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opolo21.tistory.com 2015년 7월 월간 개벽신문 45호 <개벽신문>은 1920.6.25에 창간된 <개벽>지의 정신을 계승하는 신문입니다.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사람 정의로운 연대 발행처 개벽하는사람들 발행일 2015년 7월 1일 등록번호 종로라003231 발행인 김산 편집인 최명림 주간 박길수 편집장 임소현 편집위원 고시형 권복기 김성진 김용휘 성진경 유정길 윤덕현 윤호창 이광호 이나미 이재선 주요섭 최윤석 황숙 기획위원 구종회 류윤근 박달한 심국보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경운동 수운회관) 1207호 <개벽신문사> 전화 02-733-7173 팩스 02-730-7173 홈페이지 http://popolo21.tistory.com 캘리아트 권도경 우리는 개벽을 꿈꿉니다. 우리는 개벽신문을 만듭니다. 우리는 개벽하는 사람들입니다. 1920년 창간된 개벽 의 창조적 복원, 개벽신문의 꿈입니다. 동학과 개벽, 소통과 영성, 돌봄과 상생, 모심과 살림, 생명과 평화, 개벽신문의 염원입니다. 2011년 4월 그렇게 개벽신문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더 많은 분들이 개벽신문을 만들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더 좋은 개벽신문을 위해 여러분의 후원을 받습니다. 후원계좌 농협355-0017-0477-23 예금주 개벽하는사람들 국민은행 201301-04-305369 예금주 개벽하는사람들 개벽하는사람들 후원금은 개벽신문 제작비와 발송비로 사용됩니다. 후원하시는 분의 인적 사항을 알려주시면 개벽신문을 보내드립니다. 개벽하는사람들 Tel 02-733-7173 Fax 02-730-7173
2 ring-of-14-cubes.5 by Ardonik(@https://www.flickr.com/photos/ardonik/3274122364/) 공동체를 넘어선 공동체 / 도연명 한국의 지역공동체운동과 마을만들기운동 / 김성균 동학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 박길수 메르스 위기와 마을공동체의 가치 / 박홍순 돈은 산으로 흐르고 땅으로 스며 사라져야 한다 / 심규한 [편집실 주] 언제인가부터 나홀로 족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주의는 경쟁 약육강식 과 더불어 근대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바로 옆집에서 누군가 죽어 썩은 내를 풍겨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자연과 환경은 파괴되었고, 끝을 모르는 탐욕 속에서 생명들은 죽음의 그늘 속에 신음하고 있는지 오래다. 그 런가 하면 인권 의 존중으로 대표되는 개성과 인격의 신성함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이 미래의 대안으로 새로운 공동체 를 탐색한다. 이번 호 특집 공동체 를 통해, 어두운 미래의 희망적인 대안과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공동체를 넘어선 공동체 도 연 명 본지 편집위원 핀드혼 공동체는 독특한 설립 배경을 갖고 있다. 1960년대 초,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 쌍의 부부가 스코틀랜드 해안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 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은 모래와 자갈로 뒤덮여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식물을 길러본 경험이 전무한 부부가 (보이지 않는 자연령들의 인도를 받아!) 황무지를 일구기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뜨악한 반응을 보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러나 이들의 무모한 시도는 기적적인 성공으로 이어졌다. 모든 농작물이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잘 자라 삽시간에 농장이 생겨난 것이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외지인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고 결국 이 농장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공동체 인 <핀드혼>이 됐다. <핀드혼>은 땅과 식물, 보이지 않는 영을 포함한 우주만 물이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침묵으로 웅변하는 공간이 됐다. 그런 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우주적 그물망 에는 배제된 존재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 은 바로 인간 자신(혹은 타락 한 중생)이었다. 공동체의 자폐적 성향 설립 배경부터가 일상성과 거리가 먼 핀드혼에는 세속과의 연결 고리가 강 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핀드혼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더라도 대부분의 영성 공동체들은 탈속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 당연한 귀결이겠으나 이들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소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들이 세 상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처럼, 세상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안타깝게 도 이들이 나 몰라 라 했던 그 세속 의 병폐가 결국 자신들의 존립기반을 위협 하면서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곤 했다. 이들보다는 관계 속의 영성을 추구하며 사회참여를 주도한 동학이 오히려 시대적으로 앞서 나간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동학은 여타의 영성 운동과 차별성이 있다. 핀드혼의 경우만 보더라도, 세파에 찌든 인 간 군상, 즉 대다수의 범속한 인간들을 우주적 질서의 교란자로 간주하고 거리 를 두려는 경향을 보인다. 비슷한 이유로 대부분의 영성 공동체들은 인간 교란 자들 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차폐막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동학은 타락한 중생마저 신성이 담긴 존재로 섬기고 품으려 했다. 동학이 담고 있는 우주적 질서 는 훨씬 깊고 광범위한 어떤 것이었다. 동학은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말 독특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아주 오랜 옛날, 동학을 쏙 빼 닮은 사회현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1,500년 전의 동학? 삼계교( 三 階 敎 )는 중국 수나라 때의 승려 신행( 信 行, 540~594)이 만든 불교의 분 파였다. 신행은 민중과 함께 노동하고 수행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부처 님으로 예배할 것을 가르쳤다. 모든 이들에겐 불성이 내재해 있어, 설령 악마 같은 인간이라도 언젠가는 부처가 되므로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 불국토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르침에 감화된 많 은 사람들이 수레에 실은 돈이나 포목을 버리듯 보시하고 갔다. 그렇게 쌓인 재 물로 서민 금고가 만들어지면서 빈민구제 사업이 시작됐다. 무이자에 차용증
특집 공동체 3 findhorn sunset by Vicky Brock(@https://www.flickr.com/photos/43881438@N00/282048556) 스코틀랜드의 핀드혼. 모래와 자갈 투성이였던 이 조용한 시골 마을이 현재는 많은 방문객들로 붐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동체 마을이 되었다. 도 받지 않고 어려운 서민들에게 대출을 해 줬던 것이다. 지극히 간명한 삼계교의 교리는 수많은 민중으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았 다. 그러나 관념 논쟁에 빠져 있던 불교 교단으로부터 배척당했고 민중의 세력 이 조직화되는 것을 두려워 한 정부로부터도 탄압을 받았다. 결국 교단이 강제 로 해체되고 문헌도 소실되어 완전히 잊혔다가 최근에 사료가 발굴되면서 연 구가 진행되고 있다. 무엇이 본질인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동학이건 삼계교건 이론적인 교리는 본질이 아닐지 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들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었던 요인은 딱딱한 관념이 아 닌,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한 데서 나온 힘이었다.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 하되, 그 한계나 조건을 규정짓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성속을 구 분하는 울타리나 차폐막이 필요치 않았다. 만일 관계의 재설정에 관한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만 있다면 삼계교나 동학 같은 현상이 재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은 독재적인 정부가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예전처럼 비극적인 결말이 되풀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점 자본이 교묘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곤 있지만, 군사력이나 경찰력으로 영 성 운동을 탄압한다든가 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 먼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은 삼계교나 동학의 언어가 아닌, 이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맞는 언어로 재구 성되어야 한다. 막연한 얘기 같지만 이스라엘의 협동 농장인 키부츠에서 그 실 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부츠의 한계와 가능성 키부츠는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생겨난 비종교적 공동체다. 이들은 지구촌 의 허다한 공동체들 중 규모와 활력 면에서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통상적 인 영성 공동체들이 수십 명에서 많아야 수백 명 수준인데다 중도 이탈자들이 적지 않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키부츠는 가장 작은 규모가 2,3백 명, 많게는 천 명이 넘는 곳도 있다. 이들은 1세기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으며 집단생산은 비효율 이라는 통념을 보란 듯이 무너뜨려 왔다. 그러나 키부츠의 가능성은 동시에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세속에 개방적 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살아남기 위한 자구의 차원이었을 뿐, 패러 다임의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아나키즘의 한 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은 동학과 삼계교에 비하면 지나치게 유 물론적이다. 한마디로 영성이 결여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핀드혼 같은 폐쇄 적 영성을 접목시킨다면 곤란하다. 그런 방식은 불충분하다는 것이 지난 세기 에 충분히 입증됐다. 영성이란 미지의 영역을 백지 상태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 는 것이다. 제3의 동학은 가능한가 현대인들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과학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언어는 종교의 언어를 빠르게 대체해 왔다. 벼락을 신의 노여움으로 표현하던 시대에 피뢰침이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삼계교와 동학 또한 종교의 언어로만 해석할 경우, 벼락처럼 우연한 사건으로 치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독특한 종교 현상들이 과학의 언어로 재해석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벼락이 발생 하는 원리를 응용해 발전기를 만들었듯이, 엄청난 영성의 힘을 동력원 삼아 세 상을 변모시킬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키부츠의 원동력이 된 아나키즘과, 공산혁명의 원동력이 된 마르크시즘도 모두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맞는 과학의 언어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과학의 본 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환원주의적 성격을 그 본질 로 보면 과학은 유물론이 되어 버리며, 영성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이 된다. 반면에 개방성과 객관성을 본질로 본다면 영성이 새로운 언어로 재구성될 여 지가 생겨난다. 이미 비슷한 시도를 일부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삼계교와 동학의 밑바탕이 됐던 인간관계의 재설정 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그 필요성을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을 때, 제3의 동학이 새로운 공동체 운동을 전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한낱 몽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쇠고랑이 채워진 코끼리인지도 모른다. 코끼리가 장성하면 어 릴 적 채워진 족쇄를 끊을 힘이 생겨도 벗어날 시도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식과 사고력은 영성의 원리를 밝혀낼 수준에 이미 도달했음에도 불 구하고, 낡은 언어와 인식의 틀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개벽신문 2015년 8월호(46호) 특집 개벽은 통일이다 - 광복 70년, 분단 70년 - 개벽신문 46호 특집의 주제는 개벽은 통일이다 입니다. 올해는 광복 70년임과 동시에 분단 70년인 해입니다. 통 일 문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많이 희석 되었고, 통일 사회 이후를 준비하는 사례가 많지 않습니 다. 이에 개벽신문에서는 특집을 통해 통일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의견 보내주실 곳 : sichunju@hanmail.net
