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출처 :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글. 김윤하 (문화평론가) 2016년 1월, 어딘가 의뭉스러운 프로그램 하나가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름은 <프로듀스 101>. 음악 전문 채널에서 이제는 악마의 편집 원조격이 되어 버린 Mnet이 야심차게 내세운 새로운 포맷의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다. 구성은 단순했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직접 선택한 멤버 11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그룹을 데뷔시킨다. 제한 기간은 에누리 없이 방송이 진행되는 딱 석 달.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상석에 앉아 꼬박꼬박 문자를 쓰는 묘하게 기분 나쁜 전문가도 심사위원도 없다. 오로지 나 그리고 나의 소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붉은 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19
출처 : Mnet < 프로듀스 101 시즌 2> 미디어건제작사건지금껏생산주체가떠먹여주는콘텐츠만을수동적으로소비해온시청자들에게는마치꿈만같은기회였다. 나이는 10대중반에서 20대후반, 각기다른개성과재능으로가요계데뷔를꿈꾸는 101명의연습생소녀들이그들앞에섰다. 한표를가진이들에게는 국민프로듀서 라는새로운이름이붙었다. 프로그램은늘허리를 90도로꺾어 국민프로듀서님들, 잘부탁드립니다! 라며인사하는연습생들의모습으로끝을맺었다. 때로는과도한스트레스에정신적코너에몰리고때로는눈물로간절함을호소하며그들이그토록되고싶어했던주체는, 다름아닌 아이돌 이었다. < 프로듀스 101> 이처음목표로한건아마도해가갈수록인기하락세를타고있는서바이벌오디션프로그램의변종이었을것이다. 실제로 2016년은오디션프로그램의무덤과도같은한해였다. 시청률은형편없었고폐지는빈번했다. SBS의 < 케이팝스타 > 는마지막시즌을방영했고한국서바이벌오디션의원조라할수있는 Mnet의 < 슈퍼스타K> 는프로그램시작 8년만인 2017년, 개점휴업간판을내걸었다. 이한계를 장르음악 으로타파하기시작한건과연서바이벌오디션명가다운 Mnet의과감한선택이었다. < 프로듀스 101> 과아이돌은힙합 (< 쇼미더머니 >(2012~), < 언프리티랩스타 >(2015~)), EDM (< 헤드라이너 >(2015)) 을거친이들의다음선택지였다. 해외에서야케이팝 (K-Pop) 이라는대명사로가장유명한한국문화가운데하나로떠올랐지만사실국내실정으로눈을돌려보면이보다마니악한장르가없었다. 도전은대성공이었다. 첫회는 1% 가조금넘는시청률에그쳤지만데뷔조인최종 11인을발표한마지막회 (11회) 는시청률 4.383% (AGB 조사기준 ) 를기록하며화려한피날레를장식했다. 더구나이프로그램이남긴건단지좋은시청률뿐만이아니었다. < 프로듀스 101> 은프로그램스스로의가치를증명한것은물론여러모로한계에부딪힌듯보이던아이돌을소재로한미디어콘텐 20
