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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연구(송석원) 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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伐)이라고 하였는데, 라자(羅字)는 나자(那字)로 쓰기도 하고 야자(耶字)로 쓰기도 한다. 또 서벌(徐伐)이라고도 한다. 세속에서 경자(京字)를 새겨 서벌(徐伐)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또 사라(斯羅)라고 하기도 하고, 또 사로(斯盧)라고 하기도 한다. 재위 기간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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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習 說 ) 5), 원호설( 元 昊 說 ) 6) 등이 있다. 7) 이 가운데 임제설에 동의하는바, 상세한 논의는 황패강의 논의로 미루나 그의 논의에 논거로서 빠져 있는 부분을 보강하여 임제설에 대한 변증( 辨 證 )을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인용문을 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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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국어에서 관용표현 지도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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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과 학기 술부 고 시 제 호 초 중등교육법 제23조 제2항에 의거하여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다음과 같이 고시합니다. 2011년 8월 9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1. 초 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은 별책 1 과 같습니다. 2.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별책

시험지 출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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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초 정재연구\(수정 및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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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인에서초기황반변성질환과 연관된위험요인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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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동북아역사논총 41호 인과 경계공간은 설 자리를 잃고 배제되고 말았다. 본고에서는 근세 대마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을 주로 영토와 경계인 식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시기 대마도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을 살펴볼 때는 근대 국민국가적 관점에서 탈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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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민락초신문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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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절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사진 24 _ 종루지 전경(서북에서) 사진 25 _ 종루지 남측기단(동에서) 사진 26 _ 종루지 북측기단(서에서) 사진 27 _ 종루지 1차 건물지 초석 적심석 사진 28 _ 종루지 중심 방형적심 유 사진 29 _ 종루지 동측 계단석 <경루지> 위 치 탑지의 남북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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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동북아역사논총 42호 금융정책이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 대외금융 정책의 기본원칙은 각 식민지와 점령지마다 별도의 발권은행을 수립하여 일본 은행권이 아닌 각 지역 통화를 발행케 한 점에 있다. 이들 통화는 일본은행권 과 等 價 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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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답 과 해 설 1 (1) 존중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 주요 지문 한 번 더 본문 10~12쪽 [예시 답]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한 사 람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며,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해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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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인물 강순( 康 純 1390(공양왕 2) 1468(예종 즉위년 ) 조선 초기의 명장.본관은 신천( 信 川 ).자는 태초( 太 初 ).시호는 장민( 莊 愍 ).보령현 지내리( 保 寧 縣 池 內 里,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서 출생하였다.아버지는 통훈대부 판무

230 한국교육학연구 제20권 제3호 I. 서 론 청소년의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다. 개ㅅㄲ, ㅆㅂ놈(년), 미친ㅆㄲ, 닥쳐, 엠창, 뒤져 등과 같은 말은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말과 글이 점차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바뀌고, 외 국어 남용과 사이버 문화의 익명성 등

Transcription:

253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49) 이진원* Ⅰ. 머리말 Ⅱ. 기존 연구성과 검토 Ⅲ.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검토 Ⅳ.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의 의의 Ⅴ. 맺음말 Ⅰ. 머릿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취관악기(縱吹管樂器)에는 무황악기(無簧樂器)인 퉁소 단소가 있 고, 유황악기(有簧樂器)로 피리와 쇄납 등이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꾸준히 관악기 산조에 관심 을 가지고 유동초(柳東初)와 정해시(鄭海時)의 퉁소산조를 점검하는 몇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 으며, 전추산(全秋山) 등의 단소산조에 대해서도 몇 가지 글을 발표하였다.1) 이러한 논문 등을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1) 필자가 작성한 퉁소 단소 및 그들 산조 관련 논문 잡지에 발표한 글 등은 아래와 같다. 이진원, 柳東初 洞簫 散調의 선율분석,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제2호, 207-34쪽; 鄭海時 洞簫散調 연구, 韓國音盤學 (1995), 제5호, 285-97쪽; 종취관악기의 전통적인 주법 연구 : 퉁소와 단소를 중심으로, 국악교 육 (서울 : 한국국악교육학회, 1997), 제15집, 155-82쪽; 韓國洞簫的歷史, 1999年杭州國際尺八硏討會發表論 文 (중국항주 : 중일국제척팔교류회, 1999) ;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관계, 韓國音盤學 (2001), 제 11호, 111-25쪽; 시나위의 새로운 정의 시론, 韓國音樂史學報 (서울 : 韓國音樂史學會, 2001), 제27집, 57-74 쪽; 崔玉三 단소산조 연주, 韓國音盤學 (2002), 제12호; 한국과 중국의 퉁소음악 중 두소리<雙聲> 기법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술대회, 발표(2003.6.7.) ; 국악명반을 찾아(14) 한범수의 퉁소산조 : 음양이 조화를 이룬 신비의 음색, 객석 (서울 : 주식회사 예음, 1992), 통卷101호, 7월호, 276-7쪽; 국악기를 찾아서(5) 단소, 뮤직프라자 (서울 : (주)서울음반, 1993), 통권34호, 11 12월호, 36-9쪽; 강춘섭과 풀피리, 유동초와 퉁소, 유성기음반에 담긴 산조대금과 퉁소, 명인명창선집(8) 대금 퉁소 풀피리의 명인들 (서울 : 지구레코드, 1994)

