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철학텍스트들의내용분석에의거한디지털지식자원구축을위한기초적연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선일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2003
편집위원 : 백종현 ( 위원장 ) 심재룡김남두김영정허남진윤선구 ( 주간 )
발간사 2002년 8월부터한국학술진흥재단의기초학문육성지원아래우리연구소의전임연구팀이수행하고있는 < 철학텍스트들의내용분석에의거한디지털지식자원구축을위한기초적연구 > 의 1차년도연구결과총서를 ꡔ철학사상ꡕ 별책제2권으로엮어낸다. 박사전임연구원들이주축을이루고있는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의특별연구팀은우리사회문화형성에크게영향을미친동서양주요철학문헌들의내용을근간개념들과그개념들사이의관계를중심으로분석하고있다. 우리연구팀은이작업의일차적성과물로서이연구총서를펴냄과아울러, 이것을바탕으로궁극적으로는여러서양어또는한문으로쓰여진철학고전의텍스트들을한국어표준판본이확보되는대로디지털화하여상식인에서부터전문가에이르기까지누구나이를쉽게활용할수있도록하고자한다. 이와같은연구작업은오늘날의지식정보사회에서철학이지식산업과지식경제의토대가되는디지털지식자원을생산하는데있어중요한역할을수행하기위한필수적인기초연구라할것이다. 우리연구팀은장시간의논의과정을거쳐중요한동서양의철학고전들을선정하고이를전문연구가가나누어맡아, 우선각자가분담한저작의개요를작성하고이어서중심개념들과연관개념들의관계를밝혀개념지도를만들고, 그틀에맞춰주요개념들의의미를상술했다. 이같은문헌분석작업만으로써도대표적인철학저술의독해작업은완료되었다고볼수있다. 그러나이기획사업은이에서더나아가이작업의성과물을디지털화된철학텍스트들에접목시켜누구나각자의수준과필요에따라철학고전의텍스트에접근이해할수있도록하려는것이다. 우리가대표적인것으로꼽는철학고전들은모두외국어나한문으로쓰여져있기때문에, 이를지식자원으로서누구나활용할수있도록하기위해서는디지털화에앞서현대한국어로의번역이절실히요구된다. 그러나적절한한국어번역이아직없는경우에도원전의사상을이루는개념체계를소상히안다면원전에대한접근과이용이한결수월해질것이다. 우리연구작업의성과는우선은이를위해활용될수있을것이고,
더욱이는장차한국어철학텍스트들이확보되면이를효율적으로활용하기위한기초가될것이다. 아무쪼록우리공동연구사업의성과물이인류사회문화의교류를증진시키고한국사회철학문화향상에작으나마이바지하는바있기를바란다. 2003년 5월 15일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소장 철학텍스트들의내용분석에의거한디지털지식자원구축을위한기초적연구 연구책임자백종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선일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2003
머리말 정보화시대가진척되면서책의개념에서도하나의혁명이일어났다. 기존의책을대체하는전자책의개념이다. 전차책은기존의책이갖는공간성을제거할뿐더러기존의책의내용을개념적으로재조직하여독자에게이해의수고로움을덜어주는장점이있다. 더욱이고전작품이젊은이들에게점점외면되는현세태를감안한다면, 고전작품의디지털화는시급히요청되는과제이다. 따라서금번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는한국학술진흥재단의도움을받아철학텍스트의기초개념의내용을디지털화하는작업에착수하게되었는데, 이책은이러한작업의일환으로출간되었다. 이책은하이데거의 ꡔ존재와시간ꡕ의주요기초개념을먼저해설한뒤그러고는해설의근거가되는인용문을충실히제시해놓은책이다. 언뜻보면아마기존의다른책과별반다르지않을것이다. 그러나기존의책이개념에대한해설과인용문을뒤섞어놓고경우에따라서는인용문을논의의전개를위한징검다리로활용한반면, 이책은독자가먼저개념에대한해설부분을읽고또필요에따라인용문을참조하여그개념을더욱깊이있게이해할수있도록편리함을제공하였다. 또한개념의해설에서도가급적이면필자의주관적이해를배제하면서개념상호간의객관적관계를구체적으로밝히려고노력하였다. 물론모든해설에는자기의해석이수반되기마련이므로과연필자가이점에서어느만큼의성공을거두었는지는자신할수없다. 또한본래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에서는필자에게 ꡔ존재와시간ꡕ의상세한개념지도를작성하도록요구하였는데, ꡔ존재와시간ꡕ의성격상그런식의작업이용이한것은아니었다. 그러나필자는분명히이점에일정한노력을기울였고, 그럼으로써앞으로이책이전자책이될수있는가능성을모색하였다. 이책을만드는데는여러분의도움이필요했다. 먼저필자의은사님이시자 ꡔ존재와시간ꡕ표준번역본의역자이시기도한소광희교수님에게감사드린다. 이책의표준번역본은소광희교수님이번역한 ꡔ존재와시간ꡕ( 경문사, 1998) 이다. 아마이표준번역본이없었다면 ꡔ존재와시간ꡕ
에대한필자의이해가쉽지않았을뿐더러이책에서처럼그많은인용문을충실하게제시하기란불가능했을것이다. 소광희교수님이최근출간한 ꡔ하이데거의 < 존재와시간 > 강의ꡕ 및 ꡔ시간의철학적성찰ꡕ 도필자가 ꡔ존재와시간ꡕ을이해하는데커다란도움을주었다. 또한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소장님이신백종현교수님에게도감사드린다. 백종현교수님의독려와격려가 ꡔ존재와시간ꡕ이라는대저 ( 大著 ) 의기초개념을정리한이책을출간하는추진력이되었다. 또한그동안도와주신모든분들에게머리숙여감사드린다. 2003년 5월 12일한내마을에서약천 ( 藥泉 ) 이선일
목차 제 1 부하이데거와 ꡔ 존재와시간 ꡕ 1 제 2 부개념체계도 5 제3부 ꡔ존재와시간ꡕ의주요개념분석 6 1. 존재물음 6 1) 존재 7 2) 존재물음의근본목표 10 3) 존재물음의필요성 13 4) 존재물음의형식적구조 21 5) 존재물음의우위 26 (1) 존재물음의존재론적우위 27 (2) 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 31 6) 존재물음의방법 39 2. 세계 47 1) 세계일반의세계성의이념 48 (1) 세계와세계성 48 (2) 세계와자연 49 2) 환경세계안에서만나는존재자의존재 52 (1) 배려 52 (2) 도구 54 3) 용재자 ( 用在者 ) 의세계적합성 60 4) 세계의세계성 64 (1) 적소성 64 (2) 유의의성 68 5) 공간성 73
(1) 용재자의공간성 74 (2) 현존재의공간성 78 (3) 공간명도 85 3. 세인 ( 世人 ) 88 1) 타자 90 2) 공동존재 92 (1) 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으로서의공동존재 93 (2) 고려 95 3) 실존범주로서의세인 99 4. 내-존재 105 1) 개시성 107 (1) 정상성 ( 情狀性 ) 109 (2) 이해 120 (3) 말 139 2) 일상적개시성 146 (1) 빈말 147 (2) 호기심 148 (3) 애매성 150 (4) 퇴락 152 5. 현존재의존재 : 마음씀 157 1) 불안 157 2) 마음씀 163 3) 실재성 167 4) 진리 174 (1) 전통적진리개념 : 일치 174 (2) 전통적진리개념의존재론적기초 177 (3) 진리의근원적현상 181 (4) 진리의존재양식과진리를전제함 186 6. 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 : 죽음과양심 189
1) 죽음 190 (1) 죽음의경험불가능성 190 (2) 죽음에이르는존재 193 (3) 죽음의실존론적존재론적구조 199 (4)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203 (5)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 선구 206 2) 양심 212 (1) 부름 213 (2) 책임 220 (3) 결의성 232 3) 선구적결의성 238 7. 현존재의존재의의미 : 시간성 242 1) 마음씀의존재론적의미로서의시간성 244 2) 본래적시간성과비본래적시간성 255 (1) 개시성일반의시간성 257 (2) 세계- 내-존재의시간성 273 (3) 현존재적공간성의시간성 286 3) 통속적시간 289 (1) 현존재의시간성의일부 ( 日附 ) 가능성 289 (2) 공공적시간과세계시간 294 (3) 통속적시간개념발생 301 참고문헌 309
일러두기 1. 이책의표준판본은 Martin Heidegger(1889-1976), Sein und Zeit, (Max Niemeyer, 비개정제7판, 1953) 이다. 2. 이책의표준영역본은 Being and Time, (John Macquarrie/ Edward Robinson 공역, Blackwell, 2001) 이다. 3. 이책의우리말표준판본은 ꡔ존재와시간ꡕ( 소광희역, 경문사, 1998) 이다. 4. 이책에서제시된읽기자료는우리말표준판본에서따온것이다. 그런데우리말번역어가한자 ( 漢字 ) 이기에독자들에게낯설게느껴질경우에는독자들의이해를돕기위해경우에따라그번역어에해당하는한자를 [ ] 안에보충해넣었다. 그밖에도보충할사항은 [ ] 를이용하였다. 5. 이책은각주를모두본문안에넣었다. 또하이데거의저작을인용하는경우에는저자의이름을생략했고, 나머지저자의경우에는이름을명기했다. 6. 이책에서 ꡔ존재와시간ꡕ을인용하는경우에는 ( ) 안에표준판본과우리말표준판본의쪽수를병기 ( 倂記 ) 하였다. 순서상앞의숫자가표준판본의쪽수이고뒤의것이우리말표준판본의쪽수이다.
< 제 1 부 > 하이데거와 ꡔ 존재와시간 ꡕ 마르틴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1889-1976) 는이성일변도로치닫던서구의전통적형이상학을뒤흔든 20세기철학의거장이다. 1889 년 9월 26일독일동남부슈바르츠발트의한작은마을메스키르히에서카톨릭교회지기의아들로태어난그는일찍부터종교에관심을보여 1909년프라이부르크대학신학부에입학한다. 그러나 2년후그는심장에관련된질병으로인해그토록열망하던신학공부를포기하고철학연구에전념한다. 프라이부르크대학시절하이데거의사상형성에커다란영향을끼친것은후설의 ꡔ논리연구ꡕ였다. 박사학위논문인 ꡔ심리주의의판단론ꡕ, 교수자격취득논문인 ꡔ둔스스코투스의범주론과의미론ꡕ 은물론, 초기의대표작인 ꡔ존재와시간ꡕ및 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도기본적으로는현상학적시각을바탕으로쓰여진작품이었다. 따라서하이데거가당시에도이미아리스토텔레스철학의전문가로서상당한명성을지니고는있었으나그의대한세평은후설의추종자정도였다. 그러나 1927년 ꡔ존재와시간ꡕ의출판이후누구도예상하지못했던이작품의성과는실로대단했다. 그는즉각세인의주목을받았을뿐더러무엇보다도 20세기철학자중아무도대적하지못할만큼비상한영향을끼치게되었다. 그의제자인한나아렌트 (H. Arendt) 는하이데거의사유의폭풍을플라톤 (Platon) 에비유할정도였고, 이미그의생시 ( 生時 ) 에도세계철학계는그를 우리시대의가장위대한사상가 로주목하게되었다. ꡔ존재와시간ꡕ은일거에하이데거를 20세기철학의거장반열에올려놓은것이었다. 이작품은너무도비범했다. 이작품은고전적인식론에서논의되던일련의낡은물음들을자신의사유세계안에서새롭게걸러내었을뿐아니라, 신칸트학파로부터가치철학에이르는당대의철학적문제를모두껍데기로처리했고, 번개불처럼철학의아성들에게철퇴를내리쳐플라톤으로부터니체에이르는형이상학을새롭게조명하였다. 더욱이언어마저독특하였기에, 이작품은동시대인들에게는처음부터생소하게여겨졌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이미 20년간의역사를지닌채새로운발전방향을모색해야했던현상학도마찬가지였다. 이작품을헌정받은후설 (Husserl) 이놀라움을넘어선실망감을토로할정도로하이데거는이미후설의추종자가아니었다. 오히려젊은시절의하이데거는벌써자신만의독특하고다양한언어로새로운사유의세계를구축하고있었다. 그러면 ꡔ존재와시간ꡕ이몰고온폭풍의비밀은무엇인가? 폭풍의비밀은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다. 언뜻보면간단한듯한이물음이우리를인간존재의심연으로안내한다. 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을제기하겠노라고나선다면, 그것은가히놀랄만한일이다. 아무도이물음을실존론적으로해석한예가없기때문이다. 물론이물음이결코새롭지않다는점을하이데거도솔직히인정한다. 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의당혹감을설파하는플라톤의 ꡔ소피스트대화록ꡕ은이물음이형이상학자체의역사만큼오래되었다는사실을환기시키기에충분하다. 그렇다면하이데거는우리를철학적전통에얽매려고했던것일까? 결코그렇지않다. 오히려하이데거는전통에도전하는철학자이다. 그는전통을철저히사유하여전통을극복하고자한다. 이러한노력의일환으로그는형이상학적전통의배후로되돌아가형이상학을가능하게했던근원적영역에대해물음을개진한다. 그러고는그는칠흑같은어두움에파묻혀있던존재의의미를우리에게드러낸다. 존재물음은궁극적으로는형이상학적물음에대한비판적대결이된다. ꡔ존재와시간ꡕ에서의존재물음은처음부터끝까지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으로수행된다. 인간의존재이해를실마리로하여인간의실존론적구조를해명함으로써존재일반의의미를밝히고자하는것이 ꡔ존재와시간ꡕ의근본목표이다. 이런논의과정에서전통적서구형이상학의본질적문제인인간, 세계, 시간, 존재에대한물음이이제껏아무도이르지못한새로운토대에놓일뿐더러, 종래윤리학이나종교의차원에서논의되던죽음과양심의문제가새롭게실존론적으로정초된다. 그러나하이데거의관심은단순히인간의실존론적구조에대한이론적천착만이아니었다. 그는궁극적으로는, 일상적세계에로퇴락한인간을끄집어내어가장적나라한본래적자기앞에세워놓고자한다. 선구적결의성을통해인간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비로소자신의허무한실존을떠맡아본래적자기로변양한다. 이로써인간은전통속에매몰된세인 ( 世人 ) 으로부터벗어나어떤개념을가지고어떻게시대를살아가야하는지를각성하게된다. 아마도당시세계의많은젊은이들이하이데거에게열광한이유는여기에있으리라. 존재물음은한민족의정신적운명을저울질하는사건이다. 아마도많은이들은이를과장으로여길는지모른다. 그러나한민족이존재를어떻게이해하느냐에따라그민족의역사적삶이펼쳐진다면, 존재물음은, 비록지극히멀고또한지극히간접적으로나마, 한민족의역사적결단과깊은관계를맺게된다. 그래서하이데거는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을제기했던것이며, 이로써형이상학적위기에처한인간을구제하기위한돌파구를마련하고자노력했던것이다. 아마도바로여기에하이데거사유의위대함이있지않을런지. 그런데기존의 ꡔ존재와시간ꡕ은완성된작품이아니다. 하이데거는원래이작품을두부로계획했었다. 제Ⅰ부는 현존재를시간성의관점에서해석하고, 시간을존재에대한물음의초월론적지평으로서해석한다 는주제아래, 제Ⅰ편 현존재의예비적기초분석, 제Ⅱ편 현존재와시간성, 제Ⅲ편 시간과존재 를기술할예정이었다. 또제Ⅱ부는 존재시간성의문제를실마리로한존재론역사의현상학적해체의개요 라는주제아래, 제Ⅰ편 존재시간성의문제의전 ( 前 ) 단계로서의칸트의도식론과시간이론, 제Ⅱ편 데카르트의 >cogito sum<( 나는생각한다나는존재한다 ) 의존재론적기초와, >res cogitans<( 생각하는사물 ) 의문제로의중세존재론의인수, 제Ⅲ편 고대존재론의현상적토대와한계를판별하는기준으로서의아리스토텔레스의시간에관한논문 을기술할예정이었다. 그러나그가실제로출판한글은제Ⅰ부의제Ⅰ편과제Ⅱ편에불과하였다. 마르부르크대학철학부의학장은하르트만 (Hartmann) 의후계자로하이데거를추천하기위해하이데거에게미비한논문이나마출간하도록강요하였으나, 하이데거는제Ⅰ부제Ⅲ편마저삭제하고말았다. 그까닭은 시간과존재 를기술할만한적합한언어를그당시찾을수없었기때문이라고알려져있다. 그러나제Ⅰ부제Ⅲ편 시간과존재 는그이후 ꡔ사유의사태ꡕ(1969) 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수록되어발표되었고, 제Ⅱ부제Ⅰ편 칸트의도식론과시간이론 은단행본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1929) 로발표되었으며, 또한제Ⅱ편 데카르트의 >cogito sum< 및제Ⅲ편 아리스토텔레스의시간이론 은 ꡔ존재와시간ꡕ 제3장 세계의세계성 및 81절에서각각이미상술되었다. 또한 시간성의문제를실마리로해서존재론의역사를해체한다 는과제는비단몇저서에만국한되지않고하이데거의많은저술에서거론된다. ꡔ존재와시간ꡕ 이후에도하이데거는철학사에획기적인많은작품을발표하였다. ꡔ철학에의기여ꡕ, ꡔ이정표ꡕ, ꡔ언어로의도상ꡕ 등이그의후기대표작이다. 그런데언제나그렇듯그의철학적관건은우리시대를정초하는존재의숨겨진의미를사유함으로써현대과학기술문명을대신할새로운삶의보금자리를열어보이는것이었다. 물론그는 1933년프라이부르크대학의총창에취임함으로써한때정치적오점을남기긴바도있다. 그러나그가 1976년자신의고향인메스키르히에조용히잠든이후에도계속발간되고있는 100여권의작품은그의존재사유가오늘의우리에게끼치고있는막강한영향력을보여준다. 현대철학의과제는하이데거철학의재해석이라할정도로, 지금도우리는하이데거와더불어 숲길 을따라존재의 이정표 를찾아가고있는것이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제 2 부 > 개념체계도 개시성 정상성이해말 ( 피투성 ) ( 기투 ) 본래적개시성 정상성묵언이해 ( 불안 ) ( 결의성 ) ( 선구 ) 비본래적개시성 정상성퇴락 ( 피해석성 ) ( 두려움 ) ( 빈말 ) ( 도피 ) 마음씀 피투적현사실성퇴락 ( 이미 내에있음 ) ( 에몰입해있음 ) 시간성 기존성장래현재 ( 양심 ) ( 죽음 ) 본래적시간성 회복 순간 선구 비본래적시간성 망각 ( 상기 ) 현전화 실존성 ( 자기를앞지름 ) 예기 ( 기대 ) ( 통속적시간 ) ( 과거 ) ( 현재 ) ( 미래 )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제 3 부 > ꡔ 존재와시간 ꡕ 의주요개념분석 1. 존재물음 ( 독 : Seinsfrage, 영 : The question of Being) 신에게우리는너무늦게왔고존재에게는너무일찍왔네. 존재에서비롯된시 ( 詩 ) 가인간이라네. 하나의별을향해다가서는것, 단지이것뿐이네. 사유는마치하나의별처럼일찍이세상의하늘에걸려있는하나의사상일뿐이라네 (ꡔ사유의경험으로부터ꡕ, 7쪽 ). 길은하나의목적지를향해나간다. 물론도중에장애물이있으면우회하기도하지만, 길은궁극적으로오직하나의목적지만을갖는다. 이것은하이데거의사유의길에도해당한다. 그의사유의길은비록그때마다의필요에따라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 존재의진리에관한물음, 존재의장소에관한물음으로전개되지만, 이세가지의물음들은존재에이르는하나의도상에있다. 존재야말로그의사유의길이찾아가는하나의별이된다. 하이데거의사유를꿰뚫는하나의사상 ( 思想 ) 은존재에관한물음이다. 그의초기의대표작인 ꡔ존재와시간ꡕ 은그의사유의사태가무엇인가를명확히밝혀준다. 이작품의제목이시사하듯, 그의관심은존재 와 시간의공속적관계를통해, 다시말해시간을근거로하여존재의의미를해명하려는것이다. 존재가하나의별이라면, 시간은별을찾아가는지평이된다. 이제우리는하이데거와더불어존재 와 시간의모험을감행하려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그런데아무리모험이라해도적막강산안에서감행될수는없다. 모험을위해서는몇가지의준비가필요하다. 특히그중에서도 존재가무엇인가? 에대한선행적이해는우리에게꼭필요하다. 우리가찾아가는존재가무엇인가에대한최소한의이해마저없다면, 우리는필경어둠속을헤맬것이다. 그러나다행히도우리는존재에대한이해를어슴푸레나마가지고있다. 1) 존재 ( 한 : 存在, 독 : Sein, 영 : Being) 우리의주변을둘러보자. 우리는온갖종류의존재자와더불어살고있다. 당장내눈앞에있는 ꡔ존재와시간ꡕ이란제목이붙은책, 또그책의번역서, 컴퓨터와독서보조대, 책상과의자, 이모든것은물론이고, 저문밖에서장난감을갖고노는나의아이, 이렇게사유하는나자신, 또한나자신을구성하는근본적요소라고내가믿고있는영혼과육체, 그리고이뿐아니라항상나의사유속에서과연존재하는가라고의심받고있는신까지도분명히존재자이다. 앞서열거한존재자들은각양각색이다. 그런데이런차이에도불구하고우리는이모든것들을존재자라고명명한다. 그렇다면우리는왜이모든것들을굳이존재자라고부르는가? 즉우리가존재자라고부르는것의공통의근거는무엇인가? 그까닭은의외로간단하다. 그것들은존재하고있기에, 나는그것들을존재자라고부른다. 즉존재한다혹은존재란우리가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날수있는가능근거이다. 하이데거의표현을빌자면, 존재는존재자를존재자로서규정하는그것이다. (6, 11) 즉어떤하나의존재자에대해 그것이있다 혹은 그것은 이다 라고말하기이전, 즉하나의존재자에대해 있음 과 임 이라는술어를덧붙이기이전, 나와존재자와의만남을가능케하는선 ( 先 ) 술어적조건이존재이다. 따라서여기에서의존재가존재자를존재자로서가능하게하는생성의원인이아님은물론이다. 생성의원인으로간주되는창조주역시하나의존재자에불과하니까.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는존재자와구별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존재가존재자와떨어져있는어떤것으로사유되어서는않된다. 존재는존재자가비로소존재자로서받아들여질수있는 이해의기반 이다. 그러니까 존재는언제나존재자의존재이다. (6, 12) 실로존재와존재자의관계는서로하나가아니면서둘도아닌불일불이 ( 不一不二 ) 의관계라고나할까? 여하튼존재는존재자의존재로서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날수있는선술어적조건이므로, 우리가어떤존재이해를갖느냐에따라존재자에대한해석은그내용을달리한다. 존재이해야말로우리가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날수있는가능근거가된다. 그런데아마도우리의존재이해는그자체가불투명한것일지도모른다. 존재이해는선술어적차원에서전개된다. 따라서존재이해는의식에의해개념적으로명료화되기이전의막연한이해에해당한다. 더욱이존재이해는우리에게의식적으로반성되지도않는다. 분명히어떤존재이해를근거로우리는존재자를존재자로서만나고있으나, 우리는존재자에게만관심을쏟을뿐존재의의미가무엇인가는되돌아보지않으며, 솔직히말하자면, 이러한차원의존재이해가전개되고있다는사건조차를망각한다. 따라서우리는존재의의미를묻는물음앞에서당혹해한다. 그러나존재이해를통해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나존재자의한복판에서존재자에게의존한채삶을영위하는우리의모습을돌아볼때, 이러한당혹감은하나의아이러니가아닐런지? [ 읽기자료 ] 우리는그러한것을 > 존재 < 라는낱말을통해명명한다. 그이름은우리가 > 있다 < 라고, 혹은 > 있어왔다 < 라고, 혹은 > 있게될것이다 < 라고말할때, 우리가사념하고있는바를명명한다. 우리에게다다르게되는혹은우리가닿게되는모든것은, > 그것은있다 < 라는사태가발언되었건혹은발언되지않았건, 여하튼 > 그것은있다 < 라는사태를철저히관통한다. 상황이그러함을우리는어디에서건결코회피할수없다. > 있다 < 라는것이제아무리공공연하게또한은닉된채다양하게변화되어있을지라도, 그 > 있다 < 라는사태는그다양한변화안에서우리에게여전히숙지되어있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 존재 < 라는낱말이우리의귓가에울리자마자, 우리는사람들은그것에관해아무것도표상할수없을것이며또한아무것도사유할수없을것이라고확신한다. 아마도이러한속단은올바른것이다. 이러한속단을미루어볼때으레사람들은 > 존재 < 에관한말에 잡담이라고는말하지않겠다 화를낼것이며아예 > 존재 < 를웃음거리로만들어버린다. 존재를심사 ( 深思 ) 하지않은채, 존재를향한사유의길을숙고하지않은채, 사람들은마치자신들이 > 존재 < 라는낱말이말을하는지혹은하지않는지 를결정하는법정이나된듯우쭐거린다. 거의어느누구도그렇게해서 사유하지하지않음 (Gedankenlosigkeit) 이원칙으로고양되고있다는현실에부딪히지않는다. 일찍이우리의역사적현존재의원천이었던것이웃음거리안에파묻혀버린현실을주목해볼때, 단순한숙고에관여해보라는것은권장할만한일이될수도있겠다. 사람들은 > 존재 < 라는낱말에서아무것도사유할수없다. > 존재 < 란무엇을의미하는가에대해정보를주는것이사유가의사태라고추정하는우리의추측은어떤상황에처해있는가? 그러한정보가사유가들에게조차매우어려운과제가된다할지라도, 존재를 사유할가치가있는것 으로서언제나거듭내보이는것은적어도사유가들의사태로남을수있을것이며, 그로써이처럼 사유할가치가있는것 그자체는인간의시야안에계속머물러있을것이다.(ꡔ이정표ꡕ, 445-446쪽 ) 존재는존재자를존재자로서규정하는그것이다. 존재자가어떻게설명되든존재자는존재를기반으로해서그때마다이미이해되고있다. 존재자의존재는그자신존재자가아니다.(6, 11) 존재자그자체는무엇인가 라는물음에서는 무엇이도대체존재자를존재자로규정하는가 에관해물어진다. 우리는그무엇을존재자의존재로, 또한그무엇에관한물음을존재물음이라명명한다. 존재물음은존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자를그자체로서규정해주는그무엇에관해탐구한다. 이규정자는자신의규정활동의방식에맞게인식되어이러이러한것으로서해석되어야한다. 즉개념파악되어야한다. 그러나존재자의본질적규정성을존재를통해개념파악할수있기위해서는규정자자신이충분히파악될수있어야한다. 즉먼저존재자그자체가아니라오히려존재그자체가미리개념파악되어야한다. 그러므로 존재자란무엇인가 라는물음에는보다근원적인물음이놓여있다.: 저물음에서이미선이해된존재는무엇을의미하는가?(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 222-223쪽 ) 2) 존재물음의근본목표 존재가무엇인가? 라는물음은우리를당혹에빠뜨린다. 당혹에서벗어나는첩경은먼저이물음의의미를이해하는것이다. 그래서하이데거는 ꡔ존재와시간ꡕ의서언에서존재물음의근본목표를제시한다. 이서언에서특히우리의이목을끄는것은플라톤 ꡔ소피스트ꡕ편 (244a) 에서논의된 존재를둘러싼거인들의싸움 (ΥιΥαντομακία περὶ τ ης οὐσίας) 에관한인용문이다. ꡔ존재와시간ꡕ 1절에서도하이데거는존재물음이망각속에빠져버린세태를비판한뒤, 거인족의싸움을언급한다. 거인족의싸움에서문제가되는존재는우시아 (ousia) 이다. 우시아는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와는다른것이다. 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가인간과존재자와의만남을가능하게하는선술어적조건임에반해, 우시아는본래적존재자를의미한다. 그러니까정확히말하자면, 존재를둘러싼거인들의싸움 은, 참된존재자를가시적 ( 可視的 ) 물체에한정하려는거인족 ( 이오니아의자연철학자, 원자론자, 유물론자를비유함 ) 과참된존재자를비가시적인형상에서구하려는올림포스신들 ( 피타고라스학파, 엘레아학파를상징함 ) 간의싸움이지, 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의의미를찾고자하는싸움은아닌것이다. 그렇다면 ꡔ소피스트ꡕ 편의구절은존재물음의길을열어놓기위한장식물에불과한가? 우리는이러한물음앞에서머뭇거린다. 그러나 ꡔ소피스트ꡕ편의구절은결코장식물에그치지않는다. 오히려존재 ( 즉본래적존재자 ) 를둘러싼거인족과올림푸스신들의싸움을통해하이데거는자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신이거론하는존재의의미를해명할단서를마련한다. 우시아란근본적으로는, 직접적이고도또한항상우리앞에현재하는소유물을의미한다. 우시아가 직접적이고도또한항상현재하는소유물 을의미한다면, 우리가우시아를비로소우시아로서만날수있는선술어적조건으로서의존재는 가까이다가와있는가운데지속함 을의미하며, 따라서존재는 지속적인지금 을향해, 즉시간을향해기투된채이해되고있다. 이처럼본래적존재자를둘러싼싸움에서는, 거인족과올림푸스신들이의식했건안했건, 이미존재가시간을근거로이해된다. 그래서하이데거는 직접적인존재이해는존재를시간을향해근원적이고도자명하게기투함안에전적으로보유되어있지않은가? 라고반문한다. 시간을향한존재의기투는근원적이고도자명한기투이다. 이러한기투를통해그들은우시아를비로소우시아로서만날수있었다. 따라서이러한기투는근원적기투이다. 또한솔직히말해이러한기투가그들의사유속에서진행됨을그들이모를정도였기에, 이러한기투는자명한기투가된다. 그런데시간을향한존재의기투는거인족의싸움에만한정되지않는다. 오히려이러한기투는전통적형이상학의존재이해전체를지배하는가장내적이고도은밀한사건으로등장한다. 전통적형이상학이존재자를초시간적존재자, 시간적존재자, 무시간적존재자로분할했던것은결코우연이아니었을것이다. 이제우리는 존재를둘러싼거인들의싸움 이 ꡔ존재와시간ꡕ의첫머리에화두로등장한까닭을알게되었다. 하이데거가이러한화두를통해보고자한것은존재와시간의공속적관계였다. 그러나하이데거의물음은여기서끝나지않는다. 오히려그는더근원적으로 이처럼존재를시간으로부터자발적으로또한자명하게이해하는근거는어디에있는가? (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 241쪽 ) 라고반문한다. 그는존재와시간의공속적관계의근거에관한물음을제기한다. 그런데아리스토텔레스에의해그이후의형이상학사에결정적영향을미치는방식으로논구된시간의본질은이에대해아무런답변도준바없다. 오히려아리스토텔레스는시간의 존재 를 지금 으로부터규정함으로써존재 와 시간이라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철학의근본적사태를근원적으로해명할기회를외면했다. 하이데거의시각에서볼때아리스토텔레스는시간의근원적본질을놓치고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시간의 존재 를 지금 을근거로규정하나, 지금 이란하이데거가그리는근원적시간으로부터파생된하나의시간성격에불과하다. 즉 지금 이란 [ 근원적 ] 시간안에그때마다또한지속적으로가까이다가와있는 하나의시간성격이다. 따라서아리스토텔레스가존재 와 시간의공속이라는철학의근본적사태를놓치고있음은당연할뿐더러, 이제우리는여기에서 ꡔ존재와시간ꡕ 이추구하는존재물음, 즉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의근본목표도알게된다. 아마도그것은바로시간의근원적본질을해명함으로써존재 와 시간의공속관계를근원적으로회복하고자하는, 아니근원적시간을지평으로하여존재를찾아나서는, 아니더정확히말하자면, 존재에서비롯된시 ( 詩 ) 인인간의본질을회복하고자하는처절한몸부림이니라. [ 읽기자료 ] 왜냐하면존재한다는표현을쓸때여러분이본래의미하려는바를여러분은이미오래전부터알고있었음이분명하기때문이다. 우리도전에는그것을이해한다고믿고있었다. 그러나지금우리는당혹감에빠져있다.( 플라톤, ꡔ소피스트ꡕ, 244a) 오늘날우리는존재한다는말의본래의의미가무엇인가라는물음에대답할수있는가? 결코아니다. 그렇다면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새롭게제기할필요가있다. 우리는오늘날도여전히존재라는말을이해하지못하는당혹감에만빠져있는가? 그렇지도않다. 그렇다면무엇보다도먼저이물음의의미에대한이해를다시일깨우는것이필요하다. 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구체적으로수행하는것이아래논문의의도이다. 시간을모든존재이해일반의가능한지평으로서해석하는것은이논문의당면목표이다.(1, 1) 우시아 (οὐσία) 혹은파루시아 (παρουσία) 로서의본래적존재자는근본적으로 가까이다가와있음 (Anwesen), 즉직접적이고도또한항상현재하는소유물, 다시말해 재산 을뜻한다는의미에서이해된다. 그렇다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러한사실에서는무엇이중요한가? 이러한기투가누설하는바는이렇다. 즉존재는가까이다가와있는가운데지속함 (Beständigkeit in Anwesenheit) 을의미한다. 이렇게, 즉보다정확히말해, 존재에대한자발적이해안에는시간규정들이모여들지않는가? 직접적인존재이해는존재를시간을향해근원적이고도자명하게기투함안에전적으로보유되어있지않은가? 그렇다면존재를둘러싼모든싸움은처음부터시간의지평안에서움직이지않는가?(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 240쪽 ) 우리가존재자를분할하면서, 즉존재자를그것의존재를고려하여구별하면서, 자연스레 존재자를시간적존재자, 무시간적존재자, 초시간적존재자로서규정한다라는사실은단지다소간성공적이었던혹은언제어디서건한번쯤은성립했던습관일뿐인가?(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 241쪽 ). 실로 [ 아리스토텔레스의 ] 이러한시간분석은하나의존재이해에의해주도된다. 그러나이러한존재이해는 은밀한행동방식으로 존재를지속적으로가까이다가와있음 (beständige Anwesenheit) 으로이해하며, 또한이로써시간의 존재 를 지금 으로부터, 즉시간안에그때마다또한지속적으로가까이다가와있는, 다시말해고대적의미에서는본래적인그러한시간성격으로부터규정한다.(ꡔ칸트와형이상학의문제ꡕ, 241 쪽 ) 3) 존재물음의필요성 20세기초독일철학계를지배하던것은신칸트학파였다. 당시신칸트학파는헤겔학파의몰락과실증과학의눈부신성장으로인해자신의명성을상실하였던형이상학에게 칸트로의복귀 를통해다시금학문적본질을회복시켜주고자노력하였다. 그러나하이데거의시각에서볼때신칸트학파는하이데거자신이생각하는철학의근본적사태인존재물음을놓치고있었다. 즉 존재를둘러싼거인들의싸움 은물론이거니와그이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플라톤과아리스토텔레스의철학에서도, 비록은닉된채로나마, 여하튼은밀히전개되고있던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이새로이부활한형이상학안에서는망각되고있었다. 더욱이이러한망각은비단신칸트학파에게만국한된것이아니라, 어쩌면형이상학이걸머진운명이었다. 하이데거가말하는형이상학은철학을형이상학, 자연학, 윤리학, 논리학, 인식론등으로분과화한뒤그렇게분과화된한영역으로서의형이상학을가리키는것이아니다. 오히려그가말하는형이상학은그러한분과화와는무관하게서구철학전체를철저히지탱해왔던, 이제까지우리가전수받은독특한존재이해의영역을가리킨다. 돌아보면, 전통적형이상학의역사속에서는실로다양한존재개념이등장한다. 우리가앞서언급했던 있음 과 임, 그러니까존재사실 (Daβsein) 과무엇존재 (Wassein), 즉중세철학적용어로말하자면현존 (existentia) 과본질 (essentia) 은물론이거니와, 진리존재 (Wahrsein), 가능존재 (Möglichsein), 현실존재 (Wirklichsein), 필연존재 (Notwendigsein) 등서로간차별적인존재개념들이다양하게나타난다. 그러나이다양한존재개념들은, 우리가존재자를존재자로서받아들이고난이후, 즉존재자가존재하는그어떤것인한에서, 이미존재하는것의존재함을구성하는개념일뿐, 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 즉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날수있는선술어적조건으로서의존재와는구별된다. 그래서후기하이데거는자신이거론하는존재와구별되는형이상학적존재개념을존재자성 (Seiendheit) 이라고명명하여차별화하기도한다. 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는형이상학적존재개념들이자라나올근본적원천이된다. 형이상학적존재개념들은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의다양한파생태이다. 이러한존재의파생태를하이데거는존재자성이라명명한것이다. 그러나형이상학은존재자성의울타리안에머물러있다. 형이상학은, 은밀하게전개되고있는존재이해의사건을망각한채, 존재자를향한시각과존재자에입각한시각으로부터만존재를사유한다. 그러기에형이상학은존재자성의구조적다양성을포착하고그것을존재범주로개념화할뿐, 존재자성이비롯된근원적영역에대해서는, 즉존재에대해서는아무런물음도던지지못한다. 형이상학적물음은이물음에선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행하는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간과하고있는것이다. 때문에형이상학의주도적물음은 존재자란무엇인가? 로규정된다. 형이상학의주도적물음은존재를존재자성의차원에서만해석한뒤존재자의생성원인을최고의존재자로소급하여해명함으로써우리가존재물음에이를최소한의통로마저봉쇄한다. 따라서하이데거는형이상학적전통의배후로되돌아가형이상학을가능하게했던근원적영역에대해물음을개진한다. 그의존재물음은궁극적으로는형이상학적물음에대한비판적대결이된다. 하이데거의탁월한해석가인폰헤르만 (F.W. von Hermann) 은이러한상황을다음처럼생생히묘사한다. 하이데거의극단화된존재물음이캐어묻는존재의의미는존재자성과전승된존재범주의울타리안에서는탐구될수없다. 오히려하이데거의존재물음은존재자성과존재범주들의배후로되돌아간뒤, 그러고는, 존재자의무엇존재, 존재사실, 진리존재, 가능존재, 현실존재, 필연존재등존재자성의다양한방식들이, 또한존재범주들안에서개념화된존재자의존재구조들이궁극적으로규정되었던그곳, 즉가장극단적인근원적차원을향해물음을던진다.(Friedrich-Wilhelm von Herrmann, Subjekt und Dasein, Vittorio Klostermann Frankfurt am Main, 1985. 25 쪽 ) 이인용문에서언급된 가장극단적인근원적차원 이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 즉존재그자체, 즉존재로서의존재임은두말할필요가없으리라. 그렇다면형이상학이망각해버린존재는어떠한형세일까? 비록존재가형이상학에의해명시적으로주제화되지않았다하더라도, 인간이존재자와관계하는이상, 존재이해의최소한의흔적은남는것이아닐까? 다시말하면, 존재에대한선입견이라도남아있지않겠는가? 이제하이데거는존재에대한선입견을 3가지로정리한다. 첫째, 존재는가장보편적개념이다. 하이데거도존재에대한이첫번째선입견에형식적으로는동의한다. 그러나보편성의의미를어떻게파악하느냐에따라동의의여부는전혀달라진다. 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역시존재자의영역을추상화함으로써도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하는유적보편성에의해포착되지않는다. 하이데거의존재는존재자의유적보편성과는근본적으로차원을달리한다. 이러한시각에서하이데거는아리스토텔레스의존재개념의유비적 ( 類比的 ) 통일을높이평가한다. 존재개념의유비적통일은사태내용적최고유개념의다양성에머물지않고, 적어도각존재자마다다른의미를갖는존재의명목상의통일은추구했기때문이다. 그러나하이데거의시각에서볼때, 존재의유비적통일이하이데거자신이추구하는존재의보편성을충족했던것은아니었다. 존재의유비적통일은명목적보편성에불과했다. 잠시앞서의논의로돌아가자. 하이데거의 존재는존재자를존재자로서규정하는그것이다. (6, 11) 여기에서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가존재자를존재자로서생성하는궁극적원인이아님은물론이다. 오히려존재란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 이해하는기반 (6, 11) 이다. 즉존재는우리가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받아들이는선술어적조건이다. 그러기에존재는 그자신존재자가아니면서 (6, 11) 동시에언제나 존재자의존재 (6, 11. 혹은 9, 16) 가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말하는존재혹은범주는물론, 모든형이상학적존재개념들은하이데거가거론하는선술어적조건으로서의존재에대한이해로부터비롯된다. 따라서하이데거가거론하는존재는, 형이상학의다양한존재개념들을지배하는존재의단일한규정이된다. 그리고바로이러한점에서존재의보편성은성립한다. 그러나아리스토텔레스는형이상학적존재개념상호간의형식적이며명목상의통일만을말했을뿐이다양한형이상학적존재개념들이비롯되는존재의보편성은밝혀내지못한다. 즉그는존재의유비적통일만을말하고있다. 그는존재라는동사의상이한쓰임이실체를기반으로하여어떻게서로관련되는지를설명할뿐, 범주들의다수성자체를가능하게하는존재의단일한규정에관해서는아무런말도한바없다. 더욱이그이후의형이상학은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한발짝도전진하지못한채존재를자명한것으로간주하여존재는가장보편적이고가장공허한개념으로전락한다. 따라서존재는가장보편적개념이로되, 가장불명료한개념이다. 둘째, 존재에대한두번째선입견은존재의정의불가능성이다. 이에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한하이데거의태도는앞서와같이이중적이다. 존재는존재자와구별되는보편적개념이다. 존재의보편성은존재자의모든유적보편성을넘어선다. 따라서존재자를정의하는전통적방식이존재의정의에적용될수는없다. 하나의존재자를우선은그것이속한최근류 ( 最近類 ) 안에위치시켜놓고그러한류안에속한종들사이에서그존재자가갖는종차 ( 種差 ) 를덧붙여존재자를정의하려는방식이존재의정의에적용될리만무하다. 그러나이러한사실이확인시켜주는것은존재는존재자가아니라는점뿐이다. 따라서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면제될수없다. 존재자의차원에서는존재가정의될수없으므로, 오히려존재자를넘어선차원에서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은더욱더요구되는것이다. 셋째, 존재에대한세번째선입견은존재의자명성이다. 그러나존재가존재자의유적보편성과는근본적으로차원을달리하고, 그리하여존재자차원에서의정의가적용될수조차없다면, 어떻게존재가자명한개념일수있는가? 아마도우리는여기서의자명성을반어적 ( 反語的 ) 으로읽어야할것이다. 어찌보면철학은자명성에대한도전이다. 일찍이소크라테스가소피스트에게그들의무지를자각하게하여진리를향한대도 ( 大道 ) 를열었듯이. 우리는모든인식과언표에서, 존재자에대한태도에서, 자기자신에대한태도에서존재라는낱말을사용함은물론이거니와, 또한존재라는낱말이표현된문장도그야말로군말없이이해한다. 하늘은푸른빛이다., 혹은 나는기뻐하고있다 라는문장을재대로이해하지못하는이는아마도없으리라. 어느누구도이런문장들의의미를이해하지못한다고호소하지는않을것이다. 여기에서우리는존재개념의자명성을확인한다. 그러나과연이러한차원에서의자명성이참다운의미에서의자명성일까? 달리말하자면, 우리가이런문장들을이해하면서알고있는존재란과연무엇인가? 혹시어쩌면우리는존재개념에대해전혀모르면서도알고있다라는무지에빠져있는것은아닐까? 우리는존재의자명성을낱말그대로이해하지말아야한다. 자명성은하나의선입견에불과하다. 오히려존재자에대한우리의모든태도와존재에는아프리오리하게하나의수수께끼가놓여있다. 그러한수수께끼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우리가존재자와관계하는한이미어떤존재이해를가지고있건만존재이해자체가망각되고있으며또한따라서존재가이해되는 거기 즉존재의의미가밝혀지지않은채어둠에묻혀있다라는현실이다. 따라서우리의평균적존재이해는자명하기는커녕오히려막연하다. 우리의평균적존재이해가능성은몰이해가능성을드러낼뿐인것이다. 이로써존재물음의필요성은확인된셈이다. 그런데하이데거는 ꡔ형이상학입문ꡕ에서존재물음의필요성을다시거론한다. 아마도존재역사적지평에서존재물음의필요성을새롭게각인하려했던것이하이데거의의도인듯하다. 이논의는존재물음의필요성에대한우리의이해를도와준다. 단우리는이논의를보론 ( 補論 ) 으로돌려살펴보고자한다. [ 읽기자료 ] 우리시대에형이상학을다시수긍하게된것을진보라고간주한다하더라도, 앞에서언급한존재에대한물음은오늘날망각속에빠져있다. 그럼에도사람들은 ΥιΥαντομακία περὶ τ ης οὐσίας[ 존재를둘러싼거인들의싸움 ] 을새로불붙이려는노력을안해도되는것으로간주하고있다. 그러나앞에서인용된물음은결코임의적인것이아니다. 이물음은플라톤과아리스토텔레스의연구를숨가쁘게하였으나, 그이후로는 실제적탐구의주제적물음으로서는 침묵해버리고말았다. 이두사람이이룩한성과는여러가지첨삭과덧칠을거쳐헤겔의 ꡔ논리학ꡕ에까지일관되어왔다. 그리하여일찍이는사유의최고의긴장속에서비록단편적이고초보적일망정현상들로부터쟁취되었던것이오랫동안진부한것으로되고말았다. 그뿐만이아니다. 존재해석을위한그리스적단초들의지반위에서하나의독단, 즉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은부질없는것이라고선언할뿐아니라더욱이이물음은등한히해도좋다고시인하는독단이형성되었다.(2, 5-6) 전통은전래된것을자명한것으로받아들이기때문에근원적원천, 즉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전승적범주들과개념들이부분적으로는진정한방식으로거기에서나온그근원적원천으로가는통로를막아버린다. 더욱이전통은그러한유래를일반적으로잊어버리게한다. 전통은원천으로의그런귀환의필요성을이해하는것조차불필요하게만든다.(21, 33) 1. 존재는가장보편적개념이다. ( ) 제일먼저인지되는것은존재이며, 존재의이해는, 사람들이존재자에있어서파악하는모든것속에그때마다이미함축되어있다. 그러나존재의보편성은유 ( 類 ) 의보편성이아니다. 존재는, 존재자가유와종 ( 種 ) 에따라개념적으로분절되는한, 존재자의최고영역에한정되지않는다 : οὔτε τὸ ὄν Υένος[ 존재는類가아니다 ]. 존재의보편성은모든유적보편성을넘어선다. 존재는중세존재론의명칭에따르면초월자이다. 사상적 [ 事象的 ] 최고유개념의다양성과구별되는이초월적보편자의통일을아리스토텔레스는이미유비 ( 類比 ) 의통일로서인식하였다. 플라톤의존재론적문제제기에전적으로의존했음에도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이유비의통일을발견함으로써존재의문제를원칙적으로새로운지반위에세웠다. 그러나그도물론이범주적연관들의어두움을밝히지는못하였다.(3, 6-7) 2. 존재개념은정의할수없다. 이것을사람들은이개념의최고의보편성에서추론하였다. 만약정의는最近類와種差에의해이루어진다라고한다면그것은옳다. 사실존재는존재자로서파악될수는없다. ( ) 존재에는어떤성질도덧붙일수없다. 존재에존재자를귀속시키는방식으로는존재는규정될수없다. 존재는정의를통해상위개념으로부터도출될수도없고, 하위개념에의해서술될수도없다. 그러나그렇다고해서존재가더이상아무런문제도제기하지않는다고결론지을것인가? 결코그렇지않다. 여기서귀결되는것은존재는존재자와같은것이아니라는것뿐이다.(4, 8) 3. 존재는자명한개념이다. 모든인식과언표에서, 존재자를대하는태도에서, 자기자신에대한태도에서, 존재 [ 있다 ; 이다 ] 가사용되거니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그때그표현은군말없이이해되고있다. 하늘은푸른빛이다 ; 나는기뻐하고있다따위는누구나이해하고있다. 그러나이러한평균적이해 [ 가능성 ] 는이해하고있지못함을보여줄뿐이다. 그러한이해는존재자로서의존재자에대한모든태도와존재에는아프리오리하게하나의수수께끼가놓여있음을보여준다. 우리가그때마다이미존재이해를가지고살고있건만존재의의미는동시에어둠속에묻혀있다는사실은, 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반복해야할원칙적인필요성을보여준다.(4, 8) [ 보론 ] 오늘날존재는어떤형세인가? 존재자의유적보편성을넘어서있으나그보편성이해명되지않았고, 오히려정의할수없는것으로치부되었으며, 그러기에결국에는망각되어버린존재는, 또한그럼에도불구하고, 은닉된채로인간을사로잡고있는존재는어떤형세일까? 아마도형이상학시대의마지막대변자인니체야말로존재망각시대의마지막증인이아닐는지. 이제우리는이러한논의를통해존재물음의원칙적필요성 (Notwendigkeit) 이구체적으로어떤의미를갖는가를알게될것이다. 손으로잡으려해도잡히지않고빠져나가는존재의공허함을니체는 > 증발하는실재성의최후의연기 < 라고명명한다. 형이상학의역사속에서마침내존재는아지랑이처럼사라진다. 그러나이러한사라짐은진정한의미에서의사라짐이아니다. 인간이존재자의한복판에서존재자와관계맺고존재자에의존한채살아가는한, 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만나는근원적원천으로서의존재가사라질수는없는것이다. 오히려존재는한민족의역사적삶을좌우해왔던 정신적운명 이다. 한민족이어떠한존재이해를갖느냐에따라그민족의역사적삶의모습은달라지니까. 존재물음이서구의정신적운명을저울질하는사건이라한다면아마도많은이들은이를과장으로여길는지모른다. 그러나한민족이존재를어떻게이해하느냐에따라그민족의역사적삶이펼쳐진다면, 존재물음은, 비록지극히멀고또한지극히간접적으로나마, 한민족의역사적결단과깊은관계를맺고있다. 따라서우리시대의삶을근본적으로좌우하는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재가아지랑이처럼공허한개념으로치부되어버린다면, 즉존재이해가망각되어버린다면, 그러한현실은하나의곤경 (Not) 이되는것이다. 여기에서우리는하이데거가말하는새로운필요성 (eine neue Notwendigkeit) 의의미를알아들어야한다. Notwendigkeit, 즉필요성이란 곤경 (Not) 에 대처함 (wendigkeit) 이다. 더욱이이러한필요성은이제까지서구의역사를지배해왔던 가까이다가와있는가운데지속함 으로서의존재, 다시말하면, 서구역사의시원을열고마침내는존재자를눈앞의것으로지배하는현대과학기술로완성된존재이해를극복하는사건이기에 새로운 필요성인것이다. [ 읽기자료 ] 그러나존재는거의무 ( 無 ) 와같은정도로혹은궁극적으로는완전히무처럼찾아낼수없는것으로남아있다. 그렇다면 > 존재 < 라는낱말은결국공허한낱말에불과하다. ( ) 그것의의미는비현실적인아지랑이다. 그렇기때문에니체가존재와같은 > 최고의개념 < 은 > 증발하는실재성의최후의연기 <( 偶像의薄命 Ⅷ, 78) 라고명명할때, 그는결국지당했다. ( ) > 사실이제까지존재가오류라고하는것이상으로더소박한설득력을가진것은아무것도없었다 <(Ⅷ, 80) > 존재 < - 하나의아지랑이그리고하나의착오? ( ) 니체는진리를말하는가? 아니면그자신은단지오랜착오와태만의마지막희생자일뿐이며, 이러한희생자로서또다른새로운필요성 (eine neue Notwendigkeit) 의아직알려지지않은증인인가?(ꡔ형이상학입문 ꡕ, 39-40쪽 ) 존재는하나의단순한낱말에불과하고그것의의미는아리랑이정도인가, 아니면 > 존재 < 라는낱말로명명된것이서구의정신적운명을간직하고있는가? (ꡔ형이상학입문ꡕ, 45-46쪽 ) 4) 존재물음의형식적구조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우리각자가어떤존재이해를갖느냐에따라존재자에대한해석이달라진다면, 또한존재가우리에게전수된형이상학적존재개념을가능하게하는감추어진원천적근원이라면, 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은우리시대의운명을결정짓는기초적물음이된다. 존재물음은기초적물음으로서의당위성을확보한다. 이제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이제기되어야한다. 그러나존재물음도하나의물음인이상, 존재물음이하나의두드러진물음으로제기되기위해서는, 우선은물음일반의형식적구조에대한해명이요구된다. 우리는어떤사태가문제될때그문제를해결하기위해물음을제기한다. 물음은일종의탐구로서, 인간의하나의태도이다. 그런데탐구는진공상태에서이루어지는것이아니다. 모든탐구는문제가되는사태로부터즉그탐구주제로부터선행적으로방향을규정받는다. 우리는이러한선이해에입각해탐구대상을선택하며, 또한마찬가지로탐구대상에대한선이해에입각해해당탐구대상을철저히파헤쳐탐구주제에관해우리가밝혀내고자했던본질을규명한다. 예를들어보자. 오늘의탐구주제는인간복제이다. 아직인간복제가실현되지는않았지만우리는복제의비밀에대해어느정도의선이해는갖고있다. 이러한선이해에따라우리는인간과신체구조가유사한특정동물을탐구대상으로선택한다. 그러고는또한마찬가지로그특정동물에대한선이해에입각해그특정동물을각종실험을통해철저히파헤쳐인간복제의비밀을밝혀내고자시도한다. 그러니까탐구로서의물음의형식적구조는 3마디로구성된다. 첫째, 탐구로서의물음에는탐구주제가있다. 탐구주제가그물음에서 물어지는것 이다. 둘째, 탐구로서의물음에는탐구주제를해명하기위해선택된탐구대상이있다. 탐구대상이그물음에서 물음이걸리는것 이다. 셋째, 탐구로서의물음에는탐구를통해밝혀내고자하는탐구주제의본질 ( 혹은비밀 ) 이있다. 탐구주제의본질이그물음에서 물어서밝혀지는것 이다. 따라서물음일반의형식적구조는 물어지는것, 물음이걸리는것, 물어서밝혀지는것 으로구성된다. 일반적으로우리가물음이라칭하는것은 존재자에관한물음 이다. 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런데우리의관건은존재물음이다. 존재물음은기초적물음이다. 존재물음은존재자에고정된시각을넘어서, 존재자에관한물음을근거짓는다. 존재물음은인간과존재자의만남이이루어지는선술어적조건인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다. 그러니까존재물음도물음인이상물음일반의형식적구조를공유하되, 그형식적구조의내용은달라진다. 존재물음도허공에서수행되지않는다. 마치존재자에관한물음이존재자에대한선이해를전제하듯, 존재물음도존재에관한선이해를전제한다. 만약우리가존재에관한선이해를갖고있지않다면, 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명시적으로제기되지않을뿐더러, 하물며존재의의미를개념화하려는어떠한의도도약동하지않을것이다. 그러나우리는분명히어떤존재이해속에서움직인다. 우리가존재자와관계맺는한, 존재이해는, 은닉된채로나마, 생생하게전개된다. 따라서비록존재이해가아직은의식적으로반성되지않았고, 또한전승된형이상학의존재개념들과뒤섞여있고, 또한형이상학의역사를통해망각되어있기는하나, 여하튼우리가갖고있는 평균적이고막연한존재이해 는하나의 현사실 로서존재물음을재촉하는적극적현상이된다. 이러한현사실을실마리로, 우리는존재를겨냥하여물음을던져존재의의미를밝혀내고자한다. 그렇다면이제존재물음의형식적구조는명료하게정식화된다. 존재물음에서 물어지는것 (Gefragtes) 이 존재 (6, 11) 라면, 물어서밝혀지는것 (Erfragtes) 은 존재의의미 (6, 12) 이며, 또한 물음이걸리는것 (Befrates) 은존재를막연하게나마이해하면서존재의의미를개념화하려고물음을시도하는우리들인간으로서의 존재자자신 (6, 12) 이된다. 여기에서우리는존재자에관한물음과존재물음의극명한차이점을보게된다. 존재자에관한물음에서 물음이걸리는것 (Befrates) 은존재자이다. 아마이제까지의모든과학은그것의탐구주제를해명하기위해존재자에게물음을걸어왔다. 여기에서는물음의주체와물음의객체가이원화된다. 자연과학과사회과학이그럴뿐더러, 인간의생명의신비를풀어내고자하는유전공학이나의학도마찬가지다. 거기에서도, 즉설령인간이인간에대해물음을걸었을때조차도, 묻는자로서의인간과물음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걸리는자로서의인간은분명히이원화된다. 그러나존재물음에서는묻는자로서의인간이바로묻는자인자기자신에대해물음을걸고있다. 여기에서는묻는자와물음이걸리는자가동일하다. 존재물음에서는물음의주체와물음의객체가일원화된다. 존재물음에서는묻는자로서의인간이탁월한위치를차지한다. 따라서우리는묻는자로서의인간을다른존재자와구별하기위해특정한술어를선택한다. 그술어가바로현존재 (Dasein) 이다. Dasein을우리말로그대로옮기면 거기에 (Da) 있음 이다. 그런데여기서의 Da는단지공간적의미만을갖지않는다. 오히려오로지인간에게만존재가개시 ( 開示 ) 되어있음을말하는동사적의미를갖는것이 Da이다. 막연하게나마, 즉전 ( 前 ) 존재론적으로나마존재를이해하는것이우리인간의존재양상이다. Da는인간에게만존재가현시 ( 現示 ) 되고있음을나타내는전문적술어이다. 그러기에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을제기할때물음이걸려야할존재자는바로현존재이다. 정확히말하자면, 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을묻기에앞서우리는우선현존재를물음의대상으로확립해야한다. 현존재를그것의존재 ( 구조 ) 에있어서물어, 이를근거로, 궁극적으로는존재의의미를해명하려는것이우리의전략이된다. 그런데혹자는이를두고순환논증이라비판하기도한다. 그러나이러한비판은존재물음을잘못이해한결과이다. 순환논증은연역적논리에나해당한다. 그러나존재물음에는아무런연역도없다. 우리의전략은막연한평균적존재이해를지닌현존재의존재 ( 구조 ) 를분석하여현존재에게서존재이해가어떻게가능한지를밝혀냄으로써존재의의미를증시하고자하는것이다. 즉우리의전략은연역이아니라현상학적으로있는그대로의것을밝혀내고증시하는것이다. 따라서존재물음은철저히현존재분석론으로수행된다. 즉존재물음은현존재의막연한전 ( 前 ) 존재론적이해를철저히규명하여존재의의미를읽어내고자하는것이다. [ 읽기자료 ] 물음은 에대한물음 으로서물어지는것을가지고있다. 에대한물음 이란어떤방식으로든 에 [ 조회해서 ] 물음을거는것이다. 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라서물음에는물어지는것이외에물음이걸리는것 [ 존재자 ] 이속해있다. 연구적물음, 즉특수한이론적물음에있어서는물어지는것이규정되고개념화되어야한다. 물어지는것에는따라서본래지향되는것, 즉물어서밝혀지는것이있으며, 물음이여기까지도달하면그목표는달성되는것이다.(5, 9-10) 이러한평균적이고막연한존재이해는하나의현사실이다.(5, 11) 수행되어야할물음에서물어지는것은존재이다. 존재는존재자를존재자로서규정하는그것이다. 존재자가어떻게설명되든존재자는존재를기반으로해서그때마다이미이해되고있다. 존재자의존재는그자신존재자가아니다. 존재문제의이해에있어서최초의철학적진보는옛날얘기를하지않는데있다. 다시말하면, 그진보는마치존재가존재자일수도있는성격을가진양, 존재자를다른또하나의존재자로소급해서그 [ 발생적 ] 유래에좇아규정하지않는데있다. 그러므로물어지는것으로서의존재는존재자의발견과는본질적으로구별되는독특한증시방식 ( 證示方式 ) 을요구한다. 따라서물어서밝혀지는것, 즉 존재의의미 도고유한개념성을요구한다. 그러나이개념성은다시존재자를의미상으로규정하는개념과는본질적으로구별된다.(6, 11-12) 존재가 물어지는것 이고또존재가존재자의존재를의미하는한, 존재물음에서물음이걸리는것은존재자자신이다. 이존재자는말하자면자기의존재를겨냥해서캐물음을당하고있는셈이다. 그러나존재자가자기존재의성격들을왜곡되지않게제시할수있어야한다면, 그존재자는자기측에서미리부터있는그대로접근가능하도록되어있어야한다. 존재물음은물음이걸려지는것을고려해서존재자에이르는올바른접근방식의획득및그접근방식의선행적확보를요구한다.(6, 12) 존재에대한물음이명시적으로제기되고물음자체가완전히투명하게수행되어야한다면, 이물음을수행하기위해필요한것은이제까지밝힌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바에따라존재를겨냥해서 [ 그 ] 의미를이해하고개념적으로파악하는 [ 올바른 ] 방식의구명과본보기가되는존재자를올바로선택할수있는가능성을마련하고, 그존재자에이르는방식을찾아내는일이다. 겨냥, 이해, 개념, 파악, 선택, 접근은물음을구성하는태도들이며, 이것들은그자체특정한존재자, 즉묻는자인우리들자신이기도한바로그존재자의존재양상 ( 存在樣相 ) 들이다. 존재물음의수행은따라서존재자 묻는존재자 를그존재에있어서통찰함을의미한다. 이러한물음을묻는것은존재자자신의존재양상으로서, 그존재자에있어서 물어지는것, 즉존재에의해본질적으로규정된다. 이존재자, 즉무엇보다도묻는다는존재가능성을가지고있는존재자를우리는현존재 ( 現存在 ) 라고술어화 ( 術語化 ) 한다. 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을분명하게통찰할수있도록제기하기위해서는, 어떤존재자 ( 현존재 ) 를그존재의점에서선행적으로적합하게구명하는것이요구된다.(7, 13) 존재일반의의미에대한문제제기속에는순환논증이있을수없다. 존재의물음에대답하는데문제가되는것은연역적으로근거를대는일이아니라, 근거를증시 ( 證示 ) 하고밝히는일이기때문이다.(8, 14) 존재의미의해석이과제가될때, 현존재는일차적으로물음이걸려져야할존재자일뿐아니라, 또한이물음속에서물어지고있는그것에대해그때마다이미자신의존재에있어서태도를취하고있는존재자이다. 그렇다면존재물음이란현존재자신에속하는본질적존재경향, 즉전 [ 前 ] 존재론적존재이해의철저화이외의다른것이아니다.(14-15. 23) 5) 존재물음의우위존재물음은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다. 이러한존재물음은고작가장일반적인보편성따위나논하는허공에뜬사변적물음이아니다. 오히려존재물음은 가장원리적이고가장구체적인물음 (9, 16) 으로서실증과학및전승된존재론에대해존재론적우위와존재자적우위를갖는다. 존재자적 (ontisch) 이란존재자와의관련을, 존재론적 (ontologisch)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란존재자와의관련을가능하게하는차원을의미한다. 그래서통상적으로는 ontisch를 존재적 으로번역한다. 이번역어는 존재론적 (ontologisch) 과쌍을이뤄양자의관계를선명히보여준다. 그러나 존재적 이란번역어는마치존재와의관련을의미하는듯한오해를사기쉬우므로, 여기에서는 존재자적 이라옮기기로한다. 존재자적 과 존재론적 의의미를다시한번명확히한정하면이렇다. 존재 [ 자 ] 적 (ontisch) 과존재론적 (ontologisch) 의구별은소박하게말하면사실 ( 事實 ) 과논리 ( 論理 ) 의그것이다. 존재자를묘사, 서술, 취급, 연구하는것은 존재 [ 자 ] 적 이고, 존재자를그것에고유한존재를겨냥해서해명, 해석하는것은 존재론적 이다. 존재자를대상으로서연구하는과학은 존재 [ 자 ] 적 이고, 그과학의가능근거를탐구하는철학은 존재론적 이다. 이점에서보면 존재론적 은 초월론적 이라고할수있다. 존재론을표방했음에도불구하고전승적존재론은존재자론에머물렀다는것이하이데거의지적이다. ( 표준번역본, 15, 역주 h) (1) 존재물음의존재론적우위존재물음의존재론적우위란, 존재물음이존재자의본질적구조를탐구하는실증과학은물론, 실증과학의토대를근거짓는종래의전승된존재론에대해존재론적우위를지님을의미한다. 여기에서우리는실증과학, 전승된존재론 ( 혹은영역존재론 ), 그리고존재물음이맺고있는정초 ( 定礎 ) 의연관을보게된다. 앞에놓여있는것자체 (Positum), 즉존재자를다루는과학은실증과학이다. 실증과학은존재자의특정한사상영역 ( 事象 1 域, Sachgebiete) 을탐구대상으로설정한다. 정확히말하면, 실증과학의탐구대상은존재자의특정한사상영역안에놓여있다. 예컨대자연, 역사, 공간, 생명, 현존재, 언어등등이존재자의특정한사상영역에해당한다. 따라서어떤사상영역을대상화하느냐에따라, 실증과학은자연과학, 역사학, 기하학, 생물학, 인간학, 언어학등으로분류된다. 또한실증과학이물음의방향을더세분화함에따라, 특정한사상영역은특정한구역 (Bezirk) 들로, 특정한구역들은개별적분야 (Feld) 들로나뉘어진다. 예컨대자연이라는사상영역은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리적-물질적무생물적자연과생물적자연이라는구역으로나뉘어지고또생물적자연의구역도식물계와동물계라는개별적분야로나뉘어진다.(ꡔ 현상학의근본문제ꡕ, 17쪽참조 ) 우리는흔히실증과학의진보를그과학이자신에게이미주어진사상영역안에서이룩한성과를보고판별한다. 그러나이러한통념은실증과학의진정한진보를잘못이해한단견 ( 短見 ) 이다. 오히려수학에서의형식주의와직관주의의싸움, 물리학에서의고전물리학과상대성이론의대립, 생물학에서의기계론과생기론의갈등, 그리고역사학에서의문헌사 ( 文獻史 ) 와문제사 ( 問題史 ) 의대결에서그렇듯, 실증과학의참된진보는그실증과학이대상화하는사상영역의근본틀에대한물음에서성취된다. 즉실증과학의참된진보는각실증과학이자신의토대에대한 > 정초위기 < 를극복하였을때가능하게된다. 그런데이러한 > 정초위기 < 의극복은이미실증과학의손을떠난문제이다. 이제우리는여기에서실증과학의태생적한계및존재론의역할을보게된다. 실증과학은이미주어진존재자의특정한사상영역 ( 事象 1 域 ) 을해당과학의기본개념을향해기투함으로써탐구의주제로대상화한다. 그러나실증과학은사상영역의존재구획에대한, 다시말하자면, 그사상영역의존재의근본틀에대한존재론적이해를결여한다. 즉실증과학은존재구획에대한학문이전의경험과해석을통해생겨난기본개념을전제할뿐그기본개념의본질을한정하지못한다. 예컨대근대자연과학은운동, 공간, 시간, 물질, 속도등의기본개념을향해자연을기투함으로써자연을탐구주제로대상화하나, 근대자연과학의선구자인갈릴레이조차운동, 공간, 시간, 물질, 속도등의기본개념을고대철학이나스콜라철학으로부터물려받아이를통해자연을해석했을뿐, 기본개념자체의본질은묻지않는다. 실증과학의기본개념은해당과학의모든주제적대상들의근저에놓여있는사상영역 ( 事象 1 域 ) 을선행적으로이해하게하는근본지평이다. 기본개념은해당사상영역의존재틀에대한선행적존재이해가분절된개념으로서각실증적개별과학을근거짓는토대가된다. 하지만실증적개별과학은기본개념에대한진정한증시와정초를결여한다. 그러나철학, 다시말해존재론은과학의토대가되는기본개념을진정하게증시하고정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초하기위해과학의사상영역자체를선행적으로연구한다. 이를통해존재론은개별과학의사상영역자체를선행적으로근거짓는기본개념을창출하는역할을담당한다. 따라서존재론은실증적개별과학에선행하면서이를정초한다. 존재론의이러한위상은오늘날분석철학에서말하는철학의역할과는사뭇비교된다. 존재론은실증적개별과학을절뚝거리며뒤따라가그것의성과를논리적으로정리하는작업이아니라실증적개별과학이비로소실증적개별과학일수있는토대를정초한다. 플라톤과아리스토텔레스의작업이이를입증한다. 각실증적개별과학에는해당사상영역에대한선행적존재이해를분절한존재론이전제된다. 그런데이런의미의존재론은, 엄밀하게보자면, 해당존재자영역 (Region) 의존재이해를분절한영역존재론 (Regionale Ontologie) 이된다. 예컨대, 자연과학에는자연에대한영역존재론이, 생물학에는생 ( 生 ) 에대한영역존재론이, 그리고역사학에는역사에대한영역존재론이이미도사리고있다. 이런의미에서영역존재론은개별과학을선행적으로정초한다. 그러나영역존재론은아직넓은의미에서의존재론에불과하다. 왜냐하면각영역존재론은존재자의특정한해당사상영역의 존재 에대해, 다시말해각영역의존재자의 존재 에대해말할뿐, 이렇게다양하게말해지는 존재 가본디무엇을 의미 하는가를논구하지못하기때문이다. 따라서우리는영역존재론까지도가능하게하는존재물음의역할을주목해야한다. 존재물음은실증과학을정초할뿐더러궁극적으로는영역존재론의가능조건이된다. 다시말하자면, 존재물음은 그때마다언제나이미어떤존재이해속에서움직이고있는학문들의가능성의아프리오리한조건만이아니라, 존재 [ 자 ] 적학문들에선행해서이학문들을기초지워주는존재론자체의가능성의조건 (11, 18) 이된다. 그러니까존재물음은 다른모든존재론이거기에서비로소발원할수있는기초존재론 [Fundamentalontologie] (13, 21) 이된다. 존재물음은기초존재론이다. 이로써존재물음의존재론적우위가확증된다. 실증적개별과학은영역존재론 ( 넓은의미의존재론 ) 에, 그리고영역존재론은기초존재론에근거한다.(ꡔ칸트의순수이성비판에관한현상학적해석ꡕ, 32-39쪽참조 )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읽기자료 ] 학문적 [ 과학적 ] 연구가수행하는사상영역 [ 事象 1 域 ] 의부각과최초의확정은소박하고생경하다. 이 [ 사상 ] 영역을그근본구조에있어서확립하는일은어떤방식으로든이미존재구획 [ 存在區劃 ] 에대한학문이전의경험과해석을통해수행된다. 그리고이존재구획안에서사상영역자체가한정된다.(9, 16) 기본개념들이란과학의모든주제적대상들의근저에놓여있는사상영역을선행적으로이해하게하고, 또모든실증적연구를주도적으로이해하게하는규정들이다. 따라서이 [ 기본 ] 개념들이진정한증시와정초를갖게되려면, 사상영역자체를 [ 그개념에 ] 상응해서선행적으로철저히연구해야만한다. 그러나사상영역이어느것이나존재자자체의구역에서얻어지는한, 기본개념을선행적으로창출하는그런연구는이존재자를그존재의근본틀을향해서해석하는것에다름아니다. 그런연구는실증과학에선행해야하며, 또선행할수있다. 플라톤과아리스토텔레스의작업이그것을증명한다.(10, 17) 학문의본래의활동은많든적든기본개념에대한근본적이고, 활동자체를통찰하는수정에서연출된다. 학문의수준은그학문이그기본개념의위기에어느만큼견딜수있느냐하는데서규정된다. 학문이그런내재적위기를만날때는물음이걸리는사상 [ 事象 ] 자체와실증적으로연구하는물음과의관계가동요하게된다. 오늘날학문의여러분과에서연구를새로운기초위에옮겨놓으려는경향이도처에서생겨나고있다. (9, 16) 학문의정초는그것이특정한존재영역속으로앞질러뛰어들어가서그것을맨먼저그존재틀에있어서개시하고, 획득된구조를실증과학으로하여금물음을통찰하는지침으로서사용할수있게하기때문에그런의미에서생산적논리학이다. 그리하여예컨대철학적으로일차적인것은, 역사학의개념형성의이론도, 역사학적인식의이론도아니고, 역사학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대상으로서의역사에대한이론도아니며, 본래적으로역사적인존재자를그역사성에입각해서해석하는것이다.(10, 17-18) 그런물음은 가장넓은의미로받아들여진, 즉존재론적제방향과제경향에의존하지않는존재론은 그자신아직도하나의실마리를필요로한다. 존재론적물음은물론실증과학의존재 [ 자 ] 적물음에비하면훨씬근원적이다. 그러나존재론적물음은, 존재자의존재에대한그탐구가존재일반의의미를논구하지않고방치할경우에는그자신소박하고불투명한것으로끝나고만다. 그리고여러가지가능한존재방식을연역적으로구성하지않는일종의계보학 ( 系譜學 ) 이라는존재론적과제야말로, 존재 라는말로써우리는도대체본디무엇을의미하는가에대한예비적이해를필요로한다.(11, 18) 모든존재론은, 비록그것이아무리풍부하고견고하게완결된범주체계를사용한다하더라도, 그존재론이존재의의미를미리충분히해명하고이해명을자신의기초적과제로서파악하지않는다면, 근본적으로맹목적이며자신의가장고유한의도를왜곡하는것이다.(11, 18) (2) 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존재물음은실증과학및종래의제존재론에대해그것들을정초한다라는의미에서존재론적우위를갖는다. 그러나이에비해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에대한논의는다소우회적이다. 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는존재물음이실증과학이나전승된존재론에대해존재자의차원에서우위를갖는다는뜻이다. 그러나이를해명하기위해우리는앞서논의한바있던존재물음의형식적구조를상기해보아야한다. 존재물음에서는현존재가두드러진역할에봉착한다. 존재물음은평균적존재이해를지닌현존재가자신의존재구조를분석하여존재이해가어떻게가능하며그로써존재의의미가무엇인가를증시하는물음이다. 존재물음은묻는자와물음이걸리는자가이원화된실증과학이나혹은전승된영역존재론과는달리, 묻는자로서의현존재가바로자기자신인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자체에게물음을걸어존재의의미를구명하는물음이다. 즉존재물음에서는묻는자인현존재자신이무엇보다먼저존재론적으로충분히연구되어야할존재자로서등장한다. 따라서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는비현존재적존재자에대한현존재의우위가입증될때우회적으로확인된다. 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는현존재의우위에다름아닌것이다. 우리는현존재의우위를현존재의존재자적우위, 현존재의존재론적우위, 그리고현존재의존재자적-존재론적우위라는세가지의관점에서입증할것이며, 이로써존재물음의존재자적우위가확인된다. 1 현존재의존재자적우위우리는앞서, 무엇보다묻는다는존재가능성을가진인간의존재양상을현존재라고특징지은바있다. 또한현존재란존재자중에서유일하게존재가현시되어있는존재자를이름짓는전문술어라고도규정한바있다. 이제우리는이런논의를바탕으로현존재를보다구체적으로규명함으로써현존재의존재자적우위를입증하고자한다. 존재자는크게현존재와비현존재적존재자로구분된다. 또비현존재적존재자는무생물과인간이아닌다른생명체즉동물과식물로구분된다. 그런데비현존재적존재자는자기의존재를문제삼지못한다. 생명이없는무생물은물론이거니와, 생명을지닌동물이나식물도엄밀한의미에서는자신의존재를선택하지못한다. 물론동물이나식물이어느정도는자신의존재를선택한다는조짐을보이기도하나, 그것은다만자기의보존과번식이라는본능적차원에서이루어지는행동일뿐, 스스로자신의존재를문제삼고선택하는행위라고는볼수없다. 그렇기에무생물은물론, 인간이아닌다른생명체의경우에는이미그것의본질이, 즉무엇-존재 (Was -sein) 가결정되어있다. 예를들어, 소나무는소나무로서, 혹은돼지는돼지로서의본질이이미결정되어있다. 우리는소나무나돼지가스스로자신의존재를선택하여새로운삶을일구었다는이야기를들은바없다. 그러나인간현존재의경우는다르다. 현존재는자신의존재를문제삼는다. 예를들어사무실에늦게까지남을지, 혹은가족과함께시간을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낼지의여부를현존재는스스로선택한다. 현존재는자신이어떤종류의인간인지를스스로선택한다. 그러기에현존재는여타의다른비현존재적존재자처럼이미그것의본질이결정되어있지않다. 오히려현존재는끊임없이자신의존재가능을스스로펼쳐나간다. 물론현존재의존재가능은그현존재가던져져있는상황의제약은받는다. 21세기를살아나가는현존재가 5세기대륙을호령하던고구려무사로서의존재가능성을구현하진못한다. 그러나주어진상황안에서스스로자신의존재를문제삼고선택하는자가현존재다. 물론현존재가언제나자기의고유한존재를선택하는것은아니다. 오히려우선대개현존재는자기의고유한존재를외면한채일상적자기로서살아간다. 남들의시선을의식하며일상성안에서고뇌하고부대끼는것이현존재의일상적모습이다. 그러나그럴경우에도현존재에게항상문제되는것은자신의존재이다. 설령일상적현존재가본래적자기를상실한채비본래적자기로서살아간다고해도, 거기에서문제되는존재는자기의존재이다. 현존재는각자성 ( 各自性 ) 으로존재한다. 또한현존재가본래적자기를상실한채비본래적자기로서살아가는것도, 엄밀히말해서는, 현존재가본질상본래적자기일수있는한에서만가능하다. 그래서우리는현존재가문제삼는존재에대해특별한이름을부여한다. 그이름이바로실존 (Existenz) 이다. 여기서의실존이전승된존재론에서말하는 있음 (existentia) 과구별됨은물론이다. 있음 (existentia) 은, 일반 ( 전승적 ) 존재론적으로보자면, 그저눈앞에있음즉전재성 ( 前在性, Vorhandenheit) 을의미한다. 인간현존재이외의존재자는전재 ( 前在 ) 한다. 그들에게는자신의존재가문제되지않는다. 그러나현존재에게는언제나자기의존재가문제된다. 이세상에살고있으면서자기의존재자체를최대의문젯거리로삼는삶의태도 를일컬어우리는실존이라명명한다. 오직현존재만이실존한다. 이로써현존재는, 존재세계의 예외자 ( 표준번역본, 64, 역주 b) 로서, 여타의다른비현존재적존재자에대해존재자적우위를차지한다. [ 읽기자료 ]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는다른존재자들사이에서단순히출현하기만하는그런존재자가아니다. 도리어현존재는자기의존재에있어서이존재자체를문제삼는다는 [ 즉, 스스로있으면서이있음자체를문제삼는다 ] 점에서존재 [ 자 ] 적으로탁월하다.(12, 19) 현존재가그것에대해이러저러하게태도를취할수있고, 또언제나어떤방식으로든태도를취하는그존재자체를우리는실존이라고부른다.(12, 20) 이존재자의본질은그가가능존재라는데있다. 이존재자가 무엇임 (essentia ; 본질 ) 은일반적으로그것에관해말해질수있는한, 그존재자의 있음 (existentia) 으로부터파악되지않으면안된다. 여기에서곧다음과같은것이존재론적과제로지적되지않을수없다 : 우리가이존재자의존재를위해실존 ( 實存 ) 이라는명칭을선택한다하더라도, 이명칭은 existentia라는전승적술어의존재론적의미를가지고있지않으며, 또가질수도없다 ; existentia는존재론적으로는전재적존재 ( 前在的存在 ) 와같은것이어서, 현존재의성격을지닌존재자와는본질적으로일치하지않는존재양상을의미한다. 혼란을피하기위해, 우리는 existentia 라는명칭에대해서는언제나이를해석해서전재성 ( 前在性 ) 이라는표현을사용하고, 실존 은존재규정으로서현존재에게만지정한다.(42, 63-64) 이존재자에게그의존재에있어서문제되는그존재는그때마다나의존재이다. 따라서현존재는전재적 [ 前在的 ] 존재자의한유 ( 類 ) 의사례 ( 事 3) 나본보기로서존재론적으로파악될수는없다. 전재적존재자에게는자신의존재는아무래도상관이없는것이며, 자세히살펴보면이존재자 [ 전재자 ] 에게있어서자신의존재는이래도그만이고저래도그만인채로그냥있다. 현존재에관해언급할때는, 이존재자 [ 현존재 ] 가지니고있는각자성이라는성격상, 내가있다, 너가있다고인칭대명사를가지고말하지않으면안된다.(42, 64)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자기의존재에있어서이존재자체가문제되는그런존재자는, 자기의존재에대해그것이자기에게는가장고유한가능성이라는태도를취하고있다. 현존재의존재는그때마다자기의가능성이지만, 그가능성을전재적 [ 前在的 ] 존재자의성질처럼그냥가지고있는것이아니다. 그리고현존재는본질상그때마다자신의가능성으로존재하기때문에, 이존재자는자기의존재에있어서자기자신을선택할수도, 획득할수도, 상실할수도있으며, 또는결코획득하지못하거나단지외견상으로만획득할수도있다. 현존재가자기를상실하기만하고아직자기를획득하지못할수도있는것은, 현존재가자신의본질상가능적이고본래적인자일수있는한에서, 즉현존재가자신을자기것으로하는자인한에서가능하다. 본래성과비본래성이라는두가지존재양상은 이표현은엄밀한낱말의뜻에따라술어로선택된것이다 현존재가일반적으로각자성에의해규정된다는데근거한다.(42-43) 2 현존재의존재론적우위현존재가자신의존재를문제삼을수있는까닭은현존재가이미자신의존재를어떤방식으로든이해하기때문이다. 오직현존재만이자신의존재를이해하기에그때마다자신의실존을선택한다. 그러므로존재이해는현존재를특징짓는하나의존재규정성이된다. 또한우리는현존재의존재이해를, 달리말해, 실존적 (existenziell) 이해라고도명명한다. 이로써여타의다른비현존재적존재자에대한현존재의존재론적우위가입증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현존재의존재이해가, 다시말해실존적이해가존재론적으로개념화되었다는것은아니다. 현존재의실존적이해는아직은막연한평균적이해에불과하다. 달리말하면, 현존재의실존적이해는전 ( 前 ) 존재론적이해에해당한다. 하지만이러한현상이단지소극적인것에그치진않는다. 오히려현존재의전존재론적존재이해를개념화함으로써만제존재론은가능하게된다. 