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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21 세기맑스주의확장과전망 바디우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서용순 세종대교양학부교수 / 철학 1. 글을시작하며 한국의독자들에게알랭바디우 (Alain Badiou) 는새로운이름이아니다. 그의이름이알려진것은 1995년아주함축적으로쓰인 철학을위한선언Manifeste pour la philosophie 이번역되면서부터이다. 그후 윤리학Ethique 의번역을경과한후, 2001년그의놀라운저서인 들뢰즈 : 존재의함성Deleuze: Clameur de l'e tre 이번역되면서많은들뢰즈주의자의공분 (?) 을얻으며그의이름은좀더널리알려지게되었다. 최근상당히비중있는저작인 조건들Conditions 에이어 사도바울Saint Paul 이번역되었고앞으로도몇권의저서와바디우에대한연구서들이출판될것이라는점에서바디우에대한본격적인논의는이제비로소시작될것이라고말할수있을것이다. 앞의저작들의면면을살펴보면바디우는분명철학자이다. 그는탈근대철학이행한철학사에대한비판에맞서진리의철학을복권시키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51 려시도하며 ( 철학을위한선언 ), 진리의윤리를재정립하고 ( 윤리학 ), 순수다자로서의존재의문제를둘러싸고들뢰즈와논쟁한다 ( 들뢰즈: 존재의함성 ). 조건들 이란철학의조건들에다름아니며, 바울에게서새롭게조명되는주체의형상을발견한다는사실또한그의논의가철학의복권과새로운도전에집중되어있다는것을잘드러낸다. 그의주요한논의는철학이라는지형을중심으로전개되며, 예술, 정치, 과학, 사랑과명백히구분되는지위를철학에부여한다. 그는철학외부의영역에철학의자리를양보하지않는다. 우리는이철학자, 니체와하이데거로부터시작된근대철학에대한전면적인비판으로부터합리주의를구출하려시도하고, 탈근대철학의날카로운칼날아래만신창이가된철학을집요하게복원하는이철학자로부터무엇을얻어낼것인가? 우리가만약바디우의철학을겉으로드러나는중심범주만을통하여파악한다면그에게서의심의눈초리를거둘수없을지모른다. 사람들은자문할것이다. 바디우의시도는진리와주체의철학으로요약되는시효지난합리주의철학의지루한반복은아닌가? 그러나이는기우일따름이다. 실제로바디우는 철학 을위하여탈근대철학의비판을받아들이며, 그비판에서벗어나는철학을수립하기를원한다. 우리가볼것처럼바디우의손에서진리와주체의범주는완전히개조되는것이다. 이러한철학의쇄신의배경에는철학자들자신이철학에대해갖는회의가있다. 바디우는그러한회의에반대하여철학에다시금사유의지위를부여하려한다. 그리고이문제는지극히정치적인문제이다. 사실상바디우의모든철학적성찰은정치적인것에서출발한다고말해도과언은아니다. 비록그성찰의결과가정치에만집중되는것은아니지만말이다. 이글의목적은이중량감있는철학자의이론적언설에서우리시대의과제를읽어내는데있다. 이논의에서필자는바디우철학의큰밑그림을제시하는동시에, 그것이함축하고있는정치적사유 ( 이는 진리 에의해매개된다 ) 를드러내고자시도할것이다. 실제로바디우가제안하는정치에대한사유는바디우의철학적테제들과의관련속에서

52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구체화되는사유이며, 정치를정치가아닌다른것으로환원시키지않는 ( 마르크스주의에서의경제환원론을상기하라.) 정치-내적사유이다. 우리는바디우가행하는철학의쇄신을돌아본후그가어떻게실재의정치들을사유로파악하는지, 그정치의원칙은무엇인지를일별할것이다. 그것은사유로서의혁명적정치가철학에가져오는효과를포착하는작업일것이다. 2. 바디우의철학적혁신 바디우의철학은무엇을말하는가? 이철학자의활동은 60년대로거슬러올라간다. 사르트르주의자였던젊은시절을통과한후, 바디우는알튀세르의과학적마르크스주의를만나지만그것은오래지속되지못할조우였다. 그는라캉의영향을강하게받고있었고, 마오의문화대혁명이후, 이위대한중국의마르크스주의혁명가에게강하게고무되었다. 알튀세르가조직한 과학자를위한철학강의 에참여하여, 모델의개념Le Concept de modèle 이라는제목으로강의했을당시는 1968년이었다. 1) 얼마후 5월혁명이일어나자이미증유의혁명에미온적이었던알튀세르와결별하고마오주의운동의핵심적인물로활발한활동을전개하게된다. 이시기에그는 모순의이론théorie de la contradiction (197 5) 과 이데올로기에대하여De l'idéologie (1976) 를집필하여알튀세르를강하게비판한다. 1970년대프랑스는마오주의운동의시대였다. 많은학생, 지식인들이노동현장과밀접한관계를맺고있었고, 일부는노동운동에투신하기까지했다. 또한이시대는탈근대철학의시대이기도 1) 이강의가출간되는것은 1969 년이다. 그러나이것이알튀세르주와의첫협력은아니다. 그이전, 바디우는 변증법적유물론의 ( 재 ) 출발 Le (re)commencement du matérialisme dialectique (1967) 이라는논문에서어느정도대립각을세운채알튀세르의이론적혁신을지지한다. 그러나이논문은알튀세르의시도를뛰어넘는여러내용을포함하고있었고, 이는후일바디우의철학적작업의전제가되었다.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53 하다. 60년대이후프랑스철학계를강타한탈근대의비판은근대철학의담론을직접적으로겨누고있었다. 그것이절정에달했던 1980년대에마오주의운동은쇠락하였다. 문화대혁명은끝났고, 프랑스의마오주의역시몰락의길로접어들었다. 신철학자들의등장과미테랑주의로의투항은이른바혁명적정치운동의퇴각을가속화시키는계기로작용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그리고마오주의로무장한혁명적정치는이제그숨을거두는것처럼보였다. 바디우역시이러한상황을꽤심각한것으로받아들였다. 