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0ADC8ADC7D0C6C428C3D6C1BE292E687770>



Similar documents
01Report_210-4.hwp

<C3D1BCB15FC0CCC8C45FBFECB8AE5FB1B3C0B0C0C75FB9E6C7E D352D32315FC5E4292E687770>



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é¸ñ¼Ò½ÄÁö 63È£_³»Áö ÃÖÁ¾

177

제주어 교육자료(중등)-작업.hwp

<C3D6C1BE5FBBF5B1B9BEEEBBFDC8B0B0DCBFEFC8A C3D6C1BEBABB292E687770>

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6±Ç¸ñÂ÷

과 위 가 오는 경우에는 앞말 받침을 대표음으로 바꾼 [다가페]와 [흐귀 에]가 올바른 발음이 [안자서], [할튼], [업쓰므로], [절믐] 풀이 자음으로 끝나는 말인 앉- 과 핥-, 없-, 젊- 에 각각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형태소인 -아서, -은, -으므로, -음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체험합시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5. 우리 옷 한복의 특징 자료 3 참고 남자와 여자가 입는 한복의 종류 가 달랐다는 것을 알려 준다. 85쪽 문제 8, 9 자료

상품 전단지

::: 해당사항이 없을 경우 무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검토항목 검 토 여 부 ( 표시) 시 민 : 유 ( ) 무 시 민 참 여 고 려 사 항 이 해 당 사 자 : 유 ( ) 무 전 문 가 : 유 ( ) 무 옴 브 즈 만 : 유 ( ) 무 법 령 규 정 : 교통 환경 재

2

DBPIA-NURIMEDIA

화이련(華以戀) hwp

ÆòÈ�´©¸® 94È£ ³»Áö_ÃÖÁ¾

歯1##01.PDF

<5BC1F8C7E0C1DF2D31B1C75D2DBCF6C1A4BABB2E687770>

120229(00)(1~3).indd


민주장정-노동운동(분권).indd

<C0CEBCE2BABB2D33C2F7BCF6C1A420B1B9BFAAC3D1BCAD203130B1C72E687770>

untitled

E1-정답및풀이(1~24)ok

<C1B6BCB1B4EBBCBCBDC3B1E2342DC3D6C1BE2E687770>

최우석.hwp

< BDC3BAB8C1A4B1D4C6C75BC8A3BFDC D2E687770>

교사용지도서_쓰기.hwp

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cls46-06(심우영).hwp

0429bodo.hwp

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 B5BFBEC6BDC3BEC6BBE E687770>

<3130BAB9BDC428BCF6C1A4292E687770>

11민락초신문4호


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새만금세미나-1101-이양재.hwp

??

652

歯 조선일보.PDF

<33B1C7C3D6C1BEBABB28BCF6C1A42D E687770>

<C1DFB1DE2842C7FC292E687770>

96부산연주문화\(김창욱\)

???? 1

목 차 국회 1 월 중 제 개정 법령 대통령령 7 건 ( 제정 -, 개정 7, 폐지 -) 1.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 1 2. 지방공무원 수당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 1 3.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시행령 일부개정 2 4. 대

종사연구자료-이야기방 hwp

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34B1C720C0CEB1C7C4A7C7D828C3D6C1BEC6EDC1FD D28BCF6C1A4292E687770>

160215

참고 금융분야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1. 개인정보보호 관계 법령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 은행법 시행령 보험업법 시행령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자본시장과

hwp

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C1DFB0B3BBE7B9FD3128B9FDB7C92C20B0B3C1A4B9DDBFB5292E687770>

ad hwp

3. 은하 1 우리 은하 위 : 나선형 옆 : 볼록한 원반형 태양은 은하핵으로부터 3만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 2 은하의 분류 규칙적인 모양의 유무 타원은하, 나선은하와 타원은하 나선팔의 유무 타원은하와 나선 은하 막대 모양 구조의 유무 정상나선은하와 막대나선은하 4.

근대문화재분과 제4차 회의록(공개)

인천광역시의회 의원 상해 등 보상금 지급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의안 번호 179 제안연월일 : 제 안 자 :조례정비특별위원회위원장 제안이유 공무상재해인정기준 (총무처훈령 제153호)이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 (행정자치부령 제89호)으로 흡수 전면 개

교육실습 소감문

1

¼þ·Ê¹®-5Àå¼öÁ¤

109

단위: 환경정책 형산강살리기 수중정화활동 지원 10,000,000원*90%<절감> 형산강살리기 환경정화 및 감시활동 5,000,000원*90%<절감> 9,000 4, 민간행사보조 9,000 10,000 1,000 자연보호기념식 및 백일장(사생,서예)대회 10

歯 동아일보(2-1).PDF

며 오스본을 중심으로 한 작은 정부, 시장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다. 이에 대응 하여 노동당은 보수당과 극명히 반대되는 정강 정책을 내세웠다. 영국의 정치 상황은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 국민의당이 서로 경제 민주화 와 무차별적 복지공약을 앞세우며 표를 구걸하기 위한

<33352D2D31342DC0CCB0E6C0DA2E687770>

<B9E9B3E2C5CDBFEFB4F5B5EBBEEE20B0A1C1A4B8AE20B1E6C0BB20B0C8B4C2B4D92E687770>

1) 음운 체계상의 특징 음운이란 언어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때, 가장 작은 언어 단위이다. 즉 의미분화 를 가져오는 최소의 단위인데, 일반적으로 자음, 모음, 반모음 등의 분절음과 음장 (소리의 길이), 성조(소리의 높낮이) 등의 비분절음들이 있다. 금산방언에서는 중앙

DBPIA-NURIMEDIA

내지4월최종

주지스님의 이 달의 법문 성철 큰스님 기념관 불사를 회향하면서 20여 년 전 성철 큰스님 사리탑을 건립하려고 중국 석굴답사 연구팀을 따라 중국 불교성지를 탐방하였습 니다. 대동의 운강석굴, 용문석굴, 공의석굴, 맥적산석 굴, 대족석굴, 티벳 라싸의 포탈라궁과 주변의 큰

15강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106월 평가원] 1)심청이 수궁에 머물 적에 옥황상제의 명이니 거행이 오죽 하랴. 2)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아침저녁으로 문 안하고, 번갈아 당번을 서서 문안하고 호위하며, 금수능라 비

2 국어 영역(A 형). 다음 대화에서 석기 에게 해 줄 말로 적절한 것은? 세워 역도 꿈나무들을 체계적으로 키우는 일을 할 예정 입니다. 주석 : 석기야, 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좋은 일 있니? 석기 : 응, 드디어 내일 어머니께서 스마트폰 사라고 돈

Microsoft Word - 青野論文_李_.doc

<B3EBB5BFB0FCB0E8B9FD20B1B9C8B820B0E8B7F920C0C7BEC828C3D6C1BE29A4BB2E687770>

<B5B6BCADC7C1B7CEB1D7B7A52DC0DBBEF7C1DF E687770>

부벽루 이색 핵심정리+핵심문제.hwp

입장

PSAT¿¹Á¦Áý ȨÆäÀÌÁö °Ô½Ã (¼öÁ¤_200210) .hwp

京 畿 鄕 土 史 學 第 16 輯 韓 國 文 化 院 聯 合 會 京 畿 道 支 會

<C3D6BFECBCF6BBF328BFEBB0ADB5BF29202D20C3D6C1BE2E687770>

2힉년미술

PDF

2월 강습회원의 수영장 이용기간은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로 한다.다만,월 자유수영회 원,자유수영 후 강습회원은 접수일 다음달 전일에 유효기간이 종료된다.<개정 , > 제10조(회원증 재발급)1회원증을 교부받은 자가 분실,망실,훼손 및


인 사 청 문 요 청 사 유 서

산림병해충 방제규정 4. 신문 방송의 보도내용 등 제6 조( 조사지역) 제5 조에 따른 발생조사는 다음 각 호의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한다. 1. 특정지역 : 명승지 유적지 관광지 공원 유원지 및 고속국도 일반국도 철로변 등 경관보호구역 2. 주요지역 : 병해충별 선단

김기중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 내용심의의 위헌 여부.hwp

넓은 들을 배경으로, 낙동강의 풍부한 수자원은 예로부터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상주의 원동력이다. 강은 단순 히 물은 담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사 문화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또한 강은 크고 작은 여러 하천들이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룬다. 낙동강 역시 상

기사스크랩 (160504).hwp

(095-99)미디어포럼4(법을 알고).indd

소공동체 기도 하느님 아버지, 저희를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저희가 모였사오니 여기 모인 이들과 이 가정에 축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희는 오늘 소공동체 모임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공부 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 합니다. 주님께 청

Transcription:

인천학연구총서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김수중조남호천병돈 공편

머리말 진리 를 우리말로 참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반대를 거짓 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우리말 어원사전>을 찾아보아도 아직까지 거짓 에 대한 어원만 밝혀져 있다. 거짓 의 어원은 거죽 이며 이는 지 금 우리가 사용하는 가죽 과 뿌리가 같다고 한다. 즉 그것은 겉에 드 러난 부분, 곧 껍데기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참 의 어원을 추측 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가득)차다 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니, 참 은 차다 의 명사형인 것이다. 껍데기 형식만 남은 것이 거짓 이고, 알맹 이 내용이 꽉 찬 것이 참 인 것이다. 1) 이쯤 되면 민족시인 신동엽의 싯귀가 떠오를 것이다. 껍데기는 가라 四 月 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핵심이니, 그것은 인간의 진실을 추구하여 형해화되는 껍데기를 끝없이 극복하려는 정신 인 것이다. 양명학의 출발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명대( 明 代 )에 형성된 양 명학은 형식과 허위성에 빠진 주자학을 비판하면서 나왔다. 송대에 발생한 주자학은 원대( 元 代 )에 과거시험의 텍스트가 되면서 관학으로 서 자리 잡게 되었고, 결국 관변의 통치철학으로 교조화 되어 갔다. 1) <한겨레신문> 김수중교수의 철학산책, 2004년 7월26일자에 좀 더 자세한 내 용이 있음.

이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양명학은 도학 본래의 생동성을 회복하고자 나온 도학( 道 學 )혁신운동 이었다. 조선 중기 양명학을 수용한 초기 인물인 장유( 張 維 ; 1587-1638)도 위와 같은 양명학의 정신을 꿰뚫고 있었다. 조선의 건국이념이었던 주자학은 이 땅에 들어와 200여년이 지나면서 장유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형식화되어 당파 싸움의 명분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장유는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학술은 다양하다. 정학( 正 學 )이 있는가 하 면 선학( 禪 學 )과 단학( 丹 學 )이 있고, 정주( 程 朱 )를 배우는가 하면 육씨 ( 陸 氏 ; 象 山 )를 배우기도 하는 등 학문의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 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식 무식을 막론하고 책을 끼고 다 니며 글을 읽는 자들을 보면 모두가 정주( 程 朱 )만을 칭송할 뿐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중국에는 학자가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학자가 없기 때문에 그러 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의 사상 풍토는 장유가 예견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퇴계 이황이 양명학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후 어 느 누구도 감히 드러내놓고 양명학을 주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명대 에 유행하던 양명학의 기본 저술들은 큰 시차 없이 조선에 유입되고 있었다. 가난한 시대 에도 용감한 지식인들은 나오는 법이다. 정제두( 鄭 齊 斗 ; 1649-1736, 호 霞 谷 )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 최고의 양명학 자이다. 그는 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기울어져가는 가운을 통탄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곡의 개인적인 삶은 불우하고 불행하였다. 41 세 되던 해에 기사환국으로 남인 정권이 다시 등장하는데 그는 처음 으로 취임한 실직인 평택 현감을 사임하고 대리문초( 對 吏 問 招 )까지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안산으로 이거( 移 居 )하였다. 그 후로 60세까지

20년 동안을 그는 안산에서 양명학에 몰두하였다. 61세 이후로 그는 강화에 가서 둔세하며 제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양명학에 천착하여 강화학파 의 토대를 놓게 된다. 하곡은 당시 학자들이 판에 밖은 듯이 정주학적 틀 안에서 안이하 게 학문하는 태도를 비난하여, 오늘날 학문을 말하는 사람들은 주자 를 배우는 게 아니라 거짓 주자를 배우고 있으며, 아니 거짓 주자가 아니라 겉으로 전해들은 주자이다. 그들의 의도는 주자란 이름을 끼 고서 위세를 부려 개인 이익을 건지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주 체적인 입장에서 당시까지 전개된 중국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 고, 아울러 조선 주자학적 성과를 종합하는 큰 틀을 제시하였다. 주자학의 교리체계가 좀 더 분명하고 교조적이라면, 주제성을 중시 하는 양명학의 성격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다. 이런 점으로 인하여 제자들로 이어지는 양명학의 전개는 다양한 방면으로 전개되 어 문학 역사 등의 여러 분야까지 연결된다. 따라서 하곡 이후 다방 면으로 전개되는 조선 양명학파, 즉 강화학파의 넓은 프리즘은 우리 의 경우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양명학의 본질은 진정성을 추구하 는 태도에 주안점이 있는 것이지 정해진 교리를 묵수하는 데 있지 않 기 때문이다. 양명학은 성격상 관료들 보다는 아웃사이더에게 더 잘 어울린다. 강화학은 우리 사회에서 결코 관학이 될 수 없었다. 심지어 현대에 있어서도 양명학은 주류 철학으로서 보다는 이단 으로 취급되는 듯하 다. 그러나 양명학을 철저하게 이해할 때만 조선시대의 전체적인 사 상사적 윤곽이 그려질 수 있다. 양명학에 대한 복권이야말로 우리에 게 주어진 사상사적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양명학에 대한 연구에는 연구자들의 땀과 눈 물이 배어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와 저작을 한 곳에 모

아 소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은 앞으로 전개될 본격 적인 연구를 위한 작은 핸드북에 불과하다. 짧은 기간의 작업이라 빠 진 부분이나 오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민족문화추진회 (현 한국고전번역원)의 엄청난 해제작업, 박연수교수와 송석준교수의 기초적 정리 작업, 그리고 심경호교수의 정보제공이 없었다면 이 책 의 출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리 자료의 이용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신 연구자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원시 자료를 복사해 준 국립중앙도서관, 경희대학교 도서관, 서울대학교 도서관, 성균관대 학교 존경각, 대전대학교 도서관, 배재대학교 도서관 관계자분들께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끝으로 이 프로젝트를 마련해주신 인천학연 구원과 실무자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편자를 대표해서 김수중이 쓰다.

차 례 Ⅰ. 강화학파 1. 강화학파에 대하여 11 2. 하곡학파 의 문헌 해제 필요성 20 3. 문헌 해제 방법 23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해제 1. 하곡집(霞谷集) 25 2. 저촌유고(樗村遺稿) 45 3. 관양집(冠陽集) 51 4. 선고(先藁) 60 5. 두남집(斗南集) 64 70 6. 원교집(圓嶠集) 7. 이참봉집(李參奉集) 77 8. 완구유집(宛丘遺集) 82 9.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89 10. 신재집(信齋集) 95 11. 초원유고(椒園遺藁) 101 12. 주영편(晝永編) 106 13. 석천유고(石泉遺稿) 109 14. 시차고(詩次故) 116 15. 역차고(易次故) 122 16. 서차고(書次故) 127 17. 대연유고(岱淵遺藁) 134 18. 사기집(沙磯集) 137

19. 백운문초(白雲文抄) 143 20. 심대윤전집 148 21. 소호당집(韶濩堂集) 161 22. 명미당집(明美堂集) 180 23. 당의통략(黨議通略) (광문회발간(光文會發刊)) 188 24. 독역수기(讀易隨記) 189 192 25. 경재집(耕齋集) 26. 계명의숙취지서(啓明義塾趣旨書) 199 27. 난곡존고(蘭谷存稿) 202 28. 담원국학산고(薝園國學散藁) 209 Ⅲ. 연구 저서 요약 1. 당의통략 217 2. 한국양명학연구 222 3. 조선시대의 양명학연구. 224 4. 한국의 양명학 228 5.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 231 239 6. 한국 근대유교 개혁운동사 7. 강화학 최후의 광경 241 8. 성리학과 양명학 244 9.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2) 248 10.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3) 252 11. 한국유학사상사 Ⅲ-조선후기편(상) 255 12.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 257 259 13. 동아시아의 양명학 14. 동양정치사상 한국양명사상의 전개 261 15. 양명학의 이해 - 양명학과 한국양명학 265 16.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4) 269

17. 다산과 석천의 경학논쟁 275 18. 왕양명과 양명학 278 18. 한국의 상산학(象山學)과 양명학 281 20. 하곡 정제두 286 21. 이건창 문학연구 287 21. 원교 이광사 문집 288 290 22.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 - 원교창암 유묵 23. 하곡 정제두의 사상 293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하곡 정제두 299 강화학파 및 한국양명학 335 원교 이광사 345 심대윤(沈大允) 367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370 영재 이건창 387 위당(爲堂) 정인보 390 Ⅲ.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1. 저서류 397 2. 강화학인별 분류 - 일반논문학위논문 399 3. 강화학파 - 일반 426 4. 한국 양명학 428 찾아보기 436

정제두(鄭際斗. 1649-1736)의 친필로 자신의 심경을 적은 글이다. 서적을 우연히 한가롭고 조용할 때에 즐기니, 책을 펼치면 얻는 바가 있어 문득 기뻐하여 먹는 것도 잊게 된다. 수목의 가지가 엇갈려 수풀을 이루고 철 따라 우는 새소리 변하는 것을 보고 또한 흔연히 기뻐하였도다. (지본묵서, 24.0 11.4 )

Ⅰ. 강화학파 1. 강화학파에 대하여 양명학이 조선에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능화는 동강(東岡) 남언경(南彦經)과 경안령(慶安令) 이요(李瑤)가 최초의 양 명학자라고 한다. 그러나 오종일은 1521년 이전 왕양명이 생존했을 때 이미 전습록(傳習錄) 초간본이 전래되었다고 한다.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연보에 변왕양명수인전록(辨王陽明守仁傳錄) 이 있고, 십청원(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십청헌집(十淸軒集) 에 우화눌재 (又和訥齋) 라는 시(詩)에 양명노자치심지학(陽明老子治心學) 이란 글 을 근거로 1521(중종16)년 이전에 양명학이 전래되었다고 오종익은 보고 있다. 하지만 윤남한은 양명학의 형성을 1528(중종말)에서 1533(명종초), 정주학이 심학화(心學化)화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초 기 양명학 수용과정에서 이요가 선조에게 양명학을 찬양하자, 선조도 이에 적극 동조하면서 유성룡의 양명학 배척을 거부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조 때에는 양명학을 수용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퇴계(退溪) 의 전습록변(傳習錄辨) 이후에 양명학은 이단사설 로 배척당했다고 한다. 정인보는 양명학연론 에서 조선의 양명학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1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말했다. 조선에는 양명학파가 없었다. 조선에서 양명학은 마치 무슨 이단 사 설(邪說)처럼 내몰려 양명학과 관련된 책이 책상 위에만 놓여 있어도 사문난적이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한두 학자가 비록 양명 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밖으로 그것을 드러내 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양명학파가 없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지는 않 다. 조선에는 주자학파뿐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누구를 막론하고 주자 학을 받들어야만 입신양명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조선에는 주 자학이 전부였기 때문에 따로 주자학파라는 이름마저 없었다. 그러나 학문이 입신양명의 수단이 되면 텅 빔[虛] 과 거짓[假] 의 폐 단이 생기기 쉽다. 하지만 어떠한 학문이 입신양명은커녕 온 세상에서 배척을 받는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이 학문이 옳기 때문에 나 혼자라도 이것을 공부한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조금의 거짓도 없 는 순수한 학문자세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조선에는 없었다고 한 양명학파가 실제로는 가장 귀중한 존재가 아니겠는가.1) 그러면서 정인보는 조선의 양명학자를 세 부류로 구분했다.2) 이 세 1) 정인보, 양명학연론 (대구, 계명대학교출판부, 2004), 125-126쪽. 2) 첫째, 뚜렷한 저작이 있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이나 글 가운데 분명한 증 거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하더라도 양명학파로 분류하기에 의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최명길(崔鳴吉, 호 지천(遲川), 1586-1647)과 장유(張維, 호 계곡(谿谷), 1587-1638) 그리고 정제두(鄭齊斗, 호 하곡(霞谷), 1649-1736)가 여기에 속한다. 둘째, 겉으로는 양명학을 비난하지만, 속으로는 양명학을 주 장한 사람들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광사(李匡師), 이영익(李令 翊), 이충익(李忠翊) 등이다. 셋째, 양명학을 언급하지 않고 또 실제로 주자학을 추앙하였지만, 주장의 핵 심적 정신을 보면 두 말할 필요 없는 양명학자.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홍

Ⅰ. 강화학파 13 부류 중 하곡(霞谷)만이 양명학에 대한 전문 저서를 남겼다. 하곡은 만년(61세-88세 서거까지)에 강화도를 거점으로 학문을 닦고 연구하면 서 저술을 남겼다. 하곡의 학문이 확립된 이후, 아들 정후일(鄭厚一) 과 그의 문인(門人)인 이광명(李匡明), 이광사(李匡師), 이광신(李匡 臣), 심육(沈錥), 윤순(尹淳), 이진병(李震炳), 정준일(鄭俊一), 송덕연 (宋德淵), 최상복(崔尙復), 이선협(李善協), 신대우(申大羽), 이광려(李 匡呂), 성이관(成以觀), 오세태(吳世泰), 이선학(李善學), 김택수(金澤 洙) 등이 있었다. 이후 이들의 학문은 가학(家學)으로 전승된다. 하곡 의 아들 정후일의 학문은 사위인 이광명과 그의 고손(高孫)인 정문승 (鄭文升), 정기석(鄭箕錫), 정원하(鄭元夏) 등으로 이어졌으며, 신대우 의 심학(心學)은 그의 아들인 신작(申綽), 신현(申絢)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하곡학의 가장 큰 줄기는 역시 전주 이씨 덕천군파(德泉君 派) 가문인 이광신, 이광려, 이광사, 이광명이다.3) 이들의 학문 전승을 대용(洪大容, 호 담헌(湛軒), 1731-1783)이다. 정인보 저, 홍원식 해설, 양명 학 연론 (대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4), 126-168쪽 참고. 3) 덕천군파 가계도는 다음과 같다. 恭靖王子 德天君 厚生 五代 惟侃-景奭 景稷-長英-集成-眞卿-匡祚 後英-翼成-聞道-匡運 德成-眞源-系匡尹 眞淳-匡說 眞洙-匡尹出 匡呂 正英-晩成-系眞儒-匡翼-系承孝-勉信 大成-眞儒出 眞儉-匡泰 匡濟 匡震(夭折) 匡鼎 匡師-肯翊-勉耆-述遠 令翊-系勉愚-發遠

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다시 살펴보면, 이광려는 정동유(鄭東愈)로, 이광사는 그의 아들인 이 긍익(李肯翊)과 이영익(李令翊)으로, 이광명은 양아들인 이충익(李忠翊) 과 이면백(李勉伯), 이시원(李是遠), 이지원(李止遠)으로 이어졌다. 이 시원의 심학은 다시 이상학(李象學), 이건창(李建昌), 이건승(李建昇)에 게, 이지원의 학문은 이건방(李建芳), 정인보로, 정인보의 학문은 다시 제자인 민영규(閔泳珪) 홍이섭(洪以燮)으로 이어졌다.4) 이렇게 하곡을 眞休-匡臣-敬翊-勉行 勉衡 眞伋-匡彦-榮翊-勉訥-會遠 匡贊-良翊-勉通 系勉季 匡顯-文翊 忠翊出 弘翊 匡敏-天翊-勉始-系眞遠 勉治 匡謹-雲翊-勉履-章遠 明翊 眞偉-匡明-系忠翊-勉伯-是遠-象學-建昌 建昇 止遠-象夒-系建芳 喜遠-象曼-建芳 4) 강화학파의 학맥 계보도는 다음과 같다. 霞谷-鄭厚一(子)-鄭文承(高孫)-鄭基錫(6대손)-鄭元夏(7대손) 李匡明(손자)-李忠翊-李勉伯-李是遠-李象學-李建昌 李建昇 李止遠-李建芳-鄭寅普-閔泳珪 洪以燮 黃玹 李匡師-李令翊 李肯翊(子)( 연려실기술 )-李勉伯( 海東惇史 )-이시원( 國朝文獻 )-이건창 ( 黨議通略 ) 李匡臣 李匡呂-鄭東愈 金澤秀

Ⅰ. 강화학파 15 중심으로 전개되는 학통을 하곡학, 강화학, 강화양명학, 강화하곡 학, 강화하곡학파 등 여러 가지 명칭을 붙여서 부른다. 사실 강화라는 지역을 통해 하곡을 중심으로 전개된 학문을 규정한 사람은 정인보의 제자 민영규이다. 민영규는 강화학이 반드시 양명학 의 묵수자로서 일색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없다. 강화학의 성장이 정하곡의 양명학에서 발단을 이룬 것이긴 하지만, 하나의 율법의 외 형적인 묵수가 어떠한 새로운 생명도 거기서 약속되지는 않는다. 이건창과 정원하, 홍승원은 모두 강화학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분들이 지만, 내가 그것을 양명학이라 부르지 않고 강화학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찾아야 했던 데엔 오는 변화를 적극 평가하고 싶었기 때문이 다. 라고 했다.5) 민영규의 논지를 근거로 할 때, 민영규 이전에는 하 곡의 사상을 중심으로 강화도에서 발흥한 학문 전체를, 하곡의 사상 이 양명학 중심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양명학 이라고 암묵적으로 통용 申大羽(孫壻)-申綽 申絢 沈錥 尹淳(하곡의 아우 鄭齊泰의 사위)-李匡師(書體) 李震炳(遁谷) 鄭俊一 宋德淵 崔尙復 李善學 李善協 成以觀 吳世泰 유준기, 한국근대유교개혁운동사 (증보판)(서울; 아세아문화사, 1999), 288289쪽 참고. 5) 민영규, 위당 정인보 선생의 행장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실학 원시, 동방 학지 13집, 1972. 재인용, 최재목, 강화양명학파 연구의 방향과 과제, 양 명학 12호, 2004. 8, 57쪽.

1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된 것 같다. 민영규에 의해 하곡학에 대한 강화학 이라는 새로운 개 념 규정이 제시된 후, 적지 않은 학자들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유명종은 강화학파의 양명학 이라고 이름 붙이면서, 강화학파의 양 명학 의 특징을 그들이 전수한 양명학은 심학(心學)이다. 따라서 심학 에는 시문(詩文)이 있고, 정(情)이 있고, 의(意)가 있으며, 사(史)가 있 고, 문예서화(文藝書畵)가 있다.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함께하는 혼일 한 심신의 학문, 곧 치양지학(致良知學)이란 참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동정[眞誠惻怛]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음(正音) 사학(史學) 서예(書藝) 시문(詩文)으로 삶의 참뜻을 symbolic하게 드러내려 하였 고, 겸해서 실학(實學)과 제휴하여 이미 비인간화된 사회에 대하여 도 전 혹은 개혁의 시도를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참으로 깨친 양지는 다시 민족의 주체성 천명에 얼을 미친다. 라고 말하면서, 이광신, 이 광사, 이광려, 이긍익, 이영익, 신대우, 이충익, 정동유, 신작, 정문승, 정기석, 이시원, 이상학, 이건창, 이건승, 김택영, 이건방 등의 사상을 서술했다.6) 이처럼 유명종은 그들이 비록 정음(훈민정음학 연구) 사 학 서예 시문 등 여러 방면으로 나아갔지만, 그들을 하나로 꿰뚫는 것은 여전히 양명의 심학 즉 양명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명종 역 시 강화학파 라고 했다. 유준기 역시 강화학파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강화학파를 조정으 로부터 소외된 소론(少論)에 속하면서 심신(心身)의 학으로서 양명학 의 치양지(致良知)를 목표로 하는 유학자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강화학은 권력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발견을 위한 학문이라고 한다. 이들은 역사학, 정음(正音), 서화(書畵), 실학 등에서 새롭고 창 조적인 경지를 개척하였으며, 한말(韓末)의 위기적 국면을 당하여 그 6) 유명종, 성리학과 양명학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4), 차례 부분 참고.

Ⅰ. 강화학파 17 들은 절조(節操)있는 생애로 일관하면서 역사서, 애국시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고고한 애국지사를 많이 배출한 것은 양지(良知)의 자 기실현이었다고 주장했다.7) 정량완, 심경호는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 이라는 강화학파 전문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강화학파를 연구하는데 시금석이 될 정도 로 자세하게 강화학파 인물들을 강화학파의 문집을 바탕으로 서술하 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량완, 심경호는 강화학파 라 는 용어를 사용한다. 심경호는 하곡에 의해 형성된 강화학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하여 국어학과 국사학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고 한 다. 강화학파는 한결같이 정주학(程朱學)을 허학(虛學)으로 규정하고,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고증학(考證學)의 방법론을 받아들였 다고 한다. 강화학은 양명학을 기조로 하되, 허학을 배격하는 유력한 방안으로 고증학을 수용하였고, 실학자 정약용의 사공(事功)의 학문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강화학은 실심(實心) 곧 자기의 진실한 마음 에서 인간에 대한 주체적 인식에 도달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나갈 것 을 주장하였다고 하며, 강화학의 지적 고뇌는 바로 허가(虛假)를 배격 하고 진실무위의 인간형을 수립하는데 있었다고 한다.8) 그래서 심경 호는 그들의 학문을 넓은 의미의 실학과 구분하여 실심실학(實心實 學) 이라고 불렀다.9) 최재목은 강화양명학파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하곡학 이라고 하면 하곡 정제두가 만년에 강화도 7) 유준기, 한국 근대유교 개혁운동사 (서울; 삼문, 1994). 8) 심경호, 강화학의 허가비판론(虛假批判論) ( 대동한문학 14집, 대동한문학회, 2001, 6), 68쪽. 재인용, 박연수, 강화 하곡학파의 실심(實心) 실학(實學) ( 양 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 7), 124쪽. 9) 심경호, 강화학파의 가학(假學) 비판 ( 양명학 13호, 2005년 2월), 247쪽 머 리말.

1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하곡 지역에 거주하면서까지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룩한 학문 전체를 말한다. 그리고 하곡의 양명학 이라 하면 하곡의 학문 내용 가운데 양명학적 경향을 지닌 학문 내용을 말한다. 강화학 이란 하곡의 양명 학 과 하곡학 그리고 하곡이란 인물에 의해 강화도라는 지역을 구심 점으로 해서 전개되는 그 후학의 학문 전개(양명학 포함) 전체를 포 괄한다. 이 속에는 앞서 소개한 강화학파의 인물들의10) 다양한 학문 내용이 전부 포함된다. 11) 박연수는 강화하곡학파 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즉 강 화도 지역을 구심점으로 하고, 학문 분야는 다양하지만 하곡 정제두 의 양명학을 근본사상으로 삼으며, 하곡으로부터 시작하여 혈연과 학 연(學緣)으로 이어지는 하곡의 문인들을 지칭한다.12) 이외에 다른 여러 가지 개념 규정이 있을 수 있지만, 위에 열거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위에 열거한 견해가 많은 것 같 지만, 강화학파 와 강화양명학(혹은 강화 하곡학 )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민영규유준기심경호는 강화학파 로, 유명종박연수최재목은 강화양명학(혹은 강화 하곡학 ) 이라고 했다. 민영규는 강화학파 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로 오는 변화 를 적 극적으로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오는 변화 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설명이 없다. 다만 그의 주장을 근거로 할 때, 오는 변화 란 아마도 하곡학이 묵수적으로 양명학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민영 10) 주2)의 유준기가 규정한 강화학파 인물들을 말함. 11) 최재목, 강화 양명학파 연구의 방향과 과제 ( 양명학 12호, 한국양명학회, 2004. 8), 57쪽. 12) 박연수, 강화 하곡학파의 實心 實學 ( 양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 7), 121쪽.

Ⅰ. 강화학파 19 규는 하곡학을 특별히 강화학파 라고 했다. 민영규 이후 유준기, 심경호 등도 강화학파 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 나 위에서도 간단히 언급했듯이 유준기는 강화학파의 핵심을 심신(心 身) 의 학으로서 양명학의 치양지를 목표로 하는 유학자 라고 규정하 고, 심경호 또한 강화학은 양명학을 기조 로 한다고 규정한다. 다시 말하면 강화의 하곡학이 학문적으로 여러 분야로 전개되어 나아갔지 만, 기조가 되는 사상은 양명학 이라는 것이다. 사실 민영규 역시 강 화의 하곡학이 양명학을 기조로 한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강화의 하곡학이 양명학을 무비판적으로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에 중점을 두었을 뿐이다. 따라서 강화학파 나 강화양명학(혹은 강화 하곡학 ) 은 명칭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양명학회는 2004년부터 강화군 지원을 받아 정제두 학술을 국 제학계에 알리고 함께 연구하기 위하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한국양명학회는 하곡 정제두 학술사상에 관한 전반적인 검토와 연구 방향을 깊이 토론하였다. 따라서 한국 양명학은 하곡 정제두가 조선 학계의 학술적 성취를 계승하고 또한 중국 양명학을 수용하여 조선학 계에 뿌리를 내린 학술 이며, 또한 조선 근대 내지 현재까지 학맥이 전승되었기 때문에 학파 가 성립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 한 국 양명학은 하곡 정제두가 조선학계의 격물물격 논변을 계승하였고 그 위에서 다시 왕양명을 비롯하여 양명 후학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종합하고자 하였다. 특히 왕양명의 양지(良知)와 왕간의 격물(格物)을 융회하여 대학 의 지지선(止至善)에 귀납시켰고 지지선을 실학 이라 고 정의함으로써 중국 양명학과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 서 조선 양명학을 하곡학 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아울러 하곡학의 실심실학(實心實學)이 여러 분야로 확대 발전하였으며 조선 말기에

2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힘써 이건승은 실사실업( 實 事 實 業 ) 을 일 으켜 세계 제1등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근대화 정신을 제시하였다. 하 곡학의 이와 같은 학맥 전승에 근거하여 하곡학파 가 성립하였다. 따 라서 한국양명학회는 종래에 강화학파 또는 강화 양명학파 라는 명 칭을 하곡학 과 하곡학파 로 고쳐 부르기로 한다. 하곡학과 하곡학파는 한국 양명학에 머무는 학술이 아니고 동아시 아 학계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연구하여야 하며 다시 세계화를 지향하 여야한다. 따라서 한국양명학회 회원들은 하곡학과 하곡학파의 연구 가 조선시기 학술을 되찾아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 목표를 지향 하는 학술이 되어야한다고 주창하였다. 2. 하곡학파 의 문헌 해제 필요성 강화학이 형성되고 발전하였던 과정과 사회적 공헌을 말하면, 조선 중기에 정제두가 양명학을 평생 연구하여 주자학과 다른 독립된 학술 체계를 이루었고 만년에는 강화도에 거주하며 학자들을 양성하여 강 화학이 형성되었다. 강화학 학맥은 전승되고 발전하면서 조선 양명학 과 실학 그리고 항일독립운동과 근대화운동 나아가 현대 한국양명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21세기는 황해시대이며 황해 해역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각국들이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황해시대에 한국은 서해안지역에 집중하여 개발하 고 발전시켜야 하며 따라서 강화학은 한국이 황해를 무대로 삼는 새 로운 학술적 지향과 가치를 준비하는 기초로 삼아야한다. 양명학은 명나라 중기부터 양자강 유역에서 급속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기초와

Ⅰ. 강화학파 21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당시 새롭게 사회를 개혁하려는 가치관과 개 방적인 태도를 지향하였다. 강화학은 조선 후기에 민족적 자주의식을 자각하고 사회개혁을 추구하여 실학 전개에 크게 공헌하였다. 일본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양명학을 사상적 기초로 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 강화학은 황해시대를 맞아 동아시아 각국이 학술적 공동기 초로 삼는데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강화학에 관한 모든 학술적 연구 성과들을 정리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다. 학술적인 방면에서 강화학의 정리는 매우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강화학파와 강화학인들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문학과 예술 방 면에서 주로 다루어졌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강화학파에 대한 연 구는 강화학과 강화학인, 그리고 강화 양명학이 재차 거론되기 시작 하여 2004년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즉 한국양명학회 주관으로 개최된 제1회 강화 양명학 국제학술대회 는 강화학파 를 국 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2005년 타이완의 타이완다쉐[臺灣 大學]에서 출판된 한국강화양명학연구논집(韓國江華陽明學硏究論集) 은 외국학자가 강화양명학을 연구하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강화학 연구는 여전히 열악하다. 이렇게 된 까닭을 김교빈의 주장으로 살펴보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첫째는 연구 여건의 문제, 둘째는 연구 대상이 갖고 있는 문제, 첫 번 째 문제는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강화학파에 대한 내용이다. 연구 대상의 핵심인 하곡 정 제두와 그 후학들의 학문은 지역적으로는 주자학 위세에 눌려 강화도 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학문의 전수 범위도 하곡의 집안과 그와 교 류하던 몇 집안의 가학(家學)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또한 하곡 이후로 는 학문 내용에 있어서도 거의 양명학을 표방하지 못하고 고증학, 경 학, 역사학 등에 몰두하거나 시문(詩文)을 짓는 데에서 벗어나지 못한

2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13) 이처럼 하곡의 강화학파는 가학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학문의 내용 또한 그 범위가 넓은 관계로 하나로 집약되지 못하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최근에는 강화학보다는 하곡학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 다. 중국 양명학은 왕기와 나여방 이계(二溪)를 정점으로 발전한 뒤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급격하게 침체되었다. 그런데 하곡 정제두는 당시 조선학계의 수준 높은 주자학 기초 위에서 나왔던 여러 비판들 을 무릅쓰고 왕양명의 양지학과 양명 후학들의 학술종지들을 선별하 여 수용하였고, 나아가 직접 체험공부를 통하여 하곡학 이라는 한국양 명학을 건립하여 토착화시켰으며 오늘날까지 오랜 학맥을 계승하였 다. 이는 정제두 하곡학의 학술적 위치가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의 양명학 지평에서 조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제두 하곡학 자체에 관한 연구와 함께 이를 한국 양명학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경북 안동 하면 퇴계학 을 떠올리듯, 인천 강화 하면 하 곡학 이라는 문화적 유산이 마련되어야 한다. 강화학이든 하곡학이든 이제 보다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기존의 연 구 성과를 분석 정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문인들의 자료들이 아직도 체계적인 교감을 거치지 않은 원자료 상태가 많다. 원자료에 대한 정본(定本)작업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정본 작업에 앞서 우선 이들 자료의 목록을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 이 없을 때 강화학 에 대한 연구는 중복되고, 이로 인해 강화학 연구 는 답보상태에 머물고 만다. 이러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하곡 정제두와 그의 문인 및 이들의 사상을 이은 강화학파에 대한 1차 문헌을 해제하고, 1차 문헌 13) 한국사상사연구회 편저, 조선 유학의 학파들 (서울, 예문서원, 1996), 442-443쪽 참고.

Ⅰ. 강화학파 23 에 대한 연구 성과(석사박사 논문 포함)를 정리 요약하는데 목적을 둔다. 아울러 이 연구 자료는 장차 강화학파를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게 기존의 연구 성과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연구방향을 설정 하는데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문헌 해제 방법 첫째, 강화학파에 대한 문헌해제가 주목적이다. 따라서 한국 양명 학자에 대한 문헌은 제외한다. 둘째, 문집은 오늘날 출판되는 책과 달리 기본적으로 문사학철 학 등 다양한 분야가 문집 이라는 하나의 문헌 속에 함께 실려 있다. 따라서 문집 해제를 학문 분야 별로 나누어 서술하게 되면, 문집이 분야별로 분산되어 문집 전체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야기한다. 여기서 는 기본적으로 하곡집 을 정점으로, 하곡 후학의 문집을 분류 편의 상 문집 저자의 출생 연대를 기준으로 하고자 한다. 셋째, 본 연구의 주요 목적은 문헌 해제와 자료수집에 있다. 따라 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저자의 출생관직 등은 자세히 언급하 지 않는다. 넷째, 문헌이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를 밝히지만, 한국문집총간 을 통해 출판된 문헌은 생략하기도 한다. 다섯째, 출판된 전문 서적 역시 문헌 해제 순서와 같은 순서로 나 열한다. 여섯째, 일반 논문 및 학위논문 역시 문헌 해제 순서와 같은 순서 로 나열한다.

2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일곱째, 학위논문은 박사논문에 한정하며, 논문의 요약문을 첨부한 다.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 하곡집(霞谷集) 1) 저자 정제두(鄭齊斗). 1649(인조27)-1736(영조12). 자 사앙(士仰), 호 하곡 (霞谷). 본관 연일(迎日), 포은 정몽주의 11세 손(孫), 시호 문강(文康). 2)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소장도서번호: 古3648-文70-22). 민족문화추진회, 한국문집총간 (이하 총간 이라 칭함) 160집. 하곡전집, 여강출판사, 1978. 하곡집, 윤남한역, 대양서적, 1975. 하곡집, 성낙훈 등역, 민족문화추진회, 1972. 3) 편찬 현존하는 저자의 문집은 규장각의 11책 본과 8책 본, 국립중앙도서 관의 반환문화재인 22책 본,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의 11책 본 등 이다. 현존하는 필사본은 다음 네 종류. 가. 22책 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하곡의 5대손 정문승(鄭文升) 필사본.

2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나. 11책 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하곡의 7세손 정계섭(鄭啓 燮) 필사본. 다. 10책 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라. 8책 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가장 간단한 필사본. 마. 11책 본. 성균관대학교 소장. 규장각 소장본과 내용이 같은 전 사본(傳寫本). 정문승이 편찬한 22책본은 반환문화재인 국립중앙도서관본이다. 다 만 영인저본 중 권21이 빠져서 목록에 따라 11책 본 규장각장본(古 3428-326)으로 보충하였다. 또 권4의 제18~19판과 권12의 제3~18판은 착간(錯簡)되어, 내용에 따라 바로잡았고, 권21의 월행도(月行圖) 와 기형경천도도각행분배지도(機衡經天度道各行分排之圖) 는 글씨가 작 아 축소영인하지 않고 1면에 1판씩 세로로 편집하였다. 정문승이 편찬한 22책 본의 명칭은 하곡선생문집(霞谷先生文集) 이다. 권두(卷頭)에는 22권의 전체 목록과 정문승이 1856년경 본집을 편찬할 때 지은 발(跋) 이 실려 있다. 권1~9가 정집(正集)이고, 권 10~11이 부집(附集)이며, 권12~19는 내집(內集)이고, 권20~22가 외집 (外集)인데, 목록에서만 구분되어 있고, 본문 내에서는 작은 제목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14) 4) 구성과 내용 하곡집(霞谷集) 霞谷集跋 14) 한국문집총간해제4 (이하 한국문집총간 은 총간 이라 하고, 한국문집총 간해제 는 총간해제 라고 한다. 김성애 해제, 273-282쪽. 민족문화추진회. 윤남한 選, 국역하곡집 (민족문화추진회간)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7 跋(鄭文升) 卷一 書(一) 上宋尤齋問目(총5편) 答尹明齋書(총10편) 上朴南溪書(총13편) 上金相國書 答閔相國書 上閔判書書 答尹相國書 答徐聘君書 上禮曹判書書 書(二) 與閔彥暉書(총5편) 答閔誠齋書(총2편) 卷二 書(三) 答閔彥暉書(총14편) 答崔汝和書(총25편) 與崔汝和論親民書 與崔汝和問目(총3편) 答崔汝和論論孟類編書 書(四) 答朴大叔論天命圖書 與朴大叔書 答朴大叔大學陽明說疑義問目

2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重 答 朴 大 叔 問 目 答 李 君 輔 書 (총5편) 答 李 君 輔 問 目 與 李 同 甫 書 (총9편) 答 鄭 景 由 書 (총4편) 答 鄭 景 由 問 目 答 鄭 景 由 別 紙 (총3편) 卷 三 書 ( 五 ) 答 李 伯 祥 書 (총2편) 答 金 直 卿 論 花 潭 集 後 書 書 答 權 絿 書 與 金 汝 和 書 (총5편) 與 申 相 公 書 與 閔 判 書 書 答 李 景 益 書 (총4편) 與 鄭 明 府 書 答 李 季 章 書 (총2편) 答 閔 相 國 書 答 崔 汝 久 書 與 尹 行 敎 書 (총2편) 答 尹 行 敎 書 與 趙 留 守 書 答 李 久 叔 書 與 某 相 公 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9 與某相公書(第二書) 與某相國書 答某書 與某書 答李國彥書 答金慶恩書 答金慶恩別紙 答沈和甫書(총3편) 答尹伯修書(총2편) 答尹仲和書 答尹仲和書 答趙穉晦書 答趙君錫書(총2편) 答李炳然書(총6편) 答朴子龍書(총3편) 答閔汝猷書(총12편) 與閔汝猷汝仁書 答閔孝昌書 答李栢齡書(총4편) 答李栢齡別紙(총9편) 答李栢齡別紙(再答) 答李栢齡別紙 答朴舒漢書 書(六) 答金生澤秀書 答李匡世別紙

3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答金生晥書 答沈斗俊書 答李衍慶別紙 答具宅奎書 答崔仲楫書 答崔仲楫別紙(총3편) 答橫溪宗人書(총6편) 與宗人葵陽書 答永川諸宗人書(총3편) 答宗人鄭鎤書(총2편) 答龍仁宗人書 答宗人書 答栢山書院院儒書 答忠烈書院院儒書 答臨皐書院院儒書 答人書 答人別紙 與季氏書(총16편) 答兒厚一書 答兒書(총13편) 從子順一書 答從子書(총7편) 答從子俊一書 答從孫志式書 答李婿成徵書 答李婿書(총4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31 卷 四 疏 ( 一 ) 辭 書 筵 官 疏 辭 書 筵 官 疏 ( 再 疏 ) 辭 掌 令 疏 辭 掌 令 疏 ( 再 疏 ) 辭 掌 令 疏 ( 三 疏 ) 辭 掌 令 疏 辭 掌 令 疏 ( 再 疏 ) 辭 掌 令 疏 ( 三 疏 ) 辭 執 義 疏 辭 執 義 疏 ( 再 疏 ) 辭 執 義 疏 辭 執 義 疏 ( 再 疏 ) 辭 戶 曹 參 議 疏 辭 戶 曹 參 議 疏 ( 再 疏 ) 辭 戶 曹 參 議 疏 ( 三 疏 ) 辭 戶 曹 參 議 疏 ( 四 疏 ) 辭 江 原 監 司 疏 辭 江 原 監 司 疏 ( 再 疏 ) 辭 江 原 監 司 疏 ( 三 疏 ) 辭 左 尹 疏 別 諭 後 辭 敦 召 疏 辭 大 司 憲 疏 辭 贊 善 疏 辭 吏 曹 參 判 兼 任 贊 善 疏

3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辭 吏 曹 參 判 兼 任 贊 善 疏 ( 再 疏 ) 仍 任 後 辭 疏 仍 任 後 辭 疏 ( 再 疏 ) 仍 任 後 辭 疏 ( 三 疏 ) 仍 任 後 辭 疏 ( 四 疏 ) 回 對 辭 召 命 及 贊 善 疏 辭 贊 善 兼 任 國 子 疏 書 啓 (총9편) 辭 召 命 疏 過 因 山 後 上 疏 辭 吏 曹 參 判 疏 辭 贊 善 疏 辭 命 召 疏 回 啓 辭 大 司 憲 疏 辭 大 司 憲 疏 ( 再 疏 ) 辭 資 憲 及 諸 職 疏 疏 批 傳 諭 後 回 對 辭 右 參 贊 疏 回 對 (총5편) 辭 右 參 贊 疏 ( 再 疏 ) 批 答 回 對 辭 右 參 贊 疏 ( 三 疏 ) 聞 賊 變 疏 遣 史 官 命 召 回 對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33 登筵退出後宣諭回對 詣闕下辭召命疏 辭特賜食物疏 陳賀仍告歸疏 請收偕來史官疏 傳諭回對 回啓 辭歸筵對時手敎 辭參贊諸職疏 承候疏 批答傳諭回對 陳慰仍辭召命疏 辭都憲疏 辭都憲召命疏 書啓 回啓 卷五 疏(二) 辭大司憲疏 回對(총15편) 辭兼職疏 逆變後陳慰疏 史官傳諭後書啓 辭御醫隨往之命 仍陳戒疏 應旨書啓 辭周急疏

3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謝周急疏 辭知中樞疏 辭右贊成初疏 辭右贊成疏(再疏) 書啓 辭右贊成疏(三疏) 辭右贊成疏(四疏) 辭食物題給命疏 辭贊成疏 辭輔養官召命疏 辭贊成祭酒疏 書啓 辭賜糧饌及擇給公廨疏 辭贊成輔養官疏 辭贊成輔養官疏(再疏) 王世子冊禮時貳師辭免疏 冊禮後辭職仍陳戒疏 辭周急崇祿疏 獻議 端懿嬪喪視事燕居服色議對 端懿嬪喪服制議對 辭對朝晡哭臨受杖議回啓 朝官燕居帶議對 新授職人追服當否議對 辭對練帶議回啓 辭對明陵誌文事議 嬪宮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35 議號議對 服制儀節議對 香室祝辭議對 大妃殿服制議對 永徽殿告文屬稱議對 庚子服制追議 啓聖祠拜禮議對 辭對宗廟移安儀議回啓 辭對四賢祠合享議回啓 孝章世子喪 兩殿服制議對 葬前私家祭行否議 葬前朔望參議對 殯宮祭禮議對 卒哭前後服色議對 錢貨便否議對 魂宮練後享官服色議對 逆女夫及父緣坐律議對 德宗室祝辭屬稱議對 德宗室屬稱議復對 長陵遷奉議對 進講冊子議對 遷陵儀注議對 視學時所講冊子及講官員數議對 辭對祭服議回啓 卷六 祭文

3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祭李兄平仲文 祭伯從侄文 祭姑夫權承旨文 祭李某文 祭姨兄 沈公之文 祭宗簿 直長李公文 祭從姪直長文 祭南溪朴先生文 祭閔誠齋文 祭鄭安山尙樸文 祭李 監司 文 祭妹兄閔判書 文 祭洪永川禹相文 祭朴芝浦文 祭李參判文 祭內從 弟李君聖 諧文 祭江華某山文 祭崔艮齋文 柏山書院兩丁祝文 李平仲哀 詞 墓表 監察公墓表 檢閱公墓表 贈判書公墓表 博士公墓表 贈貞敬夫 人昌原黃氏墓表 忠貞公墓表 從兄寅平尉鄭公墓表 徵士黃公墓 表 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沈公墓表 將仕郞永禧殿參奉李公 墓表 墓碣 贈贊成公墓碣 墓誌 德天壙誌 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李公墓誌 誌銘 外王母贈貞敬夫人李氏墓誌銘 通川郡守春坡李先生墓誌銘 綾南君具公墓誌銘 行狀 先考妣行狀 伯父贈贊成公行狀 遺事 姊氏貞夫人遺事 卷七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37 詩 총26수 挽辭 挽某 挽某 挽朴校理士安 挽尹都事復元 挽尹正言 挽林綾州文 甫丈 挽宋參判質夫 挽再從韓生永期 挽李參判景益 挽明村羅 掌令良佐 奉哭東山尹相國 挽趙相公 挽某相公 挽西山啖薺齋 趙士行 肅宗大王挽辭 挽申校理靖夏 李同甫大夫人挽 挽尹溫 陽丈 挽李生夏實 挽李左相 挽李海州丈 挽李淳昌君晦 挽閒閒 堂金 挽朴芝浦 挽吳丹陽遂一 挽林長城 挽許生爀 挽金參奉 挽朴高城 挽李參判子文 挽權承旨 挽吳相國 挽姨兄絅菴申相 公 挽李判書 挽趙懷德紀之 挽李淸道 挽某 挽權同知 挽楊江 尹判書幼獜 挽李龜川 哭明齋先生 挽李奉事 挽李生錫九 挽崔 明谷相公 挽趙大憲 挽鄭敎官 挽權生尙璞 景宗大王挽 挽李東 萊士深 挽姜參奉 挽金參奉 挽李大諫 挽橫溪宗人 挽原州鄭生 挽某 挽靜觀齋移葬 挽西門李正 宣懿王大妃挽辭 挽士谷李參 奉 挽鄭安山尙璞 挽某 挽某台 挽橫溪宗人 挽尼山尹參奉 挽 金主簿敬明 序 石室書院會遊詩序 送李仲輔謫靈巖序 送柳公之江界府序 送李聖益歸連山序 府學行鄕飮酒禮序 記 蕩春臺記 說 名兒說

3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跋 忠 貞 公 史 館 遺 稿 跋 雜 著 雜 著 雜 著 論 論 君 后 喪 士 庶 民 喪 祭 說 遺 敎 壬 戌 遺 敎 家 法 家 法 凡 例 ( 鄭 氏 世 譜 ) 鄭 氏 世 譜 三 修 凡 例 卷 八 學 辯 存 言 ( 上 ) 卷 九 存 言 ( 中 ) 存 言 ( 下 ) 卷 十 年 譜 ( 申 綽 이 완성) 行 狀 墓 表 卷 十 一 遺 事 遺 事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39 遺事 誄文 誄文 誄文 祭文 총13편 門人語錄 門人語錄 紀鄭先生淮陽治事 紀鄭先生淮陽治事 江華邑誌 疏 薦擧疏 玉堂請留疏 玉堂請勘悖儒疏 玉堂請留箚 請設書院儒疏 請設書院儒疏(再疏) 備忘 諸臣筵奏 卷十二 中庸說 中庸(一) 中庸(二) 中庸(三) 中庸(四) 中庸(五) 中庸(六) 中庸 兩截圖 中庸雜解 卷十三 大學說 大學序引 大學(一) 大學(二) 大學(三) 大學(四) 大學(五) 大 學(六) 大學經 文二截圖 (大學) 讀大學 大學古本 大學說

4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十四 論語說 論語 孟子說(上) 浩然章圖 浩然章上解(一) 浩然章中解 浩然章下解 卷十五 孟子說(下) 浩然章解(二) 浩然章解(三) 浩然章解(四) 浩然章解(五) 浩然章雜解 四端章解 四端章雜解 生之謂性章解 告子雜解 天下之言性章解 集大成解 鍾鼓苑 囿好勇好貨解 諸章雜解 孟子說 卷十六 詩箚錄 詩箚錄 書箚錄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41 說 命 武 成 君 陳 洛 誥 洪 範 皇 極 正 解 皇 極 正 解 ( 又 解 ) 皇 極 正 解 ( 又 解 ) 皇 極 正 解 ( 又 解 ) 五 行 五 事 解 春 秋 箚 錄 春 秋 箚 錄 書 解 定 性 書 解 通 書 解 詩 誦 詩 誦 訟 心 體 頌 卷 十 七 經 學 集 錄 ( 上 編 ) 天 之 道 道 之 用 道 之 體 性 之 德 性 之 道

4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達道達德 經學集錄(中編) 性命一理 物我一性 事物止一 一貫大小 本末一理 博約爲仁 大中時中 經學集錄(下編之上) 知能 知行 精一 明誠 經學集錄(下編之中) 誠道合 忠恕 修己安人 經學集錄(下編之下) 仁一體 卷十八 心經集義卷之一經上 論語堯曰章 大禹謨人心道心章 全體爲仁之學凡二章 論語顏淵問仁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43 敬 怠 義 欲 凡 二 章 禮 丹 書 章 易 坤 六 二 敬 以 直 內 章 主 敬 愼 致 至 誠 凡 四 章 大 雅 上 帝 臨 女 章 易 乾 之 象 天 行 健 章 中 庸 詩 云 維 天 之 命 章 心 經 集 義 卷 之 二 經 下 格 物 致 知 一 節 誠 意 一 節 正 心 一 節 修 身 一 節 卷 十 九 跋 經 儀 跋 [ 申 大 羽 ] 經 儀 通 言 容 貌 視 坐 立 步 趨 拜 揖 言 語 衣 服 飮 食 授 受 相 見 升 車 居 處 少 者 儀 從 宜 雜 記 追 輯 紀 年 唐 虞 紀 年 年 表 自 周 武 王 至 成 康 年 表 紀 年 夫 子 紀 年 紀 世 思 孟 紀 世

4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 二 十 河 洛 易 象 河 洛 易 象 目 錄 河 洛 易 象 目 錄 卷 二 十 一 通 攷 璇 元 經 學 通 攷 說 朞 三 百 說 天 地 方 位 里 度 說 七 曜 右 行 說 潮 汐 說 卷 二 十 二 箚 錄 箚 錄 ( 一 ) 箚 錄 ( 二 ) 箚 錄 ( 三 ) 箚 錄 ( 四 ) 箚 錄 ( 五 )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45 2. 저촌유고(樗村遺稿) 1) 저자 심육(沈錥). 1685(숙종11)-1753(영조29). 자 화보(和甫), 언해(彥和). 호 지지재(知止齋) 또는 저촌(樗村), 저헌(樗軒). 하곡의 문인으로 강화학파의 중심인물. 효종(孝宗) 현종(顯宗) 숙종 (肅宗) 때의 명신 심유(沈濡)의 손자이고, 심수현(沈壽賢)의 아들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강학(講學)과 유람으로 보냈다. 특히 영조 때 영의정 까지 올랐던 부친 심수현을 따라 의주(義州), 관동(關東), 영남(嶺南) 등지는 물론 중국 이엔징[燕京]까지 다녀오면서 견문을 넓혔으며, 이 때 지은 시, 일기 등이 유고로 남아 있다. 심수현은 하곡과 이종숙 관 계다. 그래서 심육은 하곡에게서 글을 배웠고, 그 기록이 진강문답 (鎭江問答) 에 남아 있다. 짧은 기간의 벼슬이었지만 대사헌까지 올랐 고, 하곡이 세상을 떠난 후 정후일과 백하(白下) 윤순(尹淳), 둔곡(遁 谷) 이진병(李震炳)과 함께 하곡 저서 편집의 주역이 되었다. 하곡행 장 과 하곡의 유사(遺事), 하곡의 제문을 지었다. 저촌은 이진병과 가 장 많은 편지 왕래를 했다. 현재 전하는 그의 문집은 1938년에 등사 된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필사본 하나뿐이다. 2)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 소장(소장도서번호: 古3428-437). 정계섭(鄭啓燮) 1938년 필사, 이건방 소장본을 저본으로 함.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07-208집. 3) 편찬 등사기(謄寫記)에 의하면, 당시 경성(京城)의 이건방(李建芳)이 소장

4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하고 있던 사본을 1938년 2월~7월경에 등사하여 정계섭(鄭啓燮)이 교 정했다. 권20, 22, 29에는 1938년 2월에 등사했다는 등사 기록이, 권 31, 34, 36, 38, 46, 47에는 같은 해 7월에 등사했다는 등사 기록이 각 권 말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비슷한 필체로 필사되어 규장각 (古3428-326)에 소장되어 있는 정제두의 하곡집 의 경우, 1935년에 정제두의 7대손인 정계섭의 주도로 정리 등사한 본을 당시 경성제국 대학 일본인 교수 高橋亨이 빌려서, 다시 한 본을 등사하여 이것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 보관한 것이 현재 규장각에 전하게 된 것이 다. 본집의 경우 교정자가 정계섭이라는 연관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면, 같은 과정을 거쳐 등사 보관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원본 소장자인 이건방은 정제두의 문인이자 손자사위인 이광명(李 匡明)의 6대손으로, 저자 사후 이광명이나 그 후손들이 저자의 유고를 정리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한 친구나 후배들의 문집이 대부분 간략하거나 전하지 않고, 저 자의 후손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실제 편찬 과정은 알기 어렵다.15) 4) 구성과 내용 47권 18책으로 구성. 맨 앞에 총목록이 있고, 권별 목록이 따로 있 으며, 서발(序跋)은 없다. 저촌유고(樗村遺稿) 卷之一 15) 총간해제5, 민족문화추진회. 金炅希 해제 참고. 윤남한, 謄寫記, 霞谷學 의 文獻的 硏究. 윤남한, 朝鮮時代의 陽明學硏究 (서울, 집문당, 1982). 신용하, 奎章閣圖書의 변천 과정에 대한 一硏究, 奎章閣5.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47 詩 ( 江 湖 錄 一. 총99 首 ) 詩 ( 江 湖 錄 二. 총87 首 ) 卷 之 二 詩 ( 江 湖 錄 二. 총123 首 ) 卷 之 三 詩 ( 關 西 錄 一. 총46 首. 관서( 關 西 ) 유람할 때와 의주( 義 州 ) 생활 중에 지은 시문집) 卷 之 四 詩 ( 關 西 錄 二. 총78 首 ) 卷 之 五 詩 ( 關 東 錄 총91 首. 江 陵 등 관동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문집) 卷 之 六 詩 ( 散 草 총51 首. 영남, 충청도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문집) 詩 ( 燕 行 錄 총58 首. 燕 京 에 다녀올 때 지은 시문집) 詩 (총60 首. 樗 村 에서 지은 시) 卷 之 七 詩 (권6에 이어지는 시. 총55 首 ) 卷 之 八 詩 (총80 首. 報 恩, 知 禮, 月 城, 靑 松, 鎭 川 등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 卷 之 九 詩 (총20 首. 권8에 이어지는 시) 卷 之 十 詩 (총114 首. 安 陰, 昌 原, 晉 州, 金 山 등을 유람하고 지은 시) 卷 之 十 一 詩 (총168 首. 대체로 安 城 에 기거하면서 지은 시) 16) 16) 卷 11부터 1745(61세)~죽을 때(1753)까지의 시( 詩 )가 시대 순으로 실려 있다.