따라서현존재의전존재론적이해즉현존재의평균적이해는적극적현상이된다. [ 읽기자료 ]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의존재틀에는, 이현존재가자기의존재에있어서이존재에 [ 즉, 스스로있으면서이있음에 ] 대해존재관계를갖는다는사실이속해있다. 이는다시현존재는자신의존재에서어떤방식으로든, 또어느정도의명료성에있어서든, 자기를이해하고있음을의미한다. 이존재자에특유한것은자신의존재와함께, 또자신의존재를통해, 존재가그자신에게개시되어있다는것이다. 존재이해는그자체로현존재의한존재규정성이다. 현존재의존재 [ 자 ] 적탁월성은그가 존재론적으로있다 는사실에있다.(12, 19) 존재론적으로있다 는말은여기서는아직존재론을형성한다는뜻이아니다. 따라서우리가존재론이란낱말을존재자의의미에대한명시적이론적물음에대한명칭으로고수한다면, 앞에서말한현존재가 존재론적으로있다 는 전 ( 前 )- 존재론적으로있다 라고일컬어져야한다. 그러나이는단순히존재적으로있음을의미한다기보다는 존재를이해 하는방식으로있음을뜻한다.(12, 19-20) 실존의문제는언제나오직실존함자체를통해서만처리된다. 이때실존함자체에대한주도적이해를우리는실존적이해라고부른다. 실존의문제는현존재의존재 [ 자 ] 적관심사이다. 그런존재 [ 자 ] 적관심사를위해서는실존의존재론적구조에대한이론적통찰을필요로하지않는다.(12, 20) 3 현존재의존재자적-존재론적우위현존재는세계-내-존재이다. 현존재의존재이해는단지자기자신의존재에대한이해일뿐아니라또한현존재가그안에살아가는세계및거기에서만나는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한존재이해를수반한다. 현존재의실존이해는현존재자신뿐아니라세계및세계내부적존재자에관계한다. 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한존재이해를분절하여개념화할때비로소종래의제존재론, 다시말해영역존재론이가능하다. 이런점에서현존재는제존재론을가능하게하는존재자적조건이된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또한이뿐아니다. 전승된제존재론을근거짓는기초존재론은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다. 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은오로지존재를이해하는유일한존재자인현존재가자신의존재이해의 정확히말하자면전 ( 前 ) 존재론적이해의 가능성을물어존재의의미를밝혀냄으로써수행된다. 따라서기초존재론은현존재의존재이해 ( 혹은실존적이해 ) 를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구조의해명을요구한다. 즉기초존재론은현존재의실존의존재론적구조를해명하는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을통해수행된다. 역으로말하자면, 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은기초존재론을염두에두고수행된다. 그러므로현존재는제존재론을가능하게하는존재자적조건으로서의우위를차지할뿐더러제존재론을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조건으로서의우위도차지한다. 그러니까현존재의존재적-존재론적우위란제존재론을가능하게하는존재자적-존재론적조건이라는의미에서의우의를말한다. 여기에서잠깐 실존론적 이란낱말의의미를해명하기로한다. 앞서우리는, 자기의존재를최대의문젯거리로삼는현존재의삶의태도를 실존 이라규정했다. 실존에대한이해가실존적 (existenziell) 이해이다. 그런데이제우리는실존의존재론적구조에대한이론적통찰을실존론적 (existenzial) 이해라고이름짓는다. 실존적 과 실존론적 의관계는 존재자적 과 존재론적 의관계에해당한다. 실존론적이란실존의존재론적구조의연관인실존론성 (Existenzialität) 을해명하는차원이다. 그러니까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이란, 실존의존재론적구조를분석하여현존재의실존이해의가능성을파악하며이로써존재의의미를밝혀내려는시도가된다. [ 읽기자료 ] 현존재에는본질적으로 어떤세계안에있다 는것이속해있다. 따라서현존재에속하는존재이해는세계라든가하는것에대한이해와세계내부적으로접근할수있는존재자의존재에대한이해에등근원적으로해당된다. 비현존재적존재성격을가진존재자를주제로하는제존재론은따라서현존재자신의존재 [ 자 ] 적구조에그기초와동기를가지고있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으며, 현존재의존재 [ 자 ] 적구조는전 ( 前 ) 존재론적존재이해의규정성을자기속에내포하고있다. 따라서다른모든존재론이거기에서비로소발원할수있는기초존재론은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에서탐구되어야한다.(13, 21) 실존의존재론적구조에대한물음은실존을구성하는것에대한해명을목표로한다. 이러한구조들의연관을우리는실존 [ 론 ] 성 [Existenzialität] 이라고부른다. 실존 [ 론 ] 성의분석론은실존적이해가아니라실존론적이해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12, 20) 이실존 [ 론 ] 성을우리는실존하는존재자의존재틀이라고이해한다. 그러나그런존재틀이라는이념속에는이미존재라는이념 [ 존재일반의이념 ] 이놓여있다. 그리하여현존재의분석론의수행가능성도존재일반의의미에대한물음을선행적으로검토하는데서좌우된다.(13, 21) 존재물음이명료한물음이되기위해현존재가무엇보다먼저존재론적으로충분히연구되어야할존재자로서밝혀졌다. 이제지적된것은현존재일반의존재론적분석론이기초존재론을형성한다는사실과, 따라서현존재는원칙상선행적으로자신의존재에관해물음이걸려지는존재자로서기능한다는사실이다. 존재의미의해석이과제가될때, 현존재는일차적으로물음이걸려져야할존재자일뿐아니라, 또한이물음속에서물어지고있는그것에대해그때마다이미자신의존재에있어서태도를취하고있는존재자이다. 그렇다면존재물음이란현존재자신에속하는본질적존재경향, 즉전존재론적존재이해의철저화이외의다른것이아니다.(14-15, 23) 이리하여현존재는모든다른존재자에대해중첩된우위를갖는다. 첫번째우위는존재 [ 자 ] 적우위이다 : 이존재자는자기의존재에있어서실존을통해규정된다. 두번째우위는존재론적우위이다 : 현존재는자신의실존에의해규정되어있기때문에, 그자신존재론적이다. 그러나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제현존재에게는현존재가아닌모든존재자의존재에대한이해가 실존이해의구성요소로서 등근원적으로속하게된다. 따라서현존재는모든존재론의가능성의존재적 - 존재론적제약이라는세번째우위를갖는다. 이렇게해서현존재는다른모든존재자에앞서서존재론적으로일차적으로물어져야할것으로서입증되었다.(13, 21) 6) 존재물음의방법존재물음의방법은현상학이다. 그런데현상학의의미는다의적이다. 고전적현상학의독특한용어는판단중지, 현상학적환원, 자유변경, 본질직관등인데, 현상학이다양하게전개됨에따라이러한용어의뜻이그대로유지되지못하는경우도많고, 또그중에는시간의흐름에따라거의사용되지않는것도있을뿐아니라, 심지어는누군가가현상학은이단자에의해번창한다라고말할정도로그변천이극심하다. 그러나현상학의창시자인후설이 ꡔ철학및현상학적연구年誌 ꡕ(1913) 의창간사에서밝히고있듯, 다양한현상학적운동을하나로묶을수있는것은, 학파로서의어떤체계가아니라, 직관의근원적원천과거기서나오는본질통찰에귀환함으로써만 철학의제문제를해결할수있다는 공통된확신 이다. 즉현상학적태도란바로 직관적으로주어져있는것 에로돌아가려는노력이요, 따라서적어도이런노력을공유한다면그러한태도는모두현상학적태도로불리워도무방하다. 이런관점에서보자면, 현상학은방법개념이다. 현상학은철학적탐구대상의사상내용 ( 事象內容 ) 을규정지으려는노력이아니라철학적탐구대상이어떻게있는가를있는그대로드러내려는노력이된다. 그러기에 ꡔ 현상학에로의나의길ꡕ에서고백하듯, 하이데거가후설에게서배운것은우리에게주어진것을있는그대로기술하는 현상학적봄 의태도이다. 하이데거스스로가정했다고알려진 사상 ( 事象 )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라는현상학적구호는현상학에대한하이데거의태도를극명하게보여준다. 즉하이데거에게서현상학이란사상 ( 事象 ) 자체로육박하여그것을있는그대로드러내어야한다는방법적이념이된다. 아마도이러한점에서후설과하이데거는일치한다. 그러나우리가육박해들어가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할사상 ( 事象 ) 이무엇인가라는관점에서양자는차별화된다. 바로여기에하이데거적현상학의독특함이있다. 현상학 (Phänomenologie) 은현상 (Phänomen) 에관한학문 (Logos) 이다. 현상학 (Phänomenologie) 은현상 (Phänomen) 과로고스 (Logos) 의합성어이다. 그리스어로소급해보자. 현상은 스스로를그자신에즉해서현시하는것 을의미하며, 로고스는이야기가운데 언급되고있는것 을드러낸다는뜻으로서, 어떤것을그자신으로부터보이게함을의미한다. 그러니까현상학은 스스로를드러내는것을, 그자신으로부터드러나는그대로, 그자신으로부터보이게함 으로정의된다. 그러나현상학에대한이러한정의는아직현상학의형식적의미에불과하다. 더정확히말하자면, 스스로를드러내는것 이라는현상개념은형식적현상개념이다. 이제형식적현상개념은그형식성을벗어던져야한다. 현상이무엇으로규정되느냐에따라형식적현상개념은통속적현상개념과두드러진의미의현상개념으로구별된다. 두드러진의미의현상개념이하이데거가있는그대로밝혀내고자하는현상학적현상개념이된다. 그리스인들은 스스로를드러내는것 으로서의현상을종종단순히 타온타 (τὰ ὄντα, 존재자 ) 와동일시하였다. 물론존재자는우리가그것에접근하는그때마다의방식에따라자신을그자체로부터상이하게현시한다. 그러나하이데거입장에서볼때, 존재자는통속적현상이다. 오히려두드러진의미에서의현상은존재자를존재자로서규정하면서도우선대개는자신을감추고있는것이된다. 즉두드러진의미에서의현상이란, 우선대개자신을드러내는존재자를비로소존재자로서드러내주면서도스스로는은폐되고또한위장되기도하는존재가된다. 존재는존재자에게속해있으면서그것의의미와근거를이루는어떤것이다. 그러니까현상학적현상은존재, 즉존재자의존재이다. 또한존재자의존재는다양한방식으로드러나기에각종존재의변양과파생태들은물론, 존재물음이궁극적으로추구하는존재의의미도현상학적현상에포함된다. 그런데통속적현상개념도현상학적으로중요하다. 존재를개현하여존재의의미로육박하기위해서는범례가되는존재자가요청된다. 두말할필요없이현존재가바로그러한범례적존재자이다. 현존재는존재자적-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재론적으로탁월한존재자로서, 존재를이해할뿐더러스스로에게물음을걸어존재의의미를밝혀낼수있는유일무이한존재자이다. 그러기에현상학은필연적으로현존재의현상학이된다. 현상학은현존재의존재구조를해석해내어존재의의미를밝혀내야할방법적이념이되어야한다. 즉현존재의현상학은실존의실존론성의분석론으로서, 현존재의존재를해석하는해석학이다. 우리는현존재의현상학에서 학 이, 즉로고스 (λόυος) 가이미 ἑϱμηνεύειν[ 해석하다 ] 의성격을지니고있음을상기해야한다. 현존재의현상학은현존재의해석학이다. 현존재의현상학은, 해석학적현상학으로서, 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이다. 또한현존재의현상학은, 현존재가세계-내- 존재인한현존재에게등근원적으로속하는비현존재적존재자의존재를해석함으로써제존재론적탐구의가능성의조건을검토한다는의미에서도하나의해석학이되며, 더욱이현존재의역사성이역사학을가능하게하는존재자적조건인한, 종래에우리가흔히해석학이라불렀던역사학적정신과학의방법론의뿌리가되기도한다. 따라서존재론혹은철학은필연적으로현상학이다. 다시말해해석학적현상학이다. 그러기에철학은본질적으로보자면, 현존재의해석학에서출발하는보편적현상학적존재론이다. 그런데돌이켜보건대후설의고전적현상학은의식의현상학이다. 절대적학문성을추구했던후설의현상학은사물이자신을스스로내보이는명증성의영역을우리의의식에서찾고있다. 따라서비록하이데거가자신의현상학적탐구는후설의 ꡔ논리연구ꡕ를통해가능하게되었다고고백하지만, 우리는하이데거와후설의차이점을주목해야한다. 잘알려져있다시피후설의철학이브렌타노의 ꡔ경험적입장의심리학ꡕ (1874) 에서출발하여심리주의를비판하며의식의현상학을구축하였다면, 하이데거의철학적물음은브렌타노의논문 ꡔ아리스토텔레스에따른존재자의다양한의미에관하여ꡕ(1862) 에서비롯된다. 그래서하이데거는 나의브렌타노는아리스토텔레스의브렌타노였다 라고고백하기도한다. 후설과하이데거가브렌타노라는동일한철학자로부터출발하면서도처음부터서로다른철학적관심을가졌다는사실은참으로기묘하다. 여하튼하이데거의철학적관심은존재자의존재가다양하게말해질때그것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주도하는근본적인의미를묻는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존재자의존재가다양하게말해질수있는공통의지평이무엇인가를묻는것, 즉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하이데거의본래적인철학적관심사이다. 그러기에하이데거는후설이존재를대상-존재에만국한시켜존재를더이상묻지않았다고비판한다. 요컨대후설은존재를주어진것으로확보한이후에, 그것을더이상묻지않았다는것이다. > 존재란무엇인가?< 라는물음을후설은전개하지않는다. 후설에게는가능적물음의그림자조차없다. 왜냐하면 > 존재 < 는대상 - 존재를의미한다는사실이그에게는자명했기때문이다.( 네번의세미나, 116 쪽 ) ( 강조점은필자가찍었음 ) 이인용문에서우리가특히주목해야할것은, 대상-존재라는표현이다. 하이데거는초기작품인 ꡔ존재론. 현사실성의해석학ꡕ(1923) 에서도전승된존재론의한계를대상-존재에서파악한다. 전승된존재론은처음부터주제를대상존재에한정한다. 전승된존재론은자연과학과문화과학에서의대상존재만을다룰뿐, 인간의구체적인삶의세계를다루지못한다. 다시말하자면전승된존재론은과학의족쇄에갇혀우리의삶속에서생생히전개되고있는다양한차원과풍부한논리를밝혀내지못하고있다. 이점에서후설도예외가아니다. 비록후설의후기사유에서생활세계의현상학이전개되긴하나그것역시우리의삶의문법을해독하진못하고있다. 하이데거는우리의삶속에주어진다양한존재자의존재가갖는존재론적차이를추적해나가면서과학의논리로부터구체적인삶의문법을해방시키고자노력한다. 예컨대전통적형이상학에서는인간도고작해야이성적동물로규정된다. 인간도동물로서있되다만이성이라는탁월한능력을갖춘동물임이라는관점에서만다른동물과차별화된다는논리가전통적형이상학의입장이다. 즉전통적형이상학은인간과인간아닌다른존재자사이의존재방식의차이를간과한다. 하지만과연우리가전통적형이상학의이러한견해를받아들일수있을까? 우리는그렇지않다고생각한다. 적어도인간은자신이누구이고타인과는어떻게관계를맺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야하고인간이아닌다른존재자가무엇으로어떻게있는지에대한관심을끊임없이갖고있고또그러한관심속에서자신의삶을꾸려나가고있다. 즉인간은단순히존재자의영역에머물러있지않다. 오히려인간의거주장소는존재이해의공간이다. 그래서앞서말했듯, 하이데거는인간을현존재 (Dasein) 로정의하여다른존재자와인간의존재방식을차별화한다. 따라서이제하이데거는현상학적시각을통해새로운존재론을정초한다. 그것이바로현존재의현상학즉해석학적현상학이다. 그래서우리는하이데거의현상학이갖는철학사적의의를이렇게정의하고자한다. 즉, 하이데거는대상의존재에만한정되었던지성의눈비늘을벗겨내어우리의삶전체를현상학적시각에로끌어들였다라고. [ 읽기자료 ] 이탐구는존재의의미에대한주도적물음을다루기때문에, 철학일반의기본적물음과연계되어있다. 이물음의취급방식은현상학적이다. 그러므로이논문은부질없이하나의관점이나하나의방향을취하지않는다. 왜냐하면그자체로이해되는한, 현상학은이양자중의어느것도아니며또어느것으로도될수없기때문이다. 현상학이라는표현은일차적으로방법개념을의미한다. 현상학이라는표현은철학적탐구대상이가지고있는사상의무엇 [ 事象內容 ] 이아니라이대상들이어떻게있는가를성격짓는다.(27, 42) 현상학이라는명칭은하나의격률 ( 格率 ) 을표현한다. 그것은사상 ( 事象 ) 자체로! 라고정식화될수있다. 이격률은허공에뜬모든구성이나우연적착상에대립하고, 외견상으로만증명된개념들에대립하며, 종종수세대를거치면서자신을문제로서과장해온사이비물음들에대립한다.(27-28, 42) 현상학이라는표현은 현상 과 학 이라는두개의구성요소로이루어져 있다. 이양자는각기 ϕαινομενον[ 파이노메논 ] 과 λόυος[ 로고스 ] 라는그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리스어로소급된다.(28, 42) 현상이라는용어는그리스적표현 ϕαινομενον[ 파이노메논 ] 에까지소급된다. 이말은 스스로를현시한다 는뜻을가진동사 ϕαίνεσϑαι[ 파이네스타이 ] 에서유래한다. 따라서 ϕαινόμενον 은 스스로를현시하는것, 즉 자기현시자, 나타나는것 을의미한다 ; ϕαίνεσϑαι 자체는 대낮에드러내다, 밝게하다 를의미하는 ϕαίνω[ 파이노 ] 의중동태적 ( 中動態的 ) 조어이다. ϕαίνω는 ϕως[ 포스 ] 와마찬가지로어간 ϕα-[ 파 ] 에속하는데, ϕως 는빛, 밝음, 즉그속에서어떤것이드러날수있고, 그자체에있어서볼수있게되는것을의미한다. 따라서현상이라는표현의의미로서는, 스스로를그자신에즉해서현시하는것, 노현 ( 露現 ) 하는것 이라는뜻이확고하게지켜져야한다. ϕαινόμενα[ 파이노메나 ], 즉현상들은따라서 [ 대낮에 ] 드러나있는것 혹은 밝혀질수있는것 의총체이다. 이것을그리스인들은종종단순히 τὰ ὄντα[ 타온타, 존재자 ] 와동일시하였다.(28, 43) 현상개념을이렇게파악할때, 어떤존재자가현상으로서요구되는지정해지지않은채로있고, 또자기현시하는것이존재자인지혹은존재자의존재성격인지가도대체결정되어있지않다면, 고작형식적현상개념을얻는것으로그치고만다. 그러나 자기현시 하에, 예컨대칸트의의미에서 경험적직관을통해접근할수있는존재자 가이해된다면, 이때형식적현상개념은올바르게적용된것이다. 이렇게사용된현상개념은통속적현상개념의의미를충족시키고있다. 그러나이통속적현상개념은현상의현상학적개념이아니다.(31, 47) 말로서의 λόυος[ 로고스 ] 는오히려 δηλο υν[ 델룬 ], 즉얘기가운데서언급되고있는것을밝힌다는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말의이런기능을더욱날카롭게 ἀποϕαίνεσϑαι[ 아포파이네스타이 ] 로서설명하였다. λουος 는어떤것, 즉언급되고있는것을말하는자 ( 중동태 ) 로하여금또는서로대화하는자들로하여금보게하는것 (ϕαίνεσϑαι[ 파이네스타이 ]) 이다. 말 은언급되고있는것자체로부터 ἀπο[ 아포 ] 보이게한다. 말 (ἀπόϕανσις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아포판시스 ]) 에있어서는, 그말이진정한말인한, 말의내용이언급되고있는사상 [ 事象 ] 으로부터연원해야하고, 그리하여말로하는전달은, 전달내용에있어서언급되고있는사상을분명히하고, 또다른사람들로하여금접근할수있게한다. 이것이 ἀποϕανσις 로서의 λόυος 의구조이다.(32, 49) 현상과 λουος 에대한해석에서밝혀진것을구체적으로상기하면, 이두명칭으로지칭되는것들사이의내적연관이분명해진다. 현상학이란표현을그리스어로정식화 ( 定式化 ) 하면, λέυειν τα ϕαινόμενα[ 레게인타파이노메나, 현상들을말한다 ] 가된다. 여기서 λέυειν은 ἀποϕαίνεσϑαι[ 아포파이네스타이, 어떤것을그자신으로부터보이게한다 ] 를뜻한다. 그리하여 현상학 은 ἀποϕαίνεσϑαι τὰ ϕαινομενα, 즉 스스로드러내는것을, 그자신으로부터드러나는그대로, 그자신으로부터보이게함 을말한다. 이것이현상학이란이름으로일컬어지는연구의형식적의미이다. 이렇게해서표현되는것은앞에서정식화된격률 ( 格率 ), 즉사상 [ 事象 ] 자체로! 이외의다른것이아니다.(34, 51) 이제형식적현상개념이그형식성을벗어던지고현상학적현상개념으로되려면무엇이고려되어야하며, 또현상학적현상개념은통속적현상개념과어떻게구분되는가? 현상학이보이도록해야하는것은무엇인가? 두드러진의미에서현상이라고일컬어져야하는것은무엇인가? 그본질상필연적으로명시적제시의주제가되는것은무엇인가? 분명히그것은, 우선대개자기를곧장드러내지않는것, 즉우선대개자기를드러내는것에대해숨겨져있으나동시에우선대개자기를드러내는것에본질적으로속하는어떤것, 그러나그것의의미와근거를이루는어떤것이다.(35, 52) 이처럼현저한의미에서숨겨진채로있거나또는다시은폐속에빠져있거나, 단지자신을위장하여드러내거나하는것은, 그러나이존재자나저존재자가아니라, 앞선고찰에서도지적한바와같이, 존재자의존재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존재자의존재는망각되어서존재와존재의의미에대한물음조차생기지않을정도로광범하게은폐될수있다. 따라서탁월한의미에서, 자신의가장고유한사상내용에근거해서현상이되기를요구하는것을, 현상학은대상으로서주제적으로거머쥔것이다.(35, 52-53) 현상학은존재론의주제가되어야하는것에접근하는양식이자, 그것을증시하면서규정하는양식이다. 존재론은오직현상학으로서만가능하다. 현상의현상학적개념은 자기를드러내는것 으로서존재자의존재, 존재의의미, 존재의변양들과파생태 ( 派生態 ) 들을가리킨다.(35, 53) 현상학적으로이해된현상은언제나 존재를구성하는것 뿐이지만, 존재는그때마다존재자의존재이기때문에존재를개현할의도라면먼저존재자자신을올바로제시할필요가있다. 이존재자도마찬가지로진정으로자기에게속하는접근양식속에서올바로제시되어야한다. 그렇게해서통속적현상개념도현상학적으로중요하게된다. 범례적존재자를본래적분석론을위한출구로서현상학적으로확보한다는예비과제는, 언제나이미이분석론의목표에입각해서밑그림그려져있다.(37, 54-55) 사상 ( 事象 ) 내용에서말한다면, 현상학은존재자의존재에관한학 존재론이다. 존재론의과제에대해이렇게설명하는가운데기초적존재론의필요성이분명해졌다. 기초적존재론은현존재라는존재론적 - 존재적으로탁월한존재자를주제로삼아존재일반의의미에대한물음이라는핵심문제에육박한다. 탐구자체로부터분명해지겠지만, 현상학적기술의방법적의미는해석이다. 현존재의현상학의 λουος 는 ἑϱμηνεύειν[ 헤르메네우에인, 해석하다 ] 의성격을가지고있다. 이해석을통해현존재자신에속하는존재이해에존재의본래적의미와현존재에고유한존재의근본구조들이고지된다. 현존재의현상학은낱말의근원적의의에있어서해석학 ( 解釋學 ) 이다. 이에따르면, 이낱말은해석의작업을표시한다. 이제존재의의미와현존재일반의근본구조들이벗겨짐으로써, 더나아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현존재가아닌존재자에대한모든존재론적연구를위한지평이분명해지는한에서, 이해석학은동시에모든존재론적탐구의가능성의조건들을검토한다는의미에서의해석학이된다. 그리고마지막으로, 현존재가 실존의가능성속에존재하는자로서 모든존재자에앞서존재론적우위를갖고있는한, 현존재의해석으로서의해석학은제3 의특수한 [ 의미 ]-그러나철학적으로이해한다면실존의실존성의분석론이라는일차적의미를가지고있다. 이때이 [ 제3 의의미의 ] 해석학이역사학의가능성의존재 [ 자 ] 적조건으로서현존재의역사성을존재론적으로수행하는한, 그해석학에는단지파생적으로만해석학이라불리어질수있는것, 즉역사학적정신과학들의방법론이뿌리박고있는것이다.(37-38, 55) 존재론과현상학은철학에속하는다른전문분야와나란히있는두개의상이한분야가아니다. 이두명칭은철학자체를대상과취급양식에따라특징짓는다. 철학은현존재의해석학에서출발하는보편적현상학적존재론이다. 현존재의해석학은실존의분석론으로서, 모든철학적물음의실마리의끝을, 물음이거기서발단하고거기로되돌아가는그곳에다붙잡아맨다.(56) 2. 세계 ( 한 : 世界. 독 : Welt, 영 : World) 현존재는그때마다자기의존재를문제삼는존재자이다. 이런의미에서현존재는각자성이다. 또한현존재는각자성을근거로해서본래적으로실존하기도하고비본래적으로실존하기도한다. 이제우리의목표는현존재의이러한실존을그것의실존론적구조에서해명함으로써궁극적으로는존재의의미로육박하고자하는것이다. 이것이우리가앞서말한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에해당한다. 그런데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을수행하기위해우리는우선, 현존재가이미어떤세계내에서정붙이고부대끼며살아가는존재자임을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목해야한다. 실로세계를벗어나서는현존재의실존이불가능하다. 오직세계내에서자기및세계그리고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한존재이해를근거로실존하는자가현존재이다. 따라서현존재는세계-내-존재이다. 세계-내- 존재는현존재의근본적인존재틀이다. 그러기에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은세계-내- 존재라는존재틀을근거로현존재의실존론적구조를아프리오리하게보고이해하는가운데수행되어야한다. 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은세계-내-존재에대한실존론적분석론에다름아니다. 세계-내-존재는세계, 세계-내- 존재의방식으로있는존재자, 그리고내-존재로구성된다. 세계-내-존재는이세구성계기가서로맞물려비로소형성된틀이아니라, 현존재의존재틀을통일적으로제시하는현상이다. 따라서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의올바른단초는이세계-내-존재라는통일적현상을해석하는데있다. 그러나우리는논의의편리를위해일단세계-내-존재를 1) 세계, 2) 세계-내- 존재의방식으로있는존재자, 3) 내-존재라는세구조계기로나누어설명하고자하는데, 이장의논의과제는이중에서세계가된다. 1) 세계일반의세계성의이념 (1) 세계와세계성세계의의미는다양하다. 우선세계는존재자적의미에서우리눈앞에있는전재적 ( 前在的 ) 존재자의총체를가리킨다. 또한세계는존재론적용어로서는가령수학자의 세계 라는말에서처럼특정한대상들의영역을의미한다. 그러나우리가여기에서문제삼은것은세계-내-존재이다. 세계-내-존재는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이다. 따라서여기에서말하는세계는, 세계-내-존재의한구조계기로서, 현존재의실존이이루어지는 그곳 이된다. 세계는현존재자신의하나의성격으로서현존재의존재양식이다. 공공세계 라든가, 혹은 자기주변의친근한 ( 가정적 ) 환경세계 가이러한세계에해당한다. 그러나우리는세계내에서실존하건만, 우선대개는세계의구조를존재론적으로깨닫지못한다. 세계를세계로서가능하게하는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계의구조를우리는특히세계성 (Weltlichkeit) 이라고명명한다. 세계가아직은전 ( 前 ) 존재론적의미를갖는것이라면, 세계성은존재론적-실존론적개념이다. [ 읽기자료 ] 세계성은하나의존재론적개념이며, 세계-내 - 존재를구성하는한계기의구조를의미한다. 우리는이세계 - 내 - 존재를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으로서알고있다. 따라서세계성은그자체하나의실존범주이다. 우리가존재론적으로세계에대해물을때, 우리는결코현존재의분석론이라는주제적분야를떠나지않는다. 세계는존재론적으로는본질상현존재가아닌존재자의규정이아니라, 현존재자신의한성격이다.(64, 97) 세계라는낱말은 ( ) 빈번하게사용되고있으나, 거기에서분명해진것은그낱말의다의성 ( 多義性 ) 이다. 이다의성으로인한혼란을제거하는일은, 다양한의미로생각되는현상들과그현상들의연관을지적하는것이된다. 1. 세계는존재 [ 자 ] 적개념으로사용되는데, 이때세계는세계내부에서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을수있는존재자의총체를의미한다. 2. 세계는존재론적용어로서기능하여, 1. 에서말한존재자의존재를의미한다. 더욱이세계는그때마다다양한존재자를포괄하는영역의명칭이되기도한다. 예를들면, 세계는수학자의세계라는말에서처럼수학의가능적대상들의영역을의미한다. 3. 세계는다시존재 [ 자 ] 적의미로이해될수있으나, 이때의세계는세계내부적으로만날수있으나본질적으로현존재가아닌그런존재자로서가아니라, 현사실적현존재가현존재로서살고있는그곳으로서해석되고있다. 이때세계는전 [ 前 ] 존재론적실존적의미를갖는다. 이경우다시여러가능성이성립한다 : 세계는공공적 ( 公共的 ) 우리-세계 라든가자신의가장친근한 ( 가정적 ) 환경세계를가리킨다. 4. 끝으로세계는세계성이라는존재론적 - 실존론적개념을나타낸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세계성자체는, 특수한세계들의그때그때의구조전체로변양될수있으나, 자기안에세계성일반이라는아프리오리를간직하고있다. 우리는세계라는표현을술어상으로 3. 에서확정된의미로사용하도록한다. 세계라는표현이때때로 1. 에서말한의미로사용될때는, 그의의를표시하기위해인용부호 [ ] 를붙일것이다.(64-65, 97-98) (2) 세계와자연세계는, 현존재의존재양식으로서, 현존재의세계이다. 현존재이외의모든존재자는다만세계내부에귀속할뿐이다. 즉현존재가아닌모든존재자는세계내부적존재자다. 이점에서는자연도예외가아니다. 존재론적-범주적으로이해하자면, 자연은, 현존재가세계안에서존재자를우선대개도구로서발견하는태도를변양하였을때만나게되는, 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의한극한이다. 즉자연은현존재가세계를특정하게탈세계화하였을때발견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우리가세계-내-존재라는현존재의틀을결여한채자연을만난다는것은아니다. 세계의탈세계화자체도여전히세계-내- 존재의한방식이다. 세계를전제하기에세계의탈세계화도가능하다. 물론하이데거는 세계는현존재가실존할때 -또그러한경우에만- 존재하며, 자연은어떠한현존재가실존하지않아도존재할수있다 (ꡔ현상학의근본문제ꡕ, 241쪽 ) 라고도발언하나, 엄격한의미에서존재는존재를말하는현존재가있을경우에만있을수있으므로, 현존재이전에자연이존재한다라고말하는것은, 하이데거의입장에서보면, 존재자적명제에불과하다. 존재론적으로는, 세계가자연에앞서있고, 자연은현존재의세계-내- 존재의한특정한양상안에서만발견된다. 그러나종래의존재론에서는자연에의거해서세계를이해한다. 자연의존재는모든것을근거지우는 실체성 으로파악된다. 데카르트가하나의예가된다. 그는수학적인식에맞추어세계의근본규정을자연사물의연장성 ( 延長性 ) 으로파악함으로써세계에관한물음을자연사물성에관한물음으로축소한다. 이처럼세계-내- 존재라는현존재의틀을결여한채세계성의현상을건너뛴것이종래의존재론의한계상황이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종래의존재론의한계를극복하기위해서는세계의세계성에접근할수있는올바른현상적출발점이마련되어야한다. 우리가선택한출발점은현존재의가장친근한존재양식인일상성이다. 현존재만이세계를갖고있고또한현존재가우선대개는일상적으로존재한다면, 평균적세계-내 -존재의실존론적성격으로부터세계성일반의이념에이르는길을취하는것이현상학적으로올바른전략이다. 그런데현존재의가장비근한세계는환경세계이다. 따라서우리는우리가가장비근하게만나는환경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한존재론적해석을단초로삼아세계의세계성에이르고자한다. [ 읽기자료 ] 그리하여세계의변형, 즉세계적이라는표현은술어적으로현존재의존재양식을의미하는것이지, 세계안의전재적 [ 前在的 ] 존재자의존재양식을의미하지는않는다. 후자의존재양식을우리는세계귀속적 ( 世界歸屬的 ) 또는세계내부적 ( 世界內部的 ) 이라고부른다.(65, 98) 종래의존재론을일별할때알수있는것은, 세계-내-존재라는현존재의틀을빠뜨리는것과세계성의현상을건너뛰는것은짝을짓고있다는사실이다. 세계성의현상대신, 사람들은세계내부에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으면서도우선은전혀발견되어있지않은존재자의존재, 즉자연에의거해서세계를해석하려고한다. 자연은 존재론적 - 범주적으로이해하자면 가능한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의한극한이다. 현존재는이자연으로서의존재자를자기의세계 - 내 - 존재의일정한양상에서만발견할수있다. 이런 [ 자연 ] 인식은세계를특정하게탈세계화시킨다는성격을지니고있다.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어떤특정한존재자의존재구조들의범주적총괄로서의자연을가지고서는세계성은결코이해될수없다. 가령낭만파의자연개념이의미하는자연현상도세계개념에입각해서, 즉현존재의분석론에입각해서비로소존재론적으로이해될수있다.(65, 98-99).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데카르트는세계의존재론적근본규정을 extentio[ 연장 ] 에서본다. 연장성은공간성을함께구성할뿐더러데카르트에따르면공간성과동일하다. 공간성이어떤의미에서세계에대해구성적인한, 데카르트적세계존재론의구명은동시에환경세계와현존재자신의공간성을적극적으로구명하기위한하나의소극적발판을제공한다 (89, 131). 데카르트는, 세계에대한물음을, 우선적으로접근할수있는세계내부적존재자인자연사물성에대한물음으로축소하고강화하였다. 그는존재자에대해가장엄밀하다고여겨지는존재 [ 자 ] 적인식은 [ 즉존재자의본질을연장성으로보는인식은 ] 또한그인식속에서발견되는존재자의일차적존재에이르는가능한통로이기도할것이라는의견을굳혀버렸다. 그러나동시에, 사물존재론을보완하는것도, 원칙적으로는데카르트와동일한독단적기초위에서움직이고있다는사실을통찰해야마땅하다 (100, 146-147). 이를위한방법적지시는이미주어져있다. 그것은세계-내-존재가, 따라서세계도, 현존재의가장친근한존재양식인평균적일상성이라는지평에서분석론의주제가되어야한다는것이다. 일상적세계-내-존재를추적하여, 이것을현상적발판으로해서, 세계라든가하는것이시야속에들어와야한다 (66, 99). 일상적현존재의가장비근한세계는환경세계이다. 우리의탐구는, 평균적세계-내-존재의이실존론적성격으로부터출발해서세계성일반의이념에이르는길을취한다. 환경세계의세계성 ( 환경세계성 ) 을우리는가장비근하게만나는환경세계내부의존재자에대한존재론적해석을통과함으로써탐구한다. 환경세계라는표현은둘레라는말속에공간성에대한어떤시사를포함하고있다. 그러나환경세계를구성하는주위는일차적으로공간적의미를가지고있지않다. 환경세계에공간성격이속해있다는것은논란의여지가없으나, 이공간성격은오히려세계성의구조에입각해서비로소해명되어야한다 (66, 99)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2) 환경세계안에서만나는존재자의존재 (1) 배려 ( 한 : δ 慮, 독 : Besorgen, 영 : concern) 일상적현존재는환경세계내에서세계내부적존재자를둘러보는가운데관계를맺으며살아간다. 이처럼 둘러보며관계맺음 을우리는교섭 (Umgang) 이라명명한다. 그런데교섭의가장비근한양식은배려 (Besorgen) 이다. 배려란세계내부적존재자를다루며사용하는일상적현존재의존재양식을가리킨다. 배려는비록존재자를인식하는작용은아니지만나름대로의독자적 인식 은가지고있다.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한다면, 이러한 인식 이란도구를도구로서사용할수있는고유한 시 ( 視, Sicht) 를의미한다. 이처럼배려를이끄는고유한 시 를우리는특히배시 (Umsicht) 라고명명한다. 배시적배려를통해만나는존재자는인식의대상일수없다. 오히려우리가세계안에서일차적으로만나는존재자는도구이다. 그리스인들도이점을알고있었다. 그들은배려적교섭 (πρ αξις, 프락시스 ) 에서관계맺는존재자를 πράυματα( 프라그마타 ) 라고불렀다. 하지만그들은 πραυματα 의존재론적성격을밝혀내지못한채그것을 단순한사물 로규정해버렸다. 따라서우리의우선적과제는도구를도구이게끔하는도구의성격을한정짓는것이다. [ 읽기자료 ] 가장가까이만나는존재자의존재의현상학적제시는, 우리가세계내의교섭그리고세계내부적존재자와의교섭이라고부르는일상적세계 - 내 - 존재를실마리로하여수행된다. 이교섭은이미배려의다양한방식들로분산되어있다. 그러나이미지적되었듯이, 교섭의가장비근한양식은단지인지하기만하는인식작용이아니라, 종사하고사용하는배려이다. 이배려는그나름의독자적인식을가지고있다. 현상학적물음은우선그런배려속에서만나는존재자의존재에관련된다.(66-67, 100)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그러나사용하고-조작하는교섭은맹목적이아니고, 제나름의고유한주시양식 ( 注視樣式 ) 을가지고있다. 이주시양식이조작을유도하고그조작에특수한확실성을부여한다. 도구와의교섭은하기위한의다양한지시에종속된다. 그렇게적응해가는것을이끄는 봄 [ 視 ] 은배시 (δ 視 ) 이다.(69, 104) 당면한분석의범위안에서예비주제로서단초에놓여진존재자는, 환경세계적배려속에서자기를현시하는존재자이다. 이때이존재자는이론적세계인식의대상이아니라, 사용되거나생산되는등의존재자이다.(67, 100-101) 그리스인들은사물을표현하는적합한용어를가지고있었다. 그것은 π ράυματα[ 프라그마타 ], 즉사람들이배려적교섭 (πρ αξις[ 프락시스 ]) 에서관계맺는그것이다. 그러나그들은바로그 πραυματα 의특수한실용적성격을존재론적으로애매하게방치하고, 그것을우선단순한사물로서규정해버렸다. 우리는배려속에서만나는존재자를도구라고부른다. 교섭속에서눈에띄는것은필기도구, 재봉도구, 작업도구, 여행도구, 측량도구등이다. 이도구의존재양식이뚜렷이밝혀져야한다. 그것은도구로하여금도구이게하는것, 즉도구성격을먼저한정하고이것을실마리로하여이루어진다.(68, 102) (2) 도구 ( 한 : 道具, 독 : Zeug, 영 : Equipment) 1 지시 ( 한 : 指示, 독 :Verweisung, 영 : assignment, reference) 도구는본질적으로 을하기위한어떤것 이다. 도구의기본적성격은지시이다. 엄밀히말해하나의도구는존재하지않는다. 도구는유용성, 기여성, 사용가능성, 편리성등용도성의상이한방식들에의해도구전체성을구성한다. 예를들어지금내눈앞에있는컴퓨터가이방을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성하는집기들의전체적연관안에서의미를갖듯, 개별적도구에앞서그때마다이미도구전체성이먼저발견된다. [ 읽기자료 ] 엄밀하게말하면하나만의도구란존재하지않는다. 도구의존재에는그때마다언제나도구전체가속해있고, 이도구전체속에서도구는바로그도구로서있을수있다. 도구는본질적으로 을하기위한어떤것이다. 유용성, 기여성, 사용가능성, 편리성등하기위한 [ 용도성 ] 의상이한방식들이도구전체성을구성한다. 하기위한의구조속에는어떤것에대한어떤것의지시가들어있다. ( ) 우선필요한것은, 지시의다양성을현상적으로주목하는것이다. 도구는그도구의성격에따라필기도구, 펜, 잉크, 종이, 밑받침, 책상, 램프, 가구, 창, 문, 방등과같이, 언제나다른도구에의귀속성에의존해서존재한다. 이런사물들은우선그자체로개별적으로나타나고, 그런뒤에실재적인것의총계로서이방을채우는것이결코아니다. 비록주제적으로포착된것은아니라하더라도, 가장친근하게만나는것은방이고, 더욱이이방은기하학적공간적의미에서네벽으로둘러싸인사이가아니라, 주거도구로서의방이다. 이방에서부터집기들의배치가드러나고, 이배치속에서그때그때의개별적도구가드러난다. 이런개별적도구에앞서그때마다이미도구전체성이발견되어있다.(68-69, 102-103) 2 용재성 ( 한 : 用在性, 독 : Zuhandenheit, 영 : readiness-to-hand) 도구의존재양식은용재성 ( 用在性 ) 이다. 용재성은단순히사용가능성이나유용성따위를의미하지않는다. 도구가도구로서의미를갖는것은사용자가아무런불편없이도구를사용할때이다. 예를들어우리가망치라는사물을사용할때아무런거리낌없이망치를사용하면할수록, 우리는망치를있는그대로의망치로서만나게된다. 도구를도구로서만남에있어반드시요구되는것이도구의 편리함 이다. 따라서용재성이란존재양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식은편리함을수반한다. 이런의미에서의용재성이도구의 즉자적 ( 卽者的 ) 성격 이다. 용재성은 그자체로 있는존재자의존재론적-범주적규정이다. ꡔ예술작품의근원ꡕ 에서는용재성이 신뢰성 (ꡔ예술작품의근원ꡕ, 23) 이란개념으로보다구체화되어나타난다. 들일을끝낸농촌아낙네는저녁늦게피로감에휩싸인채구두를벗었다가아직동도트기전어둑어둑할무렵다시구두를주어신는다. 또들일을쉬는날은구두앞을무심하게지나치기도한다. 그러나이렇게아무런거리낌없이구두를신었기에농촌아낙네는대지의소리없는부름에응답하며자기의세계를확신하게된다. 이러한도구의본질이바로신뢰성이다. ꡔ장자ꡕ에도유사한이야기가있다. 하이데거가 ꡔ존재와시간ꡕ을발표하기이전이미 ꡔ장자ꡕ를읽었음은이제는널리알려져있다. 그러기에 ꡔ장자ꡕ의다음글귀가예사롭지않다. 발을잊는것은신발이꼭맞기때문이고, 허리를잊는것은허리띠가꼭맞기때문이고, 마음이시비를잊는것은마음이꼭맞기때문이다. (ꡔ 달생 ( 達生 )ꡕ, 19 : 13) 용재성이도구의존재양식이라면, 도구를용재자 ( 用在者, das Zuhandenes) 라불러도무방하다. 그런데용재자를용재자로서사용하기위해서는일정한주시양식이요구된다. 그러한주시양식이바로배시 (δ 視, Umsicht) 이다. 하기위한 이라는도구의다양한지시에종속해서적응해가는 시 가배시이다. [ 읽기자료 ] 도구의존재가진정하게드러날수있는것은, 그때마다도구에맞추어재단된교섭, 예컨대망치를가지고때리는것이지만, 그런교섭 [ 망치질 ] 이이 [ 망치라는 ] 존재자를현출하는사물로서주제적으로포착하는것도아니고, 항차 [ 망치 ] 사용이 [ 망치의 ] 도구구조자체에관해아는것도아니다. 망치질을한다는것은, 망치의도구성격에대한단순한지식을갖는것이아니고, 그이상적합할수없을만큼이도구를내것으로한다는것이다. 이런사용적교섭에있어서, 배려는그때그때의도구를구성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하는 하기위한 의지시에종속된다 ; 망치라는사물이그저방관되기만하는일이적으면적을수록, 다시말해그사용이활발하면활발할수록, 그것과의관계는더근원적으로되고, 망치라는사물은있는그대로의도구로서더적나라하게만나지게된다. 망치질자체가망치의특수한편리함을발견한다. 도구가스스로자신을드러내보이는도구의존재양식을우리는용재성 ( 用在性 )[Zuhandenheit] 이라부른다. 도구에는이런즉자존재 ( 卽自存在 ) 라는성격이있고, 따라서단지출현하기만하는것이아니기때문에, 도구는가장넓은의미에서편리한것이며사용가능한것이다. 이러저러한성질을갖춘사물의외관을그냥바라보기 [ 觀照 ] 만한다면, 아무리날카롭게바라본다하더라도용재자를발견할수는없다. 사물을그냥이론적으로바라보기만하는시선으로는용재성은이해되지않는다. 그러나사용하고 - 조작하는교섭은맹목적이아니고, 제나름의고유한주시양식 ( 注視樣式 ) 을가지고있다. 이주시양식이조작을유도하고그조작에특수한확실성을부여한다. 도구와의교섭은하기위한의다양한지시에종속된다. 그렇게적응해가는것을이끄는 봄 은배시 (δ 視 ) 이다. (69, 103-104) 용재자 [ 用在者, das Zuhandene] 도대체이론적으로포착되지도않지만, 또한당장배시적으로배시의주제가되는것도아니다 ; 신변적용재자의독특함은, 자신의용재성에서이를테면스스로물러남으로해서도리어본래적용재적으로존재한다는것이다.(69, 104) 용재성은그자체로있는그대로의존재자의존재론적-범주적규정이다.(71, 107) 3 제품우리가만나는일차적도구는작업도구가아니라오히려제품이다. 그런데용재자 ( 用在者 ) 로서의제품은다양한의미를갖는다. 우선제품은사용목표를가지고있다. 구두는신기위한것이고시계는시간을읽기위한것이다. 또한제품은재료를지시한다. 이런지시관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를통해우리는궁극적으로는자연도만나게된다. 그런데이런자연도역시용재자이다. 예를들어구두는가죽을지시하며가죽은동물을지시한다. 사육의유무는별문제가되지않는다. 동물은여하튼어떤방식으로든스스로자라났기에자연의일종인데, 우리는그동물을제품의재료로서만나는것이다. 이점은우리가환경세계를통해만나는모든자연에도적용된다. 우리가우선대개만나는숲은조림 ( 造 ä) 이며, 산은채석장이고, 강은수력이고, 바람은 돗에안긴 순풍이다. 우리가환경세계안에서우선대개만나는자연은물리학적자연이아니다. 물리학적자연과의만남은우리가존재자를보는시각의근본적변양을요구한다. 즉존재자를단순히도구로서보지않고세계를탈세계화하여존재자를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의한극한에서만나게될때우리는물리학적자연을발견한다. 하이데거는세계의탈세계화를존재이해의변양이라고도한다. 또한하이데거가즐겨사용하는전재성 ( 前在性 ) 이란표현은이러한물리학적자연의존재양식을가리킨다. 즉용재적자연의존재양식을도외시해야자연그자체가순수한전재성안에서발견된다. 그러나물리학적자연도엄밀히말하자면, 자연그자체 일수없다. 물리학적자연속에서도 자연그자체 는은폐된다. 식물학자의식물은논두렁에핀꽃이아니며, 지리학자가탐구하는하천의 수원 ( 水源 ) 은 땅에서솟는샘 이아닐것이다. 그래서 ꡔ존재와시간ꡕ에서는 자연그자체 와의만남이문제로남는다. 제품에는이용자에대한지시도숨어있다. 특히이러한지시는불특정의통상적인사람을가리킬수도있다. 기성복의예가그렇다.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 우리는제품을통해세인 ( 世人 ) 을만나게된다. 또한이뿐아니다. 우리는그러한세인을통해그들의가정적세계만이아니라공공적세계도만나게된다. 또한우리가공공적세계안에서만나는환경적자연역시용재자이다. 예를들어, 역의플랫폼은우천 ( 雨天 ) 을, 가로등은어두움을, 시계는 태양의위치 를고려한다. [ 읽기자료 ] 일상적교섭과우선맞물려있는것은작업도구자체가아니라제품,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즉그때그때제작되어야하는것이다. 일차적으로배려되는것은제품이고, 따라서또한용재자 [ 用在者 ] 이다. 제품은지시전체성을담지하고있으며, 이지시전체성의내부에서도구와만나는것이다.(69-70, 104) 제작되어야할제품, 즉망치, 대패, 바늘등이쓰일어디에 [ 사용목표 ] 는그것대로도구의존재양식을가지고있다. 제작되어야할구두는신기위한것 ( 신는도구 ) 이며, 완성된시계는시간을읽기위한것이다. 배려적교섭에서주로만나는 작업가운데있는 제품에는본질적으로사용가능성이속해있지만, 이사용가능성에서는그때마다이미그제품이쓰일 어디에 도함께만나게된다. 주문된제품 [ 예 : 양복 ] 은제품대로그것의사용과, 이사용에서발견되는존재자 [ 예 : 주문자 ] 의지시연관을근거로해서만존재한다.(70, 104-105) 그러나제작되어야할제품은 을위해이용될수있는것 만은아니다. 제작하는것자체가그때마다어떤것을위해어떤것을이용하는것이다. 제품에는동시에재료에대한지시도숨어있다. 제품은가죽, 실, 바늘등에의존한다. 가죽은다시동물의껍질로만들어진다. 동물의껍질은다른사람에의해사육된동물로부터벗겨진다. 동물은사육되지않고서도세계내부에나타나지만, 사육될경우에도이존재자는어떤방식으로든자신을스스로만들어낸다. 따라서환경세계에서는그자신제작될필요없이언제나이미용재적 [ 用在的 ] 으로있는존재자도만날수있다. 망치, 부집게, 못등은그자체로강철, 쇠, 구리, 암석, 목재등을지시하고있으며, 또한그것들로부터성립한다. 사용되는도구속에서는이사용을통해자연, 즉천연산물이라는빛속에서보여진자연도함께발견된다.(70, 105) 그러나이경우자연은단지전재자 [ 前在者, das Vorhandene] 로서만이해되어서도안되지만 자연력으로서이해되어서도안된다. 숲은조림 ( 造 ä) 이고, 산은채석장이며, 강은수력이고, 바람은돛에안긴순풍이다. 발견된환경세계와더불어만나는것은이렇게발견된자연이다. 용재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用在的 ] 존재양식으로서의자연의존재양식을도외시해야비로소자연그자체가전적으로그순수한전재성 [ 前在性 ] 에서발견되고규정될수있다. 그러나자연을이같이 [ 순수한전재성으로서 ] 발견할때에는, 끊임없이생동하고, 우리를엄습하고, 아름다운풍경으로서우리를사로잡는자연은은폐되고만다. 식물학자의식물은논두렁에피어있는꽃이아니며, 지리학적으로확정된하천의수원 ( 水源 ) 은땅에서솟는샘이아니다.(70, 105) 제작된제품은그제품이쓰일수있는 어디에 와 무엇으로 [ 작품의구성원료 ] 만을지시하지는않는다. 단순한수공업적상태에서는제품속에동시에착용자나이용자에대한지시도숨어있다. 제품은 [ 착용자나이용자의 ] 신체에알맞게재단되어있으며, 그신체는그제품이만들어질때그제품곁에함께존재한다. 한타스의상품을제작할경우에도이구성적지시는결코빠질수가없다. 그지시는단지불특정일뿐이며임의의사람, 즉통상적인사람을가리키고있다. 따라서제품과함께만나는것은, 용재적 [ 用在的 ] 존재자만이아니라, 현존재라는존재양식을지닌존재자이기도하다. 제작된것은현존재의배려속에서그에게용재적으로된다.(70-71, 105-106) 그리고이와함께착용자나이용자가살고있는세계를만나게되는데, 이세계는동시에우리의세계이다. 그때마다배려되는제품은가령작업장이라는가정적 ( 家庭的 ) 세계에서만용재적 [ 用在的 ] 이아니고, 공공적세계에서도용재적이다. 이공공적세계와더불어환경적자연이발견되어누구에게나접근가능하게된다. 도로, 시가, 교량, 건물등에있어서배려는일정한방향에서자연을발견한다. 지붕이있는역의플랫폼은우천 ( 雨天 ) 을고려하고있으며, 길가의가로등은어두움을고려하고있다. 즉, 그것은날이밝았다어두워지는특수한변화, 즉태양의위치를고려하고있다. 시계의경우에는우주계의일정한별자리가언제나고려되고있다. 시계를눈여겨보면, 우리는암암리에태양의위치를이용하고있으며, 그태양의위치에따라관청은시간측정을천문학적으로조정한다. 우선눈에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띄지않게용재적으로있는시계라는도구를사용할때도, 환경적자연이함께용재적으로있다.(71, 106) 3) 용재자 ( 用在者 ) 의세계적합성용재성 ( 用在性 ) 은편리함을수반한다. 도구가도구로서의역할을할때, 하나의도구는전혀눈에띄지않고, 아무런강요도하지않을뿐더러, 작업에방해가되는거추장스런반발도하지않는다. 하나의도구가도구전체성안에서차지하고있는 쓰일곳 따위는고려의대상이되지도않는다. 따라서도구가세계와맺는적합성의관계는전혀의식되지않는다. 비현저성, 비강요성, 비반발성등의결성적표현은도구로서의용재자가자기의즉자적존재를유지하고있음을알리는적극적인현상적성격이된다. 그러나작업장에서도구가훼손되었거나, 혹은도구가결여되었거나, 혹은도구가작업에오히려거추장스러워질때상황은달라진다. 용재자는비 ( 非 ) 의성격을상실함으로써, 현저성, 강요성, 반발성의성격을갖게된다. 따라서용재자는잠시전재자 ( 前在者 ) 의성격을갖기도한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용재자가과학적관찰대상인전재자로변양되는것은아니다. 잠시간의배시 (δ 視 ) 의혼란은곧제거되며, 용재자의용재성은다시회복된다. 따라서여기서문제가되는전재성은고작해야용재자의전재성정도이다. 하지만우리는여기에서세계의세계성에접근할수있는중요한단서를발견하게된다. 꼭필요한도구가훼손되어도구의지시적연관이방해받을경우를가정해보자. 도구와관계맺던배시가일순간뒤흔들리면서그도구가놓여있던작업장으로서의전체 작업장 이시야에들어온다. 도구가도구로서머물러있던도구연관전체가배시속에서부단히처음부터이미보여진전체로서밝혀져온다. 이전체와함께이제비로소세계가고지된다. 이로써그도구로서의용재자가세계에서차지하고있던적합성도비로소자기를드러낸다. 또한꼭필요한도구가결여되었을때도마찬가지이다. 이제그결손된도구가본래무엇을위해또무엇과함께세계안에용재적으로있었던가가밝혀진다. 이경우에도다시환경세계가자신을고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한다. 그러한세계란현존재가이미거기에있었던바로그세계인데, 이제현존재는다시바로그세계로되돌아간다. [ 읽기자료 ] 세계가자기를고지하지않는다는것은, 용재자가그비현저성 ( 非顯著性 ) 에서부터밖으로나가지않는것을가능하게하는조건이다.(75, 112) 비현저성, 비강요성, 비반발성등결여적 [ 부정적 ] 표현은신변적용재자의존재가지닌적극적현상적성격을가리킨다. 이비는용재자의 즉자적자기유지 의성격을가리킨다.(75, 112) 세계-내-존재의일상성에는배려의여러양상들이속해있다. 이배려의양상들은세계내부적인것의세계적합성이출현하도록그렇게배려되는존재자를만나게한다. 가장가까이있는용재적 [ 用在的 ] 존재자가이용불가능한것으로서, 즉일정한사용에알맞지않은것으로서배려속에서만날수있다. 작업도구가훼손되었거나재료가부적합한것으로밝혀지는경우가그예이다. 어느경우에도도구는용재적으로존재한다. 그러나사용불가능성을발견하는것은, 성질들에대한관조적확인이아니라사용적교섭의배시 (δ 視 ) 이다. 사용불가능성이그렇게발견될때, 그도구는눈에띄게된다. 용재적도구가눈에띄이는것 [ 顯著性 ] 은어떤비용재성 [ 쓸모없음 ] 에서이다.(73, 108-109) 배려적교섭은, 그때마다이미용재적으로있는것의범위안에서사용불가능한것과마주칠뿐아니라, 결여되어있는것, 즉다루기쉽지않을뿐더러도대체손가까이에있지않은것도발견한다. 이렇게 [ 용재자의 ] 부재를아쉬워하는것도비용재자 [ 非用在者 ] 를목격하는것이므로, 용재자는다시어떤 전재적 [ 前在的 ] 존재 속에서발견된다. 용재자가비용재적인것으로서주목될때, 그용재자는강요성이라는양상을띠게된다. 지금여기에없는것이더절실하게필요해지면필요해질수록, 그없는것이그비용재성에서더본래적으로만나지면만나질수록, 용재자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더욱더강요성을띠게되고, 그결과그것은용재성의성격을상실하는것처럼보인다.(73, 109) 배려되는세계와의교섭에서비용재자는사용불가능하다거나단적으로지금여기없다는의미에서만만날수있는것이아니라, 없지도않고이용불가능하지도않으나배려에가로거치는그런비용재자 [ 非用在者 ] 로서도만날수있다. 그것은배려가거기에관심을기울일수도없고그럴겨를도없는것으로서, 거기에있지않아야할것혹은 처리되지않은것 이라는방식으로비용재자이다. 이런비용재자는방해가되며, 우선먼저배려되어야하는것이라는반발성을야기한다. 이반발과함께용재자의전재성 [ 前在性 ] 은새로운방식으로, 즉여전히앞에놓여있으면서처리되기를요구하는그런존재로서자신을고지한다.(73-74, 110) 현저성, 강요성및반발성이라는양상들은용재자 [ 用在者 ] 에게서전재성 [ 前在性 ] 이라는성격을나타내는기능을가지고있다. 그러나이때용재자는고작전재자로서만고찰되거나관조되는것이아니다. 스스로고지되는전재성은여전히도구의용재성속에구속되어있다. 도구는아직단순한사물이될만큼은폐되어있지않다. 도구는내팽개치고싶다는의미에서의도구로된다 ; 그러나이처럼내팽개치고싶다는경향에도불구하고용재자는끄떡없이전재성을지닌채여전히용재자로서자신을드러낸다. (74, 110) 현저성, 강요성및반발성에있어서용재자는일정한방식으로자신의용재성을상실한다. 그러나이용재성자체는비주제적일망정용재자와의교섭속에서이해되고있다. 용재성은단순히소멸해버리는것이아니라, 사용불가능한것이현저해질때, 말하자면자신에게이별을고하는것이다. 이때용재성은다시한번자기를드러내는데, 바로이경우 [ 즉, 용재성이이별을고할때 ] 에용재자의세계적합성도자기를드러내는것이다.(74, 110-111)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어떤도구가사용불가능하다는데는, 도구가 쓰일곳 을향한 하기위한 [ 용도성 ] 의구성적지시가방해받고있다는것이함축되어있다. 지시는그자체로는고찰되지않지만, 지시는그지시하에배려적안배가행해질때거기 [ 그現場 ] 에있다. 그러나지시가분명해지는것은, 지시가방해받을때, 즉 을위해사용불가능하게될때이다. 그러나그때에도아직존재론적구조로서분명해지는것이아니라, 작업도구의손상에봉착하는배시에대해존재 [ 자 ] 적으로분명해지는것이다. 이처럼 [ 도구의 ] 그때그때의 쓰일곳 에대한지시가배시적으로일깨워짐으로써, 이 쓰일곳 자체및이와함께작업연관, 즉배려가언제나이미거기머물러있는그작업장으로서의전체작업장이시야에들어온다. 도구연관은아직까지한번도보여진적이없는전체로서가아니라, 배시속에서부단히처음부터이미보여진전체로서밝혀져온다. 이전체와함께세계가고지된다.(74-75, 111) 마찬가지로, 어떤용재자가일상적으로그자리에있었다는것은너무나자명했기때문에우리는그것에대해조금도주의를기울이지않았는데, 그용재자가그자리에없다는것은, 배시속에서발견된지시연관이부서짐을의미한다. 그때배시는공허속에빠지고그제서야비로소거기없는것이무엇을위해또무엇과함께용재적으로있었던가를안다. 여기에서다시환경세계가자기를고지한다. 그렇게밝혀져오는것은그자체다른용재자들중의한용재자가아니고, 더구나소위용재적도구의기초가된다는전재자는정녕코아니다. 그것 [ 환경세계 ] 은모든확인과고찰에앞서거기 [ 現 ] 에존재한다. 그것은배시가언제나존재자에만향하는한배시로서도접근할수없는것이지만, 그러나배시에게는그때마다이미개시되어있다.(75, 111-112) 그러나세계가어떤방식으로 [ 존재자발견을위해 ] 빛을발할수있다면, 세계는어쨌든개시되어있어야한다. 세계내부적용재자가배시적배려에접근할수있을때는동시에그때마다이미세계는먼저개시되어있다. 따라서세계는, 그안에서현존재가존재자로서그때마다이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있었던곳이며, 현존재가어떤방식으로든분명히거기를향해간다하더라도언제나거기로되돌아올수밖에없는그런어떤것이다.(76, 113) 4) 세계의세계성 (1) 적소성 ( 한 : 適所性, 독 : Bewandtnis, 영 : Involvement) 세계는용재자가용재자로서발견되는지평이다. 용재자는세계를기반으로해서비로소용재자가된다. 그런데세계안에엄밀하게하나의용재자란존재하지않는다. 용재자는이미어떤특정한지시연관구조에종속된다. 이러한지시연관구조에따라, 특정한용재자가적합하게쓰일자리도결정된다. 망치를예로들어보자. 우리는망치를 가지고 (mit) 못을박는 데 (bei) 쓰고있다. 망치는못박는데쓰일때비로소적합하게사용된다. 망치의적합한쓰임자리는망치질이다. 망치는망치질에서비로소망치가될수있다. 만약망치가다른자리에서쓰인다면흉기가될수도있을것이다. 이렇듯 어떤것을가지고어떤경우에적합하게한다 라는것은용재자를용재자로서있게하는존재성격이다. 이러한존재성격을우리는특히적소성 ( 適所性 ) 이라명명한다. 적소성은 을가지고 에 라는관계구조를갖는다. 적소성의존재론적출처는용재자들의지시연관구조이다. 따라서적소성도연관구조를형성한다. 예를들어망치가망치질에서적소성을갖는다면, 망치질은무엇인가를고정시키는데서적소성을갖고, 또한그렇게고정시키는것은비바람을막는데서적소성을갖는다. 적소성은수단과목적의관계에의해서로간의연관구조를형성한다. 그런데이러한연관이무한히지속되지는않는다. 적소성의연관은, 예를들면현존재의숙박을위해서라는, 현존재의존재가능성에의해완결된다. 현존재의존재가능성은현존재의궁극목적이다. 그것은더이상의아무런목적도갖지않는다. 그러므로적소성의연관은현존재의궁극목적에의해하나의전체적인연관구조로서완성된다. 적소성의전체적인연관구조를우리는특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히적소전체성이라명명한다. 적소전체성이개별적용재자의적소성에선행한다. 후자는전자안에서만비로소가능하다. 작업장의예를들어보자. 작업장에집기들을배치할적에우리는집기하나하나를먼저배치한뒤, 그러고나서전체의조화를꾀하지않는다. 먼저작업장전체를둘러보고집기들의전체적인쓰임자리를염두에둔뒤, 그러고나서집기하나하나를적재적소에배치하는것이당연지사이다. 이런것이 적소토록한다 의존재자적의미에해당한다. 즉 적소토록한다 의존재자적의미는 개별적인용재자를그적합한쓰임자리에있게한다 는것이된다. 물론이때, 있게한다 라는표현은, 용재자를처음으로존재하도록만들어낸다라는뜻이아니라, 개별적인용재자를비로소용재자로서개현한다라는뜻이된다. 이에반면, 적소토록한다 의존재론적의미는모든용재자를용재자로서개현하는것과관계한다. 현존재는실존하는한그때마다용재자에의존한다. 용재자를그때마다적재적소에서사용함으로써현존재는자신의실존을꾸려나간다. 따라서 용재자를그때그때이미적소토록하였다 는것은현존재자신의존재양식을성격짓는하나의아프리오리한완료이다. [ 읽기자료 ] 용재자는세계내부적으로만난다. 이존재자의존재, 즉용재성은따라서세계및세계성과어떤존재론적관련을맺고있다. 세계는모든용재자속에언제나이미거기 [ 개현되어 ] 있다. 세계는, 비록주제적으로는아니더라도, 모든만나는것과함께이미선행적으로발견되어있다. 그러나세계는환경세계적교섭의어떤방식에서도빛을발할수있다. 세계란, 용재자가거기에의거해서용재적으로되는그런것이다.(83, 122) 용재자의도구틀은 지시 라고시사되었다. ( ) 그렇다면지시는무엇을의미해야하는가? 용재자의존재가지시의구조를가지고있다 는것은, 용재자가지시받고있다는성격 [ 피지시성 ] 을자신안에가지고있음을의미한다. 존재자는있는그대로의존재자로서도어떤것을향해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시받고있으며, 이것을기반으로해서발견되는것이다. 용재자 [ 예 : 망치 ] 는자기가쓰일수단을가지고 [ 망치질 ] 어떤것에 [ 못박는데 ] 적소적 ( 適所的 ) 이다. 용재자의존재성격은적소성 [ 適所性, 적합한쓰임자리에있음 ] 이다. 적소성에는 어떤것을가지고어떤경우에적합하게한다 는것이함축되어있다. 을가지고 [mit] 에 [bei] 라는관계는지시라는술어에의해시사되어야할것이다.(83-84, 123) 적소성은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이며, 그적소성을근거로해서그존재자는그때마다이미우선개현되어있는것이다. 세계내부적존재자는존재자로서그때마다적소성을가지고있다. 존재자가어떤적소성을갖는다는것은이존재자의존재의존재론적규정이지, 존재자에대한존재 [ 자 ] 적진술이아니다. 존재자가어디에적소성을갖는다는것은, 유용성의 어디에, 즉사용가능성의 무엇에 이다. 유용성의 어디에 는다시자신의적소성을가질수있다 ; 예컨대, 망치질때문에우리가망치라고부르는용재자는망치질에서적소성을갖고, 망치질은고정시키는데에서그적소성을가지며, 이고정시키는것은비바람을막는데서적소성을갖는다 ; 후자는궁극적으로는현존재의숙박을위해, 즉현존재의존재의가능성을위해존재한다. 용재자가어떤적소성을갖는가는그때마다적소전체성에입각해서밑그림그려진다. 예컨대, 작업장안에있는용재자를그용재성에있어서구성하는적소전체성은개개의도구보다앞서있으며, 모든집기와가재도구를갖추고있는저택의적소전체성도이와마찬가지이다. 그러나적소전체성자체는궁극적으로하나의 어디에, 즉어떤적소성도이제더이상없는 어디에 로귀착한다. 그것은세계내부에서용재자의존재양식을갖는존재자가아니라, 그존재가세계 - 내 - 존재로서규정되고그의존재틀에는세계성자체가속하는그런존재자이다. 이일차적 어디에 는어떤적소성이가능한경우로서의거기에가아니다. 이일차적어디에는궁극목적이다. 그러나궁극목적은언제나현존재의존재에관계하며, 현존재는자기존재에있어서본질적으로자기존재자체를목적으로하고있다.(84, 124)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적소토록한다 의존재 [ 자 ] 적의미는, 어떤현실적배려의범위안에서, 어떤용재자로하여금, 그것이지금있는그대로또그것이그렇게있는바와같이, 이러저러하게있게한다 는것이다. 이있게한다의존재 [ 자 ] 적의미를우리는원칙적으로존재론적으로이해한다. 이것 [ 있게한다 ] 을가지고, 우리는세계내부에우선적으로있는용재자의선행적개현의의미를해석한다. 선행적으로있게한다는것은, 어떤것을처음으로존재하도록만들어낸다는뜻이아니라, 그때마다이미있는존재자를그용재성에서발견하여, 그것을그런존재를지닌존재자로서만나게한다는뜻이다. 이렇게 [ 용재자로하여금 ] 아프리오리하게 적소토록한다 는것은용재자를만날가능성의조건이며, 그결과, 현존재는그렇게만나는존재자와의존재 [ 자 ] 적교섭에있어서, 그존재자로하여금그곳에존재 [ 자 ] 적의미에서적소토록할수있는것이다. 이에반해, 존재론적으로이해된 적소토록한다 는, 모든용재자를용재자로서개현하는것과관계한다. 용재자가, 거기에서존재 [ 자 ] 적의미에서자신의적소를갖든, 혹은용재자가거기에서존재 [ 자 ] 적으로자신의적소를갖지못하는그런존재자이든, 이것은아무런관련이없다. 여기에서후자의존재자는물론우선대개는배려되는존재자이다. 그러나우리는그것을발견된존재자로서있는그대로있게하는것이아니라, 오히려그것을가공 ( 加工 ) 하거나개선하거나파괴한다.(84-85, 125) 적소성을기반으로하여개현하면서 그때그때이미적소토록하였다 는것은현존재자신의존재양식을성격짓는하나의아프리오리한완료이다. 존재론적으로이해된 적소토록한다 는것은, 존재자를그환경세계내부의용재성을향해서선행적으로개현하는것이다. 적소토록하는 어디에 를근거로해서적소성의 무엇을가지고 [ 도구여하 ] 가개현된다. 바로이 무엇을가지고 [ 도구 ] 가용재자로서배려와만나는것이다. 존재자가일반적으로배려에서현시되는한, 즉존재자가자신의존재에서발견되어있는한, 그존재자는그때마다이미환경세계적용재자이지, 우선은단지전재적 [ 前在的 ] 으로만있는세계질료가결코아니다.(85, 125-126)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2) 유의의성 ( 한 : 有意義性, 독 : Bedeutsamkeit, 영 : Significance) 개별적용재자의적소성은적소전체성안에서발견된다. 적소전체성은현존재의궁극목적을정점으로하여완결된적소성의연관구조전체성을의미한다. 여기에서우리는세계현상을만나게된다. 적소전체성은자신안에세계와의존재론적관련을간직한다. 현존재의존재에는존재이해가속해있다. 현존재는본래적이든또비본래적이든여하튼자기의존재를이해한다. 이로써현존재는, 본래적존재가능이든혹은비본래적존재가능이든, 또한그런존재가능이명시적이건비명시적이건, 여하튼자신을궁극목적으로하는존재가능을이해한다. 그러고는자기의존재가능에입각해그때마다어떤 하기위한 을향해자신을지시한다. 즉현존재는자신의존재가능을위해집을짓도록자신을지시하며, 집을짓기위해판자를고정시키도록자신을지시하며, 판자를고정하기위해망치질을하도록자신을지시하며, 망치질을하기위해망치를가지고사용하도록자신을지시한다. 여기에서 목적과수단의계열 이성립한다. 이러한계열은현존재가자신의존재가능을실현하기위해, 다시말해실존하기위해, 자신을지시해가며용재자를적소토록하는계열이된다. 현존재의존재를정점으로하는 목적과수단의계열 은하나의지평을형성한다. 현존재가자신의존재가능을실현하기위해자기를지시해가는가운데, 다시말하자면 목적과수단의계열 이펼쳐지는가운데, 하나의지평이형성된다. 이렇게형성된지평이바로세계이다. 세계란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펼쳐지는바로 거기 가된다. 또한이 거기 가현존재가존재자를용재자로서만나게되는, 다시말해용재자를용재자로서적소토록하는 기반 이된다. 따라서 거기 로서의세계와앞서논의한적소전체성은존재론적관련을맺게된다. 거기 로서의세계안에서펼쳐지는 목적과수단의계열 을거슬러따라올라가는것이적소전체성의구조계열인 수단과목적의계열 이된다. 양자의계열은방향상으로는반대관계에해당한다. 그러나엄밀히말하자면, 목적과수단의계열 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수단과목적의계열 을정초하는셈이된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펼쳐지는지평으로서의 거기 가바로세계이다. 따라서이러한세계와현존재는친숙하다. 세계와의친숙성으로인해, 현존재는세계를세계로서구성하는관련들에관한이론적천착에는별반관심이없게된다. 그러나우리의관심은이러한관련들에대한존재론적-실존론적해석이다. 물론이러한해석은현존재의세계친숙성에근거한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는일종의유의의화 ( 有意義化 ) 작용이다. 현존재는자기의존재및존재가능을자기의세계-내-존재를고려해서근원적으로이해하도록자기자신에게 유의의화 한다. 유의의화 란 의의있게만듦 을의미한다. 유의의화작용은앞서말한 목적과수단의계열 을의의있게만들어준다. 즉유의의화작용은목적과수단의관계속에서그때그때수단을의의있게만들어준다. 즉현존재의궁극목적은 하기위한 을, 또 하기위한 은 거기에 를, 거기에 는 어디에 를, 어디에 는 무엇을가지고 를유의의화한다. 예를들면, 숙박 이라는현존재의궁극목적은 비바람을피하기위함 을, 비바람을피하기위함 은 판자를고정함 을, 판자를고정함 은 망치질 을, 그리고 망치질 은 망치를가지고 를유의의화한다. 이유의의화작용의관계전체를우리는특히유의의성이라명명한다. 그렇다면, 유의의성은현존재가현존재로서그때마다이미그안에존재하는그런세계의구조를형성하는그것이다. 즉유의의성은세계의구조가된다. 다시말해유의의성은현존재의자기지시가행해지는기반 ( 세계 ) 의구조로서, 세계의세계성을형성하는그것이된다. 세계의세계성은유의의성이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에서비롯된유의의성은세계-내- 존재의실존론적틀이된다. 이러한유의의성이적소전체성의가능성의존재자적조건임은이제더말할필요도없을것이다. 유의의성이적소전체성을존재론적으로가능하게한다. 또한유의의성은현존재의낱말과언어를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기초가된다. 낱말과언어는현존재의이해내용이분절된것에다름아니기때문이다.( 이문제는앞으로 4장에서상론됨 )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읽기자료 ] 용재자의존재로서의적소성자체는그때마다어떤적소전체성이미리발견되어있다는것을근거로해서만발견된다. 따라서발견된적소성안에는, 즉우리가만나는용재자안에는, 우리가앞에서용재자의세계적합성이라고명명한것이미리발견되어있는것이다. 이렇게미리발견되어있는적소전체성은자신안에세계와의존재론적관련을간직하고있다. 적소토록한다는것은존재자를적소전체성을기반으로해서개현한다는것인데, 그것은존재자를개현하는기반을이미어떤방식으로든스스로개시하고있지않으면안된다.(85, 126) 그런데세계내부적존재자가우선개현되는기반이선행적으로개시되어있어야한다는것은무엇을의미하는가? 현존재의존재에는존재이해가속해있다. 이해내용의존재는이해작용안에있다. 현존재에게본질적으로세계 - 내 - 존재라는존재양식이속해있다면, 현존재의존재이해를본질적으로존립시키는것에는세계 - 내 - 존재에관한이해작용이속해있다. 그것을기반으로해서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것의개현을초래하는것을선행적으로개시한다는것은, 현존재가존재자로서이미언제나관계를맺고있는세계를이해한다는것이외에다른것이아니다.(85-86, 126) [ 용재자로하여금 ] 에 을가지고 선행적으로적소토록하는것은, 적소성의 어디에 와적소성의 무엇을가지고 등적소토록함에대한이해에근거한다. 그런이해와, 더나아가그이해의근저에놓여있는것, 가령적소성이얻어지는 어디에 로서의 거기에, 모든 무엇을위해 가궁극적으로귀착하는 궁극목적 등이모든것은, 어떤이해가능성속에서선행적으로개시되어있어야한다. 그러면현존재가거기에서자신을세계 - 내 - 존재로서전 [ 前 ] 존재론적으로이해하는바탕은무엇인가? 앞에서언급한관계연관을이해함에있어, 현존재는명시적으로또는비명시적으로파악된, 본래적또는비본래적존재가능, 즉현존재자신을궁극목적으로하는존재가능에입각해서, 어떤 하기위한 을향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자신을지시하고있다. 이 하기위한 이 적소토록함 의가능한 어디에 로서 거기에 를예시 ( 豫示 ) 한다. 이때 적소토록함 은물론구조상어떤것을가지고적소토록한다. 현존재는그때마다이미언제나 [ 자기의존재가능인 ] 궁극목적에입각하여자신을적소성의 무엇을가지고 를향해지시하고있다. 다시말하면, 현존재는존재하는한, 그때마다언제나이미존재자를용재자로서만나게한다. 현존재가, 자신을지시한다는양상에있어서, 자기를선행적으로이해하는거기는존재자를선행적으로만나게하는기반이다. 존재자를적소성이라는존재양식에서만나게하는기반, 즉자기지시적이해가행해지는거기가다름아닌세계라는현상이다. 그리고현존재의자기지시가행해지는기반의구조가세계의세계성을형성하는그것이다.(86, 126) 현존재가이런방식으로자신을그때마다이미이해하고있는거기 [ 現 ], 그거기와현존재는근원적으로친숙해있다. 세계와의이런친숙성은, 세계를세계로서구성하는관련들에대한이론적천착을반드시요구하지는않는다. 그렇지만이런관련들을분명히존재론적 - 실존론적으로해석할가능성은현존재를구성하고있는세계와의친숙성에근거하고있으며, 이세계친숙성은그것대로현존재의존재이해를함께형성하고있다. 이가능성은, 현존재자신이자기의존재와이존재의여러가능성또는존재일반의의미에대한근원적해석을자기에게과제로서제기하고있는한분명하게파악될수있다.(86-87, 127-128) 앞으로더진전해서분석되어야할이해작용 ( 31 참조 ) 은, 앞서언급된관련들을선행적개시성속에보유하고있다. 이해작용은이관련들속에자신을친숙하게보유하면서, 이해의지시작용이활동하는거기 [ 터전 ] 로서의그개시성을미리보유하고있다. 이해작용은, 이관련들자체안에서, 또이관련들자체로부터, 자기에게지시하도록한다. 지시작용이가진이런관련들의관계성격을우리는유의의화작용 ( 有意義化作用 ) 이라고파악한다. 이런관련들과의친숙성속에서, 현존재는자기의존재및존재가능을자기의세계 - 내 - 존재를고려해서근원적으로이해하도록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자기자신에게유의의화한다. [ 현존재의 ] 궁극목적 은 하기위한 을유의의화 [ 의의있게 ] 하고, 하기위한 은 거기에 를, 거기에 는적소토록하는 어디에 를, 또이 어디에 는적소성의 무엇을가지고 를유의의화한다. 이관련들은근원적인전체성으로서상호연결되어있으며, 관련들이관련들인소이는이유의의화작용으로서이니, 이유의의화작용속에서현존재는자기의세계 - 내 - 존재를자기자신에게선행적으로이해하도록한다. 이유의의화작용의관계전체를우리는유의의성 [ 의의있음 ] 이라고부른다. 유의의성은세계의구조, 즉현존재가현존재로서그때마다이미그안에존재하는그런세계의구조를형성하는그것이다. 현존재는스스로유의의성과친숙하다는점에서존재자가발견될수있는가능성의존재 [ 자 ] 적조건이다. 존재자는적소성 ( 용재성 ) 이라는존재양식을지니고세계안에서만나게되고, 그렇게해서즉자적으로자기를고지할수있다. 현존재는, 현존재인한그때마다이미이런존재자, 즉그가존재함과함께본질적으로이미용재자와의연관이발견되는그런존재자이다 현존재는, 존재하는한, 그때마다이미만나는세계에자기를의존하고있으니, 현존재의존재에는본질적으로이 [ 세계에의 ] 의존성이속해있다.(87, 128-129) 한편현존재가그때마다이미친숙해있는그유의의성자체는, 자신안에, 이해하는현존재가해석하는현존재로서의의라든가하는것을개시할수있기위한가능성의존재론적조건을간직하고있으며, 이의의는다시의의대로낱말과언어의가능적존재를기초지우고있다.(87, 129) 개시된유의의성은현존재의, 즉그의세계-내-존재의실존론적틀로서적소전체성이발견될수있는가능성의존재 [ 자 ] 적조건이다.(87, 129) 현재의탐구영역의범위안에서는, 존재론적문제성의여러구조와차원에대해거듭강조되었던차이가원칙적으로식별되어야한다 : 1. 우선적으로만나는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 ( 용재성 ) ; 2. 우선적으로만나는존재자를독자적으로발견하면서관통하는가운데눈에띄고규정될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수있는그런존재자의존재 ( 전재성 ) ; 3. 세계내부적존재자일반이발견될수있는가능성의존재 [ 자 ] 적조건의존재, 즉세계의세계성. 마지막에언급된존재는세계 - 내 - 존재, 즉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이다. 그앞에언급된두존재개념은범주이며, 현존재와는다른양식의존재를지닌존재자에해당된다. 유의의성으로서세계성을구성하는지시연관을사람들은형식적으로하나의관계체계라는의미로파악할수있다. ( ) 세계성의구성요소로서의이러한관계체계는세계내부적용재자의존재를증발시키기는커녕, 도리어세계의세계성을근거로해서이러한존재자는자기의실체적즉자성에있어서비로소발견될수있는것이다. 그리고세계내부적존재자가어쨌든만나질수있을때비로소이존재자의영역안에서, 전재자에불과한것까지도접근할수있는가능성이성립한다.(88, 129-130) 5) 공간성 ( 한 : 空間性, 독 : Räumlichkeit, 영 : Spatiality) (1) 용재자의공간성용재자의존재방식은우리에게이미용재자의공간성을암시한다. 앞서논의한바와같이용재성은편리함을수반한다. 편리함이란용재자가우리의배시적배려에용이하게가까이놓여있음을함축한다. 따라서이때의가까움이란순수기하학적공간안에서의가까움이아니라우리의생활의편리에맞는가까움이다. 예를들어구두라는도구를생각해보자. 우리가구두를가까이놓는다고하여구두를벼개옆에놓지는않는다. 우리는구두를언제나용이하게사용할수있도록신발장이나혹은현관앞에가지런히정리한다. 용재자가갖는가까움이란이처럼배시적배려에서의가까움이다. 또한이런의미의가까움은방향성까지를포함한다. 용재자는언제든지접근가능한방향과관련하여놓여있어야한다. 따라서용재자의공간성은가까움과방향성이라는두가지의계기로구성된다. 역으로말하자면가까움과방향성에의해용재자의자리가결정된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용재자의공간성이란배시적배려에의해결정된용재자의자리를의미한다. 그렇다면용재자의공간성이란바로우리가앞서논의한용재자의적소성과관련된다. 적소성이용재자가그것의 쓰임자리에적합하게있음 을의미한다면, 용재자의공간성이란용재자의적소성에서의그 쓰임자리 를의미한다. 또한개별적용재자의적소성에적소전체성이선행하듯, 개별적용재자의자리에는자리전체성이선행한다. 이러한자리전체성이우리의생활공간에해당한다. 우리는특정한용재자의자리를결정할때이미자리전체성을예견하며, 이러한예견에토대하여개별적용재자의자리를결정한다. 이러한자리전체성을우리는특히방역 ( 方域 ) 이라고도명명하는데, 방역이란다름아니라적소전체성과등근원적관계에있는공간적개념이다. 그런데우리의생활공간으로서의방역은단지작업도구가적재적소에배치된작업장이나혹은가재도구를비치된우리들안방만에만한정되지않는다. 우리의생활공간으로서의방역은넓게는해와달, 그리고별이라는자연의존재자에로까지확장된다. 자연의존재자도엄밀하게말하면용재자에해당한다. 우리는앞서의논의에서재품의재료를통해자연을용재자로서만나며또한공공세계를통해환경적자연을용재자로서만남을확인한바있다. 엄밀히말하자면, 우리가세계속에서일차적으로만나는자연은영속적용재자로서의자연이다. 따라서이러한자연도우리의생활공간으로서의방역을구성한다. 아니, 더정확히말하자면영속적용재자는방역의강조된 지표 가된다. 그래서우리는생활의편리를위해동서남북이라는방위를결정한것이며또한집을지을때에도남향집을고집하며또한일출과일몰을고려하여교회와무덤을설계하는것이다. 그런데개별적용재자의공간성인자리는우리의눈에띄지않을뿐더러방역의선행적용재성도은폐된다. 이것은마치작업장안에서도구의용재성은눈에띄지않고따라서작업장의세계가은폐되는것과같다. 이러한눈에띄지않음과은폐는, 앞서논의했듯, 세계와의친숙성에근거한다. 