 역사적 지성이다. 제자백가가 등장 하였다고 하여 유학이 그 여러 학문의 유파와 동열의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유학사상은 동아시아적 사유 의 근원이며 출발이요 그 완성을 지향하는 큰 흐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마천은 사기의 태사공자서에서 <나의 목표 는 공자학>이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사마천이 유학을 목표로 하지 않고 공자학을 목표로 한 것은 <한대의 유자>들이 진정한 유학을 왜곡 하였기 때문이다. 각 시대 유학도 그와같았다. 유학은 각 시대의 모순과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진정 유교 동이족 문명 133

134 한 유자들은 그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끊임 없이 학문의 진전을 위해 진력하였던 것이다. 유학이 오늘날 처럼 왜곡된 적은 역사 상 없었다. 유교사상의 본질 유교사상은 문명의 사상이다. 역사적으로 영위돼온 창조적 사유라는 의미이다. 유교적 사유는 철학이나 과학 문학 예술론의 미 학 윤리학 법학 자연학 등등 어느 한 부면에 그치치 아니한다. 보편한 사유라는 의미이다. 유학은 또한 중국사상이 결코 아 니다. 동아시아 북방의 사상이 남방 농경세계와 어우러져 탄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륙 북방의 역동적 민족국가에서 시작되 어 중원의 제국적 질서를 수용하고 드디어는 이를 이끌게 되었던 초민족적 사상이기도 하다. 유교부흥의 과제 유교는 오늘날 서구의 역사와 문화의 범람으로 인해 그 고유한 가치를 의심받고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일지라도 전면 적 적극적으로 그 가치를 부여하는 자세들은 매우 박약하다. 이는 동아시아인 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명 그리고 지성에 대한 커 다란 자기비하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자신을 믿지 않고 빛나는 성과를 이룰 수 없듯이 자신을 비하하 는 관념이 존재하는 한 자신의 역사지성을 제대로 재발견할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경전과 고전어의 이해 유학사상은 오늘의 심각한 왜곡에도 불구하고 3천년된 경전들이 잘 전해지고 있어 우리가 바르게 읽고 해석한다면 오랜 왜곡의 역사를 청산하고 유교의 본 모습을 살려냄으로써 오늘의 우리 문명을 살찌울 수 있다. 우리의 무한한 창조력과 상상력을 무한 증대 하면서 인류의 미래, 우리의 미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은 생활의 성찰로부터 시작하여 우주 만 물의 진상과 현상을 탐구하면서 그 일관된 의미를 찾아가는 위대한 길이기 때문이다. 춘추학사( 春 秋 學 社 )에서는 경전의 치열한 읽기를 통해서 유학의 문명사적 원 모습을 재발견하는 데 진력하려 한다. 경전을 읽음에 문자에만 국한하지 않고 역사와 민족의 문제를 아을러 배려하면서 문자와 문장 의미의 3자간의 치열한 문맥찾기 를 시도하 려고 한다. 특히 우리 고유한 어감과 어의를 중요시하면서 읽을 때 번역문맥이 경전 원문과 더 잘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경전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또한 시도하고자 한다. 유교 동이족 문명 134

135 - 夏 夷 案 子 - 유교 동이족 문명 135

136 제물론 :34 제물론 글쓴이:haianist 조회:4 작성일: :16:33 수정일: :24:15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제물론 인생은 하나의 나무토막 조각을 기다리는 자료일 뿐 이일분수는 제물론의 한 형식이며 요순 무위정치는 자연론의 극치이다 시경의 싯귀들과 주역의 음양론이 다른 것이랴 빛으로 사물을 보고 그 색깔을 안다 암흑으로 사상과 부딛고 그 실함을 안다 제물론 136

137 허공으로 바람을 바람으로 허공을 느낀다 출렁이는 마음의 자락에서 거대한 심령의 대지를 감촉한다 옳지못한 부모는 없듯이 정당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 당당하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 모든 애착이란 아름다운 것 모든 무관심은 위대한 것 소소하려는 삶을 경시하지 말라 대대하려는 삶을 멸시하지 말라 다만 사유할 뿐 기필하지는 말라 다만 견지할 뿐 고집하지는 말라 그러나 우린 공허한 곳에 뿌리 내릴 수 없으니 그대 근육을 신뢰하라 부드러운 육질을 - 하이안자 - 관련 URL: 제물론 137

138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삭제수정비공개목록보기글쓰기인쇄하기 댓글0개트랙백0개 haianist 제물론 138

139 경이에 대하여 :32 경이에 대하여 글쓴이:haianist 조회:6 작성일: :49:00 수정일: :49:00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경이 어려선 경이로 살았더니 이젠 놀람으로 산다 자라선 두려움으로 살았더니 이젠 망설임으로 산다 성년기엔 고집으로 살았더니 이젠 조급함으로 산다 그럴 일이 없었던 것을 앞으로도 없을 것을 따라가며 살았다 경이에 대하여 139

140 이제 남은 건 역시 경이일 뿐이다 오직 그것이 새로움의 길임을 안다 - 하이안자 - 관련 URL: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삭제수정비공개목록보기글쓰기인쇄하기 댓글0개트랙백0개 haianist 경이에 대하여 140

141 시종에 대하여 :20 시종에 대하여 글쓴이:haianist 조회:1 작성일: :21:18 수정일: :21:18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시종에 대하여 -스스로의 다짐- 시작과 끝의 사이에 삶이 존재한다 결국 삶은 단지 시작과 끝이다 그 한가운데를 중이라고 한다 중간.중용.중도... 잠시 평안한 공간이다 모든 시작은 아름답고 끝은 서글프다 그러나 애환이란 그렇게 단지 끝일 뿐인 것이므로 슬퍼하지 말라 세상에 수많은 시종에 대하여 141

142 시작과 끝이 있어 사람이 살고 우주가 역동하는 것 시작하였으면 끝을 회피하지 말라 처음부터 끝이 다가올지라도 고요히 그 끝을 즈려밟으라 끝이 보이지 않을 지라도 끝을 지향함을 멈추지 말라 -하이안자- 시종에 대하여 142

143 미학의 변전 :18 미학의 변전 글쓴이:haianist 조회:2 작성일: :32:25 수정일: :32:25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나이미학 1-30 몸이 아름답다 희망이 아름답다 꿈이 아름답다 발길이 아름답다 마음이 아름답다 지향이 아름답다 인내가 아름답다 사려가 아름답다 견지가 아름답다 미학의 변전 143

144 51-60 어짊이 아름답다 배려가 아름답다 그림이 아름답다 초월이 아름답다 사색이 아름답다 새로움이 아름답다 -하이안자- 미학의 변전 144

145 홍익인간설 :09 인간의 의미-공간설 글쓴이:haianist 조회:19 작성일: :01:01 수정일: :52:40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홍익인간설 인간이라는 용어가 있다. 人 間 우리에게는 홍익인간이라는 우리신화의 언어로 익숙하다. 弘 益 人 間 회남자에서는 인간을 사람의 세간으로 보고있다. 말하자면 세속의 의미로 읽은 것이다. 그러나 신화를 읽어보면 인간이란 사뭇 다른 뜻을 지닌 것으로 믿어진다. 신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회남자가 쓰여진 시기보다 더 멀다. 그러므로 단군신화의 <인간>이 이 용어의 원류이다. 현재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전통학문의 범주에서는 이 인간용어를 다르게 해석할 방법은 거의 없어보인다. 그처럼 구태의 연하게 신화를 읽었을 때 단군은 <세상의 사람들을 이롭게>하려고 나라를 연 것이다. 그러나 이롭게 한다는 것은 세속적 인간의 언어이다. 이로움이 사람들의 갈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이다. 이로움을 서 로 다툰 까닭은 생산을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 부가 일부에게 독점되면서 대중이 굶주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그 서두에서 <왕은 홍익인간설 145

146 어찌 이익을 말하시는가?>하고 질타하였다. 이어서 맹자는 <의가 있을 뿐>이라고 설파하였다. 이로 비추어 이로움의 문제는 신화가 사라진 오만한 시대의 주제어였다. 그 오만한 언어를 단군신화에서 중심언어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넓혀 나아가는 것( 弘 益 )이란 이익이 아니라 문화( 文 化 )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언어로는 문명( 文 明 )이며 자세히 말하면 문소명( 文 昭 明 )이다. 文 昭 明 시경과 서경에 등장하는 문명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위의 3가지가 있다. 문( 文 )이란 사람이 창조한 아름다움이다. 소( 昭 )란 자연의 빛 혹은 신의 드러남이다. 명( 明 )이란 격물치지의 지혜의 빛이다. 환언하면 문채( 文 彩 ) 물채( 物 彩 ) 인지( 人 知 )를 말한다. 물채의 대상은 삼재 즉 천지인이다. 三 才 天 地 人 천은 신의 세계 초월의 세계 미경험의 세계를 말하며 모든 사물의 근원을 지칭한다. 지는 자연의 전체 현상이다. 사람 동물 초목 산 천이 그것이다. 인은 사람이 만든 창조적 결과물들이다.예술 건축 도덕 의리 등이 다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홍익인간의 인( 人 )은 사람이 만든 문명을 말하고 간( 間 )이란 문명의 공간이며 여유이다. 우리의 모든 탐구와 창조의 삶을 진전하는 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원의일 것이다. 홍익인간의 문명공간은 결국 인간을 초월하는 공간이었 다. 이익이나 이욕의 밖을 말하는 것이었다. 우린 지금 문명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신화의 언어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 하이안자 - 春 秋 學 社 관련 URL: 홍익인간설 146

147 첨부파일: 저작자 표시 2.0 대한민국 글내용 버튼 삭제수정비공개목록보기글쓰기인쇄하기 댓글0개트랙백0개 haianist 홍익인간설 147

148 물채와 문채 :05 물채와 문채 글쓴이:haianist 조회:9 작성일: :18:36 수정일: :54:24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문물에 대해서 物 彩... 文 彩 사물 자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물채라고 한다. 사람이 창조한 가치와 아름다움은 문채라고 한다. 물채란 사람이 발견하여 향유하는 것이고 문채란 사람이 창조하여 누리는 모든 것이다. 우리는 이를 합쳐서 문물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역사란 바로 문물 창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단지 생존만을 위한 삶이라면 이를 문물이라고 병칭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물 가운데는 사사로움과 이기주의와 권위와 무력은 예와가 된다. 비록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반생명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므로 문물이란 절제와 생명 즉 어짐 삶의 성과이어야 한다. 이를 도덕주의 예술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는 도덕이란 비역사 적인 것이라고 매도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도덕과 윤리는 역시 역사의 중심이다 또한 문학에서 한동안 경시되었던 권선징악이란 영원한 생명의 주제어일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가 새롭고 절실하고 아름다움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 효도의 미학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효의 정신이 동아시아적 정신의 기초 중핵이었기 때문이다. 내 비록 이를 충분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가치관으로서 이를 능가할 것이 없고 그로부 터 인 의 예 지 등의 방대한 사색고 이념의 주제어가 창출되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예술정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이안자- 春 秋 學 社 물채와 문채 148

149 물채와 문채 149

150 오늘날의 유자 :03 오늘날에도 유자가 존재하는가?(이전글) 글쓴이:haianist 조회:7 작성일: :47:29 수정일: :49:11 게시물주소: 글내용 본문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경전산책 :58 하이안자 <오늘날에도 유자가 존재하는가?>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마치 사람은 생명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유교문명은 이미 문화적 역사적 생명을 얻은 지가 오 래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미 십여년전에 어느 교수와 동양역사를 토론하던 중 유학사상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당신은 이 조시대 유학자가 되려고 하는가>물었다.나는 그 때 <그럴 수만 있다면 매우 좋겠다>고 대답하였었다. 그는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치밀하고 높은 지식과 역사분석력을 지닌 연구자였고 나는 그후로도 가끔 그 대화를 회상하곤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식견이 부족함 때문이라고 혹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리 부끄럽게 생각 하지는 않는다. 사실 깊은 연구도 못하고 성과도 없으면서 사상사를 연구한다고 처음부터 표방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어느정도 웃음거리였던 것같다.그 뿐만 아니라 어느 분께서는 <제도사> <정치사>를 연구한 후에나 <사상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나의 덜된 준비를 지적한 일도 있었 다.역시 그후로 그 문제도 자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지금은, 현실적으로 그분들의 지적이 역량면에서는 옳을 수 있는 지적이지만 근본적으 로 학문 자체의 면에서는 꼭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상의 역사를-넓게는 문명의 역사-너무 안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점점 더 느낀다.나는 학문이나 지식의 깊이 또는 높은 역량의 이전에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그보다 앞서 즉 학문에 앞서 "문화적 실천-예컨데 효행- 을 중시 했던만큼의 깊은 사려에는 아득히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도정에 있는 어떤 중대한 핵심 대 상을 소홀히한다는 것은 충분히 여러 창조적 지적 판단을 위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 생활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유자 150

151 역시 근래 두서없이 경전을 읽은 소감을 자유롭게 같이 적어둡니다. (2000년 5월경의 메모) 유학은 일상의 생각과 처신으로 이루어진다 유학의 생활성이다. 유학은 단지 보통의 삶 속에서 스스로 형성된다. 유학의 자연성이다. 유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유학의 인정적 속성이다. 유학은 엄정한 경험의 분별이며 그 생각은 치밀하고 철두철미하다 유학의 객관적 속성이다 유학은 결국 희노애락의 마음의 울림으로 나타난다. 유학의 정서적 속성이다. 유학의 모든 이해력과 판단은 격물치지의 궁극사물직시에서나온다.유학의 지성적 철학적 본질이다. 유학의 모든 지각은 시공을 따라 쉬임없는 성찰에서 나온다. 유학의 감성적 속성이다. 유학은 현실적 오감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유학의 현세적 시의성이다 유학은 기쁨을 추구한다. 유학의 생명지향적 속성이다. 유학은 활력과 역동을 추구한다. 유학의 유신적 속성이다. 유학은 삶의 종류 계층과 신분 어느 수준중에서도 행할 수 있다. 유학의 털차원적 탈계급적 본래 속성이다. 유학은 결국 자연과 삶과 생명 사물을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 유학은 삶의 결과인 문물제도까지 정당한 실존체로 받아들인다. 유학은 역사적 삶의 결과까지 차별없이 받아들인다. 유학의 무한 포용적 일대 보편 속성이다. 화심은 이 단상들을 두고두고 다시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좀더 정리될 때 까지... 오늘날의 유자 151

152 <유교생각 하나> 유교는 일상의 사유의 길입니다 유교는 보편한 지성의 길입니다 유교는 그저 삶의 길입니다 유교의 의의는 최소한의 정의( 定 義 )만을 필요로합니다. 유교는 제자백가와 상대적이거나 대립적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유교는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가의 편견을 가지지 않습니다 유교는 어느 특정국가의 사상이 아니며 우리 문명권의 정신입니다 유교는 사상이며 과학이요 종교이며 예술이며 문학입니다 유교는 기술이며 심성이며 또한 영원한 삶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유교이 길은 둘입니다 맑은 길 힘찬길 유교의 모습도 둘입니다 아름답고 유용한 모습 오늘날의 유자 152

153 유교는 우리네 사람의 공동체 삶의 성과 그 자연스런 총화입니다 유교는 엄밀한 논리와 진절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생동하는 정신이므로 유교는 우리의 실 역사이며 미래입니다. <최근 위와 같은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 그대로 문득 적어보았던 글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유자 153

154 춘추학사글(2) 새로운삶의 양식 :34 유교는 전연 새로운 삶의 양식 (The Revolution of Life)이었음 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유교 2 천년 역사의 가장 중대한 오류였다 이제 그 본질 대로 유교는 부활(Renaissance) 하여야 한다 이 전연 새로운 삶의 양식이란 배움( 學 )의 삶을 말한다. 이 배움의 삶 이전에는 종교적 삶과 기술적 삶 그리고 힘에 의한 삶이 지배하였다. 동아시아 문명의 단초는 바로 그 힘에 의한 삶 종교에 매몰된 삶 그리고 기술에 의존하고 지식에 의존한 삶을 벗어나려는 수준높은 균 형정신으로 출범하였다는 것은 인류 문명사상 경이로 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안자 춘추학사글(2) 새로운삶의 양식 154

155 종교적 삶 과학적 삶을 넘어 유교가 있다 글쓴이:haianist 조회:14 작성일: :15:26 수정일: :48:10 게시물주소: 유 교 연 구 소 春 秋 學 舍 硏 究 所 住 所 大 田 槐 亭 洞 Tel (042) DR. HAIANJA the 1st. Haianist Yoo Deok Jo - [email protected] Confucian Laboratory Spring & Fall Class 춘추학사글(2) 새로운삶의 양식 155

156 춘추학사글(1) 유교적삶의 양식 :28 유교적 삶의 양식은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가? the Confucian Style of Our LIfe is Available Yet, Now? 유교( 儒 敎 )는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서 최대의 가치를 지닌다. 국민의 개별의 삶에 관여하여 그 삶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일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 유교 혹은 유학의 본연의 임무이며 존재이유일 것 이다. 물론 오늘의 유학은 이미 2500년 이상의 오랜 기초 교전에 근거하고 있고 2000년 된 유학적 문헌과 텍스트에 영향받았으며 유학의 혁신을 시도했던 새로운 유학운동일 성리학의 출현된 때로 부터 생각해도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신유학으로서 성리학이 만개하였던 조선의 유학은 그중 우리들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고 또 동아시아 지성의 첨단을 보여주고 있지만 대개는 난해하다고 느끼고 너무 사변적이라고 느끼기 쉽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우리가 유학의 본 모습에 질 접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유교의 발전 지속 기간이 장구하였다든가 오래 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은 유학의 가치의 진면목 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기는 하나 그것이 유교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전통성을 이유로 유학 을 낡은 것으로 보려는 경솔한 시각은 우선 가장 잘못된 관점이다.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의 조선 신유학이 사단칠정론 인물성동이론 예송논쟁 등 의례적이고 형식적 개념에 몰두하여 현실성을 약화시 켰다는 역사적 추궁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조선 유학의 논쟁은 허공에 떠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 었으며 그 시대를 살아간 유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신유학적으로 긴장되게 유지 수행하고 그 위에 시대적 가치를 세우고자한 문명적 노력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는 진부한 것이 아니었고 치열한 삶의 기록이었다 고 보아야 하며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진정 역사적인 삶을 추구한 결과였다. 허식과 기만의 역사가 결코 아 니었다는 것이다. 춘추학사글(1) 유교적삶의 양식 156

157 우린 유교의 기초 교전들을 음미해본 경험이 없이는 함부로 유교를 논하거나 혜손해서는 안된다. 더욱이는 유교의 학습적 전수체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는 현재의사정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유교를 해석하고 또 왜곡하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 일도 우리들 지성에 도움이 되지 안는다. 시중에 범람하는 유교전적의 해석 물들은 유교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공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게 유교에 대한 다소의 왜곡을 수반한 경우가 적지않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자장 믿을 것은 이미 맹자가 그러하였듯이 시대를 뛰어넘어 그 원래의 모습 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가치있고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역시 유교 기초교전들을 담담히 읽으면 이를 자신의 경험과 조율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분명 우리들 삶 에 힘을 주고 뿌리를 무성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Haianja the 1st. Haianist- 역사와 현재의 궤적 Past & Present 이전자료 춘추학사글(1) 유교적삶의 양식 157

158 감성의 유교윤리 :56 감성의유교윤리 감성의 유교윤리 158

159 유교국가 한국 :03 유교국가 한국 159

160 유교국가한국 유교국가 한국 160

161 무본에 대하여 :19 근본에 힘쓰라 논어에 유자의 무본설은 의미깊은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이 말은 학문의 중핵은 아니지만 학문의 통로에서 지켜야할 중요한 덕목이며 방법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무본의 기본을 유지할 경우 학문의 내부에서 혼란이 적을 것이며 무용한 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도 공연한 번뇌를 차감하고 학문의 본 줄기에 그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유자는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는 원대한 성 과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가 생겨난다는 것이야말로 학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원하는 경지인가 바로 그 경지 에 자연히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니 역시 심상한말은 아니 라고 단정해도 좋을 것이다 사람은 매일의 삶에서 얼마나 곁가지에 얽매어 사는가를 생각해보면 그 말의 가치를 절실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 직면하는 어려움은 많다 생활고라든가 사 회 정치 가문 내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창조적인 삶을 영 위하려는 노력은 수시로 좌절되곤한다 그 만난을 헤쳐나 아가는 것이 학문의 길이므로 어떤 학문의 삶에서 곤란 을 만난다는 것이 학문의 약화를 의미해서는 아니될것이 다 무본은 바로 그런 가운데 학문의 삶을 지켜나아가는 중대한 비밀인 것이다 유자가 아니더라도 이같은 방도를 말한 예는 많다 대학에 서 말하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도 역시 무본과 같은 집 중성을 말한 것이다 대학은 주로 그 순서 순리를 말한것 일 뿐이다 무본이란 순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전후좌우를 살핀다는 말도 바로 전후좌우의 상황에 대응하면서 근본을 잃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무본에 대하여 161

162 중심을 견지한다는 의미의 중용이라든가 임방이 공자께 예의 근본을 물은 사실 유자가 효는 인의 근본이라고 말 한 것 등 학문을 논한 어떤 경우든 무본의 정신이 일탈된 경우가 없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유자의 무본설은 성 인의 말씀을 잘 요약한 확론이다 심지어는 자하가 말하 기를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하리라 한 말도 학문의 중심이 지켜지지 않을 때 배움이 없는 것만 못하다는 말 일 것이다 자하의 말은 현자를 존중하고 부모를 섬기 고 군주를 받들고 벗에게 신의를 지키는 행실의 근본을 지적한 것이었다 마음의근본을 지키는 일과 행실의 근본 을 견지하는 일은 표리를이루는 것으로서 불가분한 것일 것이다 이 간단한 확론이 우리에게 절실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반드시 혼란과 혼미를 더 오래 겪게될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이안자- 무본에 대하여 162

163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 (1)진실을 느낌 :15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진실을 느낌 유교적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오늘의 중요한 물음이다 일부 비판세력의 의견대로 유교를 완전히 폐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옹호자들의 말대로 부흥해야하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줄 수 있는 열쇠가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 다 유교적이란 무엇인가를 과연 정의할 수 있는가 있다고 본다 경전을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미지를 중심 으로 생각해볼 때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교가 제시하는 윤리 인간과 사회관 등의 다른 이론이 가능하고 타 사 상과 잘 분별되지 않을 수 있는 면은 일단 제외하고 유교의 특장을 가장 잘 나타낸 핵심부분에서 그 특질을 구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현상적 진실의 추구라는 오랜 특징이다 주자가 강조한 대학에서는 주지하듯이 격물치지를 강조한다 사물의 진상을 탐구하여 그 실상을 아는 것이 모든 가치의 출발점으로 말하고 있는 부분이 주자를 감동시켰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핵심개념은 사실 대학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며 이미 논어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머리의 학이시습이야말로 격물치지의 생활화를 말한 것이다 유학은 명상적 사 상이 아니다 증자가 마음을 강조하지만 역시 성찰의 사상이다 그 성찰은 마음의 개방을 통해서 사물을 받아들이는 서의 정신에서 나오고 있다 성이란 자성을 찰이란 격물을 의미한다 격물과 심성의 일치를 구하는 것이 그 핵심인 것이다 우리세계의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은 삶의 진상에 접근한다는 말일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죽음의 진상이기도 하다 우 주적 현상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의 시작과 함께 일정한 욕구와 성향을 소유하게 된다 편안한 삶의 욕구 아 름다움에 대한 심미적 욕구 자신을 소중히 하고자 하는 자아의 욕구 등이다 이러한 욕구 자체는 정당하고 절대적인 것 이다 문제는 이 개개인의 욕구들이 서로를 제한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많은 문제가 파생되게 된다 근본적으로는 생 물세계의 삶 자체가 타를 희생함으로써 성립하는 요소가 엄연히 작동하고 있기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자연적 실상의 엄 정함을 해소 내지는 화해하면서 삶을 세워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역사이며 문명일 것이다 자연주의적 진실은 "살고자하는 자는 서게하고 죽고자 하는 자는 쓰러지게 하는 것"임에 틀림 없지만 바로 그 원초적인 진상을 진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따라서 자연적 진상에 반하지만 "희생"이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 게 되는 것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성선설이 맞는가 우주의 마음이 어진 것이 사실인가 하는 의문과 다시 만나게 된다 사실은 이 물음 자체는 어리석은 것이다 우주가 생명을 낳았으므로 근본적으로 생명을 지향하는 것이 우주의 본 의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영위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성은 사실은 우주의 본의는 아니다 세세한 생명현상들이 각자 일으키는 파동은 개개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식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물은 타생명체를 빼앗아서 비로소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생명에는 희생의 정신이 기본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그같은 희생의 여지를 줄여나아가고 모든 생명이 자신의 생명활동을 자유롭고 안정되게 유지하는 길을 가는 것 이 지상의 이상일 것이다 아 같은 이상을 지향하는 자만이 결국 그 생명활동을 장구하게 유지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다 생명의 말살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의 확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연이기 때문이다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 (1)진실을 느낌 163

164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 (1)진실을 느낌 164

165 유교경전-치명적인 그무엇 :04 주자어류에서 주자는 그의 <주자어류>에서 맹자의 언표는 치명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촌철살인이라는 말이지요 명쾌한 논리 절실한 감동이 있으며 명확한 문법을 갖추었으니 매우 타당한 말압니다 그러나 맹자의 치명성은 공자의 울림에는 미치지 못하지 않습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말도 절실하지만 유교경전-치명적인 그무엇 165

166 전신을 울리는 말씀은 온몸의 감동을 부릅니다 논맹에서 우리가 만일 뼈에스미는 절실함 감을 얻는다면 몸을 떨리게 하는 울림을 받는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물론 읽고 느끼는 법은 따로 없어요 주자는 역시 같은 책에서 말했어요 독서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치매인)처럼 읽어가고 읽어오면 그만이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번 읽어보세요 -하이안자- 주자어류책판 유교경전-치명적인 그무엇 166

167 민족의 길 :16 민족의 길 민족이란 결국 국민 개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안전한 삶을 이어가는 영원한 이름이어야 한다 나아가서 오늘의 세계적인 무대에서 자신을 세워나아가는 든든한 바탕이어야 한다 개개 인의 욕구와 바램과 이상이 서로를 용인하며 함께 나아가는 정의로운 인프라이어야 한다 노래출처 민족의 길 167

168 한국 생활유교의 실체 :29 한국생활유교의실체 한국은 유교가 생활화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몇가지 중요한 생활관습이 한국인을 지재하고 있다는 점을 주로 지적한다 그같은 점을 윗 글에서 적시하고 있다. <효> 라든가 <어른공경> <예의> 같은 것이 그 중요한 요목으로 보고 있는 것이 다. 유교는 그같은 생활로서 지탱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은 유교가 <관습적 문화>로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인데 유 교는 관습적 문화로서 존재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교의 본 모습은 사실 유교적심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 이다. 유교적 심성이란 어짊과 의로움인데 유교적 생활문화가 유교적 심성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철학이며 사상으로서 가지는 유교의 내면성이 정체될 수 밖에 없게될 것이다. 삶의 최고의 가치로서 확신되지 않는다면 유교가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이안자- 한국 생활유교의 실체 168

169 문화경쟁력과 전통주의 :39 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치학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동아일보가 후원한 국권상실 100년 특별학술회의: 21세기 대한민국, 문화대국에의 비전과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올해 창간 9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문화적 의의를 평 가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왼쪽부터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대영 동북아역사재단 교류홍보실장,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홍 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유용식 우송대 교수. 김재명 기자 문화경쟁력과전통주의 문화경쟁력과 전통주의 169

170 회화적 상황-형상성의 문제 :32 2 Divided by 1-George Fisher 형상성의 문제 한국의 미술분야에서 그 상황을 분석하는 일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한국의 미술과 서예 등의 전반적 특징은 그 미적언어가 명쾌하고 색조 가 선명하며 명암이분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러나 형상언어에서는 자연 주의적 범주를 대개 벗어나고있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몇몇 회 화적 경향을 따라서 극사실주의 추상주의 표현주의 등을 따라 작품을 구현하는 예가 있으나 이는 보편적인 것이며 독자적 개성을 드러내는 회화적 상황-형상성의 문제 170

171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같은 경향성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일정범주의 개 성과 의식을 표현할 수 있으므로 개성 표현에 문제는 없다 다만 한국적 미학의 개성이 또하나의 보편성으로 정립될 수 있는지를 시도함에는 곤란이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형상성의 문제는 색 명암과 함께 회화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이기 때문 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인데 과연 한국적형상을 어떤 것인지를 추구하는 예가 적다는 것이다 물론 전통적 소재를 다룰 경우 전통형상을 그리게 되겠으나 한국적 형상의 본질을 더욱 치밀하게 탐구하고 표현하는 노 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물론 개체의 형상과 정경 분위기 그림의 주제 등이 유기적으로 아울러 표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적 형상이 표현되고 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이것이 강조적으로 미학적으로 특 기할만한 일관성으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하이안자- 회화적 상황-형상성의 문제 171

172 인에 대한 질의-인의 다면성 :20 인의 다면성 최근 인( 仁 )에 대한 질문을 몇차례 받았다. 경전을 공부하면서 내내 문제로 남아 있는 것이므로 상식적인 답을 하고 나서 스스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질문의 공통점은 인과 의 예 지 신 같은 덕목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한분은 맹자의 광거( 廣 居 ) 정위( 正 位 ) 대도( 大 道 )와 연관하여 물었다. 인의 문제는 논어에서 보듯이 공자가 제자들의 질문에 각기 다르게 답 하였던 것 처럼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근본주제다. 인에 대한 질의-인의 다면성 172

173 공자가 안연에게 극기복례를 말한 것은 철저한 사심의 절제를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극기를 통 해서만 예의 근본정신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기복례란 자신을 다스림을 말한 것이며 이 자신을 다스림의 문제는 공자 최고의 제자인 안연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할 공부인 것으로 주의를 환기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공자의 다른 답의 하나로 '말을 참는다'는 내용이 있 는데 말을 함부로 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생각이 흐트러지는 위험을 지적하고 나아가 행실의 치 우침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사마우의 단점이기도 하였다. 특히 사마우의 물음에 답한 언어의 문제는 현실적 행실의 문제이며 행실의 부조화는 내성의 흔들림을 유발하므로 당 연한 가르침일 것이다. 인의 개념이 어려운 것은 이것이 이념의 문제인가 행실의 문제인가 수신의 문제인가 하는 여러 의문이 아울러 있기 때문이다. 그 해법은 오히려 인이라는 개념이 이 모든 가치의 차원을 아울 러 함섭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은 사람다운 것이다라는 명제가 적절하게 인을 설명 하는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효를 행하면 인인가 하고 묻는다면 꼭그렇다고 할 수 없을 것인데 그 효행의 근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자가 말한 내용중에 효는 위인지본( 爲 仁 之 本 )이라고 하였는데 이 때 위( 爲 ) 자를 1)이다라고 풀 것인가 2)행하다라고 풀 것인가가 논란되었었다. 이 경우에 효는 인의 근본이다 라고 푸는 것이 마땅한 것은 효 자체가 인을 완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효는행인지본( 行 仁 之 本 )이라고 풀면 효는 인을 실행하는 바탕이라는 의미가 되어서 인이 따로 존재하고 이를 행하는 것은 별도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기때문에 인의 완정한 의미를 가로막게 된다. 인은 이념이며 행실이며 수신의 합일된 그무엇이어야 한다고 보는 까닭 이다. 말하자면 극기에서 복례의 사이에 반드시 성찰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성찰을 통해서 수신 되고 이념을 가지게 되고 예라는 행실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안자-. 인에 대한 질의-인의 다면성 173

174 명명덕 :35 명명덕( 明 明 德 ) 대학에 명명덕이라는 개념이 권두언을 이루고 있다 대학의 도는 명명덕에 있다는 것인데 명과 덕의 이해가 쉽지않다 대학이란 텍스트가 정리되기 이전부터 사용된 개념이 덕일 것인데 그 앞에 놓인 명명이란 후대의 용어일 것으로 보인 다 그러므로 우선은 덕의 개념이해가 필수적인 것이다 덕이란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 물리적 능력이 아니라 깨닫고 감통하는 능력이다 사람을 감통함으로서 그 삶의 지평을 열어왔다 그 감통하는 힘으로 사람과 사물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방도를 열어왔다 덕이 있는 사람이란 바로 아집없이 감통하는 능력이 있 는 사람이다 그결과 깨달은 최초의 것이 인( 仁 )이다 세상을 구성하는 궁극의 힘이 인에 있다고 정의한 것이다 그러므 로 인이란 사람에게 국한되는 개념일 수 없다 명명덕의 앞의 명자는 실천을 의미한다 뒤의 명자는 명각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자성이다 덕을 자성하여 자각하는 의 미를 지닌다 덕이란 결국 도를 느끼고 지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란 넓은 의미의 도다 자연과 하 늘을 통관하고 사람의 길이 합치되어야 하는 그런 도다 동아시아적 가치의 핵심은 인이지만 덕이라든가 도에 대한 이 해 없이는 바로 알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은 또한 덕행의 수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가치다 따라서 덕과 인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덕을 깨닫고 수행해 나아가는 의미의 명명덕이란 그 다음의 신민과 같은 뜻이다 백성들 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명명덕의 성과다 그 다음의 지극한 선에 머문다는 지어지선이란 그 명명덕의 최종 이상이다 그 지선한 것의 의미는 명명덕의 최고의 상태다 바로 그 지선의 상태에서 인이 구현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은 덕이 인과 같아지는 통로가 선일 것이다 -하이안자- 명명덕 174

175 사서의 바다-맹자 진심장구 :31 사서( 四 書 )의 바다(1) - 맹자 진심장구 1,2,3 <1>맹자왈:그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盡 其 心 者 ) 그 본성을 아는( 知 其 性 ) 것이다. 그 본성을 알면 하늘( 天 )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본심을 보존하 고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 事 天 ). 수명의 길고 짧음에 미혹되지 않고( 夭 壽 不 貳 ) 자신을 수양하여 기다리는 것을 천명을 세워나아간다고( 立 命 ) 한다. <2>맹자왈:사람의 삶에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莫 非 命 也 ) 그 천명을 바르게 따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그러므로 천명을 아는자는 바위 돌이 나 담장의 아래에 서지 않는 법이다.그 도( 道 )를 다하여 죽는 것이 정명( 正 命 )이요 제한되어( 桎 梏 ) 죽는 것은 정명( 正 命 )이 아니다. <3>맹자왈:구하면 얻고 놓으면 잃는 것 이런 구함은 도( 道 )를 체득하는 데 유익하고( 有 益 於 得 )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구하는 데 방 도( 方 道 )가 있고 얻게 되는 데에 천명이 작용하는 것 이런 구함은 천명( 天 命 )을 체득하는 데 무익하고 밖에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대학( 大 學 ) 경( 經 ) 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 明 德 )을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고 서경 태갑 강고를 인용하고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 自 明 )>이 라고 하였다.( 康 誥 曰 克 明 德, 太 甲 曰 顧 是 天 之 明 命, 皆 自 明 也 ) 여기에서 우선 관찰해야하는 것은 삼경( 三 經 ) 시대의 천명(천 命 )과 명덕( 明 德 )의 의미 관계가 그대로 대학의 도로 이어졌고 맹자의 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상사적 전승관계이다. (1)삼경시대 - 천명( 天 命 ): 신적 세계관 명덕( 明 德 ): 신의 의지의 구현,실행 의미 (2)대학시대 - 천명 - 대학의 도( 道 ) : 학문적 대상화 명덕 - 학문적 삶의 구현을 의미 (3)맹자시대 - 천명 - 심성( 心 性 )적인 것으로 심화 명덕 - 자각 체득을 의미 위의 도식은 그 전승관계를 요약해 보인 것이다. 사서의 바다-맹자 진심장구

176 논어의 첫장에 보인 학이시습( 學 而 時 習 )은 전통시대의 신교적 질서를 재편성하는 새로운 지성적 삶의 출발을 본격 제언한 것이다.새로운 지 성적 삶을 학습적인 삶이라고 언명한 공자의 뜻은 삶의 행동의 새로운 지표로서 인간의 심성과 욕구를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의 행동과의 절 제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현상(모든 경험현상)을 담담히 바라봄으로써 그 심성적 의지적 지반을 마련하고 그 지반 위에 그 대로 결행하여 나아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삶, 즉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선택함으로써 구현되는 삶의 힘을 말한다. 공자는 각개 경험현상의 이해를 통합( 一 貫 )함으로써 신교에 대신한 우주와 인생의 새로운 의미체계를 상정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 새로 운 의미체계는 그러나 신교적 질서를 배제한 것은 아니며 인간의 심성과 의지 속에 포용한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고 있다. 그 새로운 질서를 인( 仁 0이라고 불렀다.그 질서를 수행하는 행동을 덕( 德 )이라고 하였다.그 새로운 지성적 삶의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는 삶을 지혜( 知 )라고 하 였고 그대로 행동하는 삶을 현( 賢 )이라고 하였다.지혜와 행동은 종종 불일치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특별히 둘로 나누어 각각의 삶의 기준을 정립한 것이라고 해야하겠다.이러한 입장은 대학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맹자의 시대에 이르면 공자의 학습론이 한껏 내면화하여 인간의 심성적 확신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였다.그 이유는 춘추전국의 사회 정치여 건의 변화로 인해 사람의 사욕이 크게 대두한 때문이라고 전통적으로는 이해해왔다.그러나 꼭 권력과 사치를 지향하는 사회적 풍조에만 원인 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일반의 세속의 삶에서는 공자가 제정한 이미의 체계를 응시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삶의 여건이 크게 미비하였으므로 공자는 우선 선각자로서 새로운 삶의 체제의 당위성을 포괄적이고 친근하며 이해용이한 그러면서 강력한 언어로서 환기 할 필요가 있었다.그 결과 나타난 것이 논어의 텍스트이다.공자가 <백성들이 모두 알게할 수는 없다>고 한 말이 그것이다.논어는 결국 생활의 텍스트였다. 맹자는 그 성과에 힘입어 공자가 미처 행하지못한 본격적인 내면화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이미 공자적 텍스트는 공자 개인의 의사를 반영 한 것이 아니고 주( 周 ) 왕조 개창이래 춘추시대에 까지 전승돼온 온각 지혜의 전통을 수용하고 포용하여 조율정돈 하였기 때문에 넓은 보편 성을 수립할 수 있었고 공자는 성인( 聖 人 )의 반열에 올랐다.공자가 성인이 된 것은 그의 텍스트가 이미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음 을 의미한다.일부의 지적처럼 공자학 혹은 유학은 현세적으로도 실패한 사상이 아닌 것이다. 맹자의 진심론( 盡 心 論 )은 바로 공자의 의미체제를 인간의 심성으로 오로지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삼라만상의 경험의 일관을 추구했던 공자의 학문적 방식을 계승한 위에 오로지 사람의 정신의 세계 속에 그 경험의 만상을 포용하고 조절하여 일관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었다.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었고 그것은 맹자 성선설의 요체이다.삶에 있어 외부세계를 좌고 우면할 필요 없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함으로서 완전하게 공자의 의미체계를 자각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표명한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천명이나 도는 이념과 정신세계 속에 수용된 이념으로서의 천명과 도이다.객관적 경험의 세계는 그러한정신세계의 개별적 구 현태로 받아들여진다. 그의 천명설은 공자보다 적극적이어서 천명을 탐구하고 이를 온전히 수행함을 삶의 이상으로 삼았다.<비명에 죽는 실수>야말로 인간이 가장 피해야할 일이라고 하였다.내면세계를 버리고 외면의 화려함에 이끌리는 삶이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의미체계를 계승하여 그 의지적 측면을 크게 발양하고 공자가 정한 의미체계의 인( 仁 )의 의미를 한 껏 발전시켜 성선설을 세 우고 양지양능설을 수립하여 절대의 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우리가 성선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성선설을 부정하 는 사람은 그 성선설의 정신적 역사적 거느림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맹자에 의해 성선설이라는 정의로 공자의 의미체계는 강력한 이념적 구조를 수립할 수 있었다.그러나 맹자의 성선설체제는 고대 사회 이래의 영성적 전통을 경시할 위험이 있다.여기에서 맹자의 성선설 체제는 다시 영성을 아우르는 다른 차원의 체제로 발전해야하는 당위성을 원래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공자의 이념이 전통적 경험의 범주를 온존하고 포용하였음을 생각하면 유학사상에서 당연한 일이다. 맹자가 천명 이라는 전통적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역시 그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사서의 바다-맹자 진심장구

177 공맹의 텍스트는 시대를 잎선은 그 선각의 힘을 지녔으므로 그 텍스트 그대로도 2천년 이상의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그 텍스트가 최초 로 심각한 도전을 받았던 것이 남북조에서 당말에 이르는 기간이었다.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러한 직접적인 도전은 없었다.다만 도전적 가 능성을 간접체험하였다. 송대의 성리학은 그 도전을 물리치려는 노력으로서 일어나 철학적 방면의 논리적 부족함을 채우면서 새로운 형식의 유학의 가능성을 열어보 였다.맹자사상에 더 요구되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태극 성리론으로 보충하여 공자체제의 깊이를 추가해주었다.그러나 영성성의 그 본래적 의미에서는 만족된 것은 아니었다. 유학의 미래적 과제란 공자이전부터의 유학의 원질인 (1)현상경험의 분석 기법의 유지 (2)영성적 직관의 회복을 추가하면서 (3)공자의 체제 (4)맹자의 체계 (5)성리학적 세계관(자유로운 철학적 사유)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것일 것이다. 사서의 바다-맹자 진심장구

178 학문론의 방향 :24 학문론의 방향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유교문명권의 일원임을 자처한다.그러나 사람마다 꼭 같은 의미로 자처하진 않는다. 대개는 심상하고 막연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어떤 측은 19세기 계몽주의시대적 열정만으로 유교를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일에 뛰어들어 가히 혁명적 혁파의 주장으로 무장한 채 21세기의 선구자인듯이 나선다.어데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나는 전연 알 수가 없다.그 투사적 진영의 정면에는 전통유교의 방패가 도 열해 있다. 오늘날 세계문명의 관점에서 유교는 분명 문명권적 차원의 정신이다.그리고 한국은 유교문화권 가운데 가장 인상적으로 유교이념을 실천했고 많은 명징하고 귀중한 성과를 역사상 거두어 그 중심국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유교문명권이라는 말은 유교가 이 문화권의 중심사상이며 보편사상이라는 의미를 공인하는 용어이다.나는 이 공인된 용어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다만 몇가지 주목해두어야할 일들이 있음을 지적하고자한다. 유교는 먼저 보편적 사상이다.그 정신사의 가지에 덕 인 의 예 지 충 효 등 유교적 밀과들이 열린 것 자체보다도 그 밀과적 보편가치를 창출 하는 생각 사상 정신 철학 의지 이념 사색법 관찰법 같은 가치창출의 실 과정이 극히 보편적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는 믿음이 동시에 확인되 어야하고 다시 시도되어야한다. 당연히 그 밀과적 개념들의 의미적 보편성의 확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아가 그 정신적 태도를 견지한 주 체로서의 역사인격 즉 유자( 儒 者 :공자이전 공자이후를 관통하는 의미)의 사적 실존성도 밀착 탐구되어야한다. 유교가 공교( 孔 敎 )와 구별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공교로서의 유교가 공자이후의 중국유학의 각 시대별 전통을 지칭하는 한학( 漢 學 )의 의미로 좁혀지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요해졌던 개념이 원시유교( 原 始 儒 敎 )라고하는는 물리적 시간성으로 사상사를 대충 구분한 지칭용어이다.그러나 유교에서는 원시유교라는 정의는 잘 맞지는 안는다.예를 들어 유교적 삶의 표면에서는 그런 구분이 가능하나 유교사상사에서 초기시대이래로 그 사유태( 思 惟 態 )가 변화발전한 측면보다는 그 사유범주( 思 惟 範 疇 )가 축소되어온 측면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이런 현상은 유교가 반역사적 이라는 의미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서양의 사상사 분석 이론에서 말하는 내용적 계승성이 강조돼오지 못했다는 점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나아가 유교는 극히 역사성이 강한 사유방식이면서도 현대에 이르도록 진정한 역사학적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는 의미이다.방대한 자치통감의 사론이 형식 개념논에 그치고 성리학의 철리가 역시 역사적 내면성을 기초적으로 통찰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명징한 예이며 현대에 들어 서는 동방적 지식인들의 자의식적 자신감의 결여가 적극적 분석의 열정을 도출하지 못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또한 대학에서 격물치지가 강 조되었음에도 유교사상의 경험적 성찰이 크게 진전되지 못한것도 그 명백한 증좌이다. 따라서 유교의 정의적 의미가 좁아져온 것은 유교의 학적반성( 學 的 反 省 )의 불철저함에 주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 원인은 여러가지 가 있으나 대개 전근대 역사의 한계로서 (1)중화주의의 극복 (2)국제정치 (3)민족사와 자의식 (3)문물의 역사와 사상사에 대한 이해 등의 분 야가 역사적으로 충분히 성숙발전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그러므로 논어의 서두에 등장하는 학문론은 이시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심명제일 것이다. 곧 우리는 바로 다음의 문장의 엄중한 의미를 재발견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학문론의 방향 178

179 (1) 子 曰 學 而 時 習 之 不 亦 說 乎 (2) 有 朋 自 遠 方 來 不 亦 樂 乎 (3) 人 不 知 而 不? 不 亦 君 子 乎 이 텍스트는 여러 의미를 당연히 함축할 수 있다.그러나 이 문장의 역사성과 생활성을 주목한다면 통상의 해석과 변별되는 새로운 이미를 석 출해낼 수 있다.(1)은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3개념이 문제가 된다. 해석상의 필요에 의해 뒤의 어의부터 잡아본다면 습( 習 )은 연습( 練 習 )의 뜻으로 이해해왔지만 연습이란 대상은 배운것을 지칭하므로 그 범위 가 좁아지게 된다.그러므로 좀 넓은 해석을 취하여 연습( 演 習 )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배운 것을 현실의 삶 속에서 구현한다는 의미이므로 연습( 演 習 )보다도 오히려 더 실행( 實 行 ) 실습( 實 習 )의 의미가 되어야할 것이다. <때때로> <무시로>라고 알아온 시( 時 )의 경우는 삶의 전 시간성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다.그러나 전통적으로주자주에 나타나는 無 時 而 不 習 (언제나 익히지 않는 때가 없다)는 의미보다는 시( 時 )의 의미를 불특정하게 열어두고 <항시 때에 맞게>라고 이해하면 이 전체 문 장은 <배우며 언제나 그때 그때 시의적절하게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의미가 될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볼 경우에도 학( 學 )과 시( 時 )와 습( 習 )은 삶의 행동으로서 미묘한 선후관계( 先 後 關 係 )가 상정될 수 있는데 그 경우 역시 학의 작용이나 운용의 범위가 좁아지게 되므로 바로 이 시간적 선후인식의 벽을 허물어 동시공간성 속에 이 3개념을 용융해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 지 않은가 생각한다. 3개념은 학=시=습 동시성과 동일공간성을 부여함으로서 단일한 당위를 말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 한다.왜 같은 시간 공간성을 부여해야하는가?그것은 이 이 삶의 지침을 포괄적으로 말하는 거의 유일한 친절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그러므 로 <배우면서 언제나 시의적절하게 행하며 살아간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라고 해석하는 것이 원래의 의미를 손상하지 않는 방법일것이다. 지금은 선택보다는 의미의 온존과 포용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또 다른 이유는 이 텍스트가 성립된 시기가 춘추시대로서 춘추시대 이전의 종교적 신비적 삶의 체제가 지성적 삶의 체제로 전환되는 변환 기였다는 점 때문이다.원시사유 시대 이래의 전통적 삶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된 것이 유교이며 학적인 삶이었기 때문이다.더욱이 그 삶의 체제를 지탱하고 유지한 인격의 주체는 유자( 儒 者 )자신이었으므로 그들의 전통시대의 삶의 체제를 지탱하는 그 역할을 회복하고자하 는 열망과 고난의 난세로 인식된 그 시대에 대한 대책으로서 제시된 것이므로 이 문장은 취미적 기호적 교양적인 안일한 여유분위기를 말하 는 것이 아니며 매우 절박하고 절실한 생할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인격을 갖춘 군자의 도덕적 인간상>은 그 다음에 성립되는 성과일 것이다. 학( 學 )이란 삶의 일부가 아니라 그 전부로서 제시된 것이며 전생적( 全 生 的 )이며 절대적( 絶 對 的 )인 의미로서의 긴밀 함을 갖추고 있다. 사마천이 육가요지에서 그 선대 이래의 눈부신 역할을 회고하고 그 당대에 그와 같은 빛나는 위상을 회복하려는 염원을 담고 있는 것도 그러 한 분위기의 실질한 반영일것이다.그가 공자학을 이상으로 삼았던 것도 같은 배경 위에서 일어난 믿음이었다.맹자가 공자를 시성( 時 聖 )이라고 평가한 것이 <동시성의 의미>를 원초적으로 가지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것이다. 이런 생활합치성의 면에서는 이조선비는 한 전형을 보여주 었다. (2) (3)의 텍스트는 (1)을 생활의 장에서 부연설명한 의미를 지닌다.(2)는 시공을 초월한 동지의 만남을 희구한 의미로 받아들여야하겠고 (3) 은 동시공간 속에서의 동지의 만남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인데 신비적 삶의 체제를 전환해야할 그 시기에 신비적 관습과 새로운 지성적 삶 의 교차 속에서 사회적 변동의 불안정함을 타고 일어나는 이기주의적 삶의 분위기 가운데 자신의 삶의 새 지침이 효과적으로 수립되기를 바 라는 인내와 믿음이 내포되어있다. 그러므로 (2)는 어떤 벗이 먼 시공으로부터 나에게 지금 (여기로) 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은가 (3)은 주변 의 사람이 (전통시대처럼) 나(유자)를 알아주지 않아도 분해하지 안는다면 군자다운 것이 아닌가 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자하가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하리라>고 한 말은 바로 그러한 삶의 이상을 말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증자가 견지한 3성( 三 省 )의 생활론도 같 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문론의 방향 179

180 공자가 2천여년전에 강조한 학문론이 오늘의 시기에 새로이 더욱 진채를 내고 있음을 보아야할 것으로 생각한다.오늘날 역사와 삶과 경험적 통찰의 입체적 시의성을 갖추어 긴밀하게 조화를 이룰 것을 촉구하고 있는 논어 학이장의 제1문의 의미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학문론의 방향 180

181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26 유교적이란 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일상적인 working program 이나 일상의 상념을 펼 때 혹은 어떤 행사를 계획하고 치를 때 아니면 어떤 결단이나 칭조적 작업을 할 경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교적인 것>이라할 그 무엇이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생활을 성찰하고 긾은 사유를 추구하거나 문화 예술을 감상할 경우 나아가서는 학문을 탐구하고 글 쓰기를 할 경우 적용할 < 유교적인 것>이라할 그 무엇이 있는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립하고 일상의 준칙으로 삼아 스스로가 당당해지고 떳떳해지며 보람이 있어지고 기뻐지는 나아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 런 분야에도 <유교적>이라 할 그 무엇이 있는가? 더욱이는 자연과학을 탐구하고 실험하고 구 결과를 응용해 삶을 개선하는 오늘날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유교적>이라할 그 무엇이 있는가? 경제제일주의의 이 시대에 경제생활에 유용할 <유교적>이라 할 그 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유교와 연관해 그와 같은 다양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그 답은 <있다>이다. 사람들은 보통 말한다 "왜 있는가 없지 않은가? 지난시대의 낡은 생각의 모음이 아닌가? "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1

182 유교는 원래 그러했으니까 <있다>고 할 수 있고 지난생각은 결코 아니다.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은 그러나 유의해서 이해해야한다. 유교가 어떤 도통의 길을 보여주거나 사람을 신통하게 만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인 것은 아니다. 또 요즘 동양 서양의 일부 지식인이 기대를 걸듯이 유교의 이념자체가 가치로운 것이라서 새시대를 열어줄 빛나는 이상이 되어줄 것이라는 말도 사실은 자신없이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인( 仁 ) 효( 孝 ) 충( 忠 ) 등의 가치관과 삼강오륜의 국가주의 가족주의 사상이 비록 가치로운 것이라고 해도 그 개념 스스로가 신비 한 힘이 있고 또 그것이 유교의 본질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유교의 한 실천 행동 계획안 같은 것이다. 그 인 효 충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역사적 상황과 필요에 따라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갱신되는 변하는 그런 것이다.하나의 그릇 같은 것이 다.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하는 것은 각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정할 문제이다. 유교는 그러한 거창한 이념과 도덕률이기에 앞서 <생활의 스타일>을 지칭하는 것임을 주시해야한다.생할의 어떤 스타일 인가? 자신의 사유(이를 요즘말로 지성이라고 불러두자(에 의지해 사는 지성적 삶을 말한다.지성적 삶이란 가장 간단히 정의하면 각 사람 자신의 내면의 여러 울림들 - 예컨데 식욕 성욕 성취욕 같은 욕구와 삶에의 애착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힘과 기술 사물에 대한 정감과 느낌 등의 정신적 영적 총체가 일으키는 모든 출렁임들 - 을 온존하여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항시 견지하는 삶을 말한다. 우리가 보통 사단칠정 혹은 오욕칠정이라고 부르는 내면의 그 울림을 유교는 극히 중요시한다.바로 이점이 종교와 다른 점이다.그 오욕칠정 을 모두 필요하고 요긴한 것이라고 긍정하는 위에 유교는 그대로 발을 딛고 선다.다만 그 여러 마음의 요소들이 어느 하나에 집착하거나 편 향되거나 혹은 어느 하나의 노예가 되는 삶을 경계한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고 거의비인간적인 일일 수도 있다.한시 마음의 균형을 유지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2

183 하려는 데에 에너지를 서야한다면 그 정신은 피로해질 것이다. 그래서 일정한 확고한 신념으로 구성된 공식~ 틀을 만들어 보편적인 상황에 대응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바로 그것이 인이며 의이고 충이 며 효이다.이런 개념을 나는 <불가공파논라>라고 부른다.삼강오륜의 필요는 오직 그래서 나왔다.전통시대에는 산강오륜을 반대하는 사람은 하 나도 없었다.마치 식생활을 할 때 그릇을 사용하고 수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먹을 때 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완전한 논리에 의한 상위 개념을 간직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울림을 조화롭게 하고자 한다.그러면 그의 품위유지 노력은 상당히 에너지를 절약하게 된다. 유교적 덕목이란 그와 같이 우리에게 일단은 편안함을 줄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요즘의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시를 쓰고 읽고(한 국인은 세계에서 시를 가장 많이 읽는 민족이다( 예술을 감상하고 창작하고 자신을 성찰하곤 한다. 그 삶이 그대로 유교적인 것과 통하는 것 이다.다만 이 경우에도 언제나 마음의 균형과 평정을 먼저 생각한다. 공자가 삼년상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제자에게 <네 마음이 편하면 하 라>고간단히 답한 것이 바로 진정한 정답이다. 그렇게 하고서도 그래도 사람은 시시각각 구체적 사물에 응하여 그 삼상이 변화무쌍하므로 완전힌 평정을 그대로 이어가기는 힘들다. 그 순 간의 균형파괴를 회복하기위한 노력이 바로 성찰이다.증자가 하루에 3가지씩(사실은 3번일 것이다) 자신을 반성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다.(적어 도 아침 점심 저녁의 세번) 사실 자연게에 직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거의 모두 파동으로 나아간다.사람의 삶도 파동성을 띨 수 밖에 없고 파동을 타고가는 인간에 있어 자주 성찰하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유교적인 것이란 성찰하는 것이다.다만 그 성찰의 목적이 자신의 어떤 마음을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통해서 갈등을 풀 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찰은 사실 탐구하는 것이다.자신 자연 사물을 그냥 성찰할 수는 없다. 그 모양은 마음에 드는가? 그것은 의미가 있는가? 아 름다운가?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간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를 학문( 學 問 (이라고 하고 배울학자와 물을 문자를 쓴 다.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3