4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 之 十 二 詩 (총57 首. 권11과 같음) 卷 之 十 三 詩 (총61 首. 권11과 같음) 卷 之 十 四 詩 (총56 首. 권11과 같음) 卷 之 十 五 詩 (총188 首. 권11과 같음) 卷 之 十 六 詩 (총60 首. 특히 報 恩, 淸 州 등지를 다녀올 때 지은 시문집) 卷 之 十 七 詩 (총27 首. 이진병( 李 震 炳 )과의 차우니( 次 韻 詩 ) 및 안부를 묻는 서신과 함께 보낸 시문집) 卷 之 十 八 詩 (총48 首. 이진병과의 차운시 29수와 기타 시) 卷 之 十 九 詩 (총66 題. 이진병과의 차운시 29제( 題 )와 기타 시) 卷 之 二 十 詩 (이진병과 차운시 포함 총111 首 ) 卷 之 二 十 一 詩 (총197 首. 이기( 理 氣 ), 심통성정( 心 統 性 情 ) 등 성리학적 주제의 시가 많다) 卷 之 二 十 二 詩 (총184 首. 이이룬수( 理 一 分 殊 ), 태극도( 太 極 圖 ) 등의 시가 있다) 卷 之 二 十 三 詩 (총212 首 )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49 卷 之 二 十 四 詩 (총51 首 ) 卷 之 二 十 五 書 (스승 하곡 등에게 보내는 편지 및 답장 70편) 卷 之 二 十 六 書 (대부분 안부 편지 31편) 卷 之 二 十 七 書 (이진병에게 보내는 편지 40편) 卷 之 二 十 八 書 (이석여( 李 錫 予 ), 양생( 良 甥 )에게 보낸 답장 89편) 卷 之 二 十 九 書 (오성등( 吳 聖 登 ), 유경원( 柳 景 愿 )에게 보낸 편지와 구자순( 具 子 順 )에게 보낸 답장 편지 64편) 卷 之 三 十 書 (이진병)에게 보낸 편지 18편) 卷 之 三 十 一 書 (이진병에게 보낸 편지 14편) 卷 之 三 十 二 書 (심군택( 沈 君 澤 ), 조비경( 趙 飛 卿 ) 등에게 보낸 편지 및 답장 48편) 卷 之 三 十 三 書 ( 李 景 活 ( 毅 敬 ), 韓 誠 之 ( 思 喆 ) 등에게 보낸 편지 37편) 卷 之 三 十 四 書 ( 李 晦 甫, 趙 震 彬 등에게 보낸 편지 및 답장 28편) 卷 之 三 十 五 雜 著 (이기( 理 氣 ), 격물( 格 物 ), 인심도심설( 人 心 道 心 說 ) 등 성리학 주제를 간단히 적은 글. 15편)

5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 之 三 十 六 雜 著 (답글 9편) 卷 之 三 十 七 雜 著 (연대 未 詳 의 일기) 卷 之 三 十 八 雜 著 ( 戊 午 년 일기. 壬 寅 (1722)년 하곡과의 문답을 정리한 鎭 江 問 答 ) 卷 之 三 十 九 雜 著 (일기, 灣 館 錄. 庚 寅 (1710)년 의주로 간 뒤부터 서울로 돌아 올 때까지) 卷 之 四 十 雜 著 (일기, 灣 館 錄. 권39와 같음) 卷 之 四 十 一 雜 著 ( 楓 嶽 錄. 癸 巳 (1713)년 일기, 금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글) 卷 之 四 十 二 序 (4편) 說 ( 閒 雲 洞 說 1편) 論 ( 成 德 論 1편) 祭 文 (34편) 卷 之 四 十 三 墓 碣 銘 (10편) 卷 之 四 十 四 遺 事 ( 霞 谷 외 4편) 卷 之 四 十 五 墓 表 (7편) 卷 之 四 十 六 墓 誌 銘 (6편) 卷 之 四 十 七 簡 牘 (편지 61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51 3. 관양집(冠陽集) 1) 저자 이광덕(李匡德). 1690(숙종16)-1748(영조24). 자 성뢰(聖賴), 호 관 양(冠陽), 존재(尊齋).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의 현손이자 박세채(朴世采)의 외손이며 조경명(趙景命)의 사위. 문형(文衡)을 역임할 정도로 문학적 명성도 있었으나 유문이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이건창 이 지은 관양공사략(冠陽公事畧) ( 명미당집(明美堂集) 卷18)은 미완 성고인 이시원이 쓴 대제학관양이공행장(大提學冠陽李公行狀) ( 사 기집(沙磯集) 책(冊)5)과 내용과 구성이 거의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건창이 조부 이시원의 글을 바탕으로 다시 구성한 듯하다. 행장에 의하면, 저자가 1739년 동지부사로 이엔징[燕京]에 갔을 때 중국인들이 저자의 시를 보고 기풍이 온순하고 문장이 아름다워 마 치 새벽녘 연꽃이 바람에 웃는 것 같다. 고 평하면서 함께 읊은 시를 간행하여 탐주집(探珠集) 이라 제목을 지어 저자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 탐주집 은 전하지 않는다.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奎12449).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09집. 3) 편찬 과정 이 필사본은 필사 경위와 시기를 알 수 없는 사본으로 그 편집과 교정 상태를 보아 아직 편차를 완료하지 못한 미정고본(未定稿本)으 로 보인다. 본집의 권1에는 관양시집(冠陽詩集) 으로 권수제(卷首題)

5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가 달려 있고, 완산이광덕저(完山李匡德著) 라고 작자가 표시되어 있 는데, 그 다음부터는 관양집(冠陽集) 으로만 되어 있고, 시와 상소 이 후는 작품의 편수에 관계없이 문체별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 다. 이 외에 본문 중의 교감(校勘) 사항과 오자의 교정, 빠진 문장이 있는 소차(疏箚)와 시(詩)가 그대로 실려 있는 것이나 내용이 중복되 는 시가 실려 있는 점 등을 살펴볼 때 본집은 저자의 유문을 수습하 여 문체별로 정리한 단계임을 알 수 있다. 저자 집안이 소론의 명문 으로 많은 학자가 배출되어 문집이 많았지만 대부분 필사본으로만 전 해올 뿐 간행된 문집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본집도 간 행을 염두에 두고 정리한 것이기 보다는 집안에 보관해 두기 위해 유 문을 수습 정리한 수준인 듯하다.17) 4) 구성과 내용 본집은 19권 4책의 필사본으로, 권1~2는 시(詩), 권3~19는 문(文)으 로 구성되어 있다. 서발(序跋)이나 부록, 목차 등은 실려 있지 않다. 권1~2에는 약 400수의 시가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는 연대순으로 배 열한 듯하지만 권2의 후반부에는 연도가 뒤섞인 부분이 있고, 또 권2 의 방신사앙직려(訪申士昻直廬) 의 경우 같은 시가 권말에 반복해서 기재되어 있다. 대체로 권1의 봉화정생혜치운(奉和鄭生惠雉韻) (1703) 에서 권2의 요화종숙(潦和宗叔)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정리된 시고 (詩稿)이고, 이후는 편차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 즉 1728년 완영(完 營)에 있을 때의 시, 상원시(上元詩)(1709년), 경종에 대한 만시(挽詩), 결구(缺句)가 있는 시 등 앞에서 정리하고 남은 시들을 대강 추려서 뒤 에 붙여 놓은 듯하다. 세밀한 주는 대부분 다른 판본과 대조한 교감 사 17) 事畧 (李建昌 撰, 明美堂集 卷18)을 근거로 김성애가 해제함.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53 항과 오자의 교정, 위치의 변동 등을 표시한 편자주이고, 저자가 주를 붙인 듯한 내용도 가끔 보인다. 내용은 부친에게 차운한 시, 해서(海 西) 일대를 유람하고 지은 시, 이엔징[燕京]에 사신으로 오가며 지은 시 등이다. 권3~6은 상소 45편이다. 본집 중 가장 정리가 잘된 부분으로 오자 의 교정이나 교감을 본 흔적이 눈에 띈다. 권3~5에는 1723년 윤용(尹容)의 파직을 환수할 것을 청한 상소부터 1748년 어용수개진하후고환소(御容修改陳賀後告還疏) 까지 41편이 연 도순으로 정리되어 있고, 권6은 부친이나 다른 사람 대신 지은 소 4편 이 실려 있다. 대부분이 사직소이지만 권4의 인대신차사리조좌랑소 (因大臣箚辭吏曹佐郞疏) 는 조지빈(趙趾彬)의 삼전(三銓) 의망 문제로 조태억(趙泰億)과 논란을 벌여 올린 사직 상소이고, 인리량신소사번임 소(因李亮臣疏辭藩任疏) 이하는 무신난(戊申亂)과 관계되었다는 이양 신의 무고함을 변론하는 내용이다. 권6의 논임징하소(論任徵夏疏) (1726)는 경종의 병을 발표하여 영조의 세제대리(世弟代理)가 정당했음 을 밝히도록 청한 임징하를 논척하면서 이후로 신임옥사(辛壬獄事)의 일을 논할 때 선왕을 논하지 못하도록 율령으로 제정하자고 강력하게 제기한 내용으로 저자의 당론(黨論)을 살필 수 있는 소이다. 위의 상 소들을 통해 저자가 영조 초기 소론 중 완론(緩論)으로 조현명(趙顯 命), 송인명(宋寅明) 등과 함께 탕평책을 지지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조정의 진출을 그만두고 칩거하다가 다시 준론(峻論)으로 바뀌는 과 정을 엿볼 수 있다. 권6의 부친을 대신해 지은 진민폐소(陳民弊疏) 는 모곡(耗穀), 군정, 수령의 폐단 등 백성의 질곡에 대해 자세히 언 급한 것인데 끝부분에 결문이 있다. 권7~8은 응제문(應製文)으로 옥책문(玉冊文)(1), 교서(敎書)(2), 치 제문(致祭文)(1), 전문(箋文)(2)이다. 문체별로 분류하여 2권으로 나누

5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었지만 전체가 7판 정도 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이다. 대왕대비의 존 호를 올리는 옥책문, 경상 감사와 황해 감사에 대한 교서, 신익하(申 翊夏)에 대한 치제문이 권7에 실려 있고, 정조전문(正朝箋文)과 숙종 40주년 진하전문(陳賀箋文) 2편이 권8에 수록되어 있는데 권8은 본래 권7이었던 글씨를 고친 흔적이 뚜렷하다. 권9는 서계(書啓) 3편으로 저자가 전라도 어사와 관찰사를 지낼 때 올린 글이다. 특히 호남 어사로 올린 별단은 800여 자에 달하는 장문 으로 이두가 간간이 섞여 있다. 논건지산절수계(論乾止山折受啓) 는 영조의 처사에 반대해 노여움을 샀지만 저자의 강직한 성격을 드러낸 글이다. 권10은 공사(拱辭)(2)이다. 1727년 출사에 불응하여 올린 공사와 1741년 아우 이광의(李匡誼)가 김복택(金福澤)의 일에 연관되어 하옥 되고 이에 연루되어 고문 받을 때 바친 공사이다. 이로 인해 저자와 아우는 각각 해남(海南)과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권11~12는 시장(諡狀)(3), 묘도문(墓道文)(8)이다. 권13은 제문(祭文)(12)으로 대부분 종형(從兄), 백부(伯父), 부인과 누이, 장인 조경명(趙景命), 고모 등 가족들에 대한 글이다. 권14는 편지(22)이다. 부친과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가 가장 앞에 실려 있으며 특히 1741년 이후 동생 이광의와 각기 흑산도와 해남으 로 유배되었을 때 주고받은 편지가 많이 실려 있다. 서로 안부를 묻 고 독서를 권하는 내용인데 군데군데 내용이 빠진 부분은 주(註)로 표시되어 있다. 1741년에 계제(季弟)에게 보낸 편지에는 저자의 탕평 론이 잘 나타나 있고, 1734년의 답이군경서(答李君敬書) 는 북방 관 방의 형세와 대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여조풍원서(與趙豐原書) 는 1741년 아우 이광의(李匡誼)의 일로 국문을 받을 당시 김복택과 관련 되어 나온 복침(復寢)이란 문자의 출처와 의미에 관한 일로 조현명(趙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55 顯命)에게 문의한 내용이다. 권15~18은 서(序)(6), 기(記)(3), 론(論)(2), 뢰(誄)(2)로 문체별로 분 권되어 있다. 권15에는 의학서적인 청낭묘결(靑囊妙訣) 과 이탁영(李 擢英)이 임진란 때의 일을 기록한 정만록(征蠻錄) 에 대한 서, 이증 효(李曾孝)에게 독서를 권하는 글과 그림과 화첩에 대한 서 등이 있 다. 권16에는 취향기(醉鄉記) 와 부친을 대신해 지은 승저정기(勝 滁亭記), 오도경(吳道卿)의 당호인 광헌(廣軒)에 대해 지은 기문 등 이 실려 있다. 권17은 오자서론(伍子胥論) 과 관중여기인론(管仲如 其仁論) 2편인데 후자는 마지막에 결구가 있어 문장의 끝을 알 수가 없다. 뇌사(誄辭)는 변자장(邊子長)과 조달명(趙達命)에 대한 글이다. 권19는 잡저(雜著)(11)이다. 지방 수령의 칠사(七事)에 대해 쓴 칠 사명(七事銘), 구택규(具宅奎)의 화상찬과 서첩, 화첩에 대한 제발이 있고, 호남의 아전인 정차삼(鄭次三)박태화(朴泰和), 호랑이를 잡은 함경도의 기인, 서흥(瑞興)의 김정삼(金廷三) 등에 대한 일화를 적은 전이 실려 있다. 그리고 사침(謝枕) 은 의인화한 목침(木枕)을 소재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태도를 반성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제목 이 빠진 채 글의 일부만 실려 있는 글이 한 편 있는데, 자신의 문장이 훌륭해지기를 바라는 내용이다.18) 관양집(冠陽集) 冠陽詩集卷之一 詩 冠陽集卷之二 詩 18) 총간해제5 133-138쪽 김성애 해제 참고.

5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冠陽集卷之三 䟽 講還收尹容罷職之命䟽 因備局草記辭司書䟽 辭副校理䟽 請査掌膳婢箚 辭副校理䟽 辭持平 兼陳所懷䟽 辭修撰䟽 辭修撰疏 辭修撰疏 辭副校理兼陳所懷疏 冠陽集卷之四 疏 辭館職因陳私懇疏 辭副校理疏 因大臣箚 辭吏曹佐郞䟽 因大臣箚辭吏曹佐郞䟽(再䟽) 因湖南兩邑守令拿問事 陳本道事 宜䟽 因湖南兩邑守令拿問事 陳本道事宜䟽(再疏) 因按囚之命陳 病待罪䟽 因李亮臣疏辭藩任疏 因李亮臣疏辭藩任疏(再疏) 因李 亮臣疏 辭藩任疏(三疏) 因李亮臣疏辭藩任疏(四疏) 因李亮臣疏 辭藩任疏(五疏) 因李亮臣疏辭 藩任疏(六䟽) 因李亮臣疏辭藩任 疏(七䟽) 因趙趾彬疏辭藩任疏 陳情辭藩任疏 冠陽集卷之五 䟽 辭刑曹參議疏 辭監賑御史疏 辭江華留守疏 辭江華留守䟽 辭江 華留守䟽(再䟽) 辭大司憲疏 辭戶曹參判疏 辭刑曹參判疏 遞職 後告還疏 辭文衡疏 辭同義禁疏 因沈繡啓辭伸辨疏 辭左尹疏 玉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57 冊 文 製 進 後 告 還 疏 御 容 修 改 陳 賀 後 告 還 疏 冠 陽 集 卷 之 六 疏 辭 大 司 諫 疏 陳 民 弊 疏 論 任 徵 夏 疏 論 良 役 變 通 疏 冠 陽 集 卷 之 七 應 製 文 大 王 大 妃 殿 上 尊 號 玉 冊 文 敎 慶 尙 監 司 敎 黃 海 監 司 統 制 使 申 翊 夏 致 祭 文 冠 陽 集 卷 之 八 箋 正 朝 箋 文 四 十 年 陳 賀 賀 箋 冠 陽 集 卷 之 九 啓 南 御 史 書 啓 別 單 監 賑 御 史 書 啓 論 乾 止 山 折 受 啓 冠 陽 集 卷 之 十 拱 辭 丁 未 拱 辭 辛 酉 拱 辭 冠 陽 集 卷 之 十 一

5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謚狀 義州判官崔公謚狀 贈判書朴公朴謚狀 贈參判朴公謚狀 冠陽集卷之十二 墓文 贈左贊成朴公墓碣銘 貞敬夫人慶州李氏墓碣 監察李公墓碣 平昌 郡守尹公墓碣 成均進士尹公墓表 牧使李公墓表 從侄墓文 再從 弟縣監墓文 冠陽集卷之十三 祭文 祭從伯兄文 祭伯父文 祭尹氏妹墓文 祭亡室墓文 祭外舅趙大司 諫公文 祭姑母淑人文 祭堂伯兄遷葬文 祭曺義興文 祈雨祭文 祭 四山積骸文 開城府進香文 祭朴必淸文 冠陽集卷之十四 書 上判書公書 寄仲弟書 寄舍弟謫中 寄舍弟謫中 寄謫中 寄謫中 寄謫中 寄謫中 寄謫中 寄謫中 寄季弟書 與崔季綏書 與右相書 答李君敬書 與朴成甫書 與箕 伯趙君敬書 與 與張貢 生書 與進士江南凌君 答南正言渭老書 與趙豊 原書 與李判官 冠陽集卷之十五 序 靑囊妙訣序 李判書畵像序 征蠻錄後序 勸從侄曾孝讀古文百選序 奉送嘉陵先生反 官燕歧序 蒼崖子畫帖序 冠陽集卷之十六 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59 醉鄕記 勝滁亭記 廣軒記 冠陽集卷之十七 論 伍子胥論 管仲如其仁論 冠陽集卷之十八 誄 邊君子長誄 趙君達命誄 冠陽集卷之十九 雜著 七事銘 具參判畵像贊 題李君書帖 題沈君畵葡萄帖 廣慈庵新建勸善文 記鄭次 三朴泰和事 咸鏡異人傳 駁仲弟責奴文 謝枕 瑞興貢生金廷三 (缺題)

6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선고(先藁) 1) 저자 이광신(李匡臣). 1700(숙종26)-1744(영조20). 자 용직(用直), 호 항 재(恒齋). 전주이씨 덕천군파. 조부 호조참판을 지낸 이대성(李大成). 아버지는 문학과 행실로 세상에 알려진 이대성의 셋째 아들 이진휴 (李眞休). 하곡의 아들 정후일(鄭厚一)과 이광사, 이광명 등과 같이 하 곡의 직전제자로써 초기 강화학파에 해당된다. 항재는 어린 나이(8세)에 부모를 잃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문 장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문인이 되기보다는 성현의 학 문을 지향하게 되었다. 강화에 들어가 하곡을 만난 뒤 양명집(陽明集) 을 읽으면서 주자학과의 변별을 꾀하였다. 이후 진솔하고 합리적인 학문자세로 수양에 힘썼다. 또 제자양성에 있어서는 조그만 허물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대인관계에서는 진실한 모습을 보였다. 항재 본인은 일찍 부모를 여윈 외아들로 외로운 신세였지만, 종형 제들과 서로 사우(師友)가 되어 즐겁게 생활한 듯하다. 그리고 부인 광주(廣州) 변씨(邊氏)가 가정 경제를 도맡아 잘 꾸려나가 의식 걱정 없이 지냈다. 그러나 45세에 병에 걸려 열흘 만에 죽어 고양(高揚)땅 에 묻히고 말았다.19) 2) 소장처 3책 4권. 문중본, 한국학중앙연구원. 19) 참고문헌: 심경호, 항재이광신론 ( 진단학보 84, 진단학회), 1997. 서경숙, 항재 이광신의 이기론 ( 양명학 6호, 한국양명학회), 2001. 서경숙, 초기 강화학파 항재 이광신의 심성론 ( 한국철학논집 13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03.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61 3) 편찬 서문이나 발문(跋文)이 없어서 편찬과정을 알 수 없다. 4) 구성과 내용 선고(先藁) 1冊 書 答道甫書 與道甫書 答閔士相書 與趙飛卿書 與飛卿書 答趙飛卿書 答崔敬伯載興書 答尹稺繩書 與尹稺繩書 答尹稺繩書 又答稺繩書 上趙侍直 與道甫 呈飛卿 呈士相 復飛卿 示安齋 寄敬孝 上飛卿

6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上月巖 復安齋 復聖任哀 與李飬正 呈杜署 答郭喪人子施別紙 答 賀韓稺和 上竹西 呈尹稺繩 答朴僉正子中 祭文 祭叔母文 祭仲父判書公文 祭伯父澤軒公文 祭伯母文 祭族父 觀察公文 祭仲父仲母遷葬文 祭姑母文 祭霞谷鄭先生文 祭季 行文 祭朴判書 祭外姑兪氏文 祭鄭富平文 祭閔士相文 祭趙 飛卿文 哭趙飛卿文 祭戚泛叔沈公文 哭趙飛卿文 哭趙飛卿文 哭趙飛卿文 祭趙飛卿文 祭沈樵叟文 祭菊圃姜公文 祭杜谷大 姑母文 祭姑母夫崔公墓文 哭閔士相文 祭姑母墓文 祭庶泛 弟匡華文 序 送趙玄夫進士榮覲嶺營序 送鄭子揮之宜州序贈林何仲序 園亭引 發安齋遺墨 弘齋閔公鈺遺事 李孺人哀辭 2冊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63 擬王朱問答 辨道甫理氣說 氷炭錄 與襄仲辯難朱王理氣說 承重追服議 與趙華瑞景彬說話 書先世言行錄後 論鄭霞谷學問說 浩然章義 告子章義 中庸辭 論語解 詩傳解 3冊 詩 陪洪使君遊傳燈寺(제목만 기록되어 있음) 賦 次板上牧老䪨(제목만 기록) 拈䪨又賦(제목만 기록되어 있음) 思省錄

6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5. 두남집(斗南集) 1) 저자 이광사(李匡師). 1705(숙종31)-1777(정조1). 자 도보(道甫), 호 원교 (圓嶠)(또는 員嶠). 원교 란 그가 살던 둥그재 원교[圓嶠]에서 딴 것이지 만, 같은 음의 선산(仙山)의 이름을 따서 자신을 원교 라고 불렀다. 부 친 이진검(李眞儉)과 백부 이진유(李眞儒)는 신임사화(辛壬士禍)(17211722)의 주동자가 되어 신축년(辛丑年)에 상소를 올려 노론의 사대신(四 大臣)을 사사 유배시켰다. 이에 백부 이진유는 이조판서에 부친은 예조 판서에 올랐다. 1724년 경종(景宗)이 죽고 영조가 노론의 힘으로 즉위하 자, 이진유는 나주로, 이진검은 강진으로 유배된다. 이후 원교의 가문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원교는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이 즈음에 강화의 하곡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윤순(尹淳)의 문하에서 필법을 익혔다. 1731년 처음으로 강화에서 하곡으로부터 실학을 배웠고, 이때부터 하곡학에 전념하였으나, 50세 에 다시 함경도 부녕(富寧)으로 유배가고, 다시 전라도 신지도(薪智 島)로 유배되어 그 곳에서 짧은 인생을 마쳤다. 원교 사상이 담겨있는 공식적인 자료는 원교집 과 두남집 이 있다. 원교는 당대의 명필로 서결(書訣)(前篇)-1764 을 지었고, 아들 신 재(信齋)에게 후편을 짓게 하고 다시 수정을 가했다(후편 1768). 그는 곱게만 보이는 글씨를 쓰지 않고 심획(心畵)20)을 그으려고 노력했다. 이는 하곡의 내실을 중시하는 전어내(專於內), 실어기(實於己) 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부녕으로 귀양 간 뒤 두만강지남(斗滿江之南) 이 20) 붓 끝의 중심이 한 가운데로 가서 양쪽의 가는 터럭이 아울러 따라 간 즉 그 획 모양이 자연 둥그니 이것이 이른바 온 붓털의 힘이 균형이 잡혔다는 만호재력(萬毫齊力)이란 것으로 이른바 심화(心畵)이다.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65 라는 뜻에, 두보(杜甫)의 추흥팔수(秋興八首) 중 제2수(首)의 매의북 두망경화(每依北斗望京華) 의 뜻을 붙여 귀양살이의 진솔한 기록을 모 아 두남집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재 남아 있는 저자의 글은 대부분이 50세 이후의 저작들인데, 이 광려(李匡呂)가 쓴 묘비에서 말했듯이 저자가 젊었을 때에 글쓰기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古3428-347) 소장 필사본, 불분권 1책. 일본 천리도서관(天理圖書館) 소장 필사본, 불분권 1책. 3) 편찬 현재 전하는 저자의 문집은 대부분 이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저자 의 사후 유문을 더 수집, 정리한 필사본들이다. 두남집 은 권차(卷 次)의 구분이 없는 4책 필사본으로 현재 규장각(古3428-347)에 전하고 있다. 시(詩)와 문(文)의 구분도 없고, 목차도 책 표지에 난삽하게 기 록되어 있어 거의 초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저자의 사후 글씨와 문장이 뛰어나 촉망받았던 아들 이영익(李令 翊)이 시문을 수습하고 묘지를 부탁하는 등 유적을 정리하였으나 곧 이어 1780년에 졸하여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4) 구성과 내용 두남집 은 1755-1758년에 이르는 3년간의 귀양살이를 꾸밈없이 적 은 그의 삶의 한토막이다. 그의 남다른 인간애의 진솔한 기록이 주를 이루는 권4에는 동국악부(東國樂府) 가 주가 되니, 이는 그의 애국 애족의 자주적인 정신의 발로로서 그의 역사의식의 표출이다. 특히 그

6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의 아들 이영익에게도 짓도록 하여 역사의식을 각인시켜주고 있음을 신재집(信齋集) 에도 실려 있는 동국악부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남집(斗南集) 卷一(1755년 작품) 斗南集題辭 亡妻文化柳氏紀實 到富寧謫所後寄在京子姪書二組 詩(10 수) 從父弟匡敏墓誌銘 寧山行 寄子姪書 祭妹柳氏婦女 舊遊 亡妻安東權氏墓誌銘 婦女思讀平淮西碑 題赤壁賦後 辯陳言古人碑誌例(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음) 卷二(1756년 작품) 立春詩 亡妻柳氏初朞祝文 祭乳媼文 上舍兄吉州謫中一千一百字 先正憲大夫禮曹判書 兼知經筵事同知春秋館事五衛都摠管府君墓表(선친 李眞儉의 墓表) 詩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67 祭尾泉從父兄文 亡室柳氏禫祭祝文 孺人生日祭文 詩 再祭伯氏無妄齋先生文 上季母 詩 寄女兒言 詩 君公語例 詩 絀巫 詩 上明川從兄 蘇齋東溟詩說 詩 張漢左傳 詩 再上明川從兄 詩 辨明川從兄書後語 詩 僦屋後祭司宅土地神文 答明川從兄 亡室孺人文化柳氏墓誌銘 卷三(1757-1758년 작)

6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孺人柳氏再朞祝文 題班固評賈馬贊中論秦亡得失後 祭孺人柳氏文 呂刑辨 洛誥辨 答兒論文書 伯氏通德郞行靖陵參奉無望齋先生紀實 書進學解後 論東國諺解吐 論嶧山碑 書贈稚婦 紙 旌頭其 答 翊書 先妣貞夫人坡平尹氏墓誌銘 戊寅立春祝聖歌 柳孺人 忌日祝文 答明川從兄論洛誥辨書 寄女 祭司宅土地神文 寄示兒二則 讀滄溟鳳洲文 讀東坡淸風閣記 柳孺人亡日祭文 讀盧陵文 讀盧陵穕說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69 讀南豊寄歐陽舍人書 論南豊文 讀東漢延篤與李文德書 讀臨川芝閣記 讀元美胡元瑞綠羅館詩集序 詩 又論李攀龍文 又論王李文 讀香山洛城池上篇 書永叔集古目木序及與蔡君謨求書集古錄序書後 讀歐公祭文諸篇 讀朱子語類識疑觀澤堂初學字訓 問朱子天問答一則 朱子答黃先之問舜事 天地水火說 答令翊論心書 卷四(1758년 작) 東國樂府(30수) 答再從子文翊書 答慶兒書 詩(次慶兒未歸田90韻) 天問辨答4條 深衣說21) 21) 이상 규장각소장문집해설 (18세기 3)(서울대학교 규장각, 2004) 500-511쪽 및 鄭良婉의 江華學派의 文學과 思想(2)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년 3월) 9-16쪽 참고.

7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6. 원교집(圓嶠集) 1) 저자 이광사.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奎15551).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4-6357) 소장 필사본 4권 2책.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貴563).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21집. 3) 편찬 원교집 또는 원교집선 이라는 제명(題名)으로 전해진다. 원교집 의 편찬 체제와 내용은 두남집 과 비교해 보면 비록 간 행의 단계까지 갈 정도는 아니지만 훨씬 정돈된 형태이다. 권1의 악 부(樂府)와 권2의 시(詩)가 대부분 두남집 의 시문과 일치하는 등 부 녕 유배 시절의 작품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이후의 저작도 상당량 실려 있으며, 문체별로 또 작품의 분량을 고려하여 권 차(卷次)가 나누어져 있다. 다만 권3~5까지는 편차가 연결되어 있어 권4는 제33판부터 시작되고 권5는 편지 2편으로 5판 밖에 되지 않는 데, 이 부분은 문체의 구별에 따라 권차를 나누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광려가 지은 묘지에 의하면 유문이 대부분 50세 이후의 작품이며, 말년에 5~6천 자에 달하는 서결(書訣) 을 지어 왕희지(王羲之), 위부 인(衛夫人) 서체(書體)의 뜻을 발명하였고, 또 후편 만여 자를 이영익 이 대신 짓고 저자가 수정을 가하였다고 하였는데, 본집에는 전편만 실려 있고, 이영익의 신재집(信齋集) 에도 서결 후편이 없는 것으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71 로 보아 분실된 듯하다.22) 4) 구성과 내용 본집은 10권 4책의 필사본. 목록, 서발이 없다. 권1~3은 시(詩). 권1은 동국악부 30수로 1758년 부녕(富寧)에 유배되 었을 때 아들 이영익과 함께 수창한 역사악부(詠史樂府). 태백단(太伯 檀) 은 단군신화를 읊은 시. 주로 우리나라 전래의 건국 신화와 설화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이 실려 있다. 시의 형식이나 분량은 일정치 않다. 파경합(破鏡合) 같은 1400여 자가 넘는 장편이 있는가 하면, 문곡성 (文曲星) 처럼 20여자 밖에 안 되는 짧은 작품도 있다. 백사가(百死 歌) 는 정몽주의 일화를 읊은 시다. 두문동(杜門洞) 은 고려에 충절을 지키느라 조선에서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의 절개를 찬양한 시로, 저자 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다. 권2와 권3은 97수의 시가 연도순으로 실 려 있는데 부령에 유배되었을 때인 1755년~1758년 사이에 지은 시와 신지도(薪智島)로 이배된 뒤인 1760년대의 시가 대부분이다. 권2의 훈 가편(訓家篇) 이후부터 권3의 차령아미귀전(次令兒未歸田) 까지는 두 남집 에 실린 것으로 모두 부령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내용도 대부 분 아들 이영익 및 형제들에게 보내는 시와 유배 시의 쓸쓸한 심정을 읊거나 고향을 그리는 내용이다. 권3은 신지도로 이배된 이후의 작품 이다. 권4~5는 잡저(7)와 편지(2)이다. 권4와 5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편 차(編次)가 권3부터 계속 이어져 있다. 권5의 편지는 아들 이영익과 문장에 대해 논한 글, 조카 이충익(李忠翊)에게 불교에 빠지지 말 것 을 충고한 글인데, 저자도 젊었을 때에 불교에 깊이 빠져 선유들의 22) 총간해제5, 237-239쪽, 김성애 해제 참고.

7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글을 모두 냉소에 부쳤었다는 고백이 적혀 있다. 권6~권7은 아래 수록한 내용과 같다. 권6은 제문(17)이다. 권8은 잡문(12)인데, 그 중 오음정서(五音正序) 는 성음의 발생 원 리를 설명한 것인데 특히 한문의 사성(四聲)과 우리의 음이 맞지 않 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어 국문학상 주요 자료가 되고 있다. 권10은 저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서결(書訣) 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서법을 비교하고 자신의 서체 이론을 설명한 글인데 저자 가 원교체(圓嶠體)라는 특유의 서법을 창안하여 서예의 일가를 이루 었으므로 이 글도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23) 원교집(圓嶠集) 圓嶠集選卷第一 東國樂府 역사의식에서 읊은 시 30수24) 圓嶠集選卷第二 詩(부령에 유배되었을 때(1755~1758) 지은 시 76수) 圓嶠集選卷第三 詩(대부분 신지도로 이배된 이후의 작품. 21수) 圓嶠集選卷第四 雜著 兌說也說(兌卦의 兌를 해탈의 의미로 해석) 呂刑辨(贖刑에 대한 글) 23) 총간해제5, 235-239쪽 김성애 해제 참고. 24) 시 해석은 鄭良婉의 江華學派의 文學과 思想(2)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73 洛誥辨 答正字從兄論洛誥辨書( 낙고(洛誥) 에 대한 고증) 朱子答黃先之問舜事 讀法華經 辨佛非周昭王時人(유가입장에서 법화경(法華經)비판) 圓嶠集選卷第五 書 答兒論文書(아들 이영익과 문장에 대해 논한 글) 答再從子忠翊書(이충익에게 불교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한 글) 圓嶠集選卷第六 祭文 爲從父兄祭霞谷鄭先生文 祭白下尹尙書文 祭閔兄士相 文 祭恒齋從兄文 祭妹柳氏婦文 亡妻柳氏初朞祝文 祭尾泉從父兄文 亡室柳氏禫祭祝文 孺人生日祭文 僦屋後祭司宅土地神文 孺人柳氏再朞祝文 祭從姪文翊文 祭李子明 文 祭季母宋夫人文 祭從父兄正字府君文

7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祭權在之 文 祭伯嫂申夫人文 圓嶠集選卷第七 碑誌銘表 承憲大夫新宗君墓誌銘 族父同知中樞府事李公墓誌銘 始祖德泉君神道碑銘 族父黃海道觀察使府君墓碣銘 季行墓誌銘 亡妻安東權氏墓誌銘 先正憲大夫禮曹判書兼知經筵事同知春秋館事 五衛都捴府都捴管 府君墓表 亡室孺人文化柳氏墓誌銘 先妣貞夫人坡平尹氏墓誌 無妄軒先生墓誌銘 驪興閔夫人墓誌銘 平安道節度使曺公墓誌銘 吏曹參判曺公墓誌銘 李君仁耈墓表 李子明墓誌銘 曺幼安墓誌銘 曹伯涵墓誌銘 伯嫂申恭人墓誌銘 族叔全羅水軍節度使李公墓表 尙州牧使金公墓誌銘 圓嶠集選卷第八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75 雜文 來道齋記 讀平淮西碑 題赤壁賦後 古人碑誌例 君公語例 題班固評賈馬贊中論秦亡得失後 論嶧山碑 讀廬陵文 讀南豊寄歐陽舍人書 崔烈婦贊 崔烈婦哀辭 五音正序 (성음(聲音)의 발생 원리를 설명한 것. 특히 한문의 사 성(四聲)과 우리의 음이 맞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문제 점 등을 지적) 圓嶠集選卷第九 行狀 先正憲大夫禮曹判書兼知經筵事同知春秋舘事 五衛都捴府都捴 管府君行狀 族父黃海道觀察使府君行狀 五兄恒齋先生行狀 叔兄艾叟先生記實文 圓嶠集選卷第十 書訣 (서도(書道)의 원리와 실제를 정리한 글. 중국과 조선의 서 법을 비교하고 자신의 서체 이론 설명) 圓嶠集墓誌

7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墓 誌 圓 嶠 先 生 墓 誌 ( 李 匡 呂 )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77 7. 이참봉집(李參奉集) 1) 저자 이광려(李匡呂). 1720(숙종46)-1783(정조7). 자 성재(聖載), 호 월암 (月巖), 칠탄(七灘). 감사 서간(西㵎) 이진수(李眞洙)의 아들. 평생 학 문과 수행에만 힘쓰고 자신의 시문을 정리해두거나 수습하지 않았으 나 시문이 한 편 나올 때마다 당시 사대부들이 보배롭게 여기어 전송 (傳誦)하였으며 말년의 작품은 갈수록 간결하고 소박해져서 평탄하고 편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문(詩文)과 학행(學行)으로 참봉(參奉)에 천거되었다. 고구마에 대한 지식을 실험하고자 하여 통신사 조엄이 고구마를 갖고 귀국하자 재배에 실패했지만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에게 자극하여 성공하게 했다. 2)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奎4349. 古3428-840), 목판본 건곤 2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4-6408).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88).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27).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민족문화추진회. 한국문집총간 237집. 3) 편찬 저자의 사후 문집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데 참가한 이만수(李晚秀), 신대우(申大羽), 서영보(徐榮輔) 등은 모두 저자의 집안과 혼인 관계 를 맺은 인척이고, 이충익은 족질(族姪)이다. 이충익의 서문에 의하면,

7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자신이 시문을 정리하여 시 2권, 문 2권으로 편집했는데, 저자가 선비 들의 존경을 받아 글이 많이 전파되었지만, 본래 저술이 적었고 또 평소 시문을 수습하지 않아 문집에 실린 글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전 해져 기록해 둔 것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즉 집에 보관된 유고가 거의 없어 사후에 수습된 유문을 대상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분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詩) 중에는 저자가 직접 주 (註)를 붙인 것도 종종 있어 가장(家藏)된 유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또 이만수의 서문에서 선생 사후 23년(1805년)만에 시 326편, 문 31편으로 문집 4권이 간행되었다 했으며, 서영보 또한 문 집의 간행에 참여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본집은 이충익과 신대우, 이만수, 서영보가 유문을 수습, 정리하여 4권 2책의 문집을 1805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것이다. 문집의 이름을 특이하게 이참봉집 으로 붙이게 된 이유는 저자가 서문(西門) 밖 월암(月巖)에서 살아 월암 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생 전에 스스로 부른 적이 없기 때문에 일찍이 참봉에 제수되었던 것을 취하여 이참봉집 으로 했다고 한다. 본집에는 이만수, 신대우, 서영 보가 1805년에 쓴 서발(序跋)이 실려 있다.25) 4) 구성과 내용 본집은 4권 2책의 적은 분량으로 시 2권, 문 2권으로 구성되어 있 다. 권두에 이만수, 신대우가 1805년에 쓴 서문이 있소, 총목록이 실 려 있다. 25) 총간해제5, 362-365쪽, 김성애 해제 참고. 민족문화추진회. 기타 참고 문 헌: 序(李晚秀申大羽 撰), 跋(徐榮輔 撰), 序(李忠翊 撰, 椒園遺稿). 鄭良婉, 江華學派의 文學과 思想(1)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月巖李匡呂 論. 유명종, 성리학과 양명학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4), 340-342 쪽.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79 권1~2는 시로 326수의 시가 대략 연대순으로 실려 있다. 형식면에 서 살펴보면 대부분 오언 칠언 절구와 율시로 장편은 없다. 권3~4는 문(文) 31편이다. 권3에는 묘도문자 20편이 실려 있다. 권4는 전(傳), 찬(贊), 서후(書後), 서(書) 등 여러 글들 11편을 모아 놓았다. 서군방보후(書群芳譜後) 와 여서판서일지지수서(與徐判書一 之志修書) 등의 글에서 고구마의 보급과 경작을 위해 힘쓴 저자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여홍판서한사량호서(與洪判書漢師良浩書) 는 중 국에서 사용하는 벽돌이 우리나라의 기와보다 훨씬 단단하고 싸서 효 용가치가 높음을 역설하고 나라와 민생을 위해 벽돌 굽는 방법을 배 워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26) 이참봉집(李參奉集) 李參奉集序 序 李參奉集序(李晩秀) 李參奉集序(申大羽) 李參奉集卷一 詩 挹香亭 彈琴臺用三淵集韻 寒碧樓 梅 등 79수. 李參奉集卷二 詩 26) 총간해제5, 362-365쪽 참고.

8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良丁母 章臺枝 讀南士美遺事 寄龍淵申翁 등 75수 李參奉集卷三 文 學生李公孺人權氏合葬誌銘 七世祖咸豐君府君墓誌銘 族兄淸安公墓誌銘 申生墓誌銘 吳季淵墓誌銘 繕工監役鄭君墓誌銘 鄭氏殤女墓誌銘 軍資監正贈吏曹參判徐公墓誌銘 東瀨翁墓誌銘 通德郞尹公墓誌銘 加平郡守尹公墓誌銘 龍仁縣令尹君墓誌銘 沈孝子墓誌銘 淑人尹氏墓誌銘 員嶠先生墓誌 厚陵參奉閔君墓誌 同知中樞府事鄭公墓誌 義州府尹申公墓銘 吏曹參判曹公墓表 僉知中樞金君墓碣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81 李參奉集卷四 文 林夫人傳 瀨翁舍利贊 書羣芳譜後 讀老子 終事 論東國女子不笄 記李孺人事 與徐判書一之書 與洪判書漢師書 與尹評事渭老書 與族姪潤甫書 李參奉集跋 跋 李參奉集跋(徐榮輔)

8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8. 완구유집(宛丘遺集) 1) 저자 신대우(申大羽). 1735(영조11)-1809(순조9). 자 의부(儀父), 호 완구 (宛丘).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奎563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4-6309). 국립중앙도서관(古3648-文40-8).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古書(811.98).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51. 3) 편찬 지금까지 전해진 것은 거의 없지만, 본래 상당량의 편찬서가 있었던 것 같다. 16세 이후 경서(經書) 연구에 몰두하여 역통(易通), 춘추고 (春秋考), 논어설(論語說), 맹자구정(孟子求正), 상서구정(尙書求 正), 용학방주(庸學旁注) 등이 있었으나 분실되어 저자가 1762년 상자를 뒤져보았을 때는 논어설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또 명산을 둘러보고 쓴 산해소(山海疏) 와 서정보(西征譜), 5일 동안 개성을 유람하고 지은 오일기(五日記), 강화의 생활을 적은 심도지 (沁都志), 고서를 열람하며 뜻에 맞는 것을 쓴 직일기(直日記), 서 한(西漢)의 문장과 서진고문(先秦古文)을 가려 뽑아 만든 서한문류 (西漢文類) 와 고문정해(古文程楷), 숙종 때까지의 야사를 날짜별로 편찬한 일월주(日月注)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전해지지 않는 다. 1776년경 중년까지의 시문(詩文)으로 진강존산(鎭江存刪) 을 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83 하여 성천주(成天柱)에게 보여 주었고, 1804년에 아들 신작(申綽)에게 진강산고(鎭江散稿) 를 편찬하게 하는 등 생전에 스스로 편집한 것 도 있었던 갓 같다. 저자가 죽은 후 신진(申縉), 신작, 신현(申絢) 형제는 위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시문을 더 정선하여 재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충익(李忠翊) 이 1816년에 쓴 완구유집서(宛丘遺集序) ( 초원유고(椒園遺稿) 책2) 에 의하면 이즈음 신작 형제들이 문집의 편차를 완료하여 자신에게 서 를 부탁하였는데 그 글은 모두 옛날에 저자에게서 얻어 보았던 것이라 고 하였다. 이후 1818년 10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신작이 문집을 간 행하기 위하여 판하본(板下本)을 손수 깨끗이 썼는데 글자체 해서(楷 書) 같기도 하고 예서(隸書) 같기도 한 팔분체(八分體)여서 읽는 사람 들이 어려워했으므로 세간에서는 문집이 있은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고 하였다. 이때 모두 10권 158장이 정사되었는데 1819년 9월부터 1820년 9월까지 경공(京工) 최호익(崔浩益)과 평양공(平壤工) 양우주 (梁禹舟) 두 명이 간역(刊役)을 시종 담당하여 1년 만에 마쳤고 한창택 (韓倉澤)이 10일 만에 모두 26부를 인출해내었다고 한다. 초간본 저 자의 문집 간행과 관련된 시종의 기록은 모두 신작의 석천일승(石泉 日乘) 에 자세한 기사가 실려 있다. 본집은 그 간행이나 형식에 있어서 당시에 화제가 될 만큼 파격적 이었던 듯하다. 문집의 글자로는 유래가 없는 팔분체라는 자체도 그러 한데다 시(詩)가 단 한 편도 실리지 않았으며 문(文) 또한 문체별로 나 누어 분권하였기 때문에 적은 분량임에도 권수는 10권이나 된다. 홍석 주(洪奭周)는 완구의 문집 2권은 취사가 자못 엄중한데다 교정과 정사 (淨寫), 간행과 인장(印裝) 등을 공인(工人)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식 들이 직접 하였으니 세상에 드문 바라고 평하고 있다. 석천일승 을 통해 몇몇 공인이 참가했던 것은 알 수 있지만 신작 형제들이 이 문집

8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에 기울인 노력이 남달랐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총 73편의 글이 수 록되어 있다. 4) 구성과 내용 본집은 10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권두에 총목차가 있고, 서발 (序跋)이나 부록문자는 실려 있지 않다. 2책 159판 밖에 안 되는 적은 분량을 10권으로 나눈 것은 문체를 기준으로 분권하였기 때문이다. 또 본집에는 시가 한 편도 실려 있지 않다. 홍석주는 완구의 글이 선 진(先秦) 고문(古文)을 법칙으로 삼고 문선(文選) 과 당문수(唐文粹) 에서 섞여 나온 듯하여 시에도 뛰어났지만 고문에 능하다는 그의 장 점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시를 싣지 않은 것이라고 하였다.27) 완구유집(宛丘遺集) 宛丘遺集卷之一 雜著 皋陶執㳒疑 皋陶執㳒疑(二疑) 讀衛世家 讀柳子厚桐葉封弟辨 紀鄭先生淮陽治事 李五姑述 字說示諸弟 27) 기사전거: 李忠翊 撰, 宛丘集序, 椒園遺稿 冊2. 申綽 撰, 事狀, 石泉 遺稿 卷1. 申綽 撰, 石泉日乘. 洪奭周 撰, 鶴岡散筆, 淵泉全書 7. 沈 慶昊, 宛丘申大羽論 江華學派의 文學과 思想(1). 총간해제5, 481-484 쪽, 金成愛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85 三子字說 鄭述仁字說 徹齋說 崔忠貞帖後記 書修山集後 韋巖契憲後敍 兪曼倩眞贊 斑玉書案銘 宛丘遺集卷之二 書 與南受之書 上高陽從叔父書 與海西尹觀察書 答鄭述仁書 答韓正字論維州事書 重答韓正字書 與朴維則書 宛丘遺集卷之三 序 送具御史監市北關序 送留守成公還京師序 送衿川曺使君移宰臨陂序 送賀正副使尹大夫序 從祖叔父翊衛君六十一歲壽序 古文程楷序 近宗契續券序

8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知㪟寍府事洪公司馬回榜序 送賀正上使曺尙書赴燕序 李文靖敍述集序 送謝恩正使李太史赴燕序 李參奉文集序 趙進士忍菴集序 宛丘遺集卷之四 記 河上齋記 蒿菴記 閱波亭重建記 堤州館新建記 小槎記 浮碧樓重修記 宛丘遺集卷之五 墓文(一) 鄭氏夫人墓誌銘 申府君墓誌銘 權進士墓表 曺聖賚墓銘 李次山墓誌銘 蘇君墓銘 恭人申氏墓誌銘 弘文校理特贈副提學朴公墓碣銘 禮曹判書貞惠沈公神道表 宛丘遺集卷之六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87 墓文(二) 霞谷先生神道表 朝鮮故大匩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 事世孫傅李公墓誌銘 朝鮮故嘉善大夫禮曹參判兼同知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 副摠管成公墓碣銘 戶曹佐郞權君墓銘 宛丘遺集卷之七 墓文(三) 朝鮮故知敦寍府事曺公墓碑 李而漸墓銘 三嘉縣監申府君墓誌銘 王考承旨府君墓碣銘 宛丘遺集卷之八 行狀(一) 朝鮮故通政大夫吏曹參議知製敎任公行狀 李夫人內儀 仲厚行狀 朝鮮故通訓大夫行工曹佐郞李公行狀 朝鮮故通訓大夫富平都護府使水原鎭管兵馬同僉節制使鄭公行狀 宛丘遺集卷之九 行狀(二) 李先生行狀 貞敬夫人楊州趙氏行狀 故抱川縣監申公行狀 高同知行狀

8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宛丘遺集卷之十 祭文 仲厚祭文 祭亡妹文 祭亡女文 亡女小祥祭文 祭柳夫人文 祭鄭學士文 祭朴至叔文 曺幼安誄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89 9.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1) 저자 이긍익(李肯翊). 1736(영조12)-1806(순조6). 자 장경(長卿), 호 연려 실(燃藜室). 근대 서예로 유명한 원교(圓嶠) 이광사의 아들. 소론파의 강경분자인 백부 이진유가 영조 6년에 역모죄로 몰리자, 원교도 거기 에 연루되어, 전후 20여 년간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이긍익은 처음부터 벼슬길을 단념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그는 특히 국사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역사서를 섭렵하였는데, 종 래의 야사류가 너무 산만하여 체계를 잃은 데 대해 큰 불만을 품었 다. 그래서 조선 태조 이래 각 왕조의 중요한 사건(대개 정치적 사건) 을 기사본말체 방식에 의거하여 편찬하되, 조금도 자기의 견해나 비 평을 가하지 않고 여러 사서에 있는 관계 기록을 뽑아내어 기록하고, 하나하나 출처를 밝혔다. 이것이 연려실기술 원집이다. 또 그는 따 로 역대 관직을 위시하여 각종 전례(典禮)문예천문지리변어 (邊圉. 대외관계) 및 역대 고전 등, 크게 편목(篇目)을 나누어 그 연 혁을 기재하고 출처를 밝히었다. 이것이 연려실기술 의 별집(別集)이 다. 원집을 정치편이라고 한다면, 별집은 분류편(分類篇)이라고 할 수 있다. 2) 소장처 필사본 52권 42책. 1911년 광문회(光文會)에서 도합 34권으로, 1913 년 고서간행회(古書刊行會)에서 도합 59권으로 각각 간행하였고, 1934 년 계유출판사(癸酉出版社)의 조선야사전집(朝鮮野史全集) 에 일부가 국한문체로 번역되어 나왔으며,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국역 총서 제1집으로 도합 12권으로 발행했다. 경문사(景文社), 1976 영인.

9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편찬 근대조선에 관한 기사본말체의 야사로는 서문중(徐文重)의 조야기 문(朝野記聞) 과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을 대표로 들 수 있는데, 이 중 체재가 잘 갖추어지고 널리 유포된 것이 연려실기술 이다. 연려실기술 의 원별집의 전사본(傳寫本)이 편저자 이긍익의 생 존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그 수효가 한 둘이 아닌 만큼, 별도로 정본(定本) 없이 내려왔다. 더구나 편저자 자신이 범례에서 밝힌 것처 럼, 본문에 여백을 두어 수시로 새로운 사료를 발견하는 대로 기록 보충하는 방법을 취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 책에 대해 그렇게 보충하게 하여 완성본을 만들도록 원했으므로, 종래 전사본 중에는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권질(卷帙)도 맞지 않은 것이 많이 있 다. 편저자 자신의 최후 정본인 원고본 역시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 문에 정본이 어떤 것이라고 단언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각종 전 사본 중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제 초기에 일본 사람 주관의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 行會) 인본(印本)의 대본(臺本)과 같은 것이 그것이요, 또 하나는 최남 선 주관의 광문회(光文會) 인본의 대본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원집 33권(태조로부터 헌종까지), 속집 7권(숙종) 및 별집 19권, 도합 59권이지만, 후자는 원집 24권(인조까지), 별집 10권, 도합 34권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광문회 인본의 제언(題言)에 의하면, 그 인본의 사 본은 이범세(李範世. 이긍익의 후손)의 기본(寄本)으로, 이를 원본이라 하고 이 원본과 수삼 종의 전사본을 비교대조하여 오류를 정정했다 고 한다. 그러나 원본이 정말 이긍익의 최후 원고본을 의미하는 것인 지, 혹은 그것의 전사본인지 자세하지 않지만, 그것이 이씨 가문 전래 의 정본이기 때문에 원본이라고 하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에는 원집 중 효종현종의 양대 고사가 빠졌다. 고서간행회본과 광문회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91 을 비교해 볼 때, 전자의 대본과 같은 사본 가운데는 타인의 보충한 흔적이 많으니, 무엇보다도 속집 7권(숙종 고사)이 그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 하겠다. 속집에는 사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점으로 보아, 원저자가 지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추보가 있다고 해서 비 난할 것은 조금도 없다. 도리어 그 추보는 원편자 이긍익의 뜻에 부 응하고, 계승한 아름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고 서간행회본에는 오류가 많음에 대하여 광문회 인본(효종으로부터 숙 종 때에 이르기까지의 속집은 들어 있지 않지만)은 정정에 매우 힘썼 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 국역에 있어서는 광문회본과 고서간행회본에 의거하되 후자의 오류를 정정하는 한편, 전자의 미비한 부문을 보충하는 방침 을 취하였다. 요컨대 연려실기술 은 종래 체계 없는 모든 야사에 대 하여 정비된 체계를 세웠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의 추보를 많이 거 친 만큼, 비교적 완본을 이룬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다시 말하면 본서는 우리나라 야사 가운데 가장 잘 정리되고, 또 내용이 풍부한 것으로, 그 전사본이 많이 유포되었던 것이다.28) 4) 구성과 내용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연려실기술 義例 연려실기술 제1권 太祖朝故事本末 연려실기술 제2권 太祖朝故事本末 28) 연려실기술, 민족문화추진회, 고전국역총서, 이병도 해제. 1966년 10월.

9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定 宗 朝 故 事 本 末 太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권 世 宗 祖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4권 文 宗 朝 故 事 本 末 端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5권 世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6권 睿 宗 朝 故 事 本 末 成 宗 朝 故 事 本 末 燕 山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7권 中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8권 中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9권 中 宗 朝 故 事 本 末 仁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0권 明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1권 明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2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3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4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5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6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7권 宣 朝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8권 宣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19권 廢 主 光 海 君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0권 廢 主 光 海 君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1권 廢 主 光 海 君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2권 元 宗 故 事 本 末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93 연려실기술 제23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4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5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6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7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8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29권 仁 祖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0권 孝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1권 顯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2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3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4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5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6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7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제38권 肅 宗 朝 故 事 本 末 연려실기술 별집 제1권 國 朝 典 故 祀 典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2권 祀 典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3권 祀 典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祀 典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5권 事 大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6권 官 職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7권 官 職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8권 官 職 典 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9권 官 職 典 故

9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연려실기술 별집 제10권 官職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1권 政敎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2권 政敎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3권 政敎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4권 文藝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5권 天文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地理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7권 邊圉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8권 邊圉典故 연려실기술 별집 제19권 歷代典故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95 10. 신재집(信齋集) 1) 저자 이영익(李令翊). 1738(영조14)-1780(정조4). 자 유공(幼公), 호 신재 (信齋), 포객(匏客). 문집에 대한 서문(序跋)이나 부록이 없어 평소의 행적이나 유문(遺 文)의 정리 상황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절친하게 지냈던 종제(從弟) 이충익이 지은 저자의 가전(家傳)과 제문(祭文)을 통해 약간이나마 짐 작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부친 이광사에게 학문과 서예를 배웠으며, 10여 세에 이미 놀랄 만한 글을 써왔다. 글씨도 원교체(圓嶠體)로 부친의 글씨를 임서(臨書)하면 세상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했으며, 전서(篆書)와 예서 (隸書)도 원교의 이름으로 세상에 행해지는 것이 많았다. 또 원교가 지은 서결(書訣) 의 뜻을 부연하여 만여 자에 달하는 글을 썼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저자의 저술로는 문집 몇 권과 경설 (經說) 몇 권이 있는데 끊임없이 글을 고쳐서 탈고되지 못한 채 집안 에 보관되어 있었다. 2) 소장처 고려대 도서관(貴558) 소장 필사본 상하 2책. 민족문화추진회, 한국문집총간 252집. 3) 편찬 저자의 사후 유문은 이충익이 정리할 것을 자임하였는데, 9살 차이 의 종형제 사이이면서도 선생과 제자처럼 함께 강학하고 일가의 지기 (知己)로 지내던 사이였으므로 생전에 이미 자신의 사적을 정리해줄

9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것을 부탁하였다고 한다. 이충익은 1782년에 쓴 제문에서 시문(詩文) 의 교정을 아직 끝마치지 못했다고 하였고, 가전(家傳)에서는 경설(經 說)을 수정하여 책을 완성할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이 시기를 전후하 여 문집이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후 간행되지 못했 다. 현재 필사본으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貴558)에 소장되어 있는 것에는 경설(經說)이 없다. 필사본은 권이 구분되지 않은 채 2책으로 나뉘어 있고 각 책 안에 서는 편차가 연속되어 있고, 문체가 바뀌는 곳마다 별면으로 처리했 다. 또 신재집(信齋集)이라는 제목이 주제가 나누어지는 곳마다 붙어 있는데, 책1에서는 악부(樂府), 고시(古詩), 율시(律詩), 련구(聯句)가 시작되는 곳마다, 책2에서는 잡저(雜著), 서(書), 제문, 묘지(墓誌) 등 이 시작되는 곳이 그렇다. 내용과 분량을 고려하여 권으로 나눌 예정 이었던 것 같다. 또 시의 경우 자서(自序)가 달려 있는 작품이 많은 데, 집에 보관된 초고를 바탕으로 한 것 같다. 작품의 편차 수준이나 오자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교정을 마친 상태의 정고본(定 稿本) 단계로 보인다. 본집은 이충익이 편차하고 교정한 본을 바탕으 로 전사(轉寫)하였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필사시기와 관련자는 확 실하지 않다.29) 4) 구성과 내용 본집은 불분권 2책의 필사본으로 시 1책, 문 1책으로 구성되어 있 으며, 서발이나 목록, 저자에 대한 부록문자 등은 실려 있지 않다. 29) 家傳祭文(李忠翊 撰, 椒園遺藁 冊2) 및 총간해제5 501-504쪽, 김성애 해 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97 신재집(信齋集) 信齋集册一 東國樂府 東國樂府序 太伯檀 黃河歌 聖母祠 林中鷄 憂息曲 鵄述嶺 黃昌舞 斬馬衖 王毋去 陽山歌 破鏡合 朝蜀使 玄鶴琴 萬波息笛 月明衖 上書莊 鮑石亭 釣龍臺 落花巖 朝天石 薩水捷 城上拜

9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迎茜旗 絶影馬 昌瑾鏡 聖帝帶 文曲星 百死歌 女戴笠 杜門洞 古詩 23수 律詩 99수 聯句 8수 信齋集册二 雜著 論塟說 論相人者 論曆載陰陽避忌 論文中子 論文章之弊 論佛 硯銘 九容箴 題騎牛訪牛溪圖 桃源說 信齊說 冠禮說 擬大禹進九州貢賦奏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99 幅巾銘 贈薪智島李生 遊薪智島石窟記 送方祥喆歸北塞序 送凡谷從兄言 李在淳冠說 申儀父書案銘 無口匏說 無口匏解嘲 書 答再從弟虞臣 答虞臣 答虞臣 答申儀父 答虞臣 與申儀父 答虞臣 答虞臣 答虞臣 答虞臣 與虞臣 與柳混 祭文哀辭 祭從姪勉仁鏡城權瘞文 祭從祖兄窠山子文 祭外王母閔淑人文

10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祭從伯姊崔氏室文 祭季祖母宋夫人文 祖考妣遷葬祭文 祭中翁從叔父文 祭族叔參奉公文 祭從姪聖功文 祭通德郞李君文 祭世母申恭人文 祭洞泉伯從兄文 祭外姑柳淑人文 窠山子哀辭 申仲厚哀辭 表姪女李氏婦哀辭 墓誌表行狀 申仲厚墓誌 玉果縣監柳公墓誌銘 平壤都君墓表 族子仲容壙誌 淑人李氏墓誌銘 外王父貞陵參奉柳公行狀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01 11. 초원유고(椒園遺藁) 1) 저자 이충익(李忠翊). 1744(영조20)-1816(순조16). 자 우신(虞臣), 호 초원 (椒園), 수관거사(水觀居士). 정후일, 신대우, 이광려, 이영익 등 강화 학파의 주요 인물과 친인척이면서 그들의 학문을 계승했다. 아들 이면 백(李勉伯)이 쓴 선고비합장지(先考妣合葬誌) 에 의하면 저자 역시 가문의 전통대로 서법(書法)과 문장에 뛰어났다. 2)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奎15733 古3428-262) 소장 필사본 2책.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811.98-이충익-초). 초원담로(椒園談老), 고려대도서관 소장 필사본 1책.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55집. 3) 편찬 저서로는 문집 2권과 담로(談老), 두시략설(杜詩略說) 각 1권이 가장(家藏)되어 있었는데, 이 중 현재까지 문집 2권의 필사본과 담로 가 전해지고, 두시략설 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본집에 이 책에 대한 후서(序後)가 실려 있어 그 내용을 대략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문집은 서발(序跋)이나 관계 기록이 전혀 없어 유고의 수습과 편찬 경 위를 알 수 없다. 만년의 작품까지 고루 실려 있어 저자가 편집한 것이 라기보다는 사후에 편집한 듯한데, 아들 이면백이 쓴 합장지(合葬誌)에 이미 문집 2권이 가장(家藏)되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면백이 편집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본집은 현재 규장각(奎15733, 古3428-262)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811.98-이충익-초)에 필사본(筆寫本)이 소장되어

10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있다. 모두 불분권(不分卷) 2책으로 각 본마다 약간씩의 편차는 있으나 수록된 시문의 편수나 내용은 거의 같다.30) 4) 구성과 내용 초원유고(椒園遺藁) 椒園遺藁册一 詩 290여 首가 저작 연도순으로 수록. 椒園遺藁册二 文 書 答韓生書(저자의 文章論) 追報亡友鄭愉如書 記 玉壺山房記 新修望月寺記 記康泰雍事 序 閔氏知先錄序 李參奉集叙 林下錄序 說文新義序 宛丘集序 詩次故序 30) 총간해제5 528-532쪽, 김성애 해제 참고. 민족문화추진회.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03 談老後序 跋後 書自書維摩經後 題淸寒子小像詩墨帖後 書三朝要典後 書趙文忠詩墨帖後 題眞言集後 題佛經金銀字帖後 題自書坐忘論後 題杜詩略說後 映菴集小引 沈先生叙述 說 龜槎說 假說(上) 假說(下) 君子之過說 墓誌 陜川李君墓誌 閔可肅墓誌銘 戶曹佐郞權君墓誌銘 敬陵參奉閔公墓誌銘 姜天休墓誌銘 掌樂院正鄭君墓誌銘 戶曹參判申公墓誌銘 姊氏墓誌銘

10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從兄念齋君墓誌銘 仲宣墓誌銘 伯兄窠山子墓誌銘 外祖母柳夫人墓誌銘 先考妣合葬誌 本生先考學生府君墓誌 本生先妣孺人羅州林氏墓誌 伯達墓誌 墓表 海豐金君墓表 碑文 天峯師塔碑 蓮潭和尙碑記 家傳 從祖兄成均生員李君家傳 從祖兄信齋先生家傳 侍講院弼善李公司諫院獻納李公小傳 從父兄進士君家傳 祭文 祭宋用輿文 祭族父萬寧殿參奉府君文 祭從叔母申恭人文 祭從叔父艾叟先生文 祭從祖兄信齋先生文 祭戶曹參判申公文 哀辭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05 鄭 伯 修 哀 辭 申 仲 厚 哀 辭

10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2. 주영편(晝永編) 1) 저자 정동유(鄭東愈). 1744(영조20)-1808(순조8). 호 현동(玄同), 조선 후 기의 학자로 관직은 장악원(掌樂院) 정(正)에 이르렀다. 이광려(李匡 呂)의 문인으로 정제두의 양명학을 연구하였다. 실학자로서 특히 언어 학 분야에서 한글을 분석연구하여 그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그의 학문은 제자 유희(柳僖)에게 계승되었다. 일찍이 박지원(朴趾源)김 만중(金萬重)이 주장한 지동설(地動說)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5768-1). 주영편 (上下), 서울, 을유문고, 1971. 뒷부분에 축소 영인 복사. 3) 편찬 전해지지 않는다. 4) 구성과 내용 2책으로 구성되었다. 외국어를 우리 문자로 기록한 유일한 것이며, 당시 서양과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1801년 제주도에 표류한 외국인의 언어문자를 한자로 써서 다시 우리 글로 음사(音 寫) 표기하여 통역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를 기록하고 있다. 그 외 저서로 현동실유고(玄同室遺稿) 가 있다.31) 정동유는 주영편 첫머리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1) 홍이섭, 정동유의 주영편 에 보인 이국어(異國語)에 취(就)하여 ( 역사학 보 4, 1953)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07 나는 긴 여름날의 답답함을 잊고 지낼 방법이 없음을 고통스럽게 여겨, 장기 바둑 대신에 붓으로 무엇을 써보기로 하였다. 막상 붓에 먹을 찍어 종이 앞에 앉으니, 조정의 일은 구태여 쓰고 싶지 않고, 남 의 인물평을 좋으니 나쁘니 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하여 상스럽 고 속된 야비한 이야기를 쓰는 것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억지로 평 일에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위의 세 가지에 관계없는 것을 생각해 내노라니 원래 아는 것이 없어서 계속할 수가 없다. 비로소 글을 쓰는 것으로 답답함을 잊으려고 하는 것은 졸렬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겠다. 그런 까닭에 온 여름내 기록한 것이 모두 이와 같은 쓸데없고 자질구 레한 재미없는 이야기뿐이다. 또 붓 가는대로 맡겨서 이것저것 뒤섞어 적었기 때문에 아무런 차례도 없다. 진정 들고 볼 만한 가치가 없으므 로 먼지 앉은 상자 안에 던져버린다. 뒤에 병풍의 표장(表裝)에 쓰거나 벽을 바르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을축년(乙丑年) 동지날에 쓰다. 32) 주영편 상하 2권은 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낀 거나 생각 난 것을 그대로 쓴 만필체 기록이다. 그러나 저자는 박학하면서 학문 의 깊이가 있는 학자였다. 특히 전장제도와 국사에 관심을 많이 가지 고 있었다. 그래서 주영편 을 통해 한글, 지리, 역사에 대한 자신의 뛰어난 식견을 밝혔다. 훈민정음 연구로 말하면, 그중에서도 더 깊이 제2권 처음부터 12쪽 까지의 논리 정연한 주장이 곧 근고정음학(近古正音學)의 연원을 개 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 는 곧 이를 조술(祖述)한 것이다. 이 밖에도 풍속역상(曆象)외교전부(田賦)제도번쇄한 습 32) 정동유, 남만성 번역, 晝永編 (서울, 을유문화사, 1971년).