그러나세계와의친숙성이깨질때, 즉사용해야할도구에결손이발생하여배려가결여적양상을보일때, 은폐되었던세계가비로소밝아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듯, 용재자의공간성에서역시용재자가있어야할자리에있지않을때, 자리전체성으로서의방역이비로소방역으로서우리에게접근해온다. 여기에서도배려의결여적양상에서방역은비로소방역으로서밝혀져온다. 그렇다면이러한용재자의공간성은어떻게가능할까? 용재자의공간성을가능하게하는근거는현존재의실존이다. 앞서의논의에서확인한바와같이,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는목적과수단의계열에서수단을유의의화하는작용으로전개되며이유의의성이적소전체성을구성한다. 따라서적소전체성에서파생된용재자의공간성이현존재의실존에근거함은물론이다. 현존재는실존론적으로이미공간적존재자이다. 그렇다면현존재의공간성은구체적으로어떻게규정되어야하는가? [ 읽기자료 ] 이미용재자 ( 用在者 ) 를성격지울때, 우리는어느만큼용재자의공간성과마주쳤는가? 우리는우선용재자에관해말한바있다. 그것은그때마다다른존재자에앞서서가장먼저만나는존재자를의미할뿐아니라, 동시에 > 가까이 < 있는존재자를가리키기도한다. 일상적교섭에서만나는용재자는가까움이라는성격을지니고있다. 자세히살펴보면, 도구의이가까움은도구의존재를표현하는용어인용재성에서이미시사되고있다. [ 도구적으로 ] > 손안에 < 있는것은그때마다상이한가까움을가지고있으나, 이가까움은거리측정을통해확정되는것이아니다. 이가까움은배시적으로 > 헤아리면서 < 다루거나사용하거나함으로써조정되는것이다. 배려의배시는, 이런방식으로가까이있는것을동시에 방향 즉도구를언제든지접근가능하게하는그방향과관련해서도확정한다. 도구가방향을잡아가까이있다함은, 도구가전재적 [ 前在的 ] 으로공간안의어딘가에제위치를점유한다는것을의미하는데그치는것이아니라, 본질적으로도구로서설치되고, 보관되고, 배치되고, 정돈되어있다는것을의미한다. 도구는제자리에있거나혹은 > 주변에흩어져 < 있다. 이것은임의의공간위치에순전히전재적으로출현하는것과는원칙적으로구별되어야한다. 그때그때의자리는 을하기위한도구의자리로서, 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경세계에용재적으로있는도구연관이서로서로방향을잡은자리들의전체에의거해서규정된다. 자리및자리의다양성은사물들이임의로전재적으로있는 [ 일정치않은 ] 어디 로서해석되어서는안된다. 자리는그때마다하나의도구가귀속하는특정한 > 저기 < 이고 > 거기 < 이다. 그때그때의귀속성은용재자의도구성격과상응한다. 다시말하면, 용재자가도구전체에적소적 ( 適所的 ) 으로귀속하는것과상응한다. 그러나도구전체가자리잡을수있는귀속성의근거에는, 그귀속성의가능성의조건으로서 어디로 일반이놓여있고, 이 어디로 를향해서하나의도구연관에자리전체가지정된다. 배려적교섭속에서배시적으로앞질러주목되는이 어디로, 즉가능한도구적귀속의 어디로 를우리는방역 ( 方域 ) 이라부른다.(102-103, 149-150) > 방역안에서 < 는 > 어떤방향으로 < 뿐아니라, 동시에그방향에놓여있는것의 범위안에서 도의미한다. 방향이나원격성 ( 遠隔性 ) 을통해서 가까움은이원격성의한양상일뿐이다 구성되는자리는, 이미하나의방역을겨냥해서또그방역내부에서정위 ( 定位 ) 되어있다. 배시적으로처리할수있는도구전체성의자리들이지시되고예견될수있기위해서는, 그에앞서서방역이라든가하는것이발견되어있어야한다. 용재자가점하는자리의다양성이갖는이러한방역적정위가환경세계적으로가까이서만나는존재자의주변성, 즉우리를둘러싸고있는환경을형성한다. 가능한위치들의 3차원적다양성이우선주어지고, 그것이전재적사물들로채워지는것이결코아니다. 공간의이차원성은용재자의공간성에서는아직은폐되어있다. > 위 < 는 > 천정에 <, > 아래 < 는 > 땅바닥에 <, > 뒤 < 는 > 문곁에 <, 이처럼모든 어디 는일상적교섭의과정이나방식을통해발견되고배시적으로해석되는것이지, 관찰적공간측정에서확인되고기록되는것이아니다.(103, 150-151) 방역은전재적 [ 前在的 ] 사물들이모아져서비로소형성되는것이아니라, 그때마다이미개별적자리들안에용재적 [ 用在的 ] 으로존재한다. 개별적자리들자체는배려의배시속에서용재자에게지정되거나미리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견된다. 영속적용재자 [ 해, 별, 달따위 ] 는배시적세계-내-존재가미리고려하는바이며, 그렇기때문에제자리를가지고있다. 영속적용재자의용재성이점유하는 어디 는배려의고려거리가되고나머지용재자를겨냥해서정위되어있다. 그리하여빛과열을일상적사용에공여하는태양은, 태양이공여하는것을바꿔가며사용할수있음으로해서배시적으로발견되는두드러진자리, 즉일출, 대낮, 일몰, 한밤중등을갖는다. 방식을바꿔가면서도한결같이영속하는이용재자의자리들은, 그자리들안에있는방역의강조된 > 지표 < 가된다. 이천체 ( 天體 ) 의방역 [ 동서남북 ] 은아직지리학적의미를가질필요가전혀없으나, 자리들로점유될수있는방역들을특별하게형성하기위한선행적 어디로 를미리부여한다. 집에는햇볕을받는측면도있고, 비바람을맞는측면도있다 ; 이측면에따라 > 공간 < 의분할이정위되고, 이공간내부에서다시그때마다도구의성격에따라 > 집기 < 가정위된다. 예컨대, 교회와무덤은태양의일출이나일몰에따라설계되어있으며, 생 ( 生 ) 과사 ( 死 ) 의방역으로부터현존재자신은세계안에서의자기의가장고유한존재가능성과관련하여규정된다. 자기의존재에있어서이존재자체가문제인현존재의배려는, 이두방역을선행적으로발견하고, 이두방역에의거해서그때마다 [ 자기의존재에관련되는 ] 하나의결정적적소 [ 適所 ] 를갖는다. 두방역의선행적발견은적소전체성을통해함께규정되며, 이적소전체성을근거로해서용재자가만나는것으로서개현된다.(103-104, 151-152) 그때그때의방역의선행적용재성은, 용재자의존재보다더근원적인의미에서, 눈에띄지않는친숙성이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이방역의선행적용재성은, 용재자를배시적으로발견할때눈에띈다는방식으로만, 더욱이배려의결여적양상에있어서, 스스로보여질뿐이다. 어떤것을있어야할자기자리에서만나지못할때, 자리의방역이방역으로서비로소명시적으로접근되는경우가종종있다. 배시적세계 - 내 - 존재에서도구전체의공간성으로서발견되어있는공간은, 도구전체의장소로서그때마다존재자자체에속한다. [ 흔히말하는 ] 단순한 [ 순수 ] 공간은아직은은폐되어있다. 공간은자리들속에산재 ( 散在 ) 해있다. 그러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공간성은, 공간적용재자의세계적합적인적소전체성을통해서독자적으로통일되어있다. 환경세계는미리주어진공간내에서정돈되는것이아니라, 환경세계에특수한세계성이, 배시적으로지정된자리들로이루어진그때그때의전체성이라는적재적연관을, 그세계성의유의의성에있어서분절한다. 그때그때의세계가, 그세계에속하는공간의공간성을그때마다발견하는것이다. 용재자를그환경세계적공간내에서만나도록하는것이가능한까닭은, 존재적으로는단지현존재자신이세계 - 내- 존재라는점에서공간적이기때문이다.(104, 152) 현존재는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와배려적으로친숙하게교섭한다는의미에서는세계 > 내 < 에있다. 따라서현존재에어떤방식으로든공간성이귀속된다면, 그것은오직이내-존재를근거로해서가능하다. 그런데내-존재의공간성은거리제거와방향엶이라는두성격을보이고있다.(104-105, 153) (2) 현존재의공간성현존재의공간성이란현존재의공간적구조내지는현존재의공간적성격을의미한다. 이것은앞으로 7장에서논의하게될시간성에서와마찬가지이다. 거기에서시간성이란현존재의시간적구조내지는시간적성격을의미한다. 다만하이데거가이러한공간적구조혹은시간적구조를공간성혹은시간성이라명명한까닭은, 이러한구조에서우리가통상적으로말하는자연과학적공간내지자연과학적시간이파생되기때문이다. 따라서우리는현존재의공간성이나시간성을근원적공간혹은근원적시간, 또실존론적공간혹은실존론적시간이라불러도무방할것이다. 현존재의공간적구조는앞서의논의에서이미암시되었다. 용재자의공간성을구성하는계기가가까움과방향성이라면, 역으로현존재의공간성은거리제거와방향을열음 ( 방향엶 ) 이된다. 1 거리제거 ( 한 : 距離除去, 독 : Entfernung, 영 : Deseverance)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거리제거는현존재의공간적구조 ( 혹은성격 ) 이다. 현존재는본질상거리제거이다. 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는세계안에서의실존을위해용재자를적재적소에배치한다. 따라서거리제거는현존재의실존범주이다. 단여기서의거리란배시적배려의차원에서평정 ( 評定 ) 된거리를의미한다. 이런의미의거리는순수한기하학적공간에서의간격과는구별된다. 그러나순수한기하학적공간내에서도현존재는가까움을지향하는본질적경향을가지고있다. 실존범주로서의거리제거로부터순수한기하학적공간안에서의간격의제거도파생된다. 여하튼하이데거는라디오를예로든다. 하지만만약오늘날하이데거가생존하였다면사이버스페이스를예로제시할것이다. 이제는간격을제거하는정도가아니라인간이공간을마음대로조율하는시대가도래한것이다. 거리제거에서의미되는거리의개념을좀더알아보자. 여기서의거리란앞서말했듯배시적차원에서의거리에해당한다. 이런거리개념은순수기하학적차원에서보면다소간부정확하고불안정하다. 그러나이런거리개념을갖고실존하는것이현존재의일상적모습이다. 우리는흔히 거기까지는담배한대거리이다. 라고말한다. 담배한대를피면갈수있는거리라는뜻이다. 이런말속에순수기하학적거리개념이없음은물론이다. 또 대개반시간정도걸려 라는말에서언급된거리개념도, 정확히말하자면, 배시적배려차원에서평정 ( 評定 ) 된거리를의미한다. 따라서배려적으로가까운거리와순수기하학적으로가까운거리는구별된다. 마치재미없는영화를볼때에는두시간이마냥지루하게느껴지고재미난영화를볼때에는시간이순식간에흘러가듯, 마지못해가는 객관적으로 매우짧은길도배려적으로는매우 힘든길 로여겨질수있고혹은반대로 객관적으로 매우먼길도즐거운마음으로한걸음에달려가면배려적으로는매우짧은길이될수있는것이다. 몇가지의예를더들어보자. 코위에얹혀있는안경과반대편벽에걸린그림을비교해보자. 순수기하학적거리개념을적용하자면, 눈위에얹혀있는안경이후자의그림보다는훨씬객관적으로짧은거리안에있다. 하지만우리의배려가후자의그림에머문다면눈위의안경은보이지도않게된다. 배려적으로는안경보다그림이훨씬가까이있는것이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우리가그위를걷고있는도로와저스무발작거리를두고있는친구의경우도마찬가지이다. 우리의배려가그친구에게머무는한, 그친구가우리가그위에있는도로보다배려적으로는더가까운것이다. 이런것이실존론적거리개념이다. 실존론적거리개념에서는배려가어디에머무느냐에따라가까움과멂이결정된다. 세계안에서만나는용재자를배려하는가운데현존재의실존은실현된다. 따라서현존재는용재자가자신의배려로부터멀리있음을용납하지않는다. 현존재는용재자가자신의배려로부터멀리있음을가로지르기는커녕, 오히려철저히실존론적거리를제거한다. 즉현존재는자신의실존을위해배려에방해가되는모든거리를없애고자한다. 그렇기에현존재는본질적으로거리제거요, 다시말하면이런의미에서공간적존재자가된다. [ 읽기자료 ] 거리제거란어떤것의 [ 멀음을, 다시말해 ], 원격성을소멸시키는것, 즉가까이함을의미한다. 현존재는본질적으로거리제거적이니, 현존재는그자신존재자로서 [ 자기이외의 ] 존재자를그때마다가까이에서만나게한다. 거리제거가원격성을발견한다. 원격성은간격과마찬가지로, 현존재가아닌존재자에대한범주적규정이다. 이에반해, 거리제거는실존범주로서확보되어야한다.(105, 153-154) 거리제거는우선대개배시적으로 가까이함, 즉조달하고, 준비하고, 손가까이두는것으로서 가까이에가져옴 이다. 그러나존재자를순수하게인식하면서발견하는특정한양식들역시가까이함이라는성격을갖는다. 현존재속에는가까움을지향하는본질적경향이있다. 우리가오늘날많든적든불가피하게참여하고있는모든종류의속도의상승은원격성의극복으로치닫고있다. 예컨대, 현존재는오늘날 > 라디오 < 를가지고, 그현존재적의미를미처짐작할수없을만큼, 일상적환경세계를확대하 [ 고파괴하 ] 는방법으로 > 세계 < 의거리를제거하고있다.(105, 154)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거리를제거한다고해서반드시용재자의멀음을현존재와연관해서명시적으로평정 ( 評定 ) 하는것이아니다. 무엇보다도원격성은결코간격으로서파악되지않는다. 멀음이평정되려면, 그것은일상적현존재가자기를유지하고있는원격화와상관해서일어난다. 이러한평정은, 계산이라는면에서보면부정확하고불안정하겠지만, 현존재의일상성에서는특유하고어디까지나이해가능한규정성을가지고있다. 우리는, 거기까지는산책거리다, 한달음거리다, > 담배한대거리다 < 라고말한다. 이척도가표현하는바는, 그척도가 > 측정 < 을원하지도않을뿐아니라, 평정된원격성은사람들이거기를향해배려하면서배시적으로다가가는존재자에속한다는것이다. 그러나우리가확고한척도에의존해서 > 집까지는반시간걸린다 < 라고말할때도, 이척도는평정된척도로서간주되어야한다. 반시간은 30분이아니라하나의지속이다. 이지속은일반적으로양적연장이라는의미에서의 > 길이 < 를갖는것이아니다. 이지속은그때마다익숙해진일상적배려에근거해서해석된다. 원격성은우선배시적으로평정되는것이고, 그것은 > 관청에서 < 계산한척도를숙지하고있는경우에도그렇다. (...) 거리제거된것 [ 거리가좁혀진것 ] 은그런평정안에용재적으로존재하기때문에, 그것은자신의특수한세계내부적성격을지니고있다. (...) > 객관적으로 < 긴길도 > 객관적으로 < 매우짧은길보다더짧을수있는데, 이때 > 객관적으로 < 매우짧은길은아마 > 힘든길 < 일것이고, 어떤사람에게는무한히길게여겨지는길일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그러한 > 여겨짐 < 속에서그때그때의세계가비로소본래적으로용재적으로존재하는것이다. 전재적사물의객관적간격은, 세계내부적용재자의원격성이나가까움과일치하는것이아니다. 객관적거리가정확하게알려질수있다하더라도, 이런지식은맹목적지식일뿐이고, 환경세계를배시적으로발견하면서가까이한다는기능을가지고있지못하다.(105-106, 154-156) 측정된간격으로서의원격성에일차적으로또전적으로정위하게되면, 내-존재의근원적공간성은은폐되고만다. 가장가까운것으로여겨지는것이라해서, 우리로부터의간격이가장짧은것은아니다. 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장가까운것은손과발과눈이미치는평균적범위안에서떨어져있는것가운데있다. 현존재는거리제거라는방식에있어서본질적으로공간적이기때문에, 교섭은언제나어떤활동범위안에서그때마다현존재에의해거리제거된환경세계내에서행해지며, 따라서우리는거리상으로는우선가장가까운것을듣지도보지도못하고넘기는수가흔히있다. (...) 예컨대, 거리상으로는현존재에게너무가깝게코위에얹혀있는안경을끼고있는사람에게는, 이사용도구는환경세계적으로는반대편벽에걸린그림보다더먼것이다. 이도구는가까이있기는커녕, 우선결코발견되지않는경우가허다하다. 이런시각도구나, 예컨대전화의수화기등청각도구는, 앞에서지적한대로우선용재자가 눈에띄지않는다 는성격을가지고있다. 그것은, 예컨대보행도구인길에대해서도타당하다. 걷고있을때길은발걸음과접촉하고있으며, 외견상으로는일반적으로용재자중에서가장가까운것, 가장실재적인것처럼여겨져서, 말하자면길은특정한신체의부위인발바닥을따라이동한다. 그러나그길은, 그렇게걸어갈때, 길위에서스무발작거리를두고만나는친구보다더멀리떨어져있다. 환경세계적으로우선적인용재자의가까움과멂을결정하는것은배시적배려이다. 이배시적배려가처음부터머물고있는그곳, 그것이가장가까운것이며, 그것이거리제거를규제하고있다.(106-107, 156-157) 현존재는세계 - 내 - 존재로서본질적으로거리제거가운데자신을유지하고있다. 이거리제거, 즉현존재자신으로부터의용재자의멂을현존재는결코가로질러갈수없다. (...) 현존재는자신의거리제거를결코가로질러가지못하기는커녕, 도리어거리제거를받아들여왔으며또부단히받아들이고있는것이다. 그까닭은현존재가본질적으로거리제거요, 다시말하면공간적이기때문이다. 현존재는그가행하는거리제거의그때그때의영역내에서이리저리맴돌수는없고, 단지거리제거를언제나바꿀수있을뿐이다. 현존재는배시적공간발견이라는방식에서공간적이며, 그래서현존재는그렇게공간적으로만나는존재자에대해언제나원격화하면서 [ 거리제거하면서 ] 태도를취하고있는것이다.(108,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158) 2 방향엶 ( 독 : Ausrichtung, 영 : Directionality) 현존재의또하나의공간적구조는방향을연다는구조 ( 혹은성격 ) 이다. 용재자를배시적배려의차원에서거리를제거하여가까이한다는것은, 그에앞서이미용재자를어떤방역에로방향을열어취한다는것을의미한다. 예를들어작업장에비품하나를배치할때에도우리는작업장전체의방역을예견하면서그안에서그비품이놓일방향을결정하여열고있다. 이처럼방향을여는것에도, 거리제거에서처럼, 배시적배려가선행한다. 그런데방향을연다는것의의미는이런정도에한정되지않는다. 가령앞서의예에서처럼동서남북의방위를정하는것도방향을여는것이며, 또한좌우의방향을고정시키는것도방향을여는것이다. 현존재의실존론적공간구조가전제되지않는다면, 동서남북이나혹은좌우의구별도없을것이다. 또한현존재의실존론적공간구조에의해좌우의방향이고정되었기에오른손장갑과왼손장갑도존재하게되는것이다. [ 읽기자료 ] 현존재는거리제거하는내-존재로서동시에방향을연다는성격을지니고있다. 가까이함은그에앞서이미어떤방역을향해방향을취하고있었던것이며, 이방역으로부터거리제거당한것이가까이오는것이고, 그결과, 거리제거당한것은그자리와관련해서눈에띄게된다. 배시적배려는뱡향을열면서거리제거한다. 이러한배려에서, 즉현존재자신의세계-내- 존재에서 > 기호 < 의필요성이먼저생긴다 ; 이도구 [ 기호 ] 는명시적이고손쉬운방향지시를담당하고있다. 기호는배시적으로사용되는방역, 즉거기에귀속하고, 거기로나아가고, 거기로가져가고, 거기에서가져오는그때그때의 거기로 [ 방역 ] 를명시적으로열어준다. 현존재가존재할때, 그현존재는방향을열면서거리제거하는자로서, 그때마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미발견된자기의방역을가지고있다. 방향엶은거리제거와마찬가지로세계-내-존재의존재양상으로서배려의배시에의해선행적으로인도되고있다.(108, 158-159) 이러한방향엶으로부터좌우의고정된방향이생긴다. 현존재는자신의거리제거와마찬가지로 [ 좌우의 ] 방향도늘동반하고있다. 현존재의 > 신체성 < 은여기에서는다룰수없는독자적문제성을간직하고있지만, 그 > 신체성 < 에있어서의현존재의공간화는이두방향 [ 좌우 ] 에따라현저하게나타난다. 따라서용재자나신체를위해사용되는것, 예컨대장갑은양손의운동과함께움직이도록지어져야하므로, 오른쪽왼쪽에맞게방향지워져있어야한다. 이에반해, 손에잡히고손으로움직여지는손도구 [ 망치 ] 는 [ 오른쪽왼쪽 ] 손에특수한손운동을따르지않는다. 따라서비록망치가손으로사용된다하더라도, 왼손망치니오른손망치니하는것은있지않다.(108-109, 159) 거리제거와방향엶은, 내-존재의구성적성격으로서, 발견된세계내부적공간안에배려적-배시적으로있어야하는현존재의공간성을규정한다.(110, 160-161) (3) 공간명도 ( 한 : 空間明渡, 독 : Raum-geben, 영 : Giving space) 현존재의공간성과용재자의공간성의관계는이미설명되었다. 현존재의공간성이용재자의공간성을가능하게한다. 여기서는이관계를다시한번확인한뒤, 순수기하학적공간의가능성을좀더구체적으로밝혀보고자한다. 현존재의배시적인자기지시가목적과수단의계열에서수단을하나하나유의의화함으로써세계가성립한다. 세계의세계성은유의의성이다. 이유의의성을반대로거슬러올라가는것이적소전체성이다. 적소전체성과등근원적관계에있는것이방역이다. 적소토록한다는것은거리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제거하며방향을열어용재자를방역에적소케함을의미한다. 이때거리를제거하며방향을연다는것이현존재의공간적구조즉공간성이다. 현존재의공간성에의해용재자의공간성이가능하게된다. 즉현존재의공간성에의해용재자의공간귀속성이성립한다. 이제우리는이러한관계를일컬어공간명도 ( 空間明渡 ) 라명명한다. 공간명도란곧공간허용이다. 이처럼현존재의공간적구조에의해용재자의공간성이가능하게되므로, 현존재는그때마다세계를배시적으로배려하면서용재자의공간성안에다른용재자를갈아넣고혹은비우기도하고, 혹은챙겨넣기도할수있는것이다. 그런데우리가굳이공간이란개념을일단배제하고공간성이란개념을사용한까닭은통상우리가공간이라부르는순수기하학적공간이가깝게는용재자의공간성으로부터또근원적으로는현존재의공간성으로부터파생된것임을보이기위해서였다. 작업장에서용재자의공간성은은폐되어있다. 용재자의공간성이드러나는것은배시가결여적양상을보일때이다. 그런데이와는반대로이제는우리의시선이배시로부터해방되어관조적태도를가졌을때우리는순수한공간을발견한다. 하이데거는이러한태도의변화를세계의탈세계화라고명명한다. 세계가탈세계화되었을때환경세계적방역들은중성화된다. 즉용재적도구들의자리전체성은그도구적성격을말끔히지워버리고, 다시말해그적소성을상실하고, 순수한위치의다양성으로변양한다. 바로여기에서우리는순수한공간을만나게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순수한기하학적공간이세계혹은세계-내-존재와아무런관련도없다는것은아니다. 세계의탈세계화는세계-내- 존재를전제한다. 세계의탈세계화란세계의존재의한극단을가리킨다. 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의공간성으로부터용재자의공간성이파생된다면, 또마찬가지로용재자의공간성이존재이해의변양을거쳤을때순수기하학적공간이파생된다. 그러니까근원적으로보자면, 공간이주관안에있는것도아니고, 또한세계가공간안에있는것도아니다. 오히려세계-내-존재가근원적으로는공간을개시한다. 공간은세계 안 에있는것이다. 그러니까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의공간성은근원적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로공간의가능근거이므로, 근원적공간이라불리워도무방하리라. [ 읽기자료 ] 현존재가거리제거와방향엶의방식으로공간적이기때문에, 환경세계의용재자는현존재의공간성에서만날수있다. 적소전체성을개현하는것은, 등근원적으로거리제거하면서-방향을열어 [ 존재자로하여금 ] 한방역에적소케하는것, 다시말하면용재자의공간적귀속성을개현하는것이다. 배려하는내-존재로서의현존재가친숙해있는유의의성속에는, 공간도본질상함께개시되어있다는것이들어있다.(110, 161) 세계내부적존재자를만나게하는것은세계-내- 존재에대해구성적이지만, 그렇게만나게하는것은일종의 > 공간명도 <( 空間明渡 ) 이다. 우리가공간허용이라고도부르는이 > 공간명도 < 는, 용재자를그공간성을향해개현하는것이다. 이공간허용은, 적소성이결정된가능한장소전체성를발견하면서미리주는것으로서, 그때그때의 [ 현존재의 ] 현사실적정위를가능케한다. 현존재가세계를배시적으로배려하면서, 무엇을갈아넣고, 비우고, > 챙겨넣고 < 할수있는것은, 오직현존재의세계-내- 존재에 실존범주로서이해된 공간허용이속하기때문이다. 그러나그때마다선행적으로발견된방역도, 일반적으로그때그때의공간성도분명하게시야속에들어와있지않다. 이공간성은, 용재자를배려함에있어 [ 우리의 ] 배시가몰두하는그용재자가 눈에띄지않는 경우에, 그배시에대해그자체로현전한다. 공간은세계-내-존재와함께우선이공간성에서발견되어있는것이다. 이렇게발견되는공간성을지반으로해서공간자체가인식작용에접근가능해진다.(111, 162) 공간이주관안에있는것도아니고, 세계가공간안에있는것도아니다. 현존재를구성하는세계 - 내 - 존재가공간을개시한이상, 공간은오히려세계안에있다. 공간이주관안에있는것도아니고, 주관이세계를마치공간안에있는듯이관찰하는것도아니며, 존재론적으로충분히이해된주관, 즉현존재가근원적의미에서공간적이다. 그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고현존재가전술한방식으로공간적이기때문에, 그공간은아프리오리로서드러난다. 이명칭 [ 아프리오리 ] 은, 우선은아직 무세계적주관 에공간이선행적으로귀속되어있어서그주관이공간을자기밖으로내던지는그런것을의미하지는않는다. 여기서말하는 [ 공간의 ] 아프리오리티는, 용재자를그때그때의환경세계에서만날때, ( 방역으로서의 ) 공간과의만남이선행함을의미한다.(111, 163) 배시적으로우선가까이만나는것의공간성은배시자신에대해주제적으로되고, 예컨대집을짓거나땅을잴때, 계산과측정의과제가될수있다. 환경세계의공간성을주로배시적으로주제화하면, 이와함께공간은그자신에있어서이미어떤방식으로든시야속에들어오게된다. 순수한관조는이렇게자기를드러내는공간을추적해갈수있으나, 그때는전에공간에접근하는유일한가능성이었던배시적계산 [ 눈짐작 ] 은포기된다. 공간의형식적직관이공간적관계들의순수한가능성들을발견한다. 이때, 순수한동질적공간을전개하면, 공간형태의순수한형태학에서부터위치해석 ( 位置解析 ) 에이르고, 마침내순수한계량적공간학에이르기까지일련의단계계열이성립한다.(111-112, 163) 배시로부터해방되어관조적으로만공간을발견하면, 환경세계적방역들이중성화되어순수한차원으로된다. 도구가차지하는자리들, 즉배시적으로정위했던용재적도구의자리전체성은, 한꺼번에무너져서임의의사물을위한위치의다양성으로바뀐다. 이와함께세계내부적용재자의공간성은그적소성의성격을상실한다. 세계는그특수한주변성을상실하고, 환경세계는자연세계로된다. 용재적도구전체로서의세계는공간화되어, 단지연장된전재적 [ 前在的 ] 사물들의연관으로변한다. 이동질적자연공간은, [ 우리와 ] 만나는존재자의한발견양식, 즉용재자의세계적합성을특수하게탈세계화한다는성격을가진발견양식을통해서만드러난다.(112, 163-164) 3. 세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한 : 世人, 독 : das Man, 영 : They) 이장의주제는세계-내-존재의두번째구조계기와관련된다. 세계- 내-존재로서있는자는 누구인가 라는물음이이장의주제가된다. 이물음에답하기위해우리는일상적현존재를주목한다. 일상적현존재야말로우리가세계안에서우선대개만나는인간의모습이니까. 통상적으로우리는세계-내- 존재로서있는그 누구 는 나 라고답변한다. 현존재는그때마다 나 의존재이므로, 이답변은그야말로거침없이들릴수도있다. 그러나이러한답변에는두가지의본질적인문제점이있다. 첫째, 그 누구 를 나 라고답변할때우리는은연중에형이상학적실체개념을전제한다. 전통적형이상학은 나 를태도나체험의다양한변화에도불구하고항상자기동일성을유지하는실체라는관점에서해석한다. 비록의식의사물성, 인격의대상성, 혹은영혼의실체를부인하더라도, 으레우리는 나 를항상자기동일적인 자기 로서해석한다. 이러한의미의자기가주관에해당한다. 그런데이런식으로 나 의존재를이해하면결국현존재는전재자 ( 前在者 ) 로서이해된다. 그러나현존재는결코전재자일수없다. 현존재는세계-내-존재로서세계안에서부단히자신의실존을추구해나가는존재가능으로서의존재자이다. 따라서현존재가아닌존재자의존재양식인전재성을가지고 나 의존재를해석하는것은잘못이다. 둘째, 세계-내-존재로있는그 누구 를 나 라고답변할때우리는 나 의존재와타자의존재를구별한다. 그러나이러한답변은존재자적차원에서의답변에불과하다. 물론현존재가그때마다자기의존재를문제삼는각자성 ( 各自性 ) 으로실존한다는것은부인할수없는현사실이다. 그러나이것은어디까지나현존재에대한존재론적규정일뿐, 일상성을살아가는 내 가과연그진정한의미에서 나 로존재하는가는아직확인된바없다. 어쩌면자기의본래적의미를상실한채살아가는것이우리일상적현존재의실상이아닐런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읽기자료 ] 현존재는그때마다나자신인존재자이며, 그존재는그때마다나의존재이다. 이규정은한존재론적틀을고시하지만또한그것뿐이다. 동시에이규정속에들어있는것은, 이존재자는그때마다나이지타자가아니라는 비록조잡하기는하지만 존재 [ 자 ] 적고시이다. 누구인가 는나자신, > 주관 <, > 자기 < 에근거해서대답된다. 그 누구 는태도나체험의변화에도불구하고동일한것으로서자기를유지하면서 [ 태도나체험의 ] 다양성과관계맺고있는자이다. 우리는이것을존재론적으로어떤완결된영역내에서, 또이영역에대해, 그때마다이미부단히있는전재자 [ 前在者 ], 즉탁월한의미에서 근저에놓여있는것, Sub-jectum[ 기체, 실체 ] 으로서이해한다. 기체는다양하게달라지는속에서도자기동일적인것으로서자기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사람들은, 의식의사물성이나인격의대상성을거부하는것과마찬가지로영혼의실체는거부할수있다하더라도, 존재론적으로는여전히그존재가명시적이든아니든전재성 [ 前在性 ] 이라는의미를지닌그어떤것을단초로삼고있다. 실체성은존재자, 즉거기로부터누구인가라는물음의대답이풀려나오는존재자를규정하기위한실마리이다. 현존재는무언중에처음부터전재자로서이해되고있다. 어느경우에있어서나현존재의존재의무규정성은언제나이런 [ 전재성이라는 ] 존재의미를함축하고있다. 그러나전재성은현존재가아닌존재자의존재양식이다.(114-115, 168-169) 나는그때마다현존재인그것이다 라는진술이존재 [ 자 ] 적으로자명하다고해서, 그진술이, 그렇게주어진것을존재론적으로해석하는길을오해없이예비소묘한다고잘못생각해서는안된다. 그뿐더러위에서말한진술의존재 [ 자 ] 적내실이과연일상적현존재의현상적실상을적합하게재현 ( 再現 ) 하고있는지어떤지의심스럽다. 일상적현존재의그 누구 는바로그때마다나자신이아닐수도있다.(115, 169) 사람들은언제나이존재자 [ 현존재 ] 에관해, 그것은자아이다 라고말할수있을것이고, 그것은존재 [ 자 ] 적으로는옳다. 그러나존재론적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석론은, 그런진술을사용하는경우에도, 그진술을원칙적으로유보해두지않으면안된다. 자아는, 그때그때의현상적존재연관속에서는그반대로서밝혀질수도있는어떤것을, 구속력없이형식적으로지시한다는의미로이해되기만하면그만이다. 그렇다면그때비 - 자아는, 본질적으로자아성을갖지않은존재자를의미하는게아니라, 자아자신의특정한존재양식, 예컨대 자기상실성 을가리킨다.(116, 170) 1) 타자 ( 한 : 他者, 독 : das Andere, 영 : Others) 타자는인간의영원한숙제이다. 인간은홀로이세상에태어났기에나를제외한다른모든이들은나의타자가된다. 현존재는세계-내-존재이므로, 무세계적주관도있을수없지만, 타자없는고립된자아도있을수없다. 그러기에현존재에게는항상타자와의관계설정이문제시된다. 그러나일상적자기로서살아가는현존재와타자사이에는정말이처럼건널수없는가교가놓여있는가? 우리가타자와만나는일상적방식은, 앞서세계의세계성분석에서논의하였듯, 가장비근하게는용재자 ( 用在者 ) 를통해서이다. 제품은불특정의타자를겨냥한다. 기성복도그렇고, 우리주변의언론매체도그렇다. 또한우리는제품의재료를통해서도타자를만나게된다. 재료의생산자와공급자도서로간타자이다. 하다못해들길을걸을때에도그들길은누군가의소유물이다. 그런데이처럼용재자를통해서만나는타자가전재자 ( 前在者 ) 도아니고용재자도아님은물론이다. 그들도나와같은현존재이다. 그들도나처럼현존재하며세계-내-존재로서용재자를배시적으로배려하며실존한다. 또한이러한불특정의타자가운데나도포함된다. 예를들어기성복생산자의입장에서보자면나도타자가된다. 그렇다면타자란나를제외한나머지사람들을일컫는이름이아니다. 세계속에서나도타자로존재한다. 타자란세계안에서서로구별되지않고뒤섞여살아가는우리들모두의이름이된다. 그렇기에현존재의세계가공동세계라면, 타자로서의우리는공동현존재 (Mitdasein) 가된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읽기자료 ] 세계-내-존재의해명을통해드러난바에따르면, 세계없는단순한주관이란우선 > 존재 < 하지도않고, 결코주어져있지도않다. 마찬가지로, 결국타자없이고립된자아도우선주어져있지않다. 그러나 > 타자들 < 이그때마다이미세계-내- 존재에서함께현존재한다 [ 공동현존재 ] 면, 이것을현상적으로확인하는일이, 그렇게 > 주어진것 < 의존재론적구조가자명해서어떤탐구도필요하지않다고간주하는길로잘못들어가서는안된다. 이제과제는, 이공동현존재의양식을가장비근한일상성에서현상적으로밝히고, 존재론적으로적합하게해석하는일이다.(116, 171) 가장가까운환경세계, 예컨대수공업자의작업세계를 > 기술 < 했을때, 작업중에있는도구와함께제품을 [ 사용물로서 ] 규정하고있는타자들도함께만난다는것이밝혀졌다. 이용재자 [ 用在者 ] 의존재양식, 즉용재자의적소성 [ 適所性 ] 에는, 그용재자 [ 제품 ] 가그의몸에맞게재단되어야할가능한착용자에대한본질적지시가숨어있다. 마찬가지로, 사용되는재료를보면, 재료의생산자와 > 공급자 < 를, > 봉사 < 를잘하는자또는잘못하는자로서만나게된다. 예컨대, 우리가 > 교외 < 에나가들밭을따라걷게되면, 그들밭은잘손질된누구의밭으로서드러난다. 이용되고있는책은누군가에게서산것, 누구로부터기증받은것등등이다. 강가에정박해있는보트는자체적으로있으면서도, 그것을타고저어가려는어떤지인 ( 知人 ) 을지시하고있으며, > 낯선보트 < 라하더라도역시타인을지시하고있다. 이렇게환경세계의용재적도구연관에서만나는타자는, 우선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사물에덧붙여서생각된것이아니다. (...) 이존재자는, 도구나사물일반과구별될뿐더러, 그존재양식상그자신세계-내- 존재의방식으로현존재로서세계 > 내 < 에있으며, 그세계내에서동시에세계내부적존재자를만나는것이다. 이존재자는전재적으로있는것도아니고, 용재적으로있는것도아니며, 개현하는현존재자신과마찬가지로그렇게존재한다 그것은 [ 현존재와 ] 함께 [ 또한 ] 현존재한다.(117-118, 172-173)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타자와의만남을위와같이성격지으면, 그것은결국다시그때마다자기의현존재에정향하게된다. (...) [ 그러나 ] > 타자 < 란그들로부터 자아 가부각되는, 나이외의나머지사람전부라는뜻이아니다. 타자들은, 사람들이대개그들로부터자신들을구별하지않고그들속에섞여있는, 그런사람들이다. 이그들과 함께또한현존재한다 [ 공동현존재 ] 는것은, 세계내부에 > 함께 < -전재적[ 前在的 ] 으로있다는존재론적성격을갖는것이아니다. > 함께 < 는현존재적인것이고, > 또한 < 은배시적으로배려하는세계-내-존재로서의존재가같음을의미한다. > 함께 < 와 > 또한 < 은실존론적으로이해되어야지범주적으로이해되어서는안된다. 이공동의세계-내- 존재를근거로해서, 세계는그때마다이미언제나내가타자들과함께나누는그런세계이다. 현존재의세계는공동세계이다. 내 -존재는타자와의공동존재이다. 타자의세계내부적자체존재는공동현존재이다.(118, 173-174) 2) 공동존재 ( 한 : 公同存在, 독 : Mitsein, 영 : Being-with) (1) 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으로서의공동존재공동현존재의가능근거는공동존재이다. 현존재는본질상공동존재이다. 공동존재는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이다. 현존재가더불어삶으로써비로소공동존재가가능하게된것이아니라, 오히려현존재가이미공동존재이기에더불어삶도가능하다. 홀로있음 을예로들어보자. 현존재가홀로있음도존재론적-실존론적으로보자면현존재가이미공동존재이기때문에가능하다. 만약현존재가공동존재가아니라면타자가없음을자각할리만무하다. 그러기에홀로있음은공동존재의결여적양상으로서오히려현존재가공동존재임을입증한다. 또한이홀로있음은나의주변에다수의사람들이모인다고해서제거되지도않는다. 기차여행을할때내주변에다수의사람이있다고할지라도내가그들을무관심과낯설음의양상으로만대하는한, 홀로있음은제거되지않는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만약다수의사람들로인해홀로있음이제거된다면공동존재는한낱집합적의미만을가질것이다. 그러나다수의사람들안에서도내가홀로있음을느낀다는것은현존재가공동존재임을반증한다. 무인도에표류했던로빈슨크루소우의삶도마찬가지이다. 로빈슨크루소우의단독적삶은단순히그가종교, 수학, 혹은도구의사용을알았기때문에가능하게된것이아니었다. 이러한요인은단지현상적요인에불과했다. 오히려그의단독적삶은그가이미공동존재였기에가능했다. 그는자신이살던공동세계를무인도에옮겨놓았던것이다. 공동존재에대한논의에서빼놓을수없는사항이감정이입이다. 감정이입은나의주관과다른은폐되어있는주관사이를잇는교량역할을한다. 그런데감정이입도궁극적으로는현존재가이미공동존재이기때문에가능하다. 감정이입은공동존재가결여된양상을보일때요청된다. [ 읽기자료 ] 타자의이공동현존재가현존재에게또공동현존재자에게세계내부적으로개시되는것은, 현존재가본질적으로그자체로공동존재이기때문이다. 현존재는본질상공동존재이다 라는현상학적진술은실존론적- 존재론적의미를갖는다. 이진술은, 나는현사실적으로홀로전재적으로있지않고오히려나와같은양식을가진타자들도 [ 많이 ] 출현한다 는것을존재 [ 자 ] 적으로확인하려는것이아니다. 현존재의세계-내- 존재가본질상공동존재에의해구성된다 는명제가위에서말한것을의미한다면, 공동존재는현존재의존재양식에입각해서현존재자신으로부터나와서현존재에귀속하는어떤실존론적규정성이아니라, 타자의출현을근거로해서그때그때생기는하나의성질에불과할것이다. 공동존재는타자가현사실적으로전재 [ 前在 ] 하지않고지각되지않을때에도현존재를실존론적으로규정한다. 현존재의단독존재 [ 홀로있음 ] 도세계안에서의공동존재이다. 타자가없다는것도공동존재안에서만또공동존재에게만가능하다. 단독존재는공동존재의한결여적양상이고, 그것이가능하다는것은공동존재를증명하는셈이다.(120, 176)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반면, 한범례적제2 의인간이나열명의그런사람들이내곁에나타난다고해서현사실적인단독존재가제거되는것이아니다. 이사람들또는그이상의사람들이전재 [ 前在 ] 한다고해도현존재는단독적으로있을수있다. 그러므로공동존재및상호존재의현사실성은다수주관이함께출현한다는데근거하는게아니다. 그러나많은사람들속에서홀로있을때, 그많은사람들의존재에관해, 그들이단지전재적으로있다는것을의미하는것은아니다. > 그들속에 < 있을때도그들은함께현존재한다 [ 공동현존재이다 ]; 그들의공동현존재는무관심과낮설음이라는양상에서만난다. 결석과 > 부재 ( 不在 )< 는공동현존재의양상이고, 그것이가능한것도현존재가공동현존재로서다른사람들의현존재를자기의세계안에서만나게하기때문이다. 공동존재는그때마다자기의독자적현존재의규정성이다 ; 공동현존재는, 타자의현존재가공동존재의세계를통해그공동존재에게개현되는한, 타자의현존재의성격을규정한다. 자기의독자적현존재는, 그가공동존재의본질구조를갖고있는한에서만, 타자를만나고있는자로서공동현존재인것이다.(120-121, 176-177) 그다지달갑지않게감정이입이라고불리어지는이현상은, 우선단독적으로주어진나의주관에서우선일반적으로은폐되어있는다른주관을향해, 존재론적으로말하자면처음으로다리를놓게되는것이다.(124, 181-182) 타자를대하는존재는독자적이고환원할수없는존재관계일뿐아니라, 이존재관계는공동존재로서이미현존재의존재와함께있다. 과연공동존재를근거로해서생생하게서로안다 [ 상호면식 ] 는것은, 자기의현존재가그때그때자기자신을얼마만큼이해했느냐하는데에종종의존한다는것은논쟁의여지가없다 ; 그러나이것은, 현존재가타자와의본질적공동존재를얼마만큼꿰뚫어보고위장하지않았느냐하는것을의미할뿐이고, 그것은현존재가세계 - 내 - 존재로서그때마다이미타자들과함께있을때만가능하다. 감정이입이공동존재를비로소구성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하는게아니라, 도리어감정이입은공동존재를근거로해서비로소가능한것이니, 감정이입이불가피하게되는동기는공동존재의결여된양상이우세하다는데있다.(125, 182-183) (2) 고려 ( 한 : 顧慮, 독 : Fürsorge, 영 : Solicitude)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 (Sorge) 이다. 우리가앞서논의했던배려 (Besorge) 는마음씀이세계내부적용재자와관계하는방식이다. 그러나공동존재에서우리가만나는존재자는용재자가아니라공동현존재자로서의타자이다. 따라서타자에대한마음씀이배려일수는없다. 우리는타자를, 마치용재자를대하듯, 조작하고이용하지않는다. 오히려타자를돌보아주고보살펴주는것이현존재의마음씀이다. 따라서우리는타자에대한마음씀을고려라고명명한다. 협력이고려의긍정적양상이라면, 반목, 무시, 그냥지나침, 서로모르는체함따위는고려의결여적양상이라할만하다. 이모두가고려의가능한방식들이다. 그런데적극적양상에서볼때, 고려는두가지의극단적가능성을갖는다. 하나는타자로부터세상살이방식을빼앗아그를대신하고그를위해진력함으로써그를의존자나피지배자로만들어버리는고려이며, 다른하나는타자가실존적으로자신의삶을이끌어갈수있도록모범을보임으로써타자의본래적실존을가능하게하는고려이다. 전자의고려가과잉보호를통해오히려타자의실존을박탈한다면, 후자의고려는타자가본래적으로실존할수있도록도와주는고려이다. 특히후자의고려는, 앞으로우리가 6장에서논의할선구적결의성과관련하여앞질러논의하자면, 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양심을회복한본래적현존재가타자와관계맺는양상으로서, 현존재사이의본래적상호주관성을확보하는근거가된다. 그런데일상적현존재는대개는적극적고려의이두극단적가능성사이에머물러있다. 이런것이일상성안에서맺어지는상호주관성의양상이다. 고려는공동현존재자들사이의관계맺음의방식이다. 그런데마치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려에배려를이끄는고유한시 ( 視 ) 가있듯이, 고려에도고려를이끄는고유한시 ( 視 ) 가있다. 배려의시 ( 視 ) 가배시 (δ 視, Umsicht) 라면, 고려의시 ( 視 ) 는 돌보아주는시 (Rücksicht) 와 보살피는시 (Nachsicht) 가된다. 또한이런시 ( 視 ) 의결여적혹은무차별적양상은 돌보지않음 (Rücksichtslosigkeit) 과수수방관 (Nachsehen) 이된다. 이제우리는세계-내-존재로서실존하는자가 누구인가 를해명하는마지막단계에들어섰다. 이제까지의논의를종합해보면이렇다. 1) 일상적현존재는세계안에서만나는용재자를배려하면서거기에몰두한다. 2) 일상적현존재는용재자를통해만나는타자와공동현존재한다. 나를제외한나머지사람들이타자인것이아니라나도타자로서존재한다. 일상적현존재는모두타자로서존재하는공동현존재자이다. 3) 공동현존재를가능하게하는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은공동존재이다. 공동존재안에서타자들사이의관계맺음의방식이고려이다. 공동현존재는고려를통해타자들과의공동존재에몰두한다. 따라서일상적현존재는단독화된자기를확보하지못한다. 일상적현존재는오히려자기를상실한채실존한다. 일상적현존재는자기자신이아닌것이다. 그렇다면이러한일상적현존재는 누구 일까? [ 읽기자료 ] 공동현존재가세계-내- 존재를실존론적으로구성한다면, 이공동현존재도세계내부적용재자에대한배시적교섭 그특성을우리는앞에서배려라고지적한바있다 과마찬가지로, 마음씀이라는현상에서부터해석되어야하는데, 이마음씀으로서규정되는것은현존재일반의존재이다 ( 제1편제6장참조 ). 공동존재라는존재양식이비록배려와마찬가지로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에대한존재라하더라도, 배려의존재성격은공동존재에특유한것은아니다. 현존재가공동존재로서거기에대해태도를취하는그존재자는, 그러나용재적도구라는존재양식을갖는것이아니고, 그자신현존재이다. 이존재자는배려되는게아니라고려되는것이다.(121, 177)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음식과입성을 > 배려 < 하는것도환자를간호하는것도고려이다. 그러나우리는이표현을, 배려의용어법과일치시켜서실존범주를나타내는술어로서이해한다. 예컨대, [ 현존재의 ] 현사실적사회제도로서의 > 고려 < 는그기초를공동존재로서의현존재의존재틀에둔다. 그런사회제도가현사실적으로긴요한동기는현존재가, 우선대개는고려를갖지않은양상에머물러있다는데있다. 서로협력하고, 반목하고, 무시하고, 그냥지나치고, 서로모른체하는것은다고려의가능한방식들이다. 바로이마지막에언급한결여와무관심의양상은일상의평균적상호존재의성격을규정한다.(121, 178) 적극적양상에서보아, 고려는두개의극단적가능성을갖는다. 고려는말하자면타자로부터 > 배려 < 를빼앗아서그의배려를자기가대신하고그를위해진력한다. 이런고려는배려거리를타자를위해인수한다. 이때타자는자기자리에서밀려나고물러섬으로써배려되던것을마음대로처리할수있게된것으로서뒤에가서받아들이거나배려되던것으로부터완전히면제될수있다. 이런고려에서는타자는의존자나피지배자가될수있다 설사그지배가말없는지배이고피지배자에게는은폐되어있다하더라도. [ 남을위해 ] 진력하고 [ 남의 ] > 마음씀 < 을빼앗는이고려는상호존재를광범하게규정한다. 이런고려는대개용재자 [ 用在者 ] 에대한배려와진배없다.(122, 178) 이에반해, 고려의 [ 또하나의 ] 가능성은타자를위해진력하기보다는타자가실존적으로존재할수있다는점에서그타자에게모범을보이는데서성립한다. 이것은타자를위해 > 마음씀 < 을빼앗는것이아니라, 마음씀그자체를비로소본래적으로 [ 그타자에게 ] 돌려주는것이다. 이고려가본질상본래적마음씀 즉, 타자의실존에관계하지타자가배려하는어떤것에관계하지않는고려이며, 이런고려가타자를도와서그가배려속에있음을꿰뚫어보게하고이배려에대해자유로워지게한다.(122, 178-179)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일상적상호존재는적극적고려의두극단 진력하고지배하는고려와모범을보이고해방하는고려 사이에머물러있으면서다양한혼합형식을보이고있으나, 그혼합형식을기술하고분류하는것은이연구의한계밖의일이다.(122, 179) 용재자를발견하는방식으로서의배려에배시가속하는것과마찬가지로, 고려를이끄는것은돌보아주는것과보살피는것이다. 이양자는고려와함께각각에상응하는결여적또는무차별적양상을거쳐마침내, [ 한편으로는 ] 돌보지않음에, [ 다른또한편으로는 ] 무관심을유도하는수수방관에이른다.(123, 179) 지금수행한분석에따르면, 자기자신에게서자기의존재자체가문제인현존재의존재에는타자와의공동존재가속해있다. 따라서현존재는본질적으로공동존재로서타자들을위해 > 있다 <. 이것은실존론적본질진술로서이해되어야한다. 그때그때의현사실적현존재가타자들을고려하지않고, 그들을불필요하다고생각하거나그들없이지낸다하더라도, 그는공동존재의방식으로있다. 실존론적목적성으로서의공동존재에서그타자들은그들의현존재에있어서이미개시되어있다.(...) 현존재가본질적으로그속에그때마다이미있는위와같이구성된그세계의세계성은환경세계의용재자를만나게하지만, 동시에그것은배시적으로배려된것으로서의그용재자와함께타자들의공동현존재도만나게하는것이다. 세계의세계성의구조에서보면, 타자들은우선허공에떠있는주관들로서다른사물과나란히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게아니라, 세계안에서의그들의환경세계적배려적존재에서, 세계내부의용재자 [ 用在者 ] 로부터자신을드러낸다.(123, 180) 공동존재에타자들의공동현존재의개시성이속한다함은, 현존재의존재는공동존재이므로그현존재의존재이해속에는이미타자들에대한이해가포함되어있다는것을의미한다. 이이해는, 이해일반과마찬가지로, 인식에서부터생긴지식이아니라, 인식과지식을맨처음가능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게하는근원적으로실존론적인하나의존재양식이다.(123-124, 180) 자기의현존재는, 타자들의공동현존재와마찬가지로, 우선대개환경세계적으로배려되는공동세계에입각해서만난다. 배려되는세계에몰두할때, 즉동시에타자들과의공동존재에몰두할때, 현존재는자기자신이아니다. 그러면존재를일상적상호존재로서인수한자는도대체누구인가?(183) 3) 실존범주로서의세인일상적현존재의구체적인삶의모습을돌아보자. 타자들과의공동현존재에서사람들은타자와의차이성에마음을쓴다. 차이성은눈에띄지않으면않을수록더욱더집요하게일상적현존재를지배한다. 차이성을고르게하거나아니면차이성을통해타자보다월등한자기를과시해타자를억누르려는것이일상적현존재의실존적양상이다. 하지만어느경우에도실상일상적현존재는차이성에얽매인채타자들에게예속된다. 나와남을구별하기위해타자라는칭호를사용하건만. 실상일상적현존재는자기를상실한채타자에게귀속된다. 그렇기에세계-내-존재로서있는 누구 는단독적인자기의삶을잃어버린채중성화된다. 우리는이중성적존재자를세인 ( 世人 ) 이라별칭한다. 세인처럼보고, 듣고, 즐기고, 몸을도사리고, 격분하는것이우리일상적현존재의자화상이다. 세인이일상성의존재양식을지령한다. 세인의고유한존재방식을알아보자. 첫째는앞서말한차이성이다. 그런데일상적현존재가차이성을눈여겨보는까닭은, 일상적현존재가이미실존론적으로평균성을배려하기때문이다. 실로일상적현존재는평균성을삶의가치척도로삼아자신의삶을조율한다. 평균성적, 평균연봉, 평균수명등, 우리는지긋지긋할정도로평균성에매달린다. 평균성에따라웃고우는것이우리네인생살이다. 그런데평균성은결국평준화 ( 혹은평탄화 ) 를낳는다. 모든것은평등이라는이념아래평준화되어야한다. 입시지옥을해결하기위해선택한가장손쉬운방법이고교평준화정책이다. 대중문화의열풍도평준화에기인한다. 차이성, 평균성, 평준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평탄화 ) 가일상적현존재의공공성을구성한다. 일상적현존재는자기의본래적실존을추구하기는커녕모든것을공공성에내맡긴다. 공공성이일상적현존재의자기해석을규제한다. 그러기에세인은일상적현존재로부터자신의삶에대한결단과책임을빼앗는다. 세인이모든판단과결단을미리주기에일상적현존재는책임을면제받는다. 책임을지려는사람은아무도없게된다. 몇해전인가천주교에서벌인 내탓이오 운동은세인의존재면책을반증한다. 그런데존재면책만큼일상적현존재를유혹하는것은없다. 세인이존재면책을가지고일상적현존재에게영합함으로써, 세인의집요한지배는더욱강화된다. 따라서세인은비록무 ( 無 ) 는아니나, 결과적으로는 아무도아닌자 가된다. 차이성, 평균성, 평준화 ( 평탄화 ), 공공성, 존재면책및영합이일상적현존재를지배한다. 일상적현존재는자기를상실한다. 자기의존재를문제삼아야하는현존재는그만세인으로전락한다. 세인은일종의실존범주로서현존재의비본래적혹은비자립적실존의양상이다. 단적으로말하면, 일상적현존재의자기는세인-자기가된다. 세인-자기라는칭호에서후자의자기가본래적자기이다. 그러나현존재의본래적자기는세인속에분산되고만다. 그러기에우리는세인-자기이다. 실상우리네현존재는우선세인이고대개는세인으로인생을마감한다. 그러나우리는이러한삶에만족할수없다. 인간현존재는본래자기의존재를문제삼는존재자이다. 따라서우리는세인-자기로부터은폐와무명화 ( 無明化 ) 를극복하여본래적자기를회복해야한다. 본래적자기존재란바로세인의실존적변양이다. [ 읽기자료 ] 타자들과함께, 타자들을위해, 타자들과대립해서생각한바를배려할때, 사람들은늘타자들과의차이에대해마음을쓰게된다. 그것은타자들과의차이를단지고르게하기위한것이기도하고, 자기의현존재를 타자들에게뒤떨어져있어서 타자들과의관계에서끌어올리려고하는것이기도하며, 자기의현존재가타자들보다우월해서그들을억누르려고하는것이기도하다. 상호존재는 자기에게는감추어져있지만 이런차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이에대한마음쓰임으로인해불안해하고있다. 실존론적으로표현하자면, 상호존재는차이성이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이존재양식이일상적현존재자신에게눈에띄지않으면않을수록그존재양식은더욱더집요하고근원적으로작용한다.(126, 184) 그러나공동존재에속하는이차이성에서보면, 현존재는일상적상호존재로서타자들에게예속되어있다. 현존재는자기로서있지못하고, 타자들로부터존재를탈취당하고있다. 타자들의의향이현존재의일상적존재가능성을좌우한다. 이때타자들이란특정한타자들이아니다. 반대로모든타자들이그들을대표할수있다. 결정적인것은, 눈에띄지않는타자들의지배를공동존재로서의현존재가이미부지불식간에받아들이고있다는것이다. 사람들자신이타자들에게귀속되어, 그타자들의힘을강화하고있다. 타자들이란, 자기가본질적으로그들에게귀속되어있음을감추기위해사람들이부르는명칭이지만, 그타자들은실은일상적상호존재에있어서우선대개현존재하는사람들이다. 그 누구 란이사람저사람이아니고, 사람자신이나몇몇사람도, 모든사람의총계도아니다. 그누구는중성적인것, 세인 [ 세상사람 ] 이다.(126, 184-185) 공공의교통기관을이용하고보도기관 ( 신문 ) 을활용할때, 모든타자들은그냥타자들이다. 이상호존재는자기의현존재를완전히타자라는존재양식속으로용해하여, 더욱이차이지고두드러지는타자란더욱더소멸되고만다. 이렇게눈에띄지않고확인할수없는가운데에서세인은자기의본래적독재권을발휘한다. 우리는세인이즐기듯이즐기고만족스러워하며, 세인이보고비평하듯이문학과예술에관해우리도읽고보고비평한다 ; 세인이몸을도사리듯이우리도군중으로부터몸을도사리고, 세인이격분하듯이우리도격분한다. 세인은특정한사람이아니며, 총계라는의미에서가아닌모든사람이다. 이세인이일상성의존재양식을지령하는것이다.(126-127, 185)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세인은그자신고유한존재방식을가지고있다. 우리가차이성이라고부른전술한공동존재의경향은, 상호존재그자체가평균성을배려한다는데근거한다. 평균성은세인의실존론적성격의하나이다. 세인은그존재에있어서본질적으로평균성에관여한다. 그러므로세인은현사실적으로는, 당연시되는것, 사람들이성과를시인하거나부인하는것, 그런것들의평균성속에서자기를유지하고있다. 무엇은감행할수있고감행해도무방한가를미리윤곽짓고있는이평균성은돌출하는모든예외를감시한다. 모든우월성은잡음없이억제된다. 모든근원적인것은하룻밤사이에오래전부터숙지된것으로서범속화되고, 애써쟁취한모든것은다루기쉬운것으로된다. 모든비밀은그힘을잃는다. 평균성의마음씀은다시현존재의한본질적경향을노정한다. 그경향을우리는모든존재가능성의평탄화 ( 平坦化 ) 라고부른다.(127, 185) 차이성, 평균성, 평탄화는세인의존재방식으로서, 우리가공공성이라고알고있는것을구성한다. 공공성은우선세계해석과현존재해석을규제하고, 모든것에서정당성을장악한다. ( ) 공공성은일체를흐리게하고, 그렇게해서은폐된것을숙지된것, 누구에게나접근될수있는것으로서내세운다.(127, 186) 세인은도처에현전하지만, 현존재가결단으로치달을때는언제나이미그자리에서꽁무니를빼고만다. 그러나세인은모든판단과결단을미리주기때문에, 그때그때의현존재에게책임을면제해준다. 세인이언제나사람들을증인으로끌어들이는것을세인은말하자면다반사로하고있다. 어떤것에대해아무도책임질필요가없기때문에, 세인은아주쉽게모든것에대해책임질수있다. 세인은언제나책임져야할사람이었으나그런사람은아무도없다고말하게된다. 현존재의일상성에서일어나는일의대부분은, 책임질사람은아무도없었다고말하지않을수없는세인에의해야기된다.(127, 186) 이와같이세인은그때그때의현존재로하여금그일상성에서책임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면하게한다. 그것만이아니다 ; 현존재속에안이한것을추구하는경향이숨어있는한, 세인은위의존재면책을가지고현존재에영합한다. 또세인은존재면책을가지고부단히그때그때의현존재에영합하기때문에, 세인은그집요한지배를유지하고강화한다.(127-128, 186) 누구나타자인지라홀로그자신인사람은아무도없다. 일상적현존재는누구인가하는물음에대해서는세인이라고대답했으나, 이세인은아무도아닌자이며, 모든현존재는서로서로섞여있으므로해서그때마다이미자기를그아무도아닌자에게넘겨주어버리고만것이다.(128, 186) 위에서밝혀진일상적으로서로섞여있다는존재성격들, 즉차이성, 평균성, 평탄화, 공공성, 존재면책및영합속에현존재의가장비근한자립성이있다. 이자립성이란어떤것이끊임없이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다는것을가리키는게아니라, 공동존재로서의현존재의존재양식을가리킨다. 자신의현존재의자기도타자의자기도, 위에서말한여러양상속에있는한, 미처발견되지않거나상실하고만다. 세인은비자립성과비본래성이라는방식으로있다. 이런존재방식은현존재의현사실성의감소를의미하는것은아니며, 그것은세인이아무도아닌자이지만그렇다고해서무는아닌것과같다.(128, 187) 세인이란하나의실존범주이며, 근원적현상으로서현존재의적극적틀에속한다. 세인은또한스스로자기를현존재에적합하게구체화시킬여러가지가능성을가지고있다. 세인의지배가갖는날카로움과강도는역사적으로바뀔수있다.(129, 188) 일상적현존재의자기는세인- 자기이므로, 우리는후자를본래적자기, 즉특별히파악된자기와구별한다. 그때그때의현존재는세인 - 자기로서세인속에분산되어있으므로자신을새삼스럽게찾아내지않으면안된다. 이분산은, 우리가가장가까이만나는세계속에배려하면서몰두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는것이라고알고있는, 그런존재양식을가진주체의성격이다. 현존재가세인 - 자기로서자기자신에친숙하다면, 이것은곧, 세인이세계및세계 - 내 - 존재의가장가까운해석의밑그림을그리고있다는뜻이다. 세인자신은현존재가일상적인목적으로삼는바이지만, 그세인자신이유의의성의지시연관을분절한다. 현존재의세계는, 세인에게친숙한적소전체성을지향해서, 그리고세인의평균성으로확정된한계안에서, 만나는존재자를개현한다. 우선은현사실적현존재는평균적으로발견된공동세계내에존재한다. 나는우선독자적인나자신이라는의미로존재하지않는다. 나는세인이라는방식으로타자인것이다. 이세인으로부터, 그리고세인으로서, 나는나자신에게우선주어져있다. 현존재는우선세인이고또대개세인으로그친다. 현존재가세계를독자적으로발견해서자기에게가까이가져온다면, 현존재가자신의본래적존재를자신에게개시한다면, 이러한세계의발견과현존재의개시는언제나은폐와무명화 ( 無明化 ) 의제거로서, 현존재가자기자신에대해자물쇠를채우는위장의분쇄로서수행된다.(129, 188-189) 일상적상호존재의존재가외견상순수한전재성 [ 前在性 ] 에존재론적으로가까워지는듯하면서도원칙적으로그것과다르다면, 본래적자기의존재는결코전재성으로서파악되지는않을것이다. 본래적자기존재란세인으로부터분리된한주체의예외상태가아니라, 본질적실존범주로서의세인의한실존적변양이다.(130, 189) 4. 내 - 존재 ( 한 : 內 - 存在, 독 : In-sein, 영 : Being-in) 이장의주제는세계-내-존재의세번째구조계기인내-존재이다. 그런데사람들은내-존재라는개념의형식적구조만을보고이를세계내부적존재자의내부성과혼동하기도한다. 그러나세계내부적존재자의내부성이란, 컵 안의 물이나혹은장농 안의 옷의예에서보듯, 세계내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적존재자상호간의공간적관계를의미한다. 이러한공간적관계를우리는특히범주라고칭하는데, 범주는현존재가아닌존재자의존재론적성격에해당한다. 이에반해우리가이장에서논의하고자하는내-존재는범주로서의내부성과엄격히구별된다. 현존재는마치컵 안의 물처럼그렇게단순히세계안에서세계에대해공간적관계를맺으며존재하지않는다. 오히려현존재는세계안에서실존한다. 세계안에서정을붙인채부대껴가며몰입해살아가는것이현존재의현사실이다. 내-존재란바로이렇게현존재가세계안에몰입해살고있음을의미한다. 그렇기에우리는내-존재를범주로서의내부성과구분지어실존범주라고호칭한다. 실존범주로서의내-존재는세계-내-존재라는본질적틀을가진현존재의존재를나타내는형식적이고실존론적표현이다. 그런데내-존재의의미는독일어 In-sein에대한어원분석을통해서도입증된다. 내-존재 (In-sein) 에서 in( 내, 內 ) 은 innan에서유래한다. 여기에서 in 은 [ 어디에 ] 산다, 거주한다, 체재한다 를, 또 an 은 익숙하다, 친숙하다 혹은 돌본다 를의미한다. 따라서내-존재 (In-sein) 에서 내 (in) 는단순한공간적관계따위를의미하지않는다. 오히려 내 는, 어원적으로도, 세계안에친숙하게거주함을의미한다. 또한 In-sein에서 sein의 3 인칭형인 bin( 있음 ) 은 bei 와연관되는데, bei 의어원적의미는단순히 공간상에서의옆 이아니라... 에몰입해있음, 즉 이러이러하게친숙한세계에몰입해서머무르고있음 에해당한다. 따라서어원분석을통해서도내-존재가... 에몰입해살고있음 은입증된셈이다. [ 읽기자료 ] 우선중요한것은, 실존범주로서의내 -존재와, 전재자 [ 前在者 ] 상호간의범주로서의내부성과의존재론적차이를보는일이다.(56, 84) 내- 존재란무엇을뜻하는가? 이표현을우리는우선세계안의 내- 재 ( 內在 ) 라고보완하고, 이 내- 재 를 안에있음으로서이해하기쉽다. 이용어로언급되는존재자의존재양식은컵안에있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물, 장농안에있는옷과같이, 다른존재자의안에있는존재자의존재양식이다. 우리가안이라는말로생각하는것은, 공간안에연장되어있는두존재자가이공간속에서차지하는장소와관련해서맺고있는존재관계이다. 물과컵, 옷과장농은같은방식으로공간안의어떤장소에있다. 이같은존재관계는, 예컨대교실안에있는의자, 대학안에있는교실, 도시안에있는대학등등으로확대되어, 우주공간안에있는의자에까지이른다. 이존재자들은서로서로안에있다고규정될수있으나, 이들은모두세계의내부에서출현하는사물들로서전재적 [ 前在的 ] 존재라는동일한존재양식을갖는다. 어떤전재적인것안의전재적존재, 즉일정한장소관계라는의미에서동일한존재양식을가진어떤것과함께있는전재적존재는, 우리가범주적이라부르는존재론적성격이오, 현존재적이아닌존재양식을가진존재자에속하는존재론적성격이다.(53-54, 80-81) 이에반해, 내-존재는현존재의한존재틀을의미하고따라서실존범주이다. 그렇다면내 - 존재는어떤전재적존재자안에있는어떤물체 ( 인간의신체 ) 의전재적존재라고생각될수는없다. 내 - 존재는전재자의공간적상호내속 ( 相互內屬 ) 을의미하기는커녕, 내는근원적으로위에서말한그런양식의공간관계를의미하지않는다 ; in[ 내 ] 은 innan-에서유래하며, [ 어디에 ] 산다, 거주한다, 체재한다는의미를갖는다 ; [innan의] an 은 나는익숙하다, 친숙하다, 나는어떤것을돌본다 는뜻이다 ; 이것은 habito[ 나는거주한다 ] 나 diligo[ 나는경애한다 ] 라는의미에서 colo[ 나는산다, 돌본다, 경애한다 ] 라는어의 ( 語義 ) 를가지고있다. 이런의미에서의내 - 존재를가진존재자를우리는그때마다나자신인존재자라고불렀다. [ 내가있다 고할때의 ] bin [ 있다 ] 이라는표현은 bei 와연관을가지며, 내가있다는것은다시 나는거주한다, 나는 에몰입해서, 즉이러저러하게친숙한세계에몰입해서머무르고있다 는뜻이다. 내가있다의부정법 ( 不定法 ) 으로서의존재, 즉실존범주로서이해된존재는 에몰입해서살고있다, 과친숙하다 를의미한다. 따라서내 - 존재는세계 - 내 - 존재라는본질적틀을가진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의존재를나타내는형식적이고실존론적인표현이다.(54, 81-82) 1) 개시성 ( 한 : 開示性, 독 : Erschlossenheit, 영 : Disclosedness) 내-존재란현존재가세계안에몰입해있음을의미한다. 그런데이렇게현존재가세계안에몰입해있을수있는근거는현존재자신에게이미자기의존재는물론이거니와세계및세계안에서만나는타자및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가개시되어 ( 열어밝혀져 ) 있기때문이다. 따라서내 -존재에대한논의는자연스레개시성에대한논의로이어진다. 우리는, 앞서의논의에서, 인간을존재론적-실존론적차원에서현존재 (Dasein) 라이름지었다. 현존재 (Dasein) 에서현 (Da) 의일상적의미는 여기 혹은 저기 를가리키는공간적개념이다. 혹자는 Dasein을우리말로는 거기에있음 으로, 또영어로는 There being 으로번역하기도하는데, 그까닭은 Da의공간적의미를살려내기위해서이다. 그러나우리의용법에서현 (Da) 은존재론적-실존론적의미를갖는다. 앞서 2장 5절에서상론하였듯, 용재자 ( 用在者 ) 의 저기 를가능하게하는것이현존재의실존론적공간성이라면, 현존재의실존론적공간성은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를근거로가능하게된다. 그리고이처럼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펼쳐지는, 다시말해세계가세계로서개시되는사건이바로현존재의현 (Da) 이된다. 그러니까현 (Da) 의존재론적-실존론적의미는 존재가개시되어있음 이된다. 현 (Da) 은본질적으로개시성 ( 開示性 ) 이다. 즉현존재는그의개시성이다. 존재이해야말로현존재의본질적특성이된다. 현존재의존재이해를통해서만다른존재자의존재도밝혀진다. 현존재가없다면존재도없다. 그러기에현존재는비유해서말하자면, 자연의빛 이된다. 현존재는곧 밝음 (Lichtung) 이다. 그 밝음 안에서만세계내부적존재자는빛에접근하기도하고어두움속에감추어지기도한다. 개시성을논의하기에앞서우리는먼저하이데거의독특한사유구조를밝혀두고자한다. 하이데거는하나의사태를논의할때항상그사태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형식적구조를문제삼는다. 그러고는그형식적구조에서어떻게그사태의비본래적양상과본래적양상이가능하게되는지를보여준다. 개시성에대한논의는이러한절차에따라진행된다. 이장은우선개시성의형식적구조를밝혀낸뒤, 개시성의비본래적일상적양상을논의한다. 개시성의본래적양상은앞으로 6장에서선구적결의성으로구체화되어논의될것이다. [ 읽기자료 ] 본질적으로세계 - 내 - 존재에의해구성되는존재자는그자신그때마다자기의현존재이다. 관용화된말뜻에따르면, 현은여기와저기를가리킨다. 여기있는나의여기는언제나용재적저기에입각해서, 즉저기를향해 멀음을제거하면서 - 방향을열면서 - 배려하면서존재한다 는의미에서의저기에입각해서이해된다. 현존재에게그와같이그의자리를규정해주는, 현존재의실존론적공간성은그자체세계 - 내 - 존재에근거한다. 저기란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것의규정성이다. 여기와저기는하나의현에서만, 다시말하면현의존재 [ 현 - 존재 ] 로서공간성을개시한존재자가있을때만가능하다. 이존재자는그가장고유한존재에있어서폐쇄되지않았다는성격을갖고있다. 현이라는표현은이본질적개시성을의미한다. 이개시성으로인해이존재자 ( 현존재 ) 는세계의현 - 존재와하나가되어자기자신으로현존재한다.(132, 193-194) 인간안에있는 lumen naturale[ 자연의빛 ] 이라는존재 [ 자 ] 로비유적인말은, 이존재자는그의현존재라는방식으로존재한다는, 그존재자의실존론적 - 존재론적구조이외의다른것을의미하지않는다. 이존재자가조명받고있다는것은그자신이세계 - 내 - 존재로서자기자신에게빛을발하고있다는것, 즉다른존재자에의해밝혀지는것이아니라그자신의존재가곧밝음 [ 빛 ] 이라는것을의미한다. 실존론적으로그렇게밝혀진존재자에게만전재자 [ 前在者 ] 가빛속에서는접근되고어둠속에서는감추어진다. 현존재는자기의현을애초부터본유 ( 本有 ) 하는것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이어서, 그것없이는현존재는현사실적으로존재하지않을뿐아니라도대체그런본질을가진존재자가아니다. 현존재는그의개시성이다.(132-133, 194) (1) 정상성 ( 情狀性 ) ( 한 : 情狀性, 독 : Befindlichkeit, 영 : State-of-mind) 개시성은하나의통일적현상이로되, 그구조계기는정상성, 이해, 그리고말로나뉘어진다. 정상성, 이해, 말이개시성을구성한다. 이절에서는우선정상성을논의하고자한다. 1 기분 ( 한 : 氣分, 독 : Stimmung, 영 : mood) 종래의철학에서기분은탐구주제가아니었다. 기분은지극히사소하고일시적인변덕정도로간주되었다. 그러나기분이존재론적으로아무것도아닌것은아니다. 오히려우리는언제나기분에젖어있을뿐더러, 기분은우리를자기의존재에직면하게한다. 예를들어보자. 특별히할일도없는한가한오후였다. 계속되는사업의실패로좌절한채이군 ( 君 ) 은마냥우두커니공원벤치에앉아있었다. 애꿎게담배만연방피워대며그는일종의무기분에젖어있었다. 이군은담담한심정으로지난세월을더듬어보기도하였으나그것뿐이었다. 오히려몸은점점나른해지면서자기의존재가짜증스러워졌다. 순간이군은피던담배를비벼끄며하늘에다고함이라도지를양자리를박차고일어났다. 무기분이그를짜증스러운자기의존재에직면하게했던것이다. 기분이상했을때도마찬가지이다. 이군은오늘도아내와언쟁을벌였다. 막무가내로언성을높이는아내를보니, 앞으로저여인과인생을함께살아가야할자기의존재가부담스러워졌다. 어느덧이군은인생의짐을훨훨벗어던질양공원을향하고있었다. 그러나이군의뒷모습은마냥어두웠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정상성 ( 情狀性 ) 이란우리가기분에젖어있는상태를의미한다. 기분은, 비록우리가그이유를알지는못하지만, 우리가어떤심경에있으며또어떤심경에있게될것인가를드러낸다. 정상성은 현존재를근원적으로드러내는현 (Da), 즉존재개시의장이된다. 기분은반성을통해드러나는것이아닐뿐아니라도리어기분에있어서현존재는자기와세계를원초적직접적으로개시한다. (...) 현존재가기분에젖어있다는것은, 현존재가그존재에있어서바로그 [ 기분에젖은 ] 현존재로서실존한다는사실을개시한다. ( 소광희, ꡔ하이데거의 < 존재와시간 > 강의ꡕ, 문예출판사, 2003. 93-94쪽 ) 기분혹은정상성은우리를, 그동안반성한바없던자기의존재앞에직면시킨다. 경우에따라서우리는기분속에서 현존재는있고또있어야한다 라는적나라한사실에부딪히기도한다. 사랑하던여인과애달픈이별을하고돌아서는순간, 우리는두손을불끈쥐고자기의존재를확인한다. 그러나대개의경우우리는다시일상의세계로돌아간다. 우리는기분을내색하지않는다. 특히다른사람과마주하였을때우리는기분속에숨쉬고있는자기의존재를애써감추려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기분의존재론적-실존론적의미가퇴색하는것은아니다. 오히려 너의얼굴에다쓰여있어. 라고말하듯, 기분으로부터의회피는기분의존재론적-실존론적의미를반증한다. [ 읽기자료 ] 우리가존재론적으로정상성 [ 情狀性 ] 이라는명칭으로표시하는것은존재 [ 자 ] 적으로는가장익숙하고가장일상적인것, 즉 기분, 기분에젖어있음 이다. 기분의심리학이라는것이아직은완전히미개척상태에있지만, 중요한것은기분의심리학에앞서이현상을기초적실존범주로서간주하고그구조를조감하는일이다.(134, 196) 일상적배려의방해받지않은평정감 ( 平定感 ) 과억제된불쾌감, 전자에서후자로의이행및그역이행, 언짢은기분에빠지는것따위는, 설사이런현상들이현존재안에서는지극히사소하고일시적인것이라하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주목받지못한다하더라도, 존재론적으로는아무것도아닌것이아니다. 기분이저상되고바뀔수있다는것은현존재가그때마다이미언제나기분에의해규정되어있다는말에다름아니다. 이따끔지속하고기복없고멍청한무기분 ( 無氣分 ) 은기분상함과혼동되어서는안되지만, 그런무기분은아무것도아니기는커녕도리어그무기분속에서현존재는자기자신에대해짜증스러워한다. 그런기분상함에서는현의존재는부담으로서드러난다. 그이유를사람들은알지못한다. 현존재가그것을알지못하는까닭은, 인식의개시가능성이, 현존재로하여금 현 으로서의자기의존재에직면케하는기분의근원적개시에비하면, 그범위가너무좁기때문이다. 또고양된기분은존재의분명한부담에서벗어나게할수는있으나, 설사벗어난다하더라도, 이기분가능성역시현존재의부담성격을개시한다. 기분은사람이어떤심경으로있으며또있게될것인가를나타낸다. 이사람의심경여하에서 [ 사람이 ] 기분에젖어있으면 [ 자기의 ] 존재를그 [ 기분적 ] 현속에가져온다.(134, 196-197) 기분에젖어있다는점에서현존재는언제나이미기분상다음과같은존재자로서개시되어있다 ; 그존재자란, 현존재를그존재에있어서, 즉실존적으로있어야하는그존재에있어서떠맡는그런존재자이다. 개시되었다함은그것으로곧인식되었다는말이아니다. 그러나지극히사소하고소박한바로그일상성에서현존재의존재는 현존재는있고있어야한다는사실 로서적나라하게버그러져나올수있다. 단순히 현존재가있다는것 은드러나있건만, 그것이어디서오고어디로가는지는어둠에싸여있다. 마찬가지로, 현존재가일상적으로이런저런기분에사로잡히지않는다는사실, 즉현존재가기분의개시작용에이끌려가지도않고개시된것앞에자기를노출시키지도않는다는사실은, 그런현존재의있는그대로의사실에서는 현 의존재가기분에따라개시된다는현상적실상을반대하는증명이아니라, 도리어그것을옹호하는증거이다. 현존재는대개존재 [ 자 ] 적 - 실존적으로는기분속에서개시되는존재를회피하지만, 이것은존재론적 - 실존론적으로는그런기분이내키지않는바로그것에서현존재는스스로 현 에내맡겨져있음을드러내고있음을의미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회피하는바로거기에서 현 은개시되어있다.(134-135, 197) 2 피투성과현사실성 ( 한 : 被投性, 독 : Geworfenheit, 영 : thrownness) ( 한 : 現事實性, 독 : Faktizität, 영 : facticity) 인생은나그네길이다. 아무도자기가어디에서왔고어디로가는지를알수없다. 그러나 우리가존재하고있다 는사실만큼은더이상은폐될수없다. 우리는기분속에서이러한적나라한사실에봉착한다. 아무도자기의존재를선택하여태어난이는없다. 그러나우리는이미어떻든이세상에태어났기에자기의존재에던져져있다. 이것이바로피투성이다. 피투성은현사실성을시사한다. 현사실성이란전재자 ( 前在者 ) 의사실성과구별되는현존재의한존재성격이다. 현존재의실존적사실성이현사실성이다. 그렇다면피투성과관련된현사실성은구체적으로무엇을의미하는가? 현존재는비록자신의선택은아니지만이미여하튼어쩔수없이자기의존재에던져져있다. 그러기에현존재는자기를자기의존재에떠맡겨자기의존재를존재하도록해야한다. 이처럼자신의피투성을고스란히인수하는현존재만의독특한실존적사실성이현사실성이다. 그러나아마도일상적현존재는이러한현사실성으로부터자신을회피하지않을런지. [ 읽기자료 ] 현존재가어디서오고어디로가는지는은폐되어있으나, 그자신으로는그만큼더은폐되지않고개시되어있다는현존재의존재성격, 즉현존재가있다는사실을우리는이존재자가자기의현에던져져있음 [ 피투성 ; 被投性 ] 이라부른다. 이것은현존재가세계 - 내 - 존재로서 현 이라는것이다. 피투성이란표현은 [ 현존재가 ] 떠맡겨져있다는현사실성을시사한다. 현존재의정상성 [ 情狀性 ] 에서개시되는그가있고있어야한다는사실은, 전재성 [ 前在性 ] 에속하는사실성을존재론적 - 범주적으로표현하는그런사실이아니다. 후자는관조적확인에서만접근가능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정상성에서개시되는 [ 전자의 ] 사실은오히려세계 - 내 - 존재의방식으로있는바로그존재자의실존론적규정성으로서파악되어야한다. 현사실성은전재자 [ 前在者 ] 의 factum brutum[ 둔중한사실 ] 의사실성이아니라, 설사우선은밀어제쳐져있다하더라도실존가운데받아들여진, 현존재의한존재성격이다. 현사실성이라는것은직관에서는결코눈에띄지않는다.(135, 197-198) 현존재는자기의가장고유한존재를어떤 사실적전재적 [ 前在的 ] 존 재 라는의미로이해한다. 그러나현존재에게고유하게속하는사실의 사실성과암석류 ( 岩石類 ) 가사실적으로출현하는것과는존재론상근본 적으로다르다. 현존재가제각기그때마다그것으로서존재하는, 현존재 라는현사실의사실성을우리는현존재의현사실성이라고부른다. 이존 재규정성 [ 즉, 현사실성 ] 의복잡한구조는, 이미밝혀진현존재의실존론 적근본틀 [ 세계 - 내 - 존재 ] 의빛속에서비로소그자신문제로서파악 될수있다. 현사실성이라는개념에는한 세계내부적 존재자 [ 현존재 ] 가 세계 -내 -존재 라는것이함축되어있어서, 그존재자는자기가자기 의고유한세계내부에서만나는존재자의존재와 운명적으로 결부되 어있다는것을스스로이해할수있다.(56, 83-84) 3 정상성의존재론적본질성격피투성은일종의부담이다. 정상성안에서현존재는언제나이미자기자신에직면하게되며, 현존재는이러한자기의존재에떠맡겨져있는자로서자기의존재를떠맡아야한다. 이것이바로피투적현사실성이다. 그러나기분은피투성에따르면서도거스르는방식으로피투성을개시한다. 기분속에서현존재의존재는부담으로드러나기에, 기분은대개의경우에는현존재의존재의부담성격에따르지않는다. 자기존재의부담으로부터벗어나기위해현존재가고양된기분으로전환하는경우에는적어도그러하다. 그러나설령고양된기분으로전환한다고해서, 현존재의자기존재의부담성격이말끔히지워져버릴까? 고양된기분으로의전환은오히려현존재가기분속에서자기존재의부담에직면하며그러고는거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로부터회피하고자한다는것을역설적으로반증하는것은아닐까? 정상성은현존재를그의피투성에서, 그리고우선대개는회피하면서거스르는방식으로개시한다. 이것이정상성이갖는첫번째존재론적본질성격이다. 기분은우리밖의어떤객관적인사태에의해규정된채주어지는것도아니고, 또한우리의어떤노력이나의지에의해발생하는것도아니다. 기분은우리의 밖 이나 안 으로부터다가오지않는다. 기분은객관적인것도아니고주관적인것도아니다. 오히려기분은우리네의세상살이로부터무심코우리를덮쳐온다. 즉기분은세계-내-존재의방식으로세계 -내-존재자체로부터치솟아오른다. 그리하여우리는기분속에서우리의실존전체를포착하게되며이로써실존의방향을설정하게된다. 즉 기분은그때마다이미세계-내-존재를전체로서개시하고있어서,... 을향한자신의방향설정을가장먼저가능하게한다. 이것이정상성의두번째존재론적본질성격이다. 기분은세계-내-존재전체를그때그때개시하기에우리는기분속에서세계의세계성을더철저하게이해한다. 세계의개시성은정상성에의해함께구성된다. 세계가개시되기에우리는그세계를지평으로하여용재자 ( 用在者 ) 를용재자로서만나게된다. 정상성에는실존론적으로세계에대한개시적의존성이있다. 그리고이세계에의거해서접근해오는것을만날수있다. 실지로우리는존재론적으로는원칙상세계의일차적발견을 > 단순한기분 < 에맡기지않을수없다. 이것이넓게보면정상성의세번째존재론적본질성격이다. 그런데우리의실존은세계안에서만가능하기에세계는위협의가능성을기반으로하여개시된다. 세계안에서실존할수밖에없는현존재에게세계는어찌보면위협의대상이된다. 그러기에배시적배려가결여되었을때용재자 ( 用在者 ) 는쓸모없는것, 혹은저항하는것, 혹은위협적인것으로우리를덮쳐올수있게된다. 두려움의정상성이이미전제되었기에세계내부적용재자는우리에게위협적인것으로마주쳐올수있는것이다. 그런데돌아보자면, 아마도부당한공권력에앞에초라한몰골로앉아있는이에게만이아니라, 세상을당당하게살아가는이에게도세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는언제나위협의대상일뿐이다. 거대한세계앞에서한없이작아지고나약해지는것이일상적인우리네의모습이아닐런지. [ 읽기자료 ] 현존재의성격을가진존재자는, 명시적이든아니든, 그의피투성이라는심정속에있다는방식에서그의 현 이다. 정상성안에서현존재는언제나이미자기자신에직면해있고, 언제나이미자기를발견하고있다. 그러나그것은앞에있는자기를지각을통해발견하는것이아니라, 기분에젖은심정으로있는자기를보는것이다. 자신의존재에떠맡겨져있는존재자로서현존재는자신을언제나이미발견했어야한다는데에도떠맡겨져있다 이때의발견은직접적인 [ 자기 ] 탐구에서가아니라 [ 자기로부터 ] 회피하는데서생기는발견이다. 기분은피투성을관조하는방식으로개시하지않고, [ 피투성에 ] 따르고거스르는방식으로개시한다. 기분속에서는현존재의부담성격이드러나지만, 기분은대개이런현존재의부담성격에는따르지않는다. 