254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통해서 퉁소산조가 일제강점기에 유동초와 정해시에 의해서 만들어 졌음을 밝혔으며, 단소산조 의 경우 전추산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일제강점기 국악활동 자료집 2 경성방송국국악방송 곡목록 이 출판되었고2), 그에 따른 색인이 출간됨에 따라3) 관련 새로운 자료들이 속속 정리되 었으며, 이를 통해 종취관악기 산조 형성 시기를 재검토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앞서 언 급한 단소 퉁소 피리산조의 형성시기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따라서 본 고에서는 앞서 언급한 경성방송국 국악방송 목록과 그 색인 및 유성기음반 자료 등 에서 보이는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재검토하고자 하였다. Ⅱ. 기존 연구성과 검토 1. 단소산조 형성과 관련된 기존 연구성과 검토 단소산조의 형성시기에 대하여 논의한 글로 신비의 가락 추산 전용선 단소 라는 음반 해설 지에 필자가 발표한 추산 전용선의 단소 예술 이 거의 유일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전추산을 단소산조의 창시자라 칭하고, 종취관악기로서의 단소산조가 아마도 1920년대 이미 형성되지 않 았을까 라고 추정을 하였다.4) 필자가 전추산을 단소산조의 창시자라고 지목한 이유는 국악계에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논의를 받아들인 것이며5), 당시 유일하게 전추산의 단소산조가 국립국 ; 추산 전용선의 단소 예술, 신비의 가락 추산 전용선 단소 (서울 : 서울음반, 1996), 전해설 ; 한국의 퉁소, 고음반연구회 음향자료선집(6) 이보형채록 한국의 퉁소가락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2000). 2)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서울 : 민속원, 2000), 일제강점기 국악활동 자료집 2. 3) 宋芳松 宋相赫 外,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색인 (서울 : 민속원, 2002). 송방송 송상혁이 주도적으로 정 리한 본 저서는 주 3)의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의 색인으로, 앞으로 한국근대음악사 연구에 있어 많은 활 용이 예상되는 중요한 논저이다. 4) 단소산조는 말 그대로 단소로 연주되는 산조를 말한다. 단소산조의 창시자는 오늘날 전추산이라고 전해진다. 그 가 태어난 해가 1887년이고, 그가 17세에 단소를 처음 잡았으니까, 1904년경에 단소를 배우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호남 퉁소의 명인이라는 유동초가 1930년대 중반에 퉁소산조 음반을 취입했고, 경기 시나위권의 정해시 퉁 소명인도 30년대 퉁소산조를 취입했으므로, 퉁소산조가 만들어진 것이 1920년대(해설서에 1920년이라 잘못되어 있다)라고 본다면, 같은 종취 관악기 산조로서 단소산조도 이 당시 처음으로 연주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이진원, 추산 전용선의 단소 예술, 신비의 가락 추산 전용선 단소 (서울 : 서울음반, 1996), 해설지. 5) 김해숙, 제7장 단소산조의 선율구조, 산조연구 (서울 : 세광음악출판사, 1987), 149-151쪽 및 백대웅, 인간과 음악 (서울 : 이론과 실천, 1988), 190-5쪽. 김해숙이 윗 글에서 단소산조를 창시하였지만 산조보다 정음에 더 공 을 쌓았다 고 전용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라고 서술한 것을 보면, 전용선(전추산)의 단소산조 창시가 국악계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대웅도 윗글에서 전용선이라는 천재적인 명인은 단소로도 산조를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55 악원 등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었다.6) 위 음반해설서 이후에 필자는 최옥삼(崔玉三)이 단소산 조를 연주했음을 확인하고, 단소산조가 일제강점기에 널리 연주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7) 단소율보 에 채보되어 있는 이충선(李忠善)의 단소산조 및 필자가 강진에서 만난 김갑동 (金甲東)의 단소산조 등은 전추산 이외에도 여러 연주자들이 단소산조를 연주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지만 이로부터 단소산조의 첫 형성시기를 유추해 낼 수는 없었다. 또한 단소율보 에 보 이는 이충선의 단소산조는 후대에 김기수(金琪洙)가 이충천의 대금산조 가락을 단소로 옮긴 것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라고 하였듯이 전용선의 단소산조 창시는 국악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 여지고 있다. 6) 전추산의 단소산조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남긴 여러 단소산 조, 즉 국악원시상식 연주, 김소희소장 연주, 성창순소장 연주, 국악원소장연주, 김호성소장 연주 등을 살펴보면 정식으로 한바탕을 연주한 산조는 없다. 그러나 그가 연주한 단소산조을 모아보면 위와 같이 한 바탕을 구성할 수 있다. 최옥산의 단소산조도 마찬가지이다. 앞 장에서 분석한 단소산조는 진양조와 느린 중중모리이다. 그러나 한시준이 단소곡으로 언급한 것을 참조하면 그의 단소산조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안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시준이 말한 중모리는 분명 전동환이 이땅에서 연주한 중모리로 앞장에서 분석해본 느린 중모리 가락을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최옥산의 단소산조에는 중중모리와 자진모리가 생략되어 있으며, 단소로 연주 하기 힘든 휘모리에 해당되는 안땅이 보인다. 이와같이 산조의 구성에서도 양자가 틀리다. 전추산이 남긴 산조는 어떠한 녹음이든지 그 선율이 아주 다르다. 이는 추산의 음악이 변화롭고 다양하며, 무한한 창작능력을 가진 것 을 말해주며, 최옥산의 단소산조의 경우와 많이 구별된다. 최옥산은 북한에서 활동할 당시 많은 제자를 두었으며, 그의 음악은 악보로 채보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에 즉흥적인 산조로서 음악을 전한 것이 아니라 60년대 이미 작곡 된 산조로서 단소산조를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원, 崔玉三 단소산조 연주, 韓國音盤學 (2002), 제12호 참조. 7) 아래는 朝鮮日報 에 실린 창극 옥루몽 공연기사이다. 이 기사에서 전추산에게 잠시 단소를 배운 신쾌동이 단소로 창극을 반주한 것이 보인다. 이와같이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단소로 창극 선율을 연주하는 것이 아주 특이 한 경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단소산조가 이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라 볼 수 있다. 1940.2.18 조선성악연구회 20일부터 제일극장(第一劇場)에서 창극 옥루몽 상연 ; 춘향전으로 혹은 심청전으로 꾸준히 우리들의 고전을 발굴하여 고전창극 본질을 걷고있는 시내 익선정에 있는 조선성악연구회에서는 오는 20 일부터 11일 동안 시내 종로 사정목 제일극장에서 신춘 특별공연을 하기로 되어 방금 주야로 맹연습을 하고 있 다는 바 상연할 예제는 박생남(朴生南)씨 각색인 창극 옹루몽 (7막 16장)과 김용승씨 편 신판 홍보전 (5막 14장) 이라는데 남녀명창들의 열연은 물론이며 특히 이번에는 호화스러운 의상과 찬란하고 대규모인 고전악기의 총등 장으로 일층 현황하게 무대를 장식할 것으로서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대장인 옥루몽 이 과연 어떠한 무대의 양 식을 갖추고 나타나 얼마마한 성공을 거둘지 벌써 일반의 기대는 크다고 한다. 인물과 배역 양창곡(楊昌曲): 정 남희, 강남홍(江南紅): 김*희, 황여옥(黃汝玉: 蘇州刺史): 강장원, 연옥(蓮玉): 성미향, 윤형문(尹衡文: 杭州刺 史): 김연주, 무부(갑): 이정업, 무부(을): 오태석, 소(蘇)부인: 김봉(金峰), 윤소저(尹小姐: 형문의 딸): 김주(金珠), 양현(楊賢): 조상선, 허부인: 임소향, 소청(小婧), 황소저: 한산월, 춘월: 김란주, 도화: 한봉희(韓鳳姬), 춘성: 서홍 구(徐鴻九), 학시인: 조영, 문사: 김세준, **: 한남종 외 다수, 동자: 한갑득, 갑사: 배남*(裵南*) 외 다수, 기녀다. **부 현금: 한갑득, 장고: 조상선, 가야금: 강태홍, 대금: 박종기, 세적(細笛): 한성준, 필률: 정원섭, 양금: 박동준 (朴東俊), 단소: 신쾌동. 김성혜, 朝鮮日報 의 國樂記事:1920-1940(Ⅱ), 韓國音樂史學報 (경산 : 韓國音樂 史學會, 1994), 제13집, 261-62쪽 재인용.