10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속한만(閑漫)한 고사에 이르기까지 반복 토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저술 연대는 순조 을축(乙丑)병인(丙寅) 양년간(1805-1806)이니, 1권 의 소서(小序)에 여름 내내 기록한 것이 이것뿐이다(終夏所錄止此). 라고 하고, 끝으로 을축남지일서(乙丑南至日書) 라고 함과 동시에 제2 권의 병인록(丙寅錄) 이라 한 것만 가지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원본은 제1권 84쪽, 제2권 84쪽이며, 정씨종가에서 있는 것 이외에 도 여러 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우(士友)간의 추상(抽賞)이 자못 쓸쓸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33) 주영편(晝永編) 晝永編一 晝永編二 33) 재인용, 위의 책, 같은 곳. 정인보, 담원국학산고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09 13. 석천유고(石泉遺稿) 1) 저자 신작(申綽). 1760(영조36)-1828(순조28). 자는 재중(在中), 호는 석 천(石泉). 정제두의 외증손. 부친 완구(宛丘) 신대우의 가르침과 외증 조 하곡의 양명학 연원을 이어받은 소론계 인물이다. 젊어서는 양명 학에 기울었으나, 한대(漢代)의 경학을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고, 정조 의 숭문(崇文) 정책과 당시 청(淸)의 건륭(乾隆) 가경(嘉慶) 연간의 훈 고학파의 영향을 받아 시차고(詩次故), 역차고(易次故), 서차고 (書次故) 등이 있고, 필법에도 정통했다. 2) 소장처 서울대 규장각(古3436-28). 필사본 3권 3책.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79집. 3) 편찬 석천유고 후집(後集) 권8에 실려 있는 일승(日乘) 에 의하면 1828 년 10월에 아들 명연(命淵)이 저자가 손수 편찬한 유고를 3권으로 등사 하였고, 12월에는 유사(遺事)를 지었으며, 1829년 9월에는 저자가 친구 들에게 준 편지를 기록하여 1권으로 만들었고, 1830년 3월에는 집안에 있는 왕복서신을 기록하여 2권으로 만들었다. 고 하여, 저자의 사후에 아들 명연이 중심이 되어 집안에 소장되어 있는 초고를 바탕으로 저자의 편지 등을 정리하여 문집을 편찬했음을 알 수 있다. 권말에 정인보의 석천유고기(石泉遺稿記) 에 의하면, 따로 전하여 오던 저자의 유고를 베끼고 보충하여 정인보가 1937년에 편집한 내용 이 나타나 있다. 기(記)소제문만장(挽章)행장과 서(序)소

11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서(書)시(詩) 등을 수록한 잡저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인 문집 체재 와는 달리 시서 등이 편차 없이 잡저에 들어 있다. 4) 구성 및 내용 석천유고(石泉遺稿) 卷一 記 四郡行記 疏 四郡山水疏 祭文 祭朴仲耀文 祭景潭朴君文 萬柳堤祭文 祭李淑人文 爲人祭吳學士文 祭叔母尹氏文 祭姨母林孺人文 祭外舅僉知中樞權公文 祭曺尙書文 外舅朴忠獻公致祭文 祭尙書徐公文 挽章 大行大王大妃殿挽章 行狀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11 長姊朴淑人(朴性圭妻)行狀 先府君(申大羽)事狀 外祖母柳夫人(鄭厚一妻)行狀 外舅僉知中樞權公(樂仁)行狀 夫人慶州金氏(李思良妻)行狀 墓誌 鄭妹(鄭東迥妻)墓誌 貞夫人李氏(申絢妻)墓誌 原碑 鄭君(敬容)墓碑 戶曹參判宛丘先府君(申大羽)墓碑 金龍宮(獻祚)墓誌 仲母順興安氏(申大翼妻)墓誌 靑山縣監金公(宇槩)墓誌銘并序 羅州牧使李府君(㬅著)墓誌銘 李府君(思良)墓誌銘 故成均生員朴君(岐老)墓碣銘 乳兒(申又庚)壙銘 卷二 雜著 與人書 老子旨略序 霞谷遺聞 先妣(申大羽妻)遺事 辛酉喪考(讀贈文 姊氏奔哭

11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葬相待 出彊遭喪奔哭 弔賓重來 廟中不廢哭踊與凶服 祔已主復於寢 祔祝 祔後筵几饋食朔望奠 卒哭行先代忌祭及祭時服着 生辰祭 練衰裳及追服無變 齊衰旣葬往哭大功喪 大功不易齊衰 練後朝夕哭 外喪未殯不廢已喪饋奠 祥日祥服 祖爲孫昏主 禫日不變墨 禫而入廟入廟前不徹哭奠 國祥後變笠不變帶 墨衰心喪服 追服禫 生辰 聞緦喪往哭 祥前後受弔 心禫 除心喪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13 除 服 有 先 後 古 今 禮 ) 送 謝 恩 正 使 李 太 史 赴 燕 三 詩 經 異 文 序 逸 詩 序 題 雋 語 後 兼 示 二 子 辭 副 修 撰 疏 金 公 ( 令 熙 ) 墓 文 亡 室 朴 氏 ( 申 綽 妻 ) 墓 誥 題 金 剛 帖 後 卷 三 雜 著 西 州 集 序 資 憲 大 夫 慶 尙 道 觀 察 使 尹 公 ( 光 顔 ) 墓 誌 銘 自 敍 傳 椒 園 公 ( 李 忠 翊 ) 墓 表 柳 木 川 夫 人 李 氏 ( 柳 漢 奎 妻 ) 墓 誌 銘 古 尙 書 題 辭 尙 書 古 注 序 二 十 五 篇 序 百 篇 考 序 上 伯 氏 己 酉 上 伯 氏 庚 戌 三 上 伯 氏 癸 丑 上 伯 氏 甲 子 上 伯 氏 己 巳 上 伯 氏 甲 戌 三

1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上 伯 氏 乙 亥 上 伯 氏 丙 子 上 伯 氏 戊 寅 上 伯 氏 己 卯 四 上 伯 氏 甲 申 與 季 氏 絢 辛 未 與 季 氏 絢 癸 酉 二 與 季 氏 絢 庚 辰 上 李 姨 兄 忠 翊 甲 戌 上 李 姨 兄 乙 亥 與 三 從 弟 參 判 緯 己 卯 與 人 答 人 答 丁 承 旨 己 卯 四 與 柳 進 士 僖 辛 巳 與 柳 進 士 丙 戌 社 村 雜 詠 ( 社 寸 水 明 樓 在 潤 亭 錦 障 山 上 椒 渡 ) 次 韻 丁 令 公 雪 中 見 寄 附 江 村 賞 雪 懷 申 學 士 兄 弟 走 筆 寄 呈 - 丁 若 鏞 寢 跡 和 南 城 留 府 韻 附 送 申 侍 郎 絢 入 京 - 沈 象 奎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15 霽 健陵遷奉挽章二首 端門四首 和丁令公五首 附旣歸數日追述鄙懷奉呈申學士兄弟-丁若鏞 白雲 附徂年惜衰暮也尤悔積衷遷改無日惄然自悼冀友相憐-丁若鏞 題麟角寺碑後 胎敎新記序 烈女沈夫人(宋冕載妻)墓碑 先府君致祭文 祭金侍郎文代 祭判敦寧府事屐翁李公晩秀文 石泉遺稿記-鄭寅普

11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4. 시차고(詩次故) 1) 저자 신작. 2)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古朝45-나41). 22권 7책.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장본(A4-13). 3) 편찬 현재 전해지는 시차고 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에 조선총독부가 석천의 수초본(手草本)을 저본(底本)으로 선판 인쇄한 것이다. 본래 정 인보 선생이 소장하던 것인데, 당시 총독부 수사관(修史官)이 우원(宇 垣) 총독의 명령을 받고 빌려와 인쇄했다. 당시 총독부 수사관이던 홍 혜(洪惠)가 경인시차고서(景印詩次故序) 에서 영인의 전말을 밝혔다. 시차고 란 석천일승 의 편찬자(석천의 장남 명연)에 의하면 훈고 를 편차하다[編次訓詁] 라는 뜻이다. 석천이 시차고 의 초고를 편찬하기 시작한 것은 27세 되던 1786 (정조10)년 무렵이다. 1787(정조11)년 2월부터는 정서(淨書)에 들어가, 같은 해 7월에 31권 12책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1798(정조22)년 화재 로 원고가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나 석천은 좌절하지 않고 다시 조금 씩 고훈(故訓)을 심리하여 1809(순조9)년에 일시(逸詩) 와 시경이문 (詩經異文) 을 새로 편찬하였다. 1811(순조11)년 4월부터 7월에 이르 기까지에는 시경고훈급이의(詩經故訓及異議) 5책을 편찬하였다. 1814(순조14)년 8월에는 이충익이 시차고서(詩次故序) 를 써 주었 다. 1815년 12월에는 막내 동생 신현(申絢)도 시차고후서(詩次故後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17 序) 를 지었다. 이충익과 신현의 서발문(序跋文)은 현재 전하는 석판 인쇄본의 권두와 권말에 각각 붙어 있다. 시차고 의 완성에는 실로 30여 년이 소요된 셈이다. 4) 구성과 내용 본편 시경고훈급이의(詩經故訓及異議) 5책과 시경이문(詩經異文) 1책, 외잡(外雜) (일시(逸詩), 시흥체전술서(詩興替傳述敍), 시차고인용 서목(詩次故引用書目)) 1책 등 모두 22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엄 밀한 의미에서 시차고 라 하면 본편만을 가리킨다.34) 시차고(詩次故) 詩次故(1) 風雅頌序說 國風周南 召南 邶風 鄘風 衛風 王風 鄭風 齊風 魏風 唐風 秦風 34) 이상 심경호,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4), 323-338쪽 참고. 시차고, 尊 經閣 최영성 해제( 한국경학자료집성, 詩經類, 6책~7책) 참고.

11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陳風 檜風 曹風 豳風 風雅頌序說 小雅鹿鳴之什 白華之什 彤弓之什 祈父之什 小旻之什 北山之什 桑扈之什 詩次故(2) 小雅桑扈之什 都人士之什 風雅頌序說 大雅文王之什 生民之什 蕩之什 風雅頌序說 周頌淸廟之什 臣工之什 閔予小子之什 魯頌 商頌 詩經異文35)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19 國風 周南 召南 邶風 鄘風 衛風 王風 鄭風 齊風 魏風 唐風 秦風 陳風 檜風 曹風 豳風 小雅鹿鳴之什 白華之什 鹿鳴之什 小雅白華之什 35) 시경 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자구(字句)의 차이나 변화가 생긴 구절들을 모 아 자세하게 고증했다. 그리고 고금(古今) 자체(字體)의 동이(同異), 다른 글자로부터의 가차(假借), 예서(隷書)와 전서(篆書) 등 글자체의 변천, 음운 의 변화, 글자 형태의 변화, 의미의 변화, 방음(方音) 등에 관하여 자세한 고증을 하였다. 이처럼 석천은 시경 의 원래 의미와 원래 모습에 접근하 기 위해 많은 고증을 했다. 영인저본(影印底本):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장본 (藏本) A4-13.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최영성 해제 참고.

12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彤弓之什 祈父之什 小旻之什 北山之什 桑扈之什 都人士之什 大雅文王之什 生民之什 蕩之什 淸廟之什 臣工之什 周頌閔予小子之什 魯頌 商頌 詩次故外雜36) 逸詩序 逸詩 詩興替傳述敍 36) 300편 이외의 고시(古詩)를 역대 경전사사(經傳子史)에서 떨어져 나간 장편 (章篇)까지 채록한 일시, 주대(周代)로부터 제(齊) 노(魯) 한(韓) 모(毛) 사가시(四家詩)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시경 과 시설(詩説) 고훈(古訓)의 전 승 관계와 변천과정을 통론(通論)한 시흥체전술서(詩興替傳述敍), 그리고 시차고인용서목(詩次故引用書目) (총 228종)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이 가운데 일시 는 현재 전하고 있는 시경 이외에 여러 전적에 보이는 일시(逸詩) 사칠단(四七段)을 모은 것으로 50세 때(1809)완성했다. 편명을 알 수 있는 것은 편명을 밝히고 편명을 알 수 없는 것은 출전만 밝혔다. 그밖에도 일시(逸詩)와 유사한 것이라든지 속담과 같은 시들은 정식으로 수 록하지는 않았지만, 버리기도 아까워 책 끝에 덧붙여 놓았다. 존경각, 최영 성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21 詩 次 故 引 用 書 目 詩 次 故 後 敍 自 敍 傳 石 泉 申 君 墓 銘

12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5. 역차고(易次故) 1) 저자 신작.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古1322-7). 3) 편찬 석천의 역차고 는 8권 3책의 사본 두 가지가 전해진다. 하나는 일 본 이마니시류[今西龍] 구장본(舊藏本)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 규장 각장본이다. 후자는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에서 필사한 것이다. 이마니 시류 구장본은 석천의 친필본이라고 전해진다. 역차고 와 관련하여, 이마니시류 구장초본(舊藏抄本) 석천유집(石 泉遺集) 6책을 교주하여 조선학보(朝鮮學報) 제29~34집에 연재 발 표한 이나마 세이치[稻葉誠一]는 석천이 역차고 를 편술하였다는 사 실 자체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러나 심경호는 역차고 는 당(唐) 이전 의 고주(古注)를 모아 편찬한 체재 면에서 시차고 와 일치함으로 석 천의 저술로 보고 있다. 4) 구성과 내용 유독 건괘(乾卦) 에만 단전(彖傳) 에 대한 설명이 없다. 기타 다른 괘에 대한 설명은 주역 원본의 체계와 같다. 역차고 는 주자 주역 본의(周易本義) 권두에 있는 선천도(先天圖) 후천도(後天圖) 등의 도 (圖)를 전혀 싣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사전(繫辭傳) 의 대연지수(大 衍之數) 의 주(注)에서도 선천도 후천도와의 관련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23 다. 한대(漢代) 역(易)을 높이치고 도서상수학(圖書象數學)을 배격한다 는 뜻이 분명하다. 신작은 또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 이 서괘 전(序卦傳) 의 자구를 64괘 각각 첫머리에 나누어 붙였던 예를 따르지 않고, 구본(舊本)에 근거하여 따로 분리하여 하나의 권卷으로 하였다. 그리고 서괘전 은 역(易)의 축적[縕]이 아니다. 라고 하였던 동진(東 晉)의 한강백(韓康伯) 주장을 배격하고 서괘전 의 가치를 재확인하였 다. 이 점에서는 주자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신작은 서괘전 에 관한 종래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서괘전 이 64괘의 상호관계를 설명한 방 식을 주씨(周氏)의 육문설(六門說)에 의거하고자 하였다, 공영달(孔穎 達)의 주역정의(周易正義) 는 주씨의 육문설을 인용하고 나서 다시 그 것을 비판한 한강백의 설을 부기(附記)하여, 육문설이 옳지 않으므로 취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예에서 보면 신작의 역차고 는 한역(漢易)의 상수파(象數派)와 의리파(義理派)의 역설을 나름대로 선별해서 인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37) 역차고(易次故) 卷之一 乾 坤 屯 蒙 需 訟 師 37) 이상 존경각, 역차고, 심경호 해제 참고.

12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比 小畜 履 卷之二 泰 否 同人 大有 謙 豫 隨 蠱 臨 觀 噬嗑 賁 剝 復 无妄 大畜 頤 大過 坎 離 卷之三 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25 恒 遯 大壯 晉 明夷 家人 睽 蹇 解 損 益 卷之四 夬 姤 萃 升 困 井 革 鼎 震 艮 漸 歸妹 卷之五 豐

12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旅 巽 兌 渙 節 中 孚 小 過 旣 濟 未 濟 卷 之 六 繫 辭 上 傳 卷 之 七 繫 辭 下 傳 卷 之 八 說 卦 傳 序 卦 傳 雜 卦 傳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27 16. 서차고(書次故) 1) 저자 신작. 2) 소장처 고상서(古尙書)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상서고주(尙書古注)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상서이십오편(尙書二十五篇)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상서백편고(尙書百篇攷) :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3) 편찬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음. 4) 구성과 내용 고상서 는 상서 58편 중 위서(僞書)가 아닌 것으로 판명된 28편 을 고문상서(古文尙書) 의 예서체(隷書體)로 복원한 것(해제: 김문 식). 상서고주 는 1825년 금문상서(今文尙書) 28편의 고훈(古訓)에 대 한 한(漢)위(魏)의 경학자들의 학설을 집대성해 놓은 저술. 상서이십오편(尙書二十五篇) 은 1825년 신작이 일서(逸書) 25편 (현존하는 상서 58편 중 늘어난 25편으로 위고문(僞古文) 25편을 말함)의 원문과 그 주석을 모은 것. 상서백편고 는 1825년 상서 100편의 서서(書序) 에 관한 고증 을 한 것으로 상서이십오편 과 합하여 1책으로 되어있다. 공영달 주 소본(注疏本) 상서정의(尙書正義) 에 나오는 서서 를 저본으로 하

12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여 사기, 한서 등에 나오는 서서 와 기타 경전에서 발견되는 구 절들을 덧붙여 정리하였다.38) 書次故 古尙書上 虞夏書 堯典 舜典 臯陶謨 益稷 禹貢 甘誓 商書 湯誓 盤庚上 盤庚中 盤庚下 高宗肜日 西伯戡黎 微子 周書 泰誓上 牧誓 洪範 38)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한국경학자료시스템, 서경 부분에 있는 김문식 해 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29 金縢 大誥 康誥 酒誥 梓材 召誥 洛誥 多士 無逸 君奭 多方 立政 顧命 康王之誥 費誓 呂刑 文侯之命 秦誓 古尙書考據字 尙書古注 卷之一 堯典 舜典 卷之二 臯陶謨 益稷

13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之三 禹貢 甘誓 卷之四 湯誓 盤庚上 盤庚中 盤庚下 高宗肜日 西伯戡黎 微子 卷之五 泰誓 牧誓 洪範 卷之六 金縢 大誥 康誥 酒誥 梓材 卷之七 召誥 洛誥 多士 無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31 君奭 多方 卷之八 立政 顧命 康王之誥 費誓 呂刑 文侯之命 秦誓 尙書二十五篇 虞書 舜典 大禹謨 五子之歌 㣧征 仲虺之誥 湯誥 伊訓 太甲上 太甲中 太甲下 咸有一德 說命上 說命中 說命下

13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周書 泰誓上 泰誓中 泰誓下 武成 旅獒 微子之命 蔡仲之命 周官 君陳 畢命 君牙 冏命 尙書百篇攷 虞夏書20篇 堯典(1) 舜典(2) 汩作(3~12) 稾飫(13) 大禹謨(禹謨14 臯陶謨 15 益稷16) 禹貢(17) 甘誓(18) 五子之歌(19) 㣧征(20) 商書40篇 帝梏(21) 釐沃(22) 湯征(23) 汝鳩(24) 汝方(25) 夏社(26) 疑至 (27) 臣扈(28) 湯誓(29) 典寶(30) 仲虺之誥(31) 湯誥(32) 咸有 一德(33) 明居(34) 伊訓(35) 肆命(36) 徂后(37) 太甲上(40) 沃 丁(41) 咸乂(45) 伊陟(46) 原命(47) 仲丁(48) 河亶甲(49) 祖乙 (50) 盤庚(53) 說命(56) 高宗肜日(57) 高宗之訓(58) 西伯戡黎 (59) 微子(60) 周書40篇 泰誓(63) 牧誓(64) 武成(65) 洪範(66) 分器(67) 旅獒(68) 旅巢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33 命(69) 金縢(70) 大誥(71) 微子之命(72) 歸禾(73) 嘉禾(74) 康 王之誥(75) 酒誥(76) 梓材(77) 召誥(78) 洛誥(79) 多士(80) 無 逸(81) 君奭(82) 成王政(83) 將蒲姑(84) 多士(85) 周官(86) 立 政(87) 賄肅愼之命(88) 亳姑(89) 君 陳(90) 顧命(91) 康王之誥 (92) 畢命(93) 君牙(94) 冏命(95) 蔡仲之命(96) 費誓(97) 呂刑 (98) 文侯之命(99) 秦誓(100)

13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7. 대연유고(岱淵遺藁) 1) 저자 이면백(李勉伯). 1767(영조43)-1830(순조30). 자는 백분(伯奮), 호 대연(岱淵). 이충익의 아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나 아가지 않고 평생을 강화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에만 힘을 기울였다. 저서에 함서(?署) (당시의 사회상 묘사)와 해동돈사(海東惇史) 가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 대연유고 는 그의 시문집이다.39)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古3428-420). 필사본. 2권 2책. 국사편찬위원회(D3B-96).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290집. 3) 편찬 저자의 문집은 간행되지 않고 사본만 남아 있다. 서문과 발문이 없 어서 편찬 경위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아들 시원(是遠)이 지은 선고 비합장묘지(先考妣合葬墓誌) 에 유집(遺集) 4권이 집에 보관되어 있다 고 한다. 저자의 문집은 현재 1책의 국사편찬위원회본과 2권 2책의 규장각본이 남아 있다. 4) 구성과 내용 시는 부벽루(浮碧樓), 추일만음(秋日漫吟), 객향송인(客鄕送人) 과 같이 명승이나 산수의 정취,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는 서정적인 것, 39)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35 병중독서(病中讀書) 와 같이 학문을 권장한 것, 사고인이편(思古人二 篇) 과 같이 길재(吉再)와 이시만(李蓍晩)에 대해 읊은 것, 안경(眼鏡) 과 같이 서구문물의 신기함을 노래한 것 등 주제가 매우 다양하다. 잡문 중 비지설(碑誌說) 은 평소 행적은 적지 않고 과장된 내용으로 가득한 비지(碑誌)를 비판한 글이며, 천주교에 연루되어 처벌받게 된 주인을 천주교도가 아니라며 살린 노비 유씨의 충성을 찬양한 기류씨 비사(記柳氏婢事) 등 당시 사회상을 논한 글도 있다.40) 대연유고(岱淵遺藁) 卷之一 詩 卷之二 雜文 碑誌說 王導謝安論 記柳氏婢事 序 宛丘齋申先生六十一歲壽序 玄同鄭先生六十一歲壽序 壽玄同先生第二序 表兄江陵府使權公六十一歲壽序 送李禮在監鎭川縣序 道峯二客序 記 40) 총간해제6, 159-162쪽, 김기빈 해제 참고.

13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谷耘記 卯君辰翁室記 墓文 韓母康氏墓誌 行戶曹判書李公[勉兢]墓碣銘 先考(李忠翊)妣合葬誌 元基(李勉始)墓誌銘 翊衛司衛率鄭君(東時)墓誌銘 行狀 從祖父凡翁君(李天翊)行狀 傳 桐山處士家傳 祭文 祭沈丈人文 祭鄭伯康文 祭掌樂正玄同鄭先生文 祭任校理玄道文 祭實齋申公文 祭鄭叔當文 哀辭 姜觀甫哀辭幷序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37 18. 사기집(沙磯集) 1) 저자 이시원(李是遠). 1789(정조13)-1866(고종3). 자는 자직(子直), 호는 사기(沙磯). 시호는 충정(忠貞). 진사 이면백의 아들. 1866년 병인양요 가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아우 이지원(李止遠)과 함께 유서를 남 기고 음독 자결했다. 2) 소장처 손자 이건창이 지은 이시원행략(李是遠行略) 과 송상수가 지은 기 려수필(騎驢隨筆) 에 저자의 저술로 시문고(詩文稿) 10권, 고금서초 (古今書鈔) 100여권, 야사초(野史鈔) 약간 권이 가장되어 있다고 한 다. 현재 저자의 문집은 간본(刊本)은 없고 필사본으로 2종이 남아 있 다. 국사편찬위원회(D3B-186). 서울대학교 규장각(古3428-199). 3) 편찬 불분권 6책. 종손 이건방의 소장본을 1934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에서 전사(轉寫)한 것이다. 각 책마다 뒷면 속표지에 소화(昭和) 9년 (1934)에 이건방이 소장하고 있던 사본에서 등사했다는 도장이 찍혀 있다. 편차는 책1~2는 시, 책3은 상소[疏]편지[書], 책4는 서문[序] 설(說)기(記)발(跋), 책5는 묘지명(墓誌銘)행장(行狀), 책6은 제 문(祭文)진향문(進香文)잡저(雜著)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41) 41) 참고문헌, 이건창, 명미당집 권17. 송상수, 騎驢隨筆(기려수필), 한적목 록(漢籍目錄). 총간해제6, 235-239쪽, 김기근 해제 참고.

13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구성과 내용 서문과 발문은 없다. 책1~2는 시(詩), 책3~6은 문(文)이며, 책3은 주로 사직서. 시는 시체에 관계없이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기집(沙磯集) 冊一 詩 過西溪 松汀 외 110首 冊二 詩 樂橋草堂歌奇呈朴表兄 遊普門寺因奇緣路所見 외 112수. 冊三 上疏 乞縣疏 陳情疏 辭校理疏 辭應敎疏 辭刑曹參議疏 辭敦寧都正疏 辭工曹參判疏 辭開城留守疏 辭開城留守再疏 辭開城留守疏(庚戌8月) 辭開城留守疏(二)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39 辭超資 都摠管 辭刑曹判書疏 乙卯擬疏 辭咸鏡監司疏 辭咸鏡監司二疏 辭咸鏡監司三疏 往省先壠疏 貢茸退還後引咎疏 辭咸鏡監司疏 以殿最中下越俸引咎疏 徑尋疏 辭漢城判尹疏 辭吏曹判書疏 辭吏曹判書再疏 辭正憲資加親授疏 遺疏 書 興亡友尹文老 上鄭正丈書 陽川陳疏時上大陵叔父書略 再上大陵書略 答鄭台大始書略 族家豊時奇子姪書 上經山鄭相公賀回卺書 賀經山相公回榜書

14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上經山相公書 與季弟 與子姪 與建昌 冊四 序 申石泉先生61歲壽序 實齋申先生61歲壽序 奉送叔父晩圃公按節嶺南序 四從兄怡室君61壽序 皇華說送壺山朴尙書赴燕 送荷居李尙書朝正赴燕序 送梅園侍郞巡按湖南序 送梧墅朴尙書赴燕序 書盧左溟贈尹孺文序後送正使成尙書赴燕序 經山相公78耆社序 鄭景執壽序 大冢宰壺居尙書回巹序 桂察訪遺集序 史補略序 徐美幾61歲壽序 尹幼蘭61歲壽序 說記跋 苟菴說 瘞狗說 記金工厚根事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41 宗正卿題名錄記 錄金貞女事 書炭翁遺事後 孫松悅初度日書蒙求卷後 論辯議 六義論 桑林禱辯 憲宗大王祔廟時收議 冊五 墓誌銘 大司憲鄭公(基一)墓誌銘 從曾祖叔父鍜隱公(李勉訥)墓誌銘 從高祖兄學生公(李命愚)墓誌銘 大冢宰壺居李公(若愚)墓誌銘 崔公(明漸)墓誌銘 內兄鴻客朴公(初壽)墓誌銘 先考(李勉伯)妣合葬墓誌 墓碣銘 金烈婦(尹晉保妻)小碣 金守門將(鼎夏)墓碣銘 洪翰厚小碣 務安朴君(元朱)墓碣銘 贈吏曹參判鄭公(述仁)墓碣銘 金五衛將(應聲)墓碣銘 行狀 吏曹判書李公(勉昇)行狀

14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從高祖兄承政院左承旨李公(鐸遠)行狀 大提學冠陽李公(匡德)行狀 冊六 祭文 祭從曾祖兄文 祭再從祖姑趙氏婦文 從祖妣孺人安東權氏文 외 35편 進香文 仁陵遷奉進香文 箋祝 大王大妃殿誕日賀箋 大殿誕日賀箋 大殿冬至賀箋 大王大妃殿冬至賀箋 大殿正祖賀殿 大王大妃殿正朝賀箋 大殿正朝別箋 외 5편 雜著 傳燈寺對潮樓重修募綠文 淨水寺法堂重修勤善文 衍慶寺重修募綠文 興敎寺重修募綠文 淨水寺佛像改金善 募綠文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43 19. 백운문초(白雲文抄) 1) 저자 심대윤(沈大允). 1806(순조6)-1872(고종9). 고조부 심수현(沈壽賢)은 영조 때 영의정을, 증조부 심확은 이조판서를 지냈을 정도로 명문가 였다. 그러나 1755년 나주괘서사건과 을해옥사 등 정치적 사건을 거 치면서 집안은 몰락했다. 현재 남아있는 저작에서 자신의 신분과 교 유 및 사승관계를 밝히고 있지 않으므로 자세한 전기는 알 수 없다. 1980년대 말, 한국경학자료집성 발간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성 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은 서울대 규장각에서 심대윤의 이름이 적힌 논 어 및 대학훈의 필사본을 발견했다. 계속된 조사 결과 발굴된 경학 자료는 대학고정, 시경집전변정, 서경집전변정, 춘추사전속전, 복리전서 등 44권. 이와 함께 동사 (6권), 전사 (58권) 등의 역사서 와 백운시초 (3권), 한중수필 (2권) 등의 문집류가 발견되었다. 지금 까지 발견된 심대윤의 저작물은 모두 120여권이다. 2)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古3436-11). 심대윤전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 아학술원, 2005, 3월. 3) 편찬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14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내용 및 구성 백운문초(白雲文抄) 卷一 象祠記 秋蟲賦 祭柳君夏元文 辨學 擬戰國策 辨柳宗元斬曲几文 顔子不貳過論 改黃州行樓記 懶菊齋序 水小蟲 治木盤記 叙菊 與 元暉論文書 一問亭記 一問亭記(二) 擬國語 易蘇老泉辨奸論 四尙 堂文集序 詛瘧文 蒼蠅賦 伍子胥傳後題 漢列侯世家題後 題貨殖傳 後 鼂錯傳後題 反招隱 潤色元暉病喩 擬長門賦 擬王介甫推命對 病中無聊載改蘇老泉上田樞密書 對問 余愛王半山讀孟嘗君傳文簡而 折緊戱擬之而效 前篇頗長故復作一書 余讀錢謙益文集俱其侫言亂德 輒表記尤悖於道者而辨焉 辨東征二士錄 自警文 駁許魯齋士之論進 退行藏 擬曾南豊宜黃縣學記 擬王半山原過 孔阿睹傳 祭姪女文 卷二 擬諫楚獄書 讀佔畢齋集有感而作 延安黃堂重修記 延安飛鳳書院重 修記 占夢 占夢 釋筮 送鄭穉亨序 南谷鄭丈人61壽幷序 五無軒序 答東介子辨曲几文辨 答書 八子百選批評往鄭君穉亨書 泛湖亭記 秋日有懷偶成轉韻32以示23同志 霜蟬賦 祭李元暉文 答友人書 代 四相子孫鳴寃書 朋黨論 驗實論 善惡一本論 食戒 權說 風俗論 人 道 問學對 本過 上大德相公書 問禮對 先己後人對 東方對 伯夷傳 新解 卷三 封建論擬柳州 諫昌陵書 晉文公問守原論 進建文平燕策 讀明史論 人材不係時運 始終難易論 與李生論交道書 答李生論道書 柳君名 字說 答仲弟問祭書 答仲弟問容貌書 與朴文蔥書 論范雎遠交近攻 之非 南粼媼 看羊錄後序 諸公會飮詩序 祭鄭順安文 與柳君夏元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45 書 附夏元答書 擬商鞅自明書 爲寒泉子論說趙破從 陳軫說楚王勿 信張儀 請秦王勿聽陳軫兩虎之說 爲齊王畵致鼎計 鰲隱序 鷹峯序 醒醉翁說 安貧論 擬宋岳飛請寢和議表 送西神文 東邱子自解 責雨 師文 季子廟記 南征錄 祭曾祖母文 祭祖父文 祭大姑母文 祭二叔父文 答鄭光國序 弔島囚文 遊錦山記 其詩(仁周院別朴査丈 渡錦江 過弓院 魯城 礪山 南原關公廟 病餘 連月神氣未復客苦滿腔吟 以自敍 憶親六言 憶諸弟 夢中聞床頭甕 聲以爲詹雨驚起視之則已矣 遣悶 渡露梁津 自遣 露 梁李忠武祠 詠雪 除夜有懷 又 又 遊錦山 鹿頭山 宿蟾江 又 又) 白雲文抄拾遺 一 東邱自解 李忠武傳 取斯亭記 雨漢文批評後題 白雲文抄拾遺 二 齊物論篇論 白雲文抄拾遺 三 或問 福利全書

14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福利全書序 著天地人物鬼神之所自生也 明天人感應之理也 言性心情之體用也 明人道名利忠恕中庸也 明人道三綱五倫也 明人道勤勞事業也 明幽明始終之理也 明鬼神之情狀也 明釋經傳之訓也 記嘉言善行也 記禍福之致也 記鬼神之事也 欽書駮論 欽書駮論 附無寃錄辨正 辨自死 因傷致病不準自死者 辨傷痕眞假 陰害暴死外無痕損者 先後傷 亡屍 憁論 政法隨錄 政法隨錄後序 禮樂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47 刑 法 政 事 敎 選 官 制 田 制 兵 制 東 史 儀 禮 正 論 左 國 定 論 國 語 定 論 左 傳 定 論 周 禮 刪 正 孝 經 刪 正 孔 子 家 語 刪 定

14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0. 심대윤전집 1) 예기정해(禮記正解) 구성과 내용 먼저 예기 본문을 장구별로 한 행 20글자로 서술한 다음, 한 글 자 내려 행을 바꿔 주해를 달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본문구절 에 대한 경(經)의 진위를 먼저 밝히고 있다. 예기정해(禮記正解) 禮記正解一 禮記正解序 曲禮上 曲禮下 檀弓上 檀弓下 王制 月令 曾子問 文王世子 禮運 禮器 郊特牲 内則 禮記正解二 玉藻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49 明 堂 位 喪 服 小 記 大 傳 少 儀 學 記 樂 記 雜 記 上 雜 記 下 喪 大 記 祭 法 祭 義 祭 統 經 解 哀 公 問 仲 尼 燕 居 孔 子 閒 居 坊 記 表 記 緇 衣 奔 喪 問 喪 服 問 間 傳 三 年 問 深 衣 投 壺

15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儒行 冠義 昏義 鄕飮酒義 射義 燕義 聘義 喪服四制 2)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구성과 내용 주역상경(周易上經) 2책(건괘(乾卦)~리괘(離卦))과 주역하경(周易 下經) 3책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역상의점법자서(周易象義占法自序) 에는 역(易) (비유하는 것이다[譬也])과 춘추(春秋) (증험이다[證也])가 지어지게 된 동기, 역(易)의 도(道)인 네 가지 즉 언어[言] 행동[動] 제기 (制器) 복서(卜筮)에 대한 해설, 경전 공부에 대한 자신의 이력과정, 저 술경위와 혹자와의 문답 등이 서술되어 있다. 주역상의점법(周易象義占法) (1-4권) 周易上經 程朱易序說 上下篇義 一冊 乾 坤 屯 蒙 需 訟 師 比 小畜 履 泰 否 同人 大有 謙 豫 隨 蠱 臨 觀 噬嗑 賁 剝 復 无妄 大畜 頤 大過 坎 離 二冊 咸 恒 遯 大壯 晉 明夷 家人 睽 蹇 解 損 益 夬 姤 萃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51 升 困 井 革 鼎 震 艮 漸 歸妹 豊 旅 巽 兌 奐 節 中孚 小過 旣濟 未濟 周易上經 三冊 繫辭上傳 繫辭下傳 說卦傳 序卦傳 雜卦傳 程朱易序說 易本義圖 3) 시경집전변정(詩經集傳辨正) 구성과 내용 시경집전변정 은 불분권(不分卷) 6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저자 자 신이 밝힌 바에 의하면 기미년(己未年)(1859) 겨울에 저술하였다고 되 어 있다. 그는 이 책의 저술동기에 대해 시(詩) 300편은 모두 사리에 통달한 군자들이 지은 것으로 백성을 교화하고 후세에 본보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經)으로 만든 것인데, 주자가 패류멸경(悖 謬滅經)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경집전(詩經集傳) 의 오류를 분별하 여 바르게 고쳐 오경(五經)의 뜻을 다시 후세에 밝히려고 한다고 하 였다. 시경집전변정(詩經集傳辨正) 論語說詩 論語說詩 風雅頌序說

15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國風序說 國風 周南 關雎 葛覃 卷耳 樛木 螽斯 桃夭 兎罝 芣苢 漢廣 汝墳 麟之趾 召南 鵲巢 采蘩 草螽 采蘋 甘棠 行露 羔羊 殷其靁 摽有梅 小星 江有汜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53 野有死麕 何彼穠矣 騶虞 邶風 柏舟 綠衣 燕燕 日月 終風 擊鼓 凱風 雄雉 匏有苦葉 谷 風 式微 旄丘 簡兮 泉水 北門 北風 靜女 新臺 二子乘舟 鄘風 柏舟 牆有茨 君子偕老 桑中 鶉之奔奔 定之方中 蝃蝀 相鼠 干旄 載馳 衛風 淇奧 考槃 碩人 氓 竹竿 芄蘭 河 廣 伯兮 有狐 木瓜 王風 黍離 君子于役 君子陽陽 揚之水 中谷有蓷 兎爰 葛藟 采 葛 大車 丘中有麻 鄭風 緇衣 將仲子 叔于田 大叔于田 淸人 羔裘 遵大路 女曰雞 鳴 有女同車 山有扶 蘇蘀兮 狡童 褰裳 丰 東門之墠 風 雨 子衿 揚之水 出其東門 野有蔓草 溱洧 齊風 雞鳴 還 著 東方之日 東方未明 南山 甫田 盧令 敝笱 載驅 猗嗟 魏風 葛屨 汾沮汝 園有桃 陟岵 十畝之間 伐檀 碩鼠 唐風 蟋蟀 揚之水 椒聊 綢繆 杕杜 羔裘 無衣 有枤之杜 葛生 采苓 秦風 車鄰 駟驖 小戎 蒹葭 終南 黃鳥 晨風 無衣 渭陽 權輿 陳風 宛丘 東門之枌 衡門 東門之池 東門之楊 墓門 防有鵲巢 月出 株林 澤陂 檜風 羔裘 素冠 隰有萇楚 匪風 曹風 蜉蝣 候人 鳲鳩 下泉 豳風 七月 鴟鴞 東山 破斧 伐柯 九罭 狼跋 風雅頌序說 小雅序說 小雅 鹿鳴之什 鹿鳴 四牡 皇皇者華 常棣 伐木 天保 采薇 出

15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車 杕杜 南陔 白華之什 白華 華黍 魚麗 由庚 南有嘉魚 崇丘 南山有臺 由儀 蓼蕭 湛露 彤弓之什 彤弓 菁菁者莪 六月 采芑 車攻 吉日 鴻雁 庭燎 沔水 鶴鳴 祈父之什 祈父 白駒 黃鳥 我行其野 斯干 無羊 節南山 正 月 十月之交 雨無正 小旻之什 小旻 小宛 小弁 巧言 何人斯 巷伯 谷風 蓼莪 大東 四月 北山之什 北山 無將大車 小明 鼓鍾 楚茨 信南山 甫田 大 田 瞻彼洛矣 裳裳者華 桑扈之什 桑扈 鴛鴦 頍弁 車舝 靑蠅 賓之初筵 魚藻 采菽 角弓 菀柳 都人士之什 都人士 采綠 黍苗 隰桑 白華 緜蠻 瓠葉 漸漸 之石 苕之華 何草不黃 風雅頌序說 大雅序說 大雅 文王之什 文王 大明 緜 棫樸 旱麓 思齊 皇矣 靈臺 下武 文王有聲 生民之什 生民 行葦 旣醉 鳧鷖 假樂 公劉 泂酌 卷阿 民 勞 板 蕩之什 蕩 抑 桑柔 雲漢 崧高 烝民 韓奕 江漢 常武 瞻 卬 小旻 風雅頌序說 頌序說 周頌 淸廟之什 淸廟 維天之命 維淸 烈文 天作 昊天有成命 我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55 將 時邁 執競 思文 臣工之什 臣工 噫嘻 振鷺 豐年 有 瞽 潛 雝 載見 有客 武 閔予小子之什 閔予小子 訪落 敬 之 小毖 載芟 良耜 絲衣 酌 桓 賚 般 魯頌 駉 有駜 泮水 閟宮 商頌 那 烈祖 玄鳥 長發 殷武 4) 서경채전변정(書經蔡傳辨正) 구성과 내용 채침(蔡沈)의 서경집전(書經集傳) 을 바르게 고치려는 의도 아래 54세 때인 1859년에 저술된 것이다. 서술체제는 앞 부분에 서문 이 있다. 채집전의 편목(篇目)을 따라 경문(經文)을 쓰고 그 다음 자신의 해석을 바로 서술한 것도 있고, 채집전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때는 채집전의 해석에 문제 있는 부분을 집전왈(集傳曰) 로 서술한 다 음 자신의 해석을 썼다.42) 서경채전변정(書經蔡傳辨正) 虞夏商周書序說 堯典 舜典 大禹謨 臯陶謨 益稷 虞夏商周書序說 42)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장병한 해제 참고

15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禹貢 甘誓 五子之歌 胤征 虞夏商周書序說 湯誓 仲虺之誥 湯誥 伊訓 甲上 太甲中 太甲下 咸有一德 盤庚上 盤庚中 盤庚下 說命上 說命中 說命下 高宗肜日 西伯戡黎 微子 虞夏商周書序說 泰誓上 泰誓中 泰誓下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57 牧誓 武成 洛書之圖 洪範 旅獒 金縢 大誥 微子之命 康誥 酒誥 梓材 召誥 洛誥 洛誥 多士 無逸 君奭 蔡仲之命 多方 立政 周官 君陳 顧命 康王之誥 畢命 君牙

15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冏命 呂刑 文侯之命 費誓 秦誓 5) 논어(論語) 구성과 내용 이 저작은 표제에 그냥 논어 로 쓰여 있는 2책의 필사본으로, 서 울대학교 규장각 고도서(古圖書)에 수장되어 있다. 지어진 시기는 저 자 자신이 밝혀둔 바 1842년에 처음 착수해서 중단했다가 1851년에 완성했다. 고 한다. 저작 동기는 근래 일종의 사설(邪說)이 서학(西 學)이라 하여 틈을 타서 일어나 우리 백성이 현혹되고 있다. 나는 우 리 백성이 거기에 휩쓸릴 것이 두려운데 차마 앉아서 보기만 하고 구 하려 하지 않을 수 없어 이 책에 주를 내고자 한다. 고 했다. 그는 주 자 논어집주(論語集註) 의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보았던 것 같다. 저자는 논어 의 접근 방법으로 기존의 주석을 보지 말고 본문 자체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것은 집주(集註)를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논어 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차례 장 구(章句) 단위로 원고를 제시하고 각기 평석(評釋)을 붙이고 있는데 정주(程朱)의 설을 일부 취택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전개하며 집주(集註)에 나오는 여러 학자들의 주를 세유(世儒)의 학설 이라 해 서 공박한 곳이 자주 보인다.43) 43)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임형택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59 논어(論語) 卷之一 學而(총16장) 爲政(총24장) 八佾(총26장) 里仁(총26장) 公冶長(총27장) 雍也(총28장) 述而(총37장) 泰伯(총21장) 子罕(총30장) 鄕黨(총17장) 卷之二 先進(총24장) 顔淵(총24장) 子路(30장) 憲問(총47장) 衛靈公(총40장) 季氏(총14장) 陽貨(총26장) 微子(총11장) 子張(총25장) 堯曰(총3장)

16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6) 중용훈의(中庸訓義) 구성과 내용 중용 의 본문을 써 놓고 각 장마다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성(性)을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한다. 라고 하였고, 용(庸) 을 겸손[謙] 이라고 하여 기존의 주자주(朱子註)와 다른 해석을 시도했다. 주자의 중용집해 에 따라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7) 대학고정(大學考正) 구성과 내용 대학 의 본문을 조목조목 제시하고 주로 글자에 대한 의미어법 고증 등을 붙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중용훈의 와 함께 용학(庸 學) 이라 표제(表題)되어 있는 책 속에 포함되어 있다.44) 대학 과 같 은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44) 임형택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61 21. 소호당집(韶濩堂集) 1) 저자 김택영(金澤榮). 1850(철종1)-1927. 자 우림(于霖), 호 창강(滄江) 또는 소호당주인(韶護堂主人). 강위(姜瑋) 이건창 황현 등과 깊은 교 우관계를 맺었다. 1882년 김윤식(金允植)의 추천으로 임오군란에 종군 한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 장젠[張騫]과 알게 되었는데, 장젠은 그의 시문을 격찬했다고 한다. 1887년 정은조(鄭誾朝)가 청에 갈 때 그의 수행원이 되어 가는 도중에 모친상을 당해 돌아왔다. 시(詩)의 황현 문장의 이건창과 더불어 한문학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가로 불렸 으며, 역사서술에도 힘을 기울였다. 1894년 김홍집의 추천으로 의정부주사 겸 편사국주사(編史局主事), 1895년 중추원서기관 겸 내각기록국 사적과장(史籍課長)을 지냈다. 이 때 사례소(史禮所)에서 장지연 등의 젊은 문사들과 교유하며 대한예 전(大韓禮典) 을 펴냈다. 1899년 동국역대사략(東國歷代史略) 과 대 한역대사략 을 간행했고, 이 경험을 살려 1902년 동사집략(東史輯 略) 을 간행했다. 그러나 이들 역사서는 근대적 역사방법론을 도입하 는 데 급급하여 일본역사학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을 인용하 는 등 역사인식의 문제점이 보인다. 1905년 학부 편집위원을 겸하게 되자, 동사집략 을 보완하여 관찬사서(官撰史書)를 집대성한 12권의 순한문체 역사집략(歷史輯略) 을 편찬했다. 이 역시 니혼쇼키[日本 書記] 와 하야시[林泰輔]의 조선사 의 내용을 수용하는 등 기존 역사 서들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국권이 사실상 상실되자 모든 관직에서 물러났다. 1908년 중국으로 망명, 양쯔강 하류 퉁저우[通州]에 장젠의 협조로 정착하여 출판사 일을 보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안중근전 을 펴내

16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민족의식의 고취를 꾀했으며,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항의하여 자결한 친구인 황현의 행장과 시문을 모아 황현본전(黃玹本傳), 매천집(梅 泉集), 속매천집(續梅泉集) 등을 펴냈다. 그의 거처에는 장지연을 비롯하여 중국에 망명한 지사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중 국 망명 후 한문학에 대한 정리 평가 작업을 진행했는데, 고문은 명 의 귀유광(歸有光)과 박지원의 문장을 좋아했다. 더불어 많은 시를 창 작했는데, 그의 시는 호방하고 화려했다. 중국 망명 뒤에는 나라를 잃 은 슬픔을 노래한 작품을 많이 썼다. 한편 역사서술에도 힘을 기울여 1916년 교정삼국사기(校正三國史記), 1918년 조선시대의 역사를 6 권으로 기술한 한사경(韓史?) 를 펴냈으며, 1922년에는 28권 9책의 순한문체 통사인 한국역대소사(韓國歷代小史) 를 간행했다. 1927년 그가 죽은 뒤 동지들과 제자들이 창강선생실기 을 발간했고, 정인보 가 서문을 썼다. 시문집으로 창강고(滄江考) 와 소호당전집(韶護堂 全集) 이 있다.45) 2)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위창古3648-文10-7).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347집. 3) 편찬 일반적으로 문집은 저자가 죽은 뒤에 편찬 간행하는 것이지만, 소 호당집 은 저자가 생전에 자신의 시문을 스스로 정리하여 여러 번 간 행한 것이 특징이다. 또 저자는 자신의 글을 고치고 다듬는 것을 좋 아하여 문집을 간행할 때마다 시문을 추가하거나 산삭을 거듭했다. 45) 엠파스 백과사전, 이종범 글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63 그래서 문집의 편차가 매우 복잡하다. 간행된 저자의 문집을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11년에 간행된 창강집(滄江集), 1916년의 소호당집(韶濩堂集), 1920년의 정간소호당집(精刊韶濩堂集), 1921년의 정간소호당집보(精刊韶濩堂 集補), 1922년의 소호당삼집(韶濩堂三集), 합간소호당집(合刊韶濩 堂集), 1924년경의 소호당집속(韶濩堂集續), 중편소호당집정(重編 韶濩堂集精), 1925년경의 차수정잡수(借樹亭雜收), 1927년경의 소 호당속집(韶濩堂續集) 등이다. 총간 본은 1922년 연활자(鉛活字)로 인행된 합간소호당집 에, 1922 년에 연활자로 인행된 합간소호당집보유(合刊韶濩堂集補遺), 1924년 경에 연활자로 인행된 소호당집속(韶濩堂集續), 1925년경에 연활자로 인행된 차수정잡수, 1927년경에 연활자로 인행된 소호당속집 을 합 부(合附)한 것으로, 차수정잡수 는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D810.819 김832ㅈ3)이며, 나머지는 모두 국립중앙도서관장본이다.46) 4) 구성과 내용 원집(原集) 21권 8책, 보유(補遺) 2권 1책, 속(續) 5권 1책, 속집 불 분권(不分卷) 1책 합 1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은 목록 2권, 시집 6권, 문집 15권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는 1922년에 쓴 저자의 자서(自序), 1905년에 쓴 유월(兪樾)의 원서(原 序)가 있다. 시집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고, 그해 간지(干支) 에 고(稿) 를 붙여 표기하기도 했다. 46) 총간해제6, 501-512쪽, 김기빈 해제 참고.

16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소호당집(韶濩堂集) 合刊韶濩堂集序 原序(兪樾) 目錄 詩集 卷一 壬申稿(3수) 癸酉稿(2수) 甲戌稿(4수) 乙亥稿(9수) 丙子稿(30수) 丁丑稿(8수) 卷二 壬寅稿(47수) 己卯稿(7수) 庚辰稿(7수) 辛巳稿(10수) 壬午稿(15수) 癸未稿(16수) 卷三 甲申稿(11수) 乙酉稿(8수) 丙戌稿(7수) 丁亥稿(7수) 己丑稿(5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65 庚 寅 稿 (9수) 辛 卯 稿 (5수) 壬 辰 稿 (3수) 癸 巳 稿 (6수) 甲 午 稿 (7수) 乙 未 稿 (8수) 丙 申 稿 (3수) 戊 戌 稿 (1수) 庚 子 稿 (4수) 卷 四 辛 丑 稿 (3수) 壬 寅 稿 (4수) 癸 卯 稿 (3수) 甲 辰 稿 (4수) 乙 巳 稿 (15수) 丙 午 稿 (3수) 丁 未 稿 (8수) 戊 申 稿 (10수) 己 酉 稿 (21수) 卷 五 庚 戌 稿 (18수) 辛 亥 稿 (11수) 壬 子 稿 (9수) 癸 丑 稿 (8수) 甲 寅 稿 (12수) 乙 卯 稿 (14수)

16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卷 六 丙 辰 稿 (14수) 丁 巳 稿 (10수) 戊 午 稿 (19수) 己 未 稿 (17수) 庚 申 稿 (13수) 辛 酉 稿 (17수) 壬 戌 稿 (3수) 補 遺 (3수) 賦 嗚 呼 賦 ( 庚 戌 ) 文 集 卷 一 書 上 趙 判 書 書 上 申 香 農 大 將 軍 書 同 開 城 府 人 士 呈 御 史 李 公 再 呈 李 御 史 書 上 金 公 書 與 張 季 直 書 答 兪 曲 園 先 生 書 答 張 生 書 與 河 叔 亨 論 三 國 史 書 答 人 論 古 文 書 與 曹 仲 謹 書 擬 陳 情 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67 啓 爲通州紳士乞嬰堂捐助啓 序 西遊詩卷序 白星菴先生70壽序 具錦坡先生61歲壽序 崧陽耆舊傳序 送王注書原初入大屯山讀書序 大學士韓公6歲序 卷二 序 王監役61歲壽序 申香農判書回甲壽序 儒學經緯序 送朴謙谷書 重刊養蠶鑑序 南霞山學士61歲壽序 萬國地志序 送閔學士觀察平北序 疆域考補論序 送權書記之日本序 送洪林堂承學歸堤川序 詩前社卷序 楹聯卷序 新紫霞詩集序 張退翁60壽序

16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惜餘春軒詩草序 張嗇翁60壽序 嗇翁60後壽序 馮君文稿序 梅泉集同刊錄序 卷三 序 開城家稿序 閨門軌範序 韓史綮序 重編燕巖集序 張季子詩錄序 楊穀孫文卷序 因言序 守菴稿序 後隨文翁63歲壽序 周晉琦詩稿序 明美堂集序 南通費氏譜序 金晦汝文稿序 茂亭詩稿序 愚塢金翁68歲壽序 贈成一汝純永序 吳母江夫人70壽序 重編韓代崧陽耆舊傳序 高麗季世忠臣逸事傳序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69 卷四 序 劉母易太夫人80壽序 邢白山詩藁序 翰墨林詩卷序 馬伯閑50壽序 送王敬菴遊楓岳序 常州高氏雙壽序 徐母李太宜人80壽序 陸王二家 詩鈔序 姜梅山詩稿序 記 嘯軒記 見山堂記 攬瀑亭記 竹葉芭蕉硯記 觀德亭重修記 念菴記 方山書寮記 悠然亭記 鸛歸軒記 大井廟重修記 別號記 天風海濤 亭記 卷五 記 一松亭記 黃州月波樓重修記 萬壽聖節弘文館纂輯所賜宴記 靑 愚別號記 三千六百釣齋記 巢山堂記 僦屋記 是眞滄江室竈記 丙午5月13日遊南通翰墨林書局蓮池記 是眞滄江室記 省菴記 華陰草堂記 白雲亭記 借樹亭記 泗陽書室記 永類齋記 可園記 半嶼園記 龜岡精舍記 漱潤堂記 遠思齋記 林湖亭記 卷六 記 丹山精舍記 安花齋重建記 重修通明宮附設經社記 平遠堂記 永 慕齋記 楓岳72峯定名記 彩霞洞記 跋 韓經香承旨烏石彈琴集跋 花開家稿跋 張嗇翁詩稿跋 思孫圖跋 自題西法寫像 書拙稿同刊記後 澹廬詩卷題辭 自題韓國歷代小 史後 覺菴禪師小照跋 書深齋文稿後 韓史綮跋 鄭翁行樂圖跋 韋史詩草跋 書涵眞菴叢書後 題許卯園奎詩文鈔後 題尹西堂鍾 均詩卷 銘 荷葉硯銘 紫雲潭銘 扶安采石銘 李亘武采石銘 竹葉芭蕉硯銘 晩堂銘 樂園銘 潁耘堂銘 後荷葉硯銘 藥罐銘 峯石琴銘 丁介 石琴銘 淸音亭銘 本生曾祖監察公孝子碑銘 劉翁雙菴亭銘 凝 堂銘 英雄硯銘 贊 孝子橋贊 金參判春熙小像贊 金承旨敎獻像贊 華裝寫眞自讚 李

17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翁子梅漢裝贊 孫玉樹延階小照贊 王敬菴小像贊 馬伯閑遂良小 像贊 箴 金謹鏞字允行箴 代周公獻萬億年敬天之休箴 劉漢淳字弘遠箴 頌 可圃頌 卷七 解 格物解 吾與點解 洪範稽疑解 大學本末厚薄節解 論 孟子勸行經界論 漢高祖善將將論 錢幣論 唐堯論 儒道無用於競 爭之世論 佛論 駁歸熙甫貞女論論 說 贈閔毅伯采石說 範婦說 天王狩河陽說 疑說 氣本善說 一菴說 王原初三子字說 辨 孔子刪詩辨 鄭衛淫風辨 箕氏史辨 孔子專制辨 孟子勸王道辨 卷八 雜言 총10편 私議 金堯泉先生宜配饗聖廟私議 代疏 請復濟州三姓祠疏 請孔子改稱至聖先師疏 志 紅蔘志 卷九 開城雜事傳 歌者傳 名媛傳 傳 浮雲居士(陳光世)傳 崔山人(駿烈)傳 劉將軍(克良)傳 崔舜星傳 金弘潤傳 秋琴子(姜瑋)傳 蔓川子(金光錫)傳 朴燕菴先生(趾源) 傳 鄭芝潤傳 黃玹傳 如皐縣知縣周君(際霖)傳 安重根傳 卷十 傳 紫霞申公(緯)傳 崔字淳傳 金松菴(沔)傳 安孝濟傳 洪範植傳 甘 山子(李黃中)傳 采巖翁(于東彪)家傳 李鉉軾小傳 祭文 爲季弟澔榮祭宅神禳火災文 祭金仁初文 爲朴堯山祭兔溪水神 求弟屍文 祭繼室金氏文 祭李寧齋學士文 擬祭李妹尹氏婦文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71 遙祭林有瑞文 擬祭安海州文 遙祭梅泉文 哀詞 任處士鎭夏哀詞 誄 徐母金夫人誄 卷十一 行狀 左承旨河濱李公(東旭)行狀 崇祿大夫判敦寧府事徐公(衡淳)行 狀 通州李孺人(宋龍淵妻)行狀 小隱文君(根)行狀 金母李夫人 (金顯景妻)行狀 季弟性天(金澔榮)行狀 錢處士(鶴鳴)行狀 錢 星垣(銘盤)行狀 金堯泉先生(憲基)行略 星州李君(錫坤)行狀 事略 族祖熙川公(金行一)事略 亡兒光濂事略 家述 十二代祖花園處士府君(金求智)墓碑銘 七代祖府君(金 )墓表 六代祖府君(金麗兌)墓碣名 五代祖府君(金陽一)墓誌 高祖府 君(金宗玉)墓誌 本生曾祖孝子贈司憲府監察公(金象觀)墓表 曾祖惺齋府君(金象奎)墓誌 本生祖悟月齋府君(金錫權)墓誌 祖母韓氏(金正權妻)墓誌 本生伯父府君(金益壽)墓誌 先考分 監役衛府君(金益福)墓表 先妣(金益福妻)墓誌 卷十二 墓碣 亡妻王氏壙銘 伯兄(金潤榮)墓誌銘 日本陸軍省士官學校留學 生朴裕宏墓碣銘 蘭樵玄士(李正斗)墓碣銘 臨江李公(東膺)神 道碑銘 具爾園(陽書)墓誌銘 敬陵令朴公(應漢)墓碣銘 高母申 孺人(高光旭妻)墓碣銘 南原梁公(在渡)墓碣銘 靑皐全公(象 謙)墓表 繼室金氏墓誌 林有瑞(圭永)墓誌銘 黃處士(時黙)墓 碣銘 卷十三 墓碣 王母金淑夫人(王庭麟妻)墓誌銘 周(曾錦)妻黃安人墓誌銘 朴 處士(聖益)墓碣銘 權處士(德錘)墓碣銘 黃(瑗)妻安孺人墓誌 銘 曺南冥先生(植)妻南平曺氏墓碣銘 承文院博士兼春秋館記

17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事官張公(熙載)墓碣銘 琴軒翁(張欄)墓碣銘 張君(景燁)墓碣 銘 故韓宗正院卿全州李公(冕宙)墓碣銘 朴議官(勝徽)墓碣銘 都病隱先生(敬孝)墓碣銘 權處士(亨圭)墓碣銘 權君(錫年)墓 誌銘 弘文館校理河陽許公(元栻)墓表 昌寧成翁(載奎)墓碣銘 文母郭孺人(文成鳳妻)墓誌銘 卷十四 墓碣 慕軒翁(林道淳)墓碣銘 朴處士(烘陽)墓碣銘 兩妻合葬碑銘 崔 孝子(炳秀)墓碣銘 李處士(錫彭)墓碣銘 李敬菴處士(漢文)墓 碣銘 尹參奉(競烈)墓碣銘 王通政(庭麟)墓碣銘 校書監王公 (亹)墓碣銘 學生開城王君(憲周)墓碣銘 李處士(星臣)墓碣銘 崔處士(東赫)墓碣銘 高麗金處士(養浩)墓碣銘 金通政(溶湜) 墓碣銘 金進士(英國)墓碣銘 卷十五 誌碣 亡兒光續墓誌銘 文處士(敬鎬)墓碣銘 自誌 河(珉甲)妻宜人慶 州李氏墓誌銘 慶州金君(時夏)墓碣銘 志巖金處士(泰玟)墓誌 銘 送躍門(龍淵)墓表 梁眞山處士(在淳)墓碣銘 高五衛將(致 晃)墓碣銘 通政大夫高君(定厚)墓碣銘 繕工監監役趙君(仁奎) 墓碣銘 天山趙君(東奎)墓碣銘 叔弟成章(金漢榮)墓碣銘 孫通 政(宗承)墓碣銘 朴愼菴(東輔)墓誌銘 補遺 黃雲卿五十壽序 補遺 小識 卷一 甲戌稿(2수) 丙子稿(6수) 丁丑稿(3수) 戊寅稿(6수) 己卯稿(2수) 庚辰稿(3수) 辛巳稿(5수) 壬午稿(1수) 癸未稿(1수) 甲申稿(2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73 乙 酉 稿 (2수) 丙 戌 稿 (1수) 乙 丑 稿 (4수) 庚 寅 稿 (4수) 壬 辰 稿 (2수) 癸 巳 稿 (1수) 戊 戌 稿 (1수) 辛 丑 稿 (1수) 癸 卯 稿 (1수) 乙 巳 稿 (1수) 丙 午 稿 (2수) 丁 未 稿 (4수) 戊 申 稿 (2수) 己 酉 稿 (3수) 辛 亥 稿 (1수) 壬 子 稿 (1수) 癸 丑 稿 (1수) 甲 寅 稿 (3수) 乙 卯 稿 (3수) 戊 午 稿 (1수) 卷 二 序 東 史 輯 略 序 有 是 堂 詩 稿 序 黃 雲 卿 50 壽 序 金 禮 菴 70 壽 序 記 院 谷 新 業 記 晦 潭 室 記 懷 漢 堂 記 跋 印 譜 跋 梅 泉 續 集 跋 傳 都 明 珠 傳 錢 肅 家 傳 事 略 張 志 淵 事 略 牘 與 張 孝 若 牘 與 退 翁 牘 答 李 上 舍 道 勉 牘

17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答徐貫恂牘 答王敬菴尺牘 答王敬菴牘 答曺深齋牘 與屠歸甫牘 答深齋牘 答文章之牘 答敬菴牘 附詩文正悞及修改 九月二十日渡臨津 平壤 聞義兵將安重根國讐事 僦屋記 續 卷一 壬戌稿(18수) 癸亥稿(26수) 補遺 天生港 慰黃仲懷俶禾二棘人 爲品孫納采日寄陳修定 卷二 序 高氏雙壽序 汪晴軒七十壽序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75 樸 實 說 小 序 朴 寧 叔 回 甲 壽 序 許 翁 聘 三 七 十 壽 序 新 高 麗 史 序 附 說 送 李 眞 菴 奉 聖 像 歸 國 序 王 仲 屛 所 藏 前 淸 名 流 手 札 卷 序 二 禮 辨 疑 序 釐 正 韓 國 歷 代 小 史 小 序 牘 與 梁 任 公 啓 超 牘 附 任 公 答 牘 與 人 牘 贊 李 蘭 谷 進 士 贊 狀 晩 翠 李 君 ( 錫 坤 ) 行 狀 前 王 原 初 ( 性 淳 ) 小 傳 卷 三 記 望 雲 齋 記 樂 英 齋 記 通 政 大 夫 金 公 墓 祭 田 祭 閣 設 置 紀 實 碑 永 思 齋 記 兩 樂 齋 記

17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淡遠樓記 卷四 跋 書楓岳七十二峯定名記後 銘 棣華堂銘 海石堂銘 贊 金處士贊 雜言 雜言十 傳 鄭地沅傳 盧孝子傳 家述 十二代祖花園處士府君(金求智)墓碑銘 曾祖解元府君(金象奎)墓表 誌碣 愼菴朴公(東輔)墓誌銘 本生從兄主事府君(金昌榮)墓表 可谷朴處士(仁澤)墓碣銘 竹隱朴君(永柄)墓碣銘 成均進士黙菴金公(錫運)墓碣銘 許處士(峴)墓誌銘 莊(先識)妻陳氏墓誌銘 林參奉(性圭)墓碣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77 金通政(鳳善)墓碣銘 故韓淑陵參奉尹君(行惠)墓碣銘 卷五 文 檀氏朝鮮紀 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 書崔烈士益翰事 甲子稿 4수 借樹亭雜收 目錄 卷一 甲子詩錄 18수 卷二 甲子文錄 檀氏朝鮮紀 智異山華嚴寺新羅佛敎祖緣起大師碣 書崔烈士益翰事 修改 五名山記 篤隱別號說 嘉善大夫侍從院卿李公(命喆)墓碣銘 韓通政大夫礦務局主事李公(鍾龜)墓碣銘 本生伯父守軒處士(金益壽)墓表 春坡別號說 安君(瑀天)墓碣銘 尹士永(義天)墓碣銘 許卯園像贊

17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羅氏雙壽詩卷序 故韓弘文館侍講王君(性淳)墓誌銘 追補二(先考墓表 自誌) 與孔允悅牘 卷三 乙丑詩錄 20수 卷四 乙丑文錄 金種驥小傳 金秘書丞(民鏞)墓碣銘 題李鳳朝伯夷列傳批評後 答河叔亨牘 花谷先墓石廣卓記 朴通政(健炯)碣 與呂蒙齋牘 書周晉琦詩集後 追補(鄭芝潤傳 先妣(金益福妻)墓誌) 花開金氏世葬碑 附 追補韶濩堂集續年條漏記 正悞剪貼件 續集 詩 乙丑稿(1수) 丙寅稿(7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79 詩追改諸本 文續編 序記贊傳 焦東山民行錄序 王氏哀思錄序 徐校長星實先生60壽序 林氏永思齋記 景龜齋記 聽雨樓記 亦苟安室記 行讀書樓記 雙好影贊 三號贊 朱人千先生家傳 詩文全集正悞