고양된기분에서부담으로부터벗어나있을때는적어도그렇다. 이런거스름이거스름인것은언제나정상성의방식에서이다.(135, 198-199) 정상성의제일의존재론적본질성격으로서우리가획득하는것은, 정상성은현존재를그의피투성에서, 그리고우선대개는회피하면서거스르는방식으로개시한다는것이다.(199) 기분은 [ 그냥 ] 덮쳐오는것이다. 기분은밖이나안에서오는것이아니라, 세계 - 내 - 존재의방식으로서세계 - 내 - 존재자체로부터치솟아오른다. 그리하여우리는내면을반성적으로포착하는방식에대해정상성을소극적으로구별하는것을넘어, 기분의개시성격을적극적으로통찰하게된다. 기분은그때마다이미세계 - 내 - 존재를전체로서개시하고있어서, 를향한자신의방향설정을가장먼저가능하게한다. 기분에젖어있음 은우선심리적인것과관계하지않으니, 그자신수수께끼같은방식으로밖으로나와서사물과인물을 [ 기분에따라 ] 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들이는내적상태가아니다. 여기에정상성의두번째본질성격이나타난다. 정상성은세계, 공동현존재및실존의등근원적개시성의한실존론적근본양식이다. 왜냐하면이양식자체가본질적으로세계 - 내 - 존재이기때문이다.(136-137, 200) 이상설명한정상성의두본질규정, 즉정상성은피투성을개시한다는것과전체적세계 - 내 - 존재를그때그때개시한다는것이외에세번째본질규정이주목되어야하는바, 이것은무엇보다도세계의세계성을더철저하게이해하는데도움을준다. 우리는앞에서 선행적으로이미개시된세계가세계내부적인것을만나게한다 고말한바있다. 이선행적이고내 - 존재에속하는세계의개시성은정상성에의해함께구성된다. 만나게하는것 은일차적으로배시적사항이지단지감각이나응시의사항이아니다. 배시적으로배려하면서만나게함은 우리는지금정상성쪽에서그렇게한층날카롭게볼수있다 마주친다는성격을가지고있다. 그러나용재자가쓸모없고, 저항하고, 위협한다는성격을가지고 [ 우리와 ] 마주치는것이존재론적으로가능한것은, 오직내 - 존재자체가,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것이위와같은방식으로덮쳐올수있도록, 그렇게실존론적으로선행적으로규정되어있기때문이다. 이렇게덮쳐오는것은정상성에근거한다. 그리하여, 예컨대세계를위협가능성을기반으로해서개시하는것은정상성이다. 두려워한다거나두려워하지않는다는정상성안에있는것만이환경세계적용재자를위협적인것으로서발견할수있다. 정상성이라는기분규정성이현존재의세계개방성을실존론적으로구성한다.(137, 200-201) 세계내부적존재자와의마주침은기분에의해미리윤곽지워짐으로써가능하지만, 만일정상적세계 - 내 - 존재가이런마주침에이미의존해있지않다면, 아무리강하게누르고저항한다해도정감따위는생기지않고, 저항도본질적으로발견되지않은채끝나고말것이다. 정상성에는실존론적으로는세계에대한개시적의존성이있다. 그리고이세계에의거해서접근해오는것을만날수있다. 실지로우리는존재론적으로는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칙상세계의일차적발견을단순한기분에맡기지않을수없다. 순수한직관은, 설사전재자의존재의가장내적인혈관에까지파고들어간다해도위협적인것따위는결코발견할수없다.(137-138, 201) 4 정상성의한양상 : 두려움 ( 한 : 恐怖, 독 : Furcht, 영 : fear) 앞서의논의는우리를자연스레정상성의한양상인두려움에로인도한다.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두려움이비본래적정상성이라면, 불안은본래적정상성이다. 두려움이우리를비본래적자기안에견지하고있다면, 불안은우리를감추어졌던본래적자기앞에직면하게한다. 그런데여기서의주제는두려움이다. 근본정상성 ( 根本情狀性 ) 으로서의불안은앞으로 5장 1절에서논의될것이다. 두려움의현상은세가지의구조계기를갖는다. 두려움의대상 ( 무엇앞에서 ), 두려워함자체, 그리고두려움의이유 ( 무엇때문에 ) 가두려움을통일적으로구성한다. 두려움의대상은세계내부적존재자이다. 전재자, 용재자, 타인으로서의공동현존재가모두두려움의대상이된다. 두려움의대상의본질적성격은유해성이다. 가령레포트제출이코앞에닥쳤다고하자. 일상적우리에게레포트는두려움의대상으로다가온다. 우리는레포트를제출하지않는상황에서우리에게닥쳐올유해적상황을미리그려보는데, 그럴수록두려움은고조된다. 레포트의제출기간은연장될수도있고또우리가레포트의작성을완료할수도있건만, 그런것에는아랑곳하지않고, 우리의두려움은점점증대된다. 두려워함자신은우리에게위협적인것을위협적인것으로서개현한다. 그러나두려워함이위협적인것을먼저확인하고나서두려워하는것은아니다. 앞서의예에서처럼, 두려워함은위협적인것이다가오는상황을미리그려보며두려워한다. 즉두려워함은위협적인것을그것의두려움의가능성안에서미리발견한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는두려운것의재앙을일단확인하면더이상두려워하지않는다. 그는곧일상의자기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돌아온다. 이런것이일상을살아가는우리네의현주소인것이다. 두려움의이유는바로스스로두려워하는현존재자신이다. 설령앞서의예처럼코앞에닥친레포트가두려움의대상이라할지라도, 그것이두려움의대상이되는까닭은, 세계에몰입해있는현존재가그로인해위해 ( 危害 ) 를당할가능성이있기때문이다. 현존재는현존재자신때문에두려워하는것이다. 그러나두려움은현존재를주로결여적방식으로개시한다. 레포트제출로두려워하건만일단그위협적인상황이확인되면, 다시태연스럽게일상으로돌아가는것이우리의모습이다. 그러니까두려움은우리를일상의자기안에견지하는것이다. [ 읽기자료 ] 두려움 [ 공포 ] 이라는현상은세관점에서고찰된다 ; 우리는두려움의 무엇앞에서 [ 대상 ], 두려워함, 두려움의 무엇때문에 를분석한다. 이세관점이가능하고또서로연관되어있다는것은우연이아니다. 정상성일반의구조는이것들과함께출현한다.(140, 204) 두려움의무엇앞에서, 즉두려운것은그때그때용재자, 전재자또는공동현존재라는존재양식을가지고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것이다. ( ) 두려움의 무엇앞에서 는위협성이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거기에는여러가지가있다 : 1. 만나는것은유해성 ( 有害性 ) 이라는적소성 ( 適所性 ) 의양식을가지고있다. 그것은적소성연관의내부에서나타난다. 2. 이유해성은, 그유해성과맞닥뜨릴수있는것의일정한둘레를겨냥하고있다. 유해성은그렇게규정된것으로서, 그자신일정한방역에서나온다. 3. 이방역자체및그방역으로부터나오는것은, 그자체로마음놓을수없는것으로알려져있다. 4. 유해한것은, 위협하는것으로서는아직제어할수있을만큼가까이있지는않으나접근해오고있다. 그렇게접근해오면서유해성은확산되고, 그점에위협한다는성격이있다. 5. 이접근은가까운범위안에서의접근이다. 즉, 극도로유해할수있고더욱이부단히점점더가까이다가오는것도멀리있으면두려움의성격이감추어진채로있다. 그러나유해한것은가까이에서접근해오는것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로서는위협적이지만, 그것은 [ 우리와 ] 마주칠수도있고그렇지않을수도있다. 가까이접근하면할수록, 마주칠수도있지만결국마주치지않을수도있다는것이고조된다. 우리는그것을두렵다고말한다. 6. 여기에서다음의사실이드러난다 : 유해한것은가까이에서접근하는것으로서분명히발생하지않고그냥지나칠수도있지만, 이로인해두려워함이감소되거나지워지기는커녕오히려증대된다.(140-141, 204-205) 두려워함자신은그런성격을지닌위협적인것을자기에게접근해오게하면서그위협적인것을개현한다. 먼저장래의재앙 (malum futurum) 이확인되고, 다음에두려워지는따위는없다. 그러나또한두려워함이접근해오는것을먼저확인하고두려워하는것이아니라, 그접근해오는것을그공포가능성에있어서미리발견하는것이다. 그리하여두려움은두려워하면서두려운것을, 짐짓관망하면서, 자기에게분명히할수있는것이다. 두려운것을보는것은배시이다. 그까닭은배시는두려움이라는정상성속에있기때문이다.(141, 205) 두려움이두려워하는무엇때문에는, 스스로두려워하는존재자자신, 즉현존재때문이다. 자기의존재에있어서그존재자체를문제삼는존재자만이두려워할수있다. 두려워함은이존재자가위험에빠져있을때, 즉그자신에게방임되어있을때, 이존재자를개시한다. 비록명료성은변할지라도, 두려움은언제나현존재를그의현의존재에서드러낸다. 우리가집과뜰때문에두려워한다하더라도, 그것은두려움의 때문에 에대해이제말한 [ 현존재때문에두려워한다는 ] 규정에대한반증 ( 反證 ) 이아니다. 왜냐하면현존재는세계 - 내 - 존재로서매양배려하면서 에몰입해있기때문이다. 대개우선은현존재는그가배려하는것에의존해서존재한다. 그가위험에빠져있다는것은 에몰입하는존재가위협당한다는것이다. 두려움은현존재를주로결여적방식으로개시한다. 두려움은혼란스럽게하고당혹스럽게한다. 두려움은위험에빠진내 - 존재를보이도록하면서동시에은폐한다. 그리하여현존재는두려움이사라진뒤에라야비로소정상으로되돌아오게되는것이다.(141, 206)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무엇에직면해서두려워함 으로서의 무엇때문에두려워함 은항상 결여적이든적극적이든 세계내부적존재자는위협한다는점에서, 그리고내 - 존재는위협당한다는점에서, 등근원적으로개시한다. 두려움은정상성의한양상이다.(141, 206) (2) 이해 ( 한 : 理解, 독 : Verstehen, 영 : Understanding) 개시성을구성하는두번째의구조계기가이해이다. 이해는정상성과더불어개시성을등근원적으로구성한다. 이해는언제나기분에젖은정상적 ( 情狀的 ) 이해이다. 따라서여기서의이해가설명과대비되는인식론적차원에서의이해와구별됨은물론이다. 여기서의이해는현존재의실존범주이다. 설명과대비되는이해는실존범주로서의이해의실존론적파생태로해석되어야한다. [ 읽기자료 ] 정상성 [ 情狀性 ] 은, 그안에서현의존재가자기를유지하고있는실존론적구조들중의하나이다. 정상성과등근원적으로이존재를구성하는것은이해 ( 理解 ) 이다. 설사정상성이이해를억제할뿐이라하더라도 [ 가령이해의객관성을방해하는경우 ], 정상성은그때마다제나름의이해내용을가지고있다. 이해는언제나기분에의해규정된이해이다. 우리가이해를기초적실존범주로서해석한다면, 이와함께이현상은현존재의존재의근본양상으로서파악된다는사실이드러난다. 반대로, 여러인식양식들중가능한하나의인식양식가령설명과구별되는의미에서의이해는, 이설명과마찬가지로, 현의존재일반을함께구성하는일차적이해의실존론적파생태로서해석되어야한다.(142-143, 208) 1 존재가능 이해한다 의일상적의미는 무엇을할수있음 과연관된다. 그러나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범주로서의이해에서문제되는것은 무엇 이아니라바로현존재의존재가능이다. 실로현존재의존재는미리결정되어있지않다. 전재자 ( 前在者 ) 나용재자 ( 用在者 ) 의본질은이미결정되어있는반면, 현존재는그때마다자신의궁극목적을존재가능으로하여실존한다. 현존재는가능존재이다. 따라서여기서의가능성은공허한논리적가능성과구별된다. 논리적가능성이 아직현실적이지않고또한결코필연적이지않은가능성 으로서존재론적차원에서보자면현실성이나필연성보다 존재도 (Seinsgrad) ( 소광희 [2003], 99쪽 ) 가낮다면, 실존범주로서의가능성은현존재의가장근원적이고도. 최종적이며, 적극적인존재론적규정성이다. 그런데현존재가자신의존재가능성을스스로창조하는것은아니다. 일례로 21세기를사는현존재가 5세기대륙을호령하던고구려의무사가될수는없다. 현존재는어디까지나피투적존재자이다. 피투적존재자로서의현존재는이미일정한가능성속에빠져있다. 즉현존재의존재가능성은피투적가능성이다. 더욱이현존재가자기자신에게맡겨진가능존재인한, 다시말해이해가정상적 ( 情狀的 ) 이해로서피투성에맡겨진이해인한, 현존재는자신의존재가능성을부단히방기할수도있고, 또포착하기는하나잘못포착할수도있다. 그러므로현존재는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개방되어있는가능성인것이다. [ 읽기자료 ] 우리는종종존재 [ 자 ] 적인언사로어떤것을이해한다는말을어떤일을맡아할수있다, 못지않은힘이있다, 무엇을할수있다는뜻으로사용한다. 실존범주로서의이해에서 할수있는것 은무엇이아니라, 실존함으로서의존재이다. 이해속에실존론적으로놓여있는것은, 존재 - 가능 으로서의현존재의존재양식이다. 현존재는 어떤것을할수있음 을덤으로더가지고있는전재자 [ 前在者 ] 가아니라, 일차적으로가능존재이다. 현존재는그때마다자신이존재할수있는바그것이고, 자신의가능성대로의그것이다. 현존재의본질적가능존재는세계에대한배려, 타자에대한고려라고 [ 저앞에서 ] 성격규정한그방식에관계하며, 그중에서도언제나이미자기를궁극목적으로하는자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자신에대한존재가능에관계한다. 그때마다실존론적으로현존재인가능존재는공허한논리적가능성과구별되며, 마찬가지로전재자와함께이런일저런일이일어날수있는경우의그우연성과도구별된다. 전재성의양상범주로서의가능성은아직현실적인것이아닌것, 결코필연적인것이아닌것을의미한다. 그특징은단지가능한것에지나지않는다는것이다. 그런가능성은존재론적으로는현실성및필연성보다낮다. 이에반해, 실존범주로서의가능성은현존재의가장근원적이고최종적, 적극적, 존재론적규정성이다 ; 이가능성은, 우선은실존성일반과마찬가지로, 단지문제로서마련되어있을뿐이다. 무릇이가능성을보기위한현상적지반을제공하는것은, 개시적존재가능으로서의이해이다.(143-144, 209-210) 실존범주로서의가능성은자의의무관심 (libertas indifferentiae) [ 무관심의자유 ] 이라는의미에서허공에떠있는존재가능을뜻하지않는다. 현존재는본질상정상적 [ 情狀的 ] 인자로서는그때마다이미일정한가능성속에빠져있으며, 현존재로있는존재가능으로서는그일정한가능성을그냥지나쳐버리게함으로써자기존재의가능성들을부단히방기하기도하고, 포착하기도하고, 잘못포착하기도한다. 그러나이것은, 현존재가자기자신에게맡겨진가능존재이며, 철두철미피투적가능성임을의미한다. 현존재는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개방되어있는 [ 자유존재로서의 ] 가능성이다. 그가능존재는현존재자신에게는여러가능한방식과정도에있어서간파되고있다.(144, 210) 현존재는자신이이렇게또는저렇게존재함을그때마다이해하고있거나또는이해하지않고있거나하는방식으로있다. 그런이해인현존재는자기자신, 즉자기의존재가능이무엇에연관되는지 [ 어떤처지에있는지 ] 를안다. 이앎은내재적자기지각에서비로소자라나는것이아니라, 본질상이해인현의존재에속한다. 뿐더러현존재는이해하면서자기의현이고오직그때문에, 현존재는갈피를잃을수도있고자기를잘못알수도있다. 그리고이해가정상적 [ 情狀的 ] 이해이고, 정상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이해로서실존론적으로는피투성에맡겨진이해인한, 현존재는그때마다이미갈피를잃고자기를잘못안다. 그러므로현존재는자기의존재가능에있어서, 자기의가능성들속에서자기를다시발견할가능성에맡겨져있는것이다.(144, 210) 2 이해의실존론적구조 : 기투 ( 한 : 企投, 독 : Entwurf, 영 : Projection) 던져진자로서의현존재는기투라는존재양식속으로도이미던져져있다. 이해의실존론적구조가기투이다. 현존재는현존재로존재하는한, 그때마다이미자신을기투하였고, 기투하면서존재한다. 즉현존재는자신의궁극목적을향해자신을기투할뿐아니라이로써목적과수단의계열에서수단을하나하나유의의화하기위해, 다시말해용재자 ( 用在者 ) 를적소토록하기위해, 자신을세계의세계성인유의의성을향해기투한다. 이해는기투이다. 더정확히말하면이해는피투적기투이다. 따라서기투가새로운가능성을창안하는것은아니다. 또한기투로서의이해는거기에로자신을기투하는그존재가능성들을스스로주제적으로포착하지도않는다. 기투는다만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선취하여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있게한다. 그런데현존재는자신의일상적세계에입각하여자신을기투 ( 이해 ) 할수도있고또자신의본래적인궁극목적을향해자신을기투할수도있다. 따라서이해는비본래적이해일수도있고본래적이해일수도있다. 간략히말하자면, 이해는기투이되, 현존재가일상적세계에입각해자신을기투하면비본래적이해이고, 본래적궁극목적을향해자신을기투하면본래적이해이다. [ 읽기자료 ] 이해가, 이해속에서개시가능한것이가지고있는모든본질적차원에따르면서도, 언제나제가능성속으로파고드는까닭은무엇인가? 그것은우리가기투라고부르는실존론적구조를이해자신이가지고있기때문이다. 이해는현존재의존재를현존재의궁극목적을향해근원적으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기투할뿐아니라, 그와마찬가지로현존재의그때그때의세계의세계성인유의의성을향해서도근원적으로기투한다. 이해의기투성격은, 세계 - 내 - 존재의현이존재가능의현으로서개시되어있다는점에서세계 - 내 - 존재를구성한다. 기투란현사실적존재가능의활동범위의실존론적존재틀이다. 그리고던져진자로서현존재는기투라는존재양식속으로던져져있다. 기투는현존재가자기의존재를정비하기위해고안해낸어떤계획에따라태도를취하는것과는전혀무관 ( 無關 ) 하다. 현존재는, 존재하는한, 현존재로서그때마다이미자기를기투하였고, 기투하면서존재한다. 현존재는, 그가존재하는한, 언제나이미그리고언제나여전히가능성들에입각해서자기를이해한다. 나아가서이해의기투성격이의미하는바는, 이해는이해의기투근거, 즉가능성들을스스로주제적으로포착하지는않는다는것이다. [ 가능성들을주제적으로포착하는 ] 그런포착은기투된것으로부터다름아닌그가능성의성격을탈취하여, 그기투된것을일종의주어진사념된사태로끌어내린다. 반면에기투는던짐으로써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자기에게선취 ( 先取 ) 하고가능성으로서있게한다. 이해는, 기투이니현존재가자기의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있는현존재의존재양식이다.(145, 211-212) 정상성과이해는실존범주로서세계 - 내 - 존재를근원적으로개시하는두성격이다. 현존재는자기가거기에의거해서존재하는가능성들을기분에젖은심정으로본다. 그런가능성들을기투하면서개시함에있어, 현존재는그때마다이미기분에의해규정되어있다. 가장독자적인존재가능의기투도현속에던져져있는 [ 피투성 ] 현사실에맡겨져있다. 현의존재의실존론적틀을피투적기투라는의미로설명한다면, 현존재의존재는더욱수수께끼같지않은가? 사실그렇다. 우리는먼저이존재가완전히수수께끼에싸여있음을노출시키지않으면안된다.(148, 215) 기투는언제나세계 - 내 - 존재의완전한개시성에관계한다 ; 이해는존재가능자체이므로, 이해속에서본질적으로개시될수있는것의범위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의해미리밑그림그려진여러가능성을갖고있다. 이해는일차적으로자기를세계의개시성속에놓을수있다. 다시말하면, 현존재는우선대개자기의세계에입각해서자신을이해할수있다. 또는반대로, 이해는일차적으로자기를궁극목적속에던진다. 즉현존재는현존재자신으로서실존한다. 이해는본래적이해, 즉고유한자신으로부터나오는이해이든가비본래적이해이든가이다.(146, 212-213) 3 꿰뚫어봄 ( 한 : 透視性, 독 : Durchsichtigkeit, 영 : Transparency) 현의개시성을구성하는것은정상성과이해이다. 달리말하자면피투적기투가현의개시성을구성한다. 그런데현존재가궁극목적으로서의존재가능성을향해자신을기투하기위해서는, 현존재는, 마치배려에는배시 (δ 視 ) 가뒤따르고또한고려에는돌봄 ( 顧視 ) 가뒤따르듯이, 궁극목적으로서의존재가능성을향한시 ( 視 ) 를필연적으로확보하고있어야한다. 이러한시 ( 視 ) 가우리가여기에서논의하고자하는꿰뚫어봄 ( 透視性 ) 이된다. 우리가꿰뚫어봄이란술어를선택한까닭은이러한시 ( 視 ) 가잘이해된 자기인식 임을표현하기위해서이다. 즉현존재가자신을궁극목적을향해기투하기위해서는현존재는이미자신의전체적인존재틀인세계- 내-존재에입각해서그것의본질적인세구조계기를일관해서이해하고있어야한다. 좀더구체적으로말하자면, 현존재는세계-내- 존재에입각해서 세계에몰입해있음 및 타자와의공동존재 는물론, 이것들과등근원적으로자기를꿰뚫어보고있어야한다. 이렇게세계-내-존재의세구조계기와관련하여자기를등근원적으로꿰뚫어볼때에만, 현존재의 [ 본래적 ] 실존은가능하게된다. 우리는시 ( 視, 봄 ) 의본래적의미를지켜내야한다. 통상적으로이말은육안에의한감각적지각을의미한다. 그러나시 ( 視, 봄 ) 의본래적의미는그렇지않을뿐더러또한순수한비감성적인지를의미하지도않는다. 오히려시 ( 視, 봄 ) 의본래적특성은 그시 ( 視, 봄 ) 에접근하는존재자를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존재자자체에즉해서은폐하지않고만나게함 을의미한다. 따라서전통적형이상학에서의순수직관의우위는상실된다. 존재자를그존재자에즉해서은폐하지않고만날수있어야순수직관도가능하게된다. 또한이점은현상학적본질직관에도해당한다. 현상학적본질직관도궁극적으로는, 본래적시 ( 視 ) 에바탕을둔실존론적이해에근거한다. [ 읽기자료 ] 이해는그기투성격에있어서우리가현존재의봄 [ 視 ] 이라고부르는것을실존론적으로구성한다. 현의개시성과실존론적으로함께있는 봄 은, 배려의둘러봄 [δ 視 ], 고려의돌봄 [ 顧視 ] 이라고특징지은바있는현존재의근본방식에따르면, 이것들과등근원적으로, 있는대로의현존재가그때마다궁극목적으로삼고있는존재자체를보는 봄 으로서현존재로있다. 일차적으로그리고전체적으로실존에관계되는이 봄 을우리는꿰뚫어봄 [ 透視性 ] 이라부른다. 이술어를선택한것은잘이해된자기인식을표시하기위해서이다. 다시말하면, 그것은자기인식에서중요한것은자기라는한점을지각하면서탐지하고검사하는것이아니라, 세계 - 내 - 존재의완전한개시성을, 그본질적 [ 세 ] 틀계기를일관해서, 이해하면서파악하는것임을시사하기위해서이다. 실존하는존재자가자기를보는것은, 현존재가자기의실존의구성계기인 세계에몰입해있음 에있어서나 타자와의공동존재 에있어서, 이것들과등근원적으로자기를꿰뚫어보게될때만이다.(146, 213-214) 봄이란말은물론오해로부터지켜져야한다. 이말은우리가현의개시성을특징지은바있는 밝혀져있음 [ 元照明 ] 과일치한다. 본다는육안으로지각하는것을의미하지않을뿐더러, 전재자 [ 前在者 ] 를그전재성 [ 前在性 ] 에서순수하게비감성적으로인지하는것도의미하지않는다. 봄의실존론적의의를위해요구되는것은, 봄의바로그특성, 즉 봄은그봄에접근하는존재자를그존재자자체에즉해서은폐하지않고만나게한다 는것이다.(147, 214)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어떻게모든 봄 이일차적으로이해에근거하는지를지적하게되면 배려의둘러봄 [ 배시 ] 은오성적분별 [ 상식 ] 로서의이해이다 순수직관의우위는상실된다. 직관의우위는사고의면에서는전통적존재론의전재자우위와일치한다. 직관과사고는다같이이해의먼파생태이다. 현상학적본질직관도실존론적이해에근거한다. 본다 의이양식 [ 본질직관 ] 에대해어떤결정이내려지기위해서는, 먼저현상학적의미에서현상이될수있는유일한것으로서, 존재와존재구조에대한명확한개념이획득되어있어야한다.(147, 214) 이해에있어서의현의개시성은, 그자체로현존재의존재가능의한방식이다. 현존재의존재가궁극목적을겨냥해서기투되어있다는것과유의의성 ( 세계 ) 을겨냥해서기투되어있다는것은일치하며, 거기에는존재일반의개시성이들어있다. 제가능성을겨냥해서기투할때는, 이미존재이해가선취 ( 先取 ) 되어있다. 존재는기투에서이해되는것이지, 존재론적으로개념화되는게아니다. 세계 - 내 - 존재의본질적기투라는존재양식을가진존재자는, 그존재의구성요소로서존재이해를가지고있다. 앞에서독단적으로단초로삼았던것이이제존재의구성에서제시되는데, 이존재구성에서보면현존재는이해로서자기의현이다.(147, 214-215) 4 해석 ( 한 : 解釋, 독 : Auslegung, 영 : Interpretation) 이해는무엇에로의기투로서, 현존재의존재방식이다. 현존재는그때마다자신의궁극목적을향해자신을기투함으로써, 자신에게열려진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포착한다. 이해는존재가능으로실존하는현존재의실존범주이다. 이에비해해석은 이해의완성 이다. 해석은이해에서기투된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돋보이게한다. 해석을통해이해는이미포착되었던존재가능성을비로소자신의것으로획득한다. 따라서해석에서이해는다른어떤것이되지않는다. 오히려해석을통해이해는비로소자기자신이된다. 그러니까해석을통해이해가성립하는게아니라, 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히려해석은이해에서기투된가능성들을완수한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를통해용재자 ( 用在者 ) 는적소성을갖는다. 이렇게해서펼쳐진적소전체성이현존재의세계가된다. 그런데이렇게이미이해된현존재의세계가이제해석을통해구조적으로분명히드러난다. 해석의단계에서배시는이미이해된세계의구조를폭로한다. 배시는용재자를그것의용도에맞게나누어놓는다. 그로써용도에맞게배시적으로나누어놓여진것자체는, 이제어떤것으로서의어떤것이라는구조를가지게된다. 즉용재자는이제그것의적소에맞게어떤것 > 으로서 (als)< 로해석된다. > 으로서 < 는이해된것의명료성의구조를형성하고해석을구성한다. 이러한 > 으로서 < 가하이데거가말하는 실존론적 -해석학적으로서 (existenzial-hermeneutisches Als) 에해당한다. 해석학적 > 으로서 < 는앞으로진술의명제적 > 으로서 < 를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유래가되기에, 근원적 > 으로서 < 라고도불리운다. 해석학적 > 으로서 < 의구조는이해에서기투된가능성을돋보이게드러낸다. 그러나해석학적 > 으로서 < 의구조가아직구체적으로언표될필요는없다. 이구조는오히려선 ( 先 ) 술어적인 > 봄 ( 視 )< 의성격을지닌것으로서, 앞으로주제적진술을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원천이된다. 그러니까역으로말하자면, 으로서는주제적진술속에서처음으로떠오르는것이아니다. > 으로서 < 는단지 [ 그진술속에서 ] 처음으로언표될뿐이다. 그것도그나마해석학적 > 으로서 < 가언표가능한것으로서 [ 진술에 ] 앞서있기때문에만가능하다. 그런데해석이결코무전제적파악일수는없다. 해석은해석되어야할존재자에대한선이해안에서이루어진다. 해석은이해의예 ( 豫 )-구조 (Vor-Struktur) 에근거한다. 다시말하면, 해석은예지 ( 豫持 )( 앞서가짐, Vorhabe), 예시 ( 豫視 )( 앞서봄, Vorsicht), 예파 ( 豫把 )( 앞서잡음, Vorgriff) 에근거한다. 하이데거는이러한이해의예-구조전체를해석학적상황이라고도명명한다. 해석하려는것자체가완전히감추어져있거나전혀이해될수없다면해석은불가능하다. 용재자를해석코자할경우에도, 우리는이미적소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체성에서그용재자를이해하고있어야한다. 물론적소전체성이주제적해석에의해명시적으로파악될필요는없지만, 하여튼돋보이지않게나마이해될경우에만일상적인배시적해석은가능하게된다. 이처럼해당존재자를적소전체성에서뚜렷하지않게나마미리이해하는것이예지 ( 豫持 ) 이다. 일상적인배시적해석은이미이해된적소전체성안에서움직인다. 하지만이해된것은아직은닉되어있기에해석이이해를자기의것으로획득하려면이해된것을드러내주어야한다. 이러한드러냄은이해된것이해석되는하나의관점에따라이루어진다. 해석의밑바탕에는예지 ( 豫持 ) 속에받아들여진것을해석하는관점이고정되는데, 이런관점이예시 ( 豫視 ) 에해당한다. 예지 ( 豫持 ) 에서보유되고예시 ( 豫視 ) 에서일정한관점에따라조준된존재자는, 이제해석에의해개념화된다. 그런데해석은해석되어야할존재자의개념성을, 그존재자자체로부터길어낼수도있고, 아니면그존재자와모순된개념들에게로억지로끌어맞출수도있다. 그러나어느경우건해석은그때마다이미어떤일정한개념성에대해최종적이든유보적이든결정을내려야한다. 이런것이바로예파 ( 豫把 ) 가된다. 이처럼해석은앞에주어진것을무전제적으로포착하는것이아니다. 오히려해석은이해의예-구조에근거한다. 이예-구조를우리는예지, 예시, 예파로나누어구명하였다. 그런데엄밀히말하자면, 해석도일종의기투이다. 해석은이해에서포착된가능성을향해자신을기투함으로써가능성을비로소자신의것으로획득한다. 이때이해에서포착된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함이해석이갖는선이해에해당하며, 예시, 예시, 예파에의해구조지워진것이기투의기반이된다. 그런데하이데거는이러한기투의기반을특히의미 (Sinn) 라고도명명한다. 의미란바로예지, 예시, 예파의구조를가진기투의기반이된다. 기투의기반으로서의의미에의거해서만어떤것은비로소어떤것으로이해된다. 따라서하이데거가말하는의미란세계내부적존재자가갖는의미일수없다. 오히려의미란현존재의실존범주가된다. 즉오직현존재만이의미를갖거나의미를상실한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하이데거는이해의예-구조전체를해석학적상황이라고도명명한다. 그런데혹자는이를두고하나의순환논증이라비판한다. 그러나해석학적상황은결코비판받을만한의미에서의순환논증이될수없다. 그런식의순환논증은논리학적영역에나해당한다. 하이데거는단지현존재의이해와해석의실존론적구조를있는그대로보여주고있을뿐이다. 즉현존재가이미이해한내용을선이해하면서그이해내용을명료하게분절해나간다는해석학적순환은현존재의가장근원적인인식의적극적가능성을보여준다. 그러기에해석학적순환은오히려현존재의사유의강건함을보장한다. [ 읽기자료 ] 현존재는이해로서자기의존재를가능성들을향해서기투한다. 이가능성들을향해이해하고있는존재는, 그가능성들을개시된가능성으로서현존재속에반전 ( 反轉 ) 시키기때문에, 그자신하나의존재가능이다. 이해의기투작용은이해자체를완성한다 [ 형성해낸다 ] 는고유한가능성을가지고있다. 이해의완성을우리는해석이라고부른다. 해석에있어서이해는자기가이해한것을이해하면서자기것으로한다. 해석에있어서이해는다른것으로되는게아니라자기자신으로된다. 해석의근거는실존론적으로는이해에있으니, 해석을통해이해가성립하는게아니다. 해석은이해된것의인지가아니고, 이해에서기투된가능성들을완수하는것이다.(148, 216) 용재자 [ 用在者 ] 곁에서배려하는존재는, 그것이만나는것과그때마다어떤적소성 [ 適所性 ] 을가질수있는가를세계이해에서개시된유의의성에입각해서이해하게된다. 배시가발견하거니와, 그것은이미이해된세계가해석된다는것을의미한다. 용재자는분명하게이해의 봄 속에들어온다. 준비, 정돈, 수리, 개선, 보충등모든것은다음과같은방식으로수행된다. 즉, 배시적용재자는그 하기위하여 에따라나누어놓여지고, 보이게끔나누어놓여진것에따라배려된다. 하기위하여 에따라배시적으로나누어놓여진것자체, 즉분명하게이해된것은어떤것으로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의어떤것이라는구조를가지고있다. 이특정한용재자는무엇인가하는배시적물음에대해, 배시적으로해석하는대답은 그것은 을하기위한것 이라고말한다. (...) 이해에서개시된것, 즉이해된것은, 그것에즉해서그것의무엇으로서가스스로분명하게뚜렷해질수있을만큼, 언제나이미접근해있다. 이으로서가이해된것의명료성의구조를형성하고해석을구성한다. 환경세계의용재자와배시적으로 - 해석하면서만나는교섭은그용재자를책상, 문, 차, 다리로서보기는하지만, 그교섭은배시적으로해석된것을반드시어떤규정적언표속에나누어놓을 [ 분별할 ] 필요는없다. 용재자를선술어적으로직접보는것은, 그자체로이미이해하고해석하는것이다. (...) 어떤것을어떤것으로서를실마리로해서존재자를해석하면서접근할때, 이해된것은그어떤것에대한주제적진술이전에이미분절되어있다. 으로서는주제적진술속에서처음으로떠오르는것이아니라, 단지 [ 그진술속에서 ] 처음으로언표되는것뿐이며, 그나마도 으로서 가언표가능한것으로서 [ 진술에 ] 앞서있기때문에가능하다.(148-149, 216-217) 용재자 [ 用在者 ] 는언제나이미적소전체성을근거로해서이해된다. 적소전체성은주제적해석을통해명시적으로미리포착되어있을필요가없다. 설사적소전체성이그런 [ 주제적 ] 해석을통과했다하더라도, 그것은다시뚜렷하지않은이해성으로되돌아간다. 그리고바로이 [ 뚜렷하지않다는 ] 양상에있어서, 적소전체성은일상적배시적해석의본질적기초인것이다. 이런해석은언제나예지 ( 豫持 )[Vorhabe] 에근거한다. 예지는, 이미이해된적소전체성을이해하고있으면서, 이해내용을내것으로하는것으로서활동하고있다. 이해되어있으나아직가리워져있는것을내것으로한다함은곧가리움을벗기는것이며, 이것은언제나한관점의주도하에수행된다. 관점은이해된것이거기에의거해서해석되어야하는그것 [ 착안점 ] 을고정시킨것이다. 즉, 해석은그때그때예시 ( 豫視 )[Vorsicht] 에근거하고, 예시는예지에서받아들여진것을특정한해석가능성을겨냥해서눈여겨둔다. 이해된것은, 예지속에보존되고예시적으로조준되어서, 해석을통해개념화된다. 해석은해석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되어야할존재자에속하는개념성을이존재자자신으로부터이끌어낼수도있고, 혹은그존재양식으로보아대립되는개념속으로존재자를억지로끌어넣을수도있다. 어느쪽이됐든 해석은그때마다이미최종적이든유보적이든어떤일정한개념성에대해결정한것이다 ; 해석은예파 ( 豫把 )[Vorgriff] 에근거한다.(150, 218-219) 어떤것을어떤것으로서 해석하는것은본질적으로예지, 예시, 예파를기저로삼고있다. 해석은앞에주어진것을무전제적으로포착하는것이결코아니다.(150, 219) 세계내부적존재자가현존재의존재와함께발견될때, 즉이해되었을때, 그존재자는의미 [Sinn] 를갖는다고말한다. 그러나엄격하게말해서이해된것은의미가아니라존재자또는존재이다. 의미란어떤것의이해가능성이그속에간직되어있는그것이다. 이해하면서개시하는가운데분절가능한것을의미라고부른다. 의미라는개념은, 이해하는해석이분절하는것에필연적으로속해있는것의형식적받침대 [ 예지, 예시, 예파의세발받침대, 즉골조 ] 를포괄한다. 의미는예지, 예시, 예파의구조를가진기투의기반이며, 이기반에의거해서어떤것이어떤것으로서이해될수있다. 이해와해석이현의존재의실존론적틀을형성하는한, 의미는이해에속하는개시성의형식적 - 실존론적받침대로서파악되어야한다. 의미는현존재의실존범주이지, 존재자에붙어있거나존재자의배후에있거나혹은중간영역의어딘가에떠있는어떤특성이아니다. 의미를갖는것은오직현존재뿐이다. 그것도세계 - 내 - 존재의개시성이, 이개시성에서발견될수있는존재자를통해채워질수있는한에서이다. 그러므로오직현존재만이의미를갖거나의미를상실할수있다. 이는현존재자신의존재와이 [ 현존재의 ] 존재와더불어개시된존재자가, 이해속에서는자기것으로될수있지만이해되지않을때는거부된채로있을수있다는뜻이다.(151, 220) 이해는, 현의개시성으로서, 언제나세계 - 내 - 존재의전체와관련된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세계를이해할때는항상실존이함께이해되고있으며, 그역도마찬가지이다. 나아가서모든해석은앞에서말한예 - 구조안에서움직이고있다. 모든해석은이해내용에기여해야하므로, 해석되어야할것을이미이해하고있어야한다. (...) 그러나해석이매양이미이해된것안에서움직이고, 그이해된것을자양 ( 滋養 ) 으로해서자라야한다면, 순환속을움직이지않고어떻게해석이학문적성과를성숙시키겠는가? 더구나전제된이해내용이통상적인간인식과세계인식속에서움직이고있을때는더욱그렇다. 그러나논리학의가장기본적규칙에따르면, 순환은 circulus vitiosus[ 순환논증 ] 이다.(152, 221-222) 그러나순환속에서어떤 vitiosum[ 오류 ] 을보거나그것을회피할방도를기대한다면, 아니그것을불가피한불완전성으로서느끼는것만으로도, 이해를근본적으로오해하는것이다. 중요한것은, 이해와해석을어떤특정한인식이상에맞추는것이아니다. 인식이상이란그자체이해의한변종 ( 變種 ) 에불과하다. 그것은전재자 [ 前在者 ] 가본질적으로이해될수없다는점에서그것을포착한다는 [ 제딴의 ] 합법적과제로빠져든것이다. 가능한해석의근본조건은도리어, 이해석을그본질적실행조건의점에서, 미리오인하지않는데서충족된다. 결정적인것은순환에서빠져나오는것이아니라, 올바른방식으로그속으로들어가는것이다. 이해의이순환은, 그속에서임의의인식양식이활동하고있는하나의원환 ( 圓環 ) 이아니라, 현존재자신의실존론적예-구조의표현이다. 순환은 vitiosum[ 오류 ] 으로, 그것이참아낼수있는오류라하더라도, 폄하 ( 貶下 ) 되어서는안된다. 순환속에는가장근원적인식의한적극적가능성이숨어있다. 그러나그가능성은물론, 해석이그때그때예지, 예시, 예파가단순한착상이나통속개념에의해자기앞에주어지는대로받아들이지않고, 이삼자 ( 三者 ) 를마무리함에있어사상 [ 事象 ] 자체에의거해서학문적주제를확보하는것이해석자신의최초의, 부단한, 최후의과제임을이해했을때만진정한방식으로포착되는것이다.(153, 222) 이해에있어서의 순환은의미의구조에속하고, 순환이라는현상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현존재의실존론적틀에, 즉해석하면서이해한다는데에뿌리박고있다. 세계 - 내 - 존재로서자기의존재자체에관여하는존재자는하나의존재론적순환구조를가지고있다. 하지만순환이존재론적으로는전재성 ( 존립 ) 이라는존재양식에속하는것이라고유의하는한, 이현상 [ 순환 ] 을가지고현존재라든가하는것을존재론적으로성격짓는일은일반적으로피하지않으면안된다.(153, 223) 5 진술 ( 한 : 陳述, 독 : Aussage, 영 : Assertion) 해석에서파생된한양상이진술이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해석을통해해석학적 > 으로서 < 로돋보이게된다면, 진술은이해석학적 > 으로서 < 를명제적 > 으로서 < 로구체화한다. 그러면진술은구체적으로어떻게전개되는가? 진술은일차적으로존재자의제시를의미한다. 진술은존재자를그자체로부터보이게끔한다. 진술은특히술어화의규정을통해존재자를제시한다. 이러한술어화는주어와술어의단순한표상적결합이아니라, 오히려존재자의제시에그기초를둔다. 더욱이진술은규정된존재자를다른이에게도함께보이게끔한다. 함께보이게끔한다는것은제시된존재자를다른사람에게함께나누어준다는의미에서전달이된다. 그러니까한마디로정의하자면, 진술은전달하면서규정하는제시가된다. 그런데진술도허공에떠있는태도가아니다. 진술도언제나이미세계-내-존재의근거위에머물러있다. 여기서도해석학적상황이반복된다. 그래서하이데거는진술의예 ( 豫 )-구조를밝혀낸다. 제시, 규정, 전달에는각각예지 ( 豫持 ), 예시 ( 豫視 ), 예파 ( 豫把 ) 의예-구조가대응한다. 이러한예-구조를밝혀냄으로써, 하이데거는진술이해석에서파생되었음을입증한다. 진술은결코자발적으로는존재자를제시할수없다. 진술이존재자를제시하기위해서는, 제시되어야할존재자가이미이해안에개시되어있어야한다. 그러나이런조건만으로는아직제시에이르지못한다. 제시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가능하려면진술이제시하고자하는바로그개시된것에관한예지 ( 豫持 ) 가필요하다. 또한존재자를규정하기위해선, 진술되어야할것을향한방향의시선도요구된다. 이러한일정한관점에따라마침내존재자의규정이이루어진다. 이것이진술의예시 ( 豫視 ) 에해당한다. 예시 ( 豫視 ) 는, 예컨대망치라는존재자로부터그속에불명료하게갇혀있던 무겁다 라는술어를돋보이게풀어놓는다. 또한진술이존재자를규정하여타자에게전달하려면 제시된것을의의에따라분절하는것 도요구된다. 그런데분절화는이미일정한개념성을가지고있어야한다. 예컨대 이망치는무겁다., 혹은 무거움은망치에속한다. 등의진술이가능하려면무거움을망치에귀속시킬수있는 성질 이라는개념성이필요하다. 이러한개념성이진술의예파 ( 豫把 ) 에해당한다. 그러면진술이성립하려면예-구조의각요소들에서는어떤방식의전환이일어나야하는가? 진술은어느만큼이나해석의파생적양상이되는가? 진술에서는무엇이변양되는가? 진술은배시적해석으로부터어떤실존론적-존재론적변양을거쳐출현하는가? 이제우리는이런문제를해명하고자한다. 예지 ( 豫持 ) 에서보유된존재자는우선도구이다. 이런도구로서의존재자가진술의대상이되려면처음부터 예지 ( 豫持 ) 안에서일종의전환 이일어나야한다. 이런전환은하나의도구를그것이속한적소전체성으로부터, 다시말해, 환경세계성을구성하는유의의성으로부터단절하는전환이다. 또한이런전환을통해진술의예-구조에서의예시 ( 豫視 ) 는이제용재자 ( 用在者 ) 에게서전재자 ( 前在者 ) 를겨냥한다. 예시 ( 豫視 ) 는용재자와맺던배려적관계를청산하고전재자를겨냥하는관조의성격을갖게된다. 이러한관조를통해용재자는자연스레은폐된다. 또한이러한관조의지평에서예파 ( 豫把 ) 는전재자를그것의존재에서규정할수있는개념성에이르는통로를열게된다. 예컨대예파 ( 豫把 ) 는 성질 따위의개념성에이르는통로를열게된다. 이로써마침내용재자는이론적관찰의대상인전재자로변양된다. 실존론적-해석학적 > 으로서 < 의구조도전재자를규정하여다만제시할뿐인구조로변양된다. 즉하나의도구는그것이본래갖던도구적성격을상실하고단지눈앞의관찰대상으로전락한다. 따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서우리는이러한변양을 수평화 (Nivellierung) 라고명명한다. 해석학적 > 으로서 < 가진술을통해변양된것이 명제적 > 으로서 <(Apophantisches Als) 이다. 이처럼변양된 > 으로서 < 를통해현존재는전재자에관한진술을얻게된다. 그런데하이데거가변양된 > 으로서 < 에해당하는이름으로 명제적 > 으로서 < 를선택한까닭은, 아리스토텔레스의 logos apophantikos나후설의 Apophantik 개념을염두에두었기때문이다. 적어도하이데거는이런용어선택을통해술어적진술에관한이론적전통은단지세계-내-존재속에기초를둔현존재의한현상을탐구하고있음을암시하고있는것이다. 왜냐하면진술의존재론적유래는이해하는해석에있음을부인할수없기때문이다. 진술을통해우리는용재자를비로소전재자로서파악한다. 그러나진술에서는어디까지나해당용재자자체만이도구들의지시연관으로부터분리될뿐, 용재자전체가과학적진술의대상으로변양되지는않는다. 즉진술은 이것은... 이다. 라는형태를취할뿐, 과학적전칭명제의형태를취하지는못한다. 따라서현존재는진술만으로는과학적인식에이를수없다. 과학적인식은우리에게하나의단계를더요구한다. 그렇다면그하나의단계란무엇인가? 즉과학적인식은어떻게가능한가? 이물음은앞으로 7장 2절에서다루어질것이다. [ 읽기자료 ] 1. 진술은일차적으로제시를의미한다. 우리가제시로써고수하는것은 ἀποϕανσις[ 제시, 공람, 언명 ] 로서의 λόυος의근원적의미, 즉 존재자를그자신에입각해서보이게한다 는것이다. 이망치는너무무겁다는진술에서, [ 보여지는존재자를보는그 ] 봄 에게발견되는것은의미가아니라, 용재성이라는방식으로있는존재자이다.(154, 224) 2. 진술은술어화 ( 述語化 ) 와같은뜻이다. 주어에관해술어가진술되고, 주어는술어를통해규정된다. 이런의미의진술로 진술되는것 은, 무릇술어가아니라망치자신이다. 이와반대로진술하는것, 즉규정하는것은너무무겁다에있다. 진술의두번째의미에서 진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술되는것 즉규정되는것자체는이명칭의첫번째의미에서의 진술되는것 [ 제시 ] 에비하면내용상좁혀진셈이다. 모든술어화는제시로서만술어화인것이다. 진술의두번째의미의기초는첫번째의미에있다.(154-155, 224) 3. 진술은전달 [ 함께나눔, 공언 ], 즉실토함을의미한다. 이런의미에서진술은첫째 [ 제시 ] 및둘째 [ 술어화 ] 의미의진술과직접관계한다. 즉, 진술은규정한다는방식으로제시되는것을남들도 함께보게함 이다. 함께보게함 은피규정성에서제시되는존재자를타자와함께나눔 [ 전달 ] 이다. 나뉘어지는것은, 제시되는것 을향해공통적으로보고있는존재이고, 제시되는것을향하는이존재는제시되는것을만나게하는기반인그세계내에서, 즉세계 - 내 - 존재로서확보되지않으면안된다. 진술은그렇게실존론적으로이해된전달 [ 함께 - 나눔 ] 이며, 그진술에 언표성 [ 언표된다는성격 ] 이속한다. 진술되는것은전달되는것으로서진술자와타자에의해나누어진다 [ 공유된다 ].(155, 225) 진술은전달하면서규정하는제시이다. 남은문제는, 우리는도대체어떤권리를가지고진술을해석의양식으로서파악하는가하는것이다. 진술이그런것이라면, 진술속에서는해석의본질적구조가반복되지않을수없다. 진술의제시는이해에서이미개시되거나배시적으로발견된것을근거로해서수행된다. 진술은, 그진술로부터출발해서일차적으로존재자일반을개시할수있는허공에뜬태도가아니라, 언제나이미세계 - 내 - 존재를기반으로하고있다. 앞에서세계인식과관련해서언급된것은진술에관해서도타당하다. 진술은일반적으로개시된것에관한 예지 를필요로하거니와, 이개시된것을진술은규정한다는방식으로제시한다. 나아가서규정하면서단초를놓는데에는이미진술되어야할것 [ 예 : 망치 ] 을향해방향을연시선이놓여있다. 미리주어진존재자 [ 망치 ] 가무엇을겨냥해서조준되는가하는그겨냥근거 [ 너무무겁다 ] 는규정수행에있어서는규정자의역할을담당한다. 진술은또 예시 를필요로한다. 예시는말하자면돋보이게하고지시해야하는술어 [ 너무무겁다 ]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를존재자 [ 망치 ] 자체속에불명료하게갇혀있는상태에서풀어놓는다. 규정하면서전달하는것으로서의진술에는그때그때제시된것을의의에따라분절하는것이속한다. 이분절화는다음과같은일정한개념성안에서움직인다 : 이망치는무겁다, 무거움은망치에속한다, 망치는무겁다는성질을갖고있다. 진술속에언제나함께놓여있는 예파 는대개눈에띄지않는다. 왜냐하면언어는그때마다이미완성된개념성을자기안에감추고있기때문이다. 진술은해석일반과마찬가지로예지, 예시, 예파속에필연적으로실존론적기초를가지고있다.(156-157, 227) 그러나진술은어느정도까지해석의파생적양상이되는가? 진술에있어서무엇이변양되었는가? (...) 어떤실존론적-존재론적변양을거쳐서진술은배시적해석에서나오는가?(157, 227-228) 예지속에보유되어있는존재자, 예컨대망치는우선도구로서용재적 [ 用在的 ] 으로있다. 이존재자가진술의대상이되면, 진술의개시 ( 開始 ) 와동시에처음부터예지안에서일종의전환이일어난다. 즉, [ 우리는용재자 [ 用在者 ] 를가지고무엇에종사하고무엇을실행하는바이지만 ] 종사하고실행할때의용재적도구는제시적진술의대상이된다. 예시는이제용재자에있어서전재자 [ 前在者 ] 쪽을겨냥하는것이다. 이런관조로인해그리고관조에게는용재자는용재자로서는은폐된다. 이와같이용재성 [ 用在性 ] 을은폐하면서전재성 [ 前在性 ] 을발견하는내부에서는, 만나는전재자는 이러이러하게전재적으로있다 고규정된다. 이제비로소성질따위에이르는통로가열린다. 진술이전재자를그것 [ 예컨대, 성질등 ] 으로서규정하는그것은전재자자체로부터길어내진다. 해석의 으로서 - 구조 는하나의변양을겪은것이다. [ 새로등장한이론적규정을위한 ] 으로서는이해된것을자기것으로하는기능에서는, 적소전체성을포착하는데까지미치지는않는다. 이런 으로서 는제지시연관을분절하는가능성의점에서는, 환경세계성을구성하는유의의성으로부터는단절되어버렸다. 이으로서는전재자만이갖는균등한평면으로떠밀리고만다. 그것은전재자를규정하면서 단지보이게할뿐 이라는구조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로전락한다. 이와같이배시적해석의근원적으로서를전재성을규정하는으로서로수평화하는것이진술의장기 ( 長技 ) 이다. 오직그렇게함으로써만진술은순수한관조적제시의가능성을획득하는것이다.(158, 228-229) 이리하여진술의존재론적유래는이해적해석에있음을부인할수없다. 배시적으로이해하는해석 (ἑρμηνεία[ 헤르메네이아 ]) 의근원적으로서를, 진술의명제적으로서와구별해서, 실존론적 - 해석학적으로서라부른다.(158, 229) 당장중요한것은단지진술이해석과이해에서파생되었음을증시 ( 證示 ) 함으로써, λόυος 의논리학이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에뿌리박고있다는것을분명히해두는것이었다. λόυος 의해석이존재론적으로불충분하다는것을인식하게되면곧고대존재론을성장시킨방법적기초가근원적인것이아니었다는데대한통찰도첨예화한다.(160, 231) (3) 말 ( 독 : Rede, 영 : Discourse) 말은정상성및이해와함께개시성을등근원적으로구성한다. 개시성의세번째구조계기가말이다. 말도하나의기초적실존범주이다. 그런데말은정상성및이해와는다른방식으로개시성을구성한다. 정상성이피투성에서현존재의자기의존재를확인하고이해가기투를통해현존재의자기의존재를확보한다면, 말은정상적이해의가능성을분절하는것이다. 또한말이밖으로언표된것이언어이다. 그러기에언어의실존론적- 존재론적기초는말이된다. 이제우리는이런문제들을상론하고자한다. [ 읽기자료 ] 현의존재, 즉세계 - 내 - 존재의개시성을구성하는기초적실존범주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정상성과이해이다. 이해는해석의가능성, 즉 이해된것을자기것으로하는 가능성을자기속에감추어가지고있다. 정상성이이해와더불어등근원적인한, 정상성은어떤이해내용속에보존되어있다. 그정상성에는 [ 이해가해석의가능성을가지고있는것과 ] 마찬가지로어떤해석가능성이대응한다. 우리는진술로써해석의한극단적파생태를보여준바있다. 진술의제3 의의의를전달 ( 표명 ) 이라고밝힘으로써, 우리는말함과언명함이라는개념에까지이르게되었다. 이개념은아직주목받지못하고있으나, 그것은의도적이었다. 이제비로소언어를주제로삼는것은, 이현상 [ 언어 ] 이현존재의개시성의실존론적틀에뿌리박고있다는것을시사하기위해서이다. 언어의실존론적 - 존재론적기초는말이다. 말의현상을우리는이제까지정상성, 이해, 해석, 진술을해석할때이미끊임없이사용해왔으나, 주제적분석이라는점에서는말하자면건너뛴셈이다.(160-161, 232) 1 말의기능 : 의미분절말의기능을논의함에중요한것은의의 (Bedeutung) 와의미 (Sinn) 의구별이다. 우리는앞서 2장에서세계의세계성을논의할때 의의 에관해언급한바있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는유의의화작용으로펼쳐지는데, 이유의의화작용에의해용재자 ( 用在者 ) 는목적과수단의계열에따라하나하나수단으로서의자신의의의를갖게된다. 따라서의의란용재자에게주어진 현존재의자기존재이해의내용 으로서이미분절될가능성을자신안에간직한다. 이에반해의미란, 앞서이해의예-구조를논의할때밝힌것과같이, 기투 ( 이해 ) 의기반이다. 즉의미란 어떤것의이해가능성이그속에간직되어있는그것 이다. 의의가존재이해의내용이라면, 의미는존재이해의가능성이고스란히담겨져있는이해의기반이다. 따라서의의와의미는서로동일한구조를갖는다. 의의가분절가능성을갖고있다면, 의미도동일하다. 단의의가용재자에게주어져있는것이라면, 의미는오로지현존재만이갖고있는것이다. 그러므로정확히말하자면, 말에서분절가능한것자체는의미가된다. 말은이해가능성의분절화가된다. 그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므로앞서의논의를상기해보자면, 말은이미해석과진술의근저에놓여있었다. 왜냐하면거기에서는존재이해의내용을자신의것으로완성하기위해이해의가능성으로서의의미가이미문제되었기때문이다. 이러한의미를분절화하는것이말인것이다. 그러나말이의미를분절할때결국분절되는것은의의가된다. 의의와의미는결과적으로는동일한내용을갖는다. 여기에서도일종의해석학적순환구조가성립한다.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에의해용재자에게의의가주어졌다면, 또현존재는의미를지평으로하여그의의를이해한다. 그러니까말하면서분절하는가운데분절되는것자체를우리는의의전체라고불러도무방하다. 물론이의의전체는다시의의로분해된다. 또한이의의로부터낱말이생장 ( 生長 ) 한다. 따라서궁극적으로보자면, 의의가 낱말과언어의가능적존재를기초지운다. (87, 129) [ 읽기자료 ] 말은정상성및이해와함께실존론적으로등근원적이다. 이해가능성은 내것으로하는 해석이전에이미언제나분절되어있다. 말은이이해가능성의분절화이다. 그러므로말은이미해석과진술의근저에놓여있다. 해석에있어서, 따라서더근원적으로는이미말에있어서, 분절가능한것자체를우리는의미라고했다. 말하면서분절하는가운데분절되는것자체를우리는의의전체라부른다. 이의의전체는여러의의로분해될수있다. 여러의의는, 분절가능한것이분절된것이기때문에, 언제나의미를갖게된다. 즉, 현의이해가능성의분절화가개시성의근원적실존범주이고, 개시성이그러나일차적으로세계 - 내 - 존재에의해구성된다면, 그말도본질상하나의특수한세계적존재양식을갖지않으면안된다. 세계 - 내 - 존재의정상적이해가능성은스스로를말로서발언한다. 이해가능성의의의전체가낱말이되어나타난다. 의의로부터낱말이생장 ( 生長 ) 한다. 그러나낱말이라는사물이있다고해서의의가부여되는것은아니다.(161, 232-233) 2 말과언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하이데거의언어관은전통적인언어관으로부터철저히결별한다. 전통적언어관에서언어의존재론적기초는인간의영혼이나의식의내부에서형성된내면적표상과체험이다. 역으로말하자면, 이러한내면적표상과체험이말함의과정에서소리로표현되어외면적인것으로표출된것이언어이다.( 신상희, 말과언어, ꡔ하이데거의언어사상ꡕ, 철학과현실사, 1998. 79쪽참조.) 하지만하이데거에게서는언어의존재론적기초는말이된다. 정확히말하자면말은언어의실존론적-존재론적기초가된다. 즉하이데거는언어를실존론적으로해석한다. 앞서의논의에서보았듯, 말은현존재의존재이해내용, 즉의의를분절한다. 그런데개시성이일차적으로세계-내- 존재에의해구성되는이상, 말도본질상하나의특수한세계적존재양식을갖는다. 이때세계적존재양식이란공현존재자사이에서존립한다. 공현존재자사이에서말은밖으로언표된다. 밖으로언표된다는것은이른바음성화를포함한다. 이렇게말이음성화되어밖으로언표된것이언어가된다. 언어는낱말로구성된다. 낱말의전체성이언어이다. 이러한언어는공현존재사이에서마치도구 ( 용재자, 用在者 ) 처럼사용되기도하고, 혹은부서져서전재적 ( 前在的 ) 사물처럼되기도한다. 따라서이제언어의실존론적-존재론적기초가말인것은증명된셈이다. [ 읽기자료 ] 말이밖으로언표된것이언어이다. 이것이낱말전체성이지만, 그안에서말은고유한세계적존재를가지고있으므로, 낱말전체성은세계내부적존재자로서용재자 [ 用在者 ] 처럼눈에띄는것이다. 언어는부서져서전재적 [ 前在的 ] 낱말이라는사물이될수도있다. 말은실존론적으로는언어이다. 왜냐하면말이의의에좇아서그의개시성을분절하는그존재자는, 던져져서세계에의존하는세계 - 내 - 존재라는존재양식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161, 233) 3 말의구조계기말이세계-내-존재의개시성을함께구성하고있는한, 말에는화젯거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리및이화젯거리에대한이해내용, 또그이해된내용을공현존재자사이에서함께나눔, 그리고그이해된내용을통해자기를표명함이있게마련이다. 즉말의구조계기는화젯거리, 말해진내용자체, 전달및표명으로구성된다. 이네가지는언어로부터경험적으로주어모은특성이아니다. 오히려이네가지는현존재의존재틀에뿌리밖은실존론적성격이다. 이런성격이언어를존재론적으로비로소가능하게한다. 그런데이제까지언어의본질을파악하려는모든시도는이구조계기중어느하나에만정위하였기에언어에대한완전한정의에도달하지못한채, 그만언어를그때마다의단편적인시각에서파악하고말았다. 여하튼중요한것은말이현존재의이해및이해가능성과관련되어있다는점이다. 이점은, 전달의한구조계기로서말의또하나의실존론적가능성을이루고있는 들음 에의해분명해진다. 들음 은공동현존재사이의실존론적개방성을전제한다. 그런데우리는흔히 들음 을음성적지각과관련해서만사고한다. 그러나 들음 에서결정적인것은음성이아니라화젯거리에대한존재이해의내용이다. 옳게듣지않았을때에는재대로 > 이해하지 < 못했다 라고말하는것을상기해보라. 들음 에서중요한것은화젯거리에대한현존재의존재이해내용을공동현존재가함께나누는것이다. 그러니까음성의지각은 들음 에서이차적문제이다. 마치언어의음성화가말이갖는세계적성격에근거하듯이음향의지각도공동현존재사이에서함께나눔을편리하게하기위해요청된도구적성격에불과하다. 즉음성의지각은 들음 에근거한다. 더욱이현존재는음성을지각하지않아도얼마든지들을수있다. 상대방의행동거지하나하나가그의존재이해를말해준다. 그런데우리가특히주목하는것은, 앞으로 6장에서논의될양심의문제이다. 양심은침묵으로말하며, 우리는거기에묵언으로답한다. 양심도말의한양상이다. 거기에는음성이없다. 양심의말은침묵이며, 거기에대한우리의들음은묵언이다. 침묵은더많은것을말해줄수있고, 묵언은더많은것을들을수있다. 침묵이말의또하나의본질적가능성이라면, 묵언은들음의또하나의본질적가능성이다. 그러니까이제우리는말을음성과관련해서만사고하는통속에서벗어나말의본질적의미를청종해야할것이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읽기자료 ] 말은현존재의개시성의실존론적틀로서현존재의실존을구성한다. 말하면서언명하는데에는듣는것과침묵하는것이가능성으로서속한다. 이두현상에서실존의실존 [ 론 ] 성에대한말의구성적기능이비로소완전히분명해진다. 당장중요한것은말자체의구조를구명하는일이다.(161, 233) 말이란세계 - 내 - 존재의정상적 [ 情狀的 ] 이해가능성을의의에좇아서분절하는것이다. 말에속하는구성적계기는말의화젯거리 ( 말해지는것 ), 말해진내용자체, 전달및표명이다. 이것들은, 단지경험적으로언어에서주어모은특성들이아니라, 현존재의존재틀에뿌리박은실존론적성격이며, 이성격이언어라든가하는것을존재론적으로비로소가능하게한다.(162-163, 235) 언어의본질을파악하려는시도는언제나이계기들의어느하나에정위해서언어를표현, 상징적형식, 진술로서의전달, 체험의고지 ( 告知 ) 또는삶의형태등의이념을길잡이로해서파악하였다. 그러나이들상이한여러규정의단편들을절충적으로주어모으려고한다면, 언어에대한완전하고만족할만한정의는얻어질수없을것이다. 결정적인것은, 현존재의분석론에근거해서, 말의구조의존재론적 - 실존론적전체를미리이끌어내는것이다.(163, 235) 말이이해및이해가능성과관련되어있음은말자체에속하는하나의실존론적가능성, 즉 들음 에의해분명해진다. 옳게듣지않았을때는이해하지못했다 고말하는것은우연이아니다. 들음이말함을구성한다. 그리고언어의음성화가말에근거하듯이, 음향의지각은들음에근거한다. 누구의말을듣는다는것은공동존재로서의현존재가타자에대해실존론적으로개방되어있다는것이다. 뿐더러, 듣는것은현존재면누구나갖고있는친구 [ 또는양심 ] 의소리를듣는것으로서, 현존재의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장고유한존재가능을위한현존재의일차적이고본래적인개방성을구성한다. 현존재가듣는것은이해하기때문이다. 타자와함께이해하고있는세계 - 내 - 존재로서, 현존재는공동현존재및자기자신에게청종 ( 聽從 ) 하고이청종성에있어서공동현존재및자기자신에게귀속된다. (163, 235-236) 타자의말을분명하게들을때에도우리가우선이해하는것은말해진내용이다. 더정확하게말하면, 우리는처음부터타자와함께화젯거리가되고있는존재자에몰입하고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우선듣는것은음성화를통해발음된것이아니다. 발음이불분명하거나더욱이외국어의경우에도, 우선적으로우리가듣는것은이해되지않은낱말이지다양한음향자료가아니다.(164, 236-237) 그와마찬가지로, 대답으로서의응대도우선공동존재속에서이미나누어져있는화젯거리에대해이해할때곧장나오는것이다.(164, 237) 말의또다른하나의본질적가능성, 즉침묵도동일한실존론적기초를가지고있다. 서로말하는가운데침묵하는자는끝없이지껄이는자보다더본래적으로이해하고있다고여겨질수있다. 즉이해내용을마무리할수있다. 어떤것에관해수다를떤다고해서이해내용을증진시킨다는보증은아무데도없다. 반대로, 쓰잘데없이지껄이는것은, 이해된것을거짓명료성속으로, 즉상투적몰이해성속으로은폐한다. 침묵은벙어리가아니다. (...) 진정하게말하는가운데에서만본래적으로침묵할수있는것이다. 침묵할수있기위해서는, 현존재는말해야할어떤것을가지고있지않으면안된다. 즉그자신을본래적이고풍부하게마음대로개시할수있지않으면안된다. 그때묵언 ( 黙言 ) 은 [ 事象을 ] 밝혀내고빈말 [ 空談 ] 을억제한다. 묵언은, 말함의양상으로서, 현존재의이해가능성을근원적으로분절하기때문에, 그묵언에서부터진정한 들을수있음 과투명한상호존재가생기는것이다.(164-165,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237-238) 현의존재, 즉정상성과이해를구성하는것은말이고, 한편현존재는세계 - 내 - 존재를의미하기때문에, 현존재는말하는내 - 존재라고이미표명된바있다. 현존재는언어를가지고있다. 그리스인들은그들의일상적실존을주로서로서로말하는데로옮겨놓았고, 동시에보는눈을가지고있었다. 그들이철학이전의현존재해석이나철학적현존재해석에서인간의본질을 ξ ῳον λουον ἒχον[ 말을가진동물 ] 이라고규정한것은우연한일일까? 인간에관한이정의를후세에서는 animal rationale[ 합리적동물 ], 즉 이성적생물 이라고해석하였으나, 그해석은틀린것은아니로되, 현존재에관한이정의가얻어진현상적지반은은폐되고말았다. 인간은말하는존재자로서자기를드러낸다. 이것은현존재에게는소리로발성할가능성이고유하게있다는뜻이아니며, 인간이라는존재자는세계와현존재자신을발견하는방식으로있다는뜻이다.(165, 238) 2) 일상적개시성우리는세계-내-존재의개시성, 즉현-존재의현을구성하는실존론적구조를해명하였다. 이러한현의실존론적구조는현존재의실존이거기에따라이루어지는근본적형식적구조에해당한다. 따라서이러한과정에서우리는현존재분석론의단초인구체적현존재의일상성을놓치고말았다. 그러나현존재가피투적세계-내존재로서우선은세인의공공성속에던져져있다면, 우리에게는세인의개시성이갖는실존론적성격을가시화하는작업이요구된다. 이러한작업은 순수하게존재론적의도를가지고있을뿐일상적현존재에대한도덕적비판이나 > 문화철학적 < 야망과는거리가멀다 (167, 241)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1) 빈말 ( 한 : 空談, 독 : Gerede. 영 : Idle Talk) 말은언어이다. 정확히말하면, 언어는말이언표된것이다. 언표된말은, 세계의이해및, 이와등근원적으로, 타자의공동현존재와그때그때의자기의고유한존재에대한이해를보존한다. 언표된말은현존재가주변세계의존재자및타자그리고자기자신을만날수있는의미지평이다. 따라서언표된말로서의전달은듣는자가말의대상 (das Beredete, Worüber der Rede) 을향해개시된존재에참여할것을겨냥한다. 그러나이미일상적공공성안에던져져있는세인은말의대상을근원적으로이해하는존재에이르지못한채, 이야기되고있는것 ( 혹은이야깃거리 )(das Geredete) 만을듣게된다. 이로써말은그것이언급하는대상 ( 즉존재자 ) 과의일차적관계를상실한다. 말은자신의근거를상실한채, 확대되고모방됨으로써빈말 (Gerede) 이된다. 빈말은근거를상실한말의일상적양상이다. 빈말이일상적현존재의평균적이해를구성한다. 따라서일상적현존재에게는말이언급하는존재자를근원적으로자기의것으로하는방식이폐쇄된다. 빈말에의한피해석성은자명성과자기확신을통해일상적현존재의존재이해를지배한다. 빈말은뿌리뽑힌일상적현존재가갖는이해내용의존재양식이다. 그러나다시한번강조하건대, 자신의개시성이정상적 ( 情狀的 ) 으로이해하는말에의해구성된존재자즉현존재만이그런뿌리뽑힘의가능성을갖는다. [ 읽기자료 ] 말은현존재의본질적존재틀에속하고현존재의개시성을함께구성하지만, 그말은또한빈말이되고, 빈말로서는세계 - 내 - 존재를분절된이해안에개방하기는커녕도리어폐쇄해서세계내부적존재자를은폐할가능성을가지고있다.(169, 243-244) 현존재속에는그때마다이미빈말에의한피해석성이뿌리박고있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공공적피해석성의지배는, 기분적으로규정될제가능성까지도, 즉현존재가자기를세계에몰입시킨다는근본양식까지도이미결정하고있다. 세인은정상성의윤곽을미리그리고있어서사람이무엇을어떻게보는지를규정한다.(169-170, 244) 빈말은상술한방식으로폐쇄하지만, 그빈말은뿌리뽑힌현존재의이해내용의존재양식이다. 이것은존재론적으로는, 빈말속에자기를유지하고있는현존재가세계 - 내 - 존재로서세계, 공동현존재및내 - 존재자체에대해일차적이고근원적이고진정한존재관계로부터단절되어있음을의미한다. 현존재는일종의부동상태 ( 動狀態 ) 속에자기를유지하고있으며, 이런방식으로언제나세계에몰입해서, 타자와더불어, 그리고자기자신에대해관계하고있다. 그의개시성이정상적으로이해하는말에의해구성되는그런존재자, 즉이런존재론적틀속에서그의현이고세계 - 내존재인그런존재자만이, 그런근절 [ 뿌리뽑힘, 근거상실 ] 이라는존재가능성을가지고있는것이다. 그근거상실은현존재의비존재를형성하기보다는오히려현존재의가장일상적이고가장끈질긴실재성을형성한다.(170, 244-245) (2) 호기심 ( 한 : 好奇心, 독 : Neugier, 영 : Curiosity) 예로부터인식은 > 보려는욕망 < 에의거해파악되었다. 모든사람은본성상보려는욕망을가지고있다 라는아리스토텔레스의명제는물론이거니와, 사유와존재는동일하다 라는파르메니데스의명제는존재는순수한직관적인지속에서제시된다라는봄 ( 視 ) 의우위를입증한다. 또한아우구스티누스의욕망에관한해석이말해주듯, 봄 ( 視 ) 은단지눈의지각에만한정되지않고청각, 후각, 미각, 촉감등인간의모든감각적경험을포괄한다. 그래서감각경험은일반적으로 > 눈의욕망 < 이라고일컬어진다. 그런데앞서이해에대한논의에서밝혔듯, 봄 ( 視 ) 이인간현존재와존재자의만남을가능하게하는일차적관계일수없다. 오히려봄 ( 視 ) 은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론적-존재론적으로현존재의개시성, 즉달리말하자면, 현존재의밝음 (Lichtung) 안에정초된다. 봄 ( 視 ) 이란, 배려의둘러봄 [δ 視 ] 혹은고려의돌봄 [ 顧視 ] 에서그렇듯, 봄 ( 視 ) 에접근해오는존재자를그존재자자체에즉해은폐하지않고만나게함을의미한다. 즉봄 ( 視 ) 이란현존재가이해를통해개시된자신의본질적가능성에따라그때마다의존재자를진정자기의것으로취함을의미한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에게서봄 ( 視 ) 의근본틀은호기심이라는독특한존재경향에서드러난다. 호기심을타우마제인 (ϑαυμάζειν, 경이 ) 과혼동해서는않된다. 타우마제인이존재자를경탄하면서관찰하는것이라면, 호기심은모든일을처리함에있어그것의노선, 수단, 올바른기회, 적합한순간을부여하는배시가그것의본연의성격을상실할때발생한다. 예를들어일상적현존재가휴식을취할때세계-내- 존재로서의자신을벗어나멀고낯선세계를지향할때호기심이발동한다. 그러기에호기심의본질성격은, 가장가까운것에는특수하게머무르지않음, 산란함 ( 혹은부산함 ), 무정주성 ( 無定住性 ) 으로구성된다. 호기심은자신의근거를상실한일상적현존재의개시성을구성하는새로운존재양식이다. 빈말이말의일상적존재양상이라면, 호기심은봄 ( 視 ) 의일상적존재양상이다. 더정확히말하자면, 말은정상성및이해와더불어현존재의개시성을등근원적으로구성하는차원이고이에반해봄 ( 視 ) 은이해에의해실존론적으로구성되는것이므로, 빈말이호기심의진로를구성한다. 그러나여하튼빈말과호기심은상호관련을맺으면서일상적현존재에게거짓된 ( 비본래적인 ) 인생을안겨준다. [ 읽기자료 ] [ 배시로부터 ] 자유로워진호기심은 보려고 배려한다. 그러나그것은보여진것을이해하기위해서가아니라, 즉보여진것에이르는존재속으로들어가기위해서가아니라, 그냥보기만을위해서인것이다. 호기심은새것만을찾는데, 그것은새것에서새로운새것으로뛰어넘기위해서이다. 이렇게보려고하는마음씀에있어서중요한것은, 파악하는것도, 지적으로진리가운데있는것도아니고, 자기를세계에내맡기는제가능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성인것이다. 그러므로호기심은가장가까운것에는특수하게머무르지않는다는성격을가지고있다.(172, 248) 그리하여또호기심이찾는것은, 관찰하면서머무르기위한여가가아니라, 새것이나만나는것을늘바꿈으로해서생기는초조와흥분이다. 아무곳에도머무르지않음으로해서, 호기심은산란함의부단한가능성을배려한다. 호기심은존재자를경탄하면서관찰하는것, 즉 ϑαυμαζειν [ 경이 ] 과는무관하다. 호기심에게중요한것은경이를통해무이해 [ 무지 ] 에도달하는것이아니다. 호기심이배려하는것은하나의앎, 그러나단지알아두기위한앎인것이다.(172, 248) 호기심을구성하는두계기, 즉배려된환경세계에머무르지않음과새로운가능성을향한산란함이, 이현상의제3 의본질성격의기저를이루는데, 우리는이것을무정주성 ( 無定住性 ) 이라부른다. 호기심은도처에있으면서그러나어디에도없다. 세계 - 내 - 존재의이런양상은, 일상적현존재가부단히뿌리뽑혀있다는새로운존재양식을드러낸다.(172-173, 248-249) 빈말은호기심의진로도지배한다. 즉, 빈말은사람들이읽었어야하는것이무엇이고, 보았어야하는것이무엇이라고뇌까린다. 도처에있으면서아무데도없는 호기심은빈말에게맡겨져있다. 말과봄의두일상적존재양상 [ 빈말과호기심 ] 은다같이뿌리뽑혀있다는경향에있어서단지나란히전재적으로만있는것이아니라, 일방의존재방식은타방의존재방식을잡아끈다. 감추어진것이라곤아무것도없는호기심과이해하지못한것이라곤하나도없는빈말은자신에게, 즉그렇게존재하는현존재에게, 거짓으로진정한생생하게살아있는인생을보장한다.(173, 249) (3) 애매성 ( 한 : 曖昧性, 독 : Zweideutigkeit, 영 : Ambiguity)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애매성이란낱말그대로진정한이해가불분명한경우를의미한다. 애매성의지배를받는일상적현존재는자기자신과타인과의관계에있어무책임하게얼버무리거나혹은상황을회피한채도리어화를내기도한다. 애매성은현존재의진정한자기이해를가로막을뿐더러, 그로인해일상적현존재상호간의존재도호의라는가면을쓴반목을연출한다. 그런데애매성은개별적현존재로부터비로소환기되는것이아니다. 일상적현존재의개시성이빈말과호기심에의해구성되어있다면, 일상적현존재의제가능성을기투하고제시하는양식속에이미애매성이뿌리박고있음은당연지사다. 애매성은일상적현존재의개시성을성격짓는제3의현상이다. 빈말, 호기심, 애매성은서로작용하며일상적현존재의개시성을구성한다. 한편으로는애매성이빈말과호기심의지배를더욱부추키지만, 다른한편으로보자면, 빈말과호기심이지배하는세계속에던져진상호존재자체속에애매성은이미놓여있다. 빈말, 호기심, 애매성의상호관련이일상적현존재의피해석성을구성한다. 그러나빈말과호기심은물론, 애매성도공공적으로는은폐되어있기에, 사람들은그들이자기의존재와타인의존재에대해지고있는책임있는관계를몰각한채이렇듯빈말, 호기심, 애매성에의해해석되어있다는지적에대해언제나반발한다. [ 읽기자료 ] 공공적피해석성이가진애매성은앞질러가는숙덕거림이나호기심에찬예감을본래의사건이라고참칭하고, 실지의실행과행위는추후적인것및대수롭지않은것이라고낙인을찍는다. 그러므로세인으로서의현존재의이해는자기를기투함에있어, 진정한존재가능성이라는점에서항상자기를잘못보고있다. 현존재는현, 즉 상호존재의공공의개시성 바로거기에서는언제나애매하게존재한다. 거기란가장목청높은빈말과가장영리한호기심이영업을진행시키는곳이며, 일상적으로는만사가일어나지만근본적으로는아무것도일어나지않는곳이다.(174, 251) 이애매성은호기심에게는언제나호기심이찾는것을슬며시건네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고, 빈말에게는마치빈말이모든것을결정하는듯한가상을부여한다.(174, 251) 세인이라는존재양식을가진상호존재는서로떨어져서무관심하게나란히있는것이전혀아니고, 애매하게긴장하여서로살피는것이고, 남몰래서로엿듣는것이다. 호의라는가면을쓰고반목을연출하고있다.(175, 251-252) 이때주의해야할것은, 애매성은위장과왜곡을명시적으로의도하는데서비로소생기는것이전혀아니라는것, 개별적현존재로부터비로소환기되는것이아니라는것이다. 애매성은하나의세계속에던져진 [ 피투적 ] 상호존재자체속에이미놓여있다. 그러나공공적으로는애매성은곧은폐되기때문에, 사람들은이상의해석이세인의피해석성이라는존재양식에해당된다는사실에대해언제나저항할것이다. 이현상들 [ 빈말, 호기심, 애매성 ] 에대한설명을세인의찬성을얻어서확증하려고한다면, 그것은잘못일것이다.(175, 252) (4) 퇴락 ( 한 : 頹落, 독 : Verfallen, 영 : Falling) 우리는흔히퇴락 (das Verfallen) 을 > 인간본성의타락 < 정도로해석한다. 그러나현존재분석론에서논의되는퇴락은도덕적타락과무관하다. 오히려퇴락은도덕적타락을범했다혹은안범했다라는진술이전의 존재론적운동개념 (180, 258) 이다. 퇴락이란자신의 > 현 <, 즉개시성이빈말, 호기심, 애매성에의해구성되는일상적현존재가자기자신으로부터탈락한채우선대개배려된 > 세계 < 속에몰입해살아감을의미한다. 퇴락은 현존재자신의본질적존재론적구조 (179, 258) 이다. 이런의미에서퇴락은현존재의비본래성을의미한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가자기자신으로부터탈락하였다고해서, 마치일상적현존재가자신의존재를상실하여실제로 ( 혹은본래적으로 ) 없기나한것처럼, 혹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더이상세계-내- 존재가아닌것처럼, 해석하면곤란하다. 오히려퇴락은 세계-내-존재의한실존론적양상 (176, 254) 이다. 즉퇴락, 다시말해비본래성은, 자기자신으로부터탈락한채 > 세계 < 와세인속에완전히함몰된 두드러진세계-내-존재 로서, 즉일상적현존재의 적극적가능성 으로서, 현존재의가장가까운존재양식 (176, 253) 이다. 퇴락적삶의모습을생각해보자. 일상적현존재는빈말을주고받고호기심어린눈을번들거리며온갖것을애매하게얼버무려자위한다. 자신에대한책임을알게모르게벗어던졌을때, 그때의홀가분함만큼무엇이더유혹적일까? 그뿐아니다. 퇴락적세계-내- 존재는그러한유혹감속에서만사형통이라는위안감마저마련한다. 그런데이러한위안은우리가통상말하는위안이아니다. 퇴락적삶의유혹과위안은오히려꼬리에꼬리를물고퇴락을고조한다. 고조는소외를낳는다. 퇴락은가장고유한존재가능으로부터현존재를소외시킨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는소외를소외로서알지못한다. 일상적현존재는소외에눈멀어오히려소외에사로잡힌다. 일종의자승자박이다. 따라서현존재의 > 동성 ( 動性 )< 은전락 ( 轉落 ) 이다. 자신의근거를상실한현존재는일상적무지반성과공허함속에서삶의의미를상실한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는이렇게허덕이는삶의진실을모르고있다. 오히려일상적현존재는퇴락적삶을자신의고양된본래적삶의모습으로착각한다. 그러니까퇴락의 > 동성 ( 動性 )< 은세인속으로휘말려들어가는소용돌이가된다. 퇴락은세계-내- 존재의실존론적규정이다. 그러나이뿐아니다. 퇴락은일상적현존재의피투성을규정한다. 현존재가현존재로서존재하는한, 그는이미세인의비본래성이라는소용돌이속에빠져있다. 퇴락적피투성은현존재의현사실성이다. 퇴락은현존재의실존의비본래적양상이다. 하지만현존재가퇴락할수있는까닭은바로자신의세계-내- 존재가문제되었기때문이요, 따라서퇴락에서도여전히문제가되는것은세계-내-존재-가능외에다른것일수없다. 그렇기에소위본래적실존도퇴락적일상성위에떠있는부유물이아니라퇴락적일상성의실존론적변양이다. 그러므로퇴락이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말로현존재의일상성을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구성하는현존재자신의본질적존재론적구조가된다. [ 읽기자료 ] 빈말, 호기심및애매성은현존재가일상적으로자기의현, 즉세계 - 내 - 존재의개시성으로있는방식을성격짓는다. 이세성격은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성이므로 [ 사물적으로 ] 전재하는것이아니라, 현존재의존재를함께구성하고있다. 이세성격과그것들의존재적연관에서일상성의존재의한근본양식이드러난다. 그것을우리는현존재의퇴락이라고부른다.(175, 252) 퇴락이라는명칭은소극적평가를나타내는것이아니라, 현존재가우선대개배려된세계에몰입해있음을의미한다. 이 에몰두한다 는것은대개세인의공공성속으로상실되어있다는성격을가지고있다. 현존재는본래적자기존재가능으로서의자기자신으로부터탈락해서, 우선언제나이미세계속에퇴락해있다. 세계속에퇴락해있다함은상호존재가빈말, 호기심및애매성에이끌리는한, 그상호존재속에몰두해있음을뜻한다.(175, 252-253) 우리가현존재의비본래성이라고부른것은, 이제퇴락의해석을통해더욱선명하게규정된다. 그러나비 - 본래적이라거나본래적이아니라고하는것은, 마치현존재가이런존재양상을취하게되면일반적으로자기의존재를상실하기라도하는듯이본래적으로없다는뜻이아니다. 비본래성 은 이제세계 - 내 - 존재가아니다 따위를의미하지않고, 두드러진세계 - 내 - 존재, 즉세계와세인속에있는타자인공동현존재에의해완전히함몰되어있는그런세계 - 내 - 존재를형성한다. 자기자신으로있지않음 은본질상 배려하면서세계속에몰두하는 존재자의적극적가능성으로서기능한다. 이 [ 자기자신으로 ] 있지않음은현존재가대개자기를유지하고있는, 현존재의가장가까운존재양식으로서파악되어야한다.(175-176, 253)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자신이, 빈말과 공공적피해석성 속에서자기를세인속에상실하거나지반상실로퇴락할가능성을자기자신에미리제공한다면, 이는현존재가자기자신에게 퇴락에로의부단한유혹 을준비하고있음을의미한다. 세계 - 내 - 존재는그자체로유혹적이다.(177, 255) 완전하고진정한삶을기르고이끈다는세인의억측이, 만사는최상의질서가운데있고따라서모든문은열려있다는위안을현존재속에끌어들인다. 퇴락하는세계 - 내 - 존재는자기자신에게유혹적이면서동시에위안적이다.(177, 255) 그러나비본래적존재속에있는이런위안은정지나무위 ( 無爲 ) 로유혹해가는것이아니라, 제지를모르는영업으로몰아넣는다. 세계에퇴락한존재는이제쉬게되지않는다. 유혹적인위안은퇴락을고조한다. ( ) 이렇게위안에빠져서만사를이해하면서자기를만사와비교하는가운데현존재는소외에내몰리게되거니와, 소외속에서는가장고유한존재가능이현존재에게은폐된다. 퇴락하는세계 - 내 - 존재는유혹적 - 위안적이면서동시에소외적이다.(177-178, 255-256) 이소외는현존재에게그의본래성과가능성을 설사이가능성이진정한좌절의가능성에불과하더라도 폐쇄하지만, 소외는현존재를자기자신이아닌다른존재자에게넘겨주지않고자기의비본래성, 즉자기자신의가능한한존재양식속으로몰아넣는다. 퇴락의유혹적 - 위안적소외는그고유한동성에있어서현존재가스스로자신속에사로잡히는데까지이르게한다.(178, 256) 상술한유혹, 위안, 소외및스스로사로잡힘 ( 자승자박 ) 의현상들은퇴락의특수한존재양식의성격이다. 우리는현존재자신의존재속에서의현존재의이러한동성을전락 ( 轉落 ) 이라부른다. 현존재는자기자신으로부터자기자신속으로, 즉비본래적일상성의무지반성과공허함속으로전락한다. 그러나이전락은공공적피해석성으로인해현존재에게는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폐된채로있어서, 도리어전락이상승이나구체적생활로서해석되곤한다.