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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예외없는희망?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그종말론적귀결에대한고찰 김혁태 ( 신부, 본대학교의신학교수 ) 목 차 Ⅰ. 들어가는말 Ⅳ. 보편적구원에대한희망 Ⅱ. 저승에가시어 1. 지옥의현실성 1. 신경의고백 2. 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와 2. 신약성경의진술 인간의자유 3. 저승또는지옥 3. 모두의구원을위한희망 Ⅲ. 성토요일의신학 Ⅴ. 비판적평가 1. 성토요일의신비 1. 지옥문제에대해 2. 예수의지옥체험 2. 만유구원설에대해 3. 삼위일체적사랑의사건 Ⅵ. 나가는말 국문초록 그리스도교신경은예수께서십자가에못박혀죽으신다음에저승에가셨다고고백한다. 그러나 예수의저승에가심 은오늘날현대인에게는매우낯선것으로, 그리하여그저신화적인상징처럼다가온다. 20세기최대의가톨릭신학자한스우르스폰발타살은이고백을새롭게숙고하여자신의신학의중심으로삼았다. * 본고는 2012 년도광주가톨릭대학교교비연구비지원을받아이루어진논문임.

86 김혁태 신약성경이명백히증언하는예수의죽음과부활사이에는예수의무덤에묻히심과죽은이들의세계 ( 셔올 ) 에들어가심이놓여있다. 그런데이 셔올 은모든종류의하느님부재, 하느님단절의총화로서, 이런의미에서결국 지옥 이라고말할수있다. 그리하여발타살은예수의저승에가심을 지옥에내리심 으로이해한다. 이렇게이해함으로써만, 자신을비우고내어주시는하느님의헌신과그사랑을무한한깊이에서가늠할수있기때문이다. 이러한숙고를기점으로삼아발타살은 성토요일의신학 을전개한다. 발타살이성토요일의신비인예수의지옥에내리심을구원론적이고삼위일체론적인차원에서새롭게정립함으로써, 이는종말론적으로도중대한문제를야기한다. 곧그의지옥담론이결국은지옥을부정하고 만유구원설 에기우는것은아닌가? 그러나발타살은유일무이하고대리적인특성을지닌예수의 지옥체험 에근거하여 보편적희망의신학 을전개한다. 그에따르면, 모든이의구원을위한희망은하느님의한량없는사랑에상응하며, 이는그리스도인의의무이기까지하다. 결국지옥의문제는하느님의사랑에대한믿음과희망의문제로귀착된다. 그리고이희망은오늘날온갖불의한지옥의현실앞에서그리스도인으로하여금투신을하도록요구한다. 주제어 : 발타살, 저승에가시어, 지옥, 성토요일의신비, 만유구원설, 보편적희망 Ⅰ. 들어가는말 예수의죽음과부활에대한고백은구조나내용상으로신경 (Credo) 의중추 ( 中樞 ) 를차지한다. 그런데사도신경은 저승에가시어 (Descensus ad inferos 또는 ad inferna) 라는구절을통해예수의죽음과부활사이를연결한다. 예수의무덤에묻히심과죽은이들가운데서의부활하심사이에그분께서저승에내려가셨음을고백하고있는것이다. 그렇지만예수께서는사흗날에부활하시기까지죽은이로서무덤에묻혀계셨다는사실말고도굳이그사이 (?) 저승에내려가셨다는고백이필요한것일까하는의문이든다. 분명오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87 늘날현대인의사고에는매우낯선내용이아닐수없다. 예수의죽음과부활사이의 중간시기 에대한신앙고백은어떤의미를담고있는것일까? 우선예수의 저승에내려가심 은말하자면비신화화 (Entmythologi -sierung) 의적절한대상으로보인다. 그리하여현교황베네딕토 16세는일찍이라칭거시절에, 이조항을 아주없애버리게되면별스럽고우리사고방식에맞추기거북하던것을지나치게불성실했다는책망을듣지않고서도처리할수있는이점이있을듯하다 1) 고말한다. 물론그가의도하는바는그렇게문제를부정하거나회피함으로써쉬운길을택하는것이아니라, 이성적으로책임있게대면함으로써이신앙고백이갖는신학적이고인류사적인함의를다시금생생하게밝히는일이다. 이문제와관련하여 20세기최대의가톨릭신학자로평가되는한스우르스폰발타살 (Hans Urs von Balthasar) 은우리에게깊은통찰을제공한다. 사실그의작품세계는거대한산맥과같은데, 그안에많은것이감추어져있지만그만큼이를찾아내어주제별로하나의체계를구축하는일이매우어렵다고할수있다. 이러한어려움을감안하면서도, 그거대한산맥의지극히일부봉우리라도그윤곽을그릴수있다면충분히가치있는일이될것이다. 여기그의 지옥 담론과거기서결과하는종말론적문제들을고찰하는일또한어느정도는그렇게되기를기대해본다. 이작업은첫째, 예수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에대해, 둘째, 발타살신학의핵심에맞닿아있는그의성토요일의신학에대해, 셋째, 이성토요일의신학을기반으로하는그의보편적희망의신학에대해고찰하게될것이다. 마지막으로는특히종말론적문제와관련하여앞선고찰에대한비판적평가를시도한뒤글을마무리하게될것이다. 1) 요셉라칭어, 그리스도신앙어제와오늘, 장익역, 분도출판사, 2007, 297.

88 김혁태 Ⅱ. 저승에가시어 1. 신경의고백 예수의 저승에가심 에대한신학은이미 2, 3세기교부들에게서발전한다. 2) 신약성경이명백히전하는예수의죽음을숙고하는과정에서그분의저승에가심도신학적중심주제의하나로등장하는것이다. 먼저교부들에게예수의저승에가심은예수께서여느인간과다름없이죽고무덤에묻혔다는사실을의미하였다. 그러나구약의의인들의구원문제와관련하여이내용은점차로구원론적인관점에서확대된다. 알로이스그릴마이어 (A. Grillmeier) 에의하면여기에는세가지동기가작용하는데, 곧예수께서저승에가신이유를저승에있는의인들에게설교하고 ( 설교동기 ), 세례를베풀며 ( 세례동기 ), 죽음과악의세력을제압하기위한 ( 전투동기 ) 것으로설명하는것이다. 3) 이후 4세기부터교부들은이문제를주로그리스도론적인관점에서다루는데, 그리스도의두본성의위격적일치 (Unio hypostatica) 라는맥락에서다. 곧저승에가신주체가예수의신적인로고스 (Logos) 인지아니면예수의인간적영혼인지를숙고한다. 4) 예수의저승에가심이교부들에게신학의주요주제가운데하나였지만, 이내용은비교적늦게신경에도입된다. 처음 4세기이전의신경들은단지예수께서사흘간무덤에묻혀계셨다든지 5) 또는사흗날에부활하셨다는 6) 사실만을고백한다. 그러나예수의구 2) W. Maas, Gott und die Hölle: Studien zum Descensus Christi, Einsiedeln: Johannes, 1979, 133-164 참조. 3) A. Grillmeier, Höllenabstieg Christi, LThK 2, Bd. 5, 1960, 453 참조. 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에대한 가톨릭교회교리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 632-635 항의가르침은주로설교동기와전투동기의맥락에서이를해설한다. 4) A. Grillmeier, 앞의책, 453-454 참조. 로고스와결합된예수의인간적영혼이저승에내려가셨다는가르침이결국교회의정통교리로자리잡는다. 5) H. Denzinger, P. Hünermanm, Hg.,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Freiburg: Herder, 2010 43, 6 참조 ( 이하 DH).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89 원업적을더욱명확하게설명할필요성에따라신경이확대되는과정에서예수의저승에가심도신경에도입되는데, 4세기중엽처음으로비 ( 非 )-아리우스주의신경에등장한다. 7) 예수의저승에가심은이후사도신경의고정된조항으로정착되고, 8) 1215년제4차라테란공의회는이를공식적인교리로가르친다. 9) 그러나근대를거치면서예수의저승에가심은그다지주목을받지못했다. 근대적사고로보면예수의저승에가심은단지계몽 (Aufklärung) 의대상에불과한것이다. 20세기들어서이주제를다시신학적논의의중심으로삼은것은발타살이대표적이다. 언뜻신화적인세계관의반영처럼보이는이신앙고백의옛조항을오늘날재발견하는일을발타살은이렇게표현한다. 곧이는 온교회가인정하고믿어온교의 (Dogma) 의한측면이뜻밖에선명한새빛속에드러나는것 인데, 이같은일은 교회역사에서자주일어나는바, 사람들은이미오랜동안친숙하던것을처음접하기라도하듯이생각한다. 10) 2. 신약성경의진술 예수의십자가죽음에대한신학적해석은이미신약성경선포의핵심내용가운데하나다. 그러므로 예수의저승에가심 에대한교부들의신학과신경의고백은당연히성경의신앙에뿌리를내리고있어야한다. 그렇다면이에대한전거로서신약성경의진술들을간단히살펴보자. 6) DH, 10 참조. 7) DH, 16 참조. 예수의저승에가심은이전에는단지반 ( 半 )- 아리우스주의의고백들에서만유포되어있었다. 8) DH, 27 참조. 9) DH, 801 참조. 10)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sche Besinnung auf das Mysterium des Höllenabstiegs, Hinabgestiegen in das Reich des Todes, Hg., Ders., München, Zürich: Schnell & Steiner, 1982, 7.