그에게혁명적정치자체를포기하는것은고려의대상이될수없었지만, 그렇다고이전의입장만을고수할수는없는노릇이었다. 그는또다른길을모색하게된다. 바디우의새로운길은탈근대철학의비판에대한숙고로부터출발한다. 니체와하이데거로부터출발하여탈근대철학에서전면화된근대철학에대한근본적인비판은분명강력한것이다. 그비판은전통형이상학의종말을추인하였고, 모든거대담론을불가능하게했다. 그비판이집중되고있는지점은바로진리와주체라는철학적범주였다. 탈근대의비판으로인해더이상철학은진리Vérité를말할수도, 어떠한실체로서의주체Sujet를상정할수도없게되었다. 건축술로서의철학, 다시말해시스템으로서의철학은그운을다한것으로여겨졌다. 2) 이제철학은자신의거처를옮긴다. 플라톤이철학에서추방했던예술을다시자신이거할장소로삼는것이다. 철학은그렇게새로운장소로우회한다. 이러한우회는무척이나징후적이다. 여기에는철학자자신이만들었다고여겨지는정치에대한공포가도사리고있는것이다. 이제철학자들은스스로를정치적범죄의당사자로규정한다. 철학이나치를비롯한이른바 전체주의정치 의탄생에일조했다는철학자들의자학적성찰은더이상철학이진리를욕망해서는안된다는유죄선고로이어졌고, 이를통해철학은정치에대한사유를완전히중단해버렸다는것이바디우의진단이다. 3) 확실히탈근대의비판은강력한것이다. 특 2) 이에대해서는 Badiou, Manifeste pour la philosophie, Seuil, Paris, 1989, pp.7-9, pp.21-6 ( 국역, 철학을위한선언, 백의, 1995, 21-3 쪽, 47-52 쪽 ) 을보라.

54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히절대적이고객관적인진리를중심으로구성되고, 주체와대상의변증법에의해움직이는일자의형이상학에대한날카로운비판은돌이킬수없는것이다. 그러나그결과는철학을지극히초라한것으로남겨둔다. 그비판을피해갈수없다고판단한바디우는그것을어느정도수용하면서철학을혁신하고자한다. 과도기저작이라고부를수있는 주체의이론Théorie du sujet (1982) 을경유하여, 바디우는자신의철학적시스템을 존재와사건L'Etre et l'événement (1988) 에담아낸다. 바로이저작이야말로바디우철학의진수를가장잘보여주는역작이라고할수있다. 1) 사건, 진리그리고주체 존재와사건L'Etre et l'événement 은이전에바디우가근거로삼고있던마르크스주의적인경향에서상당부분벗어나있다. 이저작은그의철학을가능하게하는메타철학을잘보여주고있는데, 여기서바디우는칸토르Cantor 에서폴코헨Paul J. Cohen 으로이어지는현대공리적집합론을근거로자신의독특한존재론을구성해낸다. 4) 바디우는존재로서의존재를일자없는다자로파악하고 ( 일자는하나로셈하기의결과로서만나타난다.), 이전에순경험적인것으로여겨졌던사건의개념적지위를확보한다. 바디우에게사건은순수한단독성singularité( 현시되 3) 같은책, pp.8-10 ( 국역 23-6 쪽 ) 을보라. 바디우는나치의유대인말살을사유하는것은철학의몫이아니라혁명적정치라는사유의몫임을강조한다. 이에대한대강의논의로는졸고, 철학의조건으로서의정치, 철학과현상학연구 27 집, 2005, 철학의윤리, 진리의윤리, 사회와철학 13 집, 2007 을참고하라. 4) 공리적집합이론은실제로바디우의철학을가능하게하는준거이다. 바디우는이를근대의또다른전환점 - 철학이미처파악하지못한전환점으로여긴다. 집합론을통해 진리의원리는새로운단계에접어든다. 그것은일자없는다자의원리이고파편화되고무한하고식별불가능한총체성의원리이다.(Badiou, 앞의책, pp.39-40( 국역 72 쪽 )) 그에게집합론은새로운합리성의원천인것이다. 방대한지면을요구하는집합론의복잡성을고려하여본고에서는그설명을생략하기로한다. 이는필자가계획중인저서, 합리성의새로운지평 : 현대집합이론과바디우의존재론 ( 가제 ) 에서비로소논의될것이다.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55 지만présneté 재현되지않는non-représenté 존재의유형 ) 으로부터연원하는것이다. 다시말해사건은순수다자로서의존재의갈라진틈으로부터나와기존의질서와법칙성을파괴하는것으로나타난다. 이는지식체계로는식별불가능한진리를생산함으로써지식에구멍을낸다 ( 지식체계를교란시키는것 ). 바디우가말하는진리는고전적인진리의개념과는멀리떨어져있다. 그에게영원불멸의진리, 과학적객관성으로파악되는진리란없다. 진리는한상황을지배하는법칙성인지식과대립하는것으로사건을통하여지식체계의일각을무너뜨리며 도래 한다. 이렇게사건을통하여도래하는진리는기존의지식체계의언어로명명할수없는 새로운것 이며, 기존의법칙성이지배하는상황을보환supplé menter 하는것이다. 그렇기에지식은진리에대해말할수없다. 다른각도에서보면, 특정한상황에서돌발하는사건은개입의실천을통하여상황에자리잡고, 그사건에충실한주체를만들어낸다. 이러한사건이생산하는진리는찰나의것이다. 사건이후즉시소진되는진리는그진리에충실한주체를자신의유한한부분으로남기는것이다. 우리가진리의존재를알수있는것은오로지주체를통해서이며, 진리에충실한주체의실천- 후사건적後事件的실천을통하여진리는상황에자리잡는다. 바디우의주체는대상이배제된주체이다. 이주체는어떠한마주함도없는주체로서오로지사건과진리에의존적이며, 진리와마찬가지로식별불가능하고, 식별불가능한것을행한다. 그런점에서주체는진리의국지적인짜임이고, 진리의유한한부분이라고말할수있다. 다시말해바디우의주체는이전의실체로서의주체, 대상을동반하는주체, 몸corps으로서의주체와는완전히다른어떤것이다. 그것은어떤실체, 고정화된인격이라기보다는작용과연산으로서의주체이다. 우리는주체를이야기하기전에진리의작용으로서의주체화subjectivation 를이야기해야하는것이다. 5) 바디우의주체화는어떤인격적주체에직접적으로가닿는과정이아니다. 그것은진리생산의과정으로서주 5) 이에대해서는 Badiou, L'Etre et l'événement, Seuil, Paris, 1988, pp.429-447 을보라.