(178, 256-257) 이와같이, 본래성으로부터부단히이탈하면서도언제나본래성을참칭하는것은, 세인속으로끌어넣는것과하나가되어퇴락의동성을소용돌이로서성격짓는다.(178, 257) 퇴락은세계 - 내 - 존재를실존론적으로규정하기만하는것이아니다. 소용돌이는동시에피투성이가진던짐의성격과동성의성격을드러낸다. 이피투성은현존재의정상성속에서현존재자신에게다가올수있다. 피투성은단순한기성사실이아닐뿐아니라, 완결된 [ 현존재적 ] 현사실도아니다. 현존재적현사실의현사실성에는, 현존재가현존재로서존재하는한던져져있다는것, 그리고세인의비본래성이라는소용돌이속에빠져있다는것이속해있다. 피투성속에서는 [ 현존재적 ] 현사실성이현상적으로보여지거니와, 그피투성은자신의존재에있어서이존재자체가문제되는현존재에속한다. 현존재는현사실적으로실존한다.(179, 257) 하지만우리가현존재의존재를이제까지제시한세계-내-존재라는틀속에붙잡아둔다면, 퇴락은이내 - 존재의존재양식으로서도리어현존재의실존성을인정하는가장기본적증명이라는것이밝혀진다. 퇴락에서도문제되는것은, 비록비본래성이라는양상에서일망정, 세계 - 내 - 존재 - 가능이외의다른것이아니다. 현존재가퇴락할수있는것은, 그에게는이해하는- 정상적세계 - 내 - 존재가문제되기때문이다. 이에반해, 본래적실존은퇴락하는일상성위에떠있는어떤것이결코아니며, 실존론적으로는단지이일상성의변양된파악에불과하다.(179, 258) 퇴락의현상은현존재의어떤어두운면따위, 가령현존재라는이존재자의천진스런외관을보충하는데이바지할수도있는, 존재 [ 자 ] 적으로나타나는어떤성질을보여주는것이아니다. 퇴락은현존재자신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본질적존재론적구조를드러내는것이며, 그구조는어두운면을규정하기는커녕도리어현존재의매일매일을모두그일상성에서구성한다.(179, 258) 그러므로실존론적 - 존재론적해석은인간본성의타락에대해어떤존재 [ 자 ] 적발언도하지않는다. 그것은필요한증명수단이없어서가아니라, 그문제성이타락했다안했다하는진술이전에놓여있기때문이다. 퇴락은하나의존재론적운동개념이다. 과연인간이죄에빠져있고 status corruptionis[ 타락상태 ] 에있는지, status integritatis[ 무구의상태 ] 에서놀고있는지, 아니면 status gratiae[ 은총의상태 ] 라는중간단계에있는지어떤지에대해서는존재적으로는결정하는바없다.(179-180, 258) 5. 현존재의존재 : 마음씀 1) 불안현존재의구조전체의존재에육박하기위해불안이탐구된다. 퇴락은현존재의본래적존재로부터의도피이다. 퇴락에서는현존재의본래적자기의존재가폐쇄된다. 그러나이러한폐쇄는현존재에관한존재자적-실존적성격규정이다. 우리는존재자적-실존적성격규정과존재론적-실존론적해석을혼동하지말아야한다. 존재론적-실존론적차원에서보자면, 이러한폐쇄성은오히려개시성의결여태일뿐이다. 현존재가 자기앞에서도피할수있는 것은 현존재가, 존재론적으로본질적으로자기에속하는개시성일반을통해자기자신과직면하는한에서 (185, 267) 다. 그런데현존재가본래적자기에게다가설가능성은자기를개시하는정상성 ( 情狀性 ) 이근원적일수록그만큼더높아진다. 여기에서우리는근본적정상성인불안을만나게된다. 우리는불안의현상을불안의대상, 불안의이유, 그리고불안해함자체로나누어해명하고자한다. 불안은두려움과비교된다. 두려움의대상은그때마다일정한방역에서가까이다가오는세계내부적존재자다. 그런존재자는유해하긴하나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타나지않을수도있다. 그러나불안의경우는이와다르다. 불안의대상은우리가세계속에서만나는어떤특정한존재자가아니다. 세계내부적존재자, 즉용재자 ( 用在者 ) 나혹은전재자 ( 前在者 ) 는불안속에서아무것도아닌무 ( 無 ) 가된다. 우리가그안에살고있던, 적소전체성혹은유의의성으로서의세계는불안속에서그의의를상실한다. 이렇게기존의의의를상실한세계앞에서우리는불안해한다. 정확히말하자면, 세계는세계-내- 존재인현존재의존재에속하므로, 불안의대상은, 이렇게그의의를상실한세계안에살고있는나의존재자체, 즉세계-내-존재자체이다. 불안의대상은 아무것도아니고아무데도없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이러한무가전적인무 ( 無 ) 를의미하진않는다. 우리가불안해한다는것은세계내부적존재자가몽땅마치썰물처럼밀려가고거기에텅빈허공이입을벌리고있어서거기에대해으스스한정상성을갖는것을의미한다. 그러나우리를엄습했던불안은어느순간씻은듯이사라지기도한다. ( 소광희 [2003], 129-130쪽 ) 그리고그순간오히려세계내부적존재자의무의의성을근거로하여세계가세계로서단독적으로솟구쳐오른다. 즉 그때물안개걷힌뒤에산천경계 ( 山川境界 ) 가아스라이드러나듯이그렇게세계가드러난다. 즉불안을통해세계가세계로서개시된다. 불안을통해서세계는오히려단독적으로더욱선명하게드러나는것이다. ( 소광희 [2003], 130쪽 ) 그런데현존재가불안해하는까닭은현존재가지닌어떤특정한존재가능성때문이아니다. 불안속에서는현존재가 > 세계 < 및 공공적피해석성 으로부터자기를이해할가능성은박탈된다. 오히려불안의이유는바싹압박해오는세계속에살아가는자기의존재가된다. 불안의이유는세계-내 -존재이다. 때문에불안을통해현존재는이제, 퇴락적삶속에벗어나그동안망각해왔던자기의본래적존재에비로소직면한다. 불안은현존재가단독화된자로서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이르는존재임을드러낸다. 현존재는세계-내-존재앞에서, 세계-내-존재때문에불안하다. 불안의대상과불안의이유는동일하다. 좀더근원적으로보자면, 불안함자체는세계-내-존재의근본양식이다. 불안으로인해, 현존재는세인속에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상실되었던본래적자기를만나게된다. 불안속에서현존재는본래적자기에게직면한다. 불안은현존재가본래누구인가를드러내주는근본정상성 ( 根本情狀性 ) 이다. 그러나이러한사태는현존재의실존론적가능성이지, 실존적현상은아니다. 근본정상성으로서의불안속에서는현존재가살고있던기존의세계가해체된다. 현존재가몰입하던세계는그모든의의를상실한다. 무화 ( 無化 ) 된세계속에내동댕이쳐진현존재는 > 으스스함 < 의젖게된다. > 으스스함 < 은타성에빠져있던현존재가삶의모든기준과토대를잃었을때겪는 > 안절부절함 < 이다. 그래서일상적현존재는대개의경우불안으로부터도피한다. 즉일상적현존재는불안의기분인 > 으스스함 < 으로부터, 다시말해 > 안절부절함 < 으로부터도피한다. 이러한도피의결과일상적현존재는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하며세인속에서편안한자신감과자명한 > 느긋함 < 을즐기게된다. 그러나이러한삶의모습은본래적자기로부터뿌리뽑힌일상적현존재의퇴락적삶의모습이다. 퇴락속에서불안의흔적은지워진다. 불안은기껏해야세계내부적존재자앞에서의두려움으로남게된다. 그러나두려움은비본래적불안이다. > 세계 < 에로퇴락하여공공성에의거해자기를이해하는일상적현존재에게 > 본래적 < 불안은아주드물다. 그러나이런현상은, 실존론적으로보자면, 오히려현존재가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에서자기의본래적존재를찾을수있음을입증한다. 불안속에서 > 단독적자기 < 로서우뚝선현존재는자신이걸어왔던퇴락적삶의모습을되돌아보며본래성과비본래성이무엇인가를분명히직시한다. 즉현존재는불안의기분속에서이제일상적친숙함에서벗어나본래적실존과비본래적실존사이에서선택의순간에서게된다. 근본정상성으로서의불안에대한실존론적해석은우리에게현존재의구조전체성의존재를해명할현상적지반을마련해준다. 분명히일상적현존재는퇴락적삶을살고는있지만, 불안은일상적현존재에게본래적자기를회복할가능성을열어준다. 그러니까현존재의구조전체를해명하기위해서는비본래적실존과본래적실존을모두아우르는근본적인틀이요망된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읽기자료 ] 세계내부에서용재적 [ 用在的 ] 으로나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것은어떤것도불안의대상이될수없다. 세계내부적으로발견되는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의적소성 [ 適所性 ] 전체는그자체로서중요하지않다. 그적소성전체는스스로붕괴된다. 세계는완전한무의의성이라는성격을갖는다. 불안속에서는위협적인것으로서적소성을가질수있는이것이나저것을만나지못한다.(186, 269) 바싹압박해오는것은이것저것이아니고, 모든전재자 [ 前在者 ] 를총계로서모은것도아니며, 용재자 [ 用在者 ] 일반의가능성, 즉세계자체이다. ( ) 그러나세계는존재론적으로는본질적으로세계 - 내 - 존재로서의현존재의존재에속한다. 따라서불안의대상으로서의무, 즉세계자체가드러난다면, 이는불안이스스로불안해하는그불안의대상은세계-내- 존재자체임을의미한다.(187, 270) 불안의대상은아무것도아니고아무데도없다는것이분명해진다. 세계내부적으로는 아무것도아니고아무데도없다 는이도발성은현상적으로는불안의대상은세계자체임을의미한다. 아무것도아니고아무데도없다 에서표명되는이완전한무의의성은세계부재 ( 世界不在 ) 를의미하는것이아니라, 세계내부적존재자는그자체로서완전히중요하지않으므로이세계내부적인것의무의의성을근거로해서세계가그세계성에있어서단독적으로솟구쳐오른다는사실을의미한다.(186-187, 269-270) 불안해한다는것이근원적직접적으로세계를세계로서개시한다. ( ) 불안이심정성의양상으로서제일먼저세계를세계로서개시한다.(187, 270) 그것때문에불안해하는그이유는현존재의특정한존재양식과가능성이아니다. [ 불안의 ] 위협은그자신무규정적이며, 그러기때문에현실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으로구체적인이또는저존재가능을겨냥해서위협하면서밀치고들어올수는없다. 그것때문에불안해하는이유는세계 - 내 - 존재자체이다.(187, 270) 불안은, 퇴락하면서세계및 공공적피해석성 에의거하여자기를이해할가능성을현존재로부터박탈한다. 불안은현존재가그것때문에불안해하는그것, 즉현존재의 본래적세계 - 내 - 존재 - 가능 을향해현존재를되던진 [ 逆投한 ] 다. ( ) 그러므로불안해하는그이유를가지고, 불안은현존재를가능존재로서, 더욱이단독화속에서단독화된자로서, 오직자기자신에의해존재할수있는자로서개시한다.(187-188, 271) 불안이현존재속에분명하게드러내놓은것은, 현존재가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이르는존재라는것, 즉그는자기선택과자기포착의자유를향해열려있다는것이다. 불안은현존재로하여금그의 를향해열려있음 (propensio in ; 자유존재 ) 에, 즉언제나이미그자신으로있는가능성으로서의자기존재의본래성에직면하게한다.(188, 271) 그것때문에불안해하는그이유는, 그것앞에서불안해하는그것, 즉세계 - 내 - 존재로서드러난다. 불안의대상과불안의이유의이자기동일성은그뿐아니라불안해하는것 [ 불안함 ] 자체에까지연장된다. 왜냐하면불안해하는것 [ 불안함 ] 은정상성 [ 情狀性 ] 으로서세계 - 내 - 존재의한근본양식이기때문이다.(188, 271) 불안은현존재를 solus ipse( 단독적자기 ) 로서단독화하고개시한다. 그러나이실존론적유아론 ( 唯我論 ) 은고립된주관이라는것을무세계적 ( 無世界的 ) 사건의아무렇지도않은한공허함속에옮겨놓는것이아니고, 도리어현존재를극단적의미에서막바로세계로서의자기세계에직면시키고, 이와함께현존재자신을세계-내-존재로서의자기자신에직면하게하는것이다./ 불안은, 근본정상성으로서, 이상과같은방식으로개시한다.(188, 271-272)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불안속에서는사람은으스스하다. 이으스스하다에서우선나타나는것은, 현존재가불안속에있을때의특유의무규정성, 즉 [ 불안거리가 ] 아무것도아니고아무데도없다 는것이다. 그러나이때으스스함이란동시에 [ 마음이 ] 안절부절함을가리킨다. ( ) [ 그러나 ] 세인은편안한자신감과자명한느긋함을현존재의평균적일상성속에끌어들인다.(188, 272) 이제도피로서의퇴락이무엇앞에서의도피인지현상적으로분명해진다. 그것은세계내부적존재자앞에서의도피가아니라, 바로이세계내부적존재자로의도피이다. 배려는이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해서, 세인속에망실되어, 편안한친숙속에안주 ( 安住 ) 할수있다. 공공성의느긋함속으로퇴락하는도피는안절부절, 즉으스스함앞에서의도피이다.(189, 272-273) 현존재가으스스함을이해하는일상적양식은, 퇴락하면서안절부절을지워버리는이탈이다. 그러나 ( ) 그본질적현존재틀에는근본정상성으로서의불안이속해있다. 편안하고-친숙한세계-내- 존재는현존재의으스스함의한양상이며, 그역이아니다.(189, 273) 불안이언제나이미세계-내- 존재를잠재적 (latent) 으로규정하고있기때문에, 세계-내- 존재는세계에몰입해서배려하는정상적 [ 情狀的 ] 존재로서두려워할수있다. 두려움은세계에퇴락한비본래적불안이며, 그자신에게는감추어져있는불안이다.(189, 273) 그래서으스스하다는기분은현사실적으로는대개실존적으로이해되고있지않다. 더구나퇴락과공공성이우세할경우에는본래적불안은아주드문일이다.(190, 273-274) 그러나불안현상이현사실적으로드물다하더라도, 이현상으로부터실존론적분석론을위해원칙적방법적기능을떠맡을자격을뺏을수는없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반대로 이현상이드물다는것은, 세인의공공적피해석성으로인해대개자기의본래성을은폐한채로있는현존재가근본정상성 [ 불안 ] 에있어서근원적의미로개시될수있음을가리키는한지표 ( 指標 ) 인것이다.(190, 274) 불안에는두드러진개시가능성이있다. 불안은단독화하기때문이다. 이단독화는현존재를퇴락으로부터되돌려와서, 본래성과비본래성을그의존재의두가능성으로서그에게분명하게해준다. 그때마다나의현존재인그현존재의두근본가능성은, 불안속에서현존재가우선대개매달려있는세계내부적존재자를통해왜곡되는일없이, 그대로의가능성으로서드러난다.(190-191, 275) 2) 마음씀현존재의기초적존재론적성격은 실존성 (Existenzialität), 현사실성 (Faktizität), 퇴락존재 (Verfallensein) (191, 275) 이다. 이세실존론적규정이근원적으로서로맞물려현존재의구조전체의전체성을형성한다. 현존재의존재는이세실존론적규정의통일에서파악된다. 현존재는자신의존재에서바로이존재자체를문제삼는존재자이다. 그러나이것은실존의형식적개념이다. 일상적현존재는자신의존재를문제삼되, 우선대개는 > 세계 < 속에퇴락하여자신의존재를세인의처분에내맡긴다. 그러나앞서불안에대한실존론적분석에서보았듯, 현존재는불안을통해자신의가장고유한존재가능에직면한다. 즉현존재는, 존재론적-실존론적으로보았을때, 본래적실존적제가능성을향해열려있는자유로운존재이다. 물론현존재는자유로운존재이기에본래적자기앞에서도피하여비본래적으로있을수있고또한우선대개는그렇게존재하나, 존재론적-실존론적으로는, > 세인으로서의자기를넘어서 < 또한 > 세인으로서의자기를앞질러있는 < 존재자이다. 실존성이란이런의미에서 > 자기를앞질러있음 < 을의미한다. 현존재는존재론적-실존론적으로자기를앞질러있는존재자이다. 그러나현존재에게존재가능이무한히열려있는것은아니다. 현존재는이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어떤세계안에피투된채 [ 던져진채 ], 이피투성을떠맡고있다. 가령오늘날우리시대를살아가는사람이고구려시대의무사가될수는없다. 오늘날우리시대를살아가는사람은그가피투되어있는오늘의상황속에서그에게열려있는본래적가능성을모색해야한다. 현존재는피투성을떠맡은채스스로자기의운명을개척하도록자기자신에게떠맡겨져있는것이다. 그러기에 자기를앞질러있음 [ 실존성 ] 은 어떤세계안에이미있음 [ 현사실성 ] 을본질적계기로포함한다. 또한현존재는우선대개일상적현존재이다. 현존재의현사실적실존은이미퇴락하면서 > 세계 < 속에몰두해있다. 퇴락적존재도현존재의구조전체의전체성을형성하는본질적계기가된다. 따라서현존재의존재론적구조전체의형식적실존론적전체성은 자기를앞지름 [ 실존성 ], 어떤세계안에이미있음 [ 현사실성 ], 퇴락하면서몰입해있음 [ 퇴락적존재 ] 이라는세계기가서로긴밀하게맞물려구성된다. 현존재의존재론적구조전체의형식적실존론적전체성이 > 현존재의존재 < 이다. 우리가지금까지해명하려고노력해온 > 현존재의존재 < 에우리는마침내도달했다. 또한우리는 > 현존재의존재 < 를 > 마음씀 (Sorge) < 이라고이름짓는다. 이이름은순전히존재론적-실존론적명칭이다. 이이름을걱정이나혹은걱정없음따위를의미하는존재자적의미에서사용해선않될것이다. 마음씀은그야말로세계-내-존재를전체로서특징짓는존재론적-실존론적명칭이다. 우리가세계의분석에서말했던배려 (Besorge) 나혹은고려 (Fürsorge) 는마음씀의구체적일상적양상이다. 다시한번말하자면, 현존재의존재는실존성, 현사실성, 퇴락적존재로서구성된다. 즉현존재의존재는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있음으로서세계안에이미있으면서자기를앞지름 을의미한다. 또한마음씀의구조계기를개시성의구조에대응해보면, 실존성, 현사실성, 퇴락적존재에는각각이해, 정상성, 그리고말 ( 혹은퇴락 ) 이관련한다. 하이데거는현존재의본성에관한자신의해석이선례가없었던것이아님을밝히기위해고대의창조설화하나를상세히설명한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쿠라 [ 마음씀 ] 가강을건너자, 거기서그녀는조대흙 ( 粘土 ) 을발견하였다. 골똘히생각하면서쿠라는한덩어리를떼내어빚기시작했다. 빚어진것을옆에놓고생각에잠겨있을때주피터 [ 수확 ] 가다가왔다. 그녀는빚어진덩어리에정신을부여해달라고주피터에게간청하였다. 주피터는쾌히승낙하였다. 자기가빚은형상에그녀가자기이름을붙이려고하자, 주피터는이를거절하고자기이름을붙여야한다고주장하였다. 이름을가지고쿠라와주피터가다투고있을때, 텔루스 [ 대지 ] 도나서서그형상에는제몸의일부가제공되었기때문에자기이름이붙여지길바랐다. 그들은사투르누스 [ 시간 ] 를판관 ( 判官 ) 으로모셨다. 사투르누스는아래와같이그럴듯하게판단하였다 : 정신을준너주피터는그가죽을때정신을취하고, 육체를준너텔루스는육체를가져가라. 하지만쿠라는이것을처음으로만들었으니, 이것이살아있는동안너의것으로함이좋다. 그러나이름으로인해싸움이생겼는지라, 호모 [ 인간 ] 라부르는것이좋다. 후무스 [ 흙 ] 로만들어졌기때문이다 (197-198, 285) 이우화는존재와시간 1부의모든내용을통찰력있게재현한다. 즉하이데거의현존재의기초존재론을상징적으로요약해놓고있다. 예를들어, 쿠라 [ 마음씀 ] 의행동이주피터나텔루스 [ 대지 ] 의행동보다시간적으로앞서는데, 이것은현존재의존재가복합적이라기보다는오히려본질적으로통일적임을보여준다. 이우화는우리에게두가지의주요한점을지적해준다. 첫째, 쿠라가현존재를빚어냈다는것은현존재가실존하는동안철저히마음씀에의해지배받고있음을함축한다. 이것은마음씀이현존재의존재의토대라는사실뿐아니라마음씀에현존재가복종한다라는사실즉현존재는이미마음씀속에던져져있고마음씀에의해규정되고있다라는사실을의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한다. 결국만약쿠라가현존재의창조주라면, 현존재는마음씀의피조물이다. 따라서현존재는이중적으로제약된다. 첫째, 현존재는자기를스스로창조한것이아니라오히려창조되어있다. 둘째, 현존재는자기를창조한양상에의해규정되어있다. 따라서마음씀은현존재의독특한실존양상을특징짓는다양한한계점들을통합하는원천이된다. 이처럼이우화를환기함으로써하이데거는우리에게인간의실존이자기에대해, 또한타자와다른존재자들에대해마음을쓰도록운명지워져있음을상징적으로말하고있는것이다. 이우화의두번째교훈은지금까지논의한바만을말하지않고앞으로논의될내용까지를앞질러말한다. 이우화는앞으로논의될내용이더있다는것, 그리고그더이상의논의가어떤것인가를말한다. 쿠라까지도복종하는등장인물은사투르누스이다. 사투르누스는시간의신이다. 현존재의창조주자신이사투르누스에게복종한다면, 현존재의존재에대한가장기초적인성격묘사는마음씀정도가아니라어떤방식으로든마음씀을규정짓는그것즉시간을환기해야한다. 달리말해, 이우화를환기함으로써하이데거는, 마음씀을인간실존의통일적인존재론적구조로폭로한것은그의실존론적분석론의잠정적인종착역일뿐, 이제독자는제 2부의논의를이해할준비를갖추어야할것이라는자신의확신을천명한다. 마음씀을조건짓는것으로서의시간그자체는인간존재방식의기본적조건이될것이다. [ 읽기자료 ] 현존재란스스로존재하면서그존재자체를문제삼는그런존재자이다. 이 를문제삼는다는, 가장고유한존재가능을향해자기기투하는존재로서의이해의존재틀에서명료해졌다. 이가장고유한존재가능이란, 있는그대로의현존재가그때마다궁극목적으로삼고있는그것이다. 현존재는자신의존재에있어서그때마다이미자기를자기자신의어떤가능성과결부시켜왔다. [ 현존재가 ] 가장고유한존재가능을향해, 따라서본래성과비본래성이라는가능성을향해개방되어있음은불안속에서근원적기본적으로구체화되어나타나있다. 그러나가장고유한존재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능을향한존재라함은, 존재론적으로는현존재가자기존재에있어서그때마다이미자기자신에앞서있음을의미한다. 현존재는언제나이미자기를넘어서있다. 그러나이것은현존재가아닌다른존재자에대한태도로서가아니라, 현존재자신인존재가능을향한존재로서이다. 본질상 를문제삼는다는존재구조를우리는현존재의자기를-앞질러-있음으로서파악한다.(191-192, 276) 가장고유한존재가능을향한존재, 즉 자기를앞질러있음 가운데에는, 본래적실존적제가능성을향해개방되어있음 [ 자유존재 ] 을가능하게하는실존론적 - 존재론적조건이들어있다. 존재가능이란, 현실적으로있는그대로현존재가그때마다궁극목적으로삼고있는그것이다. 그러나이존재가능을향한존재자체가자유에의해규정되는한, 현존재는자기의제가능성에대해서비자발적 ( 非自發的 ) 으로태도를취할수도있다. 즉, 현존재는비본래적으로있을수있고또현실적으로는우선대개그런방식으로있다. 이때는본래적궁극목적 [ 존재가능 ] 은포착되지않은채, 현존재자신의존재가능의기투는세인의처분에맡겨진다. 그리하여 자기를앞질러있음 에서의자기는그때그때세인 - 자기라는의미의자기를가리킨다. 비본래성에서도현존재는본질상자기를앞지른다. 그것은현존재가자기자신앞에서퇴락하면서도피하는것도, 상금 이존재자가자기의존재를문제삼는다 는존재틀을보이고있는것과같다.(193, 278) 자기를앞질러있음 을더완전하게표현하면, 어떤세계안에이미있으면서자기를앞지름이다. ( ) 저렇게얽혀있다함은도리어현존재의근원적전체적틀을현상적으로표현한것이고, 현존재의전체성은이제 안에이미있으면서자기를앞지름 으로서명시적으로뚜렷해진셈이다. 달리말하면, 실존함은언제나현사실적실존함이다. 실존성은본질적으로현사실성에의해규정된다.(192, 276-277) 3) 실재성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 한 : 實在性, 독 : Realität, 영 : Reality) 앞서의논의를통해 ꡔ존재와시간ꡕ 제1편에대한논의는사실상끝났다. 나머지는전통적형이상학이끊임없이철학의영원한주제로문제삼아왔던실재성과진리에관한물음이다. 하이데거는이물음을실존론적분석론을토대로새롭게정초함으로써자신의존재사유가전통적형이상학과어떻게차이나는지를입증한다. 즉실재성과진리의물음은하이데거의존재사유를통해새로운토대위에서새롭게해석된다. 우리는여기에서하이데거의존재사유가전통적형이상학과의대결임을새삼확인한다. 그러나 ꡔ존재와시간ꡕ전체의구도에서보자면여기서의논의는여론 ( 餘論 ) 에해당한다. 우선은실재성의문제를실존론적분석론을통해새롭게논의해보자. 전통적형이상학에서지배적인존재개념은실재성이다. 실재성이란사물이단순히눈앞에있음을의미한다. 실재성은곧전재성 ( 前在性 ) 이다. 따라서이러한존재개념에서는세계내부적존재자가갖는존재의차이성이무시된다. 여기에서는인간도예외가아니다. 인간도무차별적으로실재하는전재자 ( 前在者 ) 에불과하다. 인간에관한전통적형이상학의정의는이를잘입증한다. 인간도최근류 ( 最近類 ) 에서보면하나의동물에불과하다. 다만인간은이성이란탁월한사유기능을지니고있기에종적 ( 種的 ) 으로만다른동물과차별 ( 差別 ) 된다. 이렇듯실로전통적형이상학은모든존재자를전재적 ( 前在的 ) 사물 (res) 로획일화한다. 전재적사물의존재는획일적으로실재성 ( 實在性 ) 이다. 무릇존재일반은실재성이란의미를지니게된다. 그래서하이데거는종래의존재론을사물존재론이라고도명명한다. 그런데하이데거의시각에서보면이러한사물존재론은퇴락의존재양식에서나가능하다. 퇴락이란일상적현존재가자신의존재틀인세계-내 -존재를망각한채존재자들의 > 세계 < 에만몰입해있음을의미한다. 퇴락한일상적현존재는자신의본래적인궁극목적을향해자기를기투함으로써자신의고유한세계를펼쳐나가기는커녕, 존재자들의 > 세계 < 에몰입하여거기로부터자기를이해한다. 하이데거는전통적사물존재론을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로이러한퇴락적존재양식안에집어넣어해석한다. 하이데거가그렇게해석하는단적인증거는종래의사물존재론에서항상문제가되는것이외적세계의실재성이기때문이다. 외적세계란우리의의식밖에있는존재자들의 > 세계 < 를의미한다. 종래의존재론에서는 관념론에서든혹은실재론에서든 외적세계의실재성이논란거리였다. 그래서칸트는이를철학의스캔들이라명명한바도있다. 그런데하이데거가보기에이외적세계의실재성논쟁은크게두가지관점에서존재론적오류를범한다. 첫째, > 외적세계의문제 < 는기본적으로우리의밖에있는사물이나객관에그시선을고정시켜놓고있다. 이럴경우주관과 > 세계 < 는분리된다. 주관은애초부터무세계적주관이되고만다. 그러나우리가앞서살펴보았듯이, 인간현존재는세계-내- 존재이다. 세계란우리의밖에있는어떤실체가아니라오히려우리인간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펼쳐지는지평이다. 우리는그러한지평으로서의세계를적소전체성과유의의성으로확인한바있다. 현존재와다른존재자와의만남은세계를전제한다. 인간현존재가아닌존재자는원칙적으로세계내부적존재자이다. 또한우리가세계안에서우선대개만나는세계내부적존재자는용재자 ( 用在者 ) 이며, 용재자가도구적성격을탈색하고과학적관찰대상으로변양되었을때비로소전재자 ( 前在者 ) 가출현한다. 그러니까종래의존재론이문제삼던전재성으로서의실재성은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보자면, 다른존재양식가운데하나일뿐더러, 이미현존재, 세계, 그리고용재성 ( 用在性 ) 과일정한정초연관을맺고있다. 그러나종래의사물존재론은처음부터 > 세계 < 를인간의의식밖에위치시켜놓고실재성을존재론적으로증명하려시도하였기에미궁에봉착할수밖에없었던것이다. 둘째, 종래의사물존재론은우리의의식밖에있는 > 외적세계 < 의실재성을문제삼고있으나, 이 우리 에대한, 다시말해현존재에대한존재론적해석을결여하고있다. 그러나앞서논의했듯이,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로부터세계는비롯되며, 따라서세계-내- 존재라는현존재의전체틀안에는이미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이라는더근원적인존재틀이자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잡고있다. 그러나종래의존재론은인간현존재를 > 세계 < 와대립한무세계적주관으로보았기에현존재의존재가갖는근원적의미를외면하고말았다. 실존론적-존재론적정초연관에서보자면, 실재성은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으로소급된다. 마음씀으로서의현존재로부터세계가개시되는한에서만, 실재적인것도이세계를근거로발견될수있다. 실재성은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현존재의존재에근거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현존재가실존하는한에서만실재적존재자가그자신에즉해존재할수있다는것은아니다. 만약그런식으로이해한다면, 그것은현존재의실존이갖는실존론적-존재론적의미를오해한결과이다. 우리가말하고자하는것은그런존재자적차원의논의가아니다. 우리의논의는실존론적-존재론적차원의논의이다. 현존재가실존하는한에서만, 다시말해유일하게존재이해를갖는현존재라는존재자가존재하는한에서만, 존재는 > 있다 <. 역으로말하면, 현존재가실존하지않는다면, 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도거론될수없다. 현존재가실존하지않는다면, 세계내부적존재자가발견되었다거나혹은은폐되었다라고도거론될수없다. 현존재가실존하지않을경우실재적존재자가존재하느냐의물음은애당초존재론적물음이될수없다. 현존재가실존하는한에서만, 세계는있다. 그리고세계가있는한에서만, 세계내부적존재자도발견될수있거나혹은은폐될수있다. 이로써전통적형이상학에서논란거리였던실재성의문제는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새롭게정초된셈이다. [ 읽기자료 ] 이해는퇴락의존재양식에따라우선대개는이미세계에대한이해로잘못놓여져있다. 존재 [ 자 ] 적경험만이아니라존재론적이해가문제되는경우에도, 존재해석은그오리엔테이션을우선세계내부적존재자의존재에서취한다. 그때가장가까이있는용재자 [ 用在者 ] 의존재는건너뛰게되고, 존재자는제일먼저전재적 [ 前在者 ] 사물 (res) 연관으로서파악되게된다. [ 따라서 ] 존재는실재성이라는의미를지닌다. 존재의근본규정성은실체성이된다. 이렇게존재이해가잘못놓여짐에따라, 현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재의존재론적이해도이존재개념 [ 실재성 ] 의지평으로옮겨간다. 현존재도다른존재자와마찬가지로실재적으로전재 [ 前在 ] 한다. 이리하여무릇존재일반은실재성이라는의미를지니게된다. 따라서실재성이라는개념이존재론적문제성에서특유의우위를차지한다. 이우위가현존재의진정한실존론적분석론으로가는길을가로막을뿐아니라, 세계내부적으로가장가까운용재자의존재로향하는시선까지도이미가로막고있다. 이우위는마침내존재의문제성일반을잘못된방향으로밀어붙인다. 그이외의존재양상도실재성을고려해서소극적결여적으로규정된다.(201, 289) 그러므로현존재분석론뿐아니라존재일반의의미에대한물음의수행도, 실재성이라는의미의존재에편향적으로정위하는데서부터탈출시켜야한다. 이를위해서는다음의것이증명될필요가있다 : 실재성은다른존재양식가운데하나의존재양식일뿐아니라, 존재론적으로는현존재, 세계및용재성 [ 用在性 ] 과의일정한정초연관 ( 定礎聯關 ) 속에있다. 이것을증명하기위해서는실재성의문제및그문제의제조건과한계에대한원칙적구명이요구된다.(201, 289-290) 실재성에대한가능한존재론적물음에앞서있는이러한연구는전술한실존론적분석론에서수행되었다. 거기에따르면, 인식이란실재적인것에접근하는정초된한양상이다. 실재적인것은본질상세계내부적존재자로서만접근가능하다. 그런존재자에접근하는모든통로는존재론적으로는현존재의근본틀, 즉세계 - 내 - 존재속에서정초되어있다. 세계 - 내 - 존재는마음씀이라는더근원적인존재틀 ( 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해있는존재로서자기를앞질러이미세계안에있음 ) 을가지고있다.(202, 291) 세계는현존재의존재와함께본질적으로개시되어있다 ; 세계는그세계의개시성과함께또한그때마다이미발견되어있다. 물론실재적인것, 단지전재자 [ 前在者 ] 라는의미에서의세계내부적존재자는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직은폐된채로있을수있다. 하지만실재적인것도이미개시된세계를근거로해서만발견될수있다. 또그런근거위에서만실재적인것은은폐된채있을수있다. 사람들은세계현상자체를선행적으로밝히지않고, 외적세계의실재성에대한물음을제기한다. 현사실적으로는외적세계의문제는언제나세계내부적존재자 ( 사물과객관 ) 에정위해있다. 그리하여이런논의들은존재론적으로는거의풀수없는문제성으로휩쓸려간다.(203, 291) 옳든그르든외적세계의실재성을믿는것, 충분하든불충분하든이실재성을증명하는것, 명시적이든아니든실재성을전제하는것따위의시도는, 시도가서있는자신의지반을완전히꿰뚫어보지도않고, 우선무세계적주관또는자신의세계도확신하지못하는하나의주관을전제하고있으나, 이주관이야말로먼저세계를근본적으로확인하지않으면안된다. 그때세계 - 내 - 존재는처음부터포착한다, 사념한다, 확신한다, 믿는다등의작용위에세워지고있는것이다. 그러나이것들은그자신언제나이미세계 - 내 - 존재의한기초지어진양상인태도에불과하다.(206, 298-296) 외적세계가전재 [ 前在 ] 한다는사실과그방식이증명되어야하는것 이아니라, 왜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가 외적세계를우선 인 식론적으로 무효속에파묻어놓고, 그런뒤에새삼증명을통해일으켜 세우려는경향을갖는가하는것이 [ 먼저 ] 제시되어야한다. 그이유는 현존재의퇴락에있고, 또그퇴락에동기지워져서, 일차적존재이해가전 재성 [ 前在性 ] 으로서의존재로 [ 잘못 ] 옮겨놓여진데있다. 이런존재론 적정향을취하는문제제기가 비판적으로되면, 그문제제기는당장 유일하게확실한전재자 [ 前在者 ] 로서단순히 내적인것을찾게된다. 세계-내- 존재라는근원적현상이부서지고난뒤에는잔존하는나머지, 즉고립된주관을근거로해서 세계 와의접합이수행되는것이 다.(206, 296)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실재성이라는명칭이세계내부적으로전재하는존재자 (res) 의존재를가리킨다면 그명칭하에서이해되는것은그것밖에없다, 그것이이 [ 존재자의 ] 존재양상의분석에대해의미하는바는, 세계내부적존재자는 세계내부성 이라는현상이밝혀질때에만존재론적으로파악될수있다는것이다. 그러나세계내부성은세계라는현상에근거하고, 세계는세계대로세계 - 내 - 존재의본질적구조계기로서현존재의근본틀에속한다. 세계 - 내 - 존재는다시현존재의존재의구조전체성속에존재론적으로묶여있고, 그구조전체성으로서성격지어진것이마음씀이다. 이렇게해서, 그것의해명을통해실재성의분석을비로소가능하게할기초와지평이제시된것이다. 이런연관속에서비로소 즉자 의성격또한존재론적으로이해된다.(209, 299) 실재성은존재론적정초연관의순서에있어서, 그리고가능한범주적및실존론적증시의순서에있어서마음씀이라는현상으로소급지시된다. 실재성이존재론적으로현존재의존재에근거한다함은, 현존재가실존할때그리고그런한에서만실재적인것이 그자신에즉해서있는것 으로서존재할수있음을의미하는것이아니다.(211-212, 303) 말할나위도없이, 현존재가있는한에서만, 즉존재이해의존재 [ 자 ] 적가능성이있는한에서만존재는있다. 현존재가실존하지않으면, [ 실재적인것의 ] 독립성도있지않고, 즉자성도있지않다. 그때에는그런것들은이해될수도없고안될수도없다. 그때에는세계내부적존재자또한발견될수도없거니와은폐될수도없다. 그때는존재자가있다없다조차말할계제가아니다. 존재이해가있는한, 그리고이와함께전재성 [ 前在性 ] 의이해가있는한에서, 그때에도존재자는여전히있게될것이라고지금가히말할수있는것이다.(212, 303) 상술한바와같이, 존재자가아니라존재가존재이해에의존해있다는, 즉실재적인것이아니라실재성이마음씀에의존해있다는그의존성이, 실재성의이념을실마리로해서거듭거듭밀고들어오는무비판적현존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해석으로부터, 금후의현존재의분석론을지켜준다. 존재론적으로적극적으로해석된실존성에정위해서비로소, 의식이나생의분석을현실적으로진행함에있어서, 비록무차별적일망정어쨌든실재성이라는의미를기초에놓지않게된다는것이보증된다.(212, 303) 현존재라는존재양식을가진존재자는실재성이나실체성으로부터는파악되지않는다는것을, 우리는인간의실체는실존이다라는테제로표현한바있다. 그러나실존성을마음씀으로서해석하고마음씀을실재성과경계짓는것은실존론적분석론이끝났음을의미하는것이아니라, 존재와그가능한제양상, 그리고그런제변양의의미에대한물음속에있는문제의난맥상이더욱날카롭게드러나도록하는것뿐이다. 즉, 존재이해가있을때만존재자는존재자로서접근가능하고, 존재자가현존재라는존재양식을가지고있을때만 [ 현존재라는존재양식을지닌 ] 존재자로서존재이해가가능하다.(212, 304) 4) 진리 ( 한 : 眞理, 독 : Wahrheit, 영 : Truth) 진리에관한논의도 ꡔ존재와시간ꡕ 전체의구도에서보자면여론 ( 餘論 ) 격에해당한다. 그러나진리의본질에관한물음은철학의근본물음이다. 하이데거는전통적형이상학에서의진리개념을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정초하여진리의본질에관한물음을새로운반석위에올려놓는다. 따라서이논의가비록 ꡔ존재와시간ꡕ 전체의구도에서보자면여론 ( 餘論 ) 격이라해도우리가지나칠수있는부분은결코아니다. 더욱이하이데거는 ꡔ존재와시간ꡕ 이후에도여기서의논의를토대로진리의물음을존재사유의관점에서전개한다. 하이데거철학전체의구도에서보자면, 진리의본질에관한물음은그의핵심적과제이다. (1) 전통적진리개념 : 일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한 : 一致, 독 : Übereinstimmung, 영 : Agreement) 전통적형이상학에서의진리개념은 일치 이다. 일치란대체로판단과그것의대상의일치를의미한다. 그러니까전통적형이상학에서진리의문제는대체로명제적진리의차원에서논의되었다. 물론예외도있었다. 진리개념을 지성과사물의일치 로처음공식화한토마스아퀴나스는진리를명제적진리와사태적진리로나눈바있고, 칸트도단순히판단과대상과의일치를논의했던것이아니라인간의선험적인식과우리에게주어지는현상의일치를말함으로써진리의문제를초월적인차원으로끌어올린바있다. 하지만사태진리를언급하건혹은초월적진리를언급하건, 진리개념은여전히 일치 로서규정되었으며, 그러한일치로서의진리는근본적으로명제적차원에서논의되었다. 또한이일치라는진리개념은그때마다상황에따라 동화, 혹은 올바름, 혹은 합치 등으로다양하게언급되기도하였으나, 판단과대상의일치라는근본적인의미를벗어난것은아니었다. 따라서전통적진리개념을 일치 라고정의해도무방하다. [ 읽기자료 ] 다음의세테제가진리의본질에관한전통적견해와진리의최초의정의에대한견해를성격짓고있다. 1. 진리의장소는진술 ( 판단 ) 이다. 2. 진리의본질은판단과그대상의일치에있다. 3. 논리학의아버지인아리스토텔레스는진리를그근원적장소인판단에다지정하기도하고또진리의정의를일치로서유포시키기도하였다.(214, 306) 꼭들어맞음이갖는이러한이중적성격을우리앞에잘나타내주는것은진리에관해그동안우리에게전승되어온다음과같은본질규정이다. 즉, 진리는사태와지성의동화 ( 同化 ) 이다.(veritas est adaequatio rei et intellectus.) 이것은다음을의미할수있다. 진리는인식을향한사태의동화 (Angleichung) 이다. 그러나이렇게도읽혀질수있다. 진리는사태를향한인식의동화이다. 물론사람들은앞서인용된본질규정을대개는단지 진리는사태를향한지성의동화이다 (veritas est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adaequatio intellectus ad rem) 라는정식으로만제시하곤한다. 하지만그렇게개념파악된진리즉명제진리 (Satzwahrheit) 는단지 지성을향한사태의동화 (adaequatio rei ad intellectum) 를즉사태진리 (Sachwahrheit) 를근거로해서만가능하다. 진리 (veritas) 의이두본질개념들은항상... 을올바르게향함 (Sichrichten nach...) 을의미하며그로써진리를올바름 (Richtigkeit) 으로서사유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한쪽이다른쪽의단순한전도 ( 轉到 ) 는아니다. 오히려각각의경우지성 (intellectus) 과사태 (res) 는상이한것으로사유된다. 이점을인식하기위해우리는통상적진리개념에게익숙한정식을그것의가장가까운 ( 중세적 ) 원천으로소급해야한다. 지성을향한사태의동화 (adaequatio rei ad intellectum) 라는의미의진리 (veritas) 는, 중세이후인간본질의주관성을근거로비로소가능했던칸트의초월적사상을의미하지않는다. [ 참고로 ] 칸트의초월적사상은 > 대상들은우리의인식을올바르게향한다 < 라고주장한다. [ 그러나 ] 앞서언급한통상적진리는오히려기독교의신학적신앙을의미한다. 이러한신앙에따르면, 항상피조물 (ens creatum) 인사태는신의지성 (intellectus divinus) 안에서즉신의정신안에서 앞서사유된이념 에상응하고따라서이념에-꼭들어맞고 ( 이념을-올바로향하고 ) 또한이러한의미에서 > 참 < 인한에서만, 본래의무엇으로또한그것의존재여부에맞게존재한다. 인간의지성 (intellectus humanus) 도피조물 (ens creatum) 이다. 인간의지성은신에의해인간에게부여된능력으로서, 신의이념을만족시켜야만한다. 그러나지성이이념에-꼭들어맞는유일한경우는, 지성이자신의명제들안에서 사유된내용 을사태에게로동화시키며또한사태자체도 [ 이미 ] 이념에알맞게존재하고있어야하는경우일뿐이다. 인간적인식의진리의가능성은, 모든존재자가 > 창조된것 < 인한, 사태와명제가동일한방식으로이념에꼭들어맞고따라서신적인창조계획의통일성에입각해차례로 [ 신을향해 ] 올바로정돈되어있음에근거한다. ( 신의 ) 지성을향한 ( 창조된 ) 사태의동화로서의진리 (veritas als adaequatio rei [creandae] ad intellectum [divinum]) 가 ( 창조된 ) 사태를향한 ( 인간의 ) 지성의동화로서의진리 (veritas als adaequatio intellectus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humani] ad rem [creatam]) 를보증한다. 진리는본질적으로언제나상응 (convenientia) 을, 즉피조물인존재자상호간과창조주의합동 (Übereinkommen) 을, 다시말해창조질서의규정에따른 > 꼭들어맞음 < 을의미한다. 그러나이러한질서는, 만일창조사상으로부터분리된다고하더라도, 일반적이며무규정적인차원에서세계질서로서표상될수있다. 신학적으로사유된창조의질서를대신해, 세계이성이모든대상들을계획하는가능성이들어선다. 세계이성은자신에게스스로법칙을부여하며이로써자신의진행과정이직접적으로이해될수있음을요구한다 ( 사람들은이점을 > 논리적 < 이라간주한다 ). 명제진리의본질이진술의올바름안에존립함을사람들은기정사실로서간주한다. 올바름이어떻게성립해야하는가를설명하기위해악착같이매달려보아도말짱헛수고로끝나는경우에조차, 사람들은올바름을이미진리의본질로서전제한다. 마찬가지로사태진리도항상눈앞의사물과그것의 > 이성적 < 본질개념의일치를의미한다. 마치진리의본질에관한이러한규정은, 지성 (intellectus) 의담지자이자이행자 ( 履行者 ) 인인간에관한상응하는해석을그때마다 [ 이미 ] 포함하고있는저모든존재자의존재의본질에관한해석으로부터독립되어있는듯보인다. 그러므로 ( 진리는지성과사태의동화라는 ) 진리의본질에대한저정식은누구에게든즉각통찰될수있는공통적타당성을획득한다. 이러한진리개념의자명성이지배하는가운데 - 그러나이러한자명성의본질근거가무엇인지는거의고려된바없다 - 사람들은 진리는그것의반대를가지고있다 라는사실및 비진리가있다 라는사실을 [ 앞서와 ] 똑같이자명한것으로서수용한다. 명제의비진리 ( 올바르지못함 ) 는진술과사태의불합치다. 사태의비진리 ( 진정하지못함 ) 는존재자와그것의본질의불일치를의미한다. 어떤경우라도비진리는 꼭들어맞지않음 으로개념화된다. 꼭들어맞지않음 은진리의본질로부터밖으로벗어난것이다. 때문에진리의이러한반대로서의비진리는, 만약진리의순수한본질에대한파악이필요하다면, 도외시될수있다.(ꡔ이정표ꡕ, 180-182)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2) 전통적진리개념의존재론적기초아리스토텔레스와아비켄나를거쳐아퀴나스에이르러정식화된 지성과사물의일치 라는통상적진리규정은현재까지도여전히강력한영향력을발휘한다. 물론철학자들에따라다소간내용상의차이가있긴하나, 이런정식의틀을벗어나지않는다. 그래서우리는진리에관한물음을이제는더이상물을필요가없는물음으로간주한다. 따라서진리는논리학의문제로전락한다. 그러나과연일치라는진리개념이그토록확고한것인가? 그렇다면일치란도대체무엇인가? 솔직히말하자면, 도대체무엇과무엇이일치하는가? 과연지성과사물이일치할수있다는말인가? 아마도일치는비유적표현일것이다. 지성과사물사이에는아무런동종성 ( 同種性 ) 도없다. 지성이정신적관념적존재라면, 사물은물질적존재이다. 따라서일치를낱말그대로받아들여지성과사물이참으로일치한다고생각한다면, 그야말로우스광스럴것이다. 따라서우리는일치라는개념을달리사유해보아야한다. 과연어떤관점에서지성과사물은일치하는것인가? 누군가가벽에등을대고, 벽에걸려있는그림이삐뚤어졌다. 는참된진술을했다고가정해보자. 이진술은참된진술이다. 그러나이진술의진리값의근거는, 진술과그림, 다시말해관념적인것과물질적인것사이에서의 낱말그대로의일치 는아니다. 오히려진리값의근거는이진술이벽에걸린그림을 있는그대로 드러내주었다는점에있다. 즉일치는... 와같이, 그렇게 라는관계형식을가지고있다. 참된진술은그진술이관계하는존재자를자기동일성에서제시한다. 역으로말하자면, 문제가되는존재자의자기동일성이진술안에서보여진다. 이것이일치의참된의미이다. 진술의진리는 존재자를있는그대로발견하면서있음 에근거한다. 따라서우리는명제적차원의진리와이명제적진리를가능하게하는근원적현상을구별해야한다. 명제적진리는 문제가되는존재자가있는그대로발견되어있음 이다. 그리고명제적차원의진리를가능하게하는것은 문제가되는존재자를있는그대로발견하면서있음 이다. 따라서전자가이차적의미의진리라면, 후자는일차적의미의진리가된다. 그런데이처럼발견하고있음은우리현존재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방식이다. 현존재는세계-내-존재를근거로세계안에서존재자를발견하면서실존한다. 그렇다면진리의근원적현상은더욱근원적으로소급되어야한다. 우리의이제까지의논의는진리의근원적현상에도달하기위한기초가된셈이다. [ 읽기자료 ] 합치를우리는여러가지의미로언급한다. 우리는예컨대책상위에놓여있는 5마르크짜리주화두개를보고는 그것들이서로합치한다 라고말한다. 그둘은그것들의모양이하나라는점에서합동이다. 때문에그것들은이하나의모양을공유하며따라서이러한관점에서똑같다. 더나아가우리는, 예컨대눈앞의 5마르크짜리주화들중하나에관해 이주화는둥글다 라고진술할때에도, 합치에관해언급한다. 여기에서는진술이사물과합치한다. 이제연관은, 사물과사물사이에서가아니라오히려하나의진술과하나의사물의사이에서성립한다. 하지만각연관항인사물과진술의모양이명백히상이하다면, 사물과진술은어떤점에서합동이되어야하는가? 주화의성분은금속이다. [ 하지만 ] 진술은여하튼물질적이지않다. 주화는둥글다. [ 하지만 ] 진술은공간적인것의양식을전혀지니지않는다. 주화를가지고서사람들은무엇인가를살수있다. [ 하지만 ] 주화에대한진술은결코지불수단이아니다. 그러나이둘이똑같지않음에도불구하고앞서명명된진술은 [ 즉 이주화는둥글다 라는진술은 ] 참된진술로서, 주화와합치한다. 그리고이러한의미에서의꼭들어맞음은진리의통념에따른다면동화 ( 同化 ) 이어야한다. 전혀똑같지않은것즉진술이어떻게주화에동화될수있는가? [ 이렇게동화되기위해서라면 ] 진술은물론주화로변모해야할것이며따라서그와같은방식으로그야말로완전히자신을스스로포기해야만할것이다. 이런일이진술에게서성공될리만무하다. 이런일이성공적으로일어난다면, 바로그순간, [ 진술은진술이아니므로 ] 이제더이상진술로서의진술이사물에합치할수도없을것이다. [ 주화로의 ] 동화에서도진술은오히려진술로서남아있어야하며, 이뿐아니라더욱이이제비로소자신의본래적인그무엇이되어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한다. 그어떤사물과도전혀상이한진술의본질은어디에서성립하는가? 어떻게진술은실로자신의본질을고집하면서도 [ 자신과 ] 다른것인사물에동화될수있는가?(ꡔ이정표ꡕ, 182-183) 도대체일치라는용어는무엇을의미하는가? 어떤것과어떤것과의일치는어떤것과어떤것과의관계라는형식적성격을가지고있다. 모든일치와마찬가지로진리도하나의관계이다. 그러나관계라고해서모두일치는아니다. 기호는 [ 그기호에의해 ] 가리켜지는것을지시한다. 지시는하나의관계이지만기호와 [ 그것에의해 ] 가리켜지는것과의일치는아니다. 그러나모든일치가진리의정의속에서확정된 convenientia[ 합치 ] 와같은것을의미하지않는것도분명하다. 6이라는수는 16-10과일치한다. 두수는일치한다. 두수는 얼마나많은가 라는점에서같다. 같음은일치의한방식이다. 이일치에는구조상어떤점에서라는것이속한다. adaequatio[ 일치 ] 속에서관계맺고있는것이그점에서일치하는그점이란무엇인가? 진리관계를밝힐때는관계항들의독자성이함께고려되어야한다. 어떤점에서 intellectus[ 지성 ] 와 res[ 사물 ] 는일치하는가? 지성과사물은양자의존재양식과본질내용으로보아, 양자가그점에서일치할수있는어떤것을도대체제공하고있는가? 양자 [intellectus와 res] 사이에는동종성 ( 同種性 ) 이없으므로양자가같을수없다고한다면, 닮기라도했다는것인가? 그러나인식은사상 [ 事象 ] 을그것이있는바와같이, 그렇게주어야한다. 일치는 와같이, 그렇게라는관계성격을가지고있다. 어떤방식으로이관계는 intellectus와 res 사이의관계로서가능한가?(215-216, 308) 누군가가벽에등을대고, 벽에걸려있는그림이삐뚤어졌다는참된진술을했다고하자. 이진술은진술자가돌아서서벽에삐뚤어지게걸린그림을지각하면스스로증시된다. 이증시속에서증시되는것은무엇인가? 이진술을 [ 참되다고 ] 확증한다는것은무슨의미인가? (...) 진술행위는존재하는사물자체를향한존재이다. 그런데지각을통해증시되는것은무엇인가? 진술속에서사념되었던것은그자체로있는존재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라는것이외의다른것이아니다. 확증되어야하는것은, 진술되는것 [ 피진술체 ] 을향한진술적존재는존재자를제시한다는것, 진술적존재는자신이지향하는존재자를발견한다는것이다. 증시되는것은진술이 발견하면서있다 는것이다. ( ) 증시되어야하는것은오로지존재자자체가 발견되어있다 는것, 스스로어떻게발견되어있는가를보이는존재자자신뿐이다. 그것이발견되어있다는것은진술되는것, 즉존재자자신이동일한것으로서자기를제시한다는데서확증된다. 확증이란존재자가자기동일성에있어서자기를제시하는것을의미한다. 확증은존재자의자기제시를근거로해서수행된다. 그것은오직진술하면서자기를확증하는인식작용이그존재론적의미상, 실재적존재자자체를향해발견하면서있다는것으로만가능하다.(217-218, 310-311) 진술이참이다함은진술이존재자를그자체에즉해서발견한다는뜻이다. 진술은존재자를그피발견성에있어서진술하고, 제시하고, 보이게한다 (ἀποϕανσις). 진술의참임 ( 진리 ) 은발견하면서있음으로서이해되지않으면안된다. 그러므로진리는한존재자 ( 주관 ) 가다른존재자 ( 객관 ) 에동화한다는의미에서의인식작용과대상사이의일치라는구조를갖는것이결코아니다.(218-219, 311-312) 발견하면서있음 [ 발견적존재 ] 으로서의 참임 [ 진리존재 ] 은다시존재론적으로는세계 - 내 - 존재에근거해서만가능하다. 이현상 [ 세계 - 내 - 존재 ] 속에서우리는현존재의근본틀을인식했거니와, 이현상이곧진리의근원적현상의기초이다. 이제이근원적현상이더욱철저하게추구되어야한다.(219, 312) 발견한다는것은세계 - 내 - 존재의한존재방식이다. [ 용재자에대한 ] 배시적배려나 [ 전재자를 ] 그냥머물러있으면서관조하는배려도세계내부적존재자를발견한다. 후자가피발견자로된다. 이것은이차적의미에서의참이다. 일차적참, 즉발견하면서있는것은현존재이다. 이차적의미에서의진리는 발견하면서있음 ( 발견 ) 이아니라, 발견되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있음 ( 피발견성 ) 이다.(220, 314) (3) 진리의근원적현상존재자를발견하고있음은현존재의존재방식이다. 현존재는발견하는존재이다. 현존재의발견함은세계-내-존재에근거한다. 세계는현존재가존재자를발견할수있는선행적지평이다. 따라서존재자의피발견성은물론이거니와현존재의발견함도세계의개시성에근거한다. 그런데세계의개시성이란바로현존재의개시성이다. 현존재는본질적으로자기의개시성으로있다. 앞서논의하였듯, 현존재는정상성 ( 情狀性 ) 에서자기의존재를확인하고기투 ( 이해 ) 를통해자기의존재를확보함으로써자기지시적이해를통해세계를개시하는것이다. 따라서진리의가장근원적현상은현존재의개시성과함께비로소달성된다. 현존재는본질적으로 > 진리가운데 < 있다. 현존재는진리-내-존재이다. 그런데진리의문제에서도우리는하이데거의독특한사유구조를만나게된다. 항상그는어떤사태의형식적구조를밝혀놓고이형식적구조로부터어떻게비본래적양상과본래적양상이가능하게되는지를논의한다. 여기에서도예외가아니다. 현존재가 > 진리가운데 < 있다 라는진술은현존재가본질적으로진리의근원적현상이라는형식적구조만을말하고있다. 이진술은존재론적차원에서만이해되어야한다. 문제는현존재가어떤양상의개시성으로있는가의여부이다. 즉현존재가본래적개시성이라면현존재는가장근원적진리안에있는것이요, 현존재가비본래적개시성이라면현존재는비진리안에있는것이다. 현존재의본래적개시성은앞으로 6장 2절에서논의된다.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 본래적개시성은선구적결의성이다. 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자기를앞질러본래적자기를회복하는것이선구적결의성이다. 따라서선구적결의성은본질적으로기투와관련된다. 하이데거는선구적결의성을통해현존재의실존성이확보됨을감안하여, 선구적결의성을특히실존의진리라고도명명한다. 이에반해비본래적개시성은우리가앞서 4장 2절에서논의한바있는일상적개시성이다. 일상적개시성에서피투성은퇴락이된다. 일상적현존재는이미퇴락속에피투되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있다. 따라서일상적현존재는, 현존재가본질적으로진리-내-존재임에도불구하고, 비진리안에있게된다. 물론여기에서의비진리는철저히실존론적의미에서만이해되어야한다. 실존론적비진리는명제적차원에서의 거짓 과는무관하다. 일상적현존재는비진리안에있다. 그로써존재자는은폐되거나혹은설령발견된다라고해도위장되고만다. 일상적현존재는존재자를가상으로만나게된다. 따라서진리는탈취를요구한다. 존재자를은폐와은닉, 그리고위장으로부터탈취해야한다. 그렇다면그리스인들이진리의본질을결여적표현을사용하여 ἀ-λήϑεια( 알레테이아, 비은폐성 ) 라말한것은결코우연이아닐것이다. 참고로 λήϑεια 는 감추어져있음 을의미하며, ἀ는결성적표현으로서비 ( 非 ) 를의미한다. 이로써우리는하이데거가말하는완전한실존론적-존재론적진리개념에도달한다. 1. 진리는가장근원적의미로는현존재의개시성이다. 현존재는진리안에있다. 2. 현존재가본래적개시성일때, 현존재는가장근원적진리에도달한다. 3. 현존재가비본래적개시성일때, 현존재는비진리안에있게된다. 4. 그러므로 현존재는진리안에있다. 라는명제의완전한실존론적-존재론적의미는, 등근원적으로, 현존재는비진리안에있다. 를함축한다. 즉현존재는진리와비진리가운데등근원적으로있다. [ 읽기자료 ] 발견하면서있다 는 진리존재 는현존재의한존재방식이다. 이발견자체를가능케하는것은필연적으로보다더근원적의미에서참이라고일컬어지지않으면안된다. 발견한다는것자체의실존론적 - 존재론적기초가비로소진리의가장근원적현상을제시한다.(220, 313-314) 그러나세계의세계성과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해앞에서행한분석이제시한바에따르면, 세계내부적존재자의피발견성은세계의개시성에근거한다. 개시성은현존재의근본양식이고, 이근본양식에따라현존재는자기의현존재이다. 개시성은정상성 [ 情狀性 ], 이해및말로구성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고, 등근원적으로세계, 내 - 존재및자기에관계한다. 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해있음으로서 - 자기를앞질러 - 이미어떤세계안에있음 이라는마음씀속에는현존재의개시성이들어있다. 피발견성은이개시성과함께, 그리고이개시성을통해있다. 따라서진리의가장근원적현상은현존재의개시성과함께비로소달성되는것이다. 앞에서 현 의실존론적구성에관해또 현 의일상적존재에관해제시되었던것은바로진리의가장근원적현상이다. 현존재가본질상자기의개시성으로있고, 개시된현존재로서개시하고발견하는한, 그현존재는본질적으로참이다. 현존재는진리가운데있다. 이진술은존재론적의미를가지고있다. 이진술이의미하는것은현존재가존재 [ 자 ] 적으로언제나, 또는적어도언젠가는, 일체의진리가운데안내되어있을것이다라는것이아니라현존재의실존론적틀에는현존재의가장고유한존재의개시성이속해있다는것이다.(220-221, 314) 현존재의존재틀에는그현존재의개시성의구성요소로서피투성이속해있다. 이피투성에서노정 (F 呈 ) 되는것은현존재가그때마다이미나의현존재로서있다는것, 그리고이나의현존재는일정한세계내에서일정한세계내부적존재자의일정한범위에몰입해있다는것이다. 개시성은본질상현사실적개시성이다.(221, 315) 현존재의존재틀에는기투가속해있다. 그것은자기의존재가능을향해 개시하면서있다 는것이다. 현존재는이해하는자로서세계와타자의입장에서자기를이해할수도있고, 자기의가장고유한존재가능에입각해서자기를이해할수도있다. 후자의가능성이의미하는것은현존재가자기의가장고유한존재가능에있어서, 그리고가장고유한존재가능으로서, 자기를자기자신에게개시한다는것이다. 이본래적개시성이본래성이라는양상에있어서가장근원적진리의현상을제시한다. 현존재가그속에서존재가능으로서있을수있는가장근원적이고더욱이가장본래적인개시성은실존의진리이다.(221, 315)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의존재틀에는퇴락이속해있다. 우선대개현존재는자기의세계에자기를상실하고있다. 제존재가능성을향한기투로서의이해가그곳 [ 세계 ] 으로옮겨진것이다. 세인속에몰두한다함은 공공적피해석성 이지배함을의미한다. 발견된것 [ 세계내부적존재자 ] 과개시된것 [ 현존재 ] 은빈말, 호기심및애매성에의해위장되고은폐된다는양상속에있다. 존재자를향한존재는소멸되지는않았지만뿌리뽑히고만것이다. 존재자는완전히은폐되지않고발견되어있기는하나동시에위장되어있다 : 존재자는자기를드러낸다 그러나가상이라는양상으로드러난다. 마찬가지로이전에발견되었던것은다시위장과은폐속으로도로가라앉는다. 현존재는본질상퇴락하기때문에그존재틀에서보면비진리가운데있다. 여기서이명칭 [ 비진리 ] 은퇴락이라는표현과마찬가지로, 존재론적으로사용되고있다. 이명칭을실존론적 - 분석적으로사용할때는, 존재 [ 자 ] 적으로소극적인모든평가는멀리하지않으면안된다. 현존재의현사실성에는폐쇄성과은폐성이속해있다. 현존재는진리가운데있다는명제의완전한실존론적 - 존재론적의미는, 등근원적으로, 현존재는비진리가운데있다를함축한다. 그러나현존재가개시되어있는한에서만, 현존재는또한은폐되어있다 ; 그리고현존재와더불어그때마다이미세계내부적존재자가발견되어있는한, 그존재자는세계내부적으로만날수있는것으로서은폐 ( 은닉 ) 되거나위장되는것이다.(221-222, 315-316) 진리 ( 피발견성 ) 는언제나먼저존재자로부터쟁취되어야한다. 존재자는은닉성으로부터탈취된다. 그때그때의현사실적피발견성은, 말하자면언제나하나의탈취이다. 그리스인들이진리의본질에대해결여적표현 (ἀλήϑεια)[ 알-레테이아 ] 으로말하는것은우연한일일까? 그렇게현존재가자기를언표하는가운데이미자기자신에대한근원적존재이해가고지 ( 告知 ) 되어있지않는가? 비록그존재이해라는것이 비진리 - 내 - 존재 는세계 - 내 - 존재의한본질적규정을이룬다는것에대한전존재론적이해에지나지않는다하더라도.(222, 316-317)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세계 - 내 - 존재가진리와비진리에의해규정된다는사실에대한실존론적 - 존재론적조건은우리가피투적기투라고성격지은바있는현존재의존재틀에있다. 이존재틀은마음씀의구조의한구성요소이다.(223, 317) 진리의현상에대한실존론적 - 존재론적해석은다음의결과를초래하였다 : 1. 진리는가장근원적의미로는현존재의개시성이며, 이개시성에세계내부적존재자의피발견성이속한다. 2. 현존재는진리와비진리가운데등근원적으로있다.(223, 317) 가장근원적의미로이해한다면, 진리는현존재의근본틀에속한다. 이명칭 [ 진리 ] 은한실존범주를가리킨다. 이것으로써진리의존재양식에대한물음과진리는있다는전제의필연성의의미에대한물음에답할대답의밑그림은이미그려진셈이다.(226, 321) (4) 진리의존재양식과진리를전제함현존재가개시성에의해구성되어있는한, 현존재는본질상진리안에있다. 비록일상적현존재가비진리안에있을지언정, 그것도본질적으로는현존재가진리안에있기때문에가능하다. 진리는현존재가있는한에서만, 또그동안에만주어져있다. 달리말하자면, 존재자는현존재가있는그때에만발견되고그동안만개시된다. 만약현존재가있지않았다면, 뉴톤의법칙이라든가모순율따위의진리도발견되지않았을것이다. 영원한진리도마찬가지이다. 영원한진리도영원히현존재가있을때에만가능할것이다. 그러나현존재의영원성에대한증명이미결로남아있는한, 영원한진리에대한주장은공상에불과하다. 따라서모든진리는현존재의양식을갖는다. 진리는현존재의존재와상관적이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진리가마치인간주관의자의에맡겨져있는양오해하지는말아야한다. 우리가말하고자하는것은단지진리는현존재의존재양식이라는점뿐이다. 때문에진리는현존재를현존재로서이해하는근거가된다. 다시말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자면, 우리는진리를전제한채현존재를이해해야한다. 전제란어떤것을다른어떤존재자의존재근거로서이해함을의미한다. 그렇다면진리를전제한다는것은, 진리를현존재의궁극목적으로이해한다는뜻이된다. 따라서현존재는진리를추구해야한다. 그런데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은이미본래적자기에게도달할구조계기를갖고있다. 그것은바로실존성의계기인 자기를앞지름 이다. 현존재는비진리안에빠져있는일상적자기를앞질러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에이르러야한다. 현존재는본질구조상이미진리와함께있기에, 진리를전제해야한다. 진리가있는한에서만 ( 본래적 ) 존재는있는것이요, 또진리는현존재가존재하는동안에만있는것이다. [ 읽기자료 ] 현존재는개시성에의해구성되어있으므로본질상진리가운데있다. 개시성은현존재의본질적존재양식이다. 진리는현존재가있는한에서만, 또그동안에만 [ 주어져 ] 있다. 존재자는도대체현존재가있는그때에만발견되고그동안만개시된다. 뉴턴의법칙, 모순율따위의모든진리는현존재가있는한에서만일반적으로참이다. 현존재가도대체있지않았던이전과, 현존재가도대체있지않게될이후에는, 진리는없었고, 없게될것이다. 왜냐하면그때에는진리는개시성, 발견및피발견성으로서있을수없기때문이다. 뉴턴의법칙들이발견되기전에는그것들은참이아니었다. 그렇다고해서그것들은거짓이었다거나, 더욱이어떤피발견성도존재 [ 자 ] 적으로불가능하게되면그것들은거짓이될것이라는결론이나오는것은아니다.(226-227, 321-322) 영원한진리가있다는것은영원히현존재가있었고영원히있을것이라는것이성공적으로증명되었을때비로소충분히입증될것이다. 이증명이미결로남아있는한, 그명제는공상적주장에불과하다. 철학자들이흔히믿었다는것으로그주장이정당화되는것은아니다.(227, 322) 모든진리는본질적현존재적존재양식에따라, 현존재의존재와상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적이다. 이상관성은 모든진리는주관적이다 와같은뜻인가? 주관적이라는것이주관의자의에맡겨짐이라고해석된다면, 확실히그렇지는않다. 왜냐하면발견한다는것은그가장고유한의미에따르면, 진술을주관적자의로부터떼어내서발견하는현존재를존재자자체앞에직면시키기때문이다. 그리고오직발견으로서의진리는현존재의존재양식이기때문에, 진리는현존재의자의로부터떼어내질수있다. 진리의보편타당성도현존재가존재자를그자체에즉해서발견하고개현할수있다는데에전적으로뿌리박고있다.(227, 322) 실존론적으로파악된진리의존재양식으로부터이제 진리를전제한다 는의미도이해된다. 왜우리는진리가 [ 주어져 ] 있다고전제하지않으면안되는가? 전제한다는것은무엇을말하는가? 우리와하지않으면안된다는무엇을의미하는가? 진리가 [ 주어져 ] 있다는것은무슨의미인가? 우리는진리를전제한다, 왜냐하면우리는현존재의존재양식으로있으면서진리안에있기때문이다. 우리는진리를우리밖이나우리를넘어서있는어떤것으로서전제하지않는다. 그런것들에대해서는우리는다른가치들을대하는것과같은태도를취하는것이다. 우리가진리를전제하는것이아니라진리가우리로하여금어떤것을전제하는자로서있을수있도록, 그렇게존재론적으로일반적으로가능하게하는것이다. 진리가비로소전제라든가하는것을가능하게한다.(227-228, 323) 전제한다는무엇을의미하는가? 그것은어떤것을다른어떤존재자의존재의근거로서이해하는것이다. 그렇게존재자를그존재연관속에서이해하는것은개시성, 즉 현존재가발견적존재 임을근거로해서만가능하다. 그렇다면진리를전제한다는것은, 진리를현존재가궁극목적으로하는어떤것으로서이해한다는것이다. 현존재는 그것은마음씀으로서의존재틀안에있다 그때마다이미자기를앞질러있다. 현존재란자기의존재에있어서가장독자적인존재가능을문제삼는그런존재자이다. 세계 - 내 - 존재로서의현존재의존재와존재가능에는본질적으로개시성과발견이속해있다. 현존재에게문제되는것은그의세계 - 내 - 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재 - 가능이고, 그속에서 [ 현존재는 ] 세계내부적존재자를배시적으로발견하면서배려한다. 마음씀으로서의현존재의존재틀속에, 즉 자기를앞질러있음 속에가장근원적전제함이놓여있다. 현존재의존재에는이 자기를전제함 이속해있기때문에, 우리도우리를개시성에의해규정된자로서전제하지않으면안된다. 현존재의존재속에놓여있는이전제함은현존재이외에주어져있는비현존재적존재자에대한태도가아니라, 오직현존재자신에대한태도이다. 전제된진리또는진리의존재를규정하고있어야할그 [ 주어져 ] 있음은, 현존재자신의존재양식또는존재의미를가지고있다. 우리가진리의전제를짓 ( 作 ) 지않으면안되는것은진리가우리의존재와함께이미지어져있기때문이다.(228, 323-324) 진리가있는한에서만, 존재 존재자가아니다 는 [ 주어져 ] 있다. 그리고진리는현존재가존재하는한에서만또그동안에만있다. 존재와진리는등근원적으로있다.(230, 326) 6. 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 : 죽음과양심 현존재의구조전체는세계-내-존재이다. 세계-내-존재로서의현존재의존재가마음씀 (Sorge) 이다. 마음씀은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있음으로서자기를앞질러이미 ( 세계 ) 내에있음 (Sichvorweg-schon-sein-in (der Welt) als Sein bei (innerweltlich) begegnendem Seienden) 이다. 하이데거는마음씀을 현존재틀의구조전체의전체성 이라고도명명한다. 그러나이제까지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은현존재의평균적일상성을단초로삼고있다. 일상성은탄생과죽음 > 사이 < 의존재이다. 그러니까이제까지의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은해석의단초에서부터현존재의전체성을시야에서놓쳐버린셈이다. 더욱이일상적현존재는비본래적현존재이다. 물론불안에대한분석은일상적인비본래적현존재가본래성을회복할수있는계기를마련해주었지만, 여하튼본래적현존재가실존론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적분석의대상은아니었다. 즉우리가지금까지해석하여왔던현존재는비본래적현존재이며, 그것도전체적이지않은현존재였다. 따라서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을완성하기위해우리는무엇보다먼저현존재를그것의전체성과본래성에서확보해야한다. 다시말하자면, 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이근원성에대한요구를충족하기위해서는현존재의존재를미리그가능한본래성과전체성에서실존론적으로밝혀놓아야한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여기에서우리는죽음 (Tod) 과양심 (Gewissen) 을만나게된다. 종래의존재론에서죽음과양심은주요한문젯거리가아니었다. 대체로죽음과양심은종교상의문젯거리거나혹은고작해야윤리학정도에서논의되었다. 그러나현존재의실존론적분석론에서죽음과양심은현존재의근원성을실존론적으로해석함에있어주도적문젯거리로부각된다. 현존재의근원성은죽음과양심에의해확보된다. 죽음과양심에대한실존론적분석을통해우리는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을제시한다. 그런데여기서우리가주목해야할점은, 현존재가죽음을문제삼을수있는것은자신을죽음을향해극단적으로기투하였을때이고, 또한양심은현존재가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자신의본래적피투성을회복하였을때가능하다라는점이다. 즉개시성의차원에서본다면, 죽음은기투 ( 혹은이해 ) 에, 양심은피투성 ( 혹은정상성 ) 에관련되고, 또한마음씀의차원에서보자면, 죽음은실존성에, 양심은현사실성에관련된다. 따라서죽음과양심을실존론적으로해석함으로써우리는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이결국은마음씀의양상임을입증하게된다. 그러면죽음과양심의실존론적분석은구체적으로어떻게진행되는가? 우선은죽음의문제부터알아보기로한다. 1) 죽음 ( 독 : Tod, 영 : Death) (1) 죽음의경험불가능성죽음은세계-내- 존재의종말이다. 종말로서의죽음이현존재의가능한전체성을한계짓고규정한다. 그러나현존재의전체성을확보하기위해현존재가지금당장죽을수는없다. 죽은이후현존재는현존재가아닌것이다. 따라서현존재의죽음을존재자적으로경험하고그것을기초로현존재의전체존재를존재론적으로규정하는것은불가능하다. 그렇다면현존재가죽음을경험함으로써자기의전체존재를확보할다른방안은없는것인가? 혹자는타자의죽음을대리주제 ( 代理主題 ) 로선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택할것을제안한다. 타자란공동현존재이다. 타자가생을마감하였을때우리는죽음을간접적으로경험한다. 더욱이우리와가까운타자는비록죽었을망정우리곁을떠나지않는다. 고인 ( 故人 ) 은장례, 매장, 묘제의방식에서 배려 의대상이될뿐더러, 유족은경건하게고인을고려하는가운데애도와회상에잠긴채고인과공동존재한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우리가고인의죽음을함께하는것은아니다. 엄밀한의미에서우리는타자의죽음의현장에입회할뿐그의죽음을경험하진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은각자자기의죽음이기때문에, 죽음에관한한대리주제란있을수없기때문이다. 따라서종말에이른타자의현존재를현존재전체성의분석을위한대리주제로선택했던대안은실패로끝나게된다. 그러나타자의죽음에대한분석이반드시부정적결과만을나은것은아니다. 우리는여기에서현존재의죽음이갖는두가지의주요한의미를포착한다. 1) 물론누군가가타인을위해대신죽을수는있으나, 타자로부터그의죽음을제거하지는못한다. 현존재의죽음은각자의것이다. 2) 현존재의죽음은생물의종말과구별된다. 앞서논의하였듯, 현존재는죽은이후에도배려의대상이되고또한유족과공동존재한다. 현존재의죽음은단지생리학적-생물학적의미만을갖는것이아니다. 따라서우리는생물의종말을 끝장 이라술어화함으로써현존재의죽음과차별화한다. [ 읽기자료 ] [ 버려진 ] 사망자와는달리유족들로부터빼앗겨간고인 ( 故人 ) 은장례, 매장, 묘제의방식으로배려의대상이다. 그리고그까닭은역시고인이그존재양식상, 단지환경세계적으로만배려할수있는용재적 [ 用在的 ] 도구이상이기때문이다. 애도와회상에잠겨그의곁에머물러있을때, 유족들은 경건한고려 의양상에있어서그와함께있다 [ 공동존재 ]. 그러므로사자 ( 死者 ) 에대한존재관계는용재자 [ 用在者 ] 에몰입해서배려하는존재로서이해되어서는안된다.(238, 341) 사자와유족이함께있음 [ 공동존재 ] 에도불구하고, 망자자신은더이상현실적으로 현존재 하지않는다. 하지만공동존재는언제나동일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세계내의상호존재를의미한다. 고인은우리의세계를버리고, 그것을뒤에남긴것이다. 뒤에남은사람들은이세계에입각해서아직고인과함께있을수있다.(238, 341) 고인이더이상현존재가아니라는것이현상적으로적합하게이해되면될수록그만큼명료하게드러나는것은, 사자와함께있다고해서그것이곧고인자신이본래적으로 종말에이르렀음 을경험하는것은아니라는것이다. 죽음은과연상실로서드러나지만, 그상실은남아있는자들이경험하는상실이상이다. 그러나상실을감내 ( 堪耐 ) 함에있어서도죽어가는자가감내하는존재상실자체에는미치지못한다. 우리는진정한의미에서타자의죽음을경험하는것이아니고, 고작언제나거기 [ 죽음의현장 ] 에입회할뿐이다.(238-239, 341-342) 현장에입회해서타자가죽어가는것을심리학적으로설명하는것이가능하고또용인된다하더라도, 타자의사망으로생각되는존재방식, 즉 [ 사자자신의 ] 종말에이름 은결코이해될수없을것이다. 여기서문제되는것은죽어가는자의사망, 즉그의존재의한존재가능성에대한존재론적의미이지, 고인이유족과함께현존하고사후에도현존하는방식이아니다. 현존재의종말과전체성을분석하기위해타자에즉해서경험되는죽음을 [ 대리 ] 주제로삼으라는지시는그지시가줄수있으리라고예상한것을존재 [ 자 ] 적으로도존재론적으로도주지못한다.(239, 342) 현존재가종말에이르고그에게그자체로서전체를주는그런존재가능성의대리가문제될때는, 위에서말한대리가능성은완전히좌절되고만다. 아무도타자로부터그의사망을제거해줄수는없다. 물론누군가가타인을대신해서죽음에나아갈수는있다. 그러나이것은언제나특정한사상 [ 事象 ] 하에서타자를위한자기희생을의미한다. 그러나그런대리사망은, 그대리사망을통해, 타자로부터그의죽음을조금이라도제거해주었다는뜻은결코아니다. 사망은어느현존재든그때마다스스로인수하지않으면안되는것이다. 죽음은, 그것이있는한, 본질적으로그때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마다나의죽음이다. 과연죽음은, 그때마다자기의독자적현존재의존재가절대적으로문제되는, 그런독특한존재가능성을의미한다. 사망 [ 현상 ] 에서드러나는것은, 죽음은각자성과실존에의해존재론적으로구성된다는것이다. 사망은결코하나의사건이아니라실존적으로이해되어야할현상이고, 그것도좀더자세하게한정해야한다는의미에서두드러진현상이다.(240, 343) 나아가서, 더이상세계 - 내 - 존재가아님, 즉 더이상현존재가아님 에로의현존재의이행을성격지울때드러난것은, 사망이라는의미에서 현존재가세상을떠나는것 은 단지생물적인것이세상을떠나는것 과구별되어야한다는것이다. 생물적인것의종말을우리는술어상 끝장 이라한다. 이차이는생명의종말과현존재의종말을구별함으로써만분명해질수있다. 물론사망은생리학적-생물학적으로도이해된다. 그러나운명 ( 殞命 ) 이라는의학적개념은 끝장 이라는개념과일치하지는않는다.(240-241) (2) 죽음에이르는존재이제우리는현존재의죽음이갖는이러한의미를단서로하여현존재의죽음을해명하고자한다. 이논의에서중요한역할을담당하는것이 아직아님 혹은미제 ( 未濟, Ausstand) 라는개념이다. 우리는현존재의죽음이갖는 아직아님, 혹은미제의의미를분석함으로써현존재의전체성을확보할새로운길을마련하고자한다. 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이다. 또한마음씀의일차적계기는 자기를앞지름 (sich vorweg, 기투 ) 이다. 언제나그때마다궁극목적을향해자신을기투하는것이현존재의실존구조이다. 그런데현존재가 존재하는동안 자기를앞지를수있기위해서는여분의자기의삶이남아있어야한다. 앞지를것으로남아있는여생 ( 餘生 ) 있기에, 현존재는 아직아님 이다. 이러한의미의 아직아님 을우리는 미제 ( 未濟, Ausstand) 라고도명명한다. 실로삶에대한절망이나 만사에대한각오 도어떤것이여전히미제로남아있기에가능하다. 현존재의근본틀의본질에는부단히미완결성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이있다. 더욱이현존재에게미제로남아있는것이전혀없게된다면, 그것으로이미그현존재는 더이상현-존재가아님 이되고만다. 따라서언뜻보면미제안에실존할수밖에없는현존재에게서존재론적전체성을읽어낸다는것은가망없는기도처럼보이기도한다. 그러나문제는현존재의 아직아님 을미제로해석하는것이과연적합한것인가는여부이다. 엄밀한의미에서미제는대개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에게해당되는개념이다. 첫째, 우리가아직받지못한빚의잔금을생각해보자. 우리는빚의잔금을미제 ( 혹은미제분 ) 라고명명한다. 이런의미의미제는잔금을회수하였을때정산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 빚 이라는존재자의존재양식이변양되지는않는다. 빚은미제로남아있건혹은정산되었건여전히용재자이다. 하지만현존재의경우는다르다. 현존재의 아직아님 이채워졌을때현존재는더이상현존재가아닌것이다. 따라서용재자의차원에서의미제라는개념이현존재의 아직아님 에게적용될수없다. 둘째, 초승달과만월 ( 滿月 ) 의관계를생각해보자. 초승달의관점에서보자면만월은미제로서있다. 그러나달을가리던그림자가사라짐에따라초승달이만월이된다라고해서, 전재자 ( 前在者 ) 로서의달자체가바뀌는것은아니다. 이것은지각적파악작용과관련된것일뿐, 전재자로서의존재양식이변양되는것은아니다. 그러나현존재의경우는다르다. 현존재의 아직아님 이충족된다는것은존재와비존재가문제가되는것이다. 따라서전재자의차원에서의미제라는개념이현존재의 아직아님 에게적용될수없다. 셋째, 아직익지않은과일처럼, 생성하는존재자를생각해보자. 미숙한과일은성숙을향해나간다. 익어가는과일은익어가면서미숙으로있다. 아직아님 이과일의독자적존재에이미수용되어있다. 이점에서는현존재도마찬가지이다. 현존재도존재하는동안은그때마다자신의 아직아님 으로있다. 그런데과일은성숙과함께자기를완성한다. 과일에게미제의충족은완성을의미한다. 과일의 종말 은완성이다. 그러나현존재의 종말 은죽음이다. 더욱이현존재는자신의죽음과더불어성숙에도달하는것도아니다. 죽음에이르기전성숙에도달하는이도있으나, 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개의현존재는미완성으로끝나버린다. 현존재의 아직아님 을미제로해석하는것은잘못이다. 미제는, 청산되지않은빚, 혹은그림자가가리어져있는초승달, 혹은아직익지않은과일의경우에서보듯, 충족되어야할전체 를전제하는개념이다. 그러나현존재에게는이런의미의 전체 란없다. 오히려현존재는그때마다언제나자신의 아직아님 으로있을뿐이다. 역으로말하자면현존재에게종말은서서히다가오는어떤 전체 가아니라, 현존재는매순간마다이미종말로서있는것이다. 따라서현존재는 종말에이르는존재 (Sein zum Ende) 이다. 즉현존재는 죽음에이르는존재 (Sein zum Tode) 이다. 그러니까, > 인간은태어나자마자죽기에충분할만큼늙어있다.