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형벌포퓰리즘과사형제도 * 홍성수 ( 숙명여자대학교법학부조교수 ) 1. 흉악범죄와형벌포퓰리즘언제부터인가한국에서는흉악범죄가발생할때마다동일한스토리가반복된다. 1) 사형시키자! 거세시키자! 범죄에대한대중의분노가하늘을찌른다. 분노는당연하다. 이상황에서이성적인대응을주문하는것은전혀이성적이지않다. 이때언론이나선다. 언론은범죄에관련한여러가지사실들을선정적으로보도하면서특히범죄자의개인적배경을상세히보도한다. 그리고이러한괴물들을사회에서격리시켜야한다고선동한다. 언론보도는대중들의분노에기름을붓는다. 언론은시민들의분노를더욱자극하고, 괴물들을사회에서격리시키자고선동한다. 차분하게사태를직시하고건설적인대안을제시해야할언론의사명은온데간데없다. 그들에게범죄는판매부수나페이지뷰수를늘리기위한도구일뿐이다. 슬픔에잠긴피해자가족에게 얼마나슬픈지얘기해보라 고재촉해헤드라인을뽑는언론이우리의현실이다. 이제정부와정치권이대응할차례다. 언론이불을지른대중의분노가극에달했을때, 정부와정치권이나서강경대응을천명한다. 사형집행을검토하겠습니다! 물리적거세법안을제출합니다! 정치권이모처럼대중의요구에화답하는순간이다. 땅에떨어진지지율을단숨에올려놓을수있는절호의기회다. 정부, 여야할것없이앞다투어강경대응책을내놓는다. 법정형은계속상향조정되고, 화학적거세, 물리적거세, 신상공개제도, 전자발찌등신종형벌들이쉴새없이제시된다. 언론에이어정부와정치권도이렇게성의를보이니, 이제야국민들은안도의한숨을쉰다. 그놈면상이라도봤으니속이시원해졌고, 분단위로자세히묘사된범죄보도를보며욕을퍼부었더니마음이좀풀리는것같다. 그놈에게엄벌을처하겠다는약속을받아냈으니안심이좀되었고, 쏟아져나오는범죄대책을보니그제서야공포와분노로가득했던마음이좀누그러지는것같다. 하지만문제는이제부터다. 언론은신문몇장을더파는데성공했고, 정치권은국민의 신뢰를회복하는성과를얻어냈고, 시민들은안도할수있었다. 시민 - 언론 - 정치의 삼각 * < 세계사형폐지의날세미나 > 토론문, 2012 년 10 월 30 일 ( 화 ), 국회의원신관 2 층소회의실, 주관 :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불교인권위원회, 사형제폐지불교운동본부,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원불교인권위원회, 인권단체연석회의,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정의평화위원회, 한국기독교사형폐지운동연합, 한국사형폐지운동연합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정의평화위원회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주최 : 사형폐지국회의원모임 ( 국회의원정의화, 정두언, 유인태, 이학영, 노회찬 ). 발표용자료이며, 인용은저자와상의해주시기바랍니다. (sungsooh@gmail.com) 1) 이하의 4 개단락은홍성수, 괴물을없애는방법, 시사 IN, 261 호, 2012.9.19. 를수정보완한것임.