56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어지는것으로, 우리는그결과로서주체화의실존적형태에대해말할수있을뿐이다. 6) 이렇게바디우의주체는아주특이한것이다. 그의주체는실체도아니고, 사건과진리에의존적이고, 진리의국지적인윤곽이며, 식별불가능한것이다. 전통철학, 그리고마르크스주의의주체관념과는달리바디우가말하는주체는어떤실체와등치되지않고, 대상과연결되지도않는다. 이주체는순수하게후사건적後事件的인것, 다시말해사건과진리가없이는성립불가능한 출현하는주체 이다. 사건이만들어낸진리에충실한주체는그실천을통하여진리를상황에강제forçage해낸다. 진리가한상황 ( 정치, 예술, 과학, 사랑이문제되는개별상황 ) 에자리잡는것은바로이러한주체의실천을통해서이다. 그러한강제가완수되었을때비로소상황은변하게된다. 이전상황을지배하는지식체계에서옳은것으로간주되었던것은상황이진리를옳은것으로받아들임으로써틀린것이될수있다. 예컨대지동설이옳은것으로인정되었을때천동설은틀린것으로간주되었고, 신분제사회의법칙이프랑스대혁명의주체들의실천을통하여프랑스의정치적상황속에서틀린것으로간주되었던것처럼말이다. 결국, 사건과진리는주체의실천을통하여상황을변화시키는것이다. 7) 이렇게바디우가내세우는진리와주체의관념은근대철학의그것과는확연히다르다. 이는탈근대의비판에대한반성을포함하는철학의또다른대답이며철학을쇄신하려는결정적인방향전환이다. 이제이러한방향전환을통해철학은다시진리를사유할수있게된다. 6) 이렇게볼때바디우의주체는근대의인간주의와도, 오늘날의문화주의와도관련이없다. 영어권의가장면밀한바디우연구자인피터홀워드 (Hallward) 가적절하게언급하듯이 바디우의주체는알튀세르와푸코가선언한 인간의죽음 에완벽히일치한다. 진정한주체화는사회적합의라는합법적이거나공동체주의적인규범과무관하다. 이에대해서는 Peter Hallward, Badiou: a subject to truth,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2003, p.xxviii 을보라. 7) 바디우의 존재와사건 L'Etre et l'événement 은이러한과정을아주치밀하게설명해내고있다. 이에대한자세한논의로는박정태가번역한 들뢰즈 - 존재의함성 ( 이학사, 2001) 의뒷부분에부록으로실린역자의글, 알랭바디우의 존재와사건 소개 (266-325 쪽 ) 를참조하라.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57 2) 진리생산의절차들 - 철학의조건 바디우에있어진리가 도래 하는것이라면그진리는응당복수複數의진리일것이다. 그렇다면이러한진리가도래하는장소, 진리를생산해내는장소는어디인가? 진리를생산하는영역은철학이아닌철학외부에있다. 분명철학의중심테마는 진리 이다. 이진리를부정했을때, 철학은더이상존재할수없다. 그렇다고철학이진리를생산하는것은아니다. 그것은철학외부에서생산되어철학에의해사유되는것이다. 바디우는진리가발생하는철학외적인영역을네가지정도로설정한다. 정치, 과학, 예술, 사랑이바로그것인데, 바디우는이네가지영역을진리 ( 생산 ) 의유적절차들procédures génériques des vérités이라고부른다. 8) 이절차들은진리가생산되는영역이다. 이대목에서사람들은왜이네가지영역만으로진리의생산을한정하는지질문할것이다. 이는결코자의적인것이아니다. 바디우는철학사의전개속에서항상문제시되어왔던영역을그절차로설정하고있다. 정치와과학은철학사속에서항상철학을추동해왔던동력이었고, 예술은플라톤과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하이데거와그후예들에이르기까지철학에긴장을조성해왔으며, 사랑은플라톤의손에서사유로상승하는지위를부여받는다 ( 또한오늘날레비나스는사랑의철학자이다.). 누락된것이있다면그것은신학이다. 이절차는중세까지탁월한진리생산절차로기능했지만, 신이죽어버린오늘날더이상진리를생산하지못하기때문이다. 다시말해이네가지절차는진리의현대적지평이다. 철학은이네가지절차를자신의조건으로삼는다. 결국철학은조건들에의존적이다. 그러나이조건들사이에는위계가없다. 바디우의의도는이 8) 바디우의국내번역서들은이를 진리의유적공정 이라고옮겨놓았으나, 이는필자에입장에서그리선호할만한번역이아니다. 물론오역이라고보기에는힘든번역이지만 공정 이라는번역은과학적대상성 ( 객관성 ) 의냄새를너무진하게풍긴다. 이는주체성의철학으로특징져질수있는바디우철학의용어로는적절하지않다는것이필자의견해이다. 이부분은바디우를둘러싼필자와바디우의저작을다수번역해온이종영과의입장차이를드러내는대목이다.