< 라고말하지않는가? [ 읽기자료 ] 마음씀의일차적계기, 즉자기를앞지름 [ 기투 ] 은 현존재는그때마다자기자신을궁극목적으로해서실존한다 는것을의미한다. 현존재가존재하는동안, 그는종말에이를때까지자신의존재가능에대해태도를취한다. 현존재가자기앞에아무것도가진바없고, 또자기의결산을끝마쳤을때에 [ 라 ] 도그가아직실존한다면, 그의존재는여전히자기를앞지름에의해규정된다. 예컨대, 절망이라는것도현존재를그의제가능성으로부터절연시키는것이아니라, 제가능성을향한존재의특유한한양상일뿐이다. 이에못지않게, 미혹없이만사에대해각오하고있다는것도자기안에자기를앞지름을감추고있다. 마음씀의이구조계기가분명히말하는바는, 현존재에게는언제나자기자신의존재가능으로서아직실현되지않은어떤것이여전히미제 ( 未濟 ) 로남아있다는것이다. 따라서현존재의근본틀의본질에는부단한미완결성이있다. 비전체성이라함은존재가능에붙어있는이미제를의미한다.(236, 337-338) 하지만현존재에게미제로남아있는것이라곤이제아무것도없도록그렇게현존재가실존하게되면, 그것으로이미그현존재는 더이상현- 존재가아님 이되고만다. 존재의미제를제거한다는것은곧현존재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소멸을의미한다. 현존재가존재자로서있는동안, 현존재는자기의전체를결코달성하지못한다. 만일그전체를획득한다면, 그획득은세계 - 내 - 존재의단적인상실이된다. 그때에는현존재는결코더이상존재자로서경험할수없게된다.(236, 338) 현존재를존재하는전체로서존재 [ 자 ] 적으로경험할수없고, 그결과그전체존재에있어서존재론적으로규정할수없는이유는인식능력의불완전성에있는것이아니다. 장애 ( 障碍 ) 는이존재자의존재쪽에있다. 경험에의한현존재포착이참망 ( 僭望 ) 하는것처럼, 그렇게애초부터있을수없는것 [ 즉, 미제가전혀없는전체존재 ] 은원칙상경험할수도없다. 그러나그렇다면현존재에게서존재론적존재전체성을읽어낸다는것은가망없는기도에그치고마는것이아닌가?(236, 338) 죽음과함께그종말을고하는 부단한비전체성 은현존재에게서지워버릴수가없다. 그러나현존재가존재하는한그현존재에게는 아직아님 이속해있다는현상적실상을미제라고해석해도무방한가? 어떤존재자와관련해서우리는미제를말하는가? 미제라는표현은어떤존재자에속해있기는하지만아직은없다는것을의미한다. 결여로서의미제는일종의귀속성에근거한다. 미제는, 예컨대아직받지못하고있는빚정산의잔금이다. 미제분은아직마음대로할수있는것이아니다. 빚의반환, 즉미제의제거는잔금이차츰회수되는입금을의미한다. 이렇게해서 아직아님 이말하자면채워져서마침내빚의총액이함께모아지는것이다. 그러므로미제는함께귀속되어야할것이 아직모아져있지않음 을의미한다. 존재론적으로말하면, 이것은회수되어야할부분이용재적 [ 用在的 ] 으로있지않다는것이다. 그러나회수되어야할부분은, 이미입금되어용재적으로있는것과같은존재양식을가지고있어서, 잔금이입금되었다고해서그존재양식이변양되는것은아니다. 상존하는 함께있지않음 은 [ 잔여 ] 부분을 [ 회수해서 ] 쌓아모음으로써상각 ( 償却 ) 된다. 어떤것을아직도미제분으로가지고있는존재자는용재자 [ 用在者 ] 라는존재양식을가지고있다. 함께모아짐 또는거기에기초한 함께모아져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있지않음 을우리는총액이라고성격짓는다.(242, 346-347) 그러나 함께모아짐 의그런양상에속하는 함께모아져있지않음, 즉미제로서의결여는, 가능한죽음으로서현존재에속하는 아직아님 을결코존재론적으로규정하지못한다. 이존재자 [ 현존재 ] 는도대체세계내부적 용재자 [ 用在者 ] 의존재양식을갖고있지않다. 현존재가자기생애를마칠때까지자기의경력을쌓아가는것으로서 존재자를함께모으는것 은, 어떻게든또어디에서든, 그본성상이미용재적 [ 用在的 ] 으로있는존재자를계속해서잇대가는것으로구성되지는않는다. 현존재는자기의 아직아님 이채워질때비로소 함께모아져 있는것이아니니, 바로그때는그는더이상현존재가아니다. 현존재는자신의 아직아님 이자신에게속해있는바로그대로그때마다이미언제나실존한다. 그러나있는그대로있으면서, 그리고현존재의존재양식을가질필요가없으면서, 아직아님 을갖고있는존재자는없는가?(243, 347) 예컨대, 사람들은 만월 ( 滿月 ) 이되기까지달에는마지막 4분의 1이아직채워지지않고있다 고말할수있다. 이 아직아님 은달을가리고있는그림자가사라짐에따라감소된다. 그때에도달은언제나이미전체로서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다. 만월일때에도달은전체적으로파악될수없지만, 그것은차치하더라도, 그 아직아님 은달에속하는부분들이아직함께모아져있지않다는뜻이결코아니고, 전적으로지각적파악작용과관련되어있다. 그러나현존재에속하는 아직아님 은일시적으로든가끔으로든자기의경험으로나남의경험으로미칠수없을뿐아니라, 도대체그것은아직실제적으로있지않다. 우리의문제는현존재적 아직아님 의파악과관련되는것이아니라, 현존재의가능한존재또는비존재와관련된다. 현존재는, 그자신으로서, 아직그가아닌것으로되어야한다. 즉, 존재해야한다. 그리하여현존재적 아직아님 의존재를 [ 달의예처럼 ] 비교해서규정할수있기위해서는, 우리는그존재양식이 생성 을가지고있는그런존재자를고찰하지않으면안된다.(243, 347-348)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예를들면, 익지않은과일은그성숙을향해간다. 이때, 과일이익어감에따라 아직그것이아닌것 [ 성숙의상태 ] 이 아직전재 [ 前在 ] 하지않는것 으로서잇달아채워지는것이아니다. 과일자신이성숙해가는것이며, 그런자기성숙을통해과일의존재는과일로서성격지어진다. 과일이라는이존재자가자기스스로익어가지않는다면, 어떤수단과방법을동원해도과일의미숙 ( 未熟 ) 은제거할수없을것이다. 미숙의 아직아님 은과일에대해아무렇지도않게과일에붙어서또는과일과함께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을수있는어떤외부의타자를의미하지않는다. 미숙의 아직아님 은특수한존재양식으로있는과일자신을가리킨다. 아직채워지지않은총계는용재자 [ 用在者 ] 이므로, 비용재적 [ 非用在的 ] 이고 [ 아직 ] 없는나머지에대해 > 아무렇지도않다 <. 엄격하게말하면, 이총계는나머지에대해아무럴수도없고아무렇지않을수도없다. 그러나익어가는과일은과일자신의타자로서의미숙에대해아무렇지도않기는커녕, 익어가면서미숙으로있다. 아직아님 은과일의독자적존재에이미수용되어있다. 그것도임의의규정으로서가아니라 [ 본질적 ] 구성요소로서수용되어있다. 이와마찬가지로, 현존재도존재하는동안은그때마다이미자신의 아직아님 으로있다.(243-244, 348) 현존재에있어서비전체성을형성하는것, 즉부단히 자기를앞지름 은 총계적으로함께모아지는것 의미제도아니고, 더구나 아직접근가능하게되어있지않음 도아니며, 그때마다현존재가존재하는그존재자로서 [ 장차 ] 존재하지않으면안되는 아직아님 이다. 그럼에도이것을과일의미숙과비교해보면, 더러는일치하지만본질적으로는구별된다는것이드러난다. 이구별에주목하면, 종말과끝남에관한이제까지의얘기가무규정적이었음을인식하게된다.(244, 348-349) 설사성숙한다는과일의특수한존재가 아직아님 ( 미숙 ) 의존재양식으로서는형식상현존재와일치한다하더라도, 다시말하면현존재와과일이다같이상금한정할필요가있다는의미에서는그때마다이미자신의 아직아님 으로있다하더라도, 그것은종말로서의성숙과종말로서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죽음이존재론적종말구조의점에서도합치한다는것을의미할수는없다. 과일은성숙과함께자기를완성한다. 그러나현존재가도달하는죽음도과연그런의미에서의완성인가? 현존재는아닌게아니라자신의죽음과함께자신의생애를마친다. 현존재도역시그것으로필연적으로자신의특수한가능성을다하는것인가? 도리어가능성이현존재로부터곧바로박탈되는것이아닌가? 미완성의현존재도끝난다. 그런가하면, 현존재는자신의죽음과함께비로소성숙에도달할필요없이종말에이르기전에이미성숙을통과하는일도있다. 현존재는대개는미완성으로끝나거나, 아니면무너져서초췌하게끝나고만다.(244, 349) 끝난다는것이반드시자기완성을의미하지는않는다. 더욱절실한물음은, 어떤의미에서도대체죽음은현존재의종말로서파악되어야하는가하는것이다.(244, 349) 오히려현존재는, 존재하는한, 부단히이미자신의 아직아님 으로있다. 이와마찬가지로, 현존재는이미언제나자신의종말로있기도하다. 죽음이란말이의미하는끝남은, 결코현존재의 끝막음 이아니라, 이존재자가종말에이르는존재라는것이다. 죽음은현존재가존재하자마자그현존재가인수한하나의존재방식이다. > 인간은태어나자마자죽기에충분할만큼늙어있다 <.(245, 350) 아직아님 을밝히는데서출발하여끝남의성격구명을거쳐현존재의전체성을이해하는데로나아가고자했던우리의시도는목표에도달하지못했다. 그시도가단지소극적으로보여준것은, 그때마다현존재가존재하는 아직아님 을미제로서해석하는것을거절한다는것이다. 현존재는종말을향해실존하면서있지만, 그종말을 끝막음 으로규정하는것은전혀적합하지못하다.(245-246, 351) (3) 죽음의실존론적존재론적구조 현존재는 죽음에이르는존재 이다. 그런데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마음씀은실존성, 피투적현사실성, 퇴락의 3계기로구성된다. 따라서죽음이두드러진의미에서현존재의존재에속한다면, 죽음의의미도 3계기에근거해서해석되어야한다. 이러한해석을통해우리는죽음의실존론적존재론적구조의밑그림을얻게될것이다. 첫째, 죽음은그가능성이최소한으로줄어든최후의미제사건이아니다. 오히려죽음은현존재의존재유무를가늠하는가장두드러진의미에서의다급함이다. 즉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그런데현존재가죽음을이처럼두드러진다급함으로받아들일수있는까닭은, 현존재가, 성숙을기다리는과일과는달리, 언제나이미자기를앞질러있기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를앞지름 이라는마음씀의구조계기 ( 즉실존성 ) 를근거로해서 죽음에이르는존재 가현상적으로더욱명료해지는것이며, 또한역으로말하자면, 마음씀의이구조계기는 죽음에이르는존재 에서가장근원적으로구체화된다. 둘째, 죽음은마음씀의두번째구조계기인피투적현사실성과도관련된다. 현존재가자기를앞질러죽음을문제삼을수있는까닭은현존재가이미죽음의가능성가운데로던져져 ( 피투되어 ) 있기때문이다. 특히죽음에로의피투성이현존재에게가장근원적이고절실하게노정되는것은불안이란근본정상성 ( 情狀性 ) 에서이다. 불안은죽음에대한불안이다. 그러기에불안거리는물론, 불안의이유도단적으로현존재의세계-내-존재가능이다. 셋째, 마음씀의세번째구조계기는퇴락이다. 일상적현존재는우선대개는자신이배려하는 > 세계 < 에몰입한다. 그러기에일상적현존재는죽음에대한불안이가져오는 으스스함 으로부터도피한다. 그러나이러한도피는일상적현존재가 죽음에이르는가장독자적존재 를은폐하고있다는증거일뿐이다. 따라서마음씀의세구조계기인실존성, 피투적현사실성, 퇴락이죽음의존재론적실존론적구조를형성한다. 죽음은, 그존재론적가능성에서보자면, 마음씀에근거한다. [ 읽기자료 ] 미제, 종말및전체성에관한고찰이초래한결과로분명해진것은, 죽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음의현상을 종말에이르는존재 로서의현존재의근본틀로부터해석해야한다는필연성이었다. 그렇게해서만 종말에이르는존재 에의해구성되는전체존재라는것이어느만큼현존재자신에있어서가능한가하는것이그존재구조에따라명료해질수있다. 현존재의근본틀은마음씀이라고밝혀졌다. 이말 [ 마음씀 ] 의존재론적의의를정의로표현하면, ( 세계내부적으로 ) 만나는존재자에몰입해 - 있음으로써자기를 - 앞질러 - 이미 - ( 세계 ) 내에 - 있음 이다. 이것으로현존재의존재의기초적성격들이표현되었다. 즉, 자기를앞지름 에서는실존이, 이미 에있음 에서는현사실성이, 에몰입해있음 에서는퇴락이표현되어있다. 죽음이두드러진의미에서현존재의존재에속한다면, 죽음 ( 또는종말에이르는존재 ) 은이들성격을근거로해서규정되지않으면안된다.(249-250, 356) 죽음은그때마다현존재자신이받아들이지않으면안되는하나의존재가능성이다. 현존재자신은죽음과함께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자기에게다급하게다가선다. 이가능성에있어서현존재에게는자신의세계 -내 - 존재가단적으로중대하게문제된다. 현존재의죽음은 더이상현존재일수없다 는가능성이다. 현존재가자기자신의이런가능성으로서자신에게다급하게다가설때, 현존재는완전히자신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지시받고있다. 그렇게자신에게다급하게다가설때, 그에게는다른현존재에대한모든교섭이단절된다. 가장독자적이고몰교섭적인이가능성은동시에가장극단적가능성이다. 현존재는존재가능으로서죽음의가능성을뛰어넘을수없다. 죽음은현존재의 절대적불가능성 이라는가능성이다. 그리하여죽음은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으로서드러난다. 그런가능성으로서죽음은하나의두드러진다급함이다. 다급함의실존론적가능성의근거는, 현존재가본질적으로자기자신에게개시되어있다는데, 더욱이 자기를앞지른다 는방식으로개시되어있다는데있다. 마음씀의이구조계기 [ 자기를앞지름 ] 는 죽음에이르는존재 에서가장근원적으로구체화된다. 종말에이르는존재 가현상적으로더욱명료해지는것은현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재자가위와같이성격지워진두드러진가능성을향한존재일때이다.(250-251, 357-358) 그러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은현존재가자기존재의경과중에추후적으로또수시로만들어내는것이아니다. 도리어현존재가실존할때, 현존재는이미이가능성가운데던져져있는것이다. 현존재가자기의죽음에맡겨져있고따라서죽음이세계 - 내 - 존재에속한다는것, 그것에대해현존재는우선대개명시적으로더구나이론적으로알지못한다. 죽음속에던져져있다는것이현존재에게더근원적이고더절실하게노정되는것은, 불안의정상성 [ 情狀性 ] 에서이다. 죽음앞에서의불안은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존재가능에직면한불안이다. 불안거리 [ 불안의대상 ] 는세계 - 내 - 존재자체이다. 불안의이유는단적으로현존재의존재가능이다. 죽음앞에서의불안은종명 ( 終命 ) 에대한두려움과혼동해서는안된다. 그것은개인의자의적이고우연한나약한기분이아니라현존재의근본정상성이며, 현존재가자기의종말을향해던져진존재로서실존한다는데대한개시성이다. 이로써사망의실존론적개념은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존재가능을향해던져진존재라는것이분명해진다. 죽음은 [ 전재자의 ] 순수한소멸과도, 또 [ 생물의 ] 단순한끝장과도, 끝으로 [ 생물로서의인간의 ] 종명의체험과도엄격하게구별된다.(251, 358) 종말에이르는존재 란이따끔떠오르는어떤소회 ( 所懷 ) 에의해또그런소회로서비로소생기는것이아니라, 본질적으로현존재의피투성에속하는것이고, 이피투성은 ( 기분의 ) 정상성속에서이렇게저렇게드러난다. ( ) 현사실적으로는많은사람들이우선대개죽음에대해알지못하고있지만, 이것을구실로해서죽음에이르는존재가보편적으로현존재에속하는것이아니라고주장해서는안된다. 그것은현존재가우선대개직면한죽음으로부터도피하여죽음에이르는가장독자적존재를은폐하고있다는것에대한증거일뿐이다. 현존재가실존하는한, 그는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사실적으로죽는다. 그러나우선대개는퇴락의방식으로죽는다. 왜냐하면현사실적실존은, 일반적으로또무차별적으로피투적세계 - 내 - 존재 - 가능이아니라, 언제나이미배려되는세계속에몰두해있기때문이다. 에몰입하여퇴락하는존재 에서고지되는것은 으스스함 으로부터의도피, 다시말하면이경우 죽음에이르는가장독자적존재 로부터의도피이다. 실존, 현사실성, 퇴락은죽음에이르는존재의성격규정이고, 따라서죽음의실존론적개념을구성한다. 사망은그존재론적가능성의점에서는마음씀에근거한다.(251-252, 358-359) (4)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이것이 죽음의실존론적개념 이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인세인은죽음으로부터도피한다. 이러한도피를우리는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라고명명한다. 그렇다면죽음으로부터도피하는세인은죽음을어떻게해석하는가? 이런물음에대한해명을통해우리는 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개념 을획득하게될것이다.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에대한해명의단서는세인의빈말 (Gerede) 이다. 세인은 사람은누구나죽는다 는말을입에물고다닌다. 또 나도언젠가는죽지만당장은아니다 라고자위한다. 죽음은남들이겪는사망사건정도로해석된다. 즉세인은죽음의확실성을애매하게인정하기에, 나의죽음 은먼뒷날로천연된다. 평균수명을들먹이는우리의모습이그것이다. 매순간가능한죽음의확실성이은폐될뿐더러, 언제어느때라도다급하게찾아오는죽음의무규정성마저왜곡되어 언제가는죽을것 이라는변질된무규정성이등장한다. 솔직히말하면, 죽음의이러한무규정성으로부터마저도피하는것이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이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 죽음이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일뿐더러확실하고무규정적인가능성이라는실상이감추어지진않는다. 오히려세인의빈말은우리에게 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존재론적개념 을보여준다. 현존재의종말로서의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확실하고, 그자체로서무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정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 읽기자료 ] 죽음에이르는일상적평균적존재는앞에서얻어진일상성의구조에정위해서밝혀진다. 죽음에이르는존재에있어서현존재는하나의두드러진존재가능으로서의자기자신에대해태도를취한다. 그러나일상성의자기는세인이고, 세인은공공적피해석성에있어서구성되며, 이것은빈말속에서언표된다. 따라서빈말은일상적현존재가죽음에이르는자기의존재를어떤방식으로스스로해석하는가를분명히해야한다. 해석의기초를이루는것은그때마다이해이다. 이이해는또한언제나정상적 [ 情狀的 ] 이해, 즉기분에젖은이해이다. 그러므로물어져야하는것은, 세인의빈말속에놓여있는정상적이해는죽음에이르는존재를어떻게개시하는가하는것이다. 세인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에대해어떻게이해하면서대응하는가? 어떤정상성 [ 情狀性 ] 이또어떤방식으로, [ 현존재가 ] 죽음에맡겨져있음을세인에게개시하는가?(252, 360) 유혹, 안주및소외는퇴락이라는존재양식의특성이다. 죽음에이르는일상적존재는퇴락하는존재로서죽음으로부터의부단한도피이다. 종말에이르는존재는, 이렇게종말의해석을바꾸면서, 비본래적으로이해하면서, 죽음을은폐하면서, 종말로부터회피하는양상을갖는다. 그때마다나의것인독자적현존재가현사실적으로언제나이미죽으면서있다는, 즉현존재가스스로종말에이르는존재속에있다는이현사실을현존재는죽음이란일상적으로남들에게서나발생하는사망사건이라고변조함으로써자신에게는은폐한다. 그리하여그사망사건은어쨌든그자신은물론아직살아있다는것을우리에게더욱분명하게보증해주고있다. 그러나죽음으로부터의퇴락적도피로써현존재의일상성이입증하는것은, 세인이비록명시적으로죽음을생각하지않을때에도그때마다이미그자신도죽음에이르는존재로서규정되어있다는것이다. 평균적일상성에있어서도현존재가부단히문제삼는것은, 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며, 뛰어넘을수없는존재가능이다. 자기실존의가장극단적가능성 [ 죽음 ] 에대항해서번거롭지않은무관심이라는배려의양상만을취할경우에도그렇다.(254-255, 363) 죽음에이르는일상적존재의해명은 사람은언젠가는죽지만당장은아직아니다 라는세인의빈말에의거했다. 이제까지해석된것은, 사람은죽는다는것, 그것뿐이었다. 언젠가는, 그러나당장은아직아님에서일상성은죽음의확실성이라고할만한것을시인하고있다. 사람이죽는다는것은아무도의심하지않는다. 그러나이의심하지않는다는것은이미그속에, 앞에서성격지은바있는 두드러진가능성 이라는의미에서현존재속에들어와있는죽음에상응하는그런확실존재 [ 확실성 ] 를간수하고있을필요가없다. 일상성은이렇게죽음의확실성을애매하게시인하는데머물러있다 그것은사망을더욱은폐하면서죽음의확실성을완화하여, 죽음속으로의피투성을경감시키기위해서이다.(255-256, 364) 죽음은언젠가뒷날로천연된다. 그것도소위일반적추측 [ 가령평균수명등 ] 을불러들여서. 이렇게해서세인은, 죽음은모든순간에가능하다는죽음의확실성의특성을은폐한다. 죽음의확실성과죽음의 언제의무규정성 은결합되어있다. 죽음에이르는일상적존재는죽음의무규정성에규정성을부여함으로써그무규정성을회피한다. 그러나그렇게규정한다하더라도, 그것은언제종명 [ 終命 ] 이찾아오는가를산정 ( 算定 ) 한다는뜻이아니다. 현존재는도리어그런규정성으로부터도피한다.(258, 368) 무규정성의은폐는그러나확실성도은폐한다. 그리하여죽음의가장독자적가능성의성격, 즉확실하기는하나무규정적이라는성격, 다시말하면어느순간에도가능하다는성격이은폐되는것이다.(258, 368) 죽음과그죽음이현존재속으로들어오는방식에대해세인이일상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으로하는말을완벽하게해석한결과우리는확실성과무규정성이라는성격에까지도달했다. 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 - 존재론적개념은이제다음과같은규정으로획정 ( 劃定 ) 된다 : 현존재의종말로서의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확실하고, 그자체로서무규정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죽음은현존재의종말로서, 자기의종말에이르는이존재자의존재속에있다.(258-259, 368) 죽음에직면해서일상적으로퇴락하면서회피하는것은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이다. 비본래성은그근저에가능한본래성을가지고있다. 비본래성은하나의존재양식을특징짓고있지만, 그존재양식은그속으로현존재가자기를옮겨놓을수있고또대개는늘옮겨놓고있으나필연적으로또끊임없이자기를옮겨놓아야하는그런존재양식은아니다.(259, 369-370) (5)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 선구 ( 한 : 先驅, 독 : Vorlaufen, 영 : Anticipation) 죽음에직면해서회피하는것이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이다.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가일상적현존재의존재양식을특징짓는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가일상적현존재의존재양식을필연적으로규정짓는것은아니다. 오히려일상적현존재는실존적변양을통해본래적현존재로서실존할수있다. 하지만, 엄밀히말하자면, 일상적현존재의실존적변양이가능한까닭은, 비본래성이이미그근저에본래성을가지고있기때문이다. 즉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 의근저에는이미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가은폐되고왜곡된채도사리고있다. 다만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 즉그 으스스함 앞에서, 일상적현존재는도피하고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는구체적으로무엇을말하는가? 현존재는 죽음에이르는존재 이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현존재가죽음의실현을배려하면서추구한다는것은아니다. 죽음이후에현존재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미현존재가아니거늘, 죽음의실현을추구한다는것은자가당착이다. 오히려 죽음에이르는존재 는 가능성에이르는존재 를의미한다. 즉여기서문제가되는것은, 탄생과죽음사이에있는현존재가, 마음속으로죽음을체험함으로써, 다시말해자신을극단적으로죽음을향해기투함으로써, 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가능성을비로소자기의가능성으로받아들여견디어내는것이다. 따라서 죽음에이르는존재 가본래적으로의미하는바는, 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가능성에로의 선구 이다. 죽음에로의선구란, 가장독자적이고가장극단적존재가능을이해할가능성이다. 탄생과죽음사이에있는일상적현존재는, 죽음에로의선구를통해, 세인-자기로부터벗어날뿐더러현존재의가능한전체존재를확보함으로써자신의본래적가능성앞에직면할단서를마련한다. 따라서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가능성에로의선구가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이다. 그렇다면죽음에로의선구는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가능성을어떻게구체적으로개시하는가? 1) 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가능성이다. 가장독자적가능성이기에현존재는선구적으로세인과절연 ( 絶緣 ) 할수있다. 2) 가장독자적가능성은몰교섭적이다. 몰교섭적가능성에로선구함으로써현존재는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를자신의편에서스스로인수하게된다. 3) 가장독자적이고몰교섭적인가능성은,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선구는,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와는달리, 뛰어넘을수없는죽음의가능성을향해자기를열어놓는다. 이로써선구는그가능성앞에펼쳐진모든가능성을함께개시함으로써현존재의전체성을실존적으로선취할가능성을확보한다. 4) 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은확실한가능성이다. 현존재가죽음의확실한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개시하는방식은오직, 현존재가이가능성을향해선구하면서, 이가능성을자기의독자적존재가능으로자기자신에게가능하도록하는것이다. 따라서죽음의확실성을고수하기위해선현존재의한특정한태도가요구될뿐더러, 현존재의실존의완전한본래성이요구된다. 5) 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며, 뛰어넘을수없고, 확실한가능성은확실성의점에서는무규정적이다. 무규정적이지만확실한죽음에로선구함에있어, 현존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는자기의 현 자체에서발원하는부단한위협에대해자기를열어놓는다. 이처럼현존재자신에대한부단하고단적인위협을개방적으로지탱할수있는정상성 ( 情狀性 ) 이불안이다. 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선구는현존재를단적으로단독화할뿐더러, 현존재에게그자신의존재가능의전체성을확신시킨다.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는죽음의완전한실존론적가능성에로의선구이다. 죽음에로선구함으로써현존재는세인의환상으로부터해방되어죽음을향해자유로워진다. 이로써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가능성이확보된다. 그러나이것은아직존재론적-실존론적가능성에불과하다. 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존재론적가능성에상응하는존재자적가능성이현존재자신으로부터입증되어야한다. 즉현존재는본래적인실존적가능성의증거를자기의독자적존재가능으로부터제시해야한다. 그러한증거가바로우리가다음에서논의할양심이다. [ 읽기자료 ] 현존재는개시성에의해, 즉정상적 [ 情狀的 ] 이해에의해구성되어있다.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는가장독자적이고몰교섭적인가능성앞에서회피할수도없고, 이렇게도피하면서그가능성을은폐할수도없으며, 세인의상식에맞추어해석을바꿀수도없다. 따라서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의실존론적기투는, 그런 [ 본래적 ] 존재의계기들, 즉 본래적존재 를상술한가능성에대해도피하지않고은폐하지않는존재라는의미에서 죽음의이해 로서구성하는계기들을밝혀내야한다.(260, 371) 우선중요한것은, 죽음에이르는존재를어떤가능성에이르는존재, 더욱이현존재자신의두드러진한가능성에이르는존재로서특징짓는일이다. 어떤가능성에이르는존재, 즉어떤가능한것에이르는존재란, 그것의실현의배려이므로, 그가능한것을 추구한다 는의미일것이다.(261, 371)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문제가되고있는 죽음에이르는존재 는분명히죽음의실현을배려하면서 추구한다 는성격을가질수는없다. 첫째, 죽음은가능한것이긴하지만, 가능한용재자 [ 用在者 ] 나전재자 [ 前在者 ] 가아니라현존재의한존재가능성이다. 둘째, 그러나이 가능한것의실현 을배려한다는것은 종명 [ 終命 ] 의초래 를의미하지않을수없을것이다. 그러나그렇게되면, 현존재는 실존하면서죽음에이르는존재 를위한지반을스스로제거하는꼴이될것이다.(261, 372) 반대로, 죽음에이르는존재에있어서는그존재가앞에서성격지은바있는 [ 가장독자적, 몰교섭적 ] 가능성을바로그것으로서이해하면서개시해야한다면, 그가능성은약화되지않고가능성으로서이해되어야하고, 가능성으로서형성되어야하고, 가능성을대하는태도에있어서끝까지가능성으로서견뎌내야한다.(261, 372-373) 죽음에이르는존재 로서의 가능성에이르는존재 는, 죽음이이존재에있어서또이존재에게가능성으로서노정되도록, 그렇게죽음에대해태도를취해야한다. 가능성에이르는그런존재를우리는술어상가능성속으로선구한다고표현한다.(262, 373) 죽음에이르는존재는, 그의존재양식이선구자체인그존재자의존재가능에로의선구 [ 앞지름 ] 이다. 이존재가능을선구적으로노정할때, 현존재는자기의가장극단적가능성의점에서자신을자기에게개시한다. 그러나가장독자적인존재가능을향해서자기를기투한다 [ 던진다 ] 는것은, 그렇게노정된존재자의존재에있어서자기자신을이해할수있다는것, 즉실존한다는것을의미한다. 선구란, 가장독자적이고가장극단적인존재가능을이해할가능성으로서, 다시말하면본래적실존의가능성으로서입증된다.(262-263, 374) 죽음은현존재의가장독자적가능성이다. 이가능성에이르는존재는, 현존재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 즉거기에서현존재의존재가단적으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문제되는그존재가능을현존재에게개시한다. 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서현존재에게분명해질수있는것은, 현존재가자기자신의두드러진가능성에있어서는세인과절연 ( 絶緣 ) 할수있다는것, 즉선구적으로그때마다이미세인과절연할수있다는것이다. 그러나이할수있음의이해가비로소, 세인 - 자기 가일상성속에현사실적으로상실되어있다는것을드러낸다.(263, 375) 가장독자적가능성은몰교섭적인것이다. ( ) 죽음은자기의현존재에무차별적으로속해있기만하는것이아니라, 자기의현존재가단독적현존재이기를요구한다. 선구속에서이해된죽음의몰교섭성은, 현존재를현존재자신으로단독화한다.(263, 375) 가장독자적이고몰교섭적인가능성은,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이다. 이가능성에이르는존재가현존재로하여금이해하도록하는것은, 실존의가장극단적가능성으로서자기자신을단념하는것이현존재에게절박하게다가온다는것이다. 그러나선구는, 죽음에이르는비본래적존재처럼이 뛰어넘을수없음 을회피하지않고, 도리어그것을향해자기를열어놓는다. ( )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을향한선구는, 그가능성앞에펼쳐져있는모든가능성을함께개시하기때문에, 그선구속에는, 전체적현존재를실존적으로선취 ( 先取 ) 할가능성, 다시말하면전체적존재가능으로서실존할가능성이있는것이다.(264, 376-377) 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고, 뛰어넘을수없는가능성은확실한가능성이다. 이가능성의존재를확신하는방식은, 그가능성에상응하는진리 ( 개시성 ) 로부터규정된다. 그러나현존재가죽음의확실한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개시하는방식은오직, 현존재가이가능성을향해선구하면서, 이가능성을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으로서자기자신에게가능하도록하는것이다.(264, 377) 가장독자적이고, 몰교섭적이며, 뛰어넘을수없고, 확실한가능성은확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실성의점에서는무규정적이다. ( ) 무규정적이지만확실한죽음에로선구함에있어, 현존재는, 자기의 현 자체에서발원 ( 發源 ) 하는부단한위협에대해자기를열어놓고있다. 종말에이르는존재는이위협가운데에서자기를보존하지않으면안된다. 그래서그위협을막아낼수는없고, 도리어 [ 죽음의 ] 확실성의무규정성을형성해내지않으면안된다. 이부단한위협의진정한개시는실존론적으로는어떻게가능한가? 모든이해는정상적 [ 情狀的 ] 이다. 기분은, 현존재를그가지금여기있다는피투성앞에직면시킨다. 그러나현존재의가장독자적이고단독화된존재로부터솟아오르는, 현존재자신에대한부단하고단적인위협을개방적으로지탱할수있는정상성 [ 情狀性 ] 은불안이다. 현존재가불안가운데정상적으로있는것은, 자기실존의가능적불가능성이라는무 ( 無 ) 에직면해있을때이다. 불안은그렇게규정된존재자의존재가능때문에불안해하고, 또그렇게해서가장극단적가능성 [ 죽음 ] 을개시한다. 선구는현존재를단적으로단독화하고, [ 현존재 ] 자신의이단독화속에서, 현존재에게그자신의존재가능의전체성을확신시킨다. 그러므로자신의근거로부터나오는현존재의이자기이해에는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이속해있는것이다.(265-266, 378-379) 실존론적으로기투된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의성격은다음과같이요약된다 : 선구는, 현존재에게 [ 그가 ] 세인 - 자기 속에상실되어있음을드러내고, 현존재를 [ 세인 - 자기로부터끌어내어 ] 배려적고려에일차적으로의존하지않고그자신으로있을가능성앞에직면시킨다. 그 [ 현존재 ] 자신이란, 세인의환상으로부터해방된정열적이고, 현사실적이고, 자기자신을확신하고, 불안해하고있는죽음을향한자유가운데있는자신이다.(266, 379) 실존론적으로기투하면서선구를한정함으로써, 실존적이고본래적인죽음에이르는존재의존재론적가능성이분명해진것이다. 그러나그때이와함께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가능성이떠오른다 그러나그것은하나의존재론적가능성으로서일뿐이다. 물론선구의실존론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기투는이전에획득한현존재의구조에의존하고있어서, 현존재로하여금말하자면그자신자기를이가능성을향해기투하도록한것이다. 그것은현존재에게어떤내용있는실존이상 ( 理想 ) 을내걸고외부로부터들이민것은아니다. 그럼에도실존론적으로가능한이죽음에이르는존재는, 실존적으로는여전히하나의무리한공상적강요에불과하다. 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존재론적가능성은, [ 설사이론적으로는제시되었다하더라도 ] 거기에상응하는존재 [ 자 ] 적존재가능이현존재자신으로부터입증되지않는한, 아무런의미가없다. 현존재는그때마다현사실적으로그런 죽음에이르는존재 속에자기를내던지고있는가? 현존재는또한선구에의해규정되어있는본래적존재가능을, 오직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의근거로부터요구하고있는가?(266, 379-380) 이런물음에대답하기전에, 다음과같은것을음미할필요가있다 : 현존재는일반적으로어느정도까지그리고어떤방식으로자기의실존의가능한본래성에관한증거를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으로부터제시하고있는가, 더욱이그때현존재는이본래성을실존적으로가능한것으로서표명할뿐아니라, 그것을자기자신에게요구할만큼그렇게증거를제시하고있는가?(267, 380) 2) 양심 ( 한 : 良心, 독 : Gewissen, 영 : Conscience) 죽음에로의선구는현존재를죽음을향해자유롭게함으로써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가능성을확보했다. 그러나이것은아직존재론적-실존론적가능성에불과하다. 엄밀히말하자면, 죽음에로의선구는현존재의전체존재가능의가능성만을확보했을뿐거기에대응하는현존재의본래적인실존적가능성을현존재자체로부터증거한바없다. 이것을증거하는것이바로양심이다. 죽음에로의선구가현존재의전체성을보증한다면, 양심은현존재의본래성을증거한다. 죽음에로의선구가확보한현존재의전체존재가능안에서양심이현존재의본래성을증거할때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현존재의근원성이입증된다. 현존재의근원성은현존재의전체성과본래성으로구성된다. (1) 부름 ( 독 : Ruf, 영 : Calling) 양심은현존재에게 어떤것 을알아차리게한다. 즉양심은개시한다. 이점에서양심은개시성의양상이다. 특히양심은침묵의부름이다. 부름으로서의양심은개시성을구성하는 3계기중 말 에해당한다. 부름으로서의양심은말의한양상이다. 따라서우리는 말 의구조계기에따라양심의부름을해명하고자한다. 양심의부름에서부름을받는것은현존재자신이다. 배려하면서타자와함께있는일상적현존재가, 즉 세인-자기 가양심의부름에마주친다. 그렇다면세인-자기는어디를향해서부름을받는가? 세인-자기는바로독자적자기를향해부름받는다. 세인-자기중그 자기 만이부름을받고이로써세인은스스로붕괴된다. 그러면양심의부름은구체적으로어떤내용을말하는가? 엄격히말해양심의부름은아무런내용도말하지않는다. 다만양심의부름은세인-자기를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불러세운다. 따라서양심의부름은침묵의양상으로만말한다. 또한양심의부름은불러세워진현존재에게침묵을강요한다. 세인-자기가침묵하지않고양심의부름을자의적으로해석할때부름의본래적개시경향은왜곡된다. 그렇다면양심의부름에서부르는자는누구인가? 양심은자기의내면의목소리이다. 양심의부름에서는부르는자도, 부름을받는자도모두현존재이다. 즉현존재가양심속에서자기자신을부르고있다. 그러나이러한답변은존재론적으로결코만족스럽지않다. 부름을받는자로서의현존재와부르는자로서의현존재는분명히다르게 > 현 < 존재하지않는가? 양심의부름은세인-자기인우리에의해계획된것이아니다. 양심의부름은분명히 ( 세인-자기인 ) 나의내면으로부터울려나오지만또한 ( 세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인-자기인 ) 나를초월한다. 그러기에일단은 > 그것 < 이나를부른다고전제하자. 부름은분명히나에의해행해지는것이아니라 > 그것 < 이부르는것이다. 그렇다면 > 그것 < 은누구인가? 만약 > 그것 < 을현존재가아닌존재자로규정한다면, 양심의부름은더이상양심의부름이아닐것이다. 여기에서우리는다시근본정상성 ( 根本情狀性 ) 인불안에대한해명에로돌아간다. 일상적현존재가몰입해있던세계는불안속에서무의의화된다. 세계의무 ( 無 ) 앞에세워진현존재는 으스스함 에직면한다. 그런데자신의으스스함의근저에정상적 ( 情狀的 ) 으로있는현존재야말로양심의부름에서 부르는자 가된다. 왜냐하면세계의무앞에서으스스함에젖어있는현존재야말로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대한불안속에서스스로불안해하기때문이다. 양심의부름에서 부르는자 는자신의세계-내- 존재가능때문에스스로불안해하여으스스함에젖어있는현존재자신이요, 부름을받는자 는이으스스함으로부터도피하여세계에몰입한일상적현존재이다. 따라서양심의부름에서 부르는자 와 부름을받는자 는모두동일하게현존재자신이나, 그양자에서 > 현 < 존재의의미는달라진다. 불안이세계-내- 존재가능에대한불안인이상, 양심의부름에서 부르는자 역시세계-내-존재이다. 양심의부름에서 부르는자 가세계-내- 존재를벗어나는것은아니다. 다만이제그에게문제가되는세계는, 세인의세계가아니라, 자신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속에열려진세계가된다. 따라서양심의부름을가능하게하는존재론적가능성은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이다. 피투성속에서자기의존재가능때문에스스로불안해하는현존재가 부르는자 라면, 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불러세워지고있는세인-자기로서의현존재가 부름을받는자 가된다. 따라서이제양심을마음씀의부름이라불러도무방하리라. 그런데 부름 에는 들음 이상응한다. 양심의부름에서도마찬가지이다. 완전한양심체험이체득되기위해서는부름에진정하게상응하는들음이요구된다. 부름이개시성의구조에서 말 에해당한다면, 들음은 이해 에해당한다. 따라서이제우리에게요구되는것은부름에대한본래적이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가된다. 그런데앞서밝혔듯이양심의부름은아무런내용도말하지않는다. 즉양심의부름은우리에게아무런사실적정보도주지않는다. 그러나양심의부름은분명히세인-자기에게 어떤것 을알아차리게한다. 그어떤것이란자기의독자적존재가능이다. 그렇다면양심의부름이알아차리게하는자기의독자적가능이무엇인가를해명한다면, 우리는완전한양심체험을획득하게될것이다. [ 읽기자료 ] 양심은어떤것을알아차리게한다. 즉양심은개시한다. 이형식상의성격으로부터, 이현상 [ 양심 ] 을현존재의개시성속으로회수하라는지시가나온다. 그때마다우리들자신인이존재자의근본틀을구성하는것은정상성 [ 情狀性 ], 이해, 퇴락및말이다. 양심을더파고들어가서분석하게되면, 양심은곧부름이라는것이드러난다. 부름은말의한양상이다. 양심의부름은현존재를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으로불러낸다는성격을가지고있으며, 불러내는것은현존재를그가독자적으로책임있다는데로불러일으킨다는방식을취한다.(269, 384) 양심의부름에는가능한 들음 이대응한다. [ 양심의 ] 불러냄을이해하는것은양심을가지려는의지로서드러난다. 이현상 [ 양심을가지려는의지 ] 속에는, 추구되어온것, 즉 자기존재의선택을실존적으로선택한다 는것이놓여있다. 이것을우리는그실존론적구조에좇아서결의성 ( 決意性 ) 이라고부른다.(270, 384) 부름 을우리는말의한양상이라고파악한다. 양심을부름이라고성격짓는것은, 가령칸트가양심을법정으로표상한것과같은단순한비유가결코아니다. 우리가간과해서안될것은, 말에는, 따라서부름에도, 소리내서발음하는것이본질적이아니라는것뿐이다. 발언과소리내부르는것은모두이미말을전제하고있다. [ 양심의 ] 일상적해석이양심의소리라는것을알고있다면, 그때생각이미치는것은현실적으로눈에띄지않는발음이아니라, [ 양심의 ] 소리가 알아차리게함 으로써이해되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고있다는것이다. 부름의개시경향에는충격의계기, 즉 [ 세인에의자기상실적경청을 ] 중단시켜흔들어일으키는계기가있다. 부름은먼데서먼데로미친다. [ 본래적자기로 ] 되돌아오고자하는자라야부름과마주치는것이다.(271, 386) 양심의부름에서말씨가되는것, 즉부름을받는것은무엇인가? 분명히현존재자신이다. 이대답은이론의여지가없지만, 마찬가지로무규정적이기도하다. 부름이그렇게막연한목표밖에가지고있지않다면, 그부름은기껏해야현존재가자기에게주의를돌리게되는하나의유인 ( 誘引 ) 에불과할것이다. 그러나현존재에게본질적으로속하는것은, 현존재가자기세계의개시성과함께자기자신에게개시되어있다는것, 그리하여현존재는언제나이미자기를이해하고있다는것이다. 양심은, 이렇게일상적 - 평균적으로배려하면서자기를언제나이미이해하고있는현존재와마주친다. 배려하면서타자와함께있는세인 - 자기가 [ 양심의 ] 부름과마주치는것이다.(272, 388) 그러면어디를향해서세인 - 자기는부름을받는가? 독자적자기를향해서. ( ) 현존재라하더라도, 타자와자기자신에게세간 [ 세속 ] 적으로이해되고있는현존재는이불러냄에서무시된다. 자신을향한부름은, 이런세간적견해에대해조금도아는바없다. 세인 - 자기의그자기만이부름받고 [ 그부름을 ] 듣게되기때문에, 세인은스스로붕괴된다. 부름이현존재의공공적피해석성과세인을무시하는것은, 부름이그런것들과는함께마주치지않는다는의미가아니다. 바로이무시함속에서부름은공공적명망에집착하는세인을무의의성속으로 [ 그것이무의미하다고 ] 밀어붙이는것이다. 그러나 자기 는이부름속에서 [ 세간적 ] 피난처와숨을곳을빼앗기고, 부름에의해자기자신으로돌아오게되는것이다.(273, 388) 세인 - 자기는자기를향해부름받는다. ( ) 세인 - 자기속에있는자기를불러낸다는것은, 자기자신을내면속에몰아넣어서바깥세계로부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자기를폐쇄하지않을수없도록하는것이아니다. 부름은오직자기만을불러내기위해이모든것을뛰어넘고일소해버린다. 그럼에도그자기란세계 -내-존재라는방식으로있는자기이외에다른것이아니다.(273, 388-389) 그러나이런말들 [ 양심의부름 ] 이말한내용을우리는어떻게규정해야하는가? 양심은 부름받은자 에게무엇을불러다주는가? 엄격하게말하면 아무것도없다. 부름은아무것도진술하지않으며, 세계의사건에관해아무런정보도주지않고, 어떤얘깃거리도가지고있지않다. 부름은부름받은자기안에서자기대화를시작하려고애쓰지도않는다. 부름받은자기에게아무것도불러다주지않고, 도리어그자기가자신을향해, 즉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불러세워지는것이다. 부름의경향에따르면, 그부름은, 부름받은자기를토의에붙이지않고, 가장독자적자기 - 존재가능을향해 불러세우는것 으로서, 현존재를그의가장독자적가능성속으로 ( 앞을향해 ) 불러내는것이다.(273, 389) 부름은아무런음성도가지고있지않다. 부름은결코낱말이되어드러나지않는다 그럼에도불명료하거나무규정적이지않다. 양심은한결같이그리고오직침묵의양상으로만말한다. 그리하여양심은인지성 ( 認知性 ) 의점에서는잃는것이아무것도없을뿐더러, 도리어부름받고불러세워진현존재로하여금자기자신에대해침묵하도록강요한다. (273, 389) 설사부름이개개의현존재에있어서그의이해가능성에따라상이하게해석된다하더라도, 부름이개시하는것은일의적 ( 一義的 ) 으로분명하다. ( ) 양심에있어서착오는, 부름이자기를잘못보았기 ( 잘못부르기 ) 때문에생기는것이아니라, 부름이어떻게들리느냐하는양식 [ 듣는양식 ] 에서비로소생기는것이다 즉, [ 그착오는 ] 부름이, 본래적으로이해되지않고세인 - 자기에의해토의적자기대화속에이끌려들어가서, 부름의 [ 본래적 ] 개시경향에있어서뒤집혀지기때문에생기는것이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274, 389-390) 우리는양심을 부름 이라고특징지었으나, 그부름은세인 - 자기를그자기속에서불러내는것이다. 이불러냄으로서의부름은, 자기를그자기존재가능을향해불러세우는것이며, 따라서현존재를그의가능성을향해호출하는것이다.(274, 390) 그러나누가부르는가하는물음을상금분명하게제기할필요성이도대체있는가? 이물음은, 부름속에서부름받는자가누구인가하는물음과마찬가지로, 현존재에게는일의적으로대답되는물음이아니지않는가? 현존재는양심속에서자기자신을부른다. 부르는자에대한이러한이해는, 부름을현사실적으로들을때다소간깨닫고있을것이다. 하지만현존재는 부르는자이면서동시에부름받는자이다 라는대답은존재론적으로는결코만족스럽지못하다. 도대체부름받는자로서의현존재는, 부르는자로서의현존재와는다르게현존재하는가? 가령가장독자적자기존재가능이부르는자로서역할하고있는가?(275, 391-392) 부름은물론우리자신에의해계획되지도않고, 준비되지도않으며, 의도적으로수행되지도않는다. 기대와의지에반해그것이부른다. 다른한편, 부름은의심의여지없이 나와함께이세계에있는타자 로부터오는것도아니다. 부름은나의안으로부터오지만나를초월한다.(275, 392) 부름은분명히나에의해행해지는것이아니라, 그것이부르는것이다 라고해서, 이것이 부르는자를현존재가아닌어떤존재자속에서찾는다 는것을정당화하지는않는다. 현존재는그때마다언제나현사실적으로실존한다. 현존재는허공에떠있는자기기투가아니라, 피투성에의해현존재라는존재자의현사실로서규정되기때문에, 현존재는그때마다이미실존에맡겨져있었고, 또부단히맡겨져있다. 그러나현존재의현사실성은전재자 [ 前在者 ] 의사실성과본질적으로구별된다. 실존하는현존재는자기자신을만남에있어, 자기자신을세계내부적전재자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서대하지않는다. 피투성이라는것도, 접근할수없고자기의실존에대해중요하지않은성격으로서현존재에붙어있는것이아니다. 던져진자로서의현존재는실존속에던져져있다. 현존재는 [ 피투적으로 ] 있고, [ 기투적으로 ] 있을수있는바와같이, [ 현사실적으로 ] 있어야하는존재자로서실존한다.(276, 393) 현존재가현사실적으로존재한다는사실은, 왜 [ 즉, 존재이유 ] 의점에서는은폐되어있다하더라도, 그사실자체는현존재에게개시되어있다. 이존재자의피투성은현의개시성에속해있어서, 그때그때의정상성 [ 情狀性 ] 속에서부단히드러나있다. 이정상성은, 다소분명하게그리고본래적으로, 현존재를그는 [ 피투적으로 ] 존재하고, 존재하는대로의그존재자로서, 존재가능적으로존재하지않으면안된다는사실앞에직면시킨다. 그러나대개기분은이피투성을폐쇄하고있다. 현존재는피투성에직면해서, 거기로부터세인 - 자기의거짓된자유의안이함속으로도피한다. 이도피를우리는, 단독화된세계 - 내 - 존재를근본적으로규정하는 으스스함 에직면해서거기로부터도피하는것이라고특징지은바있다. 으스스함은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속에서본래적으로드러나고, 피투적현존재의가장기본적개시성으로서현존재의세계 - 내 - 존재를세계의무 ( 無 ) 앞에세운다. 이세계의무앞에서, 현존재는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대한불안속에서스스로불안해한다. 자신의으스스함의근저에정상적 [ 情狀的 ] 으로있는현존재가양심의부름을부르는자라고한다면어떤가?(276, 394) 부르는자는, 그가누구인가하는점에서는, 세간적으로는어떤것에의해서도규정될수없다. 부르는자는, 그의으스스함속에있는현존재요, 안절부절하는근원적피투적세계 - 내 - 존재이며, 세계의무 [ 無 ] 속에서의적나라한사실이다. 부르는자는일상적세인 - 자기에게는친숙하지않은 생소한소리와같은어떤것이다. 배려되는잡다한세계속에자기를상실하고있는세인에게, 으스스함속에서자기에게로단독화되어무속으로던져진자기보다더생소한것이무엇이겠는가? 그것이부르건만도, 배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하면서신기한것을쫓는귀에게는, 계속해서얘깃거리가되고공공적으로말씨가되는것이외에는아무것도들리는것이없다.(276-277, 394) 으스스함은, 일상적으로는은폐되어있을지라도세계-내-존재의근본양식이다. 현존재자신이양심으로서이존재의근저로부터부르는것이다. 그것이나를부른다는것은, 현존재의한두드러진말이다. 불안의정조 ( 情調 ) 를띤부름이, 최초로현존재로하여금자신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자기자신을기투하도록한다. 실존론적으로이해된양심의부름이처음으로고지하는것은, 전에는그냥주장되기만했던것, 즉 으스스함이현존재를추적해서그의자기망각적상실성을위협한다 는것이다.(277, 395) 현존재는부르는자이면서동시에부름받는자이다 라는명제는이제는그형식상의공허함과자명성을버리게되었다. 양심은마음씀의부름이라는것이명백해졌다 : 부르는자 는, 피투성 ( 내에이미있음 ) 속에서자기의존재가능때문에스스로불안해하고있는현존재이다. 부름받는자 는, 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 ( 자기를앞지름 ) 을향해불러일으켜진바로그현존재이다. 그리하여현존재는불러냄을통해 세인속으로의퇴락 ( 배려되는세계에몰입해서이미있음 ) 으로부터불러일으켜지는것이다. 양심의부름, 즉양심자체는그존재론적가능성을 현존재는그의존재의근거에있어서마음씀이다 라는데가지고있다.(277-278, 395) 그러나 부르는것에진정으로상응해서듣는것 은어떤성격을가져야하는지가충분히명료하게한정될때비로소, 양심이증언한것은완전한규정성에이르게된다. 부름에따라가는 [ 聽從하는 ] 본래적이해는, 양심현상에잇닿아있기만하는부가물 ( 附加物 ) 이아니다. 즉, 생기기도하고생기지않을수도있는어떤과정이아니다. 불러냄을이해함으로써그리고그것과함께일체가되어서, 비로소완전한양심체험은체득되는것이다.(279, 397-398)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2) 책임 ( 한 : 責任, 독 : Schuld, 영 : Guilt) 양심의부름은독특한구조를가지고있다. 양심의부름은아무런사실적정보도말하지않는다. 양심의부름은단지현존재를그의독자적존재가능을향해앞으로나가도록지시한다. 그런데현존재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은세계의무앞에직면한으스스함에서개시된다. 그렇다면불안속에서으스스함에젖어있는현존재로부터, 다시말하자면으스스함으로부터양심의부름이비롯되며또한양심의부름은세인-자기를그으스스함속으로도로불러들인다. 즉양심의부름에서는그부름의 어디에서 와 어디에로 가일치한다. 그리고여기에서관건은현존재의독자적존재가능이다. 현존재의독자적존재가능으로부터양심의부름이비롯되며또한양심의부름은세인-자기를현존재의독자적존재가능에로도로불러들인다. 따라서양심의부름이무엇을알아차리게하는가를해명하기위해서는, 또한완전한양심체험을체득하기위해서는현존재의독자적존재가능이무엇을의미하는지를물어보아야한다. 통상적으로우리는양심의부름을타자와의공동존재내에서문제삼는다. 응당남에게갚아야할 빚 을갚지않았다거나혹은어떤불미스런사건을유발한 원인 을문제삼는경우를생각해보자. 우선이두사건은내용상다소간의차이가있다. 앞의사건은법률적처벌의대상이되나, 뒤의사건은경우에따라서는그렇지않을수도있을것이다. 그러나우리는어느경우에든책임을다하지않았을때양심을거론한다. 양심은책임의소재와관련된다. 좀더부연하면, 두사건의당사자는, 법률적처벌의유무를떠나여하튼타자에게어떤결핍을초래함으로써, 죄를짓고있는것이며, 따라서책임을다하지않은것이고, 그러기에여기에서양심이문제되는것이다. 양심에관한통상적해석에따르면, 양심은책임과관련된다. 또한책임의근저에서는남에게끼친어떤결핍이문제된다. 그러나양심에관한이러한통상적해석이과연우리가여기에서현존재의본래성을증거하기위해논의하는양심의문제에적용될수있을지는의문이다. 그까닭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크게두가지이다. 첫째, 우리가여기에서논의하는양심에서는타자에대한책임이관건이아니다. 우선은나의존재에대한나의책임이관건이다. 즉우리에게여기에서문제가되는것은우선은나의실존이다. 둘째, 양심에관한통상적해석에서양심에따른책임의근거는남에게끼친결핍이다. 결핍은마땅히있어야할것이지금눈앞에없다라는전재성 ( 前在性 ) 의문제이다. 하지만실존에는본질상결핍이란있을수없다. 현존재의실존에서는본래적혹은비본래적실존의양상만이문제가될뿐이다. 즉현존재의실존성격은전재성과전혀다른것이다. 양심에관한통상적해석은우리가여기에서논의하고자하는양심의문제에적용될수없다. 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통상적해석은우리에게양심을해명할중요한단서를제시한다. 그것은다름아니라책임이갖는비 ( 非, 아님 ) 의성격이다. 책임은비 ( 非 ) 를수반한다. 그렇다면남에대한책임이든, 혹은나의실존에대한책임이든, 여하튼양심의논의에서는비 ( 非 ) 가문제되어야하지않는가? 물론비 ( 非 ) 의성격은다르겠지만. 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이다. 마음씀의구조계기는현사실성 ( 피투성 ), 실존 ( 기투 ), 퇴락이다. 그런데양심은피투성과기투가지닌비 ( 非 ) 의성격을개시한다. 여기서의비 ( 非 ) 란앞서논의한통속적양심에서문제된결핍으로서의비 ( 非 ) 도아니고, 또한명제적차원에서의비 ( 非 ) 도아니다. 양심은현존재가자신의존재가능성을결코지배하지못한다라는의미에서비 ( 非 ) 를말해준다. 즉여기에서의비 ( 非 ) 란 어찌하지못함 을의미한다. 양심은이 어찌하지못함 속에서현존재의근원적책임을발견한다. 세인-자기로서의일상적현존재는이세계에적나라하게던져져있는자신의모습을망각한다. 그러나현존재는피투적존재자이다. 현존재는자신의선택에의해서가아니라정녕우연히어떤세계속에던져져있다. 현존재는, 실존하는한, 자기의피투성의배후로돌아가지못한다. 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세계의무 ( 無 ) 앞에직면한현존재는으스스함에젖어자신의적나라한피투된모습을보게된다. 현존재는자기가그속에던져져있는피투적제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한다. 현존재는비록기투함으로써실존하지만, 기투가포착하는존재가능성은현존재가결코좌우하지못하는피투적가능성이다. 피투성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실존론적의미속에는이미비 ( 非 ) 의성격이포함되어있다. 기투는피투적기투이다. 현존재는기투를통해실존하므로스스로자신의존재근거이지만, 결코이근거를지배하지못한다. 따라서현존재가자신의존재근거라함은, 일반의상식과는다르게오히려, 현존재가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를근본적으로는결코좌우하지못함을의미한다. 그런데이점은기투에도해당한다. 현존재는자신에게주어진실존적제가능성을향해열려있다. 기투는자유이다. 그러나이러한자유는하나의선택을강요한다. 현존재는자신에게주어진제가능성중하나만을선택하고다른것들은단념한다는의미에서만자유롭다. 따라서기투도본질적으로비 ( 非 ) 적이다. 또한일상적현존재는피투적기투의비성 ( 非性 ) 을망각한채세계에로퇴락하나, 비 ( 非 ) 본래적현존재의비성은오히려피투적기투의비성을증거한다. 일상적현존재는자신이어찌할수없는피투성에직면해그으스스함으로부터도피하기에세계에로퇴락한채비본래적으로실존한다. 따라서존재론적으로보자면피투적기투의비성이비본래적현존재의비성의가능근거가된다. 현존재의마음씀의세구조계기마다제각기비성이침투되어있다. 마음씀그자체의본질은비적이다. 우리는이러한실존론적비성에서현존재의근원적책임을발견한다. 도덕적선악을따지기이전에현존재는이미자신의존재근거에있어책임을지닌다. 그것은철저히비성에의해침투되어있는자신의존재에대한책임이다. 이세계에우연히홀로던져져어찌할수없는자신의피투성을떠맡은채실존해나가야할책임을현존재는안고있다. 현존재의존재의실존론적비성은현존재의근원적책임을증거한다. 따라서이제문제가되는것은현존재의독자적존재가능이다. 불안속에서으스스함에젖은현존재는세계에로퇴락한세인-자기를그으스스함속으로도로불러들여독자적존재가능을일깨워준다. 으스스함으로부터비롯된양심의소리가세인-자기에게그의책임존재를일깨워그를그으스스함에로도로불러들이는것이다. 즉적나라한피투성에서비롯된양심의부름은세인-자기를그적나라한피투성에로도로불러들인다. 다시말하자면, 양심은세인-자기속에서자기를상실한현존재를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신의적나라한피투성에로도로불러들여자신의독자적존재가능에대한책임을일깨운다. 현존재의존재가비성에의해침투되어있는한, 현존재는본래적으로책임존재이다. 양심은선택사항이아니다. 선택사항은양심의부름에청종하는현존재의태도이다. 이러한태도를우리는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라고명명한다. 실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야말로모든법률적윤리적책임존재의가장근원적실존적전제가된다. 그러나법률적윤리적으로책임있는행동이타자와의공동존재내에서수행되는한, 이미그러한행위는몰양심적이다. 그까닭은현존재가법률적윤리적범죄를피할수없기때문만이아니라더근원적으로는양심에서는독자적존재가능만이문제되기때문이다. 즉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본질적인몰양심성을인수하며그런조건하에서만도덕적으로선하게존재할실존적가능성이성립한다. [ 읽기자료 ] 현존재자신이 부름받고있음 을듣고이해하는것이몰교섭적이면몰교섭적일수록, 또사람들이말하는것, 즉당연하다고여겨지고통용되는것이부름의의미를전도 ( 顚倒 ) 하는일이적으면적을수록, 부름을실존적으로들으면서이해하는것은그만큼더본래적으로된다. 그러면부름이해의이런본래성속에는본질적으로무엇이놓여있는가? 설사반드시현사실적으로이해되지는않는다하더라도, 그때그때부름속에서본질적으로알아차리도록주어져있는것은무엇인가?(280, 399) 이물음에대해우리는이미다음과같은테제로써시사한바있다 : 부름은말씨가됨직한것은아무것도말하지않는다. 부름은발생사건에대해서는아무런정보도주지않는다. 부름은현존재로하여금그의존재가능을향해앞으로 [ 나아가도록 ] 지시하는데, 그것은으스스함으로부터나오는부름으로서그렇게한다. 부르는자는과연무규정적이다 그러나 [ 무규정적인 ] 그가 어디에서 부르는가하는그출처 ( 出處 ) 는 부름 에대해아무렇지도않은것은아니다. 이 어디에서 [ 출처 ] 즉, 피투적인단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독화의으스스함 는부름속에서함께불린다. 즉, 함께개시된다. 을향해 [ 앞으로 ] 불러낼때, 그부름의 어디에서 는도로불러들이는 어디에로 이다. 부름은어떠한이상적보편적존재가능도알아차리게하지않는다 ; 부름은그때그때의현존재를그때그때단독화된현존재로서개시한다. 부름의개시성격은, 우리가그것을 [ 앞으로 ] 불러내면서불러들임 으로서이해할때비로소완전히규정된다. 그렇게파악된부름에정위해서비로소부름은무엇을알아차리게하는가하고물을수있다.(280, 399-400) 그러나 [ 양심의 ] 부름이말하는것은무엇인가하는물음에대해서는, 통상모든양심경험속에서듣거나겉듣거나하는것, 즉부름은현존재를책임있다고선고하기도하고, 양심이경고하는경우처럼책임있게될것이라고시사하기도하며, 또는떳떳한양심이므로어떤책임도의식하지않는다는것을확인하기도하는데, 이런것들을솔직하게지적함으로써훨씬쉽고확실하게대답되지않을까? 이렇게일치해서경험되고있는책임있음이라는것이, 양심의제경험과양심의제해석에서그렇게까지전혀다르게규정되지만않는다면! [ 그럴수도있을것이다.] 또설사이책임있다의의미가일의적으로이해된다하더라도 책임있음 의실존론적개념은여전히불투명하다. 그러나현존재가자기자신을책임있다고선고하는경우, 책임의이념을현존재의존재의해석에서길어오지않는다면달리어디에서길어올것인가? 결국다음과같은물음이새삼제기된다 : 누가우리는책임있다고말하며, 책임이란무엇을의미하는가?(280-281, 400) 일상적분별 [ 상식 ] 은책임있음을우선빚을지고있다, 누구에게무엇을빌리고있다는의미로받아들인다. 사람들은타자가청구권을갖고있는것을그에게돌려줄의무를진다. 빚을지고있다는의미의책임있음은조달한다, 지참한다등배려의분야에서타자와함께있는한방식이다. 그런배려의양상에는또탈취, 표절, 억류, 점유, 강탈등, 다시말하면타자의소유권청구를어떤방식으로든충족시키지못하는것도있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이런종류의책임있음은배려가능한것에관련된다.(281-282, 401) 다음으로 책임있음 은, 에책임있다, 즉어떤것의원인이다, 장본인이다, 또는어떤것에대한유인이다라는, 더광범한의의를가지고있다. 이어떤것에대해책임있다는의미에서는, 사람들은타자에게어떤것을빚지거나채무있게되지않고도책임있을수있다. 반대로사람들은그자신어떤것에대해책임지지않고서도타자에게서어떤것을빌릴수있다. 한타자는다른타자에게서나를대신해서돈을빌릴수있다.(282, 401) 책임있음 의두통속적의의, 즉 [ 누구 ] 에게빚이있다와 [ 무엇 ] 에대해책임진다는서로제휴해서죄를짓는다고하는하나의태도를규정할수있다. 그것은 빚을진 데대해책임을짐으로써법을위반하여처벌받는태도이다. 사람들이충족시키지못하는요구는반드시소유권과관계될필요는없으나, 공공의상호성일반을규제할수는있다. 법위반에있어서그렇게규정된죄지음은동시에타인에게죄를짓는다는성격을가질수있다. 후자는법위반자체에서생기는게아니라, 타자의실존이위협받거나오도되거나파멸되는데내가책임이있다는데서생긴다. 타인에게죄를짓는것은공공의법을위반하지않고도가능하다. 그러므로 타인에게죄를짓고있다 는의미의 책임있음 의형식적개념은 타자의현존재속에어떤결핍 ( 缺乏 ) 을야기하는원인 [ 근거존재 ] 이라고규정된다. 그리하여이원인 [ 근거존재 ] 자체는 무엇을야기하는데대해 결핍적이라고규정된다. 이결핍성이란, 타자와함께실존하는공동존재에게서발생하는요구를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282, 402) 책임의이념은, 청산적배려의권역이상으로높여져야할뿐아니라, 그것을어김으로해서누군가가책임을지게되는당위나법률에대한관련으로부터도풀려나야한다. 왜냐하면이경우에도책임은필연적으로여전히결핍으로서, 즉있어야하고있을수있는어떤것의결여로서규정되어있기때문이다. 결여는그러나 전재 [ 前在 ] 하지않음 이다. 결핍,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즉 마땅히있어야할것이전재하지않음 은전재자 [ 前在者 ] 의한존재규정이다. 이런의미에서는실존에는본질상결핍된것이라곤아무것도있을수없다. 그까닭은, 실존이완전무결해서가아니라, 그존재성격이전재성 [ 前在性 ] 과는전혀다르기때문이다.(283, 403) 그럼에도불구하고책임있다 [ 갚지못했다 ] 는이념속에는비 ( 非 ) 의성격이들어있다. 책임있다가실존을규정할수있어야한다면, 이와함께, 비 가가지고있는비-성격을실존론적으로해명해야한다는존재론적문제가생긴다. 나아가서책임있다의이념에는, 에대해책임진다는의미의책임개념속에무차별적으로표현되어있는것, 즉 에대한근거이다 [ 유인이다 ] 라는것이속해있다. 그러므로우리는책임있다의형식적실존론적이념을다음과같이규정한다 : 책임있다 는어떤 비 에의해규정되는존재에대한 근거이다 즉, 어떤 비성 ( 非性 ) 의근거존재이다. ( ) 책임있음 은죄를지은결과가아니라, 반대로죄를짓는일이근원적인 책임있음 을근거로해서비로소가능하게된다. 그런근원적인책임있음이현존재의존재속에서제시될수있는가, 그리고그것은실존론적으로도대체어떻게가능한가?(283-284, 403-404) 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이다. 마음씀은현사실성 ( 피투성 ), 실존 ( 기투 ) 및퇴락을내함하고있다. 현존재는피투적인자로서존재하기때문에, 자기를자신의현속에스스로초래한것이아니다. 존재하는한, 현존재는존재가능으로서규정되어있다. 이존재가능은현존재자신에속하지만, 현존재자신으로서자기자신에게준것은아니다. 실존하는한, 현존재는결코자기의피투성의배후로돌아가지못한다. 그리하여현존재는그가존재하고존재하지않을수없다는사실을그때마다새삼그의자기존재로부터해제해서 현 속으로끌어들이곤할수있는것이아니다. 피투성은사실적으로돌발했다가다시현존재로부터떨어져나간, 현존재와함께생긴사건으로서현존재의뒤에남아있는것이아니며, 그가존재하는동안은 현존재는부단히마음씀으로서의그의 [ 피투적 ] 사실로있다. 이런존재자로서, 즉자기에게맡겨져서존재하는유일한존재자로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는실존할수있고, 실존하면서자기의존재가능의근거로있다. 비록현존재가 [ 자기의 ] 근거를스스로놓지는않았다하더라도, 현존재는 [ 자기가자기의존재가능의근거라고하는 ] 자신의무게를짊어지고있으며, 이것을그에게짐 [ 부담 ] 으로서드러내는것은기분이다.(284, 404-405) 그러면어떤양상에서현존재는피투적근거로있는가? 그것은오직현존재가, 자기가그속으로던져져있는 [ 피투적 ] 제가능성을향해서자기를기투한다는양상에서이다. [ 현존재는 ] 자기 로서자신의근거를스스로놓지않으면안되지만, 그자기는 [ 스스로놓은것일지라도그 ] 근거를결코지배하지는못함에도불구하고, 그자기는실존하면서근거임 [ 근거존재 ] 을인수하지않으면안된다. 자기가자기의피투적근거로존재하는것, 그것이마음씀이문제삼는존재가능이다.(284, 405) 따라서 [ 현존재가자신의 ] 근거존재라함은, 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를근본적으로는결코좌우하지못함을의미한다. 이 비 [ 못함 ] 는피투성의실존론적의미에속한다. 근거로있으면서현존재자신은자기자신의한비성으로있다. [ 현존재자신의 ] 비성은결코 [ 그의 ] 비전재적 [ 非前在的 ] 존재, 비존립을의미하지않고, 현존재의이존재, 즉그의피투성을구성하는 비 를말한다. 이 비 의비성격은실존론적으로는 현존재는자기존재이면서그자기로서 [ 동시에 ] 피투적존재자이다 라고규정된다. 현존재는자신에의해서가아니라, 근거로부터자기자신에게방면되어, 이근거로서존재한다. 현존재는자기존재의근거가독자적기투로부터비로소생기는한에서는그자신자기존재의근거가아니지만, 자기존재로서는근거의존재이다.(284-285, 285) 현존재는실존하면서자기의근거이다 라함은, 현존재는제가능성에입각해서자기를이해하고, 그와같이자기를이해하면서피투적존재자로있음을일컫는다. 그러나여기에는다음의사실이들어있다 : 현존재는그때마다이것이든저것이든하나의가능성가운데존재가능적으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서있고 [ 따라서 ] 끊임없이다른가능성이아니며, 이다른가능성을실존적기투에서단념해버리고있다. 기투는그때마다피투적기투로서근거존재의비성에의해규정되어있을뿐아니라, 기투로서도그자신본질적으로비적이다. 이규정또한효과가없다거나가치가없다는존재 [ 자 ] 적특성을의미하는것이아니라, 기투작용의존재구조의한실존론적구성요소를의미한다. 이런의미의비성은, 현존재가자기의실존적제가능성을향해개방적으로있다 [ 자유존재 ] 는데속한다. 그러나자유란하나의가능성을선택하는데만, 다시말해다른가능성을 선택하지않았다, 선택할수도없었다 는것을참아내는데있다.(285, 406) 피투성의구조속에도, 기투의구조속에도, 본질적으로비성이놓여있다. 현존재는그때마다언제나이미현사실적으로는퇴락으로서있거니와, 비성은퇴락가운데있는이비본래적현존재의비성의가능근거이다. 마음씀자체는그본질에있어서철저하게비성에의해침투되어있다. 마음씀 현존재의존재 은따라서피투적기투로서, 비성이라는 ( 비적 ) 근거존재를의미한다. 그리고이것은, 책임이비성의근거존재라고하는형식적실존론적규정이옳게성립한다면, 현존재는그자체로서책임있다는의미이다.(285, 406-407) 실존론적비성이란, 기치로내건이상이현존재에있어서달성되지않기때문에생기는 결여 나 결핍 이라는성격을갖고있는것이결코아니다. 현존재가기투할수있고또대개는달성한모든것이전에, 이존재자의존재가기투로서이미비적인것이다. 따라서이비성은, 때때로현존재에게출현해서그에게어두운성질로서붙어있는것, 그리하여현존재가충분히진보하면저절로제거될수있는그런것이아니다.(285, 407) 그존재가마음씀인존재자는, 현사실적책임을자신에게지울수있을뿐아니라, 자기존재의근거에있어서이미책임있다. 그리고이책임있음이, 현존재가현사실적으로실존하면서책임있게될수있는데대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존재론적조건을가장먼저제공한다. 이본질적책임있음은, 등근원적으로도덕적선과악에대한, 즉도덕성일반과현사실적으로가능한그것의제형태에대한, 가능성의실존론적조건이다. 근원적책임있음은도덕성에의해서는규정될수없으니, 왜냐하면후자는자기자신을위해이미전자를전제하고있기때문이다.(286, 408) 근원적책임있음이우선대개개시되지않은채로있고, 현존재의퇴락적존재에의해서폐쇄된채보존된다는것, 그것은도리어상술한비성을드러낼뿐이다. 책임있음은, 이것에대한모든지식보다훨씬근원적이다. 그리고현존재는, 자기존재의근거에있어서책임있고, 피투적으로퇴락하는자로서는자기를자기자신에게폐쇄하기때문에, [ 양심의 ] 부름이이책임있음을근본적으로알아차리게할때, 양심이가능하다. (286, 408) 부름이란마음씀의부름이다. 책임있음은우리가마음씀이라고부르는존재를구성한다. 으스스함속에서현존재는근원적으로자기자신과 [ 만나 ] 함께서있다. 으스스함은이존재자를자기의감추어지지않은비성앞에직면시키거니와, 이비성은이존재자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이라는가능성에속한다. 현존재는자기존재를 마음씀으로서 문제삼는한, 그는현실적 - 퇴락적세인으로서의자기자신을으스스함으로부터자기의존재가능을향해불러낸다. 불러냄은앞으로불러내면서도로불러들인다. 앞으로 [ 불러냄이 ] 라함은, 현존재가피투적존재자를실존하면서스스로인수하는가능성속으로 [ 불러내는것 ] 이며, 도로 [ 불러 ] 들임이란, 피투성속으로 [ 불러들이는것 ] 이다. 그것은현존재가피투성을실존속에받아들이지않을수없는비적근거로서이해하기위해서이다. 양심이 앞으로불러내면서도로불러들이 는것은현존재에게다음의것을알아차리게한다. 즉, 현존재는 자기의비적기투의비적근거로서, 자기존재의가능성속에서있으면서 자기를세인속의자기상실로부터자기자신으로되돌려와야한다는것, 다시말해책임있다는것이다.(286-287, 408-409)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존재자 [ 현존재 ] 는, 과실이나불이행을통해새삼어떤책임을자기에게지울필요가없다. 현존재는그냥 책임있는자로서현존재이니 본래적으로책임있는존재이다.(287, 409-410) 그렇다면불러냄을 [ 자기의내면의소리로서 ] 올바로듣는것은, 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자기를이해하는것, 즉가장독자적본래적으로 책임있게될수있음 을향해자기를기투하는것과같다. [ 현존재가 ] 이가능성을향해 [ 부름을 ] 이해하면서 자기를앞으로불러내게함 은, 부름에대해현존재가자유로워짐, 즉 부름받을수있음 에대한준비를, 자신안에가지고있는것이다. 현존재는부름을이해하면서자기의가장독자적실존가능성에청종 ( 聽從 ) 한다. 현존재는자기자신을선택한것이다.(287, 410) 이렇게선택함으로써, 현존재는자기의가장독자적책임있음을자신에게가능하게하지만, 후자는세인 - 자기에게는폐쇄된채로있다. 세인이분별해서아는것은고작손쉬운규칙과공공적규범의관점에서본만족과불만족뿐이다. 거기에위반되는것을세인은감정서에기입하고보상을구한다. 세인은가장독자적책임존재로부터는몰래달아났다가과오를논란할때는그만큼더목청을돋운다. 그러나자신의가장독자적책임있음을향해불러냄에있어, 불러내지는것도세인 - 자기이다. [ 양심의 ] 부름을이해하는것은 [ 본래적자기를 ] 선택하는것이다 양심을선택하는것은아니니, 양심은그자체로서선택될수있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 선택되는것은, 양심을갖는것, 즉가장독자적책임있음을향해열려있음이다. 불러냄을이해한다는것은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를의미한다.(288, 410) 그것은떳떳한양심을가지려고한다는의미도아니고, 부름의자발적함양도아니며, 단지 불러내는것 에대한준비인것이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현사실적범죄의색출이나, 본질상책임있다는의미의책임으로부터해방되려는경향과도거리가멀다.(288, 410)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도리어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 현사실적으로책임있게될가능성에대한가장근원적실존적전제이다. 현존재는, 가장독자적인자기로하여금자기가선택한존재가능에입각해서, [ 양심의 ] 부름을이해하면서, 자기안에서행위하도록한다. 이렇게해서만현존재는 [ 법률적윤리적으로 ] 책임지는존재일수있다. 그러나모든행위는현사실적으로는어쩔수없이몰양심적이다. 그까닭은, 현존재가현사실적 도덕적범죄를피할수없다고해서만이아니라, 현존재가자기의비적기투의비적근거위에서, 그때마다이미타자와의공동존재속에서, 타자에대해책임있게되기때문이다. 그리하여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본질적인 몰양심성 을인수하게되고, 이몰양심성의내부에서만선하게존재할실존적가능성이성립한다.(288, 410-411) 설사 [ 양심의 ] 부름이정보로주는것은아무것도없다고하더라도, 그것은비판적일뿐아니라적극적이다. 즉, 부름은현존재의가장근원적존재가능을 책임있음 으로서개시한다. 따라서양심은현존재의존재에속하는하나의증언으로서밝혀진다. 양심은, 이증언속에서현존재자신을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앞으로불러낸다.(288, 411) (3) 결의성 ( 한 : 決意性, 독 : Entschlossenheit, 영 : Resoluteness) 개시성의구조계기에서보자면양심의부름은말의한양상이다. 이에반해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양심의부름에대응하는이해의한양상이다. 좀더정확히말하자면, 실존적이해가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한기투를의미하는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실존적이해에해당한다. 