90 김혁태 예수의저승에가심의전제가되는 무덤에묻히심 은신약성경이명백히증언한다 ( 참조 : 마르 15,46; 사도 13,29; 1코린 15,4). 베드로는오순절설교에서시편 16,8-11을인용하면서 그분은저승에버려지지않으시고그분의육신은죽음의나라를보지않았다 ( 사도 2,31) 고말한다. 바오로도하느님께서예수를죽은이들가운데서일으키셨다고전하면서 ( 참조 : 로마 8,11; 10,9) 예수께서 지하 로부터올라오셨음을언급한다 ( 로마 10,7 참조 ). 마태오는예수께서숨을거두신다음에일어난일을이렇게묘사한다. 곧 땅이흔들리고바위들이갈라졌 으며 무덤이열리고잠자던많은성도들의몸이되살아났다 ( 마태 27,51ㄴ-52). 예수의죽음과부활사이에일어난일을묵시문학적으로묘사하고있는이구절은죽은이들의해방과예수의저승에가심을결합시키고있다. 11) 그렇다고이구절이예수의저승에가심을구체적으로묘사하고있는장면이라기보다는예수의죽음이이미죽은이들에게어떤구원론적의미를갖는가하는것에주안점이있다. 요나의표징에관한예수의말씀 (Jesu-Logion), 곧 요나가사흘밤낮을큰물고기배속에있었던것처럼, 사람의아들도사흘밤낮을땅속에있을것이다 ( 마태 12,40) 라는말씀도예수의저승에가심에대한전거로읽힌다. 그러나이상과같은신약성경의구절들이예수께서저승에가시어무언가를행하였다는것을직접적으로언급하지는않는다. 예수의저승에가심에대한전거로서성경말씀은전통적으로예수께서 감옥에있는영들에게도가시어말씀을선포 (1베드 3,19) 하셨다는구절이최우선적으로채택된다. 이구절에대한주석은다양한의견의차이를보이지만, 12) 이구절은죽음과부활을통한예수의구원업적이어디에나, 곧저승의가장밑바닥까지그리고누구에게나, 곧이전에이미죽은이들에게까지미친다는것을의미한다고할수있다. 11) J. Gnilka, Das Matthäusevangelium Ⅰ/1, Freiburg: Herder, 1988, 476-478 참조. 12) W. Maas, 앞의책, 130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91 전체적으로보면신약성경은예수의죽음과부활이지니는구원론적의미에주안점을두지만, 예수께서저승에가셨음과이로써그분이죽은이들의세계에들어가셨음을분명히증언한다고평가할수있다. 13) 따라서그것은신화라기보다는신비이며, 이후의신학적인발전을과제로남겨놓고있다. 3. 저승또는지옥 예수께서인간과같은온전한죽음을겪으시고저승에가셨음을고백할때, 그렇다면이 저승 은무엇을의미하는가? 신약성경과신경에서말하는 저승 은구약성경의 셔올 (Sheol) 에서온말인데, 셔올은일반적으로 죽은이들이가서있는곳, 죽음의어두운세계를의미한다. 14) 그런점에서이는단순히이승과대비되는저승또는사후세계 ( 死後世界 ) 를가리킨다고할수있다. 셔올은희랍어하데스 (Hades) 로옮길수있는데, 이하데스는지하또는땅끝에있는죽은이들의영역을의미한다. 태양이닿지않는곳, 생명의빛이나기쁨이없는곳으로서, 의인화되어하데스신 ( 神 ) 으로불리기도한다. 15) 하지만구약성경의셔올이생명과하느님에게서멀리있는세계, 하느님을볼수없는세계 ( 참조 : 시편 6,6; 87,11-13) 를의미한다는점에서셔올로서의저승은하데스나우리가흔히말하는명부 ( 冥府 ), 황천 ( 黃泉 ) 등과개념적으로완전히일치한다고볼수없다. 16) 예수그리스도께서저승에가셨다는말은따라서먼저, 그분이셔올에가셨다는의미로이해해야한다. 그런데우리는구약과신약성경에나타나는셔올개념이아직후대그리스도교종말론의 13) A. Grillmeier, 앞의책, 453 참조. 14) 천사무엘, 셔올, 한국가톨릭대사전 7,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955-4957 참조. 15) C. Auffarth, Hades, RGG 4, Bd. 3, Tübingen: Mohr Siebeck, 2000, 1368 참조. 16) 동양종교들, 무속, 민간신앙등에나타나는 저승 의개념과그에대한그리스도교의종말론적개념사이의유사성및상이성에대한세밀한연구가여전히신학적과제로남아있다고하겠다.

92 김혁태 개념으로분화되기이전이라는점을전제하면서도, 신학적으로이제이셔올을 지옥 으로까지해석할수있지않을까하고묻게된다. 17) 왜냐하면여기에지금우리가다루려고하는저승 ( 지옥 ) 에대한발타살신학의중심이얽혀있기때문이다. 물론교회는예수그리스도께서저승에가심으로써지옥을완전히쳐부수고없애버린것이아니라고가르친다. 18) 또한지옥의존재를부정하려는태도에맞서단호히지옥의존재를고수한다. 곧 교회는지옥의존재와그영원함을 가르칠뿐만아니라, 죽을죄의상태에서죽는사람들의영혼은죽은다음곧바로지옥으로내려가며, 그곳에서지옥의고통, 곧 영원한불 의고통을겪는다 19) 고가르친다. 신학적으로도저승과지옥은분명히구별되어야한다. 하지만발타살이 십자가는악, 지옥의끝에세워졌다 20) 고말할때, 이는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에대한고백이갖는신학적깊이를되짚게한다. 교황베네딕토 16세도, 예수의십자가가그가받을고난의세례 ( 참조 : 마르 10,38; 루카 12,50) 라는맥락에서신경이고백하는예수의저승에가심을지옥에내려가심으로설명한다. 21) 곧그에따르면, 예수께서는십자가죽음에서 죽음의밑바닥까지내려갔다. 홀로버림받은몸으로밤을찾아내려갔으며무방비상태에노출되는곳으로내려갔다. 22) 이로써예수의십자가죽음을통해, 그곳으로의그분의하강 ( 下降 ) 을통해지옥은그리스도론적장소가된다. 이에대한깊이있는이해를위해서는이제발타살의 성토요일의신학 (Theologie des Karsamstags) 을살펴야할것이다. 사실그의 성토요일의신학 은예수의저승에가심에대한신학적개진 ( 開陳 ) 이요심화 ( 深化 ) 이기때문이다. 17) 사도신경의이부분에대한영문표현 He descended into hell 은의미의다중성을여전히함축하고있다고하겠다. 18) DH, 1077 참조. 19) 가톨릭교회교리서, 1035 항. 20) Hans Urs von Bathasar, Theodramatik, Ⅲ, Einsiedeln: Johannes, 1983, 315. 21) 요제프라칭거베네딕토 16 세, 나자렛예수 1, 박상래역, 바오로딸, 2012, 61 참조. 22) 같은책, 76-77.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93 Ⅲ. 성토요일의신학 1. 성토요일의신비 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의전례적자리는성토요일이다. 교회는이날아무런예식도거행하지않는가운데그리스도의무덤곁에머물며그분의죽으심을묵상한다. 예수그리스도의수난과죽음에대한전례적자리가성금요일이라면, 성토요일은무엇보다그분의죽음자체, 또는죽음이라는상태에눈을돌리게하는것이다. 슬픔과적막, 두려움으로감싸인이날은분명파스카성삼일의한날이고그본질적요소가운데하나다. 그러나사실오늘날성토요일은성금요일이나부활절에비하면신학적으로나사목적으로도그리중요한위치를차지하지는않는것처럼보인다. 그신학적의미는십자가와부활사이에서지나치기쉬울뿐만아니라, 오히려낯설고생소하기까지하다. 십자가와부활사이의중간시기에관한물음으로서, 앞서말한것처럼그내용인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이신화적세계상으로다가오기때문이다. 역사적으로성토요일은부활절이성삼일과성주간으로확대되는과정에서확립되었다. 23) 그러나그리스도의수난과고통에집중하는신심이강하게대두되기도하고, 또는부활의신비에모든것이달려있는것처럼생각하는경향이나타나기도하지만, 죽음에서생명으로넘어가는중간단계자체는그리스도의수난과부활에밀려자체적인독립성을점차상실한다. 곧 4세기이후성토요일은점차적으로그중요성이간과되었고, 이로써그신학적내용이나의미도잊혀지게되었던것이다. 20세기들어서다시부활의성삼일이전례적으로복구되고파스카신비의전체성에대한인식이높아졌지만, 24) 우리시대에도여전히성토요일은부활절의준비일 23) A. Tuor, Der Descensus ad inferos als trinitarisch-eschatologisches Heilsereignis, Saarbrücken: VDM Verlag Dr. Müller, 2008, 25-31 참조.