츠에새로운가능성을제시했다. 앞서언급한시청자를제3자가아닌프로그램의주체로끌어들이며사고의전환을가져온공은물론이미완성된그룹, 아니면적어도같은기획사소속연습생들만을대상으로해온기존아이돌콘텐츠의고착화된형식을깨는과감함도유의미했다. 다만 국민프로듀서의선택 이라는미명아래연습생들의간절함을농락하거나참가자들을 A에서 F까지등급을매겨나누는등의비인간적인구성에대한비판은지금까지도유효하다. 일본아이돌그룹 AKB48의 총선거 방식과의유사성도꾸준히지적되어왔지만프로그램의무서운상승세를누르기에는역부족이었다. 성공적인전시즌의명성을등에업고다시한번출발선에선 < 프로듀스 101> 의두번째시즌역시화제의중심에섰다. 그러나그양상이사뭇다르다. 진행자가장근석에서보아로바뀌고, 연습생들의성별이남성으로바뀌었다는걸제외하면첫번째시즌에거울을비춘것같은프로그램임에도더욱의아한일이다. 하지만아이돌문화에익숙한이들이라면아마이단순한차이가어마어마하게다른결과를낳을수있다는것을동물적으로직감할수있을것이다. 시즌 1이참가자들이만들어낸서사의힘으로프로그램이지닌각종한계를극복하며아이돌로만드는콘텐츠에새로운가능성을제시한시즌이라면, 시즌 2는아이돌이라는콘텐츠자체가가지고있는명과암을그대로드러낸시즌이다. 그리고그한가운데, 팬덤이있다. 출처 : CJ E&M 팬덤의, 팬덤을위한, 팬덤에의한 특정인물을열성적으로좋아하는사람들또는그런문화현상을뜻하는팬덤은사실흡사한성향을띠는어떤집단에나붙일수있는단어다. 자신들이애정하고선망하는대상을위해서라면때로는그어떤비난과위험도감수할수있는, 광신자 (fanatic) 라는어원이더없이잘어울리는이들. 사람이모이는곳이라면어디에나적용할수있는 팬덤 개념은그수많은열린가능성에도불구하 21
고아이돌을택해운명의짝을맺었다. 어쩔수없는일이었다. 팬들의사랑없이는존립자체가불가한이가련한직종은그사랑이무모하고열광적일수록활동에더욱탄력을받을수밖에없는구조아래놓여있었다. 좋아하는가수를보기위해밤낮없이기다리고, 음반판매량을높이거나음원스트리밍횟수를높이기위해편법도불사하고, SNS를둘러보며가수를대신해감사의인사와비난의목소리를높이는사람들. 아마지금이글을읽는 팬덤에속하지않은 사람들의머릿속에스쳐지나간 팬덤 에대한이미지일것이다. 이는실제로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하지만여기서중요한건그들의 실제 가아닌 존재 다. 생산자가무엇을만들어어떻게선보여도흔들림없이전폭적지지와사랑만을보여주는놀라운존재. 마치신기루나유니콘에대한묘사처럼보이는이표현은그러나실제로현실에존재하며심지어지금껏아이돌산업을가장든든하게받쳐온주춧돌과도같은것이었다. 해가갈수록축소되어만가고매해위기의빨간불이켜지는대중음악시장에서팬덤의크기는그대로음악가의상품가치와직결되었다. 아이돌에게도그리고그들을활용해새로운콘텐츠를만드는이들에게도팬덤은이미선택이아닌필수요소다. 남성아이돌연습생들을대상으로하고있는 < 프로듀스 101> 두번째시즌을통해드러나고있는아이돌문화의명과암은바로이지점에서드러난다. 팬덤이대세에미치는힘이유독강한아이돌산업안에서도특히남성아이돌의경우팬덤의힘과규모가팀이가진모든의미가되는일이허다하다. 출처 : Mnet < 프로듀스 101 시즌 2> 이미정식으로데뷔한그룹도이럴진대, 그들을데뷔까지이끌어야하는팬덤의몰입도란가히상상을초월할일이다. 자신이응원하는소년을데뷔시키는데성공하면그가그토록꿈꿔온아이돌로서의삶을선사할수있지만, 만일실패하면그는다시기약없는연습생생활이기다리는한기가맴도는지하연습실로돌아가야만한다. 오디션에참가한연습생들이이해할수없을정도로자주눈물을비추고, 뽑아달라 가아닌 살려달라 는말을하는것이이상할것도없다. 22