256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이므로, 단소산조 창시 논의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다.8) 2. 퉁소산조 형성과 관련된 기존 연구성과 검토 퉁소산조의 형성시기에 관한 선행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유동초와 정해시가 남 긴 음반이 발굴되어 이에 대한 음악적 분석이 퉁소산조 연구 분야의 주가 되어 있는 실정이다. 한범수(韓範洙) 명인이 산조론 에서 언급한 바9) 일제강점기에 퉁소산조가 있음을 알았고, 이 보형(李輔亨)의 無形文化財調査報告書(7) 散調 에서 유동초 박종기(朴鐘基)10)가 일제강 점기의 대표적 퉁소산조의 명인임을 알았다.11) 필자는 몇 편의 논문을 통해서 유동초와 정해시의 퉁소산조 창작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다. 즉, 정해시의 산조 가락에서 유동초가 연주하던 가락의 흔적이 보이므로, 정해시의 퉁소산조가 유동초의 산조와 무관하지는 않으며, 유동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추정을 한 바 있었다. 퉁 소산조의 형성에 대해서는 학계의 큰 관심이 없어 연구되지 않고 있으며, 대금산조에 있어서 박 종기 창제설이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같이 유동초를 퉁소산조의 창시자로 보 는데 큰 이견이 없는 실정인 것이다. 3. 피리산조 형성과 관련된 기존 연구성과 검토 피리산조의 창제시기에 대해서도 깊이 논의된 바 없다. 박범훈(朴範薰)의 피리산조연구 에 는 다음과 같이 피리산조의 그 스스로 짜게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인용1> 가야금 등 여러 종류의 악기에 많은 유파의 산조가 전해져 오면서도 피리만이 산조가 없 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1965년경 고 지영희 선생께서는 피리시나위 가락을 가르쳐 주시면서 피리산 조는 전래되는 가락이 없다고 하시며 피리산조를 만들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으나, 결국 해금산 조만 남기고 피리산조는 포기하시고 말았다. 제자들에게 진양 몇 장단을 가르치시다가 가락이 마음에 8) 김기수 편저, 단소율보 (서울 : 은하출판사, 1979), 198-205쪽. 194쪽 해설부분에서 단소산조에 전용선(전추산), 퉁 애는 편재준(전추산의 제자)이 각 산조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는 해설이 보인다. 또한 악보 마지막 부분에 이충 선의 대금산조를 채보하여 단소산조로 바꾸어 놓았다는 해설과 함께 악보가 소개되어 있다. 9) 韓範洙, 韓範洙 대금散調譜 (서울 : 民學社, 1975), 10쪽. 10) 대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박종기는 퉁소산조에도 일가를 이룬 명인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그의 퉁소 산조 연주가 일제강점기 경성방송국국악방송목록 이나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것이 확인된 바 없으므로, 박종기 의 퉁소산조 창시의 논의는 본고에서 논외로 하고자 한다. 11) 이보형, 無形文化財 調査報告書(7) 散調 (서울 :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7), 150-54 및 161쪽.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57 안 드시는지 갸우뚱하시며 피리를 놓고 해금으로 바꾸어 잡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피리 는 산조 연주에 적합하지 못한 악기일까? 아니면 피리산조를 만들 수 있는 주가가 없었기 때문일까? 많은 의문 속에서 선생님이 짜주신 시나위 가락만이 이제껏 연주해 왔다. 다행스럽게도 이충선선생님 께서 짤막한 피리산조 한 틀을 만드셔서 현재까지 몇몇 제자분들이 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12) 이상 <인용1>에서 보면 피리의 명인 지영희가 피리산조를 만든 시기는 1965년 이후가 되고 있지만, 지영희 명인이 산조를 1965년 이전에 연주하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윗 인용에는 이충선의 피리산조 완성에 대한 내용이 보이지만 과연 누가, 언제 피리산조를 만들 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알 수는 없다. Ⅲ.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검토 1. 단소산조 퉁소산조의 형성시기 점검 먼저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일제강점기 국악활동 자료집 2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이 하 목록 )의 색인인 송방송 송상혁 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총색인 (이하 색인 )에 서 종취관악기와 관련된 산조 색인을 찾아본다. <자료 1> 散調 단소: 36.6.18(283); (독주)28.2.27(49); 29.5.19(70); 37.8.28(345) 퉁소: 39.11.23(431); (독주)36.4.27(276); 36.6.12(282); 37.4.16(326);40.5.13(450)13) 이상 <자료 1>에서는 단소와 연관된 산조 독주가 1928년 2월 27일에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 다. 이 자료를 원 목록에서 검색하여 살펴보면 <자료 2>와 같다. <자료 2> 1928.2.27.(월) 18:40- 매일 短簫 嵆琴 獨奏 及 合奏 <淸聲還入, 散調, 流行雜歌 數種> 趙東奭 / 池龍九 1929.5.19.(일) 21:25- 朝鮮 短簫 嵆琴 獨奏와 合奏 12) 朴範薰著, 피리散調硏究 (서울 : 世光音樂出版社, 1895), 2-3쪽. 13) 괄호안의 숫자는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의 쪽수를 말한다.