94 김혁태 정도로여겨진다는사실도부인할수없다. 성금요일에그리스도께서십자가에서인류를위한구원업적을완성하셨음을기억하고, 부활절에그분께서죽음과악의세력을이기고승리하셨음을경축한다면, 성토요일에는과연무엇을기억하고거행한다는말인가? 사도신경이차례로고백하는예수의죽으심-무덤에묻히심-저승에가심-죽은이들로부터부활하심은분명파스카사건의한신비다. 그러나발타살은무엇보다잊혀졌던성토요일의신비를, 곧예수의저승에가심을구원사건의핵심으로파악하려한다. 말하자면그의신학전체가 그리스도론에중심을두고있고, 이그리스도론은 성삼일의신학 에, 아니더정확히말해성토요일의신학에그주안점을두고있는것이다. 25) 우선그리스도의저승에가심은단일한파스카사건의한측면이라는점이강조되어야한다. 곧예수께서십자가에서들어높여지심과저승에가심과하느님아버지께올라가심은그분의한 건너감 (transitus) 의삼중적측면이다. 예수의수난과죽음에서객관적으로하느님의구원업적이완성되었고, 이구원의업적은예수의부활에서주관적으로실제적영향력을발휘한다고할수있다. 달리말해성금요일의십자가가예수의강생과전생애가지향하는파견사명의목적이고, 부활이그리스도교믿음의최종적근거다. 그런데이둘을연결해주는것은필연적으로성토요일의신비다. 성금요일과부활절사이에성토요일의신비가자리하고있는것이다. 그리하여 성삼일의중간에있는성토요일은한량없는깊이와어둠의신비이자하느님사랑과인간죄의신비로서, 성금요일과부활절양편을밝혀준다. 26) 달리말해성토요일의예수의저승에가심은성금요일의연장 27) 이요부활은성토요일의내적결과 28) 라고 24) 같은책, 30-31 참조. 25) W. Löser, Im Geiste des Origenes: Hans Urs von Balthsar als Interpret der Theologie der Kirchenväter, Frankfurt a. M.: Josef Knecht, 1976, 237. 26) J.M. Sara, Descensus ad inferos, Communio 32, 2005, 543. 27)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Einsiedeln: Johannes, 161-170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95 할수있다. 예수의우주적부활로모든고통과비극이극복되었다면, 이희망을먹여살리는것은예수의저승 ( 지옥 ) 에가심을내용으로하는성토요일의신비이기때문이다. 29) 그렇다고발타살이하느님의구원업적이십자가사건에서실제적으로완성되었다는사실을부정하거나 30) 예수의부활에서그최종적정당성을하느님께서확증하셨다는사실을소홀히하는것은아니다. 31) 그렇지만발타살신학의중심에는성토요일의신비가자리하고있고, 그것은그의생각과전망을하나로수렴하여다시이로부터그의신학전체를일체화하는기점과도같다. 그리스도의저승 ( 지옥 ) 에가심은발타살에게 그저여러교의적가르침가운데하나가아니라, 그의신학의중심이고사실상전적으로그본질적내용 32) 이라고평가할수있는것이다. 달리말해성토요일의신비는발타살신학의전체구조를결정짓는핵심적요소와도같다. 2. 예수의지옥체험 성토요일의신비가발타살신학에서갖는무게를염두에두면서이제그내용의핵심을파악할차례다. 앞서지적한것처럼, 발타살은예수의저승에가심을지옥에내리심으로이해하려한다. 이렇게이해함으로써만하느님의절대적사랑이무엇을말하는지, 그리스도를통한하느님의구원업적이외연에서어디까지이르는지감지할수있기때문이다. 그의확신에따르면오로지예수그리스도께서지옥에내려가셨다는사실로부터만그리스도교구원선포를적절하게해명할수있고그깊이전체를가늠할수있다. 33) 28) 같은책, 144 참조. 29) T.R. Krenski, Passio Caritatis: Trinitarische Passiologie im Werk Hans Urs von Balthasars, Einsiedeln: Johannes, 1990, 339 이하참조. 30)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114-125 참조. 31) 같은책, 180-257 참조. 32) W. Maas, 앞의책, 245. 33) S. Hegger, Sperare contra spem: Die Hölle als Gnadengeschenk Gottes bei Hans Urs