58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네가지절차중하나또는일부에진리생산의특권을부여하지않고, 그것들을공존하게하는것이다. 플라톤이그러했듯, 철학은이네가지절차를동시에사유하여야하고, 동시에플라톤에반대하여이러한사유의영역을수렴하는초월적일자 ( 이데아라알려진장치 ) 를거부해야한다. 9) 앞서말했듯철학은진리를생산하지않는다. 그렇다면철학의역할은무엇인가? 철학의임무는네가지절차에서생산된진리를진리로서사유하는일이다. 사실진리생산의절차들은자신의고유한사유활동을전개할뿐그것이진리인지아닌지에대해서는이야기하지않는다. 한마디로진리에대한관심은철학에고유한것이다. 이렇게철학은진리라는범주를중심으로전개되는사유활동이지만, 그진리는철학외부에서생산된다. 철학은그렇게자신의밖에서생산된진리를사유할뿐이다. 이렇게철학은그조건, 즉진리를생산하는네가지절차에철저히의존적이다. 그러한 조건들 ( 네가지진리생산절차들 ) 은동등한지위를지닌다. 그들이생산하는진리는단독적인singulier 것으로어느다른조건에서생산된진리로환원되거나, 그것에종속되지않는다. 여기서바디우적의미의철학사비판이전개된다. 그동안의철학은네가지절차중하나또는일부에만진리생산의특권을부여하고나머지절차들을부수적인것으로축소시켰다는것이바디우의주장이다. 그는이러한철학의양상을봉합suture이라는용어로묘사한다. 예컨대과학적실증주의는철학을과학에봉합시켜다른조건들을축소시켰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는철학을과학과정치에이중으로봉합시켰다. 또한하이데거의강력한영향력아래에놓인오늘날의철학은시학에봉합되어있다. 바디우의목적은이러한봉합에대항하여철학을탈-봉합dé-sut ure시키는일이다. 10) 결국바디우가제안하는네가지진리생산절차 ( 철학의조건 ) 의공존은그러한탈-봉합을겨누고있는것이다. 또한이 9) 진리생산절차와철학의관계에대해서는 Badiou, Manifeste pour la philosophie, pp.13-20,( 국역 33-44 쪽 ) 을보라. 10) 이에대해서는같은책, pp.41-8( 국역 76-82 쪽 ) 을보라.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59 는철학의윤리에해당한다. 필자가이전의연구에서밝힌것처럼 철학이탈-봉합을따라야한다는것은진리의복수성을인정하는것이고, 그것은진리의지위를특권화시키는것을막아내는최초의원칙이다. 진리는공가능compossible하다는것을인정한다면, 다시말해다수의절차에서다수의진리가생산될수있다는것을인정한다면, 철학은더이상어느하나의진리생산절차를 진리의원천 으로특권화시킬수없게되고하나의진리에의한다른진리의지배는불가능해지는것 이다. 11) 이것은진리가없다고선언하는것 ( 이것이탈근대철학자들의주장이아니던가?) 보다훨씬더긍정적인효과를산출할뿐만아니라진리를인정하면서그것의실체화를막아낼수있다는점에서더욱더적극적이다. 이렇게바디우의손에서진리는고전철학과전혀다른형상으로, 그것이가지고있는모든독단의위험을흩어버리고나타나게되는것이다. 3. 새로운혁명적정치의윤곽 이제바디우가말하는사건의정치의원칙들을살펴보기로하자. 이를통해우리는바디우가제시하는새로운혁명적정치의모습을가늠할수있을것이다. 1) 반 - 국가의정치 존재와사건 이후바디우는마르크스주의적인전망에서확실히벗어난다. 그러나이것은자본주의적의회민주주의로의투항이나개량으로의후퇴가결코아니다. 바디우는사건과진리의철학을통하여혁명적정치를부활시키고자한다. 그것은화석화된마르크스-레닌주의의 11) 졸고, 철학의윤리, 진리의윤리, 사회와철학 13 집, 2007, 175 쪽.

60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도그마를과감히버리는것으로부터출발한다. 바디우는마르크스주의국가이론을버리고, 국가에대한새로운사유를존재론의틀안에서풀어낸다. 바디우의혁명적정치를숙고하기위해그의존재론속에서국가가어떻게파악되는지간단히살펴보자. 바디우는국가를넓은의미의재현시스템으로파악한다. 국가가개개인을고려하지않는다는사실은분명하다. 국가는집단을셈한다. 그렇기때문에국가는특정계급이나집단만을염두에두는것이다. 설령국가가개인을상대한다고해도, 국가가상대하는개인은어떤집단으로간주된개인이다. 12) 결국국가의장에서의미를갖는집단은어떠한대표성을가지는집단, 즉대의제정치속에서자신의대표를갖는집단이다. 그리고국가는그집단의이익 ( 또는집단을지배하는특정개인들의이익 ) 을대변한다. 언뜻보기에, 바디우의주장은국가를 계급의국가 로파악하는마르크스주의와구분되지않는것같다. 그러나이러한국가이론은존재론을배경으로해서나온것이라는점에주목해야한다. 바디우는국가와의유비analogie 속에서이러한재현시스템을 상황상태l'état de la situation, state of the situation 라고부른다. 13) 바디우에 12) 바디우는이를존재론적으로다음과같이풀어낸다. 국가가주목하는것은이개인의구체적인무한성이아니라셈에서 일자 (l'un) 로환원된무한성, 다시말해이개인이유일한원소가되는부분집합, 즉수학자들이싱글톤 (singleton, {x} 로표시되는것 ) 이라고부르는것이다. (Badiou, D'un désastre obscur, Edition de l'aube, Paris, 1991, p.46). 13) 상태를뜻하는 état 와 state 의앞자를대문자로표기하면국가 Etat, State 가된다. 결국 상황상태 개념은국가와의유비속에서설정된개념이라고해야할것이다. 상황 은현시의체제로서개별원소의셈과관련된것이고, 상황상태 는재현의체제로서부분 ( 집합 ) 의셈과관련된것이다. 다자의현시로파악되는모든상황은구조화된것이다. 이는원소 ( 개별존재 ) 를셈하는하나로 - 셈하기에의한구조화인데, 이런구조는모든집합에포함된공집합을고정시키지못한다. 상황은방황하는공백때문에불안정하게남아있게된다. 그러한공백의위협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두번째셈이가해진다. 이는원소의셈이아닌부분집합 ( 부분, 집단 ) 의셈을통해구조화된상황을재구조화하는작용이다. 그러한구조의구조 ( 재구조화 ) 를바디우는상황상태라고부른다. 좀더쉽게말하자면상황의통일성 ( 일자 ) 은상황상태를통하여확보된다는것이다. 