258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淸聲환입, 散調, 歌 數種> 趙東奭 / 池龍九 1936.6.18.(목) 21:35- 매일 短簫와 洞簫獨奏 <散調(短簫), 새타령<洞簫)> 柳東初 / 丁元燮(鼓手) 1937.8.28.(토) 21:15- 東亞 短簫獨奏 <散調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姜奉根 <자료 2>에 보면 조동석(趙東奭)과 지용구(池龍九)가 양청도드리 산조 유행잡가 등을 독 주, 혹은 합주로 연주하였다. 이 중 단소는 조동석이 연주했고, 해금은 지용구가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동석 명인이 산조는 연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제강점기 유성기 음반에도 주로 정악을 취입한 것으로 보아 <자료 2>의 연주에서는 조동석의 단소산조가 연주되 지 않았음을 거의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1936년 6월 18일에는 퉁소산조를 만든 유동초가 단소 로 산조를 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단소산조도 이미 일제강점기에 퉁소산조와 더불 어 창제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 1937년 8월 28일에는 단소독주로 진양조 중모리 자진 모리 구성 산조 한바탕이 짜여져서 강봉근(姜奉根)에 의해 연주된 기록이 있으므로 일제강점기 에 단소산조가 존재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14) <자료 3> 1936.4.27.(월) 20:50- 東亞 洞簫獨奏15) 柳東初 / 趙干洪(杖鼓) 1. 散調 1) 진양조 2) 중모리 3) 자진모리 2.鳳雀吹 1936.6.12.(금) 20:55- 매일 洞簫獨奏 <散調, 새타령> 柳東初 / 池龍九(鼓手) 1937.4.16.(금) 20:30- 매일 洞簫獨奏 <散調, 鳳雀吹> 柳東初 1939.11.23.(목) 21:00- 매일 洞簫와 奚琴 <鳳雀吹, 散調> 鄭海是(洞簫) / 金德鎭(奚琴) / 閔完植(杖鼓) 1940.5.13.(월) 20:55- 매일 洞簫獨奏 <散調, 鳳雀吹> 鄭海是 / 韓成俊(杖鼓) <자료 3>에서 보이는 내용은 이미 이전 연구성과에서 대부분 검토되었던 사실로 정해시와 유동초16)의 퉁소독주에서 산조와 봉작취(鳳雀吹)가 연주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유동초가 퉁 14) 거문고산조로 유명한 신쾌동 명인이 창극반주에 단소를 사용한 것이 보인다. 창극에 사용되는 음악들을 단소로 연주한 것이 바로 단소산조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과 동격으로 취급될 수 있으므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15)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에는 獨奏가 毒酒로 잘못 인쇄되어 있다. 필자수정. 16) 유동초(1881-1946, 혹은 1888-1950)는 김제군(金堤郡) 출신인 황산 유(黃山 柳)씨 양반으로 시각장애자였으나, 퉁 소에 주력하여 이왕직아악부에서 동국(東國)에 이러한 명인이 처음 났다 하여 그 호를 동초(東初)라고 지어주었 을 정도로 뛰어난 명인이었다. 그의 퉁소시나위는 천하명인으로 꼽히었고 해금 대금의 풍류와 시나위도 명인 의 칭호를 들었고, 단소풍류와 시나위에는 추산 전용선(秋山 全用先, 1887-1967)과 쌍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59 소산조를 방송에서 발표한 시기에 앞에서 그가 단소로 산조로 연주한 시기보다 이르다는 것이 주목된다. <자료 4> 단소(인명) 海 : 34.11.1(216)17); 유동초: 36.6.18(283); 36.6.28(284); 정해시: 39.7.21(418) 단조(곡명) 산조: 36.6.18(283) 단소독주(곡명기타) 산조: 28.2.27(49); 29.5.19(70); (진양조) 37.8.28(345); 자진모리: 37.8.28(345); 중모리: 35.6.23(242); 37.8.28(345) 진양조 휘모리: 35.6.23(242) <자료 4>는 산조(인명), 산조(곡명) 등의 색인 항목 중에서 퉁소 단소와 관련된 항목을 나열 한 것이다. 이를 토대로 원 목록 에서 앞에서 제시한 자료와 중복되지 항목을 추려 살펴보면, 아래 <자료 5>와 같다. <자료 5> 1935.6.23.(일) 20:30- 매일 短簫獨奏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 韓文淑(短簫) / 金浩史(長鼓) 1935.6.23.(일) 20:30- 매일 短簫獨奏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 韓文淑(短簫) / 金浩史(長鼓) 1936.6.28.(일) 22:00- 매일 鮮滿 交換放送(京城으로부터) 短簫 及 洞簫 獨奏 <곡명 없음> 柳東初 / 趙干洪(鼓手) 1939.7.21.(금) 21:10- 매일 俗曲 <산아위, 새打鈴> 鄭海是(短簫) / 金德鎭(奚琴) / 韓成俊(杖鼓) <자료 5>에서는 유동초의 단소 퉁소 연주가 보이며, 정해시가 단소로 시나위와 새타령을 합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문숙(韓文淑)이라는 연주자가 단소로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 를 연주하여 단소산조 한바탕을 1935년 6월 23일에 유동초나 강봉근보다 먼저 방송으로 소개하 였음을 알 수 있다. 다. 이진원, 柳東初 洞簫散調의 선율분석,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제2호, 207-34쪽. 17)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총색인 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임. 목록에서 확인 불가.

260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자료 6> 퉁소독주 이충선: 45.8.13(538); 자진모리 중모리 진양조: 36.4.27(276); 진양조와 중모리: 37.9.2(345) 柳東初: 36.4.27(276); 36.6.12(282); 36.6.18(283); 36.8.2(288); 37.4.16(326) 散調: 36.4.27(276); 36.6.12(282); 37.4.16(326) 퉁소 金先得: 37.7.1(564)18); 봉작취(자진모리): 41.3.9(469); 새打鈴: 41.1.28(467); 鄭海是: 36.4.2(272), 41.1.28(467); 41.3.9(469); 41.8.24(483); 41.10.12(486); 趙載弼: 36.7.24(287)19); 중모리 진양조: 41.1.28(467); 41.3.9(469); 해금; 41.1.28(467); 41.3.9(469) 퉁소散調 (유동초: 진양조) 40.3.18(443) <자료 6>에 보이는 이충선은 경기시나위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자료 6>의 색인을 목록에 서 찾아보면 아래 <자료 7>과 같다. <자료 7> 1936.4.2.(목) 20:00- 東亞 唱劇調 1. 短歌 아서라世上事 2. 唱劇調 沈淸傳 中 船人따라가는데 任小香20) / 鄭海是(洞簫) / 金德鎭(奚琴) / 韓成俊(鼓手) 1936.8.2(일) 19:30- 매일 鮮滿 交換放送(京城으로부터) 短簫 獨奏와 伽倻琴 獨奏 <洞簫獨奏 鳳省歌21), 伽倻琴散調> 柳東初 / 趙干洪(杖鼓) / 沈相健/ 韓成俊(杖鼓) 1937.4.16.(금) 20:30- 매일 洞簫獨奏 <散調, 鳳雀吹> 柳東初 1937.9.2.(목) 20:15- 매일 洞簫獨奏 <晋陽調와 중모리> 鄭海是(杖鼓)22) 1940.3.18.