4 특집 공동체 한국의 지역공동체운동과 마을만들기운동 김 성 균 성결대학교 지역사회과학부 최근 마을만들기 가 사회적 핵심 이슈 중의 하나다. 민간이나 행정기관이 나서서 마을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일에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마을만들 기와 관련된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역사 속의 도시 의 저자 루이스 멈포드는 오랜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공간을 이해하 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기계적 모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전적으로 루이스 멈포드의 주장에 동의한다. 어느 날 동네는 사 라지고, 어디 사니? 라는 물음은 대기업이 공급한 아파트 이름이 대신 자리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의 가치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마을민주주의는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이어져오고 있 다. 그 시작은 1948년 광주에서 시작한 동광원을 공동체 운동의 첫 출발점으로 삼는다. 한국 공동체 운동의 역사 1950년대 전후 한국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처절한 삶의 질곡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토의 땅 그 자체였다. 전후 복구와 절대빈곤의 탈출이 사회적으로 가장 큰 과제였다. 지금은 사회복지법인인 동광원(1948)과 귀일원, 그리고 평생을 생명평화의 가치로 삶을 일구신 원경선 옹이 중심되어 활동한 한삶회 함석헌 옹의 씨알농장(1957), 박태선의 신앙촌(1957) 그리고 이찬 갑, 주옥로 선생님을 중심으로 대안학교의 산실로 성장해 온 풀무학교(1958) 등 은 사회적 약자 보호, 검소와 청빈의 삶 그리고 학교의 지역사회화 등의 특징을 보였다. 1960~70년은 한국적 조국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응한 지역공동체 운동의 발 아 시기였다. 이해학 목사님을 중심으로 주민교회와 지역공동체(1973), 김진홍 목사님의 주도적 리더십에 기초하여 가난의 극복을 삶터의 이정표로 삼았던 활빈교회와 두레마을(1975), 도시빈민의 대부셨던 고 제정구 국회의원과 정일우 신부 중심으로 형성된 복음자리마을(1977),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의 주인공이자 무주에서 푸른 꿈을 펼친 허병섭 목사님의 밀알공동체(1974)가 있었으며, 그 외 에도 세계2차 대전 이후 패망국이 된 일본에서 영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던 야 마기시 미오조의 담론을 존중하고자 그의 후학들에 의해 시작된 야마기시즘이 한국에 처음으로 1960년에 소개되기도 하였으며, 이들의 양계 방식을 적용하 면서 공동생산을 모색한 증평영농조합법인(1964)이 있었다. 그리고 강원도 태 백에서 묵언공동체로 영성수련의 가치를 사회화한 대천덕 신부님에 의해 시작 된 예수원(1977) 등이 있었다. 이 시기는 국가권력에 대응하면서 자생적 지역공 동체 운동을 지향하였으며 이러한 운동의 시작인 지금의 생태공동체 운동이나 지역공동체 운동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작은 마음의 울림 을 강조하는 공동체 운동이 있었다. 1980~90년대에는 사회적 큰 파동이 공동체 운동에 그대로 반영되는 시기였 다. 87년 전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사회운동에서 우리의 일상의 문제를 다루는 삶의 터가 중요한 생활의제로 등장하면서 공동체 운동도 다양하게 나 타난다. 중산층과 결합한 생활공동체 운동 방식이 등장하기도 하고 시민사회 조직과 결합하면서 지역공동체 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도시에서 더불어 살기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서당골(1983), 야마기시즘의 한국의 최초 실현지인 산안마을(1984), 사회운동에서 영성수련의 가치를 이야 기한 최한실 선생님의 푸른누리(1995), 농촌의 현실을 인식하고 등장한 한살림 (1986), 농촌 관련 정부기관의 폐해를 목도하고 자생적인 마을공동체를 제안했던 남상도 목사님의 한마음공동체(1986), 천호진 목사님의 생명누리(1996), 희년을 강조하면서 정용갑 선생님의 이랑둥지(1987), 불교의 정토세상을 꿈꾸며 수행공 동체와 영성수련공동체로 등장한 법륜스님의 정토회(1988), 1988년 소비사회를 한국의 지역공동체운동의 시대적 현황 구분 시대상황 사회여건 주요 공동체 공동체 운동 경향 1950년대 전후복구와 절대빈곤 탈출 절대빈곤 극복을 위한 사회적 가치의 획일화 극빈층 중심의 공동체 사회적 약자 지원 동광원(1948) / 귀일원(1964) / 한삶회(1955) / 씨알농장(1957) / 신앙촌(1957) /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1958) 사회적 약자 보호 활동 검소 청빈 일상화 학교의 지역사회화 1960 70년대 조국 근대화와 지역공동체 운동 발아 도시빈민 지역중심의 공동체 개발 패러다임에 대한 저항과 자치권 확보 야마기시즘 실현(1960) / 증평영농조합법인(1964) / 주민교회와 지역공동체(1973) / 두레마을(1975) / 복음자리마을(1977) / 밀알공동체(1974) / 예수원(1977) 자생적 지역빈민 운동 공동생산체제 도입 생산공동체 지향 영성수련의 사회화 1980 90년대 환경문제와 생명문화운동 중산층과 결합한 생활공동체 일상생활의 욕구수용 시민사회 결합요구 서당골(1983) / 산안마을(1984) / 푸른누리(1995) / 한 살림(1986) / 한마음공동체(1986) / 생명누리(1996) / 이랑둥지(1987) / 정토회(1988) / 금호행당하왕주민기획단:송학마을(1988) / 다일공동체(1989) / 정농생협(1990) / 안양아카데마타운(1991) / 문당리 환경마을(1993) / 안성의료생협(1994) / 물만골공동체(1995) / 간디학교(1997) / 인드라망 공동체(1998) 예수살이공동체(1998) / 안솔기마을(2001) / 녹색대학생태마을(2001) 소비자 운동 도농직거래 영성자각 프로그램 지역 마을만들기 2000년 대안사회운동 공동체 운동 생활세계의 재검토 생태산촌만들기(2000) / 이장(2001) / 마을만들기(2000) / 성미산 마을(2002) / 산위의 마을(2002) / 진안군 마을조사단 활동(2006) / 산너울 마을(2008) 들꽃피는 마을(2008) / 마중물공동체 등용마을(2009) 마을 기획의 전문화 생활정치의 전문화 마을만들기운동의 제도화 에너지 자립의 실현가능성 2010년 지역공동체 운동의 제도화 세대 문제의 등장과 모색 민관협력 마을공동체 생태계 구축 두꺼비 하우징(2010) 우동사(2011) / 산새마을(2013) / 서울시, 수원시 등 청년공동체의 사회화 마을만들기 및 사회적 경제 분야의 마을생태계 구축 출처 : 김성균(2009) 에코뮤니티, 이매진, pp55~105. 및 정토회 에코붓다 (2013) 에코보살 인터뷰 내부자료 재구성
특집 공동체 5 Civic Centre IRT station by warrenski(@https://www.flickr.com/photos/50811886@n00/4714006087) 지양하는 가톨릭 청년교육에서 출발하여 박기호 신부님을 중심으로 실현된 예 수살이공동체(1998), 대규모 택지개발에 저항하면서 자치적 주민조직체를 결성 한 금호 행당 하왕주민기획단:송학마을(1988), 일명 청량리 588에서 부랑자와 매매춘녀를 대상으로 밥퍼공동체를 이룬 최일도 목사의 다일공동체(1989), 전국 농민회와 경실련이 중심이 되어 만든 정농생협(1990), 우리나라 최초의 코하우징 의 상징성을 보여준 안양아카데마타운(1991), 풀무학교의 정신이 지역사회에 발 아된 문당리 환경마을(1993), 국가복지와 시장복지 사에에서 먹을거리 생협 외의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준 안성의료생협(1994), 전쟁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산 골짜기에 개발의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 물만골공동체(1995), 우리나라 대안 교육기관의 거점 중의 하나인 간디학교(1997), 지리산 남원 산내면 실상사 주변 에 주민과 귀농 귀촌인 그리고 지리산생명연대 등과 연계된 인드라망 공동체 (1998), 간디학교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간디학교의 배후지로 출발했던 안솔기마 을(2001), 녹색대학 주변의 마을공동체로 시작된 녹색대학생태마을(2001) 등으로 다양한 공동체가 등장하였다. 이 시기는 전환의 가치를 제공하는 영성의 의미 가 강조되기도 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공동체가 형성되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대안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공동체 운동에 대한 전문 적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마을공동체를 컨설팅하는 생태산촌만들 기(2000)와 이장(2001)이 등장하였으며, 2000년에는 마을만들기 라는 담론이 등 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예수살이 공동체의 정주지로 자리 잡은 산위의 마 을(2002)과 도시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성미산 마을(2002)이 등장하였으며, 2006년에 처음으로 진안군이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충남 서천 에 계획 단계부터 마감 단계까지 입주자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를 조성한 산너 울 마을(2008), 1996년 정토회에서 첫 인연으로 시작하며 2008년에 안성에 자리 한 들꽃 피는 마을, 생명평화 마중물 공동체로 시작하여 에너지 자립의 실현지 가 된 등용마을(2009) 등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마을기획이 전문화되기도 하였 으며, 마을만들기가 제도적으로 발아하고, 에너지 자립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시기였다. 2010년에는 뉴타운 개발의 물리적 한계를 인식하고 공간적 재생의 패러다 임을 보여준 두꺼비 하우징(2010)과 산새마을(2013), 2011년 젊은 청년의 꿈과 실 천적 대안적 삶을 위해 등장한 우리동네사람들(일명 우동사)의 쉐어 하우스가 등 장한다. 우동사 는 젊의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자신이 지닌 역량만큼 모 여서 해결하고자 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지역공동체 운동이 사회적 이슈 로 등장하면서 진보진영의 자치단체장이 주요 핵심 정책으로 제안하면서 마을 만들기 가 제도와 정책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 시기는 세대의 문제를 스스로 해 결하는 자생적 공동체 운동이 등장하기도 하였고, 기존의 마을만들기 를 사람 중심의 정책 거주자 중심의 정책으로 이행하기 위해 제도로 편입되는 경향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지역공동체 운동의 의미와 특성 지난 50년 동안 전개해 온 지역공동체 운동의 의미와 성향은 매우 다양하 다. 개인의 지도력에 기반하거나 사회적 이슈와 결합하여 지역공동체 운동이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공동체 운동은 자기 스스로 자기조직화에 초점을 두고 시작했다는 점과 지역사회공동체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면서 실천적 대안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 근에는 세대별로 나름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성이 투영되 어 나타난 지역공동체 운동을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행정이 아젠다를 접수한 상 황이 되었다. 인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 다. 그래서 번영이라는 단어 앞에 모든 것을 다 던져 버린다. 지금까지의 지역 공동체 운동은 자발적 검소에 기초한 소박한 삶 이 이들이 선택한 번영의 가치 였다면, 제도정치로 등장한 마을만들기 아젠다가 보여줄 번영의 의미가 무엇 인지를 심사숙고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행정이 지원하는 공모사업 중심의 마 을만들기 사업이 지역공동체 운동의 최종목표이며 결과인가를 묻고 싶다. 또 한 행정과 민간을 연결하는 매개조직인 중간지원조직 그리고 행정조직은 그동 안 한국사회에서 처절할 정도로 몸부림치면서 풀뿌리 조직으로 성장한 이들의 운동적 가치와 의미를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김성균님은 단국대학교(지역개발학, 도시관리 전공)에서 행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지역사회연구원에 서 일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아나키즘, 생태공동체, 커뮤니티를 주제로 한 대안사회의 구 상이다. 지은 책으로는 분명한 전환, 녹색당과 녹색정치 (공저), 만안의 기억 (공저), 시민과의 약속, 매니페스토 (공저), 에코뮤니티 등 다수의 저서들이 있다. 경 축 개벽 창간 95주년 개벽 1920년 6월 25일 창간 아-풍운! 아- 霹 靂!! / 모래가 날리고 돍이 닷도다 나무가 부러지며 풀이 쓸어지도다. 아- 黑 天 地 로다 修 羅 場 이로다. / 天 의 惡 이냐? 世 의 罪 이냐? 아니 이것이 混 沌 이 아닌가? / 아- 銃 創! 아- 殺 到!! 머리가 떨어지고 다리가 끈혀지도다. 이놈도 거꿀어지고 저놈도 잣바지도다. 아-와텔루로다 아 垓 下 野 로다. / 生 을 爲 함이냐? 아니 이것이 翻 覆 이 아닌가? / 새바람이 일도다 한 빛이 빛이도다. 왼 세계는 燦 爛 한 光 의 세계로다. 평화의 소리가 높도다 개조를 부르짖도다. 왼 인류는 新 鮮 한 自 由 의 人 類 로다. 운이 來 함이냐? 時 가 到 함이냐? 아니 이것이 開 闢 이로다. - 개벽 창간호 권두시
6 특집 공동체 동학이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박 길 수 본지 주간 0. 들어가는 말 공동체란 더불어 사는 것 또는 그 무리 라 할 수 있다. 그냥 모여 사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며 잘 사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이 공동체 속에 태어나는가, 아니면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는가의 문 제는 오래된 논쟁거리다. 거칠게 결론지어 말하자면, 공동체 속에서 태어난 인 간이 그 공동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며 공동체로부터의 자유(탈공동체)를 추구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가족(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양육 을 받으며 자랐으나, 결혼할 때쯤 자유연애 를 통해, 결혼은 내가 하는 것 임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인간의 의식이 이제는 결혼마저도 계약결혼이나 계 약동거와 같은 형태로 나아가며 끊임없이 개인 이 불가침의 성역 임을 확인하 고 확장하고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향인가? 설령 각자가 그것(자유롭게 사는 것) 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로 인생(인류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길인가. 동학의 공동체 이념과 실천을 살펴보는 기본 출발점은 거기에 있다. 1. 초기 동학의 신앙공동체 초기 동학 공동체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객관적 인 문서가 있다. 수운 선생이 조선 조정에서 보낸 선전관 정운구에게 체포되기 직전에 경상도 일대 유림들 사이에서 유포된 통문( 通 文 )이다. 경북 상주에 있는 우산서원( 愚 南 書 院 )은 동학을 서학( 西 學 )이 개두환명( 改 頭 幻 名 )한 것 이라 하여 배척하는 통문을, 같은 상주에 있는 상급 서원인 도남서원( 道 南 書 院 )에 보냈다. 도남서원은 3개월 동안 심사숙고하여 그해 12월 초에 영남 일대 전체 서원에 통문을 보냈다. 