국가의역할은결국사회를공고히하고안정적으로관리하는데있는것이다. 여기서는바디우의존재론에대한상세한언급은생략하도록한다. 이에대해서는 Badiou, L'Etre et l'événement, pp.109-128, 졸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61 게이는존재의법칙이다. 모든상황은동시에상황상태를갖는다. 이말에비추어보면, 국가는소멸될수없는것이다. 모든사회는자신의재현시스템으로항상국가를가질수밖에없기때문이다. 그원칙에있어바디우의국가존재론은공산주의사회에서의국가의소멸을주장하는마르크스주의의국가이론과분리된다. 그렇다고바디우가있는국가를그대로인정하는것은아니다. 바디우는이러한부분집합의셈으로서의국가에대립하는것을 ( 혁명적 ) 정치라고부른다. 정치는끊임없이국가로부터벗어나는것이다. 다시말해바디우는제도적인정치를정치가아닌관리로파악하고, 그것을뛰어넘을수있는것을 ( 혁명적 ) 정치로한정시키는것이다. 여기서좀더확실하게마르크스- 레닌주의와의분리선이그어진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혁명적정치의모델을새로운국가에서찾는다. 이른바 프롤레타리아독재 는바로국가를통해계급을없애고국가자신을사라지게하는기제였다. 다시말해마르크스- 레닌주의의혁명적정치는국가와그변전을통해대안을모색하였던것이다. 14) 바디우는이러한가능성을일축하고국가에반대하는혁명적정치를내세운다. 국가는결코혁명적정치의장소가될수없다. 그렇게바디우는마르크스-레닌주의의혁명적전망과결별한다. 그의 ( 혁명적 ) 정치는반-국가의정치이다. 모든정치적사건 ( 그리고그사건을통하여출현하는진리 ) 은국가에대립하는것이다. 오로지여러집단의이해를차별적으로대변하는국가는결코모든이를고려할수없다. 국가는항상어떤구체적인집단의성원들을셈에서누락시킨다. 모든정치적사건은이렇게국가의셈에서누락된존재들가운데서일어난다. 프랑스혁명당시의부르주아계급, 파리코뮌당시의노동 고, 철학의조건으로서의정치, 철학과현상학연구 27 집, 2005 을참조하라. 14) 국가를통해국가를없앤다는마르크스 - 레닌주의적대안은 국가의자살 과도같은모순적인과정이다. 바로이러한과정속에서애초에전투적주체성의표현으로서등장했던전위당은국가속에함몰되고, 국가의노예, 좀더정확히국가그자체가된다 ( 당 - 국가의융합 ). 모든혁명적정치의딜레마는국가에있다. 앞서언급한졸고, 철학의조건으로서의정치 에서는이에대한비교적상세한논의가전개되고있다.

62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대중, 동학혁명의농민들, 5월광주의민중들은모두그렇게국가의셈에서누락된존재 ( 국가에의해정치적으로의미가없다고간주된존재 ) 들이다. 그렇게혁명적정치가출현했을때국가는즉각적으로이에개입한다. 정치적사건은직접적으로국가의탄압을불러오는것이다. 국가의실체가드러나는것은바로이시점이다. 국가는사건에폭력적인방식으로개입하는데이때바로국가의실제힘이나타나는것이다. 15) 국가의힘은고정되지않는힘이다. 국가의힘이개인의힘보다더강하다는것은확실하지만, 우리는그것이얼마나강한지는알수없다 ( 고쳤습니다.). 혁명적정치는그러한고정되지않는국가의힘을고정시킨다. 1917년러시아에서의혁명은막강한것으로여겨졌던짜르국가체제의힘이실제로는무척허약하다는것을보여준좋은예라할것이다. 모든해방적, 혁명적정치는이렇게국가에서벗어나는것이다. 그렇게 정치는국가와의거리를만들어낸다. 16) 물론상황을재구조화하는상황상태로서의국가는언제나존재할것이다. 혁명적정치는이러한국가로하여금모든사람을고려하도록강제한다. 국가는존재할것이지만혁명적정치가존재하는한그국가는사건을만날것이고그사건을통하여생산된진리 ( 예를들면사람들은누구나평등하다는진리 ) 를강제하는주체들의후사건적실천에의해사회와국가의모습은변화할수있다. 바디우의정치는이렇게국가와대립하고, 국가의법칙에서벗어나는반-국가의정치인것이다. 2) 탈유대 (déliaison) 의정치 마르크스-레닌주의가추구하는혁명적정치란무엇을중심으로이루어지는가? 그것은다름아닌전위당이다. 레닌이주창한혁명가의전위당은국가라는부르주아적재현체계에대항하는, 대중과연결된좀더정확히는대중과연결되어있다고상정된프롤레타리아의재현체계이 15) Badou, Abrégé de métapolitique, Seuil, Paris, 1998, p.158-9 를보라. 16) 같은책, p.158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63 다. 국가라는부르주아적재현체계가부르주아지의이익을대변하는것이라면그안에서프롤레타리아는그재현에이질적인것으로서나타난다. 부르주아국가내부에는재현의부재가존재하는것이다. 이는혁명적정치의역사속에서중차대한계기를구성한다. 이제까지재현의질서속에서철저히배제되었던프롤레타리아의존재가다른재현의질서속에비로소각인된것이다. 전위당은프롤레타리아대중과의유대li en, bond를바탕으로부르주아적재현의표현인국가에맞서는프롤레타리아적재현의실체로서등장하였고, 그것은부르주아의국가를대체할새로운재현체계의탄생인것처럼보였다. 레닌적사건의혁명성은바로이러한대항적재현의구성에있다. 전위당은이렇게혁명적정치의추동력이자새로운대항적재현의힘으로서출현한것이다. 비극은스탈린에와서당과국가가융합됨으로써시작된다. 소비에트공화국 의본격적인건설에돌입했던이시기, 국가의중심에서있었던것은다름아닌프롤레타리아의재현시스템으로서의당이다. 그러나이는국가를대체하는당이아니었다. 당은국가라는, 자신과적대적이었던재현시스템과결합하였던것이다. 결국사회주의국가의성립은당과국가의융합을토대로이루어지고, 모든국가정치적요소는이새로운국가안에서그대로온존되었다. 당-국가시스템에관료제가추가되었을때이른바사회주의국가의틀은완성되고야만다. 이제당은자신의또다른모습인국가를통하여프롤레타리아대중과의유대로서의재현체계를완성한다. 그것은국가일반의관리체계와강제기구가온존하는가운데사회주의국가라는거대한일자l Un의모습을완성하는순간이었다. 여기에는세가지의지시물이있다. 대중과당그리고국가이다. 주지하듯이당은대중과의유대를통해그의미를지닌다. 그리고당은국가와직접적으로결합한다. 대중-당의유대, 당-국가의융합은모두일자一者의기호아래나타나는것이다. 17) 다시말하면대중은당과의 17) 같은책, p.78.