투표를하는사람도투표를기다리는사람도도무지맨정신으로버티기힘든이극악무도한세계를창조한건다름아닌 < 프로듀스 101> 제작진이다. 아무튼 장사 가되는것에대한촉만큼은기가막힌이들이꺼내든이시대마지막남은흥행카드인아이돌과팬덤은방송사가채멍석을깔기도전에이미불이붙어온사방으로불꽃을튀기기시작했다. 팬들은프로그램의부족한연출을메우기위해 SNS를통한적극적인홍보는물론지하철유료광고판설치를위한모금도불사했다. 절대적으로부족한 떡밥 을각종화면캡처와움짤 ( 움직이는이미지 ) 로만들어온라인에뿌리는역할역시팬들의몫이었다. 지금껏제작된대부분의아이돌콘텐츠가그렇긴하지만, 이토록노골적이고대대적으로팬덤의힘에기대프로그램을성장시켜나간건 < 프로듀스 101 시즌 2> 가최초라해도과언은아니다. 이것역시아이돌콘텐츠가가진 새로운가능성 이라말하기엔글쎄, 어쩐지조금낯이뜨거워진다. 아이돌, 그다음 문명인의 길티플레져 (Guilty Pleasure) 가되어버린 < 프로듀스 101> 은한번보기시작하면누구나 내가졌소 를외치며빠져들게된다. 그럼에도불구하고이들이두번째시즌까지성공적으로프로그램을이어갈수있었던건, 새삼스럽게도프로그램의주체로광장에내던져진출연진들이다. 가슴한편에 이건불합리하다 는경고등이켜져있는걸알면서도당장눈앞에서펼쳐지고있는꿈과희망을향해전력질주하는젊음을외면하기란좀처럼쉽지않은일이다. 제작진이방조하고조장해놓은각종덫과상관없이이들을향해쏟아진수백만이넘는표들은그러한생의반짝임에바치는시청자들의헌사였다. 그렇다면이제프로그램밖으로눈을돌려보자. 우리들만의작은세계속아이돌친구들이살아내고있는세상은사실 < 프로듀스101> 이준비해놓은인공정글과크게다를바없다. 대대적소비감소의시대, 긴축재정에들어간한국에서유일하게뚜렷한목적을가지고지갑을여는건오로지 팬 뿐이다. 한편그들이꾸민애정전선의주연을맡은아이돌은출중한외모를갖추는것은물론노래와랩, 춤에도능해야하고연기는물론예능인으로서의자질도기본이상갖춰야만한다. 서사를제외한거의모든대중문화의집약체라불러도이상하지않을이신인류들은그럼에도불구하고평단과대중에게일반보다몇배는더호된담금질을당해야만한다. 이모든부와명성이단지 팬덤덕 이아니라는것을증명해야하기때문이다. 팬들이원하고평단이검증하고대중이인정한것. 아이돌의미래라할수있는 실력있는아이돌 에대한논의는여기부터시작되었다. 실제로장편극영화에서해외수출용웹드라마, 다수의패널이필요한예능에서음악프로그램진행, 광고계까지아이돌수요는극적으로증가했다. 20년전 10대들의승리 를외치며기성세대와현실을비판하던아이돌이활동하던시기와는업계체질자체가바뀐모습이다. 자신을따르는팬들이 빠순이 라손가락질당하지않도록퀄리티를유지해야한다는부담감과팬뿐만이아닌대중을설득하는매력을지녀야장수할수있다는강박은지금의아이돌을전에없이강하고내실있게완성시켰다. 좋은예는얼마든지있다. 전세계음악가들로부터쏟아진각종러브콜은물론패션, 순수예술계까지손을뻗으며시대의아이콘으로자리잡은빅뱅의지드래곤 (G-Dragon), 영원히남남일것만같던 23
출처 : SM 엔터테인먼트 / YG 엔터테인먼트 / KQ 엔터테인먼트 힙합과아이돌두단어사이에요령있게가교를놓으며젊은음악가로서정력적인활동을이어가고있는블락비의지코 (ZICO), 장수걸그룹의메인보컬에서이제는한국에서가장뛰어난대중성을지닌보컬리스트로성장한소녀시대태연까지. 아이돌그다음을꿈꾸는이들은지금이시간에도부지런한날갯짓을멈추지않고있다. 아이돌과아이돌콘텐츠를애증해마지않는우리들이할수있는건이격렬하고부지런한변화들사이그무엇에도현혹되지않고중심을지킨채쓸만한나비효과가돌아오기만을기다리는것뿐이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