18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2. 명미당집(明美堂集) 1) 저자 이건창(李建昌). 1852(철종3)-1898(고종35). 자 봉조(鳳朝) 또는 봉 조(鳳藻), 호는 영재(寧齋) 또는 명미당(明美堂). 병인양요 때 순절한 이시원의 손자. 2) 소장처 초간본 국립중앙도서관(위창 古3648-문62-13). 성균관대학교 존경각(D3B-348).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D1-A1468). 아세아문화사, 이건창전집 상하 2책으로 간행, 1978. 민족문화추진회, 총간 349집. 3) 편찬 저자의 시문은 동생 건승(建昇)이 저자 사후에 집에 보관된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집하여 교정한 다음, 김택영에게 교정을 부탁하여 정고본(定稿本)을 만들었다. 그 후 영남 및 호남의 선비 등이 저자의 유고를 본존하기 위해 출판비용을 갹출하고, 김택영에게 교정을 부탁 하여 1917년 12월에 김택영이 중국 남통(南通)의 한묵임서국(翰墨林 書局)에서 20권 8책의 연활자본으로 간행했다.47) 4) 구성 및 내용 20권 8책. 활자본. 동생 이건승이 유고를 정리하고, 중국에 망명해 47) 총간해제6, 522-527쪽, 이기근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81 있던 김택영 등이 1917년 남통주(南通州) 한묵임서국(翰墨林書局)에서 간행했다. 권두에 김택영의 서문, 권말에 이건승과 안종학(安鍾鶴), 중 국인 이엽(李燁)의 발문이 있다. 당의통략서(黨議通略序) 에는 당쟁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려는 학문 적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원론(原論) 은 붕당의 원인을 지적한 글 이다. 역설참의(易說僭疑) 는 전통적인 주자학 체계에 반발하여, 음 양오행설을 배척하고 태극설에 깊은 회의를 보인 글이다. 명미당시 문집서전(明美堂詩文集敍傳) 은 자신의 일생과 소감을 솔직 담백하게 적은 것이다. 명미당집(明美堂集) 序 金澤榮 卷一 賦 淸川江賦 曉賦 芭蕉賦 苦雨賦 卷二 閑居收草 北游詩草 俊游餘草 直指行卷 卷三 西征紀恩集 南樓吟草

18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又直指行卷 卷四 少休收草 海上吟藁 卷五 北行吟卷 南遷紀恩集 亂藁 卷六 碧城紀行 補遺 再補 卷七 疏 擬論時政疏 論錢幣房屋疏 請勦邪匪附陳勉疏 辭經筵侍講疏 請討復疏 卷八 書 擬客上平津侯書 復峿堂族丈象秀書 答朴斯文尙台書 與舍弟保卿書 答宋敬山將作伯玉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83 答友人論作文書 擬上宰相書 卷九 書 與洪汶園論荀彧書 重論荀彧書 答汶園論出處書 上鉢山成吏部大泳書 與友人論禫禪服變除書 序 送湖南伯石汀鄭公範朝序 送朴梧西行臺之燕序 黨議通略序 외 11편 卷十 序 送李聖會榮覲序 釋函溟歷代紀年序 南冥年譜序 외 6편 記 鎭川舒發翰祠堂記 見山堂記 외 14편 卷十一 記 寶城亭子川灌水記 望美軒記 외 7편 論

18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于忠肅論(上下) 論唐順宗事 原論 卷十二 跋 崧陽耆舊傳跋 紫霞詩鈔跋 石田集跋 農圃集跋 說 過說 鷹說 傳說 雷說 외 6편 書事 書金秉周事 書李氏事 書新孝子事 卷十三 雜著 謹書先忠貞公記金貞女事後 易說僭疑 讀孟子 외 6편 卷十四 雜著 伯夷列傳批評 敬題椒園府君舟行詩後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85 金于霖詩論贈林有瑞 祭文 祭李祖監役府君文 祭從叔父進士府君文 祭亡妻文 외 15편 卷十五 祭文 禱洞仙嶺神文 甑山縣祈雨祭文 告城隍神文 哀辭 鎭撫中軍魚公哀辭 朴侍郞哀辭 家傳 本生六代祖考洗馬府君(李眞及)家傳 謙山(李建冕)篋藁敍傳 傳 李春日傳 李峿堂(象秀)傳 百祥月傳 韓心遠子(在濂)傳 韓景晦(成履)小傳 趙文正公(光祖)傳 卷十六 傳 淸隱傳

18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李 守 則 傳 秋 水 子 ( 李 根 洙 ) 傳 明 美 堂 詩 文 集 敍 傳 銘 烈 女 石 氏 旌 門 銘 烈 婦 韓 氏 旌 門 銘 외 5편 卷 十 七 行 狀 先 府 君 ( 李 象 學 ) 行 狀 行 略 先 忠 貞 公 ( 李 是 遠 ) 行 略 先 母 淑 人 坡 平 尹 氏 ( 李 象 學 妻 ) 行 略 事 略 朴 吏 部 ( 齊 敎 ) 事 略 鄭 睡 菴 先 生 ( 允 容 ) 事 略 鄭 桐 溪 ( 蘊 ) 事 略 卷 十 八 事 略 六 臣 事 略 冠 陽 公 ( 李 匡 德 ) 事 略 墓 表 慶 州 金 氏 二 世 三 墓 表 家 誌 忠 貞 公 府 君 ( 李 是 遠 ) 墓 誌 鳩 州 墓 誌 從 祖 考 贈 參 判 公 ( 李 止 遠 ) 墓 誌 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87 卷十九 墓誌銘 亡妻徐淑人墓誌銘 許佐郞(灌)墓誌銘 외 10편 卷二十 墓碣銘 石田居士李公(最善)墓碣銘 李潤卿(寅馪)墓碣銘 외 12편 補遺 永慕亭記 姜古歡批評孫武子跋 跋 李建昇 金學權 安鍾鶴 李燁

18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3. 당의통략(黨議通略) (광문회발간(光文會發刊)) 현채잠(玄采箴) 완산(完山) 이건창(李建昌) 찬(撰) 自序 宣祖朝 附光海朝 乙亥黨論 癸未三竄 乙丑鞫獄 仁祖朝至 孝宗朝 顯宗朝 肅宗朝 庚申換局 壬戌三告變之獄 己酉擬書 辛酉擬書 尼懷之釁 己巳換局 甲戌更化 丙申處分 丁酉獨對 景宗朝 英宗朝 丁未換局 己酉處分 庚申處分 辛酉大訓 原論 跋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89 24. 독역수기(讀易隨記) 1) 저자 이건창. 2) 소장처 국사편찬위원장본(國史編纂委員會藏本) A2-1. 3) 편찬 독역수기 는 당의통략 과 함께 이건창의 대표 저서로서, 간행되 지 못한 채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건창은 역권서(易圈序) 에 서 이 책이 오랜 사색을 통해 완성한 것이고, 또 이 책이 중국 명유 (明儒) 래지덕(來知德)(1525-1604)의 주역집주(周易集注) 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래지덕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라, 래지덕의 도상(圖象) 가운데 억지로 해석한 부분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했다. 역권서 를 통해 볼 때, 이건창의 수많은 역권(易圈) 들은 내지덕의 주역집주 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4)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계사상전(繫辭上傳), 계사하전(繫辭下傳), 시종팔괘설 (始終八卦說), 역권서(易圈序), 역권설(易圈說), 역설참의(易說僣 疑) 등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사상전, 계사하전 은 계사전 가운데 난해하고 논란이 많은 구절을 뽑아 자세한 설명을 붙인 것이 다. 시종팔괘설 은 종래에는 시팔괘(始八卦)만 알고 종팔괘(終八卦)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괘변(卦變)을 통해 팔괘가 시작도 끝도 없다는 무시무종(無始無終)함을 많은 그림으로 설명했다. 역권도

19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설 은 괘도(卦圖)뿐 아니라 효도(爻圖)까지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따라 여러 권자(圈子)를 그리고 이에 대해 설명을 붙인 것이다. 역설참의 는 역설(易說) 가운데 가장 의심스러웠던 점 일곱 가지, 즉 의태극불응 칭일)疑太極不應稱一), 의태극불가도(疑太極不可圖), 의태극즉작역성 인(疑太極卽作易聖人), 의사상불당칭태소(疑四象不當稱太少), 의선천 역무료시(疑先天易無了時), 의하도낙서(疑河圖洛書), 의오행(疑五行) 등을 논한 글이다.48) 독역수기(讀易隨記) 繫辭上傳 繫辭上傳11章 繫辭下傳 繫辭下傳1章 繫辭下傳9章 始終八卦說 始終八卦說 六爻以本位變他卦之例 六十四卦正隅錯綜定例 易圈序 易圈序 易圈說 易圈說 易說僣疑 疑太極不應穪 48) 한국경학자료집성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역경 류, 33책, 최영 성 해제 참고.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91 疑太極不可圖 疑太極即作易聖人 疑四象不當穪太少 疑先天易無了時 疑河圖洛書 疑五行

19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5. 경재집(耕齋集) 1) 저자 이건승(李建昇). 1858(철종9)-1924. 자 보경(保卿), 호 경재(耕齋). 영재(寧齋) 이건창의 아우이다. 난곡(蘭谷) 이건방(李建芳)의 재종형이 다. 이충익이 그의 고조부다. 이건방과 함께 정인보의 스승으로서 양 명학적 사상을 그에게 전수했다. 1906년에는 강화도 사기리(沙磯里)에 계명의숙(啓明義塾)을 설립하 여 교육구국 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만주 회인 현(懷仁縣)으로 망명했다. 2)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古3648-62-928). 서울대학교 규장각(古3428-368). 3) 편찬 편찬 경위는 전해지지 않는다. 4) 구성과 내용 첫 머리에 제목으로 해경당수초(海耕堂收草) 라고 되어 있다. 특 별히 권(卷)을 구분하지 않았는데, 해경당수초 라는 머리 제목이 나 올 때마다 전혀 다른 종류의 문체가 나온다. 이러한 것이 세 번 나오 는데, 이를 근거로 세 개의 권처럼 구분하고자 한다. 시 앞에는 시를 쓴 경위를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시는 대부분 만주로 망명한 이후의 것들이다.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93 경재집(耕齋集) 海耕堂收草 西美偶存 26日到松京登滿月臺 原初 彩霞洞 扶山洞 示愼周賢 讀待訪錄有感 憶諸孫 道發行送別弟姪 午到浿城 和汶園 又寄春世 和汶園 白馬山城 龍灣江上憶壬辰事有感示文園 有 和汶園 28日生朝 12月1日 四 渡江雇淸人商車發行 夕宿九連城 興道收艸 和汶園北山隱居詩 追和汶園除夕詩 巴江晩釣遇雨戱吟

19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次春世韻寄之 題朴白菴殷植東明王實記史論 釣魚 重陽和汶園 寄春世 臘月十一日垂卿生日感懷 鄭衛伯千里寄詩意甚眷眷次其韻謝之 誚臟神 再疊前韻 復次東坡松風亭韻示春弟 憶梅和檀湖韻 題梁君基河所述輯安縣高勾 古蹟記 過峽村 耕 過太平沼 接梨吟稿甲寅 檀湖寄詩問新寓之趣次其韻答之 徃安東縣望見火車因憶檀湖 和王原初 接梨新寓 飯後午睡 遣憫 與守坡共吟 念綺堂 接梨新寓 和尹酉堂鍾均熏示季方 汶園終祥寄詩大哭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95 朴白菴方留滬之靜安寺路修東國近史以詩寄之 次隸老亭䪨奉寄密陽許景武進士 奉贈大訥 讀痛史 玉薥 安校理守坡輓 聞李舜五病歿于魯西亞以詩大哭 中秋日與綺堂持酒哭守坡墓 守坡小祥日丁巳十二月十六日 明美堂集旣刊畢以詩謝金滄江 安民村 重陽日遙憶檀湖 偶讀姜古懽集有感 十月望日滄江生日也適寄書兼呈三節 和黃錦庭範周 巳未正月守坡之柩將還故國送訣路次 二堂卿終祥以詩寄呈 次朴桂㒺老人中秋詩韻 神仙爐歌 送綺堂種稻奉天 留大堡口號 朴可賢生日邀飮 次大訥艾湖釣漁韻 奉和朴浯堂先陽 次朴眉堂韻 次眉堂咏蟬

19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鄭景施寅普示其所作墓文甚佳因作論文十絶寄贈 柬檀湖 重陽日寄檀湖老人用去年重陽韻 至月十五日大風寒 寄鄭稷山翰圭 送從子範夏挈眷還國 高宗太皇帝終祥日望哭恭述 土潮 懷景施 奉和尹小湖相衍惠寄二絶 哭荷亭 哭浯堂 哭閔檀湖 聖民堂弟小祥寄詩大哭 黃季方饋海衣 寒食日寄從子 大板 釣魚晩歸 景施游湖南歸示紀行詩又以其小照寄之 釣魚 圃菜十詠 飛行車 題朴東觀憲用詩稿 江冰絶句 潮溢歡 重陽雨 中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97 獨坐漫吟示春世 戚娣氏南孺人挽 癸亥12月11日垂卿弟回甲日述懷 次韻寄柳晦敫 海耕堂收草 謙山別號說 田夫閧說 芭蕉說 祭 嫂張夫人文 夢周公論 祭從叔父惕士先生文 祭外舅敦寧府都正鄭公文 連理枝木枕銘 祭舍弟垂卿文 祭伯氏寧齋先生文 傳燈寺重修記 瓊雷聯璧集序 金老僕墓誌銘 海耕堂收草 水菴集跋 崔延一墓碣銘 副本 先考妣改葬墓誌 外姑尹夫人墓誌銘 祭子婦文 借觀亭記

19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答黃梅泉書 與王司諫書 至原初琴銘 烏川鄭氏家乘序 强齋銘 送堂弟聖實出視寧遠郡稅務序 誄高主事原明 弟戚兄沈公瑞文 祭呂士薰南燮文 東華文範序 書明夷待訪錄後 寫眞自讚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199 26. 계명의숙취지서(啓明義塾趣旨書) 1) 저자 이건승.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국권을 박탈당하자, 동지들을 모 아 1907년 5월 24일 조부 이시원(李是遠)의 고향인 강화도 사기리(沙 磯里)에 신식학교인 계명의숙(啓明義塾)를 설립했다. 학교설립 취지는 동양의 학문과 서양의 학문을 조화하는 신학문교육을 주장했다. 2) 소장처 한국학보 6집(1977, 봄), 권두(卷頭)의 사진 영인본. 3) 편찬 알려지지 않음. 4) 구성 및 내용 다음은 한국학보 에 실려 있는 사진 영인을 옮긴 글이다. 啓明義塾趣旨書 禮에 曰, 學은 三代共之하니, 三代之損益은 不同하나, 學校則莫或改 也라. 自國都로至于鄕里無不遍하니, 黨有庠하고, 州有序하고, 鄕有校 하고, 里有塾하야, 四民이 皆徒學校成業하고, 百官이 皆徒學校登用하 야, 人無不學之人하어(?), 入孝出弟와 忠君愛國之心이 皆徒敎育中成就 하야, 以致熙皡之治러니, 後世에 學校廢而政敎가 隨而陵夷하야, 徒尙 浮文하고, 不務實業하야, 惟以文具로 爲習慣하여, 東亞政敎가 腐敗至 此하니, 嗚呼라, 三代聖王이, 豈非東亞之人哉아마는, 其人이 沒而其敎 가 廢하야, 神州之陸沈이, 至此하니, 豈不寒心哉아. 現今 西洋의 富强

20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은 專 在 敎 育 人 才 하니, 開 廣 知 識 하야ㅑ, 以 一 物 之 不 知 로, 爲 己 憂 하고, 以 一 事 之 不 修 로, 爲 己 責 하야, 學 不 離 物 하고, 心 不 離 事 하여, 事 物 이 爲 國 務 하고, 國 務 가 卽 身 分 이라. 學 問 事 物 이 非 二 致 故 로 智 巧 가 日 盛 하 고, 國 務 身 分 이 無 分 別 故 로, 富 强 이 日 進 하니, 此 其 法 이 暗 合 於 古 而 宜 於 今 也 라. 今 我 大 韓 에 國 辱 至 此 는, 非 疆 土 之 小 也 며, 非 民 智 之 下 也 라. 其 咎 가 在 乎 不 敎 育 而 已 라. 不 學 之 人 은 心 昏 智 闇 하야, 幷 無 實 心 實 業 하 니, 外 國 未 通 之 時 에는, 猶 可 自 守 어니와, 方 此 歐 亞 混 處 之 日 하야, 烏 兌 (아메리카) 紅 人 (인디안) 黑 種 (아프리카 흑인) 之 哉 아. 烏 乎 라, 國 無 獨 立 之 權 이면, 民 安 有 自 由 之 力 이리오. 言 念 及 此 에, 熱 血 이 沸 騰 커늘, 猶 尙 守 習 慣 하고, 甘 爲 昏 闇 하면, 是 猶 病 不 求 藥 하고, 死 不 求 生 이니, 噫, 其 老 矣 라. 三 代 之 法 은 遠 矣 라. 莫 微 하고, 興 復 已 失 之 國 하야, 扶 植 獨 立 之 權 은, 美 利 堅 (아메리카)과 普 魯 士 (프러시아)에, 已 驗 良 方 이, 惟 學 校 而 已 라. 何 幸 年 來 에 我 大 韓 이 稍 稍 有 一 線 陽 脈 하여, 公 私 校 塾 이 相 繼 而 起 하고, 惟 我 大 皇 帝 陛 下 詔 勅 이 屢 降 하셔, 敎 育 에 進 步 가 徒 此 庶 幾 나, 惟 玆 沁 州 가 僻 在 海 濱 하야, 風 俗 이 尙 樸 하고, 聞 見 이 未 廣 하야, 年 少 子 弟 가, 未 免 空 疎 於 新 學 터니, 幸 類 有 志 諸 人 이 議 設 新 塾 하여, 命 名 曰 啓 明 이라하니, 啓 明 者 는 開 明 之 義 也 라. 然 이나 有 名 에 必 有 實 이니, 塾 曰 啓 明 者 는 名 而 已 라. 所 謂 實 者 는, 實 心 實 業 이 是 也 니. 是 不 在 於 塾 하고, 亦 不 在 於 命 名 하고, 亶 在 於 吾 人 身 上 하니, 徒 人 於 煖 하고, 效 人 嚬 笑 는, 乃 非 實 心 이니, 旣 無 實 心 이며, 焉 有 實 事 며, 旣 無 實 事 면, 焉 望 實 效 리요. 惟 我 同 志 는 以 實 心 으로 求 實 事 하야, 各 以 一 心 으로, 思 窮 萬 物 之 理 하며, 各 以 一 肩 으로 思 擔 一 國 之 重 하라. 此 心 이 雖 微 하나, 合 衆 人 之 心 智 하면, 物 無 不 成 하고, 此 肩 이 雉 弱 하나, 合 衆 人 之 肩 力 이며, 國 無 不 强 하리니. 此 所 謂 團 體 也 라. 開 廣 智 識 하면, 義 務 自 成 함이 如 以 左 手 로 護 持 右 手 하 며, 如 以 右 手 로 護 持 左 手 하며, 白 刃 이 當 身 하면 左 右 手 가 俱 爲 杆 禦 하 여, 惟 爲 身 念 하고, 手 不 自 恤 하나니, 身 之 痛 이 非 手 之 痛 이지마는 身 不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01 存 이면, 手 不 能 徒 存 이니, 國 爲 身 이오, 民 爲 手 라. 以 手 護 身 은 手 之 職 也 언만은, 醉 夢 人 之 手 는 雖 有 身 患 이나, 不 知 所 以 護 持 니, 今 用 力 於 新 學 하여, 開 我 知 識 하면, 吾 人 兩 手 가 將 爲 醒 人 之 手 하야, 能 護 持 吾 身 也 리니. 惟 我 同 志 는 勉 哉 여다. 光 武 11 年 5 月 24 日 塾 長 李 建 昇

20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7. 난곡존고(蘭谷存稿) 1) 저자 이건방(李建芳). 1861(철종9)-1939. 호 난곡(蘭谷), 시문집. 13권 4 책. 필사본. 맏아들 종하(踪夏)가 편집, 필사. 총 13권 가운데 1권만 시록(詩錄), 나머지는 문록(文錄). 2) 소장처 청구문화사, 1971년 영인. 3) 편찬 서문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음. 4) 내용 및 구성 시는 친구들 간에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 답조심재긍섭서(答曺深齋兢燮書) 와 답조심재제이서(答曺深齋第二 書) 는 조긍섭과 문학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문장가로서의 면모 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자료인데, 답이현규서(答李玄圭書) 숭란관 시고서(崇蘭館詩稿序) 등에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쌍충록서(雙忠錄序) 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에서 순절한 어재 연(魚在淵)재순(在淳) 형제의 충절을 기록한 쌍충록 서문이다. 독 통감론(讀通鑑論) 은 통감 을 읽고 11개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 을 개진한 내용이 담겨 있다. 원론(原論) 은 상중하속(續) 4편으로 권6을 모두 채우고 있 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 다투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로서 당연 하지만, 약자는 항상 강자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강자의 강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03 한 까닭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내용이다. 난곡존고(蘭谷存稿) 卷一 詩錄 총 88수 卷二 文錄 書 答洪汶園少宰承憲書 答曺深齋競燮書 答曺深齋第二書 答李玄圭書 答李玄圭書 答梁 信黙書 答人問爲人後議書 答河九鎭書 卷三 文錄 序 送呂士薰北遊通州序 李石亭遺集序 精華錄序 雙忠錄序 邦禮草本序 陶隱李先生文集序

20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辨誣錄序白下先生文集序 四禮俗覽序 厖邨文集序 無苟齋詩文稿序 友竹詩集序 續刊江都誌序 崇蘭館詩稿序 梅泉集序 自省錄序 卷四 文錄 記 復性齋記 鼎山書堂記 丹山書齋記 慕蓮亭記 永慕亭記 卷五 文錄 論 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論 戰必克論 讀通鑑論 江允遇太子家使車行馳道中收而屬吏 袁紹召董卓 諸有忠廬於國者但勤攻吾闕 荀彧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05 魏延作亂 魏司馬昭援壽春殺諸葛誕 丁零翟斌起兵攻洛陽秦使慕容垂討之垂反秦與斌合 宋徐羨之傅亮謝晦廢其主義符爲營陽 王迎宐都王義隆於江陵 宋主廢彭城王義康徒安成郡 魏徒雜民於北邊以餌柔然 宋大擧侵魏 卷六 文錄 論 原論上 原論中 原論下 續原論 卷七 文錄 跋 公子編年朱子年譜安子年譜合刊跋 黨議通略跋 卷八 文錄 書後 序茂豊君手蹟後 書三笑圖試帖後 書鄭順安祭椒園府君文後

20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雜著 繼後或問 敎育協會趣旨書 卷九 文錄 祭文 祭從祖兄寧齋先生文 祭外姑徐夫人文 祭殤女文 祭亡室文 祭外舅玉筍先生文 祭從弟聖敏文 祭從祖兄耕齋先生文祭趙公呂重鼎文 哀辭 呂士薰哀辭 卷十 文錄 家傳 從六世祖北谷公家傳 傳 李林傳 金安傳 卷十一 文錄 碑 左議政晩菴柳公神道碑銘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07 德邨先生梁公墓碑銘 高麗銀靑光祿大夫禮部尙書柳公墓碑銘 桃平君墓碑銘 蓮潭禪師碑銘 金母李孺人孝烈碑 卷十二 文錄 墓誌 殤女壙誌 故室孺人墓誌銘 前韓國嘉善大夫吏曹參判汶園洪公墓誌銘 成均生員梅泉黃君墓誌銘 本生祖考監役府君墓誌 從弟聖毅墓誌銘 尹允吉墓誌銘 崔同敦墓誌銘 崔會元墓誌銘 李君允錫墓誌銘 尹參奉墓碣銘 姜渭尙墓碣銘 掌樂院正 贈內部協辨鄭公墓誌銘 義禁府都事成公墓碣銘 金議官墓碣銘 吳聽竹墓碣銘 吏曹參判錦陽君朴公墓碣銘

20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監役成公墓碣銘 鄭君墓碣銘 金滄江墓碣銘 成處士墓碣銘 姜愚山墓碣銘 尹參奉墓碣銘 河而七墓碣銘 安通政墓碣銘 文章之墓碣銘 洪衡老墓碣銘 卷十三 文錄 墓表 成主事墓表 左副承旨柳公墓表 學生成君墓表 學生成君曁配南孺人墓表 行狀 禮曹參判櫟菴姜公行狀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09 28. 담원국학산고(薝園國學散藁) 1) 저자 정인보(鄭寅普). 1893년 5월 6일-1950. 사학자한문학자시조시 인. 서울 출생. 아명은 경시(景施). 호 위당(爲堂), 담원(薝園). 한학 수학, 동양학 전공. 어려서부터 외삼촌 서병수(徐丙壽)를 통해 이건방 을 사사하여 양명학 등을 배웠다. 1913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박은 식신규식신채호문일평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하다, 부인 성씨(成氏)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노모의 비애 를 위로하고자 1919년 귀국했다. 귀국 후 국내에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펴다 여러 차례 일본 경찰 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서울로 이사한 뒤 연희전문협성학교(協 成學校)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 등에서 한학과 역사학을 강의했 다. 이처럼 후배들을 가르쳐 민족의 역량을 키우는 교수 생활에 힘쓰 는 한편, 동아일보 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 민족의 정기를 고무하는 논설을 펴며 민족계몽운동을 주도했다. 1931년에는 민족문화의 유산인 고전을 민족사회에 알리고자 다수의 고전을 소개하는 조선고전해제 를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1935년 조선 후기 실학 집대성자인 정약용 사후 100주년을 맞아 조선 후기의 실학 을 소개하기 위한 학문행사를 주도, 실학연구를 주도하였다. 실학이라 는 역사적 용어는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조선 양명 학에 관심을 가지고 일련의 양명학자들의 학문을 추적하였고, 1933년 66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 을 연재해 많은 호응 을 얻었다. 양명학이나 실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으로 볼 때, 단순한 한학자가 아니라 성리학과 더불어 유학의 또 다른 유파나 성리학 내에 자생적

21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으로 일어선 새로운 실학의 학풍을 밝혀, 조선 유학의 폭넓은 이해를 시도해 보고자 하는 진취적 학풍을 가진 학자로 이해된다. 1936년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한문학 국사학 국문학 등 국학 전반에 걸친 강의를 담당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 국학 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1943년 가솔을 이끌고 전라북도 익 산군 황화면 중기리 산중에 은거하였다. 광복이 되자 곧 서울로 상경, 일제의 포악한 민족말살정책으로 가 려졌던 국학을 일으켜 세우고 교육에 힘을 쏟아 민족사를 모르는 국 민에게 바른 국사를 알리고자 1946년 9월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 를 간행했다. 그의 역사의식은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학의 전통을 잇 는 것이기는 하나 독립투쟁의 방도로서 민족사 연구를 지향하던 신채 호의 민족사학과 달리, 엄밀한 사료적 추적에 의한 사실 인식과 그에 대한 민족사적 의미의 부각을 의도하는 신민족주의 사학의 입장에 서 는 것이었다. 1947년 국학의 최고학부를 표방하고 설립된 국학대학(國學大學) 학 장에 취임, 일제의 광폭한 식민정책으로 일시 단절된 듯하던 국학을 일으켜 세우고, 발전시키려는 새로운 각오로 다시금 육영사업에 투신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간곡한 청으로 신생 조국의 관기(官紀)와 사정(司正)의 중책을 지닌 감찰위원 장이 되었다. 그러나 1년 후 정부의 간섭으로 의지를 펼 수 없다고 판단, 미련 없이 자리를 사임했다. 이후 한때 학문과 교육을 떠났던 심정을 달래 고자 남산동에 은거하며 국학연구에만 몰두했다. 1950년 625가 일 어났던 그 해 7월 31일 서울에서 공산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정확히 언제 사망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974년 10월 15 일 동아일보 횡설수설 란에 정인보 사망 소식 을 전하고 있다. 그 전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11 문은 다음과 같다. 위당 정인보 선생의 별세가 이번에 밝혀졌다. 625전란 중 평북에 있는 희천( 熙 川 ) 땅에서 폭격을 맞아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얼을 심은 희대의 국학자였다는 점에는 누구도 이론을 제기치 못할 것이다. 그는 조년( 早 年 )에 가정 학문으로 한학의 깊은 조예를 터 득했고, 또 민족의 실의기( 失 意 期 )에는 민족의 나아갈 바와 선열들의 지 나간 자취를 들추어내는 데도 안간힘을 다했다. 그의 학문적인 유래는 강화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왕양명의 양지양능( 良 知 良 能 ) 이란 실천철학에 경도( 傾 倒 )한 것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 중국의 풍조가 그랬고 또 종래의 정주학( 程 朱 學 )에 대한 염 증이 있는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위당 역시 육왕학( 陸 王 學 )에 정력을 기 울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학문적인 소양을 배경삼아 붓을 한 번 휘두르면 명문장을 만들어냈고 또 한 번 붓을 들 면 화조풍월( 花 鳥 風 月 )을 읊은 시편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이 중에서도 이 충무공을 받들고 정다산을 연구한 데는 남달리 갖은 노력과 정성을 다했다. 왜정시인 1931년 이충무공의 종가 재산이 경매에 붙여지니까 그는 이래서야 되겠는가 하는 단장의 글월을 동아일보에 실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돼 3천만의 거족적인 호응을 얻게 되고 허물어져 가는 현충사의 중수를 보게 됐다. 또 1935년 동아일보가 개최한 다산 서거 1백주년을 기념하는 강연에서 그가 얼마만큼 그의 박학강기( 博 學 强 記 )와 그 열변을 털어놓았던가는 지금도 잊지 못할 화제로 남아 있 다. 요컨대 위당은 신구 사조의 과도기에 있어 교량의 역할을 다하는 데 그 사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21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소장처 문교사(文敎社), 단기4288(1955) 8월. 담원정인보전집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3)으로 다시 출판. 정량완, 담원문록(薝園文錄)-전3권 (서울, 태학사, 2006. 7)으로 다 시 출판. 3) 편찬 정인보의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 유서(遺書)들 가운데 양명학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본서 가운데 양명학연론 과 국학인물론 을 묶어, 홍이섭의 해제를 붙여 1972년에 양명학연론(외) 라는 제목으로 삼성문화문고판으로 간행. 4) 구성과 내용 감서(憨書) 는 대연(岱淵) 이면백(李勉伯)의 저서. 조선의 사회상 과 학술 및 예속(禮俗)에 관한 책. 주영편(晝永編) 은 현동 정동유가 쓴 만필체(漫筆體) 글. 이를 통해 조선의 글과 지리, 역사 및 문화 전 반을 알 수 있다. 고금석림(古今釋林) 은 나은(懶隱) 이의봉(李義鳳. 1733-1801)이 지은 국내외 및 고금의 어문(語文)에 관한 저서. 팔도 도(八道圖) 는 농포(農圃) 정상기(鄭尙驥. 1678-1752)가 그린 조선의 지도. 삼원관산고(三圓館散藁) 는 역(易), 예기(禮記) 등의 경전과 전 제(田制)의 연혁을 서술한 김홍임(金弘任. 1801-1849)의 저서. 문통 (文通) 은 서피(西陂) 유희(柳僖. 1773-1837)의 문집. 담헌서(湛軒書) 는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의 저서. 택리지(擇里志) 는 인심과 풍 속, 중요 도로와 국방요새 등을 통찰력 있게 서술한 청담(淸潭) 이중 환(李重煥. 1690-?)의 저서.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 는 여암(旅 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0)의 저서. 음우비(陰雨備) 는 국방에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13 관한 저서. 항해총서(沆瀣叢書) 는 홍길주(洪吉周. 1786-1841)의 저 서로 잡문기(雜文紀), 잡시기(雜詩紀), 총비기(叢秘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재집(疎齋集) 은 실사구시를 추구한 이이명(李頤 命. 1658-1722)의 저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는 실학파 이덕 무(李德懋. 1741-1793)가 왕명을 받아 찬수(纂修)한 책. 곽우록(藿憂 錄) 은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의 저서로서 경세치용에 관 한 책이다.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 은 정인보 자신의 저서로 양명학 전반에 대한 최초의 양명학 저서. 담원국학산고(薝園國學散藁) 제1편 조선고서해제(朝鮮古書解題) 1. 감서(憨書) 2. 주영편(晝永編) 3. 고금석림(古今釋林) 4. 팔도도(八道圖) 5. 삼원관산고(三圓館散藁) 6. 문통(文通) 7. 하곡전서(霞谷全書) 8.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9. 담헌서(湛軒書) 10. 초원유고(椒園遺藁) 11. 택리지(擇里志) 12. 훈민정음해(訓民正音韻解) 13. 음우비(陰雨備) 14. 원교집(圓嶠集)

2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5. 항해총서( 沆 瀣 叢 書 ) 16. 소재집( 疎 齋 集 ) 17. 무예도보통지( 武 藝 圖 譜 通 志 ) 18. 곽우록( 藿 憂 錄 ) 제2편 국학인물론 1. 정송강( 鄭 松 江 )과 국문학 2. 다산( 茶 山 )선생의 생애와 업적 1) 다산선생의 일생 2) 유일한 정법가( 政 法 家 ) 3) 다산선생의 뜻 깊은 부촉( 咐 囑 ) 3. 단재( 丹 齋 )와 사학( 史 學 ) 제3편 고사변정( 古 史 辨 正 ) 1. 정무론( 正 誣 論 ) 2. 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석략( 廣 開 土 境 平 安 好 太 王 陵 碑 文 釋 略 ) 3. 사릉전설변정( 蛇 陵 傳 說 辨 正 ) 4. 괘릉고( 掛 陵 考 ) 제4편 양명학연론( 陽 明 學 演 論 ) 1. 논술의 연기( 緣 起 ) 2. 양명학이란 무엇인가 3. 양명 본전( 本 傳 ) 4. 대학문( 大 學 問 ) 발본색원론( 拔 本 塞 源 論 ) 5. 양명 문도( 門 徒 ) 급( 及 ) 계기( 繼 起 )한 제현( 諸 賢 ) 6. 조선 양명학파 7. 후기( 後 記 ) 제5편 비문추념문외산고( 外 散 藁 ) 1. 세종대왕 어제( 御 製 ) 훈민정음 반포 오백주년 기념 비문 2. 이충무공순신 기념 비문

Ⅱ. 하곡과 강화학파 문헌 해제 215 3.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비문 4. 노량(露梁) 충렬사(忠烈祠) 비문 5. 병천(並川) 기의(紀義) 비문 6. 윤봉길열사 기념 비문 7. 순국선열 추념비 8. 우정(偶丁)선생 추도문 9. 창전형(蒼田兄) 추도문 10.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11. 마음의 절제 12. 소왕계래(紹往啓來)의 정진(精進) 13. 이충무공 기념사업회 취지서 정인보 저서 정인보, 박성수편, 정인보의 조선사연구, 서원, 2000, 7. 정인보, 양명학연론,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4, 3. 담원시조, 을유문고, 1974. 담원국학산고, 文敎社, 1955. 생애와 사상, 규장각, 1984, 11. 수필선집, 삼성출판사, 1982. 자모사 (정인보시조집), 태학사, 2001. 담원정인보전집, 연세대학교출판부, 1983.

Ⅲ. 연구 저서 요약 1. 당의통략 이덕일 이준영 해역, 서울, 자유문고, 1998. 이건창의 당의통략 을 일반 독자들이 알 수 있도록 모략과 음모 의 당쟁사 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한 책. 이 책은 조선의 지식이 비판 적으로 바라본 조선조의 당쟁사다. 이건창은 이 책을 지으면서 객관 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혹자는 이 책이 소론(少論)의 입장에서 쓰여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건창이 몰락한 소론 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당쟁은 일본의 사학자들처럼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 상도 아니며, 일부 국내 사학자들처럼 무조건적인 긍정의 대상도 아 니다.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 조선의 당쟁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목 차> 당의통략 과 이건창 당의통략 개요 자서 제1부 선조시대 - 광해시대를 붙이다 1. 붕당 출현을 예언한 이준경

21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동인( 東 人 )과 서인( 西 人 )이 싹트다 3. 윤두수 뇌물사건의 진상 4. 모든 것을 이이의 탓으로 돌리는 동인( 東 人 ) 5. 이이를 탄핵하다 귀양 가는 세 사람 6. 이이, 서인이 되다 7. 이이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선조 8. 정여립을 의심하다 웃음거리가 된 조헌( 趙 憲 ) 9. 정여립의 옥사 10. 격화되는 동서당쟁 11. 정여립의 난으로 도륙당하는 동인들 12.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다 13. 서인, 몰락하다 14. 왜란 중에 생긴 일 15. 남인과 북인의 당쟁 16. 대북( 大 北 ), 육북( 肉 北 )의 골북( 骨 北 )으로 갈리다 17. 소북( 小 北 )이 류당( 柳 黨 )과 남당( 南 黨 )으로 갈리다 18. 폐모론( 廢 母 論 )이 성사되었다 제2부 인조에서 효종까지 1. 인조반정 초년의 일들 2. 서인과 남인의 분쟁 3. 서인의 이합집산 4. 산림 사람들이 조정에 나오다 5. 산림과 외척의 원한 제3부 현종시대 1. 제1차 예송논쟁[ 己 亥 禮 訟 ] 2. 10년 동안 예송을 금지시키다

Ⅲ. 연구 저서 요약 219 3. 남인이 점점 등용되다 제4부 숙종시대 1. 송시열이 귀양 가다 2. 명성대비의 국정 간여 3. 숙종의 한탄 4. 송시열을 종묘에 고하려는 남인들 5. 송시열의 죄를 종묘에 고하다 6. 분열하기 시작하는 집권 남인 7. 청남( 淸 南 ) 탁남( 濁 南 )으로 나뉘다 8. 잔칫날 몰락하는 남인들 9. 사사( 賜 死 )되는 허적과 윤휴 10. 보사공신 책봉에 대한 반발 11. 소론( 少 論 )이 발생하다 12. 누구 말이 사실인가 13. 남인을 무고하는 옥사( 獄 事 )들 14. 송시열과 젊은 서인들의 분열 15. 김석주의 양면작전 16. 노론과 소론이 나누어지다 17. 기유의서( 己 酉 擬 書 ) 사건 18. 신유의서( 辛 酉 擬 書 ) 사건 19. 회니논쟁( 懷 尼 論 爭 ) 사건 20. 격렬해지는 회니논쟁 21. 기사환국( 己 巳 換 局 )으로 집권하는 남인 22. 인현왕후 민씨의 폐출과 윤증의 사직 상소 23. 갑술환국( 甲 戌 換 局 )으로 재집권하는 서인 24. 남인에 대한 온건론을 주장하는 남구만

22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5. 박세채가 탕평론을 주장하다 26. 남인에 대한 공세 27. 어머니와 함께 죽기를 청하는 세자 28. 세자를 둘러싼 논란 29. 소론 강경파에 대한 최석정의 충고 30. 송시열을 둘러싼 논란 31. 송시열의 대의( 大 義 )에 대한 논란 32. 노론이 일을 마음대로 했다 33. 병신처분( 丙 申 處 分 )으로 소론이 패배하다 34. 병신처분에 대한 소론의 반발 35. 정유독대( 丁 酉 獨 對 )와 세자의 대리청정 제5부 경종시대 1.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하는데 성공하는 노론 2. 세제 대리청정을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논란 3.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다 4. 경종을 죽이려한 삼급수의 변 5. 삼급수 고변사건 6. 소론이 급소( 急 少 )와 완소( 緩 少 )로 분열되었다 7. 세제를 사랑하는 경종 제6부 영조시대 1. 소론을 치죄하는 영조와 노론 2. 정미환국( 丁 未 換 局 )으로 정권 잡는 소론 3. 경종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 4. 소론의 분열과 이인좌의 반란 5. 소론과 함께 하는 소북( 小 北 )과 남인 6. 노론과 소론을 함께 기용한 기유처분( 己 酉 處 分 )

Ⅲ. 연구 저서 요약 221 7. 이광좌(李光佐) 민진원(閔鎭源)의 화해 실패 8. 노론과 소론의 두 영수를 사직시키다 9. 세제 대리청정을 합리화하는 경신처분(庚申處分) 10. 영종의 위시(僞時) 소동 11. 역안(逆案)을 불사르는 신유대훈(辛酉大訓) 12. 노론에게 기우는 영종 13. 전향 선언을 하는 신하들 14. 세제 대리청정을 충(忠)으로 규정지은 천의소감 15. 대탕평 원론(原論) 1. 붕당이 심해진 8가지 이유 2. 도학(道學)이 너무 지나친 것 3. 명분과 의리가 지나치게 엄한 것 4. 문사(文詞)가 지나치게 번잡한 까닭 5. 옥사와 형벌이 지나친 것 6. 대각(臺閣)이 너무 높은 것 7. 관직이 너무 맑은 것 8. 문벌(門閥)이 너무 성대한 것 9. 나라가 태평한 것이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 당의통략 인물 주석

22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한국양명학연구 김길환, 서울, 일지사, 1981. 4개 장으로 구성. 1장에서는 양명학의 핵심 개념과 한국양명학의 제반 여러 가지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2장에서는 양명학의 수용에 대한 몇 가지 문제를 밝히면서, 하곡을 정점으로 하곡 이전의 양명학과 하곡 이후의 양명학자 정인보, 박은식, 이능화 등을 언급하 고 있다. 3장은 하곡의 양명사상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4장에서 는 정인보, 박은식의 양명학 사상을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목 차> 제1장 양명학과 한국양명학의 실제 1. 서론 2. 양명학의 이념 1) 격물치지설 2) 치양지설(致良知說) 3) 심체설(心體說) 3. 양명학의 수용 4. 양명학의 배척 5. 양명학의 발전 6. 결어 제2장 양명학의 수용과 역사적 전개 1. 서론 2. 양명학의 수용 3. 양명학의 역사적 전개 1) 하곡 이전의 양명학 2) 하곡 이후의 양명학

Ⅲ. 연구 저서 요약 223 4. 결어 제3장 하곡의 양명학 1. 서론 2. 하곡의 생애와 양명학관 3. 하곡의 양명학 사상 1) 이론적 근거 2) 주자학에 대한 비판 3) 심즉리설 4) 양지설 5) 격물치지설 6) 지행합일설 4. 결어 제4장 한말 전후의 유학사상과 양명학 1. 서론 2. 주자학파와 위정척사론 1) 이항로의 이원적 주리론( 主 理 論 ) 2) 기정진의 대서양관( 對 西 洋 觀 ) 3) 김평묵의 척양( 斥 洋 )과 최익현의 척왜론( 斥 倭 論 ) 3. 개화기의 실학 사상 1) 실학사상의 형성 2) 실학사상의 계승 4. 개화기의 양명학사상 1) 유교구신으로서의 양명학 2) 정주학( 程 朱 學 ) 비판 3) 양명학의 본지( 本 旨 ) 5. 결어

22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조선시대의 양명학연구 윤남한, 서울, 집문당, 1982.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유학계에 양명학이 어떻게 전래되었는지, 그 리고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 송대 유학과 조선 유학과의 관계를 이처럼 자세하고 세밀하게 언급한 전문서적이 나온 적이 없다. 현재까지도 중국 송대 명대 유학과 조선 성리학의 관계를 이처럼 자세하게 다룬 저서가 없다. <목 차> Ⅰ. 서설 - 양명학의 성립 전래 및 수용의 문제 <Ⅰ> 양명학의 연구 시각과 조명 문화의 상관성 <Ⅱ> 양명학과 송명학과의 연관성 <Ⅲ> 조선 시대 정주학의 심학화 문제 <Ⅳ> 왕학(王學) 전래 시기의 소급 가능성 <Ⅴ> 척왕(斥王) 시기의 소급 가능성 <Ⅵ> 명종대의 심성 논쟁과 양명학 문제 <Ⅶ> 양명학의 수용 시기와 그 전기 <Ⅷ> 왕학 수용의 계보와 형태 문제 <Ⅸ> 하곡학과 조선 시대 양명학의 성격 <Ⅹ> 하곡학의 사상사적 위치 <Ⅺ> 하곡학의 계승 방향과 주왕학의 연계성 문제 <Ⅻ> 조선 시대 양명학의 연구 문제 Ⅱ. 양명학의 북방적 확산 <Ⅰ> 서언 <Ⅱ> 북방 왕문(王門)의 평가와 동전(東傳) 문제 <Ⅲ> 왕학 성립의 북방적 배경

Ⅲ. 연구 저서 요약 225 <Ⅳ> 왕문의 북방 강학과 왕학의 광포( 廣 布 ) <Ⅴ> 왕문의 재조세력( 在 朝 勢 力 )과 북방 왕학 <Ⅵ> 요동의 심학풍과 왕학 <Ⅶ> 사행의 왕래와 명학( 明 學 )의 동전 <Ⅷ> 결어 Ⅲ. 조선 시대 정주학의 심학화와 양명학의 전래 문제 <Ⅰ> 서언 <Ⅱ> 조선 시대 정주학의 전통과 심학화의 선도 1. 조선 시대 정주학의 전통 2. 심학화의 선도 현상 <Ⅲ> 중종대의 도학 운동과 심학화 1. 조광조의 도학 운동 2. 도학 운동의 이념화 과제 3. 중종대 사풍의 변전 4. 양명학의 동전 조건 5. 양명학의 수용 조건 Ⅳ. 양명학의 전래 수용 및 척왕론 <Ⅰ> 홍인우의 치재유고와 양명학의 전래 문제 1. 서언 2. 치재유고와 양명학의 동전 문제 3. 홍인우의 가계와 학통 4. 치재유고의 소전 체재 및 그 내용 5. 치재일기와 주자학의 심학화 6. 동강( 東 岡 ), 치재와 양명학 문제 7. 관동록과 유고의 부록 <Ⅱ> 남언경의 생애 사상 및 양명학 문제

22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서언 2. 남동강의 가계와 생애 3. 동강의 학보와 왕학 연원 4. 동강의 사상과 왕학 문제 5. 왕학의 전래와 수용의 시기 6. 결어 <Ⅲ> 선조 인조 간의 양명학의 제문제 1. 서언 2. 선조초의 양명학 문제 3. 문묘종사(文廟從祀) 문제와 척왕론 4. 척왕론과 왕학의 수용 경향 5. 양명학 문제의 당론화 6. 왜란과 양명학도의 내원(來援) 7. 송경략(宋經略)의 왕학 권장 8. 대학 강어와 내용 9. 이요(李瑤)의 왕학 성칭(盛稱)과 구란책(救亂策) 10. 결어 Ⅴ. 하곡학과 한국 양명학의 성립 <Ⅰ> 하곡학의 기본방향과 단계성 1. 서언 2. 하곡의 생애와 단계성 3. 하곡학의 기본 방향 4. 하곡학의 왕학적 연원과 그 전화 5. 왕학전치(王學專治)와 정주적 회귀성 6. 하곡학의 단계성과 광폭성 7. 결어

Ⅲ. 연구 저서 요약 227 <Ⅱ> 하곡학의 문헌적 연구 1. 서언 2. 하곡학의 성립 3. 정집( 正 集 )의 내용과 성격 4. 내집( 內 集 )의 내용과 성격 5. 외집( 外 集 )의 내용 구성 및 성격 6. 부집( 附 集 )의 내용과 성격 Ⅵ. 결어 - 조선조 양명학의 위치와 성격

22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한국의 양명학 유명종, 서울, 동화출판사, 1983. 양명학의 조선 전래로부터 배척, 수용, 발전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 고 있다. 특히 강화학파의 양명학을 인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이전에 출판된 책과 다른 점이다. 이 책의 내용은 후에 저자의 성리학과 양명학, 왕양명과 양명학 등에서 다시 다루어지고 있 다. <목 차> 머리말 제1장 서설 1. 양명학의 동전(東傳) 2. 양명학의 요강(要綱) 3. 양명학의 배척 1) 퇴계 이황 2) 남계 박세채 3) 남당 한원진 제2장 양명학의 수용 1. 양명학의 토착화의 토양 1) 이황 2) 이구 3) 기대승 4) 이이 2. 조선조 양명학파의 특징 3. 양명학을 수용한 학자들 1) 동강 남언경 2) 경안령 이요 3) 교산 허균 4) 지봉 이수광

Ⅲ. 연구 저서 요약 229 5) 계곡 장유 6) 지천 최명길 제3장 조선 양명학파의 수립 1) 하곡 정제두 2) 하곡의 문류 3) 양명학과 실사구시의 절충 4) 수산 이종휘 제4장 강화학파의 양명학 1) 항재 이광신 2) 원교 이광사 3) 연려실 이긍익 4) 신재 이영익 5) 초원 이충익 6) 현동 정동유 7) 석천 신작 8) 초천 정문승 9) 도정 정기석 10) 사기 이시원과 이상학 11) 영재 이건창 12) 경재 이건승 13) 창강 김택영의 동조 14) 난곡 이건방 제5장 실학파와 양명학 절충 1) 담헌 홍대용 2) 연암 박지원 3) 초정 박제가

23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윤백호 정다산과 양명설 절충 5) 오주 이규경의 양명설 절충 제6장 양명학과 광복운동 1) 겸곡 박은식 2) 위당 정인보 3) 고하 송진우

Ⅲ. 연구 저서 요약 231 5.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 정량완심경호,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정량완 교수의 월암 이광려론, 심경호 교수의 완구 신대우론 으 로 구성되어 있다. 강화학파를 이처럼 자세하게 다룬 책은 없다. <목 차> 월암 이광려론 정량완 Ⅰ. 서 1. 학계의 동향 2. 가계 3. 이광려에 대하여 1) 이만수의 서문 (1) 혜식덕의학력 (2) 무원록 에 대한 관심 2) 신대우의 서문 3) 서영보의 발문 4) 이충익의 이참봉집서 Ⅱ. 강화를 중심으로 한 학인들의 만남 1. 하곡과 이광사 2. 하곡과 이광명 3. 하곡과 신대우 4. 집안간의 강학 Ⅲ. 월암의 정신세계 1. 민족애-애민은 바로 애군

23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서군방보후 : 고구마[ 甘 藷 ](1) 2) 여서판서일지서( 與 徐 判 書 一 之 書 ) : 고구마(2) 3) 증강생계현( 贈 姜 生 啓 賢 ) : 고구마(3) 4) 여홍판서한사서( 與 洪 判 書 漢 師 書 ) : 벽돌 굽는 법에 대하여 - 민생과 독서인 2. 인간애 1) 강세황에 대한 사랑 (1) 표암 강광지에게 보내다[ 贈 豹 菴 姜 光 之 ] (2) 강광지의 차헌( 借 軒 ) (3) 표암댁에서 주인의 운자에 차운하다[ 豹 菴 宅 次 主 人 韻 ] (4) 우용전운( 又 甬 前 韻 ) (5) 표암에게 부치다[ 寄 豹 菴 ] (6) 표암의 시(무한경루소집( 無 限 景 樓 小 集 ) 등) (7) 표암의 시(화상자찬( 畵 像 自 贊 ) 등) 2) 전택량에 대한 사랑 (1) 관서로 돌아가는 전규백계원섭을 보내며[ 送 田 揆 伯 桂 元 涉 歸 關 西 ] (2) 규백이 내일 떠나려 하기에 여럿이 월암에 모여서 묵 다[ 揆 伯 明 日 將 行 諸 人 會 宿 月 巖 四 首 ] (3) 또 드리다[ 又 贈 ] (4) 전옹에게 뒤미쳐 부치다[ 追 寄 田 翁 ] (5) 규백에게 보내다[ 贈 揆 伯 ] (6) 또 드리다[ 又 贈 ] (7) 헤어질 때 다시 절구를 지어 규백을 놀리다[ 臨 別 又 爲 絶 句 戱 揆 伯 ] (8) 규백이 돌아감에 빙곡까지 전송하다[ 揆 伯 歸 送 至 氷 谷 ]

Ⅲ. 연구 저서 요약 233 Ⅳ. 월암의 시세계 1. 개요 및 그의 자긍과 필화 등 2. 독창성 3. 임진부작위 4. 그의 몇몇 시에 대해서 1) 양정모 2) 탄금대에서 삼연집운으로[彈琴臺用三淵集韻] 3) 장대지 4) 김치빈에게 주다[贈金致彬] 5) 홍경언창에게 차운하여 답하다[次韻答洪敬言昌] 6) 용연신옹에게 부치다[寄龍淵申翁] 7) 남사미의 유사를 읽고서[讀南士美遺事] 8) 강으로 가며 이것저것 적는데 당인절구운을 따라서 짓다 [江律書事次唐人絶句韻] Ⅴ. 월암의 산문 1. 금석문 1) 학생이공유인권씨합장지명(學生李公孺人權氏合葬誌銘) 2) 칠세조함풍군부군묘지명(七世祖咸豊君府君墓誌銘) 3) 족형청안공묘지명(族兄淸安公墓誌銘) 4) 신생묘지명(申生墓誌銘) 5) 이연묘지명(李淵墓誌銘) 6) 선공감역정군묘지명(繕工監役鄭君墓誌銘) 7) 정씨상녀묘지명(鄭氏殤女墓誌銘) 8) 군자감증이조참판서공묘지명(軍資監贈吏曹參判徐公墓誌銘) 9) 동뢰옹묘지명(東瀨翁墓誌銘) 10) 통덕랑윤공묘지명(通德郞尹公墓誌銘)

23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1) 가평군수윤공묘지명(加平郡守尹公墓誌銘) 12) 용인현령윤군묘지명(龍仁縣令尹君墓誌銘) 13) 심효자묘지명(沈孝子墓誌銘) 14) 숙인윤씨묘지명(淑人尹氏墓誌銘) 15) 원교선생묘지명(員嶠先生墓誌銘) 16) 후릉참봉민군묘지(厚陵參奉閔君墓誌) 17) 동지중추부사정공묘지(同知中樞府事鄭公墓誌) 18) 의주부윤신공묘지(義州府尹申公墓誌) 19) 이조참판조공묘지(吏曹參判曺公墓表) 20) 첨지중추김군묘갈명(僉知中樞金君墓碣銘) 2. 전(傳)기(記) 기타 1) 임부인전(林夫人傳) 2) 독노자(讀老子) 오칙(五則) 3) 종사(終事) 4) 논동국여자불계(東國女子不笄) 삼칙(三則) 5) 기이유인사(記李孺人事) Ⅵ. 결어 [참고문헌] [부록] 이참봉집 소재 산문 선택 1. 임부인전(林夫人傳) 2. 뇌옹사리찬(瀨翁舍利贊) 3. 독노자(讀老子) 오칙(五則) 4. 종사(終事) 5. 논동국여자불계(論東國女子不笄) 삼칙(三則) 6. 기이유인사(記李孺人事)

Ⅲ. 연구 저서 요약 235 7. 족형청안공묘지명(族兄淸安公墓誌銘) 8. 원교선생묘지(員嶠先生墓誌) 9. 이참봉집서(극옹 이만수) 10. 이참봉집서(완구 신대우) 11. 이참봉집서(초원 이충익) 12. 이참봉집발(죽석(竹石) 서영보) <목 차> 완구 신대우론 심경호 Ⅰ. 서설 Ⅱ. 완구 신대우의 사상과 강화학 1. 완구와 강화학파 1) 하곡과 완구 2) 완구와 후기 강화학파 2. 완구 신대우란 인물 3. 완구의 주변인물 1) 이덕윤가(李德胤家) 2) 이광명, 이광려 3) 남건복(南建福) 4) 이영익, 이충익 5) 성천주(成天柱) 6) 홍량호(洪良浩) 7) 유한준(兪漢雋) 4. 완구유집 의 성서(成書)와 간행 5. 완구의 사상

23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진실무위론(眞實無僞論) 2) 심학 사상 3) 진성측달론(眞誠惻怛論) 4) 형신관(形神觀)과 대월상제론(對越上帝論) 5) 존왕론(尊王論)과 화이론(華夷論) Ⅲ. 완구의 삶과 문학 1. 완구의 출생 1) 생탄과 가계(家系) 2) 소론 집안의 역세(歷世) 적덕(積德) 2. 초년 시절 완구의 정신편력 1) 초년 시절의 완구 2) 옹일리(翁逸里) 이주 3) 애환의 교집(交集) 4) 옹일리 이주 초의 학문과 문학 5) 하곡치적기(霞谷治積記), 후일행장(厚一行狀), 술인자설(述仁字說) 6) 방학(傍學)과 번안문자(飜案文字) 7) 문장학과 서사문자(敍事文字) 3. 용안실(容安室) 강학기(講學期)의 삶과 문학 1) 약현(藥峴) 과강(課講) 2) 용안실 강학 3) 청담간정(淸淡簡靖)의 추구 4) 염공이치(廉公以治)의 목민관(牧民觀) 5) 돈종론(敦宗論) 6) 국사학과 경세학 7) 서법론(書法論) 8) 문학론

Ⅲ. 연구 저서 요약 237 9) 세태비판 4. 사환기(仕宦期)의 삶과 문학 1) 사환기의 삶 2) 진성측달(眞誠惻怛)의 정의(情誼) 3) 수결천진(修潔天眞)의 추구 4) 전내실기지학(專內實己之學) 5) 문명의식(文明意識) 6) 명량제우(明良際遇)의 희원(希願) 5. 궁관료속기(宮官僚屬期)의 삶과 문학 1) 궁관료속기의 삶 2) 길사운망(吉士云亡)의 통한 3) 순실호고(純實好古)박소임진론(樸素任眞論) 6. 순조초(純祖初) 참강기(參講期)의 문학 1) 순조초 완구의 삶 2) 도망문자(悼亡文字) 3) 위겸지경론(撝謙持敬論) 4) 소중화론(小中華論) 5) 임모대의(臨摹大意)의 서법가론(書法家論) 6) 수신사명(修身俟命)의 처사론(處士論) 7) 불외강어(不畏强禦)의 간관론(諫官論) 8) 문향청원(聞響聽遠)의 서고(敍故) 9) 암장지실(闇章之實)과 문학 7. 완구의 만년(晩年) Ⅳ. 결어(結語) [참고문헌]

23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부록] 완구유집원문해서점교( 宛 丘 遺 集 原 文 楷 書 點 校 ) [완구신대우인척관계표]

Ⅲ. 연구 저서 요약 239 6. 한국 근대유교 개혁운동사 유준기,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9.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에 두 편의 글을 보완한 책. 조선사회 500년 간을 이끈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가 일제침략에 대응하여 어떤 개혁사상을 가지고 국권회복 운동의 이념 정립에 어떻게 기여하였으 며, 이것이 근대 민족의식과 항일독립 운동의 활력소로 어떻게 외재 화(外在化)되어 갔는지 밝히고 있다. <목 차> 서 론 제1장 근대 유교개혁 운동의 시대적 배경 1. 19세기 말의 위기의식과 민족주의의 성장 2. 국권회복 운동과 유교개혁론 제2장 종교운동으로서의 유교개혁 운동 1. 유교개혁 운동의 사상적 기반 1) 유교개혁운동의 연원 2) 공교(孔敎)운동의 이념적 구조 2. 유교개혁 운동의 전개 1) 박은식의 대동교(大同敎) 운동 2) 이승희 이병헌의 공교 운동 제3장 항일 민족운동으로서의 유교개혁 운동 1. 항일민족운동의 이념 1) 박은식 이병헌의 종교관 2) 이승희 박은식의 교육관 3) 박은식 이병헌의 역사관

24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항일민족운동의 전개 1) 항일민족운동의 전개 2) 국외에서의 항일독립운동 결론 부록 강화학파(양명학)의 유교개혁 운동 1. 강화학파(양명학)의 학맥과 사상사적 전개 2.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 3. A Confucian Perspective on Christianity in the Last Period of Yi-Dynasty 4. Historical Awareness of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as seen in the Bloody History 참고문헌 ABSTRACT 도표 화보자료

Ⅲ. 연구 저서 요약 241 7. 강화학 최후의 광경 민영규, 서울, 도서출판 우반, 1994.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교수의 글을 제자들이 모아 편집한 책이 다. 일정한 체계를 갖춘 책이라기 보다는 민영규 교수의 중요한 글들 을 모은 것으로 논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 다. 강화학과 관련된 내용은 1부에 있다. 제2부는 항반설림(行半說林)이라는 제목으로 그 내용은 호적(胡適), 엘리세에브(Elisseeff) 등과의 사연을 위시하여 만몽학(滿蒙學), 곡학 (曲學), 서지학(書誌學), 돈황학(敦煌學), 서역학(西域學), 복식(服飾) 등에 관한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목 차> 1 이건창의 시세계(詩世界) 강화학 최후의 광경 위당문존후서(爲堂文存後序) 위당 정인보 선생의 행장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 - 실학원시(實學原始) 이건창 정담원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문정석략교록병서(鄭薝園廣開土境平 安好太王陵碑文釋略校錄幷序) 2 행반설림(行半說林) 호적선생(胡適先生)과 척촉(躑躅)-의망원(倚望園) 철죽의 내력 Serge Elisseff선생의 서거 춘향전 오칙(五則) 원고려속강증(元高麗俗講憎)

24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만주자(滿洲字) 소아론(小兒論)과 돈황(敦煌)의 항탁변문(項託變文) 목련경(目連經)과 돈황의 변문(變文) 노걸대변의(老乞大辯疑) 박통사저작년대(朴通事著作年代) - 태고보우(太古普愚)의 대도(大都) 영녕사설법(永寧寺說法) 영인청어노걸대인언(影印淸語老乞大引言) 한한청문감해제(韓漢淸文鑑解題) 팔세아(八歲兒)소아론(小兒論)삼역총해(三譯總解)동문유해(同 文類解) 해제 월인석보 제7제8 경인(景印) 개제(開題) 월인석보 제9제10 경인 해제 월인석보 제17제18 경인 개제 월인석보 제23 잔권(殘卷) 경인 개제 김매순렬양세시기집교소인(金邁淳洌陽歲時記輯校小引) 신라흥덕왕릉비단석기(新羅興德王陵碑斷石記) 첨성대우득(瞻星臺偶得) Havard대학 신간 Uln-Btur本 ALTAN TOBI에 대하여 산중일기경인서(山中日記景印序) 고선지(高仙芝)장군의 서역원정(西域遠征) 17세기 이조학인(李朝學人)의 지동설-김석문(金錫文)의 역학 24도해 (易學二十四圖解) 한민족복(韓民族服)과 호복(胡服) 경원여진자비고석(慶源女眞字碑考釋) 설팽(說䄘) 람사선생수서(藍史先生壽序) 이우성교수정년기념논총서(李佑成敎授停年紀念論叢書)

Ⅲ. 연구 저서 요약 243 천혜봉교수정년기념하서( 千 惠 鳳 敎 授 停 年 紀 念 賀 序 ) 창사이춘희교수정년수서( 蒼 史 李 春 熙 敎 授 停 年 壽 序 ) 이재철교수정년기념수서( 李 載 喆 敎 授 停 年 紀 念 壽 序 ) 발문( 跋 文 )

24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8. 성리학과 양명학 유명종,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4. 이 책은 1993년 1년 동안 저자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한국 의 성리학과 양명학 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정리하고 이를 다시 성리 학과 양명학 이라고 하여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하게 되었다. 당시 강의에서 송명철학 과 한국의 양명학 이 토대가 되었던 까닭 에 이 책들을 수정, 혹은 정리하거나 보충한 것이다. <목 차> 제1부 중국의 이학(理學)과 심학(心學) 서 Ⅰ. 이학 1. 주돈이(周敦頤) 2. 장재(張載) 3. 정호(程顥) 4. 정이(程頤) 5. 주희(朱熹) Ⅱ. 심학 1. 육구연(陸九淵) 2. 양간(楊簡) Ⅲ. 양지학(良知學) 1. 왕수인(王守仁) 2. 왕학좌파(王學左派) Ⅳ. 정암(整庵) 나흠순(羅欽順)의 내재관적 기(氣)철학 1. 주기(主氣)설 2. 심성(心性)설

Ⅲ. 연구 저서 요약 245 3. 인욕긍정( 人 欲 肯 定 ) Ⅴ. 염대( 念 臺 ) 유종주( 劉 宗 周 )의 성의신독학( 誠 意 愼 獨 學 ) 1. 심성설 2. 신독과 성의( 誠 意 ) 제2부 조선시대의 성리학 Ⅰ. 조선시대의 성리학 1. 주리론( 主 理 論 ) 2. 주기론( 主 氣 論 ) 3. 이기혼륜설( 理 氣 渾 淪 說 ) 4. 주리주기의 절충론 5. 도일원론( 道 一 元 論 ) 6. 인물성동이논쟁[ 湖 洛 是 非 ] Ⅱ. 양명학과 성령주의( 性 靈 主 義 ) 시문( 詩 文 ) 1. 성령주의 시문 Ⅲ. 성리학의 재흥 1. 임성주의 유기론 2. 이항로의 이존설 3. 기정진의 유리론 4. 이진상의 심즉리설 Ⅳ. 퇴계학의 기본 논리 1. 머리말 2. 퇴계학의 논리 3. 논리의 적용 4. 심합이기설( 心 合 理 氣 說 ) Ⅴ. 율곡의 내재관적 이( 理 )철학 1. 머리말