64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유대를유지함으로써당과결합한국가에유대관계를갖는것이고, 이는국가에의한재현이라는일자의구조와합치하는것이다. 당을매개로하여국가는상황을재구조화하며메타구조로서기능한다. 결국일자의논리는이른바사회주의국가라는상황상태에그대로관철된다. 문제는이지점에서혁명적정치가실종되고만다는것이다. 정치는국가의모습으로만현상하고 혁명적정치 는 국가의정치 로변질된다. 우리는이른바현실사회주의정치를혁명적정치와대립하는국가의정치로특징지을수있다. 국가의정치가지배했던 스탈린적시대 는관리의과잉과정치의부재가지배하는시대, 정치가정치의망각으로서행해졌던시대이다. 그배후에는유대lien라는국가의모습이자리잡고있다. 유대의모습으로재정돈된대중과당은탈정치화되고, 정치적존재가아닌정치에있어지고의것으로간주되는국가에접합되었다. 18) 결국정치의망각은정치를정치가아닌다른것으로만든다. 그것은정치가아닌관리의모습으로나타나고바로이지점, 대중-당 -국가로이어지는유대의지점에서정치는비로소실종된다. 혁명적정치는부재하게된것이다. 바디우는정치를모든유대에서벗어나는것으로간주한다. 혁명적정치에의해사건이지속적으로전개되는것은대중운동의실행속에가정된유대와단절할때만가능하다. 19) 자유와평등과같은사건적언표의보편성을상황에유통시키고강제하는정치적실천을보편을위한정치라고한다면, 정체성을통해수립된노동조합적투쟁이나민족적운동과같은유대의틀에서벗어나지않고서어떻게보편을향하는정치가가능하겠는가? 대중운동이모든조합적, 민족 / 인종적, 지역적유대의틀에갇혀있다면해방을추구하는혁명적정치의도래는불가능한것이다. 그렇다면대중은어떻게정치와맞닿아있는가? 바디우는말한다. 정치가대중적인성격을띤다고할때그것은부르주아적관리와는달리그과정속에서사람들의의식을포괄하고피지배자들의현실 18) 같은책, p.79. 19) 같은책, p.81-2 를보라.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65 적삶을직접고려한다는의미이다. 20) 이것은셈의문제이다. 즉정치는국가가행하는부분집합의셈을거부하고그셈에서누락된대중의현실을직접셈하는것이다. 바디우는 프롤레타리아와같이추상적정체성을통해일원화된상상적집단을대중과는관계없는것으로파악하며, 대중을지적이고실천적인단독성으로이루어진무한성으로지칭한다. 21) 국가의셈, 즉부르주아적관리는그본성에비추어이러한특이성을염두에두지않는다. 정치는반대로부분의셈으로환원되지않는대중을다룬다. 그러한이질적인셈의법칙의교란은정치를국가와의유대에서벗어난것으로, 즉근본적으로분리된것으로만든다. 정치는이렇게국가가관계하는부분 ( 집합 ) 들에대각을세운다. 대중은결국극단적인특수성이고국가와의유대를벗어난지점이며바로그것이대중을정치의지시물로만든다. 그렇게혁명적정치는탈유대déliaison의정치인것이다. 3) 평등의정치 혁명적정치의대립물인국가와그것과의경계를이루는대중을지나, 이제혁명적정치의내적동학의문제를다루어보자. 과연바디우의혁명적정치를특징짓는고유한지시물은무엇인가? 정치는무엇으로자신의길을열어나가는가? 이질문이야말로바디우의혁명적주체성을담보하는정치의모습, 대상으로환원되지않는정치의모습을드러내는지점이며, 정치적사건이제기하는근원적인문제를사유하게하는지점일것이다. 모든혁명적정치는평등을말한다. 프랑스혁명에서폴란드연대노조운동에이르기까지모든정치적사건에서문제시되는것은다름아닌평등이라는테마이다. 그토록오랜시간동안혁명적정치의중심에자리잡고있던이평등은어떤것이었는가? 20) 같은책, p.82. 21) 같은책, p.82.