184 성찰이란 결국 질문을 간직하는 삶이다.이러한 질문의 삶을 구현하는 것을 학습의 삶이라고 공자가 정의하였다.( 學 而 時 習 之 ( 학이시습지에서 <시( 時 >란 언제나 그래야한다는 뜻이다. 2.경험적 균형이란 무엇인가 유교를 그저 마음의 평정을 위해 성찰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일반적 사고에서의 일반적 명상과 다를 것이 없고 유교적이라고 이름할 이유 가 없어진다.유교가 일반적 보편적 생각의 길이니까 꼭 다른 사유식하고 구별될 필요는 사실 없지만 유교는 단지 보다 성과의 완벽함을 추구 하기 위해 변별하려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변별의 기준은 바로 균형의 방식이다.예를 들어 증오나 미움을 삭제함으로서 기쁨과 호감을 상대적으로 높이려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다른 마음과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독특하고 특이한 포용적 방식이 우선 가장 큰 변별의 준거이다.유교의 최대 특질은 온존( 穩 存 (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소멸의 방식이 특이하다는 말이다.이를 무사( 無 私 (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인데 사심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고 사사로움에 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된다.그러므로 유교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정사>를 즐겨 쓰지 않는다.사사로움은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용적 균형방식은 전체 유교적 사유의 시작과 끝을 지배하는 즉 사고와 논리과 개념 그리고 그를 위해 경험을 선택하고 경험을 분석하여 사고 판단하는 그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관철된다.공자가 나의 도는 하나도 일관된대고 했을 때 그 일관이란 그와 같은 경험처리의 포괄성의 유지를 두고 한 말이다. 경험처리의 포괄성 균형성 조화성이 유교의 바탕 생명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적 경험의 균형을 추구할 뿐아니라 외적인 현상경험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하다.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4

185 단적인 예를 들면 유교의 경전에서 중심 경험으로 쓰여지는 경험현상의 범주는 크게 (1(자연 (2(인간 (3(역사 (4(문물 (5(언어 행동 (6(문자 (7(신비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현상을 포괄한다.그 각 현상간의 일치와 울림을 추구하는 것이 유교의 방식이다.그것이 바로 <유교적>인 것의 본질이다.이것은 간단한 말인듯하지만 깊이 깊이 음미해야할 관건이다.유교를 아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자연을 알며 자연을 탐구하여 인간을 안다.그리고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여 이를 더 심화한다.유교는 단지 그 뿐이다. 다른 어떤 현란한 유교정의도 요긴하지 않다.우리는 지금도 이미 상당히 유교적으로 산다.그런데 보다 더 잘하기 위해 유교를 더 알아야할 뿐이다.유교는 어떤 문제에든 답을주려는 것이 아니라 답을 찾는 방법을 갈고 닦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한다. 실제의 답은 치열한 각인의 삶 속에서 찾고 세워나아갈 일이다.또 그 답이 모두 같을 필요는 전연 없을 것이다. <시>춘초몽-텍스트 텍스트 텍스트 세상은 오직 함성 의기 확신 저리 파릇파릇 저리도 힘차게 자라오름이여 갓난아기의 피부같은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5

186 야리야리한 몸을 하고도 저 군왕같은 당당함이여 한나절 그 짧은 누림이 영원한 까닭은 저 눈부신 맑은 빛 광통신의 선로 그 투명함만으로 열리는 것 이곳은 단지 무도 연주 서술 순진무구한 생명의 즐김! 보라 저들이 벌이는 그저 환희에찬 성전은 그 스스로 지닌 지고한 문채 때문일뿐 눈 한 번 깜박여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6

187 만인의 시상에 깊이 깊이 그 영상을 담은 후 이내 오프라인에서 사라지지만 과연 사라진 것인가 그들이 던지고 간 신성문자의 기호 있는 것을! 지금은 역시 충만 순결 미려 어찌 사람만 경전문자를 세우랴 그림으로 글자로 음악으로도 전환되어 유동하는 메시지는 진정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7

188 문헌중의 문헌 텍스트중의 텍스트 상을 그저 아름답게하는 영광과 힘 그 아니 불후한가? 춘초의 꿈은 어짐 기계어는 기립 태그는 자유 광대무변함과 상하통달함으로 그어지는 십자성의 별빛 그 살폿한 드리움 이리니 유교의 보편성-경험적 균형 조화 포괄 188

189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4 <1> 유교는 공자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잘못된 믿음은 아니나 완전한 이해는 아니다. 공자가 집대성한 정신이라고 해야 정확한 이해이다 공자가 집대성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공자이전의 천년이상의 긴 역사 중국으로치면 중국 고대 초기 국가의 역사요 한국사로 치면 동이족으 로 출발하는 한국 국가 형성기의 역사이다. 이 기난긴 역사 속에서 하( 夏 /중국)와 이( 夷 /한국)의 역사상의 초기 민족이 문화와 정신 역사를 교류하면서 쌓아온 지혜의 역사의 성과 그것을 집대성한 것이 공자였다. 한문으로 경전으로 만든것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하이( 夏 夷 ) 공동의 문화세계에서 성숙된 빛나는 지혜이다. 그것이 바로 유교의 실체이다. 공자 집대성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역사의 무지이다. 하이 문명사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말한다 맹자가 순( 舜 ) 문왕( 文 王 )이 동이인( 東 夷 人 ) 서이인( 西 夷 人 )이라고 밝혔는데 순과 문왕은 효( 孝 )와 인( 仁 )을 실천한 문화 정신의 영웅으로 중국문명사를 연 영걸이다.그들이 이인( 夷 人 )임 을 밝힌 것은 맹자가 양심적인 역사학자였음을 말한다. <2> 유교는 우리의정신사를 반영한다. 유교는 우리의 정신이며 문화이다. 한국인이 효를 강조하는 삶을 이어온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랴! 의 인 열사가 끊임없이 나온 것이 공연한 일이랴! <3> 유교는 한개의 어떤 학파가 아니다. 넓고 보편적인 학문을 말하고 종교적 삶을 포함한다. 영성과 지성을 겸비한 유일한 삶의 체제요,그 정신 의지이다. 철학이며 과학이요 신앙이며 문학이요 인문학이요 사회학이요 정치학이며 또한 인류학임과 동시에 전반적 삶의 율칙이다.제 한없는 탐구의 길이며 자신을 투명하게 하고 힘차게하는 정화의 길 심신 보양의 길이다. 유교를 좁게 바라보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유교는 완전한 삶의 길을 모색한다. 유교에 대한 왜곡된 생각은 모두 바뀌어야한다. 유 교 이야기를 통해서 그점을 밝힐 수 있고 확신한다. 시로 문학으로 평론으로 기도로 학문으로 다 가능하다. 그러면서 원시시대 이래의 종교 적 심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신앙이다. 유교적 경건함이란 바로 그 점을 웅변한다. <시>새벽에 일어나 숙면하지 못하는 밤은 왜인가 곰곰히 헤어보니 제대로 된 논이 없는 삶 때문이었더라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89

190 수많은 날을 흘려보낸 그 강뚝 머리에 서서 새삼 돌아보며 지나온 나의 절규들 물결소리로 망각되지 않도록 그 메아리로 듣고싶어서였더라 봄바람에 실려와 여기 깃든 이방 저방 적막속의 기침 소리 딸애는 할머니 보온요 속으로 파고들더니 잘 자고 있겠지 겨울 끝의 냉기가 남긴 서늘함은 아내의 팔 관절 속에 아직 완강하다 흰 포말을 싣고가는 급한 물살은 깊고 넓어서 아직도 한가하게 구경하며 앉아 있을 여유는 없을 터인데... 깊은 밤이나 아니면 새벽녘이면 가끔 흐물한 내 유체에 최근 <유일한 희망>이라고 명명한 객기가 엄습하곤한다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90

191 아직 아직은 정말이지 노탐은 아닐것이다 철기( 鐵 氣 (를 숨쉬는 영원한 나그네의 고달픈 생체에는 사실 물한방울 새어들 틈새도 없는 조여옴이 상시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이 풀리는 한 순간의 열림이 있곤 했다 비록 그것이 휘황한 아침이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일지라도 열림은 어딘가 새로움을 부르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차례 반복된 바 있는 그 메시지는 알고보니 역시 새로우라는 것이었더라 아무 댓가나 성과 없어도 좋다는 그런 말이었더라 항우같은 패기 없어 어떤 기세는 자신없으나 조용히 더듬어 끝간 데 없는 하늘을 닮고자 흔적없는 사람의 긴 그림자를 만지고자 그럴 수 있다고 가슴이 뛰는걸 보니 지금은 그 드믄 한 마디 자유의 시간이더라 우화등선이 별거아니더라고 마음은 막간다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91

192 가장 가까운 시상을 되감으니 신문지 하나 펄럭하고 떨어진다 제목은 무슨 월요 연재기사 누군가가 삼교를 말하고 있더라 마음과 육체와 명분을 말하더라 그 자락을 따라 줄줄히 일어서는 문자들이 있더라 다 새시대를 말하고 있더라 신천지는 오직 시심으로 열리는 것 시적 텍스트의 기호들이 밀고 가는 것 그 리듬은 성인의 말씀을 닮았다 그 그릇은 인( 仁 (을 닮은 크기를 하고 있다. 음악은 먼저 가사가 창조하므로 악경이 먼저 있었다는 시경론은 아마 상상에 불과할 것이다 <사악함이 없는 마음>이 어찌 스스로 율동할 수 있으랴 서도를 갈아 뼈에 그 맘을 새기면서 그 필획의 굴곡을 눈물 방울이 채워흐르고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92

193 그 위로 한숨의 미풍이 지나며 골질의 섬유를 두드리는 소리 일어났었으리니 장작개비 태워 균열하는 길흉을 가르는 쩍 쩍하는 소리 들렸으리니 진정한 경전의 장구란 모두 그런 시어가 아니더냐 내 비록 헛배만 부른 백면서생일지라도 강폭을 가로막고 서서 모래건져 체질하며 사는 삶을 버리지 못함은 꼭 그래서이다 노두 탄광에서 선광하는 삶을 위하여 새로운 <탐구시>를 논하고 싶다 아무 양식과 조건 없이 문자의 행렬 자체가 스스로 절대의 의미를 보유할 수 있도록 유교에서 종교성은 무엇인가 193

194 유교는 문명사적 성과를 반영한다 :14 해방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역사로서는 그런대로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필사적인 삶은 그 이념에 있어 편향적이었으므 로 불가피하게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했다.그 손실중에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자존의식을 잃은 것이다.이는 그들의 역사에 대한 신뢰를 그들 문화에 대한 애정을 확립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왜곡된 역사의식과 자아관을 가지고 좁은 탈주체의 근대화를 수행했다는 말이다. 자기정체성을 직시하지 못해온 근현대사는 이미 문명적 비극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제3의 비극앞에 서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이다.그 문명적 비극이 지금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무서운 일이다. 역사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힘의 중심은 선비였다.유학자들이었다.그런데 요즘의 지식인들은 입만열면 전통 유자를 비난하고 전통역사를 난도질하고 비난한다. 과연 그들이 그런 자격이 조금은 있는 것일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자랑하고 그를 비판의 근 거로 한다면 새로운 지식이란 원래가 공유의 것이고 어느 정신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돤다는 점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지식은 정신을 구성하는 한 극소한 부분일 뿐이다. 유교 자체는 왜 비판받아서는 않되는가? 우리들의 사유의 핵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비난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비판이 허용되는 범주>는 따로 있다. 바로 각 시대의 유자들의 행 동과 사상은 당연히 평가되고 논의될 수 있다.그것은 유교정신을 한 시대에 적용하고 수행한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비판>의 입장에서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이를 각 시대의 유학이라고 할 수 있다.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유학이나 사상 혹은 삼국시대의 사상 조선시대의 사상 등으 로 논하여 그 공과를 거론할 수는 있다는 말이다.그러나 유교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민주주의 자유경제가 이론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하여 민주주의 자유주의의 가치를 매도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에서 이다. 유교는 그 내부의 정신적 본질의 중핵부에서는 불변의 당위성을 포장하고 있는 영원한 정신이며 그 외연은 각 시대를 수렴하며 갱신 발전되 면서 각 시대에 창조적 임무를 수행해가야 하는 자유로운 범주성을 그 특장으로 하고 있다.유교사상은 중심지향성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형식 적 제한이 없는 보편적이고 포용적인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유교 정신이 이루어진 과정을 보면 즉 유교의 형성사를 보면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더욱 확인할 수 있다.이 점에 대해서는 별론하 였으나 핵심을 말해보면 유교는 한국과 중국을 주축으로한 문명세계의 중심 문명정신이며 어느 한 국가의 성과는 아니다.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시 유교에 대한 왜곡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유교가 역사상 수행해온 그 임무와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 유교의 역사성을 이해 하지 못하면 오늘날 역사지성 위주의 현대문명에서 낙후된 지식을 확대재생산하는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역사로서의 유교 그리고 살아있는 문명으로서위 유교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반추할 필요가 강하게 제기된 다.나는 현존하는 어떠한 사상 이념 철학의 체계도 유교적 사유법을 능가하거나 혹은 대체할 수 있거나 아니면 능가할 수 있는 체제는 전연 없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어떤 의견도 공파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그것은 오로지 유교가 지닌 사상적 포괄성과 균형성이라는 강력한 지상의 권위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유교의 그와 같은 우월한 힘은 역사와 문명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조화로운 배려로부터 나온 것이다.그것이 우리 역사 문명 사상의 최대의 성과이다. 유교는 문명사적 성과를 반영한다 194

195 그 귀중한 보물을 버리려하는 지금 우리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어찌 위험한 비극의 순간이 아니랴! 다행히 최근 동양학 담 론이 무성하여 새로운 반성의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혼란과 혼돈 속에 일어서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이 움직임이 다시 유교에 대한 제 3의 왜곡을 불러오고 마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리고 그 새로운 물결이 일반의 문화 정신 움직임으로 승화될 가능성이 많 지 않다고 하는 강력한 장해요인으로 인해 비극적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대체 반만년 민족사 그리고 문명사에서 오늘과 같은 위기의 시대는 없었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그저 잘산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은 뿌리 를 심고서지 못할 때 완전히 허무한 것이 되고 말것이므로 오늘의 잘살기노력은 허망한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열차와 같다.지금 그 결과가 이민의 증가로 나타나고 사회적 불신의 팽배 이기주의의 확신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므로 비극은 이미 일어서고 있다.얼마나 무서운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직시해야할 것이다. 유교는 문명사적 성과를 반영한다 195

196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58 <오늘날에도 유자가 존재하는가?>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마치 사람은 생명이 있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유교문명은 이미 문화적 역사적 생명을 얻은 지가 오 래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미 십여년전에 어느 교수와 동양역사를 토론하던 중 유학사상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당신은 이 조시대 유학자가 되려고 하는가>물었다.나는 그 때 <그럴 수만 있다면 매우 좋겠다>고 대답하였었다. 그는 나와는 비교될 수 없는 치밀하고 높은 지식과 역사분석력을 지닌 연구자였고 나는 그후로도 가끔 그 대화를 회상하곤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식견이 부족함 때문이라고 혹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리 부끄럽게 생각 하지는 않는다. 사실 깊은 연구도 못하고 성과도 없으면서 사상사를 연구한다고 처음부터 표방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어느정도 웃음거리였던 것같다.그 뿐만 아니라 어느 분께서는 <제도사> <정치사>를 연구한 후에나 <사상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간접적으로 나의 덜된 준비를 지적한 일도 있었 다.역시 그후로 그 문제도 자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지금은, 현실적으로 그분들의 지적이 역량면에서는 옳을 수 있는 지적이지만 근본적으 로 학문 자체의 면에서는 꼭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사상의 역사를-넓게는 문명의 역사-너무 안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점점 더 느낀다.나는 학문이나 지식의 깊이 또는 높은 역량의 이전에 자세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그보다 앞서 즉 학문에 앞서 "문화적 실천-예컨데 효행- 을 중시 했던만큼의 깊은 사려에는 아득히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진화해온 도정에 있는 어떤 중대한 핵심 대 상을 소홀히한다는 것은 충분히 여러 창조적 지적 판단을 위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실 생활은 물론이고... 역시 근래 두서없이 경전을 읽은 소감을 자유롭게 같이 적어둡니다. (2000년 5월경의 메모) 유학은 일상의 생각과 처신으로 이루어진다 유학이 생활성이다. 유학은 단지 보통의 삶 속에서 스스로 형성된다. 유학의 자연성이다. 유학은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이해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유학의 인정적 속성이다. 유학은 엄정한 경험의 분별이며 그 생각은 치밀하고 철두철미하다 유학의 객관적 속성이다 유학은 결국 희노애락의 마음의 울림으로 나타난다. 유학의 정서적 속성이다. 유학의 모든 이해력과 판단은 격물치지의 궁극사물직시에서나온다.유학의 지성적 철학적 본질이다. 유학의 모든 지각은 시공을 따라 쉬임없는 성찰에서 나온다. 유학의 감성적 속성이다. 유학은 현실적 오감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유학의 현세적 시의성이다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196

197 유학은 기쁨을 추구한다. 유학의 생명지향적 속성이다. 유학은 활력과 역동을 추구한다. 유학의 유신적 속성이다. 유학은 삶의 종류 계층과 신분 어느 수준중에서도 행할 수 있다. 유학의 털차원적 탈계급적 본래 속성이다. 유학은 결국 자연과 삶과 생명 사물을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 유학은 삶의 결과인 문물제도까지 정당한 실존체로 받아들인다. 유학은 역사적 삶의 결과까지 차별없이 받아들인다. 유학의 무한 포용적 일대 보편 속성이다. 화심은 이 단상들을 두고두고 다시 생각해볼 작정입니다. 좀더 정리될 때 까지... <유교생각 하나> 유교는 일상의 사유의 길입니다 유교는 보편한 지성의 길입니다 유교는 그저 삶의 길입니다 유교의 의의는 최소한의 정의( 定 義 )만을 필요로합니다. 유교는 제자백가와 상대적이거나 대립적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유교는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가의 편견을 가지지 않습니다 유교는 어느 특정국가의 사상이 아니며 우리 문명권의 정신입니다 유교는 사상이며 과학이요 종교이며 예술이며 문학입니다 유교는 기술이며 심성이며 또한 영원한 삶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197

198 유교이 길은 둘입니다 맑은 길 힘찬길 유교의 모습도 둘입니다 아름답고 유용한 모습 유교는 우리네 사람의 공동체 삶의 성과 그 자연스런 총화입니다 유교는 엄밀한 논리와 진절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생동하는 정신이므로 유교는 우리의 실 역사이며 미래입니다. <최근 위와 같은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 그대로 문득 적어보았던 글이었습니다.> 신 텍스트를 위한 상념 (1)-오늘에도 유자는 존재하는가? 198

199 경전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1) :39 경전( 經 傳 )이란 내적인 의미로서는 불변의 길을 의미합니다.전통적으로는 성인( 聖 人 )의 글을 경( 經 )이라하고 현인( 賢 人 )의 글을 전( 傳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경전( 經 典 )이란 용어는 종교적으로 성경이나 코란 불경 등을 의미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경전( 經 傳 )도 그런 경전( 經 典 )의 의미를 바탕에 두고 있고 아울러 그 경전( 經 典 )이 각 시대에 전승되면서 각 시대의 독특한 환경과 여건 문제를 반영하여 그 새 로운 의미가 모색되는데 바로 그 부분을 전( 傳 )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아울러 경전( 經 傳 )이라고 합니다.물론 각 종교에도 전( 傳 ) 에 해당하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러나 그 역할과 의미가 다릅니다.유교에서 유독 <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유교경전이 강한 역사성을 유지 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전( 傳 )이라는 말이 특히 성리학 이후 더 의미를 지니게 되는 까닭을 이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교경전의 역사는 경( 經 ) 해석 의 역사입니다.그러나 그 해석의 역사에서는 언제나 경( 經 )의 정신에대한 불철저한 전승( 傳 承 )이 문제가 되었습니다.예를 들어 공자 이후 그 제자 세대부터 공자학의 본 뜻이 바르게 가르쳐지고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항상 존재해왔습니다.지금 현재도 똑같은 문제상황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물론 유학이 오로지 공자학인 것은 아니나 예를 들어 그렇다는 말입니다. 경전의 정신을 순수하게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그 비판은 따라서 <이단론>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그러한 경전정신의 순수 한 전승의 중요성 을 견지하는 것 못지않게 각 시대 속에서 새 의미를 적극 모색해내지 못한다면 그 경전은 생존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므 로 새로움의 추구도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하겠습니다.우리가 오늘의 마음 속에서 아무 전제 없이 경전을 읽고 음미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꼭 성인의 글과 현인의 글이라는 구분을 하여 그 가치를 고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경( 經 :사서삼경/ 四 書 三 經 / 論 語 孟 子 中 庸 大 學 : 詩 經 書 經 易 經 )을 통해서 새롭게 정립해낸 각 시대의 성과를 음미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 經 )이 불변의 길( 常 道 )이라면 어떻게 각 시대문제를 소화하고 해소하여 새길을 모색할 수 있는가? 경전은 고집스런 어떤 사고의 결과물을 고수하여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이 아니고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를 일정하게 가질것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의 <불변>입니다.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못하는 변화와 격동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심상( 心 像 )과 사상( 事 像 ) 그 불안정함의 내면에 변치않고 영원의 에너지로 존재한다고 믿는 그 어떤 질서체( 道 )로서의 <불변>입니다. 과연 그러한 것이 있는지 우리는 경전을 읽으면서 자기의 삶과 마음 속에서 찾고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 문헌을 읽다가 2~3 천년 전의 그 말들이 오늘의 사실과 심정을 말하는 것과 똑같은 전률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선, 오늘의 세계에는 다양한 사상 문화가 있고 철학과 학문 금언이 있습니다.넘치는 그 <좋은 말씀> <매력적인 온갖 지성의 체제>가 있음 에도 역시 자신의 고전과 경전을 왜 읽어야하는가?하는 문제를 제기해두고 평소의 소신을 틈틈이 올리려합니다. 오솔길이라고 이름한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살아가야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그 길을 따라 걸어가는 몸짓 속에 진정한 불변을 찾는 심혼( 心 魂 ) 안정의 길( 道 )이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경전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1) 199

200 여기에서 꼭 확론( 確 論 )을 싣는 것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자유롭고 새롭고 편하며 그 뜻을 넓힐 수 있는 이해의 길이라면 어느 길 이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운 상념을 쓰려합니다.그러나 자신의 역사는 결국 버릴 수 없다는 확신을 쓰게될 것입니다. 경전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인가?(1) 200

201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38 서론:유교-자유 지성의 발전사 <1>문제성 맹자는 서경( 書 經 )의 글을 두고 <역사 서경의 기록을 다 믿는다면 기록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이는 철두철미한 역사감각의 소유자인 맹자가 역사를 부정하라고 한 말은 아니다. 오히려 각 기록에는 해당된 시대를 반영하는 진정한 시의성이 있고 그 시의성이란 역사적 시간의 전개에 따라 변환되는 것이므로 언제나 꼭 같은 의미로 역사와 문헌이 독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해석학적 자유선언일 것이며 동시에 적극적으 로 문헌의 내부에서 시대를 초월해 일관되는 정신성을 발견하고 현재화하여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사상사의 취급 법은 현대의 지성사가들에 있어서도 공통되는 자세일 것이다.<사상의 전승성과 선택성>을 강조하는 지성사론의 이론적 연구자들의 견해가 그 것이다. 또 동양의 사상사가 기초적으로 경전해석의 갱신을 통해 새로운 성취를 이루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꼭 서구적 의미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라는 명제를 지지하기 위해서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또 사상 철학 도덕 종 교 지식 지혜 성찰 등등 적합한 표현이 있음에도 <지성>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도 역시 20세기 이후 역사학의 한 명제인 <모든 역사는 사상 사>라고 하는 서양 역사학의 성과라든가 문화사 혹은 지성사의 등장이 경이로운 당위성을 확보한 흐름임을 기꺼워하는 의미에서도 아니다. 물론 그런 의미를 함축할 수도 있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 <본성을 성찰하는 삶>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어떤 시대적 텍스트적 제한도 넘어 서야 한다는 믿음에서이다. 오늘날 문자그대로 그같은 제한 없음과 본질의 성찰이란 의미로서 <자유>와 <지성>이 요구되는 것은 현재의 일반화된 인식 가운데서 자신의 사상사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많은 텍스트적인 또는 시대환경적인 제한이 너무나 많고 대부분 그로부터 해방된 사유로서 문헌과 경전을 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며 그 당연한 주장과 정의를 다시 명기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학문-학습론의 의미 공자 전후한 시기에 배태하여 유교로 집성된 학습( 學 習 )이라는 새로운 태도가 삶의 일부가 아닌 전체로서의 항시적 삶의 스타일이라는 생각 은 하나의 역사학인 발상에서 온 것이다. 말하자면 그 당시로서는 신비주의적 혹은 종교중심의 삶을 벗어나 사려하는 삶을 힘차게 출범하는 의미를 지닌다.오늘날 학문( 學 問 )이라고 부르는 개념에다 전국면적인 생활성과 예술성까지를 투여한다면 그것이 곧 현대판 학습론이 될 것이 다. 학습 혹은 학문논은 그러나 새로움을 향한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서 출발한 것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역시 지성적 삶을 시작하고 그 자유의 여지를 넓히기 위한 절실한 몸짓으로 성취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러한 학문론의 원 의미를 살리지 못하는 학습 습관이 오래 유지되었고 또 현재 특히 그 점을 직시하지 못함으로 인해 역사의 기초 동력으로서의 우리들의 사상사가 더 이상의 진전이나 성찰이 방해받고 왜곡되고 있다고 분석된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문헌해석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201

202 이나 역사해석의 학문적 성과들이 무용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학문적 검토나 모색은 그 스스로 다양할 수 있고 아무런 조건과 전제가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성 현실성 시대성이 서로 유리된다면 그 학문의 현재적 의미가 격감될 것임은 당연할 것이므로 본질 에 대한 성의있는 성찰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대학에서 명덕( 明 德 )을 말하고 중용에서 불편부당을 말한다. 이 명덕이나 불편부당이 유학의 심법을 전한 것이라는 정의에 동의한다면 그 결 실은 인( 仁 ) 의( 義 ) 예( 禮 ) 지( 知 )가 될 것인데 명덕과 중용의 구상어는 바로 인의 예지를 구현하는 덕( 德 )을 지칭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명덕 중용이라는 명제와 함께 인의예지나 덕 가운데에 역사성을 투여해 불어넣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글자 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신화화된 율칙으로서 또는 기념비적 문자로서 생존을 지속하는 과거 사상사의 찌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과연 그 런가? 아니면 과연 그래도 좋은가? 사상사의 필요성은 여기서 비로소 의문의 바람을 타고 출범한다. (3)공동체 정신과 개인의 성장사 위의 사상사 명덕과 중용의 기원은 그리 추상적인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의예지의 덕목이 오로지 장로들의 지도력에 의해 하나의 인위적 이고 도덕적인 율칙을 목표로 해 권위스럽게 제정된 법조문인 것도 아니다. 단지 고대 역사의 어느 한 순간 질식할 만한 혹은 삶의 정상적 영위를 위협하는 어떤 고정돼가는 풍조를 타개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으로 얻어진 성과이다. 서경에 전하는 무풍( 巫 風 ) 음풍( 淫 風 ) 난풍( 亂 風 ) 등 말하자면 종교적 사회-개인적 삶의 혼란이 그 배경일 것이다. 중국사의 경우 고대신화가 지배하였던 시대는 일반적으로 춘추전국을 상한성으로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춘추전국에서 진 한시대에 이르는 사이에는 형해화되고 붕괴된 고대 신화에 대신할 신형의 신학이 요구되었고 유학은 넓은 의미에서 고대신화를 대체할 새로 운 신화로서의 정체성의 확립이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황노학( 黃 老 學 )이 유행하였다거나 무제( 武 帝 ) 시기에도 미신이 숭배되어 각종 사당이 유행하고 봉선( 封 禪 ) 제사를 올리고 한 것들은 전통 종교지도자 유자 그리고 기타 학파의 인사들이 그러한 신학적 요구 상황에 적극 개입하 여 이루어진 역사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신학이 요구상황이 증대된 것은 당연히 진시황 제국의 유교문헌 말살시책 이 보여주듯이 유교 스스로가 그 본래의 기능과 공능을 온존하거나 적극 수행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예를 들면 공자 사후에 즉시 공자학의 왜곡이 우려되었다는 사실과 상통하는 이야기가 된다. 한 무제 시대는 주지하듯 유교사상이 국가의 이념으로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그것은 유교에서 창조한 텍스트와 문장 명제들이 지니고 있는 뛰어난 지도성에 주로 그 원인이 있다. 뛰어난 지도성이란 춘추시대 이래의 지식인들이 국정에 관여하면서 다양한 논리로서 사 회와 국가를 논한 깊고 치밀한 논리적 준비의 튼튼한 뒷받침을 받고 있고 한나라 시대에 이르면 이미 그러한 논리적 전제 없이도 그 표면 텍 스트가 그대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유교 논리적 텍스트의 승리의 귀결이라는 역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 개념들은 고정되거나 자의화( 恣 意 化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 그 본질적 기초구조로부터 일탈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유교왜곡의 큰 흐름의 출발이었다. 그후 2천여년간 유교라는 이름의 텍스트 자체가 반면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 본원적 특질과는 다소 유리된 채로 극히 자의적으로 혹은 좁개 축소 해석되면서 동시에 절대의 세속적 권위를 지니고 각 시대를 수용해 나아갔다. 사상적 협소화를 우려하는 이 점 대해서는 사 기의 육가요지에서 이미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바탕에서는 공동체정신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사 사이의 긴장된 모순과 대립이 사회 문화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증폭되면 서 실질적 역사배경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시경 서경의 시대부터 그로한 사정을 반영한 상념과 정서와 힘께 그 생생한 역사적 실상을 기록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시경 서경의 어느 임의의 구절에서도 그와 같은 부딪음을 볼 수 있다. 그 부딪음의 소음 을 거두어들이려는 힘이 학( 學 )적 삶에서 나왔던 것이다. 특히 정치 사회사나 문명 사상사상 획기적 발전을 성취한 춘추전국시대에 그 부딪 음이 더욱 격해지면서 학적 삶의 필요성이 보다 절실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202

203 (4)학습론의 의미와 역사성 배울학( 學 )자는 위에 두개의 손 사이에 X 형 두개를 상하 배치하고 그 아래에 역 U 형과 아들의 그림을 두었다. 이 그림에 대해 역 U형을 역 V형으로 보아 가정이나 가옥을 의미한다고 보고 X형을 그물로 보는 설이 있었다. 즉 가정에서 생활 기술을 익히는 어떤 동작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 역시 가능한 견해이긴 하다. 또 그 문자의 등장기의 역사 환경과 맞는 점도 있으나 절실성과 긴장성을 느 낄 수 없고 너무 일상적이다. 더이상의 해석적 여지가 별로 남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배울학자의 향후의 의미에 비추어 다른 해 석이 모색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學 의 자형을 잘 살펴보면 손과 X가 아이의 머리 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덮는 다는 의미의 역U 형이 아래로 연결돼 있다. 이 세가지 요 소의 상호관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아이는 원래 신적인 것을 상징한다) X자 형은 대개는 식물섬유의 올을 표현한 것이거나( 爽 #) 무희의 옷소매 장식을 나타낸 것( 爾 )이 있는데 人 入 등의 형태와도 유사한 친연관 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무( 巫 )의 人 이나 양( 兩 ) 내( 內 )의 入 과도 긴밀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매달아 두었거나( 兩 內 ) 세워둔( 巫 ) 어떤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선이 교차하는 모습에서 九 十 七 등의 글자와도 유사성이 있다. 배울 학자의 X형은 그러나 이들 가운 데 그 외형적으로 일치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의미 본질상으로는 상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 爾 巫 등을 제외하고는 그 의미적 계통을 직접 연관지워 설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學 은 X자형을 채용한 일반글자와는 다른 의미구조를 가졌다고 보아야하겠다는 것이다. 특이한 예로서는 卍 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태 양의 빛을 나타내는 글자로 요즘 보고 있다. 배울학의 X는 이 卍 이거나 별성( 星 )자의 이체인 * 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아름다울미( 美 )자 의 상부가 새의 깃털을 표현한 것이거나 머리 위로 발산되는 밝은 광선의 광채를 표현한 신비한 문양이므로 배울학자의 X 형도 그같은 신비 적 대상물 즉 태양이나 별 혹은 신성한 풀줄기나 구슬장식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다면 學 의 상부는 아이의 머리장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아이는 바로 접신의 시동( 尸 童 )일 수 있으므로 일종의 접신술의 일 부 장면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요즘의 의미로는 어린이의 머리를 꾸며주거나 장식해주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접신의 의례중에 손의 어떤 작업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즉 신비적 의례 행위라는 점에서는 고기를 손에 들고 올리는 제사제( 祭 )와 통하는 면이 있다. 아마도 아이의 머리에 어떤 신물을 장식하여 앉히는 그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동작은 오로지 신비적 이유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복장기원설에서 논하는 장식설 수치설 생체보호설과 유사한 여러 이유가 복합되어 있을 것임 은 당연할 것이다. 문자상 모든 신적인 것 자체를 묘사할 때는 신주( 示 )가 표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무( 巫 )나 유( 儒 )등의 접신의례 수행자의 묘사에서는 신주 표시가 없다. 그러므로 유사한 구조의 學 은 인격 자체를 나타낸다. 접신의 인격은 시동이나 무당 무희의 모습일 것인데 학( 學 )에서의 행 위는 오로지 손과 덮음이다. 아이는 어떤 동작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 인격은 아이 자체가 아니고 그 손이 주체인 것이다. 그리고 X와 아이 ( 子 )는 그 주체의 한 대상이다. 이렇게 보면 학( 學 )은 신비적 종교적 행사에 어떤 조건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인격이 주체가 되어 어떤 종교적 의례를 인격주도적으로 수행 하는 그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단순하게는 아이의 머리에 천을 장식하고 그 위에 다른 장식을 가하는 그림으로 볼 수 있다. 하나의 <의 도적 의식적 표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조건을 부여한다는 기법은 춘추시기에 일반적으로 행해졌다고 셍각되는 새로운 발상을 넓혀가 기 위한 일종의 보편적 사고기술이었다고 생각된다.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203

204 배울학자는 결국 어떤 인격자의 한 표현작업을 나타내고 있다. 일종의 문( 文 )이다. 문의 하부 X 표시는 대개 문신( 文 身 )이라고 이해돼왔다. 학( 學 )은 결국 <표현>을 의미하고 창작의 의미를 나타낸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 부여된 행동의 한 모습을 나타낸다 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연관 <학이시습>의 습( 習 )자의 경우도 전통적으로는 새의 깃털과 일백백( 百 )의 조합으로 보고 새가 수없이 날기를 연습하는 뜻으로 이 해해왔다. 물론 그와 같은 수련( 修 鍊 )의 의미가 내포될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지만 그 원초적 본질 의미에 있어서는 우( 羽 )는 그대로 새의 깃 털을 백( 白 )은 그 원래의 형상에 입각해 옥이나 장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역사설명의 오랜 용어인 문질( 文 質 )개념의 속성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움이란 의미의 전승성과 아울러 생각할 때 지식과 정신을 표현하여 삶을 설계하는 한 형식의 삶의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배 울학이라고 생각된다. 그 출발은 접신술에서 시작하여 인격적 주도성을 의미하다가 후일 신비적 요소가 감쇄되고 공자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 향으로서 표방제시된 어떤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주체적으로 의미를 설정하고 이를 표현하는 새로운 형 식의 삶을 가장 소박한 형태로 절실하게 나타낸 것일 수 있다. 이 때 그 의미의 설정은 극히 경험적 사유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경 전의 전승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경전문헌의 초기시대에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짐승의 뼈를 불속에 던져 점을 치던 원시 골점이 발전하여 거북의 배뼈에 홈을 파고 불을 가하고 어쩌면 찬 물을 뿌려 그 균열을 조절하였고 나아가서는 주역적인 서점( 筮 占 ) 형식이 고안되어 사람의 주체적 동작이 중심이 되었다. 즉 신비적 영성의 영역은 조절될 수 있게 되었다. 신의 영역마저 일반 경험의 영역처럼 생각하고 다룰 수 있는 일반의 경험현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석의 대상이 되지 못할 현상은 없어 지게 되었었던 것이다. 경전 초기시대 이래의 이러한 발전이 춘추시대에 들어 본격화되고 극히 일반화되었음은 춘추좌전의 수많은 정론 속에서 수천의 예로 허다하 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의 머리에 천을 장식하고 머리를 땋고 무엇을 꽂아 꾸미는 것과 같은 가장 소박한 표현주의와 그 이념 그 행동을 배 울학자 익힐 습자가 담고 있다고 보아야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해야하겠다. 우리가 지금 통용하고 있는 학습이란 용어해석은 그 원래 의미에서 보면 극히 일부의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공자가 문질빈빈( 文 質 彬 彬 ) 을 강조한 것은 바로 표현위주의 학습이 내용없는 것이 될 위험이 있기에 그 표현의 이전에 본원적 의미의 확립을 놓치지 말것을 경계한 뜻 에서 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공자이전의 논객들도 이미 문채( 文 彩 ;표현된 아름다움)와 물채( 物 彩 ;사물 자체의 의미)를 명확이 구분해 탐구하 고 조화롭게 사용하고 있었고 그것이 군주론 신하론 사물론 등 허다한 입론의 준거로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그 당시의 일반적 지적 흐름 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유교적 경전이나 역사 문헌에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그 특징과 흐름이 유교적 사유의 원질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즉 유교는 우선 보 편적이고 경험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위해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현실을 타개하는 삶의 일부로서 절실성을 가지고 발전한 그 무엇이라고 생 각한다. 서론 : 유교-자유지성의 발전사(1) 204

205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37 :: :: 1.오늘 현황 :: :: 요즘 동양학 담론이 무성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공자와 논어 노자와 도덕경 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잇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미 10여년전 부터 특히 90년대 중반경부터 지식인들 사이에 동양학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가 있어왔습니다.그리고 이것은 거 의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유교의 중심지에서 우리들 스스로 그 문명과 정신을 추스리고 새로이 돌아보는 일은 여러면에서 이미 피할 수 없는 명제로 이미 소리없이 다 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 상황은 그러나 아직 크게 유동적이고 아무것도 심정적으로 일치되거나 합의된 흐름은 없습니다.어던 분의 지적대로 지금의 일반 의 대중적이라할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일과성의 유행으로 그치고 마는> 문명적 선택의 오류의 지속이라는 문제로 돌아갈 소지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허심탄회한 현실의 진단은 우리들에게 여러모로 소중한 자각을 불러올 수 있을 것입니다. :: :: 2 시론-자유와 엄숙 :: :: 근일에 중앙일보 오피니언 기사에 고려대 서지문 교수의 글이 실렸습니다.그 내용은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도올의 강의에 대한 비판 의 글입니다. 서교수의 지적대로 도올의 강의가 문제시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서교수는 주로 그 강의언설의 조야함을 거론하며 유교적 풍모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입니다.이는 유교의 본질을 인격의 도야에 두고 보았을 때 당연히 일어나는 비판일 것입니다.아울러 강의자 도올의 행동 과 인격 자체가 유교의 이상인 군자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실천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서교수의 비판은 당연히 오늘의 시대에 절실히 하 요구되는 한 단면을 지적하고 있으며 매우 당당하고 건실한 목소리로서 많은 사람에게 기억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도올이 강의는 유교와 동양적 사유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이른바 세계사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합니다. 두 학자의 목소리는 다르나 각기 뚜렷하고 유용한 목소리입니다.다 이 사회에 필요한 언설입니다.다만 그 상호간에 서로 제기할 수 있는 문 제의식이나 비판의식을 염두에 두고 다져나아가야할 것입니다. 사실 유학을 두고 이런 정도의 논설밖에 다룰 수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슬픈일일 것입니다.아마 이보다는 더 진전된 주제를 더룰 수 있었 다면 좋았을 것입니다.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재의 지적 한계일 것입니다. 도올의 강의 그리고 그에 가해지는 여러 찬반의 견해들이 표출되는 것을 보면서 화심은 문득 지금이 문명적 전환기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잠시 생각하고 떠오른 생각이 <아아 지금은 엄숙주의 문명의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중국의 문명이 전통적으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205

206 로는 문( 文 )의 시대와 질( 質 )의 시대의 교직( 交 織 )으로 짜여져왔고 공자는 일찌기 그 문제를 문질빈빈( 文 質 彬 彬 )의 이상을 향한 큰 움직임으 로 파악한 적이 있습니다.공자의 견해로는 성주( 成 周 )의 문명이 그러했다는 평가입니다. 요즘말로 <문>이란 자유로운 개성 표현주의라 할 수 있겠고 <질>이란 실질과 이상의 절제된 추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환 언하면 엄숙 소박의 질과 자유분방의 색채적인 문이 어울려서야 평안과 안식 조화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성향을 칼로 물베듯 갈라 취하기는 사실 어려우나 사실은 요즘의 세태가 일견 자유방임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현대의 여러 징후로 보아 일반적으로 과거의 엄숙주의로 돌아가기는 어려워보입니다.그래서 이러한 문명적 현상을 <엄 숙주의이 종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엄숙주의의 종언이라는 말이 역사적 진실성을 확보할 수 있는 용어라면 그 전제아래 몇가지 미래상을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엄숙주의는 문명적 본질로서 교대되어오던 오랜 역사성을 반영한다 둘째 동시에 전근대의 계급주의적 혹은 봉건적 역사를 일부 첨가하고 있다. 셋째 지성적인 학자적 개인적 삶의 두 측면으로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다 는 등의 생각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으로 (1)지금의 문적 문화는 당연히 엄숙주의 쪽으로 다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2)역사적 용어로서의 엄 숙주의는 전근대사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현대이래의 자유주의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으므로 신형의 자유주의적 엄숙주의가 새 시대의 역사목표가 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신형의 자유주의적 엄숙주의란 아마도 공자의 문질빈빈의 이념을 내부에 계승하면서 그 표현은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게 되지 않을까 생 각합니다. 아마 그 자유의 범위는 <자연스런 정감>의 정도 수준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자연스럽기만 하다면 어떤 표현도 무리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입니다.따라서 당연히 자유표현에 절제를 가미한다는 전통적 덕목의 가치와 권위를 재삼 음미하게 됩니다. :: :: 3.의열함 텍스트 :: :: 또한 최근 방화로 인한 화재가 빈발하면서 소방관들의 헌신적 죽음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분명 우리사회의 원천적 힘의 근원의 하나인 <의열한 죽음>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열한 죽음이란 사실은 <텍스트적 삶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텍스트적 삶이란 문자로 표현된 정신성을 삶의 뼈대로 삼는 삶입니다.단순히 물질이나 사단칠정이 바라는 욕구나 편안하고 안일하고 행복한 삶을 오로지 추구하지 않는 삶입니다. 김기석 소방관은 후배에게 보낸 E-메일에서 <남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의 직책을 성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206

207 열결식장에 놓여진 소방관의 기도문에는 <...> <남을 구할 수 있는 힘을주소서> <만일 순직하게 되거든 남은 가족을 보살펴주소서> <...> 라는 비장한 결의와 가족애를 표한한 애틋함을 함께 싣고 있습니다. 그것이 산문이든 기도문이든 종교적 영향이든 할 것없이 이 두 문장들은 분명 이 시대 소방관의 텍스트입니다.이시대 사람들이 목숨으로 지 키려는 빛나는 가치입니다. 오늘 영결식을 치르면서 어느 소방관은 인터뷰에서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다는 화재현장에서 몇명의 소방관이 기꺼이 삶을 버렸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남아있는 감동적인 일들중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바로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텍스트이며 삶의 가운 데 이루어진 그 텍스트들이 그대로 경전이 됩니다.경전은 별다른 창작품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텍스트를 만드는 고귀한 삶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경전적인 삶은 아직 굳건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 :: 4.물량사회의의 활로 :: :: 우리에게 의열함이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 살아있다는 뜻일것입니다. 일반의 직업인에게 그같은 텍스트적 삶이 영위되고 있고 오히려 유복하고 지적인 지도적 위치의 사람들이 비텍스트적 삶을 살아가는 일이 일 반화되어 있는 것은 이사회의 괴리와 모순을 보여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들의 경전은 그와 같은 모순과 오류를 바라보게하기위한 것일 것입니다. 의열하고 텍스트적인 삶은 일반의 많은 사람들이 자각적으로 적극적으로 <그러한 삶을 표방>하고 구현할 때 명실상부한 귀중한 삶을 분명 성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5.경전의 의미 해석 :: ::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207

208 최근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맹자>의 첫문을 돌이키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이 말하기를:노인장께서 천리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으니 또한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실 말씀이 있으시겠지요? 맹자는 대답하였다: 왕께서는 어찌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제가 드릴 말씀은 오직 인( 仁 ) 의( 義 )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찌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내 가문을 이롭게 할까 할것이며 서민들과 사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이롭게 할까 할 것입니다. 상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 글구는 하나의 경전화된 텍스트로서 오랜동안 우리사회에서 <텍스트로 간직해온> 것입니다.전통시대의 많은 선비들이 이 텍스트를 읽고 삶의 역경을 헤쳐왔습니다. 맹자는 선비란 천작( 天 爵 )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세속의 부귀영화(인작/ 人 爵 )가 아니라 양심의 명령으로 영위되는 이상 세계의 책임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의 혼란기란 이기주의의 부딪음으로 가득했던 시대였습니다.높아진 생산력 발전하는 정치 군사 조직 그와 반대로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서민들의 삶 이런 것들이 지금과 닮았습니다. 그 시대를 통찰한 맹자는 단적으로 사리( 私 利 私 欲 )의 병폐를 직솔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적어도 왕의 정치란 사리사욕을 직시하는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어야함을 말한 것입니다.바로 그것이 왕도정치( 王 道 政 治 )의 이념적 바탕이었습니다.지금의 민주정치가 어떻게 왕도정치의 이상 을 능가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겟습니까? 지금의 자본주의 자유경제가 어떻게 민본주의 위만경제( 民 本 主 義 爲 民 經 濟 )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 겟습니까? 우리가 고전적 텍스트를 회복야하는 까닭입니다. 이들 텍스트를 딛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텍스트들을 창조해내는 것이 오늘의 유일한 희망일 것입니다. 동영상보다는 먹물(텍스트)로 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현재적 상황의 대전제(1) - 몇가지 먹물(텍스트) 시론 208

209 상황적 사유와 보편적 사유 :15 (1) 동아시아 사상은 인격의 연마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대개 알고 있다. 우리들이 흔히 "도통했다"는 표현을 쓸 때 어느 부면에 통달하였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원래는 우주자연의 도를 통해 알아서 흠이 없는 완전힌 인격과 지성을 갖추었음 을 의미하는 것이 넓은 뜻일 것이다. 도통했다든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였다는 것은 사실 '삶의 이상'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범인들이 이루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통하 고 성인이 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그에 도달하려는 진절한 학적 노력일 것 이다. 고대 이래 동아시아의 학문이란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삶 자체였 다고 생각된다. 일상의 자아의 반추가 그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2) 자아의 반추는 왜 필요한가. 먼저는 스스로 편안하기 위해서이다. 논어에서 "학문하면 기쁘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지적일 것이다. 즉 자신의 기 쁨을 이루어주는 것이 학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기쁨이란 지식의 축적으로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기쁨인 것은 아니다. 그와 연관해 생각해볼 볼 것이 일신( 日 新 )이라는 말인데( 大 學 ) "새로워지려 거든 매일 매일 새로워지려 하라"고 한 그 말이다. 그 새로움이란 역시 지식 의 새로운 축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1)새로운 관점과 지견 그리고 안목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그로부터 자연히 편안함, 기쁨 같은 절실한 성취들을 맛보게 되는 것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학>에서 일신의 전제로 제시된 것이 격물치지인데 그 말이 이론적 냄새가 나기 때문에 상당히 심오하게 접근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오하기보다 절절한 말이라고 생각해야 하겠다. 일상의 전 경험을 반추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3) 유학에서 다루는 경험의 범주는 거의 무제한적이다. 삶의 과정에서 감지하는 상황적 사유와 보편적 사유 209

210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세심한 사려와 베려는 하는 것이 유학적 사유의 기초일 것이다. 그와 같은 경험적인 넓이에 있어 동아시아사상은 세계의 어떤 사상도 입도하고 있다. 그 경험적 넓이와 균형이 아시아 사상사의 요핵이며 그광대한 시공을 견지 하는 긴장된 사유가 결정적 특질이라고 볼 수 있다. 그점에 대해서는 이미 전논 하였으므로 중복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나이 전체 삶의 장을 <학적( 學 的 )인 장( 場 )>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우리 사상 전통을 복원하는 초석임을 말하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 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정념적 갈등과 부딛음 속에 살고 있으므로 우 리는 한순간도 자유롭거나 편안하거나 힘이 샘솟는 기쁨과 활력을 소실하는 위기 혹은 곤란과 부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그 가운데서 자신의 역동적인 훌가동하는 정화의 공간을 보유하는 것이 전통적 학문일 것이다. 나는 그것은 <제3의 차원>이라고 부른다.나 자신의 교유한 기능적인 활성 차원공간을 보유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차원은 (1)자기 자신과의 대화로 영위되며 (2)논리와 언어 혹은 영상으로 구성되고 (3)모든 존재적 경험과 현상경험이 분별되지 않고 (4)삼재의 하나로 우주에 동참하는 마지막 <인>의 영 역이다.(삼재의 인은 인간이 아닌 인문) 이렇게 보면 꽤 새롭게 유학의 개념을 해석한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중심적으로 강조되온 기초적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문( 文 )> <문장( 文 章 )> <문채( 文 彩 )> <문명( 文 明 )> 같은 개념들이 바로 그 창조된 제3의 공간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주역에 말하기를 "드러난 용이 밭에 있으니 천하가 문명해졌다" 고 하였다. 용은 정신이며 밭은 세상이다. 이 세상에 나의 정신이 현실세계 속에 갈등 없이 구현되어 아름다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미학적 언어이다. 공간창조의 가치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 나는 모든이들이 바로 이 <문명공간>을 이해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가울 일 수 있기를 바란다.물론 우선은 나 자신부터 그 절실한 노력을 지속해 나아 갈 것이다. 하이안자 상황적 사유와 보편적 사유 210

211 ist. Haianist Haia 상황적 사유와 보편적 사유 211

212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31 :: 추기경과 정교수의 대통령론을 논함 추기경 고언 국내 한 대표적 일간지가 김 추기경에게 <현시국>에 대한 "말씀"을 청하여 6월 24일자 제3면에 대서 특필하고 다음 날은 "추기경의 고언( 苦 言 )에 담긴 뜻은"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추기경이 그 전화대담을 통하여 피력한 내용은 <특검> <노동계 파업> <신문>등 민감한 현안문제들을 거론하고 있는 데 총체적 <진단과 처방>으로서 그의 단호하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언 론이 기독교적 종교권위에 의존하려는 것은 형평을 잃은 것이며 일종의 방책적 태도일 것이다. 대담 의 내용이 그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다. 특이한 면이 있었다면 대담에서 보듯이 '추기경께서, 전 에 없이 <대노( 大 怒 )>'한 배경과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 보도는 '추기경의 말씀'을 따서 " 盧, 난국타개 능력 있는지 의문" 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울러 동 27일자 제16면에 실린 정윤재 교수의 노대통령 발언분석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런 류의 보 도는 그 막대한 대국민적 영향 파급이 예상되므로 일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오늘의 만연한 일반 적 <삶의 엄정함의 필요>(방만한 반엄숙주의의 경계)에 비추어 인위적으로 어떤 현상을 자의적 필요에 따라 혹은 자아중심적 속단에 의해 혹은, 어떤 <자기체계중심적 확신>에 의해서일지라도, 부정적 각도 에서 <증폭>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실의 왜곡상>을 <광포>하는 것은 거의 <재앙>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공의의 장에 어떤 의미에서건 이기주의나 방편주의 등의 <사사로움>이 게재되지 않도록 하는 것 이 오늘의 최대의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심적 공기체제로서 언론은 영욕의 근현대사를 영위한 우리 풍토에서 역시 그 영욕을 딛고 사 회 문화 정치 경제 등 근대화 과정에서 중대한 공헌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좌절과 성취, 의리와 영달, 삿정과 사명의 중첩된 명암을 헤치고 살아온 대중국민과 진솔하게 서로 격려하고 호흡하려하였 음도 사실이다. 비극의 암울함에서 명창한 열락의 대동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의 소망과 달리 우리는 아직 길고 긴 악마적 명운의 꼬리 끝을 밟고 살고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그 동안 책임 있는 사회 문화의 선도주체들이 넓은 시야와 통렬한 자아성찰이 부족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조장된 문화 와 기풍의 모든 방만함으로 가득한 지금, 그 전방위적 혼돈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 순간 언 론의 역할과 책임은 진정 사활적이다. 우리에게 문화기풍적 <시평>이 긴요한 까닭이다. 추기경의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말로 요약된다. 추기경은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2