24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율곡학의 특징 3. 내재관적 이기론 4. 이기혼륜간설 제3부 조선시대 양명학 Ⅰ. 서설 1. 양명학의 동전( 東 傳 ) 2. 양명학의 배척 Ⅱ. 양명학의 수용 1. 양명학 토착화의 토양 2. 조선 양명학파의 특징 3. 양명학을 수용한 학자들 Ⅲ. 조선 양명학파의 수립 1. 하곡 정제두 2. 하곡의 문류( 門 流 ) 3. 양명학과 실사구시의 절충 Ⅳ. 강화학파의 양명학 1. 항재 이광신 2. 원교 이광사 3. 월암 이광려 4. 연려실 이긍익 5. 신재 이영익 6. 완구 신대우 7. 초원 이충익 8. 현동 정동유 9. 석천 신작 10. 초천 정문승

Ⅲ. 연구 저서 요약 247 11. 도정 정기석 12. 사기 이시원과 이상학( 李 象 學 ) 13. 영재 이건창 14. 경재 이건승 15. 창강 김택영의 동조( 同 調 ) 16. 난곡 이건방 Ⅴ. 실학파와 양명학 1. 담헌 홍대용 2. 연암 박지원 3. 초정 박제가 Ⅵ. 양명학과 광복운동 1. 겸곡 박은식 2. 위당 정인보 3. 고하 송진우

24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9.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2) 정량완,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강화학 초기의 인물인 원교 이광사와 그의 아들 신재 이영익의 문 학과 사상을 다룬 책. 그러나 분량 관계로 부득이 분권하게 되었다. 따라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3) 은 내용상 이 책과 합본(合本) 되 어야 한다. 원교는 서법가로서 미술사학의 분야에서 크게 주목을 받 아온 인물이지만, 그의 문학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 고, 학술사상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된 일이 없었다. 이 책은 이광사에 대한 첫 번째 전문 서적이다. <목 차> 제1부 원교 이광사론 Ⅰ. 서언 Ⅱ. 두남집 에 대하여 Ⅲ. 그의 가계 및 가통 1. 아버지 이진검 2. 어머니 파평윤씨 3. 원교 이광사 4. 부인 문화유씨(文化柳氏) Ⅳ. 원교의 사우 관계 1. 하곡 정제두와의 만남 1) 막내며느리에게 견지에 써 보내다[書贈穉婦繭紙] 2) 종부형을 대신하여 하곡 정선생을 제사지내는 글을 짓 다[爲從父兄祭霞谷鄭先生文] 2. 백하 윤순과의 만남

Ⅲ. 연구 저서 요약 249 1) 백하 윤순을 제사지내는 글[祭白下尹尙書淳文] 2) 서결(書訣)을 통해 3. 사상(士相) 민옥(閔鈺)과의 만남 4. 항재 이광신 5. 무망헌(無妄軒) 이광태(李匡泰) 6. 애수(艾叟) 이광정(李匡鼎) 7. 중옹(中翁) 이광찬(李匡贊) 8. 오우(五友)-오군영(五君詠)을 중심으로 9.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 Ⅴ. 평두남(評斗南) Ⅵ. 그의 인간애 1. 아내 유씨에 대한 사랑 2. 어린 딸에 대한 사랑 3. 며느리에 대한 사랑 4. 아들에 대한 사랑 5. 누이동생에 대한 사랑 Ⅶ. 편지 및 훈가편(訓家篇), 기자질서(寄子姪書)를 통해 본 내수 (內修)의 자취 Ⅷ. 인간의 발견 1. 젖엄마를 제사지내는 글[祭乳媼文] 2. 장한좌전(張漢佐傳) 3. 수노(首奴) 황산(黃山)에 대한 사랑 4. 주인이 고마워[感主人] 5. 농가의 소가 가여워[傷農牛] Ⅸ. 잡저에 대하여 1. 문장론

25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선용심상자(善用尋常字) 2) 시귀자득기발(詩貴自得機發) 2. 경세제민할 원교의 지향-사기를 읽고 3. 어음(語音)에 대한 원교의 관심-오음정서(五音正序) 4. 태설야설(兌說也說) 5. 우리나라 언해의 토를 따진다[論東國諺解吐] 6. 택당의 초학자훈을 보고[觀澤堂初學字訓] Ⅹ. 그의 몇몇 시에 대하여 Ⅺ. 결어 [부록] 1. 훈가편 서(序)가 있음 2. 자질에게 주는 글[寄子姪書] 3. 임금의 고마움을 적다[述恩] 서(序)와 아울러 4. 주인이 고마워[感主人] 5. 종부제광민묘지명(從父弟匡敏墓誌銘) 6. 일몽고(一夢稿) 병세재언록중(幷世才彦錄中) 윤순과 이광사 [사진 설명] 제2부 원교와 신재의 동국악부 Ⅰ. 서언 Ⅱ. 원교와 신재의 동국악부 1. 태백단(太伯檀) 2. 황하가(黃河歌) 3. 성모사(聖母祠) 4. 임중계(林中鷄) 5. 우식곡(憂息曲) 6. 치술령(鵄述嶺) 7. 황창무(黃昌舞) 8. 참마항(斬馬衖)

Ⅲ. 연구 저서 요약 251 9. 왕모거(王母去) 10. 양산가(陽山歌) 11. 파경합(破鏡合) 12. 조촉사(朝蜀使) 13. 현학금(玄鶴琴) 14. 만파식적(萬波息笛) 15. 월명항(月明衖) 16. 상서장(上書莊) 17. 포석정(鮑石亭) 18. 조룡대(釣龍臺) 19. 낙화암(落花巖) 20. 조천석(朝天石) 21. 살수첩(薩水捷) 22. 성상배(城上拜) 23. 영천기(迎茜旗) 24. 절영마(絶影馬) 25. 창근경(昌瑾鏡) 26. 성제대(聖帝帶) 27. 문곡성(文曲星) 28. 백사가(百死歌) 29. 여대립(女戴笠) 30. 두문동(杜門洞) Ⅲ. 결어 [원교 연보]

25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0.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3) 심경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년 3월, 406쪽.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2) 에서 분량관계로 다루지 못했던 이광 사의 나머지 부분과 아들 이영익의 시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신재 이영익 부분은 심경호가 썼다. <목 차> 제1부 원교 이광사의 학술사상 Ⅰ. 서언 Ⅱ. 성리론 1. 초년의 성즉리론 2. 이기동선설(理氣同善說) 3. 정감의 중시 4. 사상마련(事上磨鍊)의 강조 Ⅲ. 격물치지론 1. 대학장구(大學章句) 비판 2. 격물치지론 3. 의심본론(意心本論) 4. 지행합일론 5. 대학관(大學觀) Ⅳ. 역학설(易學說) Ⅴ. 상서론(尙書論) 1. 여형변(呂刑辨) 2. 낙고변(洛誥辨) 3. 낙고(洛誥) 재론(再論)

Ⅲ. 연구 저서 요약 253 Ⅵ. 불교 비판 1. 제도설(齊到說)과 화복설(禍福說) 2. 불광(佛光)계 비판 3. 부처가 주소왕(周昭王) 때 사람이 아님을 변증함 Ⅶ. 주자 자연학 비판 1. 우주론 비판 2. 천선설(天旋說) 비판 3. 천지수화설(天地水火說) 비판 4. 일출설월식설구주설(九州說) 비판 Ⅷ. 결언 제2부 신재 이영익론 Ⅰ. 서언 Ⅱ. 신재 이영익의 삶 Ⅲ. 신재의 주변인물 1. 하곡 정제두 집안 2. 연려실 이긍익 3. 초원 이충익 4. 범곡(凡谷) 이천익(李天翊) 5. 과산자(窠山子) 이문익(李文翊) 6. 완구 신대우 Ⅳ. 신재의 문학론 1. 성정자연을 중시한 시론 2. 일가도습(一家蹈襲)을 배격한 산문론 Ⅴ. 신재의 시 1. 연작절구시(連作絶句詩) 2. 화두보진중잡시(和杜甫秦中雜詩)

25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화도연명음주시( 和 陶 淵 明 飮 酒 詩 ) 4. 대편( 大 篇 ) 5. 연구( 聯 句 ) 6. 동국악부 Ⅵ. 신재의 산문 1. 애제문( 哀 祭 文 ) 2. 잠명문( 箴 銘 文 ) 3. 제화문( 題 畵 文 ) 4. 논변체( 論 辨 體 ) 산문 5. 진의체( 奏 議 體 ) 산문 6. 증서류( 贈 序 類 ) 산문 7. 유기체( 遊 記 體 ) 산문 8. 비지류( 碑 誌 類 )와 행장류 9. 서간문( 書 簡 文 ) Ⅶ. 신재의 사상 1. 실심실행론( 實 心 實 行 論 ) 2. 음양재이설( 陰 陽 災 異 說 ) 비판 3. 심학 사상 Ⅷ. 신재의 경학 1. 역학설( 易 學 說 ) 2. 고문상서설( 古 文 尙 書 說 ) Ⅸ. 결어 [참고문헌] [신재연보]

Ⅲ. 연구 저서 요약 255 11. 한국유학사상사 Ⅲ-조선후기편(상) 최영성,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5. 유학사상이 가지는 다양한 영역을 하나로 포괄해서 다루어 보기 위 해, 유학사 이외에 정치사상사사회경제사문화사 등의 연구 성과 를 고르게 섭취 반영하고 있다. 또한 유학사상이 우리 역사의 여러 방면에 어떻게 기능하였는가 하는 점을 중시하고, 그 사회적 기능과 현상에 대해 충실히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유교의 본질과 응용을 올 바르게 이해하며, 아울러 학구적이고 이지적인 색채를 강하게 풍겼던 종래 유학사의 서술 방법에서 탈피하여 폭넓게 다룸으로써, 사회사상 사로서의 기능과 역할까지도 모색하고 있다. <목 차> 제6편 조선후기의 유교사상 및 유학 제1장 17세기 중엽이후 정계 및 학계의 유학 제1절 호란과 척화주화의 사상사적 의의 제2절 숭명배청의리(崇明排淸義理) 및 북벌론의 춘추학적 의의 제3절 모화사상의 고조와 기자사상의 현양 제4절 숭용산림(崇用山林)의 기풍과 그 정치적 기능 제5절 붕당정치의 발달과 근본성격 제6절 회니시비(懷尼是非)와 노소분당(老少分黨) 제7절 송시열의 학술사상과 유학사적 위치 제8절 당시의 일반 명유(名儒)와 그 사상 제2장 예학의 성립과 발전 제1절 조선예학사 서설 제2절 예학의 성립과 예사상의 전개

25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제3절 인조조의 전례( 典 禮 ) 문제 제4절 현종 숙종간의 복제( 服 制 ) 문제 제5절 예학의 새로운 동향 제3장 탈주자학풍의 태동과 독자적인 경전 주석 제1절 주자절대주의의 형성과정과 배경 제2절 독자적인 철학사상의 전개와 그 선구자 제3절 탈주자학풍과 독자적인 경전 주해의 선구자 제4절 주자 절대주의와 탈주자학풍의 영향 및 의의 제4장 양명학의 전래와 발전 제1절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 제2절 양명학의 개요와 말폐 제3절 양명학에 대한 비판과 배척 제4절 양명학파의 성립과 발전 제5절 조선양명학의 특징과 의의 제6절 양명학이 조선에 끼친 역사적 영향 제5장 실학사상의 대두와 그 선도자 제1절 이수광의 무실( 懋 實 ) 사상과 실용 정신 제2절 한백렴의 전제( 田 制 ) 연구와 실증 정신 제3절 김육의 경세사상과 위민 정신 제4절 유형원의 사상과 실학사적 위치

Ⅲ. 연구 저서 요약 257 12.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 김교빈, 서울, 한길사, 1995. 저자의 박사 논문을 수정 보완한 저서. 하곡의 철학사상을 이기론, 심성론, 사회인식과 실천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것들의 상호 관 계를 분석하고 밝힘으로써 하곡철학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이를 통해 결론 부분에서 하곡 철학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 사상사에서의 하곡의 위치 및 하곡철학의 문제점을 검토했다. <목 차> 제1장 머리말 1. 하곡 정제두의 생애와 시대배경 2. 하곡의 문제의식 제2장 이기론의 구조 1. 리의 구조 2. 이기의 관계 3. 기의 구조 4. 선유들의 이기론에 대한 하곡의 평가 5. 주자학과 양명학의 주체적 극복 제3장 심성론의 구조 1. 심즉리와 성즉리의 구조 2. 심성과 양지의 관계 3. 양지 체용의 구조 4. 도덕실현의 주체로서 인간 제4장 사회인식과 실천관의 구조 1. 인식과 실천의 관계

25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하곡철학의 사회적 기능 3. 하곡철학의 진보성과 보수성 제5장 결론 1. 하곡철학의 가치 2. 하곡철학의 사상사적 위치와 남는 문제

Ⅲ. 연구 저서 요약 259 13. 동아시아의 양명학 최재목, 서울, 예문서원, 1996.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보완 발전시킨 저서. 양명학이 동아시아 즉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방식으로 수용 전개되었으며, 또 어떤 부분이 어떻게 변용 굴절되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연구 결과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 즉 양명학의 한국적 변용-하곡 양명학 사상의 동아시아적 위치, 한국 일본에 있어서 양명학 수용의 특질정하곡과 나카에 토쥬의 치양지 해석을 중심으로, 공허의 철학-태허 사상의 양명학적 굴절 등을 근간으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든 양명학을 주자학과의 비교 속에서 조명하는데 관심을 두기 보 다는, 양명학의 내부에 들어가서 그 자체의 논리에 주목하고 그 향방 을 추적함으로써 양명학의 동아시아적 전개 양상을 해명하고 서술한 다는 공통성을 띠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양명학 전개에 대한 내재론적 연구하고 할 수 있다. <목 차> 지은이의 말 머리말 제1장 양명학의 성립까지 1. 리학에서 심학으로 2. 진헌장의 심학 3. 담약수의 심학 4. 맺음말 제2장 양명학의 성립과 치량지론 1. 양명학의 성립 2. 치량지론의 제창

26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치량지론의 문제점 4. 맺음말 제3장 양명학의 한국적 전개 / 97 1. 한국 양명학의 전개 2. 정제두의 양지론 3. 정제두 양명학의 동아시아적 위치 4. 맺음말 제4장 양명학의 일본적 전개 /143 1. 일본 양명학의 전개 2. 태허( 太 虛 ) 사상과 일본 양명학 3. 맺음말 제5장 하곡학과 토쥬학의 비교론적 이해 / 185 1. 비교론적 이해의 단초 2. 왕수인 치량지론의 두 가지 함의 3. 정제두의 치량지 해석 4. 나카에 토쥬의 치량지 해석 5. 맺음말 제6장 마무리 말 / 223

Ⅲ. 연구 저서 요약 261 14. 동양정치사상 한국양명사상의 전개 정차근, 서울, 평민사, 1996. 저자의 박사학위논문 陽明思想對朝鮮政治思想之影響 (대만 국립정 치대학, 1989년 2월)을 보완한 책. 양명사상이 중국뿐만 아니라 동아 시아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사상적 역할을 했음을 도입부에서 밝히고 있다. 양명사상의 정치적 의미와 그것이 조선 사회와 국권회복 민권 신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박은식 정인보를 중심으로 논하 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목 차> 머리말 제1장 서 론 제1절 연구 동기와 목적 제2절 연구 범위와 방법 제3절 왕양명 정치사상의 연원 제1항 심즉리 제2항 지행합일 제3항 치량지 제4절 왕양명의 정치사상 제1항 이인위본(以仁爲本) 제2항 정교합일 제3항 민본사상 제5절 한국 양명사상의 시대 구분과 특색 제2장 한국 양명사상 성립의 배경 제1절 한국 유학사상의 배경

26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제1항 유학의 전래 제2항 주자학 정치이념의 변화 제3항 김시습의 반주자 사상 제4항 서경덕의 이기일원론 제5항 사상의 분열과 내우외환 제2절 반주자 사상의 흥기 제3절 조광조의 도학사상과 심학화 제1항 도학사상의 토대 제2항 도학정치사상 제3항 도학의 심학화 제3장 한국 양명사상의 성립 제1절 정치상황적 배경 제2절 양명사상의 전래 제1항 양명사상의 전래시기와 수용 제2항 양명학파의 형성 제3항 양명사상의 배척 제3절 양명사상 성립기의 양명사상가 제1항 남언경 제2항 이요 제3항 이수광 제4항 허균 제5항 조익 제6항 최명길 제7항 장유 제4절 반양명학자의 양명학 비판 제1항 이황의 왕양명 전습록논변

Ⅲ. 연구 저서 요약 263 (1) 이황의 심학 사상 (2) 이황의 전습록논변 제2항 유성룡의 양명학 비판 제3항 한원진의 심학과 양명학 비판 제4장 한국 양명사상의 성숙 제1절 양명사상의 확산과 변천 제2절 정제두의 양명사상 제1항 정제두의 사상배경 제2항 심즉리 제3항 치량지 제4항 지행합일 제5항 이기일원론과 생리론 제3절 정제두 양명사상의 정치사상사적 지위 제1항 강화학파의 사상진전과 현실극복 제2항 양명사상과 실사구시의 절충 : 양득중 제3항 북학파와 양명사상 : 홍대용 제5장 한국 양명사상의 전화와 실학사상 제1절 양명사상 전화의 배경 제1항 주자 정치이념의 비판 제2항 양명사상의 전승 제3항 집권층의 분열과 민중생활의 곤란 제4항 청의 개명과 서구사상 수용 제2절 양명학파의 실학정치사상 제1항 실학의 개념과 그 구체적 형태 제2항 양명사상 맹아기의 개혁사상 제3항 양명사상 성숙기의 민권사상

26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제4항 양명사상 전환기의 보국안민사상 제3절 양명사상의 계몽사조 제1항 실학파의 양명사상 진전 제2항 양명사상과 애국운동 : 박은식 (1) 정치사상적 배경 (2) 국권회복을 위한 유교구신 (3) 양명학의 대동이상사회와 민권신장 제3항 양명사상으로 민족정신 고양 : 정인보 제6장 양명사상이 한국정치사상에 끼친 영향 제1절 양명사상의 한국정치사상상의 역할 제2절 양명사상의 한국근대정치사상상의 의의 부 록 왕양명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Ⅲ. 연구 저서 요약 265 15. 양명학의 이해 - 양명학과 한국양명학 박연수, 서울, 집문당, 1999. 왕양명의 철학사상과 한국의 양명학을 개괄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양명의 철학 사상 중 군사와 관련된 부분을 추려 서술한 것과 동서 (東西)의 양명학을 간략하나마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여타 다른 책과 다르다. 그러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분량에 비해 내용이 너무 많 다는 점이 아쉽다. <목 차> 머리말 제1부 왕양명의 철학 사상 제1장 명대(明代)의 시대적 상황 1. 정치사회적 상황 2. 사상적 배경 3. 왕양명의 문제의식 제2장 양명학의 형성배경 1. 생애 : 연보 요약 2. 학문 편력 및 사상의 변천 3. 유학의 도통론(道統論) 제3장 기존 학설과 양명학 1. 도불교(道佛敎)에 대한 비판 2. 세속의 학풍에 대한 비판 3. 주자학에 대한 비판 제4장 왕양명의 심즉리론(心卽理論) 1. 심체(心體)에 관한 설명

26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심즉리 3. 요약 및 결론 제5장 왕양명의 지행합일론 1. 전통적 지행 이론 2. 지행 분리의 원인 3. 지행합일론 제6장 왕양명의 치량지론( 致 良 知 論 ) 1. 주희의 즉물긍리설( 卽 物 窮 理 說 ) 비판 2. 치량지의 의미 3. 치량지의 방법 4. 결론 제7장 왕양명의 이상사회 사상 1. 중국 전통의 이상사회 2. 왕양명의 대동사회 3. 대동사회의 실현 4. 결론 제8장 왕양명의 군사 사상 1. 서론 2. 군사적 업적 3. 군사에 대한 근본적 인식 4. 군사력 운용의 전략과 전술 5. 군사력 건설의 원칙 6. 결론 제9장 양명학의 영향과 전개 1. 양명학의 영향 2. 양명학의 분파

Ⅲ. 연구 저서 요약 267 3. 왕양명의 제자들 제10장 동서( 東 西 )의 양명학 1. 한국의 양명학 2. 일본의 양명학 3. 서양의 양명학 제2부 한국의 양명학 제1장 양명학의 조선 전래 1. 양명서의 간행과 전래 2. 조( 朝 )명( 明 )의 사상적 상황 제2장 양명학에 대한 비판 1. 서론 2. 양명의 학문관 비판 3. 심즉리설에 대한 비판 4. 치량지설에 대한 비판 5. 지행합일설에 대한 비판 제3장 전래 초기의 양명학 수용 1. 서론 2. 동강 남언경 3. 계곡 장유 4. 지천 최명길 5. 포저 조익 6. 기타 제4장 조선조 양명학의 정제두 1. 시대적 상황과 문제의식 2. 양명학 수용의 배경 3. 하곡 정제두의 학문관

26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하곡의 이기론 5. 하곡의 심즉리 6. 하곡의 양지론 7. 하곡의 지행일체론 8. 진리의 구현 9. 하곡 철학에 대한 평가 10. 하곡의 주체적 인간관 제5장 하곡 이후의 양명학 1. 강화학파의 형성 2. 하곡학의 전개 3. 한국양명학과 실학, 천주교, 개화 사상 제6장 겸곡 박은식의 양명학 1. 생애 2. 시대 및 역사의식 3. 학문 및 교육관 4. 양명학의 수용 5. 양명학에 대한 이해 제7장 위당 정인보의 양명학 1. 생애 2. 조선의 역사 및 현실 인식 3. 양명학에 대한 이해 4. 조선의 양명학파 5. 양명학의 한국적 수용

Ⅲ. 연구 저서 요약 269 16.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4) 정량완심경호,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조선학술사에서 유례가 없는 박학자인 석천 신작의 삶과 문학, 그 리고 학술사상을 다루었다. 석천의 모든 것을 이처럼 자세하게 다룬 책은 없다. 석천 연구의 기본서라고 할 수 있다. <목 차> 제1장 석천 신작의 일생과 교유 - 정량완 1. 석천 신작의 가계 2. 면학교유의 자취를 중심으로 본 석천의 생애 제2장 석천의 시 - 정량완 1. 유람과 시작의 자취 1) 정서의 함양을 위한 유람 2) 시경 공부와 시작의 자취들 2. 석천의 시에 대하여-규장각본을 중심으로 1)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연경(燕京)가는 이태사(李太史)를 전 송하다 2) 사(社)[마을] 이것저것을 읊다 (1) 사촌(社村) (2) 수명루(水明樓) (3) 재간정(在澗亭) (4) 금장산(錦障山) (5) 초피봉(椒皮峯)으로 오르는 나루 3) 자취 감추고 4) 비 개다 5) 건릉천봉만장(健陵遷奉挽章) 6) (1) 정공(丁公)에게 화답하다 (2) <이미 돌아온 지 며칠 만에 뒤 미쳐 제 회포를 적어

27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신학사 형제에게 바치다>를 덧붙임 7) (1) 정령공(丁令公)이 설중(雪中)에서 보내 준 시에 차운 (次韻)하다 (2) <강마을에서 눈을 구경하며 신학사(申學士) 형제가 그 립기 붓을 달려 부쳐 보내다>를 덧붙임 8) (1) 흰 구름 (2) <가는 세월[徂年]>을 덧붙임 9) (1) 남성류부운(南城留府韻)에 화답하다 (2) <서울 가는 신시랑(申侍郞)[석천의 아우 실재(實齋)[현 (絢)]를 보내다>를 덧붙임 10) 단문(端門) 3. 소결(小結) 제3장 서간문을 통해서 본 석천 신작의 정신세계 - 정량완 1. 서 2. 상가군서(上家君書) 1) 누이동생에 대한 사랑 2) 부자 형제간의 학문의 연마 3) 아버지에 대한 사랑 3. 상백씨서(上伯氏書) 1) 주소(注疏)에 관해서 2) 노자(老子) 관계 3) 시경(詩經) 관계 4) 문학 관계 5) 시에 대한 관심 6) 진견득(眞見得) 7) 심의(深衣) 및 시제(時祭)에 대하여 8) 교유(交遊)

Ⅲ. 연구 저서 요약 271 9) 인간애 10) 아버지 초상화(肖像畵) 및 유집(遺集) 간행 11) 자애자녀 교육 12) 취미 13) 구황(救荒)에 대한 관심 14) 산거자적(山居自適) 4. 여이씨서(與季氏書) 1) 섬세한 정감 2) 우애 (동생 생각) 3) 자녀교육 4) 과거(科擧)에 대한 무흥미 5) 자성(自省)과 자기공부 6) 예술적인 안목 7) 가뭄 걱정 5. 기아배(寄兒輩. 아이들에게 부치다) 1) 문장 작법 2) 격려(激勵) 3) 아버지로서의 사랑 6. 상숙부서(上叔父書) 7. 사위 조용진(曺龍振) 서명보(徐命輔)와 외손자들에게 준 편지 8. 소결(小結) [부록] 1. 정씨(鄭氏)부인 묘지명 2. 선비유사(先妣遺事) 3. 태교신기서(胎敎新記序)

27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자서전 5. 유아광명( 乳 兒 壙 銘 ) 6. 초원공묘표( 椒 園 公 墓 表 ) 7. 외조모( 外 祖 母 ) 유부인( 柳 夫 人 ) 행장( 行 狀 ) 8. 유목천( 柳 木 川 )[ 漢 奎 ]부인 이씨( 李 氏. 師 朱 堂 希 賢 堂 ) 묘지명 9. 영성부원군박공사장( 靈 城 府 院 君 朴 公 事 狀 ) 10. 석천유고기( 石 泉 遺 稿 記 ) 제4장 석천 신작의 학문 - 심경호 1. 서설 2. 석천의 시경학과 시차고( 詩 次 故 ) 1) 시차고의 편찬( 編 纂 ) 경위( 經 緯 ) 2) 시차고의 편찬의도와 체재( 體 裁 ) 3) 시흥체전술서( 詩 興 替 傳 述 敍 ) 4) 시경이문( 詩 經 異 文 ) 5) 일시( 逸 詩 ) 6) 석천의 국풍론( 國 風 論 ) 7) 석천 시경학( 詩 經 學 )의 의의 [부록1] 시차고 인용서목( 引 用 書 目 ) 3. 석천의 상서학( 尙 書 學 )과 서차고( 書 次 故 ) 1) 석천의 상서 관련 저서 2) 석천 상서학의 특징 (1) 금문고문( 今 文 古 文 )의 문제 (2) 태서편( 泰 誓 篇 )의 문제 (3) 서서( 書 序 )의 문제 (4) 백편상서론( 百 篇 尙 書 論 ) 3) 고상서( 古 尙 書 ) 4) 상서고주( 尙 書 古 注 )

Ⅲ. 연구 저서 요약 273 5) 상서이십오편( 尙 書 二 十 五 篇 )과 상서백편고( 尙 書 百 篇 攷 ) 6) 석천 상서학( 尙 書 學 )의 의의 4. 석천의 역학( 易 學 )과 역차고( 易 次 故 ) 1) 석천 수사본( 手 寫 本 ) 역차고 2) 석천과 역( 易 ) 3) 석천 역차고 체제 (1) 정현( 鄭 玄 )왕필본( 王 弼 本 )의 체제 계승 (2) 상하분경설( 上 下 分 經 說 ) 4) 역차고의 주석 인용을 통해 본 석천의 역설( 易 說 ) (1) 역경의 명칭설 (2) 십익( 十 翼 ) 공자 제작설 (3) 하도낙서설( 河 圖 洛 書 說 ) 및 선천설( 先 天 說 )의 부정 (4) 원형이정사덕설( 元 亨 利 貞 四 德 說 ) (5) 노양노음변점설( 老 陽 老 陰 變 占 說 ) (6) 효위설( 爻 位 說 ) (7) 용구설( 用 九 說 ) (8) 별상불론( 別 象 不 論 ) (9) 효변( 爻 變 )괘변설( 卦 變 說 )의 소극적 수용 5) 석천 역학의 의의 5. 석천의 방학( 傍 學 ) 1) 예학( 禮 學 ) 2) 좌씨학( 左 氏 學 ) 3) 노자( 老 子 ) 연구 4) 불교에 대한 관심 5) 유희( 柳 僖 )와의 교유와 태교신기서( 胎 敎 新 記 序 ) 6. 결어

27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제5장 석천과 다산(茶山) - 심경호 1. 석천과 다산의 만남 2. 석천의 서지형필(棲遲荊蓽)과 다산의 학명지탄(鶴鳴之嘆) 3. 석천과 다산의 사상적 차이 4. 결어 [부록2] 석천과 다산의 교유일지(交遊日誌) [참고문헌] [색인] 1. 인명색인 2. 서명색인 [부록3] 석천의 예고정(隸古定) 고상서(古尙書)

Ⅲ. 연구 저서 요약 275 17. 다산과 석천의 경학논쟁 實是學舍經學硏究會 編譯, 서울, 한길사, 2000. 이 책은 다산 정약용과 석천 신작이 주고받은 서간문과 시문, 신작 연보 등의 자료를 편집하여 원문과 역주를 수록한 책이다. 다산은 18년 에 걸친 긴 유배생활을 끝내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 는 고향 마재로 돌아왔다. 잠시 마음의 안정을 회복한 후에 주변에 살 던 학자들과 활발한 교유를 시작하는데, 신작은 바로 그 최초의 학자였 다. 두 사람의 만남은 1819년 8월 21일 정약용이 상례사전 과 매씨 상서평 을 가지고 신작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목 차> 제1장 다산이 석천에게 보낸 편지 1. 석천에게 답함(1819년 9월) 2. 석천에게 답함(1819년 11월) 3. 석천에게 4. 석천에게 답함(1822년 6월 10일) 5. 석천에게 답함(1822년 6월 13일) 6. 석천에게 답함(1822년 6월 23일) 7. 석천에게 제2장 석천이 다산에게 보낸 편지 1. 다산에게 답함(1819년 8월) 2. 다산에게 답함(1819년 9월) 3. 다산에게 답함 4. 다산에게 답함 5. 다산에게 답함(1819년 10월)

27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6. 다산에게 답함(1819년 11월) 7. 다산에게 답함(1821년 9월) 8. 다산에게 답함(1821년 섣달 그믐날) 9. 다산에게 답함(1822년 6월) 10. 다산에게 답함 11. 다산에게 답함 12. 다산에게 답함(1824년 4월) 13. 다산에게 답함(1825년 7월) 14. 다산에게 답함(1825년 7월) 15. 다산에게 답함(1826년 4월) 16. 다산에게 답함 17. 다산에게 답함 18. 다산에게 답함 19. 석천의 편지 제3장 다산과 석천의 시문 1. 천진소요집 1) 천진사에 올라가다(다산) 2) 천진사에 올라가다 에 차운하다(석천) 3) 밤에 천진사에서 잤는데 절이 퇴락하여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다산) 4) 천진사에서 자다 에 차운하다(석천) 5) 석천옹의 옥벽에 제한 시에 차운하다(다산) 6) 집에 돌아온 다음 도미담에서 배 띄우고 즐겁게 놀았던 일 을 추후로 기술하여 제공에 게 보이다(석천) 7) 차운하여 석천에게 답하다(다산) 2. 강촌에서 설경을 보다가 신 학사 형제가 생각나서 즉흥적으로

Ⅲ. 연구 저서 요약 277 적어서 부쳐 보내다(다산) 3. 돌아온 지 수일 뒤에 나의회포를 추술하여 신 학사 형제에게 보내다(다산) 4. 눈을 대하여 신 학사 형제에게 거듭 부치다(다산) 5. 다산이 눈 속에서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석천) 6. 다산에게 화답하다(석천) 7. 가는 해(다산) 8. 흰 구름(석천) 9. 백씨(伯氏)에게 올림(석천) 제4장 석천 신작의 주요 연보 일승 -다산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27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8. 왕양명과 양명학 유명종, 서울, 청계출판사, 2002.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저서 한국의 양명학 (1983년)과 성리학과 양명학 (1994년)을 종합한 것으로, 전자에서 한국양명학 부분을, 후 자에서 중국 양명학 부분을 취하여 요약하고 종합한 것이다. <목 차> 1장 왕양명의 생애 1. 명나라와 왕양명 2. 왕양명의 삶 1) 양명의 탄생 2) 청년 왕양명 3) 오익(五溺) 4) 산동 향시의 교관 3. 용장(龍場) 역승(驛丞) 1) 용장의 깨달음 2) 지행합일 3) 유근(劉瑾)의 복주(伏奏) 4. 저주(滁州) 정좌와 남경의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 5. 내란의 평정 6. 아동교육론 7. 고본대학(古本大學) 8. 영왕(寧王) 신호(宸濠)의 반란 9. 치량지와 교삼변(敎三變) 1) 교(敎)의 삼변 2) 발본색원론(拔本塞源論)

Ⅲ. 연구 저서 요약 279 3) 경외와 쇄락 10. 사전( 思 田 ) 정벌과 사구결( 四 句 訣 ) 1) 사구결 2) 사전 정벌 3) 이 마음은 광명하다 2장 왕양명의 사상 1. 격물론 2. 심즉리 3. 지행합일 4. 정좌 5. 치량지설 1) 양지설 2) 치량지 6. 심학 1) 정주( 程 朱 )의 심과 리( 理 )의 이원론적 심학 2) 심즉리의 일원론적 심학 3) 양지는 마음의 본체이다 4) 인욕 긍정 7. 학문론 8. 교육론 1) 교육 방법 2) 아동 교육 3) 가정 교육 4) 학교 교육 5) 사회교육 9. 정치 사상

28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시세에 따른 정치 2) 민족 자치 3) 대동 사상 3장 양명 후학 1. 양명학파 1) 왕기( 王 畿 )와 전덕홍( 錢 德 洪 ) 2) 현성양지설( 現 成 良 知 說 ) 3) 태주학파( 泰 州 學 派 ) 4장 조선시대 양명학 1. 조선 양명학파 2. 조선 양명학파의 수립 1) 하곡 정제두 2) 하곡의 문류( 門 流 ) 3) 양명학과 실사구시의 절충 4) 강화학파의 양명학 5) 신 양명학과 독립운동

Ⅲ. 연구 저서 요약 281 18. 한국의 상산학(象山學)과 양명학 김길락, 서울, 청계, 2004.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된다. 1부 한국 상산학과 양명학 은 총론 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장은 본래 저자의 상산학과 양명학 에 수록 되어 있던 내용으로, 고려말 상산학의 수용과 전개과정 그리고 조선 초 상산학의 전개 과정을 밝혀준다. 이 내용은 려말선초에 도입된 주 자학이 송대의 순수 주자학이 아니라 원대(元代)의 주육화회론(朱陸和 會論) 또는 주자학과 상산학의 절충론적 성격을 지닌 주자학임을 밝 혀주고 있다. 이 내용은 성격상 한국의 상산학과 양명학을 소개하는 이 책의 특성에 보다 부합되는 관계로 재수록 했다. 2장에서는 한국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 과정을 소개하고 나아가 양명학 수용 과정에 있어 다양한 학자들에게서 보여지는 육왕학적 성향들을 소개함과 아 울러 하곡 정제두의 사상적 특성과 더불어 한국 양명학의 발전 과정 으로서의 강화학파와 백암 박은식의 양명학적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한국 양명학의 위치와 내용 그리고 양명학과 한국 양명학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 양명학의 특성을 밝혀 준다. 제2부 한국 육왕학의 형성 은 본서의 각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서 고봉 기대승과 율곡 이이, 만회 권득기, 명재 윤증을 비롯하여 백 호 윤휴의 철학사상을 육왕학적 입장에서 재조명하면서 이들의 사상 속에 내재된 육왕학적 성향과 특성을 체계적으로 밝혔다. 마지막 3부 하곡 정제두와 한국 양명학의 전개 에서는 먼저 9장 과 10장에서 하곡 정제두의 이기론과 심성론을 중심으로 양명학의 한 국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11장과 12장에서는 하곡 정제두와 강화학파 그리고 양명학적 실학파와 백암 박은식의 철학사상 속에서 근대지향적 성격을 밝혀냄으로서, 한국 양명학의 특성, 즉 한국 양명

28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학의 근대정신을 새롭게 체계화했다. 이러한 내용에서 볼 때, 본서는 단지 한국 양명학의 역사적 서술이 나 소개의 측면보다는 이러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주자학자들의 사상 속에 내재된 육왕학적 성향을 새롭게 밝혀냄은 물 론 근대지향적 성격과 같은 한국 양명학의 특성을 밝혀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목 차> 제1부 한국 상산학과 양명학 제1장 한국 상산학의 수용과 전개 1. 들어가는 말 2. 고려말 상산학의 수용 3. 고려말 상산학의 전개 4. 조선초 상산학의 전개 5. 나오는 말 제2장 한국 양명학의 형성과 전개 1. 들어가는 말 2.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 3. 양명학 수용기의 육왕학적 성향 4. 하곡 정제두와 한국 양명학의 전개 5. 한국 양명학의 발전 과정 6. 나오는 말 제3장 한국 양명학의 특성 1. 들어가는 말 2. 한국 양명학의 위치 3. 한국 양명학의 내용

Ⅲ. 연구 저서 요약 283 4. 양명학과 한국 양명학의 비교 5. 나오는 말 제2부 한국 육왕학의 형성 제4장 고봉 기대승의 육왕학적 성향 1. 들어가는 말 2. 학문적 연원 3. 철학 사상 4. 육왕학적 성향 5. 나오는 말 제5장 율곡 이이와 육왕학 1. 들어가는 말 2. 육왕학의 요지 3. 육왕학의 수용과 이이 4. 율곡학의 육왕학적 성향 5. 나오는 말 제6장 만회 권득기의 육왕학적 심학 체계 1. 들어가는 말 2. 권득기의 학문적 연원 3. 철학적 이론 체계 4. 격물설 5. 실천론 6. 나오는 말 제7장 명재 윤증의 육왕학 1. 들어가는 말 2. 학문형성과 연원 3. 철학 사상

28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육왕학적 성향 5. 나오는 말 제8장 백호 윤휴의 육왕학적 성향 1. 들어가는 말 2. 학문 형성과 연원 3. 철학 사상 4. 육왕학적 조명 5. 나오는 말 제3부 하곡 정제두와 한국 양명학의 전개 제9장 하곡 정제두의 이기론 1. 들어가는 말 2. 생리설 3. 이기합일론 4. 체용일원론 5. 나오는 말 : 생리설의 특성 제10장 하곡 정제두의 심성론 1. 들어가는 말 2. 성정합일론 3. 사단칠정론 4. 나오는 말 제11장 한국 양명학의 근대정신의 형성 1. 들어가는 말 2. 하곡 정제두의 근대정신 3. 강화학파의 근대정신 4. 양명학적 실학파의 근대정신 5. 나오는 말

Ⅲ. 연구 저서 요약 285 제12장 백암 박은식과 근대정신의 전개 1. 들어가는 말 2. 박은식의 근대정신 형성 3. 박은식의 애국계몽운동 4. 박은식의 독립운동 5. 나오는 말

28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0. 하곡 정제두 김교빈 편저, 서울, 예문서원, 2005. 하곡 정제두에 관한 기존의 연구논문 가운데에서 13편의 논문을 선 정하여 모으고, 하곡사상에 대한 해제를 덧붙인 논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목 차> 해제 : 한국양명학의 표상, 하곡 정제두 - 김교빈 제1부 하곡학의 성립과 한국양명학의 특질 하곡학의 기본방향과 단계성 - 윤남한 양명학의 한국적 변용 - 최재목 조선 후기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 - 김교빈 제2부 정제두의 철학사상 하곡 철학의 양명학적 이해 - 유승국 하곡 정제두 철학의 양명학적 전개 - 이해영 하곡 정제두의 심성론 연구 - 김길락 하곡 이기론의 구조에 관한 연구 - 김교빈 제3부 경학사상과 지행의 문제 하곡 정제두의 지행일체관 - 박연수 정제두의 중용설 에 나타난 반주자학적 경전 해석 - 김낙진 양명의 양지설과 하곡의 생리설 비교 연구 - 박홍식 대학설 을 통해 본 하곡 정제두의 경학 사상 - 김교빈 제4부 하곡학과 강화학파 강화학파의 양명학 전통 - 유명종 심학(양명학)의 역할과 강화학파의 성립 - 금장태

Ⅲ. 연구 저서 요약 287 21. 이건창 문학연구 이희목, 서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5. 영재 이건창의 문학을 연구한 책. 영재 이건창은 한말사대가의 일 원이자 창강이 선정한 여한구가의 일원으로 시와 산문, 즉 한문학의 가장 중요한 두 방면에 걸쳐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던 인물이다. 또한 개항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주체 적 절조를 지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이건창의 문학에 관한 저자의 그동안의 성과를 총망라했다. 그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목 차> 책머리에 1부 영재 이건창 문학연구 1. 서언 2. 영재의 역사적 위치와 시대 의식 3. 영재의 시세계 4. 영재의 산문 5. 결어 2부 명미당집 의 간행과 초고본 영재 이건창의 양명학과 문학 영재의 북유시초 에 대하여 경재 이건승의 시와 서행별곡 전주이씨 덕천군파 가승 해제 찾아보기

28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1. 원교 이광사 문집 심경호길진숙유동환 공편, 서울, 시간의 물레, 2005. 원교 이광사 문집의 정본(定本)을 구축하고 교감한 것이다. 기본 저 본으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원교집선 과 규장각 소장 두남 집 을 사용하고, 그 외에 여러 필사본들을 참조했다. 각 작품의 원문 과 출처, 오탈자 등을 함께 수록했다. 원교집 과 두남집 의 편목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책 앞 부분에 정리해 두었다. <목 차> 원교 이광사의 생애와 시문 자료 전주 이씨 덕천군파 가계도 원교집선 과 두남집 의 편목 일러두기 제1권 을해옥(乙亥獄) 이전 시 제2권 을해옥 이전 산문 제3권 두남집 을해고(乙亥稿)(1) 시 제4권 두남집 을해고(2) 문 제5권 두남집 병자고(丙子稿)(1) 시 제6권 두남집 병자고(2) 문 제7권 정축무인고(1) 시 제8권 정축무인고(2) 문 제9권 동국악부 제10권 두남집 시문 습유(정축 6월 이후, 무인기묘경진, 1757~1760) 제11권 부령적소 신사임오고(1): 시

Ⅲ. 연구 저서 요약 289 제12권 부령적소 신사임오고(2): 문 제13권 수북집 습유(拾遺)(1) 시 제14권 수북집 습유(2) 문 제15권 서결 7254자(字) 서결 서결 전편 7254자 서결후편 서결후편 상 서결후편 하 제16권 두남집 서 두남집서 이광려찬(李匡呂撰) 원교선생묘지(圓嶠先生墓誌) 이광찬의 평두남(平斗南) 편목(編目) 제17권 원교 관련 자료 집성 * 선고 수록, 이광사와 이광신의 이기론 왕복 서한 * 이광신의 도보에게 답한 서신[答道甫書] * 이광신의 도보의 이기설을 변석함[辨道甫理氣說] * 이광사와 이광찬의 왕복서한 대학장구비판 격물치지론 의심본론(意心本論) 지행합일론 대학관(大學觀) * 이광사 주역설(周易說)에 대한 이광찬의 논평 * 이광사 시문 유습(遺拾): 대동시선 권6 수록시 * 이광사 시문 습유(拾遺) 특시(特詩) * 이광사의 학술과 사상

29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2. 원교와 창암 글씨에 미치다-원교창암 유묵 최준호, 광주, 한얼미디어, 1985. 원교와 창암(蒼巖)의 유묵(遺墨)을 서술한 저서다. 필자가 처음 원 교창암유묵(圓嶠蒼巖遺墨) 을 접하게 된 것은 십수 년 전 아산 조방원 (趙邦元)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필자는 이 서첩에 써 있는 글씨를 거의 해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서첩은 원교 이광사 선생이 전서(篆書)로 단아하게 구풍우모(口 楓牛毛)를 쓰면서 시작된다. 원교는 다양한 글씨체로 서첩 앞면을 썼 고, 그 뒤 창암 이삼만(李三晩) 선생이 축해이산(蹴海移山)을 시작으 로 서첩 뒷면을 채웠다. 그래서 이 서첩을 원교창암유묵 이라고 한 것이다. 서첩의 외형은 가로 31.3, 세로 42.6, 두께 3, 무게 2.7 이 다. 표지를 제외하고 앞뒷면을 합쳐 58면의 병풍식 서첩으로, 펼치면 그 길이가 940 에 이르며, 가로 94.5, 세로 42.6 인 한 장의 긴 한지를 3면으로 접어 계속 이어 붙였다. 접어 붙인 흔적은 창암 선생 의 글씨가 쓰인 면에서만 보이는데, 1.5 가량 덧대어 이었다. 종이 는 천년 간다는 한지를 여러 겹으로 두텁게 만들었다. 수천수만 번 접고 폈을 테지만 아직도 접음새와 이음새가 탄탄하다. 매끄러운 앞면에 원교 선생이 먼저 글씨를 썼다. 원교 선생의 글씨 는 112자이고, 창암 선생의 글씨는 발문 53자를 포함하여 110자이다. 원교 선생의 글씨는 1면부터 30면까지 채워져 있다. 하지만 창암 선 생의 글씨는 3면부터 시작한다. 첫 두 면은 다른 한지로 일부분이 덧 대어져 있는데, 그 사이로 바탕 글씨의 절반 정도가 보이지만 해독은 어렵다. 그 덧대어진 한지를 제거하면 그 속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Ⅲ. 연구 저서 요약 291 필자는 바로 이 서첩에 있는 원교의 글씨의 근원과 내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목 차> 서문 일러두기 제1부 원교 이광사, 구풍첩을 남기다 1장 곤궁해도 즐기고 형통해도 즐긴다 2장 그칠 바를 알라 의문을 쌓아 두지 말라 3장 외로운 봉우리로 해가 저무네 4장 줄 없는 거문고, 구멍 없는 피리일지라도 5장 고기는 연못에서 놀고 새는 정원에서 지저귀네 6장 꽃 밑에서 달과 술잔을 주고받네 7장 이슬로 붉은 먹을 갈아 주역에 점을 찍네 제2부 창암 이삼만, 스승의 뒤를 이어 쓰다 8장 바다를 발로 차서 파도를 일으키고 9장 골짜기가 막힘없이 통하고 기이함이 비길 데 없다 10장 스스로 마음에 드는 것을 마음에 둔다 11장 밝은 달이 스스로 내려와 나를 비추니 12장 몇 줄 본떠 그저 뒤를 잇고자 한다 제3부 한국 서예사의 르네상스, 원교창암추사 1.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 2. 자주적인 예술세계를 구현한 창암 이삼만 3. 해동제일통유 추사 김정희 4. 세 명필이 세상에 남긴 일화

29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부록 한국서예사 개관 인명록 원교창암유묵 원본

Ⅲ. 연구 저서 요약 293 23. 하곡 정제두의 사상 박연수, 서울, 한국학술정보, 2007. 하곡에게서 진리를 향해 열린 마음,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개혁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하곡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여러 학설을 두 루 배우고 연구하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열정 과 헌신을 다했다. 또한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이웃과 백성들을 사랑 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실현하고자 했다. 하곡은 기존의 학설과 학 풍, 사회적 규범과 제도, 정치제도와 현실 등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개혁을 주장하고, 그 방안을 제시였다. 그는 개방이든 개혁이든 본연의 자기 자신에 충실하고 진실한 것이 그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곡의 학문, 세계관, 인간관, 정치철학, 윤리, 지행론 및 수양론까 지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하곡 사상의 모든 분야를 원문을 근거로 세밀하게 논했다. <목 차> 주제 1 : 하곡의 생애와 문제의식 Ⅰ. 들어가는 말 Ⅱ. 하곡 정제두의 생애 1. 탄생과 가문 2. 학문과 생애 Ⅲ. 시대적 상황과 문제의식 1. 시대적 상황 2. 하곡의 문제의식 주제 2 : 하곡 정제두의 학문관 Ⅰ. 들어가는 말

29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Ⅱ. 유학의 전통과 핵심 1. 유학의 기원 2. 공맹의 사상 3. 송대의 성리학 4. 주왕학에 대한 이해 Ⅲ. 학문의 목표 및 방법 1. 학문의 목표 2. 학문하는 자세 3. 학문의 방법 Ⅳ. 맺는 말 주제 3 : 하곡 정제두의 세계관 Ⅰ. 들어가는 말 Ⅱ. 유기체로서 세계 1. 유기체적 세계관 2. 일체적 세계관 3. 역동적 세계관 Ⅲ. 궁극적 실재로서 하늘 또는 태극 1. 궁극적 실재로서 태극 2. 근원적 실재로서 하늘 3. 궁극적 실재의 성질 Ⅳ. 근원적 실재의 속성 1. 다양한 종류의 이치 2. 이기일체론 Ⅴ. 궁극적 실재의 원리 1. 중단 없는 전일( 專 一 )의 성( 誠 ) 2. 공평과 화합의 중( 中 )

Ⅲ. 연구 저서 요약 295 Ⅵ. 개체의 공통성과 차별성 1. 개체의 공통성과 차별성 2. 인( 人 )물( 物 )의 차이 Ⅶ. 맺는 말 주제 4 : 하곡 정제두의 인간관 Ⅰ. 들어가는 말 Ⅱ. 천지만물과 인간 1. 천지의 창조적 법칙성 2. 천지만물과 일체 3. 만물의 주재와 권형( 權 衡 ) Ⅲ. 인간심성의 본질적 특성 1. 인간의 본질로서 마음 2. 육신의 주재로서 마음 3. 심신의 본질적 구조 Ⅳ. 심신의 원리와 기능 1. 심성의 근본으로서 성( 誠 )과 중( 中 ) 2. 의리( 義 理 )의 고유성 3. 의리의 자각과 구현자로서 양지 Ⅴ. 맺는 말 주제 5 : 하곡의 윤리도덕 철학 Ⅰ. 들어가는 말 Ⅱ. 도덕의 의미와 당위성 1. 도덕의 일반적 의미 2. 하곡에 있어서 도덕의 의미 Ⅲ. 도덕적 가치와 원리 1. 시비선악의 기준

29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도덕의 근본원리 Ⅳ. 도덕의 주체와 도덕성의 실현 1. 도덕의 주체 2. 도덕성의 실현 Ⅴ. 맺는 말 주제 6 : 하곡의 정치 철학 Ⅰ. 들어가는 말 Ⅱ. 정치 목적과 강령 1. 주왕의 정치 목적 2. 하곡의 정치 목적 Ⅲ. 통치자의 책임과 의무 1. 성덕( 聖 德 )과 민생 2. 신독의 정치 3. 공직자의 도리 Ⅳ. 통치의 원리 1. 의사소통과 화합 2. 중( 中 )과 공평[ 平 ] 3. 명( 名 )과 실( 實 )의 일치 Ⅴ. 구체적인 개혁안 1. 기본 원칙 2. 관리의 임용과 책임 3. 토지제도와 세제 4. 군역제도 5. 왕권강화와 책임행정 Ⅵ. 맺는 말 주제 7 : 하곡 정제두의 지행론

Ⅲ. 연구 저서 요약 297 Ⅰ. 들어가는 말 Ⅱ. 지의 의미 1. 주 왕의 지(知) 2. 하곡의 지 Ⅲ. 지행의 이론 1. 주 왕의 지행론 2. 하곡의 지행론 Ⅳ. 맺는 말 주제 8 : 하곡철학의 위상과 특징 Ⅰ. 하곡 철학의 위상 Ⅱ. 하곡 철학의 특징 부록 1 : 하곡선생연보 부록 2 : 참고 문헌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하곡 정제두 1. 하곡 정제두의 사상에 있어서 인간이해에 관한 연구 박연수, 성균관대학교, 1990년 8월 이 논문은 인간소외를 극복하고 진정한 인간 주체성의 실현을 위한 학문으로서 하곡의 사상을 고찰한 것이다. 핵심 내용은 동서양의 인 간관과 비교함으로써 하곡의 인간관의 특징을 드러내고자 했다. <목 차> 제1장 들어가는 말 제1절 문제의 제기 1. 현대사회와 인간상의 특징 2. 인간소외와 인간성 회복 제2절 하곡 사상의 배경과 형성 1. 하곡의 시대와 문제의식 2. 하곡의 학문관 3. 인간 주체성의 고양으로서 하곡 철학 제3절 연구내용과 방법

30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하곡 사상에 대한 기존연구 요약 2. 연구방법과 내용 제2장 동서양과 하곡의 인간관 제1절 동서양의 인간관 1. 동서양 인간관의 특징 2. 도불과 유교적 인간관의 특징 제2절 송명철학과 하곡철학의 인간관 1. 정주의 성즉리 2. 육왕의 심즉리 3. 하곡의 인간관 제3장 주객일체의 인식주체로서 인간 제1절 주자의 주객 이원론적 사유 1. 인식대상으로서 사물의 리 2. 인식주체와 인식작용 3. 거경궁리와 활연관통 제2절 왕양명의 주객 일원론적 치양지론 1. 심체로서 선험적 양지 2. 의( 意 )의 지향성으로서 사물 3. 양지의 치지로서 사상마련( 事 上 磨 鍊 ) 제3절 하곡의 주객일체론 1. 인식의 근거로서 주객일체의 성( 性 ) 2. 의( 意 )의 체용으로서 지( 知 )와 물( 物 ) 3. 실리와 실심으로서 중( 中 )과 성( 誠 ) 제4장 도덕의 주체로서 인간 제1절 인간주체의 명덕과 보편적 천도 1. 인간 주체의 명덕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01 2. 보편적 원리로서 천도 3. 덕과 도의 합일 제2절 가치론적 당위로서 인도( 人 道 ) 1. 명명덕으로서 지성( 至 誠 )과 치중화 2. 천덕( 天 德 )과 왕도( 王 道 )의 근본으로서 신독 3. 명덕과 친민( 親 民 )의 일체 제5장 지행합일의 주체로서 인간 제1절 주자학파의 지행이론 1. 주자의 지행이론 2. 후기 주자학파의 지행이론 제2절 왕양명의 지행합일론 1. 지행의 분리에 대한 비판 2. 지행의 본체로서 지행합일 3. 치양지와 성의( 誠 意 ) 제3절 하곡의 지행일체론 1. 지와 행의 의미 2. 지행일체의 본체로서 명덕 3. 명명덕으로서의 지행의 일체 제6장 맺는 말-하곡사상의 영향과 의의 제1절 조선조 양명학과 하곡사상의 특징 1. 하곡 이전의 양명학 수용 2. 하곡사상의 특징 3. 강화의 하곡학파 제2절 하곡 사상의 의의 1. 주체성 확립으로서 하곡철학 2. 현대적 의의

30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내용 요약> 필자에 의하면 하곡은 성현의 가르침의 핵심을 인간의 심성을 밝히 고 실현하는 심학( 心 學 ) 또는 성학( 性 學 )으로 규정하고, 인간 주체의 심성을 해명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하곡은 인간보 편의 본질적 특성을 심성에서 찾으며, 그것을 명덕( 明 德 ), 생리( 生 理 ), 양지, 인( 仁 ) 등으로 설명한다. 그는 인간 본연의 심성을 부단한 창조 적 특성과 다른 존재와의 일체적 감통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 주장하 며, 이러한 특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천지에 두루 밝게 통하여 만물을 질서지우고 생육 生 育 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곡은 천지의 성과 나의 성이 하나로 관통해 있으며, 명덕으로서 나의 덕을 지극하게 함으로써 지극한 도를 이룬다고 하며, 지( 知 )와 물( 物 )을 의( 意 )의 체용이라고 하며, 실리와 실심으로서의 성( 誠 )은 감 통불이( 感 通 不 貳 )로 내외를 합하는 것이라고 하는 등 주객일체의 본 원을 강조한다. 이러한 일체의 인식에 이르는 방법으로 성의( 誠 意 ), 신독을 내세운다. 하곡은 도덕의 내재성과 주체에 의한 도덕원리의 창조적 구현을 주 장한다. 하곡이 인간의 심성을 명덕이라고 한 것은 이른바 현대적 의 미에서의 도덕감(moral sentiment)의 내재성과 도덕원리(moral principle)에 대한 자각 및 실현능력을 말한다. 그 심성의 덕을 전체로서 말 하면 만물일체의 도덕감으로서 인( 仁 )이라 하고, 그 본체의 밝음으로 말하자면 이의 구현으로서 양지라고 한다. 그러나 인( 仁 )과 양지란 마 치 불과 그 불의 비추임처럼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곡은 이러한 주체의 명덕을 떠나 보편적이고 객관적 도리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극한 덕[ 至 德 ]이 곧 지극한 도[ 至 道 ] 라 고 하여 자신의 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이 보편적 인도를 실현하는 것 이라고 하며, 명덕과 친민을 분리할 수 없는 체용으로 말한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03 하곡은 지( 知 )를 사단의 하나인 시비지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 라 오상 전체에 대한 지를 말하고, 마음의 천리로서 오상 즉 성( 性 )과 측은, 수오, 사양, 시비 등의 정( 情 )을 별개로 구별하지 않는다. 이러 한 점에서 그의 지( 知 )란 이지적일 뿐 아니라 뜨거운 감정과 실천적 의지를 내포하는 지이다. 하곡이 말하는 명덕이란 성( 性 )과 지( 知 )를 포괄하는 것이며, 또 덕 자체의 명성( 明 性 )으로 스스로 비추는 것이 니, 지행은 그 본원에서 일체인 것이다. 또한 그는 양지를 체용으로 말하여 양지의 체를 미발의 중( 中 )으로 지선( 至 善 )이라 하고, 양지의 용을 화( 和 ) 또는 시비선악의 분별적 구현으로 말하며, 체용은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곧 지행이 근원적으로 일체임을 주장한 것이 다. 그는 양지는 명덕의 밝음으로서, 그 자체가 이미 지( 知 ) 즉 밝음 과 행( 行 ) 즉 비춤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이다. 다만 지행일체 의 실현은 심체로서의 성( 性 )의 명덕과 양지를 확충하는 것이며, 이러 한 확충은 지성( 至 誠 )과 치중화( 致 中 和 )에 달려있으며, 보다 근본적으 로는 신독에 있다고 한다. 하곡은 조선조 유학자 가운데 양명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 땅에 양명학을 정착시켰으며, 이른바 강화학파를 형성하여 후대에 전했다. 그의 철학은 실리의 실심으로 실사에 힘써 실행하고자 하는 심학이며 실학이었다. 즉 주체의 덕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보존을 통해 실심 을 확립하고 여기에 근본을 두고, 실제의 일에서 독실하게 실천하고 자 한 실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주체성의 확립에 투철하여 자아와 다른 존재, 도와 덕, 지식과 실천의 문제를 인간주체성 안에서 통일시키고 인간주체의 지위를 고 양시켰다. 그리하여 인간 주체성의 회복과 확립이야말로 모든 문제해 결의 관건이 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천덕과 왕도가 나의 신독에 있 음을 주장하고, 또한 신독을 정심( 正 心 ), 기강( 紀 綱 ), 휼민( 恤 民 )의 근

30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본이 된다고 하여 참다운 주체에 대한 자각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하곡의 철학은 상실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주객의 대립을 해소하고 상호이해의 길로 인도하며, 가치 및 윤리에 둔감한 현대인에게 날카로운 시비의 분별과 뜨거운 인류애를 불러일으키고, 양심에 입각한 실천을 조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한다. 2. 하곡 철학사상에 관한 연구 존재론인성론 사회의 식에 대한 구조 적 이해를 중심으로 김교빈, 성균관대학교, 1992년 8월 이 논문은 하곡이 젊었을 때 주자학에서 양명학으로 전환하는 계기 가 되었던 격물의 이해와 관련된 리의 이해를 통해, 그것이 그의 학 문체계에서 어떻게 논리적으로 해결되었는지 고찰했다. <목 차> 제Ⅰ장 머리말 1. 생애와 시대 배경 2. 문제 제기와 연구 방법 제Ⅱ장 이기론의 구조 1. 리의 구조 1) 물리(物理) 2) 생리(生理) 3) 진리(眞理) 4) 구조적 차이의 원인 2. 이기의 관계 1) 일원적 지평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05 2) 이기의 관계 3. 기의 구조 1) 기의 조통(條通) 2) 생기(生氣) 3) 호연지기 4. 선유(先儒)들의 이기론에 대한 하곡의 평가 5. 소결(小結) 제Ⅲ장 심성론의 구조 1. 심즉리와 성즉리의 구조적 이해 1) 심즉리 2) 성즉리 3) 심즉리와 성즉리의 체용관계 2. 심성(心性)과 양지의 관계 1) 양지의 개념 2) 심성과 양지의 관계 3. 양지 체용의 구조 1) 양지의 체용 2) 양지의 체용과 선악 4. 소결 제Ⅳ장 사회 인식과 실천관의 구조 1. 인식과 실천의 관계 1) 격물치지에 대한 이해 (1) 고본대학 에 입각한 대학설 (2) 격물치지의 이해 (3) 격물치지에 대한 주체적 해석 (4) 격물치지에 대한 실천적 해석

30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지행과 양지 (1) 지행과 양지 (2) 지행일원( 知 行 一 元 ) 2. 하곡철학의 사회적 기능 1) 일원구조의 사회적 기능 2) 중층( 重 層 )구조의 사회적 기능 3. 소결 제Ⅴ장 결 론 1. 하곡 철학의 가치와 한계 1) 하곡 철학의 가치 2) 하곡 철학의 한계 2. 하곡 철학의 사상사적 위치와 남는 문제 <내용 요약> 이 논문은 하곡의 이기론, 심성론, 지행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는 이기론에서 하곡이 말하는 세 가지 리, 즉 물리, 생리, 진리 의 개념을 살펴보고, 리와 기의 관계, 세 가지 종류의 리에 각각 대응 하는 기로서 조통, 생기, 호연지기를 논했다. 물리 란 필연적인 존재 의 법칙으로 무생물과 생물들이 이러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 다. 생리 와 진리 란 인간의 특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리는 인간 이 외의 존재와 구별되는 도덕적 능동성을 지니고 있고, 오묘한 생명력 을 실천을 통해 표출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리의 성을 기질 지성이라고 한다. 생리 가운데 진체를 진리라고 하며, 당위적 법칙이 라고 한다. 진리와 생리를 체용으로 파악한다. 이기를 일체의 양면성 으로 이해하며, 일체로서 이기는 능동적이며, 리 우위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하곡은 양명의 사상에 임정종욕( 任 情 縱 欲 )의 가능성을 있다고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07 생각하여 그 속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했다고 한다. 심성론에서는 심즉리 와 성즉리 두 명제를 다 수용하는 하곡은 생 리와 진리를 동시에 갖춘 존재로 인간을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 하면 심즉리의 리란 생리이며, 그것은 만물의 이치를 포괄하며 만물을 통제하는 근원이라고 한다. 성즉리의 성이란 마음의 천리이며, 도의 핵심이요, 구체적으로는 명덕이라고 한다. 이기론에서 진리와 생리를 체용으로 파악했듯이 심성도 체용으로 관계로 파악한다. 또한 심성과 양지의 관계를 밝히고, 양지체용도를 중심으로 양지를 체용으로 설명 한다. 양지는 단순한 지각이 아니라, 도덕적 실천을 내재한 능동적 창 조성으로 이해한다. 즉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이라고 한다. 양지의 체 는 인의예지이고 마음의 체인 성에 해당하며, 지선하다. 양지의 용은 마음의 용인 정에 해당하며 선악이 공존한다. 마지막으로 지와 행 또 는 사회인식과 실천의 문제를 다룬다. 필자는 대학에 관한 하곡의 학 설을 다루면서, 격물치지에 대한 하곡의 학설은 첫째 본래 내 마음속 에 양지가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주체를 지 향하며, 둘째 양지의 본체가 마음의 발현인 의( 意 )을 통해 나타나며, 더 구체적으로는 그 뜻이 담긴 일[ 事 ]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하 는데서 보이는 실천 지향적이라고 한다. 주체 지향은 사실판단이나 가 치판단의 기준이 모두 내 속의 밝은 덕에 있으므로 내면의 덕인 양지 를 밝히는 일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이 같은 주체에 대한 강조 는 양지가 모든 인간에 똑같이 들어 있기 때문에 평등의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실천 강조는 마음의 본체를 밝히는 일이 객체인 사 물을 바로 잡는 일이기 때문에 격물과 치지가 다른 일이 아닌 일원( 一 元 )이었던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행과 양지의 관계에 대하여, 하곡은 양지는 곧 양능이며 인간이 지닌 본원적 요소로 보았다. 양지양능은 지선인 동시에 인간의 도덕