66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잘알다시피마르크스주의의정치적목표는계급없는사회로의이행이었다. 계급이란대상적 / 객관적개념이다. 그것은생산수단의소유관계로표시되는생산관계를통하여정의되는것이다. 자본주의를특징짓는것은계급적인적대인데, 이는잉여가치의착취에서연유한다. 이러한적대는임노동관계로부터나오는것으로, 바로그것이자본주의적생산관계를특징짓는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정치에있어혁명이란이러한적대적인자본주의적생산관계를파괴하는긴여정의출발이다. 이른바공산주의사회로의이행은자본주의적생산관계를넘어서임노동관계를폐지하고사회적평등을 실현 시키는데그목적이있다. 그러한생산관계의혁명이야말로개인을적대로부터해방시키고모든사람이 평등한상태 를가져오는것이다. 이렇게마르크스- 레닌주의가겨누는평등, 적어도현실사회주의국가안에서사유되었던 평등 이란객관적인실현의모습을띠고있다. 그러나과연그러한가? 그것의가능성은차치하더라도평등이란과연객관적인것인가? 바디우는그러한평등의관념을거부한다. 그에따르면중요한것은평등이대상적 / 객관적인성격을띠지않는다는것에주목하는것이다. 지위, 수입, 직업등의평등은전혀문제가아니다. 그렇다고계약이나개혁에있어서의평등한전제가문제인것은더더욱아니다. 평등은주체적이다. 22) 부르주아적평등이란결코주체적인사유가아니다. 그것은항상대상성에입각한것이며경제야말로그것의주요한지시물이다. 현실에존재했던마르크스-레닌주의정치의평등은이러한부르주아적평등과그리멀지않다. 마르크스-레닌주의정치는평등을프롤레타리아정치의프로그램 ( 강령 ) 으로서사유한다. 결국문제가되는것은분배의평등이다. 스탈린의 혁명적수치의정치, 다시말해생산력의고양을통한공산주의의물적토대의건설을위한정치는근본적으로이러한분배의평등이라는부르주아정치경제학의신화에기반하고있다고말해야한다. 그러나이는평등의왜곡된관념 22) 같은책, p.111-2.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67 이다. 평등이라는관념은지극히근본적인것이다. 이러한평등의근본성은그것이객관적으로실현되는것으로해소되지않는다. 평등은대상을향하지않고, 경제의매개를거치지도않는다. 그것은고유하게정치적인이념idée이다. 우리가만약평등을정치적으로사유하고자원한다면그것을객관적인것안으로밀어넣을수없다. 우리가사유해야하는것은혁명적정치의과정속에있는주체적평등인것이다. 바디우에게평등은실현되는것이아니라 가능한것 이다. 평등이가능한것은그것이객관적인방식으로실현가능하다는이야기가아니다. 평등은혁명적정치의주체적인질서를따른다. 그정치가현실에개입할때, 그개입은확실히특수한사안에대한개입이다. 그때혁명적정치는응당보편적인것에호소하는데, 그보편적인것은모든불평등에대한부정으로서만나타난다. 이는국가가행하는 부분의셈 에의해희생당하는모든특수성에가해지는불평등에개입하는것이다. 혁명적정치는부분을셈하는국가와달리대중의구체적삶을고려한다. 바로이때불평등이란정치에게그것이근거하는보편성에비추어불가능한것impossible으로나타난다. 불평등을불가피한셈으로인정하는국가와는달리바로이러한불가능한것에전혀관용을베풀지않는것이정치이다. 이러한불평등을정치는받아들일수없는것, 즉불가능한것으로간주한다. 이러한불가능성이야말로상황에대한정치의처방적préscriptif 개입의내용인것이다. 혁명적정치는국가적정치에고유한불평등한언표를금지가아닌불가능성으로사유한다. 23) 정치의개입이란결국이러한평등을열어놓는것이다. 이렇게정치적가능태는불가능에대한개입을통해 만인의평등 으로향한다. 정치의존재양식은바로평등의선언에다름아니다. 혁명적정치를그내부에서특징짓는것은결국평등이고그평등은모든그정치에내재적이다. 우리는비로소바디우가내세우는정치의내적원칙을발견한다. 혁 23) 같은책, p.106 을보라. 금지는국가의체제인반면불가능은실재의체제이다.

68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명적정치가외적으로탈-국가와탈-유대의성격을띤다면그정치의내적동인은평등이다. 여기서모든혁명적정치의실재적힘이나온다. 우리가앞서살펴본혁명적정치의고유한성격이대상성에반대하는것이었다면그것은정치가그자체로주체적이기때문이다. 정치는대상을통하여사유되지않는다. 우리는정치를대상의매개를거치지않고그자체로사유해야한다. 우리는주체적인것의사유를통해서만정치의내적공간으로진입할수있다. 국가와대중 ( 대중운동 ) 에대한논의가혁명적정치의외부와경계에대한사유였다면평등에대한실제적사유는혁명적정치그자체에대한직접적사유라고할수있는것이다. 바디우는정치를주체적인범주로서사유하기를요구한다. 가능태로서의정치는그시작이다. 그로부터도출되는평등이라는혁명적정치의원칙은전혀대상적인것이아니다. 그것은정치를주체적으로사유하기위한전제이자열쇠이다. 정치의모든문제는평등으로부터나온다. 바디우에게 평등은고유하게인간적인능력의유일한기호이다. 정치의행위자는바로이러한기호아래재현되는것이다. 24) 이에반해이해利害 intérêt 는결코인간의고유한능력이아니다. 이것은국가의정치와혁명적정치를가르는중요한주체적기호이다. 국가의정치로편입될수있는대다수의경험적정치들의주체성은이해관계를따르는것이다. 그것은권리의요구와타협, 로비와뇌물, 여러공동체들의맹목적인충돌을일으키는주체성일따름이다. 사유를다루는철학은이런것들에대해할말이없다. 이러한정치들은명백히비-사유로서만현시하기때문이다. 국가의정치로환원될수있는그정치들에게중요한유일한주체성은바로이해 [ 관계 ] 이다. 25) 이러한이해는고유하게인간적인능력이아니다. 