그 내용 은 유림들이 합심하여 사도( 邪 道 )인 동학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상 으로 동학배척통문 이 당시 조정에서 수운 선생을 체포하여 사형으로 다스리 게 된 중용한 동인( 動 因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통문 내 용을 통해 초기 동학 도인들이 어떠한 무리였는지,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 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남서원 통문 가운데 관련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동학이란 그들이 이른바 송주( 誦 呪 )하는 천주( 天 主 )라는 것은 서양에 의부( 依 附 ) 한 것이고 부적과 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황건적의 행위를 답습한 것이다. 2하 나같이 귀천의 차등을 두지 않고 백정과 술장사들이 어울리며 3엷은 휘장을 치 고 남녀가 뒤섞여서 홀어미 홀아비가 가까이하며 4재물이 있든 없든 서로 돕기 를 좋아하니 가난한 자들이 기뻐한다. 5도당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것을 제일의 공으로 삼아 한마을에 들어앉으면 온 마을 사람을 끌어들이려 힘을 다하며, 한 고 을에 머물면 온 고을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힘을 다하니 6어찌 문벌 좋은 집안의 재주 있는 사람들이 점차 물들어갈 염려야 있겠냐마는 오히려 (그들이) 부족함을 좌교( 左 敎 = 西 學 ; 인용자 주)의 윤리를 본떠서 자신의 필설을 더럽히며 밝은 도리를 논 척할 수 있다. 7흡사 장각( 張 角 )이 삼십육 방에 벌려 놓고 지휘하는 것 같으니 교 ( 敎 )의 주인으로 받드는 두목은 위엄이 대단하여 장차 지방관의 권한도 물리치고 마음대로 행하게 될 것이다. 8새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가 새로운 말이면 모 두 잘 들으려 하며, 빨리 이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가 지름길로 모두 달려가 려 한다. 무지한 천류( 賤 類 )들이 많이 물들어 나무꾼과 초동( 樵 童 )과 같은 더벅머 리 아이들이 다투어 송주( 誦 呪 )를 하는데 그들이 하는 말에는 원래와 조금도 헷갈 림이 없으며, 근거가 비슷하여 난류( 亂 流 )인지 진류( 眞 流 )인지 견줄 방도가 없다. 9 은밀히 서로 동학을 전수하여 깊은 산속 으슥한 곳에 근거지를 만들고 퍼져 물들 게 되며, 고을과 마을의 중심에 한번 들어가면 장인과 장사치는 소업( 所 業 )을 전폐 하고 밭가는 자도 또한 일하지 아니하니. 1에서 송주하는 천주 란 삼칠자 주문을 외는 것이니 주문 수련을, 부적과 물 이라 함은 영부와 청수를 의미한다. 주문과 영부는 수운 선생이 한울님으로 부터 받은 동학의 핵심 수행 절차와 도법이다. 2, 3, 4항은 일반 민중들 가 운데 동학에 입도하는 사람들의 유형과 그 안에서의 행태, 6항은 유림 가운데 서 동학에 관심을 갖거나 입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동학에 대한 당시 보수 유림 경기와 전라도 지역의 서원과는 달리 경상도 지역의 유림들 은 자신들이 공맹-정주의 성리학 전통의 고갱이를 쥐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 득 차 있었다. 의 편파적인 시각에 굴절된 점을 감안하여 읽어 낼 필요가 있 다. 2항은 동학의 평등 사상이 전개되는 정황을 3은 훗날 과부 재가 허용 이 라는 구호로 귀결되는, 그리고 수운 선생이 두 여비( 女 婢 )를 며느리와 수양딸로 맞아들이는 실천궁행의 확장 정황을, 4는 새로운 행태의 경제공동체 원리로 서의 유무상자( 有 無 相 資 ) 정신을 잘 보여준다. 5, 7, 9항은 동학이 어떻게 그 들의 공동체를 확장하고 심화시켜 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5항은 훗날 천도교에서 이상적인 마을공동체로 궁을촌 을 만들어가는 원형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2. 유무상자의 상생공동체 유무상자( 有 無 相 資 )라는 말은 동학이 지향한 공동체의 이념을 잘 보여주는 대 표적인 용어이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도운다. 는 이 말은 유무상통 ( 有 無 相 通 )이라고도 쓰인다. 박맹수 교수는 이 말이 단군 성조의 신시( 神 市 )와 홍 익인간 이래 호혜경제체제 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서구적 근대화가 가져올 극단 적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또는 개인주의를 낳게 조장하는 자본주의적 인 경제 체제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계속해서 박맹수 교수는 수운에 의해 제창되고 그 시대에 이미 씨앗이 발아 한 유무상자의 전통이 2대교주인 해월 최시형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발현되 고 있음을 사료를 통해 제시한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자료인 <해월문집> 속 에서다.(박맹수, 개벽의 꿈, 모시는사람들 참조) 무릇 우리 동학 사람들은 같은 연원(최제우)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땅히 형제와 같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형은 굶고 있는데 동생만 배부를 수 있을 것이 며, 동생은 따뜻하면서 형은 추위에 떨어서야 되겠는가. (중략) 크게 바라건대 모든 군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접( 接 =동학을 신앙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 안에서 여 유가 있는 사람들끼리 각각 서로 힘을 합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 하여 금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는 마음을 면하도록 하시오(1888). 같은 소리는 서로 호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이치이니 지금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이치가 더욱 크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환난을 서로 구제하고 빈궁을 서로 보살피는 것 또한 선현들의 향약에 들어 있는 것인데 우리 동학에 이르러서는 그 정의가 더욱 막중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우리 동학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약속을 지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서 규약에 어김이 없 도록 하시오(1892). 동학의 유무상자는 향약의 환난상휼의 전통을 계승하되 이를 한층 강화하 자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안이 다양하게 모색되는 가운데 나눔경제 돌봄 경제 등의 원형으로 깊이 논구하고 현대적 실천 모델을 찾아 갈 필요가 있다. 3. 동학과 군자공동체 동학은 그 자체로서 군자공동체 를 지향한다. 군자 란 동학에서 이상적인
특집 공동체 7 인간상을 일컫는 말이다. 군자 라는 말은 본래 유학 의 이상적 인간상을 지칭 하는 말이다. 수운 선생의 글에서도 이는 분명하다; 오제( 五 帝 ) 후부터 성인( 聖 人 )이 나시어 일월성신과 천지도수를 글로 적어 내어 천도의 떳떳함을 정하여 일동일정과 일성일패를 천명에 부쳤으니, 이는 천명을 공경하고 천리를 따르 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람은 군자가 되고 학은 도덕을 이루었으니, 도는 천도 요 덕은 천덕이라. 그 도를 밝히고 그 덕을 닦음으로 군자가 되어 지극한 성인 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부러워 감탄하지 않으리오(동경대전, 논학문). 이와 관련하여 수운 선생은 당신을 포함한 동학의 학문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우리 도유( 道 儒 ) 라고 불렀다. 수운 선생은 제자들이 진중하게 정성을 다하여 공부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도통을 바라거나 동학 세상을 기대하는 것 을 경계하며 도유들이 마음이 급한 것을 탄식하다(< 嘆 道 儒 心 急 >) 이라는 글을 지 었다. 또한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선생 시대에 각종 통유문이나 조정에 보내 는 의송 등에도 스스로를 도유 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김구 선생이 애기접주로서 당시 보은에 계시던 해월 선생을 뵈러 왔을 때, 사방에서 해월 선생에게 도유( 道 儒 )들이 관에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음 을 호소하는 글들이 답지하고 있음을 증언하였다(백범 일지). 이를 두고 동학을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 중에 동학은 유학( 儒 學, 性 理 學 ) 아류이거나 그 영향력 아 래에 있는 사상이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기서 도유란 도를 닦는 선비 라는 일반 명사로 보는 것이 옳다. 유학 혹은 그 유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오랫동안 그러한 군자(성 인)가 되는 것은 타고난 기질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거나 매어 어려운 공부 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본 반면에 동학에서는 이를 비교적 단순한 (?) 공부를 통해 도달할 수 있다고 선언한 데서 동학의 특질이 드러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정심수도( 正 心 修 道 ) 하여스라. 시킨 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 르치면 무궁조화( 無 窮 造 化 ) 다 던지고 포덕천하 할 것이니 차제도법( 次 第 道 法 ) 그 뿐일세. 법을 정코 글을 지어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 君 子 되어 무위이 화( 無 爲 而 化 ) 될 것이니 지상신선( 地 上 神 仙 ) 네 아니냐(용담유사, 교훈가). 열 세자(=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극하면 만권시서( 萬 卷 詩 書 ) 무엇하며 심학( 心 學 )이라 하였으니 불망기의( 不 忘 其 意 ) 하여시라. 현인군자( 賢 人 君 子 ) 될 것이니 도성입덕 ( 道 成 立 德 ) 못 미칠까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 하단 말가(용담유사, 교훈가). 4. 동귀일체의 공동체 동학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는 이러한 동학의 군자(= 道 儒 )들이 동귀일 체( 同 歸 一 體 ) 하는 공동체이다; 시운 時 運 을 의논해도 일성일쇠 一 盛 一 衰 아닐런 가. 쇠운이 지극 하면 성운 盛 運 이 오지마는 현숙한 모든 군자 동귀일체 同 歸 一 體 하였던가(용담유사, 권학가). 동귀일체란 각자위심( 各 自 爲 心 )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위심은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을 창도할 당시의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이 세 상이 이처럼 혼탁해지고 살기 어려워진 까닭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각자위 심이라는 단어이다. 수운 선생이 이 세상을 구할 도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끝 에 마지막으로 경주 용담으로 귀환하여 불출산외( 不 出 山 外 ; 세상을 건질 도를 구하기 전에는 구미산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리라.) 를 맹세하던 순간 바라본 모습이 바로 각자 위심의 세상이었다; 또 이 근래에 오면서 온 세상 사람이 각자위심하여 천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천명을 돌아보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항상 두려워 어찌할 바 를 알지 못하였더라(동경대전, 포덕문). 각자위심은 천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천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각자위심은 자시지벽( 自 是 之 癖 ; 병적으로 자기 생각만 옳다고 여기는 태도)과도 통한다; 각자위심 하는 말이 내 옳고 네 그르지. 시비분분( 是 非 紛 紛 ) 하는 말이 일일시시( 日 日 時 時 ) 그뿐일네(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현대사회의 탈( 脫 )공동체, 반( 反 )공동체의 실상은 바로 이 각자위심의 과정 이며, 그 결과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개성과 인격의 존중 사생활 보호 와 같은 흐름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연한 과정이 아니다. 개인 주의화(이것 자체는 惡 이 아니다) 는 나의 선택이자 권리 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한 파편화 전략( 개별 노동력 과 소비자 로 존재하도록 하기 위한) 의 산물이다. 동어반복일 수 있으나, 각자위심은 이 우주의 본성( 本 性 )과 본상( 本 相 )이 동귀일체 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본래 하나인 한울로부터 화생한 동포( 同 胞 ) 임을 잊어버 리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학에 입문하여 처음으로 하는 의식이 바로 마 음에 잊고 잃음이 많았음을 참회하는 것(동경대전, 축문( 祝 文 )) 이다. 동귀일체는 전 체주의 를 향한 일치가 아니라 나 는 본래 영원한 존재로서 이 세상에 인물( 人 物 )로 화생하여 살다가 다시 영원한 존재로 귀환함을 알고 그러한 이치에 부합하는 삶 을 사는 것이다. 수운은 그러한 삶을 경천( 敬 天 ), 경인( 敬 人 ), 경물( 敬 物 )의 삶이라 했다. 동귀일체하 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을 내 형제자매처럼 우애하고 부모님처럼 봉양하고, 자식처 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우리 지역만이 아니라, 내 나 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만물에 대하여 그렇게 우애하고 봉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사람은 경 천( 敬 天 )함으로써 자기의 영생을 알게 될 것이요, 경천함으로써 인오동포( 人 吾 同 胞 ) 물오동포( 物 吾 同 胞 )의 전적이체( 全 的 理 諦 )를 깨달을 것이요, 경천함으로써 남을 위하 여 희생하는 마음, 세상을 위하여 의무를 다할 마음이 생길 수 있나니, 그러므로 경천은 모든 진리의 중추( 中 樞 )를 파지( 把 持 )함이니라(해월신사법설, 삼경). 5. 지상신선의 공동체 지상천국 일찍이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창도하는 과정에서 서양에서 들어와 조선 땅 에 새로운 도학으로 먼저 도를 펴고 있던 서학이 현세를 벗어난 별세계( 上 天 = 天 上 )를 상정하여 신앙하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다; (서학하는 사람들이) 무단히 한울 님께 주소(밤낮)간 비는 말이 삼십삼천( 三 十 三 天 ) 옥경대( 玉 京 臺 )에 나 죽거든 가게 하소. 우습다 저 사람은 저의 부모 죽은 후에 신( 神 )도 없다 이름 하고 제사조차 안 지내며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 唯 願 速 死 ) 무삼 일고. 부모 없는 혼령 혼백 저는 어찌 유독 있어 상천( 上 天 )하고 무엇 하고 어린 소리 말았어라. 그 대안으로서 수운이 제시하는 실질적인 이상향은 지상에서 신선으로 살 아가는 삶이다; 봄 오는 소식을 응당히 알 수 있나니 지상신선의 소식이 가까 와 오네(동경대전, 결). 여기서 신선은 한울님의 선약( 仙 藥 )을 복용한 사람으로서, 동학의 이상적 인간형인 군자( 君 子 )의 다른 모습이다. 