213 "지금 우리의 상황은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장인 대툥령께서 이를 잘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 디가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언제쯤 좀 나아질지 의문>입니 다." 라고 하여 어떤 논객의 비판보다 통렬한 내용으로 대통령을 나무라고 나아가 "<노대통령에게 난국을 타 개할 능력이 있는지 본질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이 때문에 <국민은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비판이 좀 지나치다고 판단했던지 대담자는 "대통령만의 문제입니가?" 물었다. 이에 대해 추기경은 "정치지도자들이 한 마음으로 나라를 걱정해야 합니다" "여야의 대립이 극심해지고 신당이니 뭐니 하면서 싸움이 계속되고 있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 지경인데도 이 사회의 책임자들은 이를 통감하지 못한 채 각자 자신들의 이권과 기득권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라고 단호한 비판의 뜻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두드러지는 핵심적인 중요한 본론은 대미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번 미국에 가서 미국과의 공조를 굳게 약속했습니다. 또 일본에 가서도 한미일의 공 조를 다짐했습니다. 이런 약속을 꼭 지켜져야 합니다. <약속을 하고 돌아와서 딴소리를 해서는 안됩 니다.> 우리는 미국과의 공조가 깨어져도 좋을 처지가 아닙니다...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발 전을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이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며칠 전 6.15선언 3주년을 맞아 KBS TV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노대통령은 말바꾸기>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것 같습 니다.> 국민 모두에게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게 해줘야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 문을 제대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싫어하는 신문도 읽어야 합니다....나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신문을 신문을 잘 읽으라고 얘기했습니다. 신문을 꾸준히 읽어야 민의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 문입니다." 라고 끝을 맺었다. 고언의 배경 의의 추기경의 고언은 언론의 대담요청에 응한 것이므로 피동적 의사의 표현이라고 생각될 것이나 국내에 서 차지하는 추기경의 종교적 위상과 거대언론의 특필보도라는 매체적 영향력이 상호작용하게 되므로 막강한 대국민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 차원의 표현을 넘어서는 그 영향력 때문에 대 담이 요청되었다고 생각되며 추기경이 이에 응한 것은 기초적으로 참여정부의 본질에 대한 공통적 불 신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참여정부의 등장은 국민적 의사에 따른 것이다. 국민들이 변화와 개혁을 지지하였다는 점 에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변화와 개혁이란 국가의 전반적 풍조에서부터 기존의 각종 체 제에 대한 광범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최근의 과격한 <이기적 운동>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 다, 오히려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개인과 집단들이> 이끌어온 현대사에 대한 진절한 염증의 표시 였다.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3

214 왜 대통령 취임 100일을 넘긴 시점에서 그 정권 출범의 의의를 집어 보려하느냐 하면 정부와 국민에게 <초지일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정부 출범의 의의를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존제하는 한 그 수립되고 실현되어야 할 의미가 사장되고 혼동으로 돌아가면서 결국은 변화의 희망이 무산될 가 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혁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추기경께 서 대담과는 반대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면>좋았을 것이라고 느낀다. 자칫하면 국 민들은 그 대담 보도를 보고 1)나라는 지도자가 이끌어 가는 것이고 백성들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획정한다. 2)대표적 지도자인 대통령이 말을 기분대로하고 대응능력이 없고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 3)아울러 정치권과 지도층은 이기주의와 기득권 수호행태를 버리지 않고 있다. 4)지도층 모두에게 나라걱정 정신이 부족하다. 등등의 절망을 느끼게 할 것이며 대담의 서두에 언급한 대로 나라가 갑자기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 난" 것으로 현재를 규정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현정부 들어 나타난 현상이 아 니라는 점에서 사실의 바른 규정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신임대통령은 명백히 <국가와 국민 생활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이 확고하지 않다면 역시 진실왜곡이라는 중대한 국가적 혼 돈을 야기하는 결과를 조장하게 될 것이다. 대담을 보면 현재의 책임 있는 사람들은 '쓰디쓴 충고( 苦 言 )'가 한편으로는 뜨끔하기도 하겠지만 역시 "우리들이야말로 국가의 중심이다"라고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 대담에서는 국민들의 역 량이나 그 새로운 역할의 의미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절대다수의 구독자를 구성하는 수백 만 일반인은 논외로 하고 얼마 안 되는; 힘이나 권력, 책임과 권위의 소유자들을 향해서만 말했기 때 문이다.> 일반 다수 양식 있는 국민은 그렇게 단순히 <위기로 생각>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얼마만큼 새용 기를 내야할 것인가를 오로지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 정교수의 대통령 화법분석 정문연 정윤재교수의 노대통령 화법분석은 그 긍정적 측면을 강화한 것으로서 그가 지난번 평가에 서 '개인적 성장 환경본질에 근거한 것'으로 보았던 언급한 것과 대비되는 것이므로 어떻게 보면 평자 스스로 해석을 다소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분석의 핵심은 "대통령의 말이 비판과 혐오의 대상으로 비칠지라도 노 대통령은 일정 정치적 전 략 아래 그런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그것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자산이었 다고 보고 단순한 실수라기보다 권위주의 정치문화 파워엘리트 중심주의 상명하달식 침묵주의를 파괴 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라고 보았다.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4

215 그의 결론은 그의 화법이 대중적 반향을 을으키는 데 효과적이었고 취임후 탈권위의 성과를 거두었 으나 동시에 국정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끝으로 대통령에게 '무실역행' '수기'를 주문하였다. '수기'를 강조한 것은 노대통령의 성정과정에서 '두고보자'식의 심리적 특성으로 마음 속에 '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의 화법을 (1)직설 (2)직접토론 (3)유머로 분류하였다. 닫힌 분석 열린 분석 말은 중요하다. 그러나 말의 실체인 행동과 연관되지 않은 말의 분석은 '현상분석'의 중심이 될 수 는 없다. 일반인의 말보다 정치인 공인의 말은 당연히 더 중요하지만 말바꾸기가 성행했던 한국적 상 황에서는 역시 말을 그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대통령의 말실수'라고 표현되는 현상이 과연 무엇을 상 징하는지는 아직 명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역시 그 뒤따른 행동분석이 주 대상이 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성공의 비결이 말>이라고 분석한 것은 일단 맞지 않다. 오히려 <노사모의 형성과정>에서 보 듯이 일관된 의지와 행동이 힘의 시발이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말을 대상으로 한 비판은 일단 은 신중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체적 전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말이 어긋나는 실제 이유는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선택의 곤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곤란을 그대로 표현한 말보다는 최종적으로 선택한 정치적 행동을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 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그의 실언은 '개혁적 행동과 결단의 현실화 과정의 직솔한 반영'이라고 보고 싶다. 그는 최고 책임자가 되기 전 개혁적 입장에 내내 서 있었다. 집권후 개혁적 동지들에 둘러싸여 정사를 수행하였지만 자의던 타의던 여러 견해들을 들어야 했다. 그 '들음의 과정'을 통해서 개혁의 실체를 재고하고 개혁의지와 사상을 재정립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싶다. 중심에 서서 보니 널리 보이기도 하였 을 것이다. 실로 개혁주의자들의 이념이 모두다 그대로 정당한 것은 아니며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이 역시 요구 대로 전부 고칠 수 없는 것임은 '그들도 알고'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비록 약자의 편에서서 일하고 자 하는 의지가 변함이 없을지라도 진정 약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판단하고 어느 선에서 결행하는 것이 옳은지를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약자가 이미 약자가 아닌 상황으로 변전하고 힘을 추구하고 있고 나아가 그렇게 배제하고 싶었던 기득 권 권위추구의 길을 오히려 달려가는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기득권층과 개혁적 권 위의 독점을 추구하는 세력을 빼면 진정한 개혁을 추구하는 국민의 일반 희망은 전연 설 곳이 없게 되 었음을 역시 '해제지아'도 느낄 것이다. 그의 허허로운 말은 그같은 일반 국민의 냉소를 '자신도 모 르게'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의 말보다는 실상을 분석해보자. 그의 "깽판" "쪽수" "개판" "못해먹겠다" 같은 말 등이 주된 비판 의 도마에 오르고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별 필요도 없는 '외래어'를 구사하며 "죄송함니 다"를 붙이는 오만함의 미사여구보다는 호감이 간다. 예를 들어 그의 성장기까지 상상 분석하는 깊 은 학자의 학술적 비판은 결국은 "무실역행" "수기치인"이라는 '무책임한 좋은 말'로 면피하는 처절한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5

216 구태를 보여준다, 바로 그것을 개혁해야할 것이다. 성스러운 지도자의 '언제쯤 좋아질지 모르겠다' 말로 대통령을 <청소년시( 靑 少 年 視 )> 혹은 <유아시( 幼 兒 視 )> 하는 가치적 '자기중심성"이라는 오랜 태도도 혁파되어야 할 대상이다. 물론 정교수의 언급도 그런 점에서 같으며 '성숙한 인간' '도인'이라 고 하는 가치인식의 '자기 중심성'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점 역시 같다. 막연히 도덕성과 능력 품 성 인격을 논하는 분석과 비판은 '지금의 이 절실한 상황'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 무한 열린 분석 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적 반대자들의 주장이나 옹호자들의 일방적 찬미로부터도 벗어나서 '대통령직에 있는' 객관적 실체를 그대로 음미하고 해석하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일반인의 분석과 비판이라면 그런 질타도 가능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 문화 학술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의 언급은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진실왜곡"의 위험이 크고 변화 개혁을 추 구하는 국민의 용기를 좌절하게 하는 것으로서 명백히 <자기보위>행동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 다. 지도자에게도 국민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약화하려는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학술적 언론적인 모든 <이기적 악의>는 비록 <몰각>에 의거한 것일지라도 사라져야 한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자아도취 나 이기주의는 위험한 장벽이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기성찰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다만 우리는 오 직 '성찰하며 서로 용기를 주고 더 용기를 키워 나아가야 할' 때라고 느낀다. 용기를 주는 이해가 또 그런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개혁에 대한 비판 대상은 '이기적 운동' '편파된' 운동에 그쳐야 하고 우리의 절실한고 전반적 인 삶의 양식과 풍조 속에 내재한 <혁신의 필요>를 훼손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특히 <과거 찬미>로 돌 아가려는 역작용을 부추기게 됨을 경계해야한다. 우리는 분명 개혁의 제3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1개혁기는 외부의 힘으로 나라가 무너진 후 다시 새로 운 국가로 출범한 건국적 비주체적 개신이고 제2기는 근대 세계적 국가이상을 추구했던 개발의 시대 를 중심한 시기의 서구적 민주 인권 자유 등을 추구하면서 진행된 근대화작업 속의 이상주의적 개혁 이다. 제3기는 국제환경의 변화와 함께 오래 방치되어온 자아와 전통을 응시하는 본질회복의 개혁운 동이 출범하여야하는 단계이다. 지금은 제2단계가 종결하고 제3단계로 진입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 된다. 이 제3기의 개혁의 본질은 자아회복임을 잠시도 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부터 다시 일어나야 하는 개혁의 싯점임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외부적 가시적 수립을 조급히 추구하는 데 따른 불안이나 갈등은 부수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결의와 성찰이 선해되어 야 하는 것은 역사적 당위이다. 내적 자아의 확립에 주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결의와 결단과 행 동이 요구되므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유동하는 말끝과, 시세에 의지해 고무된 공허한 <대갈 일성>에 <일희일비>할 때는 아닌 것 같다. 의식의 전환이 진정한 이 시대의 힘이라는 사실을 현실 속에 세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이안자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6

217 말에 대한 고언과 분석 217

218 동아시아 사상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18 :: 한국의 실질주의 중국의 현실주의 일본의 이상주의 최근 동양철학자들의 동아시아 사상 이해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동아시아의 사상 특히 유교를 두고 직관적이라든가 비분석적이라는 이해가 그것이다. 특히 삼재사상을 막연한 화해주의로 보려는 태도는 사상사의 상식에 비추어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 다. 특히 환경론적 해석은 더구나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아시아 사상사의 전통은 몇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 왜곡되었다. (1)서구문명의 충격으로 인한 자존의식의 훼손은 최근의 이유이며 서구적 사상과 문화가 대대적으 로 유입해 그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2)역사상 서방사상인 불교사상의 영향도 있었다.귀족사회를 지배한 불교사상의 논리에 의해 왜곡 된 부분이 있었다. (3)제국사의 장기간의 전개로 인한 형식화 체제화의 압력이 있었다. 이는 역사공간의 광대함과 다민 족구조에 기인한다. (4)한국사 형성기 이래의 역사공간적 유동성이 안정을 추구하게 하고 제반 문제에대한 해답을 절실 히 요구하였다. 동시에 한국사는 역사규모의 적절함으로 인해 형식화의 압력은 덜하였으므로 한국역 사상의 형식과 체제란 이념적 성격을 보다 강하게 나타내었다, 그러나 형식화된 사상의 영향을 받았 다. 등등의 요소가 한국과 중국에서 전통사상의 왜곡을 초래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피 한 측면이 있었고 자신의 역사전개의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한 과정이었다. 그 결과 중국의 문명은 다양한 형식의 생성을 촉진하였다. 많은 양식과 문화체제가 만들어지고 평가 의 틀이 생성되었다. 나는 이것은 "중국역사의 강고한 질서 체제구조에 대항한 현실적 형식의 갱 신"현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동아시아 사상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218

219 반대로 일본의 경우는 자신들의 비교적 고립된 역사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의 발전된 체제를 수입하고 이를 소중히 간직하였다. 나는 이를 "일본 역사의 문명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열망에서 나온 절대형식미 이상의 추구"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사의 경우는 그와 같은 형식적 질서체계의 압력이 강하지 않았고 충분히 발전된 문화를 향유하 고 있었으므로 문화 형식에 대한 절대적 추종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는 형식화 의 틀보다는 형식과 내질이 조화된 실질적인 문화의 향유를 추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도 역사적 자아의식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였으모로 사상사 전통의 본질 회복 을 완전히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상당한 정도로 사상사에서 중국유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 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형식유교를 받아들였으되 이미 언급한대로 이념적 성격이 강하여 결국 성 리학을 대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성리학적 내성이 어느 정도 자아의 본질을 발휘하게 해주었 던 것일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삼교통합의 노력은 그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최근의 현재 에까지도 그러한 움직임이 있고 그런 방향으로 유교사상이나 사상사를 이해하는 것은 아직 사상사 적 성찰이 오히려 미급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동아시아 사상사는 본래 강한 경험성과 분석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춘추시대의 논설을 분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춘추필법이라는 것도 결국 그 문필의 내부에 절실한 현실 경험현상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춘추필법이란 이데올로기 이기 이전에 극히 경험적 분석적 사유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 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러므로 춘추필법을 "바다필법"이라고 부른다. 일렁이는 파도 같은 힘찬 주 장의 아래로 바다와 같은 깊고 넓은 경험분석의 실체가 역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안자 동아시아 사상의 새로운 이해를 위해 219

220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01 :: 새로운 에포크를 위하여 -개혁운동의 보편화를 위한 제언-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넘기면서 생각해보면 전에 볼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근대화운동' 이 중심이 되었던 개혁운동이 그 구체성을 부각하면서 오히려 근대초기적 자유주의적 운동의 성격 을 보다 결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지적 운동법칙상 본질로의 회귀 현상일 수 있다. 환언하면 상대적으로 근대성에 대한 이념적 성찰이 진전되었다기보다는 약화되는 것이며 이는 보다 행동주의적 운동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여러 방면에서 '구체제'가 아직 강고하게 살아있으나 그 지 배력이 현저히 약화된 공간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정 혹은 욕구가 '백화제방운동'과 유사하 게 분출하고 있지만 진정한 근대성의 창출 방책은 유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근대성이 거창한 이념으로서만 존재하기에는 우리의 근대적 경험은 너무나 절실함을 다하였다. 현재의 우리에게 거대담론이 쇠퇴하고 있는 이유이다. 시련과 고통 비극과 아픔의 부정적 차원의 근대적 대지 위에서 근대 이념의 수용이나 세속의 생활사적 진보를 이룬 긍정적 성과는 경이로운 것 이었다. 우리의 근대적 경험의 빛과 그림자이다. 그러나 실물과 의미와 가치는 같이 가야하는 것이므로 근대성이란 진정 무엇인가를 묻되 "행복지수" 라는 소박한 준거를 이탈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민족사"라고 하는 우리 명운(역사적 의미 에서)을 초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시 우리에게 거대담론이 필요한 까닭이다. 문제는 그 절실화한 욕구(열정의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가 그 같은 철학적 역사적 물음의 결여로 인해 상당한 정도로 안목의 편향성을 고수하게 되었다는 사실성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근대적 이상이 현실과 보다 가까이 접목하면서 그 구현 과정에서 주관적 속성을 일반적으로 나 타내고 있는데 특히 그 결과로서 아집 집착 성급함 특히 격렬함을 보이고 있고 더욱이는 공동체의 정신을 위협할 정도로 타자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첨예화하고 이를 경쟁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확실히 큰 문제일 것이다. 한국 근대사는 젊은 피의 역동으로 그 활력을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위대한 항일운동과 독재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은 한국 개혁운동의 고전적 모습이었다. 아울러 '서구수준으로 선진화된 발전된 사회'를 표방한 각종의 자유주의적 개혁운동이 근대화를 위한 제반 노력의 배면에서 꾸준히 성장하였 던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한국 근대지성의 목표는 단적으로는 서구화에 있었다.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220

221 서구화의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현대사의 맥락이었으므로 저간의 운동은 분명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 러나 세계보편적 가치로서의 범주에서는 당연한 그 이상들이 그 자체만로서 민족적 이상과 등가화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보편성 자체에 대한 의문 을 동시에 남기게 된다. 현재의, 그 서구적 규준과 관행마저를 능가하려는 '순 이상주의적 개혁'의 의지 표출은 상당한 임의성을 띠어 (1)일반 보편적 현실적 이상을 넘어서고 (2)자아의 개별적 절실함을 규합함을 오로지 근거로 하여 (3)집단적으로 힘을 통해 특정 목표를 달성하려는 왜곡된 흐름을 일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그와 같은 격한 움직임들은 실은 자아발견의 한 과정이며 노력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자위 하지만 그러한 역사성을 인식하지 못할 경우 지 금의 운동들은 민족의 장래를 위한 무거운 족쇄일 수 있다. 우리 현실을 하나의 일반 현대사로서 '넓고 크게'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함과 함께 우리의 민족적 삶이 민족사적 사상사적 전통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좁고 깊은' 이해도 치열히 모색되어야할 현 실적 전제이다. 물론 그러한 역사적 자아의 성찰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그러 나 그 인식은 쉽지 않다. 우리 근대사가 자아훼손의 역사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 민족의 식민지경험은 민족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였고 해방의 과정과 민족상잔 을 겪으면서 서구의 힘과 문화에 대한 깊은 동경과 함께 끝없는 자기 비하의 념을 초래하였다. 일 본에 대해 과거사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 증표이다. 일본도 당연히 그 '자학의 동아시아사'의 일 원일뿐이다.막연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으로는 그 상처들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바로 우리 가 진지하게 역사와 전통을 구체적으로 실직하게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최근 한국의 지성인들은 대개 발전된 사회이상을 논할 경우 흔히 전통역사의 부정적 배경을 말하고 전통사상의 고루함을 강조하여 새 이념이 정당한 것임을 부각하려 하였으며 우리의 전통 생활양식 이나 관습마저도 그러한 틀 속에 가두어 개혁의 목포화 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 한 근거를 깊이 탐구해본 적이 없는 유행과 같은 지적 분위기일 뿐이었다. 그런 지적 풍토는 문화적 사실성을 일탈한 것이므로 위험한 것일 것이다. 동아시아 혹은 민족역사로서 생활사 문화사 사상사 등 역사성을 시급히 구비할 것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현재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삶'은 행복의 한 요소일 수는 있으나 비역사적이므로 위험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임의성이나 주관성은 귀중하면서도 경계해야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 러므로 먼저 근대사에 일관되었던 우리의 역사적 '자기비하'를 끝내야 한다. 예를 들면 중국과 한국이 식민지 경험을 한 것은 전근대사회에서도 동아시아에 흔히 있었던 역사 일반의 일 이다. 중국의 역사는 그들 역사의 40%이상이 이민족 침략과 지배를 받은 역사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 지대에 대한 야만세력의 침입은 상시 있었다. 게르만의 로마침공이 서양 중세를 열었던 것과 같은 이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221

222 치이다. 야만의 침공이 그리스-로마를 기초로한 서양문명을 변질하지 못하였듯이 동아시아의 근대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그들의 문명적 본질을 말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만큼 동아시아 사 상 문화 중심국가로서 한국 중국의 문명적 전통은 가치로운 것이다. 그와 같은 새로운 인식으로 자신의 문명성을 회복한다는 대전제가 결여된 모든 개혁은 머지않아 그 힘을 잃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바로 우리 역사의 새 기원이 시작되어야하는 이 시기 에 우리 역량을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언할 것은 개혁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진정 개혁해야 할 일 들이 산적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개혁의 워킹프로그램을 결정할 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그 해답의 출발선도 결국 자아성찰의 큰 틀 안에 있을 것이다. 그 자아성찰은 모두의 몫이므로 개혁운동은 이제 운동가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 모두를 포함하 는 개혁논의가 절실한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는 사실성을 직시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현재의 우리 모두 뿐 아니라 역사상의 한국 생활인 모두에게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포용과 화해 가 요구된다는 것이다.물론 화해의 당사자들의 절실한 자아성찰이 그 전제이다. 순논리로 말하면 요컨데 문명이란 공허한 우주 공간과 애련의 생명체인 인간의 사이 그 제3의 공간 에서 창출된 '구현된 창조와 자유와 결단의 잉여물'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역사(history)를 시세( 時 勢 )라고 하였다. 역사는 물질적 결과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쓴 근본 이념의 하나이다. 철리적으로는 모든 물질성을 함유한 질체들은 시간 즉 역사의 산물이다. 뒤집어 말하면 시간이나 역사란 역으로 물질성을 통해서만이 역동성을 구현하게 된다. 아마 우리들의 전체 공간이 허령한 것 일 뿐이라면 '유동하는 것'으로서의 시간이란 의미와 가치가 말살되게 될 것이다. 정지한 공간이 된다 는 것이다. 단적으로 시간이란 물질역동의 본질 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물질과 역동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이를 서구적 깨달음으로 표현 한 것이 '상대성 원리'일 것이다. 상대성 원리는 그 삼자간의 형평의 진상을 다소 왜곡하여 시간과 역동을 통합해 에너지(E)로 환산함으로써 다소 이해상의 혼란을 야기하였다고 생각된다. 실 은 아마 (시간을 A, 질량을 B, 동력을 C라고 하여 수학이 아닌 수리적 표현을 해보면) AB=AC 이어야 하고 B=CAA, C=BAA AA=BC 라고 하는 일반 공식을 전제로 하였을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장구에서 '허령불매( 虛 靈 不 昧 )란 공허한 공간이 명백한 현상의 본질로 넘치고 있다는 이해이 므로 이미 전통적으로 그 삼자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역동으로서 역사 를 창출하는 것이므로 개혁이란 신성한 것이며 대학에서 일신( 日 新 )을 말한 이유이다.그러나 도리 어 개혁이라는 이념이 자유로은 역동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한 일은 아니다. 다시 말 하면 개혁지향성은 일부의 전유 이념으로 남아 있으려 하기 보다는 보편한 의념으로서 확충되어 나 아가야한다는 것이다. 내성과 자제와 화해와 응찰이 요구된다. 그 응찰의 주제는 당연히 동아시아란 무엇인가? 근대라든가 역사의 이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이다. 하이안자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222

223 개혁운동의 새로운 에포크를 223

224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48 ::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형평성 회복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며 하이안자 자연주의만으로는 퓨어리즘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지구적 환경운동의 이념에 공감하고 있고 그 대안적 의식으로서 자연주의는 순수하거나 순결한 그 무엇이라는 퓨어리즘에 무작정 몰입하기 쉽다. 이것은 아마도 그 저변에 인간은 죄의 근원이라는 원죄론적 자의식으로 인해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인간 의 욕구와 행동은 스스로 자연주의에 배치되는 그 무엇이라고 인식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올바 른 인식의 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간이 생명체인 이상 일반 자연물의 영역에 속하므로 자연의 범주 가운데 있고 인간의 심성과 육체 그리고 그 생체와 생리가 여기서 제외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는 사고법은 어느정도는 극단적이거나 이해상의 혼돈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적인 것을 이상시하는 것은 상당한 이해상의 오류를 내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적인 것은 이상일 수 있고 영원한 것일 수 있다. 단 특정한 조건하에서 그러하다. 자연의 본질과 본성을 정의한 뒤에 가능한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대개 전통적 성선설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런 태도 아래 자연의 아름다움을 동경한다면 이는 일대의 커다란 모순이다. 성선설이란 단적으로 자연의 본질론이므로 인( 仁 )의 정신과 쌍벽을 이루 는 동아시아적 사유의 핵이다. 결국 자연 찬미론은 단적으로 동아시아적 사유로서만 진정 뒷받침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 사상의 큰 흐름을 유가와 도가로 나누어 이해해온 것이 오랜 관습이었다. 흔히 이해 하는 대로 정치와 사회 문화적 중심 사유로서는 유학을 소외적 출세간적 예술 사조로서는 도가를 꼽아 왔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인위적인 사상사 이해라고하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미 사기의 육 가요지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도가와 유가 등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한나라 당시의 시대모순을 반영 한 한 시대의 이해상의 오류를 지적하려는 것이 목표였다. 그 구분이 중요하다는 뜻은 전연 아니 었다.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224

225 자연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또한 근대 서구지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라는 르네상스기 이후의 관점은 적어도 자연의 의미를 탐토하려했다는 점에서 동아 시아적 사유와 접점을 공유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자연주의 철학은 그 뿌리가 오늘의 자연주의적 편견과도 닿아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물론 그 편견이란 철학자들의 순수한 지적 노력 은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구지성과 동양의 지성의 바탕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려 함 이다. 동아시아 사상은 경험현상의 형평한 받아들임으로 성립되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주류사상 개념으로서 중용( 中 庸 )이나 천인조화( 天 人 調 和 )를 말하는 것이 보통 이다. 그 명제는 정당한 것이지만 그 이해는 간단하지 않다. 무엇에 대한 중용이냐 하는 물음이 전 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용사상은 경험수용의 형평성으로부터 출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물론 그 수용의 주체는 대학에서 말하는 자아이다. 그 목표는 '밝은 깨달음과 가시화된 실 천'( 明 明 德 )에 있었다. 바로 그 다의성을 주목해야하고 특히 근원적 사유법으로서 지닌 제1의 경험 적 본질을 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조화(harmony)가 우주의 본질이라는 이해는 그리스 철학에서도 있었으므로(피타고라스) 그 조화사상 자체는 공통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사상의 내용은 판이하다. 하모니즘은 존재하는 자연 실체간의 조화를 말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조화란 더 구체적으로 절실하게 '사유의 질료로 수용하 는 경험현상의 균형'을 말하는 것이므로 단적으로는 이해와 사유상의 균형이며 이를 구현하는 삶의 형평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자연의 찬미란 동아시아적 사유에서는 심중한 의미로 스스로 나아가기는 어렵 다. 공자가 "물이여 물이여"하고 물을 찬미했던 것은 '쉬임없이 나아가 바다에 이르는 영원한 유동성', '빈 곳을 비약하지 않고 반드시 채우고 나아가는 충실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공자가 "동자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온천에서 목욕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바람쏘이고 싶다"는 증점 의 자연친화적 포부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였던 것은 사실은 '자연주의'라기보다는 '형평이상( 禮 )의 실천적 좌절'을 안타까워하는 심경의 표출이었다. 인간의 문명은 스스로 대안적 제3의 공간이었다. 동아시아 고대문명은 인간의 육욕과 사심으로 구성된 질체가 보편적 의미와 교응을 수행하는 숭고 하게 조건화된 공간을 창출하였다. 이를 전통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형평을 구현하는 기초가 일 찍이 마련된 것이었다. 역사상 이 전통문명이 개체와 보편과의 중계공간으로서의 구실을 상실한 것은 문화 양식의 고가성 ( 高 價 性 ) 귀족성 때문이었고, 근대에는 특히 자본성 상업성이 크게 대두하면서 가격 신분 자본 상업 에 의해 타자의 육질로 돌아가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낸다. 점점 본래의 실질한 가치를 상실해가고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225

226 있다는 이야기이다. 문명은 인간의 순수한 본성과 우주적 원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임에도 하나의 가상의 질체로 돌아 감으로서 영원히 공허한 우주공간을 맴도는 궤도를 잃은 우주선과 같은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의미적 절실함이 사라진 문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새로운 창조적 공간을 발견한 것은 적어도 3000년 전의 일이다. 인류은 그 공간에서 글 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었다. 도기를 굽고 기물의 디자인을 행하고 문양을 그리고 설계를 하였다. 이른바 문물의 사용과 창조 그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그 문명의 향유 과정의 불평등으로 인하여 문물의 의미를 점점 축소하였다. 소수의 의식적 지성인들은 가난함에도 그 공간의 창조적 가치를 이해하고 청빈함으로도 그 공간 사용 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붓 한자루만으로도 그 공간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류가 그같이 고통과 가난 속에서도 창조적 공간을 영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이었고, 예컨데 조선왕조의 문명이 가장 고급한 문명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한 이유 가 된다. 우리는 그같이 고통을 영위하는 문명의 주인공의 시대를 매우 오래 이어왔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런 고통의 산고를 이어가야할지 알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보혁명이 일어나면서 등장한 디지털의 세계는 인류에게 완전히 새로운 제4의 공간을 선사하였다. 아직 얼떨떨한 인류는 그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지 질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새문화는 결정적으로 새로운 의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인터넷 공간은 우선 제4의 공간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문화의 양식에 따 라 극히 자유로운 창조와 향유가 가능하도록 구현되고 실현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에서 새 로 열리는 공간이 제4공간이다. 그러나 실제공간과 혼동되는 부분을 청산하지 못한 면이 있으므로 그 청산을 통해 완전히 자유롭 고 독립된 완전소통의 공간으로 발전할 것이므로 그 자유로움과 독립성의 확보에 의하여 제5공간 제 6공간 혹은 그 이상의 방식으로 무한히 새 공간으로 전환되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제4공간은 사실 복 합공간으로서 무한수의 공간명으로 분화할 것 이다. 인간이 거의 신이되는 과정에 들어선 것이 다. 과거 일만년의 문명사가 신을 대신하려는 역사였다면 21세기 이후의 문명사는 인류가 직접 신이 되는 신화( 神 化 )의 역사가 새로 시작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전통적 종교로부 터의 저항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도 결국 즐거히 동참하게 될 것이다. 바로 새로운 해석학을 통해서일 것이다. 나는 이 새 공간의 중심 개척자는 결국 동아시아 전통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상의 어떤 사상도 문명을 생명과 등가시하는 사유근거를 확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사유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226

227 법으로 사용하는 신유자의 탄생은 필연적이다. 그런 공간의 가치를 믿는 신유자의 등장을 기대하고 믿는다. 편중된 자연주의나 문화주의는 똑같이 우려된다. 자연주의로 경도되는 의식을 우려한다. 227

228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30 1.새로운 미술운동의 의미에서 본 예방미술론( 豫 防 美 術 論 ) 서 언 이런 발표의 장을 마련해주신 관계 미술인 여러분께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평소 미술계에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술은 첨예한 지성과 감성을 반영하여 인상 적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므로 새 시대를 여는 첨병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경이로운 소통( 疏 通 )의 시대입니다. 그 소통을 전제로하여 우리의 모든 미감과 의념 은 독립적으로 확고하게 표현될 때 새로운 소통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매체 로서 미술의 표현력은 무한하고 그 어떤 영역보다도 객관성이 강하며 기호성이 현저합니다. 미술은 소통의 중심 주체입니다. 그 소통 (understanding)의 본질성을 동서간에 달랐 으므로 (drain, passage, flow, draught / 通 達 ) 지금 자아-역사-문물과의 소통이 요구됩니다. 문화사적으로 우리는 "역사와의 대화"(dialogue between past and present)로 요약되는 서양 근대지성의 막강한 영향아래 놓여 있습니다.그것은 실체와 공간과 시간의 성찰이라는 새로운 이성주의의 귀결이었습니다.그러나 서구적 근대지성은 소외의 문제를 유발하였고 소통( 疏 通 ) 의 필요가 대두하였습니다. 이는 소통의 바탕인 서구지성의 경험적 편중성에 기인합니다 동아시아 문명사에서는 이미 기원전 8세기( 春 秋 時 代 ) 이래로 경험현상의 소통이 중심이 되는 지성의 정체성을 창출하여 왔습니다. 전통문물과의 소통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동아시 아적 현상과 미학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자아의 발견일 뿐아니라 동서문화를 넘어 보 편미학을 완성하는 통달( 通 達 )의 길일 것입니다. (현상-동일시/경험률/논리-논어-도리윤리) 동아시아 고전 언어 사상 등 문화사는 소통의 언어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소통이란 소극적 개념입니다. 전통적으로는 통달( 通 達 )이라 하였고 이는 고전시대을 통관하는 문명의 중심 주제어입니다. 미란 그 감성으로 표출되는 지성이며 역사의 산물입니다. 결국 감동이라는 막힘없이 소통하는 힘의 창출과 그 조합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의 구조를 모든 이와 더불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기원이며 역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맹자에 " 天 下 莫 不 與 也 (양혜왕)-천하엔 함께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경전이 훌륭한 소 통의 언어라고 믿듯이 문질빈빈( 文 質 彬 彬 )의 전통을 직접 표현하는 미술이 역시 가장 투명한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28

229 자아통달( 自 我 通 達 )의 양식이라고 믿습니다. <사함( 史 )과 야함( 也 )의 부정> 본격적인 미학론 보다는 미학 이전의 문제를 제가 주로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소외( 疏 外 ) 와 소통( 疏 通 ) 화해( 和 解 )와 형평( 衡 平 ) 등 현재적 개념을 말 씀드릴 것입니다만 그 주된 대상 시대는 2000년 전 이상의 초기시대입니다. 시대를 넘어 존 재해온 개념임을 또한 먼저 말씀드립니다. 단, 일관된 주제어는 물론 문물( 文 物 )입니다. 일 : 문제의 배경 동아시아의 문물관 - 은미한 힘과 소통의 미학 아름다움은 보편적인 것이며 하나의 힘이다. 동아시아적 의미에서는 미( 美 )란 선( 善 )과 분 리될 수 없는 중대한 그 무엇이다. 우리의 미감은 세포 내의 입자를 끌고 파동하여 울리는 작은 힘이지만 우주 근본의 힘이다. 보편적이므로 양식과 체제를 지니는 개별 실체를 초월 하여 모든 대상에 대해 열려 있는 상호작용의 대화 언어이며 힘일 것이다. 진미( 盡 美 ) 진선( 盡 善 )를 추구해온( 논어 팔일/ 論 語 八 佾 ) 오랜 미의식의 정체이다. 이와 같은 근원적인 힘의 드러남을 전통적 개념으로 '미이현( 微 而 顯 )'< 춘추좌전 서>하 다고 한다. 은미하면서도 저명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동아시아사상의 근본 개념들이 우리 미학의 근저를 이루고 있다. 이를 '본질과 실체간의 소통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성선지향성( 性 善 志 向 性 )이다. 우리는 그런 오랜 소통 통찰의 역사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소통성은 동아시아적 전통에서는 '경험(혹은 현상)' 수용의 방식으로서 '모든 현상에 대한 차별 없는 받아들임'으로 구축되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현상간의 융통'을 추구하였 다. 이는 자주 빛으로 상징되었다. 빛은 허용되는 모든 공간에 차별 없이 임하기 때문이다. 바람과 물과 구름 비로 상징되기도 한다. 맹자가 "물의 관찰법은 그 여울을 보는 것이다" (진심장)라고 예가 그것이다.(빈 공간을 소외하지 아니하는 충만한 공간유동성...백의 민족 /홍익인간의 의미)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일반공간과의 사이에 격막을 지니지만 고립성은 확고한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존재의 유한함과 존재의 매 시간적 분절의 사이가 소통의 주요 계기이다. 존재의 미세한 내면에 다시 현미경학적 소통의 통로가 있듯이 모든 존재는 그대로 소통의 의지를 가진다. 그 미세한 통로를 인식하고 열어가는 노력이 생활미학의 본질이다. 맹자의 여 민동락( 與 民 同 樂 ) 사상이 그러하다. 동아시아 사상에서는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 인간과 만물 그리고 문명적 산물은 경험 처리법 상으로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 경험 소통의 형평성을 중시한다.( 中 庸 原 義 ) 그러므로 미학은 문물간의 형평으로 이루어지는 기쁨의 세계이다. "배우고( 學 ) 익히면( 習 ) 기쁘다"는 말은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29

230 그것을 말한다. 배움(학/ 學 )이란 은미한 것을 깨닫는 노력이며 본질세계와 나와의 소통 이다. '습'이란 이를 구현하는 '삶'이다. 미학은 '학'보다는 '삶'의 의미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삶'과 '학'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의 근저에 존재하는 작고 강한 힘을 심( 心 = 良 心 = 仁 )이라고 한다. 그러 므로 미학을 포함한 모든 동아시아 학은 결국은 심학( 心 學 )일 수밖에 없다. 심학은 사단칠정 을 정제한 후에 가능하므로 심학을 극기복례( 克 己 復 禮 )라고 한다. 이 때 '극기'는 '학'이며 ' 복례'는 '습'에 해당한다. 전통개념이 보편 미학의 중심 기초가 될 수 있다.( 仁 義 禮 知 信 / 德 ) 서양적 근대지성의 단초인 "역사화 현재와의 대화"라는 서구적 패러다임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동아시아적 역사 이상과는 차별되어야 한다. 동아시아사는 사상사이며 심성사이면서 궁극적으로는 문물의 역사였으므로 오히려 "전통문물과 자아와의 소통"이라는 명제가 더 절실하다. 이 "대화를 넘어선 소통을 추구해온 오랜 우리의 전통"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고 생각된다. < 보완적 서술 > 1.일반상황-새로운 사회지향성과 개혁운동 수도이전 근대화 성숙 등으로 동아시아 전통에 대한 새로운 주목이 요구되고 사상 문화(문물)에 대한 조명노력 은 이미 이후 주요 지성계 의 주도적 과제(특히 문화적 과제) 2.미학적상황-동서미학의 형평 학제간의 소통 미학상의 혼융성 추구등의 학문적 문제를 공유하나 이때 전통적 요구가 충분히 강조 필요. 3.전통미학의 탐구...신실재론 이래 서구철학적 분석틀에 의한 모색-시대적 전개의 성향분 석에 유력, 본질의 탐구에는 미흡(유학사상)...김하태 <<동서철학의 만남>>(종로서적1985): '신유학 종교적차원'에서 공자가 형이상학에 무관심(p153.) 언급: 오해 -시대과제 인식과 사 상본질과의 쌍방향 소통이 단절되어 숨쉬는 공명으로 재현이 곤란하고 독자미학 의 가능 성과 그 존부를 가르는 단적 문제를 야기한다. :: 서구 역사학파-벤자민슈발츠 등 예 에서 보듯이 western impact론 범주에 제한됨 ( Benjamin I. Schwartz The world of in Ancient China Harvard Univ. 1985)...시대적 분절을 넘어선 전통적 주체적 개념 본질과의 소통 필요(역사적 전승성 확립) 4.소박한 희망-창조적 제작업들이 동아시아 적 사상전통 위에서 영위되어야할 일. 5.<토픽어>현재적 '가두임'에서 '자아의 본원'으로, 자아의 본원에서 나아가 '문명의 근원' 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성찰의 도정 준비 요구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0

231 이: 예방개념의 정초 예방(prevention) 이란 어의는 역사적 개념으로 소급할 때 보다 더 보편적 의미로 살아날 수 있다. 우리는 H. 스펜서 이래로 마술(magic)의 역사와 과학의 역사가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동아시아 문화사의 경우도 그 단초는 무( 巫 ) 축( 祝 ) 사( 史 )로 불 리우는 신비적 직무의 담당자로부터 열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향후 발전의 질과 내용은 달랐다. 예방이란 예언(prediction)과 함께 원초적으로 '창조적 미래에 대한 보다 집중된 관심'을 의미 하며 원시 공동체질서에서 국가형성기에 이르는 동안의 다양한 생활과 생존상의 위협의 문제 에서 제기되었다. 미래에 대한 초미의 관심이 현재 다시 심각하게 제기된 까닭도 역시 우리 생활과 문화의 광범한 위기나 불확실성 때문이다. 삶의 문제로서 말한다면 이 문제는 동아시 아적 지관을 통해서 보다 더 잘 그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총체적 위기에 전인적으로 대응한 행동으로서의 갑골( 甲 骨 ) 복점( 卜 占 )과 서점( 筮 占 )은 처음 그와 같은 위기대응의 양식이었으나 예언론으로 발전한 역사시대에 이후로는 동아시아에는 그 들의 생존상의 일차적 위협을 극복하였으므로 위기의식이라기보다는 우환( 憂 患 )의식이 있었 다. 한 시대 사회의 생존의 위협이 국가사회 이후로는 (1)생산 기술 경제능력의 부족에 기 인하지 않고 (2)권력과 쟁탈 전쟁 등등의 인간의 이기심에서 나오기 시작하였으므로 (3)인 격의 다스림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동서의 사상 본질을 생활사적으로 '우환'과 '위기'로 대비할 수도 있다. 우환이란 '긍정적 낙천적 신념 위의 고뇌'이다.( 仁 ) 이같이 고전적 의미에서 본 예방개념은 예언( 預 言 / 豫 言 )으로 상징되는 주술( 呪 術 )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고대 신관의 신성한 직무에서 오늘의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일어났 다는 점을 중시하면( 巫 祝 / 史 - 吏 - 使 - 師 ) 전연 새로운 미술론으로서 예방미술은 불가피하게 ' 사상사적 고대의 부활'이라는 성찰을 통하여 역사적 당위성을 수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방미술이란 현재적 문제의식을 새로이 첨예화한다는 현실적 의미 외에 미학과 문 명 사상사의 본질 즉 그 원초적 모습을 회복하려는 '역사적 형평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 의미에서는 형평( 衡 平 : equal liberty, just equalty/차하순-형평의 연구 일조각 1983)의 이상과 의미가 사회 정치 개인 등의 구조적 범주에 머물러있다는 한계도 글로벌( global )한 과제로 아직 남아있다. 그러므로 감성적 예지적 성찰을 통하여 절실한 삶의 과제를 극명하게 일상화하는 것이 미학의 궁극의 목표가 될 것이다. 결국은 평등 동등 혹은 균일화(equality)라는 서구적 지적 이념보다는 중용( 中 庸 )이라는 동아시아적 '내성적 경험적' 조화사상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가능성의 통로 라는 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주>:중용을 내성으로만 보는 것은 불완전 고대적 의미의 예언은 1)미래예측의 완전성 2)예언에 내포된 신비적 양식을 유지하되 그 내 면에 치열하게 경험분석의 합리성을 발휘하였다는 점 3)예언의 과정과 형식을 발전하여 문학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1

232 과 예술의 학술 방면으로 발전하였다는 점 4)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지성사의 중심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 5)특히 신비적 경험과 명징한 삶의 제 경험을 통일하려는 경험소통의 노력을 지속하였다는 점 등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적 특징보다는 인간과 자연과 문물을 경험적으로 구별 없이 감각하고 수용 하고 사유하였다는 균형적 포용적 경험소통의 균형주의가 그 핵심적 의미가 될 것이다. 서구 근대사의 성과와 동아시아 근대세계의 형성은 그 동인과 본질과 미래의 방향이 동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가)서양의 경우는 르네상스를 통하여 역사적 문명과 사상 의 본질을 회복한 권능으로 근대문화를 열어 세계적인 도약을 이루었으며 (나)동아시아는 서 양의 영향아래 비자각적 모방적 방식으로 그들의 전통을 보류한 채 그들의 근대사를 열었다. (다)최근에 이르러 통합된 하나의 문명권으로서 세계 문명이 일어나면서 인류는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고 그들의 목적은 동일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 에 그 새로운 흐름에 봉사하는 길도 다른 데 있지 않다. 장기간 유보하였던 자신의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재성찰해야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의 것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적 문화상황에서 학술과 문화의 각 분야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순수한 감각을 연찬하면서 치열한 창조적 모색을 수행하고 있고 그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움직임으로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오랜 그들의 과제를 안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 문명과 사상의 본질을 보다 철두철미하게 회복해야한다는 문제일 것이다. 자기회복과 보편적 이상은 상충되는 것일 수 없고 어떤 보편한 가치도 자신존재의 본질과 의미 의 자각을 기초로 수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개체는 보편이다" 라는 생각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러므로 전통의 문제 즉 전통적 사상과 문명개념에 대 한 성찰이 오히려 모든 전연 새로운 모색의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철두철미한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동아시아 문화의 최초기의 감각과 이념으로 돌아가야 한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맞이하였던 좌절의 역사는 그 원인이 그들의 전 통지성과 문화에 대한 불완전한 전승이라든가 형식화를 통해서 자신의 역사역량 즉 창조적 역량 을 축소해온 데 있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송나라 이래 동아시아적 르네상스가 모색되었지만 사상적 내면 수준에서 일어났고 이 운 동이 문화와 문물의 광범한 분야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 내성적 사색도 지성사 초창 기의 '경험통합-균형적 논리'를 현재화하지 못하였었다. 다시 말하면 경험성의 복원과 문화적 성 찰의 부면에서 미흡하였다는 것이다. 그 경험이란 1)신비적 경험 2)자연적 인생적 경험 3)창조 적 문물적 전체 경험간의 분별 없는 적극적인 통일의 노력을 말한다. 그런 규정이 정당한 것이라면 예방미술이라는 새로운 미술운동적 모색과 담론은 다른 다양한 미술사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특히 전통적 문명의 의미 속에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 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2

233 동아시아 전통의 역사에서 서구적 과학사상은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들과 같은 개체중심적 분석적 실험적 성향은 다소 약하였으므로 그런 방면의 보완이 필요하며 동시에 양자의 적극 적 융통-조화도 중요하다. 삼: 단위별 개념 도식 (1) 예방미술의 의미적 위상을 좁게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이해할 수 있다. 가) 예언 -- 나) 예시 -- 다) 예지 -- 라)과학 사상 철학 예술 1) 제액 --- 2)다스림 --- 3) 궁리 --- 생성 발전의 삶 A) 치료 --- B) 예방 --- C) 양생, 삶의 양식 개선 마)창조적 삶과 이상, 과제의 표현 이것은 한편 문명의 문제 혹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에서의 치료라는 개념과 예방이라는 의미를 연관지울 수 있을 터이고 오늘날의 생태학적 환경론관 일종의 환경유기체설에 의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그러나 동아시아적 개념에서는 위에서 다) 3) 에 머물러 있는 예방의 의미는 이미 동아시아 의 고대를 넘어서 있었다. 의학을 예로 들어도 이미 한나라 시대에 장생불사의 양생술이 유행 했던 것이 그 예가 된다. 그 양생술은 영생불사를 구현하지는 못하였으므로 완결된 것은 아니 었으나 삶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또 그 양생술이 오늘의 과학적 영생의 연구와는 연구의 정밀함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사 유는 정밀한 과학적 사유만으로 구현될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으므로 고대적 양생술이 유지한 신비적 태도는 아직도 유용하다. 동아시아의 일반적 예언론( 預 言 論 )의 발달은 그보다 더 정밀하고 경이로운 조화사상으로 넘치 고 있다. 또한 그 조화 균형사상은 단순한 직관적 신비적 이념적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모 든 경험을 수용하고 조화롭게 다루는 경험성을 그 초석으로 하고 있다. 동양사상은 신비로운 사상이 그 중심이 아니다. 강한 경험성과 정밀한 논리적 기법의 탐구를 그 중심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예언론은 이미 은( 殷 ) 왕조 시대부터 예지적 본질을 드러내었으며 주( 周 ) 왕조를 통하여 이를 완성하였다. 천명사상( 天 命 思 想 )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는 종교적 창조론이 아닌 일종의 해석학의 효시였다. 그 결과가 "문명( 文 明 )" 개념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3

234 사: 문명적( 文 明 的 ) 의의의 전승 오늘날 문명(civilization)이란 문화(culture)를 개념적으로 보완하는 개념으로서 상호 호용 되는 용어이다. 문화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레슬리 A. 화이트의 상 징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 상징설이란 <의미 부여된 표현물>을 나타낸다. 탐 구된 의미를 부여하여 의미화된 창조 표현 양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화나 문명의 정의로서 보편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의미부여의 본질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번역어가 아닌 동아시아 원어로서 문명( 文 明 )은 이미 이른 시기에 위의 상징설과 유사한 의미에 도달하여 있었다. 그러나 '시빌라이제이션'이나 '컬쳐'에 비하여 문명은 보다 포괄적이 고 정밀한 사상적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번역어로 쓰이던 좁은 의미를 걷어내고 ' 文 明 의 원의 그대로를' 사용하여야하겠다. ( 文 -문양, 문장, 창조적 제표현 明 -자아발견, 구현, 지성의 빛, / 삼재: 三 才 /천-이상, 지-현상, 인-문명) 오: 전통적 어의와의 접목 미술이란 'Fine Arts'의 번역어이다. '화인아츠'로서 미술이란 단적으로 그림 조각 등 회 화를 말한다. '문명'이라는 어의와 마찬가지로 미술은 이러한 회화적 의미를 포괄하여 더 심중한 어의를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Fine Arts'를 '미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문자 그대로의 미술의 전통적 어의 자체 속에는 심중한 사상 사적 의미가 있음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화인아츠로서의 미술은 문물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역색( 易 色 )' '호색 ( 好 色 )' '채색( 采 色 )'등등의 표현 이라는 말에 더 가깝다. 맹자에 아름다운 색이( 采 色 ) 눈으 로 보기에 만족하지 안습니까?( 采 色 不 足 視 於 目 與 -<<맹자>> <양혜왕> 상)한 말이 그것이다. 특히 그림은 회사( 繪 事 )라고 하였다. <주>: 1.현상의 창출( 彩 /문채 물채=물색)을 중시- 文 昭 明 物 2.정서적 감각적 호소성 병행 <<논어>> 1.<학이> 현현역색( 賢 賢 易 色 ) 2.<자한> 오미견호덕여호색자야 ( 吾 未 見 好 德 如 好 色 子 也 ) 3.<팔일> 자하문왈교소천혜미목반혜소이위현혜( 子 曰 巧 笑 兮 美 目 盼 兮 素 以 爲 絢 兮 ) 4.자왈회사후소왈예후호( 子 曰 繪 事 後 素 曰 禮 後 乎 )...비텍스적 표현주의적 태도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4

235 미( 美 )란 미인( 美 人 )의 의미가 대표적인데 미인이란 미모( 美 貌 )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맹자에 이르러 충실( 充 實 )의 의미로 내면화하였다. 이 충실이란 진실 혹은 실재나 사실성을 전제로 한 지성화된 말로 전환된 이었다. 즉 맹자에 의하면 개체적 실체의 진질 진지성 같은 것이 미의 속성이다. <<맹자>> <진심> 하 - 선인신인미인론( 善 人 信 仁 美 人 論 ) - 가욕지위선( 可 欲 之 謂 善 ) : 학습행동의 실체(생활) 유저기위신( 有 諸 己 謂 信 ) 충실지위미( 充 實 之 謂 美 ) 충실이유광휘지위대( 充 實 而 有 光 輝 之 謂 大 ) 대이화지지위성( 大 而 化 之 之 謂 聖 ) 성아불가지지위신( 聖 而 不 可 知 之 謂 神 ) 술( 術 )이란 '법 가운데 교묘한 것'을 의미한다. 위의 미( 美 )를 구현하는 극히 정밀한 기 법을 의미할 수 있다. 인술( 仁 術 )이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경우 주로 행동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표현된 사물 객체를 지칭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 표현된 것은 예( 禮 ) 혹은 문물( 文 物 ) 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표현으로서의 미술은 대표적으로 '문물의 개념' '예의 개념' 등에 포괄되어야 한다. 동아시아에서 미술은 단지 표현된 결과를 말하는 것은 아니며 그 기초가된 정신과 그 구현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널리는 학습( 學 習 )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포괄되는 말이다. 격물치지( 格 物 致 知 / 大 學 )-학습( 學 習 )-문물( 文 物 ): 繪 詩 文 - 예( 禮 ) 등의 개념은 상호 분리되어 이 해할 수 없다. <보술>학습시대론-공자의 주술 전통 동참문제: 괴력 난신의 경원( 不 語 怪 力 亂 神 : 論 語 述 而 )......주술의 시대에서 지성의 시대로 ( 學 / 習 ) (1)향인들이 음주례를 행하면 공자는 어른이 나가시면 곧 나갔고 향인들이 나례굿을 하면 조복을 입고 동편섬돌에 올랐다.(논어 향당) (2)그 조상신이 아닌데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다.-조건화(논어 위정) (3)백성들이 의( 義 )에 힘쓰게 하고 귀신을 경원한다면 지혜롭다하겠다(논어 옹야) (4)고(고:나팔형 술잔)가 고같지 않으면 고인가 고인가(논어 옹야) (5)문왕은 이미 돌아갔으나 그 문물은 여기 있지 않은가(논어 자한) (1) 鄕 人 飮 酒 丈 者 出 斯 出 矣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5

236 鄕 人 儺 朝 服 而 立 於 階 ( 論 語 鄕 黨 ) (2) 非 其 鬼 而 祭 之 諂 也 ( 論 語 爲 政 ) (3) 務 民 之 義 敬 鬼 神 而 遠 之 可 謂 知 矣 (4)고 不 고고 哉 고 哉 (5) 文 王 旣 沒 文 不 在 玆 乎 ( 論 語 子 罕 ) 육 : 결론 - 格 物 致 知 學 而 時 習, 明 德 日 新 天 下 文 明, 文 質 彬 彬 君 子 時 中 법고창신( 法 古 創 新 /'상군서', '남사 후비전')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새로움의 성취는 필연적 으로 역사성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성이란 삶의 시의성과 본질성의 긴장된 상호작용 이다. 역사란 자아결단의 과정이며 문명이란 그 성취이다. 그러므로 역사로부터의 유리는 탈자아를 의미하게된다. 모든 정의나 아름다움 같은 미학이란 결국 자아와 세계와의 일치의 성과이다. 모든 실재는 시공의 존재이므로 현재적 자아에 머물 수 없고 현재적 문제의식에 매 몰되어 아니 될 것이다. 그 일환으로서 전통미학의 개념들을 오늘의 공기 속에서 적극 재음미 할 필요가 있다.... 오솔길 칼럼니스트 하이안자가 다음의 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동아시아 전통사상 의 주요 개념과 사유법들이 오늘의 문화언어의 중심으로 돌아와야한다고 믿어 말하자면 사상 사적 주요 개념의 현재화를 목표로 시론한 것입니다.<필자 주> :: 예방미술세미나 일시 (16일, 23일, 30일)매주 금요일 18:00 20:00 장소: 대전대학교 외국어정보사회교육원(대전시 대흥동 442번지) 주제: 전통미학과 자아와의 소통 주최-예방미술연구소 대전광역시 중구 대사동 (TEL/FAX 042/ ) (C.P )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6

237 빌표주제-전환시대에 선 한국미학의 모색 : 예 언 자 들 그 목소리를 이어서... 1차 발표제목 - 예방미술론의 의의와 방향 발표자 - 夏 夷 案 子 (유교연구소장 문학박사 兪 德 朝 ) :: 목 차 제1일- 1.(16일) 새로운 미술운동의 의미에서 본 예방미술론 <보충서술>----학습시대의 의의 <참고문>--화해(Reconcilation) 제2일. (23일) 선과 공간의 소통 <참고서론>----한호서체론 <참고화론> 사과전 하이안자 새로운 미학의 추구/예방미술을 위한 전통 미학론 237