모든살아있는것들은생존의정언명령으로서그들의이해를추구한다. 바디우에게 인간의고유한능력은사유이고그사유는인간동물을진리에감화시키고포획하는작용에다름아니 24) 같은책, p.111. 25) 같은책, p.110.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69 다. 26) 진리의절차로서의정치에있어그러한사유란바로평등의사유이다. 그런점에서바디우에게혁명적정치란진리의정치들이다. 이해는진리의정치들과아무런관계가없는것이다. 만약정치를이해의극대화라고생각한다면우리는이해를위해모든존엄성이파괴되는무한한이기주의의정치로진입하게된다. 그것은모든사람이자신의이해를최우선에두는극단적인동물적질서로회귀하는것이고, 그때모든평등은부정될수밖에없다. 모든집단적인것은집단적인이해로만남게될뿐, 그것을뛰어넘으려는어떠한시도도생각할수없게되는것이다. 그러나진리의정치들은그렇지않다. 그정치들은행동의원칙속에서이해들의특수성에어떠한의미도두지않는다. 이정치들은그정치의담지자를가장엄격한평등으로이끄는집단적능력의재현을도입한다. 27) 이것이바로평등의진정한의미이다. 객관적인것을벗어난평등은그자체로정치적금언이며처방이다. 정치적평등이란기획되어지는것이아니다. 그것은정치적사건의열화속에서평등을여기그리고지금있는것이라고선언하는것이지, 있어야할것 이라고선언하는것이아니다. 28) 가능태possible로서의평등은평등의선언이지, 행동의목표가아니다. 그것은정치적행동의공리일뿐이다. 정치가불평등의장소에개입하는것이라면, 이는자명한것이다. 정치적진리에의보편적인능력에대한긍정이없이진리에맞닿아있는정치란없다. 29) 그렇게, 진리의정치안에서평등은긍정되고정치는비로소진리로향한다. 평등은무엇보다도사건의형식속에서드러난다. 그형식이란다름아닌선언이다. 모든정치적사건에는선언이있다. 진리의정치를특징짓는것은그것의선언적성격이다. 모든정치의등장과전개는오로지선언으로만이루어진다. 모든진리의정치의근원에는선언이있다. 그 26) 같은책, p.111. 27) 같은책, p.110. 28) 같은책, p.112. 29) 같은책, p.112.

70 진보평론제 35 호 2008 년봄호 렇다면선언이란무엇인가? 그것은무엇에대한선언이며어떠한효과를산출하는가? 바디우는다음과같이말한다. 우리는그형식과명제, 결과, 윤곽또는공리가어떠한것이든간에모든사건적언표는선언적인구조의성격을띤다는점에주목할것이다. 사건의출현- 소멸이내포하는사건적언표는결정불가능한것이결정되었다고또는가치없던것이가치를얻었다고선언한다. 구성적주체는바로이선언에연결되는것이고평등을열어나가는것도바로이선언인것이다. 30) 선언은사건적언표의표현방식으로, 결정불가능한것의결정을공포한다. 여기서결정불가능한것이란지식이라는언어체계에서벗어난것으로서, 그불확정적성격으로인해가치를가질수없었던것이다. 그런데, 그것을결정한다고하는것은그가치없던것이이제어떤가치를획득함을의미한다. 그렇다면이가치의선언은불평등의불가능성에대한선언이며가치없는것의가치를공포함으로써평등을가능한것으로만드는선언이다. 즉, 이선언은불평등에서벗어나평등을선언하는것이다. 이러한가치의선언, 평등의선언을통하여정치는불의를떨쳐내고정의justice 안으로진입한다. 이러한평등과정의의선언없이우리는정치에있어보편적인것을사유할수없다. 국가의셈에서누락되는단독성들은정치적사건속에서힘으로분출한다. 그때사건을특징짓는사건적언표는평등안에있는것으로, 정의안에있는것으로서주체에의해상황안에서통용된다. 그사건적언표는평등과정의와같은지시항목을내포하는것이다. 보편적인것은그러한정치적지시항들의존재를진리로서상황에부과함으로써만사유가능한것으로나타난다. 그러한과정은후사건적後事件的인것으로서진리를상황에강제forçage하는실천의과정이다. 평등이야말로그실천이상황에부과해야할사건적언표의핵심적인내용이다. 불평등을용납할수없는불가능으로만드는것, 상황에내재하는셈의법칙으로서의불평등을부정하여그셈의법칙을무력화 30) Huit thèses sur l'universel, in Jelica Sumic(éd.), Universel, singulier, sujet, Editions Kimé, Paris, 2000, p.16. 강조는필자.

특집 / 바디우 Badiou 또는철학에의해다시사유되는정치 71 시키는것이야말로정치에내재하는보편을위한투쟁이다. 평등은실현되지않는다. 그것은실현되어야만하는것, 있어야하는것이아니라사건속에서그대로있는것으로선언되는것이다. 그러나평등은존재한다. 사건이라는하나의섬광속에진리로서, 진리안에서만나타나는평등은존재의질서를벗어난존재로서주체의후사건적실천속에서존재하는것이다. 평등의정치는사건의정치, 진리의정치로서의혁명적정치의고유명사이다. 4. 맺으며 지금까지돌아본정치의원칙들은철학의수준에서제시된실재의정치들이갖는효과이다. 그정치는진리와맞닿아있는정치이며, 사유로서의정치이다. 이것은명백히 국가의정치 로묘사된제도적정치와확연히구분되는것이다. 정치를철학적으로사유한다는것은바로이러한정치의원칙들을수립해내는것이며, 그것을통해국가와의거리를확보하는것이다. 바디우의정치는진리의정치이고, 그것이진리의정치인한, 그것은아주힘들게만지켜낼수있는것이다. 그러나이는특정한정파적입장이아니다. 어떠한정치적실천이든간에그것이혁명적이라면그것은진리의정치일수밖에없다. 문제는국가의정치에함몰되지않고그입장을견지하는것이무척힘겨운일이라는것이다. 여기서우리는 계속하라! 는진리의윤리를따라야만한다. 주저앉거나배신하지않고오로지계속하는길만이자신의진리에충실한길이고, 그러한끈덕진이어짐만이우리스스로를, 나아가이세계를변화시킬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