(월) 20:40- 朝鮮 時調와 洞簫(裡) 1. 時調 1) 平時調 2) 辭設23)時調 3) 頭擧 金 烈 / 柳東初(洞簫) / 林宗祖/(杖鼓) 18)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총색인 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에서 확인불가능. 19) 조재필은 觱篥을 연주한 악사이며,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총색인 작업의 오류로 퉁소항에 삽입된 것으로 20) 21) 22) 23) 보인다. 임소향의 任 은 林이다. 鳳雀吹의 오자로 보인다. 정해시는 퉁소연주자이므로, 장고연주자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 辭說의 오류로 보인다.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61 2. 洞簫散調 진양조 柳東初 / 林宗祖 / (杖鼓) 1941.1.28.(화) 20:20- 매일 洞簫와 奚琴 <진양조, 중모리, 새打鈴> 鄭海是(洞簫) / 金 (奚琴) 1941.3.9.(일) 20:55- 매일 洞簫와 奚琴 <鳳雀吹, 진양조, 중모리, 자즌모리> 鄭海是(洞簫) / 金德鎭((奚琴) 1941.8.24.(일) 13:00- 매일 名曲 散調 <진양조, 중모리, 엇중모리, 잔모리> 金基世(解說) / 沈相健(伽倻琴) / 金德鎭(奚琴) / 鄭海是(洞簫) / 池永姬(細笛)/ 韓南宗(鼓手) 1941.10.12.(일) 20:00- 매일 俗曲 <신아위, 새打鈴, 굿거리> 韓甲得(玄琴) / 鄭海時(洞簫) / 方聖草(細笛) / 沈相健(伽倻琴) / 金德鎭(奚琴) / 韓南宗(鼓手) 1945.8.13.(월) 20:00- 매일 洞簫 獨奏 <곡명없음> 李忠善 <자료 7>에서 우리는 지영희(池永姬)24) 명인이 참여하여 퉁소의 정해시, 해금의 김덕진 등과 함께 진양조 중모리 엇중모리(중중모리로 보인다) 잔모리로 구성된 산조합주가 연주되었 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같은 해 3월 9일 정해시가 퉁소산조를 연주할 때 진양조 중모리 자즌모리 한바탕의 퉁소산조를 연주한 것과 비교하여 엇중모리가 늘어난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유동초의 퉁소산조에서 진양조가 연주되었음을 알려주는 방송곡목도 보인다. 유 동초의 음악은 빅타스타에 산조(중모리) 가락이 소개되어 있으나, 진양조 음악은 현재 유성기음 반으로 취입되어 알려진 바 없다. <자료 8> Victor Star KS-2007(KRE185) 洞簫獨奏 散調 柳東初 鼓韓成俊 Victor Star KS-2007(KRE186) 洞簫獨奏 鳳雀吹 柳東初 鼓韓成俊 <자료 8>은 유동초가 그의 퉁소산조를 취입한 음반인데, 1937년 11월 일본 빅타음반사에서 출판한 11월신보 에 기발매되었다는 광고가 보인다. 정해시도 퉁소산조를 취입하는데 바로 아래 <자료 9>에 이를 정리하여 보았다. 아래 음반의 취입일자는 1935년 후반부터 1936년에 이 르는데 유동초가 빅타스타음반에 퉁소산조를 취입하기 이전에 정해시가 음반을 먼저 발매한 것 24) 池永姬는 池瑛熙의 오류로 보인다.

262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이다. <자료 9> Victor KJ-1081-A,B(KRE127,128) 퉁소산조 洞簫鄭海時25) Victor KJ-1046(7911) 合奏 진양조 洞簫鄭海時 伽倻琴沈相健26) Victor KJ-1046(7912) 合奏 평타령 奚琴金德俊 杖鼓韓成俊 Victor KJ-1047(7913) 合奏 엇중모리 洞簫鄭海時 伽倻琴沈相健 Victor KJ-1047(7914) 合奏 잔모리 奚琴金德俊 杖鼓韓成俊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유동초와 정해시 사이에서 퉁소산조의 창시자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 킬 수 있다. 유동초와 정해시 중 누가 먼저 퉁소산조를 완성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단소산조의 경우에서처럼 유동초와 정해시가 독자적으로 퉁소산조를 연주하고 있었고, 유동 초 정해시 순서로 방송에 출연하였으며, 정해시 유동초 순서로 퉁소산조를 음반에 취입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타당하다. 정해시 심상건 김덕진 한성준 등이 참여하여 취입한 빅타음반에서 보이는 진양조 평 타령 엇중모리 잔모리 장단을 살펴보면, <자료 7> 1941년 8월 24일에 방송된 산조합주의 진 양조 중모리 엇중모리 잔모리 장단 구성과 비교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정해시 퉁소 산조의 구성이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와 같이 전형적인 대금산조의 구성과 같아 진 것을 볼 수 있다.27) 2. 피리산조의 형성시기 점검 앞에서 지영희가 산조합주에서 피리로 참여한 방송기록이 있음을 보았다(<자료 7> 1941.8.24 (일)). 그러나 지영희는 피리로 일제강점기에 맹활약을 벌였던 한성준과 비교하면 한참 후배이므 25) 정해시가 남긴 퉁소산조는 빅타 대중반으로 발매한 중모리와 빠른 중모리가 있다. 이 유성기 음반은 Victor KJ-1081-A, B(KRE127, 128) 퉁소산조 洞簫鄭海時로 마스터 동판에 Victor KJ-1081-A, B(KRE127, 128) Chinyang Teikaiti March 3-36이라고 적혀있는데, 정해시가 연주한 것이 진양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음반에서 정해시가 연주한 것은 중모리이므로 진양이라고 표기된 것은 잘못 표기된 것이다. 이진원, 鄭海時 洞簫散調 연구, 韓 國音盤學 (서울: 한국고음반연구회, 1995), 제5호. 원반 표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 (서울 : 민속원, 1998) 참조. 26) 원반표기는 Sancho Soken nov 11-35. 27) 엇중모리와 중중모리는 각기 2분박 6박자와 3분박 4박자로 그 리듬 구성이 다르나, 모두 12분박으로 형성된 장단 이라는 점에서 서로가 일치한다. 상호간의 연관성 문제는 각기 원반을 살펴보고 재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63 로, 먼저 한성준의 활동기록을 중심으로 먼저 살펴본다. <자료 10> 피리인명 한성준: 37.3.4(319); 37.9.9(346); 37.11.15(353); 38.1.3(360); 39.7.15(417)28) 한성준 심방곡: 34.9.11(208); 36.9.6(293); 36.10.6(297); 신아위: 33.6.21(139); 33.8.11(147) <자료 11> 1933.6.21.(수) 21:00- 매일 신아위와 俗曲 <念佛, 打鈴, 굿거리, 신아위> 池龍九(奚琴)/ 韓成俊(笛)/ 方龍鉉(大笒) 1933. 8.11.(금) 21:00- 매일 신아위 <念佛打鈴, 굿거리, 신아위, 느진중머리, 자진중머리> 池龍九(奚琴)/ 梁正云(觱篥)/ 이기창(李基昌)/ 韓成俊(長鼓) 1934. 9.11.(화) 21:00- 매일 舞踊曲俗과 神方曲 <念佛, 打鈴, 신아위, 굿거리> 方龍鉉/ 李日善/ 池龍九/ 韓成俊(觱篥) 1936. 9. 6.(일) 21:05- 매일 俗曲 <念佛, 打鈴, 神方曲, 굿거리> 韓成俊(細笛)/ 方龍鉉(大笒)/ 金德鎭(奚琴)/ 池龍九(杖鼓) 1936.10. 6.(일) 12:05- 매일 俗曲 <念佛, 打鈴, 神方曲, 굿거리> 韓成俊(細笛)/ 方龍鉉(大笒)/ 金德鎭(奚琴)/ 池龍九(杖鼓) 1937. 3. 4.(목) 12:05- 매일 俗曲 <念佛, 打鈴, 신아위, 굿거리> 金德鎭(奚琴)/ 方龍鉉(大笒)/ 韓成俊(觱篥)/ 池龍九(杖鼓) 1937. 9. 9.(목) 12:05- 매일 俗曲 <念佛, 打鈴, 신아위, 굿거리> 韓成俊(觱篥)/ 方龍鉉(大笒)/ 金德鎭(奚琴)/ 池龍九(杖鼓) 1937.11.15.(월) 12:05- 매일 俗曲 <念佛, 打鈴, 신아위, 굿거리> 韓成俊(觱篥)/ 方龍鉉(大笒)/ 金德鎭(奚琴)/ 池龍九(杖鼓) 1938. 1. 3.(월) 12:50- 매일 俗曲 <念佛, 打鈴, 신아위, 굿거리> 韓成俊(觱篥)/ 方龍鉉(大笒)/ 金德鎭(奚琴)/ 池龍九(杖鼓) 한성준29)의 고수 및 무용가로서의 명성은 이미 알려진 바 많거니와, 위 <자료 10>에서 보듯 28) 別曲 갈가보다 마두軍樂 등을 연주한 것이다. 29) 한성준(韓成俊 1874.6.12-1942.7)은 조선말기의 명고수로 충청남도 홍성에서 출생하였다. 8세 때 북채를 잡고 외 조부에게 북을 배우다가 뒤에 박순조(朴順祚)에게 사사했다. 17세 때 명고수가 되어 5년 동안 15차의 창방(唱榜) 을 치르고, 김창환(金昌煥) 박기홍(朴基洪) 송만갑(宋萬甲) 이동백(李東伯) 정정렬(丁貞烈) 등의 고수를 지냈다.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 중모리 진양조 엇모리 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 명무(名舞)로도 이름을 떨쳤고,