238 논어의 해석학적 새지평 :59 논어의 해석학적 새 지평을 위하여...논어 해석의 일반문제 논어는 주지하듯이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제자들과의 가르침의 현장에서 주고받은 대화이기 때문에 일반의 언설과는 다른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논어를 읽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선입견을 제거하고 나서야 그 원 모습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선입견이란 (1) 논어가 유학사상의 출발이라는 오해이다. 대개 영문으로 유학을 Confucianism 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유학을 공자학으로 한정하는 의미 를 상당히 함축하고 있으므로 유학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라고 할 수 없다. 그 개념은 유교라고 번역되는데 서구인의 시각에서 그리스도교에 대응한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어의를 지니고 있으므 로 우리가 종교라는 뉘앙스에서 "유교"라고 통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맹자는 공자의 업적을 지칭하여 집대성자( 集 大 成 者 )라고 하였다. 공자를 동아시아 사상사의 집성자로 본 것이다. 또 성리학자들의 학통관에서도 요( 堯 ) 순( 舜 ) 이래의 전설시대 이후의 사상사적 전통을 계승 발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춘추좌전( 春 秋 左 傳 )을 통해서 공자 이전의 놀라운 지적 발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공자가 그와 같은 일반 사상사적 전통을 전승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공자학이 장구한 동아시아 사상사의 맥락에서 바라볼 때보다 더 자유롭게 그 사상사적 진상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특별한 성자에 의해 창립된 종교와 같은 출발을 가지기 보다는 유학은 길고 면면한 사상의 역사의 산물이라는 이해가 우선 필요하고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에 가까운 이해는 지양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유학-유교는 동아시아 일반 사상 사의 요약적 귀결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단순한 명상이나 직관으로 이루어진 문학적 텍스트를 그 경전으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학 경전은 (1)건실한 경험성을 기초로 (2)분석과 통찰을 수행하여 이루어진 극히 일상적인 논어의 해석학적 새지평 238

239 사상사라는 본질성을 지닌다고 생각해야 하겠다. 동아시아 사상이 막연히 신비롭다는 이해는 완전히 허구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2)유학은 문화주의 가족주의 예교주의를 지향한다는 이해의 왜곡이다. 유학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사물과 인간과 세계를 경험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이며 그 각 시대의 결과들이 각 시대 유자들에 의해 결실을 맺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의 중심 개념을 해석할 때 그 당대의 역사적 환경이라는 구조 속에서 해석되어야 하고 다음의 시대 에 유의미한 의미만이 계승되어 나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시대성을 망각하고 고정된 개념을 고수할 때 고루한 선비가 될 것이다. 전통학자들이 " 유학자들이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면 배움이 쓸모가 없다"고 한 까닭이다. "오늘의 세상에 태어나서 옛날로 돌아가는 자에게는 재앙이 미친다"고까지 말해왔다. 유학에서 문화와 예의를 강조하는 이유는 유학의 본질상 널리는 "경험의 포괄성과균형성'이라 는 원칙에 의한 것이며 하나의 해석 음미의 '대상경험'을 나타내는 것이지 고루하게 고수하라 는 의미는 원래 없었다. 다만 역사 문화의 산물로서 유의미한 정신을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일 정한 문화 사상이 전승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유학의 역사에서 "형식적 개념의 고수"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 "해당 시대의 역사적 모순 에 의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경전 텍스트가 오로지 중국사상이라는 오해이다. 공자가 동이족을 군자의 나라라고 언급한 이래로 맹자는 유학의 선사( 先 師 )로서의 성인인 순( 舜 )과 중국 고전문명의 확립자인 주나라 문왕( 文 王 ) 무왕( 武 王 )을 동서이인( 東 西 夷 人 )이 라고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주지하듯이 우리 동이( 東 夷 )족은 하( 夏 )민족과 쌍벽을 이루면서 구이( 九 夷 )의 하나로 존재했었다. 그 일부가 중국고전문명과 사상을 수립하는데 중심적 영향을 주었으므로 유학사 상은 본질적으로 한편 동이족의 사상사이기도 한 것이다. 한자로 쓰여있으므로 중국사상사라고 할 수만은 없으며, 동이족은 유학사상에 고전적으로 높은 비중의 지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까지 성취한 '동아시아 유학의 중심국' 으로서의 명실상부한 학문적 성과는 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학의 텍스트는 동아시아의 사상사로서 폭넓게 창조적으로 자유롭게 해석되어야한다고 생각되어 논어의 원문을 일련의 시리즈로 전편을 새롭게 해석해보려고 한다. 해석의 방식은 주자 주석이나 역대 전통주석을 충분히 검토하되 특별히 구애되지 않고 역사적 상황과 사상사적 맥락을 위주로 하되 정밀한 문헌해석으로 뒷받침되는 경우에만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열어보려고 한다. 문헌 해석적 경신이 없이 성급하게 새로운 해석을 도모하는 것은 논어의 해석학적 새지평 239

240 다소 지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끝으로 종합 부언하여 경전의 해석의 일반적 유의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언급 해두려고 한다. (1) 당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환경과의 긴밀한 연관을 유지하는 해석 (2) 시대를 초월하여 삶의 상식으로서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해석 (3) 정밀한 어법과 논리의 추구를 통하여 문맥에 대한 의미의 동적인 파악의 노력 (4) 경전 주요 표현어의 개념을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풍부한 여지를 남기는 해석 (5) 신비적 현상, 자연적 현상, 문명적 형상 등 제경험현상 사이의 균형과 통일의 길을 여는 해석 (6) 사상사적 전승의 실상과 의미를 논할 수 있는 해석 (7) 생활의 한 양식으로서의 해석 등등이 실제 해석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문제이므로 그런 부분에 유의하면서 해석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주> 필자가 ohmy News에 올렸던 잉걸기사입니다. 논어의 해석학적 새지평 240

241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05 ::역사의식의 함정-2 <1.예방액션의 부재현상과 오버액션> 최근의 잇단 대형 재난을 접하면서 특히 몇 일 전의 대구참사를 당하고 나서는 더욱 우리 사회에 <인재( 人 災 )>라는 비교적 생소했던 용어가 유통력을 강화하고 있고 우리사회의 특정 현상을 지칭하는 언어적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하철방 화는 가장 극명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그 의미적 단면을 보여주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일련의 재난적 현상들은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거나 자연적 재해가 아니라 는 점에서 분명 <인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인재>라고 규정하는 평가자 들의 이구동성의 견해가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아무도 지적하려고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그 <인재>라는 비판은 <사람이 일으킨 재난>이라는 보편적 의미라기보다는 정확 히는 <타인이 일으킨 재난>이라는 무책임한 의미를 지니고 유통된다는 사실이다. 절실하게 문 제를 나의 내부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구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한 모습은 반복되고 있다. 사고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벌써 그 같은 징조를 드러내고 있다. 방화범이 사고로 인한 장애인이며 정신질환자라 고 알려지고 보도되었을 때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내가 아닌 다른>사람의 부당한 행위 때문이 라고 몰아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장애인 관계자와 단체는 몰론 이에 반발하였다. 잠시후 실제 로는 기관사의 판단착오와 상황실의 근무태만으로 인해 대형참사로 이어진 것임이 알려지자 기관사와 사령실 관계자를 구속하여야한다는 의견이 일어났다. 이 역시 내가 아닌 <타인의 잘못> 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나>의 존재는 그 오류의 내부에서 초연한 것으로 위치 지 우려는 노력이 그 내부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일반적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 <오류의 사슬> 즉 <비극의 사슬>을 감추기에 급급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여러 매체에서도 젊 은이들의 그 같은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들렸다. 이와 연관하여 재난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지적되기도 하고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문제 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진단들이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의 실체를 적확하게 밝힌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왜 그토록 참혹한 재난과 사고가 이어지는데도 사람들은 그 재난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려는 <구체적 예방 액션>이 전반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 자 체가 심각하게 질문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준비된 해법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가부장 권위주의>를 지적하기도 하고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241

242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아직 멀었다>는 평결을 내림으로써 우리사회가 기준미 달의 저급한 사회라는 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는 자존의식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것도 <문제의 중요한 하나의 원인구조>일 것이다. <편가르기> <특권의식> 등이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특히 <시스템의 부재>라는 지적이 형식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인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즉 기계적 구조체를 조성하여 자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을 이루자는 것인데 오늘의 재앙이 어떤 전문적이고 첨단화된 시스템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는 그 견해는 대표적이며 책임회피적인 자기비하적 <선진국형 해법 기다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시스템이 구원의 길일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미 지적되어 있듯이 지하 철 시설과 시스템구조는 선진국의 기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특히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문제인 것이다. 그로 비롯한 행동이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의 것은 적당히 만들고> <수출용은 철저하게 만든다>는 그 한 자세와 태도에 있다. 곧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경제 발전론이라든가 한국근대화의 내면논리 즉 선진국비약론이 결국은 일부의 사욕을 지탱하는 것이고 허상에 그치는 무용한 것임을 의미한다. 최근 어떤 유명한 교양강의매체에서 한 인사는 50대이상은 배고픔을 아는데 그 이하 새로운 세대들은 배고품을 모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과연 한국은 <현재 배고품을 잊어도 좋은 번영된 나라인가?> 오히려 아직 <배고픔을 과거에 못지 않게 더 뼈아프게 실감하는 많 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현재 배고 픔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수의 배고품을 모르 는 사람들이 사회를 주도하기 때문에 바로 그와 같은 <경제발전 수출지상주의라는 중심 의 논리>로 구성된 오버액션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의 배고픈 시장기는 결코 50-60년대에 뒤지지 않는다. 굶주린 사람들이 다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무성한 반성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해법에서도 자신의 내부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려 는 진지한 일관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이 결국 문제일 것이다. 한동안 <내 탓이요>운동 을 일으키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탓>이란 <내 탓>이 될 수 없다. <탓>이 란 <원인> <이유>를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탓이란 <책임을 면하려 는 자기 합리화>의 방식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일 수 없는 언어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대개 나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데 있으므로 항시 회피할 수 있는 조건을 주게된다. 아마 진정한 해답은 의외의 곳에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잃어버린 자아가 그것이다. <2.자아의 상실현상의 직시요구> 우리는 사회가 근대화될수록 자아상실의 현상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자아상실의 현상 중에 가장 분명한 것이 삶의 실제 모습이다. 삶의 가치를 자신 속에서 찾을 수 없도록 강요 하는 삶의 분위기는 해소되어야 한다. 자아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풍토가 자라나야 한다고 믿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242

243 는다.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가치이면 더욱 좋을 것이나 서로 남의 부분을 박해해서 얻 어지는 가치는 배제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근대적 가치는 재평가되어야할 시점에 도달하고 있고 가치지향성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인가를 처절히 목도하고 있는 지금이다. 조목별로 보자. (1)서구물품에 대한 경이로운 찬탄으로 시작된 근대적 생필품문화는 양복 양장으로 대표되는 외국복장을 이 사회에 넘치게 하였다. <신사> <숙녀>로 지칭된 복장문화는 그대로 서구적 생활 을 이상으로 그려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양옥집에 침대생활 서구음식의 유입 육아 결혼 등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행해지는 여러 의식의 서구화 같은 것이 자연히 부수되었다. 그러나 옷을 꼭 그렇게 입어야하는 것은 아니고 일상생활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 활방식과 물품이 있음을 충분히 참조하면 그만인 그런 것이었다. 문제는 서구적인 생활문화 가 환상처럼 우리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2)문화와 사상은 더욱 심각하다. 오늘의 창조적 작업을 지배하는 것은 서구의 미학이며 오 늘의 사회정의란 서구의 법과 제도이다. 물론 그 가운데 지성적이고 철학적인 기초에서 우러 난 진절한 면이 있는 것을 부인 할 수 없고 특히 과학적 사고를 통한 지식의 새로움은 인류 사상 혁신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지고한 지성적 지표로 그대로 전환 내지 전용되어도 좋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모더니즘 시는 얼마나 허위로 가득차 있으며 반전통적인가?> <우리의 근 현대 소설은 얼마나 자의적이고 전통 파괴적인가?> 라고 자문했을 때 상당한 탈전통의 실체성 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근대화는 전통을 부정함으로서 시작되고 있다는 중대 한 오류이다. 그 전통이란 정념과 사고의 일반적 지성의 영위 면에서 가정 결정적으로 괴멸 되어갔던 것이다. 우리는 문화의 체제로서는 또는 지식으로서는 전통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문화유산을 수호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신적 자성은 없고 구체적 액션도 없다. 허무한 연극 같은 미사여구만 만연하고 있을 뿐이다. (3)철학과 역사학 문학은 어떤가? 역시 그 학문적 이론이 서구모델이다. 그 가운데는 전통사상 에서 바탕을 둔 것은 거의 없고 부정일변도이다. 과학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나는 전통적 방식 으로도 첨단의 과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후학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등등의 학문 적 분류는 동아시아에는 없었지만 그 과학은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과학의 내부에서도 전통 적 방식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험> <분석> 등의 면에서 서구가 독자적인 면이 있지 만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3.한국 지성의 분석력의 현주소> 최근 한국의 최고지성의 한 분이 <아직도 천하태평>이라는 제하의 월요포럼을 모 일간지에 실었다. 평론가로서의 식견을 유감 없이 구사하여 <신중한 지휘관>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 으로 결론을 맺었다. 아마 새 정부의 위기대처방식에 대한 우려라고도 볼 수 있는 의견이 었다. <위기 사태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근거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지에 입각한 그 견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243

244 해는 지금의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지적이지만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적 소스는 <역사> 를 거론한 것이지만 <역사>가 아닌 <사실 참조>였다. 사실참조란 무엇인가 역사에서 교훈성을 발견한다는 초보적 역사의식으로서 근대 역사학이 배제하려는 방식이었다. 물론 <배제하려는>이라는 뜻은 <그 이상의 깊고 절실한 의미를 찾아 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동아시아는 이미 그런 역사를 해왔었다. 인간탐구의 일환으로 역사분야를 중요한 사색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맹자의 <오백년왕자설>은 그 하나의 결 과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는 말을 인용하였다. 그는 역사는 참고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교훈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반성을 의미하고 역사의 부정을 의미한다. 긍정 할만한 사실의 역사는 경시되는 것이다. 그 부정성은 결국 자신의 부정을 내포하므로 위험하며 나아가서는 진절한 자기발견에 해악 이될 것이다. 인생은 반성으로만 개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한국이 외 국을 침략한 일이 없다>는 일반의 이해는 <고려와 원의 일본침공>에 비추어 사실이 아니라 고 말하여 역사지식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침략한 일이 없다>는 말은 한국역사의 본질을 잘 설명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될 수 있지만 <엄연한 사실성>은 강 열하게 지니고 있다. 또 사회학자 8명이 쓴 <한국사회의 위험과 안전>이라는 예언적 저술이 있었다고 최근 소 개되었다. 그 논리는 (1)압축적 근대화과정에서 모험을 추구하는 영웅신화의 추구 (2)친족 동향 동창 등 사적 네트워크로 구성된 한국사회의 조직적 특성이 공적 제도와 충돌 (3)압축 적 근대화를 통해 도달한 단기적 서구화의 결과 탈산업사회에 진입한 서구의 극한적 개인주 의가 여과 없이 유입되었다는 의견 (4)예방위주의 관리체계보다는 상황위주의 관리체계의문 제로 부처벌로 분산된 관리체계를 통함조정해야 한다는 안 등이 주장되었다. 이들의 주장 속에도 근대화의 역사가 거론되고 있으나 역시 위의 <참조>적 수준을 넘지 못 하고 있다. <근대화와 그 부수된 행동>들은 한국 근대사의 한 부면일 뿐이며 그 자체는 역 사의 학적 자료로서 <역사사실>일지언정 <역사자체>는 아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지성적 전승>과 연관된 그 무엇이어야 한다. <4.결론 - 초역사주의의 회복이란 절대명제> 이상에서 한국 지성의 비역사성 혹은 반역사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반 세기 이상을 이끌어온 우리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비역사적인 것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 하다. 이미 조선말의 개혁운동가들과 신지식 엘리트들이 역시 그러한 길을 열어놓았었다. 그것은 그 시대적 여건상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비역사주의는 근대지성으로서는 결정적 한계가 될 것이다. 나는 서양식의 역사주의를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며 서양 역사주의의 지적 억압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망각하는 비극을 깨우치기 위함이다. 우리의 이상은 서양의 역사주의를 초월하는 데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244

245 있고 동아시아 중심사상은 이미 초역사주의로 영위되어 왔다. 나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역사주의>와 <초역사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두 문명적 패러다임은 모두 전 문적으로 역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역사자체에 편중되지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준 것이 동아시아였다. 한국은 현재 초역사주의의 이상을 물론 요원한 것이고 서구식의 역사주의마저 포기함으로서 서구적 근대화성공의 역사마저 <19세기 계몽주의> 가치관으로 포장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성취한 역사사실을 왜곡하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이며 그 이상의 지적 범죄 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냉정히 자신의 역사사실을 사색할 때다. 그 역사적 시색의 결과가 이 사회를 우서 인도해야하고 나아가서 초역사주의적 사상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다. 각 현장의 실무자들을 질책하고 조직을 재편하고 엄한 형법을 만들고 하여도 아마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며 무슨 통합관리라든가 시스템의 첨단화가 아무리 진전해도 사회의 위기 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자존의식>이 없는 곳에서 나오는 삶의 불안정함이 결국 문제이기 때문이다. < 夏 夷 案 子 > Whashim the Haianist HAIANJA Deog Jo Yuu 한국인의 지적 함정(4) 역사의식의 함정 245

246 한국인의 지적 함정 (3) 사상사적 함정 :36 (3)사상사적 함정-1 <1> 한국사상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극히 막연해진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절대의 지적 함정을 처음부터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한민족은 지성적으로 그렇게 불행한 민족일까하고 생 각하지 않을 수 없다. (1)적어도 유학사상을 그들의 사상적 본류에서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것이 다. 유학을 제외하고 우리 사상사를 볼 수 있는 자료는 (2)역사 문물 유적 유물 문학 예술 민속 언어 생활사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제 분야는 내면에서 유학의 이념과 어떤 형태로든 교섭하 고 있다. 그러므로 비유학적 독자의 연구대상이랄 수 없다. 그 (2) 가운데서 다시 독자적인 분야를 석출해내야 한다. (3)특히 선사시대의 지적 상징으로부터 사상사의 본질적 발원을 검 토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과연 한국사상사 독자의 자료를 독립적으로 완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못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 상은 우리민족 만의 일은 결코 아니다. 민족사상의 길은 어디 있는가? 유교적 양식과 비유교 적 양식의 두 측면의 모든 사상사적 내용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 한국사상사의 독자적 전개의 내용과 실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은 상시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사상사적 개념과 외양이 어떠하든 넓은 의미에서는 한국사상사에 함축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독자의 언어와 개념으로 완성되어야할 것이다. 즉 어떤 사상 사적 자료나 대상이든 불문하고 그 내부에서 민족사적 지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과제의식은 오늘날의 지적 상황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구의 사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창의적이고 쇄신된 우리 정신의 이해를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중심개념 의 전승을 바탕으로 영원한 민족사상사를 구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족사상사의 정체성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일 것이다. 현재의 최대의 지적 딜렘마는 바로 우리 사상사에 대한 기초 개념의 정의가 부족하고 그 정의된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사상사적 힘에 대한 관심 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그같이 유학의 권외에서면 다소 사상적 형식과 체제에서 당혹스런 질문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혹스러움이란 결국은 유교사상적으로 체제화된 사유관습에 기인 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결국은 유교사상에 대한 성찰로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 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문제 우리의 사유전통은 <독차적 형식> <유교적 형식>의 두 양식 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 유교적 딜렘마와 전통적 딜렘마의 공존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이중적 딜렘마로부터 우리 사상사는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함정이라고 볼 수 한국인의 지적 함정 (3) 사상사적 함정-1 246

247 있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단언해야 하겠다. 그것은 알고 보면 함정이 아니고 일종의 축복이다. 왜 함정을 두고 도리어 축복이라고 말하는가? 독자적 사상사 전승상의 과정에서 는 고정된 자기 아집적 성격이 오히려 적어지고 보편적 사색을 자극하는 다양한 매체를 사 용해왔다는 뜻이다. 아니 그보다도 보다 기초적 사유가 다양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이 유에서이다. 그 자유란 사상영위상의 자유가 아니라 지적 오만함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 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비하의 해를 입었다. 그 해는 오만함보다는 낫다. 중화주의 보다는 그 왜곡의 정도가 적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동시에 형식화된 중국유교의 유행으로 사상 사적 활력을 다소 상실한 것도 사상적 장애에 해당한다. 중국의 경우 민족사상사의 정립문제에서는 우리보다 더 심한 딜렘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그 들은 형식상 유교라는 주류사상을 확립하였지만 그것은 거의 허울이었다. 유교라는 이름과 경전만으로는 사상사가 전연 영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사상사가 한왕조로부터 당말까 지 중단되어 있었다고 단언하는 송대 성리학자들의 말은 상당한 사실성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 관점은 사상사란 보편한 사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구체적 경험적 질 체가 기초가 되는 사유여야 한다. 그 사유의 보편성면에서 송대 이전의 제국의 역사는 거 의 경험적으로는 허구의 사상사가 영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엄밀히 사실이 ]다. <허구의 사상사란 무엇인가> 개념에서 개념으로 건너가며 전승되는 것으로 경험상 상을 상실한 사상사를 말한다. 모든 논리와 사유는 튼튼한 대상경험을 질료로 하여 비로소 창조적 활성을 지니고 새 시대를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사상사적 정체성의 추구와 문명권적 혹은 세계사적 보편성의 추구는 정신사의 양대지 주이다. 우리의 경우 이 양측이 다 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 신사적 정체성의 추구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모든 지적 문화적 작업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2> 한국사상사의 메시아는 <홍익인간>이라는 구원한 개념이다. 사상의 역사에서는 이 말은 언 제 정립된 것인지를 우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개념형성의 시점을 문제삼는 이유는 과연 이 언어가 신화시대 이래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서 비롯한다. 먼저 홍 익이란 용어는 일반의 한문 표현으로서 매우 특수하다. <증익>이라든가 <부익>이라는 말은 한문적 표현으로 흔한 것이나 홍익이란 표현은 그러한 일반적 의미를 변별하는 의미적 쇄신 성이 있다. <홍>이란 글자( 弘 )팔을 굽혀 활을 당기는 모습이며 글자의 발음은 홍수( 洪 )에 서 유래한 것이다. 무한 이 넓어지는 역동성을 말한 것이다. <익>이란 그릇에 넘치는 물(< 溢 > 에서 유래하여 분화함)을 의미한다. 충만함을 말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의미를 연결하면 <이익 되게 한다>는 세속적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목적어는 <인간>이다. 인간( 人 間 )이란 문자 그대로 <사람의공간>이다, 무엇을 사람의 공간이라고 하였는가? 인간이 사람을 의미하는 경우는 인체의 공간 점유성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점유한 공간은 일 반공간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를 지칭한 경우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한 것인데 이 경우는 그대로 일반공간을 매개로 사람이 관계를 맺게되는 것이므로 역시 일반공 간성을 강하게 지닌다. 사람의 관계란 일반적 이법상( 理 法 上 )의 보편적 규율에 의지해야하는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공간과 사람 사이의 공간은 크게 분별할 이유가 없다 공간의 성스러운 일반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한국인의 지적 함정 (3) 사상사적 함정-1 247

248 매 순간에 인격체인 인( 人 )은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가? 자기인격의 일반적 공간성을 폭넓게 이해하여 존재의 궁극의 끝에 서기를 권장 받게 될 것이다. 즉 일반 공간성을 자각하는 존 재가 된다는 의미를 언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그 지시성은 극히 고상하고 힘찬 그 무엇이다. 한국인의 지적 함정 (3) 사상사적 함정-1 248

249 한국인의 지적 함정(2) 역사인식의 함정 :54 :: 한국인의 지적 함정 (2) 역사인식의 함정 한국의 역사는 북방에서 기원하였다. 한랭한 북방 대륙이 민족의 요람이었고 대한반도는 그 요람 을 벗어나 문명의 일가를 이루고 완성을 지향해야할 터전이었다. 즉 우리 민족사는 가장 크게는 대륙북방기와 대한반도기로 양분된다는 것이다. 이 구분되는 민족사의 의미는 각기 각별한 것이 며 민족사의 영원한 바탕을 제공하는 민족사의 기본 구조체이다. 대륙북방기에 한민족은 그들의 정신과 문화의 본질을 구축하였고 대한반도기를 통해서 그 민족사의 질체를 보편화하는 역사를 진행해왔다고 생각해야하겠다. 대륙북방기의 활동은 한민족적 특질을 배타적으로 발휘하기보다는 민족의 바탕을 형성하면서 동 아시아 문명권의 바탕을 형성하는 아시아적 역사본질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로 귀결된다. 대륙북방 기에 한민족은 9이로 나뉘어살면서 동서문화교류의 중심통로에 위치하여 유라시아를 통관하는 문 화적 융통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역사적 삶을 선도하였다. 황하강 연변에 삶의 터전을 확충 발전하여나아가고 있던 한족은 그 광역의 생산력을 포장한 지리적 환경적 도전에 대응하여 정착적 지연적 구조 속에 한족의 민족사를 형성하는데 주력하고 있었고 항하강을 중심으로 인 적 사회적 질서를 지리적 공간에 구축하는 장대한 역사적 사명에 부응하고 있었다. 한민족은 동 적인 대륙 북방의 환경에 대응하면서 그 지리적 개활성에 대응하여 치열하게 생존을 모색하면서 주로 인적 결속을 통해서 그리고 지리적 생산력보다는 기술과 정신 이념 등의 인격적 요소의 심화 발전을 통해서 환경적 격동을 극복하고 있었다. 즉 한족은 지연적 사회적 구조적 제도적 방식으로 그들의 정주생활을 축적하였고 한민족은 인격적 개별적 자의의 유대를 통해서 이념적 정신적 기술적 가능적으로 그들의 생존의 힘을 성장하여 나아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한민족은 혈연적 유대를 기초로 이를 공적 이념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깊은 정신적 모색을 하게 되고 이념과 이상을 중심으로 의지적 인격적 결속력을 발전하였다. 중국사는 제도적 구조적 본질성을 생명으로하는 반면에 한민족은 인격적 사상적 이념적 가능적 본질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영위하 였다. 단적으로 중국은 땅의 인력이 한민족은 인격적 인력이 그 역사의 중추적 힘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은 홍범구주라는 영역적 구조 개념이 철학의 근간이 되었고 한국은 홍익인간이라는 인간중심의 활동개념이 철학의 초석이 되었다. 중국은 공간적 중심지향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인격적 조화지향적이었다. 중국은 개념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사유중심적이었다. 중국은 텍 스트 중심적인데 비하여 한국은 창조적 의지중심적이었다. 따라서 양대민족의 융화는 동이시아 문명의 숙명이며 생명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양기사의 핵심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역사적 진상 즉 한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역사 문명의 형성 발전 의 역사를 왜곡 없이 통찰할 필요가 절실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시대주의> 혹은 <중화주 의> 특히는 한국문화와 중국문화의 상호관계이해에서 일어나는 왜곡된 <문명비하적 자기의식> 같 은 주제들은 중대한 문제로서 명백히 그 몰역사성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 한국인의 지적 함정(2) 역사인식의 함정 249

250 하이안자 한국인의 지적 함정(2) 역사인식의 함정 250

251 한국인의 지적 함정에 대하여 (1)민족성론의 함정 :48 해방후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듣고 생각하고 믿어왔던 많은 이지적 이정표 가운데 수많은 함 정이 있음을 생각하게하는 요즈음이다. 그 지적 왜곡을 부르는 함정들은 허다하지만 중요한 것을 적시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1)민족성론의 함정 한 민족은 <한의 민족>이라고 정의되었던 문학적 이해이다.물론 이와 연관하여 <은근과 끈기>가 주장되기도 하였다. 이는 극히 비역사적인 이해일 것이다.최근에 한국가요를 좋아한다는 일본 인 라디오 진행자가 말하기를 "한국 가요에는 한이 서려있어 좋았다"고 하였다. 그 한이라는 개념 으로 한국문화를 정의하고 싶은 것은 사실은 일본적 희망사항이다. 예컨데 한국가요의 슬픔 표현은 시대와 상황에 의해 좌절된 소망을 직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 본질이므로 오히려 <직솔>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한국이 한의 정서를 본질로 한다면 한국의 역사 는 희망이 없고 또 희망을 가져도 안된다. 본질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 해가 역사적 진실일 수 없음은 자명한 것이다. 은근과 끈기라는 표현은 더 이상의 문제가 있다. 속된말로 민족의 기질상 <맷집이 좋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우린 또 은근하기보다는 직설적인 것을 좋아한다. 우리민족의 기질이 국가적 난관 을 전향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그 어려움을 잘 견딘다는 것은 논리상 성립할 수 없는 괴변일 것이다. 그것은 삼국시대이래의 충무공에 이르는 그리고 나아가 항일의사들에 이르는 의로운 죽음을 선택 했던 역사적 인물들의 결단을 모독하는 말일 것이다. 한국인은 직솔하지만 기질적인 야한 삶을 살 아온 것으로 단정할만한 역사적 증거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이념과 사상의 주도아래 확 고한 국가관과 민족관을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것이 오히려 민족사의 주도역량이었다. 사려와 삶이 조화되는 심오함과 정신적 깊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와 같은 오해를 불러온 것은 왜인가 (1)일본중심의 학문의 전통의 영향 (2)의식적 친 일 학자들의 왜곡 (3)서양적 가치관과의 혼효 (4)서구 근대 지향적 한국 근대사의 방향적 오 류 등이 그 환경적 원인일 것이며 그 중심 내면에는 지신의 역사를 자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 력이 부족하였다는 데 기인한다. 특히 사상과 학문, 역사와 문화 제도 등이 서구에 비해 뒤떨어 졌다는 역사적 자기비하가 그것이다. 현재 세계를 풍미하는 과학 기술 경제 경영 군사 등의각방면에서 한국의 근대사의 성과는 최근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서양 본고장에 비해 뒤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 한국인의 지적 함정에 대하여 (1)민족성론의 함정 251

252 민족사의 성과와 역량을 낮게 평가할 이유는 전연 없다고 생각된다. 근세 100년간의 좌절이란 장구한 민족사의 선상에서 보면 순간에 불과하고 이 100년이 아무리 빠른 성과의 집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 전체사의 평가에 절대적 영향을 줄 수는 없다. 결국은 오랜 역사역량을 회복하고 그 위에 근대역사의 성과를 쌓아 나아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결국 우리의 역사역량을 제대로 응찰하려는 노력이 긴요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동이족의 원 무대는 동아시아 북방이었고 그곳은 동서교통로의 한 끝이었다. 인적 물적 교류가 역동적이 그 무대에서 한만족은 다이내믹한 대응을 통해서 성장해 국가적 정체성을 수립하였다. 각 민족과 민족들이 대립하고 교섭하는 그 와중에서 동이족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나아갔 고 국가와 민족의 의미를 키워나아갔다. 따라서 그들의 사상은 추상론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 고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는 행동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촌시도 나태함이 허용되지 않는 격동의 역사무대를 살아가면서 그 환경적 격동과 불안정을 사상과 문화로 다스리고 추스렸다. 그와 같 은 민족사 형성의 무대에서 형성된 민족성이 은근 끈기일 수 없고 더구나 한을 되씹을 필요 는 더욱 없었다. 오히려 (1)강건한 행동적 철학과 (2)순간의 삶을 영원한 가치로 승화하는 삶에 대한 성찰이 있 었고 (3)민족과 문화를 전승하는 바탕으로서 권력과 국토보다는 국민의 단합과 공의를 강조하 는 인격적 전통을 형성하였다. 오늘날 나쁘게 말하고 있는 <패거리주의>란 우리 역사전통과는 관계없는 이기적인 것이며 전통에 반하는 것이다. 공의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깊은 철학성 결단력 인격존중의 태도 등이 민족성의 요체일 것인데 오늘날 우리가 이를 도 리어 돌아보지 않으므로서 근래 우리는 주체성과 정체성이 없는 표백된 건조한 지성을 모방하고 축적해나아가고 있다고 믿어진다. 하이안자 한국인의 지적 함정에 대하여 (1)민족성론의 함정 252

253 유교에 대한 오해들 :06 유교사상은 우리들 역사의 실체이며 그대로 우리역사이다. 가장 큰 오류는 중국의 사상이라는 오해이며 한국이 그 중국사상을 수동적으로 수입했다는 인식이다. 준비된 게시판과 칼럼을 통해 누누히 그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애썼다. 1995년 한국을 대표한다는 유림에서 <유교의 종교화 선언>을 했다. 그후 유교인들의 일부는 마치 종교처럼 6대종단이니 하는 모임에 참여하 고 종교인처럼 행동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 <종교화선언>은 극히 잘못된 것이므로 그 종교화선언을 철회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탈종교 혹은 초종교 선언을 해야한다고 확 신한다. 나는 또 그동안 유교가 <철학>이나 <윤리> <사상> <이데올로기>로 분절적으로 취급되어온 것도 미묘한 그러나 중대한 오류를 광포하는 일을 조장했다고 믿는다. 유교는 종교일 수 있고 철학일 수 있고 사상일수 있고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과학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는 아니다.다만 종교 과학 철학 학문 사상 윤리 문화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무엇이라고 생각해야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를 동아시아적 지혜의 총체라고 믿으며 그 원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유교의 본질은 유교 경전 에 갇혀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경전을 통해서 재발견해야하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탈종교선언>과 함께 <초경전>선언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다.일반의 언어와 사유로서도 유교를 수행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유교의 최종적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유교가 천인합일이나 중용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은 경험의 통일성과 포괄성을 추구하는 사상이 라고 생각한다. 유 교는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고 <형상을 관찰>하고 이를 경험으로 수용하고 모든 경험간의 차별이 없는 경험수용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경험의 통일을 지향하는 지혜의 방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유교의 핵심은 건실한 경험적 기초를 생명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점을 견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유교이며 경전의 의의 도 바로 그런 데 있다고 믿는다. 경험을 수용하고 경험을 창출하고 경험을 해석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시도하는 일이 진정한 유교를 출범하는 길이다.유교는 직관이나 신비한 사유체계는 결코 아니다. 夏 夷 案 子 유교에 대한 오해들 253

254 유교에 대한 오해들 254

255 새로워짐의 의미 :10 대개의 사람들은 아마 유교를 <보수주의적>인 사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논리상으로는 공자 의 "확신을 가지고 옛것을 좋아하였다"는 언급과 같은 <역사적 계승성>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 각된다. 실제로 유학은 역사적 사상이다.중국 청나라 때의 장학성은 "육경이 모두 역사다"라고 선 언하였던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유학경전의 구성을 보아도 <서경>이 역사책이고 <시경>은 생활시에 속하는 것이지만 역사적 성격을 포함한다. <역경> 역시 민감한 역사성을 유지 하면서 역사적으로 생성 발전되었다.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보수성과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사상사도 <역사적 성찰>을 통해서 비약 발전하였음은 서양지성사가들의 공통된 견해이고 서양사상에서도 <전승성>을 사상발전의 한 주축으로 보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러 므로 역사적이라는 본질이 보수적이라는 본질과는 전연 연관이 없다. 유학은 정치사상이나 순수사상의 양측면에서 모두 <새로움>을 강조한다. <서경>의 <기명유신( 其 命 維 新 )>이란 은주혁명( 殷 周 革 命 ) 즉 주나라가 새롭게 천명을 받아 왕천하 하게된 그 원인이 "유신" 즉 오직 새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대학>에서 는 "밝은 지혜를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고" "지극한 선에 머무르는 데" 그 뜻이 있다고 하 였다. 즉 <지선>을 위한 끊임없는 자기 쇄신의 길을 밝히는 것이 <대학>의 의의라는 것이다. 중용에서는 "오늘의 시대에 태어나 옛날로 돌아가는 자 그런자에게는 재앙이 미칠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대학의 "신민( 新 民 )"은 원래 "친민( 親 民 )"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자( 朱 子 )는 이를 "신민" 의 오기라고 하였고 많은이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성리학자들이 <새로움의 의미>를 주목하는 데 합의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 글자의 정정이 만일 잘못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뒤에 이어지는 의미의 흐름으로 보아 "밝은 지혜를 밝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새로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 기에 충분하다.<대학>의 경문의 의미를 밝힌 이어지는 전문에서 (1)명덕( 明 德 ) (2)일신( 日 新 ) (3)신민( 新 民 ) (4)유신( 維 新 ) (5)용극( 用 極 )의 순서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극>이란 경문의 <지선( 至 善 )>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쇄신이 지선의 길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현재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개신과 개선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학문의 이유인 셈이다. 새로움의 명제는 인간과 함께 영원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지적인 의무일 것이며 삶의 요구이다.오늘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새로움의 길을 선택했다. 이제 우리가 그럴 때임을 자각하였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가지게 된다. 다시 유의해야할 점은 아마 <새로움의 길이란 역사부정의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점일 새로워짐의 의미 255

256 것이다. 전통과 역사란 부정할 수 없는 진실한 그 어떤 흐름이기 때문에 유념해야할 것으로 생 각된다. 우리들이 자신의 역사를 확신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이 진실한 새로움의 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비하해온 것이 사실 이었다. 전통사상, 전통관습, 전통적 믿음 등 전승되어온 역사적인 것들은 신중히 응찰하고 그 전승의 내부에서 이를 쇄신해 나아가야한다고 생각된다. 어느 일방적 논리에 의한 전통의 부정 은 신중하고 삼가야할 것이다.역사성을 파괴하는 것은 서구식으로 말하면 <계몽주의적> 전근 대성이라는 틀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반동적 성격을 지니는 것일 것이다. 새시대를 진정 원한다면 우리의 역사와 사상을 주목할 때다. 夏 夷 案 子 새로워짐의 의미 256

257 생활인으로서의 학문과 귀족주의적 학문은 무엇이 귀중한가 :39 자로가 젊은 후배를 등용하여 지방장관에 임명하였을 때 공자는 이를 질책하여 <젊은 자제를 망치 는구나>하였다. 학문이 부족한 젊은이를 너무 일찍 벼슬에 발탁한 것을 비판한 것이었다.자로는 이 에 대하여 <관직을 수행하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자로의 행동은 확실히 경솔한 면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반면에 배움과 학문에 대하여 생 각하게 하는 면도 있다. 우리의 배움을 행동을 위한 것이므로 사실 학문이란 행동계획(Working program)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행동적 결단을 수행함에 반드시 텍스트적 공부에 만 의존해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엄청난 독서와 고요한 응찰의 시간을 항시 들일 수 있 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순수한 학문이나 배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식의 제한성이나 자신의 판단의 오류를 미리 걱정 하는 데서 일종의 조급함에서 무리하게 이른바 궁리( 窮 理 )를 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느낀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이치에 대한 탐구가 아닌 때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건실한 학문적 삶에 대 한 확신만 견지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의 상황에서건 진리를 사유하고 배우는(공자의 이른바 학) 일 은 완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진절한 학문의 원의일 것이다.그러므 로 유학자들이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먼저 이룰 것을 말하였다고 믿는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의 학문에 경탄하곤한다.엄청난 독서량을 시사하는 깊이 있는 글에 압도당하는 경우도 있다.일개 관료가 중국의 문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하 는 문헌이 발견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학은 주로 양반에 의해 수행되었고 유지되었다. 큰 학자들은 거의 생활고를 벗어나 서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생활여유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그 여유만큼의 방대한 독서를 하고 식 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드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솟게할 수는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자신의 지식 에 의해 오히려 제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학문을 좋아하고 학문적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적지않은 많은 시간들을 생활자체를 해결 하기 위해 소비해야하는 일이 더 많다.조선시대로 치면 가난한 시골 유생인 셈이다. 많은 방대 한 독서를 할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로의 생각처럼 반드시 글을 읽은 후 에 학문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측면을 많이 느끼고 있다.(물론 자로를 찬양하고자하는 것 은 결코 아니다) 다행히 요즘은 전통시대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탐구의 삶을 살아갈 인생의 길이가(수 생활인으로서의 학문과 귀족주의적 학문은 무엇이 귀중한가 257

258 명) 길어졌으므로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러므로 조선시대에 비하여 많은 문헌 을 정독하고 사유할 여유가 부족한 반면에 더 오랜 시간 궁리할 수 있고 또 어려움이 있더라도 다 양한 일을 하며 자신의 소망을 추구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많아졌다는 장점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자신의 삶에 많은 여유를 할애하면서 학문하는 것은 <비귀족적 학문>이 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오히려 그로 인해서 문헌적 제한을 벗어나 경험과 텍스트 와 사유와 정감 사이의 균형을 보다 잘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요즘은 여러 사정 으로 문헌을 연구하는 많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나의 삶에 불만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신에 어느순간 어느 상황에 처해서도 궁리의 삶을 견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학문에서 도 귀족주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은 그러나 신귀족주의를 경계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신권위주라고하는 사회적 풍조와 연관 하여 학문에서도 새로운 귀족주의 권위주의가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너무 안일하고 전근대적인 태도일 것이다. 특히 일부 학문에서 재야( 在 野 )인사의 노 력을 비하하는 많은 태도들도 보게 된다. 과연 조선시대 재야사림의 존재가 진정 그시대를 이끌어 간 중심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조선 사림이 후일에는 권위화하고 이기 화하여 국난을 초래하였고 조선 역사의 진정한 힘을 감퇴되게 하였던 것은 역시 그 시대의 신권위 주의 혹은 그시대의 신귀족적 태도 때문이었다고 믿는다.귀족주위적 오만함은 역시 학문에 해롭 고 나아가서는 그 시대를 해치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학문에 대한 열정만큼 자신감의 구축도 필요하다. 우리가 맹자나 논어를 읽어서 얻게되는 가장 큰 소득은 의리에 대한 믿음과 그를 통해 확립되는 스스로 <비권위주의적>인 그러 나 <하늘을 찌르는> 자존과 자신감일 것이다. 경전을 읽으면 사람이 당당해진다. 그 이유는 바로 공적인 드넓은 사유의 힘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인으로서의 학문과 귀족주의적 학문은 무엇이 귀중한가 258

259 시세론 :19 <1> 유학자들의 오랜 믿음 가운데 하나가 <시세( 時 勢 )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 의 대세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그들은 <시세를 모른다면 많은 학식은 쓸모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른바 시쳇말로 <멍텅구리 학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직 공자만이 진정으로 시세를 알았던 분이 라고 말해왔다. <공자만이 진정 시세를 알았다>는 생각은 공자의 경지에 근접한 자가 아니고는 시세를 알 수 없다 는 말은 아니다. 이상이 그러하다는 말이고 흔히 범하기 쉬운 시세판단의 오류나 착오를 경계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런 생각은 자신의 독단이나 속단을 경계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사마천의 역사관에서 역사서술에서 대세를 추종하고자하는 대세론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게되는데 이가운데에도 적지않은 오류가 내포되어 있다. 정치 사회의 큰 흐름을 보려고 하였으 되 그에 대한 처절한 비판의노력은 다소 부족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항우를 황제수준의 본 기( 本 紀 )에 배당하고 공자를 제후수준의 세가( 世 家 )에 배당한 예가 단적인 것이다. 사마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초월할 수 없었다는 현실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그가 직접 자신 의 소원이며 이상이라고 하였던 <공자를 배우는 일>에 오히려 철저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면하 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그의 학구적 신념과 열정이 부족하여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아 마 성공적인 것으로보였던 한 무제 시기의 정치적 안정과 일시적인 민간생활의 풍요함을 매우 중 요한 성취로 보았기 때문이며 그 이면에서 호족의 성장으로인하여 장차 자작농 세력이 급속히 쇠 퇴하고 귀족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을 미리 통찰하고 그를 막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적극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사마천은 깊은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는 그만큼 시세 판단이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며 당대의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함에 는 치밀하고 냉철하고 신중하면서도 장대한 이상과 원대한 포부를 아울러서 스케일 큰 노력이 함께 견지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웅변하고 있다. 시세판단이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때 우리는 보다 더 적절하게 균형잡힌 노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2>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여러 현상을 생각할 때 혼란과 혼돈에 빠질 때가 많다.그러나 오류가 무서워서 시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일은 극히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시세론

260 사고하고 분석하며 시대를 호흡하고 통찰하고 비판해보려는 노력은 당돌할 정도로 견지해야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통찰은 유학의 큰 방향을 제시해줄 수도 있고 전통사상으로서 우리의 유학 자체의 깊이를 더해줄 수도 있다.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근심되는 일>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유학의 공부는 현실과의 긴장된 상호관계를 생명으로 한다.<1/X> 하이안자 시세론

261 경전문헌 공부 순서 :59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순서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사서삼경에 국한해서 생각해보면 (1)맹자 (2)논어 (3)대학 (4)중용 (5)시경 (6)서경 (7)역경의 순서로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흔히 대학 중용을 먼저 공부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독해의 분량이 과다하지 않고 문장이 논리적 이어서 유학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문헌을 읽어 이해하는 순서로서는 대학 중용의 본문이나 특히 주석은 극히 난해한 면이 있고 주석문의 구문도 상당한 짜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맹자 논어의 문헌적 어법을 숙달하지 않고 는 읽기 어려운 난관이 있다. 더구나 비교적 체계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대학 중용이 유용하지만 기초적인 유학의 개념과 사유 법을 친근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맹자 논어의 학습이 먼저 요구된다. 그러므로 이 두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것이 보편적 사유법으로서의 유학에 가까이 접근하는 보다 실질적인 첩경일 것이다. 유교사상은 사변적인 순수사유로 영위되는 것이 아니고 건실한 경험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생 각된다. 일상의 일반사유 속에서 먼저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텍스트 중심주의를 견지한다. 즉 경험을 개념화하여 이를 하나의 객관적 텍스트로 전환하여 유지하면서 다양한 경험 간의 균형과 일치를 도모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치열한 문헌텍스트의 갱신이 공부의 요핵 이다. 물론 그 갱신이란 해석학적 갱신과 자신의 일반 사유의 갱신이 동시에 수행되어야한 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개념과 어법을 하나하나 깊이 생각하며 이해하는 것이 먼저 시 급하다. 너무 빠른 도통을 추구해서는 안되며 다양한 의미차원을 가지는 경전을 논리나 윤리등 어떤 구조 로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이안자 경전문헌 공부 순서 261

262 우리시대 경전의 의미와 해석의 도법 :31 경전은 새롭게 해석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시대성을 확보하여 되살아난다. 그러나 그 새로움이란 결코 어법의 갱신이나 해석학적 입장의 전면적 격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 사유법의 전통이 함유하고 있는 사상사적 힘과 권능을 새로이 수용 회복하여 오늘의 우리의 정신력을 고양 하려는 것이다. 국내에는 각 경전에 대한 많은 해석서들이 있다. 모두 균형잡힌 해석을 위하여 노력한 결과를 발 표한 것이므로 모두 공부에 유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사적 특질을 견지하였거나 역사적 배경과 정황을 아울러 분석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철두철미하게 견지한 예는 드물다고 생각된다. 현재의 경전해석은 주로 어법적인 분석을 시도하였거나 주관적 경험법칙에 준거하여 그 해석의 정 당성을 검토하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거나 아니면 전통적 해석의 입장을 견지한 것들이 주종을 이 루고 있다고 분석된다. 어법의 분석이나 주관적 경험과의 조응은 경전해석에서 필수적인 중요한 기준이다.그러나 논리와 어법의 분석과 자신의 경험 내용과의 조화를 꾀하기 이전에 경전의 의미와 배경이라든가 유학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목표가 절실하게 견지되어야 한다.환언하면 기존의 안이한 자기사상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는 경전의새로운 해석은 전연 진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 해야 한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은 먼저 자신의 사상사와 역사전통에 대한 깊은 전폭적인 신뢰와 믿음을 확립해야한다. 그러나 그 믿음은 종교적 신앙과는 판이하다. 주관적 직관적 열정적인 기원의 믿음이 아니라 정 밀한 논리와 논리근거 전통적 경험처리법의 위대함에 대한 가치를 확고히 아는데서 출발된다. 아 마 쉽게 알 수는 없는 것이므로 알려고하는 자세가 더 중요할 것이다. 공자가 이점을 지적하여 <믿음을 가졌고 옛 사실을 좋아하였다>고 자신의 학문적 바탕을 고백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느낀다. 전통주석에서 박식한 학자들이 <의미 미상>으로 남겨둔 많은 부분들은 그와 같은 믿음과 분석에 서 보완해야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우선 경전을 자주 읽어야 한다. 많은 양을 읽기보다는 친숙하게 읽어야하며 그 가운데서 끊임없는 믿음으로 그해석의 여지를 다각도로 생각해야한다. 새로운 여지가 있는 의미 공간을 발견하고 그 의미적 가능성이 지니는 가치를 반추해보는 노력을 상당한 기간 견제해야한다고 느낀 다. 새로운 해석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경전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항목을 반드시 유념해야한다고 느낀다. (1)경전을 일반적 사유의 일부로서 읽어야 한다.이를 경전의 상식적 통달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시대 경전의 의미와 해석의 도법 262

263 (2)논리와 문맥을 어법에 맞게 분석하라. 한문문헌은 상상할 수 없는 고급한 의미중심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3)논리를 구성하는 개념 속에서 그 대상 근거가 된 실제의 경험적 사실을 상상하라.이를 논 거라고 부를 수 있다. 진정한 논거를 탐구하라는 의미이다. (4)역사적 전승성을 항시 검토하라. 시대성을 연관지워 해석하라 (5)오늘날의 삶과 문화와 학문 등과 직접 대비하여 사고하라.그러나 오늘의 문화나 학문의 어법 으로 경전을 분석하지 말라. 사고의 중심을 경전 특히 각 단계의 텍스트 자체에 에 두어야 한다 는 의미이다. <텍스트를 항시 삶의 중심에 두어보라>는 의미이다. 이상의 항목들은 상식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현재 일반적으로 잘 지켜지고 있지 못하 여 강조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하이안자- 우리시대 경전의 의미와 해석의 도법 263

264 기초적 사유 :30 <1> 우리는 많은 기초적 원리를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많다.예를 들어 인간이 육체와 심성으로 이루 어졌다는 그 간단 명료한 사실을 우리가 항시 명각하며 사는 것 만으로도 생의 많은 혼란이 정리 될 수도 있다.꼭 엄청나고 심오한 구체 원리를 정밀하게 대입할 수 있는 지식과 지혜로써만 나의 생을 힘차고 평화롭고 의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학식많은 박사 석학과 앞서가는 지식인이나 고급 전문가가 꼭 균형된 지성을 갖추었다고 볼 근거도 우리는 실제의 삶에서 확인할 수도 솔직히 없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우리 지식이나 식견 판단력은 한심할 정도로 공허할 때가 많다는 것을 갈수록 느끼고 있다. 모두 나 속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 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과 행동은 기질과 양식으로 구성된다.기질적인 삶은 물리적 활력을 의미하고 양식 있는 삶은 심성적 조화를 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아는 명심보감에 "나의 장점을 믿지말고 남의 단점을 말하지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생활윤리를 말하는 데 그친 것은 아니다.나의 것과 남의 것을 아울러 사유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고 있고 공자의서( 恕 )의 정신이며 인( 仁 )의 기초이다. 명심보감의 말을 하나의 단일 윤리 중에 하나를 말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 법어( 法 語 ) 는 하챦은 지식으로 전락한다.그렇게 생각해야하는 이유와 그렇게 생각하게 위한 전제를 느끼고 사유해야한다. 일전에는 어느 지방의 훈장선생님이 방송에나와 듣는이에게 귀감이 될 좋은 말을 부탁받고는 역시 명심보감의 귀절을 인용하여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어둠 속에 가는 것 같다"는말을 인용 하고 이는 새로운 지식을 쌓아야 하는 중요성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지식 은 중요하나 그 지식을 사유할 수 없다면 별로 소용이 없는 지식일 것이다. 배움이라는 것이 무 엇인가 하는 경전의 언어를 단발적 텍스트로 보았기에 지식을 쌓는다는 해설이 나온 것일 것이 다. 배울학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의 논설에서 누누히 지적하였으므로 중복해 말하지 않겠으나 초두에 말한 <기초적 생각>을 정리하고 견지하려는 노력이 역시 중요하다.이를 공자는 "하나로 통 관한다"고 하였다. 단발적 지식에 빠질 위험을 가장 간명하고 절실하게 지적한 것이다. <2>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의 해약과 여파를 아직도 걷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 독립된 자유 자주 한국 에서 어느정도 풍요한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는 오늘에 심성과 기질의 충돌로 인한 국가의식과 역 사와 자아인식, 삶의 이해방식 등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혼돈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기초적 사유 264

265 일반인들의 삶은 지식의 유희를 할 수 없으니 직접 자신의 기질과 인내력으로 사투를 벌이며 스스 로를 다듬어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문제는 먹물들이다. 먹물들은 왜 문자를 읽고 쓰는가? 근본적으로 문자는 객관적인 사유를 구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 다. 예를 들어 내가 고요히 눈을 감고 혹은 뜨고서라도 어떤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보라. 어느 주제 이던 그 주제에 대한 나의 판단이 세워지는 순간마다 곧바로 기질적 욕구와 본능 자아적 욕구와 희 망 등이 부딛어 나타나 나와 사고활동은 순조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주제를 손으로 혹은 타이핑 으로 문자화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나아가다보면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에서 객관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곧 알게된다.보다 나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문헌은 바로 그래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재미가 있어서 읽는 것은> 이미 진정한 독서는 아니다. 독서는 그와같 은 나의 생각의 과정을 전후하여 남이 제시하고 써서 사유한 결과를 참조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그 주제와 전연 관계없이 새로운 사물에 대한 생각을 도출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영상도 객관적인 것이므로 자유로운 사고에 유익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그 영상은 하나의 문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타인들을 보고 나를 생각하 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공자가 "3사람이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 <서>의 기초가 역시 그것이다. <3> 사실은 최근에 한국의 피압박시대 친일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기도하는 역사 학자들의 글을 몇차례 읽고 상당히 우려되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그 글들은 어느정도 <자기합리화> 혹 은 자신의 치부를 호도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학술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제국주의론이나 근대화론 같은 거대한 이론체계가 있는 듯한 막연한 지식에 의지하여 그런 주장들이 너무 당당하 게 나와도 그에 대한 일반 지식계의평가의 글들은 거의 없었다. 해당 분야사람들의 흔한 공방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최근 외국에서 일어난 한국학 가운데 합리주의를 가장한 한국사 분석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 다.그들은 근본적으로 동아시아의 역사학의 수준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데 그들의 기준에서는 분 명 그러하다. 그러나 정통 사상사의 이해가 없이 그 역사를 논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동 아시아는 그들의 문명에 따라 독자적인 역사이해를 해 왔고 이 방식이 낙후된 것은 결코아니다. 이 경우에도 역시 <기초적 생각>이 미비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에 동조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 된다. 기초적 사유 265