한울님의 선약은 동학의 주문 수련의 결실로 얻게 되는 영부( 靈 符 )의 또 다른 이름이며, 그것은 정성 과 공경 을 매개로 해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선약인 줄 알았더니 이것 을 병에 써 봄에 이르른즉 혹 낫기도 하고 낫지 않기도 하므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그러한 이유를 살펴본즉 정성 드리고 또 정성을 드리어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들어맞고 도덕을 순종치 않는 사람은 하나도 효험이 없었 으니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니겠는가(동경대전, 포덕문). 지상천국 이라는 말은 이러한 수운 선생의 기본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바 탕으로 이것을 이상적인 지상신선(군자) 공동체 국가로 상정한 것이다. 이것은 주로 1920년대에 중엽에 처음 등장(신인간 7호, 1926.11)하는데, 주로 1920년대 말 부터 1930년대 초까지 천도교의 전위운동(청년당, 청우당)에서 천도교의 핵심적 인 목표로 설정되어 제시된다; 지상천국 수운 선생의 주의는 그 목적이 지상천국의 건설에 있으니, 인류가 가 장 동경하는 이상향을 이 지상에 건설하여 모든 민중에게 평등의 행복을 도모케 함을 이름이다. 수운 선생은 말씀하되 봄 오는 소식을 정신 차려 들어라. 지상천 국( 地 上 天 國 ; 수운이 지은 경전 원문에는 地 上 神 仙 이라고 되어 있음=인용자 주)이 가까워 옴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 주의에 귀의하는 자는 지상천국의 주인 이 될 수 있으리라(청년당 선전 전단, 1929년, <천도교청년당소사> 所 在 ). 인생(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왔을까 하는 것을 천도교에 물어보면 천 도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첫째는 대생명의 파지운동입니다. 이 말씀은 최 수운 선생의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니냐. 하는 말씀의 뜻을 이름이니. 둘째 는 인간격을 파지하는 운동입니다. 천도교는 이 우주를 일원적 계통으로 보아 가 지고 인생을 우주의 가장 높은 단계에 있다고 보며. 셋째는 제도( 濟 度 =구제, 구원) 운동입니다. 위에 말한 생명 연장의 맛이라든지 새 인생의 맛이라는 것은 개인 생 활에 있는 문제어니와 이 제도운동의 행위는 참된 사람이 참된 행위를 하기 위하 여 오심즉여심 의 대생명의 통제 아래서 동귀일체가 되어가지고 한가지로 좋은 일을 하고(1행 略 =원본) 한가지로 좋은 이름과 좋은 사업을 자손만대에 유전( 遺 傳 )케 하자는 운동입니다. 이것이 천도교에서 항상 말하는 지상천국 건설 운동입니다 (청년당의 선전 전단, 1933년, <천도교청년당소사> 所 在 ). <다음 호에 계속>
8 특집 공동체 메르스 위기와 마을공동체의 가치 박 홍 순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 현대사회를 위기의 시대라고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잦은 재해의 발생은 일 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고, 화석연료 등 무분별한 채굴과 남용은 자원고갈과 에너지 위기를 낳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현 대사회가 직면한 끔직한 위기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되었던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오늘날의 고도화된 세계경제체제가 평범한 우리 민초들의 삶의 욕구 를 풍요롭게 채워줄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 한순간에 개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재난이 될 수 있음을. 지금까지는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공고했었고 실제로 경제성장의 달콤한 열매를 맛본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지구환경과 인간 자신을 착취하면서 만들어진 성장 신화는 결 국 생태, 경제,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만성적인 위기를 만들었을 뿐이다. 힘들 때 기댈 사람 없어 가족동반 자살을 택하는 한국의 현실 만성적 위기에 봉착한 개인들은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게 된다. 한국은 10 년 넘게 OECD회원국(34개) 가운데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평균 40여 명이 자살을 선택하고 있고, 사망 원인 4위, 10~30대 사망 원인 1위 가 자살이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가난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 야 할 것은 생활고를 비관한 가족동반 자살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더 이상 사회가 개인의 곤경을 염려해 주고 도와줄 거라는 기대가 사라졌음을 나 타낸다. 실제로 최근 OECD가 발표한 <2015 더 나은 삶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사회적 연계 부문에서 최하위다. 쉽게 말해, 힘들 때 기댈 사람 이 없다는 뜻이다. 자기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을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 거라고 믿기에 가족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생명의 사회적 연계성은 사라지 고 각자도생의 개체성만 남은 우리 사회의 비참한 실상이다. 각자도생( 各 自 圖 生 ;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함)의 비참한 처지에 빠져 있음을 우 리는 지금 메르스 사태를 통해 극명하게 경험하고 있다. 정부의 늑장대응, 컨트 롤타워의 실종, 국정 최고책임자의 소통의지 부재 등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던 정부의 무능이 그대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최단기간에 근대화의 기적을 만들 어 내었던 관료 시스템과 국가 리더십,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첨단 IT경제를 일구 어낸 우수한 인재와 경제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사막의 나라 중 동에서 묻어온 미지의 바이러스 한방에 온 사회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 다.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되었을까? 그 비밀은 바로 한국 사회의 공공성 상실 과 신뢰의 부재에 있다. 공공성 상실과 신뢰의 부재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이다. 사회공공성이 낮은 국가는 신뢰 수준도 낮다. 함께 살 자 는 연대의 공동체 의식 대신에 나만 살자 는 각자도생과 이기심이 판치게 된 다.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메르스 사태를 맞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런 모양 새다. 시장만능주의와 불신풍조가 메르스 감염 확산을 부추겨 최초의 메르스 환자는 병명을 몰라 3곳을 전전하다 삼성서울병원을 찾았고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메르스를 의심해 질병관리본부에 2차례나 메르스 확진 검사를 요청했지만 12가지의 다른 호흡기질환 검사를 권고하며 거부하여 결국 메르스 초기대응이 늦춰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 확진 이후에도 감염 확산 을 막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제2, 제3의 슈퍼 전파자를 방치 하여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서로 떠넘기고 불신이 또 다른 불신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감염병 예 방을 위한 충분한 격리시설의 확보와 같은 공공성보다는 더 많은 환자수용과 편의시설 확보와 같은 경영상 이익을 앞세우는 병원의료문화는 메르스와 같은 재앙을 키우는 숙주가 되었다. 또 의사와 환자 사이가 인간적으로 서로 믿는 신 MERS-CoV Investigation Yemen by CDC Global (@https://www.flickr.com/photos/89075068@n07/17053986812) 뢰 관계가 아니라 마치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쇼핑을 하듯 여러 병원을 전전하 게 만들며, 사실을 얘기했다가는 진료를 거부당할까 염려하여 거쳐 온 병원을 숨기는 이런 만연한 불신 풍조가 역병을 확산시키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결국 공공성에 대한 무책임과 사회적 불신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 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공성 부재와 신뢰 상실보다도 더 무서운 사회현상을 이번 메 르스사태의 와중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회적 분열과 편 가름에 편승 한 분노와 저주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진보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메르스와 투병중인 35번 의 사 환자에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고 막말을 퍼붓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 었다. 정부와 삼성병원의 늑장대응과 비밀주의를 폭로한 박원순 시장을 비난 한 35번 의사 환자가 생명이 위중한 상태를 맞이하자 병에 걸린 환자의 쾌유를 빌기는커녕 입 건방 함부로 떨면 안 된다는 걸 반면교사로 보여주는 거 같습니 다. 와 같은 글이 올라오고 그 글은 두 시간만에 조회수 6만9천회를 기록하면 서 환자의 상태 악화를 반기고 저주를 퍼붓는 댓글이 이어졌던 것이다. 생명에 앞서는 진영논리의 만연은 메르스보다 심각한 역병 인간의 생명보다 앞서는 진영논리가 만연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분명 메르 스보다 심각한 역병을 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여기에는 함께 이 시대를 살아 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쩌면 자신의 이웃으로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 를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나 염치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견이 서로 다를 때 그것을 역지사지 하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하기에 앞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기 싫고 참을 수 없어하는 병적 증상이 확산되고 있 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통째로 해체해 버릴 수도 있는 가장 큰 위기로 몰아넣는 역병이다. 이 역병을 이겨낼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상생의 유전자를 무한복제하고 공동체 속에서 숙성시키는 것이다. 서로 소통함으로써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관계맺음을 발전시켜 성숙을 꾀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능한 정부와 탐욕스런 시장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의 회복을 통해 상생의 시민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마을공동체운동이 다. 마을공동체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를 통해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이러저 러한 사업적 성과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사업의 과정에서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고 성숙되어 가는 시민의 힘과 내용이 핵심이다. 사업의 참여 과 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와 의견을 드러내게 되고 서로 다른 처지와 생 각을 가진 이웃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하며, 공동의 기획과 실행 과정을 통 해 갈등을 중재하고 다양성을 조화시키는 태도와 기술을 배우게 된다. 바로 이 것이 시민의 힘, 시민성과 자치력을 키우는 마을공동체운 동의 본질이다. 9쪽 하단으로 계속
특집 공동체 9 돈은 산으로 흐르고 땅으로 스며 사라져야 한다 심 규 한 시골살이 여행학교 길잡이 도시와 자연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지만 21세기 도시화율과 도시의 속성에 대해서 는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면 도시 자체가 자연과 농촌에 대한 일방적 착 취 관계 위에 새워진 폭력적이고 기계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풍요는 다른 말로 자연과 농촌의 착취 내지 황폐화로 직결된다. 신석기문명 이후 도시는 자연발생적인 시장을 권력으로 장악하며 국가의 심장 역할을 해 왔다.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대의 신도시처럼 전형 적인 계획도시를 지중해 연안에 유포하고 세계인으로서의 도시인을 인종을 초 월한 보편인 개념으로 보급하고 주입하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원형을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차용하여 세계에 보급시켰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의 매혹과 무력이 토착 지역의 자율과 다양성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도시들이 지중해 연안에만 출현했던 것은 아니다. 인도와 중국 에도 세계 문명이 탄생한 곳은 마찬가지이다. 주변 자연을 착취하며 도시가 곳 곳에서 등장하였다. 차축시대에 노자와 예수, 그리고 석가는 이런 도시와 국가 의 출현 속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은 질문하고 해답을 찾았다. 그때까지 억 눌렸던 자연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누구이고, 어 디로 가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일종의 향수병처 럼 인간 스스로가 자연을 떠나 자기를 상실하는 소외를 경험하게 되면서부터 이다. 그러자 수많은 예언자와 성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소 박한 삶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 회복이야말로 인류 가 자유롭게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배타적 독점은 인간이 인간을 구속 하고 소외시키는 근본관념이었다. 독점 대신 그들은 절제와 검소, 나아가 무소 유와 대가 없는 사랑을 얘기했다. 자유란 곧 이런 독점에 의한 구속과 관계를 끊고 자연과의 조화를 회복하고 존재론적 균형 위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럴 때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 從 心 所 欲 不 踰 矩 ) 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세상 모 든 것이 하나임을 깨달을 때 우린 고립된 개인의 생존 투쟁에 매몰되는 것이 아 니라, 전체성 속에 사랑과 자유를 누리며 온전히 살아 갈 수 있다. 