264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이 피리 명인으로서의 사실은 그리 알려진 편이 아니다. 그의 피리 연주가 유성기음반을 통해서 몇 장 알려졌고, 이미 복각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성준의 피리 명인으로서의 전부를 말 해주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자료 11>를 살펴보면 대금의 방용현, 해금의 김덕진 등과 함께 시나위 합주를 여러차례 피 리로 방송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해금시나위를 취입했던 지용구가 해금산조를 후일 오케음 반에 취입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피리시나위를 연주한 한성준이 우리나라 최초의 피리 산조를 연주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자료 11>에서 1933년 8월 11일 방송곡을 보면, 신아위 <念佛打鈴, 굿거리, 신아위, 느진중머리, 자진중머리>를 방송한 양정운의 피리연주가 있다. 이 연주는 신아위 뒤에 느진중머리 자진중머리라 하여 산조에서 사용되는 장단을 사용 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한성준은 콜럼비아사나 빅타음반회사에서 고수로 활동하면서 소위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했 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서도 피리연주자로서의 기량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빅 터에서 취입한 그의 피리 심방곡 음반이 그것을 증명하여 준다. 이 자료의 음반은 빅터의 초기 음반에 해당되며, 그 발매시기가 비교적 이른, 1930년 이전에 발매된 것으로 보인다.30) <자료 12> Victor 49064-A 神方曲신아위(上) (진양조) 伽倻琴沈相健 小笛韓成俊 玄琴白樂俊 杖鼓李中仙 Victor 49064-B 神方曲신아위(下) (느진살푸리) 伽倻琴沈相健 小笛韓成俊 玄琴白樂俊 杖鼓李仲仙31) 1933년에는 조선성악연구회 창립자의 한 사람이 되어 후진양성에 힘썼다. 무용에서도 혁신적인 체계와 기초를 세웠는데, 1935년 부민관에서 첫 작품발표회를 가진 이후, 1940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일본의 도쿄 히비야공회당 에서 공연을 하여 일본인들이 조선춤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41년 모던니폰사(モダン日本社)가 제정 한 예술상을 받았으며, 만년에는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僧舞) 학무(鶴舞) 태평무(太平舞)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특히 학춤에 뛰어났다. 두산세계대백과Encyber (서울 : 두산, 2001-2003), 한성준 항목 참조. 30) 이 음반은 국립국악원 개원 마흔돌 기념 음반 이왕직아악부의 음악 (서울: 신나라레코드 국립국악원), 14번째 트렉에 수록되어 있다. 그 음악은 본 음반에 해설서에도 되어 있듯이 앞면 진양조는 중모리나 중중모리의 속도와 장단에 해당하고, 귓면 느린 살푸리는 느린 살풀이 장단과 자진모리 장단에 해당한다. 필자가 이 음반을 1930년 대 초에 발매된 것이라 보는 이유는 1928년 12월 31일의 동아일보 하단 일본빅타의 조선음반 발매 광고에 Victor 49017번의 낙화유수 음반이 다음해 1월에 판매될 것이라 하고 있다. 이로부터 매월 신보에 보이는 음반의 수를 20매 정도라 한다면 Victor 49064번은 1929년안에 발매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늦어도 1930년 이전에는 발매 된 것으로 확신할 수 있다. 31) 한국고음반연구회, 제3회 유성기음반 전시회 학술대회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프로그램.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65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포리도-루레코드 4月新譜 에는 한성준의 피리연주로 취입된 몇가지 기악곡이 보인다.32) <자료 13> 器樂 一九三八 새타령 살푸리 피리韓成俊, 통소鄭海時, 해금金德鎭 一九三九一 진양조 중머리 피리韓成俊, 통소鄭海時, 해금金德鎭 <자료 12>와 <자료 13>을 보면 한성준이 피리산조 창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료 12>의 빅타음반에는 심상건 및 백낙준과 함께 시나위를 합주하면서, 산조에서 특징적으 로 나타나는 진양조 장단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 제목이 심방곡, 즉 신아위였지만 지영희 명 인이 해금산조를 해금시나위로 습관적으로 호칭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한성준의 피리 심방곡 합 주 참여는 피리산조의 창제의 첫걸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자료 13>에서 4월 신보가 소화 12년 즉, 1937년에 출간된 것이고, 그 음반은 1937년 1월 이 후에 발매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폴리도루 음반에 진양조와 중머리를 한성준이 정해 시와 김덕진과 함께 합주한 것은 1933년 이후 계속적으로 피리신아위를 연주해온 한성준이 다 른 악기의 산조연주자인 정해시 김덕진과 함께 산조합주를 취입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피리 산조의 첫 녹음이자, 첫 음반이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양정운이 참여하여 느진중모리 와 자진중모리를 방송하기는 했으나, 한성준의 피리 산조와 관련되어 있는 몇 장의 음반을 취입 한 것으로 보아 그가 피리산조의 서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폴리도루 음반의 실 물이 발견되지 않아, 한성준 초기 피리산조의 진양조와 중머리의 음악을 짐작하기는 힘들다. 한성준 이후 피리가 참여한 산조합주를 경성방송국에서 지영희33)가 <자료 7> 1941.8.24(일) 자 방송곡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심상건(가야금) 김덕진(해금) 정해시(통소) 한남종(고수)와 함께 방송한 적이 있다. 이러한 방송 활동을 통해 지영희는 피리산조 한바탕을 구성하겠다는 의 지를 가지고 해방 후 <인용 1>에서 박범훈이 언급한 바와 같이 1960년대 그만의 피리산조 한바 탕을 구성한 것을 알 수 있다. 32) 필자소장, 포리도-루레코드 4月新譜 는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에 보이지 않는 본 음반이 실려있다. 33) 본 신문기사에서는 지영희를 池永姬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이는 당시 김덕진 등을 사사한 지영희(池瑛熙)의 오 자로 볼 수 있다.