266 직업윤리와 인격 :30 동아시아 고대 사회에도 많은 직업이 있었다.일찌기 신석기시대이래로 각 분야의 공인들이 기술을 전문화하였고 농업 목축 수공업 성직자 군인 건축가 정치인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직 업은 물론 정치군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고급직업은 고대귀족이 독점하였었는데 대개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직업윤리가 새로이 정 립되게 된다. 귀족독접의 시대가 개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시대에 들어서면 비귀족 관료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변혁을 주도하게 된다. 귀족적 존비의식은 더이상 직업의 윤리가 될 수 없었다. 맹자에는 관료의 직업관과 인격의 관계를 논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오늘의 직업윤리로 바라보아도 전연 부족함이 없을 이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 맹자는 관료를 그 윤리와 인격에 따라 (1)군주 개인에게 맹종하는 부류 (2)종묘사직을 수호하려는 부류 (3)천민( 天 民 ) 부류 (4)대인( 大 人 ) 부류의 4으로 분류하고 있다. (1)이 경우는 말할 것 없 이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부류를 말한 것이다. (2)의 부류는 국가윤리를 수호하는 면에서는 바 람직하나 국가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고 일국( 一 國 )의 수호라는 좁은 인식범주가 문제로 지적되었 다. (3)의 경우는 보편적 이상을 추구하는 관료를 말한 것인데 전통적 용어로는 하늘의 뜻을 실 천하려는 의지를 가진 부류를 말한다.말하자면 이상주의자인 셈이다. 이들에 대해서 맹자는 의도성 ( 意 圖 性 )으로 말미암아 인위화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가장 바람직한 직업윤 리의 실천이상으로 꼽은 것이 (4)의 대인이었다.대인이란 천민( 天 民 )적인 이상을 실천하되 자연스 런 심성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하였다. 성인( 聖 人 )의 경지인 것이다. 개인을 초월하고 국가의 경계에 국한되지도 않으며 이상을 추구하되 특정한 의지와 의도를 고수함 에 의해 정의를 왜곡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정서에 의지한 관료직업인을 말한다. 그 경지에서는 천 하( 天 下 )가 주제로 사유되고 그 아래로 국가와 개인이 균형을 이룬채 그 당위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의 세계주의와도 통하며 국제적 범주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지침 을 주고 있다. 관료가 직업의 중심인 시대는 지났으므로 일반 직업인이 지향해야할 지남이 될 것이 다. 이른바 맹자의 천민( 天 民 )의식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공동체의 존재를 중심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직을 지키는 신하>와 같은 주인된 국민의 의식이 요구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 관념을 더욱 진전하여 대인적인 직업인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맹자는 또한 가장 높은 벼슬 은 무엇인가를 논한 것이 있다.인작( 人 爵 )과 천작( 天 爵 )의 구분이 그것이다.인작이란 관직임명권 자가 준 벼슬을 말하고 천작이란 스스로의 공적의식에 의해 스스로 확득하는 벼슬을 의미한다. 물론 맹자는 천작이 가장 존귀하다고 하였다. 직업윤리와 인격 266

267 오늘의 현대사회는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므로 바로 그 천작의식을 꽃피워야할 때일 것이 다. 그런 관념에서 천민( 天 民 )의식이 나왔으므로 국민은 모두 스스로의 행실에 의해 가장 높은 존 귀한 벼슬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직업윤리와 인격 267

268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38 최근에 부패청산의 논리가 일반 지면에 전에 없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그러한 분위기는 I.M.F 직후에 잠시 봇불처럼 매체들을 뒤덮었었고 최 근 권력형 비리나 경제적 부패현상이 격화되면서 특히 유력층의 부패가 위험지수를 초과하고 있고 이는 특히 극단적 이기주의 풍조가 사회의 상층부에 만연하고 있는 현상에 기인한다. 문제는 명사로 통하는 청산론자들이 기존의 부패주체들과 유사한 위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고 이나라의 공적 의사표시 의 창구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들이 과연 공정하고 균형잡힌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절망적 분위기가 우리 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최근 <명사는 있으나 지식인은 없다>는 미국의 문화현실을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보통 사람들은 그야말로 큰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특히 이 나라의 공적 질서를 책임져야할 계층들이 과연 공적인 의지가 있는지를 전연 확신할 수 없는 분위기가 이울러 우리 사 회를 더욱더 암울하게 뒤덮고 있는 것이 생생한 현실이다. 오늘 우리사회의 암울함은 단적으로 (1)파멸적 수준의오락문화 (2)무책임한 방임적 자유주의 (3)배타적 이기주의라고하는 3대 악폐에 그 뿌 리가 있다. 그리고 그 뿌리는 <1>합리주의 이상주의로 포장된 서구주의 <2>선진 개방문화로 착각된 반문명 반인간적 실체성을 지닌 행태 <3>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절대시하고 문화적 창조력으로 인간화하지 못하는 모순 등으로 인해 배양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오늘의 삶의 바탕을 이루는 구조에 대한 개개 인격의 깊은 자성이 없이는 사실 개선하기 어려운 것이므로 개인과 가족의 의미를 반추 하면서 자신의 삶의 실상을 반성하여나아가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반부패주장이란 나아가 사회개혁 주장이란 그 책임을 타에 전 가하기에 바쁜 <비겁한 지성의 약동>이 메뚜기떼 처럼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 감명을 부를 만큼 지성적이지도 못하고 공감을 얻을 만큼 솔직하지도 못하며 최소한 스스로 반부패 의지 혹은 개혁의지를 확고히 가 지고 있구나하는 믿음마저 수립하지 못하면서 공연히 권위적 지면과 운동의 공간을 형식적으로 채우고 있을 뿐이다. 신성해야할 지면과 국민 적 보편 정념을 수용해야할 공간이 악의에 의해 혹은 안일한 이기주의에 의해 마구 비틀어지고 있다. 조용히 삶을 응찰하는 삶을 살려는 의 지는 오히려 자신의 문명과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법인데 오늘날 심각한 전통파괴야말로 이기적 목소리의 최대의 폐해이 다. 한마디로 오늘의 공적인 모든 기구들이 총체적으로 불신의 함정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고 밝은 빛의 공적 세상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그것은 모두 <버리지 못하는 이기주의>의 소산이므로 앞으로의 논의는 어떻게 절실하게 자성할 것인가로 모여야 할 것이다. 자기 사상이 없는 나라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상상하기조차 무서운 일이다. -<1>- -<2>-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68

269 그외에 이와 부수되는 중요한 문제를 아울러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글은 아래의 기사 가운데 유교 이해와 연관한 중요한 오류를 지적 하려는 뜻을 표한 것이다. 법과 질서를 위하여 일제청산노력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근대성을 보다 강화하고 개인의 역량을 활기차게 발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일 것이다. 어디 법뿐이랴 수많은 행정관행 그리고 강고한 일반의 서열의식등이 함께 개선되어야하며 생활윤리에서도 <삼강오륜>으로 지탱 되던 기층사회가 변화하였으므로 오늘에 맞는 새로운 윤리로 폭넓은 해석의 힘으로 새롭게 정비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근대적 무질서상태>라고 할 이러한 아이러니와 <누층적 이기주의의 팽배>라고하는 반전통적 정념은 <깊이 없는 편의적 근대성 의 추구>에서 비롯된 일이며 그 직접적 현상으로서 전통적 <공의정신의 파괴>로 나타나고 있다. 끝없이 만연하는 부패가 그 모습이다. 호주제도는 그기원이 유교적이든 아니든 현재 폐지를 주장하는 측의 목표는 남성중심 성씨제도의 파괴에 있다. 유교측에서 이를 강력하게 반 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전통적 사회의식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광범한 사회혁명을 시도하는 폐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이 사회를 유지해온 누천년간 안정된 체제를 무력화하는 것이므로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 호주제도는 성씨제도를 지키는 보루인 셈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부부 남녀가 가져야할 전반적 규율과 의식이 새롭게 정립되지 못한 지금 질서를 유지하는 여러 제도들 부터 무너뜨리려는 것은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불순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래의 글에서 나타나 있듯이 전체적으로 전근대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한일인데도 바로 그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전근대 체제의 전반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일보다는,<남녀대결적>국면을 강조하려는 일부 개혁세력의 움직임은 그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 저의란 다름아닌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을 강고히 해준다는 것이다. 그 사회의 가장 큰 불의에 대한 저항력은 안정된 가정의 부부관계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를 해치려는 주장은 어떤 당 위성도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가정이 혼란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경제력 지식 등 모든면에서 열세인 서민대중의 존재를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호적제와 호주제는 동질적인 성씨 가족-가문주의 전통의 소산이므로 세계적인 가족법제도상 무리가 없는 우리의 성씨제도를 부정하려는 것 은 너무 이기적 주장으로서 공공의 믿음에 역행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비민주적>인 것이다. 전통적 성씨 가문제도를 혁파해도 좋다는 확신은 아직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선사시대의 야만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것이며 일부의 환상 적 자유주의자들의 많은 무책임한 행태를 정당화하라는 억지주장과 같은 것이다. 신중할 일이다. 이미 그러한 파괴노력이 아니더라도 이미 < 한국의 가문주의 성씨제도>는 흔들리고 있으며 그 동요하는 사회제도가 진정한 문제이다. 우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리고 우리의 최대의 위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인 당위로서 개인의 역령을 발양하고 실현하려는 움직임은 점점 강화 진전되고 있다. 오히려 그 부작용 으로 가족과 가정 가문의 기초가 붕괴해나아가고 있는 것이 진실한 사회실상이다. 오히려 그에 대한 처방이 모색되어야할 때인 것이다. 하이안자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69

270 ::::::::::::::::::::::::::::::::::::::::::::::: 참고기사와 평문 :::::::::::::::::::::::::::::::::::::::::::::::: <기사 가운데 꼭 고쳐야할 표현> (1)<또다른 부패 요인은 문화적 요인이다.> :부패가 문화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2)<우리 사회처럼 여전히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한 집합주의 문화는부패를 더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유교문화가 집합주의문화라는 말은 억지논리이며 기득권 이기주의자들의 책임전가논리이다. 그들은 유교를 채용해본 경험이전연 없는 사람 들이다. 더구나 유교가 부패를 조장한다는 말은 엄청난 자기문화부정주의이며 극렬한 책임회피의 비겁하고 비지성적인 논리이다. 왜 현재에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나 불교탓은 하지 않는가? (3)<학연.지연.혈연 등 각종 연고에 바탕을 둔 연고주의 문화는 부패의 온상이 된다.> :연고주의는 문화가 아니다 (4)<이런 문화에서는 흔한 말대로 '정의의 반대는 불 의가 아니라 의리'이며, 의리는 정의에 앞서는 덕목이 된다.> :이것은 조폭의 논리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려는 주장에 불과하다.유교에 다한 폭력이다. (5)<문화적 요인을 축소,제거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다.> :개인적 한담도 못되는 대책 없는 망설이다. 한 순간의 자기 결단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남의 탓을 하며 어렵다는 것이며 결국은 고치지 말하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즉 나는 반성할 수 없고 나의 이기의길을 굳건히 가겠다는 말이 아닌가 하이안자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70

271 <<관련기사 1>> [중앙일보] () 07면 2027자 [중앙 시평] 욕심이 큰 사람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은 무엇일까. 대북 문제와 부패 문제라고 보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특히 부패 문제의 영향력이 대단하리라는 점은 최근의 8.8 재.보선이나 지방선거 결과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그런 때문인지 지금 정당간의 정치 싸움은 상대방의 부패를 드러내고 헐뜯는 데 시종하고 있다. *** 목청만 높이는 부패척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고한날 이 재미없고 신물나는 싸움판을 바라보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누가 얼마큼 썩었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나름대로 감을 잡으면서도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부패 문제가 핵심 주제로 부각돼 있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부패 근절은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당면한 최대의 과제임이 틀림없고 동시 에 전 지구적 차원의 요청이기도 하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해서도 부패를 막아야 한다. 문제는 부패 문제가 정략적 싸움의 소재가 돼 있을 뿐 이를 국가 적 과제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진지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패방지법이 만들어졌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 법을 만들기보다 그것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부패방지위원회라는 새 국가기구가 생겼지만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할지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패를 방지하고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부패를 유발하는 요인을 축소, 제거해야 한다. 부패 요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조적.제 도적 요인이다. 예를 들면 특정한 선거제도 아래에서 돈이 더 들고 따라서 정치부패를 더 유발한다. 얼마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선거운동 방식에 관한 획기적 개선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옥외집회를 없애고 매스미디어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되 국가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 그 골자 다. 이 제안이 실현된다면 정치 부패 축소에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정당들 사이에 이 문제를 두고 과연 어떤 성실한 논의가 있는 것인지 들어본 적이 없다. 또다른 부패 요인은 문화적 요인이다. 우리 사회처럼 여전히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한 집합주의 문화는 부패를 더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학 연.지연.혈연 등 각종 연고에 바탕을 둔 연고주의 문화는 부패의 온상이 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흔한 말대로 '정의의 반대는 불의가 아니라 의리'이며, 의리는 정의에 앞서는 덕목이 된다. 문화적 요인을 축소,제거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다. 연고주의 문화를 극복하려면 선도적 역할을 할 부분이 필요하고, 그 역할은 법집행을 담당하는 검찰.법원이 맡아야 할 것인데 그런 노력이 있는지 뚜렷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71

272 부패 요인의 제거만이 아니라 부패에 대한 사후 처벌도 부패 방지의 유용한 방안이다. 요인 제거 방안이 부패의 기회를 감소시키는 것이라면 사후 처벌은 부패의 비용을 부과하고 증가시키는 방안이다. 종래 부패에 대한 사후 처벌이 큰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처벌 과정에 여러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 뇌물죄 등 처벌 강화해야 뇌물죄를 비롯한 공무원 범죄의 기소율은 일반 범죄에 비해 상당히 낮다. 뿐만 아니다. 뇌물죄의 실형률 역시 매우 낮다. 2000년도 뇌물죄 처 리 통계를 보면, 제1심 처리에서 집행유예 53%, 선고유예 6%, 벌금형 24%로 나타나 있다. 집행유예.선고유예.벌금형 합계가 83%에 이른다. 한마디로 부패 처벌이 너무 무르다. 게다가 많은 경우 특별사면이 행해진다. 이래서는 처벌 을 통한 부패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싱가포르의 사례는 부패방지 노력에 큰 시사를 준다. 우리처럼 연고주의 문화를 지녔으면서도 그들은 어떻게 부패 방지에 성공했는가. 강력 하고 효율적인 부패처벌이 있었기 때문인데, 거기에 앞서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지도자가 진심으로 부패 척결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모 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산( 茶 山 ) 정약용( 丁 若 鏞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이렇게 말한다."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 한다." 진실로 '욕심이 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다. 梁 建 (한양대 교수 법학) :::::::::::::::::::::::::::::::::::::::::::::::: <<관련기사2>> [대한매일] () 21면 2937자 法 체계 속의 日 帝 잔재-국민위에 군림 아직 먼 ` 法 광복' 광복 반세기가 지났지만 우리 사법체제는 아직도 일본식 틀을 깨지 못하고있다.일제의 주도로 심어진 근대 사법제도가 36년간 완전히 뿌리를 내렸고광복 후에도 그대로 답습해 마치 우리 것처럼 되었다.일제 잔재를 털어내기위한 사법제도 개혁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미흡한 것이 사실 이다.광복 57주년을 맞아 사법제도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와 개선 방향을 살펴본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우리 법 체계의 근간은 일본 사람들이 들여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구한말 전근대적인 사법제도를 버리고 새 제도를도입할 때부터 일본의 지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그런 까닭에 우리의 법 정신과 법 제도에는 일제의 잔재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음 을 부인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검토했던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이른바 일본의 명치( 明 治 ) 사법제도 가 1910년 급속히 도입됐고 식민지적 억압과 수탈의 목적을 위해 변모되고 왜곡됐다. 면서 이 과정에서 배태된 식민지 사법제도의 잔재가 광 복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 사법절차에 남아 있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일제극복은 우리 사법부가 현재까지 안고 있는 과제다. 일제가 남긴 가장 큰 문제로 사법제도 전반과 법조인들에게 배어 있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꼽힌다.때문에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되지 못 하고 국민들은 법과 유리되어 있다.국민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법제도 남아 있다. 국민 과 먼 사법체제-우리나라 사법체제의 권위주의는 국민의 참여를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서 드러난다.사법작용의 핵심 절차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72

273 인 재판과 기소 과정은 철저하게 법률전문가들이 독점하고 있다. 숭실대 법학과 윤철홍( 尹 喆 洪 ) 교수는 우리나라 법제도에 권위주의적 냄 새가 짙은 것은 예전부터 계급제도로 인해 관료주의적 사고가 남아 있었고,일제시대 때 더욱 구체화됐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영미법체계냐,대륙법체계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외국에서는 이런 법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재판에 국민이 참여하는 영미식 배심제( 陪 審 制 )와 참심제( 參 審 制 )가 널리 채택되고 있다.배심제는 법률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이재판에 참여해 독립적으로 평결을 하고,참심제는 참심원 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해 평결하는 제도다.독일이나 프랑스,일본 등 대륙법체계 국가에서도 도입하고 있는 이 제도를 우리는 채택하 지 않고 있다. 검찰의 기소와 관련해서는 검찰심사회제도를 참고해 볼 수 있다.일본의 경우 검찰로부터 독립된 기구인 검찰심사회를 설치,일반 유권자 가운 데 추첨으로 뽑힌 11명의 검찰심사원이 검찰관의 불기소처분의 적절성을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중견 판사는 이같은 외국의 제도를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국민이 참여할 수 있 는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은 필요하다. 고 밝혔다. 사법서비스 수준도 뒤떨어진다.변호사 1인당 국민 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약 9430명으로 미국(312명),영국(731명),독일(1030명)은 물론 일본 (7861명) 보다도 훨씬 많다.그만큼 변호사로부터 도움을 받기 어렵고 수임료는 높다. 또 소송을 제기할 때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에 대해서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 김선수( 金 善 洙 ) 변호사는 현재 소송 물 가액에따라 일정한 비율로 인지대를 부과하고 있는데 소액이라도 시간이 더 걸릴수 있기 때문에 특히 경제력이 약한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개인보다는 국가 위주-학계에서는 광복 이후에도 권위주의적 군사 관료지배체제가 지속되면서 법을 식민통치의 유용한 수단으로 이용했 던 일제의잔재가 이어졌다.영남대 박홍규( 朴 洪 圭 ) 교수는 일제가 시행한 형법의 특징은 개인의 인권 자유 보장보다는 대단히 국가주의적 이라는데 있다. 면서 지금까지도 법정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국가 위주 형법 체계의 산물 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전세계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는 사형제도.우리나라에서는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국가보안법 등에서 모두 103개 조항에 사형을 최고형으로 두고 있다.간통죄 등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깊숙이 개입하는 것이나 개인의 사상까지 통제하는 법 조항 등도 일제의 영향을 받은 국가 본위의 법이다.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 법제-우리 고유의 정서보다는 일제식의 사고 방식이 담긴 제도의 대표적인 예로 명의신탁( 名 義 信 託 )이 있다.원래 이 제도는일제 강점기에 주로 종중 토지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로 이용됐고,최근까지도 취득세,양도소득세 등의 조세부과를 회 피하기 위한 수단 등으로 악용됐다. 일본에서는 이미 1910년 이 제도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5년에야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을 제정,명의신탁을 금지했다.지금도 이 법에서는 종중과 배우자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명의신탁을 인정하고 있다. 호주제( 戶 主 制 ) 역시 한국 전통의 유교 사상보다는 일본의 가독( 家 督 )제도 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부산대 김용욱( 金 容 旭 ) 명예교수는 일제에 의한 가족법제의 왜곡과 청산 이라는 논문에서 해방 뒤 일제식 가족법의 골격이라 할 수 있 는 호주상속제 를 호주승계제 로 개정한노력은 평가할 수 있지만 청산과 극복을 위하여는 아직도 철저를 기하지 못한 점이 있다. 고 밝혔다.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지난해 말 개정된 민사소송법에서는 일본식용어가 상당 부분 정비됐고 판결문에서도 일본식 문장은 개선되고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73

274 있다.또영장실질심사제 시행으로 인신 구속이 엄격해졌고,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어긋나는 법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제 극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연세대교수를 지낸 신현주( 申 鉉 柱 ) 변호사는 법에 있어서는 우리가 아 직 광복을맞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면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우리의 법을 하나 하나씩이라도 만들어 나가야 하고 법 의식을 바 꾸기 위해 법조인의인성 교육 강화가 시급하다. 고 주장했다. 장택동 안동환 홍지민기자 [email protected] :::::::::::::::::::::::::::::::::::::::::::::: <시론>한국 부패 청산론의 허구 274

275 <시론> 민족문화론 :50 다음은 국내 유수의 신문기사인데 정신문화원 교수의 한국문화론 그리고 왜곡된 유교관을 가진 몇명의 교수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면서 <현재의 문화적 세태>를 분석하였다는 글을 싣고 있다.... 한국 공직자들이 공사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는 역사 문화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신문화연구원 이서행 교수는 연줄을 중요시하는 유교문화가 뿌리깊은데다 서구의 계약사회와 합리주의 경험이 짧 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영 한국외국어 대 교수(법학)는 서양 이 진작부터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 데 반해 동양에서는 양자의 구분이 희미 했다. 특히 효를 위해서라면 공사를 구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식이 오래 전 부터 자리잡아 왔다 고 지적했다.... 본 신문의 기자가 그 의견을 인용하였다는 것은 동조한다는 뜻이되며(다른 설명이 전연 없으므로) 이것은 우리 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현재의 실세들의 주된 사고의 내용임을 의미한다. (1)유교문화는 연줄을 중시한다 (2)계약사회 합리주의 경험이 짧다 (3)동양은 공사 구분이 애매하고 효의정신에 의해 공사구분이 약화되었다. 는 것이 그 핵심이다. 과연 그러한가? (1)연줄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기회주의 내지 이기주의의 한 형식으로서 유교 문화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아마 그들은 조선시대의 당쟁을 그 모델로 생각하는 듯한데 당쟁의 부정적 측면을 강 조하는 것은 식민주의적 태도일 것이다. 조선시대에 권력의 부패나 독점욕이 있었던 것은 사실 이나 그것은 조선사회의 모순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암시하는 것이다. 유교사상은 그를 극복하려 는 사상이며 문화이다. 그들은 사상의 보편적 의의마저 모르는 것인가? 모를 리는 없겠고 아마 그 주장 속에는 불온한 저의가 있음에 틀림 없다. <시론> 민족문화론 275

276 (2)합리주의 경험이 짧다든가 계약사회의 경험이 짧다는 것은 역사발전의 도정상 위치하게된 것이긴 한데 그들의 주장은 마치 한국이 정상적인 근대사를 영위해왔고 그러므로 그 책임은 유교에 있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조선의 근대정신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한 것은 오히 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악의에 찬 방해 때문이며 그런 식의 속좁은 합리주의라면 우리가 배울 모델로서의 합리주의일 수 없다. 서양 근현대사를 합리주의 정신이 통한 역사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순수한 합리주의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그 경험이 짧았던 나라보다 더 세계사에 해악을 끼쳤음를 주목해야할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가장 열열하게 서양의 합리주의를 배워온 한국 근대사의 결과가 그 잘 배운 핵 심인사들로부터 분출되는 부패로 얼룩졌다는 현상을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부패는 그들 합리 주의자들 때문인 것이지 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유교 때문인 것은 아니다. 사실 유교사 상은 그런 점에서는 거의 책임질 일이 없을 것이다.유교사상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권한이 부여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들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조찬기도회를 한다고는 들었어도 유생을 모아 경연을 행하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3)동양은 공사구분이 애매했다는 말 그리고 효를 위해서는 공은 희생해도 좋다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가 묻고 싶다. 아마 경전의 특수한 상황의 주석문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보고 곡해한 모양 이다. 원래는 그렇지가 않다. <부모가 불의에 빠지게 하는 것>이 최대의 불효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더구나 공사구분이 애매했다는 것은 그들이 유교의 초보도 모르는 말이다. 모를리야 있 는가 당연히 매우 사악한 저의가 있는 말이다. 그 저의란 역사적 사고를 두려워하는 사고일 것이 며 친일파류의 기회주의자의 사고와 매우 닮았다고 보거나 혹은 계몽주의 시대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공의에 목숨을 바친 열사들을 욕보이지 말아야할 것이다. 하이안자 <시론> 민족문화론 276

277 <시론>민족이란 무엇인가 :49 <1> 민족문학 작가회 회원들이 모여 친일문인을 선배로두었다는 자각에서 공개사과 형식으로 <참회> 의식을 행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오만한 참 회의 발언에서 <선배 문인들이 부끄럽습니다> 라고 하였다. <모국어의 미래를 위한 참회>라는 제목의 선언문 형식으로 발표된 그 내용은 :: :: 우리 문학인들은 제 아비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일제강점기의 친일문학 작품목록을 공개하고 민족과 모국어 앞에 머리숙여 사죄한다. 이를 새로운 역사단계에 들어서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출 발점으로 삼고자하며 이러한 작업이 사회 전체의 여러부문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 :: 고 하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민족문제연구소 실천문학과의 공동작업으로 42명의 친일문인명단을 함께 발표했다. <더 이상 친일파 청산 작업을 하지 않겠다는 광복회의 선언은 굴복이자 항복이다. 이에 반해 한 시대의 작가들이 선대 작가들의 죄를 사죄하 겠다는 것은 어려운 결단이다>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과연 그런가? 그들은 언어의 호도를 통해서 결국은 친일문학인을 되살려 내겠다는 의지를 결행한 데 지나지 않는다.(1)최소한의 자기 출발점 으로 삼겠다는 말은 친일을 반성함으로써 새시대의 길을 열겠다는 것으로 결국은 계승하겠다는 말이다. (2)모국어의 미래를 위한 참회라는 것은 친일문인들이 모국어의 발전에 공헌한 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마 치명적인 착각일 것이다. 모국어는 한 순간도 누구에게 도 변전 발전하는 도상에 있지않을 때가 없었고 친일문인에 의해 영도된 것은 아니다. 글을 다루는 모든이의 결정이다.그 잘못된 영도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려는 것은 죄악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들은 부끄럽다고 말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점을 결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말 역사를 모르는 무지한의 고집이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의 내부에 이어져 연면하고 있는 비주체적 사고의 잔재를 과감히 드로내고 선배 가 아닌 스스로를 반성했어야 한다. 어떻게 남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고 용서하라고 뻔뻔히 말하는가? <자기 아비를 위하여 호소하는 눈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조용히그 오만한 권위부터 포기하고 조용히 살 일이다. 대체 지금 이 중요한 시기에 무엇을 하려드는가? <2> 인터넷 작가 김완섭이 명성황후 시해를 잘된 일이라고 대갈일성하는 오늘의 세태가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비주체 적 기회주의자들의 실세를 반영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이기적 기회주의 문화세력>이 지금도 한국문화의 색을 결정하려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서구의 이상과 미학에 숨어 그 정체를 감추고 어떤 자는 전통의 향기 속에 업 드려 온몸을 숨긴다. 그 뿐이다. 숨기는데 유용하다면 기독교든 불교든 유교든 도교든 가리지 않는다. 최근엔 달라이라마까지 끌어들이는 시 인 문객들을 보면서 식자들은 한숨을 짓고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다. <민족사>를 거론하며 < 맥아더>를 찬양하는 고급 논객 문인이 있고 그들은 세계이상이라는 화장된 이론으로 자신의 얼굴을 깊이 묻어둔다.진정 <가야할 사람들>이 다. <시론>민족이란 무엇인가 277

278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진다는 신세대를 말하고 세대가 바뀌고 있는 듯이 착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쇄신된 신세대 혹은 각성한 신세대는 존재하지 않는것이 진실한 현상황이다, 진실로 민족 정신을 숨쉬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새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감히 새신자( 新 )를 사용할 수 있는가? 아직 이 사회에는 안타깝게도 세대를 초월하여 구세대만 충만하다.새롬다는 것은 감각과 기술과 생활 양식의 새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간의 포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 많고 죽음을 앞둔이의 결연한 반성이 더 새로운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민족이란 성깔있는 육신의 총합체가 아니다. 개개인의 삶에서 얻은 사적이고 개인적인 한으로 분출되는 병리학적 신경질도 아니다 가난한자는 억압받은 자는 그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자학의 표명도 아니다. 민족은 힘이며 그 덩어리이다. 갱신하고 초월해나아가는 상시 새로운 힘이다. 갱신하기 위해서는 그 유구한 전제를 필요로 한다. 에너지의 전제가 없는 힘은 힘이 아니듯이 정신의 확고함으로 지탱되지 않는 것은 다만 하나의 미망이며 중독일 뿐이다. 일반의 모든 삶으로서의 그 전제가 바로 민족이며 힘이며 개인의 확고한 길이다.서로를 융통하는 모일 수 있는 길 그것이다. 그 힘은 오직 실질한 민족사와 사상사로부터 나온다. 하이안자 <시론>민족이란 무엇인가 278

279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21 인기잡지 <<뼈>>는 유교를 치는일로 산다 어떤 신학자 세미나는 우리 역사와 전통과 유학을 향하여 3차 대전의 군비를 무차별 확장하고 횡행하는 혁신그룹은 그 희망의 메시아적 미명에도 불구하고 남군 여군 나서게하여 테러를 연상하는 대유교 공격을 벌인다 그들의 선언문은 그러나 슬프게도 낡은 계몽주의 시대의 문장이다 오오 우익들은 그들은 근대화 직전의 달콤한 낭만에 머물러 동이군자를 능욕하고 최소한의 이성마저 욕보인다 <무슨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 <어떤 추억의 클럽을 연다고?> 난 이제 한번도 일없었던 혁명을 꿈꾸어야할 기로에 섰다 <뼈골자 말씀으로 뼈를 깍으며>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279

280 원래 반사한 적 아마 없었던 나의 외곽은 실로 우주를 상대하는 최전선 모든 살갗은 돋보기 현미경 확대 영상을 큰 배율로 달아두었지만 어리숙해진 맨눈은 다행히도 골마다 광각으로 빛들을 산란해 결국은 반들반들 <말씀>을 닮는다 단 한번 잡았던 핸들의 기억 그 잠시의 서행 그 여독만으로도 나는 내내 멀미한다 <그저 사람은 뼈로 걸어야 하느니> 탄탄히도 예에 저에 이어진 도롯가 모든 생명의 기립 스스로 서기만 하는 일도 자체가 언제나 상시 빈혈증으로 어지럽더니 결국은 연골을 흔드는 파동으로 내 모든 거죽을 괴기하게 일렁인다 수뢰둔의 메시지이다 <그렇다 이젠 뼈다>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280

281 <나의 뼈> <우리의 뼈> <그것은 도통한 조각가의 궁극의 상이다> <노령사회의 서곡을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다> <불노장생의 비전을 말하려는 것이다> <피로는 물렀거라> 몸은 이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단다 땅에 눕고싶은 허리 늘어뜨리고싶은 두팔이지만 자유를 허용할 수 없단다 오직 이젠 행동의 미학이다 그 공간을 그리는 두께도 굵기도 묻지않는 가늘지만 힘있는 기하형체 걸어다니는 동상이다 <사이보그는 아니다> 오만은 꿈 회한은 그림자 사명은 기침인 걸음걸이 분수 넘었던 무골챙이의 모든 미망들은 파문자의 유수 침묵의 섬 공간의 가에 머물고 어느덧 자연은 완전히 영상이 되었음을 문득 생각해낸다 <그래 이제 뼈다> 아직은 그래도 파란 세월 도구를 사용하는 까마귀를 실험으로 발견하듯이 세계 천재 다모여 겨우 초파리 분석하듯이 힘들여 허리를 펴는 하루는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281

282 기적처럼 놀라움으로 힘줄 없는 뼈로 기공으로 매일 일어선다 <조상들이 골장을 한 이유다> 공자의 개인사가 그대로 춘추시대 역사였듯이 오늘은 수많은 사초 볼 것 없이 소박한 개인 들의 삶이 그대로 현대사이다. 비자금을 감추 는 남성들 얼굴에 페인트 덧칠하는 여성들 < 못생긴건 용서못한다> <잘 생기면 배신도 용 서한다>는 모든 세대는 성형외과를 서성인다. 월드컵 붉은 악마는 차라리 기적이며 한 순간 의 이적이었다. <못살아도 용서되던> 삶을 비 추는 다뉴세문경 무당들의 신비한 거울이었다. 그 살아있음이었다.오직 그 쁜이었다 "하늘이 사문을 버렸으랴" 공자의 탄식 메아리로 들린다. 하이안자 유교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2)뼈의 발견 282

283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동작 그만 :28 <1> 많은 한국인들은 유교의 허울을 기를 쓰고 벗으려고 갖은 애를 다쓴다. 반면에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모든 한국적 현상에 대하여 <유 교적>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언젠가는 머지않아 세계인들은 이젠 이미 한국은 유교국가가 아니다 라고 평하는 날이 멀지 않은것 같다.그것은 과연 바람작한 일안가? 아마 유교에 무지한 한국인들은 유교적이란 <전근대적>이라는 말과 크게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모르면 알려고 먼저 노력하는 것이 순서다. 예를 들어 서양 고대 그리이스 철학의 정신을 발전시켜오고 있는 서구인들이 <그리이스 철학을 전근대적>이라고 혐오하는 일은 없다. 더우기 그들 중세의 종교인 기독교마저 <청산의 대상>이라고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 왜 아시아의 정신으로서 유교는 청산의 대상이라고 주장 하는 이가 그리도 많고 그 논조는 어째서 그렇게도 악의에 차있고 살벌한가? 오늘날 한국사회를 발전시키겠다고 나서는 많은 남녀 명사 무리들은 틀에 밖힌듯이 한결같은 연대를 가지고 유교를 괴멸하려한다. 남녀차별도 유교 때문이며 권위주의도 유교 때문이며 경제위기도 유교 때문이며 가족이기주의도 유교 때문이며 집단이기주의도 유교 때문이며 기독교는 사랑의 정신으로 가족과 아내를 감싸주는데 불교는 자비의 정신으로 화합하는데 유교는 권위주의 포학스런 해악을 남겼다고 말한다.얼마나 뭇사람을 웃기는 이야기인가? 심지어는 유교의 성금기사상이 젊은이들에게 성에 무지하게 하여 <미혼모>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고 문화가 서구화되어 무분별하게 성개 방을 찬양하는 사이비자성 때문임은 모른다. 유교의 위대한 덕목은 자기절제이다.이것을 그렇게 질타해도 좋은지 스스로 물어보라. <2> 호주제도를 고쳐야한다고 주장하고 입법으로 밀어부치려한다.이를 반대하면 무슨 역사의 반동분자인듯이 몰아세운다.이혼가정의 자녀가 성씨 를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꾸지 못하여 불쌍하게 산다고 눈물을 자아내고 이혼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동성동본의 떳떳한 결혼을 위해 성씨제도도 고쳐 성을 선택하자고도 한다.남자의 성을 따르는 것을 유독 한국의 여성들이 혐오하는 듯이 선전하고 호주제도 철폐하고 성씨제도 철폐하고 여권을 신장하자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유교때문이라고 폭언한다. 그들은 폭력을 신봉하는 신공산주의 사화혁명가 들인가? 말의 폭력이 가장 아프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들은 오히려 가정이 많이 파괴되어 미국처럼 유랑하는 자녀가 많은 나라가 선진국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 운동가들이 지금 국가의 훈장을 받는 세상이다.말세가 따로 없다.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동작 그만 283

284 그들의 명분이 사회를 개선하는 약간의 안목을 줄지언정 가정과 사상과 문화를 파괴한 죄는 어디서 물을 것인가? 여성의 대명사를 <그>라고 불러 중성사회를 추종하게 하는 <그들>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려는 환경오염적 돌연변이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어제와 오늘도 그러한 왜곡의 가사들이 언론의 지면에 나타나고 있다. 생각해보자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를. 단적으로 그들은 유교를 모르는 사라들이다. 아마 가독교 신학자가 정리하여 인터넸어 올려진 유교소개글 정도만 읽었어도 무한한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하게 될 것이다.경전 중 한권만 제대로 읽어도 망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교와 여성계의 화해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화해가 가능한가.그저 좌충우돌 혼 자서들 뛰는 것을... 그들은 유교를 모른다. 무엇을 먼저 해야하는 것인지 스스로 알 것이다. 더구나 꼭 필요한 역사도 모른다.역사를 모르면서 어떻게 <근대지성> 의 흉내를 낸다는 말인가? 유교적이란 적어도 최소한 그런 것은 아니다. <3> 또한 한국은 부정부패자수가 극히 높은 치욕스런 나라이기도하다.이기주위가 가득하고 수양되지 못한 야성적 인격의 발동이 많은 나라이다. 집단이기주의 가족이기주의가 넘치는 나라이며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끼리끼리 모이는 기득권적 소인적 붕당이 형성되는 나 라이다. 연고주의 학연 지연 등이 그것인데 이것도 유교탓이라고 비겁한 책임전가를 하기에들 바쁘다. 오히려 유교적 덕목을 공부하지 않고 유교를 완전히 버리고 친일 친서구의 길을 걸어온 해방의 역사임을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기금 기억나는 지성의 최고봉 교수들의 <명논설>가운데 영원히 잊지못할 공개된 담론이 있다. (1) I.M.F 직후에 모대학 경제교수가 환란의 원인이 유교적 지역주의에 있다고 한 말 (2)학술세미나에서 모모 대학 교수들이 군사정권시절의 대총령들의 권위주의가 유교의 그것이라고 한 말 (3)최근 어느 종교인이 가정불화의 원인이 남을 배려하지 목하는 유교적 사상 때문이라고 한 말 등이 그것이다. 그 3가지 원인은 그와는 달리 다음과 같이 뼈아프게 반성되었어야 한다. (1)환란의 원인은 기업이기주의에 있었고 부정부패에 있었으며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었다. (2)권위주의는 식민적 관습이며 수양과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3)무분별한 서구문화의 범람으로 전통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4> 물론 많은 양식있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그럼에도 사회의 매스컴 표면에 그 악의에 찬 유교부정과 왜곡의주장이 아무런 두려 움이 없이 자행되는 것은 왜인가?현재 이 사회를 주도하는 여러 세력의 공범적인 죄일것이다. 공정한 정상적 지성인들이 한숨짓는 까닭이다.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동작 그만 284

285 한국인 들은 지금 잠시 미망에 빠져았고 그를 깨울 방법이 없다. 필자는 공부부족한 가난한 시골 서당 선생으로 힘도 없고 깨달음도 없어 역 시 깨울 힘이 없다. 그러나 미망은 자나가는 것이므로 오늘의 혼란으로 행복을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들이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는 있다. 나 역 시 유교의 운명을 따라 문명의 그늘을 걸어야하는 이 고난의 죽음같은 여정이 결국은 끝나리라 믿는다. 과거 한민족이 우랄알타이 거대한 산 맥을 아라랑 곡조로 넘었듯이 천산남북로의 험준한 길을 비단길 천년전에 지나 한반도에 터를 잡았듯이 그 힘찬 궤도를 회복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반드시 경전과 역사속에 울리는 청사에 적힌 조상 지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발 사이비 지성들은 그 의미없는 <동작>을 <그만>하라. 하이안자 유교적이란 무엇인가? <1>동작 그만 285

286 유학적 사유에 대한 전망 :03 <1>유교적 상황 대개 우리는 이사회에 현재 흐르고 있는 사유와 정감의 범위에서 생각해볼 때 유학이란 하나의 복합적인 그리고 불안정한 어떤 개념체로 영상지워지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1990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1000만 유교인을 자처하는 나라였다. 그후 10년 정도 지나면서 유교인을 자처하는 인구는 400여만명으로 조사되었다. 절반이상의 숫자가 감소하였다. 반면에 그 자리를 기독교와 불교가 차지하였다. 이것은 엄청난 사회변동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문제의 의미를 짚어보려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유교가 종교라고만 볼 수는 없으므로 유교를 자처한다는 것 자체가 정확한 지표는 아니다. 유교를 종교로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많고 유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도 불교에 귀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그러므로 그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유교적 의례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결혼식과 장례식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 인 것이다.정치와 사회의 분야에서도 유교는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위민정치>라는 오랜 유교이념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아래 그 빛이 가리웠다. 철학과 역사와 이데올로기로서도 유교는 완전히 한물 간 학술로경원의 대상으로 전락한 느낌이다.가족을 지도하는 생활이념으로 서는 더욱이나 힘을 잃고 있다. <호주제>의 폐지라든가 <성씨표기 자유화>와 같은 개혁을 표방 하는 사회운동세력의 주된 타킷이 유교이다. 그것은 물론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 우리사회의 흐름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공격적 대응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제는 유학사상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가소로운 부분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유학의 본질을 조금 맛볼 수 있는 기회 공간을 비집어내고 싶다. <2>유학의 실체묘사의 시도 유교 또는 유학이란 무엇인가? 가장 친근한 정통이면서도 답하기 여려운 질문이다.나는 그에 대한 대답이 아주 여러 단계에 따라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유교에 대한 스스로의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 답을 모두 달 리 해야하기 때문이다. 유학에서는 인 의 예 지 덕 등의 개념을 지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개념들은 하나로 정의되어서 유학적 사유에 대한 전망 286

287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 스스로 유교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직결되어 있고 개별적인 답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첫째 유학은 삶의 사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 삶의 사상이라고 정의되어야하느냐 하면 유학은 삶의 전체 사공에서 경험한 것들은 그대로 다 포용하여 사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한 결과를 그대로 인생에서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의지와 힘을 창출하여 이행하여 나아간다. 이를 유학의 실천적 측면이라고 낯익은 언어로 정의할 수 있다. 둘째 유학은 삶을 초월하는 사상이다. 유학은 삶과 인간에 얽매아지 않는다. 인생의 과정을 통해 결국은 인생을 초극하려는 사상이다. 막연한 초극이 아니라 논리와 의지를 통하여 보편세계와 호흡함으로서 비로소 초월의 힘을 얻게 된다. (3)유교적 사유의 실례 유교적 사유의 정의곤란성을 대표하는 것이 주역적 사고이다. 그리고 유교적 사유의 표면을 보여주는 것은 주역을 제외한 유교 경전들이다. 경전 마다 독특한 해법과 의미가 각각 있지만 이들 일반 텍스 트 경전들은 주역과 대비된다. 주역은 비텍스트적 경험을 포괄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유교적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 주역에서 3개의 효로 이루진 소성괘는 개별 상황과 사물의 본질개성을 포괄적 범주로 나타낸다. 그 둘로 구성되는 대성괘는 그 상황과 본질의 결합으로 구성되며 새로운 창조된 일반상황을 표현한다. 3개의 기초적 효는 사물의 본 중 말의 전통적 이념을 의미한다. 유교적 사유는 범주적으로 이루어지며 다시 개별적 본질의 이해를 확고하게 한다. 개별과 본질과의 넘나듦을 유추( 推 )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 하나는 <길다>고 유추될 수 있고 <가늘다>고 유추될 수 있고 <약하다>고 유추될 수 있으며 <끝>이라고 유추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무한한 유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화를 통해서 각 개체는 여러 통로의 통일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계속:2002/8/7) 그와 같이 사물들은 감각적으로는 각기 하나의 형상으로 존재하지만 그 존재의 의미의 영역은 다차 원적이다. 우리는 대개 실용적 차원에서 사물의 의미를 포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실용적 차원은 역시 그 사물의 존재의 영역중에 중요한 한 분야일것이다. 그러나 실용적 차원도 역시 여 러 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다층성을 통관하는 의미관통의 길을 찾으려는 것이 결국 유학일 것 이다. 예를 들어 과학은 경험적으로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열어보는 작업이며 문학과 예술은 직관적 미 학적으로 존재 의미의 새로운 차원을 감각하고 표현하는 일이다. 예술이나 과학은 결국 일상적 이 해의 전제차원을 초월하려는 점에서는 동질성을 구유한다. 촌재의 평면적 차원을 초월하여 입체 유학적 사유에 대한 전망 287

288 적 존재의의를 구축하는 것은 그만큼의 삶의 힘을 실현하게해주는 실용적인 그 무엇이다. 방만하 게 초월 자체를 목표로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실체를 무시하고 아무 조건 없는 초월을 추구하는 것은 학술이나 사상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비주의적 영영의 일인데 유학은 그러한 노작을 중요시하지는 않으나 전면적으로 부정하여 자신이 사유작용 가운데서 배제하지는 아니한다. 유 학에 모든 종교에 대하여 열린 자세 혹은 포용의 자세를 가질 수 있는 까닭이다.(2002/8/8) 유학적 사유에 대한 전망 288

289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53 우리가 주지하듯이 물리학에서는 관성이라는 개념을 익히 사용하고 있다. 속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 고자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법칙일 수 있으나 그 의미는 해석하기 에 따라서는 많은 새로운 시각을 확인해줄 수도있을 것이다 즉 하나의 형성된 속도와 움직임 자체가 우주의 실존의 한 영역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실존의 영역에 있는 것 등은 지속하고자 하는 본질성을 지니기 때문이다.속도란 물 질 자체는 물론 아니지만 하나의 실존체가 부수적으로 일 으키는 현상으로서 우리가 실존체라고 부르는 것의 영역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면일 수 있다.실존이란 물질의 영역에 국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움직임이란 실존체의 반영이라는 생각그리고 그 움직임 자체가 또한 일단의 실존이라는 생각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역사와 사회적 흐름 같은 현상경험도 실존의 엄 연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이른 우리의 사회 문화적 흐름과 분위 기들은 이 싯점에서의 우리의 진정한 어떤 본질성을 반영한 다는 생각에 당연히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개별 움직임의 총체로서 유행이라든가세태라 든가 흐름이라고 하는 어떤 시회적 문화적 그리고 생태적 여 러 특징을 드러낸다. 그 모든 움직임들은 나름대로 절대적 의미와 당위를 가지며 존중되어야 마땅한 당당한 하나의 실존체이다.그러나 많은 실존체로 구성되는 우리의 삶과 역사는 결국은 모든 실존체 를 다 수용하고 유지하기에는 너무나도 제한적이이다. 우 선 인생이 유한하고 지구의 자원과 공간도 유한하다. 우리는 우주상에 특별히 제한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선택이 요구 된다. 인생과 문화와 역사는 결국 선택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289

290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사소하고 작은 선택이 모여 우리 의 큰 움직임과 관성을 이루어나아가므로 그리고 그 관성이 크면 클 수록 그 움직임의 궤도를 변경하기는 어려우므로 우리의 선택은 극히 중요할 것이다. 요컨데... 빨리빨리문화로 규정되는 속도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속도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결국 어디냐를 물어야할 것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매우 긴 공전주기를 가 진 행성이 장래에 지구궤도와 부딪어 충돌할 가능성이 있 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와 같은 관측은 많이 나왔었으므로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으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 주의 궤도도 우리의 삶과 똑같은 실존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주는 완벽한 조화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우주의 힘은 당연히 그 충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인과 국가와 세계의 역사도 그와 같으므로 걱정할 것이 무어냐고 셍각할 수도 있다. 우리사회의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오랜 우리 역사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고 생각 된다는 데에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유행하는 무절제한 즐김의 문화가 그것이다. 요즘 피서철을 맞아 수없이 떠나는 사람들의 물결, 외국행 비 행기를 타는 행렬, 도로에 넘쳐나는 자동차의 질주들이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아직 자동차 운전도 배우지 못한 나같은 원시인 차를 구임할 능력도 없는 경제약자라고 지칭되는 사 람들이 마냥 안타깝다가도 그렇게 따라 질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 속좁은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그랬으면 오죽 좋겠는가? 눈부신 희망이 빛난 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오늘 하루종일 뉴스에 넘쳐나는 기자들의 리포트를 적어본다. 해운대 인파 30만명/무더위를 날려버립니다/비치발리볼이 인기만점입니다/얼음같이 차거운 계곡에 발을 담그면 더위가 달아납니다///서해안과 남해안도 지지 않습니다/고속도로 답 답한 인파입니다/주 5일제로 이제 여행이 자리잡고 있고/가 족여행도 가능해졌습니다/동호회 활동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 습니다/즐거움...행복...취미...전원주택...///기자들의 놀 기 권하는 보도는 거의 흥분에 가깝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인가? 묻고 싶다. 여름에 그렇게 해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290

291 야하나? 다 가야하고 안가면 뒤지는 것인가?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기자들의 비열하거나 줏대없는 상업주의 영합리포트 는 하루종일 짜증나고 신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다른 뉴스 도 가관인데다...걱정된다. 내 여유 있으면 고아하게 고전을 인용하고 경전론을 하고싶다. 그러나 요즘 같아서는 소 귀에 경읽기,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력해보이고 비겁해보이기 까지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가난함이 자랑은 아니었지만 사치와 과욕과 방탕 을 꺼릴 줄 알았다. 오늘날 처럼 권력투쟁도 있었지만 그래 도 명분이 힘찼었다.(사극은 그런 것을 다 지우고 있지만) 국난시에 탈출하려고 외국 국적 확보한 사람들이 나라를 지 배한 적은 없었다. 관광입국이라는 미명아래 러브호텔을 지어 풍속을 타락하는 광란을 국책으로 삼은 적도 없었다.외국의 풍속을 제일로 여기고 외국의 풍광을 제일로 여긴 적도 없었다... 국민의 시대 시민의 시대는 그렇게 열리는 것인가? 자연스런 놀이문화는 우리 삶에 활력을 준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엄숙주의 고대 문화로 절제주의 근세문화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표백된 도덕 이념을 강조하려는 것 도 아니다. 다만 적어도 우리들의 전통적 문명어인 문질( 文 質 ) 이념을 통해서 우리문화를 찬찬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하는 것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서구적 <몸의 철학>이 삶과 문화의 전분야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 몸, 나자신의 자연스런 욕구와 바램이 극히 정당한 것이라는 단순하고 야 성적인 철학이 설익은 채로 강단까지 점유한 지금이 아닌가. 정체불명한 감정의 유희로 가득한 서구영화와 생활문화의 영 향을 하나 둘 걷어내야할 것이다. 夏 夷 案 者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291

292 한국의 선택과 문화물리학적 관성에 대하여 292

293 이상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오만하지 않다 :46 능력이나 힘 부나 권력 명예 혹은 선의나 기쁨일지라도 그것이 한정없이 많은 것이 언제나 옳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 아에서는 역사상 중용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상( 理 想 )을 추구하는 의지와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많아도 높아도 좋을 것이다. 모든 힘과 욕구나 희망은 언제나 분수에 맞아야하 는 것이지만 이상을 추구함에는 분수라는 것이 관계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이상에서만큼은 분수 없이 제한없는 욕심을 부려도 되는 것이 다. 오히려 그것을 크게 높게 확고하게 가지지 않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왜 그말을 하게 되는가 하면 현재 우리들이 가진 이상이 아직은 매우 작고 좁으며 큰 이상을 가지는 일을 두려워하고 혹은 꺼리기도 하며 아 직은 그럴 때가 못되었다고 주저하고 회피하는 움직임이 우리들 스스로에게 숨길 수 없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찌기 옛 현성( 賢 聖 )들은 이런 점을 지적하여 자포자기( 自 抛 自 棄 )라고 결연히 단언하여두었었다.지금은 바로 그 자포자기의 어리석음으 로부터 벗어나야할 때일것이다. 우리가 느끼기에 동아시아는 그동안 자기의 것보다는 남의 것이 더 세련된 것이라는 탈자아의 삶을 살아왔고 그것은 어느정도는 정당한 것이 었다.어느정도 정당하다는 것은 근본적 본질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시적으로 정당했다는 것이다. 대개 동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서구지향성은 일본과 중국이 보다 강하고 한국은 보다 약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국민의 의식이 그러하 다는 것이다.실제 나라를 이끌어가는 부류의 경우의 성향은 대개 유사한 서구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커다란 괴리일것이고 그 괴리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국민의식과 반하는 지도력은 힘을 얻을 수 없고 국민의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그힘의 한 단면을 최근의 <거리응원>에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국민적 축제 현상을 해석하는 데는 많은 의견과 방식과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주제는 언제나 민족적 본질성과 세계속에서의 당 위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월드컵 전야제와 개막식을 통해 세계적 이상을 표현하는데 가장 앞섰고 국민의 응원으로 이를 가장 충분하게 그리고 거대하게 표현하였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이 하지 못한 일은 수행한 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 자랑 스러워해도 좋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축제의 성공 의미를 음미할 때 그 이상의 표현으로서의 개막식과 전야제를 언제나 잊지말아야할 일이다. 앞으로는 보다 더 적극적 으로 더 함차게 그리고 더 당당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것은 무한한 깊이를 갖춘 문화민족으로서 장구한 역사를 성취한 유구한 민족으로서의 잔정한 실효적 권위이며 힘이기도 하다. 실은 작은 성공과 실패에 너무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결국은 하고싶은 것이다. < 夏 夷 案 者 > 이상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오만하지 않다 293

294 이상은 아무리 크고 높아도 오만하지 않다 294

295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44 최근에 가수 조영남이 지인들을 대거 거느리고 관람한 오페라가 열렸다고 한다.<레미제라불>을 공연하는 그 자리에는 이 나라의 문화계 주요 인사가 400여명이 참석하였다고 하는데 동양학자로 널리알려진 도올(김용옥)이 참석하여 오페라가 열리기 전에 특강을 하였다고 소개되었고 그 특강에 시간을 할애하느라고 공연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다.그 소개기사에는 공연전의 행사로 공연시간이 늦어진 것은 유럽과 아시아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는 그들처럼 오페라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도올은 그 특강에서 <레미제라불>의 인도주의에 대하여 논하였다고 한다. 나는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할만한 문화적 상류계급이 못되므로 보지도못한 그 공연을 평할 수는 없지만 또 개인적으로는 구태여 평할만한 드높은 가치가 그 리 있다고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우선 두가지 정도 할 말이 있을 뿐이다. 첫째 오페라의 평보다도 공연이 늦어진 공연행태를 <우리의 독특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무모함에 댜하여 먼저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독특하 다는 것은 문화의 질에서 나와야할 것이다. 공연의 진행 순서나 공연을 음미하는 자세 공연을 대하는 감상자의 심오한 태도가 역시 하나의 문화적 특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적 주제를 서양적 미감으로 그리고 서양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므로 우리의 삶에 서양적인 것을 혼합하려는 움직임에 불과하다. 아직은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도 마치 한국의 작품들이 서구의 작품들과 대등한 작품성을 가지고 또 그들이 주는 상을 받은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그 분야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공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역시 서양의 문화를 우 리 문화와 혼합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근대이후 우리가 추구해온 서구지상주의를 재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함이 있 다는 말을 단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의 세계문화로서 영화나 오폐라는 매우 뛰어난 양식이고 우리가 받아들여 자기의 표현의 영역을 개척하고 발전되게 해야한다는 데는 변 함이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의 양식들이 신이한 것이고 어떤 고정된 절대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일반 심성으로 먼저 허심탄 회하게 수용해야할 것이다. 문화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누리고 향유하는 내용과 방식에 의해 새로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새 로운 것으로서 서양문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일정한 기존의 틀에 추종한다면 우리의 문화적 자아( 自 我 )는 약화될 것이다.자아가 약화되는 문 화는 사실은 해악( 害 惡 ) 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수 조영남이 <나는 오폐라를 참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상당한 괴리와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가 좋아한다는 그 정체성을 일반적으로 공유하여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그도 스스로 그 좋아함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소개기사가 더이상의 설명이 없고 단지 오폐라를 많이 본 사람끼리 주고받는 어투로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오폐라 동호회의 알림글 같은 그 글로 그런 사정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조영남의 오페라뿐 아니라 현재의 여러 대중문화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이다. 영화평이나 나아가서는 문학평론 같은 분야도 예외는 아니며 앞의 도올의 동양학 담론도 그 범주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요컨데 서구 문화에 대한 지나친 정도의 문화적 찬미는 곤란하 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매체들이 매체로서의 서술의 경중을 다룸에 있어 좀더 자기의 본질의 무게와 무한한 자존심를 좀더 가졌으면 좋겠 다.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295