96 김혁태 발타살에따르면셔올로서의지옥은 34) 하느님이안계신곳, 전적인사랑부재의상태, 구원의실패로서, 창조적인자기증여의행복안에서삼위일체하느님께서나누는영원하고무한한사랑의통교에참여 35) 하는것에서제외되는것을의미한다. 그것은생물학적죽음과는다른 제2의죽음 또는 제2의혼돈 (Chaos) 으로서 하느님께서처음에질서지우신세계밖 36) 을가리킨다. 지옥은말하자면모든종류의하느님부재, 하느님결별, 하느님상실, 하느님단절의총화다. 그것은장소적개념이아니라하나의상태를의미하고, 약속된구원에대한부정으로서만그실체를가늠할수있다. 그런데이하느님상실, 하느님밖의상태의근거는죄와죄로인한죽음에놓여있다. 죄인은스스로생명자체이신하느님께등을돌리고자신을선택함으로써자신안에폐쇄되고고립된다. 이것이바로신학적인죽음또는제2의죽음인데, 이상태가바로지옥에다름아닌것이다. 죄로인한하느님과의관계상실, 타자와의소통단절이죽음이고, 이죽음이저자기폐쇄성을지옥이되게한다. 따라서그리스도께서지옥에내려가셨다함은그분이몸소죄와죄로인한하느님상실, 하느님부재의상태를체험하셨음을의미한다 ( 마르 15,34 참조 ). 발타살이말하는성토요일신비의핵심이바로여기에놓여있는데, 예수는저승에가심으로써바로다름아닌지옥을체험하는것이다. 하느님부재, 하느님침묵, 사랑거부, 고독, 자기폐쇄의자리에그리스도께서내리심으로써이제그자리, 곧지옥은, 앞서언급했듯이그리스도론적장소가된다. 사실예수의지옥체험은그분의존재와본질의최종적인내적귀결일수밖에없다. 그분의이타존재 (Pro-existentia), 우리를위하심 von Balthasar, Freiburg: Echter, 2012, 19. 34)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153-161 참조. 35) Hans Urs von Balthasar, Eschatologie in unserer Zeit, Einsiedeln: Johannes, 2005, 138. 36)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51. 이질서밖의혼돈은그러나피조물의자유에서발생한다. 곧죄와죄로인한제 2 의죽음은언제나인간의자유에서나오는인격적결단과선택의귀결이다.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97 이어디까지미치는지, 그분의자기비움과낮춤 (Kenosis) 이어느끝까지이르는지, 그에대한결정적대답이바로예수의지옥에내리심이기때문이다. 이타존재로서예수는이절대적케노시스의하강을죽음이라는깊은심연속에이르기까지남김없이실현한다. 이로써그분이인간과어느지점에이르기까지연대하셨는지 37) 하는구원경륜의신비가밝혀진다. 그분은죽음에이르기까지자신을낮추어인간과연대하셨을뿐만아니라, 무덤에묻힌뒤의현실이가리키는죽음그자체의상태마저도남김없이맛보심으로써인간의운명을당신안에받아들이신다. 예수께서성금요일의십자가에서피할수없는운명으로서인간의죽음을받아들이시고인간과연대하셨다면, 그절대적연대의측량할수없는깊이를가리키는것은성토요일의적막, 성토요일의신비다. 예수께서세상의죄를다짊어지시기까지 ( 참조 : 마태 20,28; 마르 10,45; 요한 10,18; 로마 5,19; 2코린 5,21; 1요한 4,10) 인간의삶과운명에남김없이자신을동일화하셨다는성경의진술은발타살이말하는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서비로소그무한한깊이를드러내는것이다. 예수의지옥체험은따라서온전히죽은이로서죽은이들에게가심, 죽음의상태그자체를온전히겪으심을의미한다. 그리고이는십자가의부족한부분을채우기위함이아니다. 성금요일에예수께서십자가에서죽으심으로써, 곧마지막으로영을아버지께내어드림으로써 ( 요한 19,30 참조 ) 하느님의구원업적이정점에도달했다면, 이제성토요일에그분은죽은다음의죽음의상태그자체를남김없이맛보셔야했다. 십자가에못박히신분이이제인간의가장깊은심연의상태에처해지는것이다. 그런데예수의이지옥체험은밀도에서보면인간에게가능한모든지옥을질적으로넘어선다. 그것은하느님아버지와본질적으로하나이신분이체험하는하느님단절이기때문이다. 이점에서 십자가에못박히신분은단순히죄인들이자초한지옥의고통을겪으시는것이아니라, 37) 같은책, 157-159 참조.

98 김혁태 이지옥너머그아래에있는무엇을겪으신다. 38) 그리고그너머의무엇은발타살에따르면, 임의의어떤상실이나단절이아니라그상실과단절의 본질적근거, 죄자체 (Sünde an sich) 39) 를말한다. 여기에예수의지옥에내리심이갖는유일무이한특성이있다. 하느님에게서떨어져나감이최종적이고결정적으로무엇을의미하는지는아들만이, 아버지의품에계신분으로서십자가죽음과그모든귀결에이르기까지자신을다비우신아들만이아신다. 40) 참하느님-참사람으로서예수께서하느님상실을체험하는것은셔올너머저편에그분을처하게하는것이고, 41) 따라서예수의이체험은그어떤말로도적절하게표현할수없다. 그가우리를위해, 인간을위해겪은것은여느인간이겪을수있는것의저편에, 밑바닥너머에놓여있다. 그리고이는역설적이게도예수만이유일하게죄로인한멸망이무엇인지온전히체험했다는것을의미한다. 42) 그리고이체험안에모든시대모든사람의여하한하느님상실과단절이, 과거뿐아니라미래의인간의가능한모든하느님거부가수렴된다. 따라서예수의지옥에내리심은성금요일과부활절사이에놓인별로중요하지도않은간주곡정도에지나지않는것이아니라, 43) 오히려그반대로 한사람의운명이모든이의운명을결판내는결정적이고종말론적인일대전환 44) 이다. 하느님의아들이지옥에내리심으로써신적인구원을인간운명의가장깊은심연에까지 38)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Einsiedeln: Johannes, 1983, 252. 39) Hans Urs von Balthasar, Von Balthasar antwortet Boros, Orientierung 34, 1974, 38. 40) Hans Urs von Balthasar, Die Schlüssel des Todes und der Hölle, SKZ 14, 1969, 198. 41)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32 참조. 42) Hans Urs von Balthasar, Herrlichkeit: Eine Theologische Asthetik, Ⅲ/2.2, Einsiedeln: Johannes, 1988 2, 215 참조. 43) S. Hegger, 앞의책, 353 참조. 44) Hans Urs von Balthasar, Pneuma und Institution, Skizzen zur Theologie, Ⅳ, Einsiedeln: Johannes, 1974, 388. 발타살의이사고는예수사건이갖는구원론적대리개념과관련이있는데, 이에대해서는 K.-H. Menke, Stellvertretung, Freiburg: Johannes, 1997 2, 266-310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99 가져오신다. 그분이남김없이, 그이상으로하느님상실, 하느님부재의자리에서심으로써그자리가이제하느님께이를수있는열린자리로반전을이룬다. 3. 삼위일체적사랑의사건 예수의저승에가심을지옥에내려가심으로해석함으로써종말론적으로엄중한귀결이발생한다. 그러나이를고찰하기에앞서먼저예수의지옥에내려가심이갖는삼위일체적차원을살펴볼필요가있다. 발타살은성토요일의신비를무엇보다삼위일체적사랑의사건으로파악하고있기때문이다. 그리고이삼위일체적차원에서만이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대한인간학적, 철학적, 그노시스적해석의위험이나구원론적협소화를방지할수있다. 45) 우선무엇보다예수의지옥에내리심은발타살에따르면내재적삼위일체의구별과자유에기초한다. 구원경륜의계시에서드러난하느님은무한히자신을내어주시는분이시다. 이자기증여가, 곧신적자유안에서아버지와아들사이에이루어지는절대적사랑의교환이하느님의내적본질이라고할수있다. 그리고이런한에서만그리스도의지옥에내리심이이해될수있다. 곧 잃어버린죄많은세상을위한하느님의헌신은하느님아버지께서세상구원을위해당신아들을 내어주시는 헌신이다. 그리고이는당신아들을십자가에서의하느님상실과지옥에내리도록하는데까지이르도록하는그한량없는측면들마저받아들일수있는헌신이다. 46) 그리고이내어주시는하느님아버지의뜻에상응하여아들예수는지옥, 곧신적인것과는부합할수없는전적인타자성안으로내려가심으로써자신을내어준다. 지옥에내리심이라는전적인타자화는인간이되신그리스도의순종으로가능한데, 이순 45) W. Mass, 앞의책, 253 이하참조. 46) Hans Urs von Balthasar, Pneuma und Institution, 33.