연대 가형성된것이다. 하지만그성과는실체가없다. 실제로이런식의문제해결은문제를해결한것이아니고, 사회를안전하게만든것도아니다. 그저안전하다는 느낌 만을선사했을뿐이다. 그렇다면이불온한삼각연대의최대피해자는 안전한사회 를원했던시민이다. 삼각연대의결말이비극으로끝난이유는간단하다. 괴물몇명을사회에서추방해봤자, 그괴물을낳은구조가바뀌지않는한새로운괴물이또등장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 서구의범죄학에서는이러한현상을이른바 포퓰리즘적형사정책 (populist penal policies) 또는 형벌포퓰리즘 (penal populism) 이라고부른다. 국민들이진정으로바라는형벌을통한범죄예방보다는정치인들의정치적이해관계에복무하는형사정책을통칭하는말이다. 즉, 형벌포퓰리즘은정의를실현하거나범죄율을낮추려는목적보다는선거에서의승리를목적으로하며, 2) 범죄의원인에대한과학적분석보다는감정과직관에호소하여분노를자극하고, 이를미디어를통해극대화시키고, 합의보다는불화와적대에근거하여범죄자와시민을대립시킨다. 3) 포퓰리즘이단기적으로국민들의지지에편승하지만, 국민들의궁극적이고장기적인요구를거스르는것이라면, 형벌포퓰리즘역시시민들의진정한바램 ( 범죄예방과범죄척결 ) 에부합하지않는정책이라는것이문제의본질이다. 형벌포퓰리즘의수혜자는언론과정치권이고, 그피해자는국민이다. 최근몇년동안한국에서도이러한형벌포퓰리즘의징후가감지되기시작했다. 4) 한국 에서도언론, 시민, 정치의삼각연대를통한포퓰리즘형사정책이등장한것이다. 최근들 어성폭력관련보도가언론지상에빈번히오르내리기시작한것이그징후중하나다. 한연구에따르면, 2008 년이후아동성폭력사건보도가급격히증가하여, 2007 년까지 100 건에서 200 건이다가, 2008 년이후두배이상, 2010 년다섯배이상증가했다. 5) 단 순히사실보도만이문제가아니다. 대부분의보도는언론의정도에서벗어난말그대로 선정보도 였다. 실제로한국여성민우회가 2012 년 8 월 31 일부터 1 주일을선정하여성범 죄보도를모니터한결과, 신문은평균 30 건, 방송은평균 20 건정도를보도했는데그중 절반의기사가한국여성민우회가제정한 성폭력보도가이드라인 을따르지않은것이었 다. 6) 동일한시기에엄벌주의형사정책도호흡을맞췄다. 엄벌주의는이미군사정권시절 부터배태된것이었지만, 7) 그것이본격화된것은비교적근래의일이다. 실제로큰범죄 가발생할때마다법정형이상향조정되고, 공소시효가연장되었으며, 전자발찌, 신상공개 제도, 화학적거세등의신종형벌이도입되었다. 그리고그때마다가장강한형벌인 사 2) J. V. Roberts, Penal Populism and Public Opin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5 쪽 3) J. Pratt, Penal Populism, Routledge, 12-13 쪽. 4) 형벌포퓰리즘은 법치, 질서 를강조하는흐름과일맥상통한다. 이종수, 이명박정부의 " 법질서정책 " 평가, 법과사회, 36 권 2009 참조. 5) 권인숙 이화연, 성폭력두려움과사회통제 : 언론의아동성폭력사건대응을중심으로, 아시아여성연구, 50-2, 2011 참조. 6) 기자들, 성범죄보도부끄럽지않습니까?, 미디어오늘, 2012.10.16.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556 7) 김일수, 전환기의형사정책 : 패러독스의미학, 세창출판사, 2012, 64 쪽이하.
형 을집행하자는목소리가높아졌다. 본래서구에서의형벌포퓰리즘이권위주의정권의압제하에서자행된엄벌주의가아니라, 언론과정치가서로의이익을위해연대하고시민들이그것을지지하는현상을나타내는것이라면한국사회에서의형벌포퓰리즘은최근몇년의일의현상이라고보는것이타당할것이다. 영국과미국에서는형벌포퓰리즘이 법질서정치 (law and order politics) 라는이름으로등장했다. 8) 법질서정치는범죄로인한위기를과장하고범죄에대한두려움을정치적으로이용했다. 범죄현실을범죄자의잘못으로단순화시키고, 피아를구분하여적을배제함으로써국민들의사이비통합을강화하는정책을실시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영국에서는 1980-90년대보수정당권이주로활용했던정책이다. 