296 우리는 흔히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감상자의 자유의 영역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예술적 존재론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사실은 그 말 자체가 극히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한 역설일 수 있음을 모른다. 감상자의 순수한 자유의지 에 맡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무책임하게 자유의지에 맡겨진다는 것은 아니다.그 말은 새로운 해석과 음미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 아무 렇게나 받아들여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 <아무렇게나 받아들여서는 않된다>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의 자아의식으로 받아들여야함을 말한 다. 그 자아의식은 개인적 사변이지만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호흡을 같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사실은 그 가치가 반감되는 것일 것이다. 사실은 모든 표현은 귀중하다. 오페라나 영화, 음악만이 그 시대의 문화를 잘 표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의 행동과 언어는 무엇이나 똑같 이 귀중하다. 우리가 말도안되는 스릴러물 영화를 아주 수준높게 감상할 수도 있다.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감상할 수도 있다.반면에 수준높은 평론이 우리의 감상과 음미의 자유의 눈을 상하게 할 수도 았다.(사실은 매우 빈번하다) 또 한 가지는 특강이라는 형식에 관한 것인데 서구적 공연을 동양적으로 이해하려는 몸짓으로서는 괜챦겠으나 사실 도올의 동양학담론은 역시 혼합문화적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오페라의 동양적 이해의 진수를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 각된다. 우선 <인도주의>라는 서구적 개념을 쓰고 있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이다. 사실 <레미제라불>의 주제는 서구 근대 시민사회의 성장 의 애환을 표현항 것이다. 우리에게 그렇게 특별한 주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왜 그것이 서구인에게 절실한 주제인가를 묻고서야 우리는 조 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위에서 그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공연의 정신보다도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지는 높은 수준을 감상할 수도 있으므로 어떤 감상자의 어떠한 감상이든 가치있는 일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중문화와 괴리되는 방향으로 문화적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와 같은 전형적 서구문화 양식에 대한 비중이 일반의 문화 해석과 균형을 이루어주었으면 좋겠다.그리고 그보다 앞서서 우리의 문화적 자아는 무엇인가를 더 열심히 묻는 움직임이 일어나야할 것이다. 오직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는 것이지 그 행사나 기사 자체 에 다른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유럽이 주름잡는 축구나 오페라로 대표되는 서구문화 같은 문화적 양식의 뛰어남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문화에서 우리가 쇄국적이되어야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다만 그것이 우리가 전력을 기울여 환호해야할 대상은 적어도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 다. 우리의 언어와 사상으로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할 길은 없는 것인지를 보다 절실하게 그리고 항상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와 국민의 역량이 보다 진정한 자아실현 쪽으로 집중되기를 바랄 뿐이다. < 夏 夷 案 者 > 참고기사... (조선일보/문화) [문화] 조영남이 만난 400명 레 미제라블 단체관람 ( )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296

297 사진설명 : 뮤지컬 레 미제라블 의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조선일보 DB사진 첫날 만큼은 공연 내용 보다도 유명인사 눈요기 만으로도 특별한 공연이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 개막공연이 열린 12일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문화예술계는 물론 정계 등 각계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 최인호(작가) 김동호(부산국제영 화제 조직위원장) 양희은 김수철(가수) 앙드레김(패션디자이너) 이상벽(방송인) 박정자 윤석화(연극인) 주병진 전유성 이홍렬 이성미(개 그맨) 노영심(작곡가) 박기현(한국오페라단장) 등등. 아마도 신년 교례회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이들 VIP 군단 은 가수 조영 남씨가 개별적으로 돌린 초청장을 들고 공연장을 찾았다. 모두 400명. 조영남이 만난 사람들 총출동이다. 초청받은 인사 중에는 도올 김용옥씨도 보였다. 김씨는 공연 시작 전 무대에 올라 10분간 레 미제라블이 주는 교훈 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이 공연 시작 시각을 늦추면서 특별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는 미국 영국 등 이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나라를 통틀어 처음이었다. (공연 시작시각은 당초 7시30분이었으나 특강 편성으로 7시 45분으로 늦춰졌다) 이날 각계 인사들이 조영남의 친구 가 되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배경은 이렇다. 조씨는 지난해 겨울 도쿄에서 지휘자 정명훈을 인터뷰했 다. 인터뷰 내용은 KBS 위성TV를 통해 지난 1월 방송됐다. 조씨는 이때 동석했던 정명훈씨의 형 정명근씨와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나누었 다. 정명근씨는 이번 레 미제라블 브로드웨이 공연팀을 초청한 공연기획사 CMI 대표다. 뮤지컬 애호가이기도 한 조영남씨는 이 자리서 레 미제라블 대사 를 자청, 개막에 맞춰 대규모 초청장을 뿌린 것.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즐깁니다. 과거 오페라의 유령 을 이성미 주병진 박미선 이경실 등, 대여섯분을 제가 초청해서 함께 관람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요. 더우기 이번 레 미제라블 은 본토 뮤지컬 아닙니까. 월드컵도 끝났고, 신바람을 좀 이어가자는 뜻에서 함께 모여서 뮤지컬을 즐기자고 깃대를 잡았죠. 조영남씨의 초청 취지를 듣고 모 기업이 흔쾌히 경비를 대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KBS 1TV 도올의 논어이야기 방송을 돌연 중단하고 잠적했던 김용옥씨도 모처럼 대중앞에 환한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초 인도에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함께 하는 모습을 언론에 잠깐 비쳤을 뿐 내내 칩거하다 공연장을 찾은 김씨는 대문호 빅 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 에 담아낸 휴머니즘은 불교의 보살정신, 기독교 사랑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며 부조리한 시대, 참담한 현실 을 살아낸 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사회의 도덕적 진보를 이 작품에서 읽어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에는 박관용 국회의장을 비롯해서, 정몽준(대한축구협회장) 의원 등 정치인들도 상당수 모습을 비쳤다. 캐머런 매킨토시가 제작하고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출연진과 오리지널 무대장치 그대로 나오는 이 뮤지컬은 8월 4일까지 총 30회 공연된다. ( 金 龍 雲 기자 [email protected] ) [문화] 뮤지컬 레 미제라블 을 보고... 윤호진 ( )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297

298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이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 8월 4일까지 공연을 하고 있다. 이 공연은 브로드웨이의 출연진과 스탭진이 직접 참여해 관심을 끈다. 첫날 공연을 본 뮤지컬연출가 윤호진씨가 리뷰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빅토르 위고의 원작 못지않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 역시 20세기의 오페라 로 불려도 손색없는 명작이다. 작품이 갖는 탄탄한 완성도, 중후한 연극적 분위기, 때론 장엄하고 때론 감미로운 음악은 화려한 볼거리 위주의 쇼 뮤지컬과는 그 격을 달리 한다. 또한 선( 善 )-악( 惡 ), 애( 愛 )-증( 憎 )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메시지는 보편적 휴머니즘의 가치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한국 관객 들은 96년 호주 팀의 내한 공연에 이어, 현대의 고전 으로 불리는 이 작품의 가치를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사랑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남자의 품에서 잠시 행복을 맛보는 에포닌의 눈물에서, 그리고 신의 이름을 걸고 수배자인 장발장을 평생 뒤쫓는 자베르 형사의 의무감과 양심 사이의 번민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는 젊은 청년들의 순수한 열정에서 관객들은 휴머니즘으로 응축된 인간 드라마의 단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이 어떤 영화도 이루지 못했던 방대한 원작 소설의 핵심적인 감동을 무대위에서 구체화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을 사 랑하는 방법을 알았을 때 인간은 신을 만난다 와 같은 시적인 가사는 언제 들어도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가슴을 적신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레 미제라블 은 세계 최고의 뮤지컬 이란 명성이 허명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랜 해외 공연 경험을 가진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력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관객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특히 장발장(란달 케이시)과 에포닌(미-앤 디오니시오)의 절제 된 연기와 탁월한 가창력은 칭찬 받을 만 했다. 오히려 자베르 형사(조셉 마호와드)의 연기는 그 자체로는 좋았으나 장발장과 대립하는 감정 의 교감이 좀더 긴박하고 섬세하게 표현되지 못하면서 극의 갈등구조가 약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런던이나 뉴욕에서 이 작품을 봤던 관객들은 이번 공연장이 뮤지컬 전용극장보다 규모가 커서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공연장의 음향이 관객의 귀에 감기지 못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것도 아쉬웠다. 무대 사정 때문에 장발장이 하수구로 도망치는 급박 한 장면에서 바닥으로 사라지지 못하고 맨홀 뚜껑을 들었다 놓고는 무대 옆으로 뛰어나가게 처리한 것도 다소 어색해 보였다. 뮤지컬 애호가 라면 80년대 당시에 센세이서녈했던 바리케이트 무대의 웅장함이 지금은 눈에 차지 않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레 미제라블 한국 공연은 시간의 부식에도 녹슬지 않는 뮤지컬 음악의 감동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 는 소중한 기회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뮤지컬이 주는 감동의 본령이 아니겠는가. (윤호진/뮤지컬 연출가 단국대 예술대 연극영화과 교수)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298

299 문화는 혼합으로 세계화되지 않는다 299

300 현재와 미래와 전통-연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42 현대문명의 발전속도는 현기증을 넘어서서 자아가 분해될 정도의 괴력의 수치로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단 하루에 생성되는 지식의 총량이전근대 사회 100년의 지식의 양과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은 많은 경이적인 풍요와 생활의 편리함을 실현하여 준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불과 근백년래에 우리는 개인적 국가적 문화적 여러 측면에서 문자그대로 격변이 연속되는 삶을 살아 왔다.그리고 그 격변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실로 격동하는 역사의 바람소리나는 나아감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흐름은 과연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는지 오늘은 문득 그것 이 참 궁금하고 또 생각해보고 논해보고 싶어진다. 나의 오십년 개인사를 돌이켜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많은 생각할 일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현대의 역동과 전근대의 삶의 구조를 비교해볼 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삶의 중심과 힘의 근원이 바뀌 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해야하겠다. 우리는 역사상 4차례의 혁명이 있었다고 생각해왔다.(1)신석기 농업혁명 (2)청동기도시혁명 (3)철기 사상혁명 (4)산업혁명이 그것이다. 현재는 그런 관점에서보면 산업혁명의 여파속에 우리가 사는 것이 고 문명의 소재로 보면 현 싯점은 철기문명의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안전한 확보라는 차원에서 보았을 때 (1)개인 적으로는 소득의 증대 (2)사회적으로는 정치 사회운동의 발전 (3)국가적으로는 국가의 보위와 합리 적 경영이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게 된다. 삶의 새로운 가치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문화적 향유의 문제가 크게 대두하게 된다. 이런 문제들과 공통적으로 관계되는 것으로는 기술과 지식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고도화되어가고 있다 는 사실성이 있다.육탄전 보다는 전자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대전의 양상이라든가 생산자체보다는 소비와 유통등의 3차산업의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는 현상 그리고 가격경쟁력를 높이기 위한 기술의 혁신과 경영구조의 조정문제의 부각 등에서 우리는 근력보다는 섬세한 사고와 기능과 기술의 진전이 오늘의 새로운 삶의 힘의 근저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아시아는 세게의 선두국가에 비해서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최근 일본이 초음속 여객기 모령의 발시실험에서 실패한 사실은 그 단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아직도 서구에 비해 기술적 발전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은 서구적 이념과 과학과 기술을 수용하고 개발하여 나아가는 현재와 미래와 전통-연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300

301 것이 우선 제일 시급한 일일 것이다. 과연 그같은 발전의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개인적 국가적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또 극히 필수 적인 일기기도하다. 즉 오늘의 우리들이 현재 걸어가고 있는 커다란 삶의 흐름을 유지하고 효율화하는 일이 긴요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으로는필요조건에 해당하는 것이고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인식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바로 이것이 이글을 쓰는 이유이다. 생각하면 오늘날 전세계에 혁명이상의 영향을 주고 있는 서구형의 삶의 방식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광범 한 삶과 문화의 변혁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널리보아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는 없다. 물론 그에 따른 여러가지 환경적 가족적 개인적 문화적 역기능도 치명 적으로 존제하지만 이 역시 개선을 지향하고 있으므로역시 그 공이 과보다는 많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우리의 삶에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듯이 우리들 삶의 본질과 의미를 완전하게 구현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광범하게 글로벌한 현대문명의 나아감을 즐기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문화란 초보단계이고 이 새문명의 가치와방향은 아직은 개선되고 정비되어야할 것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므로 아직은 세계문화란 솔직히는 보다 환상에 가까운 그무엇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그 서구화 세계화의 흐름을 추구해가는 보다 강화해가고 있고 이미 멈출 수 없는 대세로서 거대한 역사동력으로 가동되고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정당한 추세 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추세의 힘은 즉 그 힘의본질은 우리가 새롭고 자각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면 이 있다는 것을 결국 말하려는 것이다. 서구화와 세계화를 넘어서서 점점더 긴요한 가치를 지니는 본질이 삶의 내면에서 수립되기 시작해야한다 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건 서구화 일변도는 결국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상과 문화 삶 의양식과 우리의 일상의 정감과 사고라고하는 극히 광범한 우리의 삶의 양상이 그 균형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도처에서 볼 수 있고 그런 현상은 오랜 동양적인 지감으로 판단할 때 위험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동양적 사상과 사고와 문화는 전체적으로 균형성을 큰바탕으로 하여 쌓아온 것이다. 흔히 동양을 신비하 다고 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의 그릇된 이해일 뿐 우리들 동아사아의 문명의 바탕은 극히 경험적 체험적인 사실성에 근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과학 학술을 능가하는 정밀한 경험분석과 논리가 그문명의 핵심적 초석이었다. 다만 그 확고한 경험성이 건조하게 보이지 않고 정서적이라거나 인간적이라거나 신 비한 미감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은 바로 그 경험의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는 데서 억어진 것이다. 단적 인 예로 동아사아 사상사에서는 요즘말로 합리적 사고와 신비적 종교적 사유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그 양자간에도 균형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지화이화( 知 和 而 和 ) 즉 "조화의 의미를 알고 조화의 정신을 규현한다"는 말이나 대학의 격물치지라는 말은 그를 대표하는 말이다. 바로 조화의 정신을 일반적으로 그리고 영혼의 깊이에서까지 절실하게 구현하려는 것이 진정한 동아시아 적 사유이며 유교 혹은 유학적 사상이다.바로 이 정신을 오늘에 다시 불러내어 살아있는 힘으로서 회복 하는 일이 그 노력이 다시 시작되어야한다고 느낀다. < 夏 夷 案 者 > 현재와 미래와 전통-연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301

302 현재와 미래와 전통-연면의 의미는 무엇인가 302

303 아시아와 유럽의 축도- KoreaJapan Worldcup 2002/사우디 중국 일본 한국과 유 럽 :29 <<1>> 우리는 고대 문명과 사상을 통하여 오늘을 통찰하는 힘을 강화할 수 있다. 명심보감에 소개된 것과 같이 "역사와 오늘을 알지 못하면 새나 짐승에게 옷을 입힌 것과 같다"는 말은 어느정도 믿어도 좋은 이야기다. 동북아시아의 오랜 지혜의 전통을 이루어온 유학사상에서 "옛것을 익혀 새로히 깨닫는다"는 명제는 분명 오늘에도 유효한 살아있는 논리이다. 그 깨달음은 <새로운 지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지성적 안목의 개안을 의미한다. 그것은 거의 서구의 근대 역사적 지성과 같은 의미적 범주를 지닌다. 우리들이 주목해 볼 경우에 한하여 그렇다. 보다 넓은 시야로 역사성에 염두를 두고 오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 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시야란 별다른 것이아니고 자신들의 현재적 위상과 상황을 새로운 각도 새로운 차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고 한층더 적실하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왜 이런 장황한 서론을 말해두느냐 하면 지금 열리고 있는 <코리아재팬 월드컵> 행사가 의미 심장한 문명적 상징성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의외로 얻게되는 빛나는 상징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2>> 한국팀은 반세기의 숙원이었던 <월드컵 1승>을 달성했다.일본은 <비겼>고 중국은 <패배>하였다. 특히 동북아시아인의 승패의 명암은 그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다. 일본과 한국의 좋은 성적은 그만큼 서구화가 진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국과 사우디의 패전은 적어도 축구 분야에서 서구화가 미진하였기 때문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서구화의 정도로만 말할 수 없는 점을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서구화의 정도로만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을 말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소구화에는 일본이 더 적극적이었고 서구의 가치와 제도 그리고 문명적 빛과 그림자를 아울러 더 열심히 받아들인 것이 일본이다. 그런데 축구에 한정해보아도 역대 전적에서 일본은 한국의 적이 되지 못하였었다. 물론 최근에 전력이 크게 상승하였고 한국을 능가하는 실력을 보이기도 한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과감한 축구유학 와국감독 영입의 결과였다. 서구식 축구의 직수입을 망설이던 한국이 히딩트를 등용하여 본격적인 축구 직수입을 단행한 최근 일본과 거의 같은 축구환경을 깆추고나서 이루어진 것이 이번의 격돌이었다. 한국의 성적이 더 좋은 아시아와 유럽의 축도- KoreaJapan Worldcup 2002/사우디 중국 일본 한국과 유럽 303

304 것은 왜인가? 적어도 축구에는 서구적인 것 외에 그 무엇인가가 더 있다. 남미와 아프라카의 약진도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서구적인 것 외에 무엇이 더 있는가? 근대축구의 기술과 체력 전략과 전술 같은 것이 보편화되어가는 지금 이미 그것으로 승패를 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기술과 체력 전략과 전술의 본질을 이루는 <기질과 심성> <사상과 문화>가 그 내부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3>> 최근에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남자>>(인성기 역/들녘)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을 소개한 어느 언론의 글은 "남자들은 대체로 축구에 마친다>고 말하면서 남자를 정자에 축구공을 난자에 비유하고 남자를 덜 진화된 동물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 조선일보선정-이달의 책 소개글 /장석주) 나는 과학적인 듯이 주장하는 그런 류의 남성-여성론 혹은 인간론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서구적 지식의 결정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종합적 통찰이 결여된 지적 미숙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축구에 있어 서구적인 어떤 기준이 우월하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한다. 대개는 서구인의 체력 조건 때문에 아시아인은 그들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부국들은 서구적 생활 수준에 이미 도달해가고 있으므로 체격적인 조건도 거의 그 의미를 잃어갈 것이다. 즉 그것이 축구의 절대적 전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역시 기질과 문화와 사상이다. 높은 문화적 정신적 자신감이 모든 힘의 근원이며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민족적 기질을 통찰하고 살리는 것이 또한 전력의 진정한 기초일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의 힘은 역사와 문화와 사상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 서구축구가 한동안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들의 자신감에 기초한다.문화적 문명적 기술적 경제적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었고 열등민족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고 까지 믿었었다. 1-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그러한 민족우월주의는 퇴조하였지만 그들의 자긍심은 여전하였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그 힘으로 근대 축구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미 아시아의 각성이 크게 일어나고 경제 기술 문화의 분야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그들의 자긍심은 다소 위축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물리적 힘이 강하고 과학의 축적이 깊고 문화생활의발전 정도에서 아시아를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그러한 압도력이 진정한 역사의 힘의 전부는 아니며 그 최기층 바탕도 아니다. 문제는 역사와 사상이다. 특히 사상사이다. 최근 민감한 서구의 학자들은 아시아를 주목한다. 특히 동북아시아 유교문화권을 새삼 아시아와 유럽의 축도- KoreaJapan Worldcup 2002/사우디 중국 일본 한국과 유럽 304

305 주목한다. 그들은 서구문명의 한계를 느끼면서 그 한계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아시아의 지성 속에 있다고 믿고 있다. 유교사상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그것이 진정 사실임을 절실히 알게 된다. 동북아 지성의 중심 우리의 사상사는 새로운 구원의 신성한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은 부정하지 않는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이조 중기 이후 유학의 중심이 한국으로 변환되었음은 중국학자들도 인정한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 기질과 사상적 전통 그것이 이미 우월한 한국의 축구가 그 위용을 드러낼 역사적 시간에 다다르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분석이 진실한 것이라면 <한국의 월드겁 우승> 은 가능성을 넘어 역사의 필연이다. 한국 축구선수나 감독이 그런 사실을 학문적으로 깊이 알지는 못하겠으나 이미 확고하게 실천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일부 각성된 지식인과 문화예술계인사들의 지성 속에 그 역사성이 자각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막식은 그 좋은 예가 된다. 자신감이 넘치는 장면과 음악 율동은 그와 같은 새로운 역사가 이미 열렸음을 선언하는데 전연 손색이 없었다. 그 새로운 깨달음의 길은 더 적극적으로 걸어가야할 때가 된것이다. 아직은 그 탐구가 일부의 의식에 그치고 있고 정밀하지 못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예컨데 일본이 그 높은 서구화 수준에도 불구하고 역대 한국와의 축구대전에거 밀렸던 것은 바로 역사적 문화적 자신감의 부족 때문이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일본도 최근 <자학사관>을 벗어나자고 주창하고 있으나 그 방향은 무리스런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감의 회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동물적 감각으로 생생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서 극히 균형된 감각으로 유교사상의 나라 답게 역사를 응시함으로서 오직 그 힘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교는 보편 균형의 정신을 오직 강조하는 점에서 세계성을 확고하게 구비하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주목해야 한다.이제부터는 역사적 지성만이 새시대의 진정한 힘이 될 것이다.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 아시아와 유럽의 축도- KoreaJapan Worldcup 2002/사우디 중국 일본 한국과 유럽 305

306 유교비판과 여성론의 문제상황 :33 나는 최근 이어지는 여성의 <사회참여비율 제시>를 통한 여권신장 논객들의 글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었다. 그들의 주장들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주객을 전도한 오류가 있고 사회의 문제를 폭넓게 관조하지 못하는 성급함이 있다. 특히 전통을 부정하 는 역사적 정신적 문화적 몰각이 심각하게 내포되어 있다...."이공계 학부 졸업생의 경우는 여성이 40%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공계 교수진에서 여성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라고 말한 이하의 부분은 바로 그 여성의 지위향상을 목표로하는 최근 유행 논리의 전개부분이다. ============================================ 아래의 글 가운데...그동안 우리 사회는 유교적 풍토로 인해 이공계 전공자를 인문사회분야 전공자보다 경시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이런 문화부터 불식할 필요 가 있다... 라고 한 가운데 <유교적 풍토로 인하여>라는 표현은 무책임한 것이다. 대체 <유교적 풍토>라는 것이 이 사회를 지배해왔다는 것인데 실제로 한국 근대사의 전개는 탈유교적 서구지향적이었으므로 현재의 <유교적 풍토>라는 근거 없는 비판은 서양인의 견해를 닮은 것이다. 한국의 근 대적 여건의 조성에는 오히려 서구화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해야하겠다. 사회 교육 분야에서 여성의 진출수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한국 근대사는 여성의 참여 증대사이었다.그 발전의 속도는 서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는 것이 진상이다.지금 평면적으로 퍼센테이지를 논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지금 우리 스스로의 가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기증 나는 격변을 부추기는 것으로 역사의 순리가 아닐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주마가편>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자신의 전통적 질서와의 조율이 더 큰 문제이다. 남녀차별 이전의 절대전제로서 이 사회의 보편적인 불평등구조부터 개선하는데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성적인 갈들을 더이상 부추기는 것은 우리 사회의 힘의 결정적 약화 내지는 궤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악한 것일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남녀차별의 실질적 본질 근원은 우리의 철학적 오류 속에 있지 않다.오히려 문화적 심성을 저해하는 반지성적 이기적 물질주의와 권위주의의 풍토가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급격히 무너지는 전통 가정의식의 궤멸과 그에 대한 대안의 부재가 오늘의 진정한 중대 문제이다. 가족이 약화된 위에 아무리 빛나는 발전을 이룬들 무엇에 쓰겠는가? 유교비판과 여성론의 문제상황 306

307 지금은 오히려 여러 측면에서 전통의식과 제도를 회복할 때다.현재의 문제를 전통의 문제로 등치하여 비판하는 무분별한 사이비 지성의 이기 적 독점지향의 폭거시도는 단호히 척결되어야 한다, 성급한 주장은 위험하다. 무리한 주장은 위태하다. 순리적인 발전을 도모할 부분은 순리에 맡기고 진정한 발전 역량을 구축하는 사회의 보편적 개선 쪽에 모든 지성적 역량을 집중해야할 때다. 그 바탕에 전통의 복원은 근대화의 필요를 능가하는 중차대한 과제이며 우리의 전통적인 성간조화의 음양사상의 회복도 삶의 기초로서 튼튼 히 재정립해야하는 과제가 더 시급하며 남녀평등의 수치를 들이대며 비논리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은 오직 자해행위일 뿐이다.남녀 일심동체 로 -아직은 미흡함을 느끼더라도 또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총체적 자아발견을 자아실현을 위하여 모든 미약자들이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중 요하다. 남녀이간 논리의 최대의 피해자가 서민이며 중하층 일반가정의 대량파괴를 불러오고 있음을 직시하라. 남녀간의 길등을 부각하는 논리는 이 사회의 총체적 개혁의 역량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기득권 보수세력의 간교한 원조보수논리의를 원조하는 이간-논리에 지나지 않는다.개혁을 가장한 사회의진정한 비극을 외면하는 사악한 보수논리는 이제 고개를 숙여야할 때다.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에서 여성부를 신설한 것은 아마 최대의 단견으로 역사상 가장 졸속한 미봉정책으로 기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적으 로 국가발전의 전략상 불가피한 철학과 원리주의를 결여한 것으로서 진정한 국가중심에너지의 수립 의지와 사상적 깊이의 공백을 사실상 공 적으로 고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 기사 전문을 소개한다.... [중앙일보] (오피니언/인물) 칼럼.논단 07면 10판 1699자 [발언대] 여성의 과학기술분야 진출 지원을 최근 들어 이공계 진학 기피 및 이공계 인력의 해외유출 등 과학기술 인력의 수급 위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위기의 해결책으로 이공계 전공학생의 병역특례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성인력 위주의 대증요법에 불과하며 여성인력의 과학기술분야 진출문제는 여전히 간과되고 있다. 과학기술분야에서의 여성 진출이 긴요한 첫번째 이유는 사회참여를 통한 여성의 지위향상이라는 점이다. 최근 이공계 학부 졸업생의 경우는 여성이 40%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공계 교수진에서 여성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분야에서 여성인력을 보다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국제 사회는 여성의 과학기술분야 진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네스코와 국제과학연맹위원회 공동주최로 1999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과학회의에서는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인력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이 회의는 '세계과학선언과 과학의제 및 실천강령'을 채택, "모든 인간은 과학적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현재 여성은 심각할 정도로 유교비판과 여성론의 문제상황 307

308 과소대표화돼 있다"고 천명했다. 과학기술분야의 여성 인력 확대는 21세기 국가 경쟁력 제고와 과학기술인력의 수급위기를 해결하는 돌파구로서도 절실한 문제다. 미국.영국 등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발전 잠재력이 막강한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을 위해 과학기술과 여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여학생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친근감을 갖도록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과 정책을 시행해 온 것도 괄목할 만하다. 이러한 정책의 저변에는 남성만으로는 고급 과학기술인력을 발굴하고 충원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과학기술분야에도 여성의 잠재력을 활용하 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각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여성의 과학기술분야 진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먼저 과학기술분야의 여성 참여 저조는 중대한 사회적 불평등의 결과며 이는 곧 사회 경제적인 전체의 손실로 이어진다 는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유교적 풍토로 인해 이공계 전공자를 인문사회분야 전공자보다 경시하는 경향이 많았으나 이런 문화부터 불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여성들에게도 과학기술분야를 전공할 수 있는 다양한 동기를 유발하고, 나아가 산업.연구.교육 등 현장에서 차별없이 전공분야에 종사할 수 있도록 문호가 널리 개방돼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공계분야의 취업에서 여성차별을 없애고 국공립연구소와 대학에서의 여성채용 비율을 30%까지 상향조정함으로써 능력있는 여성 과 학기술자가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인력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다. 어느 집단에서든지 소수 그룹이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소외감 없이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 균형인 것이다. 셋째로 정부 내에 '과학.공학 여성인력위원회'를 설치해 이러한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다각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91년 국가연구위원회(NRC)의 상설위원회로 과학공학여성위원회를 설치, 과학공학분야에 여성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전개돼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발전은 물론이요, 보다 평등한 사회의 도래가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박영아 명지대 교수.물리학 유교비판과 여성론의 문제상황 308

309 보편적 사유로서의 유교 :51 다음은 최근의 지상의 대담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조선일보] (특집) 약력 11면 45판 4013자 [지식인 사회-이것이 이슈다] (2) 유교와 페미니즘은 적인가 *현경 최영진교수 현경 전 노력하지 않는 남자에겐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최 교수님께는 기대를 하는데요. 페미니즘 하는 우리끼린 공자 아저씨는 너무 싫다. 노자 오빠가 좋다 는 얘기를 합니다. 유교는 공자가 무슨 말을 했든 상관없이 체제 지향적인, 억압적인 측면이 많아요. 가부장적 유교에 대한 여대생들의 느낌이 어떤지 아세요? 여필종부( 女 必 從 夫 ) 는 여자가 필요할 때 종종 부르는 남자랍니다. 한국의 가부장적 유교는 대화 상대도 되지 않고, 희화화되고 있습니다. 최영진 가부장적 유교, 권위적 유교는 유교의 본래 모습이 아닙니다. 공자는 원래 아저씨보다 오빠적인 요소가 더 많아요. 공자는 당시 권력자가 지향하는 부국강병을 비판하고 그것과 반대되는 인( 仁 )을 제시했어요. 그가 이상으로 그리던 사회는 자기 절제력에 기반을 둔, 자율적 예치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였습니다. 피지배자에 의한 정치를 주장했죠.... 보편적 사유로서의 유교 309

310 이어지는 그들의 논쟁을 읽었고 의견도 있지만 그 논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런 이야기에 힘을 쏟을 여유가 솔직히 없고 그 자신감 넘치는 도전적 말발들을 당해내기도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유교사상이 근본적으로 일반적 사유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 고자 하는 것이 그 사상사적 본질이라는 점을 모두들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바로 그 점이다. 위 글에서 공자를 체제지향적이고 억압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공자는 보편적 사유를 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과연 그럴까? 더구나 공자가 무슨말을 했든 이라는 전제는 기가막힌 전투적 폭압적 언어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논어를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읽어보라고 건하고 싶다. 그리고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 라고 권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그 일방적인 주장에 조음하여 말할 여지가 전연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 싫다는 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그와 같은 무리한 사상적 왜곡이 이 나라에서 난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체로 노자와 공자의 경계를 생각해보고 지식인들이 그 학문적 평가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얼마나 지적인 편협함이며 또한 무지인가? 우리들은 서양의 인권을 잘 알고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인( 仁 )을 잘 모른다. 인권이 중요한 것일지라도 인( 仁 )을 능가할 수 없는 것이 자명할진대 하부 개념이 상부개념을 공격하는 하극상은 많을 수록 좋졸은 것인가 묻고 싶다. 최교수의 우직하고 성실한 답변은 빛나는 것이지만 현교수를 설득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는데 그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이해하려는 준비가 않된 상대에게는 우이독경일 것이다. 서양사회에도 신분제도가 있었고 불평등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이 그리스 철학 특히 소크라테스의 책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책임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동아시아의 경우도 똑같은 경우이다. 왜 달리 생각해야하는가? 알 수 없다. 유학은 과연 보편사유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면 그는 역시 유교왜곡의 흐름 위에 현재 서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보편적 사유로서의 유교 310

311 경전과 역사, 사상에 대한 최근의 상념 :35 나는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문학과 역사학 사상사 혹은 사회학과 같은 학문의 미래에 대해서도 흔히들 그러는 것 처럼 역시 부정일변도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근년의 국내 국의 사회 문화적 여러 흐름들은 우리를 충분히 당혹하게 하는 면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겪는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총체적으로 혼돈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착각마저 들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한다. 나같이 소위 "케케묵은" 경전 문헌을 그것도 고식( 古 式 ) 혹은 구식( 舊 式 )으로 다루며 사는 사람의 경험과 눈으로 보아서는 그야말로 현기증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 이다. 도대체 나는 지금 아주 쓸데 없는 일에 공연히 목숨을 걸다시피 살고 있는건가? 대개 인문 사회학자들은 미래의 시대는 자기 전통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보인다.그러나 그것은 궁극의 이야기이고 "나라가 잘됐했을 때"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역사 이론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기술 과학문명의 현대적 성과마저 인문학에 속하는 서양 역사학의 세례였음을 안다. 문제는 지식인 일반 국민 일반의 삶의 의지와 사고의 바탕이 문제인데 확실히 대체로 전통과 역사 사상 같은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기술문명의 세례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삶 자체를 나아가서는 자신의 역사와 미래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배아복제가 성공하고 있는 지금의 싯점에서 효도의 윤리관이 왜 필요하며 풍요한 이 물질의 발달 속에서 가난하고 청빈하게 사는 일이 어떻게 더이상 고고한 일이 될 수 있는가? 도도한 세태의 흐름 속에 "말발이 잘 서지"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더 현기증이 나는 것이다. 그러나 간간히 희망의 조짐도 보인다. 최근에 국회의원들이 <친일파> 명단을 발표하며 역사청산을 주장한 일이 그 하나이다. 적어도 역사적으로 살아가자는 이야기는 더없이 중요한 일임을 잠시 잊었었다는 것을 깨우친다는 데 우선 그 최대의 의미를 두고 싶다. 반면에 호적제도 폐지문제 성씨제도 개정문제와 연관한 과격한 주장들이 또 매스컴에 넘쳐나는 것을 보며 근심을 역시 거둘 수 없었다. 역사적 유산인 "가문"과 관련된 문화는 그렇게 쉽게 인위적으로 파괴해서는 안되는 사항들이라고 믿는다.요즘 사람들이 참 용감하기 그지없다고 느낀다. 그것은 거의 역사학적으로는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전과 역사, 사상에 대한 최근의 상념 311

312 어떤 "교수"는 유학의 삼강오륜을 재해석하면서 부부유별이 부부의 차별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매우 전통가치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발언을 하였는데 그 결론은 유교경전을 여성운동의 뒷받침 논리로 전용하자는 취지에서 한 말이었다. 아마 주객이 전도된 의견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학자들이 유교를 극렬히 비판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유교사상을 즉 그 보편한 사상을 왜곡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유학( 儒 學 )을 생각할 때 학( 學 )보다는 유( 儒 )에 무게를 두고 이해하는 것 같다.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학"에 포인트를 두어야 한다. "유"란 각시대의 시대정신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며 중국과 한국 어느 시대의 사상을 지칭하는 말일것이다. 유학의 본원은 그저 보편적인 학( 學 )일 뿐 이므로 범칭으로 유학( 儒 學 )이라고 했을 때 거기에는이미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그리스 처학자들이 생각이 지금과 다르다고 해서 극열히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유학은 우리들의 영원한 지성일 뿐이다.그 속에 이미 어떤 고집은 없어야 한다고 이미 공자가 선언했었다. 그런 준비된 자세가 없이는 끊임없는 유학 왜곡이 이어질 것이고 결국은 스스로의 사상을 해칠 것이며 그들의 역사적 성과를 소멸시키고 마는 비극을 초래할 것이다. 걱정되는 일이다. 아마 지금 이순간에도 어떤 공공 지면과 공간에서 잘 익지않는 비판의 소리, 과격한 그 소리가 많은 사람들을 향해 실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나서 대화하였을 때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더 쉽게 공감을 나눌수 있었고 더 많은 희망을 느낄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경솔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구나 하고 느끼면서 안도하곤 한다. 그렇게 보면 공공지면, 언론, 선도하는 활동적 시식인들의 활동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금방 알게된다. 책임 있는 사람들이 경거망동을 좀 삼갔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이건 극히 심각한 문제라서 어렵게 글을 올린다. 夏 夷 案 者 경전과 역사, 사상에 대한 최근의 상념 312

313 시세론 :33 유자들이 대개 전통적 사유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아니다. 학문을 하여 시세를 모르면 학문의 가치가 전연 없어진다고 보았던 것이 그들 의 기초적 자세였다. 시세란 무엇인가? 그 시대의 흐름과 시대상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학문과 조응하고 조화를 이루며 사고의균형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 핵심 목표이며 공능이다. 시세를 일반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나 어떤 모습이 이시대의 중심적 상황의 모습인가를 파악하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이고 신중 해야할 일이다.그러나 전통적인 정서와 감정 혹은 믿음과 다른 그 어떤 흐름들을 일단 중요한 현 시세의 한 면모라고 파악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 많은 시세의 모습들 가운데 설과 같은 명절을 맞이하면 매번 거듭되는 한 모습으로 <여성차별>을 부각하는 주장들이다. 즁요한 언론매체 에서 그같은 <차별>의 주장과 움직임을 그대로 <한 움직임>으로서사 보도하는 것은 좋으나 그 주장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정념은 <거 의 무시>되고 은연히<매도>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마저도 그런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놀고 티브이보고 여성만 일하는 명절문화를 청산해야한다>는 것이 그 중요 메시지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똑같은 기조로 지속되고 있고 언론의 보도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상당한 무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도대체 한 문화세계의 생명적 운동일 시세를 일부 운동가들과 언론들이 왜 크게 잘못 인도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려는 것인지 일 수가 없다. 문제를 직시해보면 (1)명절은 가족의 불만을 해소하기 이전에 명절 문화자체를 음미하고 그 문화의 질을 높이려는 생각이 먼저 앞서야한다. <제사>가 무엇이고 <명절>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인류학자와 민속학자 역사학자들의 좋은 견해들은 먼저 발표하는 것이 순서다. (2)그런 진정 문화적 노력의 아래에서 여성의 문제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명절은 남녀의문제가 아니라 그저 민족의 문제이다. 명절의 행사 와 그 준비를 <노동>으로 생각하는 생경한 보도용어는 경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3)명절과 연관된 <노동>이란 1)음식 2)진설 3)철상 4)가족들의 식사를 주로 지칭하고 있다. 물론 남성들은 명절은 전후해서 따로 할 일이 있 다.성묘 금초 제기준비 자금마련과 조달 또는 일부 제수 구매하기 등을 하게된다. 이 때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성들이 맡아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고 남성이 본격적으로 끼어들기 어려운 면이 있다. 만일 남성들이 전담하여 하게 된다면 할 수 있을 것이고 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능이나 능력상 남녀의 본질적 차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러나 문화전정통으로 이어져온 것이므로 쉽게 변경할 수 없다. 문화전통이란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것이 아니고 종합적인 삶의 이유에 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세론 313

314 음식을 만들고 가족의 삶을 준비하는 것은 여성의 최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그 권리에 도전하고 있지 않은데 스스로 버리자고 주장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적어도 음식과 삶에 관한한 세계사는 구석기시대이래 아직도 모계사회적인 것이다. 그 기본 문화구조를 바꾸려는 것은 무리스런 일이고 여성들이 그 고유하고 정당한 문화권력을 버리는 것은 여성성을 약화시키고 여성의 힘을 포기하는 일면이 있다. 육체만으로 인간 여성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정 운용 경제는 여성이 전담하고자 하고 일은 버리고자하는 것은 모순된 일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삶의 주축인 가정의 삶을 가문보다는 여성중심 관점으로만 생각하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가문과 가정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야만적 노력은 모든 가치평가에서 철저히 보다 폄하되어야한다. 그러므로 <노동>을 주제로 가정과 부부 남녀를 갈라 논하는 것은 천박한 생각일 뿐이다.정상적인 가족이라면 남성들이 그렇게 <놀고있지>만 은 않을 것이다.더이상 <노동설>로서 명절을 논하는 일은 없어져야하겠다. 문화관념상 저열한 수치일 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여성들의 <노고>가 사실이며 매일의 생활을 유지해주는 것을 가족들이 얼마나 은혜롭게 생각하는 지를 먼저 생각해야할 것이다.그 마음이 소중한 것이고 남성들이 쉽게 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 불필요한 부정일변도의 언어는 사라지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삶에 더 빛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진정한 부부가 그 문제를 방치하겠는가? 각 가정의 판단과 선택에 맡길 일이며 공적으로 거 론할 일이 아니다.부부정감을 침해하고 악화부각하려는 악의에찬 운동과 언론의 부각 보도는 단연코 자제되어야한다.왜 깊이없는 천박한 삶 을 열어가라고 말하는가? 부부 남녀를 이간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가문의 미풍과 전통을 파괴하여 어떤 이기주의를 추구하려는 해악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두고 볼 것인 가? 부부 가정 문화 등 삶의 근본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극히 해로운 일일 것이다.근본을 먼저 생각하고 세워나아가야할 것이다. 시세론 314

315 한자적 사유(1) / 그 필요성에 대하여 :30 우리는 갑자기 조선시대로 돌아가 한자를 주문자로 사용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자는 사멸한 문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적어도 한글의 창제 이후는 한자의 의미는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한자는 사유를 위한 글자이다. 의사전달도 그 한 기능이지만 그 이전에 사물을 사고하는 과정 자체가 한자 속에서 스스로 진행되어왔다. 그 러므로 한자는 그 하나하나가 사리론의 골간으로서 인생과 우주 자연과 현상에 대한 중요한 성찰을 포함한다. 물론 모든 언어가 그와 같은 속성을 지니는 것이지만 한자는 일반 언어와는 판이한 객관적 묘사력을 지니고 있다. 한자는 그대로 현상 실재 의 묘사이기도 하다. 한자의 수는 8만여자에 달하고 있다.그 글자들은 그만큼의 다양한 측면에서 사물의 실재를 파악한 숫자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므 로 한자의 어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주목할만한 현상을 내 스스로 확보하여 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동양적 사유는 신비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한 유교적인 사유의 바탕은 건실한 실재경험을 튼튼한 기초로 구성된다. 신비롭다는 것은 이해의 단계가 초보적임을 나타내는 말일 뿐이다. 한자의 이해는 바로 튼튼한 사고를 위한 것임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우리는 그 사유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관점을 세울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데 세워진 새 관점을 서술하는 것은 한글로도 영어로도 어떤 언어로 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자적 사유라고하는 튼튼하고 독특한 사유는 한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자적 사유란 무엇인가? 한자를 통해사유한다는 것이다. 한자를 통해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의 한자의 의미를 균형있게 사고하는 평형적 사고를 말한다. 우리가 한자를 한자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면 한자적 사유는 시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시에 전통적 혹은 역사적 유교적 사유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역사사상으로서의 유교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이 극히 적은 까닭은 한자적 사유를 수행할 수 있는 이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한자적 사유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일반인 뿐만이 아니다. 비록 전문적인 한학자일지라도 한자적 시유에 대한 확고한 자각이 없다면 한자적 사유는 불가능하고 한자를 사용하여 다소 심도있는 일반언어적 사유를 행하는 데에 그칠 뿐이다.한자적 사유란 먼저 한자 자체에 대 한 통찰을 지속하는 지적 의도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잘알고 있는 <논어>의 첫구절을 배울학( 學 ) 자를 한자적 사유로 읽으려고 하는 이는 극히 드믈다.역사상의 학( 學 )의 의미의 실재성을 따져 읽으려는 노력이 먼저 이루어져야한다는 말이다.이에 대한 해석은 본 칼럼에서 이미 다룬적이 있으므로 거듭 서술하지는 않겠 다. 다만 그 ( 學 )은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배움>이라는 의미와는 본질적으로 전연 다른 고대 이래의 새로운 삶의 지표를 말하는 내용이다. <학( 學 )은 삶의 새로운 방식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이시습( 學 而 時 習 )>에서 학은 술어( 述 語 )로 사용된 것이다. 단순한 술어가 아니라 <삶의 기쁨>의 전제가 되는 넒은 이미의 영역을 가진다. 삶의 기쁨의 영역가운데 <어느 때나 실제로 수행되어야하는 그 어떤> 것을 나타낸다. 그전제로서 학( 學 )은 자연히 사려깊은 삶이라는 의미의 영역을 거느리면서 오늘날 우리의 개념 속에 있는 <배움>을 포함하는 광역의 이성적 삶을 지칭한다. 물론 그 이성적 삶의 실제 내용이란 유 한자적 사유(1) / 그 필요성에 대하여 315

316 교경전에서 제시하는 극히 상세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접할 수 있다. 한자적 사유의 길을 열기 위해 즉 동양적 이성의 본질을 우리가 되찾기 위해 우선 한자책을 손에 들고 익히기를 시작하기를 권한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의 24/1만 할애하더라도 당당히 한자를 사유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우선은 1800한자 교본을 아무 조건 없이 닳도록 읽어볼 것을 권한다.한자와의 잦은 만남만으로도 스스로 서서히 빛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튼튼한 사유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夏 夷 案 者 한자적 사유(1) / 그 필요성에 대하여 316

317 국가전략론 요의 :49 국가전략이라는 말이 성립 가능한말인가? 하고 묻는다면 아마 그것이 무슨 물음이 되는가 반문하는 이가 많을줄안다. 그러나 전통적 이념에 서는 분명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근 정체없는 국가전략이라는 용어가 너무 남용되고 있어 간과해둘 수가 없지않은가 한다. 전략이란 전투나 전쟁의 책략이라는 말이다. 혹 은운유적으로 사용한 문학용어라면 "국가전략"이라는 말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러나 국가의 통치의 중심과 연관된 언급이라면 그것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한 나라의 영위를 전쟁적 상황으로 인식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사회가 아무리 심각한 갈등이 넘쳐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국제정세가 더없이 심각한 경쟁과 살벌함으로 넘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 가 영위의 근간을 전략적 차원에서 인식하는 것은 힘을 위주로한 서구의 깊이 없는 정치노선을 맹종하는 것일 뿐이다. 동양적 사유의 깊이와 균형된 사려의 전통을 국가-역사 전통의 생명으로 부활하여야할 책무를 지녔다고 보아야할 인식 위에서 볼 때 전략논 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지엽론이다. 동시에 자신의 사상과 문명 정치의 찬연함을 돌아보기보다는 작은 눈앞의 문제를 위하여 조상의 그 교전 인 고전을 팽개치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전략 전술론은 전쟁상황에 대응하는 일부 부처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문화대국으로 거듭나야할 책무를 버리고 소국으로 스스 로 전락하고자 자처하는 자포자기의 행동일 뿐이다. 우리의 역사적 믿음과 정신은 문화대국의 길을 갈 수 있는 탄탄대로를 오랜 동안 열어왔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인데 지금 그 정당한 길을 포기하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하겠다. 문화대국이란 무슨 말인가.단적으로 세계정신에 투철한 것이 대국일 것이다. 전통적 개념으로는 천하개념에 충실한 이념으로 국가를 영위하 려는 의지로 유지되는 나라를 말한다. 우주정신과 개인적 양심의 성실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그 책무라는 뜻이다. 오늘날 세계의 대국이라는 나라들은 이미 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버리고 있다. 국토의 크기나 경제적 부강함이 대국의 요건은 아니다. 그것은 초기 역사시대에 이미 청산되었어야할 원시역사의 산물일 뿐이다. 무력을 쓰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물질과 경제의 풍요함이나 지식의 양적 폭 발에도 전연 상관없이 원시국가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은 이미 진정한 대국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소국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자칭 소국이 대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력의 길이나 전략의 길이 아니다. 정당한 명분을 위주로한 이상정치를 추구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세계가 글로벌한 역사를 열기 시작한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이제는 개인적 인격과 세계라는 커다란 삶의 명제가 세워질 것이며 각 국가 는 그 명제를 풀어나아가는 중심기관으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 대세를 거스리는 국가는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여러 문제들로 심각하고 지난한 곤란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러한 본분은 촌시도 망각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나라가 지향해 야할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상과 정당성에 빼어난 성과를 지향하는 의미의 진정한 대국화 즉 작은 거인의 길 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물리적 힘과의 충돌을 환기하거나 불러서는 아니될 것이므로 살벌한 용어는 스스로 극히 금기하여야할 것이다. 국가전략론 요의 317

318 우리는 역사상 그리고 현재에 힘에 의한 침해는 받아왔지만 결코 중화주의와 같은 자존적이고 좁은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변경의 저급문화의 나라들도 대개 새도해 본 적이 있는 침략과 패권주의를 지향해본 적도 없다.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인적 호기를 부려본 적도 없고 중국대륙을 접수한 수없는 북방 유목민 같은 정복욕을 불태운 적도 없다. 근세의 추축국같은 세계정복이라는 무모한 야만적 기도 를 해 본 적도 없으며 여진족이나 왜구 같은 힘이 약한 대상에게도 핍박보다는 포용책을 쓰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그 이상은 작은 듯하지만 고결한 것이고 우리 삶은 힘겨웠지만 조용히 빛나는 것이었다. 또 성리학 같은 우주적 이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려한 역사가 어디 또 있었던 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명분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오늘에 그대로 생생히 유효하다.... <주1> 한국의 국가전략을 읽으면 중앙일보 면 (문화) 10판 기획.연재 2005자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하지만 정작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중장기 전략을 담은 처방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닥쳐 급조한 홍보물이나 보고서 수준을 넘어 지식 대중화의 시대에 대중의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며 개척정신을 추동할 출 판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은 근현대 이래 뚜렷하게 발견되는 국내 지식 엘리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역사.인간.경제.자유.평등.교육.환경 그리고 지역 갈등과 남북한 대립과 통일에 이르기까지 포괄적 전망을 담은 미래학이 부족하다는 점은 현 재 당면한 위기보다 더 심각한 근원적 위기라 할 수 있다.외우( 外 憂 )만을 탓하기 전에 내환( 內 患 )을 정비하는 전략적 지혜를 어디서 얻어야 할까. 국가전략 이란 잡지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명세(세종연구소 국제정치분야)실장은 "당장 떠오르는 추천할 만한 국가전략서가 없 다"고 말했다. 강실장은 또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처럼 정당의 정치적 목표를 넘어 중립적 입장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민간단체도 드문 현 실"이라고 지적한다. '무엇부터 읽을까'의 주제를 '한국의 국가전략'으로 잡은 이유는 앞에서 소개한(41면 리뷰 참조) 김경일(상명대 중문과)교수의 나는 오랑캐 가 그립다 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 때문이다. 인문학자가 쓴 일종의 국가전략서라 할 수 있는 김교수의 책을 넘어 전반적 성찰의 계기를 마 련해보고자 한 것이다. 김교수의 책이 우리 사회가 나아갈 포괄적 전망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공론의 장에서 토론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합리적 민주주의의 접점을 찾는 함재봉(연세대 정외과)교수의 탈근대와 유교 유교 자본주 의 (전통과현대)는 김경일 교수와 다른 시각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책이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유교전통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뿌리내리 고 있다면 그것을 적극 활용한다는 관점에서 유교의 도덕성과 서구 민주주의의 효율성의 장점을 취합해 한국형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정치와 경제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나마 활발하게 국가전략적 차원의 책을 펴내는 곳은 삼성경제연구소와 세종연구소다. 삼성경제연구 소에서 최근 펴낸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근식 외 지음)는 철학.정치학.사회학.역사학.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함께 토론 한 결과물이란 점에서 국가전략의 학제간 종합연구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책이다. 서구 근대사회를 이끈 자유주의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 확립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사회가 신자유주 국가전략론 요의 318

319 의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고 지속적 발전을 해나갈 방향을 모색한다. 올 초에 나온 국가전략의 대전환 (유상영 외 지음)은 한국의 국가전략을 안보전략.번영전략.조화전략의 3가지 축으로 분류하면서, 글로벌. 디지털.네트워크로 대변되는 21세의 변화된 국제경제환경은 3대 축 가운데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선 안됨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국내외 정치.경 제와 국방안보 등의 책을 분야별로 펴내고 있는 세종연구소는 국가전략 이란 잡지를 통해 논의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국가전략서를 펴내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런데 "정권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 빛을 못보게 한다"고 위원회에 참여한 임혁백(고려대 정외과)교수는 아쉬워한다. 서진영(고려대 정외과)교수 등이 엮어 펴낸 21세기 한국의 비전 행 동주체별 대응전략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삶과꿈)3부작과 새천년의 한국과 세계 (임혁백 지음, 나남) 등은 세계화에 대응하여 어 떻게 개혁을 추진하고 공생의 패러다임을 창출할 것인가를 모색한다. 미래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지난 세기 중반 이래 가장 인기있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수입한 미래학'은 많아도 우리의 삶에 뿌리를 둔 미래 공학적 접근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작지만 강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내실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학이 담당해야할 몫일 것이다. 배영대 기자 국가전략론 요의 319

320 유교와 동이족-동이는 오랑캐인가 :42 <1>배경적 언급 오늘 언론에 우리의 정신 문화적 정체성과 연관한 중요한 두 방향의 소식이 있었다. 두웨이밍 교수의 계속되는 유교적 발언이 보도되고 있는 사실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섰던 김경일 교수가 <나는 동이족이 그립다>는 또하나의 책을 썼다는 보도인데 특히 후자의 경 우는 <그 도발적 주장은 또 한차례 격론을 불러 일으킬 것> 이라고 예단하는 취재기자의 코멘트가 붙여진 점도 주목하고자 한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두 소식 자체가 중대하고 깊은 의미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매체적 영향성의 심대성에 비추어서 예의 주목 하고 의미를 가려서 잘 소화해야할 것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2>동이족을 오랑캐로 볼 것인가 동이족의 이( 夷 )는 <오랑캐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중국 후대의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고 그 원 글자에 오랭캐라는 의미는 전연 함 축되지 않았다.원래의 의미는 당연히 <종족 이름 이> 혹은 <나라 이름 이>가 되어야 마땅한 글자이다. 중국역사상 중화의식이 성장한 후의 개념으로 변질한 그 의미를 그대로 쓸 이유가 없다. 김교수는 오랑캐 정신으로 새시대를 열자는 식으로 글을 쓴 모양인데 그 기본 발상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동이국가군이 일설 1000회에 육박하는 외침을 견디고 오늘까지 국가를 지켜온 힘 을 강조하고 문화적 정신적 측면을 경시한 것인데 한국어의 고집을 버리고 영어를 공용화해야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 것은 우선 한국의 역사 가 정신 문화 위주의 강력한 힘을 그 근간으로 하여 왔음을 경시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오랑캐로서 그 뛰어난 문화적 수용능력만으로 자신의 정신과 문화를 지켜왔다고 볼 수는 없다.동북아시아 국가-문명 형성기에 동이족은 문화와 힘에 있어 변방국가가 아니었다. 문명 형성의 현장에서 대등하게 격돌하면서 교류하고 현재까지 이어져온 문명의 형성 주체 였다는 점을 촌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 역사적 문화적 지긍심을 버려야한다고 말하여 우리의 문화 역량이 거품에찬 것 으로 보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중대한 기본적 오판이다. 예를 들어 동이족은 문명권의 중심 사상인 유교의 당당한 형성자였다. 퇴계 율곡을 거론하기 전에 맹자에 소개된 순( 舜 )은 동이( 東 夷 )사람이 며 문왕( 文 王 )은 서이( 西 夷 ) 사람이라는 말이 헛된 말일 수 없다. 동이족은 그 구이( 九 夷 ) 국가군의 일원이었다.더이상의 증거를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 까지도 그와 같은 문명 본질에 대한 오해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중국문화를 1000년 이상 받아들이기만 한> 것으로 아는 식자들이 너무 많다. <3>유교의 보편성 두웨이밍 교수는 최근 유교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든가 유교가 지닌 사상적 보편성을 강조하며 계속 강연하고 다니고 있다. 유교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극히 핵심을 설파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강연에서도 유교 사상의 형성사에 대한 솔직한 견해는 찾아볼 수 없다. 유교와 동이족-동이는 오랑캐인가 320