100 김혁태 종은동시에아버지에대한그분의자유로운사랑이다. 47) 그런데발타살에따르면, 그리스도의이순종은완전한수동성으로서의순종이고, 그분의지옥에내리심은완전한무력함으로서의내리심이다. 인간의운명과온전히연대하여예수께서죽음의상태를겪으신다는것은일종의능동성과는거리가멀기때문이다. 그분은철저히죽은이로서, 소통능력을상실한무력함에이르기까지지옥, 곧하느님단절을겪으신다. 위에서본, 예수의저승에가심을증언하는신약성경의구절들이말하고자하는바도결국은이것이다. 발타살은토마스아퀴나스 (Thomas Aquinas) 를따라, 예수의지옥체험은십자가사건의부족함을채우기위해서가아니라, 죄인의모든운명을남김없이짊어지기위해서라고말한다. 48) 곧예수의십자가와지옥에내리심은동떨어진사건이아니지만, 자기비움과연대의구조에서는구별된다. 십자가에서예수께서는능동적으로당신의영을아버지께넘겨드림으로써당신의파견사명을완결짓는다. 49) 이에비해그분의지옥에내리심은수동적인내어맡김이고온전히그렇게되도록내려놓음이다. 절대적이고조건없는자기헌신이자남김없는내맡김의순종으로서, 발타살은이를 의지를다비운순종 (Kadavergehorsam) 50) 이라부른다. 지옥에내리기까지하느님아버지의뜻을채운예수의순종은인간적한계그이상을넘어서는것이고, 죽기까지의순종을넘어서모든의지적동의저편에놓여있는것이다. 십자가에달리신분이성토요일에이제인간의가장깊은심연의상태에, 아니그극한의경계너머에이르기까지인간과연대하신다. 이로써그분만이유일하게, 모두를대표하고대리하여, 51) 죄로인한죽음의구렁텅이, 하느님상실이갖는심연을가장깊이에서가로지르셨다. 하 47) 같은책, 397. 48)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157 참조. 49)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29 참조. 50)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168. 51) 같은책, 161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01 느님의아들이신그분만이죄인이최종적으로처해지는하느님결별과출구없는폐쇄성을그어느누구보다도깊이에서겪으셨다. 아버지와하나이신분으로서인간이되신아들이극한에이르기까지자신을비우고아버지에게서멀어짐으로써, 이것이곧바로아버지께돌아감이된다. 52) 삼위일체안에서위격적구별이클수록그일치도더완전하기때문이다. 이로써죄인은누구든하느님아버지와아들사이에자리한다. 그리하여발타살의성토요일의신학은전통적으로예수의저승에가심에대한동기로기능하던승리의개선주의 (Triumphalismus) 를극복한다. 53) 지옥에내리신예수의모습은, 저승에내려가악의세력과일대전투를치르고승리자로개선하는모습이아니라, 극한의순종과절대적수동성의무력한모습이다. 이로써, 바로그러한무력함의모습으로예수께서는죽음자체에일대전환을가져오신다. 죽은이들가운데죽은이로서남김없이, 아니결코다가늠할수없는깊이에서함께계심으로써모든이에게구원이제공된다. 그리고이는모든것을결정짓는일대전환이다. 하느님은 일차적으로 절대적권능 이시라기보다는, 절대적사랑 이시다. 그분의절대성은자신의것을고수하는데서가아니라, 자신을내어주는데서드러난다. 그러므로이절대성은세계내적으로권능과무능으로대립되는것너머에이르기까지확장된다. 54) 예수의지옥에내리심을통해하느님께서는하느님이심을그치지않으면서 하느님을떠남 에이르기까지자신을내어줄수있음을보여준다. 55) 이로써하느님안에인간을위한자리가무한히열린다. 52) Hans Urs von Balthasar, Herrlichkeit, Ⅲ/2.2, 217 참조. 53) 예수의저승에가심과부활을동시에표현하는동방교회의아나스타시스 (Anastasis) 이콘들은여전히이러한전통속에있다고할것이다. 이에대해서는 N. 바실리아디스, 죽음의신비 : 죽음과부활에대한정교회의신학, 박용범역, 정교회출판사, 2010, 137-163 참조. 54)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r drei Tage, 33. 55) 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대한고찰에서이와관련하여성령은어떤분이신지발타살은체계적인신학을전개하지않는다. 그러나성령께서는분명아버지와아들사

102 김혁태 Ⅳ. 보편적구원에대한희망 1. 지옥의현실성 발타살이성토요일의신비인예수의지옥에내리심을그깊이와넓이에서새롭게제시함으로써이제지옥은신학적으로다른성격을부여받는다. 죄인은자신의고독과폐쇄성이라는지옥에서언제나그보다더고독하신분과대면하기때문이다. 사랑을거부한자, 스스로멸망에갇힌자, 남김없이자기안에홀로폐쇄된자의심연이아무리깊을지라도, 하느님을떠나하느님아닌끝너머까지내려가신하느님께서거기계신다. 이제지옥은삼위일체하느님의최종적신비안에자리한다. 성자의지옥에내리심을통해거기죽음상태에서의절대적인관계단절을바닥에서부터해체하고죽은이든산이든모든인간이삼위일체적사건안으로동참할수있는길이열린다. 희망이없는심연의구렁텅이에희망의가능성이주어지는것이다. 지옥에내리기까지하느님의사랑이무한히크기때문에, 그렇다면아무도지옥에떨어질가능성은없는것인가? 발타살의성토요일의신학은결국지옥의가능성을부정하고만유구원설 (Apokatastasis) 에경도된것인가? 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대한발타살의사유는종말론적으로, 특히지옥의문제와관련하여엄중한귀결을가져온다. 이제삼위일체의신비가예수그리스도의수난의깊이를가늠하는해석의결정적지평이라면, 그마지막깊이를보여주는성토요일의신비는종말론적인측면을통해더욱더심화된다. 사실오늘날사람들은신학적으로나사목적으로지옥에대한이야기를기피하거나금기시한다. 심판과영벌, 지옥대신에하느님의 이의일치와구별을유지하시는분으로서, 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서도아버지와아들사이의거리를붙들고계시는모습으로, 자기헌신의양태로성자를동반하신다. 이에대해서는 W. Maas, 앞의책, 249-251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03 사랑과자비를강조한다. 그리스도교복음이위협의말씀으로들리는것을꺼리기때문에복음에서불편한것들은제거하고, 그리하여지옥은더는그리스도교선포에서중요한위치를차지하지않게된것이다. 이를말하자면 구원의낙관주의 (Heilsoptimismus) 56) 또는 죽으면, 곧바로천국! 57) 이라는표현으로부를수있다. 그러나약속된구원을결정적으로잃어버릴가능성으로서지옥은언제나상존한다. 이를도외시할때, 인간의모든행동과선택에대해최종적으로는하느님께맡겨야한다는생각이희미해진다. 그리하여인간스스로가자신과세계의목적이자척도가되고, 정의의확립에대한최종심급 ( 審級 ) 이인간손에맡겨지게된다. 58) 현대세계에서지옥개념은심리학적으로나사회학적으로개인과집단의고통과비참함을상징한다는면에서, 인간실존의정확한묘사로서역설적이게도다양하고폭넓게사용된다. 59) 그러나이는종말론적차원이제거된개념으로서, 한편으로는 21세기인간이더는영원한멸망의위협을통해자신의삶을바로잡고규제하려는시도에결코동요하지않는다 는것을보여주지만, 다른한편으로는 오늘날지옥에대한그리스도교의책임있는답변이그어느때보다도필수불가결하게되었다 60) 는것을말해주기도한다. 특히급변하는세상에서다양한형태로경험하거나목도하게되는 비구원의현실 ( 지옥 ) 앞에서이러한현실을신학적으로주제화할필요성이커보인다. 그리고이에대한적합한단서와새로운신학적통찰을우리는발타살의작품에서발견한다. 발타살은 아마도그시대최고의지성인 61) 으로서지옥문제를진지하게성찰한마지막사상 56) S. Hegger, 앞의책, 13. 57) M.N. Ebertz, Die Zivilisierung Gottes, Glaubenskommunikation Reihe Zeitzeichen, Bd. 14, Ostfildern: Schwabenverlag, 2004, 345 를 S. Hegger, 앞의책, 13 에서재인용. 58) 같은책, 14 참조. 59) H. Vorgrimler, Geschichte der Hölle, München: Wilhelm Fink, 1993, 354-441 참조. 60) S. Hegger, 앞의책, 16 이하. 61) H. de Lubac, Ein Zeuge Christi in der Kirche: Hans Urs von Balthasar, IKZ Communio 4, 1974, 392 를 S. Hegger, 앞의책, 18 에서재인용.