30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주체성이며, 창조적 실천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고, 그 구체적 표현이 지행이다. 따라서 지행 또한 분리된 것이 아니며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곡 철학의 일원구조는 이기일원, 체용일원 등으로, 사회적으로 앎 과 행함의 불일치를 합리화하려는 대다수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비 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하곡 철학의 중층구조는 이기 및 심성 그리고 양지 등에서 나타나며, 사회 속에서는 평등의식과 계급의식의 이중 의식으로 나타나며, 보수적인 면과 진보적인 면을 함께 지닌 것 으로 나타난다. 3. 하곡 정제두의 심체에 관한 연구 전택원, 고려대학교, 1995년 8월 이 논문은 하곡 철학의 핵심이며, 시종이요, 근원적 주제를 심체로 파악하고, 하곡이 깨달은 심체에 대하여 심체와 관련된 개념, 심체의 앎[知], 심체의 내용, 심체의 실현 등을 중심으로 하곡 철학의 특성을 해명했다. <목 차> 제1장 서 론 제2장 하곡의 심체 제1절 근원주체로서의 심체 제2절 조리(條理) 제3절 이체(理體) 제4절 생리(生理) 제3장 심체의 체득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09 제1절 지( 智 )의 방향 제2절 지( 知 )의 방향 제3절 근원적인 앎에 대한 두 가지 접근 제4장 심체의 내용 제1절 명덕 제2절 인( 仁 ) 제3절 공( 公 ) 제5장 심체의 실현 제1절 선악의 문제 제2절 실천의 문제 - 지( 止 )와 범( 犯 ) 제3절 학문 제6장 결 론 <내용 요약> 필자는 하곡이 23세 무렵에 양명의 글을 읽고, 양명학에 공감하면 서도 임정종욕( 任 情 縱 欲 )의 폐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 것을 하곡과 양명의 만남이요, 또한 하곡의 철학적 태도, 즉 반성적이고 비 판적인 태도, 그리고 근원적 사고와 주체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라고 한다. 같은 해 부인과의 사별, 이듬해 전시( 殿 試 ) 낙방 등의 사 건 가운데 하곡은 외부와 차단하고 내면세계로, 실용적인 과거공부에 서 근본적인 경전연구로 근원 추구 의 먼 길을 떠난다. 10여 년간 열 정을 기울여 학문을 탐구한 결과, 하곡은 심체와 그것의 실천인 심법 ( 心 法 )이 근원적인 주제이며, 그것을 탐구하는 것은 생명보다 소중한 진리를 스스로 얻고자 한 것이지, 양명학에 충실하려고 한 것이 아니 라고 한다. 하곡은 유학의 근원적인 주제이며, 참다운 학문이란 마음 의 바탕 즉 심체를 얻는 것이라고 한다. 깨달음으로써만이 획득될 수

31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있는 심체를 하곡은 양지라고 한다. 하곡은 요순우, 공맹으로 이어지는 유학의 근원적인 철학적 주제를 심체로 파악하고, 심체의 획득을 위해 시속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문하는 주체로서 얻음 에 도달하기까지 털끝 같은 차이도 가려내는 날카로움과 천지간의 큰 도리를 맞이하는 문제의식 을 붙들어야 한다고 한다. 하곡은 경험세계의 인식 가운데 구체적인 대상에서 성립하는 이치를 조리라고 한다. 그는 인식주체와 대상 간 에 성립하는 조리를 이치로서 인정하지만, 이와 같은 조리가 근원적 인 지( 知 )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가 구 체적으로 현상하는 경험속의 이치의 근거가 되는 것이 심체라고 해서 조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 내의 사( 事 )와 물( 物 )에 조 리를 주는 것은 마음이며, 이러한 마음은 물과 사에 이치를 주는 능 력이면서 개별적인 조리에 한정되지 않는 마음 자체의 이치의 근원을 스스로 지닌다는 것이다. 하곡은 사람이 다른 사물이나 동물들과 다 른 것은 신령스러운 밝음 으로서 심체를 소유하며, 이것이 곧 만물의 근원된 이치로서 종주( 宗 主 )이며 대본( 大 本 )이라고 단정한다. 하곡은 성( 性 )을 이체( 理 體 )이며, 천명이고, 마음의 전체라고 한다. 그것은 생명을 품은 우주적 근원이자, 인간이 그의 존재를 소급하여 밝힐 수 없는 미지( 未 知 )이면서 또한 모든 이치와 인간의 도덕성이 밝게 자리하는 그러한 절대라고 한다. 생리란 천지의 생( 生 )을 품수받 은 이 지상의 목숨이며, 동시에 천리를 내장하는 이체( 理 體 )라고 한 다. 하곡에 있어서 마음[ 心 ] 이란 단지 인식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본체라고 한다. 하곡은 마음의 본체[ 心 體 ] 는 사변적인 분석대상이 아 니라 체득, 즉 깨달음을 통해서 이해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심체로서 의 양지는 분석적, 경험적 지식으로서의 앎과 대조적인 체험적, 근원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11 적 자각으로서 앎이라고 한다. 하곡은 본체로서의 마음에 서면 온갖 이치가 요연하게 드러나며 경전의 의미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학은 간이직절( 簡 易 直 截 )한 것이며, 유학의 원래 모습도 이 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체득하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과정이나 안내가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방법상의 결함이 남는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존재근원에 대한 조명이 명덕이며, 이에 대한 자각이 양지이다. 양지는 필연적으로 삶에 내재하는 힘으로서 실현을 이루고자 한다. 지행합일이란 자각된 이성 자체가 그 자각과 실천성을 아우르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필자는 견문이나 추론적 지식과 구별하여, 하곡이 말하는 지 또는 양지를 근원적 앎 이라고 부른다. 하곡의 실학은 자각된 근거를 가지 고 자신의 심성을 닦아 펴내는 일에 다름이 아니라고 한다. 단순한 방법론이나 수단에서의 효율과 합리의 추구가 아니라 행위와 실천의 근거에 얼마나 자각성을 갖추어 있느냐에 따라 학문의 실( 實 )과 가 ( 假 )가 나뉘는 것이라고 한다. 하곡은 지식에 대해 문을 닫아걸고 오 직 혼자서 자신의 근원과 생명을 발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한 다. 또한 하곡은 일체의 교조주의를 배척하고 원천을 동시에 제공하 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하곡의 심체를 생명과 근원, 그리고 정신이 하나로 펼쳐지는 세계로 설명한다. 그는 심체를 명덕, 즉 밝은 깨달음 으로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하며, 그것은 경험적 인식이나 추 상적 관념도 아니라고 한다. 또한 양지는 도덕적 근거이면서 인지능 력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하곡은 양지를 지와 더불어 판단력, 의지력을 갖춘 전체성으로 파악하여, 인간의 정신 영역인 지 정의( 知 情 意 )를 아우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필자는 하곡의 심체를 인( 仁 )과 공( 公 )으로 말한다. 필자는 하곡의 진행방향은 항상 근원성에로의 침잠하는 한편, 이로

31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부터 실천의 근거를 확보하려는 요구가 병행한다고 한다. 따라서 자 신의 근원에로 깊이 갈수록 바깥의 실천적 근거를 강화할 수 있으며, 그러한 실천이 생명을 북돋우는 힘으로서 스스로 확인되지 않으면 결 코 남에게로 옮기지 않는 자기 감시가 지켜지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 는 유학에서 근원성이 심체라면, 그 실천성은 자기의 근원됨으로 남 에게 일치시키려는 일이관지(一以貫之)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필자는 하곡의 지행합일을 본질 연장을 축으로 한 앎과 행위화의 동질적 연 장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필자에 의하면 하곡의 학문은 자신의 주체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심체, 즉 인간의 근원성을 추구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철학 을 세웠다고 한다. 4. 하곡철학 연구 傅濟功, 성균관대학교, 2000년 2월 이 논문은 하곡의 심성론, 자연관, 인식론, 실천론에 대하여 현대적 시각에서 검토하고, 하곡사상의 원류를 분석하며, 그 밖의 철학자들의 사상과 비교함으로써 하곡철학의 핵심적 주장과 특색을 분명히 밝히 고, 이를 통하여 하곡철학의 체계와 그 위상을 고찰한 것이다. <목 차> 서 론 Ⅰ. 하곡의 생애, 배경, 학문성향 Ⅱ. 문제의 제기와 연구 방법 제1장 심성일원적 본체론 Ⅰ. 성즉리론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13 1. 성천합일(性天合一) 2. 성기일원(性氣一元) 3. 선악일원(善惡一元) Ⅱ. 심즉리론 1. 심즉리 2. 심성일체 3. 심통성정(心通性情) 제2장 이기일원적 생명론 Ⅰ. 태극론 1. 태극음양일체 2. 양지심체와 태극의 일체 Ⅱ. 이기론 1. 이기일원 2. 이기무선후 Ⅲ. 생리론(生理論) 1. 만물의 근원과 명덕의 본체 2. 이기합일의 생리론 3. 물리(物理) 및 진리(眞理)와 생리 제3장 주객일체적 인식론 Ⅰ. 격물치지론 1. 심물일원(心物一元) 2. 격치무간(格致無間) Ⅱ. 양지와 지식 1. 견문지지와 덕성지지 2. 지식과 양지 3. 격물궁리와 치양지

3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제4장 체용합일적 실천론 Ⅰ. 양지론 1. 양지즉천리 2. 양지와 심성천의 일체 Ⅱ. 양지체용설 1. 양지즉체즉용 2. 치양지 3. 지행합일 결 론 <내용 요약> 하곡은 심과 리는 하나 라고 주장했으며, 유가의 심성학의 참뜻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곡이 심과 리는 하나 라고 한 것은 바로 맹자의 인간에게 인의가 내재되어 있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모두 같은 것은 인과 의이다. 라고 한 것을 계승한 것이다. 여기서의 마음은 본 심을 말하고 리는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것들은 이미 초월적인 것인 동시에 또 내재적인 것이다. 이러한 논법은 상산의 나의 마음 이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내 마음. 이라는 말과, 양명의 마음의 본 체가 곧 천리[天理] 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주자가 말하는 심은 경험 적인 사실의 마음이요 초월적인 도덕본체가 아니다. 주자도 심과 리 는 하나 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것은 후천적인 수양공부의 결과를 말 한 것이지, 본질적으로 심과 리가 하나라고 본 것은 아니다. 주자의 학설은 심성천의 일관성을 주장하는 유가의 종지를 잃은 것이다. 하곡은 주관적인 마음과 리는 하나 는 측면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성천합일(性天合一) 의 측면 또한 중시했다. 이것은 주관과 객관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본론(一本論)인 이다. 상산과 양명은 심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15 을 많이 말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오목불이(於穆不已)의 본체로부터 도체와 성체에 대하여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보편적이고 원융한 일심을 고도로 확충시키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는 있지만, 그러 나 형이상학적인 성과 천도는 끝내 접근하기가 어려우므로, 양명은 그것으로 초학자를 인도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다. 양명은 그렇게 하면 학자들이 고원한 것을 좋아하게 될까 근심하여 형이상학적인 성 과 천도를 드물게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유가의 이론적 구조는 천 도론을 필수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곡은 근원적인 성을 강조 하고, 천도의 생생지덕(生生之德)이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 성, 명덕, 강충(降衷), 양지, 인(仁)으로서 심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양 명학 말류는 객관적인 도덕형이상학에 다소 허흠(虛欠)이 있기 때문 에, 사람들이 쉽게 공허하고 까마득한 것에 빠져 방탕하게 되고 정 (情)이 치열해져 방자하게 되는 것에 있었다. 하곡도 역시 양명학은 임정종욕의 근심이 있다고 말하고 그러한 폐단을 구제할 수 있는 방 법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곡은 주관적인 심체와 객관적인 성체를 합일시킴으로서 이러한 폐단을 구제할 수 있는 논리를 구축하 였던 것이다. 하곡은 이기일원적인 자연관과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하곡은 우주 의 생생(生生)이 그치지 않는다는 우주관을 주장했다. 하곡의 태극음 양일체론은 주자의 이기이원적인 논리와는 다른 것이요, 주렴계의 태 극도설의 원래 의미와 부합하는 것이다. 주자 이기론의 문제점은 신 (神)과 적감(寂感)이 태극의 리로부터 탈락되어 기에 속하는 것으로 되었다는 것에 있다. 결과적으로 성은 리이지만, 심은 리가 아닌 것으 로 되어 심성이 둘이 되고 심리가 둘이 되었다. 이것은 맹자정 명도 이래 심성천은 하나라는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 하곡은 이 점을 명철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하곡은 그의 독창적인 생리설(生理說)에서

31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천도의 생리를 생생불이(生生不已)한 인(仁)이라고 보고, 그것이 바로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아 타고난 병이(秉彝), 명덕, 선성(善性) 이 라고 보았다. 태극이기론을 천도관이라는 차원에서 말하면 하곡은 그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아울러 객관적인 논설을 전개했다. 이것은 육 상산, 왕양명과는 다른 것이다. 또 존재론적 차원의 우주론에 대해서 명도와 양명은 거의 모두 논의하지 않았으나 주자는 강렬한 흥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송유(宋儒)들의 우주론은 그 시대의 한계가 있 는 것이요, 이것은 과학적 지식과 형이상학적 체증(體證)의 중간에 위 치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서양철학이 지식과 신학을 중심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유가철학 의 중심적 과제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중국철학은 향외적(向外的)이 아닌 내면적인 성덕지교(成德之敎)를 추구했다. 심과 물(物)의 문제에 대해서, 주자는 인식론적 인지심의 활동방식이라는 맥락에서 심과 물 을 주관과 객관, 본체와 현상의 이원적 방식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하 곡은 심즉리, 현상즉본체(現象卽本體)라는 입장에서 주자의 방식을 거 부했다. 하곡은 구체적인 계기에 대응하여 이 심을 확연대공(廓然大 公)하게 발휘하는 것이 만물과 감응하는 기틀이라고 보았다. 하곡은 또 명덕을 밝히면 천지만물이 동체(同體)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보 고, 형이상과 형이하, 심과 물, 체와 용, 주와 객, 능과 소를 관통시킴 으로서 심물일원(心物一元)을 주장했다. 하곡은 양명과 마찬가지로 격 물을 우리의 도덕관념을 심[心]의 소재인 사물에 관철시킴으로서 사사 물물이 모두 본심양지의 천리에 부합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곡은 덕성지지와 견문지지의 차이를 강조하고,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는 견문지지를 강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양지심체 를 회복하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하곡은 오직 본심양지의 천리 및 그와 상관된 공부를 천명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주자의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17 즉물궁리( 卽 物 窮 理 )는 비록 만물의 분수지리( 分 殊 之 理 )를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 궁극적 목표는 초월적인 일본( 一 本 )의 성리( 性 理 )를 밝히는 데 있었다. 주자는 사실적 경험지식으로부터 초월적 도 덕원리에 이른다는 공부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경험지식과 도덕 원리는 이질이층( 異 質 異 層 )이라서, 경험지식으로부터 도덕원리로 도약 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또 도덕 실천론에 있어서, 주자의 인욕과 기 품의 구폐( 拘 蔽 )를 극복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매우 의의가 있다. 우리 는 양명과 하곡처럼 덕성지지와 견문지지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고, 공부의 방법상에 있어서는 외재적인 견문을 단절시키지 않음으로써 서양의 과학지식을 체계적으로 흡수하며, 도덕양지로 지식을 통섭시 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지식의 정당한 의의를 정 확히 살펴야 할 것이다. 하곡은 체용합일, 지행합일의 실천론을 주장했다. 하곡은 양명을 계승하여 양지를 논했다. 하곡은 양지는 동정( 動 靜 ), 적감( 寂 感 ), 이발 미발( 已 發 未 發 ), 대본달도( 大 本 達 道 )의 구분이 없는 것이라고 보고, 양 지는 체용일원이라고 주장했다. 양명의 양지는 성정혼일( 性 情 渾 一 )이 라는 사상과 비교해 볼 때 양지는 체용본말( 體 用 本 末 )이 있다고 본 것이 하곡의 특색이다. 하곡이 양지의 성체를 본( 本 )이요 근원적이라 고 주장한 것은 양명학 말류의 임정종욕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행 문제의 차원에 있어서, 하곡은 본연의 양지를 따라서 행동하고 확충시켜나간다면 이 지에 이미 행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 지가 사욕에 의해 가리지 않게 하기만 하면 양지가 저절로 상황에 따 라서 행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체의 양지를 사사물 물에서 치하는 것이 바로 지행합일인 것이다. 이것은 본말과 내외, 체 용과 동정을 합일시킨 것이다.

31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5. 하곡 정제두의 사서(四書) 경설 연구 김용재, 성균관대학교, 2002년 2월 이 논문은 하곡 정제두의 경학에 대한 학설을 연구한 것이다. <목 차> 제1장 서론 1. 연구목적과 문제제기 2. 선행연구 검토와 연구방법 제2장 사서 경설(經說)의 사상적 배경 1. 양란(兩亂) 이후 17세기 사상계 1) 사상적 동향 2) 학문관의 변화 2. 양명학적 경학관의 대두 1) 양명학적 경학관의 특성 2) 하곡의 양명학적 경학관 제3장 중용 경설과 주체적 인간상의 정립 1. 중용장구 의 개편 1) 편장제차(篇章第次)의 취지 2) 중용장구 의 재편집 2. 중용 경설의 주체적 인간상 1) 천성도의 심즉리 논리 2) 솔성(率性)과 수도(修道)의 주체 3) 비은(費隱)과 성인의 구현 제4장 대학 경설과 실천적 인격의 완성 1. 대학 고본(古本)과 대학장구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19 1) 대학 경설의 구성과 기술상의 특징 2) 대학장구 의 장절 구분 2. 대학장구 의 재분류 목적 1) 대학 고본의 정당성 2) 격물보망장의 부인 3) 저작설의 이견과 의의 3. 대학 경설과 실천적 인격체 1) 명덕신민의 경위설(經緯說) 2) 치지격물의 지행합일관 3) 교화양민(養民)의 경세론 제5장 논어 경설과 양지의 자각 1. 표제어의 구조적 특징 1) 표제어 목록과 요지 2) 성리학적 용어의 정리와 의의 2. 논어집주 와 해석의 차이 1) 재여주침(宰予晝寢)에서 집주의 비판 2) 인능홍도(人能弘道)에서 인간중심 3) 퇴계설에 대한 반론 3. 양명학적 사유구조로의 접근 1) 인과 양지의 절대성 2) 인예와 양지의 도덕성 3) 인과 양지의 실천적 자각 제6장 맹자 경설과 심성합일의 구현 1. 호연장(浩然章) 중심의 구성체계 1) 구성순서와 요지 2) 문제의식과 특징

32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심선(心善)과 성선(性善)의 합일 1) 심성정의 일원론 2) 성선과 의리지성의 대비 3) 심통성정(心統性情)과 심통성정(心通性情)의 대비 3. 맹자 심학과 양명학의 구현 1) 고자(告子) 성론(性論)과 사구교(四句敎) 논증 2) 부동심(不動心)과 배의여도(配義與道) 방법 3) 집의(集義)와 치양지 일치 제7장 결론 <내용 요약> 필자는 하곡의 중용 경설 논증의 도입부에 왕양명의 전습록 에 있는 중용 관을 전제하였다. 이것은 하곡과 양명이 바라보는 중용 의 요체가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예시하는 바라 할 수 있다. 우선 하곡 은 중용 의 구성과 체계적인 면에서 주자와는 이견이다. 본래 중용 은 장구의 나뉨이 없었는데, 주자가 이를 개편한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자와 같이 중용 을 내용상으로 장과 구를 굳이 나눈다면, 상하 2편 과 7개의 장으로 재구성함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장을 나눈 후, 본격적으로 중용 경설에 대한 분석에 들어 가는데, 그는 무엇보다도 첫 장 첫 번째 구절이 중용 사상의 본지 라 규정한다. 주자의 해석은 천(天) 으로부터 하향되는 성 을 우주론 적 보편적인 존재의 리 와 동일하게 여기는 연역법의 형식을 취하였 었다. 즉 이기론에 입각한 존재의 당위성 관계에 집중한 풀이로서, 이 른바 성즉리 명제의 설명이었는데, 하곡은 이 부분이 바로 중용 의 본지에서 멀어진 것이라 단언했다. 하곡은 중용 첫 장이 전체의 주 제라 생각하였고, 따라서 귀납적 해설방법에 강한 무게를 싣는 듯한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21 인상이다. 천명 이라고 불리우는 성 의 외연은 인성(人性) 에 국한되 어 적용될 뿐 물성(物性) 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성을 따 르고 수양하는 도 가 바로 중용 의 수양론에 귀결된다는 논리다. 그 러므로 하곡은 중용 을 수도(修道)에 초점을 둔 공부론과 수양론으 로 일관하여 해설한다. 중용 의 후반부에 성인 군자의 이상적인 인 간상을 설명하고 있음이 그 명백한 논거라 할 수 있고, 이러한 해설 만이 공맹유학의 본지에 접근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주자 의 첫 구절 해석이 옳다고 하더라도, 수양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주자는 솔성(率性)의 단계가 곧 자연물과 같이 자연스럽게 따르는 단 계라 하고, 수도 는 오로지 성인의 수양을 말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하곡은 성을 따르는 솔성 은 성이 본래 인성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 본체 를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솔성의 단계란 오직 성인만 이 가능한 수양단계이며, 수도 로써 수양하는 것은 평범한 범인도 가 능하다는 풀이다. 따라서 필자의 견지에서 볼 때, 배우는 자의 입장에 서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해설이 하곡쪽에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 한다. 다음으로 비은(費隱) 의 차이다. 주자와 하곡이 모두 비은 을 체용 론적 관점에서 풀이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주자는 비(費) 가 도를 가지고 있는 않은 사물도 없고, 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현상도 없기 때문에 필부라도 누구나 중용의 도를 쓸[用]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쓰 임이 넓기 때문에 비 라고 정의한다. 은(隱) 은 성인조차도 알 수 없 는 불가능의 영역, 즉 그 소이연[體]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은 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곡은 같은 체용의 논리로 설명은 하지만 이와 다르다. 비 는 누구라도 중용의 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비 이고, 도 본체를 다하기 어렵기 때문에 은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은관 의 차이도 중용 첫 장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기인한 것에 불과하다. 주

32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자의 해석은 만물은 모두 성을 부여받고, 그 성을 따르는 도는 인간 과 만물에 모두 있기 때문에 만물은 모두 있기 때문에 양적으로도 무 한하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하지만, 중용 의 성은 본래가 인성에 국 한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주체성을 충실히 밝히려고 하였던 하곡 쪽의 설명이 더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중용의 도를 주자가 우주론적 존재의 이치이자 성인의 입 장에서 견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면, 하곡은 수양 실천론 등 성인뿐만 아니라 학자로서의 범인 입장에서까지 견지한 해석이다. 이러한 중 용 경설은 마땅히 성을 심(心)의 본체이자 리로 파악한 심즉리론에서 시작된 중용 관인 것이다. 하곡은 대학 경설에 있어서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내용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주자가 격물보망장 을 갖추어 대학 의 형식까지에도 치밀함을 보였다면, 하곡은 문제 중심 위주의 설명 만으로 일관되었기 때문이다. 하곡은 무엇보다도 우선 대학 이 고본 으로 복귀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양명학과 동일한 견해다. 이 또한 선행 연구물들에서 이미 밝혀진 바이기도 하다. 다음의 주장 은 대학 의 저자에 대한 고증이다. 대학 의 저자는 유학사 측면에 서 볼 때, 주자가 처음 제기했는데, 증자와 그의 문인의 기록으로 설 명되어 있다. 하지만 하곡은 증자 자신의 저작이라고 주장하면서 경 전으로서의 대학 의 위상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그리고 대학 본 문에 들어가서는 이강령(二綱領) 중심의 경위설(經緯說)로 설명한다. 또한 주자의 격물보망장 자체의 불필요성을 논증하며 이것을 아예 인정조차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바라본 대학 은 명덕 과 친민 의 경세론적 시각으로 일관한 것이라 하겠다. 논어 경설의 주된 특징 중의 하나가 분량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점에 대하여 하곡이 논어 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23 이 아니라고 생각한가. 본 논문은 그 이유를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했 다. 첫째는 하곡이 논어집주 에 대부분 동의를 표하였기 때문에 잘못 된 주석에 이의를 제기할 만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 이다. 둘째로는 논어 라는 경전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논어 는 당시 17세기 사상계의 동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텍스트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리학적 용어나 철학적 개념의 범주 가 있기보다는, 선진유학이 가지는 고전적 특성, 즉 윤리 도덕 실천을 위한 행위규범과 의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많은 논제의 화두를 담보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 경설의 의의 는 자못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곡은 총 77개의 표제어를 선정하였는 데, 반복되는 문구도 제법 많았지만, 선정되어진 표제어들의 대부분은 논어 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수록되어 있던 인(仁)의(義)예 (禮)학(學)성(性)도(道) 등 성리학과 관련된 철학적 범주의 용어 들로만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하곡의 역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본 논문은 하곡이 추려낸 표제어들 가운데에서 논어 집주 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세 부분에 주목하였다. 끝으로 사서 경설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맹자경 설 이다. 하곡이 맹자 라는 경전에 초미의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자 신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데에 있 어서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시작하였 다. 왜냐하면 양명학적 사유구조의 발전은 공자와 맹자로 이어지는 인성론적 시각으로부터 정명도와 육상산에 이르는 심설온의 방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사상적 원천이라 말할 수 있는 맹자 라는 경전 이야말로 하곡의 독창적인 입론을 세우는 데에 필요충분조건을 담보 해 내었다고 보여진다. 맹자 에서도 호연장 과 사단장, 그리고 생 지위성장 의 순으로 해설된 것을 본고 제6장 제2절-제3절에 이르기까

32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지 구체적으로 논증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하곡의 맹자 에 대한 관 점을 심성론과 인성론이라는 두 영역으로 귀결했다. 따라서 주자학의 명제인 심총성정(心統性情) 을 하곡은 심통성정(心通性情) 으로 바꾸 면서, 맹자 의 본지는 본체론적 입장에서 말한 성선설소서 심선으로 부터 성선을 규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파악했다. 그러므로 심과 성 은 그칠 수 없는 작용[用]을 통하여 만사만물에 응하면서 정(情)이 되 기 때문에 심통성정(心通性情) 의 체용일원론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지위성장 을 중심으로 한 인성론적 입장이다. 그는 유 가의 전통적인 성론(性論)에 동의하고 있으며, 나아가 맹자의 성과 양 명의 사구교(四句敎) 첫 구절과의 관계를 하곡의 명료한 해설로써 구 분시켰다. 또한 하곡이 인성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이기의 범주를 쓰 지 않았다는 것에 착안하여 기질지성과 성선의 무관함을 증명했다. 6. 정제두 양명학의 양명우파적 특징 이상호, 계명대학교, 2004년 8월 본 논문은 양명우파의 철학적 특징을 규명하고, 정제두의 양명학을 양명우파 철학의 완성 이라는 측면에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전체 양명학사에서 정제두의 양명학이 갖는 위치를 정립하는데 중점을 두 었다. <목 차> Ⅰ. 서론 1. 연구의 목적 2. 선행연구 검토 및 논문의 구성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25 1) 양명우파에 대한 선행연구 2) 정제두에 관한 선행연구 3) 논문의 구성 Ⅱ. 양명학과 초기 양명우파의 철학 1. 양명학의 철학적 특징과 학파 분리의 가능성 1) 양명학의 성립과 그 특징 2) 양명학의 학파분리 가능성 2. 초기 양명좌파의 철학적 특징 1) 양지현성설 2) 사무설(四無說) 3) 유불도(儒佛道) 합일설 3. 초기 양명우파의 철학적 특징 1)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불일치 2) 객관적 공부론의 설정 Ⅲ. 양명우파의 이론 확립과 그 전개 1. 유종주 철학에 나타난 양명우파 철학 1) 도덕본체인 의(意) 와 도덕정감인 염(念) 의 구분과 신독 공 부 2) 사구교 해석을 통한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분리 3) 사설(師說)과 벽불론(闢佛論)을 통해 드러난 도통(道統)과 이단론 2. 황종희 철학에 나타난 양명우파 철학 1) 기학(氣學)에 근거한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분리 및 공부론 2) 사구교 해석을 통한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분리 3) 명유학안 을 통한 도통의 확립과 벽불론 3. 양명우파 철학으로서의 유종주, 황종희 철학

32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Ⅳ. 정제두 철학에 나타난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불일치 1. 이삼분설(理三分說)과 이(理)의 차별적 구조 1) 물리 2) 생리 3) 진리 2. 도덕정감으로서의 생리지심(生理之心) 1) 심즉리와 생리 2) 생리지심과 도덕정감 3. 도덕본체로서의 진리지심(眞理之心) 1) 성즉리와 진리 2) 진리지심과 도덕본체 Ⅴ. 정제두 철학에 나타난 객관적 공부론 1. 양지의 체용구조로 본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합일근거 1) 양지의 개념 2)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으로 본 양지의 체용구조 3) 양지의 체용합일과 치양지 2. 격물치지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의 수양론 1) 양명학에 기반한 격물치지의 해석 2) 격물치지와 성의정심 3. 지행합일론 1) 양명학에 기반한 지행합일의 의미 2) 양지양능에 기반한 지행합일론 Ⅵ. 정제두 철학에 나타난 이단관과 주왕화회론 1. 이단관과 도통론 1) 이단관과 불교비판의 철학적 근거 2) 도통의 중시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27 2. 주자학 비판과 화회( 和 會 )의 가능근거 1) 주자학에 대한 이해와 비판 2) 주왕화회론의 가능근거 3. 주왕화회론의 철학적 특징 1) 이삼분설과 주왕화회론 2) 생리지심및 진리지심과 주왕화회론 3) 공부론에 드러난 주왕화회론 Ⅶ. 결론 <내용 요약> 본 논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한 부분은 양명우파의 성립과 그 전개를 통해 양명우파의 철학적 특징을 추출하는 것이 목적이고, 또 다른 한 부분은 이렇게 설정된 양명우파의 철학적 특징을 중심으 로 정제두의 양명학을 분석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첫 번째 부분은 크게 Ⅱ와 Ⅲ으로 나누어진다. Ⅱ에서는 양명학이 좌우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이론적 단초를 양명학의 핵심 개념인 양지에서 찾고 있다. 양지는 시시비비를 판단하는 활동체로서의 양지 와 마음의 본체이면서 천리로서의 양지 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른바 도덕정감과 도덕본체의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 는 것이다. 양명좌파는 도덕정감을 도덕본체의 현현으로 이해하는 입 장으로, 초기에는 양지현성론을 주장했던 입장들로부터 태주학파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세 가지 중요한 철학적 특징으로 치환된다. 첫째,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완전한 일치를 주장한다. 둘째, 이미 도덕본체 와 도덕정감이 일치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이 둘을 합일시키기 위한 공부론의 불필요성이다. 셋째, 유불도 합일론이다. 이러한 철학적 특징을 기반으로 초기 양명우파의 철학적 특징들을 추출할 수 있다.

32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그것은 바로 첫째,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불일치를 전제하고, 둘째, 이 둘을 일치시키기 위한 객관적 공부론을 설정하는 입장이다. 셋째, 이단관과 도통론을 확보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 가운데 초기 양 명우파 철학자인 섭표와 추수익은 첫째와 둘째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 러내고 있다. 다만 셋째 특징은 아직 초기 양명 후학이므로 도통론이 나 이단관을 형성할 시기가 아니므로 그것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 고 있다. Ⅲ에서는 이러한 양명우파 철학의 특징이 유종주와 황종희에게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다루었다. 먼저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불 일치를 전제하고 있는 점이다. 유종주는 미발과 이발, 체와 용을 구분 하고 이것을 의(意)와 염(念)으로 개념화시킴으로써, 이 둘 사이가 완 전히 일치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황종희는 이러한 구분의 가능 성을 기학의 측면에서 해석하여, 리가 들어 있는 기와 그렇지 않은 기를 구분하고, 이를 통해서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둘째,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을 합일 시키기 위한 객관적 공부론 의 설정이다. 유종주는 의와 염의 불일치를 전제하고, 이 둘을 합일시 키기 위한 공부로 의근(意根)에 대한 성의(誠意) 공부와 신독 공부를 강조한다. 황종희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본체의 공부 의존성을 강조한다. 공부가 아니면 본체도 없다는 말이다. 셋째, 이러한 도덕본 체의 강조 및 수양론의 강조는 벽이단과 도통론의 확립으로 이행된 다. 이들은 특히 양명좌파를 비판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선학(禪學)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것과 구분되는 도통의 흐름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각각 사설(師說) 과 명유학안 을 통해 드러난다. 두 번째 부분은 크게 ⅣⅤⅥ으로 이루어져 있다. Ⅳ에서는 양 명우파 철학을 형성하게 되는 형이상학적 근거인 도덕본체와 도덕정 감의 불일치에 대한 전제 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29 정제두는 이학( 理 學 )에 근거해서 세계와 심을 하나로 이해하고 있으 며, 도덕본체 와 도덕정감 의 불일치 역시 이러한 형이상학적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세계와 사물이 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리를 물리생리진리로 삼분한다. 이 가운데 생 리와 진리를 심의 영역에 위치시킴으로써, 심은 자연스럽게 심리지심 과 진리지심 眞 으로 이분된다. 형이상학적 범주로부터 도덕본체와 도 덕정감의 불일치를 전제하며, 이를 통해서 심 역시 자연스럽게 도덕 정감 인 생리지심과 도덕본체 인 진리지심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심 성론 위주의 논의에서 벗어나, 도덕정감과 도덕본체의 불일치를 전체 형이상학 체계를 통해서 설정해내고 있는 것이다. Ⅴ에서는 양명우파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인 도덕본체와 더덕정감을 일치시키려는 공부론 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있다. 정 제두의 공부론은 양지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양지에도 체와 용이 있 다는 입장을 제기하면서, 양지의 체를 진리지심으로, 양지의 용을 생 리지심으로 본다. 그리고 이 둘의 합일을 치양지로 봄으로써, 공부의 최종 목적을 치양지로 설정한다. 그리고 치양지를 이루기 위해서 정 제두는 격물공부를 객관적 공부론으로 제기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 는 격물공부가 주자학의 도문학 공부는 아니다. 그는 양명학의 격물 치지론을 수용하여, 이것을 성의정심( 誠 意 正 心 ) 공부로 해석하고 있 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격물과 치지의 관계를 용과 체의 관계로 보 면서, 치지( 致 [ 良 ] 知 )를 기준으로 한 격물을 강조한다. 나아가 지행합 일 역시 정제두는 양지와 양능의 체용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양명학의 지행론이 인위적 노력 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것에 비 해, 정제두는 이것을 체용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공부 가 개입할 수 있 는 작은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Ⅵ에서는 정제두의 철학에서 나타난 도통론과 주왕화회론 의 특징

33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을 확인하려 한다. 이것은 특히 정제두에게 오면 매우 특징적인 면모 로 드러나는 것으로, 양명우파 철학으로서의 정제두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논리가 된다. 이를 통해서 결론에서는 전체 양명학에서 정제두 의 철학이 가지는 위치와 특징을 규명하려 한다. 정제두 역시 대부분 의 성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불교와 노장을 이단으로 비판한다. 다만 그 비판의 관점은 유종주와 황종희처럼 양명좌파에 대한 비판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 심과 리를 둘로 나누면서 그 중에서 심만을 강조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 비판은 양명좌파를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심과 리를 이분함으로써 현실적인 도덕행위를 유발시켜 내지 못한 것 에 대한 비판이다. 노장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되면 서 정제두의 도통론 역시 공맹 이후 주렴계와 정호를 중시하고, 이것 이 왕양명에게 이어졌다는 입장을 제기한다. 이것은 심과 리를 하나 로 보고, 성의( 誠 意 ) 공부를 중시하는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도통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제두의 철학은 도덕본체와 도덕정감의 불일치에 대 한 전체로부터 객관적인 공부론의 설정, 그리고 도통론과 이단관에 이르기까지 유종주나 심성론과 수양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구조를 통해서 설명되고 있다. 필자는 정제두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그의 철 학이 양명우파 철학의 정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그의 이 러한 양명우파 철학의 특징은 중국 양명우파처럼 양명학의 성리학 적 특징을 지켜나가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자학과 양명학을 하나로 회통시킴으로써 만들어진 결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정제두가 가지고 있는 양명우파 철학 의 특징은 주왕화회론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주자학적 틀을 바탕으로 양명학적 개념을 받아 들이거나 혹은 양명학의 개념들을 주자학 개념들로 치환시켜 해석하 는 등의 노력들을 통해 완전한 하나의 이론체계로 구성해 내고 있음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31 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주자학과 양명학의 길항 관계에서 정제 두의 양명학을 평가할 경우, 그의 양명우파 철학은 전체 양명학사에 서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양명우파 와 정제두의 양명학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양명우파는 수중파와 귀적파를 통해서 황종희에게 오면서 이론적 심화 과정을 걷는다. 이러한 이론의 심화는 한국의 정제두에 오면서 이론적 정점에 서게 된다. 따라서 양명우파 철학은 왕양명으로부터 출발해서 섭표와 추수익 등의 초기 양명우파를 거쳐 유종주나 황종희 에게 오면서 그 철학적 특징이 완비되고, 정제두에게 오면서 이론적 정점에 이른다고 정리할 수 있다. 7. 정제두의 성(誠) 사상에 관한 연구 민혜진, 부산대학교, 2005년 8월 본 논문은 정제두의 사상을 유학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틀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출발한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와 이상을 놓고 볼 때, 정제두는 유학자이고, 그가 지향한 목표를 실현시키는 방 법론에서는 양명학이 좀 더 근본적이고 실효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양 명학을 중심으로 했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한 논문이다. <목 차> 제1장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2. 연구방법 제2장 성 사상의 연원과 전개 제1절 성 사상의 연원

33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시경 서경 주역 에서의 성의 의미 2. 공맹순 사상에서의 성 3. 예기 - 중용 대학 에서의 성 제2절 성 사상의 전개 1. 성리학에서의 성 사상 2. 심학에서의 성 사상 3. 조선성리학에서의 성 사상 제3장 정제두 성 사상의 본체론적 구조 제1절 천도로서의 성 1. 천도본질로서의 성 2. 이기론적 측면에서의 성 3. 체용일원의 성 제2절 심체로서의 성 1. 심체의 성격 2. 도덕적 가치 근원으로서의 성 3. 주객합일로서의 성 제4장 정제두 성 사상의 실천론적 전개 제1절 성의 실천 1. 실천태도 2. 실천방법 제2절 성 실천의 이상 1. 개인적 경지 2. 사회적 이상향 제5장 정제두 성 사상의 특징 1. 성 사상의 종합적 계승 2. 주체적 능동적 자아실현과 사회적 실천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33 3. 성을 통한 철학사상 정립의 일관성 제고 <참고문헌> <내용 요약> 필자는 정제두 사상의 연구 동향을 검토하면서, 정제두 사상의 정 체성에 대한 논란들이 2005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이를 해 소하기 위해 필자는 성(誠) 개념을 중심으로 정제두 사상을 연구한다. 성(誠)은 선진유가에서 하늘의 길 즉 천도와 사람의 길 즉 인도를 합 일하는 매개체이자, 이상적 인간상인 성인에 이르기 위한 필요충분조 건이다. 천인합일의 근거로서의 성(誠)은 신유학에서도 이기론 체용론 의 외피를 입고서 등장하여 각 사상가의 이기론의 특징에 따라 그 색 채가 달라지게 된다. 예컨대 주자는 그의 이기이원론에 입각하여 성 을 리로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거경궁리를 인도로 삼는데 반해, 왕양명은 그의 심학에 입각하여 성(誠)을 심체 양지로 규정하면서 치 양지를 성(誠)을 실천하는 인도로서 제기한다. 이처럼 성(誠)은 선진 유가에서부터 신유학에 이르기까지 천도와 인도의 규명에 중추적 여 할을 할 뿐 아니라, 신유학에서는 성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사 상가의 이기론적 입지점과 그 차이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개념 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제두의 경우 성(誠)은 성명(性命)의 근원이며 이로써 천인은 합일 된다고 하여 성(誠)에서 성인의 성인된 까닭과 성학(聖學)의 근거를 찾는다. 주돈이의 통서(通書) 를 해석하면서 그는 천지조화로서의 천 지성(天之誠)과 인성(人性)으로서의 성인지성(聖人之誠)을 언급하고 성(誠)이 체용을 관통하여 천지와 인물(人物)에 주류(周流)한다고 주 장한다. 그래서 이상적 인격인 성인이 되는 조건도 성의 본체를 온전 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제두의 경학에서 사서설해(解)

33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중 중용설과 대학설에서 성(誠)이 핵심개념으로서 등장한다. 여기서 정제두는 중용 의 성(誠)을 천도와 인도를 관통하는 원리로 보고, 이를 체득하여 천인합일을 실천한 지 성(至誠)한 성인을 지향한다. 이러한 성(誠)은 정제두의 여타의 본체 론적 개념인 생리(生理), 심체, 성(性), 양지 등과 연관되면서 세계와 인간의 본래 모습을 묘사하는 개념으로 역할하고 있다. 그리고 왕양 명에 따라 대학 의 요체를 성의(誠意)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내외합 일적 지향을 설명한다. 또한 격물과 치지를 성의(誠意)로 합일시켜, 궁극적으로 성의(誠意)를 통해 인간 본연인 양지의 실현이라는 치양 지, 지행합일의 과제를 완수하려고 한다. 더구나 정제두의 양명학이 잘 드러나는 존언 과 학변 통서해 정성서해 등에서 성(誠)과 성의(誠意)의 개념이 나타나며, 그와 사우(師友)들과의 논변이 잘 나 타나는 서간(書簡) 등에서 성(誠)에 대한 논의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 러한 정황을 토대로 성(誠) 개념을 중심으로 정제두의 양명학과 경학 을 매개시켜 연구했을 때, 그의 유학적 이상과 양명학적 특성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며, 그의 사상이 양명학으로 유학을 통섭했음을 알 수 있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35 강화학파 및 한국양명학 1. 한국 양명학과 실학 및 천주교와의 사상적 연관성에 관한 연구 송석준, 성균관대학교, 1993년 2월 이 논문은 한국 양명학의 사상사적 역할을 중시하여 조선후기 실학 및 천주교와의 사상적 관련성을 중심으로 한국 양명학의 사상적 흐름 을 조명한 것이다. <목 차> 서 론 Ⅰ. 연구 목적 Ⅱ. 논문의 가설과 전개 제1장 양명학의 본질과 전래 및 수용의 문제 Ⅰ. 양명학의 본질과 전개 1. 양명학 형성의 역사적 배경 2. 양명학의 본질 (1) 심즉리 (2) 지행합일 (3) 치양지 3. 양명학의 전개 Ⅱ.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의 문제 1. 조선조에 있어서의 양명학 수용의 역사적 배경 2. 전래와 수용의 문제 (1) 전래 시기와 초기 수용 태도 (2) 퇴계의 변척(辨斥)과 수용의 문제

33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양명학파의 형성 제2장 하곡 정제두 이전의 양명학과 양명학의 실학적 전개 Ⅰ. 실학의 대두와 양명학의 실학적 전개 양상 1. 실학대두의 역사적 배경 2. 양명학의 실학적 전개 양상 Ⅱ. 포저( 浦 渚 ) 조익( 趙 翼 )의 사상 1. 철학사상 (1) 이기론 (2) 심성론 (3) 수양론 2. 인시제의적( 因 時 制 宜 的 ) 현실 인식 Ⅲ. 계곡 장유의 사상 1. 학문관 2. 심학적 사유구조 (1) 이기론 (2) 심성론 (3) 양명학적 이론체계 3. 계곡 양명학의 현실적 전개 Ⅳ. 지천 최명길의 사상 1. 양명학적 사유구조 2. 지천 양명학의 현실적 전개 (1) 지천의 역사의식 (2) 병자호란에 있어서 척화와 주화의 역사적 의미 제3장 하곡 정제두의 사상에 나타난 양명학의 특성과 실학적 특성 Ⅰ. 사상형성의 역사적 배경 Ⅱ. 하곡 양명학의 특성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37 1. 심즉리 2. 양지론 3. 생리설 Ⅲ. 하곡 양명학의 실학적 성격 1. 내실사상( 內 實 思 想 ) 2. 하곡 양명학의 현실적 전개 제4장 실학파의 양명학적 사유구조와 하곡학파의 실학사상 Ⅰ. 실학파의 양명학적 사유구조 1. 덕촌 양득중의 실사구시론과 양지론의 절충 (1) 실사구시론 (2) 양지론 (3) 실사구시론과 양지론의 절충 2. 성호 이익의 사상에 나타난 양명학적 사유구조 (1) 양명학에 대한 견해 (2) 양명학적 사유구조 Ⅱ. 하곡학파의 실학사상 1. 현동 정동유의 실학사상 (1) 양명학적 사유구조 (2) 근대지향적 사회사상 2. 초원 이충익의 내실 사상 (1) 양명학에 대한 견해 (2) 내실사상에 의거한 현실비판의식 3. 초천 정문승 농본주의적 실학사상 (1) 양명학적 사유구조 (2) 농본주의적 실학사상 제5장 천주교 전래와 양명학의 역할

33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Ⅰ. 천주교 전래의 역사적 배경 1. 중국의 경우 2. 한국의 경우 Ⅱ. 천주교 보유론적(補儒論的)접근과 유교의 천주교 비판 1. 천주교의 보유론적 접근논리 2. 선유(先儒)들의 천주교 비판논리 Ⅲ. 광암 이벽의 사상에 나타난 천주교의 성리학적 이해 1. 이벽의 생애와 학문 2. 천주교의 성리학적 이해 (1) 성리학적 사유구조 (2) 천주교의 교리체계 (3) 이벽의 사유구조 Ⅳ. 천주교의 양명학적 이해 1. 중국천주교에 있어서 양명학의 역할 (1) 천주교와 양명학의 연결 가능성 (2) 천주실의에 나타난 양명학의 역할 2. 한국 천주교에 있어서 양명학의 역할 (1) 천주교 수용자들의 양명학 수용 배경 (2) 천주교 수용자들의 양명학 이해 3. 양지론을 통해 본 천주교와 양명학의 상함이론(相涵理論) (1) 천주실의 와 주교요지(主敎要旨) 및 상제상서(上宰 相書) 에 나타난 양지론 (2) 양지론을 통해 본 천주교와 양명학의 상함이론 제6장 한국 양명학의 현대적 의의 Ⅰ. 현대사회의 위기의식과 인간소외 1. 현대사회의 위기의식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39 2. 인간소외의 문제 Ⅱ. 한국 양명학의 현대적 의의 1. 한국 양명학의 특성 2. 현대적 의의 <내용 요약> 사상적으로 양명학은 인간의 도덕성을 중시하는 점에서 주자학을 계승했고, 한편으로는 도학의 대중화를 지향하여 주자학의 한계를 실 천적으로 극복함으로써 중국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러나 한국에 있어서 양명학은 중국과는 달리, 조선의 시대적 상황이 양명학의 학문적 성과보다는 주자학의 도학적 성격이 더욱 요청되는 시기였으므로 전래 초기부터 배척을 받은 이래 조선조에서 사상사적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주자학의 그늘에 가리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병자양란을 계기로 국토의 황폐화와 함께 중첩되는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심화되어 갈 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 는 주자학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조익, 장유, 최명길 등 몇몇 학자들에 의해 양명학은 다시 그 의미가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선험적 양지에 근거한 인간 주체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 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욕을 보임으로써 한국 양명학은 사상사에 있어 일정한 기여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조선 최고의 양명학자인 하곡 정제두는 양명학을 바탕을 그 의 독특한 학문체계를 수립했다. 앎과 행동이 일치되지 못하는 당시 의 학자들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인간 주체의 성실성과 객관적 사리의 실재를 함께 궁구하는 주자학의 학문적 한계로 인식한 하곡은 참다운 주체 안에서 앎과 행동이 간격 없이 통일되어 있는 양명학을 학문종 지( 學 問 宗 旨 )로 하여, 인간 주체의 성실성을 강조하는 내실지학 을 확

34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립했다. 그러나 양명학이 임정종욕 의 한계가 있음을 파악한 하곡은 그의 이기론과 심성론의 정밀한 논리적 전개를 통해 양명학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한국 양명학의 독창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인간의 주체적 성실성을 강조한 그의 내실지학 은 후기 실학의 외실지학 과 사상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곡 정제두를 중심으로 전개된 하곡학파의 양명학은 실학과 함께 주자학의 규범적 형식을 비판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측면에서 학문적 경향이 같았다. 그 중 양득중, 이익, 홍대용 등은 규범적 형식성을 비 판하고 객관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인간 주체에 둠으로써 양명학적 사 유체계를 수용하고 있다. 또한 하곡학파는 당시 학자들의 가식과 허 위의식을 비판하고 인간 주체의 성실성을 통한 지행합일을 주창하여 당시 사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조선조 후기 천주교에 귀의한 권철신, 정약종, 정하상 등 성호학파 들이 양명학을 매개로 천주교에 귀의함으로써 양명학은 천주교와 유교 의 사상적 교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당시 정약종과 그의 아들 정 하상은 천주교의 교리서인 주교요지 와 상재상서 를 통하여 천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양명의 양지설 을 원용함으로써 양명학과 천주교의 사상적 관련성을 맺으면서 천주교로 귀의하게 된다. 본 논문은 이처럼 한국 양명학이 한국사상사의 구체적으로 드러나 지 않았지만 한국사상사의 추이를 따라 면면히 역사 속에 나름대로의 일정한 역할을 하며 발전해 온 점을 기술하고 있다. 2. 초기 강화학파의 양명학 서경숙, 성균관대학교, 2001년 2월 이 논문은 강화학파의 개조인 하곡의 철학사상이 어떻게 전승되었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41 으며, 하곡철학의 양명학적 특징, 이광사와 이광신의 하곡사상에 대한 이해와 양명학적 특징 등을 고찰했다. <목 차> Ⅰ. 서 론 Ⅱ. 강화학파의 학맥 1. 초기 강화학파의 학맥 2. 중 말기 강화학파의 학맥 Ⅲ. 하곡 정제두의 실리실심실학으로서의 양명학 1. 하곡 양명학의 수용연원 1) 하곡의 문제의식 : 양명학 수용이유 2) 하곡 양명학의 연원 2. 하곡의 양명학 1) 이기론 2) 양지론 3) 심성론 3, 하곡 정제두의 실학 Ⅳ. 원교 이광사의 이기일원론적 양명학 1. 심학론 2. 이기일원 3. 성기일원(性氣一元) 4. 원교 철학의 특징 Ⅴ. 항재 이광신의 왕주 절충론적 양명학 1. 이기론 1) 이와 기 2) 동(動)과 정(靜)

34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동정과 심성 2. 심성론 1) 심즉리와 성즉리 2) 심즉리와 심여리( 心 與 理 ) 3) 불교, 주자, 항재의 심( 心 ) 4) 성기일원 性 氣 一 元 과 성기이원 3. 인식론 : 양지본말론( 良 知 本 末 論 ) 1) 정물( 正 物 )과 지물( 至 物 ) 2) 심물일원( 心 物 一 元 )과 심물이원 3) 덕성지지와 지식지지 4. 항재의 하곡철학 이해 : 왕주를 겸비한 하곡철학 5. 항재 철학의 특징 1) 왕 朱 절충 2) 사화이무실( 捨 華 而 務 實 ) Ⅵ. 결 론 <내용 요약> 강화도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시키고 확장시킨 하곡의 양명학을 강화학 이라 하고 이들을 강화학파 라고 한다. 강화학파를 기기별로 구분하면, 하곡의 직전 제자들을 초기 강화학 파라 하고, 재전제자들 중기 강화학파라 하고, 그 이후의 제자들을 말 기 강화학파로 나누었다. 조기에 해당되는 학인은 직전제자인 이광명, 이광사. 이광신, 정후일 등이며, 중기에 해당되는 학인은 정술인, 이 광려, 이영익, 이충익, 신대우, 이덕윤, 정동유 등이 해당되며, 말기에 해당되는 학인은 주로 전주이씨 덕천군파 가문인 이광명의 직계손들 로서 이면백, 이시원, 이상학, 이건창, 이건승, 이건방과 영일 정씨 가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43 문의 정문승, 정기석, 정원하, 정상섭과 신씨가문의 신진, 진작, 신현 등이 해당된다. 강화학의 학맥은 주로 가학으로 소극적으로 면면히 이어졌으며 이러한 원인은 당대의 학문적인 상황과 연관이 있다. 초기 제자들이 하곡학을 전수받기에 전념을 다하였다면, 중기의 제자 들은 유배지에서 가문의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하곡의 양명학이 가학으 로 뿌리내리게 하는 역학을 다 하였다. 하곡학이 가문의 시련기를 극복 해 나가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자리잡는 시기가 중기이다. 말기의 특징 은 유배지에서 벗어나 하곡 철학을 당대의 사회를 보는 눈과 개혁 정신 으로 드러나 구한말의 급변하는 시대에 자신의 주체성을 갖고 사회를 개혁하고 이끌고자하는 시대정신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즉 하곡철학 의 특징인 양지실( 良 知 實 ) 정신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판단하고 대처 하는 정신으로 발현되는 시기가 말기이다. 하곡에서 시작된 하곡의 양 명학이 주로 가문의 가학으로 면면히 이어져 가면서 실생활에 실현성과 실천성이 있는 철학으로 확장되어 발전되어진 것이다. 하곡의 실( 實 ) 사 상은 삶의 터전에서 허위에 대한 비판, 개혁을 시도하여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정신으로 드러난다. 강화학인들의 이러한 비판과 개혁의 정신 은 서체, 사학, 문학, 음운학, 경학 등에서 발현되어 능동적인 도덕적 주 체성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학문에 창조성과 독자성과 다양성을 띄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원교 이광사와 항재 이광신은 하곡의직전제자임에도 불구하고 하곡 학을 계승한 방향은 서로 다르다. 원교가 하곡철학의 이원론을 중점 적으로 수용했다면, 항재는 주자와 하곡의 철학을 절충하여 하곡학을 수용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비록 하곡학을 서로 다르게 수용하지만 공통점은 실( 實 )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곡이 양지실학을 강조하여 주체적, 능동적인 도덕실천을 강조하듯이, 이 두 사람도 양지실학을 수용하여 강조하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노력하였다. 나의 마음 밖에서

34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도덕 기준과 판단자를 찾을 필요가 없고 각 개인의 마음이 기준이고 그 마음 전체가 판단자이니 그것이 바로 각자의 양지이다. 진실로 양 지에 따라 일을 처리하여 조금도 허위가 없는 것이 성의( 誠 意 )이고 이 성의를 그대로 실행함을 치양지라고 한다. 하곡은 이러한 치양지를 바로 실학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하곡철 학의 핵심을 원교과 항재가 그대로 계승하여 모두 양지실( 良 知 實 )을 주장하고 있다. 하곡은 허리( 虛 理 )를 주장하는 허학( 虛 學 )은 그만두고, 실리 實 理 를 주장하여 실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하곡의 실 ( 實 ), 실학( 實 學 )의 강조는 하곡에서부터 구한말 위당 정인보까지 강 화학파를 일관하는 사상이 된다. 그러므로 강화학파를 일관하는 중심 철학은 강화학파의 시조이자 강화학파의 정신적 지주인 하곡 정제두 의 양지실학( 良 知 實 學 )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곡의 양지 실사상( 實 思 想 )은 강화학인들에게 어떤 분야에서 행동을 하더라도 오로지 허식과 가식에서 벗어나 실심 진심 무자기( 無 自 欺 )한 마음으로 학문과 정치와 행동을 하게 해주었다. 즉 양지를 최대한 발현 하는 방향으로 자기의 분야에서 창조적인 혁신과 발전을 하였으니 이 는 서예, 사학, 문학, 등의 분야에서도 모두 과거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 는 그런 학문 보다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열어 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양지실( 良 知 實 )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주체성과 능동성과 개성을 발현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45 원교 이광사 1. 18세기 시서화론의 미학적 지향 나종면, 성균관대학교, 1988년 2월 원교만을 다룬 논문이 아니다. 다만 18세기 속에서 원교 시서(詩 書)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는 데서 가치 있는 논문이다. <목 차> I. 서론 II. 18세기 도시의 발달과 시서화의 양상 1. 18세기 도시발달과 문예적 취향 1) 서울의 도시발달과 새로운 인간군 2) 문인들의 서화고동취미 3) 문인들의 문예취향과 생활 4) 기행에 나타난 '유'의 정신 2. 시서화의 양상 1) 시화 일치의 양상 2) 서화 일치의 양상 III. 18세기 시와 시론 1. 시단의 경향 2. 시론의 새로운 양상 1) 격조론 2) 성령론 3) 신운론 IV. 18세기 서와 서론

34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서체의 경향 2. 서론의 양상 : 동국진체론 1) 옥동의 서론 2) 원교의 서론 V. 18세기 화와 화론 1. 화단의 경향 2. 화론의 새로운 양상 1) 진경산수론 2) 풍속화론 3) 문인화론 VI. 18세기 시서화론의 미학적 지향 1. 18세기 시서화론의 가치개념 1) 고에서 금으로 2) 아에서 속으로 3) 법에서 아로 2. 18세기 시서화론의 미학적 성격 VII. 결론 참고문헌 <내용 요약> 이 논문은 문학과 예술(미술)의 상호연관성을 주목하는 작업의 하 나로, 18세기 시론( 詩 論 )서론( 書 論 )화론( 畵 論 )의 미학적 지향을 밝 히려는 데 목적이 있다. Ⅱ장에서는 서울의 도시발달과 문인들의 문예취향을 거론하고, 시 서화 일치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18세기의 문예적 현상은 서울의 도 시발달과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시문화는 인간 주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47 체의식의 각성과 미적 해방의 추구가 고려되어야만 그 문학과 예술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간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문인 중에는 기존의 문예의 틀에 벗어나 개개인의 마음 속의 진정과 여취를 표출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Ⅲ장은 이 시기의 시단에서 개성과 독창성을 성취한 개인이나 집단 의 시를 다루었고, 아울러 중요한 시론으로 격조론신운론( 神 韻 論 ) 성령론( 性 靈 論 )의 문제를 거론했다. Ⅳ장에서는 전대의 조맹부체나 안진경체( 顔 眞 卿 體 )를 배격하고 왕 의지체( 王 羲 之 體 )로 매진했던 서가( 書 家 )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거론했 는데, 이는 18세기 서체가 왕희지체를 표준으로 삼아 반복적으로 학 습하고 반성하여 동국진체( 東 國 眞 體 )를 완성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 한 방식이었다. Ⅴ장에서는 문인화진경산수화풍속화 등을 통해 사대부화가들이 회화의 전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화원 출신의 화가들이 직 업화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18세기 화론 은 중국 화보나 회화이론과 일정한 공통성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회화 의 질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Ⅵ장에서는 18세기 시서화론의 가치개념을 고( 古 )에서 금( 今 )으로, 아( 雅 )에서 속( 俗 )으로, 법( 法 )에서 아( 我 )라는 변화과정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는 이 시기의 문학과 예술에 나타난 문예적 자각의식을 염두 에 둔 구도이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과정은 이조후기 새로운 미적 규 범을 추구하려는 일부의 문인들의 주장에서 간취되는 시대정신과 방 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34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이서와 이광사의 예술론 연구 문정자, 단국대학교, 1999년 8월 조선 후기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중심인물로 거론되는 옥동(玉洞) 이서(李漵)(1662-1723)와 원교 이광사의 예술세계를 사상과 문학 및 서론(書論)을 고찰했다. <목 차> Ⅰ. 서론 1. 연구목적 2. 연구사와 연구방법 Ⅱ. 옥동(玉洞)과 원교(員嶠)의 생애와 학문 1. 옥동의 생애와 학문 1) 생애 2) 학문연원 2. 원교의 생애와 학문 1) 생애 2) 학문연원 Ⅲ. 옥동과 원교의 사상적 기반 1. 옥동의 주리주의적(主理主義的) 사상 1) 주리적 인성론 2) 주리적 관점의 제가(諸家)비평 2. 원교의 주심주의적(主心主義的) 사상 1) 이기동선론(理氣同善論) 2) 사상마련(事上磨鍊)과 심(心)의 존중 Ⅳ. 옥동과 원교의 문학론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49 1. 옥동의 문학론 1) 풍아( 風 雅 ) 정신의 시론( 詩 論 ) 2) 당시( 唐 詩 ) 수용과 비평관 3) 조충( 雕 蟲 ) 문장 해도론( 害 道 論 ) 2. 원교의 문학론 1) 자득기발( 自 得 機 發 )의 시론 2) 조화( 造 化 )와 전신( 傳 神 )의 문장론 Ⅴ. 옥동과 원교의 서론( 書 論 ) 1. 옥동의 서론( 書 論 ) 1) 서예 본질론 (1) 주역( 周 易 )과 서화( 書 畵 )의 형성 (2) 영자( 永 字 ) 팔화( 八 畵 )의 방위와 상징성 (3) 용필론( 用 筆 論 ) 2) 중정( 中 正 )과 전신( 傳 神 )의 미학 (1) 중정의 미학 (2) 전신의 미학 3) 서가( 書 家 ) 비평 (1) 한국 서가 비평 (2) 중국 서가 비평 2. 원교의 서론 1) 서예 본질론 (1) 용필( 用 筆 ) 방법론 (2) 각체( 各 體 ) 필법론( 筆 法 論 ) (3) 용구와 집필론 2) 법고창신론( 法 古 創 新 論 ) (1) 법고중시론( 法 古 重 視 論 )

35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창신자사론( 創 新 自 寫 論 ) 3) 서법과 서가 비평 (1) 서법 비평 (2) 서가 비평 Ⅵ. 옥동과 원교의 예술론의 사적 의의 1. 사상과 예술의 통일적 지향 2. 동국진체( 東 國 眞 體 )의 성격과 서예사적 의의 Ⅶ. 결 론 <내용 요약> 옥동과 원교 양자는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정쟁의 와중에서 당화( 黨 禍 )를 입어 유배객( 流 配 客 )으로 또는 야인으로 일생을 보냈다. 옥동은 전형적인 성리학자로서 이발기수( 理 發 氣 隨 ), 이귀기천( 理 貴 氣 賤 ), 이선기악( 理 善 氣 惡 )의 주리적( 主 理 的 ) 이기론과 인성론을 주장 했다. 반면 원교는 심즉리설을 수용하여 성( 性 )기( 氣 )재( 才 )정 ( 情 ) 모두를 선( 善 )이라 하고, 이기동선론( 理 氣 同 善 論 )을 주장하고, 성 정( 性 情 )을 양지의 체용 관계로 파악하였으며, 사상마련( 事 上 磨 鍊 )과 마음을 존중했다. 옥동은 성리학적 철학체계를 문학론과 긴밀하게 연관시켜 도( 道 )의 중시, 곧 도문일치론( 道 文 一 致 論 )을 제시했다. 그는 문체를 우주원리의 표현양식으로 규정하는, 즉 문( 文 )은 도( 道 )를 싣는다는 재도론( 載 道 論 )을 주장했다. 그는 풍아( 風 雅 )한 정신을 문학의 핵심적 가치로 제기 하면서 온유하고 돈후한 표현의 격조와 절제된 중정미( 中 正 美 )를 지향 했다. 옥동 문학론의 궁극적 지향점은 마음의 중정한 상태를 온유하고 돈후한 격조로 표현하되 반기교적 수사와 풍격표출에 있다고 한다. 원교의 시론( 詩 論 )이 지향하는 것은 모방을 배제한 자득기발( 自 得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51 機 發 )의 이론이며, 천성의 마음상태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정( 情 )의 발로서 시( 詩 )에 있다. 또한 그의 문장의 예술은 다양성을 내포하고 조화의 묘를 실현한 중정의 문장이다. 옥동의 서론( 書 論 )은 서( 書 )의 정신성을 회복하려는 확고한 신념에 서 출발했다고 한다. 천인합일을 지향하는 유가의 정신이 기반을 이 루고 있으며, 천도와의 합일을 의도했다. 동국진체의 주역으로서 옥동 의 창조적 활동은 원교를 거쳐 추사( 秋 史 ) 서론( 書 論 )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원교는 그의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 를 창조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 나로 실현한 서예가이다. 원교는 심학에 기반을 둔 천연의 오묘함을 서론에 원용하여 서론의 정신성을 확보하는 한편, 유미( 柔 媚 ) 지향의 당대 서예를 비학( 碑 學 ) 중시론을 통해 굳세고 단단한 서풍( 書 風 )으로 일신시켰으며, 비학첩학( 帖 學 )의 절충적 선택으로 서예사의 내적 충 실을 기했다. 동국진체는 옥동과 원교의 예술론을 통해 양자의 사상과 문학, 서 예적인 요소가 하나로 융해되어 조선만의 독창적인 서체를 이루었다 고 한다. 동국진체는 서체와 이를 형성한 동인으로서의 이론적인 배 경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명칭이라고 한다. 예술론의 결론으로서 동국진체의 개념은 옥동의 관점에서는 유학 ( 儒 學 )과 서도( 書 道 )의 접목으로 볼 수 있고, 원교에게는 사상과 문학 적 역량에 기반을 두면서 첩학( 帖 學 )과 전서( 篆 書 ) 예서( 隸 書 ) 비학( 碑 學 )을 융화시킨 성격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동국진체의 예술사적 의의는 여말선초에 이르는 기존 서풍에 대한 개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결국은 조선 후기 추사의 서론 ( 書 論 )과 추사체의 성취를 이루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는 점에 의 의가 있다고 한다.