독점에서 공유로 그렇다면 독점의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가? 혁명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지상 그 어떤 곳도 송곳하나 꽂을 곳 없이 독점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가? 무릉도원도 양산박 도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본의 성격에 기인한다. 단순한 화폐와 자본은 다 르다. 화폐의 원래 기능이 교환수단이라고 하지만 알다시피 화폐는 탄생하자 마자 교환수단이자 축적의 수단이었다. 문제는 축적된 화폐가 곧 독점력에 의 해 점점 더 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는 데 있다. 봉건사회도 그랬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이렇게 축적된 자본의 힘은 무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에 의해 계급이 저절로 나뉘고 점차 세습화된다. 자본에 의한 계급의 탄 생과 제도화는 한 개인의 의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생리에 따라 발 현되는 것이다. 돈이 넘칠수록 계급의 지배와 구속은 더욱 공고해지고 계급사 회는 강화되고, 결국 지배자의 자유만 남게 된다. 남은 것은 완벽한 구속이다. 돈은 언제나 교환수단이라고 변명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그것은 철저히 독 점과 지배의 수단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본을 어떻게 거부 하고 벗어나야 할까? 독점은 지배력은 있지만, 그 어떤 도덕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요즘 열심히 일해서 돈 벌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투기성 자본 을 열심히 굴려 돈을 번다. 그렇다면 과도적 단계로서 독점 을 공유 로 돌리며 무소유 의 근거를 마련 해가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늘과 햇살이 모든 이의 것이듯, 물과 산과 들 또한 모든 이의 것이다. 하지만 둘러보라. 여기저기 박힌 말뚝과 유자 철망, 담장과 경고판을 볼 것이다. 필요한 이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사용 할 수 없다. 집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산도 들도 빈집 도 다 이용할 수 없다. 불법이다. 인간이 자연인으로 태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자연권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공재가 필요하다. 평등과 공공재는 자유로운 삶의 전제조건 이다. 하지만 자본에 의해 공공재가 모두 독점으로 변해 버렸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소유의 허영을 뒤집어 쓴 독점을 거부하고, 공유의 영역을 확장 하며 무소유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서 나는 투자와 저축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을 도시에서 산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리고 땅에 스며 사라지게 해야 한다. 내 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방식을 우선 떠올리면 편하다. 독점의 본질을 간파한 이 들은 도시에 모인 돈을 가지고 산으로 가 그것을 파묻어야 한다. 땅을 사지만 투기하기 위한 매매가 아니다. 매매가 불가능한 땅을 사는 것이다. 사적 소유 지가 아닌 공유지로 돌리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도시를 버리 고 산으로 향하여 자연의 본질과 만나고 직면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 능력이 없다면 곧 독점에 10쪽으로 계속 8쪽에서 이어짐 마을공동체운동은 살림과 모심, 소통과 영성의 개벽 상생의 공동체가 미래적 지향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 역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실사구시( 實 事 求 是 )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제 적 방법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 와 같이 정보의 독점과 소통의 부재로 막연한 공포가 확산될 때 메르스맵과 같 은 집단지성을 적용한 정보의 공유와 여론 형성을 통해 당국의 태도를 변화시 키고, 공공보육 및 교육기관이 휴업하며 대책 없이 책임을 개인들에게 떠넘길 때 커뮤니티 공간에서의 동네돌봄과 같은 작은 대안들을 만들어 나가며, 중앙 정부의 무능으로 대책 없이 위기가 확산되고 있을 때 그를 보완할 수 있는 지방 정부의 권능 확대와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등 발전적인 대안들을 시도 하고 현실화시켜 나가는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사이좋은 이웃끼리 믿고 사는 마을, 그것이 우리가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 는 바탕이다. 사익이 무시되거나 배제되지 않지만 공공성이 점차 높아지는 사 회, 사회적 유대와 끈끈한 정으로 엮어져 있지만 밖으로도 편견 없이 열려 있는 공동체로 발전하길 원한다. 돈과 물질 위주로 욕망하는 데로부터 사람과 생명 을 중심으로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문명의 흐름을 전환할 시대적 요청에 직면 해 있다. 점점 빈도와 심도를 더해 가는 재난과 이변 또한 우리에게 이러한 시 대적 요청을 깨닫게 해 줄 기회인 동시에 감추어진 위기임을 깨달을 수 있는 지 혜가 필요하다. 때문에 소통과 영성의 정치, 돌봄과 상생의 경제, 모심과 살림 의 문화, 생명과 평화의 사회를 추구하는 <개벽>의 제안은 오늘 우리에게 진실 한 울림을 주고 있다. 박홍순 님은 열린사회시민연합 공동대표(상임), 주민자치전국협의회 공동대표, 한국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자원봉사관리협 회 부회장,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10 특집 공동체 Penguin colony by Brian Gratwicke(@https://www.flickr.com/photos/19731486@N07/7081506277) 의해 종속되기 때문이다. 자유는 자기 생계력에 의해 지탱된다. 아리스토텔레 스가 정치학 에서 시민의 조건으로 경제적 자급자족을 든 것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생계의 위협이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로 시 민의 자유란 자급자족 위에 마련되는 것이었다. 즉 공유지는 자급자족을 위한 최소의 공공재가 될 것이다. 물론 공유지도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공유지란 인 간에 의해 이용되는 자연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유지도 완전히 자유로운 자연과 무소유 개념과 함께 사유되어야 한다. 만인은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든 땅이 필요하면 농 사를 짓고 집이 필요하면 살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배타적 독점에 의해 방 해받는다면 우리는 독점의 영역을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혁 명적인 방법으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타의에 의한 공유화보다 먼저 각성한 이 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점차 독점의 나라를 공유의 나라로 변화시켜 가면서, 공유와 무소유의 자율 공간을 확대해 가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돈이 넘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오직 독점에만 골몰할 때 돈은 더욱 타락한 사회를 만들 뿐이다. 이제는 돈이 나온 원래 그곳으로 돌 아가게 해야 한다.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돈은 산으로 흐르고 땅으로 스며 사 라져야 한다. 독점의 영역을 공공의 영역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토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과 사랑방 운동이다. 토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내셔널트러스트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공공의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 과 문화유산을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과 기부로 구매해 보존하는 운동이다. 내 가 살던 내성천변에서는 지율스님의 제안으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2차에 걸 쳐서 내성천 1평 사기 운동을 해 사과밭과 논을 구입하였다. 그곳에서 지율스 님과 내성천의 친구들 은 4대강 기록관을 세우고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 획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토지 내셔널트러스트는 자본주의의 초창기 영국에서 시작 된 공유지를 사유지로 전환한 인클로저운동을 거꾸로 돌리는 작업이다. 즉 사 유지를 공유지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그 공유지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 급자족에 의한 공동체를 키워 나가기 위한 토대이다. 누구나 최소한의 자급자 족을 위해 세 없이 1인당 200평 정도를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가장 값싼 땅과 오지부터 토지를 매입해 사적 소유에서 공유로 전환시켜 나가 는 것이다. 그것의 관리는 토지 내셔널트러스트의 토지은행이 맡는다. 물론 토 지은행은 영구보관과 중계 역할만 하지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다. 이런 공유지 는 자연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하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자유와 존엄을 지키 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그들의 방식대로 살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자고로 주빌리(jubilee:특정 기념주기를 일컫는 말, 일정한 기간마다 죄를 사하거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기독교적 전통에서 유래되었다.)와 정전법의 고대전통은 토지의 독점에 의 한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련한 제도였다. 동서양의 역사적 전 통 속에서 주빌리와 정전법의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지만 기득권의 방해로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가가 곧 기득권을 대표했기 때문이다. 비노바바베가 인도 전역을 도보로 횡단하며 부자들에게 빈자들을 마지막 자식으로 여기고 그들을 위한 토지 헌납을 호소했던 부단운동 도 같은 맥락의 운동이다. 하지만 부단운동은 명확한 관리주체와 원칙의 부재로 헌납 받은 토 지를 영원히 공유지로 묶어 두지 못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가 고 말았다. 비노바바베는 부자들 안에도 있는 선한 의지를 자극하여 자발적 동 참을 유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땅의 문제야말로 새로운 문명의 열 쇠가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자본의 부정적 기능을 축소하기 위해, 유산 상속과 재산 및 임금의 한계에 대해 공감대를 마련해 가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기득권의 포기 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 렇기 때문에 우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가진 돈과 땅을 기부해 우리 자신과 후 대를 위해 공유지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자는 것이다. 도시를 떠나 살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귀농을 미루어야 하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만들자는 것이다. 공유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공유지에 기반해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개인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도 크게 신장될 것이다. 자기만족과 행복감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랑방운동 사랑방운동은 우선 기독교, 불교 등의 종교를 거점으로부터 시작해 지역의 공공단체와 개인으로 확대할 수 있다. 교회와 절의 공간 중 십일조에 해당하는 1/10은 만인에게 무료로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방이다. 사랑방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랑과 환대의 공간이다. 옛날 좀 산다는 전통 가 옥에는 사랑방이 있었다. 원래는 손님을 맞이하고 손님이 머무는 방이었는데, 조선 후기 남성 가장의 생활공간으로 변화하면서 남성의 사회적 교류 공간이 자 접대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랑방의 의미를 좀 더 확대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개방적 나눔 의 장소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마을마다 사랑방을 만들어 가난하고 외 로운 나그네를 위한 환대의 공간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순례자 들의 숙소요, 젊은이들의 무전여행 숙소요, 가난한 이들의 집이며 도움이 필요 한 이들의 피난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간은 사실 많은 종교들 안에 이미 존재했지만 지금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빈자야말로 십일조의 주인임을 잊지 말자. 그것이 십일조의 목적지 다. 오직 십일조를 걷고 내는 것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잘못된 관습이다. 십 일조의 마련은 약자와 빈자를 향한 나눔이며 사랑의 방편이기 때문이다. 교회 를 짓거나 포교하는 일은 십일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별도의 헌금으로 충당 하고 십일조는 약자와 빈자들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공적 용도로 쓰여야 한다. 생각해 보라. 각 마을마다 교회와 절이 있다. 그곳에 공간의 1/10에 해당하 는 방 하나가 늘 마련되어 있고, 누구나 환대하고 또 환대받는다면 천국이 이미 여기 있는 것 아닌가? 우리 아이들은 물론 돈이 없는 사람들도 자유롭게 돌아 다니며 배우거나 구제받을 수 있다. 토지 내셔널트러스트에 의해 마련된 공유지와 공동체가 자급자족과 자유 의 거점이 된다면, 마을마다 존재하는 사랑방은 거미줄처럼 서로를 잇는 네트 워크 구실을 할 수 있다. 독점의 게임 대신 나눔의 게임을 시작할 때다.