104 김혁태 가일것이다. 62) 하지만발타살에게지옥담론은그것이지닌위협의아우라 (Aura) 를걷어내고, 보편적희망이라는전망아래계시진리에입각하여설득력있게제시하는것에중점이있다. 그리고바로그핵심에예수의지옥에내리심의신비가자리하고있는것이다. 2. 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와인간의자유 그리스도교선포의출발점에는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가있다. 하느님께서는모든사람이구원을받고진리를깨닫게되기를원하십니다 (1티모 2,4). 구원역사에서하느님의자기계시로드러난사실은, 하느님께서는당신이자유로이창조하신피조물의구원과완성을원하신다는것이다. 그런데여기서문제로제기되는것은인간이죄인으로서결정적으로실패하고멸망에이를가능성에관해서다. 그리고이지점에서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와그에따른무조건적인사랑, 그리고인간편에서이를받아들이거나거부할절대적자유의문제가충돌한다. 분명하느님께서는당신의권능으로당신을거부하는자를제압하지도않으시고, 그폐쇄성을완력으로열어젖히지도않으신다. 63) 사랑은타자의자유를유린할수도유린해서도안된다. 64) 그러나발타살의숙고에따르면, 예수께서지옥에내리심으로써, 죄인이하느님께등을돌리더라도그는바로돌아선그자리에서알든모르든하느님과대면할수밖에없게된다. 65) 죄인이아무리자기고독의지옥속에빠지더라도, 하느님을떠나그보다더고독하셨던분이언제나거기계신다. 물론그렇다고발타살이죽을죄 62) 같은책, 18 참조. 63)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sche Besinnung auf das Mysterium des Höllenabstiegs, Hinabgestiegen in das Reich des Todes, 98. 64) G. Greshake, Leben-stärker als der Tod: Von der christlichen Hoffnung, Freiburg: Herder, 2008, 217. 65)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84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05 에서죽은자가회개할가능성을인정하는것은아니다. 66) 하느님의아들께서지옥을가로지르심으로써영원한멸망안으로은총의빛이비추임과동시에, 그리스도교적의미에서참으로하느님거부가무엇인지, 진짜지옥이무엇인지도더명확해졌기때문이다. 예수의지옥에내리심으로인해비로소지옥이그맨얼굴을드러냈다. 하느님께서는인간의자유와의지를강제로꺾고인간을구원하시지않는다는점에서, 인간의자유가결정적으로하느님을거부할가능성은남는다. 그럼에도하느님의사랑이강력하고절대적이어서인간의부정적인선택을상대화시키고도남지않을까? 이와관련하여발타살은인간의결정적인하느님거부가최종적인것이아닌것으로바라볼여지가있음을말한다. 그렇다고이것이 말하자면인간의선택이외부에서의문에처해지기라도하듯그런것은아니다. 그렇게되면인간에게선사된자유를무시하게되는것이다. 그것이아니라하느님께서는당신의신적인선택을통해인간을동반하신다. 바로인간의 ( 부정적인 ) 선택이갖는극한의상황에이르기까지동반하신다. 67) 이는예수의지옥에내리심을가리키는것이고, 바로이성토요일의신비에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대인간의자유가충돌하는난제 (Aporia) 를해결할열쇠가놓여있다. 이난제는사실하느님의절대적의지와인간의자유, 하느님의은총과인간의본성을반비례관계로보는전통적사고로는더이상풀수없는문제다. 그러나이와는반대로생각해서, 하느님의사랑이클수록인간의자유는더욱완성된다. 곧하느님의절대적사랑앞에서인간의자유는언제나자신의존재와본성에고유한것으로남는다. 왜냐하면삼위일체하느님이절대적자유로서사랑자체라면, 이사랑은피조물의자유에의해서자신이규정되게할만큼크기때문이다. 68) 사랑의하느님께서는인간의자유에의해당 66) 같은책, 270 참조. 67) Hans Urs von Balthasar, Pneuma und Institution, 407. 68) K.-H. Menke, Das Kriterium des Christseins, Regensburg: Friedrich Pustet, 2003, 213 참조.

106 김혁태 신이묶이는것을허락하신다. 그리고이사실이남김없이계시된자리가바로예수의지옥에내리심이다. 이는바로하느님께서당신의보편적구원의지를관철시키기위해얼마만큼자신을비우시고낮추시는가, 잃어버린이들을찾아어깨에메고오기위해죽음의골짜기어느깊이까지내려가시는가 ( 루카 15,4 참조 ) 에대한답이다. 물론사랑의하느님과죄인으로서그사랑을거부한인간의만남은최종적으로는감추어진것으로남는다. 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에따른계획이인간의선택에따라결국 실제적으로 구속되는가아니면그것을뛰어넘는가여부는우리에게여전히열린채로남기때문이다. 그러나하느님의사랑과인간의자유가엮어가는구원의역사 (Drama) 가보여주듯이, 발타살에따르면, 인간이하느님께서부여하신자신의목적성에서영원히실패할가능성, 그래서그것이하느님에게도비극 (Tragödie) 이될가능성을배제할수없다. 69) 그러므로우리는희망할수밖에없고또희망해야한다. 하느님의무한한사랑이마지막에, 결정적으로자신안에갇힌죄인으로하여금그사랑에응답하게할만큼충분히능가하기를희망할뿐이다. 3. 모두의구원을위한희망 발타살은성토요일의신학을기점으로삼아이제희망의신학을전개한다. 그가말하는희망은 모든인간의구원에대한희망 70) 이다. 그에의하면그리스도교적희망은보편적이어야한다. 왜냐하면그것은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 절대적사랑에기초하고있기때문이다. 발타살에의하면, 모든이의구원을희망하는것은그리스도인의의무이기까지하다. 71) 그렇다고발타살이이를통해순진한 구원의낙관주의 를전개하고있는것은아니다. 69)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464 참조. 70) 같은책, 288. 71) Hans Urs von Balthasar, Kleiner Diskurs über die Hölle-Apokatastasis, Freiburg: Johannes, 2007 4, 59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07 성경에는분명심판과경고의말씀들이나온다 ( 마태, 12,32; 25,31-46 참조 ). 72) 또한파멸에대한날카로운선포로서 불붙는지옥 ( 마태 5,22), 죽지않는구더기와꺼지지않는불 ( 마르 9,48 참조 ), 바깥어둠속에서울며이를갈것 ( 마태 8,12 참조 ) 등에대해서도말한다. 그러나이와달리모든이의구원에대한약속의말씀도성경에서선포의중심을차지한다. 73) 그리스도예수는 당신자신을모든사람의몸값으로내어주신분 (1티모 2,6) 이시기때문이다. 그러나단순히조화될수없는, 그래서계시의두요소로견지해야하는이두노선에서발타살은두번째노선에더큰무게를둔다. 곧그가강조하는바에따르면 두려움보다희망의무게가더크다. 74) 그것이상이한다양성에도불구하고, 하느님백성의근본체험인피조물에대한하느님의자비와환대라는성경적신앙에더부합하기때문이다. 결국최종심판에대한말씀은단순히제거될수없는것이지만, 보편적구원약속에부속된다고할수있다. 75) 그렇다면이보편적희망은실제로어떻게확립가능한가? 그희망의근거는무엇인가? 그것은다시말해무엇보다, 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기초한다. 그희망은오직, 인간운명의심연을어느인간보다더깊이에서겪으시기까지자신을다내어주신하느님아들의헌신에근거한다. 하느님부재의지옥에, 분명한분이, 가능한그어느누구보다도더깊이에서거기에계셨다. 76) 그러므로죄인은자신의고독속에서더이상혼자가아니다. 죄인의모든비구원적상황, 곧지옥은하느님아버지와아들의 -하나이시면서도- 그무 72) 같은책, 24-31 참조. 73) 같은책, 31-34 참조. 74) Hans Urs von Balthasar, Was dürfen wir hoffen?, Einsiedeln, Trier: Johannes, 1989 2, 36. 75) S. Hegger, 앞의책, 409 참조 ; 오늘날신학은심판과구원을양자택일로보는관점에서벗어나, 심판을하느님을만나기위한구원의길에서필요불가결한치유와정화의순간및과정으로새롭게인식할필요성이대두된다. 발타살에따르면예수는우리의심판자이시기에우리의구원자이시고, 우리의은총이시기에우리의심판이시기도하다 : id., Glaubhaft ist nur Liebe, Einsiedeln: Johannes, 2011 7, 62 참조. 76) Hans Urs von Balthasar, Theologie des Abstiegs zur Hölle, Adrienne von Speyr und ihre kirchliche Seundung, Hg., Ders. u. a., Einsiedeln: Johannes, 1986, 144.