35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원교와 추사의 서예 비교 연구 오명남, 성균관대학교, 2004년 8월. 18세기 한국 서예의 대표적 인물을 원교 이광사라고 한다면, 19세 기의 대표적 인물은 추사 김정희(1786-1856)라고 할 수 있다. 원교는 조선시기의 마지막 첩학대가(帖學大家)로서 그의 서체는 원 교체라 불리고, 후세 사람들은 옥동(玉洞) 이서(李漵)(1662-1723)와 백하 윤순의 서체를 통 털어 동국진체 라 부른다. 그는 해서와 행서 를 잘 썼으며, 그가 쓴 서결 은 한국 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서(書)에 대한 이론서다. 추사는 한국에 비학혁신(碑學革新)을 창도한 선구자로서, 한국의 쇠 미해가는 첩학(帖學)을 만구(挽救)하려는 목적에서 전서(篆書)와 해서 (楷書), 특히 북비(北碑)와 한예(漢隸)를 창도했으며, 추사체를 창출하 여 한국의 서단(書壇)에 첩학과 비학을 동시에 꽃피게 하는 시대를 불러왔다. <목 차> I. 서론 1. 연구 목적 2. 연구 방법 II. 원교와 추사의 생애 및 사상적 배경 1. 원교의 생애와 양명학적 실학사상 성향 1) 원교의 생애와 학문의 배경 2) 실사, 실언, 실정주의적 실학사상 성향 3) 양명학의 창조성과 복고주의의 편협성 2. 추사의 생애와 실사구시적 실학사상 성향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53 1) 추사의 생애와 학문의 배경 2) 실사구시적 실학사상 성향 3) 동국첩학의 쇠미성과 추사 창비의 혁신성 III. 원교와 추사의 서론에 대한 비교 고찰 1. 원교 서결 에 나타난 서론 1) 서결 전편의 특징 2) 서결 후편의 특징 2. 원교에 대한 추사의 비평론 1) 동국진체설 에 대한 비평 2) 선본론에 대한 비평 3) 완당전집의 입진론 4) 추사의 서원교필결후 3. 원교와 추사 서론의 비교 고찰 1) 원교와 추사 서론에 대한 역대의 평가 2) 원교의 서론과 미학사상 3) 추사의 서론과 미학사상 IV. 원교와 추사 서체 비교 고찰 1. 원교와 추사의 서체별 특징 1) 전예서 2) 해서 3) 행서 4) 행초서 2. 원교와 추사 서체의 비평적 비교 1) 원교와 추사의 서체 비교 2) 원교 전서의 비평 3) 추사체 행서의 비평

35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V. 결론 참고문헌 중문초록 부록: 조선중기의 서예의 역사적 배경 <내용 요약> 원교가 살았던 시대는 첩학의 마지막 시대였다. 즉 조선은 조송설 체( 趙 松 雪 體 )에서 벗어나 왕희지( 王 羲 之 )로의 서체의 복귀를 시도한 석봉( 石 峯 ) 한호( 韓 護. 1543-1605)에 이어서 한석봉의 서체에 불만을 품은 옥동 이서의 악의황정동방삭화찬을 바탕으로 한 왕희지의 복고가 진행되고 있었다. 또 그 뒤로는 원교의 악의동방삭화찬을 선본( 善 本 )으로 한 왕희지의 복고가 있어났는데, 역사상 3 대가가 모 두 복고를 주장했다. 석봉과 옥동은 모두 성리학을 숭상했다. 그러나 원교 서론에서 양 명학의 창조성은 한국의 역대의 성리학을 믿는 서예가들인 석봉 이서 와 완전히 구별된다. 그는 뜻에 맞으면 송원( 宋 元 )의 것이라도 취하 고, 비록 왕희지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감히 믿지 않았다. 라고 하여 양명학의 심학적 바탕을 드러냈다. 예를 들면, 왕희지의 글자의 형태 를 미리 생각하여 뜻이 붓보다 앞서야 한다. 고 말한 것에 근거하여 서예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 움직이면 정해진 모 양이 없으니, 비유컨대 장처의 인물과 우마( 牛 馬 )의 용모가 각지 다르 고 행동거지가 모두 다른 것과 같다. 고 하는 미학사상을 가지고 있었 다. 이것은 채옹의 서예는 자연에서 시작했다. 는 서예 미학파와도 통한다. 또 그는 인간에 의해서 다시 승화를 거친 유희재의 조호자연 ( 造 乎 自 然 ) 의 미학 사상에 접근하는 이론을 제기했다. 이런 미학 사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55 상에 의해 원교는 공교로운 것과 졸박한 것 가운데서 졸박한 것을 선 택하게 된다. 그 외에도 필법의 신호법(申毫法) 추전법(推展法) 축필 법(築筆法) 등 일련의 이론은 그의 양명학의 창조성에서 나온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시대는 비학의 시기였다. 추사는 연경(燕京) 으로 가서 옹방강(翁方綱. 1733-1818)과 완원(阮元. 1764-1849)을 만나 서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학설을 들었고 비첩겸수론(碑帖兼修論) 의 서론(書論)도 들었다. 추사가 귀국한 후 5년 만에 완원은 쌍론(雙 論) 을 발표했다. 또 한송불분론 도 중국에서는 아직 천국적인 사조로 바뀌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어 추사는 학문이거나 서예이거나 모 두 변혁이 일어나기 직전에 또 중국의 이런 변혁을 일으킬 사람들을 만났다. 귀국 한 후 7년 사이에 완원의 의유림전서(擬儒林傳書) 를 참조하여 실사구시설 을 지었는데, 그의 이 문장은 중국과 한국에서 한(韓)송(宋)의 병립을 주장하는 최전방에 선 것이었다. 서예에서는 옹방강의 이론에서 완원의 비학 이론으로 넘어와서 한국의 비학혁신 (碑學革新)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그는 비학혁신의 길에서는 왕희지체라고 표방하는 복고주의가 으뜸 가는 장애물이라고 여겼다. 비학혁신에서 그 장애를 제거하는 일은 역사의 흐름에 맞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국내의 서가들의 선 진적인 이론도 오류로 부정해버리는 방법은 오류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론은 반드시 이분법으로 봐야 한다. 그의 동국진체에 대한 비평, 황 정 악의 등을 선본(善本)으로 한데 대한 비평, 진으로 들어가는 길 등 은 큰 방향에서는 역사의 흐름에 맞지만 그의 원교 필법론의 대한 비 판은 오류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는 가는 아직 완 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남아 있다. 원교도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창도는 왕희지의 복고주의에서

35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나왔으며, 왕희지의 이론에서의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을 근저로 하 여 이론을 전개했다. 그의 이런 창도는 행서를 쓰는 가운데서의 서풍 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하여 주나라의 주문(籒文)과 한(漢)나라의 예 서 사이를 정심(情深)하게 공부해서 깊고 두터우며 예스러운 뜻이 글 자의 표면에 넘쳐나도록 해야 한다. 는 것을 주장하게 되었으며, 그가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은 행서를 잘 쓰기 위한 보조수단이었다. 결국 왕희지의 서체로 복귀하는 곳에 그 목적을 두었다. 따라서 ①원교의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은 원교가 처음 한 것이 아니었고, 왕희지가 일찍 창도한바 있었다. ②원교는 전서 예서를 창도했지만 실기(實技) 상에서 그것을 소화해내지 못했으며, ③게다가 원교가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은 매개 사람들에게 있어서 왕희지 서체의 복귀에 필요한 보조적 수단으로 되었지만, 그것을 첩학(帖學)의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데까지는 볼 수 없고, 사회상의 비첩 투쟁으로는 볼 수 없었다. 여기 서 추사의 이론과 성취를 동국진체의 이론과 실제의 바탕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는 논점은 추사가 처한 시대가 동국진체의 다음 시대라는 전제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원교의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과 는 연계시킬 수 없다. 비학혁신(碑學革新)은 추사 개인의 독창적인 사 유가 아니다. 서예 조류의 대기후 속에서 추사의 작용은 한국의 기후 를 어떻게 변화했는가의 문제이지, 변화가 있고 없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추사 앞의 전서 예서를 창도한 자들을 모두 추사의 스승이라고 가정한다면 이것도 도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운데는 왕희지 도 있어야 되는데, 왕희지를 한국 비학혁신의 선구자로는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원교가 첩학의 보완적 차원에서 전서 예서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비첩겸수(碑帖兼修)를 제창한 옹방강의 주장과 같이 여 전히 첩학가의 고견에 속한다. 그리고 전서 예서를 창도한 것은 금석 학 연구의 한 과제이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원교는 마지막 첩학가(帖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57 學家)이다. 본 논문에서 양자의 서예 작품을 비교하는 이것은 실제적으로 그들 의 서예를 평가하는 것이다. 원교의 서체에 대해서는 왕희지의 서체 가 아니라고 하여 완전히 부정해서는 안 된다. 비록 왕희지의 서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의 해서는 상당한 수중에 달했다. 그의 행서는 미불, 왕탁의 기울어진 장법(章法)을 이용하여 기세가 분방한 작품들 을 창작했다. 그러나 그의 전서는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실기에서도 병통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서체는 해서와 행서를 높이 평가 하고 전서는 부정하게 된다. 추사의 서체에 대해서는 서론에 입각한 미학의 높이에서 재평가 되 어야 한다. 한예(漢隸)의 고졸(古拙)한 기백을 가진 그의 예서는 그의 서체 가운데서 가장 출중한 것으로 보여 진다. 하지만 그의 행서는 음양설이란 옥동의 법을 확충하여 각 글자마다 음양을 평형시키려 하 여 작품의 기가 끊어지는 폐단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의 행서는 수 준이 낮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행초서(行草書)는 이런 음양설 의 영향이 적고 걸작이 많다. 4. 18세기 서예론 연구-이광사, 강세황, 김상숙을 중심으로 최경춘, 부산대학교, 2006년 2월 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18세기 서단(書壇)의 대표적 인물인 원교 이광사, 표암 강세황, 배와 김상숙의 서론(書論)을 검토하여 이들의 서예론(書藝論)이 지닌 특성과 예술사적 의의를 점검하는데 있다. <목 차> I. 서론

35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연구목적 2. 연구사와 연구방법 II. 18세기 서예론의 성립배경 1. 18세기의 서풍 2. 중국 법첩의 수용이 서단에 미친 영향 1) 법첩 수용의 양상 2) 전서와 예서의 수용 3.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 서체의 성립 1) 이광사의 원교체 2) 강세황의 표암체 3) 김상숙의 직하체 III. 역대서가에 대한 인식 1. 중국 서가에 대한 인식 1) 진-왕희지, 왕헌지 2) 당-안진경, 유공권 3) 송원-소동파, 미불, 조맹부 4) 명-문징명, 동기창 2. 한국 서가에 대한 인식 1) 조선이전-김생 2) 조선전기-안평대군, 한호 3) 조선후기-윤순 IV. 18세기 서예론의 전개양상과 특징 1. 이광사의 서예론의 특징 1) 학서의 기본으로서의 전서 중시 2) 의기와 법고창신론 2. 강세황 서예론의 특징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59 1) 필법의 득의처로서의 행서 중시 2) 신운과 임서탐고론 3. 김상숙 서예론의 특징 1) 서체의 기본으로서의 해서 중시 2) 심화과 수수심운론 V. 18세기 서예론의 성격과 의의 1. 서예론의 개성적 성격 2. 서예사적 의의 VI. 결론 참고문헌 <내용 요약> 본고는 18세기 서단의 대표적 인물인 원교 이광사, 표암(豹菴) 강세 황(姜世晃. 1713-1791), 배와(坯窩) 김상숙(金相肅. 1717-1792)의 서론 을 비교 검토하여 당시 서단의 개성적 서예론을 정립해 보았다.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의 서체(書體) 성립 배경에서 이광사는 왕희 지로의 법고(法古)를 강조하는 일환으로 왕희지가 이미 행한 중비학습 (衆碑學習)에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서예의 근원을 찾아 익힘으로 써 왕희지 못지않은 글씨를 쓰고자 했다. 그는 왕희지의 글씨를 본받 으면서도 그 근원이 된 한위(漢魏)의 여러 비(碑)를 충실히 학습하여 창경발속(蒼勁拔俗)에 힘써 그만의 고유한 서체를 이룩했다. 강세황은 서론에서 해서가 초서보다 행서에 가깝다고 보았다. 또한 해서만 학습을 하게 되면 한정된 시야로 경직된 자형에 국한되기 쉬우 나, 행서를 학습하면 유연성과 필속(筆速)에 의해 생긴 공간 지각력이 서필자(書寫者)의 시야를 넓혀주므로 행서법으로 해서를 쓰면 시원하고 튼튼한 필세(筆勢)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강세황은 서법

36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이란 일치하므로 해서와 행초서는 나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여 그 는 서체변이(書體變移)에 있어 초서와 해서의 중간단계인 행서를 주력 으로 써서 득의(得意)했다. 강세황의 표암체(豹菴體)는 왕희지와 왕헌지 의 서법을 익히고 난 뒤에 원대의 조맹부 서체와 송대(宋代) 미불(米 芾)의 서체를 가미하여 유려하고 힘찬 필화(筆畫)로 형성되었다. 김상숙은 다른 사람의 서첩을 모방하지 않고 고인의 필의(筆意)를 상상하여 붓끝에 옮겨 내는 방법으로 종요(鍾繇)의 선시표(宣示表), 천계직표(薦季直表), 역명첩(力命帖) 등의 법첩(法帖)을 철저하게 의림(意臨)했다. 그 결과 필획이 가늘면서도 굳센 심획을 바탕으로 선 조(線條)가 절제되고 자구(字軀)가 아담한 직하체를 이루어낸다. 이는 간결하면서도 날카로운 필의(筆意)를 내함(內含)하고 있는 세해(細楷) 와 반행(半行)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선비의 고고함이 그대로 드러나 는 것이 특징이다. 18세기 서예론의 구체적 양상과 특징으로 이광사는 왕희지의 법첩 을 모범으로 삼아 학습하고 동기창(董其昌)의 서법을 개성화시켜 원 교체를 창안했고, 강세황은 왕희지의 법첩을 학습하고 미불과 조맹부 (趙孟頫)의 서법을 가미하여 표암체를 창안했으며, 김상숙은 종요와 왕희지로 대표되는 위진고법(魏晋古法)중에서 특히 종요의 서법에 경 도되어 직하체(稷下體)를 창안하여 당대의 서단을 장식했다.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 서예론의 특징으로 이광사는 법첩(法帖)의 외형의 모사(模寫)를 통해 창신(創新)에 이르는 길, 즉 법고(法古) 를 통한 창신의 길 을 역설하였는바, 임서(臨書)는 철저하고 정밀히 해야 하며 법첩에 내포된 서가의 뜻과 기상을 파악하여 이를 자유롭게 파 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단순한 형사(形似)에서 벗어나 창신에 이른다는 법고창신론(法古創新論)을 중시했다. 강세황은 글을 쓸 때 득심응수(得心應手)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61 고, 고인의 글씨를 대할 때 먼저 그 신운( 神 韻 )을 터득해야 함을 강조 하여 형사( 形 似 )를 하되 그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그 형 ( 形 ) 속에 들어있는 신운을 체득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위작법고( 僞 作 法 帖 )을 임모하는 폐단을 극복하기위한 그 대안으로 고인( 古 人 )의 글씨의 진의를 담고 있는 가까운 시대의 서( 書 )를 학습하는 신운( 神 韻 ) 중시의 임서탐구론( 臨 書 探 古 論 )을 설파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김상숙은 서가( 書 家 )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필획을 중시하여 필재 ( 筆 才 )의 고하를 막론하고 작가의 마음에서 배태된 심획이 있어야하 며, 바람직한 심획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하며 정밀하고도 부단한 학습을 통하여 작가의 내면세계가 서론을 통 해 온전히 전달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서법이 완성된다고 주장하여 심 획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수수심운론( 手 隨 心 運 論 )을 전개했다.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 등은 개성화 된 서론과 서체의 창안으로 18 세기 서단이 백화만발하게 된다. 이들은 서예의 반성적 전형을 왕희 지로 삼고, 주체적 창조정신과 생명정신을 예술창작의 기저로 삼아, 서예의 체질을 개선하는 법고주의 발현에 의한 서예의식을 고취시켰 다. 이러한 주체적 예술 활동은 서예의 외재적 객관 규율을 중시하던 기존의 미학관에서 탈규범화( 脫 規 範 化 )탈규정화( 脫 規 定 化 )탈형식 화( 脫 形 式 化 )를 선도하면서 순수한 자기 심정의 진( 眞 )을 중시하는 미 학관을 새롭게 제시했다. 이는 조선후기 서예 심미관의 일대변화이다. 이처럼 주체의 순수한 생명창조활동에 의해 진정한 조선인의 심기( 心 氣 )를 발현한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은 서예미학을 이광사는 의기( 意 氣 )를 중심으로 법고창신론( 法 古 創 新 論 )으로, 강세황은 신운( 神 韻 )을 중시하는 임서탐고론( 臨 書 探 古 論 )으로, 김상숙은 심획을 위주로 한 수 수심운론( 手 隨 心 運 論 )으로 승화 시켰다. 이렇게 가장 자기화 된 서예 이론을 바탕으로 원교체( 圓 嶠 體 ), 표암체( 豹 菴 體 ), 직하체( 稷 下 體 )의

36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결실을 맺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5. 원교 이광사 서예론 연구 이진선, 성신여자대학교, 2006년 2월 원교 이광사는 강화학파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며 문인으로서 역사 문자학음운학그림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우리에게 원교하면 역시 조선조 후기 사대가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서예가로서 더 알려져 있다. 이규상(李奎象)의 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 에 의하 면 원교는 생존 당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서예가로서 그 명 성을 다하였으며, 그의 서풍이 당대와 그 후대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 쳤다. 본 논문은 18세기 문예부흥기에 서예정신의 회복과 서법의 탐 구로서 동국진체(東國眞體)의 기풍이 일어났으며, 그 중심에 원교 이 광사가 있었고, 그것은 그의 글씨가 18세기라는 시대적 사고와 맞았 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통해 연구를 시작한다. <목 차> Ⅰ. 서론 1. 문제 제기 2. 연구 현황과 연구 방법 Ⅱ. 생애 및 사우(師友) 관계 1. 생애 1) 수학기(1705-1730) 2) 활동기 3) 부녕(富寧) 유배기 4) 신지도(薪智島) 유배기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63 2. 사우관계 1) 하곡 정제두 2) 백하 윤순 3) 상고당( 尙 古 堂 ) 김광수( 金 光 遂 ) Ⅲ. 사상과 기질적 성향 1. 사상 2. 기질적 성향 Ⅳ. 18 세기의 문예기풍과 서예 1. 18 세기의 문예기풍 2. 18 세기 서예 3. 원교 학서( 學 書 )의 궤적( 軌 跡 ) Ⅴ. 서예 본질론과 심미론 1. 본질론 1) 천기조화론( 天 機 造 化 論 ) 2) 의재필전론( 意 在 筆 前 論 ) 2. 심미론 1) 조화무정( 造 化 無 定 )의 생명미 2) 근골묘리( 筋 骨 妙 理 )의 역동미 Ⅵ. 필법론( 筆 法 論 )과 결구론( 結 構 論 ) 1. 용필위주( 用 筆 爲 主 )의 필법론 1) 직관신호( 直 管 伸 毫 )의 집필론( 執 筆 論 ) 2) 근골위본( 筋 骨 爲 本 )의 용필운론( 用 筆 運 論 ) 2. 자무상체( 字 無 常 體 )의 결구론( 結 構 論 ) 3. 오체일도( 五 體 一 道 )와 전예중시론( 篆 隸 重 視 論 ) Ⅶ. 서예 견식론( 見 識 論 )과 비평론 1. 필선이기( 筆 先 利 器 )로서의 견식론

36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학서론(學書論) 2) 고비첩(古碑帖)의 탐구와 그 진위론(眞僞論) (1) 전서(篆書) (2) 예서(隸書) (3) 해서(楷書) 3) 문방 사보론(四寶論) 2. 서예 비평론 1) 비평 기준론 2) 역대 서가(書家)들에 대한 비평 Ⅷ. 원교의 서예관과 미적 특징 1. 원교의 서예관 2. 원교 서예의 미적 특징 진(眞) 과 기(奇) Ⅸ. 결론 참고문헌 <논문 내용> 원교의 동국진체(東國眞體)가 배태된 시대적 배경은 그동안의 논의 처럼 왕희지체(王羲之體)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왕희지의 진적(眞跡) 으로서의 복귀 라거나 혹은 조선고유의 색깔을 띤 서체풍의 글씨 로서 외재적 기법의 다름이나 서체적 특질이 있어서라고 하기보다는, 옥동 이서를 선두로 백하 윤순 그리고 원교 이광사로 이어지는 18세기의 서예가들이 전래되는 기존의 서풍의 그릇됨을 크게 인식하고, 새롭게 서예에 철학적이고 심미적인 근거를 세움으로써 서예론을 정립하여 가(假) 가 아닌 진(眞) 으로서의 개성 넘치는 참다운 글씨를 쓰고자 다양하게 시도되었던 글씨들의 총체적 명칭이다. 특히 이러한 시대적 가치관 속에서 집필된 원교의 서결(書訣) 은 그의 서예에 대한 인식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65 과 서법 논리 그리고 미의식의 독창적 특성을 밝혀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주는 저서임으로 그 내용을 중심으로 원교의 서예론을 추론하 고 이를 바탕으로 서예관과 서예의 미적 특징을 밝혔다. 원교는 서예의 본질이 개인의 의기( 意 氣 )가 자연의 이치에 부합되 어 천기조화( 天 機 造 化 )의 묘를 다하는 것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 엇보다도 서예가의 의기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내재적 이치를 형상으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자연의 모든 사물의 생명력과 역동성이 서예가 지향할 수 있는 최고의 심미적 경 지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예의 이상적 경지도 필법을 근 본으로 한 결구( 結 構 )에서 이루어진다고 정의함으로써 서법론의 중요 성을 말한다. 그러나 그 기준 역시 생활 즉 살아 움직여야 한다 는 것에 둠으로써 마치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의 모습이 각각 그 모양 새를 달리하는 것처럼, 글씨 또한 쓰는 사람의 의기에 따라 다르고 변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일정한 짜임새로 짜 맞추듯 써서는 안 된다고 하여 개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서체를 논함에 있어서도 오 체( 五 體 )의 의기가 서로 소통될 수 있어야 진정 글씨에 능통한 것이 라고 하여 오체일도( 五 體 一 道 )를 주장하고 있으며, 특히 전서( 篆 書 )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예체가 올바른 서법에 나 아가기 위해서 먼저 안목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는 올바른 학서법( 學 書 法 )을 강조한다. 결국 서예는 서법의 본말을 알아 그 단계를 바르게 실천해야지 곁 가지를 쫓다가 근본을 잃거나 아름다움만을 숭상하여서는 험준경건 ( 險 峻 勁 健 )한 획의 진기( 眞 氣 )를 얻지 못함으로, 오직 정밀한 안목과 전일한 공력으로 서법의 근본을 세우고, 이로써 붓의 운용의 묘를 다 함으로써 심화( 心 畵 )를 얻어 글자마다 인의기( 人 意 氣 )를 발할 때 감물 응통( 感 物 應 通 )하여 천기조화의 묘를 다한 글씨를 쓸 수 있다는 것이

36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시속의 그릇된 상식이나 학서의 방법이 아닌 오직 옛 법을 정밀하게 익히는 정정고법(專精古法)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가 서예미의 절대 기준을 옛날에 두는 상고주의(尙古主義)적 서예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여기서의 상고 란 미의 시원(始原)으로서 꾸미지 않은 천연(天然) 천진(天眞)의 바탕 자리며, 순수 순박하며 고졸(古拙)하여 기교와는 거리가 먼 최고의 미 적 가치의 기준이다. 그렇지만 글씨의 미적 발현에 있어서는 심성(心 性)의 본연(本然)의 상태를 검속(檢束)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유활발 (優遊活潑)해야 한다고 하는 그의 철학적 가치관처럼 심화(心畵)의 자 유자재한 붓놀림 속에 활발한 개성을 중시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서예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철학적 가치관과 서예관을 그대로 진(眞)과 기(奇)라는 서예 의 미적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배움이 지극한 곳에 이르 러 오묘한 운용이 자신에게 있으면, 변화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스스 로 변화하는 것으로서 마치 자연조화가 사물에 따라 형태를 이루되 처음부터 일정한 체제가 없다. 고 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자 득의 내면의 진(眞)의 상태가 외형적으로 꾸밈이 없이 형상화되어 드 러났을 때 그것이 곧 기(奇)라고 할 수 있으니, 기(奇)는 진(眞)의 또 다른 표현의 진극처(眞極處)라는 것이다. 이처럼 원교는 18세기 문예부흥기의 대표적 서예가로서 그 시대의 정신과 요구를 철저히 인식, 보다 선구적이고 선진적인 서예론과 서 예관을 제시하며 서법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다. 또한 그러한 인식 하에 터득한 서예론을 한 개인의 사유가 아닌 서결 이라는 서예 이 론서로서 공론화시킴으로서 그 시대의 서법을 계도하고 서예의 시대 미학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추사에 의해 폄하되었었던 원교의 서예사적 위치는 재정립되어야 한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67 심대윤沈大允 심대윤 경학에 대한 연구 : 19세기 현실지향적 경학관의 일단면 장병한, 성균관대학교, 1995년 8월 경학은 독립된 학문의 한 분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사상과 문학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 한문학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심대윤의 경 학을 통해 19세기 현실주의적 경학관을 살핀다. 현실주의란 현실의 세계를 근원으로 삼고, 거기서 살고 있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사색하는 사상과 철학이 중심이 되어 경전을 해석하는 주의 를 말한다. 따라서 경전 해석의 내용과 입장이 형이상학적 세계가 아 니라,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현실적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대윤의 경학 해석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한다. 본 논문이 논하는 것 또한 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목 차> I. 서론 II. 생애와 저술 1. 생애 2. 저작활동 III. 경학의 사상적 기조 1. 기론 2. 인과론 3. 실천론 IV. 대학고정 과 중용훈의

36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저작동기 2. 대학 과 중용 의 저작설 3. 대학고정 의 주요해석 1) 서술체제 2) 격치와 충서 3) 점치와 폭성 4. 중용훈의 의 주요해석 1) 서술체제 2) 중화 3) 비은 4) 성 V. 논어 - 논어 의 주요문제 1. 체제 및 저술동기 2. 인성의 문제 1) 기질지성 2) 성즉리 3) 성즉리 4) 동리 와 율성 3. 인과 충서의 문제 1) 인 2) 충서 VI. 주역 - 상의점법 1. 체제와 저술동기 2. 역의 의미 3. 독역과 상수 VII. 결론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69 부록 : 기타 저작의 저술 경위와 체제 참고문헌 ABSTRACT <논문 내용> 심대윤은 19세기 초중반기에 살았던 유사(儒士)로서 몰락한 양반 가 문의 후예이다. 자신에 대해 생어우환(生於憂患), 장어곤궁(長於困窮), 우거성(又居成)인 영생수접(營生酬接) 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면 서울의 도성 안에서의 그의 성장 과정과 삶의 역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의 문집의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관계로 그에 관한 자 세한 전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경학 관계의 저서 44책[사서(四書)]와 오경(五經) 중 맹자(孟子) 에 대한 저술만 전하지 않고 있음)과 동사 (東史) 6책, 전사(全史) 58책이 전해지고 있다. 심대윤의 경학적 기본 입장은 정주학의 주석 체계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부터 출발하고 있는데 특히 그는 정이천 주자의 주석 체계를 독소적 존재로 여겼으며 경전의 원래 의미가 정주학의 사변적인 관념에 의해 겹겹이 가려지고 변질 왜곡 되었다고 인식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정주학의 철학적 세계관인 이기 이원론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자신의 우주론을 주기 적 입장에서 설명했 다. 그의 경학 세계의 특징은 ① 절대적 관념적 진리 체계를 부정하는 것, ② 인간의 자율적 의지와 실천성을 중시하는 것, ③ 반성리학적인것, ④ 점진적인 발전을 통한 완전성을 지향하는 것, ⑤ 명리(名利)와 정욕을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한 것, ⑥ 사람과 현실로부터 유리된 관념적인 도를 부정하는 것 등이다. 이런 그의 경학세계는 성리학적 질서체계와 천주학 (서학)의 침염으로부터의 사상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주 학의 주석 체계에 의한 경전의 변질과 왜곡을 극복하고 그 원의를 회복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 경학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37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 창강 김택영 시문학의 연구 오윤희, 동국대학교, 1989년 8월 김택영의 시론(詩論)과 사상, 풍속 및 형식과 기교를 검토했다. 그 의 시(詩)의 문예미적 특징과 아울러 한말 사대 문학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문시가와의 교체기에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밝혔다. <목 차> I. 서론 1. 연구사 검토 및 연구목적과 방법 2. 생애와 그 학문 1) 생애 2) 학문 II. 문학관 1. 문학본질론 1) 문도일치론 2) 신기론 3) 개오론 4) 문리론 2. 형식론 1) 수사학리론 (1) 법에 맞는 기 (2) 귀자연 2) 방법론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71 (1) 단락청석 (2) 성조의 해율 (3) 허실상배와 허자활용 (4) 수개와 용전 III. 시의 사상과 풍격 1. 사상 1) 고기의 민멸에서 움튼 민족의식 2) 고려의 유민의식 3) 실학을 계승한 현실인식 4) 문장보국의식 2. 풍격 1) 호장 2) 고아 3) 처초 4) 기려 IV. 형식과 기교 1. 자유로운 시식 2. 결구 3. 첩자와 중복구 4. 회화미 V. 제가의 김택영론과 독자성 1. 제가의 김택영론 2. 독자성 VI. 결론 참고문헌 Summary

37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부록] <내용 요약> 창강 김택영은 문학사상과 형식미에 뛰어난 한말 사대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문학연구는 영성한 가운데 본 논문이 시문학 의 종합연구로는 처음으로 시도했다. 본 논문은 김택영의 시론( 詩 論 ) 과 사상, 풍속 및 형식과 기교를 검토했다. 그의 시( 詩 )의 문예미적 특징과 아울러 한말 사대 문학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국문시가와 의 교체기에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고문가( 古 文 家 )로서 문학이 도( 道 )에 종속되는 걸 거부하고 만상( 萬 象 )을 다 구비 하고 인생의 모든 단면에 문학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문학은 만 고불변의 사업이라 주장했다. 문학론으로는 문도일치론( 文 道 一 致 論 ), 신기( 神 氣 ), 개오( 開 悟 ), 문리( 文 理 )가 있고, 문학사상으로는 유민의식 ( 遺 民 意 識 ), 문장보국의식( 文 章 報 國 意 識 )이 뛰어나다. 시( 詩 )의 분석은 그의 문학관과 연관을 가지면서 검토했다. 우선 시 양식이 다양하다 는 점이 특징인데, 이는 자구나 대우( 對 偶 )에 구애되지 않는 시문( 詩 文 )의 창출이라는 점이다. 한말의 복잡한 갈등을 담기엔 정형시는 그 에게 부담스러웠다. 새로운 조류나 시대상황을 담기 위한 시 양식의 다양성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시의 구조를 용의주도 하게 창작했다. 이와 같은 작품성으로 인하여 김택영이 사대가 중 가 장 뛰어난 작가였음을 논증했다. 회화적인 공간처리, 정( 情 )과 경( 景 ) 의 대비를 통합 함의 배중, 또한 실사( 實 詞 )를 많이 써서 격조를 높이 기도 하고 허자( 虛 字 )로 신리( 神 理 )를 얻기도 했다. 특히 첩자( 疊 字 )와 중복자의 화려한 사용은 사물의 동태나 정에 예민한 시인이라는 점이 다. 특히 율시( 律 詩 )에서 5.6구( 句 )에 첩자( 疊 字 )의 상감으로 시의 아 름다움을 높이며 글자의 중복 또는 구( 句 )의 중복은 지금의 시가( 詩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73 歌)에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했다. 이에 본고는 한시문학 (漢詩文學)의 큰 줄기를 장식한 김택영의 시문(詩文) 정신과 자유로운 형식의 사용이 국문시가와의 접합을 드러내었다. 2. 김택영의 사회사상과 역사인식 현계순, 인하대학교, 1993년 8월 김택영 최초의 저술이라 할 숭양기구전(崧陽耆舊傳) 이 간행된 1884년은 역사상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으로 평가받고 있는 갑신정 변이 일어난 해였으며 또한 그의 대표적 저술인 역사집략(歷史輯略) 이 간행된 1905년은 을사오조약이 체결된 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 변화의 역사경험은 필연적으로 김택영의 삶의 궤적과 연계되어 전개되 었다. 그런 역경 속에서도 문장보국(文章報國)의 외길을 걸어 다수의 역사서를 저술 간행했다. 이 논문은 창강 김택영의 저작물을 중심으로 그의 사회사상과 역사의식을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이 논문에서 는 제2장에서 김택영의 생애와 학문을 정리하여 그의 사회사상의 형성 배경을 살폈으며 제3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사상적 기저를 이루고 있 는 유교관의 성격을 규명하여 그의 경제관과 자강의식을 고찰하였으며 제4장에서 김택영의 역사저술 중에서 한사경 과 한국역대소사 의 분석을 통하여 그의 고대사 인식과 근대사인식 중 몇 개의 항목을 설 정하여 그의 역사의식을 살피고 있다. <목 차> 논문개요 1. 서론 2. 생애와 학문

37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사회사상 4. 역사의식 1) 고대사인식 2) 근대사인식 5. 결론 부록 1. 김택영 역주 천부경 2. 김택영의 저술 연보와 해설 참고문헌 ABSTRACT <내용 요약> 김택영은 밖으로 외세의 침투와 안으로 전통적 사회가 해체되면서 대내외적인 격동과 근대 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로 모순이 분출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김택영 최초의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숭양기구전 이 간행된 1884년은 역사상 위로부터의 근대적 개혁을 평가받고 있는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였으며, 또한 그의 대표적 저술인 역사집략 이 간행된 1905년은 을사오조약이 체결된 해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변 화의 역사 경험은 필연적으로 김택영의 삶의 궤적과 연계되어 전개되 었다. 이와 같이 김택영은 격변기에 살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나름대 로의 인생관을 정립하면서 한말 유학인으로는 가장 먼저 거이수지(去 而守之)하는 중국 망명을 결행하였고, 그런 역경 속에서도 문장보국의 외길을 걸어 다수의 역사서를 저술 간행하였고, 매천집(梅泉集), 명 미당집(明美堂集), 연암집(燕巖集) 등 명인의 문집을 교정 간행했다. 특히 김택영은 역사집략 이후 조선시대사인 한사(韓史) 를 저술하 여 자신의 독자적인 한국사 이해 체계를 세우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75 지며, 한국역대소사(韓國歷代小史) 의 간행은 바로 그러한 의도로 생 각된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김택영의 생애와 학문을 정리하여 그의 사회사 상의 형성배경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상적 기저를 이루고 있 는 유교관의 성격을 규명하여, 그의 경제관과 자강의식을 고찰했다. 그리고 김택영의 역사 저술 중에서, 한사경 과 한국역대소사 의 분 석을 통하여 그의 고대사 인식과 근대사 인식 중 몇 개의 항목을 설 정하여 그의 역사인식을 살펴보았다. 김택영은 개성의 인삼업에 종사하는 집에서 태어나 상업의 진취적 경향과 서경덕 등 개성의 자득(自得) 자오(自悟)라는 자유로운 학풍의 영향, 그리고 중국 귀유광(歸有光)의 학문 영향을 받아 과거지학(科擧 之學) 보다는 시의에 맞는 고문(古文)을 통하여 자기 나름의 고문관 (古文觀)을 정립했다. 또한 이건창, 황현, 김윤식, 그리고 애국계몽운 동가인 박은식과 시(詩)문(文)을 통해 교류했고, 망명해서는 장젠 등 중국 근대 지식인들과 교류했다. 김택영은 망명 후 황현처럼 자정 치명(自靖致命)하지 못한 것을 늘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중국으로 망 명하여 거이수지(去而守之)하며 문장보국의 애국일념으로 많은 문집 과 역사서를 저술 간행하는 문화 사업으로 일생을 보냈다. 특히 김택 영은 교정삼국사기(校正三國史記) 를 간행하면서 조선의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삼국사기 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켰을 뿐 아니 라, 삼국사기 문장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했다. 그리고 김택영의 역 사서술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직서(直書) 정신이었으며, 비록 일정한 한계는 있었지만 실학시대의 자주적이고 고증적인 학문연구의 영향을 받아 객관적이고 자주적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그의 유교관의 특징은 전통적인 유교 원칙, 즉 예(禮) 인(仁)

37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경(經) 윤상(倫常) 등을 강조하면서도 경(經)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권도(權道)를 인정했다. 그가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유교사상이 현실문제에 있어서 다분히 실용적인 측면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김택영은 전폐론(錢幣論) 을 통하여 정덕(正德), 삼강오상(三綱五常)과 함께 이용후생인 상공업도 다 같이 중요한 것으로, 선후는 있을 수 있지만 경중차등(輕重差等)은 있을 수 없음을 주장했고, 경제 운용에 있어서도 신용과 정공(正供)의 경제 원리를 이상으로 하는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는 성군 현인에 의하여 예(禮)로 다스려지는 대동사회를 이상으로 생각했는데, 이웃나라 사이에는 총칼이 아닌 폐백으로 왕래하는 평화적인 외교관 계를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국제 관계는 어디까지나 자립자강에 의한 군가 간 균형 상태에서 평화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국부(國富)를 통한 자립외교를 강조했다. 김택영은 역사 기술에 있어서, 철저하게 술이부작의 원칙을 견지하 고 있다. 특히 단군에 대해서는 이의전의(以疑傳疑), 이신전신(以信傳 信)해야 한다는 춘추(春秋) 필법에 따라 철저히 해석적 측면을 거부하 고 있다. 이와 같은 김택영의 입장은 한편으로는 사실의 철저한 고증 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드러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천부경 에 대 한 전폭적인 수용 자세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부정적인 면도 내포될 수 있다. 즉 고대사에 대한 인용 사료 선택 문제에 있어서 김택영은 그 진위에 관계없이 부족한 고대사 관계 자료라면 일단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근대사 인식에 있어서는 개화관(開化觀) 동학 의병, 그리고 대원군 과 고종관(高宗觀) 등 몇 개의 주제를 선별하여 검토했다. 그는 전통 적인 유교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개항에 관한 견해를 소개 하는 데서, 조선책략(朝鮮策略) 에 대한 평가에서, 갑신정변의 주도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77 세력을 반역으로 보지 않고 개혁당으로 인정할 것을 주장하는 등 갑 신정변에 긍정적 평가에서, 그리고 선진문물의 습득을 통한 문명화를 주장하고 있는 등, 김택영은 개항 개화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 지고 있다. 김택영의 동학에 대한 인식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유교 지식인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한편 김택영은 안중근의 생애를 기술 하는데 있어서, 유교적 절의에 바탕을 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 활동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의병 출 현의 이유를 유교를 숭상하여 사대부가 명절(名節)을 중히 여기는 풍 속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유교의 풍교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택 영의 대원군을 보는 눈은 박은식의 그것과 유사하다. 즉 대원군이 와 환법(臥環法) 성문세(城門稅) 등으로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고, 외척과 권문세가의 세력을 물리치고 중앙집권 등을 강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경복궁 중건 같은 무리한 토목사업이라든지 상업 장려책을 통한 조세원의 개발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 등에 대해서는 부 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김택영의 고종과 지배층에 대한 시각 역시 매우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결국 김택영의 역사인식은 철저한 유교적 가치관과 현실인식의 표 출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의 전체 역사 기술에서 그러한 가치관이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다. 3. 창강 김택영의 산문 연구 왕숙의, 서울대학교, 1995년 2월. 지금까지 이루어진 창강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주로 작가론적 관심 과 고문 이론 방면에만 치우쳐서, 산문 작품의 미학적 성취 부분에 대한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이 연구는 창강의 문학 정신과

37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함께 그의 고문론( 古 文 論 )과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그의 산문 작품의 특징을 검토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창강의 문학 지향 을 통 해 세기 교체기에 활동한 문인으로서 창강이 한국 중국 문학을 어떻 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폈으며, 신문학에 대한 그의 입장과 그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창강의 산문 이론을 문 ( 文 )과 도( 道 ), 문( 文 )과 기( 氣 ), 법( 法 )과 묘( 妙 ) 등으로 구분하여, 그 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산문의 경지인 이진( 理 眞 )미후( 味 厚 )운영 ( 韻 永 )과 장구대진( 長 驅 大 進 )의 문장 기세( 氣 勢 )에 대해 살폈다. 창강 의 산문 작품은 전장류( 傳 狀 類 )와 잡기류( 雜 記 類 ), 서발류( 序 跋 類 )로 크게 분류하여, 각각 두세 편의 대표적 작품들을 통해 그 특징을 살 폈다. 전장류 산문에서는 인물 형상과 과정에서 나타난 예술적 특징 을 살폈으며, 잡기류 산문에 있어서는 그의 예술 구상의 측면을, 그리 고 서발류에서는 창강 산문의 언어 풍격을 고찰함과 동시에 그의 창 작 기교를 분석했다. <목 차> Ⅰ. 서론 Ⅱ. 창강의 문학 선택 1. 창강의 문학 지향 2. 중국 문학의 수용과 선택 3. 고문문장( 古 文 文 章 )의 경도 Ⅲ. 창강의 고문론 1. 문조론( 文 道 論 )의 수용 2. 문기론( 文 氣 論 )의 수용 3. 법( 法 )과 묘( 妙 )의 운용 Ⅳ. 창강 산문의 예술적 성취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79 1. 전상류( 傳 狀 類 ) 1) 제재의 정선( 精 選 ) 2) 인물 묘사의 생동성 3) 인물의 대비적 형상화 2. 잡기류( 雜 記 類 ) 1) 신기( 新 奇 )의 추구 2) 여운( 餘 韻 )의 획득 3) 유추( 類 推 )의 극대화 3. 서발류( 序 跋 類 ) 1) 입론( 立 論 )의 독창성 2) 전개의 기복( 起 伏 ) 변화 3) 박려( 博 麗 )와 탐지( 探 摯 )의 풍격 Ⅴ. 결론 참고문헌 <내용 요약> 창강은 오로지 문학에만 몰두하는 인생을 살았다. 이러한 몰두의 바탕에는 그의 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착뿐 아니라, 투철한 애국 사상 이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창강은 소년시절부터 역사와 민족에 대한 뚜렷한 자각과 의식을 지녔고, 내우외환의 시대에 처하여 민족 을 위해 목숨을 바친 우국지사들의 삶을 본받고자 노력했다. 또한 조 국과 민족을 향한 열애와 충성을 역사와 문학을 통해 표출하고자 했 다. 그러한 사실은 창강이 스스로 사관의 역할을 자임하여, 민족의 미 래를 도모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지나간 역사의 치란득실( 治 亂 得 失 )과 망국의 교훈을 총 정리한 것이나, 문인으로서 자부와 긍지를 갖고 문 학 창작과 전인( 前 人 )의 작품을 보존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에서 확

38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인할 수 있다. 창강의 한( 韓 )중( 中 ) 문학 비교의 중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창강은 두 나라 문학에 대한 비교를 문화에 대한 비교와 병행했다. 둘째, 창강은 당송대( 唐 宋 代 ) 고문파들이 일반적으 로 한구정맥( 韓 歐 正 脈 ) 이라고 한여 한유( 韓 愈 ) 구양수( 歐 陽 脩 )를 숭상 한 데 반해, 구양수 문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했다. 창강의 중 국 문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한국 고문의 진흥을 위해 그가 모색한 길이 중국 고문가들에 대한 표면적인 모방이나 형적( 形 迹 )의 유사함 을 구한 것이 아니라, 문장의 기력을 확충하고 제고하는 방향이었음 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창강은 당시에 일어났던 신학( 新 學 )의 흐름에 대해 특히 신문학의 변화에 대해 배척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실학을 받아들일 수는 있 지만, 사상과 문화면의 개화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편 한국의 국문운동이나 중국의 신문학 운동 등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관 심을 표명하는 대신, 오히려 한문( 漢 文 )을 신성시하고 결국 근대적 국 민 문학의 지향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짊어질 수 있을 만큼의 자기 전 환을 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창강은 한국 한문학의 종장을 맺는 대 가가 될 수는 있었지만, 그 새로운 장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창강에게 있어서 도( 道 )에 대한 문( 文 )의 위상은 역대 고문가들과 다르게 인식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창강은 도( 道 )의 의미를 유가의 도 ( 道 )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는 도( 道 )의 의미를 우주만물의 도( 道 ) 로 확대 인식했으며, 그것을 토대로 체도위문론( 體 道 爲 文 論 )을 주장했 다. 체도위문론 은 이전의 고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창강만의 독특한 견해일 뿐 아니라, 고문론의 역사적 전개에서 본다면 진일보한 성과 라고 할 수 있다. 창강의 문기론( 文 氣 論 )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창강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81 은 사마천의 글이 장구대진( 長 驅 大 進 )의 웅장한 기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상적인 전범( 典 範 )으로 인식했다. 둘째, 창강은 문장을 체 ( 體 )법( 法 )묘( 妙 )기( 氣 )로 나누어 보았는데, 이 중에서 기( 氣 )는 앞의 세 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궁극적으로 나타나는 효과로 보았다. 셋째, 이진( 理 眞 )미후( 味 厚 )운영( 韻 永 ) 으로 산문을 감상하는 기준 을 마련했다. 창강은 이론과 창작을 겸비한 고문의 대가답게 문자의 법( 法 )을 체 계화하려고 했다. 창강이 말하는 법은 글의 근본적인 질서를 의미하 며, 기승전합( 起 承 轉 合 ) 으로 요약할 수 있다. 창강이 제시한 기승전 합 은 더 이상 세분화구체화 되지는 못했지만, 실제 문장 학습의 객 관적인 기준을 마련했다는데서 적지 않은 의의를 지닌다. 창강은 법 은 처음 글짓기를 배우는 사람이 꼭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이지만, 단 순히 법을 익히는 데만 그친다면, 그 법은 죽은 법이 되고 말아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고 보았다. 즉 학문의 초보단계에서 법은 반드시 익혀야 할 것이지만, 문 文 의 궁극적인 목적은 묘( 妙 )의 창출에 있다고 보았다. 창강은 묘 를 천변만화( 千 變 萬 化 )의 이름이라고 했다. 천변만화에서 묘 가 생긴다는 뜻이다. 불변의 법 안에 커다란 변화가 있어야만 법 도 살고 글도 산다고 했으니, 실제 변( 變 )은 법과 문( 文 )을 모두 살리 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변화한다는 말은 살아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변화에서 생명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듯이, 변화에서 문장의 묘를 감 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강의 이러한 관점은 문학의 문학다움이 무 엇을 말하는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말하는가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미학적 경향이 농후하다. 또한 무엇을 말하는가 만을 중시했 던 도학자( 道 學 者 )들과 달리 창강의 문장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38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창강이 제시한 학문은 학법( 學 法 )으로 시작해서 득묘( 得 妙 )로 마무 리되는 순서를 도식화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장의 미학은 무엇을 표현 전달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중심과제로 삼아 야 하며, 문장은 천변만화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만 묘 (또는 神 )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창강의 이러한 관점은 문장가로서 작문체 험과 이론가로서의 치밀한 사유를 통해 문학의 존재성에 대해 적극적 으로 인식한 결과인데, 그것은 훌륭한 문학작품은 자율적으로 존재한 다. 는 현대 문예미학의 대명제와도 상통하는 논리라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소중한 미학적 성과라 하겠다. 전상류( 傳 狀 類 ) 산문은 창강이 고문 창작에 있어 가장 심혈을 쏟았 던 형식이다. 창강의 전상류 산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내용면에서 충의( 忠 義 )정열( 情 熱 )의 인물과 여항( 閭 巷 )간의 평민의 삶을 중시하고 있다. 한편 기법적인 면에서 사마천 한유 등의 창작 경험을 받아들여 인물형성, 성격묘사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제제( 提 題 )의 적절한 선택과 배열이 돋보 였으며, 대비적 수법의 활용을 통해 인물의 예술적 경상을 강화시키 거나, 인물의 성격과 품격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창강이 이처럼 인물 전기에 심혈을 기울인 까닭은 한국의 역사 저술이 지닌 문제점 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 노력한 결과이다. 창강은 모두 41편의 잡기류( 雜 記 類 ) 산문을 남겼다. 창강은 잡기류 산문에서 서경( 敍 景 ) 묘사( 描 寫 ) 서정( 抒 情 ) 의론( 議 論 ) 등을 적절히 안배하여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변화를 강구하고 신기를 추구하여 그가 주장하는 천변만화하는 묘 의 원칙에 부합되고 있다. 잡기류 산문은 창강의 산문 중에서 문학성이 가장 뛰어나고 예 술성 또한 매우 높다. 창강의 잡기류 산문에서 의( 意 )의 표출방식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구상이 기묘하고, 연상( 聯 想 )이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83 독특하여 주제표출에서 출의신기(出意新奇)하고, 2) 사물에 의탁해서 지(志)를 비유하고 경(景)에 나아가 정(情)을 드러내어 깊은 곳에 의 (意)를 대고 있으며, 3) 제제를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작은 것 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 의(意)를 세운 것이 고원하다 등이다. 창강의 서발류(序跋類) 산문은 다소 예술성에 있어서 전상류, 잡기 류 산문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주제 설정이나 구성 등 기교면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창강이 의론류 작품에서 거둔 성과를 작 법상의 기교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았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창강 의 문文은 평이박실(平易樸實), 간결명달(簡潔明達)할 뿐만 아니라, 다 양한 예술 기법으로 언어의 선명성형상성생동성을 강조하고 있 다. 즉 창강의 문(文)은 평직청강(平直淸剛)하고 박려탐지(朴麗深摯)한 것에 특징이 있다. 4. 조선후기 신운론神韻論 수용 연구 김월성, 강원대학교, 2004년 2월 신운론(神韻論)은 중국 청나라 초기의 시단을 주도했던 왕사정(王士 禎)이 집대성한 시학이다. 왕사정의 신운론은 조선에서는 이덕무, 박제 가, 유득공(柳得恭), 이서구(李書求) 등 북학파 시인들에 수용되기 시작 하였고, 추사 김정희를 거쳐 창강 김택영에게까지 이르렀던 시학이다. 본 논문에서는 다룬 김택영은 김택영의 시 세계에 집중되어 있다. <목 차> Ⅰ. 서론 1. 연구 목적 2. 연구사

38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연구 범위와 방법 Ⅱ. 신운론( 神 韻 論 )의 이론적 검토 1. 신운의 개념과 전통문화의 언의관( 言 意 觀 ) 1) 신운의 기본 개념 2) 전통문화의 언의관 3) 의상( 意 象 ) 2. 왕사정( 王 士 禎 ) 신운론의 내용과 그 범주 1) 신운에 대한 왕사정의 해석 2) 신운론의 범주 3. 왕사정 신운론의 연원 1) 사공도의 시경설( 詩 境 說 ) 2) 엄우의 정취, 묘오설 3) 유조시기( 六 朝 時 期 )의 청원파( 淸 遠 派 )의 영향 4) 회( 繪 ), 이론의 영향 Ⅲ. 조선후기 신운론의 수용과 전개 1. 형암 이덕무의 시학 1) 현학적 취향 2) 도가적 성향 3) 원기론( 元 氣 論 ) 2. 초정 박제가의 시학 1) 귀무론( 貴 無 論 ) 2) 미론시학( 味 論 詩 學 ) 3) 자연미에 대한 추구 3. 유득공과 이서구의 시학 4. 추사 김정희의 시학 1)청대의 시학에 대한 추사의 자세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85 2) 추사의 시학과 옹방강의 기리설( 肌 理 說 ) 3) 추사의 시선일치설( 詩 禪 一 致 說 ) 4) 서예의 원리에 의한 신운미( 神 韻 美 ) 탐구 5. 창강 김택영의 시학 1) 창강의 화이론( 華 夷 論 ) 2) 신운에 대한 창강의 해석 3) 창강의 도문일치( 道 文 一 致 )와 옹방강의 기리설의 연관성 4) 허실상배론( 虛 實 相 配 說 ) Ⅳ. 조선후기 신운론의 시적 구현 1. 북학파 시인들의 시 세계 1) 회고시( 懷 古 詩 ), 사시( 事 詩 )의 신운 2) 산수전원시의 신운 2. 추사 김정희의 시 세계 1) 서예미의 신운 2) 회( 繪 )미( 美 )의 신운 3. 창강 김택영의 시 세계 1) 허실상배( 虛 實 相 配 )의 신운 2) 시공간의 결합과 변화의 신운 3) 의상화( 意 象 化 ) 기법의 신운 4) 허실상배설( 虛 實 相 配 說 ) Ⅳ. 조선후기 신운론의 시적 구현 1. 북학파 시인들의 시 세계 1) 회고시( 懷 古 詩 ), 사시( 事 詩 )의 신운 2) 산수전원시의 신운 2. 추사 김정희의 시 세계 1) 서예미의 신운

38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회( 繪 ) 미( 美 )의 신운 3. 창강 김택영의 시 세계 1) 허실상배( 虛 實 相 配 )의 신운 2) 시공간의 결합과 변화의 신운 3) 의상화( 意 象 化 ) 기법의 신운 Ⅴ. 결 론 참고문헌 中 文 摘 要 <내용 요약> 창강 김택영은 우리 민족 한시 문학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시인이 다. 그는 천여 수의 한시( 漢 詩 )와 많은 시론( 詩 論 )을 남겼다. 창강은 신운( 神 韻 )을 시문학의 생명으로 간주했다. 그는 시운론의 내포와 그 중요성을 그 시론( 詩 論 ) 여러 곳에서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 는 언제나 독실한 유학자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던 그의 시학에서는 도가적 성향을 보였던 북학파 시인들이나 불교적 성향을 보였던 추사 김정희의 시학에서처럼 자연주의적 경향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시 학은 전통적인 유학을 바탕으로 삼았던 옹방강( 翁 方 綱 )의 시학과 궤 를 같이 하고 있다. 창강의 문집에서는 옹방강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시학에 관한 그의 논술들을 따져보면 그는 옹방강의 기 리설( 肌 理 說 ) 에 심취되었던 문인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옹방강 은 중국역사에서 거유( 巨 儒 ) 즉 학문을 깊이 닦은 유학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옹방강의 기리설과 일맥상통한 창강의 시학은 내용과 형식 의 통일에만 주안점을 두는 유가문학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87 영재 이건창 영재 이건창 산문 연구-인물기사(人物記事)를 중심으로 이희목, 성균관대학교, 1992년 이 논문은 영재 이건창의 산문, 특히 비지전장류(碑誌傳狀類)에 속 하는 기사문(記事文)이 어떤 인물들을 포착해서 어떻게 그리고 있으 며, 그들 인물의 형상화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를 고찰 한 것이다. <목 차> 一. 문제의 제기 1. 이건창 문학에 있어서의 인물기사류(人物記事類)의 산문(散文) 2. 이건창과 19세기 후반의 시대 二. 이건창 문학의 경향과 고문론(古文論) 1. 현실주의적 문학의 추구 2. 유오심협(惟吾心愜) 의 작가정신 3. 유오심협 의 작문론 三. 인물기사류의 작품 내용 및 그 의미 1. 자료의 개황 2. 병인신미양요 중의 인물들 3. 충효의 인물들 4. 학자시인으로 주체적 인물들 5. 절(節)과 열(烈)의 여류(女流)들 6. 역사상의 인물에 대한 재조명 四. 인물기사류의 양식적 특징과 형상화

38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 인물기사의 여러 양식 2. 형상화 수법상(手法上)의 특징 五. 결어 <내용 요약> 영재의 사상은 대체로 양명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바, 이는 주 체적 자아 와 실(實) 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은 한 편으로 연정(緣情) 의 시정신(詩精神)과 유오심협(惟吾心愜) 의 작가정 신으로 긴밀하게 이어지면서 현실주의적인 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중 요한 요소가 된다고 한다. 특히 유오심협 의 작가 정신은 이 논문에 서 집중적으로 살핀 인물기사의 세계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 다. 즉 영재는 유오심협 의 작가정신을 토대로 하여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민족과 국가의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간형의 제시를 자신의 인물기사를 통해 구현하고자 노력 한 것이라고 한다. 영재가 기사문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인물들을 주제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면, 첫째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던 인물, 둘째 주체적 인 자세를 견지했던 학자시인들, 셋째 절의(節義)를 지킨 인물, 넷 째 열의(烈義) 행적을 보인 여인들, 다섯째 충효의 행적을 보인 인물 들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가 당시의 시대상황과 일정하게 관련된 의미를 가지는 인물들로 파악되었다. 영재는 기사문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위기적 상황을 묘사하고, 그러한 위기적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모색했다고 한다. 필자는 영재가 제시한 이러한 인간형들이 새롭지는 않아 보인다고 하면서, 근대적 인간형의 창조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리고 형식적인 면에서 영재의 기사문은 기존의 양식을 탈피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89 는 영재의 기사문이 가지는 분명한 한계점이다. 그러나 영재의 기사 문은 다른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즉 기사문을 통해 진실 하게 그려진 진지한 인간정신과 자세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주목할 만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한다. 필자는 영재의 기사문에 대한 검토를 통 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영재의 기사문은 대다수가 당시의 시 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시에 민시우국( 憫 時 憂 國 ) 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 많았던 것처럼 그의 기사문도 시대적 요구에 잘 부응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국가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계층으로 사대부를 상정하고 전형적인 사대부들을 형상화하였고, 주 어진 임무에 충실했던 인물들을 그려냈으며, 절( 節 ) 을 인물기사의 중 요한 주제로 했다. 이것은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주체 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던 것이 다. 그리고 효( 孝 )와 열( 烈 )을 충( 忠 )과 관련지으면서 새롭게 부각시킴 으로써 전통사회의 도덕적 규범마저 소홀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영재는 인물기사야 말로 시대에 잘 대응할 수 있는 문학양식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인물형상을 통해 당대의 국가와 사회 현실을 묘 사하였으며,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를 표현했다고 한다.

39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위당(爲堂) 정인보 위당시조 연구-자모사를 중심으로 오동춘, 한양대학교, 1990년 2월 위당을 한학자나 사학자의 관점에서 논한 논문은 많다. 이 논문은 시조 문학의 장르 관점에서 위당의 문학적 위상을 살펴본 귀중한 논 문이다. <목 차> I. 서론 1. 문제의 제기 2. 연구사의 검토 3. 연구범위 및 방법 II. 생애와 배경 1. 시대배경 2. 성장과 사상 III. 주제분석 1. 어머니와 조국 1) 어머니의 다층적 의미 2) 조선의 얼과 나라 3) 양명학 2. 자연 1) 자연미 2) 인사(人事) 및 자연 3) 교육과 자연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91 4) 매화와 자화상 3. 종합적 결론 IV. 형식분석 1. 시조형식 1) 시조형식의 예비적 검토 2) 초장형식적 특성 3) 중장형식적 특성 4) 종장형식적 특성 5) 시조형식적 공통성 2. 서사시조 형식 1) 서사시의 일반개념 2) 한국 서사시 개관 3) 서사적 시조로서의 자모사 (1) 자모사에서의 어머니 의미 (2) 양모 생모 유모 자모사의 서사성 V. 결론 참고문헌 <내용 요약> 위당 정인보는 학문적으로 한문학자요, 사학자이다. 사상적으로는 지사요, 문학적으로는 시조작가로 알려져 있다. 학자로서는 위당은 널 리 알려졌으나 시조작가로는 생소한 까닭에 시조작가로서의 위당의 시 조문학과 그의 문학적 위상을 밝히려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 된다. 나라 잃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변절 없는 지조와 존경받는 인격 을 갖추게 된 것은 조부의 반골사상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 그보다도 낳아 주신 어머니는 높고, 길러 주신 어머니는 크다 고 위당

39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스스로 자모사(慈母思) 시조 들머리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생모 대 구 서씨(徐氏)와 양모 월성(月城) 이씨(李氏) 곧 두 어머니의 참 과 대의(大義) 를 배운 자모(慈母) 교육에서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위당은 의지의 40수(首) 자모사 를 큰 뜻으로 창 작했던 것이다. 한편 위당의 측면으로는 집안의 수암공(睡庵公)이나 외가의 두 외숙도 위당의 어린 시절 인격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 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교육환경 속에 자란 위당은 1910년 양명학자인 난곡 이건방에 게서 배우고, 강화학파를 잇는 한학자가 된다. 동제사(同濟社) 회원이 되어 생모를 모시고 상해, 안동(安東) 등지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며 독 립운동을 하다가 아내의 죽음으로 귀국하여 한학에 열중했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교수가 되어 얼 사관을 확립하고 양명학, 실학을 계승 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민족사학을 개척해 나가면서, 한편 문우 들과 사귀며 국학을 통해서도 우리의 민족혼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쉬 지 않았던 것이다. 1926년에 처음으로 시조창작을 하면서 계명(啓明) 16호에 가신 어머님 발표 이후 1948년 담원시조집 낼 때까지 시조 창작 활동을 했다. 시조에 존상사상(尊上思想), 혈족, 친척 등 인륜 관계를 작품으 로 많이 다루었다. 곧 인생과 자연을 다 인사(人事)에 관련시켜 시조 창작을 한 것이다. 프로문학이 풍미하던 1920년대 후반에 위당도 여 지(餘技)의 시조창작을 주로 한시(漢詩) 구조로 창작하면서 육당, 춘 원, 가람, 노산 등과 함께 국민문학파의 한 사람으로 시조창작을 했으 며 일제의 가혹한 검열을 슬기롭게 피하기 위해 간접적인 항일의 방 법으로 어머니(조국)를 부르짖는 자모사 를 가신 어머님, 가신님, 자모사 등의 시제로 신생(新生), 한빛, 동광(東光), 계명 등 의 순수 민족문학지에 집중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모사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93 는 항일 민족시로서의 새로운 시사적( 詩 史 的 ) 위상을 갖게 된다. 또한 이 자모사 는 의지의 투철한 시대정신을 보여주며 유교교육에서 뿌리 박힌 민족주의 바탕의 선비정신과 작가의 시( 詩 ) 정신을 상징적 암유 ( 暗 喩 )로 보여준다. 자모사 는 어머니 라는 전통적 소재로 주제의식을 뚜렷이 나타낸 위당의 대표 시조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 것이다. 위당 시조의 구조는 위당이 유학자로서 절구( 絶 句 ), 율시( 律 詩 )를 짓던 창작 습관 때문에 초장 중장은 3444의 음조 97%, 종장은 3543의 음율 구조가 100%를 이루어 우리 전통적인 율격( 律 格 ) 형식을 잘 준수했다. 그의 부통 존중 사상을 시조형식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위당은 시조 정형을 고수하기 위해 시어를 다룰 때 무리한 음절 생 략의 방법을 동원해서 시조의 의미전달이나 미학적 구조에 큰 결점을 보이기도 했다. 이 음절 생략 외에도 음운( 音 韻 ) 축약, 연음화( 延 音 化 ) 등의 기법도 동원해 창작했다. 재래 평시조 형식을 사랑하여 한결 같 이 전통 시조 형식을 준수했기 때문에 위당의 시조는 가람이나 노산 의 작품에 비해 너무 단조롭다 는 비평도 받는다. 지나치게 의도적인 고어( 古 語 )를 시어로 구사하여 전아( 典 雅 )한 의고풍( 擬 古 風 )의 작풍도 보였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진 고시조 작가라는 비평도 들었으며 그 가 명문집안 출신이므로 자모사 의 비평에서는 피의 자랑, 가문 자랑 을 시조형식을 빌어 기사문이나 전기의 글로 쓴 것이지, 시조창작을 한 것이 아니라는 혹평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이며 일방적인 비평 시각은 오히려 위당 시조의 서사적 일면을 지적해 주는 말이 된 다. 위당이 양모의 영향으로 우리말 사랑에 정성을 쏟아 한문학자이면 서도 순수토박이 말만의 시조를 창작하려고 애쓴 고심이 그의 시조마 다 표출되어 있다. 민족주의 사상을 형상화하기 위해 옛말을 시어로

39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활용하며 그 표현구조에 경기체가 형식까지 시도한 것은 고전 시가와 현대시조를 접맥해 보려는 그의 국학정신을 알게 해 준다. 또 조국 광복과 민족사상을 드높이기 위해 우리 일상어나 토착어를 많이 작품 에 구사했으며 소재와 제재도 어머니 를 위시해서 역사에서 다분히 활용하여 작품 창작을 했던 것이다. 또 수사면에서도 은유, 직유, 상 징 수법을 동원하여 기발한 표현이 많이 보이며 현대감각을 살려 표 현하려는 작가의식과 시정신이 역력히 드러난 것이다. 민족주의와 홍익인간의 교육사상을 가진 그의 배화, 동구, 경기 여 학교에 시조를 남겨 여성교육과 어머니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배화여학교 반화사( 班 花 詞 ) 중에 매화사( 梅 花 詞 ) 삼첩( 三 疊 )은 바로 위당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으로 인정된다. 매화의 지조와 순결 경이 그것을 잘 뒷받침해 준다. 위당 시조는 총 37편(369수) 중에서 단시조는 여수옥천사( 麗 水 玉 泉 祠 ) 와 여몽양형( 呂 夢 陽 兄 )께 두 편 뿐이다. 나머지 시조는 모두 연시 조로 기행( 紀 行 ) 시조인 금강( 金 剛 )에서 가 72수로 가장 길고 그 다음 이 자모사 40수, 배화여학교 반화사 24수 순으로 되어 있다. 사설시 조 형식은 단 한편도 없으며 연시조 창작의식을 퇴계의 도산12곡( 陶 山 十 二 曲 ), 율곡의 고산구곡가( 高 山 九 曲 歌 ), 고산( 孤 山 )의 어부사시사 ( 漁 夫 四 時 詞 ) 등의 유교의 선비들 시조형식을 의식한데서 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위당 시조는 서구 서사시 형식과 비교 고찰해 본 결과 위당 시조 전체가 서사적 시조에 가깝다는 평가를 얻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자모사 는 주제와 형식면에서 가장 서사시의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그 때문에 자모사 는 서사시조로 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 게 되며, 최초 현대 서사시조로서 새로운 시사적( 詩 史 的 ) 평가를 받아 야 할 것이다. 한편 현대시조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위당의 문학적 평가와 위상도 재평가해야 된다고 본다.