문화광장 11 설탕과 홍차, 커피하우스에서 만나다 김 동 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홍차에 설탕을 타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그것도 커 피하우스에서 말이다. 커피하우스에서는 한량들이 모여서 설탕을 탄 홍차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소일하였다. 홍차 마시는 곳이 왜 커피하 우스일까? 홍차에 왜 설탕을 넣어 마시나? 커피하우스는 요즈음 거리에 넘쳐나 는 그런 커피숍인가? 그게 미디어와는 무슨 상관인가? 구석기시대 인류는 벌꿀과 과일에서 당을 섭취했다. 고대국가 시대에는 사 탕수수에서 설탕을 제조해 먹기 시작했다. 인도가 가장 앞섰다. 아마 술과 고 기를 멀리하기 때문에 요리에 각별히 공을 들인 까닭이었을 것이다. 사탕수수 와 정제기술은 6세기에 아랍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마호메트 이후 아랍제국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전파된다. 그리고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열대와 아열대 식물인 사탕수수의 재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설탕은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 따라서 극히 제한적인 특권층 귀족들만 이 설탕을 먹을 수 있었다. 대서양시대의 대항해 붐은 설탕의 역사에도 일대 전 환점이 된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바톤을 이어받은 영국은 카리브해의 바 베이도스를 식민지로 장악하여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경 영하였고, 그 결과 17세기에는 설탕이 대중화되었다. 로이드 커피하우스 (Lloyd s Coffee House, 1798, George Woodward at Calke Abbey) 설탕은 중국에서 수입한 홍차와 더불어 커피하우스의 메인 메뉴가 되었으 며, 커피하우스는 젠트리와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모여 담소하고 신문을 읽는 공론장이 되었다. 1650년 대학도시인 옥스퍼드에서 처음 등장한 커피하우스는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나 1700년경에는 런던에만 2천 개에 달했다. 나중에 홍 차가 메인 메뉴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커피를 팔았기 때문에 홍차를 주로 취급 하면서도 계속 커피하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게 된 이유는 비싸고 귀한 존재였던 이 둘을 한꺼번에 취함으로써 부와 신분을 과시 하기 위한 것이었다. 커피하우스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효시였으며 근대문화의 산실이었다. 하 버마스가 설명했듯이 커피하우스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모여서 자유롭게 토 론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명실상부한 공론장( 公 論 場, Public Sphere)이었다. 여론 형 성의 산실이었던 셈이다. 커피하우스는 근대신문의 정보원이었고, 경제적으 로 여유가 있는 지식인들은 신문을 읽으며 근대의 정신을 성숙시킬 수 있었다. 이즈음 등장한 신문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뉴스를 취재하였고, 신문이 나오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읽으며 내용을 공유하였다. 커피하우스는 근대적인 조직들의 산실이기도 했다. 뉴턴이 회장을 역임했 던 왕립협회, 증권회사, 은행, 보험회사 등이 모두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왕립협회의 창시자인 보일을 비롯하여 과학자들은 커피하우스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면서 과학혁명의 기반을 다졌고, 주가를 비롯한 경제정보도 커피하우스 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특히 로이드가 운영한 커피하우스는 무역업자와 상인들에게 항해와 가격 등 무역정보를 제공하다가 아예 1696년에는 <로이드 리스트>라는 신문을 만들 어 일간지로 발전시켰다. 영국 굴지의 보험회사인 런던로이즈는 여기에서 출 발하였다. 커피하우스는 문예공론장의 역할도 했는데, <로빈슨 크루소>와 <걸 리버 여행기>의 출판과 더불어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커 피하우스는 영국 의회정치의 양대 축을 이루는 토리당과 휘그당의 산실이기도 했다. 1969년 창간된 일간지, 로이드리스트 무엇보다도 커피하우스에서 설탕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홍 차 수입이 증가하는 것과 맞물려 설탕의 수요도 급증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의 무역업자들은 큰 이익을 남겨주는 설탕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하여 카리브해의 섬에서 대규모의 집단농장(플랜테이션)을 조성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데 심혈 을 기울였다. 설탕의 확보에는 카리브 지역에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 사람들 의 아픈 역사가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설탕 무역은 큰돈을 벌어 주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카리브해의 섬들에 대규 모 농장인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사탕수수를 재배했고, 고된 노동을 담당할 노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했다. 유럽은 아프리카에 총 과 면직물, 유리구슬 등을 팔아 노예를 사들이고, 흑인노예들은 카리브 지역에 팔아 설탕과 면화, 담배 등을 구입해 유럽에 가져가 큰 이익을 남기는 3각 무역 이 성행한 것이다. 이 시기에 카리브해와 브라질, 미국 등으로 끌려간 흑인노예는 1천만 명을 넘는다. 이 흑인노예의 후손들은 학살과 전염병으로 멸종하다시피 한 원주민 들을 대신하여 카리브지역 인구를 대체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인구비율도 바꿔놓았다. 오늘날 서구의 번영은 아프리카의 희생을 자양분으로 삼은 것이며, 반대로 아프리카는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다. 커피하우스도 그 희생의 산물이다. 설탕 넣은 홍차를 마시며 격변하는 시대 의 쟁점을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하던 커피하우스는 근대 언론의 태동을 준비 했다. 이른바 공론장의 등장이다. 중세시대에는 상의하달( 上 意 下 達 )만 있을 뿐 자유로운 공론장이란 게 없었다. 커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제약 없이 자유 롭게 발언하고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전에 없던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커피하우스에서 잉태한 신문은 19세기 산업사회에서 독점자본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공론장을 접수하여 폐기해 버린다. 광고 수입 을 위해 정치적 중립과 객관보도를 표방하면서 공론장 기능을 대행하는 듯 했 지만 실제로는 독점적으로 여론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기능을 함으로써 공론 장이 상실되어버린 것이다. 커피하우스는 클럽으로 전환하여 사라지고, 홍차 에 설탕을 넣어 마시던 습속도 사라졌다. 그리고 커피하우스가 잉태시킨 신문 도 그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 글은 <공무원U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12 따뜻한 인터뷰 아이살림 생명살림 유아교육자, 임재택 명예교수 한울님 생명사상을 담은 토종 자연산 유아교육을 해야죠! 임 소 현 본지 편집장 [편집실 주] 생명모성, 생명출산에 이어 이번엔 생명 유아교육이다. 부산대학교에서 오 랫동안 토종 전통방식 유아교육을 고집해 오다 작년 퇴임하신 임재택 명예교수를 모시 고, 생명 유아교육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임재택 명예교수는 1995년 부산대에 대학 최 초 어린이집을 직접 설립 운영하였고, 현재는 사단법인 생태유아공동체 대표, 한국생태 유아교육학회 회장, 사단법인 부모애숲 이사장을 맡아 생태유아지도사와 유아숲지도사 를 양성하고 있다. 또한 좋은부모자격증반 강좌를 통해 아이살림 생명살림을 실천하는 좋은 부모 만들기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아이를 한울님처럼 대하라. 고 하신 해월 선 생의 말씀대로, 아이를 하늘처럼 공경한다면 요즈음 종종 발생하고 있는 어린이 학대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진정 잘 키우려면 어떠해야 할지 임 교수님께 들어본다. 여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연과 놀이와 아이다움을 되찾아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아이를 한울님으로 모시는 아이살림 생명 살림의 교육이며, 우리 조상들의 5천년 아이 기른 지혜에 바탕을 둔 오래된 미 래의 유아교육이기도 합니다. 편집장: 양계닭과 토종닭의 비유가 재미있네요.^^ 임교수: 저는 원래 서울사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도덕교사를 하였 습니다. 그러다가 한국행동교육연구소에 취직해서 유치원교육 프로그램을 개 발하였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가 신설되면서 그때부 터 쭉 35년간을 재직하다가 작년에 정년퇴임을 했죠.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교 육이론이 무엇인지 압니까? 미국에서 수입된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 에 관한 이론이 전부인 줄 알고 배웠습니다. 그때 교육이란 결국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 적자본을 육성하는 것이죠. 한 인간을 귀한 생명으로 보지 않고, 자원이나 인력 으로 본 거예요. 그래서 산업사회 구조와 기능에 필요한 사고와 행동을 잘 하 는 사람으로 길러 공급하는 것이 교육인 거죠. 애 키우는 것만 해도 그래요. 옛 날엔 닭이나 돼지, 이런 가축들도 귀한 생명으로 보았는데, 요즘은 돈벌이 대상 이외로는 안 보지요. 생명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돈으로만 보는데, 인간도 마찬 가지예요. 인적 자원이란 이야기는 돈 될 애를 키우자는 거지요. 편집장: 언제부터 그런 각성이 드셨는지요? 임교수: 제가 그런 깨달음을 확실히 얻은 게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부터입니 다. 그때 저는 분명 경고음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병들고 있다는 그런 경고 음을 확실히 낸 것은 아토피의 확산이었습니다. 그전엔 그런 병이 흔하지 않았 어요. 그런데 1988년 올림픽 개최 즈음해서 햄버거니, 콜라니 패스트푸드가 유 행하였고, 그런 좋지 못한 서양식 먹거리가 유행하면서 아토피가 극성을 부리 게 된 거죠. 어느 분이 그러셨어요. 아토피( 兒 土 避 ) 는 아이가 흙을 피해서 걸릴 병 이라고. 반대로 아이가 흙을 만나면 낫는 병인데, 자연으로부터 멀어져서 생 긴 병이고, 한울님-하늘의 뜻을 어겨서 걸린 역천병 이고, 일종의 문명병인 거 죠. 이렇게 생명의 이치를 어기면 어른은 암에 걸리고, 아이는 아토피에 걸리게 됩니다. 아토피는 의외로 쉽게 나을 수 있어요. 임소현 편집장: 안녕하세요? 임교수님! 선생님의 생명살림, 아이살림 교육에 관 해서 찾아보니, 우리 할머니들의 전통육아 교육방식을 존중하고 이어받고 계 시다는 인상이었는데요, 먼저 선생님의 유아교육을 이야기해 주세요. 임재택 교수: 제가 이제까지 해 왔던 유아교육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살리고, 온 생명을 살리는 교육입니다. 생명 유아교육 내지 생태 유아교육은 자 연의 순리와 우리 조상의 지혜에 바탕을 둔 교육입니다. 임신 전후부터 취학 전 까지 태아, 영아, 유아 교육을 모두 포괄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 연과 놀이와 아이다움을 되찾아주고, 아이들을 신명나는 아이로 키워 신명나 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생명 유아교육의 목표입니다. 편집장: 서양식 교육이 대세인 우리 사회 교육 시스템에서 선생님의 교육철학 은 독특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말씀 속에는 해월 선생의 생명 살림과 모심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 같고요. 임교수: 지금의 어린이들은 아파트와 교실 콘크리트 공간에 가두어 키우는 양 계닭 과도 같아요. 좁은 양계장에서 가둬 놓고 키우는 닭이 병들어 있듯이, 우 리 아이들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있어요. 아이들이 생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예요. 그래서 저는 비유적으로 아이들을 병든 양계닭 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한 토종닭 처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숲이나 산에서 맘껏 뛰놀게 하 편집장: 아토피가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요? 임교수: 생명의 이치대로 살면 병은 없습니다. 야생의 동물들에게 병 같은 건 없 어요. 그런데 이들을 사육하면 병이 생깁니다. 아토피가 왜 왔냐? 양계장 닭처 럼 아이들을 양아장( 養 兒 場 ) 에 가둬 놓고 키워서 그런 병이 생긴 거예요. 거기 다 안 좋은 음식에 안 좋은 환경에서 정규 수업하고 특별활동 공부한다고 하루 종일 갇혀 지내니까 몸과 마음이 썩는 거예요. 요즘 보세요. 땅의 물, 흙, 숲이 다 썩었고, 하늘의 공기가 다 썩으니까 사람의 몸이라고 남아나겠어요? 같이 썩기 마련이고, 그게 아이에겐 아토피, 어른에겐 암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 서양식 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둬 놓고 키우면 안 되겠다, 각 성하고 부산대에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간 부산대 어린이집 원장을 하면서 자연산 유아교육을 실천하게 된 거죠.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님 생명사 상, 우리민족 고유사상에서 말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생명사상을 접하다 보니, 아이가 얼마나 귀한 생명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사상 에 바탕을 둔 최초의 자연산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자 연에서, 땅에서, 숲에서 맘껏 뛰어놀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죠. 우리는 옛 날에 온 동네는 물론이고, 들로 산으로 숲으로, 강으로 뛰어다니고 놀면서 자랐 어요. 그렇게 하니 생명력,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이 왕성해졌고, 사람들과 더불 어, 다른 천지만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힘도 기른 것이에요.