2. 형벌포퓰리즘과사형형벌포퓰리즘은이른바, 강벌주의 (punitivism), 엄벌주의, 중형주의경향과연결된다. 이것은언론, 여론, 정치가더강한형벌을요구하고, 이에따라형사법과형사법실무가합리적형사제재의수준을일탈하여강한형벌일변도로나아가는경향을말한다. 9) 그리고그정점에는바로사형제가있다. 형벌포퓰리즘이공포심을자극하여진정한문제해결책이아닌강한형벌로문제가해결될수있다고국민들을현혹시키는것이라면, 그 강한형벌 중가장강한것이바로사형이기때문이다. 실제로한국에서의사형집행은 1997년이마지막이었으나, 최근들어사형집행을재개하자는목소리가끊임없이흘러나온다. 앞서이야기한형벌포퓰리즘의발호와궤를같이한다는점에주목해야한다. 2009년 2월에는강호순사건을빌미로정부여당이사형제를재개하려는논의를한바있고, 2010년 3월에는이귀남법무부장관이사형재개를시사하는발언을해논란이되었다. 그리고 2012년 9월에도나주초등생성폭행사건등성범죄가발생하자, 청와대차원에서사형제에관한논의를하고있다는소식이들려왔다. 10) 동시에한대선유력후보가반인륜적흉악범에대해사형을집행할수있다는뜻을내비추기도했다. 11) 문제는사형의형벌포퓰리즘의사이비효과를더욱강화한다는점이다. 형벌포퓰리즘을 비판하는이유는형벌포퓰리즘이내세우는일련의강벌주의형사정책이범죄억제에별다 른도움을주지않기때문이다. 사형역시여러연구가이미밝힌바와같이사형의범죄 억제력이입증된바없다. 12) 그리고이들강성형벌은오히려진정한문제해결을가로막 8) 김한균, 법질서정치와형사사법의왜곡, 민주법학, 제 37 호, 2008 참조. 9) 김일수, 위의책, 29-30 쪽참조. 10) 청와대 사형집행재개초보적논의중, 조선일보, 2012.9.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04/2012090400102.html 11) 대통령되면사형집행? 묻자 박근혜 예전에도그렇게주장, 한겨레신문, 2012.9.4.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50219.html 12) 대부분의사회과학연구는사형과종신형을비교한결과, 사형이범죄를억제한다는증거를찾지못했다, S. C. Hicks, Death Penalty, Encyclopedia of Law & Society, Sage Publications, 2007, 388 쪽 ; 홍기원, 사형제도의범죄억지력에관한최근미국법경제학의연구성과에대한검토, 고려법학, 제 57 호, 2010; 김도현, 헌법재판소의사형제결정과사회과학적논증 : 사형의억제효과를
는역할까지한다. 대중의관심이나정부의범죄대책에도일정한 총량 이있을수밖에없는데, 강성형벌정책에만매몰되게되면범죄가발생하는구조적인문제의해결에는아무래도관심이떨어질수밖에없기때문이다. 13) 그리고 사형 이야말로그런사이비효과를극대화시키고그 총량 을소진시키는데가장결정적인역할을한다. 그리고그렇게소진된만큼비례하여진정한범죄대책에써야할우리의관심도작아질수밖에없다. 실제로흉악범죄자들에대한사형이집행되고그것이언론의헤드라인을장식하게된다면, 아마많은사람들은정부가할일을했음에안도하고문제가해결되었다는착각을하게될것이다. 그래서사형이범죄를억제하기위한정부정책의실패를은폐하는기능을한다는지적 14) 은충분히설득력이있다. 3. 범죄와형벌의악순환을끊는방법그렇다면범죄문제를실제로해결해주지도못하면서범죄와형벌이악순환되는이현실을끊기위해서는무엇이필요할까? 그해법은오히려사형을비롯한강성형벌이문제를해결할수있다는착각에서벗어나진정한문제의해결을요구하는데에서찾을수있다. 사형을폐지하자는것은범죄대책에무관심하자는얘기도아니고, 범죄현실에무책임한것도아니다. 오히려범죄문제에더욱적극적으로대처하자는것이고, 극한범죄를극한형벌로다스리려고하는, 그럼으로써악순환만되풀이되는현실에종지부를찍자는것이다. 사형을폐지하자는것은범죄와형벌의악순환을끊자는것이고, 범죄현실에대해무거운책임을지자는것이다. 쉽게가자는것이아니라오히려어려운길을가자는것이다. 사형과같은극단적인형벌이범죄억제에별도움이되지않음이주지의사실이라면, 사형이라는손쉬운, 그러나별효과가없는형벌에속지말고, 사형이아닌다른범죄대책들을마련하는데총력을기울이자는얘기다. 