266 國 樂 院 論 文 集 第 15 輯 Ⅳ.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의 의의 3장의 경성방송국의 방송목록 검토를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 었다. 먼저 단소산조에 있어서 새로운 단소산조의 연주자를 발굴했다는 점이다. 그들 중 한문숙 은 진양조, 중모리, 휘모리를 연주했으며, 퉁소산조의 유동초도 단소산조를 연주했고, 이후 강봉 근이라는 연주자가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의 단소산조를 연주하였음을 알았다. 이들 의 방송출연 시기는 1935년 이후이며, 단소산조 등 종취관악기 산조가 가야금산조 거문고산 조 대금산조 등의 영향을 받아서 틀을 갖추게 된 시기가 1930년대 중반 이전임을 말해주는 것 이라 볼 수 있다. 필자는 앞서 전추산의 단소산조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전추산이 1930년대 유동초나 정해시와 비슷한 시기에 단소산조를 짜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을 했는데, 전추산이 경성방송국 에서 방송을 하지 않은 관계로 보다 정확한 단소산조의 형성시기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킬 수는 없었다. 우리가 경성방송국의 방송목록만을 의지해서 단소산조는 강봉근이 짰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유동초가 퉁소산조와 함께 단소산조를 구성했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 만 산조라는 이름으로 단소 연주가 1930년대 있었고, 그것이 1935년 이후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 로 보아, 기타 다른 산조들이 이미 크게 유행하고 있을 때 단소로 산조를 연주하는 시도가 있었 으며, 단소산조를 연주했던 여러 연주가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그러므로 단소산조의 창시자는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단소연주자들이 개별적으로 만들어 낸 공동의 창작물이며, 각기 개별적 개성을 지니고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퉁소산조의 경우에는 주로 유동초와 정해시의 연주가 집중적으로 방송곡 목록에 나타나고 있다. 유동초가 먼저 1936년경에 방송을 시작해서 1937년부터 정해시가 퉁소산조를 연주하고 있음이 방송국 방송 목록을 확인한 결과 밝혀졌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퉁소산조 형 성에 관련된 논의와 부합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해시가 퉁소산조 음반을 유동초보다 먼저 취 입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유동초가 퉁소산조를 창시했다는 보편적인 논의에서 이제는 벗어나 퉁소산조의 창시자와 창제시기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피리산조에서는 한성준이외에 피리 진양조 중모리를 음반에 취입한 이가 없었다. 한성준 자신도 방송에서는 피리산조라는 제목으로 산조를 연주한 적이 없고, 음반에 취입한 것도 정해 시 김덕진과 함께 였으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피리산조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조 에서 가장 중요한 장단인 진양조를 정해시와 김덕진과 같이 산조 합주형태로 유성기음반을 취 입한 것으로부터 한성준이 당시 산조를 연주했다고 확인하였다. <자료 7>의 1941년 8월 24일에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67 방송된 산조합주에서 지용구와 정해시로부터 해금산조를 배운 바 있는 지영희 명인이 피리로 참여하여 진양조 중모리 엇중모리 잔모리 장단 구성의 산조합주를 연주한 것을 보면, 피 리산조는 일제강점기에도 존재했음은 더욱 확실해진다. 다만 박범훈의 피리산조연구 에서 언 급하는 바, 1941년 산조합주에 피리로 참여했던 지영희가 국악예고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 피 리산조를 채 완성하지 못했다는 언급으로부터 1941년의 산조합주에서 완전한 틀을 갖춘 피리산 조 가락을 연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된다. 결국 지영희는 국악예고 재직 중 피리산조를 완성 하게 되고, 그 가락의 대부분이 박범훈에 의해서 전승되게 되었다.34) Ⅴ. 맺음말 이제까지 종취관악기 중 단소 퉁소 피리의 산조형성시기에 대하여 경성방송국국악방송 곡목록 과 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색인 및 관련 유성기음반을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산조형성시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첫째, 우리는 전추산으로부터 단소산조 형성에 대한 논의를 분리시켜 몇몇의 다른 단소산조 연주자들이 단소산조 형성에 대한 기여한 바가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1930년대 중반이후에 단 소산조가 널리 연주되고 있었음을 보았다. 둘째, 퉁소산조의 창시에 있어서 정해시와 유동초의 기여도를 다시 가늠해야 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퉁소산조는 유동초가 처음 짰다고 한다. 그렇지만 실제 유성기음반 출시가 정해시가 유 동초보다 먼저인 것과 정해시 유동초 퉁소가락에 공통적인 가락이 들어있는 것을 볼 때, 퉁소 산조는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퉁소산조를 연주하고, 음반에 퉁소산조를 취입한 시기보다 이 른 시기에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피리산조는 한성준에 의해서 이미 1930년대에 시도된 바 있었으며, 피리산조를 처음 짠 것으로 알려진 지영희도 1940년대 초 산조합주의 형식으로 피리산조를 연주한 적이 있음이 새 롭게 밝혀졌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에서의 피리산조 합주 시도가 후일 피리산조의 본격적인 완 성에 기여를 했음은 명약관화하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에 따른 경성방 송국국악방송곡목록색인 의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신문방송기사 34) 成錦鳶 編, 池瑛熙民俗音樂硏究資料集 (서울 : 민속원, 2000). 박범훈의 피리산조와 이충선의 피리산조 이외 에도 오진석-이생강-정재국으로 이어지는 오진석의 피리시나위 가락을 정리하여 정재국류 피리산조가 만들어졌 고, 이생강도 피리산조를 한바탕 구성했다 한다.