따뜻한 인터뷰 13 와 조상의 지혜에 기초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책도 40권이나 썼어요. 또 아이 들을 자연산으로 키우려고 하니 자연산 먹거리를 먹여야 되겠다는 결론에 이 르렀지요. 그래서 2년여 준비 끝에 2002년 3월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먹입시다.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살리고 우리 농촌 을 살립시다. 라는 구호를 내걸고 생태유아공동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도 그것이 대한민국 친환경 학교급식의 원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렇게 아이들을 자연산으로 잘 교육시키던 어느 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들이 병들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장차 유아 교사가 될 학생들을 1학년 때부터 생명 살림의 관점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부산대 어린이집 아이들과 숲놀이에 나선 임재택 교수 편집장: 선생님은 어렸을 때 어떻게 자라셨어요? 임교수: 지리산 두메산골 산청이 제 고향이에요. 700미터 고지에 살았는데, 한 6 킬로미터는 걸어야 큰길이 나올 정도로 오지 산골마을이었죠. 그래서 저는 자 연과 더불어 실컷 놀면서 컸습니다. 천지만물과 더불어 나 스스로 커 나간 셈이 죠. 봄여름 가을 겨울 자연만물은 만 가지 현상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그 갖가 지 모습들을 체험하며 사람과 자연이 하나 되는 생명공동체에서 자라났고, 어 진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이웃 어른들, 동네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경쟁해서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고 하면, 어 른들은 단박에 못된 놈 이라고 벼락을 치실 거예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못 하게 했고, 물을 함부로 넘치게 쓰면 안 된다고 배웠어요. 그런 공동체에서 저 는 배우고 자랐어요. 편집장: 유아교육과에 들어온 학생들을 생명살림 교육을 가르치셨다고요? 임교수: 요즘 학생들 모두 피자, 햄버거, 치킨 따위의 패스트푸드를 달고 살아 요. 그러니 얼굴을 보면 맛(?)이 갔어요. 재수 삼수 한 학생들을 보면 더 심각하 고요.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온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수 업에 들어온 학생들은 모두 그런 먹거리는 금합니다. 패스트푸드는 모두 금지 하고 단군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건강법, 장두석 선생의 자연건강법 을 실천하게 합니다. 그렇게 4,5년을 했더니 대박이었어요. 유아교육과뿐 아니 라 교양과정으로 부산대학교 전학생을 대상으로 잘먹고 잘사는법 이란 교양과 목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장: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수업을 하셨나요? 임교수: 저는 일단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구운 소금을 나눠 줍니다. 그리고 화학 성분 범벅의 치약 대신 그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게 합니다. 먹을 수 없는 성분 의 샴푸, 린스, 화장품 따위들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하루에 2.5리터 이상 물을 먹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변을 누면 물 같은 색깔이 나옵니다. 면역력을 키 워 병원엔 되도록 가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화학성분의 각종 약들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망가뜨리고 독소가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요. 자연에서 건강하게 생산된 좋은 먹거리를 잘 먹고 똥을 잘 누면 병은 걸릴 수가 없어요. 편집장: 그런 경험이 선생님의 생명살림 교육의 바탕이 된 것이군요? 임교수: 네, 그렇습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골고루 조화를 이루어야 합 니다. 그런데 서양 학문의 근간이 되는 근대철학을 만든 데카르트는 지식 중심, 이성 중심을 역설하였고, 근대 학교에선 지식 정보만 배우면 되지요. 하지만 우 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몸으로, 오감으로 많이 느끼고, 만 가지 경험을 하면서 배우고 자라났어요. 또래 친구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 가지 일이 벌어지고, 만 가지 일을 보고 듣고 생각하면서 지냈죠. 봄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며 얼마나 많 은 것을 몸으로 느끼며,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겠어요? 저절로 인성교육이나 창의성 교육을 받은 거죠. 이렇게 자연과 친구들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다 보 면 마음속으로 큰 뜻을 품은 사람이 됩니다. 이런 생각과 뜻이 모여 틀이 되면 혼이고 얼이라고 하는 민족의 정신이 되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 다. 고 하는데, 거기엔 사람의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양식 교육은 아 무 생각도 뜻도 없고, 혼도 얼도 정신도 없이 그저 표피적인 정보와 지식만 꿰 어 맞추는 꼴이에요. 우리 인간의 몸, 마음, 영혼에 눈이 있어요. 이게 다 열리면 순수하게 되어 귀신 도 다 보게 돼요.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고, 이 전체를 움직이는 혼이 있는데, 이것을 동학에서 지기( 至 氣 )라고도 하고, 한울님이라고도 하죠. 우리는 이런 것 들을 다 알고 있는 민족이었는데, 서양학이 들어오면서 하늘과 인간을 끊어 놓 았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 놨습니다. 육안만 남고 심안과 영안이 닫혀 버린 것이죠. 그러니 병이 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편집장: 교수님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에 대해 정통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학 계가 거의 서양 학문에 의존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일찍이 우리 고유 사상과 철 학에 입각해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계신 것이 무척 반갑습니다. 부산대 어린이 집을 운영하시면서 선생님의 생각이나 사상도 더욱 발전하셨을 것 같습니다. 임교수: 부산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한때는 대기자가 5천 명이나 되었어요. 아이들이 건강하고 활발하게, 창의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학부모들이 서 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했던 거죠.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면서 자연의 이치 편집장: 수업 후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나요? 임교수: 그럼요. 강의 첫 주에 수강 학생들에게 인바디검사(인체 4가지 주요성분-체 수분, 단백질, 체지방을 정량적으로 분석하여 근육과 체지방의 균형을 알아보는 검사)를 시킵니 다. 그리고 종강 무렵 다시 인바디검사를 하게 하여 몸의 변화를 살피게 합니 다. 그때 학생들이 깜짝 놀랍니다.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놀라서 입 을 다물지 못할 정도입니다. 또 부모님이 소금 양치질 같은 건강법을 실천하는 동영상을 찍어 온라인으로 올리면 가산점을 줍니다. 고혈압, 당뇨와 같이 만성 질환이 있던 부모가 제가 권하는 자연건강법을 실천해서 약을 끊고 좋아진 사 례도 종종 있었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편집장: 방정환한울어린이집이 개원하기까지 임재택교수님이 큰 역할을 하셨 다고 들었습니다. 임교수: 어린이를 때리지 마라, 어린이를 한울님처럼 대하라. 라고 하고, 어린 이날을 제정했던 방정환 선생님을 사람들이 많이 잊고 있습니다. 유아교육을 하는 사람들조차 아이들에게 민족의 혼과 얼, 정신을 심어주고자 했던 그분을 잘 몰라요. 그래서 그분의 뜻을 되살리고 기리기 위해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설 립에 적극 나서게 된 거죠. 편집장: 작년 가을에 개원했다고 들었는데 방정환한울어린이집도 숲생태유치 원인가요? 임교수: 네. 그렇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뛰어놀면서, 나무와 벌레와 바람과 친구 가 되는 천사 요정들의 어린이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매일 아침 선 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만나는 첫 모임에서 서로 큰 절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요. 이곳에서는 어린이도 선생님도 모두 한울님으로 맞절하고 서로 공경 합니다. 아토피나 변비, 이런 증상들로 고생하던 어린이가 몰라보게 건강해진 것도 놀라운 일이고요. 작년 4명이었던 원아 수가 입소문을 타고 올해 20명이 넘었다지요? 14쪽 하단으로 계속
14 개벽하는사람들 개벽 이 낳은, 개벽 을 낳은 저널리스트 청오를 기리다 민족과 아픔을 같이한 사람,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살려낸 이야기꾼, 목이 달아날지언정 바른 말을 막을 수 없는 강직한 잡지쟁이. 청오 차상찬(1887~1946) 선생은 서세동점이 대세를 이루어 물밀어 오는 조선 근대화 시기, 문명사적 대 격변기에, 총 대신 붓을 통해 민족 문화 운동과 항일 운동을 전개한 분이다. 청 렴 강직한 지사, 우리 역사와 인물을 사랑한 사학자, 민중 계몽의 큰뜻으로 시 종여일한 교육자, 민족의 풍속과 설화와 민담을 전해 온 민속학자, 시사와 세태 를 냉철히 통찰한 언론인이다. 차상찬 선생은 1887년 강원도 춘성군(현 춘천시 송암동)에서 태어났으며 19세 (1905)에 서울로 올라가 보성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는 강사로 후진 양성에 힘쓰다 1920년 개벽 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였다. 그 리고 개벽 폐간 때까지 기자, 시인, 편집자, 발행인, 주간으로 개벽과 개벽사를 이끌었다. 개벽을 발행하는 중에도 잡지 부인, 어린이, 신인간, 별건곤, 학생, 혜성 등의 창간과 편집에 참여하였고, 어린이날 제정과 어린이 운동 에도 활발히 나섰다. 해방 직후 복간된 개벽 의 편집 고문을 역임하였다. 평소 왜놈들이 게다짝을 끌고 쫓겨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고 했었다는 그의 말 처럼 해방된 지 1년이 채 안 된 1946년 3월 급환으로 생을 마쳤다. 선생은 오로지 안빈( 安 貧 )하는 철학 속에서 살다가 언젠가는 어느 제약회사에 관 계하신다는 말을 듣고 한번 찾아갔더니 약 얘기는커녕 온통 잡지 얘기로 시종( 始 終 )이시다. 얼마 지나 해방 후 매일신보 정리부 자리에서 선생을 보았다. 의자 위 로 올라 앉아서 책상다리를 하고 담배를 힘들여 피우고 계시었다. 아 선생님, 웬 일이십니까? 교정 보죠. 이 이상의 대화를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볼일을 보 고 나오려는데 일송( 一 松 )!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돌이켜보니 청오 선생이시 다. 일송, 해방되었는데 잡지 안 하겠소? 그 표정과 음색을 통해서, 이 한 마디 속 에는 해득( 解 得 )하기 어려운 운명조차 교류( 交 流 )된 것 같아서 난 글쎄요! 하고 뛰 쳐 나오듯 나와 버렸다. 이것이 최후의 대면이었던가 (최영수, 곤비( 困 憊 )의 서( 書 ), 1949) 청오 차상찬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이 일화에서 보듯, 그는 평생이 잡지 생각이었던 사람이다. 그를 추모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아쉬워 했던 것은 차상찬 선생이 잡지 개벽 발행의 중심인물이며,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었 지만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생활사 풍속사 등의 미시사( 微 視 史 )에 대한 관심과 지자체를 중 심으로 한 지역 인물 발굴 사업 등이 맞물리며 차상찬 선생에 대한 관심도 높아 지고 있다. 2004년 자랑스런 강원 문화인물 선정, 2010년 은관문화훈장 수여에 이어 지난 5월 29일에는 청오 차상찬 동상 제막 식이 열렸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 공 지천 조각공원이다. 강원도민일보와 청오 차상찬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고 강원도 와 춘천시, 지역 행정기관들과 여러 기업에 서도 후원했다. 그의 위상이 명실공히 강원 도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서 자리매김하 는 듯하다. 동상은 조각가 백윤기 씨의 작품으로 2.2m 높이에 지팡이를 짚고 곧게 서 있 는 그의 생전 사진을 토대로 만든 전신상 이다. 차상찬 선생이 만든 잡지 개벽 은 1920년 6월 25일 창간하여 1926년 8월 1 일 통권 72호를 끝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종합월간지이다. 이후 1930년대 속간 4호, 해방 후 복간 9호를 발행 총 85호가 발행되었다. 천도교 청년을 중 심으로 한 <개벽사>에서 만들어졌으 며, 창간호부터 판매 금지를 당하는 등 압수, 삭제, 정간 등 많은 탄압 속 에서도 염상섭, 김동인, 현진건, 나 동향, 김소월, 주요한, 이상화 등 많은 문인들과 작품을 배출했으 며, 이 작품들은 민중의 자주의식과 자유사상,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했다. 한국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지 개벽신문 과 그 주체인 <개벽하는사람들> 역시 애초 개벽 과 <개벽 사>의 창조적 복원이라는 표어 아래 탄생했다. 개벽신문 창간호 서두에 역 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개벽 의 여러 이상( 理 想 )들이 이 시대 시민( 市 民 ), 인류( 人 類 ), 생명공동체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불가결한 것이라고 보아 이를 계 승코자 하였다. 라고 밝혔듯, 우리는 비록 시대와 상황에 발맞추어 그 형태는 변할지라도 개벽 과 개벽 의 정신을 계승하고, 제2의 차상찬을 목표로 한다. 내년 3월 24일, 청오 차상찬 선생의 서거 70주년이 된다. 그가 걸었던 길을 되돌아보다 우리가 그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에 그에 대한 존경 이 더 크게 느껴진다. <글 / 편집실> 13쪽에서 이어짐 편집장: 어린아이를 한울님으로 공경하고 자연의 모든 존재 들을 섬기고 모시는 그 한울 마음이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의 정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런 어린이집, 유치원이 많아져야 다시는 어린이 학대 문제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고, 진실로 이 나라를 올바르게 짊어질 꿈 나무가 자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교수: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사람 키워서 한울세상 만드는 것이나, 홍익인간 키워서 이화세계 만들려는 단군사상이나, 신명나는 아이 키워 신명나는 세상 만들겠다는 우리 고유 풍류도의 사상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아이들을 신 명나게 잘 키워서 한울사람을 만드는 것이 생명살림 육아의 목표입니다. 그러 기 위해선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교사도 그런 신명나는 한울사람이 돼야 하고, 그리하여 온 세상이 모두 생명살림, 생명모심의 세상이 돼야지만 가능하 겠구나, 라는 게 저의 최종 결론입니다. 편집장: 선생님이 계속 아이에서 교사로, 부모로 교육을 확대해 가시는 이유가 그래서군요? 임교수: 제가 정년퇴임하니까 같은 시기 은퇴한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해요. 그 런데 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바빠져요. 제 수첩을 보면 주말에도 스케줄이 빼곡히 들어찼어요. 이러다가 일에 치여 제가 쓰러질 판이에요. 앞으로는 오프 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하는 교육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또 저 대신 생명살 림 생명육아 생태교육을 할 강사들을 길러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알기 쉬운 교재들도 개발해야 할 것 같고요. 할 일이 참 많습니다.^^ 편집장: 선생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져서 한울세상, 이화세 계, 신명나는 세상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임교수: 아이살림 생명살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노력해 갑시 다.^^