사형과같은극단적인형벌이범죄억제에별도움이되지않음이이미확인되었다면, 보다근본적인사회정책이필요하다. 범죄로부터자유로운세상을원하는시민들은엄벌주의로문제해결을회피하려는정치권력에맞서, 범죄의근본문제를해결하는사회정책을요구해야한다. 정치권과언론이자신들의이해관계에따라내놓는대증요법에속지말고, 한가로운소리 라고타박받으며뒷전에밀렸던 근본대책 들의이행을요구해야한다. 흉악한범죄사건을보며분노하는것은당연한일이지만, 분노의에너지의딱절반만이라도범죄가발생한사회적요인을제거하는일에돌려야한다. 최근문제가되고있는아동성범죄만해도그렇다. 적절한돌봄을받지못하고각종범 중심으로, 법과사회, 41 권, 2011 참조. 13) 이순혁, 범죄포퓰리즘, 한겨레신문, 2012.9.4.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0135.html 14) 박주민, 사형, 국가의실패숨기는가장쉬운방법, 프레시안, 2012.9.27.,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0927102422
죄에무방비로노출된 나홀로아동 이 70만명에이른다고한다. 벌써몇년째지적되고있는문제지만뚜렷한진전은없다. 성폭력가해자들은대부분자기가뭘잘못했는지조차모른채 억울하다 고말한다고한다. 이런자들에게중형을선고하고, 전자발찌를채우고, 신상공개를하고, 화학적거세를해봐야, 어차피그집행기간이끝나면다무용지물이다. 재범을막는가장확실한길은교도소에서어떻게든교화해서내보내는것이다. 교도소교화프로그램의중요성을말해주는대목이다. 성범죄신고율이 10% 남짓이고, 아는사람에의한성폭행이 80% 에육박한다. 성폭력은몇몇악마의문제가아니라우리의일상이라는얘기다. 성범죄자에대한강경대응에사람들이호응하는내막에는자신의일상이그악마들과는분리되었음을애써확인하려는몸부림이숨어있다. 그렇다면이일상의성폭력을수면위로드러나게하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 쉽지않은문제지만, 성교육등다양한기제를활용하여지속적인노력을해야한다. 범죄학은사회의빈곤과불평등이범죄의근본원인이라는점을일관되게지적해왔다. 가장효과적인형사정책은좀더평등한사회를만드는일이라는것도잊지말아야한다. 흔한오해중에하나가사형폐지론자들이범죄피해자들의문제에무관심하다는것이다. 하지만결코그렇지않다. 사형폐지론자들은범죄피해자에무관심한것이아니라, 사형이아닌보다적극적인다른방법으로그들을지원해야한다고주장한다. 범죄와형벌의악순환속에잊혀진범죄피해자의권리를옹호하고그들이하루속히사회에정상적으로복귀할수있는대책을마련하자는것이다. 피해자가족들이격한분노와함께사형을시켜야한다고주장하는것은자연스러운일이다. 15) 사형폐지를주장하는사람들역시이러한분노를존중하고이해하지만, 사형 이라는수단을통한해결에동의하지못할뿐이다. 그리고범죄피해자들의 2차피해를막고, 그들이하루속히사회에복귀할수있는다양한지원정책을요구한다. 사형이반드시피해자들의사회복귀에도움이되는것도아니며, 오히려사형제존치로인해오히려범죄피해자들의사회복귀문제에더무관심해질수있음을우려한다. 실제로엄벌주의의정당성을강하게강조했던여론, 언론, 정치중범죄피해자의문제에진지한관심을가지는이들은많지않다. 사형을반대하는것은생명을존중하자는것이고, 비록생명을해친생명이라고할지라도그생명을다시국가권력이빼앗는것이문제해결책이될수없음을주장하는것이다. 사형에반대하고강성형벌정책에반대하는사람들이범죄피해자의문제에진지한관심을갖는것은지극히자연스러운일이다. 16) 15) 김성규, 유족恨덜어주는것도사법부역할인데, 동아일보, 2012.10.21., http://news.donga.com/3/all/20121019/50249130/1; 수원오원춘사건유가족인터뷰, CBS < 김현정의뉴스쇼 >, 2012.9.5.,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291320 16) 예컨대, 이호중, 엄벌주의로해결할수없는문제들, 세상을두드리는사람, 33 호, 2008 년 7-8 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