Ⅳ. 박사학위 논문 요약 395 위당의 담원시조 는 자모사 외에도 서사적 요소를 지닌 작품이 많 다. 자모사 는 위당의 대표시조로 가장 서사적 요소를 많이 내포한 서정적 현대 서사 시조라고 규정할 수 있으며, 담원시조집 을 서사 시조집으로 명명(命名)해도 좋을 것이다. 아울러 한국 시사(詩史)에 서사시는 지금도 창작되고 있으므로 서사시(시조) 쟝르가 새롭게 정 립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1. 저서류 정인보, 담원국학산고, 문교사, 1955. 정인보, 담원정인보전집(薝園鄭寅普全集) 전5권, 연세대출판부, 1983. 김길환, 한국양명학연구, 일지사, 1981. 유명종, 한국의 양명학, 동화출판사, 1983. 윤남한, 조선시대의 양명학 연구, 집문당, 1982. 사기영재(沙磯寧齋)양선생기념사업회편, 명미당과 강화학파의 사상, 보 경문화사, 1986. 정량완심경호,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민영규, 강화학 최후의 광경, 우반, 1994. 유명종, 성리학과 양명학,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4. 유준기, 한국 근대유교 개혁운동사, 도서출판 삼문, 1994. 김교빈, 양명학자 정제두의 철학사상, 한길사, 1995. 심경호,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정량완,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최영성, 한국유학사상사 Ⅲ-조선후기편, 아세아문화사, 1995. 정차근, 동양정치사상 한국양명사상의 전개, 평민사, 1996. 최재목, 동아시아의 양명학, 예문서원, 1996.

39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최영성, 한국유학사상사 Ⅴ-근현대편, 아세아문화사, 1997. 최재목, 양명학과 공생동심교육의 이념, 대구; 영남대학교출판부, 1999. 박연수, 양명학의 이해 양명학과 한국양명학, 집문당, 1999. 정량완심경호,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實是學舍經學硏究會 編譯, 다산과 석천의 경학논쟁, 서울; 한길사, 2000. 유명종, 왕양명과 양명학, 서울; 청계, 2002.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사상가연구, 서울; 철학과현실사, 2002. 김길락, 한국의 상산학과 양명학, 서울; 청계, 2004. 이희목, 이건창 문학연구, 서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5. 심경호길진숙유동환 공편, 원교 이광사문집, 서울; 물레, 2005. 최준호, 원교와 창암 서광 글씨에 미치다: 불행한 시대를 살다간 두 명필을 위한 변 명, 광주; 한얼미디어, 2005. 김교빈 편저, 하곡 정제두(한국의 사상가 10인), 서울; 예문서원, 2005. 최영성, 한국유학통사, 서울; 심산, 2006.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사상, 서울; 한국학술정보, 2007.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399 2. 강화학인별 분류 일반논문학위논문 1) 하곡 정제두 일반논문 정인보, 고서해제-하곡전서, 담원국학산고, 1955. 유승국, 정제두-양명학의 태두, 한국의 인간상, 신구문화사, 1965. 유승국, 하곡집, 한국의 고전백선, 신동아 1969년 1월호 부록, 1969, 1. 이상은, 하곡집 해제, 국역 하곡집 제1집, 민족문화추진회刊, 1971. 유승국, 하곡집 해제, 한국 고전에의 초대, 독서출판사, 1972. 윤남한, 고서해제 하곡집 Ⅰ-Ⅴ, 국회도서관보 81, 94, 96, 100, 101권. 1972. 4~1974. 4. 윤남한, 정제두, 인물로 본 한국사, 월간중앙, 1973년 1월호 부 록, 1973. 이돈령, 정제두 아웃사이더의 한국사상, 문학사상 2월호, 1973. 윤남한, 하곡집 해제, 국역 하곡집 2집, 민족문화추진회간, 1973. 유승국, 양명학의 탐색 정제두, 조선의 유학자 8人, 청구문고15, 청구문화사, 1974. 윤남한, 하곡학의 기본방향과 단계성, 인문학연구 2집, 중앙대 인 문학연구소, 1974. 윤남한, 하곡 정제두론, 실학논총, 전남대호남문화연구소, 전남대출 판부, 1975. 蔡茂松, 韓儒鄭霞谷硏究, 歷史學報 5, 中華民國 成功大學, 1978. 유명종, 하곡 정제두의 조선양명학파수립, 한국철학연구 9집, 대동 철학회, 1979.

40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금장태, 심학(양명학)의 역할과 강화학파의 성립, 한국종교사상사-유 교기독교편 연세대학교 출판, 1980.5. 유명종, 강화학파의 양명학 전통, 철학연구 29집, 한국철학연구회, 1980. 松田弘, 조선조양명학의 특질과 그 이론구조-정하곡사상과 양명학과의 비교에 의한 검증, 한국학보 25집, 일지사, 1981. 김순임, 하곡철학연구, 한국종교 8,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1983. 유승국, 하곡철학의 양명학적 리해, 동양철학연구, 근역서제, 1983. 윤남한, 정제두의 양명학, 한국의 사상 열음사상총서 I, 열음사, 1984. 양태호, 하곡의 이기관, 동서철학연구 2호, 한국동서철학회, 1985. 이해영, 하곡 정제두 철학의 양명학적 전개, 동양철학연구 6집, 동 양철학연구회, 1985.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학문관, 육사논문집 33집, 육군사관학교, 1987. 박경안, 하곡 정제두의 경세론 하곡집 중 차록 에 대한 고찰, 학 림 10,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1988.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세계관, 육사논문집 35집, 육군사관학교, 1988. 김교빈, 하곡철학의 구조적 이해(1) - 이기문제를 중심으로, 인문논 총 8, 호서대, 1989. 황의동, 정제두의 양명사상, 한국사상, 청주대 출판부, 1990. 김교빈, 하곡철학의 구조적 이해(2) - 심성론을 중심으로, 인문논 총 9, 호서대, 1990. 김교빈, 하곡철학의 구조적 이해(3) 인식과 실천문제를 중심으로, 인 문논총 10, 호서대, 1991.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01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지행일체관, 한국사상사: 석산한종만박사 회 갑기념논문집, 원광대출판국, 1991. 김길락, 하곡의 철학사상,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 중천김충렬선 생회갑기념논문집, 형설출판사, 1992. 김낙진, 하곡 중용설 에 대한 이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중천 김충렬선생회갑기념논문집, 형설출판사, 1992. 김길락, 하곡의 철학사상, 동양의 자연과 종교의 이해, 형설출판 사, 1992. 김낙진, 하곡 중용설 에 대한 이해, 동양의 자연과 종교의 이해, 형설출판사, 1992. 주칠성, 조선조 양명학과 정제두, 유교사상연구 권4, 1호, 한국유 교학회, 1992. 박홍식, 양명의 양지설과 하곡의 생리설 비교연구, 유교사상연구 4 5집, 유교학회, 1992.7. 유철호, 주해문(周海門)의 심체무선무악론(心體無善無惡論) - 정하곡의 심체무선무악론에 관한 연원적 고찰, 동방철학사상연구 (도 원유승국박사 고희기념논문집), 동방문화연구원, 1992.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인간주체성 이론에 대한 연구, 동방철학사상 연구 (도원유승국박사 고희기념논문집), 동방문화연구원, 1992. 윤사순, 정제두 양명학의 연구, 한국학연구 4집, 고려대학교 한국 학연구소, 1992. 김길락, 하곡 정제두의 심성론 연구, 역과 철학: 관중유남상선생정년 퇴임기념논총, 관중유남상선생정년퇴임기념논총간행위, 1993.2. 김교빈, 하곡 이기론의 구조에 관한 연구, 유교사상연구 6집, 유교 학회, 1993.6. 정재훈,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수용과 경세사상, 한국사론 29집,

40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3.6. 최재목, 동아시아에 있어서 양명학의 한 전개양상 정하곡과 中江藤樹 의 치양지 해석을 중심으로, 철학논총 9집, 영남철학회, 1993. 이해영, 하곡 정제두의 중용 이해, 퇴계학 5집, 안동대 퇴계학연구 소, 1993. 강문자, 하곡 정제두의 윤리사상 연구, 교육논총 11,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1994.6 최재목, 양명학의 한국적 변용 하곡 양명학 사상의 동아시아적 위치, 철학논총 10집, 영남철학회, 1994. 박홍식, 정하곡의 양명학과 지(知), 동양철학 5집, 한국동양철학회. 1994. 이종태, 하곡의 사단칠정에 대한 논구 맹자설을 중심으로, 공군사 관학교논문집 36, 1995. 주칠성, 조선양명학파와 그 대표 정제두에 관하여, 유학연구 3집, 충남대 유학연구소, 1995. 정인재, 정하곡의 양지설, 유학연구 3집, 충남대 유학연구소, 1995. 최재목, 하곡 양명학의 특질에 대한 비교론적 조명, 유학연구 3집, 충남대 유학연구소, 1995. 김길락, 정제두의 철학 사상과 그 현대적 조명, 기호학파의 철학사 상 예문서원, 충남대 유학연구소편저, 1995. 김교빈, 대학설을 통해 본 하곡 정제두의 경학사상, 제5회 동양학 국제학술회의 논문집, 대동문화연구원, 1995.12. 하곡 정제두, 한국인물유학사[3], 한길사, 1996. 정두영, 18세기 군민일체사상의 구조와 성격 하곡 정제두의 경학과 정치운영론을 중심으 로, 조선시대사학보 5, 조선시대사학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03 회, 1998.6. 금장태, 하곡 정제두의 심학과 경학, 종교학연구 17집, 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 1998.10. 김성태, 정제두 철학사상을 통해서 본 조선양명학의 위상, 대동철 학 1집, 대동철학회, 1998. 김용재, 하곡의 양지론에 대한 고찰, 유교사상연구 10집, 한국유교 학회, 1998. 유철호, 정하곡의 치양지설, 한국사상과 문화 2집, 한국사상문화학 회. 1998. 김교빈, 하곡 정제두의 도덕주체와 도덕적 자연 이해,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 상허 안병주교수정년기념논문집 Ⅱ, 아세아문화 사, 1998. 송석준, 하곡 정제두의 학문세계와 생명사상, 누리와 말씀 5호, 인 천가톨릭대, 1999. 김교빈, 조선후기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 정제두와 박세채, 윤증, 민이승, 박심, 최석정의 논쟁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19 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999. 유철호, 하곡 정제두의 대학설 에 관한 고찰, 양명학 5호, 한국양 명학회, 2001.2 최일범, 하곡 정제두의 이기론에 대한 연구(1) - 양지체용론과 관련하 여, 유교사상연구 15집, 한국유교학회, 2001.8 송석준, 한국 양명학의 형성과 하곡 정제두, 양명학 6호, 한국양명 학회, 2001.8.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인간관 - 인간의 질적 특성과 기능, 양명학 6호, 한국양명학회, 2001.8. 최재목, 하곡 정제두의 자연학에 대한 예비적 고찰, 양명학 6호,

40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한국양명학회, 2001.8. 김준석, 조선후기 탕평정치와 양명학 정치사상 정제두의 양명학과 탕 평정치론, 동방학지 116권, 연세대 국학연구원, 2002. 박원재, 하곡 정제두의 중용 해석의 특징 - 하곡학의 사상적 경향성과 관련하여, 국학연구 1호, 한국국학진흥원, 2002 가을겨울 최일범, 하곡 정제두의 공부론에 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 30집, 동양철학연구회, 2002.9. 유철호, 정하곡의 심즉리설(心卽理說), 한국사상과 문화 20, 한국사 상문화학회, 2003. 김용재, 하곡 정제두의 심선(心善)성선(性善)의 합일 논증, 양명 학 10호, 한국양명학회, 2003.8. 임선영,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적 중용 이해, 한국철학논집 13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03.9. 정재환이영일, 하곡 정제두의 신체사상 연구, 한국체육학회지, 43권 1호, 2004.1. 최일범, 하곡 정제두의 이기설에 관한 연구(2), 동양철학연구 36집, 동양철학연구회, 2004.2. 민혜진, 하곡 정제두의 중용설 연구, 대동철학 25집, 2004.3. 이상호, 정제두 양명학의 주왕화회(朱王和會) 적 특징, 동양철학연 구 40집, 동양철학연구회, 2004. 민혜진, 정제두의 대학설과 그 일체적 지향, 철학논총 36집, 새한 철학회, 2004.4. 이상훈, 하곡 정제두 사상 속의 양명학적 사유와 특성 - 심성설과 생리 설을 중심으로, 동양학 35집,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2004. 黃俊傑, 鄭齊斗對 孟子 浩然 章之解釋, 강화양명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05 회, 2004.10. 이경룡, 17세기 후양명학과 하곡학의 정립, 강화양명학학파의 위상 과 현대적 의미, 제1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4.10. 임선영, 하곡 정제두의 중용설 소고, 강화양명학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 제1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 양명학회, 2004.10. 안영길, 하곡 정제두의 숨어사는 논리와 문학, 강화양명학학파의 위 상과 현대적 의미, 제1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4.10. 김용재, 하곡 정제두의 체용론 분석 - 양지체용도(良知體用圖)를 중심 으로, 동양철학연구 40집, 2004.12. 김용재, 하곡 정제두의 중용해설, 한문고전연구 11호, 한국한문고 전학회, 2005. 남상호, 하곡 정제두의 중극론(中極論),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 회, 2005.2.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도덕철학,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 2. 吳 震, 鄭齊斗思想序論-以無善無惡論爲中心, 양명학 13호, 한국양명 학회, 2005.2. 이상호, 정재두 철학의 양명우파적 특징,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 회, 2005.2. 천병돈, 정명도 정성서(定性書)에 대한 하곡의 이해,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최일범, 하곡의 퇴계 비판에 나타난 공부론에 대한 연구,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40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최재목, 동아시아에서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이 갖는 의미,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黃俊傑, 從東亞儒學視域論鄭齊斗對孟子 知言養氣 說的解釋, 양명 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Lloyd Sciban, CHUNG CHEDU`S COMMENTARY ON THE GREAT LEARNING,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한정길, 하곡 정제두의 주자학 반성과 심본체론, 한국실학연구 9 호, 한국실학학회, 2005.6. 楊祖漢, 鄭霞谷對王陽明哲學的理解, 양명학 14호, 한국양명학회, 2005.7. 임홍태, 하곡 정제두의 인물성이론 연구-지각설을 중심으로, 한국철 학논집 17호, 한국철학사연구회, 2005.9. 錢 明, 朝鮮朝陽明學派形成與鄭霞谷對陽明思想的詮釋, 하곡과 강화 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 양명학회, 2005.10. 何成軒, 霞谷人文思想初探, 하곡과 강화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 양 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김연재, 정제두의 역도관과 본체론적 이론사유, 하곡과 강화양명학 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 회, 2005.10. 余懷彦, 鄭霞谷對陽明學貢獻, 하곡과 강화 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 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이경룡, 하곡 정제두의 성체(性體) 논의와 해석, 하곡과 강화양명학 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최재목, 하곡 정제두의 치량지설의 폐(弊) 비판에 관한 재검토, 양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07 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12. 이연세, 하곡 정제두의 학문과 사상. 인천역사 2호. 인천광역시 역사 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005.12. 조남호, 정제두의 황극론 고찰, 양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7 정두영, 숙종~영조 초 하곡 정제두의 처세와 정치적 역할, 하곡과 한국 양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 양명학회, 2006.11. 조남호, 박세당과 정제두의 황극론, 하곡과 한국 양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6.11. S.O.Kurbanov, 하곡 정제두의 태극론, 하곡과 한국 양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6.11. 詹杭倫, 鄭齊斗 詩箚錄 疏證, 하곡과 한국 양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 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6.11. 엄연석, 정제두의 심경집의 와 심성수양론의 특징, 하곡과 한국양 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 회, 2006.11. 王錦民, 鄭齊斗在江華期的經學硏究, 하곡과 한국양명학의 전개, 제 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6.11. 彭國翔, 本體與工夫-鄭霞谷與王龍溪合論, 하곡과 한국양명학의 전개, 제3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6.11. 林月惠, 鄭霞谷對陽明知行合一說的理解, 양명학 17호, 한국양명학 회, 2006.12. 李明輝, 鄭霞谷對四端七情詮釋, 양명학 17호, 한국양명학회. 2006.12 김연재, 심경집의에 나타난 정제두 심학의 성격 및 그 특성, 양명 학 17호, 한국양명학회, 2006.12. 장병한, 하곡 정제두와 백운 심대윤의 경학 비교, 양명학 18호, 한

40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국양명학회, 2007.7. 천병돈, 하곡 역학의 특징, 양명학 18호, 한국양명학회, 2007.7 김용재, 하곡과 양명의 양지[心]파, 한국사상과 문화 36호, 한국사 상문화학회, 2007. 최재목,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사상과 동아시아 근대사상, 인천학연 구 7,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7. 학위논문 박사논문 박연수, 하곡 정제두의 사상에 있어서 인간이해에 관한 연구, 성균관 대학교, 1990.8. 김교빈, 하곡철학사상에 관한 연구 - 존재론인성론사회의식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1992.7. 전택원, 하곡 정제두의 심체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1995.8. 傅濟功, 하곡철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0.2. 김용재, 하곡 정제두의 사서 경설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1.12. 이상호, 정제두 양명학의 양명우파적 특징, 계명대학교, 2004.6. 민혜진, 정제두의 성(誠) 사상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2005.8. 석사논문 유철호, 정하곡의 철학사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1976.12. 송석준, 한국양명학파의 경학사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1979.2. 김종석, 하곡 정제두 사상연구 - 기호학파와 주기론과 연관하여,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1985.2. 김재구, 하곡 정제두의 양지론 연구, 동아대학교, 1985.2 김종석, 조선 유학사에 있어서 심경부주의 사상사적 위치, 영남대학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09 교, 1990.2. 정재훈,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수용과 경세사상, 서울대학교, 1992.2. 민혜진, 하곡 정제두사상의 배경과 성격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1992.8. 박성호, 하곡 정제두의 이기론과 심성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8. 박철홍, 하곡 정제두의 심성론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1993.2. 강문자, 하곡 정제두의 윤리사상 연구,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1993.8. 박지현, 진덕수 심경 의 수양론적 분석과 동유(東儒)의 심경 이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8. 이종태, 정제두 논어맹자설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1994.2. 김지근,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연구, 원광대학교, 1994.8. 임홍태, 하곡 이기심성론의 체용적 구조 - 존언 삼편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1995.2. 정두영, 18세기 군민일체사상의 구조와 성격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 적 정치사상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1997.2. 이영일, 율곡 이이와 하곡 정제두의 신체관 비교 연구, 단국대학교, 1999.8. 김지현, 하곡 정제두의 한시연구, 광운대학교, 2000.2. 김윤경, 하곡 정제두의 인식론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2.2. 강지은, 하곡 정제두의 맹자설 연구, 고려대학교, 2003.8. 송태인, 하곡 정제두의 격물치지설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3.8. 김유미, 정제두의 생애와 사상, 전남대학교, 2006.2. 傅濟功, 하곡철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1996.12.

41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 저촌 심육( 저촌유고 ) 일반논문 유명종, 저촌 심육의 심학에 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 13집, 동양 철학연구회, 1992.12. 3) 관양 이광덕( 관양집 ) 일반논문 강혜선, 관양 이광덕의 생애와 시세계, 한국한시연구 10호, 한국한 시학회, 2002. 4) 항재 이광신( 선고 ) 일반논문 정기호, 이광명의 적소시가에 대하여, 인문과학연구논문집 3, 인하 대 인문과학연구소, 1977. 윤병석, 이광명의 생애와 이쥬풍속통 에 대하여, 어문연구 5, 일조 각, 1979. 심경호, 항재이광신론, 진단학보 84, 진단학회, 1997.12. 서경숙, 항재 이광신의 이기론, 양명학 6호. 한국양명학회, 2001.5. 초기 강화학파 항재 이광신의 심성론, 한국철학논집 13 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03.9.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11 5) 원교 이광사( 두남집 ) 일반논문 전광호, 글씨로 달랜 세월, 이광사, 중앙 121, 1978.4. 이완우, 원교 이광사의 서예, 미술사학연구 190, 191, 한국미술사 학회, 1991.9. 문정자, 원교 이광사의 서결 연구 - 전편을 중심으로, 한문학논집 16집, 단국한문학회, 1997.11. 원교 이광사의 시문학 세계, 한문학논집 16집, 단국한문학 회, 1998.11. 서경숙, 원교 이광사의 양명학, 양명학 3호, 한국양명학회, 1999.12. 송하경, 원교의 서예미학적 지향 - 서결을 중심으로, 양명학 9호, 한국양명학회, 2003.2. 원교의 서예미학연구 - 서결 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34집, 동양철학연구회, 2003.9. 김영숙, 이광사의 파경합 구성과 삼국사기 설씨녀 전 수용 전승 양 상, 한민족어문학 45, 한민족어문학회, 2004. 송하경, 원교 이광사의 미학사상,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회, 2005.2. 김동준, 부녕 유배기 이광사 한시의 내면과 진정의 지평, 한국한시 연구 13, 한국한시학회, 2005. 나종면, 이광사 문예론 경향, 하곡과 강화 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 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김동준, 이광사의 문학과 양명학의 흔적들, 하곡과 강화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이진선, 원교 이광사 서예의 形成的 배경에 관한 소고, 한문고전연 구 12호, 한 국한문고전학회, 2006.

41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원교 서예론 연구-서예 본질론과 심미론을 중심으로, 한문 고전연구 13호, 한국한문고전학회, 2006. 원교 서결 에 나타난 서법론에 대한 고찰, 양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7. 학위논문 박사논문 문정자, 이서와 이광사의 예술론 연구, 단국대학교. 1999.8. 나종면, 18세기 시서화론의 미학적 지향, 성균관대학교, 1998.2. 최경춘, 18세기 서예론 연구: 이광사, 강세황, 김상숙을 중심으로, 부 산대학교, 2006.2. 이진선, 원교 이광사 서예론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2006.8. 오명남, 원교와 추사의 서예 비교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4.8. 석사논문 이완구, 이광사의 서예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강석중, 이광사의 문론 연구, 서울대학교, 1991.2. 조희창, 원교 이광사의 학문과 예술 서예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1995.8. 박철승, 이광사의 동국악부 연구, 배재대학교, 1996.8. 이연숙, 이광사의 문학과 서예론에 관한 연구, 배재대학교, 1997.2. 이장환, 원교 이광사 서결 : 번역 및 해제, 성균관대학교, 1997.2. 배병주, 원교 이광사 시문학 연구, 단국대학교, 1998.2. 김은경, 원교 이광사 서예 연구: 서결 을 중심으로, 성신여자대학 교, 1999.8. 윤경화, 원교 이광사의 문학론과 한시 연구, 경북대학교, 2001.8.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13 한민정, 원교 이왕사 서론 연구, 단국대학교, 2002.2 김두수, 동국진체의 생성과 전개에 관한 연구, 호남대학교, 2002.2. 황지영, 조선조 동국진체형성에 관한 연구: 옥동 필결 과 원교 서 결 을 중심으로, 성신여자대학교, 2002.8. 한승훈, 원교 이광사의 서예미학 고찰, 성균관대학교, 2003.8. 나광옥, 원교이광사의 서예미학사상에 대한연구, 성균관대학교, 2006.8. 박재형, 조선후기의 필법에 관한 연구, 계명대학교, 2006.8. 유미나, 중국시문을 주제로 한 조선후기 서화합벽첩 연구, 동국대학 교, 2006.8. 이혜영, 조선시대의 어해도 연구, 한남대학교, 2006.8. 남치우, 원교와 추사의 서예 비평 연구: 서예비평 정신의 근대성을 중 심으로, 성균관대학교, 2007.2. 서일희,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원교 이광사 서예, 원광대학교, 2007.8. 6) 월암 이광려( 이참봉집 ) 일반논문 손진태, 감저전파고-공로자 조엄 이광려 강계현 강필리 김장순 선종한 서유구 등, 진단학보 13, 진단학회, 1941. 7) 완구 신대우( 완구유집 ) 일반논문 심경호, 신대우론: 완구의 산문과 윤리주체의 긴장, 정량완 외, 조 선후기한문학작가론, 집문당, 1994.

4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8) 연려실 이긍익( 연려실기술 ) 일반논문 이존희, 이긍익과 연려실기술의 편찬, 진단학보 61, 진단학회, 1986. 연려실기술의 분석적 고찰 - 이긍익의 역사의식을 중심으로, 한국학보 7, 일지사, 1981. 조은희, 이긍익의 역사인식에 대한 일고찰 - 연려실기술을 중심으로, 대구사학 29, 대구사학회, 1986.8. 학위논문 석사 논문 조은희, 이긍익의 역사인식에 대한 고찰, 효성여자대학교, 1985.2. 김명수, 연려실기술 광해군조 서술에 대한 검토, 국민대학교, 1987.8. 신인수, 연려실기술의 편찬과 편찬 자료에 관한 서지적 연구, 성균관 대학교, 1999.8. 이혜림, 조선조 문헌의 평가를 위한 비교 연구-연려실기술, 대동야승, 성호사설, 택리지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1999.8. 9) 신재 이영익( 신재집 ) 일반논문 정량완, 이영익론: 신재의 방랑 과 문학, 정량완 외, 조선후기한문학 작가론, 집문당, 1994.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15 10) 초원 이충익( 초원유고 ) 일반논문 김학목, 이충익의 초원담로 연구, 인천학연구 2호, 인천학연구원, 2003.12. 김학목, 강화학파의 도덕경 주석에 관한 고찰-초원 이충익의 초원담 로 를 중심으로, 동서철학연구 34호, 한국동서철학회, 2004. 윤재환, 초원 이충익의 문학론과 형상화, 양명학 17호, 한국양명학 회, 2006.12. 한예원, 초원 이충익의 자존의식, 양명학 18호, 한국양명학회, 2007.7. 11) 현동 정동유( 주영편 ) 일반논문 홍이섭, 정동유의 주영편 에 보인 이국어에 취하여, 역사학보 4, 역사학회, 1952. 이상로, 선죽교의 설흔설은 망령된 미신-정동유의 주영편 번독기, 수선논집 8, 성균관대학교대학원, 1984.3. 이충구, 주영편 에 괴집된 한국한자의 분석연구, 수선논집 8, 성균 관대학교대학원, 1984.3. 조성산, 현동 정동유와 주영편 에 관한 연구, 한국인문사연구 3, 한국인물사연구소, 2005.3. 학위논문 석사논문 심호수, 주영편 에 나타난 정동유의 언어관 연구, 연세대학교, 2007.2.

41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12) 석천 신작( 석천유고 ) 일반논문 홍이섭 해제, 고상서 전, 서울; 정양사, 1954. 심경호, 다산 정약용과 석천 신작의 교유에 대하여, 연민학지 창간 호, 연민학회, 1993.4. 유명종, 석천 신작의 양명학과 고문경학, 현대와 종교 17집, 현대 종교문화연구, 1994.6. 서근식, 석천 신작의 주역 해석방법에 관한 연구, 퇴계학보 119호, 퇴계학연구원, 2006.6. 김문식, 정약용과 신작의 육향제 이해, 한국학보 61, 일지사, 1990.12. 13) 대연 이면백( 대연유고 ) 일반논문 박준호, 대연 이면백의 생애와 문학, 한문학연구 11, 계명대학교, 1996. 14) 사기 이시원( 사기집 ) 일반논문 김용태, 이시원의 사의식과 이용후생의 논리, 한국실학연구 12, 한 국실학회, 2006.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17 15) 백운 심대윤( 백운문초 ) 일반논문 장병한, 19C 주기(主氣)적 경학관의 일단면 - 심대윤 기철학의 경학적 성격, 연민학지 4, 연민학회, 1996.4. 진재교, 심대윤의 국풍론 - 시경집전변정 을 중심으로, 한문학 보 1, 우리한문학회, 1999. 장병한, 19세기 탈성리학적 경학관의 일단면-심대윤의 심성이기론을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9, 한국사상문화학회, 2000.9. 장병한, 정약용과 심대윤의 경학 비고(1) - 정주학의 경학관에 대한 비판과 연계하여, 한문학보 4, 우리한문학회, 2001.6. 진재교, 심대윤의 사회적 처지와 학문자세, 한문교육연구 16, 한국 한문교육학회, 2001. 장병한, 심대윤의 대학고정 에 관한 연구, 한국사상과문화 14, 한 국사상문화학회, 2001.12. 심대윤의 서경채전변정 에 대한 연구(1), 한국사상과 문 화 18, 한국사상문화학회, 2002.12. 대진과 심대윤의 이욕관(理欲觀) 문제, 한국교육연구 21호, 한국한문교육학회, 2003.12. 19세기 양명학자로 규정된 심대윤의 사유체계, 한국실학연 구 10, 한국실학회, 2005.12. 박세당 심대윤의 중용 해석 체계 비고-성리학적 주석체계에 대한 해체주의적 입장과 그 연계성 파악을 중심으로, 한국 실학연구 11, 한국실학회, 2006.

41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학위논문 박사 논문 장병한, 심대윤 경학에 대한 연구 - 19세기 현실지향적 경학관의 일 단면, 성균관대학교, 1995.8. 석사 논문 김승규, 심대윤의 동사에 보이는 한국고대사 인식, 경북대학교, 2002.2. 김정은, 백운 심대윤 시경학 연구, 고려대학교, 2007.2. 16) 창강, 호당주인 김택영( 소호당집 ) 일반논문 김도련, 영재 이건창과 창강 김택영의 고문관, 한국학논총 3, 국민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81.7. 최혜주, 창강 김택영 연구, 한국사연구 35, 한국사연구회, 1981. 김영하, 단재 신채호의 신라삼국통일론 - 창강 김택영의 서술 논리와 비교하면서, 민족문화연구 17,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3.12. 오윤희, 창강 김택영론 - 그의 역사의식과 문장보국을 중심으로, 교 육논총 3,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1983.2. 김항구, 창강 김택영의 역사서술, 논문집 20, 제주대학교, 1985.6 정재철, 창강 김택영의 시론, 한문학논집 4, 근역한문학회, 1986. 창강시에 있어서의 현실감각과 우국시의 성격, 한문학논집 6, 근역한문학회, 1988. 제가문평을 통해본 창강과 심재의 문학관, 한문학논집 7, 근역한문학회, 1989.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19 서일권, 조선시인 김택영과 중국청조시인 왕사정, 숭실어문 9집, 숭실대학교 국어국문과, 1992. 김동훈, 창강 김택영의 미학사상, 조선학연구 4권, 연변대학 조선 문제연구소편, 1992. 오석환, 창강 김택영의 중편연암집서(重編燕巖集序) 에 대하여, 성 신한문학 5, 성신한문학회, 1995.12. 최혜주, 1920년대 김택영의 중국에서의 한국사 서술, 사학연구 53, 한국사학회, 1997.6. 최혜주, 한국에서의 김택영 연구, 사학연구 5556, 한국사학회, 1998.9. 김승룡, 창강 김택영의 전(傳) 연구 - 입전(立傳)의식을 중심으로, 민 족문학사연구 18호, 민족문학사학회, 2001.6. 오윤희, 창강 김택영과 근대시인의 반복수사법, 동방학 8, 한서대 학교부설 동양고전연구소, 2002.12. 진영미, 국가의 존망과 문학-창강 김택영, 아세아문화연구 8집, 우 리한문학회, 2004.2. 호광수, 창강 김택영의 망명 한시에 나타난 상황성, 중국인문과학 32호, 광주; 중국인문학회, 2006.6. 김승룡, 창강 김택영의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인물사연구 5호. 서 울; 한국인물사연구소, 2006.3. 학위논문 박사 논문 오윤희, 창강 김택영의 시문학 연구, 동국대학교, 1989.8. 현계순, 김택영의 사회사상과 역사인식, 인하대학교, 1993.8. 왕숙의, 창강 김택영의 산문 연구, 서울대학교, 1995.2.

42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김월성, 조선후기 신운론 수용 연구, 강원대학교, 2004.2. 석사 논문 최혜주, 창강 김택영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1980.9. 오윤희, 창강 김택영론, 동국대학교, 1982.8. 이상필, 김택영의 전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2. 정재철, 김택영의 문학론과 작품세계, 고려대학교, 1988.2. 이의강, 창강 김택영의 산문론과 비평의 실제, 성균관대학교, 1991.2. 배현경, 창강 김택영의 역사인식 - 역사집략 에 나타난 고대사 인식 을 중심으로, 이화여대교육대학원, 1998.2. 김월성, 창강 김택영 시가문학의 신운미 연구, 강원대학교, 2001.2. 저서 박충록, 김택영문학연구, 요녕민족출판사, 1986. 박충록, 조선 후기 삼대 시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4. 최혜주, 창강 김택영의 한국사론, 한울, 1996. 17) 영재 이건창( 명미당집 ) 일반논문 민영규, 이건창 한국근대인물백인선, 신동아 1월호 특별부록, 1970.1. 민영규, 이건창의 남천기, 사학회지 20집, 연세대 사학연구회, 1971.12. 민병수, 이건창과 그 일문(一門)의 문학, 동아문화 11집,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1972. 이광린, 근대사의 단면, 인물 100년-이건창, 한국일보 1976년 1월 18 일, 1976. 권오돈, 이건창전집 해제, 이건창전집, 아세아문화사, 1978.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21 김도련, 영재 이건창과 창강 김택영의 고문관, 한국학논총 3집, 국 민대 한국학연구소, 1980. 김종덕, 이조당쟁에 관한 사회학적 일연구-당의통략의 갈등분석을 중 심으로, 한국학보 7, 일지사(한국학보), 1981. 민병수, 한국의 명문을 찾아서-이건창의 송정운재선생감은진서, 월간 조선 1982년 4월호, 1982.4. 이희목, 영재 이건창 연구, 성균한문학연구, 성균관대학교 한국한 문학회, 1983. 강주진, 명미당의 생애와 사상, 명미당전집 해제, 1984. 김경기, 이건창의 시문학론, 동악한문학론집 1집, 동국대 동악한문 학회, 1984.9. 민영규, 이건창의 시세계, 회귀 1집, 1985.4. 이희목, 영재 이건창의 주체적 자각과 시세계, 한국한문학연구 8 집, 한국한문학연구회, 1985.12. 이건창의 전작품 연구 신발굴 자료의 소개를 겸하여, 대동 문화연구 25집,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90.12. 김도련, 이건창의 위마행 평설, 중국학논총 9, 국민, 1993.2. 송석준, 영재 이건창의 심학사상, 유학연구 2집, 충남대 유학연구 소, 1994.12. 김기승, 이건창의 생애에 나타난 척사와 개화의 갈등, 순천향인문과 학논총 6집, 순천향대학교, 1998.8. 고운기, 19세기 한문서사시의 리얼리티와 근대성 이건창의 전가추 석 분석, 인문과학연구논총 17, 명지대학교, 1998.8. 이희목, 영재 이건창의 영사악부 연구-고영탄외마행을 중심으로, 한 문교육연구 14, 한국한문교육학회, 2000. 조휘각, 영제 이건창의 생애와 경세관, 윤리연구 43, 한국윤리학회,

42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2000. 이희목, 영재 이건창 시의 현실주의 - 낙부시를 중심으로, 한문학 보 5, 우리한문학회, 2001. 이희목, 영재 이건창의 양명학과 문학, 대동한문학 14, 대동한문학 회, 2001. 박준호, 이건창의 청은전에 대하여, 한문학보 11, 우리한문학회, 2004. 송희준, 명미당 이건창의 의식세계의 한 국면-녹언을 중심으로, 한국 한문학연구 35, 한국한문학회, 2005. 이정식, 영재 이건창의 당의통략 과 나의 비교정당연구에 엉킨 이야 기, 한글한자문화 80,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2006. 학위논문 박사 논문 이희목, 영재 이건창 산문 연구 - 인물기사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 교, 1992.8. 석사 논문 김경기, 이건창의 시문학론, 동국대학교, 1984.2. 이희목, 영재 이건창 연구-사상과 문학을 통해 본 주체적 자각, 성균 관대학교, 1984.2. 김경기, 이건창의 시문학론, 동국대학교, 1984.2. 조철제, 이건창과 박은식의 양명학, 인하대학교, 1986.2. 임경순, 이건창의 문학론과 시 연구, 고려대학교, 1992.2. 이원학, 영재 이건창의 시문학 연구, 경기대학교, 1999.2. 최현영, 조선후기 고문헌 형가를 위한 연구-숙종 경종 양조의 당쟁관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23 계 문헌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1995.2. 허경대, 이건창의 위마행 연구, 국민대학교, 1997.8. 장경아, 영재 이건창의 우국문학 연구, 공주대학교, 1998.2. 김효경, 명미당 이건창의 서기류 산문 연구, 경북대학교, 2000.2. 이용규, 영재 이건창의 사상연구-강화학파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2000.8. 박석종, 영재 이건창의 사상연구, 원광대학교, 2003.8. 우현정, 영재 이건창의 장편한시에 관한 일고찰, 고려대학교, 2006.8. 18) 경재 이건승( 경재집 ) 19) 난곡 이건방( 난곡존고 ) 일반논문 송석준, 난곡 이건방의 양명학과 실천정신, 양명학 18호, 한국양명 학회, 2007.7. 정량완, 난곡 이건방론, 조선후기 한시작가론12, 이회문화사, 1998. 20) 위당 정인보 일반논문 민영규, 위당 정인보 선생의 행상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 실학원시, 동방학지 13,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72. 금장태, 해방 40년 한국인물 40선 정인보, 정경문화 239, 1985.1. 민영규, 정담원광개토경평안호태왕능비문석약교록병서, 동방학지 46, 47, 48합집, 연세대국학연구원, 1985.6.

42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진영일, 위당 정인보의 사학사상, 공주교대논문집 22, 1985.4. 진영일, 위당 정인보의 고대사 인식, 공주교대논문집 22집 1호, 공 주교육대학교, 1986.4. 오동춘, 위당 정인보 시조 연구 - 담원 시조집을 중심으로, 한양어 문 5, 한국언어문화학회, 1987. 박성수, 위당 정인보의 단군문화론, 동양학 18집, 단국대 동양학연 구소, 1988.10. 조동걸, 연보를 통해 본 정인보와 백남운, 한국독립사연구 5집, 한 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1. 최지연, 정인보의 고대사 인식, 숙명한국사론 창간호, 숙명여대 한 국사학과, 1993. 이완재, 정인보의 한국사 인식, 한국사상사학 45 합집, 한국사상 사학회, 1993.12. 이동영, 정인보의 생애와 문학업적, 도남학보 17, 1999.12. 이상호, 정인보의 얼사관, 동양철학 12집, 한국동양철학회, 2000.2. 심경호, 강화학과 담원정인보,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어문연구 107권, 2000.9. 위대한 지성 정인보 선생, 비평 2호, 비평이론학회, 생각 의 나무, 2000. 김학성, 담원 정인보 시조의 정서 세계와 그 정체성, 반교어문연구 13, 반교어문 학회, 2001. 이황직, 위당 정인보의 유교 개혁주의 사상, 한국사상사학 20, 한 국사상사학회, 2003. 이황직, 일제말 종교계의 개혁적 신정론 연구: 정인보와 함석헌을 중 심으로, 한국사회학 37, 한국사회학회, 2003. 정량완, 아버지 담원의 세 스승: 학산, 경재, 난곡, 양명학 13, 한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25 국양명학회, 2005.2. 안장리,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장르변형 글쓰기-정인보의 단 군릉유사징, 동방학지 130,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5. 이상호, 정인보 실심론, 하곡과 강화 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양명 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최재목, 정인보 양명학연론 에 나타난 왕용계 이해, 양명학 16, 한국양명학회, 2006.7. 정인보의 양명학 이해, 양명학 17, 한국양명학회. 2006, 12. 유권석, 담원문록 소재 인물전 연구, 온지논총 16, 온지학회, 2007. 학위논문 박사 논문 오동춘, 위당시조 연구-자모사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1990.2. 이황직, 근대 한국의 윤리적 개인주의 사상과 문학에 관한 연구 - 정 인보, 함석헌, 백석, 윤동주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2002.2. 석사 논문 최지연, 정인보의 고대사 인식, 숙명여자대학교, 1989.2. 이상호, 정인보의 양명철학 연구 - 실심론을 중심으로, 계명대학교, 1999.2. 남궁효, 정인보 조선학 이론체계에 관한 일연구, 연세대학교, 1993.8.

42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3. 강화학파 일반 민병수, 개화기의 우국한시, 개화기의 우국문학, 신구문화사, 1974. 개화기의 한문학, 국어국문학, 68~69쪽, 1975. 유명종, 강화학파의 양명학 전통, 철학연구 29집, 한국철학연구회, 1980.5. 賓茂植, 조선조 양명학에 있어서 강화학파 형성에 관한 연구, 인하대 학교, 1981. 금장태, 심학(양명학)의 역할과 강화학파의 성립, 한국종교사상사 유교기독교 편, 연세대출판부, 1986.8. 민영규, 강화학 최후의 광경, 회귀 3집, 1987.4. 금장태, 심학파 강화학파, 續儒學近百年, 여강출판사, 1989.10. 유준기, 강화학파의 학맥과 사상사적 전개, 국사관논총, 국사편찬 위원회, 1989. 유준기, 한말 강화학파의 민족의식과 독립운동, 한민족독립운동사논 총, 박영석교수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92. 심경호, 강화학파의 문학사상,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 신문화연구원, 1992. 유명종, 이탁오의 사상과 우리의 유학(V.이탁오와 우리 양명학: 이충 익, 이건방), 한국종교사상의 재조명(下): 진산한기두박사화 갑기념, 원광대학교출판국, 1993.8. 유준기, 강화학파(양명학)의 유교개혁운동, 한국근대유교개혁운동사, 삼문출판사, 1994.4. 박광용, 강화학파의 인물과 사상, 황해문화 10, 1996.3. 심경호, 조선후기 경학과 문헌학적 연구방법, 한국한문학회창립20주 년 기념논문집, 태학사, 1996.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27 김교빈, 실심으로 살아간 양명학자들 강화학파, 조선유학의학파들, 한국사상사연구회 편저, 예문서원, 1996.12. 심경호, 19세기말 20세기 초 강화학파의 지적 고뇌와 문학, 어문논 집 41집, 안암어문학회, 2000. 심경호, 강화학의 허가비판론, 대동한문학 14집, 대동한문학회, 2001. 박준호, 강화학파의 문학세계에 대한 일고찰, 대동한문학 14, 대동 한문학회, 2001. 박준호, 강화학파 시세계의 한 국면, 한문학보, 우리한문학회, 2003. 박용만, 강화학파의 연구시(聯句詩)에 관한 고찰, 한국한시연구, 한국한시학회, 2004. 최재목, 강화 양명학파 연구의 방향과 과제, 양명학 12호, 한국양 명학회, 2004.8 難破征南, 知行合一の人間觀につぃて, 강화 양명학학파의 위상과 현 대적 의미, 제1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 명학회, 2004.10. 中純夫, 初期江華學派におけ陽明學受容 - 霞谷, 恒齋, 樗村, 강화 양 명학학파의 위상과 현대적 의미, 제1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 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4.10. 서경숙, 강화학파의 유적지 조사, 하곡과 강화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정인재, 강화양명학이란 무엇인가, 하곡과 강화양명학학파, 제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최재목이상훈, 강화양명학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 정리, 양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7. 박연수, 강화 하곡학파의 실심 실학, 양명학 16호, 한국양명학회, 2006.7.

42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박연수, 강화 하곡학파의 근대적 성향, 인천학연구 7,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7. 김세서리아, 강화학파의 주체의식과 한국근대여성 주체, 인천학연 구 7,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7. 천병돈, 강화학파의 형성과 사상적 계보, 인천학연구 7, 인천대학 교 인천학연구원, 2007. 4. 한국 양명학 1) 1980년 이전 정인보, 조선양명학파, 양명학연론, 동아일보연재, 1933. 이능화, 조선유계지양명학파, 청구학총 25호, 1936. 高橋亨, 조선의 양명학파, 조선학보 4집, 일본조선사연구회, 1953. 이병도, 양명서지동래여퇴계지변척, 백락준박사환갑기념국제논총, 사 상계사, 1955. 김능근, 양명학의 전래와 한국유가의 동향, 숭실대학논문집, 1집 숭 실대학교, 1967. 阿部吉雄, 조선의 양명학, 양명학입문, 일본양명학대계 제1권, 1971. 윤남한, 이조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의 문제, 중앙사론 1집, 1972.12. 김충렬, 陽明學說在朝鮮朝的委屈, 華學月刊 16권, 臺灣, 1973. 유승국, 한국양명학연구, 철학사논총, 1976. 유명종, 덕촌 양득중의 실학사상 양명학과 실사구시의 절충, 한국 학보 6집, 일지사, 1977.3 오종일, 양명 전습록 전래고, 철학연구 5집, 고려대 철학과, 1978.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29 유명종, 한국양명학파의 연구, 한국철학연구 8집, 대동철학회, 1978. 유명종, 조선조양명학의 연구와 그 전개, 한국철학연구(下) : 한국 철학회편, 동명사, 1978.9. 오종일, 양명학의 수용문제, 철학연구 5집, 고려대 철학과, 1979. 유승국,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양명학의 역할, 동대논총 10집, 동덕 여자대학교, 1980. 김길환, 양명학과 조선조 양명학의 실제, 한국학보 21집, 일지사, 1980. 2) 1981년~1990년 민병수, 양명학의 사상적 계보 한국유학사상의 지평에서 본 맥락, 월 간조선 7월호, 1981. 松田弘, 조선조 양명학연구의 현황과 금후의 과제, 정신문화 10호, 정신문화연구원, 1981.6. 松田弘, 韓國陽明學硏究における問題の所在, 倫理思想硏究 第5號, 日本 筑波大, 1981. 민병수, 양명학의 사상적 계보, 한국사상의 심층연구, 도서출판 우 석, 1982. 현상윤, 양명학의 유입과 그 배척, 조선유학사, 현암사, 1982.12. 유승국, 한국근대사상사에 있어서 양명학의 역할, 동양철학연구, 근역서재, 1983.12. 유승국, 서학의 전래와 양명학의 역할, 철학사상의 제문제(II), 한 국정신문화연구원, 1984.3. 유명종, 양명학의 한국적 전개, 한국사상대계 IV, 성대 대동문화연 구원, 1984.

430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정차근, 조선왕조의 양명학에 관한 연구 특히 정치사상적 측면을 중 심으로, 논문집 22, 건국대학교, 1986.2. 이병도, 양명학문제, 한국유학사략, 아세아문화사, 1986.8. 정우봉, 이용휴의 문학론의 일고찰 그의 양명학적 사고와 관련하여, 한국한문학연구 910합집, 한국한문학회, 1987. 유명종, 조선조 양명학과 그 전개, 한국철학사(하), 한국철학회편, 동명사, 1987.5. 이병도, 양명학의 전래와 이해, 한국유학사, 아세아문화사, 1987.12. 유명종, 양명학의 한국적 전개, 한국유학연구, 이문출판사, 1988.9 김길락, 한국양명철학의 전개, 인문과학논문집 XV 권2호, 충남대, 1988.12. 서종태, 성호학파의 양명학 수용 - 복암 이기양을 중심으로, 한국사 연구 66, 한국사연구회, 1989.9. 황의동, 양명학의 전래와 그 개관, 한국사상, 청주대학교출판부, 1990.1. 금장태, 심학(양명학)파의 유교개혁사상, 한국근대의 유교사상, 서 울대학교출판, 1990.3. 김동혁, 심즉리의 양명설과 한주설 비교 연구, 혜전전문대논문집 8, 혜전전문대, 1990.8. 김길락, 한국 양명철학의 특성, 한국철학종교사상사: 여산유병덕박 사회갑기념논총, 원광대출판국, 1990.9. 김길락, 한국양명철학의 전개, 동양학논총: 차산 안진오박사회갑기 념논문집, 1990.11.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31 3) 1991년~1999년 지두환, 조선후기 양명학의 수용과 전개, 국사관논총 22집, 국사편 찬위원회, 1991. 서종태, 녹암 권철신의 양명학 수용과 그 영향, 국사관논총 34집, 국사편찬위원회, 1992. 정차근, 한국 양명학파의 실학정치사상, 현대이상연구 8집, 1992.12. 김길락, 한밭의 육왕학(1), 대전문화 창간호, 대전직할시사편찬위, 1992.12. 송석준, 한국 양명학과 실학의 사상적 연관성에 관한 일고찰 초기 양명학의 실학적 전개 양상 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13 집, 동양철학연구회, 1992.12. 강춘화, 홍대용의 격치설 주자양명의 격치설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종교사상의 재조명(下); 진산한기두박사화갑기념, 원광대 출판국, 1993.8. 심의보, 다산의 대학론 에 나타난 양명학적 성격의 연구, 박물관지 2호, 청주대학교 박물관, 1993.10. 김길락, 조선조 유학에 있어서의 근대정신의 형성과 전개, 동서철학 연구 10호, 한국동서철학연구회, 1993.11. 김길락, 조선조 후기 양명학에 있어서 근대정신의 형성과 전개, 유 학연구 1집,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1993.12. 김길락, 한밭의 육왕학(2), 대전문화 2호, 대전직할시사편찬위, 1993.12. 양방주, 한국근대 양명학의 개혁 사상적 성격과 그 전개, 동아시아 연구논총 4, 제주대, 1993.12. 송석준, 실학파의 사상에 나타난 양명학적 사유구조, 유교사상연 구 7집, 유교학회, 1994.3.

432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서종태, 천진암 주어사 강학과 양명학, 이기백고희기념한국사학논총 하권, 일조각, 1994. 김길락, 조선후기 양명학에 있어서의 근대정신, 동양학 24집, 단국 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94.10. 김길락, 기호양명학의 형성과 전개, 유학연구 2집, 충남대학교 유 학연구소, 1994.12. 최영성, 양명학의 전래와 전개, 한국유학사상사Ⅲ, 아세아문화사, 1995.3. 정차근, 한국양명학파적리상진도여현실극복, 한 중사회경제발전국제 학술대회론문집, 1995.8. 유종현, 조선양명학급기여양명학사상적비교, 퇴계학 6집, 안동대퇴 계학연구소, 1995.12. 潘暢和, 중한 양명학에 관하여, 유학연구 3집, 충남대 유학연구소, 1995.12. 송석준, 한국 양명학의 실학적 전개양상, 유학연구 3집, 충남대 유 학연구소, 1995.12. 김길락, 기호양명학의 형성과 전개, 기호학파의 철학사상 예문서 원, 충남대유학연구소 편저, 1995.12. 송석준, 천주교의 수용과 양명학의 역할, 유교사상과 동서교섭, 유 무상교수화갑기념 논문집, 1996.1. 송석준, 한국 양명학의 초기전개양상, 동서철학연구 13호, 한국동 서철학연구, 1996.12. 최재목, 한국의 양명학 연구에 대한 회고와 전망, 철학회지 21집, 영남대 철학연구회, 1997.8. 서종태, 성호학파의 양명학과 서양과학기술, 한국사상사학 9집, 한 국사상사학회, 1997.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33 최재목, 근대 영남 유학계에서 실학의 계승과 양명학 수용의 문제, 철학논총 13집, 영남 철학회, 1997.11. 차기진, 성호학파의 양명학 서학 접촉과 이해, 조선시대의 사회와 사 상, 조선사회연구회, 1998. 한예원, 한국양명학의 역사와 과제, 국제유학연구 4, 국제유교연합 회, 1998.1. 정차근, 한국 양명학의 반주자 사상적 본원, 사회과학연구 4, 창원 대, 1998.3. 송석준, 양명학의 전래와 연구, 한국사 31집, 국사편찬위원회, 1998.12. 송석준, 한말 전환기 사상의 현실인식과 대응양상 양명학파의 이념과 현실적 대응, 동서철학연구 15집, 동서철학연구회, 1998.12. 김길락, 한국양명학과 근대정신, 양명학 2호, 한국양명학회, 1998.12. 유명종, 한국양명학의제문제, 양명학 2호, 한국양명학, 1998.12. 송하경, 한국 양명학의 전개와 특징, 양명학 2호, 한국양명학회, 1998.12. 이형성, 高橋亨의 조선양명학사 연구와 극복, 한국철학논집 78합 집, 한국철학사연구회, 1999. 오종일, 양명학의 수용과 전래에 관한 재검토, 양명학 3호, 한국양 명학회, 1999.12. 김교빈, 조선후기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 - 정제두와 박세채, 윤증, 민이승, 박심, 최석정의 논쟁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10 호, 1999.

43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4) 2000년~2007년 최재목, 한국 양명학의 전개와 그 특질, 한국문화사상대계 2권, 영 남대학교출판부, 2000.8. 정차근, 한국 양명사상에 나타난 개체수준의 확대, 양명학 7호, 한 국양명학회, 2002.2. 정차근, 한국양명사상접수지상황적조건화맹아, 양명학 8호, 한국양 명학회, 2002.8. 황광욱, 홍인우와 남언경의 양명학 이해에 대한 고찰 - 서경덕 철학과 연계성을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18, 한국사상문화학회, 2002. 김용재, 양명학의 형성과정에 관한 역사, 철학적 고찰 - 명과 조선의 사 상사를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12, 한국철학사연구회, 2003. 최재목, 동아시아의 양명학에서 체용론이 갖는 의미, 양명학 9호, 한국양명학회, 2003.2. 김영주, 조선후기 소론계 문학이론의 형성 배경(1) - 양명학 수용의 전통을 통해 본 학문 사상의 특징, 동방한문학 26, 동방한 문학회, 2004. 송석준, 한말 양명학의 전개와 연구현황, 양명학 13호, 한국양명학 회, 2005.2. 신향림, 16C 전반 양명학의 전래와 수용에 관한 고찰-김세필, 홍인우, 노수신의 양명학 수용을 중심으로, 퇴계학보 118권, 퇴계학 연구원, 2005. 片岡龍, 17세기 동아세아 유학의 조류, 하곡과 강화 양명학학파, 제 2회 강화양명학파 국제학술대회논문집, 한국양명학회, 2005.10. 한정길,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양명학관, 한국실학연구 10, 한국실

Ⅴ. 강화학파 연구 저서 및 논문 목록 435 학학회, 2005.12. 김용재, 한국양명학 연구현황과 새로운 모색-강화학 연구의 필요성과 접근방법을 중심 논제로, 양명학 14호, 2005.7. 김세정, 한국 양명학의 생명사상, 한국동서철학 39, 한국동서철학 회, 2006. 5) 학위논문 박사학위 논문 윤남한, 조선시대의 양명학 연구, 중앙대학교, 1974. 정차근, 陽明思想對朝鮮政治思想之影響, 臺灣國立政治大學, 1989.2 송석준, 한국 양명학과 실학 및 천주교와의 사상적 연관성에 관한 연 구, 성균관대학교, 1992.12. 서종태, 성호학파의 양명학과 서학, 서강대학교, 1996.7. 김영숙, 조선시대 영사악부 연구, 영남대학교, 1989.2. 서경숙, 초기 강화학파의 양명학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2000.12. 강주진, 이조당쟁사 연구, 중앙대학교, 1972.2. 석사학위 논문 賓茂植, 조선조 양명학에 있어서의 강화학파 형성에 관한 연구, 인하 대학교, 1981. 부제공, 한국근대사상과 양명학, 성균관대학교, 1986. 송석준, 한국양명학파의 경학사상에 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1978.

436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찾아보기 (ㄱ) 강화양명학 강화학 강화학파 15, 18, 19, 21 당쟁사 217, 435 대연(岱淵) 134, 212 15, 16, 17, 20, 21, 22, 248 대연유고(岱淵遺藁) 134 11, 16, 17, 18, 19, 20, 21 대학고정(大學考正) 160 개화기 223, 426 경서(經書) 경안령(慶安令) 경재(耕齋) 독역수기(讀易隨記) 11 동강(東岡) 192 경재집(耕齋集) 192, 193 계명의숙(啓明義塾) 192, 199 고문상서(古文尙書) 고상서 127 127, 272, 274, 416 고증학(考證學) 17 관양집(冠陽集) 51, 52, 55 금문상서(今文尙書) 도덕철학 82 127 동국악부(東國樂府) 두남집(斗南集) 11, 225 65 64, 66 (ㄹ) 래지덕(來知德) 189 리학 259 (ㅁ) 11 명미당(明美堂) 김택수(金澤洙) 13 명미당집(明美堂集) 김택영(金澤榮) 161 김세필(金世弼) 405 189, 190 문학 민영규(閔泳珪) 180 51, 180, 181, 374 17, 21, 60, 202 14, 241 (ㄴ) 난곡(蘭谷) 192, 202 (ㅂ) 난곡존고(蘭谷存稿) 202, 203 박상(朴祥) 11 11 박세채(朴世采) 51 논어(論語) 158 박지원(朴趾源) 106 눌재(訥齋) 11 남언경(南彦經) 백운문초(白雲文抄) 봉조(鳳藻) 143, 144 180 (ㄷ) 담로(談老) 담원(薝園) 담원국학산고(薝園國學散藁) 당의통략(黨議通略) 101 (ㅅ) 209 사기(沙磯) 209, 213 188 사기집(沙磯集) 사학(史學) 137 51, 137, 138 16, 214

찾아보기 437 상산학(象山學) 서결(書訣) 281 64, 70, 72, 95, 249, 364 서경채전변정(書經蔡傳辨正) 16 109, 127, 272 서화(書畵) 16, 349 석천(石泉) 109 석천유고(石泉遺稿) 109, 110 석천일승(石泉日乘) 83 선고(先藁) 성(誠) 60, 61 294, 295, 300, 302, 331, 333, 십청원(十淸軒) 11 (ㅇ) 양명우파 324, 325, 327, 328, 329, 330, 331, 405, 408 양명좌파 325, 327, 328, 330 양명집(陽明集) 60 양명철학 425, 430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 양명학파 209 11, 12, 20, 214, 229, 246, 399, 402, 404, 405, 428 334, 408 성이관(成以觀) 성호학파 13, 16, 244, 302 155 서예(書藝) 서차고(書次故) 심학(心學) 13 340, 430, 432, 433, 435 소호당집(韶濩堂集) 양지(良知) 역사집략 161, 374, 420 161, 163, 164 역차고(易次故) 13 연려실(燃藜室) 송덕연(宋德淵) 시경집전변정(詩經集傳辨正) 151 17, 19, 401 109, 122, 123, 273 89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89, 91 시문(詩文) 16, 21, 77, 82, 96, 245, 373 영재(寧齋) 180 시차고(詩次故) 예기정해(禮記正解) 148 신대우(申大羽) 신작(申綽) 신재(信齋) 신재집(信齋集) 109, 116, 117, 272 13, 77, 82 13, 83, 109, 109 64, 95, 95 66, 70, 95, 96, 97 신진(申縉) 83 신현(申絢) 13, 83, 83, 116 실심(實心) 17 13 346, 348, 349, 350, 351, 352, 354, 357, 364, 413 완구(宛丘) 82, 109 완구유집(宛丘遺集) 82, 84 원교(圓嶠) 64, 89 원교집(圓嶠集) 70, 72, 213 월암(月巖) 77, 78 16, 344 위당(爲堂) 209 심경호 17, 18, 19, 122, 231, 235, 252, 269, 272, 274, 288, 397, 397, 398, 유명종 16, 18, 228, 244, 278, 286, 397, 399, 400, 410, 416, 426, 428, 429, 430 410, 413, 416, 424, 426, 427 심대윤(沈大允) 옥동 17, 19 실심실학(實心實學) 실학(實學) 오세태(吳世泰) 143 유준기 심신(心身) 16, 19 유학사상 심육(沈錥) 13, 45 육왕학(陸王學) 심체(心體) 265 윤순(尹淳) 18, 19, 239, 397, 426 255 211 13, 45, 64

438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이건방( 李 建 芳 ) 14, 45, 192, 202 이건창( 李 建 昌 ) 14, 180, 188 이경석( 李 景 奭 ) 51 이광덕( 李 匡 德 ) 51 이광려( 李 匡 呂 ) 13, 65, 106 이광명( 李 匡 明 ) 13, 46 이광사( 李 匡 師 ) 12, 13 이광신( 李 匡 臣 ) 13, 60 이긍익( 李 肯 翊 ) 14, 89 이면백( 李 勉 伯 ) 14, 101, 134, 212 이상학( 李 象 學 ) 14, 247 이서 348, 352, 354, 383, 412 이선학( 李 善 學 ) 13 이선협( 李 善 協 ) 13 이시원( 李 是 遠 ) 14, 137, 199 이영익( 李 令 翊 ) 14, 95 이요( 李 瑤 ) 11, 226 이지원( 李 止 遠 ) 14 이진검( 李 眞 儉 ) 64 이진병( 李 震 炳 ) 13, 45, 48 이진유( 李 眞 儒 ) 64 이참봉집( 李 參 奉 集 ) 77, 79 이충익( 李 忠 翊 ) 14, 71, 83, 101 이탁오 426 (ㅈ) 저촌( 樗 村 ) 45 저촌유고( 樗 村 遺 稿 ) 45, 46 전습록( 傳 習 錄 ) 11 전습록변( 傳 習 錄 辨 ) 11 정계섭( 鄭 啓 燮 ) 26, 45, 46 정기석( 鄭 箕 錫 ) 13 정동유( 鄭 東 愈 ) 14, 106 정량완 17, 212, 231, 248, 269, 270, 397, 413, 414, 423, 424 정문승( 鄭 文 升 ) 13, 25 정원하( 鄭 元 夏 ) 13 정음( 正 音 ) 16 정인보( 鄭 寅 普 ) 209 정제두( 鄭 齊 斗 ) 25 정주학( 程 朱 學 ) 17, 211, 223 정준일( 鄭 俊 一 ) 13 정후일( 鄭 厚 一 ) 13, 60 조경명( 趙 景 命 ) 51, 54 주역상의점법( 周 易 象 義 占 法 ) 150 주영편( 晝 永 編 ) 106, 108, 212, 213 주육화회론( 朱 陸 和 會 論 ) 281 중용훈의( 中 庸 訓 義 ) 160 (ㅊ) 창강( 滄 江 ) 161 창강시 418 창강집( 滄 江 集 ) 163 채침( 蔡 沈 ) 155 천주교 135, 268, 335, 337, 338, 340, 432, 435 초원( 椒 園 ) 101 초원유고( 椒 園 遺 稿 ) 83 최상복( 崔 尙 復 ) 13 추사 143, 291, 291, 351, 352, 353, 355, 356, 357, 366, 383, 384, 386, 412, 413 치양지( 致 良 知 ) 16 (ㅌ) 탐주집( 探 珠 集 ) 51 퇴계( 退 溪 ) 11 (ㅎ) 하곡( 霞 谷 ) 13, 25

찾아보기 439 하곡집( 霞 谷 集 ) 25, 26 한국양명학 20, 21, 22, 222, 265, 268, 278, 286, 335 한주설 430 항재( 恒 齋 ) 60 허가( 虛 假 ) 17 허학( 虛 學 ) 17, 344 홍이섭( 洪 以 燮 ) 14

강화학파 연구 문헌 해제 초판1쇄 펴낸날 / 2007년 12월 14일 공편 / 김수중조남호천병돈 펴낸이 / 이갑영 펴낸곳 / 인천학연구원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 1127 시티은행빌딩 10층 전화 : 032)441-5073~4 전송 : 032)441-5075 홈페이지 : www.isi.or.kr 편집인쇄 : 다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