그러나이러한해석은다분히도식적이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가물론근본적으로는실존적이해이나, 개시성의 3구조계기는서로긴밀하게맞물려있다. 이를좀더상세하게분석해보면다음과같다. 양심은불안을전제한다. 세계의무앞에서으스스함에직면할때독자적존재가능을회복하라는양심의부름은비롯된다. 그렇다면 양심을가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지려는의지 는불안에대한준비가된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역시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 ( 根本情狀性 ) 속에서가능하다. 또한양심의부름은침묵으로만말하고있다. 침묵은오직묵언 ( 黙言 ) 속에서만적합하게이해된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세인의빈말에재갈을물려야한다. 따라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속에놓여있는개시성은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 가장독자적책임존재를향한자기기투로서의실존적이해, 그리고묵언으로서의말에의해구성된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속에놓여있는개시성은 가장독자적책임존재를향해말없이불안에대비하는자기기투 가된다. 따라서이러한개시성은현존재의본래적이고두드러진개시성을증거한다. 그래서우리는이러한개시성을특히결의성이라고명명한다. 결의성은개시성의한두드러진양상이다. 결의성은자신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회복한현존재의본래적자기존재를개시한다. 따라서우리는결의성을본래적개시성이라고도명명한다. 또한결의성이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확보된현존재의전체존재가능안에서현존재의본래성을증거하는한, 우리는결의성을근원적개시성이라고도명명한다. 또한앞서의논의처럼진리를기초적실존범주로파악하여근원적진리를개시성으로해석하는한, 결의성은근원적진리의두드러진양상인 실존의진리 라고도불리운다. 실존적으로는결의성은 본래적자기존재 를개시한다. 이로써결의성은 > 세계 < 의피발견성과타자의공동현존재의개시성을등근원적으로변양시킨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 > 세계 < 가내용상다른세계로되거나혹은타자의무리가하루새에교체되는것은아니다. 다만 > 세계 < 와타자가이제는양자의가장독자적자기존재가능에입각해새로규정되는것이다. 또한본래적자아라고하여세계로부터유리된허공에뜬자아가되는것도아니다. 출세간 ( 出世間 ) 이곧입세간 ( 入世間 ) 이다. 도를깨쳤다고해서우리가사는세간을떠나서별천지에사는것은아니다. ( 소광희 [2003], 185) 다만본래적현존재는타자가자신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서존재할수있도록도와준다. 타자에대한본래적현존재의고려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타자로부터마음씀을빼앗는것이아니라, 오히려모범을보여줌으로써, 타자를그의독자적존재가능에로해방시켜주는고려가된다. 이로써현존재사이에서는본래적상호성이성립한다. 비본래적현존재사이에서는본래적상호성이불가능하다. 오직결의성을통해본래적자기성을회복한현존재사이에서만본래적상호성이가능한것이다. 또한일상적현존재가결의성에의한실존적변양을통해본래적자기존재가능을회복했다고해도, 그본래성이영원히유지되는것은아니다. 비록세인의비결의성이앞서결의한실존을번의시키지는못하지만, 현존재가현사실성과퇴락에의해결정되어있는한, 결의한현존재도다시비결의성속으로돌아오고만다. 따라서결의성은공허한실존의이상을앞에내걸지않는다. 오히려결의성은일정한상황속에서본래적실존을가능하게한다. [ 읽기자료 ]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 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의 자기이해 로서, 현존재의개시성의한방식이다. 개시성을구성하는것은이해이외에정상성 [ 情狀性 ] 과말이다. 실존적이해란, 세계 - 내 - 존재 - 가능의그때그때의가장독자적이고현사실적인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하는것을말한다.(295, 420-421) 그런이해에는어떤기분이상응하는가? [ 양심의 ] 부름의이해는, 각자의현존재를, 그를단독화시키는으스스함속에서개시한다. 이해속에서함께드러난으스스함은, 이해에속하는불안이라는정상성 [ 情狀性 ] 을통해적나라하게개시된다. 양심의불안이라는현사실은, 현존재가 [ 양심의 ] 부름을이해함에있어, 자기자신의으스스함앞에직면하게된다는것을현상적으로확인한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불안에대한준비가된다.(295-296, 421) 개시성의제3 의본질계기는말이다. 현존재의근원적말인 [ 양심의 ] 부름에대응하는것은말대꾸가아니다. ( ) [ 양심의 ] 부름은, 자기 [ 현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재 ] 를부단한책임존재앞에세우고, 그렇게해서세인의상식의떠들썩한빈말로부터되돌려온다. 따라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에속하는분절적말의양상은묵언 ( 黙言 ) 이다. ( ) 현존재는 [ 양심의 ] 부름을받고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알아차린다. 그러므로이런부름은하나의침묵이다. 양심의말은결코음성화 ( 音聲化 ) 되지않는다. 양심은침묵으로만부른다. ( ) 그러므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는이침묵의말을오로지묵언속에서만적합하게이해한다. 침묵의말 은세인의상식적빈말에재갈을물린다.(296, 421-422) 따라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속에놓여있는현존재의개시성은, 불안의정상성 情狀性, 가장독자적책임존재를향한자기기투로서의이해및묵언으로서의말에의해구성되어있다. 자신의양심에의해현존재속에서증거된본래적이고두드러진개시성 가장독자적책임존재를향해말없이불안에대비하는자기기투 을우리는결의성이라부른다.(296-297, 422) 결의성은현존재의개시성의한두드러진양상이다. 개시성은앞에서근원적진리로서실존론적으로해석되었다. 이근원적진리는, 일차적으로판단의성질이아닐뿐더러, 일반적으로일정한태도의성질도아니고, 세계 - 내 - 존재자체의한본질적구성요소이다. 진리는기초적실존범주로서파악되어야한다. 현존재는진리가운데있다는명제를존재론적으로천명할때, 우리는이존재자의근원적개시성을실존의진리라고지적하였고, 후자를획정 ( 劃定 ) 하기위해서는, 현존재의본래성을분석하도록시사하였다.(297, 422) 이제결의성과더불어, 본래적이기때문에가장근원적인현존재의진리가획득되었다. 현 의개시성은, 전체적세계 - 내 - 존재, 즉세계, 내 - 존재및자기를등근원적으로개시한다. 이자기란나는있다고하는이존재자 [ 현존재 ] 이다. 세계의개시성과더불어그때마다이미세계내부적존재자는발견되어있다. 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의피발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성 ( 被發見性 ) 은세계의개시성에근거한다. ( ) 현존재는, 자기의현속에던져져서, 현사실적으로그때마다일정한 자기의 세계에의존하고있다. 이것 [ 자기세계에의의존 ] 과하나가되어, 비근한현사실적기투들은, 세인속으로의배려적자기상실 에의해이끌려간다. 이자기상실은, 그때그때의독자적현존재에의해불러내질수있고, 이불러냄은결의성의방식에있어서이해될수있다. 그때이본래적개시성 [ 결의성 ] 은, 그개시성속에기초를둔세계의피발견성과, 타자의공동현존재의개시성을등근원적으로변양시킨다. 그렇다고해서, 용재적 [ 用在的 ] 세계가내용상다른세계로되는것도아니고, 타자들의무리가 [ 하루아침에 ] 교체되는것도아니지만, 용재자에대해이해하고배려하려는존재와, 고려하면서만나는타자와의공동존재가, 이제이양자의가장독자적자기존재가능에입각해서 [ 새로 ] 규정되는것이다.(297-298, 423) 결의성은, 본래적자기존재라고해서현존재를세계로부터유리시키지도않고, 허공에뜬자아로고립시키지도않는다. 결의성이어떻게그렇게할것인가 본래적개시성으로서의결의성은세계-내-존재를떠나서는달리본래적으로있을수도없다. 결의성은 [ 현존재의 ] 자기를용재자에몰입해서배려하는그때그때의그존재속으로끌고들어오고, 또그자기를고려하면서만나는타자와의공동존재속으로밀어넣는다.(298. 423-424) 결의한현존재는, 스스로선택한존재가능의궁극목적에입각해서, 세계를향해자기를열어놓는다. 자기자신에대한결의성으로인해현존재는비로소, 함께있는타자들로하여금그들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존재하게할수있고, 모범을보이면서해방시켜주는고려속에서그들의존재가능을함께개시할수있다. 결의한현존재는타자의양심이되기도한다. 본래적상호성은, 결의성의본래적자기존재로부터비로소나오는것이지, 사람들이도모하는일이나세인의애매하고질투로가득찬협정과수다스런친목으로부터나오는것이아니다.(298, 424)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그러나마음씀으로서는현존재는현사실성과퇴락에의해결정되어있다. 자기의현속에개시되어있는현존재는진리와비진리속에등근원적으로자기를유지하고있다. 이것은본래적으로는바로 본래적진리 로서의결의성에해당된다. 결의성은비진리를본래적으로자기것으로하고있다. 현존재는그때마다이미그리고아마도곧이어서다시비결의성속에있게될터이다. 이명칭 [ 비결의성 ] 은, [ 현존재가 ] 세인의지배적피해석성에맡겨져있다고해석되는그현상을표현할뿐이다. 현존재는세인 - 자기로서는공공성의상식적애매성에이끌려서살아가게된다. 공공성속에서는아무도스스로결의한바없건만언제나 [ 모든것이 ] 이미결정되어있다. 결의성이란세인속의자기상실로부터 자기를불러일으키게하는것 을의미한다. 그럼에도세인의비결의성은여전히지배력을행사하지만, 결의한실존을번의시키는것만은하지못한다. 비결의성은실존론적으로이해된결의성의반대개념이지만, 여러억압을짊어지고있다는의미에서어떤존재 [ 자 ] 적 - 심리적상태를가리키는것은아니다. 결의도역시세인과그세계에여전히의존하고있다. 이것을이해하는것도, 결의가개시하는것에함께속해있다. 다만결의성으로인해현존재가본래적개안 ( 開眼 ) 을얻는한에서그렇다. 결의성에있어서도, 현존재에게는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이 [ 중대한 ] 문제이지만, 이존재가능은피투적존재가능으로서일정한현사실적가능성들을향해서만자기를기투할수있을뿐이다. 결의는실제성으로부터멀어지는것이아니라, 도리어현사실적으로가능한것을비로소발견한다. 더욱이그때결의는, 현사실적으로가능한것을, 마치가장독자적존재가능으로서세인속에서가능한것처럼파악한다. 그때마다가능한결의한현존재의실존론적규정성은이제까지간과해온실존론적현상, 즉우리가상황이라고부르는현상의구성적계기를포괄한다.(298-299, 425-426) 결의성은 현의존재 로하여금그의상황속에서실존하도록한다. 결의성은그러나양심속에서증거된본래적존재가능, 즉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의실존론적구조를획정한다.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속에서우리가인식한것은, [ 양심의 ] 부름을적합하게이해하는것 이었다. 이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부터아주분명해지는것은, 양심의부름이존재가능을향해불러일으킬때, 그양심의부름은공허한실존의이상을앞에내걸지않고, 상황속으로불러낸다는것이다. 올바로이해된양심의부름이가진이런실존론적적극성은동시에, 다음과같은것, 즉 부름의경향을이미발생한범죄나기도된범죄에제한하는것 [ 통속적해석 ] 이, 양심의개시성격을얼마나잘못알고있으며, 그소리의구체적이해를우리에게얼마나피상적으로만전해주고있는가 를통찰하게한다. [ 양심의 ] 불러냄에대한이해가곧결의성이라고하는실존론적해석은, 양심을현존재의근거속에있는존재양식으로서드러낸다. 이존재양식에있어서현존재는자기자신에게 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증거하면서 자기의현사실적실존을가능하게한다.(300, 427) 결의성을 가장독자적책임있음을향해불안을준비하는, 묵언의자기기투 로서밝혀냄으로써, [ 우리의 ] 탐구는이제까지탐구해온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의존재론적의미를획정할수있는단계에이르렀다.(301, 428) 3) 선구적결의성 ( 한 : 先驅的決意性, 독 : Vorlaufende Entschlossenheit, 영 : Anticipatory Resoluteness) 우리가이장에서논의한것은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이다. 이현상은죽음과양심의방향에서해명되었다. 죽음에로의선구가현존재의전체존재가능을확보하였다면, 양심의결의성은현존재의본래적존재가능을증거하였다. 그렇다면이제문제는선구와결의성을어떻게결합하느냐의여부이다. 이두현상의외적결합은스스로금지되어있다. 선구가죽음을향한극단적기투인한에서이해에뿌리박고있다면, 결의성은본래적자기를회복하려는의지인한에서피투성에뿌리박고있다. 그러나선구와결의성의관계에관한이러한해석은양자의외적결합에만국한되어있다. 오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히려관건이되는것은양자사이의내적결합이다. 결의성은단지임의적이고신변적인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하는것이아니다. 오히려결의성이비로소본래적결의성일수있는전제조건은죽음에로의선구이다. 죽음에대한불안속에서펼쳐지는자기의독자적존재가능을인수하여현존재의본래성을증거하는것이결의성이다. 결의성은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인선구를자기의고유한본래성의가능한실존적양상으로, 이미자기안에감추고있다. 따라서이제우리는선구와결의성을함께결합하여선구적결의성이라고명명해도무방하다. 결의성은선구적결의성으로서만비로소본래적이고전체적으로본연의결의성일수있다. 결의성은선구적결의성으로서만비로소현존재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한근원적존재가된다. 역으로말하자면, 결의성이제외된다면, 선구는그야말로죽음을향한존재론적기투에불과하다. 그러나실존적으로증거된결의성속에는, 그결의성이본래적결의성인한, 이미선구에의해한계지워진양상이감추어져있다. 결의성은선구라는실존적존재가능의양상을비로소양상화한것이다. 즉선구와결의성사이의 연관 은전자에의한후자의가능한양상화이다. 이로써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이현상적으로증시된다. [ 읽기자료 ] 실존론적으로기투된것은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이었다. 이현상의해명은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 를선구로서드러냈다. 현존재의실존적증언에서는, 그현존재의본래적존재가능은결의성으로서제시되고동시에실존론적으로해석되었다. 이두현상 [ 선구와결의성 ] 은어떻게결합되어야하는가?(301-302, 429) 두현상의외적결합은스스로금지되어있다. 방법적으로유일하게가능한길로서아직남아있는것은, 그실존적가능성에서입증된결의성의현상에서출발하여, 다음과같이묻는것이다 : 결의성은, 그가장독자적실존적존재경향자체에있어서, 선구적결의성을그가장독자적본래적가능성으로서제시하는가? 결의성이란, 그고유한의미상, 그때마다단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임의적이고신변적인가능성들을향해자기를기투하는게아니라, 가장극단적가능성 [ 죽음 ] 을향해, 즉현존재의모든현사실적가능성앞에펼쳐져있고현존재가현사실적으로포착한제각기의존재가능속으로많든적든위장하지않고들어서는그극단적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하는것이라고할때비로소, 결의성은그본래성을갖게된다고하면어떤가? 현존재의본래적진리로서의결의성은, 죽음에로의선구에있어서비로소자신에속하는본래적확실성 [ 확신 ] 에도달한다고하면어떤가? 죽음에로의선구에있어서비로소결의의모든현사실적선구성이본래적으로이해된다고하면, 즉실존적으로되돌려진다고하면어떤가? (302, 430) 결의성의고유한의미가운데에는이책임있음을향해자기를기투한다는것이있다. 현존재는, 존재하는한이책임존재로서있다. 따라서결의성속에서이책임을실존적으로인수하는일이본래적으로수행되는것은, 결의성이현존재를개시함에있어, 그결의성이책임존재를부단한존재로서이해할만큼그렇게자신을통찰하게되었을때만이다. 그러나이런이해는, 현존재가존재가능을자기의종말에이르기까지자기에게개시한다고하는것으로만가능해진다. 하지만현존재가 종말에와있다 는것은, 실존론적으로는 종말에이르는존재 를의미한다. 결의성이본래적결의성일수있는것은죽음을향해이해하는존재로서, 즉죽음에로의선구로서이다. 결의성은, 자기이외의다른어떤것으로서의선구와연관을갖는데그치는것이아니다. 결의성은,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를자기의고유한본래성의가능한실존적양상으로서, 자기안에감추고있다. 이연관을현상적으로분명히하는것이중요하다.(305, 434) 결의성이란, 가장독자적책임존재를향해자기를불러내도록하는것을의미한다. 책임있음은, 우리가일차적으로존재가능이라고규정한현존재자신의존재에속한다. ( ) 따라서책임존재는, 현존재의존재에속하기때문에, 책임존재가능 으로서파악되어야한다. 결의성은이존재가능을향해자기를기투한다, 즉이존재가능속에서자기를이해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이이해는따라서현존재의근원적가능성가운데보존되어있다. 그이해가이가능성가운데본래적으로보존되는것은, 결의성이근원적으로스스로있기를지향하는그것 [ 책임있음 ] 일때이다. 그러나자기의존재가능을향한현존재의근원적존재를우리는 죽음에이르는존재, 즉앞에서성격지은바와같이, 현존재의두드러진가능성을향한존재라고밝혀놓았다. 선구는이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개시한다. 그러므로결의성은, 선구적결의성으로서비로소현존재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을향한근원적존재가된다. 결의성이죽음에이르는존재로서스스로자격을갖출때비로소, 그결의성은 책임존재가능 [ 책임있을수있음 ] 의할수있음을이해하는것이다.(305-306, 434-435) 현존재는, 그가자기의비성의비적근거로있다는것을, 결의를통해자기의실존속에서본래적으로받아들인다. 우리는죽음을, 앞에서성격지은바와같이, 실존론적으로실존불가능성이라는가능성으로서, 즉현존재의단적인비성으로서파악한다. 죽음은현존재의종말에서그와잇닿아있는것이아니다. 현존재는마음씀으로서자기의죽음의피투적 ( 즉, 비적 ) 근거인것이다. 현존재의존재를근원적으로철두철미지배하는비성은, 죽음에이르는본래적존재에있어서현존재자신에게드러난다. 선구가, 현존재의전체적존재의근거에입각해서비로소책임있음을개현한다. 마음씀은, 죽음과책임을등근원적으로자기속에감추고있다. 선구적결의성이비로소책임존재가능을본래적으로또전체적으로, 즉근원적으로이해한다.(306, 435) 결의성은, 선구적결의성으로서만본래적이고전체적으로본연의결의성일수있는것이다.(309, 439) 그러나이를역으로말하면, 결의성과선구사이의연관의해석을통해비로소선구자체의완전한실존론적이해가달성된셈이다. 지금까지는선구는단지존재론적기투로서만간주될수있었다. 이제밝혀진것은, 선구란날조되어서현존재에게강요된가능성이아니라현존재에게서증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거된실존적존재가능의양상이고, 현존재가자기를결의한자로서본래적으로이해한다면, 현존재는그런양상을자기에게요구한다는것이다. 선구는허공에뜬태도로서존재하는게아니라, 실존적으로증거된결의성속에감추어져있고, 따라서그것과함께증거된결의성의본래성의가능성으로서파악되지않으면안된다. 본래적으로죽음을생각하는것은실존적으로자기를통찰하게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이다.(309, 439) 결의성이본래적결의성으로서, 선구에의해한계지워진양상을지향하고, 반면에선구는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을구성한다면, 실존적으로증거된결의성속에서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도함께증거된것이다.(309, 439) 선구와결의성사이의연관은전자에의한후자의가능한양상화라는의미로해명되었고, 이렇게해서현존재의본래적전체존재가능이현상적으로증시되었다.(309, 439-440) 선구적결의성은죽음을극복하기위해고안해낸도피로가아니라, 양심의부름에청종하는이해이다. 이이해가, 현존재의실존을지배해서모든덧없는자기은폐를근본적으로일소할가능성을죽음에게열어주는것이다. 죽음에이르는존재로서규정된 양심을가지려는의지 역시기세적 ( 棄世的 ) 은둔을의미하는게아니라, 망상 ( 妄想 ) 없이행위하는결의성으로인도하는것이다. 선구적결의성또한실존과그가능성위로날아가는이상주의적요구로부터유래하는것이아니고, 현존재의현사실적근본가능성을냉정하게이해하는데서연원하는것이다. 단독화된존재가능앞에직면시키는숙연한불안에는, 이가능성에대비한기쁨이수반한다. 이기쁨속에서현존재는, 분망한호기심이일차적으로세간사로부터조달해주는향락의우연성으로부터해방된다. 그러나이들근본기분 [ 불안과기쁨 ] 의분석은, 기초존재론적목표가그어준당면한해석의한계를넘어선다.(310, 440)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7. 현존재의존재의의미 : 시간성 ( 한 : 時間性, 독 : Zeitlichkeit, 영 : Temporality) 현존재의존재는마음씀이다. 마음씀은실존성, 피투적현사실성, 퇴락의 3계기로구성된다. 실존성은 자기를앞지름 이고, 피투적현사실성은 이미 ( 어떤세계 ) 내에있음 이며, 퇴락은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있음 이다. 이분절된 3 구조계기가서로맞물려하나의전체성을구성한다. 그러니까현존재의존재로서의마음씀은,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있음으로서자기를앞질러이미 ( 어떤세계 ) 내에있음 으로규정된다. 하지만마음씀의분절된구조전체의전체성을가능하게하는것이무엇인가는아직해명된바없다. 우리는 하나의사태의전체성을가능하게하는그무엇 을 의미 라고명명한다. 의미 란하나의사태의전체성을가능하게하는 근거 를가리킨다. 이장에서우리의물음은현존재의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이된다. 현존재의존재의의미에관한물음은실존성, 피투적현사실성, 퇴락이라는 3 구조계기로구성된마음씀의구조전체성을근원적으로가능하게하는그무엇으로서의근거를묻는물음이다. 그런데현존재의존재의미가허공에떠있는어떤별개물이거나혹은현존재자신의외부의것이될수없다. 현존재의존재의미는바로자기를이해하는현존재자신이된다. 좀더정확히말하자면, 현존재의존재의미는바로현존재자신의 시간적구조 이다. 우리는현존재자신의시간적구조를특히 시간성 이라고명명한다. 시간성이란표현은우리가통속적으로알고있는시간과차별화하기위해선택된것이다. 좀더부연하면, 시간과시간성은다르다. 시간성이라는말은시간이아니라, 어떤것이가지고있는 시간적성격 또는 시간적구조 를가리킨다. 전자의좋은예는후설의 의식의흐름 이고, 후자는예는하이데거의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이다. 하이데거의시간성개념에는 흐름 의성격은없고, 마음씀의구조가시간적이라는것이다. ( 소광희 [2003], 195) 또한앞으로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 시간성은통속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시간을가능하게한다라는차원에서 근원적시간 이라고도명명된다. [ 읽기자료 ] 마음씀의의미와함께존재론적으로탐구되는것은무엇인가? 의미의의의는무엇인가? 이의미현상은, 이해와해석 의분석과관련해서우리의탐구와만난바있다. 거기에따르면의미란, 어떤것자체는분명하게주제적으로시야속에들어오지않았지만, 그안에그어떤것의이해가능성이담지되어있는그것 이다. 의미는일차적기투의 [ 기투가그것을겨냥해서행해지는 ] 기반이고, 거기에입각해서어떤것이있는그대로의그것으로서, 그가능성에있어서개념적으로파악될수있는것이다. 기투작용은가능성, 즉가능하게하는것을개시한다.(323-324, 458-459) 마음씀의의미에대한물음을가지고물어지는것은, 마음씀의분절된구조전체의전체성을, 그전개된분절의통일에있어서가능하게하는것은무엇인가하는것이다.(324, 459) 이 [ 현존재의 ] 존재, 즉마음씀의의미는마음씀을그구성에있어서가능하게하는것으로서, 존재가능의존재를근원적으로형성한다. 현존재의존재의미는허공에떠있는어떤별개물이나현존재자신의외부가아니라, 자기를이해하고있는현존재자신이다. 현존재의존재를, 그리고이와함께현존재의현사실적실존을가능하게하는것은무엇인가?(325, 460) 1) 마음씀의존재론적의미로서의시간성시간성이란구체적으로무엇인가? 이물음을해명하기위해우리는우선은선구적결의성을주목한다. 그까닭은자기자신의가장독자적인존재가능성을향해다가서는선구적결의성에서야말로우리는현존재의존재의시간적구조를가장근원적으로경험할가능성이있기때문이다. 선구적결의성이란가장독자적이고두드러진존재가능을향한존재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다. 그런것이가능한까닭은오직, 현존재가자기의가장독자적가능성인죽음에로앞질러나아가 ( 즉선구하여 ) 자기에게도래 ( 到來 ) 할수있기때문이다. 이처럼자기를자기에게도래하게하는것이장래 ( 將來 ) 의근원적현상이다. 따라서여기서의장래란우리가흔히통속적으로말하는미래 ( 未來 ) 와구별된다. 미래란아직실현되지않았지만언제가는곧있게될 < 지금 > 을가리킨다. 이런의미의미래는,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 근원적시간인장래에서파생된시간에불과하다. 다시한번강조하건대, 우리가말하는장래란현존재가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자기에게도래 ( 到來 ) 할그 옴 ( 來 ) 을가리킨다. 선구는현존재가자신의존재에서일반적으로장래라는시간적구조를이미가지고있는한에서만가능하다. 그러나현존재는언제나피투적존재이다. 선구적결의성을통해현존재는자신의근원적인책임존재를이해한다. 이러한이해는현존재가본질적으로비성 ( 非性 ) 의피투적근거로있음을자각시킨다. 다시말해이러한이해는현존재가홀로우연히이세계에던져져자신이어찌할수없는존재가능성에로자신을기투하여자신의실존을꾸려나가는근거존재임을자각시킨다. 피투성을자각하면서피투성을적극적으로인수하려는실존적태도에의해현존재는각자가 그때마다이미있었던대로의 본래적존재로돌아간다. 그러나이러한피투성의인수가가능한까닭은, 현존재의존재가, 사물적존재자의존재처럼과거로흘러가사라져버리지않고, 그때마다이미있었던대로 있을수있음으로서만가능하다. 현존재가 그때마다이미있어왔음 도현존재의존재의시간적구조에해당한다. 우리는그러한시간성을기존 (Gewesen) 이라명명한다. 기존이 이미지나가버린 < 지금 > 을의미하는통속적시간에서의과거와구별됨은물론이다. 우리의논의를앞질러말하자면, 과거는기존으로부터파생된시간이요, 기존은과거를가능하게하는근원적시간이다. 또한기존은장래와밀접히관련된다. 죽음으로선구하였기에가장독자적기존으로의복귀가가능하다. 따라서이런의미에서본다면, 기존성은장래로부터발원한다. 죽음에로의선구를통해기존적자기로복귀한현존재역시현사실적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로환경세계속에서세계내부적존재자를만나면서실존한다. 다만선구적결의성은 현 (Da) 의그때그때의상황을새롭게개시한다. 선구적결의성은현존재로하여금새롭게개시된삶의가능적터전에서세계내부적존재자를왜곡하지않은채로만나게한다. 그런데이러한만남이가능한까닭은, 이미현존재가현전화 ( 現前化, Gegenwärtigen) 라는시간적구조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 이러한현전화는후설의시간이해에서나타난지각의현전화와구별되는것으로서, 굳이이름붙인다면, 통속적시간에서말하는현재를가능하게하는, 실존론적시간현상이다. 이로써우리는선구적결의성을가능하게하는시간적구조를해명하였다. 선구적결의성의시간적구조는 기존하면서-현전화하는장래 이다. 이러한시간의통일적현상을우리는 시간성 이라명명한다. 그런데선구적결의성이본래적마음씀의양상이라면, 결의성에주목해서획득된현상자체는, 마음씀을마음씀으로서가능하게하는시간성의한양상에불과하다. 따라서이제우리의과제는마음씀의분절된구조를염두에두고이구조적다양성의전체성의통일을노현하는데까지이르러야한다. 마음씀의첫번째구조계기는실존성이다. 실존성은 자기를앞지름 (sich-vorweg) 이다. 이표현안에는 앞 이라는시간적구조가있다. 그런데이 앞 이라는시간적구조는통속적미래의시간에서처럼 지금은아직아니지만 - 다음에는 이라는의미를갖지않는다. 만약그렇다면마음씀은 시간안에서 발생하고경과하는 시간내부적전재자 ( 前在者 ) 가되고만다. 오히려 자기를앞지름 에서의 앞 은현존재의시간적구조인장래를시사한다. 현존재가자기를앞질러자기의존재가능을문제삼을수있는존재론적실존론적근거는, 현존재의시간적구조인장래이다. 장래란, 자기자신의존재가능성을향해스스로기투하면서자기자신에게로도래하는현존재의실존론적인시간적구조이다. 따라서마음씀의일차적구조계기인실존성을가능하게하는근거는장래가된다. 즉실존성의일차적의미는장래이다. 마음씀의두번째구조계기는피투적현사실성이다. 피투적현사실성은 이미 ( 어떤세계 ) 내에있음 (schon-sein-in [einer Welt]) 이다. 이표현안에도 이미 라는시간적구조가있다. 이 이미 라는시간적구조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앞의경우에서처럼, 지금은이미아니지만 - 전에는 이라는통속적과거시간의의미를갖지않는다. 만약그렇다면마음씀은 시간안에서 발생하고경과하는 시간내부적전재자 ( 前在者 ) 가되고만다. 오히려 이미 ( 어떤세계 ) 내에있음 에서의 이미 는현존재의시간적구조인기존성을시사한다. 현존재는 시간과함께 생성소멸하며한걸음한걸음지나가버리지않는다. 오히려현존재는정상성 ( 情狀性 ) 속에서부단히기존으로있는존재자로서의자기자신과마주친다. 특히불안이라는근본정상성 ( 根本情狀性 ) 은기존의본래적자기를보여준다. 그러나기존의본래적자기를회복하느냐는선택의문제이다. 여하튼현존재가자신의기존 ( 있어왔음 ) 을뒤로흘려버리지않고기존으로있는한에서만, 마음씀의두번째구조계기인피투적현사실성은가능하다. 피투적현사실성의일차적실존론적의미는기존성 (Gewesenheit) 이다. 마음씀의세번째구조계기는퇴락이다. 퇴락은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있음 이다. 여기에는앞서와는달리시간적구조에대한아무런시사도없다. 하지만이렇다고해서퇴락이시간성에근거하지않는다는것은아니다. 현존재는실존하는이상, 즉본래적으로실존하건비본래적으로실존하건, 여하튼세계내부적존재자를만나고있다. 이러한만남을존재론적실존론적으로가능하게하는근거는현전화 ( 現前化, Gegenwärtigen) 이다. 현전화는, 앞서논의했듯, 통속적의미에서의현재를가리키는것이아니라, 존재자를 마주한다 라는의미에서현존재의존재의시간적구조이다. 존재자에로의몰입도여하튼존재자와의만남을전제하므로, 퇴락도일차적으로는현전화에근거한다. 또한앞서논의했듯, 선구적으로결의한현존재는퇴락으로부터자기를되돌려와세계내부적존재자를본래적으로현전화하는데, 현전화의이러한본래적양상을우리는특히 순간 ( 瞬間, Augenblick) 이라고도명명한다.( 참고 : 하이데거는현전화를현재라고도명명한다. 따라서하이데거의텍스트를읽을때에는현재가단순히통속적의미에서의현재를가리키는지, 혹은현전화를의미하는지를구별해야한다 ) 마음씀의분절된각구조계기는시간성에근거한다. 실존성, 피투적현사실성, 퇴락에는각각장래, 기존성, 현전화가대응하며, 이로써시간성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마음씀의분절된계기들의통일을가능하게하여마음씀구조의전체성을근원적으로구성한다. 마음씀구조의근원적통일은시간성속에있다. 그런데혹자는시간성도장래, 기존성, 현전화라는분절된계기를가진것이아니냐고반문한다. 그러나이러한반문은시간성의본질적특성에대한오해에서비롯된다. 이러한오해를풀기위해우리는시간성의본질적특성인시숙 ( 時熟, Zeitigung) 과 탈-자 ( 脫 - 自, Außer-sich) 를해명하고자한다. 시간성은존재자가아니다. 그것은애당초 있다 라고말할수있는것이아니다. 도리어시간성은스스로시숙한다. 즉시간성은스스로때에맞게무르익는다. 따라서장래, 기존성, 현전화는시간성의분절된 3계기가아니라, 스스로무르익음의, 즉시숙의세방식이다. 우리는앞서시간성을현존재의시간적구조라고규정하였거니와, 시숙이란결국, 스스로때에맞게무르익는우리의인생을비유적으로표현한낱말이다. 그러니까시간성은근원적으로통일적현상이다. 마치우리의인생에서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노년기가따로존재하지않듯이. 시숙을말함에있어하이데거는시간성이존재자로 있는것 이아님을강조한다. 시간이존재가아님은말할것도없다. 그러나우리의사유습관은존재의변이를통해서비로소시간을지각하기때문에존재로부터완전히독립된순수한시간을생각할수가없다. 인생이란마치물위에떠내려가는시간에실려서살아가는것으로생각한다. 시인들의인생에대한비탄도대개는그렇게흘러가는인생의덧없음을노래한것이다. 그러나그렇게되면시간은마치흘러가는물처럼이미있고, 인생은그위에실려가는생명체로간주된다. 그러나인생은그런것이아니라비유컨대마치참외가때와함께스스로익어가듯이인생도그렇게익어가는것, 나이먹어가는것이다. 먹어갈나이나세월이미리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것은아니다. 이것을가리켜하이데거는시간성의자기시숙 (sich zeitigen) 이라고한다. ( 소광희, ꡔ 시간의철학적성찰 ꡕ, 문예출판사, 2001. 591-592 쪽 ) 시간성의또하나의본질적특성은 탈-자 이다. 탈자 (ἐκστατικὀν) 란자기를벗어남을의미한다. 장래는 을향해 (zu...), 기존성은 에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auf...), 현전화는 에몰입해 (bei...) 라는탈자적성격을지니고있다. 그래서우리는장래, 기존성, 현전화를탈자태 ( 脫自態 ) 라고명명한다. 시간성은근원적으로탈-자그자체이다. 그러니까시간성은세탈자태들이서로통일되는가운데시숙한다. 즉시간성의본질은세탈자태의통일에있어서의시숙이다. 이에반해우리가통속적으로알고있는순수한 지금 -연속 으로서의시간은시간성의탈자적성격이수평화됨으로써성립한시간이다. 이러한수평화는시간성의비본래적시숙에근거한다.( 통속적시간의근원에대해서는앞으로 3절에서상세한논의가이루어지므로여기에서는생략한다 ) 통속적시간은시간성에서파생된시간이다. 과거는기존성으로부터, 현재는현전화로부터, 미래는장래로부터파생된다. 따라서시간성을근원적시간이라부르는것은정당하다. 한가지만더부연하자. 장래, 기존성, 현재라는세탈자태는서로탈자적으로통일되는가운데지평을구성한다. 따라서우리가여기에서논의하는실존론적시간성은탈자적-지평적으로시숙하는근원적시간이다. 시간성의또하나의본질적특징은세탈자태중장래가우위를점한다는것이다. 앞서선구적결의성의시간성에서논의했듯, 본래적시간성은본래적장래로부터시숙한다. 근원적본래적시간성의일차적현상은장래이다. 또한마음씀은죽음에이르는존재이므로마음씀의의미인시간성도유한하다. 물론통속적시간해석에따르면시간은순수한지금의연속으로서무한하나, 우리가여기에서논의하는시간성은어디까지나현존재의실존론적시간성이다. 마지막으로시간성에서의장래의우위가갖는철학사적의의를소개하면다음과같다. 종래의시간론에서는현재를실재성의근거로서유일하게존재하는것으로보고미래와과거는실재성이없는것, 단지기억과예견을통해서만있게되는것으로치부하였다. 그러나그현재의넓이를어떻게보느냐하는것은매우어려운문제로남아있었다. 그러나하이데거는시간성을현존재의존재의미로규정하기때문에현존재의존재성격, 즉현존재는가능존재로서전향적으로자기를기투하는존재자라는데서그의시간성이장래우위라는것은충분히예견될수있다. 이것은시간을무한한등질적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흐름이나지금연속으로보지않고, 삶자체의입장에서현존재의존재인마음씀의근거로서파악하는데서연유한결과이다. ( 소광희 [2003], 206 쪽 ) 시간성에대한이제까지의논의를총괄하면다음과같다. 1) 시간은근원적으로는시간성의시숙이다. 2) 시간성의시숙으로서의시간이마음씀의분절된구조의전체성을가능하게한다. 3) 시간성은본질상탈자적이다. 4) 시간성은근원적으로장래로부터시숙한다. 5) 근원적시간은유한하다. [ 읽기자료 ] 실존을근원적실존론적으로기투할때기투되는것은선구적결의성으로서드러났다. 현존재의이본래적전체존재를, 그의분절된구조전체의통일이라는점에서가능하게하는것은무엇인가? 이제완전한구조내용을끝내거명하지않고형식적실존론적으로파악한다면, 선구적결의성이란가장독자적이고두드러진존재가능을향한존재이다. 그런것이가능한것은오직, 일반적으로현존재가자기의가장독자적가능성 [ 죽음 ] 에있어서자기에게로도래 ( 到來 ) 할수있고, 이렇게 자기를자기에게로도래케함 에있어, 가능성을가능성으로서견뎌내기때문이다. 다시말하면, 실존하기때문이다. 이두드러진가능성을견뎌내면서, 그가능성속에서자기를자기에게도래케하는것이장래 ( 將來 ) 의근원적현상이다. 현존재의존재에본래적또는비본래적죽음에이르는존재가속한다면, 이존재는, 지금시사되었으나좀더자세하게규정되어야할의미에서, 장래적존재로서만가능하다. 여기서장래 ( 將來 ) 란아직실현되지는않았지만언제가는곧있게될지금을가리키는것이아니라, 현존재가그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자기에게도래 ( 到來 ) 할그 옴 ( 來 ) 을가리킨다. 선구는, 현존재로하여금본래적으로장래적이게끔하지만, 선구자체가가능한것은오직, 현존재가존재하는자로서일반적으로이미언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나자기에게도래하는한에서만, 즉현존재가그존재에있어서일반적으로장래적인한에서만이다.(325, 460-461) 선구적결의성은현존재를본질적으로책임존재라는점에서이해한다. 이이해는 [ 현존재가 ] 책임존재임을실존하면서인수하는것, 즉비성 ( 非性 ) 의피투적근거로서있음을의미한다. 그러나피투성의인수란, 현존재가그때마다이미있었던대로본래적으로있음을의미한다. 그러나피투성의인수는, 장래적현존재가가장독자적으로그때마다이미있었던대로, 즉자기의기존 ( 旣存 ) 으로있을수있음으로써만가능하다. 현존재가일반적으로 나는기존으로있다 로서존재하는한에서만, 현존재는 [ 기존적자기로 ] 돌아오는 [ 復己하는 ] 만큼, 그렇게장래적으로자기자신으로도래할수있는것이다. 본래적으로장래적인현존재는본래적으로기존으로있다. 가장극단적이고가장독자적인가능성 [ 죽음 ] 속으로선구하는것은, 가장독자적인기존으로이해하면서돌아오는 [ 復歸하는 ] 것이다. 현존재는장래적인한에서만본래적으로기존으로있을수있다. 기존성은어떤방식으로는장래에서발원한다.(325-326, 461) 선구적결의성은 현 의그때그때의상황을개시하고, 그래서실존은행위하면서현실적환경세계적용재자 [ 用在者 ] 를배시하면서배려한다. 상황속의용재자에몰입해서결의하고있음, 즉환경세계적으로임재 ( 臨在, 臨現在前 ) 하는것을행위하면서만나게하는것은, 이존재자를현전화 ( 現前化 ) 하는데서만가능하다. 현전화한다 는의미에서의현재 ( 現在 ) 로서만결의성은본디의결의성일수있다. 본디의결의성이란, 그것이행위하면서포착하는것을왜곡하지않고만나게하는것이다.(326, 461-462) 장래적으로 [ 장래를향해기존의 ] 자기로복귀 [ 復歸, 즉復己 ] 하면서, 결의성은 [ 존재자를 ] 현전화하면서자기를상황속에들여온다. 기존성은장래에서발원하고, 더욱이기존적 ( 더적합하게는, 기존하는 ) 장래가, 현재를자기 [ 장래 ] 로부터풀어놓는다. 이렇게 기존하면서 - 현전화하는장래 라는통일적현상을우리는시간성이라고부른다. 현존재가시간성으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서규정되어있는한에서만, 현존재는위에서특징지은바있는선구적결의성이라는본래적전체존재가능을자기자신에게가능하게한다. 시간성은본래적마음씀의의미로서노정된다.(326, 462) 결의성이본래적마음씀의양상이고, 마음씀자체는그러나시간성에의해서만가능하다고한다면, 결의성에주목해서획득된현상자체는, 일반적으로마음씀을마음씀으로서가능하게하는시간성의한양상을보여주는데불과하다. 마음씀으로서의현존재의존재전체성은 (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 ) 에몰입해 - 있음으로서자기를 - 앞질러 - 이미 ( 어떤세계 ) 내에 - 있음 을의미한다. 이렇게 [ 세부분으로 ] 분절되는구조를처음확정할때이미시사되었던것은, 존재론적물음은, 이분절을염두에두고더욱더소급적으로추적해서, 마침내구조적다양성의전체성의통일을노현하는데까지이르지않으면안된다는것이었다. 마음씀구조의근원적통일은시간성속에있다.(327, 463) 자기를앞질러 는장래에근거한다. 이미 내에있음 은자체안에기존성을표명하고있다. 에몰입해 - 있음 은현전화에서가능해진다. 상술한바에따르면, 여기에서앞질러의앞과이미를통속적시간이해에입각해서포착하는것은스스로금지되어있다. 앞은, 지금은아직아니지만 다음에는의의미에서앞으로는이아니다 ; 마찬가지로, 이미도지금은이미아니지만 전에는이아니다. 앞과이미라는표현들이이런 [ 바로앞에서 아니다 라고지적된 ] 시간상의의의를가지고있다면 가질수도있겠지만 마음씀의시간성을가지고말한다면, 그시간성은이전에있고동시에이후에있으며, 아직아님과이미아님에동시에있는어떤것이되고말것이다. 그렇게되면, 마음씀은시간안에서발생하고경과하는존재자로서파악될것이다. 즉, 현존재의성격을가진존재자의존재는하나의전재자 [ 前在者 ] 가되고말것이다. 그런일은도저히있을수없다고한다면, 위에서말한표현들의시간상의의의는다른것이어야한다. 앞과앞질러는장래를시사하고있으며, 그런것으로서이장래는일반적으로현존재가자기의존재가능을문제삼는그런자로서있을수있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는것을비로소가능하게한다. 장래에근거하면서자기자신을위해를겨냥하는자기기투는, 실존성의한본질성격이다. 실존성의일차적의미는장래이다.(327, 464) 마찬가지로이미는, 존재하는한그때마다이미피투자 ( 被投者 ) 인그런존재자의실존론적시간적존재의미를가리킨다. 오로지마음씀이기존성에근거하기때문에, 현존재는그가그것으로있는피투적존재자로서실존할수있다. 현존재가현사실적으로실존하는동안, 현존재는결코과거로지나간 [ 過 - 去 ] 것이아니라, 나는기존으로있다는의미에서언제나이미기존으로있는것이다. 그리고현존재는, 그가존재하는동안만기존으로있을수있다. 이에반해, 우리는 이제더이상전재 [ 前在 ] 하지않는 존재자를 지나가 [ 사라져 ] 버렸다 고말한다. 그러므로실존하는현존재는시간과함께생성소멸하여한걸음한걸음지나가버리는전재적 [ 前在的 ] 사실로서확정될수없는것이다. 현존재는언제나피투적현사실로서만자기를본다. [ 현존재가자기를본다는 ] 이정상성 [ 情狀性 ] 속에서현존재는, 아직도있으면서이미있었던존재자로서, 즉부단히기존으로있는존재자로서, 자기자신과마주친다. 현실성의일차적실존론적의미는기존성에있다. 마음씀구조의정식화는, 앞과이미라는표현으로써 [ 각기 ] 실존성과현사실성의시간적의미를시사하고있다.(328, 464) 이에반해, 마음씀의세번째구성계기, 즉 에몰입해퇴락하면서있음 에는그런시사가없다. 이것은퇴락은역시시간성에근거하지않는다는것을의미하는게아니라, 배려되는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에로의퇴락이일차적으로근거하는현전화가, 근원적시간성의양상에서는장래와기존성속에들어박혀있다는것을시사할것이다. 현존재는결의함으로써마침내퇴락으로부터자기를되돌려오는것이며, 그만큼더본래적으로개시된상황을향한순간 ( 瞬間 ) 속에서현존재한다.(328, 464)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시간성은실존, 현실성및퇴락의통일을가능하게하고, 그렇게해서마음씀구조의전체성을근원적으로구성한다. 마음씀의계기들은 [ 분절된 ] 단편들을이어쌓아서접합되는것이아니고, 마찬가지로시간성자체도장래, 기존성및현재를시간과함께합성해서비로소형성되는것이아니다. 시간성은도대체존재자로있는것이아니다. 시간성은존재하는게아니라, 스스로때익는 [ 時熟 ] 것이다. 그럼에도우리가, 시간성은마음씀의의미 이다, 시간성은이러이러하게규정되어 있다 고말하지않을수없는이유는, 존재와있다일반의이념을밝힘으로써비로소 [ 시간성이 ] 이해될수있기때문이다. 시간성은시숙시킨다, 그것도시간성자신의가능한방식을시숙시키는것이다. 이 [ 시간성의 ] 방식들이, 현존재의존재양상의다양성을가능하게하고, 무엇보다도본래적실존과비본래적실존의근본가능성을가능하게한다.(328, 465) 장래, 기존성, 현재는자기를향해, 에로돌아와, 을만나게함의현상적성격들을가리킨다. 을향해, 에로, 에몰입해 라는현상들은시간성을단적으로 ἐκστατικόν[ 脫自 ; 자기밖으로자기를벗어남 ] 으로서드러낸다. 시간성은근원적으로탈 - 자 ( 脫自 ) 그자체이다. 그리하여우리는장래, 기존성, 현재라고성격지운현상들을시간성의탈자태 ( 脫自態 ) 라고부른다. 시간성은애초부터자기를처음으로탈출하는존재자가아니라, 시간성의본질이제탈자태의통일에있어서 시숙 ( 時熟 ) 이다. 통속적이해에서통용되는시간의특성은, 특히시작도끝도없는순수한 지금 - 연속 으로서의시간속에서는, 근원적시간성의탈자적성격이수평화되어버린다는바로그점에있다. 그러나이수평화자체의기초는, 그실존론적의미에서보면, 특정한가능적시숙에있다. 즉, 이시숙에따라시간성이비본래적시간성으로서, 위에서말한시간을시숙시키는것이다. 그러므로현존재의상식에서통용되는시간은, 근원적인것이아니고본래적시간성에서파생된것임이입증된다면, a potiori fit denominatio[ 명칭은더우세한것으로부터나온다 ] 라는명제에따라, 지금밝혀진시간성을근원적시간이라고부르는것은정당하다.(328-329, 465-466)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탈자태를열거할때, 우리는언제나 장래 를제일먼저거명하였다. 그것은설사시간성이세탈자태를이어쌓고연속시킴으로해서비로소생기는것이아니라그때마다탈자태들의등근원성에있어서시숙한다하더라도, 근원적이고본래적인시간성의탈자적통일에있어서는장래가우위를점한다는것을시사하려는것이다. 그러나세탈자태의등근원성내부에서는시숙의양상들이서로다르다. 그리고이차이는시숙이서로다른탈자태로부터일차적으로규정될수있다는데있다. 근원적이고본래적인시간성은본래적장래로부터시숙하고, 그렇게해서, [ 이근원적본래적시간성이 ] 장래적으로기존하면서비로소현재를일깨운다. 근원적이고본래적인시간성의일차적현상은장래이다. 장래의우위는비본래적시간성자신의변양된시숙에상응해서변화하겠지만, 파생적시간에있어서도여전히 [ 우위로 ] 나타날것이다.(329, 466) 마음씀은죽음에이르는존재이다. 우리는선구적결의성을 현존재의절대적불가능성 이라고성격지워진가능성 [ 죽음 ] 에이르는본래적존재라고규정한바있다. 자기의종말을향한그런존재에있어서, 현존재는죽음속에던져져있을수있는그런존재자로서, 본래적전체적으로실존한다. 현존재는, 거기에이르면자기가중단되어버리는그런어떤종말을가지고있는것이아니라, 유한적으로실존한다. 선구적결의성의의미를형성하는그시간성이일차적으로시숙시키는본래적장래는, 유한한실존과함께그자신유한한것으로서드러난다.(329-330, 466) 근원적시간성에대한이상의분석을우리는다음과같은테제로요약한다 : 시간은근원적으로는시간성의시숙이며, 이시간성의시숙으로서시간은마음씀구조의구성을가능하게한다. 시간성은본질상탈자적이다. 시간성은근원적으로장래로부터시숙한다. 근원적시간은유한하다.(331, 468) 2) 본래적시간성과비본래적시간성 이절의논의를하기에앞서다시한번하이데거의사유구조를언급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하이데거는항상어떤사태의형식적구조를문제삼는다. 그러고는그형식적구조로부터그사태의본래적양상과비본래적양상이어떻게가능하게되는지를밝혀낸다. 시간성의논의도예외가아니다. 단여기에서는논의의순서가바뀌었다. 여기에서는먼저선구적결의성을통해본래적시간성을논의한뒤, 거기에서시간성의형식적구조를끄집어내었고, 이제다시이시간성의형식적구조로부터비본래적시간성의가능성을밝혀내고자한다. 비록논의의순서에서는변화가있지만, 여기에서도우리는여전히그의독특한사유구조를엿보게된다. 이절의주제는비본래적시간성이다. 비록이절의제목이 본래적시간성과비본래적시간성 이지만, 하이데거의주요목적은비본래적시간성을밝혀내는것이다. 본래적시간성은비본래적시간성의의미를분명히하기위해반복적으로논의된것으로보아야할것이다. 비본래적시간성은일상적개시성이갖는시간적구조에해당한다. 따라서이절에서는일상적개시성을구성하는정상성의비본래적양상및이해의비본래적양상, 그리고퇴락이갖는시간적구조가논의된다. 그런데하이데거는이곳에서는앞서의논의와는다르게 말 도일상적개시성을구성하는하나의구조계기로서인정한다. 아마도퇴락적이해도결국은 말 에의해분절되므로 말 을일상적개시성을구성하는제4의구조계기로간주한듯하다. 그런데이절의과제는일상적개시성의시간적구조를밝혀내는것에한정되지않는다. 우리에게는아직세계-내-존재의시간성과현존재적공간성의시간성이과제로서남아있다. 세계-내-존재의시간성에서는특히배시적배려의시간성이다루어질것이며현존재적공간성의시간성에서는현존재적공간성이시간성으로부터어떻게가능하게되는지를논의할것이다. 이두가지의시간성도기본적으로는비본래적시간성이다. 본론에들어가기에앞서한가지사항을더지적하고자한다. 일상적개시성의각구조계기를형식적인시간구조에대비해본다면, 정상성은기존성에, 이해는장래에, 그리고퇴락은현전화에관련된다. 그러나시간성은탈자적으로시숙하므로, 비록정상성이기존성이란시간적구조를갖고, 이해가장래라는시간적구조를갖고, 또퇴락이현전화라는시간적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구조를갖는다고할지라도, 각각의경우에는반드시장래, 기존성, 현전화라는세탈자태들의시숙이함께논의된다. 우리는이점을반드시숙지해야한다. [ 읽기자료 ] 앞에서우리는결의성의시간적의미에대해성격지운바있거니와, 그결의성은현존재의본래적개시성을나타낸다. 개시성은어떤존재자를, 실존하면서자기의현자체로있을수있는그런존재자로구성한다. 마음씀은 [ 앞에서본바와같이 ] 그시간적의미와관련해서는, 가까스로개요적특징을보였을뿐이다. 마음씀의구체적시간적구성을제시한다는것은, 그구조계기들, 즉이해, 정상성 [ 情狀性 ], 퇴락및말을제각기시간적으로해석한다는뜻이다. 이해는모두저마다의기분을가지고있고, 모든정상성은이해적이다. 정상적이해는퇴락의성격을가지고있다. 퇴락적으로기분에의해규정되는이해는, 그이해가능성과관련해서는 말 에서분절된다. 위에열거한 [ 네가지 ] 현상들의그때그때의시간적구성은매양하나의시간성으로소급된다. 시간성은이하나의시간성으로서이해, 정상성, 퇴락및말의가능한구조적통일을보증한다.(335, 475) (1) 개시성일반의시간성 1 이해의시간성이해의시간적구조는장래이다. 그런데우리는앞서선구적결의성의시간성을논의할때에도장래를언급한바있다. 엄밀히말해이두장래는구별된다. 전자의장래가시간의형식적구조에해당한다면, 후자의장래는그러한형식적구조로서의장래의본래적양상이다. 그렇기에하이데거는여기에서는둘을구별한다. 이제선구적결의성의시간성으로서의장래는 본래적장래 로언급된다. 아마도이러한표현이적절할것이다. 또한그는이본래적장래를 선구 라고도술어화한다. 본래적장래는곧선구이다. 그가선구라는용어를선택한까닭은, 비본래적시간성에서도궁극적으로는여전히장래가다른시간적계기에비해우위에있음을강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조하기위해서이다. 선구적결의성을통해현존재는자기의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도달한다. 그러나일상적현존재는선구적으로결의하기는커녕, 우선대개는그가배려하는것으로부터자기를이해한다. 따라서비본래적이해에서장래의시숙은변양된다. 이해의본래적장래가선구라면, 이해의비본래적장래는예기 ( 豫期 ) 가된다. 일상적현존재는배려되는것이초래하거나거절하는결과에만골몰하므로, 거기에입각해그만자기를예기 ( 豫期 ) 할뿐이다. 또한현존재는예기하기때문에, 오직그러한이유로, 을기대할수도있고기다릴수도있다. 기대는예기에기초를둔장래의한양상이된다. 이해의비본래적장래는예기이다. 그런데시간성은탈자적으로시숙하므로이해의비본래적장래는기존성과현재에의해등근원적으로규정된다. 기존성과현재가비본래적이해를함께구성한다. 우선두탈자태중현재를논의해보자. 여기에서도하이데거는언어의혼란을가져온바있다. 앞서하이데거는선구적결의성의시간성을논의하면서현전화를언급한바있다. 이때의현전화는본래적현재를의미한다. 그러고나서다시하이데거는시간의형식적구조를논의하면서도현전화를언급한다. 더욱이거기에서는현전화와현재를번갈아사용하기도한다. 우리는이러한언어의혼란을극복해야한다. 따라서우리는이렇게제안한다. 시간의형식적구조에서는현재라는용어를사용하자. 그리고시간성의양상에서는각각본래적현재와비본래적현재라는용어를사용하자. 아마도이러한제안에하이데거도동의할것이며, 또그는이후의논의에서는이와같은방식으로용어를사용한다. 그렇다면본래적현재와비본래적현재는각각구체적으로어떻게규정되는가? 선구적결의성을가능하게하는현재의시간적구조는본래적현재이다. 하이데거는앞서의논의에서는본래적현재도단순히현전화라고명명하였으나이제는스스로언어의혼란을피하기의하여본래적현재라고명명한다. 또한본래적현재를더구체적으로는 순간 이라이름짓는다. 이것은앞서본래적장래를선구라고이름지은것과마찬가지방식이다. 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간이란선구적결의성을통해본래적자기를회복한현존재가이제는세계내부적존재자를그야말로그고유한의미안에서만나는그 순간 을의미한다. 따라서순간은본래적장래로부터시숙한다. 그런데일상적현존재는그때그때자신이배려하는것이결과적으로성공할것인가의여부에만골몰한다. 일상적현존재에게본래적현재로서의순간은있을수없다. 오히려비본래적장래, 즉예기에상응하는것은배려하는것에몰입하는독자적존재가된다. 하이데거는이처럼 배려하는것에몰입하는독자적존재 를현전화라고명명한다. 그러니까이런현전화는 비본래적, 몰순간적-비결의적현전화 를가리킨다. 비본래적이해는현전화적예기로서시숙한다. 그러나우리는아직비본래적이해의시간성을완전히해명한것이아니다. 탈자적시숙에서는거기에대응하는기존성이속해있어야한다. 우리는앞서선구적결의성을가능하게하는시간적구조중하나를 기존 이라명명한바있다. 기존은시간의형식적구조인기존성의본래적양상에해당한다. 그러나기존혹은기존성이라는용어는혼란을일으킨다. 따라서여기에서도하이데거는본래적기존성즉기존을 회복 이라구체적으로명명한다. 회복이란선구적으로결의한현존재가 가장독자적자기에게되돌아옴 을의미한다. 이에반면비본래적이해는배려되는것을현전화하면서거기로부터길어낸가능성을향해자기를기투한다. 이러한기투는자신의가장독자적피투적존재가능앞에서의자기망각을전제한다. 비본래적이해의기존성은망각이된다. 본래적기존성이회복이라면, 비본래적기존성은망각이다. 또한기다림이예기에근거하듯, 상기 ( 想起 ) 는망각에근거한다. 망각이상기의전제조건임은당연하다. 이제까지의논의를정리하면다음과같다. 1) 이해의본래적시간성은 회복하는순간적장래 이다. 2) 이해의비본래적시간성은 망각하면서현전화하는예기 이다. 이세탈자태의통일이본래적존재가능을폐쇄한다. 따라서이세탈자태의통일은비결의성의가능성의실존론적조건이된다. 3) 비본래적이해는배려되는것을현전화함으로써그이해가규정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비본래적이해에서장래의우위가흔들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진않는다. 이해의시숙은역시일차적으로는장래에서일어난다. [ 읽기자료 ] 결의성은 근원적이고본래적인실존함 이라고밝혀졌다. 우선대개는현존재는물론결의하지않고있다. 다시말하면, 그때마다단독화를통해서만도달할수있는가장독자적존재가능에있어서는그는은폐되어있다. 이점에서보면, 시간은늘본래적장래로부터시숙하지는않는다. 그러나이 늘 하지는않는다 는것은, 시간성이때로는장래를가지고있지않다 는뜻이아니라, 장래의시숙은변할수있다 는뜻이다.(336, 476-477) 본래적장래를술어상으로표시하기위해, 우리는선구 ( 先驅 ) 라는표현을고수한다. 이표현은, 현존재는, 본래적으로실존하면서, 자기를가장독자적존재가능으로서자기에게도래케한다는것, 즉장래는먼저현재로부터획득되는게아니라비본래적장래로부터획득되지않으면안된다는것을시사한다. 장래를표시하는형식상무차별적술어 [ 내일, 미래등 ] 는마음의첫번째구조계기인자기를앞질러라는용어속에있다. 현존재는현실적으로는늘자기를앞지른다. 그러나실존적가능성으로보면, 늘 선구하면서있는것은 아니다. (336-337, 477) 비본래적장래는 [ 본래적장래와 ] 어떻게구별되어야하는가? 본래적장래가결의성에서노정되는것과상응해서, 이 [ 비본래적장래의 ] 탈자적양상 ( 脫自的樣相 ) 은, 일상적으로배려하는비본래적이해로부터그실존론적-시간적의미로존재론적으로소급할때에만노정될수있다. 마음씀으로서는현존재는본질상자기를앞지른다. 우선대개배려하는세계- 내-존재는그가배려하는것으로부터자기를이해한다. 비본래적이해는일상적으로종사하는업무상배려되는것, 실행해야할것, 긴급한것, 불가피한것등을향해자기를기투한다. 그러나배려되는것은, 그것이있는그대로배려하는존재가능을위해있는것이다. 현존재는배려되는것에몰입해배려하고있으면서, 이배려하는존재가능을자기에게도래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도록한다. 현존재는일차적으로는자기의가장독자적이고몰교섭적인존재가능에서자기에게도래하는것이아니라, 배려되는것이초래하거나거절하는결과에입각해서배려하면서자기를예기 ( 豫期 ) 하는것이다. 즉, 배려되는것에입각해서, 현존재는자기에게도래하는것이다. 비본래적장래는예기한다는성격을가지고있다. 사람들이종사하는것에입각해서세인-자기로서배려하면서하는자기이해는, 자기의가능성의근거를장래의이탈자적양상에두고있다. 그리고현실적현존재는그와같이배려되는것에입각해서자기의존재가능을예기한다. 오직그때문에, 현존재는 을기대할수있고기다릴수있다. 예기는거기로부터어떤것이기대될수있는지평과범위를이미그때마다개시하고있어야한다. 기대는예기에기초를둔장래의한양상이고, 장래는본래적으로선구로서시숙한다. 그러므로 선구 에서보면죽음을배려적으로기대하는것보다 죽음에이르는존재 가더근원적이다.(337, 477-478) 이해한다 는 실존한다 이므로, 어떻게기투된존재가능에있어서이든일차적으로장래적이다. 그러나이해가만일시간적이아니라면, 다시말해기존성과현재에의해등근원적으로규정되지않는다면, 그이해는시숙하지않는다. 맨뒤에거명한탈자태 [ 현재 ] 가비본래적이해를함께구성하는양식은소박하게는이미분명해졌다. 즉, 일상적배려도존재가능에입각해서자기를이해한다. 단그존재가능은그때그때배려되는것이결과적으로성공할것인가실패할것인가를고려해서일상적배려에영합한다. 비본래적장래, 즉예기에상응하는것은배려되는것에몰입하는독자적존재이다. 이현 -재[ 現前化 ; 對 - 向 ] 의탈자적양상이노정되는것은, 우리가이탈자태를본래적시간성의양상에서비교하기위해끌어들일때이다. ( ) 본래적시간성가운데유지되어있는현재, 따라서본래적현재를우리는순간이라부른다. ( ) 본래적현-재 [ 대-향 ] 로서의순간은용재자 ( 用在者 ] 나전재자 [ 前在者 ] 로서 > 시간안에 < 있을수있는것을비로소만나게한다. (337-338, 478) 본래적현재로서의순간과구별해서, 비본래적현재를우리는현전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現前化 ) 라부른다. 형식적으로이해하면, 모든현재는현전화적이지만반드시다순간적은아니다. 현전화 라는표현을보충명제없이사용할때는, 언제나 비본래적, 몰순간적-비결의적현전화 를가리키는것으로한다. 현전화는배려되는세계에의퇴락을시간적으로해석해야비로소명료해질것이다. 퇴락은현전화속에그실존론적의미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 그러나비본래적이해가 배려될수있는것 에입각해서존재가능을기투하는한, 그이해는현전화로부터시숙한다는것을의미한다. 이에반해, 순간은거꾸로본래적장래로부터시숙한다.(338, 479) 비본래적이해는현전화적예기로서시숙하지만, 후자의탈자적통일에는거기에대응하는기존성이속해있지않으면안된다. 선구적결의성은 본래적자기에게로도래함 이거니와, 그것은동시에자신을단독화속에던진가장독자적 자기에게되돌아옴 이다. 이런탈자로인해현존재는, 자기가이미그것으로있는그존재자를결의해서인수할수있게된다. 선구함에있어서현존재는자기를가장독자적존재가능속으로앞지르게하면서 [ 그자기를 ] 다시되돌려온다. 이본래적으로 기존으로있음 [ 기-존재 ] 을우리는회복 [ 되돌려옴 ] 이라부른다. 반면, 비본래적자기기투는, 배려되는것을현전화하면서그배려되는것으로부터길어낸가능성을향한자기기투이다. 그러나이비본래적자기기투는, 현존재가자신의가장독자적피투적존재가능에있어서자기를망각했다는것으로만가능하다. 이망각은아무것도아니거나상기 ( 想起 ) 의결여가아니라, 기존성의한독자적이고적극적인탈자적양상이다. 망각이라는탈자태 ( 탈출 ) 는, 가장독자적기존에직면해서자기자신을폐쇄하여 [ 거기로부터 ] 도주한다는성격을가지고있으나, 이 에직면해서 [ 거기로부터 ] 도주하는것 은 직면해있는그것 [ 가장독자적기존 ] 을폐쇄하고이와함께자기자신도폐쇄한다. 비본래적기존성으로서의망각성은이리하여피투적독자적존재와관계한다 ; 망각성은내가우선대개기존으로있는존재양식의시간적의미이다. 그리고오직이망각에근거해서배려하면서예기하는현전화는보유 [ 保有 ; 기억 ] 할수있고, 더욱이환경세계적으로만나는비현존재적존재자를보유할수있다. 이보유에는비보유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가대응한다. 비보유는파생적의미에서망각이다.(338-339, 479-480) 기다림이예기에근거해서비로소가능한것과같이, 상기 ( 想起 ) 는망각을근거로해서가능하며, 그역은아니다 ; 왜냐하면망각성의양상에서기존성이일차적으로지평을개시해야, 배려되는것의외면성에사로잡혀서자기를상실한현존재가그지평속으로자기를상기해들어갈수있기때문이다. 망각하면서 - 현전화하는 - 예기는독자적탈자적통일이고, 비본래적이해는그시간성의점에서는이탈자적통일에따라시숙한다. 이 [ 세 ] 탈자태의통일은본래적존재가능을폐쇄하고, 따라서그것은비결의성의가능성의실존론적조건이다. 비본래적이고배려적인이해가배려되는것을현전화하고, 여기에입각해서그이해가규정된다하더라도, 이해의시숙은역시일차적으로는장래에서일어난다.(339, 480) 2 정상성의시간성이해는언제나정상적 ( 情狀的 ) 이해이다. 이해가일차적으로장래에근거한다면, 정상성은일차적으로기존성에서시숙한다. 따라서정상성에서는기존성이다른두등근원적탈자태에변양을가한다. 우리는정상성의시간성을두려움의시간성과불안의시간성으로나누어논의하고자한다. 두려움은비본래적정상성이다. 두려움에는두려움의대상이있다. 두려움의대상이나에게엄습해올것이라는공포의가능성을미리그려보는것이두려움이다. 따라서언뜻보면두려움의시간성은근본적으로예기에서성립하는듯도보인다. 그러나우리가 에직면해서두려워하는까닭은본질적으로자기의존재가능때문이다. 또한두려움에떠는일상적현존재는자기의현사실적존재가능에직면하여거기로부터당혹해서일탈하고만다. 따라서두려움의실존론적 - 시간적의미가일차적으로예기에의해구성될수는없는것이다. 오히려두려움속에서일상적현존재는자기의현사실적존재가능을망각하였기에공포의가능성을예기하는것이다. 그러므로두려움의실존론적-시간적의미는자기망각에의해구성된다. 자기망각이두려움의시간성을본질적으로구성한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망각에는당혹스런현전화가대응한다. 자기를위해두려워하는배려는자기를망각하기에일정한가능성을붙잡지못하게된다. 마치불난집주민이때때로아주하찮은것, 손에잡히는것이면무엇이든지꺼내오듯, 두려움속에서의자기망각은 손에잡히는것이면무엇이든좋다 는당혹스런현전화를불러온다. 이로써당혹스런망각은예기까지도변양한다. 예기는억압된예기또는당혹스런예기가된다. 이런예기가순수한기다림이아님은물론이다. 두려움을실존론적으로가능하게하는특수한탈자적통일은일차적으로망각에서시숙한다. 망각은기존성의양상으로서, 현재와장래를그것들의시숙속에서변양한다. 두려움의시간성은 예기하면서-현전화하는- 망각 이다. 불안은근본정상성이다. 불안속에서기존의세계는무의의성으로가라앉는다. 세계는무화 ( 無化 ) 된다. 그러나현존재는그으스스함속에서적나라한자기의본래적존재를만나게된다. 이렇듯불안은현존재를회복가능한본래적피투성으로도로이끌어간다. 불안은본래적존재가능의가능성을개현한다. 따라서불안을구성하는기존성의특수한양상은 현존재를회복가능성앞으로이끌어감 이된다. 이렇듯불안은근원적으로기존성에근거한다. 그리고이기존성으로부터비로소장래와현재가시숙한다. 즉불안의장래와현재는, 회복가능성으로도로이끌어간다 는의미에서, 근원적기존존재로부터시숙한다. 이상의논의에서보듯, 정상성의두양상인두려움과불안은일차적으로는기존성에근거한다하더라도, 마음씀의전체에있어서양자는그때그때각기독자적으로시숙한다. 두려움이망각으로부터시숙한다면, 불안은넓은의미에서보자면회복으로부터시숙하다. 따라서두려움과불안은시숙의근원을달리하는것이다. 또한불안이결의성의장래로부터연원한다면, 두려움은자기상실적현재에서연원한다. 그러기에두려움은이현재를겁먹고두려워하는나머지그만큼더욱더현재속으로퇴락하는것이다. [ 읽기자료 ]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해는결코허공에뜬것이아니라, 언제나정상적 [ 情狀的 ] 인것이다. 현 은그때그때기분에의해등근원적으로개시되기도하고폐쇄되기도한다. 기분에젖어있음 [ 情調性 ] 으로해서현존재는자기의피투성앞에직면하지만, 그피투성은곧바로피투성으로서인식되지않고사람이어떤기분으로있는가하는데서훨씬더근원적으로개시되어있다. 던져져있다 [ 피투적존재 ] 함은실존론적으로는 이러저러한정상적상황으로있다 는뜻이다. 정상성 [ 情狀性 ] 은그러므로피투성에근거한다. 기분은내가그때마다일차적으로피투적존재자로있는모양새를나타낸다.(339-340, 481) 기분은자기의현존재로몰입하거나이반 ( 離反 ) 하는방식으로개시한다. [ 기분이현존재를 ] 그의피투성이라는사실앞에직면시키는것이 본래적으로노정하면서이든비본래적으로은폐하면서이든 실존론적으로가능한것은오직, 현존재의존재가그의미상부단히기존 ( 旣存 ) 으로있을때만이다. 사람들자신이그것인피투적존재자앞에 [ 현존재를 ] 직면시키는것이비로소기존을만드는것이아니라, 기존이라는탈자태가비로소 [ 현존재가 ] 정상적 [ 情狀的 ] 으로있다 는방식에있어서 자기를발견 할수있게하는것이다. 이해는일차적으로장래에근거하지만, 이와반대로정상성 [ 情狀性 ] 은일차적으로기존성에서시숙한다. 기분이시숙한다는것은, 기분의특수한탈자태가어떤장래와현재에속해있다는것이지만, 그것은물론기존성이이두등근원적탈자태에변양을가 ( 加 ) 한다는그런투로속해있다는것을가리킨다.(340, 481) 우리는두려움의시간성을제시하는것으로부터분석을시작한다. 두려움은비본래적정상성 [ 情狀性 ] 으로서성격지워졌다. 두려움을가능하게하는실존론적의미는어떤점에서기존성인가? [ 기존성이라는 ] 이탈자태의어떤양상이두려움의특수한시간성을특징짓는가? 두려움이란, 어떤위협적인것에직면해서그것을두려워하는것이다. 이위협적인것은현존재의현사실적존재가능에게유해하고, 배려되는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의권내 ( 圈內 ) 에서이미기술한바있는방식으로접근한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 ) 두려움의기분성격은, 두려움의예기가위협적인것을현사실적으로배려하는존재가능으로돌아오게한다는데있다. 위협적인것은 나 라는존재자를향해돌아와야만예기될수있고, 그렇게해서현존재가위협당할수있는것인데, 그러자면 를향해돌아온다 는그방향이미리일반적으로탈자적으로열려있어야한다. 두려워하면서예기하는것은자기를두려워하는것이고, 다시말하면 에직면해서두려워하는것 은그때마다 [ 자기의존재가능 ] 때문에두려워하는것 이다. 거기에두려움의기분성격과정감 ( 情感 ) 성격이있다. 두려움의실존론적 - 시간적의미는자기망각, 즉자기의현사실적존재가능에직면하여거기로부터당혹해서일탈하는자기망각에의해구성되는것이고, 그런당혹한일탈로서위협당하는세계 - 내 - 존재는용재자 [ 用在者 ] 를배려한다. ( ) 자기를위해두려워하는배려는자기를망각하고그래서일정한가능성을붙잡지못하고있기때문에, 극히신변적인가능성을찾아헤맨다. 모든가능한가능성, 즉불가능한가능성까지들고일어난다. 두려워하고있는자는어떤가능성에도머무르지못한다. 환경세계는사라지는게아니라, 그속에서어찌할바모르고갈팡질팡하는중에만난다. 두려움속에서의자기망각에는 손에잡히는것이면무엇이든좋다 는당혹스런현전화가속한다. 예컨대, 불난집주민이때때로아주하찮은것, 손에잡히는것이면무엇이든지꺼내는것은주지의일이다. 허공에떠있는가능성들의혼란을자기망각적으로현전화하면당혹하게되는데, 그런것으로서의당혹은두려움의기분성격을이루고있다. 당혹이가진망각성은예기까지도변양하여, 예기를억압된예기또는당혹스런예기로서성격짓거니와, 그런예기는순수한기다림과는구별된다.(341-342, 482-484) [ 자기의존재가능때문에 ] 자기를두려워하는것을실존론적으로가능하게하는특수한탈자적통일은일차적으로위와같이성격지워진망각에서시숙한다. 그런망각은기존성의양상으로서, 거기에속하는현재와장래를그것들의시숙속에서변양한다. 두려움의시간성은예기하면서- 현전화하는 -망각이다.(342, 484)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두려움의시간성과불안의시간성은어떤관계에있는가? 우리는불안의현상을근본정상성 [ 情狀性 ] 이라고부른바있다. 불안으로인해현존재는그가가장독자적으로던져져있다는사실에직면하게되고, 일상적으로친숙하던세계 - 내 - 존재의생소함이드러난다. ( ) 불안의대상은환경세계적존재자와는이제아무런적소성 [ 適所성 ] 도갖지않는다. 내가실존하는이세계는무의의성으로가라앉고, 그렇게해서개시된세계는존재자를단지무적소성이라는성격에있어서개현할수있을뿐이다. ( ) 그 [ 무적 ] 세계에부딪히면, 이해는불안에의해세계 - 내 - 존재자체로이끌려오고, 이렇게해서불안의대상 [ 즉, 세계 - 내 - 존재로서의현존재 ] 은동시에불안의 때문에 [ 세계 - 내 - 존재로서의존재가능 ] 이다. 에직면해서자기를위해불안해하는것 은기다림의성격도가지고있지않고, 일반적으로예기의성격도가지고있지않다. 하지만불안의대상은이미현존재하며, 현존재자신이다. 그렇다면불안은 장래 에의해구성되지않는가? 그렇다, 그러나예기라는비본래적장래에의해구성되는것은아니다.(342-343, 485-486) 불안속에서개시된세계의무의의성은배려가능한것의비성 ( 非性 ), 즉일차적으로배려되는것에기초를둔실존의존재가능을향한자기기투는 불가능하다 는것을노정한다. 그러나이불가능성의노정은실은어떤본래적존재가능이라는가능성이밝혀져오도록하는것을의미한다. 이노정작용은어떤시간적의미를가지고있는가? 불안은생소함속에던져진자로서의적나라한현존재때문에불안해한다. [ 현존재는불안으로인해생소함속에던져져서발가벗은현존재로된다는것때문에불안해한다.] 불안은 [ 현존재를 ] 가장독자적이고개별화된피투성이라는순수한사실로도로이끌어간다. 이렇게 도로이끌어가는것 은회피적망각 [ 비본래적기존성 ] 의성격을가지고있지않지만, 또한상기의성격도가지고있지않다. 그러나그와마찬가지로, 불안속에는이미실존을결의속으로회복하면서인수하는것도없다. 이에반해, 불안은 [ 현존재를 ] 회복가능한것으로서의피투성으로도로이끌어간다. 이렇게불안은본래적존재가능의가능성을함께노정하는바, 이본래적존재가능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그존재가능을 ] 장래적인것으로서회복함에있어 [ 동시에 ] 피투적 현 으로돌아가지않으면안된다. 회복가능성앞으로 [ 현존재를 ] 이끌어가는것이불안이라는정상성 [ 情狀性 ] 을구성하는기존성의특수한탈자적양상이다.(343, 486) 두려움을구성하는망각은현존재를당혹시켜서그로하여금포착되지않은세간적가능성들사이에서갈팡질팡하게한다. 이안절부절하는현전화와는반대로, 불안의현재는가장독자적피투성으로자기를도로이끌어가는가운데안주 ( 安住 ) 해있다. 불안은, 그실존론적의미상, 배려가능한것에자기를잃어버릴수가없다. 만일배려가능한것에자기를잃어버리는일이불안과비슷한정상성 [ 情狀性 ] 에서일어난다고하면, 그것은두려움이다. 일상적지성 [ 상식 ] 은두려움과불안을혼동한다. 설사불안의현재가안주해있는현재라하더라도, 그현재는결단에서시숙하는 순간 의성격을 [ 이미 ] 가지고있는것은아니다. 불안은 [ 현존재를 ] 어떤가능한결의의기분속으로이끌어갈뿐이다. 불안의현재는그자신이순간이고, 그현재만이순간일수있어서, 그불안의현재는순간을도약시키려고억제하고있다 [ 도약하게하는발판이다 ].(344, 486-487) 불안특유의시간성은, 불안이근원적으로기존성에근거하고이기존성으로부터비로소장래와현재가시숙한다는것이다. 이불안특유의시간성에주목하면, 불안이라는기분을두드러지게특징짓는위력이어떻게가능한가하는것이입증된다. 불안속에서현존재는완전히자기의적나라한생소함으로되돌아가고, 그생소함에의해 [ 마음을 ] 탈취당한다. 그러나이렇게탈취당함으로해서현존재는세간적가능성들로부터회수될뿐아니라, 동시에현존재에게는본래적존재가능의가능성이주어지는것이다.(344, 487) 불안은죽음을향해던져진존재로서의세계 - 내 - 존재로부터일어난다. 이렇게불안이현존재로부터솟아오르는것을시간적으로이해하면, 불안의장래와현재는, 회복가능성으로도로이끌어간다 는의미에서, 근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원적기존존재로부터시숙한다는것이다. 본래적으로는그러나불안은결의한현존재에있어서만솟아오를수있다. 결의한자는두려움이라는것을알지못한다. 그러나그는불안이그를방해하거나당혹시키지않는바로그기분일수있다는것을이내이해하고있다. 불안은 [ 현존재를 ] 무적 [ 無的 ; 공허한 ] 가능성들로부터해방하여본래적가능성을향해자유로워지도록한다.(344, 487-488) 정상성의두양상인두려움과불안이일차적으로는기존성에근거한다하더라도, 마음씀의전체에있어서양자는그때그때각기독자적으로시숙한다는점에서는그근원을달리한다. 불안은결의성의장래에서연원하고, 두려움은자기상실적현재에서연원하거니와, 두려움은이현재를겁먹고두려워하는나머지그만큼더욱더현재속으로퇴락한다.(344-345, 488) 3 퇴락의시간성근본적으로이해의시간적구조가장래라면, 정상성의시간적구조는기존성이다. 그러나우리가여기에서다룰마음씀의제3 의구조계기인퇴락은그실존론적의미를현재에둔다. 우리는앞서퇴락을예비적으로분석할때빈말, 호기심, 그리고애매성을논의한바있다. 그러나여기에서는호기심만이고찰의대상이된다. 그까닭은, 호기심에서퇴락의특수한시간성이가장용이하게보여질수있기때문이다. 현재라는시간적구조는현존재와존재자와의만남을가능하게하는지평을구성한다. 현재가제공하는탈자적지평안에존재자는생생하게임재 ( 臨在 ) 한다. 이현재의비본래적양상이현전화이다. 우리는앞서비본래적이해의현전화와두려움의현전화에대한논의를통해, 현전화의구체적모습을확인한바있다. 그런데호기심의현전화는비본래적이해의현전화나혹은두려움의현전화에비해예사롭지않다. 호기심은봄 ( 視 ) 의일상적존재양상이다. 호기심의눈은번들거린다. 호기심은무엇인가를보기위해여기저기를쏘다닌다. 그러고는가장가까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운것에는특수하게머무르지않는다. 그러기는커녕한번보기를얻자마자벌써다음것으로눈을옮긴다. 아직보지못한것 을향해돌진하는것이호기심의현전화이다. 호기심의현전화는극단적으로비본래적인현전화가된다. 이로써호기심의특징인무정착 ( 無定着 ) 이존재론적으로가능하게한다. 호기심을구성하는것은맥풀어진현전화이다. 맥풀어진현전화는부단히예기로부터뛰처달아난다. 호기심의현전화는가능성을예기하지않고, 오히려가능성을실제적인것으로서자기의갈망속에서열망하기만한다. 호기심의현전화는오직현재를위해현전화한다. 그러기에예기는말하자면예기자체를포기한다. 또한호기심은언제나 그다음의것 에머물고 이전의것 은금방망각하기에, 호기심이극성을부릴수록망각은증대한다. 호기심의시간성은 극단적비본래적현전화에서예기하고망각하면서있음 이다. 현재가달아나듯이발원하는것이호기심의시숙양상이다. 그런데호기심의이러한시숙양상은유한한시간성의본질에근거한다. 현존재는죽음에이르는존재이다. 그런데일상적현존재는, 이죽음의피투성에직면하면, 우선대개는거기로부터도피한다. 그러니까역으로말하자면, 현재가달아나듯이발원하는근원, 즉퇴락이자기상실로되는근원은, 죽음에이르는피투적존재를가능하게하는근원적이고본래적인시간성자체가된다. [ 읽기자료 ] 이해와정상성 [ 情狀性 ] 의시간적해석은, 그때마다그현상들 [ 이해와정상성 ] 에대해일차적인탈자태와만났을뿐아니라, 언제나동시에전체적시간성과도만났다. 일차적으로는장래가이해를가능하게하고기존성이기분을가능하게하지만, 그와마찬가지로마음씀의제3 의구성적구조계기인퇴락은그실존론적의미를현재에둔다. 퇴락의예비적분석은빈말, 호기심및애매성의해석으로부터시작하였다. 퇴락의시간적분석도동일한과정을취할것이다. 그러나우리의탐구는호기심의고찰에만한정한다. 그까닭은, 거기에서퇴락의특수한시간성이가장용이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게보여질수있기때문이다. 이에반해, 빈말과애매성의분석을위해서는 말 과해의 ( 解義 ; 해석 ) 의시간적구성이먼저해명되어있어야한다. (346, 489-490) 호기심은현존재의한두드러진존재경향이고, 이경향에따르면현존재는 볼수있음 을배려한다. 본다는, 봄 의개념과마찬가지로, 육안 ( 肉眼 ) 에의한인지에국한되지않는다. 넓은의미의 인지 는그 보임새 [ 外見, 外樣 ] 라는점에서, 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를그자체에즉해서몸으로만나게한다. 그렇게만나게하는것은현재에근거한다. 현재는일반적으로탈자적지평을제공하거니와, 그지평안에서존재자는생생하게임재적 ( 臨在的 ) 으로있을수있다. 