108 김혁태 한한차이 사이 로포섭된다. 멸망할자의하느님결별과성자의하느님상실, 이두형상은아무관련없이서로양립하는것이아니라, 전자가후자에합치된다. 77) 이로써죄인은자신보다더고독했던분의고독속으로자신의폐쇄성을개방하도록, 끝까지포기하지않는하느님의사랑이그에게선물로제공된다. 십자가에못박히신무력한모습으로, 하느님단절을겪은우리의형제로지옥에내리신분과대면하는것이다. 78) 따라서우리는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에대해확신을가질수있다. 삼위일체하느님께서는당신의절대적사랑과구원을하느님부재의자리에이르기까지약속하시고실제로가져오신다. 그러나다만어디까지나불확실성으로남는것은자유로운존재로서의인간의선택여부다. 그는죄인으로서여전히등을돌린채남아있을수있다. 79) 하느님께서 단지-자신만을-위한-존재의완전한고독을선택한자 의그 고독속으로더고독하신분 80) 의모습을띠고자신을나타내보이신다하더라도, 그처럼무한한하느님의사랑에최종적으로응답할지여부는여전히인간자유에달려있는것이다. 그럼에도우리는결정적으로아무도멸망에이르지않을것이라고희망해도좋다. 이희망은하느님의중단없는사랑과자비에근거하고있기때문이다. 아니그리스도인은모든이의구원을희망해야한다. 그리스도교적사랑에따르면, 자신을위해서희망하는것을다른이들에게도희망해야하기때문이다. 81) 한스위르겐페어바이엔 (H. Verweyen) 의글을인용하는발타살의논제에의하면, 자신외에어느한사람이라도그가영원히멸망할가능성을염두에두는사람은, 조건없이사랑한다고말할수없다. 82) 자신을위해서희망하는것 77)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83. 78) Hans Urs von Balthasar, Pneuma und Institution, 443 참조. 79)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62 참조. 80) Hans Urs von Balthasar, Pnuema und Institution, 444. 81) 희망과사랑의연관성에대해서는 Hans Urs von Balthasar, Was dürfen wir hoffen?, 59-68 참조. 82) Hans Urs von Balthasar, Kleiner Diskurs über die Hölle-Apokatastasis, 59; id., Was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09 을예외없이모두를위해서도희망해야하는의무는구체적으로, 보편적구원을원하시는하느님의사랑에상응하는것이다. 83) 이렇게볼때발타살의희망의신학은구원의개인주의를극복하고구원의기대와희망을보편적차원으로확대시킨다. 사실교회론적 종말론적으로도, 한몸의지체가하나라도영원히파멸에이른다면몸전체가여전히비구원의상태로, 미완의상태로머문다고할것이다 (1코린 6,15 참조 ). 인간학적으로도나의완성은언제나타자의완성과내적으로연동되어있다. 그리고그것의순서는이렇다. 너를위해, 다른이들을위해, 모두를위해희망할때, 마지막으로나도함께포함시키는것이허락된다. 84) 그반대가아니다. 여기서마지막으로강조해야할점은, 모두의구원을위한희망은그러나우리에게언제나 희망 으로남는다는사실이다. 그것은 앎 (Wissen) 이나 확실성 (Gewissheit) 과는다른것으로서, 85) 결코철회하지않으시는하느님사랑의초대에대한믿음과신뢰에기반한다. 인간의운명이마지막에어떻게끝날지, 최종적으로아무런낙오자도없이모두가하느님나라에들어갈지, 아니면실제로멸망할자가많을지하는문제는여전히지식과확답의차원에서이야기될수없다. 다만종말론적문제들에서인간추론이갖는한계를언제나의식해야한다는발타살의경고 86) 는늘새겨둘만하다. 우리는단지그어느누구도자신의지옥에함몰되지않게되기를희망하고기대하고, 구원자이며동시에심판자이신하느님께매달릴뿐이다. 그러므로하느님편에는보편적희망을말할수있지만, 인간편에는 두려움과떨림 이유효하다. 87) dürfen wir hoffen?, 63. 83) M. Greiner, Für alle hoffen?, Die Kunst Gottes verstehen: Hans Urs von Balthasars theologische Provokationen, Hg., M. Striet, J.-H. Tück, Freiburg: Herder, 2005, 233 참조. 84) Hans Urs von Balthasar, Kleiner Diskurs über die Hölle-Apokatastasis, 12. 85) 발타살은자신이결코이확실성과희망을혼동하지않았다고말한다. Hans Urs von Balthasar, Was dürfen wir hoffen?, 15 참조. 86)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464 참조.

110 김혁태 Ⅴ. 비판적평가 1. 지옥문제에대해 예수의지옥에내리심에기초하여모두의구원을위한보편적희망의신학을전개하는발타살의숙고는그렇다면간단히말해지옥은없거나또는 빈지옥 으로귀결되는가? 아무리스스로의깊은지옥에폐쇄된이라도, 거기서만나게되는 구원-심판자 88) 의품에포섭되기때문에결국아무도멸망하지않게될것인가? 발타살의지옥담론은분명, 많은이의멸망을상정하고이를그림이나설교에서다양하게형상화하는오래된교회관습과는거리가멀다. 사실발타살은희망의지평에서이러한전통에내재한편협성과신화적색채를극복하고, 구원역사에서드러난하느님과인간사이의관계를그역동성안에서새롭게제시하려한다. 곧인간을향해하강하는하느님의자기낮춤과비움의역동성, 그리고이를통해가능하게된인간의상승이라는역동성은지옥에내리신성자의모습에서극에, 아니그극한너머에까지도달한다. 결론적으로지옥에대한그의신학적숙고는신학적결핍에대한본질적기여로서여전히중요성을갖는다. 89) 물론발타살의지옥담론은추종자와반대자모두를양산했고, 특히 1980년대후반에는반대와집중적인공격을받기도했다. 90) 또한그의사고가이단에기운것이라는지적도여전히등장한다. 91) 무엇보다그의지옥담론은아드리엔느폰슈파이어 (Adrienne von 87) G. Greshake, 앞의책, 226 참조. 88) 이표현은다음의책제목에서가져온것이다. D. Engelhard, Im Angesicht des Erlöser -Richters: Hans Urs von Balthasars Neuinterpretation des Gerichtsgedankens, Mainz: Matthias-Grünewald, 1999. 89) S. Hegger, 앞의책, 464 참조. 90) Hans Urs von Balthasar, Was dürfen wir hoffen?, 13-14 참조. 91) S. Hegger, 앞의책, 359-366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11 Speyr) 의신비체험을신학적으로정립하려는시도이기도한데, 92) 이와관련하여그가신학전통의언어들을해체시킨다는비판을받기도한다. 93) 나아가불완전성이나부정성등의개념을하느님께적용하는것도타당하지않다는지적을받는다. 94) 그러나발타살은아마도지옥문제와관련하여진지하고심도있는방식으로이에천착한마지막사상가일지도모른다는평가를받는다. 95) 그는계시역사에대한충실성을바탕으로, 특히하느님의사랑에대한확신을핵심으로삼아전통을다시숙고하고이위에그의신학을확립한다. 그렇다고그가예수의지옥에내리심과관련하여새로운교리를가르치려는것도, 체계적인교의신학을전개하려는것도아니다. 그는스스로다만초세기신학의근본적인동기 (Topos) 를다시새롭게고찰하려할뿐이라고말한다. 96) 사실오늘날, 인간성을파괴하는끔찍한비구원의현실, 고통과악의현실이지닌지옥의심연성을그어느때보다도수없이마주하게되는이시대에발타살의지옥담론은하나의새로운도전이라고할수있다. 예수께서겪은성토요일의체험이일상의비극과모든이의죽음에서일어난다. 예수의지옥에내리심을통해지옥이부정되거나철거된것이결코아니다. 발타살에의하면, 지옥은영원히존재하는데, 그것은하느님께서어떤대가를치르고인간을구원하셨는가에대한증거로서그렇다. 97) 92) T.R. Krenski, 앞의책, 340 참조. 93) M. 하우케, 오리게네스의발자취를따라서 : 한스우르스폰발타살의위대함과한계, 神學展望 176, 2012, 209-211 참조. 94) 같은책, 213 참조. 95) S. Hegger, 앞의책, 18 참조. 96) Hans Urs von Balthasar, Verbum Caro, Skizzen zur Theologie, Ⅰ, Freiburg: Johannes, 1990 3, 285 참조. 97)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87 참조.