321 유교 사상이 역사적 사상이며 특히 동북아시아 문명권적 차원에서 형성되고 발전된 <문명권적 차원의 성과>라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서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일반 역사의 기초 명제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이해지 못하였을 가능성은 전연 없다. 더구나 그가 그 중대한 사상 전통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는더욱 없다.또 아마 오직 중국인의 천재성에 의해 유교가 창조되었다고 믿지는 차마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양 사상사의 중심인 그리이스 철학과 오리엔트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알 일이다. 그리이스도 기원전 5세기경 그들의 역사적 자신감과 천재성으로 철학을 성취하였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이 창조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오리엔트를 서양 문 명의 교사라고 부르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동이족과 유학의 관계는 오리엔트와 그리이스의 관계보다는 더 역동적이고 직접적이며 상호 영향적 이고 동시대적으로 밀접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발상이 수용되고 숙고되지 않은 것은 아마 오히려 한국인의 자긍심 보다는 중화주의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3>결론 이상의 관점에서 위의 두 기사들은 소홀히 넘기지 못할 중대한 숙제를 우리에게 크게 각인시켜주었다는 것을 유념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적 어도 유교사상에 관한한 우리는 유교의 사상-학문적 중심국가로서 자긍심을 아무리 가져도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그 자긍심이 너무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 문제이다. 때로는 혹 우리에게 역설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우린 그렇게 한가한 문학적 상상적 역설을 즐길 여유가 전연 없다. 오랑캐로 돌아가자는 것은 너무 심하고 성립할 수 없는 자포자기의 역설임을 느낀다. 夏 夷 案 者 유교와 동이족-동이는 오랑캐인가 321

322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09 한국사회를 연고주의 사회라고 평가하는 일이 정당하다면 아시아적 가치의일부를 이루는 것이 연고주의라는 평가도 정당화 할 수 있다.그러 나 그렇게 단순하게 시비가 결정되거나 그 가치가 매겨질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 개념정리가 지금 그렇게 유용하게 작용할 것이라고는 전연 예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연고주의를 중심한 아시아적 가치론에 관한 학술화의가 열린다고 예고되었다.(주1) 사실은 그렇게 학술회의까지 열어야할 만큼 소란스러울 필요는 없으며 그런 류의 주제어만으로는 핵심적인 학술적 논제는 못되는 것 같은데 이왕 열린다면 좋은 결론이 나오길 바란다. 왜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하면 연고주의 그 표면적 의미에서만 이야기하여 그 논급의 깊이의 부족을 항상 지니고 이 야기돼왔기 때문이다. 아시아적 가치로서 연고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쪽이나 그 반대이거나 보다 중요한 본질을 놓지고 있다는 생각을 금하기가 어렵다. 연고주의에 대한 사회적 주장은 많아왔고 유교를 공격하는 중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환란이발생 했을 때 일부 경제학자들은 연고주의를 내 세워 유교에 그 원인을 돌렸었다. 군사정권을 비판할 때도 현재의 정치상황을 지역주의로 비판하거나 패거리 정치로 매도할 때도 유사한 맥 락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매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나는 그러한 주장들이 그야말로 주장을 위한 주장에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핵심 을 놓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르스 커밍스의 글에서 한국에 대한 본질적 발언을 볼 수 있다. <주2> 한국은더 이상 유교적 덕( 德 )과 통치술이 빼어난 도( 道 )의 나라가 아니라 급속한 산업 성장, 전속력으로 치달은 근대화, 세계정상급 인재의 화신이 됐다 이 글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중요한 핵심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근년들아 아시아의 유교전통에 새로운 희망을 거는 세계적 석학들의 주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한국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한국이 유교의 중심국가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연고주의는 무엇인가? 반만년 우리 역사상 그런 생경한 용어는 없었다. 연고주의가 무슨 이념이 되고 사상이 되는 듯이 말하는 것은 우리의 세련되고 깊은 정신문화에 대한 극히 난폭한 폭행과 다름이 없다. 지금 쓰는 의미의 <연고주의>라는 말은 요즘의 말이며 유교적 언사는 전연 아니다. 그것이 더구나 아시아적 가치라고 말한다면 더 할말이 없 을 정도이다. 지금의 연고주의는 해방후의 일시적인 시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말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연고주의를 유교적인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322

323 것으로 말하게 되는가? 첫째 원인은 유교에 대한 이해의 결여 때문이다. 유교에 연고주의는 없다.유교에는 공심( 公 心 )을 유지하라는 말은 있으나 사심( 私 心 )을 가져도 된다는 말은 전연 없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나의 삶과 그 확대영역으로서의 나의 가족의 삶은 소중한 것이지만 그 개인주의 가족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한 일은 없었 다. 오히려 가족의 내부에서 그리고 나 자신의 내부에서 보편적 공의( 公 義 )를 추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친친( 親 親 )의 원칙은 나 개인 나의 가족 내부의 상황에서 지켜야할 공의를 말한 것이었다. 공경과 사랑을 효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다. 개인 사회 국가적인 보편 차원에서는 주지하듯이 <인의예지>가 주장되었다. 어떻게 <인의예지>가 <연고주의>와 동일시 될 수 있는가? 학술회 의라면 적어도 <인의예지>와 연관된 주제이어야한다.예를들어 <예>는 우주론과 인생론과 같은 철리의 창조적이고 설계적인 실천을 말하는 것 이었다. 그것이 <연고주의>가 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주제가 어긋난 논의가 무성한 것이 현재의 우리 사회이다. 어떤 이들은 철학자를 비하하여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을 묻는 사람>이 라고 비아냥대기도하지만 그들은 물어야할 것을 결국 묻고 있다. 우리는 물어야할 것은 묻지 않고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을 묻고 있으니 그들 은 무엇을 전공하는 이들인가?오직 묻고 싶다. 하이안자... <주1> 2일 서울대 국제 세미나 논쟁 예고 중앙일보 면 (문화) 10판 기획.연재 1565자 한국의 연고주의는 서구의 시장이 야기한 탈인격화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인가, 아니면 사회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가로막는 전근대적 유물인 가. 이에 관한 열띤 토론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뤄진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학과장 이온죽)는 학과 개설 20돌을 맞아 2~3일 서울대 호암 컨벤션 센터에서 '지구촌 시대의 신뢰회복과 신뢰구 축'이라는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연다. 특히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옹호론자인 유석춘(연세대.사회학)교수와 이를 비판하는 이재열(서울대.사회학)교수가 참석할 제4분과 '전통가 치'에서 치열하게 토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외의 지식사회에서는 소위 '아시아적 가치'가 고도성장이라는 일정한 효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가 야기한 사회적 투명성 결핍 과 보편적 가치의 훼손 때문에오늘의 사회적 위기를 가져왔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유석춘.함재봉(연세대.정치학)교수 등은 대중학술지 '전통과 현대'등을 통해 한국의 연고주의가 과거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시대적 적합성 을 잃어버린 서구적 가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유용한 자원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유교수는 발표를 통해 종친회.향우회.동창회 등 연고주의가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서 작동하는지 설명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와 조건에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323

324 따라 시장의 작동방식도 모습을 달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 규범과 도덕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면서 이뤄진 서구의 근대화와 달리 한국사회는 탈근대의 전개에 필요한 사회자본, 즉 연고주의 를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연고주의야말로 "서구 근대 시장이 탈인격화한 개인을 다시 공동체적 관계 속으로 복원시킬 수 있는 탈근대의 유용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반면 이교수는 개념의 모호성을 비집고 들어간다. 거래비용을 낮추고 집단적 효율성을 발휘한 연고주의의 일면만을 본 연고주의 옹호론자들 은 '연고주의=신뢰의 체계=사회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라는 잘못된 단순 도식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연고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적 맥락을 분석한 결과 '투명성'이 국가 경쟁력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음을 밝 힌다. 강한 권력서열 체계와 집단주의적.인격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는 싱가포르, 그리고 이와 반대로 개인주의적 성향과 상대적으로 약한 권력서 열 체계를 지니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 국가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투명성이라는 것. 이를 통해 이교수는 연고주의가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중립적 가치'라는 점을 입증하려 한다. 이는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비판론자와 달리 국가 경쟁력이 연고주의보다는 투명성과 더 깊은 인과관계가 있음을 보임으로써 '연고주의=신 뢰=긍정적인 것'이라는 '아시아적 가치'옹호자들의 기본 전제를 비판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의 '아시아적 가치'논쟁은 개념적 모호성 속에 숨어 다소 이데올로기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주제가 향후 우리 사회의 전망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인 만큼 이교수의 지적처럼 이제 실증적으로 접근해 개념적 모호성을 제거함 으로써 효과적인 논쟁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주2> 책 / 브루스 커밍스의 애정어린 '한국론' 한국일보 면 (문화) 30판 기획.연재 1591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발행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온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교수)에 대해 일반 대중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차가운 푸른색 이거나 불순한 붉은 색일 것이다. 엄청난 자료와 끈질긴 연구를 통해 복잡다단한 한국전쟁을 차갑고 단호하고 비판적인 수정주의의 입장으로 규정한 점이 그렇고, 그에 따라 한국 내에서 금기시해 온 좌파 성향의 젊은 역사학자를 양산해냈다는 점이 그렇다. 심지어 그는 한국전쟁은 남한이 일으켰다 고 주장한 학자로 오해받아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는 이땅의 보수파로부터 매우 위험하고 적대적 인 이방인으로 대우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를 읽고 난 후 느낄 수 있는 그의 색조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따뜻한 붉은 색이다. 그는 이 책에서 30여 년의 인연을 맺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최대한의 성의와 애정을 담아 설명하고 있다. 책 제목은 현대사이지만 이 책은 한국의 고대에서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미국 역사학자의 시각을 담고 있으며, 남한과 북한, 심지어 미국에 사는 한국인까지를 조명하는 구체적이고 고급스러운 한국론 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그가 한국전쟁의 기원 에서 한국전쟁의 원인을 남북한 내부의 모순이 해방전후사의 공간 속에서 폭발한 것'으로 주장한 학문적 소 신은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과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냉전구조 속의 존속이라는 주제, 한반도의 통일방식 등 광범위한 한국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에 통찰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몇 안 되는 거물급 한국 연구자로서 미국인을 포함한 소위 선진국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조악하고 불공정한 인상 의 잘 못된 점을 비판, 수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324

325 그가 단군신화를 언급하는 등 통사적 관점에서 한국문화의 근원을 설명한 것은 한 마디로 한국에 대한 외부의 상투적인 표현과 상상에 제동 을 거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갈등과 혼란의 세기도 만약 통일된 한국이 한국인이 말하는 그런 자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극은 전쟁이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 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인에 대해서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그리고 한반도 남북 어디에 있든, 한국인들은 대단한 가족애와 교육의 미덕에 대한 놀라운 믿음을 지닌 기백이 넘치고 근면한 도덕적인 사람들이다.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관여했으면서도 아직도 한국인을 모르는 미 국이라는 나라로부터의 여태껏 받아온 대접보다는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고 강조한다. 이 책은 1997년 영어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다. 저자는 이번 한국어판 발행을 위해 최근까지의 중요한 변화를 책 속에 추가로 수록 하는 성의를 보였다. 스스로 고려 우왕( 禑 王 )의 후손을 아내로 두고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내란에 의해 완성된 자유를 지닌, 통일되고 당당하고 근대적인 한 국을 상상해볼 때 라고 말했다. 김철훈기자 연고주의의 정체성에 대하여 325

326 유교관계 기사 송출량 분석 1999~ :14 최근 유교에 관한 기사의 수량을 분석해보면서 하나의 우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화적 정신적 영향력이 매우 강한 일반 언론에서 의외로 유교관계기사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문화적 정서를 균형있게 그리고 적정하게 수치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아래 분석의 대상은 종합검색으로 <유교>라는 검색어를 사용하여 무작위로 검색한 수치입니다.통계 수치는 1~2씩 오류가 있을 가능 성도 있습니다.그러나 전체 흐름을 보기에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자료:필자의 분석글} <<2001년 >> 10월- 10/11 뉴욕 WTC 항공기테러 /문명충돌론부각 9월-76건 8월-90건 7월-66건 6월-59건 5월-59건...도올강의 중단<주2> 4월-83건 3월-77건 2월-67건 1월-73건...미.일 보수정책 표방 추진 <<2000년 12월이전>> 12월-61건 11월-78건 10월-91건...도올 K.B.S 논어 강의 시작 9월 -95건 8월 -90건 7월 -77건 6월 -74건 5월- 108건...추기경의 유교 인정/수용(유교제례존중)<주1> 4월 -54건 유교관계 기사 송출량 분석 1999~

327 3월- 79건 2월- 94건 1월- 78건 <<1999년>> 12월-100건 11월-87건 10월-70건 9월-79건 8월-65건 7월-96건 6월-52건 5월-89건 4월-53건 3월-75건 2월-46건 1월-53건 <<1998년>> :: 수치분석 :: 1999~2001년 사이의 유교기사 건수를 개관해보면 대개 100건 미만의 기사가 발표되었다. 유교적 뉴스의 발표량이 월 100건 미만의 질량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올의 강의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그 반응의 크기는 기사수로는 전연 반영되지 못하였다. 도올의 강의 이전 이후에 커다란 수량적 변화가 크게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언론이 전통사상으로서의 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일반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일반인에게 지성적 정의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일간지의 기사송출량에 분명 문제가 있다. 문화적 정신적 방면에 적정한 관심을 보이지 못하 고 있다는 것은 중차대한 문제로 계속 주시해야할 것이다.... <주1>추기경 유교제례인정 나의 피 속에 유교문화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고 선언... <주2>도올은 강단 유학자의 비판과 재야 자유연구가 모씨의 비판 등으로 논어강의 중단선언 유교관계 기사 송출량 분석 1999~

328 ... 하이안자 유교관계 기사 송출량 분석 1999~

329 유교의 역사 - 효의 사상사 :53 유교사상사는 요순( 堯 舜 ) 삼대( 三 代 )에서 출발한다. 경전( 經 傳 )이 전하는 중요한 사상사적 문맥이다. 요순( 堯 舜 ) 시대는 선양( 禪 讓 )으로 나라를 전하였고 하( 夏 ) 은( 殷 ) 주( 周 ) 삼대 시대에는 부자( 父 자)의 왕위계승이 시작되었다.이러한 사실은 초기 사회에서 국가적 발전이 이루어져온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유교 사상사는 국가의 형성 발전의 역사와 함께 시작하여 국가의 역사와 함께 지속된 하나의 역사 실체였다고 할 수 있다. 요의 선양을 받은 순은 동이족( 東 夷 族 )이었다. 주왕조( 周 王 朝 )를 건설한 문왕( 文 王 )은 서이족( 西 夷 族 )이었다. 공자시대에도 대륙 북방에는 구이( 九 夷 )가 살고 있었다. 그들의 일부가 중국역사세계로 들어가 왕조를 개창하였던 것이다. 동이족 순( 舜 )은 사상사적으로 효( 孝 )사상의 구현자였다. 유교형성사의 중심시대는 청동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쳐있는데 이 시대를 지배한 의례는 제사였으며 중심사상은 효였다. 우리는 은 주 시대 의 수많은 청동기가 제사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명문( 銘 文 )에는 수많은 영효( 永 孝 )라는 글귀 즉 길이 효도한다는 제 문을 읽을 수 있다. 바로 그 효의 정신과 제사의례의 창조자로서 동이족은 대륙의 북방에 유교사상의 중심을 굳건히 세웠던 것이다. 논어에 이어진 효 사상은 "효는 백가지 행실의 근원이다" "효는 인( 仁 )의 근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중국학자들은 이를 해석하여 효는 인 을 행하는 출발이라고 본다. 효가 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인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효가 그 출발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주석은 동이족이 유학사상사에 미친 영향을 축소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효는 사상이 아니고 행동의 지침이라고 봄으로서 이 ( 仁 ) 사상을 고치원적인 것으로 승화하고 효정신을 세속적인 것으로 구분해 내리려는 중화주의적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유학에서 학( 學 )이란 행동-생활 개념이었다.사상적 문화적 비세속적인 그런 이념이 아니었다. 자하( 子 夏 )가 "어진이를 높이며 부모를 극 진히 섬기고 몸을바쳐 군주를 빋들며 신의로서 벗을 대한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어도 나는 그를 배웠다고 하리라고 하였다. 이때 그가 배웠다는 것( 學 )은 문헌을 배웠다는 것이다.( 學 文 ) 그리고 그 학문( 學 文 )보다는 그의 삶이 학( 學 )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중국 학자들은 이를 두고 자하의 말이 지나치디고 하였다.이 역시 유학을 왜곡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은 그대로 삶이기 때문이다. 자시를 지내는 일 제문을 올리는 일 그것이 효도의 대표적인 일이고 공자도 장례의례가 생존시의 봉양보다 중요하다고 하였다. 현세의 효도 도 중요하지만 효도의 정신을 이어감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효도는 부모의 삶에 의해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 하려는 것이다. 유교의 역사 - 효의 사상사 329

330 공자는 그 당시의 사회적 혼란을 한탄하여 자주 동이족을 말하였다. (1)이적 나라에 군주가 있으니 중국 땅에 군주다운 군주가 없는 것과는 다르다 (2)동이 나라에 살고싶다.(3)떼배베를 타고 바다로 떠나가고 싶다. 등등의 언급이 그것이다. 공자가 동이에 살고싶다고 하자 제자들이 물었다. 누추한 곳에 어떻게 살으시겠느냐고...공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살 고 있거는 무슨 누추함이 있느냐"고 제자를 질책하였다. 동이족은 군신의 의리가 확고하고 질서가 있으며 군자다운 삶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으로서 당연히 효의 정신으로 지탱되는 견고 하고 강인한 정신적 가치가 전승되고 있음을 찬탄한 말이다. 우리가 우리들의 역사와 사상사를 곰곰히 돌아보아야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삶에서 지나온 역정을 돌아보지 않고 진정으 로 성취할 수 있는것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사실과 상통하는 그 무엇이다. 유사이래 우리의 역사는 대개 부정적으로 보이온 것이 그 동안의 숨길 수 없는 자기사( 自 己 史 ) 이해의 한계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약소국으 로서 살아왔다는 인식이라든가, 그로 인해 가지게 되는 문화적 자신감에 대한 믿음의 박약함 같은 것이 있었다. 실제로 제국시대 이래로는 한국인은 대륙의 광대국가인 중국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경제력 인구 무력 그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는 그 힘 의 지배를 받아온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건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역사가 혹은 역사의 궁극의 힘이 그러한 경제력이나 무력에 오로지 의지해 그 방향이 정해지고 흘러간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사람 어느 민족이 영원한 힘에 충실히 의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여러 종류의 힘이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함을 좌우하는 것은 정신이기때문이다. 우리의정신과 심성의 힘과 이름다움이 결국은 가치로운 성취의 진정한 바탕일것이다. 힘은 가변적이며 유동적이다. 그러나 심성의 힘은 영원하고 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구조적으로는 강력한 국가 무력 경제력 인구를 구비하였지만 그리고 때때로 광대한 세계제국을 이룩하였지만 그들 역사의 내면을 보면 오히려 상시 북방민족의 무력 침공을 받았고 그 역사의 반정도를 북방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즉 기나긴 식민시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북방의 야만족에게 나라의 전부 혹은 일부를 빼앗기고 그들의 문화와 삶의 양식에 많은 변화를 받아왔다.주지하듯이 그 끝에 중국은 일본의 침략을 받았었다. 한국도 물론 그와 같은 국제정세에 민감히 영향을 받으며 살았지만 오히려 북방족에의한 식민사의 경험은 거의 없었다.그 들에게 굴종했던 역사는 있었지만 그들과 통합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일본의 참략은 한국으로서는 뼈아픈 것이었다. 대륙의 문명국대 야 만국의 대결구조가 자주 긴장을 불러왔었던 것은 오히려 일상사였던 측면이 있다. 일본의 침략이 특기할 만한 것이었던 까닭은 동서문명의 융합기의 초두에 그새로운 물결에 다소 먼저 오른 일본의 힘이 형성되었었다는 사실 이다.그것은 과거 청동문명이나 철기혁명의 시기에 있었던 문화적 전파과정에서 일어났던 일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역사 변동의 요인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역사를 끌어가는 진정한 힘의 원천은 이념사와 심성사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역사상의 정신사는 당연히 유교사상사이다. 그러나 그 유교사상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고 있는 그런 오로지 교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교의 역사 - 효의 사상사 330

331 효( 孝 ) 이념은 원래는 신비적 제례의식의 이념이었으며 공동체 삶의 중심이념이었다. 생활의 지침이나 윤리를 상하로 넘어서서 절실한 삶의 양식이었으면서 동시에 깊은 사색의 준거였고 그것은 또한 단지 어떤 논리적 사유만으로 인위적으로 결정된 그런 명제도 아니었다. 삶과 의례의 중심 아이디어이기 이전에 보편적 사유법이며 철학적 성찰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은 튼튼한 생활감정 위에 진행된 다양한 경험 적 성찰의 귀결이었다는 점을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효의 바로 아래로는 가족정신을 거느리고 있고 그 내부로는 자녀와 부부 부모사이의 불가분한 가족애가 있다. 그리고 그 위로는 그 가족에를 실현하기위한 치열한 삶이 있다. 바로 실천적인 인( 仁 )의 정신이다, 효는 단순한 도덕율이 아니고 입체적인 삶의 지표이다. 특히 사상전통 가운데 효를 논하는 까닭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효 이념을 부정하려는 사람은 감히 없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이 효의 이념을 상당히 낡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효 정신이 젊은이를 억압하는 봉건적 혹은 전근대적 이데올로기로 본다거나 남 성중심의 사상의 잔재라고 보는 왜곡된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른 완벽하게 효를 행하기는 어렵고 또 일방적인 것이어서도 아니되겠으나 이 정신은 전통이념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것임을 적극 받아들이 고 소화할 필요가 매우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夏 夷 案 者 유교의 역사 - 효의 사상사 331

332 세계화 시대의 유교 :24 최근 WTC 테러 참사라고하는 미증유의 대량샬륙 사건을 보면서 이는 20세기가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문명이 정신면에서 중대한 결함( 缺 陷 ) 과 공극( 空 隙 )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않을 수 없다. 세련되지 못한 <문명충돌론> 같은 어설픈 이론으로는 그 비극의 진정한 정체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21세기의문을 열면서 초강대국 미국이 힘의 국제외교를 지향하였고 경제대국 일본이 극우보수화의 상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는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그 참사사건에 대응하는 미국의태도가 테러분자들의 점념과 유사한 과격함을 드러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놀라운가하면 우선 그 모습에서 볼 때 테러와 극우보수와 극한대응이라는 일련의 움직임이 모든 세련된 현재적인 것들과 부조화 ( 不 調 和 )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새련된 옷차림과 맞지않고 웅장한 오페라의 음향와 어울리지 않고 역사 철학 등의 근대이후 명저의 고상한 논리와 대립되며 세련된 사교매너와 말씨와는 더구나 일치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학과 예술의 신비로운 감각과는 당연히 더없이 크게 부조화를 이룬다. 모든 가치있는 문명 진보의 결과물들과 야성적 행동이 대극을 이루는 참담함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왜인가. 현대사화를 이끌어온 서구지성의 정신적 지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선 반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 적어도 유교의 중심국가에서는 야만적 살륙은 일으키지는 않았다. 유교권의 변방민족들이 한 때 강성하여 유교의 중심국가를 살륙한 적은 물론 많이있었다. 만주족 여진족 선비족 그리고 왜구가 그들이다. 그러나 왜구를 제외한 북방민족은 유교의 한 중심국 중국에 틈입한 후 그들에 동화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교의 중심국에 진입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일본은 그런 점에서 특이한 예에 속한다. 유교의 먼 병방국으로서 유교의 중심국가를 침범하였으되 그 지리적 격리성으로 인해 유교의 중심 국가에 틈입하지는 못해왔었다. 그러나 그들도 중심국가의 사상과 문화를 존중하여온지가 이미 오래되었었다. 근대화된 일본은 이른바 탈아론을 적절히 내세우며 이시아의 유교중심국가를 저바리려고 시도하였고 그 좌절의 끝에는 다시 유교의 품에 인 기려하였다. 그러나 돌아옴은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아시아 이탈의 움직임은 주기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그 대표적 증좌가 침략사에 대한 사죄의 거부이다. 그러므로 일본은 진정한 아시아의 일원이거나 유교의 중심국의 역사 문명적 힘을 믿지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일본 이 가장 먼저 서구화되었기에 그렇게 된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과 중국에서도 잔통정신과 문화에 대한 과소평가는 매우 커다란 문제였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심각한 비판의 의미가 더 세계화 시대의 유교 332

333 강했다. 탈아론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최근의 영어 공용화주장까지 있었지만 그것은 멀리보지 못한 성급한 세계화에의 이상에서 비롯된 주장 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전범국이 된 것은 유교의 중심국가의 정신과는 전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사상 최대의 침혹한 양차대전 의 중심은 서구라는 점을 우선 상기한다면 유교의 중심국가들의 문명적 가치를 우선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 대륙 북방의 흉노족이 서구를 침범하여 처참한 살륙을 감행하였고 이것이 서양인의 뼛속에 사무친 <황인종 공포증>이라는 유전병 을 남길 정도로 참혹한 것이었다. 몽고족의 서구 침범도 있었다.이들 서구 침범 세력은 모두 유목세력이었고 유교의 중심국의 침공은 아니었 다. 대량 살륙과 테러가 야만의 결과라는 말을 하고 싶다. 현대의 문명사가 과학과 지성을 자랑하였으나 야만성을 또한 해소하지 못하였던 기형적인 것임을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그 끝에 일어난 테러사건과 그 대응전쟁의 과격한 시도는 다시 더 분명이 문명속에 내재하는 반문명의 그림자가 실체로서 내재함을 웅변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당연히 경제발전의 그늘 속에 빈부격차와 부당한 경제의 조장이라는 야만경제성이 역시 내재함을 말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서구의 문명이 그 물질적 풍요와 권위스런 박력과 외관의 미려함과 세련됨에도 불구하고 더우기 그들의 깊은 철학과 종교의 눈부신 논리와 개념에도 불구하고 그 간극 사이에 대량의 굉대한 야만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분명 불가사의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대답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유교의 중심국이 과거에 신봉해왔던 중용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 그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중용의 정신은 내 외( 內 외) 상하( 上 下 ) 전후( 前 後 )가 유리되지 않는 일치조화를 추구하는 오랜 정신태이다. 단적으로는 사려의 기초인 경험적 균형과 사려의 결과인 개념간의 균형 그리고 나아가 삶과 사려와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물론 유교의 중심국에도 살륙이 있고 야만이 있다 맹자같은 성인이 <인간에게는 야만성이 많고 인간성은 적다>고 하였는데 그 적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양적 거대자인 야만과 양적 미소자인 인간성을 그 양에 현혹되지 않고 질을 주목하여 양자의 균형이 절묘한 삶의 길임을 알았다. 삼차원의 경험에 논리적 차원을 더하여 4차원적인 중용이론을 발전해왔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기의 빛은 균형 조화에서 나온다고 확신한다. 정보화가 새로운 물결이라거나 가슬혁신이 살길이라는 말은 신문명의 주변을 묘사하는 변경어( 邊 境 語 )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시대는 유교의 표면을 요구하지 않고 그 심층의 정신의 힘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the 1st. haianist 禾 芯 세계화 시대의 유교 333

334 세계화 시대의 유교 334

335 일반사유와 경전적 사유(2)-텍스트적 삶의 의미 :28 경전적 사유의 의미 유교적 삶이란 경전적 삶을 말한다. 이때 경전적 삶이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요즘 말로 텍스트로서 가치화되는 삶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로서 가치화된다는 것은 경전텍스트의 어떤 해석된 의미를 고수한다는 뜻은 아니다.텍스트란 문자 로 구성된 의식의 세계를 말하고 나의 세속적인 삶을 평가하고 유지할 "나의 텍스트"를 보유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의 총체적 사고와 정념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며 그 사고와 정념을 텍스트화함으로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 텍스트화된 "나"를 평가 해석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이고 비언어적 직관까지를 포함하 되 그 구현에 있어서는 언어적 텍스트로 전환된 길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나의 삶이 텍스트적으로 진행되고 변화 발전하여 나아가는 것이 안전하고 활력에 넘치며 보다 창조적일 수 있는근거는 무엇인가? 우리가 텍스트적 삶을 방기하고 몸과 마음의 느낌과 욕구를 그대로 분출하되 그 때마다 절제하고 조절하 기는 쉽지가 않다. 물론 성인( 聖 人 )의 경지에 든 사람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공자의 뛰어난 제자들 의 경우도 하루에 한번 한달에 한번 인( 仁 ;완벽한 조화로 구성되는 심신의 상태)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하 였다. 우리의 삶은 불안정한 겻이 결국 문제일것이다.그 불안정함을 동심( 動 心 =맹자의 不 動 心 의 반대적 의미에 서)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동심이야말로 우리의 삶 자체를 불안정하고 소모적이며 반창조적( 反 創 造 的 ) 작용을 하는 것임을 우리는 수시로 경험한다. 심신의 불안정함을 극복하는 길은 인( 仁 ) 의( 義 )의 길이라고 맹자가 공언하였다. 여기서 맹자가 말하는 인 의의 길이란 바로 이상적인 심신의 균형 속에서 얻어지는 궁극의 가치 평가를 지칭한다. 환언하면 우주의 의미 삶의 의미 우리들 생사의 의미마저 인의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다는 최고의 가정에 일반사유와 경전적 사유(2)-텍스트적 삶의 의미 335

336 서 출발한다.서양철학에서 말하는 <가정적 사유>가 꼭 그런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학신할 수 있는 것 은 이 인( 仁 ) 의( 義 )의 가정이 막연히 나온 것이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각종 경험을 망라하고 숙고한 결과를 지칭하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우리들이 하나의 당위나 전제명제로 받아들임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되는 이유이다. 나의 각급의 삶이 나의 주관적 텍스트일 뿐만아니라경전의 개념과 자연의 현상과 현재의 나의 삶의 상황 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나의 텍스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누구나 이상적인 교훈을 세워두기를 바란다,그러나 그 가훈이 나의 정념과 일치되지 않을 경우 무용지물이 된다. 더구나 그 명구( 名 句 )가 귀챦을 정도로 나를 제한한다고 느낀다면 그 역할은 극히 부정적인 데 그칠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텍스트는 자발적으로 지율적으로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그 사활이 결정된다. 텍스트 의 사활은 그대로 나의 삶의 사활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 다행히도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나름대로의 절대적 자기텍스트를 가진 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이는 불의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자기 텍스트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정한 특징과 인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은 거개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와 같이 자기 텍스트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조금만 적극화하고 보다 더 나의 삶의 중심으로 끌어들여 나의 모든 삶이 그 텍스트들에 의해 윤용 될 수 있다면 그는 완벽한 유자( 儒 者 )일 것이다. 물론 이 때 그 택스트를 빌려쓰는 경우도 생긴다. 빌려 쓰는 경우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그러나 그런 경 우는 유학적 삶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 仁 ) 의( 義 )의 정신을 빌어 중국의 춘추시대를 지배한 패자( 覇 者 / 五 覇 )들은 유교적 텍스트를 구현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겠으나 이상적 정치와는 거리가 있다. 이같은 텍스트적 삶을 제일 먼저 제시한 것이 공자였고 그가 논어에서 학이시습( 學 而 時 習 )을 강조하였던 순간에 세상에 공표된 삶의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신념을 가진 삶이 텍스트적 삶과 유사한 것일 것이다.그러나 단순한 신념은 주관에 빠질 위험 이 있으므로 균형된 학( 學 )이 필연적으로 요구되게 된다. 경전은 양질의 최고 텍스트의 보고이다.그러나 그 텍스트는 그대로 의미를 지닐 수 없고 새로운 시대와 순 간을 숨쉬며 새로 일어날 경우에 한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 공자가 학( 學 )-습( 習 )-시( 時 )를 함께 언급한 이 유이다. 공자의 <학> <습> <시>는 매우 중대한 의미를 독립적으로 싣고 있는 것이다.이상적 텍스트의 본질(학) 실 천과 구현(습) 새로운 텍스트의 창조적 운용(시)등을 언명한 중대한 선언일 것이다. 경전은 바로 그러한 텍스트의 창조 유지를 위한 위대한 설계를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사유와 경전적 사유(2)-텍스트적 삶의 의미 336

337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the 1st.haianist 일반사유와 경전적 사유(2)-텍스트적 삶의 의미 337

338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01 :: 아직 쓰지 못하는 글 :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 경전에 대한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음미의 길을 모색하고 싶은 것이 진정한 소망이었다.그런데 몇가지 이 유로 인해서 그 소망이 쉽지 않은 것임을 느꼈다. 아직도 얼마나 더 초석을 놓는 글들을 써야만 비로소 경전 이야기를 부담없이 그리고 보람을 느끼며 쓸 수 있을 지는 정말 미지수이다. 그 진정한 본론을 위한 장애는 여러가지가 있다. (1)경전 이해력의 심도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제 (2)경전문헌 해석능력의 진전 문제 (3)경전에 대한 음미를 받아들이는 일반 여건의 문제 (4)경전해석의 방향과 문체의 문제 (5)해석의 목표와 의도의 정립 문제 (6)경전을 보는 시각의 정립 문제 등등 허다한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해석능력을 제고하는 문제와 여 건의 문제이다.해석능력의 문제는 해석자의 몫이므로서 당연한 문제이므로 우선 논외로하더라도 여건과 상황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된다.물론 문헌을 판독 독해하고 그 개념과 논리를 분석 음미하는 것 이 유교교학의 기본일터이다. 겅전과 해석이 그 당대의 사회에 뿌려지는 정신의 싹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내용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여 건은 그 싹을 틔우고 자라게하는 토양과 같다. 토양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씨를 뿌린들 자라기 어려 울 것이다. 비유컨데 씨앗을 준비하는 일도 어렵거니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는 일도 지난한 일이다.이러한 이 중고로 인하여 이 오솔길은 아직 불과 몇건의 경전해석례를 보이는 미미함에 머물렀고 동시에 여건을 개 선하려는 노력을 역시 미미하나마 병행하고 있는데 혹 두마리 토끼를 쫓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돌이켜보 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그러나 언제나 역사적으로 전승돼온 정신의 씨앗이 있고 그 토양이나 분위기는 사실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338

339 것은 아니다. 한 시대의 총체적 역량으로서 자성의 분위기가 스스로 일어나 형성돼야할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지나친 주장이나 극언을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어법으로 담담하게 논의의 장을 펼쳐두는 것 자 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공자 맹자의 경우 그 이상 실현의 희망이 누구보다 강했고 순정한 것이었지만 그들 성현마저도 그 당시대 에 뜻을 펴지 못하고 천명( 天 命 /역사와 현실의 형세)의 미성숙을 그대로 받아들여 후일을 도모하였음을 상 기할 필요가 있다. 공맹의 시대와 다른 것은 오늘날이 지식폭발의 시대로서 광범한 지식 의존의 문화가 융성하고 있다는 것 이다. 지식은 사물 이해의 기초이며 유학의 기초인 격물치지( 格 物 致 知 )의 자세도 지식의 개발을 의미하고 있다. 지식은 지혜의 전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적 정신의 가치와 그 부활의 당위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역사와 문명에 대한 지 식을 정밀하게 확충함으로서 그 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기능성이 매우 넓다는 점을 고무적으로 생각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위주의 이 시대에 또한 자연정감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통해서만 인 간적인 창조가 가능함을 보여온 역사가 뒷받침하는 일이기도하다. 반면에 명상과 좌선 등 조건없는 직관적 도통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추향이 유행하는 것도 역시 예의 균 형을 추구하려는 생태적 욕구이기도 하다. 반면 지식위주 그리고 생태적 빈성의 흐름 같은 문화의 형성력은 결국 일상의 일반의 삶에서부터 하나의 큰 움직임이나 운동으로 발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데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까닭이다. 대중문화야말로 일반의 생활감정을 토대로 일어나는 그 사회의 문화적 저류를 보여주는 거울이나 바로메타이며 동시에 그 현장이기도 하다.최근 유 행하는 가요의 가사를 보면 그 점을 잘 느낄 수 있다. A라는 사람도 사랑해보고 B라는 사람도 사랑했지만 모두다 똑 같더라 똑같더라 진실한 가슴이 없더라... 외로워서 이사람도 사랑하고 괴로워서 저사람도 사랑했지만 모두가 똑같더라 똑같더라 그사람이 그사람이더라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339

340 ... 이 노래는 서구적 정념과 이상을 추구해온 한 세대간의 삶의 허망함을 자각하고 자신을 직시할 필요가 있 음을 극히 평이한 정념에 실어 노래하고 있다. 평이한 어법 속에 사람의 보편성을 노래하고 진정한 근거 없는 점념적 방황의 무용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를 던지고 있다. 신세대의 문란함과 기성세대의 탈가족적 행태가 모두 그 대상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는 신구세 대간의 구별없이 공히 정념적 이상상황에 처하여 있음을 대변해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류( 韓 流 )가 유행한다고 한다.일부 논자들은 한국의 문화가 미국의 문화를 수용하여 한국 화하였던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들 나라보다 약간 앞선 우리의 서구화의 정도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또 서구화의 진전의 경험을 잘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본이 아시아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되 었으므로 한국적인 것이 역으로 잘 수용되는 측면이 있다고도 한다. 여하튼 한국 대중문화는 이제 한국적 카테고리를 넘어서서 아시아적 호흡을 시작했고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심장한 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징후일 수 있다. 그 한류의 중심은 한국의 젊은 신세대층의 문화적 성향이 아시아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 데 바로 그점 때문에 한국 신세대의 문화를 분석하지 않을 수 없게하는 일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대개 한국의 신세대의 정념은 무엇인가? 대개는 서구적 지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서구 적 외모의 추구 서구적 직정적 태도의 추수라든가 순수함으로 포장되고 비이성적으로 진행되는 우연과 해 프닝으로 구성되는 청춘의 삶의 과정과 스로리의 근거없는 신고전화( 新 古 典 化 )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피어나는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하면 그것은 전통적인 이상이나 정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구적 방식을 초탈하는 보편적 순수함의 추구(보다 극단적인 순수함)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동 시에 그들이 혐오해마지않았었던 전통정신에 대한 본능적 돌아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신세대의 문화 속에서 전통의 가능성을 드러내보이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신세대가 의식적으로는 전통을 방기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오도된 지식이 끌어가는 일부의 이념에서 그러한 것이며 개혁의 욕구를 방해받고 있다는 이유없는 답답함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리고 그 외의 일반적 전통성과 민족성을 그들이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기성의 문화인들이 오히려 서구적 가치에 오히려 더 깊숙히 경도되어 자신의 전통을 돌아봄에 순수함을 잃고있다는 사실이 그와 대비된다.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340

341 꼭 상업주의에 의했다가 보다는 기성부모세대의 용인속에 누리고 있는신세대의 문화는 극히 자유분방하 다.자나치게 교육적인 반면에 크게 문화적으로 관용성을 보이는 그 기성세대가 적극 그 자유의 향유를 가 능하도록 해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입시교육의 해가 있었지만 적어도 그것은 순수함의 오염을 차단해줄 수 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순수함 은 모든 창조적 성과의 기초이므로 민족 본질의 회복의 토양은 결국 잘자란 신세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큰 기대를 건다. 이렇게 보면 유교적 전통적 토양을 저해하는 요소는 결국 서구편향적 오도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 고 그 왜곡은 이미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에서 해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화적 표현의 구조 속에서 정통과 유교정신은 아직 힘을 쓰지못하고 있다.생활 의 표면에서 침잠된 그 어떤 것으로 혹은 삶의 강인한 지표로 굳게 작용하고는 있으니 적극적 의식적으로 오늘을 전통의 힘으로 소화하려는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유교와 그 역사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직시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최근 사화학 철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유교를 재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그 움직임이 유교의 본질에 이르는 심오한 깊이와 현실적 역량을 갖 추기를 기대한다.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the 1st.haianist 유교와 경전 - 본론을 위한 기원 341

342 문명전사를 기다리며 :24 (산문시): 한 서생의 소망-영광의 문명전사를 기다리며 한국의 새 두뇌의 집합장 인테넷 토론 공간이 요즘 꽤나 시끄럽더군.그중에 쓸데없는 말들이 너무 많더군 나는 한탄한다. 내가 만일 뛰어난 학식이 있거나 누구같은 언변이 있거나 끝내주는 학벌이있거나 빛나는 경력이 있거나 그 흔해터진 문화권력 쥐꼬리라도 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을 모두 전사-문명전사로 만들고 싶다. 내 만일 생애동안 잘못없는 무죄 무류의 삶을 살았다면 혹 도를 통달했다면 비록 거친 말로라도 더없이 큰 용기로 한 소리 내어 여러분을 모두 문명수호성전의 붉은 십자군 승리의 전사로 만들고 싶다. 사실 남북 군사대치는 오히려 소소한 군사적 대치일뿐이다. 속이 보이는 놀음의 연장일 뿐이다.진짜 전장 은 따로 있다. 잘 느끼지 못하는 격열한 전장- MMD나 어떤최신무기도 통하지 않는 살벌한 무서운 전장이 있다. 이름하여 문명전장이다. 세속적 무력의 힘으로치면 미국은 두려운 상대이긴하지 일본마저도 그렇고 중국은 더구나 중과부적이지 러시아도 그렇고..하지만 지금은 무력으로하는 전쟁은 이제 한물 갔어 이제부터는 새로운 세계전사( 世 界 戰 史 )가 열릴거야. 새로운 질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지.문명과 정신의 힘이 갈수록 아마 무력을 대체하게 될거야.그것은 종 교적 지배의 종언과 함게 지성이 열린 세계대역사의 진실한 출발이 천년의 침묵을 깨고 이제 비로소 본격 적인 힘을 얻게될거란 이야기이지. 왜 전쟁이야기 인가우리는 세계 1 2차 대전의 진정한 전사적 성격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어 서양 역사학자 들의 농간 때문이지. 대규모 보병전의 개시, 참호전의 시작, 대량 살륙무기의 등장 무력의 참담함의 자각과 평화주의의 개시 동 서 냉전구조의 형성 같은 설명방식이 그것이지 그러나 그건 표면일 뿐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문명전쟁이야. 그것도 서양세력의 동점이나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같은 전쟁은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지. 진짜 전쟁은 스 문명전사를 기다리며 342

343 스 내부의 전쟁이야. 특히 세속풍조와 전통문명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지. 서구문명의 사주를 받은 국내 대 리전 지원자들이 국내의 전통문명에 가하는 무서운 융단폭격은 오늘도 쉬는 법이 없지. 가장 심하게파괴된 지역은 유교문명주둔지라고 할 수 있지.스스로 미친듯이 파괴한 거야.그것이 자기들의 피와 살인데도 마취제 맞은 사람이 자기 혀를 씹어먹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파괴를 계속하고 있지 다수의 공격자가 있고 방어자는 힘이 거의 없어 수도 자꾸 적어지고 있고 새로운 문명수호자들 없을까? 일본 교과서 정도가 중요한게 아니야 미국의 오만이 중요한게 아니야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미국의 세속적인 힘이나 밀본의 경제력이나 그들의 침략근성마저도 별거 아닐 수 있다. 새로운 힘은 그와 다른 그 무엇으로 이미 형성돼가고 있거든 요즘 것들은 이제 낡은 힘으로 쇠퇴하고말 것들이다. 진정한 힘은 정신과 문화로 구성되는 맑은 삶의 힘이야. 문명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고물이 될거야. 그런데 문제는그 새로운 힘이될 만한 것들을 스스로들 부수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역사 그리고 역사의 중심정신 유교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몇이나 있어? 민족성 민족의 힘에 대해 얼마 라도 생각햐본 사람 많아? 아마 그렇지못할 걸?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공격하고 비판하고 부수 고 죽어야한다고 욕하지? 오늘도 여기 저기 들러보니 <유교>를 매도하는 글들이 수천 수백이더군.<이조시대 편협한 유교에 갇혀...> <유교적 가부장제도..> 이루 다 말 할 수 없을 정도야.이게 옳은 일인가.자기를 죽이는 일이.... 요청 : 둘러볼 홈- 유교문명사...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The 1st.haianist 문명전사를 기다리며 343

344 유교에 접근하는 두 길 :00 유교에 접근하는 두길 (1)유교에 대한 일반의 생각은 극히 막연한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 었거나 심지어 유교전공자의 경우도 크게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2)이 칼럼에서 아무리 목이 터져라고 <유교는 보편사상이다> <우리의 체질이며 역사이다> <문명권적인 차 원의 성과이다>라고 주장해도 그것이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도 유교에 접근하는 기본 방식의 차이를 이해 하게 하지 못한 때문이란걸 알았다. (3)유교에 가까이 가는 가장 전통적인 길은 경전을 읽는 것이다. 그리고 경전을 해석해서 그 문의를 파악 하고 자기의경험에 비추어 이해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이상의 길이 있다. 해석의 내면을 반추하는 길이다. 내면을 반추한다는 것은 "군자불기( 君 子 不 器 )라든가 "군자 불중즉 불위( 君 子 不 重 則 不 威 學 則 不 固 )"같은 개 념을 인격 수양의 언어로 보는 의미의 표면을 벗어나 그러한 이념이 나오게된 역사적 보편적 근거나 배경 을 살펴보는 길이다. 전통적인 길은 심오함을 추구함으로써 유교의 심도에 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주요 개념과 명제들을 그 대로 오늘에 되살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인( 仁 )의 사상에서 현대의 근대적 가치성을 찾아내려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런 류의 근대적 의식과의 상통성을 찾으려는 연구들이 상당수 나와 있다. 물론 그것은 가능한 길이고 당연히 그런 연구가 정당하다.왜냐하면 유교이념이 극히 보편 타당한 경험처리를 통해 얻어진 것 이므로 당연히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유교의 본령은 아니다.유교의 성과를 표현한 최고명제일뿐이다 그러면 유교의 진정한 본령은 무엇인가? 그러한 생각에 도달할 수 밖에 없는 사고의 길을 추체험하는 일 이다.경험과 논리를 분석하고 그리고 주요 개념의 표면의의 내면적 의의를 추구하고 그 원관념을 복원하 며 그 위에 다시 근대성이나 미래적 가능성의 크기를 생각해야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지 못함 으로써 유교는 설득력을 많이 상실할 우려가 있게된다. 유교는 우리가 원시유교라고 부르는 공맹시대이 모습이 원바탕이 아니다. 따라서 원시유교라는말은 사실 잘못쓰여지고 있다. 공자 맹자 한나라시대는 유교경전이 확립되고 학파를 형성한 시기이지만 그 시대의 유교에 접근하는 두 길 344

345 성과는 사실 경전과 그 해석 뿐이다. 그것은 경전이후의 사실이므로 경전이전을 문제삼지는 못한다. 원시유교란 공맹이전에 그 뿌리를 두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스이는 원시유교라는 말은 유교의 처음을 의미하므로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역사의 범주안에서만 논한다면 그것이 맞는 말이지만 유교가 중국사의 정신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 니다. 그러므로 그이전 이래의 (예컨데 춘추좌전 초 중기 시대) 정신으로 대하고 그 최초기 시대의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의 유교연구를 역사주의적 연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유학의 원 본질에 맞는다. 청나 라 장학성이 육경은 모두 역사라고 한 이상의 의미가 유교 속에 있고 공자나 맹자 모두 깊은 역사해석자 이며 문명해석자였던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교사상이 역사주의 일변도는 결코 아니다. 유교의 역사주의란 역사성을 따져야한다는 의미이고 그 내용은 자연 인문 정념 사물 사실을 포함하는 모 든 경험세계를 포괄하는 포괄 균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중용이란 철학적인 용어 일 뿐아니라 그런 경 험적 특질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4)앞의 칼럼과 일부 중복되는 주장도 되겠지만유교의구체적 논의를 위해서는 유교와 경전을 대하는 일반 적 문제점을 좀더 논의할 필요가 아직은 더 았다고 생각된다. 그 학문성 자체를 유념해야하겠다는 뜻이다. 방만해보이고 산만해 보이는 여기 칼럼의 담론은 꼭 거쳐야한다고 생각되는 개괄론을 위한 것이므로 이해 를 바란다.이해의 방향이 어긋났을 경우 어떤 깊은 논의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5)이해상의 왜곡이 너무 광범해서 아직은 논할 부분이 너무 많고 막힌 부분도 널려있다. 이를 쉽게 설명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정관념들이 심하고 그 고정관념들이 대부분은 근거가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대부 분이다. 그 고정관념의 밀림 속에서 길을 내기는 쉽지가 않다는 점을 역시 이해를바란다. 위의 예문중에서 하나만 살펴보면 "군자가 신중하지 않으면( 君 子 不 重 則 )..."이란 어구는 사실 유학의 기초 를 말한 것으로 신중하다는 인격을 말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군자는 법칙성( 則 /곧즉이 아닌 법칙으로) 을 중시하지 않으면 이라고 읽어야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이어지는 "배워도 견고하지 않다( 學 則 不 固 )"란 말도 유학의 법은 아집이나 고집을 벗나야한다는 뜻으로 보아야한다.(이 내용은 필자가 동아커뮤니 티의 유교문화의 복원문제 게시판에서 제기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그 원뜻을 살리는 검토가 없이는 모든 개념에 대한 논의는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시각을 더욱 찾아내기 위해 유교에 접근하는 길에대한 논의는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동 안은 너무 개념해석에만 매달려와 유학의 본질인 균형감각을 잃었었다고 반성된다. 미세한 생각을 그대로 적어 논의가 정돈되지 못함을 양해반란다 그러나 일부러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어 떤 특정한 주장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적고싶어서이다.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유교에 접근하는 두 길 345

346 The 1st.haianist 유교에 접근하는 두 길 346

347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05 유교의 길의 의미-시대과제론 이 컬럼에서 이미 수차례 표현하려고 노력한 메시는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유교사상이 단순히 수입된 사상이나 가치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상 형성돼온 민족적인 문명의 실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어떤 논객은 서구문명도 수입 후 오래 지 나면 우리의 전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유교는 우리적인 것의 총체와 연관된다.서구문명은 많은 유용한 경험의 하나이다. 유 교는 모든 경험을 수용하므로 유교이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적인 것이 유교적인 것으로 등식관계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흔히 민족주의적인 열정의 산물인 것으로 또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매도될 수 있 으나 그것은 비학문적인사유의 결과일 경우에 한정되는 이야기이다.유교는 왜 우리 역사의 영 원한 실체인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잠시 역사자체를 살펴봐야할 것이다. (2)유교가 한국역사의 실체라는 이유는 두가지 면에서 논의가능하다. 하나는 유학의 형성사가 민족사 나아가 동북아시아 문화권적 차원의 역사적 성과와 밀접 불가 분하다는 인식이 그 하나이고 또 한 측면은 한국사의 국가사의 영위 과정에서 한국적 체질을 독특하게 구축하였던 과정과 직결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형성사의 초가 한국과 중국은 보다 강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었고 중원과 한반도로 그 역 사영역이 고정되면서부터는 각기 그 공통성위에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유교는 바로 그 공통성에 근원적 뿌리를두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347

348 흔히 우리가 유교를 수입된 사상으로 보게되는 것은 황하유역을 중심한 중국화된 유학 즉 경 전화(텍스트화)된 유학만을 유학이라고 믿고 바로 그 유학이 한문문헌의 형태로 수입되었던 것이 유교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사실에 기인한다. 한국은 독자적인 사상 문화의 체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위에 문화권적 차원의 원유교적 지성 을 발전해 오고 있었으며고 국가형성사가 완성되어 가면서 문헌화된 한자텍스트를 수용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수입된 텍스트화된 유교(즉 경전 중심의 유교)는 당연히 중국 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텍스트의 내용은 즉 유교의 내용물은 오로지 중국적일 뿐만이 아니었다고 생각된 다.예를 들어 인( 仁 ) 의( 義 )효( 孝 ) 같은 유교사상의 핵삼사상의 주도자는 요( 堯 ) 순( 舜 )이었다. 그런데 그 요와 순같은 전설상의 영웅이 중국인이 아니었다고 맹자는 지적하고 있다.( 東 西 夷 人 說 ) 물론 후대에 중국사의 계보로 연결된 것은 사실이나 그 뿌리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이 분야 는 잎으로 밝혀야할 사실이 더 많지만 이유교 형성기의 역사를 상정하는 데는 역사학적으로 아무런 모순이나 문제는 없다. (3)따라서 유교는 고대문화 형성기의 문화권적 특질에 의해 먼저 유교적 체질이 형성되었고 도 시국가 시대를 지나면서 한국 중국은 각기 국가사를 영위하고 발전허면서 독특한 개성을 표출 하였다.예컨데 중국은 유교를 텍스트화하고 전범화하고 제도화하는데 뛰어난 공헌을 하였다. 한국의유교적 역할은 고구려사에서 중심적으로 보듯이 유교적 이념의 실천적 부면에 강한 특 질을 형성해왔다.(예컨데 호동왕자와 해명태자의 효-나아가서는 고려 이조시대의 이데올로기 화) 이 분야는 깊은 천착이 더 요구된다. 우리가 유교경전을 대하고 유교적 적 삶을 자각하기위하여 그러한 일반적 유교사에 대한 탐구 가 필요하고 한국민족의 문명사 건국사의 특질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아울러 이루어져야한다. 유교는 역사적 문명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4)유교가 과연 우리 사회의 영원한 그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회의를 던지는 사각이 많이 존재 한다. 그것은 진정으로 역사를 이해하지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비역사적 지식의 소산이다.우리 가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서구의 세련된 학술 과학 예술이 역사주의의 소산임을 상기할 때 서 구적 수준의 논의만을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이해태도는필수적이다. (5)역사를 방기하는 태도는 단적으로 자신의 문명과 사상을 경시하는 마음을 불러오고 자신의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348