268 國樂院論文集 第 15輯 를 정리하고 이를 여러 논문에서 활용하고 있었지만 색인 과 같은 체계적인 연구결과가 발표 됨에 따라 특히 일제강점기 1920년대 후반 부터의 음악사가 보다 구체화된 느낌이다. 앞으로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색인 의 활용이 현재 한국음악사학계의 자료 빈곤의 공허함을 체계 적으로 메꾸어 주리라 기대하며 본 글과 같이 여러 산조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 분석이 계속적 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김기수 편저. 단소율보. 서울 : 은하출판사, 1979. 김성혜. 朝鮮日報 의 國樂記事:1920-1940(Ⅱ). 韓國音樂史學報. 경산 : 韓國音樂史學會, 1994, 제13집. 김해숙. 산조연구. 서울 : 세광음악출판사, 1987. 두산세계대백과Encyber. 서울 : 두산, 2001-2003. 朴範薰著. 피리散調硏究. 서울 : 世光音樂出版社, 1895. 백대웅. 인간과 음악. 서울 : 이론과 실천, 1988. 宋芳松 宋相赫 外.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색인. 서울 : 민속원, 2002. 이보형. 無形文化財 調査報告書(7) 散調. 서울 :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7. 이진원. 柳東初 洞簫散調의 선율분석.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1992, 제2호. 이진원. 鄭海時 洞簫散調 연구.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1995, 제5호. 이진원. 종취관악기의 전통적인 주법 연구 : 퉁소와 단소를 중심으로. 국악교육. 서울 : 한국국악교 육학회, 1997, 제15집. 이진원. 韓國洞簫的歷史. 1999年杭州國際尺八硏討會發表論文. 항주 : 중일국제척팔교류회, 1999. 이진원. 봉장취 형성과 주변국 음악과의 연관관계.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2001, 제11호. 이진원. 시나위의 새로운 정의 시론. 韓國音樂史學報. 서울 : 韓國音樂史學會, 2001, 제27집. 이진원. 崔玉三 단소산조 연주. 韓國音盤學. 서울 : 한국고음반연구회, 2002, 제12호. 이진원. 한국과 중국의 퉁소음악 중 두소리<雙聲> 기법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술대 회.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국악과, 2003.

단소산조 퉁소산조 피리산조 형성시기 재검토 269 이진원. 국악명반을 찾아(14) 한범수의 퉁소산조 : 음양이 조화를 이룬 신비의 음색. 객석. 서울 : 주식회사 예음, 1992, 통권101호, 7월호. 이진원. 국악기를 찾아서(5) 단소. 뮤직프라자. 서울 : (주)서울음반, 1993, 통권34호, 11 12월호. 이진원. 강춘섭과 풀피리, 유동초와 퉁소, 유성기음반에 담긴 산조대금과 퉁소. 명인명창선집(8) 대 금 퉁소 풀피리의 명인들. 서울 : 지구레코드, 1994. 이진원. 추산 전용선의 단소 예술. 신비의 가락 추산 전용선 단소. 서울 : 서울음반, 1996. 이진원. 한국의 퉁소. 고음반연구회 음향자료선집(6) 이보형채록 한국의 퉁소가락. 서울 : 한국고 음반연구회, 2000. 포리도-루레코드 4月新譜. 경성 : 포리도-루레코드사, 1937. 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 서울: 민속원, 2000, 일제강점기 국악활동 자료집2. 韓範洙. 韓範洙 대금散調譜. 서울 : 民學社, 1975.

270 國 樂 院 論 文 集 第 15 輯 A Re-examination of the Formative Period of Tanso Sanjo, Tungso Sanjo and Piri Sanjo 35) Lee, Jin-Weon* Research on the formative period of the sanjos of the danso, tungso, and piri--which are representative vertical wind instruments of Korea--is rare. This scarcity has been attributed to the lack of related materials and experts in this research field. However, the second volume of the collected materials of Korean music activit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entitled A Catalogue of Broadcasted Korean Music Pieces by Kyeongseong Broadcasting System ( Kyeongseongbangsongguk Kugakbangsonggokmongnok ) was recently published, and the index of the volume was also issued. Thus, it is now possible to obtain important information of the formative period of the sanjos of danso, tungso and piri. Through phonograph recordings and other types of materials, the author re-examined the formative period of the three kinds of sanjos and reached a conclusion as follows. First, danso sanjo was formed not only by Jeon Chu-san but also by other performers of danso sanjo, who greatly contributed to its creation. It is assumed that danso sanjo was popular since the mid 1930s. Second, the contributions of Jeong Hae-si and Yu Dong-cho to the formation of tungso sanjo should be reconsidered. Yu Dong-cho is known to be the person to have formed the tungso sanjo. However, Jeong Hae-si issued a recording earlier than Yu Dong-cho, and similar melodic lines exist between the two sanjos. Therefore, it can be assumed that the tungso sanjo was formed before the period when the musicians' performances were aired on the radio, and the first record of the tungso sanjo was issued. Third, piri sanjo was already formed by Han Seong-jun in the 1930s, and it was performed in the form of sanjo ensemble in the early 1940s by Ji Yeong-hui. From the latter information, it is clear that the piri performance, offered in the sanjo ensemble performanc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ntributed to the maturity of piri sanjo. * Assistant Professor, The Korean National University of Arts