그러나호기심이전재자 [ 前在者 ] 를현전화하는것은, 전재자곁에머물면서그전재자를이해하기위해서가아니라그냥보기만을위해서, 그리고한번봐두기만을위해서보기를구하는것이다. 이렇게자기자신속에갇혀있는현전화로서의호기심은, 그현전화에상응하는장래및기존성과하나의탈자적통일을이루고있다. 새로운것에대한갈망은 아직보지못한것 을향해돌진하기는하지만, 그현전화는예기로부터는탈출하려고한다. 호기심은시종일관비본래적으로장래적이지만, 그것은다시가능성을예기하지않고, 가능성을실제적인것으로서자기의갈망속에서열망하기만한다. 호기심을구성하는것은맥풀어진현전화이다. 그현전화는현전화할뿐, 부단히예기로부터, 즉그안에서현전화가맥풀린채로유지되고있는그예기로부터뛰쳐달아나려고한다. 이현재 [ 즉, 비본래적현전화 ] 는 [ 예기로부터 ] 뛰쳐달아난다 는강조된의미에서발원한다. 이렇게 [ 예기로부터뛰쳐달아난다는의미로 ] 발원하는호기심의현전화는그러나사상 ( 事象 ) 에몰두하기는커녕, 한번보기를얻자마자벌써다음것으로눈을옮긴다. 포착된특정한가능성의기대로부터부단히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 [ 비본래적 ] 현전화는호기심의특징인무정착 ( 無定着 ) 을존재론적으로가능하게한다. 현전화가예기로부터 [ 달아나듯이 ] 발원한다고하더라도, 그것은현전화가말하자면존재 [ 자 ] 적으로이해해서예기로부터분리되고, 예기를예기자신에게위임하는것이아니다.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것은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예기의한탈자적변양인데, 그것도예기가 [ 달아나는 ] 현전화에뒤따라달아난다는그런변양이다. 예기는말하자면예기자체를포기한다. 예기는더이상배려의비본래적가능성들을배려되는것에서부터자기에게도래케하지않는다. 만일도래케한다면, 그것은맥풀어진현전화를위한가능성들일뿐이다. 예기가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현전화에의해 [ 그현전화에 ] 뒤따라달아나는예기로탈자적으로변양하는것, 그것은심기혼란의가능성의실존론적 - 시간적조건이다.(346-347, 490-491) 뒤따라달아나는예기로인해현전화는더욱더현전화자신에내맡겨진다. 현전화는현재를위해현전화한다. 현전화를현전화속에가두어두기때문에, 심기혼란된무정착은무체류성 ( 無滯留性 ) 으로된다. 현재의이런양상은순간의극단적반대현상이다. 전자 [ 현재의무체류성 ] 에서는현 - 존재는도처에있으면서아무곳에도없다. 후자 [ 순간 ] 는실존을상황속으로끌고들어가서본래적현을개시한다.(347, 491) 현재가비본래적일수록, 즉현전화가자기자신으로돌아올수록 [ 현전화가독립적으로될수록 ], 현전화는일정한존재가능에직면해서거기로부터은폐하면서도주하지만, 그러나그렇게되면장래는피투적존재자로더욱더되돌아오지못한다. 현재가 [ 달아나듯이 ] 발원한다는데서는동시에망각이증대한다. 호기심이언제나이미 바로다음의것 에머물고 이전것 을망각했다는사실은, 호기심에서비로소생기는결과가아니라, 호기심자체의존재론적조건이다.(347, 491-492) 유혹, 평온, 자기소외, 자승자박등앞에서제시된퇴락의성격들은시간적의미에서보면,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현전화가, 그탈자적경향에따라, 현전화자신으로부터시숙하려고하는것을의미한다. 현존재의자승자박이라는이규정은한탈자적의미를가지고있다. 현전화에있어서실존이탈출한다는것은물론현존재가자신의자아나자기로부터분리된다는뜻이아니다. [ 호기심등 ] 극단적현전화에있어서도현존재는시간적임을면치못한다. 즉, 그는예기하고망각하면서있다. ( ) 호기심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유발하는것은, 아직보지못한것이넘겨다볼수없을만큼끝이없다는것이아니라,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현재의퇴락적시숙양식이다.(347-348, 492) 현재가 [ 달아나듯이 ] 발원한다는시숙양상은유한한시간성의본질에근거한다. 죽음에이르는존재속에던져져있는현존재는, 다소간분명하게노정되어있는이피투성에직면해서, 우선대개는거기로부터도피한다. 현재는그본래적장래와기존성으로부터발원하므로, 그렇게해서 [ 비본래적 ] 현재를우회 ( 迂回 ) 해서비로소현존재를본래적실존으로돌아오게한다. 현재가 [ 달아나듯이 ] 발원하는근원, 즉퇴락이자기상실로되는근원은, 죽음에이르는피투적존재를가능하게하는근원적이고본래적인시간성자체이다.(348, 492-493) 4 말의시간성개시성에서말의역할은분절이다. 말은이해, 정상성및퇴락에의해구성되는 현 의완전한개시성을분절된다. 따라서말은일차적으로는특정한탈자태에서시숙하지않는다. 그러나 에대해, 에관해, 을향해 말하는것이모두시간성의탈자적통일에근거하는이상, 말도시간적이다. 특히말은현사실적으로는대개언어에서자기를언표하고또우선은환경세계에대해배려적-담론적으로말을거는방식으로언표하므로, 말에서는현전화가우선적구성기능을갖는다. [ 읽기자료 ] 이해, 정상성 [ 情狀性 ] 및퇴락에의해구성되는 현 의완전한개시성은말에의해분절된다. 그러므로말은일차적으로특정한탈자태에서시숙하는것이아니다. 그러나말은현실적으로는대개언어에서자기를언표하고또우선은환경세계에대해배려적-담론적으로말을거는방식으로언표하기때문에, 현전화가우선적 ( 優先的 ) 구성기능을갖는것은물론이다.(349, 493-494)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에대해, 에관해, 을향해 말하는것이모두시간성의탈자적통일에근거하는이상, 말은그자신에있어서시간적이다. ( ) 일차적으로또현저하게이론적진술이라는의미에서는아니라하더라도, 말은그때마다존재자에관한논급이기때문에, 말의시간적구성의분석과언어형상 ( 言語形象 ) 의시간적성격의해명은, 존재와진리의원칙적연관의문제가시간성의문제성으로부터전개될때비로소착수될수있다. 그때에는표면적인명제론과판단론이계사 ( 繫辭 ) 로불구화 ( 不俱化 ) 된있다의존재론적의미도규정될수있게된다. 말의시간성, 즉현존재일반의시간성에입각해서비로소의의 ( 意義 ) 의성립이구명되고, 개념형성의가능성이존재론적으로이해가능하게될수있다.(349, 494) (2) 세계-내-존재의시간성앞서우리는개시성일반의시간성을논의하였다. 그렇다면이제는그러한시간적구조를가진현존재가일상적세계안에서살아가는구체적모습을그시간적구조에맞춰해석해보아야한다. 따라서이절의일차적주제는배시적배려의시간성에대한해명이된다. 어찌보면하이데거는이러한해명을통해자신의시간성분석이정당했음을입증하는듯하다. 1 배시적배려의시간성배시적배려의실존론적구조는적소케함이다. 도구의가장간단한취급에도적소케함이작용한다. 적소케함이란도구에게그것의용도성에맞게쓰임자리를지정해주는것이다. 예컨대우리가못박는 데 망치를 가지고 사용할때, 망치는적소성을갖게된다. 적소성은 을가지고 에 라는관계구조를갖고있다. 이관계구조에서... 을가지고 와... 에 는수단과목적의관계에해당한다. 그러니까적소성이가능하기위해서는배려가이미도구의용도성 (... 을위해 ) 에대한선행적이해를갖고있어야한다. 그런데이러한용도성에대한선행적이해가가능한까닭은배려가이미비본래적장래인 예기 라는시간적구조를갖고있기때문이다. 또한배려는용도성을예기하면서동시에망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치질에사용될도구인망치에게로돌아와그것을보유해야한다. 이렇게 돌아와보유함 이비본래적기존성인 보유 에근거함은물론이다. 그러므로망치질의현전화는예기와보유의탈자적통일안에서가능하게된다. 배시적배려의시간성은 예기하면서-보유하는현전화 이다. 그런데적소케함을구성하는시간성에는본질적인것이있다. 그것은바로특수한 망각 이다. 도구세계에서무아지경으로일에몰두하기위해서는, 자기를망각하지않으면안되는법이다. [ 읽기자료 ] 배려의시간성을분석하기위한시선방향을우리는어떻게획득하는가? 세계에몰입해서배려하면서있음을우리는환경세계내에서의교섭내지환경세계와의교섭이라고불렀다. 에몰입해있음 의범례적현상으로서우리가선택한것은용재자 [ 用在者 ] 를사용한다, 조작한다, 제작한다등과그것들의결여적내지무관심적양상들 [ 쉰다, 등한히한다 ] 이니, 요컨대일상적필요에속하는것에몰입해있음이다. 현존재의본래적실존도그런배려속에서유지된다 배려가본래적실존에대해무관심할때도마찬가지이다.(352, 497) 배려적교섭이일반적으로용재자 [ 用在者 ] 를배시적으로만날수있게되는것은, 그교섭이 어떤것 [ 도구 ] 을가지고어디에 [ 쓸모있게 ] 있다 는적소성 [ 適所性 ] 과같은것을이미이해하고있을때이다. 배려행위가행하는바, 에몰입해배시적으로발견하면서있음 은적소케함이니, 다시말하면적소성을이해하면서기투하는것이다. 적소케함이배려의실존론적구조를이루고, 배려는그러나 에몰입해있음 으로서마음씀의본질적틀에속한다면, 그리고마음씀쪽은시간성에근거한다면, 적소케함의가능성의실존론적조건은시간성의시숙의한양상에서찾아지지않으면안된다.(353, 499) 도구의가장간단한취급에도적소케함이작용한다. 적소케함의 어디에 는 무엇을위해 [ 용도성 ] 라는성격을갖는다 ; 그것을고려해서도구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사용될수있고, 사용되는것이다. 적소성의 무엇을위해, 즉 어디에 를이해하는것은예기 [ 비본래적장래 ] 라는시간적구조를갖는다. 무엇을위해 를예기하면, 배려는동시에 거기에 [ 못박는데 ] 적소성을갖는어떤것 [ 망치 ] 으로돌아올수있다 [ 비본래적기존 ]. 적소성의 어디에 를예기하는것은적소성의 무엇을가지고 를보유하는것과일치해서, 예기의탈자적통일에있어서도구를특수하게조작하면서 현전화 하는것을가능하게한다.(353, 499) 조작적교섭은단지적소케함의 어디에 와만관계하지않으며, 마찬가지로 무엇을가지고 와 [ 만 ] 관계하지도않는다. 적소케함은도리어 예기적보유 라는통일에서구성되므로, 거기에서연원하는 현전화 는, 배려가자기의도구세계속에몰두한다는성격을가능하게한다. 본래적으로전심진력하여 자기일에골몰하는것 은, 제품에만임하는것도아니고, 제작도구에임하는것도아니며, 양자에다같이임하는것도아니다. 시간성에근거를두고있는적소케함은, 배려가그속에서배시적으로활동하고있는제관계 [ 어디에, 무엇을가지고, 무엇을위해 ] 의통일을이미수립하고있는것이다.(353-354, 499-500) 적소케함을구성하는시간성에본질적인것은특수한망각이다. 도구세계에서무아지경으로실지로일에착수하고조작할수있기위해서는, 자기를망각하지않으면안된다.(354, 500) 적소케함은, 그것이도구연관에서무엇을교섭적으로만나게한다하더라도, 그자체로는 예기하면서-보유하는-현전화 라는탈자적통일에근거하지않으면안된다.(355, 501) 2 배시적배려로부터과학적인식으로의변양및그변양의시간적의미일상적세계안에서우리는세계내부적존재자를우선대개는용재자 ( 用在者 ) 로만난다. 그리고용재자가도구적성격을탈색하였을때비로소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과학적인식의대상인전재자 ( 前在者 ) 가가능하게된다. 이절의과제는배시적배려로부터과학적인식으로의변양을추적해나가는가운데그변양의시간적의미를읽어내는것이다. 배려에도일정한시 ( 視 ) 가작용한다. 그것이바로배시이다. 배시는배려가도구들의지시연관에적응하도록이끌어준다. 그러나배시가도구와의교섭을이끄는궁극적인시 ( 視 ) 는아니다. 배시 (Umsicht) 를이끄는시 ( 視 ) 는전망 (Übersicht) 이다. 배시가전체를둘러 (Um) 보는시 (sicht) 라면, 전망은그에앞서전체를내다 (Über) 보는시 (sicht) 에해당한다. 그러니까전망의본질은 적소전체성에대한일차적이해 이며, 그러한이해안에서현존재의배려는비로소가능하게된다. 그러나보다궁극적으로보자면, 전망역시하나의시 ( 視 ) 이므로전망을이끄는 > 빛 < 이있어야한다. 그 > 빛 < 이란바로적소전체성을완결짓는현존재의궁극목적이다. 전망도그 > 빛 < 을현존재의존재가능에서받아들이는것이다. 이처럼현존재의배려는고유한시 ( 視 ) 에따라이루어진다. 하이데거는이러한고유한시 ( 視 ) 를배려가지닌 그나름의독자적 > 인식 < (67, 100) 이라고도명명한다. 분명히배려는현존재의궁극목적과수단의관련속에서특정한 > 인식 < 계기를통해실현된다. 그러나이러한 > 인식 < 의계기는아직일반적의미의인식과는구별된다. 일반적의미의인식은진리를추구한다. 인식은진리를추구하기위해자기반성을필수요소로한다. 그러나배시 ( 혹은전망 ) 는그빛을현존재의존재가능성에서부여받으나, 그존재가능성자체를반성하지는않는다. 배시의목적은오직현존재의궁극목적에정위된채용재자를현전화하는것이다. 하이데거는이처럼 용재자를배시적으로-해석하면서가까이하는것 을특히고찰이라명명한다. 고찰의도식은 >... 이면 [ 원인, 동기 ],... 이다.< 가된다. 고찰은그때마다의필요성에따라용재자를가까이가져와현재화하는것에국한된다. 따라서고찰은, 달리말하면, 배시적현전화이다. 배시적현전화는도구연관의 보유 에근거한다. 현존재는이도구연관을배려하면서어떤가능성을 예기 한다. 그리고예기하면서보유하는가운데이미밝혀진것을더가까이가져오는것이고찰적현전화또는현재화가된다. 따라서고찰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적현전화는과학적인식에이를수없다. 물론고찰적현전화도어떤일정한의미에서는존재자를드러내나, 이러한드러냄은세계내부적존재자를도구로서사용하는현존재의기술적태도안에서이루어질뿐이다. 즉현존재의배려적교섭에서세계내부적존재자는현존재의존재가능성에따라그빛의조명아래용재자로서드러날뿐이다. 현존재의배려적교섭은존재자에대한과학적인식의태도가아니다. 현존재의배려적교섭은존재자를용재자로서드러내어사용할뿐이다. 이에반해과학적인식의태도는존재자를그자체에즉해드러내는인식적태도를의미한다. 따라서배려적교섭으로부터과학적인식으로이행하기위해현존재는우선용재자로부터도구적성격을벗겨내어그것을과학적이론의관찰대상인전재자로서확보해야한다. 용재자를전재자로서변양했을때에만현존재는전재자에대한과학적인식에이를수있다. 그렇다면용재자로부터전재자로의변양은어떻게가능한가? 앞서우리는이문제를이미논의한바있다. 이해로부터진술에이르는일련의과정이그것이다. 거기에서우리는진술을통해용재자를전재자로서확보한바있다. 그러나이해로부터진술에이르는과정도우리가과학적인식에도달하는 1단계에불과하다. 물론진술에서도용재자가전재자로변양된다. 그러나진술에서는어디까지나해당용재자자체만이도구들의지시연관으로부터분리될뿐, 해당용재자전체가과학적진술의대상으로변양되지는않는다. 즉진술은 이것은 이다. 라는형태를취할뿐, 과학적전칭명제의형태를취하지못하고있다. 따라서현존재는진술만으로는과학적인식에이를수없다. 과학적인식은우리에게하나의단계를더요구한다. 과학적진술에서는하나의도구가소속되어있던 자리 란더이상아무런의미도없다. 과학적진술에서는예컨대특정한망치가적소전체성안에서차지하던특정한자리가소멸할뿐아니라, 이런흔적지워내기는모든도구에로확대된다. 이제모든도구는적소전체성안에서의자기의 자리 ( 적소 ) 를떠나무차별적인공간-시간-위치로환원된다. 우리는바로여기에서물리적자연을만나게된다. 즉환경세계의존재자로부터그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경세계의한계가모조리철폐되는그곳에서, 즉환경세계의한계가철폐되는한극한에서, 인간현존재와물리적자연의만남은가능하게된다. 환경세계의한계가철폐됨으로써, 다시말해세계가탈세계화함으로써모든용재자는도구적성격을탈색하고과학적관찰대상으로변양된다. 이제과학은세계내부적존재자를순수하게밝혀내기위해가능한모든길을모색한다. 그러한모색을일컬어하이데거는주제화라고명명한다. 주제화는대상화 ( 객관화 ) 를포함한다. 더욱이과학적인식의연구분야가확정됨에따라그분야에접근하기위한특정한방법적지침도주어진다. 또한그러한연구분야에알맞은개념적구조와언어도예시된다. 이처럼존재자가과학적인식의주제가되는모든과정이주제화가된다. 그런데우리가이러한주제화에서특히주목하는것은, 이제는세계내부적존재자가과학자의눈앞에서꼼짝달싹못하는과학적실험의대상이되었다는점이다. 그것도어떤용도에실천적으로사용되기위해서가아니라오직자연의비밀을제공한다라는순수한목적에서봉사하기위해실험도구로전락했다는점이다. 여기에서하이데거는과학적주제화가갖는시간적구조 ( 시간성 ) 를찾아낸다. 그것은우리가앞서논의했던고찰의시간적구조와선명히대비된다. 고찰의현재는배시적현전화이다. 그러나과학적주제화의현재는 두드러진현전화 이다. 이제용재자는전재자로변양되어그야말로꼼짝없이관찰과실험의분석대상이되고만다. 또한고찰은현존재의어떤존재가능을예기한다. 그러나과학적주제화에서는전재자의피발견성만이예기된다. 여기에서는오로지자연에대한설명과예측만이문제된다. 또한고찰의기존성은도구의보유인반면, 과학적주제화의경우에는거기에해당하는계기가없다. 이것은아마자연에는역사가없기때문이니라. [ 읽기자료 ] 배시는용재적도구연관의적소성관련들속에서움직이고있다. 배시자신은다시, 그때그때의도구세계및거기에속하는공공적환경세계의도구전체에대해많든적든명시적으로전망 ( 展望 ) 하는데따라이끌리고있다. 이전망이란고작전재자들을추후적으로긁어모으는것이아니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전망의본질은적소전체성에대한일차적이해이다. 이렇게이해된적소전체성내부에서현사실적배려는그때그때활동하기시작하는것이다. 배려를밝혀주는전망은그빛을현존재의존재가능에서받아들인다. 그리고이현존재의존재가능을궁극목적으로해서마음씀으로서의배려가실존한다. 배려의전망적배시는, 그때그때 [ 도구를 ] 사용하고조작하는현존재에게, 보여진것 을해석하는방식으로, 용재자를더가까이가져온다. 배려되는것을이렇게특수하게, 즉배시적으로 - 해석하면서가까이하는것을, 우리는고찰이라부른다. 고찰특유의도식은 이면 [ 원인, 동기 ], 이다 [ 결과, 귀결 ], 즉, 예컨대이것저것이제작되어사용되고방지되어야한다면, 이런저런수단, 방도, 정세, 기회가필요하다는것이다. 배시적고찰은배려되는환경세계내에서의현존재의그때그때의현사실적처지를밝혀준다. 따라서배시적고찰은어떤존재자의전재적존재나그성질들을확인하는것만은아니다. 고찰속에서배시적으로가까워진것자체가손에잡힐만큼용재적으로있지않더라도, 또가장가까운시계 ( 視界 ) 안에임재 ( 臨在 ) 해있지않더라도, 고찰은수행될수있다. 배시적고찰속에서환경세계를가까이가져오는것은현전화한다는실존론적의미를갖는다. 왜냐하면현재화는현전화의한양상에불과하기때문이다.(359, 506-507) 배시적현전화는그러나여러겹으로정초된현상이다. 그것은우선 [ 첫째 ], 그때마다시간성의완전한탈자적통일에속한다. 그것은도구연관의보유에근거하는데, 현존재는이도구연관을배려하면서어떤가능성을예기한다. 예기하면서보유하는가운데이미밝혀진것을더가까이가져오는것이고찰적현전화또는현재화이다. 그러나 [ 둘째 ], 그고찰이 이면 이다의도식속에서움직일수있으려면, 배려는이미적소성연관을전망적으로이해하고있지않으면안된다. 이면으로언급되는것 [ 사상 ] 은이미이러이러한것으로서이해되어있어야한다. 이를위해서는도구의이해가술어화 ( 述語化 ) 로표현될필요는없다. 어떤것을어떤것으로서라는도식은이미선술어적구조속에서밑그림그려져있다. 으로서 - 구조 는존재론적으로는이해의시간성에근거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한다. [ 셋째 ], 현존재가어떤가능성, 즉여기서는어떤 을위해 [ 용도성 ; 못박기 ] 를예기해서 그러기위해 [ 특정한용도성 ; 망치질 ] 로돌아오기만하면, 즉한용재자를보유하기만하면, 거꾸로이예기적보유에속하는현전화는, 이보유되어있는것 [ 용재자 ] 에서출발하여, 이것이 을위해 [ 용도성 ] 를지시하고있다는것을더분명하게가까이가져올수있다. 가까이가는고찰은, 현전화의도식에서, 가까워져야할것 [ 용재자 ] 에자기를적합시키지않으면안된다. 용재자의적소성성격은고찰을통해비로소발견되는것이아니라단지가까워질뿐이고, 그리하여고찰은어디에 [ 못박는데 ] 어떤것 [ 망치 ] 을가지고적소하는것을, 바로그것으로서배시적으로보이도록할뿐이다.(359-360, 507-508) 이제까지획득한고찰의제단계에상응해서, 이론적태도의해석에는한층더제한이가해진다. [ 즉 ] 우리는세계-내-존재일반의시간적구성에육박하려는주도적의도하에, 용재자에대한배시적배려 가세계내부적으로눈에띄는 전재자의연구 로전환하는것만을탐구한다.(357, 504) 배시적으로작업도구를사용할때, 우리는 이망치는너무무겁다 거나 너무가볍다 고말한다. 망치가무겁다 는명제도배려적생각을표현할수있다. 그것은 망치가가볍지않다, 즉 망치를쥐는데힘이든다 또는 조작하기가힘들다 를의미한다. 이명제는또 우리가이미배시적으로망치로서알고있는목전의존재자는중량, 즉무게라는성질을가지고있다, 그것은받침대에압력을가하고있어서, 받침대를제거하면낙하한다 를의미할수도있다. 이렇게이해되는말은, 어떤도구전체와그적소성관련들을예기하면서보유하는지평에서얘기되는것은이미아니다. 위에서한말은어떤질량적존재자자체에고유한 [ 즉, 그존재자에성질로서속해있는 ] 것을주목하는데서나온것이다. 이때보여진것은작업도구로서의망치에고유한것이아니라, 중력의법칙하에있는물체로서의망치에고유한것이다. 너무무겁다거나너무가볍다는배시적말은이제 [ 망치를전재적물체로보는데서는 ] 더이상아무의미도갖지않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다. 다시말하면, 지금만나는존재자는, 그것과관계해서그존재자가너무무겁다거나너무가볍다고간주될수있는것 [ 즉, 적소성 ] 을아무것도그자신제공하고있지않다.(360-361, 508-509) 이렇게변양된말에서말의대상, 즉무거운망치가다르게나타나는까닭은어디있는가? 그것은, 우리가조작을단념하는데있는것도아니고, 또한우리가이존재자의도구성격에서단지눈을떼는데 [ 度外 視 ] 있는것도아니며, 도리어만나고있는용재자 [ 用在者 ] 를우리가전재자 [ 前在者 ] 로서새롭게눈을붙이는데 [ 着 目, 注 視 ] 있는것이다. 세계내부적존재자와의배려적교섭을이끌고있는존재이해가전환된것이다. 그러나용재자를배시적으로고찰하는대신, 그것을전재자로서포착함으로인해, 이미학문적태도가구성되는것인가? 뿐더러용재자도학문적탐구와규정의주제가될수있으니, 예컨대환경세계를연구할때역사 [ 학 ] 적전기 ( 傳記 ) 와연관해서 환경 을연구하는경우가그렇다. 일상적으로용재적인도구연관, 그역사적발생, 이용, 현존재에있어서의그현사실적역할등은경제학의대상이다. 용재자는학문의객관이될수있기위해그도구성격을상실할필요가없다. 존재이해의변양이사물에대한이론적태도의발생에대해반드시구성적이라고는생각되지않는다. 확실히그렇다 만일 [ 여기서말하는 ] 변양 이 [ 존재 ] 이해속에서이해된목전의 존재자의존재양식의변화 를의미한다면.(361509-510) 이론적태도가배시에서발생하는것을최초로특징짓기위해, 우리는 하나의방식 을세계내부적존재자인물리적자연의이론적파악의기초에놓았는데, 그방식에서보면, 존재이해의변양은 전환 과같은것이다. 망치가무겁다는물리학적진술에서는, 만나는존재자의도구성격이간과되고있을뿐아니라, 그것과함께모든용재적 [ 用在的 ] 도구에속하는것, 즉그것의 자리 도간과되고있다. 자리 는아무렇지도않게된다. 이것은전재자 [ 前在者 ] 일반이자기장소를잃는다는것이아니다. 자리는하나의 시공상 ( 時空上 ) 의위치, 다른점과비교해서아무특징도없는세계의점으로된다. 그리하여환경세계적으로제한되어있는, 용재적도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의자리의다양성은순수한위치의다양성으로변양될뿐아니라, 환경세계의존재자는모조리한계를철폐하게된다. [ 이제 ] 일체의전재자가주제로되는것이다.(361-362, 510) 바로지금의경우, 존재이해의변양에는환경세계의한계철폐가속한다. 이제전재성 [ 前在性 ] 이라는의미에서존재를이해하는것이주도적으로되거니와, 이를실마리로하면, 한계철폐는동시에전재자 [ 前在者 ] 의영역의한계획정이된다. 이주도적존재이해에서연구되어야할존재자의존재가더적합하게이해되면될수록, 그리고이와함께, 존재자전체가학문의가능한사상영역 [ 事象 1 域 ] 으로서그근본규정에서더적합하게분절되면될수록, 방법적물음의그때그때의전망은더욱더확실해진다.(362, 510) 학문의역사적발전내지그존재론적발생에대한고전적예는수학적물리학의성립이다. 수학적물리학의형성에대해결정적인것은, 사실관찰을종래보다더존중한데있는것도아니고, 자연의제경과를규정하는데수학을응용한데있는것도아니며 자연자체를수학적으로기투한다는데있다. 이기투가항구적전재자 [ 前在者 ]( 물질 ) 를선행적으로발견하여, 양적으로규정가능한그구성계기들 ( 운동, 힘, 장소, 시간 ) 에대한주도적조망에지평을열어준다. 이렇게기투된자연의빛속에서비로소사실이라는것이발견될수있고, 이기투에입각해서규제적으로규정된실험을위한단초가놓여질수있다. 사실과학의정초가가능했던것은오직, 단순한사실이란원칙적으로없다 는것을연구자들이이해했기때문이다. 자연의수학적기투에있어서도일차적으로결정적인것은, 수학적인것그자체가아니라, 기투가어떤아프리오리를개시한다는것이다. 이런까닭에, 수학적자연과학이과학의전범적 ( 典範的 ) 성격을갖는것도그특수한정밀성이나만인에대한구속성에있는게아니라, 이과학에서는주제적존재자가, 존재자일반이유일하게 [ 항구적전재자로서양적으로규정가능한구성계기에서 ] 발견될수있는바와같이, 그렇게발견된다는점에, 즉존재자의존재틀을선행적으로기투한다는점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있다. 주도적존재이해의근본개념의확립과더불어, 방법의실마리, 개념성의구조, 거기에귀속되는진리와확실성의가능성, 근거제시와증명의양식, 구속성의양상및전달양식등이결정된다. 이계기들의전체가과학의완전한실존론적개념을구성하는것이다.(362-363, 510-511) 그때마다이미어떻게든만나는존재자를과학적으로기투하면그존재자의존재양식을분명하게이해하게되고, 더욱이그렇게함으로써세계내부적존재자를순수하게발견하기위한가능한길이밝혀지는것이다. 이 [ 과학적 ] 기투행위의전체, 즉존재이해의분절, 존재이해에의해인도되는사상영역 [ 事象 1 域 ] 의획정및당해존재자에적합한개념성의밑그림등기투행위를일괄해서우리는주제화라부른다. 주제화가노리는것은, 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가자기를순수한발견에대향 ( 對向 ) 해서기투하도록, 즉 객관이될수있도록, 그존재자를개현 ( 開現 ) 하는것이다. 주제화는객관화한다. 주제화는존재자를비로소정립하는게아니라, 존재자가객관적으로물어질수있고규정될수있도록그존재자를개현하는것이다. 세계내부적전재자 [ 前在者 ] 곁에서객관화되는존재는두드러진현전화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두드러진현전화 가특히배시의현재와구별되는것은, 당해과학의발견작용이유일하게전재자의피발견성만을예기한다는점에있다.(363, 511-512) 3 세계의시간성현존재에게는하나의세계가개시되어있어야한다. 세계는현존재와존재자의만남을가능하게하는선행적기반이다. 이런의미에서세계는초월이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세계가현존재를넘어서있는어떤실체라는뜻은아니다. 오히려현존재의 현 에는, 이미세계의개시성도함께들어있다. 현존재는세계로서있다. 세계란다름아니라, 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가펼쳐지는 그곳 이다. 따라서현존재의존재의미가시간성이라면, 세계의존재론적틀, 즉유의의성의통일도시간성에근거해야한다. 그렇다면세계의시간성은어떻게해석되어야하는가? 세계를가능하게하는실존론적 - 시간적조건을확인하기위해서우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는무엇보다먼저시간성의 3구조계기가갖는탈자적성격을다시살펴보아야한다. 장래, 기존성, 현재는각각탈자태이다. 탈자 (ἐκστατικὀν) 란자기를벗어남을의미한다. 그러나이렇다고해서탈자태가단순히... 로 탈출한다는것은아니다. 오히려탈자태의탈출에는 어디로 라는그행방이규정되어있다. 즉장래는 을향해 (zu...), 기존성은 에로 (auf...), 현전화는 에몰입해 (bei...) 라는탈출의방향을갖는다. 이각각의 어디로 가지평적도식이된다. 그런데탈자적지평은세탈자태각각에서모두다르다. 장래의지평적도식은현존재의 자기를위해서 라는궁극목적성이고, 기존성의지평적도식은 피투적현존재가내맡겨지는거기 가되며, 또현재의지평적도식은, 현존재가세계에몰입하여그때마다존재자를현전화하므로, 위하여 에의해규정된다. 그리고이 3지평적도식이서로시숙하는가운데시간의지평이구성된다. 세계란이렇게펼쳐진탈자적지평이며, 그러니까세계의존재론적틀은시간성에근거한다. 따라서세계는용재 ( 用在 ) 하지도, 전재 ( 前在 ) 하지도않는다. 오히려세계는시간성속에서시숙한다. 따라서현존재가시숙하는한, 세계도있다. 현존재가실존하지않는다면, 어떤세계도 > 현 <-존할수없다. 세계의시간성이란바로현존재의시간성이다. [ 읽기자료 ] 현존재가어떤도구연관과교섭하기위해서는, 현존재는비주제적일망정적소성이라든가하는것을이해하고있지않으면안된다. 즉, 현존재에게는하나의세계가개시되어있지않으면안된다. 세계는, 현존재가본질상세계 - 내 - 존재로서실존한다면, 현존재의현사실적실존과함께개시되어있는것이다. 그리고현존재의존재 [ 마음씀 ] 가완전히시간성에근거한다면, 시간성은세계 - 내 - 존재를, 이와함께현존재의초월을가능하게하지않으면안되거니와, 초월은초월대로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해서이론적으로든실천적으로든배려하는존재를떠받치고있다.(364, 512-513)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현존재의존재를우리는마음씀이라고규정하였다. 마음씀의존재론적의미는시간성이다. 시간성이 현 의개시성을구성한다는것, 그리고어떻게구성하는가하는것에대해서는이미제시된바있다. 현 의개시성에서는세계도함께개시되어있다. 그렇다면유의의성의통일, 즉세계의존재론적틀도마찬가지로시간성에근거하지않으면안된다. 세계의가능성의실존론적 - 시간적조건은, 탈자적통일로서의시간성이지평이라든가하는것을갖는다는데있다. [ 세 ] 탈자태는단순히 로의탈출 이아니다. 그렇기보다는탈자태에는탈출의 어디로 [ 行方 ] 가속한다. 탈자태의이 어디로 를우리는지평적도식이라부른다. 탈자적지평은세탈자태에있어서제각기다르다. 본래적이든비본래적이든, 거기에서현존재가장래적으로자기를향해도래하는그도식은 자기를위해 라는궁극목적성 [das Umwillen seiner] 이다. 현존재가던져진자로서, 정상성 [ 情狀性 ] 속에서자기자신에게개시되는그도식을우리는피투성이마주치 [ 당면하 ] 는그것 [das Wovor der Geworfenheit] 또는내맡겨지는 거기 [Woran der Überlassenheit] 로서파악한다. 이것은기존성의지평적구조의특징을이룬다. 현존재는, 던져진자로서자기자신에맡겨진채, 자기자신을궁극목적으로해서실존하면서, 에몰입해있음 으로서동시에현전화하고있다. 현재의지평적도식은위하여 [das Um-zu] 에의해규정되어있다.(364-365, 514) 장래, 기존성및현재의세지평적도식의통일은시간성의탈자적통일에근거한다. 전체적시간성의지평은, 현사실적으로실존하는존재자가그것에의거해서본질적으로개시되어있는그기반을규정한다. 현사실적현 - 존재와함께그때마다, 장래의지평에서는매양존재가능이기투되어있고, 기존성의지평에서는이미있음이개시되어있으며, 현재의지평에서는배려거리가발견되어있다. 세탈자태가가지고있는세도식의지평적통일은, 이와같이 [ 존재가능을위한 ] 궁극목적 과 [ 이를실현하기위한 ] 제수단관계 와의근원적연관을가능하게한다. 요컨대, 시간성의탈자적통일의지평적틀을근거로해서, 그때그때자기의 현 으로있는존재자에게는개시된세계라든가하는것이속해있는것이다.(365,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514-515) 시간성의시숙의통일에있어서, 현재가장래와기존성에서연원하는것과마찬가지로, 장래및기존성의두지평과등근원적으로현재의지평이시숙한다. 현존재가시숙하는한, 세계도있다. 현존재는자기의존재가시간성이라는점에서시숙하거니와, 그렇게시숙하면서현존재는시간성의탈자적 - 지평적틀을근거로해서, 본질적으로세계내에있다. 세계는전재 [ 前在 ] 하지도용재 [ 用在 ] 하지도않고, 시간성속에서시숙한다. 세계는세탈자태의 탈 - 자 와함께현 - 존한다. 현존재가실존하지않는다면, 어떤세계도현 -존하지않는다.(365, 515) (3) 현존재적공간성의시간성우리는앞서현존재의공간성을논의한바있다. 현존재의공간성이란현존재의공간적구조를의미한다. 우리는그러한현존재의공간적구조를 거리제거 와 방향을열음 이라는두가지의구조계기로서파악한바있다. 그런데현존재의존재의미가시간성에근거한다면, 현존재의공간성역시시간성에근거해야한다. 즉현존재의공간적구조를정초하는것은현존재의시간적구조가된다. 현존재의공간적구조는 방향을열음 과 거리-제거 이다. 현존재는이런공간적구조계기를통해용재자에게공간을허용한다. 먼저 방향을열음 이란용재자를어떤방역에로방향을열어취한다는것을의미한다. 예를들어작업장에비품하나를배치할때에도우리는작업장전체의방역을예견하면서그안에서그비품이놓일방향을결정하여열고있다. 그러므로 방향을열음 은, 시간적구조에서보자면, 용재자가귀속할가능한방역을 보유하면서예기 함에근거한다. 또한 방향을열음 은필연적으로거리제거를수반한다. 앞서도밝혔듯, 거리제거란용재자를배시적배려에편리하게 가까이함 을의미한다. 가까이함 은시간적구조로보자면, 현전화에근거한다. 따라서현존재의공간성도 보유, 예기, 현전화 ( 현재 ) 라는시간성의의해구성된다. 오직탈자적-지평적시간성을근거로해서만현존재는공간을용재자에게허용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할수있는것이다. 그런데특히 가까이함 속에서고지되는것은마음씀의본질적구조의하나인퇴락이다. 현존재의공간성의시간성은본질적으로퇴락의시간성이다. 그러기에 가까이함 에있어서는, 예기적망각이현재의뒤를따라발원한다. [ 읽기자료 ] 실존론적해석의진행과정에서보인현존재의공간적-시간적규정성이라는말이, 이존재자는공간안에그리고시간안에도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다 는의미가아니라는사실은상론할필요가없다. 시간성은마음씀의존재의미이다. 현존재의틀과그의존재방식들은존재론적으로는오직시간성을근거로해서가능할뿐이며, 이존재자가시간안에서현출하느냐않느냐하는것과는무관하다. 그렇다면현존재의특수한공간성도시간성에근거하지않으면안된다.(367, 517) 실존론적-분석적으로물어져야할것은현존재적공간성의가능성의시간적조건들이지만, 그공간성은그것대로세계내부적공간발견의기초가되고있다. 이보다앞서, 우리는어떤방식으로현존재가공간적인가하는것을상기해야한다. 현존재는, 현사실적으로퇴락하면서실존한다 는의미에서마음씀으로서만, 공간적으로존재할수있다. 이를소극적으로말하면, 현존재는결코, 당장이라도결코, 공간안에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것이아니다 라는것이다. 현존재는실재적사물이나도구처럼공간의한부분을채우고있는것이아니고, 따라서현존재를둘러싸고있는공간자체에대한현존재의한계도공간의한공간적규정에불과한것이아니다. 현존재는 문자그대로 공간을점유 [ 수용 ] 한다. 그는결코육체가채우고있는공간의한부분속에서전재적으로있기만하는것이아니다. 현존재는실존하면서그때마다이미어떤활동공간을자기에게허용하고있다.(367-368, 518) 현존재가자기에게공간을허용하는것은 방향엶 과 거리-제거 에의해구성된다. 그런것이실존론적으로현존재의시간성을근거로해서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떻게가능한가? ( ) 현존재의공간허용에는 자기에게방향을열면서 방역 ( 方域 ) 이라든가하는것을발견하는것이속한다. 방역이라는표현으로우리가당장의미하는것은, 환경세계적으로자리잡게될용재적 [ 用在的 ] 도구의가능한귀속성 ( 歸屬性 ), 즉 어디로 [ 歸屬할곳 ] 이다. ( ) [ 도구의 ] 귀속성은적소성과본질적관계를맺고있다. 귀속성은현사실적으로는언제나배려되는도구의적소성연관에입각해서결정된다. 적소성의제관련은개시된세계의지평에서만이해될수있다. 그세계지평으로인해비로소방역에따른귀속성의 어디로 라는특수한지평도가능하다. 자기에게방향을열면서방역을발견하는일은, 가능한 여기로 와 저기로 를탈자적으로 보유하면서예기하는 데근거한다. [ 현존재가 ] 자기에게공간을허용하는것은, 방향을열어서방역을예기하는것이고, 이것과등근원적으로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를가까이하는것 ( 거리-제거 ) 이다. ( ) 가까이하는것, 이와마찬가지로, 거리를제거당한세계내부적용재자의내부에서거리를짐작하고측정하는것은, 현전화에근거한다. 현전화는시간성의통일에속하고, 이시간성안에서방향엶도가능하게되는것이다.(368-369, 519) 가까이함으로해서일에몰두하여조작하고종사하는것이가능하지만, 그렇게 가까이함 속에서고지되는것은마음씀의본질적구조의하나인퇴락이다. 퇴락의실존론적 - 시간적구성의특징은, 퇴락에있어서는, 이와함께또한현전적으로정초된 가까이함 에있어서는, 예기적망각이현재의뒤를따라발원한다는것이다. 어떤것을그것이점하고있는저기로부터 [ 이쪽으로 ] 가까이하면서현전화하면, 그현전화작용은 저기 를망각하고자기자신속에소실 ( 消失 ) 되고만다. [ 저기 는온데간데없고현전화작용의현행 ( 現行 ) 만남는다.] 그러므로세계내부적존재자에대한관찰이그런현전화에서시작하면, 우선한사물이여기에전재적 [ 前在的 ] 으로만그것도어떤공간일반속에무규정적으로있는것같은가상이생기게된다.(369, 520) 오직탈자적 - 지평적시간성을근거로해서현존재는공간속으로틈입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 闖入 ) 할수있다. 세계는공간속에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는것이아니다 ; 그러나공간은세계의내부에서만발견된다.(369, 520) 3) 통속적시간우리가이제까지논의한것은현존재의시간성, 즉현존재의시간적구조였다. 그런데우리에게는이와는다른의미로이해되는시간도있다. 예컨대우리는흔히 시간이있다., 시간이없다. 혹은 시간이걸린다. 라고말하고있다. 우리는이런시간을계산하기도하고, 또한이런시간에준거해서생활을꾸려가기도한다. 이런의미의시간은, 굳이말하자면, 우리가배려하는시간이된다. 다시말해이런시간은우리에의해 배려된시간 이다. 그렇다면이런시간은구체적으로무엇인가? 또한이런시간은현존재의시간성과어떤관계에있는가? (1) 현존재의시간성의일부 ( 日附 ) 가능성 ( 한 : 日附可能性, 독 : Datierbarkeit, 영 : Datability) 우리의세계는일상적세계이다. 일상적세계안에서의배시적배려는 예기하면서 - 보유하고 - 현전화한다 는비본래적시간성에근거한다. 일상적세계안에서배시적으로배려하면서살아가는것이우리의삶의모습이다. 그런데우리는흔히, < 그때 > 에는 그것이발생해야할텐데, < 지금 > 은 < 저때 > 에실패해서놓친일이만회되어야지. 라고말하곤한다. 아마도이말에서언급된 < 그때 >, < 지금 >, 혹은 < 저때 > 야말로우리가일상생활에서가장흔히사용하는시간적개념일것이다. 그런데우리는이러한시간개념에대해아무런신경도쓰지않는다. 단지이러한시간개념속에서우리의삶을영위할뿐, 이러한시간개념이우리의실존구조와어떻게관련되는지는상상조차하지않는다. 그러나 < 그때 > 는... 하게될그때 이고, < 저때 > 는... 했던저때 이며, < 지금 > 은... 하는지금 이다. 우리는 < 그때 > 를예기하고, < 저때 > 를보유하며, < 지금 > 을현전화한다. 따라서배시적배려의비본래적시간성이우리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의일상적시간개념을실존론적-존재론적으로가능하게한다. 즉 < 그때 > 는예기에의해, < 저때 > 는보유에의해, < 지금 > 은현전화에의해가능하게된다. 그런데앞서의일상적시간개념에는주목할만한현상이있다. 이러한일상적시간개념에서는 < 지금 > 이중심이된다. 시간성과연관지어말하자면, 일상적시간개념에서는현전화가중심이된다. 즉 < 그때 > 는 지금이아직아님 이며, < 저때 > 는 지금은이미아님 이다. 이러한시간개념에서는 < 지금 > 이 아직없음 과 이미없음 의준거로서기능한다. 즉우리는 < 지금 > 을준거로일종의날짜를매기고있는것 ( 日附化 ) 이다. 일부화의준거는 < 지금 > 이다. 그런데 < 지금 > 은앞서밝혔듯, 현전화에의거한다. < 하는지금 > 속에는현재의탈자적성격이들어있다. 따라서 < 지금 >, < 그때 >, < 저때 > 라는일부가능성은현존재의탈자적시간성의반영물이다. 다시말해일부가능성은그것의실존론적-존재론적기초를현존재의시간성에두고있다. 이점을현존재의시간성쪽에서보자면, 현전화를중심으로예기의지평이 이후 로, 또한보유의지평이 이전 으로변양됨으로써, 일부화는가능하게된다. 즉일부화는탈자적시간성의지평이변양된것이다. 따라서일부화된시간도일종의지평을갖는다. 그래서우리는 < 지금 > 의지평을 하는오늘 로, 또 < 그때 > 의지평을 할이후 로, 또 < 저때 > 의지평을 한이전 으로신장폭 (Spannweite) 을늘여서일부화할수있는것이다. 지금은 식사중, 혹은 지금은휴식중 이라말하는것도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일부화의의미를간략히정리하면다음과같다. 일부화란이와같이 할그때 를 그때 로, 한저때 를 저때 로, 그리고 하는지금 을 지금 이라고환경세계적사건이나용재자에대한배려적해석에의거해서그 때 ( 날자 ) 를매기는것이다. 즉어떤존재자에대한현존재의배려적해석을추상하고그 때 만으로시간을지칭하는것이일부화이다. 그러므로일부가능성의근거는근원적으로배려적시간성에있는것이다. 가령 지금 은 지금 문두드리는소리가들리는때 등이그것이다. 그리고그것을우리는시간이라고한다. ( 소광희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2003], 249-250) [ 읽기자료 ] 그 [ 현존재 ] 는타자들과공존하면서, 평균적피해석성속에서자기를유지하고있다. 이피해석성은말로분절되고, 언어로언표된다. 세계 - 내 - 존재는언제나이미자기를표명해오고있다. 그리하여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에몰입하는존재로서는배려되는것자체에말을걸고논의하면서부단히자기를표명하고있다. 배시적으로분별하는배려는시간성에, 그것도 예기하면서 - 보유하고 - 현전화한다 는양상에근거하고있다. 그배려는계산하고, 계획하고, 예비하고, 미리배려하고, 예방하는것으로서, 음성으로들을수있든없든, 언제나이미다음과같이말하고있다 : 그때에는 그것이발생해야할텐데, 그전에 저일은끝장을보고, 지금은 저때에실패해서놓친일이만회되어야지. (406, 570) 배려는, 그때에서는예기적으로, 저때에서는보유적으로, 그리고지금에서는현전화적으로자기를표명한다. 그때속에는대개지금은아직아님이암암리에들어있다. 다시말하면, 그때는 예기하면서보유하는현전화 또는 예기하면서망각하는현전화 속에서언표되고있다. 저때속에는지금은이미아님이숨어있다. 저때 를가지고는 보유 가 예기적현전화 로서자기를표명한다. 그때와저때는다함께지금과관련해서이해되고있다. 다시말하면, 현전화 가독특한무게를가지고있다. 사실 현전화 는언제나 예기 와 보유 의통일속에서시숙하니, 설사뒤의양자 [ 예기와보유 ] 가 비예기적망각 으로변양된다하더라도마찬가지이다. 이렇게변양된양상에서는시간성은 현재 속에휩쓸려들어가고, 그현재가현전화하면서주로지금, 지금하고말하는것이다. 배려가가장가까운것으로서예기하는것은, 이제곧속에서언급되고, 당장입수된것이나잃어버린것은방금속에서언급된다. 저때속에서자기를표명하는 보유 의지평은이전이고, 그때에대한지평은이후이며, 지금에대한지평은오늘이다.(407, 570-571)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그러나그때는모두그자체로는 할그때이고, 저때는모두 한저때이며, 모든지금은 하는지금이다. 지금, 저때및그때라는자명해보이는이관계구조를우리는일부가능성 ( 日付可能性 : 날짜매길수있음 ) 이라부른다. 이때일부화 ( 日付化 ) 가현실적으로역수 ( 曆數 ; 캘린더 ) 상의날짜를고려해서수행되는가어떤가하는것은여기에서는완전히도외시되어야한다. 그런 [ 캘린더상의 ] 날짜들없이도지금, 그때, 저때는많든적든특정하게일부화되어있다. 일부화의규정성이없다고해서, 일부가능성의구조가결여되어있다거나우연적이라고말하는것은아니다. (407, 571) 본질적으로그런일부가능성을지니고있는것은무엇이며, 일부가능성은어디에근거하고있는가? 그러나이보다더부질없는물음이제기될수있을까? ( ) 왜현존재는배려되는것에말을걸때, 대개는음성을내지않더라도, 하는지금, 할그때, 한저때를함께언표하는가? 에대해해석하면서말할때, [ 현존재는 ] 자기를함께언표하기때문이다. 다시말하면, 용재자 [ 用在者 ] 에몰입해서배시적으로이해하는존재, 즉용재자를발견적으로만나게하는이존재를함께언표하기때문이고, 그리고자기를함께해석하면서말을걸고논의하는것이현전화에근거하고, 또이현전화로서만가능하기때문이다.(407-408, 572)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 는자기를해석한다. 그리고그것이다시금가능한것은,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 가 그자신에즉해서탈자적으로개방되어있어서 그자신에게그때마다이미개시되어있고, 이해하면서말하는해석에있어서분절가능한오직그때문이다. 시간성은현의밝혀져있음 [ 元照明 ] 을탈자적 - 지평적으로구성하기때문에, 시간성은근원적으로 현 에서이미언제나해석가능하며, 따라서숙지되어있는것이다. 자기를해석하는현전화를, 즉지금속에서말걸려져해석되는것을, 우리는시간이라부른다.(408, 573) 지금을말하면서우리는언제나이미, 반드시덧붙여말하지는않더라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도, 이것이것을하는때 를이해한다. 도대체왜그런가? 지금은 이라는것이존재자의현전화를해석하기때문이다. 하는지금속에는현재의탈자적성격이있다. 지금, 그때, 저때라는일부가능성은시간성의탈자적틀의반영 ( 反映 ) 이며, 그렇기때문에언표되는시간자체에본질적이다. 지금, 그때, 저때라는일부가능성의구조는, 이것들이시간성이라는줄기에서나오는것으로서그자신시간이다라는데대한증거이다. 지금, 그때, 저때라고해석하면서언표하는것은가장근원적시간고시 ( 時間告示 ) 이다. 시간성의탈자적통일은일부가능성을가지고는비주제적으로이해되고따라서그자체로서는식별됨이없는이해이다. 이시간성의탈자적통일에있어서, 그때그때현존재는자기자신에게세계 - 내 - 존재로서이미개시되어있고, 이것과함께세계내부적존재자가발견되어있다. 그러므로해석된시간도 현 의개시성속에서만나는존재자에입각해서그때마다이미 일부화 를갖는것이다. 예컨대, 지금 문두드리는소리가나는때 ; 지금 책을갖고있지않는때 등등.(408, 573-574) 탈자적시간성에서나오는동일한근원을근거로해서, 지금, 그때, 저때에속하는지평들도 하는오늘, 할이후, 한이전이라는일부가능성의성격을갖는다.(408-409, 574) 예기가그때속에서자기를이해하면서자기를해석하고, 이때현전화로서 [ 예기가 ] 예기하는것을그현전화하는지금에입각해서이해한다면, 그때를고시하는데는이미그리고지금은아직아님이함축되어있다. 이현전화적예기가그때까지를이해한다. 이해석은이그때까지를 즉, [ 그때까지는 ] 시간이있다 그사이로서분절하거니와, 이사이도마찬가지로일부가능성의관계를가지고있다. 이일부가능성관계는 하는그동안으로표현된다. 배려는거듭하는그때를고시함으로써, 그동안자체를다시예기하면서분절할수있다. 그때까지는몇개의그때부터 그때까지에의해분할되지만, 후자는그러나맨처음의그때의예기적기투속에처음부터포괄되어있었던것이다. 그동안의예기적 - 현전화적이해와함께존속 ( 存續 ) 이분절된다. 이지속은다시시간성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자기해석에서드러나는시간이지만, 이시간은배려속에서는그때그때잠깐동안 [ 잠시 ] 으로서비주제적으로이해된다.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가 [ 잠깐 동안 으로 ] 늘여진그동안을펼쳐놓는것은,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가그때역사적시간성의탈자적신장 ( 伸張 ) 으로서, 비록그자체로서인식되지는않았다하더라도, 자기에게개시되어있기때문이다. 그러나여기에고시되는시간이갖는 [ 일부가능성이외의 ] 다른또하나의독자성이나타난다. 즉, 그동안만이늘여지는것이아니라, 지금, 그때, 저때는모두일부가능성의구조와함께그때마다변화하는 늘임폭 [ 伸張幅 ] 을지닌 늘여짐 [ 伸張性 ] 을가지고있다 : 지금은, 휴식중, 식사중, 저녁때의, 여름날의 지금 이고 ; 그때는, 아침식사를할, 산에올라갈등등의 그때 이다.(409, 574-575) (2) 공공적시간과세계시간 ( 한 : 公共的時間, 독 : Die öffentliche Zeit, 영 : Public time) 우리의일상을구속하는시간은공공적시간이다. 우리는언제어디서건공공적시간에얽매여있다. 우리가타인은물론, 용재자나전재자를만나는것도, 현사실적으로는공공적시간의틀에준거해서이다. 그런데시간의공공화는추후적으로또때에따라일어나는것이아니다. 우리가태양의자식인이상공공적시간은필연적으로발생한다. 우리의삶은태양의운행리듬에맞추어영위된다. 예컨대일출 ( 日出 ) 은 하루의일과를시작할시간 을지정하고일몰 ( 日沒 ) 은 하루의일과를접을시간 을지정한다. 이런현상은어느시대건, 어느민족이건동일하다. 우리가 < 같은하늘아래 > 있는상호존재인한, 공공적시간은필연적이다. 그런데엄밀히말해공공적시간은, 앞서논의한배려적시간의일부화가보다진척된형태이다. 배려적시간의일부화가 할그때, 하는지금, 했던저때 로구성되어있다면, 공공적시간의구조는 지금은 하는시간 ( 혹은지금은 할시간 ) 이된다. 그러므로공공적시간에서는, 배려적시간의일부화에비해, < 지금 > 의우위가더욱강조될뿐더러, 본질적으로는현존재의목적과관련된적합성이문제시된다. 그로써공공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적시간은세계의성격을가지게된다. 지금은 할시간 에서문제가되는것은그시간이무엇을하기에적합한가의여부이다. 따라서공공적시간은본질적으로용도성 ( 하기위한 ) 의연관구조를갖게된다. 이것은바로우리가앞서논의했던세계의세계성인유의의성에해당한다. 그렇다면공공적시간도근본적으로는현존재의시간성의시숙에의해가능하게된시간이다. 또한현존재의자기지시적이해에의해펼쳐진지평이세계라면, 공공적시간은그러한세계의시간적변양태가된다. 따라서우리는시간성의시숙속에서공공화된이시간을세계시간이라불러도무방하리라. 우리는공공적시간안에서상호존재한다. 그러니까공공적시간은상호존재의준거의틀을마련해주어야한다. 예컨대등교시간, 출근시간, 하교시간등이정확히규정되어야한다. 그래서문제가되는것이시간측정이다. 시간측정은공공적시간의공공성을구성하는기초가된다. 또한시간측정은필연적으로시간측정기를요청한다. 시간측정기가없다면, 시간은측정될수없는것이다. 그래서인간이계발한기계가바로시계이다. 시계의역사를더듬어보면, 시계는처음에는천체의운행에따른원시적인시간측정방법등과같은자연적기계로서출현했다. 여기에이미 배려되는시간의두드러진공공화 가있었다. 그런데현존재는근본적으로퇴락한존재자이다. 때문에현존재는시간에더손쉽게접근하기위해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등으로부터회중시계, 손목시계, 그리고오늘날은디지털시계에이르기까지인공적시계의개발을서둘러왔다. 따라서세계시간의공공화는시간계산의개량및시계사용의세련화와일치해서더욱더강화되고고정화되었을뿐더러, 마침내는세계시간의일부 ( 日附 ) 가능성및유의의한세계성격을망각한채시간을단순히시계사용의지평에서평균화된양식으로헤아려져드러나는 < 순수한지금의연속체 > 로표상하기에이르렀다. 실로이러한망각이란세계시간과시간계산및시계가근원적으로는현존재의탈자적-지평적시간성에근거하고있음에대한망각이요, 또한이러한망각으로인해, 배시적으로배려되던세계시간은단순히시계사용에서 이념적으로표상되는시간 으로변양되고만것이다. 그러니까여기에바로통속적시간개념이유래하는직접적원천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있는것이다.( 신상희, ꡔ시간과존재의빛ꡕ, 한길사, 2000. 119-120쪽참조.) [ 읽기자료 ] 시간의공공화는추후적으로또때에따라일어나는것이아니다. 오히려, 현존재가탈자적-시간적현존재로서그때마다이미개시되어있고, 또실존에는이해적해석이라는것이속해있기때문에, 배려속에서이미시간은공공화되어있는것이다. 사람들은시간에맞추어생활하기때문에, 시간은어떻게든누구에게나눈에띄지않을수없다.(411, 578) 현존재는본질적으로던져진자로서퇴락적으로실존하기에자기의시간을시간계산의방식으로배려하면서해석한다. 이로써시간계산속에서시간의본래적공공화는시숙한다. 그리하여다음과같이말하지않을수없다 : 현존재의피투성이, 공공적으로시간이주어져있다는데대한근거이다.(411-412, 578) 공공적시간은그안에서세계내부적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가만나는바로그시간으로서입증된다. 이것은이비현존재적존재자를시간내부적존재자라고명명할것을요구한다. 시간내부성의해석은공공적시간의본질을더욱더근원적으로통찰하게하고, 동시에그시간의존재를규정하는것도가능하게한다.(412-579) 현존재에게는자기의세계의현실적개시성과함께자연이발견되어있다. 현존재는자기의피투성에있어서낮과밤의교체에맡겨져있다. 낮은그밝음을가지고보는것을가능하게하고, 밤은그것을탈취한다. (412, 579) 존재는, 배시적으로배려하면서 볼수있음 을예기하고자기의매일매일의일에입각해서자기를이해하기때문에, > 날이밝으면, 그때에는 < 이라하면서, 자기에게자기의시간을부여한다. 배려되는 > 그때 < 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밝아오는것과가장가까운환경세계적적소성연관속에있는것, 즉 해가떠오르는것 에근거해서일부화된다. 해가떠오를 그때 는 할시간이다. 그리하여현존재는, 자기에게받아들여야할시간을일부화한다. ( ) 배려는빛과열을보내주는태양의 > 용재적 [ 用在的 ] 존재 < 를이용한다. 태양은배려속에서해석되는시간을일부화한다. 이일부화로부터 > 가장자연스런 < 시간척도인 하루 가생긴다. ( ) 즉, 하루를분할할수있게한다. 분할은다시시간을일부화하는것, 즉 운행하는태양 을고려해서수행된다. 일출 ( 日出 ) 과마찬가지로일몰 ( 日沒 ) 과정오는이천체가점하는두드러진 > 자리들 < 이다.(412-413, 579-580) 빛과열을보내주는천체 [ 태양 ] 와, 하늘에서점하는그천체의두드러진 > 자리들 < 에근거해서수행되는이일부화는, > 같은하늘아래 < 있는상호존재에있어서는 > 누구에게나 <, 어느때고, 같은방식으로, 어느한계안에서는, 우선일치해서행해질수있는시간고시이다. 일부화하는것 [ 예 ; 태양, 달, 별과그것들의위치 ] 은환경세계안에서언제나접할수있지만, 그렇다고그때그때배려되는도구세계의범위에국한되어있지는않다. 도리어도구세계속에서는이미언제나환경세계적자연이나공공의환경세계가함께발견되어있는것이다. 공공의일부화속에서사람들은각자자기의시간을자기에게고시한다. 동시에각자는공공의일부화에의존해서 > 계산 < 할수있기때문에, 공공의일부화는공적 ( 公的 ) 으로이용할수있는척도를필요로한다. 이일부화는시간측정이라는의미에서시간을계산한다. 시간측정은따라서시간측정기, 즉시계를필요로한다. 요지 ( 要旨 ) 는다음과같다 : 던져지고세계에떠맡겨져서, 자기에게시간을주는 [ 비본래적 ] 현존재의시간성과함께, 이미시계라고하는것, 즉규칙적으로반복하면서예기적현전화속에서접근할수있게되는하나의용재자 [ 用在者 ] 가발견되어있는것이다. 던져져서용재자 [ 시계 ] 에몰입하는존재 [ 일상적현존재 ] 는시간성에근거해있다. 시간성은시계의근거이다. 시간성은, 시계의현사실적필요성의가능조건으로서동시에시계가발견될가능성을제약하고있다 ; 왜냐하면세계내부적존재자의피발견성과함께만나는태양의운행을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 만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이, 자기를해석하는현전화로서, 공공의환경세계적용재자에입각한일부화를가능하게하고동시에요구하기때문이다.(413, 580-581) > 자연의시계 < 는시간성에근거하는현존재의현사실적피투성과함께그때마다이미발견되거니와, 이자연의시계가비로소쓰기에알맞는시계의제작과사용을촉진하고동시에가능하게한다. 그러니사실, > 인공적시계 < 는자연의시계에서일차적으로발견된시간을인공적으로통용 ( 通用 ) 시키는것이므로, > 인공적 < 시계는 > 자연의시계를표준으로삼지 < 않으면안된다.(413-414, 581) 배려적예기속에서해석되는 > 그때 < 를일부화하면, 그일부화속에는 날이밝을그때는하루일을할시간이다 가숨어있다. 배려속에서해석되는시간은, 그때마다이미 하는시간 으로서이해되고있다. 그때그때 > 이러이러한지금 < 은그것으로서 [ 하는지금으로서 ] 그때마다적합하거나부적합하다. > 지금 < 은 따라서해석되는시간의양상은모두 > 하는지금 < 일뿐아니라, 본질상일부화될수있는것으로서, 동시에적합성과부적합성의구조에의해규정되어있다. 해석되는시간은애당초부터 > 하는시간 < 또는 > 에적합하지않는때 < 라는성격을가지고있다. 배려의 예기하면서 - 보유하는현전화 는시간을 하기위해 [ 용도성 ] 와의관계에서이해하지만, 하기위해 는그것대로마지막에는현존재의존재가능의궁극목적에달라붙어있다. 공공화된시간은이 하기위해 의관계로써, 우리가저앞에서유의의성이라고배운바있는그구조를드러내고있다. 유의의성은세계의세계성을구성한다. 공공화된시간은 하는시간 으로서본질적으로세계성격을가지고있다. 그러므로우리는시간성의시숙속에서공공화되는시간을세계시간이라부른다. 그것이그렇게일컬어지는소이 ( 所以 ) 는, 그런일이어찌있을수있으랴마는, 그시간이세계내부적존재자로서전재적 [ 前在者 ] 으로있기때문이아니라, 그시간이실존론적 - 존재론적으로해석된의미에서세계에속하기때문이다. (414, 581-582)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피투적 - 퇴락적으로실존하는현존재에속하는 자연적시계의개시성 속에는동시에현사실적현존재에의해그때마다이미수행되는 배려되는시간의두드러진공공화 가있다. 이공공화는시간계산의개량및시계사용의세련화와일치해서더욱더강화되고고정화된다.(415, 582) 공공의시간계산을가능하게한다는의미에서시계는자연의시계를표준으로해서조정되어야하지만, 그때그때의 [ 자연의 ] 시간이은폐되어읽을수없는경우에도, 시계라는도구의사용은현존재의시간성에근거하는것이기때문에, 현존재의시간성은 현 의개시성과함께배려되는시간의일부화 [ 日附化 ] 를비로소가능하게한다. 자연발견의진보에발맞추어자연적시계에대한이해도발달하는것이어서, 낮이라든가그때그때의분명한천체관측에서상대적으로독립된시간측정의새로운가능성을위한지시도주어지는것이다.(415, 583) 시간측정은시간을현저하게공공화하므로, 그결과이길위에서, 우리가흔히시간이라고부르는것이비로소주지되는것이다. 배려에있어서는각각의사물에제각기의시간이할당된다. 각각의사물이시간을갖고또모든세계내부적존재자와마찬가지로시간을가질수있는까닭은, 오직그사물이일반적으로시간안에있기때문이다. 세계내부적존재자가그내부에서만나는그시간을우리는세계시간이라고알고있다. 세계시간은, 그것이귀속하는시간성의탈자적 - 존재론적틀을근거로해서, 세계와동일한초월을가지고있다. 세계의개시성과함께세계시간이공공화되므로, 그결과, 세계내부적존재자에몰입해서시간적으로배려하는모든존재는, 이세계내부적존재자를시간안에서만나는존재자로서배시적으로이해하는것이다.(419, 587) 만일 객관적 이라는것이세계내부적으로만나는존재자의 즉자적 - 전재적 [ 前在的 ]- 존재 를의미한다면, 그안에서전재자 [ 前在者 ] 가운동하고정지하고하는 시간 은객관적이아니다. 그러나마찬가지로, 주관적 이라는것이한주관내의전재 [ 前在 ] 존재나사건이라고이해된다면,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시간은주관적이아니다. 세계시간은모든가능한객관보다도더객관적이니, 그까닭은세계시간이세계내부적존재자의가능성의조건으로서, 세계의개시성과함께, 그때마다이미탈자적 - 지평적으로객관화되기때문이다. 그러므로세계시간은, 칸트의견해와는반대로, 심리적인것에있어서와마찬가지로물리적인것에있어서도직접적으로눈에띄는것이지, 심리적인것을거치는우로 ( 迂 D) 에서비로소발견되는것이아니다. 당장은시간은바로하늘에서나타난다. 하늘은사람들이자연스럽게시간에순응하면서시간을발견하는곳이다. 그리하여시간은하늘과동일시되기도하는것이다.(419, 588) 그러나세계시간은또모든가능한주관보다도더주관적이니, 왜냐하면세계시간은, 현사실적으로실존하는 자기 의존재가곧마음씀이라는충분히이해된의미에서, 이존재를비로소함께가능하게하기때문이다. 시간은주관안에도객관안에도, 아니안에도밖에도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지않고모든주관성과객관성보다훨씬이전에존재한다. 그까닭은, 시간은이더이전을가능하게하는조건자체이기때문이다.(419, 588) (3) 통속적시간개념발생 ( 한 : 通俗的, 독 : vulgär, 영 : ordinary) 통속적시간이란우리가시계속에서만나는시간이다. 그시간은미래에서과거에로등속도로흐르는 < 지금 > 의무한한연속이다. 이런시간을정초한이는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런시간은우리가시계속에서시계바늘을따라세어볼수있는시간이다. 그런데하이데거는이렇게우리가시계바늘에따라시간을세어보는것조차실존론적으로는시간성에근거함을밝히고있다. 참으로재미있는해석이다. 시계속에서 < 지금 > 은금방달아난다. 또아직오지않은 < 지금 > 은금방다가온다. 그러니까우리는 < 지금은이미아님 > 의지평을보유하면서 < 지금은아직아님 > 의지평을예기하면서, < 지금 > 바늘의위치를현전화하면서세어가는것이다.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시간을세는것조차 예기하면서보유하는현전화 에근거한다. 시계속의시간은 < 지금-시간 > 이다. 이런시간에는우리가앞서논의한배려적시간의일부 ( 日附 ) 가능성, 신장성 ( 伸長性 ), 세계시간의유의의성따위가말끔히지워져있다. 다시말하자면현존재의근원적인탈자적-지평적시간의최소한의흔적마저수평화되어은폐된시간이 < 지금-시간 > 이다. 그러기에 < 지금-시간 > 은지평이없다. 단순히전재자 ( 前在者 ) 로서의 < 지금 > 이자기동일적으로반복될뿐이다. 우리가시계속의시간을 < 지금-시간 > 이라명명한이유는바로여기에있는것이다. 그러면 < 지금 -시간 > 의실존론적-존재론적유래는어디에있는가? 달리말하자면세계시간의수평화와시간성의은폐는어디에근거하는가? 우리는그단서를 < 지금-시간 > 이갖는무한성에서찾아보기로한다. < 지금-시간 > 은무한하다. 아무리 < 지금-연속 > 을 끝까지생각 해보아도 끝 은보이지않는다. 그러나과연우리현존재는무한한시간을살고있는가? 오히려태어남과동시에죽음을향해질주하는것이우리네현존재의인생살이가아니던가? 그렇다면 < 지금-연속 > 의무한성속에는현존재의퇴락적인자기상실이도사리고있는것이아닐까? 현존재는선구적결의성으로특징지어진자기의본래적실존에직면하여우선대개는거기로부터도피한다. 다시말하면, 현존재는죽음으로부터눈을돌리고있다.... 로부터눈을돌리는것 도종말을향한탈자적장래의한양상이다. 더욱이세인은, 자신에게만은죽음이유예되어있기에, 근원적인탈자적-지평적시간성의은폐를더욱강화한다. 그러나시간성은아무리은폐되었다고하더라도완전히은폐되지는않을것이다. 현존재는유한하니까. < 지금 > 은연속적으로사라진다. 끝없이무한히사라져버리는것이 < 지금-시간 > 이다. 그러나세인이아무리 시간은사라진다 라고항변해도거기에는이미 시간은붙잡아매여지지않는다 는그의안타까움이서려있으며, 또한이런안타까움은 시간을붙잡아매려는 그의애절함을근거로해서만가능한것이다. 따라서만약우리가시간을붙잡아매려고한다면, 그것은과거로이끌려가는순간들을벌써망각하고, 순간들을다음다음으로다가올것이라고비본래적으로예기함에근거하는것이아니겠는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가? 비본래적실존의 현전화하면서망각하는예기 의비본래적시간성이 시간이사라진다 는통속적경험의가능조건이되는것이다. 현존재는 자기를앞지른다 는점에서장래적이다. 때문에현존재는 < 지금연속 > 을 미끄러지면서 - 사라지는것 으로서예기적으로이해하지않을수없다. 현존재는자기의죽음에대한 덧없는 앎에의거해서덧없는시간을아는것이다. 덧없는인생을붙잡으려하니, 덧없는시간을사는것이다. 따라서세인이 시간이사라진다 라고감개무량하게말할때, 우리는도리어거기에감추어진현존재의시간성의유한한장래성을읽어낼수있는것이다. 탈자적-지평적시간성과일부 ( 日附 ) 가능한유의의한세계시간, 그리고통속적시간은서로합치하지않는다. 우선현재의시간성에서보자. 탈자적 - 지평적시간성은일차적으로장래로부터시숙한다. 그러나통속적시간이해는시간의근본현상을 < 지금 > 속에서본다. 이절단된 < 지금 > 을우리는 현재 라고부른다. 이러한 < 지금 > 으로부터는본래적현재인 순간 을해명할수없다. 장래의시간성에서도마찬가지이다. 탈자적으로이해된장래, 일부화될수있는유의의한 < 그때 >, 그리고 아직아님 으로서의단순한 < 지금 >, 즉 미래 라는통속적개념은서로합치하지않는다. 기존성의시간성에서도마찬가지이다. 탈자적기존성, 일부화될수있는유의의한 < 저때 >, 그리고 이미아님 으로서의단순한 < 지금 >, 즉 과거 라는통속적개념은서로합치하지않는다. [ 읽기자료 ] 일상의배시적배려에게는시간이라든가하는것은우선어떻게드러나는가? 배려하고도구를사용하는교섭에서시간이명시적으로접근될수있는것은어떤교섭에서인가? 현존재가자기를고려하면서시간을계산하는한, 시간이세계의개시성과함께공공화되고, 세계의개시성에속하는세계내부적존재자의피발견성과함께언제나이미배려되고있다면, 사람들이명시적으로자기를시간에순응시키는태도는시계사용에있다. 시계사용의실존론적 - 시간적의미는움직이는시계바늘을현전화하는데있다. 바늘의위치를현전화하면서따라가는것은세는것이다. 이현전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는예기적보유의탈자적통일에서시숙한다. 현전화하면서저때를보유한다함은, 지금 을말하면서, 이전 의지평, 즉 지금은이미아님 의지평을향해열려있음을의미한다. 현전화하면서그때를예기한다함은, 지금 을말하면서, 이후 의지평, 즉 지금은아직아님 의지평을향해열려있음을의미한다. 이런현전화속에서자기를시현 ( 示現 ) 하고있는것이시간이다. 그러면배시하고, 자기에게시간을받아들이고, 배려하는시계사용의지평에서노현하는시간의정의는어떻게되는가? 시간이란, 움직이는바늘을현전화하고세면서따라가는가운데시현되는세어진것이다. 따라서현전화는, 이전과이후에따라지평적으로열려있는보유와예기와의탈자적통일에서시숙한다. 이것은그러나시간에대해아리스토텔레스가내린정의, 즉 το υτο Υαρ ἐστιν ὁ χρόνος, ἀριϑμὸς κινήσεω ς κατὰ τὸ προτερον καὶ ὕστερον 시간이란곧이전과이후의지평에서만나는운동에있어서세어진것이라는정의의실존론적 - 존재론적해석이외에다른것이아니다.(420-421, 589-590) 시간의개념에대한후세의논의는모두원칙적으로아리스토텔레스의정의를따르고있다. 다시말하면, 후세의논의들은, 시간이어떻게배시적배려에서드러나는가하는형태로시간을주제화하고있다. 시간은세어진것, 즉움직이는바늘 ( 또는그림자 ) 의현전화에서 언표된것, 주제적이아니더라도 사념된것 이다. 움직여지는것을그움직임에서현전화할때지금여기, 지금여기등등으로말하게된다. 그렇게세어진것은지금들이다. 이지금들이제각기의지금에서방금이미 [ 지금이 ] 아니다 또 [ 금새 ] 아직지금은아니다로나타난다. 이런방식으로시계사용에서보여지는세계시간을우리는지금 - 시간이라부른다.(421, 591) 자기에게시간을주는배려가더자연스럽게시간을고려하면할수록, 그배려는더욱더언표된 [ 세어진 ] 시간자체에몰입해서머무르지않고, 그때그때각기제시간을가지고있는배려되는도구에자기를상실하고있다. 배려가시간을규정하고고시하는일이더자연스러울수록, 즉주제적으로시간자체에향하는일이적을수록, 배려되는것에몰입해서 현전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화하면서 -퇴락하는존재 는, 소리를내든내지않든, 지금, 그때, 저때 를즉석에서말하는일이더욱빈번해진다. 이렇게해서통속적시간이해에게는시간은부단히전재 [ 前在 ] 하면서동시에지나가고다가오는지금의연속으로서드러난다. 시간은하나의계기 ( 繼起 ) 로서, 지금의흐름으로서, 시간의경과로서이해된다. 배려된세계시간의이런해석속에는무엇이놓여있는가?(422, 591) 이에대한대답은, 세계시간의완전한본질구조로돌아가서, 이것과통속적시간이해가알고있는것과를비교할때얻어진다. 배려되는시간의첫번째본질계기로서는일부가능성이천명되었다. 일부가능성은시간성의탈자적틀에근거한다. 지금은본질상 하는지금이다. 비록 지금 이바로그것으로서파악되지는않았다하더라도, 배려가운데서이해된일부가능한지금은, 그때마다적합한지금이거나적합하지않은지금이다. 지금의구조에는유의의성이속해있다. 그리하여우리는배려되는시간을세계시간이라고부른것이다. 시간을지금의연속으로보는통속적해석에는일부가능성도유의의성도결여되어있다. 시간을순수한계기 ( 繼起 ) 라고성격지우면이두구조는나타나지않는다. 통속적시간해석은두구조를은폐한다. 지금의일부가능성과유의의성은시간성에근거하거니와, 그시간성의탈자적 - 지평적틀은이은폐를통해수평화된다. 여러지금들은말하자면 [ 두구조와의 ] 제관계를단절하고, 그렇게단절된지금들로서병렬적 ( 竝列的 ) 으로만늘어서서계기를형성하는것이다.(422, 591-592) 배려하는시간측정에서세어진것은 지금 이다. 이 지금 은용재자 [ 用在者 ] 와전재자 [ 前在者 ] 를배려하는데서 [ 그것들과 ] 함께이해되고있다. 그런데이시간배려가이렇게함께이해된시간자체로돌아가서이시간자체를 [ 반성적으로 ] 관찰하게되면, 그시간배려는어쨌든거기있는지금들을, 배려자체를부단히이끌고있는바로그존재이해의지평에서보게된다. 그러므로지금들은어떤방식으로는공전재적 ( 共前在的 ) 이다 : 다시말하면, 존재자를만나고그리고 [ 그것과함께 ] 지금도만나는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것이다. 지금들이사물처럼전재적 [ 前在的 ] 으로있다고분명히말하지는않더라도, 지금들은존재론적으로는역시전재성 [ 前在性 ] 이라는이념의지평속에서보여진다. 지금들은사라지고, 사라진지금들은과거를형성한다. 지금들은다가오고, 다가오는지금들은미래를획정한다. 세계시간을지금 - 시간이라고보는통속적해석은, 세계, 유의의성, 일부가능성이라는것에접근할수있게하는지평에대해서는속수무책이다. 이 [ 세 ] 구조들은필연적으로은폐되어있어서, 통속적시간해석이제딴의시간성격화를개념적으로형성하는그양식을통해이은폐를강화하는만큼, 은폐는더욱더무심 ( 无甚 ) 해진다.(422-423, 592-593) 지금연속은어쨌든전재자 [ 前在者 ] 로서받아들여지고있다 ; 왜냐하면지금연속은자신을시간속에밀어넣기때문이다. 우리는, 제각기의지금속에지금이있고, 제각기의지금속에서지금은또한이미사라진다고말한다. 제각기의지금에서그때그때다른지금이다가오면서사라진다하더라도, 제각기의지금에서지금은지금이고, 더구나부단히자기동일동적 ( 自己同一的 ) 인것으로서현존하고있는지금이다. 지금 은이렇게 변이 ( 變移 ) 하는것 으로서동시에자기자신의부단한현존성을보이고있다. 그리하여일찍이플라톤은생성 - 소멸하는지금연속으로서의시간에시선방향을두고, 시간을 영원의모상 ( 模像 ) 이라고부르지않을수없었다.(423, 593) 통속적시간해석의주테제는시간은무한하다는것이다. 이테제는, 이런해석속에는세계시간의수평화와시간성일반의은폐가놓여있다는것을극명하게드러내고있다. 시간은우선중단없는지금의연속으로서주어진다. 제작기의지금은금새 [ 지금 ] 곧 이거나 [ 지금 ] 방금 이다. 시간의성격화가일차적으로또전적으로이연속에매달리게되면, 그연속자체속에서는원칙적으로 처음 도 끝 도결코발견되지않는다. 최후의 지금 은어느것이나지금으로서는그때마다언제나이미 방금이제는아님 이며, 따라서 이제는지금이아님, 즉과거의의미에서의시간이다 ; 최초의 지금 은어느것이나그때마다 곧아직아님 이며, 따라서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아직지금이아님, 즉미래의의미에서의시간이다. 따라서시간은두방면을향해무한하다. 시간에관한이런테제는전재적 [ 前在的 ] 인 지금 - 경과 라는허공에뜬자체상 ( 自體相 ) 에정위하는것을근거로해서만가능하지만, 이때지금의완전한현상은, 일부가능성, 세계성, 늘여져있음, 현존재적장소성의점에서은폐되어, 식별하지못할단편으로가라앉아버리고말았다. 전재적 [ 前在的 ] 존재와비전재적 [ 非前在的 ] 존재를향한시선방향에서지금연속을끝까지생각해도, 끝 은발견되지않는다. 이렇게시간을끝까지생각한다고해도매양결국시간을생각해야하기때문에, 시간은무한히있다고결론짓게된다.(424, 594) 그러나세계시간의수평화와시간성의은폐는어디에근거하는가? 그것은우리가예비적으로마음씀이라고해석한바있는현존재의존재자체에근거한다. 현존재는우선대개피투적으로퇴락하면서배려되는것에 [ 몰두하여 ] 자기를상실하고있다. 그러나이자기상실속에서고지되는것은, 현존재가선구적결의성으로서특징지워진자기의본래적실존에직면해서, 그본래적실존을은폐하면서도피한다는것이다. 배려적도피속에는직면한죽음으로부터의도피가, 다시말하면세계 - 내 - 존재의종말로부터눈을돌리는것이놓여있다. 로부터눈을돌리는것 은, 그자체로, 종말을향한탈자적장래적존재의한양상이다. 퇴락적일상적현존재의비본래적시간성은, 유한성으로부터그렇게눈을돌리는것으로서, 본래적장래성을, 또이와함께시간성일반을오인하지않을수없다. 그뿐더러, 통속적현존재이해가 세인 에의해이끌려지는바에야, 공공적시간은무한하다는자기망각적표상이가장먼저굳어버릴수도있다. 세인은결코죽지않는다. 죽음이란그때마다 나의 죽음이고본래적으로는선구적결의성에서만실존적으로이해되기때문에, 세인은능히죽을수가없는것이다. 세인은결코죽지도않고또종말에이르는존재를잘못이해하고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직면한죽음으로부터의도피에하나의독특한해석을부여하고있다. 즉, 종말까지는아직도여전히시간이있다는것이다. 여기서표명되는 시간이있다 는것은 잃어버릴수있다 [ 아직유예가있다 ] 는의미이다 : 지금은우선이렇게, 다음에
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는저렇게또저렇게만, 그리고다음에는. 여기에서는무릇시간의유한성이란이해되지도않고, 오히려반대로, 배려는여전히 도래해서계속진행하는시간 을될수있는대로많이낚아채려고한다. 시간은, 공공적으로는, 각자가입수하고또입수할수있는어떤것이다. 수평화된지금연속은일상적상호성속에있는개개의현존재의시간성에서유래하건만, 수평화된지금연속은이유래에관해전혀알지못하는채로있다. ( ) 사람들이아는것은오직이런공공적시간, 즉수평화되어모든사람의것이면서아무의것도아닌시간뿐이다.(424-425, 594-596) 다시말하면, 세계시간을시숙시키는시간성은아무리은폐되었다하더라도완전히은폐되어있는것은아니다. 시간이사라진다 는말은 시간은붙잡아매여지지않는다 는경험을표현한다. 이경험은다시 시간을붙잡아매려고한다 를근거로해서만가능하다. 시간을붙잡아매려고하는데서는, [ 과거로 ] 이끌려가는순간들을벌써망각하고, 순간들을 [ 다음다음으로다가올것이라고 ] 비본래적으로예기한다. 그리하여, 비본래적실존의 현전화하면서망각하는예기 가 시간이사라진다 는통속적경험의가능조건인것이다. 현존재는 자기를앞지른다 는점에서장래적이기때문에, 현존재는지금연속을 미끄러지면서 - 사라지는것 으로서예기적으로이해하지않을수없다. 현존재는자기의죽음에대한덧없는앎에의거해서덧없는시간을아는것이다. 시간이사라진다 는것을 [ 감개무량하게 ] 강조해서말하는데서는, 현존재의시간성의유한한장래성이공공적으로반영된다. 그리고 시간이사라진다 는말에서조차죽음은은폐된채로있을수있으므로, 시간은 사라짐 자체로서나타나는것이다.(425, 596-597) 탈자적 - 지평적시간성은일차적으로장래에서부터시숙한다. 반대로통속적시간이해는시간의근본현상을지금속에서본다. 이지금은사실그완전한구조에있어서는절단된단순한지금이고, 사람들이현재라고부르는지금이다. 이점에서추측되는것은, 이지금으로부터본래적시간성에속하는순간이라는탈자적 - 지평적현상을해명하거나항차도출하
하이데거 ꡔ 존재와시간 ꡕ 는것은, 원칙적으로무망 ( 無望 ) 할수밖에없다는것이다. 이와상응하여, 탈자적으로이해된장래, 일부화될수있는유의의한그때, 아직도래하지는않았으나가까스로도래하고있는단순한지금이라는의미의미래라는통속적개념, 이삼자는합치하지않는다. 마찬가지로, 탈자적기존성, 일부화될수있는유의의한저때, 지나간단순한지금이라는의미의과거라는개념, 이삼자도합치하지않는다. 지금은 아직지금이아님 을잉태하고있는것이아니고, 현재는시간성의시숙의근원적탈자적통일속에서장래로부터발원하는것이다.(426-427, 598) 통속적시간경험은우선대개세계시간밖에알지못한다하더라도, 그경험은동시에언제나세계시간과영혼또는정신과의두드러진관계를맺어주고있다. 그것은철학적물음의명시적이고일차적인정위가주관과는상관없을때에도그랬다. 이에대해서는두개의특징적증거를제시하면족할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εἰ δὲ μηδὲν ἅλλο πέϕυκεν ἀριϑμε ιν ἤ ψυχὴ καὶ ψυχ ης νο υς, ἀδύνατον ε ιναι χρονον ψυ- χ ης μὴ οὔσ ης[ 만일마음이외에, 모든마음속에있는이성이외에, 세는것을본성으로갖는것이아무것도존재하지않는다면, 즉마음이없다면, 시간은존재하지않을것이다 ] 고말한다. 그리고아우구스티누스는다음과같이기록하고있다 : inde mihi visum est, nihil esse aliud tempus quam dis- tentionem ; sed cuius rei nescio ; et mirum si non ipsius animi [ 이런이유로나에게는시간은연장이외의다른것이아니라고생각됩니다. 그러나그것이무엇의연장인지나는모릅니다. 하지만그것이마음의연장이아니라고한다면이상할것입니다.] 이렇게보면, 현존재를시간성으로서해석하는것도원칙적으로는통속적시간개념의밖에있는것이아니다. 그리고헤겔은이미통속적으로이해된시간과정신과의관련을밝히려고분명히시도하였고, 이에반해칸트의경우시간은과연주관적이긴하지만, 나는생각한다와결합되지않은채그것과나란히있다.(427-428, 598-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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ꡔ 철학사상 ꡕ 별책제 2 권제 12 호 발행일 2003년 5월 25일발행인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소장백종현 151-742, 서울시관악구신림동산56-1 E-mail: philinst@plaza.snu.ac.kr 전화 : 02) 880-6223 팩스 : 02) 874-0126 인쇄관악사 02) 877-1448, 883-1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