112 김혁태 2. 만유구원설에대해 발타살의보편적희망의신학에대해많은이가 만유구원설 의혐의를제기한다. 98) 그러나발타살이말하는희망은확실성과는다른차원이기때문에그에게만유구원설의신학은있을수없다. 그에의하면종말의문제들에대해서는그러지않을까하는물음의양식으로만접근할수있을뿐이다. 99) 사실지옥담론과관련된발타살의사고는지옥의실제적인가능성과모두의보편적구원을위한희망사이에서유동한다. 그리고지옥의실재에대한전면적 부정 과보편적구원에대한 확실성 이라는양극단사이에서그의희망의신학을떠받들고있는핵심은, 앞서살펴본것처럼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와절대적사랑이다. 발타살은아우구스티누스적예정설과오리게네스적만유구원설사이에서말하자면제3의길을추구하고있는바, 이는신학적진전으로평가받을수있다. 100) 발타살에게만유구원설의비난을제기하는이는사실, 가톨릭교회가많은이들이멸망하게될것임 (massa damnata) 을공식적인교리로여긴다는그릇된전제에서출발한다. 성인들을선포하는것과는달리, 교회가구체적으로그어느누구를가리켜규정적으로 (definitiv) 그런선언을한적이없다. 101) 발타살의희망의신학은오히려인간자유가갖는무게와그결정에따른엄중한책임에대한진지한성찰이자훈계이기도하다. 보편적희망이클수록심판의의미도더욱엄중하다. 보편적구원에대한약속은결정적멸망의위험에대한 98) 만유구원설 은종말에모든피조물이화해와완성에이르게될것이라는생각으로, 사탄을포함하여멸망에이른자들마저도 - 이용어의뜻대로 - 다시회복된다는것을주장한다. 오리게네스에게로소급되는이설은그러나정죄받았다 (DH 411, 433 참조 ). 이와관련한논의에대해서는다음을참조 : Hans Urs von Balthasar, Kleiner Diskurs über die Hölle-Apokatastasis, 73-101; id., Was dürfen wir hoffen?, 13-20; D. Engelhard, 앞의책, 286-289. 99) T.R. Krenski, 앞의책, 339 참조. 100) A. Tuor, 앞의책, 68 참조. 101) Hans Urs von Balthasar, Kleiner Diskurs über die Hölle-Apokatastasis, 35 참조.

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13 경고이기도하다. 종말의심판에서하느님께서는피조물에게절대적으로자유로우시다. 종말의심판과구원은피조물편에서도절대적자유의사건이다. 이자유가결정적으로하느님을거부할가능성을열어둔채, 우리는하느님께서우리의구원을위해당신에게가능한모든것을하신다는것을희망해야한다. 그리고이때, 발타살에의하면자신속에갇힌죄인을향한하느님의초대는영원히계속된다. 저승에서의사건으로서그리스도의지옥에내리심은이승의범주를벗어나고, 그런의미에서무시간적이다. 102) 따라서지옥의무시간성과는다른하느님의영원성을고려할때, 지옥속에고독한죄인을향한하느님의초대는심판의말씀이자언제나새롭게일어나는사건, 죄인의거부가그끝에봉착하기까지영원히계속되는새로운초대로이해해야한다. 103) 참된사랑은끝도, 포기도없다 (1코린 3,7 참조 ). Ⅵ. 나가는말 이상교회의오랜전통과신학이고백하는 예수의저승에가심 에대한발타살의신학적숙고와그에따른몇가지종말론적문제들을고찰해보았다. 여기서예수의저승에가심은 지옥에내려가심 으로, 그리고마지막으로는무제한적순종의의미에서 지옥에내리심 으로제시된다. 따라서본고찰은이러한용어들을함께사용하였다. 또한본고찰은성토요일의신비에서남김없이계시된하느님의보편적구원의지와무조건적사랑, 그리고이에근거한 모두의 102)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24 참조. 103) M. Greiner, Drama der Freiheiten, Münster: Lit, 2000, 103 참조 ; 칼라너에의하면, 죄인의하느님부정도초월론적지평에서는인간존재의근거로서하느님을긍정하는것을전제하기때문에, 하느님부정과하느님긍정이같은무게를지닐수없다 : Hans Urs von Balthasar, Was dürfen wir hoffen?, 64 참조.

114 김혁태 구원을위한희망 을고찰하면서, 주로인격적피조물인인간의구원을이야기하였다. 발타살의구원론또는희망의신학이나여타다른많은신학도이부분에대해서는여전히한계를노정하고있다고할수있는데, 다만한가지언급할점은, 절대적자유를지닌인격적존재의선택여부에모든피조물의구원과멸망이직접적으로연계되어있다는사실이다. 결국지옥의문제는하느님의사랑에대한믿음과희망의문제로귀착된다고할수있다. 하느님의한계를모르는사랑과그사랑의초대이면에바로고독과파멸이라는지옥의심연이자리하고있다. 전자가높고깊은만큼후자의어둠도그에상응한다. 이러한역설과신비를그렇다고발타살의성토요일의신학과희망의신학이단순히죽은다음의저세상의문제로치환해버리고마는것은아니다. 오히려그반대로그의신학은모든그리스도인이, 우리가, 오늘날여전히인간의불성실과오만으로빚어지는온갖고통과비극이라는일상의지옥앞에서어떤태도를지녀야하는지돌아보기를촉구한다. 모두를위해희망해야하고, 이희망은투신을요구한다. 그것이극한너머에까지이르는하느님의사랑과헌신에상응한다. 샤를페기 (Ch. Péguy) 를인용하면서발타살은이렇게말한다. 우리는하느님께희망을두어야한다. 아니그분도우리에게충분히희망을두셨다. 그분께서는우리의나약한손에당신의영원한희망을맡기셨다. 104) * * 투고일 : 2012. 12. 6 심사일 : 2012. 12. 13 수정일 : 2012. 12. 14 게재확정일 : 2012. 12. 17 104) Hans Urs von Balthasar, Theodramatik, Ⅳ,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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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살의 지옥 담론과종말론적귀결 117 Abstract A Reflection on Hans Urs von Balthasar s Discourse of the Hell and its Eschatological Consequences Kim, Hyok Tae The christian Creeds confess that Jesus descended into hell after being crucified and died. However the confession of Jesus s Descending into hell is very strange for the people of today and is considered only as a mythological Symbol. But Hans Urs von Balthasar, one of the most important catholic theologians of the 20th century, reflected on this article of the Creed recently and made it as the heart of his whole Theology. Indeed it is asserted that Jesus Christ was buried and descended into the world of the dead(sheol) between his Death and Reserrection. The New Testament testifies to this. But the Sheol here is regarded as the quintessence of all kind of God-Absence and God-Loss, in this meaning it is like the Hell. So Balthasar underlines Jesus as really dead and remained in Hell in his Descent in to Hell. Only by such an approach can we somehow estimate the boundless depth of the Love and self-devotion of God, namely his Kenosis. From this understanding of his theology Balthasar developments the Theology of the Holy Saturday. In its soteriological and trinitarian demensions or aspects Balthasar s new Understanding of Jesus s Descending into hell and the Mystery of Holy Saturday brings about grave Consequences from the eschatological Dimension. Does Balthasar s Discourse of Hell deny the Reality of Hell and finally does it uphold the heresy of Apokatastasis?

118 김혁태 But Balthasar constructs the Theology of the universal Hope on the base of Jesus s suffering in Hell. According to his thinking the Hope for salvation of all people corresponds to God s infinite Love. Finally the question of Hell should be a matter of Belief and Hope about the Love of God. And this Hope lets all Christians today devote themselves properly in the face of various misunderstanding of Hell. * Key Words: Hans Urs von Balthasar, Descending into Hell, the Mystery of Holy Saturday, Apokatastasis, the Univeral Hope for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