349 역사를 부정하는 진실이 아닌 상념을 유발하기 쉽다. 역사적이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계승적인 것이되 계기적인 그 무엇이다.그런 면에서 유교를 보 면 유교란 아집과 고수를 주무기로 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성과 활력 역사를 추동하는 힘 의 원천 그리고 그 바탕의 불변의 정신구조와 성향을 조성하고 운용하는 그 무엇이다.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사물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수용하는 태도와 해석방식이며 그리고 그로부터 인기되는 창조력이다. 그러므로 민족과 삶의 방향설정의 에너지 같은 그 주제들이 당연히 깊 이 생각되어야한다. (6)유교는 단지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발견의 기술로서 출발하였고 그 발견의 성과를 바탕으로 문명을 지어 만들어온 심성의 기록이다. 지금의 시대를 풍미하는 지식과 기술과 과학이 완전한 지적발견 기술의 전형이라는 증거는 사 실 없다.또 그것은 유교에서도 늘 해오던 그 무엇이기도 하다.오히려 유교는 현재의그 여러 지 적인 기술을 포함하고 그리고 보다 포용력이 더 넓은 그 무엇이다.유교 속에 다 포괄할 수 있 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7)우리들 스스로 유교를 좁히고 낮추는 일은 진정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구악( 舊 惡 )의 대명사 혹은 개선되어야할 대상으로 유교를 질타하는 것이 지금의 유행인데 그러한 발언을 하는 이들 이야말로 진정 지적인 개선의 대상임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1)여성차별도 유교이념 때문이요 2)권위주의도 유교 때문이요 3)세대간의 괴리도 지 역감정도 유교 때문이요 4)경제 부진도 유교 때문이요 5)서구화 즉 선진화된 것의 모든 반대 구조가 유교인 것으로 지칭하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가부장제 관료주의...그 모든 것이 다 유 교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말이 맞을까? 현대의 제 현상의 책임은 사실은 현재를 살아온 사람들의 서구적 교육과 가치관에 오히려 그 원인이 있고 그 내부에 전통적 의식의 한계가 작용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역사적 모순이다. 세계어느 문명된 나라에서 자기 역사에 모순이 있다고 자신의 전통정신을 파괴하려하는가? 서 양인들은 더 심한 모순을 겪으면서도 왜 그리스 철학과 그리스도교를 파괴하려한 적이 없는가 그것은 그것이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어떤 존재도 스스로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이 삭막한 세상과 우주간에 자존적으로 존재할 자격을 상실할 것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특히 일본에서는 왜 겁도 없이 전통을 부정하는가 자신들의 원인은 자신들 의 역사를 이유도 없이 비하하는 태도 때문이다. 자기를 부정하고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349

350 마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문화권은 현대에 가난했다.힘이없었다. 그것이 자기비하의 큰 이유이겠으나 그것이 그들의 역사나 문명의 가치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오직 무력이나 힘만 이 세상을 밀고가는 힘인 것은 아닐것이다. 아마 자신의 지성을 다시 주목하는 순간 문득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사상 최고의 문명국민 임을 실로 생생히 느끼고 용기와 힘에 넘치게 될 것이다. 역사선성에서는 그런 힘이 더 중요하 고 더 실효적인 힘이다. 그 원 힘을 회복하지 않고 어떻게 새 세기를 자신있게 개척해 나아갈 수 있을까.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알고보면 유교의 근본은 바로 우리의 원기이다.어떤 종교나 철학과 비교될 수 있는 그런 평면적 대상이 결코 아니다. 하이안자( 夏 夷 案 者 ) the 1st.haianist 유교의 길의 의미 - 시대 과제론 350

351 유교에서의 경험문제 :43 :: :: :: 유교와 현상 경험 유교가 오늘의 사회와 문화 속에 부활할 수 있다는 가장 큰 근거들 가운데 하나로 -아직 그렇 게 주장되어온 예는 별로 없었지만 - 그 사상의 내부를 지탱하고 있는 현상 경험에 대한 자세 즉 경험처리법이라할 특질 속에서 그 튼튼한 하나의 토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중용( 中 庸 )의 의미를 알고 있고 그 뜻은 불편부당( 不 偏 不 黨 )한 것이라고이해하고 있다.그러나 중용의 의미는 이념적 조화( 調 和 )나 정념적 혼융( 渾 融 )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바탕에 제반의 경험에 대한 포용과 조화라고 하는 대원칙이 놓여져 있다. 전통적인 중용사상을 하나의 철학이나 생활이념 혹은 삶에 있어서의 경험율( 經 驗 律 ) 정도로 받 아들여 왔었고 그것만으로도 소위 동양적 정신을 표현하는데 큰 유감은 없었다. 왜냐하면 중용정신을 궁극적으로 수행해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 내부에서 자연히 경험의 조화가 이루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용정신을 보다 자각적으로 수용하려고 할 경우는 역시 그 사상의 토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중용정신이 유학의 심법( 心 法 )을 전승한 중심경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기성의 가공된 이념보다는 그 기초에 있다는 생각을 할 경우 유학의 본질성에 대한 이해도 새로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일 그 경험적 기초를 무시하고 개념언어의 표면의의에만 주목한다면 사실 중용의 조 유교에서의 경험문제 351

352 화사상이란 피타고라스의 하모니 이론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하기 어렵다.동양이 천인조화( 天 人 調 和 )를 내세우지만 서양철학도 자연과 우주 나아가 그 내면에 대한 상상력까지 동원한 심오 함이 있으므로 천인조화사상만 심오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같은 개념적 일치성은 유학사상이 인류 공통의 사유에 바탕을 둔 보편사상임을 의미하기에 족하다.그이상의 본질 이해는 역시 경험처리적 특징 속에서 찾아 세워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절한 논의는 뒤로 미루겠으나 예컨데 사람들의 일상의 삶의 경험과 정감 판단과 선 택 등의 생태 속에서 스스로 이루어지고 형성되는 삶의 결과물들이 그대로 유학의 기초가 된다 는 뜻을 우선 말하고 싶다. 유교적 사유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경험도 배제되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그리고 자연 과 인공 혹은 인위를 차별화한 적도 없다.경험적 합리적 신비적 현상을 모두 온존하고 포용하 는 힘이 그 사유력의 가장 특징적인 본질이라고보아야하겠다. 오늘의 삶을 돌이키고 직시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夏 夷 案 者... 유교에서의 경험문제 352

353 Free Paging 사서삼경 :02 :: :: :: 맹자 공손추 4 孟 子 公 孫 丑 四 덕( 德 ) 인( 仁 ) 사( 士 ) 현자( 賢 者 ) 우리는 지금 현재를 한마디로 국내외적으로 살벌한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힘의 논리 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경쟁이라든가 사회의 개인과 집단이 추구하는 계리적 공략주의( 計 利 的 攻 略 主 義 )가 거의 오늘의 시대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삶은 과연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인가 하는 고전적 인생론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삼천년 지성의 역사가 성취했던 개성에 넘치고 수준높았던 삶의 이상은 아마 거의 고사상 태에 빠졌다고 쉽게 진단하게 된다. 야성적 역사의 끝자락인 미신과 살륙으로 점철되었던 중국의 전국시대( 戰 國 時 代 )를 살았던 맹자 의 힘찬 논설이 경이로운 것은 첨단 문명의 시대라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던져진 목소리로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현실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맹자왈:인( 仁 )의 정신을 실천하면 영화( 榮 )롭게 될 것이며 인( 仁 )을 행하 지 않으면 욕( 辱 )되게 될 것이다.오늘날 사람들이 욕되기를 꺼리면서도 사는 것이 어질지 않나니 이는 마치 습기( 濕 氣 )를 싫어하면서 낮은 땅에 사는 것과 같다. 만약 욕되기를 싫어한다면 덕( 德 ) 있는 이를 존중하고 선비( 士 )를 존중하 는 것보다 급한 일이 없다.어진 현자( 賢 者 )가 중요한 자리에 있고 유능한 Free Paging 사서삼경 1 353

354 이가 직책을 맡아 행하면 국가가 평화로와질 것이니 이런 때를 놓지지 않고 정사( 政 事 )와 법( 法 )의 의미를 을 밝게 (투명하게) 구현해나아간다 면 비록 대국( 大 國 )이라할지라도 반드시 그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다... 지금은 나라가 한가로우면 이런 때를 놓지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고 나태 하고 오만한 삶을 살아가나니 이는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일일 것이다. 재앙과 복은 자신 스스로로부터 얻어지지 않는 경우가 없나니 <<시경( 詩 經 )>>에 말하기를 "길이 하늘의 명( 命 )에 합치되게 살아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 永 言 配 命, 自 求 多 福 ) 고 하였고 <<서경( 書 經 )>>의 <태갑( 太 甲 )>에 말하기를 "하늘이 일으킨 재앙을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일으킨 재앙으로부터는 살아날 수 없다"( 天 作 孼 猶 可 違, 自 作 孼 不 可 活 ) 고 하였다 맹자 당대의 각 조직과 국가는 오늘의 개념으로 효율주의에 빠져 있었다.전쟁에서의 승리 생산 력 증대의 관건인 다수 노동력의 확보와 영토의 확장 신민의 일사불란한 지배를 위한 새로운 정 책의 개발 그리고 음모와 술수를 위주로한 외교 정치의 추구가 가장 유용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당시의 급격한 산업의 발달과 생산력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빈부차는 극대화되어가고 있었 고 일반의 삶은 거의 궤멸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맹자가 지적했던 대로 길에 굶어죽은 백성의 시체가 즐비하되 권력자의 소와 말은 살찌고 있는 처참한 현실에 처해 있었다. 맹자는 그러한 세태를 진단하여 "스스로 재앙을 부르는 일"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Free Paging 사서삼경 1 354

355 욕된 삶'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명예와 권력과 부를 추구하며 그것이 영광된 삶이라고 믿었던 당대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욕된 삶"이라고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영광된 삶은 무엇인가?하는 것이 맹자가 던지는 만인에 대한 굵은 질문이었다. 불행히도 그 질문을 진정 알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아마 지금 똑같은 질문을 해도 역시 마 찬가지일 것이다.다만 지금 사람들은 교묘한 수사로서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영혼이 결여된 허령( 虛 靈 )의 문화나 방편주의 편의주의의 습관적이고 기질적인 삶을 "자연"이라고 부르면서 동 시에 고전의 고급언어를 안개처럼 흐려버리면서 자신들의 혼돈을 정당화하려든다.예를 들면 자 연주의 철학이라고 오해하고 노장철학을 막연히 동경하는 태도야말로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 다. 맹자의 언표는 공허한 상상의 철학이 아니다.밀림의 북소리 같은 생생한 삶의 현장에 던져진 활 어( 活 語 )이다.따라서 그의 인( 仁 )은 공자의 비교적 고상함 보다는 오히려 엄정한 언어이다.그의 인( 仁 ) 개념은 간단히 ""사람 죽이지 말라"' 는 처절한 규탄의 언어로 부활된 현실어이다. 남을 해하는 삶이 결코 영광이 될 수 없다는 준엄한 자성의 목소리이며 그것은 하늘의 명 즉 자 연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호연( 浩 然 )함을 논리적 역원( 力 源 )으로 하고 있다.그리고 시경과 서경의 역사어를 인용하여 그러한 삶은 인간 정신사의 퇴보임을 증명한다.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퇴영적 삶을 청산하라는 깨우침이다.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는 스 스로 진보한다는 생각이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경고이기도하다. 그가 결국 기대를 걸었던 것은 오직 지성인으로서의 사( 士 )와 현자( 賢 者 )이다.정신사를 계승해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야하며 그것이 발전 진보의 길임을 말한다. 돌이켜볼 수록 나의 삶이 진정 부끄러운 것임을 느끼게하고 있다.경전의 글줄이나 아름다운 문 장을 많이 읽은 들 무엇하느냐는 자성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그가 말하는 사생취의( 舍 生 取 義 )의 삶을 확신을 가지고 편안히 편안히 살아가고 있지 못한 논자 로서는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夏 夷 案 者 :: :: Free Paging 사서삼경 1 355

356 :: :: Free Paging 사서삼경 1 356

357 동양학의 일반문제(1) :06 :: :: :: 동양학의 균형적 일상화 필요 동양학( 東 洋 學 )은 최근까지 몇가지 왜곡된 기대감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즉 신비 적인 어떤 텍스트로 받아들인다던가 특별하고 초월적인 지혜의 체계로 보려고 하는 것이 그 하 나이고서구적 철학의 범주에서 혹은 사회학이나 경제학적 관점등 특정한 학문범주에서 심하게 사변화하는 경우가 그 두번째이며 개인적 경험을 위주로 주관적 관점의 뒷받침글로 임의적으로 인용 해석되는 경우가 그 세번째 이며 특히 유학이나 유교를 동양학의 일부 성과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제자백가와 구분해서 좁혀보려 는 문헌 이해의 기초적 협착성이 그 네번째이다. 이와 같은 태도들은 결과적으로 중심사상인 유학이나 여타 다양한 지적 성과들을 분리되게 하 고 상호 무의미한 대립성을 강조 조장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학문자체를 낯설게하고 본질을 바라보기 어렵게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의 일환으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평소의 삶의 과정에서 친근한 그 무엇 으로 다시 수용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학문을 대하는 기초관념이 왜곡되어 있다면 그 후로 이루어지는 적쟎은 노력들이 진정한 성과 를 지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믿어진다. 동양학을 대하는 시각 자체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담담한 자세로 우선 학문을 대 하기 시작해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 :: :: :: 역사성 문명성 민족성 동양학의 일반문제(1) 357

358 유학의 이해는 민족성 역사성 문명성(문화권적 문명으로서)에 대한 균형된 감각에 기초해야한다 고 생각된다. 유학은 한민족사의 중심을 흘러온 정신성에 그 근원적 뿌리를 두고 있고 한민족 국가형성사의 초기시대인 구이( 九 夷 )시대 동이족사상( 東 夷 族 史 上 )의 군자적 인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항시 회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원시유학( 原 始 儒 學 )이라고 부르는 공자 이전시대의 전통은 사상적 미개발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유학의 태토이며 본질의 형성사로서 무게를 두어 받아들여야하며 이 원시유 학 시대의 동이족은 유학의 주도자였다는 사실을 상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공자( 孔 子 )와 맹자( 孟 子 )는 바로 그 유학을 중국적 유학으로 발전시켰고 유교적 텍스트를 확립함 으로서 유학 발전의 한 가능성을 완결하였다는 의미가 있다.그러나 공맹학으로서의 유학이 유학 의 전부인 것은 아니며 그 텍스트화 즉 경전화되기 이전의 전통을 재음미하는 것이 긴요하다. 유학의 본질을 재검토하는 일은 오늘 극히 중요한 일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최초기 유학의 형성사에 대한 구상이 요구된다. 유학의 형성사를 재검토하지 않고는 과거 유학 2천년사를 직시할 수 없고 유학이 지닌 사상사로 서의 본질가치라든가 미래적 가능성을 가늠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夏 夷 案 者 :: :: :: [주석1] *동양학( 東 洋 學 ) : <독자한마디>난에 참고 기사를 실어두었습니다.* "동양"이라는 용어는 명대( 明 代 ) 중국에서 처음 쓰인 말이지만 근대적 용어로서는 일본에서 서양이라는 표 현과 함께 하나의 대역어로서 쓰기 시작하였던 용어입니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동서의 문명을 나누어 지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용어적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겠 습니다.그러나 우리 광역의 문명권에서 바다는 역시 중요한 것이긴 하나 전통 역사의 역동은 주로 대륙을 통해서 구동돼왔으므로 문명 역사용어로서 꼭 적ㄷㅇ하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근대역사에 한정한다면 바다를 통해서 서양 세력이 동양에 상륙하였으므로 어느정도 유용한 표현이 됩니다.그러나 서양의 지성에 의한 동양문명의 왜곡을 직시하여야할 싯점에 이른 지금은 새로운 용어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권의 본질이나 주체 민족을 표현하는 방식 등이 고려되어야할 것입니다. 동양학의 일반문제(1) 358

359 :: :: :: 동양학의 일반문제(1) 359

360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유교 쓰기 :05 1 글쓰기란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하기 위한 참담한 산고일 수 있습니다. 그중 컬럼은 일정한 주제나 문제의식으로 연재적으로 써나아가는 글을 지칭하겠지요 그러므로 내용이나 형식에서 어느 장르적 독특한 제한을 갖는다기보다는 집필의도나 목적이 보다 부각되 는 것이 컬럼일 것입니다. 오솔길의 경우는 일반 논문적 글쓰기의 제한을 벗어나보려는 단순한 노력으로서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종류의 글쓰기 관행에 젖어있는 경우이든 그 관행의 형식이나 타성을 벗어나려는 것을 우리가 높이 사야하는 이유는 생각의 새로움을 열어 지표나 표상의 새로움을 지어냄으로서 삶의 힘과 맛과 의미를 풍 부하게 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기대에 있을 것입니다. 오솔길 집필자는 그동안 내내 일정한 형식의 글을 주로 써왔었습니다.인터넷을 상대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것은 이제 2년 정도 되었군요이 기간의 경험은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글이 일반적 융통성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그 의미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이전에 필자는 <탐구글쓰기>라고 스스로 명명한 글쓰기를 오래 유지해왔었습니다. 탐구 글 쓰기란 필자가 독자를 의식하고 쓰는 표현성에 거의 주목하지 않고 단지 1)냉정하게 최소한의 가 독성의 철칙만을 준수하면서 2)필자의 사고와 논리의 구름과 어둠을 헤쳐가는 데에만 전력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3)이경우에 글읽기는 오로지 독자에게 맡겨지고 필자는 오로지 사실의 발견과 추적에 전력하는 일 종의 탐구과정 자체임에 최대의 의의를 부여하는 그런 태도였지요. 처음 필요에 의해 그런 쓰기를 지속하면서 한번은 어떤 관념으로 글을 쓰는가하고 묻는 지인에게 한자루 검을 들고 혈혈단신으로 밀림에 들어 좌충우돌하며 수목의 가지를 치고 맹수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마음의 길을 열고 숲 위의 하늘로부터의 빛의 통로를 소통하고자 는 고독한 투쟁의 념으로 쓴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지금도 주관적 체험을 형상화하는 시를 쓸 때는 주로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까지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해오면서 역시 외로운 글쓰기의 한계가 많다는 것을 느꼈고 비록 탐구글쓰기의 정념으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융통적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굳게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오솔길의 주제인 유교를 대상으로 글쓰기를 할 경우 특히 그러함을 느낍니다. 유교는 일반적으로 많이 왜곡되게 알려진 부분이 극히 많은 정신이고 그 탐구정신 자체가 극히 일상적인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유교 쓰기 360

361 체험의 수용과 균형을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글의 일반적 화통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하게 느 꼈습니다 2 글쓰기란 어떤 의미에서 경험의 대수학( 代 數 學 )과 같습니다.경험을 상징하는 것이 문자이고 이 경험의 단 위와 양을 경험치(요즘의 게임용어로)라고 할 때 전체적으로 경험치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모든 이성적 사 고 표현의 대전제일 것입니다. 유교는 전체 경험의 포용을 중시하고 경험간의 조화 균형을 그 본질적 생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벌써 이 컬럼을 시작한지 두달을 바로 넘겼습니다.보다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유용한 결과물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역시 보다 보편성을 스스로에게 강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믿습니다. 유교의 역사성 정신성을 탐구하되 텍스트적인 자유를 바탕으로 그 다양한 해석 재현 가능성을 그리고 해 석의 창조적 성격을 앞으로 보다 강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럼 두 달을 맞으며 자평해본 것입니다. 夏 夷 案 者 새로운 텍스트로서의 유교 쓰기 361

362 일반 사유와 경전적 사고(1) :00 시론 1 대개는 흔히 전통적 사고방식이라고 하면 아마 현재의 나의 심상과는 동떨어진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가 쉬울 것이다. 최근에 일반의 담론의 장에서 고전적 사유라든가 전통과 역사를 논하는 일이 과거보다는 많아졌고 또 그 깊이도 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아직은 역시 전통적 사유에 관한한 아직은 일반적으로는 낯설 게 느끼는 이들이 많고 또는 전문적인 그 무엇이라고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그런 이유 때문에 일상의 삶 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자체보다도 고전이라든가 역사라든가 전통적 사고태도를 논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러한 일반적 괴라감으로 인해 오히려 방해받고 있는 것이 핵심적으로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괴리를 느끼는 것은 사실은 몇가지 왜곡구조 때문이고 진정한 사실이 아니다.어떤 왜곡구조가 매우 강인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이를 철거하지 않고는 그 삶과의 괴리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왜곡구조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으로 이 사회를 이끌고 가고 있는 중심에 나선 일반 지성들에게 문제 가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야하겠다. 이 사회에서는 전통 역사를 본격적으로 평가해본 일이 없으면서 자의적으로 역사와 전통을 논하는 부당 성이 매우 짙게 존재한다고 하는 점을 먼저 예로 들 수가 있다.전통논의가 그 일상성의 본질을 찾지 못하 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과연 우리가 전통역사 나아가 전통적 정신의 의미를 순수하게 반추하는 일은 우리의 굴곡많은 현대사의 특징상 곤란한 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비중으로 생각해왔어야할 부분이다. 근대화-서구화-세계화를 추구해오는 강한 분위기로 인해서 전통의 문제는 언제나 제3자로 유보되었었고 현재도 과학지상주의 기술지상주의 서구모델지상주의가 공고하게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다.그런 가운데 전통의 의미를 진정으로 숙고하기는 사실 어려운 것이었다. 깊이 있는 전통 이해를 위한 노력의 이전에 먼저 경전적 사유가 일반의 삶의 사유이며 보편한 사유임을 일반 사유와 경전적 사고(1) 362

363 우선 이해해보아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여기에 고민이 있다.이미 왜곡된 이해 분위기 속에서 그 일상성을 이해하기가 도리어 어렵게 된 면 이 매우 강하고 그 고정관념을 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한 당위성의 주장을 끈질기게 견지해도 그 효과는 매우 적은 것을 실감할 때가 많다. 이제 오히려 전 통정신 전통역사 경전 등의 본질적 의미를 깊이 탐구하고 그 힘으로만 그 일상성과 보편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솔직한 판단이다.. 夏 夷 案 者 일반 사유와 경전적 사고(1) 363

364 최근의 경전 해석 논란들 :04 <1> 경전해석 논란의 의미 ::1:: 요즘 K.B.s의 논어방영과 더불어 논어를 중심한 고전해석이 많은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최근 일간지를 중심한 보도들은 그러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는 과거에 보기 어려웠던 상황이다.그러한 매체의 반응만으로도 이제껏 있어왔던 고전문헌에 대한 곡해 와 이해의 결여문제를 풀어야한다는 매우 힘있는 목소리의 역을 잘 수행해주고 있다. 이미 학계 내부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각 분야의 인문학의 내용적 발전과 함께 그 역할과 사명 학문적 본 질문제 등 일반적 자성이 요구되었고 그 가운데서 고전과 역사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이 강하 게 현실의 문제로서 대두해왔었다.다만 그 의견과 믿음들이 일반의 이해의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어 잠복 해있었다. 이제 고전 음미의 필요성은 충분히 논의된 것 같다.그리고 이제부터는 구체적으로 고전을 다루고 사고하 는 구체적인 고전적 행동 부분으로 그 관심이 넘어가주어야한다고 생각한다.고전적 행동이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님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어졌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도 이미 한차례 논어해석과 노자해석을 두고 일부 격하기까지한 논란이 있었으므로 이미 고전 적 행동은 구체적으로 수행되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이제 경전을 다루고 문헌을 해석하는 것이 하나의 <일반현상>으로 우리 사회의 일 반문화의 장에 드러나기작하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무슨 말이야하면 지금까지 주로 서재에 꽂혀있던 경전이 일반적 삶의 광장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논의도 일부 소위 <문화권력>의 범위에서 논 의되는 틀을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지성으로서 거듭나기 사작했고 모든 학문분야가운데서 그것도 제일먼 저 일반적 목소리로서 공론적 공기를 구성하기 사작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한 대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부터는 어떤 제한된 틀 속에서 일부의 연구자의 논설로서 유교가 묶여있을 수 없다는 믿음을 널리 주 었다.그 원래의 본령대로 상하( 上 下 )와 고저( 高 低 )를 포괄 조화 균형을 유지하는 새로운 시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그것도 극히 넓은 무제한의 공론의 장인 방송과 일간지면을 통해 유교가 새로이 우리 문화 속으로 새로운 메시지에 실려 돌아왔다고 보고 싶다.이제는 이를 되돌릴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고 생각한다. 유교논의는 공공성 일반성을 새로운 주류성향으로 확립하고 그 공론적 힘에 의해 새로운 부활과 발전이 최근의 경전 해석 논란들 364

365 이루어져야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구체적 분야로서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문학 예술의 각 분야에서 유교적 결핍을 해소하기 위 한 수혈이 일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2:: 최근의 논란중에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것은 <논어논란>이다.최근 고전연구원 전호근 교수 서울여대 홍 광훈 교수 등이 그 논란들을 정리하고 새 방향을 제시하려한 점은 그런 뜻에서 의미 있다. 전호근 교수는 "저마다의 공자만 있고 모두의 공자가 없다"고 비판하고 논어의 유행은 중요한 문화적 사건 이지만 독단적 해석을 경계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적으로 수용할 것을 말하고 있다. 홍광훈 교수도 유사한 입장의 견해를 발표하였다.그리고 아울러 구체적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였다.그러나 실은 두사람의 해석의 오류 지적도 역시 하나의 해석 가능성을 보인 것이며 그들이 비판대상으로 삼은 모 모한 해석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고전 문헌에서 어느정도의 기초 독법을 가진 해석이라면 <틀린 해석이란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개념의 연결법이 독법이므로 어떤 의미 연결법이든 제한 없이 수용되고 검토되어야한다고 생각한 다. 다만 그 허용의 확대에는 분명한 전제가필요하다.그 전제란 <1>일관된 의미로서의 경전이해 <2>통일된 유 교사상의 이해 <3>개념간의 의미를 열어주는 이해 <3>보다 넓고 깊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창조 적 이해를 지향해야한다는 것이 그것이다.경전이 영원한 그 무엇이리고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구현 수립하기 위해서다.결국 단적으로 <대학>에서 말하는 일신( 日 新 )의 의미에 유용해야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논어의 인부지이불온( 人 不 知 而 不 溫 // 溫 /은 앞의 삼수변 대신 마음심변)에 대해 도올의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다"하였고 구름은 "자신이 깨닫지 못해도 성내지 않는다"고 해석하였는데 사 실은 이 두 해석은 모두 극히 전통적인 해석의 범위 속에 있다.해석의 본질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전자는 가장 전통적 해석이요 후자는 위진 남북조시대에 이미 수립된 해석법의 하나이다.전통경전해석의 논란에서도 그정도의 논란은 흔히 이미 있어왔다.문제는 왜 어떤 해석으로 통일될만한 중심화 통일화의 길을 열지 못했냐하는 데에 있다. 이제 그 길을 의식적으로 열어가기 위해 바로 그 전제로서 오히려 지금보다 몇배더 다양한 해석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그것이 새로움의 길의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기에 귀중한 것이다. 더많고 더 다양하고 더 놀랄만한 해석이 니와야한다.아직은 논란에도 불고하고 그런 해석이 전연 없었다 고 단언할 수 있다.해석과 의미 설명이 유리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기존의 어떤 지식 뜻으로 구 절을 해석하지 말라> <자구에 얽매이지 말라>는 전통적인 해석법은 역시 귀중한 해석기술이다.경전의 문 헌이 현재 살아있다는 전제아래 번역되어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공자가 시성( 時 聖 )이 최근의 경전 해석 논란들 365

366 라고본 맹자의 견해는 바로 거기에 공자의 위대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명쾌한 통론이다. 夏 夷 案 者 兪 德 朝 최근의 경전 해석 논란들 366

367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시청소감 :20 <1> 모 일간지 홈페이지 커뮤니티에 유교문화복원문제 게시판을 연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2000년 5월 15일 시작되었으니까요.그동안 여러가지 운영상의 부족함도 있었고 또 그런대로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잊지못할 일도 있었습니다만 특히 게시판을 시작한지 열흘뒤인 2000년 5월 25일에 추기경이 유학자 김창숙 선생 묘소를 참배하였다는 기사를 접하였고 더우기 추기경께서 <나의 피 속에 유교적 전통이 흐르고 있다는>선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당시 곧바로 환영의 글을 올렸 었습니다.(`00년 5월 25일 11번 게시물) 이미 교계의 반성적 세미나가 있어왔었고 추기경의 선언은 교계의 자성을 대표할만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신교측에서 유교를 부정하는 글들이 매체에 등장했고 그때마다 이 게시판에 반론을 올렸었습니다.물론 사회의 저변에서도 관 성적으로 유교비판이나 부정의 움직임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00년 10월 18일에는 마침 시작된 도올의 k.b.s논어강의를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39번 게시물) 유교적 자성의 필요성이 사회문화의 중 요한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음과 때를 같이하여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이어서 얼마 후에는 도올의 강의를 우려한다는 글이 올 라왔고 그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면이 강하다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게시물) 물론 그간에는 도올의 강의에 대한 여러 측면의 반응이 주지하시듯이 폭주하기도 했었습니다. 최근까지의 해석관련 문제를 정리해 올린 것이 `01년 3월 5일(224번 게시물)이었습니다. `01년 4월 8일에는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 방영이 보도되었고 (역시 환영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오늘(4월 27일) 그 방송을 경청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도올의 강의는 다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넓은 의미에 서 문화적 반성의 필요에 부응한다는 대국적인 당위성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실제로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이제는 그 반향의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환영의 글을 올리면서 그 점을 지적했었습니다. <2> 도올의 천주교 그리고 추기경에 대한 소개 담론은 대개 세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1)천주교가 세계 전교사상 유례가 없이 한국인 스스로 주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는 점 (2)유학자가 유학의 모순과 문제를 풀기 위해 수용하였다는 의견 (3)추기경의 종교적 포 용론 즉 불교든 유교든 사랑과 인의 정신을 중심으로 사는 삶은 구원을 받는다는 설은 세계포교사상 극히 혁신적인 포페르니쿠스적인 것이라 는 견해를 피력한 것이 그것입니다. 실제 대담의 진행은 도올의 소개말에 이어 추기경의 발표형식으로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에 대한 담론을 위주로 방송이 진행되었습니다.거기에 도올이 한 두가지 질의를 더하는 형식이었습니다.추기경 의 주제에대한 견해는 집중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인상깊었던 것은 관중들의 태도였습니다.추기경이 입장할 때 모든 관중들은 일어서서 기립박수로 환영했습니다.그야말로 진지한 기립으 로서 자발적인 <말씀에의 갈망>을 담고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퇴장의 순간에도 기립박수가 크게 일어났고 추기경이 지나는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다 목례로서 예의를 표하였습니다.<원로로서의 추기경의 목소리>에 고마움을 전하는 몸짓임에 틀림없어보였습니다.사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시청소감 367

368 회적 갈망의 응축된 축도로 보였습니다. 반면에 도올이 코멘트중에 <천주교는 유학에 의해 그 당시 박해를 받았지만 지금 현재는 유교는 천주교를 박해할 힘이 없다>는 말과 <그 당 시 박해를 가했던 유교는 지금 쇠하고 반대로 기독교가 융성하고 있지만 이제는 도리어 기독교가 유교와 같은 모순에 빠지고 있다.>는 말도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언급일것입니다. 추기경의 강론은 도올의 저서 가운데서<논어 1/176페이지> "공자는 유교를 말한 적이 없다.인간을 위해 인간을 말했을 뿐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되었고 충( 忠 / 中 + 心 )과 서( 恕 / 如 + 心 )의 개념설명을 연관지웠습니다.이어서 논어의 인( 仁 ) 애( 愛 ) 개념을 인용하면서 공자의 논어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증명하려하였습니다. 아울러 공자의 유교가 천인합일을 추구하는 천( 天 )의 정신을 기초로 하고 있고 특히 공자는 천( 天 )의 주재자로서의 인격성을 신앙했다는 점 을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나를 알아줄 것은 오직 하늘이시다>는 등의 말씀을 기독교 교리와 통하는 것으로보고 인격적 절대자를 신앙하고 있었다고 설명하려하였습니다. 추기경은 그의 화두를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열었습니다.그러나 인간존엄의 절대근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당연히 종교적 살파의 방식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함은 어떤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오직 종교적으로 만 인간의 존엄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논증하려하였습니다.그것은 절대자인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고 세상을 지배할 권능 을 부여하였다는 논리입니다.이와 연관 헌법학자 이철수씨의 저서를 통해 인간의 존업성을 천부적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그리고 과학적 생명 기원논의 우연설(생명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을 예시하고 과학의 헛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존엄성의 문제와 함께 또 주중한 문제는 신앙심의 기원이었습니다.구복신앙의 가벼움을 논하되 박완서씨의 신앙역정을 소개하며 불행을 당하 는 경험으로 신앙심이 일시 의심될 수 있지만 고통과 불행은 결국은 신앙의 적이 아님을 말하고 맹자의 한 구절 <하늘이 이사람에게 큰 사명 을 내릴 때는 여려움을 주어 단련시킨다>는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끝으로 호주의 방문경험을 통해 한국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회가 되기에 부족함을 말하고 호주에서는 아이 노약자 장애인 여성 동물의 순으 로 대우받고 있고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남성이 그렇게 해야한다는 의미)는 견문을 소개하였습니다.아울어 한국에서는 생명의 문화보다는 죽 음의 문화가 성하다고 하였습니다.생명과 사랑의 정신이 부족하다는 분석이었습니다. 요컨데 추기경의 견해는 유학의 전통적인 천( 天 ) 제( 帝 / 天 의 인격적 표현-실은 최고 조상신으로서 후일 절대신으로 발전함)을 중심한 천인합 일 사상에 뿌리를 두고 그 사상이 인( 仁 )의 정신으로 요약되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상통한다는 견해로서 <불교든 유교든 진성한 삶을 살아가 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설법을 구사하였습니다.이점은 전통적인 교의를 발전적으로 재해석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수현군이 의로운 죽음을 그와 같은 차원의 삶으로 정의하였고 김기섭 소방관이 친구에게 보낸 에서 <사람의 생명 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성직으로 여긴다>는 결의를 사제와 같은 성직자의 삶과 같은 것이라고 평가하였습니다.바로 이점 때문에 도 올이 추기경의 설교가 코페르니쿠스적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새로운 교설임에 틀림없습니다 도올은 두어차례 유교의 천( 天 ) 즉 공자의 하늘이 반드시 인격적이며 또한 신이라고 해석할 근거가 있는가를 묻고 싶은 속내를 질문으로 던 졌지만 성직자로서 순논리적인 토론에는 추기경이 응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도올도 그 질문을 더이상 관철하지는 않았습니다.실은도올의 경우도 뚜렷한 반론이 아마 준비된 것이 없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도올은 또 생명기원론의 우연설이 과학적 설명의 한 국부적 한계를 인정 하는 솔직한 견해임을 말하고 싶었으나 우연설은 사실 오랜 것입니다) 이 역시 관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에서 그같은 핵심문제를 깊이 토론할 여유는 없었을 것입니다.오히려 더 중요한 것으로 유교와 기독교와의 상통의 가능성을 열어보인점은 커다란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추기경의 말씀대로 종교적 설명은 비유적인 부분이 있고 또 직관적인 부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시청소감 368

369 분이 있어 상호 토론을 위해서는 하나의 여과기술이 필요할 것입니다.아마 그 여과역을 수행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문학중에 시일 것입니 다.아니면 일상의 생활담론 즉 수필일 것입니다.박완서씨의 시를 인용한 것중 (남편과 이들을 잃고 절망 속에 쓴) -나는 신을 죽이고 또 죽 였다...죽여야할 신 이 있어야하므로 신은 존재해야한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롭게 직관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형식의 글이기 때 문입니다.(박완서씨는 그 후 더욱 깊은 신앙인이 되었다고합니다) 이 게시판에는 4월 18일에 추기경과 도올의 대담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었고 그 환영의 이유는 최근 성햏하는 유교담론이 보다 구체적인 문 화현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할 시점이라서 기대된다는 요지였습니다. 대담은 기대를 일단 만족시킬만한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특히 기독교나 종교에 대해 새로운 교리의 발전적 확립의 가능성을 보 여주었다는 점과 인간에 대한 존엄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봉사될 수 있는 중대한 의식이 유교와 종교 속에 있다는 강한 목소리가 그것입니 다. 아마 새로운 문화 정신이 방향으로서 그 이상의 지침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앞으로의 보다 발전적인 문화 정신 환경으로서의 가능성을 더 열어두었으면 하는 더이상의 기대감도 없지는 않습니다.예컨데 과학 학문 종교 유학의 관계를 발전적으로 재정립할 필요성 같은 것을 두고 생각해본 것입니다. 아울러 시간의 제한이 있었고 국내 유학사상 연구의 정밀성의 문제이겠으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유교의 천사상( 天 思 想 )이 경험적으로 충분 히 논의될 수 있다면 강의의 주제를 보다 더 부각하고 이해의 깊이를 남겨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夏 夷 案 者 兪 德 朝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시청소감 369

370 역사 교과서의 역사성 :59 교과서란 보통교육의 내용과 지침을 수록한 학습서다.이는 미래국민 어린이 청소년의 성장의 자양분을 제공하는 중요한 토양이 되 기 마련이므로 한 순간도 그 인격적 완성이라는 대전제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최대의 배려를 기울여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의 시대에는 폭넓은 보편적 이상이 필수적이므로 국민적 인격을 넘어서서 세계인으로서의 인격이 모색되어야 함에도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교과서 검정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여러가지 착잡한 느낌을 지 울 수 없다.저녁 뉴스에서는 김지하 시인이 그와 같은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제화 시대의 미아가 될것이라는 의미의 경고를 발하는 인터뷰를 방영했고 조계종 총무원장은 한국의 반일감정을 격화시킬 것임을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이 항의 방일을 나가고 시민단체들은 연일 국민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할 심산으로 강한 톤의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그 런 기사의 한쪽에는 국내 국사교육의 침체를 비꼬는 일본인의 비웃는 표정을 그린 만화가 실리기도하였다.일본 국내에서는 재검정 을 할 수 없다는 내부사정을 수차례 공표하여 고칠수 없다고 하였다. 이 아시아발의 국가적 갈등상은 서구의 뉴스에도 올라 세계적 이슈로 확산되어가고 있다.,p>일본의 역사 왜곡은 실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 오랜 일이다. 일본이 고대에 한국을 지배했다는 유명한 임나일본부설이 지금껏 세력을 지니고 있는 나라다.그와 유사한 기마민족설이라는 교묘한 학설도 있다.한글 글자가 찍혀있다는 일본 천황의 청동거울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이며(여러해전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학자가 광장이라는 잡지에 그 사진을 구해 실은 적 이 있었다.) 천황능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관 덮개를 열어 유물을 보자마자 덮어두기로 결의하였듯이 역사 사실을 합의적으로 감 추는 나라이다.일본서기라는 고대 일본의 역사서에서 보듯이 백제가 보낸 칠지도를 천황께 바쳤다고 기록했으면서도 전체 기록의 80-90퍼어센트 가까이가 한국관계기록으로 넘쳐나는 이상한 역사책이 유지돼 온 나라이다. 얼마전에 구석기 유물을 날조한 고고학자가 자결한 사건도 있었다.20년전 쯤에는 한국미술 5천년전이 일본 전역에 순회전시되었을 적에 많은 일본인들이 주최측에 항의전화를 걸었다고 한다.일본 청소년의 기를 죽이기 위한 전시회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비난이 었다. 반면에 시라가와라는 학자의 저서중에 제3신화론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제1세계가 되기를 오직 꿈꾸는 나라이다. 제3세계적 열등감을 역사상 오래 가져왔던 때문일것이다.예의 신화론은 중국이 신화는 산만하며 통일성이 없고 그리이스의 신화는 통일성은 있으나 한 역사적 시기로 완결되어버린 것임에 비하여 일본의 천황신화는 만세일계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신화적 통일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적어도 신화의 세계에서는 일본은 제1세계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설명은 맞는 말이지만 역사적 의미는 꺼꾸로 반역사적으로 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일것이다. 세계보편사의 정신은 고대적인 종 교적 신비주의를 해소 혹은 완화하는 것이 문명사의 핵심적 해석이며 특히 한국과 중국은 신비와 이성간의 긴장된 균형을 유지하는 힘에 의해 그들의 중심지성이 완전 균형의 모토 위에 독보적으로 성장해왔다.(물론 현재는 그 힘을 거의 방기하고 있다고 보아야하 겠다) 그 뿌리깊은 일본의 역사왜곡사는 일본의 역사 자체가 역사적 진실의 은폐위에 자의적으로 역사적 삶을 설계하는 비역사적 경험으 로 형성되고 유지되었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을 직시할 필요를 절실하게 한다.그러나 역으로 그들이 역사를 왜곡해온 역사가 가능했 던 것은 한국과 중국의 깊이 있는 역사 문화가 그 자양분이며 원동력이다.그들이 진실의 역사를 먹고 비역사적 몸을 키워가는 모습 은 마치 사람의 힘으로 사이보그나 로봇 같은 제3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그들은 그것을 대단한 독창으 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하나 소위 인위 인공이라는 것 혹은 과학 기술이라는 것이 현세 자연의 총체적 질서에서 보면 저열한 수준의 자연의 국부적 형상임을 까마득히 모르는 것은 아닐까한다. 역사 교과서의 역사성 370

371 그들은 고대에 세계적인 은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 내도해온 대륙의 지식과 기술과 결합하여 고대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그 들이 주류문명에 대해 반골적 행태를 보이게된 동기는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 근래의 백제분국설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을 통해 건너간 기술 인력 지식은 토착 사회와 엄청난 격차를 가지고 있었고 그 격차를 한편 수용하고 한편 해소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보색되었을 것으로 분석된다.바로 그 모색의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외형상 반골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내면적으로는 문 명적 경외감으로 응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심한 기록벽이나 독서벽은 그 일단의 증좌일 수 있다.<한편 그들 역사의 시원 바탕에는 대륙내도부분 외에 남방에서 전래된 문화적 요소도 강하게 있다고 연구되고 있다.예를 들어 벼의 전래 같은 문제를 그들은 그렇게 설명한다.인종학적으로 남방적 형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러하다. 남방문화의 전래는 중국문화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곧 역사의 진상 탐구는 보다 광범하고 깊게 천착됨을 기다려야할 여지가 아직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일본 역사 교과서는 아직 역사적 진실을 수용할 준비가 턱없이 안돼있다.우리가 조급히 대응할 일이 아니다.비판의 목소 리를 일면 강하게 울려 그 부당성을 지적해야하겠으나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주장하고 그들의 특이한 역사경험을 음미하고 해석해 보아야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의 역사는 일본 같은 자의적 왜곡은 없으나 전연 다른 중대한 역사해석적 문제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의 크기는 결코 일본의 역사왜곡보다 작지 않다. 우리는 한마디로 진정한 역사를 많이 잃어버린 민족이다.역사를 잃은 국민은 기질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다.우리 국민이 솔직 담백한 반면에 지금 조급하고 서두르고 하는 모습은 바로 정확히 역사상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증좌이다. 한국을 소개하는 국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로대 "한국인은 직정적이고 감정적이다"라고 하였다.또 "한국은 대륙에 붙어 있어 부수 적 국민성을..."이라는 식민사관이 2000년 새세기에 운위되었다.고구려가 확고한 지식과 국가의식 공동체 정신으로 짜여진 나라였음 에도 고구려 국민성이 용감활달하다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국민성론 인종론 같은 것은 19세기에 이미 한물간 이론이 아닌가. 우리 역사를 바로 찾을 때 일본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그들이 반성하거나 교과서를 고치지 않는 것은 그 외면과는 달이 깊 이 부끄럽다는 말이 아니겠는가.그들의 역사적 이중성을 바로 직시할 때라고 느낀다.그들은 비록 부당하고 반역사적이지만 적어도 그들 식으로라도 역사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지 않을까한다.물론 그것은 시급히 청산되어야할 비역사적 역사이다. 역사 교과서의 역사성 371

372 최근의 논어해석 예들에 대한 소견 :07 최근 논어의 학이시습지 문구를 두고 몇가지 해석이 주요 매체에 소개 혹은 강의되었다. <학이시습지>라는 빛나는 텍스트를 <배우고 익힌다>거나 <배운 것을 익힌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논어 나아가서는 유교를 좁게보려는 의도 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물론 이미 전통적으로,학이시습의 의미를 좁게 보아온 것이 그동안의 전통적 해석의 한계였으므로 <새로운 해석 >을 표방했으나 가장 전통적인 해석으로 후퇴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적어도 논어의 이문구에 관한 한 그러하다. 논어 학이시습의 의미의 요체는 학과 습 사이의 간격 문제가 우선 중요한데 학습 개념을 막연히 <배우는 행위>와 <익히는 행위>라고 보는 한 은 그 의미 간격을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설정하기는 좀 어렵다.우선 동격이라는 의미적 연관 구조를 제거한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학습의 절대 전제는 일반 보편의 삶이다.학습은 삶 가운데 일어나는 삶의 중심을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학과 습과의 관계는 유동적 가변적 선후불분적이다.요즘말고 사물에 대한 상념과 그 결과의 휘드백적 투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하나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삶의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학습은 의미상 실시간적 동시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내가 하나의 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고 그 느낌이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면 그것이 나의 삶에 반영된다.나는 새로운 의미 를 간직하게 되고 나는 보다 활기찬 삶을 실현하게 된다. 학습의 즐거움은 그와 유사한 그무엇이다.느낌과 탐구의 과정이 학이며 그 새로운 체험자체의 과정이 습이다. 공자의 학습론은 또한 공자 당시 까지의 전통적 신비주의적 삶에 대한 혁명에 가까운 새로운 Life Style 로서 제시된 것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격물치지의 원대한 삶이 처음으로 강조적으로 공식 표방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학이시습의 이해는 유교이해에 사활적( 死 活 的 )이므로 신중해야할 것이다. 시( 時 )는 당연히 현재나 현실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탐구하여 배우고 현실 속에 추체험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기쁘지 않은가>>라는 식의 해석이 되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유붕이란 불특정의 동학( 同 學 )의 신지식인군을 지칭한 것이며 인부지란 인간의 본질을 모른다는 뜻이다.공자 당대야말로 지적으로는 신과 인 간이 주도권을 다투던 때가 아닌가?신비적 양식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화낼일은 아니라는 중대한 태도를 표명한 말이다.(실은 공자는 미신적 삶을 청산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가차없이 비판하였다) 논어의 본 택스트는 너무 중대한 문제라서 천견으로 일언을 금치못하여 관견을 적어둔다 최근의 논어해석 예들에 대한 소견 372

373 겅전적 사고와 일상의 상념 :58 사실 유학은 후세 유자들의 언.행으로 구현되어 역사로 되살아난 것이 사실이지만 예를 들어 정이천 선생이 정명도( 程 明 道 )에 바친 비문에서 맹자 이후 오직 한 사람이라고 평하였듯이 진정한 선비는 얻기 어려운 것이사실입니다. 그리고 각 시대의 유자들은 그 시대의 모순이나 과제의 해결에 몰두할 수 밖에 없으므로 시대적 제한이나 한계를 뛰어 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신적으로 유학적인 것의 진수를 반추하기 위해서는 따라서 각시대 유자들의 언행에서 시대적 성분과 본질적 성분을 갈라낼 필요가 있습니 다.현재의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경전을 통해서 그 본원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성찰할 필요가제기되는 까닭입니다.실로 경전 자체가도 완벽한 이상과 사유법을 견지하고 있다 고 하더라도 경전에서도 역시 그와 같은 역사적 제한이나 속성을 초월한 것은 아닐 것이므로 그와 같은 접근 태도가 같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경전은 누천년 동안 의미의 탐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전시대의 모순이나 제한을 뛰어넘어 보편적 의미로 재편해석되는 오랜 과정 을 겪었기 때문에 문헌적으로 처리하고 다룰 수 있는 허다한 선례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일반적 사물이해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 또한 사실 일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에 대한 자유로운 검토가 무한히 요구되는 것은 그 긴 경전해석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직 경전의 본원 정신 의 중심에 성공적으로 접근하고 있지 못한 면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즉 경전이 언제나 당 시대에 적용되면서 왜곡될 여지가 많기 때문입니 다. 성현이란 거의 언제나 그 선행의 경전적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자로서 그 사고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음을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경전은 그와 같은 불변의 본질성과 역사성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일상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어떤 고차원의 이념이라하더라도 현실의 삶 속에 구현되고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자신의 삶의 전체와 전인적 연관을 맺을 수 있어야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유학에서 항상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요컨데 온전한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끊임 없이 경전의 구절을 생각하는 일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의 텍스트가 삶의 전 국면에서 귀중한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직접 경험하는 일 보다 앞설 것은 없을 것입니다.또 그위에서 어떤 치열하고 가치로운 생각이나 창의도 더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바로 그래서 경전(불변의 도와 법을 적은 책이라 는 의미의)이라는 존호가 부여된 것일 것입니다. 요즘의 유학과 연관한 담론들을 보면서 생각 해본 일입니다 겅전적 사고와 일상의 상념 373

374 경전 독법:어떻게 읽을 것인가-보편성,확신의 형성과 자유사고 :20 최근 경학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경전의 독법에 대해 일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논어와 노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하의 각 대중적 지면들에서 볼 수 있는 논설들은 많은 경우 균형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어서이다. 사실 문헌의 독법이란 대상 문헌에 대한 정신적 접근의 깊이와 정도 즉 그 조예의 여부에 따라 논의의 본질이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엄 연한 사실이다. 아니면 적어도 해당 문헌에 대한 애정이나 확신의 정도 그리고 그 심태의 객관적 타당도에 따라 의미 본원을 향한 노력의 궁극적 성패가 좌 우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문헌을 대하기 이전에 그 문헌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먼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자가 신이호고( 信 而 好 古 :확신을 가지고 있고 옛 문헌을 이해하기를 좋아한다) 라고 하였고 맹자가 현세의 벗을 다하고 위의 시대로 소급하 여 상우( 尙 友 :옛 현인을 벗하여 배움)한다고 하였을 때 두 말은 모두 전통적 현성( 賢 聖 )에 대한 인격적 확신을 전제로 문헌의 가치가 수립되 는 것임을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 두 경우 모두 학자 지성인의 인격에 대한 믿음을 말하였으며 동시에 그 시대성을 포착해야한다는 메 시지를 내면에 함축한 말들이다.문헌은 역사적 현실의 삶에 충실한 어떤 기록이라는 믿음이다. 그 인격적 시대적 확신을 수립하는 단초는 사실은 선학의 가르침이나 스스로의 직관적 이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싯점에서 의 절실한 자성이나 깨달음이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그 시작의 단서는 특별한 제한 없이 여러 경험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고 그 경험을 간직하고 삶을 영위하면서 보다 실체적 믿음으로 확인 상승되어 하나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확신이 없다면 우선은 그 확신에 이르기 까지는 문헌을 본격 분석할 준비는 덜 되었다고 진단할 수 있다. 본격적인 문헌 분석이란 일반의 독해와 다르다.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자아적 생명 즉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다. 적어도 그것이 경학이나 철학 역사에 관한 중심적 경전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경전은 최대한의 확신에 뿌리를 두고 읽을 때 새로운은 의미의 세계가 보인다는 경험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나 이 점에서 오해가 있어서는 안된다. 확신을 먼저 요구하는 것은 경전을 왜곡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오류가능성 이야기이다.그러나 그런 일은 적어도 진성한 탐구자에게는 일어 나지 않는다.진성한 탐구자라면 그점을 언제나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또 이 말을 물고 늘어져 부정적인 답을 구하려고 도전적으로 생각해도 안된다.그것은 빙산의 일각을 말한 것이니까.확신의 의의는 그 이상이 다.학문적 생명이기 때문이다.확신의 중요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완전히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다.결국은 자신을 부정하는 곳으 로 나아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환언하여 다른 측면에서 말한다면 유학이든 도가사상이든 어떤 제자백가를 논함에 혹 분파적 사고를 적용한다든가 그 반대의 경전을 공파하 려는 노력이 전제되는 것은 위와 똑 같은 이유에서 위험한 일이다.확립된 경전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각 경전의 역사적 절실성 과 이유를 이해하면 충분하다.그이상의 지나친 학설논란으로 비화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경전 독법:어떻게 읽을 것인가-보편성,확신의 형성과 자유사고 374

375 맹자의 이단논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맹자의 이단논이란 확립된 경전을 두고 발언한 것이 아니고 형성중의 인물들의 경전 형성 과정의 오류를 비판한 것이며 맹자 당대의 역사적 싯점에서 필요한 경우 힘찬 논리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하겠다.예를 들어 맹 자가 묵자의 소박주의 박애사상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일 것인데 맹자의 비판 대상은 소박함에 있지 않고 소박주의를 너무 확대하여 전통을 붕괴하려는 행동적 비역사성에 두어져 있었고 그 결과의 비현실성에 두어져 있었다.절대적 의미에서 평등관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전연 아니다. 미숙한 묵학도가 실행의 오류를 범한 경우 준엄한 비판을 가한 의미가 강하다. 어떤 학파의 경전이든 그 진성함의 본류는 동질적일 수 있으므로 그 점에 촛점을 맞추어야할 것이다.물론 유학 자체도 그와 같은 오류를 반 복해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기 필요한 것은 문헌 이전에 그 전제적 태도가 왜곡되어 있다면 이미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그는 문헌을 오독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이다.그 뿐이며 다른 뜻은 전연 없다. 하이( 夏 夷 ) 역사세계의 여러 사상이 다른 어떤 사상과 구별되는 사상이기 이전에 대체적으로 보편사유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는 믿음이 없이 는 우리는 한 문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스스로 분명한 일일 것이다. 왜 주장이 달라졌는가? 개념이 다른가? 하는 것은 그 문헌이 쓰여진 시대에 책임이 있고 주장한 사람의 삶의 배경에 원인이 있다.그 정신 속 에서 요즘 지성인들이 사회적 대안을 제출하고 많은 경우 오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바탕 학문 자체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 경우 가 많을 것이다.그 논의가 보편을 지향한 것이라면 비중있는 경전으로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앍을 것이 우선 요구된다는 뜻이다. 학자는 그저 학자일 뿐이며 요즘 논의되는 대로 어떤 형식이나 권위를 추구하는 주장들은 언제나 걸러져야함은 당연할 것이다.사기는 이 점 을 잘 지적하고 있다(육가요지) 그러므로 독해과정에서의 엄밀함의 추구는 필수적이다.쉽게 읽으려는 것은 좋은 태도이겠으나 안일하게 소홀하게 읽어서는 안될 것이다.어렵 게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의미의 받아들임을 절실하게 한다면 그 읽음은 자연 정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문헌의 세속적 측면과 영원한 측면을 혼동하는 것은 그중 가장 큰 오류를 불러올 것이다.주역의 이일분수( 理 一 分 殊 )라는 말을 상시 간직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학문에 따라 보편에 접근하는 구체적 길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대안이 다를 수 있다.그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종교와 학문마저 온 전히 교류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하므로 학문은 자유사고의 길로서 오직 유지돼야한다. 최근에 어느 회원분께서 장문의 메일을 주셨는데 도가와 유교의 관계를 질의한 것이었다.그분께 즉시 답을 드렸는데 답이 좀 미흡했던 것 같 아 연관해 같이 부언해둔다. 경전 독법:어떻게 읽을 것인가-보편성,확신의 형성과 자유사고 375

376 한국의리 연의(1) 블로그 U-Korea 저자 Haianja Deok Jo yu 발행일 :15:07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와 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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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B6BCADC7C1B7CEB1D7B7A52DC0DBBEF7C1DF313232332E687770> 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 2 - 2013 소외계층 독서 인문학 프로그램 결과보고서 c o n t e n t s 5 22 44 58 84 108 126 146 168 186 206 220 231 268 296 316 꽃바위 작은 도서관 꿈이 자라는 책 마을 기적의 도서관 남부 도서관 농소 1동 도서관 농소 3동 도서관 동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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