개벽필법 15 여성들이 평화운동에 나서야한다! - 국제여성평화걷기 국제여성평화대회 참가기 고 은 광 순 한의사 여성동학다큐소설 작가 매춘부가 돈을 못 벌게 되니 미군철수를 반대한다던 포주들 대학생 때의 일이니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미군철수가 이슈가 되었을 때 동두천 의정부쪽 사람들의 미군철수 반대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미군이 철수 하면 미군에게 몸을 파는 매춘여성들 수입이 없어지니 안 된다. 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평화나 정의가 아니라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사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순진한 나에게 분명히 알려준 최초의 사건이었다. 저들의 속셈은 을 반복하던 해설가, 알고 보니 중앙정보부 요원 그 후 십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초, 꼬마들을 놀이터에 내 보내고 TV를 켜 놓은 채 걸레질을 하고 있던 나는 TV 앞에 다가앉을 수밖에 없었다. 해설자의 소리가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TV는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남북고위급회 담을 마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것을 중계하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시민들 이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을 환송하고 있었다. 가슴 벅찬 광경이다. 그런데 남 북문제 전문가라며 해설자로 나온 사람은 저들의 속셈은 이라는 발언을 평균 10초 만에 한 번씩 반복하면서 모처럼 만의 남북관계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이.동.복. (나중에 알게 된 사실에 의하면 그는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고 1979년 박정희 사후에는 삼성그룹 에서 7년을 근무했다. 그리고 다시 노태우 임기(1988~1993) 때 안기부장특보로 일했으니 남북문제 전문가라며 TV에 해설자로 나왔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TV 해설자로 나와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던 그는 1992년 9월 북에서 열린 8차 남북고위급회담에 남쪽 대표단 대변인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대 통령훈령조작사건을 벌였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말이었는데 남북 이산 가족고향방문단 사업의 정례화 등 대단히 적극적인 남북소통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대표단의 대변인인 이동복은 원본을 파기하고 서류를 조작하면서까지 자신의 목표대로 남북관계를 냉각시켰던 것이다. 감사원은 그의 조작사실을 입증해냈고 그는 1993년 11월 해임되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 냈던 한완상은 강경 수구 세력이 자기 목적을 위해 얼마나 대담하게 불법과 편 법을 자유로이 활용하는지 놀랐다는 회고 글을 신문에 쓴 바 있다. 이동복의 대 통령 훈령조작사건은 남북긴장관계 조성을 통해 다음 대선에 보수정권을 탄생 시키려는 의도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운 좋게 감옥행을 피한 이동복은 2005년,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 매도하 며 국가보안법수호대회, 자유민주비상국민회의 발기인대회를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민족통일 원칙을 밝힌 6 15공동선언문 폐기를 주장하고 김정일 방한 무산, 북미 수교 무산의 공을 자랑했다. 그와 함께한 동료들은 부동산투 기, 호화별장구입, 부정축재, 군납비리, 비자금 조성, 뇌물방조 등으로 유죄판 결을 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난 김재순, 정내혁, 이상훈, 이종구, 이양호, 안무혁, 금진호등 유신정권이나 5공 6공의 고위급 인물들이었다. 분단 마피아들을 경계하자 2015년 5월 24일 세계적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 리마 보위 등 여성 30여 명이 북에서 판문점을 통 과해 남쪽으로 내려오려는 국제여성평화걷기(Women Cross DMZ)행사가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역사상 여성들이 주도하는 최고의 행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 무렵 지인이 그 행사를 방해하는 기사라며 메일을 보내주었다. 기사를 쓴 사람 은 이동복. 그의 주장은 WCD 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재미동포들 중에 친북좌 익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행사를 불허하고 그자들의 입국을 금지시켜 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지인이 자기에게 메일로 전해주었다는 내 용은 미국에서 종북 성향의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가 누구에게 후원금을 주었 고, 누가 어떤 행사에 참여했으며,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 따위였다. 좌우 구 WCD 행사 당시 파주통일동산에 모인 동학언니들. 왼쪽 네 번째(흰 모자)가 필자. 분 없이 친교가 가능한 미국 교포사회에서 대체 어떤 미국인이 특정 한국인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 무슨 발언을 하는지 그다지도 소상히 꿰고 있다는 말 인가? 미국의 정보기관 자료가 아닐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혹은 파주에서 대북전단을 날리는 자들을 후원하고 있는 미국의 어떤 기관 소속일까? 최근에는 다른 보수매체(군대에서 전역한 여성이 대표)에서 이동복의 기사를 거 의 복사하다시피 비슷한 주장을 했고 그 내용을 다시 조선일보가 기사화하기 도 했다(항의가 빗발치자 기사는 사라졌다). 그들은 김기종이 미국대사를 피격한 자 리에 참석했던 다수를 테러 배후 세력이라고 고발하기도 했다. 그들의 행동에 는 한완상 전 장관의 말대로 남북의 분단을 고착화하기 위해 상대의 강경책을 자극함으로써 남쪽의 강경 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묻어 있다. 분단 마피아 들이다. 분단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 수입 감소를 걱정해서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포주들과 그들의 본질은 똑같다. 이제 깨인 여성들이 나서서 평화운동을 할 때 지난 5월 25일 국제여성평화회의에서 발표자로 나선 기지촌 여성 김숙자씨 는 미군을 상대했던 매춘여성들이 현재 대단히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증언했 다. 늙고 병든 그녀들은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지만 주한미군기지 확장으로 쪽 방의 월세조차 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미군은 늙어 가는 그녀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분단 70년.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너무 크다. 해결의 기미는 어디에 도 찾아보기 힘들다. 우방국이라면 우리 민족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같은 민족 이 서로에게 겨누던 총부리를 걷어내게 도와야 하지 않을까? 미국은 그 반대로 행동해 왔다. 미국이 통일의 디딤돌이 되었다면 70년간 이토록 골이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무기회사는 이익금의 상당액(10%)을 한국에서 취하고 있 다. 한국 정부는 매년 평균 800억 원을, 쓰지도 못하는 무기, 써서는 안 될 무기 구입에 퍼붓는다. 최근 미국은 평화헌법을 팽개친 일본을 부추겨 군사동맹을 맺었다. 이후 일본은 미국에서 한 달 사이에 5조 원어치 무기를 구입하기로 계 약했다. 자국의 무기를 사면 원조도 해 준단다. 신무기로 120년 전 동학군 대량 살육한 이래 1945년까지 아시아에서 2천만 명을 죽였던 그들이다. 아이들 급식비 확보로 정부와 싸워야 하는 앵그리 맘. 언제라도 우리 아들 이 전쟁터로 끌려가 같은 민족과 싸우다 희생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에 떠 는 어머니들. 이제는 여성, 어머니들이 평화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다. 내 게 1인 시위 항목이 추가되었다. 여성들, 어머니들의 평화운동과 미군철수 운 동은 아마도 국내외의 분단 마피아, 무기 마피아들이 가장 두려워할 위력적인 시위가 되지 않을까? 여성 독자 여러분들의 동참을 바란다. 양쪽 군사 모두 어머니 자식! 무기 없는 세상, 어머니 손으로! 분단으로 이 익을 보는 모든 활동에 반대합니다!
16 스펙 없이 산다 청춘상담가, 좀 놀아본 언니 장재열 취재 정리 / 이 나 미 방송통신대 전임연구원 본지 편집위원 나는 사실 답을 알고 있다. 내가 매력이 없어 그가 떠났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그 외의 다른 이유를 죽어라고 찾는다. 내가 너무 쎈 여자라 버거웠을 거 야. 우리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 거야. 심지어는, 날 위해 떠났을 거야, 라고 하 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기어이 찾아낸다(남자들은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제발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가 왜 나를 떠났는 지를. 그리고 그 이유가, 나란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아도 됨을. 어떤 언니는 그럴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운동해서 살을 빼고 자신을 가꾸라고. 또 어떤 언니는 이럴 것이다. 아파하지 말라고. 그래서 청춘이라고. 그런데 이 언니는 독설 대신, 또한 위로 대신, 질문 을 한다. 지금 네가 왜 그 런 것 같니? 너의 문제는 무엇인 것 같니? 이 언니는 알고 있다. 실은 내가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단지 그것을 끄집어내기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러나 결국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접하고 나서는, 진짜 문제를 본격적으로 내가 대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좀 놀아본 언니 장재열의 상담 방식이다. 좀 놀아본 언니 장재열 앗! 이름 보니 남성 같다. 맞다. 그는 남성이다. 좀 놀아본 언니 는 그의 페 르소나(외적 인격) 라고 한다. 그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센 언니 의 포스가 느껴졌 다. 마치 자기관리 잘 하는 커리어우먼 같은 느낌? 이런 여자들, 좀 무섭다. 그 런데 그가 왜 굳이 자신을 센 언니 로 컨셉을 잡았는지 이해가 갔다. 그것이 그 와 참 잘 어울렸다. 그는 실제로 주변사람들에게 오빠보다는 언니 역할을 주로 했다고 한다. 미대를 나왔고 패션 일도 했기 때문에 주변에 늘 여자들이 많았다 고 했다. 자신은 그들과 잘 어울렸고 호칭만 오빠 였지 실제 역할은 언니 였다 고 했다. 난 사실 이 말이 아주 잘 이해가 된다. 나에게도 시스터후드(브라더후드 와는 쫌 다르다)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남성들이 꽤 있다. 섬세하게 또 유쾌하게 모 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양성성을 갖춘 남성들. 사실은 이들이 완벽에 가까운 인간들이다. 모두가 자신보다 잘난 사람들, 그래서 무수히 상담을 받았다 장재열은 198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난 늙은이처럼, 부모님은 뭐 하 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한 존재를 파악하기 위해, 계급 과 환경 이 엄청 중요하다. 아버지는 자동차 디자인하는 분이고 어머니는 주부 라고 한다. 아버지 직업이 너무 핫 해서 놀랐다. 아버지를 닮아 미대를 갔나 보 다고 했더니 본인은 어머니를 더 닮았다고 했다. 자신이 어릴 적부터 집에는 항 상 어머니 친구분들이 놀러오셨는데 그분들이 이런저런 고민을 말하면 어머니 는 상담 역할을 주로 하셨다고 한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닮은 것이다. 그는 이제까지 약 2만3천명을 상담했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숫자다. 전문 적인 상담공부를 했는가 물었더니 그런 적은 없고 실은 본인이 상담을 많이 받 았다고 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경쟁심과 열등감이 강했다고 한다. 왜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닐까, 왜 난 1등이 아닐까 등. 늘 최고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래서 삼수를 해서 기어이 서울대를 갔다고 했다. 서울대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 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입학해 보니 모두 자신보다 더 잘났더라는 것이다. 그 래서 다음에는 삼성에 입사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40개가 넘 는 기업에서 서류 탈락을 하면서 삼성에 결국 들어갔다. 그런데도 계속 불행했 다고 한다. 마침 들어간 부서가 인사팀이었는데 자신의 일이 누군가를 채용하 는 것이기보다는 누군가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도전하세요. 여러분은 할 수 있어요. 란 말을 하는 것이 싫었다 고 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하다 결국 퇴사했고 또 다시 심리상담을 받았다 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심리상담사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채용담당자가 아닌, 그저 언니오빠로서 그 친구들에게 솔직히 해주고픈 말은 뭐죠? 그러자 그는 그들이 저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심 리상담사가 그럼 지금, 당신부터 그렇게 살지 않는 게 어떨까요? 라고 말했다 고 한다. 그것이 바로 그가 인터넷 청춘상담가 좀 놀아본 언니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3년 전의 자신처럼 불안에 떨면서도 무작정 달리는 그 청춘 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함께 삶을 고민해주는 언니 하나쯤 있다면, 그 친 구들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동네언니로 이야기하듯 상담을 한다 주로 어떤 고민들을 상담해 오는가 물었다.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10대 소녀들은 주로 교우관계를 고민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세 명이 같이 친 했는데 어느 날 둘이 친해지고 자기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거나, 또는 자기랑 친했던 아이가 어느 날 다른 아이들과 더 친해지면서 자기 흉을 보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영화 <우아한 거짓말>이 생각났다. 그 영화를 보면 그저 발랄해 보이는 10대들의 우정 속에 실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속얘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한 영화 속 소녀는 결국 자살을 한다. 좀 놀아본 언니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있 는 것이다. 10대 상담자 중 남자아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들은 네가 누군데 내 고민을 말해?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 부모들은 꽤나 골치 아프겠다. 20대 여성의 상담 주제는 100퍼센트 연애 라고 한다. 대개 두세 가지 고민을 같이 얘 기하는데 그중 연애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2순위는 취업이라 했다. 20대 남 성은 연애 얘기는 별로 안 하고 대개 진로 상담을 많이 한다고 했다. 20대 여성 은 거의 다 짝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30대는 여성은 결혼 또는 직장 고민, 현재 비정규직인데 이직해야 하는지, 또는 직급은 자신이 더 높은데 아랫사람이 더 오래 있어서 사내에서 영향력이 자신보다 더 큰 경우 등. 30대 남성은 주로 신 입사원인데 진로 문제가 주된 고민이라고 했다. 30대 중 10% 정도는 취업준비 생이라고 했다. 이메일로 이런 고민들을 토로해 올 때 처음에는 자세히 답해주는 식으로 응 했으나 나중에는 이 방식이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아 방법 을 바꿨다고 한다. 한번은, 알고 보니 같은 사람이 여덟 번이나 질문을 했더라 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은 매사를 물어보고 행동했던 것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으로 상담방식을 바꿨다. 예를 들어 질 문자의 자존감이 너무 낮다고 생각되면 본인의 장점 10개와 단점 10개를 써 보 라고 한다고 한다. 그런 경우 대개 장점은 7시간 정도 걸렸는데 단점은 4분 걸 렸다고 말한다고 한다. 그러면 그 장점이 어디서 나오는 것 같냐? 고 재질문을 한다.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전문상담가로서가 아닌 동네언니로서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